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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일 군 간부 환심사려 벤츠 선물/귀순 최주활 상좌 일문일답

    ◎병력 70% 전진 배치… 93년 미그21기 생산/군 간부 「외화벌이 밀수」 성행… 50%는 착복/인민군서 25개사 운영… 남한쌀 군량미 비축 가능성 귀순한 북한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소속 최주활상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와 자유총연맹,함북도민회 회원 등 3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또박또박하고 침착한 말투로 김일성 사후 북한내부의 권력상황,첨단무기실태와 전쟁준비 실상 등을 1시간 40여분동안 낱낱이 폭로했다.최상좌의 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린다. ◇귀순동기와 과정 ­귀순동기는. ▲해외공관 무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반인민적,1인 독재의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지난 5월 27일 중국에 무역실무대표단으로 파견돼 연길등지에서 남한 실업가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됐고 지난 6월19일 잦은 접촉을 이유로 북한 당국으로부터 『승인없이 남한인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소환명령을 받고 귀순을 결심했다.북한에 소환되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하고 게다가 김정일 체제가 몇년 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차라리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지난 82년 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본국의 긴급 명령으로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비밀자료를 수집하다가 추방당했는데 이후 3∼4달동안 제대로 인사조치도 안해주는등 조국이 「쓴 웃음」으로 대해 불만과 회의를 품었다. ○망명자는 3대를 멸족 ­귀순경로는. ▲혼자 무역실무 대표단을 이탈해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동포의 도움으로 동남아로 탈출,귀순하게 됐다. ­귀순하기전 가족과 상의했나. ▲북한에 2남1녀를 두고 있어 귀순을 결심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북한에서는 귀순자나 망명자 가족들에게 「3대를 멸족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가족들을 「관리소」라고 부르는 정치범수용소에 뿔뿔이 흩어지게 한뒤 굶어 죽게 만든다.북한에 남은 가족도 기자회견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처리될 것이다. ­군인 신분으로 연변에서 남한의 기업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가능한가.최근 자진월북한 것으로 북한에서 보도한 안승훈목사에 대해 아는 바는. ▲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연변에서 무역실무대표단 활동을 벌였다.북한에서 군인출신이 남한인을 만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있다.내가 접촉했던 남한 기업인들은 나를 북한 축산총국 융성회사 직원으로만 알고 있다.안승훈목사에 대한 것은 내가 북한을 떠난 뒤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연변에서 나를 감시한 조선인민정찰국 요원 리봉식의 기본 공작임무가 남한사람을 만나 월북하도록 포섭하는 것이다.남한의 장교급이상 군인을 월북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리봉식이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자 대신 안승훈목사를 납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일성 사후 변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년3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김정일은 국가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자질인 군사및 경제분야의 분석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군사전문가들이 쓴 책을 보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군사지침을 발표하는 실정에서 알력이 심한 군부내의 세력들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같다.국가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태에 몰린 현 상황에서 주석직을 승계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또한 성격이 조급하고 변덕스러우며 사생활이 문란한 점도 지도자로서의 자질과는 거리가 멀다. ○군 요직에 자파 속속 배치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지도체제 구축정도와 군부내 최근 동향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려해도 군에서 받쳐줄 사람이 없다.김정일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인민군 작전국장 김명국대장,보위국장 원응희대장,3군단장 장성우대장 등 군부내에서 총애하는 인물들을 요직에 배치했다.그러나 상당수 군간부들이 속으로 김정일에 반대하고 있다.김정일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최근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호화주택을 건설해 자기 이름으로 군고위간부들에게 선물하고 올들어서는 20여명의 군단장급들에게 3∼4년밖에 되지 않은 고급 벤츠 승용차를 최신형 벤츠로 바꿔주기도 했다. ­최근 남한측에서 북한에 지원한 15만t 규모의 쌀이 군량미로 쓰이지는 않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일부는 인민들에게 배포가 되었겠지만 군량미나 비상시 예비용으로 비축됐을 가능성이 크다.최근 강원도,양강도,함경도 등에서는 지난 93년 12월부터 쌀배급이 아예 없어 14∼15세 아이들이 당이나 군 간부 집을 전전하며 동냥을 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얼굴이 붓고 굶어죽는 노인들도 많았다.북한 당국은 오래도록 「자력갱생」을 외쳐왔기 때문에 남한에서 쌀을 지원받은 사실을 극비로 하고 있다.당국의 감시가 심하지만 당시 쌀 수송에 관여했던 노동자 등을 통해 결국 남한에서 쌀이 온 사실을 입에서 입을 통해 알게 될 것이고 북한주민들은 고마움도 느끼고 적대감도 해소될 것이다. ­현재 인민군의 외화벌이 상황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인민군은 경제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피복 등을 자체적으로 충족시키려고 외화벌이에 나서 현재 인민군 산하에는 25개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특히 융성무역회사는 종업원 수만 2천명이 넘고 신진합작회사·수산기지·일본수출공사 등을 갖고 있다.그러나 외화벌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군고위간부들이 돈을 가로채며 비리를 일삼고 있다.7백만원을 벌어들이면 3백만원쯤은 간부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실제로 올해초 함경북도 6군단이 아편밀수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수익의 50%를 관련자 40여명이 5만∼10만달러씩 착복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김일성배지 아직 착용 ­아직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는가. ▲공식적으로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직원들에게는 김정일배지를 비공식적으로 지급했으며 이 배지들이 외부로 유출돼 일부는 김정일배지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군내부의 세대교체를 둘러싼 원로·신진 세대간 갈등은. ▲김정일은 군내부 원로들을 잘 우대해주는 한편 신진세력들에 대해서도 군사칭호등을 격상시키는등 양쪽으로부터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군사동향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은. ▲김정일은 현재 국방공업건설에 주력한다는 방침아래 러시아제 탱크와 각종 신형무기를 모방,생산하고 사정거리가 다양한 로켓을 양산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로켓 개발은 평양시 부근 「돼지공장」이라 불리는곳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또 사정거리 50㎞로서 서울에 직접 사격할수 있는 1백75㎜ 주체포와 함께 93년부터는 사정거리 1천㎞의 로켓도 생산하고 있다.80년대 후반에는 각종 러시아제 전투용 경비행기를 자체 생산했고 93년에는 비밀리에 미그21기의 시험생산을 하는등 전쟁준비에 필요한 무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현재 2천만 인구 가운데 정규군만 1백20만에 이르고 교도대·노농적위대 등 전체 인민을 전투병력화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이와 함께 80년대 중반부터 「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계화군단을 7개나 증강했고 93년에는 남한의 특공대에 대비해 양강도·황해도 등지에 3개의 군단을 새로 편성했다. 북한군은 현재 각 10만명씩으로 이뤄진 4개 군단을 휴전선 부근에 두고 서해와 동해에 각 1개 군단씩 두고 황해도와 개성주변에 기계화군단을 배치하는등 무력의 70%를 평양 이남지역에 전진 배치하고 있으며 전시에 대비,훈련의 60∼70%를 야간에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첫째,북한의 현 정세가 극도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혼란을 겪고 있어 북한 주민들사이에는 『차라리 한번 싸워보고 죽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김정일이 이같은 혼란한 민심을 이용,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한미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미군이 철수한 뒤 전면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일부 장성들은 우선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주타격대상으로 삼아 수천명을 사살,미국내 반전 시위가 거세게 일도록해 한미간 군사동맹체제를 깬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셋째,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 특정지역을 타격하면 이를 계기로 핵무기를 동원,전면전을 일으키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인민군 병사들은 일단 전쟁이 나면 남한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해외로 도피할 것이기 때문에 손쉽게 무력적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색무기개발 상당히 진척 ­북에서 느끼는 한국군에 대한 생각은. ▲장성급 등 군 고위간부들은 남한군이 현대 과학기술을 도입,최첨단 무기를 갖추는등 발전상을 잘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병사들은 한국군이 미군의 괴뢰군이며 전투력도 보잘 것 없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상황은. ▲핵무기개발 상황은 북한내 최대 극비사안의 하나이기 때문에 나도 알 수 없다.그러나 평북 영변군 원자력연구소 감찰과에 근무하는 처남에게서 지난 88년 김정일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 결과를 둘러보고 상당히 만족,1대에 30만달러짜리 최고급 버스 2대와 모피코트를 선물한 사실을 알았다.이같은 사실로 미뤄 김정일의 관심속에 핵무기 개발사업이 상당히 진척한 것으로 보이지만 핵무기가 『있다』,『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현황은. ▲독가스를 비롯한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봐서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지난 74년 러시아 부무관으로 활동했던 김종찬씨가 화학무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그후 김씨가 훈장을 받는등 초고속 진급을 한 적이 있다. ◇체제몰락 가능성 ­4∼5년뒤에 북한체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떤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가. ▲현재 북한의 경제는 더이상의 후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이다.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개방은 불가피하며 남한과의 경제교류도 점점 더 활발해질 것이다.이런 개방움직임을 통해 자연히 북한 인민들사이에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널리 파급될 것이고 군부내 불만세력들이 이를 틈타 개혁 쿠데타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쿠데타 일으킬것 ­기존 대미자주화노선에서 최근 대미·일 실용외교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한 군부내 강경파의 반응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는 미국이 남·북한 등거리정책을 펴 남한내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미군이 철수한뒤 쌍방이 군대를 일정수준으로 감소하고 동시투표를 실시하면 사상교육이 잘된 2백50만 북한당원을 동원해 북한 대통령을 당선시킨다는 것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고려민주연방공화제의 기본 구도다. ­군수산업이 침체되고 대외교역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진·선봉지역을 특수구역으로 개방한의미는. ▲군수산업과 민간산업은 전혀 별개로 운영되며 군수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군수산업의 침체는 사회주의경제이론 자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개인의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또 그동안 질적 개선없이 양적 팽창에만 치우쳐 외국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대외교역 약화의 원인이다. ◎「김정일의 군 장악 여부」 정부측 평가/“군 간부들 겉으론 충성­속으론 불만”/올 시찰 13차례… 반대세력 조직화 시기상조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최고 권력자가 그 권좌를 움켜쥐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모택동의 어록으로 병영사회인 북한체제에 꼭 어울리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맥락에서 13일 귀순,기자회견을 가진 북한군 상좌 최주활씨가 김정일의 북한군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귀순자중 최고위계급 상좌(중령과 대령사이)인 그는 『김이 북한군부를 제대로 장악치 못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당총비서·국가주석 취임등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증언을 계기로 북한전문가 집단에서 소수설에 그쳤던 김정일의 「권력기반 이상설」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지금까지는 경제난등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김정일이 당·정·군을 대체로 원활하게 통제하고 있다는게 중론이었다. 최씨의 회견을 지켜본 정부의 한 북한전문가는 『김이 북한군을 외형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군심」은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우선 김일성과 같은 세대인 「빨치산 1세대」와 당시 「소년병」이었던 「혁명 1.5세대」가 김정일을 마음 속에서 애숭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군경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구 유학을 다녀와 해외사정에 밝은 상당수 고급장교들도 내심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게 다수 귀순자들의 증언이었다.실제로 고급장교 일부가 지난 92년 4월25일 인민군창설 기념식때 김일성부자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음모했다가 발각돼 처형당한 기록도 있다.소련판 웨스트포인트격인 「푸른제 종합군사대학」 유학파인 안종호상장등 소장파 군관들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그가 군통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금년들어 김의 23차례 「현지지도」 가운데 군부대 시찰이 13번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김이 최근 각종 행사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당비서등 당직은 제쳐두고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이라는 군직함만을 사용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북한군부내 반대세력이 아직 조직화되지는 않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김정일이 당 지도부와 공안기관을 통해 군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생전의 김일성이 북한의 군사력을 인민무력부·호위총국·사회안전부·국가안전보위부 4각 편제로 상호견제토록 교묘한 장치를 해놓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민생 불안케하는 폭력시위(사설)

    29·30일 이틀동안 서울도심은 학생들의 격렬시위로 통행이 극도로 혼잡했다.5·18관련자 처벌과 특별법제정을 요구하는 대학생과 재야단체들의 집회와 시위가 전국 주요도시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의 제지에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맞선 시위로 학생과 경찰 합쳐 수십명의 부상자를 냈다.근래 볼 수 없었던 과격시위는 변함없는 우리 시위문화의 되풀이라는 점에서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권위주의시대에 끊임없이 계속된 폭력시위를 문민시대에 보게 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화염병을 던지고 도심 간선도로를 차단시키는 이런 시위는 엄연한 불법행위다.법과 질서를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정당치 못하다.법과 질서는 민주사회의 기본이요 전제이기 때문이다. 5·18광주항쟁은 불행했던 현대사의 비극이다.역사적 사건에 대해 개인이나 단체가 상반된 견해를 갖고 또 그것을 주장할 수 있다.그러나 검찰의 불기소 결정에 반대한다 해서 폭력시위로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 한다면 그것은 비민주적인 발상이다. 더구나 밤늦도록 대로를 점거,퇴근길 시민들에게 막대한 교통체증의 불편을 준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이번 주말은 연고전과 한·아르헨티나 축구등 스포츠행사로 교통혼잡이 예견되었던 바다.그런데도 학생들은 도로를 점거함으로써 최악의 교통혼란을 초래케 했다. 학생들에게 시민들의 평온한 일상을 방해하고 불안·공포에 시달리게 해도 좋을 권리라도 있다는 것인가. 5·18처리문제는 야당에서도 「충정은 이해하나 시위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여·야 정치권을 놔두고 대학생들이 행동에 나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더구나 학생들의 본분인 학업을 거부하는 동맹휴학까지 감행하면서 시위에 나설 계제도 아니다.냉혹한 국제경쟁시대에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들이 소모적인 현실참여에 매달리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폭력시위는 무조건 근절되어야 한다.
  • 「5·18」 동맹휴업 “긴장”/오늘·내일

    ◎1백여대학 참여… 거리시위 계획/서울교사도 「선언」 발표 서울대와 고려대·연세대·서강대 등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전국 1백여개 대학이 29일부터 이틀동안 일제히 「5·18 총궐기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서울대 총학생회(회장 김태식·22·공법학과 4년)는 28일 하오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법사위의 5·18특별법안 심의가 이뤄지는 29·30일 이틀동안 서울대생 1만5천여명은 동맹휴업에 돌입키로 결의했다』면서 『5·18 특별법안이 민자당 의원의 반대로 부결되면 정권퇴진및 민자당 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연세대와 고려대 총학생회는 이날 상오 고려대 학생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5·18 진상규명과 학살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국회에 촉구한 뒤 오는 30일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하기로 했다. 서울시립대·경희대·외국어대·건국대 등 8개대학 학생 4천여명도 이날 하오 각각 교내에서 「5·18 학살자 처벌과 진상규명을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동맹휴업 참여를 결의한 뒤 교문에서 대치한 경찰에게 화염병을 던지고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총련은 또 30일에는 5·18 정신계승 국민위원회가 전국 15개 대도시에서 주관하는 제5차 국민대회에 참가하고 서울에서는 하오 2시 장충단공원에 모여 종로구 종묘공원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도심에 진출,대국민선전전을 벌일 계획이다. 경찰은 이날 집회가 있는 서울대·성대·한양대·이대등 19개 대학의 진입로와 집회를 마친 학생들이 진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로·명동·대학로주변등 도심지역에 1백16개중대 1천3백90여명의 병력을 집중배치,학생들의 불법시위에 대비하고 있다.경찰은 특히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연희동에 대해 경계를 강화하고 있으나 학생들이 화염병등을 준비,기습작전을 계획하고 있다. 전남대도 이날 전체 14개 대학 가운데 의대와 치대를 제외한 12개 단과대학에서 일제히 수업을 거부하고 이날부터 이틀동안 동맹휴업에 들어갔다.조선대·호남대 등 「광주·전남지역 대학 총학생회연합」 산하 22개 대학들도 29일부터 일제히 동맹휴업에 들어간다. ◎1천7백15명 서명 서울시내 초·중·고교 교사모임인 「서울선언 준비모임」(대표 이상호 덕산중교사)은 28일 2백82개교 교사 1천7백15명이 서명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울 교사선언」을 발표하고 5·18 관련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시교위 “진상조사” 서울시 교육청은 28일 서울지역 초·중·고교 교사들이 5·18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한 것과 관련,교사들의 행동이 국가공무원법상 집단행동금지 조항에 저촉되는지 여부에 대해 진상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이대 교수도 성명서 이상화(철학)교수등 이화여대교수 1백2명은 28일 검찰의 5·18불기소 결정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 모자 화염병 맞고 화상/5·18시위/재야 28만명 서명록 국회에

    5·18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정신계승 국민위원회(공동대표 이창복)는 22일 하오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관광호텔 2층 장미홀에서 「5·18 특별법 청원」기자회견을 가진 뒤 국회를 방문,청원서와 시민 28만여명의 서명록을 제출했다. 한양대 교수 1백94명도 이날 성명을 내고 5·18 내란사건 주동자들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결정을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또 고려대·연세대,성균관대,국민대,광운대,외국어대학등 서울시내 6개대학 학생 2천여명은 학교별로 5·18 책임자 기소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교문밖 진출을 시도하다가 이를 막는 경찰과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한편 지난 21일 하오 6시쯤 서울 전농동 시립대 정문 앞길에서 강궁희씨(33·여·동대문구 전농3동 156의2)가 시위현장을 지나다 날아온 화염병에 맞아 왼쪽 무릎과 발에 3도화상을 입고 강씨의 아들 김기남군(1)도 오른쪽 머리에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 「5·18 기소」화염병 시위/교통통제로 시민 불편/서울 7개대서

    서울시립대·서강대·경희대 등 서울시내 7개 대학 학생 2천여명은 21일 하오 각 대학에서 5·18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가진 뒤 경찰에 돌과 화염병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일대와 동대문구 휘경동 및 전농동,관악구 봉천동,서대문구 남가좌동 등 대학가 주변의 교통이 통제돼 퇴근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서울시립대생 3백여명은 이날 집회를 가진 뒤 하오 4시쯤부터 교문밖으로 나가려다 이를 막는 경찰에 화염병 1백50여개를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광주·대전서도 시위 【광주·대전=최치봉·이천열 기자】 광주·전남지역 총학생회연합(남총련) 소속 대학생과 시민 등 1천5백여명은 21일 하오 6시부터 2시간여동안 광주시 동구 금남로 1가 광주YMCA 앞길에서 「5·18학살자 처벌을 위한 광주시민 결의대회」를 갖고 정부와 국회는 5·18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했다. 집회를 마친 남총련 소속 대학생들은 금남로와 북구 유동 네거리를 거쳐 광주역까지가두행진을 벌인 뒤 민자당 광주시지부 앞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또 대전지역 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 4백여명도 이날 하오 5시 대전시 대덕구 오정동 한남대에서 「5·18 학살자 처벌을 위한 민족결의대회」를 갖고 대전 도심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 “「5·18 특별법」 요구”/시위·농성 잇따라/학생·사회단체

    ◎한총련 2백4개대 동맹휴업 결의 「5·18」 관련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 검사제 도입을 요구하는 시위·농성이 20일에도 잇따랐다. 전대협 동우회,한국 민주청년단체 협의회,흥사단 서울 청년아카데미 등 13개 청년단체 대표 10여명은 이날 상오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5·18 특별법 제정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23일까지의 시한부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정부가 5·18 관련자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현실에 분노한다』며 국회에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중앙대 학생 5백여명도 이날 하오 교내 해방광장에서 「5·18 학살자 처단과 정권 퇴진을 위한 결의대회」를 열었다. 이들은 교문밖으로 나가려다 경찰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또 중앙대 학생회 간부 20여명은 학생회관에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연세대 총학생회도 학생 3백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날 하오 교내 민주광장에서 「2학기 진군식」을 갖고 5·18 특검제 도입 및 특별법 제정과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한편,학생 4천여명이 서명한 5·18 특별법 제정 청원서를 국회 사무처에 제출했다. 경기대 총학생회도 하오에 교내에서 「2학기 진군식」을 갖고 5·18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또 한국대학원생 대표자 협의회도 이날 이번 정기국회중에 5·18특별법을 제정하고 특별검사제를 도입할 것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한편 한국대학총학생회 연합(한총련·의장 정태흥·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오는 25,26일 충남대에서 전국 2백4개 대학 총학생회장 등 학생 1만여명이 참가하는 가운데 중앙위원회를 열고 5·18과 관련해 동맹휴업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 “「5·18」 동맹휴업 백여대 참가”/한총련

    ◎부산 등 3곳선 화염병 시위 「한국대학 총학생회 연합」(한총련)는 19일 5·18 특별법 제정 촉구와 관련,오는 29∼30일 동맹휴업에 한총련 소속 1백87개 학교 가운데 1백50여개 학교가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총련은 대학가에서 동맹휴업이 시작되는 오는 29일부터 서울등 전국에서 기습시위를 벌일 계획이며 「서총련」소속 40개교와 「경인총련」 30개교등 수도권지역 70개 학교 학생들은 30일 서울 시내 중심가에 모여 대규모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와관련,서울대생 1천여명은 이날 하오 3시 중앙도서관 옆 아크로폴리스광장에서 「5·18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 촉구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부산·대전=이기철·이천렬 기자】 부산대와 충남대생 등 부산과 대전·충남지역 대학생들이 19일 5·18 책임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하게 시위를 벌였다. 충남대생 2백여명은 이날 하오 5시30분 이학교 학생회관 앞에서 5·18 책임자 처벌과 특별법 제정,유성관광특구 폐지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교문 밖으로 진출,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며 1시간여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에 앞서 고려대학교 서창캠퍼스 학생 4백여명도 각각 이날 하오 2시 조치원역 광장에서 5·18 특별법 제정과 경찰의 고려대 총기 난사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또 이 내용을 담은 서한을 민자당 연기지구당측에 전달하려다 저지하는 경찰에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는 등 4시간여 동안 시위했다. 또 공주대생 2백명도 이날 하오 4시 이 학교 민주광장에서 5·18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공주 시내로 진출,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펴는 등의 시위를 벌였다. 부산대생 4백여명은 이날 하오 5시 학교운동장에서 「5·18 학살자처벌 및 특별법 제정을 위한 대회」를 열고 5·18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한뒤 교문밖으로 진출,2시간 30분 동안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 대학가 「5·18 동맹휴업」 비상/서울대 29·30일로 결정

    ◎서강·한양대 등 가세/서울 한밤 가두시위… 전국 6곳서 집회 「5·18관련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촉구하는 대학가의 동맹휴업과 재야단체의 집회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는 16일 전체학생 대표자회의를 열어 국회 법사위가 5·18 고소·고발사건을 심의하는 오는 29∼30일 이틀동안 동맹휴업에 들어가기로 결의했다. 총학생회측은 『5·18 특별법제정과 특별검사제 도입을 2학기 최우선 과제로 결정했다』고 주장하고 『오는 19일 「범서울대인 결의대회」를 가진 뒤 명동에서 가두선전전을 벌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서강대·한양대·경희대·중앙대등 서울시내 주요 사립대학 총학생회도 29∼30일을 동맹휴업기간으로 결정했다. 이들은 28일까지 학교별로 개별집회를 열어 동맹휴업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할 계획이다. 29,30일이 정기 연·고전기간인 고려대와 연세대는 동맹휴업 대신 「5·18학살자 기소관철과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연·고대인 서명운동」과 거리행진을 벌일 계획이다.특히 고대총학생회는 서명및 거리행진에 앞서 오는 18일부터 학생회간부등 50여명이 먼저 단식농성을 벌일 예정이다. 이번 동맹휴업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1백87개 대학에 총궐기를 제안한데 따른 것으로 서총련 40개 대학이 16일 동맹휴업을 결의한데 이어 전국에서 1백여개 이상의 대학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 정신계승국민위원회(공동대표 김상근·이창복)」는 16일 하오 3천여명의 시민과 대학생이 참가한 가운데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제4차 국민대회를 열고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새정치국민회의 정상용 의원,민주당 장기욱 의원,황인성 전국연합 상임위원,김홍신 경실련 상임위원등이 참석했다. 집회를 마친 대학생 1천5백여명은 2호선 신도림역까지 가두행진을 벌인 뒤 지하철을 이용,신촌쪽에 다시 모여 연희동으로 진출하려 했으나 경찰이 저지하자 종로와 시청일대에서 밤늦게까지 산발적으로 시위를 벌였다. 또 부산,광주·전남등 민주주의민족통일 전국연합 산하 전국 6개 지부도 이날 5·18관련집회를 열었다. ◎대전 화염병 시위 특히 대전지역 총학생회연합(회장 김수현 충남대 총학생회장) 소속 대학생 4백여명이 16일 하오8시쯤부터 대전지방검찰청 부근에서 시위중 연행된 박진영군(18·충남대 경제학과1)의 석방을 요구하며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 나토,세계무기고 초토화/2개 거점 군시설물 공습

    ◎“중무기 철수안하면 공격 계속” 재확인/이,스텔스배치 거부 【사라예보 로이터 AP 연합】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전투기들은 12일 러시아의 공습중단 압력을 무시한 채 사라예보 주변의 보스니아 세르비아계 군사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계속했다. 알렉산더 이반코 유엔 대변인은 『오늘새벽 사라예보 주변 세르비아계 군시설들이 목표가 됐다』며 사라예보 북부의 보고스차와 남쪽의 루카비차 지역에서 10여차례의 폭발이 보고됐다고 밝혔다. 보고스차는 세르비아계의 탄약고가 있는 곳으로 사라예보 남동쪽에 있는 세르비아계 거점지역 팔레의 소식통들은 간밤 공격으로 탄약고들이 초토화됐다고 전했다. 보스니아 라디오 방송은 정부군 보고를 인용,보고스차의 대규모 무기보관지구에서 2차폭발이 발생했으며 화염이 1백m나 치솟는 등 화재가 수시간동안 계속됐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짐 미첼 나토 대변인은 『공습이 중단없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르비아계는 중무기를 철수할 경우 정부군의 공격을 방어할 수 없다면서 무기를철수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토의 공습을 받는 편이 낫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이탈리아는 F­117 스텔스 전투기를 이탈리아의 나토기지에 파견하겠다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이탈리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 폭주족 동료 구하려/파출소 화염병 던져/경산

    ◎고교생낀 10대 셋 검거 【경산=한찬규 기자】4일 상오3시45분쯤 경북 경산시 경산경찰서 북부파출소에 이모(15·대구 C상고1년)·허모군(14·무직) 등 10대 4명이 폭주족단속으로 연행된 동료를 구하기 위해 화염병 3개를 던지고 달아나다 이군 등 3명은 붙잡히고 김모군(18·무직)은 달아났다. 이들은 상오2시쯤 대구시 수성1가 주택가 골목길에서 훔친 오토바이 2대를 타고 가다 상오2시40분쯤 경북 경산시 계양동 경산농협공판장 뒷골목길에서 순찰하던 112순찰차의 검문을 받아 이모군(16·무직)이 붙잡히자 파출소를 습격했다. 이들은 이군이 북부파출소로 연행된 것을 확인하고 경산시 계양동에 있는 친구 박모양(17)의 자취방에서 화염병 3개를 만들었다.
  • “5·18 기소” 화염병 시위/서총련 5백명 집회

    「서총련」 서부지구(의장 신성필 서강대 총학생회장) 소속 대학생 5백여명은 31일 하오 4시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 명지대 「민주계단」에서 집회를 갖고 5·18 관련자를 즉각 기소하라고 촉구했다. 학생들은 『5·18 관련자에 대한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은 역사의 죄인을 옹호하려는 현 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며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뒤 하오 5시30분쯤부터 교문밖으로 나가 화염병 1백여개를 던지며 2시간 가량 시위를 벌였다.
  • HCFC/2015년 조기사용금지 추진

    ◎「몬트리올 의정서」 가입국 대표회의 오늘 개막/국내업계 HFC 조속개발 큰 부담/HCFC이용 제품 규제 강화될듯 오존층 파괴물질인 CFC(프레온 가스)의 대체물질로 개발,사용하고 있는 HCFC(수소화염화불화탄소)도 오는 2015년에 가면 사용이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26일 통상산업부에 따르면 「오존층 파괴물질에 관한 몬트리올 의정서」의 1백45개 가입국 대표들은 오는 28일∼9월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의를 열고 HCFC의 전면 사용금지 시한을 오는 2030년에서 2015년으로 앞당기는 문제를 논의한다.EU는 지난 해 자체적으로 사용금지 시한을 2015년으로 앞당겼다.우리나라는 이 회의에 이종구 통상무역1심의관을 단장으로 외무부 및 업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대표단을 파견한다. HCFC의 전면 사용금지 시한이 이같이 앞당겨질 경우 우리나라는 오는 2천년대 초반부터 단계적인 감축을 시작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관련 산업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미국과 일본,EU 등 주요 선진국들은 이미 오존층 파괴효과가 전혀 없는 HFC(수소화불화탄소)의 개발을 끝내고 수출 및 관련 기술판매 확대를 위해 기존의 HCFC의 조기 사용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CFC의 사용이 오는 96년부터 금지됨에 따라 HCFC를 개발해 CFC를 HCFC로 대체하는 과정에 있으며,HCFC도 규제가 강화됨에 따라 HFC를 조기에 개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HCFC는 에어컨과 냉장고 등의 냉매,정밀기계·반도체 등의 세정·발포제로 사용되며 오존층 파괴효과가 CFC의 3% 정도인 과도기 대체물질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세기의 인물탐구:81)

    ◎박진감 넘치는 심혼의 선율… 청중 사로잡아/5세에 입문… 미 줄리아드서 혹독한 레슨 거쳐/연 100회 이상 공연 스케줄 잡힌 세계10대 연주자/67년 레벤트리트경연서 주커만과의 공동우승은 세계음악사에 기록 정경화(바이올리니스트) 영국 선데이 타임스는 83년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연주자」로 정경화를 선정한 적이 있다.그때부터 지금까지 그의 다이내믹과 이모션은 한번 활을 잡기만하면 폭풍같은 절조로 청중을 일시에 혼도시키고야 만다.흡사 「마야의 박사가 조각조각 찢어져 신비에 가득찬 근원자의 무릎앞에 펄럭이 듯이 그의 몸속에선 마혹과 초자연이 흘러나온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더구나 자기비판에 엄격하여 「열광적 도취를 알지 못하는 정관(정관)은 참으로 조용히 바라보는 정관이 되지 못한다」는 차원에서 최근에는 진주빛 화염을 가라앉힌 「진한 포도주의 바다같은 심혼의 선율을 빚어낸다」는 평을 듣는다. 정경화의 일사불란하게 화려한 연주경력을 일일이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그는 데뷔이래 「톱」의 자리에 우뚝 선 채 자신의 위상을 도도하게 지켜왔고 지금도 그렇다.그중에서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지난 70년 앙드레 프레빈이 지휘한 런던심포니와의 차이코프스키 협연을 들지 않을 수 없다.이 한번의 연주로 그는 미국의 9대 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영국에서 30회를 연주할 수 있는 계약을 맺었고 연 1백회이상의 연주스케줄을 갖는 가장 위대한 연주가의 한사람이 되었다. ○데뷔이래 정상에 우뚝 이보다 앞서 67년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레벤트리트 경연대회에서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우승을 차지한 일은 세계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하기도 한다.평론가 위데 콤베는 이날 정경화연주에 대해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나 스턴이 이보다 더 출중한 연주를 했다할지라도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며 그녀만이 갖는 강한 호소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최상의 연주」라고 호평한바있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도 『실력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잭 스턴을 대부로 하는 막강한 유태계 세력이 주커만을 에워싼 가운데 고독한 싸움에서 이긴 정경화는 지금 주커만 펄만과 어깨를나란히 하면서 명실공히 세계10대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돌아본다.70년대와 80년대 일본에서 여신처럼 떠받들려진 그는 75년 샤를르 뒤트와 시벨리우스를 연주했을 때는 일본의 평론가 우노 호이모로부터 「예리한 칼로 살을 베었을 때 푹 솟아오르는 선혈처럼 신선한 전율을 느끼게 한다」는 등의 극찬 등 황홀한 찬사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는 일찍이 레코드 재킷에서나 볼 수 있는 로린마젤 게오르그 솔티 리카르토 무티 앙드레 프레빈 루돌프 켐페 등이 지휘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물론 영국의 데카를 통해 20여장의 레코드를 내놨고 언제부턴가 한국의 정경화만이 아닌 세계적 「대가」로 군림하고 있다. 과연 이러한 그는 천재이며 타고난 재능으로 자연스럽게 오늘에 이른 것일까.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게 「노!」다. 「정상에 이르는 길은 마치 전쟁을 방불케 한다」는 그는 「음악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연주할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연주에 임하고 있고 단 한번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겼다고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한다.지난번 광복 50주년 기념연주차 귀국했을 때도 그가 묵고있는 신라호텔 미팅룸에서 하루종일 바이올린을 어깨에 메고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머리가 숙여지게 했다. 청중을 사로잡는 마력 때문에 만사에 적극적이고 어딘지 여걸스러우리라고 짐작되지만 정경화의 진짜 성격은 낯가림이 심하고 「말도 못하게 내성적」이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서 친구도 별반 없는 편이다.다만 첼리스트인 언니 명화씨와 지휘자인 동생 명훈씨와의 트리오는 혈육다운 최상의 절창을 이루고 그리고 그를 생명처럼 키워낸 어머니 이원숙여사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용모 또한 화사하고 순수하여 무대에서의 관록이나 권위따윈 찾아볼 수 없다. ○타고난 재능보다 노력 널리 알려지다시피 그는 5살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해서 9세때 서울시향과 협연,61년 가족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줄리아드음악원에서 일류 바이올리니스트만을 키워낸 이반 갈라미언교수와 조지프 시게티의혹독한 레슨을 거쳐 「자기만의 표현능력과 음악적 언어로써 감정을 총괄하고 통제」하는 연주자로 성장했다.이는 「정말 바이올린이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열정이 몸속에서 꿈틀거린 때문」이며 「수많은 장애를 극복한 일은 경이롭다고 밖에 표현할길이 없다」는 음악계의 평은 옳다.그런 점에서 「때로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듯 때로는 귀기가 서린 박진감으로 인해 그의 연주를 듣고난 다음 다른 연주를 들으면 어딘지 채워지지 않는 구석이 남아있는 듯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순열씨(음악평론가)의 말은 음악애호가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위대한 음악가들은 자연과 함께 살면서 그 속에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속에는 자연의 모든 색깔들이 칠해져 있다는 걸 나는 일찍이 스승들로부터 배웠어요』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주활동은 앞으로 10년을 위한 준비과정에 불과」하며 「음악이 지닌 색채감과 이디엄에 집중하여 자신감을 성취한 지예에 다다르고 싶다」는게 그의 꿈이다. 바이올린의 화신인듯 그래서 음악과 결혼한 것처럼 보이던 그가지난 84년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영국인 사업가 제프리 리게티씨와의 결혼을 발표했을 때 이로인해 그의 들끓는 정열과 현란한 선율이 한치라도 사그라들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그러나 결혼후 피아니스트 필립 몰과 레코딩한 「정경화 콘 아모레」는 『살바도르 달리가 「피는 꿀보다 달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이젠 「정경화의 바이올린은 꿀보다도 달다」란 그림을 그려야 할때』라는 평을 받을 만큼 신기의 솜씨로 청중을 도취시켰다.영국의 평론가 에드워드 그린필드는 「정경화가 온세계를 향해 바이올린의 활로 쏜 화살은 에로스의 황금화살보다 더 감미로운 사랑의 기쁨을 느끼게 할뿐 아니라 우리들을 음악의 유토피아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쓸 정도였다.지난 봄 그의 귀국 연주에 대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이강숙교장도 「음악을 끝까지 지킨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가 활을 긋는 그 순간부터 정경화는 아직도 우리의 희망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고 일깨운다.부군인 리게티씨(49)는 「성격이 온화한 정경화 음악팬」으로서 그의 음악생활에 대한 모든 것을 협조하고 외조한다고 전한다.두아들은 엄마를 따라 재곤(프레데릭·10)은 첼로와 피아노,유진(7)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배우고 방학을 이용해 광복50년기념행사에 다녀갔다. ○두 아들도 음악공부 실제로 결혼후 정경화만큼 눈에 띄는 변모를 보인 예술가는 별로 흔치 않다.한국에서 태어나 무수한 장애를 넘어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끈질긴 집념과 강한 개성 때문에 「때때로 발톱을 세운 고양이처럼 앙칼져 보이기도 했던」 오기는 이젠 어느 구석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패기와 자존심과 싱싱함과 날카롭게 찔러오는 그 전율」은 한층 침후해지고 그의 손과 머리와 마음은 움직일 때마다 아름다움을 캐면서 달빛이 녹아 강물을 이루듯 흘러넘치는 광채로 청중의 온몸을 적신다. 지금 「세계가 기억하는 연주가 정경화」는 「자연의 심장인 명작의 숲」속에 서서 인간의 심장이 아닌 영혼을 깨우고 흔드는 절기의 선율로 하늘을 꿰뚫고 싶을지도 모른다. □연보 ▲1948년 서울에서 출생.정준채씨와 이원숙여사의 4남3녀중 넷째 ▲53년서울시향과 협연 ▲61년 이화여중 재학중 도미­줄리아드음대서 갈라미언및 시게티사사 ▲64년 카네기홀 독주 ▲66년 메리웨더 포스트청소년 국제 콩쿠르 수상 ▲67년 레벤트리트 국제바이올린콩쿠르에서 주커만과 공동1위­줄리아드 음악원 졸업­제네바 국제음악콩쿠르입상 ▲70∼84년 런던심포니(지휘 앙드레 프레빈)뉴욕필(지휘 레너드 번스타인)을 비롯,필라델피아·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몬트리올·보스턴심포니,로스앤젤레스·이스라엘·로열필,암스테르담 콘체르트헤보·빈·프랑스 국립교향악단 등과 연 1백회연주,데카 EMI전속 ▲73년 「스트라빈스키 왈튼협주곡」레코드로 에디슨상,독일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스타상」수상 ▲80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콩쿠르 심사위원 ▲84년 결혼이후 런던필(지휘 리카르도 무티)·프랑스국립교향악단(피아노 필립 몰)·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오케스트라·프랑스국립관현악단·베를린필협연등 연 70회연주,유럽 캐나다 일본 오스트레일리아지역 순회연주 ▲92년 미국의 92 엑설런스 20 00상 수상 ▲94년바르토크 협주곡으로 그라모폰상,차이코프스키 협주곡 「빈티지 레코드」선정 ▲95년 정트리오 시향협연및 부산 청주 마산 독주회,광복50주년 축전음악회 「세계를 빛낸 한국음악인」대향연(잠실주경기장) 피아노 필립 몰·라두루프 등과 데카·EMI에서 레코드 20여장및 CD LD출반
  • 한국에선… 일본 대사관(한국속의 일본,일본속의 한국:20)

    ◎“과거인식 잘못” 반일정서에 곤혹/비중있는 재외공관… 직원 50명/교역 급속 증가… 경제업무 중시/정치·안보 밀접한 동맹… 정무분야 중요 서울 종로구 중학동 18의 11,한국일보사와 연합통신사의 사이에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다.1백m쯤 떨어진 미국대사관이 세종로 큰 길가에 보란듯이 서 있는 것에 비하면 일본대사관은 주변의 고층빌딩 사이에 5층짜리 붉은 벽돌 건물을 숨기듯 웅크리고 있다. 우리나라에 일본정부의 사무소가 처음 설치된 것은 지난 65년이다.우리가 먼저 49년 1월에 주일 대한민국 대표부를 설치했으며,일본이 65년 주한 일본정부 사무소를 설치한 것이다. 65년 12월18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이 발효되면서 양측 대표부와 사무소는 대사관으로 승격했다.일본은 이후 부산에 총영사관을,제주도에 출장소를 각각 1곳씩 설치했다. ○11명째 대사 보내 양국간의 국교가 정상화된 뒤 일본은 66년 3월16일 기무라 시로(목촌사랑칠)초대 대사를 부임시킨이래 지금까지 모두 11명의 대사를 한국에 보냈다. 현재의 주한 일본 대사는 야마시타 신타로(산하신태랑).32년생으로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뒤 외무성에 들어가 미국 안전보장과장과 독일대사관 참사관,태국 대사,정보조사국장등의 요직을 거친 엘리트 외교관이다.야마시타대사는 특히 미국과의 안보조약 업무를 계속 담당해왔기 때문에 한·미·일 3국간의 안보협력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주한 일본대사가 접촉하는 인사의 폭은 매우 넓고 깊다는 것이 외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일본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갈 때 열리는 환송연에서는 정치·경제·사회·문화등 각 분야의 한국내 유력인사는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야마시타 대사의 경력이 말해주듯 주한 일본대사관은 일본의 재외공관 가운데서도 매우 중요한 곳으로 손꼽힌다. 5대 대사를 지낸 스노베 료조(수지부양삼)의 경우 외교관으로서 최고직인 외무차관에 오르기도 했다.또 일본 외무성에서 아주국장과 북동아과장등 아시아쪽의 중요한 외교포스트를 맡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을 거쳐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다. 일본의 재외공관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곳은 물론 워싱턴의 주일대사관으로 외교관 숫자만 1백명이 넘는다. 현재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모두 50명선.이 숫자는 미국과 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보다는 적지만,일본이 중시하는 서방선진 7개국(G­7)에 파견한 외교관의 숫자의 평균과 비슷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주한 일본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의 90%가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 지역에 몰려산다는 점이다.한국에 파견된 일본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일본대사관의 한 직원은 그 이유를『개포동에 있는 일본인 학교에서 동부이촌동에 스쿨버스를 보내기 때문』이라고 자녀교육을 이유로 들며『집단거주촌을 만든다든지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고 설명했다. 65년 수교이래 한·일관계가 양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일본대사관의 한국정부와의 협의사항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한·일 양국이 정치,안보상의 동맹적 관계에 있기 때문에 정무분야도 중요하지만 교역이 늘어남에 따라 경제분야의 업무도 마찬가지로 중시되고 있다. ○비판여론에 촉각 일본대사관측이 양국관계에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바로 일본의 역사인식에 대한 한국인의 비판적 여론이다.특히 올해 광복 50주년,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도 일본에 대한 한국 국민의 「적대적」태도가 그다지 바뀌지 않고 있는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일본 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일본도 역사인식을 바로잡는 것이 중요한 현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으며,지난 8월15일의 무라야마총리 담화에서도 나타나 있듯이 국민의식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그러나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해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인 스스로의 책임도 인정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같다』고 최근의 한국내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본대사관은 한국내에서 반일감정이 확산될 때마다 학생시위대의 공격목표가 되기도 한다.지난 75년 8월15일 문세광이 육영수여사를 저격했을 때 일본대사관은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으며,지난 6월6일에도 학생들이 안국동 일본공보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져 도서관이 불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양국의 인적교류가 확대되고 있으며,이에 따라 주한대사관의 영사업무도 폭주하고 있다. 일본대사관측이 제공한 일본 법무성자료의 통계에 따르면 93년 일본인의 해외여행지 1위는 미국,2위는 한국이다.또 같은해 한국인의 해외여행지 1위는 일본,2위는 미국이다.87년부터 우리정부가 해외여행을 단계적으로 자유화하면서 일본 방문자는 87년 16만9천9백74명에서 지난해 59만5천6백90명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아직까지 약간의 규제가 있지만 미국처럼 비자받기가 어렵다는 불평은 나오지 않고 있다고 여행사 관계자들은 말한다. ○대부분 지한파로 한편으로 일본 대사관이 「관리」해야 하는 한국내의 일본인은 1만1천명 정도다.94년 10월1일을 기준으로 볼 때 장기체류자가 8천7백18명,영주자가 4백79명으로 공식집계되고 있다.장기체류자는 역시 민간기업인이 2천1백90명으로 가장 많고,유학생이나 연구원이 1천6백46명,자유업이 98명,특파원등 언론관계인이 74명,기타 4천4백9명등이다.유학생 가운데는 대사관에 체류를 신고 하지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고된 숫자는 실제 체류자보다 적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 체류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인들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한국에 염증을 느끼거나 애정을 느끼거나 한다.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한국 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일본 외교관들은 대체로 지한파의 성향을 갖게 된다고 한다.양국의 국민감정이 좋지 않은 가운데 적극적으로 양국관계를 개선하려다 보니 자연히 상대방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 화염경 베낀 신라종이뭉치 발견/화엄사 5층탑서

    ◎청자양이병도 함께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서쪽 5층탑(보물133호)에서 통일신라시대때 종이에 쓴 화엄경 사경으로 추정되는 종이뭉치와 청자의 기원을 파악할 수 있는 청자양이병이 발견됐다. 문화재관리국이 지난 18일 5층석탑 보수를 위해 해체공사중 1층탑신의 장방형 홈(가로 33·세로 10㎝) 사리장치에서 발견,20일 공개한 종이뭉치는 두께 6∼7㎝,길이 27㎝의 크기로 되어 있다.이 종이뭉치는 두루마리 형태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는데,붓글씨로 쓴 사경의 흔적이 현미경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 강우방 실장은 『화엄사가 신라 10대 화엄사찰중 하나이고 인쇄본인 무구정광다라니경에 비해 두께가 두꺼워 사경일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통일신라시대때의 종이류는 지난 66년 불국사 석가탑 보수공사때 나온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일제시대때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는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등 2종류에 지나지 않았다.이번 발견된 종이뭉치가 화엄경 사경으로 확인될 경우 출처가 분명한 신라때의 불경 사경으론 최초의 것이 되는 셈이다. 그리고 원형 홈(깊이 35㎝) 사리장치에서 금동 뚜껑이 덮인 채로 발견된 청자병은 고려청자의 시원을 다시 밝힐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되었으며 그 안에서 22과의 사리가 담긴 녹색사리병이 함께 나왔다.이밖에도 청동합 2점,수정옥 1점,목제장식류 1점,유리구슬등이 수습되었다.
  • 일 문화원에 화염병/대학생 6명에 집유/서울지법 선고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부(부장판사 송동원)는 18일 지난 6월 일본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진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국진씨(20·J대 사학과 4년)등 6명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죄 등을 적용,각각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고 화염병을 투척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지만 초범이고 가담정도가 경미해 집행유예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 시위­진압의 악순환/박찬구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시위대와 공권력 사이의 「힘겨루기」는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 16일 밤늦게까지 도심 곳곳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격렬 시위와 경찰의 과잉 진압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 만큼이나 시민들을 답답하게 했다. 시민의 공간인 장충단 공원이 최루탄으로 뒤덮였고 이에 질세라 학생들은 도심 곳곳에서 과격시위를 벌였다.1백90개 중대,2만여명의 전경들과 쇠파이프로 무장한 6천여명의 학생 시위대는 「시민생활 보호」와 「잘못된 역사의 심판」이라는 타협점없는 명분을 내세워 한치의 양보도 없는 싸움을 치렀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어져 학생·전경 50여명이 진압봉과 쇠파이프에 부상을 입었고 시위 현장을 촬영하던 기자 4명이 전경에 폭행당하는 어이없는 사태까지 일어났다.숨을 헉헉대며 도심의 이곳 저곳을 쫓고 쫓기는 학생과 경찰의 공방은 시위 후진국으로서 우리의 자화상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무더위와 짜증으로 인한 경찰의 과잉진압도 무리수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경찰과 시위대사이의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은 올해초 바람직한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경찰통제선」(폴리스 라인)제도를 도입했다.평화시위를 보장하는 대신 다른 시민이나 교통흐름에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통제선을 정하는 것으로 시위대와 공권력간의 신사협정인 셈이다. 경찰은 그러나 이번 집회에서는 이를 무시했다.대학생들이 쇠파이프와 화염병까지 준비해 과격 시위가 뻔한 마당에 어차피 무너질 통제선을 설정한다면 공권력의 체면이 뭐가 되냐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한 경찰 간부는 이를 두고 『법을 무시하는 시위대에게 법의 논리로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강경한 논리를 폈다.그는 또 『경찰이 진압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이날 시위 진압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학생들도 당초 주최측이 취소한 거리행진을 강행하려해 경찰의 강제 진압을 자초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처럼 경찰과 학생의 틀에 박힌 시나리오는 우리시대의 현주소일 수 밖에 없다.이성보다 「힘의 논리」가 앞서는 현실에서 「통일」과 「미래」로 가는 광복 50주년의 참된 의미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
  • 음악평론가 박용구(이세기의 인물탐구:80)

    ◎「열린 시각」으로 「평론 외길」 50년/음악·무용 비롯,모든 문화분야 탁발한 이론 전개/「음악 교육론」… 일제가 말살한 우리 정서 부활 노력/저서 「교양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감상 지침서로 유명 「미를 위해서는 깨뜨릴수 없는 규칙이란 없다」.이는 베토벤의 말이다.또 입사 박용구의 좌우명이기도 하다.「미를 창조하기 위해 무엇을 파괴해도 아깝지 않을만큼」그의 의식과 사상은 줄기차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었고 언제나 「열린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음악계는 말한다.「그것은 예술가 특유의 삶에 대한 위기의식과 긴장 탓」이며 「긴장이 자유를 향한 끈질긴 집념이라면 그에게 있어 자유란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일 것이다. 「박용구는 해방공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50여년동안 계속해서 활발한 평론활동을 벌여온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이는 작곡가 이건용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가 92년 「낭만음악」(여름호)특집 「작가연구」에서 밝힌 말이다. 같은 글에서 이교수는 「50년에 이르는 평론활동은 우리나라 음악사에서 유례가 없는 것」이며 「잡지나 신문들이 일정한 평론가에게 그 긴기간동안 계속적으로 원고청탁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짚고 있다.또 「음악과 무용정도의 범위가 아니라 그는 예술문화를 제한없이 드나들며」『논리전개도 상당히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치,때로는 대담한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 논조와 사안별로 관심의 소재가 변하는 「논리에 입각한 비평가라기 보다 감각에 의한 비평가」』라고 결론짓는다. ○예술계의 팔방미인 실제로 그가 우리 문화예술에서 점하고 있는 영역은 넓고 깊고 다양하다.그래서 예술에 관한 한 그를 「팔방미인」이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음악펜클럽 예술평론가협의회 유니세프문화예술인클럽을 비롯하여 최근의 국제적인 세계무용연맹(WDA)도 그가 주관하는 단체이고 그가 쓴 「춘향가」「줄리아」「님의 침묵」등 수많은 작품들은 교향시·오페라로 작곡되어 호평받은바 있다. 과연 그의 평문은 어느 지면에서나 탁발한 이론을 유창하게 전개하면서 도저한 주관을 꿋꿋하게 지키는 것이 특징이다.해방직후 발표한 「아동음악 교육론」은 「일제의 문화정책 말살로 불식된 우리 고유의 민족적 음악감수성을 아동음악 교육으로부터 키워야 한다」는 제언이었고 전5권으로 펴낸 「교양의 음악」의 경우는 클래식음악팬의 음악감상을 위한 지침서일 뿐만 아니라 음악지망생과 음악관계 전문가들에게 「풍부한 정보」와 「해박한 지식」을 섭취시킨 교과서이기도 했다. 「예술가란 어느 시대에서나 환경의 도전자요,권위의 파괴자로서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역설해온 그는 60년대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쉔베르크 도형악보의 존 케이지·베베른·베르크와 슈톡하우젠에 이르는 실험적인 현대음악을 우호적으로 수용하는가 하면 당시 새로운 사조에 편승한 윤이상·백병동·강석희·황병기 등의 전위작업을 「선구자적 도전 정신」으로 평가하여 작가들의 시대정신을 크게 북돋워주었다.「공간」지에 발표한 일련의 「작가론」에서 특히 백병동을 향해 「음악으로 말할줄 아는 소중한 사람」 또는 「그 노여움이 화염이 되어 역사의 밤을 밝히도록 기대한다」고 감싼 것도그런 맥락에서다. ○한약방집 네째 아들 그의 녹슬지 않는 사회정의감은 87년 6월항쟁과 88올림픽이 끝난후 「예총」에 대한 역할회의론이 일어났을때도 「예총도 뉘우쳐야 한다」는 글에서 심장한 어조를 멈추지 않는다.그는 「예총이 해야할 일은 하지 않고 정권의 시녀노릇만 하고 있다」고 감연히 지적했고 「예총은 절대로 순수하지 않고 결코 지성인의 모임도 아니며 그 체질은 다만 편견과 독선에 차있다.예총이 이념공동체라면 우선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인 삶의 조건인 「자유」를 수호하는 일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집단체여야 하지 않는가」라고 안일에 빠져있던 문화예술계의 분발을 촉구했다. 그가 어릴때 소망한 것은 「독립투사」가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독립투사의 조건은 「강인한 인내력과 행동력」이었으나 그는 「불행하게도 이 두가지 강점을 하나도 지니지 못하여」 그때부터 자유롭게 예술을 논하는 사람이 되었고 「무엇이 되고자 하기보다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에서 일본체류 기간동안은 주로 「단사들과 더불어 담예논도에 심취」하는 세월을 만들어 나갔다. 도쿄시절의 입사에 대해 건축가 김수근의 회상은 이런 흔적을 진하게 뒷받침해준다.「그는 예술순례를 주도하는가 하면 예술과 문화전반에 걸쳐 밤을 새워가며 격론을 벌이던 모임에서 항상 중심적 위치에 있었다」 더구나 「누구보다 철저한 자유주의자로서 한치도 후회함이 없는 그의 사회정의감과 예술분야에 임하는 지성인의 자세는 당시 유학생들의 귀감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인생항로는 남보다 파고가 거세고 파란이 심한 편이었다. 경북 풍기에서 한약방을 경영하던 박은식씨의 7남매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보통학교 졸업후 조부의 고향이던 평양으로 가서 평양고보에 진학,5학년이 되던해 독서회를 조직한 일로 왜경에 검거되었고 농촌운동에 관심이 컸으나 부친이 부농인 것과 상반되어 이 마저 포기한채 일본에 밀항했다.일본고등음악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다가 이 역시 체질에 맞지않아 일본의 「음악평론」사에 입사한 것이 음악·무용가가된 계기가 된다. 광복후 조국에 돌아와 첫 평론집 「음악과현실」을 출간,초판이 보름만에 팔려나가는 이변을 보였으나 월북 음악가를 거론했다는 이유로 재판부터 판금조치를 당했고 이와 관련하여 그는 다시 50년대를 일본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될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 할 수 밖에 없었다.정처없이 떠돌던 자신의 「끝없는 파란」과 「방랑」을 「방랑시인 김삿갓」에 비유하여 스스로 삿갓 입자를 쓴 「입사」란 호를 지어 가진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창작희곡 집필 몰두 창작희곡집 「흙비」 후기는 그의 솟구치는 앙양과 침정을 요연하게 드러내는 고백성사와도 같다.「나는 성깔부터가 적을 사랑하라는 박애주의자가 되지 못함을 알고 있다.사랑해야만 할 것이 있기 때문에 미워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있었다.여기의 작품들은 사랑에서 보다는 미움으로 해서 쓰여졌는지도 모른다.그만큼 내 생애는 미움에 찬 세월이었다.마음의 눈은 항상 핏발이 서 있었다」고 처연한 심정을 글귀마다 담고 있다. 그는 82세의 나이와는 걸맞지 않게 모든 사고방식은 활짝 열려있고 목소리는 낭랑하며 행동은 반듯하다.그가 살고있는 세검정 세이장은 20여년전 건축가 김수근씨가 설계한 트롬본처럼 말려올라간 예술주택으로 요즘은 지난해 가을 문예중앙에 발표한 「바리데기」후속으로 우리 「무가」의 원천사를 집대성한 방대한 창작희곡 집필에 들어가 있다.그만이 남길수 있는 단테의 「신곡」 못지않은 명작에의 도전이라는 각오다.가족은 남매는 모두 출가하고 부인 정덕미 여사와 둘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기를 원한다.그의 주장대로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고자하는 염원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예술미의 창조는 요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러나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가 원한대로 언제나 「멋대로」 흘러왔으며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 「우리 모두가 별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지금도 굳게 믿고 있는것 같다. 「예술자체이자 삶자체인 자유가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한」그는 「가장 선한 장엄미 건축을 위해」 그의 멋과 자유를 파괴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그런 순간을 위해 예술관조의 형안도 끝내 그 빛을 잃지 않을것이다. □박용구 연보 ▲1914년 경북 풍기출생 ▲33년 평양고보졸업,도일,일본대 예술과 입학 ▲37년 일본고등음악학교 졸업,일본 「음악평론」사 입사 ▲49년 첫 평론집「음악과 현실」(민교사)출간,도일 ▲50∼60년 일본 도쿄 고마키(소목)발레단 문예부장 ▲52년 일본 「배우좌」연출공부 ▲62년 서울음악평론동인회대표간사 ▲66∼68년 예그린악단단장 ▲70∼76년 공간사주간·운영위원 ▲76년∼현재 음악펜클럽 회장 ▲81년∼현재 예술평론가협의회회장 ▲83년∼현재 채동선기념사업회장 ▲86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기획단장 ▲88∼94년 방송문화진흥회이사장 ▲93년∼현재 세계무용연맹 발족(WDA),한국본부 회장,은관문화훈장 ▲94년 창작희곡 「바리데기」(문예중앙 가을호)발표 ▲95년 세계무용연맹 창립총회및 아시아 태평양센터주최 국제무용페스티벌(KIDE)개최 「음악의 별들」(어문각 48년) 「음악입문」(박문출판사) 「음악과 현실」(일지사 49년) 「교양의 음악」전5권(창조사 69년) 「음악의 주변」(창조사 70년) 「음악의 광장」(일지사 75년) 「불멸의 음악가들」(일지사) 「음악의 세계」(계몽사) 「음악이 만나는 자리」(일지사 77년) 「음악의 문」(청한문화사 81년) 창작집 「흙비」(해보라 기획 85년) 「오늘의 초상」(일지사 89년) 「명곡과 명인들」(세광음악출판사) 「어깨동무라야 살아남는다」(지식산업사 95년)출간외 논문 무용극본「님의 침묵」 「바리공주」 오페라극본「춘향가」 「줄리아」등 다수
  • 목표궤도 미달… 정확한 오차 이틀뒤 판명

    ◎궤도차질 따른 영향/원지점궤도 목표치에 6천1백㎞ 미달/정확한 오차 알아야 수명 단축기간 계산 5일 하오 미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무궁화위성은 1단 로켓의 성능약화로 목표궤도에 다소 미달함에 따라 위성의 수명단축이 우려되고 있다. 무궁화호는 발사 및 발사후 1시간17분만에 이뤄진 로켓과 위성체와의 분리는 성공적이었으나 궤도진입에 약간의 오차가 생겼으며 정확한 오차범위와 이에 따른 대책은 이틀 후에야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궤도에 오차가 생기면 필요할 경우 위성체에 실려 있는 자세제어 및 궤도이동용 분사체 연료를 사용해 제 궤도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결국 위성의 연료를 축내 수명을 단축시키게 된다는 것. 무궁화위성은 3단 로켓과 분리된 뒤 고도 1천3백53㎞를 근지점으로 하는 천이궤도에 들어가 발사후 6시간40분만에 고도 3만5천7백86㎞의 원지점에 도달,이 근지점과 원지점을 도는 타원형 천이궤도를 선회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발사용역업체인 미 맥도널 더글러스(MD)사 발표에 따르면 무궁화위성을 쏘아올린 델타Ⅱ로켓의 1단 로켓이 당초 계획된 추력(1백5t)을 제공하지 못해 천이궤도의 원지점 목표에 미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는 1단 로켓의 보조 로켓 9개중 6개는 예정대로 발사후 1분7초만에 분리됐으나 2분12초만에 분리토록 돼 있는 나머지 3개중 1개가 떨어져 나가지 않고 1단 로켓에 붙어 있는 바람에 결국 추력에 차질을 가져온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로이터통신은 MD사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무궁화호의 원지점 궤도가 목표치인 3만5천8백㎞에서 6천1백㎞ 미달된 것으로 전하면서 이로써 MD사의 연속발사성공이 50회째에 깨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한국통신측은 궤도의 정확한 오차는 궤도의 경사도나 높이,근지점과 원지점 통과시의 위성체속도,근지점과 원지점의 각도 등을 감안,궤도의 모양을 판단해야만 알 수 있으며 이는 이틀후에나 가능하다고 밝혔다. 무궁화위성에는 지름 50㎝짜리 연료탱크 4개에 1백96㎏의 액체수소연료가 실려있는데 이는 위성을 12년동안 제어할 수 있는 분량으로 목표수명(10년)보다 2년분의여유가 있다는 것. 따라서 위성의 궤도오차를 보정하기 위해 이 연료의 일부를 사용하더라도 목표수명에는 차질을 빚지 않을 가능성이 많으며 얼마만큼 수명이 단축될지는 정확한 오차범위가 밝혀진 뒤라야 계산이 가능해 진다. ◎고도미달 보상 어떻게/허용오차 초과… MD사측에 책임/10년 이하일땐 단축분만큼 보상 무궁화위성이 5일 하오 성공적으로 발사됐으나 델타Ⅱ로켓의 1단로켓이 예정된 추력을 내지 못해 목표궤도에 다소 미달함에 따라 발사용역업체의 책임 및 보험적용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한국통신은 발사용역업체인 미맥도널 더글러스(MD)사와 맺은 계약에 따라 무궁화호 주 위성의 발사비 약 4천5백만달러(3백60억원)중 90%를 지난 6월중순 지급했다. 나머지 10%는 계약상 위성이 궤도에 정상적으로 진입하고 발사과정에서 위성체에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할 경우에만 지급하도록 돼 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위성자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나 목표궤도에는 제대로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약상 천이궤도의 원지점 목표는 지구정지궤도인 3만5천7백86㎞로 약 9백㎞의 오차를 허용하고 있는데 실제 오차는 6천㎞를 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어 이 정도의 오차가 사실로 판명되면 계약위반으로 간주된다. 이럴 경우 한국통신은 MD사에 책임을 물어 발사비의 10%인 4백50만달러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한편 무궁화위성은 삼성화재를 주 간사회사로 해 국내 11개 보험사를 통해 1천6백억원(미화 2억6백52만9천달러)의 발사보험에 가입해 있는 상태.국내 보험사상 단일 사안으로는 최대규모인 이 보험은 발사 0.2초전 보조로켓 점화후부터 1년간 위성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고장이나 장애에 대해 보상을 해 준다. 무궁화위성의 수명은 10년으로 잡혀 있는데 현재 위성체에는 12년동안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의 연료가 실려 있다.따라서 궤도오차를 보정하는데 필요한 연료사용량이 2년분을 넘어 위성수명이 10년 이하로 떨어질 경우 수명단축분 만큼 발사보험을 통해 보상을 받게 된다. 한편 한국통신측은이번 궤도진입 이상으로 무궁화호 위성의 수명이 6개월에서 1년정도 단축되더라도 올 12월 발사할 예비위성을 이용하면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위성방송이나 통신서비스에는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발사기지 이모저모/발사 3시간25분뒤 “정상” 첫 소식 타전/태극마크 선명… 발사순간 눈부신 섬광/재미교포,“고국 떠난지 30년만의 최대 기쁨” ○…검붉은 화염을 내뿜으며 무궁화호가 발사되는 순간,케이프커내버럴공군기지는 인근 4㎞이내에 귀를 찌르는 듯한 굉음과 함께 눈이 부실정도의 섬광으로 장광경을 연출. 발사 0.2초전 6개의 1단 보조로켓에서 시꺼먼 연기가 나오면서 순간 불바다가 된 발사장을 뚫고 무궁화호는 태극마크가 선명한 회색의 로켓을 뒤로한채 수직상승,곧바로 나머지 3개의 1단 보조로켓도 점화돼 가속력을 더하면서 시야에서 멀어졌다. 발사와 동시에 지상의 고열을 막기위해 발사대지하에서는 2m직경의 수도관을 통해 사방에서 동시에 20만갤론의 물이 터져나와 새빨갛게 달궈진 지상고정물을 식히면서 발사로 인한 땅의 진동을 방지. 불과 30초도 지나기 전에 가물거릴 정도로 멀어져 간 무궁화호는 새벽하늘에 흰색의 열기를 꼬리로 남기며 우주공간에 진입. ○…이날 무궁화위성의 역사적인 발사장면을 직접 보기위해 올란도시에서 달려온 황달수(52·상업)씨는 위성이 발사된 직후 『한국을 떠나온 지 30년만에 맛보는 최대의 기쁨』이라며 한동안 흥분.무궁화위성의 성공적인 발사를 위해 5일전부터 한인교회에서 기도해왔다는 황씨는 또 『우리나라가 위성을 보유하게 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연신 하늘을 응시. ○…무궁화위성은 발사과정에서 여러가지 진기록을 남겼는데 그중 하나가 TV중계방식.우선 KBS MBC SBS YTN등 4개사가 방송사상 처음으로 합동중계방식을 채택함으로써 국내 TV중계의 새로운 장을 개막. 이들 방송4사는 기술스태프를 포함,총 17명이 현지에 파견돼 발사장면을 생생히 국내에 소개. ○…무궁화위성이 발사된 지 3시간25분만인 5일 하오 11시35분 위성의 정상적인 상태를 알리는 첫 소식이 경기도 용인주 관제소에 전달. 용인관제소는 미 뉴저지주 위성운용센터(ASOC)로 부터 전송받은 무궁화위성의 각 부분별 온도,제어장치별 전류의 흐름 등 2백여종의 데이터가 모두 정상이라고 전언. 그러나 1단로켓의 추력이 예상보다 떨어져 목표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게 됐다는 지적과 관련,무궁화위성의 현재위치를 ASOC가 추적중이라고.
  • 계획에서 발사까지(통신 방송/위성시대:3)

    ◎우주개발 동참·전파월경 방지 목적/3천4백50억 투입… 8년만에 결실 무궁화위성 발사는 지난 87년 제13대 대통령선거 공약사업으로 단독위성 보유의 뜻을 세운지 8년만에 이뤄지는 결실이다. 무궁화위성 프로젝트는 지난 89년 당시 체신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한 통신방송추진위원회가 마스터플랜을 확정하면서 범정부사업으로 추진돼 왔다.이는 각국의 우주개발경쟁대열에 동참하고 국민의 다양한 통신·방송서비스욕구에 부응하는 한편,일본과 홍콩의 위성방송이 국경을 넘어 안방까지 파고드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처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어 90년 5월 국민과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취지 아래 위성의 이름을 공모,무궁화호(영어명 KOREASAT)로 확정했고 한국통신이 단독 투자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92년에는 해외에서 활약 중인 위성 및 로켓전문가를 유치하는 한편 국내 기술자 54명을 미국과 영국 등에 파견,현장기술훈련을 받기도 했다. 한국통신은 위성 및 발사체 2기 제작,관제소 2곳,위성연구개발 등에 모두 3천4백50억원을 투자했다.제작비 1천2백27억원을 투입한 무궁화위성 2기 중 1기는 3일 발사되는 주위성이고 나머지 1기는 오는 12월에 쏘아 올릴 예비위성으로 이는 주위성의 고장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무궁화위성사업은 우리기술이 없는 위성체제작과 발사용역을 선진국에 의뢰하되 지상장비의 경우 국내개발 또는 외국과 공동개발하는 방향으로 추진돼 왔다. 이에 따라 일련의 국제입찰을 통해 위성체제작 주계약자는 미국 록히드 마틴사,발사용역업체는 맥도널 더글라스(MD)사가 선정됐다.위성체제작에는 대한항공과 금성정보통신이 보조사업자로 참여,본체구조물·태양전지판과 중계기 일부를 제작해 납품했다. 발사체분야는 MD사를 주축으로 한라중공업이 보조로켓 부품 등의 제작에 참여했다.국내 업체들이 제작한 부품은 14개 품목 40여개로 그 성능이 검증됨에 따라 기술축적과 함께 앞으로 외국의 위성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무궁화호는 지난 2월 1차 성능시험에 이어 열진공 및 진동시험을 마친 뒤 2차 성능시험을 거쳐 지난 6월30일 케이프커내버럴기지로 운반됐다. 발사장 이동 후 최종 성능시험을 거친 무궁화호는 연료를 주입하고 원지점모터를 장착한 뒤 지난 17일 발사업체인 MD사에 인도된데 이어 24일에는 발사체인 델타 투 로켓과 결합됐다. 무궁화위성은 30일부터 8월1일까지 발사장과 관제소간의 통신연결상태를 확인하는 최종 리허설을 갖는다.오는 2일에는 한국통신,미국 공군,미국 항공우주국 등 모든 발사관계자들간에 최종 발사준비상태 점검회의를 갖고 카운트다운을 승인한다.카운트다운은 최종 발사까지 분단위로 이뤄지며 발사전 5백40분부터 진행된다. 발사 1백50분 전까지는 발사체 1단엔진과 고체 보조로켓의 점검을 마친뒤 60분간 카운트다운을 중단,경고사이렌이 울리면 최종발사와 상관이 없는 모든 인원이 발사대에서 소개된다.최종 카운트다운과정이라고 부르는 95분 전부터 발사 3분 전까지 모든 발사 준비를 최종 완료한다. 발사 2초 전에는 1단 엔진이 점화되며 0.2초 전에는 9개의 보조로켓 가운데 6개가 점화되면서 무궁화위성이 검붉은 화염을 품고 하늘로 솟아 오르게 된다. □무궁화위성사업 추진일지 △87·12제13대 대통령선거공약 △89·2체신부,국내위성확보계획 업무보고 (97년 발사) △89·8통신·방송위성사업추진위원회 구성 △89·12위성사업추진종합계획확정(96년4월발사) △90·5위성명칭공모,무궁화호(영문 KOREASAT)로 결정 △90·7한국통신 위성사업단 설치(체신부,발사시기 95년4월 발표) △90·12위성설계기준 확정 △91·12미GE사와 위성체제작계약 체결 △92·8미MD사와발사용역계약체결 △92·9위성체및발사체제작사에기술진파견 △93·2경기도 용인에 위성 주관제소 착공 △95·2대덕 위성 부관제소 공사완료 △95·5위성체 제작완료 △95·6케이프커내버럴발사기지로위성체이동 △95·7발사체인 델타Ⅱ와 결합 △95·8·3발사(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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