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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곱의 사다리(새 영화)

    ◎월남전 용사통해 매몰된 개인의 삶 그려 인간을 둘러싼 사회의 인식 불가능한 불안과 공포의 세계를 현대적 감각의 스릴러물로 구현한 작품. 끔찍한 악몽과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베트남 참전용사가 그 병적 원인이 참전당시 부대의 음모에 있음을 알고 진실을 캐내기까지의 과정을 미스터리적 사건속에 그렸다.특히 이 작품은 단순한 사건식 나열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죽음,베트남전의 악령,성서의 은유,르네상스이후 계승돼온 악마주의 화풍등을 총체적으로 담아 상업성과 예술성이 어우러진 토털시네마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체속에서 매몰돼버린 개인의 삶과 일그러진 사회상황을 음울하게 구성한 영화로 팀 로빈스와 브루스 조엘 루빈이 주연했다.연출은 애드리안 라인이 맡았다.
  • 영 리얼리즘화가 시커트/유럽서 회고전 잇따라 열려

    ◎“영 모더니즘운동 대부” 평가/실험정신 탁월… 「에드워드8세」가 대표작 19세기말 영국의 화풍을 유럽대륙에 소개하는데 큰몫을 한 리얼리즘 화가 월터 리처드 시커트(1860∼1942)만큼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예술인도 드물 것이다.시커트는 20세기 개막과 동시에 S­F 고어,해럴드 길맨등 영국의 젊은 모더니스트들에게 활기를 북돋웠을 뿐아니라 루시안 프로이드·프랭크 아우에르바흐 등과 같은 조형예술 작가,심지어는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요즈음 런던의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이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커트의 회고전은 그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8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 「우스꽝스런 사자」는 섬세하고 솔직담백한 필치로 당시의 연예계 스타를 잘 묘사한 걸작으로 꼽힌다(사자 또는 맘모스라는 말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서 노래에 곁들여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대중가수를 일컫는다).특히 무대에 선 가수의 불룩한 연미복과 배경을 이루는 호수의 묘사는 C 마네의 그림을 연상시켜 주고있다. 어찌 보면 다소 따분한듯한 시커트의 초기 작품세계는 1907년 그가 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돌변한다.어느날 런던의 하숙집 근처에서 목이 잘린 금발 창녀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이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부터 침대에 드러누운 나부와 정장차림을 한 신사를 등장시킨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일련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불길해 보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죽은지 20년이되자 창녀 살인사건의 진범이 시커트 자신일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것이다. 1880∼1930년 사이에 활발히 진행된 미술분야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운동가들이 그러하듯 종래와 다른 엉뚱한 발상을 한 시커트도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있다.이같은 새로운 시대흐름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시커트는 덴마크출신 아버지와 영국계의 어머니 사이에 뮌헨에서 태어났다.그런 탓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청년시절 J M 휘슬러 밑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83년엔 휘슬러의 소개로 E 드가와 만나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그의 초기 화풍은 신인상파적인데 드가는 물론 모네,H T 로트렉 등 프랑스 화가의 착상을 도입하기는 했으나 예술의 바탕은 영국풍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화상을 연상케하는 「아브라함의 하인」(1929년),막장에서 올라오자마자 아내와 열렬히 입맞춤하는 「광부」(1935년)등 그의 후기 작품에선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있다.특히 털모자를 들고 리무진 승용차에서 내리는 「에드워드8세」(1936년)의 묘사는 사실주의의 극치를 이룬다는 찬사를 받기도한다.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0

    ◎단추와 옷고름/괴춤의 여유로 세계를 감싼다/재고 또 재는 합리뒤에 오는것/한국적 가변성·포용성이 새 문명 활로/산업사회의 양복은 긴장의 병리를 유발/한복의 융통성은 「푸는 사회」의 건강처방/「법적죄임」속의 메마른 인간관계/서구의 마약·에이즈·홈레스 유발/바지·저고리 품 닮은 신축적 사고/미래사회 기본정신으로 삼아야 □황규호문화부장=한복은 몸을 싸는 옷이요,양복은 몸을 넣는 옷이라는 지난번의 말씀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습니다.오늘은 보자기 문화에 뒤이어 양복과 한복의 비교문화론을 듣고 싶습니다.그리고 그 비교를 통해서 한국문화의 전망과 그 가능성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이어령전문화부장관=양복을 보면 근대 산업문명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산업화가 합리적인 수치에서 생겨났듯이 양복도 재단사가 인간의 몸을 정확하게 재는 데서부터 태어나게 되지요.인체는 아주 복잡하지 않습니까.그것을 일일이 자눈으로 재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몸에 꽉 맞추는 기술­기계로 찍어내는 공산품하고 매우 유사하지 않습니까. ○여우사냥복서 유래 □우리가 오늘날 입고 있는 양복과 근대 산업문명이 시작된 것과 어떻습니까.그 연대가 비슷한지요. ■연대만이 아니지요.산업혁명을 낳은 영국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입고 있는 그 양복의 고향이지요.즉 남자들의 양복 원형은 영국 지방귀족들이 여우 사냥을 할때 입던 옷이라고 해요.활동적이고 간편하고 기능적인 그 모드가 산업사회의 특성에 맞아 떨어지게 된 것이지요.산업혁명이 보편적인 세계시스템을 구축한 것처럼 양복 역시 이제는 거의 세계인의 의상으로 표준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양복의 생명은 그 재단이고 그 재단기술은 인체를 정확하게 재는 데서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산업사회의 합리주의는 바로 이 재는 문화가 아니겠습니까.그런데 한복은…. ■맞아요.한복은 정확하게 치수를 재지 않아도 되는 의상이지요.만약 옛날 조선조시대의 우리 할아버지네들이 허리를 재고 또 재고 그러고도 모자라 가봉까지 하면서 허리통을 1∼2㎜ 따져가며 핀을 꽂는 양복점 재단사들을 보면 분명 미련한놈들이라고 한숨을 지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이렇게 말하셨겠지요.『야 이놈들아 어디를 재는거냐.사람 배라는 것은 숨을 들여 쉴때 다르고 밥을 먹을 때 다른 것인데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을 그렇게 재서 어쩌자는 거냐』.(웃음)그리고 한복의 괴춤의 자랑할 것입니다.한복의 바지는 배를 재지 않고도 입을수 있도록 아예 허리통보다 5㎝가량 넉넉하게 말라 놓은 것이지요.배가 나올때는 풀어 입고 들어갈때는 조여 입으면 그만입니다.이 융통성이 바로 전번에 말한 한국인의 융통성이요 가변성입니다. □서양옷처럼 일일이 치수를 따지지 않아도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 된 것이 한복의 특성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사실 한복은 앞뒤도 없지 않습니까.(웃음)웬만하면 몸집이 달라도 누구나 입을 수 있는 포용성을 지녔지요.이 너그러움이 몸을 싸고 인생을 싸고 세계를 쌉니다.까다롭게 따지는 옷이 아니라 그윽히 품어주는 옷이지요.임어당은 언젠가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를 그같은 시각에서 비교한 적이 있었지요.서양사람(일본사람도 여기에 속합니다마는)들은 굴을 뚫을 때에미리 정확하게 계산해 놓고 양쪽에서 파들어 온다는 것이지요.그래서 한치의 에누리도 없이 도중에서 쌍방의 굴이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문명이라는 겁니다.그러나 중국사람들은 양쪽에서 적당히 파들어 온다는 거지요.그러다가 굴이 서로 만나면 재수가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굴이 두개 생기니 더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웃음) 이런 문명을 가지고는 물론 달나라에 갈 수는 없지요.그러나 정신병원에는 가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산업문명은 양복처럼 치수가 맞을때에는 좋으나 조금만 틀려도 거북하기 짝이 없지요.신사복을 입을 때마다 품이 째기도 하고 허리가 조여 후크를 풀어야 만 되는 경우도 많지요.산업사회라는 것도 꼭 그렇게 인간을 숨쉴수 없게 조일 때가 많아요. ■바지만이 아닙니다.양복과 한복의 차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단추와 옷고름입니다.나는 어째서 세상옷들이,중국옷도 마찬가지입니다.모두 단추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유독 한복만은 여자옷이나 남자옷이나 옷고름을 사용하였는가궁금하게 여겼지요.결국 이것도 치수를 초월한 융통성과 포용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금세 그 수수께끼가 풀립니다.단추는 그 구멍과 정확하게 대응되어야 합니다.단추와 구멍은 한치의 에누리도 용서되지 않지요.위치가 고정되어 있어서 그 간격을 조일수도 풀수도 없습니다.그러나 옷고름은 그렇지 않아요.품이 크면 바짝 조여 맬수 있고 반대로 품이 째면 느슨하게 풀어 맬 수가 있습니다.바지통처럼 여분이 있지요. □옷고름의 길이도 여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흥부네 집 가난 묘사에도 있듯이 옛날 사람들은 기워 입을 헝겊조차 없어서 고생을 하였지요.그런시절이었는데도 어째서 옷고름을 그렇게 길게 만들었는지 미스터리중의 하나입니다.서양 리본을 보십시오.매고 난 끈은 짤막하게 자르지 않습니까.그런데 한복의 옷고름은 바람에 나부낄 정도이지요.옷감이 귀하면서도 왜 리본처럼 짤막하게 끊지 않았는가.그것이 한국인의 마음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시골에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감을 다 따지 않고 하나 둘 남겨 두지요.까치도 먹으라고말입니다. □시골에서는 그것을 까치밥이라고 부르지요. ■옷고름이나 까치밥이나 그것은 다 궁색한 가운데도 여분을 만들어 내는 한국특유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 여분의 사상속에서 정도 생기고 포용력이나 융통성 그리고 멋이 생겨난 것이지요.좀더 복잡한 말로 하면 「무용의 용」이라는 겁니다.이것이 바로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기능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정보적 가치와 결합될 수가 있습니다. ○도둑이 소송 내서야 □산업문명이 양복처럼 디자인된 것이라면 오늘날 이 옷이 인간의 품에 맞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처음에는 잘 맞았지요.그런데 1970년대 오일 쇼크나 월남전이 끝나는 무렵만 되어도 점차 허리가 거북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옷이 되고 맙니다.몸이 달라진 것이지요.한치 두치 따져야 살아갈 수 있는 산업문명은 결국 미국사회처럼 70만이 넘는 변호사를 배출하게 된 것입니다.일인당 비율로 일본보다 17배가 넘는 수이지요.치수를 따지지 않고서도 입을 수 있는 바지처럼 법없어도 사는 것이 한국인이 그리는 이상사회였습니다.정철도 가사를 통해서 『강원도 백성들아 송사를 하지말라』고 소리 높이 외쳤지요.옷에 치수를 따지지 않는 것처럼 한국사람들은 소송은 물론 웬만한 경우에는 따지는 것을 금기시합니다.그래서 누가 따질 때 『지금 나한테 따지자는 거야』라고 하면 상대방은 대체로 좀 수그러들면서 『내가 꼭 따지자는 것이 아니라』라고 변명을 합니다.(웃음) 따지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한국문화풍토때문이지요. 그러나 미국사회는 따지기를 좋아하는 로고스중심주의이며 법 만능사회입니다.법없이는 못사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지요.미국의 희극영화에는 거지끼리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나의 고문 변호사를 통해 고소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습니다.전문 변호사를 두지 않고서는 거지짓도 못하는 것이 미국사회라는 풍자지요.현실적으로도 미국에서는 정말 믿기지 않는 소송사건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도둑이 도둑질하려고 학교 실험실에 들어가려 했다가 지붕에 난 창유리를 잘못 밟아 떨어져 척추를 다칩니다.반신불수가 된 이 도둑은 그 학교를걸어 소송을 제기합니다.지붕으로 낸 창문을 지붕색과 똑같이 칠해 놓았기 때문에 창인줄 모르고 밟게 되었다는 겁니다.그러니 그런 착각을 일으키게한 건물주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었지요.(웃음) 그런데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 도둑이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어 결국 합의로 위자료를 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웃음)그 뿐만이 아닙니다.심지어 교사가 성적을 나쁘게 주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고 소송을 제기한 학생도 있습니다.(웃음) □복용자로부터 소송이 걸려 올까봐 제약회사가 약품을 개발해 놓고도 판매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들었는데요…. ■의료분쟁이 아주 심하지요.걸핏하면 환자로부터 소송이 걸려오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의사가 되려면 인술보다 법에 밝은 법술에 능해야 되지요.그러나 소송왕국이 된 미국의 진정한 불행은 법의 고삐에 의해서만 조종되는 메마른 인간 관계속에 있다고 하겠지요.그러한 사회에서는 스트레스가 쌓이게 마련이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질환에 걸리게 됩니다.「사이코」가 일반적인 사회현상이되어 버립니다.한편 사이코에 걸리지 않으려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데 가장 손쉬운 방법이 약물에 의한 것입니다.이렇게 해서 미국은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하게되는 마약왕국이 되어버립니다.사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미국에는 현재 홈레스(우리말로 하면 집없는 거지)가 전 인구의 1%로 2백50만이고 코카인같은 마약중독자가 또 1%라고 합니다.여기에 또 그만한 에이즈가 있습니다.이것은 미국의 사회를 좀먹는 삼각형으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지요.홈레스의 대부분은 약물중독의 결과에서 비롯되고 에이즈 환자의 대부분은 약물중독과 상관성이 있습니다.클린턴은 미국경제의 재생을 걸고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지만 그 최대의 난관은 눈덩이처럼 불어가는 재정적자입니다.그런데 바로 홈레스 에이즈 마약의 세가지 사회현상이 재정적자의 삭감을 불가능하게 하는 난적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지요. □서구 산업사회의 궁극에는 그 세가지 나락의 문이 열려 있다는 말씀이시군요.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문화의 전철을 밟게 되면 우리의 모습으로 될 수도 있다는 경고구요. ■그렇지요.우리는 그동안 경제 발전의 목표나 정치적 이상을 모두 미국을 모델로하여 한길로 달려 왔지요.그런데 아무래도 우리가 따라간 그 길이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겁니다.미국의 반수 이상은 신문을 읽지 않아 정치에도 세계문명의 전환에도 무관심하고 책을 한권도 구입하지 않은 가정이 6할이나 된다고 하니(92년 통계)미국내에서 새로운 미래의 길을 찾기란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자신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양복을 벗어던지고 한복을 입으라는 복고주의가 아니라 급변하는 세계에 맞는 새로운 의상을 디자인하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21세기의 성패 달려 □그 문명의 디자인을 하는데 한복의 옷고름 바지의 포용력을 기본정신으로 해야 된다는 말씀이지요. ■구체적으로 「긴장사회」를 「푸는사회」로 만들어갈때 개인이고 사회고 건강해진다는 겁니다.그렇지 않으면 마약 에이즈 홈레스가 바로 우리의 현실 인류문명의 병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비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이 세가지 좀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는 막아야 합니다.여기에 21세기의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아직은 에이즈도 마약도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홈레스의 사회문제도 세계에서 우리나라 처럼 작은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이 말은 이 3대 좀의 온상이 되는 긴장문화가 덜하기 때문입니다.풀었다 조였다 할 수있는 바지와 저고리품처럼 신축성과 포용성이 우리 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는 까닭이라고 봅니다.일본만 해도 경제적 번영을하고 있습니다마는 정신질환이라는 면에서는 우리보다 심각하지요.어느날 갑자기 가출을 해버리는 중년 샐러리 맨,10대의 사망률 가운데 반수를 차지하는 자살자,변태성 잔악 살인자….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사건들이 많이 생겨납니다. □겉으로만 보던 미국사회 산업사회가 도달하는 궁극의 풍경을 이렇게 근접촬영을해보니 정말 불안과 공포가 생기는 군요.말끝마다 『미국에서는…』이라고 선진국모방에만 급급했던 것이 엊그제인데….느낌이 새로워지는군요.자 그러면 우리도 옷고름 자락을 남겨두고 다음에 다시 말씀듣기로 하지요.
  • 권위주의 청산… 사법 중립화 진전/6공 5년 국정평가 내용

    ◎6·29선언 실천… 지자제부활·인권신장/언론기본법 폐지… 자율·경쟁체제 확립/남북한 유엔 가입 실현… 국제 위상 제고/전방위외교 결실… 통일기반 구축/대내외 난관 딛고 경제안정기조 확보/국민의보­연금제로 획기적 복지향상/2백만호 주택건설… 부동산값 고삐잡아 정부는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현승종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각부처 차관 및 외청장,각부처 본부 1급이상 공무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평가종합보고회」를 열고 6공출범이후 각 분야별로 지난 5년간 수행한 국정운영성과를 평가하고 향후과제 등 국정마무리와 관련한 내용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이날 회의는 총괄보고인 「종합평가」에 이어 「민주화개혁」,「북방정책과 통일기반 구축」,「선진경제기반 구축과 국민생활 향상」,「교육개혁과 문화창달」순으로 진행됐다.보고내용 요지는 다음과 같다. ○주요성과 ▲6공화국의 주요성과=6공화국은 민주화라는 국내의 전환기적 진통과 세계경제의 침체등 어려운 국제환경속에서 출범했다. 이렇듯 어려운 여건속에서도6공정부는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구현이라는 새로운 사회를 국민들에게 약속하기위해 민주화·자율화·개방화를 정책기조로 설정했다. 이러한 정책기조의 차질없는 실현을 위해 부문별 세부계획과 공약사업의 실천계획을 일관성있게 추진해왔으며 특히 「20대 역점시책」을 선정,집중적인 관리를 해왔다. 그 결과 민주화측면에서는 지난 시대의 권위주의를 청산,인권신장과 지방자치제부활등 개혁적 노력을 지속해 민주시대의 새장을 열었다. 대외적으로도 신장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북방외교와 통일정책을 추진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상을 높이고 민족적 염원인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민주화에 따른 부작용등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 안정기조의 회복과 함께 높은 소득증가와 고용안정을 이룩했다. 사회적으로는 전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제·부동산투기근절및 주택2백만호건설·농어촌구조개선등 정책추진을 통해 사회적 형평과 국민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이밖에 교육환경개선·문화예술의 향유기회 확대등 국민생활의 질적인 면에서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대통령공약사업의 이행에도 총력을 기울여 총4백59건의 공약사업중 57%에 이르는 2백60건을 완료하고 나머지 1백99건도 정상추진중이거나 절차가 진행중에 있다. 사업비는 지난 92년까지 48조6천9백60억원(54%)을 투자했고 올해에도 8조6천4백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종합평가=국정운영을 종합적으로 볼때 6공화국정부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유례없이 민주발전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하고 평화통일의 디딤돌을 확고히 하면서 선진복지사회의 기반을 구축했다. 특히 노태우대통령의 9·18결단으로 역사상 유례가 없는 공명정대한 선거문화를 이룩함으로써 출범 당시의 6·29선언은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귀결돼 21세기 선진사회를 향한 대전환의 기틀을 마련했다. 선진사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보다 틀이 갖추어진 민주적 제도와 조화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질서의 확립과 의식의 선진화를 이룩해야한다. 또 물가안정의 바탕위에서 산업경쟁력강화시책의 가시적인 성과가나타나도록 정책적인 노력을 강화하면서 사회간접자본시설등 중장기투자계획을 착실히 추진해나가는 미래지향적인 정책적 노력이 지속되어야한다. ○민주개혁 ▲6·29선언의 실천=기본적인 인권이 최대한 신장되고 사법부의 실질적 독립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등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성됨으로써 한 차원높은 민주주의가 실현됐다. 특히 헌법재판소설치 및 위헌법률심사제도 활성화·검찰의 중립성보장으로 사법제도가 보완됐다. 구속적부심 확대 및 피해자진술권 보장등 형사절차상의 인권신장으로 국민의 기본권침해가 방지됐으며 무주택서민의 임대차보호제도실시,법률구조공단사업확충,서민보호법률서비스의 대폭향상으로 서민대중의 권익이 보호됐다. 또 국가보안법과 사회보호법개정·사회안전법의 폐지로 인권침해방지를 위한 제도가 개혁됐다. ▲언론자유의 창달=언론기본법의 폐지로 언론의 자율과 경쟁이 보장됐다. 이에따라 정기간행물의 등록이 전면 개방됨으로써 6·29선언당시 2천2백36종이었던 정기간행물이 92년 말에는 3배가 넘는 6천9백55종이 됐다. 또 지방주재기자제도가 전면 부활되고 프레스카드 발급제도가 폐지됐으며 신문발행면수와 구독료가 완전자율화됐다. 노동조합설립과 운영의 자율화가 신장되고 근로조건이 향상되는등 민주·자율적인 노사관계가 정착됐다. ▲지방자치의실현=30년만에 지방의회를 구성,지방화시대를 개막함으로써 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지방재정자립도가 높아지고 지방재정 및 세수규모가 대폭 늘어나는등 지방재정이 크게 확충돼 자치수행능력이 향상됐다. ▲선거문화의혁신=특히 지난 대선은 대통령의 9·18결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중립내각의 노력 및 국민의 성숙된 의식에 힘입어 사상유례없는 공명선거를 이룩함으로써 민주헌정사의 새로운 장을 개막했다. 또 국민의 민주의식 향상과 선거관련법령의 정비등 공명선거실시를 위한 기반이 구축되어 지방의회를 비롯한 각종선거가 공명정대하게 실시됐다. 또 선거때마다 수반되던 폭력·불법시위가 사라지고 선거특수로 인한 과소비등의 부정적 행태가 지양됐으며 선거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등 새로운 선거문화가 창출됐다. ▲행정의 민주화=행정의 권위주의를 탈피,규제는 작고 봉사는 큰 민주행정구현을 위한 기반이 구축됐다. 전기설비검사,석탄제품품질검사등 모두 1백63건의 행정권한을 민간단체에 위탁하고 행정쇄신차원에서 중앙과 지방을 망라한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한 결과,행정규제사항 6백3건을 폐지했다. 또 서류감축 7백41건,통·폐합 3천7백95건등 민원제도를 간소화하고 국민에게 불편을 초래했던 다수기관·다수법령 관련 복합민원·고질민원 2천1백2건(82%)을 해소했다 ▲민주사회질서확립=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적극 전개해 급속한 민주화 과정에서 파생된 각종 불법·무질서 등 전환기적 사회병리현상을 치유함으로써 건전한 사회기풍을 진작했다. 특히 조직배폭력,어린이 및 여성상대범죄등 국민체감치안의 개선에 주력했고 국민과 3분거리내의 「현장즉응체제」확립등 범죄대응능력을 대폭 강화했다. ○북방정책 ▲통일기반구축=발상과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평화통일 기반구축을 위한 3대 정책과제를 설정해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의 국정지표를 구현했다. 「7·7특별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북방외교」및 남북대화 전개로 이같은 국정지표가 구체화됐다. 남북한 유엔가입,중국·러시아등과의 수교로 한반도 주변국들의 평화통일에 대한 지지환경도 조성했다. 90년9월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개최이후 92년 12월말까지 8차례의 본회담을 비롯해 1백19회의 회담으로 「남북기본합의서」및 부속합의서를 채택했다. 90년8월1일 「남북교류협력법」「남북협력기금법」제정 시행으로 남북교류 협력의 법제도를 정비했다. 남북교류 협력추진때 우리측의 부담과 손실의 지원·보전을 위해 총1천50억원의 「남북협력기금」을 조성했다. ▲북방외교=북방외교는 외교지평의 확대,안보환경의 개선,평화통일여건 조성,우리의 국제적 위상제고,경제활동의 영역확대에 기여했다.6공화국 출범이래 45개국과 새로 수교함으로써 현재 1백71개국과 공식 관계를 갖게 됐으며 21개의 공관이 신설됐다. 91년9월 정부수립후 43년만에 북한과 함께 유엔에 가입했다. 북방권과의 관계개선으로 인구 14억의 새로운 시장이 우리의 경제활동 영역에 추가되어 92년 교역규모가 1백12억달러에 달했다. ▲자주국방태세의 확립=북방정책의 성공과 걸프전 참전,PKO참여등으로 제고된 우리의 위상,국제적 대북핵포기 압력등으로 대북우위의 군사전략 환경이 조성됐다. 해상·공중작전능력 향상,입체고속기동전력 증강,합동군체제로의 역사적 전환,미국과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합의등 안보협력관계의 개선·조정으로 자주국방태세가 강화되었다. 러시아와는 러·북한 상호원조조약 재검토,대북한 공격용 무기수출 자제,대북한 군사및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조관계를 다졌다. 앞으로 핵사찰문제,이산가족문제등 당면 현안과제의 우선적 해결을 모색하는 한편 남북합의사항 이행을 통한 각분야별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전통우방인 미·일과의 기존 유대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러시아등과 선린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동북아지역 4강과의 외교를 조화롭게 추진하는 것은 물론 북방외교를 내실화,「통일외교」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경제·민생 ▲종합평가=지난 5년간 우리경제는 연평균 8·5% 내외의 실질성장을 이룩,1인당 국민소득이 87년의 3천1백10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천7백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90∼91년의 경우 내수경기의 과열로 물가불안과 국제수지 적자문제에 직면했으나 지난 2년간 경제안정화 시책을 추진함으로써 물가안정 기조를 회복하고 국제수지 적자규모가 대폭 축소되는 성과를 거뒀다.우리 기업들은 새로운 경쟁여건에 적응하기 위한 구조조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에 주력하는 풍토를 조성해가고 있다. 종합적으로 지난 5년간 우리 경제가 어려움과 진통이 있었음에도 정치민주화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룬 시기로 평가된다. ▲경제안정기반의 구축=90∼91년중 9%대를 기록했던 물가 상승률이 지난해에는 4.5% 오르는데 그쳤다.특히 생활물가를 나타내는 신선식품과 20개 기본생활 품목 등의 가격이 크게 안정됐다. 부동산가격 안정은 6공화국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다.91년까지 크게 오르던 부동산 가격은 90년 이후 강력한 투기억제 정책과 2백만호 주택건설에 따른 수급안정에 힘입어 91년5월 이후 하향안정세를 지속하고 있다.토지가격도 지난해 2·4분기 이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수지는 90년부터 적자로 반전,91년에는 87억달러까지 규모가 확대되다 지난해 45억달러 수준으로 축소됨으로써 개선추세가 분명해졌다. 금리와 임금도 안정됐다.시중 실세금리는 91년말 19%까지 상승했으나 현재 13%까지 떨어져 금융자율화의 여건이 조성됐다.임금은 단기간에 너무 급속히 상승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과 대외경쟁력 약화등을 초래했다.그러나 점차 임금안정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 ▲산업경쟁력 강화시책의 추진=지난 2년간 우리 경제의 모든 초점은 안정기조를 통한 기업의 국제경쟁력회복에 두어졌다.고임금으로 약화된 산업경쟁력을 보완하기 위해 기업들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정부도 기술개발,인력양성,사회간접자본 애로타개등 경쟁력의 바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정부는 제조업경쟁력 강화대책을 마련해 추진하는 일면,중소기업 육성과 사회간접자본의 획기적 확충,과학기술 개발 및 정보화를 촉진시켰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기금 조성,의무대출비율 상향조정,상업어음할인 확대등의 조치가 이루어져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생산비중이 88년 42.4%에서 45%로 높아졌다. 일반예산이 5년 동안 2.1배 는 반면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3.5배로 늘림으로써 국도포장률이 79.5%에서 97%로 높아졌고 5년간 14개소의 발전소를 착공,올해부터 10% 이상의 전력예비율을 확보하게 된다. 강력한 기술드라이브정책으로 국민총생산중 과학기술투자 비중이 1.87%에서 2.12%로 높아졌다.64메가디램개발,우리별1호 제작등의 성과가 있었다. ▲국민생활향상과 복지증진=소득이 2배 이상 늘어났다.마이카시대가 실현됐고 전화보급,의료보험 혜택등이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다.2백만호 주택건설 계획은 목표를 69만호나 초과했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되고 88년에 국민연금제와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고용보험제도를 제외하면 선진국이 가진 사회보장 제도의 대부분이 도입된 것이다.이런 시책들로 사회보장 예산이 지난 5년간 3.6배나 증가했다.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어촌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됐다.90년4월 농어촌발전기금을 설치하는등 관련제도를 강화했고 91년 7월에는 10년간 추진할 농어촌구조 개선대책과 42조원의 투자계획을 마련했다.경지정리면적은 48만㏊에서 62만㏊ 늘어났다. 도시교통난 해소노력으로 5백58㎞의 지하철·전철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환경청을 90년 환경처로 승격시켜 제도를 강화하고 환경예산을 3.4배로 늘리는등 환경투자를 대폭 증액했다.맑은물 공급대책이 추진돼 수도의 식수불량률이 1.6%에서 1.1%로 떨어졌다.대기오염도 전국의 아황산가스 오염도가 80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기준치 0.5ppm이하로 떨어졌다. ▲경제효율의 향상과 국제화추진=부동산투기를 근절하기 위해 토지초과이득세와 개발부담금제등을 신설,투기를 진정시켰다. 총액출자 규제도 시행,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한 재벌의 계열회사간 채무보증 제한제도가 도입됐으며 이는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공정거래제도의 확립을 의미한다. 경제의 개방화·국제화가 추진됐다.우루과이라운드 협상등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고 국내 시장개방으로 수입자유화율을 97.7%까지 끌어올렸다.외국인의 국내 상장주식 직접투자로 자본자유화도 상당 부분 이루어졌다. ○교육·문화 ▲교육개혁=교육의 양적 성장을 바탕으로 전인교육 실현을 위한 초·중등교육의 내실화 등 교육의 질적향상 기반조성,21세기 정보화사회에 대비한 직업및 과학기술교육 강화,지방교육 자치제의 실시,평생교육체제의 확충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92년부터 군지역 중학교 의무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했으며 국민학교 학교급식을 16.3% 수준으로 확대 실시했다. 국립사범계 대학출신 우선임용제를 폐지하고 신규교사 공개전형제를 도입해 우수교원 확보의 기반을 마련했다. 고급기술인력 양성을 위해 이공계대학 정원을 대폭 늘리고 사립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4백억원(92년)규모로 늘렸다. 내신성적을 40%이상 반영하되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고사의 채택여부및 반영비율은 대학이 자율결정토록 하는등 대학입시제도를 대폭 개선했다. ▲문화창달=자유와 자율의 바탕위에서 활력에 넘치는 새로운 문화풍토를 조성했으며 문화유산의 보존과 문화기반의 확충으로 민족문화창달의 터전을 마련했다. 영화·연극·무용 등 대본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하고 방송·공연이 금지된 대중가요 7백51곡에 대한 규제를 해제하는 등으로 창작발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철폐했다. 문화부 신설,국립국어연구원 개원,한국 예술종합학교 설립 등으로 문화진흥 체제를 대폭 정비했다. 신라·백제·가야·중원·광주 등 5대 문화권을 정비(44건 완료)하고 경복궁·창덕궁 등 일제에 의해 훼손된 문화재 복원작업을 추진했다. ▲체육진흥 및 청소년 육성=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계기로 국민역량을 결집하고 체육의 중흥을 이룩함으로써 국제적인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국민적 사기진작과 체육의 생활화를 이룩했다. 서울올림픽은 동서화해와 동구 민주화에크게 기여한 것은 물론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일신케 하는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3천1백10억원의 올림픽 잉여금으로 경기단체 자립과 청소년생활체육교육을 위한 재정적 기반을 확보했다.1백33개국에서 1만9천여명이 참가한 세계 잼버리대회를 성공리에 개최했다. ▲여성권익신장=88년 여성정책 전담부서인 정무장관실 발족을 계기로 본격적인 여성정책 추진체제를 확립하는등 교육·고용·복지·가정 등 모든 부문에 걸쳐 여성의 「삶의 질」을 괄목할 만큼 향상시켰다. 90년 가족법(민법중 친족·상속편)의 개정으로 남녀평등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으로 여성에 대한 고용확충 기반을 조성했다.
  • 영조의 그림솜씨/박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역사를 통해서 보면 통치자의 성향이 그 문화의 성격을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도처에서 확인할 수 있다.알렉산더나 칭기즈칸 같이 세계를 정복한 영웅들이나 아쇼카나 진시황 같이 제국을 통일한 무단적인 인물들이 나라를 다스릴 때는 상무호법정신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어 자연히 학문과 예술은 그에 종속되는 비운을 맞았었고 당태종이나 당현종 및 조선의 세종대왕이나 영조대왕 같이 학문과 예술을 숭상한 통치자가 다스릴 때는 문운이 크게 일어 획기적인 문화발전이 이루어 졌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그래서 이런 현군의 치세하에서는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역사상 최고 업적을 남겨 서성이니 화성이니 시성이니 하는 칭호를 얻는 이들이 많이 배출되게 마련이다. 소위 초당삼대가라 불리는 구양순,우세남,저수양 같은 대서예가들은 당태종이 길러낸 이들이고 그림에서 남북종화의 시조로 추앙되는 왕유와 이사훈및 시선 이태백,시성 두보는 당현종 성세에 배출된 인물들이다.세종대왕 시대에도 시서화금기 오절로 꼽히던 안평대군 이용을 비롯하여 화원화풍의시조인 현동자 안견과 사대부화풍의 시조인 인재 강희안 등 허다한 예술가들을 배출한다. 이런 대예술가들을 배출하던 당시의 군주들은 그 자신이 학예를 숭상하는 천품을 타고나 이미 학문과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어 그 기량이 대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이 상례이다.당태종이 서예의 대가이었다든가 당현종이 시서에 능하였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우리 세종대왕이 송설체 글씨에 능하고 난죽을 잘쳤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그렇다면 조선 고유색 짙은 진경문화를 주도하여 시성으로 불러야 할 진경시의 대가 차천 이병연(1671∼1751)과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화성 겸재 정선(1676∼1759)을 길러낸 영조대왕(1694∼1776)도 필연 학예의 천품을 타고난 대예술가이었으리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과연 그렇다.이미 왕자시절에 그의 산수인물도는 부왕인 숙종대왕의 극찬을 받을 만큼 가경에 이르러 숙종어제의 제화시가 남아있을 정도이데 겸재의 동문 후배인 동포 김시민(1681∼1747)이 남긴 제사에서 보면 영조는 산수인물 뿐만 아니라 난초 국화 매화 등을즉석에서 휘호하여 도자기의 밑그림으로 쓰게할 만큼 대단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런 임금이었기에 시성 차천과 화성 겸재 및 풍속화의 시조 관아재 조영우(1686∼1761)등을 길러 내었을 터인데 사실 왕자시절에 이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들의 영향을 받아 그 천품을 함양해 간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그 동네는 지금의 청와대 부근이니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해당한다.
  • 화가 장우성씨(이세기의 인물탐구:8)

    ◎시·서·화 도양화삼절의 노인가/인위·조작없는 「무위사상」바탕,독창적 화풍/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 은은하게 표출/정많은 성품.부정엔 단호… 「친일논란」때 미술계풍토 비판도 대나무처럼 곧고 차가운 죽색청한과 물빛처럼 영롱하고 푸르른 수광징벽의 한벽원.이는 월전 장우성화백의 개인미술관 이름이다. 경복궁뒤 사간동 화랑가에서 삼청공원으로 이르는 초입에 위치한 한벽원은 서울 한복판(종로구 팔판동 35)이건만 인적없는 산간에 묻힌 선비의 서숙인양 적요속에 묵향이 감도는 분위기다. 눈부시게 흰 화강암건물과 「한벽원」이란 이름만으로도 주인의 기상과 풍도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나무·대나무·백매와 계수나무 사이사이로 진귀한 옛 석물·석등이 배치되고 뜰한가운데는 일중 김충현의 「한벽원용」,내부벽면은 12지신·광개토대왕 비문·석굴암 관음상에서 탁본해온 석고부조로 장식되어 미술관다운 품위를 한층 높이고 있다. 바로 이곳이 월전의 모든 예술생애가 집약되고 또 앞으로 우리 한국전통미술의 올바른 맥을 보존·육성해나갈 본산이기도 하다. 아다시피 화단의 거봉인 월전은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서·화의 삼절로 동양화 전영역에서 유창탁발의 화업을 이뤄낸 노대가다. 그의 작품은 공자가 그림을 두고 말한 「회사후소」,즉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마음을 깨끗하게 가다듬는다는 후소정신과 인위와 조작이 없는 무위사싱을 바탕으로 하고있다. 월전의 이런 선비기질은 그의 그림에서 보듯 한점의 허세나 과장이 없이 잔잔한 운율이 유운문처럼 번지고 안으로는 응축된 깊은 사유가 은은하게 표출되어 있다. 그가 즐겨 그리는 학과 백로,화훼와 산수는 모든 기교가 배제된 간결 산뜻한 선묘와 담백한 설채,특히 그만의 묵의 묘취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막힌 환희를 안겨준다. ○담백한 선조 일품 월광을 배경으로한 백매가지에는 방금 물오른 새싹을 틔울듯 팽팽한 긴장감이 돋보이고 흰 눈속을 헤쳐서 꺼낸듯한 꽃의 화관은 보석처럼 눈부신 진주빛을 발한다. 마치 신운이 움직이는듯한 절제의 필치로써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장인기질보다는 원로의 정신미를 정밀하게 누리고 펼치는 시기라 할수있다. 1912년 임자생.80의 나이에도 그에게는 「노인」이란 단어가 무색하다. 바르고 건강한 모습에 단정하고 깎듯한 움직임,사물을 꿰뚫는듯한 예지의 눈길은 『글씨나 그림등 예술은 가장 천진한것이 극치』라는 완당의 말대로 그 청정의 눈빛을 지니고 있다.그에게선 어떤 흐트러짐이나 허술한 곳도,만모의 기색도 찾아볼수 없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선 다감하고 정이 깊고 상대방을 포용한다.단지 그것이 마음에 들지않으면 추호의 용서나 양해가 없다.늘 옳은자의 편을 들고 자기 주장을 확실히 한다. 주말에는 골프,커피와 담배,두주불사의 애주가로 몇년전까지만해도 양주 한병을 비운 술실력이나 요즘은 친한 친구들과 어울려 순한 청주나 곡주를 즐긴다. 집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그러나 작업실이 있는 한벽원까지 아침 9시반에 출근해서 하오2시부터 작업대 앞에 선채로 3시간에서 4시간씩 작업에 몰두한다. 내년 가을 호암아트홀이 기획한 그의 화력 60년을 총정리하는 신작준비 때문이다.이는88년 일본 세이브미술관 초대 「한국·국화의 거장 장우성전」이후 5년만의 대작전시회여서 그는 모든 정열을 이곳에 쏟고있다. 그의 화적을 새삼 더듬을 필요는 없겠지만 월전은 18세되던 해인 30년 스승인 이당의 낙청헌에 입문,초기에서 10여년은 사실적 시각에 바탕을 둔 감각적 형태의 극세극채색의 치밀한 묘사에 밀착해왔다.그러다가 해방후 서울대미대에 재직하면서 스승의 회화권에서 벗어나 전통동양화인 수묵화에 정진하여 추상이 곁들여진 힘차고 분방한 용필로 활달한 화면을 추구해나갔다. ○18세때 이당에 사사 그는 경기도 여주의 전통적 유교가문에서 2남5녀중 다섯째,부친(장수영씨)의 나이 30세에 얻은 만득자여서 부모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고 자랐다.「월전」은 어릴때부터 유난히 달을 좋아한 아들을 위해 부친이 손수 지어내린 아호다. 할아버지에게 「동몽선습」「소학」「명심보감」과 「사서삼경」을 배우고 붓글씨를 공부하면서 그림을 시작,그림공부를 위해 상경할 무렵에는 평소 위당 정인보선생과 교분이 두터웠던 부친의 배려로 위당댁에 드나들면서 조선역사를 익혔다. 이당문하에서 운보 김기창,현초 이유태와 나란히 수학한지 2년만인 32년 제11회 선전에서 부서지는 파도와 갈매기를 그린 「해병소견」으로 화단에 등단,41년에 「푸른 전복」으로 총독상,그리고 연이어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두차례 수상하고 44년 화가로서 최고의 영예인 추천작가가 되었다. 이때 그린 「푸른 전복」은 열정적으로 부채춤을 추고난후 호흡을 가다듬는 무녀의 휴식을 섬세하게 묘사한 것으로 우리미술사를 말할때마다 거론되어지는 대표작중의 하나다. 범접하기 힘든 깨끗한 눈매며 전립의 영모,패영의 구슬은 이슬이 방울진듯,푸르른 구군복과 치마단까지 흘러내린 붉은 끈의 선과 색의 대비,공간을 여백으로 설정한 것등은 훗날 월전 문인화와도 일맥 상통한다. 싸늘한 겨울 날씨와 화면을 가득 채운 만월,한천을 가로지르는 기러기떼를 문인화의 무기교와 자연스럽게 절제된 묵선으로 관조한 조형어법은 「종교와도 같은 높은 이념이 함축」되어있다는 평이 뒤따르고 있다. 한치의 흔들림없이 지금도 여전히 화단의 정상을 지키는 월전으로서도 80성상을 돌아보면 흑색반점처럼 지워버리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44년 최고상을 받았을때 총독부의 요청으로 수상자를 대표하여 「답사」한것을 스승과 의논없이 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이당의 미움을 받아 소원했던 일,서울대 미대교수시절 「교수자리」를 탐내는 후배의 이간으로 미대 창설동지이며 당시 학장이던 장발씨와의 긴 오해등,어지러운 세속에 휘말려야했던 곤혹과 환멸이 잊을수 없는 얼룩으로 남아있다.물론 시간이 흘러 밝은 대낮처럼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곤 하지만 꼿꼿하게 앞만보고 살아온 그에겐 자존심에 먹칠당한 슬픈 추억의 장면장면들이다. 문인사대부의 학문과 역량은 익히 알려진 바이고 그의 그림속에 실린 아름다운 시구외에도 그는 「화맥인맥」등 신문에 자주 글을 발표한 미문으로도 유명하다. ○문장력도 뛰어나 그 한예로 83년봄 한 미술계간지가 다룬 「한국미술의 일제식민잔재를 청산하는 길」이란 특집기사로 인한 「친일 화가파동」때 그는 대단한 문장실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같은해 4월21일자 모 두 일간지 광고를 통해 발표한 「불신과 불화를 조장하는 저의를 묻는다」는 이 성명서는 잡지에 게재한 내용을 조목조목 열거하면서 「일제36년과 해방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미술가는 친일파이며 모든 미술작품은 일본의 식민지 잔재인양 매도하고 미술교육도 잘못되어 후진들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했다는 기사내용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망설」임을 전제,「작고작가와 현역 미술인 대부분을 부관참시식으로 난도질」하면서 과거 민족수난의 불행했던 역사는 외면한채 「민족예술창조라는 허구에찬 궤변」으로 사회여론을 오도,「이 방약무인한 오만을 나무라기전에 그들은 일제 강점하에서 무엇을 하고 살아왔으며 소위미술평론가의 자격은 어디에서 취득했고 누가 인정했던가 묻고싶다」는 실랄한 항변과 규탄의 내용이 그것이다. 이 글을 기초한 사람이 바로 월전으로 이 사건은 화단의 경종이 되어 서로 자숙하고 침착하게 자기 성찰하는 기회로 마무리 되었다. 월전은 이처럼 깐깐하다.굳이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지만 「화단의 누」라는 차원에서 가차없이 솔선하고 나섰다.그의 작업실은 그의 성품만큼이나 정갈하고 청결하여 난초의 홍자색은 싱그럽고 고고하기만 하다.호불호를 선명하게 가려 「한다」고 마음먹은 것은 일사불란하게 실천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이번 미술관도 88년 구상·계획하여 그가 몸담았던 서울대 미대와 홍대미대의 제자·화우들을 주축으로 즉시 월전미술문화재단을 설립,89년 미술관 착공,91년 3월개관 2주일전 부설 동양미술연구소 제1회 수강생 20명을 배출했다. 까다로운 성품과는 달리 각계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은 수화 김환기,영운 김용진,의재 허백련,소전 손재형과 친형제같은 우의를 다졌고 대한교육보험의 신용호회장과 황수영 유경채 이대원 김원용 특히 일중과의 우정은 난향과도 같다. 가족은 부인 유리정여사(73)와 1남3녀.장녀인 정란씨가 동양미술사를 전공했다.그의 만년의 예술은 「붓가는대로 그린다」는 명경지수의 염과 자연에 돌아가 자유하는 마음으로 우주를 넘나드는 광대무변의 세계를 구사하고 있다. 이제 월전화는 그의 생을 황홀하게 장식하기 위한 무르익은 화경에 접어들어 그 마지막 붓끝까지도 불후의 명작을 그리게 될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다. 아산 현충사·정읍 충렬사 봉안 이충무공 영정,세종대왕 기념관 벽화 「집현전학사도」 낙성대봉안 강한찬장군·김경신장군·윤봉길의사·정포은선생·문익참선생·김종직선생·조식선생·정기용박사·유관순열사등 영정 제작.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1천호)」,고려대벽화 「군려도」크리스트상화(63빌딩)제작. □연보 ▲1912년6월 경기도 이주출생 ▲30년 이당 김은호 「낙청헌」입문 ▲32’ 제11회 선전 「해병소견」입선이후 계속 출품 ▲33’ 육교 한어학원 졸업 ▲41∼44’ 「푸른 전복」등 연4회 특선·추천작가 ▲46∼61’ 서울대 미대 교수 ▲49’ 로마 국제미전 「성모와 순교복자」3부작 출품(바티칸시 수장) ▲50’ 제1회 개인전(동화백화점 미술관) ▲63’ 도미,미국무성 화랑 개인전 ▲64’ 워싱턴 스퀘어 화랑주최 국제미술제 한국대표초대출품 ▲65’ 워싱턴에 동양예술학교 설립 ▲71’ 홍대 미대 교수 ▲75’ 유럽7개국 미술계시찰 ▲80’ 현대화랑서 도불 기념전 ▲〃 프랑스 정부초대 파리세루뉘시 미술관 개인전 「홍매」「석」등 프랑스문화성소장 ▲81’ 월전화집(지식산업사간) ▲82’ 독일 쾰른 시립미술관 초대 개인전 ▲85’ 국립 현대미술관 원로작가 초대전 ▲88’ 도쿄 아트포럼에서 「한국 국화의 거장 장우성전」개최 ▲〃 동산방화랑서 개인전 ▲92’ 오늘의 작가 11인전(진화랑) 국전심사위원·운영위원역임 현 예술원회원 서울특별시 문화상·예술원상·5·16민주상 수상.
  • 마광수피고 1년 구형

    서울지검 특수2부 김진태검사는 17일 소설 「즐거운 사라」의 작품내용과 관련,음란문서 제조및 배포 혐의로 구속기소된 마광수피고인(41)과 청하출판사 대표 장석주피고인(37)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각각 징역 1년씩을 구형했다. 서울형사지법 석호철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논고문을 통해 『문학수단으로서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급격한 가치관의 혼란속에서 선정·상업주의적 묘사로 청소년과 건전한 사회윤리를 해치는 외설까지 법이 보호할 가치는 없다』고 전제한뒤 『포르노영화를 문자로 옮겨놓은 것과 다름없는 음란물을 무책임하게 내놓아 사회의 합리적 가치·규범을 파괴하는 피고인들에게 법이 정한 최고형으로 단죄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마피고인은 최후진술에서 『욕구분출·개방화 시대에서 금욕윤리에 억압·굴절된 성의식을 작품을 통해 해부해 보려 했다』면서 『그러나 우리문화풍토가 수용하지 못할 급진적 표현으로 사회에 충격을 끼친데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 꽃과 화가들/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굄돌)

    화가란 미를 표현해내는데 특별한 재능을 타고나 그 일에 전문적으로 종사하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따라서 이들은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적 감각이 남보다 예민해야 하고 그 미감을 가시화하는 현상적 요령이 남보다 뛰어나야 한다. 그래서 예부터 명화가들은 특히 꽃을 좋아하였으니 단원 김홍도(17 45∼18 15)가 하루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그림값으로 받는 삼천전중에서 2천전으로 매화분 하나를 사고 팔백전으로 술을 산 후에 마음에 맞는 친구를 불러 매화음을 즐긴 다음 겨우 이백전으로 쌀과 나무를 샀다고 하는 얘기가 단적으로 이를 증명해 준다. 단원 뿐만 아니다.조선 초기 조선사대부화풍을 정립해 놓은 인재 강희안(14 18∼14 65)도 꽃을 지극히 좋아하여 왕의 친외척들을 관장하는 돈령부의 지돈령부사 자리에 있으면서 오직 꽃기르는 데만 정성을 쏟아 돈령부 정원에는 없는 꽃이 없었다 한다.세종대왕의 제질이기도 하였던 그는 집현전학자로 학문도 매우 깊었기 때문에 그 꽃기르는 법을 고금 양화보에서 두루 섭렵하고 그 자신이터득한 방법도 적지 않아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꽃을 잘 길러 낸 결과이었다. 인재는 이렇게 꽃기르는 묘이에 통달하자 이를 뒷날 꽃 좋아하는 이들을 위해 기록으로 남겼으니 그것이 「양화소록」이다.이 「양화소록」의 서문에서 인재가 밝힌 양화요령은 단지 「전천순성」 넉자로 요약되는 바 천성을 온전하게 따라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미의 표출은 그런 요령을 터득하고 나서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간명직절하게 지적한 김언이다. 그래서 그랬던지 이후 역대 명화가들도 꽃기르기를 좋아하지 않은 이들이 없었으니 겸재 정선(1676∼1759)은 그가 그린 자신의 생활모습에서 모란분을 감상하는 정경을 묘사하였고 관아재 조영우(1686∼1761)은 자신의 집을 소개한 「택기」에서 뜰안에 소나무 매화나무 오동나무 대나무와 모란 작약 구기자 국화 원추리 접시꽃등 오륙십종을 심었다 하였고 청장관 이덕무(1741∼1793)가 현재 심사정(1707∼1769)을 지금의 영천인 길마재(안현) 밑의 그 댁으로 찾아갔을 때 뜰안에 기화요초가 가득한 데 스스로 물을 주어가꾸고 있었다 한다. 꽃을 보고도 무심히 지나친다거나 자기집 뜰을 돈주고 남에게 가꾸게 하는 화가가 있다면 스스로 자신의 자질을 의심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세밑 화랑가 3가지 이색전 눈길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이시대,우리의 건축전/19C이후 독특한 사진미학 소개/「프랑스」/TV 등 대중매체 활용 문명비판/「압구정」/건축의 문화적 한계성극복 탐색/「이시대」 평소 접하기 힘든 색다른 전시회 3가지가 연말 화랑가를 장식,문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12∼30일),갤러리아미술관의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12∼30일),동숭동 인공갤러리에서 열리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12∼24일). 순수미술에서 소외돼있는 사진과 건축,그리고 한가지 장르를 꼬집기 힘든 여러 장르를 혼합전으로 구성한 이들 세 전시는 상업성이 앞선 화랑문화에 염증난 관객들에게는 청량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국립현대미술관과 프랑스문화원이 공동 주최한 「프랑스 사진의 어제와 오늘전」은 세계사진사의 초기인 19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초상화 풍경 누드 의상 삽화 및 건축사진 등을 망라했다.마네에서 보들레르에 이르는유명예술가와 명사들의 모습을 필름에 담은 최초의 사진가 펠릭스 나다르의 작품부터 70년대 파리의 컬러사진에 이르기까지 사진작가 13명의 작품 2백20점이 소개되고 있다. 작가들은 피카소와 막스 에른스트,이브 몽탕이나 에디트 피아프와 같은 화려한 연예계의 스타들을 독특한 사진미학으로 화면위에 생생하게 떠올렸다.또 파리의 옛모습,히피축제,대중오락의 장면들이 즐겁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이 전시는 시대변천에 따라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변화돼가는 빛과 색의 절묘한 관계,그리고 한 문명의 이기가 어떻게 사람과 기계의 눈을 결합해 오묘한 영상을 낳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서울 압구정동거리 중심부에 있는 갤러리아미술관에서 열린 「압구정동­유토피아/디스토피아전」은 흔히 「욕망의 해방구」로 불리는 압구정동의 문화풍속도를 조명하고 있다.화가 사진작가 건축가 평론가 시인 비디오아티스트 디자이너등 여러분야 예술인들이 함께 준비한 이 행사는 새로운 개념의 다장르의 문화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형태를 취했다. 흥미위주의 시각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주목돼온 압구정동문화를 본격적 문화분석의 대상으로 삼은 최초의 자리로 다양한 방식의 전시작 1백여점이 소개되고 있다.김복진 김환영 박불똥 서숙진 신지철등 화가와 건축가 정기용,디자이너 박혜준등 12명이 출품한 이 작품들은 대부분 TV와 광고등의 대중매체를 메시지 전달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압구정동문화를 문명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하고 있는 이들은 물질로서의 미술품이나 권위와 신화에 의존하는 미술개념을 철저히 거부한다.이들은 곧 일반대중의 문화적 욕구가 상업적 이미지와 일반대중 매체로 채워지고 있음을 압구정동의 문화해부를 통해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동숭동의 분위기있는 전시공간인 인공갤러리를 장식하고 있는 「이 시대,우리의 건축전」은 국내 건축인들의 모임인 「4·3그룹」의 회원전이다.지난90년 결성된 「4·3그룹」은 30대에서 40대에 이르는 14명의 건축가들이 20세기 마지막 10년의 한국현대건축을 주목하기 위해 모인 젊고 건강한 건축인그룹.출신학교와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구분없이 우리시대의 문화와 건축,사회상황에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도하기위해 모인 이들은 매달 세미나를 갖고 토론으로 건축의 문화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제3의 길을 탐색해 왔다.그룹결성이후 회원들의 첫 작품발표 자리가 되는 이번 전시는 「한국의 건축가가 규방의 건축에서 벗어나 현대건축의 그 어떤 문제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중요한 기점으로 삼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화랑가/풍성한 전시회로 세밑 장식/독자적 화풍 박수룡·이청운씨 등

    ◎30·40대 대표작가 초대전 잇따라/극심한 불황·소득세 한파딛고 「겨울 기지개」 활짝 국내유수의 상업화랑들이 개인초대전을 통해 올해 마지막 전시회를 화려하게 꾸미고 있다. 이들 전시회는 특히 올 한해내내 극심한 불황과 양도소득세 시행문제를 놓고 꽁꽁 얼어붙었던 상업화랑들에게 훈기를 불어넣을 전망.왜냐하면 최근 양도소득세 3년유예의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화됨에 따라 해빙기를 기대하게 된데다 내놓은 작품들이 야심의 카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 전시들은 선화랑의 「박수룡전」(25∼12월5일),갤러리서목의 「전준엽전」(27∼12월16일),샘터화랑의 「오세열·안토니카마라사전」(25∼12월4일),국제화랑의 「유형택조각전」(12월8∼17일). 이밖에 시공화랑의 「진영선작품전」(20∼12월9일),예화랑의 「이청운작품」(25∼12월4일),표화랑의 「최쌍중전」(25∼12월5일)등도 기대를 모으고있다.화단내에서 입김이 센 큰 화랑들의 초대를 받은 이 작가들은 저마다 한가지씩 장기를 갖고 이미 미술팬들의 대중성과 상업성을 확보하고있는 인물들이다. 박수룡 전준엽 오세열씨등이 비교적 젊은 30대이며,유형택 진영선 이청운 최쌍중씨는 작품이 한창 무르익은 40대들.지방(전남 해남)출신 작가로 중앙화단 진입을 통해 성과를 거둔 박수용씨는 최근 2∼3년사이에 인기작가로 부쩍 컸다.이유를 들라면 작가적 성실도를 으뜸으로 칠수있는데 대담하고 원시적이 화법을 구사하면서 스케일 큰 캔버스를 쏟아내왔다. 전준엽씨는 80년대 한때 민중미술운동에 참가했으나 90년대에 들어선 다소 방향을 바꿔 작가생활과 함께 미술기자직을 병행하고 있다.지난해에는 「구상전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남다른 역량을 평가받기도 한 그는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해왔다.이번에 발표한 신작들은 서구문명이 가져다준 갈등구조속에서 우리가 되찾아야할 문화자장을 주술적 분위기의 화면으로 창출해냈다. 스페인작가 카마라사와 2인전을 갖는 오세열씨는 아동화적인 순진무구함과 원시성의 작업세계를 펼친다.흉한 얼굴이나 기형적 신체를 형상화하면서도 상당히 치밀하게 계산된 구상성을 바탕으로 작가의 맑은의식세계를 화면위에 투영시키고 있다.인도트리엔탈레,.FIAC,카뉴국제회화제등에 참가,국제성도 어느정도 획득한 작가이기도 하다. 조각가 유형택씨는 이탈리아 카라라에서의 6년작업을 마치고 지난 90년 귀국한 중견.대리석과 화강함위에 단순화면서도 절제된 형상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동양고유의 정신을 담아내고 있다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진영선씨는 해독하기 힘든 기초와 상징의 화면으로 역사속에 흩어져 있는 초라한 인간삶의 편린들을 실어내온 서양화단의 중진여류.중견 서양화가 이청운씨는 지난87년 국제적으로 권위있는 프랑스의 살롱 도톤느 미술상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 대상을 수상한 바있다.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다고 평을 듣는 그는 언어표현이 수월치 못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한 가운데 예술가적 집념으로 창작활동에만 전념하는 특출한 작가.그래서 근작들은 광기를 느낄만큼 색깔이 진하다.이야기의 파편들이 모여 큰 이야기체계를 이뤄내는 그림들은 바람과 창문,돛배와 침대등의 요소가 항상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구상화단에서는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는 최쌍중씨는 거칠고 불명확한 터치위에 작가적 메시지를 전한다.따라서 관객은 그림의 주제나 본질속으로 단번에 빨려들어갈수 밖에 없는 강렬한 화면을 만나게 된다.이번 3년만의 개인전에서 밤9시까지 전시장을 지키며 팬들을 만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
  • 한국문학 번역작업 활발/노벨문학상에 도전한다

    ◎문화부·문진원·펜클럽 등 지원 확대/체계적 소개위한 민간연구소 속속 개원/현지 우수번역인력 양성위한 대책 절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고 나면 「우리 문학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단골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번역의 문제.내년부터 추진할 예정인 문화부의 번역사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방법이 가시화되고 민간차원의 번역연구소들이 잇따라 생겨 근원적인 대책마련 움직임으로 평가되고 있다. 문화부는 현재 대한민국 문학상 가운데 한부문으로 포함돼있는 번역문학상과는 별개로 「번역문학상」을 제정,높은 상금을 지급함으로써 번역문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을 구상중이다.또 한국문화예술진흥원도 한국문학 번역출판을 위한 내년도 예산안을 올해의 1억2천여만원보다 많은 1억5천만원으로 잡아놓고있다. 한편 번역을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조직적이고 과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연세대 김병옥교수를 중심으로 지난 7월말 설립된 재단법인 한독문학번역연구소는 지난 17일 홍익대에서 「한독 문화교류와번역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학술세미나를 열었다.이에앞서 연세대에는 어문학과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번역문학연구소」(소장 송준호교수)가 지난 3월 설립돼 본격적인 활동을 눈앞에 두고 있다.한독문학번역연구소는 문학뿐 아니라 인문·사회과학분야까지 참여폭을 확대했다. 우리나라 번역의 질적 향상을 위해서는 번역관련문헌의 수집은 물론 번역학의 개발과 번역문학연구의 체계화가 요구된다.이를 토대로 한 번역대상의 엄정한 선정과 번역의 시행,번역결과에 대해 공정하게 비판할 수 있는 문화풍토의 조성이 필수적이라는데 지적도 나와있다.이연구소는 앞으로 번역관계 연구발표회및 세미나 개최,한독문학의 번역과 출간,번역관계 학술지발행,번역연구비·장학금 지급,번역작품에 대한 포상등을 추진할 계획을 세워놓았다. 연세대 번역문학연구소는 번역상의 오류를 줄이기 위해 연구원들간의 공동작업을 추진하고있다.즉 한 작품을 여러 사람이 번갈아가며 읽으면서 해당 언어의 가장 적절한 표현법등을 찾아내 개인작업에서 초래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방법을 채택키로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번역사업을 지원·기획하고 있는 기관은 문예진흥원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국제 팬클럽 한국본부 정도.이 가운데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고전작품과 학술에 초점을 두고 있다.문예진흥원은 심의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장기적인 계획아래 번역대상 작품을 선정,체계적으로 추진한다기 보다는 번역을 한 사람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이들 가운데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방법으로 운영됐다. 유네스코의 한 관계자는 양질의 현지 번역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는 외국대학의 한국학과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문학작품뿐 아니라 한국작품에 대한 평론및 연구논문에 대해서도 지원을 해 외국학계에 한국문학을 알리는 기회를 넓혀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문예진흥원의 한 관계자도 『앞으로는 심의위원회를 통해 장기적인 계획아래 번역대상 작품을 선정하고 이에 따라 출판사와 번역자도 결정하는 방법으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 대학생들 「생활문화한마당」/「젊음의 거리」 대학로를 살리자

    ◎31일 퇴폐추방,전통문화 알리기행사 대학생들이 대학로 문화풍토 쇄신에 나섰다.원래의 건설의도와는 달리 퇴폐·위험지역화된 대학로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대학생들에 의해 시도된다. 서울에 위치한 각 대학 학생복지위원회 연합체인 서울지역 학생(인권)복지위원회연합(회장 황근남)은 오는 31일 하오2시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대학로 생활문화 한마당」을 개최한다.서울지역 학생복지위원회연합은 학생자치기구로서 이제까지 한가위 귀향사업,대학생활정보지 발간,학교별 자원재활용사업 등을 성공적으로 펼쳐왔다.대학로의 문화풍토를 쇄신,건강한 청소년 생활문화를 조성하겠다는 것이 이번 행사를 마련한 이들의 취지.이와함께 우리의 좋은 전통문화를 현상황에 맞게 계승·확산시키고 현재 전국민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자원재활용운동을 적극 홍보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취지에서 길놀이 전통혼례식 사물놀이 민족무예시범 등 각종 공연과 전통마당 우리마당 환경마당 우리물품마당 등 상설행사가 다채롭게 기획됐다.전통마당에서는 전통차시음회,전통혼례식 등이 열리며 우리마당에서는 우리옷 전시회및 입어보기,우리밀 살리기운동 등의 행사가 펼쳐진다.환경마당에서는 공해추방사진전시회와 우유곽 찢기대회,깡통 찌그러뜨리기대회 등이 마련된다.이밖에 우리물품마당에선 북한술및 민속주 등 우리술과 각종 우리 물품이 소개·판매될 예정이다. 이번 대학로 행사에는 건국대 동국대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 중앙대 한성대등 서울지역 대학을 거의 망라한 34개 대학이 참가한다.학생복지위원회연합은 앞으로 이같은 행사를 사회단체와도 연계해나갈 방침이다. 이번 행사의 홍보를 맡은 동국대 학생복지위원장 권혁선씨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외래문화를 덜 찾고 우리것을 되살리는 운동을 시민들과 함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독특한 화풍” 외국작가들 잇단 작품전

    ◎카스트로 4형제·브랑코 바흐넥·브레슬라브채프/국제명성 걸맞는 탁월한 기량 돋보여 이채로운 외국작가 작품전이 3곳의 화랑에서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끈다.이들 작가들은 평소 널리 소개되지 않은 나라의 독특한 화풍을 지닌 작가들이어서 가을화단에 신선한 맛을 풍겨주었다. 그 주인공들은 멕시코 현대화가 카스트로4형제,크로아티아(구유고슬라비아)작가 브랑코 바흐넥,구소련작가 브레슬라브채프등.6∼18일 서울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카스트로4형제는 멕시코 현대미술의 선두에 서서 국제적으로도 평가를 받고있다.멕시코 특유의 근대화양식을 발전적으로 계승하고있는 이들은 저마다가 독자적으로 멕시코미술의 전통성을 표출하고 있다. 예화랑에서 선보이고 있는 바흐넥은 크로아티아의 소박파미술(나이브아트)에서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거장.작품소재도 실내의 여인을 택하면서 여성 특유의 「관능성과 연약함」을 잘 조화시켰다.그리고 신비스런 색조로 화면을 살려내 충만한 여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14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첫 서울전에는 꿈결같은 분위기의 여인상 32점(유화)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유일의 구소련미술 전문화랑인 소유즈갤러리가 특별초대한 브레슬라브채프는 러시아의 작가동맹회원인 원로수채화가.자연의 묘사와 기념건축 창작활동등에서 수채화로 탁월한 기량을 발휘하여 수많은 러시아훈장과 포상을 받았다.그의 작품은 미국 독일 프랑스등의 박물관에도 많이 소장돼 있으며 러시아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역사적 예술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계속된다.
  • 조선시대회화전/고서화감상전/고미술명품전 “풍성”

    ◎조선/정선·이등 등의 진품90점 공개/고서/퇴계·율곡서간문·민화등 다채/당대의 화풍·변천사 본격 조명기회 하한기 화랑가에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높은 고미술명품전이 인사동의 두 화랑에서 마련된다. 대림화랑이 15∼25일에 펼치는 「조선시대회화전」과 학고재가 매년 여름에 꾸미는 특별기획 「고서화감상전」(23일∼8월31일)이 그것들로 고서화에 관한 한 오랜 경륜과 식견이 남다른 것으로 알려진 두 화랑대표가 자신있게 내놓는 전시회다. 이들 전시회는 양도소득세법 시행을 앞두고 고미술품들이 개인 수장고에 묻혀 그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처럼 마련된 명품전이어서 고미술애호가들의 갈증을 풀어줄 것같다. 대림화랑의 「조선시대회화전」은 화랑대표 임명석씨가 10년전부터 추진해 오다가 비로소 결실을 맺은 대규모 기획전이다. 조선시대 명서화가들의 미공개작품을 조선왕조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망라하는 것으로 90점이 공개된다. 이중 왕실출신의 화가 이징의 「수묵화조도」,은호 이함의 「쌍응도」,동국진경산수의 대가로 평가되는 정선의 「해주허정도」,조희용의 「백매도」,장승업의 「영모절지도」,김규진의 「장생오우도」등 대부분이 미공개 진품들이다. 미술사가 안휘준교수(서울대 고고미술사학)와 허영환교수(성신여대 동양미술사)의 고증을 거친 이 기획전은 당대의 화풍과 변천사를 학문적 토대위에서 본격적으로 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다. 대림화랑은 또 이 전시회와 함께 태조원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시대 화가들의 교유기,작품일지등을 다룬 70쪽분량의 연표와 전시작품의 해설과 원색도판을 실은 2백10쪽의 대형화집 2천부를 발간했다. 학고재의 고서화 감상전은 「여름미술관­품위있는 글씨,소담한 옛그림」이란 제목으로 마련되는데 방학을 맞은 학생들을 특별히 겨냥해서 꾸며진다. 어른은 물론 학생들도 관심있게 고미술을 접하게 하자는 취지아래 학고재대표 우찬규씨는 교훈적인 글씨와 재미있는 내용의 민화들을 주로 장만했다. 출품작은 여섯부류로 구성되어 조선중기에서 구한말,근대에 이르는 화가들의 그림과 조선후기 서예인들의 서예작품과 조선시대 명현 대신 문인들의 간찰,조선후기의 민화,무낙관그림,청나라의 서화등이 망라된다. 1백36점의 출품작중에는 퇴계와 율곡의 서간문에서부터 김옥균 박영효등의 작품,근대6대가인 청전,의재등의 작품,중국화가 장대천등의 작품들이 고루 있다. 옛정취 물씬 풍기는 품위어린 글씨와 소담한 그림속에서 모처럼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고 박봉수화백 26일부터 대규모 회고전

    ◎새달 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서 마련/“시대앞선 예술감각” 새롭게 평가/시기별 화풍대표작 50여점 전시 한국화가 지홍 박봉수화백.1년전 75세의 나이로 숨진 이 작가는 시대를 앞서가는 화풍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오늘,이 작가에 대한 평가와 재조명작업이 일부 미술평론가 윤범모,김진송씨등 미술계 인사들에 의해 새롭게 이뤄지면서 『상상을 초월하는 예술적 업적을 남겼다』는 찬사속에 대대적인 회고전이 준비되고 있다. 오는 26일부터 7월9일까지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마련되는 그의 1주기 회고전에는 유족이 소장해온 1천여점의 유작가운데 시대별 화풍을 대표하는 대작 50여점이 전시된다. 평론과 도판 2백50여점이 컬러화보로 담긴 두터운 화집도 발간되며,전시기간중에는 유족과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감정위원회가 시중에 크게 나도는 박화백의 가짜그림을 가리기 위해 작품감정을 해주고 작품보증서를 무료로 내줄 예정이기도 하다. 이같은 감정행사는 유례없는 일로 최근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멧돼지 잉어 등을 그린 박화백의 초기사실작품의 가짜가 수백점 나돌고 있는데 따라 취해지는 것이다. 박화백의 가족을 통해 최근 1천여점의 유작을 접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그의 시대를 앞서간 예술감각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그리고 윤씨는 이번 재조명작업에 앞장서고 있다. 사후에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박화백은 1916년 경주에서 태어났으며 9세무렵부터 뛰어난 그림을 그려 신동이란 얘기를 들었다.15세에 일본인 교장선생의 추천으로 일본유학의 길에 오르고,17세에 일본 수채화전에 입선한 것을 계기로 공식적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1934년 조선전람회에 입선하고 그 이듬해 중국의 북경미술학원에서 미술수업을 받기 시작했으며 1937년 귀국,금강산에 입산해 3년간 사찰을 돌며 불상과 탱화제작에 전념했다. 이때부터 토속적이고 원시주술적인 내용의 작품과 실험성 있는 콜라주기법의 표현,문자와 인체를 소재로한 작품들을 제작하는데 이는 고 이응로화백의 문자도보다도 앞선 것이어서 당시엔 그를 보고 『약간 돌았다』는 말까지 했다. 1959년 미국의 화랑초대로 발예모초대전,피렌체국제전 등에 출품하며 국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나 국내 화단에서는 방랑벽을 지닌 국외자 신세를 면치못했다. 1970년이후 일본 아프리카 유럽등 세계 각국에서 스케치여행을 하며 프랑스미술협회(ADAGP)의 정회원이 됐다.국내작가로는 이응로 이항성화백과 박화백 단3명만이 정회원이었고 그중에서도 국내거주자로는 유일했다. 파리예술원회원·파리조형예술작가보호협회회장 등의 직함이 시사하듯 그는 외국에서 크게 인정을 받았고 생활도 외국에서 팔리는 그림으로 꾸려갔다.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한 평론가는 『지홍은 전형적인 수묵산수화나 채색화훼도의 세계로부터 분방한 자세의 실험정신에 이르기까지 늘 출렁거리는 일생을 살다갔다』면서 『형식이나 재료의 다양함뿐 아니라 즐겨 다루는 내용이나 주제도 참으로 변화무쌍하다』고 평했다. 구도의 행각승처럼 노년에도 청년미술학도같은 열정으로 실험정신을 구가했던 지홍은 지난해 더운 여름날 병상에서 제작하던 대작 「태풍」을 절필작으로 남기고 예술인생을 마감했다.
  • 국회개원도 협상해야 하는가(사설)

    국회의원은 선출됐으나 국회는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14대국회는 한 정당의 당략에 의해 산적한 정치현안의 논의는 고사하고 원구성조차 못한채 새로 뽑힌 선량들은 국회외곽에서 서성거리고 있다.민주당은 지방자치 단체장선거 실시에 관한 자신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한 국회문은 열 수 없다며 국회밖에서 선거운동하듯 정치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우리의 현상황에서 정치권의 위력과 민주화의 당위성에 이의를 제기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우리는 지난 4년간 민주화 도정의 많은 전환기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화 작업만은 차질 없이 이행돼 왔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또한 없으리라 믿는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문제는 노태우대통령의 연두회견에서 「경제와 민주주의 두가지를 다함께 살려나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단체장 선거의 연기」를 제의,14대 국회에서 새로운 선거시기를 논의·결정해 주도록 요청했었다.우리는 선거를 금년에도 이미 두차례나 치렀다.한국적 정치문화풍토에서 제아무리 법규를 들먹이고 개선을 부르짖어도 먹고마시고 돈뿌리고 사회기강이 흔들리는 한국적 선거양상을 하루아침에 고칠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지난 14대의원 선거에서 선관위법상 선거비용 1억1천만원이내를 쓰고 당선된 사람은 가장 가난한 운동권출신도 스스로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이것이 우리 정치 현실이요 선거풍토다.그런 와중에 우리는 지금 연말의 대통령선거,소위 「대권」경쟁이라는 미룰수 없는 홍역을 눈앞에 두고 벌써부터 사회 각계가 술렁거리고 있는터에 단체장 선거까지를 「따로든」「동시든」치러야 한다는 것은 현재의 경제사회 현실로 보아 무리가 아닐수 없다는 점에 대다수 국민이 호응해 왔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물론 이같은 바람도 민주화라는 정치논리에 따라 변할 수는 있다.그러나 우리의 경제,사회현실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민주적 절차이행이라는 단순논리로 극심한 폐해를 예견하면서도 무엇이든 실행해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책임있는 정치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민주주의 원리는 그 자체가 완벽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또한그 원리는 삶의 편의를 초월할 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논란의 초점이 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법 규정이 이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수 없다.그러나 현상황을 타개하는 1차적인 접근은 우선 국회가 열려 여야가 모두 참석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법질서를 확립할수 있도록 타협과 협상의 묘를 살려나가야 한다.자기집단이나 자기당의 이해에 반하면 국회 자체를 보이콧하는 처사는 결코 사려깊은 정치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지나치게 「대권」쟁취라는 전략에 모든 것을 연관시켜 민주주의 토양이나 그에 따르는 엄청난 부작용,사회 경제적인 현실을 고려치 않고 「민주화」라는 당위성에 매달리다 보면 무리가 따를수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민주적인 합의 절차를 도외시 한채 자기 집단의 당위성만을 밖에 나와 소리높이 외치기 보다는 국회라는 국민이 마련해준 토론장에 모든 선량이 나와 현안에 대한 진지한 토의를 거쳐 더 이상의 법질서에 어긋나는 사태가 없도록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 인물평가/이용성 중소기업은행장(굄돌)

    최근 역사상 인물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해석이 나오고 있다.불후의 문화적 업적과 훌륭한 인품으로 존경받던 인물이 친일행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또 한편 공산주의 활동에 대한 전력시비가 일고 있는 사람도 있다.반대로 납북이 월북으로 오인됐던 사례도 꽤 있는 것 같다. 시대가 흐른다고 하여 한 사람의 역사적 생애와 진실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닐진대 이와같이 후대의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그 사람의 드러나지 않았던 생애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기 때문일 것이다.말하자면 그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꼭 시대적 상황등에 의해 평가자의 판단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므로 정작 시대와 역사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들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 자신일지도 모를 일이다. 한 인간의 절절한 삶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나 천착은 없고 평가만 무성했던 우리의 문화풍토에 대해 자성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다.역사적 인물에 대한 올바른 진실규명이 미흡할 때에 그 사람의 생애가 신화나 전설처럼 미화될 수도 있고,반대로 오해로 매도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목도해 왔다.실제로 전장에서 희생당한 사람의 숫자보다 무지와 오해로 인한 희생자의 수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도 같다. 우리는 이제 근대화과정의 한 획을 긋고 선진사회로 나아가는 길목에 서 있다고 한다.지금은 근대화의 험난한 길을 걸어왔던 선배들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과 종합적인 연구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어느 한 부분의 피상적인 과오만을 확대하여 다른 공적을 모두 무시해 버린다든가 또는 가시적인 업적만 부풀리고 윤이적인 과정은 눈감아 버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렇게 될 때에 납북인사가 월북인사로 둔감되고,희대의 기업가가 부도덕한 자본가로 오인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그러한 오해와 오인을 되풀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역사 앞에 대죄를 짓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필진이 바뀝니다 6월의 필진이 오승우(화가·목우회장) 윤시향(원광대교수·독문학) 이용성(중소기업은행장) 김준철(청주대총장) 이승렬씨(본사 수석편집위원)로 바뀝니다.
  • 화랑가 활력소/중진화가들 전시회 풍성

    ◎변시지씨,두곳서 제주풍화 발표/김기혁씨도 불화 120점 선보여/황요엽·정하경씨,은둔 깨고 대작 출품 평소 작품발표가 듬하던 중진화가들의 대규모 개인전이 잇따라 열려 극심한 불황에 빠져있는 화랑가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올해들어 화랑가는 4개월여동안 외국미술위주의 전시들로 장식됐거나 젊은 작가들의 3∼4인 그룹전이 유행한반면 굵직한 화랑들은 불황에 몸을 사려 무게있는 초대전이나 기획전개최를 뒤로 미뤄온 터여서 이들 중진작가초대전은 「점잖은 그림」을 즐기는 올드 팬들에게 모처럼 감상구미가 당기는 전시회가 되고 있다. 오랜 공백끝에 전시회를 갖는 작가들은 우성 변시지(66),우산 황용엽(61),남윤 김기혁(55),정하경씨(50) 등 4명. 제주에 작업의 터전을 굳히고 있는 변시지씨는 25일부터 5월16일까지 예맥화랑 인사동전시실과 소격동전시실 두곳에서 작품을 발표한다. 인사동에 본점을 둔 예맥화랑이 화랑운영에도 프렌차이즈방식을 도입,첫 지점으로 문을 연 소격동전시실 개관기념으로 이 화랑의 전속작가 변씨의 작품을 내놓은 것. 청소년기를 일본에서 보내며 미술수업을 한후 지난 57년 귀국하여 한국 고유미의 표출에 심혈을 기울여온 변씨는 자연주의에 바탕한 실경화작업을 추구하는 작가.젊은 시절,김인승 손응성 장리석씨 등과 「비원파」로 활약한 인물로 75년이후 그의 화폭에는 큰 변화가 일어 수묵조의 흑색의 필선과 특유의 감필 및 생략기법으로 독창적 화풍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황토빛위에 압축된 필선으로 제주의 풍경들을 화려하게 때로는 적막감짙게 담아낸 서정성 높은 제주풍화 50점이 발표되고 있다. 제1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작가인 황용엽씨는 5월12일부터 25일까지 국제화랑에서 초대전을 펼친다. 2년만에 개인전을 갖는 황씨는 미발표 근작 40여점을 선보이는데 소품부터 대작(1백50호)까지 골고루 출품한다. 그룹전 등에 별로 참가하지않은 황씨는 창작욕넘친 노년의 결실을 이번 개인전을 통해 과시할 예정.그는 30년이상 일관되게 「인간」을 모티브로 한 작품제작에 임해왔으며 화단의 유행적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실한 구상적 화면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그는 이번 근작들에서 과거 화면에 등장하던 절망적 한계상황을 되도록 배제하고 밝고 맑은 느낌의 삶을 관조하는 작가정신을 표출해보인다. 특히 향수에 젖은채 자연의 풍경과 동화된 인간들의 모습이 작가특유의 선묘로 그려지고 있다. 서울갤러리에서 28일부터 5월3일까지 전시를 갖는 김기혁씨는 「한국불교설화화전」이란 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본래 영문학자로서 고려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내학문풍토에 대한 개인적 거리감을 버리지 못해 학자의 길을 스스로 포기한 김씨는 「그림」에 제2의 인생을 걸고 있다. 15년전부터 동양화에 전념하며 특히 불교설화의 형상화에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온 그는 지난해 2월 프랑스 파리중심부에 있는 대전시장 글랑팔레에서 열린 프랑스전국조형미술협회창립1백주년 기념전에 특별초대국인 한국의 대표로 초대돼 불교설화화 52점을 출품,호평을 받았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출품작 52점과 그외 대표작 61점및 대작 4점등 1백20여점이라는 방대한 양의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회화외적인 모든것을 외면한채 외곬로 치닫는 근성이 유별난 김씨는 고승 고찰에 얽힌 얘기들을 현세로 끌어와 화현시키고 있는 독보적인 인물이다. 동산방화랑 초대전을 23일 개막,5월2일까지 계속하는 정하경씨(한성대교수)는 지난 84년이후 8년만에 개인발표의 자리를 꾸미고 있다. 80년대초부터 실경산수화에 전념하며 독특한 수묵화기법을 추구해온 정씨의 화폭은 섬세하면서도 수려한 필치가 돋보인다. 급변해가는 여러 회화형식에 초연,오직 산수화에 집착하고 있는 그는 청담한 한국의 자연을 재현해내고 있는 몇안되는 작가중의 한명이어서 이번 초대전은 한국화애호가들의 관심을 끌수 있는 전시로 기대되고 있다.
  • 근대문화유산보존위(문화로 본 일본 일본인:6)

    ◎명치이후 유산 발굴·보존에 “심혈”/증기기관차·근대화풍 건축등 연구/나고야 명치촌엔 당시건물 65채 보존 1992년도 일본 문화청의 중점사항중에서 필자의 눈길을 끈 사업항목으로는 근대화 유산보존대책조사연구라는 신규사업이 있다.일본의 근대화의 궤적을 보여주는 유형·무형의 각종 유산은 이제까지 별다른 보존조치가 강구되지 못한 채 근년의 기술혁신과 산업구조의 변화,생활양식의 개혁 등에 의해 급속히 소멸되는 중에 있어 조속한 보존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필요성이 절박해졌다는 이유를 근거로 해서 정치·경제·사회등 명치 이래의 역사에서 각 부문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온 유산에 관해 이제부터 문화재로서 보호할 만한 범위를 분명히 함과 동시에 그 조사·보존·활용에 관한 기본방침을 책정한다는 것이다. 문화청에 근대화유산보존대책조사위원회를 설치하여 조사연구를 실시하는데 국산 증기기관차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손꼽히고 있다. 비슷한 개념으로 근대화풍 건축종합조사사업이 있다.에도(강호)후기부터 소화초기에 걸쳐목조건축의 전통적 기술이 최성기를 맞이했던 바 그러한 전통적 양식에 의한 근대화풍건축은 약 10만동이 존재한다고 일러지고 있다.그러나 저명한 주택과 여관·공공건축 등의 존재가 일부 알려져 있을 뿐이고 전국에 어떤 모양의 것이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가 전혀 조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조사하여 문화재로서의 보존대책을 책정하는 자료로 삼는다는 것이다.대표적인 예로서 나나노(장야)지방재판소 마쓰모토(송본)지부의 구청사가 손꼽히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본다면 주택건축은 명치이래 대정·소화 초기에 기술이 최고점에 이르렀고 신사나 절 건축은 에도말기가 기술적으로 최고점이었다고는 하지만 명치에 들어서서도 질이 높은 작품이 계속 만들어졌다는 것이다.특히 신사는 내무성 신사국의 지도설계로 각지에 양질의 본전·배전·사무소 등이 만들어졌고 공공건축에 관해서도 화풍 디자인을 취한 건축이 다수 만들어졌는데 이처럼 전통적 기법·양식에 의한 근대화풍 건축의 소재확인과 가치평가,주요유적의 선정과 그 개요조사를 행하여 보고서를 작성,문화재로서의 보존대책 책정의 자료로 한다는 것이다.주택(주택·민가·여관·요정·상점·별장포함),종교건축,공공건축(학교·병원·은행·극장·재판소·역사·공중욕탕·사무소·창고·작업장(역장)포함),그리고 그밖에 그것들과 일체가 되어 보존될만한 문 등을 포함하는데 사업주체는 각 도도부현의 교육위원회이고 국고보조사업에 의해 행한다. 2년 또는 필요하다면 3년이상을 소요해서라도 시행해 보겠다는 이 신규사업을 보면서 필자는 나고야에 있는 메이지무라(명치촌)를 머리에 떠올렸다. 이는 명치시대의 건물을 옮겨 놓고 귀중하게 보존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명치의 문화와 생활을 맛보게 하려는 야외박물관이다.명치시대는 구미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의해 두드러지게 근대화 한 시대였다고 하겠는데,여기에서 그 나름대로 장점을 지녔던 문화를 토대로 하여 새로운 일본을 세우고자 한 명치시대 사람들의 의욕과 노력을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이누야마시 교외,호수를 낀 경치좋은 언덕에 약1백만㎡를 터전삼아 세워진 건조물의 수는 현재 65개에 이르는데 나고야철도주식회사 회장을 지낸 츠치가와씨(사천원부)가 투자하여 만들어진 이 야외박물관에 들어선 건물중에는 일본 본토 뿐만 아니라 시애틀·하와이·브라질에서까지 옮겨온 것들도 있다.단순히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내에 가구 집기등을 진열하여 공개하는 외에 그 건물에 관련된 자료를 상설전시하거나 필요에 따라 명치시대의 역사자료의 특별전시도 행하고 있다.또한 명치시대의 최초의 전차와 증기기관차가 손님들을 실어 나르기도 하고 고풍의 우편국에서는 실제로 우편업무를 행하기도 한다. 1975년에 개장된 이 야외박물관을 둘러보면서,그리고 19 92년도의 일본 문화청 중점사업중 신규사업의 하나를 설명들으면서 우리의 한옥지역 보존사업이나 경복궁 복원사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가를 궁금하게 여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특히 필자는 일제의 조선총독부 청사를 서울시내 적당한 지역으로 이전,복원시켜 식민통치에 관한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한 바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다.이전비용은 일본의 정부나 민간이 부담토록 하자는 발상은 무리스럽게 보일지 모르지만 일본의 최근 세사에서 이 건물이 어느 것 못지 않은 의의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게 황당무계한 주장만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억지일까?
  • 카톨릭/여성대상 신앙강좌 큰 호응

    ◎성바오로수녀회등 3곳에서 마련/교회사·여성의 역할등 다양한 내용/“여성종교인 올바른 위상 찾자” 수강신종 늘어 최근 교회활동과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여성의 제 위치를 찾자는 강좌와 세미나가 큰 호응속에 잇따라 열려 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부터 태동해 천주교 수녀회와 여성단체등에서 열고 있는 이같은 신앙강좌에는 직장인·주부등이 주로 참여해 신학을 통한 여성의 신분조명 움직임을 활발히 보이고 있어 특히 주목된다. 이같은 신앙강좌는 특히 유교적 문화풍토 속에서 잘못 형성돼온 여성에 대한 인식들이 교회안에서도 팽배해져 있는 가운데 여성스스로가 먼저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참다운 교회건설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내용으로 실시돼 강좌별로 후속모임까지 생겨나는 등 확산되는 추세다. 강좌중에는 샬트르 성바오로 수녀회가 매주 월요일 수녀원 교육관에서 함세웅신부를 초빙해 「여성신학강좌」를 열고 있는 것을 비롯해 가톨릭여성연합회와 전진상교육관이 각각 매주 월요일마다 「여성신앙대학」과 「여성신앙학교」를 마련하고 있다.전진상교육관은 이같은 강좌와 연결해 오는 5월 중순 여성신학 특별세미나를 열 계획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지난해 4월 첫 강좌를 마련한 이래 지금까지 80여명이 거쳐간 전진상교육관의 가톨릭 여성신앙학교는 지난달 30일부터 3기 강좌를 열어 현재 40여명이 수강중이다. 「여성신학의 신관」「다시 보는 여성사」「한국 천주교 여성사」「구조악에 희생된 여성들(정신대의 진상)」「평화통일과 신학」등이 그 주요강좌 내용이며 박공자(국제가톨릭형제회회원) 정현경교수(이화여대) 강남식(서강대강사) 김옥희수녀(순교복자수녀원) 윤정옥(전이화여대교수) 김애영(한신대 강사)씨등이 강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이 강좌 수강생중 주로 직장인으로 구성된 수강생 15명은 「여성의 신학적 조명」이란 주제로 매주 한번씩 정기모임을 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기도 하다. 한편 전진상교육관은 오는 5월16∼17일과 19∼21일 두 차례에 걸쳐 여성신앙학교의 한 프로그램으로 필리핀 신학교교수로 재직중인 메리놀수녀회와 헬렌 그래엄수녀를 초빙해 「창조와 여성」 주제로 여성신학 특별세미나를 마련할 예정이다. 전진상교육관 교육부 신선미간사는 이같은 강좌에 대해 『하느님이 여성에게 주신 고유하고 독특한 자질을 개발해 그리스도의 신비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면서 『무엇보다도 여성 스스로 하느님이 주신 신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며 이런 강좌의 수강생들부터 진정한 여성의 의미를 되찾을 수 있는 행동차원으로 이끌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부터 전진상교육관과 비슷한 형태로 여성신앙대학을 열어온 가톨릭여성연합회의 강좌에도 지금까지 4백30여명이 거쳐갔으며 지난 6일부터 시작한 이번 강좌에는 평신도 2백여명이 「교회사」 「2천년대를 향한 여성」「구약」「실천윤리」「교회론」등의 강의를 듣고 있다.강사로는 김성태 이기정 유봉준 조규만신부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수녀들을 대상으로 「여성신학강좌」를 처음 열었던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는 지난달부터 4개월 과정의 일반여성 대상의 신학강좌를 열고 있어 수도사 중심에서 일반인으로 강좌를 확산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함세웅신부를 강사로 초빙해 선서가르침에 바탕한 여성신분의 자각과 반성·실천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현재 70여명의 일반 여성이 매주 월요일 모임을 갖고 있다. 샬트르 성바오로수녀회 박복주수녀(교육관관장)는 『우리나라 교회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의 역할과 입장이 왜곡돼온 것이 사실』이라며 『하느님이 주신 여성의 기능과 소명의식을 정확히 파악해 교회발전에 힘이 돼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이 강좌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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