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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하반기 히트상품 본상/ 남양유업 남양스텝 그래뉼

    남양스텝 그래뉼의 기본 컨셉은 아기의 빠른 성장이다.클로렐라 성장 발육인자와 싸플라워씨드(홍화씨)는 물론 단백질이 풍부한 서목태,칼슘이 풍부한 해조류 등을 배합한 것도 기본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서다.게다가 남양스텝 그래뉼은 혁신적인 리얼-뷰 공법으로 원료의 색상을 눈으로 직접확인할 수도 있다.원재료 고유의 특성을 최대한 살린 것이다.유아식이 물에 녹는 정도인 용해도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 [사라지는 것을 찾아] 시골 ‘엿장수’

    ‘찰가락,찰가락’ 엿판이 얹힌 손수레를 끌고 가위질하며 마을마다 돌아다니던 엿장수. 보리밥 한그릇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배고픈 시절,엿장수는 시골 어린이들에게 가장 반가운 손님이었다.동네 입구에서 가위질 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꼬마들은 부리나케 움직인다.엿장수가 오길 기다리며 모아 놓았던 갖가지 고물을 챙기느라 부산하다. 혹시 빠뜨린 게 없는지,장독대 주변,마루밑,담장밑을 샅샅이 뒤지고 또 뒤진다.돈을 주고 엿을 사먹는 것이 쉽지 않았던 가난했던 시절 시골마을의 모습이다. 엿판을 지게에 얹어 지고다니다 지난 60년대 후반쯤부터 손수레를 끄는 엿장수로 바뀌었다.엿장수가 마을을 찾는 날은딱이 정해져있지 않았다.그러나 이런저런 고물이 적당히 모였다 싶을때쯤이면 반가운 엿가위질 소리가 들렸다.엿장수가 오는 날 없어지는 멀쩡한 흰고무신은 달콤한 엿맛의 유혹에 이끌린 아이가 엿장수에게 몰래 내다주고 엿을 바꿔먹은 것이 틀림없다.그날 밤 아이는 혼이나지만 그때 뿐. 손자·손녀들에게 용돈을 줄 형편이 못되는 할머니들은 머리 빗질을 할때마다 나오는 머리카락을 꼭꼭 모아두었다가엿장수가 오는 날 손자·손녀들에게 내주곤 했다. 엿판 주변에 둘러선 아이들이 “많이 주세요”라고 보채면엿장수는 “엿장수 마음이야”하면서 엿판 위에 끌을 대고가위로 쳐 적지않을 만큼 판때기 엿을 끊어주거나 가래엿을건네주었다. 고물을 주고 빨래비누나 성냥을 교환해가는 어른들도 가위질 소리를 듣고 군침을 삼키는 자녀들을 위해 엿 몇가락도함께 바꿔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종이,빈병,무쇠솥,화로,쟁기보습,구리,비닐부대,시멘트부대,고무신,긴 머리카락,돼지털,염소털 등 재활용이 가능한 물건은 모두 엿장수들의 수집대상이었다.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는 80년대를 고비로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이젠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시골지역의 생활형편이 고물을 모아 엿과 비누로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나아진데다 고물값도 떨어져 수지타산이 맞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엿장수가 사라진 요즘 시골지역에는 빈병,고철류 등 갖가지 재활용품이 제대로 수거되지 않고 산과 들에방치되어 환경오염의 한 원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엿장수에 대한 내력을 알아보려고 고물상 경력 40년의 울산 태화자원 대표 이태화씨(56·한국폐자원재활용수집협의회울산시지부장)를 만났다.이씨는 지난 85년까지 엿장수들을데리고 고물상을 운영했다고 한다.5년전쯤만 해도 울주군 시골마을에서 간혹 엿판을 갖고 다니며 고물을 수집하는 엿장수들이 눈에 띄었으나 지금은 전국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했다. 이씨는 “현재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엿장수 출신도 많다”며 “재활용해 쓸 수 있는 고물 하나라도더 찾아 수집하려 애썼던 엿장수들의 노력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10년넘게 봉급 잘못 받았다

    강원도 일부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호봉이 10년 넘도록 잘못 책정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상당수 직원들이 수백만원씩반납하거나 더 받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잘못된 호봉 책정에 따라 승진순서 등이 뒤바뀌었을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90년 1월부터 수작업으로 기재해온 공무원 호봉승급을 지난 6월부터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동해시는 이에 따라 6월 1일자로 호봉 승급을 동결시킨 채개인별 호봉 확인작업을 벌여왔다. 또 강릉시 43명,강원도청과 횡성군에 각 10여명의 호봉책정이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강원도뿐만 아니라 전국의 다른 시·도에서도 발생할 소지가 커 전산화 작업이 진전되면 전국적인파문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호봉책정 오류] 전체 공무원 567명 가운데 32.8%인 186명의 호봉 책정이 잘못됐다. 이에 따라 154명은 1억7,646만원을 반납해야 하는 반면 32명은 3,493만원을 지급받아야 된다. 대부분은 1호봉씩 차이가 났지만 2호봉 차이가 난 공무원도 있다.장모씨(7급)의 경우 타 직종에서 근무한 경력을 합산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800만원 가량을 반납해야 할 처지다. [원인] 해마다 1월과 7월 2차례 호봉승급을 해오다 90년 1월 연 4차례로 변경하면서 수작업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다. 오류는 초임 호봉을 정하거나 승급시의 실무수습기간 산입,유사경력(군경력,일용직경력 등) 합산,임용전 교육 합산 등의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해 일어났다. 오류는 지난 6월부터 전산 프로그램에 입력하는 과정에서발견됐다. 동해시 자치행정과 호봉담당 이진화씨는 “서류보존기간이5년으로 한정돼 있어 더이상 알 수 없지만 90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이같은 오류는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말했다. [대책] 동해시는 잘못된 호봉에 대해 호봉 및 근무연수를 소급 정정하기로 했다.그러나 잘못된 호봉을 적용받고 퇴직하거나 사망한 이들에 대한 방침은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강원도 관계자는 “지난 90년 초 임용자 가운데 한달에서한달보름간 소양교육기간이 반영되지 않아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인사기록카드 확인을 거쳐 바로 잡겠다”고 말했다. 동해시직장협의회는 이와 관련,7일까지 내기로 했던 이의신청을 한달동안 연기하는 한편 소급적용에도 문제가 있다고보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당 공무원들은 “조직 운영의 기본인 호봉산정 오류는 공무원들의 사기와 직결된다”며 “수백만원씩 반납해야 하는 공무원들이 어떻게 한꺼번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
  • ‘도산연구상’ 독립기념관 이명화씨

    도산아카데미연구원(원장 金在淳 전 국회의장)은 6일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 연구에 탁월한 업적이 있는 사람에게 수여하는 ‘도산 연구상’수상자로 독립기념관 연구원인 이명화(李明花·43)박사를 선정했다.이 박사는 독립기념관 연구원으로 재직하면서 도산 선생에 관한 자료발굴과 함께 ‘도산 안창호 전집’(전14권)과 도산의 생애를 사진으로 엮은 ‘수난의 민족을위하여’ 편찬에 참여하였다.시상식은 9일 오후 7시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2001년 도산의 밤’ 행사 때 함께 갖는다.
  • “東夷민족의 기개를 다시 살리자”

    2년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펴내 뜨거운 ‘공자 논쟁’의 불씨를 지핀 김경일 상명대 중문과교수가 ‘나는 오랑캐가 그립다’(바다출판사)라는 책을 내놓았다. 자칭 “족보상으로도 하자가 없고(?) 학문적으론 박사에 교수요,쓴 책이 10여권이 넘는다”는 지은이가 ‘공자 필사론’에 양이 차지 않은 듯 야만적 이미지로 그득한 ‘오랑캐’와 그 정신을 찬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답을 찾기위해 먼저 지은이의 현실 진단을 살펴보자.그에따르면 다문화(多文化)와 다언어(多言語)의 세계화시대에 한국은 무(無)대책이라는 것이다.중국과 일본이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변신을 모색하는데 ‘변두리 국가’인 한국은아직 ‘보부상’보다는 ‘선비’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는 이런 갑갑한 현실을 낳은 주범을 중국과 그를 대표하는 이데올로기인 유교로 본다.소신인 ‘유교 망국론’의 유효성을 여전히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여보란듯 내놓는 보따리 속에는 ‘오랑캐 정신’이 들어있다.“생명력,창조성,역동성,포용력”을 핵심으로 하는오랑캐 정신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지은이에 따르면 원래 오랑캐였던 우리 민족(저자는 동이(東夷)를 예로든다)이갖고 있던 에너지인데 유교문화의 헤게모니에 밀려 잃어버린 원형질 같은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역사적인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분석한다.오랑캐로서 한족이 지배하는 중원에 깃발을 꼽은 여진족장 아골타와 몽고족장 칭기즈칸의 전략과 그 속에 깃든 지혜를 배우자고 제안한다. 한족은 오랑캐를 의도적으로 배척했고 그들 정신의 고갱이인 ‘실용주의’를 무시하는 가치관이 한반도로 직수입됐다는게 저자의 시각이다.한마디로 중국이 무서워,살아남기 위해 ‘중원은 찰떡 동이(東夷)는 개떡’이라는 역사관으로 눈에 콩깍지를 씌운 상흔(傷痕)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역사는 “중국 경전 몇권 붙들고 학문하다 사라진 퇴계나 율곡 같은 인물들이 목화씨를 들여와 민초들의몸을 따뜻하게 해준 문익점이나 측우기,금속활자 등을 개발한 장영실 등보다 더 존경받게 되었다”고 본다. 이런 비판은 현실에서 ‘영어공용화’라는 옷을 입고 나타난다.이를 위해 ‘된장’(만주어)‘아씨’‘연지 곤지’(이상 흉노어)등 우리 말이 우리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게다가우리 말의 대부분이 한자나 일본어에 의해 잡아먹힌 것이 현실인데 우리 말에 목숨 걸기보다는 국제적 경쟁력을 위해 열린 자세로 영어를 받아들이자는 논지를 편다.물론 영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여도 우리 특유의 ‘말맛’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 이 책은 “‘목숨 걸고 썼다”는 ‘유교가…’에 걸맞는 현실적인 대안찾기로 볼 수 있다.표현이 많이 걸러졌지만 여전히 도발적인 주장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이종수기자 vielee@
  • 월드컵홍보관 상술 ‘얼룩’

    최근 잇따라 문을 열고 있는 서울시 지하철역 구내 ‘한국관광 및 월드컵 홍보전시판매관’에서는 월드컵 캐릭터상품이나 관광용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2일 오후 지하철 종로3가역.20여평 규모의 홍보판매관 앞세서 점원 7∼8명이 지나가는 지하철 승객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열대에 놓인 상품은 벽에 ‘WORLDCUP KOREA’라고 적힌 문구를 무색케 했다.월드컵과는 전혀 관계 없는넥타이,모자,양말,점퍼,스웨터 등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겨울 상품이 즐비했다.휴대전화 판매대까지 설치해 놓고 있었다. 주부 이연숙씨(43·여)는 “휴대전화와 월드컵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면서 “잡상인들이 많아 그렇지 않아도통행이 불편한데 굳이 이런 시설을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한 외국인도 “이곳이 월드컵 홍보관인줄 몰랐다”면서 “월드컵 상품이 너무 부족한 것같다”고 말했다. 비교적 한적한 5호선 군자역 승강대에 위치한 3평 남짓한 홍보관에는 4,000∼5,000원짜리 넥타이와 옷가지가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다.한국과 월드컵을 상징하는 문양의 옷은 몇벌되지 않았으며,20여분이 지나도록 물건을 사는 손님이 없었다. 지하철 이용객이 많은 2호선 잠실역이나 이용객이 적은 3호선 홍제역 등도 마찬가지였다.2호선 건대입구역의 홍보관을 지나던 김영화씨(32)는 “관광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시민들을 호객하는 좌판 같다”고 비꼬았다. 월드컵 홍보관은 서울지하철공사가 관리하는 지하철 1∼4호선에 26곳,도시철도공사가 관리하는 5∼8호선 40곳 등 66곳에 설치돼 있다.당초 판매 뿐 아니라 관광 안내소 역할을 하기 위해 전화와 컴퓨터 시설을 완비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관광 안내를 하는 곳은 거의 없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5월 두 지하철 공사와 계약을 맺고홍보관을 설치키로 했다.또 홍보관 판매는 월드컵 상품 서울지역 독점 총판업체인 GNB월드가 맡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FIFA가 관리하는 월드컵 상품 이외의 상품은 관광공사에 보고하고 팔아야 하지만 많은 곳에서 허가받지 않은 물건을 팔고 있다”고 인정했다.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도“보고하지 않은 물건을 팔지못하도록 협조 공문을 자주 보내고 있지만 별 효과가 없다”면서 “특히 전화설비나 통신시설 공사가 힘든 지하철역 내에 100여개의 홍보관을 설치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고 말했다. GNB월드의 한 임원은 “사업초기여서 캐릭터 물품만 팔아서는 인건비조차 건지기 힘들다”면서 “점차 홍보관의 모습을 찾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
  • 국정홍보처 첫 女사무관 손성화씨

    국정홍보처는 1일 국립영상간행물 제작소 5급 사무관 승진인사에서 최초로 여성감독을 임용했다. 지난 90년 8급으로 공직에 몸을 담은 후 연출능력을 인정받아11년만에 5급감독으로 전격 발탁된 손성화(孫成和·40)씨가 그주인공.미혼인 손 씨는 “앞으로 사람 얘기를 많이 다루는 성실한 PD로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현재는 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가 운영하는 KTV에서 ‘안숙선의소리마당’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 ‘이문열씨 책 반환운동’ 화덕헌씨

    “색깔공세와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이문열씨의 기만적인글쓰기에 경종을 울리는 동시에 인터넷을 매개로 한 ‘작은 실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시대 제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꼽히는 작가 이문열씨가 아주 ‘곤란한 지경’을 앞두고 있다.그가 몇몇 신문에쓴 글을 비판해온 일부 시민들이 그의 집앞에서 작가의 분신인 책(작품집) 반환행사를 가지기로 한 것.이는 국내 문학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로 작가의 높은 성가를 반영하고 있지만 상식적 차원에서 이씨에겐 불명예스런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부산 해운대구에서 ‘신도시사진관’을 경영하고 있는 화덕헌(化德獻·37)씨 등은 내달 3일 오후 2시 이문열씨가 살고있는 경기도 이천 부악문원에서 ‘이문열 문학의 죽음’을 상징하는 퍼포먼스와 함께 책 반환식을 가질 예정이다. 주최측은 정식으로 집회신고도 냈으며,이날 행사에는 전국에서 40여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화덕헌씨의 이 운동은 지난 여름 언론사 세무조사를 지지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이씨가 신문칼럼에서 ‘홍위병’으로 빗대 쓰면서 생겨난 여파의 하나.당시 한 독자가 이씨의 홈페이지에 ‘당신 책을 반환하고 싶다’고 쓰자 이씨가 ‘그러면 책을 보내라,이자까지 쳐 주겠다’고 응수하고나섰다.작가 이씨는 몇몇 독자들이 반환한 책을 ‘수취거절’로 되돌려 보냈는데 이에 화씨는 자신이 모아서 보내겠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이후 화씨는 자신의 개입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이문열 돕기운동’이라고 명명했다. 화씨에게 이씨의 ‘반환용 책’을 보내온 사람들은 고교교사,현역 장교(대대장),헌책방 주인,경기도 남양주 거주목축업자 등 전국 각지의 100여 명으로,현재 500여권 정도가 모였다.화씨는 이 책들을 10권씩 흰 상자에 나눠 담은후 해 참가자들과 트럭으로 싣고가서 이씨 마을에 도착해마을을 한 바퀴 돌 작정이다. 한편 화씨 등의 책반환 행사와 관련,30일 이문열씨는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전제하고는 “지난 7월부터 이 운동이 시작됐으나 지지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공영방송(MBC)과 친여지(한겨레)가 부추긴 결과”라며 일부 언론에 화살을돌렸다.이씨는 또 화씨 일행의 ‘이문열 문학장례식’에 대해 “그들이 무슨 근거와 자격으로 내 문학에 사형선고를 내리는지 모르겠다”며 ‘×같은 수작’ 이라는 극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일 지방에 선약이 있어 집을 비우는 이씨는 이번 행사가 “조선일보 편을 든 것 때문인 것 같다”며 “당일 행사를 지켜본 후 법적 대응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운동을 시작한 후 화씨는 전화테러와 함께 혹시 ‘전라도’ 출신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이문열씨도 지난 16일 강연회 참석차 부산에 왔다가 화씨를 만난 자리에서 “전라도 사람이 아니냐”며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다가화씨가 대구 출신임을 알고 당황해 했다고 한다. 정운현기자 jwh59@
  • 장애인미술전 대상 박주인씨 문학상도 4명 선정

    제11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및 문학상 작품 공모전에서 박주인씨(32·지체장애 3급)의 한국화 ‘yellow;변주곡’이 대상을 차지했다. 29일 한국장애인복지진흥회에 따르면 우수상은 서양화 부문에서 정상훈씨(35지체장애 3급)의 ‘보름달+도시2001’,서예부문서 김완숙씨(44·여·지체장애 4급)의 ‘밀양영남루’,공예·조각 부문서 우상옥씨(21·청각장애 3급)의 ‘구름과 비’에 각각 돌아갔다. 문학상 당선작은 단편소설 부문 홍지화씨(29·여·지체장애 4급)의 ‘아버지의 유산’,시부문 이희영씨(30·여·지체장애 3급)의 ‘꽃밭에서’,수필부문 임영자씨(37·여·지체장애 1급)의 운동회와 휠체어’,아동문학부문에서 김선화씨(32세·여·청각장애 2급)의 ‘꿈꾸는 코스모스’가 각각 선정됐다. 시상식은 11월2일 오후 2시 경기 과천시민회관 소극장에서열린다. 유상덕기자 youni@
  • “결혼 제쳐놓고 공연만 생각”미추홀 회장 전경화씨

    걸걸한 목소리,호탕한 웃음…. 미추홀 예술진흥회 전경화 회장(47)의 첫인상은 영락없이돈 잘버는 여류사업가다.술도 엄청 잘 마시게 생겼다. 하지만 그를 알수록 새롭다.수십년째 새벽기도를 다니는 ‘독실함’이 있는가하면,돈을 잘 벌기보다 ‘있는 척’하며표정 관리하는 수완이 있다. 게다가 “음악이 너무 좋아서,결혼자금을 털어 첫 음악회를 열었다가 아예 공연기획자가 됐다”는 대목에 이르면 여느사업가가 아님을 깨닫고 자세를 고쳐앉게 될 지경이다. 사연은 이렇다.대학졸업후 인천의 한 병원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며 뻔질나게 연주회를 드나들었다.그의 열성은 당시‘객석’편집장이자 음악평론가 이상만씨의 눈에 띄였고,“일본에 괜찮은 교향악단이 있는데 공연을 유치할 사람이 없다.한번 해보라”는 꾐(?)에 겁없이 첫 발을 뗐다.미추홀은고향이자 첫공연을 연 인천의 옛지명이다. 86년 서른두살에 운명적인 전직을 한지 올해로 만 15년.‘배고픈’ 국내 클래식계 풍토에서 생존한 비결을 묻자 “시집 못가서 그래요.공연 생각밖에 안하거든요.이 일은 조금만 신경안쓰면 금방 티가 납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장 힘든 건 역시 ‘돈’문제다.요즘은 크로스오버가 돈이 되지만 그렇게 하기는 싫다.“저도 한두번 시도해봤지만 클래식과는 깊이가 다르더라구요.공연기획은 음악이 좋아서 해야지 돈 벌려고 생각하면 힘든 일 같아요.” 총 310여 건의 공연을 치러낸 그는 한국인 유망주 발굴에도 열성이다.피아니스트 백혜선,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김,유니스 리 등 수많은 연주자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의 남은 꿈은 두가지.첫째는 섬,산골 등 문화소외지역을더 많이 찾아다니며 클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둘째는 미추홀 자체 체임버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다.9월중 오디션을 거쳐 20∼30대 30여명을 뽑을 계획이다. 미추홀은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오는 7일 오후 8시와 9일오후 3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음악회를 연다. 미추홀이 발굴한 재미 피아니스트 알리사 박과 카잘스 국제콩쿠르 등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루이스 클라렛이 협연한다.(02)391-2822허윤주기자 rara@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7)임화의 처 지하련

    1940년대 이후 모윤숙의 내면세계를 읽을 수 있는 편지가 두 통 있다.“일요일날 선희랑 도오깐(김동환)상이랑 또아바이(안호상)랑 윷놀이 하면 어떠냐”는 편지의 윗 부분에 “나는 황도학회(皇道學會,1940.12.25.결성) 이틀 가서 졸고 이틀 빠지고 오늘 또 가는데 조선호텔 케익 먹은 죄로다”라는 구절이나,“청년회관에 가서 저축 연설”을 해야 된다는 등등은 일말의 양심에 조금은 어줍잖아 했었던모습과 함께 친일의 대가를 호사롭게 받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네 여인 중 개방적이고 가장 말을 아끼지 않았던 모윤숙은 종종 친구들 사이에 말썽을 일으켰는데,대개는 비밀 누설과 험담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가 나중에사과하는 내용들이다.노천명의 편지에도 모윤숙 때문에 신문사를 그만 둬야겠다는 취지의 문구가 나오는 걸로 미뤄볼 때 그녀가 야기시킨 말썽은 적잖았던 것 같다. 네 여인 중 둘(이선희.최정희)은 어쨌건 결혼을 했고,하나(노천명)는 연애의 불꽃이라도 타올랐으나,그녀 하나(모윤숙)만은 사랑에 관한 한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탓으로친구들을 만날 때 심사가 약간은 뒤틀렸대도 할 말이 없다.여류문인 좌담회에 나와 달라는 최정희의 요청에 “놈팽이나 좀 끼면 몰라도” 우리끼리 무슨 재미냐고 맞대거리할 배짱은 모윤숙 밖에 없었다.“정신의 고향도 몸의 고향도 다 잃어버린 유랑녀의 심금”이었던 모윤숙에게 민족사적인 과업은 춘원을 향한 사랑처럼,조선호텔 케익처럼 녹아버렸을 터이다.8.15직후 종이가 귀했을 때 모윤숙은 일제 시기의 봉투와 편지지를 그대로 쓰고 있다.최정희가 덕소에 머물렀던 주소를 “경경선(京慶線,오늘의 중앙선.완전 개통은 1942.4.1)덕소역전 김동환 방”이라고 쓴 걸 보면 한가한 시골풍경이 떠오른다.출판 기념회를 한다는 구절은 두 번째 시집 ‘옥비녀’(1947)를 가리킨 것이기에그때 쓴 편지이다. 이 무렵 모윤숙의 활약은 너무 유명하여 소개하기조차 쑥스럽지만 간략히 개관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1945년 11월 이기붕의 연락으로 이승만을 만난 그녀는 친일파 결속과남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절명의 과제를 위하여 적극 협력하게 되었다.당시 유엔 소총회는 한국의 단정 수립을 반대했던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구성,쿠마라 P.S.메논 위원장을 한국에 파견(1948.1.8)했는데,그 접대를 모윤숙이 맡아 메논의 정치적인 신념을 뒤바꿔서 거뜬히 이승만의 소망을 성취시켜 주었다.실로 국제 첩보전의 박력을 느끼게하는 이 대목,하지 중장의 감시 눈초리를 피해 이승만과메논의 단독대좌 자리를 마련하는 등 그녀의 활동은 역사를 바꿀 만큼 민첩했는데,그 와중에도 연인 이광수를 초치하여 메논과 셋이서 심야의 정담을 나눌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열정은 꺼지지 않았다. 1948년 2월 26일,유엔소총회는 유엔한국위원회가 접근 가능한 지역(남한)에 국한하여 선거를 실시할 것을 결의함으로써 남북한 분단은 고착되었다.모윤숙은 회고록에서 노골적으로 메논에 대하여 “고마운 사람! 나만 아는 잊을 수없는 은인,그는 정치가라기 보다 우정과 신의에 가득찬 영혼을 가진 세계의 외교관이었다.이박사는 실로 그 은혜를잊을 수도,또 잊어서도 안 될 것이다”(‘호반의 밀어’)고 썼다.못잊는 건 이박사만이 아니다.삼천만 겨레의 운명이 어쨌건 그녀로 말미암아 한순간에 바뀌었기에 우리들도 못 잊는다.위대한,그러나 때로는 추악해질 수도 있는 여성의 능력을. 근대 문단사에서 뭇 남성의 시선을 모았던 여성으로 이현욱(李現郁)을 빼놓을 수 없다.이름만으로는 남성스럽지만당대 문단의 총아 임화(林和)를 사로잡은 여인이라면 그고혹성은 입증될 법하다.오죽했으면 이미 임화가 임자인줄 알면서도 서정주가 넌지시 넘보며 회기동 집엘 들락거렸겠는가(필자가 서정주 생존시 직접 청취한 말임).그는노골적으로 이현욱의 글재주가 “임화보다 나았다”(‘광복 직후의 문단’)고 할 정도였으니 사태의 추이를 상상할만 하다.이현욱은 1912년 거창에서 태어나 도쿄 소화(昭和)여고를 나온 뒤 “아무런 경력도 없음”이랄 정도로 마산 집에서 가사를 돌보고 있었다.그녀는 소설 ‘결별’로 ‘문장’지(1940.12)를 통해 ‘지하련(池河連)’이란 필명으로 등단했는데,추천자 백철은 약간 파격적인 소개를 했다. “지하연씨는 모 친우의 부인되는 분으로 내가 기왕부터경애하는 분이다.”바로 임화의 부인이란 뜻이다.초기의다다이즘적 도시의 아이 문학을 거쳐 카프로 방향전환한임화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그리 좋지 않다. 무일푼 시절 임화를 거둬 준 것은 박영희였는데,아랫방에 눌러 앉아 밥을 갖다 주면 “먹은 다음에 얼른 상이나 번쩍 들고 나와서 안으로 갖다 놓을 줄 알아야 하겠건만 임은 그러지 않고서 밥을 다 먹고서도 그냥 앉은자리에서 담배 한 대를 모두 피운 다음에 밥그릇 두껑에다 비벼 꺼버리고 담뱃재는 밥상 위에다 함부로 털어놓기 때문에,박의어머님께서는 몇 번이나 아들더러 임을 얼른 딴데로 보내버리라고 꾸중”했었다.“그를 속으로는 싫어하면서도 데리고 있다가 노자까지 장만해 주어 일본으로 보냈던 것”인데,정작 임화가 귀국하여 처음 한 활동은 카프로부터 박영희를 규탄하는 것이었다(김팔봉 ‘카프문학 시대’). 임화가 동료 평론가 이북만(李北滿)의 누이동생 이귀례(貴禮)와 사실혼을 한 게 1930년,이듬해 귀국한 그는 카프차세대 주자로 시인·평론가·영화인 등 전천후의 능력을발휘하다가 두 차례나 구속당했지만 곧 석방되었다.특히카프 2차검거(1934) 때는 압송 중 졸도하여 지병이었던 폐결핵 때문에 석방,마산 결핵요양소에서 휴양생활을 했는데,여기서 민족운동을 했던 청년을 통하여 그의 누이동생으로 제2의 아내가 될 여인 이현욱을 만나게 되었다.임화의아내 이현욱 보다는 여성작가 지하련으로 일약 유명해진이 재색을 겸비한 여인은 애인을 따라 이내 상경,신설동 361-1과,회기동 64-15에 기거했는데,통상 이 시기에 임화와 동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편지나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임화는 들락날락한 것으로 보인다. 지하련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다분히 의혹에 휩싸여있다.꼭 와 달라는 간곡한 편지에다 그녀는 “혼자 오시기 뭐하시건(면) 회남(安懷南)씨나 임화씨와 함께 와 주십시오”라고 끝맺는다.왜 여자 집에 여자가 혼자 오기 뭣할까란 어리석은 질문이 나올법하다.다른 한 편지를 보자.“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나는 다시금 잘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 까지합니다.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 날 나는확실히 알았었고.…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편지에 따르면 이미 이들은 지하련이 시골에 있을 때부터 익히 알았을 뿐만 아니라 꽤나 보통 이상의 관계가 있었던 것 같다.순리대로라면아마 지하련의 편지는 이보다 더 많았을 것이란 추측도 가능하다.도저히 몇 차례의 서신 왕래로는 다다를 수 없는두 사람만의 은밀한 정서적인 합일점이 있었던 것 같다. “정희야.나는 네 앞에 결코 현명한 벗은 못 됐었다.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내 이제 너와 더불어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정희야.나는 이제너를 떠나는 슬픔을,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하지만 정희야,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나를 찾거던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던,너는 부디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 일인지 모르겠다.네 적은 입이 좋고,목덜미가 좋고,볼다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희야,너를 위해,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야공(夜空)에 별을 알아보듯 잠잠이 살아가련다.…” 무엇이 이 두 여인으로 하여금 이토록 뜨겁게 갈구토록만들었을까.우정이나 어떤 이해관계,혹은 지하운동? 너무먼 이야기다.아마 이들은 파격적이고 첨단적인 사랑을 나눴는지도 모른다.편지는 그만 두자면서도 계속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어떤 마력에 이끌려 본의와는 상관 없이 억누르려는 그리움과 다시 만나고픈 욕정이 뒤엉켜 새로운문장을 만들어 내곤 한다.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 드리겠습니다.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는 대목은 이제까지의 절절했던 사연과는 판이한,글을 쓰는 동안에도 쾌락추구 욕구와 도피의식이란심경의 격변이 반복되는 현상을 간파할 수 있다.그러면서도 욕망의 활화산을 잠 재우지 못한 채 “금년 마지막 날,오후 다섯 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만나기로합시다”고 끝맺는다.그 뒤 이들은 어찌 되었을까? 지하련은 8.15후 창작집 ‘도정’(1948)을 내는 등 맹활약하다가 월북,임화의 남로당계 비판과 함께 비참하게 사라졌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향토사학자 추경화씨 “숨겨진 애국지사 찾아내 뿌듯”

    지난 15일 광복56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독립유공 포상자 111명 가운데는 이상수(李尙銖·애국장)선생·장학순(張學順·애족장)여사 등 2명이 포함돼 있었다.이상수 선생은 유명국 의병부대의 중군장 출신으로,1908년전후 경남 산청일대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돼12년형을 언도받고 옥중에서 순국한 의병장이며,장학순 여사는 1919년 3·1의거 당시 경남 남해 지방의 만세시위에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순국선열들이다. 이들이 뒤늦게나마 포상을 받게된 데는 지역 향토사학자의 숨은 공로가 있다.주인공은 경남 진주에 살고 있는 추경화씨(秋慶和·50). 추씨는 경남지역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가운데 관련자료 부족으로 독립유공 포상을 받지못한 인사들의 독립운동 자료를 찾아내 그동안 여러명이포상을 받도록 해왔다.이상수·장학순 선열 역시 그런사례다. 검정고시로 고교를 마치고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한추씨는 각종 자료수집·관리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특히 독립운동사 분야에서는전문 연구자와 어깨를 겨룰만큼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자료를 자랑한다. 지난 95년에 펴낸‘항일투사 열전·1’은 부자·부부·형제 등 가문별 애국지사들의 면면을 꼼꼼히 엮어,애국선열 현창에 큰 기여를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에는 하동군의 의뢰를 받아‘하동지역 독립운동사’ 편찬작업에 참여했다. 최근에는1929년 광주학생사건 당시 활동했던 한 여성애국지사(생존)를 찾아내기도 했다.추씨는 “경남일대의 항일운동사는 아직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서 “향토의 자랑스런 역사를 힘닿는 데까지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부끄러운 白凡묘역…술판 ‘전락’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강행으로 반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항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멀어지고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등 상해임시정부 요인 4명과이봉창(李奉昌) 의사 등 삼의사(三義士)의 묘소와 영정이안치돼 있는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은 낮에는 노숙자들의쉼터로,밤에는 불량 청소년들의 술자리로 바뀐지 오래다. 공원 내에는 백범 묘소외에 이동녕(李東寧)·조성환(曺成煥)·차이석(車利錫) 선생 등 ‘임정요인 묘역’과 이봉창·윤봉길(尹奉吉)·백정기(白貞基) 의사를 함께 모신 ‘삼의사 묘역’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에도 애국지사들을 기리는 참배객들은 거의 눈에 띄지않았다.더욱이 공원관리소장 최영화씨(54)는 광복절인 15일에도 유족과 기념사업회의 참배가 예정돼 있을 뿐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차원의 공식 참배 일정은 없다고 전했다. 공원 안에는 더위를 피해 나온 노인들과 조깅이나 산책을즐기는 시민들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백범 묘역 뒤 쪽 숲에는 노숙자와 청소년들이 먹고 버린 소주병과 담배 꽁초가 뒹굴었다. 7인의 영정을 모셔두고 매년 4월 합동추모제전을 치르는의열사(義烈祠)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시민들의 발걸음을돌리게 했다. 또 공원 안에는 창고가 없어 의열사 뒤 후미진 곳에 폐자재가 흉물스럽게 쌓여 있었다. 김구 선생의 묘역 정문은 페인트 칠이 벗겨졌고, 철문에달려 있는 태극기 문양도 페인트 칠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다.지난 5월 말부터 ‘백범기념관’ 건립 공사를 시작한건립위원회측은 “99년 6월부터 기념관 건립비 모금을 시작했지만 아직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공원관리자는 “올들어 효창공원에는 25만 7,000여명이 찾았지만정작 공원 안 묘역으로 들어가 참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묘역만 있을 뿐 역사자료관이나 현장체험을 할만한 볼거리가 없어 최근에는 중·고생들의 견학도 거의끊겼다. 두 딸을 데리고 ‘삼의사 묘역’을 둘러본 김혜숙(金惠淑·40·여·서울 성동구 행당동)씨는 “광복절 전날이라 공원을 찾았지만 묘소에 꽃 한송이도 놓여 있지 않아 아이들보기가 부끄러웠다”고 말했다.한편 재한 일본문화원에 따르면 야스쿠니 신사에는 매년 600만명의 참배객들이 몰려들어 우리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류길상 안동환기자 ukelvin@
  • 소설가 이인화씨 5년만에 박사취득

    이화여대 국문학과에 재직중인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35·본명 류철균) 교수가 5년여만에 박사학위를 완성,이달말 서울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한국 현대소설 창작론연구’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은 40년대말이후 창작론 분야의 44종 단행본과 187종의 평론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산발적으로 전개돼온 소설창작론을 일원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안동환기자
  • 개그우먼 김미화씨, 케이블 ‘육아TV’설립

    인기 개그우먼 김미화(38)가 케이블 TV 사장으로 변신했다. 김미화는 최근 국내최초의 육아전문 케이블 채널인 ㈜육아TV를 설립,대표이사로 취임하고 올 12월 개국을 목표로 본격준비에 들어갔다고 육아TV측이 8일 밝혔다. 김미화는 총 자본금 6억원 가운데 1억5천만원을 현금출자해 25%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오는 10월 시험방송을 시작으로 12월께 공식개국할 예정인 육아TV는 태아기에서부터 유아기까지의 아기 성장단계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향후 인터넷 방송과 유아용품 전문 쇼핑몰,프로그램 공급 사업에도 참여할 계획이다. 김미화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등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로 육아와 관련된 매체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방송출연을 줄이고 사업에 전념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송하기자 songha@
  • 인천 승봉도·사승봉도…숨겨진 순수·기적같은 아름다움

    동해 바다를 보기 위해 찜통처럼 달아오른 고속도로에서12시간을 보내다 파김치가 됐다는 사람들이 많다.계곡마다넘쳐나는 인파와 바가지 상혼에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됐다는 이도 적지 않다. 이맘 때 ‘어디 사람 없고 호젓한데 없나.추천해달라’는 채근을 자주 듣는다.멀리 찾지 말고 가까운 인천 앞바다를 돌아보자.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있어도…’라고 노래할 만큼 늘상 가까이 두고도 대수롭지 않게 지나쳐버리는 그 바다에 남해 큰바다 못지않은 바다와 섬들이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붉은 달빛이 아름다운 해당화의 자월도를 시작으로,봉황의 머리를 닮았다는 승봉도,드넓은 백사장이 곱기만 한 사승봉도,풍광좋은 소이작도,부아산 등산로와 구름다리가 있는 대이작도 등. 인천 연안부두에서 34㎞,쾌속선으로 50분∼1시간20분 걸리는 승봉도는 최고 1㎞까지 썰물이 빠져나가도 갯벌이 나타나지 않는 이일레해수욕장과 남대문바위,촛대바위 등 절경을 감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덩달아 무인도였던 사승봉도를 찾는 이들이 최근 갑자기늘었다.모 방송국에서 몇년전 방영했던 무인도 체험 프로그램의 무대로 알려졌고 드라마 ‘마지막 승부’를 촬영한곳으로도 유명하다. 뜻밖의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인천 앞바다로 떠나자. 이일레해수욕장이 10여년전부터 알려져 0.36㎢,10만평이 채 안되는 작은 섬에 민박집만 40∼50여채가 들어섰다. 승봉리 마을 초입에 자리한 인천 주안남초등학교 승봉분교 서정민 교사(39)는 “올 봄 갑자기 증·개축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70년대만해도 학생이 200명에 달했던 이 분교에 다니는 학생은 겨우 6명. 어른 키보다 한참 높은 대숲으로 둘러싸인 분교가참 예쁘다며 서울에서 온 이들이 많이 들어와 본다고 서교사는 전한다. 승봉리 뒷길을 10여분 걸으면 남대문바위가 나온다. 코끼리처럼 생긴 바위가 바닷물에 코를 박고 서 있다. 남해 어느 바닷가에서 본 코끼리바위와 흡사하다.남대문바위 근처모래톱으로 젊은 연인들이 햇빛이 살랑거리는 바다를 거닌다. 갯벌이 드러나자 삼삼오오 가족들이 호미 하나씩 들고 바지락 캐기에 열중하고 있다.1시간 정도 개흙을 긁었다는한 가족은 소쿠리 가득 담긴 바지락을 보여준다.사실 이일레해수욕장에서도 호미를 든 가족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또 30여분을 남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촛대바위가 나온다.이 두 바위 사이에는 호젓하기 그지 없는 바다가 조용히 도시인들의 마음을 끌어당긴다.두 바위를 보려면 물이 완전히 빠져야 한다.8월 기준 오전 10시30분 이후가능하다. 승봉도 포구에서 보트 타고 10분 정도 달리니누군가 “아니,서해 바다에 이런 곳이 다 숨어 있었나”하고 연신 입을 쩍 벌린다.고운 모래가 꼭 부드러운 아기살처럼 느껴진다. 사승봉도는 소리로 먼저 만난다.찌르레기,매미 등 섬을뒤덮은 수풀에 사는 온갖 풀벌레 울음이 우렁차다. 보트에서 짐을 진 채 휙,해수욕장으로 바로 몸을 던진다. 유일한 주민이자 관리인인 서창화씨네는 이곳을 ‘수영장’이라고 불렀다.그만큼 사람반 물반인 유명 해수욕장과달리 이곳 바다는 수영장처럼 편안하다는 뜻 아닐까. 가로 500m 정도의 모래밭이 펼쳐지는데 산이라고 할 것도없는 야트막한 모래산이 두 자락 펼쳐져 있다. 50m도 안되는 이 산을 넘으니 2.5㎞ 정도 해안선이 펼쳐지는데 모래가 진짜 보드랍다.병정들이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에놀라 화들짝 구멍으로 들어가 머리를 감춘다.바닷게들. 물이 빠지면 섬이 모래로 연결돼 섬전체를 걸어서 돌아볼수 있다.3시간 정도면 섬을 완전히 한바퀴 돌 수 있다. 대개 보트에 실려온 이들이 저녁 무렵 승봉도로 빠지는탓에 사승봉도의 일몰은 더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밀려온다.뭉게구름이 듬성듬성 낀 날 노을은 더 멋진 감흥을 제공한다.피서 절정기인데도 너무 호젓하다 싶다. 물이 완전히 빠지는 오전 11시를 전후해서 사승봉도와 상공경도 사이를 잇는 바닷물도 빠지고 모래가 치솟으며 섬이 연결된다.우르르 쾅,굉음을 내며 모래밭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관을 구경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텐트촌 위 산길을 호젓하게 걷다 보면 서씨의 민박이 나온다.섬의 동쪽에는 이 민박이,서쪽에는 텐트촌이 형성된셈이다.저녁 무렵엔 텐트촌에서 서해로 떨어지는 붉은덩어리를 환송하고 다음날 민박에 있는 정자에서 아침을 맞는다. 밤 11시 민박집 전기가 갑자기 나간다.발전기를 돌리다보니 모두들 의무적으로 취침해야 한다.전기가 꺼지자 별들이 노래하고 달빛이 춤추는 진짜 밤이 왔다.완만하고 부드러운 밤바닷가에 나가본다.멀리 등대불빛도 보이고 영종도 국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 불빛도 보이고,도시를 떠난길손의 사념은 깊어만 간다. 임병선기자 bsnim@. ■승봉도·사승봉도 여행 가이드. [가는 길] 인천 연안부두에서 승봉도까지 원광해운 소속파라다이스호(50분 1만6,050원)와 올림픽호(1시간20분 1만400원)가 하루 3회(아침 9시30분,낮 2시,오후 4시) 운행되나 피서철에는 5∼6편으로 증편된다.안개·태풍 등에 따라운항사정이 수시로 바뀌므로 출발 전에 반드시 전화문의하는 것이 좋다.(032)884-3391 승봉도에는 120개의 객실을 갖춘 동양 승봉콘도미니엄(032-832-1818,02-2604-6060)을 비롯,일도네(032-831-8941)등 시설 좋고 깔끔한 원룸형 민박들이 많다. 사승봉도 관리인 서창화씨 집(032-831-6651∼2)에선 무작정 건너온 이들에게 텐트를 빌려주기도 하며 민박집도 운영한다.단,민박 시설은 쾌적하지 않은 편이다. 승봉도에서 사승봉도까지 배편은 강석주씨(032-831-3655)에게 문의하면 된다.서씨에게 미리 전화하면 소이작도에서건너가는 배편까지 알아봐 준다.소이작도에서 건너가는 게승봉도에서 건너는 것보다 뱃삯이 40% 정도 싸다.
  • 뉴스피플 8월2일자 출간

    대한매일신보사가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뉴스피플’ 최신호(7월24일 발매 8월2일자)는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올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은 기회일 수도 있지만 한국 경제의 총체적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자만심과 무지 속에 어느새 우리를 앞지르고 있는 중국 경제에 대해 우리는얼마나 아는지 집중취재했다.이슈 특집에서는 최근 일본과갈등이 깊어지면서 떠오르고 있는 한국의 주적(主敵) 개념의 변화 조짐을 다뤘다.정치권과 총선시민연대 등의 선거재판에서 양면성을 보인 사법부를 이슈 추적에서 취재했다. 워크아웃을 조기 졸업하려는 대우 계열사들의 몸부림과 한국에서 다양한 마케팅 전략으로 매출을 늘리고 있는 수입차 업계를 밀착 취재했다.문학마을에서는 최하림 시인의 작품 세계와 삶을 만날 수 있다.신(新)장군의 비망록에서는 전과자 특수부대인 ‘캡’을 최초로 공개하는 등 전 해병대사령관 전도봉 장군의 첫번째얘기 보따리가 펼쳐진다.한·미 작가들의 독특한 현장 미학 전시회와 여름을 맞아 열리는 시인학교에 대한 궁금증도 풀었다.수녀와 경찰관 건축가 등이 함께 힘을 합쳐 버려진 노인들을 위해 문을 연 ‘요셉의 집’을 찾아 그들이 사는 모습을 담았다.화제의 인물에서는 불우이웃에 아파트를 9채나 기증한 삼포건설 양진현 사장을 만났다.스타스페셜에서는 최근 TV 역사드라마 ‘여인천하’에서 문정왕후로 연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전인화씨의 인기 비결을 취재했다.
  • [전통주 이야기] (8)안동소주

    안동소주는 우리나라 소주의 원조다. 징기스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하면서 아랍에서 알코올 증류법을 배워 전파해 고려의 소주시대를 열었다. 당시 몽고군 기지가 안동에 있었던 인연으로 안동에서 소주를 많이 빚게 됐으며 우리 문화의 일부가 됐다.현재 안동소주는 3개 회사에서 생산되고 있으나 경북도 무형문화재로 등록돼 있는 안동소주 기능보유자 조옥화씨(79)가 대표적이다.조씨는 친정에서 술 내리는 법을 배운 뒤 시집와서도명절이나 제사 때 술을 꾸준히 빚어온 덕에 기능보유자가될 수 있었다.안동소주는 1910년 한일합병후 전통적 제조방법이라는 이유로 제조가 중단되었다가 90년 화려한 부활을맞게 됐다.초기에는 안동소주 한병 구하는 게 큰 자랑이었다. 안동소주는 은은한 향취와 감칠 맛을 담고 있다.45도나 되는 높은 도수지만 뒷끝이 깨끗한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재료는 밀누룩과 멥쌀로 간단하지만 만드는 과정에 정성이 담겨진다.깨끗하게 씻은 밀을 빻아 누룩을 만든 뒤 틀에넣고 1주일 발효를 시킨다.1주일동안 천천히 말려 잘게 부수고 멍석에 널어넣고 며칠동안 밤이슬을 맞힌 뒤 술독에서 고두밥과 함께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르스름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전술(증류하기 전 단계의 술)이 된다. 전술을 솥에 담고 위에 소주고리를 얹어 장작불을 지펴서천천히 증류된 것을 받는다. 조씨는 제조장내에 ‘안동소주박물관’도 만들어 술을 빚는 방법이나 도구 200여점을 전시하고 안동소주를 직접 내려볼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해 놓았다.가격은 400㎖에 1만4,400원,800㎖에 2만5,500원.문의 (054)858-1609. 안동 한찬규기자 cghan@. ■ 김휘동 경북도의회 사무처장 안동소주 맛평가. 김휘동(金暉東·57) 경북도의회 사무처장은 안동소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안동소주의 인기가 한창 상종가를 치던 92년과 93년 안동군수를 지냈기 때문이다. 당시 안동소주를 구해 달라는 친구들의 성화를 어지간히듣기도 했다.군청 직원을 밤늦게 안동소주 공장에 보내 겨우 몇 병을 가져와 좋아했던 기억도 갖고 있다.이런 이유로 요즘도 그의 승용차 트렁크에는 항상 안동소주 몇 병이들어 있다.그는 “안동소주의 향기는 어떤 술도 흉내낼 수 없는 것”이라면서 “안동지역에는 배앓이와 식욕증진,소화불량 등에 안동소주를 민간요법으로 종종 쓴다”고 덧붙였다. 김 처장은 90년 처음 생산된 안동소주를 선물로 받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 우수기업 좋은광고/ 비주얼상 태평양

    아이오페 화이트젠은 고기능성 미백화장품이다.지난 4월에 출시돼 월평균 35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미백시장 점유율은 무려 40%에 이른다.올해 60만개 3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같은 성과는 전형적인 ‘R&D(연구개발)’의 산물이다.화이트젠은 멜라닌의 생성을 억제시키는 코직산 성분에 피부친화물질인 3-아파(APPA)를 결합시킨 신원료이다.태평양이특허출원(제99-34754)했다.3년간의 연구끝에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대한화장품학회,아시아화장품학회에서 잇따라 효능발표회를 가졌다. 서울대 의대가 임상실험을 실시한 결과 사용후 4주후부터피부톤이 균일해지는 효과가 나타났고 8주후부터 피부색이밝아지는 미백효과가 확인됐다. 자외선과 스트레스에 지친 피부를 진정시켜주고 기미 주근깨의 색깔을 엷게 해주는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군데군데 파인 흔적과 여드름 자국 등 국소적인 피부 고민을 해결해주는 ‘아이오페 스팟 솔루션’도 함께 개발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피부에 관심이 높은 젊은 남성이나 ‘검버섯’으로 고민하는 중년남성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이 브랜드 프로듀서 전재황팀장은 “기존 화이트닝 제품은 대부분 여름휴가철이 끝난 뒤 한시적으로 사용됐지만 화이트닝 제품이야말로 단계별로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충분한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오페 화이트젠은 사계절 사용이 가능하다.스킨,로션,에센스 등 7개 제품이 하나의 라인으로 구성돼 있어 편리하다. 김태경 홍보팀장은 “탤런트 전인화씨를 모델로 앞세워 깨끗한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킨 점이 주효했다”면서 “서울세종문화회관 분수대 축제나 길거리 샘플행사 등 다양한 소비자 이벤트를 개최한 점도 히트비결”이라고 말했다.
  • 산골소년 롤러스케이터 전국 제패

    내륙 오지의 한 초등학생이 최근 막을 내린 전국소년체전롤러 스케이팅에서 우승,관심을 모으고 있다. 충북 단양군 대강면 대강초등학교 5학년 유제윤군(12) 은제30회 전국 소년체전 롤러스케이팅 2,000m에서 종전기록을 15초 이상이나 단축하는 대회 신기록(3분15초42)을 수립하면서 금메달을 차지했다. 유 군은 136㎝,몸무게 32㎏으로 왜소한,롤러 스케이터로는 다소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진 선수. 그러나 유 군은 남에게 지기 싫어 하는 승부욕과 강한 책임감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지도교사 정근화씨와 코치 오미환씨의 피눈물나는 지도와 학교측의 조직적인 훈련, 그리고동문회 및 자모회 등 지역 인사들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이번 전국 체전을 제패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특히 이 학교는 물론 군 내에도 롤러 스케이팅 경기장이없어 유 군이 일군 쾌거는 더욱 값지게 보인다. 대강초등학교 롤러 스케이팅부는 지난 95년 창단 이래 각종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휩쓸다시피 했지만 지난해 전국 소년체전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는 등 최근 부진을 거듭,주위를 안타깝게 했으나 이번 유 군의 쾌거로 대강면과 학교측은 다시 축제 분위기로 바뀌었다. 단양 김동진기자 k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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