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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시바우 “범죄정권 할말 한것”

    지난 7일 관훈토론회에서 북한을 ‘범죄정권’이라고 규정, 파문을 일으킨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는 9일 “나는 해야 할 말을 했다.”고 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서울 신라호텔 북한인권국제대회장에서 “‘범죄 정권’이란 말이 논란인데, 철회할 뜻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 정부는 북한의 불법활동에 대해 지금 대응하려고 하며 상황은 분명하다.”면서 “그러나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한 논쟁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그는 “그 발언이 미 정부 입장이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국무부 대변인을 붙잡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범죄활동, 화폐위조, 마약수출, 무기 기술 확산, 돈 세탁 둥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고 말했다.
  • [사설] 버시바우 美대사의 부적절한 언행

    알렉산더 버시바우 미국 대사가 “북한은 범죄정권”이라고 발언해 6자회담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는 그제 관훈클럽 초청 토론에서 북한에 대해 “정권 주도로 마약밀매를 한다든가 다른 나라의 화폐를 위조해 유통시키는 등의 불법활동을 하는 정권”이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어제는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우리는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시기적으로나 용어의 선택에 있어 매우 부적절하고 신중하지 못했다고 본다. 이 문제는 북·미간에 새로운 불씨로 등장해 양국이 공방전을 벌여온 사안이다. 미 행정부는 이미 이와 관련해 대북 금융제재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북한은 지난 달 6자회담에서 이를 해제하라고 요구해 이 문제가 6자회담의 걸림돌로 등장했다. 그 결과 6자회담은 후속 일정마저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는 난관에 봉착한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이달 중 6자회담 당사국간의 ‘제주도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버시바우 대사의 대북 강경발언은 북한을 극도로 자극하는 것이며,6자회담 성사를 위한 우리측의 노력에 재를 뿌리는 것이다.‘악의 축’(부시 대통령),‘폭정의 전초기지’(라이스 국무장관) 등의 발언에 이은 또 하나의 악재다. 우리는 그가 우발적으로 이런 언행을 했다고 보지 않는다. 북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정책 방향이 평화적 해결인지, 힘에 의한 해결인지 헷갈린다. 협상의 상대방에 대해 막말을 하고 북체제를 자극하는 행사를 주도하면서 상호신뢰를 얘기할 수 있겠는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이행에 관한 ‘9·19 공동성명’의 정신은 존중되어야 한다. 버시바우 미 대사는 언행에 신중을 기해 주기 바란다.
  • 주한 美대사 “위폐제조 北은 범죄정권” 파문

    주한 美대사 “위폐제조 北은 범죄정권” 파문

    알렉산더 브시바오 주한 미국대사가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북한을 ‘범죄 정권’(Criminal Regime)이라고 규정했다.8일부터 10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 국제인권대회와 맞물려 북측 반발에 따른 6자회담의 상당기간 경색이 예상된다. 브시바오 대사는 “북한은 수출소득의 대부분을 불법행위에서 충당하고 있으며 이는 바로 ‘범죄 정권’”이라면서 “(정권차원의)위폐 제조행위는 (나치 정권인)아돌프 히틀러 이후 처음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화폐(달러)를 위조하는 위험한 행위 때문에 취한 금융제재는 정치적으로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북측이 마카오 은행 제재 철회문제를 6자회담과 연계, 협상을 요구하는 데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같은 브시바오 대사의 북한 정권에 대한 성격 규정으로 파문이 일자 우리 정부의 조태용 북핵기획단장은 이날 오후 긴급 브리핑을 갖고 “6자회담이 중요 국면에 와 있는 상황에서 대화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돼야 한다.”고 밝혔다.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공항에서 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발언,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발언 등 잇단 강경 수사(修辭)로 빚어진 대치국면을 해소하느라 힘을 빼 온 정부로선 사실상 강력한 대미 유감 표명이다. 아울러 돌파구 마련을 위해 오는 19일을 전후로 추진 중인 ‘제주도 수석대표 비공식 회동’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북측 입장에 서는 듯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일단 ‘판’속에 들어오라는 대북 메시지이기도 하다. 브시바오 대사는 토론회에서 “마카오의 ‘방코 델타 아시아’에 대한 조치로 북한의 불법행위를 중단시키는 성과를 거뒀다.”며 “미국법에 따라 취해진 금융제재를 협상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또 자신이나 라이스 장관의 방북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런 방문을 위한 기본적 신뢰 형성을 위해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며 “핵무기를 추구해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9월 부임한 이후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브시바오대사는 “서울에서 열리는 북한 인권대회가 정치적 연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생활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삼성전자 브랜드가치 31조

    삼성전자 브랜드가치 31조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 가치 순위가 3년 연속 하락해 올해는 13위를 기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국내 기업 중에는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31조 2000억여원으로 6년 연속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선정됐다. 산업정책연구원은 6일 산업자원부 지원으로 서울 JW메리어트호텔에서 ‘브랜드 콘퍼런스 2005’ 행사를 개최하고 이같은 국가 및 기업 브랜드 가치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코트라 무역관을 통해 37개국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국가 브랜드 가치를 조사해 화폐금액으로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는 5947억달러로 지난해에 비해 1계단 떨어졌다.2002년에는 9위,2003년는 10위였다. 국가 브랜드 가치는 최근 3년간 제품·서비스 수출액, 관광수입, 국가경쟁력 지수, 심리적 친근도 설문조사 결과 등을 토대로 산출됐다. 산업정책연구원 관계자는 “2002년 월드컵 축구 개최 이후 국가 홍보가 부족한 것이 국가 브랜드 하락의 한 원인으로 분석됐다.”면서 “수출이나 국내총생산(GDP) 부문에서는 예년과 비슷하게 나왔지만, 국가 인지도 부문에서 낮게 평가받았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는 4조 7165억달러로 부동의 1위를 유지했다. 독일이 2조 8903억달러, 영국이 1조 7709억달러, 프랑스가 1조 6388억달러로 2,3,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3위였던 일본은 1조 676억달러로 5위로 내려 앉았다. 중국은 9821억달러로 지난해보다 1계단 상승한 8위에 올랐다. 연구원이 국내 10대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결과, 삼성전자에 이어 SK텔레콤(7조 7000억여원), 현대차(6조 4000억여원),KT(5조 3000억여원), 포스코(5조 3000억여원) 등의 순이었다.1∼3위 순위는 지난해와 같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사설] 엄동설한 녹이는 디지털 온정

    지난 주말부터 몰아닥친 눈보라와 한파는 초겨울의 문턱을 갓 넘어선 몸을 잔뜩 움츠러들게 한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혹한의 엄습으로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운 이웃의 삶이 더욱 고달프고 서러울 걸 생각하면 심장마저 얼어붙는 느낌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달동네 골목길에 꼬불꼬불 늘어서, 고사리 손마다 연탄을 들고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배달하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훈기로 가득 채워준다. 개구쟁이 아이들의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손길이 있기에 올겨울 우리 사회가 몸도 마음도 따뜻함으로 충만하리라 기대해 본다. 몇년 전 등장한 ‘디지털 기부’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세밑 온정이 쏟아지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교통카드를 구세군 자선냄비에 설치된 단말기에 갖다대면 한 차례에 1000원씩 기부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시작돼 올해는 10개 시·도로 확산됐다고 한다. 교통카드·전자화폐 운영사의 아이디어도 기발하거니와, 참으로 디지털시대와 ‘IT 한국’에 걸맞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작은 정성이지만 기부자는 뿌듯하고 편리해서 좋고, 힘든 이웃은 엄동을 포근하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 이런 첨단 기부방식은 소액이지만 국민 다수가 쉽게 참여할 있어 새로운 기부모델의 정착과 기부문화의 확산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앞서 시행된 쇼핑몰 적립금이나 항공 마일리지, 신용카드 포인트 등을 통한 기부도 적극 이루어지도록 정부·기업·사회 모두가 지혜를 모으길 바란다. 해마다 온정이 이렇게 차곡차곡 모이고 쌓이면 따뜻한 한국, 함께 사는 사회도 그리 멀지는 않을 것이다.
  • ‘디지털 기부’ 전국 덥힌다

    ‘디지털 기부’ 전국 덥힌다

    구세군 디지털 자선냄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부산에 이어 서울에서 첫선을 보인 ‘구세군 디지털 자선냄비’는 올해 10개 시·도로 확대됐다. 세밑을 훈훈하게 덥히는 구세군 자선냄비에 디지털의 편리성이 추가됐다. 따라서 기부 참여자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4일 서울시 교통카드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스마트카드는 서울 명동 신촌 대학로 강남역 등 지하철 및 시내 중심가 20여곳에 구세군 디지털 자선냄비를 설치, 오는 24일 자정까지 운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5곳에 시범설치, 모금운동을 해 시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부방식은 티머니(T-mony)카드를 단발기에 대면 1000원이 기부금으로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더많은 기부를 원할 때는 카드를 단말기에 여러번 대주면 된다. 구세군 디지털 자선냄비 설치지역은 지하철 1호선 종로3가·동대문역,2호선 합정·홍대입구·이화여대·동대문운동장·왕십리·건대입구·강변·강남·서울대입구·신도림·신촌역,3호선 남부터미널역,4호선 혜화역,5호선 오목교·천호역,7호선 상봉역 등이다. 역시 전자화폐 운영사인 ㈜마이비는 부산과 울산 광주, 충남·북, 전남·북, 경남·북 등 9개 시도에서 구세군과 공동으로 디지털 자선냄비를 운영한다. 기간은 8일부터 24일까지다. 성금 모금방식은 서울 티머니와 동일하다. ㈜마이비는 지난해 부산에서 전국 처음으로 디지털 자선냄비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 회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열매’ 모금 운동에도 교통카드로 성금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지난 3일 서울 청계천에서 행사선포식을 갖고 사랑의 열매 모금운동에 들어갔다. 디지털 자선냄비를 통해 모금된 성금은 전액 구세군에 전달돼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여진다. 사랑의 열매 모금운동으로 적립된 기부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전달된다. 전국종합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위기의 6者 ‘제주 회동’ 추진

    금융제재 논의를 둘러싼 북·미 양국 긴장으로 6자회담의 흐름이 꽉 막혔다. 북한의 6자회담 불참 언급까지 나올 정도다. 이런 국면 타개를 위해 우리 정부가 6자회담 수석대표들만 참석하는 별도 회담을 제주도에서 갖는 방안을 추진, 성사여부가 주목된다. ‘제주도 회담’은 지난 9월19일 제4차 6자회담 2단계 회의가 끝날 무렵 우리측 수석대표인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회담과 회담사이에 협상의 추동력을 발휘하기 위해 제안했던 것. 그다지 적극적 제안은 아니었으나, 북한의 달러 위조지폐 문제로 국면이 경색되는 양상을 보이면서 돌파구로 부각되고 있다. 우리가 제주도를 회담 장소로 꼽은 이유는 여러가지다. 첫번째는 6개국의 외교 공관이 없다는 ‘고립성’. 본국에 보고하거나 지시받는 것 없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놓고 얘기해 보자는 취지다. 한 당국자는 4일 “교황선출때의 ‘콩클라베’식으로 하면 뭔가 해소될 게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성사될 경우 언론사 취재도 차단한다는 복안도 깔고 있다. 6자 회담의 예비적 성격이긴 하나 북핵 문제를 한반도에서 논의한다는 자체가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로 이어지는 상징성도 갖게 된다. 미국은 아직까지 제주도 회동에 대해 참석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상황 전개에 따라 미 행정부 강경 기류가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입장 변화를 보면서 결정할 것 같다. 송민순 차관보는 지난 2∼3일 베이징을 방문,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나 북측을 설득하는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제주도가 어렵다면 중국의 휴양섬인 ‘하이난도’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한편 워싱턴 타임스는 최근 북한 위폐 범죄를 추적해 온 미 재무부 검찰국(SS) 빅 이리비아의 말을 인용,“1989년 이후 4500만 달러 이상의 100달러짜리 위조지폐를 제작했으며, 전세계에서 정부가 위폐 제작에 관여하는 유일한 국가”라고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지난 10월7일 션 갈렌드 북아일랜드 노동당 당수가 체포되면서 북한의 소위 ‘슈퍼 노트’로 알려진 100달러짜리 위폐 제작·유통 전모가 밝혀졌다는 것. 북한은 19종류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유통시키고 있으며 진짜 화폐에 비해 인쇄 상태가 조금 흐릿하다고 지적했다.미 정부는 갈렌드 당수와 북한 외교관들의 커넥션을 입증하는 증거를 러시아·베이징에서 확보했다고 한다. 위폐 제조 혐의를 부인하는 북한에 미국은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고 있다.김수정기자 crystal@seoul.co.kr
  • [열린세상] 방산수출,외국 구경만 해선 안된다/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해찬 총리가 최근 중동 5개국 순방을 통해 ‘코리아 세일즈’에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에 한국과의 우호적인 분위기를 확산시킴으로써 포괄적인 협력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논의한 모양이다. 필자에게는 노무현 대통령의 9월 남미 순방에 이어 이번 이 총리의 중동 나들이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그것은 미국은 물론, 영·불·독 유럽 선진국들에 비해 항상 우리 한국에 아쉬웠던 국가 지도층의 세일즈 외교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이따금 국가안보를 떠받드는 두 개의 기둥인 경제안보와 군사안보간에 간극이 있음을 보이곤 한다. 양대 안보 영역의 허약한 연결고리는 에너지 자원의 확보와 방산물자 수출 지원의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실제로 에너지 외교나 방산 수출은 외교통상부, 산업자원부, 국방부 등 여러 정부 부처들이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가 웅대한 화음을 그려내듯 긴밀하고도 다각적인 조율과 협업을 이루어 낼 때만이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동 순방 기간 중에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인 도입을 재확인하고, 매각 협상이 진행 중에 있는 T-50(초음속 고등훈련기 겸 경공격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냈음은 이 총리 일행이 종합안보의 주역으로서 맡은 역할을 무게 있게 해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국방 R&D에 투자하고 방위산업을 진작시킴은 평화 기조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있다. 그렇다면 주요 무기체계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만 가는 현실을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평화 기조에 순응하는 것일까? 한국이 주요 체계의 획득을 둘러싸고 ‘자체 개발로 추진할 것인가’ 혹은 ‘해외 직구매로 확보할 것인가’ 양 대안을 두고 열띤 공방을 벌이는 동안 중국마저 주요 무기 제공국들 중의 하나로 등장하였다.1998∼2002년까지 5년간 누적한 수출 규모는 1561억달러로 한국의 동기간 수출 규모의 6배에 이른다.2차 대전 이후 사실상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일본도 지난해 12월10일, 예상한 바대로 9년 만에 개정한 ‘신(新) 방위계획대강’을 공표하는 자리에서 ‘무기 수출 3원칙’ 완화 안을 발표하였다. 이로써 일본이 미사일방어체제(MD)의 구축에 필요한 미국과의 무기 공동 생산은 물론, 미국과 공동 개발하는 대테러 군수물자도 ‘개별 안건’으로 규정, 해외로 수출할 수 있게 되었음은 주목할 만한 사안이다. 한국은 세계 경제 12위권이자 7대 무기 수입국임에도 불구하고 수출 능력을 결여하고 있음은 물론 자주적인 방산 기반도 허약하다. 그러기에 무기체계가 고성능화하면 할수록 제공 국가들에 대한 종속성의 심화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이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위해 인적·재정적 투자를 높인다고 하더라도 체계의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그 투자 효과는 잠식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핵심 체계나 기술 부문과 연계된 방산기반의 확충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해외시장의 개척은 ‘협력적 자주국방’의 시현에 있어 전력 증강에 못지않게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정부가 방산 수출을 지원하는 것을 해당 업계의 일부 업체에 대한 지원만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는 하나의 오류이자 사려 깊지 못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방산물자의 수출은 국가와 정부에 대해 화폐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실질적인 이익이 장·단기적으로 발생되고 귀속되기 때문이다. 멀지 않아 방위사업청이 개설될 예정이다. 우리 방산수출 전략의 확립과 국가 차원의 지원체계를 재정비함으로써 국익의 창출에 골몰하는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심경욱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 美금융제재, 6자회담 동력도 끊나

    |워싱턴 이도운특파원·서울 김수정기자|지난달 12일 5차 6자회담 1단계 회의를 파행으로 몰고 간 ‘마카오 은행’건이 결국 6자회담의 발목을 잡는 양상이다. 대북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북·미 접촉이 양측간 근본적 입장차로 무산되면서 자칫 6자회담 동력까지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그동안 북한측 입장에 서서 6자회담을 중재해 왔던 중국도 위조지폐 문제에 대해선 `원칙의 문제´란 단호한 입장. 돌파구가 없는 한 교착상태는 지속될 전망이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2일 중국 베이징으로 출발,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5차회담 때부터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 계좌 폐쇄문제와 북핵 문제를 연계했다. 미측이 이달 9∼12일 뉴욕 접촉을 제안하자 북측은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 6자회담 북측 대표단을 보내겠다며 ‘협상’을 원했고 미국은 이를 거부, 결국 접촉이 무산됐다. 불법 위조 달러 제조와 그 자금의 마카오 은행을 통한 세탁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란 게 미국의 확고한 입장이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1일 “접촉은 6자회담과 무관하며, 위폐 방지를 위한 미 애국법 301조에 따른 조치란 것을 북한측에 ‘설명해 주기’위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접촉 대상도 6자회담과 관련없는 재무담당 인사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미측에 금융제재 문제 논의를 위한 ‘회담’ 개최를 촉구하면서 “조(북)·미 쌍방은 6자회담 단장급에서 회담을 열고 금융제재 문제를 토의, 해결하기로 합의했다.”고 주장했다. 위조화폐와 마약밀매에 대해서는 “우리식 사회주의제도의 본성과 전혀 인연이 없는 것으로 반공화국 모략소동”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강한 입장은 지난 17일 경주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확인됐다. 노무현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북핵문제와 관련, 마카오 은행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상황에 대한 인식차로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 미 대통령은 “다른 나라 화폐를 정권 차원에서 위조하는 것은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일순 분위기가 경직됐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사실과 다르다.”고만 밝혔다. 미측의 자금줄 차단을 통한 압박, 특히 마카오 은행의 북한 계좌 폐쇄 이후 북측은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동맥을 끊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풀이했다. 우리 정부 입장과 관련, 한 당국자는 “위폐를 둘러싼 금융제재는 다른 경제제재와 성격이 다른 불법 문제로, 우리도 사법적 공조 차원에서 미측에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어떤 형식으로든 미국과의 접촉을 받아들이는 게 옳다.”면서 “만나는 과정에서 해결의 선순환이 생기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송 차관보도 베이징 출발 전 공항에서 “금융제재 문제는 6자회담과 별개의 사안이며 접촉·회담 형식에 집착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crystal@seoul.co.kr
  • 北 “논의 유보” 첫 언급… 고의 지연술?

    |베이징 김수정특파원| ‘9·19 공동성명’ 이행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제5차 6자회담에 ‘마카오 은행’이란 암초가 돌출했다. 이를 빌미로 북측이 ‘회담 유보’를 입에 올려 전망이 불투명해진 것이다. 지난 2003년 8월 6자회담이 시작된 이래,13개월 만에 재개되기까지, 또 공동성명을 도출할 때까지 숱한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북한이 “핵문제 논의 자체를 유보하고자 한다.”고 엄포를 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밝힌 ‘핵문제 논의 유보’의 핵심 이유는 지난 9월 내려진 미국 정부의 마카오 은행에 대한 북한과의 거래 중단 조치. 북한 외무성은 지난달 18일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미국의 마약거래, 화폐위조 등의 비법거래설이 반(反) 공화국 모략행위라며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는 의지를 몇 차례 밝혔다. 이어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 이후 뉴욕에서 이뤄진 북·미 접촉에서 델타 아시아 은행에 대한 조치와 관련, 미측에 항의하고 이의 재발방지를 요청해온 것으로 관측된다. 이것이 여의치 않자, 이날 5차 6자회담 테이블에서 이같은 강공 카드를 빼든 것일 수 있다. 문제는 북한이 이 카드를 어느 선까지 가져갈지 여부다. 협상 타결을 늦추는 게 미국 등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얻어내는 데 유리하다고 판단, 북한이 고의적 지연전술 차원에서 이같은 강수를 들고 나왔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워싱턴내 대북 강경파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상황에서, 특히 12일 회담이 종료된 이후 부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길게 끌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부주석이 지난달 말 방북, 북·중 관계 긴밀함을 과시한 상황에서 6자회담의 경색국면이 초래된다면, 북한으로선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6자회담 테이블에 하나의 압박 수단으로 올려놓고, 특유의 벼랑끝 핵협상을 하려 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미국이 주장하는 영변원자로 가동중단이란 요구에 맞불을 놓는 ‘신뢰조성’ 카드로 쓰려 할 수도 있다. 한 소식통은 “외무성 대변인 언급처럼 미국의 조치를 대북 압살정책이라고 상정하고, 문제 제기를 통해 미측의 진의를 파악하려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델타 아시아 은행이 북한 지도부에 들어가는 ‘자금 통로’란 점에서 단순한 ‘진의 파악’용이나 ‘협상용’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회담 관계자는 “전날 북한이 나름대로 단계적인 해법을 들고 나온 만큼 회담을 깰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11일 종결 회의와 북·미, 북·중 회의까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크리스토퍼 힐 미 차관보는 9일 저녁 북·미 양자접촉이 끝난 뒤 “북한은 비핵화 문제를 푸는데 있어 매우 고의적인 지연술을 펴고 있다.”고 지적했다.crystal@seoul.co.kr
  • [데스크시각] 두 얼굴의 사회… 가면을 벗자/ 백문일 경제부 차장

    동전만큼 쓰임새가 많은 것도 없다. 거스름돈이나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꺼내는 코인 같은 화폐적 기능 이외에 축구 등에서 동전을 던져 순서를 정하는 심판 역할까지 한다. 초등학교에선 원을 그리는 수업자재로 활용되고, 마술쇼에선 눈 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마술도구로 변신한다. 뒤엎은 그릇 속에 동전을 넣고 빙빙 돌리는 야바위꾼에겐 밥벌이의 수단이고 철없는 학생들에겐 동무들의 돈을 딸 수 있는 이른바 ‘짤짤이’의 기구다. 그러나 정치판이나 외교가로 건너오면 ‘동전의 양면’이라는 문학적 표현으로 바뀐다. 고상한 것 같지만 사실은 변명을 위한 들러리다. 얼마전 국내 첫 애니메이션 영화 ‘로보트 태권V’의 필름이 복원됐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 영화의 원조는 일본이 만든, 기운센 천하장사 ‘마징가Z’이다. 여기에 아수라 백작이 나온다. 당시에는 ‘남녀동체(男女同體)’의 악인이었으나 최근에는 보수와 진보, 좌익과 우익의 대립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인물로 재평가되고 있다. 양면성을 따지자면 우리 사회는 1등급이다. 아수라 백작이나 두얼굴의 사나이 ‘헐크’를 찾을 필요가 없다. 대학을 졸업한 큰딸이 삼성에 들어갔다고 기뻐하는 부모를 최근에 만났다. 의사나 교사보다 장래가 훨씬 밝은 게 아니냐고 했다.5∼6년전 재벌개혁이 도마위에 올랐을 때 우리나라를 망친 게 재벌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부모였다. 내 자식이 ‘1등기업’에 들어가면 재벌타파는 뒷전인 게 어디 이들 부부뿐이겠는가. 기러기 아빠들의 상당수는 ‘386세대’다. 이들은 대학시절 민주화 열풍에서 ‘반미전선’의 핵심에 섰다. 그리고 참여정부에선 다시 반미·친미 논쟁을 이끌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미국행 비행기에 어린 자녀들을 태웠다. 그럴 만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이들을 ‘변절자’라며 손가락질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자녀유학을 마다하겠는가. 외국의 인종차별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사회의 뿌리깊은 흑백 갈등이나 아시아인 차별대우를 반미 감정의 연결고리로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 보자. 구릿빛 피부에 어눌한 한국말을 쓰는 동남아인들이 어디 한둘인가. 목욕탕에서 이들을 만나면 아예 탕속에 발을 담그지 않는 게 한국인이다. 미국 언론이 황인종을 빗대 ‘옐로 도그(dog)’로 부르면 발끈하면서도 동남아인들을 ‘종’처럼 부리는 데에는 눈을 딱 감는 게 과연 누구인가. 한국인 10명 중 9명은 겉으로 부동산 투기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땅 많고 집 많은 사람들을 부정한 사람으로 몬다. 그들이 마치 자기 집을 빼앗고 땅을 가로챈 듯 배아파한다. 하지만 여윳돈이 생겨서 돈을 불려야 한다면 어디를 먼저 두드리게 될까. 내가 하는 것은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는 생각은 지워야 한다. 강남부자처럼 될 수 없는 현실과 제도를 탓해야지 이들이 흘린 땀과 노력마저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골프는 매너 스포츠라고 한다. 하지만 앞서 치는 팀이 늦을 때에는 뒤통수에 대고 한마디씩 한다. 특히 여성 골퍼일 경우에는 “집에서 밥이나 지을 것이지.”하고 곱씹는다. 그린을 조금만 벗어났다 싶으면 냅다 공을 때린다. 그러다가도 뒤에서 오는 팀이 공을 조금만 빨리 치면 눈을 부라리며 욕설을 내뱉는다. 머리가 둘 달린 ‘야누스’는 결코 신화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가면’을 쓰고 매일 나타난다. 참여정부는 양극화의 문제로 본다. 그러나 돈의 많고 적음에서 빚어진 게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빈부의 격차가 날 수밖에 없으며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자본주의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다. 양극화의 해소는 필요하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다. 최상위 10%의 소득이 최하위 10%의 몇배인지를 따지기 이전에 삶을 버거워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연간 소득이 500만원이 안 되는 농가도 숱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코 ‘활빈당’이 아니다. 선진사회로 가는 길은 소득증대나 부(富)의 재분배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가치판단의 이중적인 잣대를 없애는 게 우선이다. 가면을 쓰고 있는 한 그늘진 곳을 영원히 치유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양면성을 숨긴 ‘헐크’보다 솔직히 드러낸 ‘아수라 백작’에게 점수를 주고 싶다. 백문일 경제부 차장 mip@seoul.co.kr
  • [재테크 칼럼] 적립식펀드로 노후자금 준비를

    [재테크 칼럼] 적립식펀드로 노후자금 준비를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노후 준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후 준비를 위해 과연 어느 정도의 자금이 필요할까? 부부가 60세부터 평균수명(85세로 가정)까지 매월 100만원씩 지출한다면 현재가치 기준으로 2억 4000만원,300만원씩 지출한다면 7억 2000만원 정도는 확보해야 한다. 이는 현재의 화폐가치를 기준으로 계산한 것이므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금액은 더 늘어나 중산층 이하 소득자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럽다. 따라서 노후자금 마련은 빨리 시작할수록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급여생활자의 경우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한다.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는 목적부 금융상품을 이용해 노후자금 마련은 물론 소득공제 혜택과 안정적인 고수익을 추구함으로써 ‘일거삼득’의 효과를 기대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런 상품으로는 연금보험이나 연금신탁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급여생활자가 가입할 경우 매년 불입액중 24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게 돼 적게는 21만원에서 많게는 92만원까지 연말정산을 통해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이자수익까지 포함해 계산할 경우 연 10%대의 고금리 적금에 가입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연금보험은 종신 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연금신탁은 정해진 기간동안만 연금을 지급하되 연금보험보다는 실질수익률이 평균 2% 이상 높다. 둘째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적립식 펀드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 상품은 제한된 소득으로 짧은 기간에 많은 목돈을 만드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상품이다. 그러나 적립식 펀드도 높은 수익과 투자손실이라는 양면을 지닌 금융상품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립식 펀드의 효과적인 이용 방법을 살펴보자. 우선 주식시장은 등락을 거듭하며 일정한 사이클을 보이기 때문에 단기적 예측은 어렵지만 중·장기적 예측은 가능하다. 따라서 3년 이상의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매월 꾸준히 투자해 나간다면 수익실현 기회는 주어진다. 따라서 목돈 마련 기간을 2∼3년 이상으로 세워야 할 것이다. 적립식 펀드는 주가가 오르면 오른 대로, 하락하면 하락한 대로 투자가치가 있다는 점을 활용해야 한다. 주가가 가장 낮을 때 가입해 가장 높을 때 찾으면 더 없이 좋은 투자 방법이 될 수 있지만 이러한 투자시기를 알 수는 없다. 이 때문에 시장상황에 관계없이 우선 가입한 뒤 주식시장이 고평가됐다고 판단되면 투자금액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로 하락세로 돌아서면 투자금액을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투자하는 것이 적립식 펀드의 기능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요즘처럼 주식시장이 조정을 보일 때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가입할 수 있다. 이미 가입한 경우라면 투자금액을 늘려나가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건강과 사고의 위험을 대비하는 것도 노후 대비의 필수조건이다. 적정 위험관리비용은 수입의 5∼8% 범위가 가장 효과적이다. 보험은 저축 수단이 아니라 위험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만기에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는 보험에 가입하기보다는 순수보장성 보험에 가입하고 나머지 금액은 차라리 적립식 펀드 등을 이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김인응 우리銀 포스코점 로열코너 팀장
  • 본원통화 年內 40조 돌파할듯

    연말쯤 국내 본원통화량이 4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본원통화는 화폐발행액과 금융기관의 한국은행에 대한 원화예치금(지불준비 예치금)의 합으로 계산된다.시중의 자금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근본지표로 알려져 있다. 한은 관계자는 7일 “지난달 본원통화는 평균잔액(평잔) 기준으로 약 39조 8000억원이나 될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면서 “이달이나 다음달 중에 4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본원통화 평잔은 지난 2001년 10월 30조원을 넘어선 데 이어 4년 만에 40조원을 돌파하는 셈이다. 지난 89년 9월에는 10조원,93년 10월에는 20조원을 각각 넘어섰다. 특히 본원통화 가운데 내수 지표의 하나로 여겨지는 화폐발행액의 경우 추석이 낀 지난 9월 26조 2867억원이나 돼 지난 6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나타내기도 했다. 추경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은 “통화량만 보고 경기를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면서도 “최근 물가안정세와 시중금리 상승을 감안하면 본원통화 증가는 경기에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시대자화상 국립중앙박물관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작가는 빈센트 반 고흐일 것입니다. 그러나 서구 미술사에서 가장 많이 자신의 그림을 그린 거장은 렘브란트로 알고 있습니다. 생전에 10점이 넘는 자화상을 남겼습니다. 렘브란트는 17세기 르네상스시대에 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에게 인간적인 패기가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문예부흥의 시대가 저물어가던 말년에 그린 ‘쾰른 자화상’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합니다. 그러나 세상과의 오랜 불화를 견뎌낸 여유가 느껴집니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둘러보다 한 작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17세기 말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입니다. 고산 윤선도의 증손자로 알려져 있지만 조선시대 사실주의 화풍의 대가입니다. 남인이었던 그는 출세길이 막혀 막막했던 심경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자화상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허울이 아닌 사실을, 시대를 녹여버릴 듯한 강렬한 눈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수염은 떨리는 듯 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시대, 우리의 자화상입니다. 애석하게도 웃는 얼굴이 아닙니다. 여섯 차례의 이사 끝에 겨우 마련한 집. 그러나 유명한 작품들의 상당수는 일본 등 외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보는 남산은 주한미군의 골프연습장에 가려 잘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헬기 소리로 요란합니다. 일제침탈과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은 이곳에선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시 희망을 힘겹게 떠올려 봅니다. 먼 훗날에도 이 땅을 살아갈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고백’으로 남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겠지요. 당당하면서도 너그럽고, 가난하지 않아도 겸손한 우리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층 고고관·역사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은 그 곳에 있었다. 후손들에게 기록을 남긴 역사(歷史)시대의 모습도, 지혜가 미치지 못해 문자를 남길 수 없어 유물로만 자취를 남긴 선사(先史) 시대의 모습도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박물관 건물로 들어서면 사람들의 발걸음은 동관으로 줄지어 이어진다.1층에 들어서면 상설전시관인 고고관과 역사관이 관람객을 맞는다. ●구석기 시대에서 남북국 시대까지 한눈에 동관 1층 101∼110 전시실이 바로 고고관이다. 첫 걸음을 떼는 순간 세계전도와 함께 일본·중국·대한민국·세계고고학의 연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학창시절 교과서나 사회과부도·역사부도 등의 첫 페이지에서 볼 수 있었던 ‘빗살무늬토기’(신석기시대·서울 암사동 출토)는 관람객들이 가장 처음으로 만나는 유물. 이어 ‘요령식 동검’(청동기시대·황경남도 신천 〃),‘산수무늬 벽돌’(백제·충남 부여 〃) 등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마치 검은 돌처럼 바싹 말라버린 선사시대 ‘도토리’(신석기시대·경남 창녕 비봉리 〃)는 ‘갈판·갈돌’(〃·서울 암사동〃)과 함께 진열돼 있었다.500년 쯤 지나면 미니홈피 배경 음악이나 배경 화면을 사고 파는 전자화폐 ‘도토리’가 나란히 소개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을 따라 청동기·초기 철기 유물들이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듯 스치며 지나간다.4∼6세기 고구려 고분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는 벽화는 ‘사신도’가 대표하고 있었다. 비록 모사품이지만 청룡·주작·백호·현무의 모습은 그 시절 고구려인의 호방한 기상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백제실을 대표하는 ‘백제금동대향로’(충남 부여 능산리 절터 〃) 앞에서는 좀처럼 관람객들이 눈을 떼지 못한다. 신선들이 산다는 박산(博山) 굽이굽이마다 상상의 동물들과 사람들의 모습으로 장식된 향로는 백제인들의 이상향을 엿보는 듯하다. 가야실에서 볼 수 있는 ‘투구’와 ‘말머리가리개’(부산 복천동 〃)는 외국 영화의 전투장비를 연상시키는 듯하다.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금관’과 ‘허리띠’ 앞에서도 관람객들은 오래 머문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유물은 아니었지만 발해실의 ‘용머리 장식’이나 ‘도깨비 기와’(중국 헤이룽장성〃)는 세상의 모든 나쁜 귀신을 쫓아낼 듯하다. 반면 두명의 부처가 함께 조각된 ‘발해불상’(발해 팔련성 〃)은 이민족도 너그러이 융합했던 민족의 포용력을 상징하는 듯하다. ●딸을 시집보낸 왕도 범부와 다르지 않았음을… 고고관을 다돌고 나면 맞은 편 111∼120 전시실인 역사관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대표적 기록문화유산인 한글, 금속활자를 비롯해 금석문, 문서, 지도 등 당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역사관 첫 전시실인 한글실에는 한글의 과학성보다는 우리 민족의 애환을 달랜 어버이의 모습이 가슴에 더 와닿는다.‘새 집에 가서 밤에 잠이나 잘 잤느냐. 어제는 그리 덧없이 내어 보내 섭섭무료하기 가이 없어 하노라.’며 조선 현종 임금이 궐 밖으로 시집간 셋째 딸 명양공주에게 보낸 한글 편지는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지도실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밑거름이 됐던 ‘동국대전도’가 2.3배 확대돼 바닥 타일로 꾸며져 있다. 허리를 굽혀 살펴보면서 걸어보면 마치 소인국의 ‘걸리버’가 된양 한반도 전체를 걷는 느낌이다.‘수선전도(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도성도’ 등 서울의 옛 모습을 담은 옛 지도도 직접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등기제도, 노비의 경제적 가치, 조선시대의 의술 등 선조들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쉽게 배울 수 있다. 다리가 아플 때쯤이면 소파나 영상물 상영관 등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게시설이 전시관 곳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해진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시대 흐름을 놓칠 수 있으니 질서를 지키며 정해진 동선을 따르는 것이 좋다.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2층 미술관Ⅰ·기증관 국립중앙박물관 2층에 올라서면 서예·회화·불교회화 등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Ⅰ’과 국내·외 각계각층 213명이 아무런 대가없이 박물관에 기증한 작품들이 있는 ‘기증관’이 있다. 특히 미술관Ⅰ에는 교과서에 실려 눈에 익은 작품들도 많아 직접 실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교과서에 실린 그림이네? 미술관Ⅰ에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끄는 작품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첩(보물 527호)’. 춤추는 아이, 행상, 벼타작, 담배잎썰기, 씨름도 등이 눈길을 모은다. 꽉 짜인 원형 구도에 간략한 필선으로 조선시대 서민들의 소박한 일상을 담았다. 작품 크기는 30㎝ 안팎으로 아담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씨름도’의 씨름꾼 옆에는 이들의 신발로 보이는 신발들이 내팽겨쳐져 있다. 그런데 하나는 짚신, 하나는 고급신발로 보이는 고무신이다. 신분의 차이가 나는데도 공평한 승부 겨루기를 하는 것이다. 구경꾼들이 제각기 다른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하고 경기를 보고 있다.‘허허, 저런’‘빨리 넘겨 버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구경꾼들의 긴박한 표정과는 달리 엿판을 매고 떠꺼머리 총각은 아랑곳없이 천연덕스럽게 가위를 치면서 열중하는 것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얼핏보면 빛 바랜 누런 종이에 검은 잉크가 뭉개져 있는 듯하다. 한참 들여다보면 왼쪽 하단 현실세계를 보여주는 야산에서 오른편 상단 도원의 세계가 보인다. 세종대왕의 아들인 안평대군이 꿈에서 본 풍경을 안견에게 설명해서 그리게 한 것이다. 전체적인 경관은 짙은 안개로 분리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잘 어우러져있다. 꿈과 현실을 한폭의 화폭에 담은 이유가 무엇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도 떠오를 법하다. 두루말이 형태로 폭이 20m에 이르는 이 작품은 당대 지적 권력이 집약된 작품이다. 작품 양쪽에 자신이 안평대군이 직접 지은 제발(題跋)뿐만 아니라 정인지, 신숙주,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당대 20여명의 문사들의 찬시가 곁들였다. 다만 안타깝게도 진품은 일본 덴리(天理)대학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려한 불교회화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알기 쉽게 표현한 그림들이 모여있는 불교회화관에 들어서면 좀 더 화려해진다.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 등 선과 악을 상징하는 오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대웅전 석가모니 불상 뒤에 놓였던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은 석가가 인도 마가다국의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한 사실을 화려한 색깔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원근법을 쓰지 않아 평면적으로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불화의 세계가 시공(時空)을 초월한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쓴 자신의 별호에 대한 글인 ‘묵소거사 자찬(默笑居士 自讚)’은 날카로움 속에서 정중함과 정성을 담아 쓴 흔적이 엿보였다.‘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은 때에 맞는 것이요,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은 중용에 가까운 것이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국보 240호)’에서는 내면의 세계까지 드러나는 듯하다. ●문화재 사랑으로 만들어진 기증관 기증관은 11개실로 구성됐으며 이홍근 박병래 등 문화재를 기증한 이들의 이름을 따 만들었다.1946년 이희섭 선생이 금동불상 세 점을 기증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모두 213명이 청동기 금속공예 회화를 비롯한 국보 6점과 보물 32점 등 모두 2만 2091점을 기증했다. 특히 아시아민족조형문화연구소 운영자인 가네코 가즈시게 선생 등 일본인 3명도 기증자 대열에 포함돼 있어 눈에 띈다. 기증관에서는 손기정 선생이 기증한 그리스 청동 투구(국보 904호)를 볼 만하다. 투구는 1500년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경기에서 승리를 기원하고 신에게 감사하는 뜻에서 제작됐다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 선생에게 부상으로 주어졌다. 투구는 베를린 박물관이 보관하다가 1986년 뒤늦게 손 선생에게 돌아왔다. 그는 이 투구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 민족의 것이라 생각해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3층 아시아관·미술관Ⅱ 국립중앙박물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특히 3층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인기 유물’과 그렇지 못한 ‘비인기 유물’ 사이의 차이가 유독 크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는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교과서를 통해 숱하게 봐 왔던 익숙한 유물이 전시돼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 지역의 유물도 ‘아시아관’에 전시돼 있다. ●중국·일본·중앙아시아 유물도 전시 3층에는 306∼311호까지 인도네시아·중앙아시아·중국·일본의 유물이 전시된 ‘아시아관’이 있으며,301∼305호까지 ‘미술관Ⅱ’에는 불상·청자·백자 등 우리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보통 301호부터 관람하는 것이 순서겠지만,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 3층에 올라오면 바로 왼쪽으로 ‘아시아관’입구인 306호가 보이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들은 306호 ‘아시아관’을 먼저 관람하게 된다. 306호를 먼저 들어왔다고 해서 다시 나가 301호로 갈 필요는 없다. 오히려 ‘아시아관’을 얼른 둘러본 뒤 ‘미술관Ⅱ’에서 우리 유물의 아름다움을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을 듯하다.‘아시아관’에서 관람객들의 발걸음은 다른 전시관에 비해 조금 빨라지는 편이다. 그도 그럴 것이 12개의 팔을 가진 부처 조각상이나, 인자해 보이지 않는 부처의 미소는 이질감이 느껴진다. 다른 전시관에서는 아이들에게 유물에 대해 박사 수준의 설명을 해 주던 엄마들도 이곳의 잘 모르는 유물들 앞에서는 슬쩍 조용해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아시아관’에서 잠시 풀 죽은 엄마들은 3층 북쪽에 자리잡은 ‘미술관Ⅱ’에서 활기를 되찾는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볼것 많고 배울것 많은 고려청자 전시실 자비롭고 은은한 미소로 가득찬 301호 불교조각 전시실을 지나면, 전시된 모든 유물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친숙한 금속공예(302호)·청자 전시실(303호)을 지나게 된다.304호에는 수수한 느낌의 분청사기 전시실이 있고 305호에는 백자 전시실이 마련돼 있다. 유물에 대해 ‘일자무식’이라도 한 마디 정도는 할 수 있는 국보 78호 미륵반가사유상도 이곳에서 관람객을 맞는다. 따로 마련된 방에 모셔진 이 불상은 검은 천으로 둘러싸인 전시실 자체에서 풍기는 위엄만으로도 관람객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미륵반가사유상 외에도 고려청자 전시실은 관람객들의 ‘정체현상’이 가장 심한 곳이다. 사방이 온통 비취색인 이곳에서 사람들은 걸음을 옮길 생각을 잠시 잊게 된다. 또 국보와 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에 메모하는 학생들의 손놀림도 빨라진다. 비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진열된 어느 것 하나 국보·보물 아닌 것이 없을 듯한데, 그 가운데서도 국보가 있고 보물이 있는 것을 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1층부터 차례로 관람하면서 올라왔다면 3층이 마지막 장소다. 특히 조선백자들이 전시된 305호를 마지막으로 관람하게 된다면, 어수선하게 관람했던 하루를 정리할 수 있는 차분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손목없는 부처님…왜? “엄마, 왜 부처님 손이 없어요?” 3층을 관람하면서 엄마들이 아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301호에 마련된 불교조각 전시실에는 많은 불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3개 철조불좌상의 양 손목이 없다. 공교롭게도 ‘손목 없는 불상’3개 모두 철로 만들어졌으며 앉아 있는 자세도 비슷하다. 첫번째 ‘손목 없는 불상’은 301호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볼 수 있다. 약 2m크기이며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충남 서산군 운산면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두번째는 충남 서산군 보원사 터에서 출토 된 것으로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이며, 세번째는 10세기에 만들어져 경기 포천군에서 출토된 철조불좌상이다. ‘손목 없는 불상’에 대해 불상 전문가인 홍익대 김리나 교수는 “불상의 손목은 다른 곳에 비해 가늘고 몸체에서 튀어나와 있기 때문에 유실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누군가 고의로 잘랐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설명했다. 불상의 손 모양새(손갖춤)는 부처나 보살이 깨달은 중생 구제의 소원을 밖으로 표시하기 위해 짓는 것으로 부처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수목공원·공연장…가족나들이 ‘딱’이네 “박물관도 즐기고 공원 나들이도 하세요.” 박물관은 자칫 아이들에게는 딱딱하게만 느껴질 수 있다. 유물에 서려 있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를 공감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덜어도 될 것 같다.‘거울못’과 10만그루의 수목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이 박물관 주위로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과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박물관을 싫어하는 아이도, 박물관을 구경하고 싶은 어른도 모두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다. ●연못·폭포·정원·식물원 등 눈길 박물관 바로 앞에는 도심 공원이 펼쳐져 있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거울못’이다. 거울못은 지름만 150m에 달하는 인공연못이다. 박물관을 설계한 정림건축 박승홍 건축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다.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맨 처음 만나게 된다. 거울못은 성벽 모양을 한 박물관을 비추는 거울이다. 모든 물들이 한데로 모이는 저수지이자 통일을 상징하는 공간이다. 연못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도 있다. 연못과 박물관 정문 사이에는 언덕이 하나 있다. 박물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아파트의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박물관은 겨울에는 거울못이 얼면 야외 스케이트장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열린마당’은 박물관 중심에 시원하게 배치된 수목 공원이다. 한옥의 대청마루에 해당한다.10만 그루의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는 보물 2호 보신각종, 보물 365호 흥법사 진공대사탑 및 석관 등이 숨어 있다. 박물관이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닌 사람들이 공부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공간으로 조성하고자 하는 설계가의 바람이 담겼다. 박물관 왼편으로 석조물정원, 어울마당, 미르폭포 등 다양한 녹지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박물관 뒤편에도 크지는 않지만 녹음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전통염료식물원에서는 개암나무, 씀바귀 등이 재배된다. 그 옆으로는 의자와 잔디밭 등이 펼쳐져 있어 가을 햇살을 받으며 도시락을 먹기에 그만이다. ●뮤지컬 즐기고 도서관서 책도 보고 박물관에는 공연장과 도서관 등 다양한 문화 시설도 갖추고 있다. 전문 공연장 ‘용’은 805석짜리 중극장이다. 서관에 있다. 박물관 안 공연장으로는 국내 최초다. 클래식,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무대에 올릴 수 있다. 공연도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지난달에는 유니버설 발레단의 ‘심청’과 금난새·정명화의 공연이 열렸다.4일부터 페리아 뮤지카의 ‘나비의 현기증’, 연극 ‘이’, 뮤지컬 ‘러브 다이어리’ 등이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장점은 1층에 8석의 장애인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휠체어로 들어와서 옮겨 앉지 않고 그대로 관람할 수 있다. 다만 회전무대 등 무대시설이 부족하고 완벽한 음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흠이다. 지적인 관람객들이라면 서관 4층에 있는 도서관이 제격이다. 고고학·미술사학·역사학 전문 도서관이다.9만여권의 장서와 600여점의 디지털 자료를 갖추고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그러나 한 번도 ‘제 집’을 갖지 못했다. 무려 6차례나 이삿짐을 꾸려야 했다.60년 동안 타의에 의해 ‘역마살’에 시달렸다. 전쟁과 문화 홀대의 역사를 아프게 말해주는 대목이다. 국립박물관은 광복이 된 1945년 12월 경복궁 내 건물에서 정식 개관했다. 그러나 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중요 유물 2만여점은 부산대학교 박물관 등으로 전전해야 했다. ‘전세방 처지’는 이후에도 나아지지 않았다.53년 피란생활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와 남산 분관에 자리잡았다가 55년 덕수궁 석조전에 이어 72년에는 경복궁 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이전했다. 86년 박물관은 옛 중앙청 건물로 네번째 이사를 갔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결국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하던 96년 경복궁 사회교육원 건물로 옮겨가 지난해까지 임시 거처로 사용했다.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은 환갑이 돼서야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마련한 셈이다.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교통편 ●지하철 용산∼회기 국철과 지하철 4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정문까지 걸어서 100m도 안 된다. 박물관 입구까지는 천천히 걸어서 10분 거리다. ●버스 버스도 비교적 편리하다. 초록버스 0211번(보광동∼옥수동)이나 빨강버스 9502번(의왕 고천∼신세계백화점)을 타면 된다. 용산가족공원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광화문에서 출발하는 서울시티투어버스(도심순환코스)를 타도 바로 도착할 수 있다. ●승용차 서문으로 입장하면 된다. 주차료는 2시간에 소형차 2000원, 대형차 4000원이다.30분당 각각 500원,1000원의 추가 요금이 부과된다. 단 종일 주차는 각각 1만원,2만원이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개관 초기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훨씬 편리하다. ◆관람료 올해 말까지 무료다. 그러나 매표소에서 무료관람권을 발급받아야만 입장할 수 있다. 관람질서 유지와 이용객 안전 등을 위해서다. 내년부터는 성인(19∼64세) 2000원, 청소년(7∼18세) 1000원의 요금이 부과된다.20인 이상 단체는 성인 1500원, 청소년 500원이다.1주일 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해야 한다. 어린이박물관도 7∼64세까지 500원을 받는다. 6세 이하와 65세 이상은 돈을 안 내도 된다. 그리고 매달 넷째 토요일과 관람 시간 종료 1시간 전부터도 무료 입장할 수 있다. 국빈이나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장애인 등도 무료다. 또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립중앙박물관과 연계된 문화 기관 17곳 가운데 5곳을 이용하면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관람시간·입장제한 평일은 오전 9시∼오후 6시, 주말과 공휴일은 오전 9시∼오후 7시까지 관람 가능하다. 매표는 관람시간 종료 1시간 전까지 한다. 휴관일은 1월1일과 매주 월요일이다. 최대 3000명이 동시 입장할 수 있다. 하루 최대 허용인원은 1만 8000명이다. 어린이박물관은 더 경쟁이 치열하다. 오전 9시부터 1시간30분 단위로 150명만 들어갈 수 있다. 평일에도 오전 일찍 가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 ◆관람 유의사항·편의시설 이용법 박물관 안은 당연히 금연지역이다. 음식물이나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와도 안 된다. 다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안내견은 출입할 수 있다. 전시실에 들어가기 전에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돌려 놓는 것은 상식이다. 전화 통화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기 싫다면 차라리 전화 전원을 꺼 놓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유물과 작품의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삼각대를 이용해 사진을 찍는 몰지각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상업적 용도의 촬영도 금지돼 있다. 박물관 입장료는 유물을 관람하는 값이다.1000원짜리 두 장 냈다고 제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 혹시 아이들이 제집처럼 뛰어다니거나 유물을 손대면 따끔하게 혼을 내자. 편의시설도 꽤 갖춰져 있다. 유아나 노약자, 장애인은 유모차와 휠체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물품보관함도 있어 가방 등을 넣어둘 수 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PDA·MP3플레이어 이용하세요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최첨단 IT(정보기술) 박물관을 자랑한다. 설비시설은 물론 박물관 관리에 최신 IT 기술을 접목시켰다. 무엇보다 PDA와 MP3 플레이어 등 개인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더욱 편리하고 상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박물관은 모바일 안내 시스템을 도입했다.PDA와 MP3를 갖고 전시품 앞에 서면 단말기가 전시품 위 적외선 발생장치와 정보를 주고받는다. 이후 관람객들에게 화상과 음성으로 전시물에 대해 안내를 해 준다. 지난해 리움박물관에서 처음으로 소개됐다. 사용법도 비교적 간단하다.PDA를 켜면 한국어, 영어, 일어, 중국어 등 언어 선택 화면이 뜬다. 이후 각각의 박물관 전시실과 관람 코스가 안내된다. 전시실이나 코스를 따라 돌기만 하면 된다. 또 세계 최초로 박물관 네비게이터 기능도 갖췄다. 관람객의 현재 위치를 화면으로 확인할 수 있다.MP3 플레이어도 유물 소개는 PDA와 마찬가지다. 다만 네비게이션만 안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현재 PDA 300대,MP3 400대를 갖추고 있다. 현장에서는 각각 100대 이하만 선착순 대여하고 나머지는 인터넷으로 예약해야 한다. 그러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터라 오전 10시만 되면 바로 동이난다. 대여료는 종일 PDA 3000원,MP3 플레이어 1000원이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첫 국새·제헌헌법 원본 사라져

    첫 국새·제헌헌법 원본 사라져

    1948년 7월17일 제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성문헌법인 제헌헌법 원본이 분실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근간이 된 제헌헌법 원본의 행방조차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27일 감사원이 발표한 ‘공공기록물 보존 및 관리실태’ 감사결과 드러났다. 제헌헌법의 원본뿐만 아니라 정부수립 이후의 첫 국새도 분실됐다. 그밖에 외교사료, 군비밀기록, 특수기록, 행정기록 등 주요 국가기록이 폐기되거나 분실돼 남아 있는 게 없을 정도다. ●기록물 분실 경위도 몰라 감사원 행정안보감사국 이창환 국장은 “헌법은 우리나라 국가이념과 통치구조 등을 규정하고 있는 최고 규범이기 때문에 제헌헌법과 헌법개정기록물을 역사적·문화재적 차원에서 보존해야 하는데 제헌헌법 원본조차 보존돼 있지 않다.”면서 “제헌국회가 제정한 제헌헌법은 소재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감사결과에 따르면, 현재 정부에서 관리하고 있는 제헌헌법은 1963년에 만든 필사본이다. 원본은 한국전쟁 중 소실된 것으로 추측할 뿐 언제 어떻게 소실됐는지 파악조차 안 되고 있다는 것이 감사원의 설명이다. 또한 개정헌법 필사본을 원본으로 잘못 알고 보관 중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법제처는 지금까지 개정된 9회의 개정헌법 가운데 1∼5차 개정헌법 필사본을 조선왕조실록 등이 보존돼 있는 귀중 기록물 보존서고에 보관하고, 정작 원본은 일반 사무실 캐비닛에 보관해 왔다. 정부수립 이후의 첫 국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국새는 국가의 상징인 나라도장인 만큼 문화재적 가치에 따라 영구보존해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 수립 이후 1962년까지 사용된 첫 국새와 1차 국새의 견본·주형·모형 등의 관련 기록 전체가 분실됐다. 더욱이 주무부처인 행정자치부는 분실경위조차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80년대 이전 군비밀문서 전무 외교·국방·행정 등의 국가 중요문서도 상당수가 분실되거나 폐기됐다. 외교통상부가 정부수립 이후 지난해까지 체결한 조약 1597건의 원본 등 관련 기록에 대한 조사 결과,46건의 조약원본이 없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재정경제부에서 체결한 505건의 공공차관 도입협약 문서 역시 무려 30%에 달하는 147건의 원본이 없어진 지 오래고, 그 외 53건은 관련 문서철이 분실된 것으로 파악됐다. 군 관련 비밀기록물도 1980년대 이전 문서는 대부분 파기해 찾아볼 수가 없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소관 비밀기록물 가운데 준영구 이상 보존 비문 1229건을 확인한 결과,1970년 이전 문서는 단 3건,1980년 이전 문서 역시 14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방부가 국가기록원에 통보한 대통령 결재문서 178건 중에서도 남아 있는 문서가 없다.41건은 유실됐고, 나머지 문서는 소재파악이 안 된다. 또 중앙행정기관의 주요업무계획 문서도 대부분 파기됐으며, 영국보존 대상인 중대 사건 수사기록물의 관리도 엉망이라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기록사료 원본도 파기 뿐만 아니라 우표·화폐 등 특수기록물은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한 실증사료인데도 행자부에서 기록물관리법에 이에 대한 규정을 두지 않아 관리근거조차 없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 정부수립 후 발행된 61종의 화폐 중 22종의 화폐발행 기록이 없고,33종의 관련문서 원본은 폐기처분됐다. 한국은행은 또 영구보존해야 할 문서 가운데 3만건이 넘는 문서를 마이크로필름에 수록한 뒤 원본을 폐기처분해 버렸고, 스캐닝만 한 영구보존문서 205건도 착오로 폐기조치했다. 또 사료로 지정된 1202건 중 10건은 원본을 폐기하고 사본을 보관하는 등 기록물 가치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표 역시 1948년 발행된 초대 대통령의 취임 기념우편,1951년 발행된 6·25참전 기념우표 등이 보관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국가 기록물 관리실태는 관리부실 차원을 넘어 국가 근간을 훼손할 만큼 심각한 지경이다.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 사막에서 길을 묻다

    사막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달렸다. 타클라마칸, 그 죽음의 사막을 향해. 자갈길을 가로지르고 강을 건너 5000여 ㎞를 내달렸다.‘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살고 싶지 않은 자와 미친 자가 아니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는 그 사막을 향해. 그러나 15박16일을 먼지 구름을 일으키며 달려 간 그 사막 입구에는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 그렇게 씌어 있었다. 붉은 글씨로. 아, 아 그렇지! 황, 량, 한 인생, 은 없지…. 마치 달려오던 가속도를 어쩌지 못해서인 듯, 온 몸이 앞으로 울컥 쏠렸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섰다. 등골에서 짜르르 전류가 흐르는 듯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가 홀린 듯 이 먼 길을 내달아 온 것은 이런 글귀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예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막을 꿈꿔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삶의 고비마다 언뜻언뜻 떠오르는 낯익은 영상이었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날카로운 햇살이 온 몸에 쏟아진다. 마른 먼지가 콧속을 파고들며 숨을 막고, 입안에선 으적으적 모래가 씹힌다. 갈증은 이미 오래전에 통증으로 바뀌었고, 모래밭은 펄보다 더 힘겹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나름대로 비장하다. 그러나 나는 이 장면에서 한껏 더 상상력을 부풀려 본다. 마침내는 햇살에 바래고 모래먼지에 찌든 내 신발 코 끝에, 죽은 자의 늑골이 아른아른 겹쳐 보일 때까지. 그런 극한점에 맞서보고 싶었다. 이 여행에 대한 제의를 받은 건 7월 초였다.8박9일 일정의 실크로드 패키지 여행을 준비하던 내게, 여행자들이 한국에서 가져간 지프를 직접 몰아 중국 대륙을 횡단한다는 프로그램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사막에서의 야영이라니! 앞뒤 생각 없이 큰소리로 “네!”해버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처음부터 28일 전 일정을 참가해야 한다고 했다면 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 사나흘도 아니고,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도 아니고. 난 그렇게 오랫동안 내가 없는 우리 집을, 학교를, 나를 둘러 싼 크고 작은 일상들을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전 일정은 한 달쯤 되나 봐요. 하지만 그걸 다 따라 다닐 수 있으시겠어요. 앞 뒤 자르고 한 8박9일 정도면 어떠세요?” 그렇게 시작했지만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일정은 길어졌다. “근데 한 보름은 되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으시겠어요?” “보름이나 이십일이나…. 근데 이런 여행 쉽지 않거든요.” “따로 돌아오실 비행기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네요.” “29일 날 도착한다고 각오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미 말라리아와 장티푸스 주사를 맞았고, 짧은 반바지에서 겨울 점퍼까지를 꾸려 짐을 싸둔 다음이었다. 가슴속에서 소용돌이가 일었다. 심호흡을 한 뒤 대답했다. “좋아요.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으며 내가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엄살기 가득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여행은 톈진항에서 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현장법사가 불전을 구하기 위해 간 길, 바리데기 공주가 죽은 자를 살릴 샘물을 구하기 위해 지나간 길,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을 위해 나선 길, 실크로드의 아버지라 불리는 장건,‘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가 지나간 길, 실크를 비롯한 동서양의 온갖 것들이 교류한 이 길…. 이 길을 다섯 대의 지프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프로드를 포함해서 하루 몇백㎞를 달리고 또 달리다가, 사막을 만나면 사막에서, 바다만큼 큰 호수를 만나면 호숫가에서 야영을 한다는 것이다. 멋지다. 하룻밤을 배에서 자면서 톈진에 도착한 다음, 베이징, 타이위안, 시안, 란저우, 우웨이, 금창, 바단지린 사막, 가우대, 청수, 주취안, 둔황, 하미, 투르판, 우루무치, 쿠얼러를 빠르게 지나쳐 마침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닿았다. 인천항을 떠난 지 열엿새 만이었다. 그러나 타클라마칸은 예전의 타클라마칸이 아니었다. 사막 한가운데로 잘 닦인 아스팔트가 서늘할 만큼 시원스레 뚫려 있고, 몇㎞ 간격으로 물탱크를 포함한 대피소가 줄지어 있었다. 그 옛날, 나는 새도 통과하지 못한다는 그 타클라마칸은 이미 아니었다. 그러나 여전히 녹록지 않은 타클라마칸은 카라부란으로 우리를 맞았다. 그 옛날 죽음의 모래바람이라 불리던 카라부란이다. 타클라마칸에 진입했다는 흥분을 가까스로 가라앉히며 사막 깊숙이 자리를 잡고 서둘러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려는데, 모래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코펠이 뚜르르 굴렀다. 뒤이어 텐트가 뿌리 뽑힌 풀단처럼 힘없이 날아가 버렸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흙탕물에 빠진 것처럼 시야가 흐려졌다. 서둘러 지프에 달려 올라가 문을 닫았다. 설마 지프는 안 날아가겠지.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나는 눈을 감았다. 솩, 쉬르르 차창에 부딪치는 모래바람의 소리가 여전했다. 대개 중국쪽 실크로드의 시작을 서안이라고 본다.1000여년 동안 중국의 수도였던 도시. 장안이라는 옛 이름을 가진 이 도시는, 농사짓는 것보다 농사짓다 발견한 유물을 내다 파는 것이 더 낫다는 고도이다. 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죽은 진시왕의 잔영이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왕.13세의 어린 나이에 진왕에 즉위하였으며 39세에 중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통일 국가를 세운 사람. 자신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스스로를 ‘태황의 황과 오제 제’를 따서 황제라고 칭하고, 자신을 시황제라 부르게 명 한 사람. 그는 선남선녀를 골라 불로장생할 선약을 구해오라는 전대미문의 특명을 내리고, 또 한편으로는 즉위하자마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묘가 될 지하궁전을 팠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이 무덤은 ‘관은 동으로 주조했고 무덤 내부에는 각종 보석으로 궁전과 누각의 모형을 세웠다. 수은으로 바다와 강을 흐르게 했고 천장에는 진주를 아로 새긴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들어 달았다.’고 전해진다.30만명이 석 달 동안 왕릉에 보물을 실어 날랐다 한다. 그는 또 죽은 다음에 자신을 지킬 군사들을 만들어 도열시켰다. 보병, 전차대, 포대로 이루어진 신장 180m안팎의 실물크기 흙 인형 수천명으로 지하군단을 만들어 자신의 능에서 1.5㎞ 떨어진 거리에 배치해 두었다.1호 갱에 약 6000명,2호 갱에 약2000면 3호 갱에 68명의 테라코타 병사가 사열해 있다. 결국 그는 여러 형태의 ‘영생’을 준비한 것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겠다. 그 넓은 대륙을 통일한 젊은 왕에게 아쉽고 그리운 것이 그 영화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생뿐, 더 무엇이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들을 만든 진시황의 백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그의 나라는 3대 15년 만에(항우에게)멸망하였다. 문자, 도량형, 화폐를 통일하고, 그 시절에 전국적인 도로망을 거미줄처럼 짜고, 운하를 파고 만리장성을 쌓고 아방궁을 짓는 등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이 황제와 관련된 유적은 그러나 아직 다 발굴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가이드는 그때와 공기가 달라 유물이 상할 염려가 있고, 무덤 안에 함정이 많고 엄청난 양의 수은이 있어 위험하며, 후손들이 먹고 살 관광 자원을 남겨주기 위한 배려이기도 하고, 한쪽으로는 기술이 부족해서 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관한 미확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다. 예전에, 중국을 방문한 일본 총리가 그 유적 발굴을 제안했다 한다. 일본의 기술력을 제공할 테니 발굴한 보물의 3분의1을 달라고. 주석이 껄껄 웃으며 ‘이 안에 든 보물이면 네 나라 전부를 살 수도 있을 거다.’고 대답했단다. 그 조상에 그 후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벌컥, 차문이 열리면서 남대장이 소리쳤다. “바람 없어졌어요. 나오세요!” 어느새 눈앞에는 사막의 밤이 펼쳐져 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별이 튕겨져 나올 듯 반짝였다. ‘돌아올 수 없는 곳’이 어디 타클라마칸뿐일까. 때때로 살고 싶지 않고 미칠 듯한 기분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심호흡을 하며 다시 사막에 발을 내디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믿음으로. 죽음의 카라부란은 멈췄고, 모래는 아직 따뜻했다. 그리고 사막의 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글쓴이 이윤희 교수는 동화작가, 문학박사,‘아침햇살’발행인. 인천재능대 아동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작품집으로는 ‘네가 하늘이다’‘꿈꾸는 호랑이 우화’를 비롯한 철학동화시리즈 18권 등이 있다. ■ 무선통신, 날아오다 2004년8월2일 11시, 인천항 실크로드 오버랜드 원정대는 8월2일 오전 11시에 인천항 제2부두에 집결했다. 출발 인원은 총 12명, 한국인 10명과 터키인 2명이었으며, 중국에서 터키인 1명과 중국인 5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거추장스럽고 부피스러운 짐은 이미 지프에 실어 앞서 보냈다. 가벼운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순조로운 출항이다. 8월3일 13시. 천톈항 서둘러 천톈항 출구에 섰다. 까마득한 멀리에는 인천을, 가까이에는 25시간 동안 우리를 싣고 온 여객선 진천 페리를 등 뒤에 둔 채다. “와!” 거기, 중화인민공화국 천진항 광장에, 먼저 도착한 차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5대였다.4+4 SILKROAD EXPEDITION.TRANS TACLAMAKAN.ROK 스티커 글씨가 도드라졌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비로소 가슴이 뛰었다. ‘아아, 드디어 시작이다! 이동거리 1만㎞를 훌쩍 넘는 28일간의 여행. 우리차로 실크로드를 달린다! 중국을 횡단한다!’ 나는 사뭇 뛰었다. 지프를 향해. ★중국의 4대미인은 누구?(답? 곳곳에 숨어있어요^^) 8월3일 15시, 베이징을 향해 우리차가 달린다. 중국 고속도로를 시속 100㎞로. 창문을 모두 열어 젖혔다. 나,58년 개띠. 오프로드 여행 경험 전혀 없음. 대학교수. 유부녀…. 그러나 그 순간 이 모든 것을 잊었다.‘우리는 간다, 하늘도 부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햇살은 유리처럼 투명했고, 살짝 따가웠다. 승차 배치도 진행차:다이장(중국측 여행사 사장), 도용(현지 가이드). 살인미소(중국인 정비사). 여성스태프 1호차: 남대장(38·오버랜드 대표), 나(유니), 비니(34·스태프, 통역). 진피디(29·스태프, 영상담당)·2호차:한·최 안젤라 부부(47,45·사업가)·3호차:최 노익장(67·독일 국적의 CEO), 김원장(50·복지시설 운영)·4호차:임 흑기사 부자(51,29·사업가, 대학생)·5호차:하칸(29·터키인 사업가)등 터키인 일행 ●답(1) 그녀의 자태에 꽃이 부끄러워 스스로 잎을 말아 올렸다는 양귀비(수화·羞花) 8월4일 14시, 베이징 베이징에서 합류하기로 한 터키인 일행 하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었다. 그를 기다리는 사이, 캔맥주가 돌았다. 남대장:수도자가 고행을 하는 마음으로 이런 여행을 합니다. 일종의 종교 의식이지요. 한·최 안젤라 부부:모험이잖아요. 꿈꾸는 듯한. 임 흑기사 부자: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최 노익장:중국을 횡단이라, 정말 멋지잖습니까? 더구나 내 차로 직접 운전을 하는데! 김원장:새로운 패턴의 여행이라서요. 하칸:어린 시절부터 실크로드를 꿈꿔 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그 꿈이 실현되는 것입니다. 가슴이 뜁니다. 그들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이 캔 맥주 탓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맥주를 홀짝거리며 서유기를 생각했다. 불전을 구하러, 혹은 죽은 자를 살릴 생명수를 구하러 이 길을 지났을 삼장법사와 바리데기 공주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상인과 기술자와 병사와 예술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빌었다. 그들의 꿈과 사랑이 먼먼 후손인 내게도 자지러지도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를. 그리하여 그로인해 내 삶이 얼마간 풍요롭고 따스해지기를. 브라보! 우리는 다시한번 맥주 캔을 맞부딪쳤다. ●답(2) 그녀가 강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니 그 아름다움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고 물속에 가라앉았다는 서시(침어·沈魚) 8월5일 14시, 시안 가는 길 그러나 정말 쉽지 않았다. 온갖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았다. 느닷없이 나타나는 ‘공사중’은 그렇다 치자. 하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다 칠 일이 아니다.‘공사중’이 너무 많았다. 아니 중국 전역이 ‘공사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곳곳에서 공사를 하고 있었다.(더구나 그들은 지나는 차량에 대해서는 아무 배려가 없었다. 아무런 안내나 대안 제시도 없이 길 전체를 막아버린 곳도 몇 군데 있었다.‘우리는 지금 공사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가라’는 식이었다.)곳곳에서 만나는 비포장도로도 또 그렇다 치자.(왜냐하면 땅이 너무 넓어서 포장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데 할 말이 별로 없으니까.)그러나 포장도로도 비포장 못지않게 차를 널뛰기하게 만든다는 것은 좀 그랬다. 자세히 보니 아스팔트가 바퀴 자국을 따라 깊게 패었다. 과적 차량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과적을 하지 않은 트럭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말 어마어마한 물동량이 움직이고 있었다!(하긴 우리 팀도 과적을 했다. 우리는 짐에 치여 쪼그리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28일간의 긴 여행’,‘사막에서의 야영’이라는 점에 모두들 긴장한 탓이었다.) 먼지와 매연도 문제였다. 그리고 따끔거릴 만큼 지독한 햇살과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높은 온도, 장거리 주행 등이 엔진을 과열시켰다. 우리는 심통 난 아이 달래듯 차를 달래가며 몰았다. 그래도 어떤 차는 가끔씩 푸쿠쿡, 키다닥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속력을 떨어뜨렸다. 아슬아슬했다. 8월6일 15시, 화청지 마침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갖 사치를 즐기며 장안과 화청지를 오가며 세월을 보내곤 했다는 설명을 듣고 있는데, 터키인 일행의 사고 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이틀 다른 곳을 들렀다가 합류하기로 한 사람들이다. 교통사고. 정비 불량과 과속으로 인한 전복 사고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지만 일행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막 본격적인 시작인데…. 게다가 그중에는 터키의 ‘정주영’이 섞여 있단다. 선박회사를 17개인가 갖고 있고, 보험회사를 또 몇 개 갖고 있고 그리고…. 그런 사람이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하려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믿기 어려웠다. 터키엔 여행사가 없나?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럴만한 사연이 있었다. 중국 서쪽, 우리가 흔히 ‘서역’이라고 부르는 그곳이 터키와 특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나라와 연변 조선족과의 관계와 비슷한. 그래서 터키인들은 그쪽 지방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터키인들이 그들, 소수민족을 부추겨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예를 들자면 독립운동 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동의할 수 없는)을 할까봐 여행을 허가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들 틈에 슬쩍 끼어서 그곳을 가려 했는데 그만 사고가 난 것이었다. 첫 번째 대형 사고였다. 8월7일 10시 40분, 란저우 가는 길 막히는 길을 가까스로 통과해 주유소에 도착했다.“날씨까지 꾀죄죄하네요.”기름을 넣고 있는 차들 뒤에서 고개 돌리기를 하며 가볍게 몸을 풀고 있는데, 아들 흑기사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랬다. 하늘빛은 칙칙하고 우리는 기분전환이 필요했다. 이심전심일까?안젤라의 남편 한씨가 장난기를 발동시켰다. 기름을 넣고 있는 자기 차 보닛에 검은 색 보드마커로 ‘갑시다, 실크로드!’라고 휘갈겨 썼다. 그러고는 부인 안젤라에게 펜대를 넘겼다. 안젤라는 ‘타클라마칸을 향해서!’ 썼다. 모두 신났다. 최 노익장은 당신 차 이마에 해골표시를 그려 넣었다. 남대장은 인천에서 출발하여, 다시 인천까지 오는 전 일정을 차에 뺑뺑 돌아가며 써 넣었다. 나는 자꾸만 꾸르륵거리는 차 콧잔등에 ‘잘 달려라, 착하지. 말썽피지 말고!’라고 썼다. 그리고 슬그머니 쓰다듬어 주었다. 8월9일 12시, 무위 ●답(3) 그녀가 비파를 연주하니 기러기가 그 용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는 왕소군(낙안·落雁) 8월9일 12시, 무위 그러나 차는 여전히 불안 불안했다. 한 팀은 차를 정비하고, 나머지 한 팀은 장을 본 후 점심을 먹었다. 양갈비찜이 나왔다. 찌그러진 넓적한 양은그릇에 큼지막한 살덩이가 붙은 양 갈비 한 개가 담겨있는 것이, 꼭 개밥 같았다. 저녁에 있을 사막에서의 야영을 위해 준비한 음식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8월10일 12시30분, 바단지린 사막 야영을 잘 끝내고 사막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2호차 꽁무니에서 검은 연기가 쿨룩쿨룩 쏟아졌다. 또 다른 대형 사고였다. 엔진은 정지했고, 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고장난 차는 1호차가 견인해서 정비소로 가고, 나머지는 사막에서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늘 한점 없는 땡볕아래 햇살은 점점 강해지고, 끼니때가 되었는데도 식당은 멀디 멀었다. 우리는 임시 휴게소를 만들었다. 남은 차 둘을 나란히 대고 , 그 위에 텐트를 덮어 그늘을 만들어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탔다. “죽인다, 커피향!” 우리는 애써 큰소리로 웃어댔다. ●답(4) 그녀의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달도 구름 뒤에 숨었다는 초선(폐월·閉月) 8월11일 20시, 가욕관에서 둔황으로 결국 그들 차 두 대는 돌아오지 못했다. 우리는 차 3대에 짐을 포개고 또 포갠 뒤, 그 사이에 끼어 앉았다. 그리고 일정을 그대로 진행했다.2m앞이 안 보이는 먼지 길 양옆에 아스라한 낭떠러지가 이어져도, 문을 꼭 닫은 차안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기침이 컥컥 나올 만큼 독한 ‘원조황사’가 길을 막아도, 그대로 뚫고 달렸다. 생명 보험을 하나 더 들어놓고 올걸! 나는 콩 튀듯 탕탕 거리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해를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 해는 지지도 못하고 저녁 8시가 넘는 시각에도 낮처럼 환하다. 8월12일 17시, 명사산 아름답다. 달밤이면 모래가 우는 소리를 낸다는 산. 해질녘, 그 산을 낙타를 타고 오른다. 출렁출렁, 낙타의 발걸음에 따라 내 몸이 흔들린다. 방울소리도 흔들린다. 8월13일 18시, 하미 주위에 있는 산들이 온통 시커멓다. 철성분이 많아 그렇단다. 그 산 사이에 난 협곡을 달리고 달려 신장 자치주에 닿았다. 무섭게 바람이 불었다. 이 근처는 사철 그렇게 바람이 많은 곳이라고.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투르판은 ‘불의 땅’ 외에도 ‘바람의 창고’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20시에 하미과로 유명한 하미에 도착해 저녁 대신 과일로 허기를 채웠다. 배가 봉긋해졌다. 8월14일 18시, 투르판 위구르족 민속쇼를 관람했다. 남대장이 모종의 작업을 한 덕분에 나도 위구르족 아가씨로 분장하고 공연에 잠깐 끼어들었다. 위구르의 전통 악기 소리는 맑고 탱글탱글했다. 우거진 포도 넝쿨 아래서, 붉은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면서, 나는 잠시 먼 이국의 여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한여름, 축제의 밤은 열기를 더해갔다. 8월15일 11시, 우루무치 포도 농원에 갔다. 위구르 말로 ‘아름다운 목장’ 이라는 뜻을 가진 우루무치는 커다란 오아시스 도시다. 야자수가 두어 그루 있는, 우리가 오아시스라고 하면 흔히 머리에 떠올리는 그런 고즈넉한 풍경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는.20∼30종은 넘어 보이는 건포도가 신기했다. 노랑색, 황금색 외에도 송이째 말린 건포도, 씨가 씹히는 건포도, 달콤한 것, 약간 시큼한 것…. 나는 번개처럼 건포도를 한 짐 싸서 챙겼다.‘아줌마’라 흉을 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독하게 맘을 먹었다. 맛보여주고 싶은 고국의 ‘동포’들이 목에 걸리고 눈에 밟혀 어쩔 수 없었다. ■ 지프로 오지를 달리고 싶다면 챌린지 전문탐험 기획사인 ㈜오버랜드 엔터테이먼트(www.overland.co.kr)는 자신의 자동차를 직접 운전해 실크로드 등 세계 오지를 탐험하는 이색적인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오버랜드를 운영하는 남기환(38)대표는 1999년 런던∼서울 단독횡단과 2002년 유라시아 횡단팀을 이끈 오지탐험 전문가. 그는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지프를 타고 황량한 들판과 거친 사막, 별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야영을 즐기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 개척하고 있다. 주요 상품은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까지 이어지는 ‘트랜스 타클라마칸’,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끼고 도는 ‘트랜스 히말라야’, 중국 성도에서 티벳까지 찝차을 이용 ‘천장공로 하늘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 오지 캠핑 상품도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국내 산간벽지를 찾아 다니며 캠핑과 야영을 즐기는 1박 2일,2박 3일 오지여행도 정기적으로 진행된다. 비용은 일정에 따라 다른 만큼 오버랜드(02-522-0228)에 직접 문의하면 된다.
  • [논술 길라잡이] 시사키워드/금리인상 논쟁

    [논술 길라잡이] 시사키워드/금리인상 논쟁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기준 금리를 3.5%에서 3.75%로 0.25% 포인트 올림으로써 우리 금리도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측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재경부측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고 있다. 금리를 둘러싼 논쟁은 금리를 인상 또는 인하해야 할 요인 가운데 어느 것을 더 중요시하느냐에 대한 생각의 차이에서 나온다. ■ 포인트 금리 인상 또는 인하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논리적으로 따져 보고 최근의 금리인상 논쟁이 왜 벌어졌는지 알아본다.●금리란 무엇인가 금리는 자금시장에서 거래되는 자금의 사용료 또는 임대료로 정의된다. 시중금리에는 ‘콜금리(call rate)’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융기관 사이에 자금을 30일 이내의 초단기로 빌려주고 받는 것을 ‘콜(call)’이라 부르며 그때의 금리가 콜금리다. 빌려주는 입장에서는 ‘콜론(call loan)’, 빌리는 쪽에서는 ‘콜머니(call money)’라고 한다. 콜금리는 금융기관 사이에 적용되는 금리이지만, 사실상 한국은행의 콜금리 목표 수준에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매월 한 차례 회의를 열어 통화정책 방향을 정한다. 미국에서는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린스펀이 의장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금리가 오르고 내리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금리가 오르면 저축 수익률이 늘어 투자와 소비가 줄어든다. 투자해서 얻는 수익보다 저축을 해서 얻는 수익이 크면 저축을 선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소비가 줄면 총수요가 줄어 성장과 경기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가는 어떻게 될까. 금리가 오르면 경기가 나빠지고 시중의 돈이 은행으로 들어가 화폐공급량이 줄어 물가는 떨어진다. 금리가 하락하면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투자와 소비가 늘어나 경기가 활성화되고 총수요가 늘어 경제성장에 도움을 준다. 예를 들면, 자동차 할부금리가 떨어져 자동차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돈을 싸게 빌릴 수 있으므로 부동산 가격은 오르게 된다. 경기가 활성화되고 금리가 낮아 시중에 돈이 과도하게 풀리면 물가가 오르게 된다. 정부는 금리를 조절해 경기를 부양하거나 진정시키려 한다. 즉 경기가 나쁠 때는 금리를 내리고, 경기가 과열돼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있으면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금리정책은 경기지표보다 6개월 정도 앞서간다고 한다. ●한은-재경부 논쟁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자 한국도 인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은행 박승 총재가 올해 안에 콜금리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해 시중금리가 치솟기도 했다. 금리 인상의 요인으로는 자금의 단기부동화에 따른 자원배분 왜곡 등이 꼽히고 있다. 부동자금은 430조원대로 2004년 국내총생산(GDP) 778조 4000억원의 절반에 이른다. 자금의 단기부동화란 시중의 돈이 한곳에 붙어있지 않고 이익을 찾아 이리저리 떠도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금융시장을 교란시킨다. 더 큰 문제는 기업이 중장기적으로 돈을 활용하지 못하게 돼 국가의 성장동력이 약화된다.600대 기업의 투자증가율은 1993∼97년 연평균 18.2%였으나 99∼2003년에는 3.6%로 줄었다. 설비투자도 1996년 이후 연 60조원대에서 8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경제정책을 이끄는 재정경제부는 경기회복과 물가안정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금리인상에 신중하다.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금리를 인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유가 등 경제여건이 좋지 않은데 금리를 올리면 경제를 더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 현재 물가가 비교적 안정돼 있어 금리를 올릴 필요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현재 세계적인 저물가는 중국이 값싼 공산품을 공급하는 데 따른 위장된 저물가”라면서 “따라서 물가에 맞춰 금리정책을 조정하면 맞지 않는다.”고 맞선다. ●어떻게 봐야 하나 두 경제정책 기관이 금리인상 문제로 다투는 것은 좋지 않은 모습이다. 어쨌든 경기가 크게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속에서 금리 인상과 유지의 견해 차이는 어느 것을 우선시하느냐의 문제다. 한은은 부동산 가격 급등 등 자금 흐름의 왜곡을 금리인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쪽이고 재경부는 좋지 않은 경기에 금리인상이라는 찬물을 끼얹어 더 나빠지게 할 필요가 없다는 쪽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경제정책적 판단 또는 경제철학의 문제로도 볼 수 있겠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는 만큼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가치인지 심도 있는 분석을 거쳐서 온당한 결론을 내려주도록 바랄 뿐이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추석자금 환란이후 최저

    올해 추석전 시중에 풀린 자금 규모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이후 최저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1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05년 추석전 화폐수급동향’에 따르면 추석을 앞둔 열흘동안 화폐 순발행 규모는 3조 6734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9.8%,4002억원이 줄었다. 이는 지난 5일부터 16일까지 10영업일간 한은 창구를 통해 시중에 빠져나간 현금 액수에서 한은 창구로 들어온 금액을 빼 계산한 것이다.올해 추석 자금은 외환위기 직후 불경기에 시달린 1998년의 3조 7000억원 이후 최저 규모다. 추석전 현금수요가 7년만에 최저수준을 보인 것은 민간의 소비심리가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지난해 추석에 비해 연휴 일수가 이틀 적은 사흘인데다 추석이 중순인 탓에 급여 및 월말 결제자금 수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강원 피서철 장사 ‘빛좋은 개살구’

    강원 피서철 장사 ‘빛좋은 개살구’

    올 여름 강원도를 찾은 관광객은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관광수입은 6년 만에 최저치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9일 한국은행 강원본부가 발표한 ‘올 피서철 관광수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 7월21일부터 8월20일까지 도내 화폐 발행액은 534억원, 화폐 환수액은 1544억원으로 1010억원의 환수초과가 발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환수초과액 1277억원보다 267억원 줄어든 것으로,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적은 규모이다. 한국은행이 이같은 화폐 환수 초과규모 및 올 피서철 현금수요를 기준으로 추정한 관광수입은 92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88억원이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영동이 654억원, 영서가 275억원의 피서철 관광수입을 올렸으나 지난해와 비교해 영동 131억원, 영서는 157억원이 각각 줄었다. 동해안 해수욕장의 경우 올 피서객이 지난해보다 504만명(21.6%) 많은 2841만명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영동지역 관광수입은 오히려 지난해보다 줄어 든 것이다. 한국은행은 관광수입 감소가 경기부진에 따른 알뜰피서 분위기 확산, 피서객 지출자금의 역외유출 확대, 피서객의 신용카드 결제 증가 등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관광객들의 주머니를 열게 하는 실효성있는 관광정책 부재에도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피서지 상인들은 “행정당국이 해마다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는 전시적 통계에만 집착하지 말고 공원구역과 해수욕장 등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와 함께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관광객들이 돈을 쓸 수 있도록 하는 적극적인 정책이 아쉽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국은행 강원본부 관계자는 “외국인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는 한편 관광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신들의 땅, 히말라야를 품다

    마음 속의 찌든 때까지 모두 버릴 수 있는 땅, 히말라야에 대한 기대는 여행을 넘어섰다. 그러나 신들이 살고 있다는 거대한 산을 첩첩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좀체 인간의 발길을 허락할 것 같지 않다. 그래서 더욱 가보고 싶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한해 히말라야로 가는 국내여행객도 1만명을 넘어섰다. 자연을 경배하고, 욕심과 분노덩어리인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히말라야는 트레킹마니아들의 천국이다. 차갑고 날카로운 눈과 얼음, 드넓은 초원과 에메랄드빛 빙하가 흘러내린 호수, 야생화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셰르파족 등…. 히말라야에서 지낸 20여일은 지난 삶에 대한 반성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글·사진 히말라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히말라야는 산스크리트어로서,‘히마’는 빙설(氷雪),‘말라야’는 살고 있는 곳, 즉 ‘눈의 거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쿰부 히말라야(KHUMBU HIMALAYA)는 히말라야산맥(약 2800km)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세계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가 우뚝 솟은 지역 일대를 말한다.원래 에베레스트라는 이름은 영국인이었던 측량국 관리의 이름을 본떠서 붙인 이름으로서 네팔어 정식 명칭은 사가르마타(SAGARMATHA)이다. ■ 마칼루·바룬 - 쿰부히말라야 26일간 대장정에 오르다 에베레스트의 이름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 권위가 담겨있다. 높이에 대한 감탄뿐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러르는 마음을 갖지 않고선 감히 올려다볼 수조차 없는 경외감까지 포함돼 있다. 또한 로체, 마칼루, 초오유 등 8000m이상의 산들이 즐비한 지역으로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꿈, 그리고 죽음이 실타래처럼 뒤엉켜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히말라야는 전문 산악인들만을 위한 산은 아니다. 이곳에도 초등학생부터 70세의 어르신들까지 히말라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히말라야의 또다른 미덕이다. 배타적이지 않은, 열려있는 산 히말라야가 오라고 손짓해서, 그래서 떠났다. ‘동네 뒷산처럼 쉽게 갈 수 있다’는 쿰부 히말라야코스, 산에 다녀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주로 가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코스 등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에 맞는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전국 대학과 고등학교 산악부원 12명, 해외원정 경험이 많은 단장, 대장, 지도위원 4명. 그리고 1년에 고작 한두번 뒷산에 오르는 나까지 모두 16명으로 구성된 ‘2005 한국청소년오지탐험’ 마칼루팀은 7월23일, 서울을 떠났다. 우리팀은 히말라야 지역을 한바퀴 도는 트레킹을 계획했다. 히말라야에 머무는 날은 20일정도, 오가는 비행길까지 포함해서 26일간의 여정은 시작됐다. 옛날 광부들이 다니던 길로 5000m의 패스(고개)를 2개나 넘어야 하는 준전문가들용 코스인 마칼루와 바룬지역을 지나, 일반인들의 여행코스인 쿰부히말라야쪽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여기에서 하이라이트는 전문가들이라야 갈 수 있다는 6461m의 메라피크 등반이었다. 산을 전문적으로 타는 산꾼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떠나게 된 초보의 심정, 막상 떠나려니 가슴이 무겁고 두려웠다. 준비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내가 가진 장비는 3년된 등산화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히말라야를 향한 꿈을 접고 싶지는 않았다. 장비를 구입하고, 빌렸다. 사용법도 모른 채 장비를 카고(등산용 커다란 가방)에 쑤셔넣고 떠났다. ●아름답고 낯선 관문 루클라 히말라야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 국내공항에서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다. 날개 양쪽에 프로펠러가 있는 장난감 같은 20인승 경비행기에 올라 루클라로 향한다. 가뿐하게 하늘로 날아 오른 비행기는 몇 번을 날라가다 뚝 떨어지고 옆으로 밀려가는 통에 자이로드롭을 탄 듯하다. 마음을 졸이며 50분을 날아 루클라 비행장에 도착했다. 의 산악지대에 위치한 비행장으로 서울의 편도 4차선 크기의 달랑 하나뿐인 활주로가 눈에 띄었다. 경사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착륙을 돕는다. 반대로 경사면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이륙한다. 활주로 끝은 천길 낭떠러지, 아찔했다. 이렇게 도착한 비행장은 내전 때문에 가 제법 삼엄하다. 아직도 포카라지역은 마오이스트들(마오쩌둥을 추종하는 무리)이 제법 많아 정부군과 교전이 잦다고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총멘 군인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손에 잡힐 듯한 산들, 어디선가 쏟아지는 물소리, 파란 하늘과 구름들. 히말라야의 첫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오후에 접어들자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뿌리기 시작한다. 장맛비처럼 주룩주룩 내린다. 별을 보며 저녁산책을 하리라는 꿈을 접고 롯지(산장)에 앉아 창문을 거세게 때리는 비구경을 했다. 히말라야는 9월말까지 몬순기간이라 거의 매일 비가 온다. 내리는 비를 뚫고 산을 오를 수 있을지 걱정이 밀려왔다. 마침 셰르파가 다가왔다. 이름은 왕추, 나이는 31살.5명의 셰르파와 60여명의 포터의 대장인 ‘사다´로 에베레스트를 무려 8번이나 올라갔단다. 내 걱정을 알겠다는 듯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잠자리에 들라.”고 말해줬다. 산사나이의 말을 믿고 습기로 축축한 침대에 올랐다. 두런두런 사람들의 이야기소리에 잠을 깼다. 먼저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럴 수가. 간밤의 오던 비는 꿈이었던가. 파란 하늘이 내 눈으로 빨려 들어온다. 아침을 먹고 드디어 히말라야에 첫발을 내딛는다. ●오후만 되면 비내리는 몬순의 고산지대 우리는 쿰부히말라야 일반적인 트레킹코스와 반대로 간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으로 해서 쿰부히말쪽으로 돌아서 루클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이다. 마칼루와 바룬지역은 한국사람으로서는 우리가 처음으로 발을 내딛는다. 루클라부터는 을 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 전화, 전기도 들어 오지않는다.(큰 롯지에만 자가발전기를 쓴다.)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무용지물이다. 가진 자나 그러지 못한 자 할 것 없이 공평하게 오직 자신의 두 다리로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걸었다. 여기서는 우리의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포터나, 집을 고치기 위한 나무를 지고 가는 주민들처럼 우리도 히말라야를 한발 한발 내디디며 마음이 아닌 온몸으로 히말라야를 느껴간다. 루클라를 떠난 지 1시간이 지나자 스티마 쿠알라계곡으로 들어섰다. 그곳의 자연미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집채만한 바위 위를 파랗게 덮고 있는 이끼. 조그만 씨앗 하나가 몇백년동안 저렇게 바위에서 자신의 몸집을 키워나갔을 것이다. 그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콸콸콸’하고 산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에 압도당한다. 그런데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가 없다.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스틱에 의지하며 건너간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찌릿찌릿’전기처럼 다가오는 차가움. 몇 발을 떼자 아예 통증이 된다. 루클라를 떠난 지 4시간30분만에 캠프사이트인 추탕가에 도착했다. 첫날인데 벌써 다리가 아프고 힘이 든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가 되니 비가 내린다. 몬순기간에 고산지대는 오후가 되면 기온이 상승하며 구름을 만들어 비가 내리고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날씨가 맑아진다. 히말라야에 머문 20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는 한결같은 날씨였다. 그래서 히말라야 트레킹은 봄과 가을이 제철이다. 비로 눅눅해진 텐트에 몸을 눕혔다. 무엇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반갑지 않은 손님, 고소 히말라야 트레킹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고소’, 즉 고산병이다. 고도를 갑자기 올리는 것이 원인이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에게나 생긴다. 몸속에 산소가 부족해서 혈액순환이 저하돼 두통이나 소화불량, 불면증, 무기력증, 손발 저림, 실어증 같은 것을 동반하며 심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소증세는 단 몇백m만 아래로 내려가도 언제 그랬냐 싶게 씻은 듯이 낫는단다. 그래서 일반적인 트레킹에서는 고소적응 기간을 두며,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우리는 짧은 일정탓에 바로 4000m이상 올라 갔다. 4610m의 체트라고개를 넘어 4300m의 틸리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3시간을 걷자 3910m까지 올라갔다. 앞에는 하얀 봉우리를 날카롭게 드러낸 커리륭이라는 7500m의 산과 여기저기 부서져 있는 바위들, 파란 초지, 이름 모를 야생화까지.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4000m를 넘자 이젠 숨이 목까지 차오른다. 아니 이 숨막히게 한다. 가도 가도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다. 셔터를 누를 때 숨을 잠시 멈추면 바로 ‘헉헉’하고 몇 번 숨을 몰아 쉬고 걸어야 한다. 사진 한장 찍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서 카메라를 배낭에 넣어버렸다.1시간 전에 웃고 떠들던 대원들도 단한마디 말이 없다.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사헌의 시조가 생각난다.‘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그래 가자 가. 그렇게 5시간을 넘게 오르자 체트라정상에 섰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이름모를 산들. 마치 양탄자처럼 떠 다니는 구름들. 눈물이 찔끔 나왔다. 체트라 정상 구석에서 덩치가 제일 큰 원준희(춘천대 3)대원이 하얗게 변한 얼굴로 구토를 한다.“괜찮아?”하고 묻자 손만 내저을 뿐, 말을 하지 못한다. 몇 명의 대원들이 고소로 정신을 못 차린다. 말로만 듣던 고소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수천년 이어져온 자연의 힘 너덜지대를 걷는다. 돌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지대로 평지보다 걷기가 힘들다. 돌을 밟고 미끄러져 한바퀴 구른다. 아예 일어나지 않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어떻게 4000m가 넘는 곳에 이렇게 돌들이 많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바람에 날려 왔을 리도 만무하고…. “이게 자연의 힘이에요. 여름에 물기를 머금은 바위산이 겨울에 얼면서 갈라져 저렇게 커다란 바위가 생기고 또 바위가 여름에 물기를 머금고 겨울에 팽창을 하는 물 때문에 갈라져 이런 바위 너덜지대가 생겨요. 수 천년동안 이런 현상의 반복으로 바위가 없어지기도 해요.”라고 옆에 있던 서병란(43)지도위원이 대원들에게 설명한다. 자연의 위대함에 머리를 숙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4시 캠프사이트에 도착했다. 오늘 무려 9시간을 걸었다. 다리에 감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운동 좀 할 걸. 때늦은 후회가 가슴을 친다. 서울 가면 반드시 운동하리라, 지키지 못할 맹세도 했다. 간밤에 내리던 비도 어느덧 멈추고 그토록 괴롭히던 고소도 상당히 좋아졌다. 오늘은 3690m로 내려가 모솜 카르카에서 캠핑을 한다. 변변한 길도 없이 하루종일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정말 때묻지 않은 자연이란 말은 이럴 때 어울린다. 커다란 고목이 쓰러져 있고 고목을 뒤덮고 있는 이끼들을 보니 정글에 들어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정말 깨끗하고 아름답다. 고도를 내리자 고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다.4356m의 탕낙을 지나 5045m의 카레캠프까지 걷고 또 걸었다. 이젠 5000m를 넘어서자 기온이 달라진다. 날씨가 초겨울 날씨같다. 이젠 5400m의 메라베이스 캠프다. 가파른 오르막과 험준한 산을 넘는다.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이 터져나가는 것 같다. 확실히 산소가 희박해짐이 느껴진다. 호흡을 일정하게 가지고 가야 한다. 간혹 기침을 한번 하면 자리에서 서서 숨을 고르고 가야한다. 사진을 찍는 것뿐 아니라 수통에 있는 물을 마시기조차 힘들다. 아니 0.1초라도 숨을 멈추고 있으면 바로 죽어버릴 것 같다. 모 등산화광고에서 엄홍길씨가 에베레스트를 오르며 숨을 몰아 쉬는 것을 보고 연기인 줄 알았는데,5000m를 넘어서자 비로소 그 장면을 이해하게 된다. 3시간을 걸으니 이젠 거대한 설산이 눈에 들어온다. 이것이 ‘메라라’ 라는 만년설로 덮힌 언덕. 보는 순간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다. 안전을 위해 등산화를 벗고 이중화와 안전띠를 착용한다. 난생 처음 신어 보는 이중화. 스키부츠와 비슷하다. 겉면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설산에서 며칠을 있어도 방수가 완벽해 동상을 막아주는 신발이다. 그러나 정말 무겁다. 거기에 아이젠을 끼웠다. 그리고 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띠를 착용하고 자일을 잡고 메라라를 오른다. 이마에 땀이 흐른다. 숨은 가쁘지만 가슴이 뻥 뚫린다. 몸속에 있는 독소와 스트레스가 히말라야의 기운으로 바꿔 채워진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날 것 같다. 수천만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대한 얼음절벽 위에 서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다. 베이스캠프에서 메라픽 정상을 가는 길과 홍구를 거쳐 추쿵을 가는 갈림길이다. 어디를 갈지는 자신의 선택이다. ●히말라야의 가장 아름다운 마을 메라 베이스캠프부터 홍구, 판치 포카리까지는 거의 평지이며 바위 너덜지대로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번 트레킹의 마지막 고비인 5800m의 암푸랍체가 우리를 기다렸다. 더구나 눈까지 내려 생각보다 힘들었다. 산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힘들다는 말이 실감난다. 길이 좁고 눈이 계속 내렸기 때문에 미끄러운 암푸랍체의 하산길은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았다. 이제부터는 정말 편안한 여정이 우리를 기다리는 쿰부히말라야다. 히말라야 마을 중 가장 오지이며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 4730m의 추쿵. 왼쪽으로 8500m의 로체, 정면에는 6160m의 아일랜드피크, 오른쪽에는 6812m의 아마다블람은 거칠고 황량하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성스러움을 만들어 낸다. ‘어머니의 목걸이’라는 뜻을 가진 아마다블람은 히말라의 보석으로 불린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길게 늘어선 하얀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산. 그 선이 매우 날카롭지만 웅장하고 고왔다. 역시 많은 산사나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손 꼽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는 일몰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추쿵은 셰르파족이 사는 마을이 아니다. 몇 개의 롯지가 모여 트레킹족의 안식처가 되는 곳이다. 이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한다. 여기 추쿵부터는 일반인들이 쉽게 트레킹을 하는 곳이다. ●히말라야 하이웨이 추쿵부터 루클라까지를 히말라야에선 ‘하이웨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고속도로란 뜻이다. 길이 잘 이어져 있고 마을을 거쳐가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오갈 수 있다. 일단 여기부터는 롯지가 계속 있고 마을에 가게도 있어 콜라며 맥주, 과자 등을 사서 먹을 수 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일단 300루피(약 70루피가 1달러. 한화로 4000원)를 주고 시원한 산미구엘 맥주를 사서 한 모금을 마셨다.‘우∼ 세상에 맥주가 이런 맛이었나. 이렇게 맛있다니’ 히말라야에서 먹는 맥주는 입에 쫙쫙 붙는다. 어제와 오늘은 단순한 하루 차이지만 나의 느낌은 지옥과 천당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걷기도 편하다. 집들이 이어지고 돌담이 쳐진 밭에서는 감자와 보리들이 자라고 있다. 정말 즐거운 트레킹이다. 이제 며칠동안 햇빛을 못 본 카메라를 꺼내 사진도 찍을 만큼 마음도 몸도 여유가 생긴다. 히말라야를 다녀왔다는 트레킹족들은 이렇게 행복하고 즐거운 히말라야를 다녀온 것인데, 나는 지옥훈련을 택한 셈이다. 2시간을 걷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로 올라가는 딩보체가 닿는다. 마을 입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라마의 문구를 새겨 놓은 돌을 쌓아서 만든 돌탑인 스투파. 포터들은 발길을 멈추고 스투파에서 기도를 하고 지나간다. 셰르파족인 그들은 그렇게 고단하고 힘든 삶을 이겨간다. 우리들이 감히 엄두도 못내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은 아무 욕심없이 라마교의 가르침을 따르며 살고 있다. 머리에 40㎏의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다니는 락기리(17) 또한 아버지의 직업인 포터를 대물림하며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아무리 고산지대에 사는 셰르파족이라도 그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다는 것은 고통일 것이다. 슬리퍼를 신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 오는 락기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해한다. 자연에 순응할 줄 알고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그들의 인생은 우리의 잣대로 가르는 것은 옳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소년 락기리가 좀더 문명의 혜택을 받으며 살기를 빌었다. ●희망의 깃발이 나부끼는 곳 딩보체, 팡보체를 지나 탕보체 가는 길에 히말라야의 웅장한 산 못지않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바로 험준한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다. 이 지역을 걷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길고 짧은 다리를 만난다. 그런데 다리에 여러 색깔의 깃발이 걸려있다. 처음에는 ‘멋으로 했겠지.’하고 지나쳤지만 다리마다 걸려 있는 오색천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이곳 사람들은 다리를 신성시하여 카타와 룽다(기도 깃발)를 걸어놓는 것은 물론 지날 때마다 ‘부디 하는 일 잘 되고 가족 모두 아무 탈 없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다. 오늘도 사람들의 희망과 바람을 가득 담은 오색깃발은 바람에 따라 춤을 춘다. 3860m의 탱보체는 라마사원으로 유명하지만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블람 등 유명한 산들을 같은 방향에서 조망할 수 있는 히말라야의 전망대이다.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에서도 후원을 한다는 티베트사원인 콤파를 만나게 된다. 탕보체의 콤파에는 많은 스님들이 거주하는 콤부히말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화재로 사원이 전소되었다가 붉은색 벽돌로 다시 지었지만 중후한 분위기와 차분함이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잔뜩 흐린 날씨에는 제1전망대에서도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일정상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남체 바자르로 향했다. 계곡의 물소리 정겨운 작고 아담한 마을, 우거진 숲.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쿰부히말라야의 명동 쿰부히말라야의 제일 번화가는 당연히 남체 바자르다. 해발 3440m에 위치한 쿰부 히말라야의 상업적 요충지이며 등반과 트레킹의 시작과 끝을 의미하는 곳이다. 또 이 마을은 매주 토요일마다 장이 열린다. 쿰부히말라야에 사는 모든 셰르파족들이 생필품을 여기서 구한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시장과 상점들이 모여있는 지역으로 빵집과 레스토랑, 클럽, 당구장 등이 밀집해 있어 깊은 히말라야의 산중이란 생각을 잠시 잊게 만든다. 이 마을 뒷산 꼭대기에는 히말라야의 설산 풍경을 볼 수 있는 전망대와 네팔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그래도 새벽은 온다.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메라피크 정상에 서는 것이다. 메라피크는 해발 6461m로 히말라야 트레킹피크 중에서 제일 높다. 윤대장이 은근히 나를 떠본다.“베이스에서 쉬시지?”내가 등반대장이라 해도 걱정이 되겠다. 장비라고는 제대로 된 것 하나 없지, 자일을 타 보길 했나, 설산 경험이 있나. 하지만 나는 큰소리쳤다.“해발 6000m, 자신있습니다.” 큰소리 지만 긴장과 두려움으로 뒤척이다 새벽을 맞았다.5800m의 메라 하이캠프로 올라간다.3명의 대원은 고소가 심해 베이스에 남았다. 눈부신 설원을 밟으며 걷는 대원들을 뒤에서 보고 있노라니 마치 파란 하늘을 향해 걷고 있는 천사들 같다. 하얀 천국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온통 하얀색뿐이라서 그런지 1시간을 걸었는데도 제자리인 것 같다. 힘에 부치기 시작한다. 오를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일단 하이캠프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무거운 다리를 옮겼다. ●젖먹던 힘까지 다해 다음날 새벽 2시.8명이 정상으로 향했다. 서로 몸을 자일로 묶고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며 오르기 시작했다.8명중 4번째 내가 섰다. 앞뒤 사람과 보조를 맞춰야 걸을 수 있다. 내가 못가면 앞뒤 사람이 다 못간다. 처음 1시간은 잘 걸었지만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잠시 대기”라는 외침이 입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3∼4발자국을 걷기가 힘들다. 얼마나 걸었을까. 뒤로 거대한 설산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자 이젠 마지막이야.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야.”라는 외침에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해 걸었다. 머릿속이 텅 비어간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가득 메울 때 “정상이야. 메라픽 정상이야.” 하는 외침이 들린다. 나는 정상에 올랐다는 기쁨보다는 앉아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상은 정상이다. 그런데 표지 하나 없다. 약간 허탈했다. 그때 셰르파가 다가 오더니 저기 보이는 산이 에베레스트라고 가르쳐 준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신기루처럼 구름 위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불가능 같았던 산이 거기에 있었다. 신기루처럼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가 금방 사라지고 마는 에베레스트, 로체, 마칼루의 얼굴을 마주 대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모든 고통이 잊혀진다. 마치 짝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만봐도 행복해지듯…. 눈앞에 드러낸 웅장함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이런 감상도 잠깐, 서둘러 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햇볕에 눈이 녹으면 발이 빠져 걷기 힘들기 때문이다. ‘잘 있거라. 언제 다시 만나리라는 기약은 없지만 안녕!’ 13시간을 눈밭에서 구르다 베이스에 도착했다. 정말 평생 기억에 남을 길고 힘든 하루였다. ■ 네팔 가려면 네팔은 우리나라의 3분의2 정도 크기의 면적에 인구는 약 2500만명이다. 시차는 한국보다 3시간15분 늦다. 화폐는 인도와 마찬가지로 루피(Rupee).1달러가 69루피 정도. 신용카드가 되는 곳이 드물며 한화는 환전을 할 수 없으므로 출국하기 전에 달러로 바꿔야 한다. 환전은 공항이나 카트만두에 있는 타멜시장의 시설 환전소를 이용하면 된다. 네팔은 비자가 필요하다. 한국에서 미리 네팔 비자를 받고 싶으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명예 네팔영사관(02-555-9040)’에 전화예약 후 방문하면 된다. 발급은 보통 이틀 걸린다. 비자수수료는 32달러. 카트만두 공항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이 낫다. 단 비자수수료는 한국보다 2달러 싼 30달러. 비행기는 직항노선이 없다. 홍콩, 방콕, 상하이에서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www.nepal.pe.kr,www.nepaltour.pe.kr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트레킹 하려면 혜초여행사(02-6263-3330,www.hyecho.com)는 네팔 트레킹의 선두주자. 한 해에 3500명 이상이 혜초여행사를 통해서 히말라야 트레킹에 나선다. 초등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는 코스를 알려주며 네팔 현지 지사에서 셰르파나 포터뿐 아니라 필요한 물품도 공급해준다. 셰르파의 고향 남체로 찾아가는 9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하이라이트 트레킹은 205만원,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의 완성인 17일 일정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60만원. 푼힐전망대에서 아름다운 안나푸르나를 바라보는 9일 일정의 로얄 트레킹은 185만원,180도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느낄 수 있는 13일 일정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은 220만원. 또 10월쯤이면 루클라에서 출발, 추탕가와 메라베이스, 암푸랍체를 거쳐 쿰부 하말라야인 추쿵, 남체를 거치는 20일 일정의 히말라야 일주 트레킹 상품도 나올 예정이다. 이밖에도 개인이나 단체의 일정에 맞춘 다양한 트레킹 여행도 가능하다. 네팔 트레킹은 여행기간이 길고 오지로 떠나기 때문에 전문여행사를 통해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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