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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印尼 백화점 방화 250명 사망

    ◎폭동 격화… 집권당서 수하르토 퇴진 요구 【자카르타 외신 종합】 자카르타의 한 백화점과 상가에서 폭도들의 방화로 인한 대규모 화재가 발생,최소한 250명이 사망한 가운데 집권 골카르당 내부에서도 수하르토 대통령의 사퇴를 초구하는 등 인도네시아 유혈폭동 사태가 통제불능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인도네시아 집권 골카르당 내 최대 당파인 코스고로는 15일 “수하르토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사임하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낼 수 밖에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이날 ”인도네시아에서의 사망자 발생과 파괴적 폭력행위에 큰 우려를 표한다”면서 수하르토 대통령의 퇴진 여부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인도네시아 국민들이 결정할 문제지만 중요한 점은 모든 사회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정치개혁과 화합의 길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캐나다는 2대의 전세기를 동원,자국민들을 해외로 대피시키는 공수작전을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적십자사 관계자들은 자크르타 교외 클렌더지역의 요그야백화점이 폭도들의 방화로 화염에 휩싸이면서 230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날 이집트에서 급거 귀국한 수하르토 대통령은 사태수습을 위해 또한번 사임설을 대변인을 통해 언론에 흘리고,소요를 촉발시킨 연료가격과 전기요금인상안을 철회하는 등 수습을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한편 폭도들의 약탈로 모든 은행들이 문을 닫은 가운데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은 이날 외환결제를 포함,모든 은행간 청산절차 거래를 중단했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의 이같은 조치는 이날 달러당 1만1천루피아를 돌파한 루피아화의 국내거래 중단을 의미한다.
  • 쇠파이프 반입 현장 검거/오늘 노동계 집회 학생참여 차단/경찰

    경찰청은 16일 전국 10여개 도시에서 열릴 예정인 노동계의 집회와 관련,평화적인 집회와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 폭력 시위는 엄단하겠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은 지난 1일 근로자의 날 행사 때처럼 불법 폭력시위를 할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의 집회 참여를 최대한 저지하는 한편 쇠파이프와 화염병 등의 반입을 원천 봉쇄키로 했다.특히 쇠파이프 등 시위도구를 갖고 집회에 참여하거나 경찰에 돌을 던지는 시위자는 현행범으로 간주,현장에서 검거할 방침이다. 한편 민주노총(위원장 李甲用)은 16일 하오 3시 서울 종묘공원을 비롯,전국 14개 도시에서 모두 1만9천명이 참여하는 ‘고용안정과 실업대책 촉구’집회를 갖는다.
  • 신토불이 경영틀 짤때/宋一 외국어대 교수·경영학(時論)

    ○과학적 관리와 인간관계 지난 노동절 일본에서 TV를 통해 생생하게 접한 서울의 과격시위는 당혹감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켰다.오늘의 절박한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부족,자신감과 방향의 상실,대안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는 부끄러움과 그것이 경제주권 상실시대를 살며 실업대란에 직면한 국민의 좌절과 절규의 상징적 단면이라는 점에서 가슴 아팠다.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에 기업생존의 해법을 제시한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는 최근의 글로벌경쟁 논리보다 한층 더 가혹하고 냉철한 경영패러다임이었다.비능률적인 생산과 경영조직을 군대조직을 방불케 할 정도의 기계적 모델로 쇄신하고 차별적 성과급제의 역사적 도입은 물론,노동자의 ‘몸놀림과 작업시간의 연구’를 통해 일체의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을 도모했던 혁신기법이었다. 이처럼 테일러리즘이 근대경영의 원류로 자리잡아가고 있을 때 과학적 관리의 실증을 위한 대대적인 실험이 엘튼 메이요를 중심으로 웨스턴 일렉트릭의 호손 공장에서 이루어졌으며 10년에 걸쳐 진행된 이 실험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기상천외의 결과로 세상을 깜작 놀라게 했다.즉,경영성과는 초합리적인 과학적 관리의 산물이라는 당대의 경영신앙을 일거에 타파하고 생산성은 종업원의 소속감,안정감,참여의식에 기초한 사기진작과 충성심 등 사회심리적인 인간관계론의 비례함수로 귀결되었다. 따라서 50년대 이후 경영패러다임은 비용과 효율 일변도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대한 거부와 반동으로 점철되었고 민주적이고 종업원 주권적인 경영논리를 설파한 맥그리거의 ‘XY이론’이 센세이셔널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기업의 목표도 이윤극대화 유일사상에서 탈피해 종업원 만족,소비자 만족,주주권의 보장,기업의 사회적 공헌 등 다원적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사회적 기구로서의 균형적 역할이 강조되었다.특히 70년대 이후 기업의 사회적책임에 기초한 일본식 경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자 아우치는 일본의 특수한 인간관리를 미국의 합리적 기업풍토에 맞도록 접목각색한 ‘Z이론’을 80년대의 미국기업을 위한 처방전으로 선보여 각광받았다. ○절대적 패러다임 없어 일본식 생산방식을 벤치마킹한 GM과 크라이슬러가 각각 ‘새턴’과 ‘네온’이라는 소형차 모델을 성공리에 출시했고 이에 자극을 받은 포드는 마쓰다 규슈공장에 기술진을 파견했다.그러나 90년 이후 침체일로로 빠져들어간 일본경제와 마쓰다의 적자누적으로 일본식 경영의 수입을 위해 일본에 진출한 포드는 오히려 쓰러져가는 마쓰다를 인수하고 종신고용제의 파괴와 다운사이징 등 미국식 경영을 일본에 수출하는 국제화 미션의 패러독스를 연출했다. 90년 초 IBM GE GM 등 미국의 내로라하는 대표기업들은 한결같이 10만명이상의 대량해고를 감행했다.루이스 거스너,잭 웰치 등 최고경영자들은 대량감원을 통한 경영혁신의 결과 주가를 상승시킨 공로로 수백만달러에 상당한 천문학적인 연봉과 주식옵션을 받았다.대량해고를 발표하며 이들이 흘린 눈물을 타임지는 ‘악어의 눈물’이라고 꼬집었다.악어는 먹이를 잡아먹을 때눈물을 흘리기 때문에 ‘악어의 눈물’은 곧 위선을 의미한다.한편 90년중반 미국경영자협회 조사에 따르면 대량해고를 감행한 미국 기업의 절반 이상이 실패사례로 분류되었고 대부분의 기업은 대량해고로 인한 기술개발의 단절과 기업문화의 파괴 등 소위 기업 알츠하이머(기업치매)증후군에 시달린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의 경영논리는 반전과 역전,회귀와 진보의 작용­반작용을 통해 환경과 역사의 소명을 쫓아 부단히 진화하며 적자생존적 패러다임을 끊임없이 창조하고 또 스스로 파괴해간다.테일러리즘의 기계적 본능도,글로벌리즘의 야생적 본능도 영속적 원리가 아닌 시대적 욕구를 타고 넘는 논리적 패션에 불과하다.특히 한국적 문화와 개발연대의 진화과정을 체험하지 못한 미국식 신조류에 대한 비판적 검토없는 모방과 맹신은 IMF체제 아래에서 우리기업의 성공적 구조조정을 위한 모범답안으로는 부적합할 수 밖에 없다. ○맹목적 글로벌 경계 90년 이후 미국의 호황은 미국식 경영 패러다임의 승리라기보다는 글로벌경기규칙의 룰 메이커로서의 헤게모니 장악에 기인한 바가 크다.최근 미국의 포린 어페어즈지나영국의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호황의 거품 가능성을 예리하게 지적했다.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생태계와 한국경제의 고유현실에 대한 정확한 상황분석과 이해에 따라 투자가,경영자,종업원,기업의 다원적 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한국적 경영패러다임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한국 경제의 ‘역전 드라마’나 또하나의 ‘한강의 기적’은 결코 글로벌패션의 답습을 통해 이루어질 수 없으며,더군다나 화염병이 난무하는 거리에서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화염병 시위 현행범으로 체포/불법파업땐 즉각 공권력 투입

    ◎朴 법무,공안부장회의 지시 앞으로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들고 집회 또는 시위에 참석하면 현행범으로 체포된다.불법파업에는 즉각 공권력이 투입된다. 朴相千 법무부장관은 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열린 전국 공안부장 검사회의에서 이같이 지시했다. 朴장관은 “폭력시위와 불법파업은 사회안정과 경제회생을 바라는 국민의 절박한 요구를 거부하고 IMF 체제 극복을 방해하는 행위”라면서 “모든 불법 행위에 대해 법대로 단호히 대처하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새로운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합법적인 집회와 시위는 철저하게 보장하되,폭력의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의 금지통고제를 적극 활용해 개최 자체를 미리 차단하기로 했다.
  • 댄스파티 대신 학술제·취업설명회/대학축제 건전해졌다

    ◎IMF 영향에 소비·오락성 행사 퇴장/수익금 모아 불우학생 장학기금 조성/정치색 사라져 학생운동 대변화 예고 대학가의 5월 축제문화가 바뀌고 있다. 술렁이는 모습 대신 IMF시대에 걸맞게 ‘아나바다’운동이 펼쳐지는 등 알뜰살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취업설명회와 학술제 강연회 토론회 바자회 등 얼마 전까지는 주목받지 못했던 행사가 주요 프로그램으로 등장했다. 지나치게 소비적이고 향락적이라는 지적을 받았던 대학문화가 IMF체제라는 위기상황을 맞아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6일 막을 내린 고려대 대동제에서는 이례적으로 ‘IMF 학술강연회’가 열려 IMF시대를 사는 지성인의 자세가 진지하게 논의됐다. 오는 12일부터 4일간 열리는 서울대 대동제에서는 ‘시위의 메카’였던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취업과 실직문제 등에 대한 토론장인 ‘예비실업자 한마당’이 열린다. 이화여대는 축제기간인 오는 28일 각 분야에서 일하는 모교출신 동문을 초청,워크숍과 직업설명회 등을 갖는다.학생회 자금마련을 위해 운영됐던 주점의 수익금은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쓸 예정이다. 서강대는 축제기간 동안의 수익금으로 실업자 자녀를 위한 IMF 특별장학기금을 마련키로 했다. 성신여대와 덕성여대는 캠퍼스 안에 술집을 열어 수익금 전액을 미취업 졸업자들에게 주기로 했다. 홍익대 부총학생회장 趙裕成군(27·경영학과 4년)은 “과거에는 대동제가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소비적이라는 지적이 많았으나 올해에는 대부분 대학이 교육환경 개선이나 취업대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대학측은 3천만∼5천만원의 축제비용을 총학생회에 지원했으나 이번에는 지원금이 전혀 없거나 대폭 줄었다.따라서 행사 자체도 간소해질 수밖에 없다. 다음 주에 본격화되는 축제기간동안 연세대 서강대 이화여대 한양대 경희대 동국대 등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린다.북한동포돕기 행사도 펼쳐지며 취업설명회를 구상중인 대학도 상당수에 이른다. 특히 연세대는 축제기간 동안 ‘음식쓰레기 줄이기 및 1회용품 줄이기 운동’도 펼칠 예정이다.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을 위한 잔치도열린다. 중앙대 洪元杓 학생처장은 “대학축제가 향락에서 벗어나 내실있게 짜여지면서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면서 “이런 행사라면 학교도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오락성 프로그램은 크게 줄어 연예인 초청행사는 대부분 대학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지난 해까지만 해도 각 대학 총학생회는 유명 가수·개그맨을 2백만∼5백만원 가량 주고 경쟁적으로 초빙했었다. 지난 해 5월 15개 대학에서 열렸던 패션쇼도 사라진다.맥주회사들의 지원으로 축제 때마다 열렸던 맥주시음회,댄스 페스티발도 마찬가지다. 한 의류회사 관계자는 “대학생들의 구매력이 높아 대학축제가 집중적인 마케팅 대상이 됐던 것은 사실”이라며 “올해는 캠퍼스 분위기가 바뀌어 이같은 행사를 열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 대학축제의 또 다른 특징은 화염병 멀리던지기 대회 등 정치색을 띤 게임이나 집회가 사라진 점이다. 경찰은 대학가의 분위기가 바뀌면서 학생운동에도 큰 변화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한총련 대학생들이 대거참가한 지난 1일의 노동절 과격시위에 대한 평가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다.정치·이념적 성격의 집회나 시위에는 관심도 없고 아예 외면하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상당수 대학 총학생회가 이미 한총련을 탈퇴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차가운 시선은 한총련을 더욱 위축시킬 것으로 공안당국은 전망하고 있다.
  • 咸寧殿 화재(秘錄 南柯夢:9)

    ◎“섣달 그믐 궁내 火變” 정환덕 御前예언 적중/한달전 아뢴내용 맞아떨어지자 高宗이 1주일뒤 至密로 불러 “정해진 운수 알았나,우연인가.나라·황실 지탱할 방안도 아는가” 민선시대의 정치인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선거의 결과가 궁금하다.그래서 과거 3공시대에는 세검정의 점쟁이 집에 정계의 거물들이 몰려들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점쟁이 가운데는 1천금의 복채를 놓아야 보아준다는 대무(大巫)가 있고,단 몇푼으로 쉽게 점쳐주는 소무(小巫)들이 있다.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장래에 대한 불안이 심하고 그럴수록 대무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20세기의 문이 열리던 1900년처럼 불안한 때도 없었다.그래서 그런지 고종은 적지 않은 대무들을 궁궐안에 들여 몰래 점을 쳤다.고종에게 불려갔던 대무는 한둘이 아니었는데,그중의 하나가 충주 사는 성강호(成康鎬)였다.성강호가 돌아가신 명성황후의 귀신을 불러들일 수 있다 하여 고종이 끌어들인 것이다. ○高宗,몰래 무당 불러 점쳐 어전에 불려나온 성강호는 갑자기 앉아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땅에 내려앉았다.그런 다음 “지금 죽은 명성황후의 혼령이 이 의자에 와 앉으셨습니다”라고 하니 고종은 의자를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다.성강호는 한술 더 떠서 “그렇게 요란을 떠시면 귀신이 놀라 떠나버리실 것입니다.조용히 하십시요”라고 했다.그래서 고종은 울지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다는 것이다.강원도 통천(通川)에 사는 또 하나의 사기꾼 김원동(金元同)이란 자는 요술병 하나를 갖고 서울에 왔다.그리고는 고종에게 불려가서 어린 영친왕(엄비의 소생)의 병이 언제 나을 것인가를 정확히 알아맞히었다.그래서 고종의총애를 받았다가 강원도 금화(金化)군수로 발령받고 앞의 성강호도 벼슬이협판(協判·차관급)에 이르렀다고 하니 대한제국의 인사행정이 얼마나 엉터리였는가를 알 수 있다. 정환덕은 정통 역술가로서 성강호나 김원동 같은 사기꾼과는 달랐다.그래서 조선왕조의 운명을 알아맞혔을 뿐 아니라 덕수궁 함녕전에 불이 난다는것도 알아맞혀 고종을 놀라게 했다. “11월 28일 하오 3시 금마문(金馬門=함녕전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 밖에서 등대(等待=대령)하고 있었는데,성상께서 옥체가 편안하지 않으시다 하여 물러났다.이튿날 궁내부에서 입궐하라는 어명이 계시다 하여 즉시 입대(入對)하였는데 물러나오면서 아뢰기를 ‘근자에 궁안에 불이 날 화변(火變)의 염려가 있사오니 각별히 조심하셔서 예방하셔야 될 줄로 압니다’고 하였다.성상께서는 깜짝 놀라는 빛을 지으면서 ‘어느날 어느 시각에 불이 날 것같은가’고 물으셨다.‘다음달 12월에 일어날 것입니다’고 하자 다시 ‘12월 며칠인가’고 하셨다.‘그믐쯤에 날 것입니다’고 아뢰자 ‘그러면 어느 방위에서 일어날것인가’하고 또 물으셨다.‘함녕전 바로 남문(南門)입니다’고하자‘이 불이 정전까지 침범하겠는가’ 재차 물으셨다.대답하기를 ‘거의 침범할 것입니다.그러나 군졸로 하여금 잘 지키게 하시면 불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압니다’고하자 이번엔 ‘어떻게 하면 잘 지킬 수 있는가’고 물으셨다.‘군졸 수 백명으로 하여금 매일밤 궁중과 궁 밖을 돌게 하여 근처의 인가를 조심시키시면 됩니다’하고 아뢰었다.” 도대체 국왕이라는 사람이 이토록 낯낯이 역술가에게 묻고 일을 처리하였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겠는데,아무튼 정환덕의 예언은 적중하여 이해 12월 그믐날에 덕수궁 가까운 민가에서 불이 나고 말았다.불은 청국인이 경영하던 석물공장에서 일어나 수십채로 옮겨붙었다. “12월 그믐날이 되자 검은 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싸락눈까지 부슬부슬 내렸다.하늘과 땅이 어두컴컴하여 마치 암흑 속에 있는 것 같았다.초저녁이 지난 후에 갑자기 한바탕 광풍이 불더니 나무가 부러지고 집이 쓰러졌다.얼마후 함녕전의 정문 밖 청국인이 경영하는 석물공장에서 불이 나 수십채에 연소하더니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함녕전 정문을 범하였다.성 안팎의 백성들이 힘을 다하여 불길을 잡으려 했으나 날씨는 춥고 바람이 매서워 진화할수가 없었다.화염은 점점 정전(正殿)으로 육박하였다.이때 진고개(泥峴·충무로 입구)의 일본 소방대가 달려와서 소방기계 수십대로 근근이 불을 꺼 함녕전은 우뚝하게 홀로 남았다.불행중 다행이었다.” 정환덕이 한달 전 함녕전에 불이 날 것이라 예언한바 있었는데 고종은 까맣게 이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앞날 미리 맞히는 귀신” “이날 밤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와서 함녕전의 안전을 축하하였고,머리털이 그을리고 이마에 화상을 입은 군졸이 셀 수 없이 많았다.이 때를 당하여 전화과장 이규찬이 엎드려 ‘정환덕이 앞날을 미리 알아맞히는 것은 귀신과 같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고 아뢰었다.상께서 ‘정환덕이 누군가’ 말씀하시자 이규찬은 ‘지난 11월 29일 현릉참봉에 임명하신 그 정환덕입니다.당시 12월 그믐날 반드시 화변이 있을 것이라 아뢴 일이 있는데 폐하께서 잊어버리셨습니까’하고 옛일을 떠올렸다.상께서 다시 ‘짐(朕)이 근래에 골치아픈 일이 많다 보니 벌써 잊어버렸다.그러나 이 사람은 어찌해서 들어와 나를대하지 않는가’ 하심에 ‘소명이 없으셔서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고 아뢰었다.” 신하가 입궐하여 임금을 만나뵙고 자문에 응하는 것을 입대(入對)라 했다.임금의 부르심을 받고 입대하는 것을 소대(召對),문무관이 차례로 입대하는것을 윤대(輪對),중신이나 대신이단독 입대하는 것을 독대(獨對)라 했다.요즘 김대통령은 아무하고도 독대하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원래 독대란 이처럼 궁궐에서 쓰던 말이다. “이규찬이 와서 정월 초이렛날 입대하라는 명을 전하는지라 이날 함께 대궐에 나아가 함녕전 뒤뜰에서 대령하였다.이윽고 내시 강석호가 칙령을 받들고 나와 급히 대령하라 하여 따라 들어가니 이곳이 곧 함녕전의 지밀(至密)인 침소였다.지밀은 상감 3부자께서 취침하시는 방이다.엄비 이외에는 비록상궁과 나인이라도 마음대로 무상 출입할 수 없기 때문에 ‘지밀’이라고 한다.이날은 눈이 한시간동안 내려 장안천지가 배꽃이 만발한 듯한 이화세계(梨花世界)로 변하였다.이윽고 황상폐하가 서쪽 온돌방에서 용상(龍床)으로 내려와 좌정하신 뒤 ‘너는 앞날을 아는 똑똑함이 있으니 그 계산에 정한 수가 있어서 그런가.아니면 우연히 맞아서 그런것인가.만약 정한 수가 있다면 오늘날 천시(天時)가 불리하고 이웃나라와의 외교도 잘 안되고 사람들이 모두 종묘사직의 안위와 나라의 존망을 알지 못하고 있다.임금이 된나도 아득하게 알지 못하고 앉아있으니,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그 방안을 물어보고 싶다’고 하교하셨다.엎드려 아뢰기를 ‘무릇 수는 성의(誠意)에서 나오는 것입니다.천하만사가 한갓‘성(誠)’이라는 한 글자 뿐입니다.그래서 이르기를 ‘성심이면 금석도 뚫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조용히 시변(時變)을 살피시고 천심(天心)을 추측하시면 국운이 장차 밝은 태양처럼 될 것이니,소신의 구구한 좁은 견해는 반드시 준거하여 믿으실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간절히 말씀드립니다’라고 하였다.”
  • 실험소재 인터넷 市場/이대실 생명공학硏 유전체사업단장(굄돌)

    소금은 식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전문연구와 산업현장에서도 널리 사용된다.소금이 주는 산업소재를 보자.비누의 재료인 가성소다,원자력발전소의 냉각매체인 금속소디움,수도물 정화에 쓰는 염소가스,표백제인 과산화염화소다,그리고 염산 등이 있다.또한 적외선을 통과하는 초순도 소금은 적외선 분광기의 분석소재로 사용한다.그런데 국내 소금의 질이 낮아 대학과 병원 등 모든 전문연구기관에서는 수입소금을 쓴다.단순히 소금의 경우이지만 다른 수많은 실험소재도 마찬가지다.우리 과학계의 역사가 짧고 그 하부구조가 열악한 탓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IMF시대에 접어들어 모든 실험소재의 가격이 폭등하였고,수급에 차질이 생겼다.사실상 국가연구개발사업과 첨단과학산업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국가비상시 전략적인 필수소재를 자체생산할 능력이 없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타개책의 하나는 국내 전문과학인이 연구과정에서 손쉽게 만들어 쓰는 실험소재를 하나씩 모아놓고 거래하는 소재시장의 개설이다.그러나 기존형태의 시장으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다행히 최근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그 문제가 간단히 해결되었다.이러한 생각으로 생명과학연구소는 ‘실험소재의 인터넷시장’(http://www.kribb.re.kr)을 개설하였다.전문과학인들이 실험소재를 하나씩 인터넷시장에 등록하여 국내 공급이 가능한 실험소재를 집대성하고 상호 구입하자는 취지다.국가경제도 돕고 연구활성화를 꾀할 수 있어서 좋다.부차적으로 국가 소재생산능력의 파악은 정책수립에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성공여부는 전적으로 전문과학인들의 참여에 달려 있다.더 나아가 추가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한다면 의료제제와 첨단소재산업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책적 유인책도 고려해 볼 만하다.그에 따른 새로운 고용창출은 또 다른개념의 ‘뉴딜정책’이라 할 수 있다.
  • 에어프랑스機 추락 53명 사망/콜롬비아 보고타 동부지역서

    【보고타 AFP AP 연합】 승객과 승무원 등 53명이 탑승한 보잉 727 여객기가 20일 하오 4시47분(현지시간)께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동부 산악지역에 추락,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과 목격자들이 밝혔다. 에어 프랑스가 에콰도르의 타메(TAME)항공사로부터 임대한 에어프랑스 422편은 이날 보고타의 엘도라도공항을 이륙한 뒤 17분 만에 안개가 뒤덮인 산악지역에 추락,화염에 휩싸였다고 공항관계자와 목격자들은 전했다. 사고 여객기는 승객 43명과 승무원 10명 등 모두 53명을 태우고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로 향하던 중이었다고 키토 소재 타메 항공사의 파트리시오 사발라 부사장은 밝혔다. 사고현장에는 시신,항공기 파편 등이 사고 현장에서 직경 1㎞ 정도의 넓이까지 흩어져 있으며 추락 항공기는 동체가 3개의 큰 조각으로 나뉘어지는 등 파괴 정도가 심해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에어 프랑스 소속의 여객기로 보고타에 도착해 키토로가는 문제의 항공편으로 갈아탔으며 콜롬비아인 2명,온두라스인 1명,스위스인 1명 등 4명은 보고타에서 이 비행기를 탔다고 엘도라도 공항 책임자인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가 밝혔다.승무원들은 모두 에콰도르인들이다.
  • 경주 나원리 석탑 발견/통일신라 유물 공개

    지난 96년 경북 경주시 나원리 오층석탑(국보 제39호)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 등 8세기중엽 통일신라시대 유물들이 2년간의 보존처리를 거쳐 27일 모습을 드러냈다.국립문화재연구소가 당시 석탑 해체과정에서 발견된 유물중 이날 공개한 유물은 높이 4㎝ 크기의 금동제 불상을 비롯해 금동사리함·금동 작은탑 4점·목제 사리공(舍利孔) 뚜껑과 작은탑 1점.작지만 원형이 잘 살아난 금동 불상은 발견 당시 순금제로 알려졌으나 보존처리결과 두광(頭光)에 화염무늬가 새겨진 금동제로 밝혀졌다.
  • 임오군란/풍악 탐닉 왕비… 배곯은 오영군 궐기(비록 남가몽:3)

    ◎배우­기생들 매일 궁중에 불러 가무/하늘도 노하여 가뭄에 화적떼 들끓어/백성들은 곤궁하고 국고는 탕진되니/녹봉 밀린 5천여 구식군은 마침내… 고종과 대원군,그리고 민비(뒤의 명성황후).이 세 사람은 우리나라 근대사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인물들이다. 한국 근대사의 주제는 망국이다.아무리 그 과정이 좋았다 하더라도결과가 망국이었다면 그 역사는 망국사가 되는 것이다.따라서 이 세인물이 얼마나 나라 망치는데 기여하였느냐 하는 혹독한 역사의 책임문제가 당연히 뒤따르게 된다.뒤에서 자세히 언급하게 되겠지만 역사의 책임이란 것은 한 두 사람이 질 문제가 아니다.그렇다고 당대의 모든 국민이 질 문제도 아니다.따라서 특정 다수인이 책임자로 비판받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이다. 민비는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자신의 처가 쪽에서 조심스럽게 며느리감으로 고른 규수였으나 불과 7년만에 이 규수에게 시아버지가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으니 두고 두고 후세의 교훈이 되고 있다. ○16세때 왕비 간택돼 입궐 민비는 고종보다 한 살 연상인 1851년생이다.나이는 비록 한 살 위였지만 그 머리와 책략은 10년쯤 위였다.민비의 외모에 대해서는 미인이다,아니다 하는 양론이 있지만 아직 확인할 길은 없다.민비가 왕비로 간택되어 입궐한 것이 1866년 나이 16세때 일이었는데,원자를 낳는데 무려 8년이나 걸렸다.1874년에 가서 겨우 순종을 낳았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그때 빈궁 이씨가 먼저 낳은 왕자가 이미 일곱살이나 되었으니 민비로서는 얼마나 조마조마하였는지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러나 민비에게 있어 원자의 탄생보다 더한 일은 1874년(갑술) 거의 때를 같이하여 대원군을 대궐에서 몰아낸 일이었다.권불십년이라 했듯이 흥선대원군은 집권한지 꼭 10년만에 하야했고 그 뒤에는 민비가 대원군을 대신하여 근대사의 가장 중요한 20년간의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민비에 대해서는 허다한 일화가 남아 있으나 풍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남가몽’ 이외에 그리 많지 않다.요즘말로 민비는 노래방을 좋아했던 것이다. “상감(고종)이 갑자년(1864)에 즉위한 뒤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까지 19년동안곤궁(민비)은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하시어 배우들을 궁중에 데려다가 노래 부르게 하고 기생들로 하여금 묘기를 부리게 하기를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그러니 그 상으로 하사한 금품이 수를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이 때문에 백성은 극도로 곤궁해지고 국고는 탕진되어 바닥이 드러났다.그러나 배우들은 배가 불러 죽을 지경이었고 군인들은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다.궁중에서는 비록 태평세월이라 할 수 있었겠으나 민간은 만신창이가 된 빈사의 세상이었다.이 때를 당하여 ‘하늘의 경고(천경)’가 여러번 나타나고 인심이 흩어졌으니 무슨 변란인들 일어나지 않았겠는가.” 임오군란이 일어난 1882년에는 몹시 가물어 논의 벼가 말라죽고 고을마다 화적떼가 들끓었다.그래서 이것을 천경,즉 하늘의 경고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하루는 고삐 풀린 말이 궁궐 안에 뛰어드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하필이면 이런 때 섣부른 군제개혁을 단행하여 신식군대를 창설하고,구식군대는 5영에서 2영으로 감축하였으니 정리해고당한 구식군대는 실업자 신세가 되었다.더욱이 봉급을 여덟달치나 지급하지 않았으니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그것도 모르고 민비는 배우와 가수들을 궁중에 불러들여 연일 풍악을 즐기고 있었다. ○고삐 풀린 말이 궁궐로 “한 마리 개가 짖으면 두 마리 개가 따라 짖는 법이고 일시에 짖어대면 천백마리가 떼를 지어 짖어대는 법이다.한 사람의 군졸이 주동하여 일어나면 두 사람의 군졸이 제창하여 일어나고 일시에 제창하고 일어나면 5천명의 군졸이 호응하여 일어나게 된다.원래 5영의 군인수는 5천772명이었다.이와 같은 다수의 군중이 들고 일어나면 누가 감히 막을 수 있겠는가.군료를 여러달 지급받지 못한 군사들의 분통과 원망이 쌓여 동심동력으로 일시에 들고 일어나니 고함지르는 소리와 하나로 합친 형세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과 같고 비가 거꾸로 쏟아 퍼부어지는 듯했으며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는 것과도 같았다.” 민비가 음악을 좋아했다는 기록은 ‘매천야록’에도 약간 언급되어 나오니 사실인 것 같고 군인들이 궁궐을 향해 돌진하면서 곤궁을 내놓으라고 소리질렀으니 임오군란의 책임 소재가 민비와 민씨 일족에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그러니 임오군란이 일어난 원인중의 하나로 민비의 유흥 취미를 들지 않을 수 없다. “병사들이 먼저 선혜청에 들어가 불을 지르니 이때 선혜청의 당상관인 김보현은 당번을 서다가 변을 당했다.탄환이 비오듯 쏟아져서 불길이 하늘을 찌르는데,가련한 김보현은 별안간 이 급작스런 난을 당하여 달아날 곳을 알지 못하고 동분서주,정신을 잃더니 마침내 화염 속에서 타죽었다.아! 슬프도다.어찌 일찍이 기미를 알아차려 퇴청하지 않았는가.이 또한 그칠 곳을 알지 못하여 최선을 다하다가 그런 것이라 하겠다.병사들은 또한 성 안과 밖을 막론하고 권세있는 집이라면 누구할 것 없이 불지르고 총을 쏘았다.그러면서 궁궐 안을 향해 달려들었으니 천지가 솥끓듯 하고 강산이 우뢰소리로 진동하였다.” ○8척 장신 등에 업혀 탈출 사실 김보현의 죽음은 이보다 더 비참하였다.김보현이 병사에게 잡혀 계단 아래 넘어졌을 때,병사들이 창으로 김보현의 입을 찔렀다.그러자 김보현은 이를악물고 창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병사는 당초 죽일 생각이 없었으므로 창을 빼려 했는데 김보현이 끝까지 창끝을 문채 놓아주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찔러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에 곤궁께서는 크게 놀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어찌해야 할지 알지를 못했다.드디어 옷을 갈아입고 대궐을 빠져나와 어두컴컴한 마을로 달아났다.나라의 운명이 어지러워 어찌할 수 없는 이 때에 어디선지 8척 장신의 사나이가 홀연 나타나더니 땅에 엎드려 말하기를 ‘위험이 눈앞에 닥쳐왔사오니 황송하오나 빨리 저의 등에 업히소서’ 하고 두번 세번 독촉하였다.경황이 없는지라 누구인지도 모르고 곤궁이 사나이의 등에 업혀 수구문 밖으로 나갔다.이때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었다.가까스로 가마 한 대를 불러와서 타고 숭례문을 빠져나가 곧바로 남태령 고개를 향해 한강가로 나갔다.” 이 사건은 민비가 첫번째 당하는 변란이었고 그 뒤 10여년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야 했다.
  • 수마일 밖서도 거대한 불기둥 보여/대만기 참사 이모저모

    ◎부기장 “짙은 안개… 재착륙 시도” 교신후 두절/유일한 생존자 10세 소년 병원 후송뒤 곧 숨져 【타이베이 외신 종합】 ○…사고가 난 장개석 국제공항 부근에는 사고기가 충돌한 흔적이 있는듯 몇 채의 가옥 건물에 큰 피해가 있었으며 불길이 거세게 일고 있어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연출. 소방차량과 인명구조대 등이 뒤엉킨 현장에는 안개가 낀 어둠속에 붉은 불길과 시커먼 연기만이 수마일 밖에서도 보일 정도. ○…사고를 목격한 주민들은 사고기가 인근 주택과 충돌한 뒤 큰 화염에 휩싸였다고 말했는데 현장에 불길에 싸인 비행기의 잔해는 형채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또한 사고기의 주요부분들은 공항 활주로에까지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사고기가 충돌직후 큰 폭발이 있었음을 대변. ○…공항당국자인 슈 코우치엔씨는 “짙은 안개로 1차 착륙에 실패한 676편의 부기장은 2차 착륙을 시도하겠다고 말한뒤 연락이 두절됐다”고 밝혀 이날 사고가 안개에 의한 시계불량이 원인이었음을 간접적으로 증명. ○…사고기에는 타이완 중앙은행 총재 셰우 얀동씨와 고위은행간부들이 탑승했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그들은 발리에서 열린 중앙은행 회의에 참석했다 변을 당했다고. 사고 사망자 가운데 10세의 소년은 한때 유일한 생존자로 알려졌으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곧바로 숨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그러나 이 소년은 사고기 탑승자인지 혹은 사고를 당한 인근주택에 머물던 아이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 군헬기 주택가 추락/훈련비행중… 1명 사망/서울 신길동

    21일 하오 2시5분쯤 서울 영등포구 신길6동 37의 41 청소년독서실 4층건물 옥상에 훈련비행 중이던 육군항공사령부 502대대 소속500­MD헬기가 추락,부조종사 임삼영 준위(36)가 현장에서 숨지고 조종사 임승효 준위(36)가 중상을 입었다. 헬기는 옥상에 떨어지면서 화염에 휩싸였으나 건물에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사고 당시 독서실 건물 안에는 학생 20여명이 공부하고 있었으나 밖으로 무사히 대피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사고 헬기는 비행 도중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가면서 추락했다.꼬리 부분은 2층 단독주택의 옥상에 떨어졌다. 사고 헬기는 이날 하오 1시47분쯤 항공사령부를 출발,난지도 쪽으로 훈련비행 중이었다. 사고 순간을 목격한 손경식씨(54)는 “5백m 상공에서 헬기의 꼬리부분이 떨어져 나간 뒤 헬기가 한동안 빙글빙글 돌더니 독서실 건물 옥상으로 떨어졌다”면서 “사고 직후 쾅하는 폭발음이 들리더니 화염이 치솟았다”고 말했다.
  • 도쿄증시 권총 인질극/대장상 면담요청 40대 남 6시간 난동

    【도쿄 연합】 우익단원을 자처하는 40대 남자가 13일 도쿄증권거래소 건물에 권총을 들고 침입,대장성 부감리관 1명을 인질로 잡고 6시간 동안 인질극을벌 인뒤 하오 6시30분쯤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자는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과의 면담및 하오 증권거래 중단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인질로 잡혔던 아베 마사히로 대장성부감리관은 무사히 구출됐다. 또 인질 소동에도 불구하고 이날 증권거래는 예정대로 이뤄졌다. 경찰 조사결과 범인은 85년 미군주택건설에 반대,요코하마 방위시설국에 화염병을 던졌다가 체포된 바 있는 우익단원으로 최근에는 “금융 빅뱅으로 미국에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있다”며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력히 비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 서강대 이상일 총장 자서전적 수필집 펴내

    ◎‘째째하게 얽매이지 않고/캐주얼하게 살고 싶다’/사제­대학총장시설 경험/크고 작은 일화들 가감없이 소개/10년 공부에도 박사 못된 사연 등/솔직한 인간적 고백 담아 “정치가를 지망했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우연히 ‘2000년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한 목사의 말에 속아 넘어가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서강대 이상일 총장(50)이 최근 자서전 성격의 수필집 ‘째째하게 얽매이지 않고 캐주얼하게 살고 싶다’를 펴냈다. 첫번째 수필집인 이 책에는 카톨릭 사제시절과 대학총장 시절에 겪은 크고 작은 일화들이 가감없이 소개돼 있다.대단한 지위에도 아랑곳없이 항상 헐렁한 운동복에 운동모를 눌러 쓰고 학교에 나와 학생들로부터 ‘캐주얼 총장’소리를 듣는 예의 이총장 답다. 올해 초 교직원 연수를 가던 날 ‘인류 화합에 고스톱만큼 좋은 것이 없다’며 1인당 30만원씩 1억1천1백만원을 판돈으로 흔쾌히 내놓은 이야기,교사시절 불량서클 학생들과 어울려 술집에 다닌 추억,성서학을 10년이나 공부했지만 박사과정 논문에 귀신이 붙어 박사과정을마치지도 못하고 뜻하지 않게 총장이 된 사연,총학생회 간부를 불러 놓고 화염병을 서강인답게 세련되게 던지려면 데모연습을 하라고 충고했던 이야기… 이 책에는 이총장의 솔직하고 인간적인 고백이 가득 담겨 있다. 국문과 성현경 교수는 “그는 구속을 싫어하고 자유를 좋아하며,고독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대화하기를 더 좋아하며,예복과 정장차림보다는 캐주얼복 차림을 더 즐기며,째째한 것을 싫어한다”면서 “이 책을 통해그의 강한 개성과 독특한 체취 및 강렬한 향기를 흠뻑 맡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지난 1월9일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올해를 ‘서강 르네상스 원년’으로 선포,세계로 뻗어 나가는 대학을 만들기 위해 서해안 캠퍼스를 추진하는 등 ‘비즈니스 총장’을 자처하면서 열심히 뛰고 있다.
  • ‘사막의 오아시스’ 고도 투루판(중앙아시아를 가다:4)

    ◎지하수로 5천㎞… 중 3대토목 대역사/관정 1천여개… 포도밭 등 드넓은 농경지가 중국인들은 이런 말을 한다.“신강성을 가보지 않고 중국이 얼마나 넓은지 말하지 말라”고….이 말을 “투루판을 가보지 않고 신강성을 말하지 말라”고 바꾸고 싶다.한자로 토로번이라 표기하는 중국 신강성 투루판은 그렇듯 경이로운 지역이었다. 투루판까지는 돈황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정거장 유원에서 열차를 타고 밤을 새워 꼬박 11시간을 달렸다.투루판에 내렸을때 대지는 온통 불덩어리였다.사방으로 눈을 돌려도 사막만이 펼쳐지기는 했으나 그 사막 가운데로 풍성한 농경지가 들어앉았다.섭씨 45도의 고온에 이글거리는 사막과는 달리 싱그럽다. ○인근엔 75도 화염산이 투루판은 도시가 이국적이거니와 사람들도 그랬다.투루판사람들,다시 말하면 위구르족은 동양인 골상과 사뭇 다르다.그들이 입은 옷과 살아가는 건물에서 발산하는 강렬한 색깔로 해서 동화의 나라에 온 착각이 든다.어린아이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면,마치 꼬마모델이나 되는 것처럼 척척 포즈를 취했다.미국이나 유럽에서도 그런 투루판 아이들처럼 마음을 활짝 열고 나오는 태도를 본 적이 없다. 근교에는 손오공의 이야기에 나오는 화염산이 있다.해가 뜨면 75도라니 과연 화염산이다.극한적 자연조건속에 풍취 어린 문화가 숨쉬는 투루판은 타클라마칸사막에서 보면 동쪽이다.그리고 고비사막의 서쪽이니까 오아시스 도시이기도 한 투루판은 비단길의 주통로였다.천산북로의 주요 거점으로,동서문화교류의 징검다리 구실을 해온 역사도시인 것이다.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 사람들이 다 그렇지만,투루판 사람들도 눈 녹은 물을 마시고 산다.천산의 만년설이 녹아내려 생긴 물이다.그 천산의 물은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이른바 감아정이라는 수직 물구멍을 30m간격으로 파고나서 이를 지하수로와 연결시켜 끌어왔다.물구멍만 1천개가 넘고 지하수로의 길이는 5천㎞에 이른다고 한다.실로 놀라운 대역사의 고대 토목공사 현장이 투루판에 있다.이 엄청난 지하수로 건설공사는 한무제가 서역을 경영하면서 시작되었다.만리장성 및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3대 토목공사의 하나가 투루판 지하수로다.한해 강수량은 고작 16㎜인데 비해 증발량은 300㎜나 되는 건조한 열사에서 물 한방울은 바로 생명수였다.그 생명의 젖줄 지하수로는 지금까지 2천년동안 사막속의 경작지에 습기를 불어넣고 사람들 목을 축여주었다. ○실크로드의 주루트 역할 예부터 투루판은 포도의 도시다.포도는 본래 메소포타미아가 원산지였으나 차츰 이웃으로 번져 먼저 그리스로 들어갔다.그리고 동으로 인도와 타클라마칸을 거쳐 투루판으로 확대되었다.중국의 포도는 물론 투루판에서 전파된 것이다.투루판의 포도주는 일찍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당나라 시인 왕한(678∼726년)은 야광채 백옥잔에 부어 마시는 서역 포도주를 이렇게 노래했다.‘야광배에 가득한 맛있는 포도주/마시려하니 마상의 비파소리 흥취를 더하네/취하여 사막에 두어버려도 그대 비웃지 마오/고래로 전쟁에서 돌아온 이 몇 사람이오’서역정벌에 나섰다가 포도주에 흠뻑 취한 중국인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오늘도 여기저기 널린 포도구가 투루판 여행객을 유혹한다.양고기 꼬치구이 샤슬릭과 위구르족의 빵인 낭을 굽는 드넓은 포도밭 유원지를 찾으면 투루판 포도주가 반드시 식탁에 올랐다.그리고 천산의 찬물,뜨거운 햇볕에 달게 익은 수박과 하미,참외가 따라 나왔다.거기에 동화속 요정처럼 아름다운 무희의 춤과 전통음악을 곁들이면 오아시스에는 늘 낭만이 넘친다. 고대로부터 비단길 국제무역으로 상술을 다진 탓일까.투루판 사람들은 관광객을 놓칠 리가 없다.포도구에서 전통기념품을 파는 것은 상식이고 별의별 것을 다 내놓았다.그리고 씨가 없다는 백포도에서부터 100가지가 넘는 포도가 좌판에 즐비했다.‘투루판의 포도가 익었네/아나이칸의 마음도 벌써 취했다네…’그 노래가 들릴 듯한 포도구의 풍경은 한껏 풍요롭다. 그 유명한 고창고성은 투루판에서 50㎞ 떨어진 사막에 있다.2백만㎡에 이른다는 폐허의 고성은 뜨거운 태양을 머리에 인 채 고창왕조의 영화를 잃어버린지 오래다.한 도시이자 성채인 고창성은 9세기 중엽 투루판 위구르국 고창왕조가 세운 도읍지였다.그 무렵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일어났다.천하를 수습하러 나선 북송은 신흥 티베트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위구르국을 재빨리 끌어안았다.이를테면 북송으로부터 왕권을 승인받은 고창왕조는 정치세력을 급속히 확대했다. 이 왕조는 정치역량뿐 아니라 문화적 주체기반도 차근차근 다져 나갔다.비단길 교역의 매개자로 마니케이즘과 네스토리우스 기독교파가 중앙아시아에서 활동하는데도 도움을 주면서 이슬람을 받아들였다.이와 함께 불교를 수용하여 토착문화와 융화시켰다. ○포도주 명산지로 유명 그렇듯 다양한 문화를 수용하는 과정에 언어는 터어로 통일했다.이는 다양한 주민을 터키화하는데 성공한 요인이 되었다.고창왕조는 결국 위구르족문화의 주체성을 확립했던 것이다. 투루판 위구르족은 13세기 징기스칸 정복하에서도 오히려 몽골제국 건설에 힘을 실어주었다.그들은 ‘박시’라는 서사계급과 문자체계를 몽골제국에 제공했다.그래서 몽골제국은 급기야 행정체계를 세우고 몽골문자를 만들었다.그럼에도 위구르족은 15세기부터 이슬람화하면서 자신들의 문자와 불교를 잃어버렸다.이유는 문화주체의식이 위구르족 마음속을 떠난데 있다.지금은 스스로를 위구르인이 아닌 투루판 사람이라고 부른다.그들은 역사의 온갖 애환을 포도밭에 묻어두었는지 모른다.
  • 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에/일 우익 화염병 투척 시도

    독도 접안시설 완공에 항의하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이 7일 새벽 오사카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화염병을 투척하려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화염병 투척 미수범은 우익단체 ‘황국헌정당’소속 구로다 쥰이치(흑전순일·27)로 이날 상오 4시45분쯤 총영사관에서 50m 떨어진 거리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이다 손을 데 병을 땅에 떨어뜨린 뒤 총영사관 경비 경찰에 체포됐다.
  • 송유관 절단작업도중 관내 잔류가스에 인화/울산유조선 폭발사고

    울산 현대 미포조선(대표 이정일)선박 가스폭발사고를 수사중인 울산해양경찰서는 28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노동부 한국가스안정공사 직원 등과 합동으로 사고선박에 대한 현장감식을 실시했다. 또 사고당시 작업 근로자들로부터 첫 폭발이 5번 탱크 위 원유이송관 절단작업중 불똥이 이송관안에 남아있던 잔류가스에 옮겨 붙어 일어났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첫 폭발뒤 화염이 각 탱크 이송관을 타고 이동하면서 연쇄 폭발,이때 발생한 유독가스가 관을 타고 탱크안으로 흘러들어가 근로자들이 질식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 한국화약 재료창고에 불/충북 보은/인명피해는 없어

    ◎건물 2채 태우고 45분만에 짐화 8일 하오10시25분쯤 충북 보은군 내북면 염둔리 (주)한국화약의 화약재료 저장창고에서 불이나 건물 2채를 태운뒤 45분만에 진화됐다. 이 불로 창고에 저장하고 있던 화약재료가 폭발하면서 건물 2채가 화염에 휩싸였으며 건물내에 보관중이던 화약재료가 불에 타 수천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다.이 시간 현재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이 나자 보은소방서 소방차 2백여대가 출동,진화에 나섰으나 화약재료가 폭발하면서 나온 유독가스로 접근을 못해 불길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은 불이 건물내에 있는 불량전기선으로 인한 누전으로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 모스크바 크렘린(세계 문화유산 순례:45)

    ◎탑·성곽·성당 어우러진 ‘종합건축의 완성품’/이반3세,512년전 통일러시아 과시위해 건립/탑높이 20∼95m… 나폴레옹 침입땐 진군나팔 크렘린을 어디서부터 얘기할 것인가.무척 힘든 일이다.고딕양식인 20개의 크고 작은 탑,바로코와 로코코양식을 대표하는 4개의 대성당,1천45개의 총안을 가진 둘레 2천235m의 성벽 등 모두가 값진 보물이다.모스크바 강 건너편에는 고성의 탑들이,붉은광장에는 아름다운 성벽들이,성벽사이로는 금장의 돔들이 여기 저기 솟아올라 저마다 색다른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크렘린의 유적군을 굳이 분류한다면 탑,성곽,성당건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이 가운데 크렘린다운 상징건조물은 진홍빛의 크고 작은 탑과 노란 성곽이다.탑들은 15세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 마르코 루포와 알레비오소 프리아지네 등이 설계했다.단순히 외장의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전투용,평시용등 그 쓰임새가 다양한 건조물이다.관광객들이 입장권을 끊고 나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쿠타퍄 탑이다.그리고 총안무늬의 다리를 지난 다음 트로이츠카야 탑에 다다른다.모두 5개이상 전투용 총구를 가진 이들 탑 지하2층에는 크렘린방어용 탄약을 비축하도록 설계됐다.16∼17세기에는 러시아 다른 지역의 탑들과 마찬가지로 죄수를 가두는 감옥역할도 해냈다.이들 탑 맞은편 스파스카야 탑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들을 맞는 개선문으로도 사용됐다.19세기 초 나폴레옹 군이 진입할 때 진군 나팔소리를 울렸던 곳도 여기다.높이가 20∼95m까지 다양한 이들 탑을 지을 당시 용도는 전투용의 감시초소였다. ○성벽둘레 2,235m 1937년 스탈린시대 크렘린은 사치가 대단했다.건축물에 박힌 루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큰 루비가 크렘린안의 5개 탑 꼭대기에 설치됐기 때문이다.대형 별 모양의 이 보석은 당대 러시아 최고의 건축설계사인 표드르 페도로브스키가 제작한 것이다.가장 큰 루비별은 니콜스카야와 스파스카야 탑 꼭대기에 설치됐다.직경이 3·75m,무게는 1·5t이 넘는다.이처럼 엄청난 무게의 붉은 별보석은 바람이 부는대로 돌도록 설계됐다. 크렘린 성곽에는 노란빛이 감돌았다.원래 크렘린의 벽은 갈참나무였으나 13세기 몽고 침입후 한세기쯤 지나 화강암으로 바꾸기 시작했다.크렘린을 한때 ‘흰돌도시’로 부른 것도 이 때문이다.탑과 탑사이를 잇는 크렘린 벽에는 모두 1천45군데의 총구가 있다.총구는 가로 세로 2m나 돼 적들이 크렘린을 둘러싸면 총구를 나무방패로 막았다.그 대신 이웃의 작은 구멍을 통해 화염을 내뿜었다고 한다.성벽의 두께는 3.5∼6.5m로 현대식 화기에도 끄덕없다는 것이다. 12세기 유리 돌고루키 왕자때 시작된 크렘린 역사는 1382년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이때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모든 것이 불에 탔다.그래서 재건에 들어가 이반3세 때인 1485년쯤 오늘의 크렘린이 완성됐다.성곽은 벽돌로 다시 치장됐고 우스펜스키 성당 등 내부 주요건물이 1백여년간에 걸쳐 복원됐다.이반3세가 크렘린을 전력투구해 복원한 까닭은 통일 러시아의 힘을 대외에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탑은 전투용 감시초소 이반3세는 블라디미르와 같은 전국 각지에서 토목기사·건축가들을 동원했다.그리고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로 꼽히던 이탈리아의 아리스토텔레 피오라반테,피에트로 안토니오 솔라리,마르코 루포등을 러시아로 불러들였다.이 가운데 12세기 러시아건축물의 대표격인 우스펜스키 성당은 바로 피오라반테가 감독한 건축물이다.이반3세는 피오라반테에게 러시아 전국을 여행시켜 주며 러시아식 건축양식으로 성당을 짓도록 독려했다.우스펜스키 성당은 조밀한 아름다움을 지녔으면서도 현대식 공법이 아니면 뽑아내기 힘든 넓은 내부공간을 지금도 자랑하고 있다. 크렘린 안 4개의 대성당은 모두 르네상스시대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화려했다.르네상스양식의 벽화와 성화,금은 상들리에로 가득차 있다.12세기의 성화 ‘세인트 조지’‘삼위일체’,11세기 비잔틴양식으로 그린 ‘블라디미르의 여인’등은 크렘린 관광객을 사로잡는다.아르항겔스키 성당,블라고베쉬첸스키 성당에는 복원하지 못한 각종 프레스코와 성화가 아직도 많다.크렘린역사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르네상스시대 예술품 복원이 한창이다.이 대성당들은 화려했을 뿐더러 사치를 한껏 누렸다.1812년 나폴레옹이 크렘린을 점령했을 때 부하들이 마굿간에서 대량의 금·은괴를 약탈할 정도였다. ○4개 대성당 내부 화려 옛소련과 러시아정부의 크렘린 복원노력은 대단했다.재미있는 사실은 레닌조차도 혁명후 1918년 포고령으로 크렘린안의 모든 건축물과 예술품울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이다.제2차 세계대전이후 스탈린 시대에는 5개의 주요 탑 상층부 모두에 금과 구리를 입혔다. ◎여행가이드/대회의당서 ‘백조의 호수’ ‘호두까지 인형’발레 관람 크렘린은 붉은 광장과 바로 이웃했다.내부정원은 물론이지만 붉은 광장,모스크바 강위에 세워진 교각에서 크렘린을 보는 경치는 각별하다.밤시간의 조명도 화려해 모스크바 강 수면 위로 드러나는 야경 또한 일품이다.그리고 러시아에 관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옐친대통령이 근무하는 ‘대통령궁’에도 관광객들이 15m 전방까지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자유롭다.크렘린내 대회의당은 발레프로그램을 직접 관람할 수 있게 해놓은 유명한 극장 가운데 하나.크렘린 관광객들은 여름 휴가철만 빼놓고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 등 러시아 고전발레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 “일제 흥남서 핵실험”/미 역사학자 주장

    ◎2차대전 항복 3일전에 전격 실시/직경 1㎞ 둥근화염·버섯구름 치솟아 【워싱턴 이타르타스 연합】 일본이 2차대전이 끝나기 직전 일본군 점령하에 있던 북한 지역에서 핵실험을 했다는 주장이 22일 미사학자에 의해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역사학자인 찰스 스톤은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기 3일전인 45년 8월 12일 북한의 흥남에서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군이 흥남에서 실시한 핵실험 당시 직경이 1천m에 달하는 둥근 화염에 이어 버섯 구름이 치솟는 등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핵폭탄이 터질 때와 거의 같은 특징들이 나타났지만 러시아군의 진격 때문에 핵실험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스톤은 미국립 문서보관소의 기록과 미국 및 다른 나라들의 당시 신문 기사와 각종 관련 논문을 바탕으로 이같은 결론을 내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학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통설과는 달리 일본이 미군기의 공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된 도쿄의 실험실에서 뿐만 아니라 대규모 산업시설이 있었던 흥남과 만주에 위치한 5개 실험센터에서핵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흥남 산업단지의 경우 핵무기 생산에 충분한 동력과 시설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 사학자들은 일본의 기술 수준이 매우 낮았던 점을 들어 흥남 핵실험 주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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