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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 세뱃돈은 담뱃잎 요즘 세뱃돈은 가치株

    예전 세뱃돈은 담뱃잎 요즘 세뱃돈은 가치株

    붉은 돈 봉투 ‘훙바오’ 주는 중국 영향설… 새 돈 드물었던 시절, 신권은 사회적 지위 과시 수단 입춘(立春)이 지났지만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은 아직도 매섭다. 하지만 귀성객들의 마음은 이미 따뜻한 고향집 대문간에 닿은 듯 푸근하다. 설 아침 정성껏 준비한 명절 음식을 차례상에 올리고 나면 온 가족이 둘러앉는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세배를 하는 자식, 손주에게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는 모습은 언제 봐도 정겹다. 세뱃돈은 단순히 용돈이 아니라 새해의 무탈과 복을 기원하며 주는 돈이라고 해서 ‘복돈’이라고도 불린다. 가족과 친지들의 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마음에 세뱃돈을 미리 새 돈으로 바꿔 오는 번거로움쯤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 설 풍경에서 꼭 빠질 수 없는 세뱃돈.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이 세뱃돈을 주고받았을까. 세뱃돈은 꼭 새 돈으로만 줘야 하는 걸까. ●조선 문신 최영년 시집 ‘해동죽지’에 최초 등장 흔히들 세뱃돈이 우리의 아주 오래된 풍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뱃돈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조선 말기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최영년이 작성한 시집 ‘해동죽지’(海東竹枝)에 ‘세배전’(歲拜錢)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최초다. 조선 후기 순조 때 학자였던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선 세뱃돈과 관련한 언급이 없다. 김영재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0세기 전엔 세뱃돈 대신 세찬(음식)이나 세초(담뱃잎)를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말했다. 물자와 화폐(엽전)가 귀하던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명절에 가족들이 모여 새로 지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는 얘기다. 설에 ‘돈’을 주는 풍습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일제강점기 영향설’과 ‘중국 영향설’ 두 가지 추론이 있다. 일단 일제강점기 영향설의 근거는 이렇다. 일본은 에도시대(1603~1868년)에 경제가 발달한 일부 도시 지역에서 세뱃돈을 줬다고 한다. 20세기 초중반까지 일제 식민 치하를 겪으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일본의 풍습이 건너왔을 것이란 추론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다. 김 연구관은 “일본에서 세뱃돈이 전국적으로 퍼진 것은 1960년대부터”라고 소개했다. 그보단 중국 영향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루, 즉 설날이 되면 결혼하지 않은 자식에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돈을 주는 풍습이 있다. 과거에는 이 세뱃돈을 ‘야쑤이첸’(壓歲錢)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훙바오’(红包)가 더 널리 쓰이는 말이다. 훙바오는 세뱃돈을 담아 주는 붉은색 봉투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에선 붉은색이 악한 기운을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여겨진다. 중국 문화권 영향을 받았던 한국과 일본, 베트남 등에는 세뱃돈 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다. ●화폐개혁 단행된 1960년대 이후부터 일반화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이후부터 세뱃돈이 일반화됐다. 1960년대 ‘환’에서 ‘원’으로 화폐단위가 바뀌는 화폐개혁이 단행됐고 1970~1980년대 경제 성장과 함께 화폐 사용량이 늘면서 세뱃돈이 설 대표 풍속으로 자리잡았다. 시중은행 영업점에는 신권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세뱃돈을 새 돈으로 주는 것은 우리의 전통 풍속은 아니다. 김 연구관은 “중국에서는 꼬깃꼬깃한 돈이라도 빳빳한 봉투(훙바오)에 담아 준다”며 “우리나라의 과거 사료에서도 세뱃돈을 ‘새 돈’으로 줬다는 기록은 없다”고 전했다. 세뱃돈이 일반화되기 시작한 1960~1970년대에도 신권으로 세뱃돈을 주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은행이 신권을 적게 찍어내 고액 거래 고객들을 제외하곤 일반인들은 은행 창구에서 신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은행 은행사박물관 관계자는 “이전에는 명절에 새 돈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경제적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며 “새 돈 구하기가 어려웠던 만큼 세뱃돈을 새 돈으로 주면 그만큼 정성과 노력이 더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말했다. 새 돈의 희소성 때문에 ‘세뱃돈=새 돈’ 선호 현상이 생겨났을 것이란 분석이다. ●짜장면 30원이던 1970년대 중고생 200원 받아 최근 세뱃돈으로 줄 새 돈 교환 수요가 불필요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실제로 매년 설을 앞두고 한국은행이 공급하는 화폐 규모가 늘고 있다. 설 직전 10영업일간 화폐 순발행액은 2013년 4조 4000억원에서 2014년 5조 2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도 5조 2000억원 선을 유지했다. 이 때문에 한은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뱃돈, 꼭 새 돈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마음을 담은 깨끗한 돈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세뱃돈의 단위 역시 화폐의 변화와 물가 상승률에 따라 ‘성장’해 왔다. 한 조사에 따르면 1970년대 세뱃돈의 평균 액수는 초등학생이 100원, 중·고등학생이 200원이었다고 한다. 당시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30~50원 전후였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돈이다. 1980년대에는 초등학생 1000원,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에게는 5000원씩 세뱃돈을 주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최근엔 5만원권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신권 중 5만원권의 인기가 가장 높다. 세뱃돈 금액도 5만원 안팎으로 껑충 뛰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최근 496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중·고등학생이 원하는 세뱃돈 금액은 1인당 평균 5만 5458원으로 나타났다. 대학생은 6만 6638원이었다. 반대로 세뱃돈을 주는 입장인 어른들은 ‘적당한 세뱃돈’ 금액으로 중·고등학생에게는 1인당 3만 9788원을, 대학생에게는 1인당 6만 4610원을 주겠다고 응답했다. 세뱃돈을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간의 금액 차이가 존재하는 셈이다. 세뱃돈을 반드시 ‘돈’으로 줘야 한다는 인식도 변하고 있다. 응답자의 35.1%만 현금을 고집했을 뿐 나머지 응답자들은 기프티콘이나 문화상품권을 받아도(줘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자산가들은 수억원 가치 재테크 상품 주기도 자산가들 사이에선 손주들에게 세뱃돈 대신 주식이나 재테크 상품을 주는 모습도 흔하다. 황세영 한국씨티 강남CPC센터장은 “예전엔 손주들에게 줄 세뱃돈을 정기예금 통장에 넣어서 줬지만 최근엔 금리가 워낙 내려가다 보니 장기로 보유할 수 있는 주식(가치주)을 세뱃돈으로 선물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금액도 수천만원에서 억원 단위까지 뛴다. 일종의 증여인 셈이다. 유학이나 이민 인구가 늘며 외화 세뱃돈도 인기다. KEB하나은행은 외환은행 시절이었던 2007년부터 해마다 외화 세뱃돈 세트를 판매해 오고 있다. 미국 달러, 유로화, 캐나다 달러, 중국 위안화, 호주 달러 등으로 구성된 외화세트는 구성에 따라 약 2만원, 약 3만 6000원 두 종류다. 해마다 이맘때 1만 5000세트(원화 환산 5억원 선)를 내놨는데 매번 매진됐다. 올해는 3만 세트로 판매량을 늘렸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득? 실? 지하경제로 자금 유입 여부가 관건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득? 실? 지하경제로 자금 유입 여부가 관건

    발음하기도 힘든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정부는 검토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잊을 만하면 다시 불거져 나온다. 화폐단위를 바꾸는 리디노미네이션은 왜 자꾸 나오고 나올 때마다 일부에서 경기를 일으키는 걸까. 그 궁금증을 짚어 봤다. 가나, 루마니아, 모잠비크,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짐바브웨, 터키, 투르크메니스탄. 2000년대 들어 화폐개혁을 한 나라들이다. 화폐개혁은 전 세계를 놓고 보면 낯선 일은 아니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한 리투아니아가 올 1월 1일부터 유로화를 도입한 것도 화폐개혁에 해당한다. 화폐개혁은 화폐단위를 바꾸는 것 외에 신권 발행, 고액권 발행 등도 포함한다. 2002년 7월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내부에 구성한 화폐제도 개혁 추진팀이 연구했던 일이 이 세 가지다. 신권 발행과 5만원 고액권 발행은 순차적으로 이뤄졌으나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 재정경제부가 반대했기 때문이다. 화폐단위 변경에 대한 연구를 한은이 독자적으로 했을 리는 없다. 정부와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럼 정부는 왜 막판에 없던 일로 덮었을까. 그동안 있었던 화폐개혁에 따른 부작용이 다시 나타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세계 최저 화폐단위 원화가 큰 편… 韓 50년간 화폐개혁 안 해 우리나라에서는 1953년과 1962년 두 번의 화폐개혁이 있었다. 1953년은 한국전쟁 직후로 거액의 군사비 지출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서였다. 100환이 1원으로 바뀌는 100대1의 화폐단위 변경이다. 1962년은 경제개발계획에 들어가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10환을 1원으로 바꾼 10대1 변경이었다. 두 번 모두 긴급명령 형태로 발표됐다. 구권의 화폐유통은 금지됐고 예금의 일부를 동결시켰다. 예상하지 않았던 조치가 가져온 충격, 그리고 일부 예금 동결로 재산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속에 화폐개혁이 진행된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당시 우리가 추진했던 화폐단위 변경은 구권을 신권으로 무한정 바꿔 주고 예금 동결도 없이 공개적으로 추진하자는 안이었다”며 “심리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의 자서전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에 따르면 한은 조사팀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유로화 전환을 주로 연구했다. 일각에서 우려했던 것처럼 물가 상승효과는 미미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관건은 지하경제로 자금이 숨어들어갈 가능성이었다. 유로화 전환을 앞두고 일부 국가에서 고급 요트나 귀금속 구매가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시세에 따르면 2002년 전국의 집값은 전년보다 16.43% 올랐다. 1990년 21.04%에 이어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87년 이후 두 번째로 높은 상승률이다. 정부로서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디노미네이션이 자꾸 거론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국제화다. 미국의 1달러는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가량이다. 각국의 최저 화폐단위를 높고 보면 1달러에 해당하는 숫자는 원화가 큰 편이다. 각국의 최저 단위 지폐의 가치는 대체적으로 미국의 1달러보다 크거나 비슷하다. 영국과 EU의 경우 미국 1달러에 해당하는 1파운드와 1유로는 동전이다. 두 번째는 경제 규모다. 우리나라 화폐단위는 1962년 정해진 뒤 50여년간 변화가 없다. 1962년 24억 달러에 불과했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조 4100억 달러로 500배 이상 커졌다. 이 과정에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며 음식점에서 1000원이나 100원 단위를 생략한 메뉴판을 쓰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1만원짜리 음식값을 10.0이라고 표시하는 방식이다. 이런 관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잘한 국가가 터키다. 2005년 이전 터키 이스탄불국제공항에서는 환전된 액수가 맞는지 세어 보는 외국인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시 미국 1달러는 130만 터키리라였다. 버스 요금은 90만 터키리라, 커피 한 잔 값은 100만 터키리라, 호텔 1박 비용은 1억 터키리라 수준이었다. 화폐단위 표기가 일이 됐고 여기에 더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도 발생했다. 터키는 2005년 1월 100만대1의 교환 비율로 화폐단위를 변경했다. 지금 환율은 1달러당 3터키리라 안팎이다. 2터키리라 수준이었으나 최근 원자재 신흥국의 통화가치가 하락하면서 환율이 큰 폭으로 올랐다. 화폐개혁은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짐바브웨는 2000년대 들어서 세 번(2006, 2008, 2009년)에 걸쳐 화폐단위를 바꿨다. 살인적인 물가 상승이 계속됐고 경기는 더욱 침체됐다. 이제 짐바브웨 국민들은 자국 통화가 아닌 미국 달러로 거래를 하곤 한다. 1985년 베트남은 보수파의 주도로 화폐개혁을 했다. 기대와 달리 경제성장률 하락, 물가 상승률 급등이 나타나 공산당 안에서 보수파가 위축되고 개혁파가 주도하면서 1986년 ‘도이머이’(쇄신) 정책이 등장했다. ●“늦을수록 사회적 비용 커져” vs “인플레이션 은폐 시도” 화폐단위가 바뀌면 물가 상승과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1000원이 1환으로 바뀌면 2800원짜리 커피는 2.8환이 된다. 판매자 입장에서는 이를 3환으로 올리고 싶은 욕구가 발생한다. 이른바 단수 효과다. 국민들이 돈의 가치에 무뎌지거나 신·구권 겸용에 따른 혼란을 겪을 수 있다. 화폐가 바뀌면 자동판매기의 화폐 투입구,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도 바뀌어야 한다. 경기 호황기에는 부작용이지만 불황기라면 투자가 늘어나는 효과가 된다. 장단점이 팽팽히 맞서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도 뜨겁다. 박 전 총재는 “신권 발행, 고액권 발행, 화폐단위 변경 세 가지를 동시에 하려고 했던 것은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면서 “화폐단위 변경은 언젠가는 해야 할 텐데 늦을수록 사회적인 비용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배영목 충북대 경제학과 교수는 “리디노미네이션은 통화관리를 잘하지 못해 나타난 인플레이션의 역사를 은폐하려는 시도”라며 “경제 상황을 해결할 정책 수단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고려할 것이 아니라 원화의 신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용어 클릭]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다시’를 뜻하는 ‘리’(re)와 ‘화폐 체계’를 뜻하는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화폐 체계를 다시 한다는 뜻이다. 모든 지폐와 동전의 실질 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 숫자를 동일한 비율로 낮추는 식이다. 예컨대 1000대1로 낮추면 1000원짜리가 1원이 되지만 1원의 가치는 종전대로 1000원이다. 돈에 붙는 ‘동그라미’(O)가 줄어들어 표기가 훨씬 간단해진다. 화폐단위뿐만 아니라 화폐 이름을 바꾸는 것도 포함한다.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남양유업] ‘낙농업 대부’ 홍두영, 46년 유제품 한우물…매출 1조 신화

    [재계 인맥 대해부 (5부)업종별 기업&기업인 남양유업] ‘낙농업 대부’ 홍두영, 46년 유제품 한우물…매출 1조 신화

    ‘불가리스, 이오, 프렌치카페, 몸이 가벼워지는 17차, 맛있는 우유 GT, 남양분유, 임페리얼 드림XO, 아인슈타인 우유’ 웬만한 한국 사람이라면 한번쯤 먹어봤음 직한 낯익은 유가공 식음료 제품들은 모두 한 기업에서 탄생했다. 남양유업을 창업한 고 홍두영 명예회장은 한국 낙농업의 대부로 불린다. 라이벌인 매일유업 고 김복용 창업주와 같은 이북 출신으로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나 1951년 1·4 후퇴 때 월남해 1964년 지금의 남양유업을 세웠다. 2010년 영면하기까지 46년을 불모지 같았던 한국 낙농산업을 개척하고 좋은 유제품을 만들기 위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우리 기술로 직접 분유와 우유를 생산해야 한다”는 홍 창업주의 생각은 우유, 조제분유, 발효유, 치즈, 커피, 음료 등 200여가지 제품 속에 시장점유율 60% 이상의 분유, 이유식 히트 상품들을 쏟아냈다. 한눈 팔지 않는 실속 경영 속에 승승장구하며 연매출 1조원대를 달성했던 남양유업은 2013년 ‘갑질’ 파문을 겪으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기도 했다. 홍 명예회장은 1954년 부산에서 비료를 수입하는 남양상사를 창업했지만 8년 만에 화폐개혁으로 전 재산을 날려버렸다. 첫 사업에 실패한 홍 회장은 이후 깐깐한 짠돌이라고 불릴 정도로 보수적인 경영을 펼쳤다. 분유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1963년 선진국 출장길에서였다. 분유를 마음껏 먹고 있는 외국 아기의 모습을 본 그는 한국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고국의 아이들을 떠올렸고 이듬해 남양유업을 설립했다. 1965년 충남 천안에 첫 공장을 짓고 자가 생산 체제에 들어간 홍 창업주는 1967년 유아용 제조분유인 남양분유를 출시, 대박을 터뜨렸다. 10년 뒤인 1977년에는 유산균 발효유 남양 요구르트를 개발해 히트시켰고 이듬해 유업계 최초로 주식을 상장했다. 홍 창업주는 한국 낙농산업의 기반을 닦는 데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아 철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 등을 받기도 했다. 가업의 바통을 넘겨받은 이는 장남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다. 홍 회장은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때인 1973년부터 틈나는 대로 회사에 나와 입출금 전표를 정리하면서 30년 가까이 남양유업의 업무를 살펴왔다. 1990년 4월 홍 창업주가 회사 사장 자리를 홍 회장에게 물려준 건 업무 외에도 약속이 없으면 늘 점심을 같이해 주는 아들의 극진한 효심도 한몫했다. 1977년 기획실 부장으로 정식 입사한 홍 회장은 상무, 전무를 거쳐 10년 만에 부사장에 오른 뒤 1990년대 사장을 거쳐 2003년 회장이 됐다. 기업들이 줄도산하던 1997년 외환위기 때도 20% 이상 성장을 이뤘고 1998년에는 은행차입금을 전액 갚으며 무차입 경영의 원조가 됐다. 사장 재임 당시 불가리스, 아인슈타인 우유, 아기사랑수 분유, 이오 등 히트작을 내놓으며 입사 당시 200억원 수준이었던 매출 규모를 1조원대로 키워 놨다. 현재 계열사는 부동산임대업인 금양흥업과 음료제조업인 남양F&B가 있으며 지분 100%를 남양유업이 갖고 있다. 그러나 좌절이 없을 것 같았던 남양유업은 2013년 초 ‘대리점 밀어내기’와 ‘욕설 우유’ 등 갑질 파동을 겪으며 일부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전개, 영업이익이 2012년 474억원에서 2013년 -220억원, 2014년 -261억원으로 적자로 떨어졌다. 매출액도 3년 연속 하락해 지난해 1조 1263억원으로 2012년(1조 3403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급감했다. 여기에 홍 회장이 동생 홍우식 대표가 운영하는 서울광고에 남양유업 광고를 99% 몰아주면서 논란이 일었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과징금 폭탄, 지난해 탈세 혐의로 홍 회장이 검찰에 기소되는 등 악재가 겹쳤다. 황제주로 불렸던 주가도 2013년 4월 114만 9000원(종가 기준)에서 현재 70만 8000원(23일 종가 기준)으로 40%가량 하락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의 외환보유고 얼마나 될까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북한의 외환보유고 얼마나 될까

    한국의 외환보유고는 지난 2월 말 기준으로 3623억 7000만 달러(약 396조 8600억원)로 전달에 비해 1억 8000만 달러가 증가했다. 이는 중국(3조 8430억 달러), 일본(1조 2611억 달러), 사우디아라비아(7345억 달러), 스위스(5854억 달러), 대만(4159억 달러), 러시아(3762억 달러)에 이어 7번째로 많은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북한의 외환보유고는 어떻게 될까? 북한 경제는 2011년 이후 소폭이지만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최근 광산물 수출액 급증과 해외파견 근로자 소득 확보 등으로 인해 외화 수급 흑자를 달성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북한 경제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그렇지만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외환보유고를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10일 “외환 수급을 둘러싼 중앙은행의 기능이 사실상 붕괴되면서 외환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추정하는 것이 북한 연구자들의 오랜 시도”라며 “그래서 여러 가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추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北 특유의 폐쇄성 영향 외환보유고 추정 불가 북한의 외환보유고와 관련해 비교적 믿을 만한 연구를 한 사람으로는 한양대 경제금융학과 장형수 교수를 꼽을 수 있다. 장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북한은 국제사회와의 교역을 통해 1991~2012년 22년 동안 모두 179억 달러(약 19조 6000억원)가 넘는 무역적자를 봤다. 특히 2005년 이후 북한의 무역수지 적자는 2011년을 제외하고 매년 1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2008년에는 사상 최대인 15억 5000만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외환보유고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항목별 추정치를 구성해 이를 더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우선 코트라가 북한의 교역상대국 무역통계를 역추정해 발표하는 KDI시리즈가 비교적 믿을 만한 통계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무기수출입과 외국 항공기의 북한 영공 통과료 등으로 구성된 서비스수지, 개성공단 외화수입, 해외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의 수입 등이 북한이 보유한 외환보유고를 추정할 수 있는 주요 요소로 볼 수 있다. 북한은 1990년 구 소련이 달러나 파운드 등으로 무역 결제를 하겠다고 선언한 뒤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달러가 필요 없이 무상원조 개념으로 받던 것이 사라지면서 1991년부터 1995년까지 5년간 8억 4000만 달러의 적자를 본 것으로 추정됐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았던 북한은 1995년 ‘한국판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같은 북한판 IMF 사태를 맞을 뻔한 고비를 겪었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1998년까지 연속 적자를 기록하다 그해 국제사회의 무상지원이 계속되면서 처음으로 외화수급에서 흑자를 맞았다. 이후 2000년까지 3년간 17억 8000만 달러의 돈이 북한으로 순유입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외화수급 흑자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2년 10월 북핵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의 중유공급 중단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인해 경제적 타격이 심각해지면서 외화는 다시 부족해졌다. 여기에 무기 수출과 불법 거래 역시 타격을 받았다. 2002년 3억 4100만 달러로 추정됐던 외화수급 흑자는 2003년 9억 9000만 달러, 2004년 6억 3000만 달러 등으로 급감했으며 2006년에는 결국 마이너스 2억 9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2007년 영변 핵시설 불능화 단계 조치 이후 이뤄진 미국과 북한의 2·13 합의 등으로 인해 중유공급이 이뤄지면서 2007년과 2008년 각각 3억 2000만 달러와 2억 4500만 달러의 흑자로 돌아섰다. ●1995년 IMF 사태와 같은 외환위기 겪어 이명박 정부 들어 비료와 쌀 지원이 중단되고 2008년 7월 박왕자씨가 금강산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지만 북한의 외화수급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2008년 6자회담 결렬과 2009년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으로 인해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된 것이 외화수급에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인지 2009년과 2010년 외화수급은 각각 마이너스 8200만 달러와 마이너스 26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북한은 이를 만회하기 위해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통해 개인과 기관의 외화 보유를 금지해 지하경제에 남아있던 외화를 짜내는 데 주력했다. 일부에서는 당시 화폐개혁이 북한 정권의 외화통제력 약화와 관련 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북한의 외화수급은 생각보다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2011년 12월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한 뒤 세습 확립을 위해 외화수요가 평소보다 많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인한 해외자원 수입 및 수요 증가에 따른 국제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북한 역시 혜택을 보게 됐다. 이와 관련해 연간 최소 3억 달러 이상의 외화가 북한으로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이 구 소련 붕괴 이후에도 줄곧 건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의 외환보유고가 얼마나 됐건 간에 일정 액수 이상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무역 규모가 증가하면 외환보유고도 증가하게 된다. 그런데 북한의 무역 규모는 1997년부터 증가 추세다. 다만 전체 외환보유고 중에서 장거리 미사일과 핵 개발 비용은 일정 부분 제외해야 한다. 즉 총액이 얼마일지는 몰라도 대략 28억~32억 달러 정도의 미사일과 핵 개발 비용은 제외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와는 별도로 지하경제에 숨어든 외화 역시 상당 액수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무역회사를 정리하고 노동당, 군에 대한 감찰, 외화 사용 금지 등을 통해 외화 통제력 확보를 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최근 북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휴대전화 보급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외화를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즉 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외화로 구입해야 하며 서비스 가입비도 외화로 납부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입비는 140달러이며 휴대전화 가격은 2012년 평균 300달러 정도인데 원가는 대략 80달러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근거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대략 240만명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할 때 가입비로만 3억 3600만 달러, 휴대전화 판매 차익으로 5억 2800만 달러 등 모두 8억 6400만 달러의 외화가 주민에서 당국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는 상당한 액수로 북한의 외화수급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휴대전화 보급도 시중의 외환 모으기 일환 북한 내 외화 유통현상이 확산되면서 북한 경제에도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달러나 중국 위안화의 유통이 확산되면서 초기에는 물가상승이 수반되지만 외화 통용현상이 상당 정도로 진행되면서 안정적 가치를 가진 거래수단이 확보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오히려 이 때문에 불안정이 해소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이 같은 긍정적 영향 외에 부정적 영향도 있다. 북한 화폐를 이용한 경제정책 집행이 힘들어지면서 계획경제 및 국영기업에 대한 재정지원 수단이 상실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으로 기업의 유동자금을 지원하던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현대경제연구원 홍순직 통일경제센터장은 “북한의 수출입 비율을 굳이 비교하자면 1대2에서 최근에는 2대3으로 늘어나면서 외화수급 역시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부하리 나이지리아 새 대통령

    [피플 인 포커스] 부하리 나이지리아 새 대통령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나이지리아 대선에서 당선된 무함마두 부하리(72) 후보가 30년 만의 화려한 컴백에 성공했다. 육군 소장 출신인 부하리는 1540만표를 얻어 1330만표에 그친 인민민주당(PDP) 소속의 굿럭 조너선 현 대통령을 제치고 PDP의 16년 장기 집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동시에 1983년 12월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뒤 불과 20개월 만에 또 다른 군부 쿠데타로 권좌에서 밀려난 상처를 씻고 재집권하게 됐다. ●WP “원칙주의자이자 실패한 독재자”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3전 4기의 대선 도전 끝에 ‘만년 2등’이란 꼬리표를 떼고 대권을 거머쥔 부하리는 독실한 무슬림이요 원칙주의자다. 실각 이후 무려 30년간 고향인 북부 카치나주 다우리의 허름한 2층집에 머물며 권토중래를 노렸다. 음주와 흡연을 자제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로도 유명하다. 대선 개표를 고향집에서 이슬람 전통 의상인 하얀색 카프탄과 모자를 착용하고 지켜봤을 정도다. 신문은 이날 부하리의 자택 밖에는 오래된 중고차 1대만이 세워져 있었고,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부정부패를 청산할 부하리의 상징으로 여겼다고 전했다. WP는 이와 함께 부하리를 ‘실패한 독재자’ ‘대중영합주의자’로 묘사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뒤 영국에서 사관학교를 나온 그는 주지사, 장관, 공사 최고경영자 등을 역임하며 정치에 눈을 떴다. 정권 장악 뒤에는 화폐개혁과 부정부패 추방 운동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었으나 지나친 비상조치 단행에 역풍을 맞았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첫 평화적 정권 교체에도 여전히 불안 주요 외신들은 이 같은 이유로 첫 평화적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인구 1억 7000만명의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의 운명을 긍정하지 못하고 있다. CNN은 특집 기사에서 농업, 유목에 의지하는 북부 지역의 지지를 얻은 부하리가 이 지역에서 준동해 온 보코하람을 청산하고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 유가 하락으로 휘청이는 경제를 되살릴 것이란 기대감에 당선됐다고 분석했다. 부하리는 지난달 영국 런던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전향한 민주주의자’라고 소개했는데 청렴·강직한 이미지 못잖게 유연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WP는 소개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돈 떼일라” 은행 기피…月 20% 고리대금 성행

    [서울&평양 경제 리포트] “돈 떼일라” 은행 기피…月 20% 고리대금 성행

    김천균 북한 조선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3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건설에서 제기되는 자금 수요를 국내 자금을 원활하게 회전시키는 방법으로 충족시켜 나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면서 “그 일환으로 새 금융상품 개발과 인민 생활 영역에서 카드 이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김일성종합대학은 지난해 학보 논문을 통해 “유휴 화폐자금 동원 형태를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이용하는 데서 중요한 것은 현실 발전의 요구에 맞게 현금카드 등을 적극 개발해 이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 당국이 카드 사용을 장려해 시중에 숨어 있는 돈을 끌어내고 국고를 풍성하게 채우려는 시도로 보인다. 북한에서 현금 카드는 자신의 은행 계좌에 미리 돈을 넣어 놓고 그 예금 범위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직불카드 개념이다. 이는 그만큼 북한 신흥 부유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어나고, 개인 간의 사(私)금융도 활성화돼 있음을 반영한다. 북한에서 금융이란 “국가은행을 중심으로 화폐 자금을 계획적으로 융통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제관계”로 정의된다. 따라서 북한에는 공식적으로 금융시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국가와 같은 단기 자본시장, 증권시장도 없다. ●당국 카드 사용 장려… 지하 자금 양성화 북한의 금융 체계는 중앙은행의 강력한 통제와 감독에 의해 움직이는 단일은행제도를 기본 축으로 한다. 대내 금융 사업을 관장하는 조선중앙은행을 포함한 은행과 국가보험기관, 협동적 신용기관, 투자기관 등의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구성돼 있다. 은행은 조선중앙은행뿐 아니라 전문 분야 업무를 수행하는 무역은행 등 몇 개의 특수은행으로 구성됐다. 특히 1946년 설립된 조선중앙은행은 발권뿐 아니라 시중은행 업무도 겸하고 있다. 북한은 주민 간의 금전 거래는 허용하지만 이자나 이자 형태의 물건을 주고받는 대출 계약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개인이 서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 같은 비공식 사금융 시장이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2007년 형법에 ‘고리대죄’를 신설해 고리대를 통해 이익을 얻은 자에게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을, 이익의 규모가 크면 2년 이상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까지 받도록 했다. ●조선중앙은행 통제·감독… 단일은행 체제 사금융의 성행은 기본적으로 북한 은행이 국가에 의해 관리·통제되고 개인의 재산을 믿고 맡길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심화됐다. 사적 자본이 지하경제로 숨어들고 있는 셈이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13일 “북한 은행은 국가적인 의미로만 필요한 것으로 주민의 실제적 이용과는 별 관련이 없다고 보면 된다”면서 “주민에게 저축을 권장하지만 돈을 은행에 맡기면 맡긴 돈의 출처에 대한 의혹이 생기고 필요할 때도 마음대로 찾아 쓰기 어려워 은행 이용을 기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주민의 현금을 은행에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12년 평양의 민사협조은행이 소개한 외화저금 안내문을 입수해 북한 은행의 이자율에 대해 밝혔다. 일반 예금을 의미하는 보통저금은 연 이자율이 1%, 일정 기간 계속 돈을 입금해야 하는 정기저금은 1년에 6%, 10년에 9%의 연 이자율이 제공됐다. 하지만 주민의 호응은 미지수다. 탈북자 출신인 김영희 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은 “은행 이자율이 과거에는 연 3.5% 정도였고 당국도 저축을 유도하려 하지만 은행에 맡기는 것보다 개인에게 빌려주면 10~20%의 높은 이자를 받을 수 있어 굳이 저축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시중의 화폐를 금융기관에서 환수하는 것이 어렵자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축적한 돈을 국가로 귀속시키는 ‘몰수형’ 화폐개혁을 했다. 북한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다섯 차례 화폐개혁을 했지만 가장 최근인 2009년 11월 30일부터 1주일에 걸쳐 단행한 제5차 화폐개혁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 났다. ●5차 몰수형 화폐개혁 실패 주민 원성도 북한은 국영기업의 자금이 고갈되자 사영시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구화폐와 신화폐를 100대1로 교환하도록 했다. 하지만 교환 가능한 금액을 가구당 10만원으로 한정하고, 나머지 금액은 국가에 바치거나 은행에 맡겨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특히 주민 중 일부 특권층은 북한 화폐를 믿지 못해 진작 금, 미국 달러, 유로화, 중국 위안화 등으로 재산을 축적했지만 북한 돈을 많이 보유한 시장 장사꾼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화폐개혁 이후 사적 시장의 인플레이션은 가속화됐고 국영 유통망의 공급 능력이 확대되지 않은 채 시장 거래가 위축돼 주민의 생계가 위협받게 된 것이다. 장사꾼이나 돈이 있는 주민이 북한 돈 대신 외국 돈(미국 달러, 중국 위안화)을 선호하게 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북한 돈(내화)은 별 가치가 없다고 ‘국돈’, ‘똥펄’, ‘종이장’ 등으로 비하됐다. 일반 인민은 여전히 북한 돈을 사용하지만 장마당 등에서는 웬만한 물건을 달러로 거래한다. 달러를 교환하는 ‘돈장’이 장마당 주변에 형성돼 있고,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는 ‘돈데꼬’라고 불리는 돈 장사꾼이 배회하고 있다. 북한은 특히 1998년 개정 헌법을 통해 가축, 살림집(주택)을 비롯한 주택 외 일반 건물에 대한 개인 소유를 허용했다. 텃밭 경작이 확대되는 등 개인 소유가 나름대로 늘어났고 식당, 오락실을 겸한 컴퓨터 상점, 비디오 관람방, 목욕탕, 안마소, 노래방 등의 개인 사업도 확대되는 추세다. 어느 정도 마련된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돈 장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달러 교환 ‘돈장’·환전상은 ‘돈데꼬’로 불려 북한은 2005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실리’라는 이름의 현금 카드를 처음으로 발행했다. 이를 통해 평양호텔, 창광외국인숙소식당 등 10여개의 가맹점에서 사용하게 했다. 2010년에는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첫 현금 카드 ‘나래’를 발행하고 이듬해 고려은행이 ‘고려’ 카드를 발행했다. 나래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평양의 호텔과 외화상점 등 12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당국으로서는 카드를 사용하면 돈의 흐름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이점”이라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도 카드 사용이 편리하고 부를 과시하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활성화 가능성을 평가했다. 북한 전역에는 월 20%의 높은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고리대금업이 보편화돼 있다. 이는 2002년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 이후 배급 제도가 중단되자 주민 대부분이 장사로 생계를 해결하면서 장사 밑천이 부족한 주민들을 중심으로 확산됐다. 이자가 높은 이유는 고리대금이 불법이라 위험비용(리스크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다. ●고위관리, 부하에 돈놀이… 직원은 서민에 사채 돈주들은 개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 반드시 그 사람이 소유한 재산을 고려하며 지급할 수 있는 능력 한도에서 빌려준다. 만약 10만원을 6개월 단위로 빌려줄 때는 한 달에 20%씩 계산해 원금 외에 12만원을 이자로 돌려받는 식이다. 화폐개혁 이전까지는 북한 고리대금업자가 한 달에 15%라는 이자를 붙여 개인에게 돈을 빌려줬고 하루에 1%씩의 이자를 붙인 사례도 있다. 특히 상당수의 고급 관리도 자신의 돈을 불리기 위해 부하 직원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하기도 한다. 자칫 돈을 빌려줬다가 떼일 염려가 있기 때문에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부하 직원이 대상인 것이다. 고위 관리로부터 돈을 빌린 직원도 다시 이 돈을 잘게 쪼개 다른 서민에게 이자를 붙여 돈놀이를 할 수 있다. 돈놀이를 하는 사람 중에는 현직에 있을 때 모아 놓는 돈으로 이자놀이를 해 돈을 불리는 퇴직 관리도 많다. 임 교수는 “사금융을 공적 금융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고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경제주체들의 사채 의존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면서 “북한의 사금융 확산은 금융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단독] 北, 5000원권 화폐 교체 예정

    [단독] 北, 5000원권 화폐 교체 예정

    북한이 김일성 주석이 그려져 있는 자국 화폐 단위의 최고액인 5000원권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 차원이란 분석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의 화폐를 유통시키는 방식으로 내부 경제를 단속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북소식통은 30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이 기존 5000원권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진이 같이 들어가 있는 신권으로 교체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기존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화폐개혁과 달리 이번에는 신권을 유통하면서 구권을 천천히 교환할 것”이라고 전했다. 북한이 새로운 디자인의 화폐를 발행하는 것은 외견상 김정은 정권의 지속적인 김일성, 김정일 우상화 정책의 일환인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북한이 고액을 보유한 개인들을 무력화시키고 정부의 화폐 통제력을 높이기 위해 전격적으로 화폐 개혁을 단행했던 1992년과 2009년 등의 전례에 비춰 보면 이번에도 ‘내부 통제’의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신권 발행으로 자연스럽게 고위층들이 ‘장롱’에 숨겨 놓은 돈이 바깥으로 흐르도록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미다. 화폐 단위를 변경했던 2009년 화폐개혁은 당시 인플레이션과 재정 악화 문제를 해결하고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권력 승계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로 북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김영일 내각 총리가 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전격 경질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에도 북한은 몇 가지 개혁안을 검토했지만 주민들의 불만을 감안해 신권을 교체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대북소식통은 “지난 25일부터 중앙은행 공고가 인민반과 직장 및 단위들에 통보됐다”면서 “과거에는 사전 공지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던 것과 사뭇 다르다”고 밝혔다. 2009년 화폐개혁 때 발행한 북한 5000원권은 앞면에는 김 주석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김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 초가집이 그려져 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1조원대 비리·여론 탄압’ 총리 손 들어준 터키

    ‘1조원대 비리·여론 탄압’ 총리 손 들어준 터키

    터키 지방선거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이 압승했다. 1조원대 부패자금 등 비리 스캔들과 트위터·유튜브 차단 등 여론 탄압에도 국민은 그의 경제 치적을 높이 평가했다. AFP통신은 30일(현지시간) 개표율 95% 상황에서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전국 득표율 45%를 기록해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의 득표율 28.5%를 크게 앞섰다고 보도했다. 정의개발당이 목표로 제시한 2009년 지방선거 득표율(38.8%)을 웃돌았을 뿐 아니라 최다 득표율을 기록한 2011년 총선(49.8%)에도 근접한 수준이다. 에르도안 총리는 앙카라 정의개발당 당사 앞에 운집한 수천명의 지지자에게 “우리에게 승리를 안긴 신에게 감사한다”면서 “터키는 굽히지 않을 것이며 패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총리는 지난해 5월 말 이스탄불 도심 탁심광장 재개발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촉발된 시위로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에르도안 부자가 약 1조원에 이르는 현금을 어떻게 은폐할지 궁리하는 녹음 파일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와 유튜브를 차단하며 강경책으로 맞섰다. 에르도안 총리는 이번 승리로 정치적 재신임에 성공하며 8월 치러지는 최초의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2012년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고 대통령 권한을 강화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리가 권한을 행사하는 내각책임제다. 당규를 개정해 총리 4연임에 도전할 가능성도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2001년 정의개발당을 창당하면서 의원직을 3연임으로 제한하는 당규를 제정했다. 집권당의 승리는 이슬람 보수세력, 종교집단, 노동자집단의 견고한 지지 덕분이다. 2003년 취임한 그는 부실 은행을 정리하고 재정 지출을 줄여 경제 위기를 타개했다. 화폐개혁 단행 등 선진화 전략으로 터키 경제를 호황으로 이끌었고 유럽연합(EU) 가입도 추진 중이다. 실제로 그의 승리가 예견되면서 터키 주가와 리라화가 상승하기도 했다. 결국 경제 치적을 내세운 선거 전략으로 지지층을 결집한 것이 승리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야당들이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것도 여당에 도움이 됐다. 집권당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 터키가 안정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에르도안 총리는 승리 연설에서 정적인 페툴라 귤렌을 겨냥해 “우리는 반대파의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귤렌은 이슬람 사상가로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망명 중이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감을 얻은 에르도안 총리는 귤렌 측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별도로 트위터 및 유튜브 접속 차단과 관련해 법원이 트위터 전면 차단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유튜브 건도 소송이 진행 중이어서 당분간 터키 정국은 혼란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대한제국 시절 ‘20원 금화’ 경매서 1억5000만원 낙찰

    대한제국 시절 ‘20원 금화’ 경매서 1억5000만원 낙찰

    대한제국 시절 만들어진 ‘20원 금화’가 1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 수집용 화폐 전문업체인 화동양행은 지난 15일 연 희귀 화폐경매 ‘화동옥션’에서 광무(光武) 10년인 1906년 제조된 20원 금화가 이날 경매 최고가인 1억 5000만원에 낙찰됐다고 16일 밝혔다. 1908년 만들어진 5원 금화는 6200만원, 1906년 제조된 10원 금화는 4300만원에 낙찰됐다. 화동양행 관계자는 “이번 경매에 나온 금화 3종은 최초의 근대 금화이지만 통용되지 못해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주화”라고 설명했다. 고종 때 화폐개혁으로 인쇄된 국내 최초의 지폐 호조태환권은 6400만원에 낙찰됐다. 호조태환권은 2010년 화동옥션에서 9350만원에 팔린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평가액인 8000만원의 80% 수준에서 팔렸다.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호조태환권’ 경매에 나온다…대표적인 현존 최고의 희귀화폐

    ‘호조태환권’ 경매에 나온다…대표적인 현존 최고의 희귀화폐

    지난해 9월 한국전쟁 중 미국으로 유출되었다가 62년만에 한·미 당국의 협조로 문화재 환수 차원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호조태환권 인쇄판(원판)’으로 실제 인쇄가 되었던 ‘호조태환권’이 국내 화폐 경매에 나온다. ‘호조태환권’은 1893년 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폐다. 대한제국 당시 고종의 경제 근대화를 위해 추진했던 화폐개혁에 의해 만들어 졌으나 개혁 실패로 유통되지 못하고 대부분 소각돼 현재는 가장 희귀한 지폐 중 하나로 통한다. 이번에 나오는 호조태환권은 8000만원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역대 한국에서 경매에는 단 두 차례만 나왔고 2010년 화동옥션에 나왔던 호조태환권은 9250만원에 거래된 바 있다. 이번 경매에는 ‘을유 시주화’, ‘건양 시주화’, ‘태극휘장 시주화’, ‘대한제국 금화’ 등도 역사적 가치와 희귀성이 높아 화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주화 중 가장 희귀한 주화인 ‘을유 시주화’는 1885년에 발행된 우리 나라 최초의 근대 주화로써 시주화로 만들어 졌지만 바로 사장되어 국내 최대 규모인 이번 경매에도 처음 나왔으며 평가액은 7500만원이다. 1895년 11월 청일전쟁 이후 청나라가 조선이 독립국임을 확인함에 따라 발행된 ‘건양 시주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기념주화다. 1896년 친러파의 득세로 ‘역적의 돈’이 돼 버려 사라짐에 따라 진귀해 진 주화로 지난 40년간 단 몇 개만 거래됐고 경매에는 처음 나온다. 이번에 나온 주화의 평가액은 6500만원으로 추산된다. ‘태극휘장 시주화’는 1886년에 발행돼 15종의 주화가 단 30세트만 만들어져 희귀해 진 경우다. 이중 10종의 주화가 경매에 나오는데 평가액의 합계는 2억 600만원이 넘는다. 1900년대 초 최초의 금화로 만들어졌다가 통용되지도 못하고 바로 용해돼 버린 ‘대한제국 금화’ 3종 역시 세계적으로도 희귀해 각국 수집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됐는데 경매에 나온 5원 금화(1908년)는 당시 금 1돈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 평가액은 7000만원에 이른다. 10원 금화(1906년)는 4000만원, 20원 금화(1906년)는 1억 5000만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외 통화 및 화폐 수출입 판매 전문기업인 풍산 화동양행 관계자는 “한국 근대사의 숨은 이야기의 매개가 되는 이들 화폐는 희귀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화폐들의 경매는 오는 15일 서울 충정로 풍산빌딩에서 개최된다. 문의 (02)3471-4586~7.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화폐 개혁·평양 재건 실패 책임도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장성택을 처형하면서 자신이 주도했던 2009년 화폐개혁 실패와 평양 주택 10만호 건설 중단 책임까지 뒤집어씌웠다. 후계자 시절부터 추진해 왔던 경제 조치들이 오히려 북한 경제에 혼란만 가져와 통치행위에 오점을 남기자 장성택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장성택과 그 세력을 처단해 반란의 싹을 제거하고 유일 지배체제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완전무결’한 상태에서 김정은 시대의 2막을 열어젖히려는 다중 포석으로 해석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를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남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 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 조종한 장본인이 바로 장성택”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화폐개혁이 사회 및 경제 전반에 불안만 초래하자 2009년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에게 책임을 물어 총살했다. 박남기에 이어 장성택까지 줄줄이 김 제1위원장의 독배를 대신 마시게 된 셈이다. 북한이 평양시 수도건설 사업을 장성택이 방해했다고 언급한 부분도 눈에 띈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추진했던 평양 주택 10만호 건설 사업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사업 역시 자금난·자재난으로 큰 차질을 빚으며 목표의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끝나 김정은의 리더십에 손상을 입혔다. 화폐개혁과 주택건설은 모두 북한 주민들의 실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사업이란 점에서 민심을 얻기 위해 김 제1위원장이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걸림돌이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김정은式 공포정치 서막… 당분간 北관리들 맹목적 충성 바칠 듯

    [北 장성택 전격 처형] 김정은式 공포정치 서막… 당분간 北관리들 맹목적 충성 바칠 듯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원에게 뒷덜미를 제압당한 채 포승줄에 묶여 특별군사재판장에 끌려 들어가는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마지막 모습은 권력의 야심을 한번이라도 품어봤던 북한 간부라면 간담이 서늘할 정도로 처참했다. 북한은 13일 오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김일성 주석의 유일한 사위이자 북한 정권의 실세였던 장성택의 처형 사실을 대대적으로 발표한 데 이어 조선중앙TV에 특별방송을 편성, 세 차례 반복 보도했다. 광복 이후 북한 정권 수립 이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가문의 친·인척 중에서 사형 사실이 공개된 인물은 장성택이 유일무이하다. 장성택의 공개 처형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죽음을 앞둔 수치스러운 모습이 만천하에 생중계되다시피 하면서 그는 최소한의 인간적 존엄마저 말살당했다. 북한 주민들의 공포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장성택 처형 당시 기관총으로 사살한 뒤 그의 시신을 화염방사기로 태웠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11일 북한이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연관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은하수관현악단의 포르노 제작 혐의와 관련, 소속 예술인들을 4신 기관총(총신이 4개인 소구경 기관총)으로 처형한 뒤 화염방사기로 재를 만들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라면 누구라도 비참한 최후를 맞게 한다는, 잔인하고 극단적인 ‘김정은식(式) 철권공포정치’의 서막이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은 장성택 세력이 완전히 뿌리 뽑히고 자신의 유일 지배체제가 확립됐다고 여겨질 때까지 공포정치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길게는 향후 2~3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숙청 범위는 당과 정부기관뿐만 아니라 장성택과 연계된 군부의 전직 고위인사들에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장성택을 처단한 칼끝이 누구에게 향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분간 북한의 관리들은 김 제1위원장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바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지난 11일부터 노동신문에는 리만건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김평해 당 간부부장, 전승훈 내각부총리, 렴철성 군 총정치국 선전부국장 등 북한의 주요 간부들이 작성한 ‘충성의 글’이 경쟁적으로 실리면서 여론몰이용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극단적 공포정치가 단기적으로는 김 제1위원장의 유일 지배체제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공포심만으로 국가를 지탱할 인재를 키우고 충성스러운 부하를 얻어 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권력 구조에 균열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소장은 “단기적으로는 권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유능한 간부들을 내치면서 체제의 효율성은 현저히 저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키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보신주의’, ‘눈치보기’가 간부사회에 팽배해져 결국 김 제1위원장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외화벌이와 경제관리 개선조치 등 국가 정책의 추동력이 떨어지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공포정치 자체가 북한 붕괴의 시작점”이라며 체제 내구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북한에 휴대전화 가입자 수가 200만명을 넘어선 상황에서 화폐개혁 등의 정책 실패를 장성택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짓 선전이 예전처럼 먹히지 않아 민심 이반 현상이 예상보다 더 빠르게 일어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속보]北 장성택 사형 판결 뒤 즉시 집행…40년만에 ‘2인자’ 삶 마무리

    [속보]北 장성택 사형 판결 뒤 즉시 집행…40년만에 ‘2인자’ 삶 마무리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북한이 전날 특별군사재판을 열고 장성택에 사형을 판결한 뒤 즉시 집행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됐다”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밝혔다. 북한 형법 제60조는 국가전복음모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장성택은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반당반혁명종파행위자’로 지목돼 끌려나간 지 나흘 만에 생을 마감했다.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 시절인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장성택의 ‘2인자 삶’은 40여 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통신은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입증되고 피소자에 의해 전적으로 시인됐다”면서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 것을 확증했다”고 전했다. 이어 “(장성택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역사적 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면서 “영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 할 대역죄를 지었다”고 설명했다. 통신은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타산(계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했다”고 밝혔다. 또 장성택이 자신에 대한 환상 조성과 우상화를 꾀하면서 “당의 유일적 영도를 거부하는 중대 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당 중앙위 부서와 산하기관에 규합하고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며 자신이 있던 부서를 “소왕국”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했한 뒤 “나라의 중요 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어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 수 없는 파국으로 몰아가려고 획책했다”라고 밝혔다. 통신은 장성택이 직권을 악용해 중요 건설단위를 심복들에게 넘겨 돈벌이하도록 하면서 평양시 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는 한편 석탄 등 지하자원을 무단으로 매각하고 나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넘기는 ‘매국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전했다. 통신은 이와 함께 장성택을 2010년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처형된 박남기 전 노동당 부장의 배후조종자로 지목했다. 이밖에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으면서 안일해이하고 무규율적 독소를 퍼뜨리는 데 앞장”섰으며, 은행에서 무단으로 “거액의 자금을 빼내 귀금속을 사들여 국가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고, “자본주의 날라리 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했다”라고 통신은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통편집당한 장성택… 실각 사실로

    통편집당한 장성택… 실각 사실로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이 북한이 방송한 기록영화에서 삭제된 것으로 지난 7일 확인됐다. 또 관영 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서도 장성택과 관련된 기사가 모두 사라졌다. 중앙통신 웹사이트 검색창에 ‘장성택’을 입력한 결과 과거 기사는 나오지 않고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만 떴다. 북한은 그동안 최고지도자의 통치에 걸림돌이 되는 인물을 숙청한 뒤 그가 출연했던 기록영화나 각종 발행물에서 사진을 삭제해 왔다는 점에서 장성택의 실각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0월 7일 첫 방송 이후 같은 달 28일까지 9차례 내보냈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인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이날 오후 재방송했다. 과거 방영된 영화에서 장성택은 김 제1위원장이 리병철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귀엣말을 나눌 때 뒤쪽에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등과 함께 손뼉을 쳤었다. 그러나 이날 방송된 영화에서는 팔과 다리 등 신체 일부만 보일 뿐 얼굴은 눈에 띄지 않았다. 장성택이 김 제1위원장과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아예 그의 모습이 편집됐다. 통일부 정세분석국이 8일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약 1시간 분량의 재방송분 가운데 모두 17곳의 장면이 대체되거나 자르기, 확대의 방식으로 장성택 등장 부분이 없어졌다. 북한에서 해당 인물의 영상과 사진을 삭제한다는 것은 회생이 어려운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는 뜻으로, 오는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행사 때 장성택이 등장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김일성 주석의 둘째 부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대 정적이었던 이복동생 김평일과 김영일의 친모인 김성애와 2010년 실패한 화폐개혁을 책임졌던 박남기 전 노동부장, 2012년 반당·반혁명분자로 낙인 찍힌 리영호 당시 총참모장 모두 숙청된 뒤 기록영화 및 사진에서 삭제된 바 있다. 특히 북한은 당 행정부 고위 간부들을 처형하고 이 사실을 방송을 통해 주민들에게 알리면서 장성택을 ‘곁가지’ 등으로 지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백두혈통’의 사위 지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속보]北 기록영화에서 장성택 지워졌다…장성택 실각 사실인 듯

    [속보]北 기록영화에서 장성택 지워졌다…장성택 실각 사실인 듯

    북한이 기록영화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을 삭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각설을 뒷받침했다. 북한 조선중앙TV는 7일 실각한 것으로 알려진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을 삭제한 기록영화를 내보냈다. 북한은 이전에도 주요 간부를 숙청한 뒤 각종 보도 매체에서 이들 간부의 ‘흔적’을 지우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은 사실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과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이후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계모인 김성애의 사진을 모든 기록물에서 삭제했다. 또 2010년 3월에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형하고 나서 기록영화에서 그의 생전 모습을 모두 없앴다. 조선중앙TV는 지난 10월 7일 첫 방송 이후 같은 달 28일까지 9차례 내보냈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인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7일 오후에 재방송했다. 이날 방송된 기록영화를 과거 방송분과 비교한 결과, 과거에는 담겼던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이 여러 군데에서 삭제됐다. 과거 방영된 영화에서는 김 제1위원장이 한 건물 앞에서 리병철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귀엣말을 나눌 때 뒤쪽에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함께 장 부위원장이 손뼉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방송된 기록영화의 같은 장면에서는 장 부위원장의 팔과 다리 등 신체 일부만 등장하고 얼굴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또 장성택이 김 제1위원장과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장 부위원장이 아예 사라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北 기록영화서 장성택 흔적 삭제…실각설 사실인 듯(종합)

    北 기록영화서 장성택 흔적 삭제…실각설 사실인 듯(종합)

    북한이 기록영화에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모습을 삭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실각설을 뒷받침했다. 중앙TV는 이날 오후 약 1시간 분량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군부대 시찰 기록영화 ‘위대한 동지 제1부 선군의 한길에서’를 재방송하며 종전에 나왔던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을 모두 없앴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주요 간부를 숙청하고 각종 보도 매체에서 이들의 ‘흔적’을 지우는 행태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설이 사실이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 역사에서 사진까지 삭제한 인물이 재기한 예가 없다는 점에서 추후 재기도 불가능해 보인다.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가 된 이후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계모인 김성애의 사진을 모든 기록물에서 삭제했다. 또 2010년 3월에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형하고 나서 기록영화에서 그의 생전 모습을 모두 없앴다. 이날 방송된 기록영화를 과거 방송분과 비교한 결과 예전에 담겼던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이 모두 13군데나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TV는 지난 10월 7일 이 기록영화를 처음 방송한 뒤 같은 달 28일까지 9차례 내보냈다. 과거 방영된 기록영화에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한 건물 앞에서 리병철 항공 및 반항공군 사령관과 악수를 하고 귀엣말을 나눌 때 뒤쪽에서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현철해 전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과 함께 장성택 부위원장이 손뼉을 치는 장면이 나왔다. 그러나 이날 방영된 기록영화의 같은 장면에서는 장성택 부위원장의 팔과 다리 등 신체 일부만 등장하고 얼굴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장성택이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걸어가는 장면에서는 아예 장성택 부위원장이 사라졌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모습을 삭제하기 어려운 장면의 경우 기존에 없던 화면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중앙TV가 이 기록영화를 40일 만에 재방송한 것은 북한 당국의 의도된 행동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선군’ 관련 기록영화가 수십편이나 되는데 장성택의 실각설이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서 장성택의 모습을 삭제해서 내보냈다는 것은 사실상 그의 실각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주려고 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 3일 장성택 부위원장의 핵심측근인 당 행정부의 리룡하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지난 11월 하순 공개처형됐다며 장성택 부위원장이 실각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정일 당·정·군 2000여명 ‘제거’

    북한 권력 숙청의 역사는 김일성 주석 때부터 화려했다. 김 주석은 6·25 전쟁 이후 권력 공고화를 위해 박헌영 등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를 모두 없애버렸다. 김일성파 외에는 모두 숙청당했다. 권력 강화에 반대가 되는 인물들은 모조리 제거한 것이다. 김정일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1968년부터 군부에 대한 견제가 체계적으로 진행되면서 권력에 도전할 가능성이 있는 세력들이 하나씩 척결됐다. 당시 김기선 개성시당 책임비서, 채문덕 사회안전부 정치국장 등 2000여명의 당·정·군 인사들이 직위를 잃었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2009년 후계자로 지목된 뒤에도 현재까지 20여명에 이르는 고위 간부들이 숙청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3월에는 화폐개혁을 책임졌던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숙청됐고, 2011년 1월에는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그해 6월에는 홍석형 경제 담당 비서가 정책 비판으로 해임됐다. 김격식 전 총참모장도 4군단장으로 밀려났으며, 2012년 3월에는 우동측 제1부부장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2010년 6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권력투쟁에서 밀려났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7월에는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 김 위원장의 군부 장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숙청됐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62년만에 돌아오는 대한제국 지폐 원판

    62년만에 돌아오는 대한제국 지폐 원판

    6·25 전쟁 당시 미군이 불법 반출한 대한제국의 지폐 ‘호조태환권’(戶曹兌換券) 인쇄용 원판이 국내로 환수된다. 이는 1960년대 이후 미국으로부터 처음 돌려받는 도난 문화재이자 미국과의 공조 수사를 통해 환수되는 첫 사례로 기록됐다. 문화재청과 대검찰청은 다음 달 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변영섭 문화재청장과 채동욱 검찰총장이 참석한 가운데 성 김 주한 미국대사로부터 호조태환권 인쇄 원판을 돌려받을 예정이라고 27일 밝혔다.호조태환권은 1893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화폐개혁을 단행하며 찍은 구화폐 회수용 교환권으로 실제 유통되지는 않았다. 상설 조폐기관인 인천전환국이 5냥, 10냥, 20냥, 50냥 등 네 종류의 호조태환권을 찍기 위한 원판을 만들었는데, 그중 덕수궁에 소장됐던 10냥짜리 원판을 6·25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라이오넬 헤이스가 1951년 미국으로 불법 반출했다. 헤이스의 유족은 2010년 미 미시간주의 경매회사를 통해 원판을 재미교포 수집가인 윤모(54)씨에게 3만 5000달러에 판매했다. 미국 연방이민세관단속국(ICE)은 올해 초 호조태환권 원판을 경매 처리한 경매회사 대표와 구매자인 윤씨를 긴급 체포했다. 반출된 원판은 가로 15.8㎝, 세로 9.5㎝, 무게 0.56㎏의 청동 재질 판이다. 중앙에는 ‘십냥’이라는 글자, 조선 왕실을 뜻하는 세 발톱의 용 두 마리, 꽃 문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대한제국이 근대화된 인쇄술로 만든 최초의 지폐류였다는 점에서 역사·학술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인 혜문 스님은 “미국은 1960년대 이전에도 6·25 전쟁 때 반출한 유물을 반환한 적이 있다”면서 “LA박물관의 문정왕후 어보도 조만간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씨줄날줄] 장롱 속의 신사임당/오승호 논설위원

    고액권 발행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을 당시, 반대론자들은 불법 증여나 뇌물 제공 등으로 악용돼 지하경제가 창궐할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돼 있는데, 굳이 고액권을 발행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도 폈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1973년 만원권 발행 이후 물가 상승과 국민소득 증가 등을 감안해 불가피성을 주장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결국 5만원권을 발행하기로 결정하고 지난 2009년 6월 23일부터 공급했다. 10만원권 발행은 추후로 미뤘다. 5만원권 지폐의 인물은 한국은행이 여론조사를 거쳐 신사임당으로 결정했다. 우리사회의 양성평등 의식을 제고하고,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긍정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5만원권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전체 화폐 발행잔액 중 5만원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년 전 49.2%에서 지난 4월 말에는 65.9%로 높아졌다. 그런데 정작 현금자동인출기 등에서는 5만원권이 품귀현상을 빚을 때도 있단다. 일부 부유층들이 5만원권을 뭉치로 인출해 장롱 속에 보관하고 있는 이유가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지난 1분기 5만원권 환수율은 58.6%로 지난해 4분기의 86.7%에 비해 훨씬 밑돈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골드바 인기도 비슷하다. 올들어 한 시중은행의 골드바 월 평균 판매량은 500㎏ 정도로 지난해 200㎏의 2배를 웃돌고 있다. 1962년 6월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긴급 통화개혁조치)을 한 목적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장롱 속 현금을 산업자금화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정축재자나 화교들로부터 회수된 자금이 많지 않아 목적 달성은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중간도매상들이 금을 신고하면 세금의 일부를 감면해 주는 제도(고금 의제매입세액공제)를 시행, 장롱 속 금들이 공식 유통 채널로 나오게 한 적이 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며칠 전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금거래소 설립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부 부유층의 재산은닉 수단인 금거래를 양성화하기 위해서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0년 금거래소 설립 방안을 발표한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같은 목적에서 화폐개혁(리디노미네이션)설이 나돌기도 한다. 하지만 파장이나 비용, 시간 등으로 미루어볼 때 박근혜 정부에서 실행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우리 경제가 소비와 투자 부진으로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자들은 장롱 속 돈이 쌓이는 한 우리 경제에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北 우라늄 광산 노동자들 기형아 출산 등 방사능 피해”

    북한의 핵 실험 및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우라늄 광산 노동자들과 관계 부문 주요 간부들이 방사능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 매체인 데일리NK는 17일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방사능 피해로 인해 일찍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곳 광산노동자뿐 아니라 당 비서 등의 자녀들이 기형아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에 따르면 평산군에는 북한 원자력총국이 운영하는 대규모 우라늄 광산이 있고 3000여명의 광산 노동자가 있으나 이들 대부분이 방사능에 그대로 노출돼 피해를 보고 있다는 설명이다. 소식통은 “우라늄 광산에서 방사능에 노출돼 장애를 갖게 된 노동자를 쉽게 볼 수 있다”면서 “특히 지난 2008년 우라늄 광산 당 비서로 전보 배치된 당 간부의 아들과 딸이 방사능 피해로 서 있거나 걸을 수 없고, 문어처럼 누워만 있어야 하는 기형아로 태어났다”고 설명했다. 소식통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당 간부의 자녀가 이 정도 피해를 입은 것을 보면 현장 노동자들과 가족들의 피해는 더욱 심하다”면서 “당국은 다른 지역 노동자들보다 배급을 많이 주지만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은 승인하지 않아 주민들 사이에서 ‘핵 피해도 대물림되는 억울한 세상’이라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북한은 2009년 화폐개혁 직후 일반 기업소 노동자에게는 북한돈으로 월 3000원의 임금을 지급했으나 우라늄 광산 노동자에게는 7배에 달하는 월 2만원의 임금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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