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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발 헛되게 죽지 마라”/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이 땅에서 부모로 사는 일이 어쩌다 이렇게 힘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여 길러놓은 아들 딸들이 학문과 인생을 탁마하라고 보내놓은 대학교정에서 그 빛나는 젊음을 연일 화염병으로 불사르고 국방의무를 다하러 내보낸 아들들이 화염병을 막기 위해 쇠덕석같은 차림을 하고 창살차에 갇혀서 선밥에 선잠을 자며 거리에서 지샌다. 그러다가 화염병에 불붙어 그을려 상해버린 아들도 생기고 몽둥이에 몰매 맞아 생때같던 목숨이 짚둥처럼 쓰러지는 기막힌 일도 당했다. 세월이 천년을 간다고 해도 자식의 죽음은 북망에서 삭지 않는다. 가슴에 끌어안고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세월을 보내야 하는 부모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죽음이 한번 시작되면 이 극한의 항거수단에 열병처럼 취해서 온몸에 기름을 붓고 불을 당기는 「분신의식」이 뒤따른다. 전라도 쪽에서 불타며 쓰러진 한 딸이 사경에 있는데 경상도 쪽에서 또 한 아들이 몸을 불살라 숨졌다. 전경으로 내보냈다가 사람 죽인 죄인이 된 아들을 둔 부모나 사경을 헤매는 시위학생의 부모나 다 우리 이웃이고 동기간인 부모들이다. 더욱 마음이 떨리고 불안한 것은 지나간 시대의 악몽을 되살리는 「분신의 열병」이다. 한동안 잠잠히 체내에 머물던 이 잠복균을 자극하여 소중한 젊은이들을 불꽃 속에 뛰어들도록 충동질한 결과가 되고만 「치사」의 허물이 한스럽다. 자식들이 분신으로 만들어준 세상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세상이라도 그 부모가 살 만한 세상은 아니다. 혹여 적이거나 중오할 대상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죽음을 택한 것이라면,나와 내 육친만 불행하게 하는 이런 죽음으로는 응징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죽음을 볼모로 삼거나 흥정으로 삼는 엉뚱한 다른 세력으로나 넘겨질 뿐,싱싱한 생명도 열정에 찼던 진실도 살아나지 않는다. 낳기만 했지 시대를 앞서 줄달음치는 젊은 아들 딸의 생각을 뒤쫓기에 숨만 헐떡여질 뿐인 부모들에게 깜깜한 암흑만 남겨놓고 사라질 뿐인 그 허망한 죽음의식을 제발 이제 멈춰주기 바란다. 젊은이들이 그토록 준엄하게 주장하는 정치사회의 개혁도 예리하게 지켜보는 눈길을 두려워하지,죽어버린 젊은이의 지나간 구호에는 구속을 받지 않는다. 또다시 불어닥친 분신악몽에 사회가 참담한 분위기에 빠져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성세대가 사려깊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서투르고 사려깊지 못한 시위의 대응법이 돌이킬 수 없는 정국의 혼미를 부르고 만 이 유감스런 사태를 가라앉히기 위해 할 수 있는 성의와 노력,근신을 정치권은 다해줘야 한다. 「분신악몽」의 되살아남에 대한 우려는 집권층이나 체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야권,재야나 운동권 연합세력들에서도 「헛된 죽음」을 만류하는 목소리가 높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며 자살특공대를 조직하던 세력이 있었던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범재야투쟁권의 이 사려깊은 이 발언들에 매우 다행스러움을 느낀다. 그와 함께 매우 조심스럽지만 꼭 당부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다. 진실로 오늘의 젊은이들의 이 무모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는 「전권」을 쥔 운동권 지도층이 반드시 해주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젊은이의 죽음을 대규모 시위나 규탄집회의 확대재생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장례식」을 볼모잡고 있는 듯한 혐의를 우리는 지울 수가 없다. 이 혐의가 지워지지 않는 한 젊은이의 분신을 자제하도록 호소하는 투쟁권 지도층의 목소리는 그 효력이 충분히 발휘될 수 없을 것이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분신이나 죽음을 투쟁의 열기로 높이는 데 이용한 흔적이 거듭되고도 있다. 그런 가운데서 외치는 자제의 호소는 결과적으로 역작용의 효력을 낼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지난 시대에 이미 경험하였다. 재야운동권 지도자가 열기에 찬 혁명선동연설을 외치고 있을 때 온몸을 불꽃으로 사르며 투신한 젊은이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어른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서 온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자극적인 행동을 하면 부모들은 짐짓 그것을 외면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짐짓 무관심함을 꾸미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위급한 순간이 지난 다음 분별있게 타이르는 것이 생각깊은 어른들이 하는 행동이다. 죽음이라는 극한투쟁에 젊은이에게서 더 이상 일어나면안 된다는 생각이 진심이라면 그것을 설득하기 위해 좀더 적극적인 노력을 해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투쟁」의 효과와 운동권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좋은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치사정국」까지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처리방법으로 수습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열사로 거듭나는 분신」의 악순환에서 이성을 회복하리라고 생각한다. 제발,불행하고 슬프게 간 한 아들을 고이 잠들게 도와주고,또다른 어떤 죽음도 산 사람의 명분을 정당화하고 강화해주는 데 이용할 수는 없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간곡히 당부한다. 범운동권 지도층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렇게만 한다면 그 현명함에 국민 모두의 마음은 크게 위로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으로부터 따르기도 할 것이다. 이런 글이 필경 어떤 비난과 핍박의 빌미가 될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늘 이 땅에 산,한 어머니의 양심으로 피력하지 않을 수 없는 생각이어서,여러 예측을 무릅쓰고 이 글을 쓴다. 그리고 거듭 말한다. 『아이들아 제발 헛되게 죽지말아라』
  • 노·학 연대시위 전국 확산/5만여명 참가… 치사규탄·휴무강행

    ◎도심서 밤 늦도록 산발시위/신촌선 대형 붉은 사노맹 깃발 목격/최루탄에 맞아 근로자 각막파열 「노동절」의 부활을 주장하는 「전노협」 소속 근로자와 운동권 학생 5만여 명(경찰추산)은 1일 하오 서울 연세대를 비롯한 전국 80개 대학에서 「노동절」기념 및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규명집회를 갖고 거리로 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연세대에서는 「전노협」측 근로자와 재야단체회원 운동권 학생 등 1만3천여 명이 모여 하오 2시 원진레이온의 직업병과 강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노학연대집회를 가진 데 이어 하오 4시부터는 「노동절」을 기념하는 집회를 잇따라 열고 가두로 진출했다. 집회참가자들은 이어 시청 앞까지 가두행진을 하기 위해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출동한 경찰과 밀고 밀리는 몸싸움을 벌였다. 학교 밖으로 빠져 나간 참가자들 가운데 2천여 명은 하오 9시쯤 신촌로터리 일대 도로를 점거하고 화염병과 깨뜨린 보도블록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명동·공덕동·서울역 등 이날 하룻동안 서울시내 20여 곳에서 하오 11시40까지 1백∼1천여 명씩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내 곳곳에서 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날 연세대에서는 5백여 명의 학생이 철야농성을 하며 강군의 빈소를 지켰다. 이들은 내무부장관 등 강군사건 관련자의 처벌,구속노동자 석방과 노동악법 철폐 등을 요구하고 올해 임금투쟁에서 승리를 위해 단결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지방에서도 시위가 잇따라 광주에서는 학생·시민 등 1만8천여 명이 하오 3시쯤부터 가두시위를 벌였으며 인천·청주·대전·부산 등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도 학교에서 집회를 가진 뒤 학생들이 교문 밖으로 나와 구호를 외치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연세대 학생회관 건물벽에는 강군 어머니의 절규하는 모습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이 내걸렸고 하오 7시40분쯤 신촌시장에서는 시위대 가운데 가로 2m,세로 1.2m 크기의 붉은색 바탕에 흰색글씨로 「당신이 동지 사노맹」이라고 쓴 깃발을 들고 있는 참석자가 목격됐다. 이날 하오 9시쯤 서울 신촌로터리서 전경들과몸싸움을 벌이던 유니온화학 근로자 윤영탁씨(26·부천시 심곡동 100)가 전경들이 던진 최루탄에 맞아 오른쪽 눈의 각막이 파손되는 부상을 입었다. 또 서강대생 김재록군(23·정외과 3년)도 같은 장소에서 최루탄 파편에 맞아 왼쪽 눈 위가 3㎝ 찢어졌다. 또 학생회관 1층에 마련된 강군의 분향소에는 이날도 조문객이 줄을 이었다. 이에 앞서 서울대 명지대 등 서울시내 24개 대학생 7천여 명은 하오 1시를 전후해 학교별로 출정식을 갖고 연세대로 모였다. 한편 「전노협」은 이날 산하 노조 4백50개 가운데 1백94개 노조 9만7천여 명이 휴무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전노협과 대기업연대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2백1개 노조의 16만1천명 가운데 96개 노조 5만3천24명이 휴무에 들어갔으며 96개 노조 가운데 89개 노조는 이미 노사합의로 5월1일을 휴무일로 정한 곳』이라고 밝혔다. 이날 검찰과 노동부는 불법으로 휴무를 한 이들 7개 노조의 간부오 「노동절 휴무」 및 9일로 예정된 총파업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전노협」 및 「대기업노조연대회의」 간부들에 대한 전면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노동쟁의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미리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전노협」 현주억 의장 직무대행 등 4명의 검거에 나서는 한편 모두 20여 명에 대해 혐의가 확인되는 대로 구속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 “화염병·최루탄 끝없는 공방에 염증”/마포서경비과장 양혁경정 사표

    ◎「치사」·전경 구속의 소모적 현실 안타까워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폭행치사사건 등으로 학생과 경찰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시위진압 등 경비업무를 맡고 있는 경찰간부가 『돌과 화염병에 염증이 났다』는 이유로 사표를 냈다. 서울 마포경찰서 경비과장 양혁 경정(41)은 1일 상오 김영태 서장에게 사표를 낸 뒤 기자들과 만나 경찰복을 벗으려는 이유와 심정 등을 털어놓았다. ­사표를 낸 동기는. ▲강군의 사망으로 그 부모와 동료학생들의 마음이 아프겠지만 구속된 전경들과 그 부모들의 입장도 이해해야 한다. 이번 사건으로 전경을 비롯한 모든 경찰이 일방적으로 매도당하는 것을 보고 14년 동안 몸담아 온 경찰직에 더 이상 미련을 느끼지 못하게 됐다. 학생과 전경이 끝없이 대치해 싸우는 현실에 비애마저 느낀다. ­예전에도 경찰직을 그만두려고 한 적이 있는가. ▲지난 89년 구로경찰서 경비과장으로 재임할 때 경찰서 직원 50여 명을 지휘해 동양공전 시위현장에 간 일이 있다. 아들뻘 되는 학생들이 머리가 희끗희끗하고아버지뻘 되는 우리들에게 돌과 화염병을 던질 때 말할 수 없는 비애를 느꼈다. 그 뒤 거듭되는 시위진압 등으로 때가 오면 그만두리라 생각해 왔었다. ­사표제출을 번복할 뜻은 없는가. ▲이미 40이 넘었는데 무엇이 아쉽겠는가. 다만 학생들의 폭력적인 시위방법이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극한 투쟁이 아닌,외국과 같이 평화적인 시위문화가 하루빨리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사적인 이유나 인사불만 등으로 그만두는 것은 아닌가. ▲내 생활은 알뜰하다. 아내와 국민학생인 아들·딸 등 네 식구가 있다. 내가 집에 가는 것은 1주일에 한 번으로 그것도 밤 12시가 넘어서이다. 아이들과 아버지로서 얘기를 나눌 시간조차 없지만 사표를 낼 이유는 되지 못한다. 또한 나는 동기생 가운데 경감·경정 진급에서 선두주자였으며 2∼3년 뒤면 총경 승진도 바라볼 수 있다. 지금과 같은 무한 대치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인 것이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 끝난 뒤 양 경정은 『경찰이 처한 현실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보이지 못하고 이대로 주저앉아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면서 후배들에게 『경찰발전에 힘써 달라』고 당부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 「등록금 투쟁」 불씨가 「치사」로 번져/「강경대군사건」 시말

    ◎총학생회장 구속되자 연일 항의시위/동료화상에 흥분한 전경이 화를 자초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이 학원가는 물론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충격파를 증폭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은 경찰의 과잉진압이 빚은 가장 불행한 사건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의 심각성에 비추어 다시는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적 제도적 장치는 물론 정치적 결단과 도의적 책임이 뒤따라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이번 사건은 등록금의 인상 철회를 주장하며 과격한 시위를 주도한 이 학교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2·무역학과 4년)이 경찰에 연행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군은 「등록금투쟁」 과정에서 본관 총장실을 점거,업무를 방해하고 세 차례에 걸쳐 교문 앞 화염병투척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수배됐다가 지난달 24일 하오 상명여대에서 열린 「총장퇴진결의대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던 길에 세검정에서 경찰에 연행돼 이틀 뒤 구속됐다. 박군의 연행소식이 알려지자 명지대학생들은 25일 하오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데 이어 26일 하오에도 3백여 명이 모여 「총학생회장 구출을 위한 진격투쟁행사」를 가진 뒤 출동한 경찰에 화염병 3백여 개와 돌 5백여 개를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했다. 이 과정에서 사복경찰중대인 94중대 3소대 소속 배성기 일경(22)이 화염병에 맞고 목과 귀부분에 3도의 화상을 입어 경찰을 자극했다. 흥분한 94중대 3소대원들 가운데 김영순 상경(22·구속) 등 5명은 하오 5시10분쯤 학생들이 교문 왼쪽 50m 지점에서 시위를 벌이다 최루가스에 쫓겨 학교 담벽을 넘어 달아나자 이들을 뒤쫓아가 혼자 뒤처진 강군을 쇠파이프와 각목 등으로 때려 숨지게 했다. 그러나 강군 사망의 간접적인 원인이 된 등록금인상을 둘러싼 갈등은 지난해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은 이때 91년도 새학기 등록금을 올리려는 학교측의 움직임을 막기 위해 「90년 등록금사용 내역서」를 공개할 것을 학교측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협의가 결렬되자 학교측은 인상률을 16%로 책정,지난 3월부터 등록금의 수납을 강행했고 총학생회측은 이에 대항해 학교측 등록금의납부거부를 결의하고 자체수납을 위해 총학생회 명의로 온라인 계좌를 개설했다. 이에 학교측은 직권으로 총학생회의 계좌를 폐쇄하고 3차례에 걸쳐 추가등록을 실시,총학생회에 통장을 맡긴 1백여 명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생들로부터 등록을 받아 95%의 등록률을 확보했다. 학생들은 이 과정에서 『학교측이 등록금지출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지난해 중앙도서관 증축 등의 예산지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지난달 19일 본관 총장실의 집기를 모두 끌어내고 총장실을 폐쇄시켰다. 이어 지난달 25일에는 본관 부총장실을 점거,강군사건이 일어나기까지 날마다 20여 명씩 남아 철야농성을 벌여 왔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학내사태에 그칠 수도 있었던 일을 흥분한 몇 명의 전경이 그르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이와 같은 어리석음이 재연돼서는 결코 안 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경찰의 진압방법이 크게 혁신돼야 하고 학생들 또한 필요이상 상대방을 자극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 교훈이라면 교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발”·“필연”… 「강군 치사」 공방/30일 내무위(상위초점)

    ◎여,“폭력시위 근절”… 야선 “경찰본연의 임무 성실해야” 이상연 내무장관·이종국 치안본부장을 참석시킨 가운데 이틀째 명지대생 치사사건의 문제점을 따진 30일 내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전날 공격형 과잉진압 여부를 집중 추궁한 데 이어 사건재발방지대책 및 시위문화 정착에 대한 정부의 노력을 집중 촉구했다. 그러나 이날 하오 내무위 전체회의에 앞서 서울시경을 방문한 내무위의 진상규명소위(위원장 문정수 의원) 활동에는 전날 소위구성을 합의하고 위원선정까지 했던 신민당이 불참,「당리당략에 의해 내무위 의결사항까지 번복했다」는 지적과 함께 진상규명보다는 정치적 이해에만 급급했다는 비난도 대두됐다. 여당 단독조사활동이 불가피하자 오한구 내무위원장은 이례적으로 성명까지 발표,『여야 만장일치로 내무위에서 소위구성을 의결해 놓고 몇 시간 만에 최고위원회의를 빙자하여 약속과 의결사항을 뒤엎은 것은 의회정치에 대한 폭거로서 신민당 지도부의 정치도의를 의심케 한다』면서 『선동적이고 트집적인 행위만 되풀이하려는 술수를 즉각 버리고 진상규명의 자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고 신민당의 태도를 비난. 신민당은 이 같은 의결사항 번복에 대한 비난을 의식한 듯 이날 하오 속개된 회의에서 「전날 묵념시 방청석의 내무공무원이 비난성 발언을 했다」는 모 일간지의 보도내용을 빌미삼아 이 장관의 사과 및 행위자 색출을 요구하며 의사진행을 방해,여야간 언성을 높이다 결국 한 차례 정회소동까지 연출. 첫 질의에 나선 최정식 의원(민자)은 『여야가 1년 전에 화염병 사용 등에 관한 처벌법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나 지금까지도 시위만 하면 화염병이 쏟아져 나온다』면서 『예방경찰 차원에서 화염병제조 및 원료공급처를 색출해 차제에 화염병 근절대책을 마련해야만 다시는 이 같은 불행의 악순환이 게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 이영권 의원(민자)은 『이번 강군 사건은 억압통치 청산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열망을 공권력으로 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전제한 뒤 『전투경찰을 정치권과 권력의 하수인으로부터 탈피시켜주고 본연의 임무에 성실히 수행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 이 장관은 여당 의원들의 사복기동대 해체주장과 관련,『현재 화염병·돌·각목 등으로 차량이 파괴되는 등 시위가 극렬양상을 띠고 있어 경찰로서는 현장에서 주동자를 검거,연행하지 않을 수 없어 가벼운 복장의 사복기동대 동원이 불가피한 점을 이해해 달라』면서 『사복기동대 복장의 변경여부는 검토하겠다』고 답변. 한편 이날 상오 서울시경 현장방문에서 최기선 의원(민자)은 강군 사건이 우연인가 필연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면서 『경찰이 분석한 사건의 원인 및 향후 안전대책을 밝혀 달라』고 주문. 김홍만 의원(민자)은 『쇠파이프의 소지경위 및 사건 후 불법장비에 대한 점검실태를 보고하라』면서 『일부에서 화염병을 되던지는 전경의 사진도 나돌고 있는데 철저한 안전교육방안을 제시하라』고 질의.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은 『이번 사건은 우발적 사건이라 생각하며 근본원인은 우리의 시위문화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전경의 안전교육 및 채증장비를 이용해 사후검거를 하는 등 시위대와 전경간의 충돌소지를 없애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 김 국장은 사건 후 『각 경찰서별로 서장책임하에 불법장비현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고 조사결과 불법장비발견 사항은 없었다』면서 『앞으로도 쇠파이프·각목 등 불법장비가 발견되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명백히 지시했다』고 강조.
  • 치사사건­노동절­「5·18」맞물려 긴장/노학 연대투쟁 본격화 조짐

    ◎오늘 2백50개 노조 휴업 결의/어제 66개대 2만명 한밤까지 산발 시위/연대서 2천5백명 노동절 전야제 5월1일 「노동절」(메이데이)을 맞아 노동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재야세력과 운동권학생 등이 「메이데이휴무」를 비롯한 갖가지 행사를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데 반해 정부는 이를 억제할 방침이어서 강경대치 국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일어난 명지대학생 강경대군의 상해치사 사건으로 급진세력 등의 반정부투쟁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전남대학생 박승희양(20)의 분신사건까지 겹쳐 사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경색되고 있다. 「전노협」을 중심으로 한 4백50여 개 노조로 구성된 「임금인상과 물가폭등 저지 및 노동기본권 수호를 위한 전국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예정에 따라 1일을 「메이데이 1백2주년」을 맞아 하루 휴업에 들어간다. 이들은 이날 하오 연세대에서 「세계노동절 1백2주년 기념식」을 대규모로 갖는 것을 비롯,현정권 퇴진요구 가두행진과 단위조합별 동시다발집회 등 잇따른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전노협」의 한 관계자는 이날 총 21만 노조원 가운데 2백50개 노조 10만여 명이 휴무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군 사건의 「대책회의」는 4일까지를 강군의 추모기간으로 정해 농성을 벌이고 있는 데 이어 9일에는 민자당의 해체를 주장하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학생·재야 운동권세력 등은 「5·18광주민주화항쟁기념일」을 전후로 예년과 같이 광주·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광주민주화항쟁기념식」 및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어서 이같은 긴장상태는 이달 중순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한편 경찰은 『한국노총과 「전노협」을 비롯한 노동단체들이 주관하는 노동절 행사 등이 옥내에서 치러질 경우 허용할 방침이나 옥외대회는 원천 봉쇄하겠다』고 밝혔다. ◎곳곳서 화염병 던져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집회와 시위가 지난달 30일에도 잇따랐다. 이날 전국에서는 66개 대학생 2만여 명이 각 학교별로 집회를 가진 데 이어 교문 밖으로 진출,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했다. 명지대·서울대 등 서울시내 12개대 학생 4천여 명은 이날 하오 학교별로 강군의 치사에 항의하는 집회를 갖고 『모든 노동자·민중과 연대해 「메이데이」 총파업으로 폭력·살인정권을 타도하자』고 결의했다. ◎광주선 1만명 시위 【광주=최치봉 기자】 전남대·조선대 등 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소속 10여 개 대생·재야인사·시민 등 1만여 명은 30일 하오 6시 광주시 동구 학동 전남대병원 앞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2시간 동안 「박승희양 분신경과보고 및 강경대군 살인만행규탄대회」를 갖고 노 정권 퇴진 등을 촉구했다. ◎1천여 명 철야농성 「전노협」 소속 노동자와 학생 등 2천5백여 명은 30일 하오 10시쯤 연세대 대강당에서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갖기로 한 「세계노동절 102주년기념대회 전야제」를 우천 관계로 대강당으로 옮겨 실시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노동자와 학생들은 『현정부는 계획적인 공안통치와 폭압정치를 통해 1천만 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며 『노동자·민중들은 굳건한 투쟁정신으로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주장했다.한편 이날 참석자 가운데 1천여 명은 전야제 행사를 마친 뒤 학생회관 1층 로비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 “치사규탄” 밤늦도록 산발시위/연대·명동성당선 1천여명 철야농성

    ◎일부는 도심서 경찰과 투석전/경찰에 쫓기던 학생 3명 추락,중상 명지대생 강경대군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29일 밤늦게까지 전국의 대학가와 도심지 곳곳에서 잇따랐다. 학생과 재야인사 등은 이날 일부가 학교에서 철야농성을 했으며 일부는 가두진출을 원천봉쇄한다는 경찰의 방침에도 불구,적게는 1백여 명에서 많게는 2천여 명씩 도심으로 진출,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숨바꼭질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0시쯤 서울 서대문로터리 주변에 있던 학생 2천여 명은 『와』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도로로 나와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는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폭력살인 자행하는 폭력정권 퇴진하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경찰과 맞섰다. 명동 종로 을지로 서울역 앞 등에서도 이날 자정을 넘어서까지 산발적인 기습시위가 계속됐다. 또 연세대에선 1천여 명이,명동성당에서는 5백여 명이 철야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의 도심시위가 예상되자 외출했던 시민들은 귀가길을 서둘렀으며 유흥가·상가 등은 대부분 일찍 문을 닫았다. 이에 앞서 재야·학생단체 등 44개 단체는 이날 하오 6시부터 연세대 대운동장에서 학생·시민 등 2만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강군의 폭행치사사건을 규탄하는 「범국민결의대회」를 갖고 하오 8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었다. 이날 대회는 이수호 「범국민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문익환 목사의 추모사,강군의 아버지 등 유족의 증언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유족대표로 나온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0)는 『백골단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무참하게 숨진 경대의 뜻을 이어받아 폭력살인을 자행하는 현정권을 타도하자』고 주장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강군 사건은 현정권이 장기집권을 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자당 해체,책임자 구속처벌,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했다. 대회 사회를 맡은 이수호 「국민연합」 집행위원장이 하오 8시쯤 『날도 어두웠는데 그만 대회를 마치고 가두행진에 들어가자』고 제의하자 대회참가자들은 일제히 유인물과 신문지 등에 불을 붙여 들고 함성을 질렀다. 한편 이 집행위원장이 대회가 끝날 무렵 장내방송을 통해 『경찰이 부검을 위해 강군의 시신을 빼앗을 조짐이 보인다』고 말하자 서총련 북부지구 소속대학생 5천여 명은 대회장을 빠져 나와 각목과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영안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이날 하오 9시5분쯤에는 연대 세브란스병원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생 김수정양(20·국문과 3년)이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다 주차장 4m 아래 차도로 떨어져 왼쪽 팔이 부러지는 등 중상을 입기도 했다. 또 하오 9시30분쯤 경찰이 쏜 최루탄이 세브란스병원 유리창 2장을 깨고 안으로 날아드는 바람에 입원 환자들과 가족,의료진이 큰 곤욕을 치렀다. 한편 성균관대생 5백여 명은 이날 하오 9시쯤 신촌로터리 주변에 모여 있다가 연대에서 시위하고 있는 학생들과 합류하기 위해 연대 쪽으로 가려 했으나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저지하자 골목으로 피해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방에서도 각 대학별로 집회를 갖고 가두로 진출,밤늦게까지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부산대 등 부산시내 8개 대학생 6백여 명은 학교에서 규탄집회를 마친 뒤 이날 하오 7시20분쯤 서면 태화쇼핑 앞에 집결해 8차선 간선도로 가운데 3개 차선을 점거,유인물 2천여 장을 뿌리며 20여 분 동안 도로점거시위를 벌이다 경찰이 진압에 나서자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과 서면로터리 사이를 오가며 20∼50명씩 간선도로변과 이면도로에서 산발적인 가두시위를 벌였다. 부산시경은 시위현장에서 모두 92명을 연행해 동부경찰서 및 영도경찰서에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또 29일 하오 8시50분쯤 「폭력살인」규탄시위를 벌이던 제주대 자연대 학생회장 고귀형군(23·화학과 4년)과 김평국군(21·전자학과 2년) 등 2명이 진압경찰에 쫓겨 제주시 삼도1동 M약국 옥상으로 달아나다 3층 옥상에서 떨어져 고군은 허리와 골반뼈가 부러지고 김군은 귀가 찢어지는 등 중상을 입고 이웃 영동병원과 한국병원에 각각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이밖에 경희대 수원캠퍼스 학생들도 이날 하오 4시쯤 학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이 학교 박형희군(21·산업공학과 2년)이 경찰이 던진 돌에 맞아 오른쪽 눈을 크게 다치는 등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했다.
  • “폭력행사 재발 없도록”/노 대통령 신임 이 내무에 임명장

    노태우 대통령은 29일 상오 청와대에서 이상연 신임 내무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대학생과 같은 젊은이들이 화염병과 각목 등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재발되지 않게 이에 대한 방지책을 세워 나가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전환기를 매듭짓고 새로운 질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불행한 일이 일어나 가슴 아프다』면서 『내무장관은 이번 사건의 수습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국민의 안녕 질서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만큼 법치질서 확립에 전력을 다하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범죄와의 전쟁,새로운 질서확립에 경찰이 밤낮없이 일하고 또 학생들의 화염병으로 심한 화상을 입은 경찰의 수도 많은 만큼 경찰의 사기진작에도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 「강군 추모시위」 전국서/61개대 3만5천여명 참가

    ◎경찰,가투 봉쇄… 곳곳 충돌 명지대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을 둘러싼 규탄시위가 20일 밤늦게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져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을 빚었다. 서울을 비롯한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주요도시에선 이날 하오 61개 대학 학생과 재야인사 등 3만5천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경찰의 폭력살인 규탄 및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대회」를 가진 뒤 가두로 나와 심야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이날 학내집회는 허용하되 가두시위는 원천봉쇄한다는 방침에 따라 시위대의 가두진출을 막았으나 일부 학생과 재야인사 등은 경찰의 봉쇄를 뚫고 도심지로 진출,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저지하는 경찰과 맞섰다. 또 이날 하오 3시15분쯤엔 전남대 「5·18광장」 옆 잔디밭에서 이 학교 박승희양(20·식품영양학과 2년)이 강군 사건에 항의,몸에 시너를 뿌리고 분신자살을 기도했으며 경찰과 충돌하는 과정에서 대학생 4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한편 강군 사건과 관련,신민당과 재야·학생단체 등 44개 단체가 구성한 「범국민대책회의」(집행위원장 이수호)는 이날 규탄대회를 시작으로 오는 5월4일까지의 강군 추모기간 동안 계속적인 집회와 각종 추모행사를 계획하고 있어 이번주 내내 긴장과 소요가 계속될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대책회의」는 또 오는 5월1일 「메이 데이」를 맞아 「전국노동조합공동투쟁본부」가 추진하는 「하루 휴업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강군 사건으로 비롯된 긴장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 정치공세로 해결될 일 아니다(사설)

    지금 우리는 정치·사회적으로 또 한차례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 정치발전이 지체되고 있고 경제적 국면 역시 밝지 않으며 사회의 혼잡상이 끝이 없다. 여기에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치사사건은 이 불확실한 사회국면에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한 젊은 학생이 파괴적인 쇠파이프 앞에서 푸른 꿈도 펼치지 못한 채 숨져간 것은 분명히 비극적이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회가 언제까지 이 같은 비생산적이고 몰이성적인 폭력과 대치 속에 침체되어야 하는가 깊은 자괴감을 아니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로서 이번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학생시위대를 진압하는 공권력의 「공격적 방어」가 원인이었고 그 속에서 젊은 학생이 희생된 것이다. 사태의 궁극적인 책임을 물어 내무장관이 경질됐고 치안관계 장관회의가 빈번하지만 사태는 여전히 유동적이다. 희생된 쪽에서는 보다 명쾌한 진상파악과 더불어 보다 광범위한 사과와 문책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 단계에서 책임의 범위와 한계를 자로 잰 듯이 밝혀내는 것도쉽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재야세력의 간여와 입장천명이 문제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국회 쪽에서도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의 조짐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대학가 및 재야단체는 지난 29일의 범국민규탄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인 장외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어서 긴장감마저 조성되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비극적인 사건의 원인을 다시 한 번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어떻든 그것은 학생시위대의 과격한 행동과 이를 진압하려는 공권력의 과잉반격에서 비롯됐음은 분명하다. 다만 우리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경찰의 시위진압방식이 적절한 형식을 뛰어넘어 과잉행위로 빗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징후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드러났고 여기에는 시국치안 확보라는 최우선 과제 위에서 중압감마저 느낀 치안당국의 지나친 부담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여겨지기도 하는 것이다. 신임 이상연 내무장관도 이 점을 인식하고 국민들의 시선을 따갑게 느낀다면서 『과거 일련의 유사한 치사사건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거듭 태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한 데 우리는 유의코자 한다. 그러나 확언컨대 오늘날 대학가의 시위가 일반적인 정당성을 갖고 있지는 못하다. 무차별적인 화염병 투척이나 투석 그리고 공공관서 기습방화 등에 대해서는 이미 국민의 우려를 넘어 차가운 시선마저 받고 있다. 이제 그 같은 비생산적이고 자기 소모적인 파괴행위는 사라져야 한다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에 대한 공권력의 과잉제압은 확실히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이 오늘의 비극적인 사건을 있게 한 것이기 때문이다. 진상이 대개 밝혀지고 치안총수에 대한 문책이 실현된 이상 젊은 주검을 놓고 공방전을 벌이거나 아니 할 말로 그에 편승해서 정부에 대한 공세를 벌이는 일도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국회차원의 차분한 조사활동과 그 결과에 기초한 대안제시가 재발방지의 처방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럴 때 일수록 모두가 자성하고 공동의 책임을 느끼면서 가능한 대책마련에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하리라고 본다.
  • “또다시 불행한 일 없도록 성찰”/노재봉총리 사과문(요지)

    우선 정부를 대신해 숨진 강경대군의 부모형제 가족과 국민여러분께 통탄스러운 심정으로 다시 한 번 심심한 사죄와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삼가 강군의 명복을 빈다. 지난 토요일 국회 답변 때에도 말씀드린 바 있지만 대학생들의 시위를 막던 전경들이 공무수행의 범위를 벗어나서 같은 연배의 시위 대학생을 구타하여 사망케 한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내각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며,지금은 무엇보다도 사건의 전모를 명백히 규명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최선의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기성세대는 학생이나 전경이나 다같은 우리의 소중한 아들 딸이라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이러한 불행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다함께 깊은 반성과 성실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특히 젊은 학생들의 시위와 항의가 기본적으로 어른들이 맡아서 해결하고 책임을 져야 할 문제들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너나없이 겸허한 마음으로 자세를 가다듬는 통렬한 자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절대로 재발하지 않게 만전을 기하도록 하고 특히 내무부는 ▲철저한 안전평정대책을 마련토록 하고 ▲안전평정을 위한 교육·훈련을 강화하고 ▲시위평정과정에서 폭력행사를 절대 엄금하며 ▲지급된 장비 이외 것에 대한 지휘 및 감독을 철저히 하는 등 조속히 대책을 마련,발표하고 시행토록 할 것이다. 법무부는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로 진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알리도록 하고 ▲수시로 중간발표를 하여 의혹이 없도록 할 것이다. 한편 이와 같은 사건이 격렬한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임을 직시할 때,지성인인 대학생들의 과격·파괴적인 시위도 지양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화가 실현된 마당에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난무하는 불법·폭력행동은 결코 합리화될 수 없으며,국민들의 공감도 받을 수 없다는 점을 우리 대학생들은 냉정히 통찰하고,지성인다운 자제력을 발휘하여 학원의 조속한 정상회복과 집회·시위문화의 개선에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한다. 학부모를 비롯한 국민여러분께서는 정부의 통렬한 반성과 재발방지 노력을 지켜봐 주시면서 우리 모두가 이러한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안정과 평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이 기회를 빌려 간절히 요청드린다.
  • 「강군치사」 추궁 국회 내무위 안팎

    ◎“강경진압 개선하라”… 여·야 한목소리/전경운영등 근본적 수술을 촉구/야선 불법장비 사용 문책을 주장/“안전수칙 무시한 폭력없게 다각조치”/이 내무 국회는 29일 시위진압경찰의 명지대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 처리문제를 놓고 여야 관계가 급속 냉각,한때 공전될 조짐을 보였으나 야권이 각 상임위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치적 공세를 펴기로 방침을 바꿔 외견상으로 정상가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신민·민주당 등 야권은 조기수습원칙을 세운 민자당의 입장에 반발,▲노태우 대통령의 직접 사과 ▲노재봉 내각 총사퇴 ▲관련공직자의 형사처벌 등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내무위 등에서 파상공세를 폈다. ○…이날 하오 열린 내무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의 현장상황이 이미 공개됐고 관련 장관이 문책·경질된 탓인지 사건의 의혹여부보다는 주로 인책범위 확대 및 사건재발방지 대책에 대해 집중 추궁.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 사건에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취재진이 몰려든 점 등을 의식,사건의 본질보다는 신임 이상연 내무장관의답변태도 등을 강도 높은 용어를 사용해 가며 비난하는 등 정치적 효과에 치중하는 모습. 반면 민자당 의원들은 경찰의 시위진압방법의 모순점과 쇠파이프 사용 문제 등 경찰의 장비사용 문제점을 지적,사건의 재발방지 및 근본대책 수립을 요구. 이날 회의는 벽두부터 내무부가 미리 내무위에서 제출한 「명지대 강경대 학생 상해치사 진상보고서」 중 「상해치사」라는 용어사용문제로 논란을 벌였는데 신민당은 『살인사건 내지는 피살사건이 분명한 데도 사건을 축소시키기 위해 상해치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며 『용어를 바꾸지 않으면 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 여야 내무위 간사들의 협의를 거쳐 결국 「상해」부분을 빼고 「강경대 학생치사사건」으로 용어를 통일. 또 야당 의원들은 회의시작에 앞서 조의를 표하는 묵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내무위원 및 내무부 장관과 직원들이 기립묵념을 한 뒤에야 회의를 진행. 이 장관은 신임 인사를 겸한 발언에서 『형언할 수 없는 착잡한 심정』이라면서 『이번 사고는 일부 전경의 안전수칙을 무시한 폭력으로 인한 사고이며 결코 변명하거나 용서받을 생각은 없으며 앞으로 이 사건을 뼈아픈 교훈으로 삼아 진압경찰을 엄선배치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다각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 질의에 나선 정균환 의원(신민)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쇠파이프라는 불법장구로 시위를 진압토록 한 책임자는 누구이며 장관은 전경들의 불법장구 사용 현황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안응모 장관이 역점을 두고 바꾼 공격형 시위진압 방침을 철회할 용의는 없는가』라고 추궁. 민자당의 김홍만 의원은 『시위진압현장에서 최루탄 직격탄사고가 다발하고 또한 경비근무중이던 의경이 여성을 성폭행한 일까지 발생한 것은 경찰이 더 이상 경찰이기를 포기한 일』이라며 『차제에 전·의경의 운영,경찰근무 기강,경찰의 신분보장과 정치적 중립 등에 대한 근본적 수술이 있어야 한다』면서 「사복체포조」의 해체를 주장. 이 내무장관은 답변에서 『소위 백골단이란 경찰관·전경으로 편성된 사복기동대원이며 폭력시위대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헬멧을 착용한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지칭되고 있을 뿐 결코 특수조직이 아니다』면서 『시위가 각목·돌·화염병 등의 사용으로 극렬해짐에 따라 경찰로서는 현장에서 주동자를 검거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사복기동대의 운영이 불가피하다』고 해체의 어려움을 강조. 이 장관은 또 『사복전경의 설치근거는 서울시와 그 소속기관직제에 기동대를 둘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사복착용은 내무부 훈령에 규정하고 있다』면서 『이들의 포상휴가는 시위자를 검거했다는 이유만으로 실시하지 않고 모든 근무면에서 우수한 대원을 선발하여 실시하고 있다』고 답변. 이 장관은 현장지휘책임자 문책과 관련,『현장에서 직접 가담한 폭력행위자는 엄중히 의법조치할 것이며 지휘간부도 사건의 직간접 관련여부를 철저히 수사토록 하겠다』면서 야당측의 치안본부장·서울시경국장 등 문책요구와 관련해서는 『이제는 책임문제의 확대보다는 사태의 수습과 재발장지를 위한 대책마련이 더 시급하다』고 확대문책 불가입장을 피력. 이에 앞서 사건진상보고에 나선 이종국 치안본부장은 사건발생경위를 『시위학생을 추적하는중 학교담벽을 넘는 학생 1명을 검거·연행하는 과정에서 전경 김영순 등 5명이 집단폭행하여 사망케 하였다』면서 『사체부검을 통한 사인규명·목격자 진술보충·피의자의 범죄사실 구증 등 계속 명확한 진상을 수사해 나가겠다』고 보고. 이 본부장은 또 『전경들의 시위진압출동 전후에 안전수칙 등 교양실시를 강화하겠다』면서 『시위자연행과정에서도 전경들의 폭언·폭행 등을 엄단하겠다』고 답변. 한편 이날 회의 벽두 신민당 의원들은 이 장관에게 『쇠파이프로 사람을 때리면 죽는지 안죽는지 답변해 달라』(최봉구 의원),『노태우 대통령에게 조문을 가도록 건의할 용의는 없는가』(이찬구 의원)라며 일제히 공격을 퍼부으면서 이 치안본부장의 보고를 가로막았고 이에 여당 의원들이 『보고를 듣고 질의를 계속해야지 보고도 듣지 않고 말꼬리만 잡아당기느냐』고 맞서 한차례 정회 소동. 야당 의원들의 공격에 대해 이 장관은 『취임 후 강군 영안실에 조문하려 했으나 현장상황이 그렇지 못하고 유족을 위로할 길조차 여의치 못해 안타깝다』면서 『노 대통령도 이미 사건발생 직후 유감을 표시했고 강군과 유족에 대한 조의를 표시했으며 내각도 유감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해 노력한다는 결의를 했다』고 답변.
  • 대학생 화염병시위

    28일 하오 3시쯤 대학생 차림의 청년 30여 명이 서울 동대문구 용두1동 남용두파출소로 몰려가 『살인경찰 물러가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화염병 10여 개를 던지고 달아났다.
  • 안응모내무 문책경질/「대학생치사」 사건 관련/후임 이상연씨 임명

    ◎노 대통령,“강군 사망 심히 유감”/“화염병 난무 대학시위 더 없어야”/치안본부장·시경국장 문책 않기로 노태우 대통령은 27일 하오 명지대생 강경대군 상해치사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안응모 내무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에 이상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임명했다고 이수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명지대 시위진압과정에서 경찰의 구타에 의해 대학생이 사망한 것은 심히 유감이며 경찰에 의해 시위학생이 희생되는 일이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화염병과 돌멩이가 난무하는 대학가의 불법폭력시위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이 대변인이 전했다. 또 이 대변인은 이날 내무장관의 경질을 발표하면서 『치안내무행정의 총수가 내무장관이므로 명지대생 사망사건과 관련한 인책은 이것으로 매듭지어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고 『경찰내부의 지휘책임은 이미 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치안본부장이나 시경국장 등에 대한 추가문책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이번 내무장관의 경질에 따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임명 등 후속인사가 곧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29일 상오 이 신임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할 예정이다. ◇이상연 내무장관 약력 ▲경북 성주(55세) ▲경북대 사대 사회학과졸 ▲보안사 특별보좌관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장 ▲서울시 부시장 ▲대구시장 ▲안기부1차장 ▲보훈처장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 「해산」보다 「체포」주력이 “무리수”/경찰 과잉진압 배경과 문제점

    ◎전경들 “포상휴가” 욕심… 검거 열올려/화염병에 쇠파이프 맞대응이 “화근” 학생들의 과격시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인한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명지대생 강경대군의 사망사건이 발생,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더욱이 경찰의 과잉진압이 학생들의 과격시위 못지않게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오는 도중 결국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한 강군의 사망은 올 봄 대학가는 물론 재야운동권과 정치권에도 최대의 이슈로 부상,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특히 그 동안 별다른 이슈가 없어 애를 태웠던 「전대협」 등 학생운동권과 「전민련」 「국민연합」 「전노협」 등 재야단체 등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권퇴진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일 움직임이여서 한동안 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6·29선언의 도화선이 된 87년의 이한열군 사건을 떠올리며 이번 사건이 이군 사건과 같은 엄청난 파문을 몰고올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대협」 소속학생들은 특히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군 사건의 경우 경찰이 어느 정도 과실임을 주장할 여지가 있었지만 이번에 강군의 경우는 경찰의 공용장비가 아닌 쇠파이프 등에 얻어 맞아 숨졌다는 점에서 시위진압 경찰의 고의성이 짙게 깔려 있으며 따라서 이군 사건 때보다 일반시민들의 분노가 거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 자체는 이군 때보다 심각하지만 당시와 현재의 사회상황 및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이군 사건 때와 같은 큰 혼란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학생들의 과격시위와 경찰의 강경진압이 맞물려 빚어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최근 경찰의 시위진압 방식은 방어적인 형태에서 공격적으로 바뀌고 있고 시위대를 해산시키기보다는 주동자를 체포하는 데 중점을 두어왔다. 이 때문에 올 들어 시위진압경찰이 학내로 진입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또 이달 들어서만 지난 19일 경남대생 정진태군(22·행정학과 2년)과 원광대생 유철조군(25·국사교육학과 4년)이 직격최루탄을 맞아 뇌수술을 해야 하는 중상을 입었고 20일에는 전남대생 최강일군(23·토목과 3년)이 실명했다. 경찰의 한 간부는 『시위 주동자들을 잡을 경우 휴가 또는 외출을 허용해줘 전·의경들이 검거에 무리한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경찰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6일까지 시위진압 도중 부상을 당한 경찰은 2백3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64명보다 약 44%나 늘어났다. 지난 한햇동안 부상을 입은 경찰은 모두 1천4백11명이고 이 가운데 현재 입원 및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 사람은 1백52명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강군이 쓰러지기 전인 하오 4시15분쯤 시위 도중 전경 1명이 머리 뒷부분에 화염병을 맞아 3도화상을 입어 경찰이 자극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과격시위가 강경진압을 촉발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경찰 상급자들이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찰 내부에서조차 진압경찰이 쇠파이프를 사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번 사건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었다는 것이 그 동안 시위를 지켜본 일선 기자들의 얘기다. 경찰이 쇠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89년 5월 부산 동의대사태 이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학생들은 이후 경찰이 시위가 과격해질 때마다 검은 테이프 등을 감은 쇠파이프 또는 쇠파이프를 넣은 죽도로 무장한 사복경찰을 투입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생들은 사복전경들이 갖고 있는 쇠파이프의 규격이 1m20㎝ 정도로 통일돼 있다는 점에서 경찰 상급자들의 묵인 또는 방조 아래 자체 제작했거나 일괄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이 슬프고 아픈 자기소모(사설)

    생때 같은 우리의 젊은이가 또 불행하게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26일 명지대 앞길에서 이 학교 학생 강경대군이 동료학생들과 함께 시위를 하다가 절명한 것이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해 봐야 안다고 하지만 시신에 나타난 정황이나 목격자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전투경찰들에게 얻어맞고 죽은 것만은 분명하다. 또 검찰에서도 폭행에 가담한 4명을 구속하고 관련 책임자들을 직위 해제함으로써 과잉진압 탓임을 시인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해서 그 동안 공해산업 문제로 소연하던 시국이 공안정국 회오리 속에 휘말리고 있다. 야권에서는 대통령 사과와 내각 총사퇴를 들고 나오고 있고 대학가 또한 규탄 집회를 가지면서 정권퇴진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수습되어 갈 것인지 커다란 사건이 계기하고 있는 시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가슴에는 암운이 드리운다. 오늘날의 우리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벌이는 화염병·투석 시위와 이에 대응하는 경찰의 최루탄 발사·구타 진압을 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차갑다. 그 잘잘못을 가리기에앞서 이제는 이같은 불행한 자기소모가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느냐 하는 생각 때문이다. 60년대나 70년대와도 다르다. 한번 어느 대학가가 술렁인다 하면 교통부터 마비되기 시작하면서 선의의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나 불이익은 큰 것이다. 젊은이들끼리의 대결임으로 해서 혈기가 폭력을 에스컬레이트시켜 가는 것이 시위 현장의 상호 심리상태이기는 하다. 그러나 경찰은 어디까지나 경찰이어야 한다. 따라서 과잉 진압으로 과격화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그로 인한 인명 희생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잘잘못을 떠나 불행한 사태로 하여 외아들을 잃은 부모와 그 지친들의 아픔과 슬픈 마음은 헤아리고도 남는다. 위안의 뜻을 전하고자 한다. 이같이 슬프고 불행한 일을 당하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은 우리의 젊음과 젊음끼리의 대결이 이 이상 언제까지 더 계속되어야 할 것이냐 하는 점이다. 4·19 의거를 비롯하여 대학생들의 시위가 모든 국민의 공분을 대변해준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오늘날의 대학가 시위는 대체로 작게는 학내문제에서부터 지엽적 시국문제에 이르기까지 용훼하는 것으로 변모되고 있다. 이번 사건도 등록금인상 거부투쟁 등을 벌이다가 구속된 그 학교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벌인 시위가 발단인 것으로 알려진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전투경찰도 학생들과 똑같은 우리의 젊은이들이다. 그러므로 시위를 하던 학생이 어느날 전투경찰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그 같은 젊음끼리 끝도 없는 양 대결해 오는 자기소모의 역정이다. 그 시간 그 정열을 학업에 쏟고 그 시간 그 정열을 산업현장에라도 쏟는다면 얼마나 바람직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것인가. 민족의 적도 이념의 적도 아닌 우리의 젊음끼리 대치한 끝에 벌어진 불행한 사태를 생각할 때 가슴은 더 미어지는 것이다. 이번 사태에 물론 응분의 책임도 따라야겠지만 이를 계기로 하여 규탄에 머무르지 않는 시위문화의 새로운 길도 모색되었으면 한다. 그를 위해서는 평화로운 의사표시와 그것을 올바로 수용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요청되는 것이다.
  • 대학가 규탄사위 확산/강군 치사 항의/7천명 연대서 집회,투석전

    ◎재야도 내일 「전국범국민대회」 열기로 ▷대학가◁ 명지대학생 7백여 명은 27일 낮 12시쯤 학생회관 앞 민주계단에서 강경대군 사망사건과 관련,「범명지인규탄대회」를 갖고 1㎞쯤 떨어진 성가병원 앞까지 침묵시위를 벌이려다 교문 밖 70m쯤에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학생들은 이날 교문 밖으로 나와 차도를 행진하다 경찰이 저지하자 『인도를 따라 행진하겠으니 길을 비켜 달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이 『어떠한 행진도 허가할 수 없다』고 맞서 40여 분 동안 몸싸움을 벌이다 학교로 되돌아갔다. 「전대협」 소속 대학생 7천여 명은 27일 하오 3시쯤 연세대 도서관 앞 민주광장에 모여 강경대군 상해치사와 관련,집회를 가진 뒤 하오 5시30분쯤 교문 밖으로 나가려다 경찰이 저지하자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재야인사와 강군의 아버지 강민조씨(49),누나 선미양(22·명지대 중문과 3년) 등이 참석했다. 학생들은 집회에서 『관련자들의 즉각 구속,백골단·전경해체 등』을 요구하고 강군의 추모기간인 오는 5월4일까지 재야단체 등과 연대해 대규모 규탄집회를 가지겠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 6시20분쯤엔 연희동 쪽 1백m 지점까지 진출한 학생들이 4차선 도로를 점거한 채 30여 분 동안 연좌농성을 벌이는 등 3차례에 걸쳐 교문 밖까지 나갔다가 3시간쯤 뒤 민주광장으로 다시 돌아가 각 대학별로 해산했다. 이들 가운데 1천여 명은 연세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전대협」은 이날 하오 11시30분 학생회관 3층에 마련된 임시사무실에서 회의를 갖고 28일 하오 5시에 도서관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진 뒤 「노정권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전민련」 「전노협」 등 각 재야단체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장례일정 및 절차 등을 논의했으나 내각총사퇴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많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영안실 주변에는 이날도 학생 40여 명이 입구에 화염병 1백여 개와 각목 20여 개를 준비해놓고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했다. 한편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소속 어머니회원 20여 명은 이날 하오 10시부터 연세대대강당에서 학생 2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어머니의 노래」 공연을 펼치면서 숨진 강군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
  • 대학생 시위 중 절명/명지대생 1명/“도주하다 잡혀 경찰에 맞아”

    ◎경찰,철야 진상조사… 검찰선 공개부검키로 26일 하오 5시10분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교문 앞길에서 이 학교 경제학과 1년 강경대군(20·성동구 중곡1동 231의 4)이 시위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이날 시위에 참가했다가 쓰러진 강군을 옮긴 정한기군(23·토목공학과 4년)은 『강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체포조가 쫓아오자 정문 왼쪽으로 40여 m 떨어진 높이 1·2m의 담을 넘어 달아나려다가 사복경찰 5명에게 붙잡혀쇠 파이프 등으로 머리를 맞고 실신했다』고 주장했다. 명지대생 4백여 명은 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학생회관 앞 계단에서 총학생회장 박광철군(22·무역학과 4년)이 「등록금 인상거부투쟁」 등을 벌인 혐의로 구속된 데 항의,규탄대회를 갖고 하오 4시30분쯤부터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며 최루탄을 쏘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 5백여 개와 돌 5백여 개를 던지며 격렬하게 대항했었다. 학생들에 의해 옮겨진 강군을 처음 검진한 성가병원 박동국 외과과장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동공이 열리고 맥박이정지돼 있었으며 오른쪽 이마가 5㎝ 가량 함몰돼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그러나 강군이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제2기동대 66중대,사복경찰인 제4기동대 94중대,249도보대 등 3개 중대 3백30여 명의 병력을 배치했었다. 강군의 가족은 아버지 강민조씨(50·국일기업대표)와 어머니 이덕순씨(43) 그리고 누나 강선미양(21·명지대 중문과 3년)이 있다. 강군의 시신이 안치된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명지대·연세대생 및 「전민련」 등 재야단체 회원 등 6백여 명이 몰려들어 철야 연좌농성을 벌였다. 한편 검찰은 강군의 사인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중시,서울지검 서부지청 형사 2부 유명건 부장검사를 반장으로 한 전담수사반을 편성,사고경위를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또 사체부검을 비공개로 할 경우 의혹을 받을 수 있다고 보고 27일 중에 유가족 학생대표 보도진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의의 집도 아래 공개적으로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히고 혐의사실이 밝혀질 경우 관련자 전원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하겠다고 말했다. 치안본부도 이날 사복경찰조인 94중대 1백20명 전원을 서울서부경찰서에 집합시켜 놓고 사고경위 등을 철야 조사했다.
  • 「어머니…」 상영 강행/서울대 총학생회

    서울대 총학생회는 24일 하오 4시5분쯤 당국의 불허방침에도 불구하고 문화관 대강당에서 학생2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운동권 영화인 16㎜ 소형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의 상영을 강행했다. 영화가 상영되자 경찰은 하오 4시40분쯤 시위진압용 물대포 2대와 견인차 등을 앞세우고 교내로 들어가려했으나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을 던지는 학생들에 밀려 학교로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 대우자 영업소 피습/대학생 화염병 던져

    【전주 연합】 23일 하오 9시쯤 전북대생 10여 명이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대우자동차판매소(대표 황재식·52)에 화염병과 돌을 던져 2층 유리창 10여 장을 깨고 사무실 집기 일부를 태웠다. 사무실에는 직원 7명이 근무하고 있었으나 인명피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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