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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佛 ‘미터법’ 오류투성이였다

    18세기 佛 ‘미터법’ 오류투성이였다

    1999년 9월 지구에서 1억㎞ 이상 떨어진 우주에서 미국의 화성 기후 탐사선이 궤도를 이탈하는 사고가 일어났다.1억 2500만 달러(약 1300억원)짜리 탐사선의 사고 원인은 어처구니없게도 단위였다. 탐사선의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이 미국에서 흔히 쓰는 야드파운드법 단위로 작성한 제원을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가 미터법 단위로 착각한 것이다. 그 결과 화성 기후 탐사선은 예정 궤도보다 낮게 진입했고, 결국 대기와 마찰을 일으켜 타버리고 말았다.NASA는 이후에도 한동안 야드파운드법을 버리지 못하다가 지난해에야 우주 탐사에 미터법을 사용하겠다고 공표했다. ●프랑스혁명 이후 도량형 통일 현재 미터법을 쓰지 않고 있는 나라는 미국과 라이베리아, 미얀마뿐이다. 미국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미터법을 수용하자고 의회를 설득했으나 실패했고, 제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는 “미터법은 인쇄기 이후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고 증기 기관보다 노동을 더 많이 경감시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수용에는 반대했다. ‘만물의 척도’(원제 ‘The Measure of All Things, 켄 애들러 지음, 임재서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는 국제 표준 단위계인 미터법이 어떻게 탄생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소개한 과학사 에세이다. 지은이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 역사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미터법의 역사는 프랑스 혁명 직전인 1790년 프랑스의 샤를 모리스 드 레랑이 도량형과 단위계를 통일하는 새로운 표준 도량법과 단위계의 제정을 제안한 것에서 시작됐다. 프랑스의 과학사가들은 도량법의 통일을 주장한 당시 과학자들은 국가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일하고 상거래를 신속하게 하며, 봉건시대의 신민(臣民)을 스스로 계산할 줄 아는 계몽된 시민(市民)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거창하게 해석한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의 상황을 보면 도량형의 통일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혁명 직전 프랑스를 여행한 영국인은 “프랑스에는 무수하게 많은 도량형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지방마다 다를 뿐 아니라, 교구마다, 아니 마을마다 다르다.”고 했다. 당시 프랑스에는 800개의 이름으로,25만개 되는 서로 다른 도량 단위가 쓰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의 학자들은 프랑스 혁명이 ‘모든 사람을 위한 보편적 권리’를 선언한 데 힘입어 보편적인 도량법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도량법은 어떤 한 사람이나, 한 나라의 업적으로 평가되지 않도록 그 근본단위를 지구 자체의 크기에서 구하기로 결정했다.‘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한다.’는 원칙은 이렇게 세워졌다. ●북극서 적도 길이 잘못계산 밝혀져 자오선의 길이를 측정할 ‘최고의 천문학자’로는 장 바티스트 조제프 들랑브르와 피에르 프랑수아 앙드레 메솅이 선발됐다. 들랑브르는 북쪽 원정대 대장, 메솅은 남쪽 원정대 대장이 되어 당시로서는 최첨단 장비와 최고 수준 인력의 도움을 받으며 1792년 6월 각각 반대방향으로 떠났다. 들랑브르는 초기의 어려움을 헤치고 안정적이고 빠른 속도로 자오선 호(弧)의 측량작업을 마무리했지만, 메솅은 작업을 한없이 지연시켰다. 결국 7년 만인 1799년 메솅은 데이터를 가지고 돌아오고, 프랑스 정부와 과학 아카데미는 들랑브르와 메솅의 데이터를 합산하여 ‘미터’를 공표했다. 들랑브르는 1803년 메솅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측량 노트를 검토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메솅이 데이터를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조작했음을 발견한다. 측량 작업을 지연시킨 것도 이 때문으로, 결국 ‘미터’는 오류투성이였음이 밝혀진 것이다. 오늘날의 위성측량에 따르면 극점과 적도를 잇는 자오선 거리는 1000만 2290m라고 한다. 들랑브르와 메솅이 계산한 ‘미터’는 대략 실제보다 0.2㎜ 정도 짧은 셈이다. 이런저런 오류와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1983년에는 변하지 않는 빛의 속력을 이용해 ‘미터’를 다시 정의했다. 오늘날 1m는 빛이 진공에서 2억 9979만 2458분의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로 정의돼 있다. 결국 ‘만물의 척도’는 인간 선택의 산물이란 것이다.2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순장은 있었다

    대가야의 본거지인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발굴한 결과 1000점에 이르는 대가야 유물이 쏟아졌다. 손잡이끝에 둥근고리가 있는 환두대도 8점이 한꺼번에 발견되고, 화폐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철정(쇠판)도 100점 남짓 수습됐다. 대동문화재연구원은 지난해 5월부터 지산동 고분군에서 비교적 봉분이 큰 73∼75호분과 일대 소형 고분을 발굴한 결과 5세기 무렵 대가야 왕국의 면모를 보여주는 다양한 고고학적 증거를 확보했다고 21일 밝혔다. 조영현 대동문화재연구원장은 특히 이번 조사가 거둔 의미 있는 성과의 하나로 한·일 고고학계의 순장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 점을 들었다. 조 원장은 “75호분 석실(돌방) 주변을 조사한 결과 순장자를 묻은 공간이 확실한 순장곽(殉葬槨)이 모두 7군데서 일정한 간격으로 확인됐으며 이 밖에 동물을 묻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순장곽도 확인했다.”면서 “이로써 순장곽은 물론이고 순장이 있었다는 주장 자체를 부정하는 견해는 성립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대가야 지역에서 순장 흔적은 1970년대에 조사한 지산동 44호분과 45호분에서 드러났다. 특히 44호분에서는 모두 22기의 순장곽이 확인됐으나, 이것이 나중에 별도로 조성된 무덤들이라는 견해 또한 적지 않았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도시 젊은이가 배우는 ‘농촌의 삶’

    도시 젊은이가 배우는 ‘농촌의 삶’

    ‘날이 갈수록 생명이 죽어가고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농민을 위한 기도’) 청년들이 생태적인 삶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천주교계에서 처음으로 운영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함께 개설하는 ‘청년 농부학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가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농부학교’를 청년 층으로 확대했다. ‘청년 농부학교’는 종전 불교계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귀농자 양성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것이 특징. 단순히 귀농을 준비하는 도시인들에 대한 귀농 안내와 교육을 넘어 노동체험과 현장교육을 통해 청년들이 도시에서 좀 더 생태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제1기 ‘청년 농부학교’는 7월7일부터 10일까지 천주교 청주교구 관할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공역에서 열릴 예정. 이를 위해 희망자를 이달 말까지 모집한다. 학교는 농업과 농촌 현실에 대한 강의와 나눔활동을 비롯해 농민들과의 대화, 지역문화 생태 체험 프로그램으로 짜여진다. 참가 청년들의 ‘생태농활’도 눈길을 끄는 부분. 참가자들은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의 농사일을 직접 돕게 된다. 농약을 쓰지 않는 대신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고 양계장에서 닭에게 사료를 주고 유정란을 닦고 정리하는 일도 한다. 농부학교 기간 동안 합성세제나 인공약품을 일절 쓰지 않으며 인스턴트 음식도 먹지 않는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 교육부장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조류독감, 광우병은 더 빨리, 더 크게, 더 많이 먹기 위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 온 동물의 역습”이라며 “농부학교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태적 삶의 실천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02)727-2274,2283.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육의전터 보존

    육의전터 보존

    서울 탑골공원 옆의 건물 신축 부지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육의전 유적이 빌딩 지하에 일종의 ‘유적 박물관’의 형태로 조성되어 보존된다. 건축주인 이영길 영동시티개발 대표와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21일 공동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은 내용의 육의전터 보존 방안을 공개했다. 두 사람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종로2가 40번지 일대에서 드러난 조선시대 상점거리인 육의전의 시전행랑 유적은 새로 지어지는 빌딩의 지하 1층에 보존되고, 윗부분은 유리로 덮어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또 유적이 위치할 지하 1층은 종로 일대 운종가의 역사를 설명하고, 서울의 발전과정을 시대별 지도로 보여주며, 현장의 토층도 그대로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새로 지어질 건물의 이름도 당초 예정한 ‘영동빌딩’에서 ‘역사성에 걸맞게 ‘육의전빌딩’으로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육의전 유적 아래로 지하 2층과 3층은 개발하여 임대공간과 기계시설을 둔다는 계획이어서 엄밀한 의미의 보존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하지만 종로1가의 르메이에르빌딩 부지에서는 같은 유적이 나왔음에도 그대로 건물이 지어졌다는 점에서 이번 보존 결정은 종로 일대 유적 보존에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는 평가이다. 이 유적은 명지대 한국건축문화연구소가 지난해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발굴지도위원회에서 보존 결정이 내려진 데 이어 지난 1월29일 문화재위원회 매장문화재분과도 보존을 결정했다. 이후 이 대표가 황 소장과 상의한 결과 유적도 보존하고 건물의 신축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방안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보존 방안은 3월28일 문화재위 매장문화재분과에서 통과되었고, 지난 2일에는 문화재위 문화경관분과에서도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문화경관분과는 민간인이 자비로 전시관을 만들어 유적으로 보존하는 데 앞장서는 만큼 지하 1층의 건축이 가능하도록 유적의 높이를 80㎝가량 낮추어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 육의전빌딩 부지는 앞으로 기존의 유적 아래로 또 다른 유적이 없는지 추가발굴이 이어지게 되며, 추가발굴이 끝나면 1년 6개월 정도의 공사기간을 거쳐 건물이 지어질 예정이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이영훈 여의도순복음 담임목사 취임

    이영훈(54) 목사가 21일 오전 여의도순복음교회 대성전에서 취임예배를 갖고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공식 취임했다. 이에따라 이 목사는 조용기(72) 목사를 이어 담임목사직과 함께 목회와 행정을 책임지는 당회장 권한을 행사한다. 서울 출신인 이 목사는 어릴 적부터 교회 주일학교를 다니며 순복음교회와 인연을 맺어 조용기 목사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특히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둘러싼 이단 시비가 한창일 무렵 순복음교회의 신학적 이론을 정립해 주목받았다.미국 워싱턴순복음제일교회와 로스앤젤레스 나성순복음교회, 일본 순복음동경교회 담임목사 등을 역임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유지형(우리투자증권 부장)선형(현대자동차 과장)씨 모친상 박동배(한국산업기술평가원)씨 빙모상 최세리(서울아산병원 아산아카데미 수석)씨 시모상 21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9시 (02)3010-2232 김중위(한나라당 상임고문)씨 모친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410-6914 최수규(중소기업청 창업벤처국장)씨 빙부상 20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30분 (02)3410-6901 김문성(전 한국광고주협회 상근부회장)씨 별세 태완(홍익안과 원장)수진(나사렛대학 교수)씨 부친상 이기선(다모아원예 대표)이헌주(배재고 교사)씨 빙부상 20일 한양대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2298-1099 배경태(전 이화전기 해외사업본부장)씨 별세 수영(한국네슬레 총무부 과장)일영(키우미한의원 원장)씨 부친상 강일구(전 현대중공업 중동지사장)김차중(한국가스공사 지역협력팀장)나경환(지엠대우자동차 샤시부품평가팀장)박기종(키우미한의원 원장)백선엽(자영업)씨 빙부상 2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3일 오전 5시30분 (02)3410-6932 송학(방위사업청 기획조정관)미자(농협 공덕지점장)씨 부친상 김택기(삼성생명 고문)박진(우리투자증권 부장)씨 빙부상 20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2650-2742 정길수(미스미스터시스템 차장)씨 모친상 왕일웅(크레신산업 대표)씨 빙모상 21일 경북 포항시 선린병원, 발인 23일 오전 7시 (054)245-5418 이춘근(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 별세 21일 오후 5시20분 서울 아산병원, 발인 23일 오전 8시 (02)3010-2631
  • 천주교 신부 4000명 넘었다

    천주교 신부 4000명 넘었다

    천주교 신부 수가 한국 교회사상 처음으로 4000명을 넘어섰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21일 발표한 ‘2007년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주교와 신부 등 성직자는 4148명으로 전년보다 142명이 늘었다. 이 가운데 주교는 32명, 신부는 4116명이다. 사제 수는 1960년 이후 2007년까지 연 평균 4.8%씩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 한국인 신부는 1960년 243명에서 지난해말 3925명으로 50년 동안 16배나 증가한 반면, 외국인 신부는 1960년 198명에서 1968년 351명으로 크게 증가한 이후 계속 감소,191명으로 집계됐다. 신자는 전년보다 2.2% 증가한 487만 3447명으로 총인구(주민등록 기준 인구) 대비 천주교 신자비율이 9.6%에서 9.7%로 높아졌다. 신자 수 역시 최근 10년간 꾸준히 늘고있는 추세다. 신도를 성별로 보면 여성이 58.3%, 남성이 41.7%. 한국 인구의 남녀 성비가 50.2%와 49.8%임을 감안하면 여성 신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연령대별로는 40대가 19.1%로 가장 많고 다음은 30대(16.6%),20대(16.1%),50대(14.9%) 순이다. 신앙생활의 일반적 척도로 평가되는 주일미사 참례자는 전년보다 8만 6011명이 늘어난 평균 132만 785명. 신자 4명 가운데 1명꼴인 27.2% 수준이다. 지속적으로 신자 수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주일 미사 참석률은 10년 전(1997년 30.0%)과 비교해 낮은 편이다. 지난 한 해 영세자는 14만 9358명.2006년보다 1611명이 증가한 수치다. 이 가운데 남자가 7만 8145명, 여자가 7만 1213명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6932명 많다. 그러나 군종교구를 제외한 나머지 교구들의 영세자 성비는 남자 41.9%, 여자 58.1%로 여자가 매우 높은 편이다 신자가 가장 많은 교구는 135만 5950명의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수원(69만 7160명), 대구(43만 6596명), 인천(41만 8227명)순이다. 본당 수는 1511개로 35개가 늘고 공소는 1084개로 5개가 줄었다. 한편 한 본당에 소속된 신자는 전국 평균 3225명으로 2006년에 비해 조금(6명) 감소했다. 신부 1인당 평균 신자수도 1184명으로 2006년 1200명에 비해 약간 줄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2005년 입적한 숭산 스님은 생전 5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인을 제자로 삼았다. 한낱 공허한 말에 얽매여 머물지 않는 그의 실천행 법문에 감화된 많은 지식인들이 출가해 수행 중이거나 한국불교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청안(42·淸眼) 스님도 그중 한 사람. 헝가리에 머물면서도 틈틈이 불교TV 강의와 법문집 ‘꽃과 벌´(김영사)을 통해 국내에 이름이 알려져 숭산 제자 중 가장 대중에게 인기높은 ‘스타 스님´이다. 출가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명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본래불성(本來佛性)´을 찾아 주기 위해 고국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www.wonkwangsa.net)를 짓는 불사에 매달려 있는 청안 스님. ‘나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숭산 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사상을 몸으로 펴가는, 한국불교의 대표격 국제포교사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깨달음 얻어 하안거(夏安居) 결제를 사흘 앞둔 16일 오전. 수소문끝에 조계사 일주문에서 만난, 훤칠하게 키가 큰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모았다. 나란히 찻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스타 스님´을 알아본 신도가 거푸 인사를 하는 바람에 여러 번을 멈춰서야 했다. 지난해 11월 숭산 스님 3주기 행사 때 한국에 들어온 이후 6개월 만의 방한. “안거를 나기 위해 들어 왔느냐.”고 묻자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에 짓고 있는 원광사 이야기부터 꺼낸다. “한국식 그대로 절을 지으려니 꼼꼼히 챙길 게 많아요. 벌써 두어차례 다녀갔지만 공을 들일수록 손볼 것이 생겨납니다. 이번엔 서까래와 기와 때문에 헝가리 와공들을 대동하고 절집들을 돌면서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양양 낙산사에서 대목장을 만나 ‘한 수´ 배웠지만 출국하는 23일까지 찾아야 할 사찰과 만날 사람들이 많아 바쁘단다. 헝가리의 신도 6명도 함께 들어와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백담사에서 지냈다. 백담사는 숭산 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곳. 스승의 흔적과 정신이 고스란히 스며 있으니 응당 여느 사찰과는 달리 각별할 것이다. 헝가리 중산층 가정, 의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그가 숭산을 만나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혼란을 단박에 털고 벼락 같은 깨침에 닿았을까. 숭산의 제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청안도 그 유명한 법문 ‘방하(放下)´를 입에 올린다. “오직 모를 뿐, 그저 내려 놓아라. 그런 다음 그냥 하라(Just do it).” ‘내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느냐.´는 보편적인 의문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품었을 터. 하지만 그냥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벼락 같은 해법을 찾았으니 예사 법기(法器)는 아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에서 영어와 헝가리어를 전공한 어학도.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더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냐는 삶에 대한 고민과 의심에 끊임없이 시달렸단다. 이런저런 철학·심리학 책들을 뒤졌고 종교인들의 조언도 받았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절친한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관음선종 선방을 다니며 참선을 하다가 선방을 찾은 숭산 스님 법문 자리에서 문답을 통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한다. “실체가 아닌 나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진짜 나를 보게 된다. 본디 내 안에 있는 이 불성을 닦게 되면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도 밝아지게 된다.” 헛된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와 세상에 얽힌 매듭과 관계가 풀린다는 말은 당시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대학시절 영어 교생으로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무심코 학교 잔디밭에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보면서 불현듯 ‘스님´될 생각이 들었고 참선 수행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통역사로 일하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의 본산인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 겨울 안거를 나면서 결국 출가를 결심, 해인사에서 행자교육을 받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서울 화계사에서 2000년까지 수행 끝에 고국 헝가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숭산스님의 ‘세계일화´ 이어 유럽에 한국불교 전파 한국불교가 좋아 한국 비구가 되었으니 한국에 머무는 게 바른 길이 아닐까. 비구계를 받은 ‘한국 스님´으로 꼬박꼬박 안거도 참여했지만 굳이 헝가리를 택한 이유를 들려 준다. “비구계를 받고 나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출가 전의 나같은 속인들을 위해 길잡이를 할까, 아니면 헝가리를 터전삼아 유럽 포교에 나설까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1999년 숭산 스님으로부터 외국인 스님으론 사실상 최고 경지인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이듬해 결국 고심 끝에 헝가리를 택했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체코, 폴란드 등 발닿는 대로 유럽 각지를 돌며 포교에 나섰다고 한다. “고국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뜻도 있지요. 헝가리서 받은 내 몸과 교육, 집, 음식…. 이런 것들을 부처님 법(佛法)으로 갚자는 것이지요.” 헝가리에서 처음 3년간은 집시들을 위한 작은 선원에서 기거했다. 그러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 사찰들이 유독 유럽에만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스님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원광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대웅전이며 크고 작은 선방, 탑, 요사채 등 한국 전통사찰 양식 그대로 지으려니 공사가 더디다. 2006년 선방 상량식을 갖고 식당이며 목욕탕 같은 우선 필요한 부대시설을 갖추었지만 주 건물인 대웅전과 명부전, 선방을 다 세워놓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한국불교를 온전히 담고 알리려면 그 그릇(원광사)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단다. 불교 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하나로 모든 사물이 무상(無常)·무아(無我)함을 모르고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의 원인이 된다는 근본적 번뇌 무명(無明). 24년간의 무명에서 깨어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깨침을 얻었다는 뜻이 담겼을까. 스님이 그토록 애착을 갖는 원광사의 이름 뜻이 궁금해졌다.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관세음보살이 이름을 점지해 주셨다.”며 웃음을 피우더니 이내 정색을 한다.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불교와 일본, 티베트 불교의 차이점을 모르지요. 그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숭산 스님에게 받았던 것처럼 한국불교를 통한 깨침을 얻게 해주는 게 제 소명입니다.” 예상대로 그랬다. ‘모든 사람이 각자 갖고 있는 불성을 닦아 지혜와 자비, 보시행을 이뤄 세상을 밝히자.´ 본래의 빛, 불성을 찾아가는 공간이다. 출가의 원을 세운 지 어언 20여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무명의 번뇌는 말끔히 소멸한 것일까. 오래 전에 제 이름을 잊어 버렸다는 청안 스님. 그는 스님의 본분은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끊임없이 버리고 내려 놓는 것이지요. 오직 모를 뿐 그냥 할 뿐입니다.” 한국불교를 삶의 또 다른 길로 선택한 푸른 눈의 납자가 가꾸는 ‘세계일화´의 꽃은 소문대로 튼실했다. 끊임없이 ‘스타 스님´을 찾는 손 전화의 울림들이 인터뷰를 힘들게 한다. 결국 스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누구인가의 전화를 받고는 서둘러 일어서며 한 마디를 남긴다. ‘Just do it´. 글·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청안 스님은 ●1966년 헝가리 출생 ●1990년 참선 수행 시작 ●1991년 숭산 스님 법문 듣고 불교 귀의 ●1992년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 졸업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 선 센터서 동안거 중 출가 결심 ●1994년 한국 입국 ●1995년 해인사서 사미계 수지, 이후 2000년까지 화계사서 수행 ●1996년 통도사서 비구계 수지 ●1999년 숭산스님으로부터 지도법사 인가 ●2000년 헝가리 귀국, 관음선원 주지 취임, 유럽 각지 돌며 참선지도 ●현재 부다페스트 외곽에 원광사 건립 불사 중
  • 숭례문 2012년까지 원형 복원

    방화로 문루가 훼손된 숭례문이 하부 석축까지 해체 보수하는 과정을 거쳐 2012년까지 복원된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숭례문의 양쪽 성곽도 발굴조사를 거쳐 원래 지형에 맞게 제모습을 찾는다. 문화재청은 참사 100일을 맞은 20일 현장에서 이같은 내용의 ‘숭례문 복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현재 숭례문은 원래보다 1.6m 올라와 있는 상태로 지반조사를 거쳐 성문의 하부 석축을 이루는 육축까지 해체하여 원지형에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청장은 또 “숭례문을 화재로부터 보호하고자 문 밖에 연못을 팠다는 기록이 있는 만큼 발굴조사에서 연못터가 확인되면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숭례문은 1900년 전차궤도를 설치하면서 지반을 현재대로 높이는 바람에 바닥돌이 훼손됐고, 주변의 성곽은 1907년 완전히 철거됐다. 문화재청은 복원에 기존 부재를 최대한 재활용해 국보 제1호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복원되는 숭례문에는 적외선 열감지기와 연기감지기, 폐쇄회로TV, 스프링클러 등 방재시스템을 설치한다. 문화재청은 수습 및 준비를 이미 마무리한 데 이어 새달부터 2009년 말까지 조사·발굴 및 고증·설계 과정을 거쳐 2010년부터 3년 동안 본격적인 복구공사를 벌인다는 계획이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숭례문 복구단’을 꾸려 직접 복구 공사를 추진하며, 학계 원로 등 22명으로 구성된 복구 자문단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문화재청은 숭례문 복구와 전시관 건립 등에 모두 25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시관은 서울시와 협의하여 숭례문에서 가까운 곳에 세우며, 불탄 일부 부재와 함께 숭례문에 관한 사진과 기록, 화재 이후 언론 보도 자료 등을 전시하기로 했다. 이 청장은 “철저한 고증에 따라 원형을 복원하는 것이 대참화를 극복하는 길”이라며 “숭례문 복구가 국민에게 새 희망을 주며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중요한 작업이 될 수 있도록 성원을 바란다.”고 당부했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보물 지정 고서화 위작 논란 상황 봐가며 진위 논의할 것”

    신권 1000원짜리 지폐에 들어있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를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고서화 다수가 위작이라는 이동천 박사의 주장<서울신문 5월20일자 10면 보도>에 문화재청은 20일 “논의되는 상황을 보아가면서 문화재위원 등의 전문가 검토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러나 “문화재의 진위문제는 구체적 분석과 학술적 논거가 분명해야 하는 까닭에 개인의 감정의견 등을 근거로 진위를 논의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여 당장 조사에 나설 뜻이 없음을 시사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백제미소’ 서산마애삼존불 균열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국보 제84호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일부 균열이 확인돼 문화재 당국이 보수 작업에 나섰다.19일 충남 서산시에 따르면 운산면 용현리에 있는 마애삼존불을 지난해 말부터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머리 등에서 다수의 균열이 발견됐다. 시 관계자는 “머리 부분에 폭 0.5㎜, 길이 5∼6㎝ 정도의 균열이 육안으로도 관측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다른 여러 군데에서도 균열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보존처리의 자문을 맡은 문화재청 관계자는 ‘머리 부분 등의 균열이 심각해 보수작업이 시급하며, 삼존불 전체의 균열지도를 만들어 지속적인 보수작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서산시에 제출했다.문화재청은 이날 “삼존불의 균열은 최근 발생한 것이 아니라 백제시대 이후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 자연적인 풍화에 따른 것”이라면서 “1차적으로 표면 백화 제거와 기록보존을 위한 3차원 촬영을 이미 마무리한 데 이어, 올해 안에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균열 부분에 대한 보존처리를 마무리지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dcsuh@seoul.co.kr
  • “여러 사람 끼어들면 복구 부실해져”

    “여러 사람 끼어들면 복구 부실해져”

    “문화재청과 여러 전문가가 합심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나타나리라고 믿습니다. 일단 복구공사가 시작된 이상 책임자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작업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도울 것이 있다면 도와야겠지요.” 20일은 숭례문의 문루가 방화로 무너진 지 100일을 맞는 날이다.1963년 대대적인 숭례문 보수 당시 공사감독관을 맡았던 김정기(78) 박사는 19일 “나 같은 사람이 끼어들기 시작하면 분쟁이 생기게 마련이며, 그렇게 되면 공사 또한 부실하게 되고 공정도 늦어지게 된다.”면서 “믿고 지켜보자.”고 말했다. 그는 문화유산 관리에 각성을 촉구하는 각계의 목소리에는 “그분들 또한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의 발로 아니겠느냐.”면서 “이를 계기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더욱 각별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는 1969년 11월5일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산하에 설치된 문화재연구실의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전신인 문화재연구실이 국가가 주도하는 각종 발굴조사를 주도한 까닭에 그는 한국고고학의 실질적인 태두로 통한다. 김 박사는 숭례문 보수공사 당시를 돌아보면서 “엄밀히 전체 감독은 진홍섭 당시 문화재위원장이 맡으셨고, 저는 보수 공사가 시작될 무렵에는 유럽에 출장 중이었다. 뒤늦게 합류해 임청씨와 함께 부감독관으로 일했으나 임청씨가 몸이 안 좋아 후반부에 공사감독을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2일 문화재청 초청으로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본 김 박사는 “문루 상당 부분이 불타는 바람에 국보 제1호가 갖는 의미가 퇴색된 것은 사실이지만, 축대와 1층 상당 부분은 남아 있어 복구 공사 여부에 따라서는 많은 가치를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기대를 표시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인사]

    연합뉴스 △논설위원실 고문 이광복 이도선△편집위원실장 홍성완△논설위원〃 성기준△콘텐츠평가〃 김영미△관리국장 이종덕△전략사업본부장 박노황△편집위원실 편집위원 허형석△편집국장 오재석△외국어뉴스〃 임선빈△뉴미디어〃 유병철△편집국 비주얼뉴스 에디터 김승두△〃 정치분야 〃 이래운△〃 경제분야 〃 권오연△〃 사회분야 〃 이병로△〃 국제분야 〃 정광훈△정보통신국 부국장 겸 기술기획팀장 이재영△경기취재본부장 박두호◇부국장대우△외국어뉴스1부장 이선근△외국어뉴스2〃 장윤주△외국어뉴스3〃 김대영△뉴미디어국 김장국△마케팅부장 김선한△논설위원 김은주△콘텐츠평가위원 김용수△국제뉴스2부 이경욱미래전략연구원 △과학기술전략센터장 정재용(정보통신대 교수)△거버넌스전략센터장 손병권(중앙대 교수)△외교통일전략센터장 김준형(한동대 교수)△경제통상전략센터장 황준욱(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사회문화전략센터장 한준(연세대 교수)정산생명공학 △사장 이인복
  • 추억속 ‘백조의 호수’는 잊어라

    추억속 ‘백조의 호수’는 잊어라

    발레의 전통적인 틀을 과감하게 허문 작품들로 눈길을 끌어온 ‘튀는 안무가’ 조기숙(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이 이번에는 ‘백조의 호수’를 뒤틀었다. 17일 오후 4시30분,7시30분 서강대 메리홀 무대에 오르는 조기숙 뉴발레의 ‘백조의 호수-사랑에 반(反)하다’. 제목대로 역시 조기숙의 변형된 춤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연이다. 클래식 발레의 대명사로 꼽히는 ‘백조의 호수’ 중 2막 사랑의 테마를 요즘 정서에 맞춰 풀어낸 작품. “서양의 궁정에서 왕이 추던 발레를 한국에서 그대로 따라 춘다는 게 우리 정서에 맞느냐.”는 조 교수의 지론대로 갖가지 파격을 통해 우리식의 춤으로 바꿔 놓았다. 인간의 영원한 화두라는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초점을 이동한 게 가장 큰 특징. 지그프리트 왕자와 오데트 왕녀의 사랑을 주축으로 짠 춤에서 벗어나 그저 들러리에 불과했던 백조들의 입장과 시선을 부각시킨다. 고전의 왕자 시각에서 바라본 사랑이 아니라 백조들 개개인에게 포착되는 사랑. 등장하는 모든 백조들이 나름대로의 인격과 성격을 가진 주인공으로 다양한 방식의 사랑을 주체적으로 노래하는 흐름이다. 원작의 주옥 같은 음악에 맞춘 무용수들의 몸짓이 이런저런 사랑의 코드를 떠올리게 한다. 나 자신에 집착하는 자기애를 비롯해 남에게 남김없이 베푸는 무소유적 사랑과 레즈비언의 사랑 방정식까지 다양하게 풀어지며 관객들에게 짭짤한 볼거리를 안겨준다. ‘오데트’가 삶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의 상징이라면 ‘지그프리트’는 박제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 비상하는 날갯짓,‘마왕’은 내 안에 있는 집착이며 두려움, 미련 같은 것들을 뜻한다. 여기에 진짜 주인공격으로 살려낸 이런저런 ‘백조’들이 각양각색의 사랑 코드를 담아낸다. 유니버설발레단 수석 무용수들과 CEO들의 객원 출연도 화제. 유니버설발레단의 솔리스트 안지은과 황재원이 현대판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역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다. 그런가 하면 조동성(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황을문(서린바이오사이언스 대표이사), 백충기(경기도수의사회 회장), 조해근(굿센테크날러지 대표이사)씨가 마왕으로 무대에 오른다. 작품도 파격이고 인물도 파격이다.(02)2263-4680.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파페라계 남성그룹’을 만나다

    ‘파페라계 남성그룹’을 만나다

    1990년대를 풍미한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의 ‘스리 테너’는 파바로티가 세상을 떠나간 뒤 20세기 후기 음악사의 한 부분으로만 남았다. 지금도 세계 각국의 오페라 극장에서 이름을 날리는 테너는 수없이 많지만 세 사람처럼 흥행 측면에서 파괴력을 갖는 조합은 앞으로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스리 테너’가 절정을 달리는 동안 그들에 못지않게 명성을 쌓은 소프라노가 적지 않았음에도 ‘스리 소프라노’가 나타나지 않은 것도 테너가 갖는 흡인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텐 테너스(The Ten Tenors)’의 성공은 정통파 발성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성량과 개성 있는 음색을 가진 대중적 남성 그룹이 필요하다는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수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스리 테너의 면면과 텐 테너스의 구성원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텐 테너스는 1995년 호주 브리즈번 음악원을 졸업하기는 했지만, 오페라보다는 쇼에 더욱 관심을 보이는 애송이들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아리아를 프로그램에 넣기는 하지만 이들의 성격을 한국식으로 구분하자면, 성악가라기보다는 대중가수라고 할 수 있다. 한두 사람의 역량으로는 다양한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지만, 많은 사람의 개성과 능력이 합쳐지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은 13명으로 이루어진 ‘슈퍼주니어’나 9명으로 구성된 ‘소녀시대’ 같은 국내 그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텐 테너스는 국내에 알려진 것도 스리 테너와는 다르게 21세기적이다. 팬들은 지난해 공연실황을 담은 DVD의 발매와 함께 티브이 홈시어터 광고에 출연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려진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금도 빠르게 여기저기로 퍼날라지고 있다. 텐 테너스의 내한 공연은 이런 과정을 거쳐 성사됐다.23일 대구오페라하우스를 시작으로 24일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5일은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27일은 대전문화예술의전당,28일은 다시 서울 KBS홀이다. 첫 내한에서 전국적으로 다섯 차례나 공연한다는 것은 그만큼 두꺼운 ‘지지세력’을 이미 확보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들은 내한 공연에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가운데 ‘만물상의 노래’와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가운데 ‘저 타는 불꽃을 보라’, 비제의 ‘진주조개잡이’ 가운데 ‘진주조개잡이 노래’ 같은 오페라 아리아와 ‘돌아오라 소렌토로’ 같은 이탈리아 칸초네 메들리를 들려준다. 여기에 ‘늑대와 함께 춤을’에 나오는 ‘Here’s to the Hero’와 ‘글래디에이터’에 나오는 ‘Now we are free’ 같은 영화음악, 그룹 퀸과 비지스의 노래도 부르게 된다. 오늘날 텐 테너스의 성공은 초창기 호주의 시골 마을을 도는 부지런하고 끈질긴 연주여행이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오지에서 오지로 이어진 ‘인정사정 볼 것 없는’ 투어에서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고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를 높이는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자신들은 어떤 공연이라도 청중들을 졸지 않게 만드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큰소리친다.(02) 3463-246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토요영화]도망자 마르탱

    [토요영화]도망자 마르탱

    ●도망자 마르탱(EBS 세계의명화 오후 11시25분) 배경은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 소년 토마스(니콜라스 지라우디)는 이혼한 어머니,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날 토마스는 인적이 뜸한 숲속을 지나가다 도망친 죄수 마르탱(바덴 스탄크작)을 만난다. 마르탱은 토마스에게 다짜고짜 돈을 가져오라고 협박하고 토마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한편, 바에서 일하는 토마스의 어머니 릴리(카트린 드뇌브)는 전 남편이 계속 자신의 주위를 맴돌자 부담스럽다. 벗어날 방법을 찾아보지만, 마을 밖으로 떠나지 않는 한 탈출구는 없다. 그러다 릴리는 칼에 찔려 쓰러진 마르탱을 도와주고, 마르탱이 모자(母子) 사이에 갑자기 끼어들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꼬여간다. 마르탱과 릴리는 갈수록 가까워지지만, 마르탱에게는 이미 또 다른 젊은 애인이 있다. ‘도망자 마르탱’(1986년)의 주인공은 어쩌면 인물이라기보다는 공간이다. 영화 원제(‘Le lieu du crime’)의 뜻 ‘범죄의 장소’가 암시하듯, 고립된 공간인 시골마을이 상황 전개와 주제 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장소성’을 최대한 부각시킨 영화는, 시종 토마스가 관찰자 시점이 되어 성장스토리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작품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죄수가 주축이 되어 엮어가는 힘겨운 로맨스만이 아니다. 원치 않는 상황에 내몰린 인간들의 욕망이 얼마나 처절할 수 있으며, 인간이 스스로의 인간성을 어떻게 마모시켜 나가는지도 목격할 수가 있다. 감독은 릴리와 마르탱이 엮는 멜로라인에 의도적으로 애틋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았다. 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시선으로 영화를 통해 개인사와 사회사의 관계를 조망해볼 수 있는 건 그 덕분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딱히 꼬집을 수 없는 다층적인 장르로 분류된다. 때로는 치밀한 심리드라마 같다가도 때론 품격 높은 스릴러, 기묘한 멜로물로 돌변하기도 한다. 이 작품으로 앙드레 테시네 감독은 할리우드에 밀려 힘을 잃어가던 프랑스 영화의 정체성을 회복했다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비평가로 시작해 메가폰을 잡기까지 테시네 감독은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1964∼1967년)의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감독 데뷔작은 실험성으로 주목받은 1969년작 ‘폴리나는 떠나고’. 이후 TV와 연극, 영화계를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지난해 미셸 블랑과 에마누엘 베아르 주연의 ‘위트니스’를 내놓기도 했다. ‘도망자 마르탱’은 그의 작품목록 가운데서도 독창적인 스타일이 가장 잘 녹아 있는 대표작으로 꼽힌다.88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한국·스위스 춤꾼들 ‘우정의 창작무대’

    한국·스위스 춤꾼들 ‘우정의 창작무대’

    26년 전 세계적인 발레단 ‘모리스 베자르 20세기 발레단’에서 함께 활약했던 한국과 스위스의 두 춤꾼이 다시 만나 둘만의 무대를 만든다. 오는 27일부터 6월6일까지 스위스 바젤 록시 비어스펠덴 극장에서 10차례 공연되는 즉흥 창작무용 ‘그래요GDEO’. 주인공은 한국의 제임스전(49·서울발레시어터 상임안무가)과 스위스 프리랜서 안무가 필립 올자(47)다. 이 공연은 2006년 서울에서 재회한 두 사람이 ‘옛정’을 되살려 “함께 작품을 만들어 보자.”고 의기투합해 일군 ‘우정의 무대’. 지난해 한국과 스위스의 대표음식인 김치와 치즈를 따 한국에서 ‘그래요-김치 치즈’란 이름으로 공연한 데 이어 유럽으로 진출하게 된 공연이다. 물론 작품의 큰 주제는 우정. 지난해 양국의 색채를 버무려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만든 2인무 중심의 20분짜리 작품을 1시간 분량으로 늘렸다. 한국을 테마로 열리는 행사의 하나로 두 사람의 무용작업을 찍은 사진전시회와 안무자와의 만남, 한국 음악회, 한국 영화제, 한국 음식 전시 등이 공연과 함께 열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종정 하안거 결제 법어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은 불기 2552년 하안거 결제(19일)를 맞아 전국의 수행납자들을 격려하는 법어를 15일 발표했다. 법전 스님은 법어에서 백장(百丈) 선사와 제자들의 문답을 제시하면서 “백장을 비롯한 모든 종사들은 가시덤불 같은 선문답으로 사람을 시험하였다.”며 “납자들은 활구(活句)를 참구할 뿐이지 절대로 사구(死句)로 헤아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인사]

    행정안전부 ◇서기관 전보 △의정관실 방순동△공무원노사협력관실 최장관△인사기획실 이성인 김우연△기업협력지원관실 김성연 이재철△기획조정실 고재만△조직실 임상규 박명균 유영남 강수천△인사실 유지훈 김윤배 하인호 박연병 이화진 조경연 박균조 지만석 권혁문△재난안전실 조성제 하종목 조계윤 오정호△정보화전략실 한순기 정태업 김기원 서남교△지방행정국 진명기 허남만 정승준△지방재정세제국 김정기 조영진 박병선 김명동 서정두 김광용△지역발전정책국 서정욱△중앙공무원교육원 김병훈 조광래△국가기록원 황규철△정부통합전산센터 김정구
  •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 연구 공백지대는 중국 아닌 북한”

    발해사를 전공한 송기호(52)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1990년 8월 서울신문의 발해 유적 답사단에 참여하여 자신의 표현대로 ‘꿈에 그리던’ 중국의 발해 유적을 처음으로 밟아보는 감격을 누린다. 이후 발해사를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다룬 글을 한데 모아 1999년 내놓은 책이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발해를 다시 본다’(주류성출판사 펴냄)이다. 그는 햇수로 다시 10년이 지난 올해 이 책의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그동안 중국이 발해를 고구려에 앞서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연구의 중심도 러시아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개정증보판은 그 10년 동안 발해사 연구자가 겪은 우여곡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송 교수는 1975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 전국 수석으로 합격하여 서울대에 입학한 뒤 법대나 상대가 아닌 국사학과를 선택하여 화제를 모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발해를 전공으로 삼아 다시 한번 눈길을 끌었던 인물이다. 여기에 소탈하고 따뜻한 인간미가 더해전 그는 우리나라 발해 연구의 권위자이다.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송 교수는 “그동안 TV드라마 ‘대조영’ 등의 영향으로 발해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연구자도 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서 연구자가 얼마나 늘어났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은 손꼽을 수 있는 정도”라면서 “학술적 의미가 있는 논문은 여전히 많지 않다.”고 멋쩍게 웃었다. ●발해 유적 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 가능성 송 교수는 서울대에서도 아직 제자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발해에 관심을 가져 기대를 가졌던 제자도 논문을 쓰면서 고구려로 돌아섰다. 그래도 발해를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발해사를 공부하려면 중국·일본어에 러시아어를 알아야 하는 데다 고고학 지식까지 갖추어야 한다. 문헌사료가 취약하다 보니 고고학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헌사학자와 고고학자는 의견차이가 많아 사이가 좋지 않다고들 하지만, 발해사만큼은 서로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송 교수는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민의 관심이 고구려에만 쏠려 있는 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중국은 1980년대에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는 작업을 마쳤고 그 다음이 고구려인 셈”이라면서 “지금은 고조선을 자신들의 역사로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고, 위만조선과 기자조선에도 손길을 뻗고 있다.”고 강조했다. 송 교수는 현재 발해 연구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에 있는 유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데 있다고 했다.1990년대는 중국의 발해 유적을 몰래라도 둘러볼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발해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단독등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학자는 물론 중국 학자들에게도 공개를 철저히 막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티베트 사태도 있었던 만큼 무리하게 등재를 시도하지는 않겠지만,1∼2년 사이에 발해 유적이 중국 단독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그런 만큼 한국과 북한의 공동보조는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난해 10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난 북한 학자들은 공동등록을 준비하자는 제안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부여·북옥저 등에도 관심 기울여야 한편으론 중국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발굴 이후 중국학자들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놓았던 발해 왕비의 묘지명(墓誌銘) 2개가 햇빛을 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헌자료가 취약한 발해사 연구에 전기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현재 서울대박물관장을 맡고 있는 그는 “돈을 끌어오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맡아서는 안 될 자리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송 교수의 관심사를 반영한 듯 21일부터 ‘위성에서 본 고구려, 발해’특별전을 시작하는데, 함경북도 북청의 청해토성 같은 발해 유적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는 “발해사 연구의 마지막 공백지대는 중국도 러시아도 아닌 북한으로, 우리 학자들은 함경도 지역의 유적을 아무도 가보지 못했다.”면서 “아마도 남북간 교류의 폭이 넓어져 북한이 개방되기를 가장 염원하는 사람은 발해사 연구자일 것”이라고 답답해했다. 송 교수는 마지막으로 “고구려나 발해는 물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으로 부여와 북옥저 등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부여처럼 만주에서 일어나 만주에서 사라진 나라를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들의 역사로 생각한다.”면서 “북방의 역사를 우리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정을 갖는 것뿐”이라고 강조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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