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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프레스코 기법’ 재현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 동국대 교수

    추억의 명화 ‘고통과 환희’는 바티칸 시스티나 대성당에 그려진 천장벽화 ‘천지창조’의 탄생과정을 다룬 내용이다. 찰톤 헤스톤이 주인공 미켈란젤로를 맡아 명연기를 펼친다. 율리어스 2세 교황의 요청으로 벽화를 그리게 된 미켈란젤로가 숱한 고통을 겪으며 완성해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다. 미켈란젤로는 천장벽화를 그리기 위해 임시로 마련된 18m 높이의 설치대 위에서 웅크린 채 일을 하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기도 했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작업을 하다 물감 세례를 받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작품은 4년에 걸쳐 완성된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뿐만 아니라 당시 많은 벽화를 그릴 때 대부분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했다. 프레스코(Fresco)는 이탈리아어로 ‘축축하고 신선하다’는 뜻이다. 프레스코화는 신선하고 덜 마른 회반죽 바탕에 물에 갠 안료로 채색한 벽화를 말한다. 그림물감이 표면으로 배어들어 벽이 마르면 그림은 완전히 벽의 일부가 되고 물에 용해되지도 않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프레스코화는 벽의 수명만큼 지속된다. 미켈란젤로 외에도 라파엘로와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거장들이 주로 프레스코화를 많이 그렸다. 그러다가 유화가 등장하면서 점차 사라졌고 20세기 들어와 멕시코의 리베라, 오로츠코 등에 의해 재발견되면서 프레스코의 전통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중견 서양화가 오원배(61) 동국대 교수는 2007년 5월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 때 다른 여러 그림과 함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의 그림 4점을 내걸어 화단의 관심을 모았다. 국내 중견 화가가 프레스코 기법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에서 일단 그랬다. 당시 정영목 서울대(미술사) 교수는 “전통적인 방식의 진짜 프레스코를 처음 선보였다”면서 “젖은 듯 스며든 야릇한 색감과 그 기법상의 성격은 오원배 특유의 형이상(形而上) 회화의 독특한 분위기를 내는 데 아주 적격”이라고 평가했다. 5년 뒤인 2012년 11월 오 교수는 강화도 전등사 무설전 법당에 프레스코 기법으로 후불 벽화를 그려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보통 불화는 부처 주변에 보살들을 배치하는데, 오 교수는 부처의 제자인 가섭과 아난 등을 부처 가까이에 그려넣어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는 프레스코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오는 10월 종로구 통의동 갤러리 아트싸이드에서 그동안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프레스코화 30여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600년 전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대가들이 즐겨 그렸던 전통 프레스코 기법을 직접 재현해 일반인들에게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지난 9일 동국대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자리에 앉으면서 작업과정에 대해 먼저 물었다. 방음벽을 만들 때 사용되는 흡음판을 들고 설명한다. “이 흡음판에 석회를 입히고 마르기 전에 스케치를 한 다음 색깔을 입히는 것이지요. 젖은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야 화학작용이 잘 이루어지면서 흡착력이 좋고 오래도록 변색되지 않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경우 마르기 전에 그리는 전통기법을 사용했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마른 상태로 그리는 이른바 프레스코 세코 기법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최후의 만찬’이 여러 차례 보수된 것도 마른 상태에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의 설명에 따르면 프레스코 회화는 원래 크레타와 그리스 벽화, 폼페이 벽화 등에도 나타난다. 중세 초의 벽화에는 여러 가지 혼합 방법으로 사용되다가 14~15세기 이탈리아 대가들에 의해 프레스코화가 가장 활발해졌다. 또한 아시아 쪽에서는 11~12세기 인도 지방의 일부 벽화에서 프레스코 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부 미술사가들이 고구려 고분벽화나 장군총 등을 프레스코화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류 최초의 회화는 프레스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타미라 석회암 동굴에서 발견된 여러 벽화만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석회암 동굴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린 것이 오랜 세월동안 마모되지 않고 전해지게 된 것이지요.” 오 교수가 프레스코화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1982년 프랑스 유학 때였다. 그는 당시 파리시내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있는 조그마한 호텔에서 지냈다. 말이 호텔이지 꼭대기의 비둘기집처럼 작고 허름한 곳이다. 아는 사람도 없어 방안에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창문을 열고 한참 밖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지붕 굴뚝의 색깔이나 생김새가 각양각색이었다. 토기로 구운 것, 쇠로 만든 것, 구리로 만든 것 등 그 형태가 달랐다. 또한 같은 집이라도 방의 수만큼 굴뚝이 솟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때부터 시간만 나면 창문을 열고 빨강, 파랑 등 각기 다른 색깔의 지붕과 굴뚝을 보면서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보들레르의 플라네르(한가롭게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처럼 할 일 없이 파리시내 곳곳을 기웃거리며 스케치를 했다. 그러면서 프레스코를 꾸준히 익혔다. 1985년 유학길에서 돌아온 뒤 세 차례 더 파리에 갔을 때에도 계속 스케치를 하며 프레스코화를 틈틈이 그렸다. 그러다가 2007년 인사동 개인전 때 네 작품을 슬쩍 공개한 것이 처음이었다. 유학시절을 회고하던 그가 잠시 한 일화를 소개한다. “제가 파리국립미술학교에서 학과대표(아틀리에 양켈)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루브르박물관 앞 광장에 유리 피라미드의 보수공사를 하기 위해 둘레에 출입을 금지하는 펜스를 쳐놓은 것을 보게 됐습니다. 하루는 학생 10여명과 야간에 급습(?)을 했지요. 그 펜스에다 낙서화를 그린 뒤 ‘야음을 틈타 프랑스 졸개들을 데리고 와서 한글로 그림을 그리다’라는 글을 써놓았습니다. 매표소로 가려면 펜스를 돌아가야 하는데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있었고 이를 보고 기분이 좋다는 한국 사람도 있었지요.” 유학시절 재불화가인 한묵 선생과의 인연도 잊지 못한다. 이에 대해 “1961년 홍익대 교수를 박차고 파리로 가서 신문배달, 페인트칠 등 궂은일을 하면서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신 분”이라고 말한다. 힘든 유학생활을 어떻게 견디고 또 앞으로 어떤 작가정신으로 걸어가야 할지에 대해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인천에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만화 형태의 짤막한 그림을 좋아해 흉내를 자주 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미술반에서 활동했다. 이때 화가인 미술선생을 만나면서 장차 화가를 꿈꾸게 된다. 크고 작은 규모의 미술대회에 나가 많은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시간만 나면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대학 진학 이후에는 주로 ‘인간’과 ‘소외’에 관심을 둔다. 1970년대에는 가면이나 탈을 쓴 인간의 이미지를 작품에 주로 담는다. 군대생활과 맞물려 통제된 사회, 언로가 막힌 시대상을 표현하고자 가면을 동원했다. 또한 1980년대에는 ‘짐승 혹은 중성화된 생명체(인체)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때는 그가 프랑스 유학에서 돌아와 강단에 선 시기에 해당한다. 유학시절에는 세계적으로 뉴페인팅이 주도하던 시기로 아방가르디아, 신구상회화 등에서 힘을 얻어 거친 표현을 통해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1990년대에는 ‘암울한 도심 풍경과 배회하는 유령(인간) 시리즈’, 2000년대에 들어서는 화면이 양분되고 꽃이 등장하는 ‘이중적 풍경’ 시리즈 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시대의 미술은 인간 정신의 표현에 그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회화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소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표현 가능한 모든 기법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제게는 프레스코화입니다. 프레스코화는 전통적 회화 기법이지만 제작 과정이 굉장히 까다롭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죠. 또 시도가 각기 다른 작품을 한데 모아 전체적으로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는 프레스코화에 자신이 생겼다고 말한다. 파리 유학 시절에 아름다운 지붕을 보면서 시작된 프레스코화를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 프레스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까닭도 이 같은 지난한 작가적 연구정신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나라 프레스코화의 전망에 대해서는 “사찰이나 여러 조형물 등에 반영구적인 벽화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오원배 화가는 1953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송도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 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미술교육학을 전공했다. 198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나 1985년 파리국립미술학교를 수료한 뒤 귀국했다. 1986년 동국대 전임강사를 시작으로 대학강단에 섰다. 그러면서 파리국립미술학교에 연구교수로 세 차례 다녀왔다. ‘이달의 작가전’(국립현대미술관, 1989년), ‘올해의 젊은 작가전’(조선일보 미술관, 1993년) 등 13회의 개인전과 300회 넘는 국내외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아미술대전, 중앙미술대전 등에서 심사위원을 지냈으며 ‘아시아프’ 총감독(2012년)을 역임했다. 주요 상훈으로는 파리국립미술학교 회화 1등상(1984), 프랑스예술원 회화 3등상(1985), 조선일보 올해의 젊은 작가상(1993년), 이중섭미술상(1997년) 등이 있다. 파리국립미술학교, 프랑스 문화성, 일본 후쿠오카 시립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국내외 30여곳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현재 동국대 예술대 미술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커버스토리] 숫자로 보는 월드컵 결승전

    [커버스토리] 숫자로 보는 월드컵 결승전

    1930년 우루과이 대회부터 시작해 84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땀과 눈물, 성공과 실패, 환희와 좌절, 영광과 쇠락이 숱하게 교차했다. 종료 휘슬이 울리면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에 도취돼 두 팔을 번쩍 들었고, 누군가는 하염없이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렸다. 숫자를 통해 역대 월드컵 결승전을 정리해 봤다. ‘5’ 최다 우승국 브라질의 트로피수 월드컵 최다 우승국 브라질 대표팀의 가슴에 새겨진 별의 수, 즉 우승 횟수다. 2010년까지 19차례의 월드컵이 열렸지만 우승 트로피를 든 국가는 8개국뿐이다. 이탈리아가 4회로 브라질의 뒤를 따르고 있고, 옛 서독이 3차례 우승을 맛봤다. 이번에 독일이 우승한다면 1991년 통일 이후 처음 정상에 오른다. 이 밖에 원년 우승팀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각각 두 차례, 잉글랜드와 프랑스, 스페인이 각각 한 차례 우승컵을 안았다. 개최국의 우승은 우루과이(1930년)·이탈리아(1934년)·잉글랜드(1966년)·옛 서독(1974년)·아르헨티나(1978년)·프랑스(1998년) 등 여섯 번이었다. 브라질은 1950년과 2014년 두 차례 자국에서 대회를 치렀지만 모두 우승에 실패했다. ‘6175’ 우승컵 ‘FIFA컵’ 무게 우승팀이 입을 맞추는 ‘FIFA컵’의 무게(g)다. 1970년 멕시코대회에서 통산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이 줄리메컵을 영구 소유하자 FIFA는 ‘FIFA컵’이라는 이름의 새 트로피를 만들었다. 7개국에서 53개의 디자인이 제출됐으나 이탈리아의 조각가 실비오 가자니가의 안이 최종 선택을 받았다. 두 명의 선수가 지구본을 받쳐든 형태로 총길이 36㎝, 18k 금으로 제작됐다. 트로피 하단에는 각 대회 우승국의 이름이 그 나라 언어로 새겨져 있다. 우승국은 이 트로피를 잠시 보관하다 FIFA에 돌려주고 도금된 복제품을 대신 받는다. ‘19’ 결승전 횟수…1950년 리그로 치러 브라질월드컵은 제20회 대회지만 결승전은 이번이 19번째다. 1950년 대회의 모든 경기는 리그전 방식으로 치러졌고 토너먼트 형태의 결승전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별리그에서 1위를 차지한 4개 팀을 모아 결선리그를 치렀고, 2승1무를 거둔 우루과이가 브라질(2승1패)을 제치고 우승컵을 들었다. 1승1무의 우루과이와 2승의 브라질이 7월 16일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대회 마지막 경기를 펼쳐 사실상 결승전이라 할 수 있었다. 앞서 스웨덴과 스페인을 7-1과 6-1로 대파한 브라질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었다. 그러나 후반 2분 선제골을 넣고도 21분과 34분 연달아 골을 내주고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이른바 ‘마라카낭의 비극’이다. ‘74738’ 마라카낭 주경기장 수용인원 이번 대회 결승전 장소인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 수용 인원이다. 1950년 지어진 이 경기장은 무려 2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고 규모를 자랑했으나 최근 리모델링으로 축소됐다. 하지만 여전히 브라질에서 가장 큰 축구장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결승전 역대 최다 관중은 1986년 멕시코대회(아르헨티나-서독) 11만 4600명이다. 전 경기를 통틀어 가장 관중이 많았던 경기는 1950년 브라질대회 결선리그 6차전 우루과이-브라질전으로 17만 3850명을 기록했다. 결승전 역대 최소 관중은 1938년 프랑스대회(이탈리아-헝가리)의 4만 5000명이었다. ‘67’ 역대 결승전에서 나온 골의 수 역대 월드컵 결승전에서 나온 골의 수다. 경기당 평균 3.72골이 터졌다. 최고의 두 팀이 맞붙는 결승전인 만큼 골이 적게 나올 것 같지만 초창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1958년 스웨덴대회 때는 브라질이 스웨덴을 5-2로 이겨 무려 7골이 터졌다. 1930년 우루과이, 1938년 프랑스, 1966년 잉글랜드 대회에서도 각각 6골이 나왔다. 그러나 1990년 이탈리아대회부터 결승전은 골 가뭄에 시달렸다. 2010년 남아공까지 6차례 결승전에서 9골만 나와 평균 1.5골에 그쳤다. 프랑스가 브라질을 3-0으로 제압한 1998년 프랑스대회를 빼면 3골 이상 나온 경기가 없다. 1994년 미국 대회에서는 브라질과 이탈리아가 120분 동안 한 골도 넣지 않았다. ‘35000000’ 이번 대회 우승상금…약 355억원 이번 대회 우승 상금(달러)이다. 우리 돈으로 약 355억원. 남아공대회 3000만 달러(약 304억원)에서 16.7% 인상됐다. 준우승팀도 2500만 달러(약 253억원)를 거머쥔다. FIFA는 조별리그에 참가만 해도 800만 달러(약 81억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등 이번 대회 총 5억 7000만 달러(약 5774억원)의 ‘돈 잔치’를 벌였다. 2002년 한·일대회 당시 총 상금은 1억 2000만 달러(약 1216억원)였으나 12년 새 4.75배나 증가했다. FIFA가 그만큼 돈을 잘 번다는 뜻이다. FIFA가 2012년 브라질월드컵 지역 예선 중계권으로 벌이들인 돈만 5억 6100만 달러(약 5683억원)에 이른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웃는 표정은 찡그린 듯, 때론 뒤뚱…장애아들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

    [이 주일의 어린이 책] 웃는 표정은 찡그린 듯, 때론 뒤뚱…장애아들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

    병하의 고민/조은수 지음·그림/양철북 펴냄/36쪽/9500원 “저 아이는 왜 이 세상에 나온 거예요?” 천진하지만 그래서 더 잔인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장애아를 보고 한 번쯤 던질 법한 물음이다. 때로는 연한 순 같고, 때로는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다. 웃는 표정은 찡그리는 것 같고 움직임은 어색해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한다. 쌀쌀한 눈초리를 받거나 놀림을 당하기 일쑤인 장애아들의 겉모습이다. 하지만 조금만 숨죽여 기다려보면 이 아이들의 귀한 모습이 금세 눈에 들어온다. 휠체어에 앉아 움직이지도, 대답하지도 않고 선생님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는 준구. 담임 선생님은 아이를 본 첫날 ‘내내 힘들겠구나’ 생각한다. 하지만 우악스러운 아이들에게 사나워진 마음을 쓸어주는 준구의 희미한 미소에서 힘을 낸다. 열세 살 때까지 기저귀를 차야 했던 미희가 화장실에서 처음 대변을 본 날은 학교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빠진다. 몇 미터를 걸어도 춤추듯 격렬하게 걸어야 하는 경희를 보고 고개를 내젓던 수영 선생님. 하지만 물속에서 환희의 숨을 토해내는 아이를 보고 삶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기쁨을 수영 교사 생활 20년 만에 처음 깨닫는다. 장애아들의 찬란한 순간을 포착한 각각의 장면들은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아이들의 생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보여준다. 작가가 듣거나 책에서 읽은 실화에 살을 덧붙인 이야기 외에도 4세 때 성장이 멈춘 펄 벅의 딸, ‘몽실언니’, ‘강아지똥’ 등 아이들에게 수작을 안겨준 동화작가 권정생, 의지로 낙관한 헬렌 켈러의 장애 이야기가 감동을 더한다. 가끔 장애인들의 거리 시위를 마주치곤 한다는 작가는 “우리들 비장애인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그들의 싸움은 늘 홀로 고되게 끝나게 될 것”이라며 “사람들 생각의 뚜껑이 삐꺽 하고 조금이라도 열리면 좋겠다”고 밝혔다. 5세부터.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바스코 “쇼미더머니3 참가 이유, 아들 맛있는 것 사주려고”…이혼 뒤 근황에 타블로 반응은?

    바스코 “쇼미더머니3 참가 이유, 아들 맛있는 것 사주려고”…이혼 뒤 근황에 타블로 반응은?

    바스코 “쇼미더머니3 참가 이유, 아들 맛있는 것 사주려고”…이혼 뒤 근황에 타블로 반응은? 래퍼 바스코(35)가 ‘쇼미더머니3’에 출연하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지난 10일 오후 11시 Mnet ‘쇼미더머니3’에서는 2차 오디션 현장이 방송됐다. 2차 오디션은 참가자가 1분 동안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곡을 골라 심사위원 7명 앞에서 보여주는 무대다. 바스코는 이날 “‘쇼미더머니3’에 출연한 이유는 아들 때문이다”라며 “사람들에게 내 가치를 인정받고, 아들 섭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고 말했다. 바스코는 지난 2012년 모델 박환희씨와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이혼한 후 아들 섭이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스코의 말을 들은 타블로는 “‘쇼미더머니3’ 출연이 자신에게 불리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바스코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14년 동안 보여준 무대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주 속 별 품은 아빠의 사랑 노래

    우주 속 별 품은 아빠의 사랑 노래

    손바닥을 반으로 가르는 직선의 손금.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의 먼 간격. 치켜뜬 듯 올라간 눈꼬리, 낮은 코. 심장 기형과 갑상선 저하의 가능성. 느리지만 결국 다 해내는 아이. 나는 무너지고 싶었고 속으로는 이미 무너졌다. 그러나 그대로 서 있다. (중략) 나는 나를 기대하기로 했다. 실망도 나에게 하기로 한다. 이 시기의 아이는 그저 찬탄의 대상이어야 한다. 나에게 우주처럼 넓고 별처럼 많은 가능성이 생겨난다. 기대감이 무너진 자리에, 아이를 맞이하는 건 처음이다.(105쪽) 지난해 2월. 스물한 번째 염색체가 보통 사람보다 하나 더 많은 아이, 은재가 시인 아빠를 찾아왔다. 환희로 가득 차야 할 아이가 태어난 날, 아빠는 아픈 아이의 모습에 무너진다. 하지만 아빠는 곧 알아차린다. 아이는 상하고저(上下高低)를 표시해야 하는 수학 그래프의 면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어디에 있든 아이는 제 빛을 내며 반짝이는 하나의 별이라는 것을. 남들은 다운증후군, 장애아라 부르는 아이 덕분에 시인이 우주를 품게 된 이유다. 2006년 ‘시인세계’로 등단, 2011년 두 번째 시집 ‘백 년 동안의 세계대전’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서효인(33) 시인의 얘기다. 그가 딸 은재를 맞이하게 된 이야기를 산문집 ‘잘 왔어 우리 딸’(난다)로 펴냈다. ‘입담 좋은 시인’이라는 문인들의 평처럼, 그의 문장에는 먹먹함과 비애를 밀어내는 유머와 진정성 어린 따스함이 찰랑거린다. 70여편의 산문에는 아내와의 만남을 통해 세상에 없던 존재가 생기던 순간부터 첫 만남의 아픔, 아내에 대한 연민과 사랑, 아이를 받아들이는 지인들의 대범함과 포용력 등 아이가 가져온 변화와 깨달음이 ‘일상의 시편’을 이룬다. ‘아내의 삶이 다채롭고 반짝거렸으면 좋겠다. 충분히 빛이 날 만한 여자인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앞으로도 쉽지 않아 보여 안쓰럽다. (중략) 아이가 주는 애틋함과 따뜻함과는 별개로 아이 엄마로 사는 현실의 무게를 내가 오롯이 다 들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름답고 현명한 그녀의 인생이 이렇게 결정나는 건가.’(175쪽) 다운증후군 딸을 둔 시인에게 사람들은 이렇게 물어 왔다. ‘어떻게 그런 슬픈 일을 극복하셨어요’, ‘내게 왜 이런 시련이 왔을까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시인은 그에 대한 답으로 책을 냈다. “책을 내면서 (장애아를 가진 게) 시련이나 슬픈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축하받을 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내 이웃이 아무렇지도 않게 ‘축하해, 아이가 예쁘구나’ 하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요. 나는 그러지 못했다는 반성문이기도 하죠.” 그의 글은 우리가 살고 있는 ‘비틀린 공동체’를 되돌아보게도 한다. 우리나라에 다운복지관이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재활시설과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단 현실을 짚으며 그는 말한다. ‘세상은 참 이상한 것 같다. 아픈 아이의 자세와 걸음마, 언어와 인지를 도와주는 병원은 별로 없지만 멀쩡한 어른의 다이어트, 오뚝한 코, 눈 밑 애굣살을 위한 병원은 많다.’(245쪽) 지난달 동생이 생기면서 언니가 된 은재는 요즘 스스로 뭔가 하려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이 바쁘다. “아이를 낳고 나서 나 자신은 물론 가족들은 스스로를 비극에 몰아넣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극복하게 해준 건 바로 아이였다”는 시인은 “아이 덕분에 제대로 된 인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고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TV 하이라이트]

    ■밥상의 신(KBS2 밤 8시 55분)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의 16좌(8000m 이상 봉우리들)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이 자신만의 특별한 ‘강철심장 밥상’을 준비했다. 실제로 그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 담긴 등산 도시락을 공개한다. 한편 강레오 셰프는 ‘3초’로 해결되는 초간단 요리비법을 선보인다. 지식 충전, 미식 충족, 오감 만족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푸드 퀴즈쇼가 펼쳐진다. ■별바라기(MBC 밤 11시 15분) 플라이 투더 스카이가 오랜 팬들과 함께 출연해 5년 만에 재결합을 하기까지 숨겨진 이야기와 당시 떠돌던 불화설에 대한 심경을 털어 놓는다. 브라이언은 또 솔로 활동을 할 때 환희에 대한 솔직한 속마음을 고백했다. 15년차 골수팬은 그의 속내를 드러내는 증거를 공개하면서 스튜디오를 술렁이게 만든다. 환희조차 놀란 두 사람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무엇일까. ■마다가스카의 펭귄(니켈로디언 밤 7시) 펭귄 특공대 4인방과 ‘사고뭉치 망상 집단’ 줄리언 대왕 일행이 펼치는 좌충우돌 동물원 첩보 만화. ‘사막의 폭풍’이라는 아르마딜로가 ‘필드의 신사’를 찾는다면서 펭귄들에게 왔다. 알고 보니 ‘필드의 신사’는 한때 미니 골프의 최고 실력자였던 프라이빗이다. 그런데 프라이빗은 무슨 이유인지 아르마딜로의 도전에 응하지 않는다.
  • 조세호-오렌지캬라멜 인증샷, 왜 만났지? ‘미인들 옆에서 표정이..’

    조세호-오렌지캬라멜 인증샷, 왜 만났지? ‘미인들 옆에서 표정이..’

    개그맨 조세호와 걸그룹 오렌지캬라멜이 뭉친 인증샷이 공개됐다. 조세호는 24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룸메이트 나나와 오렌지캬라멜 친구들과의 ‘불후의 명곡’ 특집 연습. 파이팅”이라는 글과 함께 다 같이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조세호와 오렌지캬라멜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화장기는 없지만 훈훈한 미모의 오렌지캬라멜과 환한 표정을 짓고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린 조세호의 모습이 돋보인다. 이들은 지난 23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된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해다’ 무대에 함께 올랐다. 해당 사진은 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을 하던 중 촬영한 것. 이날 녹화는 여름노래 특집으로 ‘친구와 함께 떠나는 여름 여름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진행됐다. 조세호와 오렌지캬라멜 외에 환희와 거미, 정동하와 딕펑스, 에일리와 신보라, 조성모와 임정희, 제국의 아이들과 나인뮤지스, JK김동욱과 MC스나이퍼 등 총 7팀이 경합을 펼쳤다. 조세호는 오렌지캬라멜 나나와 SBS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에 함께 출연한 인연으로 무대에 오른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불후의 명곡’ 여름노래특집은 오는 7월 중에 방송될 예정이다. 사진 = 조세호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UN 김정훈 최정원 사이 정말 안좋다” 브라이언 폭로 내용 들어보니 ‘충격’

    “UN 김정훈 최정원 사이 정말 안좋다” 브라이언 폭로 내용 들어보니 ‘충격’

    “UN 김정훈 최정원 사이 정말 안좋다” 브라이언 폭로 내용 들어보니 ‘충격’ 남성 듀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멤버 브라이언이 2000년대 큰 인기를 끌었던 남성 듀오 UN 김정훈과 최정원의 불화를 폭로했다. Mnet ‘음담패설’은 19일 5년만에 재결합한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환희와 브라이언이 출연해 ‘데뷔 15년차 플라이투더스카이, 둘 중 리더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브라이언은 재결합할 가능성이 있는 2000년대 그룹으로 UN이 언급되자 “그 분들은 절대 안 나올 것 같다. 둘이 사이가 정말 안 좋다”고 말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MC 김태우 역시 “이건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며 둘의 불화를 기정사실화 했다. 브라이언은 “두 분은 방송국 올 때 다른 차를 타고 왔다. 차 역시 주차장 반대편에 주차했다”며 “대기실 지나가다 다른 멤버를 물어보면 모른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에 MC 김구라는 “그런데 왜 하필 그룹 이름이 UN이냐. UN은 국가연합 아니냐”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사주, 북한산 스님 “조성민과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 소름돋는 예언 ‘충격’

    최진실 사주, 북한산 스님 “조성민과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 소름돋는 예언 ‘충격’

    故 최진실 어머니가 방송에 출연해 최진실 최진영 남매를 떠나보낸 심경을 털어놨다.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지난 16일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최진실 최진영을 떠나보내고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인생을 살면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그 때 절실히 느꼈다. 두 아이들을 잃고 나서 난 ‘아, 나도 갈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이후로 호시탐탐 두 아이를 따라가려고 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하루는 진실이가 남긴 물건 속에서 우울증 약을 발견하고 잠깐 의존했었다. 그때 딸아이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며 “나도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았다. 약을 많이 먹는다. 딸 아들 보내고 약이 없었다면 정신병자처럼 살았을 거다. 몇 년이 지나다보니 몸이 쇠약해지고,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특히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그래도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독하고 강한지. 내 자신이 무섭고 지독했다. 나를 다시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어린 환희와 준희였다. 어느새 훌쩍 성장해 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는 영원한 내 삶의 이유다. 잘 키우는 것이 남은 사명이다”고 말했다. 이날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어느 날 최진실이 ‘엄마, 조성민이 내 팬이래. 방송국에서 같이 만나게 해준대’라고 하더라”며 “만남 후에 두 사람이 의남매를 맺고 조성민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했다더라. 자꾸 만나게 되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서 ‘그런 감정 가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서로 집에 드나들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며 최진실 조성민의 첫 만남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최진실 조성민의 사주와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고 하더라”며 결혼을 반대한 이유를 털어놔 놀라움을 자아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故 최진실 어머니, 북한산 스님 “최진실 조성민 궁합,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 예언 ‘소름’

    故 최진실 어머니, 북한산 스님 “최진실 조성민 궁합,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 예언 ‘소름’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故 최진실 어머니가 방송에 출연해 최진실 최진영 남매를 떠나보낸 심경을 털어놨다.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지난 16일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최진실 최진영을 떠나보내고 땅속으로 꺼지는 것 같은 절망감에 빠져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인생을 살면서 운명이라는 단어를 그 때 절실히 느꼈다. 두 아이들을 잃고 나서 난 ‘아, 나도 갈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 이후로 호시탐탐 두 아이를 따라가려고 했다. 도저히 이겨낼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하루는 진실이가 남긴 물건 속에서 우울증 약을 발견하고 잠깐 의존했었다. 그때 딸아이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게 됐다”며 “나도 병원을 다니고 치료를 받았다. 약을 많이 먹는다. 딸 아들 보내고 약이 없었다면 정신병자처럼 살았을 거다. 몇 년이 지나다보니 몸이 쇠약해지고,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특히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그래도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독하고 강한지. 내 자신이 무섭고 지독했다. 나를 다시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바로 어린 환희와 준희였다. 어느새 훌쩍 성장해 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는 영원한 내 삶의 이유다. 잘 키우는 것이 남은 사명이다”고 말했다. 이날 최진실 어머니 정옥숙 씨는 “어느 날 최진실이 ‘엄마, 조성민이 내 팬이래. 방송국에서 같이 만나게 해준대’라고 하더라”며 “만남 후에 두 사람이 의남매를 맺고 조성민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했다더라. 자꾸 만나게 되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서 ‘그런 감정 가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서로 집에 드나들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며 최진실 조성민의 첫 만남을 밝히기도 했다. 이어 “최진실 조성민의 사주와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는다’고 하더라”며 결혼을 반대한 이유를 털어놔 놀라움을 자아냈다. 사진 = MBN 캡처(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이 남긴 물건 중에서 우울증약 발견” “궁합보니 조성민 결혼하면 둘 다 죽어”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이 남긴 물건 중에서 우울증약 발견” “궁합보니 조성민 결혼하면 둘 다 죽어”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이 남긴 물건 중에서 우울증약 발견” “궁합보니 조성민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배우 고(故)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자식을 앞세우고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는 16일 MBN ‘힐링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자식을 앞세운 뒤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놨다. 이날 정 씨는 “최진실, 최진영을 떠나보내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면서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떻게 견뎌냈는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는 최진실이 남긴 물건 속에서 우울증 약을 발견하고 잠깐 의존했었다”면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정 씨는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 군과 딸 준희 양이 삶의 버팀목이라고 전했다. 그는 “훌쩍 성장해 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는 내 삶의 이유다. 잘 키우는 것이 남은 사명이다”라고 손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 씨는 또 “최진실과 조성민의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딸은 그냥 만인의 연인으로 살게 해’라고 하더라”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모두 하늘나라로 가서 너무 많이 우울했을 듯”,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 맞어떨어진 것 알고 충격이 컸을 것 같다”,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씨 하늘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 거에요. 아이들 잘 키우시고 용기내셔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조성민 궁합 ‘결혼 하지마’라고 하더라” 왜?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조성민 궁합 ‘결혼 하지마’라고 하더라” 왜?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조성민 궁합 ‘결혼 하지마’라고 하더라” 왜?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과거 최진실과 조성민의 결혼 전 사주를 밝혀 화제다. 16일 방송된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는 고인이 된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이날 정옥숙 씨는 “어느 날 최진실이 ‘엄마, 조성민이 내 팬이래. 방송국에서 같이 만나게 해준대’라고 하더라”면서 “만나고 온 뒤 ‘역시 잘 생겼다. 키도 크고 멋있다’고 칭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옥숙 씨는 “이후 두 사람이 의남매를 맺고, 조성민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했다더라. 자꾸 만나게 되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 ‘그런 감정 가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서로 집에 드나들더니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의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딸은 그냥 만인의 연인으로 살게 해’라고 하더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옥숙씨는 “그래도 환희 낳고 둘째 임신할 때까지만 해도 조성민을 보고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최진실에게 정말 자상하고 잘해줘서 ‘부부라는 건 저렇게 사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 아빠는 평생 죽을 때까지 안 변할 줄 알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 이제 밝히네”,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 어떻게 저렇게 정확하게 맞을까”,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떠났지만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조성민, 죽는다고 궁합 본 북한산 스님은? ‘최진실 어머니 경악’

    최진실 조성민, 죽는다고 궁합 본 북한산 스님은? ‘최진실 어머니 경악’

    ‘최진실 조성민, 최진실 어머니’ 고(故)최진실 어머니가 고(故) 조성민과 딸의 결혼을 반대했다고 고백했다. 16일 방송된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는 고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정옥숙씨가 나왔다. 그는 “어느 날 최진실이 ‘엄마, 조성민이 내 팬이래. 방송국에서 같이 만나게 해준대’라고 하더라”면서 “만나고 온 후에 ‘역시 잘 생겼다. 키도 크고 멋있다’고 칭찬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옥숙씨는 딸과 조성민의 교제를 반대했다고 했다. 그는 “이후에 두 사람이 의남매를 맺고, 조성민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했다더라. 자꾸 만나게 되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서 ‘그런 감정 가지면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서로 집에 드나들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최진실 어머니는 “두 사람의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딸은 그냥 만인의 연인으로 살게 해’라고 하더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옥숙씨는 “그래도 환희 낳고 둘째 임신할 때까지만 해도 조성민을 보고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최진실에게 정말 자상하고 잘해줘서 ‘부부라는 건 저렇게 사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 아빠는 평생 죽을 때까지 안 변할 줄 알았다”고 토로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에 네티즌은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도대체 누가 궁합 봤길래..”,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소름 돋았다”,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정말 안 될 궁합이 있는 걸까?”,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무섭다”, “최진실 조성민..두 사람 너무 안타까워”,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최진실 어머니 존경합니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2000년 조성민과 결혼한 최진실은 2004년 이혼했고, 2008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조성민도 2013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최진실 조성민, 최진실 어머니)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최진실 조성민, 어머니 “환희는 배우, 준희는 가수가 꿈” 근황 보니..

    최진실 조성민, 어머니 “환희는 배우, 준희는 가수가 꿈” 근황 보니..

    ‘최진실 조성민’ 최진실 어머니가 손주 환희 군과 준희 양의 근황을 전했다. 배우 고(故)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는 16일 종편 MBN ‘힐링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손주 환희 군과 준희 양의 근황을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 군과 딸 준희 양은 부쩍 자란 모습이었다.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 군은 사춘기를 겪는 듯 말수가 줄고 친구들과 어울리려 했다. 준희 양은 아이돌그룹 엑소를 좋아하는 등 또래 여학생의 모습과 같았다. 정 씨는 환희 군에 대해 “집에서 말을 너무 안 해서 서운하기도 했는데 친구들 만나니까 저렇게 밝다”면서 서운함을 내비쳤다. 이어 정 씨는 “환희 군은 엄마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 한다”면서 “준희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한다”고 손주들의 장래희망을 전하기도 했다. 이후 환희 군은 영상편지에서 “할머니에게 고마운 것이 많다”면서 “할머니가 저희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고 잘 해드리고 싶다”고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전했다.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에 네티즌은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연예인 하지 말지”,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부모의 끼를 물려받았나 보네”,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건강하게 예쁘게 자라서 다행”,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꼭 배우와 가수로 성공했으면 좋겠다”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고 최진실은 2008년 10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 = 방송 캡처 (최진실 조성민 아들-딸 근황)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남긴 물건 우울증약” 조성민 궁합 “둘 다 죽는다고…”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남긴 물건 우울증약” 조성민 궁합 “둘 다 죽는다고…”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남긴 물건 우울증약” 조성민 궁합 “둘 다 죽는다고…” 배우 고(故)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자식을 앞세우고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는 16일 MBN ‘힐링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자식을 앞세운 뒤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놨다. 이날 정 씨는 “최진실, 최진영을 떠나보내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면서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떻게 견뎌냈는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는 최진실이 남긴 물건 속에서 우울증 약을 발견하고 잠깐 의존했었다”면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정 씨는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 군과 딸 준희 양이 삶의 버팀목이라고 전했다. 그는 “훌쩍 성장해 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는 내 삶의 이유다. 잘 키우는 것이 남은 사명이다”라고 손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정 씨는 또 “최진실과 조성민의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딸은 그냥 만인의 연인으로 살게 해’라고 하더라”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우울증약이라니 슬프다”,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 얘기는 정말 깜짝 놀랐다. 어떻게 저렇게 맞을 수가 있지?”, “최진실 어머니, 최진실 조성민 궁합본 스님이 대단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는데…” 회상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는데…” 회상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씨가 딸과 전 사위였던 조성민의 과거를 회상했다. 정옥숙씨는 16일 종합편성채널 MBN ‘최불암의 이야기 숲 어울림’에 출연했다. 정옥숙씨는 “난 사실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다.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며 “그런데 조성민은 기저귀부터 옷도 본인이 다 세탁하고 최진실도 마사지 해주고 정말 잘해줬다. 그것만 봐도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내가 보기엔 환희 아빠(조성민)는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다”며 “환희 낳고 1년 반까지는 내가 정말 기쁘게 살았다.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끝내 두 사람은 이혼을 했고 그 당시 최진실은 둘째를 임신했을 시기였다. 이에 대해 정옥숙씨는 “최진실이 배는 남산만해서 밥을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며 “펑펑 울면서 ‘이렇게 먹어도 속이 텅 빈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한편 최진실과 조성민은 2000년도에 결혼해 결혼생활 3년9개월 만인 2004년 이혼했다. 사진 =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우울증, “딸이 남긴 것 중 우울증약 발견하고..” 충격

    최진실 어머니 우울증, “딸이 남긴 것 중 우울증약 발견하고..” 충격

    ‘최진실 어머니 우울증’ 배우 고(故)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자식을 앞세우고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는 16일 종편 MBN ‘힐링토크쇼 어울림’에 출연해 자식을 앞세운 뒤 힘들었던 시간을 털어놨다. 이날 정 씨는 “최진실, 최진영을 떠나보내고 심한 우울증을 겪었다”면서 “아이들을 먼저 보내고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어떻게 견뎌냈는지 지금도 아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루는 최진실이 남긴 물건 속에서 우울증 약을 발견하고 잠깐 의존했었다”면서 우울증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정 씨는 고 최진실의 아들 환희 군과 딸 준희 양이 삶의 버팀목이라고 전했다. 그는 “훌쩍 성장해 나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 잡은 두 아이는 내 삶의 이유다. 잘 키우는 것이 남은 사명이다”라고 손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고 최진실은 2008년 10월, 고 최진영은 2010년 3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진 = MBN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최진실 마사지도 해주고…1년 반은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최진실 마사지도 해주고…1년 반은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최진실 마사지도 해주고…1년 반은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과거 최진실과 조성민의 결혼 생활을 공개해 화제다. 16일 방송된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는 고인이 된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정옥숙씨는 “난 사실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다.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데 조성민은 기저귀부터 옷도 본인이 다 세탁하고 최진실도 마사지 해주고 정말 잘해줬다. 그것만 봐도 좋았다”고 회상했다. 정옥숙 씨는 “내가 보기엔 환희 아빠(조성민)는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다”면서 “환희 낳고 1년 반까지는 내가 정말 기쁘게 살았다.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끝내 두 사람은 이혼을 했고 그 당시 최진실은 둘째를 임신했을 시기였다. 이에 대해 정옥숙씨는 “최진실이 배는 남산만해서 밥을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면서 “펑펑 울면서 ‘이렇게 먹어도 속이 텅 빈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진실과 조성민은 2000년에 결혼해 결혼생활 3년 9개월 만인 2004년 이혼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정말 안타까운 가정사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사위 자랑 많이 했을텐데 슬프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궁합도 잘 안 맞았았다는데 너무 안타깝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마사지도 해주고 정말 잘해주더니…안 변할 줄 알았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마사지도 해주고 정말 잘해주더니…안 변할 줄 알았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마사지도 해주고 정말 잘해주더니…안 변할 줄 알았다”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과거 최진실과 조성민의 결혼 생활을 공개해 화제다. 16일 방송된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는 고인이 된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정옥숙씨는 “난 사실 결혼생활의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다. 남자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못 들어봤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데 조성민은 기저귀부터 옷도 본인이 다 세탁하고 최진실도 마사지 해주고 정말 잘해줬다. 그것만 봐도 좋았다”고 회상했다. 정옥숙 씨는 “내가 보기엔 환희 아빠(조성민)는 평생 안 변할 줄 알았다”면서 “환희 낳고 1년 반까지는 내가 정말 기쁘게 살았다. 행복해서 자다가 웃을 정도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끝내 두 사람은 이혼을 했고 그 당시 최진실은 둘째를 임신했을 시기였다. 이에 대해 정옥숙씨는 “최진실이 배는 남산만해서 밥을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면서 “펑펑 울면서 ‘이렇게 먹어도 속이 텅 빈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최진실과 조성민은 2000년에 결혼해 결혼생활 3년 9개월 만인 2004년 이혼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원망스러웠겠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안타깝다”, “최진실 어머니, 조성민 궁합도 잘 안맞았는데 정말 슬펐을 듯”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진실 조성민 궁합 “결혼 안돼. 만인의 연인 되게 해라” 조언 북한산 스님 누구?

    최진실 조성민 궁합 “결혼 안돼. 만인의 연인 되게 해라” 조언 북한산 스님 누구?

    최진실 조성민 궁합 “결혼 안돼. 만인의 연인 되게 해라” 조언 북한산 스님 누구? 고 최진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과거 최진실과 조성민의 결혼 전 사주를 밝혀 화제다. 16일 방송된 MBN ‘힐링 토크쇼 어울림’에는 고인이 된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어머니 정옥숙 씨가 출연해 근황을 전했다. 이날 정옥숙 씨는 “어느 날 최진실이 ‘엄마, 조성민이 내 팬이래. 방송국에서 같이 만나게 해준대’라고 하더라”면서 “만나고 온 뒤 ‘역시 잘 생겼다. 키도 크고 멋있다’고 칭찬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옥숙 씨는 “이후 두 사람이 의남매를 맺고, 조성민 부모님한테도 인사를 했다더라. 자꾸 만나게 되니까 감정이 달라지는 거 같아 ‘그런 감정 가지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서로 집에 드나들더니 결혼을 하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두 사람의 궁합을 보기 위해 북한산의 한 스님께 갔는데 ‘결혼하지 마. 둘이 안 맞아. 결혼하면 둘 다 죽어. 딸은 그냥 만인의 연인으로 살게 해’라고 하더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정옥숙씨는 “그래도 환희 낳고 둘째 임신할 때까지만 해도 조성민을 보고 어쩜 이런 사람이 다 있나 싶었다. 최진실에게 정말 자상하고 잘해줘서 ‘부부라는 건 저렇게 사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희 아빠는 평생 죽을 때까지 안 변할 줄 알았다”고 전했다. 네티즌들은 “최진실 조성민 궁합 미리 운세를 맞췄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최진실 조성민 궁합 어떻게 미래를 본 것처럼 말씀하셨지”, “최진실 조성민 궁합 운을 미리 확인하다니 엄청나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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