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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硏 세미나… SOC 투자 등 세출확대 주장

    ◎“경기부양 위해 재정적자 감수해야” 현재의 경제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재정 및 통화신용정책의 조합을 통해 과감하게 경기를 부양시키되 경기활성화를 위한 감세정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기부양 조치는 구조조정을 지연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단기간에 집중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조세연구원의 朴宗奎 박사는 4일 열린 출입기자단 세미나에서 ‘경제위기하의 재정정책 방향’이란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대규모 재정적자를 통해 신속하게 경기부양 조치를 취한 후 재정 건전화를 추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朴 박사는 이같은 조치는 중기적으로 재정여건을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으나 현 시점에서는 구조조정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 경기부양책을 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정적자 확대방안 가운데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를 위해서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포함하는 자본지출의 확대가 가장 효과적이며 민간소비를 단기에 늘리기 위해서는 실업대책비 지급 등의 방법이 상대적으로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 “5대 기업서 38억 모금”/검찰

    ◎林 前 국세청장 구속… 대선때 한나라 제공/정대철 부총재 경성비리 관련 밤샘조사 경성그룹 비리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朴相吉 부장검사)는 1일 하오 9시30분쯤 鄭大哲 국민회의 부총재 겸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총재를 전격 소환,밤샘조사를 벌였다. 鄭부총재는 지난해 8월 서울 강남구 논현동 S주점에서 경성측 로비스트인 보원건설 李載學 사장(49)과 화신공영 수주담당이사 尹成基씨(51) 등으로 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鄭부총재는 검찰에서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이들이 경성측의 청탁을 전혀 하지 않아 경성에서 나온 돈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鄭부총재가 받은 돈의 대가성 여부 등을 조사,혐의가 드러나면 특정범죄가중처법상 알선수재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대검찰청 중앙수사부(李明載 검사장)는 이날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5개 대기업으로부터 38억원의 대선자금을 거둬 한나라당에게 건넨 林采柱 전 국세청장(61)을 국가공무원법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林 전 청장은 지난해 11월 세무조사를 빌미로 현대·대우·SK그룹으로부터 10억원씩,동아건설 5억원,극동건설 3억원 등 모두 38억원을 받아 한나라당측에 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미국으로 출국한 李碩熙 전 국세청차장이 林 전 청장과는 별도로 다른 대기업들로부터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사실도 확인했다. 이에 따라 林·李씨가 대선자금으로 모은 돈은 수백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林 전청장은 검찰에서 한나라당 徐相穆 의원이 모금대상 기업 명단을 건네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번 주말쯤 徐의원을 소환,대선자금 모금 경위와 규모·사용처 등을 집중 조사한 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달 31일 林 전 청장과 金千萬 전 극동건설 사장 등을 소환,林 전 청장의 혐의 사실을 밝혀냈다. 한편 검찰은 徐의원 외에 안기부를 통해 한국통신과 한국중공업 등 공기업으로부터 수억원을 모금한 한나라당 金泰鎬 의원 등 정치인 4∼5명의 출국을 금지한 것으로알려졌다.
  • 경제정책 결정권 대폭 이관·축소/더 움츠러드는 재경부

    ◎금융기관 담당 금감위로 지방행정은 기획예산위/통화신용정책도 한은에/과거 막강한 영향력 상실/“이제 우리는 수족없는 머리 법안만 고치는 단순부서 불과” 재경부는 이번 주초 경제차관 간담회에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과 관련,각 부처가 추진해야 할 세부계획에 일일이 번호를 매겼다. 금융감독위원회의 5개은행 퇴출절차 마무리(1­01­01),기획예산위원회의 지방 행정조직 통폐합(1­04­03),산업자원부의 수출 신용보증 지원 확대 조치(4­01­03) 등…. ‘경제에 관한 일이면 모두 우리 일’이라는 재경부에서 구체적인 정책 도구는 모두 다른 부처로 넘어가 있다.재경부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금융기관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은 금감위,지방행정 기관은 기획예산위,실물경기는 산자부 소관이다. 과거 경제기획원처럼 예산편성권이라도 있으면 다른 부처를 움직일 수 있으련만 형식상 재경부 산하로 되어있는 예산청도 독자적으로 행동한다.더욱이 예산청은 이제 기획예산위 산하로 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통화신용정책도 한국은행으로 넘어갔다.재경부는 실물경기 대책과 관련,한국개발연구원(KDI)을 시켜 한국은행에 돈을 풀도록 설득했다.재경부 관리들은 “이제 우리는 정책의 머리 역할만 하고 법안을 고치는 부서에 불과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우울해 한다. 재경부의 축소된 위상은 올들어 재경부 출신 관리들의 전직에서도 드러난다.‘모피아’로 불리면서 굵직한 산하기관장은 물론 시중은행장까지 독식하던 재무부나 재경원시절의 흔적은 이제 찾기 힘들다. 최근 공석중인 소비자보호원장에 외교통상부의 許陞 대사가 내정된 것이나 재무부 차관보 출신의 申明浩 ADB(아시아개발은행)부총재가 떠난 주택은행장 자리에 金正泰 동원증권사장이 후보로 올라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올들어 재경부에서 방출된 인사들을 보면 차관보급인 梁萬基씨가 수출입은행장,전임 공보관(국장급)인 朴鍾元씨가 대한재보험사장등 기관장으로 갔을 뿐이다.그 외에 차관보급인 姜永周 전 국세심판소장은 한국은행 감사,국장급출신으로는 盧勳健씨가 예금보험공사 감사,申鎬柱씨가 산업은행감사등 주로 감사직으로 나갔다. 재경부 위상이 축소된 것은 외환금융 위기의 책임론과 관련,재경부 권한을 축소하려는 새 정부의 방침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재경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로 인해 최근 재경부 공무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 “금리 계속 인하 실물경제 부축”/全 한은 총재 강연

    ◎상반기 성장률 -5%대… 사상 최저될듯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이 사상 최저치인 마이너스 5% 안팎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됐다.하반기에도 소비와 설비투자 등 내수 위축이 지속되고 있는데다 동남아국가의 통화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출상품의 단가 하락 등으로 성장률은 상반기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통화당국은 경기가 급속히 침체하고 실업자가 더욱 늘어남에 따라 실물경제의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 금리를 계속해서 떨어뜨리기로 했다. 全哲煥 한국은행총재는 26일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서울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 조찬회에서 ‘하반기 통화신용정책 방향’ 강연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全총재는 2·4분기에는 제조업 생산과 소매판매,내수용 소비재출하 등 소비관련 지표와 국내 기계수주 및 건축허가면적 등 투자관련지표가 1·4분기에 비해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하는 등 실물경제의 침체가 지속됐다고 말했다.따라서 올 상반기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은 마이너스 5% 내외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마이너스 5%대의 성장률은한은이 반기별 경제성장률 통계를 내기 시작한 지난 7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종전까지 반기별 경제성장률이 가장 낮았던 때는 80년 하반기의 마이너스 3.6%였다.
  • 경제·금융 고위公職 총출동/‘개혁전도’ 발로 뛴다

    ◎李揆成 재경­표준협회주최 조찬회서 경제정책운용 방향 강연/陳稔 위원장­프레스센터 토론회서 ‘공기업 정책’ 주제발표/金撤煥 한은총재­하반기 통화정책 방향 조찬간담 참석 특별강연 정부의 주요 경제관련 부처와 금융당국의 장관급 인사들이 26일과 27일 정부의 경제개혁 방향에 관해 조찬강연 등에 나선다. 陳稔 기획예산위원장은 26일 상오 7시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토론회에 참석,‘공기업의 구조조정과 향후 정책방향’에 관한 주제발표를 한다. 全哲煥 한국은행 총재는 같은 시각 라마다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리는 서울 이코노미스트 주최 조찬간담회에서 ‘하반기 통화신용정책 방향’에 관해,申明浩 전 주택은행장은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美 조지워싱턴대 한국총동창회(회장 尹泳五 국민대교수) 주최 조찬모임에서 ‘아시아경제의 전망’에 관해 각각 특강을 한다. 다음 날인 27일에는 李揆成 재정경제부 장관이 상오 7시20분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표준협회 주최 8월 조찬회에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에 관해,朴泰榮 산업자원부 장관은상오 7시 힐튼호텔에서 열리는 생산성본부 주최 조찬회에서 ‘하반기 산업정책 방향’에 대해 각각 강연한다. 李憲宰 금융감독위원장도 이날 상오 7시30분 프레스센터에서 열리는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 총동창회 조찬모임에 참석,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금융기관 구조조정과 금융시장 전망’에 대해 밝힐 예정이다.
  • 親日의 군상:1­2/외국의 민족반역자 처벌(정직한 역사 되찾기)

    ◎佛,나치 협력자 15만명에 실형/대만­비밀경찰조직 軍統局서 명단 작성/중국­‘인민의 적’ 규정… 인민재판 통해 처단 2차대전 종전은 4년에 걸친 세계대전의 종막을 고함과 동시에 준엄한 단죄의 서곡이기도 했다.종전후 승전국들은 ‘전범재판’을 통해 패전국의 전쟁지도자들을 처단했으며,일부 피지배국가들은 자국내의 민족반역자들에게 준엄한 단죄를 하였다. 유럽의 ‘뉘른베르크재판’과 일본의 ‘도쿄재판’이 전범재판이라면,프랑스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와 중국 대만 등이 외세협력자를 처단한 것은 반민족행위자 재판이라고 할 수 있다.이들 국가는 종전 직후 민족반역자들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 암울했던 피지배의 역사를 극복할 수 있었다.반면 우리는 해방후 제헌국회에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친일파들의 방해로 도중에 와해,친일파 척결은 ‘미완의 역사’로 기록돼 왔다.외국의 반민족행위자 단죄의 실상을 알아본다. ○150만∼200만명 연루 ▷프랑스◁ 프랑스의 나치협력자 처단은 1944년 드골장군이 나치협력자 처단은 전담재판소 개설과 ‘비(非)국민제도’ 창설을 골자로 하는 훈령 발포로 본격화됐다.저항작가 장 포랑의 연구에 따르면,이 숙청조치에 관련된 사람은 모두 150만∼200만명으로 추산된다.이들중 죄상이 경미한 99만명은 1개월 이내에 풀려났으나 15만여명은 실형을 선고받았다. 나치에 협력한 비시정권의 원수격인 페탱을 포함,3부요인 등 고위인사를 특별심판한 최고재판소는 1960년까지 계속된 재판에서 총 108건을 처리,18명에게 사형,25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하고,15명에게 공민권 박탈조치를 내렸다. 페탱은 고령이라는 이유로 사형집행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감옥에서 자살하였다. ○지식인 대부분 중벌 일반법원은 총 취급건수 14만건중에서 4만여건을 시민법정에 이송하고 나머지 5만7천건을 재판하여 6,763명에게 사형,2,777명에게 종신 강제노동형,2만6,529명에게 유기 강제노동형,3,678명에게는 공민권 박탈을 선고했다.사형선고를 받은 자 가운데 779명은 실제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또 지방법원은 총 12만건을 재판에 회부,4,783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이들중 3,000여명의 사형이 집행됐다.시민법정 역시 다수의 나치협력자를 처단하였다.11만5,000여건을 취급하면서 9만5,000명에게 ‘비국민 판정’을 내렸다.비국민 판정은 선거권 박탈,공직진출자격 박탈,무기 소유·휴대 금지 등 사실상 시민의 권리를 박탈한 준 사법적 조치로,이는 반역자들을 매장하고 그들의 재부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고안한 프랑스 특유의 ‘발명품’으로 불린다. 드골정부는 특히 나치에 협력한 언론인과 작가 등 지식인을 대부분 사형·무기징역 등 중벌로 다스렸다.나치지배하 비시정권에 협력한 원로언론인 6명이 사형선고를 받은 것을 비롯해 저명한 작가·시인들도 예외없이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2년5개월 漢奸재판 ▷중국·대만◁ 전후 중국과 대만은 각자 친일파를 처단하였는데 처단방식에서는 서로 차이가 있었다.우선 중국은 1946년 4월부터 2년5개월에 걸친 ‘한간재판’(중국에서는 친일파를 한간이라 부름)에서 ‘인민재판’ 방식을 취했다.피의자에 대해 검찰의 조사가 끝나면 민중들로 구성된 배심원들이 공개된 장소에서 민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재판을 진행,군중들의 참여를 유도하였다.중국공산당 정부는 인민재판을 통해 민중들의 울분을 정화시키고 민심을 살 목적으로 이 방식을 취하였다.특히 중국공산당 정부는 친일파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한간재판을 통해 봉건세력을 제거하고 동시에 혁명의 기반을 닦는 계기로 활용하였다. ○‘유전무죄’ 유행하기도 한편 蔣介石의 국민정부는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피의자를 체포·기소·재판하는 ‘규문(糾問)주의’방식을 취하였다.국민정부는 비밀경찰조직인 군통국(軍統局)이 작성한 한간 명단을 근거로 ‘한간사냥’을 진행하였는데,가정부로 위장해 근무해오던 특무요원이 그 주인을 체포한 예도 있었다. 국민정부는 그러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유행어가 나돌 정도로 관련 공무원들의 부패가 심했던데다 1심판결로 사형을 집행하는 등 감정적 처리가 빈발했었다.또 재판관중에 친일파가 포함된 사실이 밝혀져 국민정부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데다 국민정부측이 汪精衛(일제의괴뢰정부인 남경정부의 주석)의 무덤을 폭파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민중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친일파 청산 ‘용두사미’/반민특위 의욕적 출발… 사형선고 1명마저 석방 49년 1월 8일 화신백화점 사장 朴興植의 검거를 시작으로 본격 활동에 들어간 반민특위는 8월말 업무를 마감할 때까지 8개월동안 총 682건(여자 66명 포함)을 처리하였다. 이중 반민특위는 중추원 참의 등 당연범 198건을 포함,408건에 대해 영장을 발부하여 이들중 305명은 체포(자수 61명 포함)하였고 미체포자는 173명이었다.또 반민특위는 이들중 84건을 석방하고 559건을 검찰에 송치하였는데 221건이 기소되었다. 기소사건 가운데 특별재판부에서 재판이 종결된 건수는 38건으로 이중 체형선고는 12건이었다.최고형인 사형은 일제 고등경찰 출신의 金悳基가 유일하였는데 그는 6·25 직전 감형으로 풀려났고 나머지 유죄판결자 역시 이같은 경로로 전부 풀려났다.결국 반민법 해당자로 처단된 자는 아무도 없는 셈이다. 당초 반민특위는 반민족행위자를 7천명 정도로 잡고 왕성한 의욕을 보였으나 친일파의 방해와 인력부족,중도에 공소기간 단축으로 친일파 청산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고 말았다. ◎친일 문제 반드시 청산돼야/민족통일과 연결… 새 역사 출발점으로/姜萬吉 고려대 교수·한국사 해방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일제 강점시대의 친일파들은 대부분 죽었다.따라서 아직도 친일문제가 논의되어야 하는가,친일파 문제가 과연 현실문제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 법도 하다.그러나 친일문제는 엄연히 현실문제요,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문제다. 역사교육 및 사회정의 차원에서 친일파 문제는 청산돼야 하며 그것은 오늘의 현실적 과제이다.역사에서 李完用 등은 분명히 매국노라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그 매국행위로 얻은 재산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전해져 있는 게 현실이다.그밖의 친일행위자들도 그 자신이 단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친일행위로 얻어진 정치·경제·사회적 기반이 후손들에게 전해져서 그대로 누려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국재산 버젓이 상속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역사교육이란 것이 왜 필요하며,사회정의라는 말이 왜 있어야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반세기가 아니라 1백년이 지났다 해도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이 불가피함을 알게 된다. 친일파 문제가 청산되지 않음으로써 친일 논리가 청산되지 않은 또 다른 중요한 과제가 남아 있다.李完用을 비롯해서 크고 작은 친일파들은 그때 그때마다 저들의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는 논리들을 내놓았다. 그것을 요약하면,한 시대 한 민족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가,그 역사를 누가 주체가 되어 움직여 가는가,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전진해 가는가 하는 문제보다 주인이야 누구든,폭압통치가 자행되건 말건,그 사회가 물량적으로 ‘풍부’해지고 경제적으로 ‘발전’하기만 하면 역사가 발전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던 시기,그들에 의해 조작되었던 이 되지 못한 논리가 이른바 한·일 국교 재개 이후 일본 학계에서 다시 살아나더니,어느 틈에 우리 학계의 일각에서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이렇게 된 원인의 하나는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나도록 친일파들의 자기합리화 논리를 우리가 이론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데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이래도 친일파 문제가 현실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친일 논리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현실문제로 되살아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친일문제 청산은 일본과의 문화교류 확대를 위한 전제조건으로서도 중요한 문제다.지금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려 하고 있다.그런데도 일본은 아직 과거의 침략행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군국주의 찬양 문화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일본 대중문화에 대해 벽을 쌓고 지낼 수는 없다.우리의 문화적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그 벽을 낮추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일본문화 개방 폭을 넓히는 전제조건으로서,또 우리의 문화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일제시대 반민족행위에 대한 역사적 청산은 불가결하다. ○日 문화개방 전제조건 친일문제 청산이 민족통일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통일이 어느정도 전망되고 있지만,통일의 시점이 바로 민족사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그 출발점에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부각될 일이 바로 식민지 잔재 청산일 것이다. 이미 교환된 남북합의서는 어느 한 쪽에 의한 흡수통일이나 우위통일이 아니라 분명 남북 대등통일을 약속하고 있다.통일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분단시대 청산은 바로 일제시대 청산과도 연결될 것이며,이 점에서도 남북 양쪽이 대등한 조건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이렇게 보면 친일파 청산은 현실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적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 현대그룹/鄭周永의 現代정신(한국경제를 이끌어온 기업)

    鄭周永. 현대그룹 창업자이면서 아직도 실질적 오너인 ‘왕회장’. 그를 한마디로 형언하기에는 모자람이 너무 많다. 살아있는 우리나라 경제의 역사이자 증인이랄까. 그는 불모의 땅에 경제기적을 이룬 한국 근대화의 큰 축이다. 朴正熙 전 대통령에 비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누가 감히 소떼 방북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경색된 남북협력을 소떼로 뚫어보겠다는 기막힌 발상. 소떼 방북은 불굴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함을 창조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鄭회장의 오늘은 무엇보다 강원도 통천에서 뼈저리게 겪었던 체험을 승화시킨 정신력에서 비롯된다. 그의 행보는 현대정신에 그대로 녹아있다. ‘창조적 예지’ ‘적극 의지’ ‘강인한 추진력’이 바로 그것이다. ◎초인적 의지로 불가능에 도전/황량한 울산바닷가서 중공업立國 바라봐/막힌곳 창조적 예지로 뚫어 경제기적 창조 창조적 예지는 ‘중공업 한국’을 일군 원동력이 됐다. 60년대말 울산의 황량한 바닷가에 수십만t 건조능력의 조선소를 세우리라 생각한 사람은 鄭 회장 밖에 없었다. 71년 사업계획서와 울산 미포만의 백사장 사진 1장을 들고 영국 런던으로 차관을 얻으러 간 사실은 차라리 아스라한 추억이다. 서산의 4,700만평에 이르는 대규모 간척지를 옥토로 가꾼 것도 그의 선견지명을 잘 보여준다. 84년 최대 난공사인 최종 물막이 공사를 보자. 그는 대형 유조선을 이용,엄청난 압력의 물 흐름을 막아 둑을 완성하는 기상천외의 기법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의 초인적 의지와 추진력은 오늘의 ‘현다이’ 명성을 낳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鄭회장을 불세출의 인물로 각인시킨 대역사였다. 68년 2월 428㎞건설에 착공해 2년5개월이라는 세계 최단기간 완공기록을 세웠다. 76년에는 중동붐을 타고 ‘20세기 최대의 역사’로 불린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을 9억4,000만달러에 따냈다. 단일공사로 세계 최대 건축공사인 알코바 공공주택사업(6억3,000만달러),젯다 공공주택공사(5억2,000만달러)등도 鄭회장 특유의 돌파력과 추진력,긍정적인 사고가 빚어낸 작품이었다. 자동차사업 진출도 마찬가지. 76년 포니 출시에 이어 86년엑셀의 미국 진출이라는 신화를 낳았다. 최근에는 첨단 전자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鄭회장은 이제 남북통일의 길을 튼 금강산 개발사업에 필생의 열정을 쏟고 있다. 鄭회장의 성공은 정신력의 승리 외에 다름 아니다. 그는 자서전‘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정치와 경제에 기적이란 없다. 기적이란 인간의 정신력으로 실현한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확실히 우리는 이론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해냈다. 이것은 바로 정신의 힘이다. 신념은 불굴의 노력을 창조할 수 있다. 진취적인 정신,이것이 기적의 열쇠다” ◎現代의 야심찬 경협계획/소떼로 금강산 가는길 텄다/새달 25일 첫 관광객 출발/44억弗 수출단지도 구상/금강산 광천수 금명 개발 500마리 소떼 방북은 20세기에 마지막으로 연출할 수 있는 장관이었다. 이는 곧 거대한 남북 경제협력사업을 국내·외에 알리는 서곡이기도 했다. 현대는 ‘금강산 사업’에 향후 20억달러를 들여 추진한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하일라이트는역시 금강산 관광사업. 오는 9월 25일이면 3만2,000t급 ‘현대금강산호’가 1,000여명의 관광객을 싣고 동해항을 출발한다. 북한측과의 합의와 방북실무단의 협의가 일정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 관광객들은 4박5일의 일정으로 해금강 등 4개 관광코스를 둘러보게 된다. 실향민들은 고향땅을 어루만지며 한줌의 흙을 소중히 간직해 올 것이다. 현대는 금강산일대를 등산관광코스,해안관광코스,호수 및 온천관광코스,연안관광코스 4개 권역으로 나눠 개발할 참이다. 호텔 쇼핑센터 골프장 노래방 공연장 등 각종 숙박·위락시설도 마찬가지다. 이곳을 통일된 한국의 최대 관광지로 가꿔 설악산관광과 연계시킨다는 생각이다. 곧 관광객 모집에 나서고 비용도 150만원 선에서 결정할 예정이다. 남북경협은 해주 경공업단지와 자동차조립사업이 핵심을 이룬다. 국내 섬유 신발 피혁 등 유휴설비의 20%를 이전,연간 44억달러를 수출한다는 구상이다. 하루 100t규모의 금강산 광천수도 개발한다. ◎어떻게 성장했나/47년 세운 현대토건,6·25후 최대건설사 발돋움/67년 현대자동차 설립 86년에 美國 처녀수출/73년 조선소 세우기도 전에 26만t 유조선 수주/75년 오일쇼크땐 중동진출해 달러 벌어들여 현대그룹의 역사는 47년 5월 야심찬 강원도 청년 鄭周永이 서울 초동에 세운 현대토건에서 시작한다. 해방의 어수선한 경제상황에서 서서히 명성을 다져가던 鄭회장은 50년 현대건설로 상호를 바꾼다. 같은해 터진 6·25는 오늘날의 현대를 일구는 밑바탕이 됐다. 제1한강교 복구공사를 비롯,수많은 미군 공사를 따내며 급속도로 사세를 확장,60년 국내 건설업계 1위에 오른다. 이후 현대는 ‘최초’ ‘최대’라는 각종 최상급 수식어를 갈아치운다. 65년 국내 최초로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했다. 태국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세계 무대에 이름을 내밀었다. 이어 베트남 알래스카 괌 호주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67년에는 현대자동차가 세워졌다. 미국 포드자동차와 계약을 맺고 ‘코티나’를 조립생산했다. 76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탄생시켰다. 세계에서 16번째,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2번째로 자체 고유모델 생산국이 됐다. 73년 설립된 현대조선소는 오늘날 현대중공업의 모태. 기술과 자본이 전무하다시피했던 당시 鄭회장은 선진국을 상대로 치열한 외교력을 발휘,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그들을 설득,영국과 스위스 은행에서 1억달러의 차관을 들여왔다. 오일쇼크로 우리 경제가 꽁꽁 얼어붙어 있던 75년,현대는 중동으로 눈을 돌렸다. 미수교국이었던 이라크 리비아에도 현대의 깃발을 꽂음으로써 민간외교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86년에는 국내 최초로 미국에 ‘포니 엑셀’을 수출한다. 4개월만에 5만2,400대를 판매,프랑스 르노가 갖고 있던 수출원년 최다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는 기염을 토했다. 鄭회장은 87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고 鄭世永 회장이 그룹회장에 취임했다. 지금의 금강산개발로 대표되는 현대의 남북경협은 89년부터 시작됐다. 국내 기업인 가운데 최초로 방북한 鄭회장은 이때 이미 금강산 공동개발,시베리아개발 공동참여,원산 철도차량공장 등에 대해 장기적 구상을 세웠다. 96년부터 鄭夢九 회장 체제가 출범했고 지금은 鄭夢憲 회장과의 쌍두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현대의 히트상품 2選 ◎현대자동차 아토스/서민을 위한 벤츠A급 ‘서민을 위한 벤츠 A급’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극찬이다. 요즘 각광받는 경차의 대명사다. 4기통 엔진을 장착해 정숙성과 성능이 뛰어나다. 급커브때 안전성도 뛰어나다. 안락한 실내공간과 대형차 못지않은 화물칸을 갖췄다. 초보·여성운전자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됐고 타고내리기가 편하다. 에어백 등 다양한 안전사양을 겸비했다. 올해 열린 제네바 모터쇼에서 가장 실용적인 차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대정공 싼타모LPG/경제성 뛰어난 미니밴 국내 최초 미니밴 싼타모의 후속 제품.5·6·7인승 다양하다. 평일에는 출퇴근,주말에는 레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경제성이 뛰어나 연료비가 휘발유 값의 3분의 1이면 된다. 자동차세도 연간 6만5,000원에 불과하고 구입시 세금도 70만원 절약할 수 있다. 출시 한달여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있다. 환경친화적이라는 특장도 갖췄다. 기본가격은 1,313만원. □현대그룹 계열사 현황(*:상장회사) * 1·현대자동차·67.12.29·자동차 제조/판매 2·현대중공업·73.12.28·선박 건조 및 수리업 * 3·현대건설·47.5.25·건설업 * 4·현대전자산업·83.2.23·반도체,정보,산업전자 등 * 5·현대정공·77.7.1·공작기계,철도차량 제조 등 * 6·현대종합상사·76.12.8·종합 무역업 * 7·현대자동차써비스·74.2.26·자동차판매 및 정비사업 * 8·현대상선·76.3.25·해상운송업 * 9·현대산업개발·86.11.29·주택건설,해외건설업 등 *10·인천제철·53.6.10·재강,압 연,주단강 등 제조 11·현대정유·64.11.2·원유정제 12·현대정유판매·73.12.24·석유류 제품 도·소매 13·현대석유화확·88.9.1·유기화학 제품제조 *14·현대리바트·77.7.1·가구 및 목가공품제조업 *15·고려산업개발·76.3.16·건설업,제조업 *16·대한알루미늄공업·73.7.19·알루미늄 및 합금제조업 *17·현대강관·75.3.18·철강제조 *18·현대에베이터·84.5.23·전기산업용 기계*19·현대미포조선·75.4.28·선박수리 및 개조 20·현대엔지니어링·74.2.11·공학관련 써비스업 21·케피코·87.9.3·자동차 부품 제조 22·현대정보기술·93.9.1·정보서비스 등 23·현대중기산업·89.11.1·건설장비 대여업,수리용역 24·금강기획·83.11.1·광고업 *25·현대증권·62.6.1·증권업 *26·현대종합금융·76.12.31·종합금융업 *27·금강개발산업·71.6.15·백화점,호텔업,의류제종 등 28·한보쇼핑·87.3.31·유통업 29·현대알루미늄공업·87.11.1·알루미늄 및 합금제조업 *30·현대해상화재보험·55.3.5·금융보험업(손해보험) 31·현대문화신문·90.8.29·신문발행 32·현대세가엔터테이먼드·96.11.27·게임전문회사 33·티존코리아·97.5.21·컴퓨터 및 주변기기 도소매업 기타 전화기,음향기,서적 도소매업 34·현대경제연구원·86.10.10·경영자문 및 사업서비스 35·현대투자자문·88.3.19·투자전문업 36·선일상선·72.1.18·무역 37·한소해운·90.11.1·해상운송(대극동지역) 38·현대자원개발·90.8.23·자원개발39·동해해운·91.6.5·운수관련써비스업(대극동지역) 40·현대물류·88.6.13·운수관련 써비스업 41·현대우주항공·94.2.23·기계 및 장비제조업 42·현대할부금융·93.12.22·금융써비스업 43·현대유니콘스·87.10.21·프로야구운영업 44·한국물류·90.1.31·보관업,부동산업,도매서비스 45·현대파이낸스·96.2.1·금융업 46·서울프로덕션 47·다이아몬드베이츠·96.7.19·광고업 48·현대선물·97.1.21·금융서비스업 49·현대에너지·96.11.22·민자발전 *50·한국프랜지공업·74.7.15 51·국민투자신탁증권·82.6.22·증권,투자신탁업 52·현대기술투자·97.4.8·창업투자업 53·현대방송·97.5.30·케이블TV 프로그램제작 공급업 및 영상사업(영화제작 배급) 54·인천공항외항터미널·97.5.9·서비스 부동산업 55·서한산업·96.4.3·자동차부품 제조 *56·동서산업·75.9.1·비금속 광물제품 제조 57·동서관광개발·90.2.1·오락,문화 및 운동 관련 58·신대한·93.12.1·절연선 및 케이블 제조 *59·주리원백화점·82.11.26·종합도소매업 60·울산방송·97.9.1 61·국민투자신탁운용·98.2.23·기타 금융업 *62·울산종합금융·81.10.21·기타 금융업
  • 집전화 휴가지서 받는다/장기간 집 비울때 편리한 통신서비스

    ◎한국통신 ‘착신통화전환 서비스’ 신청/*+88+착신희망번호+* 순으로 입력/‘평생번호 서비스’·‘141연락방’ 등 다양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오랫 동안 집과 사무실을 비움으로써 통신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 사업상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일일이 자신의 휴대전화나 무선호출 번호를 알려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휴가를 떠나기 전 몇가지 조치만 취해 놓으면 이같은 문제점들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먼저 집이나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를 휴가지에서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방법이 있다. 한국통신이 시행중인 ‘착신통화전환 서비스’와 ‘평생번호 서비스’가 그것이다. 착신통화전환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한국통신 고객상담 센터(국번 없이 100번)에 전화신청부터 해야 한다.가입자에게는 월 1,000원의 부가서비스료가 전화 요금 청구시 별도 부과된다. 서비스 가입을 마친 소비자는 휴가를 떠나기 전 집과 사무실 전화기에 휴가지 전화 번호나 자신의 휴대폰 번호,또는 호출기 번호를 입력시키기만하면 된다. 입력은 ‘*,88,착신 희망 번호,*’순으로 한다. 조치가 끝나면 집 또는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는 자동으로 착신희망 번호에 연결된다. 통화요금은 시내전화의 경우 발신자 부담이고 시외전화는 가입자 부담이다. ‘평생번호 서비스’를 이용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입력순서는 ‘1582,평생번호,비밀번호,2,착신 희망 번호,#’이다.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소비자는 자신의 주민등록 번호처럼 평생 바뀌지 않는 고유한 전화번호를 부여받는 잇점을 함께 누린다. 최초 가입비 5,000원에 월 부가 서비스료 1,000원이 따로 부과된다. 또 다른 서비스로는 ‘141연락방’이 있다.‘연락방’을 개설해 놓고 이동중인 가족이나 친지들과 휴대전화나 무선 호출기 없이 음성 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141번으로 전화를 걸어 음성안내에 따라 버튼을 누르면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입비는 따로 없고 이용시 일반전화 요금이 적용된다.
  • 韓銀 “인수銀에 특융없다”/全 총재

    ◎부실銀 처리과정 저리자금 지원 않기로 한국은행은 금융구조조정과 관련,우량은행이 부실은행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손실을 입더라도 특별융자는 하지 않을 방침이다. 全哲煥 한은총재는 2일 ‘3·4분기 통화신용정책 방향’을 발표하고 “정부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수 은행의 손실분을 보전해 주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저리의 자금을 특별융자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全총재는 정부가 발행할 50조원 규모의 구조조정 채권을 시중은행이 원활히 인수할 수 있도록 시중은행이 보유한 48조여원의 통화안정증권과 환매조건부채권(RP)를 한은이 되사들여 유동성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실물경제의 위축을 막기 위해 금리를 추가로 내릴 계획이며,인하 폭은 국제통화기금(IMF)과의 협약에 따라 환율의 움직임과 연계해서 결정키로 했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IMF체제 이전의 정상금리 수준에서 회생가능한 기업을 살리기로 한만큼 인하 폭은 그 정도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白凡 재조명:4·끝(정직한 역사 되찾기)

    ◎“위대한 白凡사상 새정부서 법통 계승”/통일염원 안고 넘었던 38선 반세기 만에 다시 열려/京橋莊 반드시 복원… 문화재로 지정 영구보존 해야 서울신문은 ‘정직한 역사 되찾기’ 일환으로 백범 金九 선생을 재조명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면서도 잘못된 평가를 받아온 金九 선생을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한 것이다. 백범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통해 일그러진 현대사와 가치관의 혼돈을 바로잡고 사회정의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金九 선생의 업적·사상·통일론 등과 이들을 오늘의 현실에 어떻게 승화시킬 수 있는가를 백범 재조명을 마무리하는 좌담회를 통해 알아본다. 서울신문 金三雄 주필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金九 선생 아들 金信 장군,저명한 백범연구가인 金祐銓 전 광복회부회장과 李萬烈 숙대교수(한국사 전공)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 金信(金九 선생 아들) 金祐銓(전 광복회부회장) 李萬烈(숙명여대 교수) 金三雄(사회·주필) ▲金三雄 주필=金九 선생이 남북협상을 위해 38선을 넘은지 50년만에 鄭周永현대명예회장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땅을 밟았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정황은 물론 다릅니다. 하지만 백범이 갔던 길을 반세기만에 鄭명예회장이 다시 간것은 중요한 역사의 발전입니다. 백범이 서거한지 거의 50년만에 백범노선과 같은 金大中 대통령 정부가 들어서며 정경분리·상호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남북관계에 물꼬가 트이고 있습니다. 金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중 미국도 대북 제재중 일부를 해제할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국제환경과 남북관계의 이러한 변화로 백범노선을 실천할 수 있는 단계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오늘의 상황에 접목시킬 수 있는 백범사상과 통일론 등에 대해 우선 논의해 보죠. ○좌·우파 모두 포용… 문화국가 건설 ▲李萬烈 교수=백범은 동학·유학·불교·기독교 등을 섭렵하며 그들을 민족주의라는 큰 틀 안에서 완전히 용해시켰습니다. 다원적 종교가 있는 사회에서 여러 종교를 민족주의로 수렴시킨 것은 큰 의미가 있죠. 백범은 또 좌파세력과 민족주의 우파의 통합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러한 포용력을 배경으로 독립과 통일,더 나아가 문화국가 건설을 지향했습니다. 통일이 안되면 완전한 자주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한차원 더 높은 문화국가는 더욱 어렵다고 인식했죠. 민족의 미래를 위해 통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金주필=백범은 임시정부를 27년간이나 이끌었습니다. 그러한 예는 세계사에도 없는 일이죠. 독립운동사에서 백범의 역할과 위치는 어떻습니까. ▲金祐銓 부회장=임시정부에서 백범의 역할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독립운동의 화신이었죠. ▲金주필=그러나 백범은 올바른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李교수=백범 반대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죠. 통일지향 세력이 아니라 남북분단 세력이 정권을 잡은 후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론을 묵살했습니다. 집권세력은 백범의 업적도 평가절하했죠. 백범에 대한 잘못된 평가의 긴 그림자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金주필=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자격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귀국후에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죠. 해방공간에서 백범이 왜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고 생각합니까. ▲金부회장=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주도권은 잡았으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여 미국과 갈등을 빚었죠. 5·10선거 후에도 국회에서 金九 선생 지지가 많았어요. 남북협상 때도 108명의 문화인이 지지성명을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金九 선생이 돌아가신 후 반대파가 정권을 잡아 빛을 보지 못한것 뿐입니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한 학자들이 미국의 입장에서 백범을 본 오류의 결과입니다. ▲金信 장군=주도권 문제와 관련,金부회장의 생각과는 조금 다릅니다. 주도권을 잡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어요.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미국의 강요로 개인 신분으로 귀국할 수 밖에 없었는데다 친일세력의 조직적인 반발로 어려운 상황에 빠졌죠. 친일세력들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정권을 잡으면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판단아래 똘똘 뭉쳤습니다. 일본에 아부했듯이 그들은 미군정에 아부했고 李承晩에게도 아부했습니다. 李박사정권에서 권력의 핵심을 차지했죠. 현대사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입니다. 가족에게 고통을주고 개인과 조상을 희생하면서 싸워온 독립투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일제 식민통치 때 친일파 형사들에게 잡혀갔던 독립투사들이 해방후에 다시 그들에게 잡혀가는 기막힌 일들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친일세력들은 해방후 당연히 벌을 받고 독립투사들은 보상을 받았어야 했는데 거꾸로 됐죠. 그때 잘못된 역사 청산작업 때문에 현대사가 일그러진 것입니다. ▲金주필=백범은 분단을 거부하고 평화통일을 위해 남북협상을 추진했습니다. 남북협상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남북지도자 공동성명 발표 큰 의미 ▲金부회장=남북협상에서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은 잘못된 평가입니다. 대표자 연석회의는 북측의 각본대로 움직였기 때문에 성과가 없었지만 백범이 관심을 가진 것은 남북지도자 회담이었어요. 金九 선생,金奎植 박사,金枓奉,金日成 등 4명의 지도자들은 4월30일 회담후 공동성명까지 발표했죠. 공동성명은 전문과 4개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통일정부 수립을 명시하고 있어요. 남북지도자가 만나 공동성명까지 발표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북한 단독정부 수립도 적극 반대 ▲金장군=평양에서 아버님이 연설하실 때 남쪽만의 단독정부는 절대 반대한다고 말씀하시자 열렬한 공산당식 박수가 터져나왔죠. 그러나 북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도 반대한다고 하시자 장내는 조용했습니다. 북쪽만의 단독정부 수립도 반대한다는 것은 언론에도 일체 보도되지 않았어요. 북측도 남쪽에서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다는 내용만을 발표했습니다. ▲金주필=백범의 자주적 평화통일 정신을 오늘의 상황과 어떻게 연계시킬수 있을까요. ▲金장군=상하이(上海) 임시정부 초기에는 민족주의자 뿐만 아니라 좌파와 무정부 인사도 참여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어려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떠났지만 충칭(重慶)으로 옮겨왔을 때도 연합정부였죠. 연합정부였던 임시정부의 법통과 아버님의 통일론을 이어받아 통일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독립운동 때도 독립의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독립을 위해 싸우는 일은 비현실적이라는 비관론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독립을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통일도 지금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金주필=임시정부는 1941년 대일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임시정부가 주체가 되어 전승국으로 대접받고 전후 처리문제에서도 발언권을 강화하기 위한 포석이었죠. 그러나 연합국은 그러한 대접을 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李교수=프랑스는 소극적이나마 임시정부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영국 등은 인정하지 않았죠. 미국은 임시정부가 분열돼 있기 때문에 어느 정부를 인정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핑계에 지나지 않았어요. 사실은 독립운동때 임시정부가 중국에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중국과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은 자신들의 식민지 때문이었죠. ▲金주필=시해되던 날은 일요일이었는 데도 金信 장군은 그날 옹진에 가셨죠. 암살음해 세력이 金장군을 떼어놓기 위한 음모는 아니었나요. ▲金장군=유엔대표단과 함께 갔었습니다. 그러나 명령에 따랐을 뿐이었어요.어떤 음모가있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평양에서 돌아온 후 암살에 관한 여러가지 풍문이 많았고 그것들을 여러차례 아버님께 말씀드렸죠. 돌아가시기 이틀전에는 박동엽씨 등 2명이 경교장으로 찾아와 보다 안전한 병원에 입원시키라는 말도 했어요. 그말을 아버님께 전했으나 나는 떳떳하며 겁낼것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기념관 건립·학술상 제정 등 절실 ▲金주필=새정부의 탄생을 계기로 임시정부의 법통계승과 백범사상을 이어받을 사업을 추진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백범 기념관 건립,전집 출판,학술상 제정,백범과 3열사의 묘가 있는 효창공원 성역화 작업 등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 기념관 건립과 관련,李교수께서 말씀해 주시죠. ▲李교수=백범 기념관은 꼭 필요합니다. 서거 50주년(1999년)이나 2000년의 새 세기가 시작되기전 기념관이 지어져야 합니다. 건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요. 기념관을 지을 때는 국민의 이름으로 지어야 합니다 이상적인 장소는 서대문형무소 자리일 것입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오랫동안 옥고를 치렀고 그곳은 통일로의 출발점입니다. 백범의 독립과 통일정신이 어우러질 수 있는 곳이죠. 효창공원도 국립묘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의 망월동 묘지는 이미 국립묘지 수준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효창공원이 국립묘지 수준이 안된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金주필=백범이 머물렀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문제는 어떻습니까. ▲金부회장=영구 보존을 위해 우선 문화재로 지정해야 합니다. ▲金주필=백범을 기념하는 독립상과 통일상 등을 만들면 어떨까요. ▲李교수=좋은 생각입니다.그러나 셋방살이도 꾸려가기 힘든 백범기념협회에서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상을 만들려면 백범의 이상인 독립국가·통일국가·문화국가를 상징하는 독립·통일·문화상을 만들고 차차 확대하는 것이 어떨까요. ▲金주필=金九 선생에 대한 여러가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민족의 큰 스승인 백범의 사상과 통일론 등이 명실상부한 민주정부로 제2건국이라 할 수 있는 金大中 대통령 정부에 의해 이땅에서 완벽하게 구현되고 남북의 화해와통일로 이어지도록 모두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더욱 강렬해집니다.
  • 한광구 시인 첫 장편소설 ‘물의 눈’

    ◎잃어버린 자아 찾는 현대인 중견 시인 한광구 교수(추계예술대)가 첫 장편소설 ‘물의 눈’(모아드림간)을 냈다.자아를 찾아가는 주인공들의 비정상적 사랑을 다뤄 가볍게 읽힌다. 서현섭은 조그만 광고회사 사장.사업을 아내에 맡기고 ‘밥의 논리’에 밀려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 나선다.비슷한 상처를 안고 떠도는 잡지사 여기자 이현미,관능의 화신 주애리 등과의 몸섞기로 사회의 속박을 벗어난다.현섭의 아내 현숙도 현실을 겉돈다.먼 길을 떠돌다 둘은 가정으로 돌아온다.밋밋한 부부가 아니라 더 큰 사랑 속에 화해가 이뤄진다. 줄거리와 자주 나오는 성희 장면만 보자면 3류소설이지만 저질로 추락하지 않는다.오랫동안 시로 벼른 아름다운 문체로써,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다듬어 낸다.아슬아슬한 줄타기로 독자의 눈길을 빨아들인다. 작품 ‘물의 눈’의 주인공들은 ‘집단의 소리’로 밀려 철저히 외면 당해온 사람들이다.작가는 이들의 내면과 ‘물처럼 기어온 고통’에 주목했다.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성긴 구성,‘성애(性愛)=자유 의지’의 공식화에 대한 미흡한 해석 등 아쉬움이 남는다.시로 키워 온 서정적 힘만으로 소설을 버티기엔 벅차 보인다.
  • 대기자 洪博/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뉴욕 타임스의 핸슨 볼드윈같은 기자는 아이젠하워가 사관학교시절부터 국방부를 출입했고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되었을때도 여전히 국방부를 출입했다. 지난 60년에 은퇴했으나 일생을 국방부 출입기자로 일관한 셈이며 그가쓴 기사는 군사전문 대기자답게 권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받는 보수는 당연히 사장과 동급이었다. 신문기자 중에는 머리로 기사를 만들어내거나 배짱으로 엮어내는 강심장도 있다. 엊그제 타계한 洪鍾仁 박사는 취재대상이 되고있는 사건과 연루된 모든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발로 기사를 쓴것으로 유명하다. 해방 이전의 기자들이 무관의 제왕으로 지사연(志士然)할때도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꺼림없이 토로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같은 원로 언론인인 최석채씨는 그를 향해 “홍박의 경우 신문기자를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것과같은 의지와 정열의 화신”이라고 말한다.한 월간지에서‘한국의 유아독존(唯我獨尊)’이란 제목으로 특집을 했을때도 홍박은 어김없이 가장 선두그룹에 끼어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고집스럽고 남과 융화가 안된다는 뜻이 아니라 ‘절의를 지켜 타협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과연 홍박의 유아독존의 의지는 그로 하여금 시류따라 직업을 바꾸지 않았고 어디에서나 오로지 기자를 천직으로 알았다.최근까지도 대한민국의 모든 신문이 자기의 직장인양 거리낌없이 드나들며 후배를 질타하거나 격려하기를 잊지않았다. 이른바 그의 언론 ‘70여년’은 그때마다 영욕이 얼룩진 한국언론 반세기의 상징이라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끌리지 않도록 자기자신을 담금질해야하는 것이 기자’라고 가르쳤고 “권력과 금권이 얽히고 설킨 혼탁한 가운데서도 신문만은 바른 말을 해줘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나 사회의 부패를 폭로하고 냉혹한 비판을 내리는 것과 같이 자기비판과 자기의 주변을 항상 경계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이제 기자란 한낱 샐러리맨이나 아닐지, 과연 기자정신의 의지와 정의감으로 제몫을 하고 있는지, 혹시 비겁과 아부로 자리보존에 급급하지나 않은지,선배의정도바른 평생기자의 모습에서 오늘의 나자신을 비쳐볼 만하다.
  • IMF 된서리… 전화 해지 급증

    ◎80년 이후 처음… 6개월간 10만회선 감소/부도·실직 겹쳐 강제해지 건수도 상당수 IMF(국제통화기금)여파가 전화마저 끊게 하고 있다.전화 해지건수가 한달에 평균 2만여회선이나 된다.이 중에는 부도나 실직 등으로 전화요금을 3개월 이상 내지 못해 ‘강제 해지’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한국통신은 수입이줄자 마침내 전화 확장캠페인에 나섰다. 한국통신은 IMF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부터 신규 전화가입자가 크게 준 반면 해지자는 급증,5월말 현재 2,026만여회선(잠정치)으로 지난해 말(2,036만5,608회선)보다 10만회선 가량 줄었다고 밝혔다.80년 한국통신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IMF 직전인 지난해 11월의 경우 신규 전화신청이 19만1,954회선이었고,해지는 12만7,7439회선에 그쳐 신규가 6만4,515회선 많았다.그러나 12월들어 신규는 16만7,117회선이었던 반면 해지는 19만6,983회선으로,해지가 3만1,866회선이나 많은 역전현상이 처음 나타났다. 올들어 5월까지도 해지가 신규 가입보다 월 평균 2만여회선이나 많았다.한국통신 관계자는 “IMF 이후 심각한 생활고 때문에 3개월 이상 전화비를 내지 못해 강제로 전화사용이 중지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PC통신 이용자들에게 ISDN(PC통신과 전화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통신기기)의 사용을 유도하는 등 회선 확장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나 역부족”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 反民특위 강제 해체/‘6·6사건’의 의미(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미완의 단죄’로 민족사 굴절/제헌국회,48년 반민족처벌법안 통과/화신재벌 朴興植 등 검거 재판대 세워/본격 활동 앞두고 李承晩이 강력 제동/조사대상 30%만 기소… 결국 흐지부지 일제 강점기 친일 행각을 벌인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이 특위는 李承晩 대통령의 집요한 방해로 활동에 제약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이듬해 6월6일에는 강제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반민특위 활동의 미완성은 이후 49년 동안 우리 현대사 굴절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왔다. 1949년 6월6일 아침 8시.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경찰을 가득 태운 2대의 드리쿼터가 들이닥쳤다. 습격대 지휘자는 尹기병 당시 중부경찰서장.尹을 비롯한 40여명의 경찰은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출근하는 특위 직원들을 연행했다.반민특위 金尙德 위원장과 金相敦 부위원장이 “국립경찰이 헌법기관인 특위를 강점하고 직원을 불법체포하니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내였다.金부위원장은 책상을 치며 울분을 터트렸다.검찰총장 겸 특별검찰관장 權承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그 역시 안하무인의 경찰에게 권총을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지휘권자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호통도 소용없었다. 연행된 사람은 모두 35명.특경대원 24명,직원 및 경호원 9명이었다.직원을 면회온 민간인 2명도 엉뚱하게 같이 끌려 갔다.연행자 중 22명이 입원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날의 ‘6·6사건’은 해방후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었다.경찰력이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李承晩 독재의 길을 열었다.친일파 제거에 실패함으로써 헌정사 왜곡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입법부가 행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반민특위가 구성된것은 48년 9월29일.올해가 50주년이다.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李承晩 독재는 물론,이후 군사정권도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제헌국회는 48년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시켰다.반민특위 위원은 각도 출신국회의원 중 선임됐다.金相敦(서울) 趙重顯(경기) 李鍾淳(강원) 朴愚京(충북) 金明東(충남) 吳基烈(전북) 金俊淵(전남) 金尙德(경북) 金孝錫(경남) 金庚培(제주·황해) 등이었다.金炳魯 대법원장을 재판관장으로 하는 특별재판부,權承烈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특별검찰부,李元鎔 총무과장이 이끄는 중앙사무국이 각각 구성됐다.진용을 갖춘 반민특위는 49년 1월5일 공식업무를 시작했다.특위는 1월8일 화신재벌 朴興植을 검거하는 것을 필두로 전광석화같이 친일파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출범초부터 친일세력의 심한 반발이 일어났다.일제 경찰 출신들이 반발세력의 중심이었다.해방직후 발족된 새 경찰의 50%이상이 이들 출신으로 추산된다.친일파 세력을 집권 기반으로 한 李承晩도 반민특위가 눈엣가시였다.李承晩은 盧德述 崔燕 등 심복인 경찰간부들이 특위에 체포되자 특위 해체를 추진,‘6·6사건’에 이르게 된다. 결국 특위는 49년 8월31일 조사대상 682명 중 221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냈다.이중 1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5명은 집행유예,나머지 7명도 형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됨으로써 친일파 단죄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다른 나라의 사례/佛,나치협력 3만∼4만명 처형/시민법정 설치… 9만5천여명 시민권 박탈/中·대만 정부 친일파 漢奸 색출 상당수 처벌 2차대전 직후 독일과 일본의 전범처리가 있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는 22명의 1급 전범이 기소되어 나치군 원수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7명이 종신형∼10년의 금고형을 받았다.도쿄재판에서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이 내려졌다.기도 고이치(大戶幸一) 등 18명에게는 종신형∼금고 20년이 선고되었다. 우리의 친일파 문제와 비슷한 것은 유럽국가의 나치협력자 숙청과 중국·대만의 한간(漢奸·친일파)재판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멸망 직후인 44년 6월부터 11월에 걸쳐 나치협력자 처리를 위한 4개의 훈령을 내렸다.이 훈령에 따라 조사받은 인원은 150만∼200만명.드골은 회고록에서 1만842명이 나치협력자로 처형됐다고 밝히고 있다.드골은 작가,언론인,학자 등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들도 엄히 다스렸다.현대사가 로베르 아롱은 “3만∼4만명이 재판에 의했든지, 그렇지 않든 간에 민족반역자로 사형당했다”고 추정했다.프랑스는 형사재판권이 없는 시민법정도 설치,9만5,000명을 ‘비국민’으로 판정해 시민의 권리를 박탈했다. 덴마크는 1만4,000명,네덜란드는 4만명,벨기에는 5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의 나치협력자를 각각 민족반역자로 무기에서 유기징역형에 처했다. 중국과 대만정부도 2차대전이 끝난후 친일파 제거에 나섰다.한간재판은 중국공산당 정부와 장제스(蔣계石)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46년 4월부터 48년 9월까지 따로 진행되었다.중국·대만정부에 의해 한간으로 판명된 상당수 인사들이 처형됐지만 개별처리 사실만 알려질뿐,전체적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특위 총무과장 역임 李元鎔옹/“민족정기 바로서는 날 두눈 감기전 보았으면” “金大中 대통령이 명실공히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되찾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반민특위 총무과장과 조사관을 역임했던 李元鎔옹(78)은 국민의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반민특위에관계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타계한 현실에서 그는 당시 특위의 고위 중앙요원으로는 유일한 생존자다.서울 공대 전신인 광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48년 10월 반민특위 구성때 민간인 신분으로 행정실무를 주도했다.다음은 李옹과의 일문일답. ­현재의 심경은. ▲오늘 이 땅위에 사는 구세대 치고 일제의 학정과 인간 이하 대우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이러한 일본의 관헌에게 우리 조국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던 애국지사를 밀고,또는 체포해 넘긴 반역자가 있었습니다.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두 눈을 감기전 바르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반민특위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 못한 이유는. ▲국내사정에 어두운 李承晩 대통령이 친일파들의 간계에 현혹되어 경찰력을 동원,하루 아침에 반민특위를 와해시켰습니다.제헌국회의 결정에 따른 헌법기관이 불법적으로 무너짐으로써 헌정사에 크나 큰 오점을 남기게 됐지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는. ▲金泳三 정권이 들어선 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기치로 내걸어 혹시 하며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실효없이 용두사미격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관계 각료나 관련 인사들이 모여서 기구를 만들어 과거에 처단치 못한 민족반역자를 처벌해야 합니다.그래야 이 나라의 기초가 탄탄해집니다.金대통령은 해박한 경제관과 탁월한 국제 외교력을 겸비했습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많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해주는 데도 힘써주실 것으로 믿습니다.그것이 경제 등 다른 난국의 극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반민특위 활동 일지 ▲48년 8월5일=제헌국회,‘반민족행위 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 ▲9월7일=‘반민족행위 처벌법’ 국회 통과 ▲9월29일=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반민족행위 조사특위(반민특위)’구성동의안 국회 가결 ▲10월1일∼11일=반민특위 10명 조사위원 선임 ▲10월23일=반민특위 1차위원회 ▲49년 1월5일=반민특위 사무실 개소,업무 개시 ▲1월8일=화신재벌 총수 朴興植 1호 체포 기록 ▲1월13일=崔麟 검거 ▲1월25일=盧德述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검거 ▲2월7일=崔南善 李光洙 검거 ▲2월15일=李承晩 대통령,반민처벌법 개정 필요성 특별담화 ▲3월28일=李琦鎔 朴興植 등 반민자 첫 공판 ▲5월하순∼6월초=정부,1·2차 국회 프락치사건 발표 ▲6월6일=경찰,반민특위 습격,조사요원 불법체포,특경대원 무장해제 ▲6월26일=金九 선생 암살 ▲8월31일=반민특위 공식해체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사랑… 질투… 오페라 ‘돈 카를로’

    사랑,질투,운명.시공을 초월해 인간의 감동을 이끌어내온 명작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의 감성 3요소.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비견될 만큼 드라마틱하고도 격정적인 내용의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를 국립오페라단이 제90회 정기공연으로 6∼12일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평일 하오 7시30분,주말 하오 4시) 274­1172. 정치와 종교의 대립을 보여주는 필립왕과 재판장,숙명적인 사랑으로 애태우는 엘리자베타와 카를로,질투의 화신 에볼리,불륜의 에볼리와 카를로… 개성 강한 등장인물들의 성격 대비가 뚜렷할 뿐아니라 영웅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는 남자들과 사랑 때문에 파멸해 가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웅장한 한편의 비극으로 그려진 작품.지난 88년 우리말로 공연한 작품을 10년만에 원어로 재공연한다.당시 출연자인 지금은 중견 성악가로 자리잡은 이규도 박성원 정영자씨 등이 오랜만에 무대에 선다.또 30대의 류재광 장유상 진귀옥 김명지 정영자씨 등이 한팀을 이루고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김신영 박경념 김동식 남완 등 20대 신인들도8일 한회 공연을 맡았다.공교롭게도 캐스팅이 20,30,40대로 나뉘어져 성악가들의 세대별 배역 소화력을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로 또다른 재미를 맛볼 수 있다.연출 신경욱(서울예고 교장) 지휘 최승한씨(연세대 음대교수).
  • 파키스탄 핵실험 여파/지불유예 가능성

    【이슬라마바드 AP 연합】 파키스탄은 핵실험의 여파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해야할지도 모른다고 금융전문가들이 2일 밝혔다. 네덜란드 ABN암로 은행은 보고서를 통해 파키스탄의 1주일전 외환보유고는 3주분의 수입대금을 결제하는데 불과한 13억달러며 올해 300억달러의 총외채중 47억달러를 상환해야 할 형편임을 지적,모라토리엄의 가능성을 거론했다. 보고서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사가 핵실험 직후 파키스탄의 장단기 외화신용등급을 하향조정함에 따라 6개월분의 석유대금 9억2,600만달러를 결제하기 위한 정부의 해외차입 노력도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ABN암로 은행은 이에 따라 “일부 외채의 상환 중단 가능성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만일 모라토리엄이 선언된다면 파키스탄은 자본조달과 무역경쟁력에서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유로貨 EU 11개국 참여/재무장관 회담서 승인

    【파리=金柄憲 특파원】 유럽단일통화화페인 유로화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될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1일 저녁(이하 현지시간) 브뤼셀에서 15개국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각국 재무장관회의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이날 재무장관회담에서 EU집행위의 건의를 토대로 15개 회원국중 11개국이 내년 1월1일부터 유로화에 참여한다는 내용을 예비승인했으며 최종결정은 회의 이틀째인 2일 정상회담에서 최종 확정,발표된다. 내년부터 유로화 도입에 참여할 국가는 핀란드,아일랜드,룩셈부르크,네덜란드,이탈리아,프랑스,독일,스페인,포르투갈,오스트리아,벨기에 등 11개국이다.11개 국가의 경우 총인구 2억9천만명에다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9.4%,세계 무역의 18.6%를 차지,미국에 버금가는 거대 단일통화권으로 탄생하게 되어 유로화는 새로운 세계기축통화로 자리잡게 될 전망이다. 정상들은 이와함께 단일 통화체제로 편입되는데 필요한 상호간 환율을 현재 ECU화를 기준으로 해 결정할 예정이며 정상회담에서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이견을 해소할 경우 유로화의 운용과 통화신용정책을 관장하는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와 부총재 및 4명의 집행이사도 선임할 계획이다.
  • ‘리프트 업’ 공법 첫선/종로 삼성생명 건물에 적용

    ◎22층 건물 꼭대기에 미리 지은 건물 앉혀 【陸喆洙 기자】 미리 제작한 3층짜리 빌딩만한 건물 한개층을 100m 상공에서 건물의 꼭대기에 얹는 건설공법이 오는 6월 국내 건설현장에서 처음 도입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2일 ‘리프트업(Lift­Up)’공법을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 신축하는 23층 규모의 종로 삼성생명빌딩에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공법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시공한 세계 최고층 빌딩인 KLCC건물(92층,높이 452m)을 지을 때 사용한 공법을 응용한 것이다. 삼성은 “종로 삼성생명빌딩은 22층까지는 일반건물과 같고 이후 30m 높이는 3개의 코아 기둥만 있으며 그 위에 3층 높이의 대형구조물이 최상층을 구성한다”면서 “최상층 구조물을 유압자키로 들어올려 꼭대기에 안착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형구조물은 가로·세로 60m,높이 11.5m,무게 4천300t이며 안착시키는 데에만 이틀이 걸린다.
  • 재경부­韓銀 금리인하 시각차

    ◎재경부­환율안정… 연쇄부도 막으려면 내려야/한은­금리 내리면 외자유출… 서두르면 손해 통화신용당국간에 금리인하문제를 둘러싸고 이견을보이고 있어 조정결과가 주목된다. 재정경제부는 보다 빨리 금리를 낮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인 반면 한국은행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李揆成 재경부장관은 21일 프레스센터에서 외신기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지난 해 말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해 통화를 긴축적으로 운용하기로 한것은 달러에 대한 원화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면서 “하지만 긴축 통화정책에 따른 긍정적인 요인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많다”고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다.李 장관은 “특히 긴축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고금리로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다”면서 “지난 해 12월 이후 매월 2천개 기업이 문을 닫아 실업자도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에 따라 금리를 낮추는 것은 절박한 문제”라고 전제, “환율이 안정적으로 움직이고 외환보유고도 계속 늘고 있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가가에게 부담을 주지않고도 금리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한국정부는 점진적이고도 조심스럽게 금리를 낮출 것”이라면서 “IMF도 고금리가 산업을 붕괴시키고 실업자를 양산하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全哲煥 한은 총재는 그러나 이날 세종로 청사에서 열린 외교통상부 재외공관장회의에서 “고금리가 외자유입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외채가 많은 기업의 시장퇴출이나 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촉진하는 바탕이 되므로 금리인하문제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全 총재는 “신뢰회복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 점차 결실을 맺어가면 고금리 문제도 자연스럽게 조금씩 해결될 것”이라며 “명확한 기준에 의해 건전 금융기관과 회생 불가능한 금융기관을 가려내 신속히 정리하면 금융시장에 미치는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실추된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男尊女卑의 오랜 상흔들/이경자씨 새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

    ◎부모와 남편에 부대낀 한많은 여인의 인생사 소설가 이문열은 페미니즘 논쟁의 불을 당긴 그의 소설 ‘선택’에서 “이혼경력이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된다”고 여성작가 이경자의 소설 제목을 빌려 페미니즘소설을 비판했다.페미니즘이라는 것은 그의 말대로 ‘자기성취라는 집단최면’에 불과한 것일까.최근 나온 이경자의 새 장편소설 ‘사랑과 상처’(실천문학사)는 ‘왜 여전히 페미니즘이어야 하는가’를 웅변해 주는 여성소설이다. 소설은 미국에 와 살고 있는 70대의 주인공 정옥이 일곱살 나던 해,오빠가 죽던 일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밥만 축내는 지즈바 간난 나가 뒈져야 한다”는 어머니의 욕설에 파묻혀 자란 정옥은 다섯 살이 되도록 말도 제대로 못해 ‘벙치’라고 불린다.그가 열아홉에 고향인 강원도 양양 물갑리를 떠나 화전골로 시집을 간다.화전민의 아들인 준태와의 신혼생활은 그냥저냥 행복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남편은 폭력의 화신으로 변한다.남편의 시도 때도 없는 폭행과 불륜 행각속에서 정옥은 처참하게 부대낀다.이에 둘째 딸 숙이를 따라 남편을 두고 혼자 미국으로 간 정옥은 그곳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에 놀란다.재봉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던 정옥의 곁으로 남편이 오지만 그는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 자살하기에 이른다. 작가는 일일칭 시점의 이 소설에서 ‘남존여비’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다룬다.남존여비란 사실 얼마나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말인가.하지만 작가에게 있어 남존(男尊)과 여비(女卑)는 “오랜 세월 동안 그 시대에 맞는 옷을 갈아입었고 그 시대가 요구하는 노래를 불러온,금강석이나 불가사리와 같은 존재”다.그런 만큼 그것은 오늘날에도 당연히 엄존한다는 것이다.이 소설에서 주인공 혹은 작가는 그 어떤 페미니즘적 주장도 늘어놓지 않는다.그러나 이 소설은 정옥과 준태라는 극단적인 원(原)체험을 지닌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남존여비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똑같은 상처를 남기는 사회적 해악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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