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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軍보유 개헌 본격화

    |도쿄 황성기특파원|일본의 집권 자민당이 개헌 절차를 규정한 국민투표 법안을 이달 소집되는 정기국회 회기 내에 초당파 의원입법으로 제출키로 했다. 자민당은 작년 총선거(중의원)에서 창당 50주년인 2005년 개헌안 제출을 공약으로 내놓은 바 있다.제1야당 민주당도 2006년 독자 개헌안을 제시할 계획이어서 개헌을 둘러싼 여야 움직임이 새해부터 본격화될 전망이다. 나카가와 히데나오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한국의 원내총무)은 4일 지방의 당 모임에서 “우리 당의 개헌안에 맞춰 그 절차와 관련된 법률 논의를 이번 국회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나카가와 위원장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해,개헌을 선거쟁점화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 대표도 같은 날 NHK에 출연해 “헌법의 ‘환갑’까지는 민주당안을 내고자 한다.”며 헌법 공포 60주년인 2006년까지 개헌안을 만들 생각을 밝혔다. 자민당이 준비 중인 국민투표 법안은 유권자를 20세 이상으로 하고,찬성이 유효투표 총수의 2분의1을 넘으면 국민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본의 현행 헌법 96조는 개헌절차에 대해 “중·참의원 양원의 3분의2 이상 찬성으로 국회가 발의하고,‘특별 국민투표나 국회가 규정하는 선거’에서 국민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국민투표의 구체적 절차는 명시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당에서는 공산·사민당을 제외한 자민·공명당(연립여당)과 민주당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다.자민당은 개헌을,공명당은 기존 헌법에 조문을 추가하는 ‘가헌’(加憲),민주당은 헌법을 새로 만든다는 ‘창헌’(創憲)을 내세우고 있다.이들 세력을 합치면 중의원의 96%,참의원의 84%에 해당한다. 개헌파들은 군대 보유,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토록 9조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9조는 “전쟁과 무력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며 2항에서 이를 위해 육·해·공군 그 밖의 전력은 갖지 않으며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marry04@
  • 동심 통해 본 전쟁과 인간의 이중성/윤흥길 연작 전쟁소설 ‘소라단 가는 길’

    중견작가 윤흥길이 최근 낸 ‘소라단 가는 길’(창비 펴냄)은 시골 초등학교 동창생들의 추억담을 릴레이식으로 풀어낸 연작소설이다.작품은 환갑을 눈앞에 둔 동창생들이 개교 40년 기념 홈커밍행사로 내려가는 버스 속 장면을 묘사한 ‘귀향길’로 열린 뒤 올라오는 모습을 그린 ‘상경길’로 닫힌다.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소품으로 그린 셈이다.그 속을 주인공 9명의 기억이 메우고 있는데 그 바닥엔 늘 ‘한국 전쟁’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환갑 앞둔 동창생들의 어린시절 회상 “세상물정 모르던 천진한 시절에 몸으로 겪은 끔찍한 전쟁의 기억이 마치 백지 위에 뿌려진 먹물처럼 한장면 한장면 뇌리에 시커멓게 새겨져 있다가 수십년만에 다시 모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활동사진으로 생생히 되살아난 모양이었다.”(26쪽) 작가는 이미 장편 ‘장마’에서 소년 ‘동만’의 눈으로 전쟁의 상처를 탁월하게 그린 적이 있다.이번 연작은 한 아이의 눈이 아니라 9명의 시선을 통해서 전쟁을 모자이크식으로 채색한다.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9명의 표정 하나하나에 작가는 직접 전흔(戰痕)을 그려넣기도 하고 전쟁으로 일그러지는 동심을 새겨 넣으며 리얼리티를 확보한다. ‘묘지근처’는 작가의 대표작 ‘장마’와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국군으로 전쟁에 나간 셋째 아들을 기다리는 할머니의 모습을 소년 유만재의 회상으로 들려준다.또 표제작은 이기곤의 기억에 기대 누이를 그리워하는 전쟁고아 박충서의 애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윤흥길은 나아가 가파른 이념 대결이 동심에 상처를 입히는 모습(‘큰남바우 철둑’),전쟁에 동원되고 이용된 이들의 비극(‘안압방 아자씨’‘아이젠하워에게 보내는 멧돼지’)을 애틋한 시선으로 감싸 안는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 리얼리스트답게 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들만이 가진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황량한 전쟁의 와중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인간의 얼굴을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정호웅은 “전쟁통 어린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6·25전쟁에 접근하는 연작소설인데 그들의 악몽과 공부와 놀이 속에서 죽음을,인간관계의 비정함을,세계의 폭력성을 알게 해준다.”며 “작가가 빚는 신성의 언어는 원혼의 한을 푸는데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해 생겨난 우주의 아픔,부조화까지 바로잡는 힘을 지녔다.”고 말한다. ●극한 상황서 피어나는 희망 다뤄 “작품중 6편의 내용이 직접 체험한 사실”이라는 작가는 작품에 담으려는 뜻을 이렇게 들려준다.“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진면목이 나타납니다.전쟁의 악마성만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몰린 인간의 숨은 모습을 다룸으로써 오히려 전쟁의 잔혹함을 더 반어법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종수기자 vielee@
  • 곽경해·김만수씨 유가족 오열/ “나이많아 일자리 없다며 가더니”

    “나이가 많아 국내에는 일자리가 없다며 외국으로 나가더니….” “자식 대학 학비를 대려면 한번만 갔다와야 한다고 했는데….” 환갑이 지나도록 전기공사장을 돌아다니던 곽경해(60)씨와 자녀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라크로 떠난 김만수(45)씨가 현지에서 총격으로 숨진 것으로 확인된 1일 유가족들은 갑작스러운 비보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형제·자식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보냈는데…” 곽씨의 부인 임귀단(56·여)씨는 대전 방동 집에서 곽씨의 영정을 붙들고 통곡했다.곽씨의 2남1녀 자녀들과 친척 10여명도 눈물을 쏟았다.가족들은 이날 오전 일찍 밥 3그릇과 동전 3닢,그리고 곽씨의 옷을 담은 사자상(使者床)을 대문 앞에 놓아두고 영정을 차렸다. 부인 임씨는 “지난 28일 남편이 출국하기 전 ‘위험한데 뭐하러 가냐.’고 말렸는데도 ‘걱정 마라.금방 나갔다가 설 전에 돌아오겠다.’며 오히려 가족들을 달래며 떠났다.”면서 “유성 작은 아들 집에 있는 시어머니 배옥선(81)씨에게는 충격이 크실까봐 알리지도 못했다.”고밝혔다. 큰아들 민호(33)씨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지난 69년부터 전기 공사일을 하면서 2남4녀 형제들 뿐 아니라 2남1녀 자식들까지 다 가르쳤다.”면서 “지난해 방동에 단층집을 지으면서 ‘말년을 고향에서 보내겠다는 꿈을 이뤘다.’며 그렇게도 좋아하시더니.”라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평생 전기 공사일에 종사한 곽씨는 90년대 말부터 송전탑 공사 현장소장을 맡았다.생활도 겨우 안정됐다.그러나 최근 고령으로 국내에서 일자리가 나지 않자 주저없이 이라크행을 결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곽씨의 가족들은 ‘이라크는 안전하다.’는 말만 거듭해 온 정부가 사고 이후 곽씨의 정확한 신상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분통을 터뜨렸다.곽씨의 동생(48)은 “지금까지 외교부 등에서 ‘형님이 출입국신고를 안 해서 아는 게 없다.’는 말만 늘어놓을 뿐 정식 통보도 가족들에게 해 주지 않았다.”면서 울분을 토했다. ●“가지말라고 말렸는데…” 이라크 수도 북쪽 티크리트에서 괴한들의 총격으로 숨진 김씨의 딸 영진(18·충남여고 3년)양은 “이라크로 떠나기 전 엄마가 ‘위험하니까 가지 마라.’고 만류했으나 아빠가 끝내 출국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영진양은 “오늘 아침 잠을 자고 있는데 엄마가 울면서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니’라고 말해 사고소식을 알았다.”면서 “‘아빠가 돌아가셨는지 아직 모르니 기다려 보자.’고 엄마를 위로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부인 김태연(43)씨는 TV뉴스에서 남편이 타고 가던 차량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TV를 부여잡고 오열해 주위의 눈시울을 붉혔다. 소규모 전기공사업을 하던 김씨가 이라크로 떠난 것은 지난달 28일.김씨의 부인은 “왜 위험천만한 이라크까지 가느냐.”고 극구 말렸다는 것이다.부인 김씨는 TV로 사고소식을 접한 뒤에도 오무전기측과 정부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영진양의 담임교사 임병규씨는 “지난달 19일 영진이 아빠가 전화를 걸어 올해 수능을 치른 딸의 대학진학 문제를 의논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아파트 경비원 박정근(61)씨는 “지난달 27일 아침 김씨를 봤을 때 ‘출장간다.’며 쾌활하게 웃었다.”면서 “김씨는 평소 쾌활한 데다 인사성이 밝고 성실해 이웃 주민의 칭찬이 자자했다.”고 아쉬워했다. 대전 이천열 이두걸기자 sky@
  • 47년째 한국서 봉사의 삶 “나는 영원한 코리안”/필리핀 출신 마리아 할머니 베들레헴 아가방 원장 산티아고 수녀

    지난달 21일 오후,낮잠에서 깬 서울 보문동 베들레헴 아가방 아이들이 칭얼대기 시작했다.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누워있는 아이들의 울음으로 가득찼다.“울지마,착하지….” 아가방 원장 미켈라 산티아고(71) 수녀는 아이들의 손에 일일이 막대사탕을 쥐어주면서 달랬다.까무잡잡한 피부에 유난히 눈망울이 큰 아이들은 금세 맑은 미소를 띤 ‘아기 예수’처럼 조용해졌다. 베들레헴 아가방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가 운영한다.수녀는 이곳에서 필리핀,태국 등 주로 동남아 출신 여성 노동자들의 아이들 11명을 돌보고 있다. ●동남아 여성 노동자 아이들 24시간 돌봐 수녀는 1957년 처음 국내에 들어왔다.판자촌 밀집 지역인 서울 영등포구 도림동 성당이 그가 한국 생활을 처음 시작한 곳이다.6·25전쟁의 상흔이 사라지지 않은 때였다.성당 밖 거리는 전쟁 고아와 상이 용사로 넘쳐났었다.산티아고 수녀는 “아침마다 미군 부대로 가서 얻은 우유와 빵,밀가루,약 등을 판자촌을 돌아다니며 나눠 주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갔다.”고 말했다.어려운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우리말은 저절로 익혔다. 1965년부터 광주 살레시오 초·중·고교와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 수녀원에서 교육과 봉사활동을 맡았다.79년부터는 마산에서 제2의 ‘봉사 인생’을 시작했다. 농촌에서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마산 자유수출공단에 취업한 여공들을 거기서 만났다.여공 기숙사를 운영하면서 영어와 일본어,타자 등을 가르쳤다.“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밤마다 불을 밝히며 공부하던 여공들이 친딸처럼 사랑스러웠어요.” 36년 동안 힘들게 사는 한국인들을 돌본 수녀에게 지난 93년 새 일이 맡겨졌다.서울 자양동 외국인 노동자의 집에서 일하게 된 것.미군 부대 대신 경찰서,출입국사무소 등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한국어에 익숙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과 손으로 일했다. ●한국 남편에게 맞는 외국 여성 많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봉사하며 만년을 보내던 산티아고 수녀는 지난 8월 말 아가방이 문을 열자 원장으로 부임했다.동남아 출신으로 한국에서 오랫동안 봉사 활동을 한 그만한 적임자가 없었다.아이들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농촌 지역의 한국인들이다.어머니들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모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국제 결혼을 했다.그러나 결혼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대부분 알코올 중독인 한국인 남편들이 다른 언어와 풍속을 이유로 외국인 여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주먹을 휘두른 탓이다.이들을 기다린 것은 양말,칫솔 등을 만드는 가내수공업 공장에서 낮은 봉급을 받고 고된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그나마 임금 체불로 15만원인 아이 보육비도 못 내는 어머니가 6명이나 된다. “어머니들은 제3세계 출신에다 여성,저임금 노동자라는 ‘3중고’를 겪고 있습니다.아가방에 들어오려고 기다리는 아이들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인 남편의 폭력에 고통받고 있어요.” 다행인 것은 대부분의 한국인 남편과 외국인 여성들이 재결합을 원한다는 것.남편들이 부인을 찾아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가 많다.며칠 전 한 남편이 필리핀 출신 부인을 찾기 위해 아가방에 들렀지만 부인이 ‘술을 계속 마신다면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수녀는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고된 ‘숨바꼭질’”이라고 표현했다. ●내 고향은 필리핀 아닌 한국… 된장찌개 좋아해 어느덧 50년 가까이 이땅에서 살아온 수녀는 한국 사람과 똑같다.말은 물론 입맛과 생각도 한국식으로 바뀌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필리핀 공용어인 타칼로그어와 영어도 이젠 가물가물하다.말년도 한국에서 계속 보낼 생각이다.몇년 전 수녀회에서 “고향에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된다.”고 권유했지만 거절했다.한국이 더 마음 편하다는 이유였다.수녀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50년 가까이 부대끼며 살다 보니 ‘형제’라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수녀는 천주교가 국교인 필리핀 출신이다.처음 수녀 양성 과정에 입문한 것은 18세 때인 1950년.달라 시에 있는 홀리스피리트 대학을 졸업하자마자였다.산티아고 수녀는 “초등학교 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뒤 남들을 위해 봉사하는 수녀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말했다. 살레시오 수녀회에 입회한 것은 지난 53년.살레시오 수녀회가 ‘도움을 주시는 마리아의 딸회’라는 이름처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여성들에 대한 봉사를 주로 하기 때문이었다.한국에 오기 직전 일본 살레시오 수녀회에서 4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봉사활동을 했다. 그러나 한 사회의 ‘생래적(生來的) 타자(他者)’는 더 날카롭게 사회를 보는 법.산티아고 수녀에게 최근 정부의 불법 외국인 노동자 추방은 한국의 국수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일례로 받아들여진다.수녀는 “일부 한국 사람들은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굽신거리면서,동남아 등의 노동자들이 다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월급도 제때 주지 않는 인종차별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이제는 필요 없다.’고 무조건 내쫓을 게 아니라 일정 정도의 법적인 기한을 채운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영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람에 받은 게 많아 감사할 뿐 수녀가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뜻한 정’ 때문이다.수녀는 “예전 영등포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어린 아이들이 이젠 환갑이 다 돼 ‘도와줄 것 없냐.’고 연락을 해 올 때면 ‘하느님께서 이렇게 베풀어 주시는구나.’ 싶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46년 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베푼 게 아니라 도리어 많이 받은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 베들레헴 아가방을 후원하고 싶은 사람은 국민은행 028-002-04-022668 미켈라 산티아고 수녀 계좌로 입금하면 된다. 이두걸기자 douzirl@
  • “달릴때마다 소아암 환자 희망 쌓이죠”/사랑 전하는 닥터 마라토너 김태형 교수

    서울아산병원의 소아종양혈액과 김태형(64) 교수는 ‘마라톤맨’이다.환갑을 넘겨 정년을 고작 1년 남짓 앞둔 ‘원로 의사’지만 틈만 나면 뛴다.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그가 내딛는 발자국마다 소아암을 앓는 어린이 환자들의 ‘소망’이 소복소복 담기기 때문이다. ●완주때 모인 후원금 치료비로 전달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완주하면 후원자들이 4만2195원씩을 성금으로 내도록 해 소아암 환자들을 돕는다.후원자들의 숫자가 220∼230명이어서 한번 완주하면 1000만원 쯤 모아 애들에게 전달한다. “워낙 치료비가 많이 드는 병이라 그 정도로는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는 마라톤 풀코스에 나가서 한번도 포기해 본 적이 없다.그가 가져갈 완주 메달을 받고 싶어하는 어린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한발짝 두발짝 내딛는 걸음이 소아암 환자의 치료비잖아요.그러나 그것보다는 반드시 완주해야 메달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그걸 받아 목에 걸어 보고 싶어하는 얘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지난 1987년이었다.미국 애틀랜타의 에모리대의대 소아병원 교수로 재직할 때였다.공부에 빠져 집과 병원만 오가는 생활을 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몸이 지쳐갔다. 혈압은 뛰고 몸은 푸석푸석 붓기 일쑤였다.하루는 아들과 함께 등산을 갔는데 때맞춰 마른 번개가 치면서 난리가 났다.“산등성이에 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쏜살같이 내달려 피할 곳을 찾는데,너무 숨이 차 죽을 것 같더라고요.그때 생각했어요. 병이 없다고 결코 건강한 몸이 아니구나.내 몸을 이렇게 건사해서야 되겠나.” 생각은 그랬지만 마땅한 운동이 잡히지 않았다.그래서 그날부터 별 생각없이 운동화를 챙겨 신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른 동료들은 대부분 골프를 즐겨했어요.일요일이면 골프장에서 사는 사람들인데,전 그럴 여건이 안됐어요.저는 외국인 교수였고 강의를 준비해 학생들을 가르쳐야 했는데,준비를 할 시간이 일요일밖에 없었거든요.운동은 해야 했고 시간은 많이 주어지지 않아 시작한 게 달리기였어요.” 그때부터 그는 새벽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5㎞ 정도로 시작해 매일 10㎞씩을 달렸는데,이게 몸에 익으니 달리지 않고는 안될 지경이 됐지요.” 그러다 1993년 풀코스에 처음으로 도전했다.애틀랜타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훗날 올림픽 정규 코스를 달렸다.그 인연으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는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는가 하면,황영조 등 우리나라 마라톤 대표에게 코스를 안내했고 KBS의 마라톤 중계방송 때는 코스해설가로 일하기도 했다. ●1993년 도전 이후 42.195㎞ 18회 완주 첫 풀코스를 완주하면서 그의 달리기에는 자연스럽게 값진 ‘사랑’이 담기기 시작했다.“고통을 견디며 달리는 일과 어려운 치료를 묵묵히 견뎌내는 소아암 환자들의 용기는 확실히 닮았어요.” 그 때부터 그는 어린 소아암 환자들에게 꼬박꼬박 완주 메달을 건네며 격려하기 시작했다. 메달을 받아 든 아이들이 환하게 웃는 것만으로도 풀코스 완주의 고통을 보상받고도 남았다.그가 마라톤을 중도에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전 미리 애들에게 얘기해 줍니다.‘내가 마라톤대회에 나가는데 이번 메달은 너에게 주마.대신 치료를잘 받아 꼭 낫겠다는 약속을 해줘야 해.’라고요.”이렇게 완주한 것만 18회나 된다.그러다 한번은 달리는 도중 무릎 연골이 파열됐다.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지만 그 때도 달리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0년에 걸친 외국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서울아산병원에서 일하게 된 지난 1997년부터 ‘희망 레이스’를 기획,실천에 옮겼다. “후원자들을 모집해 내가 1m 달릴 때마다 1원씩 내 소아암 환자들을 돕자는 것이지요.금액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미력이나마 다하자는 뜻이죠.” 그는 “우리 보험체계가 미흡해 많은 소아암 환아들이 치료비나 생활비 부담을 갖고 있어요.그들에게 적으나마 힘이 됐으면 하고 시작했는데,회원들에게 매번 부담을 줘 미안하기도 하고,또 주변에서 잘 이해해 주지 못하는 측면도 있고…,쉽진 않아요.” ●“보험체계 정비해 소아암환자 도움줘야” 의료 보험을 얘기하면서는 “보험 체계를 정비해 소아암 환아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귀국후 1000명이 넘는 소아암 환자를 치료했지만 대부분 보험 체계가문제가 됐다.”며 진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꼭 필요한 사람을 돕자는 의료 보험의 취지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으며,자신이 부담한 보험료만큼 치료를 받고 말겠다는 국민 의식도 문제라는 것이다. 나이가 예순을 넘어서면서 풀코스 완주 기록은 예전의 3시간대에서 4시간대로 늘어났지만 그 나이에 그런 기록을 갖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도,흔히 있는 일도 아니다.가장 최근의 기록은 지난달 19일 완주한 춘천마라톤에서의 4시간 17분.그는 “병마에 맞서는 아이들의 강인한 의지,‘나도 선생님 같은 의사가 되고 싶다.’는 환아들의 얼굴에서 삶의 건강성을 확인한다.”며 조용하게 웃었다.그의 ‘희망 레이스’를 후원하는 모임은 지난달 19일 춘천마라톤에 나서는 그를 두고 기금 모금 안내문에 이렇게 적고 있다. ‘김태형.백발의 42.195㎞.그의 뜨거운 심장 소리는 소아암 환자들의 지지 않는 희망의 노래입니다.턱밑까지 차오르는 거친 숨소리는 그의 아이들을 위한 투혼입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이언탁기자 utl@
  • ‘객지’에서 ‘손님’까지 각이 너그러워진 세월/새달 환갑 맞는 황석영 ‘문학의 세계’

    ‘객지’(71년)에서 ‘손님’(2001년)까지. ‘영원한 청년 작가’ 황석영에게도 세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오는 12월14일 환갑을 맞는 그의 푸르디 푸른 문학인생 41년을 조명한 ‘황석영 문학의 세계’가 나왔다.창비가 1년6개월의 공을 들인 이 책은 3부에 걸쳐 국내외 유명 작가 및 평론가 15명의 작품론과 ‘내가 아는 황석영’ 등의 값진 글이 수두룩하다.고모리 요오이치 등 일본작가는 물론 미국의 시어도어 휴즈,프랑스의 세실 바스브로,독일의 한스 크리스토프 부흐 등이 글품을 보태 황석영의 국제적 입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작가는 책머리의 문학평론가 최원식 인하대교수와의 대담에서 등단작 ‘입석 부근’에 얽힌 이야기,대표작 ‘객지’가 계간 창작과비평에 실린 사연,북한에서 들은 월북작가 박태원의 결혼이야기 등 많은 숨은 이야기를 고백한다.그가 들려주는 이 일화들 자체가 우리 문학사의 서까래를 이룬다. 1부는 고교시절 문우인 오생근 서울대교수를 비롯해 황광수 임규찬 임홍배 서영인 등 동료들이 황석영의 주요 작품을 분석한다.특히임규찬 성공회대교수는 황석영의 대표작 ‘객지’가 미친 70년대의 파급력을 평가한 뒤 “기존의 비판적 시선들이 양적인 한계를 간과한 데서 비롯했다.”며 “전형적 상황과 전형적 성격의 창조에 주안점을 둔,장편이 아닌 단편적 성격의 중편구조에 딱 부합하는 서사노선”이라고 해석해 눈길을 끈다. 2부에서는 외국 작가들이 ‘무기의 그늘’‘한씨연대기’등의 작품을 소재로 황석영 문학의 정체성을 들려준다.프랑스 작가 바스브로는 ‘한씨연대기’‘삼포 가는길’‘무기의 그늘’을 분석하면서 “황씨의 작품은 38선을 보여주는데 그 속에는 역사와 시간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거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3부는 인간미가 풋풋하게 나는 글모음집.선배 작가 송기숙은 ‘황구라’라는 별명을 낳은 뱀장사·약장사 흉내,좌중의 분위기를 간파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광범위한 독서량,‘장길산’ 창작 때의 풍경 등 ‘인간 황석영’의 면모를 구수하게 들려준다.고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재일 통일운동가 정경모는 황석영의 글을 읽은신선한 충격과 ‘장길산’ 번역을 맡은 일화 등을 전해준다. 한결같은 그의 글 인생을 축하하는 이 헌정집 성격의 연구서에 대해 작가는 “환갑 얘기를 하니까 쑥스럽다.”고 말한다.이어 “다른 생각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졌고 글쓰기에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다.”는 그의 말은 몸은 환갑이지만 문학정신은 여전히 젊음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소설을 건지고 소설로 현실적 발언을 해온 황석영을 위한 문단의 덕담은 또 있다.한국일보에 연재된 ‘심청,연꽃의 길’이 이달말 문학동네에서 나올 예정인데,새달 1일 ‘황석영 문학의 세계’와 함께 두 책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만든다. 이종수기자 vielee@
  • “당구테이블 인생의 축소판입니다”/‘1만점 기록 보유’ 당구명인 양귀문씨

    ‘따∼악,휘리릭∼’ 큐를 떠난 흰 공이 경쾌한 파열음을 내며 빨간공에 부딪치는가 싶더니 마치 끈으로 잡아당기듯 이내 반원을 그리며 녹색테이블 구석의 또다른 빨간공을 향해 휘어진다.물 흐르듯 춤추는 큐를 따라 3개의 당구공은 레일을 따라 구르기도 하고,때론 큐를 기어오르기도 하면서 온갖 기하학적인 모양을 그려낸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조끼,백발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노신사는 마음씨 넉넉한 여느 집 큰아버지 같은 모습이지만 금테안경 너머로 공의 한 점을 꿰뚫어보는 눈매에서는 매서움이 묻어난다. 대한당구연맹의 수석부회장 양귀문(67)씨.그는 자신의 공식 직함보다는 ‘당구 명인’으로 더 유명하다.국내 최고의 당구(4구) 점수인 ‘명예 2만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고 한번에 1만점을 쳐내 기네스북까지 오른,말 그대로 ‘당구 귀신’이다. ●목포 만석꾼 양아들의 ‘당구병’ 양씨는 서울 중학동의 내로라하는 부잣집 외아들로 자랐다.목포 만석꾼 출신의 아버지 정모씨 슬하에서 유복한 소년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수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남모르는 아픔도 컸다.자신의 생부가 따로 있었던 것. 본래 정씨 주치의의 셋째아들인 그는 갓난아기 때 강보에 싸인 채 만석꾼 집의 양아들로 들어갔다.환갑을 훌쩍 넘겼지만 아들이 없던 정씨가 주치의의 막내아들을 양자로 낙점했고,아들만 셋을 둔 그의 생부도 마다하지 않았다. 정씨 성으로 자란 그가 다시 자신의 성을 찾게 된 것은 17년 뒤.생부가 사망한 뒤 부산 피란 시절 둘째형으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끈질기게 양아버지인 정씨를 설득해 양씨 성을 되찾았다. 양씨의 당구 인생을 열어준 사람 또한 다름아닌 양아버지.대학에 입학한 뒤 취미로 잡은 큐로 인해 ‘당구병’이 도진 그가 밤늦도록 공과 씨름한 뒤 집 안으로 월담하다 장독을 깬 것만 수차례.이후 선뜻 집 안에 당구테이블을 들여놓으며 “당구를 얼마나 치기에 그렇게 빠졌느냐.”고 미소짓던 양아버지의 눈매를 그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일본 최고수의 제자로 양씨의 당구 재능을 알아본 사람은 귀화 일본인 윤춘식(일본명 다카키 쇼지)씨.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33세에 당구공 하나로 전 일본을 제패한 윤씨는 지난 1971년 양귀문에게 일본 당구유학을 권한다.당시 영화제작 등 사업에 분주하던 양씨는 모든 것을 접고 ‘최고봉’에 오르겠노라며 대한해협을 건넜다. “두달 동안은 당구공 구경도 못했어요.하루에 꼬박 두 시간씩 큐를 밀어치는 연습만 했지요.오른팔에 근육이 뭉칠 무렵,그제서야 공을 놓아주더라고요.” 하지만 그를 기다린 것은 더욱 혹독한 훈련 뿐. “세리(빨간공 두 개의 간격을 일정하게 모아놓은 상태에서 쿠션 레일을 따라 이동시키는 기술) 훈련을 하루에 열 바퀴씩 시키더군요.한 바퀴 점수가 2000점이니 열 바퀴면 2만점인데 꼬박 두시간 반을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쳐내야 했지요.” 1년여의 유학을 마친 양씨는 8·15해방과 한국전쟁 이후 침침한 백열등과 자욱한 담배연기로 상징되는 한국의 당구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사업도 뿌리친 채 당구에 매달렸다.국내외 대회에서 60여차례 우승을 휩쓸었고,당구 보급을 위해 개최한 세미나만 1700여차례나 된다. 지난 84년 한큐 1만점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그는 2000년 5월 1대 조동성(사망)씨에 이어 2대 ‘당구 명인’으로 추대됐다. ●당구가 주는 절대교훈 ‘겸손함' 양씨의 당구 철학은 의외로 싱겁다.‘가장 쉬운 공을 가장 어렵게 쳐라.’는 것과 ‘강해져야 부드러워질 수 있다.’는 것. 양씨는 “당구 테이블은 인생의 축소판이지요.큐 하나로 온갖 모양을 다 그려내면서도 고통은 고통대로,희열은 희열대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당구입니다.무엇보다도 가장 쉬운 상황을 가장 어려운 듯 완벽하게 풀어나가는 겸손함이 당구가 주는 절대 교훈이지요.” 양씨는 또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나폴레옹,그리고 미국의 조지 워싱턴 등 세계를 다스린 제왕과 지도자들도 모두 당구를 즐겼다.”면서 “절대적인 권력과 강인함을 갖추었으면서도 완급과 강약을 아우르는 통치력을 그 안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확신애 찬 듯 강조했다. 양씨의 당구에 대한 정열은 ‘이순’을 훌쩍 넘어 ‘마음이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종심(70살)’을 바라보면서도 끝이 없다.서울 서초동의 한국당구아카데미에서 매주 강의 중인 양씨는 지난달부터 인터넷 강좌까지 개설해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큐 하나로 ‘종심’을 향한 불꽃을 태우고 있다. 글 사진 최병규기자 cbk91065@
  • K-리그 ‘3연패’ 성남 차경복 감독 “우승 못하면 그만두려 했는데 다행”

    “선수들이 너무 잘 해줬고,코칭스태프와 프런트가 합심한 결과입니다.” 지난 25일 울산이 안양과 무승부를 이루는 바람에 일찌감치 프로축구 K-리그 3연패를 확정한 성남의 차경복(66) 감독은 “이제는 기분좋게 두다리를 펴고 잘 수 있게 됐다.”고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환갑을 훌쩍 넘긴 프로축구 최고령 감독으로 1967년 경희대 사령탑을 맡으면서 지도자로 첫발을 내디딘 이후 기업은행 인천대를 거쳐 95년에는 전북 다이노스의 창단 감독을 맡는 등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성남 감독에 취임한 건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던 98년 9월.당시 벨기에 출신 레네 감독 아래서 부진을 면치 못하던 성남은 카리스마 넘치는 차 감독 취임 이후 그해 연말 FA컵 정상에 오른데 이어 2001년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고,2002년에는 슈퍼컵·아디다스컵·정규리그를 석권했다. 이에 만족하지 않은 차 감독은 올들어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옛 제자인 김도훈을 불러들이고,이기형 싸빅 윤정환 이성남까지 영입해 ‘한국의 레알 마드리드’를 만들었고,결국 2위 울산을 멀찌감치 떨치며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차 감독은 “올해 우승 못하면 김학범 코치에게 지휘봉을 넘길 생각이었지만 주위에서 전인미답의 4연패를 일궈보라고 권유해 한번 더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성남은 26일 포항 원정경기에서 후반 41분 샤샤가 이리네의 어시스트를 받아 우승을 자축하는 결승골을 터뜨린데 힘입어 1-0으로 승리했다.이로써 성남은 2연승을 거두며 26승7무5패(승점 85)를 기록했다. 곽영완기자
  • 책 / 천년 후, 다시 다리를 건너다

    손광섭 지음 이야기꽃 펴냄 전남 벌교 홍교(虹橋)는 조선 숙종 44년(1705년)에 선암사의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뗏목 벌(筏),다리 교(橋)라는 이름 그대로 뗏목다리가 놓여 있었지만,비만 오면 떠내려갔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다닐 수 있도록 다리를 놓는 월천공덕(越川功德)은 승려가 행해야 할 중요한 보시 가운데 하나였다.그래서 승려 가운데는 다리를 놓는 기술자가 많았다는 것이다. ‘천년 후,다시 다리를 건너다’(이야기꽃 펴냄)는 우리의 아름다운 옛 다리 이야기이다.3대째 건축·토목사업을 하고 있는 손광섭 청주건설박물관장은 7년 동안 전국의 옛 다리를 직접 찾아다닌 끝에 이 책을 썼다. ‘천년 후…’에는 벌교 홍교말고도 태안사 능파각,강경 미내다리,진천 농다리,주남 돌다리,대천 한내돌다리,청원 미천리석교,청주 남석교 등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27개 다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다리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건축·토목학적 접근을 시도했는가 하면 때로는 다리를 찾아 나섰을 때의 감회도 담았다. 정과리연세대 국문과 교수는 “대상을 정확하게 떠올리게 하는 정보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제공되고,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자락과 소망의 내력을 연결시켜 나가는 이야기의 공간 속에 독자를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고 이 책을 평했다. 다시 벌교 홍교로 돌아가면,이 다리 위에서는 60년마다 제사를 지낸다.지난 1959년 홍교 6주갑 제사 때는 평생에 한번이나 볼까말까한 이 행사를 보기 위하여 전국에서 많은 인파가 모여들었다고 한다. 다음 제사가 열리는 때는 2019년으로 올해 환갑을 맞은 지은이가 76세가 되는 해다.지은이는 벌교 홍교의 7주갑 행사를 직접 보는 것을 남은 인생의 최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동철기자 dcsuh@
  • “한인 최초 美각료 되는게 꿈”백악관 장애인 정책차관보 강영우 박사

    국내 첫 장애인 유학생,첫번째 장애인 교육학 박사,100년 미국 이민역사상 최고위 공직자.지난달 29일 모교인 연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강영우(59) 박사에게는 항상 ‘첫번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후천적 시각장애인인 그에게 장애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강 박사는 2001년 9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지명을 받은 뒤 까다롭기로 소문난 연방수사국의 검증과 상원 인준절차를 거쳐 지난해 7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에 올랐다.미국 장애인 5400만명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책을 개발해 대통령에게 정기적으로 보고·추천하는 직책이다. 그는 450만 미국 공직자 중에서도 상원이 인준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500여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인디애나 주정부 특수교육부장,일리노이대 교수,국제연합(UN)장애위원회 위원,루스벨트재단 고문,백악관 전국 장애자문협회 의장.강 박사가 동시에 갖고 있는 이 직함들은 그의 활동의 폭을 보여준다. 그는 미국 장애인 정책의 특징을 ‘합리적 조력’(reasonable accommodation)이란 법조항에서 찾는다.“‘합리적 조력’이란 예컨대 식당에 맹인이 들어오면 종업원이 친절하게 메뉴를 읽어주는 것입니다.이런 것은 점자 메뉴판을 갖추지 않은 곳이라도 가능합니다.” 모든 공공도서관이 점자책을 갖추기란 어렵다.하지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맹인은 큰 불편함없이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박사에 따르면 최근 한국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장애인의 이동권 문제는 미국에서도 대도시의 주요 시설물이 아니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예산 문제때문이다.하지만 장애인 민권법상 ‘합리적 조력’이란 강제조항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이 생활하는 데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는 게 강박사의 설명이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통치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봉사하는 리더십입니다.” 강 박사는 2일 서울 내자동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경찰관 1000여명에게 ‘사랑과 봉사로 기르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컴패션(compassion)은 흔히 ‘동정’으로 번역되지만 남의 고통을 배우는마음이자 21세기 리더십의 근간”이라고 덧붙였다.강 박사는 “나는 약자이기 때문에 컴패션을 지닌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면서 “컴패션을 가진 이들은 대부분 지도력이 있는 사람들이었고,나도 컴패션이라는 리더십을 만났기 때문에 가장 낮은 위치에서 미국 행정부내 최고 위치에 올랐다.”고 말했다. 강 박사가 세상의 ‘빛’과 단절한 것은 중학생 시절이다.축구를 하다 망막을 다쳐 시력을 잃은 뒤 5년 남짓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착하게 사는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며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하지만 지난 1964년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인생의 역할 모델로 성서 속 인물 사도 바울을 만난 것이다.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 역시 병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그의 질병은 지은 죄때문이 아니었습니다.신께 고쳐달라고 기도했지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하지만 그는 신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했습니다.그로부터 원망하고 탄식할 상황에서도 감사할 조건을 찾는 법을 배웠습니다.” 실명을 걸림돌이 아닌 또 하나의 기회로 받아들이게되자 그의 인생도 달라졌다.72년 연세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76년 피츠버그대에서 특수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79년부터 일리노이대 특수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해오던 그에게 90년 부시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또 한번의 전환점이 됐다.“당시 아들이 다니던 필립스 아카데미로부터 ‘부모님의 날’에 초청을 받았습니다.교장에게 자서전 ‘빛은 내 가슴에’를 선물했더니 동문인 부시 당시 대통령이 보면 좋아할 거라며 백악관으로 책을 꼭 보내라고 하더군요.책을 보냈더니 얼마 뒤 ‘당신의 인생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에게 귀감이 된다.’는 내용의 답신이 왔습니다.” 이 인연을 계기로 부시 전 대통령은 지난 94년 국내 방송사가 강 박사의 인생을 소재로 만든 ‘눈먼 새의 노래’라는 프로그램의 말미에 직접 출연할 만큼 허물없는 사이가 됐다.당시 부시 대통령은 강 박사의 삶을 지탱해 온 원동력으로 신앙과 불굴의 의지,사람에 대한 사랑,꿈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가는 끈기 등을 꼽았다.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도 같은 해 아버지 부시의 소개로 만났다.이 날의 인연은 2001년 강 박사의 백악관 진출로 이어졌다. 3살 때 ‘의사가 돼 아버지 눈을 고쳐주겠다.’고 약속했던 큰 아들 진석(30)씨는 하버드대 의대를 졸업하고 안과 전공의로 일하고 있다.둘째 아들 진영(27)씨는 듀크대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뒤 미 연방 상원 법사위에서 최연소 고문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서울 맹학교 시절 대학생 봉사자로 강 박사와 인연을 맺은 아내 석은옥(60)씨도 특수교육 전문가로 ‘미국교육계명사 인명사전’과 ‘미국여성명사 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릴 만큼 저명한 특수교육 전문가다. 그는 이같은 집안의 성공을 끊임없는 노력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에서 찾는다.“아무리 타고난 능력과 재능이 뛰어나도 노력을 하지 않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성취도는 마이너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환갑을 눈앞에 둔 강 박사의 마지막 꿈은 한인 최초의 연방정부 각료가 되는 것이다. 강 박사는 “지난 2년 동안의 활동을 통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두텁게 얻었다.”면서 “만약 차기 대선에서 부시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장차관 자리에도 도전해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세영기자 sylee@
  • [젊은이 광장] 대구U대회 숙제 많이 남겼다

    ‘북한의 대회불참 소동’을 겪으며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세계 대학생 스포츠 축제’ 2003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가 오는 31일 12일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는다.이번 대구 U대회는 대규모의 북한 선수·응원단이 참여하는 등 역대 대회사상 가장 많은 국가가 자리를 함께해 그 의의를 더했다. 필자는 대구 U대회에서 대학생 명예기자로 활동하면서 경기장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직접 보고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을 느꼈다. 경기장 안팎의 다양한 문화행사는 대회의 위상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국내 보수단체와 북한기자단의 충돌은 재미를 더해갔던 대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환갑을 지난 자원봉사자 할머니,한반도기를 들고 “우리는 하나다.”라며 남·북 선수들에게 환호를 보내던 대학생들.이들의 활약은 대회 곳곳에서 빛났다. 인터넷을 통해 자원봉사에 지원했다고 소개한 김학자(64·경북 안동) 할머니는 “경기가 끝나면 경기장 안팎을 청소·정리한다.”면서 “자원봉사의 기회를 준 당국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6일 여자 양궁 개인·단체전 예선이 진행되던 예천진호양궁장에서는 국내 대학생들이 주축이 돼 북측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냈다.이에 북측 선수와 임원들은 직접 응원석까지 다가와 준비해온 배지를 전해주며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분단의 아픔으로 오랜 시간 서로 떨어져 생활환경과 문화는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하고 같은 외모를 가진 북녘의 동포들이 너무도 가깝게 느껴졌다. 북한의 미녀응원단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고전을 면치 못했던 대회 입장권 판매율이 미녀응원단의 대회 참여로 몇배나 증가했다고 하니 이들은 과연 스타였다.화려하고 다양한 응원도구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고 우리에게도 익숙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하지만 이들에게 보내는 지나친 관심이 도리어 조직위 관계자들의 과잉경호 논란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반감을 사기도 했다. 북한의 미녀응원단 못지않게 경기장을 뜨겁게 달군 이들은 2만 5000여명의 시민 서포터스들이었다.이들은 외국팀 경기가 있는 곳마다 찾아가 형형색색의 옷과 세계 각국의 국기를 앞세우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하지만 시민서포터스의 활약이 너무 컸던지 정작 우리선수의 경기는 관심 밖이고 서포터를 맡은 외국팀에 모든 이목과 응원이 집중돼 한국선수들은 주눅이 들기도 했다.1∼2명의 초미니 선수단을 꾸려 대회에 참가한 국가에 보내는 응원이 너무 극성스러워 외국선수들이 오히려 ‘몸둘 바를 모르겠다.’며 당황해하는 모습도 보였다. 무엇보다 북측의 두차례 대회 참가 중단소동과 ‘비 맞은 현수막 사건’은 남북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느끼게 했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마음 한쪽에 쌓인 편견의 벽을 허물려 해도 허물 수 없었다. 세계 대학생들의 스포츠 축제이자 남북 화합의 장인 대구U대회는 많은 숙제를 남기며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다.무엇보다 이번 대회를 거울삼아 앞으로 남북의 문화·체육교류에서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그 순수성이 훼손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임 현 재 안동대신문 교육부장
  • 늙지않은 老兵만화같은 마운드인생 / 42세 현역 최고령 투수 김정수

    세월을 향해 투혼을 던진다.”불혹을 훌쩍 넘긴 SK의 김정수는 아직도 시속 140㎞가 넘는 강속구를 던지며 마운드를 굳게 지키고 있다.야구선수로선 이미 환갑이 지난 셈이지만 아직도 지칠 줄 모르는 투혼으로 한국 프로야구사에 새로운 획을 긋고 있다.이젠 주연인 선발투수 자리는 후배들에게 물려주고,빛이 나지 않는 조연인 원포인트 릴리프로 물러서 있지만 공을 던질 때는 여전히 처음 마운드를 밟았을 때의 설렘 그대로를 온몸으로 느낀다. ●등판 때마다 프로야구사 새로 써 김정수는 현역 최고령 투수(6일 현재 41세13일)다.이 때문에 그가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는 새로 써야만 한다. 지난 4월8일 LG와의 대전 홈 개막전에서 선발 정민철의 뒤를 이어 7회 구원 등판함으로써 박철순(전 OB)의 최고령 투수(40세5개월22일)기록과 백인천(전 MBC)의 최고령 출전(40세9개월16일) 기록을 한꺼번에 깼다. 박철순의 최고령 승리 투수(40세5개월)와 최고령 세이브 투수(40세4개월),김용수(전 LG)의 최다 등판(613경기) 기록도 경신이 가능한기록이다. 2003년 8월 6일 현재 581경기에 출전해 92승77패34세이브,방어율 3.28을 기록중이다. 이같은 노익장의 원동력은 야구에 대한 열정과 정신력이다.물론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절대적인 조건은 아니라고 말한다.“나를 지탱한 버팀목은 체력보다는 정신력”이라면서 “은퇴할 때가 됐다고 해이해지면 성적이 떨어져 결국 야구공을 놓게 된다.”고 지적했다. ●‘컷 패스트볼’ 신무기 익혀 아울러 배울 것은 배운다는 자세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 것이 아직도 마운드를 지키는 비결이라고 털어 놓는다.이번 시즌을 앞두고서도 신무기를 개발했다.지난 시즌 함께 뛴 외국인 투수 파라에게서 ‘컷 패스트볼’을 배운 것. 체력 관리를 위해 젊은 시절 결코 마다한 적이 없는 술도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술은 죽을 때까지 마실 수 있지만 야구는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훈련 내용도 나이에 맞게 맞췄다. “해마다 몸이 변하는 것을 느낀다.”면서 “올해는 근력이 떨어진 것 같아 웨이트트레이닝 시간을 늘렸다.젊은 선수들과 다르게 내 몸에 맞게 만든 프로그램이 있다.”고 밝혔다. 선동열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은 지난해 “투수의 생명은 유연성인데 (김)정수는 유연성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며 그의 눈물겨운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늘 오늘이 마지막 등판이라고 생각하며 마운드에 오른다.”면서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다.”고 속내를 토로했다. 노장이라 실수에 대한 변명의 여지가 없고 부상이라도 입으면 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프로의 세계는 실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나이 들었다고 봐주는 법은 절대 없다.이같은 마음고생을 겪으며 선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의 마음 한 쪽에는 언제부터인가 사명감도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다.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야구선수라는 직업을 택한 것”이라면서 “딸 셋을 키우기 위해서는 이같은 어려움은 겪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프로근성 가득한 반문을 했다. ●만화 주인공 ‘까치’ 빼닮은 삶 그는 글러브를 낄 때마다 자신이 야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야구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우고 느꼈다.승리와 패배를 겪으면서 기쁨과 슬픔,좌절과 희망을 맛봤다.그러기에 쉽게 글러브를 벗어 던질 수가 없다. 그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은 희망과 감동의 메시지를 받는다.‘IMF 사태’ 이후 조기 퇴직자가 늘면서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한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당당한 ‘40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광주 남초등학교 3년 때 야구를 시작한 그는 광주 진흥고와 연세대를 거쳐 지난 1986년 해태(현 기아)에 입단했다.데뷔 첫해 한국시리즈에서 최다승(7승)을 따내며 팀의 우승을 이끌어 최우수선수(MVP)의 영예를 안았다.2000년 이후 SK와 한화를 전전하다 지난 6월 다시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의 별명은 ‘까치’다.프로야구를 주제로 한 이현세의 인기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주인공 ‘까치’와 삶의 궤적은 물론 반항적인 기질,뻗친 머리카락 등 외모까지 쏙 빼닮았다. 그는 ‘까치’의 캐릭터 가운데 승부근성을 가장 좋아한다.그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것도 사실은 승부근성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투혼’을 던진다는 각오로 야구장으로 향한다. 글·사진 김영중기자 jeunesse@
  • [나의 건강보감]서병윤 대한검도회 전무

    그가 환갑을 앞둔 58세의 초로(初老)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눈빛은 형형했고 몸놀림은 가벼웠다.안색은 밝았고,외모나 말씨 어디에서도 오랜 세월 검도라는 격투기로 자신을 단련해 온 무골(武骨)의 냄새는 풍기지 않았다.그에게 검도가 무슨 운동이냐고 물었다. “검도는 기예의 특성상 항상 단전에 힘을 모으고 기력을 발산합니다.또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면 움직여야 하고,나를 경계하는 상대 또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검도를 두고 움직임 속에서 궁극의 도를 찾는다는 의미에서 동선(動禪)이라고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풀어 설명하자면,섬광같은 몸놀림 즉,동세(動勢) 속에서 정관(靜觀)하고,정관하면서 약동(躍動)하는 무도라는 뜻이다. ●남녀노소 즐길수 있는 무예 서병윤(58).대한검도회 전무이사인 그는 공인 8단의 고수다.8단이 어느 정도 고수냐 하면,우리나라 검도계에는 9단이 없다.일흔을 넘긴 원로 검도인을 예우하기 위해 ‘명예9단제’를 운영하고 있을 뿐이다.해서 실질적으로 검도의 가장 마지막줄에 선 고산준령의 한봉우리 쯤으로 이해하면 된다.전국을 망라해 고작 25명 뿐인 8단이다. 그가 검도에 입문해 처음 죽도를 든 것이 성균관대 1학년 때인 지난 64년.열 아홉 살에 시작해 올해로 꼭 40년째다.세상이 사람을 영악하게 해 눈을 씻어도 종신(終身)의 미덕을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 40년을 한길로 매진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그걸 가능하게 하는 것이 검도의 매력입니다.다른 격투기는 20대를 지나면 하기 어렵지만 검도는 달라요.7∼8세의 어린이부터 80을 넘긴 노인들까지,또 남녀를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운동입니다.” 사실 검도를 배우겠다고 도장을 찾았던 사람중에는 몇달씩 발딛기와 검쥐기만 하라는 통에 제풀에 지쳐서 도장문을 나선 사람도 없지 않다.“검도는 기본을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입니다.이런 일화가 있어요.복수를 위해 검도를 익히겠다며 스승을 찾은 젊은이가 있었대요.그런데 스승이 3년동안 걷기와 중단세(상대의 목을 겨누는 검도의 기본 자세) 한가지만 시키는 바람에 그만 못견디고 하산해 원수와 맞닥뜨렸어요.상대는 내로라는 검술 고수였는데,이 애숭이의 빈틈없는 중단세 자세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무릎을 꿇었다는 겁니다.이처럼 도(道)는 현란한 기교나 잔재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에 있다는 믿음,그것이 검도의 시작입니다.” 알고 보면 검도처럼 무서운 기예도 없다.만약 고수중 누군가가 예(禮)와 인격을 포기하면 엄청난 파장을 초래한다.그래서 지금도 4단 이상에게만 진검을 허락하고,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면 4단 이상의 승단을 허락하지 않는다. ●검만 쥐면 스트레스가 싹~ 그는 젊은 시절,국가대표로 뛰었다.예나 지금이나 어려서부터 검도를 배웠어야 가능한 것이 국가대표인데,그는 이 관행을 깨고 다 커서 검도를 배운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태극 마크를 달았다.64년에 검도를 시작해 8년째인 71년 4단으로 전국 단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했고 이듬해 국가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기도 했다.그만큼 그는 검도에 미쳐 살았다. 지금도 중앙문화센터에서 손수 검도교실을 운영하는가 하면 매주 모교인 성대에서 검도반을 지도하는 그는 검도야말로 ‘끝없는자기와의 싸움’이라고 했다.“그래서 검도를 휙휙 날아다니는 중국영화 정도로 여긴 사람들은 지루하다고도 하지만 그건 검도의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겁니다.저의 경우 일단 검을 쥐면 무아지경에 빠집니다.한두시간 뛴다는 게 엄청난 운동량이지만 운동 중에는 피로감을 못느낍니다.” 그는 검도를 ‘만병의 묘약’이라고 추어올렸다.“검을 쥐고 상대와 맞서면 몇번이고 극한상황으로 치닫습니다.그 과정에서 심신이 엄청난 에너지를 얻고,정화됩니다.검도를 시작한 이래 큰 병을 앓지 않았어요.지금도 몸이 찌뿌드드하거나 몸살기가 느껴지면 약 대신 운동을 합니다.실제로 미국에서의 연구 결과 검도의 항암효과가 확인되기도 했고요.” ●‘활인의 도'… 한번도 다툰적 없어 지난 3월 일본항공 상무이사로 정년퇴임한 뒤 그는 아예 검도협회 일을 도맡고 있다.지난달에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 국제심판으로 참석했다.“아직은 저변이 일본에 못미치지만 곧 따라잡아야지요.한국인은 기질적으로 검객의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우리 어린이들 보세요.본능적으로 막대기를 휘두르며 놀지 않습니까?”그가 줄창 검도만 한 건 아니다.수영도 10년 넘게 했다.검도의 보조 운동으로 수영을 했는데,몸의 유연성이 향상되고 심폐기능도 놀랍게 개선돼 좋더라고 했다.15년이 넘게 익힌 수지침 실력도 수준급이어서 건강교실의 초빙을 받아 강의를 하는 수준이다.담배는 아예 배우지 않았다.술은 운동후 마시는 맥주 한두잔을 으뜸으로 친다.대학때 68㎏인 체중이 지금 70㎏으로 거의 늘지 않았다.그의 삶이 건강하다는 구체적인 반증이기도 하다. 그는 검도를 사랑했다.안 되면 손 터는 허튼 사랑이 아니라 ‘죽어도 나는 검도인’이라고 했다.“다른 운동은 극한 상황에서 자신과 타협하고 용서하지만 검도는 결코 자신을 용서하지 않습니다.상대가 있기 때문입니다.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상대를 예로 대하는 이를테면 ‘활인의 도’인 셈이지요.검도를 시작한 이래 저는 단 한번도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았습니다.”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안주영기자 jya@ ■서병윤8단의 검도 예찬 그는 검도를 매력적인 운동이라고 했다.“5㎏의 호구를 차려입고 1시간만 뛰고 나면 체중이 2∼3㎏씩 줄죠.1년에 7∼8㎏의 체중을 줄이는 건 흔히 있는 일이고요.기합과 함께 때리고 맞고 부딪는 가장 원시적 격투기로 스트레스를 씻어내는 데도 그만입니다.무서운 집중력이 요구돼 두뇌활동도 엄청나죠.검도인 중에 치매를 앓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그뿐이 아니다.반사신경도 놀랍게 발달한다.일본 문부성 보고서에 따르면 탁구선수보다 6∼7배나 빠른 것이 검도인의 반사신경이다.일부 야구선수나 공군 파일럿 등이 검도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도가 ‘예도(禮道)’라는 점.그는 “검도가 예의를 제일의 덕목으로 삼고,수련 과정에서 조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같이 운동하는 사람은 금세 가족처럼 된다.”고 소개했다. 그가 수지침에 관심을 가진 것도 검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칼을 쥐고 한 시간만 운동을 하면 손바닥이 화끈거릴 정도로 손바닥에 집중된 12개 경락이 운동 중에 자극을 받아 놀라운 지압효과를 나타냅니다.맨발로 뛰니 발마사지 효과도 있고요.” 그가 말하는 두뇌개발론도 재밌다.“검도는 기본적으로 왼손과 왼발이 중심인 운동입니다.이 점이 매사 오른쪽 중심인 현대인의 불완전성을 보완합니다.왼쪽 중심의 운동이다보니 왼쪽을 관장하는 오른뇌의 기능,즉 창의력과 아이디어 창출능력이 향상되는 것이죠.물론 직관력과 예지력 향상에도 많은 도움을 줍니다.이런 얘기는 좀 그런데,검도를 오래 한 사람들은 감각적으로 위험을 간파하거나 사람을 판별하는 능력을 갖추기도 합니다.” 고려대의대 해부병리학과 김한겸 교수는 “검도는 무엇보다 정신집중과 순간 결단력이 중요한 수련”이라며 “정신수양과 체력단련 두 가지를 만족시키면서 교육적 효과도 탁월해 아이들과 함께 하기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심재억기자
  • “청년실업·신용불량자 대책 있나요”/ 최병렬대표 ‘e대화’ 질문홍수 “혼전동거 후회할일 말아야”

    한나라당 최병렬(65) 대표가 20∼30대 네티즌들을 찾아 사이버공간으로 뛰어들었다.환갑을 넘긴 최 대표와 아들·손자뻘인 네티즌들과의 ‘원초적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길을 모았다. 최 대표는 28일 서울 삼성동 COEX내 세중게임홀에서 네티즌들과 함께하는 인터넷 토론회 ‘병렬아 놀아줘∼’ 행사에 참석,열띤 토론을 벌였다.패널로는 최 대표를 비롯해 대학생 4명,자영업자·회사원 각 1명 등 7명이 참가했다. 이날 토론회는 그동안 “클릭 한 번으로 서울 광화문에 10만명의 네티즌들을 모을 수 있는 한나라당을 만들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어온 최 대표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어서 주목됐다. 토론회는 3부로 나눠 진행됐다.1,2부는 토론회에 앞서 네티즌들로부터 받은 질문 가운데 젊은이들과 직접 연관된 질문에 최 대표가 답변하는 형식을 취했다.3부는 인터넷 방송 도중 네티즌들이 실시간으로 올린 질문 가운데 행사기획팀이 선별한 질문을 중심으로 토론이 이뤄졌다. 패널들은 최근 젊은 네티즌들 사이에 활발하게 논의되는 혼전 동거,휴대전화 요금 인하,신용 불량자 대책,청년 실업,군대내 성 폭력 등 다양한 질문들을 거침없이 쏟아내 최 대표를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최 대표는 혼전 동거와 관련,“부모라면 누구나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뜯어 말린다고 안 하겠느냐.”면서도 “성인들의 사랑에는 자제와 책임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나중에 본인들이 후회할 일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이어 ‘최 대표의 자녀가 혼전 동거를 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자녀들 판단과 행동을 믿지만 만약 그렇게 하겠다면 똑같은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최 대표는 토론회를 마친 뒤 패널·방청객 등과 인근 호프집에서 맥주를 함께하며 인터넷 토론회에서 다하지 못한 질문에 답하는 뒤풀이 행사도 가졌다. 전광삼기자 hisam@
  • “한민족의 비극적 현대사 외국인에 알리려 했어요”/500여쪽 영문소설 순이 펴낸 정종순 금강고려화학 부회장

    그는 ‘노무현 인맥’이라는 이유로 지난 연말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언론은 으레 ‘부산상고 49회,노 대통령의 4년 선배…’라는 표현을 앞세워 앞다퉈 보도했다.고교 동기생인 황두열 SK㈜ 부회장,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52회)과 더불어 부산상고 출신의 ‘재계 3인방’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바로 정종순(鄭鍾淳·60) 금강고려화학 부회장이다. “언론이 그렇게 쓰니까 어쩔 수 없더라고요.부산상고를 나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그러나 노 대통령은 4년전에 딱 한번 만났을 뿐입니다.노 대통령이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뒤였습니다.그 때는 동기생들과 함께 정치판에서 손을 떼고 생활인으로서 변호사 역할에 충실하라는 충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아픈 상처도 우리 몸의 일부입니다.” 그가 다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순이’ 때문이다.환갑을 맞아 ‘순이-격랑위의 여행자(Soony-A Traveler on the Angry Wave)’라는 소설을 펴낸 것이다.그것도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써냈다.무려 500쪽에 이른다.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공부한 적도 없다고 했다.그래서 소설을 완성하는데만 꼬박 10년이 걸렸다.하루에 한 줄밖에 쓰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 삶을 묘사한 훌륭한 문학작품은 많지만 우리끼리 감동하고 눈물을 흘린들 외국인들이 누가 알아주기나 합니까.” ‘순이-’는 일제 강점기인 1941년부터 사할린 상공에서 대한항공 007기가 피격되는 1983년까지 40여년의 세월을 헤쳐온 한 한국여성의 일대기를 그렸다.순이는 대갓집 머슴에게 겁탈 당하고 일본으로 팔려 가며,한국전쟁 이후에는 양공주로 전락하는 등 한국 현대사의 오욕을 함께 했다.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가로 성공하지만 코리아게이트에 휘말려 옥살이를 한다.아들을 만나기 위해 1983년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가 공중에서 산화하고 만다. ●“외국에 3000부를 기증할 것입니다.” “한민족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외국인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근대화 100년의 고단한 삶을 외국인들에게 이해시켜 보자는 것이었지요.혹자는 주인공 순이의 삶이 너무 가혹하고,우리 사회의 치부까지 드러내 외국인 독자가 한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했습니다.” 정 부회장은 그러나 “아픈 상처도 내 몸의 일부입니다.우리의 절치부심,뼈저린 반성이 필요한 것 아닙니까.”라고 반문했다.그래서 자비로 소설 5000부를 인쇄해 이 중 3000부를 외국 도서관에 기증할 작정이다. “1983년 사할린 상공에서 269명이 희생됐는데도 별다른 대책 없는 나라팔자에 대한 울분,틈이 있을 때마다 한국강점을 정당화하는 일본을 향한 분노,그런데도 우리는 도대체 그 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자성인 셈입니다.” 그는 수수하고 소탈한 인상을 풍긴다.얼굴이 가무잡잡해서 그런지 고향의 형님같다는 느낌을 준다.아무리 뜯어봐도 세련과는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연간 매출이 1조 7000억원에 이르는 대기업의 대표이사 사장을 7년이나 지냈는데도 말이다. 당한 달변가인데도 그의 말에서는 일관된 흐름이 감지된다.국력을 키우지 않으면 결국 국민들만 고생하게 된다는 것이다.사실 ‘순이-’라는 소설도 한 한국 여성의 고단한 인생 역정을 통해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국가간의 관계에서 이성에 호소하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지,나라가 힘이 없을 때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형상화했다. ●“나라의 힘이 없으면 백성만 고단해집니다.” 어수선한 시대,모두 애국자를 자처하며 정치판에 나선 시기에 공산주의를 민족의 구원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의사 친구와 제 자리를 지키려는 은행원의 입을 빌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새 나라를 세우려면,각자가 자기 소명에 몸 바쳐야 할 걸세.농부는 열심히 밭갈고,어부는 매일 아침 고기잡고,물건 만드는 사람과 상인은 사람들에게 물건 대주고,자네같은 의사는 아픈 사람을 돌봐야 할 걸세.모두 정치판에 나서면,농사는 누가 짓고,고기는 누가 잡으며,아픈 사람은 누가 돌보겠나.” 그는 4·19혁명 직후였던 고교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국가보안법 반대 시위를 벌였다가 투옥된 적이 있다.서울대 상대 3학년때는 교내 학예부장으로 일하면서 한·일수교 반대시위를 주도했다. 60대인데도 젊게 보이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마음을 항상 편하게 갖는 것입니다.매사를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 탓이오.”하면 됩니다.남의 탓을 하면 속이 끓고 얼굴이 찌그러들지 않습니까.직장 생활에서도 명예는 상사에게 돌리고,공(功)은 아래 사람에게 주고,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자세를 가지면 모든 일이 원만히 풀립니다.” 박건승기자 ksp@
  • [나의 건강보감]이정무 한체대 총장

    “퇴근하다 목적지에 이르면 무조건 차에서 내립니다.운전기사를 돌려 보내고 거기서부터 걷지요.그날 컨디션에 따라 40분에서 1시간 정도 걸을 수 있도록 거리를 잡습니다.지금까지 30년을 그렇게 해왔는데,정말 그만큼 좋은 운동 없습디다.” 이정무(李廷武·63) 한국체육대학 총장.한때 자민련 소속 재선의원으로,‘국민의 정부’의 1기 내각에 건설교통부 장관으로 입각,국정 일선에서 뛰었던 그를 만나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눴다. ●일주일에 4만~5만보 걸어 그는 처음에 인터뷰를 안하겠다고 했다.“정치 얘기를 할 양이면 인터뷰를 사양하겠습니다.내 건강이 실은 내세울만 한 게 아니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한체대에서 그를 만났다. “건강은 거저 줍는 사람 없습니다.타고난 건강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무의미하고요.누구든 건강한 삶을 살려면 생각만 하지 말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스스로 아무 것도 포기하지 못하면서 건강을 바란다? 그건 넌센스지요.” 그의 건강론은 명쾌했다. 그와 얘기를 나누면서 건강에 대해 그토록 자신을 낮춘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그는 30년 넘게 고혈압으로 고생하고 있었다.정치 일선에서 한창 뛸 때는 “까짓 혈압 정도야…”했다.건강에 관한 자신감이었다지만 실은 오만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지역구를 누빌 때는 젊은 당료나 운동원들도 혀를 빼물었다. 그런 그가 2000년 4·13총선때 지역구인 대구 남구에서 패퇴,정계에서 발을 뺀 이후 그의 삶을 지배한 것은 ‘몸의 건강’과 ‘마음의 안정’이었다. “정치 12년 하면서 몸 많이 상했다.”고 털어놨다.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출세’의 상징인 국회의원을 하면서 몸을 상했다는 그의 고백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몸 돌보지 않고 정치했으나 정치판,특히 한국 정치판에서 ‘잠깐의 승자’라면 몰라도 ‘영원한 승자’란 없다.누구도 이 치욕의 풍토병에서 자유롭지 못했고,그도 마찬가지였다. ●술·담배와는 담쌓고 지내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건강’이라는 화두를 젖혀두고 살지는 않았다.저녁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대개는 차를 돌려보냈다.걷기위해서 차에 의지하려는 근거를 스스로 없애버린 것이다.“절대운동량이 부족한 현대인에게 차는 편안함으로 유혹하는 이기”라며 “머잖아 건강을 위해 일상적으로 걷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에게 걷기는 운동이라기 보다 생활이었다.구력 30년의 골프 애호가지만 특별히 의전적인 경우가 아니면 카트를 이용하지 않는다.역시 걷기 위해서다.골프를 치면서도 의도적으로 걸을 ‘꺼리’를 만든다.그래서 골프장에 가면 항상 남보다 바쁘다. 이렇게 걷기에 몰두하는 그가 일주일에 걷는 평균 거리는 얼추 4만∼5만보.그가 이런 정도의 운동량을 30년씩이나 소화해 낸 것은 “기왕 할 일이면 생활이라고 여기고 즐겁게 한다.”는 긍정적 사고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술·담배와 담 쌓고 산지 오래며,먹거리는 철저하게 채식 위주다.단골집은 나물 밥집이며,붙박이 메뉴가 산채비빔밥이다. ●오만과 과욕에 빠지지 말라 그의 건강 철학은 ‘오만과 과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일상 생활도 이렇게 한다.치열한 선거까지 치러 한체대 총장으로 부임한그가 줄곧 주창한 것도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며 생활하자.’였다.학생들에게도 “마음을 밝게 갖지 않으면 어떤 운동,어떤 노력도 결실에 이르지 못한다.”고 가르친다.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도 마음의 짐은 있다. 한체대가 한국 엘리트체육의 요람이지만,이곳에서 땀흘리는 젊은이들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이 학교에는 축구,야구,농구 등 이른바 인기종목의 학과는 없다.언론과 국민이 철저하게 외면하는 역도,하키,체조 등 27개 비인기 종목 중심으로 학과가 구성돼 있다.이곳 학생들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거둬들인 금메달이 무려 31개.학교 단위로 출전해도 아시아 4위권의 빼어난 성적이지만 이들에게 남은 것은 상대적 빈곤감 밖에 없다. ●비인기 종목 살아야 체육발전 월드컵으로 나라가 들썩일 때도 이들은 환호와 비탄을 함께 토했다.축구,야구,농구 스타의 시시콜콜한 스캔들까지 대서특필하는 신문·방송이 한국 신기록을 세운 비인기종목 선수는 이름 한 줄 내주지 않는 일이 허다했다.그는 “이런 인식이 한국 스포츠의 기형화를 부채질하고 육상 등 기본을 소홀하게 하는 직접적인 이유”라고 진단했다.“그러니 어린 선수들이 몸바쳐 운동할 의욕이 나겠느냐.”는 대목에서는 유난히 목에 힘이 실렸다. 정부의 무관심도 어린 학생들에게는 철벽같은 현실.그가 부임해 정부 부처를 설득,겨우 기숙사를 리모델링하고 한창 힘쓰는 학생들 1일 섭취 열량을 4500㎉로 늘려 놨지만,올림픽 금메달을 따봐야 취업조차 되지 않는 현실에 이들의 상심은 깊기만 하다.“이러니 누가 자식 비인기종목 운동 시키려고 하겠어요? 비인기 종목을 이끌어가는 한체대가 살아야 체육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늘고,그런 변화를 거쳐야만 모든 국민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이 보장되는 것 아닙니까.” 글 심재억기자 jeshim@ 사진 한준규기자 hihi@ ‘지속적 걷기’ 혈압 4∼9㎜Hg 낮춰 고혈압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이 총장의 걷기는 따로 시간을 정해두지 않는다. 짬짬이 시간의 틈새를 ‘걸음의 땀’으로 채우는 그의 운동 스타일은 이른바 ‘자투리형 걷기’.정치인으로,행정관료로,또 교육자로 숨가쁘게 일해야하는 그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매주 4만∼5만보 정도를 걷는다.㎞로 환산하면 적게는 32㎞에서 많게는 40㎞에 이르는 거리.말이 40㎞지,환갑을 넘긴 나이에 매주 마라톤 풀코스에 버금가는 거리를 걷는다는 게 여간한 결심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와 학교 캠퍼스를 걸어보니,보폭은 보통이었고 속도는 좀 빨랐다. 그러나 정해둔 룰은 없다.몸이 요구하는 대로 보폭과 속도를 조절한다. 그는 “걷기를 만만하게 여기면 오래 못한다.정말 건강을 생각한다면 결심이 필요하다.”고 했다.결심이란 언제,어디서든 이 ‘하찮은 운동’을 결코 하찮지 않게 치러내는 진지함과 생활화를 이르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전문의들은 지속적인 걷기가 혈압을 4∼9㎜Hg 정도 낮춰주며,혈압을 높이는 교감신경계의 활성화를 억제하고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고 혈관의 탄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인체에 좋은 콜레스테롤(HDL)을 증가시켜 심장병도 예방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강도.사람마다 적당한 운동 강도가 있는데 이를 정하는 기준은 맥박수다.일반적으로 220에서 자신의 나이를 뺀 숫자가 최대 맥박수로 한다. 예컨대 63세인 이 총장의 경우 분당 137회가 최대치이며,적정 운동강도는 최대 맥박수의 50∼90% 정도로 잡으면 된다. 운동은 가능한 매일 하는 것이 좋으나 적어도 일주일에 3일 이상은 해야 한다. 운동으로 심혈관계에 주어진 자극이 2∼3일 정도 지속되다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다.이렇게 운동할 경우 보통 6∼8주가 지나면 혈압 감소효과가 나타난다. 전문의들은 “새벽 시간대만 피한다면 고혈압 환자에게 걷기(속보)는 좋은 운동”이라며 “걷기에 익숙한 사람은 조깅을 병행,한번에 5㎞를 30∼40분에 걷는 정도가 적당하다.”고 조언했다. ■도움말 이해영 국민고혈압사업단 내과전문의 심재억기자
  • 새콤한 맛… 몸안 노폐물이 싹~ / 매실에 담긴 건강비결

    해마다 이맘 때면 매실이 익는다.매실이 농익는 망종(芒種·6월6일) 을 전후로 보름 정도 새콤한 매실이 시장에 선보인다. 연간 150t 정도의 매실을 생산하는 전남 광양시의 청매실농원 대표 홍쌍리(61)씨는 요즘 한창 바쁘다.국내 첫 식품 명인인 그는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온종일 바쁘다.환갑을 넘겼지만 장정 못지않게 힘을 쓴다. 또한 그에겐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때론 어머니로,때론 언니로 혹은 친구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그를 가까이 한 사람이라면 그의 잔소리에 시달려 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반가운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손바닥을 꾹꾹 눌러보고 “채소 많이 먹어라.”,“단식 한번 해봐라.”,“매실 왜 안 묵노.” 등과 같은 잔소리가 이어진다.농원을 찾는 이들에게도 마찬가지.그의 발길은 몸이 아파 보이는 이들에게로 먼저 향하고,또 같은 잔소리가 계속된다.그의 잔소리는 오랫동안 아팠던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된 동병상련이다. 꼭두새벽부터 매화나무가 있는 산과 2000개가 넘는 장독을 오가며 그는 일한다.젊은 사람 몫을 너끈히 하고 있다.너무나 바쁜 일상에 ‘전원생활의 느긋함’이란 환상은 깨어진다. “도대체 뭘 먹고 저리 힘을 쓸까?”많은 이들의 공통된 의문이다.하지만 그는 타고난 건강체질은 아니다.20대에 이미 자궁을 들어냈고 장의 일부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았고,30대에는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2년 6개월동안 목발 신세를 진 적도 있다.오토바이에서 떨어져 허리를 크게 다쳤다.나이답지 않게 피부는 곱지만 허리가 굽은 것도 이 때의 교통사고 탓이다. 그의 건강 비결은 자연건강법.채식과 매실,그리고 단식으로 압축된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매실 명인 홍씨가 ‘매실 아지매,어디서 그리 힘이 나능교?’(디자인하우스·1만원)를 펴냈다.지난 30년간 매실농사에서 얻은 체험과,수확한 매실로 갖가지 매실음식을 만들면서 형성된 그의 ‘먹거리 철학’이 담겨 있다. 모두 7장으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자연식을 강조한다.그의 자연식은 ‘물과 소금,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서 ‘가능한 한 자연 그대로의 먹을 거리를 밥상에 올리는 것’이다.유기농산물을 고르고,제철식품을 먹으며,현미잡곡밥을 꼭꼭 씹고,뿌리와 잎채소를 반반으로 해서 매끼 5가지 채소를 섞어 먹으라는 것이다.이것이 그가 주장하는 ‘약이 되는 밥상’이다. 또한 새벽운동과 냉온욕,홍쌍리식의 발마사지와 운동법,마음 건강법을 3장에서 소개하고 있다.이런 것들은 평범하고 쉬워 누구나 따라하기 쉽다. 제4장은 젊은 주부들에게 주는 잔소리.아토피와 소아성인병 등에 시달리고 있는 요즘 아이들을 어떻게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임신중독증이던 맏며느리가 임신중 단식을 통해 건강한 아이를 낳은 이야기,손자들에게 먹지 말아야 할 음식부터 가르친다는 자신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놓고 있다. 5장에서 7장까진 매실 건강법에 대한 이야기다. 매실식품을 먹은 사람들의 체험담과 현대인들에게 매실이 왜 좋은지를 담고있다.매실이 좋은 이유는 몸속에 쌓인 노폐물과 공해의 독을 배설시키는 ‘청소식품’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또한 매실을 이용한 다양한 건강식품을 만드는 방법을 쉽게 소개하고 있다. 이기철기자 chuli@
  • ‘구두행상 시인’ 세번째 시집 발간/ 충주거주 60대 홍학희씨

    환갑을 훨씬 넘긴 구두행상 시인이 또 시집을 펴냈다. 충북 충주에서 25년째 구두 행상을 하고 있는 홍학희(65·충주시 연수동 주공아파트 207동 513호)씨는 최근 ‘미리내 강변에 흐느끼는 내 영혼’이란 세번째 개인 시집을 냈다. 충주시 금가면 빈농의 집안에서 출생,충청성서 신학교(중학 과정)를 마친 홍씨는 스무살때 구두공장에 취업한 이후 45년째 구두와 인연을 맺고 있다. 그가 시와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때로 당시 교사와 선배들로부터 시집을 빌려 읽으면서 시의 세계에 흠뻑 빠졌으나 어려운 가정형편 탓으로 펜을 잡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결국 시에 대한 열정을 누르지 못한 채 90년부터 마음을 다져잡고 시를 쓰기 시작,93년 1월 문학공간을 통해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 이듬해 10월 처녀시집 ‘그리움으로 일으킨 영혼’을,99년에는 ‘영(嶺) 너머 아버지 집’을 각각 펴냈다. 충주 연합
  • 재보선 3040바람 ‘출마정년’ 형성/ 불안한 ‘5060’

    정치인에게도 ‘정년’개념이 적용될까.유권자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국회의원 출마에도 사실상 정년이 형성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4·24국회의원 재·보선 출마자 14명 가운데 10명이 40대 이하였다.당선자 3명도 모두 40대 이하였다.이를 놓고 소장의원들은 여야간 승부보다 ‘세대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내년 초 17대 총선에서는 역대 어느 선거에서보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높아지면서,50∼60대 정치인 사이에 불안감이 높아져 가고 있다.“이러다 아예 50대 이상은 공천 신청자격도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극단적 얘기까지 나온다. ●‘나이가 죄(?)’ 요즘 정치권에서는 ‘386세대’ 못지 않게 ‘역(逆) 386’이란 단어가 자주 쓰인다.30년대생으로 80년대에 정계에 입문한,나이가 60대 이상인 정치인을 일컫는다.여야 각당에서 세대교체론을 앞세운 30∼40대 신인들의 주된 타깃이기도 하다. 각 당에는 노·장년 의원들의 지역구와 관련,“현역 의원이 정계 은퇴를 결심했다.”거나 “지역구 출마를 포기하고 비례대표를 노린다.”는 소문이 무성하다.그러다보니 의원간에도 ‘정치 환갑’ 논쟁이 심심치 않다. 수도권의 한 소장파 의원은 “62∼64세쯤 된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서 65세 이상은 용퇴해야겠지.’라고 하고,56∼58세쯤 된 의원들은 ‘정치권을 바꾸기 위해 60세 이상이 아름다운 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곤 한다.”고 전했다. ●젊음이 곧 경쟁력 “요즘은 노인정에 가도 제일 어린 사람이 회장을 맡는다.” 한나라당 당권 주자 중 하나인 강재섭 의원이 경쟁자들보다 나이가 적음을 강조하며 하는 말이다.민주당의 한 소장 당직자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가장 큰 경쟁력 중 하나가 젊다는 것이었고,이번 재·보선에서도 당선자들의 적은 연령이 당선에 큰 도움이 됐다.”면서 ‘젊음이 곧 경쟁력’이라고 했다.한나라당내 소장 원내외위원장 모임인 미래연대의 권영진 공동대표는 “유권자가 선택하는 한 정치인에게 정년은 없다.하지만 국민이 젊은 세대를 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추세”라면서 “정치에 대한 막연한 혐오가 유권자 사이에서 젊은층 선호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지운기자 jj@
  • 한국프로볼링협회 ‘홍일점’ 이사 한해자씨 / 예순하나 아줌마의 ‘일편단심 볼링사랑’

    지난 85년 한국 여자 볼러로선 처음으로 퍼펙트 게임(한 게임 만점인 300점 기록)을 일궈낸 한해자(61) 한국프로볼링협회 ‘홍일점’ 이사.환갑을 넘겼지만 여전히 볼링에 푹 빠져 지낸다.만나는 사람마다 대화의 시작은 볼링 자랑이고,지난해엔 회갑잔치 대신 프로대회와 50세 이상이 참가하는 시니어대회를 주최하는 등 볼링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볼링과의 뜨겁고 긴 사랑 한씨가 처음 볼링을 만난 것은 지난 68년 결혼한 뒤부터.집안 살림에 지장을 주지 않는 운동을 찾기 위해 집 근처 볼링장을 들른 것이 인연이 돼 ‘볼링과의 길고도 끈끈한 사랑’에 빠졌다. 80년대 볼링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한씨도 아마추어 볼러로서의 전성기를 누린다.남보다 일찍 시작한 덕에 잘 나가게 된 것.볼링장 개장 기념대회 등에 ‘단골손님’으로 초대돼 세탁기 냉장고 텔레비전 탈수기 등 각종 상품을 셀 수 없을 만큼 탔다.집안의 가전제품은 상품으로 모두 채웠고,남은 것은 국군장병 위문품이나 불우이웃 돕기 성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혼자만의‘쏠쏠한 재미’를 즐기던 한씨는 후배 볼러들에게 ‘직업’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할 필요성을 느꼈고,지난 95년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한국프로볼링협회 창립 발기인(12명)으로 참여했다. 이후 사재를 아까워하지 않으면서 볼링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특히 지난해 5월에는 회갑잔치를 취소한 대신 그 비용 가운데 1000만원을 들여 프로대회를 열었고,500여만원을 들여 50세 이상 시니어 볼러들이 참여하는 대회도 마련했다. 지난 96년에는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연속 3게임 합계 점수가 800점이 되면 상금 100만원을 주는 ‘800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지금까지 10여명이 수상했다.한씨는 “남은 재산이 거덜나더라도 많은 수상자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내가 죽더라도 이 상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유산을 남겨 놓을 작정”이라고 강한 애착을 보였다. ●마지막 소원은 전용경기장 건설 한때 철강 대리점을 한 한씨는 “사업을 키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돈을 못벌어서가 아니라 대회 스폰서를 많이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 사업에 대한 미련이 크다.”고 말했다. 볼링을 위해서는 거금 쾌척도 마다하지 않는 한씨지만 자신에게는 ‘자린고비’다.지금껏 자가용을 가져본 적이 없다.무거운 짐을 들지 않는 한 택시도 타지 않는다.웬만하면 걷거나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물건을 남보다 몇백원만 비싸게 사도 아까워서 잠을 못이루는 ‘아줌마중의 아줌마’다. 볼링대회가 열릴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대회 홍보에 열을 올리고,대회가 끝나면 청소 등 뒷정리도 마다하지 않는 열의에 대해 주변에서는 “미쳤느냐.” “왜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하지만 한씨는 “상관없다.”고 일소에 부친다.볼링과 함께할 수만 있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다던 한씨도 요즘은 우울할 때가 많다.볼링의 인기가 떨어지면서 볼링장이 하나둘 없어질 때마다 자식을 잃는 것 같은 아쉬움을 느끼기 때문이다.아직까지 볼링 전용경기장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볼링장이 체육진흥기금 모금의 2위를 차지한 적도 있는데 정부의 무관심이 아쉽다.”면서 “마지막 소원은전용경기장 건설”이라고 간절함이 가득 밴 목소리로 말했다. 글·사진 김영중기자 jeun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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