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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조 화원전」/「근대 고서화전」/전통회화의 다양한 화풍 한눈에

    ◎화원전/안견·김홍도등 당대 걸작 60점 선봬/30일까지 간송미술관/서화전/개화·척사파­근대 10대가 작품 진열/28일부터 학고재 화랑 조선조 대표적인 화원화가들의 작품만을 모은 고미술전과 개화기 전후 근대미술의 10대가 작품을 중심으로한 고서화전이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끈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전영우)부설 간송미술관은 47회째 정기전으로 「조선시대 화원화가전」을 열고있으며(30일까지) 학고재화랑(대표 우찬규)은 5회째 「고서화 소품전」으로 「근대로 오는 길목」주제의 고미술전(28일∼11월13일)을 연다.이 전시회들은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회화양식의 변천과정과 다양한 화풍을 들여다 볼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라는 데서 주목된다. 「화원 화가전」은 도화서 소속의 내로라하는 조선조 화가 46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로 특히 화원 그림만을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화원은 도화원(도화원:나중에 도화서로 개칭)에 소속돼 왕실에서 필요한 장식용 그림과 국가행사의 기록화 등을 맡았던 직업화가.조선시대에는 사대부작가들이 일부 그림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림 그리는 일 자체를 천시해 이 화원들이 남긴 그림이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할뿐 아니라 회화사의 중심을 이룬다.따라서 이번 전시는 화원 그림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그림도 여러점 포함된 이 전시에는 조선 초기 안견에서부터 조선조 최고의 솜씨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구한말 도화서의 마지막 화가로 산수 인물 화조에 두루 능했던 소림 조석진,그리고 심전 안중식등의 작품 60여점이 선보인다.남아있는 작품이 드문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안견을 비롯,그의 제자인 석경·이상좌·이정근·유성업·이정 등의 그림도 소개돼 더욱 눈길을 모은다. 「고서화 소품전」은 이른바 개화파들의 글씨와 근대미술 10대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질 예정이다.「난」그림과 활달한 글씨 솜씨로 이름난 흥선대원군을 포함,오경석,김옥균,유길준,박영효,김홍집 등 개화파들의 글씨와 황현,최익현 등 위정척사파 선비들의 글씨,그리고 그 뒤를 잇는 윤용구,지운영등의 서화가 소개되는 것.또 춘곡고희동을 비롯,묵로 이용우,심산 노수현,청전 이상범,이당 김은호,소정 변관식,의재 허백련 등 근대미술,특히 동양화 10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근대미술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들의 작품에는 글씨건 그림이건 작가마다 강한 개성과 대담한 변형이 많이 나타나며 전체 분위기가 세련미 추구에 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다. 작품 1백51점의 가격을 일일이 공개,이채를 띠게될 이 전시에는 근대 이전의 전통회화중 현재 심사정과 표암 강세황 등의 작품도 곁들여 비교감상의 길을 마련하며 김용준,청계 정종여 등 최근 해금작가의 작품도 함께 내놓을 계획이다.
  • 시인 미당 서정주(이세기의 인물탐구:61)

    ◎팔순에도 샘 솟는 시정… 문단의 거봉/새로운 언어­독특한 깊이로 감동의 운율빚어/어릴적 가난­방랑 벽이 창작욕이 밑거름으로/“내 숨결 그칠 때까지 시어 더듬고 또 더듬겠다” 1948년 선문사가 발행한 미당의 두번째 시집 「귀촉도」에서 김동리 발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나의 유일한 정신상의 재보로서 쌓아왔다. 그의 뇌락불기한 인격과 자유분방한 시혼은 그 처녀시집 「화사집」을 통하여 이미 세상에 그「비늘을 번득인」바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적어도 이 땅에서 시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늘날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이 혹성의 찬연한 광망과 위치에 등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평자들이 미당을 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용되는 명평이다. 「뇌락불기」란 「마음이 작은 일에 구애되지 않고 남에게 구속되지도 않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당의 문학적 족적은 광활하고 높고 깊다. 그리고 훨훨 나는 그의 두루마기 차림처럼 시에 관한한 무장무애하고 무소불위하다. 지금은 문단의 거봉으로 우뚝 서 있지만 미당의 지난 세월은 가난과 슬픔과 방황과 방랑벽으로 그 인생의 절반이 혹독하게 얼룩져 있었다. 어릴 때는 당시를 배울수 있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만14세 되던해 서울 중앙고보에 입학해서 광주학생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적이 있고 고향의 고창고보에 편입했다가 식민지 교육에 반대하는 집단행동으로 또 한번 퇴학을 당했다.다시 서울로 올라와 극예술연구회 연극배우노릇, 마포 도화동 빈민촌에 입주하여 넝마주이 행색으로 쓰레기를 줍기도 했고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교장이며 존경하는 스승인 석전 박한영을 만나 안암동 개운사에서 능엄경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릴때는 당시배워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만주로 건너가 만주곡량주식회사 연길지점에서 경리과직원이 되는가 하면 김좌진장군과 이승만대통령의 전기집필,「옥루몽」등 옛소설 번역으로 생계를 잇다가 인촌 김성수 집안과의 인연으로 동아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내는 등 그의 인생역정은 파란이 깊고 다양하기만 했다. 이토록이나곡절이 심한 방만한 생활덕분에 한때는 자살을 기도하다 미수에 그치고 생명의 존엄을 체험하고 나서야 미당은 비로소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의 활기가 몸속에 용솟음치게 되었다. 그는 마침내 조선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광주 무등산 자연속에서 「난생 처음 보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것」들과 조우하게 되었고 이무렵 「무등을 보며」「학」「상리과원」같은 명품을 연달아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그의 시들은 끊일줄 모르는 시심과 계류와도 같은 운율의 감동을 자아내면서 마치 가을 한낮 거문고 소리처럼 청랑한 운기로 흥취와 운치를 자아내는 것이 일품이다. 그의 탁월한 시업은 과거로의 관념적 도피나 신비주의에 탐닉한 시절이 있었고 영원의 생명에 대한 명상으로 온자하고 정밀한 내면을 구축하면서 「육체적 인간의 본원적 충동을 순화시켜 어느 순간엔가 숭고한 정신적 표현의 극에 도달」한 것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최근 「시와 시학」지에서 시인들이 「교과서에 실리고 싶은 시」로 추천한 「무등을 보며」는 명편중의 명편으로 미당이 아직 38세이던 19 53년 「현대공론」에 발표한 것이다. 그때 이 시를 읽은 젊은 이들은 「구구절절 감명을 사로잡는 명구」라든지 「화살처럼 꽂히는 충격」으로 이를 극구 찬양해 마지 않았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여름 산같은/우리들이 타고난 살결/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란을 기르듯/우리는 우리의 새끼들을 기를 수 밖에 없다…」 미당의 주옥같은 시들을 일일이 다 열거 할 수는 없다. 단지 그가 낳는 시마다 절륜의 절창으로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평론가 유종호는 「창의성 있는 언어구사와 독특한 깊이와 지혜, 상당량의 시편이 그릇 큰 시인의 구비조건이라면 20세기 우리 시인 가운데서 이러한 조건을 가장 보기좋게 구비한 이로 미당」을 드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과연 언어를 부리는 장인적 기술에서나 직관과 상상의 능력에 있어서나 만인이 칭송하는 대가의 반열에 선 그는 한국적 릴리시즘의 탁월한 정형을 만들어냈고 안주를 모르는 시정신으로 한국의 운치와 위엄을 어느 시에서나 감동적으로 증명해 왔다. 해인사 체류시절 미당을 사로잡은 소쩍새 울음소리는 그에게 불치의 슬픔을 느끼게 하는 음향으로 다가와 저 유명한 「귀촉도」와 「국화 옆에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국민학교 시절에 벌써 일본여선생을 흠모하는가 하면 불혹의 나이때도 때때로 여난을 겪게 되어 「나 바람나지 말라고/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놓는/삼천 사발의 냉숫물」은 미당을 엿보게 하는 낭만시인의 일면이기도 하다. ○속과 선을 아는 성품 만년의 그는 인생을 관조하는 허허로운 마음과 가족을 거느린 가부장적 자세를 빌리고 있으나 「속도 알고 선도 아는 복합적인 성격」과 대체로 괴팍과 까다로움이 승한 편이다. 그 한 예로 70년대 초반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초청으로 영국시인 스티븐 스펜더가 한국에 왔을때 그를 환영하는 자리에서 미당은 취중이었는지 한국의 정상다운 자존심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팡이를 휘둘러 「TS 엘리엇이 아니면 돌아가라」고 외친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시인 고은이 한때 주란과 폭소버릇으로 위아래없이 오만방자하게 굴자 처음에는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어지로운 헛웃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다가 가족회의끝에 그를 공덕동에서 추방하고 「고은출입금지령」을 내린 일도 있다. 그의 풍류는 나무와 돌과 침향(심향)과 글씨 그림외에도 난취미가 으뜸이다. 지난 70년 25년간 살아온 공덕동을 떠나 관악산밑 사당동으로 거처를 옮기고는 택호를 쑥 봉자 마늘 산자를 따서 봉산산방으로 붙여놓고 그는 한동안 나무심기와 난수집에 주력했다. 시암 배길기와의 광동보세며 삼중당 일력에 자필 시를 써주고 받은 제주한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류시인 김양식과의 중국춘란에 얽힌 대화는 난향같은 일화다. 당시만도 그가 지닌 서른분쯤의 난들은 「겨우 여중 2학년 정도의 잎만 여남은게 솟아올린채 꽃필날이 아득하기만 한데」 난화부재의 겨울날 김양식이 불쑥 전화를 걸어 「대만에서 구해온 중국춘란이 아주 썩좋게 한송이 피었다」고 자랑삼았던 모양이다.이때 미당의 대답이 걸작이다. 「이웃하나가 명주바지를 입으면 여러 가호가 두루 따뜻한거라는데 나도 그 푼수니 염려말고 잘 만끽하시라」고 했다. 그러자 김양식은 가족들과 휴가를 가게되니 「그 사이 며칠만 돌보아주시며 즐겨보시는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미당은 그제서야 눈이 번쩍 띄게 반가워했고 비록 빌렸을 망정 책상위에 난을 놓고 보고 또 보고 난향을 맡으며 「시의 감동이란 것도 내 생애에서 항용 이런 식으로 일어났다. 내가 소유하는 것에서보다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간절해지는 감동으로 시를 쓴 것이 많았다」고 한 산문에 적고있다. ○커피보다는 맥주 즐겨 그의 정열과 의욕은 식을 줄을 몰라 한때는 영어단어를 하루에 수십개씩 외는가 하면 70년 초반부터는 세계를 두루 일주하며 끝없는 여행길에 오르더니 최근엔 세계의 산봉우리를 높이순으로 1천6백여개나 줄줄이 기억해내는 독특한 취미를 보이고 있다. 미당은 올해 팔순이지만 아직도 그 시작은 그의 방창앞에 심은 소나무처럼 청청한 천뢰의 소리를 잃지 않는 기상이다.요즘도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커피보다는 맥주」를 권하고 제자들이 마련한 시낭독회나 남을 축하하는 자리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지난 9일에는 송파문화원에서 열린 국선문학회에 나와 「국선(국선)」이란 모임이름을 지어주고 후배들의 회장추대를 극구 사양하여 주변을 송구스럽게 했었다. 이제 자기자신을 홀연히 내쳐버리는 무집착의 상태에서 그의 최근의 시들은 글맛이 한층 무르익어「아무 말이나 붙들고 놀리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경지」다. 산다는 것이야말로 사변의 연속이었던 시대를 거치면서 일찍이 김동리가 지적했듯이 미당은 지금도 「내 숨결이 아주 내 육신을 떠날 때까지는 더듬어보고 또 더듬어」 새로운 시에 대한 분방한 광망을 접어두거나 조금도 늦추려들지 않는다. ▷연보◁ ▲1915년 5월18일 전북고창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 출생.서광한씨와 김정현여사의 2남2녀중 장남 ▲1929년 부안 줄포보통학교 졸업.서울 중앙고보 입학 ▲1931년 전북 고창고보2학년 편입,권고자퇴,서울 상경 ▲1935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입학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시 「벽」당선 ▲1936년 시전문지 「시인부릭」편집인겸 발행인 ▲1941년 처녀시집 「화사집」(남만서고)1백부 한정판 출간 ▲19 48년 동아일보 사회부장 및 학예부장,문교부산하 예술과 초대과장 ▲1949년 한국문학가협회 시분과 위원장 ▲1952년 광주 조선대학 부교수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초대회원 ▲1955년 미국아세아재단 자유문학상 ▲1960년 동국대 부교수 ▲1961년 제1회 5.16문예상 ▲1966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1975년 서울 신문회관서 회갑연 ▲1976년 미당시를 주제로한 시화전 서울서 제주까지 6개월간 전시 ▲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장 ▲1979년 동국대 정년퇴임,대우교수로 대학원 강의 ▲1980년 동아일보 문화대상 개인상부문 본상 「귀촉도」「서정주시선」「신라초」「동천」「질마재 신화」「안 잊히는 일들」「늙은 떠돌이의 시」「산시」등 시집 14권,「서정주 문학전집」(전5권) 「서정주 시선집」(전2권)등 시 8백여수와 「서쪽으로 가는 달처럼」등 산문집과 여행기가 있음.
  • 영상산업/“한국영화전용관 설립 필요”/영상발전민간협 정부에 건의서

    ◎제작업체에 조세감면 혜택줘야/종합촬영소건립,인력 양성토록/우수인력에 병역특혜제 도입을/국내현실 열악… 정책적 지원 절실 영상시장은 국내외 할 것없이 잠재력이 큰 시장이다.그러나 국내 현실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지난해 제작된 국산영화는 64편.외국영화는 4백20편이 들어왔다.연인원 4천8백만명이 관람했지만 10명중 8·5명은 국산영화를 외면했다.국산영화의 흥행수입은 2백85억원,국내에서 상영된 외국영화의 5분의1밖에 안된다.지난해 수출한 국산영화는 고작 14편,편당 수출가는 1만1천달러였다.반면 외국영화의 1편당 수입가는 14만3천달러. 『영상산업이 미국의 미래를 책임진다』(엘고어 미국 부통령,UCLA대 강연)『영화에 대한 투자는 경제적 투자다』(미테랑 프랑스대통령). 영상산업은 영화,방송프로,컴퓨터그래픽·게임,영상기기 분야에서 급속히 하이테크화하고 있다.2000년의 세계시장이 4조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일 영상산업발전 민간협의회가 제시한 「영상산업 발전을 위한 건의」는 정책지원을 통해 유치단계의 국내 영상산업을 첨단산업으로 키워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이 내용을 간추린다. ▷관련법 정비◁ 영상산업에 대한 지원근거가 취약하므로 육성을 위한 기본틀로 영산진흥기본법을 제정해야 한다.영화업등록제를 개선하고 의무제작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며 합작영화허가제도 신고제로 바꿔야 한다.문예진흥기금을 영상산업진흥재원으로 쓰고 국산전용영화관을 세워야 한다.극장을 규제하는 법률만 공연법,영화법,주차장법,미성년자보호법,광고물 관리법 등 16가지나 된다.규제를 풀고 사전심의와 수출추천제도 없애야 한다. ▷영상산업 기반조성◁ 영상산업도 공업기반기술개발자금 등 정책자금을 쓸 수 있도록 하고 영화제작업체에 조세감면혜택을 줘야 한다.벤처 캐피털이나 상업어음할인도 제도적으론 가능하지만 관계기관의 인식부족으로 활용도가 낮다.전문인력양성을 위해 한국영화아카데미를 특수대학원이나 국립영화학교로 개편하는게 좋다.연극영화과를 연극과와 영화과로 나누고 첨단영상기술의 관련학과를 신설해야 한다.한국예술종합학교에 영상원을 세우고 미국의 유니버셜 스튜디오같은 종합촬영소를 만들어야 한다. ▷영상기기 및 기술◁ 「쥬라기 공원」이나 「터미네이터」에서 보듯 자유로운 편집과 가공이 영화의 경쟁력을 좌우한다.국내 영사기업체는 한일영사기 제작소 등 3곳 뿐이다.촬영기제조업체는 전혀 없다.지난해 기기의 90%(1백67억원)를 수입했다.영사기,촬영기,편집·녹음장비,카메라,게임기의 국산화를 추진해야 한다.「스타 워즈」나 「클리프 행어」등 히트한 영화는 정교한 세트와 속도감있는 화면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쥬라기 공원에서 공룡들이 한꺼번에 달려오는」 컴퓨터합성이나 「여배우가 구미호로 바뀌는」 몰핑기법 등을 개발해야 한다.스턴트맨을 대신할 로봇의 제작도 절실하다. ▷전략부문육성◁ 「라이온 킹」이나 「미녀와 야수」 「인어공주」 등 만화영화붐이 인다.세계 3위의 만화 에니메이션 수출국이지만 수작업위주여서 생산성이 떨어진다.내수시장에서도 일본만화가 85%이상을 차지한다.4천억원이나 되는 컴퓨터게임의 내수도 95%가 일본 등 외국산이다.컴퓨터그래픽과 게임프로그램의 우수인력에 병역특례혜택을 주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 “경수로지원 일정표 마련”/김 과기처,국감답변

    ◎우리기술로 90%건설 가능 김시중과학기술처장관은 17일 북한에 지원할 경수로의 건설일정표를 이미 마련해 관계장관회의에 내놓고 있다고 밝혔다. 김장관은 이날 국회 체신과학위의 과기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관계부처장관들의 협의를 거쳐 이같이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상공자원부가 주무부처로 관련기관의 실·국장과 담당과장급의 회의를 통해 이행방안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한국표준형 경수로를 지원하는데 40억달러가량이 든다는 분석에 대해 김장관은 『대지구입비,타당성조사비등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진행상황에 유동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계통설계는 한국원자력연구소,터빈발전기는 한국중공업,원자로건설은 한국전력기술,안전성 심사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맡으면 전체 원자로건설기술의 90%가량을 우리 기술로 지원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김장관은 북·미회담에 따른 한반도의 비핵화전망에 대해 ▲북의 핵무기개발중지 ▲흑연감속가스냉각로의 사고우려해소 ▲방사화학실험실의 봉인 ▲5Mw급 실험용 원자로의 연료봉장전중지 ▲교체된 핵연료봉의 건식저장등으로 어느 정도 보장된다고 분석했다. 김장관은 또 『남북상호핵사찰에 대비해 기자재를 충실히 갖추고 있으며 지난 9월 「한·미원자력안전조치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해 검사기술향상을 위한 두나라의 협조체제를 확립했다』고 말했다.
  • 미­러/「걸프 위기」 해소방안 대립/러,이라크제재 안보리표결 반대

    ◎미의 규제강화전략 차질/미항모 걸프진입… 이라크선 병력 전면 철수령 【유엔본부·쿠웨이트 AFP 로이터 연합】 미국은 14일 이라크군 잔류병력이 쿠웨이트 접경에서 완전 철수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이라크에 대한 제재 해제및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프랑스 러시아등과 불협화음을 노출하고 있어 걸프위기의 조기 해소에 진통이 일고 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쿠웨이트에 대한 이라크의 침략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병력과 장비배치를 강행토록 지시했다면서 이라크가 인접국들을 위협하도록 더이상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러시아는 미국의 대이라크 유엔안보리 결의안 조기표결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이라크에 대한 제재를 고수해 걸프지역 평화 위협을 해소한다는 미국의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됐다. 미국은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접경 철수및 유사사태 재발방지등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15일중 안보리에서 표결할 계획이었으나 러시아는 미국이 표결을 강행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바그다드 로이터 AFP 연합】 이라크는 남부지역에 잔류중인 정예 공화국 수비대병력에 대해 철수명령을 내렸다고 하메드 유세프 후마디 이라크 문화·공보장관이 15일 밝혔다. 후마디 장관은 이날 『이라크군의 훈련·작전계획에 따라 공화국수비대 사단병력을 원래위치로 이동시킬 때가 됐다』면서 『이같은 취지의 명령이 하달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사단병력의 원대복귀가 수일안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쿠웨이트시티 AFP 연합】 윌리엄 페리 미국방장관은 15일 이라크가 쿠웨이트 접경지역에 배치했던 정예 공화국 수비대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다고 확인하고 이로써 걸프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낙관하게 됐다고 논평했다. 페리 장관은 이라크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파견된 쿠웨이트 북부 사막지대의 미군 진지를 시찰하는 자리에서 『우리가 확보한 최신 정보는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가 부분적으로 철수했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두바이 로이터 연합】 미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걸프수역군사력 증강계획의 일환으로 15일 이 수역에 도착했다고 미관리들이 밝혔다. 미국의 한 관리는 항모 조지 워싱턴이 이날 하오부터 「경계전사」작전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장 최민씨(인터뷰)

    ◎“21세기 영상엘리트 양성 힘쓰겠다”/폭넓은 문화교육… 「영화제작 인턴제」 검토 『기존의 대학 연극영화과나 단기코스인 한국 영화아카데미 만으로는 21세기 멀티미디어 시대를 개척해나가는데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영상원은 국내 최초의 체계적인 전문영상교육기관으로 영화 뿐 아니라 TV,비디오,컴퓨터 그래픽 등 다양한 장르를 포용하는 「영상엘리트」를 양성하는데 그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내년 3월 문을 열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원장으로 내정된 최민씨(50)는 조심스럽게 영상원에 대한 기대를 밝혔다. 그는 영상원 성패의 관건은 얼마나 자질있는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며 『카메라교육 하나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감안할때 실기에 치우쳐있는 현행 시험요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인 만큼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합당한 전형방법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교수진의 경우 영화와 방송제작 전공자가 위주가 되겠지만 인근장르의 전문가도 적극적으로 확보해 다양한 영상분야가 망라된 「열린교육」을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예술종사자에게 폐쇄적인 「칸막이 사고」는 치명적이라고 생각합니다.앞으로 영상원에서는 영상실기교육에 무게를 둘 수 밖에 없지만 문화전반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교양을 높일 수 있는 아카데믹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도 소홀히 하지 않겠습니다』 이와 관련,그는 『학생들이 직접 충무로 영화제작 현장에서 영상제작의 이론과 실기를 검증해볼 수 있는 인턴십제도의 도입도 긍정적으로 검토중』이라고 덧붙였다. 파리 제1대학 미학과에서 영화이론을 전공,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영상미학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최씨는 그동안 미술평론가이자 민중미술 진영의 주도적 이론가로 활동해왔으며 시집「상실」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영상원은 오는 12월초 영상연출(15명),영상제작(25명),영상디자인 (15명),시나리오과(15명) 등 4개학과에 걸쳐 7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며 캠퍼스는 현재 경기도 남양주에 건설중인 서울 종합촬영소를 활용할 계획이다.
  • 소주 전쟁 전국 확산/진로·경월 파고들기에 지방업체 “반격”

    ◎애행심 호소·수도권 입성 양동작전도 진로·경월 간의 수도권 시장쟁탈전으로 시작된 「소주전쟁」이 전국으로 확산될 조짐이다.지방 소주회사들이 자기 지역에 파고든 두 메이저를 상대로 필사적인 대반격에 나섰다. 그동안 지방 소주회사들의 처지는 이들 메이저 업체에 밀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었다.선양,무학,금복주 등 주요 지방소주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선양은 지난 8월 판매량이 전년동기 대비 35·8%가 감소했고,금복주는 23.2%,무학이 29.8%가 각각 줄었다.지방사 중 가장 피해가 덜한 보해도 8.3%가 감소했다. 지방 소주들의 반격은 생존권 차원의 몸부림이다.그러나 메이저들의 공세에 물량으로 맞서는 정면승부는 힘들다.따라서 특정 계층을 겨냥한 게릴라식 특화전략이 돋보인다. 금복주는 기반인 대구·경북지역 소비자들의 보수성향을 감안,전략 상품으로 「오크」주를 개발,이달 초부터 시판에 들어갔다.대대적인 광고 홍보보다 맛으로 승부를 거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다.오크주는 쌀로 빚은 안동소주 「제비원」을 오크통 속에서 숙성시킨 제품으로 위스키 맛이 난다. 대전의 선양은 젊은 층의 칵테일 소주 수요가 늘 것을 겨냥,파인 향이 나는 칵테일용 소주를 준비 중이다.마산의 무학주조는 애향심에 호소하는 이색 홍보부터 시작했다.『경남도민은 지역 발전을 위해 자도주를 마시자』고 호소하며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무학은 울산시의 직할시 승격 반대에 앞장섰다는 오해까지 받아 울산지역 판매량이 60% 가량이나 줄었다.부산의 대선주조는 현재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오이 소주를 개발 중이다. 반면 비교적 타격을 덜 받은 호남지역 소주회사들의 전략은 오히려 공격적이다.전남의 보해가 보해라이트 등을 내세워 이미 수도권 입성을 선언한데 이어,전북의 보배도 서울 공략에 들어갔다.보배의 전략상품은 그동안 몽골에 수출하던 「천지」와 증류식 소주 「옛향」.부드러운 맛으로 서울 지역의 신세대와 여성층에 승부를 걸고 있다.
  • “초등훈련기 98년 개발 완료”/국감 8일째

    ◎“폭력·음란영상물 대책 마련”/문체부/원전수주 비리가능성 추궁/상공위 국회는 7일 운영위를 제외한 16개 상임위별로 소관부처와 산하기관및 단체에 대한 8일째 국정감사를 벌였다. 이날 감사에서 여야의원들은 원전 수주관련 비리가능성,폭력영상물 대책,농협 신용사업의 적정성,불법과외단속대책,국방연구개발방안등 현안을 집중적으로 따졌다. 국방과학연구소에 대한 국방위 감사에서 황해웅국방과학연구소장은 『현계획대로 KTX­1(초등훈련기)개발이 추진되면 내년부터 공군과 비행시험을 수행,96년까지 선행개발을 완료하고 98년까지 실용개발한 뒤 양산을 시작하면 2000년에 전력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소장은 이어 『지난 77년말부터 83년까지 기만용 무인항공기를 개발했으나 작전효용성으로 중단됐으며 개발을 통해 축적한 기술을 활용,97년에 실용개발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연윤리위원회에 대한 문화체육공보위 감사에서 김동호위원장은 『다음달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등급제개선을 포함,폭력·음란영상물에 대한 종합적인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 『특히 비디오는 청소년 관람가등급을 국민학교 저학년용과 고학년용으로 세분화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농림수산위 감사에서 원철희농협중앙회장은 『전국에서 1천2백20명의 쌀생산자를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농민들은 추곡수매가 10% 인상에 1천만섬이상 수매를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전에 대한 상공위 감사에서 박광태의원(민주)은 『안병화전사장이 재직한 지난 90,91년 6건의 복합화력주기기를 발주하면서 스위스의 ABB,미국의 GE,웨스팅 하우스등 3개 외국회사만을 응찰업체로 지명함으로써 이들 업체의 사전담합을 가능하게 해 수천억원의 예산을 낭비했다』고 주장했다. 또 유인학의원(민주)은 『대우·동아건설·현대건설·삼성건설등 4개 업체가 지난 81년이후 지금까지 한전으로부터 수주한 공사는 모두 1백94건으로 공사금액이 3조23억6천만원에 달해 전체공사발주금액 7조2천4백4억원의 41.5%에 이른다』면서 특혜의혹을 제기했다.
  • 발전소건설 4개사 특혜 추궁(국감중계)

    ◎한외무 「원맨쇼 외교」 지양촉구/학원담당 공무원 월내 일제 인사 보고 ▷상공자원위◁ ○…한국전력에 대한 감사에서 안병화전사장의 수뢰사건과 발전소 건설공사를 둘러싼 특혜의혹이 야당의원들에 의해 집중 거론됐다.반면 여당의원들은 안정적인 전력수급대책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허경만의원(민주)은 『안전사장 재임동안 대우·동아·현대·삼성등 4개 건설회사의 수주액은 1조6천32억원으로 관행상 이 가운데 8백2억∼1천6백3억원이 리베이트 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안전사장이 이들 업체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진 6억여원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박광태·김충조·유인학의원(이상 민주)등은 건설공사 입찰과정에서의 사전담합등 입찰비리여부에 의혹을 나타냈다. 유의원은 『81년 이후 한전이 대우·동아·현대·삼성등 4개 건설회사에 입찰경쟁을 통해 발주한 공사는 1백94건으로 이 가운데 1백44건의 낙찰가가 예정가의 95%를 웃돌았다』면서 『이는 예정가가 계속 사전유출 됐다는 명백한 증거』라고 공격. 허삼수·이웅희의원(이상 민자)은 이상고온현상을 보인 올여름의 전력공급위기를 지적하면서 『장기적인 전력수급대책을 밝히라』고 촉구했다.금진호의원(민자)은 『한전이 지난해 자금부족을 이유로 발전소건설계획물량을 축소한 것은 이같은 파동을 예상하지 못한 안이한 생각』이라고 가세했다. 이종훈한전사장은 『예정가 사전유출은 있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건설업체가 정확한 원가계산을 통해 견적을 뽑아 입찰에 나서기 때문에 예정가와 거의 일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 ▷외무통일위◁ ○…6일 상·하오에 걸쳐 워싱턴의 주미대사관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외무통일위 미주국정감사반(반장 나웅배)의 감사는 한승수대사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속에서도 신랄한 질문으로 파상공세. 이종찬(새한)·이부영(민주)·오세응의원(민자)은 차례로 한승주외무부장관의 잦은 워싱턴방문을 지적,『한장관이 거의 달마다 미국에 가 크리스토퍼장관에서부터 각 차관보까지 저인망으로 훑어버리니 주미대사의 할일이 없는 것이 아닌가』며 『원맨 쇼 외교를 지양하고 역할분담을 통해 효과적인 대미외교를 펴야할 것』이라고 질타. 이에 한대사는 『외무장관이 대외적으로 한국의 얼굴이고 북핵문제가 중요하니 동분서주할 수밖에 없다』면서 『대사는 부장관,차관보들과 수시로 접촉하고 있으며 언론에 보도되지 않아 활동을 하지 않은 것으로 비칠지 모르나 국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선방. 서정화의원(민자)은 『북한의 핵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미·북한 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주미대사관을 철수시키겠다는 배수진을 치고서라도 미측에 우리의 뜻을 강력히 전달하라』며 『여러분들은 이준열사가 될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 ▷교육위◁ ○…교육위의 7일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감사는 강동교육청 공무원과 학원과의 유착사건을 계기로 나타난 불법과외학원 실태,교육청과 학원의 결탁비리 등에 의원들의 질타와 대책요구가 집중. 이준해교육감은 이에 대해 『이달 안으로 인허가 과정,지도감독사항 이행여부등에 대한 일제감사와 함께 학원담당부서 직원에대한 일제 인사를 통해 장기근무 공무원 모두를 보직변경 하겠다』고 답변.이교육감은 『앞으로 취약학원에 대한 수시단속과 담당공무원의 비리에 대한 중징계및 금품수수에 대한 형사고발조치,그리고 현실과 괴리된 법규정의 정비등을 통해 비리의발생 요인을 제거하겠다』고 다짐. 이에 앞서 김중위(민자),박석무(민주)의원은 『지난해 서울시 관내 과외교습소 불법·변태 단속 결과 61%인 5천2백여곳,올해들어 8월까지도 50%인 2천8백여곳을 적발했음에도 교육청은 대부분 경고등 가벼운 조치에 그쳤다』면서 『형식성·면책성감사로 구조적 비리를 양산하고 있는 교육행정에 대수술을 단행하라』고 요구. 김원웅(민주)의원은 『지난 92년부터 올해까지 서울교육청 관내 9개 교육청을 대상으로 감사원·교육부·서울시교육청등이 실시한 감사 결과 변칙운영,신고부실등 부당한 운영을 하고 있는 학원을 교육청이 적발하지 못하거나 방치한 것이 2백86곳에 이른다』면서 『학원인가에서 규정위반 사례도 속출하고 있는데 대한 대책을 밝히라』고 요구.▷농림수산위◁ ○…농업협동조합중앙회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농협이 설립의 목적을 외면한 채 돈 장사에만 열중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로 질타했다. 김장곤의원(민주)은 『농협이 92년이래 효성물산·빙그레·롯데삼강·고려무역등 18개 농산물 수입업체에 3천2백46억원을 융자,1천만t의 외국 농축산물이 수입되게 함으로써 농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오장섭·박경수(민자),이규택·김인곤의원(민주)은 『지난 8월31일 현재 30대 재벌기업에 대한 농협의 대출금 총액은 1천2백78억원이며 이 가운데 신용대출이 34%에 이른다』면서 『농협이 농민보다는 재벌에 특혜를 주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길재의원(민주)은 『농협이 91년부터 93년까지 법정한도를 무려 54억원이나 초과한 총 1백94억원의 접대비를 지출했다』며 사용내역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원철희농협중앙회장은 『30대 재벌기업에 대한 대출금은 농협의 총대출금 가운데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또 대출금도 대부분 농기계 생산등 농업관련 사업에사용됐으며 순수한 대출액수는 3백14억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 평택 복합화전 준공/용량 51만㎞급… 공사비 2천억 투입

    51만㎾급의 평택 복합화력 발전소가 준공됐다. 한전은 30일 경기도 평택군 포승면 원정리에서 준공식을 가진 이 발전소는 91년9월에 착공,총 공사비 2천4백억원이 투입됐다. LNG(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쓴다. 평택화력은 기존의 1백40만㎾화력발전에 복합화력 51만3천㎾가 추가돼 총1백91만3천㎾의 용량을 갖추게 됐다.
  • “볏가리 관행은 삼국시대에 시작”(건널목)

    ○…황금물결이 일렁이는 들녘에서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그러나 콤바인과 현장탈곡 등 농업기술의 발달로 옛 농경사회의 가을걷이 모습이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그 하나가 노적관행인 볏가리.이 가리의 관행을 다시 들추어 본 민속연구논문 「노적관행론」이 남근우교수(한림대·민속학)에 의해 발표되어 흥미를 끌고 있다. ○…벼를 베어 단으로 묶어 말린뒤에 원형,또는 직사각형으로 쌓아놓는 노적의 호칭도 가지가지.크게 「가리」와 「누리」로 구분된다.가리는 누리를 쓰는 충북 옥천과 경북 고령을 제외하고는 골고루 분포된 보편적 호칭이라는 것.가리 앞에 벼나 나락 등을 붙여 볏가리 나락가리로 부르기도 하고 강원 충북 경북의 산촌지역에서 낟가리란 말도 쓰고있는 것으로 밝혀냈다.그리고 화전이 성행했던 영서·영동지방에는 얼룩가리,얼럭가리란 말도 남아있다고. ○…우리나라에 볏가리를 만드는 노적관행이 출현한 시기를 초기철기시대로 보는 것이 남교수의 견해.왜냐하면 철제 낫이 있어야 밑둥베기로 볏짚까지 거두는 추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그 이전까지는 반달모양돌칼(반월형석도)로 벼이삭을 잘라 추수를 했던 탓에 볏가리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벼 밑둥베기를 가능케한 쇠낫은 평북 위원 용연동 유적을 비롯,대동강유역의 정백리 제365호무덤에서 출토되었다.특히 서울 성동구 구의동과 경주 제16호무덤에서 나온 쇠낫은 오늘날 사용하는 낫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생활유적에서는 쇠낫이 발견되지 않고 반달모양돌칼이 더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초기철기시대라 할지라도 밑둥베기와 이삭자르기가 병행되었을 것으로 보았다.따라서 노적관행이 본격화한 것은 쇠낫이 많이 보급되어 밑둥베기가 전체적으로 이루어진 원삼국시대 내지 삼국시대라는 것이 남교수의 결론이다.
  • 대중국 외교(백제를 다시 본다:29)

    ◎4세기 서해안항로 개척… 동진과 첫 교류/송·진등과 교역,국력강화 계기삼아/6세기말 적극 외교… 수와 동맹까지/의자왕때 외교주도권 상실… 중국과의 해상통로도 막혀 고립 백제의 웅진천도는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 그러나 웅진시대(475∼538년)는 문주왕을 거쳐 삼근왕(477∼479년),동성왕(479∼501년),무령왕(501∼523년),그리고 성왕(523∼554년)까지 5대왕의 통치기간으로서 백제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특히 기존의 진·해씨 세력이 약화되고 백·목씨등의 신흥세력이 강화되었고,실추된 왕권의 보강을 위해 정치적 개혁이 모색되었다. 우선 동성왕은 문주왕때 중수한 궁궐을 다시 고쳤다. 그래서 화려한 임류각을 세워 왕실의 위엄을 드높이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 관심을 밖으로 돌려 고구려와 신라를 정벌하여 위축된 국력을 회생시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어 무령왕은 백씨세력을 제거시킨후 양나라와 교섭하여 고구려를 견제하는 동시에 고구려에 대한 정벌을 적극 꾀함으로써 군사적 도발로 전제왕권을 추건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비천도가 준비될 수 있었다. ○선진문화 수용 의의 따라서 사비천도는 위축된 왕권을 재건시켜 웅진시대후기부터 이룩된 전제왕권을 재확립하려는 야심찬 국력만회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우선 이지역의 토착세력인 사씨와 제휴하면서 중앙관제를 기존의 좌평제에서 22부의 일원적 지배질서로 개편하였다. 특히 왕실(내관)과 행정(외관) 사무의 분리,중앙행정 각부와 왕과의 직결제,그리고 효과적인 지방제도개편을 통해 세련된 관료제를 모색하였다. 또한 무령왕은 빈번한 고구려정벌과 낙동강하류의 가야세력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함으로써 성왕의 중흥정치를 뒷받침할 수 있었다. 여기에 유학과 불교의 혁신이 사상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근초고왕때 성립된 학교교육은 무령왕을 거쳐 성왕때 다양한 교육제도의 정비로 나타났으며 율종을 중심으로 불교교단을 통합하여 흐트러진 민심의 수습과 국민적 단합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비시대의 정치적 중흥과 국력만회는 활발한 외교로 이어진 동시에외교를 통한 국가재건을 꾀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백제는 372년(근초고왕 27년)에 동진과 처음으로 외교관계를 맺은후 송·남제·양·진 등 주로 남조와 교섭을 하였다. 고구려가 남북조 여러나라와 활발한 관계를 갖고 있음에 비하여,백제는 서해항해라는 어려움 때문에 외교적 진출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조공이라는 대중국외교는 단순히 중국적 세계질서에의 편입이 아니라,선진문화의 수용이나 국가적 자립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대중국교섭은 불가피 하였다. 그러나 백제는 서해를 바로 건너가지 못하고 고구려 해안을 따라 북상한후 요동반도 남단에서 등주로 건너가야 했던 탓에 험한 파고보다는 고구려의 방해가 문제였다. 따라서 근초고왕이후 적극화된 요서진출은 독자적인 서해직항로의 개척에 아른 결과인 것이다. 백령도부근(초도)에서 적산까지는 2백여㎞에 불과하지만 이 직통항로 개척에는 3백여년의 긴 세월을 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고구려에 의한 관미성(한강하구)의 함락과 한강유역 상실에 따른 웅진천도는 어렵게 확보한 서해항로를 고구려·신라에게 양도하는 결과가 되었다.그러므로 웅진시대의 백제는 안전한 서해항로의 확보에 따른 대외관계의 모색이 국력만회의 전제가 될 수 밖에 없었다.따라서 무령왕·성왕때의 남조(양·송·남제)와의 교섭은 서해를 남으로 가로지르는 위험한 항로를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러나 6세기 초·중엽의 백제의 대외관계는 또하나의 활로로서 왜와의 문화전파·기술이전을 용이하게 만들었다.웅진시대 이후로 발전된 유학과 불교는 결국 일본(왜)문화개발이라는 현실로 나타나 중흥기 백제인들의 긍지를 그나마 심어줄 수 있었다. ○사신 가장먼저 파견 그러나 진·수·당등이 북방에서 자리잡게 됨에 따라 6세기말이후 백제 다시 서해 직항로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어 신라와의 충돌은 불가피하였다.더구나 수나라의 등장(581년)으로 삼국간에는 새로운 외교전쟁이 전개됨으로써 가장 불리한 여건의 백제는 대중외교에 국가의 활로를 맡기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백제는 일찍부터 발달된 항해술과 조선술을 활용하여 수나라 38년간(581∼618년)동안 고구려나 신라에 뒤지지 않는 교섭을 펴나갔다.삼국 중에 제일 먼저 사신을 파견하여 책봉을 받게된 까닭도 여기 있다.무엇보다도 성왕의 피살로 국가적 난국을 맞은 위덕왕(554∼598년)은 진(4회)·북제(3회)·북주(2회)등과 교섭을 계속하였다.특히 수나라에는 진의 평정을 축하하는 사신은 물론,수의 고구려정벌에 안내자 역할을 자청할 정도였다.이러한 위덕왕의 친수정책은 고구려가 양원왕이후 정난에 휩쓸린데다 돌궐관계로 어려움이 있음을 이용하려든 것이다.동시에 신라 진평왕(579∼632년)초기의 정치적 불안정을 목도함으로써 삼국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도 깔고 있었다. ○중국 진출 봉쇄당해 그러나 당의 등장(618년)으로 외교적 주도권이 신라로 돌아감에 따라 무왕은 15차에 걸친 사절을 당에 보내 적극적인 접근을 꾀하였다.이에 맞서 신라 역시 진평왕이후 친당외교를 펴나가 김춘추 외교가 결실을 맺음으로써 대당외교를 주도하게 된다.여기서 백제는 무모한 신라와의 전쟁으로 난국을 수습하려 하였다.위덕왕은 2회,무왕은 13회,그리고의자왕은 11회에 걸친 신라와의 충돌을 시도 하였으나 외교적 주도권을 장악한 신라의 신흥세력(김춘추·김유신)에 효과적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국력탕진으로 이어졌다.서해직항로의 해로를 장악한 신라는 백제의 대중국 진출을 봉쇄하였으며,고구려정벌에 실패한 당나라와 쉽게 연결될 수 있었다. 결국 백제는 중국과의 통로가 봉쇄되었다.그리고 무모한 신라와의 충돌로 국력을 낭비한 의자왕은 정치적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다.백제의 멸망은 외교적 주도권을 빼앗긴 고립무원의 결과였다.간헐적인 왜와의 교섭으로는 중국과의 외교적 손실을 메울수가 없었던 것이다. ◎삼국의 외교전/대중관계따라 한반도 역학구도 재편/당과 손잡은 신라 결국 삼국통일 삼국의 분립은 역사발전과정에 자연발생적으로 나타나는 성읍국가의 성장에서 비롯되었다.이들 고구려·백제·신라는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으면서 한결같이 민족통일을 꿈꾸었다.삼국이 경쟁적으로 영토를 넓히기 위한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가운데 다른 민족국가와 동맹을 맺은 까닭도 민족통일과 맞물려 있었다. 고대 동북아의 국제질서 속에서 백제는 AD371년 고구려와 정복전쟁을 통해 만난다.중국 연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은 고구려를 침공,평양에서 고국원왕이 전사하게 된다.그러나 고구려는 연을 멸망시킨 중국의 전진과 재빠른 친교를 맺어 일단 난국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다음은 백제가 AD475년 고구려 장수왕으로부터 공격을 받아 도성인 한성을 잃는다.그 무렵 중국은 남북조로 분열되어 있었다.그래서 고구려가 북조의 위와,백제는 남조의 송·양과 연결고리를 맺는다.이는 결국 북위·고구려·신라를 연결하는 세력과 송·백제·위로 이어지는 관계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를 재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가장 뒤늦었던 신라가 법흥왕(재위 AD514∼539년)과 진흥왕(〃AD540∼575년)을 거치는 동안 크게 발전한다.신흥세력으로 등장한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가 다투던 한강유역을 점령,남양만에서 중국과 교통할 수 있는 해로를 확보하게 된다.그리고 동해를 따라 북상,함남 인원까지 진출하는 한편 가야까지병합하는 것이다. 이어 또 한차례 국제질서가 개편되는 시기를 맞는다.AD589년 남북조로 분열되었던 중국은 수가 통일하는 것이다.그러나 수는 AD618년 당에게 중국대륙을 내주고 만다.고구려는 수와 당으로 이어지는 동안 중국과 70여년의 세월을 전쟁으로 보냈다. 그 전쟁의 여파는 한강유역으로 몰아닥쳐 삼국이 각축을 벌였다.그러나 신라는 당과의 외교에 성공,나당연합국을 만들어 AD660년 백제를,AD 668년 고구려를 각각 멸망시킴으로써 삼국시대가 막을 내렸다.
  • 전업농 지원대상 나이제한을 완화/행쇄위 건의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는 21일 농촌인구의 고령화현상에 따라 기계화전업농 지원대상자와 한오경쟁력제고사업 지원대상자의 연령제한을 완화하거나 폐지,지원혜택폭을 넓히도록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55세 이하로 돼 있는 한우경쟁력제고사업 지원대상자에 대해서는 연령제한을 폐지하고 50세로 되어 있는 기계화전업농 지원대상자는 55세로 범위를 확대하되,영농승계자가 있을 때는 그 이상까지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개선할 방침이다.
  • 「12·12」 전말 열쇠 쥔 최 전대통령

    ◎「파장 최소한」선서 상황설명 검토/양측주장 분석중… 「손들어 주기」 답변 피할듯 「12·12사태」의 전말을 푸는 열쇠는 결국 최규하전대통령에게 넘겨진 것 같다.전두환전대통령측이 15일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와 이에대한 정승화전참모총장측의 반발은 그동안 줄기차게 되풀이해온 양측의 주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정도다.특히 핵심사항인 정총장의 체포 재가 문제는 어차피 최전대통령이 정리해줄 수 밖에 없는 사안이다.최전대통령으로부터 참고인 진술을 듣기위한 검찰의 질의서는 벌써 발송됐다. ○「재직중 일」 조사곤란 그러나 최전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검찰의 질의서에 답변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16일 서교동의 자택을 찾아간 기자에게 최전대통령의 최흥순비서관은 자료 한 부를 건네줬다.『미국 의회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것』이라는 이 자료는 미국의 트루먼대통령과 레이건대통령이 퇴임후 의회의 출석요구를 받자 『대통령 재직중 일어난 일들에 대한 의회조사에 불응하는 것은 워싱턴대통령 이래의 오랜 선례』라면서 『소환에 응한다면 대통령임기가 끝날 때마다 국가 비밀이 공개되어 버린다』는 이유로 거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 현재·미래 고려 최비서관은 『미국은 이처럼 국회에서도 전직대통령을 소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같은 행정부인 검찰에서 어떻게 전직대통령을 조사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최전대통령 스스로도 『전직대통령이 세명인데 그가운데 두 사람은 피고소인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참고인이라니…』라며 안타까워 했다고 최비서관은 전했다.최전대통령이 입을 다무는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라면 아무리 여론이 거세도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고려해 신중하게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 최전대통령의 지론이다.한 측근은 『최전대통령은 재임 당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비망록을 갖고 있다』고 12·12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를 확보하고 있음을 밝혔다.그는 『얼마전 이 비망록의 출간을 검토했지만 아직 무슨 상황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판단에서 그만두기로 했다』고설명했다. ○거센 여론에 고심 그러나 최전대통령의 이같은 원칙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 피고소인으로서 검찰의 서면조사를 받았기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또 이번 기회에 「12·12」의 전말을 낱낱이 밝혀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자는 여론이 매우 넓은 공감대를 형성해간다는 사실을 최전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여기서 그의 고민이 시작된다.더욱이 최전대통령의 침묵을 일부에서 마치 「비겁한」 일인 것처럼 보는 것은 가장 참을 수 없는 일이다.이 때문에 최전대통령은 「12·12」의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선에서 당시상황의 일단을 설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최전대통령측은 이미 추석연휴를 포기한채 전전대통령측의 답변서와 정전참모총장측의 반박자료등을 수집,분석에 들어갔다.최전대통령은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안에 대해서는 당시 관계자들에게 문의도 하며 법률적인 사항은 이기창변호사가 맡고 있다.최전대통령은 「12·12」와 관련,가장 첨예한 쟁점인 참모총장 체포 재가 문제에 대해서도 슬며시 운을 떼었다고 한다.『전전대통령측이나 정전총장측이나 한쪽 면만을 부각시키고 있다.그들이 각각 주장하는 측면들이 모두 포함돼 있는 것 아닌가』라는 것이다.따라서 최전대통령이 답변을 하게되더라도 누구는 옳고 누구는 그르다는 식의 결론을 내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전 전대통령 「국민께 드리는 말씀」 요약

    ◎“「12·12」는 사회 평온… 쿠데타 아니다” 주장/전 총장측이 먼저 자의적 부대 출동/보안사,내전 막으려 대응병력 동원 90년대도 반이 지나고 몇년 안있어 21세기를 맞이하게 되는 이 시기에 제가 70년대의 「12·12사태」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12·12는 박정희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시해된 「10·26」사건과 관련해서 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사건입니다. 범인은 대통령을 제거한뒤 자기계열의 군부세력을 이용해서 계엄령을 선포하여 사태를 장악하고 혁명위원회를 구성,정권을 탈취하려 했습니다. 김재규 스스로 털어놓고 확인한 이러한 「3단계 혁명계획」은 10·26의 성격이 내란사건임을 분명히 밝혀 주고 있습니다. 정씨는 김재규와 동향이며 호형호제하는 친밀한 관계로 김재규의 추천으로 참모총장이 되었고 10·26 당일에는 범행장소인 안가에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로 인접해 있는 50m의 지척거리에서 수분에 걸쳐 수십발의 총성이울렸는 데도 평생 총격소리를 들으며 살아온 그가 대수롭지 않은 오인사격으로 생각했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건직후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의 유고사실을 알게 됐으면 육군참모총장 직책을 맡고 있는 정씨로서는 우선 그 엄청난 사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진상과 경위를 알아보는 일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김재규를 의심하면서도 그와 같은 차를 타고 그가 하자는대로 황급히 현장에서 벗어났습니다. 육군본부로 이동한 뒤에도 군과 휴전선의 이상동향을 알아보고 일단 긴급상황이 없는 것을 확인했으면 곧바로 정상적 조치들을 취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범행현장 별채에서 김재규를 대기하고 있었던 사실과 그 곳에서 보고 들은 일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보안을 유지하라는 김재규의 지시대로 대통령권한대행(국무총리)과 상관인 국방부장관에게도 수시간 동안 보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김재규의 내란계획이 실패로 판단될 때까지는 사태추이를 살피며 김재규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것입니다. 그는 계엄사령관이 된 뒤에는 『박대통령의 서거는 애석하지만 국가와 국민전체의 불행은 아니다』고 김재규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가 대통령이 되려고 하면 쿠데타를 해서라도 막겠다』고 정치적 저의를 드러냈습니다. 내란사건에 대한 수사는 바로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목적이었습니다. 소장이 대장을 연행했으니 「하극상」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으나 이 사건은 수사담당자가 범법용의자를 조사한 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범인이 권부의 한 축인 중앙정보부장이었다는 사실,관련용의자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바로 용의자 수사를 위한 영장발부권자(계엄사령관)였다는 사실등 통상적 방법과 순리적 절차에 따라 용의자를 연행·수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대통령의 재가를 밟는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 않나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고 사전재가가 나기 전에 정총장을 연행한 것도 시비가 될 수는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에게 미리 연행계획을 보고한 바 있고 처음에는 재가가 난뒤에 정총장을 연행할 계획이었습니다.재가에는 국방부장관의 배석이 필요했으나 국방부장관은 대통령께서 직접 전화로 출두를 지시했음에도 두차례나 도피·잠적함으로써 그 시간 만큼 재가가 늦어진 것입니다. 합수부측이 처음부터 쿠데타 목적으로 전투병력을 출동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으나 정총장을 연행할 때에는 수사관과 수사관을 돕기 위해 합수부에 이미 배속돼 있던 헌병들만 동원했을 뿐입니다. 나중에 다른 부대가 출동하게 된 것은 국방부장관의 도피잠적으로 군지휘계통에 공백이 생긴 가운데 정총장 계열의 일부 지휘관들이 먼저 군통수체계를 무시한채 자의적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정총장측 지휘관들은 합수부와 대통령 경호부대인 30경비단을 향해 포격을 명령했는데 이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머물고 있던 총리공관등이 있는 특정지역까지 사정권에 포함시키는 위험천만한 만행이었습니다. 서울 중심가에 미사일 발포까지 명령한 저들의 난동에 대해 보안사령부는 무고한 시민들의 피해를 예방하고 사태가 내전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으로 치닫지 않도록 대응병력을 출동,난동지휘관들을 체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어디까지나 「김재규의 10·26내란사건 관련 용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우발적 충돌사건」일 뿐입니다. 12·12사태 다음날에도 대통령께서는 건재하셨고 헌정질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행정부·국회·사법부나 국민생활에 아무런 변화나 영향이 없었습니다.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러한 사태를 「쿠데타」라고 하거나 「군사반란」이라 한다는 얘기는 들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당시 우리의 생각은 순수했고 우리의 판단과 행동은 정당했습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몇몇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필연적 인과에 따라 굴러가며 10·26이라는 반인륜적 사건이 실패로 돌아간 것도 12·12의 결단에 힘입은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정승화·장태완씨,전씨측 「석명서」 반박/“계염사령관 불법 체포… 분명한 반란행위”/대통령 경호병력 사전결제없이 교체/정/무단 서울진입 무장병력 진압은 당연/장 정승화전육군참모총장은 15일 하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쌍용아파트 자택에서 전전대통령측이 검찰에 제출한 답변서에 대해 『반성은커녕 지금까지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는 자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서 『법정 말고는 어디서도 아무말도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가 가만히 있으면 저들의 뻔뻔한 거짓말을 인정하는 꼴이 돼 말문을 털어놓는다』면서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전대통령측은 우선 정전총장의 내란방조의혹에 대해 김재규가 육본벙커로 오는 도중 차안에서 박정희전대통령의 시해사실을 알렸는데 이를 따지지 않은 점을 들고 있다. ▲그날 하오7시20분쯤 김재규중앙정보부장이 와이셔츠차림으로 뛰쳐나오며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한 것은 사실이다.다급한 김에 김부장에게 「외부소행이냐 내부소행이냐」를 물었으나 김부장이 「나도 정신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고 해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더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당시 신군부측은 정전총장이 차안에서 김재규와 앞으로 계엄이 내려질 경우 어떤 부대를 동원할 것인지에 대해서까지 상의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차안에서 김부장이 「대통령이 돌아가셨으니 이 내용에 대해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야 하고 계엄령을 내려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본 것은 사실이다.일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신 비상상황에서 사후수습책이 마련될 때까지는 보안을 지켜야 하지만 참모총장으로서 동원가능한 부대를 염두에 두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전전대통령측은 시간을 끌면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기회주의적 자세를 보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흉계다.김재규와 육본벙커로 돌아오자마자 전군에 비상을 걸어 북한의 남침에 대비토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또 자체방위력이 없는 육본을 방어하기 위해 9공수에 출동을 명령했다.전방부대는 북한병력의 움직임에 대응해야 한다고 판단,양평에 있던 20사단에 대해 서울로 이동할 준비를 시켰다.장태완수경사령관을 불렀는데 1시간후쯤 육본벙커로 왔다. ­김재규가 대통령을 시해한 범인이라는 사실을 언제 알았는가. ▲그날밤 11,12시무렵 김비서실장으로부터 범인이 김정보부장이란 이야기를 처음으로 전해 듣고 김진기헌병감에게 체포토록 명령했다.수사관들을 차출하는등 준비에 1시간가량 걸렸을 것이다.체포한 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넘기라고 지시했다. 신군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내가 김재규와 한통속이었다면 왜 나와 사이가 좋지도 않던 보안사령관에게 수사토록 했겠는가. ­전두환전대통령등 12·12관련자들의 행위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나는 당시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수습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계엄사령관이다.전두환의 합수부도 따지고 보면 법에 명시된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 시해범 색출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위해 참모총장의 권한중 일부를 위임해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국민들이 언제 전두환일파에게 참모총장의 공관을 무력으로 점령해 계엄사령관을 체포할 권한을 줬느냐. 그것도 대통령을 경호하고 있던 헌병대병력을 자기들 수하의 부대로 교체하고 사전결재를 9시간이나 미루고 감금상태에서 사후결재를 한 것이 어떻게 합법이냐. 또 12·12사태당시 수경사령관이었던 장재향군인회장(63·종합11기)도 전전대통령의 석명내용에 대해 『한마디로 어처구니없다』면서 『지휘계통 없이 불법적으로 서울시내에 들어온 무장병력은 당연히 진압해야 하며 이 진압행위를 반란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군인들의 궤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1개분대이상 규모의 무장병력이 서울시내에서 돌아다니려면 24시간이전에 참모총장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하고 반드시 헌병과 함께 다녀야 한다』면서 『수경사령관은 통보가 없는 병력에 대해서는 즉시 연행하거나 포획·사살하도록 임무가 부여돼 있다』고 당시 임무를 설명했다.
  • 북 경수로 지원비 10년간 갹출/미,한·일과 협력 추진

    ◎대체 에너지원 화전건설 【도쿄 연합】 북한의 경수로 전환 문제와 관련,미국이 한국,일본,러시아 등 관계국에 타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지원책의 개요가 밝혀졌다고 일본의 교도통신이 15일 보도했다. 이 통신에 따르면 일본 관계소식통은 미국이 제시하고 있는 지원책은 북한이 5만㎾와 20만㎾짜리 흑연감속로의 건설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출력 1백만㎾급의 대형 경수로 원자력발전기 2기를 건설하고 이에 따른 건설비로 총 40억달러를 10년간 갹출하며 ▲자금 협력은 한·미·일 등의 다국간 협력으로 실시하되 연내에 구체적인 대책을 협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또 미국은 경수로 가동시까지의 대체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에 석유발전소를 건설하고 연료를 러시아산 석유로 충당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미국은 이를 위해 이미 러시아측과 구체적인 조정작업에 들어 갔다고 말했다. ◎베를린회의 북측대표 발표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사이에 진행된 제3단계 고위급회담의 합의성명에 따라 전문가급협상이 1994년9월10일부터 14일까지 베를린에서 진행되었다. 쌍방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흑연감속로계획을 경수로기술로 교체하는 문제,폐연료의 안전한 보관및 처분,대용에네르기(대체에너지)보장을 포함하여 복잡한 실무적 문제들을 토의하였다. 쌍방은 포괄적이며 허심탄회한 토의를 진행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미합중국은 이 문제들을 앞으로 더 토의하기로 합의하였다. 쌍방은 이번 협상결과를 자기 정부에 보고하기로 하였다.
  • 배낭여행(외언내언)

    『삶은 보수적이다』사회학자 에밀 뒤르케임의 이야기다.일상은 언제나 제일 마지막에 변하는 것이며 새로운 약속들이 꿰뚫고 들어가기 가장 힘든 영역이라는 것이다. 일상생활이 갖는 이같은 보수성을 가장 쉽게 깨뜨릴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여행일 것이다.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불치의 병이기도 하다.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이란 단어 앞에서 설렘을 느낀다. 특히 젊음의 모험과 낭만이 깃들인 해외배낭여행은 최근 우리사회에 번지고 있는 열병의 하나다.한 겁없는 여대생이 「배낭 하나 달랑 메고」란 책을 낸 것이 지난 88년이었다.유럽전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철도이용권인 유레일 패스 한장만 들고 하루에 7천∼8천원으로 세끼 식사와 숙박을 해결하며 40여개국을 홀로 여행한 경험을 담은 이 책은 배낭여행 붐의 기폭제인 셈이다. 『떠나 보니 세상은 너무 좁고 또 너무 넓었다.그 속에는 알아야 할 것,느껴야 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젊은이의 해외여행의 문제점은 사실 돈이 아니라 시간과 용기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이 책은 젊은이들을 선동(?)했다. 이어 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이루어지면서 배낭여행의 봇물이 터지고 이제 배낭여행은 대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라 직장인과 가족동반여행의 방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다.그러다보니 일부배낭여행자의 잘못된 행동이 「어글리 코리안」이라는 비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형편이다. 두산그룹이 내년부터 계열사 전직원을 대상으로 유럽 배낭여행을 실시한다고 한다.국제화시대 경영 전략의 일환이다.해외여행경험이 없는 직원들을 외국에 떨어뜨려 놓고 무조건 자사제품을 몇개 이상씩 팔도록 한다거나 외국인명함을 몇백장이상 받아 오도록 하는 기업들도 있는데 그런 기업들의 국제화전략과 맥이 닿는 일인 듯싶다. 일상의 벽을 넘어서는데서 기업의 국제화 생존전략도 가능해지고 있는 것이다.
  • 세계속의 교포상공인 한자리에

    ◎오늘부터 사흘간 서울서 「한인 상공인대회」 개최/미·일·러 등 30여개국에서 5백여명 참석/WTO 출범 대응방안·직교역 강화 논의 지구촌 곳곳에서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이는 교포상공인들이 서울에서 만난다. 사단법인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이사장 김덕용민자당의원)는 15∼1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94세계한인상공인대회」를 갖는다.지난해에 이어 두번째인 이 대회에는 미국·일본·러시아·중국 등 30여개국에서 5백여명의 교포상공인이 참석한다. 지난 대회가 첫 모임이라는 데 만족했다면 이번 대회는 조국의 경제발전에 보탬이 되고,교포상공인들의 권익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짠다는 데 의의가 있다. 통상관련 세미나도 열어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대비하는 방안과 국내·외 상공인끼리의 직교역 및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계획도 구체화한다.정부관계자들을 만나 정부의 대외정책방향을 듣고 세계적 유통그룹인 일본 야오한그룹의 와다(화전일부)대표를 초청,21세기를 앞둔 동북아질서도 함께 진단한다. 대회준비위원장을 맡은 이창수삼익건설회장은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해외조직을 확대하는 한편 조국에 기여할 수 있는 사업계획을 짤 것』이라고 말했다.중앙아시아나 중국의 동북3성처럼 경제기반이 취약한 지역의 교포를 돕기 위한 「한인지원기금」을 조성,교육·문화·사회사업을 펼칠 계획이다.앞으로 대회장소도 미국과 일본 등으로 다양화한다. 한인상공인총연합회는 교포상공인들의 단합과 결속을 다지기 위해 지난해 2월 설립한 민간단체로 미국·일본·호주·캐나다·브라질 등 5개국에 현지 연합회를 두고 있다.김종필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동원전외무부장관·김명회전청주대총장이 고문이며 한승수주미대사·현재현동양그룹회장·현승일국민대총장 등 정·관·재·학계인사 18명이 상임이사다.
  • 용산지구/첨단 정보·산업단지 조성/서울시 5개권역별 개발 청사진

    ◎쇼핑센터 등 유통 중심지로/상암지구/공항관련 거점기지로 육성/마곡지구/광장지하에 전문상가 설치/여의도지구/종합수상스포츠공원 건립/뚝섬지구 서울시의 5대권역 개발에는 모두 4조9천7백억원이 소요되며 오는 96년말까지 세부계획을 마치고 오는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간다.각 지구별 개발계획은 다음과 같다. ▷여의도지구◁ 현재 이용도가 낮은 아스팔트광장을 완전히 개조,11만4천여평의 광장을 지하 3층까지 4층구조로 개발한다.지하 1층에는 문화·공공시설·전문상가·보행자공간등이 설치되고 지하 2층엔 스포츠레저·편익시설과 지하도로가 개설된다.또 지하 3층에는 6천4백여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이 들어서고 공간지원시설이 자리한다. 지상의 영등포쪽 길목에는 서울을 상징할 수 있는 상징조형물을 세워 웅비하는 「신한국 명소」로 가꾼다.상징조형물은 내년 1월부터 12월까지 공모로 선정한다. 이를위해 마포대교가 10차선으로 확장되며 지하철 5·9·10호선이 연결된다.영등포역을 왕복하는 경전철과 지하자동보행시설이 설치된다.▷마곡지구◁ 강서구 마곡·방화·공항·발산동일대 논·밭 1백30만평을 ▲첨단산업기능 ▲연구개발기능 ▲공항관련산업기능 ▲상업·업무기능 ▲배후주거기능등을 갖춘 첨단산업기지로 육성한다.여기에는 신소재·소프트웨어등 첨단제조산업과 산학협동연구소(Science Park)·업무시설·교역시설·전시장·컨벤션센터등이 들어선다. 제3섹터 또는 민간컨소시엄 형태로 사업이 추진되며 총 1조2천7백억원이 소요된다.선진국의 테크노폴리스와 텔레포트·테크노마트등의 사례를 반영,서울에 적합한 미래형첨단산업기지로 조성한다. 폭40m의 부천∼마곡∼화전을 연결하는 공로가 개설되며 공사중인 가양대교가 남북축교통로로 이용된다. 또 지하철5·9호선과 신공항전용철도가 사업지구로 관통하며 김포지구와 연결하는 경전철의 건설도 검토될 전망이다. ▷상암지구◁ 마포구 상암동 일대 1백68만평(난지도 91만평·주변지역 77만평)에 총 8천3백억원을 투입,남북교류기능을 위해 교류센터·중심광장·상업·쇼핑지구가 들어선다.첨단정보업무를 위해서 국제업무단지·텔레콤센터·인텔리전트빌딩등이 건립되며 터미널·물류센터등 유통·물류기능을 갖추고 수변레저와 이벤트돔·관광시설등도 갖춘다.이곳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후주거시설도 들어선다. 그러나 난지도에 현재 쓰레기침출수 안정화사업이 계획된 만큼 오는 96년말까지 1단계세부시행계획을 세운뒤 이 안정화사업과 남북교류상황등에 맞춰 사업착수시기를 조정할 방침이다. ▷용산지구◁ 용산구 한강로 주변일대 1백만평을 강남북과 신공항을 연결한 철도중심 물류지구로 가꾼다.이곳에 진행중인 역세권개발계획과 병행해 세부적인 시설건립을 조정해 나간다. 국제비지니스 기능을 위해 국제오피스·무역전시관·숙박시설이 들어서고 텔레포트·정보교류센터와 정보산업전시장이 갖춰진 정보첨단산업기능을 확보한다.문화공간으로서 이벤트홀과 콘서트홀,그리고 박물관등 공간이 갖춰진다. 교통시설로는 지하철 1·4·6호선이 지나며 신공항전용철도와 국철등이 연결된다. 지난달부터 이미 개발기본계획이 수립됐으나 오는 96년말까지 세부계획을 마련해 97년부터 추진하되 사업추진 내용과 시기는 정부의 계획과 조화를 이룬다는 계획이어서 다소 유동적이다. ▷뚝섬지구◁ 중랑천과 한강이 합쳐지는 성동구 성수동 일대 20만평이 대상으로 활짝 트인 수변공간을 이용,종합레저·해상스포츠시설과 공원등이 들어선다.구역내에는 호텔·선착장·위락센터(AmusementCenter)와 함께 수변업무단지가 조성된다. 공영개발 또는 지주가 참여하는 형태의 합동개발로 사업을 시행한다.민간의 개발이익은 기반시설을 설치한다는 조건으로 시행할 방침이다.이 지역의 일부 단절지역은 지하로 연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아일랜드 총리/신페인당수와 회담

    ◎영,“영구휴전 약속없이 시기상조” 반발 【더블린·벨파스트 로이터 AFP 연합】 알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공화국 총리가 6일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정치조직인 신페인당의 게리 애덤스 당수와 역사적인 회담을 개최해 IRA의 휴전선언과 이에 따르는 평화전망 등에 대해 논의한다고 아일랜드정부 소식통들이 밝혔다.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레이놀즈 총리와 애덤스 당수의 회담을 계기로 IRA의 일방적 휴전선언에 대한 영국과 아일랜드공화국간의 입장 차이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일랜드공화국과 영국은 IRA가 폭력을 포기할 때까지 신페인당과의 회담 불가입장을 취해왔으나 최근 IRA가 휴전을 선언하자 아일랜드는 이를 평화회담 개최의 계기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영국은 IRA의 휴전조치가 영구적인 것임을 확인할 때까지 신페인당과 회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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