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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드컵 공동개최 따른 한·일 관광진흥」 심포지엄

    ◎“관광상품 개발·홍보활동 공동추진을”/양국 항공노선 증설­북·중과 연계 고려해볼만/국가이미지 제공·전통문화 전파 부대효과도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에 따른 한·일 관광진흥 심포지엄」이 18일 하오 조선호텔에서 열렸다.이 자리에서 김태연 관광공사 사장은 「월드컵 공동개최의 관광측면적 의의」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내용을 요약한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는 진정 전 인류에게 희망과 공동번영의 21세기를 여는 축제가 될 것이며,월드컵 역사상 유례가 없는 2개국 공동개최는 모든 아시아인에게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할 것이다. 이는 동시에 단순한 국제축구행사에 그치지 않고 인종·정치·경제·사회 등을 초월해 평화와 우호의 장을 펼치는 전인류의 축제이며,개최국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문화와 역량을 전세계에 알리고 자랑하는 발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회가 가져다주는 효과는 엄청나다.약 1억불의 직접적인 대회운영 수익과 경기장과 호텔의 건축에 따른 시설투자,그리고 그에 따른 생산유발 효과,관련산업의 파급효과,고용창출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또한 국가이미지 제고와 문화전파라는 무형의 부대효과를 동시에 기대할 수 있으며,지방도시에서도 경기가 열리게 됨에 따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문화적 효과로서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임과 동시에 문화지방화 시대를 확산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관광적 측면에서의 효과로서,항공업계는 한·일양국 노선의 증설과 전세계 항공망과의 연대확충,지방간의 항공노선 증가및 호텔의 개보수와 신축 등을 통한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이것은 새로운 관광권의 개발과 여행상품의 다양화를 촉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일 양국은 앞으로 관광측면에서의 공동협력을 더욱 강화해야한다.중·장거리 관광객의 공동유치방안을 적극 추진해 외래관광객의 시장 변화를 추구함과 동시에,한편으로는 월드컵 공동개최국으로서 서로간 보다 폭넓은 교류확대가 요구된다. 월드컵을 전후로 한·일 양국의 관광진흥을 위해서는 공동상품개발을 포함한 공동 홍보활동 추진이 필요하며,아울러 북한·중국과도 연계한다면 이는 지금까지의 어떤 상품보다도 더 우수한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이는 또한 관광산업차원만의 문제가 아닌,국가간의 진정한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 서울·경기 일부 전화 불통 소동

    15일 0시30분쯤부터 1시간30여분동안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전화국의 회선을 이용하는 서울 일부지역및 경기도 고양시 전역의 시외·국제전화가 불통돼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한국통신은 1만5천8백52회선의 시외통신망을 갖춘 혜화전화국 교환시스템의 성능을 보강하기 위해 소프트웨어 교체작업을 벌이면서 이 전화국의 시외통신망을 구로전화국으로 잘못 접속,이같은 사태가 빚어졌다고 해명했다.
  • 중 「3통」 협상단 12월 대만 방문

    ◎대북서 중­대만­홍콩 3자회의 개최 【북경=연합】 중국 민간부문의 상공회의소 역할을 하고 있는 중화전국공상업련합회의 경숙평 주석이 대만해협 양안간 3통(통상·통항·통우) 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해 민간기업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12월 대만을 방문한다. 중국 관영 영자지 차이나 데일리의 일요판인 ‘비즈니스 위클리’는 15일 경주석이 대북에서 열리는 중국­홍콩­대만의 기업단체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만을 방문할 예정이라면서 그의 대만 방문은 양안간의 골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보도했다. 지난 49년 공산당정권 수립 이전 상해의 유명한 자본가였던 경주석은 ‘비즈니스 위클리’와의 인터뷰를 통해,“이번 회의의 의제는 본토와 대만간의 특정 경제 분야협력 문제지만 3통 수립에 관해서도 광범위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 동양화가 박대성(이세기의 인물탐구:104)

    ◎청한­적요가 배인 시인같은 화가/한때 전국산천 스케치… 실경산수” 화풍지켜/인위·조작이 없는 소쇄한 화격에 선모심이… 희부연 연묵과 엷은 보라빛이 먼산을 이루는 가운데 가늘고 섬세한 수목사이로 청명한 물줄기가 운문율처럼 퍼져 있다. 사방이 온통 겨울을 재촉하는 계절의 끝에서 수면에 비친 스산함은 청한과 적요의 시를 흩뿌린다. 인적이 끊긴 촌가며 물가에 매어둔 빈 뱃전에도 긴휴면이 스며들어 보는 이의 가슴에 뭉클한 시심을 던진다. 소산 박대성의 수묵담채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소산은 시인같은 화가다. 실제로 화면에 시를 직접 써넣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카비르의 구절들을 어슷어슷 배경속에 수놓기도 한다. 「저 황홀한 피리소리를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누구의 피리소리인지는, 여기 등불하나가 타고 있다. 불꽃의 심지도 기름도 없이 연꽃 한송이가 꽃피어난다」 그의 작품은 간경·산뜻한 선묘가 특징이다. 묵광의 묘취를 한껏 펼쳐 마치 폭우가 쏟아지고 난뒤의 산자수명을 깊은 사유로 그려내고 있다.그중에서도 지난 94년 1천2백호 대작으로 일컬어지는 「성산포 일출봉」은 갈대가 휘날리는 일대장관을 「풍죽처럼 소화한」 호방한 화면이 일품이다. 이 한폭의 대작을 위해 그는 겨울태풍이 그칠줄 모르는 성산포에 머물면서 배를 타고 몇차례나 섬주변을 돌기도하고 봉우리의 성격을 소상하게 파악한후 「의젓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기상을 포착해냈다」고 말한다. ○추경·초동 즐겨 그려 1천호에 손댄 것은 경주 계림의 고목을 그린 「고목의 정원」이 처음이다. 수백년 풍상속에 의연히 서있는 계림의 노목은 그의 넘치는 화심을 움직여 「미의 내용을 구명하는 작업」에 철저하게 몰두할수 있게했다. 진한 먹을 튕겨서 쓰는 갈필대신 산마호라는 장봉을 써서 큰 그림을 그릴때의 일필휘지의 붓길과 은은한 번지기(휘염)로 변화가 풍부한 산의 형세를 제압한 것이다. 드넓은 공간에 그의 소재들을 들어앉히는 동안 『집사람이 먹을 갈아주는데 정말로 한도 끝도 없이 갈았다』고 웃는다. 부인 정미연씨는 생명이 집결된 누드화로 주목받는 서양화가다. 지방에서 활동하던 소산이 중앙화단에 부상된 것은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다음해 대상을 수상하면서부터다. 그때 심사위원의 한사람이던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새로운 작가, 역량있는 신인을 발견한다」는 대전의 취지대로 「그의 그림은 우선 한눈에 새로웠다」고 못밖는다. 소산의 출현은 「신선한 충격」과 「커다란 수확」으로 화단에 받아들여졌다. 그는 주로 늦가을 풍경이나 초동을 즐겨 그린다. 평론가 유홍준은 그의 추경을 보고 「고담한 필묵과 스산한 운치의 적막감이 오늘날 박대성 작품의 미점」임을 상찬해 마지않는다. 작가자신도 아일과 풍요보다 쓸쓸함에 깃든 자연의 천리속에 고격이 숨어있음을 터득하고 있다. 그의 초기그림들은 까슬까슬한 붓자국을 들어낸 석묵으로 소슬한 한국의 산천이 안고 있는 정취를 섬세하게 표출해낸다. 그러나 88년 호암미술관이 초대한 대작전에 이은 최근의 작품들은 벽오동과 청오동, 청람이 넘실대는 바다와 수목에 산호색과 비취색 호박색을 장식하여 화사미를 보인다. 전경은 우람창울하고 원경은 생략과 절제로 짙고 엷고 가늘고 굵은 선과 색채가 상조되는 것이 눈에 띈다. 특히나 그의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적 시각은 빠른 붓의 속도와 날카로운 선획으로 스케일이 장대한 대작을 성취하였고 이는 「이제까지의 실경산수의 일반적 유형에서는 맛볼수 없는 다른 화격을 이끌어낸다」는 평을 듣고 있다. 이에대해 오광수는 하나의 형식이나 틀에 안주해버리는 우리 미술풍토에서 「부단하게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그의 자세는 「조선후기의 진경산수와 청전 소정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산수에 이은 「제3세대」로 정의를 내린다. 그는 새로운 동양화풍으로 화단의 시선을 집중시켰을뿐만 아니라 독학으로 성공한 입지전적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가 그림을 공부한 것은 청대초기의 화집인 「개자원화전」이 바탕을 이룬다. 경북 청도 한의원 집안에서 태어나 3살때 부모를 잃고 왼손마저 다치자 고향의 빼어난 경관을 사생하는 것으로 그는 외로운 시절을 보낸것 같다.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이고 형과 누나들의 도움으로 17세되던해 부산으로 내려가 서정묵화숙에서 사사, 부산동아대가 주최한 국제미전 입상과 21세때 국전 첫입선을 비롯해 연속 8회 입선이 그의 화가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국전서 연속 8회 입선 그러나 연이은 국전입선후에는 당연히 특선이 따르기 마련인데도 학맥 인맥이 없는 그는 번번이 도외시되었고 여기에 한맺힌 그는 「뭔가 최고가 돼야 한다, 실력으로 이 모든 것을 설욕하겠다」는 의지로 전국을 떠돌면서 혼자서 산천을 스케치해 나갔다. 『그림이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에 자다가도 놀라서 벌떡 일어나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는 고백에는 여전히 저항이 들어가 있다. 그가 화가로서 행운을 잡은 것은 대구매일신문 화랑개관기념 초대전이다. 대구의 양대산맥으로 일컬어지던 주경과 서동균 등 어느 한쪽을 선택할수 없었던 신문사측이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이 전시를 계기로 대만과 일본초대전에서 그의 그림은 「소산화」로 크게 호평되었다. 당시 대만의 원로화가 양우명은 그의 그림을 「청전 이후」로 비유하면서 대만에 머물 것을 극구 권유했으나그는 중앙화단이 있는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뒤늦은 나이인 35세때 효성여대 회화과 출신인 정미연씨와 결혼, 부인의 그림자같은 내조가 「시대감각에 걸맞는 현대한국화」를 구축하는데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자녀는 딸만 둘. 성격은 내성적인 편으로 일체의 그룹활동이나 단체전에 가담하지 않는다. 그가 평창동에 화실을 마련한 것은 10년간의 팔당시대를 거친 90년초부터다. 북악터널 못미처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소산의 화실은 선비의 화숙처럼 은일하게 숨겨져 그의 정원과 화실은 하나같이 명품이다. 안방에서 내다보면 북악산 줄기가 사방으로 둘러치고 추분이 머잖은데도 연과 소나무와 죽의 푸르름은 작가의 초일한 화경인듯 시들줄을 모른다. 소산은 독특한 실험정신과 물결치는 소재의 전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그리지 않는다는 화풍」을 지켜 기를 앞세운 작업보다 광활한 대자연을 테마로한 서정적 세계로 자기변신을 이루고 있다. 창일한 개성과 영롱한 구슬빛이 감도는 소산의 그림앞에 서면 인위와 조작이 없는 소쇄한 느낌, 거르고거른 영매의 화격에 선모심을 금치못하게 하면서 보는 이의 가슴에 한구절의 시를 품게한다. □연보 ▲1945년 경북 청도출생 ▲66년 국전 18회부터 25회까지 8회 연속입선 ▲68년 부산동아대 국제미전입선 ▲70∼80년 국내서 8차례 개인전개최 ▲74∼75년 태만 공작화랑초대개인전 ▲75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개관기념초대 개인전 ▲76년 일본 후쿠오카(복강) 선화랑개인전 ▲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추학(추학)」으로 장려상수상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상림(상림)」으로 대상수상 ▲80년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시대 9인전」,한국 화랑협회초대 「12인전」출품 ▲81년 국립현대미술관주관 「한국미술,81년」「한국현대수묵화전」 신세계미술관선정 「청년작가 10인전」초대출품 ▲82년 경기도 남양주 팔당정착 ▲84년 샘터화랑초대 「박대성·황창배 2인전」 ▲85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현대미술초대전」출품,가나화랑전속 ▲86년 대구매일신문사 화랑초대 「박대성·강대철 2인전」,도쿄 후지갤러리개인전 ▲88년 서독 쾰른시 파리나갤러리 초대전,중앙일보주관 「박대성 작품전」(호암미술관)에 대작 1백여점전시(3월9일부터 30일간) ▲89년 윤범모와 중국문화기행 ▲90년 백두산 만주일대여행,가나화랑초대 제15회 개인전 ▲94년 실크로드 기행전(동아갤러리),개인전(가나화랑)
  • 「영광원전 허가취소」 철회 거부/전력수급 “큰차질”

    ◎화전대체땐 경제타격·전력요금 인상 불가피/기간시설 확충 지역이기 볼모사례 증가 예고 영광원전 5,6호기가 지역이기주의의 볼모로 잡혀 국가기간시설 확충에 차질을 빚고 있다. 김봉렬 전남 영광군수가 「영광군이 내린 건축허가 취소결정은 위법한 처분이 명백하므로 취소해야 한다」는 감사원의 심사결정을 수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 선례가 돼 앞으로 각종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지자체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번 사태로 원전 건설사업이 장기간 표류,장기전력 수급계획에도 큰 차질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당초 이번 사업은 지난 1월22일 건축허가가 나왔으나 8일뒤인 1월30일 건축허가를 번복,8개월이나 공사착공이 지연된데다 영광군의 조치를 둘러싸고 법정공방이 불가피해져 또 다시 사업추진이 뒤로 미뤄지게 됐기 때문이다. 2001년과 2002년 완공예정인 영광 5,6호기는 발전량이 2백만㎾에 이른다.따라서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척되지 못하면 2000년대의 전력 예비율은 4% 정도 구멍이 생겨 전력수급에 차질을 가져오게된다. 한전은 이 정도 물량을 화력발전으로 대체할 경우 10년간 석유를 3천만t(40억달러)이나 수입하게 돼 국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장기적으로는 전력요금의 인상을 불러올 것으로 보고 있다. 영광군과 한전은 건축허가번복문제가 불거져 나온 이후 대화와 설득에 의한 해결책을 모색해왔으나 국책사업을 볼모로 한 과도한 지원요구로 끝내 협상은 결렬됐다. 군의회는 신규발전소에 적용되는 발전소주변지역에 대한 특별지원금을 이미 운영되고 있는 4기의 발전소에도 소급,적용해주고 5백억원이 소요되는 27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과 11개 읍·면에 대한 지역개발사업 1백20억원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특별지원금을 소급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18홀 규모의 골프장건설(2백70억원)과 11개 읍·면의 지역사업에 6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군의회는 수용을 거부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볼수 있듯이 앞으로 전원입지 예상지역 주민들의 요구사항은 더욱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이에 따라 영광원전 5,6호기를 포함,2002년까지 예정된 원전 7기의 비용부담은 더욱 늘어나 발전원가 압박요인으로 작용,전력요금 인상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사업주체인 한전은 감사원의 결정을 지켜보며 향후 대응책을 강구한다는 방침이지만 원전 건축허가 취소처분에 대한 무효확인 행정소송이나 공사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어느 경우라도 사태해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려 사업지연은 불가피해졌다.
  • 중 경제사절단 첫 대만 방문/신화통신 보도

    ◎민간 경제교류협력방안 논의 【북경 AP AFP 연합】 중국의 고위급 민간경제대표단이 양안간 경제협력증진을 논의하기 위해 사상 처음으로 대만방문에 나선다고 신화통신이 8일 보도했다. 장서무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 부주석이 이끄는 이 사기업및 금융기관 경영자로 구성된 민간경제사절은 9일 대만에 도착,열흘간 머물게 된다고 통신은 말했다. 이 민간대표단은 체류기간중 대만기업의 경영기법과 발전상황을 조사하고 대만 경제인과 민간부문 경제교류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대만은 지난달 고위급 경제대표단을 중국에 보내 경제협력증진을 모색한 바 있다.
  • 애니메이트 동호회(동아리를 찾아서)

    ◎PC로 만화정보 교류… 창작품 감상·평가 만화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작품 감상및 창작품 평가도 하는 PC통신 동호회가 있다.천리안 매직콜에 등록된 애니메이트 동호회(직접명령 GO ANI). 이 동호회는 지난 89년 구성돼 천리안의 전신인 「PC서브」시절부터 활동해 왔다.PC통신 만화관련 동호회는 10여개에 이르지만 이 가운데 최고참이다. 7명의 운영진이 동호회 관리를 맡고 있는데 회원수는 1천여명이나 된다.20∼ 30대로 대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이 동호회는 자신들의 게시판 「만화마당」코너를 통해 국내외 신작만화를 소개하거나 국내외 만화계 동향,대학의 만화학과나 관련 동아리들에 관한 정보를 교환한다.또 「자료 마당」은 회원들이 기성 작가들이나 자신들의 창작 만화대본,작품 등을 공유하기 위한 정보교류 광장으로 이용된다.컴퓨터 그래픽 및 스캐닝 등 제작기법을 서로 배울 수 있게 한 만화창작의 학습장으로 「그림마당」도 있다. 회원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코너는 「자료실」.회원 창작품부터 해외작품에 이르기까지 4천5백여건의 작품이 실려있는 대규모 만화전시실이다.「도구창고」에서는 그래픽 편집이나 프린팅하는 각종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고 「음악창고」에서는 만화영화 주제가를 들을 수 있어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자평이다. 동호회는 또 지난 3월부터 인터넷에 홈페이지(주소 http://www.dacom.co.kr/∼animate)를 개설,국내 유명작가의 작품을 외국에 홍보하고 있다.현재 「바람의 나라」로 유명한 김진씨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동호회는 지난해부터 회원 창작품을 CD롬에 담고 있다.올해부터는 회지도 발행할 계획이다.동호회 활동을 해마다 정리하자는 생각이다. 또 회원창작품을 엄선해 올해말 해외 전시회에 출품할 계획도 하고 있다. 시솝인 김희연씨(26)는 『만화가 성인들사이에서 유치한 것으로 폄하돼 관심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분위기였는데 PC통신이 이를 극복하게 했다』면서 『만화가 펼치는 동심과 환상의 세계는 어른들에게 잃어버린 고향을 찾아준다』고 말했다.
  • 문화행사 정보 인터넷서 해결을/보인 인터랙티브 서비스 시작

    ◎문화공간·갤러리·영화난 개설/공연일정·입장료·시설 등 소개 인터넷 홈페이지 개발 전문업체 (주)보인 인터랙티브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국내 각종 문화행사 관련 정보를 얻고 작품감상까지 할 수 있는 문화정보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사이트(http://www.voin.co.kr/city)는 ▲문화공간 ▲갤러리 ▲전통문화 ▲영화 페이지로 돼 있다. 문화공간은 국립극장,국립국악원,예술의 전당 등 대형 공연장의 시설소개와 연혁 등을 소개한다.특히 「지하철 문화공간」페이지는 서울시내 30여곳의 소극장과 모든 영화관,갤러리,공연장 등에서 펼쳐지는 공연 일정,입장료 등을 알려주며 공연사진과 줄거리도 함께 제공한다.또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공연장 위치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지도 서비스」로 초행길의 불편을 덜어준다. 공연이 끝난 것은 바로 삭제하는 등 신속한 자료경신으로 정보의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갤러리,전통문화,영화페이지는 영화,미술,서적 가운데 주목받았던 작품들을 다시 감상하거나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한다. 현재 갤러리 페이지에서는 ▲역사미술전 ▲오윤판화전 ▲통혁당 사건 무기수출신인 신영복씨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소개하고 있다.전통문화페이지는 한국의 전통음악과 전통무예를 동화상및 음성자료와 함께 제공한다.특히 전통문화 페이지는 영문서비스도 함께 해 인터넷을 통한 우리문화 홍보도 겸하고 있다. 이 회사 인터넷 제작부 문화담당 박석훈(26)씨는 『공연장마다 고유의 인터넷 주소를 부여하고 홈페이지도 만들어줘 인터넷 이용자들이 바로 해당공연장 공연안내 등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조선족 마을 지키기(송화강 5천리:3)

    ◎격변기마다 비적·만군·한족들에 수난/재산·식량 약탈표적… 자위대 결성해 저지/최근 이농 늘자 마을규약 만들어 타민족 유입막아/문혁때도 농사에만 전념… 정치적 희생 없어 송화강유역은 한때 비적이 날뛴 무법천지였다.당시 조선에서 소문난 마적이 그들이다.비적들은 떼로 몰려다녔을 뿐 아니라 한 지역을 통치할 만큼 비대해진 적도 있다.이들의 근거지는 사실상 청조의 치외법권지대이기도 했다. 청조는 1682년 오늘의 요령성 개원시로부터 길림성 이수현,이통현,장춘시,구대현을 경유하여 서란현 송화강변에 이르는 구간에다 버들울타리를 쳤다.장장 3백50㎞ 구간의 버들울타리 밖은 변외라 하여 봉금령에 따른 금구로 설정되었다.그러니까 변외의 금구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통행금지의 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람새지 않는 울타리 없다는 속담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울타리를 넘어들어갔다.특히 가경 연간(1796∼1820)에 더욱 심했다.그 무렵 산동성에서 부모를 따라 길림성에 와서 살던 한종헌은 울타리를 넘어 오늘의 화전현 협피구(겹피구)에 당도했다.비적들이 횡행하던 때라 그들을 설득시켜 금광판에 들어갔다.그러다 도금수령 마문량의 눈에 들어 그가 죽고나서 후계자가 되었다. 한종헌은 협피구에서 나는 황금을 독차지하여 송화강 양안에 세력을 확장했다.아들 수문을 비롯 손자,증손에 이르는 4대에 걸쳐 송화강유역을 물론 목단강 서안,휘발하유역의 광활한 지역을 독립왕국으로 만들었다.이른바 회방이라는 관리기구를 중심으로 각종 조세는 물론 채금업,임업,삼업까지 관할했다.심지어는 개인화폐 금사도 발행했다.그래서 송화강유역 사람들이 한씨는 알아도 청조는 몰랐을 정도로 엄청난 권세를 누렸다. ○송화강 양안 비적떼 세력권 한씨 일가와 같은 그들이 바로 청조가 쇠퇴하는 과정에 일어난 도적의 무리였다.그렇듯 비적들이 대물림하는 가운데 아직도 득실거리고 있을 때 송화강유역으로 이주해온 조선족들은 바늘방석에 앉기나 한 것처럼 늘 좌불안석의 삶을 꾸렸다.연변대 반용해(69) 교수는 어려서 부모들을 따라 길림성에 온 이주민 2세다.그의 말을 들어보면 비적은 떼강도들이었다. 『비적들은 뻑하면 조선족마을을 약탈했디요.조선족들에게는 후원세력이 없다는 거이 약점이었댔습네다.건드려도 뒷 근심이 없었으니끼 걸핏하면 쳐들어왔다 이겁네다.또 논농사를 주로 하니끼리 쌀을 빼앗을 수 있고,아무리 가난해도 이불 한 채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비적들이 잘 알고 있었디요.어느날인가는 비적들이 온다는 소식을 미리 듣고 동네사람들이 다 우리집에 모이지 않았겠습네까. 체녀들과 아주마니들은 숯검정을 얼굴에 발라댑데다.얼굴이 반반하면 겁탈을 당하니끼리 그랬디요.또 어떤 아주마니들은 검붉은 피가 묻은 월경대를 소랭이에 담아서리 문밖에 내놓기도 하고….비적들이 피를 보면 재수없다고 돌아간다는 말을 믿은 거디요.그런데 웬걸,우리집으로 들어닥치더니 돈이 될만한 물건은 다 챙겼습네다.심지어는 가축까지 끌고 갑데다.우리집은 얼마 있다가 다시 비적 꼴 안 본다고 장춘으로 이사를 했댔디요』 그 비적의 행패는 만주사변 이후 한 때는 수그러들었다가 광복이 나자 또 극성을 부렸다.일제의 패망과 더불어 만주국이 무너지자 이번에는 만군들이 비적으로 돌아섰다.그리고 한족들은 그들 나름대로 조선족을 제2의 일본인으로 간주하고 조선족마을을 습격하기 시작했다.이는 일제가 통치수단으로 자행한 민족이간책에서 비롯되었다.한족들은 비적 못지않게 날뛰었다.도끼와 낫으로 수장하고 조선족을 예사롭게 죽이고 마을에 불을 질렀다. 조선족마을들은 자구책으로 자위대를 조직했다.마을이 똘똘 뭉쳐 스스로를 지켜냈던 것이다.그 단결력은 뒷날 순수한 조선족마을로 살아남는 원동력이 되었다.그래서 광복 이후 송화강유역 조선족마을들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유역 조선족들보다 정치운동의 풍파를 덜 겪었다.조선족들이 우루루 몰려와 사는 집거구 연변에서는 혁명을 한답시고 동족끼리 때리고 죽인 현실과는 사뭇 대조를 이루었다. 길림성 영길현 송화강유역의 조선족마을 아라저촌은 중국대륙을 바람처럼 휩쓸었던 문화대혁명을 무사히 넘긴 마을이다.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농자천하지대본의 길만을 걸었다.길림시에서 이러저러한 파벌들이 무장을 하고 마을에 와서 당총지 김용구의 매도를 선동했으나,아라저촌의 일은 마을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뜻을 끝내 굽히지 않았다.이 마을에서는 문화혁명에서 투쟁을 맞았거나 감옥에 간 사람이 하나도 없는 신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일제 민족 이간책에 속아 그런데 요즘와서 일부 조선족마을에 변화의 바람이 들고있다.흑룡강성 학강시 단결향 화춘촌은 2백여가구의 순수한 조선족마을이었다.이 마을은 요 몇년 사이에 사정이 달라졌다.시장경제에 팔려 집과 도급농토를 헐값에 팽개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 한족들이 야금야금 마을을 잠식한 것이다.한족이 벌써 30여가구가 마을에 들어와 떠나버린 조선족들 대신 농사를 짓고있다. 흑룡강신문보도에 따르면 흑룡강성 조선족촌에서 외지로 빠져나간 가구는 상당수로 밝혀졌다.한 마을에서 많게는 40%,적게는 20%가 도시로 진출했다는 것이다.어떤 조선족촌에서는 도시로 나간 빈자리를 한족들이 들어와 메꾸는 것을 막기위해 타민족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규약까지 만들었다.그래서 떠나는 사람들은 마을의 뜻을 차마 저버리지 못해서인지땅과 집을 그냥 두고 외지로 나가기도 했다.마을 전체가 1백가구가 채 안되는 화천현 성화향 요신촌에는 현재 여남은 가구가 비어있다. ○한족 30여 가구 들어서 중화인민공화국 헌법은 공민이면 민족을 불문하고 거주권이 있다고 규정했다.그러고 보면 조선족마을 자체가 만든 한족 이주금지규약은 사실상 헌법위반이다.순수한 조선족마을을 지키려는 노력은 조선족입장에서 보면 가상하나 한족 이주를 막는데는 도처에 장애요소가 깔려있다.나북현 동명향과 같은 조선족 밀집지역에서는 궁여지책의 묘안을 짜냈다.외지에서 들어오는 한족들은 조선족들의 주택을 사들이거나 토지를 양도받고자 할 때는 조선족들 끼리 거래하는 액수의 곱을 내야한다는 규정을 만들었던 것이다. 조선족들의 마을 지키기는 현명한 발상이었는지 모른다.도시로 나갔다가 거덜 난 조선족들에게 퇴로를 열어준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근년에는 폭락했던 쌀값이 크게 올라 농촌으로 다시 돌아오는 조선족들의 발길이 드문 드문 이어지고있다.이들의 귀환은 도시로 떠나면서 그냥 버려두었던 집과 도급농토를 마을이 지켜주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 부산영화제(외언내언)

    「영상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영화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32년 베니스에서 였다.베니스 시의회가 1895년 창설한 세계적인 종합예술행사인 베니스비엔날레에 영화전시부문을 추가해 베니스영화제가 탄생한 것이다.그로부터 60여년만에 우리도 첫 국제영화제를 오는 13일 부산에서 열게 된다.뜻 깊은 일이다. 이번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9일간의 행사기간 동안 세계 32개국의 영화 1백71편을 상영한다.그중에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비밀과 거짓말」도 포함돼 있다.영화제 기간동안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중국 스타 궁리와 감독 첸카이거등이 찾아 올 예정이기도 하다. 부산은 1920년대 나운규 윤백남 등이 한국 최초의 근대적 영화사인 조선키네마사를 세웠던 「영화의 도시」였다.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베니스·칸영화제도 물의 도시에서 열리고 있는 만큼 부산이 이 영화제와 함께 문화와 관광의 도시로 거듭 태어날 것을 기대한다.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3백50개가 넘는 국제영화제가 존재하는 가운데 부산국제영화제의 개성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살려 나가느냐는 것이다. 『세계 영화무대에서 동북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가 되도록 특화해 나가겠다.일본 도쿄영화제는 차별화에 실패한 탓에 침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고 홍콩영화제도 97년 중국편입을 앞두고 있어 장래가 불투명한 실정이다.이 틈새를 공략하면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는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구상은 그런 점에서 현명한 전략으로 보인다.우선 「비경쟁」으로 진행하면서 내실을 다진뒤 월드컵 축구대회와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2002년쯤 「경쟁영화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접근방법도 합리적이다. 광주비엔날레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로 우리 문화는 더욱 성숙하게 될 것이다.모처럼 걸음마를 뗀 우리의 국제영화제가 마라톤 경주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도록 부산 시민은 물론 전국민적인 성원이 있어야겠다.기업의 예산지원도 올 한해만으로 반짝하고 끝나서는 안된다.
  • 세계 열대림 절반 사라질 위기/국제 농업연구자문단 보고서

    ◎제3세계 영세농 화전식 영농으로 급감/구제 막막… 인구·자원관리 근본대책 시급 세계 열대지역에 남아 있는 산림 가운데 약 절반이 주로 가난한 농민들의 생존용 농경지 확보를 위한 화전식 영농방식 때문에 사라질 위기에놓여 있다고 세계은행이 주도한 새로운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최근 국제 농업연구 자문단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세계 인구가 앞으로 반세기 동안 계속 증가함에 따라 제3세계의 가난한 농민들이 세계 현존 열대 산림 가운데 약 절반을 경작지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문단은 세계은행을 비롯하여 유엔개발계획,식량농업기구 및 유엔환경계획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 보고서는 지구에 대한 인식제고,열대 산림 지원증가,집약적인 산림보존 전략수립을 위한 10년동안에 걸친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3천8백10만에이커의 산림이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1분마다 72에이커씩 사라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만일 이같은 추세가 지속된다면 현재 50억에이커에 이르는 열대 산림 가운데 절반이 없어질지 모른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가난한 농민들이 생존을 위해 곡식을 재배하기 위한 화전식 산림제거작업은 해마다 약 2천5백만에이커에 이르는 땅의 상실과 퇴화현상을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인구는 현재 약 57억명에 이르고 있으며 앞으로 25년 안에 적어도 20억명이 늘어나고 이 가운데 95%가 제3세계에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스마일 세라젤딘 자문단 의장은 세계 열대 산림을 구제하기 위한 마법의 해결책은 없다고 밝히고 그러나 땅의 퇴화현상,빈곤,크게 늘어나고 있는 인구,잘못된 자원 관리 및 왜곡된 산림정책 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캐고 대처하기 위해 확고한 과학적 토대에 기반을 둔 포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대만,대중 경제창구 불면/SEF가 유일한 대표”/행정원 부주임

    【대북 AFP 연합】 대만 정부는 2일 중국∼대만간 경제교류를 위한 민간창구 개설보도와 관련,양안간 협상은 기존 창구를 통해서만 이뤄질 것이라며 보도 내용을 부인했다. 고공염 대만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위원은 중국과의 대화에서 대만을 대표할 수 있는 것은 반관영인 해협교류기금회(SEF)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정부는 SEF만이 정부 당국과 관련된 일을 처리하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만은 해협교류기금회를 그리고 중국은 해협양안관계협회를 각각 양안간 반관영 대화 창구로 활용해왔다. 고 부주위의 발언은 일본 도쿄신문이 1일 중국과 대만이 정치적 긴장에도 불구하고 경제관계를 개선시키겠다는 방침하에 민간단체인 중국의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와 대만의 전국공업총회를 각각 창구로 고려고 있다고 보도한후 나온 것이다.
  • 중­대만 「새 대화창구」 모색/3통 전단계로 경제협력 우선 실현

    【도쿄=강석진 특파원】 중국과 대만은 정경을 분리,경제를 우선시켜 관계를 개선시킨다는 방침아래 새로운 대화창구를 개설할 방침이라고 일본 도쿄신문이 1일 중국 소식통을 인용,북경발로 보도했다. 양측은 우선 선박 직접왕래와 통상 등 3통을 실현시키기 위해 민간단체인 중국의 중화전국공상업연합회,대만의 대만공업총회가 각각 창구로 고려되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양측은 작년 이등휘 대만총통의 방미로 관계가 악화일로였으나 ▲홍콩반환으로 종래 홍콩을 경유했던 중국­대만 무역이 직접무역 형태로 바뀌게돼 각종 문제를 해결할 창구가 필요하게 됐고 ▲중국 내륙지역 경제발전에는 대만의 자본·기술이 필요해 경제계가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 안테나없이 위성방송 보세요/대우 디지털 광전송망 개발 내년서비스

    ◎홈쇼핑·케이블TV 시청 자유자재/인터넷 검색도 기존보다 208배 빨라 내년 3월부터 각 가정에서 기존 전화선을 통해 디지털 케이블TV를 비롯해 위성방송,DBS(위성방송),인터넷 접속,VOD(주문형 비디오),홈쇼핑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대우통신은 최근 고합그룹의 KNC,대영전자 및 미국 INC사와 공동으로 디지털 광전송망 개발을 완료하고 시범서비스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대우통신은 광전송망을 통해 서울 송파구 거여동지역의 아파트 2백20가구를 대상으로 케이블TV와 DBS 등 두가지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제공하며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상용서비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시범서비스는 은평 유선방송국에서 한국통신의 불광전화국으로 ATM(비동기식전송모드)방식으로 보내진 MPEG2 압축방식 형태의 영상데이터를 1백55Mbps의 광케이블망을 통해 혜화전화국,가락전화국을 거쳐 거여동 아파트단지의 원격분배장치(Remote Terminal)까지 전달한 뒤 전화선을 이용해 각 가정의 세트톱 박스까지 25Mbps의 속도로 연결된다. 각 가정에서는세트톱 박스를 통해 디지털 케이블TV와 DBS,VOD 등 각종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또 광전송망 시스템은 정부에서 추진중인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가입자 인입망으로서의 역할도 맡게된다. 새 시스템은 특히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되고있는 인터넷을 기존 28.8Kbps모뎀보다 2백8배나 빠른 6Mbps의 속도로 검색할 수 있다.또 광전송망은 망 하나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종합정보서비스망이기 때문에 서비스 내용에 따라 별도의 망을 설치할 필요없이 세트톱 박스와 소프트웨어 설치만으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경제적인 시스템이라는 장점도 있다.
  • 전력수급 2000년 최대 위기

    ◎영광원전 5·6호기­영흥도 화전 1·2호기 착공 못해/총공급의 10% 규모… 「님비현산」 해결 서둘러야 극심한 전력난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던 올 여름 전력수급 사정이 제한송전 등의 극한상황 없이 무사히 넘어갔으나 장기적으로는 전력수급 전망이 밝지 않다.특히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격화된 님비(NYMBY·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국가경제와 국민생활에 직결되는 기초시설물인 주요 발전소의 건설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어 오는 2000년에 가면 최대의 전력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장기 전력수급계획에 따르면 전력 예비율은 올해 5.2%에서 오는 99년까지 12%대로 끌어올릴 계획이다.그러나 도처에 불안요인이 널려 있다. 당장 올해 공사에 들어가야 하는 영광원전 5·6호기가 지역주민들과 해당 지자체의 반대로 착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영광원전 5·6호기는 발전용량이 각 1백만㎾씩 총 2백만㎾로 당초 올해 착공해 오는 2000년에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빨라야 내년에나 착공이 가능할 전망이다.또 영흥도 화력 1·2호기 1백60만㎾도 착공이 늦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체 공급능력의 거의 10%에 육박하는 3백60만㎾의 공급가능 시기가 계획보다 1∼2년 이상 늦어질 것으로 예상돼 오는 2000∼2002년 사이에는 수급불안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는 장기 전력수급계획이 예정대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전의 안전관리 강화,발전소 주변지역에 대한 지원사업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으나 님비현상을 예방할 수 있는 보다 근원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통상산업부는 올해의 경우 8월말로 접어들면서 찬바람이 돌기 시작,더이상 냉방수요의 급증에 따른 위험상황은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내년의 경우 공급측면에서는 6월까지 70만㎾급 월성원자력 2호기,90만㎾급 보령복합화력,50만㎾급 하동화력 등 17기의 발전소가 완공돼 총 공급능력은 3천8백83만㎾로 늘어나는 반면 하계전력 최대수요는 올해 당초예상치 3천2백63만3천㎾보다 12% 늘어난 3천6백74만㎾에 이를 것으로 보여 전력예비율은 6%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경기침체로 전력수요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고 이상고온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달 중순에 전체 공급능력의 5%에 이르는 원전2기가 동시에 고장나 지난 12일에는 전력예비율이 전력사정이 최악이었던 94년의 2.8%이후 가장 낮은 5.2%까지 떨어져 위기상황을 맞았었다.
  • 폐광지역에 종합레저시설/스키­골프장·호텔 등 건설

    ◎강원도 승인 요청/화훼단지 등 특화사업 추진/2천5년까지 2조5천억 투입 강원도 정선·태백·삼척·영월 등 탄광지역 개발촉진지구에 2005년까지 모두 2조5천억원을 투입,스키장 8개(1백9면),골프장 4개(99홀),호텔 6개(1천7백50실),콘도미니엄 8개(4천실) 등 종합레저시설 건설이 추진된다. 강원도는 폐광지역진흥지구를 종합관광레저 단지로 개발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을 중심으로 관광레저사업,지역특화개발사업,기반시설사업 등 모두 85개 개발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23일 건설교통부에 개발계획승인을 요청했다. 건교부는 이에따라 통산부·환경부·산림청 등 관계부처간 협의와 국토건설종합계획심의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의 심의를 거쳐 올해 연말까지 최종 계획안을 확정키로 했다. 강원도가 승인을 요청한 개발계획에 따르면 2005년까지 국고 7천2백64억원,지방비 3백44억원,민간자본 1조7천7백62억원 등 모두 2조5천3백70억원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관광레저사업으로는 태백에 백병산스키장·서학레저단지·함백산수렵장·화전민속촌 등이,삼척에 황조스키장·성덕골프장,영월에 장산스키장,정선에 고토일복합리조트·지장산리조트·게르마늄온욕센터 등이 각각 추진된다. 이 가운데 고토일리조트와 지장산리조트,서학레저단지에는 골프장 시설이 각각 들어선다. 지역특화사업으로는 태백에 화훼단지·먹는샘물·축산단지 등이,삼척에 고랭지채소·약초재배·양계단지 등이,정선에 토종가축단지 등이 만들어진다.
  • 한국통신 10월부터 무인방범서비스

    ◎외부인 침입땐 관할경찰서에 자동 전화 경보 빠르면 오는 10월부터 원격통신시스템(TSS·Tele Security System)을 이용한 자율방범체제인 「무인방범서비스」의 혜택을 입게 될 전망이다. 한국통신은 지난 95년 9월부터 지난달까지 서울·대구·대전의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무인방범시범서비스를 오는 10월부터 상용화하고 내년에는 서비스 제공 지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무인방범서비스는 가정이나 상점 등에 방범센터를 설치,전화선과 원격통신시스템을 통해 경찰서 상황실과 접속되는 새로운 방식의 방범망.무인방범서비스에 가입한 가정집과 상가건물은 통화중에도 구애받지 않고 전화선으로 데이터를 송신할 수 있는 TSS를 통해 24시간 감시가 가능하다. 외부인이 침입할 경우 적외선 및 열선감지기 등의 방범센서나 비상벨작동에 의한 경보가 TSS를 통해 관할 경찰서의 경보수신장치에 자동 전송돼 주소와 약도를 알려줌으로써 경찰이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게 해준다. 전문경비업체들이 제공하는 기계용역경비는 경보발생때 자체 경비원들이직접출동하기 때문에 적게는 월 20만원에서 최고 1백만원까지 경비를 부담해야 한다.반면 무인방범서비스가 상용화될 경우 단말기 임대료와 회선사용료를 포함해 월 2만원 정도라 대중화전망이 매우 밝다. 한국통신 초고속통신추진본부 권영관 멀티미디어사업부장은 『중소기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기 위해 영세한 용역경비업체에 무인방범서비스업무를 이관,이 업체들에 방범센서 등 단말기를 대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조선족 이주 역사(송화강 5천리:2)

    ◎30년대 일제이민정책에 1만가구 정착/“주택·식량 제공” 감언이설에 속아 집단이주/「만척」서 안전촌 건립… 항일 세력과 연결 차단/부여국­고구려­발해 고대사 무대… 아직도 조선지명 남아 송화강의 큰 원류는 두 갈래가 있다.이도송화강인 이도백하 말고 두도송화강이 그 원류다.두도송화강은 이도송화강을 이도백하라 하는 것처럼 그냥 두도강이라고도 한다.그런데 두도강은 본래 두갈래 물줄기가 합수하여 강을 이루었다.두도강의 한 갈래는 만주어로 어허러인(액혁낙인)이고,다른 한 갈래는 역시 만주어로 사인러인(새인낙인)이라는 이름를 가지고 있다. 어허러인은 백두산 옥설봉에 쌓인 만년설의 눈이 녹아 험준한 바위산을 지나면서 시작되었다.그래서 낙차 57m나 되는 큰 폭포에서 작은 폭포에 이르기까지 폭포군을 이루었다.물이 급하게 흐를 수밖에 없다.일명 긴강이라는 이유가 여기 있다.이에 비해 사인러인은 완만하다는 뜻을 가졌거니와 강의 흐름도 온화했다.일명 만강이라 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부여족 유적 대량 발굴 이들 두 물줄기는 화라자에서 합수했다.바로 두도강인 것이다.두도강은 2백30㎞를 달려서 길림성 화전시 백산진 양강구에서 이도백하를 만나 드디어 합류,장강다운 송화강 물길을 잡아나갔다.송화강유역은 비옥할 뿐 아니라 광활했다.이 풍요로운 땅에 세운 맨 처음의 읍락국가는 해모수를 우두머리로 한 부여국이었다.「자치통감」기록에 나오는 첫 도읍지 녹산지도는 그 어디인가. 오늘날 길림시에는 동단산성과 동단산 평지성,용담산성이 있다.근래 동단산 부근에서는 대량의 부여족의 문물(문화재)이 발굴되었다.금 은 동 철제유물과 도자기 옥석 칠기 등의 유물만 해도 8천여점에 이른다. 또 1978년 동단산 서쪽 서단산 무덤군 돌널무덤에서는 무덤주인공의 머리를 감싼 모직물이 나왔다.양털과 개털을 꼬아 실을 자아내고 이를 천으로 짠 것이다.간단한 직조기를 사용하여 짠 이 모직물은 부여족의 문화가 상당 수준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동단산 일대는 광개토대왕 시기에도 고구려 판도였다.오늘날 길림시내에 남아있는 고구려산성은 용담산성이다.용담산은 산 자체가함지박처럼 중간이 낮고,사방은 높은 산등성이에 둘러싸인 산세를 했다.성은 산세를 이용하여 황토와 자갈로 쌓았다.높낮이는 일정치 않았다.성 서북쪽에 있는 길이 53m,너비 26m에는 용담이라는 못이 있다.이 연못은 1만㎥의 물을 가둘 수 있는 인공 못이라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견해다. 용담산성 망루자리에 올라서면 성 아래로 도도히 흘러가는 송화강과 강 양안에 우뚝우뚝 솟은 길림시의 고층건물들이 한 눈에 조망되었다.망루에 올라 문득 역사를 거슬러 뒷걸음질하고 있을때 피맺힌 비명이 들리는 착각에 사로잡혔다.서기 668년 2월 당나라 장군 설인귀의 공격을 받고 울부짖는 고구려군사들의 비명이….고구려는 용담산성에서 패하고 다시 군사 5만을 모아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했다는 것이다. 고구려 이후 한 때는 발해가 용담산성의 주인이 되었다.그러나 역사는 변화하는 것이어서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다.그 역사의 체취가 배인 송화강유역으로 조선족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압록강유역이나 두만강유역에 비해 훨씬 뒤의 일이다.1922년 「동북3성실황」은 이를 뒷받침했다.당시 두만강유역 화룡,연길,왕청 3개현의 조선족은 44만4천4백20명,송화강유역인 안도,돈화,길림,장춘은 4만5천6백명에 불과했던 것이다.그리고 흑룡강성에는 고작 6백61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을 뿐이었다. 송화강유역의 조선족 이주민 유형은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두만강과 압류강 이주민들의 재이주,러시아 이주민들의 유입,일제 이민정책에 의한 집단이주 등이 그것이다.이 가운데 절대적인 비중은 일제 이민정책과 맞물린 한반도로 부터의 조선인 집단이주가 차지했다.일제는 중국 동북지방의 항일세력을 소멸하고 동북에다 중국내지와 동남아를 침략하기 위한 병참기지를 만들 목적으로 이민정책을 서둘러 폈다. ○동남아 침략 병참기지화 그들이 1936년 8월 입안한 이민정책에는 2년내에 일본인 1백만가구 5백만명을 이주시킨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이와함께 일본은 1만가구의 조선인 농민들을 동북지방 23개현으로 집단이주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1937년 이를 실행에 옮겼다.일본 이주민들도 적지 않게 들어왔으나 큰 성과는거두지 못했다.그러나 한반도에 사는 조선의 가난한 농민들은 일망무제한 북지대륙으로 꾸역꾸역 몰려들었다.가기만 하면 집과 먹을 것을 주고 돈도 벌 수 있다는 조선총독부 속임수에 넘어간 사람들이다.그래서 조선농민들은 이주증을 받기가 무섭게 남부여대하고 고향을 등졌던 것이다. 그 당시 집단이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더러 길림성에 살고있다.장춘시의 정병남(71)노인도 그런 이주민의 한 분이다.전남 함평군 학교면 학교리 태생인데,당시 사정을 소상히 설명했다. 『우리는 1937년 2월에 길림성 유하현에 도착했습니다.함평군 함평면,대동면,광주 송영리에서 각각 열다섯 가구씩 마흔다섯 가구가 집단이주를 한 것이지요.눈보라가 치는 한겨울에 다시차란 데에 떨어지니 집은 커녕 먹을 식량도 없었어요.언땅에 막을 칠 수밖에….만주척식회사(만척)에서 뜬 수수와 좁쌀을 주어 그나마 배불리 먹었습니다.그냥 준 것이 아니라 변리곡이었지요.일년 내내 뼈 빠지게 일해서 가을에 갚고나면 식량이 없어요.또 만척에서 변리곡을 다시 먹어야 했습니다.빚은해마다 늘고….광복이 나지 않았더라면 일생을 노예로 살았을 겁니다』 유하현 삼원포는 조선독립운동 진원지의 하나였다.1911년에 경학사가 서고 나서 신흥무관학교,1919년에는 대한독립단이 조직되었다.그런데 일제의 수탈기관 만척은 이 일대 땅을 헐값에 사들여 안전촌을 만들었다.경찰을 주둔시키고 무장자위단을 조직했다.마을마다 소총 열자루와 권총 한자루씩을 내주었다.그리고 양민증이 없으면 마을을 드나들지 못했다.항일세력들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양민증 없이 출입못해 집단이주민 무장화 과정에 나타난 유명한 무장자위단은 1944년에 조직한 풍향의용개척단이다.조선에서 보통학교 고등과를 나온 청년 90명을 모집,유하현 대통구촌 신가가에 이주시켰다.이들은 군복을 입고 무기를 휴대한 군사·농업조직이었다.단장을 비롯,군사교관·청치교원 등의 간부는 모두 일본인이 맡았다.조선인 단원 20명은 뒷날 관동군에 편입되었다.일인 간부와 조선인 단원들은 휴가로 고향에 돌아갔다가 식솔들까지 데려와 살았다. 오늘날 송화강유역에는집단이주민마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조선족이 있든 없든 간에 한반도 군명에서 따다 만든 마을 이름들이 그대로 전해 내려왔다.유하현에서는 아직도 창성,벽동,가평이라는 이름이 보였다.또 안도현에는 금화,원주,고성,장수,정읍,김제,익산마을이 있다.이밖에 두군의 이름을 딴 청흥(북청·신흥),안산(진안·익산)이 있는가 하면 조선의 양양이라 한 조양마을이 존재했다.이들 마을 이름에서 집단 이주민들의 진한 노스탤지어를 읽었다.
  • 할리우드/새내기 감독 전성시대

    ◎특수효과 등 통해 TV세대 동원 잇딴 성공/영화사,광고감독·연출경력 신에 “모시기” 미 할리우드에 새내기 영화감독들의 돌풍이 불고 있다.텔레비전 세대 관객들을 상대해야 하는 할리우드의 대형영화사들이 특수효과와 새로운 카메라 기법을 구사하며 신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할 줄 아는 신인감독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이에따라 뮤직비디오와 광고감독,텔레비전과 연극연출자로 화려한 경력을 쌓은 신인감독들이 속속 할리우드로 입성하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관계자들은 영화장르를 새로이 개척하는 젊고 재능있는 감독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현실속에서 기존세대들의 귀에 익은 유명감독들의 이름은 「흘러간 옛 노래」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한마디로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계 동향은 5만달러를 요구하는 일류감독과 30만달러를 줘야 하는 신인감독을 놓고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계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관객들의 취향에 맞춰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80년대 인기를 얻었던 액션영화나 디즈니 스타일의 코미디영화는 젊은층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아이디어 고갈품에 지나지 않게 됐다. 또한 외국시장이 영화산업의 선두주자로 자부한 미국영화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하면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출연배우와 감독선정에 더욱 고심하고 있다.이를 반영하듯 최근 제작되는 영화들 가운데는 처음 메가폰을 잡았으나 제작감이 뛰어난 신인감독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신인감독으로 가장 주가를 높이고 있는 감독은 촬영감독 출신의 잔 드 본트.본트는 「스피드」로 대히트를 기록한 이후 「회오리」에서도 관객동원에 성공하고 있다.그밖에 「에일리언 3」과 「세븐」의 데이비드 핀처,「배드 보이즈」와 숀 코너리,니콜러스 베이등이 케이지주연의 「록(바위)」을 제작한 마이클 베이 등이 선두그룹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 신인감독들은 아직 영화제작의 전권을 완전히 위임받지 못하고 있다.흥행실패를 우려하고 있는 영화제작사들은 총감독에 유명감독을 앉혀 경험이 일천한 신인감독의 제작과정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드림워크사가 제작하고 있는 텔레비전 시리즈 「E R」의 수석연출을 맡았던 미미 레더가 감독하는 「피스 메이커(평화창조자)」에서 드림워크의 창업자이기도 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그러나 이들 신출내기 감독들이 조만간 허리우드 영화계를 「완전점령」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게 영화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이다.할리우드에도 세대교체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할 수 있다.
  • 국가보안법 존립의 당위성/장수련 통일연수원 객원교수(특별기고)

    ◎“북한의 적화야욕 막는 마지막 보루” 우여곡절을 겪고 존립하는 우리의 현행 「국가보안법」은 분단이후 지금까지 남로당과 북한노동당에 의한 고차원적인 대한민국 전복전술로부터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일반형법으로 다루기 어려운 입법상의 문제점이 감안되어 한시적인 특별법으로 제정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 국가보안법을 두고 가장 싫어하는 존재가 다름아닌 북한이다.그래서 저들은 남한의 국내법인 국보법을 사사건건 물고드는가 하면 갖가지 방법의 국보법 무력화전술도 구사하고 심지어는 「남조선 국보법철폐대책위원회」까지 결성하여 유엔과 세계 각국의 정부·정당·단체들을 상대로 「국보법 고발장」이란 괴문서까지 보내면서 국보법철폐를 위한 영향력행사를 촉구하는 형편이다. 이런 판국에 최근 국가보안법 관련사건에 대한 판결기사가 일간신문에 일제히 게재되면서 우리국민의 머리를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그 이유는 같은 법률전문가인 율사임에도 불구하고 동일사건을 다루는 시각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점때문이다.이 사건의 담당검사는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는데 담당판사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 기사를 본 필자는 법률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사건의 판결내용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입장도 못되거니와 전혀 그럴 생각조차 없음을 분명히 해둔다.그러나 사안의 국가적인 중대성때문에 필자의 전공분야에 해당하는 공산당의 행동규범인 전략·전술적 발상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식 연방제방안과 평화협정제의의 정체에 대한 소견만을 밝혀두는 것이 국민된 입장의 책무일 것만 같다. 문제의 국보법관련 사건의 담당판사는 이 사건을 판결함에 있어 『사건내용중에는 연방제통일,대미 평화협정 등 북한의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으나 전체적인 취지는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해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는데 북한제의에 대한 필자의 전문지식으로 볼땐 다분히 이율배반적인 논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아마도 그같은 발상의 원인은 북한의 각종 제의를 서방적 통념이나 교과서적 기준으로만 판단한데서 기인되는 것같다. 북한은 저들의 연방제통일방안을 제의함에 있어 남한과 북한을 「정」(자본주의)과 「반」(공산주의)으로 삼고 양자를 「합」(민족)으로 묶어서 통일하자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저들의 설명은 형식적인 것으로서 명분은 일단 이념적 통일방안같이 위장하지만 내용은 적화통일의 걸림돌인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을 제거하기 위한 전술적 위계인 것이다. 왜냐하면 공산당의 세계관인 변증법적 유물론과 그 인식방법으로서의 유물변증법은 타협적 공존논리인 헤겔변증법식,「정·반·합」적 연방제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비타협적 정복논리이기 때문이다. 레닌은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 내놓은 「민족 및 식민지·반식민지문제에 관한 테제」 제7항에서 연방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함으로써 저들이 급조한 14개 소수민족공화국을 볼셰비키정권 속령(촉령)으로 소비에트화하는데 성공하였다.그 내용을 보면 매개의 상의한 민족사회에서 공산당이 지배적 지위에 오르기까지의 「과도적 정권형태」가 연방제란 것인데 바꾸어 말하자면 공산당이 비공산 목표지역을 적화하는데 가장 용이한 방법이연방제라고 하는 과도적 조치라는 뜻이다.북한도 저들끼리의 비밀회의나 전략문제에서는 연방제란 과도적 대책이고 임시적 연합으로서 연방제에 부여된 전술적 임무는 국가보안법과 주한미군의 제거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의 평화협정체결제의도 같은 맥각의 전술로서 북한이 의도하는 바는 남한은 어디까지나 적화통일의 대상지역이니까 남한을 배제시킨 바탕위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음으로써 6·25전범국으로서의 누명도 벗고 미국을 침략자로 몰아부쳐 전쟁배상금 명분의 경제원조도 짤대로 짜내고 비평화적 방법에 의한 적화통일의 장애물인 주한미군도 철수시키자는 심산인 것이며 이를 위한 새로운 「중심고리」전술로서 개발한 발상이 다름아닌 「핵무기」제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부연한다면 공산주의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순수학문이 아니며 적화혁명을 위한 위장학문으로서 공산당의 언동은 언제나 형식과 내용의 양면성이 있다는 점을 유념할때 저들의 언동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되고 교과서적으로 해석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이같은 문제점이 올바로 인식될때 파란만장한 국가보안법도 그 입법취지에 합당한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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