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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특사, 北 재건계획 검토 밝혀“北 핵포기땐 상상이상의 보상”

    |다보스(스위스) 연합|제33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 포럼)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 특사자격으로 참석중인 민주당 정동영(鄭東泳) 의원은 24일 한반도 경제공동체 달성을 위해 가칭 ‘북한판 마셜플랜’으로 부르는 과감한 북한 재건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정 의원은 다보스 포럼 개막 이틀째인 이날 본회의장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만약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포기하고 다른 안보상의 우려 요인을 제거한다면 북한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정 의원은 “노 당선자의 비전은 한국을 동북아의 경제중심지로 만드는 것”이라며 “남북횡단철도(TKR)-시베리아횡단철도(TSR)-중국횡단철도(TCR)의 연결을 통해 한반도는 아시아와 유럽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의원은 기조연설 이후 질의·응답시간에서 북한이 미국에 불가침 조약 체결을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이는 잘못된 인식 또는 환상”이라며 “북한의 문제는 체제 자체에 있어 미국이 북한 정권의체제를 보장해 준다고 해도 북한 체제가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20세기 최고의 경영사상가 피터 드러커

    피터 드러커는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최고의 경영사상가다.하버드대학 시어도어 레빗 교수는 “모든 경영이론은 드러커의 각주(脚註)에 불과하다.”고 말하기도 했다.경영학은 물론이고 정치,경제,사회,심리 등 광범위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그의 저서는 무려 40여권에 달한다.드러커의 동료이자 제자로 30년간 교분을 맺어온 미국 페이스대학 존 플래허티 교수는 그의 저술과 논문,강연,편지 등을 시기별·주제별로 정리해 한 권의 책(원제 Peter Drucker-Shaping Managerial Mind)으로 엮어냈다.최근 국내에서 ‘피터 드러커-현대경영의 정신’이란 이름으로 번역서가 출간된 것을 계기로 그의 사상을 훑어본다.역자인 송경모(宋炅模·경제학 박사) 한국신용정보 평가연구실장이 드러커의 핵심 사상을 정리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넋놓고 앉아 있을 수밖에 없다면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경영자는 없고 오직 도박꾼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드러커는 권한 위임,학습하는 조직,수평 조직,리엔지니어링,핵심 역량,변화 경영과 같은 영원한 경영학의테마들을 처음으로 제시한 사람이다.저명한 컨설턴트 톰 피터스가 “드러커 이전에 진정한 의미의 경영학은 없었다.”고 말하는 이유다.실로 철학에 있어 플라톤에 비견될만하다.그가 초기에 관심을 가졌던 문제는 ‘기업의 정당성’(Corporate Legitimacy)이었다.기업의 권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느냐 하는 것이었다.20세기 초 전체주의 사회의 권력이 몰고 온 극심한 폐해를 목도한 그는 새로 떠오른 ‘경영자 자본주의’야말로 전체주의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경영자 자본주의는 절대적인 선(善)인가.드러커는 그렇지 않다고 봤다.경제적·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경영자 권력은 결코 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기업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인 문제는 기업권력의 여러 속성이 낳은 부작용들이다. 기업권력의 속성이란 재화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자원을 관리하고(경제적 권력),조직의 구성원에게 행동을 명령하며(정치적 권력),자신의 활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삶의 질을 통제하는(사회적 권력) 것을 말한다. 아무리 유능하고 도덕적인 경영자가 운영하는 건전한 기업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적대적 인수의 제물이 될 수 있다.이때 노동자,주주,납품업자 등 어떤 잠재적 이해관계 당사자들도 이를 막을 수는 없다.주주와 전문경영자를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의 권력적 상충은 언제든지 상호 기만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최근의 회계투명성 문제도 그 일단의 부작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기업권력의 가장 바깥 자리에 노동자들이 있다.드러커는 20세기에 기업이 사회의 핵심적 실체로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기업 구성원의 대부분인 노동자들이 열악한 지위에 있기 때문에 정당하게 인정받기 어렵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커는 당시 온정주의 경영과 노동조합주의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고용과 급여를 포함한 직업 안정성을 도덕적 차원에서 보장하려는 온정주의 경영은 경기순환에 따른 주기적 불황이 불가피한 자유기업 체제에서는 임시방편적인 수단에 불과하다고 했다.마찬가지로 노조운동이 표방하는 이상주의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봤다.노조가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다수의 조합원이 아니라 지도부의 의지에 따르는 허상의 민주주의가 될 가능성이 크고,노조라는 것 자체가 또 다른 권력의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일종의 ‘기업 연방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기업을 미국식 연방국가 형태로 운영하는 것이다.그는 이런 형태의 기업운영이 노동자의 소외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은 품지 않았지만 그나마 온정주의나 노동조합주의보다는 나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1954년 출간된 ‘경영의 실제’를 통해 오늘날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변화경영’(Management of Change)을 선구적으로 소개했다.변화는 과거-현재-미래라는 3개 시간 차원을 중심으로 각각 전통적-이행적-변형적 사업이라는 구체적인 모습을 통해 기업현장에 등장한다고 했다.변화경영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대응이다.그러나 인간이 과연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가.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커는 미래를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것이 바로 그가 평생에걸쳐 추구한 ‘무지의 조직화’(Organization of Ignorance)라는 주제였다.가장 흔한 방법은 ‘투영’(Projection)인데,이것은 이미 발생한 과거의 사건을 통해 바라보는 가까운 미래다.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사회경제적 현상에 대해 경영자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미래의 사업기회가 어느 쪽으로 변화해 갈 지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최근에 등장한 전례없는 현상으로는 국제통화시장의 불안정성 증대,세계 인구집단 분포의 역동적 변화,민족주의와 테러리즘의 위협,저개발국의 기술 흡수력,현대도시의 개화와 삶의 질 향상이라는 의무 등을 들 수 있다.이를 바탕으로 드러커는 진정한 미래의 관리,즉 미래를 발명하는 체계적인 방법론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미래에 예상되는 사업기회들을 나열해 보고 현재로 다시 돌아와 작업하고,다시 피드백을 통해 그 결과를 점검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무지를 조직화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바로 드러커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체계적 경영이다.아무도 미래를알 수 없다고 넋놓고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다면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경영자는 없고 오직 도박꾼 밖에 없을 것이 아닌가. 우리는 드러커를 단순한 학자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기업경영의 모든 분야에 대해 너무나도 많은 실무적 조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는 단순한 컨설턴트 역시 아니다.넘보기 어려운 철학적 예지와 통찰이 그의 모든 글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제도권 학자들은 그가 자신을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를 무시할지 모른다.그러나 그는 결코 정형화할 수 없는 사람이다.그래서인지 저토록 방대한 사상적 족적과 영향력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이즘’(ism·∼주의)의 수식어가 따라다니지 않는 몇 안되는 자유인 중 한 명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것이다. ◆드러커는 누구 피터 드러커는 190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누대에 걸쳐 변호사·의사를 배출한 명문가의 자제였던 그는 10대 시절부터 빈의 지식인들과 자유로운 만남과 토론을 가질 수 있었다.어릴 적 다양한 접촉을 통해 ‘지식을 학습’한 것이 아니라 ‘학습하는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드러커는 김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한 17세에 독일 함부르크의 상점에 견습사원으로 들어갔다.불합리한 제도권 교육에 반감을 갖고 있던 터라 대학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이후 증권 애널리스트,신문기자 등을 거친다.일찌감치 다양한 직장생활을 함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신문사에 다니면서 프랑크푸르트대 법학부에 입학,22세에 19세기 독일의 정치사상가인 프리드리히 슈타알에 대한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는다.불연속성의 중요성,절대개념에 대한 거부,권력의 책임성 등 그의 사상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개념들은 슈타알의 영향이 크다.이렇듯 초기의 드러커는 정치철학자에 가까웠다.그러나 제너럴모터스(GM)라는 거대 조직을 연구한 ‘기업의 개념’(1946년)을 출간하면서부터 경영사상가로서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관심도 기업경영이라는 주제로 확실히 기운다. 언젠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장으로부터 교수직을 제의받았을 때,비즈니스에 대한 협소한 기술만을 가르치기는 싫다며 거절한 적이 있다.사상적 성향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드러커의 '기업가 정신' 드러커는 기업가는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본다.미래를 꿰뚫고 새로운 사업기회를 찾아내는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은 결코 천부적인 것도,창조적인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조셉 슘페터 같은 경제학자가 뿌려놓은 ‘기업가’에 대한 이미지,즉 불세출의 천재가 내뿜는 카리스마적 인상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이는 오히려 기업가 정신에 대한 사이비 개념이라고 생각했다.그는 기업가 정신은 노력을 통해 획득되는,즉 학습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은 오랜 기업현실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위대한 착상은 위대한 사업의 충분조건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 오랜 컨설팅 경험을 통해 그가 내린 결론이었다.위대한 착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착상 자체는 결코 위대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범부도 수많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러나 몇 안되는 진정한 기업가들만이 그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해 기꺼이 실패와 학습과 노력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그는 제너럴모터스(GM)의 알프레드 슬로언이나 제너럴일렉트릭(GE)의 랄프 코디너 같은 위대한 경영자를 통해 ‘다양성을 유기적인 사고방식 하에 통일시키는 것’이야말로 경영자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기업을 구성하는 다양한 개별기능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역할을 다하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1852년에 세워진 미국의 자동차회사 ‘스투드베이커’는 원만한 노사관계 정립에만 힘을 쏟은 나머지 다른 생존목표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 창립 14년 만에 도산하고 말았다.비슷한 관점에서 기업들이 이윤극대화라는 목표에만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 역시 잘못된 인식이라고 보았다. 그는 또 기업가의 입장에서 진정한 기회를 발견하기 위한 전술로서 다음과 같은 것을 제시한다.즉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의 활용 ▲비즈니스의 이탈 영역에 대한 인지 ▲인구통계 변화의 활용 ▲산업 및 시장구조의 변화 인식 ▲창조적 모방의 지략 ▲일본식 유도(柔道)의 원리 활용 ▲생태적 틈새의 발견등이다. 한국신용정보 송경모 평가연구실장
  • LG아트센터 비언어 신체극 두편 초대,‘신곡’ ‘스노우쇼’

    슬픔 분노 사랑 죽음…. 그 안에 숨어있는 수만가지 표정을 오로지 몸짓만으로 표현하는 광대들. 광대극의 전통을 이으며 실험적이고 환상적인 무대로 전유럽을 열광시킨 러시아의 비언어 신체극 두 편이 잇따라 LG아트센터를 찾는다. 러시아 아방가르드 연극의 선두주자 안톤 아다진스키가 이끄는 데레보의 ‘신곡'과, 세기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의 ‘스노우쇼'. 전자가 그로테스크하게 죽음을 형상화했다면, 후자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답게 원색의 꿈을 펼쳐보이고 있다. 빨간 코에 진한 화장을 한 채 커다랗게 부풀린 샛노란 옷 속에서 엉거주춤 걷는 광대.그가 바로 막스 밀러,찰리 채플린,마르셀 마루소의 뒤를 잇는 21세기의 광대 슬라바 폴루닌이다.그의 대표작의 주요 장면을 모아 만든 ‘스노우쇼’는 93년 ‘옐로’란 이름으로 초연된 작품으로 국내 무대는 2001년에 이어 두번째. 작품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다.마치 그림동화책의 장면 장면들이 튀어나온 듯한 환상적인 세계가 에피소드로 연결된다.힘겹게 끌고 나온 침대는 어느새 보트로 변해 항해하고,무대는 한순간 까만 밤하늘이 되어 달님이 은빛가루를 뿌리며,광대의 빗자루에 걸린 거미줄은 서서히 관객석을 뒤덮는다. 하지만 가슴 벅차는 환희와 웃음만 전달하는 공연은 아니다.그 웃음에는 슬픔이 아스라이 새겨져 있다.공연의 절정은 무대에서 관객석으로 몰아치는 눈보라.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며 흘리는 폴루닌의 눈물이 눈송이로 변하고 어느덧 거대한 폭설이 되어 소복이 쌓인다.슬픔마저 익살로 표현해야 했던 광대의 눈물이 세상에 희망으로 내리는 순간을 표현한 것.폴루닌은 79년 극단 리체데이를 창단,연극적 구성과 마임을 가미한 새로운 장르의 광대극을 개척했다.당시 러시아는 개방의 물결과 함께 실험적인 극단의 설립이 봇물을 이루던 때.하지만 리얼리즘 연극의 전통이 강하던 러시아에서 이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폴루닌을 주목한 건 유럽쪽.88년 영국 런던에서 첫 공연을 가진 뒤 90년대 후반까지 바르셀로나 골든노즈상,에든버러 페스티벌 비평가상,로렌스 올리비에상 등을 휩쓸었다.현재도 영국에서 활동하며,러시아의 국제행사 때마다 단골손님으로 불려간다.200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 연극 올림피아드’에서 ‘거리축제’의 총예술감독을 맡았다.새달 12∼23일 평일 오후8시,토 오후 3시·7시,일 오후 2시·6시(월 쉼).2만∼6만원. 폴루닌이 전세계적으로 이미 유명세를 확보했다면,‘신곡’의 안톤 아다진스키는 최근에야 주목받기 시작한 신예.폴루닌의 제자로,리체데이에서 활동하기도 한 그는 곧 연극적 취향이 다름을 깨닫고 88년 자신의 극단 데레보를 만들어 독립했다. 새달 5∼9일 무대에 오를 ‘신곡’은 지난해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소개된 신작.당시 프린지 퍼스트상,헤럴드 에인절상,토털 시어터 상을 휩쓸었다.중앙의 회전식 원형무대가 큰 특징으로,LG아트센터 역시 객석의 390석만 남기고 원형무대를 설치했다.원형무대는 시작과 끝,안과 밖의 경계가 없는 세계를 상징한다. 줄거리도,특정 등장인물도 없다.배우들은 날고 춤추고 뛰고 비틀며 사랑·고통·희망·공포 같은 개념을 다양한 육체언어로 보여줄 뿐.하지만 그 어떤 언어보다 때로는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때로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영적인 감성을 자극한다.산양의 뿔과 턱수염을 가진 나체의 남자가 남근에 큰 종을 단 채 나오고,무대 위로 불길이 타오르며,악마가 익살을 떨며 대장간에서 뭔가를 만들기도 한다.‘스노우쇼’가 모든 연령층이 좋아할 만한 동화 같은 연극이라면,‘신곡’은 보다 지적인 성인 관객을 위한 작품. 연극평론가 이진아씨는 “기괴함,가면,악마성,죽음과 생성 등 르네상스적인 모티브로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 ‘신곡’의 특징”이라면서 “최근 2∼3년간 에든버러 페스티벌의 스타로 떠오른 데레보는 이제 막 정상급으로 올라섰다.”고 평가했다.아울러 “폴루닌,데레보 모두 러시아보다는 유럽에서 각광을 받고 러시아로 역수입된 경우”라고 덧붙였다.5∼7일 오후 8시,8·9일 오후 4시.4만 5000원.(02)2005-0114. 김소연기자 purple@
  • [굄돌] 새내기 PD K에게

    먼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방송계에 입문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영상 매체를 만드는 문화 일꾼으로서 미디어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큰 포부를 안고 들어왔으니 앞으로 할 일도 많겠군. 신입 PD때는 해보고 싶은 것도 많지.드라마를 찍으면 바로 예술이 나올 것 같고,코미디를 만들면 온 세상을 웃겨볼 수 있을 것 같고,다큐를 만들면 금세 사회 정의를 구현할 것 같고…. 하지만,이 바닥에서의 일이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지.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다보면,어느새 시청률의 압박과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두 마리 호랑이에게 쫓기는 자신을 발견하지.PD가 캐스팅 권한을 쥔 상전이란 얘기는 이미 옛말이지. 스타급 연기자 모셔오기 경쟁에 뒤지면 프로그램 맡을 수도 없지.자신들을 키워낸 프로그램에 집단 출연 거부까지 서슴지 않는 연기자들도 있지.스타 연기자들을 데리고 있는 대형 기획사의 힘은 날로 커지고,그 앞에선 PD의 모습은 날로 초라해지지. 대중의 눈에 비친 PD의 모습도 더 이상 자랑스럽지만은 않지.지난해 PR비 파문에 연루된 일부 선배들의 소식은 PD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을 부끄럽게 했지.일부의 일을 들어 전체를 매도할 수는 없겠지만,일부의 비리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 전체 역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 이렇게 써놓고 보니,PD라는 직업이 공은 없고,수고로움만 많은 일 같군.원대한 꿈을 품고 들어온 후배에게 너무 김빠지는 소리만 늘어놓았군. 장밋빛 환상보다는 현실의 한계를 냉철히 파악하고,그것을 극복하는 후배가 되어주길 바라는 선배의 간곡한 희망으로 받아주길 바라. 어떤 후배는 쇼프로를 연출하고 싶지만,연예계 바닥이 너무 혼탁하여 그냥 다큐 PD가 되겠다고 하던데,글쎄….세속의 때가 싫어 떠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세상을 떠나 닦는 도가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될까.힘들고 먼 길일수록 마음 단단히 먹고 걸어가겠다는 장한 의지를 바랄 뿐이네. 김 민 식 MBC PD
  • 여야총무와 3자회동 의미/盧 초당적 정국운영 ‘신호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을 앞두고 18일 여야 총무들과 3자 회동을 가진 것은 정치권의 통념을 깬 파격적인 정치실험적 행보로 평가된다. 노 당선자는 정국 현안을 원내로 수렴,여야간의 불필요한 정쟁을 막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힘으로써 그의 임기동안 행정·입법부의 관계는 물론 여야 관계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노 당선자는 회동에서 “정당과 국회도 자율성이 강화돼야 하며 주요 국정은 국회를 중심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국가적 운명이 걸린 안보정책 등에 대해선 초당적인 협력을 구하고 정치적 난제는 야당 대표와 여야 총무,국회 상임위원장 등을 직접 만나 대화로 푸는 정공법을 구사할 뜻임을 내비쳤다.미국식 정치방식의 원용인 셈이다. 노 당선자는 이런 의지의 첫 표현으로 대선 과정에서 논란거리였던 대북 4000억원 지원설 등 국민적 의혹사건에 대한 엄정한 수사의지를 거듭 피력하면서,그 대가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원만한 국정 운영에 필요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법·인사청문회법·국회법·국회관계법 등 4개 법안 통과에 대한 한나라당의 협조를 약속받았다.노 당선자의 이같은 행보는 소수정권으로서 현 정부의 한계를 실감한 뒤 소신껏 국정을 펴기 위해선 원내과반 의석(151석)을 가진 한나라당의 협조가 필수라는 현실을 감안한 조치로 풀이된다. 그가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 총무에게 “정계개편은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당 개혁이 만족스럽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내부를 겨냥,집권당의 환상을 버리고 내년 총선에 매진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이규택 총무는 “야당을 이해하고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면 과거와 같은 발목잡기는 없어질 것”이라고 반겼다.이 총무는 회동 직후 “결론은 없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는 만남이었다.”면서 “민주당 구주류측이 반대해도 의혹사건에 대해 국정조사와 특검을 받을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다.”고 말했다.한나라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당선자의 인식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 정균환(鄭均桓) 총무도 “새로운 정치가 시작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이질 못했는데 이번 회동은 새로운 시대,새 정치를 하는 중요한 첫 걸음”이라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노 당선자는 1시간 40분동안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모임에서 과거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이 총무에게 “옛 친구께 소주 한잔 모셔야 하는데 이렇게 모시게 됐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김경운기자 kkwoon@
  • Anycall프로농구/솟구치는 블랙 “내가 아트 덩커”

    ‘최고의 아트 덩커는 나.’ 02∼03프로농구 정규리그에선 화려하고 호쾌한 덩크슛이 심심치 않게 터지고 있다.때론 골밑에서 몸을 솟구치며,때론 몸을 뒤틀며 림을 부숴버릴 듯이 내리 꽂는 슬램 덩크슛은 농구를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용병들의 주무기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내 선수들도 높이와 파워에서 모두 용병에 뒤지지 않는 덩크슛을 구사한다. 올 시즌 최고의 덩커는 LG의 테런스 블랙(192.5㎝).국내무대에 첫 선을 보인 그는 35경기에서 모두 81개의 덩크슛을 팬들에게 선사했다.한경기 평균 2.3개나 되며 지난해 12월25일 TG전에서는 7개를 폭발시킨 ‘덩크의 달인’.돌고래를 연상시키는 서전트 점프(104㎝)가 강점이며 노련한 포인트가드 강동희의 어시스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특히 강동희가 높이 띄운 패스를 골밑을 향해 뛰어들며 바스켓에 꽂는 앨리웁 덩크는 가히 환상적이다. 블랙의 현란한 덩크슛은 팬들을 불러 모으는데도 큰 몫을 하고 있다. 블랙의 뒤를 쫓는 선수는 TG의 데릭 존슨(205㎝·46개)과 동양의 마르커스 힉스(44개).평균 1.3개 정도로 블랙의 기록에는 거의 절반에 그친다. 하지만 이들도 폭발력에선 블랙 못지않다.특히 존슨은 TG의 전신인 나래에서 뛸 당시인 지난 99년 1월9일 대우(현 SK 빅스)전에서 역대 최고인 9개의 덩크슛을 성공시킨 적도 있다. 힉스도 최근엔 3점포에 맛을 들였지만 한경기 최고 5개를 넣는 등 최고 덩커의 잠재력은 충분하다. 이밖에 아비 스토리(삼성)아이지아 빅터(모비스·이상 평균 1.2개) 리온 트리밍햄(SK 나이츠·평균 1개) 등도 한경기 평균 1개 이상의 덩크슛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국내 선수 가운데는 김주성(TG·205㎝)이 최고의 덩커다.35경기에서 15개,평균 0.4개로 전체 13위. 높이와 탄력,순간 판단력에서는 용병들에게 뒤지지 않지만 정규리그 중반을 지나면서 공격보다는 수비에 주력하느라 기회를 많이 갖지 못했을 뿐 공격에 치중할 경우 ‘빅5’에 들 수 있다는 평가다. 김주성외에 정재근(KCC)이 2개,박재일(동양) 정훈(모비스)이 1개씩의 덩크슛을 기록중이다.국내 최장신 서장훈(207㎝)은 단 한개도 기록하지 못해외곽을 맴도는 센터임을 드러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캣츠’ 오리지널 버전 29일부터, 9년만에 온 ‘진짜 고양이떼’

    ‘진짜 고양이떼가 나타났다.’ 세계에서 최장기 공연 기록을 다투는 ‘특급’뮤지컬 가운데 하나인 ‘캣츠’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보는 기회가 왔다.전회 매진된,지난 94년 호주팀의 내한공연 이후 9년 만이다. 오는 29일부터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달굴 이번 무대는 엄밀히 말하면 인터내셔널 투어팀의 공연.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설립한 제작사 RUG가 런던과 뉴욕에서 막을 내린 뒤 세계 투어를 위해 새로 구성한 팀이다.배우·스태프들은 호주·남아공 출신.독일·일본의 라이선스 공연을 제외하고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날 수 없는 무대인 셈이다.세트와 의상은 호주에서 새로 제작해 갖고 온다. ‘캣츠’는 ‘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미스 사이공’과 함께 세계 4대 뮤지컬에 끼는 작품.T S 엘리어트의 우화집 ‘지혜로운 고양이가 되기 위한 지침서’를 토대로 각양각색의 인생경험을 가진 고양이들이 등장한다.고양이 눈높이로 맞춘 집채만한 크기의 깡통과 폐품더미 등 동화적인 무대에서 펼치는 환상적인 춤이 최대 볼거리.안개 가득한 무대에서 고양이를 태운 폐타이어가 하늘로 올라가는 마지막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꼽힌다.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불러 널리 알려진 ‘메모리’가 ‘캣츠’의 타이틀송. 81년 런던의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한 ‘캣츠’는 지금까지 30여개국 300여 도시에서 50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웨스트엔드에서 21년간 8950회를,브로드웨이에서 18년간 7485회를 공연한 기록을 남겼다.수익은 20억달러.83년 토니상에서는 작품·연출상을 비롯, 일곱 부문을 휩쓸었다.3월1일까지 평일 오후 7시30분,토 오후 3시·8시,일 오후 2시·7시.3만∼12만원.(02)580-1300. 김소연기자 purple@
  • 이영석 광주대교수 “분명한 모습의 近代란 없다”

    근대·전근대 구분은 자의적 표시 불과 “근대화는 무조건 좋은것” 인식은 환상 이영석광주대교수 주장 우리가 믿는 ‘우리의 근대’는 제대로 된 모습일까.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 꾸준히 모색해 왔으면서도 명쾌한 답이 제시되지 않은 이 문제에 대해 영국 근대사를 전공한 이영석(50)광주대 외국어학부 교수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근대의 모습을 제시하고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교수는 자신의 저서 ‘역사가가 그린 근대의 풍경’(푸른역사)에서 “분명한 모습의 근대란 없다.”고 잘라 말한다.“역사 속 근대의 모습은 항상 모호하며 변화와 지속이 혼재한다.”는 그는 “결국 근대적인 것과 전근대적인 것의 구분은 우리의 자의적인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특히 영국 근대사에 대해 일반적으로 ‘혁명적 변화를 통해 진보를 추구한 과정’이라고 이해하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그는 “영국 근대사의 전개 과정에서 근대성의 분명한 흔적들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르네상스와 종교개혁·영국혁명·산업혁명 등 근대산업사회의 결정적 변화를 모두 겪으며 근대의 전범(典範)으로 자리잡은 영국이지만 그곳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근대성 때문에 우리가 스스로 근대를 부정,비하할 필요가 없다는 것. 이 교수는 ‘근대’와 ‘근대성’에 대한 물음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치부하지는 않으면서도 “근대를 이성이나 계몽적 기획같은 추상적 외피로 둘러 싸서 단정적으로 재단하고 규정하려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경향은 받아 들일 수 없다.”고 밝힌다. 아울러 ‘근대성이 곧 진보’라는 시각을 경계한다.다시 말해 ‘근대화란 무조건 좋은 것'이라는 인식은 환상이라는 의미다.서구화의 동의어인 근대화가 좋은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에 대한 반란인 셈이다. “근대는 분명 해방을 수반하지만 억압성을 동시에 내장하고 있다.”는 그는 근대를 인과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근대를 견인하고 지탱한 주체,즉 노동계급에 눈길을 줘 그들이 창조했다고 믿는 근대의 이면을 미시적으로 들여다 보고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
  • 비아그라 혈관질환자에 뇌졸중 유발/美일리노이대팀 연구결과

    |시카고 연합|발기부전 치료제로 쓰이는 비아그라가 혈관 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혈전 형성을 촉진시켜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일리노이대 의과대학 약리학 교수 두 샤오핑 박사는 의학전문지 ‘세포’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혈관이 손상된 환자에게서 생성되는 환상(環狀) 구아노신일산산염(cGMP)이라고 불리는 화학물질이 비아그라와 만날 경우 혈전을 형성하게 된다고 밝혔다. 두 박사는 건강한 사람의 혈액에서 채취한 혈소판을 비아그라에 노출시킨 결과 비아그라 자체는 혈소판의 응집을 유도하지 못했지만 혈관이 손상되었을 때 체내에서 분비되는 구아노신일산산염과 만났을 때는 혈소판 응집이 생기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두 박사는 “비아그라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혈관이 막혔다거나 손상된 환자가 이를 복용했을 때는 혈전이 촉진될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이는 비아그라 복용자 중 심장병 전력이 있는 일부 사람들이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키는 이유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아노신일산산염은 오래 전부터 혈소판의 응집과 혈전 형성을 억제하는 물질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 연구 결과 사실은 정반대의 작용을 하는 것으로 밝혀짐에 따라 앞으로 비아그라의 처방 및 복용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르게 될 전망이다.
  • 서울시정개발硏 중간보고/청계천 복원 광화문 성동 신답철교 6㎞

    청계천복원의 시작점을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으로 하고 종점을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6㎞로 하는 등의 기본계획 중간 연구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9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공동위원장 권숙표)에 제출한 ‘청계천 비용편익 및 기본계획 중간연구 결과’보고에서 이같이 밝혔다. 황기연 연구지원단장은 “동아일보사 앞은 청계천 지천인 백운동천과 중학천이 합류해 사실상 청계천이 시작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고에서는 또 청계천복원후 청계로의 버스노선을 종로·을지로로 우회하는 대신 셔틀버스를 운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현행 청계천 운행 버스는 오는 3월부터 도입될 4대문안 도심순환버스와 연계해 남북으로 지하철역까지 오가는 셔틀버스를 도입한다는 것. 교량 복원과 관련, 역사적 복원 가치가 있는 것은 광교,수표교 등 9개 정도로 압축됐다. 연구진은 또 청계천을 수평축,돈화문길을 수직축으로 하고 여기에 4대문 방향으로 정동,북촌,남촌(남대문),대학로,장충 등 5개의 문화벨트를 조성하며 이 문화벨트를 둥글게 아우르는 환상의 성곽 형태를 복원해 걸어다니는 보행축으로 삼는 방안을 내놨다. 도심 활성화 방안으로 청계천을 금융중심의 무교동 일대,IT·문화의 세운상가일대,인쇄출판·의류패션의 동대문 일대 등 3개구역으로 나눠 민간주도로 개발하되 오피스텔,컨벤션센터,물류유통 시설 등의 지원책도 제시됐다.청계천 복원에 따른 삼일고가 차도 철거로 그간 공간적으로 분리됐던 세종호텔 부근 명동과 충무로가 처음으로 연결되고 신·구교의 명소인 영락교회와 명동성당이 이어진다. 이밖에 도로폭은 양쪽에 13.5m로 해 보도-조업주차-차도(편도2차로)-뚝방길로 구분했다. 한편 연구진은 청계천복원에 따른 사회적 편익을 3조 2623억원으로 내다보고 고용효과도 1만 7000명선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기본계획안은 다음달 시민위원회와 공청회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길섶에서]참소리

    연전부터 별렀던 강릉 참소리박물관을 관람하게 되었다.음향기기들이 많겠거니 기대는 했지만 소장 품목이나 수량이 그토록 다양하고 풍부할 줄은 미처 몰랐다.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환상의 요술궁전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소장품들은 관장이 40여년간 사재를 털어 넣어 모은 것들이라 한다. 전시품 중엔 특별한 모양도 아닌데 별도 케이스에 ‘모셔져’있는 것이 있었다.‘마드리드 그라모폰’이란 이름의 1896년 스페인 산 축음기.사연인 즉,작년 5월 전직 외교관이었던 원 소유자가 진품여부를 가려 주는 TV프로그램에 갖고 나왔다가 감정관으로 참여한 박물관장의 얘기를 듣고 흔쾌히 기증을 했다는 것이다.박물관 측은 물건과 함께 이런 갸륵한 마음도 함께 기려 놓고 있었다. 부(富)의 미덕을 생각해 본다.문을 열어 놓으니 많은 사람이 즐겁다.군림하려 하지 않으니 소유자도 편안해 보인다.이 땅의 더 큰 부자들은 어떤 미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가. 신연숙 논설위원
  • 오피니언 중계석/인간복제·생명공학연구 절충점 모색

    - 국회 과기정보위 공청회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 金炯旿)는 7일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인간복제와 관련해 관계 전문가들을 초청,‘인간복제 문제 및 생명공학 연구에 관한 공청회’를 열고 생명윤리와 난치병 치료연구의 바람직한 절충방안을 모색했다.공청회 주요 발표내용을 정리한다. ●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 인간복제는 금지하되 체세포 배아복제는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이들은 체세포 배아복제를 법으로 금지함으로써 우리나라 생명공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그러나 배아복제와 관련된 연구에는 생명윤리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다.무엇보다 인간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며,도구화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배아는 장차 인간으로 태어날 잠재적 생명체이다.연구용으로 배아를 생산·폐기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배아복제가 허용되면 난자가 상품화될 가능성이 높다.배아복제 연구는 많은 난자를 필요로 하고,이는 여성들의 몸에서 채취될 수밖에 없다.여성의 몸이 상품화될 가능성이 있다. 또 배아복제를 허용하면 상대적으로 거부반응이 없는 줄기세포 연구의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따라서 질병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로 생명과 여성을 도구화하는 배아복제는 당연히 금지돼야 한다.종간교잡 역시 생명윤리를 떠나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새로운 종의 출현이 야기될 수도 있는 만큼 금지돼야 한다. ●문신용 서울대 의대 교수(세포응용연구사업단장) 복제인간이 나올 수 있다는 잠재적인 위험성 때문에 체세포 핵이식 실험 자체를 제한하는 것은 21세기 생명공학의 근간인 ‘치료복제’의 발전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복제인간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궁 안으로 배아를 이식하는 행위를 완벽하게 제한하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생명으로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배아를 파괴할 수 없다는 분들의 의견도 존중하고자 한다.그러나 치료복제는 복제인간,즉 생명체를 전제로 해서 연구되는 것은 아니다.포배기의 배아는 태아는 아닌 것으로 생명공학자들은 의견을 정리하고 있다. ●신동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산업계와 과학계는 생명공학 기술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일반인들에게 강요하고 있다.반면 생명윤리 주장 역시 생명공학에 대해 잘못된 정보와 어설픈 대책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복제를 금지하기 위해 모든 생명조작기술을 금지시킬 수는 없다.이종간 교잡행위를 통하여 인체에 유익한 인슐린이나 인공 피부조직을 얻는 기술은 비록 복제기술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또 죽은 태아의 태반에서 추출되는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로마 교황청도 인정한 방법이다.심각한 유전적 결함이 증명된 수정란 또는 성숙한 배아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것도 법적 문제를 초래하지 않는다. 4년을 넘게 끌어온 입법의 공백과 비생산적인 생명윤리 논쟁은 일단락돼야 한다.현행 의료법과 형법으로도 인간복제는 금지할 수 있다.
  • 뮤지컬리뷰/’더 플레이’ 멜로·코미디 뒤섞인 유쾌한 버라이어티쇼

    뮤지컬 ‘더 플레이’(연출 김장섭)는 창작뮤지컬로는 드물게 덩치를 키워가며 흥행에 거듭 성공한 작품.4년 전 대학로의 소극장에서 시작했지만,관객들의 폭발적 호응에 힘입어 이번 겨울 대형 뮤지컬로 되살아났다. 사이버 악당 갓스(김장섭·이계창·유준상)와 인터넷 악동 지니(박은영·노현희)가 벌이는 인터넷 게임이 작품의 큰 줄기.가장 사랑하는 대상에게 최면을 건 뒤 ‘빵’을 다섯번 불러야 깨어나는 첫번째 게임,한 여인을 둘러싼 조직폭력배 보스와 검사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한 두번째 게임,소심한 남자에게 사이비 교주의 능력을 부여하고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지에 내기를 건 세번째 게임 등이 이어진다. 이같이 하나의 극으로 비극적 멜로,풍자코미디 등 다양한 캐릭터와 장르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최대 강점.음악 역시 가스펠을 편곡한 랩·록·재즈·발라드 등으로 각각의 장면을 더욱 풍성하고 유쾌하게 그려냈다. 대형 뮤지컬에 걸맞게 무대세트와 조명도 정교해졌다.사이버 공간을 상징하는 청회색 빛의 거대한 세트와 노란 빛으로 표현되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은,현실과 환상의 교차를 효과적으로 잡아낸다.무대 중앙의 거대한 손,천장에서 내려오는 이층 난간 등 에피소드 별로 눈에 띄는 세트를 장치해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인터넷 경매,달리는 버스 등 무대에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은 영상으로 처리해 신세대 감각을 살렸다. 무엇보다 소재가 동시대를 사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소력이 높다.인기 스타·인터넷·건강을 각각 최우선에 놓고 살아가는 서로 다른 세대의 모습,대화가 단절된 가족,사이비 교주를 통해 본 끝 모르는 인간의 욕망….작품은 이 시대의 일그러진 풍경을 때로는 코믹하고,때로는 묵직하게 펼쳐낸다.배꼽 빠지게 웃다가도 한번쯤은 나 자신과 가족,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것.인터넷 게임을 소재로 했지만 연령에 상관 없이 작품에 빠져들 수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하지만 버라이어티쇼처럼 이것저것 벌여놓아 다소 산만하다.관객 참여를 유도하며 쇼를 벌이는 장면 등은 불필요하게 늘어진다. 지난해 뮤지컬대상 5개부문 수상작.2월9일까지 화∼목 오후7시30분,금∼일 오후 3시·7시30분.코엑스 오디토리움(02)574-1470. 김소연기자
  • 애들아 미술관에 놀러가자...과자집.국수의자.거울방....

    과자로 지은 집,팝콘으로 만든 눈사람,거울로 꾸민 방 등 상상 속의 세상이 어린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서울 양재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새달 9일까지 열리는 ‘조각이란 무엇인가’전과 사간동 갤러리현대가 7일부터 새달 9일까지 마련하는 ‘프린스˙프린세스’전,관훈동 인사아트센터가 8일부터 새달 2월2일까지 갖는 ‘맛있는 미술관’전은 모두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전시회랄 수 있다. 각 주최측은 “미술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먹고,만지고,느끼는 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입을 모은다.그 말마따나 이 전시들은 모두 예술과 놀이가 혼합된 것으로,젊은 작가가 대거 참여해 미술로 표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세상을 보여준다.‘예술작품임을 망각하는’어린이들의 천성을 이해하는 작가들은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각이란 무엇인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의 이 전시는 심오한 제목과는 달리,관람을 마친 어린이들이 “재밌어요.다시 보여줘요.”를 간청할 만큼 독특하고 실험적이다. 1960년대 이후 현대조각을 8가지 주제로 나눠 보여주는 전시장은 곳곳에서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표현주의로 분류된 조성묵의 ‘소면으로 만든 의자’ 앞에서는 “와! 국수다.”를 연발한다.사실주의 작가 강관욱의 ‘민초Ⅲ’‘구원’에서는 어린이들이 만져보며 좋아한다.조용신의 볼록렌즈에 떠오르는 ‘데드마스크’도 신선하다.키네틱 조각인 김동원의 ‘편서풍’은 관람객과 조각이 직접 교류하는 작품.관람객이 조각품에 올라서면 센서가 몸무게를 감지해 선풍기로 미풍부터 강풍까지 맞춰서 내보낸다.권오상의 사진조각 ‘미스,블랙홀,랜드마크’는 노란색 배경과 모자이크한 실물 크기의 사진조각 덕에 인기가 높다.양만기의 첼로 설치조각인 ‘연주자’는 첼로 현을 만지면 관객 체온에 따라 작동하는 센서가 클래식 등의 소리와 영상으로 보여준다.긴 흰색 풍선으로 만든 김윤경의 ‘가슴’,냉장고 안의 차가운 발을 만져보는 ‘유효기간’도 즐거운 구경거리다.(02)580-1300. ●프린스ㆍ프린세스 젊은 작가 14명이 갤러리현대 지하 1층에 꾸민 환상의 나라로,어린이가 체험하는 일종의 ‘소인국’이다.‘디지털 코스모스’(이경호 작)에서 하늘의 해를 만져보고,동물모양으로 꾸민 터널(황혜선)을 지나면,달콤한 과자로 만든 집(오정미)이 나온다.거울로 만든 방(박은선)을 지나 분홍색 털로 안을 채운 풍선으로 만든 집(변선영)을,앉은 자세로 빠져나와야 한다.하얀나비가 춤추는 나비의 나라(양민하)를 둘러본 후 작은 동굴에 들어가 하늘을 보고 누우면 총총한 별과 우주의 신비를 절로 느끼게 된다.1·2층에는 어른도 볼 만한 그림·조각·설치를 준비했다.백남준의 비디오설치 ‘호랑이’를 비롯해 박수근 장욱진 이중섭 등의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 있다.(02)734-6111~3. ●맛있는 미술관 인사아트센터의 이번 전시는 음식을 소재로 상상력을 키워주는 자리.구성연 함명수 등 젊은 작가 10여명이 40여점을 내놓았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할 전시장은 달콤한 냄새가 솔솔 흘러나오는 3층 전시장의 ‘과자로 만든 세상’일 듯.푸드 아티스트이자 작가인 오정미가 다양한 과자를 이용해 만든 과자집,팝콘으로 만든 눈사람,과자 꽃이 핀 화분 등을 전시한다.지하에 설치하는 ‘뒤죽박죽 과자 공작소’‘어린이 전시장’은 어린이들이 ‘과자가 열리는 달콤한 화분 만들기’ 등 작품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공간이다. 평상시 즐겨 먹는 과자를 재료로 작품을 만든 뒤 전시할 수도 있다.과자로 만든 드레스·망토를 입고 기념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02)720-1020. 문소영기자 symun@
  • 대한매일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성혁

    1.기형도 시의 가상성 그의 죽음에서 벗어나 작품속 죽음 의미찾아 이 비평문은, 그러니까 기형도의 텍스트와 텍스트를 이어보고 만져보면서 이 가상적 구성물인 텍스트에 드러나 있는 것을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재구성(‘시인'의 세계관이나 무의식을 재구성하는 것이 아닌-)하여 다시 텍스트를 짜내려는 시도이다. 그래서 우선 기형도 시의 ‘가상성'을 부각시키려 한다. 이는 기형도 자신도 원하는 것일 게다. 그의 친구인 원재길은, 별로 주목된 바 없는 글이라 생각되는 10여 년 전의 글에서, “창작자와 시적 자아를 동일시하는 심리주의 비평의 어떤 그릇된 접근 방식은 시인 자신으로부터 이미 거부당하고 있다.”(대화적 울음과 극적 울음)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위에서 거론한 비평가들이 조야한 심리주의 비평에 빠졌다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시와 기형도의 의식의 동형관계에서 벗어나 시를 문학적 텍스트로서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원재길은 이미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더 나아가 기형도의 여러 시편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 인물과 간단한 사건과 시간에 순연하는 구성이 있는 극적인 구조를 취한다.”라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기형도 시가 하나의 독특한 가상적인 구성물임을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하지만 그는 이에 대해 깊게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 않았고, 그의 지적이 논자들에게도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다. 대개의 평문들에선 기형도 시의 등장 인물들-낯선 ‘그'로 자주 등장하는-은 대상화된 ‘나'로 취급되어 기형도의 자아를 반영하는 인물이 되어 버리곤 한다. 즉 기형도 시가 ‘극적 구조', 하나의 가상적 구성물임을 주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 - 부분 2)김은 중얼거린다, 누군가 나를 망가뜨렸으면 좋겠네, 그는 중얼거린다/나는 어디론가 나가게 될 것이다, 이 도시 어디서든/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당황할 것이다/그가 김을 바라본다. 김이 그를 바라본다/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 정연한가/김은 얼굴이 이그러진다 - 부분 1)에 등장하는 서기나 ‘김'을 대상화된 기형도 자신으로 파악하는 것은 한편으론 옳고 한편으론 그르다. 옳다는 점은 플로베르가 “마담 보바리는 나”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의미에서, 모든 허구적 인물들은 작가의 분신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시 같은 서정적 장르에서는 그 분신의 농도가 더 짙으리라. 하지만 그 등장 인물이 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파악은 그르다. 시에서도 소설과 마찬가지로, 그 등장 인물은 시 텍스트의 공간 내에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서정시의 ‘나'는 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게 된 텍스트 속의 ‘나'이다.시인의 자아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을 받은 ‘나'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서정시인일 것이다. 위의 시에서 서기는 시인의 대리일 뿐 아니라 카프카적 의미에서의 서기, 관료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무의미한 일에 탕진하고 있는 우리네 삶의 형식의 상징으로서의 서기이다. 유리창은 그 서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와 서기를 갈라놓는다. 이 유리창 때문에 ‘나'는 울고 있는 서기에게 가서 위로의 말 한마디 건네줄 수 없다. 하지만 유리창 덕분으로 ‘혼자 울고' 있는 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유리창은 타자와 소통할 수 없게 하는 칸막이면서도 또한 ‘혼자' 각각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게 한다. ‘나'와 ‘그'를 동일시하여 각자 홀로 있는 ‘나'와 ‘그'의 어긋나 있는 대위 구조를 보지 않는다면 이 시가 뿜어내고 있는 의미를 붙잡기 힘들다. 원재길의 ‘극적 구조'를 넓게 본다면 이 장면 역시 그 구조에 포함시킬 수 있으리라. 침묵의 극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까. 1)의 서기의 울음을 조명하여 해명해주는 텍스트로 볼 수 있는 2) 역시, 독백의 극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등장하는 ‘그'와 ‘김'은 동일 인물의 분신들이다. 1)에서 시적 화자가 ‘나'라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과 달리, 이 인물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적 화자가 담론 배후에 있고 시 표면에 등장한 ‘나'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김'의 중얼거림이 나타나 있다. 홀로 있는 ‘김' 옆에서 ‘김'을 ‘바라보는' ‘그'는 사물화된 김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김이라 할 수 있는데, 성으로만 표시되어 개성을 잃어버렸음을 표시하는 ‘김'보다 더 몰개성적인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김'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그와 김, 그리고 흐물흐물한 대명사가 되어 버린 ‘나', 또 이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극적으로 어울리게 된다. 그런데 1)에서 서기의 울음을 볼 수 있는 순간은 바로 홀로 있음의 순간, 침묵의 순간이었다. 침묵이 깨지면, 이 순간은 깨지고 말 것이다. 세계를 토막내는 언어의 세계가 침묵할 때 순수한 존재 자체가 떠오르지 않겠는가. ‘두 시', 삶이 무의미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순간을 깨달을 때의 침묵의 시간, 그 직후터뜨리는 울음의 순간에 배치되는 사물과 인간을 이 시들은 포착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극적 구성은 플롯을 시에 도입하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배치된 장면을 응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런데, 이 일상을 갑자기 전복시키는 시간이 정지된 순간은 기형도 시에서 중요한 모티브로 작동된다. 그는 (어느 푸른 저녁)의 시작 메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끔씩 어떤 ‘순간들'을 만난다. 그 ‘순간들'은 아주 낯선 것들이고 그 ‘낯섬'은 아주 익숙한 것 들이다. 그것들은 대개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방향으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불안과 가능성의 세계가 그때 뛰어들어온다. 그 ‘순간들'은 위험하고 동시 에 위대하다. 위험하기 때문에 감각들의 심판을 받으며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 …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 들이 끊임없이 시를 괴롭힌다. 이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형식이 기형도의 가상적 구성물-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순간을 포착하여 보여준다. 그 순간은 시간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어떤 흐름의 불연속선들이 접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한다는 것은 어떤 연속선상을 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텅 빈 그 순간, 침묵의 순간을 말하기 위해선 우회로를 빙빙 돌아 그 순간을 간접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 즉 가상적 공간, 더 나아가 환상적 공간을 구성하여 그 순간을 암시할 수밖에 없다.(어느 푸른 저녁)에서는 그 순간을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이라고 말한다. 이 저녁엔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에서 사람들은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 순간이 온다. 이 환상적인 순간은 어떤 예감을 통해 감지하게 된다고 시적 화자는 말한다.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고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을 숨기고 있는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모든 움직임이 홀연히 정지”한 상태, 이 상태는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실제 상황의 묘사로는 이 상태를 그려낼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상태는 볼 수 없는, 예감으로서만 감지할 수 있는 상태이면서, 예감했다고 알아차린 순간 없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라고 시는 말하고 있지 아니한가. 이 순간은 그러니까 현실 묘사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구성될 수 있는 것이다. 이 환상은 의미의 블랙 홀과 같은 상태다. “보이지 않은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의미는 사라지고 언어도 사라진다. 시인은 또 “이 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역시 순간일 뿐이다. ‘검은 외투'-죽음의 외투-를 입은 사람들은 여전히,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순간을 애써 외면한다. 그리고 그들의 딱딱하고 무미한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본다”고 시인은 말한다.(여기서도 시적 화자는 보는 사람이며, 증언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블랙 홀과 같은 어떤 순간을 느낀 순간, 나에게 ‘그'가 다가온다. ‘그'는 ‘나'의 분신이라고 할 수도 있으며 동시에 메피스토펠레스적인 악마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악마는 말을 걸어온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의 인생의 의미를 모두 무화시킨다.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라고 그 악마는 속삭인다.다시 말해 모든 것이 무의미의 검은 구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을 예감할 때 그 악마는 등장한다. 그리고 세상의 법칙, 아마도 죽음으로 가는 삶의 법칙을 가만히 상기시킨다. 기형도 자신이 말한 ‘가능성'과 ‘불안'은 그 ‘순간'이 이 악마적인 것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일 것이다. 이 악마적인 것이 죽음을 지시한다는 점에서 ‘위험'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시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그리하여 새로운 삶,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가능성'을 주며 ‘위대'하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무의 지경에 다다른 이때 투명하고 푸른 공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감추어진 ‘둥글고 빈 통로'가 열린다. 그래서 악마적인 ‘그'가 말한 숨겨져 있는 ‘법칙'은 다만 죽음의 법칙만이 아니라 환상 속의 다른 통로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형도 시의 환상은 양면적이다. 일상적 삶의 흐름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채택되는 그의 환상은 우리의 삶을 무화시키는 블랙 홀의 역할을 하면서도 동시에 다시 신비롭게감추어진 희망을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시는 시의 탄생과 그 탄생이 가져오는 양면성에 대한 알레고리일지도 모른다. 2.기형도 시의 이중성 파우스트가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고 외치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는 그를 지옥으로 데려간다. 이때 아름다움의 순간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 아름다움은 일상의 권태로운 세계를 무화시킨다. 인간은 권태의 세월보다 죽음을 무릅쓴 아름다움의 세계에 닿고자 하지 않겠는가?(그래서 아름다움은 치명적인 유혹이라 할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름다움은 죽음의 세계에 맞닿아 있으면서도, 일상적 삶이 도리어 죽음과 같은 삶이라는 것을 드러내어 삶을 희망하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파우스트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것도 늙은 파우스트가 아름다움의 순간을 찾아 나서는 데서부터이다. 물론 그는 끊임없는 생성을 젊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만약 자신이 말한다면 자신을 지옥에 데려가도 좋다고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말했다. 그러나 결국 파우스트는 자신이 매립제에건설한 도시(악마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가상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를 바라보며 “순간이여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라는 죽음의 말을 토해내며 쓰러진다. 즉 파우스트가 산 젊음은 이 아름다운 가상에 대한 외침에 도착함으로써 끝난다. 그의 젊음과 행위는 결국 아름다움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그 ‘아름다움의 순간'이란 착지에서 그의 젊음과 힘은 지옥으로 넘겨진다./기형도 시가 포착하려던 그 “위험하고 동시에 위대하다”는 ‘순간'의 이중성도 아름다움에 대한 《파우스트》적 아이러니와 같은 맥락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기형도의 시가 드러내는 아이러니는 순간이 가져오는 이 이중성에 대해 팽팽한 긴장을 풀지 않음으로써 이끌려 나온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시작 노트와 을 다시 상기해보자. ‘아주 낯선 것들'이면서 ‘아주 익숙한 것들'이라는, 순간들의 이중성에 대한 긴장을 시인은 계속 놓치지 않는다. 아니 순간들의 이중성의 포착은 이 대상에 대한 긴장에 찬 예민성의 끈을 풀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아주 낯선 것들로의 ‘둥글고 빈 통로'를 마련하는 어떤 순간은 우리가 언제나 부딪히는 일상에서의 어떤 순간이다. 그래서 ‘아주 익숙'하기도 하다. 그 순간이 벌려내는 환상은 우리 삶의 현장인 일상의 삶을 무화시키면서도 어떤 다른 세계로의 통로,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놓는다. 이 이중적인 통로의 발견을 기록하는 데서 기형도의 시는 드러나기 시작한다. 통로의 이중성은 ‘둥글고 빈'이라는 수식어에서 이미지화되어 있다. ‘둥근 것'은 아날로지의 세계를 상기시킨다. 아날로지는 모든 개체가 전체를 비추고 전체가 개체들을 끌어안는 조화의 세계 아닌가./그 세계는 둥글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비어 있다는 진술에서 ‘둥근 것'의 아날로지 세계는 아이러니의 상태로 변화된다./‘둥글고 빈' 통로는 아름다움에로의 통로이기도 하지만 無에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이 둥글고 텅 빈 통로를 통과하여 다다른 어떤 다른 세계, 아름다움의 세계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공기 방울의 세계이다. 저녁 노을이 지면/神들의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城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한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신비로운 그 城///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그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성에 살고 있다///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 성 안은 “아름답고/신비”한 세계이다. ‘시작 메모'에서 말한 ‘위대한 순간'이 형상화된 세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역시 ‘위대하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이 세계에도 해당된다. ‘존재'가 차안의 세계에만 해당된다는 개념이라면 말이다. 이 세계는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않은가. 이 세계는 신들과 농부들과 작은 당나귀는 이 성 안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어느 하나도 빠지면 성립되지 않는 세계이다. 즉 아날로지의 세계다.시인도 ‘역시' 작은 당나귀들도 평화로운 그 성에 농부들과 살고 있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성은 공기와 같은 세계라서 “구름 혹은/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다가갈 수 없다. 갑자기 시간이 멈추어지고 세계가 낯설어지며 감각이 착란될 때의 순간이 열어놓는 어떤 ‘푸른 저녁'같을 때, 사람들이 “가벼운 구름같이/서로를 통과해”갈 수 있었다. 이 ‘순간'에만 바로 ‘둥글고 텅 빈' 통로를 따라 이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성 안의 세계는 바로 그렇게 공기 방울, 구름이 된 사람들이 어우러져 이룬 세계이다. 그런데 이 공기 방울의 세계는 차안의 공간에 있진 않지만, 차안과 동떨어진 피안의 공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세계는 차안의 공기 안에 있다. 우리가 언제나 대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언뜻 벌려진 공기와 공기 사이의 블랙 홀을 공기가 되어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세계이다.그러니까 이 성 안은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저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뒤-옆-앞에 있다. 그래서 이 세계에 들어가려는 골동품 상인-아마 차안의 세계의 속성인, 살해를 자행하는 폭력성을 보여주는 등장 인물이라 할-이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가 보았자 헛수고가 될 수밖에 없다. 골동품 상인은 차안의 세계 뒤에 있는 세계를 알지 못한다. 그는 숲만 자르면 성에 도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삼차원적 세계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가 차안에서 아무리 폭력과 파괴를 행한다 해도 이 숲으로 된 성벽 안은 의연히 평화로운 마을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만큼 불안하다. 우리가 이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앞에서 보았듯이 기화되는 길밖에 없다. 통로가 ‘빈' 통로여서 들어가려는 이는 빈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루어진 공기 세계는 어떤 무게 있는 물질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볍게 둥둥 떠다닌다. 공중에 투사된 영상처럼 흩어졌다 모여지는 그런 세계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라치면 그 세계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버릴 것이다. 이 아날로지의 세계는 그래서 희망의 저편에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은 품을 수 있으나 어느전도와 착란의 순간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다. 즉 우리가 사는 이 차안에선 이루어낼 수 없을 세계이다. 기형도가 희망에 대해 ‘어둡고 텅' 비어 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숲으로 된 성벽' 자체가 비어 있고, 그 비어있는 곳에 도달하고자 하는 희망도 빈 희망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다시 돌아갈 수 없으리, 흘러간다/어디로 흘러가느냐,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희망을 포기하려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리, 흘러간다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 - (植木祭) 중에서 기형도 시에서의 ‘죽음'은 시인의 우울한 세계관이나 유년의 기억 때문이라기보다는,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와 선택을 통해 ‘각오'한 것이다./ 이 죽음의 각오는 ‘둥글고 빈 통로'에 들어갈 때부터 이미 예정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통로에 들어간다는 일은 다른 삶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의미와 죽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음을 앞에서 본 바 있었다. 통로 저 편에 있을 숲으로 된 성벽에 갈 수있으리란 희망은 절망으로 전화될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둥글고 빈 통로를 걸어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이란 빈 희망이기에 그러하기도 하고, 숲으로 된 성벽이 아름답다고 외친 순간 그 아름다움의 덧없음이 부각되면서 죽음이 드러나기 때문에, 즉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은 어두운 희망이라 말할 수 있기에 그러하기도 하다. 그 성벽은 “침묵의 목책 속에 갇힌 먼 땅”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착란과 환상을 통해 대기에 구멍이 나는 순간을 파악하려는 기형도 시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을 때의 죽음으로 가는 구멍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푸른 유리병' 같은 공기가 점차 탁해지면서 ‘안개'로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 읍에 처음 와본 사람은 누구나/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안개) 중에서 푸른 대기 속의 둥글고 빈 통로는 ‘안개의 빈 구멍'으로 전화한다. 다른 삶으로 가는 ‘순간의 통로'가 안개에 의해 막혀버리고 순간이 가지는 죽음의 성질만이 드러난다. 이 순간은 안개로 뒤덮인 환상적인 마을을 구성함으로써 나타나고, 그 죽음의 성질은 다시 일상이란 것이 얼마나 죽은 상태와 같은가를 간접적으로 포착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차안의 세계에 대한 네거티브 필름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네거티브 필름 같은 가상적 세계는, 흐리멍덩한 색깔인 안개의 색깔로 대상의 윤곽만 드러내면서, 생명 없고 답답한 무엇으로 현상한다. 이 시를 더 읽어보자. 죽음의 공기인 ‘안개'의 빈 구멍은 사람들을 빨아들여 그 속에 가두어 놓는다. ‘이 읍' 사람들의 삶은 ‘쓸쓸한 가축들'처럼 무리지어 있지만, 안개의 형식으로 존재하는 세계 앞에서 무력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 읍은 “몇 가지 사소한 사건”이 일어나는 곳인데, 그것은 “한 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당”하기도 하고, “방죽 위에 醉客 하나가 얼어 죽”지만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그것이 쓰레기더미인 줄 알았다고”(같은 시에서)하기도 하는 사건이다. 겁탈당한 여직공과 얼어죽은 취객은, 윤곽밖에 보이지 않는 이 읍 안 사람들에겐 파괴당한 삶을 흐릿하게 바라보고는 쓸쓸하게 고개를 숙여보게 하는 사건 정도의 의미만 가질 뿐이다. 그들 눈앞에서 타인들은 안개 속으로 ‘지워지고' 그들은 제각기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게 된다. 안개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 없게 만드는 세계의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또는 그렇게 변화 없이 사는 사람들의 삶을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 없는 지속이 기억의 지속을 가져오진 않는다. 그 반대이다. 이 읍에선, “상처 입은 몇몇 사내들”이 “이 폐수의 고장을 떠나갔지만/재빨리 사람들의 기억에서 밀려”나 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지속의 시간성은 텅 빈 시간성이다. 기억이 없이 사는 것은 텅 빈 삶이다. 그것은 현재와 과거와의 상호적인 울림이 없는 시간이고, 그래서 미래조차 가능하지 않은 시간이다. 왜냐하면 현재가 끊임없이 과거로 되어야만 미래가 있을 수 있어서, 과거가 존재하지 않으면 미래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개는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 존재이다. 움직이지 않는 존재는 죽은 존재이다. 죽은 존재인 안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죽은 존재이다. 안개는 독과 같다. 그러나 그 읍 사람들은 안개를 마약처럼 마신다. 안개를 편하게 느낀다./ 안개가 끼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의 얼굴을 내보여야만 해서 “방죽 위의 얼굴들은 모두 낯설”어지고 “서로를 경계하며/바쁘게 지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읍은 ‘안개의 聖域'이 된다. 안개 속의 삶이 정상적인 삶이 된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게 되기도 한다. 이 세계 속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가”게 된다. 이 반어적 표현에는, 안개가 ‘무럭무럭' 키우는 아이들의 삶이란 그들 모두 검은 굴뚝과 폐수와 겁탈의 위험이 있는 공장으로 쓸쓸히 끌려가는 가축과 같은 삶임을 암시한다. 3.작품속 죽음의 포착 (안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가 희망의 포기를 선택했을 때 기형도 시가 발 딛고 있던 ‘순간'은 무서운 죽음의 세계-안개로 뒤덮인 읍과 같은-를 입벌려 드러낸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음의 세계-지옥에서의 형벌-는 ‘느릿느릿 새어나'와 계속 ‘미친 듯이 흘러다'((안개)중에서)녀야 한다. 앞에서 본 (식목제)의 “마음 한 자락 어느 곳 걸어두는 법 없이”, “어느 곳이든 기척 없이”라는 구절에서와 같이 이 형벌은 정착이란 있을 수 없게 만든다. 기억도 없이, 미래도, 삶도 없이 흘러다녀야 한다. 오직 흘러다님의 지속만 있을 뿐이다. (안개) 속의 읍내 사람들은 명계(冥界)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아다니는 유령과 같은 존재였다. 삶을 잃어버린 이 유령의 떠돌아다니는 모습이 일군의 기형도 시의 한 주제를 이룬다. 내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의 짐짝들에게 나는 쓴다/이 누추한 육체 속에 얼마든지 머물러 가시라고/모든 길들이 흘러 온다, 나는 이미 늙은 것이다 - (정거장에서의 충고) 중에서 기형도는 죽음을 무릅쓰고 희망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현실의 이면에 있는 죽음의 안개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와 동일하게 안개에 중독된 유령들을 포착하기 위해선 희망을 억눌러야 한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육체를 ‘희망을 감시해 온 불안'들이 머무는 정거장으로 쓰려고 한다. 불안이 죽음을 예감할 때 느끼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머물게 한다는 말은 죽음들의 예감을 머물게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죽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길이 자신에게 흘러들어 죽음이 그 길을 통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길이 흘러드는 정거장으로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려면 자신의 육체 자체가 걸어다녀야 한다. 길이 걸어올 수는 없는 법이니까 말이다. 길이 흘러 온다는 말은 자신이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길을 흡수한다는 말이다. 걸으면서 길을 흡수하고 흡수한 길을 통해 불안-유령을 만나고 그 유령의 세계를 구성하는 환상으로 시가 구성되게 된다. 이 유령과의 대면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白夜)에선 “빛과 어둠을 분간할 수 없는/팡팡 빛나는 이 무서운 白夜” 속에서 “무슨 農具처럼 굽은 손가락들, 어디선가 빠뜨려버린/몇 병의 취기를 기억해내며” “천천히 걷고 있”는 한 사내를 보여준다. “휘적휘적 사내는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사내는 “문닫힌 商會 앞에서 마지막 담배와 헤어”진다. 그의 등에 “軍用 파커 속에서 칭얼거리는 어린 아들을 업은 채” 말이다. 담배 살 돈이 없을 이 사내는 아마 어린 아들과 함께 길에 쓰러져 쓸쓸히 얼어죽을 것이다. (가는 비 온다)에서는, 어느 가는 비 오는 날,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지 않는다는 시적 화자가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전개하는 여러 상념들을 보여준다. 그 상념들은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나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면/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와 같은 죽음의 여러 모습이다. 주검을 직접 보여주는 시도 있다. 가령, “구름으로 가득찬 더러운 창문 밑에/한 사내가 쓰러져 있다, 마룻바닥 위에/그의 손은 장난감처럼 뒤집혀져 있다”((죽은 구름))와 같은 구절이 그것이다. 여기서 주검은 감정이 절제된 상태로 서늘하게 즉물화되어 있다. 시적 화자가 우울하게 가고 있는 거리엔 주검들과 죽음에 대한 상념을 유인하는 ‘낡은 간판'들이 널려 있으며 기후마저도 그러한 상념을 피워 올리게 한다. 그의 눈에 포착되는 사람들은 좀 있으면 죽을 운명이거나 죽어버린 이다. 또는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유령들이다. 이들은 회한과 외로움에 말라죽어 가는, 행복과 거리가 먼 이들이다. 플랫폼에서 본 청년들은 “톱밥같이 쓸쓸해 보이”고((鳥致院)), 어느 카페에서 본 사내는 “그것으로 탁자를 파내”면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장밋빛 인생))라고 새겨 넣는다. 삶을 박탈당한 유령들의 포착은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처럼 ‘흘러다'니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가 포착하는 대상의 대부분인 흘러 다니는 사람들은 시적 화자 자신의 삶을 회고하는 촉매로 작용하게 된다. 그 사람들의 삶이 시적 화자의 삶과 다름없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다시 시적 화자의 내면 독백은 떠도는 자의 내면을 드러내게 된다. 내린다, 진눈깨비, 놀랄 것 없다, 변덕이 심한 다리여/이런 귀가길은 어떤 소설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구두 밑창으로 여러 번 불러 낸 추억들이 밟히고/어두운 골목길엔 불켜진 빈 트럭이 정거해 있다/취한 사내들이 쓰러진다. 생각난다 진눈깨비 뿌리던 날/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낡고 흰 담벼락 근처에 모여 사람들이 눈을 턴다 - (진눈깨비) 중에서 진눈깨비 뿌리던 날, 시적 화자는 그날도 역시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그는 ‘취한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거해 있는 ‘빈 트럭'도 본다. 그리고 ‘구두 밑창'으로 ‘추억들이 밟히'는 소리를 듣는다. ‘하루종일 버스를 탔던 어린 시절'이 밟히는 소리도 듣는다. 외로운 빈 트럭과 쓸쓸하게 쓰러지는 취한 사내들에 대한 묘사와 시적 화자의 어린 시절들을 불러오는 회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시적 화자가 주체가 되어 추억들을 불러온다기보다는 저 진눈깨비와 거리의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기억들을 불러온다. 그 기억은 “찬밥처럼 방에 담겨/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엄마 안오”시기에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엄마걱정) 중에서)의 기억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가 거리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은 엄마가 없어 빈방에 혼자 훌쩍거린 기억을 감추고 있을 사람들이며, 역시 집에 들어가면(집이 있다면)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사람들일 게다. 죽어가는 이 유령들은 그런 기억을 깊이 품고 살아갈 것이며, 이는 다시 역으로 시적 화자 자신도 그 기억을 품고 쓸쓸히 죽어 가는 유령들 중의 한 사람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그래서 ‘죽음'을 발견하는 ‘흘러 다니기'는 점점 시적 화자 자신 안의 죽음의 흔적을 찾는 여행이 되어버리게 된다. 시적 화자는 “곧 무너질 것만 그리워했”((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다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들이 결국 그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죽음을 증언하는 시적 화자 자신이 유령과 같이 떠돈다. 그는 “낡아빠진 구두에 쑤셔박힌, 길쭉하고 가늘은/자신의 다리를 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여행자) 중에서)라고 울부짖는 여행자와 같은, 떠돎을 그만둘 수 없는 유령이다. 환상적 공간의 열린 순간을 통해드러난 죽음의 세계, 그리고 그 안을 떠돌아다니는 유령적 삶의 포착은, 이렇게 자신도 유령이라고 인식하는, 안개의 구멍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도 안개에 중독되어 버렸다는 점을 인식하는 시적 화자의 등장을 통해 완성된다고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죽음의 공간은 더욱 전일화되고 가공할 것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세계를 증언하는 자신도 유령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의 그 경악의 순간은, 바로 메두사가 페루세우스의 방패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의 그 놀람과 두려움의 순간과 같을 것이다. 그런데,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기형도의 시는 바로 그 경악의 순간을 포착한 카르파치오의 (메두사)란 ‘그림'과 같은 것일 터, 시 텍스트는 그 경악의 순간 자체, 또는 그 순간의 재현이라기보다는 경악의 순간을 구성하여 현현하게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예술 텍스트가 구성되기 이전엔 그 경악의 순간을 우리는 ‘맞서게 되지' 못한다. 환상을 사용하여 순간을 포착하는 시-예술이 그 경악의 얼굴을 객관화할 때 비로소 경악의 순간은 우리 앞에 나타난다. (입 속의 검은 잎)은 바로 자신의 얼굴을 본 메두사가 경악하는 순간을 객관화하는 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죽은 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그의 어린 아들은/잎들의 포위를 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그 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택시 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그 일이 터질지 모른다, 어디든지/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입 속의 검은 잎) 중에서 이 시에서 등장하는 진술과 사건들이 현실의 어떤 대응물을 지시한다고 본다면 곧바로 해석의 난점이 생길 것이다. 운전기사, 장례식, 망자의 혀, 없어진 사람들, 죽은 사람, 검은 잎,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나' 등, 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시 텍스트 안에 배치되었을 땐 이 단어들은 그 대상들을 지시하지 않게 된다. 하나의 극적 공간 속으로 이 존재들은 새로 의미를 얻으며 움직인다. 이 움직임은 공포의 분위기에 맞추어진다. 어떤 가공할 권력에 의해 살육된 자들이라 상상할 수 있는 ‘무더기'의 실종된 자들-망자들-의 말하지 못하는 혀-잘린 혀일까?-는 유령처럼 이 세상을 돌아다닌다. 그 유령들은 벌써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린 사람들 몸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 혀들은 이제 ‘거리에 흘러넘'친다. 장례식은 살육당한 자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일까? 그 죽은 이의 잘린 혀 역시 거리에 흘러 다닌다. 물론 그 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잘 들어보면 잘린 혀들이 내는어떤 철버덕거리는 소리, 성대가 잘려나간 채 바람만 빠지는 쇳소리를 내는, 꿈틀대는 소리들을, 원한들을, 슬픔들을, 저주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환청 속에서 시적 화자는 자신의 혀가 ‘천천히 굳어'감을 자각한다. 그것은 시신을 실은 ‘백색의 차량 가득' 나부끼는 검은 잎 때문이다. 살육이 자행되는 세계에서 살해당한 자들의 유령이 검은 잎일까? 그 유령들-검은 잎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릴 때 혀는 굳어져오며, 이윽고 죽은 자의 혀가 된다. 그리하여 시는 죽은 자의 혀로 쓰여지게 된다. 그리하여 시인은 지옥에 가 있는 이들이 지옥에서 겪는 고통을 무당처럼 대신 말해주는 이가 된다. 정리하자면, 시적 화자가 온통 죽은 사람들의 세계에 와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바로 그 세계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인 운전기사가 어딘가로 그를 데려가서 이 유령들이 시적 화자의 혀를 통해 죽음의 이 세계를 증언할 수 있도록 시적 화자에게 내리는 신들림을, 언제 살육될지 몰라 두려워하는(‘그 일이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의 음산한 어조로 이 시는 보여주고 있다. 아득한 공포의 순간/을 객관화시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떤 수수께끼를 동반한 순간적 전율을 느끼게 된다. 기형도의 시가 도달한 한 극점은 바로 여기다. 앞에서 보아온, 환상적 공간이 뚫어 놓은 순간의 구멍을 통해 나타나, 죽음을 퍼뜨리는 세계와 그 속에서 떠도는 유령들이, 이 시에선 하나의 전율케 하는 장면으로 종합되어 갑작스레,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현현하기 때문이다. 이 경악의 세계는 물론 가상의 세계이고 현실 세계로 치환되지 않는다. 하지만 기형도 시의 세계가 현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향유 대상으로서의 단순한 가상과는 달리, 시어가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뿜어내는(메두사를 본 메두사), 자기 파열이 가져오는 전율을 우리에게 이 가상 세계는 던져주는데, 그 객관화된 전율과 맞서는 독자는 충격 속에서 새로운 현실에 부딪히며 일상적 시간의 지속이 파열되는 ‘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가상적 순간의 충격 속에서 일상적 시간 안에 감추어진 안개와같은 죽음의 습기를 감지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공포의 세계는 기형도 시가 열어 놓은 ‘순간의 통로'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입 속의 검은 잎)의 세계는 그 반대 극점이라 할 수 있는 (숲으로 된 성벽)의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고 희망할 순 없을까. ‘순간의 통로'는 다시 저 유토피아적인 미의 세계로, 숲으로 된 아날로지의 세계, 공기 방울 같은 환상의 세계로 길을 열어 놓기도 하지 않았는가. 물론 아날로지의 세계가 급전하여 유령들의 세계, 경악의 세계가 현현하는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아 왔다. 그러나 반대로, 경악의 세계가 급전하여 다시 저 아날로지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가 열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 두 극점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경악의 세계는 다시 희미하게 ‘숲으로 된 성벽'으로 가는 길을 비출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적 세계는 부정성을 통해서만 희미하게 빛날 수 있다면 말이다./그렇다면 기형도의 시는 일상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이를 통해세계와의 화해의 열망을 담아 놓을 수 있는 용기도 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기 위해 두 세계의 연결 지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고, 이 작업은 상당한 분석과 해석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글을 마치는 이 시점에서도 비평적 재구성은 완성되지 않았다. 아니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기형도 시 텍스트는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며 몸을 벌리고 있다. (끝) ◆당선소감 영광이다.기쁘다.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진다.과연 좋은 글을 내가 계속 써나갈 수 있을지,두렵기조차 하다. 당선 통보를 받고 비평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좋은 비평을 하기 위해선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큰일이다. 지금은 문학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다.문학이 다시 정치에 복무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아니라 문학 자체의 정치성에 대해서,그리고 더욱 정치성이 짙은 비평에 대해서. 선거 행위만이 정치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면 정치는 윤리의 문제로서 생각해야 한다. 또한 윤리가 단순한 도덕의 차원이 아니라면 삶에서의 권력과 활력 문제로서 윤리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문학은 권력 망을 드러내고,비판하며 그것에서 삶이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줄 수 있고,삶의 활력을 북돋을 수 있지 않은가.그렇다면 문학의 윤리-정치성은 더욱 증폭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 그리고 비평이 정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인간 관계의 가능성을 드러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나에게 사랑과 기쁨을 전해 준 사람들에게,그리고 상처를 준 사람들에게도,빈 말이 아닌 ‘고맙습니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이성혁 ●약력 67년 서울생, 한국외국어대 일어과 동 대학원(국문학), 외대강사, 99년 ‘문학과 창작' 평론부문 신인상 수상 ◆심사평 김용하의 ‘미적인 것의 정치성과 정치적인 것의 윤리성’,오홍진의 ‘관념으로 빚은 소설의 성채’,이성혁의 ‘경악의 얼굴-기형도론’,이은식의 ‘사물과 하나가 되기까지의 여정’,장사흠의 ‘풍경의 미학과 권력의 탐색’이 주목을 받았다. ‘미적인 것…’은 미학적 범주들과 시적 언어 사이의 조응 양상을꼼꼼히 살핀 글이지만,미적 개념들을 상호 연관시켜 긴밀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데는 실패하였다.‘관념으로…’는 짐승의 세계와 신성의 세계 사이에서 요동하는 정찬 소설의 권력의 역학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으나 스스로 논리를 감당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말았다.‘사물과…’는 다양한 철학적 개념들을 갈아타며 정현종의 시적 여정을 차분히 밟아간 글이었으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 ‘풍경의 미학…’과 ‘경악의 얼굴…’이 마지막까지 남았는데,‘풍경의…’는 최인훈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개진된 권력의 내면화와 그에 대한 문학적 응전의 과정을,핵심 의미체들을 길어내며 흥미진진하게 추적한 글이고,‘경악의…’는 시인의 심리학에 치중한 종래의 평문들을 단김에 뛰어넘어 극적 구성의 관점에서 기형도의 시 세계를 새롭게 조명한 글이다. 그러나‘풍경의…’는 기계적인 구성과 엉뚱한 결말이 글쓴이의 설익은 문학관을 엿보게 하였으며,‘경악의…’는 미학에서 사회학으로 넘어가는 대목에서 지리멸렬해지더니 급기야 막다른 길로 뛰어들고 말아,심사자들을 경악케 하였다.하지만 패기만만한 도전과 그 패기가 창안해 낸 새로운 해석 세계는 썩 강렬한 인상을 남겨 마지막 선택의 근거가 되었다.이성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끈기 있게 정진하기를 당부한다. 정과리 김인환
  • 올 서울 시정 이렇게 펼친다/청계고가도로 4월부터 철거 시작

    올해는 서울의 ‘지도’가 확 달라지는 원년이 될 전망이다. 대중교통의 대대적인 개편안에 따라 버스운행이 간선과 지선 중심으로 바뀌고 무정차 통과와 배차간격 등 운행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지령’을 내리는 ‘버스 종합사령실’도 운영된다. 또 백화점 등 대형 유통업체뿐만 아니라 재래시장에서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배달받을 수 있는 ‘콜센터’가 도입되는 등 서울시정 각 분야에서 상당부분 변화를 꾀하게 된다. 올해 펼쳐지는 시정 사업중 시민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분야별로 정리해 본다. ●30년만의 시내버스 운영체계 대개편 오는 3월1일부터 모든 버스가 외곽에서 도심까지 직행으로 달리는 간선버스와 지하철 환승지점까지 운행하는 지선버스,도심순환버스,통근급행버스 등 4개 체제로 수술이 단행된다. 간선버스는 3월7일부터 4월12일까지 도봉로 등 동북부 지역부터 먼저 실시한 뒤 시내 전역으로 확대된다.5개 교통권역별로 업체들끼리 컨소시엄을 형성하고 노선은 수익보다 공익성에 우선이 두어진다.모두 3000여대가 투입된다. 마을버스를 포함한 400여대의 지선버스는 노선과 운영방식 결정에 신축성을 부여하기 위해 자치구별 특성에 맞는 버스 형태가 도입된다.도심에서의 쇼핑,관광 등 편의를 돕고 환승기능을 높이기 위한 도심 순환버스 80여대도 운행에 들어간다.출퇴근때의 혼잡을 덜기 위한 통근급행버스도 200여대 운영된다. 이와 함께 차선 운영도 중앙버스전용로와 우선신호제 도입 등 대중교통 중심으로 크게 바뀐다. 버스종합사령실(BMS)은 10월부터 운영된다.각종 버스운행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운행상태를 감시·감독하고 시민들에게 휴대전화,인터넷,개인휴대단말기(PDA) 등을 통해 버스도착 예정시간과 노선,배차간격,막차시간 등의 교통정보를 상세히 제공하게 된다. ●뉴타운 건설과 청계천복원 원년 서울시는 지역간 균형발전의 초석이 될 조례가 시행되는 오는 2월부터 이미 선정된 뉴타운 3개 후보지에 대한 정지 작업에 나선다. 성북구 길음동 624 일대 95만㎡에 건립할 1만 3730가구는 2006년,성동구 하왕십리동 440 일대 32만 4000㎡에 들어서는 6000가구와 은평구 진관내·외동,구파발동 일대 359만 3000㎡에 들어서는 1만 1500가구의 뉴타운은 각각 2008년까지 마무리된다. 이와 함께 말도 많았던 청계천복원 공사도 첫삽을 뜨게 된다.앞서 4월쯤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가 시작된다. 이에 따라 청계천 구간을 통과하는 시내버스가 우회하는 등 이 일대가 극심한 교통 체증에 시달릴 전망이다. 고가도로 철거가 끝나고 인근 상가 등 이해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마치면 7월 복개도로를 걷어낸다. 청계천복원으로 수표교 등 복개로 묻혔던 문화재가 제 모습을 되찾게 되는 동시에 다른 문화재 복원사업에도 탄력을 받게 된다.오는 2006년 마무리를 목표로 경희궁,풍납토성,북한산성 복원공사가 연내 잇따라 착수된다. 청계천복원은 녹지축 연결과도 이어진다.이달중 청계천복원 이후를 감안한 시내 녹지축 실시설계에 착수,2005년까지 율곡로 등 도로들의 지하화 등을 통한 녹지 연결을 꾀한다. 궁극적으로는 창경궁∼종묘,세운상가 일대,남부순환도로 등 녹지들을 연결함으로써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어간다는 구상이다. ●장애인 이동성 확보를 위한 첫발 기초생활보호대상자를 상대로 시범실시한 ‘장애인 전용 콜택시’(100대)가 운행에 들어갔다.매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용 가능하며 보호자도 동승할 수 있다.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는 시내 6만여명의 1,2급 중증 장애인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요금은 일반택시의 40%수준이며 콜센터(1588-4388)로 전화하면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콜택시와 자동 연결해준다. 역시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의 이동을 돕기 위해 승·하차 계단을 없앤 ‘저상버스’ 20대가 4월15일부터 시범 운행된다.현재는 용산구에서 1대를 시험 운행중이다.성과와 지역별 이용률 등 추이를 봐가며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간선버스 노선에도 차례로 투입된다. ●재래시장 통합 콜센터 구축 재래시장 활성화를 위해 시내 18개 재래시장의 상품을 인터넷과 전화로 공동주문받아 배달해주는 ‘통합 콜센터’가 이달중 운영에 들어간다. 시장별 인터넷 쇼핑몰과 점포별 홈페이 구축,택배시설 등을 지원하며 대상자는 각 자치구에서 접수한 뒤 서울시 재래시장활성화협의회에서 가린다. ●굵직한 건설공사 4월중에는 양천구 목동에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입구를 잇는 제2성산대교 건설을 위한 실시설계가 착수된다.이 공사는 이르면 2006년 완료된다. 또 9월엔 강남지역을 순환하는 도시고속도로 공사가 첫삽을 뜬다.강남 순환고속도는 동서·남북 구간을 나누어 건설,전체적으로 환상형 도로운행이 되도록 설계됐다.450억원이 투입된다.동서구간은 경기도 광명∼수서를 잇는 22.9㎞,남북구간은 강서구 염창동∼광명간 11.9㎞다. ●중간의 집 새롭게 주목되는 사회복지사업으로는 미혼모들의 양육을 돕기 위한 ‘중간의 집’이 손꼽힌다. 중간의 집은 3월1일부터 서대문구 대신동 127의20 일대에 세워져 운영된다.10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으며 무료로 숙식이 제공되고 직업훈련비와 육아비도 지원된다. 송한수기자 onekor@
  • 인형극·연극·뮤지컬 공연 다채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관람하는 것은 이제 겨울방학 필수 코스가 됐다.이같은 소비욕구에 맞춰 인형극·연극·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이 쏟아지고 있다.방학과제용으로 시간을 때우기보다는 좋은 공연을 골라,막 싹튼 아이들의 감수성에 단비를 뿌려주자. ●인형극,상상의 세계로 떠나자 저녁 하늘을 밝히다가 떨어뜨린 별을 제자리에 돌려 놓으려는 인형 피에로의 모험을 환상적으로 담은 캐나다 극단 눈의 ‘별지기’.25가지 캐릭터의움직임과 음악만으로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인형극이다.대사가 없어 5세 이상이면 볼 수 있다.새달 7일부터 2월2일까지 오후 2시·4시(월 쉼).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02)333-4578. 현대인형극회의 ‘브루노의 그림일기’는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격자무늬인형극.귀여운 강아지 브루노가 일주일동안 겪는 재미있는 일상이 소재다.35개의 격자형 틀이 움직이면서 그림이 바뀌고,틀 안에서 인형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이색 무대다.새달 16∼30일 오후 1시(월 쉼).정동극장(02)751-1500. 이밖에 알을 못 낳아 마당에서 쫓겨난 암탉의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극단 민들레의 손인형극 ‘마당을 나온 암탉’이 새달 4∼30일 오후 2시·4시(월 쉼)에 학전블루 소극장 무대에 오른다.(02)3663-6652.새달 4∼12일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는 ‘줄인형 콘서트-띠용이와 떠나는 환경캠프’가 열린다.오후 2시·4시30분.(02)500-1220. ●연극,감성·사회성을 키우자 우선 어린이 마임극이 눈길을 끈다.‘버블 마임(Bubble Mime)’은 두 광대가 우산·비눗방울·인형·가방과 함께 떠나는 행복한 여행을 형상화한 작품.한·일 마임이스트들이 함께 출연한다.새달 4∼19일 오후 2시·4시(월 쉼).문예진흥원 예술극장 소극장(02)875-8225. 피아노와 플루트의 라이브 연주가 화가의 그림과 어우러지는 극단 성시어터라인의 ‘피아노와 플루트로 만든 그림연극’은 ‘감성 연극’이라는 명함을 내밀고 이미 여러차례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았다.새달 4∼26일 오후 1시·4시.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02)875-8225. 동영아트홀을 어린이연극 전용극장으로 꾸민 극단 사다리의 ‘호랑이 이야기’는 새달 30일까지 계속된다.화∼금 오후 2시·4시,토·일 오후 1시·3시(월 쉼).(02)499-3487.호주의 수준급 영어연극 극단을 초청한 라트어린이극장의 ‘리틀 드래곤’도 새달 8일부터 연장공연에 들어간다.3월2일까지 수∼금 오후3시,토∼일 오후 3시·6시(월·화 쉼).(02)540-3856. ●뮤지컬,신나게 즐기자 두드리고 구르고….마법사 4총사와 요리사의 바다·우주 모험을 그린 ‘어린이 난타’가 새달 3일부터 2월9일까지 서울교육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떠들썩한 잔치다.신나는 노래와 춤,흥겨운 랩과 리듬이 어우러지는 무대.오후 1시·3시(월 쉼).1588-7890. 쓰레기 별이 된 화성을 구하러 떠난 지구소년 토토를 통해 환경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뮤지컬 ‘토토’도 롱런작.새달 26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공연된다.평일 오전 11시 오후 3시,토·일 오후 1시·4시(월 쉼).(02)766-3390.그리스 로마 신화를 뮤지컬로 꾸민 ‘판도라의 선물’은 3월1일까지롯데월드 SBS 테마스튜디오에서 선물 보따리를 푼다.오전11시,오후 1시·3시.(02)418-5480. 김소연기자 purple@
  • ‘불교와 서양의 만남’ 프레데릭 르누아르 지음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불교와 서양의 만남은 20세기 가장 의미심장한사건”이라고 단정했다.최근 들어 서양에서 불교는 일부 지식층의 지적 호기심 차원을 넘어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얻고 있다.평화로운 붓다의 미소가 고난에 찬 예수의 얼굴을 대신할 날이 올 것인가. ‘비트족의 우상’ 잭 케루악을 비롯해 톨스토이·보르헤스·헉슬리 등 불교의 가르침에 심취한 작가는 수없이 많다.작가들뿐만 아니다.철학자 쇼펜하우어 또한 유럽이 불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구실을 했으며,할리우드 스타 리처드 기어는 불교를 전파하는 데 누구보다 열성적이다.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리틀 붓다’,장 자크 아노의 ‘티베트에서의 7년’,마틴 스콜세지의 ‘쿤둔’ 등 거장들은 앞다퉈 티베트 불교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만들었다.서양 사람들이 왜 이토록 불교에 관심을 보일까. 프랑스 주간지 ‘렉스프레스’의 칼럼니스트인 프레데릭 르누아르가 쓴 ‘불교와 서양의 만남’(양영란 옮김·세종서적 펴냄)은 고대 그리스시대부터현대의 ‘불교적 인본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불교와 서양의 만남이 어떤역사적 장면과 일화를 남겼는가를 살핀 책이다.서양문화에 얽힌 불교 이야기가 만화경처럼 펼쳐진다. 고대 서양인들은 불교에 관해 거의 알지 못했다.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에 따라나선 이들이 불교 승려를 만나고,인도의 아소카왕이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제자들이 생겨난 정도다.동양의 신비한 종교에 대해 어렴풋한 이미지만 갖고 있었을 뿐이다.중세에는 14세기 초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가 나옴으로써 불교 승려들과 붓다의 삶에 관해 더욱 많이 알게 됐다.그러나 불교에매료된 서구인들은 그것을 종교적 논쟁의 도구로 이용하는가 하면,기독교적으로 각색한 붓다 일대기를 지어내기도 했다.도미니크 수도사는 정적에게 일격을 가하려고 불교를 이용했으며,디드로·볼테르 등 백과전서파는 이 새로운 동양 종교를 이용해 진리의 유일한 수호자임을 자임하는 가톨릭 교회를굴복시키고자 했다. 이 책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 중에서도 특히 쇼펜하우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톨스토이가 “가장 천재적인인간”이라고 부른 쇼펜하우어는 30세 되던 해인 1818년 역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냈다.여기서 그는 불교 철학과 매우 비슷한 사상을 전개한다.‘고통이 모든 삶의 근본’이라는 허무주의적이고 염세적인 쇼펜하우어 철학은 불교 사상과 많은 부분에서 맥이 통한다.삶과 고통을 동일시하고 고통의 원인을 욕망으로 보는 점,자아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집착을 버릴 것을 강조하는 점 등이 똑같다. 문제는 프로이트나 마르크스·니체 등 19세기 후반을 풍미한 유럽 지식인과 동시대 사람들이 불교와 쇼펜하우어 사상을 자주 혼동했다는 사실이다.젊은 시절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제자로 불교에 심취했으며,불교를 기독교보다 많은 장점을 지닌 종교로 이해했다.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불교를 염세주의의 가장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여겼으며,유럽이 불교로 개종하게 될까염려했다.오늘날까지 통용되는 불교에 대한 서양의 몇몇 편견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19세기 말 불교가 서양인 마음을 사로잡게 된 데는 비교주의(秘敎主義)의역할이 컸다.무엇보다 서양의 비교주의와 불교를 접목시키려 한 신지학회(Theosophical Society)가 한몫 했다.1875년 헨리 스틸 올코트 대령과 러시아출신 여성 헬레나 블라바츠키가 뉴욕에서 만든 신지학회는 당시의 조류인 유물론과 교조주의적 종교들을 비판하며 세를 불려갔다.그러나 신지학회는 불교를 중심 교리로 삼는 과정에서 심각하게 왜곡했다.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의 존재를 부정하고 개인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붓다의 가르침이,유신론과개인적인 자아에 대한 믿음으로 둔갑한 것이 그 한 예다.양차 세계대전 사이 점차 늘어난 불교 신자는 대부분 신지학을 통해 불교를 접했다.신지학은 서양 철학과 신학을 불교개념에 입각해 재해석하려 한 최초의 시도였다. 이 책은 1989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시기를 ‘불교적 인본주의’라는 범주로 묶는다.1989년은 서양과 불교의 만남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상징적인 해다.프랑스를 비롯한 구미 지역에 널리 불교를 전한 칼루 린포체가 이해에 입적했고,서양인의 집단 무의식 속에 ‘반교황’ 또는 ‘현대판 교황’으로 새겨져 있는 달라이 라마가 노벨상을 받은 것도 이 때다.특히 전통 티베트 불교를 계승한 최후의 큰스님 칼루 린포체의 입적은 서양 불교사상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된다.그의 입적 후 서양에서의 불교 전파는 새 장을 열게 된다.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대한 관심은 1989년 20세기 최후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한층 고조됐다.아울러 불교가 지닌‘현대성’도 새삼 조명받고 있다.불교는 아인슈타인이 지적했듯이 “현대과학과 양립 가능한 유일한 종교”다.모든 것이 불확실해진 현실에서 불교는서양인들에게 ‘실용적인’ 정신적 삶의 나침반이 되고 있다.스스로 고갈돼가는 서양의 정신에 깨달음의 빛을 던져 준 불교는 바야흐로 구미사회에서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1만 2000원. 김종면기자 jmkim@
  • 어린이 책꽂이/동물들의 동맹파업 外

    ●동물들의 동맹파업(크리스티앙 부샤르디 글,피에르 에자르 그림,김주열 옮김) 어느날 갑자기 농부가 농장을 뜯어 현대식 건물로 바꾸려 하자 성난 야생동물들이 저마다 제 역할을 하지 않기로 결의했다.올빼미는 쥐를,제비는채소밭의 벌레를 잡아먹지 않으니 이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인간은 자연과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진리를 재미있는 우화로 일깨운다.초등 저학년용.두레아이들 8500원. ●잃어버린 세계(아서 코난 도일 글,장석진 옮김) 영화 ‘쥬라기 공원’의모티브가 된 아서 코난 도일의 SF고전.어린이에게 추리소설의 묘미를 맛보여 주는 길라잡이로 제격.영화와 관련된 에피소드,다양한 공룡 정보 등을 두루 담았다.초등 3학년 이상.옹기장이 8500원. ●올리버와 유령친구들(에바 이보슨 글,민승남 옮김) 마녀·유령·요정이 쉴새없이 신비한 마법을 구사하는 등 환상과 모험 코드로 넘쳐나는 영국산 판타지 동화.주인공 올리버를 둘러싸고 등장하는 무섭지 않은 유령,목이 부러진 유령,조깅하는 유령 등 각양각색의 캐릭터가 재미있게 묘사된다.초등 고학년용.문예당 6800원. ●꼬마 어네스트(로라 반즈 글,캐럴 브라칼렌테 그림,강계식 옮김) 어네스트는 난쟁이 당나귀의 이름.키가 작아 기죽어 사는 어느날 친구 트라비스가 소중한 진실을 귀띔해 준다.“키가 크다고 마음까지 넓은 건 아니야.” 외모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당나귀의 이야기에 곱씹어볼 교훈이 담겼다.4세 이상.효리원 9000원. ●숨바꼭질 생일파티(린다 제닝스 글,조앤 파티스 그림,이승희 옮김) 숨바꼭질을 소재로,유쾌한 글과 아기자기한 원색 그림이 멋지게 조화를 이룬 그림책.생일을 맞은 표범이 케이크를 나눠먹을 친구들을 찾아나선다.3∼6세용.문학동네 어린이 8500원. ●사막에서 만난 친구(베티나 오브레히트 글,카트린 엥겔킹 그림,유혜자 옮김) 길 떠난 낙타는 여행중 여러 친구들을 사귀면서 두고온 노새가 정말 좋은 친구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진정한 친구를 얻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알게 된다.4∼7세용.주니어 김영사 7900원.
  • anycall프로농구/TG허재와 LG강동희 한판 승부

    프로농구의 ‘살아있는 신화’ 허재(37)와 강동희(36)가 ‘성탄절 결투’를 벌인다. 02∼03프로농구 공동 2위 TG,단독선두 LG의 ‘야전사령관’이자 최고참 현역인 허재와 강동희의 올시즌 세번째 맞대결 무대는 25일 오후 3시 펼쳐칠창원경기.앞선 두차례의 격돌에선 박빙의 접전 끝에 허재의 TG가 연승했다.이번 경기는 강동희의 LG로서는 설욕전인 셈. 그러나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한판이다.팀의 정신적 기둥 역할을 해온 두노장의 자존심이 걸렸을 뿐 아니라 앞으로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재 1게임차로 뒤진 TG가 이기면 공동선두로 올라서고,LG가 이기면 선두독주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허재의 최대무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기술과 송곳 같은 어시스트.승부처에서 과감하게 던지는 외곽포 등.특히 슈퍼루키 김주성(205㎝)과의 콤비 플레이가 위력적이다.용병 데릭 존슨과 양경민의 득점포도 허재의 손끝을 거쳐야만 마침내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지난 22일 코리아텐더전 4쿼터에서 보여준 것처럼 막판 고비에서 결정적인 한방을터뜨리는 승부사 기질도 여전하다.이 때문에 그의 나이만을 의식해 견제의끈을 늦췄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강동희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올시즌들어 ‘코트의 마술사’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를 느끼게 할 만큼 환상적인 드리블과 예술적인 어시스트를 뽐내“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또 TG에 김주성-존슨 ‘트윈타워’가 있다면 강동희의 휘하엔 리바운드왕라이언 페리맨과 파워와 세기를 겸비한 테렌스 블랙이 버티고 있다.조우현-조성원 쌍포의 파괴력도 TG를 능가한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강동희는 풀타임을 소화하기가 벅찬 허재를 체력적인 면에서 앞서고,홈경기 이점도 안고 있다.두차례의 대결에서 모두 져 “강동희는 역시 허재의 벽을 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은 점도 필승 의지를 자극하는 대목이다. 중앙대와 기아에서 ‘황금콤비’로 불리며 정상을 구가하다 이제는 갈라선두 거장.‘불혹’을 바라보는 나이를 잊은 채 불꽃투혼을 불사르는 두 거장의 ‘정면충돌’을 앞두고 코트는 벌써 후끈 달아 오르고 있다. 곽영완기자 kw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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