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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독실태」 조사 의원단 파견키로

    국회 본회의는 3일 동서독간의 경제화폐및 사회·정치통합 과정을 연구조사하기 위해 「독일통일과정 실태파악 의원단」을 현지에 파견하기로 의결했다. 국회는 이에따라 이번 임시국회 폐회직후 10인이내로 구성되는 의원조사단을 독일로 파견키로 했다.
  • 「붉은 광장」선 시민들 반공시위/소 28차 당대회 이모저모

    ◎“2류국 전락위기”고르비,개혁 촉구/급진파,탈당 연기… 보수파도 의장직 도전 자제 ○신형투표기 설치 ○…소련 전국에서 4천6백83명의 대의원이 참가,불참자가 26명에 불과한 가운데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가 열리고 있는 크렘린궁 회의장에는 투표기가 설치돼 과거 대회와는 크게 변모된 모습. 즉 과거 수십년간 기계적 거수기역할에 머물러왔던 대의원들이 이제는 남의 눈을 의식치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른 표결을 할 수 있게된 것. 이 신형 투표기를 이용한 첫번째 표결에서는 당이 인민에게 책임을 지는 구조도입문제를 회의일정에 포함시키자는 제안에 대해 3천4백17명의 대의원들이 반대,찬성자 1천여명을 누름으로써 보수파들이 승리. ○“공산당을 법정에” ○…당대회 개막과 때를 같이해 크렘린궁이 위치하고 있는 모스크바 붉은 광장 한편에는 3백여명의 시민이 모여 공산당 반대시위를 전개. 「인민에 대한 범죄혐의로 공산당을 법정에 세우자」는 등의 반공산당 깃발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던 이들 시위대는 대의원들을 태운 검정색 볼가승용차 대열이 광장을 통과할때마다 야유를 보내는 모습. 이에 경찰이 개입해 군중들을 차량 행렬로부터 강제로 격리시켰으나 체포자가 있는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당통제권 장악 애써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2일 개막된 소련공산당 제28차 당대회에서 자신에 대한 사임요구를 물리치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호하는 등 이번 당대회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당초 이번 당대회에 불참하고 공산당에서 탈당하기로 계획하고 있던 소련공산당내 급진세력인 민주강령운동측은 이같은 계획을 연기했다고 밝혔으며 2주전까지만해도 고르바초프를 축출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던 보수파들도 고르바초프에 대적하기 위한 후보를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이날 당대회가 개막된지 9분쯤 뒤에 북서부 시베리아지방의 마가단 출신 광부인 블라디미르 블루도프라는 대의원이 국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실패한 책임을 지고 정치국과 당중앙위원회 멤버 전원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음에도 불구,이날 상오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사항은 고르바초프의 연설이 아닌 그의 당대회 통제능력인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정치국 및 당중앙위의 퇴진 요구안에 대해 자신의 연설이 끝난뒤 이 문제를 검토하자고 제의했으며 4천6백83명의 대의원들은 이를 지지함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공산당내 강경파인 이반K 폴로즈코프 신임 러시아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는 대회장밖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자신은 고르바초프에 맞서 중앙당서기장직 경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탄광부들은 당지도부가 생활조건 향상에 실패한데 항의하기 위해 이번 당대회 폐막을 하루 앞둔 오는 11일에 당일 총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위협하는 한편,당지도부의 대거 축출,당자산의 국유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당관료제 격렬 비난 ○…고르바초프는 이날 연설에서 소련정부의 많은 공무원들이 그들의 권력과 특권을 보호하는데만 연연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련정부 및 공산당의 방대한 관료제도를 비판했다. 그는 이어 『우리 자신들은 사회주의로부터 스탈린주의 색채를 제거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동구권의 강경공산정권의 붕괴를 비호하고 『소련이 급격히 2류 강대국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급진적 개혁은 필수적인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는 구체적 제안을 거의 내놓지 않았으나 공산당원들에게 ▲고급두뇌 및 인력의 해외유출 중단 ▲외국자본의 유입을 위한 정부의 농기계 생산독점 종식 법안의 통과 ▲소련화폐에 세계시장에서의 태환성을 조속히 부여할 것 ▲느슨한 기초에서라도 국가를 보전할 수 있는 소연방내 15개 공화국들을 연합시키는 새로운 조약에 관한 협상을 벌일 것 등을 당부했다.
  • 통일기대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3)

    ◎쌓이는 상품…「줄서기경제」가 사라진다/동독기업 자생력 회복이 최대과제/국민도 자본주의적 사고수용 시급/동독의 자구노력 없을땐 서독 지원에도 한계 「7ㆍ1경제통합」 전날 까지만 해도 텅비어 있던 동독상점들의 진열대에는 2일부터 다시 상품이 그득히 쌓이기 시작했다. 비누한개 사과몇개 사려해도 지루한 줄서기를 강요당했던 엊그제의 사정에 비하면 세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현지의 신문들은 이번 조치로 독일경제사에 새지평이 열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회주의경제체제를 하루아침에 자본주의체제로 바꾸어 놓은 이 조치는 아마도 20세기 경제사에 최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40여년간의 공산독재 아래 사회주의경제의 특징인 배급제도에 길들여져온 동독국민들은 이날 경제통합조치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 상점에서 가전제품이며 옷가지며 식료품 등 평소 사고싶고 지니길 원했던 물건들을 자유스럽게 선택하여 사들고 나오는 것으로써 자본주의사회의 자유시장경제와 첫 만남을 했다. 『마르크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고 갖고싶던 물건을 사고 나니 딴 세상에 온듯 싶습니다』부인과 함께 컬러 TV를 사가지고 나오던 오토 슐레만씨(46)는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직은 뭐가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가경제적인 측면으로 보면 이번 조치로 동독은 완전히 서독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렸다. 서독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발권을 전담함은 물론 통화의 수급조절도 담당하게 된다. 또 국가예산의 통제권도 서독정부가 행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쓰러져 가는 동독경제가 뜻대로 활기를 찾게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렵다. 개인들에 있어서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국가경제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불확실성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 적용된 양독화폐교환 비율,그리고 이에 소요된 2백60억마르크라는 막대한 화폐발행은 앞으로 인플레를 부르고 금리를 올리는 역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독의 모든 기업들은 가능한한 신속히 국영에서 민영체제로 바꾼다는 협정 내용에 따라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이 1일부터중단됐다. 시장경제의 경쟁체제로 내몰린 것이다. 동독의 공장들중 자유경쟁에서 견뎌낼 수 있는 곳은 30%에 불과하며 절반은 재정지원을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이고 20%정도는 아주 짧은 기간안에 도산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경제연구소는 경제통합과 관련한 연구보고서에서 단기적인 부정적 측면을 보다 자세하게 예시했다. 이 연구소의 하이네르 후라베스크 책임연구원은 동독의 기업들은 생산설비의 구조적 취약성,생산수단의 낙후,통신시설 미비,노동자들의 근로의욕 저하 및 자발적의사결정태도의 미숙 등으로 자유경쟁체제에서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기업의 도산 등으로 동독의 실업률이 91년에는 1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회색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는 자신들의 경제력으로 이를 담당,해결해 내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국민들이 불안속에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1일 통화통합에 즈음한 TV연설을 통해 경제통합조치의 성공적인 수행만이 분단된 조국의 완전통일을 조속히 달성할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동서독은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총 1천1백50억마르크 규모의 「통독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동독은 이 기금에서 올해에 2백20억마르크,내년에 3백50억마르크,92년에 2백80억마르크,93년에 2백억마르크,그리고 94년에 1백억 마르크를 받게된다. 이같은 지원규모는 동독의 경제재건에 큰 도움을 주게될 것은 사실이겠으나 충분한 해결책은 될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동독의 경제가 새로운 시장경제체제에 얼마나 빠른 적응력을 보이느냐가 문제해결의 초점으로 등장되고 있다. 도이체 방크 이사 쿠르트 카시씨는 『억만금의 마르크도 모든 것을 다 해결 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는 사회주의 경제에 물들어있는 사람들의 사고를 어떻게 빨리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생산시설을 보강하고 통신수단과 경영관리 체제를 개선하여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인환경을 갖추어야 하며 이와함께 관료주의 타파등 경영층과 근로자들의 사고전환,서독으로부터의 재정지원 등이 조화를 이룰때 경제통합은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며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자유시장 경제로의 완전한 탈바꿈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이다.
  • “통독 만세”… 폭죽ㆍ경적속 열광/경제통합 첫날 베를린 표정

    ◎비밀경찰 본부서 “밤샘 춤파티”/환전인파 쇄도… 실신사태 속출 그것은 한편의 감동적인 드라마였다. 1일 0시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통합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동독은 일순간 환희로 가득찼다. 동베를린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을 꽉메운 수만명의 동독인들은 광장시계탑의 대형시계가 0시를 알리자 일제히 환호성을 울렸다. 그순간 동베를린 하늘은 폭죽의 불꽃과 섬광으로 수놓아졌으며 가정에서,거리 곳곳에서 샴페인이 터뜨려졌다.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려대고 많은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추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베를린장벽이 개방되던 날 전세계를 감동시켰던 「광란의 축제」가 재연되는 순간이었다. 동베를린 하늘에 울려퍼진 알렉산더광장 시계탑의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는 단순히 하루를 마감하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동독의 마지막을 알리는 역사의 종소리였다. 동독은 이제 종소리와 함께 역사속으로 묻히고 있는 것이다. ○…자정을 앞두고 쓸모가 없게 된 동독 화폐 잔돈부스러기들을 다 써버리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온 동베를린 시민들은 길거리 카페와 주유소등에 장사진을 쳤으며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잔뜩 들뜬 분위기가 시가지를 뒤덮었다. 동서독의 모든 국경들은 일시에 개방됐으며 동서베를린 경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찰리검문소를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은 자리를 떠서 사라져갔다. ○…다른 은행들과는 달리 동베를린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유일하게 이날 0시부터 화폐교환을 해줄 수 있도록 은행문을 연 동베를린시내 알렉산더광장 근처의 도이체방크 주변에는 쓸모없게 된 동독 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바꾸려는 시민들이 1만명이상 몰려들어 축구장에 몰려든 관중을 방불케 하기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들어 밀고 밀치는 소란과 아우성이 계속되고 일부 시민들이 군중사이에 끼여 실신하는 사태가 빚어지자 은행측은 질서정리에 나선 경찰의 휴대용 확성기를 통해 바꿔줄 돈이 충분하니까 서두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하는등 고객 접대에 안간힘. ○…이날 도이체방크에서 동독화폐를 서독 마르크화로 가장 먼저 환전한 사람은 올해 41세의한스 요하임 코살리씨로 그는 은행측으로부터 1백마르크와 꽃다발을 선물로 받는 행운을 잡았다. 코살리씨는 예금액중 약 1천2백달러 상당을 서독 마르크화로 환전했는데 그는 이 돈으로 가족과 휴가를 즐길 계획이라고 응답. ○…이날부터 서독 마르크화만이 동서독 양국의 공식화폐로 통용되게 됨에 따라 못쓰게 된 동독 화폐들이 화폐 수집가들의 투자대상이 돼 주화 풀세트의 경우 벌써부터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고. ○…동베를린의 비밀경찰 병영으로 사용되던 건물에서 30일 밤 서독마르크화 시대의 도래를 기념하는 주요행사의 하나로 「도이치 마르크화속에서 춤을」 즐기자는 구호아래 개최된 파티에는 1천명이상의 동서독 젊은이들이 쇄도해 춤과 열기로 범벅. 주최측은 예상을 넘는 고객들이 몰려들자 정원을 초과한 수백명의 젊은이들을 돌려보냈으나 그래도 준비한 음식과 맥주등이 모자랐다고 즐거운 비명. ○…동베를린시내 문화의 전당건물에 모여 영화관람등을 하고있던 수백명의 젊은이들은 이날 0시 구내 방송을 통헤 『때로는 사랑했고 때로는 증오했던 우리의 조국 동독 인민공화국에 작별을 고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오자 휘파람과 환성을 지르며 환호. 연인들이 입을 맞추고 동전을 공중에 던지는등 한바탕의 소동이 가라앉으면서 방송에서는 곧이어 동독국가가 흘러나왔다. ○…대부분의 동독 국민들은 이날 동서독의 경제통합을 환영했으나 일부에서는 앞으로 예상되는 대량의 실업사태및 인플레등과 관련,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않기도. 동독에서 앞으로 일자리를 잃게될 것으로 추정되는 실업자 수는 최저 50만명에서부터 최고 4백만명까지 전문가들에 따라 추정치에 큰 차이가 나고 있는 실정이나 어떻든 대량의 실업사태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실정. ○…동독 당국은 공중전화와 기차표 판매대등에서 서독 마르크화를 받아들이고 동독 화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기계를 재조정하는 작업을 진행하는등 경제ㆍ화폐통합에 따라 생겨날 문제점들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분주한 모습. 또 백화점과 대형상점들도 아예 문을 닫고 1일부터 판매될 서방상품들을 위해 기존판매상품들을 창고로돌리고 서방상품들을 위한 매장진열과 서구풍의 화려한 실내장식작업에 나서는등 달라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
  • 사실상의 통일 독일 탄생(사설)

    독일의 통일이 마침내 확고한 눈앞의 현실로 달성되어 가고있다. 동독의 경제를 서독경제에 흡수시키는 동ㆍ서독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 국가조약」이 1일 정식 발효되었으며 동시에 지난 40여년 동안이나 동ㆍ서 독일과 베를린을 분단시켜온 국경이 완전소멸되었다. 독일인들은 이제 단일경제권에서 같은 화폐를 사용하며 동ㆍ서독을 마음대로 내왕하는 통일국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의 통일인 것이다. 그것이 통일이 아니면 무엇이 통일이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12월 초순으로 예상되는 동ㆍ서독 동시자유총선의 실시와 그 결과에 따라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정치통일의 형식절차 뿐이다. 양독 정치지도자들은 금년내에 완전통일을 달성할 결심이며 그것을 막을 장애요인은 돌발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없는 것 같다. 통일 후의 군사적 지위와 관련,통일 독일의 나토잔류에 대한 소련의 거부도 그렇게 완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ㆍ영ㆍ불ㆍ소 전승 4대국에 분할점령당했던 패전 독일이 49년 동ㆍ서독으로 분단 독립한 이후 40여년 만에 이루어지는 독일의 통일이다. 작년 11월9일 세계를 놀라게한 베를린장벽 붕괴 7개월 만에 달성되는 게르만민족 40년 비원의 통일인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때만 해도 독일의 통일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져 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모든 예상은 빗나가 버리고 독일의 통일은 어느새 우리 눈앞의 현실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여러가지 여건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미소냉전의 희생물로 민주ㆍ공산 대립의 분단국인 우리의 입장에선 그러한 독일의 조기통일 달성을 환영하고 성원을 보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통일에 대한 우리의 감회가 부러움만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한 나라다.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가 먼저일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냉전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통일은 독일쪽에 먼저 오고 있으며 한반도는 오히려 더 얼어붙고만 있는 통탄할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은 문화전통이 다르고 소련의 영향력에도 차이가 있으며 또 개혁중단의 중국이 있다는 등등이 한반도의 통일분위기 조성을 늦게 만드는 이유들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통일에의 의지와 준비면에서 우리가 서독의 경우보다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반성을 떨칠 수 없다. 6ㆍ25를 비롯,북한에 의해 야기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남북한은 그동안 대결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서독은 대결과 갈등속에서도 모든 일에 있어 통일에 대비해 왔음이 최근에 와서 계속 입증되고 있다. 서독 헌법은 제정될 때 이미 통일을 상정한 23조가 마련되었고 통일의 조건인 국민적 동질성 유지를 위한 인적ㆍ물적 교루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TVㆍ라디오방송은 있는 그대로 상호시청되었고 어느 쪽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았다. 서독의 동방외교는 우리의 북방외교보다 20년이 앞선다. 72년에 이미 동ㆍ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다음해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돈으로 통일을 샀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통일에 결정적 수단이 되고 있는 서독의 경제력축적도 따지고 보면 통일에 대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가 왔을때 모든 것을 다 동원한 총체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세계는 물론 그들 자신도 놀라는 급속한 통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독까지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위한 자기부정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독일의 통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초조해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통독의 교훈을 거울삼아 꾸준히 노력하면서 반드시,그리고 멀지않은 장래에 오게 될 것이 틀림없는 기회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 남은 통독일정 어떻게 되나(이제 독일은 「하나」:2)

    ◎「12월 정치통합」 장애없이 “쾌주”/양독 정당들,가을까지 합당완료 계획/일반시민ㆍ야당은 적응기간 짧아 불평/국제적 이해관계 조정등 외부적 문제만 남아 1일의 경제ㆍ사회적 통합으로 실질적인 통일을 달성해낸 동서독이 완전한 통일을 이룩할 시기는 언제쯤 될 것인가. 화폐단일화를 통하여 내부적 통일을 무난히 마친 독일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이제 정치통합이라는 절차만 남겨놓은 통일완성의 시기와 방법으로 옮겨졌다. 동독전역의 환전소에 서독 마르크화 인출을 위한 긴 행렬이 꼬리를 잇고 있던 1일 아침 로타르 드 메지에르 동독총리는 동서독에 동시에 방송된 TV연설을 통해 『우리는 이제 통일에의 여정을 늦출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그대로 진전되어야 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역설하면서 동서독의 통일완성을 위한 나머지 절차에 독일민족 모두의 노력과 협조를 당부했다. ○내부적 통일은 끝나 그가 지적하고 있는 동서독 완전통일에의 여정은 바로 정치통합절차를 두고 한 말임은 물론이다. 그동안 활기차게 진행시켜온 경제ㆍ사회통합과 마찬가지로 정치통합 일정도 중단없이 추진해 나가겠다는 다짐이며 약속이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만난 동서독 일반시민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통일작업의 속도와 절차에 한결같이 우려의 빛을 감추지 않았다. 환전을 마치고 나오던 제라드 폴씨(46)는 『마르크화를 한움큼 손에 쥐어 마음은 흐뭇하지만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라고 말했고 서베를린의 한 청년은 『통일이 정치지도자들만에 의해 완성될 수는 없다』고 현재의 통일작업추진 방법과 속도에 못마땅한 느낌을 솔직히 털어놨다. 이들의 공통된 지적은 통독을 너무 서두르며 통독이 빠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서독의 정치지도자들은 통일완성작업의 속도를 늦출 눈치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통일완성의 날짜까지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볼프강 세블레 서독 내무장관은 지난달 26일 동서독의 완전통일을 오는 12월10일이나 17일에 끝내버리자고 제의하고 나섰다. 즉 12월9일 또는 17일에 서독 합동의회 구성을 위한 전독총선을 실시하고 그 다음날 바로 통일을 완성하자는 것이다. ○서독,12월10일 제의 서독측은 이를위해 정치통합 협정안을 「토의문서」 형식으로 동독측에 전달했으며 동서독 의회는 오는 9월 각각 이 문제를 상정,의논토록 촉구했다. 동독은 정치통합은 서독기본법(연방 헌법) 제23조의 규정에 따르기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 이 조항은 『독일 그밖의 지역은 독일연방공화국(서독)에 가입한 이후에 기본법의 효력이 발생한다』고 규정,특정지역이 서독연방에 가입을 신청하고 서독정부가 이를 승인하면 서독에 편입되도록 되어있다. 동독정부는 이같은 방식의 통일절차를 밟기 위해 현재 15개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는 행정단위를 분단이전의 5개주로 개편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5개주가 부활되면 오는 9월23일에 지방선거를 실시하여 주의회에서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을 결의하는 순서로 통일작업을 진행시킨다는 일정계획이 동서독간에 논의되고 있다. 양독의 정당들도 오는 가을까지는 이념과 정치노선에 따라 합당절차를 완료할 계획이다. 동서독 양쪽의 정당들은 그동안 여러가지 통합실습 과정을 거쳤다. 가장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통합예행연습은 지난 3월의 동독총선. 선거에 내세운 구호나 공약 정강정책 등이 서독의 자매정당과 꼭같은 것은 물론 선거포스터에는 양쪽 정당총재의 사진이 나란히 인쇄되어 어느쪽의 선거인지 분산키 어려운 형편이었다. 서독 기민당 헬무트 콜총리나 사민당의 라 퐁텐느빌리 브란트ㆍ포겔 등 야당지도자들의 지원유세는 세계언론의 최대관심사였으며 이같은 서독정당들의 선거개입이 선거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같은 과정을 거친 양쪽의 자매정당들은 이제 형식적인 합당절차만 마치면 어렵지 않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정치적 이해와 관련 실제로 양독의 정당들은 구체적인 통합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동서독의 기민당은 오는 10월1∼2일,사민당은 9월27일,자민당은 그보다 앞선 8월25∼26일 합당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동서독의 정치적 통합논의가 이같이 서둘러지고 있는 것은 양쪽의기민당을 주축으로 한 우익집권세력의 정치적 이해에 깊숙히 관련되고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우선 서독의 콜총리가 이끄는 기민당은 경제통합으로 상승된 통일의 열기를 전독 총선에까지 연장,계속 집권의 기회를 잡겠다는 정치적 계산을 깔고 있으며 동독 기민당도 같은 생각인 듯하다. 그러나 쾌속질주를 하고 있는 통일작업의 속도에 대한 일반의 우려와 마찬가지로 동서독 정치권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동서독의 사민당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동독의 민사당등 야당세력들은 통일에 적응할 수 있는 준비기간의 확보 필요성 등을 이유로 12월 전독 총선직후 정치통일 완성이라는 통일일정에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반대의 목소리가 조기통일의 도도한 흐름을 역류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메지에르총리는 『우리는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 너무 빠르지도 않으며 잘못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조기통일 완성에 대한 확신이 넘치는 말이다. 다만 외부적인 문제,즉 국제적인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 동ㆍ서독 「경제사회 통합」하던 날/베를린=김진천특파원

    ◎“게르만 최고의 날”… 헐린 장벽터엔 환호물결/“마음의 벽도 뚫었다”… 새 독일건설 기대/동베를린 지점엔 자정부터 “환전 인파”/국경표지판ㆍ동독화폐 등 “분단상징”수집 열풍 1일은 드디어 동서독이 하나된 날. 이미 헐려버린 장벽,의미를 상실한 경계선,그리고 새로 이어진 옛길등 분단의 실체를 확인시켜 오던 가시적 장애물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서독 주민들간의 마음의 장벽이 말끔히 제거됐다는 점이다. ○「자유왕래」실감 사람도 자동차도 강아지도 그냥 넘나든다. 「자유왕래」 바로 그것이며 이제 베를린은 하나,독일은 통일됐다는 사실을 현장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동베를린 시가지의 분위기도 종전과는 달리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활기를 찾은 주민들의 모습 때문인 듯 했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만난 동베를린 거주 베르너 슈바베씨(67)는 「독일인」이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동서쪽으로 나뉘어 살던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이자리에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두기로 했다고전하면서 『잘사는 서쪽의 친척들을 부러워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으며 이제는 우리도 넉넉해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같이 민족재결합의 실현에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잘사는 나라 서독인이 된 긍지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넘쳐 있었다. ○45년만에 자유통행 ○…동독측은 동서베를린의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의 철시는 물론 양독사이의 국경선과 서베를린과 동독사이의 장벽검문소,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상의 검문소 등 모든 검문소를 지난 28일부터 철수시켰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종전 1시간 이상씩 걸리던 각검문소나 국경통과 지점은 30일 일반도로와 마찬가지로 차량소통이 수월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포츠담 검문소의 베르너 니처조장은 『1일부터 실시될 자유통행의 예행연습을 위해 지난 28일부터 검문을 안하고 있다』면서 『1일부터는 검문소직원 5명중 1명만 남기고 모두 다른곳으로 옮길 예정이며 남아있는 1명도 종전과 같은「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서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에서 가장 먼저 환전을 시작한 은행은 서독의 도이치방크 동베를린지점. 도이치방크는 동베를린 중심부인 알렉산더 광장 바로옆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1일 0시 동베를린지점 개설과 동시에 환전을 개시했다. ○휴일없이 환전업무 도이치방크 동베를린 지점 앞길은 은행이 문을 열기전부터 환전을 하기위해 몰려든 동독인들의 행렬로 꽉 메워졌으며 각국에서 몰려온 보도진들은 역사적인 최초 환전모습을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이너 그램제 지점장은 『오늘을 위해 15일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2일 자정까지 48시간 쉬지않고 환전업무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독의 시중은행인 스파르타카스은행의 90개 지점과 폴크스방크의 20개 지점등 동베를린내 1백10개 은행지점들은 휴무일인 30일에도 은행예금 확인증을 발부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했다. ○“고액예금주는 보고” ○…동독 의원들은 거액을 모은 전 공산당 간부들이 화폐개혁으로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0만마르크 이상의 구좌를 갖고 있는 예금주들의 이름을 보고하도록 국영은행에 요구. 관리들은 동독인들이 서독 마르크를 손에 쥐면 흥청망청 낭비,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검약을 거듭 당부. ○백화점엔 쇼핑 행렬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을 하루 앞둔 30일 동독의 상점들에는 몇시간만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동독 마르크화의 잔여분을 자정이전에 다 소비하려는 동독 주민들로 북적댔다. 동베를린시 중심에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는 주머니에 남은 잔돈을 처분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으며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과 상인들은 광장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도 쇼핑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동베를린시내 첸트룸 백화점 근처에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동독제 의류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동쪽」고객맞자 채비 ○…서베를린 백화점과 가게들은 다음주부터 새돈(서독 마르크)을가지고 몰려들 「동쪽」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 동독인들은 새돈으로 장난감ㆍ식생활용품을 비롯,컬러TV와 VTR등 전자제품을 주로 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베를린의 소규모 가게들은 직원들의 휴가까지 미루며 D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일을 기해 동서국경이 철폐됨에 따라 국경에서의 여행자 검문이 사라지게 되는데 경비초소나 장애물 등은 기념물로 보존될 전망. 그런데 국경지대에 설치돼 있던 각종 표지판 가운데 80%가 이미 수집가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라고. ○…통화통합으로 동독마르크는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됐으나 한편에선 이 화폐에 대한 수집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 특히 동독 마르크 주화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데 풀세트는 한화 2백만원 상당에 거래된다고. ◎동ㆍ서독 통화통합조치 ▲서독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백43억마르크(1백47억달러)에 해당하는 6백t의 지폐 4억장과 7억마르크(4억2천4백달러)에 해당하는 동전 5억개를 동독에 있는 13개 주은행에 수송,동독에서 필요한 초기의 화폐수요는 2백50억마르크(1백51억달러)정도로 예상. ▲동독은 3천여개의 은행 본ㆍ지점과 우체국ㆍ철도역ㆍ관광사 등 7천여개 환전소에 이같은 물량의 서독 마르크화를 배부,1일 9시부터 통화교환. ▲2만5천여명의 직원이 있는 동독 중앙은행은 지난 수주일동안 시민 개개인에 은행구좌를 개설해 주기 위한 작업을 벌여 왔으며 서독 중앙은행은 이같은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2백50명의 자문관을 파견. ▲동독의 경제전환에 따른 경제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총 1천3백억마르크(7백88억달러)가 제공될 예정. ▲현재 동독에는 약 1백30억 동독 마르크가 유통되고 있는데 7월6일까지만 유통가능.〈AP〉 ◎「통합」을 보는 각국표정/시장경제 적응 낙관 동독/몇년간은 고통 겪어 영국/역사적인 변화 시작 일본/번영의 터전을 마련 서독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를 포함한 일부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30일 오는 1일부터 전격적으로 발효되는 동서독의 경제 및 통화통합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는 이날 함부르크에서 가진 주간지 빌트 암 존타크지 최신호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동서독의 경제통화통합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나는 동독인들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더글라스 허드 외무장관은 이날 보수당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영국은 유럽내에서의 경제통합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독일의 경제통화통합은 『비록 동독인들이 몇년동안은 경제재건의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외무장관도 『동서독 통일 움직임은 대립의 시기로부터 유럽이라는 질서안에서 협조라는 역사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양독의 통화통합을 환영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동독의 할레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90년 7월1일은 희망과 결단력 있는 행동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동독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통합에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헬무트 하우스만 서독 경제장관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지만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사회보장ㆍ환경보호 그리고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독의 야당 및 노조 지도자들은 경제통합조치로 인해 동독 노동자들이 절망과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 ○…미국은 동서 양독간의 경제통합이란 거보가 1일 내딛게 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동구권 개편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별문제 없었던 외채도입에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이 최근 경고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독일 통일이 미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정부의 입장에서는 외채를 제때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 동ㆍ서독 “마르크화 통일”/오늘 통화통합조약 발표

    ◎동독 경제주권 서독 이양/“자본주의의 무혈승리/12월 정치통일의 「마지막 조치」” 전문가/“동독은 국가자체가 소멸됐다” 노조기관지 【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이 1일0시를 기해 실현됨으로써 동독은 지도상에만 존재하는 국가단위로 남고 독일은 사실상 통일을 이룩했다. 동서독은 지난 5월18일 체결된 경제ㆍ통화통합조약이 1일 발효됨에 따라 전후 45년에 걸친 분단상태를 종식시켰다. 역사적인 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을 앞두고 서독은 29일 경찰의 삼엄한 호위속에 액면가격으로 총 2백50억마르크(1백50억달러)에 달하는 지폐 6백t과 주화 4백t을 프랑크푸르트의 서독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 본부건물에서 동베를린의 라이히방크 건물내 금고로 운송하는 작업을 완료했다. 이 화폐는 비밀루트를 이용,서독 분데스방크가 동독내에 이미 설치한 15군데 지점으로 옮겨진 뒤 다시 약 9천개소의 임시교환소로 운반돼 1일 상오부터 동독인들에게 배포된다. 동서독의 정치인들은 통화통합이 오는 12월 정치적 통합을 앞둔 중요한 사전 단계롤 보고 있으나 다른 많은 관측통들은 통화통합이 통일독일 창설을 위한 「마지막 조치」라고 지적했으며 동독의 한 노조 기관지는 이로써 동독은 국가자체가 소멸됐다고 지적했다. 1일 경제ㆍ통화통합으로 동독의 경제주권은 서독에 흡수 통합됐으며 동독 마르크화 대신 서독 마르크화가 전 독일에 유통되게 됐다. 유럽 전문가들은 이번 통합을 서독 도이치 마르크화의 승리이며 아런 물리적 충돌없이 자본주의체제가 사회주의체제에 승리를 거둔 첫 케이스로 지적하고 있다. 이로써 동서독은 정치통합만을 남겨놓게 됐으며 동서독은 통일작업을 가속화,올해 안으로 완전통합을 이룬다는 목표아래 일정을 추진하고 있다.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협정은 ▲마르크화의 발전 및 수급조절을 서독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행하며 ▲개인소유권 및 자유경쟁의 인정 ▲자유 물가제도와 노동ㆍ상품ㆍ용역의 교역도 자유롭게 이뤄지도록 하는 서독 주권하의 시장경제원리도입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사회주의 국가 및 사회의 기반을 형성해 온동독헌법 요소들의 기능이 정지,동독에서 사회주의는 완전 종식됐다. 동독은 앞으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가격체제에 대한 보조금지원을 중단,물가를 전면 자유화하는 등 혁명적인 경제변혁을 치르게 되며 이밖에 부가가치세ㆍ소득세 등을 도입해 91년부터 조세행정체계를 서독측에 연계시키게 된다. 동독 주민들은 이날부터 은행예금에 대해 연령에 따라 1대1로 바꿀 수 있는 일정 한도의 돈을 서독 마르크화로 인출,사용할 수 있게 됐다. 사상 전례없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동서독 경제통합으로 유럽의 정치ㆍ경제질서에 커다란 변화가 초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독은 서독연방헌법 제23조의 규정에 의한 통독절차에 따르기로 결정,서독에의 흡수통합에 필요한 여건조성을 위한 지방선거를 오는 9월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 통일기대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1)

    ◎「냉전의 벽」넘어 게르만이 새로 난다/경제ㆍ사회 통합따라 동독 “국가해체”가속/「정치통합」남았지만 「분단아픔」역사속에/「거대국가」출현에 이웃나라선 경계의 눈초리 동서독이 7월1일부터 발효되는 경제ㆍ사회통합을 시작으로 「새로운 유럽 평화질서의 창조」로 의미되는 독일 재통일의 장도에 들어섰다. 타의에 의해 갈라섰던 동서독의 이같은 하나됨은 전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동서 냉전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첫 신호이자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본지는 김진천 파리특파원을 독일에 급파,현재의 뜨거운 통일에의 열정과 그들에게서 배워야할 교훈을 발굴하는 긴급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통일」,거의 반세기에 걸친 독일 민족의 염원이 드디어 실현된다. 1990년 7월1일­ 남의 뜻에 의해 나뉘어지고 등돌려 살아오던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을 기해 양독간의 경제ㆍ사회통합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족분단의 비극 45년만에 처음 느끼는 감격이며 베를린 장벽을 쓰러뜨리고 공산정권을 몰아낸지 7개월만에 이룩해낸 쾌거다. 완전통일까지는 아직 정치통합이라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하나로 묶인 양쪽 시민들의 경제ㆍ사회생활에 있어 나머지 순서는 그리 대수로울게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일에의 마지막 수순인 정치통합이 올해안에 실현될 것이 거의 틀림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때 보다는 양독간에 통일을 위한 공식적인 첫 조치가 취해지는 이날 7월1일을 「통일의 날」로 하자는 성급한 주장이 진한 호소력을 갖는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경제통합은 동독의 경제주권 상실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동독화폐의 가치와 효력이 소멸되고 서독의 마르크화가 단일통화로써 유통되게 된다. 또한 동독에서도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고 자유경쟁ㆍ자유물가 제도가 실시되며 노동ㆍ자본ㆍ상품 및 용역의 수급에 있어서도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특히 이와 같은 통합원칙에 맞지 않거나 사회주의국가 및 사회기반을 형성해 온 동독의 헌법조항들이 사문화된다. 통화통합에 따른 발권은행은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이며 이 은행은 앞으로 동서독 전체의 통화공급과 여신수준을 총괄한다. 사회통합은 노동3권의 보장,사회복지제도 등 서독이 시행하고 있는 각종 제도를 동독에서도 함께 실시토록 했다. 이번 조치를 동독쪽에서 보면 국가해체작업의 착수를 의미한다. 국가기능의 유지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부분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며 또한 경제주권이 서독에 이양됨과 아울러 각종 사회제도가 서독과 합쳐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분야에서 국가로서의 동독은 이미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사라지는 마당에 종전에 이나라를 지배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됐음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여러차례 민족이 갈라졌고 주변 나라들에 의해 통일을 방해받아온 독일민족으로서는 이번 조치가 45년만의 분단해소 착수라는 단순한 감격과 흥분의 차원을 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금세기안에는 불가능한 것만으로 그리고 1년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동서독의 통일논의가 촉발된 것은 바로사회주의 경제의 몰락과 공산독재정권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지난해 11월의 동독 국민들의 시위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의 경제ㆍ사회통합 실현은 독일의 재통일이라는 측면외에 동서의 냉전체제가 실질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는 첫 신호음이며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로 치부되고 있다. 전후 냉전시대를 상징해온 베를린 장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독측은 이번 경제ㆍ사회통합조치의 실현에 맞추어 이달들어 지난 61년 베를린장벽 설치로 단절됐던 동서독간의 모든 도로망의 복원작업을 펴왔으며 오는 2일까지는 양독 연결도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모두 제거된다.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바로 「경제대국 독일」의 출현을 의미한다. 게르만민족에 의한 피침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이웃나라들은 통독에 따라 다시금 독일민족의 세력 확대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의 비대는 자칫 유럽의 세력균형을 흔들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통합을 주축으로 한 EC(구주공동체)의 기능 강화를서두르는 것도,폴란드가 국경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속셈도,소련이 통독의 나토 잔류를 반대하는 이유도 모두 거대 독일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부터 실질적인 통일을 경험하며 「한나라」로의 완전통일을 향해 다시 남은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ㆍ사회통합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며 양쪽의 지도자나 국민들이 겪게 될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여하히 극복하느냐가 마지막 남은 통일작업의 수순을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 주요일지 ▲45. 5. 8 나치독일 항복. 미ㆍ소ㆍ영ㆍ불 독일분할통치 ▲48. 4. 소,서베를린 봉쇄 ▲49. 5.23 서독 정부수립 ▲49.10. 7 동독 정부수립 ▲55. 5. 서독,나토가입. 동독,바기구 가입 ▲61. 8.13 동독,베를린장벽 구축 ▲72. 양독,외교관계수립 ▲87. 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 첫 서독방문 ▲89. 1. 8 동독인들 대량탈출 시작 ▲89.11. 9 베를린장벽 붕괴. 동독국경 개방선언 ▲90. 2. 6 동독,비공산연립정부출범 ▲90. 2.13 동서독 통화단일화추진합의 ▲90. 3.18 동독총선. 기민당승리 집권 ▲90. 4.23 서독,화폐 1대1교환 동의 ▲90. 5.18 양독,경제ㆍ사회통합협정조인 ▲90. 6.17 동독 국가해체작업 시작 ▲90. 7. 1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실현
  • 「불건전한 고성장」에“브레이크”/수정된「하반기경제운용방향」의 특징

    ◎「내수중심」서 「수출중심」으로 물꼬 돌려/소비성자금,저축ㆍ「생산」부문으로 유도/무리한 통화긴축 거부… 「한자리물가」억제엔 의문 26일 발표된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은 내수진정을 위한 대책과 수출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를 이루고 있다. 이는 내수쪽에 치우치고 있는 자원배분을 수출과 제조업 쪽으로 돌려 내수중심의 성장을 수출중심의 성장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6ㆍ26」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은 수출과 제조업의 활성화에 역점을 두는 성장기조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승윤경제팀의 첫 작품인 「4ㆍ4대책」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다만 이번에 내놓은 대책은 그동안 성장기조의 경제정책이 파생하고 있는 과소비,건설경기과열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미조정(fine tuning)을 가미하고 있어 「4ㆍ4대책」의 보완대책으로 보여진다. ○「4ㆍ4대책」과 같은 맥락 「6ㆍ26대책」이 갖는 이같은 성격으로 인해 성장쪽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통화긴축 등 근원적인 물가안정 대책은 배제됐다. 경제기획원은 하반기 경제운용의 중점을 한자리수 물가를 지켜 나가는데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소비자 물가는 올들어 급등세를 지속해 상반기중에 이미 7%선을 넘어서고 있다. 이는 당초 정부가 연말 억제목표로 설정했던 5∼7%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9%선으로 물가전망을 수정했다. 그러나 하반기 경제운용 대책에는 정부가 수정제시한 소비자물가 억제목표 9%선 마저도 보장할 만한 신뢰성 있는 물가안정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이번 대책에 포함되고 있는 물가안정대책으로는 과소비억제와 건설경기의 과열을 막기 위한 상업용 건축물등 일부 건축규제 강화,농축산물등 수급불균형 품목의 수급조절등이 고작이다. 경제성장은 경제의 안정과 조화를 이룰 때에만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승윤부총리의 경제안정에 대한 시각은 좀 색다른 데가 있는 것 같다. 이부총리는 취임이후 정책기조와 관련해 안정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경제안정이란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포괄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매년 60만명의 새로운 경제활동인구(취업희망자)가 공급되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 연간 10%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다소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고용안정을 포함한 총체적인 경제안정을 위해 성장위주의 정책기조를 지속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성장론자로서의 면모를 읽을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안정론자들은 물가안정이 전제되지 않는 한 성장은 무의미하다는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즉 물가불안은 고율의 임금인상 요구를 낳고,이는 다시 물가불안을 자극하는 인플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는 논리이다. 안정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물가안정을 성장의 종속변수로 파악하는 시각은 이부총리에게 통화긴축에 대한 체질적 거부감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6ㆍ26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경제기획원의 물가정책국 실무자들은 총통화(M₂)증가율 관리목표를 19%에서 18%수준으로 낮출 것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기획원은 「6ㆍ26」대책에서 대체로 실질GNP 성장률 8.5%,GNP디플레이터 8%(소비자물가 10%ㆍ도매물가 5∼6%),화폐유통속도감소 1∼2%등으로 전망하고 있다. ○고용확대에 많은 신경 기획원은 연초 총통화증가율을 15∼19% 수준에서 운용하겠다고 밝혔으나 「6ㆍ26」대책에는 하한선인 15%는 자취를 감추고 슬그머니 19%로 고착시키고 있다. 이승윤경제팀은 소비자물가가 7%를 넘어선 지난 19일 청와대경제장관회의에서 『각자가 진퇴를 걸고 연말물가를 한자리 수로 잡는데 총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진 바 있다. 물론 이날의 다짐이 노태우대통령의 각별한 지시에 따른 것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새 경제팀의 구성원들이 물가안정에 대해 이처럼 강력한 의지를 보여준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청와대회의후 1주일만에 나온 이번 대책의 어느 구석에도 현 경제팀이 물가안정에 진퇴를 걸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대목은 발견할 수 없다. 이부총리는 『무리한 긴축은 오히려 경제안정을 해칠 뿐』이라는 종래의 입장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저축증대 유인책 마련 지난 1ㆍ4분기에 우리 경제는 실질 GNP성장률이 10.3%에 달하는 고도성장세를 회복했지만 내용면에서는 소비증가가 소득증가를 앞지르는 불건전한 모습을 보였다. 1ㆍ4분기중 민간소비증가율은 11.9%로 실질경제성장률을 1.6%이상 앞질렀고 전력소비증가율도 17.4%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고가ㆍ내구재의 소비증가가 두드러져 지난 1월부터 4월까지의 주요내구소비재의 전년 동기대비 판매증가율을 보면 중형승용차는 1백42.8%,에어컨은 1백32.9%,대형냉장고는 1백10.8%,무선전화기는 1백6.9%,VTR는 48.5%를 보이고 있다. 반면에 수출은 계속 부진해 올들어 5월까지의 무역수지적자는 30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경제성장이 수출에 의해 이루어지지 못하고 소비와 건설경기등 내수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책은 각종 사치성 과소비를 강력히 억제하면서 저축증대 유인책마련 등으로 소비쪽으로 흐르고 있는 자금물꼬를 생산적인 부문으로 유도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밖에 수출 및 제조업의 활성화를 위해 무역어음 할인율 인하,중소수출기업에 대한 포괄금융 융자대상의 확대 등을 통한 자금지원과 기술ㆍ기능인력과 공장입지의 공급확대,각종 경제행정규제 완화등 다양한 지원책이 강구되고 있다.
  • 분단 45년… 북한의 생활상 어떻게 이질화됐나

    ◎다른 길로 달린 「남과 북」… “한핏줄의 이방인”/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한핏줄의 남북한은 하나의 역사,하나의 언어,그리고 공통된 생활관습 등을 지켜왔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더불어 분단의 길로 들어선 남과 북은 6ㆍ25전쟁이라는 민족최대의 비극을 겪으면서 분단이 고착화됐고 이 결과 전쟁후 4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삶의 모든면에서 이질화가 심화되어 왔다. 최근 동서독이 통독의 길로 나아가는등 세계의 냉전구조가 타파되면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이 되고만 한반도에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어 뜨릴 수 있는 변혁의 물결이 밀려들고 있다. 분단 45년,전쟁발발 40년이 지난 오늘 제각기 달려온 남과 북의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변화됐고 이질화됐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언젠가는 맞이할 통일에 대비해 서로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삼고자 한다. ◎문화ㆍ예술/인간개조의 도구화… 순수예술 명맥 끊겨 지난해 우리는 두개의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그 하나는 비록 결렬되고 말았지만 북경아시안게임 출전을 위한 남북단일팀 구성논의에서 「아리랑」을 단가로 하자는데 양측이 비교적 손쉽게 합의,문화적 민족정서의 공유가능성을 확인한 일이다. 또 하나는 남북이산가족의 재회를 무산시킨 이른바 북한의 혁명가극 「꽃파는 처녀」와 「피바다」 공연여부를 둘러싼 논쟁에서 실감했던 남과 북의 현저한 문화ㆍ예술관의 차이다. 이렇듯 남과 북의 문화ㆍ예술은 공감대를 같이하는 한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분단이후 45년간 서로다른 이념과 사회체제 속에서 이질화의 과정을 밟아옴으로써 오늘의 남과 북사이에는 엄청난 높이의 문화적 장벽이 가로놓이게 됐다. 한국의 문화정책이 이어령 문화부장관의 구상처럼 『후기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전환에 따른 세대간ㆍ계층간ㆍ지역간ㆍ성별간의 이질화와 갈등현상을 문화의 힘으로 치유』하는데 놓여져 있다면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주체사상과 3대혁명에 입각한 공산주의적 정치사회화의 수단적 목적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문화예술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기초하에 체제보위 및 최고통치자에 대한 우상화 및 공산주의적 인간개조를 위한철저한 도구로 기능함으로써 전통적 순수예술의 성격은 물론 대중예술과도 거리가 먼 주체예술ㆍ혁명예술ㆍ이데올로기예술로 변모돼 있다. 가령 북한가요 45년사에서 3대명곡으로 꼽히고 있는 「조선의 별」,「김일성장군의 노래」「동지애의 노래」 등이나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시작 「묘향산의 가을날에」,80년대 최고의 미술작품이라는 「강선의 저녁노을」 등은 모두가 김일성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북한의 문화ㆍ예술의 성격을 대변해 주고 있다. ▲사상성이 좋고 ▲가사가 좋으며 ▲선율이 부드럽고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 불후의 「혁명송가」라는 「조선의 별」은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투쟁을 할때 그의 추종자들이 김일성을 흠모해 지었다는 노래이며,「동지애의 노래」는 김일성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촉구한 노래이다. 「강선의 저녁노을」은 남포시 강선제강소를 소재로 김일성을 찬양한 조선화이며 주체예술의 상징인 5대혁명가극의 하나인 「피바다」는 항일혁명투쟁을 주제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앞세운 목적극이다. 특히 6ㆍ25전쟁 전까지 순수예술과 목적예술간의 대립속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지 못한채 주로 소련에 의존해왔던 북한의 문화ㆍ예술은 전쟁중 전쟁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의 전쟁영웅 형상화에 몰두,목적예술적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전후복구와 「주체」의 슬로건 등장등 상황적 요청에 따라 문예정책은 사회주의 건설에 역점을 두는 새로운 전형을 형상화하는 한편 소련식 문화활동에서 탈피,김일성체제를 뒷받침하는 혁명전통확립과 주민들에 대한 공산주의 교양을 주제로 한 창작활동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또한 자연만을 노래하거나 예술지상주의 태도는 반혁명적이고 형식주의적인 문화예술이라는 인식하에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와 ▲당성ㆍ계급성ㆍ인민성의 구현이 모든 창작활동중에서 반드시 지켜야할 원칙으로 대두됐다. 현재 북한에서는 이러한 문화예술의 원칙과 과제의 이행을 지원하기 위해 작가 미술가 영화인 연극인 무용가 사진가 등 모든 예술인들을 망라한 조선문학예술총동맹이란 조직이 결성돼 있으며 당은 이 조직을 통해 각 분야 종사자들에게 창작 및 공연활동계획서의 제출을 강요,▲혁명전통(30%) ▲전쟁(30%) ▲사회주의건설(20%) ▲조국통일(20%) 등 4개 주제별로 창작활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의식구조/어휘마다 정치색… 전투ㆍ파괴적 성격 강조 『서울말은 남존여비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주아적 생활이 지배하는 말로서 오늘 남조선방송에서는 여자들이 남자에게 아양을 떠는데 쓰이는 코맹맹이 소리를 그대로 쓰고 있으며,그것마저 고유한 우리말은 얼마 없고 영어 일본말 한자어가 반절이나 섞인 잡탕말이다. 우리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해야한다. 오늘 평양말은 서울말보다 비할 바 없이 우월하다』 김일성이 1969년 평양말을 「문화어」로 삼은 이유를 설명한 교시의 내용으로 북한의 언어정책을 잘 보여준다. 김일성은 또 「표준말」이란 용어 대신 「문화어」를 쓰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표준어라고 하면 마치도 서울말을 표준하는 것으로 그릇되게 이해될 수 있으므로 그대로 쓸 필요가 없다. 「문화어」란 말도 그리 좋은 것은 못되지만그래도 그렇게 고쳐쓰는 것이 낫다』 특히 북한은 「언어를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의 힘있는 무기」로 보는 언어관을 토대로 일찍부터 용의주도하고 치밀한 언어정책을 펴옴으로써 분단 45년이 지난 현재 남북한간에 벌어지고 있는 언어의 이질화는 단순한 언어 자체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간의 사고와 행동양식 및 의식구조의 이질화에까지 파급되고 있다. 실제 북한에서는 언어를 씩씩하고 힘있는 무기로 다듬는다는 명분하에 『미제의 각을 뜨자』『돌탕을 쳐 죽이자』는 등의 살벌하고 소름끼치는 말들이 공공연히 사용되고 있다.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않음을 감안할때,북한의 이같은 극단적인 언어관과 언어정책은 결과적으로 이러한 언어를 쓸 수 밖에 없는 북한주민자신을 공격적이고 전투적이며 파괴적인 성격으로 만드는 잠재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남북한간의 언어이질화에서 빚어지는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1949년에 단행된 한자폐지와 이에 따른 한글전용정책에서 시작된다. 문맹퇴치와 인민대중의 조속한 사상교육을 목표로 추진된 한자폐지는 결과적으로 한글전용화로 이어졌고 이결과 북한의 각급학교 교과서 문예작품 신문 및 대중매체에서 한자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한자교육은 통일후 남한문헌을 읽기 위해 또한 고전연구를 위해 하나의 외국어처럼 전공과목으로서만 남게됐다. 한글전용에 이어 가로쓰기도 시행되었으나 한자어의 어원을 가진 낱말을 한글로만 표기,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말다듬기운동」이 새로 일어났다. 이에 따라 1954년 일제하 조선어학회에서 제정한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조선어철자법」이 생겨났고 1966년에는 「조선말규범집」과 함께 「문화어」라는 새로운 개념의 어휘까지 등장했다. 문화어의 등장은 남북한간 언어이질화의 본격적인 시발점이 되고 말았는데 그 성격은 서울말을 배격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다듬은 그들의 공용어를 표준어로 삼는 데 있다. 한편 한자폐지와 한글전용,말다듬기운동의 결과 새로운 사전의 편찬이 불가피하게 됐는데 1968년 나온 「현대 조선말사전」의 경우 18만어휘가 수록됐던 「조선말사전」(61년)에 비해 어휘가 5만으로 크게 줄었다. 그 이유는 한자가 하나도 없고 옛말 사투리 고유명사 및 이른바 「퇴폐적 사상표현」등을 완전히 제외했기 때문. 또 어휘마다 정치성이 담겨져 있어 김일성의 인용구는 굵은 활자에 별표까지 달아놓았다. 현재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의 차이,리듬의 차이,억양의 차이 등과 같은 음성학적인 차이를 비롯해 어휘ㆍ문법ㆍ의미ㆍ문체 및 맞춤범 등 언어전반에 걸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가장 심각한 차이는 어휘부문에서 나타난다. 예를들면 산책길→유보도 채소→남새 화장실→위생실 고기잡이→추어전 개고기→단고기 도시락→곽밥 레코드→소리판 대중가요→군중가요 투피스→동강옷 커튼→창문보 그룹→그루빠 소년단→삐오네르 주제→쩨마 등이다. ◎경제생활/「남농북공」무너져 GNP 남한의 12%/생필품 부족… 암시장 쌀값 배급의 18배 8ㆍ15해방 당시 남북한의 산업배치는 「남농북공」으로 일컬을 만큼 지역적 보완관계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남북분단으로 이같은 보완관계는 무너졌으며 설상가상으로 6ㆍ25가 남과 북 모두의 각종 산업시설을 파괴,경제활동의 토대조차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말았다. 이후 남과 북은 40여년간 천연자원 및 산업구조의 불균형이라는 악조건속에서 통합적 발전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분리적인 발전을 계속해왔다.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로 굳어진 한국과 북한은 각기 다른 경제질서를 형성ㆍ유지하면서 치열한 체제경쟁을 벌여왔고 이 결과 88년을 기준으로 국민총생산액(GNP)의 차이는 한국이 북한에 비해 8배나 앞서는 비교우위로 나타났다. 한국은 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착수한 이래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개발도상국에서 일약 중진국의 일원으로 도약했다. 1960년 1백달러 미만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은 89년말 현재 5천달러에 육박해 있다. 반면 6ㆍ25로 인해 공업생산 수준이 1949년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출발했던 북한경제는 전후복구 3개년계획(1954∼56년)과 뒤이은 5개년계획(1957∼61년)에서는 이례적으로 높은 성장을 기록했으나 그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이에 따라 북한은 70년대전까지만 해도 한국에 비해 부분적인 비교우위내지는 형평을 유지해 왔으나 이후부터는 전분야에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체제가 다른 북한의 국민총생산액등 각종 경제지표의 개념은 우리와 크게 다를 수 있지만 국토통일원이 북한의 각종 선전자료를 검토ㆍ분석해 추정한 수치는 다음과 같다. 국민총생산액은 88년을 기준으로 2백6억달러로 우리의 1천6백92억달러에 비해 8분의 1 수준이며 1인당 GNP는 9백80달러(한국 4천40달러),자동차 생산능력은 연간 2만대(한국 1백70만대),TV보유율은 10%(한국 1백%),전화는 7%(한국 67%),냉장고는 6.5%(한국 79%) 등이다. 한편 북한주민의 의ㆍ식ㆍ주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하는」 평등한 방식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직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되는 임금과 그 임금에 따른 불균형한 소비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임금은 당간부 및 고위직 군인의 급료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사무직보다는 기술직이 높다. 또 경노동 보다중노동이,중노동 가운데도 위해노동종사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85년부터는 「사회주의적 노동보수제」가 도입돼 동일직종이라도 숙련도나 생산성 등 노동의 질에 따라 급수를 달리하는 「차등임금제」가 실시되고 있다. 북한은 이같은 화폐소득의 차이를 완화하기 위해 보건ㆍ교육분야를 국가예산으로 충당하는 한편 대중소비물자의 가격을 낮게 책정하고 사치품의 가격을 높게 매기고 있다. 이에 따라 쌀ㆍ채소ㆍ옷감ㆍ비누ㆍ치약 등 생필품의 경우 아주 싼값으로 공급되는데 가족수와 연령,직업에 따라 품목과 수량,종류가 정해진 구입카드에 의해 국영상점에서 구입한다. 그러나 최근 몇년간 「먹는 문제」의 해결이 최우선 과제이듯이 국가에서 싼 값으로 공급하는 생필품의 배급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주민들은 부족분을 구하기 위해 1㎏당 8전에 불과한 쌀을 「장마당」이라고 부르는 암시장에서 이 가격의 18배가 넘는 1㎏당 15원에 구입하려해도 어려운 실정이다. 주택은 협동적 소유로 행정당국에 의해 직업과 직급에 따라 차등적으로배분되며 그 보급율은 70% 안팎. 북한은 주택건축률이 경제발전을 대변하는 전시적 기능이 크고 남북한 사회비교의 중요한 징표가 된다는 점에서 70년대 이후 평양ㆍ남포ㆍ원산ㆍ함흥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현대식 고층아파트를 신축하는 한편 농촌의 문화주택을 2층 3가구용,3층 5가구용으로 다양화하고 문화적으로 보이도록 하는 등 주거양식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북한은 지난 40년간 중공업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친 결과 주민들의 소비생활이 크게 압박을 받아 불만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지난해를 「경공업의 해」로 지정하는 등 최근 경공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활풍습/“봉건잔재 없앤다” 관혼상제도 통제ㆍ규격화 북한은 우리민족의 전통적 예의범절에 대해 『봉건지배계급이 착취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 놓은 규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민족 고유의 예절이나 유교적 도덕관은 북한의 사회주의체제와 당의 이익에 맞도록 변형되어 있다. 또 관혼상제를 포함한 전통적인 민속과 세시풍속 등도사회주의적 내용으로 변질됐다. 북한에서의 결혼은 『철저히 동지적이고 혁명적인 관계에 의해 이뤄지며 일생을 동지로서 당과 수령께 충성할 수 있는 정신적 풍모가 조건이 된다』고 정의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연령도 노동과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남자 29세 여자 26세로 제한해 놓고 있으나 불만이 많아 80년대 이후에는 조혼추세가 묵인되고 있다. 배우자선택은 중매(60%)와 연애(40%)가 병행되고 있으나 최근 북한의 남녀대학생들은 서로 손을 잡기도하고 데이트를 즐기는 등 연애결혼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노동자계층의 남녀가 만나는 채널은 연애보다는 부모 친척 등을 통한 중매가 지배적이다. 신랑감으로는 직업에 관계없이 평양거주총각이 최고의 배우자로 꼽히고 있으며 길흉을 가리는 결혼의 택일 풍습은 사라져 대개 일요일이나 공휴일에 치러진다. 회갑이나 생일,돌잔치는 5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와 식량절약이라는 명분으로 일체 금지되었으나 60년대 후반기부터 묵인되고 있다. 그러나 「60청춘 90회갑」이라는 구호아래 공식적인 회갑잔치는 거의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고위간부의 경우에만 김일성이 하사하는 일정한 규격의 회갑상을 받는다. 장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을 쓰도록 돼있다. 상복은 따로 만들어 입는 것이 없고 머리에 건을 쓰고 팔에는 검은 천을 두른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 녹화사업소,편의협동조합 등이 맡아서 처리해 주며 직계존속이 사망했을 경우 상주에게는 3일간의 공식휴가와 장례보조금 10원,쌀 1말이 배급된다. 제사도 다른 풍습과 같이 6ㆍ25전까지는 별다른 통제를 받지 않았으나 휴전후부터 단속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기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것과 직계존속에 대한 탈상까지의 제사는 묵인하고 있다. 또한 북한은 60년대 중반까지 「봉건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김일성 교시에 따라 추석등 고유의 세시풍속을 공식명절에서 제외하고 김일성의 생일,김정일 생일,북한정권 창건일,노동당 창건일,사회주의 헌법제정일 등을 「사회주의 명절」로 지정,공휴일로 해왔으나 지난 88년부터 추석 음력설 단오 한식 등을명절로 부활시켰다. 또한 70년대까지만 해도 인민복,검은 통치마 차림이었던 주민들의 옷차림이 두드러지게 바뀌기 시작해 8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남자는 양복이나 잠바,여자는 양장이나 짧은 치마차림이 보편화됐으며 머리모양이 다양해지고 화장을 한 여자들도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이던 주민들의 부분적 여행자유화 조치가 전면 보류됨으로써 일반 주민들의 북한내 여행 및 휴가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금강산ㆍ묘향산 등 유명관광지의 이용자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며 주민들의 경우 공장ㆍ직장별 단체관광 정도일 뿐 가족단위의 여행은 거의 없다. 따라서 북한주민들의 주요한 오락수단은 TV와 라디오이다. 또 최근 바둑협회가 새로 결성되고 실내 골프장이 생기는 등 부분적인 변화가 있으나 대중이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으며 주민들이 가장 많이 즐기는 놀이는 주패놀이로 불리는 서양식 카드놀이와 장기이다. 가정생활은 지난 80년 『셋은 양심이 없습니다. 둘은 많습니다. 하나가 좋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시이후 가족계획이 보편화되기 시작해 점차 대가족에서 핵가족 형태로 옮아가고 있다. 남녀평등권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는 등 남녀평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으나 실제로는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으며 여자들이 가정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남편들이 봉급을 타서 여자들에게 넘겨 주기는 우리와 마찬가지다. ◎언론ㆍ교육/비판기능은 무시… 선전ㆍ선동의 매체로 활용 최근 북한은 소련언론들의 잇따른 대북한 비난보도에 대응,소련의 평양주재 기자들에 대한 취재봉쇄조치를 취한데 이어 타스통신기자 1명을 추방함으로써 내외의 관심을 끌었었다. 특히 북한은 『우리 혁명을 지지하는 기사를 쓰라,그러면 당신들의 요청이 충족될 것』이라고 주장한데 반해 소련언론들은 북한언론들의 보도태도와 관련,「목적지향성」보도에만 집착할뿐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비난해 같은 사회주의 국가이면서도 북한과 소련의 언론관이 상이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현재 북한에서 발행되는 신문은 노동당기관지인 「로동신문」과 정무원기관지인 「민주조선」을 비롯해 도단위 일간지 등 모두 30여종. 방송은 TV의 경우 「조선중앙TV」(평양TV)「만수대TV」「개성TV」 등 3개가 있고 라디오는 「조선중앙방송」「평양방송」「구국의 소리방송」「평양인민 FM방송」 등이 있다. 북한에 있어 언론이란 「김일성의 교시와 당의 정책을 해설ㆍ선전하며 그것을 철저히 비호ㆍ관철하고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가일층 강화하여 인민들을 수령의 두리에 튼튼히 묶어세우는데 복무해야 한다」는 정치사전(73년도판)의 규정처럼 정치선전도구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또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기사가 아닌 모범적이고 감동적인 이야기로써 사람들을 교양해야 한다는 김일성의 교시(1960년 11월)에 따라 우리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되는 범죄나 비행ㆍ사고 등의 기사는 신문ㆍ방송 등 언론매체에 일체 실리지 않는다. 우리의 언론들이 사회의 비리ㆍ부조리 등을 파헤침으로써 비판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반해 북한은 긍정적ㆍ모범적인 기사를 통해 사회를 계도하겠다는 언론관을 고집하고 있다. 또 북한의 언론은 자본주의언론이 중시하는 속보성보다는 매스미디어의 이념적 이용,즉 당의 정책적 선전에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정론성」과 「당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정론성이란 어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선전ㆍ선동ㆍ조직ㆍ교육ㆍ동원에 필요한 요소들을 가미하여 「사실」을 각색하는 것을 말한다. 한편 북한의 방송은 정무원직속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의 지도아래 운영되고 있는데 이 기구는 조직ㆍ편제상 정무원에 속해 있지만 당중앙위 선전선동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고 있어 사실상 2원화 되어 있다. 북한의 새 학기는 우리와 달리 9월에 시작된다. 북한은 지난 75년부터 유치원 1년,인민학교 4년,고등중학교 6년과정으로 된 「11년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의 취학연령은 만6세. 그러나 만4세부터 시작되는 2년과정의 유치원교육중 「높은반」부터 의무교육기간에 포함되므로 실질적인 의무교육은 만5세부터 시작되는 셈이다. 11년제 의무교육기간에는 수업료는 물론 면제이며 교과서ㆍ교복ㆍ학용품이 무상 또는 일부 부담으로 지급된다. 16세부터 시작되는 고등교육단계로는 2∼3년 과정의 고등전문학교와 교원대학(3년),종합ㆍ단과ㆍ사범ㆍ공장대학(4∼6년) 등이 있다. 현재 북한에는 인민학교 5천여개,고등중학교 4천2백여개,전문학교 5백여개,대학 2백7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북한은 80년중반부터 낙후된 과학기술을 진흥하기 위해 각 시도별로 「제1고등중학교」를 세우는 한편 기술계 대학의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학생들은 또 「한가지 이상의 기술과 기능을 소유해야 한다」는 당의 방침에 따라 예능 또는 실업 등의 실기과목을 배우고 있으며 소년단이나 사로청 등의 조직에 의무적으로 가입,단체활동을 한다. 특히 의무노동이 중시돼 인민학교는 연간 2∼4주,고등중학교는 4∼8주,대학교는 12주정도씩 생산현장노동에 참여한다. 한편 북한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것을 주체적,창조적으로 적용했다는 「주체사상」을 교육이념으로 삼고있다. 또 계급투쟁을 위해서는 「공산주의적 인간」이,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생산기술적 인간」이,전쟁승리를 위해서는 「체력이 튼튼한 인간」이 바람직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인간상」때문에 정치사상교양 및 과학기술교육,그리고 국방체육이 북한교육내용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 물가 평가제와 감각지수(사설)

    정부가 지역별 물가지수를 발표하고 지방자치단체별 물가안정에 대한 평가제를 도입키로 한 것은 오늘의 물가사태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승윤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지난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 당정회의에서 5월말 현재 소비자 물가가 6.7% 상승한데 이어 최근 과일류값 등이 폭등하고 있어 연말까지 한자리선 억제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이같이 비상사태를 맞자 경제기획원은 이날 전국 시ㆍ도부지사와 부시장회의를 열고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물가안정을 위해 부여된 행정기능을 충실히 수행치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물가안정 노력에 대한 평가여하에 따라 해당 기관장에 책임을 묻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선 지방공무원들의 근무기강 해이가 최근 물가사태에 일조를 한 것은 사실인 듯하다. 일부 지방에서는 음식ㆍ숙박업소 등이 표시가격을 이행하지 않거나 부당요금을 징수해도 단속의 일손을 놓고 있고 특히 담합에 의한 요금부당 인상행위를 묵인해 주는 사례도 있다고 들린다. 지수면에서도 올들어 지난5월말까지 개인 서비스요금이 10.8%나 올랐다. 이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6.7%를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일선 행정기관이 행정지도를 제대로 폈다면 그처럼 개인서비스요금이 치솟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가정책당국이 추진키로 한 평가제는 개인 서비스요금을 비롯한 물가안정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해이해진 공무원들의 기강을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 시의에 부합되는 조치로 여겨진다. 다만 평가가 얼마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 이루어지느냐는 문제와 책임을 어떻게 묻느냐는 문제는 있다. 그렇지만 물가안정과 기강확립이란 차원에서 평가제가 일과성에 그치거나 엄포성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또다른 물가문제는 지수물가와 감각물가의 괴리현상으로 인하여 일반 소비자들이 정부가 발표하고 있는 물가지수를 믿으려하지 않는 풍조를 지적할 수 있다. 지수상으로 잡힌 개인 서비스요금 인상률은 올들어 5월말까지 10.8%인데 시민들이 느끼는 상승률은 30∼40%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정책지표인 물가지수와 감각물가(피부물가)사이에는 차이가 있게마련이다. 물가지수는 원래 여러가지 상품을 그 중요성에 따라 가중치를 두고 평균한 개념이다. 반면에 감각물가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차 또한 화폐적 환상및 착각에 의하여 다양한 형태로 반응을 보인다. 개인서비스요금 상승률의 공식통계와 피부물가간 차이(갭)가 3∼4배나 나고 있는 이유가 두 물가간의 상이점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고 있는 물가지표가 과학적이고 일반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시장에서 만나는 물가와 현저한 차이가 있다면 그 신뢰성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어느 지표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믿음이 저하되면 그 지표를 토대로한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저하되게 마련이다. 선진국들이 소득계층별 물가지수를 산출하는 이유는 지표에 대한 정확도를 높이고 정책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지역별 지수뿐 아니라 소득계층별 지수등 물가지수 편성을 다양화 해야 한다.
  • 동서고금의 화폐 한눈에/한은40돌 맞아 화폐전시실 개관

    ◎8천만짜리 금화등 3,992점 전시 사적 2백80호로 지정된 한은 본관건물에 화폐전시실이 들어섰다. 한은이 창립4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2일 개관한 화폐전시실은 동서고금의 화폐와 우리나라 화폐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본관2층에 마련된 1백30평 크기의 화폐전시실에는 국내외 고화폐,견본형태의 엽전인 별전 기념주화 외국화폐 등 총 34만여점의 한은소장품 가운데 3천9백92점이 2개의 전시실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제1화폐전시실은 우리나라 화폐의 생성과 변천과정을 고대 고려 조선 근대 조선은행 한국은행순으로 구분하고 고려시대때 중국 당나라의 건원중보를 모방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화폐인 건원중보 배 「동국」전,해방전후의 조선은행권,현재 사용중인 한국은행권과 기념주화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이 가운데 은제화폐로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 고려시대의 소은병,조선말기인 1901년 전환국에서 주조한 순금화(5원짜리)등도 전시돼 있다. 5원짜리 금화의 현재 시가는 8천만원 가량이며 함께 주조된 10원 20원짜리와함께 시중에서 1세트에 1억8천여만원에 거래되고 있다고. 제2화폐전시실에는 외국의 화폐를 색상 형태 소재 크기 디자인 등 특징별로 분류하고 있으며 외국의 금은화 기념화폐 고화폐 별전 현용화폐 등을 망라하고 있다. 이 전시실은 관람자의 시각적 이해를 돕기위해 현대박물관의 전시기법을 살려 그림ㆍ사진ㆍ도표ㆍ디오라마(인물모형을 이용한 상황재현) 등의 설명자료를 함께 전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화폐전시실과 함께 본관2층에 문을 연 한은사료실에는 한은보유 사료9백여점중 2백19점을 65평의 공간에 전시하고 있다. 사료실 전시품 가운데는 지난 62년까지 지폐에 사용된 한은총재직인과 「9ㆍ28수복」후 제작돼 휴전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된 한은 평양ㆍ함흥ㆍ원산ㆍ해주 지점장 직인이 진열돼 눈길을 끌고 있다. 1950년 6월5일에 열린 제1차 금융통화위원회의 회의록,일본에서 압수한 1907년 제일은행 한국총지점건물(현 한은본관) 설계도원본 등 한은의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 사료들이 시대별 기능별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한은은앞으로 화폐전시실과 사료전시실을 개인관람자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사전예약된 단체관람자에게 한해 공개할 방침이다.
  • 페루에 일본계대통령 탄생/이민2세 후지모리 당선의 안팎

    ◎“빈곤층의 생존권 보장”공약 주효/살인적 인플레 억제ㆍ외채해결이 최대 과제 ○1년전 정치입문 「동방으로부터의 해일」이란 평을 받으며 급부상한 일본계 이민 2세 알베르토 후지모리(51)가 10일 실시된 페루대통령 2차 결선투표에서 노벨상 수상작가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후보(54)를 누르고 당선이 확실시 되고 있다. 11일 상오 5시(한국시간) 투표가 끝난뒤 페루 국영 TV가 투표를 마치고 나온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장 출구 여론조사에 따르면 후지모리는 유효투표 수의 54.92%를 획득,45.08%를 얻는데 그친 요사후보를 큰 표차로 제친 것으로 나타나 페루 정치권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이번 결선투표에 대한 최종적인 공식개표 결과는 통신수단의 부실과 산악 및 밀림지대 투표구의 집계작업 지연으로 앞으로 3주후에나 발표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변이 없는한 후지모리의 대통령 당선은 확정적이다. 지난 4월8일 1차투표에서 요사후보가 압승을 거두리라던 당초의 예상을 깨고 간발의 차이로 2위를 차지했던 후지모리는 이번 선거유세 기간을 통해 「후지열풍」을 일으키며 페루에서 「엘치니토」(작은 동양인)의 신화를 창출했다. 불과 1년전 「캄비오 90」(변화 90)당을 설립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던 농업경제 학자인 후지모리는 이번 선거에서 충격적 경제개혁을 통한 자유시장 경제체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요사후보에 맞서 빈곤층의 생존권보장을 공약으로 내세워 산악지대의 빈민과 농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고 승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곧 일본에 가겠다” 연 2천7백%를 넘는 높은 인플레를 화폐개혁을 통해 연 1백% 이내로 끌어 내리고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경제부흥을 꾀한다는 「점진적 개혁」정책은 전국민의 30%에 달하는 극빈층을 포함한 대다수 국민의 호응을 받았다. 한편 그는 당선된 뒤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페루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해 이달중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국영기업의 매각 및 공무원의 대폭 감원조치 등을 내세운 요사후보의 급진적인 개혁정책을 「섣부른 경제의 충격요법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공격했던것은 지난 1차투표에서 패배했던 농촌지역을 자신의 표밭으로 만들 수 있었던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선거유세 기간동안 「깨끗한 정치」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경호원을 대동하지 않은채 무개차로 가족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을 벌여 근면한 일본계 페루이주민의 좋은 이미지를 다시금 확인케 했던 후지모리는 대통령 당선이 확정될 경우 알란 가르시아 현대통령의 뒤를 이어 오는 7월28일 5년 임기의 차기대통령에 정식취임하게 된다. ○점진적 개혁 표방 후지모리는 미 위스콘신대학을 졸업한 농업경제학자 출신으로 페루 국립대학 총장을 지냈으며 불과 몇개월전만 해도 페루 국민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 대통령선거 유세기간중 일부 페루인들로부터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받는등 수모를 당하기도 했던 그가 대통령 취임후 연간 2천7백%에 달하는 인플레와 2백억 달러에 달하는 외채문제,그리고 좌익세력의 반란 및 정치적 폭력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자못 궁금하다. 『이 나라는 통치불능의 상태가 아니며 그동안 정당들은 자신들의 통치능력 부재를 드러내 왔을 뿐』이라고 말하는 후지모리는 앞으로 새 정치를 갈망하는 페루인들의 힘겨운 숙제를 떠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김현철기자〉
  • 정상회담후 정부ㆍ업계의 후속대책 점검

    ◎한ㆍ소 「민간경협의 레일」놓기 부산/투자보장 협정체결등 정지 한창 정부/과당경쟁 자율규제… 공동진출 모색 업계/소 경제기반 취약… 성급한 성과 기대는 금물 한소 정상회담을 마치고 노태우 대통령이 귀국함에 따라 이제 한소 양국간의 경제협력이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소간의 경제협력은 먼저 이제까지의 민간교류 차원에서 벗어나 앞으로는 수교원칙 합의를 바탕으로 양국정부가 각각 가세,민ㆍ관의 협력 아래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까지 국내기업의 대소 진출에 가장 걸림돌이었던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 협정 등 정부차원의 경제협정 체결을 위해 정부는 차관급 이상 고위관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한소 경제협력위원회를 설치,빠르면 7월중 소련측과 제1차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또 각 경제단체와 기업들도 조만간 대소 교역협의회를 설치,국내기업들의 과당경쟁을 방지하고 공동진출 방안을 모색해 나갈 방침이어서 대소 경협을 향한 정부와 업계의 양대 수레바퀴가 힘차게 굴러갈 전망이다. 한소 경협방안을 마련중인 정부의 기본입장은 신중하면서도 실기하지 않는 대소 경제교류를 과감히 실천해 나가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는 소련의 경제구조가 취약하고 소련화폐인 루블화의 태환성이 거의 없는 현실을 감안,국내기업의 소련 진출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관계전문가들의 충고를 받아들여 기업의 대소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을 새로 마련하기 보다는 기존의 해외진출제도를 보완,원칙적으로 기업이 자기책임 아래 소련과의 교류에 나서도록 할 방침이다. 정부가 그동안 기획원ㆍ상공부 등 각 부처별로 검토해온 대소 경협방안의 골자는 한국과 소련의 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경제협력관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소 양국간 교역이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한 한국의 경공업제품과 소련의 원자재를 교환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보고 매월 일정규모 이상의 구상무역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실정에서 정부가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소련내천연자원의 개발이다. 앞으로 대소 경협이 진전돼 소련측으로부터 자원의 공동개발 제의가 있을 경우에 대비,정부는 유연탄ㆍ석유ㆍ천연가스ㆍ목재 등 소련이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자원의 실태 및 개발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한소 경협위와는 별도로 정부조사단을 파견할 계획이다. 정부는 소련과 아직 국제거래 관행이 확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신용장 거래가 많은 점을 감안,소련에 대한 국내기업들의 무신용장 거래에 대해서는 수출보험을 적극 활용토록 할 방침이다. 이밖에 ▲한소 무역회관을 모스크바에 공동건립하고 ▲기업이 민간베이스로 소련과의 청산계정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이같은 정부의 대책에 발맞춰 경제단체와 업계측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종합상사와 섬유ㆍ철강ㆍ신발 등 업종별 수출조합,무협,무공 등은 조만간 「대소교역협의회」를 구성,새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소련진출을 둘러싼 덤핑 등 과당경쟁에 제동을 걸고 대소 교역질서를 스스로 확립해 나가기로 했다. 이 협의회는 과거 월남ㆍ중동건설 시장진출시 빚어졌던 업계의 과당경쟁과 중복투자 등 폐해를 없애고 대형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컨소시엄을 구성,공동진출토록 유도할 생각이다. 그러나 소련시장을 놓고 국내기업들은 대재벌간의 과열경쟁을 비롯,재계공동기구를 이용한 정보독점,과대홍보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말 95년까지 5년동안 전전자교환기 TDX 3천만회선(1백20억달러 상당)을 합작생산 형태로 소련측에 공급키로 했다고 발표했으나 며칠후 증권거래소를 통해 「협의중」이라고 후퇴했고 현대는 단 5%의 지분만 참여한 터블스크 석유화학단지 조성사업을 자신들이 단독 수주한 것처럼 발표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라면ㆍ디자인ㆍ관광업체 등 군소업계에서도 「무조건식」 대소진출에 혈안이 돼있어 소련붐의 과열사태를 맞고 있다. 소련의 열악한 경제상황과 사회주의체제의 비효율성등 대소진출의 제약성 때문에 한소경협이 단기간의 결실을 맺기는 어렵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소 진출에는 사회주의경제체제가 갖는 제약성 외에 COCOM(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규제,일본의 방해공작등 한소 양국관계와는 무관한 부정적인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다. 또한 전경련이 8일 IPECK(국제민간경제협의회)와는 별도로 독자적인 북방사업을 주도키로 하는등 각 경제단체들이 각개약진식으로 대소교류에 참여하고 있어 차제에 무협ㆍ무공ㆍIPECKㆍ전경련간의 일관된 북방교역질서확립을 위한 과감한 「교통정리」가 요구되고 있다.〈정종석기자〉
  • 한ㆍ소 교역 본격화 시점서 본 「고르비경제」

    ◎“헐벗은 강국”… 생필품난에 사재기 극성/생활개선 제자리… 우유ㆍ설탕값 폭등/부실국영기업 정리땐 실업자 1천만 예상/세수격감… 외채도 5년새 갑절 늘어 소련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에 와 있는가.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지 5년째를 맞은 지금 소련경제는 나아진 것인가,더 나빠지고 있는가. 고르바초프가 집권 초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개혁ㆍ개방정책은 그동안 동유럽의 변화와 군축 등 동서 데탕트의 새시대를 가져왔고 아시아쪽에서도 한소수교라는 새 장을 열어가고 있다. 그러나 대ㆍ내외 정치면에서의 눈부신 업적에도 불구하고 국내 경제사정은 여전히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소련경제는 현재 처한 어려움보다도 앞으로 수년내 나아질 전망이 없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소련경제의 심각성은 역설적이지만 종합적인 경제개혁안이 발표된 지난달 24일 이후 지금까지의 며칠 사이에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리슈코프 총리가 발표한 이 경제개혁안은 소비재 물자의 가격자유화,국가기업의 사유화 및 화폐금융제도의 개선을 골자로 하는 시장경제체제로의 단계적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가격자유화조치이다. 개혁안은 전체소비재중 60%는 종전대로 국가에서 가격을 정하고 25%는 국가지도하에 자율화,나머지 15%는 완전자유화한다고 되어 있다. ○수년내 회생 어려워 시행시기도 오는 7월1일부터 빵값만 자유화하고 내년 1월부터 육류ㆍ우유ㆍ설탕 등의 생필품순으로 단계적인 가격자유화를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혁안이 발표되자마자 소련전역에서 물가폭등을 우려한 사재기 소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물가인상에 항의,광부들이 총파업을 단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우크라이나공화국은 공식적으로 개혁안에 반대의사를 밝혔다. 빵값은 3배이상으로 뛰었고 육류ㆍ설탕 등은 가격자유화가 시행되기도 전에 3∼4배씩 비싼 값으로 팔리고 있다. 가장 심각한 분야는 역시 소비재의 부족현상이다. 고르바초프의 경제수석보좌관인 아벨 아간베기얀은 소비재ㆍ서비스부문에서 수급균형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향후 수년간 이 분야에 매년 7백억루블어치의 물품공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주장한다.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어서 수입의 상당부문이 대기성 「강제저축」형태로 떠돌고 있고 그로인한 근로자들의 근로의욕 저하 또한 심각하다. 지난 한햇동안 석탄은 6.4%,석유는 4%씩 생산이 감소됐다. ○빵값 4배까지 뛰어 미 CIA의 최근 한 보고서는 소련국민들의 생활수준이 미국민의 32%정도라고 밝히고 있으나 소련자체보고서중에는 20%라고 밝힌 것도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1988년 현재 소련내 빈곤계층이 8천만명으로 인구의 30%에 육박한다고 밝힌바 있다. 86년보다 6%가 증가한 수치이다. 크렘린당국은 이번 경제개혁안을 내놓으면서 실질임금의 저하에 대한 보상책으로 저임노동자들의 임금을 평균 15%인상키로 하고 그 재원으로 1천3백50억루블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실국가기업의 정리 등에 따르는 실업자수는 2∼3년내 1천만명선으로 예상집계돼 엄청난 사회불안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업에 대한 국가보조금이 사실상 줄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기업허용등으로 세수원이 줄어 재정적자 또한 심각하다. 지난해 재정적자는약 1천억루블로 GNP의 11%에 해당된다. 외채도 고르바초프집권 당시 2백90억달러이던 것이 지난해 4백70억달러로 거의 두배로 늘어났다. ○근로자 사기도 저하 현재의 경제난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기대를 거는 쪽은 서방으로부터 생필품 원조와 자본ㆍ기술 등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외적으로는 IMF(국제통화기금)ㆍ세계은행 등에 가입을 추진하는 한편 세제 및 은행제도 개선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10년안에 루블화의 태환화를 이룬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소련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는 역시 군수산업등 중공업 위주의 투자구조가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리슈코프 총리는 군수산업쪽의 자원을 민수로 전환시키는데 개혁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입장이다. 소련은 오는 95년까지 군수산업시설의 60%를 민간소비재를 생산하는 민간산업으로 대폭 전환시킬 계획이다. 고르바초프의 경제팀에서는 지금의 경제개혁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는 시기를 90년대 중반쯤으로 잡고 있다. 그 기간동안 인플레ㆍ실업 등의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단계적인 시장화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세계은행 가입 추진 많은 경제학자들은 소련경제가 현재의 난국을 벗어나는 길은 역시 지금의 경제개혁을 계속,하루바삐 국제경제체제로의 이행을 이룩하는 길 밖에 없다는데 견해가 일치한다. 그러나 현재 소련 소비자들이 과연 앞으로 몇년의 과도기를 참아내줄 것이냐가 문제이다. 더구나 일부 급진개혁세력들은 지금의 개혁조치가 미흡하다며 더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소련당국은 최근의 사재기 소동이 있은 뒤,앞으로 대규모로 생길 실업자 대책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번에 내놓은 개혁안보다 더 급진적인 조치를 취하기는 역시 어려울 것으로 보여진다. 국민들이 물가상승ㆍ실업ㆍ부의 불균형 등 개혁의 부수효과들을 좀처럼 수용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지금의 개혁정책은 단기적으로 경제사정을 호전시키지도 못한채 정부의 신뢰만 떨어뜨릴 가능성마저 있다. 개혁의 실질효과를 국민들이 직접 느끼게 되기까지 중간과정은 역시 정치력으로 이끌어 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도기중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다는 것이다.
  • 모스크바 가는 김인호 대외경제조정실장(인터뷰)

    ◎“한­소 「투자보장협정」 체결 추진/양국교역 급신장… 연말까지 10억불선 예상/거래위험 부담 덜게 「수출보험」 범위 확대 한소 정상회담 개최를 앞두고 한소 양국간의 경제협력확대가 현안으로 등장한 가운데 2일 파견되는 정부ㆍ민간합동 대소 경제사절단의 활동과 일부에 지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제사절단의 정부측 대표인 김인호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장은 1일 대소 경협전망에 대해 『투자의 경우 현재 성사된 것은 별로 없지만 우리 기업들이 추진중에 있는 사업이 30여건에 달하기 때문에 앞으로 한소 경협은 꾸준히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실장은 특히 『우리 기업이 유망 프로젝트를 발굴하고도 자금부족으로 진출이 어려운 경우에는 사업의 타당성을 판단해 사업성이 양호한 경우 투자자금을 일부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소련과의 경제협력 현황은. ▲한소 경제협력은 영사처및 무역사무소 개설,항공직항로 개설,양국 경제인합동회의ㆍ박람회ㆍ전시회 등의 교환개최등을 통해 협력기반이 확실히 강화되고 있다. 양국간 교역규모가 최근 연간 1백%정도로 급격히 증가해 89년에 6억달러를 달성했고 금년에는 10억달러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대소 경협을 확대하는 데 있어 문제점은 무엇인가. ▲소련의 루블화가 태환성이 없고 국제적 결제수단이 부족하며 원부자재의 적기 공급이 어려운 점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기술등 지적소유권의 보호가 미흡하고 과실송금에도 제약이 따르고 있어 경제협력의 여건이 양호한 편은 못된다. 아직 양국관계가 정식수교에 이르지 않았고 투자보장협정,이중과세방지협정 등 법적ㆍ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것등이 문제점이다. ­한소 정상회담이후의 양국 경협은 어떻게 발전할 것으로 보는가. ▲우리는 자원이 부족한 반면 소련은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 또 우리는 산업기술면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반면에 소련은 기초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어 상호보완적으로 경협이 강화될 수 있는 여건이다. 또한 소련은 3억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방대한 시장으로 최근에 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한소관계도 밀접해지고 있으므로 양국간의 경협전망은 매우 밝다고 생각한다. ­대소 경협을 확대해 나가기 위한 정부의 대응전략은. ▲소련정부측과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대소 경협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 하도록 투자보장협정등 각종 경제협정의 체결을 추진하고 있다. ­소련은 현재 대한교역에서 4천만달러상당의 무역대금을 결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대한 대책은. ▲소련의 경화(국제적 통용력을 가진 화폐) 부족에 따른 지급지연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출대금을 소련산 원유등 원자재로 대신 받는 구상무역방안을 소련측과 협의하고 있다. 또 수출보험의 가입범위를 확대해 대소 거래에 따르는 기업의 위험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 “몽고,95년까지 시장경제 전환”/몰롬잠츠 재무

    【모스크바 AFP 연합】 몽고는 경제회복 5개년계획이 끝나는 오는 95년까지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뎀치그자빈 몰롬잠츠 몽고재무장관의 말을 인용,25일 보도했다. 몰롬잠츠장관은 시장구조를 설립하는 과도기가 적어도 2∼3년간은 지속될 것이며 이 기간동안 기업과 경제의 완전한 자치달성과 가격개혁에 초점이 맞춰진다고 말하고 내년부터는 소련을 비롯한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회원국과도 태환화폐를 통해 무역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정치ㆍ경제안정이 통일의 지름길/슈미트 전서독수상「전경련특강」내용

    ◎「동ㆍ서독통합」은 한반도에 교훈/동구변화 북한에도 파급 기대 전직수반회의참석차 내한한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수상이 25일 상오 신라호텔에서 전경련 주최로 국제정치전망에 대해 특별 강연을 했다. 30년전에 한국에 와 보고 이번이 두번째이다. 나는 그사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았다. 여자들이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 있다는 것도 산업발전과 함께 커다란 변화라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최근 2∼3년 사이에 중요하면서도 흥미있는 변화가 있었다. 특히 소련이 대내외적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동구뿐만 아니라 한국ㆍ일본 등 전 아시아에 걸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구에서는 평화로운 혁명이 발생했고 이제 다원사회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소련은 동구의 변화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이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르바초프는 분명 전임자들과는 다르다. 동독의 가장 큰 변화는 오는 7월초면 서독정부와 기술ㆍ경제 및 화폐의 통합을 이룬다는 사실이다. 이는 사실상 서독으로의 흡수라고 볼 수 있다. 냉전은 이제 끝이 났다고 할 수 있다. 군비축소가 압력때문이 아니라 자발적 의사에 의해 계속될 전망이다. 재래식무기에 관해서는 다소 지연될 전망이지만 전략무기제한은 지속될 것이다. 다른 큰 어려움은 소련의 국내문제와 고르바초프의 입지에 있다. 지난 25년의 어느 시절보다도 소련내 물자의 공급이 부족하고 시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언론자유덕택에 불만이 자유롭게 토로되고 있다는 측면도 있으나 사실상 북경보다 더 어려운 실정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중의 지지가 떨어진 상태에서 3개월후 3년후의 고르바초프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프간침공 같은 사태는 다시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남북한관계에서 중요한 점은 북한에도 변화의 바람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또 남한의 능력이 북한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동ㆍ서독관계에서도 동독의 경제적 어려움을 도와줄 능력이 서독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와 함께 한번도 대화의 노력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면도 중요하다. 수십억마르크의예산을 들여 고속도로를 만들어주었고 양심적 인사를 석방하는 대가로 수백만 마르크를 지불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아직 정치적ㆍ경제적ㆍ심리적으로 통일에 대한 준비가 덜 돼 있는 듯하다. 풍선속에 선전물을 넣어 날리는식의 비생산적ㆍ비효율적 방법은 지양돼야 한다. 유럽의 변화는 여타지역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92년까지 「유럽요새」가 완결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제로 57년이래 계속돼 온 통합노력은 92년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12년전 지스카르 데스텡(당시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EMS(유럽통화제도)를 만들때 고정환율제도가 채택되어 있어 어려웠던 점에 비하면 큰 진전이라 하겠으나 유럽의 11개 중앙은행이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한 실질적인 유럽통합이라고 볼 수 없다. 새 유럽이 보호주의를 추구할 것이라는 예측이 있지만 유럽은 무역에 관한한 일본보다 자유로웠고 앞으로도 개방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농산물이 예외이기는 하지만 한국이 이탈리아에 쌀을 수출하려고 기도하지 않는한 이는 큰 영향을 주지못할 것이다.권력은 총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미래세계에서는 권력이 경제력에서부터 나오고 다른 나라를 도우려는 의지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동ㆍ서독의 경제통일(사설)

    동ㆍ서독은 18일 경제ㆍ통화ㆍ사회통합 협정에 조인함으로써 통일을 위한 또하나의 중요관문을 통과했다. 오는 7월2일 이 조약이 발효되면 동ㆍ서독은 45년간에 걸친 분단상태를 사실상 청산하는 경제ㆍ사회통일을 달성하게 된다. 베를린장벽 붕괴 6개월,동독의 자유총선실시 2개월만의 신속하고도 순조로운 진행이다. 이번 협정으로 동독은 서독의 대규모 재정지원을 배경으로 중앙통제식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버리고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서독과 통일된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며 기존 공산주의 법제도를 폐기하고 서독의 법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그리고 서독의 마르크화가 동ㆍ서독의 유일한 공식화폐로 되며 통화관리등 경제정책의 모든 책임은 서독정부가 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은 서독경제의 동독경제 흡수통합이며 동독경제 주권의 서독이양을 의미한다. 자본주의경제에 대한 사회주의 경제의 완전 항복문서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서독에 의한 사실상의 동독흡수 통일이라고 할 수있으며 이제는 동서독의 통일이 돌이킬 수 없는기정사실로 굳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로써 경제ㆍ사회통일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셈이며 문제는 이 제도를 여하히 효과적으로 실천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완전통일을 무리없이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라 하겠다. 지난 40여년동안 중앙통제식 계획경제에 안주해온 동독의 사회주의 경제가 물과 기름의 관계라 할 수 있는 서독의 자본주의 경제에 어떻게 조화롭게 흡수될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같은 사회주의대 자본주의 분단국의 입장에 있는 우리로서는 우리문제해결에 참고가 될 수 있는 하나의 교훈적 모델로서 크게 주목된다 하겠다. 생체이식수술의 경우와 같은 거부반응의 위험은 없을 것인가. 인플레와 실업사태 등 벌써부터 허다한 부작용의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서독 당국자들은 이 모든 위험을 강력한 서독경제의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동ㆍ서독의 경제통일과 관련해 또 한가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점은 그것이 국제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서독정부는 동독과의 통합자금조달을 위한 7백억 달러규모의 채권발행 구상을 밝히고 있다. 동독과 함께 소련ㆍ동유럽 경제재건에 서방의 자금이 몰리게 되면 아시아ㆍ아프리카 및 중남미의 개발도상국과 누적채무국에 대한 지원자금의 고갈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동독과 소ㆍ동유럽이 세계자금의 「블랙 홀」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나왔다. 결과적으로 국제자금부족과 금리상승사태까지 겹치게 될 경우 세계경제,특히 개발도상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게될 우려가 크다. 소ㆍ동유럽의 민주화개혁과 동ㆍ서독의 통일은 국제정치질서의 근본적인 재편성을 강요하고 있는 동시에 국제경제질서의 큰 변화도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하겠다. 아무튼 독일의 경제 통일은 15년 전의 베트남 무력적화통일과는 다른 전후 최초가 될 분단국의 평화적 민주화통일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우리에게는 크게 고무적인 사태의 전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건설 경쟁에서의 압도적 승리가 가져온 결과란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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