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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개혁의 초점 중앙은행(눈높이 경제교실)

    ◎정부와의 관계/중립적 통화·은행정책 싸고 줄다리기/정치적 영향 배제… 재정·산업정책과 조화 긴요 중앙은행은 화폐발행과 통화신용정책을 정치권의 영향력으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따라서 중앙은행에 제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중앙은행에 간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중앙은행이 정부와 동떨어진 별개의 기관으로 운영될 수는 없다.왜냐하면 중앙은행이 수행하는 통화신용정책과 정부가 수행하는 다른 경제정책(재정정책,산업정책 등)은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만 소기의 정책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이유에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에 정책조화나 정책책임을 위한 연결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한국은행의 금융통화운영위원회와 같은 중앙은행의 합의제 정책결정기구 구성원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회의에 행정부처 고위관료가 출석하여 발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중앙은행이 내린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그 결정을 연기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정부에 부여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중앙은행과 정부 사이의 연결장치는 나라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연결장치의 강도는 그 나라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현행 한국은행법에서 정부가 한국은행에 대해 간여할 수 있는 장치를 많이 두고 있다.정책결정기구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의장을 재경원장관이 맡고 있으며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7인의 임명직 금통위원중 5인을 행정부처 장관이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또한 한국은행 총재도 재경원장관이 추천하여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여기에다 재경원장은 금통위 의결사항에 대한 재의요구권,금통위에 대한 단독 의안제의권,한국은행 정관변경 승인권,한국은행 업무검사권 및 한국은행 감사임명권까지 보유하고 있다.그 결과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통화신용정책이나 은행감독을 중립적·자율적으로 수행하는 데 큰 제약을 받아왔으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중앙은행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차례 제기되었다.최근 금융개혁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중앙은행의 독립성 보장과 관련해서는 위에서와 같은 한은법상 정부와의 연결장치들을 어떻게 정비해야 하는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어떤 곳인가 중앙은행은 한 나라 금융제도의 중심이 되는 은행으로 화폐를 발행하고 화폐의 양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을 주된 기능으로 하는 기관이다.경제와 화폐를 사람의 인체와 혈액에 각각 비유한다면 중앙은행은 심장과 같은 존재다. ○화폐발권·통화신용정책 기능 수행 오늘날 세계 각국에는 거의 예외없이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있다.미국의 연방준비제도,영국의 영란은행,독일의 연방은행,프랑스의 프랑스은행,일본의 일본은행 등이 그 예다.우리나라도 중앙은행으로 한국은행을 두고 있다.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한국은행권은 대한민국의 유일한 화폐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앙은행이 행정부처가 아닌 ‘은행’이면서도 정부의 권한에 속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미묘한 존재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화폐를발행하는 기능(발권기능)과 화폐의 양이나 흐름을 정책적으로 조절하는 기능(통화신용정책기능)은 중요한 국가기능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다.그러나 대부분의 나라는 행정부처와 별도로 중앙은행을 설립하여 이러한 기능을 담당토록 하고 있다.그렇다면 발권기능과 통화신용정책 기능을 정부가 직접 관장토록 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맡기고 있는 이유눈 무엇일까.그것은 역사적 경험을 통해 정부가 발권기능을 가지면 이를 남용함으로써 물가불안이 초래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 널리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발권 남용 방지’위한 제도적 기관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 정치체제하에서 집권당에 의해 임명되는 행정부 고위관료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하여 국민의 인기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경기부양이나 성장촉진과 같은 정책에 집착하는 성향을 갖게 마련이다.이와 같은 속성을 가진 정부에게 발권기능을 맡길 경우 정부는 경기부양 등에 필요한 재원을 세금을 더 거두는 것보다 정치적 부담이 훨씬 작은 화폐발행에 의존하려 할 것이다.화폐를 과다하게 발행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생산이나 고용이 빠르게 늘어날지 모른다.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이러한 효과는 소멸하고 인플레이션이라는 부작용만 남게 된다. 요컨대 중앙은행이란 화폐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발권기능을 정부가 담당하기보다 정치권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고안된 인류예지의 산물이다. ◎역할 및 기능 변천 현대국가에서 중앙은행이 하고 있는 일은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동소이하다.따라서 우리나라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살펴보는 것으로 중앙은행의 보편적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통화 가치 유지·은행 운영 관리 감독 먼저 한국은행은 국민경제가 건실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화폐가치를 안정시키고 은행 및 신용제도가 잘 운영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이러한 설립목적 하에 한국은행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①발권은행으로서 법정화폐인 한국은행권과 주화를 발행한다.②은행의 은행으로서 상업은행을 상대로 예금을 받고대출을 해 준다.특히 상업은행들이 일시적으로 자금이 부족하여 예금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할 상황에 처할 경우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도 하는데 중앙은행의 이러한 기능을 최종대부자 기능이라 한다.③정부의 은행으로서 국고금을 받고 내주며 정부가 자금이 부족할 때에는 대출을 해주기도 한다.④각종 정책수단을 활용하여 화폐의 양과 흐름을 조절하는 통화신용정책을 수립·집행한다.⑤상업은행의 경영건전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이들을 지도·감독한다.⑥경제주체간의 채권·채무관계를 마무리하는 지급결제가 안전하고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질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운영·관리한다.⑦그밖에 외환관리,대외지급 준비자산의 보유·운용,경제조사 및 통계편제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런데 중앙은행의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의 경우 중앙은행이 위와 같은 역할과 기능을 처음부터 수행한 것은 아니다.중앙은행의 근대적 기능은 오랜 세월동안 점진적인 진화과정을 거쳐 정립된 것이다.중앙은행 기능의 변천과정을 보면 먼저 17세기 후반부터 설립되기 시작한 초기의중앙은행은 지금과 같은 국가기관이 아니라 민간 상업은행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당시의 중앙은행은 정부가 재정활동을 하는데 돈이 부족할 경우 이를 지원해 주는 대신 은행권의 발행에 있어 특혜를 받았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다른 은행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그러다가 19세기 중반부터 국가의 지원과 보호하에 중앙은행의 발권기능 독점이 급속히 진전되었다.발권력을 독점한 중앙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금융시장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근대적 중앙은행의 기능을 차례로 뿌리내리게 되었다. ○19세기 금본위제 붕괴뒤 국가기관화 특히 1930년대 초 화폐발행 규모를 금 보유량과 연계시켜온 금본위제도가 무너지고 관리통화제도로 이행한 것은 중앙은행이 국가기관으로 발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즉 무제한적 화폐발행이 가능한 관리통화제도 하에서는 화폐가치의 붕괴위험이 언제나 잠재하기 때문에 발권기능을 수행하는 중앙은행의 국민경제적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게 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은 나라에 따라 경제·사회·문화적 환경이 다른 만큼 그 기능이나 운영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독·미선 정부의 간섭여지 일체 없애 먼저 독일의 연방은행은 세계에서 독립성이 가장 강력하게 보장되어 있는 중앙은행이다.독일은 연방은행의 독립적 지위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어 정부가 어떠한 형태의 지시나 간섭도 할 수 없다.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도 독립성이 강한 중앙은행으로 꼽힌다.미국의 경우 중앙은행이 헌법상 기관은 아니지만 헌법에서 의회가 가지도록 명시한 통화금융정책권한을 의회가 중앙은행에 위임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정부로부터 간섭을 받을 소지가 없다.영국,프랑스 및 일본의 경우 과거에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상대적으로 취약하였다.그러나 프랑스는 1993년에,일본은 금년에 관련법을 각각 개정하여 프랑스은행과 일본은행의 독립성을 대폭 강화하였다. ○불은 은행감독권 특별위원회서 보유 한편 각국의 중앙은행은 은행·신용제도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일을 물가안정에 버금가는 임무로 인식하여 어떤형태로든 은행에 대한 감독기능을 수행하고 있다.주요 선진국의 예를 보면 우선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연방준비제도에 가입한 은행과 은행을 자회사로 두고 있는 지주회사들을 감독·검사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영란은행의 경우는 은행을 포함한 모든 예금수취금융기관에 대해 독점적인 감독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독일에서는 은행감독권이 독립된 정부기관인 연방은행 감독청에게 부여되어 있으나 연방은행감독청은 은행감독에 관한 중요사항 결정시 연방은행과 사전합의 또는 협의하도록 의무화되어 있다.또한 연방은행은 자체적으로 은행감독부서를 설치하여 은행들의 영업보고서를 분석하는 등 일부 감독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있다.프랑스의 경우는 은행감독권이 독립된 특별위원회에 주어져 있으나 동 위원회의 사무국이 프랑스은행 내에 설치되어 있으며 중앙은행 직원이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 현대시인 애청의 금화(중국문학의 고향을 찾아:15)

    ◎생가어귀엔 수령 500여년 느티나무가…/절강성 중심부에 위치한 비산비야/대시인 기리는 3층높이 방려 이채 이제 발걸음을 강소성에서 훌쩍 절강성으로 옮겼다.옛날 춘추때 같으면 오나라에서 월나라로 건너온 것이다. 금화는 절강성의 중부,그 수도인 항주에서도 남쪽으로 약 170㎞.그토록 멀리 깊숙이 나래를 편 것은 거기가 매력적인 작가로 명말 청초의 희곡가요,소설가인 이어와 중국 현대시 80년사에 가장 많은 독자를 지녔던 공산당 당적을 가진 시인 애청(1910∼1996·중국발음 아이칭)을 낳았기에 말이다. 애청은 필자가 맨처음 해후했던 사회주의 시인이다.아직도 냉전시대였던 83년1월,싱가포르정부가 주최한 제1회 세계중국어작가회의에서 만난뒤,우리는 여러차례 감격의 회동이 있었음에도 막상 그의 고향을 찾은 것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였다. ○65년간 시집 20여권 남겨 금화는 비산비야였다.금화시에서 북으로 30여㎞를 달렸을때 작은 소읍 부성을 만났다.부성에서 애청의 생가가 있는 반전장으로 좌회전할때 난데없이 하늘을 뚫을듯 커다랗게세워진 방려을 보고 나를 동행하던 아동문학가요,전 절강사대 총장이었던 장풍씨는 내 어깨를 쳤다. 과연 놀랍도록 높았다.족히 삼층 높이였다.필자가 문학기행하는 동안 처음 보는 시인을 위한 방려다.사실 애청이 이 나라 이 체제에 끼친 문학적인 지위는 이 방려의 높이에 상당했다.1932년부터 지난해까지 65년동안 벌써 스물몇권의 시집에,중국작가협회 부주석이란 감투도 그러했다.그러나 그의 외형적인 간판보다는 중국이 가장 암울했던 30년대와 40년대,50년대를 겪는 동안 중국인에게 민족의 긍지와 광명의 추구를 절규함으로써 중국인의 정서를 비장하게 무장시켰던 시인이다.특히 30년대,그의 출세작인 ‘따옌허,나의 유모여!’를 비롯해 ‘북방’‘횃불’‘태양에게’‘눈은 중국의 대지에 내리고 있다’‘거지’‘나는 이땅을 사랑한다’‘나팔수’ 등 중일전쟁때의 작품들은 모든 중국인에게 눈물없이는 읽을수 없었던 민족의 감동이었다. 방려에서 서쪽으로 5리 남짓.편편한 농촌으로 차를 돌렸다.여기가 ‘반전장’이다.애청의 본명 장해징대로 여기는 장씨의 집성촌이다. 그는 여기 장씨 마을에서 대농이요,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1928년 항주의 국립미술대학에 진학하기까지 18년동안 살았다. ○대농 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차가 이윽고 마을 복판에 있는 공터에 닿았다.바로 그 앞 2층집 하얀 흙벽 까만 대문위에 ‘애청고거’라는 글씨가 붙어있다.필자는 왈칵 치미는 감개에 목이 메었다.우선 생전에 깊었던 교분때문이요,다음은 최근 10년동안 그는 매년 10월마다 노벨문학상의 후보로 마지막까지 각축을 벌였던 석패의 주인공이었다는 점, 거기다가 그는 지방 토호의 아들이요,전위적인 화가였고,애국적인 당원이었지만 한 평생 울분과 불우속에 살다 간 비국의 화신이었다.사실 필자는 그의 뜨거운 눈물을 여러차례 보았다.다만 그의 만년이 순풍이었지만 그것은 욕된 안일이었다. 애청은 출생과 함께 미신의 희생물이었다.그의 명줄이 짧아서 남에게 출양해야 오래 산다는 점쟁이 말대로 그는 장씨 마을에서 10리쯤 떨어진 따옌허(대언하)’라는 빈촌,거기서 빈농으로 살아가는 조(1878∼1924)씨라는 아낙네에게 4년을 입양,다섯살때에야 부모의 슬하로 돌아왔다. 또 한번의 울분,1932년,그가 상해에서 ‘중국좌익미술가연맹’에 가입,‘춘지예술사’를 조직했다가 국민당 정부에 체포,4년이나 옥살이한 것이다.그는 비록 옥중에서 그의 출세작 ‘따옌허­나의 유모’등 많은 명작을 썼지만 국민당에 대한 설원이 깊어 그의 필명을 ‘애청’으로 정했는데 바로 애자는 국민당의 수령인 장개석의 장씨 그 초두를 가위표로 부정한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4년동안 옥살이도 또 한번은 중공이 건국한 뒤,‘중국문학예술가연맹’을 발족하고 중국 대표적인 문학지인 ‘인민문학’이나 ‘시간’ 등을 창간하고 그를 편집하는 등 활동을 펴던 1957년 뜻밖에 우파로 몰려 1978년 복권되기까지 20여년 흑룡강·신강 등 변방지역에서 강제노동을 당했던 것이다. 필자는 문안으로 들어섰다.목조 2층,약 80평의 생가는 입구자 구조,작은 마당 복판에는 우물,우물가 건넌방이 애청의 공부방이란다.그때 쓰던 홍목 책상과 걸상이 당년의 부잣집 흔적임이 역연했지만 벌써 70여년전 소년 장해징의 쓸쓸한 휘파람 소리가 어디선지 들리는 듯했다. 애청의 생가를 나와 뒷 터로 나갔다.거기는 커다란 연못에 500∼600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수호신인양 서있다.애청의 시집속에 나오는 ‘두그루 나무’나 애청의 그림속에 자주 나오는 고목이 바로 여기서부터 얻은 시상이요,화상임을 확인했다. ○무덤엔 황량한 풀더미만… 실상 필자가 애청의 생가를 찾은 것은 애청 문학의 발화점인 따옌허를 찾기 위해서였다.따옌허는 애청 유모가 살던 고을 이름이요,동시에 애청 유모의 이름이기도 했다.우리 나라도 그렇지만 시집온 아낙네를 그 친정 고을로 부르는 택호를 썼기 때문이다. 그 따옌허는 농촌 개조로 원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현지의 말때문에 그만 두고 그대신 따옌허의 무덤이 생가에서 불과 5리 떨어진 논가 작은 언덕에 있다는 것이다.귀가 번쩍 트였다.사실 말이지 따옌허같은 여인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애청은 없었을지 모른다.애청이 그녀의 젖을 먹고 그녀의 두꺼비같은 손으로 지어준 밥을 먹고 자랐기에 겨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던 것이다. 그 무덤은 황량한 풀더미였다.하지만 그의 ‘대연하지묘’라는 묘표와 ‘따옌허는 나의 유모입니다.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하는 비명이 모두 당대 최고의 시인 애청의 친필로 세워졌다는 사실도 필자를 감동시켰다.
  • 도예가 윤광조(이세기의 인물탐구:139)

    ◎분청사기만을 고집하는 영원한 ‘도공’/전통양식에 자기 특유의 ‘작품 혼’ 담아/삶의 규칙·구속 배제하는 ‘자유주의자’ 질끈 동여맨 동자머리에 광목으로 만든 바지 저고리,운동화나 짚신을 신고 윤광조는 전혀 예기치 않은 자리에 바람처럼 나타난다.나이를 비껴가는 해사한 용모탓에 대부분은 그를 여자인줄로 착각하는 예가 흔하다.그림을 그린다든가 시를 쓴다든가 절에서 도를 닦는 현대화된 여승처럼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전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가 그렇게도 아끼고 자랑해 마지않던 ‘분청사기의 명인’, 바로 그 윤광조인 것이다.도예가는 많지만 분청사기만을 고집하는 희소성으로 인해 그는 지금도 평자들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해사한 용모 여증 착각 경기도 광주에 머물다가 그가 가마를 경주로 옮긴 것은 지금부터 3년전이다.경주시내에서 한 시간이상 골짜기로 꺾어지르는 안강에 칩거해 있다가 전시가 있을때만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낮부터 술독에 빠져버린다.그리고 그를 구속하려는 모든 규칙이나 구속을 배제한채 ‘나는어디 한군데 걸릴 것 없는 바람’임을 스스로 자랑삼는다.심지어는 가족에게 얽매이지도 않고 그에게 배우러 오는 제자들마저 그의 고독에 지쳐 오래 머무는 법이 없다.작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에서 가족은 서울에 남겨두고 그는 주로 경주에 파묻혀 오로지 도공으로만 살고 있다.반면 정감이 넘치고 친구를 좋아하되 최고가 아니면 안된다는 고집에서 대선배 최순우씨와 원로 화가 장욱진씨만을 스승으로 손꼽고 뉴욕에서 활동하던 화가 정찬승과의 우정을 소중히 간직한다.그러나 그들마저 모두 타계한 지금 그는 극도로 외로울 수 밖에 없다. 그는 처음부터 도예가의 꿈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자유롭고 낙천적인 성격탓에 백색 세라복을 입는 해군이나 태평양을 누비는 마도로스,정치가나 사업가를 꿈꾸기도 했다.공무원이던 윤득호씨와 대한부인회 초대조직부장을 지낸 박채련씨의 4남2녀중 아들로 막내.부친은 6·25때 작고하고 홀어머니밑에서 자랐으나 활동적인 어머니는 아들이 정치가가 되기를 바랐고 그는 해군사관학교와 연세대 경제과 낙방후 홍대미대에 진학했다.도자기로 돈 것은 홍대에 강의를 나오던 최순우씨가 도자기만의 깊고 푸른맛, 특히 분장청회사기의 남성적인 소박한 매력을 끊임없이 권유해주었기 때문이다.또 도예를 하기 위해서는 도자기와 관련된 문학 철학 미술 역사를 두루 공부할 것을 충고했다.이른바 과묵하고 심도있게 지도하면서 정성껏 만든 작품을 보여드리면 스승은 ‘좋으네’ 한마디 뿐이었다. 74년에는 문공부가 주관하는 도자기수업을 위해 도일,그때도 임진왜란때 건너간 도공의 후예들이 어떻게 도자기를 이어가고 있는가,개인공방에서 작가들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가마를 운영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했었다.수업기간은 3년예정이었으나 그들의 도자기가 하나같이 일본화된 것을 보고 그는 ‘내가 자란 땅에서 우리의 흙으로 나의 것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1년만에 귀국해버렸다. 윤광조의 분청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수반 항아리 문방구 제기 합과 화분을 통해 분청사기의 여러 기법을 다양하게 선보이게 되면서부터다.형태나 문양에서 전통적인 분청사기의 형식을 갖추되 연적이나 합,지통같은 원통형과 발의 형태를 절충하고 문양에서도 상감문과 귀얄문,조화와 인화를 고루 사용하면서 조선조 분청의 질서에 지나치게 맹종하지 않았다.76년 개인전 팸플릿에서 최순우씨는 ‘그의 표현애속에 깃든 아첨없는 양감과 장식은 한국인다운 소탈의 아름다움을 넘치도록 길어올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의 삶과 예술을 지속적으로 지배해온 것은 자유로움에 대한 끝없는 갈망이다.그러다가 78년 현대화랑 박명자대표가 기획한 장욱진과의 합작전에서 그의 진가는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기면이 마르기 전에 작은 태토를 덧붙여 화장토를 바르거나 튀어나온 부분을 긁어내고 흙띠를 두르는 방법,또 기면을 무작위로 찔러 큰 붓질로 화장토를 입히고 그릇 전면에다 백토를 분장한 분청사기에다 장욱진 화백의 꾸미지 않은 동화는 절묘하게 어울렸다.평론가 이구열은 이때의 전시를 가리켜 ‘윤광조의 무심과 장욱진의 소박한 동심이 절로 맞아떨어져 마치 한 작가의 작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고 평했다. ○어릴땐 마도로스 선망 이무렵 그는 스승 장욱진씨의 손에 끌려 예술인들이 드나들던 화신뒤 옹달샘에서 두주불사로 언제나 명정을 면치 못했다.‘술이 취해야만 모든 구태한 생각을 떨궈버리고 새로운 창의력을 얻는다’는 술철학으로 ‘술없이는 예술도 못하고 살맛도 없다’는 태도다.다만 아무리 취해도 ‘종횡무진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 그의 특기이자 남들이 놀라는 점이다.장욱진합작전에서 전람회개막 30분만에 작품이 모두 팔려나가자 비로소 가난에서 벗어나 경기도 광주에다 가마를 마련했고 그때 최순우씨가 집앞에 흐르는 맑은 곤지암천에 뜬 달을 보면서 ‘급월당’이란 당호를 지어내렸다. 이후 분청예술과 선종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은 그는 83년 겨울 송광사에 입산,목탁을 두들기고 단소를 부는 좌선내관으로 도예의 형상에 무념무상의 자율성을 결합시킬수 있었다.형태는 더욱 명상적으로 되었고 ‘정’과 ‘화음’‘관’ 등의 화두로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방하착’의 상태에서 무늬를 자유롭게 그려 나갔다.80년대 후반에 이르러 아무렇게나 빚은듯한 편안한 경지와 나무와 바람의 이미지를 속도감있게 긁어낸 추상적 조화의 성취가 그것이다. ○“술없이는 살맛도 없다” 도자기는 다른 예술과는 달리 단한번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흙과의 끝임없는 대화와 실험과 도전만이 이를 극복할 수 있으며 과도한 장식이나 세련된 묘사보다 ‘무작위의 작위’에 이르기 위해 그는 피와 살과 영혼까지도 자연의 일부가 되기를 일념으로 추구해 나갔다.윤광조의 모습은 최순우씨의 표현대로 ‘물위에 뜬달’처럼 허심탄회하다.그래서 늘 자유롭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인위와 조작이 없는 자연그대로의 ‘무하유지향’에서 그는 고매하고 순수한 예술가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연보 ▲1946년 함남 함흥 출생 ▲1970년 홍대 미대 공예학과 졸업 ▲1973년 동아공예대전 대상수상 ▲1976년 서울신세계미술관 개인전 ▲1978년 경기도 광주 초월면에 급월요개설,서울현대화랑 개인전 ▲1979년 공간도예대전 우수상 수상 ▲1984년 서울예화랑 개인전 ▲1986년 일본 교토크래프트센터 갤러리및 서울 한국미술관 개인전 ▲1987년 서울현대화랑 개인전 ▲1991년 호주시드니 맥쿼리갤러리 및 부산지니스화랑,서울선화랑 개인전 ▲1994년 경북 경주 안강읍이주 ▲1997년 서울 다도화랑 및 통인화랑 ‘윤광조 그릇전’,독일 프랑크푸르트(10월) 및 삼성갤러리 오픈기념전(11월)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호암미술관,워커힐미술관,런던 대영박물관,호주시드니 NSW아트갤러리외 간송 전형필 선생 동상도판제작
  • 금융개혁 문제·경제구조 조정/대정부질문 초점 2제

    ◎금융개혁 문제/“개방 대비 신속개혁 불가피”/여 “조속처리” 야 “졸속 우려” 공방 25일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여야의원들은 금융개혁 문제를 집중 거론됐다.여당의원들은 조속한 금융개혁을 주장한 반면 야당의원들은 개혁안의 졸속처리를 우려했다.신한국당 나오연(경남 양산) 최욱철 의원(강원 강릉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으로 금융의 완전개방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도 더이상 현재의 낙후된 금융산업을 방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그러면서 “기업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금융자율화와 금리자유화 등 1단계 금융개혁작업을 조속히 마무리짓고 2단계로 금융기관의 통폐합을 비롯한 광범위한 후속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민회의 정세균(전북 진안무주장수) 이석현 의원(경기 안양동안을)은 “정부의 금융개혁안대로 3개 감독원이 통합된 금융감독원을 총리실 산하에 두면 오히려 관치금융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질타하고 “금융개혁을 현 정부내에서 무리하게 졸속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업적과시용 전시행정의 표본”이라고 주장했다.자민련 박종근 의원(대구 달서갑)은 “중앙은행이 통화신용정책에서 독립성을 확보한다면 앞으로 통화관리는 종전의 통화량 관리체제를 유지할 것인지 금리중심의 간접통화관리체제로 이행할 것인지 밝혀달라”고 캐물었다. 이에 대해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세계적인 금융개혁 추세 속에 내년말로 다가온 금융시장의 완전개방에 대비하고 한보사태 등의 재발방지를 위해 금융개혁이 시급히 추진돼야 한다”면서 “금융개혁과제를 짧은 시간안에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작용이 없을수 없지만 빠른 시일내 금융개혁을 세계수준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며 신속한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답변했다. ◎경제구조 조정/“관 주도형 체질 탈피” 한목소리/“항구적 규제개혁 철폐 시스템 마련” 25일 국회 본회의의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제 각 분야의 구조 조정 문제가 집중제기 됐다. 자민련의 박종근 의원(대구 달서갑)은 “우리 경제는 10년전부터 구조조정의 문제가 제기됐으나 정부당국의 무책임한 대응으로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정치적 배려와 논리에 따른 경제정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신한국당의 나오연 의원(경남 양산)은 “정부의 규제와 간섭에 의존하는 관주도형 경제체질이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민간의 자율과 창의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체제로의 구조전환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국당의 김호일 의원(마산 합포)과 국민회의 이석현 의원(안양 동안을)은 벤처기업 육성방안을 집중적으로 물었다.이의원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김의원은 “벤처산업 육성과 기술개발 정책에 대한 정부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민회의의 장재식 의원(서울 서대문을)은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이 실패했다는 KDI 보고서를 인용해 정부의 실정을 추궁했다. 신한국당의 김기재 의원(부산 해운대 기장을)은 지방금융산업 육성등 지방경영 여건 강화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이에대해 고건 국무총리는 “규제영향평가제,규제일몰제 도입,기업창업과 공장설립절차 간소화,물류비용 절감,자금조달 원활화등 기업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고 “규제개혁은 일시적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추진되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 예금 채권 매입제 도입/금융개혁법안/금융사 파산전 예금 돌려받게

    ◎중앙은행이 물가안정 등 통화정책 책임져야 앞으로 은행 증권 보험 종금 신용금고 등과 거래하는 예금자는 이들 기관의 청산 또는 파산절차가 끝나기 전이라도 보험금이외의 예금을 조속히 돌려받을수 있는 예금채권 매입제도가 도입된다. 또 중앙은행은 매년 정부와 협의,물가안정목표를 포함한 통화신용정책의 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재정경제원은 24일 이같은 내용을 포함한 한국중앙은행법 개정안 등 중앙은행및 금융감독제도 개편과 관련된 13개 금융개혁법률 제·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며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오는 8월11일쯤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재경원은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현행 예금자보호법은 금융기관이 지급정지·파산·인허가 취소를 당하게 될 경우 예금주 1인당 금융기관별로 2천만∼5천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했으나 앞으로는 금융기관의 잔여 재산범위내에서 보험금을 제외한 예금을 청산 또는 파산절차전에 돌려받을수 있도록 했다. 한국중앙은행법 개정안은 한국은행을 한국중앙은행으로 개편하고 금융통화위원회 의장 및 위원에 대한 물가안정목표에 대한 책임은 선언적 규정에 그치도록 했으며 한국은행내에 정책결정기구로서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금통위를 두기로 했다. ◎한은,즉각철회 요구 한국은행은 24일 재정경제원이 입법예고한 중앙은행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 법률안이 중앙은행의 중립적 정책운용을 제약하고 있다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했다. 한은 비상대책회의는 이날 한은의 명칭을 한국중앙은행으로 변경함으로써 불필요한 혼선을 초래하고 중앙은행을 금융통화운영위와 집행부로 이원화하려는 당초 의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정부 적극적 통화정책 촉구/전경련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2일 손병두 부회장 주재로 30대그룹 기조실 재무팀장으로 구성된 기업금융간담회를 갖고,“기업들의 연쇄부도로 신용불안이 확산되면서 자금조달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며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통화신용정책을 촉구했다. 이들은 기업들이 시간을 갖고 충분히 자구노력을 하도록 2개월 시한의 부도유예협약 적용기간을 연장해줄 것과 차입경영 규제와 상호지급보증 축소 등 규제위주의 정책유보,해외자금 조달을 활성화하기 위한 해외증권 발행 확대 등을 요청했다.
  • “내가 적임” 막판 뒤집기 백태(열전현장)

    ◎여론조사결과 거론하며 “민심 따르라”/“경쟁력” 호소에 “야 좋아하는 후보” 경선을 이틀 앞두고 서울에서 열린 마지막 합동연설회에서는 선두를 달리는 이회창 후보의 굳히기와 2위권 후보들의 뒤집기 싸움이 치열했다. 이한동 이수성 후보는 은근히 이회창 후보를 빗댔다.이한동 후보는 “줄세우기와 줄서기,흑색선전 모략으로 혼탁한 면이 드러난데 이어 급기야 야당이 일부 후보 자제의 병역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섰다”면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좋아하거나 환영하는 후보를 결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수성 후보는 “위선자나 권력욕의 화신,이익을 좇는 사람들이 대통령이 돼선 안된다”고 꼬집은뒤 “그러나 여당후보에는 그런 사람이 없다”고 부연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그러면서도 그는 “믿을수 있는 사람에게 국가를 책임지게 해야 한다”며 차별성을 부각시키는데 주력했다. 김덕룡 이인제 후보는 유리하게 집계된 여론조사결과를 집중 거론하며 지지세 확산을 꾀했다. 김후보는 “어제 모신문 여론조사에서 내가 확고한 2위에 올랐다는 얘기를 듣고 민주주의의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강조한뒤 “깨끗하고 당당한 선거를 치르고 결과에 승복하겠다”며 단합 의지를 과시했다. 이후보는 “최근 여당 경선후보와 야권의 대선 후보 모두를 대상으로 실시한 TV 여론조사에서 내가 김대중 총재를 1%차이로 앞서 1위를 차지,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보였다”면서 “민심은 천심이며 당이 민심을 따르지 않을때 민심이 당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기염을 토했다.
  • 새 한은법 입법 순조 예상/재경원,금통위와 분리안 철회

    ◎한은,오늘 2차회의 참석키로 ‘중앙은행 제도와 금융감독제도 개편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재정경제원이 낸 수정안에는 원안보다 한국은행의 입장을 수용한 내용이 적지않아 통과가능성이 종전보다 높아졌다. 한은으로선 가장 바람직한 내용이 금융통화위원회와 한국은행(앞으로는 한국중앙은행)이 분리되지 않는 것.새로 생기는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국중앙은행내에 금통위와 집행부(현재의 한은)를 두게 돼 한은이 그동안 주장한 것과 같다.재경원은 그동안 금통위를 한은에서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은은 무자본 특수법인이어서 통화신용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게 재경원의 논리였지만 번복됐다. 재경원장관이 금통위에 의안을 제안할 수 없도록 하고 재경원 장관과 금통위 의장(한국중앙은행 총재 겸임),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간의 월 1회 정례협의 조항을 삭제한 것도 통화신용정책 중립성에는 보탬이 되는 대목이다. 한은 한 부장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위해서는 개선된 안”이라고 평가했다.물론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한국은행을 없애고 한국중앙은행이라고 한 것부터 자존심이 상하는 부분이다.감독기능이 사실상 없어진 것도 불만사항이다.그럼에도 강경식 부총리는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위해 더 나은 안은 없다”고 했다.이경식 한은총재도 “이제 얻을 것은 다 얻었다”고 만족해 하고있다.문제는 국회다.국민회의와 자민련 등은 그동안 차기 정부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그러나 한은도 12일 열리는 법령작업반의 2차회의부터는 참석키로 하는 등 한발 물러서 야당이 한은의 불만을 일부 수용하면서 법안을 통과시킬 가능성도 있다. 재경원과 한은은 지난 30여년간 한은법을 놓고 지루하게 싸워왔다.87∼89년의 ‘1차대전’과 95년의 ‘2차대전’에서도 국회통과가 안됐다.‘3차대전’ 결과가 그래서 주목된다.
  • 훈센의 변신(외언내언)

    캄보디아의 훈 센 제2총리가 국제적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지난 5일 재발된 내전에서 노로돔 라나리드 제1총리파를 누르고 캄보디아의 대세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훈 센총리가 특별히 국제적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전세계가 70년대 후반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킬링 필드’를 연상키 때문이다.75년 공산 크메르 루주군이 정권을 잡자 폴 포트정부는 순수한 사회주의 건설이란 명분을 내세워 대대적인 숙정을 시작했다. 이 정권이 베트남군의 침공으로 정권을 내놓을때까지 3년여동안 살육한 숫자가 민군을 합해 약2백만명.이 희대의 인간 도살극은 2차대전시 독일이 저지른 유태인 학살과 함께 20세기 최악의 사태로 일컬어지고 있다. 19세의 어린 나이로 일찍이 크메르루주군에 가담해 성공했으나 폴 포트 정부가 학살을 시작하자 훈 센은 이에 반대하고 나섰다.그래서 베트남으로 피신까지 했던 훈 센은 79년 베트남군이 크메르 루주정권을 무너뜨리고 캄보디아에 친베트남정부를 세우자 재기한 인물. 훈 센은 그러나 국제적 압력으로 베트남군이 철수하자 베트남에 반대했던 서방의 ‘파리평화안’을 수용해 93년 총선을 통해 제2총리가 됐다.그래서 그를 ‘변신의 화신’이라고 한다. 관심의 초점은 훈 센의 캄보디아가 또다른 ‘킬링 필드’화하지 않을까 하는 것.‘적과의 동침’으로 불릴만큼 라나리드 제1총리파와의 권력싸움의 골이 깊어 훈 센이 과연 정적들을 끌어안을수 있을 것인가 우려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국제사면위(앰네스티 인터내셔널)가 8일 훈 센파의 보복이 ‘피의보복’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를 표명했다.사면위의 경고는 훈 센측이 7일 체포한 라나리드파 전 내무장관을 재판없이 처형해 버린데 이어 반대파와 지식인 언론인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면위의 우려대로라면 훈 센의 이번 변신은 생애 최악의 변신이 될지도 모른다.
  • 한은 총재 물가책임 사실상 철회/금융개혁 수정안 오늘 발표

    ◎재경원장과 금통위 의안제안권도 삭제 정부는 중앙은행 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해 한국은행 총재에 물가책임을 지우려던 방침을 사실상 철회하기로 했다.금융통화위원회에 대한 재정경제원 장관의 의안제안권도 삭제키로 해 정부와 중앙은행과의 연결고리를 최소화할 방침이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경원 장관은 10일 상오 과천의 제2종합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금융개혁안 수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이에 앞서 강부총리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신한국당 나오연 제2정책조정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당정협의를 갖고 수정안과 국회처리대책 등을 논의한다. 재경원 관계자는 “중앙은행 제도와 감독체계의 기본 골격은 변함이 없으나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독립은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한은의 요구사항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물가목표를 지키지 못할 경우 한은총재를 해임할 수 있다는 조항은 삭제하는 대신 물가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식의 ‘선언적 규정’으로 남겨두기로 했다.재경원 장관의 의안제안권,재경원 장관과 금통위의장의 월 1차례 이상의 정례협의도 삭제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금융감독기관 통합과 금통위와 한은의 분리,은행의 건전성 경영에 대한 한은의 감독권배제는 당초 정부안대로 유지할 방침이다.다만 한은의 정책업무를 일부 확대하고 검사요구권 등 부분적인 감독권을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법안이 마련되면 이달말이나 다음달 초 국회에 제출해 임시국회에서 처리한다는 방침이다.그러나 신한국당 일부와 야당은 중앙은행 제도 등과 관련한 개편안은 차기 정권에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주장하에 연내 입법화는 불투명하다.
  • 내일 김일성 3주기/북 추모행사와 권력세습 향방

    ◎김일성 승계 축하에 비중/“김정일은 김일성의 화신” 대대적 선전/10월10일 당총비서직부터 취임 유력 김일성의 3주기(8일)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북한에서는 김일성을 추모하는 각종 행사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추모분위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다.김일성 추모행사는 1주기나 2주기에 비해 훨씬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다.95,96년 행사와 크게 다른 점은 김일성의 영생을 축원하면서도 김일성을 「선대수령」이라고 호칭하기 시작하고 김정일을 김일성의 화신이라고 선전함으로써 김정일에 대한 충성과 추대 열기를 고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탈상을 계기로 김일성추모에서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 축하로 분위기를 바꿔가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3년상에 맞춘 이같은 분위기 전환은 아버지가 사망한지 3년이 다되도록 공식적으로 권력을 승계하지 않고 있는 김정일이 당 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마냥 비워둘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김정일은 국방위원장 겸 군최고사령관의 자격으로 유훈통치와 군사통치에 의해 북한을 다스려왔다. 북한은 올들어 김정일에 대한 결사옹위와 충성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면서 승계 분위기를 고조시켜왔다.금년이 행사기념 햇수로 꺾어지는 해이기도 하지만 김정일의 55회 생일(2월16일) 국방위원장 추대 4돌(4월9일),김일성의 85회 생일(4월15일),군창건 65돌기념(4월26일)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이 기간중 눈길을 끌었던 행사는 지난 4월25일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금수산궁전에서 당정군 핵심인사들이 김정일에 대한 충성맹세 예식을 가진 것이다.김일성의 3년상을 계기로 권력을 공식승계한다는 정치일정을 내부적으로 마련하고 이에 맞춰 이러한 일련의 행사를 치러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분위기로 보아 북한은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 후부터는 유훈통치를 마감하고 김정일을 수령에 등극시키는 추대대회를 대대적으로 벌여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김정일의 영도로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초래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김일성과도 점차 차별화해 나갈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보고 있다.그동안의 북한요인들의 발언이나 선전매체들의 논조를 분석할 때 김정일의 승계작업이 진행중인 것만은 틀림없지만 그 시기가 언제일 지,또 당총비서직과 국가주석직을 모두 승계할 것인지에 대해선 관측과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다만 현재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나 당중앙위원회 소집등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 않아 3년상이 끝나더라도 바로 주석이나 총비서에 취임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승계시기는 여러가지 여건이나 상황으로 보아 노동당창당 기념일인 10월10일이 가장 유력시 되며 당총비서직부터 먼저 취임할 것으로 북한문제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외국의 지원으로 식량난도 최악의 고비를 넘겼고 그때쯤이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가시화될 전망이어서 이런 것들을 김정일의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데다 기상이변이 없는 한 올 작황 역시 비교적 좋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 금융5단체장/정부 금융개혁안 지지

    ◎국내외 경쟁력 강화위해 늦춰선 안돼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한 한국은행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관련 5개 단체장들이 정부의 금융개혁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이동호 은행연합회장 연영규 증권업협회장 이강환 생명보험협회장 이석용 손해보험협회장 주병국 종합금융협회장 등 5명은 24일 하오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은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금융개혁에 대한 의견」이라는 발표문에서 『대내외 금융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국내외 금융기관간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우리의 금융개혁은 더이상 미룰수 없는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최근 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제도의 개편을 둘러싸고 관계기관간 논란이 가열됨에 따라 전체 금융개혁의 시행이 불투명해지는 등 심각한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들은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수요자 중심으로의 금융제도 개혁이라는 근본 과제가 지연되서는 안된다』며 『통화신용정책에 대한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인정하되 금융감독권을 일원화해 금융 위험의 증대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3개 감독기관을 통합하는 정부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 삼봉 정도전 개혁가인가 권력화신인가/문집 「삼봉집」1,2권 출간

    ◎저서·개인사·경제­군권장악 배경 등 망라/배불사상 집대성 「불씨잡변」의 의미 재해석 조선 개국의 막후 실력자이자 정치이론가로 조선의 장량을 꿈꾸었던 삼봉 정도전.『한고조가 장량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장량이 한고조를 이용하였다』며 취중진담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과연 야심찬 개혁가인가 권력의 화신인가. 고려 말∼조선 초의 성리학자이자 조선왕조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문집 「삼봉집」(1·2권,민족문화추진회 엮음)이 솔 출판사에서 나왔다.특히 이 책은 최근 인기사극 「용의 눈물」로 인해 정도전의 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는 시점과 맞물려 시의성을 더한다.이 책에는 정도전의 개인사와 다양한 저서,경제·군사권을 거머쥐게 된 배경,북방정책 추진,신권 우위의 관료정치 운영,사회적 폐단을 제거하기 위한 불교·도교 비판 등 삼봉과 관련된 거의 모든 사항이 망라돼 있다. 정도전은 원대한 야망을 품고 전제개혁을 주도,경제권을 장악했으며 군사제도 개혁을 통해 병권을 잡았다.병권장악 뒤에는 역성혁명을 완성하기 위해 정몽주 등 반대파를 제거하고 이성계를 추대,조선왕조를 여는데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정도전은 새 왕조건설에 분골쇄신한 보람도 없이 권좌에 앉은지 7년만에 세자 방석에 당부,종사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명으로 방원에게 참수당했다. 정도전의 저술은 크게 시문,경국제세에 관한 것,성리철학과 불교비판에 관한 것,병서,악사 등 다섯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다.삼봉이 지은 시문은 각종 형식의 시를 비롯해 부 사 소 전 서 기 서 등 다양하다.이 작품들은 대부분 새 왕조창업 이전의 불우했던 시절에 씌여진 것으로 그의 문학적 자질의 비범함을 보여준다.특히 고려말 회진에 유배되었을때 쓴 「금남잡제」와 「금남잡영」,그리고 유랑 독서생활을 하던 시기에 쓴 글들은 삼봉의 호방하면서도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읽게 한다.신숙주는 그의 시문에 대해 『삼봉의 시는 고담웅위하고 문은 통창변박하다』고 평했다. 경국제세에 관한 저술로는 새 왕조의 문물제도와 통치규범을 정리하고 체계화한 것들로 「조선경국전」「경제문감」「경제문감별집」「감사요약」「고려사」 등이있다.「경제문감」에서 삼봉은 재상권의 강화를 주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이같은 주장은 현실적으로 삼봉 자신이 실권을 쥐려는 의도와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그보다는 유가 특히 성리학자들의 정치사상적 이상이 일반적으로 재상중심 체제에 있었다는 사실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말·선초의 역사적 시점에서 볼때 성리학은 불교보다 한층 전진적인 성격을 지녔다.그런 점에서 정도전의 불교비판은 사상사의 문맥상 새로운 이데올로기의 창출운동으로 간주될 수 있다.삼봉의 배불사상을 집대성한 것이 그가 죽기 직전에 쓴 「불씨잡변」이다.삼봉은 불교의 교리를 윤회설 인과설 심성설 지옥설 등 10여편으로 나눠 조목조목 비판한다.불교에 대한 그의 철학적 비판은 유교적 편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때문에 그것에는 나름의 억측과 독단이 적지않다.그러나 성리학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렇듯 철저하게 비판한 것은 동아시아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것으로 사상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삼봉은 문신이면서도 병법에 조예가 깊었다.그는 부국강병의 이념으로 문과 무를 똑같이 중시했다.그의 숭문숭무정신은 「진법」「오행진출기도」 등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삼봉은 이성계의 창업을 기리기 위해 「문덕곡」「몽금척」 등 악사도 지었다.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사상가로서도 일가를 이룬 정도전의 면모를 포괄적으로 다룬 이 책은 조선의 건국이념과 한국학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 “통화신용정책 중립성 관철”/이 한은총재

    ◎금융개혁 구체안 합의 안했다 이경식 한은총재가 금융개혁안과 관련,『재경원과 34개 항목의 기본골격만 합의했 뿐 입법화를 위한 구체적인 안에 합의하지는 않았다』며 『향후 작업과정에서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책임지고 관철시키겠다』고 밝혀 재정경제원과의 충돌이 예상된다. 이총재는 21일 한국은행 부서장들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한은 부서장 13명은 이날 상오 10시부터 2시간 동안 이총재와 간담회를 갖고 금융개혁안에 대해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해 줄 것을 촉구했다. 부서장들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과 관련,『정부안 대로 한은을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단순한 집행기구로,금통위와 사무국의 하부기구로 둘 경우 중앙은행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라며 『금통위는 한은의 내부 기구로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또 3개 감독원을 통합하면서 법령의 제정 및 개정권을 재경원에 부여키로 한 것은 형식적인 통합에 불과하며 감독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이총재는 『4자 회동의 기본 합의정신은 중앙은행의 중립 및 독립성이 보장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다』며 『향후 작업과정에서 이같은 기본정신이 훼손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으며 부서장들의 의견을 토대로 책임지고 관철시키겠다』고 밝혔다.
  • 이한동·이수성/2룡의 「소주회동」

    ◎서로 호형호제 하며 “뭉쳐봅시다” 한마음 과시/이 대표 겨냥 “대통령병 환자 후보돼선 안된다” 신한국당의 이한동·이수성 고문이 21일 저녁 서울 삼각지 차돌백이집에서 소줏잔을 함께 기울이며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의 협력방안을 모색했다. 마주앉은 두 사람은 우선 이한동 고문이 납북당한 이수성 고문의 부친을 겨냥한듯이 「사상 검증」을 제기하면서 발생했던 오해부터 풀었다.이어 이수성 고문이 『「형님」과 나는 인간적 신뢰관계』라고 말하자 이한동 고문은 『인간적인 신뢰에는 정치적 신뢰도 포함된다』면서 「아우님」과의 우의를 과시했다. 두 이고문은 또 『형님이 대통령이 되면 저는 글이나 쓰겠습니다』『아우님이 대통령이 되면 나는 (국회)의장이 되어 보필해야지』『홍구(이홍구 고문)형님도 꼭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데 시간이 안돼 안타깝습니다』라고 덕담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이회창 대표를 겨냥,『「권력의 화신」이나 「대통령병 환자」가 후보가 돼서는 안된다』고 입을 모으고 『적어도 우리 두사람은 국가의 장래를위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뭉칠 것』이라고 몇차례씩 강조했다. 이날 회동이 두사람간의 연대가능성을 열었지만 박찬종 고문,김덕룡 의원과의 공조확대로까지 이어지는 「반이」전선이 구축질지는 불투명하다.박고문과 김의원은 「아마추어 배제론」을 내세우고 있다.이수성 고문도 원칙없는 연대에는 부정적이다.정치인들로서는 드물게 대중식당을 이용한 이날 회동은 두사람의 털털한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 이경식 총재­한은 부서장 대화 내용

    ◎부서장­“한은총재 물가책임제 없애야”/이 총재­“중립성 보장위한 선언적 차원” 비공개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오간 얘기를 참석자들의 말을 조합해 정리한다. ▲이총재=4자 회동의 기본정신은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3개 감독기관을 금융감독원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금융개혁위원회(김개위)의 건의안을 수용할 지 여부를 결정짓기 위한 자리였다. ▲부서장=정부안은 은행 증권 보험감독원 등 3개 감독기관을 실질적으로 통합하지 않고 단순히 외형적으로 기관만 하나로 합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법령의 제정 또는 개정권을 재경원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총재=사전에 충분한 검토가 이뤄진뒤 다뤄졌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감독기관의 통합방식을 근본적으로 검토하지 못한 점에서 특히 그렇다.그러나 금개위 건의안의 전제가 감독기관을 통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자료제출 요구권과 합동(공동)검사실시라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어쩔수 없었음을 이해해 달라. ▲부서장=금통위를 한은의 상위 기구로 두면 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확보할 수 없다.그러면 중앙은행은 뭐냐.통화정책의 결정은 결국 공무원들이 하고 한은을 단순 집행기구화하려는 것은 중앙은행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이총재=나는 중앙은행의 범위를 지금도 금통위와 한은을 합한 것으로 본다.따라서 금통위가 중앙은행의 테두리를 벗어나 한은의 별도 상위기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현재의 한은조직에서 금통위의 위원수가 달라지고 감독기능이 일부 떼어져 나가는 것 밖에는 다를 것이 없다고 보면 된다.향후 입법과정에서 금통위 및 한은의 위상과 관련해 법령상 재경원과 해석 차이가 있을 경우 한은 입장이 관철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부서장=한은총재에 대한 물가책임제는 수정되거나 없어져야 한다. ▲이총재=표현상 오해가 있는 것 같다.통화신용정책의 중립성을 보장하는데 따르는 선언적 차원에서 마련된 것으로 본다. ▲부서장=금통위에 사무국을 별도로 두는 것도 금통위를 한은의 별도 조직으로 해 한은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다. ▲이총재=법 절차상으로는 별도의 조직으로 할 지는 모르나 실제 운용상으로는 다를 것이 없다.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기는 하다.사무국은 한은의 문서부 정도로 생각했다.그렇지 않다면 사무국을 없앨 수도 있다.
  • 지자체 권한 확대… 발전적 상호경쟁 촉진/국가 정책과제 주요내용

    ◎기업활동 돕게 금융기관 심사기능 강화/근로자파견제 도입 인력시장 효율성 제고 21세기 국제 경쟁시대를 맞아 시급히 개선해야 할 국가 정책과제가 제시됐다.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정부역할 재정립=시대적 조류에 맞춰 정부 역할과 기능이 재정립돼야 한다.정부기구 축소와 공무원수의 대폭적인 감축이 필요하다. ▲재정지출 구조개혁=인건비 방위비 등 경직성 경비가 세출의 55%를 차지하고 사회간접자본(SOC) 등 국책사업도 투자효율 저하로 문제가 많다.재정지출 구조의 효율화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 ○지방축 활성화 전략 뒷받침 ▲지방중심 경제발전=지역간 균형발전이라는 목표도 중요하나 이제는 지방간의 경쟁적 발전이 촉진돼야 한다.지자체의 경제행정 역량을 보완하고 재원과 권한을 지방으로 상당부분 넘겨 준 지난 5월의 지방중심의 경제활성화 전략의 차질없는 추진이 필요하다. ▲금융산업 경쟁체제 구축=금융기관 업무영역의 제한과 금융기관의 진입 퇴출이 자유롭지 못해 경쟁의 정도가 미약하다.심사기능이 취약해 기업경영에 대한 조언자로서의 역할도 미흡하다.금개위의 개혁안을 토대로 한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한국은행 독립따라 정상화 ▲물가구조 개편=과다한 사교육비 부담으로 국민이 느끼는 지수물가와 체감물가의 괴리가 크다.선진국에 비해 식료품 가격은 높고 공공요금 수준은 낮은 왜곡된 물가구조를 갖고 있다.개방체제가 확대되고 물가안정을 통화신용정책의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제도의 변경이 추진되고 있으므로 이에 따라 물가구조도 정상화돼야 한다. ▲농업구조 개선=개방화 진전으로 농업구조 개선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세계무역기구(WTO)의 농산물 협상에 대비,21세기 농업구조에 대한 보다 분명한 전략과 정책방향이 모색돼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량 축소 유도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3%에 이르고 에너지 수입증가가 경상수지적자 확대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에너지 가격체계의 개편과 함께 에너지 이용의 효율화를 유도해야 한다.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여나가는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정보화 인프라 구축=핵심 소프트웨어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효율적으로 조기에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하고 소프트웨어산업의 성장을 촉진하는 실천적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회보험제 민간참여 허용 ▲노령화시대 대비=사회보험제도에 민간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등 복지체계의 효율화를 꾀해야 한다.본격적인 노령화시대의 도래가 우리 경제사회에 미칠 영향과 정책적 대응방향도 심층 검토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근로자파견제 등 다양한 고용형태가 아직 미비돼있고 경직적 임금제도 또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노동시장의 기능 활성화를 저해하는 민간직업소개업에 대한 정부 규제를 완화해야 하며 훈련 및 구인·구직정보,직업알선망 등 노동시장의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 ▲토지공급의 원활화=토지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면 경제의 구조조정노력 또한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토지관련 각종 규제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토지관련 세제의 개선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물류체계 개선=교통혼잡비용이 매년 2조원씩 증가 추세를 보이는 등 도시교통체증에 따른 시간 및 비용부담이 날로 가중되고 있다.물류의 효율화 및 도시교통난 해소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 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항만 투자·운영체계 등 혁신 ▲동북아 물류중심기지화=지리적으로 동아시아의 관문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특히 부산 광양항의 경우 국제 컨테이너 주항로상에 있어 중심항만으로의 입지조건이 최적이나 항만시설 확보율이 65%로 낮다.효율적인 항만 투자와 항만 운영체계의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 ▲경영투명성 제고=우리나라 기업은 외형확장 위주의 경영에 치중하고 전문경영체제가 확립되지 않아 국제 경쟁에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기업집단 연결재무제표의 도입 등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제고시키고 법적근거 없이 재벌그룹의 경영권 행사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회장실 기획조정실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부당한 내부거래 시정장치 ▲경쟁촉진적 시장구조=각종 진입·퇴출장벽을 제거,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독과점 사업자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부당 내부거래 등에 대한 엄정한 법적용 등 시정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 “금융개혁 한은과 타협없다”/강 부총리

    ◎입법작업 불참해도 법안마련 강행/이 총재 “금통위는 한은내 기구” 공식 제기할듯 정부는 중앙은행제도 및 감독체계의 개편안과 관련,한국은행과 수정을 위한 타협은 하지 않기로 했다.그러나 이경식 한은총재는 이날 정부가 개편안을 국무회의에 올리기 이전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문에 대해 금융통화운영위원회(금통위) 및 한은의 입장을 공식 제기하겠다고 밝혀 개편안을 둘러싼 정부와 한은간 대립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경식 부총리 겸 재경원장관은 19일 『한은이 정부의 개편안에 반발하면서 독자적인 한은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부의 최종안은 이경식 한은 총재와 이미 합의했기 때문에 다시 논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강부총리는 『개편안을 입법화하기 위한 법령작업반을 구성하겠지만 이 작업반에서도 정부 최종안의 기본골격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재경원은 한은이 법령작업반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다른 감독기관의 실무자와 함께 법안을 마련해 오는 7월24일 국회에 제출할 방침이다. 한편 이경식 한은총재는 19일 금통위를 주재한 자리에서 금통위 의장 임명절차 등에 대해 금통위 위원들이 문제점을 지적하자 『국무회의 상정 이전에 금통위 자문을 얻도록 요구하겠다』며 『정부가 자문을 구해오면 금통위 의견 등을 상세히 작성,답신을 보내겠다』고 밝혔다.이총재는 통화신용정책의 최고 의결기구인 금통위 위상과 관련,금통위를 정부안처럼 한은의 별도 상위기구가 아닌 한은조직 내의 기구로 해석하고 있어 이에 대한 입장을 정부에 밝힐 것으로 여겨진다.
  • 금통위원·이 한은총재/금융개편안 설전

    ◎“한은총재에 물가책임 설현성 없는 조치”/“정부방안 거부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통화신용정책의 의결기구인 금융통화운영위원회(금통위) 위원들과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간에 19일 정부의 중앙은행제도 및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에 대한 설전이 벌어졌다.위원들 대부분은 이총재가 합의한 정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집중 공격을 퍼부었고 이총재는 진땀을 뺐다. 이날 열린 금통위 회의에서 이총재에게 집중타를 가한 사람은 윤석범 위원(연세대 교수).재경원의 추천을 받은 임명직 위원중 한 사람이다. 윤위원은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금통위의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면 재경원의 입김이 작용하게 돼 금통위부터 관치금융화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설정,한은총재에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실현성이 없다고 지적했다.통화측면에서의 물가관리 이외에 원자재 가격과 공공요금 등 여러 외적요인이 많음에도 이를 무시한 경제학을 모르는 무식한 소치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했다. 외환관리와 금융감독업무를 한은에서 떼어낸 것이나 한은 경비예산에 대해 재경원장관의 승인권을 두기로 한 점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총재는 『성명을 낭독하듯이 하느냐.윤위원과 논쟁을 펼 생각은 없다』고 받아넘긴뒤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금통위 의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기 때문에 중간절차로 총리가 제청하든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든 별 의미가 없다고 했다.금통위 의장 임명과 관련한 국무회의 심의안건은 총무처에서 올리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한은총재에 물가책임을 묻기로 한 조항도 선언적 규정으로 보면 되며 역으로 보면 물가관리에 대한 정부방안을 한은이 거부할 수 있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외국환업무도 한은이 정부의 위임을 받아 하는 것이지 한은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 제도를 확인해준 것과 다를바 없다고 했다.중앙은행의 감독권은 금융감독원과의 합동검사로 최소한 확보했으며 경비예산은 어느 기관에 의해서든 검증받는 것이 옳다며 정부안의 타당성을 설명했다.
  • 한적대표 2인이 말하는 북 체류 2박3일

    ◎북 환영 분위기속 한국신문 내용에 불만/단동­신의주 직통전화 개설엔 난색 표명/89년 학생축전 영화 보여준뒤 소감 물어 북한적십자사(북적)에 대한 식량지원을 위해 지난16일부터 신의주에 머물렀던 이용헌·최종채 대한적십자사(한적)두 대표는 이호림 북적부부장(과장급) 등 북적대표들의 환대속에서 2박3일을 보냈다고 말했다.다음은 18일 하오 늦게 신의주역에서 1천264.5t에 대한 인도·인수식을 마치고 단동으로 돌아온 두 대표 이야기의 요약. 숙소인 「압록강여관」은 압록강철교를 건너 북한측 「국경통행검사소」에서부터 2.7㎞지점에 있는 4층의 정갈한 호텔이었다.호텔은 화교와 중국의 조선족교포들로 붐볐고 1층 로비에는 30∼40명의 손님들이 눈에 띄었다.호텔측은 객실의 80∼90%가 차 있다고 말했다. 이호림부부장,한인덕·최수일씨 등 북적 구조대책위 위원들도 한 여관에 묵으며 우리를 상대했다.이들은 지난12일 1차 전달직후 『신의주가 썰렁했다』는 우리대표의 말을 인용한 「한국신문」을 문제삼으면서 지원업무와 남북관계와 관련,말과 행동에 주의해 줄것을 재삼 강조했다.식량지원과 관련,한꺼번에 많은 양을 전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옥수수 가루가 쉽게 부패하므로 여러 방도로 가공할 수 있는 통강냉이로 달라고 희망하기도 했다. 판문점을 통한 식량전달 방안에 대해선 북적대표들은 『여건이 성숙되지 않은것 같다』고 말했으며 단동­신의주등 적십자대표간의 식량수송을 위한 직통전화 등 연락체계를 갖추자는 제의에는 『어렵다』고 대답했다.17일 상오엔 북적대표들은 지난89년 평양에서 열린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 기록영화를 두시간동안 보여준뒤 소감이 어떠냐고 묻기도 했다.17일 단동과 3차례 국제전화를 했는데 원래 북측설명과는 달리 전화신청후 3시간가량 기다리지 않고 3∼5분정도 기다린뒤 평양을 거쳐 단동으로 통화할 수 있었다. 식사는 식당에 마련된 별실에서 한끼에 20달러하는 외국인용 식사로 대접받았다. 신의주거리는 비교적 깨끗했으며 여성들은 검은치마에 흰 블라우스차림이 대부분이었고 대체로 검소하고 수수했다.거리에는 「우리식대로 살아가자」는등의 대형 플래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정치적인 대화는 피하려 했으나 미전향장기수인 김인서의 딸이 북적 사무실에 와서 아버지를 석방시키는데 도와달라고 애원하고 있다며 한적이 이에 앞장서 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적십자사업에 수고가 많다.자랑스럽게 생각한다.남북관계 개선과 통일에 앞장서자』고 말하기도 했다.또 『좋은 일하러 오신 분들인데 불편이 있느냐』며 다정하게 묻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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