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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희언 ‘사인시음도’의 선비(한국인의 얼굴:121)

    ◎선비들 모여 시 읊는 정경 묘사/각양각색의 자세 구체적 표현 조선시대 후기 그림에는 새로운 화풍이 배어들었다.그것은 중국에서 좀 늦게 들어온 남종의 산수와 사경산수다.이와 더불어 속화도 그림 한 복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속화는 인물화를 빌려 실감나는 그림으로 빨리 자리를 잡았다.그 길목에서 속화의 징후를 두드러지게 드러낸 그림이 더러 있다.본격적인 속화는 아닐지라도 속화의 범주에 들어갈만한 그림들인 것이다. 그 대표적 그림의 하나가 담졸 강희언(1710∼1782년)의 ‘사인시음도’다.선비들이 모여 시를 읊는 정경을 묘사한 이 그림에는 다섯 선비가 나무 그늘에 들었다.자세는 제 각각이다.경상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사람,이를 베끼느라 꿇어 엎드린 사람,글을 쓰고 베끼는 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람이 한쪽에 자리잡았다.그리고 장죽을 문 사람,그 옆에 팔벼개를 하고 비스듬 누운 사람,뒷전을 서성대며 수염을 꼬는 이도 있다. 그러니까 시를 읊조리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음서화 모임의 한 순간을 포착한 그림이다.이 그림에 나오는 인물들 표정이나 동작은 요즘 사진에서 말하는 스냅쇼트와 같은 것이다.선비들의 습속을 담은 이그림은 세 점을 한 시리즈로 묶은 ‘사인삼경첩’ 가운데 한 컷이다.그런데 그림속에는 화가 자신도 들어있다고 한다.또 그림을 평하면서 제목을 달아주고 이를 설명하는 제발문을 써주었던 강세황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한여름 선비들의 모임을 그린 것인데,요즘으로 말하면 기념사진 같은 그림이다.갓 쓰고 장죽을 문 자세로 부채를 든 이를 화가 자신으로 보고 있다.또 사방관을 갖추어 쓰고 두루마리에 붓을 댄 이는 그림에 제발문을 써준 강세황이라는 것이다.인품으로 치면 왼쪽 무릎을 고이고 두 손을 가지런히 한 선비가 으뜸이다.이 선비의 눈꼬리는 한껏 치켜 올라갔다.그러나 눈썹은 매섭지 않다.유엽미로 보아도 좋을 눈썹이 눈꼬리를 눌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긴 얼굴에 수염도 제법 자랐다.관록이 보인다. 유건을 쓴 선비는 나무에 기대듯 섰다.왼손으로 뒷짐을 짚고 오른손으로 수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그리고 먼 허공을 올려다 보는 자세인데,이를 강세황은 제발문에서 ‘시를 읊조리는 것 같다’고 했다.글과 그림을 짓기 위해 모인 아회를 이렇듯 구체적으로 묘사한 그림은 흔치 않다.서로 다른 자세와 각양각색의 다른 표정을 포착한 이 그림에서는 한가로운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 운보 김기창 화백 미공개 작품전

    ◎50∼60년대 신문삽화도 함께 선봬/롯데화랑 두곳서 오늘∼새달 7일 운보 김기창화백의 미공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가 마련된다. 롯데화랑이 11일부터 12월 7일까지 본점과 잠실점에서 여는 전시가 그것으로 그동안 화랑측이 개인 소장가들로부터 어렵게 입수한 미공개 작품 50점과 1950∼60년대의 신문 삽화 및 세계 화필기행작품들을 함께 보여준다. 김기창화백은 동양화 작가이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면서 형식적인 변형을 추가해 기존 전통 동양화화풍의 이정표를 바꾸어놓은 한국화단의 원로.한국 고유의 모습에서 소재를 택해 독자적인 구성과 운필로 자유로운 화면을 구사하며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지난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김화백이 남겨놓은 작품가운데 일반 화랑 등 전시장에 한번도 선보이지 않은 작품만으로 구성되는 이례적인 자리.비단에 수묵담채로 처리한 1970년작 40호짜리 ‘청산도’를 비롯해 1950년대 후반작품 ‘가을’,종이에 수묵채색한 ‘부엉이’(70년작),‘닭’(77년작),‘신선도’·‘비학’(84년작),‘청산귀우’(95년작) 등이 모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 수당 김종국 화백 미서 초대전

    한국화가 수당 김종국 화백(57)이 지난 4일부터 미국 워싱턴주 커클랜드 베로츠키나 갤러리에서 성황리에 초대전을 갖고 있다. 김화백은 이당 김은호 선생에게 사사한 뒤 서라벌예술대와 홍익대에서 본격적으로 미술수업을 쌓고 일본과 로스엔젤리스,뉴욕 등에서 초대전을 가지면서 동양 고유의 화풍으로 주목받아온 작가.‘온고지신’을 일관되게 주제로 택해 전통 회화에 충실한 교훈적인 내용과 정적인 화면을 구사하는게 특징이다. 이번 전시는 동서양의 개성있는 작가들을 초청해 전시를 꾸준히 열고있는 베로츠키나 갤러리가 김화백의 작품들만을 선별해 마련한 자리.지난 4월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가진 개인전 출품작을 비롯해 화조와 물고기 등 자연 친화적인 온화한 분위기의 대표작들을 내놓아 관람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 ‘서양화 100인 초대전’ 개막/서울갤러리서/서울신문사 주최

    ◎중견·원로작가 소품 선보여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97 서양화 100인 초대전’이 2일 하오 5시 서울 중구 태평로1가 서울신문사내 서울갤러리에서 개막됐다. 이 초대전은 유명 작가들의 소품을 통해 미술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높여왔다는 평을 들으며 미술인 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애호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자리. 올해는 우리 서양화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40대 이상 중견작가들로부터 완숙한 작품세계를 지닌 원로작가까지 100명이 6호이하 소품 각 1점씩을 선보인다.사실주의 화풍을 비롯해 특정 계파나 계열에 얽매이지 않는 폭넓은 양식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개막식에는 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을 비롯해 송태호 문화체육부장관,이종덕 예술의 전당 사장,최만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이두식 한국미술협회 이사장,미술평론가 이귀열씨 등 각계 인사와 미술인,원로작가 이종무 김서봉씨 등 출품작가들이 참석했다.
  • ’97서양화 100인 초대전/새달 2∼13일 서울갤러리

    국내 서양화단에서 왕성하게 활동중인 작가 100인을 선정해 이 작가들의 작은 그림들을 소개하는 ‘97서양화 100인초대전’이 9월2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내 서울갤러리(721­5969)에서 열린다. 이 초대전은 국내 미술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유명 작가들의 근작들을 부담없는 가격으로 내놓아 미술인뿐만 아니라 일반 미술 애호가들의 인기를 끌고 있는 초대전.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엔 문턱이 높다는 일반 화랑 전시와는 차별성을 두고 미술품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을 얻고 있는 기획전이다. 이번 전시는 40대이상 중견 원로작가 100명이 6호 이하짜리 소품을 각 1점씩 모두 100점을 내놓는 자리.사실주의 화풍에서부터 구상,반추상 등 서양화의 모든 표현양식을 모두 수용하면서 특히 특정 계파나 계열을 탈피해 장르별로 균등한 작가선정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전혁림의 ‘정물’,김서봉의 ‘밤나무꽃 필무렵’,오승우의 ‘소년시절’이두식의 ‘잔칫날’,민병각의 ‘귀항선’,김인화의 ‘수련’최상선의 ‘바람부는 날’,황원철의 ‘바람의 궤적’,제정자의 ‘기운의 소리’,구자승의 ‘프로필’,이태길의 ‘풍경’ 등 일반인에게 낯익은 작품을 비롯해 정물,풍경,일상생활의 단면 등 관람객들이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서정적 분위기의 작품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 18세기 조선 인물지/이규상 지음(화제의 책)

    ◎영·정조시대 인물들의 행적·일화 소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선비인 일몽 이규상의 저서 ‘병세재언록’을 한글로 알기 쉽게 옮겼다.‘병세’는 동시대를 뜻하는 말이며 ‘재언록’은 빼어난 인물들의 기록을 의미한다.이 책에는 동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인물들의 행적과 일화가 소상하게 담겼다.‘유림록’에서부터 ‘규수록’에 이르기까지 18개 항목에 걸쳐 180여명을 대상으로 삼았다.그중에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도 적지않아 영·정조시대의 사회와 문화,예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문원록’‘서가록’‘화주록’은 일종의 만록형식의 열전식 문학비평서이자 서화비평서로 이 시기 문예동향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다.특히 ‘문원록’의 팔문장·초림체·경성여항인에 대한 서술은 문학사적으로 자료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화주록’에서 당대의 서양화 화풍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다른 저술에서는 볼 수 없는 대목.또 ‘방기록’에서는 조각가이자 기술자인 최천약과 걸인 달문 등 당시로서는 천대받던 인물을 다루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인물지 성격의 기록으로는 19세기에 지어진 조희룡의 ‘호산외기’,유재건의 ‘이향견문록’ 등이 있다.그러나 ‘병세재언록’은 여항인을 중심으로 엮은 ‘호산외기’나 ‘이향견문록’보다 앞설뿐 아니라 한 시대 인물의 전체상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민족문학사연구소 한문분과 옮김 창작과비평사 1만5천원.
  • 조선후기 심사정의 ‘절로도해’(한국인의 얼굴:113)

    ◎선승 달마 전설 그림으로 묘사/손가락으로 그린 도석인물화 조선시대 후기에 활약한 현재 심사정(1707∼1769)은 도석인물화를 많이 남긴 당대의 선비화가다.그를 가리켜 꽃과 풀벌레를 잘 그린 화가라고 말한 이도 있기는 하다.그보다 후대를 산 강세황의 평이 그러하고 보면,꽃 그림 화훼나 풀과 벌레 그림 초충을 꽤나 그렸던 모양이다.그러나 오늘날 전해오는 작품은 오히려 도서인물화의 비중이 더 크다. 그의 ‘절로도해’는 독특한 화풍의 도석인물화다.파도가 출렁대는 바다위에 두건을 쓴 사람이 떠있는 것을 묘사했다.그런데 바다에 뜬 사람은 갈대잎을 밟고 서있다.바로 중국 남북조때의 선승 모습이다.그것은 살아 생전의 달마가 아니다.그가 죽고나서 자신의 고향인 남인도땅 향지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갈대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는 전설을 담은 것이다. 이 그림에서 달마는 전시대의 화가들이 그린 달마상을 약간 비켜갔다.부리부리한 서역인 눈매에서 벗어났다.눈매에서 넘치는 기력을 찾아볼 수 없다.달마가 사후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전설내용을그렸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로도해’속의 달마는 추워 보인다.볼품없는 옷자락이 해풍에 흐느끼듯 더펄대서일까….맨살의 정강다리까지 드러나 더욱 을씨년스러운 달마가 되었다. 그래도 달마의 코는 크다.두건 아래 눈썹이 짙고 수염 역시 검게 자랐다.그러고 보면 달마가 서역인 티를 다 벗지는 못했다.이런 달마를 그린 화가는 심사정 말고 아무도 없다.몸골과 입성을 그린 솜씨는 전통 동양화기법이라기보다는 얼핏 양화의 느낌이 와닿는다.이를테면 먹물이 뭉친 듯 뭉툭한 오른쪽 눈썹과 눈,옷을 처리한 선묘는 전통화법의 그림과는 사뭇 달랐다. 그 이유를 알고보면 그림을 붓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손가락으로 그린 지두기법을 쓴 탓일 것이다.연한 갈색을 칠한 얼굴에도 더러 색깔이 뭉쳤다.지두로 묘사한 풍랑이 높은데,바다 물빛은 엷은 청색이다.종이에 먼저 물을 바르고 먹물을 칠하는 선염기법으로 처리한 반투명한 옷자락 가장자리가 너불거린다.달마가 남인도 고향으로 가던 바닷길은 험란했던 모양이다.비록 손가락 그림이긴 하나 갈대가 어줍지않다. 중국 땅에서 죽은 달마가 다시 살아서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가더라는 이야기는 전설에 나온다.송운이라는 사람이 인도를 여행하고 돌아오는 바다에서 사후의 달마를 보았다는 것이다.〈황규호 기자〉
  • 물의 역사/알레브 라이틀 크루티어 지음(화제의 책)

    ◎신화에 나타난 물의 신비적 속성 탐구 세계의 신화·풍속·예술속에 나타난 물의 이미지를 탐구.‘하렘,그 베일에 가린 세계’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는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죽음과 재생,창조와 파괴의 이미지로 수렴되는 물의 역설적 상징성을 풍부한 인유를 통해 살핀다.물과 관련된 고전시대의 신들에 관한 언급은 탄생과 연관된 물의 신비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만물이 분화되기 전 지구를 둘러싸고 있던 거대한 강을 상징하는 오케아노스나 아버지 우라노스의 잘려진 성기가 물거품으로 변하면서 탄생한 아프로디테 등은 그 두드러진 예다. 물은 예술가들에게는 영원히 매혹적인 주제다.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작품속에서 물의 테마가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가를 꼼꼼히 살핀다.물에서의 죽음이라는 테마는 19세기 영국의 계관시인인 테니슨 경의 대서사시 ‘왕의 목가’ 등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다.특히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나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등 라파엘 전파(Raphael 전파:라파엘로 이전의 소박한 화풍을 본보기로 한 19세기 중엽 영국에서일어난 예술운동) 예술가들은 물위를 떠도는 처녀들,즉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짝사랑을 하다 죽은 처녀들의 원형에 관심이 많았다.샬롯의 여인,엘렌,오필리아 등이 바로 그런 비극적 여주인공들이다.윤희기 옮김 예문 7천500원.
  • 6개 단체 ‘과기인 큰 다짐대회’ 갖고 선언문 채택

    ◎“기초과학·공학기술교육 혁신하고 관료주의적 연구문화풍토 개선을” “21세기는 과학기술력이 곧 국가 경쟁력입니다.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선진국은 과학기술이 정치와 경제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그 반대가 아닙니까” 과학기술이들이 모처럼 목소리를 냈다.18일 하오 서울 역삼동에 있는 한국과학기술회관 국제회의장에서는 ‘국가발전을 위한 과학기술인 큰 다짐대회’가 열렸다.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한국공학원 등 과학기술관련 6개 단체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대회의 주제는 ‘이제 우리는 과학기술로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것.500만 과학기술인의 대표들이 모여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새 패러다임을 모색하고 선언문도 채택했다. 이날 대회는 김시중 과학기술포럼이사장의 주제 강연에 이어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등 6개 단체 대표의 강연과 종합토론,그리고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모임에서 ‘과학기술교육의 혁신은 필요한가?’라는 주제로 강연한 이기준 서울대 교수는 “국가의 기술혁신시스템은 민간기업 중심으로 그 축이 이동할 수 밖에 없으므로 개방적이고 유연한 체제로 제도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정부의 역할은 창조적이고 진취적인 과학·공학기술인력 배양과 공공부문 연구개발에 주력하면서 민간의 기술혁신이 활성화하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 전체의 과학기술수준 향상을 위해 기술발전의 바탕이 되는 기초과학교육과 공학기술교육의 혁신이 시급하다고 이교수는 주장했다. ‘21세기를 향한 산업기술혁신 방향’을 발표한 조성락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은 고비용·저효율의 경제구조를 탈피하고 세계 하위수준으로 평가되고 정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출연연구기관 모두가 기술개발의 세계화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부회장은 또 “관료주의적 연구문화와 투자 및 인력부족만을 탓하며 과거를 답습하는 연구행태로는 기업과 연구원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무엇보다 기업가와 연구원의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화가 권영우(이세기의 인물탐구:137)

    ◎‘그리는 그림’아닌 생명의 혼 터치/순백의 캠버스에 명암따라 부조 성취/‘종이의 화가’ 대부… 파리·LA서도 개인전 ‘종이의 작가’로 알려진 화가 권영우의 그림작업은 ‘흰무명을 볕에 바래어 표백하는 과정’처럼 생략과 절제가 끈질기게 중복된다.먹을 가는 동안 화상을 가다듬고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흰 종이 자체에서 그는 ‘깨끗하고 고요한 담벽과 담흑색’을 캐내고 싶어한다.‘한국화’라는 전승표현의 범주에서 벗어나 화면에 구멍을 뚫거나 찢는 변칙은 종이가 지닌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그만의 조형수단이다. ○작품세계 생략·절제 중복 서울대 미대시절에도 동양화과에 다녔으나 나체모델이 배당된 서양화 실기실에 드나들었고 선묘 위주의 사실적인 그림을 그리다가 70년대이후 기하학적으로 윤곽처리된 묘사적 화풍에다 광활한 여백을 화면에 함축하는 것이 특징이다.그런 한편으로는 동양화에 있어 거의 숙명적이라고 할수 있는 종이의 섬세한 재질감을 염두에 두고 그것을 물들이는 수묵 농담의 수법에서 언제나 과묵하면서도담소한 감수성을 지킨다.이른바 백색 일색의 종이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화판에 담기는 층이나 명암에 따라 리듬의 부조를 성취시키는 것이다.물기가 아련히 스며든 여러층의 마티에르는 지루하리만큼 수많은 구멍들이 모래벌판에 찍힌 철새의 발자국이나 고공에서 바라본 비늘구름같은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에 혁혁함을 던져준다.조용한가 하면 행동적인 데가 있고 전위적인가 하면 전통을 고수하는 곡진한 그의 방법에 대해 “결국 미의 종합세계를 이루어놓고야 말았다”는 평론가 박래경의 말은 옳다.그는 실제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만들어진 흰빛의 그림’속에 순백의 적요를 흩뿌리면서 ‘거울같이 맑고 고요한 수면보다는 빗방울이 떨어져 소용돌이가 일고 물결치는 상황’으로 작품을 몰아나간다. 그의 추상화면은 작은 알들이 깨지는듯한 ‘껍데기가 깨지는 아픔’과 ‘탄생의 기미’를 창출하면서 직선과 사선과 횡선에 먹번짐과 균열과 누빔을 엇가르고 총총하게 뚫어진 화면은 온통 보석타래가 흩어진 형국이다.그렇게 인위적으로뚫린 그의 창들은 내면과 외부를 향해 저마다 쏘듯이 다른 광채를 내뿜고 있는 것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다. 직선에서의 영롱한 물방울무늬를 얻어낸 그는 76년 파리의 권위있는 자크마솔화랑 초대전을 갖게 되었고 파리의 미술평론가 알랭 보스케는 “더없이 다양한 추상풍경화의 경이”로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그때 자신의 내부에 꿈틀거리는 끝없는 추상의 전조를 예감하고 그는 전업작가로 남기 위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기에 이른다.이른바 자신의 테마에 파고들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파리여정을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이제까지 국내에서 다진 명성과 중앙대교수직을 버리고 오십이 넘은 나이에 새출발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앞날이 막막한 보장 없는 모험’이 아닐수 없었다.그러나 그만의 방법과 그만의 세계를 부여잡게된 이상 그는 더이상 망설이지 않았다.파리전시 2년후인 78년에 도불,예술은 다만 ‘던지는 것’이며 ‘전력투구로 매달릴뿐’ 어떤 방해도 그를 막을순 없었다.연약해 보이는 체구에 말이 별로 없는 대신 고집이세고 일단 마음먹은 것은 만류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하다. 파리시내에서 25㎞ 동쪽으로 떨어진 트로시의 아틀리에에 틀어박힌지 2년만에 아트포럼 앙테나쇼날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평론가 데니스 로제로부터 “맑고 투명하고 평화로운 공기속에서 작가는 빛과 깊이의 이중감정을 실천하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그 무렵 이일씨가 표현한 ‘종이의 정교한 무표정속에서 무한한 진폭을 지닌 무구한 정신성’과 ‘동양으로의 현대적 회로’란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함경남도 이원에서 소사업을 하던 권태인씨의 1녀3남중 차남.그는 부친을 따라 한국인 밀집지역인 북간도 용정에서 광명중학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그가 도불을 결심하게 된것은 광명중 시절의 미술스승이던 석희만씨가 “둑을 지키는 포플러가 아닌,넓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강물이 되라”는 충고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서울로 와서 해방 다음해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고 ‘비어있는 것이 저장되어 있는것’이라는 ‘무사무위’의 노장사상을 그림에 적용하여그만의 ‘숭려’를 체득하게 되었다. ○파리에서 2년간 생활 남천 송수남은 “그의 묵시적이면서도 금욕적이고 수도자적인 자세는 누구라도 일단 외경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고 전제한다.“화선지의 흰빛에 흐르는 무구한 숨결과 그의 삶을 에워싸고 있는 무관심성은 요약과 절제로 일관된 것 같으나 실은 허세없는 작가의 본성이 그속에 창만해 있다”는 것이다.과연 그의 그림에서는 어둠을 가르는 여명이 새어나오고 그 순백의 새벽빛은 모든 광원의 색광들을 반사한 본질색이며 화선지가 포용하는 영험하고 신비스러운 통합적 상징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가의 근작은 또다른 실마리를 추구하려는 자세다.먹과 과슈에 의한 설채의 도입,또 뚫고 찢기 위해 찰상을 가하는가 하면 예리한 칼날로써 형성된 선조는 물감과의 교호작용으로 운율의 파문을 현란하게 일으켜준다. ○독자적인 동양화추상 고수 10여년만에 파리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도심을 피해 전원적인 경기도 용인 양지면에 정착하여 주로 한밤중에 일어나 작업에 임하고 있다.최근의 대형화면들은완고한 예술정신과 심도가 스민 발색을 존립시키고 ‘순수무결’과 ‘세련미’는 남이 넘볼수 없는 도저한 화풍으로 경도되지 않을수 없게 한다.서울대 미대 동기동창이며 동갑인 부인 박순일씨는 스승인 월전의 소개로 만난 사이.자녀는 아들만 둘이 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류에 물들지 않은 독자적인 동양화추상’을 지키는 그의 집념은 결국 카뮈의 요나처럼 어느날 화면에 점 하나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이순을 넘긴 지금도 조용하고 시적인 소년의 자세를 변치않는 이 혁신적화가는 예술의 끝을 향해 강물처럼 유유히 흐르면서 대양을 이루기 위한 만리심을 좀처럼 잠재울줄 모른다.〈사빈논설위원> □연보 △1926년 함남 이원 출생 △1951∼57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1956∼77년 국전출품 △1966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0∼79년 한국미술대상전 출품 △1974년 개인전(서울명동화랑) △1976년 파리 자크마솔화랑 개인전 △1977년 개인전(서울신세계화랑) △1978∼89년 프랑스 파리체류 △1980년 파리 개인전(아트포럼 앵테나쇼날화랑),아세아현대미술전 △1982년 파리(주불한국문화원) 및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3년 주불한국인화가전(파리) △1984년 LA개인전(삼일화랑) △1986년 서울개인전(현대화랑) △1987년 LA(아트코아화랑) 및 토론토 개인전(브리지스톤화랑) △1988년 조선일보현대작가초대전 △1990년 서울(호암미술관) 및 일본오타와대학초대 개인전 △1991년 선재현대미술관개관기념초대전(경주),한국현대회화유고전 △1992년 개인전(서울현대화랑) △1993년 대전 한림갤러리개관기념전 △1994년 에꼴드서울전(관훈미술관) △1996년 후소회 창립60주년기념전 〈현재〉 대한민국 예술원회원,중앙비엔날레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장 〈수상〉 국전문교부장관상(58·59년),국전초대작가상(74년)
  • 조선화가 이경윤의 「발씻는 선비」(한국인의 얼굴:106)

    ◎산골물에 발시린듯… 자연속의 여유 만끽 조선시대 중기의 화가 학림정 이경윤이 그린 그림에는 절파화풍이 깔려있다.「시주도」에서 보여준 단순한 인물화 보다는 뒷자락에 산과 물이 있는 인물화를 더 많이 그렸다.그래서 산수인물화)의 대가라는 평판을 받았다.인물이 자연과 어울려 친화관계를 보여주는 그의 그림에는 늘 선비의 낭만이 어렸다.그림속에 시가 들어있는 화중유시의 그림인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 가운데는 선비가 발을 씻는 그림 「고사탁족도」가 있다.탁족이라는 말은 본래 발을 씻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세속을 벗어난다는 깊은 뜻을 동시에 지녔다.인격과 학식이 뛰어난 고매한 선비가 물가에 앉아 발을 씻고 있으니 일단 세속을 떠난 마음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치포관과 학창의를 벗지 않은채 다리와 발만 드러냈다.보는 이가 없건만 의관만큼은 흐트러진데가 없다. 선비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여울물을 내려다 보고 있다.왼손을 짚어 몸을 거우듬히 숙였다.그리고 나서 물살을 내려다 보는 품이 무척 여유롭다.거므레한 눈매에는 호기심이 잔뜩 어렸다.산골 물살을 가르고 노니는 작은 물고기가 눈에 띠었는지도 모를 일이다.눈썹과 수염 또한 눈매 못지않게 거므스레하게 실했다.제법 잘자란 아랫수염 끄트머리는 비스듬 휘었다.아마도 물가를 지나가는 솔솔바람이 수염을 흔들어 놓은 모양이다. 치포관을 씌운 상투를 트느라 머리를 바싹 빗어 올렸다.그래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코는 날카롭지 않게 처리되었다.그 코가 거므스레한 눈매와 함께 아우라져 선비의 인상이 선량하게 다가왔다.선비의 평시 마음은 모난 데가 없을 것이다.산골물이라서 발이 시린지 두 발을 물 위로 들어 올렸다.그래도 발이 시려 오른발로 왼발목을 꼬았다.그런 동작을 강조할 의도였는지 몰라도 솔직히 말하면 발이 좀 과장되었다. 얼굴과 발은 세필이다.이와는 달리 선비가 입은 옷 학창의에서는 활달한 솜씨로 붓을 놀린 흔적이 뚜렷했다.대담한 필치이기도 하고 또 선이 굵다.멀고 가까운 데가 잘 묘사되어 선비 뒷전에 멀리한 바위는 아련하게 그렸다.물결이 진 냇가의 바위에는 물기 머금은 이끼가 잔뜩 끼었다.비단에 먹과 물만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기는 하지만 맑고 시원한 청량의 정취가 어렸다. 이경윤이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은 꽤 많다.산과 바위,물과 폭포,달과 같은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그의 그림속에는 반드시 사람이 등장했다.
  • 과대포장/장윤우 성신여대 교수·도예가(굄돌)

    초여름의 싱그러움과 더불어 쌓이는게 있다.매일 우편함에 넘치는 전람회 카탈로그 들이다. 내 직업에도 관련되는만치 원로,대가에서부터 이제 데뷔하려는 신인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태의 도록들을 들여다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다. 간결하고 수수한 안내장에서 손이 벨듯한 아트지의 호화스런 책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화려한 컬러화보에만 위압당하는게 아니다.○○초대전시,△△상 수상… 몇페이지에 이르는 당당한 화력에 눌린다. 자칭 초대작가나 이름도 없는 전시에서 양산된 수상.그런 작가가 있었는지 누구의 화풍을 옮긴 듯한 그림이나 조각을 들여다보면 속이 메스꺼워진다.이런 대가(?)일수록 묵직한 도록의 배달료도 만만치 않을 터인데,이것도 공해가 아닐까. 그렇게 쉴 틈없이 날아오는 전시안내에 과연 몇분이나 제대로 가볼까,화랑에 들른다해도 얼마나 제대로 감상할 것인가. 재미있는 기록을 소개하겠다.화랑에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는 분 62%,미술전시감상 평균 5분,5백만원 이상 들인 팸플릿 보는 시간 평균 15초,평론가에게 지불한돈 30만∼50만원. 수록된 평론을 끝까지 읽는다는 수치는 거의 한사람도 없으니 끼리끼리의 잔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미술의 해」는 일과성 행사로 끝났고 서울 인사동과 강남화랑가에는 다시 찬바람이 분다.전시는 무성한데 작품이 없다. 어디서 베낀 듯한 잡초들이 겉치레만 화려하게 판치는 풍토이니 이 땅의 미술계는 어디로 표류하고 있는가.선진국들의 전시 팸플릿은 한 두장정도의 간결한 흑백인쇄물임을 우리는 잘안다. 빈 독이 요란하다는 옛말대로 속이 텅빈 작가일수록 비싼 도록으로 과대포장하는 풍조는 또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 조선중기 이숭효의 「어부도」(한국인의 얼굴:104)

    ◎낚시대와 물고기 꾸러미/허름한 행색에도 초연한 눈매 어부는 고기잡이를 일거리로 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그런데 옛날에는 격을 높여 어부라 썼다.이 보다 무게를 더 실어 어옹이라고도 불렀다.옛날의 어부라는 말속에는 고기를 낚아가며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큰 그릇의 사람을 의미했던 것이다.그래서 시조나 가사에 곧잘 나온 것은 물론이고,때로는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그 어부를 주제로 한 그림중에는 조선시대 중기를 짧게 살았던 화가 이숭효가 그린 「어부도」가 있다.가는 올의 모시 바탕에다 먹물로 그린 저본수묵화인 이 그림은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16세기 작품으로 중국 절파의 화풍이 배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림이다.그의 작품은 매우 희귀하다.그래서 「어부도」는 미술사적으로 귀중한 자료일 수 밖에 없다. 이 그림에는 「어옹귀조도」라는 화제 하나가 더 붙어있다.화제에서도 여느 낚시꾼과는 전혀 다를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그림을 보노라면,실제 그렇게 묘사되었다.낚시질에서 돌아오는 허름한 차림의 어부이기는 하나,범상치 않은 인물이다.그 늙은 어부가 대각선으로 가까이 이어진 길을 비치적비치적 걸어서 그림속으로 들어섰다.그림이 아니었더라면,금새 화폭을 빠져나올만한 자리를 걷고 있다. 어부는 낚시대를 오른손으로 잡아 어깨에 걸머메었다.그리고 왼손에 물고기 꾸러미를 들었다.낚시대는 대각선으로 화폭을 절반쯤 갈라놓았다.그런데 모질게 자란 대나무를 낚시대로 썼던 모양이다.곧은 데가 없이 멋대로 굽었다.그까짓 낚시대가 굽었다고 신경을 쓸리 만무한 노인은 초연한 자세로 길가 어딘가를 굽어보는 눈치다.온갖 수염이 덥수룩이 자라 얼굴 가장자리를 돌아갔지만,인상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늙은 어부는 대삿갓 보다는 차양이 넓은 모자를 썼다.그 아래로 드러난 눈매가 인자한 노인은 초연한 얼굴을 했다.입가 윗쪽의 수염 수가 아직은 거므스름하지만,살쩍에 난 터럭 빈과 구렛나루는 이미 희게 세어 버렸다.그러고 보면 설빈어옹이라 해도 좋을 흰수염의 늙은 어부인 것이다.갯가 등성이에는 갈대가 어부의 수염만큼이나 아무렇게 자랐다. 설빈어옹은 이현보(1467∼1555년)가 고려때 가사를 고쳐 쓴 「어부사」에 나온다.「설빈어옹」이 주포간,자언거수 승거산이라 하놋다」로 시작하는 가사가 그것이다.
  • 조선화가 김시의 「당나귀 끄는 소년」(한국인의 얼굴:103)

    ◎고삐당기는 얼굴에 구김하나 없어 조선의 16세기는 중국을 거쳐 들어오는 외래문물에 보다 밝게 눈을 뜨기 시작한 시기다.권력핵심의 사대부,특히 공신이나 왕실과 인연을 맺은 척신들은 새로운 정보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그런 분위기는 실학이라는 이념을 받아들이는 바탕이 되었다.그림도 예외가 아니어서 조선 초기의 화풍을 계승한 가운데 중국 화풍을 조금씩 곁들인 작품세계를 개천했던 것이다. 그 16세기는 조선시대 전체를 전·후기로 나눌때 전기에 해당한다.또 초·중·후·말기로 구분하면 조선 중기(1550∼1700년)라 할 수 있다.그 시기의 대표적 화가는 김시(1524∼1593년)다.대표작으로는 지금 호암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783호 「동자견려도」가 꼽힌다.제목 그대로 소년이 당나귀를 끌어당기고 있는 그림이다.통나무 다리를 사이에 두고 다리를 건너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당나귀와 기어이 끌고가려는 소년의 모습이 지극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소년은 주인을 따라 한나절 산천바람을 쐬러 나온 모양이다.그런데 집에 돌아갈 채비를차린 주인 나리께 대령한 당나귀가 냇가에서 말썽을 부리고 있다.그러나 뻗대는 당나귀에 질세라 소년은 젖먹던 힘을 다해서 고삐를 팽팽이 거머쥐었다.소년과 당나귀의 대결이 해학적이거니와,박진감이 넘치고 있다.당나귀를 잡아끌고 있는 소년은 신분을 떠나 얼굴이 잘 생긴 홍안의 미소년이다. 소년은 힘을 쓰느라 제법 큰 머리통을 뒤로 젖혔다.당나귀가 말을 제대로 들어먹지 않는데도 얼굴에는 구김살하나가 없다.그래서 표정이 한껏 맑다.골상이 둥글둥글하나 미련스럽지 않은 까닭은 이목구비가 또렷하기 때문일 것이다.오히려 총명한 인상이다.붓으로 그린 것처럼 확연한 눈썹 한참 아래로 눈매가 초롱초롱하고 복스러운 코에 제법 날이 섰다.도타운 입술에 작은 입을 했다.그래도 소년은 말수가 헤퍼보이지는 않았다. 이 그림은 산수속의 인물에 촛점을 맞추었다.이른바 대경산수인물화에 속하는 이 그림의 형색은 조선 초기의 회화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이는 중국 절강성을 비롯한 강남의 화원들이 15세기 후반부터 주도한 절파의 화풍을 수용한 것이다.그 절파의 흔적은 주산의 바위표면을 도끼로 팬 것처럼 명암을 뚜렷이 구분한 이른바 부벽준기법에서 나타났다. 그림을 그린 김시는 주로 명종과 선조때 활약한 선비화가다.양송당이라는 아호를 가진 그는 이 그림에도 아호를 낙관했다.그리고 김시계수라는 네모꼴 붉은 도장을 찍어놓았다.
  • 조선전기 그림속 당나귀탄 선비(한국인의 얼굴:102)

    ◎학창의에 치포관… 나들이길 여유로움 조선시대 전기의 화가 학포 이상좌(1465∼?)는 하마터면 막치의 그림을 그린 환장이로 일생을 살았을 인물이다.그림을 비록 잘 그렸다 할지라도 어느 선비의 사내종 노복이었으니까,애초에는 신분상승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그러나 도화서의 화원이 되었다.이는 개인능력을 중시한 조선왕조의 합리주의적 통치이념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인물화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다.아주 빠른 솜씨의 선묘로 인물의 특징을 그려냈다.그의 작품으로 보이는 「나한도첩(호암미술관 소장)」에서도 그의 인물화 솜씨가 잘 드러났다.1545년에는 임금 중종의 얼굴 어진까지 그렸다.그리고 이듬해 공신들 초상을 그려 원종공신 칭호를 받았다.그림을 가지고 벌떡 일어난 그는 자신의 입신출세 뿐 아니라 아들 둘과 손자 이정에게로 화업을 물려주었다. 이상좌의 작품으로 전해오는 그림중에는 개인소장의 「기려도」가 있다.그림제목이 가르키는 대로 당나귀를 탄 인물을 그렸다.당나귀에 올라앉은 사람은 두루미 자태가 연상되는 두루마기 학창의를 입고,상투만을 가린 치포관을 쓴 선비다.나이가 들어보이는 선비의 인품은 한마디로 점잖다.수행하는 노자가 없고보면 선비는 단출한 나들이를 떠나는 모양이다. 선비네 집에서 기르는 삽살이가 주인 행차를 따라붙은 것일까.선비가 고개를 돌렸다.당나귀도 덩달아 머리를 슬쩍 돌려 흘끔 뒤를 쳐다보고 있다.그런데 선비는 워낙 점잖아서 경거망동한데가 없다.커다란 눈을 그저 물끄러미 내리깔았다.이마가 좀 튀어나와 됫박이마다.그 밑에 눈썹은 머리가 다 빠져 훤한 정수리께에 비하면 훨씬 짙었다.눈에 들어갈 빗물을 피할만한 눈썹이다. 머리칼은 치포관 사이로 몇가닥이 흘러 내려왔다.그 사이로 귀가 크게 드러났는데,반대쪽에서는 치포관의 끈이 바람에 나부꼈다.그러나 제법 자란 흰수염은 바람결을 피해 고개를 돌려서인지,잔잔하게 매달려 있다.『저 녀석이 어쩔려고 따라오나…』하는 눈치를 보이기는 했으나,쉬이 입을 열지는 않을 참이다.선비다운 풍모가 인물 여러군데에 그득그득 배어있다. 조선시대 산수인물화에는 이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당나귀가 곧잘 나온다.삼국시대의 역사이야기 「삼국유사」에도 등장하는 당나귀는 행세깨나 하는 옛 사람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조선후기의 「경도잡지」는 「유생들은 나귀 타기를 좋아한다」고 적었다.말보다는 덜 빨라 별로 위험하지 않고 먹이기도 쉬워서 당나귀를 많이들 탔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인물은 물론이고,당나귀의 동작마저도 사실적으로 그렸다.그래서 이상좌의 그림은 12세기말∼13세기초에 이르는 시기의 중국 산수인물화의 대가 마원의 화풍을 닮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서양화가 이희중씨 유화작품 개인전/동산방화랑 16일까지

    ◎새·꽃 등 민화풍 소재/한국적 분위기 물씬 독일에서 6년간 활동하다 지난 91년 귀국한 서양화가 이희중씨(41)가 개인전을 지난 7일부터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733­5877)에서 갖고 있다.16일까지. 이씨는 민화를 구성하는 다양한 형상들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에 치중,독일에서도 독특한 화면으로 주목받았던 작가.산수나 화조,꽃,책거리 병풍 등을 현대적인 상징과 기호의 형태로 바꿔 동양의 신비함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와 꽃 등 종전의 민화풍 소재들을 단순하면서도 한국적인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는 근작 유화들을 선보이고 있다.
  • 강렬한 색채 석판화속의 ‘우리것 향수’/김정준씨 개인전

    ◎관훈동 인사갤러리/민화적 분위기 표현 어린시절의 향토색짙은 추억을 바탕으로 삭막한 현실 삶에 대한 거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가 김정준씨가 개인전을 지난 30일부터 서울 종로구 관훈동 인사갤러리(735­2655)에서 갖고 있다. 김씨는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소재를 꾸준히 견지하면서 현대인이 겪고 있는 인간상실과 환경오염을 은유적으로 꼬집는 문제의식으로 일관해오고 있는 작가.어린시절 마을 농악놀이나 동구밖 숲 사이로 환히 빛나는 「고향의 달」,갈대밭 등을 부각시켜 현대인의 갈등과 모순을 민화풍으로 부각시키는 화면이다. 이번 전시에 선보이고 있는 작품들은 민화적인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면서 기본적인 색채의 강렬함을 더해 우리 것에 대한 향수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는 근작들인데 구상의 윤곽에 추상적인 내용이 이채를 끄는 「유년의 삽화」 석판화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6일까지)
  • 서양화가 김태씨 72년∼최근작 개인전/관훈동 모란갤러리

    ◎순수 자연주의 작품 풍경·인물·정물화 지난해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한 서양화가 김태씨가 지난 72년 이후부터 최근 작업한 작품들을 모아 보여주는 개인전을 서울 종로구 관훈동 모란갤러리(737­0057)에서 갖고 있다. 사실주의 구상의 아카데믹한 화풍으로 일관한 김화백은 다양한 흐름과 사조의 홍수속에서도 특정 이념이나 관념을 작품속에 드리우지 않은 작가로 평가받는 인물.현대미술에서 점차 자리를 잃어가는 구상미술을 줄기차게 강조하며 순수한 자연주의에 기반한 생명력있는 작품을 고집해왔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서울대박물관에서 가졌던 초기작품(1952∼1972년) 전시회에 이어 두번째 회고전 성격.72년 이후부터 최근 작업한 것들을 한자리에서 일목요연하게 드러내는데 지난해 전시가 미술학도들에게 아카데미즘의 전통을 강조하기 위한 교육적인 분위기의 전시였던데 비해 아카데믹한 사실주의를 바탕으로 작업한 자유스런 분위기의 풍경,인물,정물그림들을 내놓고 있다.30일까지.
  • 감성적 신예작가 손영씨 한국화전/22∼27일 서울갤러리

    ◎“틀에 얽매이지 않는 유려한 화폭”평 전통 한국화 바탕에 자유로운 분위기의 감성어린 화면을 창출해내는 한국화단의 촉망받는 신예작가 손영씨(28)가 첫 개인전을 22일부터 27일까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신문사 내 서울갤러리(721­5969)에서 갖는다. 최근 한국화의 현대성을 추구하는 신진·중견 작가들이 앞다투어 창의성을 표출하고 있는 가운데 손영씨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화면으로 화단의 예사롭지 않은 눈길을 받고 있는 인물중 한 사람.전통 한국화풍에 추상적인 감정 표현이 독특한 분위기로 살아나 유려한 화폭을 과시하고 있는 작가다. 손씨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보다도 바탕 재료와 이미지의 자유롭고 부드러운 조화다.화선지위에 먹물이나 먹빛을 그대로 강조한 이미지의 두드러짐이나 발묵의 자연스런 변화와 서정성이 현대적 감성으로 두드러지는 화면이 특징이다.전통회화의 현대적 창작으로 불려지는 기법을 택하면서도 더 한층 간략하고 상징적인 이미지 표현이 색다른 현대 한국화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는 평이 화단의 일반적인 평가다. 이번 전시는 특유의 바탕색과 이미지의 생생한 조화를 모색하면서 기하학적 혹은 원초적인 기호를 상상하게 만드는 근작들을 선보이는 자리.주로 지난해부터 작업한 것들로 수묵과 주황색 등 절제된 색상을 쓴 작은 사각 화면을 연결하거나 별도의 이미지들을 모자이크·콜라쥬한 형태가 하나의 종합적인 이미지를 통합해내는 분위기의 작품들이다.
  • 고려시대 안향 초상화(한국인의 얼굴:99)

    ◎기품어린 눈매에 인본주의 향한 열정이 고려시대 책에는 그림에 대한 기록이나 그림에 붙여놓은 글월인 제화시가 꽤 전해오고 있다.그럼에도 실물의 그림이 흔치 않아 그 흐름이나 화풍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기는 어렵다.부처나 보살을 그린 종교화 성격의 불화를 빼고나면 고려회화는 몇 점에 지나지 않는다.공민왕이 그렸다는 두 점의 수렵도 이외에 신선과 학을 그린 그림,초상화 등이 고작이다. 초상화로는 안향(1243∼1306년)의 영정이 있다.경북 영주시 순흥 내죽리 소수서원이 소장한 이 초상화는 고려시대에 그린 그림을 조선 명종때 그대로 베껴 그린 모본이다.그러나 고려 초상의 전통을 보여주는 그림이어서 국보111호로 지정되었다.세로 37㎝,가로 29㎝ 크기의 비단 바탕에 물감을 써서 그린 본격 초상화다.누가 그렸다는 기록은 전혀 남기지 않았다. 요새 사람들이 마치 독사진을 찍는 것처럼 포즈를 잡았다.관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이지만 모자까지 갖추었다.모자는 천으로 만든 문라건인듯 한데,요즘 역사드라마에 나오는 문라건 보다는 춤이 좀낮았다.그리고 고려인들의 일상적인 겉옷 수포를 입었다.눈 높이를 약간 비켜서 위쪽에다 눈길을 준 초상의 주인공은 전체적으로 단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고려의 선비다.어떤 볼룸이 들어가지 않은 평면의 초상화일지라도 사실적으로 보인다.눈썹과 눈,수염 등을 가느다란 선으로 꼼꼼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이다.눈썹과 수염은 터럭 하나하나를 정성들여 그렸다.은행알을 닮은 눈매에는 쌍꺼풀이 지지 않아 눈이 더 없이 깔끔했다.그리고 동자가 맑아 기품이 어렸다.길어 보이는 코는 옅은 묵선을 그어 표현하고 입술은 얼굴색보다 더 붉은 색깔을 입혔다.맞물린 입술사이에 진한 묵선을 가로 그었다.그래서 과묵한 표정이 되었다. 이 초상화에서 만난 고려인 안향.고려불화에서 보아 온 불·보살들과는 달리 인간적인 얼굴로 다가왔다.그가 살았던 고려 후기는 위기의 시대였다.무신집권에서 비롯한 정치의 불안정,불교의 타락과 무속의 성행,몽고의 침탈 등이 위기의 실마리가 되었다.그러한 시대상황속에서 안향은 불교보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이상을 실현코자 했다.특히 인재양성을 통해 인간이 지배하는 인본주의 사회를 꿈 꾸었던 것이다.그러고 보면 이 초상에는 자기수양의 그늘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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