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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 / ☆처럼 빛났다

    2002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유럽무대를 강타했다.‘설바우두’ 설기현(안더레흐트)은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렸고,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진출 1호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는 멋진 데뷔전을 치렀다. 설기현은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비슬라 크라코프(폴란드)와의 03∼04시즌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예선 3라운드 1차전에 선발 출장,전반 11분 선제골을 어시스트 해 팀의 3-1 승리를 도왔다.설기현은 이로써 지난 7일 2라운드 2차전 라피드 부쿠레슈티전 결승골을 포함,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해 챔피언스리그에 유독 강한 면모를 뽐냈다. 발목 부상을 털어낸 설기현은 날카로운 측면 돌파로 상대 수비를 끌어내 예스트로비치와 아루나의 공격 루트를 열어줬다.전반 11분 예스트로비치의 선제골로 연결된 절묘한 크로스 패스로 팀 분위기를 한껏 끌어 올렸고,팀이 2-0으로 여유있게 앞서자 후반에는 한방을 노렸다. 후반 6분 두 명의 수비수를 제치는 환상의 드리블로 골문을 두드렸지만 무위로 돌아갔고,29분에는 절묘하게 올린 크로스 패스를 아루나가 골로 연결시키지 못해 아쉽게 어시스트를 놓쳤다.설기현은 “예스트로비치가 부상으로 교체돼 스트라이커로 뛰었지만 골을 넣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이천수는 같은 날 이탈리아 우디네에서 벌어진 세리에A 우디네세와의 친선경기에 오른쪽 날개로 선발 출장해 풀타임을 소화,유럽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당초 후반 교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부상으로 빠진 주전 카르핀 대신 선발에 포함됐다. 이천수는 전반 자신의 자리인 오른쪽 측면에서 활발한 몸놀림으로 최전방에 포진한 투톱 코바체비치와 니하트에게 공을 뿌렸고,후반에는 니하트의 자리에서 처진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았다. 소시에다드는 우디네세와 전·후반 90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지만 득점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 끝에 1-3으로 졌다.이천수는 승부차기에 키커로 나서지 않았다. 이천수는 16일 알라힐(이집트)전을 비롯해 18일 오사수나(스페인),20일 말뫼(스웨덴),23일 인터 밀란(이탈리아) 등 강호들과의 평가전을 통해 다음달 1일 열리는 에스파뇰과의 프리메라리가 개막전 출전 가능성을 타진하게 된다. 최병규기자 cbk91065@
  • [씨줄날줄] 제국 논쟁

    미국은 전쟁 국가라는 말이 있다.1945년 이후 200번에 가까운 크고 작은 전쟁을 치렀다.20세기 미국의 저명한 역사가 찰스 A 비어드는 미국의 이러한 전쟁을 ‘영구 평화를 위한 영구 전쟁’이라고 말했다.미국은 이라크 전쟁도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고 말했다.미국은 이라크에 앞서 아프가니스탄도 점령했다.크리스토퍼 프레블 케이토연구소 외교정책실장은 “미군의 아프간과 이라크 주둔이 길어질수록 미국은 제국주의적 행태와 연결된 점령자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요즘 미국의 역할과 관련,‘제국(empire) 논쟁’이 한창이다.미국의 진보주의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부시 행정부를 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해 왔다.그런데 최근에는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도 그런 비판이 나오고 있다.제국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막강한 군사적·경제적 힘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자국의 이익을 실현하는 주의다.고전적 의미의 제국주의 시대는 1870년대부터 1914년 1차세계대전까지다.산업혁명을 거친 유럽의 근대국가들이 후진국을 분할하기 위해 경쟁적으로제국주의를 추구하다 결국 전쟁을 유발했다. 제국주의에는 힘의 지배라는 어두운 이미지가 있다.민주화된 현대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어느 시대에나 힘의 논리는 존재한다.인간의 탐욕이 이성으로 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오늘날 힘의 논리의 최정점에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21세기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정치·경제·군사뿐만이 아니라 대중문화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현재의 국제체제는 미국의 패권을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은 말한다. 네오콘의 대부인 윌리엄 크리스톨(미국 정치 잡지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은 “사람들이 미국을 제국이라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많은 사람들은 세계화도 미국 제국주의의 위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은 미국의 세계문제 적극 개입을 강조한다.네오콘들은 그러나 제국주의 환상에 빠져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하는 오만함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미국은 테러·환경·질병 등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알아야 한다. 이창순 논설위원
  • 책꽂이

    ●거미 여인의 집(유가미 지음,이룸 펴냄)실험적 글쓰기로 주목받는 작가의 두번째 장편.특유의 문체를 바탕으로 남녀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담았다.물고 물리는 구성에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환상적 분위기가 돋보인다.8500원 ●불타는 빙벽(고원정 지음,해냄 펴냄)93년 발표한 ‘빙벽’의 완결편.군에서 발생한 의문사 두건을 소재로 군대 문화의 실상을 파헤침.그를 통해 탐욕과 위선 등 인간의 문제와 진보와 갈등 등 역사의 문제를 다룬다.모두 3권,각권 8000원 ●뽀뽀 상자(파울로 코엘료 외 지음,임미경 옮김,문학동네 펴냄)대표 저자외 르 클레지오 등 현대의 내로라 하는 작가 17명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 이야기 모음집.프랑스 어린이 에이즈 보호연대에서 기획했다.9800원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알랭 레몽 지음,김화영 옮김,현대문학 펴냄)프랑스 유명 주간지 ‘텔레라마’ 편집국장인 저자의 ‘추억 3부작’중 2부.68혁명 등을 지나쳐온 지은이의 젊은 날의 열정과 고뇌가 담겼다.8500원 ●러셔(백민석 지음,문학동네 펴냄)작가의 인도여행 경험을 SF로형상화해 2000년 전자책으로 발표된 소설을 재출간.환경 재앙이 발생한 미래를 배경으로 실체가 모호한 권력과 그에 편입하려는 두 주인공의 모습을 그렸다.8000원 ●사랑은 야채 같은 것(성미정 지음,민음사 펴냄)94년 등단한 작가가 6년 만에 내는 두번째 시집.자신의 일상 소재를 동화적 분위기로 잘 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6000원 ●반삼국지(反三國志)(주대황 지음,김석희 옮김,작가정신 펴냄)유비의 촉나라가 삼국을 통일했다는 가정 아래 쓴 대체역사 소설.옮긴이는 “원전 인물 성격을 살리면서도 인과응보 정신으로 전체를 바꾼 작품”이라고 설명.모두 3권,각권 8900원 ●자장가(척 팔라닉 지음,최필원 옮김,책세상 펴냄)영화 ‘파이트 클럽’의 원작자인 작가의 또 다른 현대문명 비판 소설.유아 돌연사 증후군을 소재로 매스 미디어에 중독성을 고발하고 있다.8500원.
  • [스포츠 라운지]우슈 여자국가대표 윤선경

    ‘무림고수’를 꿈꾼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주먹,구름 위를 걷는 듯한 발놀림,허공으로 솟구치며 내는 파공음에서는 ‘살기’마저 느껴진다.홍콩 무술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우슈의 장권 여자 국가대표인 윤선경(22·부산외국어대 4년)의 훈련 모습이다.도복을 벗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동료들과 수다를 떠는 신세대 여대생이지만 그녀는 올해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우리나라 장권의 기대주다. ●육상에서 우슈로 ‘변신’ 윤선경은 청주 남성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육상 800m 선수였다.당시엔 홍콩 액션영화 열풍이 거셌다.또래들처럼 그녀도 그런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그것에 마음을 빼앗겼다.맨주먹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강호를 평정하는 영화 속 주인공들에게 열광했다.각 파의 실력자들을 차례로 꺾고 무림의 고수로 우뚝 서는 꿈을 꿨을 정도였다. ‘사춘기 몸살’을 무술과 함께 앓은 그녀는 청주여상 1년 때인 지난 1997년 마침내 영화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우슈 도장의 문을 두드렸다.하지만 영화와 현실은 달랐다.기본자세 하나 배우는데 한달씩이나 걸렸다.보법,발차기 등등. 환상은 하루아침에 깨졌고,재미가 하나도 없는 고행의 시간이 이어졌다.그나마 “남자보다 훨씬 낫다.”는 주위의 칭찬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물론 이 와중에서도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근성과 타고난 운동신경은 빛을 발했고,덕분에 실력은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 98년 회장배전국대회 학생부 2위를 차지했다.2002부산아시안게임에서는 공동 4위에 올랐다.정용만 국가대표팀 감독은 “남자 못지않은 시원한 동작과 도약이 일품”이라면서 “늦게 시작한 탓에 유연성이 떨어지는 게 흠”이라고 평가했다. ●설움 속에 싹 틔운 희망 다른 비인기종목의 선수처럼 그녀도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톡톡히 겪고 있다.“태권도나 하지 웬 중국 무술이냐.”는 핀잔도 자주 듣는다.우슈가 홍콩 영화로 더 알려진 탓에 싸움을 잘하겠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하지만 그녀는 싸움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그런 상황이 될 것 같으면 일찌감치 ‘36계 줄행랑’을 치는 것이 최고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무엇보다 우슈가 아직올림픽 종목에 들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전국체전에서도 남자부 경기만 치러진다.오직 세계선수권대회와 아시아선수권대회,아시안게임만이 실력을 뽐낼 무대다.우선순위에서 밀려 국가대표 선수라고 해도 태릉선수촌에 입촌을 하지 못한다.외부에 숙소를 정해놓고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한다.훈련만 태릉선수촌 시설을 이용한다. 이같은 역경은 오히려 그녀에게 오기를 불러일으켰다.반드시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각오로 모든 설움을 떨쳐버리고 있다.더욱이 아직 여자 장권에서는 금메달이 없다.‘선배의 한을 내가 풀겠다.’는 목표 의식도 그녀에겐 또 하나의 원동력이다. ‘어린 마음’에 우슈를 선택했지만 이젠 미지의 세계를 개척한다는 책임감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그녀에겐 오는 11월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실력을 뽐낼 첫 시험무대다.한여름의 열기는 오히려 그녀의 투지를 자극할 뿐이다.사춘기 소녀 때의 꿈을 현실로 일궈내기 위해 그녀는 야무진 기합과 함께 허공으로 몸을 날린다. 글 김영중기자 jeunesse@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 우슈란? 우슈는 중국의 전통 무예로 쿵후의 공식 명칭.우리나라에선 십팔기로도 불렸다.장권,남권,태극권 등 권법과 도술,검술,창술,곤술 등의 병기술이 있다. 장권은 동작이 크고 화려한데다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겨 홍콩 무술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대표적인 배우가 리롄제.그는 1980년대 히트한 ‘황비홍 시리즈’와 올해 개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여 팬들을 열광시켰다. 태극권은 신축성 있고 부드러우며 완만한 동작이 특징.중국의 공원에서 이른 아침에 수련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건강증진을 위해 많이 배운다.남권은 중국 양쯔강 이남에서 성행하며 기합 소리를 내는 게 특징이다.산수는 복싱 글러브와 보호대를 착용하고 11체급으로 나눠 자유대련을 펼친다.던지기와 꺾기도 허용된다.산수만이 태권도나 유도처럼 상대방과 맞붙어 승부를 겨루고,나머지 종목은 모두 표현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오는 11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처음으로 약속대련이 추가됐다. 90베이징아시안게임 때 정식종목으로 채택됐으며,아직 올림픽 종목에는 포함되지 못했다.선수들은 전통 중국의상을 입고 경기에 나선다.
  • 쿨한 공포 국산 2편 자기야, 눈떠 응?

    ●‘4인용 식탁’ #“보이지 않는 것도 믿어야 해!” 피를 흩뿌리지 않으면서 침착한 주술적인 분위기의 공포를 원한다면 ‘4인용 식탁’이 제격이다.‘엽기적인 그녀’에서 화끈하게 잘도 웃던 전지현이,이번엔 남의 과거를 보는 신통력을 가진 기면증(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병) 환자가 됐다. 결혼을 앞둔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원(박신양)은 지하철에서 죽은 아이들을 본 뒤로 신혼집 식탁에서 자꾸만 아이귀신들을 본다.헛것을 봤다고 믿고 싶지만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연(전지현)을 만나면서 자신이 본 게 환상이 아니었음을 알고 경악한다. 영화는 단순한 공포물이라기보다는 비극적 미스터리극에 가깝다.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인의 과거를 본다는 이유로 주위와 단절된 채 살아야 하는 연의 캐릭터는 비극을 구현해내는 극중 주요장치.아이귀신,정원의 거듭되는 악몽,고층아파트에서 아이가 떨어지는 장면 등에서 느껴지던 원색적 공포는 점점 슬픔으로 색깔을 바꿔간다. 인간관계를 이어주는 진실의 기준이 과연 무엇인지,진정으로 소통하지 못하는 ‘관계’가 얼마나 슬픈 것인지 영화는 섬뜩한 어법으로 웅변한다.피해의식에 젖어 세상에서 겉돌기만 하던 연과,그녀를 통해 자신의 어릴적 비밀을 들여다본 정원은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이수연 감독의 장편데뷔작.여성감독의 감수성이 녹아든 섬세하고 차분한 진행이 돋보인다.그러나 성마른 관객에겐 그게 오히려 걸림돌이다.특별한 반전장치없이 지나치게 느린 전개,속도감 없는 카메라 움직임,극도로 절제된 음향효과 등이 무료한 진공상태로 빠뜨리는 듯해 아쉽다.상영시간이 길다.2시간3분. ●‘거울속으로’ #””보인다고 다 믿지는 마!” 물이나 공기처럼 흔한 일상의 소재가 공포의 대상으로 돌변하는 것만큼 소름 돋는 설정이 있을까.김성호 감독의 장편데뷔작 ‘거울속으로’에서는 일상 어디에나 널려있는 거울이 공포의 근원이다. 화재사건으로 문을 닫았다가 재개장을 눈앞에 둔 백화점에서 의문의 연쇄살인이 일어난다.사장의 조카이자 퇴직한 형사인 우영민(유지태)이 보안책임을 맡지만 속수무책.옛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하형사(김명민)가 사건조사차 파견되지만,연쇄살인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 뿐이다. 영민과 하형사의 해묵은 갈등을 수면위로 노출시킨 뒤 둘을 화해시키는 과정에서 영화는 하나둘 퍼즐을 짜맞추는 재미를 안긴다.물론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초현실적 상황이나,익숙한 공포문법을 번갈아 동원하며 관객을 겁주기도 한다.천장 환풍구에 카메라가 찜찜한 시선을 보내거나,갑자기 자동차 문이 닫히고 피사체의 움직임과 거울의 이미지가 딴판인 장면 등은 관객을 꼼짝못할 정도로 긴장시킨다. 사건의 열쇠가 허무할 만큼 쉽게 노출되는 게 흠.백화점 화재때 죽은 여직원의 쌍둥이 여동생이 사건현장에 번번이 나타나고,그의 대사를 통해 일찍부터 공포의 실마리가 드러난다.‘꽃섬’에서 얼굴을 비쳤던 신인배우 김혜나가 억울하게 죽은 여직원 자매로 1인2역을 잘 소화해냈다. 황수정기자 sjh@
  • 기고/ 배우자를 먼저 배려하라

    장마가 끝났다던데 요 며칠 많은 비가 더 내렸다.아마 하늘의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의 애달픈 사랑의 비였던가 보다.칠석날 내리는 비는 슬픈 두 연인의 해후의 눈물이고 그 다음 날의 비는 안타까운 이별의 눈물이라 한다.그래서 칠석 다음 날인 화요일엔 천둥까지 치며 하늘이 그토록 서럽게 울었나 보다. 문득 ‘그런 견우와 직녀가 만약 옥황상제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였다면 과연 그들의 결혼생활은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견우와 직녀 부부는 늘 서로를 각별하게 살펴주며 행복하게 살았을까.아마 그들도 연애할 때는 별로 신경 쓰지 않던 사소한 일 때문에 다투고,둘 사이의 성격 차이로 인해 갈등을 겪으며 속을 끓였을 것이다.여러 가지 오해와 실수 때문에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하며 상처도 입혔을 것이다.견우의 부모·형제 문제나 직녀의 친정 문제로 마음 속 깊은 곳에 앙금이 쌓였을지도 모른다.둘 사이에 낳은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도 각자 견해가 달라 부딪치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결혼 전엔 매력이라고 여겼던 상대방의 여러 가지 습관이 사람이 미워지니까 못나 보이고 창피해 신경질을 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부부싸움 끝에 친정으로 달려간 직녀가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어 헤어져야겠다.”고 선언해 그렇지 않아도 바쁜 옥황상제에게 걱정거리를 안겨주었을지도 모른다. 흔히들 결혼을 하면 그때까지 따로따로였던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그러나 어떻게 두 사람이 한 사람이 될 수 있는가.남자와 여자가 다르고,자라온 각자의 환경이 다르며,성격과 습관이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하나 됨의 환상은 자칫 상대방이 내식으로 맞추어야 한다는 일방적인 강요로 발전해갈 수 있다.결혼을 해도 둘은 역시 둘이다.각자가 서로 여러 가지 면에서 차이 남을 인정하고 그런 이해 속에 상대에게 맞추어 가는 노력,그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의 조건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부들은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가려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내식으로 맞추어 줄 것을 요구한다.상대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말만 하려고 한다.부부들의싸움에는 늘 해답이 준비되어 있다.‘네가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나는 그동안 할 만큼 했고,노력도 많이 했으며,문제는 너에게 있다.’는 것이다.내가 변한다는 각오 없이 상대의 변화에 대한 요구만 있다.다른 일은 모두 사전에 열심히 공부를 한 뒤 진행시키면서도 자신의 삶에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결혼은 특별한 공부 없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러고는 결혼 생활에 대한 나의 관점만이 옳다고 믿는다. 많은 부부들이 갈등을 겪고 있지만 결혼식장 주례사에조차 귀 기울이는 하객이 거의 없다.그냥 내 방식이 옳은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이 되려면 상대의 반응에 대한 기대감을 버리고 먼저 나를 열어 상대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나의 태도 변화에 대한 상대방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또 하나의 요구일 뿐이다. 아무 조건 없이,내 안에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넉넉한 공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행복한 결혼생활은 연애시절 쌓아 놓은 둘 사이의 사랑을 소모해가는 대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단점까지 감싸주려는 지속적인 노력 속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견우와 직녀도 이제 그만 축복받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그래서 단조롭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늘 상대에게서 새로움을 찾아내며 감탄하고 서로의 다름을 즐길 줄 아는 멋진 한 쌍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유관웅 드림빌더 대표 본사 자문위원
  • 인간만의 파괴적 환상 ‘자살 바로알기’큰 관심/ 교보문고 특별도서코너 검토

    오늘날 우리는 일상적으로 자살을 접한다.한국은 1990년대 이후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가 헝가리,핀란드,덴마크,스위스에 이어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는 ‘자살대국’이다.자살은 삶으로부터의 무기력한 도피이든 결연한 자기결단의 표현이든 점차 중요한 사회적 코드가 되고 있다.더이상 터부로 남아 있을 수 없는 문제다.최근 우리 주변의 잇단 자살 소식은 자살에 대한 올바른 접근과 이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임을 일깨워준다.단절,절망,허무,대화를 불가능하게 하는 비존재와의 만남인 죽음.인간은 왜 ‘공백의 공포’를 무릅쓰며 부자연스럽게 죽음과 만나려 하는가. 자살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있는 행동양식이다.인간만의 파괴적 환상,그것이 바로 자살의 밑그림이다.자살을 이기적인 자살,이타적인 자살,아노미적인 자살로 분류하는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캥은 자살을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으로 설명한다.하지만 뒤르캥은 스스로 한계를 보인다.자살을 ‘사회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사회 구성원간의 유대감이라든가 가치관의 혼란 같은 심리적인 설명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요컨대 자살행동은 사회적 요인이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현상이자 심리학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어느 사회,어느 문화,어느 시대에도 자살은 끊임없이 이뤄졌다.혹자는 자살을 금기시한 근거와 음모를 명시하며 ‘스스로 죽을 권리’‘스스로 삶을 포기할 자유’를 역설하기도 한다.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자살을 옹호하거나 부추기기 위한 것은 아니다.질병이나 고통으로 괴로워하거나 너무 가난할 때는 의무적으로 자살을 해야 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일왕을 위해 희생을 요구당한 가미카제 조종사,남편을 따라 죽어야 했던 인도의 사티의식 등 사회적으로 이용당하거나 강요당하는 자살을 경계하기 위한 뜻이 더 강하다. 종교학자인 정진홍 전 서울대 교수는 “삶을 초조해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초조해하지 않고,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한다.”고 말한다.인간의 삶과 죽음이 얼마나 지독한 역설의 구조로 이뤄져 있는 것인가를 요약한 말로 손색이 없다.죽음의 윤리,자살의 윤리란 종당 스스로 가꿔가야 할 개인적인 문제다. 최근 사회분위기는 죽음의 위기에 개입하는 ‘자살학’이란 젊은 학문에 눈을 돌리게 한다.교보문고는 ‘자살관련 도서’ 특별코너를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자살관련 책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시중에 나와있는 것은 10여권.△‘자살론’(에밀 뒤르캥 지음,청아)△‘자살:인간의 파괴적 환상’(토마스 브로니쉬 지음,이끌리오)△‘자살의 미술사’(론 브라운 지음,다지리)△‘자살의 문화사’(게르트 미슐러 지음,시공사 펴냄)△‘세기의 자살자들’(프리드리히 바이센슈타이너 지음,한숲출판사)△‘자살의 연구’(A.알바레즈 지음,청하)△‘죽음,아주 낮은 환상’(전경린 등 지음,윤컴) 등이 우선 꼽힌다. 김종면기자
  • 천막극장 ‘인기몰이’/ 뮤지컬 ‘캣츠’·‘둘리’ 공연 이색볼거리로 재미 선사

    21세기의 첨단 유랑극단으로 불리는 ‘빅톱시어터’ 공연이 기존 실내극장과는 차별화된 관람기회를 제공하며 관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달 31일 경희대 수원캠퍼스에서 막올린 뮤지컬 ‘캣츠(사진)’의 빅톱시어터 공연은,지금까지 국내에서 선보인 공연중 가장 ‘캣츠’다운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극장을 들어서면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무대와 객석 구조가 먼저 시선을 끈다.반원형의 무대와 이를 둘러싼 객석은 각양각색의 고양이 형상으로 분한 배우와 관객의 거리감을 최대한 좁힌다. 어둠속 객석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고양이들에 놀라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면서도 무척 즐거워하는 분위기이다.줄거리가 크게 드라마틱하지 않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부분조차도 이같은 관객 밀착형 극장구조 덕에 색다른 재미로 채워진다. 복잡한 도심에서 벗어나 공기좋은 야외로 산책나온 듯한 공연장 환경도 뜻밖의 즐거움을 안겨준다.단점은 공연장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수원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제외하고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서 찾아가기에는 거리가 만만치 않다.16일까지 수원캠퍼스에서 공연하고, 이어 부산(23일∼9월21일),광주(9월27일∼10월5일),대구(10월11일∼11월2일)를 순회한다.한편 지난달 25일 분당에서 개막한 뮤지컬 ‘둘리’도 관객의 호응이 높아 당초 예정보다 공연기간을 2주일 늘려 오는 24일까지 연장공연을 갖기로 했다.9m높이의 대형 공룡과 환상적인 분위기의 레이저쇼 등 화려한 볼거리와 함께,극장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족단위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순녀기자 coral@
  • 회계사들이 바라본 회계사 / 높은 연봉만큼 업무 부담 시달린다

    “공인회계사(CPA)라는 직업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내 유명 S회계법인에서 7년째 회계사로 근무하는 박모(32) 회계사가 평가하는 회계사 직업이다.CPA가 고소득 전문직으로서 각광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과중한 업무부담과 스트레스에 시달려야 하는 상충된 이미지를 빗댄 표현이다. ●연봉·노동시간 모두 2배 박 회계사는 주니어-시니어-매니저-디렉터-파트너로 이어지는 회계법인의 서열체계에서,매니저 역할을 맡고 있다.그가 받는 연봉은 7000만∼8000만원 정도.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서는 2배 가량이 된다. 10년 이상 회계법인에서 일하면 억대 연봉을 챙길 수 있고,직급이 오를 경우 수억원 대의 연봉을 받는 일도 가능하다.박 회계사는 “CPA가 다른 직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봉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야근 및 휴일근무를 포함한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꼭 많다고 볼 수 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의 하루생활은 회계감사가 몰리는 1∼3월이면 오전 9시에 출근해 새벽 1시에 퇴근한다.가족과 함께 하는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회계감사가 없는 기간에는 경영진단과 컨설팅 등 비감사 업무가 폭주하면서 오전 9시∼오후 10시 근무는 다반사다.주당 노동시간이 평균 70∼80시간으로 법정근로시간(44시간)의 두배에 이른다.그는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많기 때문에 휴일이나 휴가 등을 챙기기 쉽지 않다.”면서 “주5일근무제는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때론 ‘봐주기’식 감사도 최근들어 회계사의 노동강도가 이처럼 높아진 까닭은 회계감사 수입보다 비감사 수입이 많은 회계법인의 수익구조에 있다.지난해 10대 회계법인 가운데 6곳은 비감사 수입이 더 많았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의 경우 매출 2508억원 가운데 비감사수입이 64.3%(1613억)였다.매출규모 2·3위인 안진과 영화도 비감사 수입 비중이 각각 53.9%,51.9%였다.회계감사는 특정기간에 집중되는 반면,비감사 업무는 연중 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업무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는 셈이다. 회계사 경력 10년째인 조모(36) 회계사는 “회계감사의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충분한 회계감사를 할 수 없고,비감사 업무비중을 높여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서 “주요 고객(대기업)에 대한 ‘봐주기’식 감사도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고 투명회계의 한계를 털어놨다. 회계사 경력 3년째인 정모(30) 회계사는 “부실 회계감사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리스크와 신분불안 문제가 커졌다.”면서 “이런 문제제기가 공정한 회계감사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시험만 합격하면 모든게 이뤄질 거라는 환상을 가졌지만,현실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최근 합격자가 늘면서 지방의 회계법인에서 여직원을 뽑겠다고 공고했더니,수습공인회계사들의 문의전화가 폭주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3) 김지하 -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새로운 시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저 뜰 앞에 선 잣나무이니라.”.옛 선사에게 불법을 묻듯,지하에게 이 시대를 물으러 간다.대답은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그것이 바로 해답일 테니까.얼굴과 손이 희지 않고,상민(常民)의 옷을 걸치고 살아가는 그에게,옛날 백 사람의 시인에게 시대를 물을 때 묻지 않은 물음을 던지기 위해,그가 몸을 기대고 살아가는 백성의 마을로 간다. 얼마 전 서울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김지하 시인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본 시인의 모습은 예전보다 한층 더 수척하면서도 어딘가 부은 데가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장기간 요양을 해야 할 만큼 상한 몸을 이끌고 멀리 부산 범어사에서 요양을 하다가 올라온 시인을 붙들고 무슨 말을 들으려 한단 말인가.그러나 자기 바깥에 싸리 울타리를 두르지 않는 시인은 흔쾌히 내방을 허락해 주었다. “회고록의 제명이 ‘흰 그늘의 길’이더군요.그 말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 법한데요.” “글쎄,애매성이라고나 할까.안개 낀 것 같은.단지 이성,오성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겠지요.내가 흰 그늘이라는 말을 쓴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하나는 우리 삶이 상당히 이상해졌다는 것이에요.사이코,정신분열적인,착란적인 사회심리가 지배하고 있는데 이것을 인식하고 용서할 어떤 시적인 그릇을 찾아내려고 한 거지요.흰 그늘이라는 것도 일종의 환상이지만,치료적 기능을 갖는 환상입니다.마치 융의 그림자처럼 가라앉은 욕구라고 할까…,일종의 역설이지.고통의 역설적 인식,성스러운 고통,이런 것을 추구함으로써 시대의 정신적 질환을 넘어설 수 있지 않느냐는 거지요.시(詩)가 바로 그에 관한 작업이 아닐까 합니다.” 김지하 시인은 천래(天來)의 시인답게 비약적인 어법으로 생각을 전개하기 시작한다.그렇다면 나는 논지를 잃고 헤매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지나온 삶이 어땠다고 보시는지요? 요약하신다면요?” “요약?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지.소위 ‘요기 싸르’라고.요기는 요가를 하는 사람,즉 수련자지.그러니까 내면적으로는 수련자고 외면적으로는 싸르,코뮌 싸르,직업 혁명단.그러니까 요기 싸르는 명상을 통한 내면적 수련과 외면의 사유적 변혁,두 가지를 같이 추구하는 자야.나는 옛날에 이 요기싸르라는 말은 몰랐지만 바로 그런 삶을 희망했었다고 생각해요.삶에 대한 쉬르(초월)적 인식과 그 아래 미학으로서의 리얼리즘을 함께 추구했으니까.리얼리즘과 함께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초월성,철학 같은 것을 오랫동안 꿈꿔왔어요.이것이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생명’과 ‘살의(殺意)’죠.내 첫 시집 ‘황톳길’에서 보듯 ‘뛰어올라오는 숭어’와 ‘가마니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의 시체’,즉 생명과 죽음의 대비를 늘 생각했어요.이것이 현실에 대한 비평으로,부정으로 나타났죠.생명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이것은 죽음까지도 포함하는 어떤 전체변화의 질서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시인의 말씀은 깊은 숲 같아 갈래가 많고 걸리는 것도 많다.그 속을 호랑이 타고 달린다면? 다치지 않으려면 머리를 잔뜩 숙여야 하리라. “선생님의 삶에서 예지적인 면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그런 삶을 가능케 한 근거를 찾아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글쎄,그건 꼭 시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시를 쓰면서도 시인이 아닌 아웃사이더로 남고 싶었고,그러면서도 세상은 변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사람의 정신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 시대야말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선생님께서는 젊은 세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무엇보다 ‘현실적 부정’입니다.그들은 자기들 삶까지 포함해서 모든 것에 대해 선험적 사고에 익숙했던 우리나 우리 바로 아래 세대 사람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부정적입니다.뭘 보면 알 수 있느냐.정치나 경제에 대한 부정은 사항적 비판일 수 있지만 문화적 반항은 사항에 따른 게 아니라는 겁니다.지금 젊은이들은 문화적 반항 밑에 더 커다란 문명 단위에 대한 불만을 갖고 있어요.그 불만을 가지고 오히려 능동적으로 ‘붉은 악마’라든가 ‘네티즌 선거’라든가 ‘촛불 시위’ 같은 것으로 빛나지 않나 싶습니다.내가 보기에 그들의 이 힘은 정치적으로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긍정이 광폭(廣幅)인 김지하 시인이다. “그렇다면 선생님 세대와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세대적 역할은 어떻게 비교하거나 대조할 수 있을까요?” “저는 4·19세대였음에도 불구하고 4·19의 혁명적 의미를 똑똑히 몰랐습니다.그러다가 5·16 뒤에 차츰 민족이라든가 민중이라든가 변혁이라든가 하는 개념에 눈뜨게 됩니다.그러면서도 소수이기는 하지만,리얼리즘과 함께 반리얼리즘적인 추상·환상·상상력의 측면을 강조한 사람들도 있었고 나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어요.나는 어떻게 하면 리얼리즘 안에 반사실과 환상을 이끌어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했던 세대입니다.지금 젊은이들도 자기들 수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서 외쳐대던 구호의 진짜 의미를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생각해 봅니다.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나는 이제 나이가 들었습니다.글 쓰고 그림 그리고 강연을 통해서라도 젊은이들의 소명이 무엇이고, 그 사람들이 한 일이 무슨 뜻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물꼬를 터야되는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지금 젊은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세계적이고 동시에 민족적입니다.아주 개인적이고 내면적이면서도 범생명계적인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그렇다면 그들에게는 이런 모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세대적 특질에 걸맞은 복합적인 역할과 내용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지혜 또는 슬기라면 어떤 것이 있겠는지요?” “첫째는 들뢰즈나 가타리,미셸 셰르 같은 선각자들이 이미 지적했던 것인데 현대,모던 월드의 가장 큰 질병으로 논리를 들고 있습니다.‘이것은 이것,저것은 저것’이라며 상호 배제하는 것,‘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다’라면 싸움이 시작되고 경쟁이 시작되겠지요.또 하나의 질병은 전쟁법입니다.나와 너는 싸울 수밖에 없고 싸워서 하나가 이김으로써 상호 통합을 한다.전쟁의 철학이죠.우리는 매일 평화를 원하고 안정된 삶과 우정과 휴머니즘과 생명계와의 화합을 원하면서도 그 매일의 생활 속에서는 전쟁 논리를 진행시키고 논리의 전쟁을 치러내는 겁니다.나는 전쟁법의 반만 긍정하고 다른 반은 부정하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지만 너는 나일 수 있고 나는 너일 수 있다.이게 뭡니까? 음(陰)과 양(陽)의 철학이죠.음이면서 양이고 양이면서 음인,그러면서도 양은 양이고 음은 음인 음양법 말입니다.철학적으로 더 들어가면 불교의 인식논리입니다.색(色)은 공(空)이 아니고 공은 색이 아니면서도 공은 색일 수 있고 색은 공일 수 있다.결국은 색공이 하나다.하나가 아니고 둘이 아니면서 하나도 둘도 될 수 있다는 것.묘한 이치에 도달하는 겁니다.여기서 또 숨은 차원과 드러난 차원을 생각해야합니다.드러난 차원은 가시적이고 진행 중이고,숨겨진 차원은 드러난 차원 밑에서 드러난 차원을 조절하고 진행시키고 수정하고 교정을 보다가 전혀 이것이 유지될 희망이 없을 때에는 이것을 와해시키면서 안에서 새로운 드러난 차원으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이게 뭘까요.생명이죠.생명의 논법이 ‘아니다’이면서 ‘그렇다’이고 ‘그렇다’이면서 ‘아니다’인 겁니다.이러한 인식은 다행히도 우리 민족의 근대에,1860년대에 유럽 쪽의 베르그송이나 생철학자들이 나타나기 훨씬 이전에 나타났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만.이 부분에서 우리의 논리적인,새로운 변혁적 생활을,새로운 논리의 발견을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상적으로.말로는 평화를 이야기하고 삶에 있어서는 늘 투쟁이나 경쟁,대결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생각하면서 논리를 진행시키고 현실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나는 김지하 시인의 거침없는 논리 개진에 언더라인(밑줄)을 긋는다.인터뷰를 떠나 이것은 매우 중요한 논리 전환인 까닭이다.내친 김에 더 ‘광폭(廣幅)’한 물음을 던져본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의 모습은 어떠할까요?” “우리는 공공성을 회복해야 합니다.남북의 통일에도 공공성이 있어야 하는데 사회적 공공성과 우주적 공공성을 함께 회복해야 합니다.너무 작은 담론들에 얽매여 공공성을 무시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또 자신만이 아니라 타자까지도 자기 안에집어넣는 것이 중요합니다.주체를 배제해버리고 타자화하는 유럽사상을 따라가지도 말고 주체를 회복하면서 우주적 주체가 되는 것,이것이 새로운 인간입니다.그것은 개인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동학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서로가 서로에게서 떨어질 수 없는 생명의 총체,정체성을 각자 자기 나름으로 실현하라.’고.‘밝고 밝은 이 우주를 각자 자기 나름대로 밝혀라.’고.이게 뭘까요.개인주의죠.그러나 그것은 개(個)이지 사(私)는 아닙니다.개와 사는 다른 겁니다.사는 그 뒤에 세모꼴 같은 것이 붙어 있죠? 이게 귀신에 붙어 있는 거예요.잡귀.인간의 정신 가운데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 위해서 살려고 하는.” 오랜만에 거인을 만나는 귀한 시간을 놓치기 싫어 더 많은 것을 물었고 더 많은 말씀을 들었다.병마에 시달리는 ‘대선사’가 탈진에 이를 때까지 마구 괴롭혔다.그러나 그렇게 귀동냥한 모든 것을 여기에 쓸 수 없음이 안타깝다.이 나라에 또 누가 있어 그처럼 많은 궁리를 하고 세상의 내일을 이야기할까? 바로 김지하 시인 같은 이를 종요로운 존재라 이름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사진 이언탁기자 vielee@ 방교수가 본 시인 김지하 ●수척해진 어깨 위에 걸린 흰 달 지하는 지하라고 하지 말고 지하당(芝河堂)이라고 해야 하리라.평생 바람으로 살되 가는 곳이 집이다.바람이 바로 집이다.살아 움직이는 집이다.바로 그가 김지하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바라본 지하당의 낡은 서까래가 기울어졌다.어긋난 문짝 같은 옷을 걸친 지하당,구멍이 숭숭 뚫린 지하당의 야윈 몸채,두 시간 남짓에 배터리가 소진되고 마는 허한 기운.이것을 본 어느 누가 지하당의 과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인터뷰를 마치는데 회고록을 쓰느라 바싹 야윈 지하당의 어깨 위에 흰 달이 떠 있었다. 지하당의 후광은 낮달,희미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달이었다. ●김지하는 누구인가 1941년생으로 문명(文名)이 높은 분들이 많은 문학계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지하는 거인이다.아니,괴물이다.희대의 풍운아다. 전라남도 목포 출생.1959년에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입학.이후 그의 삶은 바람의 삶이었다.한·일회담 반대운동,그리고 저항시인.황토빛 한의 전달자,박정희 군사정권을 향한 조롱과 야유(풍자시 ‘五賊’).시집 ‘황톳길’과 함께 열린 김지하의 1970년대는 연행·석방·도피로 점철된 시대,부당한 체제에 맞서 처절한 싸움을 벌여나간 시대였다.군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무기로 감형된 1974년부터 1980년까지 그는 옥중의 시인이었다.많은 이들이 그가 걸어간 길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며 전두환 정권과 처절한 항전을 벌일 때 김지하는 황야를 건너 생명의 낙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폭력이 아니라 비폭력을,광폭한 남성성이 아니라 섬세하고 여린 여성성을,대립과 투쟁이 아니라 화회(和會)의 세계를. 그는 시대와의 불화를 감당해야 했다.시집 ‘애린’의 세계가 그것이다.1980년대였다.1990년대,그리고 지금,김지하는 또 다른 초극을,완성을 꿈꾼다.시집 ‘중심의 괴로움’은 내가 내 안에 갇히지 않고 우주와 호흡을 함께 하는 새로운 리듬과 조화의 세계를 노래한다.김지하는, 뜨거운 불꽃 김지하는 오늘,안으로 타오른다. 정지용으로부터 김수영을 지나 김지하로통하는 한국 현대시의 행로는 내부적인 것과 외래적인 것,성찰적인 것과 투쟁적인 것이 맞씨름을 벌이며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해간 운명의 길이었다.
  • 8일 개봉 ‘고양이의 보은’/ 구해준 왕자고양이 “결혼해주세요”

    “만약 당신이 조금 신기하고 곤란한 일을 만나게 되면 그곳을 찾아가 보세요.그곳에는…” 8일 개봉하는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의 시작을 알리는 내레이션이다.이 작품은 세계적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일본의 스튜디오 지브리가 세대교체를 시도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숱한 걸작을 남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프로듀서로,그의 콤비로 기획을 담당하던 다카하타 이사오가 제작을 맡아 2선으로 물러났다.감독은 신예 모리타 히로유키. 숲을 지키는 귀신(‘모노노키 히메’),일본의 모든 귀신(‘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환상여행의 극치를 보여준 지브리의 발길이 이번엔 ‘고양이 왕국’에 닿았다. 전체적으로 ‘고양이 왕국’은 모리타 감독이 자기만의 색깔을 보여주는 모험을 피했다는 인상을 준다.미야자키의 대명사인 철학적 무게를 피해갔다.대신 약간의 재미와 탄탄한 구성으로 전체 분위기를 채색했다.또 작품의 틀도 여고생이 고양이 왕국에 초대를 받은 내용을 다룬 지브리의 95년작 ‘귀를 기울이면’을 확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재미없다는 말은 아니다.모리타 감독은 미야자키의 심오한 스케일 대신 장난감 왕국 같은 아기자기함으로 잔재미를 거두는 데 성공하고 있다.그런 분위기에 주인공인 여고생 ‘하루’의 캐릭터는 잘 어울린다. 등교 준비를 둘러싼 ‘하루’의 분주한 일상으로 출발한 작품은 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해주면서 환상 속으로 들어간다.구해준 고양이가 몸을 툭툭 털면서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밤에 집을 찾아온 고양이 행렬은 하루가 구해준 고양이가 고양이 왕국의 왕자라며 ‘보은(報恩)’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보은은 그들 방식의 보은이다. 정체를 모를 고양이들은 ‘포장된 쥐’로 선물 공세를 하며 ‘하루’를 깜짝 놀라게 한다.때론 왕자와 결혼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다.이후 ‘고양이 왕국’은 하루가 우연히 만난 ‘바론’ 남작(물론 고양이다),덩치 큰 흰 고양이 ‘무타’와 함께 고양이 왕국을 방문해서 벌어지는 여행을 중심으로 펼쳐진다.영화의 전반적 톤을 밝은 색상으로 채워 꿈과 환상을 키우는 데 잘 어울린다. 이종수기자 vielee@
  • 오싹오싹 흥미진진 추리·SF소설 봇물

    본격적인 휴가철에 접어 들었다.일상에 눌린 심신을 잊으려 마음은 벌써 바다로 산으로.그러나 가는곳 마다 인산인해,자칫 잘못하면 스트레스가 더 쌓이고 아이들 입도 쑤욱 나오기 일쑤다.차라리 한 곳에 붙박혀 텅빈 마음을 채우는 것은 어떨까.이럴 땐 추리·공상과학(SF)·팬터지·무협소설이 제격이다. 출판가도 제철을 만났다는 듯 관련 소설을 봇물처럼 내놓고 문예지도 관련 특집을 다룬다.아동출판물도 이에 질세라 다양한 책들을 선보이며 동심에 손짓한다. ●환상과 공상 올 여름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이우혁의 ‘치우천황기’(들녘 펴냄).800만부가 팔린 ‘퇴마록’으로 팬터지 분야의 신화가 된 작가가 9년 만에 내놓은 작품.고대 중국 신화를 모티프로 청동기시대 초기 주신족 치우천과 쌍둥이 동생 치우비의 모험과 사랑을 중심으로 영웅담이 펼쳐진다.단군 고조선 이전 우리 민족의 시원을 모색하면서 한국 팬터지 구성에 착수했다. ●꿈의 미래? ‘장미의 이름’을 연상케 하는 ‘돌의 후계자’(솔 펴냄,장진영 옮김)도 눈에 띈다.베트남과 프랑스인 부모를 둔 저자 장 미셸 트뤼옹이 ‘유럽 상상력 대상’을 받은 작품.초기 기독교시대부터 교황들 사이에 전해오던 신의 비밀을 파헤치면서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암울하게 그리고 있다. 또 딱히 SF로 고정할 수는 없지만 꽤 품격을 갖춘 작품으로 ‘제인에어 납치사건’(북하우스 펴냄)도 수작이다.특히 정통·추리소설 요소도 다분이 갖춰 지적 모험을 즐기는 독자에겐 반가울 듯.문학에 열광하는 시대 상정,시간의 문을 통해 ‘제인 에어’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유괴하는 등의 흥미로운 발상들이 그득하다. ‘복제예수의 탄생’을 부제로 내건 제임스 보사이너의 ‘크라이스트 클론’(북&월드 펴냄)도 눈길을 끈다.과학 역사 의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토대로 미래 세계정부의 정치적 주도권 다툼을 묘사한다. ●소름!오싹! 좀 더 자극적이고 써늘한 작품을 원한다면 문학사상 8월호를 보자.‘내게 너무 잔인했던 그 여름’이란 특집에서 듀나 김도언 백가흠 정이현 등 재기발랄한 70년대생 젊은 소설가 9인의 엽기 엽편소설이 기다린다.동기가 애매한 살인,식육 등의 소재를 가공하며서 이야기를 짤막짤막하게 펼쳐가 무더위를 잊기엔 안성맞춤이다. ●누가 범인? 한국추리작가협회가 엮은 ‘인간을 해부하다’(산다슬 펴냄)도 놓치면 아까울 작품.한이 최혁곤 현정 등 영상미에 무게를 둔 새 형식을 모색하는 작가들과 뛰어난 감성을 자랑하는 류성희,부조리에 대한 날을 세우는 황세연 등 다양한 색깔의 추리작가들의 ‘모듬 작품집’이다. 이밖에 법정 스릴러물의 대명사 존 그리샴의 ‘불법의 제왕’(북&북스 펴냄)도 읽어서 후회하지 않을 작품이다.집단 소송제도를 놓고 벌어지는 음모와 갈등을 다루었다.얼기설기 꼬인 비밀을 파헤쳐 가는 그리샴의 정교함이 여전히 빛난다. 이종수기자 vielee@
  • 유령·뱀파이어 이야기 ‘으스스’ 동심도 독서 삼매경

    휴가나 방학시즌을 겨냥한 어린이용 팬터지·추리물들도 눈에 띄는 것들이 많다. 우선,추리의 즐거움에 과학적 사고력까지 키울 수 있는 책으로는 비룡소에서 펴낸 ‘과학탐정 도일과 포시’시리즈(미셸 토레이 글·전 3권)가 좋다.주인공 도일과 포시는 초등 5학년생.복잡하게 얽힌 사건을 풀기 위해 둘이 온갖 과학지식들을 동원한다. 비룡소의 ‘못말리는 꼬마 뱀파이어’시리즈(앙겔라 좀머·보덴부르크 글)도 납량 팬터지물로 제격이다.무서운 이야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소년 안톤이 꼬마 뱀파이어와 친구가 되어 벌이는 신비로운 이야기.뱀파이어의 ‘집’인 관을 어른들 몰래 옮겨다니는 등 에피소드들이 재미있다.4권이 시리즈에 묶였다. 좀더 작품성 있는 팬터지 소설을 원한다면 푸른나무에서 내놓은 따끈따끈한 신간 ‘벽속의 유령’(멜빈 버지스 글)을 추천한다.글쓴이는 영국 ‘카네기상’‘가디언 아동문학상’등을 수상한 인기작가.외롭게 사는 열두살짜리 소년 데이비드가 유령에 사로잡혀 그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줄거리다. 올여름엔 영원한 어린이 고전 ‘피노키오의 모험’(카를로 콜로디 원작·청솔 펴냄)을 골라줘도 좋겠다.널리 알려진 원작의 뼈대에다 다양하고 풍성한 에피소드들로 살붙여 개작했다.책장을 넘길 때마다 화려한 천연색 그림이 펼쳐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곱절로 부풀린다. 국내 작가가 쓴 모험소설도 빼놓을 수 없다.이상권씨의 ‘황금박쥐의 모험 1·2’(창작과비평사 펴냄).사촌사이인 시우와 길우가 떡갈나무 뿌리 근처의 구멍을 발견한 뒤 신비한 모험을 벌인다.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온 우리 고전 ‘장화홍련전’(김별아 글)도 전통 팬터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읽을거리.등골오싹한 옛날이야기를 골라담은 ‘무서운 전래동화’(이지현 엮음,문공사 펴냄)도 재미있다.구미호,천년묵은 지네,불여우,외다리 귀신 등 ‘토종괴담’에 등장해온 주인공들이 총출동한다. 황수정기자 sjh@
  • 反유대인 작곡가 다룬 책2권 /게르만 신화… 평행과 역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2001년 7월7일 베를린 국립오페라를 이끌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반(反)유대주의자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연주한 이야기는 유명하다.아르헨티나 출신의 유대인 바렌보임은 연주에 앞서 “마음의 상처를 받는 청중은 공연장을 떠나도 좋다.”고 했고,실제로 밖으로 나간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외신을 타고 바렌보임의 이야기가 국내에 전해졌을 때 ‘예루살렘의 바그너’가 왜 이처럼 ‘사건’이 되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기껏 “히틀러가 가장 총애한 작곡가였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피상적인 추측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2년.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나온 독문학자 안인희의 ‘게르만 신화,바그너,히틀러’(민음사 펴냄)와 다니엘 바렌보임·에드워드 W.사이드의 ‘평행과 역설’(장형준 옮김,생각의 나무 펴냄)은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게르만 신화…’는 유례없이 끔찍했던 제2차 세계대전이,신화와 예술이 만들어내는 환상의세계가 현실의 세계를 침범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에서 잉태됐다고 지적한다.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바그너는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방편으로 게르만 신화에 주목했고,여기 담긴 죽음에 대한 동경은 음악과 연극,문학이 하나로 융합된 무대에 올려지면서 제의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관객의 사유를 지배하며 압도하는 바그너 악극의 효과에 주목한 히틀러는 이를 응용한 각종 국가행사들을 통하여 국민들의 집단적 열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문학과 철학,예술,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는 나오기 어려웠을 ‘게르만 신화…’는 2003년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하여 노고의 일부를 보상받았다. ‘평행과 역설’은 바렌보임과 ‘오리엔탈리즘’을 쓴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화비평가 사이드의 대담을 카네기홀의 상임감독인 아라 구젤리미안이 정리한 것이다.두 사람의 대화는 바렌보임이 왜 예루살렘에서 바그너를 연주해야 했는지를 역설적으로 설명해준다.‘게르만 신화…’가 말하려는 ‘광기’는 지금도 가까이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나아가 전 세계에서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이드는 바그너와 같은 아주 복잡한 현상을 비이성적으로 비난하거나 싸잡아서 매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그럼에도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악용하여 팔레스타인에 가하고 있는 인권유린이나,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원수라고 생각하는 바보짓이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렌보임은 바그너 연주가 유대인 동료들이 겪은,믿을 수 없는 일들을 눈감으려는 것이 아니라고 ‘해명’한다.다만 자신들을 미워했던 사람들을 비판해도 되는 권리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으며,그렇게 했을 때 자신도 그렇게 오랫동안 학대한 사람들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9월10일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의 라말라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특별연주회를 갖기도 했다.충동질하는 듯한 집단적 열정의 만용과 조직력이 아니라,이렇듯 금지된 타자(他者)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바로 시민의 길이라는 것이 바렌보임과 사이드가 합의한 결론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막오른 세계배드민턴선수권 / 두번의 실패는 없다

    아테네올림픽 금라켓 ‘시동’. 제13회 세계개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가 28일 영국 버밍엄 국립체육관에서 막이 올라 50개국 350여명의 ‘셔틀콕 전사’들이 다음달 3일까지 치열한 메달 사냥을 벌인다. 2년마다 남녀 단식과 복식,혼합복식 등 5개 종목에 걸쳐 치러지는 세계선수권대회에는 각국의 내로라하는 간판 스타들이 모두 참가해 코트를 뜨겁게 달궜다. 특히 이번 대회는 내년 8월 열리는 아테네올림픽의 전초전 성격이어서 그 어느 때보다 관심을 끈다.이번 대회 챔피언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한국 배드민턴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효자 종목’으로 군림했다.하지만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노골드’의 수모를 당했다. 따라서 한국은 이번 대회를 통해 시드니올림픽에서의 불명예를 회복하고 정상의 위치를 재확인한 뒤 내년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쓸어담겠다는 각오다.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무려 금메달 3개에 도전한다. ●‘환상의 복식조' 만리장성을 넘어라 한국이 노리는 금 3개 가운데 정상에 가장 근접한 종목은 ‘환상의 복식조’ 김동문(28·삼성전기)-나경민(27·대교눈높이)이 나서는 혼합 복식.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김동문과 ‘셔틀퀸’ 나경민은 98년부터 짝을 이뤄 각종 국제 대회를 휩쓸며 세계 코트를 평정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앙숙이자 천적인 중국의 장쥔-가오링이 고비마다 걸림돌이 되고 있다.김-나조의 우승을 그 누구도 의심치 않은 시드니올림픽에서 무명의 장쥔-가오링조에 일격을 당하며 8강에서 탈락,국내 배드민턴계를 초상집으로 만들었다.이어 이듬해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도 막판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해 충격을 더했다. 장쥔-가오링은 투어대회에서 김-나조에 완패하면서도 큰 경기에서는 유독 김-나조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국내 관계자들도 김동문-나경민조에 징크스가 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세계 랭킹 1위인 장쥔-가오링조는 김-나조(세계 7위)와 이번 대회 정상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높다.올림픽을 은퇴 무대로 여기고 있는 김동문과 나경민이 이 대회에서 징크스를 깨고 아테네 정상 등극의 발판을 구축할 지 주목된다. ●불모지 단식에서 금메달 야심 지난 1977년 세계선수권대회가 창설된 이후 남자 단식은 중국 인도네시아 덴마크 등 3개국만이 돌아가며 정상을 밟았다.한국에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단식 스타가 탄생했다.김천시청의 이현일(23)이다.서울체고 2년때 작은 체구에도 불구,명석한 판단력과 타고난 순발력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현일은 지난해 미국 일본 오픈을 제패한 데 이어 올 스위스오픈까지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차지하더니 단체전인 세계혼합선수권대회에서 세계 1위 첸훙(중국)을 2-0으로 완파,세계 배드민턴계에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이현일의 등장으로 복식 강국 한국은 올림픽에서 금 3개까지 노리게 된 것.높이와 체력의 열세를 순발력으로 극복하고 있는 이현일(세계 14위)은 이번 대회에서 첸훙은 물론 맞수인 히다얏 타우픽(인도네시아·8위)과 맞서 첫 우승을 일궈낸다는 다짐이다. 김민수기자 kimms@ 월드랭킹 시드배정에 결정적 역할 올림픽 메달을 염원하는 각국의 배드민턴 선수들은 월드랭킹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는다.월드 랭킹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부여하는 척도인데다 초반 강호들을 피해 메달권으로 순항할 수 있는 시드 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 국제배드민턴연맹(IBF)은 내년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부터 내년 4월 코리아오픈까지 16개 국제대회 성적을 토대로 월드랭킹을 산정,출전 티켓과 시드를 배정하게 된다.이 때문에 선수들은 각종 국제대회를 순회하며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한국은 10개 국제대회에 나설 계획이다. 첫 대회가 이번 세계선수권.랭킹 포인트가 가장 높아 대부분의 선수들이 참가한다. 세계선수권대회는 올림픽과 함께 ‘7스타급’ 대회로 1위는 600점,2위는 510점이 주어진다.또 코리아오픈과 인도네시아오픈 등 6스타급 대회는 우승 포인트가 540점으로 높지만 1스타급 대회는 240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각국의 내로라하는 선수들은 단시간에 높은 포인트를 챙길 수 있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모두 나선다. 높은 시드를 배정받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기량을 점검하고 강호들을 분석하기 위한 더없이 좋은 기회도 되기 때문이다. 김민수기자
  • 당나귀·수탉·물고기가 하늘에 둥둥~ 샤갈의 환상 속으로/초현실화 19점 국내 첫 전시

    공중을 떠다니는 인물,하늘을 나는 염소,인간과 교감하는 동물….마르크 샤갈(1887∼1985)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키워드는 단연 ‘초현실’이다.밝은 색채의 이미지들로 가득한 샤갈의 그림은 여느 현대회화와는 달리 푸근하며 소박한 감성으로 다가온다.20세기 가장 사랑받은 화가 중 한 명이었지만 작품세계는 거의 이해되지 못한 화가.그의 오리지널 작품을 직접 만나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 8월7일부터 9월30일까지 서울 인사동 선갤러리에서 열리는 마르크 샤갈전에는 화려한 색상과 분방한 표현으로 동심과 향수,순수와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샤갈의 유화 19점이 나온다. 초기작 ‘할아버지의 농장’(1914)에서부터 1930년대 ‘벌거벗은 남녀’,‘꽃다발 위의 나부’(1948∼50),1960년대 ‘파리의 밤하늘을 나는 새’‘마을의 신랑신부’,1970년대 ‘아룸(arum)속의 연인들’을 거쳐 사망하기 한 해 전에 그린 ‘화가와 몸집이 큰 누드모델’(1984)에 이르기까지 시기별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샤갈은 평생 성경에 사로잡혔다.이번 전시에서는 성경을주제로 한 ‘분홍 배경의 다윗 왕’(1963),‘야곱과 천사의 싸움’(1969∼72),‘토라를 든 유대인’(1975) 등 3점이 소개된다.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한 유대인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샤갈은 가장 독창적인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1923년 파리로 돌아와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날 때까지 파리에서 활동한 샤갈은 러시아적 정취와 유대적 전통 사이에서 고도의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그의 그림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인,당나귀,말,염소,물고기,수탉,천사,악사들이 등장해 마치 우주유영을 하듯 둥둥 떠다닌다. 샤갈은 화가들보다는 아폴리네르나 블레즈 상드라르 같은 시인들과 더 친했다.샤갈의 작품세계에 ‘초현실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도 바로 그의 시인 친구인 아폴리네르다.그러나 샤갈은 자기 그림에 문학적 해석을 가미하는 것을 경계했다.샤갈은 자신의 회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나는 나의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그것은 문학이 아니다.나를 사로잡은 이미지를 회화적으로 배열한 것일 뿐이다.…” 그림을 그린 작가도 이해하지못하는 그림.하지만 샤갈이라는 화가와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이미 소박한 환상과 환희의 기호로 자리잡고 있다.이번 전시에는 샤갈의 작품을 모사한 가로 4m,세로 2m의 대형 태피스트리 작품도 1점 선보인다.전시작들은 샤갈재단 등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올해로 개관 26주년을 맞은 김창실 선갤러리 대표는 “10여년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걸린 샤갈의 대형벽화를 보고 받은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며 “샤갈의 유화만을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입장료는 일반 8000원,단체 및 학생 4000원.(02)734-0458. 김종면기자 jmkim@
  • [화제의 사이트] sejong.kordi.re.kr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면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나 펑펑 함박눈이 내리길 바랄지도 모르겠다.엉뚱한 상상은 접어두고 뒤뚱거리며 빙판 위를 걸어가는 펭귄을 구경하면서 더위를 잊어보자. 대한민국 남극세종기지(sejong.kordi.re.kr)는 지구 남쪽 끝에서 각종 과학정보를 수집하는 ‘세종 월동대원’의 활동기를 담은 곳이다.세상과 철저하게 고립된 남극에서 1년 동안 체류하는 대원들이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환경을 연구한 내용을 올리고 있다. 현재는 16기 월동대원 16명이 활동하고 있다.해양연구원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기 위해 공중보건의에 지망했다가 남극으로 떠난 대원도 있다.‘종일자기,퍼져자기,자다 깨 포식하기’가 취미라는 한 대원의 익살맞은 자기 소개가 눈길을 끌 듯 홈페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남극의 자연환경을 설명한 코너는 생생한 사진 정보를 곁들였다.차가운 남극바다 밑에 살고 있는 성게나 해산식물 등 볼거리도 풍부해 인기가 많다.계절변화에 맞춰 주변환경을 찍어둔‘갤러리’도 빼놓을 수 없다. 펭귄과 물개가 천연덕스럽게 포즈를 취해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의 묘미를 엿보게 한다.동틀 무렵 수평선과 맞닿아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은 환상 그 자체다. 먼 곳에 떨어져 있어 외로운 대원들은 시·수필·독후감 등을 가리지 않고 작성해 글솜씨를 뽐낸다.한 대원은 헬기로 ‘보급품’이 들어오던 날 달걀이 담긴 상자를 나르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대원들은 홈페이지에 “인터넷으로 고국과 연결돼 있으니 외롭지 않다.”면서 “활동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성원해 달라.”고 글을 남겼다. 박지연 기자 anne02@
  • [녹색공간] 마음속의 명당

    요즘 나는 여러 면에서 심각한 회의에 빠져 있다.나이 오십을 넘기면서 풍수의 핵심 용어라 할 수 있는 명당 개념부터 혼란스러워졌다.교과서적인 명당관에서 시작해 한때는 복 좀 받아보자는 술수에 가까운 생각도 가졌다가 최근에는 명당은 마음 속에 있다는 다분히 풍수를 포기하는 식의 생각으로까지 나아가기도 했다. 어쨌거나 풍수에서의 명당이란 어머니의 품에 안겨있던 어린 시절처럼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곳이다.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복 좀 받아보자는 의도를 가진 용어가 아니라는 말이다.머레이 북친의 지적과 같이 “현대는 총체적 신경쇠약이라 불릴 만한 불치의 인간 상황”이다.그러니 우리가 지금 명당을 다시 거론하는 것은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라고 할 만하다.그렇게 된 이유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다.그렇다고 욕심이 마냥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데 문제 해결의 어려움이 있다.욕심으로 말미암아 문명의 발전이 있었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문명이라든가 발전 같은 것은 좋은 면만 지니고 있을까?수많은 문명 비평가들은 “사람의 최대의 적은 바로 사람”이라 말하고 있다.미국의 초등학교 6학년생이 썼다는 다음의 시는 경고 정도가 아니라 절망감까지 들게 한다.‘사람이 없었다면/오염도 없었을텐데/사람을 없애자/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끔찍한 생각이지만 거짓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헤르만 헤세의 환상 동화집에 보면 이런 우화가 나온다.어떤 사람이 철로가 놓여 두번째 기차가 승객을 내려놓고 화물을 부리는 것을 보며 “발전해 가는구나.”라고 말했다.얼마 후 이 도시가 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숲과 늪지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딱따구리 한 마리가 외쳤다.“발전해 가는구나.” 이 경우는 사람과 딱따구리의 시각 차이에서 나온 반응이기 때문에 그 예가 지나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사람들의 시각차 또한 그에 못지않다. 최근 계속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공사를 보면서 나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든 간에 사람들의 견해 차이가 이토록 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환경론자들의주장과 경제적 이득을 염두에 둔 개발론자들의 의견 대립이 바로 그것인데 어느 쪽 편을 들어야 잘 하는 일인지 정말 모르겠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환경론자들의 입장에서 그런 문제들에 대한 견해를 밝혀왔다.전주에서 8년을 살았기 때문에 전주에 아는 사람들이 꽤 있다.그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왜 이 사업이 계속되어야 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그야말로 판단이 서질 않는다.어찌 해야 새만금이 명당이 될 수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뜻이다. 결국 모두에게 맞는 해결책은 없는 셈이다.할 수 있는 일은 선택뿐.명당은 당신 마음 속에 있다는 얘기도 이와 흡사하다.누구는 바닷가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고 또 누구는 아담한 산간 계곡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바닷가에서 오히려 쓸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계곡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정말 하고 싶지 않은 얘기지만 지금 나는 회의에 빠져있음이 분명하다.군자는 생각하며 행동하지만 소인배는 생각만 하거나 행동만 한다더니 내가 지금 그 꼴이다.요즘 내 건강이 나빠져서 약해진 까닭일까? 이 또한 세태의 반영일지 모르지만. 최 창 조 전 서울대교수 풍수전문가
  • 딸이 부르는 프랑스판 思父曲 / 엘리에트 아베카시스 소설 ‘나의 아버지’

    “두 해 전,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더 이상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없었다.”(5쪽) 아버지의 잔영이 짙게 드리운 여자 주인공이 아버지를 회상하는 프랑스판 사부곡 ‘나의 아버지’(여백)가 나왔다.작가 엘리에트 아베카시스(34)는 프랑스에서 최연소 철학교수자격시험(아그레가시옹)을 통과 하고 27세에 데뷔작 ‘쿰란’으로 프랑스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어느날 엘레나에게 아버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는 편지가 날아온다.이어 엘레나는 아버지의 빈 자리를 떠올린다.그러나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이복 남매라는 것을 알고서 그동안 아버지에 대해 갖고 있던 ‘광대한 제국’의 이미지는 흔들린다.더 기막힌 것은 헬레나가 이복남매의 어머니 이름을 딴 것이란 것. 하지만 이는 신화가 체화되기 위해서는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훼손된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는 이복남매인 폴 M과 이탈리아 여행,어머니의 친구 마들렌느 S의 증언 등의 과정을 거치며 아버지에 대한 신화는 오히려 더 굳건해진다. 작가는 이 단순한 줄거리에,엘렉트라콤플렉스와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묘사 등을 덧대 지적인 소설을 잉태했다.작품을 번역한 길해옥 경원대 교수는 “종교적이고 심리학적이며,철학적인 작품”이라며 “그 가운데 작가 자신에게 존재하고 있었던 무의식적인 원형이 총체적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종수기자
  • 예술로 꽃핀 피카소의 삶과 사랑/서울 호암갤러리 ‘피카소전’

    르네상스의 대가 라파엘이 붓과 팔레트를 손에 쥔 채 모델이었던 라 포르나리나(이탈리아어로 ‘빵굽는 여자’)와 정사를 벌이고,커튼 뒤에서는 삼중관과 토시를 끼고 요강에 앉은 교황 율리우스 2세를 비롯해 추기경과 피카소의 판화를 찍어주던 판화 제작업자 피에로 크로믈랭크 등이 이 광경을 훔쳐본다.침대 밑에는 라파엘의 성공을 시기하던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숨어 훔쳐보지도 못하고 듣기만 하고 있다. 이 ‘변태적인’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가 87세 되던 해에 만든 판화 ‘라파엘과 라 포르나리나’ 연작 가운데 하나다.주제를 ‘성(性)’이라고 간단히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성적·예술적으로 무력해진 늙은 화가 피카소의 심리를 드러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여성을 멸시하는 괴팍한 사내’ 피카소가 어느덧 성의 유희를 훔쳐볼 수밖에 없는 관람객 신세가 된 것이다.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판화전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9월14일까지)에서는 이처럼 솔직하면서도 익살스러운 피카소의 판화작품 205점을 만날 수 있다. 1881년 스페인 말라가 지방에서 태어나 1973년 무쟁에서 92세로 죽을 때까지 피카소는 넘치는 열정과 예술혼으로 수만 점의 작품을 남겼다.심오한 정신세계나 전쟁과 같은 정치·사회적인 주제를 다루기도 했지만 그의 작품의 주된 주제는 대부분 자신의 삶과 사랑,성,욕망 같은 것들이다.이는 “예술은 결코 정숙하지 않은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도 어렵잖게 알 수 있다.유화로 출발한 피카소는 어렸을 때 판화를 처음 시도했지만 본격적으로 판화를 제작한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다.피카소는 일생 동안 2500여점의 판화를 남겼다.이번 전시작품은 스페인의 금융그룹인 방카하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피카소의 대표적 판화집 ‘볼라르 판화집’(1937년)과 ‘347 판화집’(1968년)에 실린 것들이다.파리의 화상이자 출판업자였던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이름을 딴 ‘볼라르 판화집’은 판화 100점을 묶은 것으로 ‘조각가의 작업실’과 ‘신화’가 주요 주제다.조각가의 작업실을 많이 다룬 것은 피카소가 30년대에 조각에 열중하기도 했지만,작가와 모델이라는 소재가 여성으로부터 작품의 영감을 강하게 받은 피카소에게는 예술과 사랑을 아우를 수 있는 것으로 여져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괴물 ‘미노타우로스’가 자주 등장한다.타고난 야만성으로 인해 미궁에 갇혀 사는 미노타우로스의 운명에서 동질감이라도 느낀 것일까.미노타우로스 연작은 이후 ‘미노타우로마’‘게르니카’ 같은 작품으로 발전한다.‘347 판화집’에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야한 성적 환상과 개인적인 경험들을 자유로운 이미지로 엮은 노년의 작품들이 담겼다.서커스 장면이나 창녀촌,화실 등을 배경으로 몸은 비록 노쇠했지만 아직도 열정과 욕구를 지닌 자신을 대역이나 위장된 모습으로 연출해 드러낸다.“결국 마지막에는 사랑만이 있을 뿐이다.그것이 어떤 사랑이든간에”라는 말을 남긴 피카소.이번 전시는 그가 사랑에 관한한 정말로 검질긴 사람임을 유감없이 보여준다.(02)771-2381. 김종면기자 jm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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