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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흘 만에 버렸다…강아지 불안 몰라서, 돈 많이 들어서[2022 유기동물 리포트-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사흘 만에 버렸다…강아지 불안 몰라서, 돈 많이 들어서[2022 유기동물 리포트-내 이름을 불러주세요]

    왜 버릴까. 국내 606만 가구(2021년 농림축산식품부 기준)가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데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듯 유기하거나 파양 보낸 이들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이들은 다양한 사유로 불가피함을 포장하지만 원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동물이 가족이 됐을 때 생길 일들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섣불리 데려오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키우던 개나 고양이를 파양·유기했거나 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6명을 만났다. 유기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다.“얘는 원래 키우던 강아지들보다 애교가 없네요.” 딱 사흘 만이었다. “너무 귀엽다”며 믹스견 은송이(5)를 입양해 갔던 30대 커플이 싫증을 느껴 구조단체로 다시 데려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둔감해질 법한데 매번 상처가 크네요. 은송이 마음은 오죽하겠어요?” 이정수(55) 웰컴독 레스큐 대표가 한숨지었다. 다섯 살 인생에 벌써 세 번째 파양이다. 강원도 평창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은송이의 삶이 꼬인 건 생후 2개월 때부터다. “보호자가 없었어요. 크면서 활동량이 늘어 동네 밭에 들어가고는 했죠. 주민들이 관청에 민원이라도 넣으면 잡혀가 꼼짝없이 죽을 처지였죠.” 평창에서는 매년 약 70마리의 유기동물이 포획되는데 이 가운데 20%쯤이 안락사된다. 이 대표는 은송이의 입양자를 찾으려고 지인의 지인에게까지 사연을 알렸다. 첫 입양자는 한국으로 돌아오려는 교포 부부였다. 경제적 여건이나 생활이 안정돼 믿고 맡길 만했다. 일주일 뒤 느닷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입양한 부부였다. “파양하고 싶다”고 했다. “애가 문 앞에서 하울링을 해요.” 하울링(늑대처럼 길게 내빼거나 낑낑거리는 소리)은 개의 언어다. 불안, 고통 등을 표현하거나 그저 본능적으로 내지른다. 반려인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리는 흔한 상황이다.#무지  동물 특성 모르고 입양 일주일쯤 지났을까. 이번에는 한 남성이 입양 의사를 밝혔다. 개를 키워 본 경험이 있었고, 직업도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이틀 뒤 파양 의사를 밝혔다. “아내가 힘들어한다”는 이유를 댔다. 부부는 20년 가까이 키운 노견을 먼저 떠나보낸 뒤 새 가족을 입양해 마음을 달래 보려 했지만 아내가 되레 괴로워했다는 것이다. ●이해 없이 했다가…“28% 포기 고려” 은송이가 겪은 일처럼 이유 없는 파양이나 유기는 없다. 다만 입양·분양받을 때 동물의 특성 등을 충분히 알아봤다면 대부분 대비할 수 있다. 서울신문의 취재에 응한 6명의 파양·유기 경험자들도 비슷한 사연을 털어놨다.반려동물을 버리거나 돌려보내는 가장 흔한 이유는 동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해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해 내놓은 ‘동물보호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양육 포기나 파양을 고려한 경험자 10명 중 3명(27.8%)이 ‘물건 훼손, 짖음 등 동물의 행동 문제’를 이유로 꼽았다. 나모(31)씨도 개의 행동 특성을 모르는 이에게 강아지를 입양 보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석 달쯤 지났을 때 지역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버려졌다고 신고 들어온 스피츠(강아지 종)가 있어 등록 칩을 확인했더니 당신이 보호자더라”라는 연락이 왔다. 나씨는 입양자에게 상황을 물었다. 버린 건 아니라면서도 다시 데려가겠다는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 “본인이 힘들었다는 얘기를 계속 했어요. 개가 자기 꼬리를 씹었다고요. ‘그럼 병원에 데려가지 그랬느냐’라고 했더니 말이 없더라고요.” 개가 자신의 꼬리를 씹는 건 전형적인 불안과 스트레스 증상이다. 입양 당시 나씨는 양육비 부담 등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 줬다고 한다. 그때 상대방이 했던 말이 생생하다.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둘 있어요. 제가 하나님 믿는 사람인데 강아지를 세 번째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키울 거예요.” 개나 고양이의 행동 문제는 자신의 불편함을 보호자에게 알리는 신호인 사례가 많다. 행동심리를 이해해 어려움을 풀어 줘야 한다. 수의사인 이환희 포인핸드 대표는 “반려동물을 분양·입양받은 뒤 계속 기를지 여부는 보통 1년 내 판가름난다. 귀여워서 데려왔지만 2~3개월쯤 지나면 현실적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이라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산책 시켜 주지 않거나 적절한 교육을 해 주지 않으면 동물이 집안을 어지르거나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어린 자녀를 키우고 있다는 이 대표는 말했다. “반려견이 보통 3세 정도의 지능을 가졌다고 표현해요. 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말 못 하는 세 살짜리 아이를 15년쯤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보호자가 평생 많은 부분을 돌봐 줘야 하는 존재라는 얘기죠.” #부담  천차만별 병원비 지출 ●커 버린 몸집도 유기·파양 원인 개와 고양이를 키울 때 드는 비용도 유기·파양의 원인이다. 농식품부 조사 결과 양육 포기 또는 파양을 고려한 응답자 중 22.2%가 ‘예상보다 지출이 많다’는 점을 이유로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려동물이 아프다고 버린다는 건 애초 가족이 아닌 ‘고장난 물건’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대형견인 보더콜리를 입양해 약 2년간 키우다 파양한 이모(49)씨는 경제 형편을 탓했다. “군 장교로 일하다가 퇴역한 이후 낮에는 계약직 회사원으로, 밤에는 출장 세차를 하며 투잡을 뛰었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 쪽잠 자며 버텼죠. 피곤한 데다 경제적 여력도 없어 보더콜리를 돌보기가 어려웠죠.” 반려동물 한 마리를 평생 책임지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서울신문이 국내에서 가장 많이 키우는 소형견인 몰티즈를 평균 수명(15~20년)만큼 책임질 때 드는 비용을 수의사 등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분석했다. 우선 사료·간식, 기타 소모품 등 고정적 양육비로 매달 14만원이 든다고 가정(KB금융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 분석)했다. 중요한 건 병원비다. 의료수가(진료비)가 표준화돼 있지 않아 병원별로 천차만별이다. 최동학 대구동인동물병원장은 “매년 맞는 종합백신 등 다섯 가지 예방접종 비용이 12만 5000원쯤 하고, 보통 다섯 살 이후 받는 종합건강검진은 30만~40만원가량”이라고 말했다. 또 몰티즈가 많이 앓는 심장질환에 드는 약값과 슬개골 탈구 수술·입원비(1회) 등을 합하면 2000만원이 넘는다. 결과적으로 몰티즈 한 마리를 평생 키울 때 드는 비용은 4000만원 정도가 된다.권혁명 한국보더콜리구조협회 대표는 “영국 보험사의 계산에 따르면 소형견인 잭 러셀 테리어를 평균 수명(8~9년)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폭스바겐 골프(3000만원대) 한 대 가격이고, 대형견인 그레이트 덴은 재규어 고급 모델(1억원 이상)만큼 든다”면서 “영국에서는 자신의 경제 여건과 반려동물을 키울 때 드는 예상 비용을 고려해 견종을 고르는 게 일반화돼 있다”고 했다. 또 달라진 외모 탓에 버린다는 분석도 있다.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는 “개들이 버려지는 가장 큰 이유는 행동 문제 외에 성견이 됐을 때 외형이 덜 예뻐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히 몸집이 커지면 부담스러워 유기·파양하는 이들이 많다. 유기동물 보호소인 행복한보금자리의 관계자는 “믹스견이 작고 예쁘다며 분양을 해 간 60대가 있었는데 6개월 만에 강아지가 7~8㎏으로 훌쩍 컸다”면서 “‘감당이 안 된다’며 파양해 캐나다로 재입양을 보냈다”고 말했다. #처벌  법과 괴리된 현실 반려동물을 버리는 건 범죄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3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문제는 법조항과 실제 처벌 수위의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실제 부과되는 벌금은 200만원 수준이다. 동물의권리를옹호하는변호사들 김도희 변호사는 “법원과 시민들이 아직 바뀐 법을 따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동물 유기는 목격자가 증거를 챙겨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처벌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김 변호사는 “동물 유기를 줄이려면 버린 사람을 처벌하는 게 한 축이 돼야 하지만 동시에 유기 예방과 유기동물 보호시설 확충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제보 부탁드립니다 서울신문은 국내 동물권 문제를 폭넓게 다루는 시리즈와 후속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동물학대와 유기, 펫샵이나 개농장·공장 등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육견 판매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 등을 제보(jebo@seoul.co.kr)해 주시면 끝까지 추적해 보도하겠습니다. 제보자 신원은 철저히 익명에 부쳐집니다.
  • 지드래곤 ‘결별설’ 제니와 나란히 샤넬화보

    지드래곤 ‘결별설’ 제니와 나란히 샤넬화보

    최근 블랙핑크 멤버 제니와의 결별설로 화제에 오른 빅뱅 멤버 지드래곤이 몽환적 매력을 드러냈다. 패션지 보그코리아는 “파리, 낭만, 도취, 환희, 저항 그리고 지드래곤”이라는 설명과 함께 7월호 표지 화보를 13일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이번 화보에서 지드래곤은 명품 브랜드 샤넬의 다양한 아이템을 소화하며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냈다. 지드래곤은 꽃에 입맞춤을 하고 자유로운 포즈로 몽환적 분위기 화보에 방점을 찍었다. 그가 선보인 다양한 착장 또한 글로벌 패션 아이콘으로 떠오른 이유를 증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드래곤의 이번 화보의 자세한 모습은 ‘보그코리아’ 7월호에 실릴 예정이다. 지드래곤은 최근 블랙핑크 멤버 제니와의 결별설에 휩싸이며 세간의 집중 관심을 받았다. 그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두고 해석이 이어지며 누리꾼의 다양한 추측이 잇따르기도 했다. 함께 샤넬 글로벌 앰버서더로 활동하고 있는 제니 또한 최근 W코리아 화보를 장식하며 샤넬 화보 촬영을 마쳐 눈길을 모았다.
  • ‘어린이를 듣다’… 구로구,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15~22일 개최

    ‘어린이를 듣다’… 구로구,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 15~22일 개최

    서울 구로구가 ‘어린이를 듣다’라는 주제로 제10회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를 15~22일 개최한다고 8일 밝혔다. 개막작은 열두 살 소녀 울야의 도전을 그린 ‘울야는 못 말려’로 씨네Q 신도림 영화관에서 상영된다. 어린이의 생각을 권위로 억압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꼬집으며 어린이와 어른이 어떻게 서로 존중할 수 있을지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올해 영화제 공모에는 108개국 2253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출품작 중 예심을 통과한 47개국의 157편(장편 43편, 단편 114편)이 씨네Q 신도림, 도담도담 극장, 온피프엔 온라인 상영관에서 관객들에게 공개된다. 구 관계자는 “국내 미개봉작과 해외 영화제 수상작 등 평소 극장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작품들을 감상할 기회”라고 전했다. 관객을 대상으로 한 각종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영화 ‘코다’와 ‘넥스트 제너레이션3’을 각각 관람한 뒤 전문가와 아동 관련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씩씩한 토크’, ‘바람 속의 켄자’를 감상한 뒤 초등학교 선생님과 창작 활동을 하는 ‘비주얼 리터러시’, 영화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김환희 배우, 이화정 영화 전문 기자와 대화하는 ‘액터스 토크’ 등이 씨네Q 신도림에서 진행된다. 영화 ‘태일이’를 관람하고 아동 노동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아동권리선언 행진을 하는 행사도 열린다. 신도림역 문화철도 959 야외 테라스에서는 인디밴드 공연과 마술쇼·풍선쇼가 펼쳐진다. 영화제는 22일 신도림테크노마트에서 열리는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한복 패션쇼를 시작으로 유명 배우와 감독, 영화 관계자 등이 참석하는 레드카펫 행사와 본선 주요 작품 명장면 상영, 구립소년소녀합창단과 초청 가수의 축하공연, 시상식 등이 이어진다. 영화 티켓은 씨네Q 신도림 홈페이지나 온피프엔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매하거나 씨네Q 신도림 티켓 박스에서 현장 구매할 수 있다.
  • “인류 최초로 亞 역대 최고 선수는 손흥민으로 공식화”

    “인류 최초로 亞 역대 최고 선수는 손흥민으로 공식화”

    20년 만에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대한축구협회(KFA)는 2일 한·일 월드컵 20주년을 맞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2002 월드컵 20주년 기념 오찬’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2002년 세계를 놀라게 하고, 대한민국을 환희와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던 거스 히딩크 감독,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명예회장,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최용수 강원FC 감독, 최진철 전 감독,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박지성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 등이 모였다. 이들의 말들을 모아봤다.히딩크 감독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내 별명은 ‘오대영’이었다. 프랑스, 체코에 대패했고 부정적인 닉네임이 붙었다. 우린 힘든 길을 걸었지만 당시 협회에서 날 전적으로 지지하고 믿어줬다. 덕분에 이러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당시 KFA 인사가 나를 영입하려고 할 때, 대표 선수들과 1년반 연습할 수 있어야 하고 예산확보로 강팀과의 해외원정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일주일 뒤 불가능할 것 같은 조건을 수용하면서 역사를 만들 수 있었다.” “2002년 조별리그 첫 경기인 폴란드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과 8강전도 중요한 경기였지만 앞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없다. 폴란드전 승리가 한국의 전진에 큰 역할을 했다.” ‘손흥민이 2002년 대표팀에 있었다면 결승에 갈 수 있었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해 “굉장히 쉬운 질문이다. (유머러스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다. 손흥민은 여러 포지션을 뛸 수 있는 굉장히 영리한 선수이며 많은 팀들이 탐을 낼 정도로 좋은 인성을 갖췄다. 그가 있었다면, 20년 전 월드컵에서 결승전에 진출했을 것이다.”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 “지금의 대표팀 동료들은 손흥민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믿음을 느낄 것이다. 주장으로 다른 것을 하지 않아도 선수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20년이 참 빨리 지나갔다. 한국 축구가 2002년 이후 많이 발전했다. 11월 열리는 월드컵에서도 국민들을 다시 한 번 기쁘게 할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한다” ‘조현우, 김영권, 엄원상, 김태환 등 대표팀에 포함된 울산 선수들에게 2002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꼰대 소리는 듣기 싫다. 그런 이야기 하면 안된다. 선수들에게 과거 이야기는 절대 안한다. 아직 변수가 많다. 본선 최종 엔트리에 누가 들어갈지 모른다. 부상 없이 많은 선수가 월드컵에 뛰었으면 좋겠다.” 방송사 정규방송 시간 끝을 알리는 애국가 영상에 스페인과 8강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 영상이 나오는 것에 대해 “솔직히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줄 몰랐다. 지금 처음 듣는 얘기다.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다. 국민 모두가 한목소리를 냈던 사건이었다. 뛸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선수로서 큰 영광이다.”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 “저에게만큼은 손흥민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 등극이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것에 버금가는 사건이다.” “마지막 경기에서 23번째 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이 됐다. 인류가 태어난 뒤,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를 공식화 한 것이다.” “이 골 전에는 아시아 최고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차범근 감독님이나 다른 아시아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수 있었지만 이 골로 당분간 아시아 최고 선수는 손흥민” 손흥민이 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PFA) 올해의 선수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고, 현지 전문가들의 평가가 있겠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득점왕을 했기 때문에 앞으로 200년이 지나도 기록될 것이다. 손흥민에게는 올해의 선수와 상관없이 커리어 최고의 시즌이었다.” “손흥민이 더 아쉬울 것이다. 난 엄청나게 만족한다. 아시아 선수가 EPL에서 득점상을 받았고, 그것도 대한민국 선수다. 거기에 또 그 선수가 하필 토트넘 소속이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박지성 전북 현대 어드바이저 “손흥민이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하는 상황을 현실로 만들었다. 아시아 선수로서 득점왕에 오르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매우 자랑스럽다. 아시아 선수들이 꿈을 향해 달려가도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PFA 올해의 선수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에 대해 “후보에 오를 자격이 있는데 아쉽다. 다만 결과가 나온 것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능력을 보여줬다. 많은 사람이 아쉬울 것이다.”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안정환의 16강 이탈리아전 헤더 골든골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22 카타르월드컵에선 16강 안에 드는 게 우선이다. 과거 브라질, 러시아 월드컵 때는 준비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번엔 차곡차곡해 와서 16강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전에는 감독이 여러 번 바뀌면서 브라질 때는 홍명보 감독, 러시아 때는 신태용 감독이 막판에 대표팀을 맡았다. 러시아월드컵 때 독일이 우리에게 지고도 요하임 뢰브 감독을 경질하지 않고 계속 가는 걸 보고 느낀 게 많다. 그래서 우리도 이번엔 끝까지 왔는데, 월드컵에서 결과를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 “유럽과 북중미는 네이션스리그를 치러 (이번 6월 A매치 기간에) 섭외가 불가능했다. 브라질 축구협회장도 유럽팀과 경기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2002년 월드컵은 우리도 세계 무대에 한 번 도전해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대회였다. 그런 면에서 굉장히 큰 유산” “손흥민이 EPL 득점왕에 오른 건 한국 축구사에 기념비적인 일”
  • 故최진실 아들 최환희 “홍진경 이모, 생일 때마다 용돈 준다”

    故최진실 아들 최환희 “홍진경 이모, 생일 때마다 용돈 준다”

    故최진실 아들 최환희가 홍진경에 고마움을 표했다. 지난달 31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新가족관계증명서 갓파더’(이하 ‘갓파더’)에서는 가비의 새 집에 아이키와 강주은이 초대됐다. 이날 강주은은 새 집으로 이사한 가비에게 꽃을 송이별로 놓을 수 있는 화병과 꽃, 용도별 청소 도구, 한식 양식 커트러리, 티셔츠를 선물했다. 가비는 “엄마는 선물하는 센스가 대박인 것 같다. 엄마한테 배우고 싶은 게 요리랑 선물하는 센스다”며 감동한 모습을 보였다. 스튜디오에서 MC 이금희는 故 최진실 아들 최환희에게 “홍진경 씨가 준희 생일에 용돈 크게 줬다던데 환희 씨 생일에도 진경 이모가 주셨냐”라고 물었다. 이에 최환희는 “제 생일에도 똑같이 크게 챙겨주셨고 이제는 아니지만 어린이날도 챙겨준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한편 이날 방송에서 최환희는 KCM의 풋살 대결에서 치열한 접전 끝에 패배했다. 이후 최환희는 KCM에게 ‘물따귀’를 맞거나, ‘갓파더’ 32회 방송 이후 개인 SNS를 통해 벌칙 영상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한편, ‘갓파더’는 현실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가족 간의 ‘찐 마음’을 새롭게 만난 부자(父子)와 모녀(母女) 그리고 모자(母子)같은 남매를 통해 알아가는 초밀착 관찰 예능이다. 매주 화요일 밤 10시 40분 방송한다.
  • [인사]

    ■고용노동부 ◇개방형 직위 임용 △전남지방노동위원회 사무국장 방강수 ■한국일보 ◇임원 △이사 고재학△이사 이성철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이영태△논설위원 김용식△논설위원 박석원△논설위원 이훈성△논설위원 임소형 ◇신문국 △신문부문장 유병주△신문에디터 김범수△신문에디터 이성원△신문에디터 조태성△편집위원 이창선△종합편집부장 김도상△편집2부장 박선영 ◇뉴스룸국 △뉴스부문장 김정곤△디지털기획부문장 겸 혁신데스크 양홍주△정치부장 김영화△경제부장 고찬유△산업1부장 박상준△산업2부장 이영창△정책사회부장 한준규△국제부장 최문선△문화부장 송용창△스포츠부장 성환희△콘텐츠운영부장 성시영△이슈365팀장 허재경 ◇지식콘텐츠실 △지식콘텐츠실장 한창만△창간70주년준비기획단장 겸 오피니언에디터 조철환
  • ‘전람회의 그림’ 놓고 격돌하는 경기필 vs 국립심포니…익숙함과 유연성이 승부 가를까

    ‘전람회의 그림’ 놓고 격돌하는 경기필 vs 국립심포니…익숙함과 유연성이 승부 가를까

    5월 마지막 주말을 맞아 국내 유수 관현악단인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러시아 작곡가 모데스트 무소륵스키(1839~1881)의 ‘전람회의 그림’을 놓고 진검승부를 펼치게 됐다. ‘익숙함’과 ‘유연성’이 강점인 젊은 지휘자들의 기량과 바이올린과 피아노 협연을 곁들인 풍성한 공연으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선 경기필하모닉이 오는 27일과 28일 각각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 공연으로 포문을 연다. 충남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인 정나라(42)가 지휘봉을 잡고 무소륵스키 ‘민둥산의 하룻밤’, ‘전람회의 그림’과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 82번을 연주한다.이어 29일에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네건 다우니 디어의 전람회의 그림’ 공연으로 맞불을 놓는다. 영국 출신 피네건 다우니 디어(32)가 지휘를 맡은 이번 공연 프로그램은 위정윤 작곡가의 ‘번짐 수채화’ 초연,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라단조,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으로 구성됐다. 특히 두 관현악단이 공통으로 연주하는 ‘전람회의 그림’은 무소륵스키가 건축가 겸 화가인 친구 빅토르 알렉산드로비치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곡으로 독특한 구성과 대담한 표현이 돋보인다. 1곡부터 10곡까지로 구성돼 있으며 10곡 ‘키예프의 대문’은 하르트만이 키예프의 대문을 디자인한 스케치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기원하며 세계 각국에서 빈번하게 연주되는 개선행진곡 같은 작품이다. 두 관현악단 모두 모리스 라벨이 편곡한 관현악 버전을 선택해 지휘자의 성향에 따라 연주의 색깔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기필하모닉 공연을 지휘하게 된 정나라는 독일 예나 시립교향악단 등 유럽 각지에서 초청지휘자로 활동했고, 올해 초까지 경기필하모닉 부지휘자로 단원들과 이미 호흡을 맞췄던 이력이 있다. 경기아트센터 관계자는 “원래 피아노곡이던 ‘전람회의 그림’을 라벨이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한 것이라 피아노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오케스트라 색깔의 맛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필하모닉 단원들이 오랫동안 익숙했던 정 지휘자와 함께하게 돼 더 편하게 생각하는 이점이 있다”라며 “경기필하모닉은 다른 관현악단에 비해 단원들의 연령대도 비교적 낮아 음악을 스펀지처럼 유연하고 생기있게 받아들이는 매력이 있다”고 강점을 설명했다. 국립심포니 지휘를 맡은 피네건 다우니 디어는 2020년 말러 국제지휘콩쿠르 우승자로 뛰어난 음악성과 악보에 대한 해석, 진지하고 성숙한 연주력으로 세계 지휘계의 ‘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립심포니 관계자는 “피네건은 독특하고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고 오페라와 발레 무대 등 변화무쌍한 무대에도 민첩하게 대응한 인물”이라며 “‘전람회의 그림’은 색채미를 잘 드러내야 하는 곡이데 색채적 요소를 표현하는 데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강조했다.‘전람회의 그림’과 함께 두 관현악단이 펼칠 협연 무대에도 기대가 쏠린다. 경기필하모닉이 연주할 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 82번은 레오폴드 모차르트 콩쿠르, 윤이상 국제 콩쿠르 무대 등을 휩쓸었고, 바이올리니스트 송지원(30)이 협연자로 나선다. 글라주노프 바이올린 협주곡은 차이콥스키 발레 음악을 연상시키는 1악장을 지나 후반부로 갈수록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점차 화려해지는 곡으로 유명하다.국립심포니 협연자로 나선 알렉산더 말로페예프(21)는 2014년 열세 살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국제 청소년 콩쿠르에 입상한 신동이다. 그가 협연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은 ‘피아니스트들의 무덤’이라는 악명을 얻을 정도로 어려운 곡이다. 빠르고 격렬하면서도 조용하고 서정적인 템포가 어우러진 뒤 환희로 부풀어 마무리되는 3악장이 특징이다.
  • 이윤지 “32세에 첫 애 낳아야 해서 남편에 결혼 제안”

    이윤지 “32세에 첫 애 낳아야 해서 남편에 결혼 제안”

    [연예] 이윤지 “32세에 첫 애 낳아야 해서 남편에 결혼 제안” 배우 이윤지가 결혼에 얽힌 뒷이야기를 전했다.18일 오후 방송된 SBS 라디오 파워FM ‘최화정의 파워타임’에는 영화 ‘안녕하세요’의 배우 김환희, 유선, 이윤지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날 한 청취자는 이윤지의 목격담을 전하며 “이윤지와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항상 도서관에 있었다”라며 “도서관에서 가장 예쁜 분을 찾으면 윤지 배우였다”라고 전했다. 최화정은 “학교 도서관도 다니면서 결혼도 계획 하에, 남편도 계획 하에 딱 했다는 게”라고 결혼을 언급했다. 이에 이윤지는 “(현재 남편에) 제가 계속 시간이 없다고, 나는 31살에 (결혼을) 해서 32살에 첫 애를 낳아야겠다 (생각해서), ‘혹시 가을에 일정이 있으시냐’고 물었다”라며 “제가 가을을 좋아해서 가을에 결혼이 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 “그때 처음엔 (남편이) 못 알아듣다가 내가 ‘너무 돌려 말했나’ 싶어서 다시 말하니까, 남편도 ‘가을에 결혼할 것 같다’고 해서 둘이 결혼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유선이 “왜 시간이 없었냐”고 했고, 이윤지는 “왜냐면 또 둘째도 낳아야 하니까”라고 답했다. 이를 듣고 최화정이 “일정이 안 맞았으면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것이냐”라고 물었고, 이윤지는 “아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윤지는 남편에 대해 “저와 똑같이 널을 뛰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좋았는데 같이 사니까 너무 침착하고, 난 막 말하는데 이 분은 저를 병원에서 만나 사람처럼 침착하게 말하라고 하더라”고 말한 뒤, “행복하다”며 웃었다. 한편 지난 2014년 이윤지는 3세 연상의 치과의사인 남편 정한울씨와 결혼해 슬하에 두 딸을 두고 있다. 첫째는 2015년 10월에, 둘째는 2020년 4월에 출산했다. 이윤지가 출연하는 영화 ‘안녕하세요’는 오는 25일 개봉한다.
  • 뮤지컬 ‘킹키부츠’ 올여름 돌아온다…서경수, 신재범, 나하나 새로 합류

    뮤지컬 ‘킹키부츠’ 올여름 돌아온다…서경수, 신재범, 나하나 새로 합류

    브로드웨이까지 휩쓴 뮤지컬 ‘킹키부츠’ 다섯 번째 시즌으로 올여름 돌아온다.제작사인 CJ ENM은 뮤지컬 ‘킹키부츠’가 완벽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오는 7월 20일부터 10월 2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고 18일 밝혔다. ‘킹키부츠’는 영국 노샘프턴의 수제화 공장들이 경영악화로 폐업하던 중 아주 특별한 부츠를 만들어 유일하게 살아남은 구두공장의 실제 성공 스토리를 뮤지컬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미국 토니어워즈 6관왕,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3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2014년 국내 무대에 상륙 후에도 역시 단숨에 관객들을 사로잡는 저력으로 한국뮤지컬어워즈, 더뮤지컬어워즈 등을 휩쓸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쇼뮤지컬로 완벽하게 자리매김했다.폐업 위기의 구두 공장을 물려받아 ‘킹키부츠’ 만들기에 도전하는 초보 사장 ‘찰리’ 역에는 배우 이석훈, 김성규가 다시 돌아오며 신재범이 새롭게 캐스팅됐다. 편견과 억압에 당당히 맞서는 아름답고 유쾌한 남자 ‘롤라’ 역에는 최재림, 강홍석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또 이번 시즌 처음으로 서경수가 합류했다. 모든 일에 열정을 다하는 열혈 공장 직원 ‘로렌’ 역에는 김지우, 김환희, 나하나가 이름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불같은 성격으로 이따금 갈등을 일으키는 구두공장 직원 ‘돈’ 역은 고창석, 심재현, 전재현이 맡는다.
  • 김구라 아들 “새 엄마에게 ‘누나’라 불러”

    김구라 아들 “새 엄마에게 ‘누나’라 불러”

    MC그리와 최환희가 엄마와 아빠의 호칭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3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新가족관계증명서 갓파더’에서는 환희(지플렛)와 MC 그리와 함께 깊은 속 얘기를 나눴다. 이날 환희는 가상 아버지인 KCM에 대해 “나는 원래 활동적이지 않고 집에 누워서 핸드폰 하는데 창모 형 만나고 많이 따라다니면서 활동적인 면도 생기고 많이 웃고 밝아졌다. 고마운 부분도 많다”고 털어놨다. 최환희는 “창모 형은 오래오래 제 옆에 두고 싶은 분이다. 좋은 사람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MC 그리는 가상 아빠인 KCM을 왜 자꾸 형이라고 부르냐고 물었다. 최환희는 “이게 뭐랄까.. 누구한테 ‘아빠’라는 말을 많이 해본 게 아니니까 어색하다. 오히려 형이라고 해야 친해지기 쉬울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MC그리는 “나도 아버지가 새로운 가정을 꾸려서 서류상으로는 어머니이신데 엄마라고 안 부르고 누나라고 한다. 엄마는 나랑 계속 연락하니까. 엄마는 나한테 한 명이다. 앞으로도 누나라고 부를 거다. 너의 마음이 이해 간다”고 털어놨다.
  • [오늘마음읽기] 다 지나갈거야, 그러니 괜찮아

    [오늘마음읽기] 다 지나갈거야, 그러니 괜찮아

    23회 : 메멘토모리, 죽음을 기억하기 모두에게 예외없는 죽음...공포심에 애써 무시죽음을 껴안고 나서야 삶 온전히 볼 수 있어삶은 늘 출렁이고, 행복은 사라지는 것 같지만10년 뒤 지금을 회상하면 “왜 걱정했을까” 후회당장 고민 있다면 꺼내어 입체적으로 보는 노력 #편집자 주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신가요? ‘오늘하루 마음읽기’에서는 날씨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우리 마음속 이야기를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명이 친절하게 읽어 드립니다. 스물 세번째 회에서는 삶을 살면서 죽음을 기억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신재현 전문의가 설명해드립니다. 지금 겪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이 영원하실 것 같으신가요? 이 글을 한번 읽어봐 주세요.우리는 매일 무엇인가를 잃어간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젊음이거나, 행복한 순간, 혹은 평생 함께할 거라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것들과 ‘나’라는 존재는 시간과 함께 조금씩 빛이 바래고, 또 사라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죽음이 기다린다. 좋든 싫든 우리의 삶은 활을 떠난 화살처럼 죽음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간다. 빈자에게도, 부자에게도, 건강한 이에게도 혹은 병에 신음하는 이에게도 예외는 없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런 사실을 자주, 쉽게 잊는다. 따뜻한 볕이 내리쬐는 한낮이 오래오래 계속될 거라는 듯. 그런 착각은 삶의 ‘사고’를 마주하며 깨어진다. 갑자기 찾아든 친구 아버지의 죽음으로, 자랑하던 상징의 상실로, 혹은 함께 살아가는 반려동물을 잃음으로써 잔인한 현실을 인식하게 될 테다. 사실 우리는 죽음을 착각하기보다 그 공포를 극단적으로 억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이은 존재의 상실은 너무 두려운 일이기에 우리의 존재를 기억하는 글과 예술 작품, 그리고 후손들을 남기려 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를 잃어버리고 영겁의 침묵으로 들어가는 일은 무의식 아래 항상 깊이 뿌리내린 근원적 공포다. ●죽음의 순간 바라봐야 진짜 삶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의 순간을 바로 옆에서 목도하고 나서야 우리 삶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두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삶 안에서 껴안고 나서야 삶을 온전히 볼 수 있게 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우리는 언젠가 사라질 존재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죽음은 생의 의지에 대한 마지막 퍼즐 조각일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의 시야는 한 뼘 더 넓어진다.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을 좀 더 멀리 떨어져서, 넓은 눈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기서 직시적(deictic)인 관점의 이동이 필요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삶의 현장은 장기판 위의 말들의 격전과 비슷하다. 우리 인간은 상대 말의 추격을 뿌리치고, 더 나은 수를 전전긍긍하다 마침내 ‘장이요!’를 외치는 환희를 만끽하려 살아간다. 하지만 장기 말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삶은 어렵고 고단하다. 삶은 항상 출렁이며, 행복의 순간은 움켜쥐어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다. 반면 초대하지 않은 불편한 손님처럼, 고통스러운 순간들은 내 삶에 끊임없이 찾아온다. ‘삶은 고통’이라는 석가모니의 말처럼, 끝없는 불확실성은 그림자처럼 우리를 쫓아온다. ●상공 100미터에서, 10년 뒤 시점에서 지금의 고통을 입체적으로 관조해보세요 삶을 바라보는 위치를 좀 더 옮겨보자. 장기 말의 관점이 아닌, 장기판의 관점에서. 희노애락은 뒤엉켜 장기판 위에서 다투지만, 정작 장기판은 잠잠할 뿐이다. 전체적인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 인생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삶의 영광과 행복한 순간만이 아닌, 쇠락과 죽음의 순간도 함께. 죽음을 내 삶에 포함시킬 때, 언젠가는 나에게 끝이 찾아올 수 있다는 감각이 깃들 때 우리는 삶의 그림자를 보게 되고, 또 그림자 안에 웅크리고 있는 삶의 정수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또, 전체적인 눈은 고통도 삶 안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끊임없이 출렁이는 파도의 잔 물결도 멀리서 바라볼 때는 평탄한 수평선으로 보이듯, 지금 우리 눈 앞에 나타나는 고통도 삶 전체의 관점으로 본다면 점(點)과 같은 순간이다. 이 순간이 고통스럽지만, 결국 나를 스쳐 지나갈 것이고, 또 나는 다시 나의 삶을 살아갈 테다. 진료실을 찾은 분이 호들갑스럽게 자신의 걱정과 염려를 쏟아낼 때, 나는 가끔 함께 눈을 감고 상상하기를 권한다. “우리가 진료실에 앉아 있는 모습을 상공 100미터 위에 있는 드론이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떤 모습인가요?” 100미터 위, 그리고 500미터 위, 그리고 수 십 km위에서 보이는 우리의 존재는 우주의 먼지와도 같다. 은하계의 한 구석, 아주 좁디 좁은 그 곳에서 짧은 삶 속에 담긴 고민으로 신음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면, 우리 마음에 짊어진 짐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다.삶이 고통스럽다고 느낀다면, 5년 뒤, 10년 뒤의 나와 접촉해보자. 지금 이 순간은 참 괴롭지만, 5년 뒤의 나는 어떻게는 이 시기를 겪어내고 더 성장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거다. 10년 뒤의 나라면, 아련한 눈빛으로 “아이고, 내가 그때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그 때의 삶을 즐길 걸.”이라는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상해보자. 10년 뒤의 인자한 표정의 내가, 울상짓는 현재의 나를 가만히 보듬어주는 모습과, “지나갈 거야. 그러니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소리를. 마음에 담긴 고민은 한 면만 보일 뿐이다. 그러니 고민을 마음 안에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탁자 위에 꺼내 놓고 이리저리 돌려 보며 다양한 각도로 살펴보자. 가까이서도, 멀리서도. 어두운 면도, 그리고 빛이 내리쬐는 부분도. 혼자서 보기도 하고, 함께 살피기도. 그러면서 고통의 입체성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우리는 한정된 시간을 사는 생물일 뿐이다. 지구 전체 나이를 하루라 치면,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시기는 밤 11시 58분이라 한다. 인간이 억겁의 시간을 매만지며 만들어진 문명은 지구의 나이에 비하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하다. 그러니 우리의 삶은 지구에서, 우리를 둘러싼 우주에서는 흔적도 찾아보기 힘든 반짝임일지도 모른다. 당신이 겪고 있는 고통 또한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아주 찰나의 순간이라는 것, 고통은 어떻게든 당신을 관통해 지나갈 거라는 것, 그러니 우리는 소모적인 고민보다 현재의 삶을 더 감각해도 괜찮다는 사실이 당신에게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필자인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현재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이며, 현직 의사들이 운영하는 정신의학신문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신문은 마음 아픈 사람들이 쉽게 정신건강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젊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재능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된다. 신 전문의는 중증 질환은 물론 평범한 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정신적 어려움에 대해 쉽게 설명해준다. 저서로는 <어른의 태도>, <나를 살피는 기술>이 있다.
  • 방정환 선생은 5월 초하루를 왜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고 했을까

    방정환 선생은 5월 초하루를 왜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고 했을까

    “5월 초하루는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었습니다.”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소파 방정환 선생의 동화 ‘4월 그믐날 밤’이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잡지 ‘어린이’에 1924년 5월호에 실린 ‘4월 그믐날 밤’은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날을 축하하기 위해 온 세상이 환희에 찬 축제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다.동화 속에는 앉은뱅이꽃, 진달래꽃, 젓나무(전나무) 꽃, 복사나무, 개나리꽃, 할미꽃, 아가 꽃, 잔디 풀, 버들잎, 개구리, 참새, 제비, 종달새, 꾀꼬리, 나비, 벌레 등이 등장한다. 수많은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역할을 멋지게 해내며 이야기를 끌어간다. 이들의 모습은 각자의 개성을 가진 어린이와 닮았다. 이들이 기다리는 날은 5월 초하루, 바로 ‘어린이날’이다. 오늘날 어린이날은 5월 5일이지만 처음 제정될 때는 5월 1일이었다. 그러다 1928년부터 첫 번째 공휴일로 바꾸어 기념했고 해방 후부터는 5월 5일로 정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 홀로 깨어 마당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던 ‘나’는 속살거리는 작은 소리를 따라 담 밑 풀밭으로 향한다. 인간인 ‘나’는 관찰자다. 그곳에서 ‘나’는 날이 밝으면 좋은 세상이 온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꿀떡과 이슬 술을 만드는 꽃들의 혼을 지켜본다. 한편 참새는 개구리가 끄는 인력거를 타고 꽃들을 찾아와 내일 음악회에서 독창을 맡은 꾀꼬리가 목 병이 났다고 전한다. 꽃들은 참새에게 좋은 꿀 한 그릇을 꾀꼬리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5월의 축제를 분주히 준비한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참말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고 표현한다. 제목인 ‘4월 그믐날 밤’은 환하게 밝아 올 어린이날 전야의 이야기인 셈이다. 왜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날을 두고 새 세상이 열리는 첫날이라고 했을까.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은 “어린이날이 처음 생길 무렵만 하더라도 어린이에 대한 사회적 대우는 참으로 열악했다”며 “어린들은 자식을 ‘애 녀석’, ‘애 놈’으로 부르며 천대하기 일쑤였고, 겨우 열몇 살 된 자녀를 일찍 시집, 장가보내려던 게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어린이 인권을 본격적인 사회 운동으로 펼쳐 나간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 바로 어린이날 운동”이라며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천덕꾸러기처럼 대우 받으며 불쌍하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 대우와 사회적 지위를 찾은 날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 전쟁·긴축 변동장에도 안정수익 ‘글로벌 ETF’ 베팅해 볼까

    전쟁·긴축 변동장에도 안정수익 ‘글로벌 ETF’ 베팅해 볼까

    우크라이나 사태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예고에 글로벌 증시가 연일 출렁이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2.38% 급락한 3만 3240.18에 마감했다. 이 같은 급락장에서도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는 투자업계의 오랜 격언을 되새기며 밤낮없이 공포 속 저가매수를 이어 가는 서학개미들이 나타났다. 이에 발맞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서학개미를 공략한 상품과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다.미국주식 주간거래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삼성증권은 29일부터 미국주식 주간거래 시 매수매도 각 5호가씩 총 10호가를 제시하는 서비스를 오픈한다. 기존에 국내 증권사들은 매수·매도 각 1호가씩 2호가만 제공하고 있었다. 10호가 서비스를 통해 매수와 매도 각 5호가의 매수매도 잔량을 확인할 수 있어, 최적의 매매타이밍을 찾는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올해 2월 7일부터 시작한 삼성증권의 미국주식 주간거래 서비스는 오픈 55영업일차인 지난 26일 누적 거래대금 1조원을 넘어섰다. 특히 지정학적 이슈에 따라 시장 변동성이 높아지자 투자자들의 매매가 활발해지는 양상이 관측됐다. 전황이 급변했던 2월 22일부터 같은 달 24일까지 주간 1036억원이 거래되는 등 주식이 급락하는 상황에선 변동성 높은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매수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홍콩 등 10개국에서 ETF를 상장해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전 세계에서 운용하고 있는 ETF 규모가 100조원을 돌파하는 등 세를 넓히는 추세다. 지난달 말 기준 전체 순자산 규모는 107조 6272억원에 달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특히 글로벌 테마형 ETF로 투자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상장된 ‘TIGER 미국테크 TOP10 INDXX ETF’의 최근 1개월 수익률은 3.10%를 기록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반도체 ETF 시리즈도 덩치를 키우고 있다. ‘TIGER 미국필라델피아반도체나스닥 ETF’, ‘TIGER 반도체 ETF’, ‘TIGER 200 IT ETF’ 등 반도체 ETF 5종의 총순자산은 지난 1년간 1조 2000억원 이상 증가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이들 ETF는 변동성 장세에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지상렬 “마지막 연애 5~6년 전…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지상렬 “마지막 연애 5~6년 전…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방송인 지상렬이 마지막 연애를 추억하며 씁쓸해했다. 지난 26일 방송된 KBS 2TV ‘新 가족관계증명서 갓파더’에서는 KCM의 20년지기 지상렬이 KCM의 신혼집에 놀러온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지상렬은 중국음식과 함께 반주를 하던 중 최환희를 향해 “술은 언제부터 마셨냐”고 물었다. 현재 22세인 최환희가 스무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대답하자 지상렬은 “이제 간을 2년밖에 안 쓴거다”라면서 “난 간을 사용한지 34년 됐다. 나만큼 술 많이 먹은 사람 없다. 그런데 내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겼는데 술을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바로 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지상렬의 호언장담에 의심의 눈빛을 보내던 KCM은 “마지막 연애는 언제냐”고 물었고 지상렬은 “10년까지는 아니고 5, 6년 정도 됐다. 마흔 후반 정도였을 때”라고 떠올렸다. 이어 “진지하게 만났다. 결혼까지도 생각했다. 내가 원래 누군가를 한 번 만나면 오래 만나는데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나는 스타일이다. 성격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다. 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내가 프러포즈를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고 답했다. 이에 KCM은 “너무 아쉽다”라며 지상렬을 측은하게 바라봤고, 이에 지상렬은 말문을 잇지 못하더니 “영안실보다 더 쓸쓸한 느낌이다”라면서 “나 오늘 이러다 여기서 발인하는거 아니냐”라고 너스레를 떨어 모두를 폭소케했다. 그러면서 지상렬은 “그런 얘길 왜 하냐. 노래 한 곡 하겠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부르겠다”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러 씁쓸한 웃음을 안겼다.
  • 지상렬 “마지막 연애 5~6년 전…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지상렬 “마지막 연애 5~6년 전…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방송인 지상렬이 마지막 연애를 추억하며 씁쓸해했다. 지난 26일 방송된 KBS 2TV ‘新 가족관계증명서 갓파더’에서는 KCM의 20년지기 지상렬이 KCM의 신혼집에 놀러온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지상렬은 중국음식과 함께 반주를 하던 중 최환희를 향해 “술은 언제부터 마셨냐”고 물었다. 현재 22세인 최환희가 스무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대답하자 지상렬은 “이제 간을 2년밖에 안 쓴거다”라면서 “난 간을 사용한지 34년 됐다. 나만큼 술 많이 먹은 사람 없다. 그런데 내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겼는데 술을 안 먹었으면 좋겠다고 하면 바로 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지상렬의 호언장담에 의심의 눈빛을 보내던 KCM은 “마지막 연애는 언제냐”고 물었고 지상렬은 “10년까지는 아니고 5, 6년 정도 됐다. 마흔 후반 정도였을 때”라고 떠올렸다. 이어 “진지하게 만났다. 결혼까지도 생각했다. 내가 원래 누군가를 한 번 만나면 오래 만나는데 헤어지면 다시 못 만나는 스타일이다. 성격 때문에 헤어진 건 아니다. 그 사람을 너무 많이 기다리게 했다. 내가 프러포즈를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고 답했다. 이에 KCM은 “너무 아쉽다”라며 지상렬을 측은하게 바라봤고, 이에 지상렬은 말문을 잇지 못하더니 “영안실보다 더 쓸쓸한 느낌이다”라면서 “나 오늘 이러다 여기서 발인하는거 아니냐”라고 너스레를 떨어 모두를 폭소케했다. 그러면서 지상렬은 “그런 얘길 왜 하냐. 노래 한 곡 하겠다. 그녀를 생각하면서 부르겠다”면서 ‘낭만에 대하여’를 불러 씁쓸한 웃음을 안겼다.
  • ‘흰 원수복’ 김정은, 신형 ICBM·SLBM 다 꺼냈다

    ‘흰 원수복’ 김정은, 신형 ICBM·SLBM 다 꺼냈다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을 맞아 지난 25일 개최한 열병식에서 미국 본토가 사정권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부터 남측을 겨냥한 신형 전술유도무기까지 최근 시험발사에 나선 신형 미사일들을 공개했다. 26일 조선중앙TV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의 마지막엔 북한이 지난달 발사에 실패한 것으로 파악된 신형 ICBM 화성17형이 등장했다. 노동신문은 “광장이 삽시에 환희와 격정의 도가니로 화했다”고 전했다. 기존 북극성5형에 비해 길이가 3m가량 길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도 눈에 띄었다. 지난해 10월 북측이 잠수함에서 수중 발사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미니 SLBM도 등장했다. 이 밖에 지난 1월 시험발사한 극초음속미사일과 이달 16일 시험발사한 신형전술유도무기도 공개됐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에서 흰색 상의와 감색 바지로 된 ‘공화국 원수복’을 입고 나타나 집권 10년간 핵무력을 완성한 최고지도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공식 집권한 2012년 ‘공화국 원수’ 칭호를 받았지만, 그간 열병식에 원수복을 입고 등장한 적은 없었다. 김 위원장이 원수복을 입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초상화 속 모습으로만 공개됐다.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연상케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주석은 1953년 7월 휴전협정 직후 평양 전승 열병식 때 흰색 원수복을 입고 나타났다. 김 위원장의 원수복 견장에선 대원수 계급장으로 추정되는 모양도 확인됐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2020년 김 위원장의 군 지위가 대원수급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 바 있다. 다만 대원수 칭호 수여에 대한 북한 관영 매체의 보도가 없었던 것을 보면 실제로 대원수 자리에 올랐는지는 미지수다. 북한에서 생전에 대원수 칭호를 부여받은 사람은 1992년 김 주석이 유일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사후인 2012년 대원수로 추대됐다.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도 이례적으로 열병식에 참석해 퍼스트레이디로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리 여사는 김 위원장이 입은 원수복과 색상을 맞춘 듯 보이는 단정한 베이지색 투피스를 입고 도열한 군인들을 바라보며 김 위원장 옆에서 걸었다.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비서에서 해임됐던 리병철은 10개월 만에 복귀한 것으로 확인됐다. 통신은 참석자를 소개하면서 리병철을 ‘정치국 상무위원이자 당 중앙위원회 비서’로 호명했다. 한동안 공개행사에서 보이지 않았던 박정천 당 비서도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으로 호명되며 다시 등장했다. 두 사람은 각종 훈장이 달린 예복을 입고 김 위원장 양옆에서 열병식을 지켜봤다. 조선중앙TV가 방송한 열병식 영상은 다양한 영상편집 기법을 활용해 역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했다. 공수부대 낙하와 함께 시작된 열병식은 김 위원장 연설과 에어쇼, 군 행진 순으로 진행됐다. 코로나19를 감안한 듯 방역복 차림의 부대도 등장했다.
  • 北김정은 열병식 개최…“핵무력 억제력 가동하도록 철저히 준비”

    北김정은 열병식 개최…“핵무력 억제력 가동하도록 철저히 준비”

    북한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유격대) 창건 90주년인 지난 25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5일 열린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 김 위원장이 참석해 연설하면서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고 26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핵무력의 기본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떤 세력이든 우리 국가의 근본 이익을 침탈하려 든다면 우리 핵 무력은 의외의 자기의 둘째가는 사명을 결단코 결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화국의 핵 무력은 언제든지 자기의 책임적인 사명과 특유의 억제력을 가동할수 있게 철저히 준비되여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도 등장했다. 통신은 “지난 3월 24일 주체조선의 절대적 힘,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온 세상에 과시하며 만리대공으로 치솟아오른 ‘화성포-17’ 형의 어마어마한 모습을 가까이하는 온 광장이 삽시에 환희와 격정의 도가니로 화하였다”고 전했다. 이번 열병식은 북한에서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항일빨치산)을 조직했다고 주장하는 1932년 4월 25일을 기념한 것이다. 항일빨치산 기념 열병식 개최는 김정은 집권 이후 처음이다.
  • [길섶에서] 피날레/진경호 수석논설위원

    [길섶에서] 피날레/진경호 수석논설위원

    세기의 배우 알랭 들롱이 스위스에서 92년의 생을 스스로 거둘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4년 전엔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이 104년의 삶을 스스로 거뒀다. 다량의 신경안정제가 온몸의 혈관으로 퍼져 나가는 동안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평생을 산과 들로 내달리다 나이 90을 넘겨 운전면허 말소로 발이 묶이고 병을 얻어 쇠약해진 그는 생의 마지막 10년여를 ‘살아내야 했다’고 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제 삶을 마감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였다. 내 삶은 나의 것이다. 삶을 일구고 가꾸는 건 오롯이 내 몫이다. 그럼 죽음은 누구의 것인가. 삶의 시작이 그러했듯 그 끝 또한 내 뜻 밖의 일인가. 삶을 거두는 건 오로지 신의 영역인가. 100세 시대. 안락사가 다시 입길에 오른다. 그러나 이 생이 소풍이었기는 시인 천상병만이 아닐 터. 이 세상 아름다웠노라 하늘에 전하려면 생의 마지막장은 그냥 ‘살아낼’ 일이 아니겠다. 마침표보다 피날레가 먼저다.
  •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가난했던 대구 소년, 헌법학에 불멸의 발자취 남기고 떠나다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서울대 명예교수가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서울신문은 2013년 5월 ‘명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인물탐구 기획 코너를 통해 고인이 밟아온 삶의 궤적을 2회에서 걸쳐 집중적으로 조명한 바 있다. 고인은 당시에도 만 80세 고령이었지만, 스트레이트로 5시간에 걸친 짧지 않은 인터뷰를 정력적으로 소화해 냈다. 자신의 인생을 채워온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을 대부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인터뷰 전문을 그대로 소개한다. ========================== [명사가걸어온 길] (11) 한국 헌법학의 태두 김철수 해방·전쟁·좌우 분열… 격동의 시대, ‘책벌레 소년’ 헌법에 눈을 뜨다유신헌법 참여 협박에도 정치권 러브콜에도… 학자의 양심 지켰다열두 살 되던 해 일제가 패망했다. 환희에 천지가 요동쳤다. 해방. 어렸지만 그게 뭔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러나 조국의 운명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혼돈과 분열이었다. 국토는 남북으로 찢기고 민중은 좌우로 갈렸다. 얼마 전까지 ‘조국 해방’을 외치며 함께 어깨를 걸었던 동지들이 생각이 다르다고, 처지가 다르다고 원수가 돼 등을 돌렸다. 어제까지 한 교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좌익 프락치로 몰려 책상을 비웠다. 해방 공간의 극심한 무정부 상태를 보며 소년은 결심했다. 국가 시스템의 뼈대가 되는 헌법을 공부하겠노라고. 그 다짐대로 헌법 연구는 평생의 업이 됐고, 소년은 우리나라 헌법학의 ‘태두’(泰斗)가 됐다. 지난 10일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한국헌법연구소에서 만난 김철수(80) 서울대 명예교수는 5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에도 피로한 기색 없이 꼿꼿하게 여든 성상의 인생과 철학을 얘기했다. 유복한 친구 둔 덕에 책 실컷 읽고...극렬한 좌우 대립 지켜보며 성장1933년 7월 대구에서 빈농(貧農) 집안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책 읽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유복한 친구를 둔 덕에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책 읽느라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통학 기차 안에서도 그의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친구 아버지가 당시 대구지역 마사회 회장이었어요. 경마장에는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 나라에서 가져온 세계 문학대전집, 세계 사상대전집 같은 책들이 그득그득 꽂혀 있었지요. 그때 읽은 책 중 가장 감명 깊었던 게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이었어요. 강의 중에 ‘레 미제라블’을 말하면 학생들은 ‘아 장발장이 빵 하나 훔쳤다가 탈옥하는 거요?’ 정도의 반응이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이 책은 대단한 책입니다. 무려 26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에 형벌, 정치, 법철학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고민이 담겨 있으니까요.” 책에 빠져 살던 김 교수의 관심이 사회로 옮겨가기 시작한 것은 나라가 광복을 맞으면서였다. ‘민주국가 건설’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떤 민주주의를 택하느냐를 두고 극심한 분열 양상이 온나라를 휩쓸었다.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나라가 완전히 엉망이었지요. 특히 제가 살던 대구는 당시 공산주의의 총본산인 모스크바(소련의 수도)에 빗대어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렸을 정도예요. 좌익의 활동이 국내 어떤 도시보다도 활발하고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극렬한 좌우 대립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경찰이 사람을 잡아가고 때리고, 또 반대되는 공공기관 테러가 일어나고.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바로 헌법이었던 것이지요.” 1947년 제헌(制憲) 헌법을 만든다는 소식을 접한 그는 법대생이나 학자들이 보던 고시 잡지 등을 읽으며 헌법학자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때가 우리 나이로 열다섯이었다.시력 나빠 전쟁터 끌려가지 않아...대학 입학 천막 강의실 공부 1950년 전쟁이 터졌다. 고도근시로 고생하던 그는 전쟁터로 끌려가지 않았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전쟁 탓에 서울의 대학들이 부산으로 피란 온 터였다. 부산의 허름한 판자촌에서 법학 강의를 들었다. 법학도들이 ‘천막 강의실’에서 힘겹게 공부하던 이 시기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불법적인 개헌을 추진한다. 이른바 ‘발췌개헌’의 시작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피란 가 있는데 거기에서 임기 4년이 만료됐어요. 이 대통령은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을 고치려 들었는데, 이걸 야당이 반대했고 그 결과로 야당 의원들에 대한 탄압이 시작됐어요” 이 대통령은 “전시에 부산에 침투한 간첩이 많으니 소탕을 해야 한다”는 이유를 대며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내 속셈을 드러냈다. 간첩을 잡겠다던 당초 주장과 달리 야당 의원과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검거와 폭력이 이뤄졌다. “야당 지도자였던 장면 선생도 잡아넣었어요. 3명 이상 모이면 잡아갔어요. 국회로 출근하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에 탄 채로 계엄사령부에 끌려 가기도 했어요. 옛 경남도청에 무덕관이라고 해서 유도 연습장 같은 곳을 국회의사당으로 썼는데 그 일대에 ‘백골단 깡패’들이 쫙 깔려 있었어요. 이 대통령에 반대하는 의원은 전부 계엄사령부로 소환했다고 보면 될 겁니다.” 김 교수는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질곡의 상당 부분은 친일파 등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지만 일부 불가피한 대목도 있었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친일파 척결은 예견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래서 친일파를 처벌하는 법률도 만들었는데 법률로 처벌하려다 보니까 당시 정부관료,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걸렸던 거죠. 일제강점기 때는 외국 유학자를 비롯해 능력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이 대통령이 보기에 친일파를 다 쫓아내면 행정이나 정치를 못하겠다 싶었던 거죠. 반민특위에 걸렸던 경찰들을 풀어주고, 결국 그 경찰들이 치안 등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을 유지해 전쟁통에 질서를 유지했다고 볼 수 있죠. 일부 사람들은 이 대통령이 반민특위를 없앴다는 이유로 친일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당시의 사정도 일부 헤아릴 필요는 있을 겁니다.”이 대통령은 연임에 성공했고 1953년 전쟁이 끝났다. 김철수는 스무 살의 청년이 됐다. 김철수는 한 살 아래 학과 동기를 만나 사랑을 키워갔다. 궁핍과 혼돈의 시대에 서울대 법대 커플의 사랑은 주위의 부러움과 시샘을 샀다. 하지만 당사자들을 포함해 그 누구도 이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대화 주제가 ‘첫번째 아내’로 옮겨가자 김 교수의 목소리톤이 낮아졌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첫 아내’ 전혜린과 캠퍼스 커플...뮌헨대 유학중 결혼 김 교수의 첫 번째 아내는 한국 문학계와 여성 예술인들 사이에서 ‘불꽃처럼 살다간 여인’으로 회자되는 전혜린이다. 두 사람은 부산에서 맺은 인연을 서독(독일 통일 전) 뮌헨에서 키워나갔다. 전혜린이 1955년 먼저 뮌헨대 유학길에 올랐고 김 교수는 이듬해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이역만리에서 기쁨과 고통을 나눴다. 문학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의 성화로 법대에 진학했던 전혜린은 독문학과에 입학해 그토록 바랐던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체계적인 법 공부에 목 말랐던 김 교수는 법학 공부를 이어갔다. 하지만 전쟁국가 출신 동양인에게 서독은 마음 놓고 공부만 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은 아니었다. 당시 누구나 그랬듯 너무도 가난했다. 나라를 벗어나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선택받은 삶이 됐던 시절이었다. 대통령의 허가가 있어야만 외국 송금이, 그것도 최고 50달러까지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두 사람은 장학금과 통·번역 아르바이트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전혜린은 훗날 유학생활의 궁핍에 대해 “물을 마시니까 죽지는 않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인에 대한 시선은 싸늘했다. 지구상에 한국, 코리아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코리아’라고 그러면 아프리카 콩고에서 왔냐고 그랬어요. 그 나라에 기차는 있느냐, 뭘 먹고 사느냐 등 질문을 해대는데, 미개인 취급을 하더군요. 교수들도 저를 보며 전쟁 중인 나라에서 공부는 무슨 공부를 했겠느냐며 일본 학생들과도 크게 차별을 뒀습니다. 약소국 국민의 설움이란 게 뭔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알기 어렵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소외감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견고하게 했다. 1957년 그들은 뮌헨에서 결혼을 했다. 생활은 결혼 전과 다름 없이 곤궁했지만 함께한다는 것만으로 의지와 위안이 됐다. 그러던 중 전혜린은 1959년 딸을 낳고 한국으로 돌아가 이듬해 성균관대에서 강사로 둥지를 틀었다. 김 교수는 2년 뒤 모교 교수 자리를 제안받고 서울로 돌아왔다.이혼 1년 뒤 전혜린 작가 스스로 목숨 끊어 배 고프고 힘들었던 서독 생활을 정리하고 고국에 왔지만 서울에서는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귀국하자마자 5·16 쿠데타가 터졌다. 박정희 당시 제2군사령부 부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이 무력으로 청와대를 장악했다. 당시 박정희 군부가 취한 여러 조치 가운데 ‘군 미필자는 공무원이 되지 못한다’는 게 있었다. 시력이 나빠 군대에 못 간 김 교수는 공무원인 서울대 교수에 임용되지 못했다. 서울대는 물론 어디에서도 군 미필자인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내와의 관계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입국한 전혜린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서울의 문인들과 어울렸다. 밤 늦게까지 명동에서 삶과 죽음, 예술을 논했다.“아내가 언제부턴가 문인의 죽음을 동경했어요. 처음에는 나는 사회규범과 질서를 중시하는 법학자이고 아내는 사회의 틀보다는 자유와 이상을 갈망하는 문학가라서 서로 다르겠거니 했는데 이 사람이 자꾸 ‘니체도 카프카도 일찍 죽었다’ 이러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거예요. 수면제도 많이 갖고 다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결국 두 사람은 1964년 합의이혼을 했다. 그리고 1년 뒤 전혜린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그는 교수 임용 제한이 풀리면서 서울대 법대 학생과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고교 교사와 재혼...꼬박꼬박 ‘그 사람’ 제사 챙기는 아내 그로부터 2년 뒤 김 교수는 고교 교사와 재혼을 했다. “아내는 지금도 꼬박꼬박 그 사람(전혜린)의 제사를 지내고 있어요. 자기가 낳은 아이들에게도 제사에 꼭 참석하라고 그러고. 참 고마운 사람이죠.” 그는 사별한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반평생 이상을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함께 표했다.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큰 시련을 겪고 난 그는 다시 연구에 매진했다. 체계적인 헌법학 이론과 정력적인 강의, 활발한 저술활동으로 헌법학계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혀갔다. 이는 박정희 군사정권이 새롭게 부상하는 법학자에 대해 점차 날카로운 감시의 눈초리를 들이대도록 만드는 빌미가 됐다. 드디어 등장한 유신헌법의 시대. ‘학자 김철수’는 어떻게든 이 난국을 빠져나가야만 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3년 12월 17일부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스러진 1979년 10월 26일까지 15년 10개월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잘살아보세~”라는 한목소리 외의 다른 의견과 생각은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다. ‘지성인의 전당’인 대학에는 사복 경찰과 정보원들이 교수와 학생들을 감시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상부’에 보고했다. 이런 박정희 정권에도 대학과 언론의 비판이 제한적이나마 가능했다. 적어도 잡아가지는 않았다고 한다. 1962년부터 3년간 서울대 학생과장...‘중정’과 맞서“군대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수로 임용되지 못하고 학교에서 무급 조교로 일하다가 1962년 9월 취업 제한이 풀리면서 학생과장을 맡았어요. 요즘 같으면 학생담당 부학장쯤 되는데 그걸 만 3년 했어요. 3년 동안 중정(중앙정보부) 사람들이랑 참 많이도 싸웠었죠. 학교에 출입하던 중정 사람 중 훗날 안기부(중정의 후신 국가안전기획부)의 장까지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들은 어느 교수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낱낱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했어요. 그때 중정의 한 간부가 ‘당신에 대한 기록이 엄청 쌓여 있다. 중정에서는 당신이 학생들 선동하는 걸로 보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하기도 했었죠. 하긴 그땐 법대 학생들이 제일 열심히 데모했고, 그 학생들에게 우리 법이 잘못됐다고 가르친 것도 나였으니….” 교수들로부터 정의와 바른 법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학생들은 거리로 나갔다. 김 교수의 말대로 당시 서울대에서는 법대생들을 중심으로 학생운동이 조직됐다. 이때 서울대 총학생회장도 법대 소속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 실장을 지낸 정정길(71)씨다. 서울의 대학생들은 연합해 정권의 부당함에 맞섰다. 대표적인 사건이 1964년 한일기본 협정 반대 시위다. 박 대통령이 일본과의 외교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정을 추진하자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굴욕 외교’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시위 세력은 들불처럼 번지면서 그해 ‘6·3 사태’가 터졌다. 1964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선봉 고려대 이명박-서울대 정정길 박 대통령은 6월 3일 시위대 해산을 위해 서울시 전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서울 시내에 4개 사단병력을 투입해 시위 학생들을 잡아들였다. 이때 시위대 선봉에서 정정길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함께 나선 인물이 이명박 고려대 상대 회장이다. 김 교수는 “당시 단과대 회장은 훗날 대통령이 되고 다른 학교 총학생회장은 그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됐는데 어찌 보면 거꾸로 된 거 같기도 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재미있는 인연이죠. 노태우 정권에서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13~15대 국회의원)도 시위단 사이에서 격문 쓰고 그랬던 시절이 있었죠”라며 웃어 보였다. 학생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바른 정치와 민주화를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열망과 굳은 의지였지만, 중정에 끌려간 그들을 빼오는 것은 교수들의 몫이었다. 6·3사태로 정정길을 비롯한 수많은 서울대생들이 중정과 경찰 등에 잡혀갔다. 법대 학장이 학생들에 대한 보증서를 써 주고 김 교수 등이 중정 등을 찾아가 사정해 수감된 학생들을 빼왔다. “그땐 시위가 끊이지 않았는데 시위만 했다 하면 학생들이 청와대로 가야 한다고 해서 중앙청(현 경복궁 자리)으로 가곤 했죠. 저는 학생 관리도 제 일이었으니까 관리 차원에서 같이 중앙청으로 따라가고 하면서 치안국 보안과장과 서울 정보분실장과도 자주 마주쳤죠. 한 놈은 중학교 동기고 또 한 놈은 대학 동기였는데 그놈들이 저한테 ‘너는 학생 과장이라면서 왜 학생 선도도 못하냐’고 난리를 피우고 그러면 저는 ‘니들이나 똑바로 해라’며 목소리를 높이곤 했어요.” 정보요원이 수업을 감시하고 학생들이 중정과 경찰서 유치장 등을 드나들었어도 김 교수는 ‘그나마 괜찮았던 시절’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1960년대에 몇 없었던 ‘낭만적인 에피소드’도 소개했다.창경궁 통째로 빌려 이대생들과 미팅 주선 “그때라고 해서 학생들이 시위만 하고 돌 던지고 그렇지만은 않았어요. 하루는 총학생회장 정정길이 우리가 종합대학이니까 종합대 축제를 하자면서 서울대생 전원과 이화여대생 전원 미팅을 제안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청춘 남녀들에게 좋은 일이겠다 싶어서 제가 창경원(현 창경궁)을 빌려볼 생각으로 창경원장을 찾아갔어요. 창경원장도 학교 선배였거든요. 창경원장도 암울한 시대에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이라며 흔쾌히 승낙하면서 날을 잡아 ‘창경원 오후 휴원’이라고 걸어놓고 두 학교 학생들만 무료 입장시켰죠. 지금 보면 대규모 미팅 같은 것인데 순 남학생 판에 여학생은 몇 없고 그런 모습도 어찌나 재밌던지… 그래도 훗날 그 만남을 계기로 결혼한 사람이 10쌍도 넘더라고요. 우리한텐 재미고 낭만이었지만 다음 날 청소하시는 분들 애 많이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캠퍼스의 소소한 낭만도, 학자 김철수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도 그리 길게 가지 못했다. 1972년 10월 박 대통령은 유신헌법을 선포한다. 박정희 정권은 김철수에게 유신헌법에 근거한 탄압에 앞서 유신헌법 제정 공신이 되기를 강요했다. “정권이 유신헌법 만들려고 여러 가지 작업을 했어요. 몇몇 교수는 해외에 보내서 자료 수집을 담당하게 하고 나를 포함한 야당 성향 교수들도 법무부 자문위원회라는 걸 만들어 그걸 하라고 강요했죠. 나는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정부 쪽에서는 쉽게 말해 까불지 말라는 식이었고 일부는 참여를 거부하면 항명죄라며 협박까지 했죠. 그게 다 나중에 유신헌법이 각계의 자문위원들이 참여해 만든 것이라는, 정당성 부여를 위한 계략이었던 거죠.” 김 교수는 갖은 협박성 설득에도 학자의 양심을 지켰다. 하지만 이어 유신헌법 홍보에 나서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말이 제안이지 명령과 강압이었다. 정권은 중정을 통해 김 교수가 방송과 라디오에서 유신헌법 홍보를 맡도록 압박했다. 유신헌법 찬양 글·홍보방송 안하고 버텨 “하루는 학교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분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나갔는데 식사 마치고 저를 TBC(동양방송) 앞에 내려주더군요. 방송에 출연하라는 뜻이었죠. 결국 정문으로 들어가 바로 후문으로 빠져나갔죠. 방송은 저 대신 다른 분이 출연했는데 중정에서는 방송 펑크 냈다고 난리가 났고, 그때 제대로 찍혀 저에 대한 탄압도 시작됐습니다.” 당시 김 교수는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을 겸하고 있었다. 역시 유신헌법을 찬양하는 글을 쓰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김 교수는 학자의 양심에 반하는 글은 쓸 수 없었다. 결국 해당 언론사의 정치부장이 찬양 글을 대신 썼다. 이후 김 교수를 대신해 유신을 찬양했던 한 인사는 국회 배지를 달았고, 또 한 인사는 장관까지 올랐다. 반면 김 교수에게는 정권의 보복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저술 활동이 금지됐다. “청와대 쪽 사람들과 법학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가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저한테 ‘절대로 책 쓰지 말라. 책 쓰면 큰일 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이미 제3공화국에 관한 헌법책을 다 써놨고 유신헌법이 나오면서 유신헌법의 문제점까지 다 정리한 상태였거든요. 출간을 강행했죠. 그게 1973년 1월 10일이었습니다.” 저술활동 금지당한 후 미·독 떠돌아 하지만 책은 출간 즉시 전량 몰수됐고 김 교수는 중정에 끌려갔다. 일주일간 회유와 압박이 이어졌다. 박 대통령을 ‘독재적인 대통령’, 유신헌법을 ‘현대판 군주제’라고 비판한 대목에 대해서는 북한과 내통한 것 아니냐는 억지도 부렸다. 결국 김 교수는 정권이 문제 삼은 부분의 수정을 약속하고 풀려났다. 1년간 집필이 금지됐고, 연구비도 끊겼다. 김 교수는 더 이상 한국에 머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미국과 독일 등지의 방문 교수를 지원해 국외를 떠돌며 박정희의 시대가, 유신의 시대가 저물기만을 바랐다. 철권(鐵拳) 같았던 박정희의 시대가 저물고 1980년 ‘서울의 봄’이 찾아왔다. 유신헌법으로 유린된 헌법을 바로잡을 논의가 시작됐다. 이때 김 교수도 헌법 개정에 참여했다. 김 교수 등이 제안한 개정안은 최규하 당시 대통령도 만족했다. 그러나 곧 전두환이라는 걸림돌을 만나 헌법도 정치적 의도로 변질됐다. 그래도 김 교수는 1987년 헌법재판소 설치를 ‘유신 이후 헌법적 발전’으로 꼽았다. 대화는 자연스레 헌법재판소에 대한 평가로 이어졌다. 김 교수는 애정 어린 쓴소리를 늘어놨다. “요즘 헌재의 결정을 보면 재판관들이 얼마나 헌법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인터넷 실명제는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 이런 것들은 또 질서 유지의 관점으로 보면 필요하거든요. 판검사들이 재판관이 되는데 판검사 때는 헌법을 읽을 일이 없어요. 오히려 연구관들이 재판관보다 헌법을 더 잘 알아요. 재판관 임명 시 헌법에 대한 이해도를 반영할 필요가 있어요.” 최근 긴급조치 위헌에 대한 해석 권한을 놓고 헌재와 대법원이 갈등을 빚은 데 대해서는 헌재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독일은 최고 사법부가 헌법재판소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도 헌법 만들 때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로 둬야 한다고 주장해 법원에서 결사반대했던 건데 헌법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헌법 해석권한을 가진 헌재를 대법원보다 우위에 두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유신시절 정권에 저항했던 모습에 비하면 상당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는 대중의 평가에 대해서는 ‘공동체 주의’를 강조했다. “30대에 진보적이지 않고 40대에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하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아무래도 젊을 때는 개인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을 갖기 쉽죠. 그런데 나이가 들다 보면 아무리 똑똑하고 잘해도 개인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찰을 2만명 증원하겠다고 했는데 생각해 보면 국민이 질서를 지킨다면 이런 사회 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결국 개인주의에서 공동체 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판관 임명시 헌법 이해도 반영 필요”여든의 노학자는 헌법 연구에만 매진한 인생을 조용히 돌아봤다. 그는 학자가 대통령이 될 게 아니라면 정치권에 진출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학자가 정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학자의 소신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 교수는 1980년대 여야를 막론하고 정부에서도 관료로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저는 대학교수가 관료나 정계로 가는 걸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어요. 학자나 언론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말을 할 수 있지만 관료나 정치인이 되면 조직 논리가 우선하거든요. 소신을 지키려면 쓴소리도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공직에서 그런 사람은 살아 남기 힘들죠. 정치권은 특히 더 심하고요. 어떤 정치인이 공천권을 쥐고 있는 당수와 싸울 수 있겠어요” 장시간의 인터뷰는 젊은 기자도 피로감을 느낄 정도였지만 김 교수는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헌법과 사회 질서에 대한 고민에서는 좌익 프락치로 몰려 잡혀가는 친구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소년 김철수의 고민도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인터뷰를 마치며 책장 가득한 그의 저서를 보며 “인세도 많이 받으셨겠다”는 농담 섞인 질문을 던졌다. “옛날엔 꽤 들어오더니만 요즘은 학생들이 책을 안 사긴 참 안 사네요”라며 웃어 보였다. ■김철수가 걸어온 길 1933년 경북 대구 출생(6남 1녀 중 장남) 1956년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 1957년 서독 뮌헨에서 전혜린과 결혼 1961년 서독 뮌헨대 졸업 1962년 서울대 법과대학 조교수 1967년 미국 하버드대 법과대학원 수료 1971년 서울대 법학박사 1972년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1998년) 1988년 한국공법학회 회장(~1989년) 1990년 한국헌법연구소 소장(~2001년) 1995년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국제헌법학회 이사 1998년 제주 탐라대 총장(~2000년)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1998년~) ■주요저서 헌법학(1972) 현대헌법론(1979) 비교헌법론(1980) 법과 사회정의(1982) 한국헌법사(1988) 법과 정치(1995) 정치개혁과 사법개혁(1998) 헌법정치의 이상과 현실(2012)
  • 코리안심포니, 22일 가이 브라운슈타인 첫 지휘 무대 ‘환희로’

    코리안심포니, 22일 가이 브라운슈타인 첫 지휘 무대 ‘환희로’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는 오는 2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가이 브라운슈타인의 ‘환희로’를 개최한다. 이번 공연에선 독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최연소 악장(2000~2013)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 가이 브라운슈타인이 활 대신 지휘봉으로 한국 관객과 처음 만난다. 브라운슈타인은 지휘자로도 최근 10년 동안 독일 함부르크 심포니, 핀란드 헬싱키 필하모닉, 노르웨이 트론헤임 심포니 등 다양한 포디움에 올랐다. 작·편곡까지 아우르며 차이콥스키와 비틀즈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그는 ‘바이올린·지휘·작곡’을 섭렵한 전방위 음악가로 꼽힌다. 이번 무대에선 스타일이 다른 작곡가들이 그려낸 다채로운 감정선의 곡들을 만날 수 있다. 독일 낭만주의 오페라를 대표하는 베버의 ‘마탄의 사수’, 차이콥스키가 슬럼프를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교향곡 5번, 비올라의 매력을 오롯이 즐길 버르토크의 비올라 협주곡 등을 선보인다. 현연자로는 베를린 필의 비올라 수석 아미하이 그로츠가 나선다. 브라운슈타인은 “다른 음악 어법을 지닌 두 작곡가 베버, 차이콥스키가 그려낸 인간 감정의 모든 범위를 경험하는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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