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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정상회담/ 북한측 최상급 의전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의전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평양방문 첫날인 13일부터 파격(破格) 그 자체였다. [김정일 위원장 공항영접] 이날 오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통령 내외의 영접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나간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김 위원장은 김일성(金日成) 주석의 초청으로 84년 5월4일 북한을 특별열차편으로방문한 후야오방(胡耀邦)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평양역에서 김 주석과 함께영접했을 뿐이다. 김 주석은 80년초 몽골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공항에 영접나간 적이 있다. 김 위원장의 공항영접은 북한이 김 대통령을 국가원수로서 최고의 예우를 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94년 지미 카터 전 미대통령이 판문점을 통해 평양을방문했을 때도 평양에서 김영남(金永南)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영접했었다. [숙소까지 동승] 영접에 이어 김 대통령의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김 위원장이 동승한 것도 파격이다.두 정상은 동승한 리무진에서 첫 대면의 어색함을 털고 자연스럽게 친밀감을 쌓았을 것으로 보인다.이 자리에서 김위원장은 격의없는 대화를 주문했다.특히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상석인 뒷자리 오른쪽을 안내하면서 김 대통령이 먼저 차에 오르자 옆자리에 앉았다. 김 위원장의 동승으로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두번째 차량을 이용했다.외교대국인 프랑스는 국빈방문 때 대통령이 공항에 영접을 나가 영빈관까지 동승하는 최고의 의전을 해왔으나 시라크 대통령 때부터는 의전간소화 지침에 따라 이런 극진한 예우가 사라졌다. [의장대 사열 및 분열] 북한 인민군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의장대가 이날순안공항에 도착한 김 대통령에 대해 사열과 분열 등 의장행사를 한 점도 특이하다.북측의 군 의장행사는 정상회담을 준비해온 통일·외교통상부 관계자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의장행사는 북측이 남북관계를 국가 대국가 관계로 새롭게 규정되는 사례라는 해석이다. [두 정상 환담] 김 위원장은 남측 공동취재단 기자 2명이 접견실에 있는데도김 대통령, 공식수행원들과 격식을 차리지 않고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박지원(朴智元) 문화관광부 장관을 보고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때 TV에서 많이 봤습니다”라고 큰소리로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94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 합의때 김 주석의 심정을 털어놓은 것도 보통의 일은 아니다. 황성기기자 marry01@
  • 남북정상회담 D-4/ 미리본 ‘평양 2박3일’

    6월12일 오전 평양 순안공항.사상 처음으로 남한 국적의 항공기 한 대가 사뿐히 착륙한다.비행기에 분주하게 트랩이 설치된다.TV카메라 등 모든 눈길이트랩 위 비행기 문에 쏠려있다. 이윽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가 나란히 모습을드러낸다.김 대통령이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자 비행기 아래 영접 나와있던 북한측 인사와 남측 선발대원들이 박수로 답하고 환영음악이 연주된다. 2박3일간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일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트랩을 내려온 김 대통령은 북한측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눈다.김용순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나 홍성남 내각 총리 등이 영접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항에서는 간단한 환영식이 있게 된다.예포 발사나 국가 연주 등 민감한 절차는 생략된다. ■12일 일정/ 환영식을 마친 김 대통령은 평양시내 모처로 이동,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상봉’하게된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되지 않는다.두 정상은 날씨 등을 화제로 30분정도부담없는 환담을 나눈다. 상봉후 김 대통령은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로 이동한다. 오찬을 한 뒤 오후 만수대의사당으로 가 김 국방위원장과 1차 단독 정상회담을 갖는다. 이때 우리 국민들은 김 국방위원장의 얼굴을 TV로 지켜볼 수 있다. 단독회담에는 기록원 등 2∼3명의 배석자만 참석한다.1차 단독회담 직후 양측 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확대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다. 저녁에는 김 국방위원장 주최 만찬이 있다.여기에는 우리측에서 김 대통령내외를 비롯,청와대와 행정부의 장·차관급 공식수행원 10명,민간 특별수행원 24명 등이 참석하게 된다. ■13일 일정/ 김 대통령은 방북기간중 평양학생소년궁전과 고구려 유적지 등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12일 정상회담 직후와 13일에 걸쳐 방문할지,13일에만 방문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방북 둘째날인 13일에는 유적지 방문과 2차 단독정상회담 등이 예정돼 있다.만일 12일 확대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13일 오전 확대회담이 열리게된다.2차 단독회담은 두 정상의 마지막 회담이다. 여기서 최종 합의한 내용을 토대로 두 정상은 공동성명 또는 선언문을 발표하게 된다. 13일 만찬은 우리측이 주최할 것으로 보이는데 김 국방위원장이 참석할 지는 미지수다.만찬이 끝난 뒤 우리측은 정상회담 성과를 최종 정리하면서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14일 일정/ 평양 체류 마지막 날에는 귀환준비와 현지에 설치한 장비 철수등으로 아침부터 분주할 것이다. 김 대통령은 오전에는 특별한 공식행사는 갖지 않을 것 같다.북측의 환송행사에 참석한 뒤 바로 승용차편으로 출발한다.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타고판문점에 도착한다. 판문점에서 환영행사를 가진 뒤 서울로 귀환한다. 김상연기자 carlos@
  • 金대통령 “국정파트너 야당 존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일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수렴하고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 중요 국사를 대화속에 추진하도록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을 다하겠다는 것을 굳게 약속한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후 16대 국회 개원식에 참석,연설을 통해 “대화와 협력이 없는 불모의 정치풍토가 계속되는 것은 여야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며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줄 뿐”이라면서 “16대 국회야말로 활기차고 생산적인 국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개혁과 성취의 국회로 역사에 남기를 바란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히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55년만에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민족사의 대사건이자 큰 경사”라면서 “이산가족 문제 해결,남북간 상설기구 설치를 통한 계속적인 교류와 협력 추진 등 베를린 선언의 기조 아래 이번 회담에서모든 문제를 격의없이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연설을 마친 뒤 국회의장실에서 국회 의장단과 민주당 서영훈(徐英勳)대표,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등 정당 인사들과 약 15분동안 환담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16대 국회 개원/ 본회의 이모저모

    5일 여야의원 273명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16대 개원국회는 오전 국회의장단을 선출한데 이어 오후에는 개원식을 갖는 등 순조롭게 출발했다. [대통령 개원연설] 오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여야의원 외에 3부요인과 국무위원,주한외교사절 등 70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해 지켜봤다.여야의원들이 기립박수하는 가운데 본회의장에 들어선 김대통령은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과 가볍게 악수한 뒤 곧바로 연설에 들어가 집권 후반기 5대 국정목표를 제시했다.김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은 모두 18차례에 걸쳐 박수를 보냈다.특히 ‘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해 주요 국사를 대화로 추진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일부 야당의원들도 박수로 호응했다. [김대통령과 이총재 환담] 연설이 끝난 뒤 김대통령은 오후 2시45분부터 15분간 국회의장실로 자리를 옮겨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 등 여야 지도부 및 의장단 등과 환담했다.전체적으로 화기애애했으나 간간이 이총재의 ‘가시돋친’ 얘기로 분위기가 어색해지기도 했다.김대통령은 “날씨가 화창하다”면서 “나라일도 날씨처럼 잘 되도록 수고해달라”고 말했다.이에 이총재는 “과거 YS때는 야당이 제 시간에 안 들어왔지만 우리는 기왕 들어올 것제 시간에 들어왔다”고 응수했다. [의장단 선출] 이에 앞서 이날 오전 민주당 김영배(金令培)의원이 사회를 보는 가운데 무기명 비밀투표로 진행된 의장 경선에는 재적의원 273명 전원이투표에 참가,여야의 팽팽한 표대결로 진행됐다. 표결결과에 대해 여야는 희비가 엇갈렸다.민주당과 자민련은 양당의 공조는물론 민국당과 무소속의 표를 얻는데 성공했다며 한껏 고무됐다. 반면 한나라당은 전반적으로 단단한 조직력을 과시했다고 자평하면서도 1표의 이탈표를 아쉬워했다.여야 386 의원들의 크로스 보팅(자유투표)이 전혀 이뤄지지않은 점도 눈에 띈다. 최광숙 진경호기자 jade@
  • 청원선거구 재검표 현장

    2일 청주지법 1호 법정에서 열린 충북 청원선거구에 대한 대법원의 재검표결과 한나라당 신경식(辛卿植) 후보가 자민련 오효진(吳效鎭) 후보를 당초의16표에서 오히려 1표 늘어난 17표차로 눌러 당선이 확정됐다. ◆이번 재검표는 지난 15대 총선에 이어 동일인들이 연속으로 재검표를 거쳐당락을 가린 것으로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신 후보가 승리,오 후보는 ‘불운의 사나이’로 불리게 됐다. ◆울진·봉화에 이어 청원에서도 한나라당이 당초 결과대로 승리를 굳히자한나라당은 “역시나였다”면서 희색이 만면.이날 오후 4시20분쯤 재검표 결과가 최종 발표되자 법정은 한나라당 당직자들의 환호 소리로 뒤덮였다. ◆이날 재검표가 시작된 청주지법 1호 법정 앞에는 오전 9시쯤부터 한나라당과 자민련 당직자를 비롯,취재진과 방청객 등 100여명이 몰려 높은 관심을나타냈다. 한나라당에서는 재검표 당사자인 신 의원과 박희태·김기춘 의원 등이 오전9시30분쯤 재검표장에 도착, 법원 앞에서 청원군 지구당 당직자들과 환담하는 등 애써 여유있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신 의원은 “지난 15대 총선에 이어 16대 총선에서도 재검표를 실시하게 된데 대해 착잡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며 “개표 당시 검표가 꼼꼼하게 이뤄진 만큼 당락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민련측도 당사자인 오 위원장이 30여분 일찍 도착해 당직자들과 환담을나눈 뒤 김학원·송광호 의원 등 당직자 50여명과 함께 오전 10시 재검표장에 입장,재검표 진행 과정을 초조하게 지켜봤다. 오 위원장은 “애매모호한 무효표 발생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번 재검표에거는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한편 자민련이 현도면 소재 정신병원에서 무효표로 처리된 18표의 거소자투표에 대한 재검을 요구했으나 대법관들은 선거법상 명백한 무효표라며 이유없다고 밝혔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봉화·울진 재검표 현장

    4·13총선에서 19표 차로 당락이 갈렸던 경북 봉화·울진 선거구에 대한 재검표가 1일 오후 1시 대구지법 안동지원 1호 법정에 마련된 임시 개표장에서 16대 총선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30명의 재검표 종사원들은 이날 봉화·울진 선거구 가운데 봉화지역 투표함을 먼저 열어 후보별 투표용지를 계수기로 일일이 확인하는 한편 4,780표에 이르는 무효표의 이상 유무를 정밀 점검했다. 재검표 과정에서 당초 무효표로 분류됐으나 유·무효 판정을 내리기가 애매한 표가 일부 있어 재판관이 돋보기로 정밀 점검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또 오후 4시 현재 봉화선거구 24개 투표함에 대한 재검표가 마무리된 가운데 양측 후보와 관계없이 1표가 무효표로 처리되고,김광원(金光元)후보의 1표와 김중권(金重權)후보의 4표가 판정 보류를 받았다. ◆이날 재검표장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관계자를 비롯,취재진 등 200여명이 몰려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한나라당 김광원 의원은 정오쯤 안동에 도착해 재검표장인 1호 법정을 둘러보고 당직자들과 환담하는 등 다소 분주한 모습이었으며 같은 당 권오을·박헌기·이상배·이인기 의원이 속속 도착,결과를 기다렸다. 김의원은 “재검표에 의한 당락 변동은 민주당측의 희망사항일 뿐”이라며“여러 차례 검증을 거친 결과가 뒤바뀌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김중권 위원장도 재검표 진행과정을 지켜봤으며 안동의 권정달 위원장과 김명섭·유용태·박종우·송훈석 의원과 당직자 50여명이 주위에서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김위원장측은 “당초 500여표 이상이 애매모호하게 무효표로 판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이들 무효표가 제대로 판정을 받으면 충분히 승산이있다”고 주장했다. 안동 김상화기자 shkim@
  • 남북정상회담 D-11/ 출발 이모저모

    ◆입북/ 손인교(孫仁敎)단장 등 남북정상회담 선발대는 31일 오전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 회의실을 통해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선발대원들은 회의실을 통과하기 앞서 남쪽으로 몸을 돌려 환한 표정으로 취재중인 사진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회의실 안에는 선발대를 맞이할 양복차림의 북측연락관 3명이 먼저 들어와기다리고 있었다.우리측은 북측 연락관에게 선발대원 전원의 이름과 성별·소속·직위와 사진이 부착돼 있는 선발대 명단을 전달했다. 선발대는 손단장을 선두로 회의실로 들어와 북측연락관들과 악수를 나눈 뒤바로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회의실을 통과한 시간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북측 연락관은 선발대 명단과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지 않고 그냥 악수만 하고 통과시켜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이에 남측 선발대중 한명이 “확인도 않고 그냥 통과시키면 어떡하느냐”고 농담을 던져 한때 폭소. 선발대원들은 악수를 나누면서 북측 연락관에게 “반갑습니다.OOO입니다”라고 인사말을 건넸고 북측 연락관들도 “반갑습니다”라고 화답. ◆평양행/ 북측 지역으로 넘어온 선발대는 북측의 최성익 조국평화통일위원회부국장의 영접을 받아 잠시 차를 마시며 환담한 뒤 10시30분쯤 북측이 제공한 승용차 4대와 버스 2대에 분승,평양으로 떠났다.선발대는 평양∼개성간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서흥찻집(휴게소)에서 한 차례 휴식을 취한 뒤 오후 1시20분쯤 숙소인 평양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했다. ◆판문점 도착/ 이에 앞서 선발대원들은 오전 7시35분 남북회담사무국에 집결,박재규(朴在圭)통일부장관과 잠시 면담한 뒤 8시 3대의 승용차와 1대의 대형버스에 분승,판문점으로 떠났다. 오전 9시27분 판문점 자유의 집에 도착한선발대원들의 얼굴은 밝아보였으나 한편으로는 다소 긴장된 표정이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남북정상회담 D-11/ 선발대 방북 안팎

    31일 오후 3시.서울 삼청동 남북회담 사무국에선 환호성이 터졌다.7년 8개월만에 서울∼평양간 직통전화가 다시 이어진 것이다. ◆선발대 평양도착 정상회담 선발대의 평양 도착 소식이 전화기를 타고 들려왔다.“선발대가 오후 1시20분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에 도착했다.오후 4시부터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간다”는 손인교(孫仁敎)단장의 목소리가 또렷했다. 이날 개통된 전화는 직통 2회선,팩스 1회선. 손단장은 “평양 날씨는 쾌청하고 온도는 서울보다 1∼2도 가량 낮은 것 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선발대는 백화원 초대소 3개동중 ‘2각’에 묵는다.1각,3각과는 통로로 연결돼 있고 대리석 복도,로비의 대리석 기둥으로 장식된 북한 제1의 영빈관이다.평양시 외곽인 대성구역 임흥동의 대동강변을 끼고 있다.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호수를 바라보는 산책로가 아름답다. 선발대가 평양에 도착한 것은 오후 1시20분.오전 10시 판문점 ‘자유의 집’을 떠나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지역으로 떠난 지 3시간20분 만이었다.개성 84㎞기점의 ‘서흥 찻집’에서 잠시쉬었을 뿐 169㎞에 달하는 개성∼평양간 고속도로를 달려온 피곤도 잊고 곧바로 상황실 설치,직통전화 개설 등준비업무에 들어갔다. ◆선발대 활동착수 선발대는 대통령이 초대소내에 묵을 방과 주변 시설을 점검하고 북측 관계자들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앞서 트럭편으로 도착한 복사기·팩스 등 11t 트럭 3대분의 장비를 점검하고 배치하느라 분주한 평양의첫날을 보냈다. 이들은 안내를 맡은 최고인민회의 소속 북측 실무요원과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고 사무국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들은 1일부터 대통령 일행의 2박3일간의 체류일정,TV 생중계 문제 등을북측과 협의하고 결정한다.직통전화 말고도 하루에 2차례씩 판문점을 거쳐행낭을 보내며 서울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게 된다.남북회담 사무국안에 마련된 서울 상황실도 긴장감과 함께 비상체제에 들어갔다.선발대의 14박15일이 시작됨과 동시에 남북 정상회담도 초읽기에 들어간 셈이다. 이석우기자 swlee@
  • 남북정상회담 D-24/ 판문점 5차 준비접촉 이모저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절차 합의서가 타결된 18일 양측 대표들은 그동안의 긴장감이 풀린 듯 활짝 웃으며 여러차례 악수와 포옹을 하며 서로의 노고를 격려했다. ■북측 김령성 단장은 남측 대표들과 헤어지기 앞서 “평양에서 다시 만나자”고 작별인사를 건넸고 남측 양영식(梁榮植) 수석대표도 활짝 웃으며 손을흔들어 화답했다.김 단장은 남측 취재기자들에게도 “수고 많았다”며 인사를 했다. 양측 대표들은 합의서 교환이후 포즈를 취해달라는 사진기자들의 거듭되는요구에도 전혀 싫은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여유있게 응했다.김 단장은 “좋은 합의를 이뤘는데 많이 찍을수록 좋지”라며 활짝 웃는 표정으로 자세를취했다. 양 수석대표와 북측 권민 대표는 서로 포옹하며 합의서 타결에 따른 기쁨을만끽했다. 실무 절차합의서 타결을 이뤄낸 남북 대표단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양측수행기자들에게도 이어져 서로 “평양에서 다시 만납시다”,“서울에서도 웃으면서 악수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며 덕담을 나누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20주년이기도 한 이날 김 단장은 환담과정에서 5·18을 화제로 꺼내 눈길을 끌었다. 김 단장은 “20년전 5·18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며 “그러나 오늘의 5·18은 우리 민족에게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주는 그러한 추억이 남는날로 만들자”고 말했다. ■준비접촉 1시간여 만인 오전 11시15분쯤부터 준비접촉 장소 주변에는 마지막 미합의 사항인 기자단 수가 50명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일찌감치 타결 분위기가 감지됐다. 양측 대표들은 오후 1시16분쯤 각각 수행원들의 도움을 받아 서명한 합의서를 최종 교환했다. ■준비접촉이 시작되면서 합의서 도출을 위한 남북 양측의 긴박한 움직임이계속됐다. 접촉 1시간 후인 이날 오전 11시5분쯤 정회에 들어갔으며 15분쯤부터는 양수석대표와 김 단장의 단독수석대표 접촉이 시작됐다. 일반 대표 2명은 별도의 장소에서 합의서 문안정리 작업에 들어갔으며 이작업은 12시를 넘겨 계속됐다.북측 최성익 대표는 “의제는 4·8 합의서를기준으로 ‘7·4 남북공동성명’이 들어갔으며,두분(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이름도 명시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지난 접촉 때와는 달리 취재진의 질문에 비교적 상세히 답변해눈길을 끌었다. 특히 남측 기자들이 김 단장의 한자이름이 ‘신령 령(靈),이룰 성(成)’이맞냐며 확인을 요구하자 취재기자가 수첩에 적은 한자를 들여다 본 뒤 “거의 비슷합네다”라고 답변. 이번 5차 준비접촉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날씨에 관한 양측 대표의 얘기로대화가 시작됐다.김 단장은 “오늘 날씨가 푸근히 덮어주는 것을 보니 5차접촉을 포근히 어루만져주는 것 같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에 양 수석대표가 “부드럽게 시작되는 것을 보니 (오늘 접촉이) 부드럽게 맺을 것으로 보인다”고 화답했다. 이어 북측 최성익 대표는 마중나온 남측 손인교 대표에게 “이번에 장·차관이 얼마나 오는지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 등 합의서 타결이 임박한 듯대표단 면면에 관심을 보였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高建시장 ‘수뢰 직원들’ 격려?

    고건(高建) 서울시장이 16일 ‘뇌물받은 직원들’을 격려했다. 고 시장은 지난 2월 개설한 클린신고센터에 뇌물을 받았다고 신고한 시 및각 구 직원 11명을 시장실로 초청,오찬을 함께 하며 환담하며 격려했다. 클린신고센터는 직원들에게 업무중 불가피하게 받은 금품을 자진 신고할 수있는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해 서울시 본청과 각 자치구에 설치됐다. 하지만정당한 이유없이 금품수수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가 적발되면 엄중 문책을받게 된다. 고 시장의 ‘클린!’ 건배로 시작된 이날 오찬은 최일선 민원부서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함께 한 자리인 만큼 자연스럽게 다양한 건의 사항이 쏟아졌다. 특히 ▲동사무소의 기능 전환에 따른 업무 가중 ▲사회복지직 직원 부족 ▲전세자금 융자제도 개선안 ▲간호직 공무원 인사교류 ▲인력풀팀의 구조조정문제 등에 대한 건의가 이뤄졌다. 고 시장은 “서울시가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벗었을 뿐 아니라 부패추방 노력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직원들 모두의 노력 때문”이라며 “직원들의 건의 사항을 적극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했다. 김용수기자
  • 이희호여사, 中 적십자사 총재 접견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팽페이운(彭佩云) 중국 적십자사 총재 일행을 접견하고 적십자사의 구호 활동과 여성문제 등에 관해 환담했다. 중국 최대 여성조직 전국 부녀연합회 주석을 겸임하고 있는 팽 총재는 대한적십자사의 초청으로 한·중 적십자사간 협력합의서 채택을 위해 방한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이희호여사, 복지시설 노인 초청 오찬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는 9일 청원 양로원 등 경인지역 10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인과 종사자 2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오찬을 함께하고 “여러분들은 어려운 여건속에서 경제발전과 자녀교육으로 평생을 바쳤으며,여러 어른들의 큰 노고 덕분에 오늘날 이와같은 경제발전이 이룩됐다”고격려했다. 이 여사는 또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전체의 7%로 선진국처럼 고령화사회가 되고 있다”면서 “정부가 앞장서서 노인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니 반가운소식”이라고 기대했다. 이 여사는 이들에게 옷가지를 선물하고 청와대 경내를 관람토록 했다. 이어 이 여사는 이날 오후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대통령 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조계사를 방문,고려시대의 봉축등을 재현한 ‘전통등(傳統燈)’을 관람하고 정대(正大)총무원장 등 불교계 지도자들과 환담을 나눴다. 이 여사는 “지난 성탄절때 조계사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건 데 이어 이번 부처님 오신날에는 가톨릭과 기독교 등에서 봉축메시지를 보내는 등 종교간 화합이 무르익고 있다”면서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불교계를포함한 종교계가 적극적인 협력을 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 여사는 이날 장수를 기원하는 ‘잉어등’을 증정받았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격동의 남북관계 반세기](3)무산된 金泳三·金日成 회담

    94년 7월9일 낮 12시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보름 앞으로 다가온 남북정상회담에 대비,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던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에게 메모지 한장이 전달됐다.-‘김일성 사망’ 회의장은 일순 놀라움에 술렁거렸다. 분단 반세기만에 성사를 눈앞에 뒀던남북 정상간 만남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영삼(金泳三·YS)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여성정책심의위원회’ 위원 15명과 환담을 나누던 중인 12시2분쯤 전날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얼마나 놀랐던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그것은 그가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그동안 적지않은 ‘마음고생’을 했다는 것을나타내기에 충분했다. YS는 민간인 출신 대통령이란 정통성을 무기로 취임 초부터 남북문제에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다.9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연설을 통해 ‘민족우선론’을 펴며 김일성과의 회담을 제의했다.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의사를 밝힌 것을 계기로 핵 문제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그의 대북정책은강경으로 치닫게된다.6월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핵무기를 가진 자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94년 2월25일 취임 1주년 회견에서는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된다면 김일성 주석과 만날 용의가 있다”며 갑자기 종전과 다른 입장을 밝힌다.일부에서는 한달전인 1월28일 현 대통령인 김대중(金大中) 당시 아·태평화위원장이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의 회담이 조건없이 하루빨리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한 것에 YS가 자극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한동안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희소식’은 6월 중순 대북특사로 북한을방문,김일성을 만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왔다.카터는 김일성이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김영삼 대통령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고 전했고,YS는 이를 전격 수락했다.당시 김일성의 회담 제의에 대해 전문가들은 유엔의 대북제재를 무산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후 양측은 6월28일 판문점에서 예비접촉을 갖고 정상회담을 7월25일부터27일까지 평양에서 열기로 합의하는 등 세부일정을 거의 확정지었다.그러나북한은 김일성 사망 사흘뒤인 7월11일 “우리측의 유고로 예정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연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회담 무산’을 공식 통보해 왔으며,YS는 “아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94년의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은 제3국의 개입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정상간 만나자는 약속을 처음으로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이때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기 때문에 지금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이 비교적 쉽게 추진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김상연기자. * 역대 정상회담 추진사. 남북 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이 수십차례 제의했으나 서로 묵살하거나 지나친 전제조건을 내세워 94년까지는 공염불 상태나 다름없었다. 남북이 이 문제를 처음 공식 거론한 것은 72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제2차 회의석상에서였다.이때 양측은 이른 시일내 정상회담이성사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입장을 공동으로 밝혔다. 처음으로 정상이 직접 이를 제시한 것은 75년8월18일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의 뉴욕 타임스 회견.박대통령은 “김일성이 군사적이 아닌, 평화적인 방법에 의한 통일을 추구한다면 그를 만나 통일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박대통령은 또 집권말기인 79년1월 연두회견에서 “남북한 당국이 시기, 장소에 상관없이 만나자”고 제안했다. 우리측의 정상회담 제의는 전두환(全斗煥)대통령 시절부터 활발히 벌어졌다.전대통령은 81년 1월12일 국정연설을 통해 ‘남북한 당국 최고책임자 상호방문’을 제의했다.재임시절 동안 전대통령은 그후 거의 매년 국정연설,8·15 경축사 등을 통해 정상회담의 성사를 북측에 촉구했다.이에 북한은 남한에반공정책 포기와 주한 미군철수 등을 역으로 요구하며 피해갔다. 북방외교를 가장 큰 목표로 내건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전대통령보다 정상회담에 더 열심이었다.노대통령은 8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용어를 쓰며 김일성과 만날 뜻을 밝혔다.88년 10월 유엔연설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 열릴 때 의제까지도 자세히 밝혔다.또 91년 12월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되는 과정에서 양측이 막후에서 정상회담을 추진해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북한 김일성은 신년사를 통해 가끔 정상회담 의사를 비쳤으나 별로 무게가실리지 않았다.90년에는 평양을 방문한 남북고위급회담 우리 대표에게 정상회담 의사를 밝혀 기대를 모았으나 역시 말에 그쳤다. 김상연기자 carlos@. *당시 협상 주역. 94년 남북정상회담 협상을 맡았던 남북한 대표들은 서로 일면식(一面識)도없는 사이였다.그러나 한번의 예비접촉만으로 7월25∼27일의 정상회담 일정을 도출했다. 양측은 통일문제 전문가 3명씩을 협상에 내세웠다.우리측은 당시 이홍구(李洪九)통일부총리·정종욱(鄭鍾旭)청와대외교안보수석·윤여준(尹汝雋)총리특별보좌관이,북측은 김용순 최고인민회의통일정책위원장·안병수 조평통부위원장·백남순 정무원책임참사가 나왔다. 북측 수석대표 김용순과 34년생 동갑내기인 이부총리(현 주미 대사)는 당시북한문제 최고 브레인으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있다는평가를 받았다. 정수석(현 아주대 교수)은 대통령의 의중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게 장점이었다.윤보좌관(현 한나라당 의원 당선자)은 당시 안기부 3특보로 북한담당이아니었으나 말솜씨와 언론관계 등이 고려돼 특별보좌관이라는 직함으로 협상단의 일원이 됐다.윤보좌관은 예비접촉후 속개된 실무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다.특히 지난 3일 간암으로 타계한 엄익준(嚴翼駿)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경우 당시 딸 결혼식에까지 불참하면서 우리측 실무협상 대표로 나서 두 차례 협상만에 실무합의서를 타결짓는 열의를 보였다. 북측 김용순 대표는 대남전략은 물론 미국·일본 등 국제문제에도 정통해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웠다.그는 현재도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겸 당 통일전선부장으로서 대남사업을 총지휘하고 있으며,김정일 앞에서 직언할 수 있는 몇안되는 인물로 꼽힌다. 김상연기자
  • 남북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 수석대표 대화록

    3차접촉 닷새 만인 8일 다시 만난 남측 양영식 수석대표와 북측 김령성 단장은 접촉에 앞서 양측의 입장을 시사하는 환담을 나눴다. ■김단장 오늘 날씨가 유달리 쾌청하다.예로부터 ‘만화방창’이라고 만물이활기있게 생장하는 계절이다. 우리 접촉도 훌륭한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으로본다. ■양대표 김단장 선생께서 지난 접촉때 ‘석 3’자가 길수라고 회담전망을좋게 했다.오늘도 ‘석 3’자가 계속된다고 본다.지난번에는 3-1이고 오늘은3-2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은 어린이날이고 오늘은 부모님의 사랑과 음덕을기리는 어버이날이다.집안의 노부모를 모시고 가슴에 꽃도 달아드린다.물론1년 365일 효도해야 하지만 이번에 정상회담을 성공시켜 흩어진 노부모가 잘만날 수 있도록 하자. 정상이 상봉하고 노부모도 상봉하는 계기를 형성하기 바란다.감격적인 꽃을달아드리자. ■김 효도에는 여러가지가 있다.노부모들이 분열세대인 만큼 최대의 효도는통일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어버이날을 맞아 귀측도 그렇겠지만 늙은 부모에게 효도하려면 통일의날을앞당겨야 한다.오늘 접촉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부모와 온 겨레에 좋은 소식을 전하자. ■양 평화를 만들고 통일의 디딤돌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면 좋겠다.어느시인의 시구가 생각난다.‘한송이 국화 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 오늘이 준비접촉 네번째인데 결실을 보는 국화꽃을 피우기 바란다.김단장도말씀하셨지만 가능하면 오늘 손뼉을 마주쳐서 소리를 내도록 하자. ■김 동감이다.오늘 접촉은 3차의 계속으로 보고 3차에서 결속(합의)하자.오늘로 결속하자. 판문점 공동취재단
  • 남북정상회담 4차 준비접촉/ 이모저모

    8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4차접촉은 정회와 접촉을 거듭한 이례적인 마라톤 협상이었다.남북 수석대표끼리의 단독접촉을 통해 합의서 체결을 위한 막바지 산고를 겪었으나 끝내 체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재접촉을갖기로 했다. ■오후 2시4분쯤 다섯번째 정회에 들어가자 준비접촉이 무산되고 합의서 발표가 5차접촉으로 넘어가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통일각 주변에 퍼졌다. 양영식 수석대표는 대기실에서 남측 대표단과 40분간 구수회의를 갖고 2시43분쯤 통일각에서 일단 철수,군사 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으로 돌아왔다. 양 수석대표는 “점심식사 후 다시 통일각으로 넘어가 접촉을 계속 하기로했다”며 “접촉은 잘 되고 있다”고 말했으나 결국 몇가지 미타결 사항에부딪쳐 합의서 체결을 5차접촉 이후로 미뤄야 했다. ■남북은 이날 두번째 정회 직후인 오전 11시50분쯤 대표단을 내보내고 양수석대표와 김령성 단장이 첫 단독접촉을 가졌다.12시15분까지 계속된 접촉에서 대표들은 배석자 없이 기록원 1명씩을 대동,합의서안을 비교하며 조율을 계속했다. 이어 각자의 대기실로 돌아가 본부의 훈령을 기다리며 대표들과 대책을 숙의한 뒤 오후 1시 2차 단독접촉에 들어갔다.대기실에는 양측 수행원들이 전해주는 종이쪽지가 분주히 전달돼 급박한 상황을 감지케 했다.그러나 2차 단독접촉도 별다른 성과없이 12분만에 끝냈다. 한편 오후 2시쯤 통일각의 남측 대표단 대기실이 정전돼 북측 관계자들이수리작업을 벌이는 소동을 빚었다.남측 대표들이 서울과 훈령 교환을 빈번하게 해야 될 시점에 발생한 정전으로 남측 대표들은 당혹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양 수석대표는 오전 접촉에 앞서 “남북의 정상 두 분이 편안히 만나고 남북 관계개선의 결정적 계기를 형성하도록 실무절차를 완벽하게 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그는 경호.의전.통신 등 부문별 실무접촉에 대해서는 “실무절차 합의서를 일단 서명했다고 확신을 가질 때 이들 분야에 관한 실무접촉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은 실무절차합의서 체결을 뜻하는 ‘결속’이라는 단어를 유난히 강조,분위기를 고조시켰다.준비접촉이 시작되자 양측 대표들은 준비해 온두툼한 서류와 파일을 꺼내놓고 합의서 막판 절충에 돌입했다. 김 단장은 양 수석대표와의 환담이 끝나자마자 준비해온 하얀 봉투 두개를꺼내놓고 비공개 회담 준비에 들어갔다.B4용지 크기에 얄팍한 부피의 이 봉투에는 북측이 이번 준비접촉에서 제시할 합의서가 들어 있는 것으로 추측됐다. 준비접촉은 시작 30분만에 첫 정회됐다.회담 관계자는 “양측이 상부에 알릴 일도 있고 의견을 조율하기 위해서 잠시 휴식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처럼 정회가 예상보다 일찍 이뤄진 것은 양측이 가져온 실무절차합의서 안을 서로 교환한 뒤 상부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관측됐다. 한편 준비접촉 장소인 통일각에는 북측 기자 30여명이 미리 나와 취재에 열중.이들은 “오늘 어떻게든 잘돼야 하는데…”라며 회담성사 분위기를 탐지하기도 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남북정상회담 3차 준비접촉 / 남북대표 대화록

    3일 엿새만에 다시 만난 남북정상회담 준비접촉 대표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3차 접촉의 문을 열었다.양측 대표의 환담을 정리한다. ■양영식 남측 수석대표 날씨가 화창한 것이 봄의 교향악이 울리는 것 같아회담의 전망을 축복하는 것 같다. ■김령성 북측 단장 잘 될 것을 예언하는 것 같다. ■양 대표 TV를 통해 김 단장과 북측대표를 보고 많은 분들이 신사 중의 신사인 것 같다고 말했다.‘길 동무가 좋으면 가는 길이 가깝다’‘천리비린’등의 얘기를 한 김 단장을 ‘길 박사’로 부르고 싶다. 우리 속담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있다.금강산 뱃길이 열린만큼 이번 정상회담 준비를 잘해 판문점을 통한 육로를 열고 하늘 길과 기찻길도 열어 사통팔달의 협력시대가 열리길 바란다. ■김 단장 우리 민족은 ‘3’을 길수로 선호하는 풍습이 있다.단군 즉위날도10월 3일이고 세상을 이루고 있는 하늘과 땅,사람을 3요체라고 한다.또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표현도 있고 백년해로하는 부부연분을 삼생연분이라고한다.곡절있는 일도 세번만하면 잘 되고 28년전 5월 3일 조국통일 3대 원칙에 합의했다. ■양 대표 작년에 해외동포 초청행사에 안병원 선생이 참가해 ‘소원이 하나있다’고 했다.남북이 공동으로 판문점에서 통일음악제를 열어 ‘우리의 소원’을 부르면 자신이 지휘를 하고 싶다고 했다.준비접촉 대표가 디딤돌을놓아 두분 선장이 편안히 나아가 겨레와 세계 앞에 웅비하고 당당하게 평화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자. ■김 단장 우리 민족이 통일만세,통일합창을 부를 수 있도록 하자. 판문점 공동취재단
  • 金대통령-김윤환 민국당 대표대행 회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대행의 1일 청와대 조찬회동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됐다. 김대통령과 김대행은 지난 4·13총선에서 극복하지 못한 지역주의 해소를위해 정치권의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또 어느 정당도 원내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군소정당의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소수의 의견이 존중되는 참된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노력키로 했다. 5개항의 공동발표문에는 정책중심 여야관계 구현,남북정상회담의 초당적 협력 등도 포함돼 있다.또 국정현안에 대해 필요시 수시로 회동하는 데도 의견을 함께 했다. 김대통령은 특히 세계화시대를 맞아 우리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의 개념이 약화되는 추세임을 지적하고 여야가 국가발전이라는 큰 목표아래 경쟁하고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이 전했다. 또 김대통령은 김대행에게 지역주의 해결을 위해 일정 역할을 해줄 것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과 김대행의 단독회담은 2년6개월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윤환대행은 회동직후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 97년 대선전 당시 야당이었던 김대중총재와 공동정권 구성을 논의한 비공개 회담 후 처음”이라고 회고했다.이어 “유익한 회담이었다”면서 만족감을 표시했다.청와대 회동에동행했던 김철(金哲)대변인은 “두분은 회담전 김대행의 일본방문 등을 화제로 환담을 나누었다”고 말했다. 한편 김대행은 민국당의 향후 진로와 관련,“정당간에 교섭단체를 구성하는것은 정당정치의 상식”이라면서 자민련 등과 합쳐 교섭단체를 구성할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박준석기자 pjs@
  • 남북 정상회담 2차 준비접촉/ 이모저모

    2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2차 준비접촉은 단비 속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됐다.북측은 지난 94년 7월8일 남북정상회담 실무접촉 대표단 이후5년9개월만에 군사분계선을 넘은 남측 대표단을 반갑게 맞았다. ■양영식(梁榮植) 수석대표 등 남측 대표단은 회담 시작 5분전인 이날 오전9시55분쯤 회담장인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 도착했다.통일각 현관 앞에서기다리던 김령성 단장 등 북측 대표단은 남측 대표단을 반갑게 마중했다. 서로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나눈 뒤 양 수석대표가 “날씨가 좋아졌다”고 말하자 김 단장은 “남측 대표단이 오니 오전 비가 멎었다”며 간단한 인사말을 나눴다. ■남·북측 대표단은 오전 10시 정각 서로 약속이나 한듯 동시에 회담장에입장했다.북측 김 단장은 회담장 입장 직후 사진기자들이 좌우에서 포즈를취해달라고 요청하자 남측 양 수석대표에게 “이쪽도 한번 더 봅시다”라고제의하는 등 여유를 보였다. ■회담이 진행되던 오전 11시25분쯤 남측 수행원이 회담이 끝나간다는 사실을 회담장 바깥에 알리기 위해 회담장 문을 열자 회담이 끝난 것으로 오인한일부 기자단이 회담장으로 몰려 들었다.갑작스런 기자들의 등장으로 일부 남·북측 대표단의 표정이 굳어졌다.이 과정이 잘못 알려져 “회담이 잘 풀리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었으나 곧이어 회담장 바깥에서 들릴 정도로 웃음소리가 터져나와 회담장 주변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회담 직후 양측 대표는 사이좋게 악수를 나누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북측 김 단장은 “오늘 회담이 잘 됐느냐”라는 질문에 “잘 됐습니다”라고대답했다.이에 남측 양 수석대표는 “판문점 길은 평화와 통일의 길”이라며“계속 밝은 얼굴로 만나자”고 화답했다.남측 대표단과 취재단은 오전 11시37분쯤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의 집으로 돌아왔다. ■앞서 남측 대표단을 지원하기 위한 행정 지원팀이 오전 9시30쯤 남측 일행으로서는 처음으로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옆 군사분계선을 넘었다.이어 9시40분쯤 국내 풀기자단 23명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풀기자단은 북측의 외신기자 취재 거부로 국내 언론사 기자만으로 구성됐다. 남측 대표단은 오전 9시20분 판문점 남측지역 ‘자유의 집’에 도착, 이날접촉을 최종 점검했다. ■북측 대표단은 전날 개성에서 1박한 뒤 이날 오전 9시 통일각에 도착,준비접촉을 위한 최종 점검 작업을 벌였다.이날 회담장 탁자에는 자개 필통과 ‘영광 담배’,평양역사(驛舍)가 그려진 성냥갑,재떨이,필기용기가 가지런히놓여 있었다. ■이날 회담장 주변에는 북측기자 16명이 남측기자들과 환담하며 회담전망등을 둘러싸고 의견을 나눴다.1차접촉때 기자단으로 평화의 집을 방문했던박용남조선중앙방송 기자(44)는 “준비접촉이 열릴 때마다 그동안 가물었던한반도에 역사적인 회합이 잘 되라는 ‘통일의 단비’가 내리고 있다”고 기대감을 피력했다. ■이날 실무접촉이 열린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 옆에는 김일성 주석의 ‘통일유훈비’가 눈길을 끌었다.김 주석이 사망하기 직전인 지난 94년 7월7일통일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문건에 명기한 자필 서명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김 주석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서명한 문건인 셈이다. 길이 9.4m,너비 7.7m인 통일친필비는 김 주석이 사망한 이듬해인 지난 95년8월 11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세워졌다. 전면에는 ‘김일성,1994.7.7’이라는 아홉 글자가 새겨져 있다.비석 뒷면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74자의 해설문이각인됐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는 5월3일 3차 접촉에서 절차문제를 마무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박 장관은 오후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서 우리측 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뒤 이같이 밝히고 의제와 관련,“오늘은 1차 접촉에 대해 북한이 반응을 보인 만큼 양측이 공부를 해서 3차때시험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차접촉 날짜는 북측이 제시했다”며 “1,2차 접촉보다 시기가 늦춰진 점은 양측이 좋은 답안지를 작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판문점 공동취재단
  • 中행정전문가 인사위 방문

    한국의 인사제도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중국의 국가공무원 육성기관인국가행정학원의 보귈리(薄貴利),리우쉬타오(劉旭滯) 교수가 25일 중앙인사위원회(위원장 金光雄)를 방문,인사위 관계자들과 환담했다. 이자리에서 이들은 개방형 임용제,민·관 인사교류 등에 대해 큰 호기심을나타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특히 보귈리 교수는 “중국에서도 한국처럼 인사개혁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민·관간 인사교류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리우쉬타오 교수는 한국의 고시제도와 개방형임용제 등 공직자 선발제도에대해 관심을 나타냈다. 최여경기자 kid@
  • 이희호여사, ‘갤러리 현대’ 개관30돌 전시회에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24일 갤러리 현대 개관 30주년 기념 전시회를 방문해 박명자(朴明子) 관장을 비롯, 이대원(李大源) 전 예술원회장,이만익(李滿益)화백 등 출품 작가들과 미술계 현황 등에 대한 환담을 나눴다. 지난 70년 인사동에서 개원한 갤러리 현대는 국제 유명전시회를 포함,300여회의 전시회를 갖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으며 이번 초대전에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8명이 64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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