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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얀마 정정불안 재연 조짐/민주국민연,군부에 정권이양 촉구

    ◎정면충돌 불가피 【방콕 로이터 연합】 지난 5월 총선에서 승리한 미얀마(구버마)의 민주국민연맹은 군사정부에 정권이양을 요구하는 한편 군사통치 종식을 결의함에 따라 정부와의 정면충돌은 이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양곤에 머물고 있는 한 외교관이 30일 말했다. 이 외교관은 전화인터뷰룰 통해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국민연맹에 속한 후보들이 28,29 양일간 집회를 갖고 군부에 직접대화와 권력이양을 요구키로 결의하는 등 군사정부에 맞서 싸우기 위한 전열을 정비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이틀간의 집회를 마치면서 발표한 성명을 통해 민주국민연맹의 지도자 수지 여사에 대한 즉각적인 연금해제 ▲오는 9월까지 의회개원 ▲3백여명에 이르는 정치범석방 ▲군사정부와 야당간의 직접대화 등을 요구했다. 민주국민연맹의 집회는 양곤(랑군)시내에 있는 「간디홀」에서 진행됐는데 건물주위에 몰려있던 1만여명의 지지자들은 민주국민연맹이 대형스피커를 통해 발표하는 성명을 환호로 답했다.
  • 강의중 건물무너져 35명 떼죽음/비 지진참사 현장 이모저모

    ◎주비미군,의약품 공수… 긴급 구조 ○…마닐라와 필리핀 북부를 강타한 지진의 진앙인 카바나투안시의 필리핀 크리스천대학건물 붕괴현장에는 녹색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파편더미에 깔린채 신음하고 있었으며 곳곳에 구두와 볼펜ㆍ노트 등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비참한 모습. 느닷없는 지진으로 이 대학6층 콘크리트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통에 오후수업을 진행하고 있던 교사들과 학생 가운데 상당수가 미처 대피하지 못해 파편더미에 묻혀 버렸으며 캠퍼스 건물은 흡사 눌러진 샌드위치처럼 찌그러든 모습. ○…이곳에는 당시 대학생들과 부속중ㆍ고교의 교사ㆍ학생들은 포함,모두 5백명가량이 있다가 일부만이 용케 대피했으며 파편 더미에 깔린 학생들중에서는 17일 상오 현재 1백여명이 구조되고 35명만이 사망자로 확인돼 피해는 더 늘어날 전망. ○…이날 마침 14번째의 생일을 맞이한 세난도 멤핑군은 3명의 친한 친구들을 레스토랑 식사에 초대했었는데 같은반 학생 54명이 모두 파편더미에 깔려 결국은 그 혼자만이 유일한 생존자로 남는 비극을 겪게 됐다. ○시민들,거리서 방황 ○…한편 미국방부는 공군수색 및 구조대를 지진 현장에 급파했다고 발표했으며 클라크 미공군기지의 한 대변인은 의약품을 실은 미군 헬리콥터 4대가 바기오로 출동했다고 밝혔다. OCD관계자들은 마닐라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중이던 7명의 환자들이 정전으로 산소공급이 중단되는 바람에 절명했으며 다른 환자들은 주사병을 매단채 거리로 뛰쳐 나갔다고 밝혔다. 또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고 교회와 도로가 갈라졌으며 마닐라 시내의 사무실과 아파트 등이 파손되고 곳곳에 화재가 발생,공포에 질린 수천명의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와중에서 깔리거나 부서진 건물의 파편에 다친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경찰과 병원관계자들은 말했다. ○쿠데타보다 무섭다 ○…지진발생 순간 대통령궁에서 상원의원들과 회의중이던 아키노대통령은 건물이 흔들리자 재빨리 탁자 밑으로 들어가 30초가량 대피. 그후 기자회견장에 나온 아키노는 『지난해 12월의 군부 쿠데타때 내가 책상 밑으로 숨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정말 탁자밑으로 들어갔다』고 시인,천재지변이 쿠데타보다 더 무서운 것임을 입증. ○세계곳곳 잇단 지진/남미ㆍ대만서도 발생 ○…필리핀에 강진이 발생한 같은 날 칠레 페루 아르헨티나 일본 등 지구촌 4곳에서 지진이 발생한데 이어 17일 새벽에는 대만에도 지진이 일어났다. 칠레 중부지방을 강타한 지진으로 전화가 끊기고 수천명의 산티아고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는등 혼란이 일어났으나 인명 및 재산피해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지진이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강타한 직후 이웃인 페루에서도 2번의 지진이 발생. 리히터 지진계로 각각 4.5와 4.4를 기록한 페루의 지진은 리마 북쪽 4백㎞에 위치한 침보테와 3백30㎞남쪽 나스카에서 가장 강력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딸 구조나서 ○구조작업이 펼쳐지면서 진앙지인 카바나투안에선 생과 사를 가르는 희비가 속출. 지진으로 무너진 한 카톨릭계 학교에서 구조작업으로 5명의 여학생이 구출되자 구조대원들은 일제히 환호성. 여학생들은 18시간동안 매몰됐던 탓에 눈이 부신듯 얼굴을 찡그렸으나 곧 미소를 짓는 등 생환의 기쁨을 만끽. 반면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딸의 목소리를 들은 한 아버지가 정과 손만으로 구조작업에 나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기도. 올해 17세인 딸 마일렌이 건물더미 속에서 『꺼내줘요 아빠. 더 이상 참기 어려워요』라며 부르짖는 소리를 16일밤 처음 들은 그녀의 아버지 크레센시오 자보르씨는 정과 맨손으로 딸의 구조작업을 펴기 시작. ○우리교민 피해 전무 ○…외무부는 17일 상오 마닐라지진사태와 관련,『현지공관이 외무부에 보고해온 바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현지공관이나 공관원 및 가족들이 피해를 본 것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88서울 올림픽이 멋지게 끝나게되자 한국인들은 이 대회의 성공에 환호하고 「해내고만」 저력에 새삼 가슴뿌듯해 했다. 지구촌이 만족할 그런 스포츠제전을 이루어 낼 것인가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던 터였다. 그러나 결과는 대만족이었고 우리는 「하면된다」는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계는 서울을 다시 보게됐다. ◆그같은 성공의 뒤에는 체육회관계자들의 너무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열과 성을 다했고 헌신적이었다. 전국가적인 국민들의 지원이 있어 가능한 것이었으나 이들 일선체육인들의 노고는 시간을 두고 평가될 만한 것이었다. 올림픽 유치작전에서부터 행사관리,경기운영에 이르기까지 완벽했다는 소리를 전세계로부터 들었다. 더욱이 우리는 이 대회에서 종합 4위라는 기적을 연출해냈다. ◆그 체육인들의 모임인 대한체육회가 지난 13일로 고희를 맞았다. 온갖 수난과 영광을 민족과 함께 하면서 한국 체육의 산실이 되어온 지 70년이 됐다. 1920년 「민족의 발전은 건전한 신체로부터」라는 취지아래 조선체육회로 발족했다. 그뒤 38년 일제에 의해 강제해산되는 수모를 겪은 뒤 해방직후인 45년 11월 재출범,비약과 변신을 거듭했다. 대한체육회로 이름을 바꾼 것은 48년,같은해 제14회 런던올림픽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첫 출전했다. 아시안게임에는 58년의 2회대회때부터 참가하기 시작해 올가을의 북경 아시안게임에는 6백68명의 최대규모 선수단을 파견한다. 북경대회는 86년 서울 아시안게임때의 경험,기술축적을 크게 참고하고 있어 격변하는 국제정세를 여기서도 실감케 된다. ◆그동안 체육회는 장두현씨가 초대회장을 맡은 이래 30대 김종렬회장까지 27명이 맡아왔다. 독립운동가,정치인,교육자,경제인 중에서 당시의 실력있는 저명인사들이 회장을 맡아 한때는 정권과의 유착문제로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이들이 체육중흥에 앞장서 오늘의 체육강국을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제도 없지 않다. 그것은 종래의 메달위주의 엘리트스포츠에서 사회체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것.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만들 국민체육으로 방향전환을 추진해야 한다. 일본ㆍ서독과 같은 선진국이 좋은 선례를 만들고 있다. 국력 과시용에서 벗어난 전국민의 체육생활화에 주력할 때가 됐다.
  • “평양에 변화 조짐”외신보도를 보고/박봉식교수 서울대ㆍ정치학박사

    ◎거스를수 없는 「1989년의 혁명」/고르바초프 실각 기다리는 시간 벌기 아닌지… 프랑스혁명 200년만에 유럽은 예기치 않았던 큰 격동을 맞이하게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혁명은 1792년에 이르러 혁명전쟁으로 발전하였고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으로 번져 전후 25년동안 전유럽을 뒤엎는 전화를 당하게 되었다 작년에 일어난 유럽의 혁명이 200년전의 그것과는 달리 어떤 형태든 전쟁을 몰고올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진다. 왜냐하면 그 혁명을 적극적으로 저지하겠다는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있다고 하더라도 혁명의 진원지와는 거리가 먼 아시아의 중국과 북한뿐이다. 유럽에서는 혁명을 거부하는 인사들은 고르바초프의 손에,또는 그 나라국민들의 손에 의하여 제거되고 말았다. 그리고 서유럽에서는 소련과 동유럽의 변혁을 막아야할 이유는 없었다. 혁명은 전쟁을 낳고 전쟁은 혁명을 완성시킨다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의 경우 비슷하게 적중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좀 다른 것 같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이미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혁명의 조용한 진행을 가속화시켰고 이것을 바르샤바 탈소동맹국 모두에 확산시켰다. 그래서 동유럽내에서는 여기에 저항할 세력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1989년에 유럽을 휩쓸고 또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혁명은 큰 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넘어갈수 있을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역사에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위에서 본대로 프랑스의 혁명이 전쟁을 몰고 왔고 1차대전과 2차대전은 패전국이나 패전국의 지배하에 있던 지역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이번 동유럽의 혁명은 전쟁과 관계없이 일어나 예외적인 일이다. 한편 시각을 달리해 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동서냉전체제의 격한 대립이 체제화되어 지속되는 과정에서 소련이 군사대국으로서의 능력을 더 지탱할수 없는데서 생긴 일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보면 냉전에 패배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주도의 혁명이 일어 났다고 할수 있다. 냉전도 전쟁이고 보면 소련이 서방측과의 냉전에 패한 것이며 그 결과 소련은 그의 지배하에 있던 바르샤바 탈소동맹국들에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게 되고 따라서 이 지역에 혁명이 일반화 되었다고 하겠다. 소련은 냉전에 패배한 것을 각성한 고르바초프의 지도하에 혁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혁명은 결코 조용할수 없는 모양이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결국 소련 제국의 해체를 가져 올 것이며 소련제국을 해체해 가면서 까지 고르바초프는 그의 개혁을 정당화할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개혁운동은 중도에서 머뭇거리게 될 것이며 그러는동안 그는 정치적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도중에서 하차한다고 하여 한번 시작한 개혁을 어느 선에서 정지시킬수 있을 지가 의문이다. 시장경제체제와 민주화라고 하더라도 서유럽식으로 되기는 어려울는지 모른다. 체코나 헝가리 등은 서구화가 가능할지 모르나 소련은 서유럽을 완전히 본받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마치 한국이 구미의 영향을 40여년간 받고 있으면서 잘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선진화됐다고 하는 일본이 일본식 자본주의를 갖추듯이 소련식 개혁과 소련식 시장경제가 불가피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200년전 20여년의 전쟁으로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제국을 쳐부순 유럽이 혁명전의 정치명분을 되찾고 구질서를 회복하려 했으나 죽 전쟁이 승리했음에도 그 혁명의 영향은 막지 못하였던 예를 본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이 유럽서 시작된 또는 사회주의의 종주국에서 시작된 혁명의 바람을 거역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프랑스혁명의 바람을 보수주의국가인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제국들이 협력하거나 이합집산하면서 근 100년가량 막아왔으나 1차 세계대전으로 이들 제국 스스로가 망하고 말았다. 중국과 북한은 동유럽과 소련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을 힘이 없다. 오늘날 소련과 동유럽 변화의 물결은 소련의 변화하고 있는 힘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바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를 거부하려 할 때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다. 이 분쟁은 때로는 생사를 걸고 하는 분쟁일 수 있다. 동독의 호네커나 폴란드의 야루젤스키는 고르바초프의 전화 한통화와 면담 한번으로 대권을 내 놓거나 국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등소평이나 북한의 김일성은 그럴 처지가 아니다. 이들 아시아 공산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기다려 그들의 정치노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는 것이 기본자세인것 같다. 물론 변화의 움직임에 전술적으로는 적응하는 자세를 취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일성은 그의 왕국을 고르바초프의 말한마디에 공중에 날려 버리게 될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방법이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의 왕국을 지키려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의 딜레마가 있다. 온 세계는 데탕트를 구가하고 있는데,한반도에서 만은 냉전의 기본은 오히려 되살아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결국에 가서 그도 별도리없이 역사의 흐름앞에 무릎을 꿇고 말겠지만 그 사이 버티려고 몸부림 치는 동안 우리 민족의 성원들은 어떤 고통을 겪어야 할지가 확실치 않다. 많은 낙관론들이 난무하고 있으나 필자는 선뜻 이 낙관론에 동조되지 않는 것이다. 월남의 경우 연 30억달러의 원조를 받고있고 이것이 반으로 줄어들전망이라 캄란만을 도로 미군이 사용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수십년에 걸친 전쟁과 인명ㆍ재산ㆍ역사의 희생이 무엇때문이었던가를 월남의 경우 돌이켜 보게 된다. 북한은 6ㆍ25의 범죄적인 과실을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란다. 1989년 동유럽의 혁명이 아시아에도 제대로 바람을 일으켜 온 인류가 환호하고 역사의 대열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선진국 정상회담과 세계의 변화/한반도에도 깊은 관심을(사설)

    전후 45년간에 걸친 미소 냉전구조의 세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다양화된 새 국제질서를 모색하고 정립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활발하다. 5월말과 6월초에 걸친 미소 정상회담과 우리의 대미·일·소 정상외교에 이은 소·동유럽 바르샤바조약기구 정상회담,그리고 6일 폐막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담과 9일 개막되는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 등은 모두가 고르바초프 소련의 개혁·개방과 신사고 외교에서 비롯되고 있는 세계적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의 일환으로 주목되고 있다. 특히 나토정상회담에 연이어 열리는 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은 그러한 일련의 세계적인 정상외교를 총정리하고 결산하는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휴스턴에서 2일간 개최되는 이번 정상회담은 또한 통독의 가속화와 함께 소·동유럽의 민주화개혁및 동서냉전질서붕괴 이후 처음 열리는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이란 점에서도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중요한 회담으로 평가되고 있다. 75년부터 시작해 이번으로 16회째가 되는서방선진7개국 정상회담은 그동안 동서대립이 격화되었던 70년대 말에서부처 80년대를 통해 항상 소련에 대항하는 것이 기본 과제였으며 서방세계의 대소 결속을 다지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변해 버렸으며 소련은 이미 대항해야 할 상대가 아닌 지원해야 할 대상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상황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그것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오늘의 국제 정치·경제·기타 상황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개진되고 그것을 종합한 선언문들이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것이 될 것이며 앞으로 전개될 정치·경제 양면에 걸친 새 세계질서 구축의 방향을 예고하게 될 것으로 주목되고 있는 것이다. 실무급 준비회담등을 통해서 이미 윤곽이 드러나고 있는 정치선언등의 내용을 보면 소련·동유럽을 비롯,아시아·중남미·중동 등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개혁등 민주화 움직임을 민주주의의 범세계적 규모에서의 진전으로 규정,바람직한 변화로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움직임에 대해 선진국으로서 경제협력을 포함하는 공동의 일치된 지원을 다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범세계적인 민주주의의 승리가 선언되고 그러한 민주화의 흐름을 촉진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약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의 위협이란 표현이 선언문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상회담 성격의 변화가 극적으로 과시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다만 총론적인 국제정세 인식면에서의 시각 일치에도 불구하고 경제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구질서의 붕괴에 환호를 보내면서도 새 체제의 구축에서는 각국이 그들 나름의 국익에 부합되는 방향으로의 전개를 원하는 데서 오는 분열인 것이다. 소련의 고르바초프 집권기간내의 조기통일 달성을 바라는 서독과 유럽통합의 주도권을 노리는 프랑스의 즉각적이고도 대규모적인 대소 경제지원주장과는 대조적으로 군축등에서 보다 많은 소련의 양보를 원하는 미국에 프랑스의 독주를 견제하려는 영국,그리고 소련이 점령하고 있는 북방 4개도서의 반환을 갈망하는 일본 등은 신중론을 펴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지원문제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를 위한 지적 정보의 제공을 공동 다짐하는 한편 금융지원문제는 각국의 자유재량에 맡기는 선에서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 없는 소련의 출현」을 현단계에서 바라는 서방국은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민족분쟁·경제곤란·공산당분열의 궁지에 몰려 있는 고르바초프를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주목된다. 끝으로 이번 정상회담은 물론 지난 1년간의 국제정세 흐름의 변화와 관련,우리가 특별히 주목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은 것은 지나친 유럽중심주의 경향이다. 그리고 아시아 특히 이제는 세계유일의 냉전유산적 분단의 땅이 되어버린 한반도에 대한 선진 각국의 깊은 관심과 이해를 촉구하고 싶은 것이다. 이번 정치선언에서는 아시아의 민주화 흐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의 의지도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일본수상과의 전화를 통한 의견교환에서 일본수상이 한국을 포함하는 아시아 신흥공업국들의 입장도 적극 반영시켜주기를 희망한 우리 대통령의 요청에 주목하면서 일본수상의 노력과 결과도 관심깊게 지켜보고 싶다.
  • “통독 만세”… 폭죽ㆍ경적속 열광/경제통합 첫날 베를린 표정

    ◎비밀경찰 본부서 “밤샘 춤파티”/환전인파 쇄도… 실신사태 속출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1일 0시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통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독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찼다. 동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을 꽉메운 수만명의 동독인들은 광장시계탑의 대형시계가 0시를 알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그순간 동베를린 하늘은 폭죽의 불꽃과 섬광으로 수놓아졌으며 가정에서,거리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뜨려졌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이 개방되던 날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광란의 축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동베를린 하늘에 울려퍼진 알렉산더광장 시계탑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히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독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였다. 동독은 이제 종소리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자정을 앞두고 쓸모가 없게 된 동독 화폐 잔돈부스러기들을 다 써버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동베를린 시민들은 길거리 카페와 주유소등에 장사진을 쳤으며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잔뜩 들뜬 분위기가 시가지를 뒤덮었다. 동서독의 모든 국경들은 일시에 개방됐으며 동서베를린 경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찰리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자리를 떠서 사라져갔다.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동베를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유일하게 이날 0시부터 화폐교환을 해줄 수 있도록 은행문을 연 동베를린시내 알렉산더광장 근처의 도이체방크 주변에는 쓸모없게 된 동독 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1만명이상 몰려들어 축구장에 몰려든 관중을 방불케 하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소란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일부 시민들이 군중사이에 끼여 실신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은행측은 질서정리에 나선 경찰의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바꿔줄 돈이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하는등 고객 접대에 안간힘. ○…이날 도이체방크에서 동독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가장 먼저 환전한 사람은 올해 41세의한스 요하임 코살리씨로 그는 은행측으로부터 1백마르크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잡았다. 코살리씨는 예금액중 약 1천2백달러 상당을 서독 마르크화로 환전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고 응답. ○…이날부터 서독 마르크화만이 동서독 양국의 공식화폐로 통용되게 됨에 따라 못쓰게 된 동독 화폐들이 화폐 수집가들의 투자대상이 돼 주화 풀세트의 경우 벌써부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동베를린의 비밀경찰 병영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30일 밤 서독마르크화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는 주요행사의 하나로 「도이치 마르크화속에서 춤을」 즐기자는 구호아래 개최된 파티에는 1천명이상의 동서독 젊은이들이 쇄도해 춤과 열기로 범벅. 주최측은 예상을 넘는 고객들이 몰려들자 정원을 초과한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준비한 음식과 맥주등이 모자랐다고 즐거운 비명. ○…동베를린시내 문화의 전당건물에 모여 영화관람등을 하고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이날 0시 구내 방송을 통헤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증오했던 우리의 조국 동독 인민공화국에 작별을 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휘파람과 환성을 지르며 환호. 연인들이 입을 맞추고 동전을 공중에 던지는등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으면서 방송에서는 곧이어 동독국가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동독 국민들은 이날 동서독의 경제통합을 환영했으나 일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실업사태및 인플레등과 관련,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기도. 동독에서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 수는 최저 50만명에서부터 최고 4백만명까지 전문가들에 따라 추정치에 큰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나 어떻든 대량의 실업사태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실정. ○…동독 당국은 공중전화와 기차표 판매대등에서 서독 마르크화를 받아들이고 동독 화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기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등 경제ㆍ화폐통합에 따라 생겨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주한 모습. 또 백화점과 대형상점들도 아예 문을 닫고 1일부터 판매될 서방상품들을 위해 기존판매상품들을 창고로돌리고 서방상품들을 위한 매장진열과 서구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작업에 나서는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
  • 동ㆍ서독 「경제사회 통합」하던 날/베를린=김진천특파원

    ◎“게르만 최고의 날”… 헐린 장벽터엔 환호물결/“마음의 벽도 뚫었다”… 새 독일건설 기대/동베를린 지점엔 자정부터 “환전 인파”/국경표지판ㆍ동독화폐 등 “분단상징”수집 열풍 1일은 드디어 동서독이 하나된 날. 이미 헐려버린 장벽,의미를 상실한 경계선,그리고 새로 이어진 옛길등 분단의 실체를 확인시켜 오던 가시적 장애물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서독 주민들간의 마음의 장벽이 말끔히 제거됐다는 점이다. ○「자유왕래」실감 사람도 자동차도 강아지도 그냥 넘나든다. 「자유왕래」 바로 그것이며 이제 베를린은 하나,독일은 통일됐다는 사실을 현장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동베를린 시가지의 분위기도 종전과는 달리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활기를 찾은 주민들의 모습 때문인 듯 했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만난 동베를린 거주 베르너 슈바베씨(67)는 「독일인」이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동서쪽으로 나뉘어 살던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이자리에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두기로 했다고전하면서 『잘사는 서쪽의 친척들을 부러워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으며 이제는 우리도 넉넉해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같이 민족재결합의 실현에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잘사는 나라 서독인이 된 긍지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넘쳐 있었다. ○45년만에 자유통행 ○…동독측은 동서베를린의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의 철시는 물론 양독사이의 국경선과 서베를린과 동독사이의 장벽검문소,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상의 검문소 등 모든 검문소를 지난 28일부터 철수시켰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종전 1시간 이상씩 걸리던 각검문소나 국경통과 지점은 30일 일반도로와 마찬가지로 차량소통이 수월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포츠담 검문소의 베르너 니처조장은 『1일부터 실시될 자유통행의 예행연습을 위해 지난 28일부터 검문을 안하고 있다』면서 『1일부터는 검문소직원 5명중 1명만 남기고 모두 다른곳으로 옮길 예정이며 남아있는 1명도 종전과 같은「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서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에서 가장 먼저 환전을 시작한 은행은 서독의 도이치방크 동베를린지점. 도이치방크는 동베를린 중심부인 알렉산더 광장 바로옆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1일 0시 동베를린지점 개설과 동시에 환전을 개시했다. ○휴일없이 환전업무 도이치방크 동베를린 지점 앞길은 은행이 문을 열기전부터 환전을 하기위해 몰려든 동독인들의 행렬로 꽉 메워졌으며 각국에서 몰려온 보도진들은 역사적인 최초 환전모습을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이너 그램제 지점장은 『오늘을 위해 15일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2일 자정까지 48시간 쉬지않고 환전업무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독의 시중은행인 스파르타카스은행의 90개 지점과 폴크스방크의 20개 지점등 동베를린내 1백10개 은행지점들은 휴무일인 30일에도 은행예금 확인증을 발부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했다. ○“고액예금주는 보고” ○…동독 의원들은 거액을 모은 전 공산당 간부들이 화폐개혁으로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0만마르크 이상의 구좌를 갖고 있는 예금주들의 이름을 보고하도록 국영은행에 요구. 관리들은 동독인들이 서독 마르크를 손에 쥐면 흥청망청 낭비,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검약을 거듭 당부. ○백화점엔 쇼핑 행렬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을 하루 앞둔 30일 동독의 상점들에는 몇시간만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동독 마르크화의 잔여분을 자정이전에 다 소비하려는 동독 주민들로 북적댔다. 동베를린시 중심에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는 주머니에 남은 잔돈을 처분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으며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과 상인들은 광장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도 쇼핑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동베를린시내 첸트룸 백화점 근처에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동독제 의류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동쪽」고객맞자 채비 ○…서베를린 백화점과 가게들은 다음주부터 새돈(서독 마르크)을가지고 몰려들 「동쪽」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 동독인들은 새돈으로 장난감ㆍ식생활용품을 비롯,컬러TV와 VTR등 전자제품을 주로 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베를린의 소규모 가게들은 직원들의 휴가까지 미루며 D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일을 기해 동서국경이 철폐됨에 따라 국경에서의 여행자 검문이 사라지게 되는데 경비초소나 장애물 등은 기념물로 보존될 전망. 그런데 국경지대에 설치돼 있던 각종 표지판 가운데 80%가 이미 수집가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라고. ○…통화통합으로 동독마르크는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됐으나 한편에선 이 화폐에 대한 수집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 특히 동독 마르크 주화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데 풀세트는 한화 2백만원 상당에 거래된다고. ◎동ㆍ서독 통화통합조치 ▲서독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백43억마르크(1백47억달러)에 해당하는 6백t의 지폐 4억장과 7억마르크(4억2천4백달러)에 해당하는 동전 5억개를 동독에 있는 13개 주은행에 수송,동독에서 필요한 초기의 화폐수요는 2백50억마르크(1백51억달러)정도로 예상. ▲동독은 3천여개의 은행 본ㆍ지점과 우체국ㆍ철도역ㆍ관광사 등 7천여개 환전소에 이같은 물량의 서독 마르크화를 배부,1일 9시부터 통화교환. ▲2만5천여명의 직원이 있는 동독 중앙은행은 지난 수주일동안 시민 개개인에 은행구좌를 개설해 주기 위한 작업을 벌여 왔으며 서독 중앙은행은 이같은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2백50명의 자문관을 파견. ▲동독의 경제전환에 따른 경제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총 1천3백억마르크(7백88억달러)가 제공될 예정. ▲현재 동독에는 약 1백30억 동독 마르크가 유통되고 있는데 7월6일까지만 유통가능.〈AP〉 ◎「통합」을 보는 각국표정/시장경제 적응 낙관 동독/몇년간은 고통 겪어 영국/역사적인 변화 시작 일본/번영의 터전을 마련 서독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를 포함한 일부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30일 오는 1일부터 전격적으로 발효되는 동서독의 경제 및 통화통합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는 이날 함부르크에서 가진 주간지 빌트 암 존타크지 최신호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동서독의 경제통화통합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나는 동독인들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더글라스 허드 외무장관은 이날 보수당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영국은 유럽내에서의 경제통합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독일의 경제통화통합은 『비록 동독인들이 몇년동안은 경제재건의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외무장관도 『동서독 통일 움직임은 대립의 시기로부터 유럽이라는 질서안에서 협조라는 역사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양독의 통화통합을 환영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동독의 할레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90년 7월1일은 희망과 결단력 있는 행동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동독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통합에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헬무트 하우스만 서독 경제장관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지만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사회보장ㆍ환경보호 그리고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독의 야당 및 노조 지도자들은 경제통합조치로 인해 동독 노동자들이 절망과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 ○…미국은 동서 양독간의 경제통합이란 거보가 1일 내딛게 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동구권 개편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별문제 없었던 외채도입에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이 최근 경고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독일 통일이 미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정부의 입장에서는 외채를 제때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 도백 5명 모두 「내무부 사람」 기용/도백인사의 언저리

    ◎물망오른 「외부인사」 배제에 많은 진통/차관보등 두자리 공석에 관심 쏠려/본부장 출신 지사 발탁되자 경찰 환호 ○…차관급 인사가 발표된 21일 전국 15개 시ㆍ도지사가운데 5명이 한꺼번에 경질되자 내무부는 오랜만에 단행된 인사내용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앞으로 있을 후속인사에 대한 기대로 술렁이고 있다. 도백인사가 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안응모장관이 지난 3월19일 취임한 이후부터 줄곧 있어온 터였지만 예상을 뒤엎고 임시국회 회기중에 단행됐다는 점에서 다소 의외라는 반응들이다. 그동안 도백인사설이 내무부 주변에 끝질기게 나돈 것은 전국 시ㆍ도지사가운데 7명이 재임기간을 2년이상 남겼는데다 1∼2명은 청와대 특명사정반의 내사로 부동산투기등 비리가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 이같은 항간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안장관은 부임직후부터 시작한 전국 시ㆍ도에 대한 초도순시를 하면서 기회있을 때마다 『도백인사는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다』 『당분간 시ㆍ도지사 인사는 하지 않겠다』는 등 도백인사설을 강력히 부인함으로써빨라야 임시국회가 끝난 뒤이거나 늦으면 가을쯤이 될 것으로 전망됐었다. 최근 2년동안 일부 도백의 교체를 빼놓고는 인사가 거의 없어 관리관급과 이사관급 간부들이 계속 한자리에 머물고 있거나 자리바꿈만을 한 채 승진을 못함에 따라 이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었고 부이사관및 서기관급 간부들도 마찬가지로 승진의 기회를 잡지 못해 근무의욕이 상실돼 있었던 실정. 내무부측이 이번 인사내용을 환영하는 대목은 무엇보다도 5개 시ㆍ도지사가운데 4명을 내부에서 바로 기용한 점과 나머지 1명도 내무관료출신을 발탁한 점이다. 이효계광주시장이 차관보에서,최용복전북지사가 민방위본부장에서,최인기전남지사가 광주시장에서,김우현경북지사는 치안본부장에서 각각 기용됐고 교통부차관에서 경기지사로 발탁된 이재창지사도 민방위본부장과 인천시장등을 역임한 내무부출신이다. 이처럼 5개 시ㆍ도지사가 경질되면서 모두 「내무부 사람」이 기용된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 이번 인사는 결국 매사에 빈틈이 없는데다 자신의 소신은 결코 굽힐 줄 모르는 안응모장관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었다는 평가 . ○…알려진 바로는 안장관이 부임한 이후 심심찮게 도백인사설이 나돌았고 그때마다 내무부출신이 아닌 「외부인사」들이 몇몇 시ㆍ도지사 물망에 오르는 데 대해 매우 못마땅해 했다는 것. 도백인사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1∼2개월 늦어졌던 것도 바로 이들 「외부인사」들을 배제하는 데 많은 진통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번 인사로 도백자리를 물러난 사람은 임사빈 전경기지사,송언종 전전남지사,김상조 전경북지사 등 3명이다. ○…이번 인사로 차관보와 민방위본부장 자리가 공석이 된 내무부는 후속인사에 대한 관심이 높은 가운데 안장관이 재임하는 동안에는 다음에 있을 후속인사에서도 이번과 같은 스타일의 인사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기대로 가득. ○…김우현치안본부장이 지사로 발탁되자 경찰은 오랜만에 경찰출신이 대접받는다며 환영하는 분위기. 5공때는 치안본부장출신들이 도백으로 기용되는 것이 관례화되다시피 했으나 86년 1월 박배근씨가 인천직할시장으로 발탁된 이후 강민창ㆍ이영창ㆍ권복경ㆍ조종석씨 등이 본부장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났으나 김본부장은 4년5개월만에 다시 도백으로 나간 것. ○…장상현동자부차관이 교통부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데 대해 동자부는 전혀 뜻밖이란 반응들. 당사자인 장차관마저도 인사전날인 20일 하오 늦게야 자리이동이 있다는 귀띔을 들었을 뿐 어디로 옮기는지는 21일 아침에야 알았을 정도로 갑작스런 인사였다는 것.
  • 부총재 선출에 드러난 구습/박정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15일 열린 민주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7백여명의 대의원들 표정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야당사상 드물게 창당대회에서 총재를 대의원들의 투표로 뽑는데다 총재후보가 3명이 나섰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한표」 행사에 사뭇 흥분된 빛마저 띠었다. 총재 선출에 앞선 당헌ㆍ당규채택과정에서 제안 설명이 길어지자 『빨리 끝내고 총재나 선출하자』는 고함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대의원들의 관심은 온통 총재단 선출에 몰려있는 것 같았다. 세후보도 이같은 대의원들의 성화에 못이겨 5∼10분 정도씩 간단하게 정견발표를 끝냈다. 이어 1시간여 동안의 투개표 결과 총재로 선출된 이기택후보가 낙선한 박찬종ㆍ김광일 두 후보의 손을 잡고 높이 치켜올리자 대의원들의 환호로 이날 창당대회 분위기는 결정에 달했다. 비록 경선과정에서 후보간 과열된 선거분위기를 빚기도 했지만 이날의 총재경선 모습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같은 민주당의 신선한 모습은 총재선출에 이은 부총재 선출과정에서 전당대회때 3명의 부총재를 선출키로 돼있는 당규를 무시하고 2명만 선출하고 나머지 1명은 정무회의에서 선출키로 「변칙처리」함으로써 퇴색되고 말았다. 창당과정의 박찬종ㆍ김현규ㆍ조순형부위원장 체제를 그대로 부총재 체제로 유지하자는 추대론과 부총재 후보로 등록한 김현규ㆍ이철ㆍ홍사덕 세후보끼리 경선을 하자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2시간 가까운 막후 절충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당헌이 지도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엿가락이냐』는 대의원들의 불만이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3당합당을 「밀실야합」이라고 비난하는 민주당이 부총재선출을 놓고 대의원들을 무시한 채 지도부만의 막후절충을 벌인 것은 「또 하나의 밀실야합」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총재경선에서 아무리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해도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대위원을 무시하고 부총재 선출을 「합의」하려는 태도는 과거 야당의 구태의연한 악습의 재판이라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새로운 정당」임을 표방하는 민주당이 이같은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군소정당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것이란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민주당 창당의 의미와 전당대회 이모저모

    ◎“정치권의 새 변수”… 제2야당호 출범/“비호남권 야당”… 양당체제속 세 확장 관심/총재경선 후유증… 계파단합이 숙제 민주당이 15일 창당전당대회를 갖고 출범,정치권의 제2야당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민주당의 창당은 3당 통합에 합류를 거부한 구 통일민주당 인사들과 일부 무소속의원들이 지난 2월27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가진 뒤 1백8일만에 이뤄진 것으로 현역의원 8명의 미니정당이지만 지금까지의 민자ㆍ평민 양당체제에서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은 지난 4ㆍ3보궐선거의 승리를 바탕으로 70대8의 의석비율 열세에도 불구하고 당대당 통합조건을 내세워 평민당을 몰아세우는 등 현역의원 8명이상의 힘을 발휘해왔다. 그러나 이날 민주당이 어려운 창당과정을 거쳐 정식출범함으로써 야권통합의 실현가능성은 일단 희박해진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16일 민자ㆍ평민의 총재회담이후 더욱 굳어질 양당체제의 틈바구니에서 현역의원 8명이라는 현실과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입지는 상당히 위축될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비호남권 유일 야당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제3당의 역할수행여부에 따라 구 통일민주당의 역할을 대행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그동안의 창당과정에서 보듯이 과거 야당과는 다른 모습을 띠었는데 특히 집단지도체제와 총재경선에서 새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민주당은 과거 야당이 단일지도체제나 형식적인 집단지도체제를 택했었다면 총재와 부총재간 합의제를 채택,사당화를 막았으며 총재경선에 초선까지 등장,3명이 당권경쟁을 벌였다. 민주당은 인물난 해소라는 당면현안외에도 경선과정에서 총재후보간의 치열한 득표전으로 인한 계파형성과 심각한 감정대립의 후유증을 시급히 해소하고 단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과제도 안고 있다. ◎부총재선출 막판까지 혼전/창당대회 이모저모 ○…이날 상오 9시 서울 잠실 역도경기장에서 열린 창당대회는 농악대가 대회장을 들어서는 것과 함께 폭죽 20여개를 터뜨리는 것으로 시작해 8시간동안 축제분위기 속에서 진행. 이날 창당대회는 우루과이ㆍ아랍에미리트ㆍ스리랑카대사를 비롯한 외교사절 10여명과 평민당의 유준상의원,민연추의 이우재공동대표,전민련 박영모공동의장 등 야권인사들이 참석했으며 박준규국회의장,강영훈국무총리,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김대중 평민당총재,김윤환정무장관 등이 화환을 보내 창당을 축하. 당헌ㆍ당규와 정강정책 등을 채택한 뒤 하오 1시20분쯤 시작된 총재후보 정견발표에서 이기택ㆍ박찬종ㆍ김광일후보는 모두 야권통합과 체질개선을 내세우며 제한시간 20분을 채우지 않고 짧은 연설. 한시간여 동안의 투ㆍ개표가 끝난 뒤 명화섭 전당대회의장이 『이기택후보가 총투표자 7백54명중 5백7표를 얻어 당선되었음을 선포한다』고 말하자 이 후보지지자들이 일제히 환호와 박수. ○…대회는 이어 부총재선출을 놓고 박찬종ㆍ김현규ㆍ조순형부위원장을 부총재로 추대하자는 주장과 김현규ㆍ이철ㆍ홍사덕후보를 경선을 통해 선출하자는 주장이 맞서 2시간 가까이 진통. 이총재는 당선이 선포된 뒤 곧바로 정회를 요구하고 당지도부회의를 열어 부총재 경선문제를 논의했으나 박ㆍ김 두 총재후보는 『부총재후보로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철후보는 『창당의 주역인 부위원장이 나서지 않는 이상 나는 부총재가 될 수 없다』고 후보를 사퇴,논란끝에 김현규ㆍ홍사덕 두 호보만 부총재로 인준하고 나머지 3명의 부총재는 차후 정무회의서 선임키로 위임.
  • “너무나 높은 벽”월드컵 16강/김종일 체육부장(데스크 메모)

    월드컵축구의 열기로 지구촌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9일 이탈리아 밀라노등 12개도시에서 시작된 제14회 월드컵축구대회는 개막전부터 연일 이변과 파란을 연출,전세계 10억 축구팬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경기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전역에서는 월드컵과 관련된 갖가지 집단난동이 발생,주최측이 안전대책에 골머리를 썩히는가 하면 세계 곳곳에서 극성팬들이 떼지어 몰려들고 있어 이탈리아 당국을 긴장케 하고 있다. ○2백억이 TV시청 세계 24개국 강호들이 펼치는 묘기는 챔피언팀을 가려낼 오는 7월9일까지 세계 1백50여개국에 중계될 예정으로 있어 월드컵이 열리는 한달동안 연인원으로 따져 2백억명이 TV로 경기를 시청할 것으로 추산된다니 세계가 월드컵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월드컵 열기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월드컵축구를 환호하고 열광하는 이유는 나라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것이다. 그러나 공통된 원인을 찾아보면 대회규모도 규모려니와 축구라는 경기만이 갖고 있는 특징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축구는 많은 스포츠 가운데 유일하게 발로 득점하는 종목인데다 룰이 단순해 누구나 이해하기가 쉽다. 또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들이 녹색의 그라운드에서 펼치는 갖가지 묘기와 박진감 넘친 플레이,그리고 골네트를 출렁 흔들정도의 통쾌한 슈팅…. 아마 이런 것 때문에 월드컵에 매료되는게 아닌가 싶다. 「이기고 돌아오라. 그러면 돈과 명예를 주겠다. 그러나 지면 단두대에 올려놓겠다」 월드컵때마다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 나라 국민들이 얼마나 큰 관심과 긍지를 갖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리라. 월드컵에 관한한 어느 나라 국민이나 극성을 지나 그 관심은 가히 살인적이라 할 만하다. 특히 남미 국가들은 월드컵 축구가 바로 정치이며 외교이고 전쟁이다. 54년 서독이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자 한 서독학자는 「라인강의 기적보다 오히려 더 서독국민들의 자존심을 높여주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첫 출전한 중미의 소국 코스타리카가 축구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 승리하자 대통령까지 거리로 나와 국민과 기쁨을 함께 했다. 또 개막전에서 지난대회 우승팀 아르헨티나를 꺾어 대파란을 일으킨 아프리카의 카메룬은 이날을 국경일로 선포한 반면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해졸전을 벌인 자국팀을 비난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월드컵의 열기는 국내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국내 양방송사가 거의 전경기를 생중계 또는 녹화해 방영하고 있고 국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축구얘기이다. 한국과 벨기에의 첫경기가 벌어진 12일 자정엔 대다수 국민들이 TV앞에 앉아 뜬눈으로 밤을 새며 가슴 죄었다. 집집마다 TV를 켜놔 전력소비량이 최고치에 달했고 맥주ㆍ음료ㆍ과자를 파는 가게는 평소보다 매상고가 30%나 늘었다 한다. 관광호텔ㆍ백화점 등에서는 월드컵열기를 틈타 뜨거운 판촉전까지 벌여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월드컵축구는 단일종목행사로는 물론 올림픽 다음으로 큰 스포츠 행사다. 이 때문에 월드컵이 개막되면 세계는 국경ㆍ이념ㆍ종교를 초월해 「둥근공」하나로 관심을 모은다. ○국민에게 자부심을 국제축구연맹(FIFA)회장을 지낸 줄리메(프랑스)씨의 제창에 의해 1930년 창설돼 4년마다 열고 있는 월드컵은 지난 60년간 숱한 화제와 명연기를 펼친 영웅들을 배출했다. 매대회때마다 「축구왕」이 탄생했고 몇몇은 황제칭호까지 얻기도 했다. 69년 멕시코대회 예선때는 판정 시비끝에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가 진짜 전쟁을 일으키기까지 했다니 그 열기가 어느 정도였나 짐작이 갈만하다. 1933년 조선축구협회가 창립된이래 일제하에서 우리 국민의 울분을 풀어주는 기폭제 역할을 하며 커 온 한국축구는 지난 54년 스위스월드컵에 처음 출전,헝가리에 9대0,이집트에 7대0으로 대패했으나 32년만에 출전한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는 이 대회에서 우승한 아르헨티나에 3대1,불가리아에 1대1,82년 12회 스페인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에 3대2로 질 정도로 선전함으로써 비록 예선탈락은 했으나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세계에 떨쳤었다. 한국축구가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2회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금자탑을 쌓았지만 국내에서의 「현주소」를 찾아보면 장래가 걱정될 정도다. 선수를 키우는 팀수가 해마다 줄고 있고 관중이 없어 선수들은 텅빈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실정이다. 프로축구가 출범한 83년 40게임에 41만명에 이르던 관중은 6년이 지난 지난해 1백20게임을 치르고도 49만명에 불과했다. ○국내축구 열기 시들 프로야구가 연간 2백만명 이상의 팬을 동원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 국내축구열기가 시들한 이유는 프로야구에 밀린 탓도 있지만 무기력한 경기,잦은 판정시비등 축구인 스스로가 반성할 대목도 많다. 그러나 결코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록 팬들이 국내경기를 외면하고 있다 하더라도 국가대항전등 국제대회 때마다 보여준 관심으로 치면 아직도 축구는 우리의 국기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 대벨기에 전에 쏠린 온 국민의 관심이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한국이 체력과 기술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첫 경기에서 져 16강진출이 불투명해 지긴 했지만 선수들에게 지나친 짐을 지우지 말자. 물론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다행이지만 월드컵은 본선에 나간 것 자체가 영광이라 생각해야 한다.이번 월드컵본선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예선에 참가했던 나라는 1백21개국이나 된다. 이중 24개국만이 예선을 통과,본선에 올랐다. 이 때문에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는 것조차 「낙타가 바늘귀 빠져 나가는 것 만큼 어렵다」하지 않는가. 이기면 갖가지 미사여구를 동원해 칭찬하다가 지면 한순간 매도해 버리는 악습도 이제는 버려야 할때가 왔다. 아직 스페인과 우르과이와의 2경기가 남아 있다. 설령 3경기를 모두 놓쳐 목표인 16강에 들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난 수년간 뼈를 깎는 강훈련을 해온 선수들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는 아량을 갖자. 이제 한국축구는 3개월뒤 북경 아시안게임에서 월드컵본선에 진출했던 팀답게 중국ㆍ일본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계속 아시아의 정상을 유지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머나먼 외국에서 초조해 하고 있을 우리의 선수 임원을 마음으로나마 격려해주자.
  • “아쉬운 90분”…온국민 뜬눈밤샘/월드컵축구 한­벨기에전 열리던날

    ◎집집마다 불야성… 대 스페인전에 기대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이탈리아의 베로나에 쏠린 하룻밤이었다. 비록 지긴 했으나 우리팀이 사상 세번째로 월드컵본선에 진출,벨기에팀과 첫대전을 벌인 13일 새벽 전국은 월드컵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슛』 『와­』 『저런­』 결정적인 순간을 맞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고 흥분하며 환호와 탄성을 질렀다. 국민들은 우리팀이 벨기에의 두꺼운 벽을 넘지못하고 지자 결정적인 찬스 등 아쉬웠던 장면을 되새기며 오는 18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선 꼭 이겨주길 바랐다. 이날 서울의 반포 압구정 개포 잠실 상계 목동과 부산의 남천 온천동,대구의 황금 성당동,광주의 봉선 무흥동 등 대규모 아파트단지 등에서는 집집마다 밤깊은줄 모르고 TV를 지켜보느라 불빛이 환했다. 선수들의 묘기가 연출될 때마다 시민들의 탄성이 이웃에 메아리쳤고 곁에서 밤참을 마련하는 주부들까지 밤잠을 설쳤다. 서울 마포구 성산2동 시영아파트단지안에 있는 식품점 주인 김모씨(45)는 『집에서 경기를 보기 위해 맥주와 안주 등을사가는 주민들로 평소의 배에 가까운 매상을 올렸다』고 말했다. 시민들 대부분이 TV를 시청하기 위해 일찍 귀가,이날 밤11시이후 도심에는 차량통행과 인적이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술집ㆍ다방 등 유흥업소에서는 하오10시가 넘어서자 손님의 발길이 끊겼고 아예 일찍 문을 닫고 종업원들을 돌려보내는 업소도 있었다. 감독ㆍ코치ㆍ선수들의 가정에서는 가족과 친지 등이 TV앞에 모여 앉아 우리 선수들에게 뜨거운 성원을 보냈다. 우리 선수들이 벨기에 문전으로 질주할 때는 환상을 올렸고 위기에 몰릴때 얼굴을 감싸기도 했다. 스타플레이어 최순호선수의 부인 박귀주씨(30)는 『오늘 아침 교회에 나가 꼭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면서 『오늘은 비록졌지만 오는 18일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는 반드시 이겨 16강 진출의 국민적 염원에 보답했으면 좋겠다』면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한전측은 이날 밤 전국의 TV시청률이 절정을 이뤄 전력소비량이 평소보다 25만㎾나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 노대통령(정상회담 여로)

    ◎“노대통령­고르비 만남은 엄청난 지진” 퀘일/노­부시,8개월만에 3번째 반가운 악수/교민들 「통일대통령」 피킷들고 대환영 ○…노태우대통령은 6일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 11시) 정각 이날 아침 함께 조찬을 했던 퀘일 부통령의 안내로 백악관 동쪽집무실에 도착,존 리드 국무부의전장으로부터 영접을 받으며 로비에 대기중이던 미측 배석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이어 루스벨트룸에서 방명록에 서명한 뒤 부시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들어섰고 이때 자신을 맞기 위해 입구에 서있던 부시대통령과 반갑게 악수,8개월여만에 3번째 만나는 돈독한 우의를 과시.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오벌 오피스의 소파에 나란히 앉아 내외신 사진기자들에게 두 차례에 걸쳐 포즈를 취해주며 담소.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기념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환담. 부시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회담은 아주 적절했으며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오늘 노대통령과의 만남을 고대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부시대통령은 『오늘 이 자리에서 한소회담 내용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자』고 제의. 이에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바쁘고 열띤 하루를 보냈다고 하더라』고 전하며 『그는 무척 기분이 좋아보이더라』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대좌인상을 피력. ○…노태우대통령은 부시 미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 앞서 백악관 서쪽 부통령집무실 2층에서 댄 퀘일 미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환담. 퀘일 부통령은 『노대통령께서 백악관 서쪽 집무실을 방문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지난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지역에 지진이 일어나서 만나뵙지 못해 안타까웠다』고 피력. 이어 퀘일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소대통령을 만나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노대통령은 『대단히 우호적인 분위기속에서 성과있는 회담이었다』고 대답. 조찬에 앞서 퀘일부통령은 접견실에서 노대통령은 반갑게 맞은 후 이어 도보로 조찬장으로 자리를 옮겨 2층 발코니에서 백악관을 내려다 보며건물구조를 설명했고 멀리 보이는 워싱턴 초대대통령기념관과 제퍼슨 대통령기념관을 가리키며 친절하게 설명. 이어 노대통령과 퀘일부통령은 사진기자들에게 포즈를 취해주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조찬도중 퀘일부통령은 『지난해 노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올해도 또 지진이 일어났다』며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것 자체가 엄청난 지진이 아니냐』고 노­고르바초프회담을 지진에 비유해 의미를 높이 평가. ○…노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은 이날 45분동안 회담할 예정이었으나 이보다 15분 연장된 11시까지 회담했으며 당초 배석을 하지 않기로 했던 퀘일부통령까지 자리를 같이해 한소 정상회담 내용에 대한 미국측의 깊은 관심을 반증. 백악관측은 이날 11시부터 미군기지 이전문제가 현안이 되고 있는 그리스의 콘스탄틴 미초타기스수상과 부시 대통령의 회담일정을 잡아 놓았으나 노대통령과의 회담시간이 연장되는 바람에 이 일정을 11시30분부터로 연기하기도. 노대통령이부시 대통령과 약 1시간동안의 회담을 마치고 나오자 오벌 오피스앞에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샌프란시스코회담 내용을 집중 질문.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북한의 개방화와 남북대화재개를 강조하며 『고르바초프대통령도 이를위해 북한에 압력을 넣기로 했느냐』는 질문에 『물론이다』고 만족스런 표정으로 대답. 노대통령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과 만난 결과 한반도긴장완화에 대한 자신을 얻었으냐』는 질문에 『물론 확신한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가 정착되면 주한미군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고 주한미군철수문제를 우회적으로 답변.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노대통령이 약 5분동안 질문에 대한 즉석답변을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려하자 계속 한소 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공세를 벌이는등 큰 관심을 보이기도.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5일 하오 5시10분(한국시간 6일 상오 6시10분)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근교 앤드루스공군기지에 도착,교민 3백여명으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노대통령은 박동진주미대사,리드 백악관의전장 등으로부터 기상영접을 받고 트랩을 내려 앤더슨 미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로해치기지사령관 등 미국측 인사와 이승곤주미공사등 한국측 인사들과 악수. 노대통령은 교포소녀 김민아양(11)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곧바로 교포들이 대기하고 있는 환영대로 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교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 교포들은 「통일대통령 노태우」 「축 한소 정상회담 성공」 「북방정책성공으로 평화통일 앞당기자」라는 등의 피킷등을 흔들며 노대통령에게 『수고 많이 하셨어요』라고 일제히 환호. 노대통령은 한 교포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성과가 좋아서인지 화색이 작년보다 좋으시다』고 인사를 하자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요』라고 답례. 노대통령은 남매어린이를 안고나온 교포부부가 대형태극기를 내밀며 사인을 요청하자 매직펜으로 「대통령 노태우ㆍ1990년 6월5일」이라고 친필 서명.
  • 노대통령,샌프란시스코 안착/오늘 새벽 3시

    ◎5박6일 정상외교 시작/내일 역사적 한ㆍ소 정상회담/장소 페어몬트호텔 확정/부시 특사 만나 미ㆍ소회담 청취/“양국 관계정상화의 길 열 것” 출국인사 【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반】 노태우대통령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과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3일 상오 10시(이하 현지시간ㆍ한국시간 4일 상오 3시)미국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5박6일간의 방미일정에 들어갔다. 노대통령은 이날 부시 미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라 공항에 나온 조제프 리드 백악관의전장의 영접을 받았으며 1백여 교민들의 열렬한 환호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숙소인 샌프란시스코시내 페어몬트호텔에 여장을 푼뒤 4일 하오 이곳에서 열리는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따른 대책을 최호중외무부장관및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등 공식수행원들과 논의했다. 노대통령은 또 4일 상오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부시 미대통령이 보낸 존 베틀락 주소 미대사와 리처드 솔로몬 국무부 아ㆍ태담당차관보등으로부터 미소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보고를 들을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9시) 페어몬트호텔에서 가질 고르바초프 소대통령과의 한소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간 수교문제를 비롯,▲동북아정세및 한반도 정세 ▲양국간 실질경제협력증진방안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소측의 협조방안 ▲한국의 유엔가입등을 폭넓게 협의할 방침이다. 양국정상은 특히 이번 회담에서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양국간 국교를 정상화하고 상호 교환방문을 실현한다는 데 합의할 것으로 예상돼 한소관계에 획기적인 분기점을 마련할 것이 확실시된다. 노대통령은 이어 6일 상오 10시(한국시간 6일 하오 11시) 백악관에서 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노대통령은 이 회담에서 한소,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하고 부시대통령으로부터 미소 정상회담 내용을 전달받은 뒤 동북아및 한반도 정세를 분석,향후 한미간 안보ㆍ경제협력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이에앞서 3일 하오 3시(한국시간) 대한항공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했다. 노대통령은 출국인사말에서 『한소 정상회담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며 지난 1백년간의 파란많은 양국관계를 생각할 때 그것은 더욱 뜻깊다』고 밝히고 『양국 관계정상화는 물론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또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는 중심에서 미ㆍ소 양국지도자를 차례로 만나 한반도문제를 논의하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노대통령은 한소ㆍ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뒤 호놀룰루를 거쳐 8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노대통령 방미일정(현지시간) ◇3일 ▲상오=샌프란시스코 도착 ▲하오=슐츠 전미국무장관 접견 ◇4일 ▲상오=솔로몬 미 동아태 담당차관보 ▲하오=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 ◇5일 ▲상오=샌프란시스코 출발 ▲하오=워싱턴DC 도착 ◇6일 ▲상오=퀘일 미부통령 주최 조찬참석,부시 미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 ▲하오=워싱턴DC 출발,호놀룰루 도착 ◇7일 ▲하오=호놀룰루 출발 ◇8일 ▲하오=서울 도착
  • 임야 미등기 전매 18억원 폭리

    서울지검 특수3부(이태창부장검사ㆍ이건종검사)는 30일 안성진씨(64ㆍ서울 동작구 사당 4동 309)등 3명을 국토이용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안씨는 지난해 9월 부동산거래 신고지역인 사당동 산 32 일대 동래 정씨 옥천공파 소유의 임야 2만9천여평을 한평에 13만원씩 모두 27억1천여만원에 사들인 뒤 이 가운데 1만4천여평을 부동산 중개업자 정환호씨(41ㆍ경기도 시흥시 매화동ㆍ구속)등 3명에게 평당 25만원씩에 미등기 전매,모두 18억4천여만원의 전매차익을 얻은 혐의를 받고 있다.
  • 노대통령 국회연설등 방일 여로 이틀째

    ◎“새 한ㆍ일 관계 토대마련”… 감명깊은 30분/“비장한 결의 담겨 우리들의 가슴 울렸다”/중ㆍ참의원 기립영접… 16차례 뜨거운 박수/가이후,“언필신 행필과”… 양국 신뢰회복 거듭 다짐 ▷일국회◁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상오 9시40분쯤 일본중ㆍ참의원의 기립박수속에 사쿠라우치 요시오(앵내의웅) 중의원의장의 안내를 받으며 본회의장에 입장,사쿠라우치 의장의 인삿말이 끝난 뒤 9시45분쯤부터 30분간 준비된 연설원고를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는데 연설도중 모두 16차례의 박수가 터져 일본 국회의원들의 관심과 호응을 입증. 일본 의원들의 박수는 특히 「한반도의 통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질실에 바탕한 밝은 미래를 열자」는 부분에서 크게 터져 나왔는데 연설 마지막부분 세 문장에서는 매 문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 외국 정상의 일본 국회연설사상 처음으로 NHK­TV가 일본 전국에 생중계하는 가운데 행한 이날의 연설은 외국 국빈으로는 11번째로 4년전 영국 찰스황태자이래 처음이라는 일본 국회관계자의 전언. ○양원의장 현관마중이날 연설이 있었던 일 중의원 본회의장 전면에는 대형태극기와 일장기가 걸렸고 오른쪽 3층 의원방청석에는 박태준민자당최고위원등 한일 의원 연맹소속 우리나라 국회의원 16명이 자리잡아 경청했는데 연설이 끝난 뒤 일본 의원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일 의원들은 박수로 응답.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노대통령 입장 7분전쯤 3층 의원방청석에 일 의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들어와 참석했는데 김여사의 국회방청에는 일본 중의원,참의원 의장 부인이 기모노차림으로 동석. ○…일본 국회측은 이날 노대통령이 상호 9시30분쯤 의사당 정문에 도착하자 중ㆍ참의원의장 부부가 현관까지 나와 노대통령 부부를 영접했는데 이같은 예우는 지금까지 없었던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 한국대사관 직원이 귀띔. 한편 노대통령 방일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릴 필요가 없다」는 망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오자와(소택) 자민당간사장과 니시오카(서강) 정조회장등 자민당간부 2명이 본회의장 의석에 앉지 않고 3층 일반 방청석에 앉아 눈길을 끌었는데 이들은 박수를 치는 것조차 인색. ○…국회연설이 끝난 뒤 국회 지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리셉션에서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은 『뜻깊은 연설에 감사드리며 한국의 발전을 위해 축배를 들자』고 건배를 제의했고 노대통령은 『나의 연설이 양국의 새로운 우호협력시대를 여는 데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답례하며 건배를 제의.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은 노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해 『격조높고 차원높은 연설이며 여야의원 모두 가슴속에 깊은 감명으로 연설을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고 쓰치야 참의원의장도 『진심으로 대통령의 말씀은 감명깊었다』고 인사. ▷국회연설 반응◁ ○…노태우대통령의 25일 일본 국회연설에 대해 일본 정계지도자는 물론,사회각계 인사들은 한결같이 『겸허한 가운데 진실을 말한 감명깊은 연설』이라고 격찬하고 『새로운 한일 관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높이 평가. 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는 『기대했던 이상으로 만장의 박수를 보낸 것은 대통령의 연설이 겸허속에서도 진실을 말한 데 있다고 본다』고 말했고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 전총리는 『한일 관계의 과거에 관한 부분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면서 『노대통령은 일본에 대해 한번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비장한 결의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고 피력. ○일 각계서 긍정반응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사회당위원장은 『대단한 결의가 담겨있는 대통령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면서 『남북통일과 관련한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 우리도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고 이시다코 시로(석전행사랑) 공명당위원장은 『한국 역사의 아픔에 대해 우리가 깊은 이해를 갖지 않으면 양국사이에 우호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언급. 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은 『격조높고 설득력이 있었다』면서도 『이번 대통령 방일과 일본정부의 대응으로 양국 우호관계가 확립되었다고 보는 것은 시기상조이며 이제 막 출발을 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고 에다 사츠키(강전오월) 사민련대표는 『동아시아 세계의 향상을 위해 마음의 벽을 헐고 금후의 한일 협력을 호소한 데 공감했다』고 피력.「머리를 조아릴 필요는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노대통령의 국회연설시에는 의석에 앉지 않고 일반방청석에 앉았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간사장도 『대단히 멋있고 훌륭한 연설로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뒤 『이번 연설로 양국 우호관계를 한층 깊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 정치사회 평론가인 오카이 데루오씨는 『한일간의 선린우호의 이념을 몸으로 직접 호소한 데 큰 의의가 있었다』고 말했고 다주부 다다에 교수(교린대)는 『과거의 어두웠던 시절도 언급했지만 앞으로의 양국관계 구축에 언급한 데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마루베니 상무취체역인 나카무라 류헤이씨는 『연설 가운데 대목은 일본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언급. ▷총리주최만찬◁ ○…이날 하오 7시30분 일본 총리관저에서 열린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 내외 주최 만찬은 양국정상이 서로 용비어천가와 논어를 인용하면서 양국간 우의를 다짐해 눈길. 노대통령은 만찬장으로 떠나면서 사진기자들에게 손을 번쩍 쳐들며 일본말로 『수고하십니다』(고쿠로상데스)라고 가볍게 조크를 던졌는데 이때 일본 기자들은 「와」하고 탄성. ○“풍성한 열매를 맺자” 이날 만찬에는 일본측에서 현직각료 대부분,다케시타(죽하)ㆍ나카소네(중증근) 전총리등 75명과 우리측에서 공식수행원 전원,한일 친선단체 회장단 25명등 1백명이 참석. 가이후총리는 만찬사에서 1차 정상회담에 이어 또다시 분명한 사죄의사를 표명한 뒤 논어의 「언필신 행필과」라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양국의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다짐. 가이후 총리는 『일본국민들은 예로부터 한국의 문화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간직해 왔다』고 말하고 『일본에 전해오는 갖가지 예술작품에 백제나 신라 혹은 고려라는 명칭을 붙인 것이 적지않은 것만 봐도 이 사실은 분명하다』면서 문화교류를 통한 양국국민의 상호이해와 존경이 증진되기를 기원하고 한일 우호를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노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한일 두 나라는 과거에도,현재에도 그리고 영원한 미래에도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살도록 신이 섭리했다』고 말하고 『이 자리가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여는 시발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 노대통령은 용비어천가중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라는 첫 대목을 소개하면서 『두 나라의 깊은 관계가 풍성한 열매를 가져오게 해야하고 우정의 맑은 물이 끊임없이 샘솟게 해야 한다』고 축배. ▷아카사카정원 산책◁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명인) 일왕 내외는 이날 하오 아카사카(적판)영빈관 뒤에 위치한 아카사카 정원내 어용지주변을 20분간 산책 이날 산책은 당초 일정에 없던 것으로 24일 도쿄 도착후 추가됐는데 어용지주변 3백50m의 산책로를 따라 담소를 나누며 의리를 다져 한일 관계의 밝은 미래를 과시. 아카사카정원은 일왕실의 소유로 매년 봄ㆍ가을 두차례에 걸쳐 일본의 저명한 문화계인사를 초청해 원유회를 개최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는데 이날 노대통령의 산책은 지난 5월 중순 아랍에미리트 국왕이 방문한 이래 외국 국빈으로서는 두번째라는 일궁내청측의 설명 ○적십자 유아원 방문 ▷김옥숙여사◁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25일 상오 일본 적십자사 유아원을 방문한 데 이어 낮에는 숙소인 영빈관에서 재일 한국부인회 간부와 오찬을 함께하고 하오에는 일본 각계여성들을 접견하는 등 분주한 하루. 김여사는 이날 상오 도쿄시내 일본 적십자사 의료센터 구내에 있는 유아원에 도착,사카다다카시원장의 안내로 유아원 시설들을 돌아보며 일본의 사회복지문제 등에 관심을 표명. 1시간여에 걸친 유아원방문을 마친 김여사가 승용차에 오르려 하자 적십자 의료센터에 있던 환자들과 일반 시민들이 몰려들어 손을 들어 환호,김여사는 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답례.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노대통령,확인과 설득의 “시장대화”/통인시장ㆍ중계임대 주택방문

    ◎“물가 잡아주셔요” 주부들 호소/“투기꾼에 선전포고” 척결다짐/「영구임대주택」 입주자들은 감사의 환호 ○…노태우대통령은 11일 하오 서울 도봉구 번동의 영구임대주택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영구임대주택은 도시 영세민의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는 사업인 만큼 아파트형 공장ㆍ공동작업장 등 소득증대시설과 탁아소ㆍ체육시설 등 주민편익 시설이 완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했다. ○바구니 물가 확인 노대통령은 이어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건설돼 지난해 11월부터 생활보호대상자 6백40가구가 입주해 있는 중계동 5단지 영구임대아파트와 종로구 통인시장도 돌아봤다. 노대통령은 이날 통인시장에서 쇠고기ㆍ야채ㆍ과일등 장바구니 물가를 직접 확인했는데 이 과정에서 장을 보러온 주부들로부터 서민생활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꾸밈없는 대화를 교환. 노대통령이 시장입구에서 과일값을 알아보고 있는 도중,한 주부가 앞으로 다가와 『부동산값이 너무 올랐어요』라며 정부의 대책을 촉구했고 노대통령은 이에 『부동산에 대해서는 이미 선전포고를 했으니 반드시 잡겠다』고 설득. 이어 또 다른 주부들은 『공무원 가족인데 생활비가 과거보다 많이 들어 힘들다』『1만원으로는 김치 담그기도 어렵다』며 물가고를 잡아 줄 것을 호소. ○“전세금 빌려달라” 노대통령은 또 정육점 앞에서는 한우가격이 비싸다고 하는 주부와,야채가게 주변에서는 전세보증금이 비싸다고 하는 주부와 각각 만나 설득을 펴느라 고전했는데 이중 한 주부는 노대통령에게 『전세보증금 3천만원을 빌려달라』고 떼를 쓰기도. 이같은 어려움을 겪으며 약 20분간 바구니 물가를 직접 체감한 노대통령은 모여든 주부와 상인들에게 『모든 노력과 지혜를 모아 물가안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다짐한 뒤 시장을 떠났다. 그러나 이에 앞서 노대통령은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입주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영구임대주택단지에서는 입주자들로부터 뜨거운 박수와 환호를 받아 크게 대조. ○부총리에 대책 지시 ○…노대통령은 이날 통인시장 등을 둘러보고 청와대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이승윤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시민들의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불안이 높은만큼 야채ㆍ쇠고기ㆍ식료품 등 물가의 안정을 위해 생필품의 수급과 가격을 특별관리하라』고 지시.
  • 첫 전당대회ㆍ축하리셉션 이모저모

    ◎“하나로 새출발”… 닻올린 「민자호」/총재ㆍ최고위원 제청에 기립박수로 동의/피켓 물결속 노대통령 단합ㆍ결속을 강조/참석자들 「손에 손잡고」 합창… 자축행사 절정에 민자당은 9일 상오 10시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전국대의원및 각계 초청인사등 8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3당합당이후 1백여일만에 첫 전당대회를 열고 당의 체제를 정비하고 공식 출범했다. 민자당은 이어 이날 하오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전시관에서 각계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축하리셉션을 열고 새로운 출발과 당의 결속을 다짐했다. ○…이날 대회는 상오 9시57분쯤 서울올림픽 공식가요인 「손에 손잡고」가 연주되는 가운데 노태우대통령이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과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함께 참석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전당대회의장으로 선출된 채문식고문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회는 총재와 최고위원 선출및 대표최고위원을 지명하는 순서에서 절정을 이뤘다. ○당원등 8천명 참석 채전당대회의장이 『지난 7일 제6차 당무회의가총재와 최고위원을 제청한 바 있다』고 밝히면서 김영삼최고위원이 총재후보를 제청하겠다고 말하자 김최고위원은 단상앞으로 나가 『민자당을 대표하는 총재에 이나라 대통령이신 노태우대통령을 제청한다』며 만장일치로 지지를 보내주길 요청. ○박수속 나란히 입장 김최고위원의 제청이 끝나자마자 장내는 일제히 기립박수로 노대통령을 총재로 선출했으며 경쾌한 축하음악이 이 순간의 분위기를 고취. 상오 10시41분 채의장이 초대총재에 노대통령이 만장일치로 선출됐음을 선포하자 노대통령은 두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했으며 여성당원들로부터 축하꽃다발을 받고는 다시 꽃다발을 들고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은 최고위원석으로 가서 김영삼ㆍ김종필최고위원 박태준최고위원대행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 뒤 이들의 손을 잡고 단상으로 나와 맞잡은 손을 높이 치켜들어 당수뇌부의 결속과 단합을 다짐했으며 참석자들은 박수로 이에 화답 ○…노대통령은 이어 그 어느때보다도 억양의 높낮이를 분명히 해가면서 자신에 찬 목소리로 총재취임사를 14분간에 걸쳐 낭독. 노대통령은 자신을 총재로 뽑아준 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당원동지 여러분의 열과 성을 함께 모아 임부를 다해갈 것』이라고 다짐하자 취임연설의 첫 박수가 터졌다. 노대통령은 대회장이 88 서울올림픽의 경기장이었음을 상기시키고 『2년전 이자리에서 두꺼운 벽으로 갈라졌던 세계를 하나로 만들었다』면서 『그런 우리가 하나로 못될 이유가 뭐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상호이해와 양보,당의 단합을 거듭 강조. 노대통령은 연설이 거의 끝날 무렵 최고위원석을 향해 뒤돌아 보며 『창당과정에서 보여준 김영삼ㆍ김종필 두동지의 구국정신과 높은 경륜에 대해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며 박수를 유도했고 이에 두 김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노대통령의 이날 취임연설은 마치 대통령선거유세때의 연설처럼 짧은 문장으로 힘있게 연결됐는데 연설도중 11차례의 열띤 박수를 받았다. ○…이어 진행된 최고위원 선출에 앞서 김재광의원은 『지난 7일의 당무회의에서 민주ㆍ번영ㆍ통일의 과업을 이룩할 당의 최고지도자로 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을 추대키로 의결한 바 있다』면서 이들 세분을 만장일치로 뽑아달라고 제청. ○14분동안 취임인사 이에 대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제청에 동의를 표시했으며 세 최고위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의원들에게 인사. 최고위원 선출이 끝나고 대표최고위원 지명순서에 들어가자 노대통령은 『민주발전에 평생을 바쳐오신 김영삼최고위원을 대표최고위원에 지명한다』고 선언. 김대표최고위원은 노대통령에게 다가가 악수로 감사를 표시했고 노대통령은 김대표최고위원의 손을 잡고 단상앞으로 나아가 함께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대의원들의 열띤 환호에 답례. 김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국정개혁만이 사회적 불안과 국민의 위기감을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며 개혁론을 재삼 강조. 김종필최고위원은 즉석 연설을 통해 『민자당은 집권여당이기 때문에 권리이전에 하나부터 백까지 책임을 져야 하고 민주주의의 토양을 다지고 번영된 국가,통일과업을 선두에 서서 영도해나가는 대통령을 모든 지혜와 성의를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면서 국태민안과 국리민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고 다짐. 박태준최고위원은 「이인동심기리단금」(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능히 쇠라도 자를 수 있다)의 옛말을 인용하면서 노대통령을 정점으로 단합할 것을 강조. 전당대회가 진행되는동안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단상에 나설 때마다 노대통령에게 목례를 보냈으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이를 외면해 대조적인 모습. ○…이날 행사장에는 「조국에 영광을 국민에 희망을 당원에 보람을」「세계로 미래로 통일로」 등의 구호를 담은 대형 플래카드가 부착됐으며 대의원들은 노태우총재의 사진과 대형캐리커처,김영삼ㆍ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의 이름이 적힌 피켓ㆍ깃발 등을 들고 있다가 이들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피켓을 치켜 들거나 깃발을 흔들며 환호. 대회장의 단상에는 노대통령과 세 최고위원을 비롯,각계 대표 50여명이 자립잡았는데 단상 중앙에 노대통령,우측 뒤편에 세 최고위원석이 배치돼 이날 전당대회에서 의결된 총재중심의단일지도체제가 좌석배치에서도 반영된 느낌. 이날 전당대회에 앞서 약 1시간 10분가량 진행된 식전행사에는 조영남ㆍ송창식ㆍ최진희씨등 인기가수와 안비취ㆍ묵계월씨등 명창과 풍물놀이패등이 등단,대회장 분위기를 돋우기도. ○성악가도 특별출연 ○…이날 하오 6시부터 2시간동안 한국종합전시장에서 진행된 축하리셉션에는 총재인 노태우대통령과 3최고위원을 비롯한 민자당의원들과 각부처장ㆍ차관,주한외교사절,각계대표등 3천여명이 참석. 노대통령은 이날 저녁 7시쯤 박준병사무총장ㆍ김동영원내총무ㆍ김용환정책위의장등 당3역과 김윤환정무1장관의 영접을 받으며 연회장에 도착. 노대통령은 이어 연회장 입구에 도열해 있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채문식당고문 등과 악수를 나눈 후 함께 연회장에 입장해 장내를 돌며 일반 참석자들과 인사. 노대통령은 이어 인사말을 통해 『이 땅에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새로운 시대를 열 민주자유당이 닻을 올리고 이제 내외의 축복속에 출범했다』면서 『오늘 첫 전당대회가 민주주의의 나라,번영하는 나라,통일된 나라를 건설하는 데 튼튼한 주춧돌을 놓은 것으로 역사가 기록하도록 열과 성을 다하자』고 강조. 노대통령은 『30년 다른 길을 걸어온 정치세력이 하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어려움이 따르게 마련』이라면서도 『우리는 이제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라며 단합을 거듭 강조. ○난국극복 결의 다져 노대통령은 『범죄와 폭력을 해결하라,법질서를 바로세워 편안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국민의 요구가 인내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도 높아졌다』며 『나는 이 모든 문제에 정면대결해 확고한 안정을 이룰 것』이라고 단호한 의지를 표명. 약 5분간 계속된 인사말에서 노대통령은 또 『실망이 있는 곳에는 희망이,불신이 깔려있는 곳에서는 신뢰가,갈등이 깊어진 곳에서는 화합이 샘솟게 해 그것이 내를 이루고 도도한 강물이 되어 바다로 넘치게 해야 한다』며 김대표최고위원,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과 힘을 합쳐 총재로서의 책임을 다할 것을 다짐. 이에앞서 김영삼ㆍ김졸필ㆍ박태준최고위원 등의 건배순서가 있었는데 김종필최고위원은 『우리당을 이끌고 모든 당원을 정성모아 격려하는 대통령을 으뜸보좌하는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을 위해 건배하자』는 건배제의에 따라 함께 건배를 하며 노대통령과 김영삼최고위원간의 관계를 거듭 확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건배에 이어 인삿말을 통해 『이제부터 과거와 같은 분열과 대립에 종지부를 찍고 화합과 믿음의 바탕위에 성숙한 정치를 펼쳐 나가자』고 강조하고 『과거의 정파를 초월,굳게 단결결속할 때 국민들은 우리를 지지할 것이며 우리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며 3계파의 단결을 거듭 역설. 이날 노대통령과 김영삼대표최고위원 김종필ㆍ박태준최고위원은 참석자들의 테이블을 돌면서 환담을 나누었고 축하연 중간에 한국계 소련성악가 루드밀라 남 여사와 국내 저명한 성악가들이 특별출연,가곡을 불러 축하분위기를 돋우었으며 나중에는 참석자들이 「손에 손잡고」(서울올림픽 주제가)를 합창해 절정. ◎국민에게 드리는 메시지 우리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내외의 시대적 상황을 보며 우리의전진을 가로막았던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희망찬 내일,더 밝은 미래를 열고자 민주자유당의 깃발아래 하나로 뭉쳤습니다. 대립과 갈등의 유산을 청산하고 성장과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정치안정의 디딤돌은 이제 확고히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두 어깨에 매우 무겁고 많은 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의 단결된 힘을 바탕으로 이 땅에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워야 함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제를 되살리고 남북으로 갈라진 7천만 겨레가 한마음으로 얼싸안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기를 한민족 영광의 세기로 마무리짓는데 선봉역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앞으로 우리당이 나아갈 방향을 밝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지역간ㆍ계층간ㆍ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국민속에 뿌리를 내리는 국민정당이 되겠습니다. 둘째,현실에 안주하는 구태의연한 권위주의적 정당이 아니라 모든 결정을 민주적으로 택하고 모든 행동을 전향적으로 취하는 온건중도적 개혁정당이 되겠습니다. 셋째,순간의 인기에 영합하여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무책임한 정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약속한 공약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고 민의를 수렴하여 광범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정책정당이 되겠습니다. 넷째,민족의 동질성과 신뢰를 회복하기 위하여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을 적극화하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통일정책을 추진하여 자주ㆍ민주ㆍ평화적인 통일을 앞당기는 통일정당이 되겠습니다. 우리당은 앞으로 국민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정치시대의 일꾼으로 더 넓은 세계를 바라보며 더 밝은 미래를 펼쳐 나가기 위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땀흘려 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 미 우주선 디스커버리호 발사 성공

    ◎무게 10tㆍ15억불짜리 첨단허블망원경 탑재/“갈릴레오이래 최대의 진전”… 천문학자들 환호 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는 24일 인간이 우주를 과거 어느때보다도 더 깊숙히 들여다 볼 수 있을 천문학상의 놀라운 장비인 15억달러 짜리 허블우주망원경을 싣고 발사되어 우주왕복선으로서는 기록적으로 높은 지구궤도에 진입했다. 우주비행사 5명을 태우고 상오 8시34분(한국시각 하오 9시34분) 케이프카내베랄 우주공항을 이륙한지 5시간이 채 경과되기 전에 디스커버리호에 적재된 허블 우주망원경은 첫시험 무전신호를 보내 휴스턴의 지상관제소에서는 이 망원경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터졌다. 디스커버리호는 발사후 30여분만에 고도 6백11㎞의 지구궤도에 진입했는데 이것은 우주왕복선으로서는 지금까지 지구궤도에 진입한 가장 높은 지점이었으며 종전의 기록은 84년 챌린저호의 4백97㎞였다. 25일 우주비행사 스티븐홀리는 디스커버리호의 팔모양 공구로 무게 10t의 허블 우주망원경을 우주왕복선의 화물실 밖으로 들어올려선 밖으로 떨어뜨려 자체의 궤도를 비행하게 한다. 발사광경을 지켜본 과학자들은 허블 망원경을 약 4백년전 갈릴레오가 작은 망원경을 세워 눈으로 천체를 관측한 이후 천문학상의 최대의 진전이라고 환호했다. 허블 우주망원경은 길이가 13m에 직경이 4m이고 궤도비행중 6개의 과학 계측기의 동력을 날개와 같은 두개의 태양열 장치로부터 받는다. 디스커버리호는 오는 29일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에 착륙,지구에 돌아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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