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오의 野, 야생화다!] 백두산의 꽃 (1)
높은 산에서 더 이상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높이를 수목한계선이라 한다. 나무는 이 한계선까지만 자랄 수 있는데, 이 고도보다 높은 지역은 기온이 낮고 바람이 거세게 불며 겨울이 매우 긴 기후적인 특징을 보여서 키가 큰 나무들이 자라기에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목한계선 이상의 고도에서도 만년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키가 큰 나무들만 자라지 못할 뿐이지 몇몇 종류의 풀과 풀처럼 아주 작은 나무들은 생육이 가능하다. 만년설 지역과 수목한계선 사이에서 식물이 자라고 있는 지역을 고산초원지대라고 한다.
남한에서는 한라산에 조금 발달해 있을 뿐인 고산초원이 백두산에서는 해발 2000m 이상에서 광활하게 펼쳐진다. 특히 1597년,1668년,1702년 등 비교적 근래에 3차례에 걸쳐 화산폭발이 일어나면서 고지대의 기존 식물들이 전멸하였던 지질역사가 있기 때문에 백두산에는 고산초원이 넓게 형성되어 있다. 화산재로 뒤덮였던 백두산 고지대에 새로운 식물이 유입되어 가는 중간 과정에서 고산초원이 크게 발달한 것이다. 실제로 백두산에서는 고산초원지대에 침입하여 자라고 있는 사스래나무, 덤불오리나무 등의 큰키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이 큰키나무들은 화산폭발 후에 형성된 초원지대에서 큰키나무의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개척자 식물이라 할 수 있다. 사스래나무는 초원지대 바로 아래쪽에서 군락을 이뤄 자라고 있기도 하다.
백두산 식물의 고도에 따른 수직분포를 보면 고산초원 아래쪽으로 사스래나무대, 침엽수림대, 침엽수와 활엽수의 혼합림대, 활엽수림대 순으로 식물군락이 발달한다. 침엽수림대와 혼합림대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혼합림대에서 사스래나무대나 고산초원으로 바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하다. 풀만 자랄 것 같은 고산초원지대에는 사스래나무 같은 침입자 나무 외에도 키가 아주 작은 떨기나무들이 여러 종류 자라서, 환경조건이 나쁜 고산지역에서도 나무들이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관상 풀들만이 자라는 것처럼 보이는 고산초원에 나무가 많이 자라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풀보다 오히려 나무들이 더 넓은 면적에 걸쳐 생육하는 지역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곳에 자라는 나무로는 들쭉나무, 노랑만병초, 곱향나무, 콩버들, 난쟁이버들, 월귤, 담자리꽃나무, 홍월귤, 담자리참꽃나무, 가솔송, 시로미, 좀참꽃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노랑만병초와 들쭉나무 등은 수목한계선 아래쪽의 숲 속에서도 볼 수 있는데, 숲 속에 자라는 것들은 키가 훨씬 크게 자란다.
수목한계선 위쪽의 고산초원에는 저지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풀이 많이 자란다. 이들을 전형적인 고산식물이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산석송, 오랑캐장구채, 씨범꼬리, 호범꼬리, 두메양귀비, 두메냉이, 구름꽃다지, 구름범의귀, 하늘매발톱, 너도양지꽃, 등대시호, 산용담, 구름송이풀, 두메투구꽃, 바위구절초, 두메분취, 구름국화, 개감채, 설령골풀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대부분은 오직 이 고산초원에서만 자랄 뿐, 수목한계선 아래쪽의 숲 속에서는 생육하지 않는다. 저지대에서 생육하지만 고산초원에서도 사는 풀들도 있는데, 나무와 마찬가지로 고산초원에서 자랄 때 전체가 왜소하게 된다. 나도수영, 산미나리아재비, 톱바위취, 돌꽃, 장백제비꽃, 비로용담, 화살곰취, 껄껄이풀 등이 이런 종류들이다. 고산초원에 사는 풀꽃들은 키는 작지만 뿌리가 발달하여 양분을 잘 흡수하고, 바람도 이겨낼 수 있다. 번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도 고산식물의 특징이다. 벌과 나비를 불러들여 씨앗을 잘 맺으려는 적응방법이다. 백두산 고산초원에 사는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은 북방계 식물로서 남한에서는 자라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몇몇 식물은 남한에서도 볼 수 있다. 남한에서는 설악산, 한라산, 대암산 등 높은 산 고지대에서만 드물게 발견되는데, 남한에서도 볼 수 있는 고산초원의 식물로는 노랑만병초, 비로용담, 들쭉나무 같은 나무와 등대시호 같은 풀 등 몇몇에 불과하다. 북한 쪽 백두산의 고산초원에는 어떤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는지 궁금하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