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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화신회장 차남·동아수출공사 전무 등/거액환치기 3명 구속

    ◎3백만불 빼돌린뒤 2백만불 매수 해외은행에 거액의 외화를 예치해두고 정상적인 해외송금이 불가능한 사람들을 상대로 외화를 대신 송금해준뒤 국내에서 이에 해당하는 돈을 받는 「환치기」 수법으로 외화를 빼돌린 외국환위반사범이 검찰에 적발됐다. 대검중앙수사부 3과(김성호부장·박태규검사)는 3일 캐나다 원자력공사의 한국대리점인 주식회사 삼창의 회장 박병찬씨(58·서울 종로구 계동 140)와 전대표 이용씨(38)·영화수입업체인 동아수출공사 전무 이종철씨(47·송파구 문정동 150)등 3명을 외국환관리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심상용씨(41·건설업·동대문구 용두동)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고 박흥식전화신그룹회장의 차남인 박씨는 90년8월 원자력발전소 공사에 따른 자문을 해주고 캐나다 원자력공사측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4백여만달러 가운데 3백만달러를 세금을 회피할 목적 등으로 홍콩의 동아시아은행에 예치한뒤 92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해외송금이 불가능한 동아수출공사전무 이씨와 건설업자 심씨로부터 각각 7억원씩 14억원을 받고 미화 2백만달러를 유출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수사 결과 박씨는 자신의 외사촌 동생인 삼창 전대표 이씨를 통해 국내에서 외국환 수요자를 끌어 모아 이같은 환치기 범행을 저질러 온 것으로 밝혀졌다.
  • 국내외서 기업·부동산·언론·학교등 운영/통일교,어떤사업 하고 있나

    ◎열성적 반공운동… 「김일성조문」 아이러니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라는 긴 이름을 가진 통일교.역학사상을 응용한 반기독교적 종교라는 기독교계의 비판을 받아온 통일교는 종교단체라기 보다는 종교를 앞세운 기업집단의 이미지가 강하다. 통일교 본부는 현재 서울 용산구 청파동 1가 71의3에 있다.해외선교사 파송과 합동결혼식 등으로 교세가 팽창해지면서 지난 73년 문선명교주가 도미한 이후 본격적으로 세계에 진출했다.75년 당시 5백만달러에 사들인 뉴요커 호텔(43층)을 근거지로 미국과 중남미에 손을 뻗쳤다.당시 외신들은 우루과이에 눈을 돌려 수백만평의 토지와 크레디트은행,빅토리아 플라자호텔,신문사 등을 사들였다고 보도했다. 통일교는 언론매체에 큰 관심을 가지고 미국의 경우 워싱턴 타임스,뉴욕 트리뷴,노티시아스 델 문도,프리프레스 인터내셔널 등을 손에 넣었다.그리고 일본의 세계일보와 우루과이의 울티미스 노티시아스를 소유한데 이어 지난 89년에는 한국에 세계일보를 창간했다.통일교가 소유한 미국의 언론기관은 뉴욕의뉴스월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통일교가 갖고 있는 자산규모는 여간해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있다.해외재산은 미국의 유수한 언론들이 간헐적으로 더러 보도해왔고 국내에서는 개신교단체가 통일교가 소유한 방대한 규모의 전국 토지지목 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통일교가 국내에 투자한 기업으로는 일화를 비롯,세일중공업·성일기계·일신석재,원일기계 등이 대표로 꼽힌다.교육기관으로는 성화신학교·선화예술중고등학교·경복국민학교를 운영해왔다. 유럽 쪽에도 일찍이 진출,독일 철강산업에 손을 댄 것 이외에 토지와 빌딩을 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그리고 미국에서는 언론기관 이외에 원양어업및 어류처리업·소형조선소·자동차수리공장을 운영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주지역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자금원은 주로 일본 쪽에 둔 것으로 전해진다.이번 박보희사장의 성급한 평양방문도 장삿속과 결코 무관치 않다.국익까지 버린 조문을 빌려 기업진출 기반다지기라는 얄팍한 통일교 기업관이 깔려있는것이다.승공연합과 세계평화연합을 통한 통일교의 반공운동 전력을 희고하면 더욱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하다.
  • 중견작가 신작 여름문단 장식

    ◎조정래 「아리랑」/유현종 「제곡의 별」/안정효 「나비소리를…」/김원두 「어느 개의 인간…」/작가 자신의 체험·작품세계 응축/「아리랑」·「제국…」:일제하 민초·엘리트 삶/「나비…」:재미 한인들의 사랑·사는 방식/「어느개…」:개의 시각 빌어 쓴 자전소설 작품 활동이 뜸했던 중견문인들이 잇따라 소설을 발표,여름 문단을 장식하고 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51)가 대하소설 「아리랑」의 1부 3권을 해냄에서 펴낸 것을 비롯,유현종씨(56)는 근대사를 소재로 삼은 「제국의 별」(우석간),안정효씨(53)는 미국체류 한국인들의 사랑과 사는방식을 소재로 한 「나비소리를 내는 여자」(현암사간),김원두씨(52)는 자신의 자전적 소설 「어느 개의 인간적인 추억」(솔간)을 거의 비슷한 시기에 펴냈다. 일반 독자들에게 오랜만에 선보인 이들 신작은 대부분 체험을 살려 쓰거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축약 해 보여 중견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는 흐름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뒤늦은 이적성 시비에 휘말린 조정래씨가 태백산맥 이후 선보이는 「아리랑」은 19 04년부터 해방까지의 민중사를 촘촘하게 엮어내 일제치하 수난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해 가는 역작.전체 4부로 구성,올 연말까지 완간될 예정이다. 19 48년부터 53년까지에 걸친 해방공간을 다룬 태백산맥의 이전 역사를 다룬 셈으로 민중들의 항거와 행태가 이루어 내는 역사의 진행 방향을 집요한 취재와 자료를 토대로 엮어나간다. 이번 발간된 1부 「아,한반도」는 일본의 교묘한 조선침략의 와중에 휘말려 살아가는 민중의삶을 사실적으로 그린 도입부.자리다툼에 연연한 조정대신과 대비되는 가운데 국내.외에서 이름없는 싸움을 벌이다 숨진 민초들의 삶이 사실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유현종씨의 「제국의 별」은 일제하 민초들의 작지만 외로운 투쟁을 더듬어간 「아리랑」과는 달리 조선무관학교와 일본육사에서 교육받은 한국인 엘리트들의 행적을 흥미롭게 추적한 장편. 을사보호조약에 따른 군대해산과 장교 양성소인 조선무관학교 폐지,무관학교학생들이 일본육사 유학후 벌이는 비밀결사와 독립투쟁이 박시찬 홍사익 이청천 김준원영친왕 김정렬 이광수 송진우 등 실제 인물에 얽힌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성이다. 고아출신으로 신기료장사를 하며 살던 주인공 김범이 본의아니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조사받던중 자신의 아버지가 일본육사 출신임을 알게되고 수소문끝에 얻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와 함께 교육받은 동기생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이에비해 안정효씨의 「나비소리…」와 김원두씨의 「어느 개의…」작품은 작가의 체험을 토대로 쓴 소설들로 색다른 소설맛을 전하는 작품들. 안정효씨가 재미 한국인들의 삶을 취재하던 지난89년 현지 한국인들의 행태에서 착안한 「나비소리…」는 충실한 삶에 실패한 교포들이 미국에서 벌이는 행각들을 현실감 있게 그렸다. 고국에서 실패한 삶을 이국땅에서 보상받기 위해 모여든 비정상적인 이민자들의 파행적인 사랑과 좌절된 꿈등을 고발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만으로 돌릴 수 없는 비극성을 진지하게 깔고있다. 김원두씨의 「어느개의…」내면은 고교2년 재학중 대한일보 전신인 평화신문 신인문학상에 소설부문 당선후 파란만장하게 살아왔던 작가의 철저한 자전소설. 김씨는 서라벌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후 출판사에 근무하다 자신이 예언한 친구의 죽음을 맞아 국군영화제작소 객원PD직을 버리고 입산,다시 하산해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뒤 영화사를 설립,사장까지 지냈다. 수많은 흥행작을 냈음에도 결국 영화제작능력에 한계를 느낀채 낙향하게 된 자신의 인생 역정을 함께 살고있는 곰지라는 진돗개의 시각을 빌려 극적으로 풀어나간 흐름이다.
  • 「애도 수위」 고심하는 한총련/김학준 전국부기자(오늘의 눈)

    요즘 한총련 관계자들은 8일 사망한 김일성에 대한 애도 표현의 수위및 방법등을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개인적으로는 「통분」에 가까운 슬픔을 표시하면서도 정작 공식적인 애도는 자제하고 있다.한총련은 김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연일 회의를 열어 추모의 형식과 수위를 논의했지만 아직 공식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각 대학 총학생회별로 분향소설치등 대대적인 추모행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국민정서를 감안할때 득보다는 실이 많을 것이라는 신중론이 우세하다. 이같은 현상은 과거 각종 집회때 김의 사진을 걸어놓고 흠모에 가까운 정을 표시해온 운동권의 행태로 보아 이례적이다.학생들이 「낮은 수준」의 애도조차 망설이고 있는 것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이 우려되기때문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만고의 애국자 김일성」과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동족상잔의 원흉 김일성」 사이에는 너무나 큰 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또한 일반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없는데 일반학생들 사이에 전혀 김일성추도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 않는 것도 자제의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에대해 운동권 학생들은 정부의 정보통제와 언론의 극우적인 편향보도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한총련관계자들은 『다양한 정보를 접해보면 김주석이 독립운동과 조국통일에 헌신해온 뛰어난 선각자라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면서 냉전논리속에 여론이 조작돼 일반인들의 김일성에대한 인식이 잘못돼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우는 김에대한 객관적인 평가자료라는 것이 대부분 북측의 선전용자료의 수준에 그치지 못한다는데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대남방송에서나 들을 수있는 김일성우상화나 신격화의 자료를 앵무새처럼 반복해온 이들의 「객관성」운운은 아무래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다.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내세워 수백만 동족의 살상을 서슴지않은 전쟁을 감행한 그에 대한 냉정한 인식이나 평가없이 「통일의 화신」「만고의 애국자」등의 찬양은 어떤 부연설명이 추가되더라도 국민들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없다는 건 뻔한 이치다. 보다 균형감각이 있는 역사의식을 갖고 북한을 바라보는 성숙한 지성이 아쉬운 순간이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24시간 타운」 미 곳곳에 등장/맞벌이 주부들에 각광

    ◎미지,수폴스시등 대표적 도시 소개/탁아소·식료품점·은행 철야 운영/야근·교대근무하는 여성들에 편리한 삶 보장 「24시간 운영하는 탁아소·주말에도 문을 여는 은행과 병원,그리고 야간 식료품점이 있는 도시…」.맞벌이 주부 등 육아와 병행해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여성들이 꿈꾸는 곳이다. 최근 직장에 다니는 주부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증가한 미국의 한 중소도시가 바로「직장엄마」들의 희망도시로 떠올라 미국 사회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일간 유에스 에이 투데이지 최근호는 중서부 사우스 다코타및 노스다코타주의 몇몇 도시를 맞벌이 가족에게 편리한 「24시간 타운」으로 소개하고 그 가운데 일하는 주부의 비율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 폴스시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새로운 유행을 주도해가는 중서부의 일하는 엄마들」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이곳은 6세이하 아이를 둔 엄마 가운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79.3%(미국평균 60%,18세이하 자녀를 둔 어머니 가운데 비율은 82.7%)에 달한다. 지난 80년의 54%에 비해 급격히 늘어난 지역소비자인 「직장엄마」들의 생활패턴에 맞추기 위해 은행등 각 업체의 업무구조 변화와 서비스가 함께 뒤따른 것이다. 이곳에서는 시티은행을 비롯한 많은 직장과 YWCA등 각 단체에서는 야간 근무나 교대근무를 하는 엄마를 위해 24시간 탁아소 운영을 하고 있다.또 유에스 웨스트 전화국의 경우 평일에는 시간내기 힘든 여성들을 위해 토요일에도 전화신청을 받고 있으며 주말 진료를 개설한 병원 또한 전혀 불편을 느끼지 못할 만큼 곳곳에 있다. 「션샤인」식료품점은 밤 늦게 일이 끝났을 때 간단히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바로 지난 86년 시티은행이 탁아시설을 설치한후 현재까지 꾸준하게 일고 있는 수 폴스시 변화의 모습이다.
  • 불교건축의 특징(백제를 다시본다:16)

    ◎호국사찰 건립 성왕때 본격화/왕흥·미륵사가 대표적… 기술 일에 전수/1사1탑 원칙… 남북축으로 건물 배치/왕권­미륵신안 결부… 통치·호국수단으로 세워 백제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고구려보다 12년이 뒤져 384년인 침류왕원년 동진으로부터 마라난타에 의해서였다.불교가 전래된 이듬해 한산(서울지역)에 불사를 조영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지금까지 서울 근방에서 백제의 사찰터가 확인된바는 아직 없다.백제의 사찰이름이 기록에 나타나기 시작한것은 도읍을 공주로 옮긴 후부터다.즉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대통사라든가 수원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백제의 사찰 유적이 본격적으로 밝혀지는 것은 성왕대 이후인 6세기초 부여시대(사비시대)에서부터라 할수있다.이 시대에는 절 이름의 기록이 나타나는 것만도 왕흥사를 비롯하여 호암사·칠악사·오함사·도량사·자복사·제석사·오금사·보광사·미륵사·사자사·북부수덕사 등이다.이중에서 도양사·자복사·보광사 등의 위치는 아직 찾지 못하였지만 그 외는 대체로 위치가 밝혀져 있다. ○한산에 첫불사 지어 특히 왕흥사와 미륵사에 대하여는 「삼국유사」에 자세한 기록이 있고 백제의 호국사찰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므로 소개를 한다.먼저 왕흥사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백제 제29대 법왕의 휘(죽은 이를 높여 부르는 이름)는 선인데 혹은 효순이라고도 한다.개황10년 기미년(599년)에 즉위하였는데 이듬해 겨울에 소를 내려 살생을 금하였다.민가에서 기르는 새나 매 그리고 짐승 등을 풀어주고 고기잡이나 사냥에 쓰이는 기구를 불살라 사냥을 일체 금지시켰다.이듬해 경신년에 30인의 승려를 두어 왕흥사를 사비성에 세웠다.처음 터를 닦을때 왕이 승하하여 무왕이 이를 이었다.아버지가 기초를 놓고 아들이 이루었으니 수십년이 지나 이루어졌다.이 절의 이름도 역시 미륵사라 했다.또 그절은 산을 등지고 물가에 있어 4계절의 꽃과 나무가 수려하여 아름다웠고 왕이 매번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갈때 그 경치가 장관을 이루었다』라고 되어있어 익산 미륵사와 창건연대가 비슷하고 이름도 같아 우리에게 혼돈을 일으킨다. 이 사찰 역시 국왕이 세운 호국사찰임이 분명하다.지금 부여의 북쪽 백마강을 건너 규암 왕은리 부락에 이 절터가 있어 초석의 일부가 노출되고 있지만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성격을 알수없다.익산 미륵사에 대하여도 재미있는 창건설화를 「삼국유사」에 남기고 있다.즉『하루는 무왕(600∼640년)이 부인과 같이 용화산위의 사자사를 가는 길에 용화산밑의 큰 연못가에 이르니 미륵삼존이 연못 가운데서 출현하므로 수레를 멈추고 경하하여 배례를 하였다.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곳에 큰 절을 세우기를 원한다고 하여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 연못을 메울것을 물었더니 신통력으로 하룻밤 사이에 산을 무너뜨려 못을 메워 평지로 만들었다.이에 미륵삼존을 법상으로 불전과 탑·낭 등을 세우고 절의 이름을 미륵사(국사에는 왕흥사)라 하였다.이에 진평왕(신라)은 백공을 보내어 이를 도왔는데 지금도 그 절이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백제는 왕권과 미륵신앙을 결부시켜 통치와 호국의 수단으로 미륵사를 세웠음을 알수 있다.또 기록으로 보아 절의 가람배치는 3곳에다 불전과 탑,그리고 회랑을 배치한 형식임을 알수있다.이 절터는 1980년부터 문화재연구소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되었는데 그 전부터 반파되어 남아있는 서탑을 비롯하여 금당터의 초석 그리고 두곳의 당간지주석이 남아 있었다.실제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결과로는 3개의 탑이 동서축을 맞추어 나란히 열을 지어 있었음이 밝혀졌는데 그중 중앙의 것은 목조탑이었고 동서양쪽의 것은 석탑이었음이 밝혀졌다. 여기에 곁들여 각 탑앞에 중문터와 뒤에 금당터가 각기 발견되고 회랑도 각 구역마다 이용이 되었음을 알수 있었다.이렇게 세개의 전탑이 병렬로 놓인 예는 아직 다른 곳에는 밝혀진바 없다.또 절터의 지반을늪지를 메워 이루었음도 확인되고 절앞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이러한 사실은 위의 기록의 신빙성을 확인해 주었다. ○목조건물 모두 소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동탑에 사용했던 탑부재 약2백60편을 비롯하여 건축목재의 일부와 생활용구인 큰 토기항아리,녹청색 유약을 입힌 서까래 장식기와,금동제 판불 등 1만8천여점이나 되어 백제사찰건축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이러한 자료를 근거로 1992년 동탑을 9층으로 고증하여 복원할 수있었다. 이렇듯 백제는 일찍부터 미륵신앙을 발전시켜 왕의 권위를 한층 높이는데 이용한 것이다.불타에는 과거불과 미래불이 있는데 미륵신앙은 인류에게 평안과 희망을 주는 미래불의 도래 사상을 의미하며 미래불은 즉 미륵인 것이다.미륵신앙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미륵하생신앙으로서 석가가 입멸한후 56억7천만년이 지나서 미래불인 미륵불이 도솔천으로부터 중생계로 내려와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것이다. 성왕이후 부여시대의 백제의 사찰은 기록된 것이외에도 일제시부터 해방후 근래까지 그 터가 많이 조사되어 왔다.부여 군수이와 동남리절터,정림사와 부소산 폐사터,금강사터,용정리절터,구아리절터 등 이외에도 많다. 이들 절터의 조사결과 그 특징은 탑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 목탑이었고 그 가람의 배치도 대체로 남북축을 맞추어 남쪽에서부터 중문과 탑·금당·강당을 두고 중문과 강당을양측으로 연결하여 회랑을 돌림으로써 방형의 안뜰을 만들었다.이것은 소위 백제의 전형적인 1탑식 가람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일본에 전래되어 대판의 사천왕사식 가람을 형성하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예외가 있어 동남리절터에는 탑자리가 확인되지 않았고 금강사터에서는 동서축에 맞추어 건물배치를 함으로써 가람이 동향을 한 것이다.백제는 538년 일본에 불교를 전해주고 아울러 경전과 불상은 물론 조불,조사공을 보내어 불사를 조영하는데 기술적으로 큰 몫을 차지하였다.따라서 비조사를 비롯하여 사천왕사·법륭사 등 비조시대(552∼645년)와 나양시대 초기의 불사건축들의 대부분은 백제의 기술에 의존하여 세워졌다고 믿어진다. 한편 백제의 뛰어난 사찰 건축기술은 신라에서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즉 신라의 호국정신이 담긴 황룡사 9층탑은 백제의 아비지의 조탑기술을 빌려 높이 80m나 되는 목조탑을 세우게 됐다는 것은 다 아는 바이다.아비지는 이 거대한 신라의 통일탑을 세우는 도중 어느날밤 백제가 망하는 꿈을 꾸고는 공사를 중단하였었다는 기록은 지금 생각하여도 수긍이 갈만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에는 이 찬란했던 건축문화로서 백제사찰의 목조건축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려시대의 건축도 몇동만 남아있음)따라서 백제의 사찰건축을 연구하려면 일본에 남아있는 나라시대의 사찰목조건축을 그 방증자료로 연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가슴아픈 일이다.장경호(공박·문화재연구소장) ◎사찰과 미륵신앙/미륵신앙 6세기에 널리 퍼져/“강력한 왕조” 염원서 대가람·불상 세워 사비시대 백제의 대가람은 원찰로 조성되었다.다시 말하면 어떤 간절한 염원을 사찰창건의 동기로 삼은 것이다.이 시대의 대표적 가람은 사비도성 밖 백마강 건너 왕흥사와 익산 미륵사다.이들 가람은 호국과 깊이 연관된 미륵신앙을 담았다. 미륵신앙은 석가모니가 제자인 미륵에게 장차 성물을 한 뒤에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할 것이라고 예견한 대승적 자비사상에서 비롯되었다.미륵신안의 중심은 미륵(Maitreya)이고 원래 친우를 뜻하는 미트라(Mitra)에서 연유한 말이다.기독교의 메시아(Messiah)와 비유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유토피아적 희망의 신앙이라는 점에서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미륵신앙은 6세기 이후 백제에 널리 퍼졌다. 이는 미륵과 연관한 사차르이 창건과 미륵반가사유상의 조상이 널리 성행한 것을 보아도 알수 있다.글고 위덕왕(재위AD554∼597)때 신라의 승려 진자가 미륵화신을 친견코자 웅진(공주)이 수원사를 찾아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사비도성 바로 지척에 완공한 왕흥사와 더불어 익산에 미륵사가 창건되는 시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 시기는 무왕의 재위기(AD600∼640년)에 해당한다.법왕이 옥천전투에서 전사한 이른바 옥천회전 패배이후 동요된 백제왕권을 회복한 그는 신라에 설욕전을 폈다.신라를 압박,낙동강까지 진출함으로써 정복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그래서 백제 정치사속에 우뚝한 인물이기도 하다. 무왕의 업적은 국민들이 품고있다 기층적 미륵신앙과도 맞물려 자연스럽게 호국으로 연결되었다.이같은 미륵신앙은 호국사찰을 표방한 대가람창건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 삼성,유통업 재진출/서울·대구 등 백화점부지 6곳 확보

    ◎타대기업 유통업 참여 가속화 될듯 삼성그룹은 지난 91년11월 신세계백화점을 떼 냈다.당시 항간엔 가족간의 지분정리를 위해 신세계를 털었다는 말이 있었다.이에 그룹측은 대기업 집중완화 요구에 부응하고 그룹의 경영력을 전자·종합화학 등에 집중,업종 전문화를 기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년6개월만에 삼성은 다시 유통업에 진출한다.지난 달 31일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사 백화점건물 부지 4천7백19평을 인수함으로써 신호탄을 올렸다.삼성은 이 역사에 2만1천평 규모의 대형 슈퍼마켓·백화점·스포츠 및 레저복합건물을 95년 8월말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그룹의 유통업 진출을 주관하는 계열사는 삼성물산이다.종합상사의 채산성이 갈수록 낮아지자 기업 회생방안의 하나로 유통업진출,수입판매 확대,해외금융업 참여 등을 검토 해 왔다. 당초에는 ▲도매물류 회사 ▲자사상품을 판매하는 교외형 패션전문점 ▲디스카운트 스토어 등을 생각했다.그러나 지금은 기존 백화점과 같은 산매업 쪽으로 흐르고 있다. 서울에서만 4군데에 부지를 확보했다.지난 해 강남 도곡동 그랑프리 쇼핑센터 맞은편의 체비지 6천5백평을 삼성신용카드 명의로 사들였다.매입비용은 1천5백60억원.여기에 총 5천여억원을 투자해 대형 백화점과 오피스텔,스포렉스 시설을 함께 갖춘 복합 상업건물을 세울 것으로 알려졌다.이 지역은 지금 강남의 신흥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서초동에도 연면적 2만8천평,24층 규모의 복합빌딩을 건립할 계획이다.한때 이건희회장이 45층 규모의 초고층 복합빌딩으로 지으라고 해 문제가 됐던 것으로 전해진다.이곳 역시 대규모 쇼핑센터와 스포츠시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일원동의 삼성의료센터 옆 부지도 탁아소 요양시설 쇼핑센터 등을 건립,복합타운으로 개발할 계획이며,종로의 옛 화신백화점 자리에도 백화점 건립을 추진 중이다.대구의 제일모직 부지에도 아파트와 대형 쇼핑센터,오피스빌딩이 함께 하는 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다. 삼성은 롯데와 같은 기존의 유통 전문업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사업을 펼치겠다는 생각이다.준비도 돼 있다.삼성의 유통업 재진출로 대우·럭키금성·코오롱·효성그룹 등과 같은 다른 대기업의 유통업 진출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오는 96년 유통시장이 개방되는데 대비하려면 대기업의 유통업 진출은 불가피하다.그러나 역시 지나친 중복 투자가 문제가 될 것 같다.
  • 소백산·지린산/막오른 철쭉맞이 산행철

    ◎철쭉제 새달 3∼5일… 산신제·미인선발 등 행사 다채/소백산/연화봉∼비로봉 꽃터널로 장관/지리산/새석평전 일대 “붉은바다” 이뤄 짙푸른 초여름의 녹음속에서 진분홍 화신이 전국을 수놓고 있다. 해마다 5월 초순이면 한라산 산자락에 소리없이 스며들기 시작한 연분홍빛 진홍빛 철쭉 물결이 전국의 명산을 타고 번져 6월중순 백운산 정상까지 물들이게 된다. 중남부지방에서 철쭉이 절정을 이루게 되는 시기는 지금부터 다음달 중순까지.따라서 이 기간 전국의 유명산에는 붉게 뒤덮인 철쭉의 절경을 보기위해 몰려든 행락인파로 몹시 붐빌 전망이다. 또 각 산마다 산악인들이 정성껏 마련한 산신제를 겸한 철쭉제행사도 연이어 펼쳐진다. 그러나 산에서의 큰 기온차와 비·바람등 갑작스런 변화에 대비,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긴소매 옷이나 파카등 두꺼운 옷등 철저히 준비도 잊지 말아야한다. ■소백산(1천4백39m)=철쭉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산으로는 단연 으뜸이다.매년 이맘때면 이 곳을 찾는 인파가 10만명에 달할 정도다.충북 단양과 경북 영풍군사이에 위치한 이 산은 일반적인 등산코스가 희방사∼연화봉∼비로봉으로 온가족의 철쭉맞이 산행에 제격이다.철쭉이 특히 아름다운 연화봉과 비로봉사이는 유난히 키가 큰 철쭉들이 길옆에 늘어서 피크때 자연스레 터널을 형성,장관을 이룬다. 산아래 철쭉은 이미 다 피어있는 상태고 6월초까지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올해로 12번째를 맞는 소백산 철쭉제는 6월3∼5일 단양 공설운동장과 군내 일원,소백산 야영장등에서 다채롭게 펼쳐진다. 3일 군민회관·고수대교 광장등에서 열리는 전야제에는 다리밟기·불꽃놀이·마늘아기씨 선발대회등이 벌어지고 단양고와 공설운동장에서 열리는 본행사는 군악대·민속무용·농악대·태권도시범등이 펼쳐지며 사생대회·청소년음악회·전통혼례식·패러글라이딩대회등이 곳곳에서 열려 잔치분위기를 고조시킬 예정이다. 철쭉제 행사의 절정을 이룰 산신제와 전국등반대회는 5일 소백산 야영장에서 개최된다. ■지리산(1천9백15m)=6월중순까지 철쭉이 만발하는데 6월초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해발 1천6백m에위치한 세석평전 일대는 수만그루의 철쭉꽃으로 뒤덮여 「철쭉바다」를 이룬다.이 곳을 통하는 가장 쉬운 코스는 내대리∼거림∼세석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다가 백무동으로 내려오는 길. 올해는 6월4∼5일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진주산악회 주관으로 1천여명의 산악인이 참석한 가운데 철쭉제가 열려 산신제를 지내고 「미스 철쭉」을 선발하며 자연보호 운동도 벌인다.
  • 파 연출가 K 바비츠키 초청/「멕베드」 동구권 시각으로 무대화

    ◎극단 미추/음악도 파 세계적 작곡가 라드반 담당/이호재·김성녀·윤문식·김종엽씨 출연 동구권의 시각으로 셰익스피어를 다시 본다.극단 미추(대표 손진책)는 폴란드 비브제제극단의 상임 연출가 K 바비츠키를 초청,셰익스피어의 「맥베드」를 함께 만든다. 오는 24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동숭동 문예회관 대극장무대에 올려질 「맥베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 가장 비극적 요소가 뛰어난 작품으로 수백년동안 연극팬들을 사로잡았던 영원한 고전. 연출을 맡은 바비츠키는 91년 「칼리쿨라」,93년「미스 줄리」등 이미 두번의 서울공연을 통해 만만찮은 연출력을 과시했던 폴란드의 정상급 연출가이다.특히 이번에 무대에 올릴 「맥베드」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가운데에서도 유달리 등장인물의 성격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작품이어서 그의 새로운 인물해석이 주목된다. 이와 관련,바비츠키는 『영국에서 셰익스피어극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우리는 가능하다』 고 전제,『덩컨은 햄릿의 숙부처럼 폭군일 수도 있고,맥베드는 오히려 정당한 거사를일으킨 인물일 수도 있다』는 유연한 연출입장을 밝히고 있어 다분히 「현대적인」맥베드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셰익스피어 특유의 화술과 완벽한 극적 구조를 갖춘 「맥베드」는 야욕의 화신인 스코틀랜드의 장군 맥베드가 마녀들의 예언에 빠져 정권을 찬탈하고 살인을 거듭하다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는 내용.권력에의 무분별한 집착이 궁극엔 자기파멸을 초래한다는 불변의 진리를 메시지로 남긴다. 「맥베드」는 또한 배우들의 끝없는 도전의 무대이기도 하다.데이비드 개릭,에드먼드 킨,헨리 어빙,로렌스 올리비에서부터 최근의 이안 맥컬린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세계적 명배우들이 이 작품에서 열연했다.이번 국내무대에서는 선 굵은 연기자 이호재씨(53)가 맥베드로 나선다.63년 「동랑 레퍼토리」에 입단하면서 본격적인 연기활동을 시작한 그는 그동안 번역극과 창작극을 가리지않고 특유의 순발력과 유연한 대사로 무대를 압도해 온 미남형 배우.『81년과 92년에 이어 세번째로 맡는 맥베드역인만큼 「배우 이호재=맥베드」란 등식이 성립될수 있도록 이 작품에 연기생명을 걸겠다』는 것이 그의 다짐이다. 맥베드의 부인역은 만능연기자 김성녀씨가 맡았으며 마당놀이 시리즈로 우리에게 친숙한 배우 윤문식이 문지기역을,지난해 서울연극제 연기상을 수상한 김종엽씨가 덩컨왕 역을 맡아 열연한다.한편 이번 무대에서는 폴란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스타니슬라우 라드반이 작곡한 음악을 현지에서 직접 테이프에 담아와 소개할 예정이다. 영화 및 연극음악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하고 있는 라드반의 음악은 정적이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울림이 있어 극의 효과를 한층 탄탄히 받쳐줄 것으로 기대된다.하오 4시30분·7시30분 공연.문의 743­5911.
  • 미 과격흑인 한인 멸시 충격/과격지도자 페리칸,“유색인은 흡혈귀”

    【워싱턴 연합】 암살된 흑인 지도자 말콤 엑스가 한때 속했던 「네이션 오브 이슬람」이란 흑인 민권운동 단체를 이끌고 있는 루이스 페리칸(60)이란 과격한 인물이 요즘 미흑인사회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페리칸은 유대교를 「쓰레기 종교」라고 매도하는 등 극단적인 노선을 걷고 있는데 얼마전 폭발직전 상황에까지 이르렀던 미국내 흑인과 유대사회간 갈등의 핵심에도 물론 그가 있었다. 이로 인해 「증오의 화신」이란 섬뜩한 닉 네임까지 갖고 있는 그는 얼마전에는 한국인과 아랍인을 흑인을 괴롭히는 『흡혈귀』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해 재미 한인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백인주도의 미국사회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흑인대중에게는 그의 과격한 스타일이 오히려 매력으로 작용,인기가 날로 상승하고 있다.
  • 중국,한반기에 긴축완화/홍콩상보 보도

    【홍콩 연합】 중국은 경제과열에 따라 지난해 7월이후 실시해온 긴축정책을 올해 하반기에 완화할 것이라고 홍콩의 중국계 신문인 홍콩상보가 9일 머릿기사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국무원(중앙정부)고위관리의 말을 인용,금년 하반기에 국무원의 자금에 대한 통제가 완화되고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은 자금을 적절히 방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국무원 고위관리는 최근 지방을 시찰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홍콩에서 중국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는 홍콩상보는 말했다. 이 고위관리의 이같은 발언은 경제과열 끝에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긴축정책이 계속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나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 관리는 자금통제완화는 적자와 부채및 원자재 부족으로 허덕이는 사회주의 중국의 산업근간인 국유기업의 자금난등을 해결하기 위해 취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긴축정책 완화는 중국에서 개혁파와 보수파들간은 물론 국무원과 지방정부들간에도 논란을 빚고있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이다.중국은 그간 국영기업이 시장경제에 적응하도록 자금지원을 대폭 줄여왔다. 이 신문은 『금융통제를 완화하는 것은 기업에 복음이다』고 말하고 그러나 완화된 자금이 기업운영 이외에 고정자산투자와 부동산투자에 쏠리지 않도록 엄격히 통제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긴축정책 실시이전 고정자산및 부동산에 대한 과잉투자 붐은 경제과열을 초래했었다. 이 신문은 자금 완화신호들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주중 한국 공보원/6일 북경서 개원

    【북경=최두삼특파원】 중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고 한중간 문화교류증진을 위한 주중 한국공보원(원장 김경해·중국명칭:한국문화신문처)이 오는 6일 북경에 설치,개원된다. 주중한국대사관 부속기관으로 북경의 신흥개발지역인 아시아선수촌 국제회의센터 7층에 자리잡은 이 공보원은 한중문화교류증진을 위한 교량역할도 하게 된다.
  • 사설공원묘지 비리 무더기 적발/특정업자 석물구매 강요/공정위

    ◎불공정 계약도… 15곳 시정조치 15개 사설공원 묘원들이 특정 업자의 석물만을 사용토록 하거나,사용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계약을 강요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정조치를 받았다. 2일 공정위에 따르면 전국 1백8개 사설공원 묘원 중 경북 칠곡군의 현대공원묘원과 경기 수원교구묘원 등 9개 묘원이 사용자에게 특정 업자의 석물만 사용토록 거래를 강제한 데 대해 시정명령이나 권고를 받았다. 충북 중원군의 진달래동산 공원묘원 등 6개 묘원에는 잔금미납시 아무런 최고나 통지 없이 자동해약으로 간주한다는 불공정 약관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토록 하라는 시정령이 내려졌다. 시정명령을 받은 묘원은 ▲현대1 공원묘원(칠곡,대표자:김석엽) ▲현대2〃(〃) ▲무궁화〃(양평,이효식) ▲경주〃(배용길) ▲천안〃(김정숙) ▲정읍화신〃(김현수) ▲봉황〃(옥구,엄대우) 등 7개이다.거래강제와 관련,시정권고를 받은 묘원은▲대전교구묘원(아산,경갑룡) ▲수원〃(안성,김남수) 등 2개이다. 불공정 약관을 사용해 시정권고를 받은 묘원은 ▲진달래동산 공원묘원(중원,김선교) ▲이화〃(고성,배호권) ▲포항〃(영일,강태순) ▲동산〃(영일,김홍득) ▲목련〃(철원,이형종) ▲울산〃(최한형) 등 6개이다. 공정위 정재호 경쟁국장은 『일부 공원묘원을 조사한 결과 6평 묘지의 석물 1세트(비석,상석,둘레석,향로석,화병 2개)는 지정업자가 2백80만원을 받고 있으나 제3의 업자는 2백4만원을 받아 지정업자들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폭리를 취해 왔다』고 밝혔다.
  • 근로자의 날에 생각한다/김치선(일요일 아침에)

    역사적으로 고대 로마에서는 플로라(Flora)화신에 대한 제일로 5월1일을 기념했다.그후 중세에 이르러 영국을 위시한 유럽국가들은 5월1일이 되면 꽃밭에 나가 춤을 추고 그 마을에서 최고의 미녀를 뽑아 MayQueen(5월의 여왕)의 화관을 씌우는 풍습이 있었다.그러한 메이 퀸을 뽑는 풍습은 아직도 전세계적으로 특히 대학가에서 유행하고 있다. 5월1일을 근로축제일로 정하고 노동의 신성함을 기념하게 된 역사는 약4백년전 1521년5월1일 이탈리아의 루카스시의 면사를 짜는 직공들이 집단적으로 근로조건의 향상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인 때부터 시작한다.그후 1886년 5월1일 미국 전역의 노동자들이 1일 8시간 노동시간제를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감행하였고,그후부터 매년 5월1일이 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선언하고 노동자의 지위를 고양시키자는 기념적인 축일로 거행되고 있다. 1914년 미국 연방노동법(Clayton Act)전문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선언과 아울러 노동자의 단결권을 독점법(Sherman Act;1890년)의 적용에서 제외됨을 규정하여 당시의 이 법은 「노동자의 대자유헌장」이라는 호평까지 들은 바 있다.뿐만 아니라 세계 제1차대전(1919년)이 끝난뒤의 국제연맹과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난 뒤의 국제연합은 세계적으로 임금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단결의 자유와,그리고 노동조건개선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r Organization)를 설치하고 국제협약(ILO Convention)을 통한 노동보호정책을 수행해오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5월1일을 노동절로 지키고 있다.미국과 캐나다는 비교적 농업노동자들이 많은 나라로서 가을에 농사가 끝난 후에 9월 첫째 월요일을 노동절(LaborDay)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매년 5월1일을 노동절 또는 메이데이로 기념하고 있는데,제2차대전 이후 미소양대국가의 냉전이 격화되고 국제사회는 동과 서로 양분되어 이념적인 갈등이 심화되었다.특히 정치·경제및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민주자유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로 양분되면서 매년 5월1일이 오면 노동자들이 시위를 통해서힘의 지배(Ruleof Force)를 과시하게 되자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서방국가들은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고 법의 지배(Ruleof Law)를 기념하고 법치주의의 체제적인 우위를 선전하여 힘의 지배에 대항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1964년 3월10일을 근로자의 날로 법정화하고,미국과 캐나다와 같이 5월1일을 법의 날로 정하여 기념해오고 있다.물론 그 전에는 5월1일을 노동절로 정하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그날을 노동절로 기념하여 근로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행사들을 계속해왔다. 금년 5월1일부터 근로자의 날을 기념하게 된 것을 우리 모든 국민이 환영하고 기뻐해야 할 역사적인 일이라 믿는다.그러나 우리는 근로자의 날의 역사적인 참의의와 개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먼저 노동절은 노동자의 날인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노동은 신성한 것이고,노동의 기여 없이는 산업사회가 유지될 수 없으며,건강한 노동의 참여가 없이는 기업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절대적인 논리를 망각해서는 안되겠다.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는 국외적으로 5월1일을 근로자의날로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있겠지만,요컨대 이날은 근로자의 날인 까닭에 근로자들이 원하는 것,근로자들이 기대하는 것,그리고 근로자들에게 기쁨과 소망과 행복을 느낄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다음 이날의 기념은 근로자 자신들이 주체가 되고 자주성을 가지고 미리 그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여 그 기념행사를 통하여 그들의 만족감과 보람을 맛볼수 있어야 하겠다.이날에는 우리사회의 모든 문화적 및 복지시설을 총동원하여 근로하는 국민,그리고 근로자의 가족들을 위로해주고 보살펴 줄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의 신성성은 객관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여기에는 무엇보다도 근로자 자신들의 의식적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진정으로,그리고 실질적으로 근로자의 경제적 및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에는 근로자들에 대한 꾸준한 각성및 훈련과 연구와 교육이 요청된다.근로자의 날 하루에만 기념에 그치지 말고 간단없는 노동교육의 실시를 촉구한다.
  • 운전자의 인격/진형준(굄돌)

    직접 차를 몰고 출·퇴근을 시작한지 이제 채 반년도 안되었으니 나는 운전에 관한한 아직 영락없는 초심자이다.서툰 초심자가 더 생각이 많은 법인지 차를 몰다보면 운전이라는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된다.그중 가장 큰 화두가 차와 사람의 한몸 되기 혹은 자동차 인격화시키기이다. 사람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난폭운전을 목격하거나 서로 멱살을 잡고 티격태격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사람이라는 인격체가 자동차라는 기계속에 숨어버림으로써 거꾸로 평상시에는 드러내지 않았던 동물적 욕망이나 본능을 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사람들은 자동차라는 기계 안에 숨어버림으로써 일종의 철면피가 되는 것이다. 철면피란 무엇인가? 그것은 얼굴 피부위에 두터운 한 겹의 가면을 덧씌운 상태를 말한다.그 가면을 씀으로써 인간이라는 얼굴을 가지고는 차마 못하던 일을 마구 행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그 두터운 가면은 인간으로서의 얼굴을 가짐으로써 그 얼굴 뒤에 숨어있던 동물적·이기적 욕망을 제멋대로 발휘하게 한다. 우리는 성숙된 자동차 문화를 어떻게 정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나는 교통법규를 정확히 준수하는 습관이 일반화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동차라는 것을 그안에 들어가 숨을 수 있는 은닉처,나를 감출 수 있는 가면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 몸의 일부분,나의 얼굴 모습의 하나로 인격화시키는 일도 한 편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너무 막연한 이야기가 된 감이 있지만 자주 차창 밖으로 자신의 얼굴을 내보인다거나 옆으로 다가오는 자동차의 운전자를 보행중 맞부닥친 사람처럼 좀 친근한 기분으로 찬찬히 살피는 것도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선 문제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나 자신도 하루에 몇 번씩 그 철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기 때문이다. 철가면을 쓰고 스스로 위험한 동물적 본능의 화신이 된 채 다른 자동차에 대고 삿대질을 하는,정녕 쑥스러운 스스로의 모습을 벗어버리려는 나 자신의 노력이,솔직히 말하면 급선무이다.
  • 김정일 공식활동 줄어/작년보다 5차례 감소

    【내외】 북한 김정일의 공식활동이 지난해에 비해 현저한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19일 현재까지 김정일이 올해들어 벌인 공식활동은 단 4차례에 불과하다. 1월1일 경제계 간부들을 만나 올해 경제과업 완수를 독려한 것을 비롯해 ▲조총련 책임부의장 허종만 면담(2·28) ▲북한군 협주단 종합공연 관람(3·5) ▲최고인민회의 제9기 7차회의 개막식 참석이 공식활동의 전부이다. 김정일은 지난해의 경우 모두 21차례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으며 1월부터 4월말까지 4개월동안에만도 모두 9차례나 공식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김정일의 이같은 공식활동 감소추세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찬양은 강화되고 있다. 김일성 자신도 김정일을 「신념이 강하고 배짱이 센 사람」 「충성의 최고화신」이라고 치켜세웠으며 최고인민회의 의장 양형섭도 김정일을 『우리 민족의 운명이고 조국통일의 상징』이라고 찬양(4·11)했다.
  • 씨티은 4개지점 전면검사/은감원/외화 불법유출 의혹 제기따라

    은행감독원은 23일 미국계 씨티은행의 4개 지점을 대상으로 정기검사에 들어갔다.당초 2·4분기에 할 예정이었으나 최근 씨티은행 서울지점이 서울 모 종교재단의 요청으로 거액의 외화를 외국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시기를 앞당겼다. 정기검사 대상은 국내 본사격인 서울지점과 명동·여의도·대치동 지점 등 4개 지점이다.나머지 7개 지점에 대해서는 필요할 경우 검사요원을 파견하거나 서류검사를 할 계획이다. 씨티은행은 지난 91년 6월 홍콩의 카딜로드사와 고정금리로 7년 기한의 이자율 스와프거래 계약을 맺은 뒤 같은 금액으로 홍콩지점과 고정금리보다 낮은 변동금리로 계약을 체결,금리 차이에 해당하는 13억원을 손해봄으로써 이를 해외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독원은 오는 4월7일까지 계속되는 검사에 15명의 검사요원을 투입,씨티은행의 ▲자금조달 및 운용의 적정성 ▲법규 준수여부 및 통화신용·감독정책 이행사항 ▲불건전 금융관행 여부 등을 점검한다.
  • 첨단기술군대 육성/김 대통령/공사졸업식서 치사

    김영삼대통령은 8일 『애국애족의 화신이 되어야 할 군인은 조국의 빛나는 역사창조의 대열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한다』고 전제하고 『이 때문에 군인에게는 높은 도덕성과 자기혁신이 요청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공군사관학교 제42기 졸업식및 임관식에 참석,치사를 통해 『현대전은 첨단무기에 힘입어 속전속결로 그 승패가 결정된다』면서 『때문에 국방체계의 과학화와 효율화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김대통령은 『군은 경제적인 전력구조와 운영체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병력중심의 양적인 군대가 아니라 첨단장비중심의 기술집약적 군대로 육성해 나가야한다』고 강조했다.
  • 경기/회복국면 지나 호황 조짐

    ◎제조업 가동률 84%… 91년이래 최고/산업생산 전년비 19% 증가/실업률 2.9%… 92년이후 첫 감소/통계청,1월산업활동 동향 발표 장기침체에 빠졌던 우리 경제가 5개월째 상승세를 타고 있다.특히 제조업의 평균 가동율이 84%로 91년1월 이후 3년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는 등 경기가 회복국면을 벗어나 호황으로 가는 조짐이다. 지난 92년5월 이후 줄곧 감소한 경공업 생산이 1월 중 1년8개월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91년9월 이후 계속 줄던 제조업 취업자가 1월 중 처음으로 증가했고 실업률은 2.9%로 92년7월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를 기록했다. 4일 통계청이 발표한 「94년 1월의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산업생산은 전월에 비해 0.9%,전년동월에 비해 19.1% 증가했다.전년동월 대비 생산증가폭은 지난 91년 10월(19.6%) 이후 최고이나 지난 해에는 설날휴일(사흘)이 1월에 끼어 생산활동이 상대적으로 부진했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용 별로는 중화학 공업이 24.1%로 지난 해에 이어 지속적인 호조를 보였다.지난 92년5월 5.5% 증가 이래 줄곧 감소했던 경공업이 7.4%의 증가세로 돌아섰다. 출하도 내수용이 21.1%,수출용이 12.5% 증가해 전년동월에 비해 18.8% 늘어났다.재고는 전년동월에 비해 3.8% 증가했다. ◎부진했던 경공업 “불황탈출”/음식료·섬유업 호조 힘입어 증가세로/경기 과열땐 물가급등·수지 악화 우려 경기가 장기간의 동면을 끝냈다.활황세가 뚜렷하다.현재의 경기는 봄을맞아 개구리가 땅 속에서 튀어나오는 「경칩」의 단계를 넘어선 것 같다.회복의 속도가 너무 빨라 이대로 두면 과열된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지난 2년동안 국내 경제는 전반적으로 침체양상을 보이는 가운데 양극화 현상이 심했다.대기업 중심의 중화학 공업이 호황을 누린 반면 섬유·신발 등 중소업체 위주의 경공업은 심한 불황을 겪었다.그러나 부진했던 경공업 생산이 올 1월에 음식료,섬유업 등의 호조에 힘입어 92년 5월 이후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경공업은 경제의 건강상태를 알리는 척도의 하나이다.제조업의 가동률 및 실업률 추이를 보면 경공업 회생과 더불어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궤도에 들어선 느낌이 확연하다.1월중 제조업의 평균 가동률은 84%로 91년1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고 실업률(계절조정)도 2.5%로 92년7월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통계청 조휘갑 통계조사국장은 『현재의 경기패턴은 제조업 중심으로 호황을 기록했던 지난 85년초와 비슷하다』며 『재도약의 기틀을 다지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1월 중 산업활동 동향의 수치는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았던 92년말과 93년초가 비교대상이다.또 물가·금리·통화 등 주요 경제변수들도 모두 불안하다.소비자 물가는 올들어 2월까지 2.4%가 올랐다.시장금리 중 하루짜리 콜금리는 연 13%를 넘어서 지난해 실명제 직후 돈이 제대로 돌지 않던 때와 비슷하다. 금리가 뛰고 통화가 불안하면 물가는 자연히 오른다.물가는 올 우리 경제의 성패를 좌우하는 최대의 복병이다.지난해 5.2%(추정)를 기록한 성장률은 올해 7% 이상으로 예측되고 있으나 물가안정 기조가 흔들리면 성장도 물거품이 된다. 올해 산업생산의 전망은 밝다.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의경기회복은 물론 국제금리·유가·환율 등 이른바 「신3저」의 호기를 맞아 수출이 올해 중 9∼10%의 증가세를 유지할 전망이다.또 사정으로 얼어붙었던 설비투자의 회복과 사회간접자본(SOC)의 확충에 힘입은 시설투자의 확대도 기대돼 경기가 본격적인 상승국면에 접어들 것 같다. 문제는 정책대응이다.경기침체기에 채택한 내수부양 시책이 기대와 달리 경기를 급격히 과열시킬 경우 단기간에 물가급등·국제수지 악화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백웅기연구위원은 『경기과열을 막으려면 안정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해외자본의 유입이 총통화·환율 및 금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통화신용정책을 적절히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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