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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 당선자 “기쁨은 잠시 두려운 마음”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31일 “막상 정권을 교체하고 보니 두려운 마음도 있다. 기쁨은 잠시뿐 두려운 마음이 있는 게 솔직한 제 고백”이라고 말했다.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에 앞장섰던 인사들이 결성한 6·3동지회의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에 참석해서다. 1992∼94년 이 단체의 회장을 역임한 이 당선자는 이날 모임에서 “향후 5년은 순탄한 길이 아닐 것이라고 짐작된다.”면서 “10년간 흐트러진 모든 것들의 제자리를 잡는 일에 더 큰 저항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국민을 낮은 자세로 섬김으로써 국민이 주는 권위를, 잃어버린 권위를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이 당선자를 측면 지원해온 모임답게 이날 행사에는 900여명이 모여 호황을 이뤘다. 이 당선자는 앞서 오전에는 강원 철원의 6사단을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이 당선자는 북한 지역이 보이는 평화전망대에서 부대현황과 북한군 동태 등의 설명을 들었다. 방명록에는 “강한 안보의식이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6사단 수색대 식당에서 직접 배식판에 음식을 받아 장병들과 식사를 했다. 그는 장병들에게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하고 국방의 의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격려했다. 배식판의 음식을 남김없이 비운 이 당선자는 식사를 마치며 “모든 분이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갈 때, 자기 역할을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것”이라면서 “일자리 가질 사람, 공부 계속할 사람 모두 돌아가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고 밝혔다.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 연말 무용무대 우리가 지킨다

    올해 무용계의 마지막 무대를 보고 싶다면 29∼30일 오후 6시 분당의 한국현대춤연구소를 찾아가 보자. 한국현대춤연구회가 춤계의 도드라지는 중견들을 골라 실험적인 작품들을 보여주는 ‘분당 댄스 시어터(BDT) 2007’. 연말 단골 레퍼토리인 ‘호두까기인형’이 모두 막을 내린 시점에 썰렁한 춤 판을 묵묵히 지켜내는, 튼실한 무대이다. ‘BDT 2007’의 특징은 잘 짜여진 무대와 화려한 의상 대신, 작지만 알찬 공간을 택해 중견 춤꾼들의 실험적인 작품들을 오붓하게 보여주는 자리란 점. 막대한 비용이 드는 중·대형 무대보다는 실속 있는 공간에서 가까운 사람들과 춤을 이해하는 이들에게 실험적인 춤을 보여준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작품들을 선보일 공간은 바로 한국현대춤연구회의 스튜디오이다. 29일에는 20대 후반의 변소연과 30대 초반의 도태희, 정미경이 각각 10∼15분짜리 소품들을 통해 요즘 현대무용의 흐름을 짚는다. 마지막날인 30일은 한국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중견들의 무대. 부산대 교수 박은화, 까투현대무용단 대표 박호빈이 실험성 짙은 새 작업을 공개하며 이번 공연에선 유일한 한국무용 출연자인 이미영도 무대에 선다. 한편 첫날인 28일에는 현대무용계의 중진 6명이 미리 짜여지지 않은 즉흥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031)712-0501.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마니아들 다 모여라

    마니아들 다 모여라

    서울독립영화제 화제작을 다시 본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내년 1월4일부터 10일까지 2007독립영화제 수상작을 재상영한다. 16개 섹션,31편으로 이뤄진 이번 상영전에서는 독립 애니메이션 최초로 대상을 수상한 김진만 감독의 ‘소이연’과 강호 최고의 고수가 현대에 커피 자판기로 환생해 사랑에 빠진다는 ‘무림일검의 사생활’이 소개된다. 독립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다.‘전장에서 나는’은 이라크 파병 군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을 다룬다.‘살기 위하여-어부로 살고 싶다’는 새만금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 후에도 이어지는 주민들의 투쟁 현장을 따라간다. 관람료 5000원.(02)778-0362. 프랑스영화를 선보이는 ‘시네프랑스’의 내년 첫 시리즈도 확정됐다. 장 르누아르 감독의 회고전이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아들인 장 르누아르는 사회 풍자극과 인간 본성을 담은 영화 등 영화사에 다양한 얘깃거리를 만들어냈다. 리얼리즘 촬영 방식과 딥 포커스 기법 등의 실험으로 훗날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찬사를 받은 감독이기도 하다. 회고전은 1월부터 2월까지 매주 화·수요일 서울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린다. 장 르누아르가 전성기 시절 만든 아홉 편의 작품이 스크린에 오른다. 에밀 졸라의 소설을 영화화한 ‘인간 야수’,‘게임의 규칙’뮤지컬 코미디 ‘프렌치 캉캉’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관람료 6000원.(02)776-3390.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오르가슴-12초의 희열이 세계를 바꾼다/최상안 옮김

    미국대통령이었던 케네디는 과도한 성행위를 즐기다가 근육이 손상되는 바람에 보호대를 착용해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암살 사건 당시를 찍은 사진이나 TV화면을 자세히 보면 케네디의 자세는 부자연스러울만큼 허리가 뻣뻣해 보였다. 댈러스에서 오즈월드가 케네디를 향해 총탄을 발사했을 때 피하지 못했던 이유도 코르셋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독일의 학술 프리랜서 작가 롤프 데겐은 ‘오르가슴-12초의 희열이 세계를 바꾼다’(최상안 옮김, 한길사 펴냄)에서 “이런 의미에서 케네디의 생명을 앗아간 주범은 오르가슴”이라고 결론짓는다. 오르가슴(orgasm)이라는 단어는 부풀어오른다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오르개인(orgaein)에서 비롯되었다. 성적 흥분이 고조되어 뭔가 터질 듯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된다. 사전은 오르가슴을 ‘지극히 편안한 이완감을 동반하는 성욕의 절정상태’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오르가슴은 성행위를 통해 추구하는 희열의 최고 절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랫동안 공공장소에서는 침묵의 외투로 덮어야 할 절대적 금기의 상징이기도 했다. 성과학자 마스터 존슨이 ‘인간의 성반응’이라는 연구에서 성행위 과정에서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대단원에 이르는지를 최초로 밝혀낸 것은 40년 전. 이후 오르가슴의 본질과 의미를 밝혀내고자 진화생물학·뇌과학·동물학·인류학·심리학·내분비학·약학을 비롯한 각 분야의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이 책은 바로 각기 다른 분야에서 이루어진 오르가슴에 관한 연구 결과를 한데 모아보고 싶은 야심찬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은이는 밝힌다. 그럼에도 이 책은 논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겠다는 의도 때문인지 프롤로그인 ‘생명의 승리, 오르가슴’부터 ‘육욕의 미래’라고 이름 붙인 에필로그까지 학구적이라기보다는 솔직하다. 군데군데 들어간 삽화도 오르가슴의 실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은이는 성적 쾌락과 오르가슴이 문화와 기술 분야 발전을 위한 로켓 엔진과 같다면, 충동을 억압하는 행위는 중세시대로 후퇴하려는 짓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섹스에 적대적 태도를 보이는 문화환경 속에서는 삶의 기쁨을 누리기 어렵고, 나아가 지성의 발전도 저해된다는 것이다.1만 6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퀄컴이야기/박정태 옮김

    퀄컴(Qualcomm)은 낯설지 않지만, 막상 어떤 기업이냐고 물으면 대답은 궁색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국내에서도 위인전에 오르고 있는 마당에 쌍벽을 이루는 퀄컴의 창업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퀄컴이 우리나라 휴대전화에 쓰여지는 CDMA(코드분할다중접속)의 원천기술을 갖고 있어서 거액의 로열티를 챙겨가는 ‘얄미운 기업’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져 있다. ●한국서 CDMA 로열티 연 1조원 이상 챙겨 퀄컴의 발전에는 한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퀄컴이 미국에서조차 CDMA를 표준화하는 데 실패하여 맞은 도산 위기를 한국시장이 구해냈기 때문이다. 한국은 1992년 이동통신 표준기술을 CDMA 방식으로 표준화하겠다고 결정했고, 1996년 SK텔레콤(SKT)이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을 상용화했다. 이후 한국의 CDMA 기술은 최고 수준을 인정받아 경쟁국을 압도했고, 퀄컴은 한국시장의 성공을 발판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퀄컴이 로열티로 한국에서만 연간 1조원 이상을 챙겨간다는 사실은 곧 한국의 이동통신 기술이 퀄컴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퀄컴은 1985년 MIT 출신으로 NASA(미 항공우주국) 연구원과 UCSD(캘리포니아주립대학 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 출신의 어윈 제이콥스가 1968년 설립한 통신기술 컨설팅회사 링카비트 출신의 동료 6명과 1985년 창업한 무명의 벤처기업이었다. 이들이 불과 10년만에 전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기업으로,20년만에 연매출이 60억달러, 영업이익률이 60%가 넘는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미국의 무선통신 엔지니어이자 컨설턴트인 데이브 목이 쓴 ‘퀄컴이야기’(박정태 옮김, 굿모닝북스 펴냄)는 퀄컴의 성공스토리가 우연이 아니라 땀과 열정에서 비롯됐다고 강조한다. 지은이가 진단한 퀄컴의 성공요인은 크게 세 가지.▲첨단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이 ▲지적재산권 비즈니스라는 독특한 사업모델을 만들어냈으며 ▲기존 업계의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와해성 혁신전략을 추진했다는 점이다. 제이콥스는 창업 당시를 두고 “우리가 그 때 마음 속에 그려둔 제품은 아무 것도 없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퀄컴은 곧 세계 무선통신사업에서 비교의 대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친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그것이 바로 CDMA이다. CDMA는 퀄컴이 휴대전화 시장에 도입하기 이전에 이미 군사적 목적으로 개발되어 기밀에 부쳐졌던 개념이라고 한다. 퀄컴이 CDMA를 ‘발명’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따라서 퀄컴은 보도자료에도 CDMA 기술의 ‘개척’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퀄컴이 CDMA와 관련한 수천 건의 특허권을 갖고 있지만,‘CDMA 기술의 발명’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술 혁신으로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 제시 지은이는 이것이 어쩌면 사소한 차이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한다. 발명가가 엄청난 부를 함께 누리는 사례는 극히 드문데, 퀄컴처럼 진짜로 영리한 발명가는 자신의 발명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뭔가 획기적인 개념에 그것을 응용하여 큰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 책이 단순히 한 기업의 성장과정을 기록한 것이라면 그다지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퀄컴의 사례는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어떻게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는지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이상철 광운대 총장도 추천사에서 퀄컴의 성공 방정식을 기술개발로 성장을 이끌어내야 하는 우리 기업에 교훈으로 삼을 것을 강력히 주문했다.1만 48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창녕고분의 금귀고리 주인은 ‘젊은 여성’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경남 창녕군 창녕읍 송현동 가야 고분에서 발굴한 금귀고리 차림의 인골(서울신문 12월21일자 17면 보도)은 키 135㎝의 젊은 여성으로 밝혀졌다. 창녕 송현동 15호분은 도굴이 이루어져 유물 대부분은 사라졌지만, 주인공의 시신이나 관을 놓는 시상(屍床)과 순장자 4구의 시신 및 토기를 비롯한 관련 부장품이 남아있었다. 특히 석실 남쪽 벽에 가까운 곳에 놓였던 주인공은 머리를 남쪽, 다리는 북쪽에 둔 데 비하여 반대편에 있던 순장자의 시신은 한결같이 머리를 동쪽에 두고 있었다. 순장자의 시신은 도굴 과정에서 훼손되어 두개골과 발뼈만 남긴 채 몸통 부분은 남아있지 않았는데, 금귀고리는 석실 북쪽에 가장 가까이 있던 인골의 왼쪽 귀에서 발견됐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연구기획과 서민석 박사는 15세 이후가 되면 닫히는 성장판이 닫혀 있었고, 치아상태와 골반뼈를 바탕으로 이 인골은 20∼30대 여성의 것이라고 26일 설명했다. 이 인골의 키는 135㎝로 머리나 발의 피부 등을 고려해도 137㎝가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됐다. 한반도에 살던 고대인들의 키가 현재보다는 작았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적지 않지만, 그래도 성인여성으로는 작은 편이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발굴로 가야 시대 순장 풍습의 일단이 밝혀졌지만 방식의 전모를 파악하려면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종교계 지도자 신년 메시지

    무자년(戊子年)을 앞두고 종교계 각 수장들이 새해 나라와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신년사를 일제히 발표했다. 개별 종단의 신도들에 영향을 미침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전하는 종교계 수장들의 신년사를 요약, 소개한다. ■기독교계 # “기쁨 속에 기도와 감사의 삶을” ●정진석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추기경) 새해에도 여러분의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여러분들이 계획하고 소망하는 것들이 모두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항상 기쁨 속에서 기도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과 그분의 은총이 있기에 한 해를 희망을 안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올해는 6월28일부터 1년간 사도 바오로 탄생 2000년을 기리는 특별 희년의 해입니다. 복음 선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사도 바오로의 삶을 본받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사회·국가에 대한 책임·의무를 깨닫자” ●이용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새롭게 시작되는 한해를 후회와 미련으로 주저하기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계획이 너무도 광대합니다.2008년 한국교회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여하신 사명과 책임이 있음을 믿습니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계를 향한 책임과 의무를 다시 자각하는 새해의 시작에 서서, 사명 감당을 위해 스스로 다짐하는 모든 한국교회 성도들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불교계 # “장애를 딛고 원융과 통합의 길 찾아야” ●법전 조계종 종정 무자년 새해 아침이 밝으니 위광(威光)이 대천세계(大千世界)로 뻗어나고 천지(天地)의 서기(瑞氣)가 집집마다 쌓이니 이르는 곳마다 감로문(甘露門)이 열립니다. 하늘에서 진리의 우레가 일어나고 시방(十方)에 가득한 장애(障碍)가 사라집니다. 곳곳에서 원융(圓融)과 통합(統合)의 길이 열리고 범성(凡聖)은 차별(差別)없는 일미(一味)를 이루니 범부(凡夫)는 번뇌(煩惱)속에서 부처를 빚어냅니다. 사람마다 현기묘용(玄機妙用)을 갖추니 만나는 사람이 부처요 이르는 곳이 정토(淨土)입니다. “사람이 중심되는 세상 펼쳐지기를” ●혜초 태고종 종정 거세조계매사설(去歲曹溪梅似雪) 금년선암설여매(今年仙巖雪如梅) 공지인사하상정(共知人事何嘗定) 송구영신기환희(送舊迎新豈歡喜)./지난해는 조계골의 매화가 눈처럼 희더니 새해에는 선암뜰에 흰눈이 매화처럼 날리네. 세월이 변화하는 이치야 세상 사람들이 모를 리 없거늘 묵은 해 보내고 새해를 맞는 것이 무엇이 그리 기쁠소냐. 선각자의 눈으로 보면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하나가 전체이고 전체가 하나입니다. 새해에는 호양(互讓)과 청락(淸樂)의 선비정신을 발휘해 스스로 지옥을 허물고 서로 믿고 의지하며, 사람이 중심되는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원합니다. ■민족종교 # “상극을 털고 화합의 정신 개벽을” ●경산 장응철 원불교 종법사 우리의 당면과제는 물질문명을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선용하고 전 생령이 더불어 잘 사는 낙원세계를 건설하는 일입니다. 물질문명을 선용하는 지혜를 길러 평화를 이루는 주역이 됩시다. 상극과 전쟁의 역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타적 대승행을 실천해야 합니다. 서로 자리이타(自利利他)로 중용(中庸)의 도를 실천하면서 인류의 복문(福門)을 활짝 열어갑시다. # “세계일가 상생문명의 기틀 다지자” ●안운산 증산도 종도사 서 로 잘되게 하는 상생의 도심(道心)이 만개하길 축원합니다. 상생의 새 세상을 가꾸기 위해서는, 지나온 세월의 원과 한을 풀고 화합해야 합니다. 세상만사는 다 화합연후사(和合然後事)입니다. 반목하고 질시해온 상극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정치, 종교, 언어, 인종의 벽을 넘어 너와 나, 네 나라 내 나라가 서로 돕고 사는 세계일가(世界一家) 상생문명의 기틀을 다집시다. 정리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우암 송시열의 글씨 ‘刻苦’ 첫 선

    지금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는 ‘직필(直筆)’이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을 가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학자이자 정치가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과 우암 송시열(1607∼1689)을 통하여 도학자(道學者)들에게 글씨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는 취지이다. 두 사람은 같은 은진 송씨로 동춘당이 세상을 떠나자 우암이 ‘공과 나는 성도 같으니 다만 부모만 다를 뿐’이라고 추모했을 만큼 가까웠다. 노론을 이끌었던 두 사람을 두고 정치적으로는 공과를 따질 수도 있겠지만, 양송체(兩宋體)라고 일컬어졌던 이들의 글씨는 조선후기 진경문화의 토대를 구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동춘당 고택에 있는 대전선비박물관이 소장한 동춘당의 ‘양기발처(陽氣發處)’ 8곡병풍과 ‘진로(振鷺)’ 8곡병풍, 우암의 안식처였던 화양을 이형부(1791∼?)가 그리고 발문을 쓴 ‘화양구곡도첩(華陽九曲圖帖)’ 등 처음 공개되는 희귀작품이 적지 않게 출품되어 있다. 하지만 전시장에서 관람객의 발걸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하는 작품은 역시 우암의 ‘刻苦(각고)’이다. 세로 164㎝에 가로 82㎝의 대작으로, 마른 붓의 거친 필획 속에서 도학자의 꼿꼿한 기개가 그대로 전해져 온다. ‘각고’는 우암의 제자인 유명뢰가 스승에게 청하여 받은 글이다. 유명뢰가 비단글씨폭의 오른쪽, 우암의 또 다른 제자인 권상하와 정호가 각각 오른쪽과 아래쪽에 발문을 남겼다. 특히 “학문을 다잡아 하지 않고 어정쩡하게 아까운 세월을 허송하는 것이 학자의 가장 큰 병통이니…‘각고’ 두 글자가 어찌 병통에 알맞은 좋은 처방이 아니겠는가.”라는 권상하의 발문은 그의 문집에 실려있어 일찍부터 후학들에게 가르침이 되어 왔다. 우암은 ‘주희가 아들을 공부시켜 타관으로 보낼 때는 근근(勤謹·부지런하고 삼감) 두 글자로 경계하였고, 임종시에는 주위사람들에게 견고각고(堅固刻苦·뜻을 굳게 갖고 열심히 노력함) 네 글자를 당부하였다. 이 여섯 글자야말로 후학들이 죽을 때까지 가슴에 새겨둘 일이 아니겠는가.’라는 글을 ‘송자대전(宋子大全)’에 남겼다. 우암은 주자가 당부한 여섯 글자를 가슴에 담고 있다가 다른 네 글자까지 모두 포괄하는 의미를 가진 ‘각고’ 두 글자를 제자에게 써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암이 쓴 ‘각고’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일반에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이 글씨는 우암을 추종한 대표적 노론의 한 사람인 민유중(1630∼1687)의 집안에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알려진다. 권상하는 발문을 ‘지금 붓을 잡고 제(題)하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 흐르는 땀이 옷을 적신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맹렬히 다스려서 힘껏 고쳐나간다면 또한 끝내 미혹하여 바른 길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니 삼가 서로 이를 힘써야 할 것이다.’라고 마무리했다. 권상하는 발문을 쓰면서 ‘백발이 성성한 때에 이르렀다.’고 밝히고 있다.‘각고’하기에 그래도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시장에서는 ‘각고’를 탁본으로 찍어보는 체험행사도 열린다.‘직필’전시회는 내년 2월24일까지. 월요일은 휴관. 일반 5000원, 학생 4000원.(02)580-1284.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박범훈 중앙대 총장 등 10명 56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로

    노진환 서울신문사 사장·박범훈 중앙대 총장 등 10명 56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로

    서울시는 25일 노진환(61) 서울신문사 대표이사 사장, 박범훈(59) 중앙대 총장 등 문화예술계 인사 10명을 올해 서울시 문화상 수상자로 선정해 발표했다. 언론 분야 수상자가 된 서울신문사 노 사장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활동하면서 정치부장과 주필 등을 지냈고 정치·통일·외교 전문가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서울신문사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지방자치 지면을 강화해 서울시정을 전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는 정보의 가교 역할을 했다. 중앙대 박 총장은 서양음악과 국악을 넘나들며 수백편의 음악을 작곡하고 아시안게임, 올림픽, 월드컵 등에서 국악을 세계에 알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도동환(69) (사)민족문화영상협회 회장은 40년간 40여편의 영화를 기획·제작하고, 한국영화전서를 출판하는 등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여 대중예술 분야의 수상자가 됐다. 연극 분야 수상자인 송승환(50) PMC프로덕션 대표는 1997년 한국 최초의 비언어극 ‘난타’를 제작해 24개국,206개 도시에 알리고, 프로듀서 시스템을 도입해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의 토대를 마련하는 등 공연예술 산업화에 이바지했다. 이혜숙(59) 이화여대 자연대학장은 여성과학기술인력 양성, 여성과학기술 네트워크 구축 등 과학 교육과 문화 확산에 기여해 자연과학 분야 상을 받는다. 또 조각 분야의 원로작가인 김봉구(68)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명예교수는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며 한국의 현대미술 발전에 기여한 점에서, 이상만(72)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은 서양음악 분야, 임화영(71) 파나관광교통㈜ 대표는 관광 분야, 강태선(58) 서울시산악연맹 회장은 체육분야, 서울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25명으로 구성된 서울무형문화재기능보존회는 문화재 분야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서울시 문화상은 지난 1948년부터 한국전쟁 기간 3년을 제외하고 매년 14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해 지난해까지 모두 55회 553명에게 시상했다. 올해는 330여개 문화예술 관련 기관, 단체, 대학, 학회 등의 추천으로 후보자를 접수하고, 관계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의 공적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뽑았다. 시상식은 26일 오전 11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7) 성남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경기도 성남시 안나의집(중원구 하대원동 102)은 성남과 서울 지역 노숙인들이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의지할 곳 없는 노숙인들이 밥 한 끼를 무료로 제공받는 ‘공짜 밥집´을 넘어 어려운 사람들끼리 정을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8년 이 안나의집을 세워 9년째 운영하고 있는 김하종(50·본명 빈첸시오 보르도·이탈리아) 신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숙인들에게 한결같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신부.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목에 뜻을 두고 18년간 한국에서 몸을 낮춰 어려운 이들에게 온정을 쏟고있는 유별난 현장 사제이다. ● 10년째 안나의집 운영…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해 제17대 대통령 당선자가 확정된 지난 20일 오후 4시 성남시 성남동성당 바로 옆 안나의집 주변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정처없는 노숙인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밥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간 허름한 양철 가건물 1층 식당 안에선 김하종 신부와 자원봉사자 10여명이 손을 맞잡고 “오늘도 기쁜 마음으로 일하자.”는 기도와 함께 노숙인들을 맞기 위한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식당 문이 열리자 줄을 서 기다리던 노숙인들이 차례로 밥을 타서는 20여개 남짓한 길따란 식탁에 앉아 허기를 달랜다. 앞치마를 두른 김하종 신부가 식탁을 돌며 “맛있게 드세요.”라며 인사를 건네자 노숙인들이 연신 “고맙습니다.”라며 답례를 한다. 앞치마를 두른 채 노숙인 맞으랴 밥 푸랴 정신없이 바쁜 김하종 신부의 소중한 시간을 잠시 축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연신 노숙인들을 살피는 신부를 괴롭히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신부는 그냥 웃는다. 이곳에선 하루 평균 400여명의 노숙인이 찾아와 저녁 식사를 한다. 토·일요일을 뺀 주 5일 동안 매일 오후 4시30분부터 3시간여 김하종 신부와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식사를 챙기느라 진땀을 뺀다. 찾아오는 이들은 대부분 성남지역과 서울의 노숙인들. 이 노숙인들에게 김하종 신부는 ‘하느님보다 더 고마운 밥퍼 신부’로 통한다. ● 난독증 딛고 신학대 입학… 동양철학 공부하며 한국에 관심 이탈리아 로마 근교, 인구 5만여명의 작은 도시 비데르보에서 태어난 김하종 신부는 어릴 때부터 난독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난독증이란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단어들을 조합해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낮은, 일종의 학습장애이다. 세계 각국 인구의 5% 정도가 중·경증의 난독증을 갖고 있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김 신부는 암기는 물론 집중력과 이해력이 너무 떨어져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심한 열등감에 빠져 살았다.“나는 왜 이렇게 못났을까.” 열등감과 자괴감에의 반사였을까. 남에 대한 배려와 희생에 관심을 갖게 됐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뜻을 세워 비데르보 교구 신학대에 들어갔다. 신학교를 다니면서도 주말이면 장애인과 독거노인, 교도소 재소자들을 찾아 봉사활동에 몸을 바쳤다고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곧바로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나라를 알린다.’는 오블라티 선교수도회에 몸을 담았고 5년 만인 1987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그런데 김 신부 역시 한국과는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업(業)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교시절부터 유독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고 결국 로마대학교에 진학, 동양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수도회 생활을 하면서 5년간 공부끝에 ‘라오스의 역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1년간의 봉사를 마친 뒤 이탈리아에서 2년째 사제활동을 하던 중 ‘한국에서 하느님의 종으로 살겠다.’는 서원을 수도회에 냈고 한국에 온 게 1990년. 서강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울 무렵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와 함께 지은 이름이 김하종이다. 한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의 성을 택하고 ‘하느님의 종’을 줄인 ‘하종’을 이름으로 삼았다. “내가 원해서 한국에 온 바에야 초심 그대로 철저하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다졌고 서강대 어학당 시절 1년여에 걸쳐 어려운 이웃이 많이 사는 곳을 물색해 1992년 정착한 게 성남이다. 이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로 2년여 일한 게 교구 성당 사목의 전부. 보좌신부로 일하면서 한국의 수녀들과 당시 상대원동, 은행동 지역의 어려운 가정을 돌며 동사무소나 구청, 병원 관련 일들을 해결해 주면서 “내가 갈 길은 역시 어려운 이웃들의 손과 발이 되어 주는 것”이라는 현장사목을 택한 것이다. ● 어려운 이웃 많이 사는 성남에 정착 현장사목의 길 걸어 성남시 수정구의 위탁을 받아 ‘평화의집’에서 독거노인들에게 급식을 시작한 게 지금 안나의집의 시초이다.93년부터 오전엔 평화의집에서 급식을 하고 오후엔 어려운 가정을 돌며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다가 97년 무렵엔 아예 분당에 공부방을 내었다. 그러던 중 IMF사태가 터져 실직 노숙인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자 공부방을 사회복지사에게 맡기고 모란역 옆 뷔페 건물 한층을 빌려 노숙인 식당을 시작한 것이다. 1년여간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노숙인들이 감당할 수 없이 늘었다. 그래서 성남동성당 주임 신부에게 지금의 공간을 무상으로 얻어 안나의집을 시작했다. 안나의집은 처음 노숙인 식당을 하던 뷔페 건물 주인의 어머니 세례명을 딴 것이라고 한다. 말이 급식소이지 안나의집은 아주 허름한 2층의 양철 조립식 건물이다.1층에 주방과 식당이 있고 2층은 이런저런 용도로 쓰이는 공간이다. 왼쪽 비슷한 형태의 단층 조립식 건물에는 자원봉사자며 후원자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닿는 곳이다. 이렇다할 지원 없이 매일 400여명에게 식사를 제공하려니 도움을 받을 만한 후원자들을 찾아다니며 궁색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번갈아가며 김 신부를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여간 고마운 게 아니다. 김 신부도 식사준비며 설거지 같은 허드렛일을 닥치는 대로 한다. “흔히 노숙자를 일자리를 잃어 사회에서 도태된 사람쯤으로 쳐다보지만 이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어려운 환경에서 비롯된 성격과 심리, 정신 장애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인간이고 하느님의 자녀들인데 남다른 고생길을 걸어야 하는 노숙인들에게 그래서 사랑과 온정이 더 절실하단다.“알량한 밥 한끼를 대접하기보다는 꺼져가는 영혼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매일 매일 밥주걱을 듭니다.” ● ‘난독증 알리기 본부´ 만들어 어려운 청소년돕기 앞장 내년이면 안나의집도 10년째. 그동안 일이 많이 늘었다. 가출 청소년을 수용하는 쉼터와 청소년 자립관 세 곳을 마련했고 특히 한국인들에게 난독증의 실체를 알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큰 일이 되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번민과 자괴감의 뿌리가 난독증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국에 온 지 7년이 지난 1997년. 우연히 ‘타임’지의 기사를 읽다가 자신과 똑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 이야기를 접하곤 삼성의료원을 찾아 난독증 장애 판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나보다 남을 더 먼저 생각하고 주저없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바탕은 바로 난독증이었던 것 같아요.” 2003년 마침내 교사와 대학교수, 의사 7명과 함께 ‘난독증 알리기 본부’를 만들었다. “내가 암기식 교육에 치우친 한국에 태어났으면 아마 도태된 채 아무 직업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어려움에 시달리는 청소년 돕기에 발벗고 나서 지난해 11월 처음 연세대 의대 음성언어연구소와 주한 이탈리아 문화원의 도움을 받아 국제 난독증 세미나를 열었고 올해 들어선 매월 대학 교수들을 모셔 난독증 자녀들의 부모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가난한 농민의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역만리 한국 땅을 택해 험한 길을 걷고 있는 푸른 눈의 사제. 사제 서품 20년차의 보통 신부라면 이제 번듯한 자리에 올랐을 법한데 후회는 없을까. 인터뷰를 마치면서 던진 기자의 분별없는 물음에 오블라띠 선교수도회를 설립한 성 에우제니오 드 마제노의 임종사를 말없이 보여준다.“너희들 안에서 사랑, 사랑, 사랑하라. 그리고 모든 이들을 위해서 열정을 다해 사랑을 실천하라.” 성남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하종 신부는 ●1957년 이탈리아 비데르보 출생 ●1981년 비데르보 교구신학교 졸업 ●1982년 로마 오블라티 수도회 입회. 로마대학교 진학 동양철학 공부 ●1987년 사제서품, 로마대학교 졸업 ●1988∼1990년 세네갈 봉사, 이탈리아 사목 ●1990년 한국으로 이주, 서강대 어학당서 한국어 공부 ●1992년 성남 신흥동성당 보좌신부 ●1993년 독거노인 급식 시작, 어린이 영어 교육 ●1998년 모란에서 노숙인 급식, 노숙인급식소 ‘안나의집’운영 ●2003년 ‘난독증 알리기 본부’ 결성
  • ‘인간 채플린’ 그를 말한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반 고흐 미술관에는 도록에서만 보아 오던 그의 대표작이 줄지어 걸려 있다. 하지만 뉴욕이나 파리, 도쿄에서 대규모 반 고흐 전시회가 열릴 때면 상황은 달라진다.‘해바라기’ 같은 대표작이 빠져 나간 전시실에는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던 그림이 대신 걸리기 마련인데, 그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도록 전시가 이루어지곤 한다. ‘감자먹는 사람들’처럼 ‘민중미술가’에 가까웠던 네덜란드 시절의 그림부터 프랑스에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작품을 훑어보다 보면 그의 광기(狂氣)란 결코 천재성의 발로가 아니라, 평범한 인간이 현실에서 느끼는 지독한 괴리의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대표작이 줄지어 걸려 있을 때의 반 고흐 미술관보다 감동은 오히려 깊다. ‘찰리 채플린-나의 자서전’(이현 옮김, 김영사 펴냄)도 그렇다.‘황금광시대(Gold Rush)’와 ‘시티라이츠(City Lights)’,‘모던 타임스(Modern Times)’,‘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 같은 걸작이 ‘해바라기’라면 채플린의 자서전은 ‘해바라기’를 낳을 수 있었던 그의 ‘감자먹는 사람들’시절의 이야기이다.‘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통찰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찰리 채플린(1889∼1977)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다재다능한 배우였지만 술 때문에 세상을 일찍 떴고, 채플린을 낳은 이듬해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또한 유능한 가수였지만 후두염을 앓으면서 목소리를 잃었다. 채플린이 다섯 살에 처음 무대에 섰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당시 런던의 햄프셔주에 있는 육군훈련기지의 병영극장에 나가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갈라지자 극장안은 야유로 가득찼고 채플린은 감독의 손에 이끌려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잭이 옛 친구들을 대하는 것 좀 보세요. 정나미가 뚝 떨어져요.’라는 가사의 노래였는데 중간쯤 불렀을 때 동전이 빗발치듯 무대 위로 날아들었다. 이날의 무대는 채플린 인생의 첫번째 무대였지만 어머니에게는 마지막 무대였다. 이후 어머니와 형 시드니, 그리고 채플린은 런던의 한 빈민구호소에 들어간다. 출소 이후 채플린 처지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궁지에 몰린 눈먼 쥐가 맞아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고 한다. 신문팔이, 인쇄소 일, 장난감 만드는 일, 유리 부는 일, 병원 잡부, 장작 패는 일 등 온갖 일을 다했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한시도 마음에서 떠난 적이 없었다.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꺼지지 않는 열정의 배후에는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만 쳐다 봐야 건질 것은 하나도 없다.’는 어머니의 인생관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채플린은 각본·감독·주연·음악 등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다재다능한 영화인으로 코미디에 머물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삶에 대한 진지한 접근, 산업화와 대공황의 시기에 인간성 상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휴머니스트로 우리에게 인상지워져 있다. 그가 “세상은 내게 최상의 것과 최악의 것을 동시에 선사했다.”고 술회한 것도 이처럼 극단의 인생을 살아 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채플린이 반 고흐처럼 인생을 끝내지 않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말미에서 밝혔듯 “살아 오는 동안 좋지 않은 일도 많이 겪었지만, 나는 행운과 불운은 떠다니는 구름처럼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는 인생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유머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을 고양하고, 우리가 제정신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유머 덕분에 우리는 인생의 부침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채플린이 말하는 ‘살아야 할 이유’이다.3만 2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길섶에서] 사노라면/최태환 수석논설위원

    오디오 마니아인 친구가 있다. 한국가요에 심취해 있다. LP판만 1만장 넘게 갖고 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평, 그의 ‘음악실’을 찾았다. 턴테이블에 곡을 올렸다.‘사노라면 언제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뜨지 않더냐/쩨쩨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펴라/내일은 해가뜬다’ 들국화의 명곡 ‘사노라면’이다. 그런데 가수가 달랐다. 이날 ‘사노라면’은 1960년대 자니리가 불렀다.‘뜨거운 안녕’으로 너무나 유명한 가수다. 자세히 살펴보니 작고한 길옥윤씨의 작사·작곡이었다.40여년전 이런 노래를 만들었다니, 충격이었다. 길옥윤은 음유시인이었다. 노랫말이 시였다. 시화전도 가졌다. 이런 가사도 있다.‘흩어지는 꽃잎 시들은 꿈들/진주빛 눈물의 밤이 깊으면/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 사람/불꺼진 거리에서’지금도 가슴이 뭉클하다. 미국에선 10년전 가수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된 적이 있다. 그의 노랫말을 평가해서다. 우리 대중가요 노랫말도 문학으로 평가받는 날이 올까. 공후인, 황조가 등 고전 시문학도 당시엔 대중가요 가사였다. 최태환 수석논설위원 yunjae@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9)햇골산 마애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49)햇골산 마애불

    중원문화권은 충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북도 일대를 가리키지요. 한반도 중심부의 내륙인 이 지역은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고구려·신라·백제가 각축을 벌인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중원문화권에는 당연히 삼국의 문화유산과 통일신라 이후의 문화유산이 두루 남아있는데, 그 ‘출신 국가’를 두고 논란이 빚어지기도 합니다. 충주시 가금면 봉황리에 있는 햇골산 마애불상군(群)이 대표적입니다. 햇골산이라는 이름은 동쪽에서 해가 환하게 비춘다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하지요. 햇골산은 해발 80m의 야트막한 동산이지만 마애불은 가파른 절벽에 새겨져 있어 답사객을 위해 설치해놓은 철제사다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오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마애불은 산 중턱의 동남향 바위에 새겨져 있지요. 불상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는데, 오른쪽 사유상은 좌우에 협시보살을 두어 삼존상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그 왼쪽에는 세 보살이 나란히 서 있는데, 삼존불과 중첩되도록 새겨놓아 제법 원근감까지 살아나고 있지요. 이 불상군의 왼쪽에는 다시 큼직한 여래좌상과 이 여래에게 고개숙인 공양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마애불이 고구려 양식으로 6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면 크게 무리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몇몇 학자들은 6세기 중엽 고구려 제작설에서 7세기 중엽 신라제작설까지 다양한 학설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6세기 중반설을 내놓은 쪽에서는 이 마애불이 북위(386∼534)의 전통을 이어받은 고구려 초기양식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사유상을 보면, 백제의 서산 마애삼존불이나 신라의 경주 단석산 마애불군의 사유상에서 느껴지는 아이 같은 모습이나 둥근맛이 없는 만큼 마애사유상으로는 삼국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이지요. 반면 7세기 중엽설을 주장하는 쪽은 백제에는 태안과 서산에 마애삼존불이 있으나 고구려 것으로 확정된 마애불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고구려에는 마애불 전통이 없었다는 논리를 폅니다. 따라서 햇골산 마애불은 신라가 삼국통일을 앞두고 중원지역을 포섭하는 차원에서 조성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600년 안팎을 주장하는 쪽입니다. 고구려는 장수왕(재위 413∼491) 시절 이 지역을 세력권에 두었습니다. 햇골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원고구려비의 존재도 이런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지요. 광개토대왕비와 닮은 중원비에는 고구려왕이 남하하여 신라왕과 그 신하들에게 의복을 하사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절치부심하던 신라는 거칠부가 551년 이 지역을 다시 빼앗으면서 556년에는 국원소경(國原小京)을 설치했습니다. 햇골산 마애불을 6세기 후반 이후 것으로 본다면 조성 주체가 고구려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고구려 사람이 신라 땅에 와서 조각한 것’이라는 연구가 나온 것은 이런 고심의 결과였을 것입니다. 이 연구는 고구려의 혜량법사가 551년 신라에 망명할 때 따랐던 무리의 누군가가 마애불을 새겼을 것이라는 구체적인 추정까지 이어졌지요. 혜량법사는 신라의 국통(國統)이 되어 황룡사 주지에 오른 인물입니다. 보물 제1401호로 지정된 햇골산 마애불은 우리 고대사에 있어 미술뿐만 아니라 사상·문화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자료입니다. 햇골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삼국의 각축이 치열했던 중원지역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훌륭한 역사 선생님의 구실까지 해주고 있습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사랑·나눔으로 화합을” 조계종 성탄 축하 메시지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18일 “예수님 오신날이 고통받는 이웃들에게 희망의 소식이 되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의 성탄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지관 스님은 메시지를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사랑과 나눔을 통한 화합과 평화”라면서 “사랑과 나눔은 모든 생명이 자신의 몸과 다르지 않으며, 각기 고귀한 존재라는 깨달음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지관 스님은 특히 “화합과 평화는 진실한 사랑과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 보시(布施)를 통해 가능하다.”며 “종교와 지역, 인종과 이념의 갈등을 뛰어넘어 화합하는 길이야말로 상생 상조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태안 앞바다 검은 재앙] 신두리 사구에 차단막 설치

    문화재청은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일어난 원유 유출 사고에 따라 천연기념물 431호인 태안 신두리 해안 사구(沙丘·모래언덕)에 차단막을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17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오염된 모래가 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서 그물막 형태의 차단막 1387m를 이번 주 안에 모두 설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문화유산 현장 40년 지킨 ‘광화문 돌부처’

    문화유산 현장 40년 지킨 ‘광화문 돌부처’

    “그는 우리나라 문화저널리즘의 큰 보루로 항상 미소짓고, 화를 내어도 웃는 모습의 ‘광화문 돌부처’다.” 서울신문 대기자를 지낸 황규호(70)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의 고희를 기념하는 문집 ‘광화문에서 문화유산을 생각하며’(문화유산 도반 펴냄)의 봉정식이 17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렸다. 문집 발간을 주도한 배기동(한양대 교수) 한국박물관협회장은 “고향집 큰형과 같은 그를 ‘광화문 돌부처’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그의 문화철학이 우리 같은 문화학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촉매제가 되어 문화부국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이날 봉정식은 문화유산에 생애를 바친 언론인을 기억하고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고학자들이 뜻을 모은 뒤 유례 없이 ‘고희연 추진위원회’를 구성, 문집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벌써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 자리에는 추진위원회에 참여한 고고학자는 물론 문화유산전문가와 후배 언론인 등 100여명이 참석하여 1968년 서울신문에 입사한 뒤 현재까지 40년 동안 문화유산 현장을 지키고 있는 노 언론인의 투혼을 기렸다. 임효재(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선사고고학회장은 축사에서 “학계에서는 그를 아무리 어려운 논문도 쉽게 풀어놓는 ‘미다스의 손’처럼 여겼다.”면서 “그의 명쾌한 글솜씨는 서울신문에 연재한 ‘한국인의 얼굴’이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다섯 꼭지나 실린 데서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융조(한국전통문화학교 초빙교수) 한국선사문화연구원장과 지명 각연사 주지, 박영수 청주문화원장, 우영 중원문화재연구원 이사장, 최병식 주류성 대표, 이용원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등도 주인공과의 인연을 돌아보면서 문화유산에 대한 열정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경기북부 도로망 확충에 4261억 투입

    경기북부지역 간선도로망 확충을 위해 내년에 모두 4261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16일 경기도 제2청에 따르면 2008년에 추진되는 간선도로망 확충 사업은 국도 13곳, 광역도로 4곳, 국도대체우회도로 6곳, 국지도 8곳, 지방도 19곳 등에 모두 4261억원이 편성돼 있다. 이 가운데 국도 확·포장 사업은 37호선 파주 두포∼천천, 연천 적성∼전곡∼영중, 가평 현리∼청평 등 6개 구간,45호선 하남∼화도,3호선 연천∼신탄리,47호선 이동∼장명 구간과 퇴계원∼진접 구간,39호선 장흥∼송추,87호선 마산∼신읍 등 13곳 145㎞로 1434억원이 들어간다. 광역도로는 신내∼퇴계원 4.5㎞(2010년 완공), 덕송∼상계 1.6㎞(2011년 완공), 화전∼신사 4㎞, 동부간선도로 4.1㎞ 등이 추진된다. 국도대체우회도로는 토당∼원당∼관산(39호선 우회도로) 9.3㎞, 장암∼자금∼회천(3호선 우회도로) 20.7㎞, 회천∼상패(3호선 우회도로) 14.4㎞ 등 모두 6곳 51㎞를 대상으로 1067억원이 투입된다. 또 국지도 8곳 66㎞에 596억원, 지방도 19곳 113㎞에 921억원이 각각 편성됐다.의정부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경기북부 도로망 확충에 4261억 투입

    경기북부지역 간선도로망 확충을 위해 내년에 모두 4261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16일 경기도 제2청에 따르면 2008년에 추진되는 간선도로망 확충 사업은 국도 13곳, 광역도로 4곳, 국도대체우회도로 6곳, 국지도 8곳, 지방도 19곳 등에 모두 4261억원이 편성돼 있다. 이 가운데 국도 확·포장 사업은 37호선 파주 두포∼천천, 연천 적성∼전곡∼영중, 가평 현리∼청평 등 6개 구간,45호선 하남∼화도,3호선 연천∼신탄리,47호선 이동∼장명 구간과 퇴계원∼진접 구간,39호선 장흥∼송추,87호선 마산∼신읍 등 13곳 145㎞로 1434억원이 들어간다. 광역도로는 신내∼퇴계원 4.5㎞(2010년 완공), 덕송∼상계 1.6㎞(2011년 완공), 화전∼신사 4㎞, 동부간선도로 4.1㎞ 등이 추진된다. 국도대체우회도로는 토당∼원당∼관산(39호선 우회도로) 9.3㎞, 장암∼자금∼회천(3호선 우회도로) 20.7㎞, 회천∼상패(3호선 우회도로) 14.4㎞ 등 모두 6곳 51㎞를 대상으로 1067억원이 투입된다. 또 국지도 8곳 66㎞에 596억원, 지방도 19곳 113㎞에 921억원이 각각 편성됐다.의정부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김광순교수, 한국고소설전집 82권 완간

    김광순(68) 경북대 명예교수가 최근 필사본 한국 고소설 12권(6차본)을 출간하면서 ‘김광순소장 필사본 한국고소설전집’(82권)을 완간했다. 필사본으로 전해 내려온 고소설 400여종을 10여년에 걸쳐 수집, 교정하고 이에 설명을 덧붙인 것으로 1권부터 40권까지는 경인문화사,41권부터 82권까지는 박이정출판사에서 나왔다. 수록된 고소설 가운데 ‘한중일소화(閒中一笑話)’‘승호상송기(僧虎相訟記)’‘요화전(瑤華傳)’‘강긔닌젼’‘기축록(己丑錄)’등 수십 편은 고소설 학계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김광순 교수는 한국 고소설학회장, 한국어문학회장 등을 지냈으며 ‘한국구비전승의 문학’‘한국한문학사’‘한국고전문학의 쟁점’ 등 고전문학에 관한 책을 펴냈다. 지난해에는 이 전집을 펴낸 공로로 3·1문화상(학술부문)을 받기도 했다.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북녘 민족 춤사위 서울서 본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소속 금강산가극단 무용단이 22일 오후 6시,23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 선다. 1955년 설립된 금강산가극단 예술단에 소속된 금강산가극단 무용단은 북한의 무용예술 방침에 충실한 해외예술단. 독특한 무용 창작에 치중하면서 전통 레퍼토리의 보존·계승에도 신경쓰고 있는 북한의 대표적인 전문무용단체이다. ‘조선무용 50년 북녘의 名舞(명무)’라는 타이틀의 이번 공연은 지난 10월 외교통상부가 금강산가극단의 입국 서류 접수를 거부해 무산됐다가 어렵게 성사된 자리. 북한의 대표적 무용 작품들을 통해 남북의 달라진 무용 흐름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다. 무엇보다 북녘의 민족 춤사위를 한 자리에 모았다는 점이 큰 관심거리. 북한 대표 안무가들의 면모가 무대 위에 그대로 드러난다. 혁명가극 무용의 전형을 완성했다는 백환영(만수대예술단), 북한의 현대무용을 개척한 김락영(평양무용대학), 세계적으로 알려진 열정의 무용가 홍정화(조선무용가동맹), 민족적 색채가 짙은 김해춘(왕재산경음악단)이 그들.‘도라지’, 금강산가극단만을 위한 창작품 ‘꽃등놀이’, 재일조선인의 가슴 아픈 역사를 담은 ‘사랑의 치마저고리’,‘북춤’,‘쟁강춤’등 그들의 손때 묻은 레퍼토리들이 차례로 소개된다. 전설무용의 대표작이라는 ‘금강선녀’, 북한 4대명작 중 하나인 ‘사과풍년’, 최승희 작품을 재구성한 ‘부채춤’ 등 민속무용과 2007년 평양 4월의 봄친선예술축전의 금상작인 ‘설죽화’같은 창작품까지 총 14작품이 무대에 오를 예정. 북한 공훈배우 최영덕이 특별 출연해 개량악기 장새납의 음색을 들려주기도 한다.(02)336-2360.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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