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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W포토] 전진 콘서트 “원 모어 타임”

    [NOW포토] 전진 콘서트 “원 모어 타임”

    가수 전진이 5일 오후 8시부터 서울 광진구 광장동 멜론 악스홀에서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갖고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진이 최근 발매한 1집 ‘뉴 디케이드(New Decade)’앨범을 기념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신화 멤버들과 다이나믹 듀오, 엄정화 등이 총 출동해 다채로운 무대로 꾸며졌다. 특히 전진은 팬들의 환호가 커지자 감정이 북받친듯 울컥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기자 han0709@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08 美 대선] 오바마에 날세운 페일린

    |세인트폴(미네소타주) 김균미특파원|미국 공화당은 3일(현지시간) 존 매케인(72) 상원의원을 제44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했다. 공화당은 이날 미네소타 세인트폴 엑셀에너지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 사흘째 행사에서 만장일치로 매케인을 대통령 후보로 뽑았다. 또 44세의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는 이날 공화당 역사상 최초의 여성 부통령 후보 지명을 수락했다.1984년 민주당의 제럴딘 페라로에 이어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부통령 후보가 됐다. 이로써 오는 11월4일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화당의 매케인-페일린과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조지프 바이든이 맞붙게 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거나 최초의 여성 부통령이 나오는 미국 역사상 새로운 장을 열게 됐다. 미국 중앙정치무대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는 이날 수락연설에서 중간중간 농담을 섞어가며 청중을 쥐락펴락하는가 하면,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에 대한 날 선 공격으로 강인한 모습을 보였다. 페일린은 민주당 대선 후보인 오바마의 경험 부족을 빗대 “소도시의 시장은 실질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일종의 ‘커뮤니티 조직활동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고 공격했다. 오바마의 말 바꾸기를 지적하고, 연설과 책 쓰기에는 뛰어나지만 제대로 된 개혁입법 한 건 없는 내실 없는 의정활동을 펴왔다고 조롱하기도 했다. 페일린은 또 자신과 관련된 잇단 폭로기사로 자격논란 시비를 제기하고 있는 언론들에 “최근 며칠 동안 나는 워싱턴의 엘리트 사회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자격이 부족한 후보로 일부 언론들이 치부하는 것을 경험했다.”면서 “나는 이들로부터 호평을 받고자 워싱턴에 가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국가의 국민들에게 봉사하러 가는 것”이라고 언론을 정면 공격했다. 페일린 부통령 후보가 36분 동안 자신의 가족과 시장·주지사로서의 경험과 업적, 오바마에 대한 날 선 공격들을 퍼붓는 동안 엑셀에너지센터를 가득 메운 2만여 공화당 대의원과 지지자들은 전당대회장이 떠나갈 듯 환호하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페일린의 연설이 끝난 뒤 전당대회장에 ‘깜짝 등장’한 매케인 후보는 4일 밤 대통령 후보 지명 수락연설을 할 예정이다. kmkim@seoul.co.kr
  • [NOW포토] 민우ㆍ다이나믹듀오 “전진 콘서트 축하하러 왔어요”

    [NOW포토] 민우ㆍ다이나믹듀오 “전진 콘서트 축하하러 왔어요”

    5일 오후 8시부터 서울 광진구 광장동 멜론 악스홀에서 열린 전진의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서 이민우와 다이나믹듀오가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진이 최근 발매한 1집 ‘뉴 디케이드(New Decade)’앨범을 기념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신화 멤버들과 다이나믹 듀오, 엄정화 등이 총 출동해 다채로운 무대로 꾸며졌다. 특히 전진은 팬들의 환호가 커지자 감정이 북받친듯 울컥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기자 han0709@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전진 “발라드 들어 보실래요?”

    [NOW포토] 전진 “발라드 들어 보실래요?”

    가수 전진이 5일 오후 8시부터 서울 광진구 광장동 멜론 악스홀에서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갖고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진이 최근 발매한 1집 ‘뉴 디케이드(New Decade)’앨범을 기념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신화 멤버들과 다이나믹 듀오, 엄정화 등이 총 출동해 다채로운 무대로 꾸며졌다. 특히 전진은 팬들의 환호가 커지자 감정이 북받친듯 울컥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기자 han0709@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이민우 “여러분 전진과 함께 해요”

    [NOW포토] 이민우 “여러분 전진과 함께 해요”

    5일 오후 8시부터 서울 광진구 광장동 멜론 악스홀에서 열린 가수 전진의 생애 첫 단독 콘서트에서 이민우가 출연해 멋진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진이 최근 발매한 1집 ‘뉴 디케이드(New Decade)’앨범을 기념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되며 신화 멤버들과 다이나믹 듀오, 엄정화 등이 총 출동해 다채로운 무대로 꾸며졌다. 특히 전진은 팬들의 환호가 커지자 감정이 북받친듯 울컥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서울신문NTN 한윤종기자 han0709@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것이 장동건의 힘! 충무로가 떠들썩한 이유는?

    이것이 장동건의 힘! 충무로가 떠들썩한 이유는?

    배우 장동건이 1년여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동건은 3일 오후 6시 서울 장충동 국립 해오름 극장에서 열린 제 2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해 1000여 명의 국내 외 팬들과 시민을 열광시켰다. 오후 7시 20분쯤 장동건이 레드카펫에 모습을 드러내자 회견장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장동건을 오랫동안 기다렸던 팬들은 일제히 “와! 장동건이다”, “역시 멋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그를 반겼고 장동건은 손을 흔들며 팬들의 환호에 답했다. 특히 장동건은 진행요원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에 답하는 등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당초 영화제 측은 개막식 참여명단에 장동건이 참석한다고 발표했고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내 외 팬들은 물론 취재진들까지 큰 관심을 가졌다. 사실 장동건은 지난해 열린 제15회 ‘춘사대상영화제’에 공식적으로 참석한 이후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아 팬들의 궁금증을 커져만 갔다. 변함없는 멋진 미소로 등장한 장동건은 “한국영화의 메카는 원래 충무로였다. 다시 그 명성을 찾아 나갈 수 있었음 좋겠고 충무로 영화제가 계속 발전하길 바란다.”고 ”고 한국영화의 부흥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한편 이날 개막식은 박중훈과 강수연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장동건을 비롯해 이미연, 하지원, 신현준, 김정은 등 스타들이 총출동해 자리를 빛냈다. 서울신문 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박진영 청와대서 ‘한류’ 강연

    가수 겸 프로듀서인 박진영씨가 지난 29일 청와대 월례 강연인 `위민 포럼’의 강연자로 초청돼 청와대 직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박씨는 이날 `한류를 넘어 세계의 문화’라는 제목의 강연에서 “과거 우리 국민이 팝송에 환호했지만 지금은 국내 가요가 시장의 90% 이상을 휩쓸고 있다.”면서 “마찬가지로 지금은 동남아와 중국 등에서 한류 열풍이 불고 있지만 몇몇 국내 탤런트와 가수 등으로 명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길이 23m ‘세계에서 가장 긴 닭꼬치’

    ‘세계에서 가장 긴 닭꼬치’부문의 세계기록이 수립됐다. 일본 카가와현의 타카마츠시는 지난달 30일 지역토종닭의 홍보를 위한 이벤트에서 23.1m의 닭꼬치를 만드는데 성공, 와카야마현 히다카가와쵸가 가지고 있던 21m의 종전 기록을 경신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닭꼬치’는 지난 2006년 일본의 ‘전국 닭꼬치 연락협의회’가 기획해 시작된 행사로 하나의 대나무 막대에 닭고기를 꽂아 구운 뒤 들어올렸을 때 막대가 부러지지 않아야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이날 기록은 70여명의 지역주민이 준비된 닭고기를 막대에 꽂아 굽는 등 1시간에 걸쳐 만들었다. 세계기록이 수립되자 행사장에 모여 있던 지역주민들은 일제히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행사를 진행한 타카마츠시는 이번 기록을 세계 기네스협회에 정식으로 신청할 방침으로 “이번 기록이 기네스기록으로 인정받아 타카마츠시와 지역토종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후쿠야마현 카와마타마치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려 22.07m로 종전기록을 경신했지만 불과 2시간 만에 타카마츠시에 1위 자리를 빼앗기는 아픔을 맛봤다. 소식을 전해들은 카와마타마치의 한 관계자는 “같은 날 같은 행사를 하다니…. 이쪽은 이번 행사를 수개월에 걸쳐 준비해왔건만…”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낸 뒤 “최소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쓴 소리를 날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김철 기자 kibo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 창립 20돌] 위헌 결정 500건… 국민기본권 지킴이로

    헌법재판소(소장 이강국)가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헌재는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끝에 탄생했다.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서, 헌재가 일찌감치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1960년 4월 첫 제정된 헌재법은 한달 만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로 사장됐다. 비상설기구인 헌법위원회나 대법원이 위헌법률 심판 등을 맡기도 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1987년 민주화 물결로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며 헌재 설치가 다시 추진됐고, 이듬해 9월1일 헌재법 공포로 마침내 헌재가 문을 열었다. 한편 헌재는 창립 20주년 기념으로 1∼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세계헌법재판소장회의를 연다. 미국·영국·독일·일본·스페인·몽골 등 30개국과 베니스위원회·유럽헌법재판소회의 등 지역협의체 6곳이 참여해 헌법재판과 입법·행정·사법권,21세기 헌법재판의 새로운 도전 등을 논의한다. 한 교수는 헌법재판소에 대한 책을 쓰며 ‘그 순간 대한민국이 바뀌었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헌재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드러낸 구절이다. 헌재는 그동안 1만 5663건의 사건을 심판해 500건에 대해 위헌 결정(헌법불합치·한정위헌·한정합헌 포함)을 내렸다. 그만큼 헌재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91년 언론의 강제사죄광고 위헌 결정 한 연예인이 1988년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과 사죄광고를 요구하며 소송을 냈다. 언론사는 “사죄광고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1991년 4월 헌재는 “양심의 자유는 윤리적 판단에 국가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내심적 자유는 물론, 국가권력에 의해 외부에 표명하도록 강제받지 않는 자유까지 포괄한다.”며 위헌 결정했다. 헌재는 1992년 1월 신체구속된 사람이 수사관 개입 없이 변호인과 자유롭게 접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미결수용자의 변호인 접견에 교도관이 참여하도록 한 행형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것. 이는 인신보호를 위한 무죄추정 원칙과 진술거부권 및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권리에 대해 직접적 효력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국내 인권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한때 우리 영화계는 흥행보다 검열을 먼저 걱정해야 했다.1989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오! 꿈의 나라’와 해직교사 문제를 다룬 ‘닫힌 교문을 열며’를 사전심의 없이 상영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제작자들이 헌소를 냈다.1996년 10월 헌재는 “언론·출판의 자유에 대해서는 검열을 수단으로 한 제한은 허용되지 않는다.”며 영화계의 손을 들어줬다. ●1997년 동성동본 금혼법 불합치 결정 1997년 7월 헌재는 동성동본 혼인을 금지한 민법 조항에 대해 유림이 주장하는 유전학적 문제가 확인되지 않았음을 근거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앞서 한시적인 특례법으로 4만 4800여쌍의 동성동본 부부가 법률적인 부부가 되며 구제받았지만, 여전히 혼인 생활이나 자녀 교육에서 고통받는 동성동본 부부가 많았다. 헌재 결정으로 20만쌍의 동성동본 커플이 오랜 관습의 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1999년 12월 헌재는 공무원 공채시험 때 제대군인에게 과목별로 만점의 5∼3%를 가산토록 한 제도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여성과 신체장애를 가진 남성 등의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는 폐지됐지만, 현재까지 정치적인 쟁점이 될 정도로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2005년 2월 헌재는 호주제도에 대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규정한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며 6대3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유림단체의 반발과 여성단체의 환호가 엇갈리는 가운데 양성평등이 진일보하는 분기점이 됐다. 그 여파로 올 1월부터 호주제 대신 가족관계등록법이 시행됐다. ●2007년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불합치 결정 2007년 7월 헌재는 나라 밖 국민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선거권 또는 국민투표권을 행사할 때 주민등록 등 국내거주 요건을 요구해 대한민국 국적의 해외 영주권자가 참정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법률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재는 2004년 5월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여부를 판단하기도 했다. 헌재는 이를 기각함으로써 당시 사회 분열과 갈등을 봉합했지만, 결정문에서 재판관들이 개별의견을 표시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국회는 여론에 힘입어 개별의견 공개대상 사건을 ‘탄핵심판을 포함한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도록 헌재법을 개정했다. 그러나 국회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재판관들의 부담을 늘렸다는 지적을 면치 못했다. 한편 올 1월부터 모든 고소 사건에 대해 관할 법원에 재정신청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시행되면서 헌재의 심판사건 접수 건수가 크게 줄었다. 재정신청을 거친 불기소처분에 대해서는 그 이전부터 헌법소원을 인정하지 않았다. 홍지민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페니 쇼케이스 “한국 힙합 전망은 밝다”

    페니 쇼케이스 “한국 힙합 전망은 밝다”

    지난 주말 저녁 서울 홍대 앞은 힙합을 사랑하는 젊은이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지난달 30일 서울 홍대 앞 클럽 캐치라이트에서 힙합 프로듀서 페니(PE2NY)의 첫번째 정규 앨범 ‘ALIVE SOUL CUTS Vol 1’ 쇼케이스가 열렸다. 이날 공연에서는 페니의 앨범에 참여한 13팀의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 MYK, 림샷, 라임어택, 넋업샨, 마이노스, 키비, 팔로알토, 더콰이엇, 원선, 본킴, 아키라, 티비엔와이)이 무대에 올라 대규모 공연을 방불케 하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열기를 더하며 흥겨운 힙합 축제 한마당을 이뤘다. ’HIPHOP PLAYA SHOW 24’란 공연명으로 진행된 이번 쇼케이스의 공연장 주변은 국내 힙합 뮤지션들의 대단합 무대를 관람하기 위해 몰려든 힙합 매니아들의 발길로 약 1시간 전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이윽고 클럽 안을 가득 메운 약 400여명의 관객들의 탄성 속에 쇼케이스의 막이 올랐고 페니를 비롯한 국내 힙합의 주역들이 쉴틈없이 마이크의 바통을 이어 받으며 공연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이들은 하나 같이 오래 전부터 자신들의 앨범 제작을 도와준 힙합 프로듀서 페니의 첫 정식 앨범 발매를 축하했으며 관객들에게는 힙합에 대해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페니의 절친한 음악 동료로 알려진 타블로는 “드디어 페니 앨범이 나왔군요!”라며 무대에 올랐다. 이어 “그간 페니와 많은 앨범 작업을 함께해 왔지만 이번 앨범은 가장 재미있고도 추억이 많은 앨범이 된 것 같다.”는 소감을 전했다. 타블로는 “음악상 너무 좋아하는 시나리오지만 ‘에픽하이’란 이름으로 시도할 수 없었던 음악을 담고 있다.”고 앨범 소개를 덧붙이며 “정말로 힙합을 사랑하는 친구인 페니가 영원히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바란다.”는 당부를 전했다. 페니의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한 총 13팀은 오후 5시 부터 장장 2시간여에 걸쳐 30여곡의 힙합 공연을 선보였다. 이번 쇼케이스의 절정은 마지막 에픽하이의 무대였다. 페니와 에픽하이는 오랜 음악 우정으로 다져진 탄탄한 음악 호흡을 자랑하며 공연장의 모든 사람을 ‘힙합’이란 이름 아래 화합시켰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국내 힙합 음악의 전망은 밝다.”며 입을 모았다. 관람객 이주연씨(26)는 “한국의 힙합 문화도 외국 못지 않게 성숙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국내 힙합의 지속된 발전을 위해서는 페니처럼 실력파 프로듀서의 역활이 더욱 중시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무대에서 퇴장한 페니는 한결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많은 준비를 했는데 기대 이상의 쇼케이스 무대를 마쳐 흡족하다.”며 “긴장이 풀린 탓인지 한 숨 자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이어 페니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힙합 문화가 ‘앉아서 듣는 문화’가 아닌 ‘공연장에서 온몸으로 즐기는 문화’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사진 제공 = 울림 엔터테인먼트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2008 美 대선-오바마 美민주 대선후보로] 오바마 “실패한 8년…이제는 변화로 가자”

    |덴버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47)가 28일(현지시간) 대선 후보지명을 수락함으로써 나흘 동안에 걸친 민주당의 ‘정치 드라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오바마는 “미국인들은 지난 8년보다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하며, 미국은 더 이상 뒤로 처질 순 없다.”면서 “미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우리는 다음 4년을 지난 8년처럼 만들 수 없기에 여기로 나왔다.”고 거듭 외쳤다. ●킹 목사 딸·아들 연사로 나와 지지자는 물론 전세계의 ‘마이너리티’에게 뜨거운 감회를 안겨준 전당대회는 오바마 후보가 11월4일 치러질 ‘본선’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것을 알리는 출정식이기도 했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 후보를 탄생시켰다는 엄청난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전당대회 기간 내내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인종’ 때문이 아니라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물이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지명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겠다는 속내도 있었을 것이다. 1960년 존 F 케네디가 로스앤젤레스 콜로세움에서 후보수락 연설을 한 뒤 48년만에 처음으로 야외에서 열린 ‘오픈 전당대회’는 민주당의 빈틈없는 조직력을 과시했다는 평가다. 오바마 후보는 고대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대에서 역사적인 후보지명 수락 연설을 했다.7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베스코 풋볼경기장은 밤 8시10분 오바마의 연설이 있기 3시간 전에 이미 정원을 넘겨 8만여명이 들어찼다. 지지자들은 미국 국기인 성조기와 ‘변화’ ‘오바마’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흔들고, 스티비 원더와 셰릴 크로 등 인기가수들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축제분위기를 만끽했다. 특히 ‘나에게는 꿈이 있다.’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45주년 기념일답게 킹 목사의 딸과 아들, 흑인민권운동가 출신 조 루이스 하원의원이 연사로 나왔다. ●8만여명 환호·눈물 축제의 장 피날레는 오바마의 연설 직후 펼쳐진 화려한 불꽃놀이와 하늘을 뒤덮은 오색 꽃가루였다. 미 언론은 전당대회준비위원회의 빈틈없는 운영을 높이 평가했다. 전당대회 기간동안 장소를 펩시센터에서 인베스코 경기장으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행사 진행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은 것은 철저한 사전준비와 조직력,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의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전당대회를 치르며 민주당은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분열과 갈등을 털고 다시 하나가 됐다.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사상 첫 흑인 대통령 후보를 탄생시킴으로써 변화한 미국을 전세계에 보여줬다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칠 수 있었다. kmkim@seoul.co.kr
  • [2008 美 대선] 美 첫 흑인후보 서다

    |덴버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47) 민주당 상원의원이 28일(현지시간) 콜로라도주 덴버 인베스코 풋볼경기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의 대선후보 지명을 수락했다. 오바마 상원의원이 “깊이 감사하는 마음과 겸허함으로 여러분의 미국 대통령 민주당 후보 지명을 수락한다.”며 미국 대선 사상 첫 흑인 대선후보 지명을 받아들이는 역사적인 순간, 대회장은 환호로 떠나갈 듯했다. 오바마 후보는 이날 8만여명이 가득 들어찬 옥외 경기장에서 ‘미국의 약속’이라는 제목의 후보 지명 수락연설에서 변화를 통해 잃어버린 미국의 약속을 되살리고 오는 11월4일 대통령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룩하자고 다짐했다. 오바마 후보는 “지난 8년 동안 조지 부시 대통령의 실패한 정치로 미국은 전쟁에 시달리고 있으며, 경제는 위기에 빠졌고, 미국의 약속은 위협받고 있다.”면서 “이번 선거는 21세기 미국의 약속을 살려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바마 후보는 연설에서 자신이 주장하는 변화와 미국의 약속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또 군최고통수권자로서 테러와 핵확산, 기후변화 등 21세기 도전으로부터 미국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안보정책을 놓고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 토론할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오바마는 “미국의 천연가스자원을 개발하고 친환경석탄기술에 투자하며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 확보 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풍력과 태양력·바이오연료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 연구에 1500억달러를 투자해 중동산 석유에 좌우되는 상황을 종식시키겠다.”고 말했다. 대외정책에선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와는 달리 동맹과의 협력 강화와 외교로 현안들을 풀어나가겠다고 구상을 밝혔다. 오바마 후보는 “이라크 전쟁을 책임있게 종식시키고, 알 카에다 및 탈레반과의 전쟁도 마무리짓겠다.”고 강조했으며, 이란 핵문제는 “강력하고도 직접적인 외교로 이란이 핵을 보유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바마 후보의 후보 지명 수락연설은 흑인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한 지 45주년이 되는 날 이뤄져 의미를 더했다. kmkim@seoul.co.kr
  • [女談餘談] KBS,그리고 어떤 화해/ 강아연 문화부 기자

    [女談餘談] KBS,그리고 어떤 화해/ 강아연 문화부 기자

    그곳을 다녀온 날이면 어김없이 심장이 벌렁거렸다. 마치 하드고어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이라도 한 것처럼 식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지난 8일 KBS에 18년 만에 공권력이 투입되던 날도 그랬다. 이사회 예정시간보다 1시간 전인 오전 9시쯤 KBS 본관에 당도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회의장 주변엔 청원경찰과 사원 몇 명만이 있을 뿐, 조용했다. 나는 취재 구상을 하며 복도를 어슬렁거렸다. 그때 비상구 쪽에서 갑자기 “다다닥!” 소리가 들렸다. 돌아다보니 KBS 사원들이 청원경찰의 봉쇄망을 뚫으려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쪽을 향해 길게 뻗은 한 사원의 손.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 한 무리가 부리나케 달려갔다. 철문을 경계로 밀고 당기는 한판의 난장(亂場)이 벌어지고 나서야, 나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래봤자, 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오가는 고성을 수첩에 받아적는 일 뿐.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향해 뻗어진 그 손은 두고두고 잊혀지지가 않았다.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한 일은 또 있다.27일 KBS가 새 수장을 맞던 날. 사원들의 환호가 아닌 청원경찰의 호위 속에 첫 출근을 치른 그분의 심경도 말이 아니었겠지만, 취임식 내내 제 직장에 들어설 수도 없이 셔터문과 경찰들 사이에 갇혀 있어야 했던 사원들의 기분도 엉망이었을 테다. 덩달아 기자들도 죽을 맛이었다. 무기만 안 들었지,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은 그대로 전쟁의 축소판이었다. 하지만 취임식이 끝나고 포위망이 풀렸을 때, 한 사원과 청원경찰이 나누는 대화는 내 귀를 의심케 했다.“우리 매번 부딪치네요.”“그러게요. 개인적인 감정은 전혀 없으니, 이해하세요.”“저도요. 미안합니다.” 좀 전까지 험악하게 멱살을 잡았던 이들의 화해 치곤 심하게 ‘쿨’했다. 아니 눈물이 났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정작 원인 제공자들은 이런 비애를 코끝으로나 느끼고 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강아연 문화부 기자 arete@seoul.co.kr
  • 오바마, 만장일치로 美민주 대선후보에

    |덴버 김균미특파원|미국 최초로 흑인이 주요 정당의 대통령 후보에 오르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 버락 오바마(47) 상원의원은 27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의 제44대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됐다. 오바마의 후보 지명은 콜로라도 덴버 펩시센터에서 열린 전당대회 사흘째인 이날 경선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제안에 따라 만장일치로 이루어져 더욱 극적이었다. 이 순간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2만여명의 대의원과 당원들은 일제히 “예스 위 캔(Yes We Can! 우리는 할 수 있다!)”을 연호하며 펩시센터가 떠나갈 정도로 환호했다. 이로써 18개월 동안 진행된 민주당 경선을 마무리지은 오바마는 28일 7만 5000명의 대의원과 당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인베스코 풋볼경기장에서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한다. kmkim@seoul.co.kr
  • [2008 美 대선-오바마 민주후보 선출] “오바마 준비된 후보” 클린턴 연설로 절정에

    |덴버 김균미특파원|27일(현지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 펩시센터는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 후보가 탄생하는 순간 곳곳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얼싸안고 춤을 추는 축제의 장을 연출했다. 분열과 갈등에 대한 우려는 이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감동적인 연설로 눈녹듯 사라졌고, 전당대회장을 가득 메운 수천명의 민주당원은 오바마의 ‘변화’라는 깃발 아래 비로소 하나가 됐다. ●바이든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 조지프 바이든 상원의원은 이날 부통령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통해 오바마의 든든한 동반자임을 입증했다. 화려하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 언어로 부시 정부의 경제적 실정과 외교정책을 맹공격하며 미국인들의 마음을 파고 들었다. 상원외교위원장답게 그는 미국의 외교와 안보를 화두로 오바마 시대에 새롭게 펼쳐질 강력하고 안전한 미국 건설의 비전을 제시했다. 악화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란 핵문제, 이라크전쟁 등을 일일이 거론하며 수십년 상원의원 경력의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의 잘못된 판단과 오바마의 정확한 판단 능력을 대비시켰다. 하지만 일부 정치 전문가들은 바이든이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던 전력을 거론하며 연설이 다음주 전당대회가 시작되는 공화당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녹슬지 않은 클린턴의 힘 민주당 전당대회 사흘째인 27일의 주인공은 단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었다.1992년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 로고송으로 사용됐던 플릭우드 맥의 노래를 배경으로 민주당원의 열렬한 환호속에 등장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끊이지 않는 박수와 환호로 3분 동안 한 마디도 못하고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급기야 “모두 앉아 달라. 오늘은 끝내야 할 중요한 쇼가 준비되어 있다.”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20분 동안 이루어진 연설에서 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 소원해진 오바마와의 관계를 의식한 듯 오바마가 “준비된 대통령 후보”라는 말을 반복하며 우려를 단번에 불식시켰다. 클린턴은 16년 전인 1992년 자신이 대선 후보로 나섰을 때를 상기시키며 공화당이 주장하는 오바마 후보의 젊은 나이와 경험 부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좌중을 휘어 잡는 그의 연설은 민주당원들을 하나로 묶어 내며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오바마의 깜짝 등장 전당대회 마지막 날 후보지명 수락연설을 할 때까지 전당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전례를 깨고 오바마 후보가 이날 밤 전당대회장에 깜짝 등장해 바이든 부통령 후보를 축하했다. 오바마는 바이든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격려한 뒤 대의원과 당원들을 향해 “바이든의 가족들과 미국을 바로 세우기 위한 여정을 함께 하게 돼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자신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변화는 위에서 아래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시작되는 것”이라면서 “때문에 우리의 변화에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도록 야외에서 수락연설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무당파와 공화당원들의 참석을 독려했다. 오바마 후보의 예상치 못했던 출현으로 전당대회장은 일순간 지지자들이 발까지 구르며 외쳐대는 “오바마, 오바마” 연호로 떠나갈 듯했다. kmkim@seoul.co.kr
  • [2008 美 대선] 클린턴家, 오바마 손 들어줬다

    |덴버 김균미특파원|26일(현지시간) 콜로라도 덴버 펩시센터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의 화두는 단연 ‘클린턴가(家)’였다. 민주당 경선에서 막판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이 과연 이날 연설에서 얼마만큼의 강도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지지자들에게 단합을 호소하느냐가 화제였다. 오바마 진영에 대한 화가 아직 풀리지 않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27일 연설에서 어떤 모습을 보일지, 펩시센터를 가득 메운 대의원들이 클린턴 전 대통령을 어떻게 맞을지도 관심이었다. 힐러리 의원은 속내는 어찌 됐든 제 몫을 다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분석했다. 이제 결정은 지지자들 몫이라는 것이다. 오바마와 힐러리 진영은 이날 미국 신문이 일제히 다룬 양 진영의 갈등은 사실이 아니라며 부인했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힐러리 주변에서는 11월 대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하지 않는다면 2012년에 힐러리가 대권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막판까지 비밀 ‘힐러리 연설문´ 딸 첼시가 추천해 트레이드마크가 된 오렌지색 바지의 정장 차림으로 연단에 오른 힐러리 의원은 ‘힐러리’를 연호하는 지지자들의 환호에 묻혀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잠시 뒤 “나는 자랑스러운 어머니, 자랑스러운 민주당원, 자랑스러운 미국인이며 그리고 자랑스러운 오바마 지지자입니다.”로 연설을 시작한 힐러리는 처음부터 이날의 주제가 오바마 지지선언임을 분명히 했다. 힐러리는 “존 매케인은 어쨌든 안된다.”며 대선에서 오바마 후보를 중심으로 민주당이 일치단결해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힐러리는 경선 기간 자신을 믿고 따라준 지지자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았다. 연설에 대한 힐러리의 부담은 상당했던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시작 직전까지 연설문의 오바마를 지지하는 표현을 다듬으며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그러나 힐러리의 연설이 과연 얼마나 힐러리 지지자들의 마음을 되돌렸는지는 지켜 봐야 한다고 정치평론가들은 평가를 유보했다. 한편 몬태나 빌링스에서 힐러리의 연설을 지켜본 오바마 의원은 “매우 훌륭하고 강력한 연설이었다.”면서 “11월 대선에서 우리가 단합해야 하는 이유와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했다.”고 환영했다. ●힐러리 연설에 눈시울 붉힌 빌 VIP석에 앉아 힐러리의 연설을 지켜 보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감정에 북받쳐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오바마측에서 힐러리의 본심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하는데 매우 분개하고 있으며, 경선 과정에서 자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매도한 데 대해서도 여전히 감정이 남아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때문에 27일 연설에서 이같은 좋지 않은 감정들을 뒤로 한 채 얼마나 열정적으로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후보에 대한 공격의 칼날을 세울지 추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클린턴 정부에서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조 록하트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kmk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돔구장 ‘MB 모르쇠’에 야구팬들 실망감 토로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과의 청와대 오찬에서 돔구장 건설이 화제에 오르자 야구 인프라 확충 차원에서 돔구장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감을 표했으나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 26일 대변인실이 발표한 청와대의 입장이다.청와대가 이런 입장을 발표하게 된 것은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과 대통령과의 오찬에서 돔 구장 건설을 건의한 야구인의 염원에 이명박 대통령이 “알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화 주장인 김민재 선수는 대통령과의 오찬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는 앉은 자리가 멀어 말할 기회가 없었다.마침 같은 테이블에 계셨던 김경문 감독께서 돔구장 건설에 대해 건의하셨고,대통령께서도 돔구장을 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내가 하고 싶었던 말인데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셨고,그 순간 모든 선수들이 박수치고 환호를 질렀다.”고 인터뷰했다. 기아 타이거즈의 이용규 선수 또한 “대통령이 돔구장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더라.”고 전했다. 김경문 감독은 “단체로 기념촬영을 할 때 대통령과 함께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그래서 ‘근사한 돔구장 하나 지어주십시오.’라고 말했다.”며 “대통령은 아무런 말씀도 없으셨다.그러나 오찬을 하는 내내 대통령이 스포츠에 대해 관심이 무척 많으시다는 인상을 받았다.야구대표팀의 경기 내용은 물론 선수들의 부상 정도에 대해서도 직접 말씀하시며 해박한 지식을 보이셨다.”고 밝혔다. 스포츠 마니아임을 자처해 온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이미 돔구장 건설을 약속한 바 있다. 스포츠신문 편집국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서울시장)임기내(당시 2006년 6월까지)에 돔구장을 건설하겠다.동대문구장 자리가 아닌 강남권에 돔구장을 지어 복합 스포츠타운을 형성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국시리즈가 열리던 잠실구장에서 시구를 마치고 기자들에게도 “정말 야구전용 돔구장 건설을 바라는 시민들의 열망이 대단함을 느꼈다.1100만 서울시민과 인근 도시의 시민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돔구장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서울시장 시절의 그 호쾌한 공약이 오리무중인 상태. 네티즌들은 대통령 인수위 시절부터 정책발표 이후 ‘오해’라는 해명이 이어졌던 것을 기억해내며 “오해라는 글자만 봐도 이제 짜증이 난다.”“칠득이도 아니고 왜 맨날 오해라는 기사냐고 대체!!!”라며 노골적인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008 美대선]오바마 참모습 제시 ‘출발 성공적’

    |덴버 김균미특파원| 25일(현지시간) 민주당 덴버 전당대회 첫 날은 에드워드 케네디(76) 상원의원과 미셸 오바마(44)의 밤이었다. 전당대회장인 펩시센터는 8년 만에 백악관을 되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과 기대가 넘쳐나는 축제의 장이었다.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 대의원 및 전국 유권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자리로 기획된 이날 행사는 암투병 중인 케네디 의원의 깜짝 참석으로 열기를 더했고, 오바마 의원의 부인인 미셸의 감동적인 연설로 방점을 찍었다.2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은 전당대회장을 찾은 사람들을 일일히 손바닥을 마주치며 환영했다. 이날 행사는 미국 동부시간 기준으로 밤 8∼10시에 맞춰 주요 행사들이 진행됐다. ●‘변화’ 물결에 휩싸인 펩시센터 민주당 전당대회장인 펩시센터는 오바마 의원의 캐치프레이즈인 ‘변화’의 물결로 넘실댔다. 전당대회에 참석한 전국 대의원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연사들의 연설에 ‘변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경쾌한 음악에 맞춰 쉼없이 흔들며 호응했다. 펩시센터 중앙 무대를 가득 메운 대의원들은 때로는 환호하고, 때로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축제분위기에 흠뻑 취했다. ●암투병 케네디 깜짝 등단에 열기 더해 서서히 열기를 더해가던 전당대회장은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외동딸인 캐롤라인 케네디가 암투병 중인 삼촌 케네디 의원을 소개하면서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대의원들은 “테디(케네디 의원의 애칭), 테디!”를 연호하며 정치 거인을 뜨겁게 환영했다.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연단에 기댔지만 목소리는 힘이 넘쳐났다.“새로운 세대의 지도자 오바마에게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면서 오바마와 함께 새로운 미국을 만들어 나가자고 강조할 땐 곳곳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존경하는 정치 거목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의원들은 케네디라고 적힌 파란색 플래카드를 흔들며 화답했다. 지난달 10일 의료보험 관련법안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 상원 본회의장에 나타났던 케네디가 이번에는 대의원 자격으로 오바마 의원에게 ‘한 표’를 주겠다며 매사추세츠에서 전날 밤 덴버로 왔다. 방사선 치료 등으로 면역체계가 약화되면서 다중이 모인 곳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를 물리치고 전당대회 참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경선초반 오바마에 대한 케네디가의 지지를 선언하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던 케네디 의원은 역사적인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오바마의 든든한 후견인 역할을 다했다. ●미셸 전국무대 성공적 데뷔 이날 전당대회의 관심은 단연 미셸 오바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남편인 오바마는 물론 자신의 모습을 내보일지 연설 전부터 화제였다. 미셸은 유명인이나 엘리트가 아닌 딸들과 부모·형제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평범한 미국 시민의 모습으로 유권자들에게 다가갔다. 너무 세련되지 않으면서도 자신과 가족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로 보통 미국인들과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갔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이야기, 여성으로서 쉽지 않았던 사연 등을 털어놓을 때는 눈물을 흘리는 여성 대의원들의 모습이 비치기도 했다.19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인 오바마 의원 이야기를 할 때는 환호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성 참정권 획득 88주년을 거론하면서 힐러리 의원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 정치감각도 발휘했다. 정치평론가 데이비드 거겐은 “미셸은 오바마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라며 “미셸이 민주당 전당대회 첫날 행사를 구했다.”고 평할 정도로 미셸은 전국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2% 부족했던 첫날 행사 정치전문가들의 첫날 총평은 ‘성공적’이다.‘오바마 피로증’이 나타날 정도로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언론 노출이 잦았지만 여전히 오바마에 대해 잘 모르는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오바마의 참 모습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당대회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당 대의원들만의 축제가 아닌 대선 승리를 위해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한 공격이 실종됐다는 지적이다.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귀한 시간만 허비했다고 일침을 가했다. ●“오바마 저격시도 일당 체포” 오바마를 저격하려던 일당 4명이 콜로라도주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고 미국의 CBS방송이 26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체포 당시 백인우월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망원경이 달린 고성능 라이플 2정과 방탄조끼, 마약 등을 지니고 있었다.kmkim@seoul.co.kr
  • 고삐풀린 환율 ‘백약’ 무효?

    고삐풀린 환율 ‘백약’ 무효?

    원·달러 환율이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고(高)환율의 행진을 막을 수단도 없고, 막는다고 될 일도 아닌 듯하다. 벌써 달러당 1100원대 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1150원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6일 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4거래일째 급등하면서 전날보다 10.50원 오른 1089.4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 영향으로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1.86% 포인트 하락한 1490.25로 끝나 1500선이 다시 무너졌다. 환율이 고공행진을 지속할 경우 외국인의 매도 공세도 더 거세질 전망이다. 원·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일부 수출 대기업들은 환호성을 지르겠지만, 물가상승으로 소비위축의 영향을 받는 내수기업들은 조금도 반갑지 않다. 원유 수입업체들은 거의 패닉(공황)상태다. 환헤지 파생상품 ‘키코(KIKO)’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은 영업이익을 내놓고도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920∼930원대에 선물환을 대거 매도해 놓은 조선업체들도 자본잠식 등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자녀를 유학 보내 놓은 학부모들도 학비 송금 부담이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묻지마 달러 매수’가 수그러들지 않는 상황에서 환율상승이 물가·경기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만만찮다. ●물가상승 압력, 연초보다는 크지 않지만 부담돼 세계적인 ‘강(强) 달러’가 진행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전고점인 1057원을 뚫고 올라가자 대부분 사람들은 물가상승 압력을 걱정했다.JP모건 임지원 수석애널리스트는 그러나 “연초에 나타난 원화 약세(환율 상승)는 전 세계적으로 ‘나홀로 약세’였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10% 상승하면 실효환율도 고스란히 10% 충격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현재 달러 강세장에서는 유로·위안화 등도 약세이기 때문에 환율이 10% 올라도 실효환율은 5%가량 된다.”면서 “때문에 환율상승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은 연초보다 현재 크게 줄어들었다고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유가도 하락 추세이기 때문에 물가상승 압력은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전월대비로 물가상승률이 0.4% 이하로 나타나면 긍정적인 신호로 봐도 된다고 설명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입물량의 80%가 달러 결제이기 때문에 달러 강세 덕분에 실효환율은 낮아질 수 있지만, 절반 수준으로까지 떨어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실제 8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대비 7% 안팎까지 오를 것으로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내수위축으로 인한 경기둔화 심화될 듯 전월대비 물가상승률은 둔화되더라도 전년동월 대비 물가상승률이 높게 나오면, 공포에 질린 소비자들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고, 지갑을 얼른 닫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1·4분기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년동기 대비 3.4%였고,2·4분기는 2.4%로 낮아졌다.2분기의 민간소비 증가율은 전분기 대비 -0.1%로 감소하기까지 했다. 성장률은 1분기 5.8%,2분기 4.8%이지만, 소비만 두고 보면 이미 경기침체 상황이라고 권 실장은 분석했다. 권 실장은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물가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환율도 더이상 상승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어 “환율이 급등하는 ‘쏠림현상’이 지속되니까 수출업체들이 앞으로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하고 달러를 팔지 않고 있는 상황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환보유액을 풀어서 해결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외환시장에서 외환당국이 시장개입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확신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외환당국이 카드 패를 완전히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현재의 쏠림현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실장은 “이미 경기 저점은 내년 1분기에서 2분기로 늦춰지고 있고, 따라서 경기회복 시기도 늦어지는 것이 문제”라고 우려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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