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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산 오르記] 광주 무등산

    무등산(無等山·1187m)은 소백산맥의 남단 지맥으로 광주시와 전남 화순,담양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다.높고 낮음이 없고 어느쪽에서 바라보더라도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하고 푸짐하다.그 풍광을 견줄 만한 상대가 없어 무등(無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제때 무진악(武珍岳), 고려때 서석산(瑞石山)이라고 했으며,무돌·무덤산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무등산은 다양한 이름처럼 철따라 천(千)의 얼굴을 드러낸다.봄엔 철쭉,여름엔 시원한 계곡물이 일상에 지친 도시민에게 손짓한다.가을과 겨울엔 정상 일대에 지천으로 펼쳐진 억새와 눈꽃이 한폭의 동양화다.산중 곳곳에는 사찰과 약수터 등이 흩어져 있다.공휴일엔 평균 1만 2000여명이 이곳을 찾는다.산이라기보다는 가까운 공원쯤으로 여겨진다.지정 등산로 15곳 외에도 어느 곳에서나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등산로는 총 16㎞ 남짓하고 예닐곱 시간이면 정상을 다녀올 수 있다. 점심 조금 전 시내버스를 타고 증심사 입구에 내렸다.평일인데도 입구는 형형색색 등산복 물결로 넘쳐난다.일찍 출발한 사람은 벌써 하산길을 재촉한다.점심때라서 주변 보리밥집이 사람들로 붐빈다. 의재미술관을 지나 약사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진녹색으로 변해가는 숲을 대하니 먼저 눈의 피로가 사라진다.녹음을 헤치고 계곡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다람쥐 한쌍이 숲에서 튀어 나오다가 인기척에 놀라 어디론가 사라진다.지척 거리인데도 도시와 산 속은 다른 세계임이 틀림없다. 하늘을 가릴 듯한 원시림을 지나 새인봉 쪽으로 향했다.제법 가파른 비탈길이라 땀이 흥건히 젖는다. 약사사 남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두개의 바위 덩이가 새인봉(璽印峯·608m)이다.임금의 옥새를 닮았다고 해서 인괘봉(印掛峯)이라고도 한다.봉우리에 오르자 서북쪽으로 아스라히 나주평야가 펼쳐진다.건물과 숲들이 어우러진 광주 도심도 수채화처럼 선명하다. 이곳에서 정상쪽으로 평지와 능선을 반복해 2㎞쯤 오르니 중머리재가 눈앞에 다가온다.지난 초봄까지만해도 지천으로 깔려 있던 마른 억새들은 온데 간데 없다.그 자리엔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빼곡히 들어섰다.80년 5월 이후 정월 초하루 해돋이 때 수만명의 군중이 몰려 목이 터져라 뭔가를 외쳐대던 곳. 중머리재는 중(스님)의 머리처럼 반들반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약수터가 자리한데다 밑자락과는 달리 굵은 나무가 없다.정상과 중간지점에 해당되는 쉼터이다.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 먹느라 이곳 저곳 자리를 잡는다.남쪽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좋다.꿀맛같은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장불재로 향했다.나주와 화순 들녘까지 한눈에 들어온다.인근 군부대가 철수한 자리엔 환경생태 복원작업이 한창이다. 산(山)작약과 철쭉 군락이 눈에 띈다.무등산엔 100여종의 각종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멧돼지,멧토끼,너구리,고라니,삵 등의 포유류와 천연기념물인 붉은 배새매,황조롱이,소쩍새 등 79종의 조류가 둥지를 틀고 있다.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기암괴석이 시야를 가로막는가 싶더니 정상이 지척이다.봉우리 주변은 원기둥 모양의 절리(節理)가 발달해 절경을 이룬다.천왕봉 남동쪽의 규봉(圭峯)과 남쪽의 입석(立石)과 서석(瑞石)은 내륙의 일반 산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다.장불재 북쪽에 솟아있는 서석은 저녁 노을이 물들 때면 수정처럼 반짝인다.그래서 수정병풍(水晶屛風)이라 불린다.입석은 선돌을 수백개 모아놓은 듯 오묘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특히 입석대는 예부터 제천단(祭天壇)으로 가뭄이나 전염병이 극심할때 제를 모시던 신령스러운 곳이다. 무등산 정상부는 ‘정상 3대’라 불리는 천왕봉,지왕봉,인왕봉 등 3개의 바위봉으로 이뤄져 있다.천왕봉은 최고봉으로서 전북 순창과 광주,담양,곡성,나주 등 호남 일원을 아우르고 있다.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든 그저 하나의 봉우리로 이뤄진 듯하다.하지만 사방으로 가지를 뻗고 큰 골이 여럿 패어 있다.용추계곡,원효계곡,큰골,동조골 등 계곡마다 폭포와 암반이 절경을 이룬다.안개낀 날이면 구름에 떠 있는 느낌이 들 것 같다. 신선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장불재로 다시 내려와 6㎞쯤 아래쪽으로 향하니 ‘무등산장’안내판이 보인다.이 구간은 군사도로로 개설돼 차량 통행도 가능하다. 시인과 묵객들은 예부터 무등산을 그 아름다움에 견주어 ‘경승(景勝)’이라 표현했다. 육당 최남선과 노산 이은상은 “서석대는 해금강의 한쪽을 산위에 올려 놓은 듯하다.”고 찬탄했다.조선조때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 등 가사문학을 일궈낸 무대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무등산이여! 우리들을 감싸주소서’시인 허연,김준태 등은 5·18민주화운동 이후 ‘무등산’을 노래하며 독재정권의 무자비함을 폭로하기도 했다. 자연의 비경과 ‘전라도 역사’를 간직한 무등산을 뒤로한 채 버스에 몸을 실었다. ●볼거리·먹을거리 무등산에는 송광사의 말사인 증심사와 문빈정사,약사사,원효사,관음암 등 사찰과 암자가 널려 있다.충효동 도요지(분청사기 전시실)와 의재미술관,남종화의 대가 허백련이 생전에 일궜던 녹차밭(삼애다원) 등도 발길을 사로 잡는다. 광주시내 쪽에서 정상을 오른 뒤 무등산장 방면으로 내려오면 가사문화권을 둘러 볼 수 있다.이곳서 광주호와는 5㎞쯤 떨어져 있으며,주변엔 소쇄원,취가정,환벽당,식영정,가사문학관 등이 있다.식영정에는 송강이 무등산 절경을 노래한 성산별곡 시비(詩碑)가 있다. 무등산권은 광주시와 이웃해 숙박시설은 걱정 안해도 된다.등산로 주요 진입로인 증심사 집단시설지구와 산장 주변에는 보리밥집과 산나물 요리집이 즐비하다.증심사 부근의 송풍정(062-227-1859)은 보리밥(5000원),촌닭백숙(3만원),도토리묵(8000원)을 잘한다.산장입구의 무등산가든(062-266-2514),입석대가든(062-266-8055) 등에서도 산채백반·닭도리탕을 즐길 수 있다. ●가는길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을 빠져나온 뒤 동구 산수 오거리서 무등산관광호텔이나 산장 방면으로 가면 된다.이 구간(10㎞)은 시내버스(777,18,28번)가 운행되며,산장∼정상∼증심사 등산 코스를 이용한다.학동 3거리에서 출발하면 이 반대 코스를 타게 된다. 정상까지 가지 않으려면 증심사∼바람재∼늦재∼원효사쪽으로 내려오면 된다.어느 진입로를 택해도 시내버스가 오가며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오전 9시.밤새 조용했던 국립수목원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합니다.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정한 커플 한 쌍이 수목원 첫 방문객이네요.오늘 하루도 예감이 좋습니다. 아,저는 누구냐고요? 2004년 6월의 나무로 뽑힌 ‘함박꽃나무’랍니다.화려하진 않지만 하얀색 수수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죠.선조들은 제 꽃을 ‘천녀화(天女花)’라고 불렀다나요? 수줍음이 많아 꽃을 피울 땐 땅 아래를 본답니다.그런 제가 오늘은 용기 내 수목원 얘기를 들려드릴까하는데,들어 보실래요? 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국내 최고의 숲을 자랑한답니다.이렇게 아름답고도 엄청난 규모의 산림이 지켜진 것은 세조대왕릉 주위 산림으로 500년 동안 엄격히 보호돼 왔기 때문이죠.1987년 광릉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고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됐죠. 역사 얘긴 지루하시다고요? 그럼 지금부터는 저를 따라 수목원 구경해 보세요.원하시는 곳부터 보셔도 되지만 감탄을 아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근사한 이곳의 숲, 여러 식물원 등과 함께 보다 알찬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아차,5일 전 예약은 필수라는 것 아시죠? 수목원에 있는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5000분만 들어오실 수 있거든요. 오전에 도착하시면 숲생태관찰로나 동물원 가는 길로 오세요.수목원 어디든 좋지만 이곳이 키 크고 늘씬늘씬한 몸짱 나무들이 사이좋게 골고루 뿌리내려 살고 있어 삼림욕에 그만인 곳이랍니다.삼림욕은 다 아시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해 생체리듬을 찾는 민간요법이지요.6∼8월 오전 10∼12시가 최적의 시간이랍니다.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오세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면서 걸으셔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두손 꼬옥 잡고 거닐어도 행복합니다.재미있는 일은 없냐고요? 숲해설가 언니,오빠와 동행해 보세요.저희 나무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면 그저 똑같아만 보이던 친구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거든요. ‘앉은부채’라는 친구가 곰의 변비약이라는 얘기,알고 계셨나요? 버드나무가 아스피린의 재료라는 건요? 제가 다 얘기해 드리면 재미없으니까 직접 오셔서 들으세요.정문에서 신청하신 다음 오전에는 10·11시,오후에는 2·3시에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오전에 삼림욕 흠뻑하시고 나면 슬슬 배가 고프시겠죠? 생태관찰로 근처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준비해 오신 도시락을 맛있게 드세요.숲속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맞고 새소리 들으며 즐기는 도시락,생각만 해도 꿀맛이겠죠? 해가 중천에 뜨면 아무래도 덥지요.소화는 시켜야겠고,이럴 땐 산림 박물관에 들러보세요.겉은 화강암으로 돼 있지만 안은 낙엽송과 잣나무로 만들어졌답니다. 테마별로 크게 5개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시청각실에서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어요.바로 옆에 있는 난대식물원에도 들러보세요.안이 좀 덥긴 하지만 커피나무,월계수 등 흔히 볼 수 없는 더운 지방의 나무 친구들이 많거든요. 아름다운 곳에 오셨는데 연인끼리는 ‘나 잡아봐라∼’도 해보셔야 되고 친구끼리는 그럴싸한 혹은 엽기적인 ‘폼’도 잡아보셔야죠.수생식물원으로 가보세요.각시수련,가시연꽃 등 예쁜 친구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답니다.근처에는 팔각정도 있죠.분위기 짱! 사진 찍기에 참 좋아요.바로 옆에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도 있답니다.앞을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곳인데 생강나무에서 정말 생강냄새가 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넓긴 하지만 하루 만에 다 못볼 정도는 아니니까 시간에 쫓기지 마시고 천천히 쉬엄쉬엄 둘러보세요.곳곳에 제 친구들이 만드는 숲그늘은 기본이고 의자도 마련돼 있지요.시원한 마실 물도 준비해 두었고요. 전 어디에 있냐고요? 팔각정 근처 화목원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서 있지요.국립수목원에 오시면 제 얼굴도 보러 와 주실 거죠? 제 전화번호는 (031)540-2000입니다.5일 전에 전화하셔야 되지만 6월부터는 예약인원이 미달됐을 땐 하루 전에도 예약이 가능하니 일단 전화 한번 해보세요.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그밖에 가볼 만한 숲 국립수목원 외에도 전국에는 아름다운 숲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나만 알고 나만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숲들이 있다.연인과 함께 걸으면 달콤한,가족과 지나면 푸근한 숲들을 소개한다. ●안면도 ‘소나무 숲’ 고려시대·조선시대 국가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곳으로 지정됐던 안면도.일제시대 이곳의 수많은 소나무가 베어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하지만 안면도의 소나무는 과거 명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안면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은 양 옆으로 안면송이 서 있다.태안해안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1)672-9737. ●장성군 ‘황룡리 원림’ 지방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곳.100년 수령의 80여 그루 배롱나무가 모여 있고 그 앞으로 황룡강이 흐르고 있다.여름이면 그 풍취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1550년께 당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이 숲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장성군청 농림과 (061)390-7422. ●원주 ‘진밭마을숲’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의 마을 입구 양쪽으로 펼쳐진 숲이다.10m 정도의 물푸레나무들을 비롯,여러가지 참나무류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각종 야생화가 살고 있다.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맞닿아 마치 터널과 같은 느낌을 준다.상지대 산림공학연구실 (033)730-0524. ●제주 ‘돈내코숲’ 한라산 해발13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돈내코 계곡 양쪽의 숲.동백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시 흐른다 해서 ‘물맞이’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서귀포시 환경녹지과 (064)735-3421. ●화순 ‘백암마을숲’ 하천을 따라 길이 300m,폭 36m 규모로 이뤄져 있으며 아름드리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화순군은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화순군청 산림과 (061)374-2657. ■‘빠삐용 늑대’도 보세요 국립수목원 내 동물원이 7년 만에 개방됐다.1991년 문을 연 이곳은 1997년 6월부터 동물 번식기 안정과 숲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백두산 호랑이,반달가슴곰,늑대 등 모두 17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여느 동물원과는 다르다.우리에 갇혀 있지만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관람한다는 매력이 있다. 수목원 동물원은 오랫동안 비공개로 있었던 곳인 만큼 수목원의 그 어떤 곳보다 숲이 잘 보호돼 있다.그래서 오전에 이곳을 찾으면 삼림욕과 동물관찰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최정상에 살고 있는 동물은 역시 백두산 호랑이.1994년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기증한 것이다.하지만 최고의 스타는 늑대다.지난 1월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기던 중 탈출해 ‘빠삐용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귀염둥이 반달가슴곰,하늘의 카리스마 독수리 등 여러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동물원은 오는 11월15일까지만 개방된다.방문도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된다.관람을 원할 경우 입장료는 따로 없고 수목원 입장시 정문에서 신청 하면 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함박꽃나무와 함께하는 숲여행

    오전 9시.밤새 조용했던 국립수목원에 인기척이 들리기 시작합니다.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다정한 커플 한 쌍이 수목원 첫 방문객이네요.오늘 하루도 예감이 좋습니다. 아,저는 누구냐고요? 2004년 6월의 나무로 뽑힌 ‘함박꽃나무’랍니다.화려하진 않지만 하얀색 수수한 꽃을 피우고 은은한 향기를 내뿜죠.선조들은 제 꽃을 ‘천녀화(天女花)’라고 불렀다나요? 수줍음이 많아 꽃을 피울 땐 땅 아래를 본답니다.그런 제가 오늘은 용기 내 수목원 얘기를 들려드릴까하는데,들어 보실래요? 다 아시겠지만 이곳은 국내 최고의 숲을 자랑한답니다.이렇게 아름답고도 엄청난 규모의 산림이 지켜진 것은 세조대왕릉 주위 산림으로 500년 동안 엄격히 보호돼 왔기 때문이죠.1987년 광릉 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인들에게 공개됐고 1999년 국립수목원으로 지정됐죠. 역사 얘긴 지루하시다고요? 그럼 지금부터는 저를 따라 수목원 구경해 보세요.원하시는 곳부터 보셔도 되지만 감탄을 아끼지 않아도 좋을 만큼 근사한 이곳의 숲, 여러 식물원 등과 함께 보다 알찬 시간을 보내실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아차,5일 전 예약은 필수라는 것 아시죠? 수목원에 있는 저를 포함한 제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에 5000분만 들어오실 수 있거든요. 오전에 도착하시면 숲생태관찰로나 동물원 가는 길로 오세요.수목원 어디든 좋지만 이곳이 키 크고 늘씬늘씬한 몸짱 나무들이 사이좋게 골고루 뿌리내려 살고 있어 삼림욕에 그만인 곳이랍니다.삼림욕은 다 아시죠?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를 통해 생체리듬을 찾는 민간요법이지요.6∼8월 오전 10∼12시가 최적의 시간이랍니다.땀 흡수가 잘되는 간편한 복장을 입고 오세요.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시면서 걸으셔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과 두손 꼬옥 잡고 거닐어도 행복합니다.재미있는 일은 없냐고요? 숲해설가 언니,오빠와 동행해 보세요.저희 나무에 대해 하나하나 알게 되면 그저 똑같아만 보이던 친구들이 의미있게 다가오거든요. ‘앉은부채’라는 친구가 곰의 변비약이라는 얘기,알고 계셨나요? 버드나무가 아스피린의 재료라는 건요? 제가 다 얘기해 드리면 재미없으니까 직접 오셔서 들으세요.정문에서 신청하신 다음 오전에는 10·11시,오후에는 2·3시에 입구에서 기다리시면 돼요. 오전에 삼림욕 흠뻑하시고 나면 슬슬 배가 고프시겠죠? 생태관찰로 근처에 마련된 휴게소에서 준비해 오신 도시락을 맛있게 드세요.숲속에서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맞고 새소리 들으며 즐기는 도시락,생각만 해도 꿀맛이겠죠? 해가 중천에 뜨면 아무래도 덥지요.소화는 시켜야겠고,이럴 땐 산림 박물관에 들러보세요.겉은 화강암으로 돼 있지만 안은 낙엽송과 잣나무로 만들어졌답니다. 테마별로 크게 5개 전시실이 마련돼 있고 시청각실에서 영상물도 관람할 수 있어요.바로 옆에 있는 난대식물원에도 들러보세요.안이 좀 덥긴 하지만 커피나무,월계수 등 흔히 볼 수 없는 더운 지방의 나무 친구들이 많거든요. 아름다운 곳에 오셨는데 연인끼리는 ‘나 잡아봐라∼’도 해보셔야 되고 친구끼리는 그럴싸한 혹은 엽기적인 ‘폼’도 잡아보셔야죠.수생식물원으로 가보세요.각시수련,가시연꽃 등 예쁜 친구들이 물에 둥둥 떠 있답니다.근처에는 팔각정도 있죠.분위기 짱! 사진 찍기에 참 좋아요.바로 옆에는 손으로 보는 식물원도 있답니다.앞을 못 보시는 분들을 위해 마련한 곳인데 생강나무에서 정말 생강냄새가 나는지 직접 확인해 보세요. 넓긴 하지만 하루 만에 다 못볼 정도는 아니니까 시간에 쫓기지 마시고 천천히 쉬엄쉬엄 둘러보세요.곳곳에 제 친구들이 만드는 숲그늘은 기본이고 의자도 마련돼 있지요.시원한 마실 물도 준비해 두었고요. 전 어디에 있냐고요? 팔각정 근처 화목원에 꽃을 활짝 피운 채 서 있지요.국립수목원에 오시면 제 얼굴도 보러 와 주실 거죠? 제 전화번호는 (031)540-2000입니다.5일 전에 전화하셔야 되지만 6월부터는 예약인원이 미달됐을 땐 하루 전에도 예약이 가능하니 일단 전화 한번 해보세요. 글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그밖에 가볼 만한 숲 국립수목원 외에도 전국에는 아름다운 숲들이 많다.그 중에서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나만 알고 나만 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숲들이 있다.연인과 함께 걸으면 달콤한,가족과 지나면 푸근한 숲들을 소개한다. ●안면도 ‘소나무 숲’ 고려시대·조선시대 국가에서 목재를 조달하는 곳으로 지정됐던 안면도.일제시대 이곳의 수많은 소나무가 베어지는 등 수난을 겪었다.하지만 안면도의 소나무는 과거 명성을 완전히 잃지 않았다.안면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길은 양 옆으로 안면송이 서 있다.태안해안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1)672-9737. ●장성군 ‘황룡리 원림’ 지방문화재 제70호로 지정된 곳.100년 수령의 80여 그루 배롱나무가 모여 있고 그 앞으로 황룡강이 흐르고 있다.여름이면 그 풍취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1550년께 당대 내로라하는 명사들이 이 숲에서 시를 읊었다고 한다.장성군청 농림과 (061)390-7422. ●원주 ‘진밭마을숲’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취병리의 마을 입구 양쪽으로 펼쳐진 숲이다.10m 정도의 물푸레나무들을 비롯,여러가지 참나무류 등의 활엽수와 소나무,각종 야생화가 살고 있다.아름드리 나무들이 서로 맞닿아 마치 터널과 같은 느낌을 준다.상지대 산림공학연구실 (033)730-0524. ●제주 ‘돈내코숲’ 한라산 해발1300m 이상에서 시작되는 돈내코 계곡 양쪽의 숲.동백나무,종가시나무,붉가시나무 등 상록활엽수림을 포함한 1800여종의 난대식물들이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432호인 한란 자생지이다.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항시 흐른다 해서 ‘물맞이’ 장소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다.서귀포시 환경녹지과 (064)735-3421. ●화순 ‘백암마을숲’ 하천을 따라 길이 300m,폭 36m 규모로 이뤄져 있으며 아름드리 푸조나무,느티나무,팽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화순군은 이곳을 보호하기 위해 산림유전자보호림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화순군청 산림과 (061)374-2657. ■‘빠삐용 늑대’도 보세요 국립수목원 내 동물원이 7년 만에 개방됐다.1991년 문을 연 이곳은 1997년 6월부터 동물 번식기 안정과 숲 보호를 위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백두산 호랑이,반달가슴곰,늑대 등 모두 17종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여느 동물원과는 다르다.우리에 갇혀 있지만 숲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하나하나 관람한다는 매력이 있다. 수목원 동물원은 오랫동안 비공개로 있었던 곳인 만큼 수목원의 그 어떤 곳보다 숲이 잘 보호돼 있다.그래서 오전에 이곳을 찾으면 삼림욕과 동물관찰학습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최정상에 살고 있는 동물은 역시 백두산 호랑이.1994년 중국 장쩌민 전 주석이 기증한 것이다.하지만 최고의 스타는 늑대다.지난 1월 서울대공원에서 이곳으로 옮기던 중 탈출해 ‘빠삐용 늑대’라는 별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귀염둥이 반달가슴곰,하늘의 카리스마 독수리 등 여러 야생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이 동물원은 오는 11월15일까지만 개방된다.방문도 오전 10시30분과 오후 2시30분 하루 두 차례로 제한된다.관람을 원할 경우 입장료는 따로 없고 수목원 입장시 정문에서 신청 하면 된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불량만두’ 후폭풍] 도산한 진영식품 문평식회장

    “화순의 만두업체 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솔직히 제가 갈 길을 그이가 먼저 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7일 이미 폐쇄된 경기도 파주시의 만두공장에서 만난 ㈜진영식품 문평식(59) 회장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초조한 듯 연신 담배를 피워댔다.문 회장은 파주공장에서 자신이 만든 만두제품의 소각 작업을 지휘하고 있었다.미국과 유럽에 수출한 48억원어치의 만두제품도 모두 반품처리됐다.그는 현재 도산한 상태다. 문 회장은 “지난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업체 명단을 공개한 뒤 주위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어 집에도 며칠째 들어가지 못했다.”면서 ‘만두 제조 인생’이 어떻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는지를 털어놨다. 문 회장은 “문제가 된 으뜸식품의 단무지는 만두소 재료의 3%에 불과하며 가공과정에서 잘게 부순 절임무를 모두 기름에 볶아 기준치인 세균 10만마리보다 훨씬 적은 100마리 수준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그는 “1999년 으뜸식품과 계약하기 전 직접 공장을 방문하고 제조공정을 확인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당시 으뜸식품의 탈염·세척 과정은 깨끗했다.”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이어 “정부가 허가한 업체로부터 포장된 가공 절임무를 공급받아 만두를 만들었지만 사전에 식약청과 파주시청 누구도 문제가 있다고 통보해준 적이 없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문 회장은 지난 3월 은행 대출금 78억원 등 모두 100억원을 투자해 파주시에 대형 만두공장을 차렸다.자동시스템과 첨단 위생시설을 갖춘 공정에만 46억원을 들였다.세계적으로 까다로운 식품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의 인증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제조과정에서 세균을 죽이는 최신형 증숙기를 사들였고,전 공정을 자동화로 구축해 사람 손이 갈 틈이 없는 시스템”이라면서 “맛난 만두를 만들기 위해 일반두부보다 ㎏당 64원이 비싼 고급두부를 만두소에 넣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외부에서 공급받은 가공물 하나 때문에 공장을 닫고 삶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문 회장은 “문제가 된 서울공장이 아닌 파주공장만이라도 살리고 싶었지만 소용이 없었다.”면서 “한국식품연구원에서 매달 적합여부를 검사했지만 그동안 한번도 지적받은 적이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978년 식품사업에 뛰어든 그는 “재료에 문제가 있는지를 몰랐던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주면 달게 받겠다.”면서도 “돈에 눈먼 파렴치한이 결코 아닌데도,그렇게 몰고 가는 세상의 마녀사냥에는 더 이상 견딜 힘이 없다.”며 끝내 눈물을 뚝뚝 흘렸다. 파주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말 여류시인 송설당을 아십니까

    “…그 당시 나는 암벽에 뿌리박고 있던 소나무였다.혼자 떠돌아다니며 한양에 살 때는 겨울철 고개 위에 외롭게 살아가는 소나무였다.시원스레 선조들의 한을 풀고 따뜻한 봄날을 되찾으니 그때 나는 임금님의 은혜를 흠뻑 받은 늙고 큰 소나무였다.” 홍경래의 난에 멸문지화를 당한 화순 최씨 사대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한평생 가문의 명예회복을 위해 살다간 최송설당(崔松雪堂,1855∼1939).1894년 고향 김천에서 상경한 송설당은 고종의 계비인 엄비와 가까워지고,때마침 엄비가 황태자 이은(훗날의 영친왕)을 낳자 입궐해 그의 보모가 됐으며,이를 발판으로 몰적(沒籍) 89년만에 마침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송설당은 68세에 이르러 한시와 국문가사,제문 등 일생 동안 쓴 작품들을 모아 한 권의 개인 문집을 내니 그게 바로 ‘최송설당문집’이다. 한성대 한국어문학부 정후수·신경숙 교수와 같은 대학 김종순 강사가 펴낸 ‘송설당의 시와 가사’(도서출판 어진소리)는 이 ‘최송설당문집’을 완역한 것이다.최근들어 국문학계를 중심으로 송설당에 대한 연구가 이뤄져 왔지만 송설당 전작이 현대어로 번역돼 나오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선조의 마지막 궁중 여류시인’ 송설당은 개화기에 신학문을 배웠거나 기독교의 세례를 받은 신여성들과는 차이가 있다.그렇다고 유교적 이념의 틀 속에만 갇혀 있던 인물도 아니다.여성의 몸으로 가문의 신원설치(伸寃雪恥)를 위해 보여준 용기있는 행동은 당대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송설당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24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에서는 송설당 65주기에 즈음해 그를 조명하는 학술대회도 열린다.1만5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불량만두’업체 사장 한강투신

    이른바 ‘쓰레기만두’사건이 터진 뒤 경영난과 주변의 비난에 시달려오던 만두제조회사 사장이 한강에 투신했다. 13일 오후 8시 50분쯤 서울 반포대교 남단에서 북단방향 22번째와 23번째 교각사이에서 만두제조업체인 비젼푸드 신영문(35) 사장이 강으로 뛰어내려 실종됐다. 경찰은 투신 직후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이날 자정까지 시신을 인양하지 못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목격자 이모(35·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씨는 “아내와 함께 운전을 하고 가는데 다리 위를 걸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난간에 올라가 강으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비젼푸드는 전남 화순에 있는 만두제조업체로 지난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쓰레기만두’사건과 관련된 업체의 실명을 공개할 때 포함됐었다.특히 지난해부터 지난 2월까지 불량무말랭이를 만두 소로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 5개 제품에 대해서는 회수 및 폐기명령을 받았고 이로 인해 자금압박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신 사장은 A4용지 3장 분량의 유서를 통해 “국민들에게 죄송하다.하지만,저희 만두는 이상이 없다.언론에 보도가 나간 뒤 돈달라는 채권자들에게 시달려 괴로웠다.이렇게라도 책임을 지겠다.여러분들이 저희 업계를 이용해줘야 저희가 두번 죽지 않는다.그것이 식품경제와 서민경제가 사는 길.”이라고 밝혔다. 함께 발견된 A4용지 1장에는 금융권과 거래업체 10여곳의 명단과 차입금내역이 표로 기록돼 있었으며,차입금은 모두 13억원대인 것으로 드러났다.신 사장은 앞서 이날 낮 12시30분쯤 전남 나주에 사는 부모님께 들러 인사를 한 뒤 광주 학동 집에서 자녀들에게 1만원씩을 나눠주고 화순에 사는 큰형(43)을 만나러 간다며 집을 나갔다. 이후 그는 화순에 가는 대신 서울로 올라 가서 저녁 7시47분쯤 만두 파동과 관련해 비젼푸드를 취재했던 모 방송국 PD에게 전화를 걸어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다가 갑자기 전화를 끊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 PD가 신 사장의 형에게 연락했고,신 사장의 형은 경찰에 신고해 휴대전화위치 추적작업을 벌인 끝에 서울 잠원동에 있는 것으로 확인은 했지만 자살을 막지는 못했다. 신 사장은 앞서 지난 10일 오후에는 시사프로그램 ‘MBC 100분토론’에 직접 전화를 걸어 “4년째 만두 소를 만들어왔는데 공인된 국가의뢰기관에 자가품질 적합판정을 받고 만두 소를 대기업에 납품해왔다.”면서 “국민들이 수년간 쓰레기 만두를 계속 먹어온 이유는 정부가 여태까지 처단하지 않다가 방송과 매스컴에서 떠드니까 이제야 단속에 나섰기 때문이다.”라고 강력하게 항의했었다. 유족은 부인과 2남 1녀가 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 [6·5 재보선 결과-단체장 인터뷰·프로필] 이영남 전남화순 군수

    ‘부부 국회의원’에 이어 사실상 ‘부부 군수’가 탄생했다.선거법 위반으로 군수직을 잃은 남편의 뒤를 1년여 만에 그 부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예상을 깨고 94표차로 신승한 전남 화순군수 이영남(李泳湳 47·여) 당선자는 “오늘은 위대한 군민의 승리의 날이자 화순 발전을 갈망하는 희망의 날이며,여성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날”이라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지난해 4월 회계책임자를 통해 유권자에게 1000만원을 준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임호경 전 화순군수의 부인이다.이번 선거에서도 “남편의 한을 풀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던 이 당선자는 “화순 군민이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켜줘서 무엇보다 기쁘고 ‘여자라서 안 된다.’는 선입견을 극복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라고 활짝 웃었다. ‘이번 출마가 남편의 대리전으로 수렴첨정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남편의 명예회복을 위해 남은 임기 2년 동안 군정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때로 남편의 조언을 듣기도 하겠지만 결정은 어디까지나 제가 하겠습니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이 당선자는 이번에 남편의 탄탄한 조직에다 여성단체의 지원으로 7512표(23.7%)를 얻어 민주당 후보(7418표)를 간발의 차로 눌렀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45)김시습과 일본의 차문화(下)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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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실록의 일본 승려 준초 등에 관한 기록은 1464년 2월 17일의 일이다.여기서 ‘전년(前年)’이라면 1463년이 된다. 그렇다면 일본 기록에서 1463년 7월 14일 준초 등이 조선을 방문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만약 이 두 기록의 내용이 동일한 사건을 적은 것이라면 문제는 보다 쉽게 풀려질 수 있다.즉 일본 사신 준초 등 승려 일행은 1463년 7월 14일에 조선의 세조임금과 대신들을 만났다.며칠 뒤 이들은 세조 임금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영등포 나루에서 배를 기다렸는데,마침 계절이 여름인데다 태풍이 불어서 출국이 늦어지게 되었다. ●태풍 때문에 못 떠나게 된 日승려들 이 무렵 일본 외교 사신들이 조선으로 올 때 타는 배는 돛배였다.돛배는 폭풍우나 태풍에는 매우 위험하여 항해가 불가능하다.또한 일본에서 조선으로 오는 뱃길인 현해탄은 평소에도 파도가 거칠기 때문에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항해는 위험했다.돛배에는 비바람이나 추위를 제대로 막아줄 수 있는 별도의 시설이 없어서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부터 늦은 봄 사이에 현해탄을 건너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런 객관적 사정을 참고해 보면 1463년 여름이 끝나기 전 어느날 일본 사신들은 귀국길에 나섰지만 태풍으로 잠시 머물렀다.그런데 날씨가 계속 좋지 않아 하루 이틀 기다리다 보니 어느새 가을철로 접어 들었고,바다는 이미 차가운 바람이 불어서 항해는 매우 위험했다.그럴 경우 대개는 다음해 늦은 봄까지 조선에 머무는 게 통상적인 일이었다.그렇게 겨울을 조선에서 보낸 그들에게 세조 임금이 위로의 인사를 보낸 것이 1464년 2월 17일이었다.그동안 그들은 어디서 머물렀을까? ●일본사람 많던 웅천왜관서 머물러 일본은 조선의 세 항구에다 왜관(倭館)을 열었다.부산,웅천,울산 등 이른바 삼포(三浦)였다.당시 일본의 외교관 대부분은 승려들이었다.승려들이 무사들을 제치고 외교관으로 선발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문자를 아는 계층들이었기 때문이다.삼포에 왜관이 설치된 1423년 무렵부터 삼포왜관으로 인해 왜관 문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던 1560년까지 약 137년 동안 일본 승려들이 외교관 신분으로 조선을 방문한 횟수는 140여 차례에 달한다.그들은 10여 명일 때도 있었지만 많을 때는 40여 명이 넘기도 했다. 137년 동안 조선을 방문한 승려들은 약 2500여 명이었는데,그들 대부분은 주로 웅천왜관을 이용하여 드나들거나 머물렀다.웅천에는 여러 대를 이어서 사는 일본인들도 있었고,조선 여자와 결혼하거나 조선에서 무역상을 하거나,돈놀이를 하기도 하고,조선 사기장들을 고용하여 조선 흙으로 그릇을 구워 일본으로 실어가는 자도 많았다.조선말과 풍속에 능통하여 조선옷을 입고 상투를 틀고는 조선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선의 비밀스러운 것들을 염탐하여 일본에 알려주거나 조선의 우수한 문물을 배워 일본에 전파하는 자들이 매우 많았다.준초 일행이 1463년 가을부터 1464년 늦봄까지 머문 것도 웅천이었다.웅천에는 조선말에 능통한 일본인이 많아서 일본 외교관이나 무역상들은 조선말 잘하는 일본인을 데리고 다니면서 활발하게 행동했다. ●1460년대 일본엔 사치스러운 차문화 유행 1460년 무렵의 일본사회는 사치와 호화스러운 차문화가 커다란 병폐로 자라나 일본을 위기로 몰아 넣고 있었다.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된 중국 송나라의 차문화인 서원차(書院茶)가 무분별하게 유행하면서 일본 사회의 지도자들과 상업자본가들은 거대한 차실을 금으로 칠해 놓고 일년 내내 호화스러운 차회(茶會)로 시간과 재산을 탕진했다. 금각사라는 건물이 그 당시에 지어진 대표적인 것이다.무로마치 시대는 더욱 더 사치에 몰입했다.사치와 부패는 무사들을 타락시켰고,협잡과 음모로 일본사회는 극도의 분열에 시달렸다.차문화에서 시작된 깊은 병폐를 고치기 위해서는 새로운 차문화가 필요했다. 여전히 일본 사회에서 글자를 아는 유식한 계층인 승려들은 위기에 빠진 일본을 건져내기 위해 규모가 웅장하고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서원차를 대신할 수 있는 차문화를 만들기 위해 고심했다.더 이상 중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었다.그리하여 관심을 돌린 것이 조선이었다.그 때 조선을 비교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승려들뿐이었다. ●머리 잘린 삼륜대불상에 할 말 잃고… 일본의 불교 지도자들은 조선에 파견되는 승려들에게 비밀 지령을 내렸다.조선의 자연 경관,취락 구조,지식인들의 생활 문화,불교 수행자들의 생활과 철학,특히 서민들이 사는 모습을 눈여겨 보거나 그림으로 그려 올 것을 지시했다.이같은 정세 아래서 조선으로 파견된 준초 등에 대한 일본 기록은 매우 구체적이다. 필자는 삼층석탑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야 하는 삼륜대불상(三輪臺佛像)으로 자리를 옮겼다.이 불상은 원형3층탑 위에 불상을 모신 것이다.삼국유사에서는 이 불상을 미륵불이라 했는데,이것과 비슷한 형식과 구성을 보이는 것이 화순 운주사에도 있다. 정오 가까운 시간이 되자 맞은편 계곡에서 종 치는 소리와 함께 목탁 소리도 들린다.어느 절에선가 사시예불을 올리는 모양이다.원형 3층탑 위의 불상은 목 부분이 잘린 채 머리가 없이 몸체 부분만 남아서 세상을 향하고 있다.조선시대 유생들의 불교 탄압의 가혹한 증거로 보인다.경주 남산 곳곳에는 유생들에 의하여 목이 잘리거나 얼굴에 금이 가고 전신이 파괴괸 불상들이 널려 있다가,경주 박물관 뜨락이나 전시실로 옮겨져 유생들의 종교탄압이 얼마나 잔혹했던지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기도 하다. ●日 승려들 겨울 나는 동안 김시습 찾았을 것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 앞에서 김시습과 일본 차문화의 관계를 재구성해 보기 위하여 다시 생각에 잠겼다.일본 기록에는 일본 국왕사인 승려 준초,범고 등이 조선에 파견되었는데,그들은 천룡선사(天龍禪寺) 승려들로서 수륙대재(水陸大齋)를 열어 죽은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데 필요한 의식 절차를 묻고,천룡선사 법당을 짓는데 드는 건축 자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되어 있다.그들은 방문 목적을 다 이룬 뒤 태풍에 막혀 조선에서 겨울을 나는 동안 조선 여러 곳을 여행했으며,이듬해 봄에는 당시 조선사회에서 가장 무성한 소문을 낳고 있는 김시습이란 인물을 만나 보기 위해 통역을 데리고 용장사를 찾아왔던 모양이다. 김시습은 산중까지 그를 찾아온 일본 승려들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특유의 질문과 해학으로 마치 오랜 친구 사이처럼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일본 승려들은 이 날의 만남을 계기로 그 후 여러 차례 용장사를 방문하게 되었던 듯하다. 김시습이 쓴 소설 ‘금오신화’ 목판본이 1653년 일본에서 처음 간행되었는데,이것을 다시 간행한 것이 우리나라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을 뿐임을 보면,그의 소설 원본이 일본 승려들에 의하여 일본으로 흘러나간 것으로 보여진다. ●소박한 초암차는 오늘날 일본의 초석 일본 승려들은 김시습의 차생활과 집의 구조,경주 남산의 자연풍광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일본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방바닥을 파 내고 묻는 화로는 김시습의 방 안에 있던 그 지로(地爐)와 흡사하다. 서원차 문화를 혁파하기 위해 고안해 낸 초암차(草庵茶)는 조선 농민들이 사는 작고 소박한 초가집을 모체로 한 것인데,초암차 문화의 핵심 내용들과 김시습의 차시(茶詩)들은 매우 닮았다.소박함,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으려는 초암차의 특징은 서원차가 지닌 병폐를 말끔하게 치유시켜 오늘날 저 일본의 초석이 되어 왔다. 기이한 인물로만 아는 김시습의 천재성과 열린 정신에서 일본의 위기를 극복하는 구체적 대안을 발견해 간 일본 승려들의 지혜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또 한 번의 충격이다.돌아서는 내 눈에 다시 목이 잘려나간 불상이 들어온다.우리는 기껏 불상의 목이나 잘랐을 뿐인가….˝
  • [부고]

    ●朴玉閏(조선대 명예교수)씨 상배 桓永(광주은행 화순지점장)晉永(광주 박치과 원장)씨 모친상 丁薰(서울시립 한남직업전문학교장)高正雲(군산 고피부과 원장)安秉烘(여수 안소아과 원장)申誠植(전남대 수의대 교수)씨 빙모상 19일 오후 8시30분 광주 조선대병원,발인 22일 오전 10시 (062)231-8903 ●徐英明(전 KBS LA특파원)씨 별세 寅竣(대한항공 한국지역 서비스센터 직원)秀卿(AP통신 서울지국 TV NEWS 프로듀서)씨 부친상 金孝相(자영업)千榮峻(엑센츄어 서울오피스 과장)씨 빙부상 20일 오전 2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5시 (02)760-2018 ●延重熙(청주시 흥덕구청장)德熙(청주동부경찰서 공항파출소장)씨 부친상 20일 오전 2시30분 충북 청주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43)223-4522 ●張鎬相(자영업)翼相(연합뉴스 스포츠레저부장)德相(자영업)俊相(〃)씨 부친상 朴尙圭(애니텍스상사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30분 대전 을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11-9821-5677 ●郭性勳(전 LG증권 감사실장)性竹(구로구약사회 감사)性仲(강동한국학원장)喜周(비금농협 감사)씨 부친상 丁海善(수원시 가톨릭약국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1시 (02)3010-2294 ●李炳星(유창케미컬 대표)炳勳(조선일보 사진부 기자)炳舜(경기대 사회교육원 주임교수)씨 모친상 秦元錫(전 서라벌고 교사)全演旭(전 정원물산 대표)金東顯(항공데이타시스템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전 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5 ●金英在(진환운수 부장)씨 모친상 19일 오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9 ●金完洙(전주 북부경찰서 경무과 공보담당)씨 부친상 20일 낮 12시 전북 부안장례식장,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81-8008 ●任興宰(정읍치과 원장)康宰(자영업)貴燁(안양시 제일방사선과 원장)씨 부친상 金吉洙(서울 길성의원 원장)朴鍾仁(자영업)姜大錫(서울고검 검사)金鍾淳(수성엔지니어링 이사)씨 빙부상 20일 오전 10시15분 전북 정읍시 수성동 자택,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35-3047 ●鄭相胤(명신비료 차장)相道(국제신문 생활과학부 차장)씨 조모상 20일 오전 5시 울산 중구 복산동 인산병원,발인 22일 오전 6시 (052)290-6411 ●吳奉錫(전남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씨 부친상 張治琬(서울 한산중 교감)씨 빙부상 20일 오후 4시 광주 전남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30분 (062)220-6983 ●권동영(김&장 법률사무소 공인회계사)인열(한국신용평가 연구원)씨 부친상 20일 0시5분 경북 안동시 북문동 안동의료원,발인 22일 오전 대전국립묘지 (054)851-5441 ●서재경(대한항공 수석사무장)태경(MBC 스포츠영상부 부장)씨 부친상 한중수(㈜래지스가드 상무)박종덕(SBS 미술부장)씨 빙부상 20일 오후 8시1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02)760-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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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朴玉閏(조선대 명예교수)씨 상배 桓永(광주은행 화순지점장)晉永(광주 박치과 원장)씨 모친상 丁薰(서울시립 한남직업전문학교장)高正雲(군산 고피부과 원장)安秉烘(여수 안소아과 원장)申誠植(전남대 수의대 교수)씨 빙모상 19일 오후 8시30분 광주 조선대병원,발인 22일 오전 10시 (062)231-8903 ●徐英明(전 KBS LA특파원)씨 별세 寅竣(대한항공 한국지역 서비스센터 직원)秀卿(AP통신 서울지국 TV NEWS 프로듀서)씨 부친상 金孝相(자영업)千榮峻(엑센츄어 서울오피스 과장)씨 빙부상 20일 오전 2시4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5시 (02)760-2018 ●延重熙(청주시 흥덕구청장)德熙(청주동부경찰서 공항파출소장)씨 부친상 20일 오전 2시30분 충북 청주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43)223-4522 ●張鎬相(자영업)翼相(연합뉴스 스포츠레저부장)德相(자영업)俊相(〃)씨 부친상 朴尙圭(애니텍스상사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30분 대전 을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 011-9821-5677 ●郭性勳(전 LG증권 감사실장)性竹(구로구약사회 감사)性仲(강동한국학원장)喜周(비금농협 감사)씨 부친상 丁海善(수원시 가톨릭약국 대표)씨 빙부상 20일 오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1시 (02)3010-2294 ●李炳星(유창케미컬 대표)炳勳(조선일보 사진부 기자)炳舜(경기대 사회교육원 주임교수)씨 모친상 秦元錫(전 서라벌고 교사)全演旭(전 정원물산 대표)金東顯(항공데이타시스템 대표)씨 빙모상 20일 오전 1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2일 오전 7시30분 (02)3010-2235 ●金英在(진환운수 부장)씨 모친상 19일 오후 7시 서울아산병원,발인 21일 오전 8시30분 (02)3010-2269 ●金完洙(전주 북부경찰서 경무과 공보담당)씨 부친상 20일 낮 12시 전북 부안장례식장,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81-8008 ●任興宰(정읍치과 원장)康宰(자영업)貴燁(안양시 제일방사선과 원장)씨 부친상 金吉洙(서울 길성의원 원장)朴鍾仁(자영업)姜大錫(서울고검 검사)金鍾淳(수성엔지니어링 이사)씨 빙부상 20일 오전 10시15분 전북 정읍시 수성동 자택,발인 22일 오전 10시 (063)535-3047 ●鄭相胤(명신비료 차장)相道(국제신문 생활과학부 차장)씨 조모상 20일 오전 5시 울산 중구 복산동 인산병원,발인 22일 오전 6시 (052)290-6411 ●吳奉錫(전남대병원 흉부외과 교수)씨 부친상 張治琬(서울 한산중 교감)씨 빙부상 20일 오후 4시 광주 전남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30분 (062)220-6983 ●권동영(김&장 법률사무소 공인회계사)인열(한국신용평가 연구원)씨 부친상 20일 0시5분 경북 안동시 북문동 안동의료원,발인 22일 오전 대전국립묘지 (054)851-5441 ●서재경(대한항공 수석사무장)태경(MBC 스포츠영상부 부장)씨 부친상 한중수(㈜래지스가드 상무)박종덕(SBS 미술부장)씨 빙부상 20일 오후 8시15분 서울대병원,발인 22일 오전 9시(02)760-2020
  • 스승의 날 6920명 훈·포장

    교육인적자원부는 제23회 스승의 날을 맞아 교원 6920명에게 훈·포장,표창을 시상하기로 했다고 13일 밝혔다. 홍조근정훈장은 경북 대송중 김철근 교사 등 4명에게,녹조근정훈장은 부산 디자인고 백낙효 교사 등 9명에게,옥조근정훈장은 경기 성남 혜은학교 이명희 교감 등 10명에게수여했다.명단은 교육부 홈페이지(www.moe.go.kr)에서 볼 수 있다. ■ 스승의날 기념 정부 포상 수상자 명단 ●홍조근정훈장 洪慶姬(대구동도초등학교 교감) 李修一(교육인적자원부 장학관) 金澈槿(대송중학교 교사) 尹泳東(광주동운초등학교 교사) 成基泰(충주대학교 총장) ●녹조근정훈장 張炳德(경상남도교육청 장학사) 孫成龍(서울북성초등학교 교장) 夫榮三(삼양초등학교 교장) 許萬鳳(강원도교육청 장학관) 李善圭(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 南相容(경기도교육청 장학관) 千碩九(일로초등학교 교장) 白樂孝(부산디자인고등학 교사) 朴熙宋(서울과학고등학교 교감) ●옥조근정훈장 李泰成(대전성룡초등학교 교장) 朴佶根(토현초등학교 교사) 崔桂浩(경북과학대학 학장) 林星萬(한강중학교 교장) 嚴敬澤(양당초등학교 교장) 金學振(벌말초등학교 교장) 李明燮(이수초등학교 교장) 曺圭鎬(인천과학고등학교교장) 金奎領(배영고등학교 교장) 李明姬(성남혜은학교 교감) ●근정포장 宋沖彬(배재대학교 교수) 洪錫熙(양지중학교 교장) 姜香玉(서울반원초등학교 교사) 李乃秀(성동여자실업고등학 교감) 成武雄(용호중학교 교사) 李錫採(심인고등학교 교감) 張昌植(인천함박초등학교 교사) 李希圭(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 교사) 李寬默(대전광역시교육청 장학관) 李基俊(경기도교육청 장학관) 黃永勝(강원중학교 교장) 申康秀(제천여자고등학교 교장) 權五哲(충청남도교육청 장학관) 林材燮(전라북도교육청 장학관) 朴文載(전라남도교육청 장학관) 申閏鎬(포항제철서초등학교 교감) 朴聖信(칠원초등학교 교사) 梁日錫(서울대학교 교수) 羅東進(서울보건대학 교수) 金其昌(서울맹학교 교장) 李正宰(광주교육대학교 교수) ●대통령표창 金仁孝(서울노원초등학교 교감) 趙榮玉(서울영도초등학교 교감) 李貞賢(서울신성초등학교 교사) 鄭昌坤(삼육재활학교 교장) 崔明淑(서울여자중학교 교감) 李炯재(광남고등학교 교장) 催蘭珠(양재고등학교 교장) 李政宰(성남고등학교 교감) 朱永基(한산중학교 교장) 延龍熙(대원중학교 교감) 金福炫(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관) 奇淸(서울특별시강남교육청 장학관) 崔京植(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관) 朴淳晩(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관) 辛今善(연산유치원 원장) 裵祥泰(대광공업고등학교 교장) 成愛慶(석포초등학교 교사) 文利導(동래중학교 교장) 李京連(덕두초등학교 교사) 金鉉姬(광무여자중학교 교사) 金二均(대구광역시교육청 장학관) 朴有鉉(계성고등학교 교감) 金甲祥(운암고등학교 교사) 黃晩性(대구태현초등학교 교사) 鄭胤錫(인천광역시교육청 장학관) 申聖澈(인천남부초등학교 교장) 金蘭英(인천광역시교육연수원 장학사) 李廣熙(인천여자상업고등학교 교감) 蔡豪成(인천부평서초등학교 교사) 沈惠玉(삼각초등학교 교감) 朱圭琫(광주정보고등학교 교감) 孫成鎬(광주진흥고등학교 교사) 柳濟順(대전백운초등학교 교사) 尹炳泰(대전신일여자고등학교 교사) 劉載豊(대전둔원중학교 교감) 劉盛在(옥서초등학교 교감) 朴洪炅(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 姜大甲(성신고등학교 교감) 金賢玉(수일중학교 교장) 朴鍾華(경기도교육정보연구원 교육연구관) 朴東根(진안중학교 교장) 李圭喆(의정부교육청 가능초등학교교감) 張光洙(경기도교육청 장학관) 孫奉柱(광명남초등학교 교장) 金閏會(경기도과학교육원 교육연구관) 成薰(양주덕산초등학교 교장) 車泰男(포천중학교 교장) 李純子(덕동초등학교 교장) 金容兌(경기도교육청 장학사) 金貞泰(정발초등학교 교장) 元大植(백학중학교 교감) 鄭伯來(금주초등학교 교장) 李鎔美(서해중학교 교사) 金載弘(교동초등학교 교장) 權五山(학성중학교 교장) 李永振(화천고등학교 교감) 尹永植(대강초등학교 교장) 閔永根(충북여자중학교 교장) 姜鎬天(충청북도교육청 교육연구사) 徐昌東(안면초등학교 교장) 任好彬(비남초등학교 교감) 池喜淳(장기중학교 교장) 金太鎭(천안여자고등학교 교감) 姜允信(전라북도 학생해양수련원 교육연구관) 裵錫基(남원도통초등학교 교사) 朴尙圭(부안농공고등학교 교사) 李容禮(호반유치원 원장) 張炳柱(전라남도나주교육청 교육장) 崔松珍(대덕종합고등학교 교장) 李聖敎(화순초등학교 교사) 朴仁淑(전라남도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柳南圭(전라남도교육청 장학관) 申貞淑(남산초등학교삼성분교장 교사) 金元燮(석보중학교 교사) 都成煥(고경초등학교 교사) 裵乙洙(금호공업고등학교 교감) 李鍾九(장곡초등학교 교사) 安守南(상주초등학교 교사) 鄭鍾勝(경상남도교육청 장학사) 金在實(경상남도교육청 장학사) 李熺求(진주중학교 교감) 金賢淑(노산초등학교 교사) 姜大振(마산용마고등학교 교장) 文榮子(애월초등학교 교사) 尹斗昊(남녕고등학교 교장) 韓仁雄(삼척대학교 교수) 金幸吉(여수대학교 교수) 姜鎬宗(진주산업대학교 교수) 李弘柱(한경대학교교수) 李哲榮(한국해양대학교 교수) 李時雄(한밭대학교 교수) 金敬宰(한신대학교 교수) 金溶鎭(한양대학교 교수) 金一文(선린대학 부학장) 沈東福(익산대학 교수) 朴三緖(교육인적자원부 장학관) 梁亨烈(러시아 하바로프스크한국교육원 원장) 李鍾雄(대구교육대학교 교수) ●국무총리표창 金惠淑(샛터유치원 원장) 林胎分(서울서래초등학교병설유치원 원감) 朴姬暻(서울잠일초등학교 교장) 黃敎甲(서울자양초등학교 교감) 金萬龍(서울문교초등학교 교감) 金觀洙(서울신도림초등학교 교감) 楊廷普(서울신방학초등학교 교사) 權泰昶(서울중랑초등학교 교사) 兪瀞淑(서울신서초등학교 교사) 鄭鍾求(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관) 金相彬(리라컴퓨터고등학교 교감) 禹鍾順(영등포여자고등학교교감) 玄順玉(태릉고등학교 교사) 崔洪圭(영신고등학교 교사) 李完熙(수유중학교 교감) 申東坤(문성중학교 교사) 黃鎬勳(양강중학교 교사) 朴鐘圭(명진초등학교 교감) 鄭文修(예문여자고등학교 교사) 崔且石(서곡초등학교 교사) 宣蓮珠(수영중학교 교사) 金一浩(사직초등학교 교사) 金炯七(월내초등학교 교사) 李月淑(감천중학교 교사) 崔在國(대구동신초등학교 교사) 崔慶永(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교사) 南周崇(대곡고등학교 교사) 林興俊(도원고등학교 교사) 金斗植(대구전자공업고등학교 교사) 李基術(인천효성남초등학교 교감) 車龍仙(인천계산초등학교 교사) 崔文鎬(인천여자 중학교 교사) 崔春植(검단중학교 교사) 金隆基(부광고등학교 교사) 李丙國(조봉초등 학교 교감) 梁在完(장산초등학교 교사) 崔文圭(첨단중학교 교사) 孫承萬(대전가양중 학교 교사) 韓鏡澤(대전성남초등학교 교사) 崔仁順(대전광역시교육청 장학사) 李殷奎(울산광역시교육청 장학관) 徐豊鉉(농소고등학교 교감) 金廣鎭(경기도이천교육청 장학관) 金載卓(수원여자고등학교 교감) 韓富順(경기도교육청 장학사) 韓京姬(하탑 중학교 교감) 李漢應(경기도성남교육청 장학관) 禹玉子(경기도부천교육청 장학사) 宋秀鎬(중흥초등학교 교장) 金光順(관양중학교 교감) 金漢浩(경기도교육청 장학사) 李丞澤(정자중학교 교장) 金元子(남수원초등학교 교감) 沈慶燮(문산중학교 교장) 韓文錫(장자초등학교 교장) 李重陽(평택중학교 교사) 林在文(양감초등학교 교장) 鄭大 運(호원중학교 교감) 尹大源(경기도교육청 장학관) 李光復(경포유치원 원장) 李鍾煥 (남춘천초등학교 교사) 朴善愛(원주농업고등학교 교사) 玉明俊(강원도정선교육청 장 학사) 辛貞寅(한송중학교 교장) 朴東基(군남초등학교 교사) 洪淳鎬(가덕초등학교 교사) 梁在弼(천안구성초등학교 교감) 鞠恩姬(관대초등학교 교사) 金庚愛(천안오성중학교 교감) 具一會(우성중학교 교감) 盧承女(익산초등학교 교사) 安祥瑀(순창북중학교 교사) 林英蘭(전주전일초등학교 교사) 崔維純(고산중학교 교사) 金德信(대아초등학교 교사) 朴永得(목포항도여자중학교 교사) 李南喜(전라남도교육청 장학사) 韓光哲(강진여자중학교 교사) 尹正玉(광양중동초등학교 교사) 魯明蘭(영암초등학교 교사) 姜善泰(성주여자고등학교 교장) 黃泰龍(남계초등학교 교사) 吳愛蘭(계림중학교 교사) 蘇洋子(안동강남초등학교 교사) 孫相和(울진고등학교 교사) 金光萬(황성초등학교 교사) 辛珍鎔(경상남도교육과학연구원 교육연구사) 曺信英(유영초등학교 교사) 朴海蘭 (경상남도유아교육원 교육연구사) 金淳明(생초중학교 교장) 崔小賢(봉강초등학교 교사) 李結俊(내서중학교 교사) 趙載浩(신월초등학교 교사) 洪淑子(제주중앙여자고등학교 교사) 徐秉德(경원대학교 교수) 柳浩坪(광주대학교 교수) 崔 桓(금오공과대학교 교수) 朴宗憲(삼척대학교 교수) 金茂一(서울산업대학교 교수) 李善河(순천대학교 교수) 卞博章(순천향대학교 교수) 安台煥(충주대학교 교수) 王之錫(한국해양대학교 교수) 梁千會(한밭대학교 교수) 申順澈(서라벌대학교 교수) 全京姬(숭의여자대학교 교수) 朴哲元(한양여자대학교 교수) 吳在德(교육인적자원부 교육연구관) 田鍾普 (국제교육진흥원 교육연구사) 金容顯(국가전문행정연수원 교수) 崔成奎(부산기계공업고 등학교 교사) 李亨周(타이완 대북한교학교 교사) ˝
  • 儒林(9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대도시는 대사막이다. 영국의 속담처럼 엄청나게 뻗어나간 신도시는 거대한 사막이었다.물도 없고,그늘도 없고,오직 있는 것은 생명을 거부하는 모래뿐.그래서 T S 엘리엇은 도시를 ‘황무지(荒蕪地)’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만 있고 물은 없다. 그리고 모랫길/길은 산 사이에 구불구불 돌아 오르는데 그 산들도 물이 없는 바위만의 산/물이 있다면 우리는 멈춰 마실 것을/바위 사이에선 사람들이 멈추어 생각할 수도 없다. 땅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빠져 바위 사이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이빨이 썩은 산의 아가리/여기서는 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한다/산속엔 정숙조차 없다/오직 메마른 불모의 뇌성뿐. 산속엔 고독조차 없다. 오직 갈라진 토벽집 문에서 빨간 성난 얼굴들이 냉소하며 으르렁거릴 뿐.” T S 엘리엇의 시처럼 이곳은 물이 없고 바위만 있는 사막이며,황폐한 황무지일지도 모른다.저 거대한 빌딩들은 사막에서 솟아난 물이 없는 바위산.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정숙도 고독조차 없고 오직 있는 것은 빨간 성난 얼굴들이 으르렁거리는 냉소만이 존재하는 비정한 사막,비정한 도시.그 사막 사이에 난 모랫길을 나는 지금 철로 만든 낙타를 타고 유목민이 되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낯선 신도시가 주는 감상에만 젖을 수가 없었다. 어제 나는 용인시에 전화를 걸어 내가 찾아가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확인해 두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미리 정보를 수집해 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전라남도 화순의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찾아갈 때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던가.막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낭패를 보지 않았던가. 비교적 조광조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한적한 지방에서도 그렇게 무심하였는데,한참 난개발 중인 신도시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조광조의 유적들을 찾는 것은 그에 비하면 마치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용인시에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다행히 인터넷에는 조광조의 유적을 관리하는 문화재과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막연히 공무원들은 불친절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의외로 친절하였다.그는 심곡서원(深谷書院)과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장소를 문화재과에 근무하는 직원답게 잘 알고 있었으며,그곳의 위치를 묻는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전화를 잘 걸어 오셨습니다.전화를 걸지 않고 그냥 찾으려 하셨다면 아주 힘드셨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곳은 신개발지라 온통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여 전문가들도 잘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출발하는 위치를 묻고 그곳에서 찾아오는 길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인터넷에 나와 있는 현장의 약도들도 물어 찾아가는 것보다 그가 안내해준 대로 이정표를 따라서 단순하게 찾아가는 방법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차를 몰아가면서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안내판을 놓칠지도 몰랐으므로 차를 몰아가면서도 나는 줄곧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儒林(9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儒林(90)-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제1부 王道 제4장 文正公 ―대도시는 대사막이다. 영국의 속담처럼 엄청나게 뻗어나간 신도시는 거대한 사막이었다.물도 없고,그늘도 없고,오직 있는 것은 생명을 거부하는 모래뿐.그래서 T S 엘리엇은 도시를 ‘황무지(荒蕪地)’라 표현하지 않았던가. “여기는 물이 없고 다만 바위뿐. 바위만 있고 물은 없다. 그리고 모랫길/길은 산 사이에 구불구불 돌아 오르는데 그 산들도 물이 없는 바위만의 산/물이 있다면 우리는 멈춰 마실 것을/바위 사이에선 사람들이 멈추어 생각할 수도 없다. 땅은 마르고 발은 모래 속에 빠져 바위 사이에 물만 있다면 침도 못 뱉는 이빨이 썩은 산의 아가리/여기서는 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한다/산속엔 정숙조차 없다/오직 메마른 불모의 뇌성뿐. 산속엔 고독조차 없다. 오직 갈라진 토벽집 문에서 빨간 성난 얼굴들이 냉소하며 으르렁거릴 뿐.” T S 엘리엇의 시처럼 이곳은 물이 없고 바위만 있는 사막이며,황폐한 황무지일지도 모른다.저 거대한 빌딩들은 사막에서 솟아난 물이 없는 바위산.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하는 정숙도 고독조차 없고 오직 있는 것은 빨간 성난 얼굴들이 으르렁거리는 냉소만이 존재하는 비정한 사막,비정한 도시.그 사막 사이에 난 모랫길을 나는 지금 철로 만든 낙타를 타고 유목민이 되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낯선 신도시가 주는 감상에만 젖을 수가 없었다. 어제 나는 용인시에 전화를 걸어 내가 찾아가는 목적지에 이르는 길을 확인해 두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미리 정보를 수집해 두었지만 그것만으로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지난겨울 전라남도 화순의 능주에 있는 적려유허비를 찾아갈 때도 길을 잘못 들지 않았던가.막연히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한결같이 모른다는 대답을 듣고 낭패를 보지 않았던가. 비교적 조광조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한적한 지방에서도 그렇게 무심하였는데,한참 난개발 중인 신도시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조광조의 유적들을 찾는 것은 그에 비하면 마치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고심 끝에 생각해낸 것이 용인시에 직접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다행히 인터넷에는 조광조의 유적을 관리하는 문화재과의 전화번호가 기재되어 있었다.막연히 공무원들은 불친절할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의외로 친절하였다.그는 심곡서원(深谷書院)과 조광조의 무덤이 있는 장소를 문화재과에 근무하는 직원답게 잘 알고 있었으며,그곳의 위치를 묻는 내게 이렇게 말하였다. “전화를 잘 걸어 오셨습니다.전화를 걸지 않고 그냥 찾으려 하셨다면 아주 힘드셨을 것입니다.왜냐하면 그곳은 신개발지라 온통 아파트촌으로 둘러싸여 전문가들도 잘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가 출발하는 위치를 묻고 그곳에서 찾아오는 길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었다.인터넷에 나와 있는 현장의 약도들도 물어 찾아가는 것보다 그가 안내해준 대로 이정표를 따라서 단순하게 찾아가는 방법이 훨씬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차를 몰아가면서 나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자칫하면 안내판을 놓칠지도 몰랐으므로 차를 몰아가면서도 나는 줄곧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우리당 재·보선 경선후보 확정

    열린우리당은 7일 6·5 재·보궐 지방선거에 출마할 광역단체 2곳의 경선후보자와 기초단체 17곳의 단일후보 및 경선후보자를 확정했다. 전남도지사 경선후보에는 고현석,민화식,천용택,조보훈 후보가,제주도지사 경선후보에는 김경택,송재호,오재윤,진철훈 후보가 선정됐다. 경남도지사와 부산시장은 오는 15일까지 후보 영입작업을 마친 뒤 발표하기로 했다. 다음은 공천후보 확정자 및 경선후보. ◇광역단체장(2곳) ▲전남 고현석,민화식,천용택,조보훈 ▲제주 김경택,송재호,오재윤,진철훈 ◇기초단체장(17곳) ▲서울 중구 정동일 ▲서울 영등포구 박충회 ▲서울 강동구 이해식,김노진 ▲경기 부천시 신철영,이재옥,이재열 ▲경기 평택시 유성,윤주학 ▲대구 동구 오진필 ▲대구 북구 안경욱 ▲경남 창원시 한갑현,허성무 ▲경남 양산군 정웅,서기영,주철주 ▲대전 동구 권득용,박병호,김용명 ▲대전 유성구 김성동,오충환,송석찬 ▲대전 대덕구 김창수,이권의,정현태 ▲충남 당진군 민종기,이덕연 ▲충북 충주시 이승일,박장열,김선웅 ▲전남 화순군 이형수,구충곤,김성인 ▲전남 진도군 박종석▲전북 임실군 심민,강완묵,한인수,김진명 박지연기자 anne02@˝
  • [스포츠 라운지] 그라운드 백미 홈런 박병호

    올해 고교야구 시즌을 연 대통령컵대회 1회전이 벌어진 지난달 29일 동대문구장.성남고 이희수(56) 감독은 전남 화순고의 이동석(40) 감독과 다시 만났다. 지난 1982년 청룡기대회 결승전에서 감독과 군산상고 선수로서 만난 이후 22년만이다.당시 천안북일고 사령탑을 맡은 이 감독은 이제 같은 고교 감독이 된 이 감독과 벤치 싸움을 앞두고 있었다.22년전 이희수 감독은 이틀에 걸쳐 장장 7시간16분을 겨룬 끝에 조계현과 이동석이 나눠 던진 군산상고에 5-9로 쓴잔을 들어야만 했다.그러나 이날은 이희수 감독이 쾌승을 거두었다.점수는 11-5. 그 뒤에는 3연타석 홈런을 친 ‘고교 슬러거’ 박병호(18)가 있었다.고교야구에서 3연타석 홈런이 나온 것은 김윤환(광주일고·75년) 김종국(광주일고·91년) 장요상(전주고·99년)에 이어 네번째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다음날 휘문고와의 2회전 첫 타석에서 우측 담장을 넘는 2점 홈런을 또 쏘아올렸다.고교야구 사상 첫 4연타석 홈런을 뿜어낸 것이다.대학부에서조차 지난 98년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당시 성균관대 2년생 권오현(현 롯데)이 유일하게 작성한 대기록이다. ●타고난 ‘괴물 타자’ 포수와 1루수를 번갈아 뛰는 그의 별명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괴물 타자’외에도 ‘제2의 최희섭’,‘한국의 마쓰이’ 등 새 별명을 이번 대회를 통해 얻었지만 중학시절부터 ‘치면 홈런’ 등 불방망이에 빗댄 별명이 늘 그를 따라다녔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은 ‘박뱅’.이름을 줄여 만든 것인지,‘빅뱅’을 바꿔 부른 것인지 본인은 잘 모르지만 중학시절부터 들어온 별명이라 가장 애착이 간다. 서울 영일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방망이를 손에 쥔 그의 엄청난 파워는 영남중에 진학하면서부터 빛났다.초등학교 4년 때 148㎝에 불과하던 키는 해가 갈수록 한 뼘씩 자라나 중학교 3년때 이미 지금(185㎝·90㎏)에 육박했다. 영남중 시절 운동장 너머의 주택들은 그의 방망이에 시달려야 했다.깬 유리창은 스스로 기억하는 것만도 30여장.고교에 진학한 뒤에도 그의 ‘유리창 깨먹기’는 이어졌다.외야쪽에 설치된 높이 20m의 그물망은 그 때문에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이희수 감독은 “몸집보다도 손목에서 나오는 힘이 대단하다.”면서 “배팅을 더 공격적으로 한다면 지금 당장 프로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진학 포기, LG와 3억5000만원에 계약 그의 손은 유난히 크다.‘왕손’이라는 또 다른 별명답게 성남고 선수 가운데 손이 가장 큰 그에게 방망이 빼고 가장 아끼는 물건은 손에 쥐면 줄조차 전혀 보이지 않는 휴대전화.용도는 딱 한가지.가장 큰 후원자인 어머니 신순덕(46)씨를 비롯한 자모회원들을 위해서다. 경기에서 이겼을 때나 졌을 때나 ‘더욱 열심히 해 효도하겠다.’는 문자메시지를 꼬박꼬박 보내는 그의 애교는 회원들에게 인기 ‘짱’이다.자모회원 김건순(41)씨는 “그 큰 손으로 어떻게 총알같이 휴대전화를 누르는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난다.”면서 “홈런 내기돈 3000원을 받아내려고 온갖 아양을 떠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즐거워 했다. 그가 닮고 싶어하는 선수는 LG의 포수 조인성(29).“투수와 수비 리드가 뛰어난 데다 타격도 발군”이라는 게 그의 평가다.어차피 입을 프로유니폼을 하루라도 빨리 입고 싶어 일찌감치 대학 진학을 포기한 그는 7일 LG와 총액 3억 5000만원(계약금 3억 3000만원,연봉 2000만원)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야구팬들은 내년 프로야구에서 그의 홈런포에 다시 한번 입을 벌리게 될지도 모른다. 글 최병규기자 icbk91065@seoul.co.kr˝
  • [집중탐구 5黨의 ‘길’]⑥끝- 활로찾는 민주당

    민주당의 17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은 3일 고(故) 박태영 전남지사의 광주 영결식에 참석한 뒤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예방하러 서울 동교동으로 다시 모였다.개인 사정상 불참한 김종인·이승희(비례대표) 당선자를 제외하고 7명이 함께 모인 것은 한화갑 대표가 당을 추스른 이래 처음이다.“이제는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기’마저 느껴진다.민주당의 활로 찾기는 이같은 행동 통일에서 일단 출발한다. ●DJ,“인생은 새옹지마” 민주당의 ‘창업주’인 DJ는 창당 이래 가장 혹독한 전투에서 살아 돌아온 당선자 7명을 따뜻이 맞았다.DJ만큼 따뜻한 품이 또 있을까.당선자들은 박 지사를 떠나보내며 새삼 ‘배신감’에 서늘해진 가슴을 DJ의 덕담으로 달랬다.DJ는 “인생만사는 새옹지마”라며 위로했다. 한 대표는 “가능하면 이른 시일 내 창당 수준의 전당대회를 열겠다.”고 당 재건 의지를 다졌다. DJ는 그러나 선거 결과에 대해 조심스럽게 ‘위로’의 말을 전했을 뿐 현실정치 불개입 원칙을 이날도 고수하면서 예민한 말은 되도록 아꼈다.특히 ‘6·5 재·보궐선거에 ‘한 말씀’ 해달라.’는 요청에는 “여러분이 잘 되길 바란다.좌절하지 않으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만 화답했다.이번 동교동 방문은 햇볕정책이라는 민주당의 주 브랜드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통과의례이기도 하다.박준영 전 청와대 공보수석은 앞서 기자들과의 오찬에서 “참여정부 들어 대북정책에 전혀 진전이 없다.”며 “대북송금 특검과 분당(分黨)만 없었으면 지금쯤 비무장지대를 관광지로 개발했을 것”이라고 현 정부를 비판,햇볕정책이 민주당 전매특허임을 강조했다. ●전남지사에 ‘박준영 카드’ 민주당엔 이번 6·5 재·보선이 또 하나의 분수령이다.지난 4·15 총선에서 전남 지역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표가 5대4 정도로 나온 만큼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특히 ‘박준영 카드’가 채택될지 주목된다.이날 한 대표는 DJ 의사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박 전 수석은 “당의 뜻을 따르겠다.”며 적극적인 출마 의지를 내보였다.당 안팎에선 장성민 전 의원과 김성훈 전 농림장관,김정길 전 법무장관 등도 자천타천으로 거론되고 있다.발표는 여론조사와 현지 실사를 거쳐 5일 이뤄진다.박 지사의 죽음으로 공석이 된 전남지사직을 ‘박 지사가 (생전에)입당을 했네.안 했네.’라고 입씨름하던 열린우리당에 내주지는 않겠다는 게 민주당 생각이다.그러나 전남도민들이 여당 지사를 포기하겠느냐는 게 갑갑한 요인이다.장전형 대변인은 “총선 후 호남 유권자들 사이에선 민주당이 좀더 잘 하라고 든 회초리가 걷지도 못하게 한데 대해 후회하는 여론이 일고 있다.”면서 희망을 접지 않고 있다. ‘40대 트리오’ 구상은 현실적으로 벽에 부딪혀 있다.장성민 전 의원과 함께 낙선한 추미애 의원을 제주지사에,김민석 전 의원을 서울 영등포구청장에 각각 내보낸다는 복안이었지만 추 의원은 주소 문제가 걸림돌이다.출마하려면 선거 두 달 전에 제주로 주민등록을 이전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전남 화순과 진도군수 후보에는 20여명의 신청자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호,당분간 ‘시계 제로’ 그러나 민주당에 낀 안개는 당분간 쉽사리 걷혀지지 않을 것 같다.당장 당사도 못 구할 만큼 재정상태가 열악한데다 당선자 9명의 ‘화합’도 미지수다.이승희 당선자는 탄핵과 ‘옥새전쟁’ 등을 통해 한 대표 진영과 앙금을 쌓았고,이낙연·김효석 의원 등 비교적 친노(親盧) 성향의 인사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도 당의 진로 설정에 잠복 요인이다. 박정경기자 olive@˝
  • 단체장 재보선 평균7대1 경쟁

    오는 6월5일 실시될 전국 기초자치단체장 재·보선 분위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이번 재·보선은 총선 출마를 위해 사퇴했거나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죄 등으로 기소돼 법원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물러난 기초단체장 18명을 새로 뽑는다. 지난 4·15총선 결과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지역에 따라 한나라당 및 민주당·자민련으로 전선이 형성돼 있다.대부분 출마예정자들은 지역별로 유력 정당의 공천을 희망,소지역주의가 꿈틀대고 있으며,예선을 앞두고 벌써부터 상대방을 헐뜯는 흑색선전이 난무하는 등 과열·혼탁 양상을 보이고 있다. ●‘돈 안드는 선거’로 후보 난립 25일 현재 자천타천으로 거명되는 후보는 135명으로 평균 7.5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가장 경쟁이 치열한 지역은 경남 양산으로 무려 15명이나 나섰다.각 당의 공천작업이 마무리되면 실제 출마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겠지만 선관위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이처럼 후보들이 난립하는 이유는 큰돈이 없어도 선거를 치를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돈은 묶고 입과 발은 풀었다.’는 개정 선거법의 효력은 지난 총선에서 이미 입증됐다. 대구 동구와 북구청장 후보로는 한나라당 4명,우리당 3명,무소속 3명 등 10명이 경합중이다.본선은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대결이 예상된다.지난 총선에서 우리당이 전멸한 것을 놓고 지역내에서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어 결과는 예측불허다. 대전·충청지역은 5명의 자치단체장을 뽑는데 30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지만 대부분 우리당 간판을 달려고 한다.행정수도 이전으로 지난 총선에서 표심을 사로잡은 우리당의 바람을 실감케 하고 있다. 과열양상으로 선관위를 긴장시키는 지역도 있다.경기 평택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이날 현재 8명이 예비후보로 등록했으나 뚜렷한 선두 주자가 없어 후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부천시장 후보로 한나라당에서 전 시장과 구청장이 뛰고 있으며,우리당에서는 전 도의원과 시민단체 간부출신이 물밑에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민주당에서는 전 시의회 의장이 출마를 준비중이다. ●공천권이 당선증? 전북 임실군수 후보 7명은 모두 우리당 공천을 받기 위해 뛰고 있다.예선전이 본선이라는 관측도 있으나 단체장의 경우 인물 위주로 뽑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반면 전남 화순군과 진도군의 상황은 다르다.지난 총선때 화순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고,진도는 민주당 후보가 우리당 바람을 뚫고 당선돼 이번 선거도 안개속이다.화순군에는 무려 11명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6명이 선관위에 예비후보로 등록했다.모두 민주당과 우리당 인사들이다. 경남 창원시장과 양산시장 선거는 예비후보가 각각 10명이 넘어 예선이 본선보다 치열하다.이 지역의 맹주임을 자처하는 한나라당과 적진에 교두보를 구축하려는 우리당의 한판 승부가 예고돼 있다.후보로 거명되는 인사들이 거의 양당의 공천을 희망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후보 2명이 창원시장 자리를 넘보고 있다. ●보궐선거 비용 구상권 청구해야 이어지는 선거로 인한 주민들의 불만도 만만찮다.단체장 및 지방의원들의 중도 사퇴로 인한 보궐선거를 치르느라 주민들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이다.아울러 후보간 흑색선전도 유권자들을 짜증나게 한다. 경남도는 이번 재·보선 비용으로 98억 36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도지사를 비롯,시장 2명과 도의원 4명,시·군의원 2명 등 모두 9명을 선출하는데 필요한 금액이다.도 선관위는 선거법 개정으로 비용이 늘어나 100억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대구 동구의 경우 보선 경비로 이미 5억 7700만원을 선관위에 지원했으며,북구도 6억 6230만원을 지원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단체장이 임기중 국회의원 등으로 출마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중도 사퇴로 인한 보궐선거 비용은 단체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혈세를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귀담아 들어볼 만한 대목이다. 전국·정리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親재계 의원님 모셔라”

    제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3당으로 부상하는 등 기업에 비판적인 인사들이 대거 등원함에 따라 재계에 비상이 걸렸다. 반 기업 정서를 가진 인물들이 대거 당선돼 의회에서 경제정책이 기업쪽에 불리한 방향으로 처리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책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계는 대외협력팀을 가동하고,임직원들의 친분을 이용해 친 기업 성향의 의원들에 대한 다각적인 접촉에 나선다는 계획이다.경제단체와 기업체 관계자들은 반기업 정책 입안을 방지하고 기업실상과 경제현실을 알리기 위한 재계의 국회 네트워크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17대 총선에 당선된 재계 출신 초선의원은 고작 4명이다.열린우리당 의원 중에는 이계안 전 현대캐피탈 회장이 서울 동작을에서,오시덕 전 주택공사 사장이 충남 공주·연기에서 각각 당선됐다. 한나라당에는 김태환 전 아시아나항공 부사장이 경북 구미을,심재엽 심로악기 회장이 강원 강릉에서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재선 이상급으로는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울산 동구,·5선) 의원,쌍용그룹 상무를 지낸 정세균(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3선) 의원,대우경제연구소장을 지낸 이한구(대구 수성갑,재선) 의원이 있을 뿐이다. 경제계 인사도 10여명에 지나지 않는다.열린우리당의 김진표(경기 수원 영통) 전 재경부장관 겸 부총리,강봉균(전북 군산) 전 재경부장관,안병엽(경기 화성) 전 정통부장관,정덕구(비례대표) 전 산자부장관,변재일(충북 청원) 전 정통부차관,강길부(울산 울주) 전 건교부차관이 당선됐다.한나라당에서는 이종구(서울 강남갑) 전 금융감독원감사,민주당은 김종인(비례대표) 전 청와대경제수석,무소속에서는 신국환(경북 문경·예천) 전 산자부장관과 최인기(전남 나주·화순) 전 농림부장관이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반면에 노동계 출신 의원들은 민주노동당 10명을 포함해 시국사범 또는 노동운동가 출신 60여명이 각 당에 고루 포진해 있다. 대기업과 경제단체들은 대외협력팀을 중심으로 임직원들이 직접 나서 당선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나 학연이 있는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국회 네트워크 구축을 위한 기초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또 경제계 출신 인사들을 적극 활용,국회내 우호세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전경련 주요 위원회나 포럼 등에 의원들을 초청해 함께 토론하고 정책협의도 강화,상호 이해의 폭을 넓히면서 기업 사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나 대한상의도 개별 의원들의 정책 성향이나 주요 발언 내용을 파악,기업들에 알려주는 작업을 병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원들의 물갈이 폭이 크고 기업에 생소한 인물들이 많은데다 이들이 네트워크 형성을 회피할 가능성도 있어 재계의 국회 인맥 구축작업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정책이 기업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한 기업으로서는 국회와의 효율적인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지만 사정이 재계에 절대적으로 불리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정동주 역사문화 에세이 달빛의 역사 문화의 새벽] (32)여자라는 이름의 논개 (上)

    도래 소주 열 번 고아 애(왜)늠 장수한테 믹이갖고 진주 기생 이애미(의암)는 우리 조선 살릴라꼬 옥가락지 열 찐(낀) 손에 애늠 장수 목을 안고 진주 남강에 떨어졌네 진주 남강 떨어짐서 노랑 수건 파랑 수건 수건 두 개 떠올라 오면 노랑 수건은 건져주고 파랑 수건은 건지지 마라. 두 해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곧잘 부르셨던 노래다.살아계셨으면 아흔 두 살이 되셨을 어머님이 처녀 적 길쌈하면서 부르시던 노래였다.물레질 할 때나 삼 삼을 때 동무들이 짝짝으로 마주 보고 앉아 한쪽에서 한 소절을 먼저 메기면 맞은편 여인들이 그 다음 소절을 받는다.노래하는 사람마다 남 모르는 설움이며 가슴 속 사연들을 살며시 섞어 부르곤 하기 때문에 노래는 좀처럼 그치질 않는다. 일제 식민지 한복판 아슬한 민족의 베틀 위에서 기구한 운명을 씨줄 날줄로 엮어 짜며 불렀던 이 노래가 지닌 상징성은 컸다.어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시면서 애옥살이에 자식 일곱을 낳아 기르셨고,‘이애미(의암,義巖)의 전설’은 식민시기 진주 남강 기슭에서 고달픈 삶을 꾸렸던 사람들에게 식을 줄 모르는 분노와 그치지 않는 민족 사랑을 함께 일깨워주었다. ●베틀질 노랫소리로 맥이은 ‘이애미 전설’ 노래의 주인공은 논개다.논개는 여자이고,기생이고,관청에 소속된 노비이고,적장을 살해함으로써 조선의 운명을 구한 전사이며,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1532∼1593) 장군이 사랑하던 여인이며,꽃다운 나이 스무살에 죽은 민족의 딸이고,죽은지 147년이 지나서야 국가로부터 공식적인 전사 사실을 확인받은 인류 역사상 매우 드문 내력을 지닌 이다.그리고 논개는 그저 한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딸이 아니라,오늘을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애인이고 동무이다. 논개의 삶과 죽음이 전설과 오해로 점철되어 온 것은 그의 성장지와 죽은 곳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죽은 곳을 중심으로 하여 역사가 정리되었기 때문이다.지금의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태어난 1574년부터 죽던해인 1593년 초까지 그는 고향에서 살았고,부군인 최경회를 따라 진주성 결전장으로 온 것은 1593년 봄 이후였다.죽기까지 진주에서 머문 것은 길게 잡아도 5개월을 넘지 않았다.1593년 여름 진주성을 함락시킨 적장을 살해하고 자신도 목숨을 던진 이후 그의 죽음이 이룬 엄청난 전과에 대한 보상문제가 제기되었는데,이 때 진주목사가 논개의 집안을 확인하기 위하여 진주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는 공식 기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오해 속에 파묻어버린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여자였기 때문이다.흔히 진주성 2차 전투로 불리는 싸움은 임진왜란 7년 전쟁사에서 가장 많은 조선의 희생자를 낸 처참한 살육전이었다.유생들의 당파싸움과 허구에 찬 이론 논쟁으로 허수아비가 된 관군은 이미 국가를 수호하는 군인이 아니라 높은 관직의 유생들을 추종하는 비겁하고 무능한 자들이었다.조선의 성리학과 유생들이 이 시기에 저지른 죄와 그에 대한 응징은 없었다.관군들의 철저한 무관심과 변명 속에서 진주성은 외로운 섬처럼 왜적에게 포위돼 공격받았다.9일 밤낮으로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웠다.진주성을 끝까지 지키려한 대부분은 호남에서 온 의병들이었다.비록 직함은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였지만 최경회도 전라도 화순의 의병장으로서 진주성 사수의 책임을 맡게 되었다. ●전라곡창 점령 위해 왜적들 진주성 공략 결국 전투력의 열세로 진주성은 함락되고,진주성안으로 피란해 있던 6만여 명의 피란민들까지 모조리 왜적에게 도륙당하는 참극을 겪어야 했다.주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여자들과 노인들이었다.그들의 주검은 산이 되어 여름 장마 속에서 썩어갔다.국가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그 흔하던 양반과 잘난 유생들은 모두 도망가버리고 죽음으로써 왜적의 칼날을 무디게하는 것은 민중뿐이었다.진주성 사수에 실패한 전라도에서 온 의병장들은 책임을 지고 진주성에서 자결했다. 왜적들은 진주성을 함락하자 곧장 하동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 곡창지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왜적들이 진주성 함락을 위해 총력전을 편 이유는 전라도 곡창 지대를 점령하기 위해서였다.임진왜란이 시작된지 불과 두 달여 만에 평양까지 진출했던 왜군들은 부산에서 평양까지의 긴 거리를 이용하여 전쟁물자를 수송해야 했다.그 때 의병들이 일어나 왜군 보급로를 공격하자 왜군은 다시 남쪽으로 철군할 수밖에 없었다.서해바다를 이순신의 해군이 장악하고 있어서 해로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왜군사령부에서는 이순신의 해군을 제거해야만 조선을 지배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그러나 이순신과 그의 해군을 정면으로 맞붙어서는 이길 수 없었다.대신 전라도를 점령하는데 힘을 쏟았다.이순신의 해군은 전라도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식량을 보급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전라도 의병들이 그토록 무섭게 전투에 임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전라도와 이순신을 제거해버리면 조선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그 출입구가 되는 진주성을 먼저 점령해야만 했다.모든 왜군을 총동원하여 진주성을 함락했다.최경회 장군도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결했다.왜적들은 하동을 거쳐 보성 지방까지 진군했다가 일단 진주로 돌아왔다.전력을 재정비하여 보다 완벽하게 전라도를 점령하자는 전략에서였다.진주로 돌아온 왜병들은 일단 진주성을 함락한 전승기념 파티를 열었다.왜장들이 촉석루 언덕 위에서 벌인 전승기념 파티에는 그때까지 살아남은 진주목과 경상우병영에 속해있던 관기(官妓)들을 모조리 끌어내고,진주의 여염집 젊은 여인들도 강제 동원되었다. ●관기로 잠입한 논개… 전승잔치서 적장 살해 진주는 지방 도시로서는 드물게 경상우병영과 진주목관아가 위치해 있어서 군인과 관료가 많았다.지방관에는 공공의 행사를 치르기 위해 음악과 춤을 주관하는 교방(敎坊)이란 부서가 일찍부터 설치되어 있었다.이곳에는 이른바 관기로 불리는 여성들이 음악,춤,그림,글씨 등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생활했는데,나쁜 목민관의 경우에는 관기들의 본래 목적을 훼손하여 마치 몸파는 일을 하는 여성들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논개는 부군 최경회를 따라 진주로 온 이후로 줄곧 이곳 교방에서 지냈다.그러다가 성이 함락되고 부군도 자결하자 논개는 복수를 결심했다.스스로 관기가 되어 왜장들의 전승축하파티에 잠입했다.그곳에서 왜장 기다 마코베(貴田孫兵衛)라는 가토 기요마사부대의 선봉장을 죽였다.기다 마코베의 뜻밖의 죽음은 왜병들에게 큰 충격이었고,전라도 침공 계혹은 무산되고 말았다. 결국 논개가 전라도를 위기에서 구출하고,나아가 조선의 운명까지 바꾸어 놓게 된 셈이었다.논개가 이같은 결과를 모두 의도한 것은 아닐 것이다.이같은 사실을 놓고 조선 정부는 논개의 행적을 인정하지 않았다. 논개가 여자인데다 기생 신분이기 때문에 이 엄청난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만약 이를 인정한다면 남자들의 권위가 진흙탕에 처박힌다는 두려움으로 논개가 죽은지 147년이 지나도록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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