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화학자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평가원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국민참여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수정안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 대림산업
    2026-03-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72
  • 160주년… 제대로 번역한 다윈 ‘종의 기원’

    160주년… 제대로 번역한 다윈 ‘종의 기원’

    찰스 다윈(1809~1882)이 1859년 낸 ‘종의 기원’ 초판 번역본이 출간됐다. 한국 진화생물학계 학자들과 함께 다윈 선집 ‘드디어 다윈’ 시리즈를 추진한 사이언스북스는 23일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진화학자가 제대로 번역한 ‘종의 기원’의 우리말 정본”이라고 소개했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낸 뒤 1872년까지 모두 6번에 걸쳐 개정했다. 국내엔 6판 번역본이 대다수다. 이번 번역본은 다윈 사상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원래 모습을 복원하고자 노력했다. 번역은 진화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종의 기원’은 당시 길게 쓰는 일을 미덕으로 여기던 시대 분위기 탓에 한 문장이 한 페이지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국내에 번역될 때도 이를 임의대로 처리하면서 제대로 된 초판 번역본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 책은 원문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정확하고 쉽게 파악하도록 했다. 예컨대 초판엔 ‘진화’(evolution)라는 단어가 없이 ‘변화를 동반한 계승’(descent with modification)을 사용했다. 다윈이 ‘진화’라는 단어를 ‘진보’가 아닌 ‘전개’로 읽히기를 원한 점을 따져, 번역본은 이를 ‘전개’라는 표현으로 바로잡았다. 또 ‘생존 경쟁’을 ‘생존 투쟁’으로 바꾸기도 했다. 이번 책은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등을 중심으로 2005년 만든 다윈 포럼에서 종의 기원 160주년을 맞아 기획했다. 출판사는 내년까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 ‘다윈의 사도들’ 등 시리즈 후속을 잇달아 출간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월드피플+] 美 미인대회서 수영복 대신 과학실험한 여성 ‘왕관’ 쓰다

    [월드피플+] 美 미인대회서 수영복 대신 과학실험한 여성 ‘왕관’ 쓰다

    수영복 무대 대신 과학 실험을 선보인 여성이 미인대회의 왕관을 거머쥐었다. CNN 등 미국 매체는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열린 ‘미스 버지니아 2019’ 선발대회에서 카밀 슈리어(24)가 특별한 무대로 주목을 받으며 왕좌에 올랐다고 전했다.버지니아 리치먼드 출신인 슈리어는 이날 과산화수소의 촉매 분해 능력을 입증하는 과학 실험을 선보였다. 춤과 노래 등 장기자랑 일색인 다른 참가자의 무대와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무대였다. 슈리어는 요오드화칼륨과 과산화수소의 반응으로 색색의 거품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시연하며 심사위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결국 버지니아 최고 미인에 등극했다.슈리어는 대회 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래나 춤 같은 전통적인 무대와 달리 과학실험은 위험 부담이 컸다. 그러나 나는 ‘미스 아메리카’의 고정관념을 깨고 경계를 허물고 싶었다. 틀에서 벗어난 무대로 나를 뽐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나는 미스 버지니아이면서 동시에 미스 생화학자, 미스 시스템생물학자, 미래의 미스 약학박사”라면서 “과학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생화학과 시스템생물학 학위를 취득한 그녀는 2만 2000달러의 장학금을 받고 커먼웰스 약학대학원에 진학해 공부 중이다. 슈리어는 또 “여성을 신체적 특징만으로 판단하는 시대는 지났다. 수영복을 벗어 던지고 여성의 커리어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미스 버지니아로 뽑힌 슈리어는 앞으로 버지니아주의 여러 단체와 학교를 방문해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예정이다. 오는 9월에는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 출전해 버지니아를 넘어서 미국 전체를 대표하는 미인 자리를 놓고 다른 참가자와 경쟁을 펼칠 예정이다. 사진=카밀 슈리어 인스타그램/미스 버지니아 2019 공식홈페이지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는 120억년 전 어떻게 ‘물’을 만들었을까?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는 120억년 전 어떻게 ‘물’을 만들었을까?

    삼라만상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물질 중에서 가장 경이로운 존재가 무형으로는 빛, 유형으로는 물이 아닌가 싶다. 지구 표면의 71%를 뒤덮고 있는 물은 수백만 종에 이르는 지구상의 생명들을 빚어냈고, 오늘날에도 뭇생명들은 물에 의지해 생을 영위해나가고 있다. 우리 몸 역시 70%가 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물을 마시지 않고는 단 며칠도 버틸 수 없다. 이처럼 물은 생명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물이 산소와 수소로 이루어진 화학물질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낸 사람은 200여 년 전 프랑스 화학자인 앙투안 라부아지에였다. 1783년 라부아지에가 이 같은 사실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크게 놀랐다. 왜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대로 물이 세상을 이루는 기본적인 물질인 원소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까마득한 선배격인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일원설(一元說)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보다 더욱 놀란 사람은 그 같은 사실을 알아낸 라부아지에 자신이었다. 수소는 불을 붙이면 폭발하는 기체이고, 산소 역시 불에 무섭게 타는 기체이다. 그러나 이 둘이 결합하면 불을 끄는 물이 된다는 사실을 최초로 알았을 때 라부아지에는 자연의 신비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물은 언제 어떻게 우주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아주 최근의 따끈한 발견에 의하면 물은 우주가 탄생한 지 10억 년 남짓 지났을 무렵인 120억 년 전부터 우주에 등장했다고 하며, 인류는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까지 했다는 보고가 나왔다.2011년 7월 초거대블랙홀 천체인 퀘이사 APM 08279+5255라는 활발한 은하 부근에서 천문학자들은 거대한 우주 저수지를 발견했다. 그곳 구름에는 지구 바닷물 양의 140조 배 이상의 물이 포함되어 있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무시한 수량이다. 그렇다면 물은 우주 초창기부터 아주 풍부하게 우주에 존재했다는 얘기가 된다. 이토록 많은 물은 어떤 경로로 만들어졌을까? 그 경로를 한번 따라가보도록 하자. ​ 빅뱅의 우주공간은 수소 구름의 바다였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출발한 직후, 태초의 우주공간은 수소와 헬륨으로 가득 채워졌다. 수소와 헬륨의 비율은 약 10대 1 정도였는데, 그 비율은 오늘날까지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130억 년 이상 별들이 수소를 태웠지만 우주 전체 규모로 봤을 때는 미미한 양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주의 물질 구성은 수소와 헬륨이 99%를 차지하며 다른 중원소들은 1% 미만이다. 어쨌든 수소와 헬륨 외의 90여 가지 원소들 중 원소번호 26번인 철 이하는 모두 핵융합하는 별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이후 우라늄까지의 중원소들은 모두 거대 항성이 종말을 맞는 방식인 초신성 폭발 때 만들어졌다. 폭발 때의 엄청난 온도와 압력으로 인해 핵자들이 원자핵 속을 파고들어 금이나 우라늄 등 중원소들을 벼려냈던 것이다. 이런 엄청난 고온이나 압력은 지구상에서는 도저히 재현해낼 수 없는 것으로, 옛날 연금술사들이 온갖 방법으로 금을 만들어내려던 것은 사실상 헛고생에 지나지 않은 셈이다. 그 연금술사 속에는 인류 최고의 과학천재 뉴턴도 끼어 있다. 초신성이 터질 때 별 속에서 만들어졌거나 또는 폭발시에 벼려졌던 모든 원소 가스와 별먼지가 우주공간으로 내뿜어진다. 이 별먼지가 바로 성운으로 다른 별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이른바 별의 윤회인 셈이다. 그러나 별을 만드는 데 사용되지 않은 원소들은 우주공간에 떠돌다가 다른 원소들을 만나 결합한다. 산소 원자 하나가 수소 원자 두 개를 붙잡으면 H2O, 바로 물분자가 되는 것이다. ​이들이 행성이나 소행성들이 만들어질 때 합류한다. 지금도 우주를 떠도는 수많은 소행성, 혜성들은 이 물분자가 만든 얼음덩어리로 되어 있다. 우주에서 물이 생성되는 과정을 축소하여 태양계 버전으로 살펴본다면, 내부 태양계가 물을 수용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위 그림에 나오는 설선 안에서 물 분자가 먼지 입자에 들러붙는 것이고(말풍선 그림), 다른 하나는 원시 목성의 중력 영향으로 탄소질 콘드라이트가 내부 태양계로 밀어넣어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요인에 의해 태양계가 형성된 지 1억 년 안에 물이 내부 태양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우주공간에서 만들어진 물은 태양과의 거리에 따라 다른 양태로 존재하게 되는데, 따뜻한 내부 태양계에서는 외부 태양계에 비해 얼음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데 반해, 푸른색의 외부 태양계는 얼음이 안정된 상태다. 그 경계선을 설선(雪線)이라 한다. 지구 바다는 소행성이 가져다준 것 그렇다면 물의 행성이라 불리는 우리 지구의 바다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지구의 바다가 원래 지구에 있던 물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지 않고 있으며, 태양계 내의 어디로부터 온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지구 바다의 기원은 종래 소행성과 혜성이 지목되었지만,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거의 소행성의 소행으로 굳어져가는 추세다. 지구 바다의 근원을 결정짓기 위해 과학자들은 수소와 그 동위원소인 중수소의 비율을 측정했다. 중수소란 수소 원자핵에 중성자 하나가 더 있는 수소를 말한다. 우주에 있는 모든 중수소와 수소는 138억 년 전 빅뱅 직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그 비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에 있는 이 두 원소의 비율은 그 물이 만들어진 때의 장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래서 외부 천체에서 발견된 물의 중수소 비율을 지구의 물과 비교해봄으로써 그 물이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인가, 곧 같은 족보를 가진 것인가를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중수소는 지구상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원소이다. 이 중수소의 비율을 측정해본 결과, 지구 바다의 물과 운석이나 혜성의 샘플이 공히 태양계가 형성되기 전에 물이 생겨났음을 보여주는 화학적 지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은 적어도 지구와 태양계 내 물의 일부는 태양보다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것임을 뜻한다. 유럽우주국(ESA)이 67P 혜성 탐사를 위해 띄운 로제타호가 이온 및 중성입자 분광분석기(Rosina)를 이용해 혜성의 대기 성분을 분석한 결과, 지구의 물과는 다른 중수소 비율을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중수소의 비율은 물의 화학적 족보에 해당하는 것으로, 지구상의 물은 거의 비슷한 중수소 비율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로제타의 분석은 혜성이 지구 바다의 근원이라는 가설을 관에 넣어 마지막 못질을 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또한 우리 행성에 생명을 자라게 한 장본인은 소행성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 분자들은 태양과 그 행성들을 만든 가스와 먼지 원반에 포함된 물질이었다. 그러나 38억 년 전의 원시 지구는 행성 형성 초기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바위들이 녹아버린 상태여서 물이 존재할 수가 없었다. 지구의 모든 수분은 증발하여 우주로 달아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후 원시 지구는 한때 가혹한 소행성 포격 시대를 겪었다. 이들 천체는 거의 얼음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어느 정도 식은 원시 지구에 대량 충돌해 바다를 만들었다고 과학자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그 배우 뜰 거야” 성공 점치고… 역사 예측하는 수학의 신비

    “그 배우 뜰 거야” 성공 점치고… 역사 예측하는 수학의 신비

    英·伊·오스트리아, 남녀 배우 250만명 경력 분석美·인도, 외교문서 골라내 미래 예측·대응 알고리즘 개발“그것은 사회적, 경제적 자극에 대한 인간 집단의 반응을 다루는 수학의 한 분야가 됐다. … 심리역사학은 통계학이기 때문에 한 개인의 미래를 정확히 예언할 수 없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미국의 생화학자이자 세계 SF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아이작 애시모브가 20대 초반에 시작해 1992년 72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썼던 ‘파운데이션’ 시리즈에는 해리 셀던이라는 천재 수학자가 만든 ‘심리역사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이 등장한다. 해리 셀던이 심리역사학으로 은하제국의 몰락을 예측하고 ‘파운데이션’이라는 집단을 만들어 파국적인 상황을 막고 미래를 대비하도록 한다는 것이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주요 줄거리다. ●“배우의 성공은 연기력보다 환경에 좌우” 애시모브의 심리역사학은 통계물리학을 보고 만들어진 것이다. 통계물리학은 입자가 매우 많거나 복잡한 시스템을 통계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다. 개별 분자 행동은 예측할 수 없지만 공기 전체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하려는 통계물리학처럼 심리역사학도 사람도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예측할 수 있다고 설정됐다. 그런데 실제로 최근 수학자들이 수학적 방법으로 역사를 예측하고 쇼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까지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SF 속 심리역사학이 현실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영국 런던 퀸메리대 수리과학부, 앨런튜링연구소, 이탈리아 카타니아대 물리천문학과, 국립핵물리연구소(INFN), 오스트리아 빈복잡계과학허브(CSHV) 공동연구팀은 배우의 경력을 정량화하고 성공과 경력의 지속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을 만들어 기초과학 및 공학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6월 5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인터넷영화데이터베이스(IMDb)를 이용해 1888년 최초로 만들어진 영화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개봉된 영화, TV드라마에 이름을 올린 남자배우 151만 2472명과 여배우 89만 6029명의 경력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약 70% 배우들의 전체 경력이 1년에 불과했고 주연급이든 조연급이든 일이 끊기지 않고 배우로서 10년 이상 생명력을 이어 가는 이들은 10% 미만으로 나타났다. 연예계에서 경력은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네트워크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유명세를 타는 배우들이 일자리를 더 얻기 쉽고 대부분의 일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공백기가 긴 배우들은 이전의 유명세와는 상관없이 복귀 후 인기를 회복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팀은 이번 예측식으로 일부 배우들의 활동 기간과 흥행 여부를 계산한 결과 비교적 정확하게 계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루카스 루카사 퀸메리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에서 흥미로운 것은 임의적인 무작위적 사건들이 증폭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난다는 점”이라면서 “배우들의 성공과 생명력은 연기력보다는 환경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뉴욕연구소와 MS 인도 방갈로르연구소,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공동연구팀은 국무부가 공개한 외교 문서와 당시 발생한 중요한 사건들을 연관 분석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을 암시하는 문서들을 골라내 미래를 예측해 대응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생물학 및 심리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행동’ 6월 4일자에 실렸다.●인공지능 문서보관자·미래학자 개발 가능성 연구팀은 미국 국무부가 각종 보고서를 전자문서 양식으로 저장하기 시작한 1973년 자료부터 지난해 기밀 해제된 1979년까지의 기록 195만 2029건을 분석했다. 연구팀은 우선 국무부가 중요하다고 평가해 놓은 보고서들이 이후 벌어진 실제 사건들을 얼마나 정확하게 설명하고 예측했는지를 역사학자들에게 수작업으로 평가하도록 한 다음 인공지능에 기계학습시켰다. 이렇게 학습된 인공지능으로 공문서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예측하도록 했다. 그 결과 예상 밖으로 출장 일정처럼 주목도가 떨어지는 일상적 보고서도 역사적 사건을 예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덩컨 와츠 MS뉴욕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발견,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 달 착륙, 베를린 장벽 붕괴 등 역사적인 사건들도 모두 사소한 사건에서 촉발됐다”며 “이번 연구는 수많은 문서 더미 속에서 역사적 문서를 식별해 낼 수 있는 인공지능 문서보관자나 인공지능 미래학자를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에펠탑을 사랑한 사람들 / 한건축 대표

    올해가 에펠탑이 세워진 지 130년이 되는 해로 가장 성대한 레이저쇼에 대한 뉴스가 각 매체를 장식했다.이처럼 큰 뉴스가 된 배경에는 몇 년 전 이탈리아의 몬자 브리안자 상공회의소가 에펠탑의 가치에 대해 조사 발표한 영향이 클듯하다. 유럽의 상징적 조형물과 건축에 대하여 인지도, 관광객, 상징성 등을 반영해 그 가치를 매겼는데 2위인 콜로세움 원형경기장과 약 다섯 배의 차이로 1위를 기록했다. 당시의 환율로 계산하면 한화로 약 616조원의 가치가 인정되었다. 7년전 기준 한해 에펠탑을 찾는 관광객이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었으며 최근 1000만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다고 한다. 2위인 콜로세움이 한화로 약 129조원이고 스페인의 파밀리아 성당이 약 127조원의 가치라고 하니 에펠탑이 가지는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콜로세움이나 파밀리아 성당의 입장에서 보면 그 차이를 인정하기 힘들겠지만,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결과라니 콜로세움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지금은 보물단지가 된 에펠탑이 처음부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1889년 프랑스혁명 백주년 기념으로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리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조형물이 공모되었을 때 토목기술자였던 구스타프 에펠은 320m(안테나포함)의 높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조물 자체의 하중만 견디면 되는 철탑을 계획하여 제출하였으며 공기나 공사비 등 이런저런 고려에 의해 선정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프랑스인들은 문화, 예술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였다. 품격있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 흉물스런 철탑이 웬 말이냐고 반대가 심했다. 특히 많은 예술가가 이 흉측한 철 구조물을 비난하였다. 대표적으로 모파상은 에펠탑의 완성 후 탑의 1층 식당에서 식사를 자주 했는데 그 이유가 ‘파리에서 에펠탑을 보지 않으며 밥을 먹을 곳이 거기밖에 없어서’라고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듯 애물단지였던 에펠탑이 보물단지가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딱딱하고 차가운 철로 만들어진 미려한 곡선은 건축 후에 많은 사람을 감탄시키기 충분했고 비난일색이던 예술가들을 칭찬으로 바뀌게 했다.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거나 에펠탑 광장에서 예술 활동을 하였다. 프랑스의 진보적인 색체는 다른 보수적인 곳에서는 다루지 못한 내용들을 실험적으로 선보이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싸이가 에펠탑 광장에서 공연을 하여 2만 여명이 군집하였다.작년에는 한국의 퍼포먼스작가 배 달래도 에펠탑 광장에서 ‘못다 핀 꽃 한 송이’ 라는 무거운 주제의 공연을 했었다.미술작품으로는 많은 화가가 에펠탑을 그렸지만, 샤갈의 에펠탑을 소재로 한 작품들 그중에서도 에펠탑의 신랑 신부는 유명한 작품이다.미술가, 행위예술가, 음악가, 영상예술가, 문학가에 이르기 까지 모든 장르의 문화 예술인들이 에펠탑을 소재로 하고 배경으로 작품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에펠탑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에펠탑 자체가 아름답다보니 그 예술성에 에펠탑을 좋아한다. 둘째는 프랑스라는 나라가 진보적이라 제약이 적어 어떤 예술적 표현도 수용하는 편이다. 예술에서는 어떤 집단의 눈치도 안보는 프랑스인들의 예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많은 예술가들을 파리로 부른다. 셋째는 에펠탑의 인지도나 상징성이 많은 예술가들에게 함께하고 싶도록 만든다. 이미 너무나도 유명해져서 그곳에서 뭔가를 도전하고 싶게 만든다. 넷째. 가장 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이고 다인종국가로 홍보효과가 크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예술가들이 파리를 사랑하고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사랑한다에펠탑은 예술가만 사랑한 게 아니다. 히틀러 역시 에펠탑을 너무 좋아해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를 좋아했다.엘리베이터가 작동하지 않던 탑의 약 1700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하여 폰 콜티즈 장군에게 에펠탑과 파리를 파괴할 것을 지시하였고 아홉 번이나 확인하였다. 네덜란드의 한 도시를 파괴한 히틀러다운 명령이었다. 다행이 폰 콜티즈 장군이 ‘나는 히틀러의 배신자가 될지언정 인류의 죄인이 될 수는 없다며 히틀러의 명령에 불복하여 지금 우리가 에펠탑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항명을 하면서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김영환 장군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에펠에 대해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많은 사람이 에펠을 건축가로만 알고 있으나 에펠은 화학을 전공한 토목술자로 유럽의 많은 철교를 설계하고 건설 하였다. 이중 가장 유명한 철교는 가리비 고가교로 대형 아치가 철교를 떠받치고 있다.마치 에펠탑의 하부를 보는 듯하다. 에펠은 에펠탑 이후에 건축가라는 이름을 달았다. 또 그는 에펠탑 이전에 프랑스가 미국에 기증한 자유의 여신상 철 구조물을 설계하였으니 프랑스와 미국의 상징물을 설계한 셈이다.에펠탑 건설시 프랑스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예상 공사비의 약 25% 정도였다. 에펠은 자신이 공사비를 대고 대신 향후 에펠탑이 유지될 20년간 관람비용 등을 자신의 회사에서 받는 것으로 계약을 하고 에펠탑을 지었으며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약 800일 만에 공사를 마쳤다. 물론 에펠탑은 만국 박람회 최고의 전시물이었으며 그 관람수입만으로 공사비를 다 충당할 수 있었다. 에펠탑은 원래 20년간 유지될 목적이었으나 통신이나 군사적 목적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철거를 면하였다. 에펠탑으로 성공한 에펠은 파마마 운하를 만들었으나 큰 손해를 입어 어려움을 겪었다. 에펠의 성공은 그의 정체성에 대한 후학들의 다툼을 유발했다. 화학자들은 에펠이 화학자라 했으며 토목가들은 에펠을 토목가라 하고 건축가들은 에펠은 건축가라 한다. 수학자들은 에펠탑의 곡선이 수학의 함수를 활용한 지수 그래프의 형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내 주변에서도 간혹 토목을 하는 사람들이 건축가들에게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토목가가 만들었다며 토목의 예술성을 어필 한다. 각 나라마다 지방마다 상징물로 자리매김 된 건축물이나 구조물이 있으며 그 홍보가치는 천문학적이다. 파리의 에펠탑과 개선문, 이탈리아의 콜로세움. 그리스의 파르테논, 스페인의 피밀리에 등. 미국의 러시모어 바위산의 대통령 조각상,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브라질의 리오데 자네이로의 예수상, 이집트의 피라미드, 칠레의 모아이석상, 중국의 만리장성과 천안문 등은 상징물인 동시에 어마어마한 관광자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은 무엇이 있을까?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은 분단국가의 이미지를 넘는 상징물이 없단다. 광화문 광장이 월드컵 응원과 촛불혁명으로 많이 보도되어 많이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위에 열거한 다른 나라의 상징물에 비하면 지명도는 미미하다. 일부 건설 분야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를 뛰어넘는 국가적 기념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억지로 상징물을 목적으로 만들 필요야 없겠지만 국가적 전환점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고려해볼만 하다. 꼭 대형 구조물이 아니어도 된다. 파리의 에펠탑을 비롯한 상징물들은 모두가 스토리가 있다. 어떤 것은 예술성에서 어떤 것은 규모에서 어떤 것은 상징성에서 유명해졌지만, 공통점은 스토리가 입혀진 홍보가 이런 가치를 만들어냈다. 특히 에펠탑은 에펠탑 광장을 각종 문화행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에펠탑의 사진이 계속 생산되고 홍보된다. 한국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많은 유적이 있다. 건축물로서 파르테논과 비교되는 종묘, 조각물로서 세계 어느 것에도 손색없는 석굴암, 소실되고 없지만, 황룡사 대탑 같은 조형물들은 충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알릴만 하다.몇 달 전 BTS의 한 멤버가 불국사 등 우리 문화유적을 방문 사진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며 나라에서 할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체계적인 연구와 홍보를 위해 정부의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에펠탑의 13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의 위상에 걸맞는 상징물이 아직 없음을 아쉬워하며 돌아보게 된다.
  • [책꽂이]

    [책꽂이]

    전쟁과 평화(아자 가트 지음, 이재만 옮김, 교유서가 펴냄) 인간은 왜 전쟁을 하는가.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석좌교수인 저자는 사람들이 협력, 평화적 경쟁, 폭력적 분쟁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를 번갈아 사용해 오던 중 산업시대 이후 이들 사이의 균형이 뚜렷하게 변했다고 말한다. 전쟁에 들이는 비용보다 평화가 가져오는 보상이 현격히 증가한 탓이다. 424쪽. 2만 2000원.프리모 레비의 말(프리모 레비·조반니 테시오 지음, 이현경 옮김, 마음산책 펴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의 인종법에 저항하다 체포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던 화학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 그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인 1987년 1~2월에 가진 마지막 인터뷰를 담았다. 이탈리아의 문학 교수이자 평론가인 조반니 테시오가 인터뷰어로 나섰다. 232쪽. 1만 6000원.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시오미 나오키 지음, 노경아 옮김, 더숲 펴냄) 농업으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는 동시에 저술·예술·지역활동 등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는 ‘반농반X’. 일본의 생태운동가인 저자가 어떻게 ‘반농’ 능력을 기르고, ‘반X’를 발견하고 실천해야 하는지 13명의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준다. 184쪽. 1만 4000원.국토안보부가 내 연설문을 삼켰습니다(아리엘 도르프만 지음, 천지현 옮김, 창비 펴냄) 라틴아메리카가 낳은 위대한 작가이자 압제에 저항해 온 인권운동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의 정치에세이 모음집. 칠레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이래 오랜 망명생활을 견디며 압제에 저항해온 그는 트럼프 정권의 야만적 행태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를 이겨낼 성숙한 시민의식을 주문한다. 308쪽. 1만 8000원.명나라 장수 이신방전(고형권 지음, 구름바다 펴냄) 역사소설 ‘남원성’의 작가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 참전한 3000명 명나라 군사들을 대변하던 장수 이신방의 일대기를 담았다. 조선을 지키기 위하여 머나먼 타국에서 남원성까지 온 병사들, 5만 6000여명 왜군에 맞서 항거하다 순절한 사람들을 추적했다. 168쪽. 1만 2000원.엄청나게 시끄럽고 지독하게 위태로운 나의 자궁(애비 노먼 지음, 이은경 옮김, 메멘토 펴냄) 수년간 이어진 만성통증의 진실을 찾아 나선 한 여성의 투병기. 20대 여성인 저자는 극심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수술로 자궁내막증을 발견하지만 이후에도 통증이 수그러들지 않는다. 의사들은 그를 건강염려증 환자로 몰아가고, 이러한 의학의 오랜 편견과 무능에 맞서 노먼은 온라인 커뮤니티 ‘내 자궁에 대해 물어보세요’를 개설한다. 352쪽. 1만 7000원.
  • 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인식·지각 등 고차원적 기능은 못 살려 ‘몸과 분리된 뇌’ 등 윤리적인 논란도“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200여년 전인 1818년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가 쓴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서문에 실린 ‘실낙원’의 한 구절이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스위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이용해 8피트(약 244㎝)의 인조인간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은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자신과 똑같은 형태의 신부까지 요구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종이 나와 인간을 멸망시킬까 두려웠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살해당한다. 셸리는 소설을 쓰면서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전기분해 기술,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수행한 자연발생 실험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활용했지만 사람과 똑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춘 인조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과 생체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프랑켄슈타인’ 몬스터 기술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예일대 의대, 코네티컷 재향군인의료시스템 재활연구센터, 보스턴대 의대, 피츠버그대 신경학과, 이탈리아 파비아대 생물학·생명공학과 공동연구팀은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돼지의 뇌를 다시 살려내는 실험 일부를 성공하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8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죽은 생명체의 뇌 기능 일부를 다시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 과학계와 윤리학계에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연구팀은 보통 동물실험을 할 때 사용하는 실험용 무균돼지가 아닌 식재료 가공시설에서 얻은 생후 6~8개월 된 집돼지의 뇌 32개를 가지고 실험했다. 실험에 사용된 돼지의 뇌는 죽은 뒤 4시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보통 포유류의 뇌는 산소 공급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만 혈류가 중단되더라도 산소와 에너지 공급이 끊겨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분리된 돼지의 뇌를 자체 개발한 ‘브레인 엑스’라는 장치에 넣은 다음 보호제와 안정제 등을 섞은 특수 용액을 혈액 대신 뇌 혈관에 주입해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며 뇌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뇌세포 구조, 뇌혈관 구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신경과 세포를 파괴하는 염증 반응이 줄어드는 한편 시냅스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관찰됐다. 그렇지만 인식과 지각 같은 고차원적 뇌 기능을 위해 필요한 전기적 활동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3조 5000억원을 투자해 진행 중인 뇌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를 주도한 네나드 세스탄 예일대 의대(신경과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혈관의 촘촘한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뇌에 보호제를 공급하면 심각한 외상후 생존율을 높이고 신경학적 결손을 줄여 뇌사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생명윤리학자인 현인수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의대 교수는 “죽은 돼지의 뇌를 사실상 살려낸 이번 연구는 포유류의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몇 분 안에 사망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라며 “몸과 분리됐지만 살아 있는 뇌를 인격체로 보아야 하는지, 이런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 논란거리들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겸손하고 완벽한 무기, 그가 사랑한 연필 이야기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겸손하고 완벽한 무기, 그가 사랑한 연필 이야기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에 가면 독특한 기념품을 만날 수 있다. 용도 폐기해야 하는 지폐를 갈아 만든 ‘지폐 연필’이 바로 그것. 1000원, 5000원, 1만원, 5만원권으로 각각 만든 4자루 한 세트가 5000원이다. 액면가 6만 6000원을 단돈 5000원에 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연필을 깎아주고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유명한 연필깎이 전문가 데이비드 리스가 깎아주는 연필 가격은 무려 120달러. 그런데도 날개 돋친 듯 팔린다. 평까지 좋아, 영화감독 스파이크 존스는 “이렇게 요염하고 도도한 연필을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다. 그가 연필을 깎는 마음과 기술은 ‘연필 깎기의 정석’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책은 ‘연필 깎기의 정석’이 아니라 ‘펜슬 퍼펙트’이다. 저자 캐롤라인 위버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필을 수집하고, 그것을 전시·판매하는 연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만큼 연필 사랑이 남다른데, 책 제목에서부터 그런 뉘앙스가 물씬 풍긴다. 그가 보기에 연필만큼 완벽한 필기도구가 없다. 연필은 시작부터 완벽했다. 18세기 중반까지 가공하지 않은 흑연을 간단한 필기구로 사용했는데, 프랑스 화가이자 화학자인 니콜라스 자크 콩테가 흑연을 분쇄해서 분말 점토와 물을 섞어 반죽을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틀에 반죽을 부어 가마에서 굽자 아주 단단한 흑연심이 탄생했다. 18세기 후반 완성된 제조법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된다. 연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벽한’ 필기구였던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연필은 강력한 도구이기도 했다. 역사의 현장에서 묵묵히 기록의 도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연필은 수많은 혁명의 충실한 관찰자였고, 그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의 한 자락을 이루었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럼에도 연필은 ‘겸손한’ 필기구였다. 그 옛날의 명가수 전영록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 가사 중에 ‘사랑을 쓰다가 쓰다가 틀리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하니까’라는 대목이 있다. 연필은 다른 필기구들과 달리 지우개라는 간단한 도구로 깔끔하게 지워지기까지 한다.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역사를 기록했던 연필은 자신의 용도가 다하면, 혹은 잘못 쓰여졌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자신을 지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보다 더 겸손한 태도가 세상 또 있을까.소소한 변천의 역사도 저자는 충실하게 설명한다. 애초 연필은 일일이 손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대개는 둥근 모양이었다. 이 공정이 개선된 것은 19세기 중반이었다. 미국 사람 조셉 딕슨은 연필 만드는 기계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 중 하나로 알려졌는데, 기계로 나무판자를 자르고 홈을 파서 접착제를 발랐다. 이 공정에서 육각형 연필이 더 만들기 쉽고 낭비도 적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연필을 사랑한 사람들 이야기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연필공장을 운영한 아버지 덕에 연필에 관심이 많았는데, 연필의 경도에 따라 등급을 매길 정도였다. 보통 1에서 4까지 등급이 있었는데, 소로는 2등급이 보통의 사용자들에게 적합하다고 말했다. 존 스타인벡과 블라디미르 나바코프도 연필을 사랑한 작가들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세계문학은 연필에서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배울 수 있다면 그게 연필인들 어떠랴. 연필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완벽할 수 없지만 연필이 감당했던 충실한 관찰자의 역할을 우리 모두가 겸손하게 해낼 수는 있지 않을까.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100만명의 사람들, 神을 부르다

    100만명의 사람들, 神을 부르다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종교의 탄생은 인류가 사후 세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발달한 지금 많은 연구자들, 특히 ‘이기적 유전자’ 저자로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끊임 없는 전쟁과 가난, 아동학대와 차별 등은 신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져 발생했다’고 말하며 종교의 허구를 주장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신 없이도 충분히 도덕적이고 열정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이라는 존재를 뛰어넘기 위해 과학자들은 현대인이 믿는 ‘도덕신’의 기원에 대해 추적해 왔다.영국 옥스퍼드대 사회결속연구센터를 비롯해 일본, 아일랜드, 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6개국 14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국제공동연구진은 초자연적 존재나 만물신 개념의 샤머니즘, 토테미즘, 애니미즘을 넘어 현대 종교에 등장하는 ‘도덕신’은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인간 사회의 확장과 복잡성 때문에 생겼다는 분석 결과를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21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는 인류학자, 고고학자는 물론 사회학자, 컴퓨터과학자, 언어학자, 비교문화학자, 진화생물학자, 심리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여해 신뢰도를 높였다.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 도덕적 규범을 강요하는 ‘도덕신’이나 불교의 업보, 기독교나 이슬람 등에서 볼 수 있는 천국과 지옥처럼 잘못된 행동에 대한 초자연적 처벌이 가해지는 사회친화적 종교가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많은 종교학자들은 도덕신 존재와 사회 발전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세계 역사를 시간에 따라 분석하는 종단연구의 분량이 방대해 둘 사이의 관계를 정확하게 분석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이에 연구팀은 구석기 시대부터 산업혁명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세샤트’(Seshat)라는 세계사 정보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해 종교와 사회 복잡성 간 선후 관계 분석을 시도했다. 연구팀은 지난 1만년 동안의 인류 역사에서 전 세계를 30개 지역 414개 사회로 분류한 뒤 사회의 복잡성과 관련한 51개 척도, 도덕과 윤리, 종교에 관한 4개 척도를 근거로 데이터를 코딩해 분석했다.그 결과 도덕화된 신은 사회의 복잡성과 확장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보다는 사회가 일정 규모를 넘어서는 순간 협력이라는 것이 필요해지면서 비로소 나타났고 인정받게 됐다는 것이 밝혀졌다. 즉 종교가 사회의 복잡성과 규모를 키운 것이 아니라 인류 사회가 커지면서 사회 통합 차원에서 도덕신이 필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협력과 통합의 필요성 때문에 도덕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된 것이고 이를 통해 문화와 사회 진화를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도덕적 규범을 강조한 신이 등장하고 종교의 사회 통합 기능이 강조되는 것은 인구 100만명 규모의 ‘메가사회’(Megasociety)가 등장하면서라고 연구팀은 분석했다. 또 도덕신을 도입한 국가나 사회가 여러 민족을 아우를 수 있는 제국을 손쉽게 형성하고 지속시킬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패트릭 새비지 일본 게이오대 환경정보학부 교수는 “이번 연구에 따르면 종교라는 것은 여러 민족들로 구성된 제국에서 다양한 구성의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필요한 권력 관계 때문에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라며 “이 때문에 대제국들에서는 종교적 의식이나 관행 등이 더 중요하게 다뤄져 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 <상>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역사기행] 나폴레옹과 이집트학 <상>

    1798년 5월 19일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프랑스 남동부의 툴롱항에서 출항한다. 병사가 약 4만명, 선원이 약 1만명, 도합 5만명 가까이 되는 대부대였다. 원정대에는 167명의 민간인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원정지에서 학술조사를 수행하게 될 공학자, 천문학자, 건축가, 화학자, 박물학자, 지리학자, 동양학자 같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었다. 총인원이 5만명이나 되는 대규모 원정대였지만,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원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다. 이 원정이 극비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원정대에 합류한 민간인 전문가들도 대부분 목적지를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그저 어딘가에서 학술조사를 할 수 있다는 학문적 열정과 국가에 봉사하는 것인 만큼 원정이 끝난 이후에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원정대에 합류했던 것이다. 원정대가 향하고 있는 곳은 이집트였다. 유럽 전체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는 인도로 가는 길목인 이집트를 장악해 영국에 타격을 줄 생각이었다. 또한 혁명 이후 프랑스를 장악한 총재 정부의 입장에서는 점차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만 가는 나폴레옹을 프랑스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보내 계속해 군사활동에 전념하게끔 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원정대는 툴롱을 떠난 지 22일 만에 몰타에 도착했다. 시간이 꽤 걸렸던 것은 영국 함대의 포위망을 피해 항해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영국 함대의 사령관이 넬슨 제독으로 널리 알려진 호레이쇼 넬슨이었다. 프랑스군은 간단하게 몰타를 점령한 뒤 다시 항해를 시작했다. 원정대 대부분은 여전히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6월 28일 드디어 나폴레옹의 이름으로 포고문이 발표된다. “제군들, 우리는 이집트로 향하고 있다. 그대들은 우리 문명과 세계 무역에 미치는 효과가 산술적으로는 계산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탐험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만나게 될 사람들은 이슬람교도들이다. 코란이 규정한 의식이나 모스크에 대해, 그대들이 수도원과 시너고그, 그리고 모세와 예수 그리스도의 종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관용을 가져라. 로마 군단은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보호했었다.” 천 년도 더 전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로마 군단을 언급하면서 자신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적, 종교적 관습을 갖고 있는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나폴레옹은 좀 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문학적 감각’이 충만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나폴레옹의 뛰어난 ‘인문학적 감각’은 이집트 도착 후 맘루크 군과의 전투에 앞서 그가 병사들에게 했던 연설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혹자들은 전투가 벌어진 엠바베평원이 기자 피라미드와 10킬로미터 이상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피라미드를 볼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의 이 말은 훗날 만들어진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18세기보다 기상 여건이 훨씬 더 열악해진 현재에도 기자와 15킬로미터가량 떨어진 카이로 시내의 시타델에서 기자의 피라미드 3기를 분명하게 볼 수 있다. 높이가 각각 138, 136, 65미터에 이르는 기자 피라미드들의 규모도 규모거니와 파리미드들이 세워진 곳은 주변보다 높은 고원지대다. 기자고원과 엠바베평원 사이에 특별한 지형지물이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프랑스 군이 맘루쿠 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혹은 전투 중에 피라미드를 보지 못했을 까닭이 없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가 피라미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은 현장 경험이 결여된 주장일 가능성도 있다.
  • ‘수헬리베붕탄…’ 주기율표, 연금술을 과학으로 만들다

    ‘수헬리베붕탄…’ 주기율표, 연금술을 과학으로 만들다

    30여개 원소 성질 따라 배치한 주기율표 화학을 예측 가능한 학문으로 만들어줘 최소 160번까지 원소 발견 계속될 듯 새 원소 이름은 발견자나 국가 이름 붙여“수(소), 헬(륨), 리(튬), 베(릴륨), 붕(소), 탄(소), 질(소), 산(소), 플(루오르), 네(온), 나(트륨)….” ●현재까지 알려진 원소는 118종 중·고등학교에서 화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거쳐가야 할 관문이 있다. 바로 학생들에게 화학은 암기 과목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갖게 만든 ‘원소 주기율표’다. 주기율표는 원소들을 원자번호 순서대로 배치하되 반복되는 화학적 성질에 따라 배열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원소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98종과 인공적으로 합성된 20종을 합쳐 118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율표는 러시아 화학자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가 1869년 당시 알려진 30여개의 원소들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그 이전에도 원소들을 성질에 따라 배열한 ‘원시 주기율표’가 있었지만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는 원소들의 알려진 원자량을 원소 성질에 따라 배치해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멘델레예프 주기율표를 보면 미발견 원소들의 원자량과 성질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장점이 원시 주기율표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화학은 수학, 물리학, 생물학 같은 다른 자연과학보다 과학적 체계를 갖춘 것은 늦었지만 20세기 들어 현대 물리학의 양자론과 결합돼 양자화학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합성법들이 개발되면서 눈에 띄게 발전했다. 이런저런 물질들을 혼합해 만드는 연금술 수준에서 화학을 예측 가능한 학문으로 만들어 주고 20세기를 ‘화학의 세기’가 될 수 있도록 한 것도 주기율표의 공이다. 이 때문에 유엔은 멘델레예프가 주기율표를 발표한 지 15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올해를 ‘국제 주기율표의 해’로 지정했다. 올해는 새로운 원소 발견을 검증하고 이름을 짓는 권한을 갖는 국제순수응용화학연합(IUPAC) 창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주 과학저널의 양대 산맥인 ‘네이처’와 ‘사이언스’는 주기율표와 화학의 발전을 나란히 커버 스토리로 다뤘다.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가 등장한 초창기에는 화학자들이 새로운 원소 발견을 주도했지만 자연계에 존재하는 원소들이 사실상 모두 발견된 이후 최근에는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 원리와 힘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물리학자들이 인공원소 발견을 이끌고 있다. 원자번호 100번대가 넘어가는 인공원소들은 자연상에 존재하는 시간이 매우 짧아 활용 가치가 낮기 때문에 화학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에 따르면 최소 원자번호 160번 원소까지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새로운 원소들은 앞으로도 계속 발견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새로운 원소의 이름은 발견자나 발견한 국가가 붙이도록 돼 있다. 현재 주기율표 118개의 원소 중 나라 이름이 붙은 것은 31번 갈륨(Ga·프랑스의 옛 라틴어 이름인 갈리아), 32번 저마늄(Ge·독일), 44번 루테늄(Ru·러시아), 84번 폴로늄(Po·폴란드), 87번 프랑슘(Fr·프랑스), 95번 아메리슘(Am·미국), 113번 니호늄(Nh·일본)이다. 이처럼 주기율표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노벨과학상 수상에 버금가는 영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기율표, 물질의 성질 알려주는 보물지도”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화학은 물질의 성질을 알려주는 ‘보물지도’인 주기율표를 바탕으로 물질의 변환, 분석, 합성을 다루는 학문”이라며 “주기율표를 통해 자연의 오묘한 규칙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원소 이름이나 외우는 암기 과목으로 취급받는 것은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평화헌법 개정 반대’ 日석학 우메하라 다케시 별세

    ‘평화헌법 개정 반대’ 日석학 우메하라 다케시 별세

    일본의 문화학자이자 철학자로 반전·평화운동에 헌신해 온 우메하라 다케시 전 교토시립예술대 교수가 지난 12일 별세했다. 93세. 14일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고인은 새로운 가설을 통해 일본 고대사의 새 지평을 열었으며 일본문화와 현대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관련해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남겼다. 센다이 출신으로 교토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소장과 리쓰메이칸대 교수, 교토시립예술대 학장 등을 지냈다. 젊은 시절 징병돼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자위대의 해외 파병과 ‘평화헌법’ 조항인 헌법 9조 개정에 반대해 왔다.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오에 겐자부로 등 다른 석학 8명과 함께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모임 ‘9조의 회’를 만들기도 했다. 숲의 소중함을 호소하며 현대문명의 환경파괴에 대해서도 경고해 왔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를 ‘문명의 재난’이라고 비판하는 한편 자연과 과학이 공존하는 새로운 ‘인류철학’의 탐구를 주창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만화로 보는 원자 규명의 역사

    [김초엽 작가의 과학을 펼치다] 만화로 보는 원자 규명의 역사

    처음으로 주기율표를 배우던 날을 떠올려 보자. 중학교 교실, 화학 교과서 표지 안쪽에만 붙어 있던 주기율표가 수업에 등장하는 순간 한숨이 쏟아진다. “주기율표만 외우면 화학은 다 해결된다.” 거듭 강조하시던 선생님과, “수헬리베붕탄질산…” 하며 따라 외우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놀랍고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이 암기해야 할 장엄한 표로 다가왔을 때의 당혹감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화학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주기율표가 보여 주는 질서정연한 세계와 우주를 구성하는 간명한 법칙은 분명히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리라.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그 원자들의 속성은 일관된 규칙에 따라 배열된다는 원리 말이다. ‘아톰 익스프레스’는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너무나 익숙한 이 명제로부터 출발한다. 정확히는 명제가 아닌 질문이다. 정말로 원자가 실재할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말이 한때는 진실로 여겨지지 않던 때가 있었다. 저자는 원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과학자들의 오랜 분투를 한 편의 만화로 그려냈다. 자연의 근본물질을 고민했던 최초의 자연철학자들로부터 물질을 바꾸어 금을 만들고자 한 연금술사들, 근대 화학자들과 물리학자들에 이르기까지. 화학과 물리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그 길에서 만나는 강렬한 발견의 순간들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때로 여행자들은 관광지가 아닌 길 위에서도 의미를 찾는다. 원자의 존재를 발견해 나가는 여정 역시 그렇다. ‘아톰 익스프레스’의 조명은 놀라운 방정식이 정립되는 순간만을 비추지 않는다. 과학자들은 고민하고 의심한다. 원자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과학자들은 결코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일까? 감각된 사실을 어떻게 진실로 믿을 수 있을까? 원자의 존재에 관한 추적은 결국 과학철학의 질문들로 이어진다. 현상을 탐구하는 과학이 과연 궁극의 실재를 증명할 수 있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 질문들을 거쳐 이 긴 여정의 끝에 무사히 도달한다면, 그때는 뺨을 스치는 겨울 공기와 입안에 남은 커피의 끝맛을 다시금 음미해 보자. 우리가 언제나 감각해 왔지만 그 실재를 생각하지는 못했던,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들의 잔여감이다. 만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귤과 오렌지 그리고 레몬의 색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귤과 오렌지 그리고 레몬의 색

    지금까지 내가 그려왔던 식물 그림 중에는 펜에 잉크를 찍어 그린 흑백 그림이 많다. 식물세밀화란 당연히 채색 그림이겠거니 상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은 흑백 그림으로 주로 발전해왔고, 현재 이토록 과학기술이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신종이나 미기록종을 발표할 때 학자들은 여전히 채색이 아닌 흑백의 선 그림으로 식물의 형태를 기록하고 이야기한다. 물론 대중에게 식물을 알리기 위한 교육과 전시 목적에서의 식물 그림은 대중이 식물을 이해하기 쉽고 주목하기 좋은 채색 그림으로 그려지는 일이 많다.역사적으로 식물세밀화가 흑백 그림으로 발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식물의 색은 기후나 토양 조건 등 환경, 시기에 따라 미세하게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색상환을 다 기록하지 못하고 특정 색을 선택해 칠한다면 그 색만이 정답이라 여겨질 수 있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도감의 삽화로 주로 발전해 인쇄술에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옛날엔 여러 색을 인쇄할 수 없거나 인쇄 과정에서 다른 색으로 바뀌는 일도 있어서 그 과정에서 생긴 오류로 틀린 정보를 제공할 바에 아예 색을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물 그림 기록물의 대부분이 흑백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색을 넣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 경우도 있다. 독일의 의사이자 화학자였던 쾰러는 1887년 두 권으로 된 약초 도감을 출간했고, 책의 모든 식물 삽화는 풀 컬러로 제작되었다. 몇 년 전 독일 베를린에서 이 도감의 초판본을 보았고, 내게 도감을 보여준 식물학자는 이 책이 다색 석판의 방법으로 인쇄되었다고 말했다. 다색 석판이란 이름 그대로 색을 다양하게 넣을 수 있어 기존 판화보다 대량 인쇄가 수월한 방법이다. 이 인쇄술은 이 책이 처음 출간된 19세기 말 당시 유럽 출판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나에게는 꽤 낯선 19세기 독일의 약용식물을 한 장 한 장 넘겨 보다 레몬 그림 앞에서 나는 다색 석판의 능력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해온 가장 이상적인 레몬 고유의 색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종이가 오래돼 색이 바랬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속 식물은 특유의 연둣빛이 살짝 섞인 연노란색 껍질 색으로서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식물이 가진 고유의 색을 잘 표현해낼 수만 있다면 아예 색을 배제하는 것보다 훨씬 좋은 기록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귤과 오렌지, 레몬, 자몽, 라임, 유자처럼 두꺼운 껍질에 신맛의 과육을 가진 운향과 귤속 식물들은 이들 고유의 색이 오렌지색, 귤색, 레몬색 등 식물 이름 그 자체로 불릴 정도로 색에 민감하게 발전해왔다. 이들은 성숙기가 필요한 과일이고, 성숙도에 따라 색과 맛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재도 연구자들은 귤속 과실의 성숙과 착색, 맛의 관계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노란색을 띠는 건 껍질에 함유된 바이오플라보노이드에 의한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각각 뚜렷한 색 차이를 가진다. 라임은 초록에 가까운 연두색, 레몬은 연둣빛을 띠는 옅은 노란색, 귤은 그보다 짙은 노란색, 오렌지는 주황색, 그리고 자몽은 붉은빛이 도는 주황색. 이런 차이는 주로 붉은색에 관여하는 안토시아닌과 카로티노이드 함량에 의해 결정된다. 이 함량은 성숙기 온도와 빛에 영향을 받아 늘 높은 기후대에서 자라는 자몽과 오렌지는 더 붉은빛을 띠게 된다. 레몬의 경우 안토시아닌이 꽃과 꽃눈에 색소 침착을 자극하지만 과실에는 작용하지 않아 과실이 더 붉은색으로 변하지 않고 옅은 노란색으로 유지된다.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는 다양한 귤속 식물들이 재배된다. 온주밀감부터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 그리고 하귤까지. 작년 나는 우리나라에서 육성한 품종들을 그렸고, 품종에 따라 껍질의 색과 질감이 뚜렷이 차이가 나는 점이 흥미로웠다.현재 이들 주 재배지는 제주도지만 앞으로 기후변화가 지속된다면 우리나라 중남부, 더 나아가서는 전국에서 재배가 가능하게 될 것이고, 그만큼 우리는 더 다양한 색과 형태의 감귤류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즈음이면 그림 기록 기술도 발전해 펜, 물감이 아닌 컴퓨터와 마우스만으로 이들을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식물이 가진 자연스러운 선을 컴퓨터가 재현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분명한 건 귤속 식물을 기록할 때만큼은 나는 선화가 아닌 각각의 다채로운 색을 살린 채색 그림으로 기록할 것이란 거다.
  • 한국 전통과학, 왜 변방에 머물렀나

    한국 전통과학, 왜 변방에 머물렀나

    첨성대·측우기·사상의학 등 독창성 보여 수준 낮지 않았지만 세계적 기여는 작아 옛 천문 기록, 태양계·은하 분석에 도움 한의학·신기술 합치면 예방의학 등 발전“중국의 전통과학은 왜 발전하지 못했는가?” 영국의 생화학자 조지프 니덤(1900~1995)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이라는 책을 써 과학사학자로 더 유명하다. 니덤은 13세기까지 서양이 넘볼 수 없을 정도의 과학기술을 가졌던 중국이 근대과학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이유를 찾아 나섰다. 중국 전통과학의 역사를 실증적으로 밝혀냄으로써 중국 과학이 세계 과학사에 있어서 중요한 한 줄기로 자리잡게 됐다. 과학사학자들은 한국의 전통과학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짐으로써 국수주의적 관점이나 무조건적인 배척이라는 양극단을 벗어나 한국의 전통과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충고하고 있다. 14일 오후 국립과천과학관에서는 이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전통과학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은 과천과학관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기존 전통과학관을 한국과학문명관으로 새롭게 단장하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한국 전통과학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 세계 최초 우량계인 측우기, 표음문자 한글, 중의학과는 다른 철학을 보여주는 한의학인 사상의학이다. 임진왜란 때 사용된 일종의 행글라이더인 비거(飛車)나 포탄인 비격진천뢰도 한국 과학의 독창성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된다.이런 뛰어난 과학기술 유산을 갖고 있음에도 한국 전통과학이 세계 과학사의 변방에 머물러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세계 과학 발전에 기여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측우기로 비의 양을 정확히 계측하기는 했지만 세계 다른 지역의 측정 과학 발전에 기여하지 못했고 첨성대나 한글, 사상의학에서 독창성과 우수성은 높지만 세계적 파급력이 미미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조발제를 맡은 신동원 전북대 과학학과(과학사) 교수는 “니덤은 세계 각국의 과학을 바다로 향하는 강의 여러 지류로 표현했는데 한국 전통과학의 현재는 이 같은 차원에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며 “더군다나 우리나라 과학유물이나 전통과학기술에 대해서는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들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들은 한국 과학문명을 정확히 읽는 것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최초, 최고라는 수식어에 집중하는 이유는 한국 과학문명의 수준을 외국인들에게 쉽게 알리고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개화기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신 교수는 해석했다. 한국 전통과학문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역사적 사실과 맥락, 더 나아가 과학기술 전반의 구조와 변천과정을 바탕으로 한 문명론적 시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과학발전에 기여도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전통 과학기술은 해당 시대의 정치, 군사, 경제, 복지, 문화부문을 뒷받침해 왔고 동시대 동아시아 주변국들과의 수준과 비교했을 때도 뒤처지지 않았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한국 과학문명 수준을 무시하거나 ‘한국에는 과학문명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다.특히 현대 과학적 관점에서 주목받는 분야는 천문학이다. 실제 청동기 시대 천문유적을 비롯해 기원전 1세기 삼국시대 초기부터 천문현상이 기록돼 왔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이르러 수많은 분량의 천문기록이 실록이나 관청의 일기로 남아 있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최근 고천문연구를 통해 역사문헌 속 천문 현상들이 실제로는 헬리혜성이나 케플러초신성, 태양 흑점과 오로라 활동을 관측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과거의 천문기록은 천체현상의 통계적 분석은 물론 태양계나 우리 은하 특성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동의보감과 사상의학으로 대표되는 한의학 역시 현대의학 기술과 빅데이터, 인공지능과 통합함으로써 예방의학이나 환자 맞춤형 의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여지도 크다.이처럼 잘 보존된 과학문화는 단순히 문화유산으로 가치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의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신 교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외부 세계의 자극에 대해 어떻게 역동적으로 대응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문명의 패턴”이라며 “한국 전통과학이 당대 동아시아 각국과 경쟁하며 발전해 온 모습은 ‘오래된 미래’라는 차원에서 한국 과학이 나갈 길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이은경의 유레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4차 산업혁명

    [이은경의 유레카] 대학수학능력시험과 4차 산업혁명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입시철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육 현실을 다시 돌아보곤 한다. 특히 지난 2년여 동안 ‘4차 산업혁명’이 불러올 기술 변화와 사회 변화에 대한 논의가 많았는데 그에 대비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비슷한 예를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2차 산업혁명기에도 교육이 새로운 산업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2차 산업혁명의 중심 분야는 전기와 화학산업이었다. 영국에서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들이 초기 전기산업을 주도했다. 이들은 공대 출신 엔지니어가 실무에 어두울 것이라 판단하고 도제식 훈련을 받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엔지니어를 선호했다. 이런 산업계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영국의 공대 교수들은 실험실 교육을 도입했다. 특히 런던대학의 유니버시티칼리지는 1893년 공대에 실험실을 설치했다. 공학 실험실은 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공작 기기와 도구, 테스트 기계, 발전기 등을 갖췄다. 학생들은 저학년 때 이론을 공부하고 고학년 때는 토목, 기계, 전기 중 한 분야를 골라 집중적으로 실험실 경험을 쌓았다. 이러한 교육으로 대학 출신 엔지니어들은 도제 방식으로 훈련받은 엔지니어 못지않은 실무 능력을 갖추고 이론을 활용한 기술문제 해결에서도 경쟁력을 갖게 됐다. 독일은 이론에 기반한 체계적인 물질합성에 성공함으로써 화학산업의 선진국이 되었다.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기센대학에서 실험 중심의 화학교육을 확립했다. 당시 실험실은 교수의 연구만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리비히는 교육용 실험실을 열고 학생들에게 실험을 통한 학습 기회를 주었다. 학생들은 실제 화학 분석을 하면서 성분 분석과 화학 반응 지식을 얻었고 화학문헌 활용법도 익혔다. 이런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독일의 여러 기업 연구소에 진출해 새로운 물질들을 합성해 냈다. 화학산업은 독일을 유럽의 산업 강국으로 올려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실험실 교육으로 이론과 현장 실무를 결합했다는 것이다. 전기산업과 화학산업은 우연한 발명과 축적된 현장 경험에서 나온 기술들이 주도했던 1차 산업혁명과 달리 이론에 기반을 둔 기술 개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기술이 어떤 특성을 갖는지 생각하고 이를 교육에 반영해야 한다. 그중 하나는 기술 문제를 발굴하고 설정하는 능력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되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기술 문제가 무엇인지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동안 익숙했던 연습문제 풀이 능력을 키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교육은 선진국이 이미 해결한 문제를 새롭게, 또는 빨리 푸는 능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수능시험은 그 결정판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선진국과 겨루려면 우리 스스로 문제를 설정해야 한다. 선진국이라 해도 아직 문제를 발굴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논의에서 자주 거론되는 코딩,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 수행 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문제 발굴보다는 설정된 문제를 해결할 때 활용가능한 수단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 “사우디, 터키 경찰 수색 전 카슈끄지 피살 ‘은폐조’ 투입”

    “사우디, 터키 경찰 수색 전 카슈끄지 피살 ‘은폐조’ 투입”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현장을 터키 정부가 수색하기 전 사우디가 ‘은폐조’를 투입했다고 터키 매체가 보도했다. 터키의 친정부 일간지 ‘사바흐’는 카슈끄지가 살해된 지 9일이 지난 지난달 11일 사우디 정부가 독성학자 등 전문가로 구성된 ‘은폐조’를 이스탄불에 파견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달 11일은 카슈끄지 피살 의혹이 한창 확산된 시점으로, 당시 사우디 당국은 카슈끄지가 멀쩡히 주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떠났다고 주장하며 그의 사망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동시에 사우디 당국은 터키 경찰의 수색을 승인하지 않았다. 사바흐는 사우디가 ‘수사팀’이라며 파견한 대표단에 화학자 아흐마드 압둘아지즈 알자노비, 독성학자 칼레드 야흐야 알자라니 등 전문가가 포함됐다고 익명의 터키 치안 당국자를 인용해 전하며 이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사바흐는 이들이 터키 경찰의 수색 전에 증거를 인멸하는 등 사건 은폐 임무를 띠고 터키로 입국, 카슈끄지 살해 현장에 남은 흔적을 제거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에 따르면 11명 일행은 10월 11일부터 이스탄불에 체류한 7일간 매일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고, 같은 달 20일 출국했다. 10월 17일에서야 사우디 정부는 터키 경찰의 사우디 총영사관 수색을 승인했다. 사우디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해 온 카슈끄지는 지난달 2일 이혼 관련 서류를 떼기 위해 사우디 총영사관을 찾았다가 실종됐다. 지난달 31일 이스탄불주 검사장실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간 직후 목 졸려 살해당했으며, 시신이 토막 내어진 뒤 폐기됐다고 발표했다. 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고문인 야신 악타이는 이달 2일자 언론 기고문에서 사우디 암살조가 카슈끄지의 시신을 토막낸 뒤 산성 용액에 녹여 처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진화론은 인간을 하찮게 만들지 않는다

    진화론은 인간을 하찮게 만들지 않는다

    1859년 출간된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에서는 ‘진화’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당시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발을 우려한 다윈은 ‘진화’ 대신 ‘변형된 자손’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는 수차례 개정판을 내면서 진화론을 ‘진화’시켰고, 인류가 생명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다윈이 살았던 당시만큼은 아니겠지만, 진화론에 대한 반감은 현재도 여전히 남아 있다. 사실 전자현미경으로 본 인간의 세포는 다른 포유류의 세포와 다를 바 없다. 우리가 결국 원숭이의 후손이거나, 동물과 같은 조상을 갖고 있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할 근거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저자는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추적하고,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진화학 연구의 오해들을 소개하고 바로잡는다. 예컨대 일각에서는 남녀의 성역할, 심지어 성폭력 등을 진화론적 관점에서 생물학적 욕구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는 진화가 남긴 잔해가 아닌 현대사회의 문화적 구성물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말한다. 그 배경조차 의심되는 잘못된 연구들이 사실인 것처럼 진화심리학 등의 탈을 쓰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다윈이 말한 얼기설기 얽혀 있는 강둑의 일부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그 강둑을 초월할 수 있는 생명체이기도 하다.”(50쪽) 저자는 책에서 진화론이 결코 인간을 우연이 만든 하찮은 존재로 격하시키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하게 된 우주”라며 “그 의식이 생겨나는 자리, 우주의 자기인식이 일어나는 중심부는 다름 아닌 인간의 뇌”라고 말한다. 인류가 진화한 것이 과학적 사실이지만, 그로 인해 최초로 인간이라는 생명 형태가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결과를 이해하고 현재의 방향이 맞는지도 판단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이자 생물학 교수인 저자는 인문주의적 방식으로 진화론을 고민해 왔다. 진화론은 ‘아담의 죽음’이 아닌 ‘아담의 승리’라고 믿고 있기에 ‘신을 믿는 진화학자’라는 그의 정체성도 결코 모순이 아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열린세상] 교토 우지, 윤동주 시비를 찾아서/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부교수

    일본 교토부 우지시(宇治市)는 우지차와 겐지 이야기(源氏物語)로 유명한 곳이다. 이 도시를 가로지르는 우지 강변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뵤도인(平等院)이 있다. 오사카 출장차 이곳을 들른 것은 태양이 작열하던 지난여름이었다. 역에 내리자 곤타니 노부코(紺谷延子) 부부가 밀집모자를 건네며 반갑게 맞이했다. 곤타니는 시인 윤동주 기념비건립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주부다. 우리 외교부의 도움으로 센다이에 김기림 기념비 건립이 결정돼 공부가 필요했다. 일본 기자의 소개로 곤타니에게 메일을 보냈더니 시비 건립의 긴 경위를 두어 줄에 요약한 회신 메일이 금방 왔다. 역경을 이겨 내고 시민의 손으로 건립한 자부심이 묻어났다.이곳에 시민의 손으로 윤동주 기념비를 세운다는 계획이 만들어진 것은 2005년이었다. 2002년에 발족한 ‘시인 윤동주를 기리는 교토의 모임’을 중심으로 기념비건립위원회가 설립되면서다. 기념비의 이름은 ‘시인 윤동주 기억과 화해의 비’. 평화학자 안자이 이쿠로(安齋育?)의 글씨로 새겼다. 그 안에도 인권을 옹호하는 활동을 통해 화해에 이르고자 하는 시비 건립운동의 정신이 담겼다. 기본적 인권을 부정당한 청년 윤동주를 기억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평화요, 화해에 이르는 출발점이었다. 곤타니는 윤동주의 시를 읽는 모임에 참가해 그가 체포되기 두 달 전에 도시샤(同志社)대학의 동기생들과 우지 강변에 소풍을 다녀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로 그때 찍은 사진의 배경을 찾아 그의 마지막 행적을 기리는 것이 곤타니의 숙제가 됐다. 치안유지법에 희생된 윤동주를 기리는 것이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본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라는 믿음에서였다. 우지 강변에는 야마센(山宣)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의 묘가 있다. 역시 치안유지법에 반대하다가 우익에 희생당했다. 우지에는 우토로 마을도 있다. 인권침해에 민감하게 반응해 저항하는 정신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소풍지였다는 사실이 우지 시민을 움직였다. 역에서 택시로 5분 정도 달려 시비가 있는 우지 강변 신핫코다리(新白虹橋)에 도착했다. 지역 신문 기자들도 도착했다. 마침 일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패전으로 이어지는 기간이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이 미흡한 한계가 있으나 전쟁에 대한 반성이 이 시기 일본 신문들의 주조를 이룬다. 지방 신문의 취재에 ‘올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일본이 적극 합류하는 것이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과오를 극복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시비 건립운동은 건립위원회 발족 후 2년 만에 시비가 제작될 때까지 순조로웠다. 교토의 조각가 다무라 다카시(田村隆)의 작품이다. 한국에서 날라 온 석판과 일본에서 채취한 석판을 나란히 세우고, 두 석판을 윤동주를 표상한 원기둥이 잇고 있다. 두 석판에는 각각 우리말과 일본어로 ‘새로운 길’을 새겨 넣었다. 윤동주의 대표시 ‘서시’의 일본어 번역이 일으킨 논란을 피한 것이나, 그 선택은 탁월했다. 그가 걷고자 했던 새로운 길에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처가 더 선명히 드러난다. 기념비가 제작된 뒤 때마침 불기 시작한 혐한류의 광풍이 우지시에도 미쳐 어려움을 겪었다. 건립 부지를 제공할 교토부 당국은 윤동주와 우지시의 연고를 증명하라고 집요하게 요구했다. 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념비 제작을 위한 모임은 건립의 필요성을 입증하는 운동 조직으로 바뀌었다. 교토부 지방검찰청에서 윤동주와 그의 사촌 송몽규의 판결문을 새로 발견한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모금 활동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를 모태로 건립위원회는 연구와 서명 활동을 전개했다. 과거를 지우려는 일본 우익의 준동 속에서 숨을 죽이는 일본인들이 있는 반면, 우지 시민처럼 과오의 기억을 새롭게 새기며 인권과 평화의 의지를 단련시키는 일본인도 있다. 기념비건립위 발족부터 12년, 2017년 10월 시비는 건립됐다. 체포되기 직전 25세의 청년 윤동주가 우지 강변을 배경 삼아 수줍게 웃는 사진을 보니 시비에 새긴 윤동주의 글귀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 [달콤한 사이언스] 100년 전 화학식으로 원유 없이 최고급 휘발유 만든다

    [달콤한 사이언스] 100년 전 화학식으로 원유 없이 최고급 휘발유 만든다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 이탈리아, 일본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 제패라는 야욕에 사로잡혀 일으킨 전쟁이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아프리카나 중동에 식민지를 갖고 있지 않아 원유 확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독일이 유럽 정복을 위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풍부한 석탄을 석유화할 수 있는 화학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공군기 연료의 90% 이상, 그리고 국가 전체 석유 수요의 절반 이상을 이 같은 석탄화 석유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바로 석탄을 석유로 만든 이 마법 같은 기술은 1920년대 독일 화학자 프란츠 피셔와 한스 트롭슈가 개발한 ‘피셔-트롭슈 공정’ 덕분이다. 석탄의 탄소와 공기 속 산소를 결합해 일산화탄소를 만든 뒤 여기에 수소를 넣어 반응시키면 탄화수소(석유)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동의 석유가 전 세계에서 널리 쓰이면서 이 공법은 많이 쓰이지 않고 있었는데 일본과 중국 화학자들이 이 반응을 개선해 바이오매스에서 가솔린과 항공기 연료를 직접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일본 토야마대 응용화학과, 국립재료과학연구소, 중국 과학원, 샤먼대 화학공학부 공동연구진은 100여년 전 독일 화학자들이 석탄에서 합성석유를 만들어 낸 피셔-트롭슈 화학공정을 개선해 석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바이오원료에서 액체 연료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 ‘네이처 촉매’ 18일자에 실렸다. 석탄이나 잘게 분쇄된 땅콩껍질 같은 바이오매스를 천연가스와 비슷한 성분으로 전환시키는데 피셔-트롭슈 공정은 매우 유용하지만 실제로 가솔린이나 디젤, 항공유처럼 직접 사용되기 위해서는 분리 정제 과정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피셔-트롭슈 공정으로 연료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이 같은 공정으로 인공석유를 만드는 나라들은 석탄 같은 원료가 지나치게 저렴하거나 원유 수입이 어렵다는 등의 상황이 아닌 이상 사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연구팀은 기존 피셔-트롭슈 공정에서 철이나 코발트를 이용한 촉매 대신 다공성 물질인 제올라이트와 코발트 나노입자를 혼합시킨 촉매를 사용했다. 이렇게 되면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실제 사용이 가능하고 순도가 높은 액체 연료를 다량 생산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연구팀은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순도 74%의 가솔린과 순도 72%의 항공유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기존의 방식으로는 순도 50%가 넘기가 어려웠다. 츠바키 노리타츠 토야마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가솔린과 항공유처럼 석유를 기반으로 나올 수 있는 액체연료를 다른 방식으로 원스톱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아직 촉매 문제나 합성연료의 수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석유라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했다는데 의미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