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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8세 미테랑 이례적 공항 마중/파리 첫날(김대통령 유럽순방여로)

    ◎출국직전까지 “가뭄대책 차질없게”당부/불 언론,“미·일 외교축 탈피 「세계화」 시동” 김영삼 대통령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WSSD)참석및 프랑스 체코 독일 영국 벨기에 등 5개국을 방문하기 위한 13박14일의 유럽순방여로에 올랐다. 김 대통령은 2일 상오10시20분 대통령특별기로 서울공항을 떠나 13시간40분 비행 끝에 2일 하오4시(한국시간 2일 밤12시)파리 오를리공항에 안착,공식환영을 받은 뒤 엘리제궁에서 미테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등 프랑스에서의 국빈방문일정에 들어갔다. ○엘리제궁서 1시간 ▷정상회담◁ ○…김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파리의 대통령관저인 엘리제궁에서 1시간남짓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 엘리제궁 현관에서 미테랑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김 대통령은 미테랑대통령과 함께 사진기자들을 위해 밝은 모습으로 잠시 포즈를 취한뒤 정상회담장인 2층 대통령집무실로 직행. 이날 회담에서 두 정상은 전통적인 두나라의 우호관계를 재확인하고 북한핵문제 해결,한국의 유엔안보리 진출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두나라의 교역및 상호투자증진과 과학기술교류 증대 등에 대해 폭넓게 협의. 두 정상은 또 한국과 유럽연합(EU) 의장국인 프랑스가 한국과 EU가 추진하고 있는 기본협력협정과 공동정치선언의 조기체결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대한민국과 유럽연합 의장국간 공동성명」을 채택.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로명 외무부장관과 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이,프랑스측에서 쥐페 외무장관과 바이잘 대통령외교특보 등이 배석. ▷오를리공항◁ ○…김 대통령은 이날 하오4시(현지시간)파리 오를리공항에 도착,2박3일의 프랑스방문 일정을 시작. 김 대통령은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장선섭 주프랑스대사와 주안 프랑스측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고 특별기 트랩을 내려와 영접나와있던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반갑게 악수. 미테랑 대통령이 『먼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환영합니다』라고 말하자 김 대통령은 『이렇게 공항까지 직접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답례. 올해 78세의 고령인미테랑 대통령이 이처럼 공항까지 직접 나와 외국정상을 영접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오는 4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미테랑 대통령은 김 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자신으로서는 마지막 국빈영접이라는 점을 감안,의전과 경호 등 모든 면에서 최선의 준비를 다했다는 것. 김 대통령은 미테랑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주안 의전장으로부터 프랑스측 영접인사들을 소개받은뒤 미테랑 대통령과 잠시 환담을 나누며 곧바로 공식 환영식장인 공항안 「국빈각」으로 이동. 김 대통령은 두나라 국가연주와 의장대 사열에 이어 미테랑 대통령의 환영사를 들은뒤 답사를 통해 『나는 오늘 위대한 문화와 예술의 나라,그리고 민주주의 사상의 요람국인 프랑스를 방문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고 프랑스방문 소감을 피력. 김 대통령은 오를리공항 도착행사가 모두 끝난 뒤 부인 손 여사와 함께 프랑스측이 준비한 승용차편으로 영빈관인 마리니호텔로 출발. ▷현지 분위기◁ ○…김 대통령의 유럽순방은 미국과 일본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유럽에서 새로운 상대를찾으려는 한국정부의 정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프랑스의 일간 르 몽드지가 2일 보도. 이 신문은 김 대통령이 유럽 6개국순방의 첫 방문국인 프랑스에 도착한 이날 『한국의 유럽에 대한 관심 증대』라는 도쿄발 기사에서 『지난 연말 김 대통령이 야심적으로 내건 「세계화」라는 구호에는 미국의 정치적및 상업적 지배와 일본의 경제및 기술적 영향권에서 벗어나 협력상대를 다양화하려는 한국의 의지가 숨어 있다』고 해석. ○… 한국의 경제발전은 오는 2010년까지 과거 점령국인 일본으로부터 동북아시아지역의 최강국 위치를 탈취하겠다는 집념을 반영한 것이라고 프랑스의 일간 르 피가로지가 2일 보도. 르 피가로는 김 대통령이 이날 파리에 도착하는 것과 때맞춰 보도한 「한국,일본에 복수」라는 제목의 서울 발신 기사에서 한국이 비극의 상징인 국립중앙박물관의 해체를 시작한 것은 「역사에 대한 복수」라면서 그같이 언급. 한편 경제전문지인 라 트리뷴은 김 대통령의 이번 방문을 계기로두 나라사이에 에너지,우주 및 군사분야에서 새로운 계약이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 ▷특별기◁ ○… 김 대통령은 특별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한 직후 가벼운 스웨터차림으로 갈아입고 기내를 돌며 공식 비공식 수행원및 수행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기내를 한바퀴 돈 뒤 김 대통령은 조종실에도 들러 김상록 기장(57)을 격려하고 「우리가 어느 코스로 유럽에 가느냐」고 묻자 김 기장은 항로가 표시된 지도를 펼쳐보이며 「시베리아를 거쳐 첫 기착지인 파리에 도착하게 되는데 곧 개설되는 한·중직항로를 이용하면 비행 시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라고 설명. ○국력신장 보여줄 것 ▷서울공항◁ ○…김 대통령은 2일 상오 10시 서울공항 옥내 행사장에서 부인 손명순 여사와 함께 환송식에 참석한 뒤 특별기편으로 출국. 김 대통령은 『유엔사회개발정상회의에서 우리의 발전경험을 널리 소개하고 우리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나라에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힐 것』이라면서 『선진국과 개도국간 입장을 조정할 수 있는 우리의 중간자 입장을 강조하고 개도국 사회개발을 위한 국제협력에 적극 동참할 뜻도 분명히 할 것』이라고 출국인사. 김 대통령은 또 『유럽 5개국 순방에서는 이들 나라 지도자들과 만나 우리의 통일문제와 통상 과학 기술 문화 등 다원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눔은 물론 민주화과정을 통해 활력 넘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천명. 이날 환송행사에는 민주당에서 최락도 사무총장과 신기하 총무도 출영.
  • 한­우즈벡 정상회담 주변

    ◎양국의 협력관계 착실한 발전 기대/김 대통령/전자·자동차·통신 등 한국기업 환영/카리모프 김영삼 대통령은 16일 올해 첫 국빈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관계증진 방안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열린 정상회담은 1시간10분동안 진행됐으며 대부분 카리모프대통령이 한국과의 협력을 강조하는 쪽이었다. 카리모프대통령은 『한국을 가장 중요한 우즈베키스탄의 전략적 파트너로 삼고 싶다』고 밝히고 『한국도 중앙아시아의 전진기지로 우즈베키스탄을 활용해 달라』고 당부.이어 『현재 우즈베키스탄에는 미국과 일본,독일이 들어와 있지만 여러가지 정황으로 한국하고 손을 잡아야 가장 유리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라면서 『전자·자동차·통신등 5∼6개 분야에 한국기업의 많은 투자를 바란다』고 희망.카리모프대통령은 『한국기업을 위해 시장을 개방할 것이며 또한 뭐든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투자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히고 『50대50의 투자조건을 기본으로 하되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겠다』고 약속.이날 회담에서 그는 특히 대우·삼성·LG에 대해 기대를 표시하면서 『우즈베키스탄 정부에서 보조금을 줄테니 한국국적기가 우즈베키스탄에 취항하게 해달라』고 요청. 이에 대해 김대 통령은 여러가지 사항을 긍정적으로 업계와 협의하도록 하겠다고 답변. ◇…정상회담에 앞서 청와대는 영빈관에서 카리모프 대통령내외를 위한 공식환영식을 진행. 두나라 대통령은 사열대에 올라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사열을 받았으며 김 대통령은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무궁화대훈장을 수여.김대통령은 이어 공로명 외무·서석재 총무처장관,최병렬 서울시장,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을 소개했고 카리모프 대통령도 술타노프 부총리겸 대외경제부장관과 카밀로프 외무장관 등을 소개. 환영식이 끝난 뒤 두 대통령은 승용차편으로 본관으로 이동,대통령접견실에서 정상회담을 시작. 김 대통령은 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해 6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카리모프 대통령은 물론 온국민이 따뜻하게 환영해준데 대해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하고 『이번 방한을 계기로 두나라가 협력관계를 더욱 착실하게 진전시킬 것으로 믿는다』고 기대. 카리모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대통령이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해 사마르칸트에까지 간 것을 모든 국민이 기억하고 방문기간이 짧았던 것을 아쉬워 했다』고 친근감을 표시. 이날 회담에는 우리측에서 공외무·유종하 청와대외교안보수석·한이헌 경제수석·서건이 우즈베키스탄대사가 배석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술타노프 부총리와 아지모프 대외경제은행장 등이 배석. ◇…두 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집현실로 자리를 옮겨 두나라의 상호협력 강화에 관한 선언문에 서명. 이날 저녁 영빈관에서 열린 국빈환영만찬에는 우리측 1백49명 등 모두 1백76명이 참석.
  • 「공연예술의 메카」나윤도특파원 현장리포트(브로드웨이“새바람”:4)

    ◎맨해튼을 거닐며/트라이베카선 드니로 등 명우쉽게 만나/역사의 인물 헤일·그릴리·프랭클린동상 우뚝/구정때면 차이나타운에 용춤 행렬 장관/프랭클린가엔 테디 시어터 등 소극장 많아 『태양은 모든 것을 향해 밝게 빛난다(The Sun it shines for all)』 브로드웨이 280번지,챔버 스트리트와 교차 지점에 있는 시청 부속건물의 외벽 모퉁이에서 브로드웨이 쪽으로 돌출해 있는 작은 시계 「선 클록」(Sun Clock)에 새겨진 이 글귀는 브로드웨이의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한면이 50㎝ 정도에 불과한 정육면체의 청동주조물에 8각의 로마숫자판으로 된 이 시계는 스스로 태양이고 싶은 뉴요커들의 심정을 은연중에 대변해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원래 이 글귀는 19세기 중반 창간돼 1917년에 이 건물로 옮겨왔던 신문 선(The Sun)의 모토였다.뉴욕시청 바로 뒤에 떡 버티고 서서 격동기 미국 현대사의 감시자 역을 맡았던 선은 뉴욕 최초의 페니 페이퍼(한 부 값을 1센트 정도로 정해 누구나 쉽게 사 볼 수 있게 한 신문)로 모든 뉴요커들에게 따뜻한태양 역할을 자청했던 신문이다. 그후 1952년 이 신문이 폐간되고 한동안 선 클록도 멈춰 있었으나 이 시계를 사랑했던 부근의 시청 직원들과 각회사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금하여 보수해 놓았다.결국 선은 없어졌어도 선 클록은 뉴요커들의 희망의 목소리로 그자리에 남아 있다. ○남북 6개블럭 연결 남쪽으로 세인트 폴 교회가 있는 풀턴 스트리트로부터 북쪽으로 챔버 스트리트까지 여섯 블록에 이어지는 브로드웨이의 맞은편은 시빅 센터(Civic Center)라 불리는 곳으로 넓은 시티 홀 파크 공원을 중심으로 시청과 각종 부속건물,시경,각급 법원 및 연방사무소 등 뉴욕의 모든 관공서들이 모여있어 뉴욕의 심장부를 형성하고 있다.1870년 최초로 이 공원을 따라 머레이 스트리트에서 워렌 스트리트간 약1백m에 뉴욕의 첫 지하철이 튜브식 공법으로 시험 건설되었다. 이 지역의 브로드웨이는 2백여년 동안 수많은 영웅들을 위한 환영의 거리,축제의 거리이자 데모의 거리,상업의 거리로 발전해왔으며 자연적으로 미국 자유언론의 전통을 탄생시킨 신문의 거리를형성해 왔다. 특히 1811년 완공된 시티홀 앞 광장은 식민지 시절 뉴욕을 방문하는 영국왕을 위한 환영퍼레이드를 벌이던 전통에서 최근에는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홈팀 선수들의 환영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축제가 벌어져 왔다.그뿐만 아니라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된 후 이틀 동안 시신이 안치됐을 때는 6만여 뉴요커들이 조문을 위해 장사진을 치기도 했던 곳이다. 오늘날 이 거리의 역사는 세사람의 동상이 대변해주고 있다.워싱턴 장군의 부하였던 네이선 헤일(1755∼76)과 언론인 호러스 그릴리(1811∼72),그리고 벤저민 프랭클린(1706∼90)이 그들이다. ○19개 신문가 옮겨가 시청 서쪽의 헤일 대위는 예일대 출신 교사로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워싱턴 장군의 군대에 합류,맹활약하다 1776년 9월 영국군에 잡혀 바로 다음날 교수형을 당했다.그가 죽기 전 『내가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나의 목숨이 오직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하고 남긴 말이 영원히 기념되고 있다. 동쪽 브루클린 다리를 향해 서있는 뉴욕 트리뷴창간자 그릴리는 남북전쟁 시대의 개혁가로 노예제도를 공격하고 여성의 참정권 허용, 노동조합 장려 등을 강력히 주장했다.그는 특히 서부 공략을 주장한 『서부로 가라,젊은이들이여(Go West,Young men)』라는 글이 유명하다. 공원 옆 페이스 대학 앞에 있는 미국 정치가의 대부이자 언론인,과학자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은 새정부 수립시 펜실베이니아 대표로 참석,각 주간 이해 대립 조정자로서 두드러진 역할을 했으며 자신이 창간한 신문 펜실베이니아 거제트를 한손에 들고 서있다.그 동상 옆에는 헝가리 태생의 조셉 퓰리처가 신문왕국의 발판으로 삼았던 뉴욕 월드 옛사옥이 있다. 이렇듯 시티 홀 파크를 사이에 두고 브로드웨이와 파크로 거리 일대에는 19세기 말 19개의 신문사가 밀집해 있을 정도로 번성한 신문의 거리를 이뤘다.이들은 이 지역에서 1733년 뉴욕 위클리 저널을 창간,영국의 식민통치에 과감히 투쟁하던 존 피터 젱거의 정신을 이어받아 자유언론의 전통을 세워나갔다.그러나 오늘날 상당수는 없어지거나 더 북쪽으로 이전해 신문의 거리는역사적 이름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이 거리에는 또 근대 상업의 발상지인 브로드웨이 233번지에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있는 울워스(Wool worth)빌딩이 있다.1879년 이 지역에 새로운 형태의 소매점포를 차린 세일즈맨 프랭크 울워스는 5센트·10센트 균일점이라는 다양한 물품을 박리다매로 판매하는 형태로 운영했다. 순수한 소매업만으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울워스는 1913년 당시 높이 2백40m,60층의 사옥을 완공시켜 세계 최고의 높이뿐 아니라 정교한 아름다움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더욱이 그는 공사비 1천5백만달러를 은행빚 하나없이 현금으로 지불해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이 건물은 17년간 세계최고의 기록을 보유했으며 아직도 울워스사의 본부로 쓰이고 있다. 이 지역을 지나 챔버 스트리트 북쪽으로 올라가면 브로드웨이의 스카이라인은 마천루 숲을 이루던 남쪽과는 큰 대비를 이룬다.5∼6층 정도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여기저기 중국어 간판이 눈에 들어오면서 브로드웨이는 북쪽의 커낼 스트리트까지 차이나타운의 한부분을 이룬다. 브로드웨이를 서쪽 끝으로 하여 이스트 리버의 맨해튼 브리지까지 넓게 펼쳐진 차이나타운은 구정을 맞아 연일 각종 민속행사가 한창이다.부리부리한 눈에 형형각색의 꽃술이 달린 커다란 두마리의 용이 가게마다 찾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며 1년 동안의 복을 비는 신비한 중국인들의 민속행사들도 브로드웨이의 한부분이 돼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의 가장 큰 매력은 역사와의 만남보다도 민속과의 만남보다도 예술과의 만남에 있다.동쪽으로 시빅 센터와 차이나타운을 이끌어온 브로드웨이의 서쪽 일대를 차지하고 있는 트라이베커는 사실상 브로드웨이 예술기행의 출발점이다. ○예술의 감칠맛 더해 「운하 아래 삼각형 모양의 땅」이라는 뜻의 이곳은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백화점들의 창고지역으로 얼핏 보기에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곳이지만 차분히 들여다보면 광맥을 찾듯 빨려들어가게 하는 매력이 있는 곳이다.내놓고 보여주기보다는 더듬고 들여다보고 찾아야 가까스로 조금 보여주는 절제된 아름다움은 브로드웨이 예술에 감칠맛을 더해주는 요소가되기도 한다. 브로드웨이 예술의 또하나의 매력은 화제 인물의 체취를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러시아 출신의 작곡가 어빙 벌린이 성장한 맨해튼 로어 이스트사이드에서 듣는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다르듯이 트라이베커에서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를 만나는 것은 뉴욕에 대한 새로운 입문이 된다. 영화 「택시 드라이버」에서 염세주의적인 월남전 공훈 택시 운전사로 만난 니로와 「뉴욕,뉴욕」에서 사랑에 성공한 색소폰 연주자로서의 니로와 이곳 그리니치 스트리트 375번지 트라이베커 필름센터에서 만나는 니로는 사람도 다르고 뉴욕도 다른 뉴욕이다. 이곳에서 두 블록 떨어진 허드슨 스트리트 110번지의 아파트에 살고 있어 트라이베커의 터줏대감인 니로는 옛 커피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 필름센터를 스티븐 스필버그,론 하워드,퀸시 존스 등과 함께 사무실겸 작업장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밑에는 트라이베커 그릴이라는 찻집도 공동운영,영화예술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화이트 스트리트 38번지에는 네온 미술가 루디 스턴의작업장이자 갤러리인 「네온이 있게 하라」(Let there be Neon)가 있고 웨스트 브로드웨이와 프랭클린 스트리트가 만나는 곳에는 자유의 여신상 크라운을 쓰고 있는 테디 시어터,원 드림 시어터 소극장 등 구석구석 창조의 공간들로 채워져 있다. 『자유여,상큼한 자유여(Oh,Liberty,Sweet Liberty)』 프랭클린 스트리트의 한벽면을 장식한 이 글은 브로드웨이의 영원한 모토이기도 하다.
  • “우리위상 높아졌다” 힘찬 어조로 강조(김 대통령 순방여로)

    ◎“아태무역 자유화 기틀 구축 큰 보람” 김영삼대통령은 19일 나흘에 걸친 호주방문일정을 끝내고 캔버라에서 시드니를 거쳐 이날 하오 서울공항으로 귀국함으로써 9박10일동안의 아·태지역 세나라 순방및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일정을 모두 마쳤다. ▷서울공항◁ ○…김대통령은 시드니의 킹스퍼드 스미스공항을 출발한지 10시간 남짓만인 하오 6시35분 서울공항에 안착. 김대통령은 이영덕 국무총리와 황영하 총무처장관의 기내영접을 받고 3부 요인및 정당 주요간부,국무위원등 환영인사들의 박수를 받으며 공항 귀국행사장에 입장. 김대통령은 이어 3군의장대를 사열한 뒤 열흘전 출국할 때와는 달리 밝은 표정으로 귀국인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등단. 김대통령은 귀국인사를 통해 이번 순방성과를 설명하고 시드니에서 밝힌 「세계화를 위한 장기구상」의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거듭 천명. 김대통령은 『특히 APEC정상회의에서 회원국 정상들은 회의가 어려운 고비에 도달했을 때마다 나에게 조정을 요청했고 보고르선언의 채택과정에서는각국으로부터 나온 여러 제안 가운데 우리의 제안만을 채택해서 반영했다』고 분위기를 소개. 김대통령은 『정상들의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태 지역의 무역자유화 질서창조에 적극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크나큰 기쁨이며 보람이었다』고 말하고 자신감에 찬 어조로 우리의 높아진 위상과 「세계화 구상」을 강조해 눈길. 귀국인사를 마친 김대통령내외는 서울사대부속국민교 4년 이강희군과 강명랑양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반갑게 포옹한 뒤 연단 아래로 내려와 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김용준 헌법재판소장,이영덕 국무총리와 국무위원,김종필 민자당 대표등 정당 주요간부,외교단등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환영식장을 나와 청와대로 출발. ▷캔버라 출발◁ ○…캔버라 페어바이른공군기지에는 이날 호주의 하이든 총독내외와 키팅 총리내외가 나와 캔버라 교민 20여명과 함께 김대통령을 배웅했으며 에번스 외무부장관은 시드니까지 동행. 김대통령과 키팅 총리는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선 채로 5분 남짓 「회담」했으며 김대통령이『앞으로 두나라의 협력을 더욱 다지기 위해 서로 자주 전화통화를 하자』고 제의하자 키팅 총리는 『좋은 생각』이라면서 『두나라의 특별한 동반자관계가 더욱 발전돼 나가도록 우리 두 사람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자』고 화답. 김대통령은 이어 시드니 킹스퍼드 스미스공항에서 환송나온 교민 1백여명과 일일이 악수로 인사를 나눈 뒤 태극기와 호주국기의 물결속에 특별기에 탑승. ◎김 대통령 귀국인사 요지 저는 이번 여행에서 높아진 우리의 국가위상을 토대로 많은 성과와 값진 교훈을 함께 얻었습니다. 필리핀에서 라모스대통령과 두나라의 탄탄한 경제협력을 약속했습니다.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 2000」 계획을 추진함에 있어 건설 전자등 우리기업의 필리핀 진출을 진심으로 환영했습니다.그리고 필리핀 안에서 우리 기업들의 활동을 지원할수 있도록 많은 외국은행들의 진출 신청중에서 우리의 은행에게만 개점을 우선 허용하는 조치를 취해주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대통령은 금년부터 시작된 제6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자동차를 비롯한 우리 기업들의 각 분야에 걸친 적극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호주의 키팅총리는 호주의 국제관계를 유럽에서 아시아쪽으로 선회함에 있어 우리 한국과 각별한 동반관계를 고려하면서 많은 우의를 보여주었습니다.자원과 첨단산업 협력에서부터 관광및 임시취업비자 발급에 이르기까지 호의적인 배려를 약속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의는 우리 문민정부의 높은 위상과 함께 변화된 국제질서,그리고 각국 정상들의 국익우선주의를 실감케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참가회원국 정상들은 회의가 어려운 고비에 도달했을 때마다 저에게 조정을 요청했습니다.보고르선언 채택과정에선 각국으로부터 나온 여러 수정제안 중 유일하게 우리의 제안만을 채택해서 반영했습니다.어느 한나라에 의한 일방적인 영향력 행사는 이제 통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냉엄하고 비정한 이 국제사회를 우리는 직시해야 합니다.모든 나라들은 오늘을 살아남기 위해 뛰고 있고 차세대의 번영을 위해 더 뛰고 있었습니다. 이 시간부터 우리가 뛰어야 할 목표는 미래이며 세계입니다.세계화를 해야 합니다. 한·미·일 3개국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의 논의가 그랬듯이 우리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이며 세계의 문제는 다시 우리 문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수출도,투자도,경제와 인력교류도 세계화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세계인의 안목으로 문제의 틀을 짜가야 합니다.
  • “한·인니 경제는 보완적… 협력 증대” 역설(김 대통령 순방여로)

    ◎아·태평화­번영에 가교역 강조/김 대통령/한반도의 긴장완화 노력 환영/수하르토 2박3일동안의 필리핀 공식방문을 마친 김영삼 대통령 내외는 12일 마닐라를 떠나 두번째 방문국인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 안착,인도네시아 공식방문및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참석 일정을 시작했다. ▷환영만찬◁ ○…인도네시아 공식방문 첫날인 이날 김대통령은 숙소인 영빈관에서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내외 예방과 트리 부통령 접견을 마친 뒤 승용차편으로 이스타나 메르데카 대통령궁으로 가 대통령내외가 주최한 국빈환영 만찬에 참석. 수하르토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한국경제의 성공은 개발도상국들도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평가하고 『우리의 개발계획은 다른 국가들의 지원과 협조를 필요로 하며 한국이 인도네시아의 개발에 참여하는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피력. 수하르토대통령은 남북한문제에 대해 『우리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노력을 환영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동북아시아와 세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 김대통령은 만찬연설에서 『두나라 경제는 상호 보완적이어서 협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밝히고 『우리 두나라는 아·태지역에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가교역할은 물론 이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두나라의 협력 필요성을 역설. 1시간30분남짓 진행된 만찬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별실로 옮겨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만찬장 맞은편에 있는 민속공연장으로 건너가 20분동안 민속공연을 관람. 김대통령내외는 민속공연이 끝나자 수하르토 대통령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걸어서 숙소인 영빈관으로 이동. ▷수하르토대통령 예방◁ ○…김대통령내외는 공식환영식을 마친뒤 수하르토대통령내외와함께 대통령궁 접견실로 이동,환담. 김대통령은 『APEC회의 준비때문에 바쁠텐데 이렇게 맞아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했으며 수하르토대통령은 『바쁘긴 하지만 우방국원수를 맞는 것은 커다란 즐거움』이라면서 『APEC회의에 참석할 정상들은대부분 월요일에 도착하며 현재까지 김대통령과 브루나이국왕등 두분이 왔다』고 설명. 김대통령은 이어 『2억 인구를 이끌고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 수하르토대통령내외는 환담이 끝난 뒤 김대통령 내외를 대통령궁 뒤쪽의 영빈관까지 안내. ▷공식환영식◁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자카르타에 도착한 뒤 대통령궁 이스타나 메르데카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 김대통령은 바슈니 대통령의전장의 안내로 수하르토대통령과함께 사열대에 등단,예포 21발이 발사되는 가운데 애국가와 인도네시아 국가를 듣고는 베란다로 걸어가 기다리고 있던 인도네시아 정부 고위인사및 외교단을 접견. ○…공식환영식에 앞서 이날 하오 1시40분 자카르타의 할림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내외는 50여명의 교민 들이 환영하는 가운데 특별기에서 내려 사트리오 부디하르죠 유도노 무역장관내외의 영접을 받았다. 김대통령은 이어 수르자디 소에디르쟈 자카르타주지사내외와 한승주외무·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등 우리쪽 APEC 각료회의참석 공식수행원등과 차례로 인사. ▷마닐라 출발◁ ○…마닐라공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김대통령내외는 이날 상오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라모스 대통령내외의 작별예방을 받고 2박3일동안의 아쉬운 일정을 작별. 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 방문기간동안 필리핀 신문에 보도된 김대통령내외의 기사스크랩을 보여주면서 『조깅하는 사진을 포함해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고 소개. 이어 라모스대통령은 조깅녹화테이프와 필리핀 경제개발계획인 「필리핀 2000」 마크가 들어있는 골프공 한상자를 선물로 전달. ○…마닐라공항에서의 환송행사에 참석한 김대통령내외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고 두나라 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엔릴레 필리핀군총사령관의 안내로 군의장대를 사열한뒤 이창수 주필리핀대사와 베네딕토 주한필리핀대사의 환송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 공식환영행사와 맞먹는 격식을 갖춘 환송행사는 의전절차상 그 예가 매우 드문일로 이날 김대통령내외를 위한 환송행사는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의 특별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의전관계자가설명. ▷골프 해프닝◁ ○…김대통령이 필리핀 방문도중 라모스대통령과 골프를 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아 한국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골프애호가들에게 「낭보」가 날아들뻔했다는 후문. 필리핀측은 사전에 우리측에 『김대통령은 조깅을 하지만 라모스대통령은 골프를 잘치니 코스를 전부 돌지는 않더라도 티업만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해왔다는 것.이에 대해 우리측은 『정부 방침이 공직자의 골프는 곤란하다는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완곡하게 거절. 하지만 김대통령이 11일 상오 골프를 즐기는 라모스대통령과 아침운동을 하다 자칫 티업을 하러 가는 듯한 광경이 연출되어 수행관계자들을 긴장시켰으나 두 대통령이 들어간 건물은 골프용 시설이 아니라 실내체육관이어서 그런 걱정은 「기우」로 판명됐다고 관계자들이 전언. ◎김 대통령 만찬연설 요지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놀라운 발전상과 활력이 넘치는 거리를 보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이것은 수하르토 대통령각하의 강력한 지도력과귀국 국민의 우수성의 결과로서 나와 우리국민은 이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귀국은 이러한 성숙된 역량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귀국은 아세안(ASEAN) 협력뿐만 아니라 비동맹회의 의장국으로서 중심적 역할을 해왔습니다.또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지도자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아·태협력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귀국은 이미 우리의 6대교역국이 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귀국의 4대교역국이 되었습니다.귀국은 세번째로 큰 우리의 투자대상국으로서 3백50여개의 우리 기업이 진출해 있습니다.양국 경제는 상호보완성으로 인하여 협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우리 두 나라는 아·태지역에서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가교역할은 물론 이 지역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정세는 화해와 협력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습니다.지난 7월에 개최된 아세안지역 안보대화는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고무적인 출발이 아닐 수 없습니다.우리는 북한핵문제의 조기해결로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아울러 아·태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귀국과 더욱 긴밀히 협력해나가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끝으로 본인 내외를 초청해주신 각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가까운 장래에 각하의 한국방문이 이루어지길 기대하는 바입니다.
  • 오늘 한­인니 정상회담/자원개발 등 경협 집중 논의

    ◎김 대통령 자카르타 안착 【자카르타=김영만특파원】 아시아·태평양지역 두번째 순방국인 인도네시아를 방문하고 있는 김영삼 대통령은 13일 상오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에서 수하르토 대통령과 단독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의 경제협력과 아·태지역 협력방안등 전반적인 관계증진방안에 대해 논의한다. 김대통령과 수하르토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공동자원개발과 인도네시아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에의 참여확대문제등 두 나라의 주요경협 현안들을 집중협의할 예정이다. 특히 김대통령은 수하르토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제3세계 국가들로 구성된 비동맹회의의 92∼95년 의장국이자 오는 15일 개최되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지도자회의 주최국인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정치·외교적 협조문제도 거론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2박3일의 필리핀방문을 마치고 12일 하오 자카르타의 할림국제공항에 안착했다. 인도네시아 방문 첫날인 12일 김대통령은 할림공항에서 공항도착행사를 가진데 이어 대통령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수하르토 대통령내외를 예방한 뒤 대통령궁에서 수하르토 대통령내외가 주최한 국빈만찬에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국빈만찬에서 연설을 통해 『인도네시아는 이미 우리의 6대교역국이 되었으며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4대교역국이 됐고 인도네시아는 세번째로 큰 우리의 투자대상국으로서 3백50여개의 우리기업이 진출해 있다』고 밝히고 『두 나라 경제는 상호보완성으로 인해 협력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김 대통령­라모스 오늘 회담/3국순방 시작… 마닐라 안착

    ◎“한­비 경협 미래 밝다/한반도 통일에 협조를”/김 대통령,만찬연설 【마닐라=김영만특파원】 김영삼대통령은 필리핀 방문 이틀째인 11일 상오 마닐라의 말라카냥궁에서 피델 라모스 필리핀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의 포괄적 협력관계 증진방안을 논의한다. 김대통령과 라모스대통령은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에서 특히 교역과 투자활성화,건설 및 과학기술협력 등 경제협력 확대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이에 앞서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과 필리핀·인도네시아·호주 등 3개국 순방의 첫 일정으로 10일 하오 필리핀의 마닐라공항에 도착,2박3일 동안의 필리핀 공식방문 일정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공항도착행사에 이어 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참석하고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라모스대통령내외를 예방,양국 우호협력관계증진 방안 등에 관해 환담을 나눈 뒤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필리핀의 안가라 상원의장과 드 베네시아 하원의장을 각각 접견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저녁에는 말라카냥궁에서 라모스대통령이 마련한 국빈만찬에 참석,만찬연설을 통해 『양국경제의 상호보완성을 고려할때 양국간의 경제협력은 밝은 미래를 약속하고 있다』면서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을 위한 우리의 정책에 대해 필리핀이 지속적인 지지와 협조를 보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앞서 김대통령은 10일 상오 출국전 서울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출국인사를 통해 『전진하지 않는 사람은 낙오할 수 밖에 없으며 전진하기를 원하는 사람만이 전진할 수 있다』고 말하고 『서로가 모든 것을 다 내 탓으로 반성하고 지금부터라도 다 함께 밖을 향하여,미래를 향하여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통하여 다가오는 21세기 새로운 아·태 지역의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의 지위와 역할을 확고히 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아·태 지역내의 협력기반을 착실히 다지고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 “유익한 세번째 만남” 한비정상 환담(김대통령 순방여로)

    ◎서울서 마닐라까지/비의 6·25참전 한국발전 큰 기여/김 대통령/한·비 평화와 자유위해 함께 가자/라모스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및 아·태지역 3개국 공식방문길에 오른 김영삼 대통령은 10일 하오 첫 방문지인 필리핀의 마닐라에 도착,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공식환영식과 환영만찬에 참석했다. ▷만찬◁ ○…피델 라모스대통령 주최로 이날 저녁 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공식만찬은 부대행사를 포함,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3시간동안 진행. 이날 저녁 말라카냥궁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는 라모스 대통령내외와 기념촬영을 한 뒤 참석인사들을 접견한 데 이어 라모스 대통령으로부터 필리핀 최고훈장인 라자(RAJA)훈장을 수여받고 서로 선물을 교환. 김대통령은 청자와 칠보세트를,라모스 대통령은 필리핀 고유의 식탁보와 내프킨세트,차탁자를 선물로 전달. 라모스 대통령은 만찬사에서 『두나라는 자유를 위해 싸운 2차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통해 가까워지기 시작했다』면서 『앞으로도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함께 나가자』고 인사. 김대통령은 답사에서 『한국이 북한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청년장교로 참전하신 라모스 대통령과 7천여 필리핀 장병들이 흘린 피와 땀은 오늘 한국의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감사를 표시. 김대통령은 이어 필리핀 민속공연을 관람. ▷정상환담및 접견◁ ○…김대통령 내외와 라모스대통령 내외는 이날 마닐라의 말라카냥궁 주회의실에서 경제협력문제등을 화제로 환담. 라모스대통령은 자리를 잡자 『지난해 5월 방한 때 극진한 환대를 받은 것이 기억난다』고 인사를 건넸고 김대통령은 『각하가 취임한 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필리핀의 정치가 안정되고 부정부패가 척결되고 있으며 「필리핀 2000」 계획이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는 점』이라고 화답. 라모스대통령은 『필리핀은 이제 확실한 발전의 길로 접어들고 있으며 한국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도움을 요청. 이에 김대통령은 『한국과 필리핀은 상호 협력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원을 약속. 김대통령이 이어 『사람은 세번째 만남이 아주 유익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번이 세번째』라고 말하자 라모스대통령 부인은 『지난해 5월 세번째로 한국을 방문하니 아주 유익하고 인상깊었다』고 동감을 표시하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 ○…라모스대통령과 환담을 마친 김대통령은 숙소인 마닐라호텔에서 안가라 상원의장과 베네치아 하원의장등 상·하 양원 간부들을 잇따라 접견하고 환담. 김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투쟁연합」 당수인 안가라 상원의장등 상원간부들의 예방을 받고 『한국에서의 야당생활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고 회고하고 『어디서나 독재체제 아래서 야당하기는 어렵지만 현재의 필리핀은 절대 그런 상황이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필리핀 정치발전을 평가. ▷마닐라공항도착◁ ○…김대통령내외는 서울출발 3시간50분만인 이날 하오 1시20분 마닐라 국제공항에 도착,2박3일간의 필리핀 공식방문 일정에 돌입. 김대통령은 이어 교민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은뒤 환영나온 교민 1백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하고 숙소인 마닐라호텔로 직행. ▷특별기 기내◁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서울공항을 출발한지 45분쯤 지나 특별기 기내를 한바퀴 돌며 공식수행원,비공식수행원,수행기자단,승무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격려. 김대통령은 기내를 돌다 수행중인 기업인들을 만나자 『수고하겠다』고 인사를 했고 기업인들은 『기업을 도와주어 고맙다』고 답례. 김대통령은 기내순회를 마치고 조종실로 들어가 김상록 기장에게 『지금 어디쯤 비행하고 있는가』라고 물었고 김기장은 항공지도와 전자계기판을 보여주며 『제주도상공을 지나고 있다』고 답변. 김대통령은 조종석내의 첨단장치에 관심을 표시하면서 김기장등 조종사들에게도 『수고한다』고 말했고 김기장은 『기상이 전반적으로 좋은 상태』라고 설명. ▷출국환송식◁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환송식에서 『국가이익을 위해서라면 지구의 끝까지 달려가겠다는 각오로 이번 방문에 임하고 있다』고 출국인사. 김대통령은 그러나 당초 인사문에 있던 『오늘의 국제사회에선 적도 없고 친구도 없고 오직 경쟁자만이 있을 뿐』이라는 대목은 삭제. 옥내에서 치러진 환송행사에는 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등 3부요인 내외와 김종필 민자당대표 내외를 비롯한 행정 사법 입법부 정당및 주한외교단 주요인사 60여명이 참석했으며 민주당에선 신기하 원내총무와 김병오 정책위의장이 환송.
  • 약동감 넘치는 마닐라…우리 70년대 비슷/「방비」취재기자의 인상기

    ◎큰 건물마다 「필리핀 2000」 슬로건/개혁주장 라모스대통령 높은 지지율 라모스 필리핀대통령은 성공한 대통령으로 꼽힌다.그는 현재 60%의 높은 국민지지를 얻고 있다.지난 92년5월의 대통령선거에서 라모스후보가 얻은 표가 유효투표수의 약20%인 5백30여만표에 불과한 것을 고려하면 그가 얼마나 성공한 대통령인가를 알 수 있다. 10일 말라카냥궁에서 열린 김영삼 대통령을 위한 공식환영식에서 라모스 대통령은 김대통령일행보다 5분가량 먼저 식장에 나왔다.라모스 대통령과 부인은 둘레에 서 있던 필리핀 기자단일행을 향해 싱긋 웃으면서 친숙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기자들 쪽에서도 대통령을 향한 격의없는 웃음과 말이 건네지곤 했다.라모스 대통령은 국민 속에 있는 듯해 보였다. 김대통령이 방문한 필리핀은 한국의 60∼70년대 같은 약동감으로 넘쳐 있다.수도 마닐라의 주요건물마다 「필리핀 2000」란 슬로건이 나붙어 있다.라모스 대통령이 취임 때 내건 「필리핀 2000」은 모든 필리핀인에게 개발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며 2000년에 필리핀을아시아 신흥경제국가(NIES)로 만들겠다는 경제개발비전이다.우리로 치면 「잘 살아보세」나 경제개발5개년계획 같은 것이다. 필리핀은 아키노 대통령 치하의 마이너스성장에서 벗어나 92년에 0.6%의 성장을 이루었다.지난해에는 2.0%,올해는 4.5%의 견실한 성장을 시현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라모스행정부 치하의 경제가 이처럼 활기를 띠고 있는 것은 정치적 안정과 과감한 개혁으로 높은 국민지지를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라모스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45석에 불과하던 여당(크리스천 민주국민연합)의 하원의석(정원 2백15석)을 정계재편을 통해 1백32석으로 늘렸다.상원은 여전히 야당인 민주필리핀세력이 다수당이나 여당과의 「무지개연합」을 통해 행정부의 정책수행에 협조하도록 만들었다. 약체정부로 출범한 라모스 대통령은 집권초기 국민대화합을 표방,92년 선거 때의 야당후보에 대해 정부고위직을 제안하고 우익단체지도자의 사면을 실시했다.이어 공산당·NPA·MNLF등 좌익·반군단체들과 휴전을 제의,평화협상을 진행시키고있다. 이같은 화합정치를 통한 정치안정을 바탕으로 라모스 대통령은 필리핀의 가장 큰 골치덩어리인 치안부재와 전력난문제의 해결에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전력난에 있어서는 지난해만 해도 하루평균 4∼6시간씩 정전하던 것을 올들어서는 큰 불편이 없을만큼 크게 줄였다.이에 따라 연간 2억3천만달러에 그치던 외국인투자도 올해는 5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필리핀의 지난해 한사람앞 국민소득은 8백30달러.「필리핀 2000」은 98년도에 1천달러 넘도록 목표를 잡고 있다.이같은 목표는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달성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 보인다. 필리핀은 약진하고 있고 우리와의 경제협력 필요성도 더 높아가는 나라로 느껴진다.
  • 「조창호소위」 재회앞둔 경기상고 23회 동창들

    ◎“고생 많이한 창호 우리가 돕자”/“언제 만나자” 사무실전화 빗발/총동문회선 환영식 준비 분주 이순을 훨씬 넘긴 경기상고 23회 동기동창생들은 요즘 설날을 앞둔 동심마냥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6·25사변때 포로가 되어 43년동안 북한에서 모진 고초를 겪다 탈출,꿈에 그리던 자유의 땅에 안긴 동기생 「조창호소위」를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TV와 신문을 통해 조씨가 동문임을 확인한 동기생들은 너나 할 것없이 「조창호동문돕기를 위한 모임」행사에 발벗고 나섰다. 『옛날 모습 그대로든데』,『아니야,고생을 너무 많이 한 것같아』,『학교다닐때 본 것같긴 한데 잘 모르겠어』,『우리가 열심히 도와줘야 해』 50년 당시 취업반(A반)과 진학반(B반)으로 나뉘어 졸업한 1백54명가운데 지금까지 서로 연락을 하며 지내는 동문은 70여명으로 「조창호탈출」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동창회사무실로 동문들의 문의전화가 빗발쳐 정신이 없을 정도다. 어느덧 5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꿈많던 10대 소년들이 머리카락이 하얀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옛기억을 회상하면서 마냥 즐거운 모습이다. 경기상고 23회 졸업생들은 삼수회·등반회·서울대상록회·청송회(연세대동문모임)등 각기 다양한 모임을 통해 나름대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어 오고 있다.특히 삼수회는 셋째주 수요일에 만난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곳을 통하면 알고 싶은 동문들의 안부를 언제나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삼수회등 23회동문회의 작은 친목그룹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연락을 하며 조창호동창돕기운동에 나선 것이다. 동기생가운데 가장 친하게 지냈던 서순화씨가 처음으로 조씨와 25일 상봉했다. 조씨가 입원해 있던 서울 중앙병원을 방문,반갑게 해후한 서씨는 『「창호야」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물끄러미 쳐다보는 그에게 「나,순화야」라고 말하자 그때서야 내손을 붙잡고 놓을 생각을 않았다』며 감격의 순간을 되뇌었다. 『그냥 손을 꽉잡고 울기만 했어요.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이북억양때문에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서씨는 혼자만 만나고 왔다고 동기생들로부터 야단을 들었다며 끈끈한 동기애를 자랑스러워 했다. 『동문회명부에는 그동안 행방불명으로 돼 있었어요.빨리 동기회명부도 고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도 만들어 줘야죠』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는 정연덕씨(64·천보흥업 부사장)는 동기생들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는 만큼 빠른 시일내에 모두 함께 만나 서울시내 구경도 하고 옛날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총동창회 신우균사무국장(경기상고 22회)도 『총동창회차원에서 조창호동문환영식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동문들끼리의정을 더욱 두텁게 하는 기회로 삼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미에 목소리 높이는 옐친/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초가을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27일 상오 백악관 남쪽 뜰.클린턴미대통령은 옐친러시아대통령내외가 환영식장에 도착하자 포옹을 하며 옐친과 3번째 회담을 갖는 구정을 아낌없이 표현했다. 클린턴대통령은 환영사에서 『오늘 우리는 냉전시대의 적으로서가 아니라 더 번영하고 평화로운 세계의 동반자로 만나는 것』이라며 『많은 분야에서 우리의 이익은 더 이상 러시아의 이익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클린턴은 또 『일부 견해를 달리하는 문제가 있다면 냉전이 아닌 화평의 분위기에서 이견을 해소할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했다. 옐친대통령은 답사에서 『미국은 튼튼한 동반자이지만 동시에 거래하기가 쉽지않은 동반자라고 할수 있는데 그런면에서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라며 이틀간의 회담에서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 환영식이 끝나자마자 양국 대통령은 백악관의 오벌 오피스로 자리를 옮겨 양측 기록자만이 배석한 가운데 단독정상회담에 들어갔다.당초 예정된 30분의 단독회담이 끝나는가 싶더니 이들은 다시 정원의 테라스 파티오에서 두시간을 더 대좌했다. 두 대통령은 환영식장의 외교사령과는 달리 본격적인 「거래」에 들어갔던 것이다.그러나 두 사람은 보스니아 회교도에 대한 무기 수출입금지조치 해제와 러시아의 대이란 재래식무기 판매중지문제를 싸고 팽팽히 맞섰다. 클린턴이 「보스니아 무기금수해제」를 밝히자 옐친은 단도직입적으로 『전쟁을 확산시킬 뿐』이라고 반대하면서 보스니아문제 논의를 위한 국제회의를 제의하며 역공했다. 또 클린턴이 이라크,리비아,북한과 함께 「국제부랑자」인 이란에 러시아가 잠수함 미사일기술등을 판매하는 것은 국제테러리즘을 조장한다며 중지를 요청했으나 엘친은 아무런 긍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옐친대통령은 클린턴대통령과 가진 지난 두번의 정상회담에선 워싱턴측에 「도움」을 간절히 청하는 쪽이었다.그러나 18개월이 지나는 사이 옐친은 어느새 「냉전의 적」은 아니지만 「당당한 거래자」로 변모한 것이다. 구소련 붕괴이후 미국이 유일 강대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국제문제가 결코미국의 구도대로 풀려나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옐친의 워싱턴방문을 통해 입증되고 있는 셈이다.
  • 8·2보선결과 여야의 표정

    ◎“선거 졌지만 「공명」은 큰승리” 자위/민자/“귀한 승리”… 이 대표 직접 당선사례”/민주/“대구의 승리”… 박철언씨에 “축하”도/신민 여야는 3일 8·2보선에 따른 평가와 함께 후속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산한 하루를 보냈다. ▷민자당◁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는 『이번 선거는 승패보다는 새 선거법의 정착과 공명선거 실천에 더 큰 의미를 둔다』는 점을 집중 부각.『이번 선거에서 각당이 거둔 1승이 작은 승리라면 공명선거는 국민의 큰 승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박범진대변인이 소개.박대변인은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집권당의 자기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부연. 이 때문에 김종필대표를 비롯한 핵심 당직자들은 서로를 위로,참패의 충격을 흡수하면서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책론을 차단.아울러 승리를 장담했던 경주지역에서 의외의 참패를 당한데 대해 공천반성론이 제기되자 겸허히 수용하는 모습. 문정수사무총장은 회의에서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죄송하다』면서 『구체적인 패인을 심도있게 분석하겠다』고 보고. 이한동원내총무는 『뿌리가 깊은 지구당은 경주·대구와는 사정이 다를 것』이라고 지엽적인 선거결과로 돌린 뒤 『후보를 한두달 앞두고 공천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라면서 새로운 정치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당 조직과 운영모델의 개발필요성을 강조. ▷민주당◁ ○…민주당은 이날 하루종일 경주 승리와 영남권 교두보확보의 기쁨을 만끽하는 분위기. 박지원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민주승리,반민자정서 확인,민자참패」로 이번 선거결과를 규정한뒤 『우리당은 성공적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마치고 이제 서울로 향하기 시작했다』고 기염. 경주 보선을 자신의 선거처럼 뛴 이기택대표는 이날 하오 경주로 내려가 이상두당선자와 함께 무개차를 타고 경주시내 곳곳을 돌며 당선인사. 저녁에는 그동안 수고한 경주지구당 간부들과 경북지역 원외위원장들을 초청,자축연을 갖기도. 이대표는 경주에서 1박한뒤 4일 중앙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보선결과를 토대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야당의 의견을 국정에 최대한 반영시킬것을 요구하는 등 대여공세를 한층 강화 할 계획. 이대표의 경주행에는 권로갑 한광옥 유준상 신순범최고위원을 비롯해 최락도사무총장 신기하원내총무 김덕규 손세일 강창성 이원형 박광태 문희상의원등 당지도부와 이대표 직계의원들이 대거 수행해 보선 승리후 입지가 강화된 이대표의 위상을 반영. ▷신민당◁· “ ○…신민당도 축제분위기 이기는 마찬가지.김동길 박찬종공동대표와 김복동 유수호최고위원등 지도부는 이날 대구 현지에서 현경자당선자와 함께 지역구를 돌며 유권자들에게 당선인사. 김대표는 이날 하오 상경즉시 서울구치소로 박철언전의원을 면회,현당선자의 쾌승을 전했으며 박전의원은 이에 『당이 일심동체로 싸운 결과이며 대구시민의 승리』라고 기쁨을 표시했다는 후문. 현당선자는 4일 상오 중앙당사에서 열리는 당선 환영식에 참석한뒤 하오에는 남편인 박전의원을 면회할 계획.
  • 무통역/무의전/무의제/“7·25정상회담은 「3무회담」”

    ◎「동서독선례」 보다 더 파격 “화제” 「7·25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관가에서는 「3무회담」이라고 부른다.사전에 의제를 조율하지 않았고,정상회담에 걸맞는 공식의전도 모두 생략하기로 남북사이에 이미 합의가 되었다.또 통역도 필요 없다.일반적으로 정상회담이라면 필수적인 이들 세요소가 모두 배제된 셈이다.무의제,무의전,무통역이 형식면에서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미리 의제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의 외교관행에서 볼때 매우 파격적이다.일반적으로는 정상회담이 열리기전 실무선의 사전조율에 의해 발표문이 미리 만들어진다.정상의 만남은 그 내용을 확인하는 하나의 의식인 것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취임뒤 미국·일본·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의 정상과 만나 이러한 관례를 깨기 시작했다.실무진에서 미리 조율된 의제를 넘어서 현장에서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 내곤 했다.하지만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는 사전 의제협의를 「전혀」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으므로 그 어느 때보다 가변요소를 더 많이안고 회담을 하게 된다. 의전면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은 새로운 선례를 남길 것이다.남북한 양측은 서로 상대방을 완전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그렇다고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따라서 김대통령의 평양 체류기간 의전은 실질적으로 국빈방문에 준하는 대우를 받되 공식적으로는 의전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외국의 국가원수가 방문했을때 진행되는 공식의전의 형태는 국제적으로 비슷하다.예포·국가연주·의장대사열로 이어지는 공식환영식이 있다.회담장에는 탁장기와 의장기등 두나라 국기가 설치된다.주요 가로와 초청국 정상의 집무실 건물에도 두나라 국기가 게양된다.물론 공식국호도 회담장이나 숙소에 표시된다.이번 평양 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공식절차와 설치물들이 모두 생략된다. 지난 70년 처음으로 성사된 동·서독 정상회담에서도 상당수 공식 의전절차는 배제되었으나 숙소,회담장 주변거리,회담테이블,차량에는 두나라 국기가 게양되거나 배치되었다.더구나 동·서독은 당시 의전문제를 외무부에서 다루었다.정상회담에앞서 두나라 외무부 의전장이 5차례나 만난 것으로 되어 있다.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및 사전준비과정에서 우리 외무부 의전팀이 완전히 빠져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우리 대통령이 정상회담이라는 명칭의 만남을 가지면서 공식적으로 통역을 쓰지 않는 것도 희귀한 사례다.이승만전대통령이 미국 대통령과 영어로 회담을 하기도 했지만 그뒤 공식회담에서 통역이 빠졌던 적은 없었다.
  • “한국축구 저력 떨치고 왔다”/월드컵팀 어제귀국

    비록 16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한국축구의 저력을 세계에 떨친 한국월드컵축구대표팀이 30일 하오 귀국,김포공항에서 해단식겸 환영식을 가졌다.함흥철단장이 정몽준축구협회회장에게 태극기를 전달한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이날 공항에는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과 가족등 5백여명이 나와 이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 첫 대좌서 통일까지 인고의 20년(동서독정상회담의 교훈:상)

    ◎두차례회담 의견 대립… 합의도출 실패/“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실무접촉 계속 1970년 3월19일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가 동독의 작은 도시 에르푸르트에서 만났다.독일 분단 25년만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이었다.이 만남 뒤 20년이 지난 1990년에야 독일은 통일되었다.이 첫 정상회담이 기존 양독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은 없다.회담의 성과로 내세울 만한 것은 별로 없었다.만남 그 자체가 큰 사건이었다.두 정상의 직접대화는 상호 이해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그후 양독관계 진전의 디딤돌이 되고 밑거름이 되었다. 동방정책을 들고 나온 브란트가 1969년 총리가 되면서 동독에 관계정상화 협상을 제의하자 동독이 정상회담을 맞제의했다.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네차례 열렸다.실무회의에서는 회담 장소 선정이 난제였다.서독은 동베를린을 주장했고 브란트 총리가 베를린 장벽을 통과하여 회담 장소에 가는 방식을 원했다.동독은 이것의 상징적 의미를 반길 수 없었다.서독은 마침내 동독이 제3의 장소로 내놓은 에르푸르트를 받아들였다. 두 정상은 베를린 서남쪽 2백30㎞의 에르푸르트에서 만나 하룻동안 세차례의 회담을 가졌으나 기본적인 입장 차이를 줄일 수 없었다.회담 결과에 대해서 양측 모두 불만이었다.동독은 서독이 외교적 승인을 해주도록 요구했고 서독은 전독대표권의 포기를 밝히면서도 동독 승인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브란트 서독 총리는 회담을 마치고 돌아가 다음날 결과를 하원에 보고했다.그는 동서독이 가까운 장래에 근본문제에 합의할 희망은 없다고 단언했다. 같은 날 동독의 실권자인 발터 울브리히트 공산당수는 동서독 정상회담이 『유용한 것이었지만 서독이 동독을 승인할 용의가 없었기 때문에 실망적이었다』고 말했다. 두 정상은 두달 뒤인 70년 5월 21일 서독의 카셀에서 다음 회담을 가지는데 합의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이것이 첫 정상회담의 거의 유일한 성과였다.두번째 만남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분위기는 경색했고 양측의 주장도 평행선이어서 아무런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다음 회담 약속도 공동성명도 없이 두 정상은 헤어졌다. 그러나양측은 두 정상의 직접 대면으로 입장 차이를 좀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그로부터 10여년간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았으나 실무 접촉이 꾸준히 계속됨으로써 양독관계는 점진적인 발전을 보게 되었다. 카셀 회담 6개월후인 11월부터 연쇄 실무접촉이 이루어져 서독과 서베를린간의 통과협정,동서독 교통협정 등의 체결로 국민생활과 직결된 문제들을 해결하였다.큰 매듭인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이 실현된 것은 첫 정상회담후 2년만인 72년 12월이었다. 80년대로 넘어와 슈미트­호네커 회담(81년),콜­호네커 회담(87년)등 여러 차례 정상회담이 있었다.그 이전의 정상회담과 마찬가지로 모두 당장은 감격스럽거나 놀랄 만한 결과를 내놓지는 않았다.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실무자선의 접촉으로 현실적인 문제들이 차근차근 해결되었다. 우리는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첨예한 대립상태에 있었으므로 남북한 정상의 첫 만남 역시 훨씬 극적인 사건이 된다.예상외의 실질적 성과도 나올 수 있다.그러나 미리 지나친 기대를 하거나 사후에 실망을 할 필요는 없다.첫만남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동서독 정상회담의 교훈이 바로 그것이라 할 수 있다. ◎「6차례 정상회담」 의전 전례/초기 환영식­의장대 사열 생략 “의식 최소화”/87년 「4차」부터 헬기 사용… 양국국가 첫 연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의전문제가 회담의 의제만큼이나 주요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이는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상대지도자에 대한 대우가 대외적으로 미칠 파급효과가 큰데다 상대국민들의 위신,심리적 영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유럽평화에 획을 그었던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나 1814년의 빈회의,1919년 파리평화회담 등에서도 관련국들은 자신들의 위신과 직결된 의전상의 문제로 회담의 대부분을 허비할 정도로 의전문제를 중요시했었다.남북한의 경우 정상회담 전례가 없어 의전문제로 신경전을 펼 전망이지만 분단의 특수성에 비춰 상당부분 동·서독의 경우를 준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동·서독은 모두 6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70년3월 「최소한의 의전」으로 동독에어푸르트회담을 성사시킨 이래 점차 상호의전을 확대해 나갔다. 빌리 브란트 서독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총리간의 첫 동·서독 정상회담은 환영식,의장대 사열,예포발사,모터사이클의 경호 등이 생략된 최소한의 의전형태를 띠었다.공식연회도 없었으며 음식도 초청자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그러나 숙소,회담장 주변거리,회담테이블,차량에는 양국국기가 게양되거나 배치됐고 도착시 영접은 총리가 직접하는 방식을 택했다.또 브란트총리는 동독외무장관의 안내로 부헨발트의 유대인집단수용소 기념관을 방문,헌화하기도 했다.이같은 의전전례는 2개월뒤 서독의 카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다만 서독의 관례대로 1차 정상회담과는 달리 회담장주변거리와 회담테이블에는 양국국기를 배치하지 않았다. 81년 동베를린 근교에서의 3차 정상회담에서는 동·서독간 교류가 빈번해짐에 따라 의전에서도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경호원과 비공식수행원의 수가 크게 늘었고 왕복교통수단으로 특별열차대신 항공기왕래시대가 열렸으며 기상영접이 도입된 외에 이동시 국빈대우의 상징인 사이드카 13대도 동원됐다.초청만찬이 베풀어진 것은 물론 선호·기피음식을 상대방에게 미리 통보하기도 했으며 상대의 협조로 직통전화가 가설돼 활용됐다.이때부터는 또 총리주치의를 처음으로 대동하기 시작했고 행사장범위가 확대,슈미트수상은 미술관과 시장,교회등을 방문하기도 했다.또 외무성 의전장을 단장으로 10명의 선발대가 상호파견되기도 했다. 87년 본회담에서는 지역내이동에서 헬리콥터가 사용됐고 동·서독 국가가 처음으로 연주됐으며 의장대사열도 이때 처음으로 이뤄졌다.4차례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변한 것이 없다면 주최측이 모든 비용을 댄다는 것과 영부인을 대동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 “북 군사도발 대비 태세 완비”/이 국방(국무회의:7일)

    7일 국무회의는 국무위원들이 회의를 마친 뒤 곧바로 김영삼대통령 귀국환영식(하오7시)이 열리는 서울비행장으로 직행할 수 있도록 평소보다 2시간30분 늦은 하오4시30분에 개회됐다.이날 회의의 주요의제는 북한핵문제로 인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정세. ○…이홍구통일부총리는 『김영남외교부장·강석주외교부부부장등 북한정권의 상층부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간간이 대화의지를 피력하는 반면 방송들은 우리나라를 인질로 삼아 현상황을 전쟁국면으로 이끌어가려 하고 있다』고 북한의 이중적 태도를 분석. 이부총리는 『우리의 목표는 핵투명성을 확보하고 북한의 밀어붙이기식 행태에 쐐기를 박자는 것』이라면서 『우방국과의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한편 안보의식을 강화할 수 있도록 대책마련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다짐. 이병대국방부장관은 『제재단계별로 그에 따라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이는 북한의 군사도발가능성에 대비한 준비태세를 완비하고 있다』고 보고. ○…서상목보사부장관은 얼마전 잇따라 발생한 일본뇌염예방접종 부작용으로 인한 사고와 관련,『부득이한 예방접종사고에 대비한 보상기금마련이 필요하다』면서 예산확보를 위해 경제기획원의 협조를 요청. ○…이영덕국무총리는 여름철 전기소비절약에 관해 언급,『올해는 예년보다 평균기온이 1·5도이상 높고 경기회복추세도 계속될 전망이어서 전기소비가 91년이후 가장 큰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각급 행정기관과 단체는 각자의 실정에 맞는 전기소비절약방안을 수립,시행하라』고 지시. ○…이날 회의는 지난 1일 영등포 플라스틱공장화재 진화작업중 순직한 허귀범전영등포소방서소방교에게 옥조근정훈장(5등급)을 추서하기로 결정. 의결안건 ▲교육공무원징계령(개)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시행령(개) ▲공중위생법 시행령(개)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의 촉진및 시설 주변지역의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령(제) ▲모범국가유공자등에 대한 영예수여안 ▲순직소방공무원에 대한 영예수여안
  • 솔제니친,“김 대통령에 안부를…”(김대통령 북방여로)

    ◎“한반도 냉전 멀지않아 종식될것”/“연해주 적극 투자 권장할 것” 약속 김영삼대통령은 6박7일동안의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 방문 마지막날인 7일,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시찰하는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블라디보스토크 출발◁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방문한 뒤 하바로프스크공항을 출발해 서울로 향발. 김대통령은 태평양함대 방문 소감을 묻는 질문에 『블라디보스토크는 두만강을 지척에 두고 있는데 한국대통령으로서 반세기만에 이땅을 밟게 된 것이 가슴아프다』고 심경을 피력. 또 김대통령은 『냉전의 마지막 잔재가 된 한반도에도 냉전이 끝남으로써 가까운 거리를 짧은 시간에 곧장 올 수 있어야 하며 올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고 이를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라고 강조. ▷블라디보스토크 방문◁ ○…김대통령은 전날 저녁 타슈켄트를 떠난 특별기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이날 상오 하바로프스크공항에 도착,곧바로 러시아 최대 군사요충지인 블라디보스토크로 출발. 블라디보스토크공항은 활주로의 길이가 짧아 대통령특별기의 이착륙이 어려운 점을 감안,김대통령은 러시아측이 제공한 특별기로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왕복. 김대통령은 러시아 태평양함대 제33 전용부두에 도착,흐멜리노프 태평양함대사령관직무대행의 영접을 받은 뒤 애국가와 러시아국가가 연주되는 가운데 해군의장대의 사열및 분열을 받고 8천1백t급 대잠함 「아드미랄 비노그라도프」호로 이동. 김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하는 동안 20여년의 미국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모국인 러시아로 영구 귀국하기 위해 이곳에 머물고 있는 대문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김대통령의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에 관심을 표명해 화제. 지난달 도착한 솔제니친은 김대통령의 블라디보스토크방문 준비를 위해 미리와 있던 김석규주러시아대사와 우연히 만나 『김대통령이 이곳에 온다는데 사실이냐』며 한국대통령의 블라디보스토크방문이 냉전시대의 청산을 실감케 한다는 인상을 주었다고 김대사가 소개. 솔제니친은 김대사에게 『기회가 있으면 김대통령에게 내 안부를전해달라』고 했다는 것. ▷연해주 주지사 접견◁ ○…블라디보스토크 방문에 앞서 이날 상오 하바로프스크공항 귀빈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김대통령은 이샤예프 주지사등 하바로프스크주관계자들과 만나 30여분동안 경제협력방안등 상호관심사에 관해 의견을 교환. 이샤예프 주지사는 『하바로프스크의 2천5백여개 기업은 대부분 군수공장으로서 한국과의 기술협력으로 이를 민수공장으로 만들려 한다』며 한국과 적극적인 경협추진을 기대. 이에 김대통령은 『이곳은 20세기 초반 우리 조상들이 많이 이주해와 독립운동을 하던 곳』이라면서 『돌아가면 우리 사업가들에게 왕성한 투자를 권하도록 하겠다』고 약속. ▷서울공항 환영행사◁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저녁 7시 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에 도착,이영덕국무총리와 황영하총무처장관의 기내영접을 받았다. 김대통령 내외는 이어 공항 옥내행사장에 마련된 환영식장에 입장,도열병 사이를 통과한 다음 3군의장대를 사열. 이날 환영식장에는 이만섭국회의장,윤관대법원장,이총리,조규광헌법재판소장과 국무위원 그리고 여야정당간부들이 김대통령을 맞았으며 특히 이기택민주당대표가 지난 1일 김대통령의 환송식에 나온데 이어 이날도 행사에 참석,김대통령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 눈길.
  • 김 대통령 러 방문일정 확정/1일 옐친과 단독정상회담

    청와대는 24일 오는 6월1일부터 7일까지 6박7일에 걸친 김영삼대통령의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 공식방문 일정을 확정,발표했다. 김대통령은 러시아의 모스크바 방문 첫날인 6월1일 옐친대통령과 1차 단독정상회담을 갖는데 이어 2일 2차단독 및 확대정상회담을 갖고 북한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조방안을 비롯,두나라의 정치·경제협력 증진방안등을 논의한 뒤 한국과 러시아의 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공동기자회견을 갖는다. 김대통령은 또 러시아 상원에서 연설을 하며 러시아 상·하원 의장단이 주최하는 오찬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주돈식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김대통령은 러시아 방문 마지막 날인 3일에는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연설을 하며 이밖에 한국과 러시아 경제인들의 오찬에도 참석한다. 6월4일부터 6일까지의 우즈베키스탄 공식방문에서 김대통령은 카리모프대통령과 단독및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두나라의 우호협력 증진방안을 논의하며 타슈겐트주지사가 주죄하는 고려인만찬에 참석,우리 동포들을 위로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은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방문을 마친 뒤 귀로에 하바로프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 들러 러시아의 태평양함대등을 방문한 뒤 7일 귀국할 예정이다. 김대통령의 러시아및 우즈베키스탄 방문일정과 공식수행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공식 방문일정◁ ◇러시아(6월1일∼3일)▲1일=옐친대통령과 1차 단독정상회담(별장) ▲2일=무명용사묘 헌화,공식환영식(크렘린궁),2차단독및 확대정상회담,한·러 공동선언서명 및 협정서명식 임석,공동기자회견,상하원의장단 주최 오찬,상원연설,공식만찬 ▲3일=주요인사접견,모스크바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한·러 경제인오찬,공식환송식(크렘린궁),주요인사접견,교민리셉션 ◇우즈베키스탄(6월4∼6일)▲4일=카리모프대통령과 단독정상회담,공식만찬 ▲5일=사마르칸트 방문,김병화농장 시찰,타슈겐트주지사 주최 고려인만찬 ▲6일=알리쉐르 나보이 기념비 헌화,확대정상회담,협정서명식 임석,공동기자회견 ◇하바로프스크및 블라디보스토크(6월7일)▲7일=하바로프스크 주지사 접견,연해주 주지사및 주요인사 접견,연해주 주지사주최 오찬,태평양함대 방문 ▷공식수행원◁ ▲한승주외무부장관 ▲김철수상공자원부장관 ▲김시중과기처장관 ▲정재문국회외무통일위원장 ▲강재섭민자당총재비서실장 ▲김석규대사내외(러시아)서건이대사내외(우즈베키스탄) ▲이양호합참의장 ▲박상범경호실장 ▲박재윤경제수석 ▲정종욱외교안보수석 ▲주돈식공보수석 ▲김석우의전비서관 ▲신두병의전장 ▲백락환외무부구주국장.
  • 범불교대회 6천명 운집/조계사에 “개혁” 메아리

    ◎수습국면 조계사 이모저모/정문에 “부상스님 치료” 모금함 등장/“서 원장 처벌” 3천여명 연좌농성도 13일 하오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는 1천5백명의 승려와 5천여명의 신도가 참석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뤄 불교개혁 환영식으로 바뀐 느낌이었다. 특히 이날 대회는 총무원 건물 법당1층에서 농성했던 혜암스님등 5명과 성수스님(전총무원장·법수선원)등 원로 10여명이 참석해 고조된 분위기였다. ○…이날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범불교도대회」에 참가했던 승려·신도 등 3천여명은 하오6시20분쯤부터 「서의현총무원장 사법처리」와 「내무부장관 해임」등을 요구하며 광화문 교보빌딩앞 왕복16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1시간남짓 연좌농성. 이들은 광화문네거리에서 정부종합청사로 나아가려다 저지하는 경찰과 한때 격렬한 몸싸움. 이날 농성으로 종로·시청앞 등 이 일대 차량통행이 마비돼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이어 이들은 종로1가를 거쳐 조계사까지 2㎞남짓 구간의 1개차선을 점거하고 행진. ○…전날 험악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평온한 가운데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일부에서는 새로 구성될 「조계종 개혁회의」가 추진하게 될 종헌·종법에 대해 삼삼오오 모여 밀담을 나누는 모습. 비대위측의 한 스님은 앞으로 다루게 될 종헌·종법 개정안에는 규정부를 없애는 대신 감사원기구를 설치하고 주지와 종회의원의 겸직을 금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라고 전망.또 총무원장선출과 관련,직선제를 통한 총무원장선출이 거론되고 있다고 귀띔. ○…불교도대회에 앞서 조계사 정문에서는 각 사찰에서 보내온 떡과 음료수를 무료로 나눠주었으며 「참불교」라 적힌 티셔츠를 파는 임시가판대가 설치되었는가 하면 전날 총무원 법당을 접수하려다 부상당한 스님들을 위해 「부상자 치료비 모금함」도 등장. ○…비상대책위원회측은 서의현총무원장의 사퇴로 조계종사태가 불교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며 낙관하면서도 서원장이 사퇴서를 종회가 아닌 종정에 일임한 것에 모종의 흑막이 있는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그러나 「범종추」측 승려들은 『총무원측의 원두스님이 또 다른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가시돋친 풀이.또다른 승려들은 15일 열릴 종회를 앞두고 서원장이 볼썽사납게 사퇴당하기보다 사퇴하는 쪽으로 선수를 친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기도. ○…이날 승려와 신도들은 「범불교대회」를 마치고 가졌던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앞 시위를 마치고 조계사로 다시 돌아와 정리집회를 가진뒤 속속 귀가하는 모습. 조계사 대웅전에서 4일째 농성을 벌였던 이들은 『서총무원장이 항복을 하고 퇴진한 상황인만큼 사찰로 돌아가 앞으로의 개혁에 일조하자』며 돌아가기 시작,하오 11시쯤에는 일부 「개혁회의」 집행부측 승려와 신도들만이 남아 뒷정리와 청소를 하는등 한산한 모습. ○…그동안 총무원 집행부가 차지하고 있던 총무원 청사 4·5층은 오랜만에 이날 밤부터 곳곳에 환한 불이 켜져 있는등 모처럼만에 정상을 되찾은 분위기. 총무원 집행부측 승려들이 경찰병력의 철수와 함께 퇴장하고 맞은 첫날인 이날밤 「개혁회의」측 승려들은 어지럽혀진 건물안을 청소하고 파손된 기물과 훼손된 장부등을 정리하면서 새로이 출범한 개혁회의가 업무를 시작할 준비를 하느라 부산한 모습. ▷조계종 사태 일지◁ ▲3·16=조계종 임시종회 소집공고. ▲3·23=중앙승가대에서 석림동문회등 불교단체 「범승가종단 개혁추진회(범종추)」결성. ▲3·29=폭력배 3백명 조계사난입.범종추소속 승려폭행. ▲3·30=서의현총무원장 3연임 의결. ▲4·5=대각사에서 혜암스님등 원로회의 개최.서원장의 즉각사퇴와 전국승려대회 10일 개최결의. ▲4·6=총무원 집행부,총무원장 즉각사퇴 거부발표. ▲4·9=서암종정,원로·중진연석회의 주재하고 승려대회 금지교시발표. ▲4·10=승려대회강행.종정불신임과 서원장 승적박탈결의.개혁회의 출범.개혁파 승려 총무원 점거시도. ▲4·11=경찰,조계사를 점거한 승려 1백34명 연행조사. ▲4·12=김도현문체부차관,조계사방문.정부불개입및 사태해결 촉구. ▲4·13=새벽 경찰철수.서원장 사퇴의사 공식발표. ◎총무원장직대 탄성스님은 누구/불교계 위기때마다 수습 앞장/평소 수행 정진… 80년대 법난때도 해결 조계종사태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탄성스님(66)은 평소에는 선원에서 수행에 정진하다 불교계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빠지면 전면에 나서서 불교계를 이끌어온 인물로 종단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다. 탄성스님은 법주사 주지등을 지낸뒤 현재는 충북 괴산 공림사 선원장으로서 평생을 선방에서 수행자로 생활해 왔다. 탄성스님이 조계종단 위기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사태수습에 나선 것은 이번이 두번째이다. 80년 「10·27법난」당시 국가권력이 전국 모든 사찰에 「정화」라는 명분으로 난입해 불교계가 사상초유의 위기상황을 맞았을때 「불교정화중흥회의」상임위원장과 함께 종정·총무원장의 역할을 겸임,사태를 원만히 해결한뒤 새로 결성된 총무원 집행부에 역할을 넘긴바 있다. 탄성스님은 그러나 당시 사태수습후 공직을 맡아달라는 종단의 권유를 마다하고 다시 산으로 은거,선방수자생활을 계속해 왔다. 탄성스님은 이번 조계사 사태에서도 종권과 명리에 물들지 않은 인사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모든 종도들과 원로스님들의 적극적인 천거로 다시 「조계종사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 “일·중 순방은 아태시대 선도의 계기”/김대통령 서울공항도착스케치

    ◎“동북아 안정·북핵 등 진진하게 논의” ▷서울공항도착◁ ○…김대통령내외는 이회창국무총리와 황영하총무처장관,박관용청와대비서실장의 기내 영접을 받으며 특별기에서 공항2층 행사장으로 연결된 통로로 환영식장에 입장. 도열병과 군악대 사이를 지나 3군의장대를 사열한 김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원고없이 즉석에서 약 10분동안 귀국인사를 겸한 도착연설. 김대통령은 연설에서 『이번 해외순방은 일본 중국과 더불어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나가는 계기가 됐다』면서 『동북아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실질적인 문제와 북한핵문제등을 진지하게 협의했으며 그 결과 많은 호응을 얻었음을 보고드린다』고 언급. 김대통령내외는 이어 「고향의 봄」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신광원군과 서미애양(서울사대 부속국민교5년)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가볍게 포옹한뒤 환영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교환하는 것으로 행사를 마무리. 이날 행사에는 이만섭국회의장 윤관대법원장 이총리등 3부요인과 김종필민자당대표내외,국무위원,그리고 주한외교사절등 초청인사 60명이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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