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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 화재 4년… 12월 제 모습 찾을 듯

    숭례문 화재 4년… 12월 제 모습 찾을 듯

    국보 1호 숭례문이 방화로 문루(門樓)의 상당 부분이 소실된 지 벌써 4년째에 접어들었다. 연초에 품셈(노임)을 둘러싼 건설사와 목수들 간의 갈등으로 숭례문 복구 목공사가 한동안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오는 12월 13일 완공을 향해 목수들과 석수들의 손길이 더 바빠지고 있다. 목공사는 올 4월 중에 끝나야 하는데 최근 변수가 생겼다. 영하 17도까지 떨어진 강추위가 복병이다. 재료들을 조립해야 하는데 이런 추위에는 사고 위험 등으로 엄두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6일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숭례문 현장에 못 나가고 최근 2주 동안 목재 다듬기밖에 못했다.”면서 “목공사는 5월이나 되어야 끝날 듯하다.”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기와 올리기는 목공사가 끝난 뒤에 하겠지만, 단청은 목공사와 병행해도 큰 무리가 없으니 12월 완공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기와가 올라가야 숭례문은 형태상으로 화재 이전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앞으로 남은 작업 중에 관심을 끄는 것은 손으로 빚은 전통 기와와 숯불로 뽑아내는 전통 철물, 손으로 가공한 석재, 천연 안료를 이용한 전통 단청 등이다. 숭례문 복원을 처음부터 끝까지 전통재료와 전통방식으로 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중요 문화재복구, 전통방식으로 작업”

    중요 국가 문화재의 복구·복원은 전통적인 자재와 도구를 이용해 전통 방식 그대로 작업하게 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문화재 복구·복원은 전동 공구를 사용한 비전통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에 따라 앞으로 복구·복원은 ‘전통 품셈’(노임)과 ‘기계 품셈’으로 엄격히 나누어 발주된다.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은 13일 서울신문기자와 만나 “문화재 복원·복구와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방식은 전통적인 자재, 도구,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라며 “1974년 전통방식에 의한 목수 품셈을 마련해 놓고도 그대로 적용하지 못한 것이 숭례문 복구공사 중단과 같은 사태의 단초가 됐다.”고 말했다. 전통 방식으로 품셈을 잡아놓았지만, 문화재 복원 및 복구공사에서 전동공구가 도입돼 공공연하게 사용된 것은 1960년대 말부터라는 것이 최 국장의 설명. 전동공구가 문화재 복구에 쓰였는데도 수십 년 동안 문화재청이 묵인한 것이 문제였다고 최국장은 덧붙였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국 2010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광화문 복원 공사에서 왜 기계 대패 등을 사용하느냐.”라는 질의를 통해 공론화됐다. 최 국장은 “결국 2010년 전통방식에 의한 목공사와 전동공구를 활용한 목공사의 품셈을 나누어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새 품셈표를 복구 작업에 적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문화재 복구 현장에서 30~40년 동안 관행처럼 전동공구를 활용해 왔는데, 관행을 단번에 뒤집고 전통 도구에 의한 전통 방식을 적용하면 목수 등 현장의 반발과 혼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숭례문 복구 목공사의 경우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됐고, 문화재청이나 시공을 맡은 명헌건설, 신응수 대목장 등이 모두 전통도구를 활용한 전통방식을 고집했기 때문에 실제 전통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최 국장은 “올해부터 발주 단계에서 전통방식의 품셈을 적용할지, 기계품셈을 적용할지를 분리해 결정하고, 전통방식의 품셈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은 ‘손으로 만든 기왓장’이나 ‘숯불로 만든 못’과 같은 전통기법의 전승자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기법과 재료의 복원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숭례문 복구 목공사와 관련해 대목장, 목수들과 갈등을 겪었지만 어차피 한번은 겪고 넘어가야 할 진통이었다.”면서 “숭례문 복구가 향후 문화재 복원·복구의 원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서울신문 보도 그후] 숭례문복원 목공사 한 달여 만에 재개

    문화재청은 9일 목수들 노임 문제로 한 달째 중단된 숭례문 복원 목공사를 10일부터 재개한다고 밝혔다. 시공사인 명헌건설㈜과 실제 복원을 맡은 신응수 대목장이 기존 계약대로 공사를 재개하기로한데 따른 것이다. 신 대목장은 이날 전화통화에서 “목공사 노임이 명헌건설과 애초 계약했던 3억 8500만원보다 이미 지난해 12월 초에 1억원 이상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4월까지 공사할 경우 더 늘어날 텐데 추가되는 노임을 받지 않더라도 일을 진행하겠다.”면서 “숭례문 목공사 전체를 기부하겠다고 서울신문에 밝힌 마당에 더 이상 목수들의 노임을 가지고 계속 갈등한다면 서로 상처만 입게 돼 이 같은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다만 이후에 들어오는 나무들은 통나무가 아니라 제재목으로 들어오는 방향으로 명헌건설과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8일 오후 3~6시 3시간 동안 최종덕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과 면담하고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최 국장도 “공정이 한 달여간 중단된 상태였지만 문화재청과 공사 관계자들은 국민의 관심사인 숭례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숭례문 복구 목공사가 당초 예정한 대로 4월 말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숭례문 복구는 크게 성곽 복원과 문루 복구공사로 구성되며 이 중 문루 복구는 목공사, 기와공사, 단청공사로 진행된다. 현재 목공사는 1층 조립과 2층 목재 가공을 70%가량 완료한 상황에서 지난달 8일 이후 중단된 상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불탄 숭례문 복구에 나와 목수들 ‘품’ 기부”

    “불탄 숭례문 복구에 나와 목수들 ‘품’ 기부”

    신응수(70·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은 6일 자신이 목공사를 맡고 있는 숭례문 복구 공사 중단과 관련해 “불탄 숭례문을 복구하는 데 내 품은 물론 내 목수들의 품까지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신 대목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창성동 자신의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서울신문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나와 내 목수들이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문화재청과 싸우고 있는 것처럼 국민에게 비치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평생 목수 일로 먹고살았는데 내 목수들의 품값은 내가 떠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신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 공사비가 약 170억원인데 목수의 품값은 2~4%에 불과하다.”면서 “명헌건설이 설계 변경을 이유로 품값을 줄이겠다면 아예 내가 품값을 다 떠맡고 목공사를 국가에 기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 대목장은 2009년 말 복구 공사에 참여할 당시 자신의 품값은 받지 않겠다고 문화재청에 낸 제안서에서 밝힌 바 있다. 신 대목장은 목수들의 노임 산정 논란과 관련해 “문화재청에서 내 목수들이 전통도구와 방식에 낯설고 숙련되지 않아서 노임이 늘어났다고 지적한 것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통나무를 도끼로 다듬어서 목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품이 더 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신 대목장은 “1962년 정부가 작성한 목수들의 품셈으로는 150년 전 경복궁 중건 방식과 같은 지금의 숭례문 복구 공사 품값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은 명헌건설과 167억 8500만원(목재비 포함 목공사 부문 15억 7800만원)에 시공사로 계약했고, 명헌건설은 신 대목장을 직원으로 영입한 뒤 신 대목장에게 목공사 부문을 13억 2300만원에 맡겼다. 명헌건설은 설계 변경을 이유로 목공사 비용을 10억원으로 낮췄으며, 5억 4000만원이던 목수들의 품값도 3억 8500만원으로 축소한다고 지난해 12월 초 통보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계약엔 손질된 각재 쓰기로 돼 있어…원목 손으로 다듬으면 노임 더 들어”

    “170억원에 달하는 숭례문을 복구하는 국보 일을 하면서 나와 목수들이 돈 몇 푼 더 받으려고 문화재청하고 싸우는 것처럼 비치면 국민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습니까. 차라리 이미 받은 노임 3억 8000만원을 돌려주고, 목공사를 국가에 기증하겠습니다.” 신응수(70·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은 숭례문 복구 공사 중단 보도가 나간 6일 오후 기자와 단독으로 만나 그동안 답답했던 속을 털어놨다. 신 대목장과의 인터뷰는 서울 종로구 창성동 신 대목장의 ㈜한국전통건축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숭례문 목공사가 중단된 이유는. -지난달 1일 목수 노임 1억 6000만원이 연체됐다는 공문을 보냈다. 4월까지 목공사를 다 마치면 2억 3000만원의 노임이 더 들게 되는데 이에 대한 대책도 요구했다. 목수 노임에 대한 명헌건설과의 계약이 당초 5억 4000만원이었다. 답신은 그달 19일에 왔는데, 설계가 변경됐기 때문에 전체 노임은 3억 8000만원이라고 했다. 만약 시공사 측 주장대로 하면 노임은 벌써 1억원이 초과된 상태다. 연체된 노임을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 일을 더 못 하게 됐다. →문화재청 보도 자료를 보면 명헌건설과 신응수 대목장의 계약이 13억 2300만원이라고 돼 있던데. -그것은 목재를 포함한 가격이다.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에 공사를 맡길 때 목공사의 당초 계약은 약 13억원이었지만 설계가 변경돼 1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10억원 중 목재 가격이 6억 8000만원이고, 노임은 3억 8500만원에 불과했다. 167억 8500만원짜리 복구 공사에서 목수들 노임 3억 8500만원 때문에 공사가 중단됐다는 것은 기가 막힌 일이다. →그렇다면 노임은 예정보다 왜 더 늘어났나. -1962년 숭례문 증수 공사가 있었는데 나도 20살 언저리에 그 공사에 참여했다. 그때 적용한 품셈표가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50년 전에는 각재를 켜 가지고 온 1차 가공 목재를 목수들이 손으로 파고 깎고 했다. 서까래 대자귀질도 했다. 이번 숭례문 목공사는 가공이 안 된 통나무에 도끼질을 해서 나무를 다듬는 방식이다. 지금 숭례문 복구 방식은 150년 전 경복궁 복원(1865~1868) 때의 방식과 같다. 통나무 다듬기부터 시작하니 하루에 해야 할 일이 3일이나 더 걸리는 것이다. →명헌건설과의 계약은 어떻게 돼 있나. -명헌건설과의 계약에서도 나무가 손질된 각재로 들어온다고 돼 있다. 그러데 원목이 들어왔다. 폐쇄회로(CC)TV로 진짜 도끼질을 하는지 다 감시당했다. 나무 다듬을 때 전동기계 안 쓰고 일일이 손으로 다듬으면 앞으로 목수 노임이 2억 3000만원이 더 들어간다. 즉 목수 노임이 모두 7억원으로 불어나는 것이다. 물론 손으로 하면 정성이 들어가고 좋다. 그러나 통나무 다듬기까지 원시적으로 할 필요가 있나. 도끼질하고 나무 다듬는 것을 숭례문 현장에서 하면서 시민들에게 보여 준 것도 아니라서 안타깝다. →문화재청에서는 목수들이 자귀질도 못하고, 숙련이 안 됐다고 하더라. -숙달된 목수는 자귀질도 금방 배운다. 3일이면 배운다. 통나무 깎는 것부터 시작해서 해야 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해결책이 뭔가. -문화재청이나 명헌건설이 목수의 노임을 지불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내가 3억 8500만원을 내놓겠다. 나는 처음부터 도편수는 무료 봉사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무료 봉사 중이다. 또한 문화재청에서 명헌건설 직원이 되라고 해서 직원이 됐지만 단 한 푼의 월급도 받은 적이 없다. 나도 돈 쌓아 두고 살지는 않지만 목수로 평생을 먹고살고 자식들 교육까지 다 시켰으니 우리 목수들하고 목공사 부문을 기부하고 싶다. 나중에 불탄 숭례문 목공사를 신응수와 목수들이 기증했다고 한다면 나도 보람이 있지 않겠나.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응수 대목장은 1942년 충북 청원 출신으로 199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보유자로 지정됐다. 경복궁, 숭례문, 불국사, 수원성 등을 복원했다. 대목장 혹은 도편수는 고건축의 으뜸이 되는 궁궐, 사찰, 성곽 건축의 목공사 책임자를 뜻한다. 신 대목장은 이번 숭례문 복원에 목수 20여명을 이끌고 있다.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 중요무형 문화재 홍창원 단청장

    단청(丹靑)이 없는 목조건물을 어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고궁이나 고즈넉한 사찰 경내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건축물 안팎에 그려진 단청 문양이다. 건물의 벽면이나 천장 등에도 어김없이 곱고 화려한 단청 문양으로 장식돼 있어 발길을 멈추게 한다. 단청은 삼국시대 벽화고분에서 나타나듯 우리나라 회화 미술사의 2000여년 궤적을 오롯이 그려오고 있다. 현대에 와서는 만봉(1910~2006) 스님이 1972년에 처음으로 중요무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되면서 그 연구와 명맥을 이었다. 스님은 생전 “단청이라 함은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의 오방색을 기본으로 여러 가지 색상을 만들어 궁전, 불전 등에 다양한 문양과 인물, 산수, 화조, 산수 등으로 장엄하는 것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올해 연말이면 숭례문 복원 공사가 완료된다. 현재 성곽복원이 마무리됐으며 봄부터는 문루 복원과 기와 잇기가 시작된다. 그 다음에는 건축물의 화룡점정이자 마지막 화장단계인 단청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단청작업에는 내로라하는 단청 기술자 3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을 진두지휘하는 사람을 가리켜 단청화사(丹靑?師)라고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48호인 홍창원(57) 단청장은 바로 숭례문 단청복원의 화사(?師)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조선시대 명 화승인 예운스님의 맥을 이은 만봉스님의 수제자로 그동안 창경궁,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 4대 궁궐은 물론이고 봉정사 극락전·대웅전 등 전국 각 지역의 고찰과 문화재 건축물의 단청작업을 해오고 있다. ●고려 단청은 화려… 조선은 검소한 문양 지난 3일 오후 경기도 퇴촌에 위치한 한국단청연구소를 찾았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어서 그런지 그가 평소 그렸던 각종 단청 작품들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났다. 연구소 벽에 걸린 대형 ‘경복궁 근정전 천장 용그림’이 금빛 찬란하게 눈부시도록 다가온다. 용그림에 대해 궁금해하자 “1998년에 모사했으며 이런 모사 작품들을 모아 벽연회라는 이름으로 제자들과 함께 2년에 한 번씩 전시회를 갖고 있다.”고 대답했다. 근래에 들어서는 2009년 12월 ‘숭례문 단청문양 모사전’을 서울메트로미술관에서 가졌다고 한다. 특히 이 전시 때는 숭례문 화재 직후이기도 했지만 1800년대 후반의 숭례문 단청을 비롯해 1954년, 1963년, 1973년, 1988년 등 변화된 단청 모습을 연도별로 상세히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숭례문은 원래 중층의 다포(多包)건물로 아래·위층이 모두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공포조작(拱包造作)에 있어서 조선 초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진기록으로 볼 때 1890년대 이후 광복 이전까지 재단청된 흔적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국 전쟁 이후 피해 상태를 조사하고 수리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1961~1963년 숭례문 문루 전체의 해체복원 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73년과 1988년에 재단청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렇듯 숭례문 단청은 19세기 말 이후 여섯 차례 단청공사가 진행되면서 각기 다른 양식의 단청으로 시공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번 단청을 다르게 시공할 수밖에 없었던 세부적인 상황과 내용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숭례문 단청에 대한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문양 형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19세기의 단청과 1954년의 단청은 조선 후기 단청의 맥을 같이하고 있으며 1963년의 단청은 조선 초기 단청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1973년부터 1988년까지의 단청의 경우 문양 형식은 조선 초기 양식이지만 수법이나 색상은 조선 중·후기의 단청 양식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숭례문 복원 조선초기 양식으로 재현해낼 것” 그는 이번 숭례문 복원공사 때 1963년의 단청, 그러니까 숭례문이 세워진 조선초기의 양식을 복원하겠다고 역설했다. 하여 조선 초기 단청이 남아 있는 강진 무위사 극락전과 예산 수덕사 내부단청, 안동 봉정사 대웅전, 창경궁 명정전, 그리고 1937년 임천 선생이 조사한 수덕사 단청조사 보고서에 수록된 여러 자료 등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조선 초기 당시의 단청자료에 대한 샘플링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으며 오는 5월부터 제자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에 들어간다. 작업기간은 5~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화학안료를 쓰면 기간이 짧아지지만 숭례문의 경우 화학안료 대신 천연안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천연안료는 돌가루를 정제해 색깔을 낸 것으로 고운 심성으로 정성껏 입혀야 색깔이 아름답고 오래도록 남는다고 말했다. “고려시대의 단청은 화려한 반면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청색과 녹색 위주의 검소한 문양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1966년의 ‘남대문 수리보고서’에 수록된 복원 모사도의 컬러도판은 옛 안료색상인 삼복, 이청, 대청 등의 색상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저런 자료를 모두 참고해 되도록 조선 초기 원래의 단청을 재현해 낼 생각입니다.” ●건물 장식뿐 아니라 목재수명 연장 기능 지녀 국보 1호 복구작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려 있는 데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숭례문 단청을 멋지게 입히기 위해 틈틈이 숭례문 복원현장을 찾아 나름대로 단청의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또 숭례문 복구작업과 관련해 장인들 회의가 있을 때에도 매번 참석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어떻게 해야 단청을 배울 수 있는지 물었다. “우선 소질이 있어야 하며 그 다음 불굴의 인내력이 뒤따라야 하고 뭐니뭐니 해도 심성이 고와야 한다.”고 웃는다. 그러면서 최소 1년에서 3년 정도는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단청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음양오행설이다. 단청에 사용된 반복 문양은 화재와 잡귀를 막아주는 의미를 담고 있다.”면서 “건물을 장식하는 기능뿐만 아니라 풍화나 뒤틀림을 방지하는 등 목재의 수명을 연장해 주는 역할도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신촌에서 태어난 그는 불심이 깊었던 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15살 때 중학진학을 포기하고 단청에 입문했다. 당시 집과 가까운 봉원사에서 만봉스님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처음에는 만봉스님이 그리는 단청을 지켜보면서 어깨너머로 배웠다. 그러다가 취미가 붙었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단청을 공부하면서 점점 실력을 쌓았다. 이런 모습을 본 만봉스님은 그를 기특하게 여겨 기꺼이 제자로 삼았다. 이후 서울 보문사 일주문 단청을 시작으로 만봉스님과 함께 전국을 돌며 일했다. 1981년 만봉스님의 전수장학생으로 선정된 데 이어 일취월장해 1986년에는 이수자가 됐다. 이때부터 창경궁 문정전, 경복궁 경회루·강녕전·교태전, 덕수궁 중화전, 경복궁 근정전 등을 도맡아 일을 하면서 명성을 얻었으며 2009년 2월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중요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그는 30여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부인과 딸도 여기에 속해 있다. 특히 딸 홍보라씨는 아버지의 전수장학생으로 숭례문 복원 단청에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수천년 이어온 겨레의 얼과 예술 명맥 이어야지” 1990년부터 한국단청연구소를 운영 중인 그는 숭례문 복구작업이 끝나면 전통 단청 보전과 후진양성에 더욱 매진할 계획이다. 42년 동안 단청인생을 살아오면서 우리의 단청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며 또 이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란다. 그는 일본에서 가끔 초청을 받기도 하는데 이때마다 우리의 단청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열정을 보인다. 연구소 안에는 경복궁 근정문 적심(1850년 이전), 창덕궁 희정당 연목(1906년), 봉정사 대웅전 보머리(1604년) 등 각종 단청문양이 그려진 400여점의 고목들이 진열돼 있어 그가 평소에 얼마만큼 자료수집에 열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런 자료들을 모아 나중에 ‘단청 박물관’을 지어 전시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올해 말에는 ‘경회루 단청 문양 모사전’을 가질 계획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우리 겨레의 삶과 예술의 혼이 담겨 있는 단청은 수천년 이전부터 사물에 아름다운 색상과 무늬를 붓끝에 담아 이어 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단청장이었던 만봉스님의 화맥을 끊임없이 전수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홍창원 단청장은… 1955년 서울 신촌에서 태어났다. 15살 때인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48호(단청) 만봉스님 문하생으로 입문했다. 1970년 동대문 탑골승방 일주문과 세검정 창의문 단청에 참여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부여 무량사(1971), 신촌 봉원사 대웅전(1972), 영화사 삼성각(1973), 부산 동래산성(1974년), 강릉 경포대(1978) 등의 단청에 참여했다. 1981년에는 만봉스님 전수장학생에 선정됐고 문화재수리 단청기술자로 등록한 데 이어 1986년 만봉스님 이수자로 선정됐다. 이후 광희문(1990), 창덕궁 구선원전(1992), 경복궁 강녕전·교태전·경성전·연생전(1994) 단청을 비롯해 덕수궁(2001), 창덕궁(2002), 경복궁 근정전(2003) 등의 단청 작업을 했다. 일본 나카지마 육각당과 일본 쇼고 무량수사 등의 단청 작업에도 참여했다. 2009년 만봉스님의 뒤를 이어 무형문화재 48호 단청장이 됐다. 이 밖에 동방불교대학 불교미술과 교수(1991~2005), 전통건축미술학교 단청강사(1991~1999), 불교방송국 단청강사(1997~2001) 등을 맡기도 했다. 현대미술대전 현대미술상(1993) 등 다수의 수상경력과 제1회 벽연회 단청소품전(1998) 등 10여 차례 초대전과 단체전을 가졌다.
  • 숭례문 복구 한달째 중단…시공사·목수간 임금 마찰

    숭례문 복구 한달째 중단…시공사·목수간 임금 마찰

    숭례문 복구공사가 지난해 12월 초부터 중단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오는 12월 준공 일정에 차질이 우려된다. 공사 중단은 목공사 비용 인상을 요구하는 목수와 더 올려 줄 수 없다는 시공사 간 다툼에서 비롯됐으나 관리·감독을 해야 할 문화재청이 이를 한 달 가까이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금까지 시공사 측에 공문을 두 차례 보내는 데 그치는 등 형식적인 조치만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이날 “지난달 8일부터 목수들의 임금 단가 문제로 숭례문 복구공사 가운데 목공사가 중단됐다.”면서 “그러나 협의를 통해 이달 중에 목공사가 재개되면 당초 계획대로 4월까지 목공사를 끝낼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달 가까이 늦춰진 공사가 이달 안으로 재개되더라도 4월 목공사 완료, 12월 준공이라는 복구 일정을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문화재청과 숭례문 복구공사 시공사인 명헌건설㈜ 간에 계약된 총 복구비용은 167억 8500만원이다. 목공사 비용은 15억 7800만원이 책정됐으며 명헌건설은 신응수 대목장 측과 13억 2300만원에 목공사를 계약해 공사를 진행해 왔다. 신 대목장 측은 애초 명헌건설과 계약한 공사비용에서 25~33% 정도를 추가로 더 책정해 달라는 입장이라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최종덕 문화재보존국장은 “이번에 제기된 목공사 임금 단가 문제는 최근 20여 년 동안 장인들이 공공연하게 써온 전동 공구를 못 쓰게 하고, 대패 등 낯선 전통도구를 사용한 전통기법으로 숭례문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인건비 등이 많이 늘어나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숭례문 복구공사는 성곽 복원과 문루 복구공사로 나뉜다. 문루 복구는 목공사가 끝난 뒤 기와공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단청을 입히게 된다. 문화재청이 밝힌 복구 공사의 공정률은 70%다. 최 국장은 “목수들이 전통기법을 쓰겠다고 각서까지 작성했지만, 막상 복구공사에 들어가자 자귀질(자귀로 나무를 깎는 일)과 같은 전통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목수가 한 사람밖에 없어 서로 배워 가며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고, 품도 많이 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은 “명헌건설과 목공사를 총괄하는 신응수 대목장 사이에 원만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율을 시도하고 있으나 돈 문제가 개입돼 있어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한은행, 숭례문 지킴이 등 문화재 보호활동 확대

    신한은행, 숭례문 지킴이 등 문화재 보호활동 확대

    신한은행은 국보 1호 숭례문 지킴이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 중구 남대문로에 있는 신한은행 본점은 2008년 2월 방화로 소실돼 복원 중인 숭례문과 마주 보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신한은행은 지난 8월 문화재청과 ‘숭례문 복구 지원 후원약정’을 맺었다. 지난달에는 충남 부여의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숭례문 전통기와가마 화입식’을 열었다. 숭례문 복원을 위한 전통기와 제작을 위한 전통기와가마 3기, 제와막, 백와관 등의 시설을 구축한 것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화입식이란 가마에 처음 불을 넣는 일을 축하하는 의식이다. 신한은행은 가마제작에 들어간 비용 전액(4억원)을 후원하고 문화재청은 전통기와가마 원형복원 연구 등을 맡았다. 이번에 복원된 가마는 숭례문의 성공적인 복원과 전통문화를 공부하는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 국내외 연수생들의 교육에 활용될 것이라고 신한은행 측은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그동안 숭례문 지킴이로서 매주 토·일요일에 숭례문 복구현장에서 공개관람 안내 등 자원봉사를 계속해 왔다. 숭례문 조명설치 비용 8억원도 후원하는 등 문화재를 아끼고 보호하는 사회적 기업을 추구하고 있다. 기부활동 외에도 전국 문화재 보호활동 등 임직원들의 봉사활동을 확대할 계획이다.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순수 전통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국보 1호 숭례문의 성공적인 복구를 기원하며 우리 문화재의 가치를 널리 퍼뜨려 국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일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오달란기자 dallan@seoul.co.kr
  • ‘수해’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 보수

    남북한이 고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에서 수해에 따른 문화재 안전조치에 나선다. 통일부는 13일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만월대 안전조사 및 복구·보존 활동을 위한 방북 신청을 최근 승인했다고 밝혔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와 국립문화재연구소 전문가 12명은 14일 오전 방북해 23일까지 북측 전문가들과 함께 문화재 안전조치를 진행한다. 우리 측 전문가들은 개성공단 내 숙소에서 출퇴근할 예정이다. 이번 방북은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지난달 말 개성에서 북측 민족화해협의회와 실무협의를 한 뒤 나온 후속 조치다. 당시 우리 측 관계자들이 발굴 현장을 둘러본 뒤 일부 지역에서 홍수로 토사가 흘러내리고 축대 부근이 붕괴되는 등 수해가 심해 긴급조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안전조치에서는 상황에 따라 땅파기 등이 진행돼 지난해 5·24 제재 조치로 중단된 공동발굴사업이 1년 5개월여 만에 사실상 재개되는 셈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국과수, 삭제된 CCTV 영상도 복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기존의 외국산 동영상 복원 기술에서 벗어난 자체 개발 신기술로 영상 복구율을 획기적으로 높였다고 2일 밝혔다. 국과수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 수사 및 감정기관에서 사용하는 영상 복원 소프트웨어는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은 차량용 블랙박스나 삭제 또는 초기화된 폐쇄회로(CC)TV 영상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 없어 증거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국과수가 개발한 새 복원 기술은 영상 분석단위를 기존의 ‘파일’에서 ‘프레임’으로 세분화해 영상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동영상 정보의 일부가 삭제·훼손됐더라도 영상자료의 일부분이 남아 있으면 전체 영상 복구가 가능하다는 게 국과수의 설명이다. 실제 지난 1월 광주 서구 모 유치원에서 교사가 원생을 폭행했다가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자 유치원 측에서 업체에 의뢰해 영상을 삭제했으나 국과수에서 새로운 기법을 이용해 복원했다. 또 같은 달 경남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도 경남지방청에서는 화재 현장의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복원할 수 없어 국과수에 의뢰, 방화 용의자가 녹화된 영상을 복원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정희선 국과수 원장은 “1년간 연구해 개발한 신개념 동영상 복원기법은 지난 7월 국내 특허출원을 했고, 외국 특허출원도 준비하고 있다.”면서 “영상 복원 등으로 앞으로 미제 사건해결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결실의 계절 가을… 순수한 ‘지식 나눔’ 행사 풍성] “틀어진 세종로 축 복구 꿈 키워요”

    [결실의 계절 가을… 순수한 ‘지식 나눔’ 행사 풍성] “틀어진 세종로 축 복구 꿈 키워요”

    “명성황후를 시해한 칼이 일본 신사에 보관돼 있습니다. 이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요. 명성황후의 능이 있는 이곳 홍릉에서 제가 여러분을 만난 오늘 이 순간이 여러분의 역사에 대한 인식을 다시 쓰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스님·음악가 등 다양한 무료강연 조선왕실의궤 반환에 앞장서 온 혜문 스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청중들은 숨을 죽였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 을미사변에 대한 기록 등이 커다란 스크린에 지나가자 탄성도 터져나왔다. 혜문 스님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문화재 반환도 할 수 없게 됐다는 포기는 너무 이른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혜문 스님은 세종로의 축이 경복궁과 틀어져 있다는 점을 사진으로 보여주며 “일제가 틀어놓은 이 각도를 원래대로 돌리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29일 서울 홍릉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는 테드x홍릉의 첫 행사가 열렸다. 테드x는 대표적 지식콘서트로 꼽히는 테드의 지역 기반 행사다. 강연 시간 18분, 스폰서 최소화, 무료 강연 등 모든 원칙이 테드 공식 행사와 동일하다. 테드x홍릉 역시 강연자와 행사 진행자가 모두 무료로 참가했다. ‘그 순간 나는’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테드x홍릉에는 대학생, 회사원, 고등학생, 방송 및 출판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똥박사’ 정화조 연구 수출하기도 두 번째 연사로 나선 박완철 KIST 책임연구원은 자신의 별명에 얽힌 그 순간을 털어놓았다. 그는 “30년 전 정화조에 대한 연구를 연구실 막내라는 이유로 떠맡았다.”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결과물이 한국의 배수처리장에 설치되고 일본과 타이완에 수출되는 것을 보면서 ‘똥 박사’라는 별명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매뉴얼 페스트라이시(이만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만 알던 내가 해인사에서의 경험 덕분에 한국에 정착하게 됐다.”면서 사고의 전환 과정을 설명했다. 장재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디지털음악을 실제로 들려주며 “쇼팽도 음악이지만 기이한 소리도 음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두뇌는 머리에 있지만 손끝에도 있다.”며 실천을 강조한 신인철 작가에게는 강의가 끝난 뒤 젊은 참가자들이 몰려들어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무궁무진한 미래 사극 주역들

    [WHO&WHAT] 무궁무진한 미래 사극 주역들

     등장인물이 칼에 찔리거나 물에 빠진다. 거의 매회 생명의 위기를 맞고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장면이 되풀이되지만 보는 사람들은 이미 그가 역경을 극복하고, 죽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심지어 그가 품은 꿈이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반면 때가 되면 누가 원해도 주인공의 죽음을 막을 수는 없다. 비극을 희극으로 바꿀 수도 없고, 삼각관계의 결말도 정해져 있다. 드라마라면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시청자의 요청’이나 ‘여론’도 통하지 않는다. 바로 끝이 정해진 드라마 사극의 운명이다.  사실과 허구를 교묘하게 엮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극은 줄타기에 가깝다. 김종서와 수양대군이 사실은 사돈이었다는 줄거리로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렸던 드라마 ‘공주의 남자’는 김종서의 손자와 수양대군의 딸이 연인이었다는 몇 줄의 야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그들 가문의 족보로 보면 엄연한 허구다.  이순신 장군을 한산대첩에서 미리 전사시키거나 명성황후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식의 무리수만 두지 않는다면 사극은 무한한 상상력이 보장된다. 특히 주인공을 바꾸거나 조금만 틀어본다면 무궁무진한 시나리오를 얻을 수 있다. 역사는 승자의 시각에서 쓰이지만, 사극은 그렇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왕의 여자, 왕이 되지 못하고 스러져간 세자는 물론 아무런 공헌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갔다는 기록만 남긴 사람도 얼마든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 사극이다. 수백년간 ‘성춘향과 이몽룡’의 시각에서 쓰인 춘향전이 방자의 시각에서 쓰이기만 해도 얼마나 달라지는지 이미 영화 ‘방자전’을 통해 입증되지 않았는가.  이번주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에서는 미래에 영화나 드라마의 중심이 될 사극의 주인공들을 찾아봤다. 시놉시스를 통해 이미 만들어진 사극에서는 주인공의 주변인, 엑스트라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졌던 그들의 시각에서 역사를 한번 들여다보자.  드라마나 책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종의 둘째딸 정의공주는 한글 창제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 얘기가 그녀의 시가였던 죽산 안씨 문중 문헌에 기록돼 있다.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공으로만 알고 있는 한글 창제에 조선시대의 공주가 관여했다는 것은 누구나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다. 정의공주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지 않는가.  조선왕조 518년간 27명의 왕이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왕이 되지 못한 세자 11명이 있었다. 장자 계승을 토대로 한 유교적 사상이 지배했지만, 정작 맏아들이 왕위를 이은 것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등 6명에 불과하다. 순종은 요절한 형이 있는 차남이었다. 왕후 자리는 ‘국모’로 불리며 절대 비워서는 안 되는 자리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9년이나 세자의 자리에 있었던 문종은 세자 시절 두 명의 세자빈을 폐위시켰고, 홀로 왕위에 올라 세자빈을 왕후에 추증한 유일한 홀아비 왕이었다. ‘왜’라는 궁금증을 품으면 스토리가 될 소재는 얼마든지 있다. 여기 세 가지의 스토리를 꺼내봤다.    [심양의 왕자들] 청나라 볼모 8년… 소현·효종 형제와 그들 부부의 불운했던 삶  ●주요 등장인물  소현세자 이왕/세자빈 강씨/효종/효종비 인선왕후/인조/인조의 후궁 조소용  ●극적 요소  조선의 세자 27명 중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우유부단한 형 소현세자와 강인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동생 효종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 남편만큼 불행했던 소현세자빈 강씨와 남편보다 더욱 강건했던 인선왕후의 시각에서 풀어간다.  ●시놉시스  스물네 살이 되어서야 세자로 봉해진 소현세자는 결혼 8년 만에 후사를 보지만 불과 몇 달 뒤 병자호란이 터진다.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의심 많은 아버지 인조는 전쟁 과정에서 신하들에게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한 군주의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고, 세자에게도 항상 짜증 섞인 태도로 일관한다. 삼전도의 굴욕과 함께 세자는 아버지와 대신들의 강권에 의해 “자진해서 적국에 볼모로 가겠다.”고 말해버린 후 울음을 터뜨리는 유약한 모습이었다. 세자 부부는 동생 봉림대군(훗날의 효종) 부부와 함께 볼모살이를 떠난다. 가는 길에 청나라 군대가 조선의 여러 고을을 약탈하고, 백성들을 노비로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세자는 무력감을, 봉림대군은 분노를 느낀다. 그러나 정작 청나라에 도착한 후 세자는 돌변한다. 이국에서의 고생으로 몸은 무너져 갔지만 조국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진 세자로서의 책임감은 점차 커져간다. 반면 세자빈은 오랜 타국생활을 겪으면서 조선에서 건너온 물건을 팔아 재산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인조는 아들과 며느리를 불신하고 점점 더 싸늘한 시선을 보내게 된다. 볼모살이 8년 만에 돌아온 세자를 인조는 ‘오랑캐 물이 들었다.’며 만나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급기야 황제의 하사품이라며 세자가 내민 벼루를 세자의 머리를 향해 집어던졌다. 결국 귀국 두 달 만에 세자는 인조와 애첩인 조소용에 의해 독살당하고 만다. 인조는 예비 국모의 체통을 내팽개친 며느리도 가만두지 않았다. 인조의 수라상에 오른 전복구이에 독이 들었다는 누명을 씌워 세자빈 강씨를 폐위시켜 죽이고 만다.  청나라의 문물에 관심을 두고 배우려고 했던 형과 달리 봉림대군은 오로지 병자호란의 복수에만 관심이 있었다. 형의 죽음 이후 세자에 책봉되어, 효종이 된 봉림대군은 북벌을 위해 궁중 살림을 극도로 긴축했고, 인선왕후 역시 이에 앞장섰다. 인선왕후는 병자호란 당시 피신한 강화도에서 오랑캐에게 잡힐 처지가 되자 자결하려고 했고, 볼모살이 후 돌아와 왕후가 되자 청나라의 첩자 노릇을 하던 김자점과 조소용의 역모를 밝혀내 처단한 여걸이었다. 하지만 효종은 순치제의 등장으로 청나라가 더욱 강해지면서 북벌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고,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이 그 뜻을 이루기를 바랐지만 현종은 그럴 뜻이 없었다. 결국 8년간이나 굴욕의 세월을 보낸 왕가의 형제와 그 부인들은 마지막까지 뜻하는 바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비운의 주인공들이 되고 만다.    [7일의 행복, 영원한 이별] 7일만에 폐위 단경왕후… 50년 넘도록 중종만을 그리며  ●주요 등장인물  단경왕후 신씨/중종  ●극적 요소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삶을 살았던 왕후로 단종비 정순왕후와 중종의 첫 번째 부인 단경왕후 신씨를 꼽는 이들이 많다. 왕의 이복동생에서 한순간 왕이 된 남편과, 남편을 왕으로 만든 세력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왕후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비운의 여성. 그리고 그녀를 향한 임금의 순애보가 담긴 치마바위 이야기.  ●시놉시스  성종은 왕비였던 윤씨가 연산군을 낳고 폐위된 후 세 번째 왕후로 정현왕후 윤씨를 맞아 진성대군을 낳았다. 진성대군은 12살 때 13세인 신수근의 딸과 결혼했다. 왕이 되지 못하는 대군의 생활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아야 하는 것이었고, 이들 부부 역시 이를 충실하게 지켰다. 특히 연산군이 폭군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은 진성대군에게 관심을 쏟기 시작했고, 진성대군은 더욱 은인자중했다. 어느 날 밤, 여러 장수와 조정 대신들이 진성대군의 집에 들이닥쳤다. 횃불을 켜 든 이들은 “반정을 일으켰으니, 대군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게 된 대군 부부는 조용히 결과를 기다렸고, 그 결과 하루아침에 왕좌에 올라 중종이 됐다. 왕비가 됐다는 기쁨을 누리고 있던 다음 날 아침, 단경왕후에게 급작스러운 소식이 날아든다. 아버지 신수근이 전날 밤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신수근의 여동생은 연산군의 비였고, 폐주의 처남인 아버지가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만 했다. 모든 가족들이 반정군에게 죽임을 당하고, 노비로 끌려가는 와중에도 단경왕후는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중종이 보위에 오르고 7일이 지나자 반정 공신들은 단경왕후의 폐위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중종과 단경왕후는 보기 드물게 의좋은 부부였지만 칼로 정권을 잡은 반정 공신들 앞에서 그는 무력했다. 결국 단경왕후는 폐위돼 사가로 나가야 했고, 이때 중종은 19세, 왕후는 20세였다. 중종은 새로운 왕비 간택을 1년 가까이 미뤘지만, 신하들의 압박에 장경왕후 윤씨를 새 왕비로 맞았다. 그러나 중종은 항상 인왕산 산자락을 바라보면서 단경왕후를 그렸다. 이를 전해들은 신씨는 인왕산 바위에 자신의 분홍치마를 펼쳐놓고 남편이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10년 후 장경왕후가 원자를 낳고 죽자 일부 대신들이 다시 단경왕후를 불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반정 공신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고, 결국 신씨는 잊혀졌다. 고작 7일간의 왕후 생활을 하고 스무 살에 왕궁에서 쫓겨난 단경왕후는 무려 71세까지 50년 넘게 남편만을 그리며 살았다.    [왕궁의 스캔들] 조선 최초 세자 이방석은 여색에 빠지고 세자빈은 불륜을  ●주요 등장인물  이방석/이성계/태종/정도전/세자빈 유씨/이만  ●극적 요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국정의 기틀을 잡은 강인한 왕 태종과의 관계에서 희생양이 된 조선 최초의 세자 이방석. 어린 나이에 형에게 목숨을 잃기까지 자신의 의지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운한 그와, 조선왕실 최초의 스캔들을 일으킨 세자빈 유씨를 통해 왕실의 비틀어진 모습을 들여다본다.  ●시놉시스  북방의 무인 이성계는 두 번째 부인 강씨(신덕왕후)와의 사이에서 48세에 막내아들을 본다. 방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아이는 조선이 개국했을 때 11세였고, 한 달 만에 조선 최초의 세자에 책봉된다. 어머니 신덕왕후와 개국공신들이 장성해 사병을 가진 이방원(태종)과 이방간 등을 경계한 덕분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군이 되겠다는 꿈을 꿨던 방석은 본인의 자리를 탐탁지 않아 했다. 총명하지 않은 방석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고, 어느새 여색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궁궐을 나서 기생집에 가고, 사냥 대신 민간의 가축을 쏘아 죽이는 일도 허다했다. 한편 방석에게는 나이가 한참 많은 세자빈 유씨가 있었다. 어린아이와 결혼해 억지로 궁궐에 끌려온 유씨는 마음 줄 곳을 찾지 못하다가 궁궐의 내시 이만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철없는 망나니 방석보다는 정감 있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이만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개국 초기, 궁궐 안팎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몰래 불륜을 이어가던 이들의 행동은 결국 태조에게 발각되고, 끝을 맞게 된다. 태조는 이만을 참수하고 세자빈은 폐서인해 사가로 내쫓았다. 조선왕조에 처음으로 기록된 불륜스토리의 결말이었다.  방석을 앞세운 정도전 등 일부 개국공신들은 태조의 장성한 왕자들이 거느린 사병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결국 정도전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요동 정벌을 기획했고, 왕자들이 사병 차출을 거부하자 관직을 빼앗고 사병까지 몰수했다. 그러나 불과 17일 만에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고, 태조에게 세자 폐위를 요구했다. 경각에 달린 방석의 목숨을 살려 주는 조건으로 태조는 영안군(정종)을 세자로 삼았다. 그러나 방석은 대궐 밖으로 나서는 순간 이방원 일가의 칼을 맞고 스러졌다. 임금의 적자였던 방석이 ‘대군’의 위치를 돌려받은 것은 그로부터 270여년이 흐른 숙종 6년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올라, 자유로움을 갈망하던 철부지 세자는 ‘조선왕조의 첫 세자’이자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만 남았다. 폐서인된 세자빈 유씨가 그 후 어떻게 살았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이수광·다산북스)  왕을 낳은 후궁들(최선경·김영사)  왕이 못된 세자들(함규진·김영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박영규·들녘)  정의공주(한소진·해냄출판사)  소현세자(박안식·예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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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례문 기와 가마 11일 첫 불 붙인다

    숭례문 기와 가마 11일 첫 불 붙인다

    숭례문 복원에 쓰일 기와를 굽는 가마에 11일 첫 불이 붙는다. 복원에 필요한 기와는 모두 2만 2463장. 복원 공사 도중 깨질 수 있는 양까지 합쳐 약 3만장의 기와를 내년 3월까지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학교에서 생산하게 된다. ●전통 기법으로 조선 기와 만드는 유일한 장인 기와 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이는 한형준(82) 제와장(製瓦匠). 한 제와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91호로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전통적인 제와 시설과 기법으로 조선 기와를 만드는 장인이다. 기와 만드는 흙을 차지게 밟는 일을 열다섯 살부터 시작한 그는 직업병으로 말미암은 관절염 때문에 왼쪽 다리가 불편하다. 하지만 지팡이를 짚고 다지면서도 전통 방식으로 숭례문을 복원하는 일에 혼신의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한 제와장이 운영하던 전남 장흥군의 작업실에서 하루에 최대 생산 가능한 기와의 수는 40여장이었다. 이에 부여 문화학교에 신한은행 후원으로 전통 기와 가마 3기를 새로 만들었다. 가마 한곳에 들어가는 기와의 수는 모두 850장. 한꺼번에 2550장을 구울 수 있는 셈이다. 기와는 가마에서만 일주일가량 보낸다. 마르는 것까지 끝나 완성되려면 총 3주가 걸린다. ●유약 쓰지 않고 장작불에 논흙 구워 숭례문 기와는 가스불이 아니라 장작을 때는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장작은 부여 산판에서 공급받고, 기와를 만드는 데 쓰는 흙도 부여의 논흙을 쓴다. 부여 지역에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기와 가마터가 현재까지 10기 이상 발굴될 정도로 흙의 품질이 좋다. 기와는 옹기나 도자기와 달리 어떤 유약도 쓰지 않는다. 3분의1 정도 모래가 섞인 진흙, 즉 논에서 나는 흙을 굽기만 할 뿐이다. 특히 조선 기와 특유의 은은하면서도 고운 회색은 장작불의 연기로 만들어낸다. “숭례문에 기와 올리는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이라고 항상 강조했던 한 제와장은 전수 조교들과 함께 만족스러운 색깔과 강도, 소리를 갖춘 기와를 만들기 위해 직접 장작불을 땔 예정이다. 한때 전통 기와는 공장에서 생산되는 것보다 강도가 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숭례문 복구에 쓰일 기와 선정을 위한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실험 결과 전통 기와가 동파에 강하고 흡수율도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30일 TV 하이라이트]

    ●러브 인 아시아(KBS1 밤 7시 30분) 작년 경기 수원에 몽골 음식점을 연 양대용·서열마씨 부부. 한국인 남편 양대용씨는 요리사다. 몽골 사람만큼이나 음식을 잘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대용씨. 음식 맛에 반한 단골손님들로 식당은 문전성시를 이룬다는데…. 몽골 사람들에게 고향의 맛을 선물하고 싶은 부부의 행복 식당을 ‘러브 인 아시아’가 따라가 본다.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경남 산청군의 한 마을. 이곳에는 8개월차 새내기 부부 이재영씨와 안지민씨가 살고 있다. 부부는 7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 차이와 호칭으로 인한 교통정리에 골머리 앓던 가족들의 반대에도 결혼에 성공했다. 같은 학교의 음악교사와 졸업생으로 만나 부부 인연을 맺은 이들. 불굴의 연상·연하 커플을 만나 본다. ●아침 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MBC 오전 7시 50분) 치영이 흘린 약이 암 환자들이 먹는 진통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안나는 치영이 암이라는 사실에 충격에 휩싸인다. 한편 강수(현우성)는 한 아이가 치영의 차에 치일 뻔하자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한다. 그 때문에 강수는 갈비뼈 골절을 입게 되어 수술을 미룰 수밖에 없게 된다. ●세계테마기행(EBS 밤 8시 50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이자 신화의 땅, 카프카스 산맥은 길이 1100㎞, 너비 160㎞에 이르는 거대한 장벽이다. 예로부터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의 구분선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아랍, 유럽과 동양의 다리 역할을 하는 이곳은 지금도 골짜기마다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고 있는 민족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하나뿐인 지구(EBS 밤 11시 40분) 지금 대한민국은 수해로 인한 피해지역 복구에 한창이다. 침수로 인한 토사 유출 제거 작업, 산사태로 인한 건물 붕괴 복구 작업 등 많은 사람들은 예전의 제 모습을 찾기 위해 고군 분투하고 있다. 기상 변화로 인한 집중 호우, 이미 대한민국의 기후 변화는 시작되었다. 현재의 방재 대책 문제점들을 되짚어 본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인천 파워 인맥 115인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선정된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을 만난다. 그는 이른 나이에 부조리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새얼문화재단을 통해 지역 사회 발전을 위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 중인 지 이사장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 본다.
  • 강남구·포이동 주민, 판자촌 재건 마찰

    지난 6월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강남구 개포동 판자촌 재건마을 주민들이 무허가 건물 25개 동을 재건축하면서 구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강남구는 23일 “포이동 재건마을 주민들이 불법건축물 25개 동을 재축조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관련법에 따라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는 “재건마을은 무허가 건물지역으로 주민들의 근본적인 주거 안정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 두 달 동안 면담을 통해 주민들의 요구 사항을 적극 수용했으나 주민들은 구의 제안을 끝내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포이동 주거복구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두 달 동안 잔재물을 방치하고 주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임대주택 이주만을 강요하고 있다.”며 “화재의 잔재를 치우고 복구에 나서야 할 구에서 용역을 투입해 철거 조치하겠다며 주민들을 협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구는 지난 12일 새벽 용역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재건마을에 들어가 임시 건물 일부를 기습 철거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지난 6월 12일 발생한 화재로 96가구 중 74가구가 불에 타 임시 주택을 짓는 등 주거 복구에 나섰으나 구청이 이들에게 자진 철거 명령을 통보하면서 갈등을 빚어왔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우리 손으로 마을 복구할 겁니다”

    “화마의 악몽을 딛고 우리 손으로 이 마을을 복구할 겁니다.” 2일 오후 강남구 포이동 무허가 판자촌인 자활근로대 마을. 51일 전인 6월 12일 이 마을 판잣집 96채 가운데 60여채를 태운 큰 불이 휩쓴 이곳에서 모처럼 환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햇볕이 내리쬐고, 매미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주민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자원봉사 대학생들은 마을회관 앞 공터에서 조립식 주택 짓기에 한창이었다. 패널을 이어 붙여 벽을 만들고, 창문과 현관문을 그 사이에 끼워 넣으니 금세 집이 만들어졌다. 주민과 23개 빈곤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포이동재건마을주거복구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주거복구’를 선언하고, 벌써 4채의 집을 새로 지었다. 구슬땀을 훔치던 주민들은 새참으로 수박을 나눠 먹으며 서로를 격려했다. 주민 강양임(52·여)씨는 “새 집을 갖는다니 감개무량하다.”면서 “얼른 마을이 복구됐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당시 화재로 집을 잃은 주민들은 그동안 마을에 설치된 천막과 마을회관 등에서 지내왔다. 강남구에서 주민들에게 임대주택을 제안했지만 이들은 강제이주 사실 인정과 토지변상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며 마을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우가 마을을 덮치는 바람에 주민들은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이날 세워진 집 4채 가운데 한 채는 학생들의 공부방으로 쓰일 곳이다. 나머지 집들은 마을 노인들의 공동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주민들 가슴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 있다. 강남구 측에서는 새로 지은 집들이 ‘불법’이라며 강제철거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포이동에서 합법적인 점유권을 인정받을 때까지 마을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조철순 포이동주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우리가 살던 곳에서 새 집을 지어 살겠다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면서 “주민들이 한마음으로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유영숙 환경부장관 “고엽제 매립 토양 의혹없게 다각도 분석”

    유영숙 환경부장관 “고엽제 매립 토양 의혹없게 다각도 분석”

    “업무는 협동과 경쟁을 바탕으로 집중력 있게 하라.” 유영숙 환경부 장관이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유 장관은 청문회를 통과하고 나서도 주위에서 부처 수장으로서 유약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특유의 조직 운영 방식을 도입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미군 부대 고엽제 매립 의혹 논란이 일던 시기와 맞물려 취임하자마자 태스크포스(TF) 2개 팀을 발족시켰다. 그리고 ‘고엽제 사태가 불러올 수 있는 모든 가능성과 그에 따른 대책’을 시나리오 플래닝 기법으로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부모의 심장과 과학자의 두뇌’로 환경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취임 한 달을 맞은 지난 1일, 유 장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소회와 함께 향후 부처를 이끌어갈 방향을 제시했다. 유 장관은 “취임하자마자 TF를 발족시킨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직원들이 많았을 것”이라며 “TF는 ‘고엽제 매립 의혹’과 관련해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만든 뒤 해결책을 빨리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예상되는 각 사안에 따른 대책을 마련한 뒤 실국장급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발표하라는 과제를 내렸다. 경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간부들에게는 결과물의 우열을 가려 줄 것도 부탁했다. 그는 직원들이 처음 경험하는 경쟁 방식 연구 발표에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도 예상했다고 한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했다. 밤을 새워 가며 TF에서 만들어낸 결과 보고서는 현재 진행 중인 캠프캐럴 조사 결과에 따라 향후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은 인터뷰 도중, “아직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너무 앞서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하면서도 차분하게 현안 문제 해결과 정책 방안을 밝혔다. →취임 한 달이 됐는데 환경부 수장으로서 소회와 각오는. -환경부에 오기 전에는 환경오염을 막고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등으로 부처의 업무를 막연히 알고 있었다. 막상 장관이 돼 구체적으로 업무를 파악해 보니 환경부가 해야 할 일이 방대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특히 취임 전부터 불거진 미군 부대 고엽제 매립 의혹은 아직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조속히 매듭지어야 할 과제이다.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젊은 직원들의 창의성과 간부들의 냉철한 정책 방향 설정 능력을 보고, 환경부의 경쟁력과 잠재력이 매우 크다는 것도 느꼈다.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는 만큼 시대 흐름에 맞게 직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쓸 계획이다. 환경정책은 후속 조치보다는 선제적 사전 예방 조치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다. 자연환경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단 훼손되면 복구하기까지 막대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다. 따라서 사전 예방 차원의 정책에 무게 중심을 두겠다. →장관이 되고 나서 크게 달라진 변화를 꼽는다면. -너무 바쁘다. 각종 행사와 회의 참석은 물론, 경제·정치·학문 분야 등에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다. 틈나는 대로 산하기관과 지방청 등 현장을 돌아보고 있지만 아직도 못 가본 데가 많다. 학자일 때도 바쁘게 지냈지만 장관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야 할 정도다. 전문 지식과 창의적 사고가 필요한 업무 특성상 다양한 계층의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환경과 관련된 문제는 새로운 가치와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위기와 기회를 동시에 갖고 있는 속성을 가졌다. 고엽제 매립 의혹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우리 사회의 경쟁력 저하와 국민 에너지 낭비라는 파생 위기를 초래하지만, 이를 계기로 사회와 국가가 후손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부 수장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고엽제 매몰 의혹이 제기되고 현장 조사가 진행된 지도 한 달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속 시원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환경부의 복안은 무엇인지. -결론부터 말한다면 국민들의 불안감을 빨리 해소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 한·미공동조사단이 꾸려져 캠프캐럴 기지 안팎에 대한 환경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토양에 대한 분석 결과도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정밀 분석하고 있기 때문에 지체되고 있다. 기지 내부의 경우 총 22개의 지하수 관정에서 시료를 채취해 분석 중이고, 헬기장과 D구역 등에 대한 지구물리탐사(GPR/ER/MS)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최종 조사 결과는 한·미공동조사단과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환경분과위원회’의 종합적 검토를 거쳐 7월 말쯤 나올 것 같다. 일부에서는 너무 미군 측에 끌려가는 것 아니냐고 질책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토양조사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좀 더 여유를 갖고 기다리면 종합적인 조사 결과가 나올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뢰가 중요하다. 의문이 제기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공감하고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됐다. 구제역 가축 매몰지에 대한 유실이나 침출수 유출 문제가 우려된다. 어떤 대비책이 마련돼 있나. -우기와 국지성 호우 등에 대비해 정부 합동으로 매몰지 안전 점검과 관리 실태를 조사해왔다. 문제 매몰지에 대해서는 책임관리제를 통해 순찰을 강화했다. 지방환경청별로 담당자를 지정해서 관리하고, 매몰지 환경관리대책 TF도 장마가 끝날 때까지 연장 운영한다. 농림수산식품부 역시 책임관리제로 매몰지 관리를 교차 점검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환경단체나 언론에서 지적한 대규모 매몰지나 하천·경사지 등의 매몰지는 순찰을 강화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지자체에 신속히 알려 조치할 수 있는 체계도 갖춰져 있다. ‘조상 묘를 매몰지 관리하듯 했으면 효자 소리 들었을 것’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담당자들이 자주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장마로 인해 4대강 사업도 우려된다. 준설토 유실 등으로 수질오염이나 주변 환경 파괴 우려는 없는지. -장마에 대비해 이미 6월 말까지 대부분 가물막이 철거를 완료한 것으로 알고 있다. 폐수 무단 방류 등 장마철 수질오염에 대비해 8월까지 4대강 환경감시단을 통해 특별지도·점검을 강화한다. 국토해양부와 환경부 ‘수질오염 상시감시·방제팀’과 4대강 추진본부 홍수대책상황실 등이 공조해 수시로 점검하고 있다. 가물막이 붕괴나 보 구조물 유실 등의 사태 발생 시 정보를 공유해 신속히 사고 수습에 나설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보 완공 후에도 효과적인 수질 관리를 위해 사전 예측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갈수기 수질 악화 때에는 오염원을 집중 관리하고 가동보를 통한 수량 조절로 수질 악화 예방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공직자 비리 척결 등 공직 기강 확립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직원들에게 어떤 점을 주문했나. -먼저 관례적으로 무감각하게 이뤄진 ‘목·금 연찬회’로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죄송하다. 그동안 개최된 연찬회의 현황과 문제점을 분석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 비위 직원은 발견 즉시 엄벌하고, 모범 공직자를 발굴해 사기를 올려주는 포상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장관이 되기 전 과학자로 생활하면서 ‘약속되지 않은 재물은 모두 부정부패다. 공직자에게 약속된 재물은 오직 월급뿐’이란 신조로 생활해 왔다. 이 기준은 모든 공직자에게 절대 불변의 진리인 동시에 의무라고 생각한다. 환경부 직원들이 비리 유혹으로부터 강한 내성을 갖도록 방안과 지침을 마련해 시행할 것이다. →구제역과 고엽제 문제 등을 겪으면서 환경부는 뒤치다꺼리만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부처의 역량을 키우고 직원들의 사기를 높일 방안은. -환경부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과 예산 등을 충분히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 일부에서 지적하는 ‘힘없는 부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 올해 새롭게 추진하고 있는 일하기 좋은 환경부 만들기 프로젝트를 더욱 확대·발전시켜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어가겠다. 아울러 기존의 연공서열식 인사 관행에서 과감히 탈피해 노력과 성과에 따른 조직 인사도 곧 단행할 계획이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유영숙 환경부 장관 ▲1955년 강원 출생 ▲이화여대 화학과 졸업, 오리건대 생화학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선임·책임연구원 ▲고려대학교 객원교수 ▲여성생명과학기술포럼 회장 ▲한국기술벤처재단 전문위원 ▲과학기술정책연구소 전문위원 ▲한국과학문화재단 과학기술 홍보대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연구부원장
  • 9살 불장난에 포이동 화재… ‘자활근로대마을’ 어디로

    지난 12일 화재가 발생한 서울 강남구의 이른바 ‘포이동 266번지’ 일대 무허가 판자촌인 ‘자활근로대 마을’의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은 마을이 복구된 뒤 재정착할 수 있도록 구에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구는 아직 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13일 강남구와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당시 화재로 포이동 266번지 96가구 중 72가구가 전소됐고, 주민 180여명이 집을 잃었다. 화재 후 강남구는 구룡초등학교 강당을 피해 주민 임시 거처로 제공했지만 상당수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다. 혹시 마을을 비운 사이 철거나 되지 않을까 우려해서다. 적십자사에서 지원하는 식사도 15일이면 끝나 이후에는 먹고 잘 곳도 마땅찮다. 가제웅 반빈곤빈민연대 상임의장은 “주민들이 마을을 비우면 철거될 확률이 100%”라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마을 공터 천막에 머물고 있다. 포이동 266번지 사수대책위원회(대책위)는 이날 오전 화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민들은 이 자리에서 “소방당국의 초동진화 실패로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화재 현장에 소방차를 1대만 투입했으며, 그 사이에 야적장에서 난 불이 집으로 옮겨붙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물론 소방당국의 설명은 다르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골목이 비좁고 인화성 폐기물이 많아 접근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구에 마을 복구와 재정착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조철순 위원장은 “주민들이 다시 마을에 정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이는 마을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구청을 항의방문할 계획도 밝혔다. 구도 답답하다. 이곳 일대가 무허가촌이기 때문이다. 구 관계자는 “대책 수립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만 밝혔다. 불에 탄 포이동 266번지의 복구가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한편 경찰은 판자촌에 장난으로 불을 지른 혐의로 김모(9)군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김군이 미성년자인 점을 고려해 훈방할 계획이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4호선 신호설비에 화재 19시간만에 운행 정상화

    17일 오전 4시 30분쯤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2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신호 설비에 불꽃이 튀어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5분 만에 꺼졌으나 화재 여파로 선로와 연동된 케이블에 이상이 발생해 성신여대 입구~한성대 입구~혜화동 구간 상·하행 운행이 차질을 빚었다. 서울메트로 측은 “레일을 닦고 보수하는 작업을 하던 레일 연마차에서 발생한 불꽃이 신호케이블 인입구 철판 덮개 틈새에 들어가 불이 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신호 장애로 인해 지하철 속도는 평소 시속 40㎞에서 25㎞로 떨어졌다. 서울메트로 측은 “19시간 만인 오후 11시쯤 신호 장애 복구가 완료됐다.”고 말했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지하철 4호선 오늘 복구 못해…퇴근길 혼잡예상

     17일 새벽 4시쯤 발생한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화재로 인해 퇴근길 지하철 이용불편이 예상된다.  이 사고로 선로와 연동된 케이블에 이상이 발생, 성신여대 입구~한성대 입구~혜화 구간 상·하행 운행이 이날 하루 종일 차질을 빚고 있다. 이들 역에서는 수신호로 열차를 통제하고 있어 이 구간에서는 평소의 3분의1(시속 25㎞) 속도로 운행 중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신호장애 복구는 전동차 운행을 통제한 상태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17일 복구는 어렵다.”면서 “18일 새벽 1시 모든 운행이 끝나고 나서 본격적으로 복구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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