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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고객 쟁탈’ 내년 최고조 예고

    ‘은행고객 쟁탈’ 내년 최고조 예고

    내년에는 시중은행들의 ‘고객 쟁탈전’이 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서울신문이 9일 시중은행들의 2006년 주요 사업계획을 취재한 결과,‘고객 확충’ 등 대대적인 영업 확장을 최우선 과제로 올려 놓았다. 현재 은행들은 부문별 사업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이를 종합하는 단계에 있다. 은행들은 올해 3·4분기까지 거둔 사상 최대의 순이익이 대부분 부실자산을 털어낸 데 따른 대손충당금 전입액 감소로 달성됐다고 판단,‘은행 전쟁’의 진검승부는 내년부터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외환은행과 LG카드 인수전이 가시화되고, 신한과 조흥은행의 통합, 하나은행의 지주사 전환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등 ‘금융빅뱅’이 예고돼 있어 내년이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대공세, 우리은행의 토종화 전략 올해 조직 재정비 등에 총력을 기울였던 국민은행은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계획이다. 이런 계획은 더 주춤거릴 경우 리딩뱅크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왔다. 특히 2500만명에 이르는 고객의 세세한 정보까지 유기적으로 모으는 새로운 고객관리시스템(CRM)이 12월중 완성될 예정이어서 내년부터는 이를 토대로 다양한 상품 마케팅을 펼칠 작정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전 영업점은 새 CRM이 제공하는 정보를 활용, 고객성향에 맞는 상품을 즉각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영화를 앞둔 우리은행의 내년 화두는 ‘토종은행’ 이미지 부각이다. 경쟁은행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70% 이상인 점을 감안, 국내 유일의 토종은행이라는 점을 활용해 고객들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 행원을 상대로 토종은행 차별화 전략 아이디어를 공모하기도 했다. 또 내년을 ‘프라이빗뱅킹(PB)부문 재도약의 해’로 삼고 베트남과 중국 현지에서 PB영업을 하는 등 30만명인 PB고객을 내년말까지 5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신한·조흥 통합, 하나은행 지주사 전환으로 시너지 극대화 전략 내년 상반기 통합을 앞둔 신한과 조흥은행은 고객이탈 방지와 통합시너지 극대화를 최고의 목표로 내세웠다. 로열티가 높은 고객들의 성향이 서로 달라 통합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고객이탈을 최대한 막겠다는 것이다. 대를 이어가며 거래하는 고객이 많은 조흥은행은 ‘핵심고객 이탈 제로 프로그램’을 강도높게 실시하기로 했다. 신한은행도 고객군을 개인, 대기업, 중소기업, 소호 등으로 나눠 고객군 중심으로 경영체제를 정비할 예정이다. 이 은행 관계자는 “신한지주 자회사의 상품·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종합금융서비스 체계를 확립, 전방위 마케팅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금융그룹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간접상품·자산운용, 증권과 연계한 투자은행 업무 활성화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새롭게 구축한 CRM과 개인사업자 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 펀드 교차판매와 소호대출에도 주력할 계획이다. 외환은행은 사업 분야별로 ‘목표고객군’을 설정해 마케팅 역량을 집중시키고, 국제적인 기준에 맞는 인사관리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외국인 근로자 거래 확대, 복합금융상품 개발, 우량등급 중심의 여신자산 구조개선도 핵심사업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3)강원도 정성군

    [행정혁신 우리가 이끈다](3)강원도 정성군

    “첩첩산골 조그만 지자체이지만 민원 행정은 최첨단입니다.”인구 4만여명의 강원도 정선군이 지방 전자정부의 선두주자로 뜨고 있다. 자체 정보화시스템을 갖추고 307가지의 민원업무를 한자리에서 원스톱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특성에 맞는 ‘두루누리(유비쿼터스의 순 우리말)시스템’을 개발, 민원행정에 접목하면서부터다. 이 시스템은 군청을 비롯해 읍·면사무소와 출장소 등 정선군 관내 11개소 관청에 빠짐없이 구축했다. 덕분에 시스템이 본격 가동된 올 3월부터 주민들은 벽오지 산골마을 어디서도 빠르고 정확하게 민원서류를 신청하고 받아 볼 수 있게 됐다. 주민등록등·초본은 물론이고 지적(임야)도, 토지(임야)대장등본, 개별공시지가확인원, 인감증명, 지방세관련 민원(3종), 토지이용계획확인원, 건축물대장, 자동차민원관련 민원(2종), 팩스(FAX)민원까지 모든 것이 한곳에서 해결되는 셈이다. 민원서류 발급을 위해 면사무소로, 군청으로 동분서주하던 번거러움은 옛일이 된 것이다. 창구간 통합 네트워크(TCP/IP)를 구축, 모든 문서를 컴퓨터 파일형태로 주고 받으면서 서류발급 시간도 종전의 건당 11분에서 4∼5분정도로 대폭 줄었다. 팩스 민원도 원본에서 곧장 출력이 가능해 깔끔하게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원스톱 신청·발급은 ‘원격접수 시스템’이 구축되면서 창구 공무원이 누구나 전화, 방문, 팩스 등으로 신청접수를 하고 내용을 모든 민원서류 창구에서 공유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발급이 가능해진 것이다. 더구나 민원처리가 완료되는 즉시 민원인에게 자동메세지를 제공하는 ‘문자(SMS)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원하는 시간에 민원서류를 찾아 갈 수 있도록 편의성도 높였다. 민원 공무원들이 다른 업무를 보다가 민원서류 신청과 처리완료를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메세징 시스템’도 도입했다. 공무원들의 업무진행 편의성까지 꼼꼼하게 챙긴 것이다. 앞으로 일반행정 업무까지 ‘두루누리 시스템’으로 처리하면서 모든 공무원들이 업무를 쉽게 익히도록 할 방침까지 세워놓고 있다. 민원실 유은하(39·여·행정6급)씨는 “처음에는 종이업무에 익숙한 공무원들의 적응이 쉽지 않고 네트워크 구축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체계가 잡히면서 주민들의 반응도 좋아 보람을 느낀다.”고 반겼다. 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김원창 정선군수“최첨단 민원행정 구축 보람” “어려운 지역 살림속에 두루누리 시스템 사업추진에 보람을 느낍니다.” 김원창정선군수는 민원실을 찾을 때마다 뿌듯하다. 민원인들이 ‘편리하고 참 잘했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 구축을 위해 예산을 편성할 초기만 해도 공무원과 주민들 사이에 말도 많고 어려움도 많았다. ‘기존의 종이업무로도 충분한데 왜 번거럽게 시스템을 바꾸려 하는냐.’ ‘재정이 열악한데 굳이 예산을 민원업무 개선에까지 편성해야 하나.’라는 불평불만이 쏟아졌다. 시골 관공서를 잇는 네트워크 구축과 시스템을 개발해 나가는 데도 어려움이 뒤따랐다. 자치단체들마다 정부에서 추진한 단순 전자민원시스템만을 도입했을 뿐이었다. 오지 지자체가 원스톱으로 모든 민원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시공업체와 함께 자체적으로 응용, 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군수는 “처음에는 단순 민원업무처리를 위해 시스템 도입을 시도했지만 구축과정에서 하나하나 시스템을 응용 적용하며 모든 민원업무로 확장했다.”면서 “처음 불안하기도 했지만 시스템 구축을 끝내고 지난 2월 한달 시범운영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생겼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후 두루누리시스템을 통한 민원발급업무는 순항하면서 지난 9월말까지 군청민원실에서 처리한 발급건수만 20만 5000건이 넘는다. 김 군수는 “민원인들의 편의를 위해 정보화 교육에 적극 따라준 모든 공무원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작지만 아름다운 전자정부인 지자체가 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정선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2)-대잇는 가족경영

    “재계 랭킹 몇 위 어쩌구 하는 언어의 마술에 홀려 방만한 기업경영을 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도리어 나라 발전에 걸림돌이 되는 그런 기업은 되지 않았다.” 김상홍 삼양그룹 명예회장의 자서전 ‘늘 한결 같은 마음으로’에 나오는 글이다. 김 명예회장의 심정은 삼양그룹 경영의 핵심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올해로 81년째를 맞는 삼양그룹은 흔히 ‘돌다리도 수없이 두드려 본 뒤 건너가는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우보(牛步)경영’ ‘내실경영’ ‘보수경영’ ‘정도경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세계적으로 기업 평균 수명이 3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저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수식어의 이면에는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못해 성장동력을 놓쳐 재계 50위권으로 처져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함께 담겨져 있다.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 성장경영 꿈도 못 꿔 삼성석유화학 허태학 사장은 강연때마다 삼양사의 사례를 들곤 한다. 허 사장은 “삼양사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국내 최고의 기업 중에 하나였지만 적극적인 경영을 하지 못해 중견기업으로 뒤처졌다.”며 삼양식의 경영방식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는 게 주위의 전언이다. 그러나 삼양그룹의 시각은 이와는 다르다.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갈등 관계를 유지하느라 회사를 크게 키울 수 없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삼양사는 이승만 대통령 재직시 창업주 김연수 회장의 형인 ‘인촌’ 김성수씨가 부통령까지 지내며 이 대통령의 라이벌로 활동해 집중 견제를 받았다. 김 창업주는 1951년 제당공장을 짓기 위해 울산에 부지를 확보했지만 정부가 공장 공사대금으로 활용할 외화 사용 승인을 3년이나 늦게 내줘 고초를 겪기도 했다.3공화국때도 인촌이 창간한 ‘야당지’ 동아일보를 지원하느라 정부의 눈 밖에 나 있었다. 정부의 금융지원 같은 특혜는 꿈도 꾸지 못했다는 게 삼양그룹측의 주장이다. 삼양사 문성환 부사장은 “60∼70년대 급성장한 기업들의 성장동력은 정치권과 야합해 무차별적인 차입경영에 있었다.”며 “그러나 삼양사는 역대 정권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정경유착에 나설 형편이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통기업을 묵묵히 지켜온 2세 기업인 이런 안정 지향적인 기업 경영은 외환위기(IMF)때 빛을 발했다. 부채비율이 높았던 대부분의 기업은 무너졌지만 삼양그룹은 그때나 지금이나 탄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2004년 12월 현재 삼양그룹의 매출액은 2조 7180억원에 머물러 있지만 부채는 8537억원으로 부채비율 60%를 유지하고 있다. 같은 기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양사는 매출 8902억원, 부채 2799억원, 부채비율 40%다. 이런 이유로 삼양그룹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와 신산업경영원이 주최하는 재무경영종합대상을 수상했다. 삼양그룹이 튼실한 경영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데는 김상홍(83) 명예회장의 공이 크다. 김 명예회장은 1956년 34세에 삼양사 사장에 취임했다. 부친 김연수 회장으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지만 80년이나 넘게 기업을 온전히 지켜온 ‘수성’(守城)이 그의 최대 업적이다. 김 명예회장이 우리나라 대표 기업을 지켜온 데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으로부터 철저하게 받은 경영수업 덕이 컸다. 창업주는 1944년 일본 와세다대에 재학 중이던 김 명예회장을 만주로 불러 삼양사가 운영하던 매하구 농장에서 일을 시켰다. 사장 아들이라고 특혜를 베풀지 않고 농장 직원들과 똑같이 숙식하고 생활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해방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호텔 경영인의 꿈을 꾸기도 했다. 이때 창업주는 “무슨 일이든 성공해 맨 윗사람이 되려면 우선 그 분야의 제일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면서 기초를 익혀야 된다.”며 조선호텔에서 접시닦기와 객실담당(벨보이)부터 맡도록 권했다. 이후 1947년 제헌의원이던 나용균씨의 추천으로 수도경찰청(내무부 치안국) 경위로 특채돼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4년간 경찰관으로 복무하다 1952년 큰아버지인 김성수씨가 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총경직에서 퇴직했다. 이때부터 김 명예회장은 경영인으로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창업주는 장남 상준씨를 비롯해 둘째 상엽, 넷째 상돈씨에게는 해리염전을 포함한 ‘삼양염업사’를 맡겼다. 김 창업주가 직접 경영하는 삼양사는 셋째인 김 명예회장과 다섯째 상하씨가 일을 하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밑바닥부터 배워라 김 명예회장은 부친에게 받았던 경영수업이 혹독하리만큼 철저했다고 회고한다. 회사의 맨 밑바닥 일부터 배우라고 지시했는데 주산, 부기, 기장은 물론 고용노무작업, 구매자금조달 등 실무 업무부터 맡아야 했다. 김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하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했지만 상업고교 출신처럼 주산을 열심해 배워야 했다. 이런 전통으로 인해 삼양그룹은 사무직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우선 공장에서 현장 연수를 하는 것으로 회사생활을 시작한다. 김 명예회장은 50세가 넘어서도 창업주 앞에서는 의자에 마주 앉는 일조차 삼갔다고 한다. 부친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지만 “아버지 그림자도 안 밟겠다.”며 어려워했다. 지금도 사무실에 부친의 흉상을 두고 ‘무언의 조언’을 듣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이처럼 혹독한 ‘문하생’ 생활을 보낸 김 명예회장은 1950년대 제당사업을 전개할 때는 부친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설탕 영업의 골간을 만들었다.70년대 제당업이 정상에 오르자 경영 다각화의 일환으로 금융업에 진출, 삼양종합금융을 인수했다. 그러나 그는 삼양종합금융은 물론 1대 주주였던 전북은행에도 삼양사 직원을 단 한명도 파견하지 않는 등 자율과 원칙을 지킨 경영인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삼양그룹의 장수비결에 대해 “욕심내지 않고 우리가 잘하는 것만, 그것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만 사업을 해왔다.”며 “정말 힘든 일이긴 했지만 우리가 잘하는 제조업체에만 집중하면서 넘치지도 않고 부족함도 없는 중용정신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의 경영철학은 ‘제조업을 통해 건전하게 돈을 벌어야 하고, 수익성이 좋다고 아무 사업이나 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았던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부회장을 함께 맡았던 김 명예회장에 대해 “과묵 침착하며 절제를 아는 선비, 중용의 참뜻을 실천해온 외유내강형의 단아한 신사”라고 평가했다. 김 명예회장은 1996년 동생인 상하씨에게 그룹회장직을 넘겨주고 자신은 명예회장으로 물러 났다. ●삼양의 제2탄생을 마무리 김상하(80) 그룹회장은 상홍 명예회장과 함께 창업주로부터 물려받은 회사를 성장 궤도에 정착시킨 주역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그룹회장은 1949년 삼양사에 몸 담은 뒤 줄곧 부친과 상홍 회장을 도왔다.1952년 일본 도쿄사무소 첫 주재원으로 파견돼 삼양사 공장설계와 전문가 채용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경영일선에 뛰어들었다.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회장은 형제간이긴 해도 서로 닮은 점보다는 다른 점이 더 많았다. 상홍 회장이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는 반면 상하 회장은 적극적인 사회활동을 했다. 상홍 회장이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상하 회장은 이런저런 사람을 폭넓게 사귀는 성격이다. 취미도 상홍 회장은 단조로움을 즐겼던 반면 상하 회장은 스포츠와 여행을 좋아했다. 때문에 그룹 경영에 있어서는 꼼꼼한 상홍 명예회장이 관리를 맡고, 활동적인 상하 그룹회장이 영업전선에 나서는 등 형제간 역할분담을 이뤘다. 실제로 상하 회장은 유창한 일어 실력과 깨끗한 인품으로 재계에서는 국제 감각이 뛰어난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혔다. 특히 1988년부터 12년간 최장수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는 등 많게는 100여개의 대외 직함을 수행할 정도로 전방위 활동을 벌였다. 상하 회장은 이런 왕성한 대외활동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으로 삼양의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폴리에스테르 사업의 경우 10년에 걸친 증설을 이끌어 국내 최대 폴리에스테르 업체로 위상을 높였다.1980년대에 집중된 화학, 의약 등의 사업 다변화에도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폭넓은 대외 교분을 토대로 미쓰이, 미쓰비시화학과의 각종 기술제휴 및 합작이 추진돼 삼양화성, 삼남석유화학을 설립했다. ●외유내강의 기업인 상하 그룹회장은 소탈하면서 모가 없는 성품이지만 그룹경영에 있어서는 진퇴를 명확히 제시하는 ‘외유내강형’의 기업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90년대 국내 폴리에스테르 업체들이 신·증설을 활발하게 진행했지만 그는 화학섬유 사업의 한계를 감안해 대규모 증설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또한 섬유본부에서 신사업으로 오랫동안 검토해 샘플 제작까지 끝낸 폴리에스테르 필름 사업도 사업의 구조적인 경쟁력과 취약성을 들어 사업을 중단하는 어려운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는 상홍 명예회장을 모시는 데도 깍듯했다. 상홍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수시로 의견을 구했다. 상하 회장은 서울 성북동에 형집과 담장 하나 사이를 두고 함께 살고 있다. 담장 중간에 쪽문을 해놓고 수시로 오갈 수 있는 ‘핫라인’까지 설치해 놓고 있다. 상홍 명예회장은 자서전에서 “동생과 집을 나란히 짓고 살게 된 것은 동생이 스스로 땅을 함께 사고 집도 순서대로 나란히 짓고 살아온 덕”이라며 “아우는 본래 2층집을 짓고 싶었는데 순전히 나 때문에 일조권을 염두에 두고 단층집을 짓고 산다.”며 돈독한 형제애를 소개했다. 상하 회장은 2004년 3월 상홍 회장의 장남이자 조카인 김윤 삼양그룹 부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아들인 원씨는 삼양사 사장에 나란히 취임했다. 이로써 1975년부터 30년간 지속된 2세 형제경영에 이어 3세 사촌 형제간 공동경영 시대의 막이 올랐다. ●숨은 주역들 김 명예회장과 그룹회장은 삼양그룹이 81년의 전통을 이어온 데는 동생들과 매제의 역할히 컸다고 회고한다. 김 명예회장은 “나는 아우들과 함께 회사를 경영하면서 크고 작은 일에 신중을 거듭했다. 아우들과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선친께서 잡아놓은 틀을 잡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회사 발전에 공을 세운 일등공신으로 지난 2002년 작고한 김상응 막내 동생을 손꼽는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유타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상응씨는 96년부터 삼양사 회장으로 재직하며 외환위기 등 창업 이래 최고의 시련기를 뚝심으로 돌파하는 경영 수완을 발휘했다고 떠올린다. 부인 권명자(53)씨와 4남 1녀인 자식들은 남편이 죽은 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김 명예회장은 또 막내 여동생 희경(66)씨의 남편 김성완(66)씨의 공헌도 높이 평가했다. 김씨는 미국 유타대 교수로 생체고분자 및 약물전달시스템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김 교수는 김 명예회장에게 “기업이 발전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데 장래성이 좋은 분야는 의약계통에서 찾아야 한다.”는 점을 수차례 강조했다. 결국 김 명예회장은 김 교수의 의견에 따라 1993년 충남 대덕 연구단지에 ‘삼양그룹연구소’를 설립했다. 이 연구소는 삼양그룹이 중점사업으로 키우고 있는 화학, 식품, 의약부문의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공격경영 김윤(53) 회장은 부친 상홍 명예회장, 상하 그룹회장과 같이 바닥부터 경영수업을 받았다.1979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그룹 계열인 반도상사에 취직했다. 자신의 회사를 경영하기에 앞서 다른 회사 직원으로 영업전선을 두루 체험해 보라는 부친의 의도였다. 이를 두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김상홍 회장님의 큰자제가 2년간 반도상사에 근무한 일이 있었는데 내게는 그런 사실을 전혀 귀띔도 해주지 않았다.”며 “나는 훗날에야 그 사실을 알고 한쪽으로는 좀 서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상홍 회장님의 인품을 새삼 느꼈다.”고 회고했다. 김 회장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MIIS(Monterey Institute of International Studies)에서 MBA 석사를 취득한 뒤 곡물회사인 루이스 드레푸스에서 2년간 근무하며 국제적인 경영감각을 익혔다. 또 삼촌인 상하 그룹회장처럼 도쿄지점에서 2년간 주재하며 삼양그룹의 해외진출 사업을 손수 챙기며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다져 나갔다. 고국에 귀국한 뒤에는 울산공장 기술수출팀을 시작으로 이사(90년)-상무(91년)-대표이사 전무(93년), 대표이사 사장(96년)-대표이사 부회장(2000년) 등을 거치며 착실히 경영수업을 쌓았다. 2004년 삼양사 회장에 취임한 김 회장은 차분하고 안정적인 경영 스타일로 삼양의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보수적인 관행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삼양그룹은 보수적이고 안정 위주의 경영전략을 구사해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앞으론 사고방식을 진취적으로 전환해 그룹의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2010년까지 2조원을 투자해 매출액 6조원을 달성하고 자본수익률 2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 등 4대 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설정했다. ●다시 세계로 진출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에 전기전자, 부품소재 등을 생산하는 삼양공정소료 유한공사를 설립, 창업주인 할아버지가 만주에 진출한 데 이어 68년 만에 중국에 현지법인 형태로 재진출했다. 향후 중국을 기점으로 인도, 중남미 등 생산기지를 다각화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 세계적인 전문 화학회사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또한 식품부문을 총괄하는 통합 브랜드로 ‘큐원’(Qulity No.1)을 출범시켰다.47년간 사용해 오던 대표 브랜드 ‘삼양설탕’을 과감히 버리고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식품소재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김윤 회장의 이런 자신감은 1996년부터 삼양사 사장과 부회장을 거치며 길러졌다. 과감한 추진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발휘됐다. 사장 시절이던 1998년 사업실적이 저조한 금융업과 무선통신사업을 포기하고 계열사를 섬유·식품·화학 등을 핵심 사업군으로 재편했다. 특히 삼양사의 주축이었던 폴리에스테르 사업부문을 과감히 정리,2000년 SK케미칼과 통합법인 휴비스를 설립했다. 이후 삼양그룹 직원들은 단 한명의 구조조정과 한 푼의 임금삭감 없이 경영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김 회장은 이런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19일 서울대 산학협력재단이 주최한 ‘제1회 한국을 빛낸 CEO’에 이명박 서울시장, 정운찬 서울대 총장,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이지송 현대건설 사장 등과 함께 뽑혔다. 또 2001년 전경련 부회장에 선임됐고 한·일경제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3세에도 공동경영 상하 그룹회장의 장남인 김원(48) 사장은 선대 회장들처럼 사촌 형인 김윤 회장을 도와 삼양그룹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3대 경영의 주역들은 선대 회장들과는 달리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윤 회장은 부친인 상홍 명예회장이 내성적인데 반해 활발한 활동으로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면 원 사장은 전방위 대외활동을 펼친 부친 상하 그룹 회장과는 달리 묵묵히 사촌형을 챙기고 있다. 원 사장은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윤 회장처럼 도쿄지점 부장을 거쳐 삼양이 의약부문으로 사업을 확장하던 1993년 개발부장으로 자리를 옮겨 의약사업의 기초를 닦았다. 이후 연구개발 부문을 관장하면서 이사, 상무로 승진한 뒤 1997년 연구개발본부장(전무)에 오르는 등 ‘테크노 경영인’으로 각인되고 있다.1999년 부사장 승진에 이어,2000년 8월 대표이사 사장에 선임됐다. 이공계 출신으로 매사에 치밀하며 경영분석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외 영업에 치중했던 부친과 달리 관리쪽에 무게가 실리는 경영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혼도 자식 뜻대로 상홍 명예회장과 상하 그룹회장은 창업주처럼 자식들의 결혼과 관련해 정략 결혼을 요구하기보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최대한 들어주는 스타일을 지켰다. 상홍 명예회장의 장남 김윤 회장은 친구들 모임에서 부인 김유희(46)씨를 처음 만났다. 김 회장은 이화여대를 졸업한 김씨를 보고 첫눈에 반해 데이트를 신청했다고 한다. 김 회장은 김씨가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는데다 집안 대대로 친척들이 이대 출신이 많다는 점도 맘에 들었다고 고백한다. 김 회장은 부인을 웬만한 행사에는 동행할 정도로 ‘부인사랑’이 남다르다. 지금도 사석에서 김 회장의 18번인 ‘만남’을 두 부부가 함께 부른다고 한다. 김원 사장도 친구들끼리의 모임에서 부인 배주연(41)씨를 만나 열애끝에 결혼에 성공했다. 반면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과 김정(46) 삼남석유화학부사장은 중매로 배필을 만났다. 김량 사장은 김정렬 전 국방부 장관의 중매로 부인 장영은(46)씨와 혼인했다. 상홍 명예회장과 김 전 장관의 집안이 오래전부터 친해 자연스레 연결됐다. 김 전 장관은 영은씨의 부친인 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과 막역한 사이어서 혼인을 주선했다. 김정 부사장은 어머니 박상례(75)씨가 자영업을 하는 친구의 소개로 안혜원(39)씨를 만났다. 안씨 부친이 안상영 전 부산시장이어서 흔쾌히 혼담이 오갔다. jrlee@seoul.co.kr ■ 막강한 손녀사위들 김연수 삼양사 창업주는 부인 박하진씨와의 사이에 7남6녀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김 창업주는 2세들보다 3세들의 혼사를 통해 혼맥을 이뤘다. 재계, 정계, 언론계, 법조계 등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손녀사위들은 대학교수, 의사, 경영인 등의 전문 직업군을 이루며 삼양가(家)의 명망을 잇고 있다. 둘째아들인 김상협 전 국무총리는 1남3녀를 두었는데 3명의 사위가 모두 교수인 것이 이채롭다. 김 전 총리는 형제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했다고 한다.5년제였던 경복중학교를 4년 만에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대(당시는 도쿄제대) 법학부 정치학과를 나올 정도의 수재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김 전 총리는 학자 사위들을 좋아했다. 김 전 총리의 장녀 명신(58)씨 남편 송상현(65)씨는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송씨는 송진우 전 동아일보 사장의 손자다. 둘째딸 영신(56)씨는 정성진(58) 서울대 공대 교수와 결혼했다. 정씨는 정태섭 전 변호사의 아들이다. 막내딸 양순(52)씨의 부군 이양팔(59)씨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다. 또 상홍(83) 명예회장의 장녀 유주(56)씨도 윤영섭(59)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와 혼인했다. 창업주의 넷째딸인 정유(73)씨는 외동딸인 원경(43)씨를 한정수(48) 전 충남대 교수와 결혼시켰다. 손녀사위들의 ‘의사 파워’도 만만치 않다. 김 창업주의 둘째딸 상민(78)씨는 둘째딸인 이정현(41)씨를 백완기(47) 인하대병원 흉부외과 의사와 인연을 맺어 줬다. 김 창업주의 셋째딸 정애(75)씨 장녀 조경미(47)씨의 부군 주춘희(47)씨도 캐나다에서 병원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삼양가가 전문 경영인 집안이어서인지 손녀사위들도 전문 경영인이 많다. 김 창업주의 장남 상준씨의 장녀 정원(62)씨의 남편 김선휘(68)씨는 삼양염업사 부회장으로 재직하며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다. 둘째딸 정희(58)씨는 김준기(62) 동부그룹 회장과 결혼했다. 또 셋째딸 정림(57)씨도 윤대근(59) 동부아남반도체 대표이사 부회장이자 동부그룹 소재분야 부회장과 결혼해 유달리 ‘동부그룹’과 인연이 많다. 창업주의 둘째 김상협 전 총리가 교육자 집안으로 꾸렸던 것에 비해 장남 상준씨는 전형적인 경영인 가족을 형성한 셈이다. 넷째 상돈(81) 삼양염업사회장은 외동딸 희진(45)씨를 오광희(49) 전 나이스 정보통신 전무와 결혼시켰다. 다섯째 상하(80) 그룹회장도 외동딸 영난(44)씨를 송하철(45) ㈜ 항소 사장과 혼인시켰다. 송씨는 송삼석 모나미 회장의 막내다. jrlee@seoul.co.kr ■ 계열사 사장들 ‘전문적 경험’ 풍부 삼양그룹의 현 계열사 사장들은 경영전면에 나선 창업주의 3세들을 지원하는 것에 역할이 주로 맞춰져 있다. 분야별로 전문적 경험이 풍부해 경영 승계가 무리없이 이뤄지도록 돕고 있다. 박종헌(66) 삼양사 사장은 40년동안 영업, 해외업무, 인사, 재무, 기획분야를 두루 거쳤다.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법학도답게 매사 논리적이고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이영훈 대법원장과 서울법대 동기동창이다. 김량(51) 삼양제넥스 사장은 김상홍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유통에서 16년간 재직하며 사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유통부문의 핵심 역량을 쌓아왔다.2002년 삼양제넥스에 입사해 제조업 유통부문의 경영 노하우를 성공적으로 접목시키고 있다. 김 사장은 창업주의 손자이지만 직원들과 자주 소주잔을 기울이며 대화를 즐기는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다. 김경원(62) 삼남석유화학 사장은 전주 폴리에스테르 공장 설립때부터 중앙연구소 소장, 화성본부장, 삼양화성 사장 등 화학, 섬유, 폴리카보네이트 등을 두루 지낸 전문 경영인이다. 폴리에스테르 부문의 대가로 ‘폴리머 김’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으로 ‘연구통’이다. 송창기(63) 삼양중기 사장은 인사관리분야에서 15년간 일해온 ‘인사통’이다. 총무부장, 인사부장, 관리본부장을 지냈다. 송 사장은 삼양중기에서 기계부문 4개사로의 분사와 주물사업부문 합작사 설립을 성공리에 추진했다. 박호진(59) 삼양화성 대표는 도쿄지점을 거쳐 전주공장에서 20년 동안 현장 경험을 쌓았다. 지난 3월 대표로 선임돼 사원간에 가족적인 유대감을 높이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규한(58) ㈜삼양밀맥스 대표는 판매와 현장을 두루 거친 식품부문 전문가다. 경영과 마케팅 감각을 두루 갖췄고 비전팀을 만들어 내부 혁신활동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변수식(55) 삼양데이타시스템 대표는 전사적자원관리(ERP)팀장,IT전략팀장, 경영혁신(PI)팀장 등 프로세스 이노베이션 업무를 주로 맡았다. 변 대표는 IT부문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IT통’이다. 김상익(59) 삼양웰푸드 대표는 경리부, 삼양제넥스 경영지원팀장을 거치는 등 25년 동안 경리와 관리를 맡았다.2004년 대표로 선임돼 원칙과 현장을 중시하는 현장 밀착형 경영을 중시한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고침 서울신문 17일자 15면에 게재된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양그룹편에서‘송진우 전 동아일보사장의 아들인 상현 서울대 법대교수’는 ‘송 전 사장의 손자’이기에 바로잡습니다.
  • [열린세상] 역사 속의 리더십/오세훈 변호사

    우리는 지금 무한 경쟁이라는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변화의 시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국가 경제를 출렁이게 할 수도 있고, 최고경영자의 적절한 판단 하나가 세계적 기업으로의 도약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우리가 개혁을 이야기한 지도 10여년이 훨씬 지났다.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개혁 담론이 등장하지만, 체감 위기감은 낮아지기보다 점점 더 높아만 가는 것이 현실이다. 며칠 전 OECD 보고서 내용을 놓고 벌어진 한바탕 소란도 그런 위기감의 표현일 것이다. 비전은 커다란 정치적 그림이지만, 개혁은 실제적인 사회의 변화다. 개별적인 사안에 맞는 변화된 삶의 방식을 제시하고 동의를 얻어가야만 가능하다. 민주 사회에서 실생활의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대하여 절대 다수의 공감을 얻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나, 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노력만큼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왕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던 전제시대에서조차 이것은 진리였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과 정책이 있어도 백성의 공감을 얻지 못한 정치는 실패했다. 고려 숙종은 외척의 발호와 여진족의 압력으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부국강병의 비전을 제시했다. 적극적인 대외 확장과 과감한 재정개혁을 통해 개인이 아닌 국가의 부를 확대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가뜩이나 어려웠던 백성의 삶은 잦은 여진정벌과 국가사업으로 인해 ‘열 집 가운데 아홉 집이 비었다(十室九空)’고 할 정도로 피폐해졌고, 신하들 사이에서도 민생안정이 우선이라며 따르는 자가 줄어들었다. 백성이 힘들어하고, 뜻을 받드는 신하가 줄어들자 숙종은 부국강병책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대화와 설득을 통해 상대방의 이해를 얻지 못한 개혁, 민심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개혁은 결국 실패하게 된다는 교훈이 남은 것이다. 개혁에는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당연히 ‘내 임기 중에 해야 한다.’는 조급함은 개혁을 어렵게 만든다. 조선 초 정도전의 전제개혁의 모델은 고려 말 공민왕때 나왔다. 완성되기까지 40여년이 걸린 것이다. 고려 광종과 조선 태종이 각각 개국세력을 정리하고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실패했다면, 각 왕조 최고의 통치자라는 성종과 세종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개혁은 내가 아니면 안 되며, 내가 집권하는 동안에 무엇인가 완성해야 한다는 ‘개혁 독점욕’과‘개혁 조급증’은 순리가 아님을 지나간 역사가 가르쳐 주고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진정으로 위대한 업적이, 선임자들이 피땀으로 일군 토대를 벗어나 역사의 연속선 밖에서 이루어진 적이 있었던가. 내 이름표가 붙은 무엇인가를 남기겠다는 부질없는 공명심만큼 지도자가 피해야 할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개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사람을 얻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진흥왕은 전통 귀족들을 세력기반으로 계속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김유신의 조부이자 가야계인 김무력을 중용했고, 고구려에서 귀화한 승려 혜량을 당시 신라의 정신적 지주인 승통으로 삼았다. 진흥왕 대의 르네상스는 이처럼 다양한 외부 인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신라의 인재풀을 한 단계 넓힌 결과이다. 개혁에 성공한 리더들은 한결같이 군주 개인의 생각을 고집하기보다, 다양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조정하여 통합과 조화로 이끄는 리더십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변혁기를 지나 온 과거를 돌이켜 보며 떠오르는 말이 있다.‘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세훈 변호사
  • [시론] 두 토끼 잡으려는 세제개편안/조성표 경북대 경영학 교수

    [시론] 두 토끼 잡으려는 세제개편안/조성표 경북대 경영학 교수

    우리나라의 상위 몇몇 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승승장구하는 반면, 그 아래는 이름있는 대기업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개인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구조조정 등으로 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활력을 조속히 되찾아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양극화 해소 등 동반성장을 위한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아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모든 경제정책은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해결하는 데 집중되어져야 한다. 세법 개정도 이 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난해 세수도 부족하고 올해 상반기 세수 진도도 미달하는 등 조세 환경이 좋지 않은데, 복지 등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는 또다른 모순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번 세제 개편안은 경제활력 회복 및 성장잠재력 확충, 비과세 및 감면 대상 축소를 통한 세입기반 확대, 국가균형발전, 세제 간소화 등이 주요 방향이어서 이러한 경제 상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의 합병·분할, 사업조정, 출자전환, 중소기업 업종 전환 등에 대한 지원세제를 보완한 것은 기업 구조조정 촉진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조세회피지역 외국 펀드들의 소득을 원천징수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도 눈에 띈다. 소주와 LNG 세율을 인상한 것도 국제관례와 유종간 형평을 맞추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로 보인다. 지역·업종 등 제한이 많고 복잡했던 중소기업특별세액감면 제도를 보완, 균형발전특별세액감면제도를 신설키로 한 것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실효성있는 지원제도라 할 수 있다. 이번 세법 개정안에는 현 경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많이 있다. 그러나 만족스러운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근로자와 자영업자간 과세 형평성을 개선하는 부문이 미흡하다. 특히 각종 비과세 규정이나 감면제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은 과세기반 강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나 세부담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새로 도입되는 성실 중소사업자를 위한 간편납세제도는 납세 편의를 제고한다는 측면에서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간이과세 사업자를 확장하는 데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최근 고학력자들이 전문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추세를 볼 때, 성실하고 투명한 중소사업자들의 납세 편의를 제고해 장려하도록 하되, 일반 간이과세자들의 범위는 점점 축소할 필요가 있다. 또다른 아쉬운 점은 연구개발 조세지원제도를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차등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대기업은 정부 지원 없이도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잘 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근거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우리나라는 1000억원 이상 연구개발투자를 하는 기업이 15개 정도에 그치고 있다. 그 이하 기업들은 유명 대기업들이면서도 중소기업들보다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집약도가 낮아 대기업들의 연구개발 기반이 더욱 취약한 형편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많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의 연구개발도 중요하지만 대기업들의 연구개발 기반을 잘 다져야 한다. 따라서 초대규모 기업을 제외한 일반 대기업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제도가 매우 긴요하다. 이번 개정 세법은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되 동반 성장을 꾀해야 하는 우리 경제의 모순적인 상황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절묘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모순되는 두 단어를 결합하여 조화로운 표현을 이루는 모순형용(矛盾形容)을 떠올리게 한다. 내년에는 모순되어 보이는 두 목적을 조화롭게 달성해 경제가 술술 풀리기를 기대해본다. 조성표 경북대 경영학 교수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화(1)-김승연회장가

    1981년 ‘걱정 반 기대 반’속에 등장한 20대의 젊은 총수가 사반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중년의 관록이 물씬 풍기는 회장이 됐다. 재벌가(家)의 어린 도련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경영자로 바뀌었으며, 패기만만하고 저돌적인 성격은 다소 무뎌진 대신 기다림의 여유를 알게 됐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지 25년째. 당시 국내 최연소 10대그룹 총수로, 풋내 나는 젊은이로 알려진 김 회장의 이미지는 싹 가시고, 어느덧 성공한 2세 경영인, 구조조정의 마술사, 의리파 총수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김 회장은 재계에서 2세 경영의 성공적인 착근을 넘어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뛰어난 경영 수완을 보여줬다. 선친인 고 김종희 창업주 때보다 규모면에서 20배 이상의 성장을 이뤘으니 세간의 평가가 그리 터무니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러나 시행착오와 시련도 적지 않았다. 또 그의 성공을 시대상황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검찰과 악연이 있기도 했으며, 생존을 위해 선친의 손길이 잔뜩 묻은 우량 계열사들을 매각해야 했다. 또 한화의 부활을 알리는 대한생명 인수 때에는 로비 의혹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위기 시절에 ‘필사즉생(必死則生)’의 각오로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왔던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2세 경영인의 실패가 다반사인 요즘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이너마이트 김’ “몇십 배가 남는다고 해도 난 설탕이나 페인트를 들여올 달러가 있으면 단 얼마라도 화약을 더 들여올 겁니다. 나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송충이이며, 화약쟁이가 어떻게 설탕을 들여옵니까? 난 갈잎이 아무리 맛있어도 솔잎이나 먹고 살거요.”(실록 김종희) 한화그룹(옛 한국화약그룹) 김종희 창업주가 얼마나 다이너마이트 국산화에 집착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남들이 선뜻 하려 하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 화약업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이름보다 ‘다이너마이트 김’으로 통했다. 그가 다이너마이트를 독점 생산하는 기업인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그의 외곬 성격과 경영 방식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확히 터져야 하는 다이너마이트의 속성과 닮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리역 폭발사고.“이리역 폭발사고는 창업 이후 가장 심각한 경영위기에 봉착한 상황이었습니다. 선친은 모든 책임을 지고 그룹 전체를 내놓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부가 당시 이리시 재건에 총예산 130억원을 잡았는데, 한화가 내놓은 돈이 91억원이었으니 선친의 책임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김승연 회장) 김 창업주는 1922년 충남 천안에서 부친 김재민(작고)옹과 모친 오명철(작고) 여사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원산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화약공판에 입사, 화약과 첫 인연을 맺었다.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한국화약을 창업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무역과 건설, 정유, 기계 등 기간산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김 창업주가 손을 댄 회사 가운데 성격이 다른 유일한 기업은 대일유업(현 빙그레)이다. 여기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대일유업의 거듭된 적자로 골치를 썩던 정부는 한국화약(현 한화)에 대일유업 인수를 요청했지만 김 창업주는 기간산업이 아닌 탓에 인수를 꺼려했다. 그러나 축산농가가 쓰러지고 있다는 정부의 집요한 설득에 못 이겨 그는 대일유업을 떠안았다. ●김 회장의 뚝심경영 패기만만한 김승연 회장의 뚝심 경영은 1982년 한양화학(현 한화석유화학) 인수와 합작사인 경인에너지(현 인천정유)의 경영권 확보에서 시작됐다. 모든 임원들이 당시 한양화학 인수에 반대했지만 김 회장은 혼자서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젊은 혈기로 무리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김 회장은 대주주인 다우케미칼의 한양화학 철수는 본사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편이지,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여기에 가계약으로 협박하던 다우케미칼측을 ‘편지’ 한장으로 저지한 김 회장의 놀라운 협상 전략이 더해지면서 한화는 당초보다 싼값에 한양화학을 인수하게 됐다. 이는 불안하게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을 잠재우며 ‘김승연 체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미국 유니언오일사와 합작해 설립한 경인에너지의 경영권 확보에서도 김 회장의 ‘뚝심’은 잘 드러난다. 한화측에 불리한 계약서를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김 회장은 유니언오일의 한국 경영진을 대상으로 ‘을사보호조약 같은….’이라는 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김 회장의 성공 스토리는 5공 시절에 더욱 화려해진다. 명성그룹 5개사를 인수해 콘도를 비롯한 레저산업에 진출했다. 또 한양유통(현 한화유통)을 인수, 유통 분야로의 사업 확장도 꾀했다. 전광석화와 같은 공격경영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장인인 서정화 전 내무부 장관이 전두환 정권의 실세인 탓에 김 회장의 이같은 공격경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일부 있었다. 서 전 장관이 사위인 김 회장의 사업에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관측에서다. 91년에는 빙그레와 제일화재가 계열 분리되면서 2세들의 분가도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나는 가정 파괴범”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김 회장도 외환위기 파고는 쉽게 넘지 못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계열사를 팔아야만 했다. 그는 매각 금액을 줄이더라도 고용은 100% 승계를 원칙으로 했지만 모든 것이 뜻대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김 회장은 구조조정으로 50∼60명의 직원이 일터를 잃게 되자 사내 방송에서 “선대 김종희 회장이 한화를 창업한 이래 이런 대규모 구조조정은 없었다.”면서 “나는 그들의 가정에 많은 고통을 준 가정파괴범이며, 만일 내가 경영을 잘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비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집에 러닝머신을 설치해서 발에 물집이 생겨 터질 정도로 뛰어보기도 했다.”면서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 때문에 체중이 5㎏ 이상 빠졌다.”고 밝혔다. 이어 “그때는 정말 회장직에서 물러날 각오로 경영에 임했다.”고 설명했다. 성공적인 구조조정이 끝나면서 그에게 ‘구조조정 마술사’라는 애칭이 붙었지만 그는 이에 대해 가슴 아픈 별명이라고 했다. 한화는 2000년 동양백화점 인수를 시작으로 2001년 대덕테크노밸리 설립,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했다. 외환위기 시절 위축됐던 사세를 크게 확장시킨 것이다. 이로써 한화는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과 대한생명의 금융, 한화국토개발과 한화유통이 포진한 유통·레저산업을 3대 축으로 하는 성장엔진을 마련하게 됐다. ●강태영 여사의 외유내강 강태영(78) 여사를 옆에서 지켜본 이들은 ‘조용하지만 강단있다.’고 평한다. 지난해 4월 김호연 빙그레 회장이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할 때다. 김호연 회장은 이 상에 자부심이 유독 컸다고 한다. 한때 ‘경영자로서 자질이 의심된다.’는 비난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탓이었다. 강 여사는 작은아들의 수상 소식에 들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시상식장을 직접 찾아 격려할 정도였다. 강 여사는 특히 90년대 초 형제간 재산 분쟁으로 우의가 상했던 탓에 형제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주변에선 전한다. 강 여사는 또 남편인 김 창업주와 사별한 이후 한번도 생일 잔치를 벌인 적이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2003년 어머니가 희수를 맞을 때 온 가족이 뜻을 모아 잔치를 해드리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내 생일 잔치는 하지 않겠다.’는 모친의 뜻을 꺾지 못했습니다.” 뜻을 굽히지 않는 강 여사도 김 창업주 생전에 큰 목소리 한번 내는 일 없이 묵묵히 내조를 했다고 한다. 두 아들의 평은 한결같다.“어머니는 유교적인 태도를 간직한 전형적인 현모양처 스타일”이라고. 김 창업주와 강 여사는 1946년 장남인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가 결혼을 차일피일 미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차남인 김 창업주가 부친의 강요에 못 이겨 집안간 혼처가 결정난 곳으로 먼저 상투를 틀었기 때문이다. ●백두진 국회의장 부인의 중매로 김 창업주 생전에 치른 혼사는 맏딸 영혜(57)씨밖에 없다. 영혜씨의 남편은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 부장의 차남인 이동훈(57) 전 제일화재 회장이다. 김 회장은 부친 타계 1년 후인 1982년 서정화 당시 내무부장관의 장녀 영민(44)씨를 배필로 맞았다. 영민씨는 당시 김 회장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신부로, 서울대 약대 3학년 재학중인 학생이었다. 김 회장과 영민씨의 만남은 국회의장을 역임했던 백두진씨 부인인 허숙자 여사의 중매로 맺어졌다. 서 전 장관과 김 회장 양가를 잘 알고 있는 백의장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연결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김 회장과 영민씨는 교제를 시작했고,82년 10월에 식을 올렸다. 동생인 김호연(50) 회장도 형이 결혼하자 곧 백범 김구 선생의 손녀인 김미(48)씨를 배필로 맞아 혼례식을 치렀다. 영민씨는 결혼 후에도 공부를 계속해 약대를 수석 졸업했다. 현모양처 스타일로 자식 뒷바라지에 애쓰며, 바깥 활동은 거의 없는 편이다. 영민씨 친가도 만만치 않은 유력 가문이다. 부친인 서 전 장관은 29세 때 군수를 지냈으며, 중앙정보부 차장을 거쳐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또 민정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서정신 전 대검찰청 차장은 서 전 장관의 친동생이며, 고 서정귀 호남석유 사장은 6촌형이다. 영민씨의 조부는 이승만 정권 시절에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고 서상환 장관이다. ●천안의 명문가 김 회장의 방계도 화려하다. 백부인 고 김종철 의원은 전 국민당 총재로 천안에서 6선 의원을 지냈다. 한화 계열사인 한국베어링(현 파그베어링)과 태평물산(현 한화무역) 회장을 맡기도 했지만 경영엔 관여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인 유성은(83) 여사 사이에 요섭-신연-수연-진연-규연-광연 등 5남1녀를 뒀다. 둘째숙부인 김종식(70) 전의원은 큰형인 김종철 전 총재가 작고하자 선거구인 천안을 물려받아 국회의원을 지냈다. 부인 문영숙(59) 여사 사이에 정연-서연-도연-원필 등 3남1녀를 뒀다. 고모인 김종숙(64) 여사는 미국에서 UC미클릭에서 지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일(70)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한화에너지(현 인천정유) 부사장을 맡는 등 그룹 경영에 참여했지만, 김 회장 취임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친인척 가운데 현재 한화 계열사 경영에 참여하는 인사는 김신연 한화폴리드리머 대표가 유일하다. 김 대표는 김종철 전 국민당 총재의 차남이다. ●‘한화호’를 이끄는 전문경영인 총자산 37조원의 ‘거함’ 대한생명을 이끄는 신은철(58) 부회장은 보험업에 30년을 몸담아온 생명보험업계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사내에서는 ‘따뜻한 카리스마’로 통한다. 취임 직후 대전 영업현장을 방문, 처음 만나는 지점장 20여명의 이름을 외우고, 친근한 선배처럼 대화를 나눠 참석자들이 헹가래를 쳐주기도 했다. 신 부회장은 평소 ‘3선(先) 경영’(선견, 선수, 선제)을 강조한다. 사전에 미리 예측하고 준비해, 신속하게 실행하는 조직만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서울 출신으로 삼선고와 한국외대 독일어과를 나왔다. 진영욱(54) 신동아화재 사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23세의 나이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재다. 재무부와 재정경제원에서 잔뼈가 굵었다.99년 한화증권 사장으로 전격 발탁돼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한화증권을 우량 금융기관으로 탈바꿈시켰다.2002년 대한생명과 함께 한화 계열사로 편입된 신동아화재를 만성적 적자 구조에서 흑자로 전환시켰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허원준(59) 한화석유화학 대표이사는 68년 한화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한 이후 줄곧 석유화학 한 분야에 매진한 전문가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실장 등 다양한 분야를 거쳤다. 외환위기 이후 한화석유화학의 구조조정 실무 책임자로서 비핵심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으며, 해외 자본을 유치해 재무구조를 향상시켰다. 경남 출신으로 부산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관수(54) 한화국토개발㈜ 사장은 79년 태평양건설 입사 이후 제일화재 총무부장, 한화종합화학 기획실장, 한화석유화학 관리담당 임원, 여천 NCC 관리 임원, 한화건설 기획담당 임원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했다. 그는 변화와 혁신을 추구할 뿐 아니라 스킨십 경영을 중시한다. 서울 출신으로 경기고와 한양대 전기공학과를 나왔다. 김현중(55) ㈜한화건설 사장은 건축 기사에서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실전형 경영인’이다.2000년 개발사업 전문가로서 한화건설로 스카우트된 김 사장은 아파트 브랜드 ‘꿈에그린’과 주상복합 브랜드 ‘오벨리스크’를 내놓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4년만에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인천 태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공업교육학과를 나왔다. 남영선(52) ㈜한화 사장은 78년 한국프라스틱에 입사해 인사와 총무, 기획 등 관리업무를 두루 거쳤다. 또 그룹 홍보팀장으로 재직할 때에는 폭넓은 대외 활동과 원만한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충남 출신으로 배재고와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golders@seoul.co.kr ■ 김승연회장의 자식교육관 “눈에 꿈이 담겨 있지 않으면 산 너머가 보이지 않고, 그 곳에 도도히 흐르는 강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이 평소 저의 생각입니다.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부모로서 갖춰야 할 최고의 미덕이라고 여깁니다.”(김승연 회장) 김 회장은 동관(22)-동원(20)-동선(16) 등 3세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한다. 다양한 경험과 문화, 체육활동을 오히려 권한다. 이는 선친에게서 받은 자식 교육에서 비롯된다. 김종희 창업주는 평소에 “남자는 술도 먹고, 담배도 피워보고 그래야 해. 어차피 될 놈은 무엇을 하든 간에 나중에 제대로 되니까. 남자의 과정은 여자와 다르지.”라고 했다고 한다. 선친의 기대 때문일까. 자식들 모두 수재인 데다 성공한 기업인이 됐다. 김 회장은 경기고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유학, 드폴대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김호연 회장도 경기고와 서강대, 일본 히도쓰바시 대학원을 나왔다. 김 회장은 또 전인교육을 강조한다.“교육 문제는 집사람이 더 큰 관심을 갖고 있어 저는 큰 방향만 잡아줄 뿐 간섭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닙니다. 그래도 공부뿐 아니라 지·덕·체를 고루 갖췄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바람입니다.” 3형제도 김 회장의 기대대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크다. 특히 막내 동선은 취미로 시작했던 승마에 본격적으로 매달려 지금은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장남 동관은 미국 하버드에 재학 중이며, 차남 동원은 예일대, 막내 동선은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golders@seoul.co.kr ■ 재계에서 손꼽히는 2대째 미국통 고(故) 김종희 한화 창업주와 김승연(53) 한화 회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미국의 마당발’이다. 그룹 모체인 화약부문이 방위산업과 연관이 많은 데다 창업주 특유의 친화력으로 주한미군 및 미국 대사관 관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이다. 또 김 회장은 한·미교류협회 회장으로서 선친의 인맥을 미국 정계로 더욱 발전시켰다. 부자는 자연스럽게 ‘다이너마이트 김과 다이너마이트 주니어’로 불렸다. 리처드 워커 전 주한 미국 대사와의 2대(代)에 걸친 약속은 한화 김씨 부자의 미국 인맥 관리를 잘 보여준다. 창업주는 워커 전 대사의 60세 생일 잔치를 한국식 환갑 잔치로 열어주기로 했지만 1981년 지병으로 타계하면서 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인 김 회장이 82년에 환갑 잔치를 열어줌으로써 선친의 약속을 지켰을 뿐 아니라 워커 전 대사의 팔순 잔치도 2002년 서울에서 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20년 이상의 약속을 대를 이어 지킨 셈이다. 김 회장의 설명이다.“선친은 1960년 말부터 워커 전 대사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워커 전 대사가 두세달 빨리 태어나 워커 대사는 한국의 미풍양속에 따라 자신이 형님이라고 말하곤 했다고 합니다. 선친은 또 리처드 스틸웰 전 주한 미군사령관과도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세 사람은 자주 만났고, 만남의 횟수만큼 우정도 깊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워커 전 대사의 아내였던 세니도 모친(강태영 여사)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김 회장은 또 한·미교류협회를 만들어 미국 인맥을 더욱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비롯해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데니스 헤스터트 하원 의장, 톰 대슐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딕 체니 부통령, 얼 포머로이 민주당 의원, 클린턴 전 대통령 등과 꾸준히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인연은 2002년 미국 하원에서 한·일월드컵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결의서가 통과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4분기중 콜금리 0.25%P 올릴듯”

    “4분기중 콜금리 0.25%P 올릴듯”

    오는 9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연방기금 금리에 이어 11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콜금리 결정을 앞두고 금융 전문가들은 우리 통화당국이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겠지만,4·4분기에는 콜금리를 0.25%포인트 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이들은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연말로 갈수록 경기상승과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 압박이 커져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금리인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도 “정책금리 결정은 금통위의 권한으로, 정부는 저금리 기조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면서 “다만 금리인상 가능성은 늘 열려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너무 빠른 감이 있다.”고 말해 연말 금리인상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또 미국이 이번주 금리를 올려 한·미간 정책금리가 역전돼도 환 위험이나 거래비용, 경영권과 미래수익을 기대한 투자목적을 감안하면 자본유출은 크게 우려할 사항이 못 된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국과 우리나라의 정책금리는 연 3.25%로 같다. ●“高유가등 따른 물가상승 압력 대응 필요” 7일 서울신문이 국책 및 민간연구기관과 은행·증권 등 금융기관 종사자, 교수 등 5명을 대상으로 금리 수준 등에 대해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물가가 매우 안정된 상태에서 경기회복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통화당국이 저금리 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항용 연구위원과 한국경제연구원 배상근 연구위원은 “당분간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다만 경기회복으로 총수요인 물가상승 압력이 가시화되면 연말쯤 금리인상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김종석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가 전반적으로 안정돼 있기 때문에 저금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올들어 지난달까지의 물가상승률은 2.7%로 물가관리 목표치인 3% 안팎에서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서울증권 박상욱 투자분석팀장은 “통화증가율이 총유동성(M3) 기준으로 6.1%에서 5% 후반으로 둔화되는 상태에서 금리인상을 통한 원화가치 절상을 유도할 시기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콜금리 내년에도 두차례 인상 예상 전문가들은 3·4분기에 경기회복이 가시화하고 고유가로 인해 물가불안 조짐이 나타나면 4·4분기 중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리은행 자금팀 안승환 부부장은 “하반기 내수·수출 회복에 대한 기대감과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금리역전 우려, 고유가 지속 등을 감안할 때 저금리 기조를 연말까지 끌고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따라서 4·4분기 중 콜금리를 0.25∼0.5%포인트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굿모닝신한증권 이성권 선임연구위원도 4·4분기에 한 차례, 내년에 두 차례 콜금리가 인상돼 통화당국의 금리 목표치는 4%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경기 확장국면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경기상승 속도를 다소 늦출 필요가 있으며, 당국은 이를 위해서도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부동산 시장을 겨냥한 금리인상은 반대 전문가들은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금리인상이 요구되려면 부동산 가격 상승이 전국적 현상이어야 하지만 지금은 일부 지역 및 일부 평형에서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통화정책 목표에서 벗어나 자산가격 변동에 일일이 대응한다면 통화정책의 신뢰성은 훼손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승환 부부장은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지 않는다면 부동산 시장에 미치는 효과가 적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상근 연구위원은 “부동산 가격안정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금리가 아니라 수요 억제책과 함께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문일 전경하기자 mip@seoul.co.kr
  • [지금 그곳은] 성북구 길음뉴타운

    [지금 그곳은] 성북구 길음뉴타운

    한여름 폭염에 아스팔트가 녹아내리던 지난 2일 늦은 오후. 만원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길음역 지하도에 발을 내딛자 차량이 내뿜는 열기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뉴타운 2·4구역으로 가는 왕복 4차선 삼양로는 벌써부터 빽빽이 막혀 있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아이들과 시장 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들로 가득 찬 마을버스는 손 잡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21세기 첨단 주거공간’ 뉴타운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80년대’였다. ●21세기형 친환경공간 ‘각광’ 뉴타운 사업은 청계천 복원 사업과 함께 ‘이명박호’의 최대 역점사업으로 손꼽힌다. 길음뉴타운은 지난 2002년 10월 은평구 은평, 성동구 왕십리뉴타운과 함께 1차 뉴타운 대상지로 선정됐다. 길음동 642번지 일대 28만 7000여평에 1만 4100가구가 들어선다. 재개발 8개 구역과 재건축 3개 지역으로 나뉘어 개발된다. 지난 4월 서울 뉴타운 가운데 처음으로 2구역 대우 푸르지오아파트와 4구역 대림 e-편한세상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됐다. 현재 4300여 가구가 들어왔다. 내년 5·6구역,2008년 7∼9구역이 입주한 뒤 2011년 개발이 완료된다. 길음뉴타운은 이미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삼각산을 배경으로 차가 아닌 사람이 길의 주인이 되는 보행자 중심 단지로 지어졌다. 특히 2단지와 4단지를 관통하는 인수로는 가로 공원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특히 2단지 대우아파트는 최근 한국토지공사와 한국주택협회 등이 주최한 ‘살기좋은 아파트’ 선발대회에서 종합대상까지 수상했다. 단지 내에 산책로, 인공폭포, 연못, 벽화 등 친환경적 시설을 많이 조성한 덕분이었다. ●교통 수준은 ‘80년대’ 그러나 ‘보행자 중심’이라는 점이 정작 주민들에게는 큰 불편으로 다가오고 있다. 길음뉴타운의 출입로는 왕복 4차로인 삼양로와 왕복 2차로인 인수로 두 개 뿐이다. 이미 재개발이 진행되던 이곳을 뉴타운 사업지로 추가 선정했기 때문에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 지역에서 교통 체증은 일상이 됐다. 출·퇴근 시간에는 삼양로와 인수로가 차로 가득찬다. 우회로인 정릉길도 자정을 넘겨서까지 지체될 정도다. 나머지 단지에 주민들이 모두 입주하고, 인근 미아리뉴타운까지 개발되면 이 지역의 교통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전망이다. 대우아파트에 사는 주부 서지현(34)씨는 “걸어서 20분 거리인 길음역까지 아침에 버스를 타면 30분 이상 걸린다.”면서 “마을버스도 3개 노선에 불과해 오전 8시를 넘기면 버스에 탈 자리도 없다.”고 말했다. 인프라 부족은 아파트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우, 대림아파트 로열층 33평형의 시세는 3억원,41평은 4억원을 겨우 넘기고 있다.2001년 당시 평당 분양가인 600만원보다 70% 정도 올랐지만 입주 뒤에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땅값만 500만원 이상 오른 한남, 천호뉴타운 지역과 비교해도 저조한 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초 보행자 중심 도시로 계획된 터라 교통 문제는 불가피하다.”면서 “2008년까지 인수로를 확장하고 경전철을 건설하면 교통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원주민 없는 뉴타운 원주민 재정착률이 2·4구역 평균 10%에 머물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재개발지구의 평균 재정착률이 20% 대인데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생활 환경을 개선한다는 뉴타운 사업이 도리어 지역 주민들을 내쫓고 있는 셈이다. 4구역 재개발조합장인 이종완(72)씨는 “80% 이상의 주민들이 분양가를 견디다 못해 삼양동, 미아동 등 주변이나 양주, 의정부 등 외곽으로 밀려났다.”면서 “결과적으로 재개발의 과실이 토박이가 아닌 외부 사람들에게 돌아간 셈”이라고 말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연말 퇴진발표 슈렘프 다임러회장

    위르겐 슈렘프(60)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이 28일 연말 퇴진을 급작스레 발표하자, 오히려 회사의 주가는 9%나 뛰었다. 슈렘프 회장은 1961년 당시 다임러-벤츠에서 16살의 견습기계공으로 시작해 1995년 회장직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회장직에 오르자마자 문어발식 확장을 하던 거대 독일기업을 자동차그룹으로 재정비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98년 미국 3위의 자동차회사인 크라이슬러를 400억달러란 높은 값에 사들인 것은 그의 최대 실수로 분석된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합병 이후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최고 1153억달러에 달했던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시가는 절반 이하인 449억달러까지 하락하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쌓여갔다. 투자자들은 떨어진 주가를 ‘슈렘프 디스카운트’라 불렀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 자동차기업 미쓰비시에 거액을 투자했으나 쓴맛만 봤고, 현대와의 합작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사임 직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최대 주주이자 슈렘프의 든든한 방패막이었던 도이체은행이 지분율을 10.4%에서 6.9%로 낮춘다고 발표,80년넘게 이어온 두 회사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기 시작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다임러 관계자가 “슈렘프는 남은 임기내에 계획을 완수할 수 없음을 깨닫고, 지금이 (회사를 떠날) 적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견습사원이 회장까지 승진한 동화같은 이야기의 결말은 쓸쓸하다. 아직 임기가 2년이상 남았으나, 연말 사임을 밝히면서 미국내 크라이슬러그룹을 이끌고 있는 디터 제체(52)를 후임자로 지명했다. 제체는 2000년 미국 크라이슬러에 부임, 근로자 2만 6000여명을 해고하는 과감한 구조조정에도 인기를 잃지 않았다. 한때 회생불가능이란 회의적 전망까지 나돌았던 크라이슬러는 제체의 절제된 경영스타일로 GM과 포드가 적자에 허덕임에도 불구하고 8분기 연속 흑자 행진을 기록 중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경기 ‘L자형 횡보’ 우려

    경기 ‘L자형 횡보’ 우려

    경기가 여전히 바닥권에서 맴돌고 있다. 생산과 내수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지만 자신할만큼 뚜렷한 것은 아니다. 경기회복의 관건인 설비투자는 감소하는 추세다. 정부는 저점을 다지는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L자형 장기불황’을 적잖이 우려하는 눈치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이 70조원이나 된다고 지적했다. 돈을 놀리지 말고 투자하라고 다그친 셈이다. ●미약하나마 성장세를 보이는 생산과 내수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6월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1년 전보다 산업생산은 4.1%, 도소매 판매는 3% 늘었다. 특히 2·4분기 도소매 판매는 2003년 1·4분기의 1.7% 이후 9분기만에 처음 증가세로 돌아섰다.2·4분기 산업생산도 4%로 1·4분기의 3.8%보다 좋아졌다. 하지만 산업생산은 올들어 크게 개선되기 보다 4% 수준에서 옆으로만 기고 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산업생산이 재고 조정의 마무리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반기 내수가 회복되어야 생산의 견조한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소비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자신한다. 특히 내구소비재 출하가 6월중 14.4%,2·4분기에 7.3% 각각 증가한 점은 하반기에 내수가 본격 회복되는 징후로 보고 있다. 김철주 재경부 경제분석과장은 “설비투자가 회복되지 않아 경기가 횡보하고 있으나 내수 회복으로 4·4분기에는 바닥을 찍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설비투자가 경기회복의 관건 경기가 선순환 구조로 들어서려면 투자증대가 필수다.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내수회복은 수출둔화를 일부 보전하는데 그칠 뿐이다.6월 설비투자는 2.8%나 감소했다.2·4분기로는 1.5% 증가하는 데 그쳐 1.4분기의 4%보다 크게 둔화됐다. 한 부총리는 이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련 하계포럼 강연을 통해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투자인데 투자가 안되면 잠재성장률 5% 달성이 어렵다.”고 우려했다. 기업들이 출자총액제한 때문에 투자를 못한다고 비난할 게 아니라 현금으로 갖고 있는 70조원을 투자에 쓰라고 촉구했다. 대신경제연구소는 국내기업의 해외 이전이 지속되는데다 설비투자의 선행지수인 기계수주가 감소, 하반기에도 설비투자 증대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설비투자를 제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통신 등 서비스 분야쪽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신석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기 회복세가 매우 느리고 설비투자가 감소세를 보인 점이 매우 우려된다.”면서 “투자촉진을 위해 국내외 기업에 대한 투자 규제를 빨리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계 ‘제로(0)’인 하반기 경제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는 5월보다 0.3포인트 감소했다. 동행지수는 지난해 12월 이후 한달 간격으로 등락을 반복, 경기회복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함을 반영했다. 기업들이 느끼는 체감경기 역시 3개월 연속 하락했다. 한국은행이 12∼21일 전국 2477개 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7월중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5로 6월보다 4포인트나 떨어졌다. 100 이상이면 경기가 나아지는 것이고 그 이하이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이 지수는 올들어 상승세를 보이다가 4월 85를 고비로 계속 떨어졌다. 대기업이 84, 중소기업이 72로 중소기업의 체감경기가 훨씬 나쁘다. 앞으로의 경기활동을 예고하는 경기선행지수는 6월 1.6%로 2개월 연속 증가했다. 하지만 대세를 판단하려면 선행지수가 6개월 연속 상승세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크게 환영할만한 결과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다만 국내 건설수주가 6월에 38%,2·4분기에는 40%씩 증가, 건설경기가 하반기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부총리는 “경기회복이 확고해질 때까지 확장적인 거시정책을 견지하고 법인세나 소득세의 감면조치도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경기부양 의지를 밝혔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몸집 불리기’ 나선 HSBC

    외환은행과 LG카드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는 영국계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영업망 확대를 통한 국내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 금융계에 따르면 HSBC 서울지점은 대구·인천·대전 등 3개 광역시에 점포를 각각 1곳씩 신설하기로 하고 최근 금융감독원에 설립인가 신청서를 냈다. 이들 지역에 영업점을 추가로 개설하면 HSBC는 서울 6곳, 경기(분당) 1곳, 부산 1곳 등을 포함해 총 11개의 국내 점포를 보유하게 된다. HSBC의 점포 확장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덩치’를 키운 뒤 인수합병(M&A)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등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제일은행 인수 당시 마지막 단계에서 포기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HSBC는 원하는 가격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무리해서 M&A에 나서지 않는다.”면서 “외환은행과 LG카드 등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당장은 M&A 시장이 형성될 만한 여건이 갖춰져 있지 않아 전열 재정비 차원에서 영업망 확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M&A를 통해 성장을 거듭해 온 HSBC의 과거 전력에 비춰볼 때 분위기만 조성되면 시기와 상관없이 다시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HSBC의 빈센트 챙 회장이 28일 윤증현 금감위원장을 만나는 것도 궁금증을 증폭시키고 있다. 챙 회장은 중국 산업은행(CIB) 지분(15.98%) 인수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력이 있고, 지난해 외환은행에 대한 장기적 인수의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HSBC 관계자는 “점포 확장은 한국내 영업력 강화 차원의 일환이고, 회장의 방한은 취임 인사차 진출 국가 금융감독 당국의 수장을 만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추경편성’ 찬반 팽팽

    지난 2·4분기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3.3%로 1·4분기의 2.7%에 이어 저성장세가 이어지면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경을 가급적 일찍 편성, 경제회복을 앞당겨야 한다는 불가피론과 별 효과 없이 나랏빚만 늘릴 수 있다는 신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은 26일 “추경은 정부의 거시정책 중 유일하게 사용하지 않은 카드로, 아직 구체적 방향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추경 편성 결정 시기에 대해서는 “당에 추경 편성의 필요성 등을 요청하지 않았고 내일 중으로 결정된다고 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추경이 불가피한데 여론의 눈치를 보다 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올해 목표로 하는 4%대 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반기에 약 5% 성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유가는 배럴당 50달러대를 기록하고 있고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하는 등 경제불안 요인이 산재해 있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추경을 편성하지 않겠다고 하던 것을 의식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결국은 추경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추경을 자주 편성하는 것은 나쁘지만 지금처럼 경제가 확실히 나쁘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 추경”이라고 분석했다. 올해 추경을 편성하면 외환위기 이후 8년 연속 추경 편성 기록을 세우게 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6월 우리 정부와 정례협의 결과를 설명하면서 “경제회복이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2분기 이후에 2003년 또는 2004년 수준의 추경편성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정부는 지난해 1조 8283억원의 추경을 편성,7월 임시국회 동의를 받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올해 추경을 편성할 경우 그 규모는 2조원대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반면 현재 추경을 편성하면 적자 국채발행이 불가피하며 추경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 내에서는 28일 발표되는 6월 산업활동동향과 다음달 4일에 나올 서비스업활동동향까지 지켜본 뒤 결정해도 늦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어차피 9월 정기국회에서나 국회 동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 박형수 연구위원은 ‘추경편성에 대한 쟁점분석’ 보고서에서 “올해 4%대 성장이 가능하다면 추경 편성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1조 9000억원의 추경을 포함,4조 5000억원 규모의 재정확장 정책을 폈지만 실질 GDP를 0.16%포인트 올리는 데 그쳤다고 평가했다.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데스크시각] ‘문화 다양성’을 위하여/임창용 문화부 차장

    문화란 무엇인가.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선언’에 따르면 문화는 한 사회와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정신적, 물질적, 지적, 감성적 특성의 총체이다. 또 문화는 예술이나 문자의 형식뿐 아니라 함께 사는 방법으로서의 생활양식, 가치, 전통과 신앙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같은 문화의 정의로만 보아도 문화는 그 고유성과 창의성이 생명임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 문화상품과 서비스가 단순한 상품이나 소비재로 취급되지 말아야 함은 물론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문화다양성’ 논쟁도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논쟁의 중심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협약, 정확히 말하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 있다. 오는 10월 유네스코 제33차 총회에서 채택될 예정인 이 협약은 따라서 당연히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조항을 담아야 한다고 본다. 이미 문화제국화의 길을 걷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온 미국은 협약의 강도를 낮추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호주 등 일부 국가도 여기에 동조한다. 이들도 표면상으로는 ‘문화다양성’을 옹호한다. 다만 그 방식에 있어서 자유로운 유통과 소통을 통해 문화 다양성의 범위를 한층 넓힐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하지만 EU, 캐나다, 중국 등 대부분의 국가들이 이를 곧이곧대로 믿을 리 만무하다. 이들 나라들은 온통 지구를 뒤덮을 위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 대중문화의 위력에 자국의 문화 정체성이 상실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무차별적 소통을 막을 제도적 장치를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한 국제규약으로서 이번 협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달 초 끝난 유네스코 3차 정부간 회의에서 마련된 협약 초안에 대해 미국 등 극히 일부 나라를 빼고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문화다양성의 승리’라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문화 다양성 보호를 위한 규제와 재정적 조치, 보조금 지급 등 당사국의 권리를 강화한 초안에 합의를 도출했기 때문이다. 또 여타 국제 협약과의 관계에서도 거의 동등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협약의 국제적 실효성을 보장했다. 반면 미국은 참가국의 합의사항에 강한 반발을 나타냈다. 이번 초안이 문화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강력한 통상 어젠다를 담은 것이기 때문에 명백히 유네스코의 권한을 넘어선다는 주장이다. 이 협약이 현 상태대로 채택될 경우 미국으로선 거침 없이 국경을 넘어 세력을 확장해온 문화산업이 위축될 것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정부는 3차 정부간 회의후 아직 뚜렷한 입장을 공표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에도 우리 정부는 협약과 관련, 문화 다양성이라는 명분과 산업적 실리 등을 놓고 고심해왔다. “최근 한류 열풍이 불고, 게임, 방송프로그램 등 정보산업이 크게 발달하는 등 문화산업적 환경이 변하고 있는 마당에 무턱대고 협약에 찬성하기도 어렵다.”는 정부 관계자의 말도 일리는 있다. 특히 방송산업의 경우 한류바람을 타고 수출이 수입의 두배에 달하는 상황에서 협약이 오히려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섣부른 선택이 문화산업은 물론 산업 전체에서 통상 압력의 빌미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럼에도 이젠 분명한 선택의 시점이 왔다고 본다. 현재 우리의 한류열풍이나 방송·게임산업 성장이 고무적이긴 하지만, 허리케인처럼 몰아치는 미국 문화산업에 비하면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불과하다. 방송산업도 시장이 개방돼 미국의 방송프로와 뉴스 등이 봇물처럼 들어올 경우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거센 태풍에 버팀목 역할을 할 협약안 지지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강력한 협약안을 지지함으로써 뜨거운 감자인 스크린쿼터 사수의 명분도 챙길 수 있다. 선택이 어려울 땐 명분과 원칙에 충실하는 게 살 길이다. 임창용 문화부 차장 sdragon@seoul.co.kr
  • [민선 지방자치 10년] ③ 성큼 다가온 지방행정

    [민선 지방자치 10년] ③ 성큼 다가온 지방행정

    민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행정은 주민들 곁으로 성큼 다가섰다. 지난 10년간 일부 단체장들은 표를 의식해 전시행정과 선심행정, 제 사람 챙기기 등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으나 집무실 출입문이나 벽을 투명유리로 바꾸고, 권위를 벗어던진 채 생활행정·주민행정을 몸소 실천, 주민들의 칭송을 받는 단체장들도 적지 않다. ●시스템 바꿔 주민 속으로 종전에는 소관사항이 아니면 해당 부서로 이첩했으나 지금은 직접 해결점을 찾아 소관부서에 건의한다. 경남도의 경우 민원처리 결과를 회신할 때는 반드시 도지사 비서실을 거쳐야 한다. 처리과정의 적절성 여부를 도지사가 챙기자 담당 직원의 자세가 바뀌었다. 지난해 8월 밀양시 상동면 주민들이 KTX 운행 이후 완행열차 운행횟수 감소로 인한 불편을 도에 호소했다. 종전 같으면 ‘소관사항이 아니므로 철도공사로 이첩했으니 양지하시기 바람’이라고 회신했을 일이지만 담당 직원이 현지로 나가 실태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상동역을 출발하는 완행열차가 종전 상행 3회, 하행 10회였으나 KTX가 운행되면서 상행 4회, 하행 5회로 줄었으며, 운행시간도 새벽이나 심야시간대로 바뀌어 주민들의 부산나들이가 불편함을 확인, 철도공사에 운행횟수 증회를 건의해 성사시켰다. 대구시 수성구는 지난 2002년 ‘민원배심원제’를 도입했다. 법률가와 건축사 등 전문가들이 배심원으로 참여,▲적법한 행정처분이 다수 주민에 피해를 줄 경우와 ▲장기 미해결 고질 또는 집단민원 ▲주민간 이해대립 ▲2회 이상 반려되거나 불가처리된 민원 등에 대해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듣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처리한다. 그동안 법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인근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오는 다가구주택, 골프연습장, 오피스텔 신축, 가스충전소 등 각종 인·허가 150여건을 처리했다. 울산시 북구도 주민들의 반대로 3년 이상 끌어오던 음식물쓰레기 공공자원화사업을 주민들이 참여하는 배심원제로 깨끗이 처리했다. 이상범 구청장이 지난해 말 중산동 주민들과 협의, 사회단체·종교계 인사 등이 참여하는 배심원들의 결정에 따르기로 합의했던 것. 강원도도 감사시스템을 직접 현장을 뛰며 주민들과 기업의 애로점을 듣고 해결해주는 사전 업무환경개선으로 전환, 도시계획에 묶여 공장부지 확장 및 도로개설이 어려운 기업을 찾아내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주민에게 감동주는 행정 대구시가 시민운동으로 추진한 ‘담장허물기 운동’은 고교 검인정 교과서에도 실렸다.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이미지를 벗기 위해 지난 1999년 5월부터 전개해 가정집을 비롯, 교회, 상가, 공공기관 등의 담장을 허물어 녹지공간 확보는 물론 이웃간 서로 터놓고 지내는 열린 도시로 변모했다. 광주시 북구의 ‘아름다운 마을가꾸기 사업’도 호평이다. 마을별로 담장 허물기, 빈 터에 꽃과 나무 심기, 꽃길 조성, 담장에 벽화 그리기 등으로 공동체의식을 갖게 한다. 소요 예산은 주민이 10∼20% 부담하고 나머지는 구에서 보조해준다. 전북 전주시는 개발제한으로 슬럼화된 교동과 풍남동 일대 한옥촌을 전통문화지구로 개발, 새로운 관광명소로 만들었다. 전통 주류박물관과 명품관, 전통문화센터 등을 건립하자 전통 한옥촌에 걸맞은 한정식집과 전통찻집, 민속공예품판매점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군포시는 시민들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대여 자전거는 모두 100대로 가구당 1대씩 3개월·6개월·1년 단위로 빌려주며 연장도 가능하다. 시 관계자는 “교통·환경문제를 해결하고,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자전거 무료대여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안동시는 주민행정시찰제를 실시하고 있다. 매월 2차례씩 주민 40명을 한 팀으로 구성, 수도사업소나 광역매립장, 도산서원, 하회마을, 산림과학박물관 등 주요기관을 방문, 행정의 신뢰도를 높였다. 인근 영주시도 ‘수돗물 수질평가위원회’를 구성, 시민들이 만족하는 상하수도 행정을 펼치고 있다. 이 위원회에는 대학교수와 시민 등이 참여해 앞으로 2년간 수질검사와 수질향상을 위한 활동을 하며, 정수장을 개방해 시민들이 언제든지 정수장을 견학하고 수돗물 생산과정을 눈으로 확인토록 했다. 광주시 남구의 ‘효(孝)사랑 운동’도 눈에 띈다. 허술한 사회안전망을 보완하기 위해 대촌농협 등 관내 14개 금융·유통업체들과 협정을 맺고 수익금의 0.5∼1%를 기금으로 적립, 독거노인 등에게 주·부식비와 병원 치료비, 연료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지역의 얼굴 알리는 축제 특색있는 축제로 대박을 터뜨린 지자체도 적지 않다. 전남 함평군의 ‘나비축제’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냈다. 지난 99년 직원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나비축제는 올해로 7회째. 해마다 전국에서 100만명 이상 관광객이 찾고 있으며, 축제장 주변에 심은 자운영을 브랜드로 판매되는 ‘자운영쌀’은 친환경 이미지를 굳혔다. 경남 고성군의 ‘공룡나라 축제’도 시골마을의 얼굴을 내외에 알렸다. 국내 최대 공룡 발자국 화석지임을 내세워 공룡을 브랜드화하는 데 성공한 것. 내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공룡 세계엑스포’가 열린다. 이학렬 고성군수는 “내년에 열리는 공룡 세계엑스포를 계기로 고성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이 얼굴을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북 김제의 ‘지평선축제’도 지역의 이미지를 알리는 축제로 자리매김됐다. 드넓은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쌀과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를 주제로 짧은 기간에 성공을 거다는 평가다. 민선자치 10년간 행정이 변화한 데는 시민단체의 역할도 컸다. 민원의 현장에서 잘못된 행정을 지적하면서 주민들의 자치역량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경남 마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시가 마산 출신 작곡가 조두남 선생과 이은상 시인의 업적을 기려 건립한 ‘조두남 기념관’과 ‘노산문학관’의 명칭을 변경시켰다. 시민단체들은 이들의 친일행적을 문제삼아 부당함을 지적했다. 시가 개관을 강행하자 거칠게 항의하다 대표가 구속되기도 했으며, 중국 현지를 방문해 행적을 조사하기도 했다. 결국 시는 지난해 7월 관련 조례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 마산음악관과 마산문학관으로 각각 명칭을 변경했다. 정리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교부금·부가가치세 일부 자치재원으로 돌려줘야” 권문용 자치단체협의회장 “5천년의 역사 속에 ‘지방자치’는 10년에 불과합니다. 어렵게 시작한 지방자치를 너무 편협적인 시각에서 보지 말고 2만달러 수준의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격려와 용기를 주십시오.” 234개 기초지방자치단체장의 모임인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권문용(서울 강남구청장) 회장은 지방자치 출범 10돌을 맞이한 우리의 지방자치를 “결코 부끄럽지 않은 개척의 역사”로 평가했다. 그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자치’를 10년이란 단시간에 우리의 것으로 맞춰가고 있다.”면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치의 싹을 키워온 주민과 일선 공무원에게 찬사를 보낸다.”고 밝혔다. 그는 민원서비스, 공무원의 친절, 업무처리 능력, 투명성 등 관선 때와 민선 이후의 차이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행정정보 주민위주로 공개” 무엇보다 민선 자치 이후 주민들의 행정참여가 늘어가고 행정 정보가 주민 위주로 공개되는 등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참여 민주주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실시된 경실련의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80% 이상이 이를 인정했다.”고 덧붙였다. 전국의 모든 자치단체는 인터넷 행정서비스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주민 누구나 정책입안에서 집행까지 직접 참여하고 있는 예를 소개했다. 특히 자신이 행정을 맡고 있는 서울 강남구의 경우 “구정 홈페이지에 30만여명의 e메일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고 이를 활용해 연간 430여건에 달하는 주요정책이나 사업결정 과정에 주민의견을 묻고 있다.”며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행정 효율성 더 높여야” 그는 “간간이 거론되는 단체장의 전횡이나 인사잡음, 선심성 행정 등 자치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없지는 않다.”고 인정했다. 이어 “자치단체들이 직원 인사의 공정성을 높이고 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데 좀더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과거 관선 때보다는 훨씬 개선된 데다 자치단체별로 문제점 해결을 위한 갖가지 묘안들을 찾아내고 있다.”며 자치제도의 우수성을 강변했다. 하지만 현재의 문제점보다는 미래에 더욱 촉각을 곧추세웠다. 그는 “지난 10년보다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지방자치의 개선과제들에 관심을 보였다. ●“감사원 ‘정치성 감사’ 철회를” 최근 그는 협의회 회장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중앙정부와 충돌, 갈등을 빚고 있다. 감사원이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일제감사의 뜻을 밝히자 “정치성 감사”라며 반발하고 있고 ‘정당공천제 반대’,‘3선연임 제한 철폐’ 등 중앙정부나 정치권의 심기를 자극하는 민감한 문제들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모두가 진정한 지방자치를 앞당기기 위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제도”라며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하루빨리 자주재원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자치의 기본은 재정 자립”이라면서 “현재 중앙정부가 보유세 등 부동산세금까지 가져가고 있는 것은 지방자치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 자치단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교부금을 자치재원으로 넘겨주고 일본처럼 국세인 부가가치세의 일부(10%정도)를 자치재원으로 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분권을 바라고 진정한 자치를 정착시키려면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간섭을 하루빨리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부동산 등록세 0.5%P 인하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27일 국회에서 확대 당정협의를 갖고 경기 활성화를 위해 추경예산 편성과 양도세율 조정 및 취득·등록세 인하를 검토하기로 했다. 당정은 1·4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은 2.7%에 그침에 따라 확장적 재정기조를 유지키로 하고 6월 중 당정협의를 다시 개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6월 임시국회에서 2조원 안팎의 추경이 편성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에는 1조 8000억원의 추경을 포함해 기금운용과 국채발행 등으로 총 4조 5000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집행했다. 당정은 올해 종합부동산세제 도입 등으로 재산세 등의 보유세 부담이 10% 가중될 것으로 추정,8월 말까지 거래세 가운데 등록세를 0.5%포인트 내리는 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당정은 등록세를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정부는 지난 1월 3%이던 등록세를 개인간 거래는 1.5%로, 법인간 거래는 2%로 각각 낮췄다. 당정은 2007년 양도세의 전면적인 실거래가 과세 도입으로 세부담이 과중되지 않도록 내년 중 양도세율 체계를 전면 재조정키로 했다. 현재 2년 이상 보유한 부동산의 경우 1000만원까지는 9%,1000만원 초과 4000만원까지는 18%,4000만원 초과 8000만원까지는 27%,8000만원 초과는 36%로 과표가 구분됐다. 재경부 관계자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과표 구간을 늘리면 세율을 고치지 않고도 양도세를 인하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양도세율 인하 이외에도 여러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89조원 규모의 20개 대형 국책사업을 선정, 분기마다 사업추진 현황을 점검키로 했다. 판교 신도시와 새만금사업, 서남해안 관광레저도시, 제주국제자유도시 등이 포함됐다. 저소득층을 위한 소형 국민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입주자의 수요에 맞춰 공급면적 14∼20평인 임대주택 규모를 11∼24평으로 다양화하기로 했다. 지방 건설경기 활성화와 고용창출을 위해 농업생산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3000억원 정도 늘리기로 했다. 관광·레저산업과 금융산업 진입규제 등에 대한 획기적인 개선방안과 중소·벤처기업에 대한 정책금융·신용보증 등의 금융지원 개선안도 내놓을 계획이다. 리스방식 민간투자(BTL) 사업계획 6조여원 가운데 올해 1조원 규모를 집행,8월부터 착공키로 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8)목포항 100년의 진실

    압록강의 신의주, 대동강의 진남포, 한강의 인천, 금강의 군산, 그리고 영산강에 목포가 건설되었다. 개항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 집중되었으니 이는 바다를 통해 들어온 해양제국들이 젖줄인 강을 따라서 식민 내륙까지 뻗어나려는 의도를 잘 보여준다.1897년 7월4일, 조선정부는 각국 사신 앞으로 동년 10월1일을 기해 목포와 진남포 두 항구를 외국통상을 위하여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가하는 칙령을 통보한다. ●1897년 10월 자주적으로 개항 청일전쟁 승리의 여세를 몰아서 이노우에(井上馨)영사는 1895년 1월6일 기선을 타고 인천을 떠나 약 한달반 동안 서남해안을 시찰하고 현재의 목포가 가장 합당한 지역임을 건의한다. 그러나 일본의 외압과 무관하게 개항 초기는 아직은 대한제국기로서 제한적이나마 자주성을 확보하고 있었다. 일본의 압력에 의해 개항이 서둘러지기는 했으나 상업을 확장하여 민국의 이익을 발달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칙령에 의해 자주적으로 개항한 셈이다. 목포의 출발은 매우 활기찼다. 자주적이었던 만큼 초기 건설도 일본 뜻대로 되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제국의 힘이 미쳤기 때문. 조계지 이외의 도시건설은 전적으로 조선인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헌병대목포분견소가 들어서서 위압적으로 나선다. 마침내 1906년에 목포주재 일본 이사청 이사관인 와카야마(若松兎三郞)는 각국 거류지에 관한 권한을 빼앗아 간다. 이로써 목포개항장은 일본인의 수중으로 떨어지고 만다. 한일합병이 되자 일제는 가장 먼저 시가지를 33정 51구획의 일본식으로 바꾼다. 마치(町)는 일본인 거리, 한국인거리에는 동(洞)을 붙여 이름에서부터 차별한다. 즉 목포는 도시계획상의 이중성을 갖고 태어났다. 서울 북촌의 양반, 남촌의 일본인처럼 일본마을(각국공동거류지역)과 조선마을(옛 목포부)로 나뉜다.‘제국주의신도시’ 목포출신의 동반작가 박화성은 데뷔작 ‘추석전야’에서 ‘남편으로는 늘비한 일인의 긔와집이오 중앙으로는 초가와 넷 긔와집이 섯겨있고, 동북으로는 수림 중에 서양인의 집과 남녀학교와 예배당이 솟아있는 외에 몇 긔와집을 내놓고는 땅에 붙은 초가뿐이다. 다시 건너편 유달산을 보자, 집은 돌틈에 구멍만 빤히 뚫러진 도야지막같은 초막들이 산을 덮어 완전히 빈민굴이다.’고 하였다. 일본과 한국으로 분명하게 갈려진 목포시의 이중적 성격을 주목한 고석규(목포대·‘근대도시 목포의 역사 공간 문화’의 저자) 교수는 ‘일제 강점기 서울을 비롯한 식민지 근대도시는 왜곡된 근대 도시화가 만들어놓은 공간의 이중성과 식민지라는 억압구도가 낳은 대중문화의 이율배반성, 신파성을 동시에 갖는 기이한 도시’라고 압축정리한 바 있다.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목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산강을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하다. 그래서 영산포 북관정에서 목포하구언까지 내려가는 뱃길을 택하였다. 마침 영산강살리기운동이 한창 벌어지면서 도지사 이하 여러 기관장들이 탄 배에 동승하였다. 배는 영산강을 내려가다 영암 몽탄나루에서 잠시 쉬고 다시 유장하게 흘러가다 하구언에서 막혔다. 그쯤에서 전남도청 이전부지인 ‘남악신도시’가 강가에 보인다. 다시 말하여, 목포는 영산강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자리잡은 요충지인데 바다는 강을 잃고, 강은 바다를 잃어 엉망이 돼버렸다. 바닷배가 오르락거리면서 바다와 직접적으로 통하는 도시였던 광주시도 바다는커녕 강물조차도 끊긴 단절의 도읍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이중환도 택지리에서 ‘영산강은 서쪽으로 흘러 무안 목포에 이르는데…강 건너는 큰 평야를 이뤄…풍기가 화창하고 땅은 넓고 물자도 넉넉하여 서남쪽 강과 바다는 운수의 이익을 통제하여 광주와 함께 명읍이라 일컫는다.’고 하였다. 따라서 광주를 오로지 내륙도시로만 간주함은 대단히 그릇된 시각이며, 하구언만 터진다면 충분히 해양연계도시로 되돌아갈 수 있으리라. ●일본인·조선인 마을 차별 심각 목포는 발전을 거듭했다. 전남의 현관이요 물산집합의 중심지로 조선에서는 제3위를 점할 만한 중요항이자 상업의 요지로 자리잡았다.1930년대에 인구 6만을 돌파하였다. 전남에서는 최초 최대로 근대문명의 세례를 받으며 전국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 세례는 사람이나 구역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내려졌던 것은 아니다. 차별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특히 일본과 조선인마을에 대한 차별은 일제강점기 목포도시화의 주요특성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것이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살기 편하도록 도시를 꾸몄다. 정거장, 관청, 은행, 학교, 시장 그밖에 근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기관을 자신들과 가깝고 편리한 곳에 세웠다. 상하수도, 도로포장, 교통통신, 전기, 가스, 보건, 위생 등도 예외없이 일본인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그네들 거리는 짜임새 있고 깨끗하고 편리하였다. 반면에 조선인거리는 무참하기 그지없었다. 농촌에서 패잔한 무리와 봇짐행상들이 방황하는 곳이 상업도시 목포항의 이면이었다. 청년은 생선장수·지게벌이, 여자는 덕장수·고구마장사, 소년은 겐마이빵·덴뿌라·수건양말장사, 소녀는 콩기름·나물장사 등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이들은 교통정리를 한답시고 내쫓는 바람에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가련한 신세였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걸인도 무리지어 나다녔다. 엄청난 숫자의 유곽거리가 존재하여 창녀들이 득실대고 성병이 만연하였다.‘항구의 낭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비참하였다. ●목포시내는 ‘거리 박물관’ 영산강하구언에서부터 찻길을 내달리며 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목포시 구분법을 제시하였다.“영산강변의 전남도청부지가 21세기형이라면,1980년대 매립지에 1990년대 세워진 하당신도시는 합리주의식이지요. 신식모텔들이 아파트와 공존하는 90년대식 합리주의의 거리를 벗어나면 국립해양유물전시관 같은 공공시설이 몰려있는 문화의 거리가 나오지요. 세계은행(IBRD)차관으로 만들어진 1970년대식 거리가 나오는데 보행자중심 거리를 만든다고 어정쩡하게 T자형도로를 만들어 어데서고 직진이 불가합니다. 저기에 삼학도가 보이고 유달산이 있지요. 거기가 조선인과 일본인거리가 판이하게 갈렸던 목포시내지요.” 이쯤되면 ‘거리박물관’이다. 일본식과 한국식,70년대식,80년대식,90년대식,21세기식이 병존하면서 차곡차곡 쌓여져서 항구도시를 만들어 왔다. 지난 백년사를 웅변해주는 목포답사 1번지는 오늘날 목포문화원으로 쓰이는 일본영사관이 아닐까.1900년(고종37년) 러시아건축가의 손으로 지어졌는 바, 최고급 대리석 벽난로가 설치되어 있는 등 백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견고한 모습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동척을 비롯하여 일본인 조차지역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권위적인 위치에 도도하게 자리매김하였다. 목포이사청, 목포부청사 등으로 쓰이다가 광복 후에는 시청, 시립도서관 등으로 이용되었다. 문화원에서 조금 내려오니 동양척식회사 석조건물이 나온다.1920년대 영산포에서 엄청 몹쓸 짓하다가 이리로 옮겨 왔다고 전해지는 바, 남도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한 기관이다. 동척 목포지점은 전국 최대의 소작료를 거두어들였으며 부동산 담보 대부, 고리대 등으로 식민지 수탈의 상징이었다.1930년대 유행한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이같은 슬픈 사연을 안고 흐르는 것이리라. 해군 소유였다가 철폐될 위기에 몰린 것을 시민들이 되살려서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할 채비를 갖추고 있으니 동척 부산지점과 더불어 전국에 유일하게 남았다. 백미는 역시 이훈동정원이다.1999평이라는데 우치다니 만빼이란 사람이 1930년대에 세웠다. 광복 이후에 해양경비대가 주둔하였고, 국회의원 박기배 소유를 거쳐서 1947년에 조선내화를 설립한 이훈동(1917년 해남출신)에게 넘어갔다. 목포의 진산인 유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았으며 입구정원, 알뜰정원, 임천정원, 후원 등으로 이루어진다. 남도에서 가장 큰 정원으로 나무 종류만 113종에 이르러 난대지방식물의 보고다. 일본식 석등은 물론이고 일본식다원정, 연못, 석탑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정원에서 위를 올려다보면 노적봉이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적을 시험할 요량으로 위장볏가리를 두르게 하여 싸움 한번 없이 물리쳤다는 전설의 주인공이 왜식정원을 굽어보고 있다. 실로 아이로니컬한 대목이다. ●충무공 진지가 목화수탈 현장으로 노적봉에 오르니 코 앞에 고하도가 보인다. 이순신이 명량대첩 후에 1597년 10월29일 고하도로 진을 옮겨 군량미를 비축하고 전력을 재정비하였다가 이듬해 2월17일 고금도로 진을 옮길 때까지 108일 동안의 진영터다.1722년, 통제사 오중주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이 유허지에 이충무공 고하도유적비를 세워 오늘에 이른다. 고하도선착장에는 또 하나의 비석이 있으니 조선육지면발상지비다.1899년 일본영사가 미국산 육지면을 시험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재배에 성공하면서 전국으로 육지면이 퍼졌다. 수확기에는 목포항이 온통 흰 목화로 뒤덮였으니 쌀과 더불어 남도수탈의 상징이었다. 1936년 조선총독부가 일본영사의 공적비까지 세웠으니 충무공의 진지가 목화수탈의 현장으로 뒤바뀐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목포 100년은 이렇게 슬프게 흘러갔다. 누가 식민지근대를 이야기하는가. 그 누가 계량적 통계수치만으로 식민지축적론과 식민지개발론을 논하는가. 식민지시대의 인간군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항구의 삶은 식민지의 자본축적이 오로지 일본인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 열매는 조선인과는 무관함을 웅변한다. 목포항에 산처럼 쌓였던 쌀과 솜은 남도 백성 수탈의 상징이었다. 그러한즉,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서 강조되고 있는 식민지근대론의 허구와 결과론적으로 맞아떨어지는 국내 일부의 탁상이론가들에게 목포항 방문을 강권하고 싶다. 목포항을 1시간만 걷는다면 근대적 개발이 오로지 민족차별 및 착취를 바탕으로 한 날조였음을 금세 느낄 수 있으리라.
  • “내수중심 경제회복 조짐 뚜렷 지표보다 체감경기 더 나을것”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0일 “경기회복 조짐이 분명하게 관찰되고 있으며, 특히 올해에는 내수중심으로 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4%대(경제성장률)라고 하더라도 체감경기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 부총리는 이날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민간경제연구협의회 오찬간담회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기회복이 실물경제에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최근 여러 지표들이 나오는데 정부는 한 두가지 지표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장기적인 거시경제 안정차원에서 확장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경기회복 조짐은 과거처럼 경기부양의 한 측면에서 나타나는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결과로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평가하고 “인플레이션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안정 속 성장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간담회에는 이윤호 LG경제연구원장,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장, 노성태 한국경제연구원장 등 15개 연구소 전·현직 연구원장이 참석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박동선 ‘이라크 게이트’ 파문

    ‘코리아 게이트’의 주역 박동선(70)씨가 사담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거액을 받고 로비스트 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 관리들을 상대로 이라크 지원 로비를 벌인 혐의로 미국 검찰의 수배를 받아 다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뉴욕 맨해튼 연방지검의 데이비드 켈리 검사는 14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 ‘석유·식량(Oil for Food)프로그램’을 둘러싼 비리 2건을 적발, 박씨 등 4명을 기소하거나 인도받기 위한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체포영장이 이미 발부됐다고 덧붙였다. ●美체포영장… 한남동 집서 잠적 석유·식량 프로그램은 지난 1990년 쿠웨이트 침공으로 경제제재를 받고 있던 이라크로 하여금 석유를 수출하게 허용하고 그 대금으로 식량과 의약품 등을 구입하도록 하자는 인도적인 취지로 시작됐다.96년부터 2003년까지 600억달러가 이라크에 지원된 것으로 파악됐다. 박씨는 후세인 정권으로부터 93년 200만달러를 받아 유엔 고위관리를 매수, 또다른 로비스트 ‘CW-1’과의 만남을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 검찰은 유엔 고위관리의 신원을 밝히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박씨와 각별한 사이며 함께 북한도 방문했던 모리스 스트롱 유엔 대북특사를 지목하는 듯한 보도를 내놓고 있다. 만약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스트롱 특사로 확인될 경우 유엔은 엄청난 역풍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검찰은 아난 총장의 아들 코조 아난이 프로그램 검수를 맡았던 스위스 업체 ‘코테크나’에서 거액의 보수를 챙긴 혐의를 조사하다 박씨의 연루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AFP는 보도했다. ●유엔·아난 총장 길들이기 지난 1970년대 박정희 독재정권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도록 미 의회에 로비를 벌인 코리아 게이트로 주목받았던 박씨는 78년 사면을 조건으로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32명의 전·현직 의원에게 85만달러를 선거자금으로 제공했다고 증언해 박 정권과 미국 사이를 결정적으로 벌어지게 만들었다. 당시 그는 워싱턴의 사교 모임인 ‘조지타운 클럽’을 만들어 이 곳에서 로비를 펼쳤다. 유죄가 확정될 경우 박씨는 최고 징역 5년형에 처해질 것으로 보이며 지난 연말 워싱턴에서 귀국해 한남동 자택에 머무르다 미 검찰의 추적 사실이 보도된 14일 이후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까지 자신을 런던에 본사를 둔 무역컨설팅업체 파킹턴사 회장으로 소개하고 시베리아 가스관, 파나마 운하 확장, 체르노빌 원전 보수사업 등에 관여하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언론은 미 검찰의 수사가 조지 부시 행정부와 최근 들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엔과 아난 총장을 길들이기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관련기관에 따르면 박씨는 지난 2일 입국한 뒤 9일 말레이시아로 출국했다. 그 뒤 14일 오전 귀국한 뒤 출국하지 않고 국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도시계획재정비안 마련…안성시 술렁인다

    도시계획재정비안 마련…안성시 술렁인다

    안성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안성시가 도시지역을 확대하고 지역 중심 생활권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도시계획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안성시 도시계획 재정비 추진안에 따르면 기존 도시계획구역보다 5배 이상 커진다. 당초 도시계획구역은 안성, 원곡, 양성, 죽산 4개 구역 27.8㎢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2011년을 목표로 한 도시지역이 155㎢로 확장됐다. ●도시지역·중심 생활권 대폭 확대 현재 안성 도심은 38번 국도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나마 도시 힘이 분산돼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지역 중심기능이 미약하다. 그러다 보니 서쪽은 평택 생활권에 끌려가고, 동부지역은 이천 장호원권에 의존하는 도시공간구조를 지녔다. 도심 세력이 집중되지 않고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안성 도심지역과 서남부는 성장관리권역으로, 죽산·일죽·삼죽면 일대는 자연보전권역으로 이원화돼 지역별 불균형을 초래하고 상호연계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안성 중심의 방사성 가로체계 때문에 도심 교통체증이 심하다. 개발이 국도 38호선을 축으로 집중됐고 그나마 체계적인 도시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난개발이 눈에 드러나고 있다. ●안성·죽산 양극 생활권으로 개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성생활권과 함께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죽산 생활권으로 나뉜다. 도시발전 기본 전략은 밖으로 빠져나가던 도시 확산축을 2개의 생활권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평택·아산지역 신산업지대 확산과 수도권 개발압력을 흡수해 도심세를 키우는 것이다. 안성생활권으로 불리는 중서부지역에는 대규모 공단 조성에 따른 유입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배후도시를 건설한다. 지속적인 도시 발달을 예상하고 공도택지지구를 개발 중이다. 작은 지방산업단지도 여기저기 들어섰다. 동부지역은 언뜻 보기에 시골처럼 보인다. 작은 공장과 농산물 유통단지, 기업들의 물류기지가 많이 들어섰다. 사통팔달의 육상교통여건을 지녔다. 안성처럼 십자형 고속도로망을 갖춘 곳도 드물다. 남북으로는 경부·중부고속도로가 안성을 지난다. 경부와 중부고속도로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다. 서울과 중부권을 잇는 허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서를 연결하는 광역도로는 아직 미미하다. 안성을 동서를 잇는 대표적인 도로는 38번 국도. 왕복 4차로이지만 물동량이 많아 하루종일 붐비는 도로다. ●평택~음성 고속도로 2009년말 완공 하지만 서해안 평택항과 내륙(음성)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도심을 통과하던 교통량이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평택에서 서안성IC까지는 개통됐다. 나머지 안성∼음성구간은 2009년 말 완공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서안성IC가 미양면 재건리에 들어서 23번 지방도로와 물리고 중부고속도로에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장차 충주까지 연결된다.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연결, 수도권의 교통량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물류비 절감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해 안성지역 땅값 상승률은 6.65%. 그러나 녹지·관리지역은 8% 안팎 올랐다. 택지지구 개발과 도시확산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많이 찾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부권은 공도지구 주변, 남안성IC 주변이 투자 유망지다. 기존 도심에서 벗어나 석정·아양·옥산동 일대로 도심이 뻗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행정·업무·상업시설을 중심의 새로운 도심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흠이라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거래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공도지구 주변·일죽면등 투자 유망 홍영환 원곡부동산 사장은 “공도택지지구 주변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면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승두리 일대 투자가 유망하다.”고 말했다. 이곳 전답은 평당 100만∼150만원을 호가한다. 장기적인 투자자라면 죽전생활권으로 불리는 동부권을 노리는 것이 좋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를 나와 일죽·죽산면 일대에 묻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빠져 외지인들도 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농촌마을 같지만 곳곳에서 개발붐이 불고 있다. 작은 규모의 공단, 농산물 유통단지 등이 여기저기에 건설되고 있다. 이 지역 중개업소들은 일죽면 일대에 땅을 사둔 기업들이 많다고 전한다. 도심지보다는 331,318번 지방도로 주변인 화봉리, 금산리 산업단지 인근을 권한다. 관리지역 도로에 가까운 땅은 평당 40만∼50만원을 부른다. 도로에서 들어간 땅도 30만∼40만원을 호가한다. 안성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광주 송정상수원 보호구역 해제될까

    ‘수년째 논란이 지속돼 온 광주시 광산구 서봉동 일대 ‘송정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여부에 또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광주시가 ‘장기민원’인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여부를 가리기 위한 용역을 발주키로 했기 때문이다. 10일 광산구에 따르면 황룡강 수계인 이곳 일대 상수원은 지난 1976년 보호구역(유역 면적 3㎢)으로 지정된 뒤 1996년까지 하루 2만t씩 수돗물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주암댐 계통 정수장 확장으로 취수가 중단됐다. 광산구는 ▲주변 어등산 및 선운지구 택지개발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곳에 대한 이중 규제 ▲장성댐 건설에 따른 유수량 감소로 더이상 상수원 기능을 할 수 없는 만큼 ‘보호구역’을 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산구는 특히 인근 어등산에 추진중인 ‘빛과 예술의 테마파크’ 개발 사업과 연계해 이곳 황룡강 일대에 주민 휴식 공간과 놀이시설 설치를 추진중이다. 광산구는 황룡강 물의 취수 중단 이후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를 광주시에 수차례 건의했다. 시는 이에 대해 “이곳은 장기간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주민의 재산권 행사문제 등 각종 민원이 제기되고 있지만 비상용으로 필요한 만큼 당장 해제를 추진하기는 어렵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최근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해제 검토’를 시사했다. 환경단체들은 향후 송정취수장이 폐쇄되고 상수원 보호구역까지 해제될 경우 난개발로 인한 황룡강 수질오염을 우려하고 있다. 광주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보호구역에서 해제될 경우 위락시설 등이 들어서면서 수질오염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편 광주시는 다음달 ‘상수도시설 기술 진단 및 재정비 용역’을 발주, 송정취수장 존치 및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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