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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부총리, 총재정수지 국민경제영향 분석 지시

    이헌재(李憲宰)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9일 “총재정수지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외부용역을 줘서라도 분석해 보라.”고 재경부 간부진에게 지시했다.적자재정을 감내하고라도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써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조치여서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총리는 또 민간 경제연구소들의 비관적인 경제전망에 대해 대응논리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불필요한 비관론 조장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읽혀진다.그러나 내년도 경제전망을 놓고 부총리 스스로가 자꾸 말을 바꿔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들린다. ●올 이미 한차례 추경편성 적자폭 확대예상 이 부총리는 이날 재경부 간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재정수지 적자가 국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가 일반적으로 형성돼 있는데 실제 그런 것인지,나쁜 영향을 준다면 어느 정도 감당 가능한 것인지 분석해보라.”고 주문했다.배경을 둘러싸고 2차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재정지출 확대에 대비한 사전포석이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아직은 적립단계여서 구조적으로 흑자일 수밖에 없는 사회보장성 기금과 공적자금 상환원금 등을 제외하면,우리나라의 재정수지는 매년 계속되는 추경 편성으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올해도 이미 한차례 추경을 편성해 적자폭 확대가 예상된다. 재경부측은 “국채발행 방식이 바뀌면서 표면적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돼있어 국회에서의 나라빚 논쟁에 대비하려는 취지”라며 적자재정 공론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다.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날 “올해 2차 추경편성 계획은 없지만 내년에 좀 더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간硏 비관론,더는 못참겠다” 이 부총리는 모기지론 등 주택시장의 유효수요 창출 대책과 함께 삼성경제연구소가 제시한 내년도 성장률 3.7% 전망 및 감세주장 등에 대해 대응논리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정부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5%대 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단순한 민·관의 견해차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괴리’가 너무 큰 것이다.자칫 국민들 사이에 불필요한 위기감을 조성할 수 있고,정부 발표에 대한 불신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한 것으로 보인다.전날 청와대 이병완 홍보수석이 언론의 비관적 보도태도를 문제삼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의 경제전망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일각의 비판과 관련,이 부총리는 “내년에 잠재성장률 5.2∼5.3%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력한 정책적 의지의 표명이지,전망치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하지만 “6%대 성장도 가능하다.”(6월10일 기자간담회)→“올해보다는 낮아지겠지만 5%대 성장은 가능”(6월25일 정례브리핑)→“정책적 의지의 표명”(8월6일 정례브리핑) 등 시간이 지날수록 부총리의 말에는 ‘힘’이 빠지고 있다.지난 주말 정례브리핑 때는 미국의 7월 고용동향을 섣불리 인용예측했다가 터무니없이 빗나가는 ‘수모’를 자초하기도 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런 책 어때요]

    ●천황 히로히토는 이렇게 말하였다/고모리 요이치 지음 오에 겐자부로는 94년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모호한 일본의 나’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일본의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전후 일본 사회는 ‘모호함’ 그 자체로 읽힌다.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 강변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끊임없이 평화헌법을 폐기하려는 나라 일본.사회운동가인 저자는 궤변과 책임회피로 일관한 쇼와 천황 히로히토의 ‘종전 조서’ 800자를 분석,일본 사회에 만연된 모호한 역사인식의 실체를 벗긴다.천황의 ‘옥음방송’과 ‘인간선언’은 종전선언이라기보다는 패전후 일본의 전략을 명시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1만 2000원. ●문자제국 쇠망약사/이남호 지음 전자영상시대의 문자의 위상과 쓰임을 고찰한 산문?저자(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전자문화가 세상을 재원시화(reprimitivization)시킬 것”이라는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의 주장은 과격하고 단순한 면이 있지만 이 시대를 읽는 하나의 틀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한다.문자시대가 물러가고 전자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기본 생각.문학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 ‘내면성’이 현대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점점 약화돼가고 있는 것도 문자문화의 쇠퇴와 전자문화의 확산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한다.1만 1000원. ●사랑,그 환상의 물매/김영민 지음 고전적인 구애의 메커니즘이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하지만 저자(한일장신대 교수)는 그런 오래된 사랑의 방식에 이의를 단다.사랑은 결코 마음의 거래방식이 아니라는 것,마음은 연정의 증명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그러면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랑법은? 그것은 ‘말’과 ‘살’로 엮어가는 연하디연한 놀이다.철학자다운 사랑의 아포리즘이 퍽이나 감각적이지만,요령부득의 언어 유희는 인공조미료 냄새를 솔솔 풍긴다.저자의 개인 홈페이지에 게재한 85편의 ‘사랑’글들을 묶은 전작 산문집.1만 1000원. ●세계 최대의 축제 올림픽 이야기/클라이브 기퍼드 지음 고대기록에 따르면 최초의 올림픽 챔피언은 코로에보스라는 젊은 요리사였다.그는 기원전 776년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린 첫 올림픽의 유일한 종목이던 스타데 경주(192m 달리기)의 우승자였다.그후 고대 올림픽에는 원반던지기와 창던지기,디아울로스(스타디움 두 바퀴 달리기),권투,레슬링,멀리뛰기,전차경주 등 많은 종목들이 추가됐다.고대 올림픽은 운동경기이자 종교적 축제였다.따라서 대회 기간엔 휴전이 선포돼 전쟁이 멈췄다.여성은 선수로든 관중으로든 올림픽 경기장 안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다.올림픽에 대한 총체적인 안내서.9500원. ●생명을 치유하는 맛있는 물/하야가와 히데오 지음 물의 정체를 밝혔다.유럽이나 미국에서는 하수도와 상수도가 교차하는 일이 없다.하지만 일본은 하수가 상수와 하나로 합쳐저 다시 사용된다.질산성 질소는 정수장에선 완전히 여과되지 않기 때문에 상수에 하수의 질산성질소가 섞여 버린다.지하수는 안전하다는 신화는 옛말.책은 건강에 좋은 기능수 중에서 환원수에 대해 설명한다.공기중에 방치된 철이 녹스는 것,종이가 타서 재가 되는 것,사과가 갈색으로 변하는 것 등이 산화반응.환원은 산화된 상태를 원상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산화환원전위가 낮고 항산화력도 강한 물이 진짜 환원수다.9500원.
  • [재계 인사이드] 제약업계 2·3세 경영 본격화

    제약업계의 세대교체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해외 유학파 2,3세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국내 부동의 1위 제약업체인 동아제약은 지난해 1월부터 3세 경영인인 강문석(43)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했다.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강신호 회장이 많은 조언을 하지만 실질적 경영은 강 사장이 맡고 있다. 강 회장은 독일에서 의학박사를 받았으나,강 사장은 서울대 공대와 스탠퍼드대 공대를 졸업했다.창업주인 강준희 회장이 종로구 중학동에 세운 의약품 도매상 ‘강준희 상점’으로 출발한 동아제약은 올해 창업 72년째다. 보령제약도 지난해 10월 창립기념일에 김승호 회장이 장녀인 김은선(46) 부회장에게 전권을 넘기겠다고 선언했다.제약업계에서 유일한 여성경영인인 김 부회장 역시 가톨릭대 식품영양학과와 일본 성심여대에서 수학한 해외유학파다. 1997년 2세 경영인으로 대웅제약 대표이사직에 오른 윤재승(42) 사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26회 사법시험에 합격,8년간 검사로 일한 바 있다.지난달에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아시아 차세대 지도자’로 뽑혔다. 지난 93년 창업주인 이종근 종근당 회장이 별세하고 대표에 오른 이장한(52) 회장은 미주리 주립대에서 언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서대문구 아현동에서 ‘궁본약방’으로 시작한 종근당은 올해 창립 63주년을 맞았다. 국내 100대 제약사 가운데 20여곳은 창업주의 2세들이 회사를 이끌고 있다.한독약품,대웅제약,유유,종근당,현대약품,일양약품,일성신약,보령제약,동성제약,안국약품 등이 그러하다. 동아제약,중외제약과 올해 창립 107주년을 맞은 동화약품은 이미 3세 경영체제다. 지난해 8월 사장에 취임한 윤길준(47)씨는 동화약품의 11번째 사장이다.2001년 대표이사에 취임한 중외제약의 이경하(42) 사장은 성균관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국 드레이크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73년 창업한 한미약품은 창업주가 경영을 맡고 있으며 2세들이 경영에 참여할 징조는 아직 없다.유한양행은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가 기업을 사회에 환원한 뒤,전문경영인이 회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상암 5·6단지 분양수익률 최고 38%

    분양가 총액이 5억원에 육박하는 서울 상암 5·6단지,40평형 아파트의 분양수익은 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 산하 SH공사(옛 서울시도시개발공사)는 상암 5·6단지,40평형 아파트의 분양원가는 3억 320만 3000∼3억 2608만 9000원으로 분양가 4억 9075만 8000∼4억 9951만 3000원에 수익률은 34.71∼38.21%에 이른다고 1일 밝혔다. 김승규 사장은 “인근 아파트의 시세보다 분양가가 많이 낮으면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가수요자가 크게 발생해 실수요자의 당첨 확률이 낮아진다.”면서 “같은 조건으로 민간업체가 시공하면 SH공사보다 토지매입비가 훨씬 높아 분양원가만 4억∼5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인근 상암 3단지,32평형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현재 4억 4000만∼5억 5000만원이다. 또 5단지의 평당 분양가는 1210만 5000원,6단지는 1248만 2000원으로 같은 평형에서 평당 분양가의 차이는 건축용적률과 대지매입비,시공의 난이도 등에 따른 것이다.SH공사는 과다한 분양가로 발생하는 수익금은 공공임대주택 건설재원이나 불우계층 지원금 등 공익사업을 통해 저소득시민에게 모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아파트분양은 청약예금 1000만원 가입자가 대상이며 5단지 107가구,6단지 326가구 등 모두 433가구를 분양한다.오는 12∼17일까지 청약신청을 받아 24일 당첨자를 발표한다.입주 예정일은 6단지가 내년 7월, 5단지는 내년 10월이다. 한편 이번에는 아파트 내부의 마감재나 인테리어 등을 입주자가 직접 선택하는 ‘마이너스 옵션제’를 처음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시민’ 없는 시민단체

    시민단체에서 ‘시민’이 빠져나가고 있다. 경기침체로 회비를 내는 개인 회원이 눈에 띄게 줄고 있고,진보정당의 원내 진출과 사이버 비정부기구(NGO) 활성화 등으로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회원확충 캠페인,기업연대 프로그램 등을 통해 재정난 해소와 생존 전략을 모색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경기침체,참여통로의 다양화로 회원 대폭 줄어 회원 1만 3500여명의 ‘메이저 NGO’인 참여연대는 최근 들어 신규 회원 수가 매달 300명선에서 100명선으로 크게 줄었다.기존 회원의 탈퇴와 회비 납부 중단 사례도 늘고 있다.참여연대의 한달 후원금은 7000만∼8000만원선.후원금 납부자의 99%가 개인회원으로,한사람에 5000∼1만원 안팎을 낸다.그러나 신규 회원 감소와 탈퇴 등으로 후원금 규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대표적인 환경단체인 환경운동연합은 한때 매달 1000명을 넘었던 신규 회원이 100명 안팎으로 대폭 줄었다.게다가 기존 회원 중 매달 50여명이 탈퇴하고 있다.환경운동연합도 회원 한사람으로부터 5000∼1만원 안팎의 후원금을 받아 운영되고 있어 갈수록 살림이 쪼들리고 있다.환경정의도 신규 회원이 매달 70∼80명에서 50명으로 줄었다. 김숙영 환경운동연합 시민사업국 간사는 “경기침체가 가장 큰 이유”라면서 “경기가 좋을 때 ‘부의 사회환원’차원에서 가입했던 개인과 단체가 경제난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안진걸 참여연대 간사는 “탈퇴회원 대부분이 장기적인 경기침체를 이유로 들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의 원내 진출과 사이버 NGO 활성화 등 참여통로의 다양화도 원인으로 지적된다.기존 시민단체가 선점해온 진보적 이슈가 여러 갈래로 나뉘고 있기 때문이다.또 회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되고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사이버 NGO의 활성화로 기존 시민단체의 ‘파워’가 그만큼 줄고 있다.안 간사는 “정당이 진성당원제로 바뀌고 인터넷을 통해 후원 회비를 납부하지 않아도 활동이 가능한 NGO들이 생기면서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시민단체들에 대한 후원이 줄고 있다.”고 밝혔다. ‘NGO 불황’ 속에 여성·환경 분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서경남 한국여성의전화연합 대외협력부장은 “여성문제라는 특수성 때문에 남성들이 후원회원 참여를 외면한다.”고 설명했다. ●이제 NGO도 세일즈 시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거리에서 회원을 모집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입을 모았다.개인에서 기업회원 중심으로 운영방식 변화,회원모집 방법의 다양화 등 적극적으로 탈출구를 모색하고 있다. 환경재단은 ‘만분클럽’이란 이름으로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만분클럽’은 매출액의 ‘1만분의1’을 기부하는 기업이나 단체의 모임.지금까지 55개 기업이 참여했다.이준 공익사업팀장은 “기업들은 세미나 등을 통해 환경경영 자료나 컨설팅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윈·윈 시스템’이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과 환경정의는 손쉽게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생태학습 프로그램과 사진전 등을 마련,회원 확보에 애를 쓰고 있다.여성단체연합은 남성 회원의 확보를 위해 양성평등을 기치로 내건 ‘평등실천 365위원회’등을 조직,운영하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모집 담당자 150여명이 모인 ‘전국회원사업네트워크’는 지난달 워크숍을 갖고 모금·홍보 프로그램을 집중 논의하기도 했다. 시민리더십센터 양세진 소장은 “앞으로 시민운동은 시민이 운동의 주체가 되고 활동가가 이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역할과 패러다임이 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개인회원을 재정충원의 수단이나 집회의 동원수단으로 여긴 관행을 벗어나 이들의 요구와 목소리에 따라 시민운동의 방향을 잡아나가야 한다는 것이다.양 소장은 “이같은 변화없이 회원 확장에만 몰두한다면 정부가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것처럼 시민 단체도 정작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비판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기업은 개선·가계는 꽁꽁…이상한 日경제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실물경제가 본격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일반적 분석이지만 일본 가계의 체감지수는 아직 꽁꽁 얼어붙은 수준인 듯하다. 1∼6월 상반기의 소비동향분석이 이를 뒷받침한다.대형슈퍼체인·백화점·가전의 올 상반기 매출이 좋지 않은 것으로 27일 드러났다.슈퍼는 전년 동기비 2.9% 감소,백화점은 2.0% 감소했다.가전도 1.8% 감소했으며,특히 PC는 6월에만 22%나 감소했다. 따라서 “기업부문의 경제회복기류가 가계에 퍼지고 있다.”(7월 월례경제보고)는 일본 정부의 견해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경기 회복 분위기가 아직은 시민들의 의·식·주 생활까지는 침투하지 않은 상태로 해석된다.주식시장도 여전히 좋지 않다. 일본 체인스토어협회와 일본 백화점 협회에 따르면 무더위 효과나 건강 챙기기 경향을 반영한 일부의 상품은 성장하고 있다.에어컨 판매가 전년 동월비 22% 증가한 것이 그 예다.DVD도 아테네올림픽 특수를 맞았다. 하지만 유통업 매출의 60% 정도를 차지하는 식료품은 전년 동기비 1.3% 감소했다.일용 잡화품도 3.9% 감소,일상 생활과 관계되는 분야는 침체하고 있다. 기업들이 일시적인 이익을 상여금으로 환원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지갑은 열리지 않고 있다.우에노 등 애널리스트는 “경기회복이 소비에 이르기까지는 더욱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한다. taein@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20) ‘무소유 경영’ 실천 전재준 삼정펄프 회장

    “생산업자는 만드는데만 신경써야지.땅팔아 큰 돈벌겠다는 생각은 상도(商道)에 벗어나는 것이야….돈이란 끝이 없어.일만 열심히 하면 벌 수 있는 게 돈이고,영원토록 가질 수 없는 게 돈인 게야.” 전재준(81) 삼정펄프 회장은 젊은 경영인들을 만나면 그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말한다.‘무소유 경영’이다.그의 삶의 궤적에서도 자본보다는 신용을 중시했던 ‘개성상인’의 상도가 배어 있다.전 회장은 지난 해 시가 300억원 상당의 공장터를 경기 안양시에 기증한다고 밝혀 세간의 관심을 불렀다.최근에는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성균관대에 기탁을 했다.그는 기자와의 만남에서도 “자신에게 남길 것과 남에게 줄 것을 정리하는 것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확고한 신념을 밝혔다.자식들에게도 이 원칙을 지켜가고 있다. ●돈버는 것처럼 쉬운 게 없었다 -나는 개성에서 2남매중 둘째로 태어났다.가정형편이 어려워 송도중학교를 졸업한 직후 어린 나이에 일터로 뛰어 들었다.6·25가 발발하기 1년전인 1949년에 부모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왔다.20대 중반때이다.그당시 개성에는 총성이 끊이질 않아 안전한 곳에서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출가한 누님은 개성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올해로 87세가 되는 누님의 생사가 불확실하지만 동생인 내가 살아 있는 만큼 생존해 계실 것으로 믿고 있다.며칠전 남북 이산가족들의 상봉장면을 TV로 보며 누님을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10대때부터 잡화점과 문방구 점원 등 무엇이든지 해냈던 나는 서울 명륜동 4가에 터를 잡고 섬유와 면사장사를 시작했다.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종이 도매상으로 방향을 바꿨다.문방구 점원으로 일해서인지 ‘종이장사’에 익숙했고,나날이 번창했다.열심히 땀을 흘린 만큼 돈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일에만 매달렸다.한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시간도 아까워 호떡 몇개 입에 물고는 달음박질을 쳐 종이를 배달했다.세상에 돈 버는 일이 제일 쉽고 신명나게 느껴지던 때였다. -일에만 미치다 보니 29살이 될 때까지 혼자 지냈다.주위에서 여러번 맞 선을 보라고 권했지만 돈 버는 일이 더 좋은 때였다.그러던 어느날 인척 한분이 무작정 맞선을 보러 가자고 다그쳤다. 그 당시 원조품인 미군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있던 나는 땀범벅이 된 얼굴을 가리키며 손사래를 쳤다.그러나 그 분은 막무가내로 집으로 오라고 성화를 내셨다.후환이 두려워 집을 찾아가니 안방에 어여쁜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나는 방에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마루끝에 10여분 앉아 있다가 후다닥 집을 나왔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는 개성에서 소학교 교사를 하다가 남동생과 함께 상경해 외삼촌집에 살고 있었다.같은 동향사람이어서 혼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소학교 선생님은 평생의 반려자가 됐다. ●편법보다는 정도로 승부해야 -결혼후 사업 규모도 점점 커져 종이도매상에서 성보실업,동남교역을 창업했다.이후 1961년 안양역 근처에 인쇄용지 제조회사인 삼덕제지를 운영하며 본격적으로 기업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연매출 950억원에 이르는 삼정펄프의 시장 점유율은 15% 안팎이다.종이 생산량은 국내 2위이지만 소비자 인지도는 낮은 편이다.주위에서는 TV광고도 하고,마케팅을 강화하면 1위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조언했다.그러나 나는 편법을 쓰고 싶지 않다.소비자가 직접 상품을 사용하며 평가해야지,이미지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시켜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지난 해 안양시에 공장부지를 기증할 때도 일부 직원들은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300억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사용하면 ‘톱 브랜드’로 키울 수 있을 텐데 미련하게 기부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나 나의 우직하고 외골수적인 경영철학은 개성상인의 피를 이어받은 결과다.아무리 돈이 많아도 거짓말을 하고 속이면 상대를 하지 않았던 개성상인들의 습관이 몸에 뱄기 때문일 것이다.일례로 70m 24롤짜리 화장지팩을 다른 업체들은 언제부턴가 50m로 슬그머니 줄였지만 삼정펄프의 ‘리빙’ 만큼은 70m를 유지하고 있다. -몇년전 세무서 직원이 우리 회사에 왔다가 놀란 적이 있다.은행 무차입은 물론 판공비와 판촉비가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혀를 내둘렀다.허튼 돈 1원도 쓰지 말고 충심으로 제품을 만들어 오직 품질로 승부하라고 직원들에게 주문한다. ●땅을 상품화해서는 안돼 -안양시와 성균관대에 땅을 기증한 뒤에 아직도 주위 사람들이 의아해 하고 있다.부동산 재테크에 미련이 없었느냐는 질문이 그치질 않고 있다.그때마다 생산업자는 생산에만 전념해야 한다는 말을 들려준다.생산업자에게는 땅값이 올라봐야 무의미한 것이다.사업을 그만 두고 땅을 팔면 생산업자는 갈 곳이 없다.진정한 생산업자는 돈 몇푼 남기겠다고 땅을 팔아버리기 보다는 공장을 못하게 되는 사실을 아파해야 한다. -지난 해 안양시내 한복판에 있던 삼덕제지 공장부지 4364평 기증도 이런 맥락에서 이뤄졌다.대규모 제지회사들이 생겨나면서 300억원에 달하던 안양공장의 연매출이 30% 정도로 떨어졌고,설비를 확장하려고 해도 주변이 도심지라 처리에 고심했다.어느날 집사람이 공장을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기증하자고 제안해 “바로 이 것이다.”라고 무릎을 쳤다. -공장 땅은 땀흘려 번 것이 아니다.노력해서 번 돈이 아닌 만큼 내가 쓸 수는 없다.공장을 운영하며 먼지나 진동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서 항상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안양시민들의 도움으로 회사를 이 만큼 성장시킬 수 있었고 이제 공장을 이전하는 만큼 보상차원에서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이곳에 공장을 세운 것은 나지만 계열사들을 거느릴 정도로 회사가 커진 것은 결국 안양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땅은 가꿀 수 있는 사람이 가져야 -이번에 성균관대에 기증한 경기도 포천군 일대 토지 40만여평도 나와 아들들보다 더 좋게 가꿀 수 있는 사람들에게 주자는 차원에서 이뤄졌다.포천 땅은 70년부터 주말마다 아내와 함께 조경·조림사업에 매달려 잣나무와 낙엽송이 수십만 그루에 이를 정도로 울창한 산림으로 탈바꿈했다.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다 보니 자주 그곳에 들를 수 없게 됐다.이미 아들들에게 상속한 땅이지만 아들들도 가꿀 능력이 안된다고 판단했다.40년 넘게 명륜동에 살면서 인연을 맺었고 조경학과가 있는 성균관대에 기증키로 했다. -토지공개념 차원에서 정부도 공장 건폐율 규제를 없애야 한다.일본만 해도 병원,학교,공장에는 건폐율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땅을 가지고 투기를 하지 않는 양심적인 기업가에게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부자로 죽는 일은 부끄러운 일 -세아들과 딸에게는 집 한 채 정도씩만 물려줬다.다행히 자식들이 별다른 불만을 달지 않아 고마울 따름이다.지난 해부터 집사람과 나는 여생을 의미있게 마칠 수 있는 계획을 짜고 있다.회사도 크게 일구고 자식들도 잘 키웠는데 인생을 잘 마무리하자는 차원이다.단돈 1원도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받지 않은 나도 이렇게 자수성가했는데 자식들은 더 크게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도 기부를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안양과 포천 땅 기증을 위해 여러 차례 가족회의를 했으나 자식들 모두가 기증에 흔쾌히 동의했다.돈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지만 내 것보다 남의 것을 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자식들도 지니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전재준 회장은 부(富)의 사회환원이라는 차원에서 그의 경영원칙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될 만하다.불필요한 것은 갖지 않는 절제의 삶을 실천했기 때문이다.그의 기부의 바탕은 ‘내 것’과 ‘네 것’ 혹은 ‘우리 것’의 구분을 허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수도권의 도심에서 공장을 뜯어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만으로도 칭송받을 만한데 엄청난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주거지역내 공장부지를 선뜻 공원 터로 내놓는 일은 좀처럼 실천하기 어렵다.성균관대에 기증한 땅도 두 아들에게 이미 상속한 땅을 두 아들의 동의를 얻어 내놓은 것이어서 큰 감동을 줬다. 그러나 이런 전 회장은 정작 본인과 가족에게는 엄격하다.경기 평택,충남 천안,경남 함안 등 3곳에 3만평 규모의 공장을 소유한 탄탄한 기업의 오너이지만 회장 집무실은 보잘 것이 없다.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본사 사무실은 80평에 불과하고 한쪽 구석에 칸막이를 친 집무실이 있다.부인과 그럴싸한 여행조차 하지 않았다.20년전 환갑때 자동차를 타고 동해안 일주를 갔다 온 것이 고작이다. 이 회사 한홍일 상무는 전 회장 책상 모서리에 세워 놓은 우산을 가리켰다.전 회장이 72년 일본에 갔을 때 사왔는데 아직도 사용하고 있다는 설명을 곁들였다.
  • [월드이슈-유럽 근로시간 연장 논란] 불황·실업난속 주35시간 근로제 ‘흔들’

    지속되는 경기불황과 높은 실업률로 고전하고 있는 유럽에서 근로시간 연장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주당 35시간 근로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프랑스와 노사 협의로 35시간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불황타개와 일자리 확보를 위해 추가 임금인상 없는 근로시간 연장을 채택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그러나 임금을 동결하고 노동시간만 늘리려는 경영진의 밀어붙이기식 계획에 대한 노조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파리 함혜리특파원|특히 독일에서는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주요 기업들이 임금인상 없는 노동시간 연장을 요구하자 노조가 경고파업 등으로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이런 가운데 재계와 정계에서 ‘고통분담론’이 대두되면서 노동시간 연장 문제는 노·사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확대되고 있다. ●근로시간 연장으로 ‘U턴’ 독일의 노동자 1인당 평균 근로시간은 지난 30년간 25%가 줄었다.노동조합과 회사측 합의로 주 35시간 근무제는 10년째 지속돼왔다.그러나 최근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임금이 싼 동유럽 국가들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실업률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고, 경기 불황까지 겹치면서 독일의 대기업 사업장에서는 신규투자를 확대하거나 공장이전 계획을 백지화하는 조건으로 근로시간 연장에 노사가 합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근로시간 연장의 물꼬를 튼 기업은 독일 최대 전기전자업체인 지멘스.지멘스 노사는 지난달 추가적인 임금인상 없이 주당 근무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환원하는 데 합의했다.지멘스 경영진은 당초 노조가 노동시간 환원에 합의하지 않으면 휴대전화 공장 2곳을 임금이 5분의1에 불과한 헝가리로 옮기고 20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밝혔었다. 지멘스 노사의 전격 합의를 계기로 다임러크라이슬러,오펠 등 독일 주요 기업들이 생산비 절감을 위해 노동시간 연장을 본격 추진하고 나섰다. 프랑스에서는 독일계 기업인 보슈의 근로자들이 지난 19일 정리해고와 공장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추가 임금지불 없는 노동시간 연장을 수용했다.리옹 인근의 베니시외에 있는 자동차 부품 생산공장 ‘보슈 프랑스’의 노사는 추가 임금지불 없이 주당 노동시간을 현행 35시간에서 36시간으로 늘리고,회사측은 공장의 체코 이전계획을 철회하기로 합의했다.합의안에 대한 노조원 투표 결과 근로자 820명의 98%가 새로운 노동계약을 받아 들였다.반대는 2%에 불과했다. 독일이나 프랑스에 비해 주당 근로시간이 긴 편인 스위스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근로시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스위스의 주당 근로시간은 41.7시간으로, 연간으로 따지면 독일보다 200시간 이상 많다.스위스 경영자 단체는 인접국가와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근로시간의 연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임금 싼 동유럽으로 속속 공장이전 유럽에서는 근무시간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지만 논란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이미 서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공장을 임금이 상대적으로 싼 동유럽으로 이전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옮겨갈 계획을 갖고 있다.유럽연합(EU) 확대 이후 서유럽 기업들의 생산기지 이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지속되는 경기불황으로 프랑스와 독일의 실업률은 10%에 육박한다.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근로시간 연장을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독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가 주당 40시간 근무로 회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응답했다. 프랑스 중도우파 정부는 사회당 정부시절 채택된 35시간 근로제도에 본격적인 수정을 가할 태세이다. 지난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 35시간 근로제는 종래 법정 근로시간인 39시간을 35시간으로 줄여 더 많은 근로자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고 임금인상을 억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하지만 이 제도는 오히려 근로자들을 도덕적으로 해이하게 만들고,잠재적인 성장동력을 잠식시키면서 프랑스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 집권 중도우파 정부의 주장이다.또 주 35시간 근로제를 프랑스의 재정적자가 EU의 안정·성장협약이 정한 상한선(GDP의 3%)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주요 원인의 하나로 꼽고 있다.니콜라 사르코지 재무장관은 경제지 레제코와의 인터뷰에서 “주 35시간 근로제도로 인해 프랑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경쟁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잠재적인 성장동력이 잠식당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연간 160억유로의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더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 더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완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제주간지 액스팡시옹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54%가 주 35시간 근무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52%는 점진적인 폐지를 지지했다.또 최근 여론조사 결과 기업주 1000명의 93%는 35시간 근로제를 수정해야 한다는데 동의했다. ●넘어야 할 산 많아 그러나 근로시간 연장으로 ‘U턴’하는 것은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사례에서 보듯 생각만큼 쉽진 않을 전망이다. 독일의 최대 자동차 메이커인 다임러크라이슬러는 주당 노동시간 연장을 둘러싸고 노사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경영진은 연간 5억유로의 생산비를 줄이기 위해 임금인상 없이 주당 근로시간을 35시간에서 40시간으로 늘리는 방안을 노조에 제안했다.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독일 남부 진델핑엔의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을 독일 북부 브레멘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옮기겠다고 밝혔다.‘협박’이나 다름없는 제안에 분개한 노조원 6만명이 지난 15일과 17일 경고파업에 돌입하자 메르세데스 벤츠 생산에 차질이 빚어졌다. 근로시간 연장을 둘러싸고 노사가 대립하는 와중에 경영진의 과도한 봉급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 프란츠 뮌터페링 사회민주당 당수 등 여야를 막론한 독일 정계 주요 인사들은 “대량 감원과 감봉 또는 임금 동결의 필요성을 강요하는 기업 경영진들이 고액봉급을 받는 것은 설득력이 없으며,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과 압력에 따라 위르겐 슈렘프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은 노조가 회사측 안을 수용할 경우 경영진 봉급을 10% 깎겠다며 20일 노조와 협상을 재개했으나 대기업 경영진에 대한 비판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이같은 사회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독일과 프랑스 등에서 불고 있는 근로시간 연장바람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전망이어서 유럽 노동시장 구조에 큰 변화가 예견된다. lotus@seoul.co.kr
  • 데이비드 코언 ‘마음의 비밀’

    ‘마음’과 ‘생각’은 어떤 과학적 기전을 갖고 있으며,어떻게 생기고,그 실체는 무엇일까? 이처럼 신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식의 정체 규명에 눈을 돌린 데이비드 코언의 새 책 ‘마음의 비밀’(원재길 옮김.문학동네 펴냄)은 학문과 의식,의식과 비의(秘意)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전에 미처 경험하지 못한 ‘마음의 세계’를 파헤쳐 눈길을 끈다. 영국의 심리학자이자 영화감독이며,100편이 넘는 정신의학 관련 다큐멘터리와 텔레비전 드라마를 연출해 아메리칸 필름 앤드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블루리본상까지 수상한 저자 코언은 마음,즉 자신의 내면,그것도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의 정체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해 이렇게 전제한다.“자신을 들여다본다는 건 고개를 돌리지 않고 뒤를 바라보는 일만큼 어렵다.” 코언의 말을 빌리자면 이런 ‘자신의 앎에 대한 탐구’는 독일 심리학자들의 분류한 전혀 다른 두 가지 연구방법,즉 ‘과학’과 ‘이해’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이중 ‘과학’이라는 방식은 의학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학적 탐구로 기능한다. 예컨대 약을 먹은 특정 실험그룹의 반응이나 행동을 관찰한 뒤 이를 단지 약을 먹지 않았다는 점 말고는 실험그룹과 다를 게 없는 그룹과 비교해 거기에서 나타난 차이에 주목하는 방식이다.이런 ‘과학’ 방법에 비해 ‘이해’라는 방법은 다분히 주관적이다.약을 먹은 개개인의 반응이나 행동을 분석한 뒤 이를 근거로 개별적인 결론을 이끌어 내기 때문이다.이렇게 해서 불가해한 뇌의 작용운리에 인간의 의지가 서서히 접근해 가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원리와 여기에서 얻어진 결론을 상세하게 기술하고,마음의 실체에 대해 뇌의학,정신분석학,심리학 등 다양한 입장을 전개해 읽는 이들의 이해를 도모한다.여기에서 코언이 ‘마음을 읽는 방법’으로 제시한 코드는 두 가지.하나는 해부학과 생리학에 근거해 의식의 비밀을 규명하고자 하는 ‘환원주의적 입장’이고,다른 하나는 프로이트가 그랬듯 인간 심리는 개인의 통찰에 의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주관적 입장’이다. 결국 이 두 가지 입장은 사회적 변화에 따라 우열을 반복하면서 변환과 수정 과정을 거치고 있다. 코언이 마음의 정체를 규명하겠다고 나섰지만 독자들은 이 책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손에 쥐지 못할 수도 있다.이는 코언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도 인간심리의 수많은 유형에 대해 답을 내놓지 못한 과학의 한계일 뿐이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겠습니다

    서울신문이 2004년 7월18일로 창간 100주년을 맞습니다.창간 100주년을 맞는 신문은 한국언론 사상 서울신문이 처음입니다.우리는 이 기쁨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지난 100년을 거울삼아 새로운 100년을 힘차게 열어 가고자 합니다. 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항일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정론의 선봉에 선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과 지령을 승계하고 있습니다.배설과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김구 등 선각자들이 신문 창간과 제작,보급에 참여한 대한매일신보는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한 구국언론이었습니다.최초의 시민운동이라 할 국채보상운동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의 실질적인 본부 역할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확산시키고 민족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침탈로 대한매일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전락했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신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매일신보 사원들이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출범한 서울신문은 창간호가 아닌 혁신속간호를 냅니다.지령도 1호가 아닌 제13738호였습니다.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은 것이지만 일제의 유산인 매일신보를 청산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서울신문에는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두분(오세창 사장,권동진 고문)과 한국역사 소설의 기념비적 걸작인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고문),어문학계의 권위자였던 그 아들 홍기문(편집국장) 등이 참여했습니다.좌우 이념대결이 첨예했던 해방공간에서 서울신문은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공정한 보도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 수립에 기여했습니다. 서울신문은 항상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국내 최초로 조석간제를 실시했는가 하면 1960년대 순 한글신문을 만드는 등 한글전용과 신문말 다듬기에 앞장섰고 1980년대 최초로 컴퓨터 조판 시스템을 도입해 뉴미디어 시대의 첨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지난 100년은 영광과 함께 오욕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대한매일신보가 일제 치하 매일신보로 전락했듯이 서울신문의 혁신속간 정신은 독재정권 아래서 퇴색했습니다.그래서 ‘권력의 나팔수’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고 4·19혁명 때 성난 시위대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참담한 비극도 겪었습니다. 이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1998년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꾸고 2002년 사원들이 제1대 주주인 민영화를 이루어 냈습니다.그리고 지난 5년 동안 공정보도를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올해 초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환원하고 창간 100주년을 맞이합니다.우리는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서울신문-대한매일-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영욕의 역사를 겸허히 되돌아 보면서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100년은 한 세기를 접고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관행적 사고로는 따라잡기 힘든 질적 대전환의 시기에 놓여있습니다.서울신문은 시대정신을 이끄는 신문으로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 하겠습니다.국민과 국익을 비추는 세상의 등불이 되겠습니다. 서울신문의 사시는 “바른 보도로 미래를 밝힌다. 공공 이익과 민족 화합에 앞장선다”입니다.따라서 서울신문은 무엇보다 남북 통일을 앞당기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민족 화합과 민족 공동체 회복에 더욱 앞장서면서 통일지향의 중도적 진보 노선을 유지해 가겠습니다.어느 정파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한 보도로 정치개혁을 이끌고 지역·계층·세대간 갈등 해소는 물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신장에도 힘을 쏟겠습니다.자유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경제구조가 정착되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 서울신문은 항상 독자의 편에서,진실의 편에서 새로운 100년을 힘차게 열어가겠습니다. ˝
  •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겠습니다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겠습니다

    서울신문이 2004년 7월18일로 창간 100주년을 맞습니다.창간 100주년을 맞는 신문은 한국언론 사상 서울신문이 처음입니다.우리는 이 기쁨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 지난 100년을 거울삼아 새로운 100년을 힘차게 열어 가고자 합니다. 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항일구국의 기치를 높이 들고 민족정론의 선봉에 선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과 지령을 승계하고 있습니다.배설과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김구 등 선각자들이 신문 창간과 제작,보급에 참여한 대한매일신보는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 같았던 대한제국 말기 우리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한 구국언론이었습니다.최초의 시민운동이라 할 국채보상운동과 항일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의 실질적인 본부 역할을 하면서 항일운동을 확산시키고 민족의 입장을 대변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국권침탈로 대한매일은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로 전락했다가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신문으로 다시 태어납니다.매일신보 사원들이 자치위원회를 구성해 출범한 서울신문은 창간호가 아닌 혁신속간호를 냅니다.지령도 1호가 아닌 제13738호였습니다.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의 지령을 이은 것이지만 일제의 유산인 매일신보를 청산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취지였습니다. 당시 서울신문에는 3·1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두분(오세창 사장,권동진 고문)과 한국역사 소설의 기념비적 걸작인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고문),어문학계의 권위자였던 그 아들 홍기문(편집국장) 등이 참여했습니다.좌우 이념대결이 첨예했던 해방공간에서 서울신문은 어느 한쪽에도 기울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공정한 보도로 새로운 민주주의 질서 수립에 기여했습니다. 서울신문은 항상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국내 최초로 조석간제를 실시했는가 하면 1960년대 순 한글신문을 만드는 등 한글전용과 신문말 다듬기에 앞장섰고 1980년대 최초로 컴퓨터 조판 시스템을 도입해 뉴미디어 시대의 첨단에 섰습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의 지난 100년은 영광과 함께 오욕의 그림자도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대한매일신보가 일제 치하 매일신보로 전락했듯이 서울신문의 혁신속간 정신은 독재정권 아래서 퇴색했습니다.그래서 ‘권력의 나팔수’라는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했고 4·19혁명 때 성난 시위대에 의해 사옥이 불타는 참담한 비극도 겪었습니다. 이 부끄러운 역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1998년 서울신문은 대한매일로 이름을 바꾸고 2002년 사원들이 제1대 주주인 민영화를 이루어 냈습니다.그리고 지난 5년 동안 공정보도를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올해 초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환원하고 창간 100주년을 맞이합니다.우리는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서울신문-대한매일-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영욕의 역사를 겸허히 되돌아 보면서 깊은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해 나가겠습니다.100년은 한 세기를 접고 새로 시작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관행적 사고로는 따라잡기 힘든 질적 대전환의 시기에 놓여있습니다.서울신문은 시대정신을 이끄는 신문으로 민족의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담당 하겠습니다.국민과 국익을 비추는 세상의 등불이 되겠습니다. 서울신문의 사시는 “바른 보도로 미래를 밝힌다. 공공 이익과 민족 화합에 앞장선다”입니다.따라서 서울신문은 무엇보다 남북 통일을 앞당기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민족 화합과 민족 공동체 회복에 더욱 앞장서면서 통일지향의 중도적 진보 노선을 유지해 가겠습니다.어느 정파에도 치우치지 않는 불편부당한 보도로 정치개혁을 이끌고 지역·계층·세대간 갈등 해소는 물론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신장에도 힘을 쏟겠습니다.자유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하는 경제구조가 정착되도록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신문이 될 것입니다. 서울신문은 항상 독자의 편에서,진실의 편에서 새로운 100년을 힘차게 열어가겠습니다.
  • 국민들 기업호감지수 39점

    우리 국민의 10명 중 6명은 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전국 성인남녀 1028명을 대상으로 기업호감지수(CFI)를 조사한 결과,100만점 만점에 39.1점에 그쳐 지난해 12월 1차 조사 결과(38.2점)와 비슷하게 나왔다고 15일 밝혔다. CFI 39.1점은 ‘보통(50점)’에도 크게 미달하는 것으로 부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기업에 대한 공익우선 기대감,과도한 평등주의 요구 등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평가 요소별 점수는 국제경쟁력이 58점으로 가장 높았다.이어 생산성 향상과 기술개발(50.4점),국가경제 기여(37.2점),사회공헌 활동(30.8점),윤리경영(14.1점) 순이었다. 기업활동의 우선 순위에 대해서는 ‘사회 환원’이란 응답이 1차 조사 당시 46.5%에서 43.2%로 낮아진 반면 ‘이윤 창출’은 53.5%에서 56.8%로 높아져 시장경제 원리에 대한 이해도는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그럼에도 ‘부자들이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는 의견(70.8%)이 ‘정당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25.2%)보다 2배 가까이 많아 부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여전히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반면 대학생들은 ‘부(富)’에 대한 긍정적 응답이 1차 조사의 20.8%에서 40.7%로 높아져 눈길을 끌었다.이처럼 ‘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성장에서 기업의 역할이 매우 컸다.’(84.1%),‘경제발전을 위해 가장 많이 의지해야 할 주체는 기업이다.’(70.1%) 등 기업에 대한 기대감은 매우 높았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사립학교법 개정방향’ 대담

    교육계가 또 한 차례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 같다.사립학교법 개정안이 쟁점이 됐다.교육부가 엊그제 검토하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국회에 보고하면서 방아쇠를 당겼다.사립학교 교직원을 법인 이사회를 대신해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임명토록 하고,이사회에서 설립자의 친·인척 비율을 줄이는 내용 등이 포함되어 있다.한국사학법인연합회는 교육의 공공성을 빙자해 사유 재산권을 침해하려는 것으로 대다수의 건전 사학의 발전을 저해한다고 반발하고 나섰다.그런가 하면 2000년 이래 지금의 사립학교법의 개정을 끈질기게 주장해온 범국민교육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그들대로 아쉬움을 토로한다.전국 중·고교의 32.2%,대학의 85.5%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학교의 틀을 다시 짜는 사립학교법 개정 작업은 쟁점도 많고,그 하나하나가 민감한 사안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학교법인 상산학원 이사장인 홍성대 한국사립중고교법인협의회 명예회장과 범국민교육연대 상임대표인 박거용 상명대 교수와 대담을 마련해 사립학교법 개정의 핵심을 짚어 보았다. 사립학교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는 까닭이 무엇인가요. -박 교수 우리 교육은 사립학교의 의존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국민의 교육기관으로서 위상이 높은 만큼 교육기관으로서 공공성이 요구된다 할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은 비리와 부정,부패가 구조화되어 있고 관행화되어 있습니다.잘못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도덕 불감증에 빠져 있습니다.사립학교의 공공성,학교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이 확보되도록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할 것입니다. -홍 회장 사학의 비리가 침소봉대되어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립니다.4년 전 일입니다.1998년부터 2000년까지 905개 사립 중·고교가 교육청 감사에서 부정과 비리로 적발됐다고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1.1%만이 문제의 비리였고,나머지는 행정착오나 부주의로 빚어진 실수였습니다.비리 문제도 그렇습니다.전국의 사학 법인이 1300여개,학교가 2000여개에 이릅니다.그 수가 많다 보니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사학을 질타하는 대신에 대다수의 건전한 사학을 격려하고 뒷받침해 주는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입니다. 사학 법인들은 이번 교육부 개정안에서 무엇이 문제라고 보십니까. -홍 회장 사립학교의 자산은 사유재산입니다.설립자의 재산은 아니지만 사학을 경영하는 법인의 재산입니다.무릇 재산권이 보호되어야 하듯 법인의 독자적인 재산권 또한 보장되어야 합니다.또 하나 사립학교를 세운 건학이념을 실현할 수 있는 자주성은 확보돼야 할 것입니다.학교 운영에서 인사권,재정권,감사권 그리고 규칙 제정권 등이 침해된다면 사립학교의 존립 근거를 흔드는 것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박 교수 사학은 개인 재산의 사회환원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육영사업을 하겠다고,중·고교며 대학을 세울 때에는 이미 개인의 재산이 아닐 것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학 재단들이 학교를 문어발식으로 거느리고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세습의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사학이 튼실하게 육성될 수 있는 장치들을 마련하자는 것입니다.사학의 특수성을 강조하시지만 사립 초등학교에서 보듯 사립학교의 특수성도 이제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사학 재단의 이른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재단 이사회에 손대야 하나요.무슨 방안이 있을까요. -홍 회장 사학 재단의 이사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닙니다.공무원법을 준용하여 자격을 제한하고 있고 또 관할청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전체의 3분의1로 제한하고 있는 설립자의 친·인척을 문제 삼지만 현실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사립학교 이사회는 대개 이사장을 포함해 7명으로 되어 있습니다.최소한 3분의1은 보장을 해주어야 이사장을 제외하고 한명의 이른바 친·인척이 이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가업을 잇는다는 차원에서 한 사람쯤은 이사회에서 활동하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박 교수 사학에서 이사회의 권한은 무소불위입니다.전권을 행사합니다.그 권한을 분산하자는 것입니다.한국 사학의 이사회 내막을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오너 이사라는 실세 이사가 있습니다.실세 이사를 중심으로 그의 뜻을 헤아려 움직이는 거수기 이사 그리고 사학 재단끼리 서로 바꾸어 이사를 맡아 주는 품앗이 이사가 포진합니다.여기에 정·관계 출신으로 이른바 외풍을 막아줄 방패 이사가 자리를 잡습니다.비리가 싹틀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학 비리 관련자가 학교에 복귀할 수 있는 기간을 지금의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려고 하고 있지요. -홍 회장 사학 비리는 근절되어야 합니다.또 부정을 저질렀다면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그러나 이사장 개인이 비리를 저질렀다 해서 다른 이사까지 취임승인을 마구 취소하는 관행은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또 다른 직종과 형평성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공무원이 비리와 관련해 해임되면 3년,파면당했을 경우 5년이면 복귀할 수 있습니다.사학 관련자에게 공무원과 같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게 옳은지 숙고해야 할 것입니다. -박 교수 이사장의 비리를 개인비리 차원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정상적인 이사라면 이사장의 비리를 막았어야 합니다.학교 운영의 모든 결정이 이사회에서 이뤄지는데 이사장의 반교육적 행태를 몰랐을 리 없습니다.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복귀 시한의 형평성을 말씀하셨는데 다음 세대 교육을 자임한 처지이고 보면 엄격한 도덕성을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직원 임명권을 아예 학교장이나 총·학장에 부여하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지 않을까요. -박 교수 지금은 대학의 경우 이사회의 임명권을 총·학장에게 위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 학부나 학과의 추천을 받아 인사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총·학장을 거쳐 이사회가 최종 임명토록 하는 방안이 정착되어야 합니다.경영권 침해 논란이 있다면 신사적으로 얼마든지 풀 수 있는 문제라고 봅니다.중·고교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이사회에서 임명하는 대신,국·공립학교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가운데 임명토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홍 회장 먼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교직원을 임명하면 투명성이 확보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의문입니다.또 학교를 대표하는 것은 학교장이나 총·학장이 아니라 법인 이사회입니다.이사회의 책임하에 교직원을 임명토록 해야 합니다.건학이념을 실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사회에서 임명권을 행사해야 맞습니다.학교장 등은 학교를 떠나면 그만이지만 법인 이사회는 영원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합니다.사립 중·고교도 국·공립처럼 임용고시를 통과한 사람 중에서 임용토록 하자는 주장은 이미 교원자격증이 있는 사람의 자격을 또 심사하자는 것으로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같은 기구들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은 어떻습니까. -박 교수 국·공립 중·고교에서 학교 운영위원회가 도입되면서 예산의 규모며 쓰임새 등을 점검해 학교 운영이 크게 건전해졌습니다.재원의 효용성을 높이고 투명성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적극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사립학교법을 개정하는 과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홍 회장 이사회 이외에 다른 기구들을 법제화할 경우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면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그 혼란의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교육은 살아 있는 유기체입니다.교육 활동을 획일적으로 규제하기보다는 선의의 경쟁을 유도해 옥석이 가려지도록 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입니다.일부 사학의 잘못 때문에 초가삼간 태우는 사립학교법 개정이 되어선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사회 정인학 교육대기자 ˝
  • 기업인재 연구 CEO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

    “1988년까지 한국경제가 우수한 노동력과 ‘중간기술’을 바탕으로 한 제품 품질을 앞세워 버텨왔다면 앞으로는 최고경영자(CEO)의 경영능력으로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아야 합니다.” CEO컨설팅으로 유명한 ‘리즈 경영컨설팅’ 이해익(59) 대표는 11일 “기업이 열 냥이라면 CEO는 아홉 냥”이라면서 CEO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 대표는 실천하는 CEO의 표본으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공인의 덕목을 갖춘 CEO로 생전에 이룬 부(富)를 사회에 환원한 고 유일한 유한양행 회장을 꼽았다.사람을 경영할 줄 알았던 경영자는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었고,떠날 때를 알아 박수를 받은 사람은 정문술 전 미래산업 대표와 퇴임 이후 그룹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던 구자경 LG명예회장이라고 덧붙였다. 겉으로 요란하지 않지만 묵묵히 자기일을 해내는 ‘없는 듯한 CEO’로는 동부그룹 한신혁 부회장,철저히 고객에 충성했던 CEO는 위암으로 입원한 병실에서도 신제품 과자 샘플을 쌓아놓고 있었던 크라운제과 창업주 윤태현 회장이었다. 지식경영의 대표 주자로는 가구·침대·인테리어 소품 전문업체인 ‘까사미아’의 이현구 사장을,투명경영으로 성공한 CEO로는 휠라코리아의 윤윤수 회장을 꼽았다. 유원건설 감사실장,진로그룹 이사 등을 거쳐 현재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기업평가위원회 고문 등으로 활동 중인 이 대표는 최근 노부호 서강대 교수,곽수근 서울대 교수 등과 함께 ‘CEO에세이스트 클럽’을 발족시켰다. 앞으로 CEO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회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폴리시 메이커] 이천세 철도청 영업심의관

    “철도의 핵심 과제는 주중 수요를 확대하는 것입니다.”내년 공사(公社) 전환을 앞두고 철도의 영업능력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철도청 이천세(53) 영업심의관은 여객수요 창출을 최대 현안으로 꼽았다. 이 심의관은 “개통 100일 동안 고속철도 이용 승객이 700만명을 돌파하고,특히 98.56%의 정시율을 보인 것은 인정받을 만한 성과”라고 말했다.다만 평일 승차율과 호남선 이용률의 저조,여기에 역방향 및 출입문 인접 좌석 할인,열차 지연료 지급 등은 영업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그러면서도 철도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고객이 원하는 기본 틀을 갖춘 후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첫 시도가 고속철 개통 이후 처음 이뤄지는 ‘7·15 열차운영체계 개편’.고속철 개통에 따라 감축과 이로 인한 이용객의 불만이 쇄도했던 일반열차 운행을 고속철 개통 전으로 일부 환원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번에 가는 것을 원하기에 환승에 거부감을 보인다.”면서 “지속적인 평가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열차 체계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현재 철도는 정부에서 공사체제로,일반열차에서 고속철로의 전환을 앞둔 혼란기라고 소개했다. 철도 영업분야의 일대 혁신도 강조했다.공사 전환은 공공성에서 수익성으로 우선 순위가 바뀌게 됨에 따라 철저한 장사꾼 조직으로 탈바꿈하지 않는다면 부실기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전 철도 종사원의 영업맨화와 역의 개념 전환을 강조한다. 우선 연말부터 홈티케팅과 e-티켓제를 도입해 역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계획이다.대신 직원들은 이용객 안내 등 서비스를 제공하고 역들은 각종 여행상품과 호텔·항공권을 판매하는 세일즈 창구로 활용된다.8월부터 각 역에는 철도영업설계사가 배치돼 주중 직원들의 출장이 잦은 기업과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여행 스케줄을 잡아주고 철도상품 판매도 병행한다.단체 여행객에 대해 할인 혜택과 열차 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열차 다이아(운행시간표) 상품도 내놓는 등 주중 수요 확대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라고 소개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창간 100년-DMZ 51년] 대한매일신보 100주년 학술회의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7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서울신문사가 후원하고 한국언론학회가 주관한 이날 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은 구한 말 항일구국운동의 선봉에 섰던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적 의미와 참여인물들의 역할,당시 보도 내용 등을 광범위하게 조명했다.특히 국내 현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는 서울신문의 대한매일신보 승계와 관련,계승의 불가피성과 함께 단절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개진했다. 채수삼 서울신문사 사장은 축사에서 “서울신문사 임직원들은 서울신문이 1904년 7월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 독립정신과 지령을 계승해온 데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고 “올해 1월1일자로 제호를 서울신문으로 환원하면서 일제 아래서 매일신보를 발행한 부끄러운 역사도 100년 역사의 일부분임을 인정했다.”고 소개했다. 채 사장은 “오욕의 역사일지라도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면에서 거부할 수 없는 우리의 민족 수난기 역사”라고 전제한 뒤 “서울신문은 철저한 자기반성 위에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을 되살리면서 동시에 시대가 부여한 언론의 사명도 투철히 이행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강력한 항일논조… 신민회 본거지”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대한매일신보 창간의 역사적 의의와 그 계승 문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대한매일신보는 민족사적 전환기에 발간되면서 강력한 항일 논조로 한국민의 입장을 대변한 가장 영향력있는 신문이었다.”면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도 자신의 수백 마디 말보다 이 신문의 기사 한줄이 한국인들에게 더 위력이 크다고 토로했을 정도”라고 밝혔다. 정 교수는 또 “대한매일신보와 영문판 ‘Korea Daily News’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알리고 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 비밀결사조직이었던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되었다.”면서 “많은 의병들이 이 신문의 영향을 받아 무장 항일투쟁에 가담했다고 증언했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서울신문의 100주년 계승문제와 관련,민족사관의 견지에서는 단절의 필요성을,실증사관의 견지에서는 계승의 불가피성을 제시했다.그는 일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역사를 새롭게 태어난 서울신문의 역사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되지만,매일신보가 언론의 역사에서 단절시킬 수 없는 엄연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이를 서울신문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것은 주관적인 가치 판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종합토론에서 이경형 서울신문 편집제작이사는 “19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이라는 제호의 신문을 발행하면서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위창 오세창 사장 등 당시 서울신문 주역들은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신보를 ‘혁신 속간’한다고 천명했다.”고 상기시키고 “지령도 1호가 아니라 대한매일신보와 매일신보의 지령까지 더한 13,738호였다.”고 강조했다.이 이사는 서울신문은 오는 18일 창간 100주년을 맞으면서 매일신보의 지령을 합산하지는 않았지만 매일신보의 시기도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서울신문-대한매일-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100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고 지난주 발간한 ‘서울신문 100년사’에도 매일신보가 독립편으로 다뤄졌다고 소개했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는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은 민족주의,서울신문은 민족주의와 민중주의”라면서 “서울신문 종사자들은 이러한 창간정신을 내재화해야만 과거의 계승·발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참여인물과 언론사상’등 8개 주제 발표 학술회의에서는 또 박정규 한남대 사회학부(정치언론국제학 전공)교수가 ‘대한매일신보의 참여인물과 언론사상’,이연 선문대 언론광고학부 교수가 ‘대한매일신보와 국채보상운동-배설과 양기탁 등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오인환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가 ‘대한매일신보 사지에 대하여’를 주제로 발표했다. 또 김덕모 호남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가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내용분석’,채백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잡보 내용분석’,안종묵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연구소 연구원이 ‘광고 분석’,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강사가 ‘대한매일신보 독자의 신문인식과 신문접촉 양상’을 각각 발표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이경형칼럼] 창간호 없는 서울신문

    오는 18일은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그런데 어떤 이들은 “웬 100년?” “100년 전에 서울신문이 있기라도 했느냐.”고 퉁명스럽게 되묻곤 한다. 얼른 듣기엔 말이 된다.그러나 서울신문 창간 제1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귀를 쫑긋 세운다.‘서울신문’이라는 제호의 신문은 일제 식민통치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1945년,그 해 11월23일 처음으로 발행되었으나,지령은 제1호가 아닌 제13738호였다.1904년 구한말,항일 구국 언론의 표상이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창간호로부터 기산하여 일제에 강제 매수된 매일신보 지령까지 더했기 때문이다.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위창 오세창 사장 등 당시 서울신문 주역들은 새로운 신문을 ‘창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신보를 ‘혁신 속간’한다고 천명했다.“일제의 괴뢰였던 매일신보의 성격을 완전히 불식하고,해방 조선의 대변기관으로 새 출발한다.”고 밝혔다.초대 주필이었던 이관구는 “서울신문은 대한매일신보의 법통을 이은 적자(嫡子)”라고 규정하면서 구국 독립언론의 정신을 계승할 것임을 공표했다. 서울신문의 지령은 그 후 자유당 말기인 1959년 3월,야당 의원의 필화(筆禍)사건을 둘러싼 민족정기 논란을 계기로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 지령을 버리고,1945년 ‘혁신 속간’호부터 계산하여 새로 지령을 매겼다.그러다가 1998년 11월 제호를 대한매일로 변경하면서 매일신보 지령을 제외하고 대한매일신보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합산하여 승계했다.총독부기관지 노릇을 한 시기의 지령을 계승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올해 1월1일자로 제호가 대한매일에서 다시 서울신문으로 되돌아왔지만,6년전 표방했던 대한매일신보의 창간 정신과 지령 계승은 그대로 유지했다.제호 환원은 광복 직후 좌우 이념 대결의 해방공간에서 중립적·통합적 자세로 민주주의 체제 확립을 주창했던 서울신문의 ‘혁신 속간’정신도 오늘에 되살리고,동시에 친근감 있고 지명도 높은 서울신문 브랜드를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서울신문은 창간 100년을 맞으면서 비록 매일신보의 지령은 합산하지 않았지만,매일신보 시기도 ‘대한매일신보-매일신보-서울신문-대한매일-서울신문’으로 이어지는 100년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것은 사실대로 받아들이고 있다.지난주 발간된 ‘서울신문 100년사’도 제1편 ‘아! 대한매일신보’에 이어 제2편에 독립 항목으로 ‘식민시대의 기록-매일신보’를 실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신문은 지난 1971년과 1993년에도 ‘뿌리찾기 운동’으로 대한매일신보에서 발원한 역사를 복원하려 했으나,매일신보 시기의 편입여부 문제로 미완에 그쳤다.돌이켜보면 서울신문 100년사는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큼 명암이 엇갈렸고,굴절도 많았다.민족 전체의 수난기였던 일제 통치하의 매일신보 시절뿐이 아니다.4·19혁명 때는 분노한 민중들에 의해 사옥이 불타버렸고,독재·군사 정권 아래서는 ‘권력의 나팔수’라는 오명도 남겼다. 역사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아무리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이제 서울신문은 영욕의 역사를 반추하며 처절한 반성 위에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서울신문은 사원이 최대 주주이고,사원들이 사장을 뽑는 민영화된 신문이다.한 세기 전,한국 언론사에서 영롱한 빛을 발하던 대한매일신보의 위상을 오늘에 되찾는 것은 결국 서울신문 구성원 전체의 몫이다. 편집제작 이사 khlee@seoul.co.kr˝
  • 私學교원 임면권 교장에

    사립 초·중·고교 및 대학의 교직원 임면권이 법인에서 학교장 및 총장에게 넘어갈 전망이다.비리 관계자의 학교 복귀 제한 기간은 현행 2년에서 5년 이상으로 대폭 강화된다. 특히 이사회의 친인척 비율은 3분의1에서 4분의1 내지 5분의1로 줄어든다.비리 사학에 대한 학부모의 감사청구권제도 도입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6일 사학의 책임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마련,당정 협의를 거친 뒤 입법예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교육부는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에 사립학교법 추진 상황을 보고했다. 사학법인들은 그러나 개정안에 “건전한 사학마저 비리 사학과 싸잡아 지배구조를 바꾸려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적잖은 마찰이 예상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이사회의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교직원 임면권은 법인이 아닌 학교장에게 주기로 했다.물론 법인은 교직원의 임용 규모 책정권뿐만 아니라 총장 및 학교장의 임면권을 갖는다.대학의 교직원 임면권은 1981∼1990년에는 학교장에게 있었으나 1990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법인으로 환원됐다.연세대 등 10여개 대는 아직 정관으로 총장에게 위임된 상태이다. 교육부 김보엽 서기관은 “법인은 학교장을 임명하고,현장에 있는 학교장은 교육활동에 적임인 교원을 뽑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조치”라면서 “사학 비리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비리 관련자들이 학교에 돌아오는 기간도 5년 이상으로 제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욱이 임시이사가 파견됐거나 임시이사를 보낼 사유가 충분한 문제 법인에는 교수·직원 등 구성원들에게 이사의 3분의1가량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법인의 임원취임 승인 취소 요건도 명시,승인 취소를 쉽게 할 수 있게 했다. 교육부는 이 법안이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하면 내년 하반기에는 시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립학교법은 2001년 3개 개정안이 의원 입법으로 상정됐으나,첨예한 이해관계로 본회의에 올려지지도 못한 채 제16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자동 폐기됐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아름다운 ‘사회문화사업’ 경쟁

    KT와 SK텔레콤이 사회문화사업에서도 경쟁 구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사업은 KT가 3년전 ‘사랑의 봉사단’ 이름으로 먼저 시작했고,최근엔 ‘한국통신문화재단’을 ‘KT문화재단’으로 이름을 바꿔 문화사업 분위기를 일신했다.SK텔레콤은 수천억원 규모의 관련 재단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4일 두 업체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올해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수천억원대의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추진 중이다.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우선 최고 2000억원의 기금을 만들어 10월까지 재단을 만들 계획이다.SK텔레콤의 지난해 순이익 1조 9000여억원의 10%에 이르는 액수다.기금은 저소득층 가정을 돕고,가출 청소년의 자활,장애청소년 정보화 등 청소년 복지활동 지원 등에 쓰일 전망이다. 이동통신시장의 강자인 SK텔레콤은 그동안 단발성 사회공헌사업을 했지만 수익 규모에 견줘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최근 이윤의 사회환원 분위기속에 KT의 사회공헌 활동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KT는 SK텔레콤보다 3년 앞선 2001년 ‘KT사랑의 봉사단’을 출범시켰다.지난해 사회공헌부를 사회공헌팀(상무급)으로 승격시켜 공익사업과 자원봉사,기부협찬 등으로 세분화했다.한 해에 1000억원 정도의 예산으로 285개 분야에서 628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자원봉사 활동은 한 해에 4회 이상 이벤트를 마련하고 있다.공익사업으로는 ‘인간사랑,환경사랑’이란 이름으로 ‘청각장애인 소리찾기사업’ ‘자살예방 캠페인’ 등을 하고 있다.한 해에 10명씩 지원하고 있다.임태영 사회복지부장은 “자연문화유산 보존운동의 일환으로 청정지역인 강원도 동강의 개발부지를 매입,전통가옥을 지어 훼손을 막고 있다.”며 차별화한 환경보호운동을 강조했다. KT는 또 1990년 출범,정보통신문화를 일궈온 한국통신문화재단을 지난 1일자로 ‘KT문화재단’으로 바꿔 새롭게 출발했다.문화재단은 다양하게 발전하는 ‘정보통신 문화와 예술’의 대중화와 정보통신 분야의 학술 및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특히 정보통신강국이 되면서 겪고 있는 정보화 역기능 해소에 역점을 둘 참이다. 정기홍기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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