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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수엑스포 D-100] 서울서 3시간 거리 ‘바다 도시’… 국제 해양·관광수도로 뜬다

    [여수엑스포 D-100] 서울서 3시간 거리 ‘바다 도시’… 국제 해양·관광수도로 뜬다

    2012 여수엑스포 개막이 2일 기준으로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엑스포는 올림픽, 월드컵과 더불어 지구촌 3대 축제의 하나다. 여수엑스포는 보고 즐기는 단순한 축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지구 환경문제를 테마로 공생의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여수 엑스포 조직위원회가 엑스포 주제로 ‘살아있는 바다, 숨쉬는 연안’을 선정한 것은 이 같은 지구환경 문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이다. ‘바다의 도시’ 여수에서 열릴 엑스포 준비상황과 엑스포 개최 기대효과 등을 짚어본다. 여수 엑스포는 5월 12일부터 8월 12일까지 여수신항 일대에서 93일간 개최된다. 2조 10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된다. 참가국 유치도 당초 목표했던 100개국을 넘어서 106개국으로 늘었다. 국제기구로는 국제연합(UN)·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9개 국제기구가 참가하고 1000만명의 국내외 관람객이 찾을 것이 예상된다. 12조 2000억원의 전국적 생산유발 효과와 7만 9000명 고용 등의 경제적 효과도 기대된다. 2005년 유치에 나섰다가 중국 상하이에 패해 2007년 재도전에서 성공한 여수는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2020년 인구 40만의 국제 해양·관광·레저 수도로 자리매김한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박람회장 건설은 현재 92%의 공정률을 기록하며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3월까지 모든 공사를 끝낸다. 주제관, 한국관, 국제관, 해양생물관(아쿠아리움), 기후환경관, 해양산업기술관, 해양문명도시관, 국제기구·NGO관, 기업관, 지자체관 등의 전시관이 들어선다. 또 세계가 주목하는 3대 랜드마크인 스카이타워, 빅오, 엑스포 디지털 갤러리와 엑스포타운, 특급엠블호텔 등 대부분의 시설들이 3월에 준공될 전망이다. ●문화·예술공연과 다채로운 이벤트 사회간접자본시설(SOC)도 속속 확충되고 있다. 지난해 4월 완주~순천 고속도로 개통에 이어 10월 전라선 KTX가 개통되는 등 수도권에서 여수로 3시간대 접근이 가능해져 오는 길도 빨라졌다. 여수엑스포역(구 여수역)은 박람회장 입구와 연결되며 전라선 고속화 사업이 완료되면 서울에서 2시간 57분 만에 박람회장에 도착할 수 있게 된다. 박람회 전까지 여수~광양 간 여수국가산단 진입도로, 목포~광양 고속도로, 여수~순천 간 자동차전용도로 등의 신설로 모든 방향에서의 교통접근이 원활해진다. 항공편도 여수~중국 전세기 운항(3개사), 여수~김포·제주 등 국내선 증편과 대형기종 운항으로 무안·김해공항을 이용하는 외국 관람객도 공항버스를 이용해 쉽고 편하게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박람회 기간 중 박람회장 주변에서는 쉴 새 없이 다채로운 공연과 행사가 열린다. 관람객들은 93일 동안 400개 프로그램, 총 8000회 이상 펼쳐지는 문화공연과 이벤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박람회 핵심공간인 빅오를 주무대로 하는 화려한 뉴 미디어쇼와 여수세계박람회에서만 볼 수 있는 스펙터클한 해상쇼,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K팝 공연과 해외 빅스타 초청공연,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수상공연 페스티벌 등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대형이벤트가 펼쳐진다. 박람회에 참여하는 세계 100여개 국가들이 독자적으로 준비하는 특색 있는 자국의 문화공연, 각 지자체들의 대표 문화공연, 국내 유수 문화단체 공연, 관람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전통마당 공연, 대기시간의 지루함을 없애줄 신나는 거리공연 등 다양한 공연과 문화예술 이벤트들이 펼쳐질 예정이어서 국제적인 교류와 축제의 마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속, 창작, 기획, 시민공연 등 여수시가 야심차게 준비한 다양한 장르의 문화 공연과 이벤트도 빠트릴 수 없다. 영당풍어굿, 현천소동패 놀이, 여수 강강술래, 거문도뱃노래, 여수상문살 물리기 굿, 전라좌도 여수삼동매구 등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 공연이 선보인다. 진남경기장에서 선보이게 될 러시아 볼쇼이 아이스쇼와 돌산 진모지구에서 열릴 서커스 공연은 문화예술 행사의 백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볼거리·먹거리로 엑스포를 풍성하게 박람회 구경과 함께 여수 관광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여수시가 자랑하는 여수10경이 있다. ①이순신장군의 얼이 살아 숨쉬는 국내 최대 단층 목조건물 진남관 ②붉게 피는 동백꽃과 수목 기암 절경 여수의 대표 관광지 오동도 ③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중 하나로 전국 최고의 일출명소 향일암 ④황홀한 빛 환상의 야경이 바다와 어울리는 해양관광의 거점 돌산대교 ⑤남해안에서 최초로 불을 밝힌 거문도 등대 ⑥신이 내린 최고의 선물 백도 ⑦1억년 전 공룡의 숨결이 느껴지는 생태학습장 사도 ⑧국내 3대 진달래 군락지 영취산 ⑨웅장함과 화려한 야경을 뽐내는 여수국가산업단지 ⑩해넘이를 배경으로 갯벌과 왜가리의 조화가 장관인 여자만 갯벌 등이다. 여수의 먹거리도 있다. ①막걸리 식초를 사용한 별미 중 별미 서대회 ②여수의 간장게장 맛이 일품인 게장백반 ③남해안의 싱싱한 해산물 한정식 ④여수의 겨울 비타민 굴구이 ⑤피부미용과 노화방지 효과가 탁월한 장어구이·장어탕 ⑥굴비보다 값을 더 매긴다는 금풍쉥이구이 등이 있다. 여수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국내 양대 발레단 ‘국립’·‘유니버설’ 올 시즌 연다

    국내 양대 발레단 ‘국립’·‘유니버설’ 올 시즌 연다

    2월에 들어서면 본격적인 무용 시즌이 시작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발레단,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각각 낭만발레와 현대발레로 올해의 서막을 알린다. 지난해 국립발레단의 ‘지젤’을 본 관객이라면, 파스텔로 그린 듯 아련한 무용수들의 치맛자락을 한동안 잊지 못했을 것이다. 여성 무용수들이 입은 기다란 로맨틱 튀튀가 조명을 받아 아른거리며 군무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꿈을 꾼 듯 환상적인 군무 ‘지젤’ 그 ‘지젤’이 1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는다. 국립발레단이 올해 첫 공연으로 ‘지젤’을 택한 것. 3월 1일부터 4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지난해 예술의전당에서 5일 동안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고, 전국적으로도 16개 지역에서 27회 무대에 오르며 관객 2만 3394명이 관람했다. ‘지젤’은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아리따운 시골처녀 지젤은 신분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배신당한 충격으로 숨을 거둔다(1막). 알브레히트는 지젤의 무덤을 찾았다가 윌리(결혼 전에 죽은 처녀들의 영혼)들의 포로가 되지만 지젤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다(2막). 이번 공연은 지난해처럼 19세기 파리오페라발레 버전의 오리지널 안무를 그대로 재현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 버전으로, 섬세한 춤과 드라마틱한 연기의 정수를 보여 준다. 특히 2막에 등장하는 윌리의 군무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답다. 국립발레단의 주역 김지영-이동훈, 김주원-이영철 커플을 비롯해 박슬기-정영재, 이은원-이재우 커플이 열연한다. 5000~10만원. (02)587-6181. ●모던발레가 궁금해? ‘디스 이즈 모던’ 모던발레는 기존 발레의 형식을 깨고 자유로운 의상과 동작을 선보이는 발레다. 발레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튀튀나 토슈즈를 벗어버려 현대무용과 구분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과연 모던발레가 무엇이고, 어떻게 즐길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유니버설발레단의 공연을 추천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이 다음 달 18일과 19일 이틀간 ‘디스 이즈 모던 3’를 서울 광진구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2010년부터 해마다 현대 발레 거장들의 레퍼토리를 엮어온 ‘디스 이즈 모던’ 세 번째 공연으로, 지난 공연에서 보여준 작품 중에 관객 호응도가 좋았던 것을 추렸다. 체코 출신 안무가 이어리 킬리안의 ‘프티 모르’(어떤 죽음)는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으로, 고요하면서 세련되고 섹슈얼한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이 작품과 옴니버스처럼 연결된 ‘젝스 텐츠’(여섯 개의 춤)도 선보인다. 미국 출신의 독보적인 안무가 윌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 섬왓 엘리베이티드’에서는 날카롭고 중독성 강한 톰 뷜렘의 음악에 맞춰 몸의 곡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레오타드를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를 장악한다. 이스라엘의 ‘국보급’ 안무가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 7’은 기존 작품 ‘아나파자’와 ‘마불’, ‘자차차’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구성했다. 이중 ‘자차차’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섬웨어 오버 더 레인보’(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배경음악으로 무용수들이 관객을 무대로 끌어올려 즉흥 공연을 만들면서 관객 참여형 공연의 모델을 보여준다. 김채리와 이승현(프티 모르), 한서혜와 강민우(젝스 텐츠), 손유희와 이현준(인 더 미들 등), 김나은과 엄재용(마이너스 7) 등 유니버설발레단의 주역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에도 역시 문훈숙 단장이 공연 전에 맛깔스러운 해설을 더할 예정이다. 1만~7만원. 070-7124-174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환상인 듯, 현실인 듯… 그 희미한 존재를 쫓아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 어떤 게 현실이고, 어디까지 공상일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초반에는 읽어 내리기에 다소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점점 그의 문체에 적응할 즈음 어느새 마지막 단편에 다다랐다. 젊은 소설가 황정은(36)씨의 두 번째 소설집 ‘파씨의 입문’(창비 펴냄)은 확실히 매력이 있다. 2008년부터 2011년 사이 7개 문학지와 2개 소설집에 실린 단편 9편을 모았는데 은근한 흐름이 읽힌다. 고씨와 한씨, 박씨와 백씨를 형과 동생, 형수님과 제수씨로 얽어 놓은 첫 단편 ‘야행’에서 이들의 가족관계가 어찌 이리되나 고민하다가 환상을 접해버렸다. “책. 책. 무슨 시계 소리가. 책. 책. 책. 그보다. 사람들은 내가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바쁘다.…저 사람들은 피를 흘리지도 않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고 싸운다. 무슨 재미가 있을까. 책. 책. 책. 책. 책.” 짤막한 대화가 이어지더니 곰이 시계를 바라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지자 온통 글투성이가 된다. 당혹스럽다. 숨 쉴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잡념 속으로 끌어들이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는 부조리극 한 편을 마무리해버렸다. 환상은 죽어 잊히는 것들로 이어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죽은 원령의 시선으로 한 남자의 삶을 그린 ‘대니 드비토’와 3년째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를 그린 ‘낙하하다’, 다섯번 죽고 다섯번 살아난 길고양이의 삶을 그린 ‘묘씨생’은 있을 법하지만 관심을 두기에는 난감한 어떤 존재를 다뤘다. 그럴듯하게 사실적인데, 정작 존재의 유무를 대입하자니 어쩐지 오싹하다. “서쪽에 다섯 개가 있어.”라는 항아리의 목소리를 듣고 길을 나서는 ‘옹기전’이나 일일 바자회에서 양산 파는 아르바이트생의 하루를 담은 ‘양산 펴기’까지 이어지면 단편의 흐름은 존재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인가 싶다. “귀신 붙는다.”며 내다 버리라는 부모의 호통에도 “마음먹고 버리면 거기가 버릴 데”라는 노인의 충고에도 항아리의 말을 쫓아가는 아이는(‘옹기전’), “자외선 차단 노점상 됩니다 안 되는 생존 양산 쓰시면 물러나라 기미 생겨요 구청장 한번 들어보세요 나와라 나와라 가볍고….”라고 엉킨 외침은(‘양산 펴기’)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희미한 존재에 귀 기울이도록 유도한다. 간결하면서 리듬감 있게 흘러가는 문장으로 긴장감을 전달하는 기교, 서사(敍事)가 환상이 되고 환상을 다시 현실로 옮겨 오는 이음새가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이 작가의 매력이다. 1만 1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태양폭발 영향’ 유럽 밤하늘 환상적 ‘오로라쇼’

    ‘태양폭발 영향’ 유럽 밤하늘 환상적 ‘오로라쇼’

    최근 발생한 태양폭발로 인해 유럽 북부지역에 광범위한 오로라가 관측돼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4일 밤(이하 현지시간)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북부, 스코틀랜드, 노르웨이 지역에서 마치 레이저쇼를 보는듯한 오로라가 나타나 밤하늘을 파랗게 물들였다. 영국천문협회의 켄 케네디는 “유럽 북부지역에서 광범위한 북극광(Aurora Borealis)이 관측됐다.” 며 “아마 며칠간 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오로라는 최근 발생한 태양폭발의 영향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2일 미국항공우주국 NASA는 “지난 2005년 이후 가장 큰 태양폭발이 감지됐다.” 며 “고위도 지역 국가들에서 통신두절 현상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오로라는 통상 위도 60도 이상의 극지방에서 나타나 극광(極光)이라고도 불리며 태양표면에서 흑점이 폭발할 때 나오는 높은 에너지의 입자가 지구의 대기권으로 진입하면서 공기와 반응해 발생한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달인’ 김병만이 그리는 일과 사랑

    ‘달인’ 김병만이 그리는 일과 사랑

    따뜻하고 훈훈한 가족을 그린 명절용 단막극이 크게 줄었다. 이번 설 명절에는 지상파 TV 중 SBS만 명맥을 유지했고, 케이블채널은 해외 TV시리즈로 안방을 찾는다. SBS는 20일 오후 11시부터 ‘달인’ 김병만을 전면에 내세운 설날특집드라마 ‘널 기억해’를 연속 방송한다. ‘내사랑 못난이’,‘가문의 영광’,‘완벽한 이웃을 만나는 법’ 등을 집필한 정지우 작가와 ‘왕의 여자’,‘사랑공감’,‘그 여자가 무서워’ 등을 연출한 정효 PD가 만났다. 2010년 월화드라마 ‘별을 따다줘’에서 환상호흡을 보인 작가와 PD의 만남이라 기대감이 크다. 드라마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친구로 지낸 덕수(김병만), 은수(이영은), 강수(김진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광고기획사에 다니는 은수와 강수, 아버지를 도와 구두가게에서 일하는 덕수는 삶의 행로와 성격은 다르지만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다. 2001년 크리스마스 즈음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낀 은수는 사표를 내고, 강수는 은수의 아이디어 덕에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승장구한다. 덕수는 동네에 선물가게를 연 은수를 돌봐주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세 사람의 세월은 또 흘러간다. 제작진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삶이 무엇이고, 한결같이 곁을 지키는 사람에 대한 소중함과 세상을 좀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선물과 같은 사랑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널 기억해’에는 백일섭, 정애리, 하승리, 박형식, 주지원 등도 출연해 감동을 전한다.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은 22~24일 매일 오전 7시부터 4시간 동안 ‘모던 패밀리’ 8편을 연속 방송한다. 딸뻘인 여성과 재혼한 아버지, 철없는 남편과 개성 강한 세 아이를 키우는 딸, 남자와 사는 아들 등 독특한 세 가족이 만들어 내는 유쾌한 이야기이다. 중간중간에 주연들의 인터뷰가 들어가는 ‘페이크 다큐 시트콤’으로, 2010년 제62회 에미상 코미디 부문에서 작품상, 각본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최근 열린 제69회 골든 글로브에서도 작품상을 받았다. 스토리온은 ‘2012 홀리데이’ 시리즈로 23~24일 오후 6시부터 ‘클로저 시즌6’ 10편을 편성했다. 수사물에서는 드문, 여성이 주인공이다. 큰 가방이 트레이드마크인 LA경찰청의 여성 국장 브렌다가 범죄의 자백을 받아내는 특기를 살려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깨소금 같은 재미를 준다. 중화TV는 2012 신년 특집 대작 ‘경세황비’와 최강 전쟁 역사극 ‘대진제국’을 처음부터 연속으로 볼 수 있는 설 특집 ‘본방 따라잡기’도 마련한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억울한 죽음 20대女, 3년만에 범인앞 나타나…

    억울한 죽음 20대女, 3년만에 범인앞 나타나…

    3년전 익사로 종결된 21세 여대생 사망이 외국인 남자친구의 살인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17일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피해망상 때문에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캐나다인 C(3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C씨는 2009년 3월 23일 오후 8시 17분쯤 서울 이촌동 거북선 나루터 인근에서 대학생 김모(당시 21세)씨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 머리를 눌러 익사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C씨는 2001년 한국에 들어와 전북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다 2009년 1월 김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결과 C씨는 여자친구 김씨가 사람들을 시켜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피해망상에 시달리다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C씨는 “김씨가 한강에 빠진 테니스공을 건지려고 들어갔다 익사했다.”면서 범행을 부인했다. 또 부검에서도 타살혐의가 발견되지 않아 풀려난 뒤 사건 발생 이틀 뒤 캐나다로 출국했다. 기독교인인 C씨는 캐나다에 돌아간 뒤 범행 당시의 피해자 모습이 꿈속에 나타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고 한다.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다 종교생활에 귀의했던 C씨는 결국 지난 14일 한국으로 돌아와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C씨는 기도하면서 회개를 했는데도 범행에 대한 환상에 계속 시달렸다.”면서 “결국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범행 사실을 고백하고 한국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해 자수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36) 목졸려 살해된 시신, 라면박스만 없었어도… 범죄가 흔적을 남기기 위해… 35) 그녀와 만난 남자는 모두 죽는다 마약에 눈먼 20대 명품녀의 엽기적 살인행각 34) 하얀 피부와 사후강직이 일러준 토막살인의 진실 전철역 화장실에 유기된 30대女의 시신 33) 억울한 10대 소녀의 죽음…두줄 상처의 비밀 추락에 의한 자살? 몸을 통해 타살 증언하다 32) 살해된 20대女의 수표에 ‘검은 악마’의 정체가 담기다 완전범죄를 꿈꾸던 엽기 살인마 31) 최악의 女연쇄살인범 김선자, 5명 독살과 비참한 최후 청산염으로 가족, 친구 무차별 살해 30) 동거女 잔혹하게 살해한 30대, 시신이 물속에서 떠오르자… 살인후 물속으로 던진 사건 그후 29) 살인자가 남기고 간 화장품 향기, 그것은 ‘트릭’이었다 강릉 40대女 살인사건의 전말 28) 소리없이 사라진 30대 새댁, 알고보니 들짐승이… 부러진 다리뼈가 범인을 지목하다 27) 40대 여인 유일 목격자 경비 최면 걸자 법최면이 일러준 범인의 얼굴 26) 목졸리고 훼손된 60대 시신… 그것은 범인의 속임수였다 ‘파란 옷’ 입었던 살인마 25) 그녀가 남긴 담배꽁초 감식결과 놀라운 사실이 살인 현장에 남은 립스틱의 반전 24) 택시 안에서 숨진 20대 직장女 살인범은 과연… 돈 버리고 납치한 이상한 택시 강도 23) 살인현장에 남은 별무늬 운동화 자국의 비밀 60대 노인의 치밀한 트릭 22) 70% 부패한 시신 유일한 증거는 ‘어금니’ 억울한 죽음 단서 된 치아 21) 자다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젊은 남자들…누구의 저주인가? 청장년 급사증후군의 비밀 20) 아파트 침대 밑 女 시신 2구…잔인한 ‘진실게임’ 결과는? 누명 벗겨준 거짓말 탐지기 19) 자살이라 보기엔 너무 폭력적인 죽음…왜? 가해자·피해자는 하나였다 18) 헤어드라이어로 조강지처 살해한 50대의 계략… 몸에 남은 ‘전류반’은 못 숨겼네 17) 물속에서 떠오른 그녀의 흰손…토막살인범 잡고보니 바다에서 건진 시신 신원찾기 16) 이태원 옷집 주인 살인사건…20대 여성이 지목한 범인은? 찢어진 장부의 증언 15) 무참히 살해된 20대女…6년만에 살인범 잡고보니… 274만개의 눈이 잡은 연쇄살인범의 정체 14) 백골로 발견된 미모의 20대女, 성형수술만 안 했어도… 가련한 여성의 한 풀어준 그것 13) 車 운전석에서 질식해 숨진 그녀의 주먹쥔 양팔 12) 불탄 시신의 마지막 호흡이 범인을 지목하다 화재사망 속 숨어있는 타살흔적 증거는 11) 자살한 40대 노래방 여주인, 살인범은 알고 있었다 생활반응이 알려준 사건의 진실 10) 소변 참으며 물 마시던 20대女, 갑자기 몸을 뒤틀며… 생명을 앗아가는 ‘죽음의 물’ 9) “그날 조폭은 왜 하필 남진의 허벅지를 찔렀나?”… 칼잡이는 당신의 ‘치명적 급소’를 노린다 8) 변태성욕 30대 살인마의 아주 특별한 핏자국 혈흔속 性염색체의 오묘한 비밀 7) 정자가 수상한 정액…씨없는 발바리’ 과학수사 얕봤다가 정관수술까지 한 연쇄 성폭행범 6) 천안 母女살인범, 현장에서 대변만 보지 않았더라도… ‘미세증거물’ 속에 숨은 사건의 진상 5) 강간 후 살해된 여성, 그리고 부검의 반전 죽을 때까지 여성이고 싶었던 여성의 사연 4) 살해당한 아내의 눈속에 담긴 죽음의 비밀… 흔해서 더 잔인한 위장 살인의 실체는 3) 친구와 함께 차안에서 아내에 몹쓸짓 한 남편 …사고로 위장한 최악의 선택 2) 죽음의 性도착증 ‘자기 색정사’ 혼절직전의 성적 쾌감 탐닉…‘질식에 중독되다’ 1) 데이트 강간을 위한 ‘악마의 술잔’ 한모금에 블랙아웃…24시간내 검사 못하면 미제사건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전체 시리즈 목차보기 (클릭)
  • [데스크 시각] 스포츠만이 희망이라고?/임병선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스포츠만이 희망이라고?/임병선 체육부장

    예년만 못하지만 그래도 연초라 덕담이 오간다. 지난주 만난 한 경기단체장은 신년인사회에서 들었던 “스포츠만이 희망”이란 표현에 공감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했다. 얘기인즉, 총선이다 대선이다 해서 올 한해 말도 많고 탈도 많을 것이 분명하며 경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마당에, 찢길 대로 찢긴 사회 여러 부문의 파열음만 요란할 것이 뻔하다는 진단을 깔고 있었다. 그런 국민들의 답답함을 풀어줄 건 스포츠밖에 없을 것이란, 아니 그래야 한다는 주문(呪文)에 가까웠다. 임진년 체육 분야에서 이뤄야 할 목표로 꼽히는 것이 런던올림픽에서 7회 연속 종합 10위권을 사수하는 것이고, 8회 연속 축구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는 것이다.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되면 밤을 지새워 일해도 즐겁고 신나는 일일 것이다. 5년 전 과테말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14년 겨울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막막함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올림픽 종합 10위권을 사수한다고 국민들이 행복해질까.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한 것에서 희망을 길어올릴 수 있을까. 정치나 경제는 엉망인데 올림픽에서의 좋은 성적과 월드컵 본선 진출로 사회 여러 부문에 스며든 분열과 갈등의 기운을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기 기만 아니면 최면 걸기나 다름없을 것이다. 며칠 전 만난 관료는 “이 정부에서 잘된 건 평창 겨울올핌픽 유치 등 체육 분야뿐”이라고 말해 기자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정치·경제와 사회·문화, 이런 요소들과 동떨어져 체육 분야만 괄목할 성과가 있었다는 얘기인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 정부가 풀지 못한 난제들은 여전하다. 평창 유치 이후 궂긴 일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유치의 한 축인 춘천시는 빙상팀을 해체하고 활강경기장 입지 문제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유치 과정에 열심히 뛴 사람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엉뚱한 사람들이 ‘잿밥’ 챙기는 데 바쁘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런던올림픽 중에 태권도를 2020년 올림픽 이후에도 정식종목으로 남도록 치열한 막후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우리 안의 문제부터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이 유도 연맹 본부나 사무총장 자리를 양보한 전례를 따랐으면 좋겠는데 버티는 이들이 적지 않은 모양이다. 처음으로 런던 브루넬 대학에 훈련 캠프를 마련하고 4~5년 동결했던 대표선수 수당을 1만원 인상하는 일로 미국 일간 유에스에이투데이가 금메달 4개, 은메달 7개, 동메달 13개로 예측한 한국 대표팀의 성적이 갑자기 끌어올려지긴 어려울 것이다. 체육회 산하 경기단체 가운데 비리 문제로 흔들리고 있는 종목들도 상당하다. 장애인체육회는 아예 회장이 수사 선상에 올라 있어 정비가 시급하다. 기자가 가장 염려하는 건 실업팀 해체 바람이다. 창단 붐이 일어도 시원찮을 판에 국민체육진흥법에 의무적으로 실업팀을 운영하게 돼 있는 공공기관 60곳 가운데 11곳이 21개 실업팀만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8월 기준 944개 실업팀 중 절반이 넘는 473개팀을 지자체가 맡고 있다. 그런데 재정 부담을 이유로 성남시(12개), 용인시(11개), 정읍시(2개) 등이 팀을 해체했거나 해체할 작정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자체와 공공기관이 실업팀을 운영하면 각각 행정안전부의 합동평가와 기획재정부의 경영실적평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도록 협의할 계획이다. 이달부터 실업팀을 창단하는 곳에 3년간 1억원의 운영비가 지원된다. 장애인실업팀 창단 비용의 절반을 2억원 한도에서 지원하고 기존 팀의 운영비를 팀당 2000만원 지원하기로 했다. 연초 덕담은 덕담으로 그쳐야 한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스포츠 인프라를 늘릴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차분히 이행해야 한다. 메달 색깔이나 개수에 대한 환상보다 더 중요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bsnim@seoul.co.kr
  • [연극리뷰] ‘돈키호테’

    [연극리뷰] ‘돈키호테’

    78세 노배우가 이렇게 깜찍하고 엉뚱해도 되는 걸까. 연극 ‘돈키호테’의 주연배우 이순재의 이야기다. 폭탄 머리에 양은냄비 모자를 쓴 채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어느새 근엄한 표정으로 반전을 노리는 그는 145분가량의 공연 시간 내내 극을 이끌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연극 ‘돈키호테’는 스페인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 작 소설인 ‘돈키호테’를 원작에 가장 가깝게 각색한 프랑스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의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극은 좌충우돌 세상과 맞서는 몽상가 알폰소의 이야기를 다뤘다. 알폰소는 책에 감염된 인간으로, 책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특히 기사소설을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스스로 편력기사 ‘돈키호테 데 라 만차’라는 환상을 갖는다. 즉, 돈키호테는 알폰소가 스스로 만들어 낸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사람들에게 소설의 세계는 허구이지만, 돈키호테에겐 현실의 일부다. 그래서인지 낭만적이고, 순수하다. 다소 엉뚱한 돈키호테의 캐릭터는 원작자인 세르반테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냈다. 묘하게 얽히고설킨 사각 관계의 네 남녀와 돈키호테, 그리고 돈키호테를 따라 모험 여행에 나선 판사 산초가 우연히 마주치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서로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바람둥이 기사 돈 페르난도(한윤춘 역)의 계략에 속아 헤어지게 된 훈남 기사 카데니오(최광일 역)와 루신다(김리나). 그리고 루신다를 빼앗아 기뻐하는 돈 페르난도와 자신을 버린 남편 돈 페르난도를 애타게 찾는 도로시아(김양지 역)의 관계 속에 돈키호테는 은근슬쩍 개입하며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절망적인 상황의 네 남녀에게 돈키호테는 희망과 꿈을 안겨주고, 절망적인 순간에도 생명력을 불어준다. “지금 이 시대는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과 고통 속에 온갖 술수와 거짓, 악덕이 판을 친다. 나, ‘슬픈 표정의 기사’ 돈키호테는 낭만과 꿈, 사랑과 정의를 찾아 영원히 방랑과 모험의 길을 떠나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열정을 위해, 사랑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소중함을 위해 온 마음과 온몸을 바칠 것이다. 가자 정의를 위해! ”라고 외치며 극을 마무리 짓는 돈키호테. 그는 정의 실현을 꿈꾸는 이상주의자 그 자체다. 언덕 위의 풍차를 보며 거인이라 우기고,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지만 고결한 마음만큼은 주변인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그와 너무나도 다른 노선의 현실주의자 산초가 우직하게 그의 모험 길을 동행하는 이유이자 수백년이 지난 후세의 관객들마저 돈키호테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돈키호테 역에는 이순재, 한명구가 번갈아 맡아 연기하며 산초 역의 박용수, 오티즈 역의 정규수 등 실력파 배우들의 열연도 볼 만하다. 2010년 초연 당시 객석 점유율 92%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던 연극 돈키호테는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2만~5만원. 1644-200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터키 겨울 식도락 여행…차가운 黑海 뜨거운 유혹 ‘함시’

    터키 겨울 식도락 여행…차가운 黑海 뜨거운 유혹 ‘함시’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흑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터키의 품에 갇힌 내해(內海)다. 그래도 남한 면적의 4.2배에 달하니 제법 큰 바다인 셈이다. 겨울철 흑해 연안의 항구에 가면 생선을 굽고 튀기는 냄새가 진동한다. 특히 흑해 연안의 도시 중 가장 번창한 트라브존 어디에서든 생선 좌판 근처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불러들인다는 ‘가을 전어’의 터키 버전인 함시가 치명적 유혹의 주인공이다. ●튀기고… 굽고… 한국의 가을전어와 닮았다 지난해 12월 어느 아침. 트라브존 공항을 나선 순간 흑해의 바다 냄새가 먼저 코끝을 건드렸다. 비릿한 짠 내는 아니었다. 도나우강과 드네푸르강 등의 유입량이 많은 데다 강수량도 풍족해 염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 순간 머리에 떠오른 건 여행 책자에서 미리 봤던 함시였다. 전 국토가 세계문화유산이나 다름없는 터키에서 음식 타령이 웬 말이냐 할지 모르겠다. 물론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며 남긴 황홀한 유산을 보는 즐거움은 터키 여행의 최대 매력이다. 하지만 터키 요리가 중국, 프랑스, 태국과 더불어 세계 4대 요리로 꼽힌다는 점을 생각하면 식도락을 뺀 터키 여행은 동전의 앞만 보고 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더구나 겨울이라면. 함시는 멸치과 생선이라는데, 어시장에서 본 실물은 좀 달랐다. 굵기는 성인 남자 엄지손가락 정도, 길이는 그 두 배쯤 된다. 주산지인 트라브존 일대의 어시장에서 ㎏당 10리라(1리라=약 610원) 정도에 팔린다. 맛까지 저렴하다고 생각하면 함시에게 결례다. 고등어와 비슷한 풍미를 지닌 함시는 터키 서민들의 겨울 식탁을 지배하는 대표 어종인 동시에 케밥과 더불어 식당의 인기 메뉴다. 함시 타바(요리)와의 ‘운명적 조우’는 트라브존의 한 레스토랑에서 이뤄졌다. 서울 종로 일대의 생선 골목을 지날 때처럼 후각으로 먼저 다가왔다. 부챗살처럼 펼쳐 놓은 듯 노릇노릇 구워진 함시가 접시의 절반을 가득 메웠다. 눈대중으로 살피니 족히 20마리가 넘었다. 엄청난 양인데도 순식간에 흰 바닥을 드러냈다. 중독성이 강했다. 배와 머리는 포만감을 느끼는데 포크와 나이프는 계속 접시를 향했다. 1인분에 20~25리라선. 함시 타바와 환상의 짝패인 터키 대표 맥주 에페스까지 질펀하게 즐기더라도 부담 없는 가격이다. 다만 신앙심이 깊은 터키의 레스토랑 사장들은 알코올이 포함된 음료를 아예 안 파는 경우도 있으니, 주문하기 전에 확인하는 게 좋다. 낯선 생선의 마법 같은 맛의 비결이 궁금했다. 우리나라 맛집이라면 꺼릴 법도 한데, 마음씨 좋은 터키인들은 주방을 선뜻 공개했다. 요리사들에게 물었더니 “함시 요리법은 한두 가지로 규정짓기 어렵다. 셰프마다 생선에 옷을 입히는 가루의 배합 비율부터 뼈를 제거할지, 튀길지, 구울지까지 제각각”이라고 입을 모았다. 머리를 분리하고, 내장을 제거하는 1단계는 어느 곳이나 같았다. 그 다음이 관건이다. 트라브존의 레스토랑 셰프는 노란색 옥수수 가루에 소금으로 간을 한 뒤 함시를 앞뒤로 뒤집어 옷을 입혔다. 미리 달궈진 프라이팬에 함시를 먹음직스럽게 구워 냈다. 프라이팬을 썼지만 해바라기 기름을 충분히 둘러 튀김의 맛이 느껴지도록 했다. 뼈는 빼지 않았다. 주방장은 “뼈째 우적우적 씹어 먹어야 더 고소하고 맛있다.”고 설명했다. 이스탄불의 명소 갈라타 다리 식당가에서 만난 셰프는 아예 뼈까지 발라냈다. 손질한 두 마리의 함시를 하나로 포개더니 밀가루에 옥수수 가루를 7대3 비율로 섞은 튀김옷을 입혔다. 옥수수 가루만 쓸 때보다 더 부드럽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프라이팬을 쓰지 않았다. 대신 커다란 튀김 냄비에 5분 동안 튀겼다. 한식, 중식, 일식처럼 튀김옷을 두껍게 입히지 않기 때문에 함시 특유의 맛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등어… 홍합… 케밥, 千의 얼굴을 가지다 한국 사람은 케밥 하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꼬챙이에 꿴 양념을 한 소고기나 닭고기, 양고기를 주방장이 거대한 칼로 쓱쓱 긁어 내민 요리를 떠올릴 터다. 웬만한 유럽 대도시의 터미널이나 도심,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테이크아웃식 케밥 집의 모습이 뇌리에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빙글빙글 회전한다’라는 의미의 ‘도네르’는 수없이 많은 케밥의 한 종류일 뿐이다. 세운 채로 서서히 굽기 때문에 기름기가 빠져나가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도네르 케밥은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다. 케밥이란 본래 불에 굽는다는 뜻이다. 한식의 고등어구이, 갈치구이, 조기구이가 터키로 건너가면 고등어 케밥, 갈치 케밥, 조기 케밥이 되는 셈이다. 그래서 케밥의 종류는 셀 수 없이 많다. 대략 200~300가지에 이른다. 도네르 케밥 외에도 닭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어 낸 닭고기 시쉬 케밥이나 부드럽게 다진 양고기(혹은 소고기) 반죽에 매운 고춧가루와 향신료를 뿌린 뒤 널따란 꼬치에 꿰어 석쇠에 구워낸 아다나 케밥, 움푹 파인 철판에 토마토 소스와 소고기(또는 양고기), 고추, 가지, 감자 등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끓여 내고서 치즈를 얹어 먹는 키레미트 케밥, 도네르 케밥에 얇게 썬 터키 빵과 토마토 소스를 얹어 그릴에 구운 이스켄데르 케밥, 홍합에 익힌 쌀을 넣고 양념을 한 뒤 구워 내는 홍합 케밥 등이 대표적이다. 도네르 케밥조차 곁들이는 빵과 밥에 따라 세분화된다. 터키식 밥인 필라브와 한 접시에 내는 포르시욘, 얇은 빵에 싸서 먹는 두룸(다국적 패스트푸드점의 OO랩, OO트위스터 메뉴를 떠올리면 된다), 두툼한 빵에 넣어 먹는 피데 등으로 나뉜다. 두룸에 도네르 케밥만 넣어 먹는 것도 아니다. 터키 사람들은 미트볼과 유사한 쾨프테나 꼬치 요리인 시쉬를 두룸에 싸서 먹기도 한다. 터키 땅에 발을 디뎠다면 기회가 있는 대로 케밥을 먹어 볼 일이다. 지갑 사정이 빡빡한 배낭족이라면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먹을 필요도 없다. 바자(재래시장)는 물론 거리 곳곳에 소규모 케밥 전문점이 깔렸다. 터키에서 물가가 비싼 편인 이스탄불에서도 음료까지 합쳐 10리라면 너끈하게 케밥을 즐길 수 있다. 재료의 품질 차이는 있겠지만, 웬만한 미식가가 아니라면 맛에서는 고급 레스토랑과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다. 트라브존·이스탄불(터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잉글랜드 FA컵] 퍼거슨의 독려, 루니를 춤추게 하다

    “맨체스터시티와의 경기는 FA컵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들에게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될 것이다.” 71세 노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독려가 힘이 됐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8일 밤 이티하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3차전(64강전)에서 루니의 두 골을 앞세워 맨시티를 3-2로 물리쳤다. 지난해 FA컵 준결승전 0-1 패배와 이번 시즌 초 프리미어리그에서 1-6 참패로 고개 숙였던 맨시티에 설욕한 셈이다. 맨시티로선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출전하는 대표팀에 차출된 아야 투레와 발목이 좋지 않아 제외된 발로텔리의 공백이 아쉽게만 여겨질 대목. 박지성도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퍼거슨 감독의 부름을 받지는 못했다. 약한 빗줄기가 내리는 전반 기세는 맨유가 잡았다. 퍼거슨 감독과 불화설이 나도는 웨인 루니가 전반 9분, 발렌시아가 띄운 크로스를 페널티지역 중앙에서 수비수 데용의 방해를 견디며 솟구쳐 올라 헤딩슛, 1-0으로 앞서 나갔다. 3분 뒤 맨시티는 뱅상 콤파니가 상대 공격수의 발을 향해 가위치기 태클을 시도하다 퇴장당하면서 승기를 내줬다. 곧바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총공세에 나선 맨시티는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날린 회심의 슛이 맨유 수문장 린데가르드의 선방에 가로막히는 불운마저 따랐다. 맨시티는 이후 체력이 달렸는지 내리 두 골을 허용했다. 전반 30분 파트리스 에브라가 골문 왼쪽까지 깊숙이 침투한 뒤 찔러준 공을 대니 웰벡이 추가골로 연결했다. 웰벡은 에브라가 찔러준 공이 자신의 발에 맞은 뒤 나스리 머리에 맞고 튀자 180도로 몸을 돌려 오른발로 차넣는 환상적인 몸놀림을 과시했다. 10분 뒤 맨유는 웰벡이 상대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루니가 다시 추가골로 연결했다. 루니가 날린 슛을 판틸리몬 골키퍼가 걷어낸 것을 본인이 직접 뛰어들며 머리로 받아넣어 전반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선수 한 명이 모자란 맨시티의 추격이 시작돼 맨유 팬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맨시티는 후반 3분 콜라로프가 날린 프리킥슛이 그대로 맨유 오른쪽 골문을 갈라 추격을 시작했고 19분에는 아구에로가 추가골을 뽑아냈다. 이후 맨시티는 총공세를 폈지만 은퇴한 뒤 코치로 뛰던 스콜스를 불러들여 루이스 나니와 교체 투입하는 등 지연 전술을 편 맨유에게서 추가골을 뽑지 못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제주 판타스틱아트시티 사업 무산

    제주시 애월읍 일대 230만㎡에 드라마 환상체험장, K팝 공연장, 테마파크 등을 갖춘 미래형 복합관광단지인 ‘제주 판타스틱 아트시티’ 조성사업이 물거품이 됐다. 제주도는 지난해 1월 판타스틱 아트시티 조성사업을 제안한 투자기획사인 ㈜인터랜드가 사업에 동참할 건설회사, 금융회사를 구하지 못해 사업을 추진할 수 없게 됐다고 알려 왔다고 6일 밝혔다. 도는 이에 따라 지난해 2월 25일 인터랜드와 체결한 업무협약의 효력이 상실됐음을 통보했다. 도는 사업 조성에 필요한 부지 확보와 개발사업 인·허가, 투자 혜택 제공 등의 행정지원을 하되 지난해 말까지 인터랜드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하지 않으면 업무협약을 취소키로 했었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1천m 절벽 사이 낀 바위 위에 사람이…“어디야?”

    ▶원문 및 사진 보러가기 해발 약 1,000m 상공에 있는 절벽 사이에 낀 아찔한 바위가 소개돼 눈길을 끈다. 5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은 노르웨이 키라그산에 있는 절벽에 낀 유명 바위를 소개하며 한 현지 사진작가가 촬영한 사진을 공개했다. 해발 약 1,000m, 절벽 사이에 있는 이 바위의 이름은 ‘키라그볼텐’(Kjeragbolten). 이름 그대로 키라그 산의 볼더(둥근 바위)라는 뜻이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키라그볼텐은 두 절벽면 사이에 낀 약 5㎥ 크기 바위로 보기만해도 아찔해 보인다. 관광객들은 주로 키라그 산에 있는 키라그볼텐을 구경하기 위해 이곳까지 오른다. 일부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들은 이곳에서 베이스 점프를 하기도 한다고 한다. 사진을 공개한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의 사진작가 가드 칼슨(41)은 “키라그볼텐은 환상적인 자연 환경을 보여준다.”면서 “사진을 본 모든 사람이 놀라고 있으며, 이곳으로 사람이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누나는 떠났고 형은 부상… 이용대 런던’金’ 비상

    누나는 떠났고 형은 부상… 이용대 런던’金’ 비상

    이용대(오른쪽·24)와 짝을 이뤄 런던올림픽 남자 복식 금메달을 노리던 정재성(왼쪽·30·이상 삼성전기)이 결국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두 달 가까이 손에서 라켓을 놓아 금메달 전선에 적지 않은 먹구름이 드리웠다. 코리아오픈 슈퍼시리즈 프리미어대회 사흘째인 5일 대한배드민턴협회는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남복의 간판 정재성을 재활 훈련시키기로 전격 결정했다. 그동안 올림픽 도전을 겨냥해 땜질식 치료를 해 왔으나 더 이상 근본적인 치료를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결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재성은 다음 주 슈퍼시리즈 말레이시아오픈(10~15일)부터 2월 토머스·유버컵 아시아 지역 예선(14~19일)까지 모두 다섯 개 국제대회에 불참한다. 성한국 대표팀 감독은 “정재성이 줄곧 오른쪽 어깨 통증을 호소해 이렇게 결정했다.”면서 “재활 훈련과 휴식을 거치면 올림픽 출전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재성이 수술대에 올라야 하는 상황은 아니며 재활 프로그램을 통해 어깨 근력을 키우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배드민턴계 안팎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의학적으로 큰 문제는 아니더라도 그의 어깨 고장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정재성은 지난해 8월 런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어깨와 종아리 통증에 시달렸고 이후 대회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제대로 치료할 시간을 갖지 못했다. 특히 지난해 말 화순 그랑프리골드대회에서는 경기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지만 친동생처럼 가까운 이용대의 고향 팬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통증을 참아내며 경기에 나서 우승까지 일궜다. 결국 무리한 출전 강행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정재성으로선 올림픽 랭킹 포인트를 최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세계랭킹 2위인 이용대-정재성 조는 1위인 중국의 차이윈-푸하이펑 등 강호들과 초반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1, 2번 시드를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30대에 들어선 정재성도 줄곧 “마지막 올림픽이다. 죽을 힘을 다해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해 왔다. 그의 회복 속도나 완치 정도와 별도로 이용대가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문제다. 경기 감각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맞춤한 파트너를 골라야 할 상황이다. 또 정재성이 최상의 컨디션을 되찾더라도 환상의 호흡을 다시 맞추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다. 이용대로선 남복보다 혼합 복식에 집중해 12위에 그친 하정은(대교눈높이)과의 혼복 랭킹을 바짝 끌어올려야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이효정과 혼복 금메달을 일궈 낸 이용대는 런던올림픽에서 이 종목 2연패에도 도전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미드 ‘미녀삼총사’ 화끈한 액션으로 컴백

    미드 ‘미녀삼총사’ 화끈한 액션으로 컴백

    ‘미드’(미국 드라마) 채널 AXN은 4일 오후 10시 50분부터 ‘미녀 삼총사’ 리메이크작을 매주 수요일 방영한다. ‘미녀 삼총사’는 지난해 9월 미국 ABC 방송에서 프라임 타임대인 오후 8시에 자리 잡으면서 8개월 만에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미드계 최고 화제작으로 꼽힌다. ‘미녀 삼총사’는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졌듯 섹시하면서도 똑똑한 세 여자가 거침없는 액션 신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에서 이들은 ‘찰리’라는 얼굴 없는 보스로부터 지령을 받아 어두운 범죄를 소탕해 나간다. 알려졌다시피 소설에서 출발한 ‘미녀 삼총사’는 1976년부터 1981년까지 드라마로 제작됐다. 최근엔 캐머런 디아즈와 드루 배리모어, 루시 리우를 캐스팅해 영화화되기도 했다. 원래 드라마에서는 파라 포셋, 케이트 잭슨, 재클린 스미스 등 당시 최고 여배우들이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예전 드라마의 리메이크에 초점을 맞췄다. 대신 무대를 로스앤젤레스에서 마이애미로 옮겼다. 마이애미는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미녀와 액션에다 멋진 스포츠카와 클럽 같은 휴양지의 즐거움을 한데 버무렸다. 캐릭터에도 변화를 줬다. 등장인물 모두 정의롭기만 한 게 아니라 어둠의 세계를 경험한 적이 있는 인물들로 설정됐다. 삼총사의 경우 애비 게일(레이첼 테일러)은 도둑, 이브(민카 켈리)는 자동차 절도범, 케이트(애니 일론저)는 뒷돈 받아 먹다 걸린 적 있는 경찰 출신이다. 여기다 보슬리(레이먼드 로드리게스)는 해커 출신이다. 또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슬리는 중년 남성의 이미지였는데 이번 리메이크작에서는 매력적인 남성으로 나온다. ‘미녀 삼총사’에게 떨어진 첫 사건은 인신매매범에게 납치된 가출 소녀 사라를 구출해 달라는 의뢰다. 세 미녀와 보슬리는 환상적인 협업을 통해 사라를 무사히 구출해 낸다. 그런데 사건이 이렇게 끝날 리 없다. 범인이 단순한 납치범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슬 드러난다. 이들은 폭탄 테러에 능한, 묘한 집단이었다. 해서 세 미녀는 다시금 이 괴한들의 정체를 집중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최고무용수 4人과 떠나는 ‘4색 여정’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주원,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엄재용,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이정윤이 한무대에 선다. 연출과 대본은 연극연출가 김명곤, 사진과 영상에는 작가 구본창, 작곡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무대음악가인 김태근이 나섰다. 지난해 무용계 스타들과 함께한 ‘에투왈’ 공연으로 안무가로서의 역량도 인정받은 이정윤이 안무를 맡았다. ‘환상적인 조합’이란 말이 나올 만하다. 예술의전당이 기획한 신년 창작 무대 ‘4색 여정’(Endless Voyage)이다. 그간 무용계 ‘대표선수’들이 출연한 무대는 대체로 유명 작품의 부분 장면이나 창작 단편을 모아놓은 갈라쇼 형태가 많았는데, 그렇게 하지 말고 신작 장편을 하나 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작품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작품은 인생을 항해에 비유했다. 무대를 뱃머리와 돛대에서 따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달빛이 은은하게 깔린 바다 위에 내일의 항해를 기다리는 돛단배가 떠 있다(1장). 실제 연인 사이이기도 한 황혜민·엄재용 커플이 신혼부부로 등장해 영원히 함께하자는 약속과 열망을 보여 준다(2장). 한때 연인 사이였던 김주원과 이정윤은 홀로 된 이들의 창백한 고독을 몸으로 풀어낸다(3장). 결말인 4장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긍정하고 다 받아들인 이들의 안온함이 묘사된다. 직접 출연도 하면서 안무를 맡은 이정윤은 “삶을 여행에 비유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서 “춤에서는 한국적인 정서를 바닥에 깔고자 노력했고, 전체적인 배경과 시간을 드러내는 데는 사진과 영상을 썼기 때문에 춤의 영역이 확장된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4~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1만~9만원. (02)580-13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서울신문 2012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모기/ 하우 (본명 신광수) 등장인물 무영(30대 초반·공무원시험 준비 중) 약희(20대 후반·백화점 화장품 매장 직원) 방역업체 직원 1(40대·제로버그 팀장) 방역업체 직원 2(20대·제로버그 사원) 집주인(40대·중반 여성) 매니저(소리·화장품 매장 관리인) 무 대 왼쪽에 침실과 작은 거실이 딸린 반지하 공간. 햇살을 느낄 수 없으며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이다. 거실 벽면 위로 창이 있으나 방충망은 찢기고 구멍도 뚫려 있다. 거실 한편에는 컴퓨터, 벽에는 벽시계가 걸려 있고 밑에는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걸려 있다. 침실에는 침대와 화장대, 구석에는 아기 침대와 모빌이 달려있다. 중장비의 굉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중장비 소음은 인물들이 등장하여 대화할 때에는 잘 들리지 않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점점 크고 뚜렷하게 들린다. 중장비 소음이 들릴 때마다 무영은 귀를 후비는 습관이 있다. 희미한 침실 조명이 켜져 있고 ‘탁’ 하는 짧은 박수소리 한두 번 들린다. 조명 밝아진다. 무영 저희가 안 나가겠다는 겁니까? 아니잖아요. 아무리 월세를 제때 못 낸다 해도 그렇지 사람이 살 수가 없잖아요. (약희의 눈치를 보며) 알았어요. 그러니까요, 사모님께서 먼저 계약서대로 모기부터 해결부터 해주세요. (사이) 네, 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무영은 수화기를 휙 던지며 클렌징을 하는 약희의 눈치를 살핀다. 약희 뭐래? 무영 (말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알았대. 약희 (순간 울컥함을 참고 몸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이것 봐, 이것 보라구. 어! 여기도 물렸네. 아이 가려워. 에이 정말, 여름만 되면 이놈의 집구석은 모기가 온통 벽에 온통 도배를 해요, 도배를… 얘네들은 날개를 폼으로 달았나? 날개가 있으면 날아올라야지,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요 앞 40층짜리 탑궁전 아파트 사람들은 놔두고 (무영을 보며) 바닥보다 낮은 이런 곳으로 기어 들어와서 피곤한 사람, 잠도 못 자게 한담. 무영, 약희를 힐끗 보다 다시 허공에 시선을 응시하며 손뼉을 친다. 약희 잡았어? 무영 어 (씩 웃으며 약희에게 빈 손바닥을 펴 보인다.) 약희(다시 거울을 보며) 그 한 마리를 잡아서 집안의 모기를 도대체 언제 다 없애겠어? (사이) 다 없앨 수나 있겠어? 좋아, 설사 집안의 모기를 다 잡았다고 쳐. 그럼 뭐해, 좀 있다가 집 밖에 있는 모기들이 주택청약 대기자처럼 얼씨구나 들이댈 거 아냐? 무영 미안해. (표정을 바꿔 자신감 있는 태도로) 그래도 오늘 밤만큼은 기필코 밤을 새워서라도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약희 허구한 날 또 그 소리 (무영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자기랑 울 희망이, 내~가 책임진다. 테이프 같으면 벌써 늘어져서 내~~가 책~임진~다. 책임이 뭔지나 아나? 무영 뭐!? 약희 됐어. 그건 그렇고, 난 정말 못 참겠어. 가뜩이나 모기소리가 나면 불면과 신경쇠약에 시달렸는데 이젠 편두통까지, 앵앵거리는 소리만 들으면 미쳐버릴 것 같다구. 이번 여름, 아니 딱 일주일만이라도 모기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어. 무영 (혼잣말로) 난, 자기 잔소리 없는 곳에서 단 하루만이라도 살고 싶다. 약희 뭐야! 잔소리? 그럼 지금 당장 짐 싸. 무영 아니, 내 말은… 약희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잔소리 안 하게 생겼니? 무영(한참 동안 약희의 눈을 피하며) … 약희 이제 집은 어떡할 거야? 이제 보름도 안 남았어. 무영 … 약희 (울컥 치솟는 것을 참으며) 아이 참, 오늘 밤은 또 왜 이리 덥담. 무영 (약희의 눈치를 살피다가) 미안해, 여봉~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약희를 안으며)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자기하고 울 희망이, 내가 밤 새워서라도 모기들한테서 지켜줄게. 약희 (무영을 뿌리친 후) 더워 더워, 끈적거려, 붙지 말래두.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어! 빨리 손 안 치워? 무영 (머쓱한 듯 손을 빼며) … 약희 그리고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라는 말 도대체 몇 번째야.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먼저 모기 다 없애기 전까지 내 몸에 손도 대지 마. 무영 (약희를 한동안 말없이 쳐다보다가) 이놈의 모기들 오늘 밤 다 (목소리를 낮추며) 죽었어. 무영은 약희를 계속 쳐다보다가 ‘앵’ 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탁’ 하고 박수를 친다. 그리고 잠시 광기 어린 무영의 얼굴이 살짝 비친 후 조명 꺼진다. 조명 켜지면 창밖에는 매미 울음소리와 함께 보다 커진 중장비 소음이 들려온다. 반바지 차림에 부스스한 몰골의 무영은 처음에는 귀를 후비다가 나중에는 귀를 막는다. 이후 한참 만에 전화벨이 울리는 것을 확인하고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는다. 약희 지금까지 잔 거야? 무영 아, 아냐, 진작 일어났지. 지금 기출 문제 동영상 강의 듣고 있어. (사이) 정말이야. 자 들어봐. (아이 젖병을 꺼내면서, 목소리를 바꿔) 네, 지난 5년간의 기출문제 유형을 종합하여 정리한다면, 이번 10월에 있을 공무원 9급 공채시험의 경향을 파악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번 7주차 강의는~ 약희 됐어, 됐어. 소리 좀 줄여. 무영 거봐, 날 뭘로 보구. 흠 약희 잊지는 않았지? 자기가 한 약속,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무영 또 또 시작이다. 알았어요. 남자로 아니 가장으로, 아니 좋다. 울 희망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약희 애는? 무영 엉, 지금 분유 타서 먹이려… 때마침 아이 우는 소리 약희 뭐야, 애 분유는 시간 맞춰 먹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리고 알고 있지? 유아들한테 전자 모기향이나 에프킬라, 절대 안 되는 거. 무영 알아 알아. 약희 그저 말로만… 저기 그런데, 오늘 연락… 왔어? 무영 … 약희 (울컥 차오르는 것을 누르며) 아이 진짜, 그보다 먼저 진짜 집에 있는 모기 좀 당장 어떻게 좀 해봐. 나 지금 코끝을 물려서 완전 딸기코야. 며칠째 모기가 앵앵거려 잠을 설치니까, 얼굴이 부어서 화장으로도 안 가려지잖아. 무영 … 약희 (갑자기 너스레를 떨며) 그것 때문에 고객들하고 상담할 때 자꾸 얼굴을 숙이니까 매니저가 자꾸 눈치 주는 거 있지. 내가 말했지? 그 사람 성질 더러운 거. 뭐냐, 뉴월드 백화점의 얼굴인 슈넬화장품 직원 태도가 뭐냐구… (사이) 내말 듣고 있지? 무영 … 어. 약희 그리고 집주인이 많이 삐친 것 같으니까 자기가 먼저 전화해서 어떡해서든 집주인 비위 잘 맞추고 우리 사정을 잘 말해봐. 무영 (말없이 잠시 침묵하다가) 저기 자기야, 사실… 약희 어? 무영 사실은, 자기 출근하고 바로 집주인한테 연락이 왔었어. 약희 그래! 뭐라구 해? 아니, 자긴 뭐라고 했어? 무영 먼저 모기를 싹 없애 주겠대. 약희 야! 진짜? … 무영 그리고… 약희 그리고? 무영 이번 달까지… 약희 …나가래? 무영 … 약희 그러‥면, 결국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잖아. 그, 그러면 우리는? 우리는 어떡하구. 완전히 길바닥에 나앉아 죽으라는 거잖아. 그래서 자긴 뭐랬어? 무영 … 그, 그래도 우리집 구조상 모기를 싹 없애긴 쉽지 않을 거야. 그건 자기가 더 잘 알잖아. (사이) 그럼 작성한 계약서대로 모기를 다 없앨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버텨봐야지 뭐. 약희 (끓어오르는 것을 다스리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그리고 집주인이 집안에 있는 모기를 진짜 다 없애면 그땐 어떡할 거야? 무영 그땐, … 사정이야기를 해봐야겠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약희 당신, 분명히 자기가 책임진다고 했어. 그럼 이번에야말로 가장의 책임감이 뭔지 보여줘. 아니면 우리 가족 모두 그냥 확! 무영 … 약희 아 네~ 팀장님. (목소리를 낮추며) 나 오늘 저녁에 늦어. 무영 어! 잠깐 …안 되는데. 전화가 끊기자 무영은 뚜뚜뚜뚜 소리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듣다가 전화를 끊는다. 이후 젖병을 든 채 잠시 두리번거리다가, 침대와 창문 등,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아기 침대 쪽에서 모기 잡는 시늉을 하며 한참 동안 좁은 거실을 서성거린다. 이때 귀를 후비면서도 전화기에 시선을 놓지 않는다. 그 후 결심한 듯 전화기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전화기를 내던진다. 그 순간 전화벨이 울린다. 무영 (조심조심 다가가 전화기를 들며) 여, 여보~세요? 목소리 이무영씨 댁 맞습니까? 무영 그, 그런데요. 목소리 집주인이 김수영씨 맞으시죠?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제로버그? 그런데… 목소리 이 집 주인께서 의뢰하셨습니다. 그럼, 바로 출동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 당황한 무영이 문을 열자 방역업체 직원1, 2 등장. 방역업체 직원은 빨간 모자에 동일한 유니폼(모기 박멸 프린팅)과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하였고, 직원1은 고글을 쓰고 지시봉을, 직원2는 특이한 가방을 들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제로버그입니다. 고객님, 잘 아시겠지만 저희 회사는 ‘고객님의 건강과 행복’이라는 슬로건 아래 타업체와 비교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하여 해충 없는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는 곳입니다. 저희 회사가 하는 일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바퀴벌레, 개미, 진드기, 거미, 모기, 집게벌레, 이, 좀벌레, 파리 등등을 박멸하는 곳이죠. 직원1이 이야기하는 동안 직원2는 무영을 가볍게 밀치며 돋보기를 들고 분주히 집안 구석구석을 관찰하며,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다. 무영은 그런 직원2를 힐끗 보다가 다시 직원1을 다시 본다. 무영 (벙벙한 표정으로) 아, 네. 그런데 어떻게 벌써… 방역업체 직원1 (말을 자르며) 스피듭니다, 저희 팀 모토는 스피드 앤 퍼펙트, 다시 말해서 신속 완벽. (명함을 주며) 저희는 스카~이 파트입니다. 무영 스카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하늘, 다시 말해서 날아다니는 해충 중, 피를 빠는 모기만을 전문으로 하고 있죠. 무영 모기를요? 방역업체 직원1 (고글을 벗고 주변을 둘러보며) 들은 바대로 이곳은 모기들이 살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네요. 무영 누구에게 그런 이야기를…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짧게) 아! 걱정 마십시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 집에는 모기가 23마리, 파리가 12마리, 바퀴벌레가 44마리, 그리고 쥐 4마리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래, 위치는? 방역업체 직원2 다 파악됐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바로 시작하지. 방역업체 직원1과 2. 가방에서 정체 모를 장비와 파리채를 꺼낸 후, 집안을 돌아다니며 체크한 후 구석구석에 커다란 모기박멸 스티커를 붙인다. 그 후 갑자기 책을 꺼내 천장으로 던지고, 파리채를 마구 휘두른다. 이때 무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과 불안한 몸짓으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무영 어어, 저저, 저걸 (이때 방역업체 직원1과 눈이 딱 마주치자) 저, 저기요… 혹시 살충제 같은 것을 뿌리나요. 우리 아이가 아직 어려서… 방역업체 직원1 (순간 단호한 표정으로) 걱정 마십시오. 저희 회사는 그런 비과학적인 방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는 두세 차례 손뼉을 치며,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다. 무영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2 어어, 거기 팀장님. 순간 방역업체 직원1, 재빠른 동작으로 손뼉을 친다. (손뼉을 칠 때의 동작은 전통 무예의 한 동작과 유사하다.) 잠시 후 손바닥을 펴 무영에게 보여주며 입가에 흐뭇한 미소를 띤다. 무영도 마지못해 웃음을 짓는다. 방역업체 직원1 (약간 고압적인 자세를 띠며) 잠깐만요, 이무영씨. 이 집에서 모기를 완전히 뿌리를 뽑고 싶으시죠? 무영 무물, 물론~이겠죠. 방역업체 직원1 음, 현실적으로 이 집의 구조상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무영 (화색을 띠며) 그, 그런가요? 방역업체 직원1 하지만, 저희가 누구입니까? 해충박멸의 신화 제로버그의 스카이팀. 괜히 스카이가 아니죠. 저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무영 아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그럼, 먼저 이무영씨에게 모기를 완전히 박멸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적인 몇 가지 자세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먹을 불끈 쥐며) 첫째, 모기는 우리 가족의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을 뚫어져라 응시하며) 무영씨, 지긋지긋한 모기를 박멸하고 싶지 않으시나요? 무영 그, 그렇긴 하지만… 방역업체 직원1 (말을 끊으며) 그렇다면 마지막은 복창해 주세요. (굳은 표정으로) 피를 빠는 적이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지그시 응시하며) 피 무영 (고개를 순간 돌리며) … 방역업체 직원1 (아주 낮은 저음으로) 피 무영 피, 피 방역업체 직원1 피를 빠는…적이다. 무영 (위세에 눌려 마지못해) 피이…를 빠는 적이다. 방역업체 직원1 (분위기를 바꿔 경쾌하게) 일부 모기가 나와 가족의 피를 머금었다고 해서 피를 나눈 형제처럼 여기는 감상적인 생각이나 동정은 금물입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적개심만이 필요하죠. (다시 힘 있게 주먹을 조금 치켜들며) 둘째, 모기는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강압적인 어투로) 애, 애 무영 애, 애 방역업체 직원1 애완동물이 아니다. 무영 (동작마저 따라하며) 애완동물, 애완동물이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취향이 아주 아주 독특한 일부 사람들 중에는 개와 고양이와 같은 일반적인 애완동물에 싫증을 느껴, 모기를 애완용 곤충쯤으로 여기고 사육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영을 보며) 자기 몸으로 말이죠. 물론 극소수의 사람들입니다. 하하하. 무영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 네. 방역업체 직원1 (큰 동작으로 손끝을 하늘로 뻗다가 날갯짓을 하며) 셋째, 모기는 천사가 아니다. 무영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노려보며 힘을 주며) 천사가… 무영 천, 천사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가끔 자신의 옥탑방을 천당이라고 우기는 사람들 중에는 모기의 앵~ 하는 소리를 천사의 음성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살짝 무영을 응시하며) 이런 사람의 특징은… 무영 (멈칫하다가 손을 내저으며) 아니, 아니에요. 방역업체 직원1 넷째, 모기는 여자가 아니다. 무영 (조금 놀라며) 여자, 여자가 아니다.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알고 계시죠? 흡혈을 하는 것은 모두 암컷들인 거. 무영 (어색한 웃음) … 방역업체 직원1 (무영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그들의 정신세계는 아주 독특해서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암컷들에게만, 그래서 모기를 아내나 애인처럼 생각하죠. (몰입하며) 모기가 자기의 몸에 빨대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을 즐기죠. 무영 아, 네에. 방역업체 직원1 마지막으로… 모기는 집주인이 아니다. 무영 (침을 삼키며) 모기는 집주인, 이…다. 방역업체 직원1 (가늘게 실눈을 뜨며) 흠… 극히 일부의 세입자 중에는 집안에 모기를 대할 때 당황하거나 조금 심한 경우는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마치 집주인을 대하듯 말이죠. 지난달에는 모기에게 안방을 내주고도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발만 동동 구르는 세입자를 봤습니다. 물론 그와 반대인 상황도 있습니다. (무영을 지그시 응시한 채로 점점 다가가며) 그럴 경우 모기소리와 집주인의 목소리를 동일시합니다. 그래서 모기소리만 나면 히스테리를 부리죠. 그간 당했던 설움과 쌓였던 분노를 집주인에게 마구마구 쏟아 내듯 말이죠. (갑자기 표정을 확 바꾸며) 네, 고객님께서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제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겁니다. (자신감 있는 웃음을 지으며) 이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모기는 100% 박멸 가능합니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이제 모기를 완전히 퇴치했습니다. 무영 벌, 벌써요? 방역업체 직원1 스피드 앤 퍼펙트, OK? 방역업체 직원2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들며) 이게 끝까지 남아 있던 놈으로 23마리째입니다. 방역업체 직원1 음, 좋아. (무영을 보며) 그럼 여기 점검 내역에 서명을 부탁드립니다. 무영 … 무영이 마지못해 받은 내역서를 살피며 서명을 망설이자 방역업체 직원1은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인다. 그러나 무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계속 머뭇거리는 태도를 보이자, 방역업체 직원들의 태도가 서서히 위압적인 태도로 바뀐다. 이에 무영은 마지못해 서명을 하고, 방역업체 직원1은 뭔가를 해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방역업체 직원2에게 서류를 건넨다. 무영 그런데, 저기… 방역업체 직원1 네? 무영 (쭈뼛쭈뼛 머뭇거리다가) 아! 쥐나 바퀴벌레 같은 거는… 방역업체 직원1 음. (단호한 표정으로) 스카이, 아까 말씀드렸죠, 저희는 모기 전문입니다. 무영 아하! 스카이 방역업체 직원1 혹시 다른 해충을 박멸하시려면, 바닥 쪽이나, 구멍 쪽으로 연락주세요. 그 팀들도 프롭니다. (절도 있는 자세로) 저희 제로버그는 과학적이고 완벽한 서비스를 통해 100% 고객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추후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 주십시오. (사이) 물론 완벽하겠지만요. 방역업체 직원1, 2 목례 후 바로 퇴장하자 전체 조명이 어둡게 깔린다. 무영은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본 후, 깊은 한숨을 내쉰다. 그 후 잠시 우스꽝스럽게 모기 흉내와 함께 모기를 잡는 행동을 한 후 한참 동안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은 점점 크게 들려온다. 무영은 갑자기 귀를 후비기 시작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세게 귀를 후빈다. 이때 오른쪽 조명이 들어오면 백화점 유니폼을 입은 약희,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약간은 울먹이며 매장 매니저에게 경고를 받고 있다. 매니저 이것 보세요. 김약희씨, 이게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매장에서는 절대 기대거나 의자에 앉으면 안 되는 거, 사적인 통화 금지, 그리고 제일 중요한 비주얼, 비주얼 관리, 잘 아시잖아요. (사이) 그런데 그걸 잘 아는 사람이 술 마신 사람 마냥 코끝이 벌겋게 부풀어 있어요? 약희 그게 모기가… 매니저 그 핑계 그만, 이게 벌써 며칠쨉니까? 고객들이 퉁퉁 부은 코에 억지 웃음을 짓는 당신을 보고 우리 화장품을 사서 바르고 싶겠어요?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사이) 죄송 죄송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해보세요. (사이) 요즘 김약희씨를 보니까 서비스 마인드 교육이 아주, 정말, 매우 필요한 것 같군요. (사이) 계약서 내용은 잘 알고 있죠? 약희 …네 매니저 계약 위반 시에는… 약희 … 매니저 됐어요. (사이) 이만 됐구요, 서로 피곤해질 것 같으니까 이만 하죠. 다음 주부터는 서로 볼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약희 네!? 매니저 제 말 뜻 아시죠? 김약희씨. 흐느끼며 털썩 주저앉는 약희,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매미소리와 중장비 소음, 그리고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와 알 수 없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무대가 점점 밝아지면 무영은 헤드셋을 끼고 책상에 엎드려 졸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때 현관 문소리가 나면서 약희가 들어온다. 현관 문소리에 무영은 순간 벌떡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하고 거실로 나온다. 무영 왔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벽시계를 돌아보며) 어! 뭐야, 오늘 늦는다며 일찍 왔네? 약희 (모든 의욕을 상실한 표정으로) 나한테 말 시키지 마. 무영 뭔 일 있나? 아님, 땡땡이! 약희 (고개를 떨구며) … 무영 (살짝 건드리며) 내가 보고 싶어서 땡땡이 쳤구나. 그렇구나, 맞지? 약희 (말을 끊고 매섭게 노려보며) 나한테 말 시키지 말랬지. 무영 (움찔하다가 눈치를 보며) 왜 그래? 약희 당신은 도대체 뭐야? 마누라는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데, 가장이란 사람이 1시가 넘도록 잠이나 퍼질러 자고, 그러고도 당신이 우리집 가장이라고 할 수 있어? 울 희망이 아빠냐고? 무영 약희야, 왜 그래, 농담한 걸 가지고 약희 됐어. 오늘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마. 듣고 싶지 않아. 무영 자기, 무슨 일 있어? 갑자기 일하다 말고 집에 와서 약희 듣고 싶지 않다고 했지. (몸서리를 치며) 당신은 몰라. 아무도 내 맘 모른다구. 무영 (순간 당황하며) 아 참, 낮잠 좀 잤다고 그러는 거야? (약희를 달래며) 오늘 동영상 강의 듣다가 너무 졸려서, 알잖아. 며칠째 밤새 자기랑 울 희망이 옆에서 모기 잡은 거. (사이) 매일 힘들게 고생하는 자기하고 울 희망이한테 남편과 아빠로서 해줄 게 있어야지. (가슴을 두드리며) 나만 믿어. 내가 이번 시험만 붙으면… 이때 이상한 야릇한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러자 무영과 흐느끼던 약희, 동시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영이 컴퓨터 앞으로 뛰어간다. 허둥거리며 마우스를 잡는 무영. 잠시 후 무영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약희. 무영 아니, 그게 말이야. 있잖아. 아이 참 (표정을 바꾸며) 자기야 미안. 약희 (이를 악물고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는 말, 하지도 마. 당신, 나한테 아니 우리 희망이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무영 (머뭇거리며) 약희야, 내 말도 좀 들어봐. 그렇잖아, 내 사정이… 내가 자기한테 붙으면 덥다고, 피곤하다고, 도대체 이게 며칠째야. 석 달은 된 것 같다. 그래서 동영상 강의 듣다가 잠깐, 머리 식히려고… 그냥… (살짝 웃으며) 남자들은 원래 다 그러잖아. 약희, 어이없는 표정 후 분을 삭이는 표정을 짓다 지그시 눈을 감는다. 이때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약희는 눈물을 훔치며 젖병을 챙겨 아이에게 물리나 칭얼거리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약희 아가 아가, 괜찮아, 괜찮아. 무영 (약희에게 다가가며) 그러니까… 약희 가까이 오지 마, 당신 불결해. 무영 약희야, 저기… 약희 말하지도 마. 다, 당신, 말소리, 굶주린 모기가… 앵앵거리는 것 같아. 무영 (더 가까이 다가가며) 미안해, 내가 약희 (조금 더 악을 쓰며) 가까이 오지 말랬지. 피를 노리는 굶주린 모기…아니 모기보다도 못한… 무영 (멍한 듯 말을 잇지 못하며) 아무리 그래도… (순간 쓴웃음 지으며) 남편한테 모기는 너무, 너무했다. 약희 (어이없는 표정으로) 너무하다고, 너무하다고, 내가 너무하다고. 김약희 내가? 으흐…흐…흑 난 처음에 당신이 생각이 깊은 줄로만 알았어, 또 누군가를 진정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 (사이) 생각이 깊어? 흐… (손가락을 흔들며) 오, 노~ 당신은, 당신은 우유부단했던 거야. 다른 사람을 배려, 흐흐, 당신은 원래 당신의 밥그릇조차 지킬 용기나 배짱이 없는 사람이었어. 흐…흐 이젠 지긋지긋해. 하루 종일 햇빛도 안 드는 비좁은 이 집, 매니저와 손님의 비위 맞추느라 짓는 억지웃음, 매일 말뿐이고 책임감도 없는 무기력한 당신, 그런 당신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그리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미래 (팔을 휘젓다가 순간 신경질적으로 신발과 책 등을 벽과 천장에 마구 내던지며) 특히 이놈의 성가신, 성가신 모기들도, 그리고 당신도… (폭발하며) 모두 모두 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사라져버리라구. 무영 … 약희야! 어찌할 바를 모르던 무영이 세차게 흐느끼고 있는 약희를 보며 용기를 내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려 하자 약희가 무영의 손을 가로막으며 돌아선다. 무영은 한참을 멍하게 서 있다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이때부터 조명은 무영의 행동에 집중되며 중장비 굉음이 점점 크게 들려온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무영은 한동안 심장박동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짐을 느끼며 전화를 받는다. 무영 여, 여보, 여보세요 집주인 (소리만)마침 집에 있었네. 그쪽이 사인한 것 봤어요. 그럼 이제 그쪽이 약속을 지킬 차례네요. 제 말뜻 아시죠? 그럼 이만. 무영의 심장박동은 더욱 요동치며 점차 조명이 점차 어두워진다. 조명이 거의 사라질 무렵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무영에게 조명이 집중된다. 무영 그런데, 그런데,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무조건 정해진 날까지 집을 비워달라니요. 저희 세입자 입장을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생각해 주세요. 집주인 (소리만)계약서, 계약서, 몰라요? 무영 그래서, 그래서, 조금만 더 배려를… 배려를 부탁드리는 것 아닙니까. 이번 가을까지, 아니, 다음 달까지라도… 집주인 (소리만)…… 배려라? 누굴 배려? 내가 당신들을? 난, 여태 배려했어요. 내 집에서 살도록 해줬잖아요? 물론 월세지만, 그리고 집세도 못 내는 당신들이 우긴, 그 말도 안 되는 그 요구, 그래서 이렇게 방역업체까지 불러 모기소리도 싹 없애 줬어요. 이만하면 집주인으로서의 충분한 배려 아닌가? 무영 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저…저도 (침을 삼키며) 몇 년간 여기 살면서 집세를 올려달라면 달라는 대로, 수도세 전기세 밀린 적 한번 없이, 때 맞춰 군말 없이 해드렸습니다. 한겨울에 보일러가 터져도, 장마철에는 방바닥에서 물이 올라와 곰팡이가 온 벽을 뒤덮어도, 한여름에는 방충망이 찢겨져서 온갖 해충들이 득실거려도, 그리고 지금처럼 하루 종일 공사 소음에 시달려 귀가 멍멍해져도 아무 불평 없이 지냈습니다. (사이) 작년 겨울 실직만 안 했어도 이런 부탁까지는 드리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번 가을에 치를 시험까지라도, 아니 다음 달 우리 애 돌까지만이라도 (무릎을 꿇으며)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주인 (소리만)그래요, 듣고 보니 안타깝기는 하네요. 하지만 이를 어쩌나. 부탁은 내가 해야 되겠는 걸. 지금 공사가 지연된다고 재개발 조합에서 난리네요. 계약서대로 세입자를 내보내 집을 비우라구요. 그쪽이 용안 4동 재개발 구역에 거의 끝까지 남은 세대라는 거, 알고는 있었죠? 당신들이 나가야 우리 구역 철거가 마무리되거든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투자를 한 입장에서 손해 볼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 이제 당신들은 계약서대로 나가주면 되는 거예요. 내 말 알아듣죠? 배려라? 배려라면 이번에는 당신들 차례인 것 같은데 무영이 털썩 주저앉자 바로 조명 꺼진다. 어둠 속에서 한동안 귀를 막고 머리를 감싸던 무영이 어느 순간부터 어떤 소리를 집요하게 찾고, 약희는 집안을 정리한다. 무대가 점차 밝아지면 무대의 가재도구는 모두 정리가 되고 커다란 박스 두어 개와 여행용 가방이 무대 중앙에 있다. 약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달력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일어나 벽에 걸린 달력을 뜯는다. 그러자 다음 달력에 커다란 동그라미가 보인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 귀를 후비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며 뭔가를 찾고 있다. 약희 (달력을 보며) 뭐해? 무영 … 약희 뭐하냐구? 무영 찾고 있어. 약희 (심드렁하게) 뭘? 무영 (잠시 머뭇거리다가) 있어, 지금 어딘가에 있어. 약희 그러니까 뭐가 있냐구? 무영 (주변을 계속 살피며) 모기 약희 (힐끗 보며) 모기? 무영 안 들려, 소리? 지금 막 몰려오고 있잖아. 봐, 앵~앵 약희 (무영을 쳐다보다가 잠시 귀를 기울이며) 도대체 무슨 소리? 무영 아, 미치겠네. 에이, 도저히 안 되겠다. 무영은 계속 구석구석 살피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지갑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때 전화벨이 울리자 약희가 전화를 바로 받는다. 약희 여보세요? 집주인 아직 있었나보네. 약희 … 네. 집주인 하긴 이틀이나 남았으니까. 지금 문 앞에 있어요. 약희 네? 알이 큰 색안경에 명품가방을 든 40대 여성이 현관문으로 들어온다. 이때도 무영은 집주인을 본 체 만 체 한쪽 구석에서 뭔가를 찾고 있다. 집주인 (무영을 힐끗 본 후, 핸드폰을 가방에 넣으며) 댁 남편한테 이야기는 들었죠? 약희 … 집주인 (색안경을 벗고 여행용 가방의 손잡이를 잡으며) 그런데 갈 곳은 정해졌~ (손잡이가 쑥 들어가자) 어머! 나? 약희 걱정 마세요. 날짜 되면 알아서 나갈 테니까. 무영 (혼잣말로) 어딨더라. 여깄다. (명함을 보며) 오이제로에 제로제로제로제로.   핸드폰 발신 신호 후 제로버그회사의 경쾌한 컬러링이 들린다. 집주인은 자세를 가다듬고 눈을 내리깔며 집안 구석구석을 훑어본다.   집주인 (핸드백에서 봉투를 꺼내며) 여기, 이사비용하고 남은 보증금, 다 까먹고 얼마 남지도 않았지만 (약희가 신경질적으로 봉투를 받자) 거, 세어 봐요. 약희 (눈으로 대충 보며) 맞겠죠. 집주인 그런데 모기, 이제 더 없죠? (팔목과 다리를 긁적이며) 어휴, 그런데 왜 이렇게 간지러워. 하긴 이런 구질구질한 데서 내 피부에 트러블이 안 생기면 그게 이상한 거지. 소리 (경쾌한 소리로) 스피디하게 모시겠습니다. 제로버그입니다. 무영 (손짓을 하며) 있어요, 우리 집에 모기가 있어요. 커다란 모기떼가 몰려왔어요. 집주인 (깜짝 놀라 두리번거리며) 이게 무슨 소리야? 모기? 소리 네? 잠시 만요, 고객님. 담당자를 바꿔 드릴게요. 방역업체 직원1 네, 스카이 팀장입니다. 무슨 일이시죠? 무영 지금 우리집에 난리가 났어요. 어마어마한 모기떼가 몰려오고 있어요. 집주인 (놀란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모기떼? 방역업체 직원1 네? 이무영씨 이무영씨, 맞죠? 그런데 모기가 있다구요? 그것도 떼로? 무영 (확신에 찬 목소리로) 네. 아주 어마어마한, 그리고 커다란 방역업체 직원1 그럴 리가요? 그럼 본인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나요? 무영 소리가 들려요. (핸드폰을 공중에 대며) 수십 마리 아니 수백 마리의 모기떼 소리가 마구마구 들려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음… 바로 출동하죠.   무영이 잠시 큰 동작으로 모기를 쫓는 시늉을 하다가 귀를 막는다. 약희는 이런 무영의 행동에 당황하나, 그렇다고 무영을 말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집주인은 무영의 행동에 많이 놀란 눈치이다. 그러다가 잠시 집주인과 무영의 눈이 마주친다. 이때 둘 사이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르는데, 갑자기 무영이 집주인에게 다가가 집주인의 뒷목을 찰싹 친다.   집주인 아! 뭐야? 무영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목이, 거기가 집주인 목! 모기요? 무영 그러니까 모기가 모게, 모기가 모게… 집주인 네? 모…모기!   집주인이 목 주변을 문지르며 긁다가 핸드백에서 거울을 꺼내 본다. 순간 멈추며 무영을 노려보지만, 무영은 무관심하게 계속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있다. 바로 이때 초인종이 울리고 방역업체직원1, 2가 등장한다.   방역업체 직원2 네, 제로버그입니… 무영 빨리요 빨리. 이 모기들 좀, 정말 미치겠어요. 얘네들 좀 보세요. (손가락으로 허공과 집주인을 가리키며) 여기 여기, 지금도 막 나한테 달려들잖아요. 방역업체 직원1 (무영을 응시하다가 직원2를 힐끗 보고) 확인하지.   직원2는 바로 장비를 들고 구석구석을 확인한다.   무영 이놈의 모기들이 처음에는 한두 마리가 앵앵거리다가 지금은 숨어 있는 놈들까지 몰려나와 날 쫓아오는 거예요. 방역업체 직원1 그래요? 본인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셨다고 하셨죠? 무영 그, 그럼요.   방역업체 직원1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며 집주인과 약희에게 동의하느냐고 묻는 손짓을 취하자 약희는 모른 척 눈길을 피하고 집주인은 계속해서 몸을 긁적이며 모기를 피하는 몸짓을 취한다. 이때 방역업체 직원2가 직원1에게 다가온다.   방역업체 직원2 팀장님, 확인 결과 이곳에는 모기는 물론 날파리 한 마리도 없습니다. 방역업체 직원1 역시 (무영을 보며) 들으셨죠? 무영 그럴 리가… 지금 이 소리 안 들려요? 지금 막 앵앵거리잖아요. 와, 미치겠네. 여길 보시라니까요. 여기 여기요, 이곳에서 났다가 아니 저기서… 방역업체 직원1 어디? 여기? 도대체 어디요? 한 마리라도 잡아보세요. 무영 (주변을 마구 돌면서 구석구석을 가리키다가 직원1을 돌아보며) 한…마리? 방역업체 직원1 (검지를 흔들며 단호하게) 한 마리! 우리 제로버그 스카이팀은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리콜도 없는 퍼펙~팀입니다. 무영 퍼․펙․트! 방역업체 직원1 (짧게) 네, 퍼펙트. 집주인 그, 그럼 뭐야? 아까 내 목을 내리친 것은, 일부러… 이 사람들 안 되겠네. (뒷목의 부여잡으며) 이젠 폭행까지, 아이고 목이야, 아이고 목이야. 약희 폭행이라니요? 모기 잡을 때처럼 살짝 친 것을 가지고 집주인 살짝? 이게 살짝이야? (방역업체 직원2를 보며) 거기 젊은 총각, 이걸 보라고, 여기 여기, 보이지? 빨갛게 손자국 난 거. 방역업체 직원2 (집주인의 목 가까이 얼굴을 대고 살펴보다가) 제가 보기에는 그냥… 집주인 그냥? 그냥 뭐? 방역업체 직원2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손톱으로 긁은 자국인데요.   어수선한 와중에 무영은 사람들의 대화에서 벗어나 있고 이러한 무영을 방역업체 직원1이 주의 깊게 살핀다.   방역업체 직원1 (곰곰이 생각하다가) 잠시, 잠시만요, 음, 제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이무영씨에게 들리는 모기 소리는 일시적인 환청인 듯합니다. 약희 (놀라며) 화,화, 환청이요? 방역업체 직원1 네, 맞습니다. 환청. 과도한 스트레스나 심리적 불안으로 인해 실제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일종의 환각 현상이죠. 때에 따라서는 환영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약희․집주인 !? 방역업체 직원1 환청은 낮은 단계의 벌레 울음소리나 소음과 같은 단순한 잡음에서부터 단계가 높아질수록 뚜렷한 내용이 있는 특정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기까지 합니다. 사람 말소리인 경우에는 불쾌감을 주는 간섭이나 욕, 또는 명령하는 소리가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사람을 즐겁게 하고 심지어 아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경우도 있죠. (사이) 음… 제가 보기에는 이무영씨는 아직까지 환청의 초기 단계로 보입니다만,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높은 단계의 환청을 넘어 마약 중독과 유사한 환각 증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약희 그, 그럼, 지금 애아빠의 귀에 헛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이에요. 방역업체 직원1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서는요. 약희 (무영의 모습을 멍한 듯 바라보며) 그, 그래서 아까도… 어이구, 세상에 집주인 (다리와 몸을 어색하게 긁다가 무영을 노려보며) 뭐야, 그럼 완전히 미친 거잖아? 어쩐지, 아까부터 눈빛이 퀭한 게 이상했어. 흥, 이제 정신병원에 가야겠네. 약희 (순간 노려보며) 함부로 말하지 마요. 당신이, 당신이 뭔데 남의 남편한테 미쳤다고 해요. 집주인 아니, 이 여자가 누구한테 당신이래. 그리고, 없는 소리가 난다고 우기면 그게 미친 거지. (사이) 아님 뻔한 거지. 모기 소리를 트집 잡아서 여기에 더 눌러앉으려고 하는 수작이겠지 뭐. 누가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알아. 이래 봬도 나 산전수전 겪으면서 당신들 같은 사람 많이 상대해 봤어. 흥~ 약희 눌러앉는다고? 우리가? 여기에? 아무리 없이 산다고 자존심마저 죽지는 않아요. (단호하게) 걱정 말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날짜 되면 이곳에서 나갈 테니까. 사람을 도대체 뭘로 보고 그래요. (무영을 보며) 당, 당신도 뭐라고 좀 해봐. 집주인 뭘로 보긴, 내 눈에 보이는 데로 보지. (혼잣말로) 딱 보니, 말 그대로 갈 곳 없는 거지네 뭐. 흥~ 약희 뭐 뭐, 뭐라고, 거지?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우리가 집을 빌린 거지 언제 당신한테 구걸을 했어? 집주인 구걸? 흥, 구걸은 아니어도 (무영을 곁눈질하며) 애걸은 했지. 약희 뭐, 뭐라고? 이 여자가 정말 집주인 뭐, 이 여자, 이제 갈 곳도 없는 밑바닥 주제에 집주인한테 감히, 분수도 모르는 것들이 약희 (순간 집주인에게 달려가 악을 쓰며) 그래, 그래, 나 이런 밑바닥에 산다. 이젠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방역업체 직원1, 2가 맞붙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며 진정시킨다. 그 와중에도 방역업체 직원1은 집주인 편을 간간이 든다. 이때도 무영은 계속해서 모기를 찾고 있다.   방역업체 직원1 자자자, 이제 그만, 그만하시고 진정하세요. 지금 뭣들 하는 겁니까? 집주인 놔놔, 이것 안 놔? 깡패처럼 무조건 힘이나 써서 해결하려고 하고. 흥, 가진 것도 없는 것들이 분수를 모르면 교양이라도 있어야지. 약희 (악을 쓰며 다시 집주인에게 달려들며 몸싸움을 하며) 뭐라구? 깡패? 교양? 그래, 나 없어. 아무것도 없어. (한동안 엉겨 붙어 있다가 약희가 순간 엉엉 오열하며) 이젠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다구.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들 두세요. 사모님, 사모님이 먼저 참으세요. 새댁도 진정을, 우선 진정부터 해요. (약희를 진정시키며) 그리고 새댁, 남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 괜찮아질 겁니다. (둘 사이가 조금 누그러지자) 음… 이런 말이 위로가 될지 모르겠는데… 사실 저도 집에선 모기소리와 마누라의 바가지 긁는 소리가 헷갈릴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다 보면… 마누라가 모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되면 마누라를 보며 모기 때려잡는 생각을 합니다. (모기 잡는 동작을 취하며) 이렇게요. 이렇게라도 해야 스트레스가 풀리죠. (직원 2를 곁눈질하며) 안, 안 그런가? 방역업체 직원2 아 아, 네. (직원 1을 곁눈질하며) 사실 저도… 가끔 작업할 때 모기소리와 팀장님 목소리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는데요, 그땐 이렇게… 방역업체 직원1 (싸늘한 미소로 직원2를 노려보며) 그래? 그래서 모기를 잡을 때 개잡듯이 후려치나? 방역업체 직원2 (뻘쭘한 표정) 그게 아니라 제 말은… 방역업체 직원1 (표정을 확 달리하며) 환청은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주변 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절실하죠. 약희 (멍한 무영을 순간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자기야, 무슨 말이든 말 좀 해봐. 집주인 이분들께서는 이 세상에서 배려와 관심이 가장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흥~ 약희 (순간 매서운 눈매로 노려보며) 보자보자 하니까 정말 방역업체 직원1 그만, 그만 (절도 있는 자세로) 그럼 이만, 저희 제로버그의 리콜 서비스는 고객님께서 만족하실 때까지 무제한 달려갑니다. 추후 문제가 생기면 다시 연락 주십시오. 집주인 어머나! 내 정신, 어머, 시간 좀 봐. 나도 늦었네. 오늘 계모임이 있었는데… 알죠, 내일 모레까지인 거. 약속이나 지켜요. 약희 맘 푹 놓으세요. 설사 붙잡아도 더러워서 나갑니다. 흥~ 방역업체 직원1, 2 퇴장. 집주인도 서둘러 따라 나선다. 무영은 계속 멍하니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며 힘없이 모기 잡는 행동을 취한다. 그런 무영을 약희는 흐느끼며 바라본다. 이 와중에도 중장비의 소음은 계속된다. 얼마 후 무영은 축 처진 채로 의자에 앉는다. 약희 (맥이 풀린 듯 울먹이며) 그런데 자기야, 이제 우리, 우리, 어떡하지? 무영 진짜 들렸는데… 지금도, 지금도 분명히 들리는데 약희, 망설이다가 무영의 뒤로 가서 조용히 어깨를 감싸자, 잠시 후 무영은 약희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조명이 꺼진다. 공사장 착암기 소리가 집안 구석구석을 울린다. 실내조명이 켜지자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있고 시간이 갈수록 중장비 소음은 커지면서 간간이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약희 (몸을 일으켜 무영을 보며) 소리 들려? 무영 뭐? 약희 이 소리? 잘 들어봐. 무영 … 약희 이거 귀뚜라미 소리야.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편해진다. 벌써 가을이 오려나? 무영 (심드렁하게) 나도 알아. 모기소리가 아닌 거, 귀뚜라미 소리인 거. 약희 (사이) 삐쳤어? 무영 뭐가? 약희 아니다. 무영, 약희… 이때부터 아주 조금씩 실내 연기가 차오르는 것이 보인다. 무영 맞다. 조금 전에 하려던 말, 뭐야? 약희 (망설이다가 잔기침을 하며) 그래서는 안 됐는데… 무영 뭐? 약희 (뜸을 들이며) 엊그제… 자기한테 모기 같다고 말하고 확 뛰쳐나간 거. (사이) 그때는 모든 게 자기 탓 같았어. 자기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원망스러워서 울컥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어쩔 수 없었잖아. 자기도 지금까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라도 당신 편이 되었어야 했는데… (기침을 하며) 그래서 환청이 들렸나 싶어지구… (속삭이듯) 미안해. 무영 (홱 돌아서 등을 보이며) 스트레스가 확 더 쌓인다. 약희 (의아한 듯) 뭐? 무영 (귀를 파며) 환청이 들려. 예전에 상상할 수도 없는 이야기가 방금 내 귀에 들렸거든. 약희 (무영의 몸을 뒤집으며) 뭐야? 무영, 휙 뒤돌며 약희를 안는다. 그 후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애정이 담긴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이때 무영이 기침을 하자 약희의 구토가 시작된다. 약희 (구토를 참으며) 나… 나, 괜찮아. 무영 미안해. 약희 … 무영 고마워, 함께해 줘서… 약희 난 편안해. 아무 말 (기침을 하며) 하지 마. 무영, 약희… 약희 아, 덥다. … 우린, 우린 그 약속은 지킬 수 있을까? (사이) 집주인한테 무영 (한참 생각하다가) 아마도 이때 무영과 약희는 한참 동안 기침과 구토를 반복한다. 한참 후 쪼그려 앉아 있던 무영이 무엇에 집중을 하며 귀를 기울인다. 무영 소리 들려? 약희 … 뭐? 무영 그러지 말고 잘 들어봐. 약희 (기침을 하며) … 무영 자자, (기침을 하며) 정신을 집중하고 우리의 처음을 생각해봐. 약희 처음? (사이) 처음이라… (기침 후 구토를 하며) 우리한테도 처음이 있었나? 무영 생각 안 나? 5년 전쯤에, 왜 있잖아, 강촌으로 동아리 MT 갔었을 때, (기침 후 헛구역질을 하며) 전혀? 음… 무영이 한참 헛구역질을 한 후, 엎드려 있다가 조심스럽게 일어나 손가락으로 점점 크게 원을 그린다. 그러자 연기는 점점 사라지고 대신 비눗방울이 서서히 날리기 시작한다. 무영 그럼 이 소리 좀 들어봐. 약희 소리? 무슨 소리가 나? 무영 잘 들어봐. 약희 (짧지만 심한 구토 후 웃으며) 혹시 자기, 또 환청 아냐? 무영 (진지하게) 지금 장난 아니야, (기침을 하며) 심호흡을 한번 크게 하고, 그리고 찾아봐. 약희 (조금 진지하게 살짝 눈을 감으며) 음… 들려. 물 떨어지는 소리랑, 계량기 돌아가는 소리, 음… 위층에서도, 어? 그 사람들, 그거 하나 부다. (애교 섞인 목소리로 기침을 하며) 에이, 부럽당~ 무영 참, 그런 소리 말고. 자, 마음을 편하게 눈을 감아. 그리고 천천히 집중해봐. 약희, 잠시 망설이다가 심호흡 후 진지하게 몰입한다. 점차 몽환적인 음악이 들릴 듯 말듯 울려 퍼지고, 이와 함께 환상적인 조명이 시작된다. 약희 음… 어! 이게 뭐지? 뭔가 들려, 음… 물소리랑, 바람소리 (일어나며) 어어, 잠깐 이건… 무영 들리지? 그럼 좀 더 주위 소리들을 찾아 봐, 그리고 느껴 봐. 약희 (다시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음… 귀뚜라미랑 개구리 울음 소리, 어~어, 새소리도 들려. 이게 어디서 나는 소리지? (순간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눈을 감고 좀 더 깊이 빠져들며) 이 소리 이 느낌, 왠지 낯설지 않아. 무영 이제 그럼 눈을 감고 소리가 느껴지는 곳을 찾아가 봐. 약희 (무영의 어깨를 짚은 채 천천히 일어나 걸으며)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내가 예전에 느꼈던 그 편안함, 그리고 설렘… 그러면, 그러면, 여기는… 아! 조명이 꺼진다. 환상적인 조명과 몽환적인 분위기의 음악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점차 사라지면서 앳된 약희의 윤곽만을 확인할 수 있는 희미한 조명이 비춘다. 이때 분위기는 아늑한 꿈결 같은 분위기이다. 그 후 점차 계곡 물소리와 개구리소리, 새소리가 뒤섞인 자연의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한다. 새소리는 뻐꾸기 소리이다. 약희 (황홀함과 나른함이 교차한 느낌, 그리고 혀가 약간 꼬인 발음으로) 여, 여, 여긴, 그러고 보니 개구리 소리가 들리고 … 새소리도 들리네. 음, 이게 무슨 새더라? 딱따구리 소린가? 아니면… 부엉이? (이때 ‘뻐꾹’ 하는 소리가 들리자 손뼉을 치며) 아, 맞네요. 뻐꾸기. 역시~ 무영 선배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조심스럽게) 근데… 저기요, 선배님. 자꾸 선배님라고 하니까 좀 어색하네요. 그, 그러니까, 저기… 저는, 위로 오빠가 셋인데요, … 오빠라고 부르는 것이 익숙해서요, 그러니까, 저기 (사이) 그냥 오빠라고 하면 안 돼요? … 왜, 왜 말씀이 없으세요? … 네에! 진짜, 진짜루요? (한참 후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하늘을 보며) 무영, 무·영·오·빠. 그런데요, 하늘에 별이, 별이 보여요. 아주 많이, 많이, 많·이, 많‥이… 무영 (소리)약희야! 야, 김약희, 너? 너! 약희 어… 어! 내 속에서 뭔가,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 같아. 잠깐만 여기서, 여기서 잠시 쉴래요. 약희 가 서서히 쓰러진 채로 눈을 감자 조명이 꺼진다. 잠시 후 급한 소방차의 경적소리와 앰뷸런스의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울린다. 무전소리 오전 02시 18분, 용안 4동 재개발 B-02지구 상황 발생. 도로 사정으로 소방차는 진입 불가능하며, 가스중독으로 인한 일가족 3명은 현재 후송 중, 이상. 조명이 꺼진다.
  • 신비의 소녀와 함께 낯선 나라로 여행을

    털 한 가닥 없이 미끈한 초록색 피부, 여우처럼 뾰족한 턱과 날카로운 송곳니, 새빨간 머리카락을 뚫고 위로 솟아 있는 나뭇잎 모양의 두 귀, 게다가 빛을 뿜고 있는 크고 붉은 눈동자…, 팜피넬라. ●3년 침묵 끝 새 도전… “가상세계 관심 많아” 각종 영화, 뮤지컬, 드라마 원작자로 잘 알려진 귀여니가 ‘늑대의 유혹’ ‘그놈은 멋있다’ 이후 3년간의 침묵 끝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학창 시절의 판타지에 대한 동경과 감성을 되살려 완성시킨 첫 작품 ‘팜피넬라-퀸트 성 꼭대기의 비밀’(반디 펴냄)은 시리즈 가운데 첫 번째로, 여주인공 팜피넬라가 세상과 낯선 만남을 갖고 모험을 시작하는 이야기다. 미지의 나라 깊은 숲 속의 작은 마을, 그곳에서 펼쳐지는 모험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비밀의 장소 퀸트 성은 세상과 까마득히 떨어진 곳의 쿠르시나라는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 멸망해 버렸고 지도에도 표기되지 않은 곳. 아마도 평생 동안 알 수조차 없을 그런 나라를 끄집어냈다. 그래서 신비롭다. 현실에서 볼 수 없었던 신비의 소녀와 현실 속 남자아이가 어느 날 낯선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 아이들에게 주어진 운명도 타협해야 하는 현실도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전과는 다른 모험을 시작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책은 ‘늑대의 유혹’ 같은 기존의 로맨스가 아닌 판타지라는 점에서 색다르게 다가온다. 한동안 창작에 견고함을 갖추기 위한 시간을 보낸 후 내놓은 귀여니의 신작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로맨스 소설 작가의 외도로 보기에는 판타지 소설의 성격을 고루 갖추고 있으며 재미와 함께 앞으로 펼쳐질 작가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까지 담고 있다. ‘팜피넬라’는 여성적 감성에도 잘 맞는 판타지로 분류된다.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서로 다른 시공간, 환상과 모험, 인간의 갈망, 나약함을 이겨내는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거추장스럽지 않은 사랑이 녹아 있어 읽는 재미를 더욱 부추긴다. 거인과 마법사, 난쟁이 등도 흥미롭게 등장한다. 귀여니는 작가의 말에서 “기존에 썼던 로맨스와는 전혀 다른 장르입니다. 어릴 때부터 판타지에 대한 동경이 컸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가상세계를 다룬 작품에 관심이 많아 이참에 직접 써 보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라고 심정을 토로한 뒤 “하루에 (200자 원고) 다섯 장 분량을 쓴다는 규칙을 정해 놓고 거르지 않고 여백을 채우도록 노력했습니다.”라고 글쓰는 과정을 고백했다. ●“후속 작품 2012년까지 이어질 것” 이번 책은 시리즈 1편으로, 2편을 비롯한 후속 작품들은 2012년에 계속 이어진다. 총다섯편의 시리즈를 예상하고 있으며 팜피넬라를 통해 영생에 대한 갈망을 가슴속에 간직한 채 인간이 겪어야 하는 험난한 여정에 대한 얘기를 풀어 나갈 것이라고 예고한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영화프리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영화프리뷰]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부패 재벌 베네르스트룀을 폭로하는 기사를 썼지만, 증거가 없는 탓에 명예훼손 소송을 당한 시사잡지 ‘밀레니엄’의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 재판에서 패하던 날, 전화가 걸려온다. 스웨덴 재벌 방예르 그룹의 큰 어른 헨리크가 40년 전 고립된 섬에서 흔적 없이 사라진 (형의) 손녀 하리에트의 사건을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것. 40년간 풀리지 않은 사건을 맡게 된 미카엘은 보안전문업체 밀턴시큐리티의 유능한 조사원 리스베트 살란데르와 함께 방예르 집안의 추악한 비밀을 파헤친다. 평생을 일상의 폭력에 대해 투쟁해온 스웨덴 기자 스티그 라르손이 쓴 ‘밀레니엄’ 시리즈(그는 10부작을 구상했지만 3부까지 탈고한 뒤 숨졌다)는 2005년 출간 후 46개국에서 6500만부가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다.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침 흘린 매력적인 원작은 ‘세븐’(1995) ‘파이트클럽’(1999)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소셜네트워크’(2010)로 흥행과 평단의 열광적인 지지를 끌어낸 데이빗 핀처 감독의 손에 떨어진다. 그는 “20여년 동안 영화를 하면서 어른들을 위한 해리 포터, 성인용 프랜차이즈를 꿈꿔왔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쉰들러 리스트’(1993) ‘갱스 오브 뉴욕’(2002) ‘아메리칸 갱스터’(2007) ‘머니볼’(2011)의 스티븐 자일리언이 각본을 맡았다. 새달 12일 개봉하는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3부작의 첫 편인지라 캐릭터를 소개하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했다. 미카엘과 리스베트는 홈즈와 왓슨처럼 환상의 짝꿍이다. 아슬아슬한 연애 감정까지 가진 새 유형의 콤비인 만큼 관객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한 건 당연해 보인다. 핀처는 두 인물을 수평적으로 끌어가는 대신, 무게 중심을 리스베트에 뒀다. ‘007 시리즈’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하는 정의감 넘치는 기자(미카엘)는 이미 많은 영화에서 ‘우려먹은’ 전형적인 인물형. 반면 거식증 환자처럼 마른 몸매에 정신병력 탓으로 법적 후견인의 감시를 받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어느 순간 모터사이클을 타고 질주하는 펑크 여전사로 변모하는 입체적인 인물형인 리스베트를 공들여 세공한 건 영리한 선택이었다. 스칼렛 요한슨과 내털리 포트먼, 엠마 왓슨, 크리스틴 스튜어트 등을 제치고 리스베트 역을 따낸 루니 마라는 중성적인 매력을 발휘하면서 단박에 할리우드의 블루칩으로 올랐다. 최근 발표된 제69회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2시간 30분이 훌쩍 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자막이 올라가는 순간. 촘촘한 서사와 긴장감 있는 편집, 캐릭터의 매력이 쏠쏠하다. 단, 크레이그에게 제임스 본드의 육탄 액션을 기대하면 실망할 터. 지난 21일 먼저 뚜껑을 연 북미에서 호의적인 평을 받았다. 비평가들의 평을 계량화하는 영화전문사이트 로튼토마트닷컴은 신선도 지수 85%(좋은 평을 던진 평론가 비율), 평점 7.6(10점 만점)을 주었다. 겨울 영화 중 ‘미션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신선도 지수 93%, 평점 7.6)과 더불어 가장 높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도 박사’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

    [김문이 만난사람] ‘이어도 박사’ 한국해양연구원 심재설 박사

    바다는 생명이다. 섬 사람에게는 운명이다. 그래서 섬에는 생명과 운명이 공존한다. ‘긴긴 세월 동안 섬은 늘 거기 있어 왔다. 그러나 섬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섬을 본 사람은 섬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도 다시 섬을 떠나 돌아온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청준의 소설 ‘이어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아버지는 뱃사람으로 늘 바다에서 보냈고 어머니는 실종된 아버지가 나타날 때까지 이어도 노래를 부르다 죽는다. 이 소설은 이어도의 전설을 소개하고 정체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섬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간섭해 왔고 모습지어 왔는지를 그렸다. ‘이어도’는 김기영 감독에 의해 1977년 영화로도 만들어져 주목을 받았고, 최근에는 오멸 감독이 ‘이어도’를 흑백영화로 만들어 서울독립영화제 본선에 올려 눈길을 끌었다. 또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이사장 고충석)에서 올해 처음 영문판 ‘이어도 저널’을 발간, 세계에 알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어도 노래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노 저을 때 내는 여음)/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남(소나무)의 배여/잘잘 가는 건 잡남(잣나무)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목적지에 들여 나가자(들어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다시 전생(환생) 못하나니라 원(관원)의 아들 원자랑 마라/신의 아들 신자랑 마라 한 베개에 한잠을 자난(혼자 잠자는)/원도 신도 저은(두려울) 데 없다 원수님은 외나무 다리….’ 주로 바다와 힘겹게 살아가는 어부와 해녀들이 불렀다.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구전 민요이자 한많은 노동요인 셈이다. 반어법과 문답법을 적절하게 구사하면서 임(바다로 나간 남편, 아버지)과 이별 없는 이상향을 그리워하는 피안의 내용을 담고 있다. 위험한 뱃길을 이어도 노래로 위안받으며 두려움 없이 바다로 나가고 또 나가곤 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제주도민들은 이 노래를 대부분 부를 줄 안다. 이어도는 살아서는 못 가는 섬, 그러나 한번 가면 못 돌아오는 환상과 애증이 사무친 곳이다. 이어도는 육지섬이 아니다. 평균 수심은 50m, 남북 길이 1800m, 동서 길이 1400m인 수중섬(水中島)이다. 평소 정상봉은 해수면 아래 4.6m에 있다. 섬 정상은 파도가 심한 날이면 수면 밖으로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때문에 ‘환상의 섬’이라고 한다. 요즘 중국이 이러한 이어도에 대해 욕심을 심상치 않게 드러내고 있다. 지난 14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3000t급 순찰함을 동중국해에 투입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이어도와 가거초(可居礁) 부근 해역에서 순찰활동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명으로 이어도는 쑤옌차오(蘇岩礁).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여 온 중국 정부는 그동안 이어도와 가거초 부근 해역이 중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포함되는 곳이라는 논리를 펴 왔다. 한국 정부는 독도처럼 이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3000t급 순찰함을 이어도 부근에 보낼 경우 우리의 해양경찰과 충돌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03년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할 때에도 중국 정부는 불만을 표시하며 반발했다. 마라도에서 약 149㎞ 떨어진 이어도 부근 해양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등 지하자원이 매장돼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의 수출입선이 지나가는 해상의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19일 경기 안산시에 위치한 한국해양연구원에서 심재설 박사를 만났다. 그는 이어도에 해양과학기지를 설계했을 뿐만 아니라 30여 차례나 이어도에 다녀와 이른바 ‘이어도 박사’로 통한다. 특히 그는 가거초 해양과학기지와 황해 중부(군산 앞바다에서 200㎞ 떨어진 곳)에 관측용 부표를 설계·설치한 데 이어 요즘에는 독도 해양과학기지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독도기지가 끝나면 곧바로 백령도 기지 설계에 들어갈 예정이다. 하여 해양과학기지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러한 심 박사에게 먼저 독도 해양기지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됐는지부터 물었다. 그러자 민감한 사안이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다면서 30% 정도라고만 짤막하게 대답했다. 위치에 대해 다시 묻자 독도 인근의 1㎞ 해역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얘기를 이어도로 옮겼다. “육지에서 300여㎞ 떨어진 해양과학기지를 갖고 있는 나라는 태풍권(허리케인 등 포함)에서 우리가 유일합니다. 그만큼 먼 바다에서부터 태풍을 연구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위성 데이터를 검·교정할 만큼 아주 정확하며 생물 다양성 연구에도 아주 중요하지요. 이어도 기지 설치 이후 그동안 수심별로 여러 생물을 채집해 항암성분 등을 추출한 신물질만 300여종이나 됩니다.” 이 밖에 지구환경 변화에 대한 여러 핵심자료를 제공하고 황사 등 대기오염 물질의 이동 및 분포도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안전항해를 위한 등대 및 수색 전진기지로도 활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기지 구조물 수명이 50년이라는 그는 “30여개의 관측장비 대부분이 무인자동화 시스템이지만 설계할 때 8명이 15일 정도 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국립해양조사원 요원들이 한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 4박 5일 정도 지내고 있다면서 “이어도 기지는 2003년에 설치한 뒤 2007년부터 국립해양조사원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활용연구는 계속 해양연구원에서 하고 있단다. 중국이 요즘 들어서 왜 이어도에 부쩍 관심을 드러내는지에 대해 물었다. “2000년까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최근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그 속내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어도 기지를 세울 때 전격적으로 설치한 뒤 나중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작전을 세웠습니다. 그때 중국에서 외교채널로 (중국정부와) 상의할 것이지 왜 그랬느냐는 항의를 두 번 정도 했습니다. 만약 지금이라면 독도 문제처럼 크게 불거졌을 겁니다. 중국은 서해상에 우리 같은 해상 관측기지가 없습니다. 이어도 주변에는 해상자원과 어족이 풍부합니다. 제가 기지에 머물 때 봄가을에는 중국 어선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것을 자주 목격했지요.” 이어도는 중국령 퉁다오(童島)에서 245㎞,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거리에 위치해 있는 해상 생태계의 세계적 보고로 알려져 있으며 연평균 25만여 척의 배가 이곳을 지난다. 그는 이어도를 여전히 막내아들처럼 여긴다. 1991년부터 이어도 기지건설 사업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정이 흠뻑 들었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했던 순간도 여러 차례 겪었다. 이어도에 기지를 설치할 때 바지선과 연결한 줄이 끊어져 바지선이 상하이 앞바다에까지 떠밀려 가 애를 태웠던 일, 2003년 태풍 매미가 불어닥칠 때 배터리가 작동이 안 돼 마음 졸였던 일 등이 대표적이다. “먼 바다에 해양구조물을 설치한 것은 이어도 기지가 우리나라 최초입니다. 쇠말뚝을 박는 일에만 1년 더 걸릴 정도로 어렵게 설치했지요. 수중과 수상의 쇠말뚝을 같이 끼워야 하기 때문에 파도가 조금만 있어도 애를 먹게 됩니다. 나중에 설치가 되고 나서, 아마 전설의 섬에 있는 용왕님이 화가 나서 그러는구나 하는 후일담을 나누기도 했지요(웃음). 설치 3개월 후에 태풍 매미가 불어왔는데 이어도 기지는 정확한 예측으로 피해 규모를 많이 줄일 수 있어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기지에 설치된 구조물들이 지금까지 99% 정확하게 작동되고 있지요.” 중국 어선들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어서 크고 작은 분실사건이 발생하는 경우가 없느냐고 했더니 “그런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아무나 올라갈 수 없도록 자동 사다리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지금 설계 중인 독도 해양과학기지는 이어도의 두 배 정도의 규모라고 귀띔한 그는 2016년 백령도 기지 설치를 끝으로 마지막 꿈인 연안침식 연구에 몰두할 예정이다. 연안 침식은 전 세계적으로 현안문제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해양으로 진출하는 국가는 흥하고 육지로 가는 나라는 쇠(衰)합니다. 바다에 대해 투자를 게을리하면 결코 안 됩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심재설은 1958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바다를 좋아해 해양학자의 꿈을 키웠다. 대전고와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나온 뒤 1985년 해양연구원에 들어갔다. 박사과정은 중앙대에서 ‘항만 및 해안’을 전공했다. 이후 해양연구원에서 연구조교, 연구원, 선임연구원 등을 거쳐 현재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1991년부터 ‘이어도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했으며 2003년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건설 유공으로 철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가거초 해양과학기지 총괄연구책임자를 맡았으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독도 해양과학기지 구축을 위한 설계 및 시공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쓰나미로부터 살아남기 위해’(2009, 역서)와 ‘독도해양과학총서’(2011, 공저) 등이 있다. 이 밖에 ‘연직 원형파일에 작용하는 쇄파파력의 수치해석’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 [보고 듣고 즐기세요] 클래식·국악

    ●2012년 세종문화회관 서울시향 신년음악회 1월 5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시향(지휘 정명훈)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내놓은 두 번째 앨범에 담은 말러 교향곡 1번 ‘거인’을 1년 2개월 만에 직접 연주한다. 모차르트 피가로 서곡,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바이올린 정경화) 등. 2만~7만원. (02)399-1114. ●2012년 신년음악회 1월 13일 오후 7시 30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험담은 상냥한 미풍과 같이’(베이스 최웅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중 ‘하바네라’(메조소프라노 김정화), 구노의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태양아 떠올라라’(테너 나승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등. 지휘 금난새. 7000~1만원. 1588-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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