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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은본점 간부 곧 수사/폐화폐 절취

    ◎경찰­유출액 적힌 보고서 원본 찾아내/박 전부산지점장 어제 구속 【부산=이기철 기자】 한국은행 부산지점의 폐기용 지폐유출사건은 당시 지점장 박덕문씨(52·본점 계리부장)가 본점 인사부장 김종태씨(47·금융결제원 근무)의 연락을 받고 축소·은폐한 것으로 밝혀졌다.또 본점 감사실도 이번 사건에 개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부산 중부경찰서는 24일 박지점장을 허위공문서 변작과 공용서류 손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강화중 부지점장(47·금융연구원 파견)과 편봉규 화폐정사과장(46·부산지점 외환과장)은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박씨 등은 사건발생 다음날인 지난해 4월27일 서울 본점에 보고한 「사고경위서」 및 「사고보고서」에 사고금액을 7천2백65만원으로 작성했다 세단기안에 들어있던 7천2백60만원을 뺀 보고서를 다시 만들어 채송편으로 29일 본점에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이 날 경찰에서 『본점에 보고한 28일 인사부장 김종태씨(57·현 금융결제원 상무)가 기계안에 있는 돈은 사고금액이 아니지 않느냐고 전화를 걸어 와 절취금액을 줄이라는 지시로 받아들여 정사과장 편씨에게 보고서를 다시 작성하게 했다』고 말했다.박씨는 또 『원래 보고서를 당시 감사실의 정모씨가 사고금액을 축소해 다시 제출한 보고서로 바꿔 끼웠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 날 편씨의 집에서 범행 수법과 함께 사고 금액을 7천2백65만원으로 기록한 보고서 원본을 찾아내 압수했다. 그러나 당시 인사부장 김씨는 『사건 보고를 위해 서울에 온 강 부지점장을 만나지 않았다』며 『29일 박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28일 전화한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경찰은 이밖에 강 부지점장으로부터 1차보고서를 28일 김명호 총재에게 보고할 때 김총재가 형사고발은 한번 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말을 했다고 진술을 받았다. 한편 범인 김씨가 지난해 4월21일 동양증권 중앙동지점을 통해 (주)태영의 공모주 3천4백만원상당을 청약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돼 김씨의 범행금액은 모두 4억2천2백80만원으로 늘어났다. 경찰은 이와 함께 김씨와 가족들의 재산을 추적한 결과 증권 2억4천7백만원,예금 1백51만원,부동산 8천9백만원(담보 7천만원에 설정)등 모두 2억6천7백52만여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부산지검은 25일 범인 김씨가 검찰에 송치되면 서울지검의 협조를 받아 이 사건을 보고받은 발권담당이사,감사 등 본점 간부들을 대상으로 진술이 엇갈리는 부분을 집중추궁하는 등 전면 재수사에 나서기로 했다.
  • 지폐유출 철저수사/한은총재에 이경식씨 임명/김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은 24일 지폐 불법유출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명호 전한국은행총재 후임에 이경식 전경제부총리를 임명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상오 이신임 한은총재에게 임명장을 준뒤 『한국은행 부산지점 지폐유출사건은 중앙은행의 공신력을 생각할 때 도저히 있을수 없는 일로 국가위신을 크게 실추시킨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철저히 조사해서 문제발생의 요인을 완벽하게 개선,이번 사건이 한국은행을 위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고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이 발표했다. ◎“관련자 문책”/신임 이 총재 이경식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부산지점 화폐유출 사건은 그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들을 문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총재는 이날 하오 한은 별관 8층 강당에서 임직원등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취임식에서 『이번 사고의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 제도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과감히 개선하고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히 책임을 지도록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 원화표시채권 첫 발행/「아리랑 본드」/ADB 통해 1차8백억

    ◎국내자본시장 개방 본격화 국내 최초의 원화표시채권인 「아리랑 본드」가 24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의 발행을 계기로 국제무대에 처음 공식 데뷔했다. 「아리랑 본드」는 외국인이 국내에서 원화로 발행하는 채권의 애칭.따라서 「아리랑 본드」의 발행은 국내 자본시장을 외국인에게 처음 개방하고 우리의 화폐단위인 원화가 국제결제통화로 격상될 전기를 마련했음을 의미한다.또 세계은행(IBRD),유럽개발은행(EBRD) 등 국제금융기구에서 원화채권을 본격 발행하면 국제적 인지도와 신임도가 급상승,원화의 국제화 촉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에 발행된 ADB의 「아리랑 본드」는 시장 실세금리(표면금리 12.15%)를 반영한 7년 만기의 장기채권이다. 「아리랑 본드」는 1차로 8백억원 어치가 발행 됐으며 한국산업증권이 주간사를 맡았다.
  • 「환경 사회주의 비판」­칼헤스 카토연구소 연구원(해외논단)

    ◎“환경보호엔 「작은 정부」가 낫다”/“「큰정부」가 환경복지 실현” 그린세력 주장은 오류/자유시장·사적소유 체제서 자연보호 더 효율적/구소련 자연파괴 심각… 미국은 환경보존 성공적 실천 우리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합성세제를 덜 쓰는 것을 현대의 「절대선」 환경주의의 시작이자 끝으로 여기고 있기 쉽지만 환경보호와 환경주의가 우리보다 훨씬 앞선 미국에선 「환경」은 궁극적으로 정치체제 문제에 귀결된다는 인식이 강하다.한국 환경주의의 앞날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많은 칼 헤스(카토연구소 연구원)의 「환경사회주의」라는 제목의 글을 격월간지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로부터 소개한다. 한 세기내내 위세를 떨치던 사회주의적 「큰 정부」주의가 「자유 시장」 그리고 「사적 소유」에 설득당해 힘을 잃고 있다.그러나 세계의 이같은 대세에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그것은 「그린」(녹색) 세력이다.골수 「그린」주의자가 아니라도 환경문제를 겉으로만 핥지 않고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다 작은 정부의 대세에 저항하고자유시장·사적소유 체제로부터 등을 돌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환경 복지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 한물간 「큰정부」의 힘을 남달리 여긴 탓에 남들이 퇴짜놓은 이것을 한달음에 달려가서 껴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론자들은 자유시장과 사적소유 대신 국가소유와 명령식 계획 시스템을 택했던 사회들이 기록한 형편없이 나쁜 환경 성적을 눈여겨 봐야한다.멀리 옛 소련 공산권에까지 시선을 돌릴 필요없이 카우보이식 사회주의 방식으로 관리해왔던 미국서부의 공유지 실태를 살피면 된다.준국가 관리하의 이곳 초지는 가축들의 과잉방목으로,늪지는 관광객들의 발길로 모두 평균이하 상태다. 미국은 그래도 환경보존에 성공한 축에 드는 나라인데 이 성공은 자유시장·사적소유의 자본주의가 갖다준 번영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강경·절대 「그린」주의자를 잘 익은 수박에 비유,속에다 사회주의·공산주의 성향의 빨간 속셈을 감춘 신종 「레드」라고 비난하는 논자들도 있으나 어렵게 따질 것 없이 환경주의는 큰정부와손발이 맞는다.주요 환경단체는 정부의 일거리와 역할을 키워주고 규제를 강화시키는데 일조를 함으로써 영향력을 보유한 것이지 아마추어처럼 실제의 보존·보호 행위로 그런 것은 아니다.그래서 큰정부와는 잘 맞지 않는 자유시장·사적소유 원칙과 한편이 되기 어려웠다.환경운동에 정치적 힘을 실어준 자발적 민중 환경주의자들은 실제 보호행위에만 관심을 쏟고 환경 로비스트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누구에겐가 특별히 소유되어 있지 않은 자연과 자원은 「만인소유의 비극」이란 말이 있듯이 환경의 큰 환부다.공동소유의 자연자원은 개별 소유권으로 분할되거나 정부의 엄한 규제아래 보호되지 않으면 결국 고갈되고 만다.그러나 이때의 정부라는 것도 「그린」식 큰정부만이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소규모 자치의 민간공동체나 연합도 충분히 자격이 있다.또 「그린」세력들은 진정한 공동체라는 것은 무형의 사회적 행태 뿐아니라 유형의 자연세계를 공유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면서 사적 소유권은 이웃끼리,자연과 인간끼리 만나고 교감할 수 있는 공유공간을 제거해 버린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그러나 사적 소유권은 결코 자연을 분자적으로 분할해 공유성을 완전 소멸시키는 제도가 아니다.또 보다 큰 정부만이 펼칠 수 있는 예방책,개인보다 사회소유 우선,명령통제식 규제강화가 무형의 사회공동체나 유형의 자연공동체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는 오산이다.이와 반대로 이것들이 우리 시대에 공동체가 무너지고 자연의 틀이 어긋나게 된데 대한 책임을 져야할 힘들이다. 자연의 운명을 시장에 넘긴다는 것을 환경주의자들은 환경의 결과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포기하는 짓이며 부도덕에의 항복으로서 끔찍하게 여긴다.비정한 경제시장은 개인이나 공동사회를 분명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그러나 시장이란 것은 자연자원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마음대로 움직이는 화폐거래 그 이상이다.공동사회의 축적된 판단과 의지가 뚜렷이 표출되는 자발적인 사회거래이기도 한 것이다.환경주의자들은 미국 동부지역에 백년전보다 나무가 훨씬 많이 자라고 있는 이유가 시장의 힘에 있다는 사실을 애써 간과하려고 한다.큰정부하의 규제기관 산림청이 이 시장 힘을 대신하면서 서부 록키산맥에 오랜 수령의 숲이 더 드물어진 점을 무시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유시장과 사적소유의 원칙을 고수한다는 의미의 보수파들은 이제 강력한 국가와 사회주의적 조직에 대한 존경심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환경에도 해롭다고 「그린」세력들에게 따끔하게 일러줘야할 때다.
  • 「폐지폐 유출」 드러나는 “은폐·공모”

    ◎범인 주식거래수첩 찾고도 여죄 조사안해/한꺼번에 5천만원 빼내… 공모없이는 불가능/설치된 5대 폐쇄회로TV테이프 사라져/파면한뒤 퇴직금 지급 절취액 짜맞춘 흔적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전 서무과 직원 김태영(40)씨가 빼돌린 폐기용 화폐액이 3억5천만원으로 경찰 수사에서 드러남에 따라 은행측이 이 사건을 고의로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한은측은 당초 부산지점 전 서무과 직원 김씨가 지난해 4월 26일 5만원을 훔치려다 발각됐으며 자체조사결과,3차례에 걸쳐 55만원을 훔쳐낸 것으로 발표했었다. 그러나 김씨가 경찰조사에서 모두 10차례에 걸쳐 3억5천만원을 빼돌렸다고 자백했고 5만원을 훔치려다 발각됐다는 날도 세단기의 조작으로 절단되지 않고 흘러나온 폐기용 화폐가 7천2백65만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한은측은 김씨의 주식거래 내용이 적힌 수첩을 은행 1층 화장실에서 찾아내고도 자체조사에서 이같은 사실을 조사하지 않았고 김씨의 자술서에만 의존한 형식적이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씨는 범행이 발각된 직후 여죄가 탈로날 것을 우려해 자신의 책상 서랍속에 훔친 돈과 빌린 돈 등으로 주식을 거래한 내용을 적은 노트를 1층 화장실에 숨겼으나 당시 편봉규 정사과장(46)이 이를 즉시 발견,박덕문(현 본점 계리부장)지점장에게 보고했다는 것이다. 박지점장 등 은행 간부들은 이같은 내용을 알고도 여죄를 추궁하거나 수사기관에 고발하지도 않고 지난 해 5월17일 이 노트를 김씨의 부인을 통해 건네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함께 김씨가 업무시간인 하오 3시나 하오 4시30분 정사실에 들어가 세단기에 걸러진 화폐를 훔쳐내는 장면이 정사실에 설치된 5대의 폐쇄회로 TV에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녹화테이프가 모두 폐기되고 없어 당시 CCTV 담당직원들이 미리 짜고 묵인했거나 CCTV 감시를 소홀히 했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더욱이 김씨가 55만원을 훔치고 5만원을 더 훔치려다가 적발됐으며 파면한 뒤 1천8백만원의 퇴직금을 지금하는 등 은행측이 김씨의 절취액수를 55만원에 맞추려고 지나치게 애쓴 흔적이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김씨가 단독 범행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으나 훔친 액수가 수사과정에서 은행이 발표한 55만원보다 6백36배나 많은 3억5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고 한꺼번에 5천만원을 빼낸 대담성 등으로 미뤄 다른 직원과의 공모 및 상납여부에 대한 의문점도 제기되고 있다. ◎폐지폐 어떻게 처리되나/자동정사기 통해 폐기여부 결정/세단기로 분쇄·천공후 소각처리 한국은행 부산지점 화폐 불법유출사건은 경찰의 조사결과 손상된 돈을 분쇄,처리하는 화폐 자동정사기에 대한 관리상의 허점에서 비롯됐다. 돈의 생애는 조폐창에서 만든 신권을 한은으로 보내면 한은이 금융기관의 헌돈과 바꾸어 주는데서 시작한다.한은에 돌아온 헌돈은 한은 본점과 12개 지점에 설치된 30대의 화폐 자동정사기를 통해 재사용이 가능한 돈과 폐기할 돈으로 분류된다.자동정사기가 없는 지점이나 사무소로 돌아온 손권은 천공기계로 돈에 구멍을 뚫은 뒤 대구의 소각로에서 소각된다. 자동정사기에서 폐기할 돈으로 분류된 손권은 컨베이어를 통해 자동정사기에 붙은 세단기로 옮겨지면 톱니모양의 칼날에 1∼2㎜ 크기로 잘게 쪼개져 폐기처분 된다.이때 잘게 썰어진 지설물은 단열재 등 건축자재로 재활용된다.정사기에는 투입된 헌돈과 재사용할 돈,폐기처분한 돈의 숫자가 자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재사용할 돈과 폐기처분한 돈의 합계가 투입된 헌돈의 숫자와 대조할 수 있도록 장치돼 있다.만약 칼날의 간격을 임의로 조작할 경우에는 세단기의 작동이 중단된다. 또 1대의 자동정사기에는 2인 1조의 정사원과 1∼2명의 정사계장 또는 과장이 관리인으로 붙어 있다.특히 정사실은 일반인들의 접근이 금지된 「제한구역」으로 분류돼 있으며 24시간 폐쇄회로 TV를 통해 감시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범인인 부산지점 서무과 직원 김태영씨는 1∼2㎜인 칼날간 간격을 10㎝정도 떼놓아,손권이 세단기에 분쇄되지 않고 그대로 떨어지게 한 뒤 세단기를 수리하겠다며 퇴근 후에 남아 화폐정사기 속에 분쇄되지 않고 쌓인 돈을 꺼내 유출했다. ◎유출범인 김태영씨 일문일답/“모든 분들께 죄송… 공모자는 없어” 『모든 분들에게 누를 끼쳐 죄송합니다.죽고싶은 마음뿐입니다』 한국은행 부산지점에서 3억5천여만원을 몰래 훔쳐낸 혐의로 구속된 김태영씨가 21일 하오1시쯤 부산중부경찰서 형사계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문일답을 나눴다. ­여러차례 돈을 훔친 걸로 봐서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직원 상호간의 감시체계가 잘 이뤄져서 공모자체가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공모한 사람은 결단코 없다. ­은행측은 지난해 면직될 당시 절취한 금액이 모두 3억5천여만원인 사실을 알고 있었나. ▲모르고 있었던 것같다.죄송할 따름입니다. ­단독범행이라고 믿기가 어려운 구석이 많은데 혹시 은행측으로부터 무슨 약속같은 것을 받았나. ▲약속받은 것이 없다.(침묵) ­은행측이 훔친돈으로 증권에 투자한 내역을 적은 비밀장부를 돌려줬다는데. ▲(한동안 침묵)다만 죄송할 따름입니다.
  • 「지폐유출」 특감 착수/한은­재경원 상대 경위 등 조사/감사원

    감사원은 21일 한국은행 부산지점 화폐 유출사건과 관련,한국은행과 재정경제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감사원은 2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감사에서 이번 사고가 한국은행 본점과 재정경제원에 제대로 보고 되었는지의 여부와 현행 보고체계의 문제점을 밝히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 감사원은 감사원법에 따라 한국은행의 감독기관인 재정경제원을 경유해 감사원에 사고경위가 보고되어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감사원에 보고되지 않은 이유를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감사원은 감사 결과 보고를 고의로 누락시킨 것으로 드러나면 한국은행측에 관계자 인사조치를 요구하는등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감사원은 그러나 사고가 난 한국은행 부산지점과 화폐를 폐기하는 정사기가 설치된 본점및 지점을 대상으로 감사가 실시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행 본점과 재정경제원에 감사를 국한시키기로 했다. 감사원은 이번 감사 결과를 토대로 오는 10월로 예정된 한국은행에 대한 정기감사에서 중앙은행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헤칠 방침이다.
  • 재경원 긴급간부회의… 대책 부심/「지폐유출」 관계기관 표정

    ◎한은선 대책반 구성… “축소 은폐 없었다” ○…재정경제원은 경찰수사 결과 한국은행 부산지점의 화폐유출 규모가 3억5천만원으로 불어나자 21일 홍재형 부총리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여는 등 대채마련에 부심.재경원은 한은의 독립성문제 때문에 이번 사건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도 주무부처로서 뭔가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란 분위기가 팽배. 이석채 차관은 『감사원이 지난 19일부터 한은에 사실확인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재경원이 별도의 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라며 『경찰수사가 끝난 뒤 정부차원의 사태 수습방안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 ○…그는 화폐유출사건을 당시 재무부가 보고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해 『한은이 이 사건을 긴급사안이 아닌 단순사고로 보고했기 때문에 보고받은 직원들이 한은이 알아서 조치할 문제로 판단,사건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않았다』며 『설령 장관에게 보고됐더라도 재무부가 한은에 사건처리를 지시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설명. 다른 관계자는 『82년 이후 한은의 업무에 대한 일반감사가 없었다』면서 『한은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존중돼야 하지만 일반업무까지 성역이 돼서는 곤란하다』고 말해 재경원이 일반검사권을 회복시킬 것임을 시사. ○…한은도 당혹하는 모습이 역력한 분위기.그러나 이번 사건이 중앙은행의 신뢰를 실추시키는 중대 사건이기는 하지만 한은총재가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상 파문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기대. 특히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한 것으로 규정하고 감사원이 21일부터 특감에 돌입한 데다 검찰마저 내사에 들어가자 당시 결재라인에 있던 임원들 중 상당수가 다칠 것으로 우려. 그러나 사건 당시 부산지점장인 박덕문 계리부장과 부지점장인 강화중 부부장(금융연구원 파견)은 『김씨가 모든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본점의 합동조사 때도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은폐 축소사실을 극구 부인. ○…한은은 이날 유사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김경림 기획담당 이사와 기획부장 등 관련 부서장 6명을 반원으로 하는 대책반을 구성.대책반은 화폐발행 및 폐기에 따른 제반 업무절차 등을 재점검하고 관련 제도의 개선대책을 강구할 계획. 한은 직원들은 이번 사건을 한은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 일어난 「한은 길들이기」로 받아들이면서 후임 총재는 비한은출신이 기용될 것으로 점치기도.
  • “82년후 발권업무감사 없었다”/재경원 관계자 밝혀

    한국은행의 화폐발행과 폐기 등 발권업무에 대한 재정경제원(구 재무부)의 업무감사가 82년 이후 한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때문에 이번 지폐유출사건이 업무감사의 공백으로 커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한은에 대해서는 그동안 감사원의 회계검사만 있었다. 21일 재정경제원에 따르면 한은에 대한 감사는 감사원의 회계검사와 재경원의 업무감사로 나뉘어 있으나 업무감사는 한국은행 독립성확보 문제로 82년까지만 실시했고 이후엔 한차례도 없었다.한국은행법 제40조에는 「매년 1회 이상 재정경제원의 업무감사와 감사원의 회계검사를 받는다」고 돼있다. 재경원 관계자는 『82년까지는 구 재무부의 업부감사와 감사원의 회계검사가 함께 이루어졌으나 이후에는 한은의 독립성확보 차원에서 감사원의 회계검사만 실시됐다』며 『업무감사가 감사원의 회계검사로 포괄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됐으나 최근 감사원이 왜 재경원이 한은의 업무감사를 하지 않느냐고 이의를 제기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 때문에 업무감사권을갖고 있는 재경원이 그동안 감사권 행사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 본격 라틴­한글사전 출간

    ◎가톨릭대/6만여 단어 수록… 24년만에 “햇빛”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적인 「라틴­한글사전」이 출판됐다. 가톨릭대학교 고전라틴어연구소(소장 백민관교수·신부)가 편찬한 이 사전은 이 연구소와 동성중학교장 최승용 신부,천주교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서강대 철학과 성염 교수등 편찬위원들이 각고의 작업끝에 가톨릭대학교 출판부에서 펴냈다. 우리나라에 라틴어가 전해진것은 가톨릭이 전해지면서 부터 이며 1891년 파리외방선교사들에 의해 「나선소사전」이 발간됐다.신학생들의 교육에 쓰여오던 이사전을 바탕으로 19 36년 윤을수신부(1907∼1971)가 「나한소사전」을 만들었는데 라틴어 어휘 하나에 한글 어휘하나를 대입시킨정도의 단어장 규모에 불과했다. 이번에 나온 사전은 1천56쪽으로 수록어휘수가 6만여개나 되는 본격적인 사전이다.부록으로는 로마제국 역사개관,고대로마제국판도,황제연대표,도량형과 화폐,숫자와 달력등을 수록했다. 현재 라틴어를 일상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없으나 라틴어는 로마제국 5백년과 중세 1천년동안유럽의 유일한 학문언어였기때문에 인류문화사에 라틴어가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루마니아 등 라틴국가의 언어들은 라틴어의 변형이며 영어 독일어에도 많은 라틴어가 스며있다. 따라서 세계문화 유산의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한 현대학문의 이해를 위해서는 라틴어 습득이 필수적인 일로 여겨지고 있다. 「라틴­한글사전」편찬작업은 지난 71년 가톨릭대학교 고전라틴어연구소장이었던 고 허창덕신부(1919∼1992)가 92년 선종 할때까지 알파벳의 A에서 S까지,총 4분의 3을 완성했고 그후 가톨릭대학교 백민관신부등 편찬위원들이 나머지를 마무리해서 24년만에 빛을 보게됐다.
  • 「지폐절취」 오늘 현장 검증/한은 부산지점서

    한국은행 부산지점 직원의 폐기용 지폐 절취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 중부경찰서는 20일 범인 김태영(40)씨의 추가 범행 및 공범이 있는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21일 현장검증을 하기로 했다. 경찰은 한국은행 부산지점 화폐정사실에서 지난 93년 12월부터 94년4월에 걸친 3차례의 범행을 재연토록 함으로써 김씨의 주장처럼 공범 없는 단독 범행과 상습적인 지폐절취가 가능한지를 규명할 예정이다. 또 김씨가 파면당한 후 시가 1억원짜리 36평 연립주택의 구입 자금과 7천여만원에 이르는 주식투자 자금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곧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김씨와 그 가족의 재산 및 예금계좌를 조사할 방침이다.
  • 한은 폐지폐 대량 유출/부산지점 직원이 수차례 세단기 조작

    ◎경찰,공범여부 집중조사 한국은행 부산지점 직원의 낡은 지폐 절도사건을 수사중인 부산 중부경찰서는 18일 전 서무과 직원 김태영씨에 대해 절도 및 절도미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또 당시 상급자인 편봉규 화폐정사과장(46)과 정사실 김응호 심사역(44),홍덕순 계장(42·여) 등 3명을 소환,참고인 조사를 벌였다. 경찰은 전서무과직원 김씨에 대해 다른 직원들과의 공모 및 다른 범행 여부를 집중추궁했으나 이를 완강히 부인했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지난 93년 12월 손상지폐 세단작업 마감후 기계청소 및 보수를 하던 중 비닐 테이프나 스테이플러(철사기),침 등 불순물이 붙은 지폐들이 절단장치에 들어가지 않고 롤러 벨트 부분에 남아 있는 것을 발견,이 돈을 챙겼다』고 진술했다. 세단기에 불순물이 붙은 지폐가 투입되면 제대로 절단장치에 들어가지 않아 초당 9장씩 투입되는 지폐들이 적체현상을 일으켜 쉽게 발견되지만 마감직전에는 투입량이 많지 않아 벨트부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씨는 『이같은 원리를이용해 지난 94년 4월 26일에는 세단기의 마크네틱 스위치 간격을 미세하게 넓혀 지폐가 절단되지 않은 채 통과되도록 기계를 조작해 5만원을 훔쳤다가 적발됐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씨가 매일 마감후에 기계청소와 보수를 혼자서 담당했고 파면직후 주택을 구입하고 수천만원을 증권에 투자한 점으로 미뤄 도난규모가 한국은행이 자체 적발한 2차례 55만원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가 파면되기 전까지 연봉이 1천7백만원에 불과했고 사원용 연립주택에서 생활해 왔으나 지난 5월 파면된 뒤 1개월만인 지난 6월 중순 현재 사는 부산시 남구 민락동 11의 1 36평짜리 세종연립주택(시가 1억여원)을 구입했고 7천여만원 상당을 증권에 투자했다는 것이다. ◎“금명 책임자 문책” 정부는 18일 한국은행의 화폐 불법 유출사고에 대한 재경원 감사실의 경위조사가 끝나면 금명 책임자에 대한 문책을 단행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말레이시아를 방문중이던 김명호 한은총재는 이날 하오 급거 귀국,청와대를방문해 한이헌 경제·김영수 민정수석에게 사건의 경위를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 화폐유출 재조사 해야(사설)

    발권은행인 한국은행 직원이 화폐를 불법유출한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다.이 사건은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마저 기강이 해이해져 통화관리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건발생 후 한은이 취한 조치 또한 중앙은행의 공신력을 크게 실추시키고 있다.한은은 화폐유출 범인을 형사고발하지 않고 자체징계를 통해 파면조치했다.범인의 행위가 분명한 절도행위인데도 형사고발을 하지 않고 파면처리로 끝낸 것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반 금융기관도 아닌 화폐를 발행하는 중앙은행에서 사건이 발생한만큼 단돈 1원이 불법 유출되었더라도 의법처리했어야 하는데 1년 4개월동안 쉬쉬하며 넘긴 것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더구나 범인의 진술만 듣고 사건을 종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건을 축소시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사직당국에서 조사를 했다면 범행이 더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때문이다. 한은은 당시 범행현장을 촬영한 폐쇄회로 TV의 테이프마저 보관하지 않아 은폐의혹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이번사건으로 한국은행의 화폐관리능력에 중대한 허점이 들어난 만큼 재발방지를 위해 사직당국이 객관적인 재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사직당국은 범인이 얼마나 화폐를 불법유출했는지 여부와 한은이 폐쇄회로를 보관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정확한 조사가 있어야 하겠다. 한은은 사건이 발생한 후 직상급자를 비롯해 지점장 등 7명을 견책과 주의 등 징계를 했다고 뒤늦게 밝히고 있다.그러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춰 볼 때 적절한 징계로 보기 어렵다.지금이라도 한국은행은 해이해진 기강을 바로 잡기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한은은 사직당국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관계자에 대한 적법한 조치는 물론 보안관리시스템을 전면 보강하는 것이 필요하다.또 발권업무에 대한 최종 감독권을 갖고 있는 재정경제원은 이번 화폐유출사건과 지난번 옥천 조폐청 지폐유출사건 등 화폐도난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감독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 바란다.
  • 대덕 연구단지/청소년 탐방프로 인기

    ◎기상청 등 17곳 천체­전시­영화관 코스/운영 6개월만에 관람객 1만명 넘어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요람인 대덕과학기술연구단지 교육탐방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국립중앙과학관(관장 권갑택) 주관으로 지난 1월부터 개설된 대덕연구단지 탐방프로그램은 운영 6개월만인 지난 6월말 학생 9천9백99명,교사 59명이 참여하는등 탐방인원 1만명을 돌파했다.또 각급 학교가 일제히 방학에 들어간 7월부터는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소규모 그룹탐방이 급증,탐방교육의 내실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대덕연구단지 탐방은 과학기술 상설전시관과 천체관 영화관을 고루 갖춘 종합시설인 국립중앙관학관에서 시작해 분야별 연구소 1∼2곳을 차례로 방문하는 식으로 진행된다.탐방코스를 마련,외부에 시설을 공개하고 있는 연구소는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시스템공학연구소 항공우주연구소 천문대 화폐박물관 대전지방기상청등 모두 17곳. 연구소들은 반도체자동설계실(전자통신연) 슈퍼컴퓨터전시관(시스템공학연) 태양에너지시범동산(에너지기술연) 전파망원경(천문대) 뉴턴의 사과나무(표준연) 실험위성(항공우주연)등 자랑할 만한 시설이나 연구성과를 보여주며 청소년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연구단지 탐방은 방문희망기관을 선정,15일전까지만 신청하면 매주 화∼금요일 원하는 날짜에 그룹단위면 누구나 할수 있다.(042)861­2526.
  • 광복 50돌 경제전시회 개막/대전무역시관서

    광복 이후 50년간 우리의 경제 발전사를 되돌아 보는 「광복50주년 기념 경제전시회」가 14일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옆 무역전시관에서 개막됐다. 「선진국의 문턱에서」를 주제로 하는 이 전시회는 1천4백평의 전시장을 5개 전시공간,10개 소전시관으로 세분해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을 추적했다 주요전시물은 최초의 자석식 전화기와 한글 속도타자기(발명특허 1호),포니1 승용차,해방후 지금까지의 화폐와 담배(54종)등이며 모두 9백여점의 사진과 2백50점의 전시물,10분짜리 멀티슬라이드 영상물을 준비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2

    ◎전화폐허서 교역 13위 경제강국 건설/부·마사태­10·26사건… 박정권 18년 마감­1979년/「민추협」 발족… 민주화운동 본격 점화­1948년/금융실명제·재산공개 등 대대적 개혁조치­1993년 ▷1971년◁ 2월17일 남한의 한필성,북한의 필화 남매가 국제통화로 서로 생사를 확인했다.4월27일 제7대 대통령선거,5월25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7월28일 서울형사지법 판사 39명이 정부의 압력에 반발해 집단으로 사표를 내는 사법파동이 일어났다.8월23일에는 실미도 특수부대원이 서울로 난입해 난동을 부렸다.10월1일 전국에서 장발족 단속이 시작됐다.12월25일 대연각호텔에 화재가 발생했다. ▷1972년◁ 7월4일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8월3일 모든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는 이른바 「8·3 조치」가 발표돼 기업들이 자금숨통을 트게 됐다.10월17일 유신이 선포,박정희의 장기집권 계획이 모습을 드러냈다. ▷1973년◁ 8월8일 김대중씨가 동경에서 괴한 5명에게 납치돼 강제송환됐다.10월6일 이화여대생들은 쌍쌍파티 중단을 결의했다.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량 25% 감축을 결정함으로써 석유파동이 발생,국내경제가 심한 몸살을 앓았다. ▷1974년◁ 4월17일 박영복 부정대출 사건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크게 교란됐다.7월13일 민청학련사건 관련자 이철 유인태 김지하등 7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8월15일 광복절 경축식장에서 박대통령 저격사건이 발생,육영수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에 맞아 숨졌다.같은 날 서울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됐다. ▷1975년◁ 2월12일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투표가 실시돼 가결됐다.3월17일 서울 면목동 YH무역 여공 2백여명이 신민당사에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76년◁ 8월1일 양정모가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에서 해방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8월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났다.10월24일 박동선이 로비활동을 펼친 것이 미국에서 문제화됐다. ▷1977년◁ 8월20일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시험송전을 시작했다.9월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11월11일 이리역에서 한국화약의 화약수송열차가 폭발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1978년◁ 1월14일 여배우 최은희가 홍콩에서 납북됐다.4월24일 전남 함평에서 고구마 수매부정에 항의하는 농민대회가 열렸다.6월30일 현대아파트 부정분양사건이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다.7월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979년◁ 10월7일 박정희를 비난하던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됐다.10월18일 부산에 비상계엄령,10월20일 마산·창원에 위수령이 발동됐다(부마사태).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부 부장의 총에 맞아 숨졌다.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12·12사태). ▷1980년◁ 4월21일 사북광업소 광부 7백여명이 어용노조에 반발해 광산촌을 점거하고 경찰과 충돌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5월18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시작됐다.5월31일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가 신설됐으며 8월27일 전두환이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제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10월13일 삼청교육 실시가 발표됐다. ▷1981년◁ 1월13일 대학졸업 정원제가 도입됐다.15일 민주정의당이 창당,전두환이 초대 총재로 선출됐으며 제12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다.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관련 피고인 12명의 형량을 확정했으나 김대중은 나중에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됐다.전두환은 2월25일 대통령선거인단 선거에서 제1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1982년◁ 3월18일 고신대생 문부식등이 부산 미문화원을 방화했다.3월27일에는 프로야구가 출범했다.5월7일 대검은 대화산업회장 이철희·장영자부부를 외국환 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18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대통령 처삼촌인 이규광등이 구속됐다. ▷1983년◁ 1월11일 나카소네 일본총리가 방한,한일정상회담을 갖고 40억 달러를 7년에 걸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3월17일 일본에서 활약중이던 프로기사 조치훈이 기성을 획득,일본 바둑계의 주요 타이틀을 석권했다.5월18일 김영삼 신민당총재는 민주화와 정치활동 피규제자 해금을 주장하며,자택에서 단식에 들어갔다.6월12일 청소년축구대표팀이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 축구대회에서 4강에 진출했다.9월1일 대한항공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돼 탑승자 2백69명 전원이 사망했다.10월9일에는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사건이 발생,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방문을 수행하던 서석준 부총리등 17명이 사망했다.11월17일 동아건설은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 규모인 리비아 1단계 대수로 공사를 32억9천만 달러에 수주했다. ▷1984년◁ 5월18일 김영삼과 김대중이 주도하는 민주화 추진협의회가 발족됐다.22일에는 서울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됐다.9월6일 전대통령은 일본을 공식방문했다.일본의 히로히토 왕은 만찬에서 과거의 한일관계에 유감을 표명했다.9월 북한 적십자가 보내준 수재구호물자를 남한측이 인수했다.미국방송이 의정부에 핵배낭 특수부대가 배치돼 있다고 보도했다. ▷1985년◁ 5월23일 대학생 73명이 미 문화원을 점거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미국 사과 요구 및 반미구호를 외쳐 충격을 주었다.9월20일 남북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각 1백51명이 서울과 평양을 교환 방문했다. ▷1986년◁4월들어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분신등 시위가 본격화됐다.7월2일 부천에서 시위중 체포된 여대생 권인숙양을 경찰관이 성고문한 사건이 처음 알려져 물의를 빚었다. ▷1987년◁ 1월14일 서울대 박종철군이 치안본부 대공수사단에 연행돼 조사받다가 고문사했다.4월8일 김대중·김영삼씨는 직선제 개헌을 강력히 추진하기 위한 신당창당을 선언했다.13일 전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개헌논의 유보를 발표하고 직선제 요구를 거부했다.24일에는 통일민주당의 창당을 방해하는 용팔이 사건이 발생했다.6월10일 민정당은 전당대회에서 노태우대표를 차기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그러나 박종철 고문치사 규탄 및 호헌철폐 시위가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29일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수용을 밝혔다.12월16일 실시된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1월14일 문교부는 새로운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규정을 확정 발표했다.2월25일 노태우대통령이 취임했다.4월26일 13대 국회의원선거가 실시됐다.그 결과 처음으로 여소야대의 현상이 나타났다.9월17일 역사적인 서울올림픽이 개막돼 10월2일까지 계속됐다.11월부터는 5공비리 청문회가 시작됐다.11월23일 전두환전대통령은 백담사로 은둔했다. ▷1989년◁ 3월25일 문익환목사가 방북,김일성과 면담했다.6월30일에는 외국어대 임수경양이 북한에 들어가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참석했다.9월11일 노태우 대통령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0∼1년◁ 90년2월9일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민자당이 창당됐다.10월1일 한소양국이 수교했다.91년2월 수서지구 택지특별분양 사건이 발생,이원배등 의원5명과 청와대비서관,정태수 한보그룹 회장등 8명이 구속됐다.12월18일 노대통령은 한반도 핵부재를 선언했으며 같은달 31일 남북한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 가서명했다. ▷1992년◁ 3월24일 14대 총선이 실시돼 2번째 여소야대가 실현됐다.정부는 6월30일로 예정된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95년이후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8월22일 중국과 수교,주변 4강과 모두 외교관계를 수립했다.12월19일 14대 대통령선거에서 민자당의 김영삼후보가 당선됐다. ▷1993년◁ 김영삼대통령은 2월25일 취임후 공직자 재산공개,군 하나회 숙정,금융실명제 실시등 굵직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이회창원장이 이끄는 감사원은 6월 율곡사업감사,7월 평화의 댐 감사등 과거비리를 사정했다. ▷1994년◁ 정부의 외교가 북한핵문제 해결에 집중됐다.그 결과 10월21일 제네바에서 미북기본합의서가 타결됐다.국내적으로는 구포 열차전복사건,위도 여객선 침몰사건,목포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사건,아현동 가스폭발사건,성수대교 붕괴등 대형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1995년◁ 6월27일 역사적인 4대 지방자치선거가 일제히 실시된 결과 수도 서울의 시장에 민주당의 조순후보가 당선되는등 시도지사에 대거 야당 후보들이 당선됐다.4월28일 대구가스폭발에 이어 6월29일 삼풍백화점 붕괴등 대형사고가 계속됐다.
  • 통계로 본 반세기/자동차수 792만대… 1,251배 폭증

    ◎GNP 53년 67달러서 작년 8,483달러로/전화가입자 4만5천명서 1,781만명으로/박사학위자 38,134명… 1만명당 8.6명꼴/1천명당 이혼건수 1.45건… 70년의 3.7배/1인 연담배 구입량 2,172개비… 3배 증가 광복 당시 6천3백37대에 불과했던 자동차의 등록대수가 50년이 지난 95년 6월말에는 7백92만6천대로 무려 1천2백51배가 폭증했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의 수도 52년 당시 10명밖에 없었으나,94년 말 기준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까지 합하면 박사 학위자 수는 총 3만8천1백34명이나 된다.인구 1만명당 8.6명 꼴이다. 65년에는 1만원으로 짜장면 2백86그릇을 사 먹을 수 있었으나,지금은 다섯 그릇 밖에 사먹을 수 없다.지난 해 1만원의 화폐가치는 65년 당시 5백26원밖에 안될 정도로 화폐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국민 1인당 GNP(국민총생산)는 통계를 내기 시작한 53년 67달러에서 지난 해에는 8천4백83달러로 1백26.6배가 늘어났다.광복 50주년을 맞아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크게 달라졌음을 알려주는 통계 수치들이다. 통계청은 10일 광복50주년을 기념하는 「통계로 본 한국의 발자취」라는 기획 간행물을 펴냈다.국토와 인구,농림어업,교육,노동,임금,물가,가계 등 13개 부문으로 나눠 광복 반세기 동안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했다. ▷국토 및 인구◁ 남한의 국토 총 면적은 49년 9만3천6백34㎦에서 93년에는 9만9천3백92㎦로 6.2% 늘어났다.간척사업 등 국토개발 사업의 효과다.그러나 농경지의 면적은 국토 총 면적의 21.9%에서 지난 해에는 21.4%로 0.5%포인트가 낮아졌다. 총 인구는 45년 1천6백87만3천명(당시 미군정청 추계자료)에서 지난 7월 1일 현재 4천4백85만1천명으로 2.66배가 늘었다.48년에는 2천만명을,67년에는 3천만명을,84년에는 4천만명을 각각 넘어섰다. 47년 39.3%였던 유년인구(0∼14세)가 지난 해에는 23.2%로 줄어든 반면 65세 이상의 노령층은 3.5%에서 5.5%로 증가했다.유년층에 대한 노년층 인구의 비율인 노령화 지수는 9%에서 24.5%로 크게 높아졌다. 여성의 가임기간(15∼49세) 동안 평균 자녀의 출산 수는 60년 6명에서 93년 1.8명으로 줄었다. ▷농림어업◁ 농가 수는 49년 2백47만4천가구에서 지난 해에는 1백55만8천가구로 37%,농가인구는 1천4백41만6천명에서 5백16만7천명으로 2.8배가 각각 줄었다.총 인구 대비 농가인구 비율은 71.4%에서 11.5%로 크게 낮아졌다. 농가인구 중 50∼59세는 55년 10.6%에서 지난 해에는 18.3%로,60세 이상은 4.7%에서 25.2%로 각각 늘었다.93년의 농가 가구당 연 평균 명목소득은 1천6백92만8천원으로 54년에 비해 1천1백28.5배,가구당 자산총액은 4천5백93.1배가 각각 늘었다. 광복 당시 1백84만8천4백t이었던 쌀 생산량은 지난 해 5백5만9천8백t으로 2.7배가 늘었다.채소 및 과일의 경우 무는 8.2배,배추 16.6배,수박 69.2배,양파 6백1.3배,사과 39.7배가 각각 늘었고,밀감은 60년에 비해 무려 2천8백89.3배나 늘었다. ▷광공업 및 에너지◁ 금의 생산량은 45년 1백97㎏에서 지난 해에는 1만2천3백32㎏으로 62.6배,은은 8백58㎏에서 25만7천4백98㎏으로 3백배가 각각 늘었다.인구 1인당 연간 담배 판매량은 45년 7백34개비에서 지난 해에는 2천1백72개비로 3배가 늘었다.총 발전량도 광복 당시에 비해 2백32.1배가 증가했다. ▷건설·운수·도산매◁ 도로의 총 길이는 47년 2만4천4백43㎞에서 93년에는 6만1천2백95㎞로 2.5배,1㎞당 자동차 대수는 0.5대에서 1백2.4대 꼴로 각각 늘어났다.도로 포장률은 4.3%에서 84.7%로 늘었다.자동차 등록대수 중 승용차의 비율은 45년 20.7%에서 지난 해 69.5%로 늘었고,버스는 광복 당시에 비해 5백3.5배,화물차는 4백51.9배가 가 늘었다. ▷우편·금융·재정 우체국◁ 수는 45년 6백92개에서 93년 3천3백10개로 4.8배,전화 가입자는 4만5천명에서 지난 3월 1천7백81만6천명으로 3백92.1배가 늘었다.이동전화 가입자는 74년에 비해 3천4백29배,무선호출기 가입자는 82년에 비해 1만1천36배나 늘었다. 화폐 발행액은 45년 8백80만원에서 지난 해 15조8백90억원으로 17만1천배나 늘었다.어음 교환액은 45년 5백만원 가량이었으나,94년에는 5천7백81조로 늘었다.45년의 어음 부도율은 장수 기준 0.38%였으나 지난 해에는 0.11%로 낮아졌다. 수출 1위 상품은 55년에는 비식용 원료에서 61년에는 철광석,지난해에는 TV·VTR 등의 전자전기기계 제품으로 바뀌었다.외환 보유액은 50년에 비해 9백58배,외화자산은 67년 대비 1백67배,외화부채는 2백16배가 각각 증가했다. ▷교육 및 보건◁ 국민학교 수는 45년 2천8백34개,학생수는 1백36만6천명,교사 1인당 학생 수는 1백43.6명,학급당 학생 수는 65명 꼴이었다.그러나 지난 해에는 학교 수는 5천9백개로 2.1배,학생 수는 4백9만9천명으로 3배가 늘었고,교사 1인당 학생 수는 29.5명으로 4.9배 가량 줄었다.학급당 학생 수도 37.7명 꼴로 줄었다. 의사 수는 48년 3천5백69명에서 5만4천4백6명으로 늘어나며 의사 1인당 인구 수는 5천6백51명에서 8백24명으로 낮아졌다. ▷공공행정 및 기타◁ 사법고시 응시자 수는 49년 6백35명,합격자 수는 16명,경쟁률은 39대1의 수준이었다.그러나 지난 해에는 1만9천7백36명이 응시,2백90명이 합격했고 경쟁률은 68대1의 수준이었다.행정고시는 49년 5명이 합격했으며,경쟁률은 1백대1로,지난 해(75대1)보다 오히려 높았다.
  • 외언내언

    서울거주 젊은 노인들 절반쯤이 노후자금으로 1억∼2억원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학력자일수록 그 필요액수는 높아 적어도 2억원 이상은 가져야 자식들 신세 안지고 내외가 따로 아쉽지않게 살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응도 보인다. 좀더 늙어 아이들이 결혼하면 내외만 따로 살겠다는 비율도 65%나 된다.최근 한 연금관련 기관 조사에서 내비친 60세전후 젊은 노인들 의식이다.60∼70대 노인들중에도 독립해서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수가 늘고 있다.노인들 의식조사때마다 그 독립욕구 비율이 상당하여 노인복지 담당자들 모두 놀란다. 농어민연금이 시작되면서 농어촌에 살고있는 노인들은 자격을 갖추면 다달이 노후자금을 탈 수 있는 특례연금 적용을 받게 됐다.55세에서 65세미만 노인들에게는 5년만 불입해도 그후는 매달 일정액 연금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한달 평균 1만5천원정도를 납입하면 5년후 매달 현재 화폐가치로 7만3천여원씩 평생받게 되는 것이다.불입액과 그 기한이 길면 그 혜택은 더욱 많도록 되어 있다.본인이 사망하면 부인이나 부양하던 유족이 그 혜택을 이어 받을 수도 있다.이 연금 불입이 시작된 지난 7월1일이후 55∼65세미만 가입자는 43만1천명에 달하고 있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복지부와 국민연금 관리공단이 농어촌 거주 이들 가입자를 대신하여 도시에 사는 자녀들이 연금액을 불입하는 운동을 편다고 한다.「효도연금 보내기 운동」이라는 이름을 달았다.한달 1만∼2만원 납입액을 내기위해 노인들이 먼길 나들이 하는 것도 어렵고 자칫 돈이 제때 마련되지 않을 수도 있어 이런 대납은 부모들에게 작은효도가 될수 있다는 취지다. 서울등 도시지역 저소득 노인들이 정부당국에 무갹출 노령연금실시를 청원한지 한참된다.자녀양육과 생활에 바빠 노후대책 없이 노년에 들어선 사정을 고려,액수가 적더라도 노령수당을 받도록 해달라는 호소다.효도연금운동을 여기에도 원용할수는 없을가.
  • 「위장기업 설립」 밀수·가공 판매까지

    ◎최대 금 밀수단 적발 계기로 본 수법/회계장부 하루 지나면 폐기… 흔적 없애/금 유입량 연 2조규모… 80%이상 밀수 31일 검찰에 적발된 국내 최대의 기업형 금괴밀수 조직원들은 위장기업까지 내세워 밀수·가공·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홍콩산 금괴밀수·판매의 핵심으로 구속된 동양금은의 실질적인 경영자인 영업부장 박래춘(30)씨와 동남펀드대표 박치석(35)씨는 형제이며 연합금은대표 심상만(53)씨는 박씨 형제의 고모부인데다 이들 회사의 직원들마저 모두 고향사람들로 구성돼 범행의 치밀성을 보였다. 금괴밀수를 맡은 동남펀드와 판매를 전담한 연합금은은 동양금은의 자회사형태로 설립돼 합법을 가장해왔다.일년도 안된 사이에 무려 7천2백여㎏의 금괴와 금화를 국내에 들여왔다. 또 밀수 및 회계장부를 1일 단위로 작성,폐기하는 수법으로 범행의 흔적을 없애기도 했다. 동남펀드대표 박씨는 지난해 8월 홍콩의 금밀수출업자 맥웨이홍씨로부터 이른바 「은괴수입위장 금괴밀수방법」을 이용,금밀수·판매를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금밀수에 손을 댔다. 「은괴수입위장」이란 커다란 은괴의 속을 파고 직사각형 도자기를 넣은 뒤 도자기 안에 1㎏짜리 금괴 5∼6개를 담고 콜타르로 채워 은괴를 덮어 씌우는 수법이다.X­레이투시기로 검사해도 은괴안에 든 금괴가 나타나지 않는다. 이들은 수입한 은괴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비밀공장으로 운송,은괴에서 금괴를 빼낸 뒤 동양금은과 연합금은을 통해 서울 시내 금도매상들에게 하루에 금괴 40∼1백㎏을 넘겨왔다. 게다가 이들은 화폐수입에 관세와 수입부가세가 부과되지 않는등의 맹점을 악용,친인척이나 동양금은 직원들의 명의를 빌려 사업등록을 한 뒤 호주·홍콩 등지에서 1㎏짜리 금화 4백70억원어치를 수입,시중에 금괴로 팔아넘겼다. 이들은 금화에 새겨진 은행이름과 제조일자등을 모두 지워 수입일자등의 추적을 불가능하게 했다. 더욱이 이들은 암달러상 임수정(40·구속)씨를 통해 원화를 엔화로 환전,금괴밀수자금을 조달받는가 하면 금괴판매자금은 제일은행 종로4가 출장소 차장 이강열(37·불구속)등 은행 직원들과 짜고 가명계좌를 개설,돈세탁까지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국내 금의 연간 유입물량은 2백여ⓣ,2조원 규모에 이르는데 그 가운데 80∼90% 정도가 밀수로 공급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 국제마약 조직 “멕시코는 돈세탁 천국”

    ◎금융관행 느슨… 한해 70억달러 교환/「수수료」노려 건설·항공사까지 가담 멕시코가 국제마약조직의 돈세탁 장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미 마약단속국(DEA)의 보고서에 의하면 멕시코의 마약밀매조직이 한해에 세탁하는 돈은 무려 70억달러에 이르며 이는 멕시코 전체경제의 2.5% 규모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3월까지 DEA가 「그린 아이스 2」라는 작전암호로 수행한 마약밀수 집중단속 결과 그 윤곽이 밝혀졌다.이 작전을 통해 DEA는 마약밀매에 관련된 50여명의 돈세탁꾼을 붙잡았으며 1천5백만달러의 현금과 수천㎏의 코카인을 압수했다.그리고 수사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특히 멕시코의 돈세탁규모가 빙산의 일각이나마 드러났다. 멕시코는 오래전부터 마약밀매를 통한 수익의 원천을 감추기 위한 장소로 이용돼 왔다.그러나 최근 달라진 경제환경이 멕시코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돈세탁 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돈세탁문제의 위험성에 대해 멕시코측에 이미 몇차례 경고한 바 있다.최근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미국을 방문한 멕시코 관리들에게 『돈세탁은 경제안정을 해치며 마약밀수 및 관련범죄가 사회내부를 서서히 병들게 한다』며 이 문제에 적극 대처해줄 것을 요구했다.미 국무부도 최근 제출한 보고서에서 콜롬비아와 멕시코의 두나라 마약밀수꾼들이 손잡고 멕시코에서 건설회사나 시멘트회사,심지어는 항공회사까지 사들여 마약밀매 수익금을 세탁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마약밀매업자들은 돈세탁 방법으로 멕시코에 주식투자까지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적인 돈세탁 분야 전문가인 브루스 재거리스 변호사도 이같은 합법적인 투자 탓으로 나프타(북미자유무역협정)의 우산아래 미국과의 무역관계가 급속히 확장하고 있는 멕시코가 돈세탁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는 『미국과 멕시코 양국간에는 최근들어 상업적 교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거래와 불법적인 것을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강조한다. 페소화 폭락으로 초래된 멕시코의 경제위기도 마약밀수업자들을 부추긴 셈이다.유엔의 최근 보고서는 지난해 12월에 페소화가 40%가량 폭락한 이후 마약업자들이 「더러운」 달러를 값싼 페소로 바꿔 고급승용차나 고급주택·요트등 고가품을 사재기했다가 되팔아 넘기는 수법으로 돈세탁을 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공무원의 부패도 멕시코를 돈세탁의 온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지난 5월 미 법무부 관리들은 마리오 루이스 마시외 전 멕시코 마약담당 검사장이 마약밀수업자로부터 수백만달러의 뇌물을 받아 미국은행을 통해 세탁했다고 주장한다.마시외씨는 지난 3월 뉴저지 공항에서 스페인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수중의 돈 4만달러를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미국세관에 억류됐었다.당국은 나중에 그의 텍사스 은행계좌에서 마약밀매로 모은 9백여만달러를 적발했다.미 수사당국은 이 돈이 범죄행위를 통해 조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압류조치를 위해 소송를 제기했다. 돈세탁에는 이밖에 여행자수표를 끊거나 화폐교환소에서 돈을 바꾸는 방법이 사용되고 있으며 한번에 40만달러까지 세계 각국의 은행으로 보낼 수 있는 멕시코의 은행어음도 이용되고 있다.멕시코에서는 이런 거래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자금줄이 추적당하지 않고 있어 돈세탁업자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법률상으로도 돈세탁에 대한 형법 처벌조항이 없는 것도 멕시코를 돈세탁 천국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꼽힌다.멕시코에서는 돈세탁이 단순한 납세위반행위로만 그쳐 세탁된 돈의 양에 따른 벌금만 부과하도록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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