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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 국회상위장­특위장­사무총장 프로필

    ◎김덕규 행정경제위/말솜씨 좋은 외유내강형 3선 재주와 말솜씨가 빼어난 외유내강형의 3선의원. 6·3세대로 구신민당 송원영원내총무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제11대 때 민한당의 전국구 의원으로 금배지를 달았다. 「발발이」란 별명을 갖고 있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에 열성적이다. 말 많고 탈 많은 야당사무총장을 무난히 수행한 것이 이번 발탁의 배경이라는 관측. 부인 이정이(51)씨와 사이에 2남. ▲전북 무주(53) ▲고대정외과졸 ▲11·13·14대 의원 ◎이영권 교육위/교수출신 집념형… 지자에 밝아 80년 신군부가 득세하자 광운대 교수을 떠나 민권당 대변인으로 정계에 입문.당시 전두환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외곬수라는 얘기를 듣고 있으나 집념 하나만은 알아준다는 평가. 당 지자제특위 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지방자치문제에 일가견을 갖고 있다.당내 비주류로 김상현고문과 친하며 이번 국회직 인선에서도 비주류몫으로 상임위원장을 맡았다는 것이 정설. 부인 오금련씨(55)와 사이에 1남. ▲전남 장흥(58) ▲조선대 법대졸 ▲민권당대변인 ▲12·13·14대 의원 ▲민주당 전남지부장·당무위원 ◎박상천 보사위원장/정연한 논리·예리한 분석 강점 검사출신의 논리가 정연한 재선의원.민자당의 박희태법사위원장과 고시 13회 동기로 13대 때는 두사람이 여야 대변인으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용호상박의 입씨름을 벌이기도.탁월한 법률지식 못지 않게 정치감각도 수준급. 현안에 대한 분석이 예리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소신이 너무 강하고 지나치게 다혈질이라는 지적. 부인 김금자씨(45)와 사이에 1남2녀. ▲전남 고흥(56) ▲서울 법대 졸 ▲순천지청장 ▲13·14대의원 ▲신민당 대변인 ▲국회법률특위간사 ◎조순승 상공자원위/진솔한 성격에 당내신망 높아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박사 출신의 야당내 외교통일문제 전문가.미국에서 오래 교수생활을 하다 13대 총선에서 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의 권유로 고향인 전남 구례·승주에서 당선된 재선의원. 소탈한 외모대로 담백하고 진솔한 성격으로 당내에서 두루 신망이 높다.미국 조야에 지인이 많아 대미통상문제를풀어 나가는데 역할이 기대된다는 평가.부인 김덕애씨(64)와의 사이에 1남1녀. ▲전남 승주(65) ▲서울대 정치학과졸 정치학박사 ▲미 미조리대 교수 ▲13·14대 의원 ▲민주당 통일국제위원장 ◎홍사덕 노동환경위/이지적 풍모의 「차세대 정치인」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한 능란한 화술이 돋보이는 3선.중앙일보 기자출신으로 제12대 때는 신민당 대변인으로 특유의 정치적 감각을 발휘,이민우총재의 「삼양동정치」를 좌우한다는 평판속에 양금의 눈총을 받기도.13대 때는 무소속으로 서울 강남을에서 출마,낙선했으나 14대에서 설욕하는 저력을 보이며 차세대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부인 임경미씨(51)와 사이에 1남2녀. ▲경북 영주(51) ▲서울대 외교학과졸 ▲한국기자협회부회장 ▲11·12·14대 의원 ▲신민당대변인 ▲구민주당부총재 ◎장경우 체신과학위/인선직전 입당… 실리밝은 3선 27일 밤 민주당 전격입당으로 상임위원장을 차지할 정도로 실리에 밝은 3선.막판까지 통합신당의 원내총무직과 민주당 상임위원장직을 저울질 하다 민주당쪽을택했다. 제11대 때 민정당 전국구의원으로 정계에 입문,13·14대 안산·옹진에서 연속 당선.지난 92년 민자당 대통령후보경선 때 이종찬후보진영에 가담,이의원과 함께 새한국당을 창당했으나 끝내 이의원 곁을 떠났다. 부인 김수복씨(47)와의 사이에 3남. ▲경기 시흥(52) ▲고대 경영대졸 ▲11·13·14대의원 ▲민자당 제1사무부총장 ▲새한국당 사무총장 ◎최락도 사무총장/원만한 성격·논리 대응력 겸비 모나지 않은 성격이면서도 논리적 대응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3선의원.특정 계보에 집착하지 않는 자유분방한 스타일. 두번째 출마한 11대 총선에서 아깝게 낙선하자 득표가 저조했던 지역에서 리어카행상을 하며 선거운동을 벌인 집념의 정치인. 3군데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며 공부한 학구파.부인 강금순여사(56)와 사이에 2남2녀. ▲전북 김제(56) ▲중앙대 법대 졸 ▲5공특위 간사 ▲민주당 전북도지부장 ▲민주당 당기위원장 ▲12·13·14대 의원 ◎이우정 여성특위/인권·여송운동 헌신 재야 출신 인권운동과 여성해방운동에 평생을 바쳐온재야출신 원로이면서도 대인관계가 원만하다.고령에도 불구,아직도 목소리가 앳되어 인기. 70년대 3·1구국선언등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고 초대 여성단체연합회장을 역임하는등 여성문제에 많은 관심을 쏟아 신설된 국회여성특위 위원장감으로는 최적격이라는 평가.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과 두터운 교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14대 전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신소설 「자유종」의 작가인 이해조씨의 손녀로 독신이다. ▲경기 포천출신(71) ▲한신대졸 ▲서울여대교수 ▲여성단체연합회장 ▲신민당수석최고위원 ▲민주당최고위원·당무위원
  • 「연대파업 선동」 구속/검경/전노대 불법개입 엄중 처벌

    검찰과 경찰은 26일 「전노대」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노조들이 연대파업에 들어가면 이를 불법파업으로 간주하고 공권력을 투입,파업주동자를 전원 가려내 제3자 개입등의 혐의로 구속수사키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파업에 가담한 철도및 지하철근로자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는 점을 감안,이들의 업무복귀를 방해하고 있는 노조 간부들을 조속히 검거하는 한편 업무복귀를 원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용조치를 베풀기로 했다. 대검관계자는 이날 『전노대가 대우조선·현대중공업·한라중공업·금호타이어·한진중공업 등 5개 대기업체를 시발로 파업을 확산,제2노총설립을 위한 기반을 닦으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면서 『이는 순수한 노조활동이 아닌 정치성을 띤 불법행위이므로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검·경은 25일부터 농성장이나 파업 사업장에 공권력을 투입해 농성 근로자들을 강제해산하고 주동자 검거에 나섰다. 검찰은 또 현재 전면 파업중인 「전노대」산하 대구 대우기전 및 부산 메리놀병원 노조간부등 8명에 대해서도 각각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하오 최환대검공안부장 주재로 노동부·내무부·경찰 등 관계기관 실·국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사범수사지도중앙협의회」를 열고 27일로 예정된 「전노대」의 연대파업 대책 등을 집중 논의했다. 한편 서울지검 공안2부(정진규부장검사)는 서울지하철공사측이 고발한 41명 가운데 25일 긴급구속장이 발부된 김연환위원장 등 노조간부 5명을 포함,모두 20여명에 대해 이날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또 이날 새벽 경희대와 동덕여대,부산동아대,기독교회관등에서 연행된 노조원과 대학생등 3백60여명을 조사,극렬 가담자는 27일중 구속키로 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이미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된 서선원전국기관차협의회 의장 등 전기협 간부 5명 이외에 「제2지도부」 간부 10여명에 대해 이날 추가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았다.
  • 「금호」 기습과 정부대응/오늘 연대파업 「D데이」… 긴장 고조

    ◎대기업노조 주저속 「광주지역 파업」에 당혹/큰 사업장 많은 울산·마창공단동향에 촉각 27일로 예정된 「전국노조대표자회의」측의 전국동시 연대파업에 공안당국이 바짝 긴장,대응전략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공안당국은 당초 「전노대」측과 각 사업장의 노조집행부가 연대파업을 강행하더라도 노조원들의 호응이 적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관측했으나 광주 금호타이어 노조가 25일 하오 전면파업을 단행,한때 회사간부를 감금하는등 뜻밖의 과격 양상을 보이자 이같은 심상치 않은 징조가 27일의 연대파업에 이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이에따라 당국은 당초 상황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려던 방침을 바꿔 이들 사업장이 「전노대」의 지시에 따라 파업을 강행할 경우 초반에 공권력을 투입,강제해산시키고 주동자를 전원 사법처리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당국은 특히 금호타이어의 전격파업에 대해 사전에 전혀 낌새를 채지 못한데다 이 파업이 「전노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파악되자 크게 당혹하고 있다.실제로 대검고위관계자도 『금호타이어의 기습작전은 사전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허를 찔렸다』고 실토했다. 공안당국은 「전노대」가 27일부터 파업에 들어가겠다고 공언한 30여개 사업장중 현대중공업등 5∼6개 사업장만 전면파업 또는 부분파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가 금호타이어의 파업으로 궤도수정이 불가피해진 셈이다. 이와 함께 당국은 연대파업에 동참하는 사업장의 숫자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과격성을 띤 시위및 농성 양상을 더욱 우려하고 있다. 시위와 농성도중 폭력이나 과격성을 띨 경우 사회혼란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 공장은 방위산업체로 파업을 할 수 없는데도 25일 불법파업에 들어가면서 회사간부 30여명을 감금하는가 하면 공권력이 투입되면 『유류탱크를 폭파시키겠다』『전산실을 파괴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등 극렬행동도 불사할 뜻을 내비쳐 위기의식을 가중시켰다. 27일부터 파업에 들어갈 30여개 사업장중 일부 회사의 노조원들이 집행부측의 파업강행에 반대할 움직임을 보이자 전노대는 금호타이어를 시금석으로 택해전면파업을 시작하고 이를 도화선으로 파업을 확산시켜 나갈 심산이라는게 당국의 분석이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최환대검공안부장 주재로 이날 하오 긴급소집된 「노동사범수사지도 중앙협의회」에서는 「전노대」측의 불법파업을 봉쇄하기 위한 대책이 집중논의됐다.내무부·노동부·경찰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 회의에서는 불법파업현장에 공권력을 조기 투입,이를 강력히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했다. 경찰이 이에앞서 26일 상·하오에 걸쳐 서울지하철노조원들이 농성을 벌여온 경희대와 「전기협」노조원들이 농성중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사무실에 공권력을 투입,이들을 강제해산시킨 것도 「전노대」측과 지하철·철도노조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최대검공안부장은 『전노대측이 우선 27일부터 전국 30여개 대기업을 시작으로 점차 1백여개 사업장에서 동시파업을 기도하는 행위는 정부에 대한 정면도전』이라고 전제,『정부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법을 무시한 불법파업및 악성노사분규는 뿌리뽑을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공안당국은 특히 수천명에서 수만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대규모 사업장이 몰려있는 울산지역과 마·창공단지역의 노조 움직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이들 대기업이 장기파업에 들어가면 조업중단및 지연으로 인한 수출차질은 물론 수백∼수천개에 이르는 하도급업체의 도산등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불법파업을 척결시키겠다는 문민정부와 내년 제2노총을 겨냥해 이같은 파업으로 「세불리기」를 계획하고 있는 「전노대」측의 힘겨루기 양상은 27일을 고비로 「분수령」이 될 것 같다는게 공안당국의 공통된 시각이다.
  • 본사초청 모범용사들이 말하는 후방 5박6일

    ◎“산업현장서 호국일념 다졌다”/개혁바람속 변화의 분위기 실감/파업·시위는 안보 저해… 화합 아쉬워 ▷좌담참석자◁ △이수형소령(38·3군사령부) △김종배원사(49·공군 제111방공포병대대) △주영호원사(52·해군 제3함대사령부) △한광명원사(52·육군 제56사단) △이해우상사(48·해병2사단) △신영자중사(28·특전사 여군중대) 6·25 44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사가 초청한 국군모범용사와 배우자 1백20명은 지난 20일부터 5박6일동안의 산업시찰과 관광을 마치고 경주에서 마지막 밤을 보낸뒤 25일부터 휴가길에 올랐다.제31회 모범용사 초청행사를 마무리하면서 좌담회를 마련,이들이 돌아본 후방에 대한 소감과 최근 북핵문제와 관련 고조되고 있는 전쟁위기와 함께 6·25를 맞는 용사들의 각오를 들어본다. ▲이수형소령=이번 행사는 저의 군생활동안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될 것입니다.휴전선 철책에서,하늘에서,바다에서,산간오지에서 묵묵히 국토방위에 열중하고 있는 장기근속 하사관을 중심으로 31년째 이같은 행사를 마련해주고 있는 서울신문사에 대해 전 장병과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번 5박6일간의 행사가 육·해·공 전군에서 선발된 모범용사들이 모여 서로를 알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돼 더욱 뜻깊었고 군 사기진작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사회 전반에 걸쳐 개혁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마련된 이번 행사는 우리들에게 사회 곳곳에서 일고 있는 변화의 바람과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이번 행사가 어렵게 생활하는 군인가족들에게도 많은 위안이 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따뜻한 환대 감사 ▲한광명원사=오늘이 제가 군생활을 시작한지 만 34년 10일째입니다.긴 군생활중 집사람과 함께 이처럼 마음놓고 여행을 즐겨본 적이 없었습니다.TV 등에서만 보아왔던 대통령과 국회의장·국방부장관 등 고위인사들이 우리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데다 우리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많은 지원을 약속해줘 사기가 충천된 느낌입니다. 이같은 기회가 유능한 후배들에게도 계속 주어지길 바라고 산업현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후방의 국민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맡은 바 국토방위의 임무를 다하겠습니다. ▲주영호원사=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진 곳에서 31년동안 파도와 싸우며 지내왔는데 이번 모범용사 초청에서 어디를 가나 우리들을 환대해줘 얼떨떨한 느낌입니다.모범용사로 뽑혀 모처럼 아내와 여행도 함께 할수 있게돼 가장으로서의 체통도 세웠다고 생각합니다. ▲신영자중사=오는 12월 상사 진급대상으로 10년 동안의 군생활을 하면서 이 길을 잘 선택했다는 생각입니다.특히 승진과 보직 등에서 남자들과 전혀 차별없는 대우를 받고 있어 여군들의 사기는 의외로 높습니다. 최근에는 여군들에게 대학진학 기회도 주어지고 있어 자기실현 의지가 강한 여성들은 군에 입대,남성들과 당당히 능력을 겨뤄 보도록 권하고 싶습니다. ○적격퇴 전투력 충분 ▲김종배원사=하늘의 불침범 역할을 하면서 30년 가까운 군생활동안 후회도 많았지만 서울신문사에서 우리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아 무엇보다 고맙게 생각합니다.군부대에 돌아가 동료병사들에게 사회가 우리를잊지않고 있다고 전하고 우리나라 공군력이 세계 어느 곳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만큼 뛰어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북핵문제로 나라 전체가 뒤숭숭하지만 국민들은 우리를 믿고 국가건설과 생업에 열중하기를 바랍니다. ▲이해우상사=김영삼대통령의 말씀처럼 싸우지 않고 적을 이기는 것이 최선이지만 우리의 전투력은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충분히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이곳에 모인 모범용사들은 모두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충실하고 명예로운 군생활을 꾸려왔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전쟁이 일어날 경우 목숨을 바쳐 국토를 방위할 각오입니다.그러나 최근 일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북한의 호전성을 외면한 무분별한 시위가 격화되고 있어 민주통일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이소령=이같은 북핵 위험속에 또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까지 겹쳐 크게 걱정이 됩니다.그러나 창원공단 등지의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는 산업역군을 대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뿌듯한 자부심도 느꼈습니다.이번 행사로 얻은 산 경험을일선 전 장병들에게 알려 사기를 드높이는 한편 더욱 굳건한 안보태세를 확립해 나가겠습니다. ○군사기 매우 높아 ▲김원사=문민정부 출범이후 군의 개혁과 함께 장기근속 하사관들에게 아파트를 공급해주는 등 처우가 크게 개선됐고 복무기간도 2∼3년 연장돼 군의 사기가 어느때보다 높습니다.구타가 완전히 없어지고 교육훈련 및 작업이 대부분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등 병영생활이 크게 달라지면서 전군의 전투력이 배가되고 있습니다.44년전 6·25때와는 군의 전투력이 하늘과 땅 차이로 달라져 국민들이 전적으로 우리를 신뢰해도 될 것입니다. ▲신중사=여군도 이제는 단순한 행정보조역에서 벗어나 전투·병참·군수·정보등 다양한 병과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결혼을 앞둔 나이지만 결혼후에도 군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국가를 위해 계속 봉사할 생각입니다. ▲주원사=모든 군이 국민의 군대,민주군대로 거듭 태어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최근 일부대학생들의 과격시위 및 집단파업 등은 민주사회로 가는 과도기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국민들의피해가 너무 클 뿐 아니라 국가안보에도 저해요소가 될 것입니다.언론에서 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소령=서울신문사의 배려로 보낸 5박6일을 우리 모두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이 기간동안의 각종 경험을 각 부대에 돌아가 다른 전우들에게 알리고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전쟁 억제를 위해서는 국민들의 투철한 안보의식과 사회기강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후방에 있는 국민들이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 “연대파업 막으려 공권력 투입”/농성 기관사 연행 정부입장

    ◎경제손실·국민불편 등 최소화 도모/“전기협서 협상 거부… 불가피했다” 정부가 철도파업예정일을 나흘 앞둔 23일 새벽 「전기협」의 전국 14개 농성장에 공권력을 전격투입한 것은 파업주도핵심인물을 신속하게 검거함으로써 연대파업을 미연에 막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까지 협상여지 없이 악화일로를 치달은 상황전개과정을 미루어볼 때 파업돌입은 이미 명백한 수순인 만큼 「전기협」에 시간만 벌게 할 필요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검찰관계자는 『철도파업에 이어 「전노대」소속 노조의 동조등 연대파업이 이뤄질 경우 파급효과가 엄청난데다 국민들의 불편가중및 경제에 미칠 치명적 영향등을 고려,신속하게 공권력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관계당국은 22일 하오8시 철도청과 「전기협」,그리고 철도노조가 참가하는 협상테이블을 「전기협」측이 일방적으로 거부한 데 따라 더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했다고 밝히고 있다.「전기협」이 대화에 응할 뜻이 없음을 최종확인했다는 것이다.이날 하오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을 기다린 뒤 14개소의 농성장에 최후의 퇴거명령을 내렸으나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최훈철도청장은 자정쯤 공권력투입을 정식요청했다. 공권력투입은 이미 지난 20일 노동·법무·교통·내무등 4부장관의 담화문발표당시 예견됐고 최청장이 여러 차례에 걸쳐 요청했으나 보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23일 상오4시를 D데이 H아워로 정한 것은 20일 담화문발표와 함께 공권력투입설이 나돌면서 그동안 몸을 피한 「전기협」지도부가 다시 농성장에 나타나고 최소한 파업당일까지는 공권력투입이 없을 것이라고 낙관해온 허점을 노린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검찰과 경찰은 이날 지도부가 모두 농성장에 모여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상태에서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정한 22일의 협상이 결렬되자 투입을 결정했다.그러나 서선원의장등 핵심인물들은 이미 잠적,이들의 신병확보에는 실패했다. 공권력투입을 지휘한 최환대검공안부장은 『공권력투입은 지난 16일 파업을 선언한 직후부터 가능했으나 백보양보해 기다려온 것』이라며 『그러나협상기회제공에도 불구,사태가 호전기미를 보이지 않아 땅에 떨어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권력을 투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특히 지금까지 공무원이 집단농성에 들어간 예가 없었다는 점을 들며 강경진압은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결과적으로 이번 공권력투입이 핵심인물검거실패및 협상여지를 없애 국민들의 불편만 앞당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자 검·경및 철도청은 이번주안으로 어떤 식으로든 철도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을 펴고 있다. 하지만 공권력투입사실이 알려지면서 연대파업이라는 「전기협」과의 사전약속과는 달리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지하철노조가 24일 상오부터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고 나서 사태진정까지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 남북정상회담 추진 경과/81년1월 전전대통령 첫 공식제의

    ◎김대통령,93년 2월 취임사서 표명/김일성,90년 방북대표에 처음 언급 남북한정상회담이 우리측에 의해 공식제의된 것은 81년1월 당시 전두환대통령에 의해서다.그러나 그에 앞서서도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는 노력은 있었다. 이승만대통령이 이끌던 자유당정권은 「북진통일」이 국시였다.남북정상회담은 상상조차 못하는 분위기일 수밖에 없었다.60년 4·19혁명이 일어나자 남북대화의 기운이 일었지만 정상회담 개최논의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대통령의 「5·16정부」는 처음 반공을 강력히 내세우다 보니 정상회담추진이 어려웠다.72년에 들어서야 남북조절위가 열렸고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특사 사이에 남북정상회담논의가 비공개로 있은 것으로 알려진다.박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공개적인 운을 뗀 것은 집권말기인 79년1월이었다.그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당국이 어떤 시기·장소·수준이든 조건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남북정상회담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긴 했지만 직접표현에는 신중을 기했다. 전두환대통령은 80년 정권을 잡자마자 정상회담개최에 집념을 보이기 시작했다.81년1월 국정연설에서 「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안,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의사를 밝혔다.전대통령은 거의 매년 8·15 경축사등을 통해 북한이 회담에 응할 것을 촉구했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남북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8월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주석과 만날 뜻을 피력했다.또 88년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소상히 밝혔다. 김영삼대통령은 최초의 「문민정부」답게 남북정상회담에 접근하고 있다.김대통령은 지난해 2월 취임사에서부터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획기적 전제아래 정상회담을 제안했다.올해 들어서도 취임 1주년회견에서 남북한정상회담의 조기개최의지를 천명했다. 「5공」과 「6공」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정통성 확보의 가장 효율적 수단으로생각한 듯 비밀협상을 통해 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5공」 때는 장세동안기부장,「6공」 때는 박철언청와대특보가 나서 북한의 고위당국자와 해외에서의 만남 혹은 상호방문등으로 깊숙한 논의를 진전시킨 것으로 전해진다.북한에 대한 대대적 경협이 정상회담개최의 대가로 제시되었다.그러나 이러한 당시 정부의 노력은 북한측의 기만적 태도로 번번이 무산되곤 했다. 북한은 해방직후부터 최고당국자의 만남을 거론해왔다.하지만 그것은 모든 정당·사회단체대표들의 회담으로 우리 내부를 교란시키려는 통일전선전략의 일환이었다.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의사를 비췄으나 무게가 실리지 않은 듯했다.지난 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의사를 밝혀 기대를 부풀게 했으나 역시 구두선으로 끝났다. □남북한 정상회담 관련 일지 ▲81년1월12일=전두환대통령,남북한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제의(국정연설) ▲81년6월5일=전대통령,남북한당국최고책임자간 직접회담제의(평통정책자문회의 개회사) ▲81년7월1일=북한금일성주석,우리측 제의 거부 ▲88년2월25일=노태우대통령,김일성과 대화용의 표명(대통령취임사) ▲88년8월15일=노대통령,김일성과 회담제의(8·15경축사) ▲88년10월18일=노대통령,평양방문 회담용의표명(유엔총회연설) ▲93년2월25일=김영삼대통령,김일성과 회담용의표명(대통령취임사) ▲93년5월25일=북한 강성산총리,특사교환통한 정상회담논의제의(대남전통문) ▲94년2월25일=김대통령,핵문제관계없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의사천명(취임1주년회견) ▲94년6월16∼17일=김일성,남북정상회담 수락의사표명 ▲94년6월18일=김대통령,김일성주석 제의 즉각수락
  • 손발 안맞는 미외교/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평양을 방문중인 카터전미대통령의 「대북제재중단」발언 보도를 접한 17일 워싱턴은 이를 부인하느라 온통 북새통을 떨었다. 클린턴행정부의 북핵정책조정팀장인 로버트 갈루치차관보가 이른 아침 미공영방송인 PBS­TV에 나와 이를 부인한데 이어 디 디 마이어스백악관대변인도 이를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시카고를 방문중인 클린턴대통령도 이날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우리 입장은 어제 내 기자회견에서 한치도 변함이 없다』면서 북한의 핵동결의사가 진심인 것으로 확인되면 대화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갈루치차관보는 이날 하오 다시 국무부에서 특별브리핑을 통해 『어제 카터전대통령에게 우리의 입장을 밝힌 성명을 분명하게 읽어주었다』면서 『북한이 재처리를 하지 않고 연료를 재장전하지 않으며 핵안전조치를 준수하면 3단계 미­북 고위회담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제재중단」은 전혀 언급이 없었음을 다시 밝혔다. 결국 카터전대통령이 클린턴행정부의 향후 대응방향을 「감」으로 파악하여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즉석 사제선물」을 준 것이라는 설명과 다름없다.더구나 2차 면담이 김주석의 전용 요트에서 진행된 점과 화면에 비친대로 두사람이 포옹을 하는등 「우의에 넘치는 분위기」때문에 카터씨가 뭔가 환대에 대한 보답을 해야겠다는 심적 부담을 느꼈을 법도 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카터씨는 전날 3시간여에 걸친 1차 면담후 워싱턴에 전화로 「김주석의 화해제스처」를 가감없이 전달했고 직접 클린턴대통령과도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카터씨는 워싱턴의 갈루치차관보의 승인을 얻은뒤 CNN 현지수행취재진과 면담내용공개 회견을 갖는등 나름대로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클린턴대통령도 이같은 1차 면담내용을 고위안보관계자들과 숙의를 한뒤 직접 TV회견을 통해 미측의 환영반응을 밝혔던 것이다. 클린턴행정부의 북핵문제의 큰 방향은 이미 대화쪽으로 돌았다.카터전대통령의 「제재중단」발언도 따지고 보면 이런 기류를 솔직하게 북측에 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설령 카터씨가 「개인적인 감」을 성급하게 공표한 것이라 해도 그의 방북의 성격상 우방국들에 혼선과 당혹을 안겨준 문제등 외교적 부담은 당연히 클린턴행정부의 몫이라 할 수 있다.『한 시민의 개인적 방문』이라고 넘겨버리려 한다면 이는 클린턴행정부 스스로가 외교적 치밀성의 결여를 자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 북방누빈 정상외교의 역사성(사설)

    김영삼대통령이 6박7일간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방문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정력적이고 역동적인 YS외교 스타일이 다시한번 돋보인 북방여정이었다.북한 핵제재를 놓고 한국 미국 러시아의 삼각정상간 전화회담까지 이루어짐으로써 시의성이 한층 두드러진 현장외교였다.냉전의 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새로운 세기를 설계하는 역사성이 어느때보다 큰 정상외교였다. 얼마전에 작고한 닉슨 전미국대통령은 러시아의 민주개혁과 경제적번영의 성공여부야말로 다음세기의 세계진운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러시아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했느냐의 여부에 금세기 지도자들의 사후평가가 달렸다고까지 그는 말했다.그만큼 러시아는 세계역사의 방향을 좌우하는 중요한 나라이며 다시 강대국이 되는 것은 필지라는 판단에서다.북한의 맹방이었고 국경을 맞댄 러시아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있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번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에서 대등한 동반협력관계를 구축한 것은 4각외교의 완결인 동시에 장기적인 관계발전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구소련의 최대군사요충인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태평양함대 사령부 방문이 상징하듯이 한·러 화해와 안보협력의 새시대를 연 것은 획기적이라 할 만하다.서울과 모스크바에 핫 라인의 설치,러 북한 우호조약의 사문화 선언,그리고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무기부품공급 중단등의 합의가 그것이다.이에따라 군사협력의 차원으로까지 발전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됐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안보협력의 합의가 김대통령의 외교역량이 직접적으로 발휘된 결과라는 점이다.핵심을 파고들어 대담하게 담판을 벌이는 뚝심과 인내의 스타일로 옐친대통령과 심야까지 협상을 벌여 얻어낸 성과였다.정상외교가 저절로 성공하는 것이 아님을 알수 있다.더구나 옐친대통령의 별장초대와 카리모프대통령의 전일정 직접안내등 파격적인 환대는 김대통령과 클린턴,옐친간 삼각통화와 더불어 높아진 우리의 위상을 반영하는 징표다. 그만큼 우리의 자본과 기술등 경제협력에 대한 희망이 크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번에 이루어진 모든 합의사항이 철저히 이행되도록후속조치에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김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과 연해주방문의 뜻도 각별하다.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쫓겨간 20만 동포들의 슬픈 역사를 씻고 조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이미지를 가슴속에 심어준 것이다.항일독립운동의 거점이었던 연해주에 들른 것은 민족사 재정립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를 나타내 주었다. 재외 한인들은 우리와 한 뿌리로서 세계진출의 교두보가 될수 있다.한민족 문화공동체형성이라는 차원에서 이들을 한데 묶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정상외교의 성과를 확대해가는 다방면의 노력이 지속적으로 기울여져야 한다.
  • “북핵저지” 북방원군을 얻다/김 대통령,러·우즈베크 순방 결산

    ◎대북 무기공급 차단 최대 성과/「자원­자본합작」 실리외교 펼쳐/양국의 환대 극진… 높아진 한국의 국제위상 실감 김영삼대통령에 대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환대는 극진했다.한국의 경험과 자본·기술이 필요한 나라인 탓으로 보였다. 6박7일에 걸친 여정이 막상 북한핵문제에 묻혀 지나갔지만,러시아방문은 강대국과 주고받는 외교,우즈베키스탄방문은 실리외교의 가능성을 시험했다는 점에서 우리외교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인구 2천만을 가진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대통령은 김대통령내외가 머문 2박3일내내 일반정무를 젖혀두고 김대통령의 「안내자」를 자임해 눈길을 끌었다.카리모프대통령은 김대통령의 공항도착부터 영접을 시작해 김대통령일정의 거의 대부분에 동반했다. 카리모프대통령은 첫날 김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시내로 들어와 곧바로 단독정상회담을 가졌고 이어 저녁에는 공식만찬을 베풀었다.이틀째인 5일 상오에는 비행기로 왕복 1시간이 걸리는 사마르칸트까지 동행했고 하오에는 타슈켄트교외의 「김병화」농장 시찰을 끝까지 함께 했다.마지막날인 6일에는 단독·확대정상회담,공동기자회견,공항환송행사에 참석했다.대통령의 외국방문 때면 대통령승용차에 늘 동승하게 마련인 우리 대사조차 김대통령을 만나기가 힘들 정도였다. 김대통령이 움직이는 도로는 양쪽차선 모두가 통제됐다.김병화농장의 진입로는 한국대통령의 방문을 위해 새로 포장을 했다는 것이 현지의 설명이었다. 그런 환대를 베풀면서 카리모프대통령은 연설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국의 도움으로 한국과 같은 발전을 이루고 싶다는 점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한국의 경제개발경험및 기술·자본과 우즈베키스탄의 풍부한 지하자원의 결합을 희망했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환대 역시 카리모프대통령에 뒤지지 않았다.다차(국영별장)정상회담에 선보인 「귀머거리새」요리는 러시아측이 보여준 환대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귀머거리새는 몸무게가 8㎏에 이르는 늪지대의 깊은 산속에 사는 희귀조다.발정기 때 노래를 하면 귀가 들리지 않는다 해서 귀머거리새로 이름이 붙었다.노래를 하는 동안에만 다가갈 수 있어 새를 발견하고도 가까이 접근하는 데 보통 4∼5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옐친대통령은 김대통령을 접대하기 위해 1주일전부터 대통령경호대에 귀머거리새를 잡을 것을 지시,만찬당일에야 가까스로 잡는 데 성공했다.엘친대통령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자랑했다.다차정상회담이 공개된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는 게 모스크바의 설명이었다. 김대통령이 제기한 안보관련 요청을 모두 받아들인 것도 경제협력확대의 기대 때문으로 해석된다.옐친대통령은 김대통령의 북한 무기공급중단을 숙고끝에 합의했고,유엔 안보리에서의 북한핵제재에도 적극적인 동참을 약속,국제사회의 제재분위기를 성숙시키는 역할을 했다. 러시아는 북한문제로 주고받는 관계가 가능한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최선진국인 일본과의 경협보다 더 우선시하고 있다.러시아방문은 강대국과도 주고받는 동등한 외교가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러시아가 자랑하는 테러진압부대인 「알파부대」는 기자단의 숙소인 슬로반스카야호텔에서 회합을 갖던 마피아보스 7∼8명을 현장에서 체포,한국대표단에게 러시아의 치안이 살아나고 있음을 이해시키려 애쓰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문기간 국내에서 경협문제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북한핵문제가 급부상한 탓이기도 하다. 옐친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실천이 늦어지고 있는 야쿠트가스전의 개발타당성조사를 위해 두나라가 1천만달러씩을 출연하자는 제의를 해 김대통령의 합의를 이끌어냈다.가스관이 북한을 경유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한국기업의 투자,특히 연해주와 시베리아에서의 합작투자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우즈베키스탄은 이웃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카자흐스탄·투르크스탄등 「스탄」으로 표기되는 나라들 사이의 경제주도권다툼속에 있다.한국의 경제개발경험과 기업투자에 대한 욕구가 어느나라보다 강하게 느껴졌다.김대통령은 우즈베키스탄의 환대에 자동차·전자·통신·보건의료분야에서의 합작투자를 장려하겠다고 화답했다.강대국 중심외교에서 벗어나 우리를 기다리고,우리에게도 필요한 곳을 찾는 실리외교의 첫 시도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영삼대통령 기자간담회 요지/귀국즉시 클린턴과 북핵 다시 논의/중국도 한반도 평화노력 동참할것/한·미연합전력 북도발 충분히 저지 ▲김대통령=북한핵 문제와 관련,세계 절대다수의 국가들이 이대로 묵과해서는 안되며 유엔의 제재로 갈 수 밖에 없다는 분위기입니다.우리 정부도 유엔안보리 이사국들과 개별적인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끝내 제조하려는 대상은 딴 나라가 아닌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간단히 얘기해서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야욕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핵은 단 한개는 물론 반개도 허용할 수 없으며 반드시 이를 저지할 것입니다.이는 7천만 민족의 생존과 한반도·동북아,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한 절체절명의 문제입니다.북한이 끝내 이러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한다면 그들은 자멸과 파멸의 길로 갈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24시간 북한의 동향을 감시하고 있으며 현재로서는 특이한 군사동향이 없습니다.우리군과 미군및 유엔군의 군사력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충분히억지할 수 있습니다. 이번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방문은 시기적으로나 내용면에서 대단히 큰 의미를 갖고 있으며 실질적으로도 성공적이었습니다.특히 옐친러시아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안보와 관련,만족스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봅니다.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대한 우리의 처지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남북한 대화가 반드시 있어야 하며 모든 결정에서 국제사회와 더불어 협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또 핫라인을 통해 언제든지 협의하자고 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방문은 한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위한 교두보 확보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를 통해 우리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우리정부로서는 투자조사단의 파견을 검토하겠습니다.우즈베키스탄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우리의 기술및 자본이 결합할 때 큰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카리모프대통령에게 이곳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했고 카리모프대통령도 열심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북한제재문제에 대해 중국과도 협의를 하고 있습니까. ▲김대통령=중국과도 현재 충분히 협의중이며 미국도 중국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습니다.한반도의 비핵화와 북한이 핵을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국의 뜻입니다.또한 지난번 유엔안보리의 의장성명 채택도 중국의 의사를 존중한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부담스럽게 느낄 것이고 따라서 중국도 결국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반도상황과 관련,주한미군의 군사력이 증강되고 있습니까. ▲김대통령=한미 양국은 강력한 국방력을 갖고 있습니다.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의 군사동향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따라서 국민들은 안심하고 정부를 믿고 생업에 종사해주길 바랍니다. ­클린턴대통령과 안보리의 제재문제를 다시 협의할 필요는 없는지요. ▲김대통령=35분동안 통화하면서 충분한 얘기를 나눴지만 귀국하면 클린턴대통령이 전화하든지 내가 하든지 다시 통화를 하기로 했습니다.
  • 푸슈킨시 낭송에 모스크바대생 환호(김 대통령 방북여로)

    ◎“한·러 개혁 동반… 21세기 아태 이끌자”/“해국풍습 간직 감명” 위민지원 다짐 김영삼대통령은 모스크바 출발을 하루 앞둔 3일(이하 현지시간) 모스크바주재 한국특파원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진뒤 모스크바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러시아 각계 인사들과 잇따라 만나는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모스크바 교민리셉션◁ ○…김대통령과 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하오 모스크바에서의 사실상 마지막 일정으로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열린 현지 교민들을 위한 리셉션에 참석. 약1백80명의 교민들이 참석한 리셉션장에 도착한 김대통령은 행사장을 돌며 참석인사들과 인사를 나눈뒤 헤드테이블에 앉아 동석자들과 잠시 환담. 이어 정흥식연방하원의원(43)이 교민들을 대표해 김대통령의 러시아방문을 환영한다고 인사.정의원은 러시아이름이 「정 유리 미하일로비치」로 사할린 출신이며 현재 지역구는 시베리아의 이르쿠츠크. 연설에서 김대통령은 지난 89년과 90년 소련방문 때는 외교관계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고 교민들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었다고 소개하고 『오늘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의 국빈으로 이곳에 오게되어 참으로 감회가 깊다』고 소감을 피력. 김대통령은 또 『교포사회가 여러가지 역경에도 불구하고 100년이 넘는 동안 한국의 문화와 풍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하고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든든한 후원자가 될 것』이라고 교포사회에 대한 지원을 다짐. ▷공식환송식◁ ○…김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4시30분 크렘린궁을 방문,옐친대통령내외의 공식환송을 받고 모스크바에서의 공식일정을 마무리. 김대통령내외는 승용차편으로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크렘린궁에 도착해 현관에서 쉐브첸코 러시아의전장의 영접을 받고 환송식이 열린 게오르기예프스키홀에 입장. 홀 중앙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옐친대통령내외는 김대통령내외가 들어오자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으며 양국정상들은 나란히 서서 기념촬영. 이어 양국국가가 연주됐고 김대통령내외는 쉐브첸코의전장의 소개로 러시아측환영인사들과,옐친대령내외는 신두병의전장의 소개로 우리측 수행원들과 작별인사.15분동안의 공식환송식이 끝나자 양국정상내외는 홀 입구에서 악수로 아쉬운 작별인사를 교환. ○…김대통령은 이날 공식환송식 참석직후 다닐로프수도원을 방문,러시아정교의 알렉세이대주교와 20여분동안 환담. 김대통령은 이어 수행원 숙소인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옛소련의 대표적 반체제인사인 사하로프박사의 미망인 일레나 보네르여사를 접견. ▷한·러경제인오찬◁ ○…김대통령은 이날 낮 러시아의회와 정부및 경제계지도자와 양국 기업인등 80여명을 메트로폴호텔로 초치,오찬을 나누며 미래지향적 경제협력관계를 강조. 김대통령은 이날 「한·러 경제협력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라는 제목의 오찬사에서 『양국이 정치·사회뿐 아니라 경제분야에서 추구하고 있는 변화와 개혁은 냉전종식과 UR타결이후 새로이 형성되고 있는 국제질서속에서 공동번영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역설. 김대통령은 『양국은 90년 수교이후 교역과 투자가 꾸준히 증가하면서 경제협력형태도 과학기술협력,자원협력,건설협력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면서 『그러나우리는 결코 이 정도 결과에 만족해서는 안되며 한차원 높은 협력을 위해 노력하자』고 강조. 김대통령은 두나라 경협에 대해 『바로 눈앞에 있는 조그만 이익보다는 장기적이고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보다 큰 이익을 중시해야 한다』면서 『21세기를 내다보면서 인내를 갖고 당면과제를 하나 하나 풀어갈때 비로소 경제협력이 결실을 볼수 있다』고 상호보완적인 협력관계를 강조. ▷모스크바대 학위수여식◁ ○…모스크바대학에서 이날 낮 명예정치학박사학위를 수여받은 김대통령은 학위수여를 기념하는 「새로운 문명을 향하여 자신과 용기를」이란 제목의 연설을 통해 『양국 청년들이 우정과 협력을 통해 유러시아협력의 아름다운 가교를 건설해달라』고 소망. 사도브치총장으로부터 소개를 받고 단상에 오른 김대통령은 『한국국민들은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감명받고 있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통해 러시아 국민과 예술적 영감을 함께 나누고 있다』고 러시아 문화 칭송으로 연설을 시작. 김대통령은 『본인이 어려울때마다 러시아의 위대한 국민시인 푸시킨의 시를 낭송했다』면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지 마라.성내지 마라.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옴을 믿어라』라는 싯구를 인용하면서 이날 연설을 마쳐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마친 김대통령은 대학측이 마련한 리셉션장에서 대학관계자들과 잠시 환담. 사도브니치총장은 『김대통령의 방문은 모스크바대학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라고 환영의사를 표현. ▷모스크바시장접견◁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유리 루시코프 모스크바시장을 접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방문동안 모스크바 시민들이 보여준 환대에 감사의 뜻을 표시. 김대통령은 『역사와 문화의 도시인 모스크바를 방문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지만 세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특히 모스크바 거리 곳곳에 넘쳐있는 생동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면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신한국은 앞으로 좋은 동반자가 될 것』이라고 인사.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에 대한 김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에 감사한다』면서 『김대통령의 이번 방문이 두나라의 우의와 신뢰를 깊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고 답례. 루시코프시장은 모스크바시는 물론 연방정치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친옐친계 실력자로 매년 모스크바강에서 펼쳐지는 겨울수영에도 빠짐없이 참가한다고. 김대통령은 이어 노벨물리학 수상자로서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산하 일반물리연구소장인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를 접견하고 양국의 과학기술발전과 협력문제에 관해 환담. 알렉산드르 프로코예프박사는 올해 78세로 60년대말 레이저 분야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의 과학기술협력문제에 적극적인 세계물리학계의 거물. ◎한국어학습 둘러보며 격려 ▷손여사 한국학교방문◁ ○…대통령부인 손명순여사는 이날 상오 모스크바시내에 있는 한국학교를 방문,모스크바 주재원 자녀들의 유치원 및 국민학교수업을 살펴보고 학생들을 격려. 손여사는 김석규주러시아대사 부인과 함께 한국학교에 도착,이문직교장 등 교사들의 환영인사를 받고 방명록에 「밝고 맑고 아름답게」라고 서명한 뒤 요리실습과 글짓기학습을 받고 있는 1,3,4학년 수업을 참관. 한편 손여사는 이날 낮 숙소인 영빈관에서 우리 대사관 직원부인들과 점심을 함께 한데 이어 하오에는 옐친대통령의 부인 라이나여사의 안내로 모스크바의 한 아파트단지에 있는 탁아소를 방문.
  • 한­미 국방,「핫 라인」 첫 가동/어제 15분간 통화

    ◎북한핵문제등 양국 군사현안 협의/일명 「블랙폰」… 비화기 설치,완벽보안 유지 서울과 워싱턴을 잇는 한·미양국 국방장관간 직통전화(핫라인)가 처음으로 가동됐다. 이병대국방부장관은 20일 상오7시30분부터 15분동안 장관집무실에 설치된 직통전화선을 통해 페리 미국방장관과 통화를 갖고 북한핵문제를 비롯한 양국간 안보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양국 국방장관의 전화통화는 지난 4월19∼21일 방한한 페리 미장관과 이장관이 서로 「핫라인」을 개설,긴급현안을 논의키로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이장관은 이날 페리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핵문제와 관련,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진행중인 사찰을 지켜보며 양국간에 긴밀한 협력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자고 말했다. 또 ▲북한측의 정전위 철수및 평화협정체결 제의문제 ▲최근 이장관의 일·러·독등 3국순방 결과등 군사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양국장관은 이날 앞으로 주요국방현안에 대해 수시로 직통전화를 통해 의견을 교환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통화는 이장관집무실에 설치된 일명 블랙폰으로 불리는 비화기(비화기)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배석자 없이 영어로 진행됐다. 이 비화기는 일반전화기와 같은 모습이지만 전화기내부에 음성을 암호화하는 암호전환장치가 들어 있어 통화즉시 음성이 암호로 바뀐다. 암호로 변경된 대화내용은 한미연합사 전화교환대를 거쳐 통신위성이나 해저광통신케이블을 통해 미국방성 교환대로 바로 전달된다. 미국방성 교환대는 이 암호전화를 페리장관의 비화기로 연결하고 이 비화기에서 자동으로 암호가 다시 이장관의 음성으로 전환돼 양국장관이 서로 대화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 거북선 상판송곳 6점 발견/충무공 유물발굴단/여천 신덕앞바다서

    【여천=남기창기자】 전남 여천신덕앞바다에서 임란유물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는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발굴단(황동환대령)은 11일 거북선 도추(거북선 상판에 있던 송곳)로 추정되는 쇠송곳 6점을 무더기로 발견했다. 이날 인양된 거북선 도추는 거북선 상판에 꽂혀 있던 송곳으로 추정되며 총길이가 30㎝,손잡이 13㎝(직경 1.4㎝)로 칼날부분의 길이만 17㎝(직경 0.8㎝)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지금까지 발굴단이 이 해역에서 발굴한 임란관련 유물은 24점으로늘어나 4백년전 건조된 것으로 알려진 거북선의 인양가능성을 한층 높게 해주고 있어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가스공사 인수/대정부 건의서/석탄협회

    석탄협회(회장 이연)는 28일 회원총회를 열고 수의계약에 의한 가스공사의 인수를 정부에 건의키로 했다. 석탄협회는 이날 채택한 대정부건의서에서 『가스공급의 증가로 석탄산업의 사양화가 계속되고 있으나 정부의 재투자규제정책에 묶여 사양화에 대비한 투자도 하지 못한 채 폐업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업종전환대책으로 수의계약에 의한 가스공사의 인수를 건의한다』고 밝혔다.
  • 불 약탈 도서 영구임대/정부,「반환방식」 결정… 내주 통보키로

    정부는 지난해 한·프랑스정상회담에서 미테랑대통령이 약속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영구임대방식」으로 정하고 다음주 프랑스정부에 공식통보할 방침이다.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21일 『그동안 관련부처와 문화계·학계인사들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최소한 영구임대 방식으로 규장각도서를 반환받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면서 『따라서 정부는 다음주중 주프랑스대사관을 통해 프랑스측에 우리정부의 방침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프랑스와 1차 협의를 갖고 반환방식을 논의했으나 프랑스측이 『국내법상 영구임대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자 「자동연장이 가능한 시한부 교환대여 방식」을 신중히 고려해왔었다. 사실 자동연장이 가능한 시한부 교환대여 방식으로 도서를 반환받고 난뒤 프랑스측이 어느 시점에서 자동연장을 취소하게 되면 법률상 도서들을 다시 프랑스측에 되돌려줘야 한다. 이 당국자는 『이러한 사정을 감안할 때 반환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 충무공 유물발굴단/내일부터 탐사재개

    【여천=남기창기자】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단장 황동환대령)의 해저탐사가 오는 18일부터 재개된다. 16일 전남 여천시에 따르면 해군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은 오는 18일부터 내달 3일까지 백도인근 해상과 돌산 무술목해상에서 탐사작업을 재개한다.
  • 프로야구 개막(외언내언)

    1982년 3월27일 하오2시24분,서울 동대문구장.2만7천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시 전두환대통령이 힘차게 던진 시구가 MBC 유승안포수의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주심의 손이 번쩍 올라갔고 관중들은 박수를 보냈다.한국의 프로야구가 출범의 고동을 울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프로야구가 탄생한것은 1869년,일본은 1936년.미국은 한세기가 훨씬 넘었고 일본도 58년이나 됐다.한국은 12년.초창기에는 탈도 많았고 말도 많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성장해서 지금은 제1의 인기프로스포츠로 자리를 굳혔다.지난해 4백87만명의 관중을 동원했으며 올해의 관중동원 목표는 5백만명. 올시즌의 한국프로야구가 9일 전국의 4개 구장에서 일제히 개막되어 6개월의 대장정에 돌입한다.오는9월9일까지 총 5백4게임이 치러지는데 한팀당 경기수는 1백26게임.7월14일까지 상반기 리그를 끝내고 7월22일부터 후반기리그에 들어간다.미국 프로야구는 지난4일 개막됐고 일본은 한국과 같은날 플레이볼된다. 올시즌에도 어느팀이 우승하고 어느팀이 돌풍을 일으킬지,또 어느선수가 MVP(최우수선수)의 영예를 차지하고 신인왕에 오를 루키는 과연 누구일지등이 관심의 표적.그뿐만이 아니다.「통산 6천호 홈런」 「1천5백 탈삼진」 「8백 타점」의 주인공들이 탄생,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구게 될 것이다.또 올해는 미국프로야구 LA다저스팀에 스카우트된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프로스포츠는 경기만 치른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완벽한 팬서비스,현대적인 시설,선수들의 파인플레이가 삼위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한국프로야구의 현주소는 어떤가.경기내용은 제쳐놓고라도 팬서비스가 부실하고 시설도 보잘것 없다.출범 13년째를 맞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자성하고 개선해야할 대목들이다.
  • “김대통령 오시자 날씨도 좋아졌다”/호소카와(김대통령 방일여로)

    ◎“중학땐 축구선수… 이젠 야구 더좋다”/김 대통령 ▷일왕 작별◁ ○…김영삼대통령은 호소카와 일본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숙소인 영빈관에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아키히토(명인)일왕내외의 예방을 받고 작별인사를 교환. 김대통령내외는 영빈관 현관홀에서 아키히토일왕내외를 맞아 「아사히노마」로 안내해 양측 의전비서관과 통역을 배석시킨 가운데 이번 방일결과등을 화제로 30여분 환담. 일왕내외는 환담을 마친 뒤 일의전장의 안내로 문앞에 도열한 우리측 공식수행원들과 작별인사를 나눴는데 내외 모두 한사람 한사람의 손을 한참동안 잡고 『지내는 동안 불편한 점은 없었느냐』 『맡은 분야에서 일본측과 충분한 얘기를 나눴느냐』 『중국에 가서도 만족스러운 논의가 있기를 바란다』는등의 인사를 건넸고 우리측 공식수행원들은 이에 『베풀어주신 환대에 감사한다』고 답례. ○하루에 3시간 수면 한편 김대통령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도쿄에 묵는 이틀밤 모두 3시간씩밖에 자지 못했다는 후문. ▷확대정상회담◁ ○…김영삼대통령의 방일 마지막날인 26일 김대통령과 호소카와총리는 영빈관에서 한·일확대정상회담을 갖고 1시간남짓 두나라의 경제협력문제를 집중논의. 김대통령은 회담장에 들어서면서 미리 와 있던 일본측 관방·외무·통상·과기장관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 『어젯저녁(호소카와총리주최 만찬)에 모두 뵌 분들』이라고 친근감을 표시. 호소카와총리는 『오늘 아침도 날씨가 훌륭하다』면서 『요새 도쿄는 계속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대통령각하께서 오시니까 날씨가 좋아졌다』고 인사. ▷조찬회동◁ ○…김영삼대통령은 이날 아침 숙소인 영빈관 소식당에서 호소카와 모리히로(세천호희) 일본총리와 조찬을 나누며 개인적 우의를 다지는 한편 북한핵문제와 두나라의 우호협력증진방안을 1시간여 논의. 김대통령은 상오8시 부인 손명순여사와 함께 조찬장에 도착,5분 먼저 온 호소카와총리내외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이어 김대통령은 호소카와총리와,손여사는 호소카와총리의 부인 가요코(개대자)여사와 원탁테이블의 옆자리에 앉아 날씨등을 화제로 환담. 김대통령은 『오늘 아침 조깅을 하다보니 하오에 있을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관람객들이 대기하고 있더라』면서 『우리나라도 축구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는데 요즘은 야구로 바뀐 것 같다』고 소개하고 『나도 중학교때는 축구선수였으나 지금은 야구를 좋아한다』고 부연.
  • 김 대통령 출국인사 요지

    나는 오늘부터 일주일동안 대통령 취임후 처음으로 일본과 중국을국빈자격으로 공식 방문합니다.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오늘의 국제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나라사이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지고 상호의존관계는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특히 UR이후의 새로운 세계무역질서는 무한경쟁에 접어들고 있습니다.이러한 시대변화속에서 한·중·일 세나라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함께 누리기 위해서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일본과 중국은 우리의 두번째와 세번째 교역국입니다.중국은 우리의 해외투자가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경제의 세계화 추세속에서 산업구조와 그 발전단계가 다른 세나라가 협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습니다.세나라는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각기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또 이번 방문에서 동아시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세나라가 협조할 방안에관해 깊이 있는 협의를 가질 것입니다.특히 북한의 핵문제는 우리의 직접 문제일뿐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정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IAEA핵사찰을 성실히 받지 않고 남북대화마저 일방적으로 단절하여 한반도의 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심지어 전쟁불사 등의 극언으로 우리 국민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미간의 굳건한 안보협력 체제아래 우리는 저들의 어떠한 도발도 단호히 물리칠 것입니다.우리는 결코 저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저들이 언제라도 자세를 바꾸어 대화에 응해올 수 있도록 문호를 열어둘 것입니다. 나는 이번 순방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 국제적으로 고립된 북한의 개혁·개방을 위해 두나라의 협력을 구할 것입니다.한·중·일 세나라는 북한의 핵문제 해결을위해 각기 해야할 몫을 가지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진정한 화해와 평화가 동아시아는 물론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매우 긴요한 일임을 두나라 지도자들에게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더이상 지구의 변두리 나라가 아닙니다.문민시대를 열고 세계 13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21세기의 중심국가중의 하나로 떠오르고있습니다.우리앞에 다가온 태평양시대의 새로운 질서형성에 적극 참여하고 기여하는 나라입니다. 우리 모두 자부심과 함께 사명감을 가집시다.개혁과 국제화로 우리의 꿈을 실현합시다.인류공영과 새문명 창조에 기여하는 나라를 만듭시다. ◎일왕 만찬사 귀국은 우리나라에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사람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밝혀지기 이전의 먼 옛날부터 이루어져 왔습니다.그리고 귀국으로부터 다양한 문물이 우리나라에 전달돼 우리의 선조들은 귀국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이와 같이 양국이 오랫동안 밀접한 교류를 하던 중 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었습니다.본인은 몇년전 이러한 점에 대해 매우 슬픈 마음을 표명한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도 변치않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전후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 국민과 흔들리지 않는 신뢰와 우정을 쌓기위해 노력하여 왔습니다. 최근 기쁘게 생각하는 것은 양국민들의 우호협력관계가 여러분야에서 진전되고 재작년 가야문화전을 비롯한 한국문화통신사 사업이나 작년 대전 국제박람회등 양국국민을 잇는 유대가 굳건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한 양국은 우호협력관계를 더욱더 강화시켜 미래에의 길을 개척해가야만 합니다. 「신한국 창조」와 일한 양국관계의 강화를 진지하게 추진하고 계시는 대통령각하의 금번 방일은 양국장래에 있어 커다란 의의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김 대통령 답사 나는 우리 두나라가 마음을 열고 내일을 향해 서로 협력하는,진정한 선린우호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귀국을 방문했습니다.양국관계는 금세기초 역사의 거센 바람과 격랑으로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그러나 더 이상 과거가 미래를 속박해서는 안될 것입니다.과거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진솔하게 받아들일 때 새로운 한일관계가 열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우리 두나라 국민이 이러한 자세로 여러분야에서 교류를 확대해가면 틀림없이 새로운 선린의 장이 열릴 것입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될 것입니다.우리 두나라는 새로운 세대를 여는 동반자로서 상호협력해 나가야 할 역사적 소명을 띠고 있다고 믿습니다.평화와 번영을 위한 양국의 확고한 의지와 경험은 새로운 아시아,새로운 태평양,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류의 도정에 커다란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두나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공통으로 추구하고 있습니다.아시아속의 한일,세계속의 한일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걸맞는 동반자 관계의 구축을 통해 21세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대장정에 앞장서야 할 것입니다. □과거사 관련 일본측 주요사과발언 발언자 일시·장소 발 언 내 용 히로히토일왕 84년9월6일 금세기의 한시기기에 있어서 양국 전두환대통령 간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방일만찬사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 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아키히토일왕 90년5월24일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 노태우대통령 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 방일만찬사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 의 념을 금할수 없음 가이후총리 90년5월24일 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 노태우대통령 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 방일회담 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 하게 된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리고자 함 호소카와총리 93월11월6일 과거 우리의 식민지지배시절에 한 경주정상회담 반도의 여러분들에게 예를들어 모 국어교육 기회를 빼앗거나 타국언 러을 강제로 사용케하거나 창씨개 명이란 이상한 일이 강제되고 중 군위안부,노동자의 강제연행등 각 종 문제가 있었음. 이러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강요당한데 대해 가해자로서 우리가 한일에 대해서 깊이 반성하며 이번기회에 다시한 번 진사드림 아키히토일왕 94년3월24일우리나라가 한반도의 여러분들에게 김영삼대통령 다대한 고난을 끼친 한시기가 있 방일만찬사 었음.우리나라 국민은 과거의 역 사에 대한 깊은 반성에 입각하여 귀국국민과 흔들리지 않은 신뢰와 우정을 쌓기 위해 노력해왔음
  • 더이상의 대북대화 필요한가(사설)

    북한은 핵개발을 포기하고 투명성을 보장할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남북대화도 할 생각이 없다.꼭 1년전인 작년 3월12일 특별사찰 거부및 핵확산방지조약 탈퇴선언후 최근의 특사교환 실무접촉등도 북한이 해온 행동들이 말해주는 결론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실무접촉에서 3월1일 사찰수용,팀스피리트중지,특사교환을 위한 실무접촉개시 그리고 21일 미국과의 3단계회담개시등에 합의한바 있다.그리고는 사찰수용과 남북실무접촉을 지연시키는등 약속을 위반했다. 핵을 포기하고 대화를 하겠다는 행동도 자세도 아닌 것이다.2차례 특사교환 실무접촉의 자세는 더욱 그렇다.핵전쟁연습중지와 국제공조체제 포기라는 조건에 패트리어트 배치중지와 우리대통령의 북핵반대발언 취소요구라는 생트집까지 잡고 나선 것이다.한마디로 특사교환대화를 안하겠다는 것이다. 특사교환이 무언가.북이 먼저 제의한것이다.핵을 포함하는 한반도의 모든 문제를 당사자인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특사를 통해 논의하자는 것이다.3단계 미·북한 고위급회담의 전제 조건이든 아니든그것은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할 남북공동의 과제인 것이다.북한은 그실현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는 것이다.한국과의 대화엔 관심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북한과 꼭 대화를 해야하는 것인가.강한 회의에 빠지지 않을수 없다.우리는 그동안 북한에 대해 너무 관대했다.특별사찰을 거부하고 NPT탈퇴를 위협하는데도 오로지 북한을 자극해선 안된다며 조심일변도 였다.핵은 물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데도 방어용 패트리어트의 주한 미군배치마저 사양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한번도 건설적인 호응을 해온적이 없다.우리의 일방적 관용과 온건이 북한의 버릇만 그르쳐놓은 것이다.우리는 북한핵뿐아니라 전쟁위험도 피해야하는 어려운 입장이다.결과적으로 온건대응밖에 할수없는 면도 있다.때문에 북한은 우리가 무슨일이 있어도 강경책은 쓰지 못할 것이란 그릇된 확신을 갖게 됐을지 모른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북한의 그러한 확신과 버릇을 고쳐주는 일이다.이회창총리는 12일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진전이 없을 경우 팀스피리트재개와 미북3단계회담 중단은 당연하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럭 주한미군사령관은 팀스피리트 영구중단을 위해선 휴전선 북한군의 후방철수가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도 했다. 북한의 오판을 깨우치는 방법의 하나일 수 있다.북한은 오늘접촉에서 또 강경책을 어렵게 하는 한계적 양보전술로 나올지 모른다.더이상 말려들어선 안된다.이젠 전쟁위험도 불사하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한다.유엔회부와 단계적 제재준비도 착수하는 것이다.
  • 「문민정부」 아닌 「제3민주정부」/이달순(기고)

    ◎「김영삼정부」의 성격과 명칭 「문민」시대와 「개혁」을 외치고 있다.그런데 문민정부라는 말이 귀에 거슬린다.우리는 오랫동안 「양반」시대를 살아왔다.「무」반과 「문」반의 시대였다.우리는 그 양반권위주의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지금부터 꼭 1백년전인 1894년 동학교도혁명을 일으켰다.일본의 침략으로 그 혁명은 실패했다.그뒤 우리 조상들은 일본인들을 내쫓고 민주국가를 건설하겠다고 싸웠다. 상해에 세워진 임시정부는 민주정부였다.3·1민족독립혁명으로 세운 우리나라 제1민주정부였던 것이다. 8·15해방과 함께 우리는 노래불렀다.『남대문을 열어라.동대문을 열어라.임시정부 들어온다.광복군이 들어온다』그러나 임시정부는 들어오지 않았다.이승만이 들어와 이씨왕조를 「이은」(승) 그것도 「뒤늦게」(만) 나타난 왕으로 행세했다.백성들은 그를 국부 즉,임금으로 떠받들었다.우리는 그의 정부를 제1공화국이라 할 수 없다.현대판 이승만왕조였다.왕조정치는 혁명으로 무너진다.4·19학생혁명이다.그리고 장면내각이 성립되었다.임시정부에이은 제2민주정부의 탄생인 것이다. 혁명 뒤에는 온건파가 집권한다.그 시대는 이중주권시대로 불린다.혼란한 질서가 나타난다. 이때 쿠데타가 발생한다.5·16이다.쿠데타는 민주혁명에 대한 반동이지만 역사가들이나 정치학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혁명의 이념을 이상으로 삼고 그 실천을 위해 광신도처럼 날뛰었다.우리는 조국근대화,민족중흥의 역사를 창조했다. 이 시점에서 민주정치만 실시되면 금상첨화다.그러나 집권자는 장기집권의 독재자로 변신한다.박대통령은 18년(목=십,팔) 집권하고 점(복=박)을 보러갔다.당신은 일단(일) 끝났다고(지=정) 했다. 이를 무시했더니 자기의(기) 신하(신=와)가 총을 네방(····=희) 쏘았다.궁정동 한모퉁이에서 그때 그사람 노래듣다 그때 그사람이 되고 말았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그 뒤로는 민주화가 구현될 것 같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왕정복고를 불러왔다. 12·12(두)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대통령은 왕(팔+왕=전)이 되어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오야」맘대로 하던 이승만왕조로의 복고였다.민주정치를 위한 국민의 투쟁은 맹렬했다. 3김씨의 싸움은 국민의 표를 갈라놓았다.군사권위주의에 종지부를 찍으려던 국민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12·12세력의 한 사람인 노태우대통령이 들어섰다. 군사통치의 권위주의시대였다.이때에도 「양반」의 시대였다.군출신인 「무」반이 주도권을 행세했고 지식인들이 들러리를 섰다.「문」반인 것이다.양반의 시대는 조선왕조이래 노태우정부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이를 가리켜 3·4·5·6공화국이라고 부르고 있다.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장기집권하고 독재공포정치를 한 「양반」정권을 공화국이라고 계속 불러줘야 하는가 말이다. 앞으로 다시 양반권위주의가 나타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를 공화국이라 불러서는 절대 안된다. 역사의 정률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명예혁명으로 민주정부로 발전했다.국민의 지지와 집권층의 도움까지 얻어 김영삼정부가 탄생했다. 그러나 군사통치의 「밀리터리언」시대에서 「시빌리언」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문민정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호칭인 것 같다. 「문」은 선비또는 지식인을 뜻하기 때문이다.「반」이 아니고 「민」이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라고 할 법하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그러했고,오늘의 세계가 산업사회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귀에 거슬리고 전제주의시대의 양반을 연상시키는 용어다.국민을 문민으로 대치할 수 없다.이제 우리는 김영삼정부를 제3민주정부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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