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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룽 내한 “이번엔 관객들 울어 줬으면…”

    청룽 내한 “이번엔 관객들 울어 줬으면…”

    청룽(成龍·51)이 변했다. 더이상 무적의 액션으로 적을 깔끔히 소탕하는 영웅이 아니다. 부하 직원을 잃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은, 세월의 무게 탓에 주름진 얼굴과 어우러지며 강한 연민의 감정을 낳는다.“드라마틱한 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는 이제서야 ‘액션 영웅’에서 ‘배우’로 거듭나고 있었다. 영화 ‘뉴 폴리스 스토리’ 홍보를 위해 내한,1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청룽. 그의 전매특허인 ‘코믹 액션’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 영화 속에는 대신 배우를 향한 그의 오랜 꿈이 녹아들었다.“미국이나 유럽의 거리를 걷다 보면 사람들이 무술 동작을 하며 ‘재키 찬’이라고 말한다. 어느 누구도 로버트 드니로를 보고 그러진 않는다. 나도 나름대로 연기 실력이 좋은데 말이다.” 실력파 연기자로 70,80세가 돼도 영화를 찍고 싶다는 그는, 그래서 이번 영화를 통해 약한 모습을 서슴지 않고 보여줬다.“강한 사람도 약한 측면이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게 그의 설명. 예전에는 관객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웃었으면 했는데, 이번엔 울어야 기쁘단다. 이번 영화는 청룽이 설립한 영화사 JCE의 실질적인 첫 작품이고, 타이완의 금마장상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다. 언제봐도 그렇듯이 청룽은 한국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가장 가난하고 힘들 때 2년간 한국에 살았다.”는 그는 “8년 사귄 여자친구가 한국에 있어 명절 때마다 한국에서 보냈는데 그 당시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중국어로 인터뷰가 진행되는 중간 대뜸 한국어로 “지금 여자친구 결혼했어. 옛날에 한국말 잘했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그는 한류에 대해서도 홍콩영화의 과거에 빗대 조언을 잊지 않았다.“사람들은 잘 나갈 때 많은 것을 잊는다. 깡패·귀신·쿵후 영화 등 똑같은 영화만 만든다. 하지만 한국영화에는 아직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아울러 “아시아에 있는 20억 관객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아시아 영화계가 힘을 합쳐야 미국 문화의 과도한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동건·이병헌 등과 함께 연기하고 싶다는 그 역시 현재 한국과 합작을 고려하고 있는 영화와 드라마가 한 편씩 있다고 했다. 한국영화에 출연한 청룽, 기대해볼 일이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스크린+α] 50~70년대 한국영화 조명 책 2권 발간

    한국영상자료원(KOFA)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한국영화를 회고하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한국영화를 말한다’는 원로영화인 22인의 구술을 통해 1950년대 한국영화를 되돌아보고,‘한국영화사공부’(이효인 외)에서는 한국영화산업의 황금기라 불리는 1960년대와 급격한 몰락을 경험했던 1970년대를 조명한다.
  •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윤이상 평화재단’ 3월 공식출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10주기를 맞아 올해 그의 업적을 기리는 문화사업들이 풍성하게 펼쳐진다. 윤이상 평화재단 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원택 황석영 이강일)는 지난 11일 대표발기인 모임을 갖고 “새달 18일 예술의전당에서 전체 발기인대회를 열고 3월쯤 재단을 공식출범시킨 뒤 선생의 생전 업적을 재조명하는 문화 프로그램들을 본격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장 민감한 현안이자 역점사업은 윤이상의 부인 이수자(78)씨의 한국방문. 재단측은 “선생의 생전에 이뤄지지 못한 고국방문이 10주기에 부인을 통해서라도 이뤄져야겠기에 정부의 협조를 얻어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과의 대담을 기록한 ‘상처 입은 용’을 재발간하고 이를 영화로도 만들 계획이다.“영화제작건은 LJ영화사와 구두합의를 마친 상태이며,3월에 제작발표회를 가질 것”이라고 재단의 관계자는 귀띔했다. 1979년 윤이상이 직접 설립한 평양 윤이상관현악단 초청공연도 올해 이뤄질 전망이다. 이 관현악단은 이수자 여사와 같은 시기에 방한을 목표로 실무협상 중이다. 윤이상의 대중적 복권을 위한 대표적 프로그램은 ‘평화콘서트 전국투어’. 윤이상 작품을 테마로 한 크로스오버 대중콘서트를 서울과 지방을 돌며 개최해 ‘윤이상 붐’을 일으키겠다는 복안이다. 관현악곡 ‘광주여 영원히’가 수록된 평양국립교향악단 연주의 윤이상 음반 정식발매,10주기 기념 국제심포지엄, 한국·독일·일본 3국 연주자들로 구성된 기념음악회(10월 예정), 윤이상·이응노·천상병 등 3인 작품전, 친필악보와 유품전시회 등이 다채롭게 마련된다. 재단 발기인은 각계 저명인사 29명. 윤이상의 외동딸 윤정씨를 비롯해 박재규 경남대 총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 신인령 이화여대 총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이종수 KBS이사장, 원택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김민 서울대 음대학장, 김용배 예술의전당 사장 등이 포함돼 있다.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강제납치, 수형생활을 하기도 한 윤이상은 1990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한 연주자들이 서울~평양을 오간 범민족통일음악회를 주도했다.1995년 11월3일 끝내 귀국하지 못하고 베를린에서 숨을 거두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0월 개관 준비 한창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관장

    10월 개관 준비 한창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관장

    2005년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어서 더 없이 경사스러운 해이다. 광복 60돌이란 역사적 의미에다가 국립박물관 개관 60돌까지 겹치는 경사를 맞았고, 무엇보다 명실상부한 국립박물관의 면모를 갖춘 용산박물관 시대를 열기 때문이다. 용산 새 박물관은 오는 10월28일 개관될 예정. 광복 및 개관 60돌을 맞는 역사적 의미와 21세기 국립중앙박물관이 나가야 할 방향 등을 들어보기 위해 개관 준비로 한창 분주한 이건무(58) 관장을 만나보았다. 지난 연말 10만여점에 달하는 유물 이전작업을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들었습니다. 한숨 돌리신 것 같은데 아직도 표정이 긴장돼 보입니다. -잠깐 한 눈을 파는 순간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제가 긴장을 풀면 유물을 옮기고 전시하는 직원들도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려 실수로 이어질 수 있거든요.2003년 정무직 차관급으로 격상된 관장직에 제가 임명된 것도 다름아닌 실무형 전문가로서 엄청난 양의 유물 이전과 용산 새 박물관의 개관을 무사히 치르라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유물 이전작업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10만여점에 달하는 유물을 해당 직원들이 직접 일일이 포장했습니다. 전문 용역업체에 맡길 수도 있었지만, 유물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작업을 해야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살짝 금이 간 유물의 경우 어떻게 다루고 포장을 해야하는지는 그 유물을 계속 다루어온 직원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도 이전작업 중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거액의 보험도 들었고,6억원이 넘는 보험료까지 냈습니다. 결국 단 하나의 유물도 티끌만큼의 손상도 없이 이전한 데 대해 저와 직원들 모두 자부심을 느낍니다. 광복 60돌과 개관 60돌을 동시에 맞는 역사적 의미, 그리고 용산 시대 개막의 역사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1945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넘겨받아 국립박물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순수하게 박물관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 없어 6번이나 국립박물관을 옮겨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창경궁, 경복궁, 덕수궁 석조전, 남산 분관, 옛 중앙청 건물 등을 개수해 국립박물관으로 썼습니다. 이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박물관을 용산에 지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절로 뿌듯합니다. 광복 60돌을 계기로 새 박물관이 국민들에게 우리역사의 중요성, 그리고 한민족의 정체성을 인식케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의 세계적 위상이나 박물관에 대한 국민적 인식 수준이 대체로 낮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새 박물관 규모는 세계 6대 박물관 수준으로, 규모와 시설면에서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같은 하드웨어에 걸맞는 소프트웨어를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박물관이 역사교육의 현장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하면서도 막상 박물관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이 저희가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그 실마리를 풀기 위해서는 단순 전시 기능을 넘어 복합문화공간으로써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이를 위해 다양한 교육·문화사업을 발굴, 시행할 예정입니다. 용산 박물관은 전시면적만 해도 경복궁 시절보다 3배 이상 늘어납니다. 그에 걸맞게 유물도 더욱 많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새 박물관 전시공간은 크게 늘어납니다. 관람 동선을 계산해 보았더니 3㎞가 넘더군요. 한 진열장 앞에서 30초씩만 머문다고 해도 상설 전시장을 모두 돌아보려면 9시간 정도 걸릴겁니다. 이처럼 넓어진 전시공간을 채울 유물 수집을 위해 특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유물 구입 예산은 연 70억원 정도로 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하지만 국보나 보물급 유물을 구입할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나설 것입니다. 소더비나 옥션 경매에서 수억, 수십억원짜리 문화재가 나온다면 기존의 구입예산 이외에 예비비 등 별도 예산을 책정해 적극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또 올해부터는 문화재 기증제 보상제도가 도입돼 유물 기증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금액은 1억원으로 적은 편이지만 차차 늘릴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재 도난 사건이 가끔 일어나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새 박물관의 보안시스템은 어떻습니까 -기계적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건물 외곽 감시에서 부터 실내 침입, 진열장 및 수장고에 대한 센서 등이 3단계로 설치돼 있어 침입은 거의 불가능할 걸로 봅니다. 어느 곳이든지 유물이나 진열장에 손이 닿는 순간 모든 카메라가 그곳을 향하도록 자동조정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안시설이 완벽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모니터를 안보고 잠을 자거나 딴짓을 하면 첨단기계도 무용지물이지요. 그래서 직원들에 대한 보안교육과 기강확립에 만전을 기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흔히 다양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용산시대를 연 국립박물관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시겠습니까. -크게 두가지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하나는 국민과 친숙한 박물관으로 자리잡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자주 찾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전시유물에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름과 설명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앞서 잠깐 말씀 드렸듯이 각종 공연과 영화 상영, 강의, 체험교실 등 교육·문화사업을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다양한 국제교류전을 통한 박물관의 세계성 확보입니다. 국제교류전은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면서, 국경을 넘어 아시아를 아우르는 중심국가 박물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토대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새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여기저기서 교섭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선 지난 1992년 한국에서 열린 ‘스키타이 황금전’에 대한 답례로 러시아에서의 ‘한국미술 5000년전’을 열 계획입니다. 또 한국과 중국, 일본의 국보중 진수만을 한 자리에 모으는 ‘한·중·일 국보전’도 추진 중입니다. 모두 올해 안에 윤곽이 잡히고, 개최는 내년이나 후년 쯤 이루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몽정기2 “꿈에서만 해야 돼요?”

    몽정기2 “꿈에서만 해야 돼요?”

    ‘별’들의 경합전이 되어버린 최근 한국영화계의 현실과 비춰볼 때 의외다. 메이저 영화사에서 제작한 영화의 주인공 치곤 신선한 얼굴들. 이들에게선 ‘초짜’의 풋풋함과 열기, 건방떨지 않는 귀여움이 흘러넘친다. 그렇다고 보통의 신인급 배우처럼 흐릿한 주관을 보이지도 않는다. 신세대다운 발랄함과 여자들 특유의 수다스러움 속에서도 뚜렷한 연기관을 똑부러지게 말할 줄 안다.‘몽정기 2’(제작 MK픽쳐스·14일 개봉)의 세 여주인공 강은비(19), 전혜빈(22), 신주아(21). 이들이 주연을 꿰찬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률 뚫고 주연 맡은 ‘미녀 삼총사’ 지난해 3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성은역에 캐스팅된 강은비. 성은은 초경도 못한 ‘미성숙’여고생이지만 교생 봉구(이지훈)를 좋아하게 되면서 조금씩 성과 사랑에 눈뜨게 되는 중심역할이다. 얼짱대전 대상 수상이 경력의 전부인 그녀는 오디션의 결과를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고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단다.“사실 주인공은 생각지 못했어요. 저의 성실한 모습에 반하신 것 같아요.3차까지 올라온 다른 후보 20명의 ‘뒷조사’까지 했거든요. 무용, 연극에 노래도 불렀구요.” 교생 봉구를 사이에 두고 성숙미를 무기로 성은과 실랑이를 벌이는 세미 역의 신주아는 CF와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악역에 이어 첫 영화에 출연했다.“맨 마지막에 캐스팅됐는데 천만 다행이죠.” ‘남행열차’를 부르는 모습이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 ‘막차’를 탄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성은의 단짝친구이자 남성스러운 털털함으로 후배의 사랑을 받는 수연 역의 전혜빈은 이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얼굴. 가수로 데뷔했지만 TV드라마, 단막극 주연, 영화 ‘령’등을 거치며 연기자로 자리매김했다. “내후년 정도까지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연기자로 더 성숙된 뒤에 음반을 다시 낼 거구요. 예전엔 모두를 절 보고 가수 빈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열의 한 명은 ‘전혜빈이다.’라고 말해요. 뭔가 하나는 이룬 것 같아요.” #더 섹시하고 야하게 연기할 걸 그랬나봐요 이번 영화를 통해 서로 처음 알게 된 사이지만 서로 질 새라 조잘대는 모습은 오랜 친구 같았다. 경쟁심 같은건 없었단다.“촬영장에서 같이 놀았어요. 떠들고…”(전) “진짜 친구처럼 지냈죠.”(신) 특히 연기 선배인 전혜빈은 큰 언니 노릇을 톡톡히 했다. 노출신 때문에 마음앓이 했던 둘에게 ‘해야되는 일이니 부담가질 필요없다.’며 격려했고, 촬영이 없을 때도 항상 힘내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영화 속에는 홍보물과 달리 야한 장면이 거의 없다. 살짝 단추를 풀거나 내려간 팬티를 보여주는 정도. 하지만 영화 초보인 이들에게 이같은 장면의 촬영은 힘든 일이었다. 카메라 앵글에는 안 잡혀도 사방을 둘러싼 스태프들의 눈 때문이다. 다 벗고 샤워하는 신을 찍은 강은비는 “화장이 다 지워질 정도로 울면서” 연기했다.(영화속에서는 편집됐다.) 양수리 세트에서 취재진에게 촬영공개가 있던 날, 단추가 풀어진 가슴 앞에다 바로 카메라를 들이댄 기자들 때문에 신주아는 남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래도 둘 모두 “지금은 좀 더 적극적으로 야한 부분을 표현하지 못해서 ‘살짝’ 후회된다.”고 말하는 걸 보니 천상 욕심많은 배우들이다. #‘반짝 스타’아닌 ‘노력하는 배우’ 되고 싶어요 모두 연기자로서 걸음마 단계지만 이들의 모습엔 젊음 특유의 싱그러움이 느껴졌다. 고두심, 전도연을 존경한다는 전혜빈은 “연기라기보다는 또다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비련의 여주인공보다는 가족의 사랑을 다룬 휴먼드라마의 인물들이 더 끌린다는 그녀. 김희애를 존경하는 신주아는 자기자신에 대해 알아가면서 그 안에서 다양한 내면의 감정을 끄집어내는 연기를 하고 싶단다.“내면연기를 머릿속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둔 뒤 잘 꺼내 활용하려구요.” 그리 이제는 청순하고 착한 역할에 욕심이 난다고 했다. 데뷔와 함께 주인공이 된 강은비는 앞으론 “작은 역이라도 맡아 선배들의 연기를 배워나가고 싶다.”고 말했다.“온화한 눈빛에서 강한 힘을 분출하는” 이영애, 심은하 같은 배우가 그녀의 꿈이다. 성과 사랑의 좌충우돌을 거치며 어른으로 커 간 영화속 주인공들처럼, 첫 영화의 홍역을 치르며 진정한 연기자로 성숙해가고 있는 이들. 대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김소연기자 pure@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종교플러스]

    ●밀교의식 다룬 화보집 출간 세계의 밀교의식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화보집 ‘밀교의 호마(護摩)와 관정(灌頂)’(불교진각종 펴냄)이 나왔다. 지난 2002년 10월 종조인 회당(悔堂) 손규상 대종사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서울 하월곡동 총인원에서 봉행된 세계밀교의식 시연법회의 생생한 장면들을 상세한 설명과 함께 실었다. 진각종 교육원장 혜정 정사가 감수하고, 진각대학 허일범 교수가 해설을 덧붙였다.‘호마’와 ‘관정’은 밀교의 의식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호마’는 화염 속에 공양물을 던져 넣는 행위를 통해 모든 신들과 불보살을 공양하는 화사의식(火事儀式)을 말한다.‘관정’은 정수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 관정의식을 통해 밀교 수행자는 아사리(스승)에게서 밀교의 교리와 행법을 전수받고, 수행해도 좋다는 인가를 얻는다. 책은 그동안 일반에 공개된 적이 없던 한국과 티베트, 몽골, 일본 등지의 호마와 관정의식을 한데 모아 소개한다.3만원. ●‘종교 수구화 막기’ 네트워크 조직 불교와 기독교, 천주교의 진보단체들이 종교의 수구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상설 네크워크를 만든다. 천주교계 우리신학연구소와 불교계 참여불교재가연대, 개신교계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는 13일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회관에서 ‘사회와 종교 개혁을 위한 네트워크(가칭)’ 구성을 위한 모임을 갖고 초종교적인 진보연대모임 창립 방안을 논의한다.
  • 침체 일로 ‘종로 귀금속상가’ ‘부흥’ 신호탄

    침체 일로 ‘종로 귀금속상가’ ‘부흥’ 신호탄

    서울 종로구가 침체에 빠진 국내 최대 규모의 ‘종로 귀금속상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구청, 상권활성화 연구용역 의뢰 종로구는 먼저 상권이 침체된 원인을 자체 분석하는 한편,3000만원을 들여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종로 귀금속상권 활성화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구는 오는 4월쯤 나오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상권 활성화를 모색한 뒤 장기적으로 이 일대를 ‘관광·귀금속특구’로 지정해 국제적인 보석상가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종로 2∼3가 예지동·묘동·봉익동 일대 귀금속상가는 1970년대 초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특히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지속적으로 상가가 늘기 시작했다. 그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대단위 밀집상가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이 지역은 면적이 총 9만 8791㎡에 달하고, 전국 1만여개의 귀금속 도·소매업소 가운데 30%인 3020개 업소가 밀집해 있다. 또 보석 제조업소(가공·세공)도 680여개가 모여 있다. 따라서 종로 귀금속상가에서는 기획(디자인)-생산(가공)-유통(판매)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주변 도시기반시설 개선 서둘러 서울귀금속협동조합 국이중 이사장은 “종로 귀금속상가는 80∼90년대까지만 해도 집적효과로 이익을 봤지만 2000년 초부터 본격적인 침체에 접어들었다.”면서 “디자인이나 보석가공 기술 측면에서는 최고 수준이지만 주변 환경이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종로구는 침체요인을 외적, 내적 원인으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철저한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구성된 상권이다 보니 주차장, 문화시설 등 도시기반시설이 절대 부족하다. 또 좁은 공간에 상점이 밀집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며 도로·전기 등 기반시설도 뒤떨어져 있다. 거리를 점유한 노점상들과 종묘공원 주변의 슬럼화 현상은 ‘종로=귀금속거리’라는 이미지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난립 상가연합회 단일화 절실” 내적 원인으로는 각종 브랜드제품과의 경쟁력 부재, 인터넷·홈쇼핑 등의 시장점유, 상가 내 10개 이상의 연합회 난립, 이벤트사업 부족 등이 지적됐다. 특히 연합회의 난립은 귀금속상가의 역량을 분산시키는 악재로 분석됐으며, 향후 상가 활성화사업이 본격화되면 대화창구를 단일화시키는 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종로구는 우려했다. 종로구 고철수 지역경제과 팀장은 “자체분석 결과 나타난 각종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용역 결과에 제시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종로 귀금속상가 활성화는 결국 서울시가 추진하는 ‘종로 업그레이드’사업과도 관계가 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논술이 술술] 자유에서의 도피/글쓴이:에리히 프롬

    에리히 프롬은 독일 출신의 유태인으로 나치즘이 대두하자 1933년 미국으로 망명해 활동한 학자다. 그는 ‘근대인에 있어서의 자유의 의미’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둬 사회 구조의 변혁과 인간의 심리적 해방을 연동시키는 신프로이트 학파의 이론적 지도자로 활약했다.1940년에 발표된 이 책에서 그가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도 자신의 이러한 경험과 관련이 있다. 흔히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가 강제력이나 국가의 선전에 의해서만 형성, 유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당시 사람들의 폭넓은 지지에 기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왜 나타났을까. 그는 이 문제를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와 ‘∼에로의 자유(freedom to)’라는, 지금은 이미 보편화되어 널리 쓰이는 개념들에 근거하여 분석한다. 우선 프롬에게 ‘자유’는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로 나타난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고 있다.‘소극적인 자유’가 아닌 자아의 자발성을 뜻하는 ‘적극적인 자유’다. 인간은 자유를 억압하는 외적 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외적 억압이 제거될수록 내적인 억압은 커진다. 이러한 내적 억압은 바로 무력감과 고독감이다. 인간은 무력감과 고독감을 피하기 위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하나는 자발적 자아를 이룩해 세계와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함으로써 피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적극적 자유’의 궁극적인 목표이며,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의 자아의 통일성을 포기함으로써 세계와 결합하는 방법으로, 곧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누군가에게 복종함으로써 안정을 얻는 사도-마조히즘적인 권위주의에 굴종하는 것이고, 사실상 자아의 통일성을 무너뜨리는 것을 말한다. 그에 따르면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의 등장이나 종교 등에 대한 지나친 의존은 이러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로 설명될 수 있다. 중세의 억압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인간은 ‘∼로부터의 자유’를 쟁취했다. 그러나 신에서의 탈출은 동시에 혼돈의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현대인은 중세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지기는 했지만, 그 자유가 나아갈 새로운 인간 관계와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지도자나 민족·국가에 복종함으로써 새로운 안전을 추구하고 있다. 이처럼 프롬은 전체주의 운동이 근대 이후 인간이 획득한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하는 마음 속 깊은 열망에 기초하고 있음을 밝히며,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소외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에로의 자유’를 실현할 ‘생산적 사랑’에 기초를 둔 만족스러운 인간 관계의 창조를 강조한다. 프롬은 이를 사랑과 인간 존중에 기초한 ‘인간적 공동체 사회주의’로 지칭하며, 이후의 저작인 ‘건전한 사회’에서 이를 좀더 구체화하고 있다. 유니드림 대학입시연구소(www.unidream.co.kr) ■ 독서 지도시 참고사항 -대상 학년:고1∼고3 -관련 교과:고등 사회, 윤리와 사상, 사회문화 -함께 읽어 볼 책과 고전:건전한 사회(에리히 프롬·범우사),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사르트르·청솔출판사), 지식인을 위한 변명(〃·한마당), 사회학적 상상력(밀즈·홍성사), 고독한 군중(리즈먼·홍신문화사), 도덕적 인간과 부도덕한 사회(라인홀드 니버·문예출판사) -기출논제:1998학년도 한양대 인문계 논술,2001학년도 논술,1997학년도 서울대 논술,2004학년도 서강대 모의논술,2001학년도 부산대 정시 논술 ■ 생각해보기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차이를 생각해보자. -현대인을 지배하는 무력감과 고독감의 원인은 무엇인지 밝혀보자. -무력감과 고독감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은 어떤 것이 있는지 써보자. -인간 소외란 무엇인가. 그것이 나타나는 사회적 원인은 무엇인가.
  • [보건소 탐방-서울 강북구]8주동안 매일 ‘금연 문자메시지’ 전송

    [보건소 탐방-서울 강북구]8주동안 매일 ‘금연 문자메시지’ 전송

    ‘삑!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강북구보건소가 실시하는 ‘금연(禁煙)문자메시지’ 서비스가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말 그대로 휴대전화를 통해 담배를 끊을 수 있도록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 지난해 서비스를 신청한 주민 106명 가운데 35%가 금연에 성공하는 성과를 거뒀다. 보건소 관계자는 “새해 들어 담뱃값이 오른 데다 건강을 생각해 금연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주기적으로 금연메시지를 받다 보면 담배끊기가 훨씬 수월해진다.”고 설명했다. ●서비스 신청 주민 35% 금연 성공 보건소는 지난해 8월부터 금연을 희망하는 주민이 전화((02)944-0764)로 서비스를 신청하면 8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금연정보를 담은 문자메시지를 보내준다. 메시지는 ▲1주 금연준비 ▲2주 금연요령 익히기 ▲3·4주 금단증상 대처방법 ▲5주 회식자리에서 금연요령 ▲6주 체중관리 ▲7·8주 재흡연관리수칙 등의 단계별 행동요령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가지고 있는 담배는 아까워하지 말고 버리세요.’‘매달 스스로의 금연에 대해 상을 주세요.’‘취하지 마세요. 흡연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가래가 늘더라도 항생제는 이용하지 마세요.’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았다. 이밖에 보건소는 한의원 12곳과 금연상담의원 10곳과 협력해 금연침이나 금연패치를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경희대 의과대학이 위탁운영하고 있는 ‘정신보건센터’도 보건소 특화사업으로 꼽힌다. 정신건강상담, 재활프로그램, 가정방문·전화상담, 정신질환 환자 및 가족 교육, 주민건강교육 등을 하고 있으며 참가주민이 560명에 이른다. 센터에는 보건전문 간호사, 정신보건 사회복지사 등 7명이 상근하며 예방의학·정신과 전문의, 정신간호학 교수 등 전문가 5명이 진료한다. ●정신보건센터 운영… 철저한 사후관리 정신질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재활프로그램(day care)은 질환에 대해 알기, 사회기술훈련, 대인관계훈련, 가족상담 등이 포함된다. 특히 직업재활은 이력서 작성방법, 구직활동 안내, 대인관계 관리 등을 가르쳐주면서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것으로, 환자가 취업을 한 뒤에도 ‘취업후 자조모임’을 통해 점검한다. 이밖에 ‘주부모임’,‘알코올모임’,‘청소년모임(예정)’ 등을 통해 한 달에 한 번씩 환자들을 사후관리한다. 모임당 인원은 10∼15명이며, 정신질환 정도는 경미하지만 사후관리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이들을 대상으로 한다. 주부모임의 경우 육아·시댁·가족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정신분열증 등을 앓고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3년째 운영되고 있다. 센터 한정혜 팀장은 “이들은 정신과진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약물복용조차 가족들에게 숨기는 경우가 많다.”며 “소규모 모임을 통해 평소 얘기하지 못했던 것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보건센터는 보건소 2층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울시에서 강남·강서·노원·동작·서대문·성동·성북구 등 8개 자치구의 보건소에서도 운영되고 있다. 문의 (02)985-0222.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클릭이슈] 교육자치·행정자치 통합 논란

    [클릭이슈] 교육자치·행정자치 통합 논란

    교육계가 새해 벽두부터 들끓고 있다. 교육자치와 행정자치의 통합 여부를 놓고 뜨겁게 맞붙고 있다.2004년이 저물어 갈 무렵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지방교육자치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불을 붙였다. 교육의 시·도지사인 교육감을 시·도지사와 함께 직접 선거로 뽑고 교육위원회를 시·도 의회에 통합시킨다는 게 골자다. 일선 자치단체는 교육감마저 시·도지사의 러닝메이트나 임명직으로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교육계는 속내야 조금씩 다르지만 결사 반대하고 있다. 행정자치와 교육자치 통합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과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미뤄둘 일만도 아니다. 한번쯤 공론화해서 중간점검을 할 때가 되었다. 정부혁신위의 공론화를 계기 삼아 핵심쟁점에 대한 양측의 주장을 정리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인학 교육대기자 chung@seoul.co.kr ■ 핵심 쟁점 (1)행정자치와 교육자치에 대한 요즘의 논의는 결국 통합 여부입니다. 기본적인 입장을 밝혀 주십시오. (2)그동안 교육위원회와 시·도 의회는 같은 교육 관련 업무를 중복해서 의결함으로써 비효율성이 지적되어 왔습니다. 행정자치와 교육자치 통합 명분이 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행정자치와 교육자치 통합 논의의 핵심은 교육감과 시·도지사와의 역학관계일 것입니다. 광역 단체장과의 바람직한 위상, 그리고 선출 방식을 제시해 주십시오. ■ “전문성 훼손” “이원화 폐해” ●안승문 서울시 교육위원 (1)정치에 대한 국민 불신은 심각합니다. 지역주의가 지방정치를 좌우하고, 전시행정이 횡행하는 상황에서 정치에 교육을 맡기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교육감을 시·도지사의 하부기관으로 하거나, 교육위원회를 시의회에 편입시키는 것은 반대합니다. 지방교육자치법이 정치인이나 정당에 가입한 적이 있는 사람은 교육위원이 될 수 없게 하고 있는 것도 정치인과 교육자의 역할을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헌법 31조 4항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것은, 교육이 정략이나 파당적 이해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2)그렇습니다. 특히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가 함께 진행되는 9월부터 12월초까지는 교육청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지요. 교육 관련 의결기관은 반드시 일원화되어야 합니다. 시·도의회의 교육관련 상임위를 없애고 교육위원회가 명실상부한 의결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일반행정과 달리 교육행정은 교육 경험과 교육적 안목을 필요로 합니다. 시의원들은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교육방법 개선, 교사연구와 연수지원 등 교육청의 장학행정을 감시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헌법이 교육의 전문성을 보장하고 있는 바로 그 까닭일 것입니다. (3)광역 자치단체가 교육청에 주는 ‘법정전입금’은 교육에 쓰기로 되어 있는 세금을 단지 거두어 교육청에 전해주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시장이나 도지사가 진정으로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비 법정전입금’(시·군·구의 교육경비보조금)을 늘려 학교교육 여건 개선에 기여하거나, 학교 건립 부지를 특별히 확보해주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특별한 지원을 원활하게 하려면, 매월 혹은 격월로 교육감과 시장, 교육장과 구청장이나 군수의 정례협의를 제도화하면 좋을 것입니다. 시·도 교육감이나 교육위원은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충선 서울시의회 교문위원장 (1)교육은 지식정보화사회에서 국가발전의 초석이자 국가경쟁력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공교육의 황폐화, 획일적 평준화체제, 사교육의 팽창 등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1991년 이래 교육자치가 실시되었지만 지방교육의 발전으로 승화되지 못했습니다. 교육청은 교육부 눈치 살피기에 급급하지만 자치단체장은 교육행정에 권한이 없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독일, 미국 등 선진국처럼 지방정부에 교육자치와 행정자치를 통합하여 일원화하여 교육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이 풀뿌리 민주주의 본래의 취지에 타당할 것입니다. (2)그렇습니다. 예산, 결산, 조례 등 교육사무의 의결기관이 교육위원회와 지방의회의 이원적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마찰이 빚어졌습니다. 또 업무가 중복되는가 하면 이중적 의사결정으로 인한 행·재정상의 낭비 등 비효율성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육에 대한 국민적 식견도 높아졌습니다. 사회 여건이 획기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기존 교육 위원회를 지방의회의 상임위원회로 통합하여 주민의 대의기관인 지방의회가 교육문제를 다루도록 함으로써 이원화의 폐해를 해소하고 지방정부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지방교육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3)지방 교육사무의 원활한 수행을 위해서는 교육행정기관을 지방정부에 통합하여 교육행정기관의 장을 부단체장으로 직제를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자치단체장과 러닝메이트로 주민이 선출하게 하는 방법과 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주민의 직선으로 선출하는 방안도 있지만 교육자치와 행정자치간 연계를 강화하여 역량을 결집시키기 위해선 자치단체장의 러닝메이트로 주민이 선출하게 하는 방안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치단체장은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걸고 지방교육문제의 해결에 주력할 것입니다.
  • [인사]

    ■ 서울대 △간호대학장 박성애 ■ 한국생산성본부 (승진)△상무 李春善△컨설팅사업본부장 崔鎭善△정보화사업본부장 任哲淳△생산성혁신추진본부장 金益均△기획관리실장 朴永兆△경영교육1부장 崔太榮△기획재무팀장 李長烈(전보)△경영컨설팅사업부장 黃寅豪 ■ 진로발렌타인스 (승진)△부사장 表英武△전무 李元昊 金一株 앤소니 버드△이사 陳仁毫
  • 이번엔 영화관 ‘묻지마’ 방화

    휴일인 9일 새벽 50대 노숙자가 복합영화상영관에 불을 질러 객석 20여개를 태웠다. 다행히 영화관람이 끝난 직후여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지난 3일 서울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이 일어난 지 1주일도 안돼 발생한 엿새 만의 ‘무차별 방화’ 사건이었다. 이날 오전 5시45분쯤 서울 구로구 구로동 애경백화점 내 구로CGV영화관 8층 5상영관에서 노숙자 신모(52)씨가 객석 밑에 휴지더미를 놓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은 객석 229개 중 앞줄 의자 20여개를 태우고 스프링클러에 의해 18분 뒤 꺼져 500여만원어치의 재산피해를 냈다. 다행히 관객들이 모두 퇴장한 뒤여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 신씨는 경찰에서 “세상살기가 너무 힘들어 화가 나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신씨에 대해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①삼성그룹

    어느 시대에나 나라와 집단을 움직이는 인맥은 있다. 과거 권위주의적인 시절에는 권력 중심의 인맥이 조명을 받았지만, 요즘은 자본을 토대로 형성된 인맥집단이 눈길을 모은다. 지난해 말 단행된 주요 그룹 인사에서 창업자의 2,3세들이 사장이나 임원으로 속속 승진하면서 재계의 ‘가계도’가 주목받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다. 사실 재계의 인맥과 가계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계급간 갈등이 악화되는 현실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해 왔듯이 90년대 이후 재벌가문의 인맥도는 정략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의 주요 그룹들이 창업에서부터 2세,3세로 내려오면서 어떻게 가업을 승계해 왔고, 총수와 더불어 대그룹을 일군 주역들이 누구인지를 주 1회씩 연중 기획으로 조명해 본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후원자인 메디치가, 근세유럽 최고의 명문가로 알려진 합스부르크왕가, 미국의 케네디·부시가 등 서양에는 그 사회가 인정해 주는 명문가가 있다. 한국에도 수백년 내력의 명문가문이 존재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존재가 미약하다. 대신 일제치하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자본을 축적한 ‘재계 명문가’들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권력이 최우선이었던 시대가 지나고 금력의 위력이 커질수록 재계 명문가의 위상도 커지고 있다. 재계 명문가를 일군 창업주들은 대부분 좋은 집안 출신도 아니고 고등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대를 내려오면서 후손들은 명실상부한 상류층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한국의 몇 안되는 ‘상류층 클럽’의 최정점에 재벌 2,3세들이 서 있고 또 그 정상에는 삼성가의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고 호암 이병철 회장이 일군 ‘삼성가’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계의 대표 가문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1938년 29세때 자본금 3만원과 은행자금 20만원으로 ‘삼성상회’를 설립했다.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제분업을 병행하면서 1년 만에 두배의 이익을 거뒀고 이를 토대로 연산 7000석 규모의 ‘조선양조장’을 매입하며 삼성의 기틀을 세웠다. 현재 삼성은 자산규모 92조원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에 이어 2위다. 하지만 지난해 자산을 꾸준히 늘려 올 4월 공정거래위원회의 발표가 나면 명실상부한 재계 1위로 부상할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매출 136조원, 세전이익 19조원이라는 경이로운 경영성과를 이뤄냈다. 직접 수출만 527억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2542억달러)의 21%를 차지했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한때 120조원을 넘었다가 현재 94조원에 달한다.2위인 LG그룹(36조원)과 비교해 보면 그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삼성은 또 CJ, 신세계, 한솔, 새한그룹과 연결돼 있고 중앙일보그룹, 보광그룹과도 인연을 맺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세계 5조 2000억원(21위),CJ 4조 9000억원(23위), 한솔 3조 4000억원(36위), 중앙일보·보광 1조원 등을 더하면 ‘범 삼성가’의 자산은 106조 5000억원에 달한다. ●다양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혼맥 이런 위상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혼맥은 의외로 담백하다. 특히 이건희 회장대로 내려오면서 특별한 집안을 ‘간택’하지 않았다. 이미 재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선 삼성가로서는 더 이상 혼맥을 통해 뭔가를 기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병철 회장 사후 삼성은 91년 11월 신세계와 전주제지(한솔),93년 6월 제일제당(CJ),95년 7월 제일합섬(새한),99년 중앙일보 등을 독립시키며 세포분열을 거듭했다. 새한을 제외하고는 각자의 영역에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병철 회장은 8명(3남 5녀)이나 되는 자녀를 분가시켰지만 명성만큼 화려한 혼맥은 아니었다. 이맹희씨가 그의 회고록에서도 밝혔듯이 이 회장은 혼사를 통해 권력층과 줄을 잇는 체질이 아니었다. 다만 자유당 시절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역임한 고 홍진기씨 집안과 사돈(이건희 회장)을 맺은 것이나 둘째딸 숙희씨를 LG의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의 3남인 구자학씨에게 시집보낸 것 정도가 눈에 띈다. ●비운의 장손가, 화려한 부활 장남 이맹희씨는 어릴 적부터 약조가 돼 있던 손영기 전 경기도 지사의 딸 손복남씨와 결혼했다. 한때 17개 계열사 경영을 맡으며 장남의 역할을 다했지만 일찌감치 그룹 경영에서 발을 빼야 했다. 맹희씨의 존재는 항상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묻어둔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 등의 회고록에서 “고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제일모직 등 ‘제일’자 계열과 안국화재(현 삼성화재)를 나에게 넘기기로 했었다.”고 발언,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맹희씨는 현재 대구와 부산을 오가며 살고 있다. 당대에 이루지 못한 맹희씨의 꿈은 지난 2002년 장남인 이재현씨가 CJ그룹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어느 정도 풀렸다. 고려대 법대 출신인 이 회장은 삼성과 무관한 씨티은행에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이 제일제당 경리부로 자리를 옮기도록 했다. 그는 이후 93년 잠깐 현재 이재용 상무 자리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이사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제일제당과 함께 했다. 이 회장은 비록 CJ그룹이 삼성그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 차이가 나지만 삼성가의 장손으로 그 위상이 만만치 않다. 이병철 회장의 부인인 박두을 여사도 2000년 타계하기 직전까지 서울 장충동에서 이 회장과 함께 살았다.87년 이병철 회장 장례식때 영정을 들고 앞장선 사람도 이 회장이었다. CJ그룹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미국에 머물던 이 회장의 누나인 미경씨를 CJ엔터테인먼트,CJ CGV,CJ미디어 및 CJ아메리카 담당 부회장에 임명했다.CJ는 이 회장의 외삼촌 손경식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 ●새한의 도전과 좌절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인인 이영자씨와 연애 결혼한 차남 창희씨는 91년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비사건(사카린 불법유통사건)으로 한때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고 67년 삼성이 인수한 새한제지(전주제지) 이사로,68년에는 삼성물산 이사로 일했지만 그룹 경영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었다. 창희씨는 고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와세다대 동문이다. 창희씨 사후 새한은 부인 이영자씨를 회장으로 97년 새 CI를 선포하며 독립그룹으로 발을 내디뎠지만 곧바로 경영위기를 겪고 만다.2000년부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돌입했는데 채권단에 따라 ㈜새한 계열과 새한미디어 계열로 나눠졌다. 새한미디어는 현재 론스타로의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새한은 99년 일본 도레이사와 3대7 합작을 통해 도레이새한을 출범시켰다. 2000년 지분을 채권단에 양도한 이영자 전 회장과 아들인 이재관 전 부회장은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한은 삼성의 분가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몰락하고 말았지만 혼사만큼은 화려했다. 장남 재관씨는 동방그룹 김용대 회장가의 딸인 희정씨와 중매로 결혼했다. 재관씨는 ㈜동방 주식 1만 6000여주를 갖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재찬씨는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의 딸인 선희씨, 재원씨는 김일우 서영주정 사장의 딸과 결혼했다. 막내딸인 혜진씨도 조내벽 전 라이프그룹 회장가로 시집갔다. ●글로벌 삼성을 만든 이건희 회장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의 2대 회장이 된 것은 유교적 전통과 장자승계가 원칙인 한국에서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70년대에 이미 ‘3남 후계’ 방침을 확정했다. 이병철 회장은 ‘호암자전’에서 “장남 맹희는 주위의 권고와 본인 희망대로 그룹 경영을 일부 맡겨 봤지만 6개월도 못가 맡겼던 기업은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면서 “창희는 그룹 산하의 많은 사람을 통솔하고 복잡한 대조직을 관리하는 것보다는 알맞은 회사를 건전하게 경영하고 싶다고 희망해 희망대로 해주었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와세다대 1학년때 중앙매스콤을 맡아보라고 했더니 본인도 좋다고 했는데 조지워싱턴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그룹 경영에 차츰 참여하기 시작했다. 내가 겪은 기업경영이 하도 고생스러워 중앙일보만 맡았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본인이 하고 싶다면 그대로 놔두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양녕대군, 효령대군 대신 3남인 충녕대군(세종)을 택한 태종의 결단과 닮은 꼴이다. 87년 11월19일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뒤 12일 만인 12월1일 삼성의 2대 회장에 취임한 이 회장은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17년 만에 삼성의 차원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 매출 13조 5000억원과 비교하면 14년 만에 매출이 10배로 늘어났다. 세전이익은 1900억원에서 19조원으로 100배나 늘었다. 원달러 환율이 100원 이상 절상된 올해도 삼성은 매출 140조원, 세전이익 14조 6000억원을 목표로 세웠다. 이 회장의 ‘신경영 전도사’라는 평가를 받는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은 최근 이 회장의 ‘17년 경영’을 이렇게 평가했다. “반도체 투자 같은 천문학적인 액수는 보통의 최고경영자(CEO)들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한때 잘나갔던 일본 반도체 업체들도 CEO들이 결단을 내리지 못해 투자시기를 놓쳤다. 반면 삼성은 이 회장이 전략을 제시하고 투자를 결정해 줌으로써 강력한 리더십이 생긴다. 계열사 사장들은 회장의 비전 제시를 책임감 있게 충실히 이행하고 구조본은 이 과정에서 정보분석 등 보좌업무를 수행한다. 삼성의 힘은 이같은 ‘3각 경영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이 ‘우리 회장’을 진심으로 따르고 승복하니까 이같은 영향력이 나오는 것이다.” 이 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만남은 부친들끼리 미리 약조가 돼 있는 상태에서 66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에서 처음 이뤄진 뒤 7개월 뒤인 67년 5월 결혼으로 이어졌다. 홍 여사는 당시로는 큰 키(165㎝)에 미모와 지성을 갖춘 재원으로 이후 한국 재계의 ‘퍼스트레이디’로 자리매김했다. 서울대 미대(응용미술학과) 출신인 홍 여사는 79년 막내 윤형씨를 낳고 난 뒤인 83년 현대미술관회 이사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67년 삼성으로 시집온 뒤 이건희 회장의 후계구도가 확정된 71년부터는 삼성그룹의 사실상 ‘안방마님’이었지만 서열상으로 엄연히 형님(맹희·창희씨 부인)들이 있고 위로 시누이가 넷(인희·숙희·덕희·순희씨)이나 있어 편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었을 것이다. 홍 여사는 85년부터 98년까지 친정아버지(고 홍진기씨)가 회장으로 있는 중앙일보 상무로 재직했다.95년 호암미술관장으로 취임한 홍 여사는 96년에는 삼성문화재단 이사장까지 맡았지만 98년 이사장직을 남편인 이 회장에게 돌려줬다. 지난해 4월 현대미술관회 부회장으로 선임됐고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승지원’ 옆에 국내 최고 수준의 미술관인 ‘리움(Leeum)’을 개관, 관장으로 취임했다. 해외활동도 활발해 93년부터 CIMAM(국제근현대미술박물관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 현대미술박물관 국제이사회 회원, 영국 테이트갤러리 국제이사회 회원이다. 이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96년 프랑스 문학예술훈장인 ‘코망되르’를 받았고 2003년에는 제57회 자랑스런 서울대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딸들의 맹활약 삼성가는 딸들의 경영활동이 활발하기로 유명하다.5명의 딸 가운데 덕희(숙명여대)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다. 장녀인 이인희씨는 경북지방의 대지주였던 조범석가로 시집갔다. 남편인 조운해씨는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원장·이사장 및 병원협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도 맏사위 자격으로 삼성에버랜드 주식을 일부 갖고 있다. 인희씨는 91년 삼성에서 분리,92년 한솔그룹으로 이름을 바꾸며 새 출발했다. 한때 계열사가 16개에 이르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며 현재는 8개 계열사로 줄었다. 장남인 조동혁 회장에 이어 현재 그룹 경영은 3남인 조동길 회장이 맡고 있다. 차남인 조동만 전 한솔PCS 회장은 PCS 사업매각 관련 비리로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차녀인 숙희씨는 LG가로 시집을 갔다. 남편인 구자학씨는 해군 소령으로 예편한 뒤 제일제당, 동양TV 이사, 호텔신라 사장, 중앙개발 사장 등 처가에서도 활발한 경영을 펼쳐 눈길을 끈다. 그는 삼성이 전자사업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본가로 돌아간 뒤 금성사 사장,LG반도체·LG건설 회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맡다 지난 2000년 외식산업인 ‘아워홈’을 갖고 독립했다. 지금도 LG가에서 구자학 회장은 ‘구씨답지 않게 낭만적이면서도 미스터리한 인물’로 회자된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삽입형 생리대인 ‘탐폰’을 국내 처음으로 내놓는 등 여성적인 섬세함은 ‘LG가’보다는 ‘삼성가’에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숙희씨의 아들 본성씨도 한때 삼성 계열사에서 일했다. 딸인 명진씨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아들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했다. 3녀 순희씨는 대학교수와 결혼,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 4녀 덕희씨는 삼성가의 고향인 경남 의령의 대지주 이정재씨 집안으로 시집갔다. 마산고와 서울대 상대를 나온 남편 이종기씨는 중앙일보 부회장, 제일제당 부회장을 거쳐 삼성화재 회장까지 지내다 은퇴했다. 그는 지금도 삼성전자 주식 8만주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큰손’이며 동서인 조운해씨와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주식도 갖고 있다. 삼성가의 딸들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은 5녀 이명희 신세계 회장. 이 회장의 시아버지는 4·5대 국회의원과 삼호방직·삼호무역 회장을 지낸 정상희씨로 남편인 재은씨가 차남이다. 남편인 정재은씨는 경기고·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수학한 엘리트. 삼성항공·삼성종합화학 부회장, 삼성전기 회장, 삼성전자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며 삼성그룹에서 맹활약하다 분가와 함께 삼성을 떠났고 현재 신세계 고문직을 갖고 있다. 신세계가의 후계자인 정용진 부사장은 미스코리아 출신 고현정씨와 결혼했다가 2003년 이혼했다. ●최고의 사돈감,‘소박한’ 결혼 이건희 회장은 홍 여사와의 사이에서 재용(삼성전자 상무), 부진(호텔신라 상무보), 서현(제일모직 부장), 윤형(학생)씨를 낳았다. 이재용 상무는 경복고와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거쳐 일본 게이오대,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마쳤다.91년 삼성전자에 입사했으며 차분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 전략기획실 중장기 전략담당인 이 상무는 최근 소니와의 7세대 LCD(액정표시장치)합작사인 ‘S-LCD’의 등기이사로 등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S-LCD는 삼성과 소니가 ‘명운’을 걸고 시작한 사업. 차기 CEO로 꼽히는 구타라기 겐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 대표를 이사로 내세운 소니는 삼성측에 이 상무의 이사 등재를 특별히 부탁했다. 이 상무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첨단기술에 관심이 많아 혼자서도 사업장을 둘러보고 관련 전문가들에게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등 열심히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무는 98년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장녀인 세령씨와 결혼해 1남 1녀를 두고 있다. 당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이 사돈을 맺었다는 점과 연세대(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중이었던 세령씨의 빠른 결혼, 영호남 대표기업의 혼사 등이 화제를 모았었다. 임씨는 삼성가 며느리라는 지위 외에도 ㈜대상 주식 10.22%를 보유하고 있는 등 만만치 않은 재력을 자랑한다. 세령씨의 서문여고 동창들에 따르면 학창시절부터 말수 없이 조용한 데다 미모를 갖춰 일찌감치 ‘최고의 신부감’으로 꼽혔다고 한다. 지난해 초 호텔신라 상무보로 승진한 부진씨는 연세대 아동학과 출신으로 99년 삼성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 임우재씨와 결혼했다. 임씨는 현재 삼성전자 소속으로 미국 유학중이다. 미국 뉴욕의 패션전문학교 파슨스 출신인 둘째딸 이서현 제일모직 부장은 2000년 동아일보 사주인 김병관 회장의 차남인 재열씨와 결혼했다. 재열씨는 지난해 초 제일모직 상무로 승진했다. 아직 미혼인 막내 윤형씨의 배필이 누가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화여대 불문과 98학번인 윤형씨는 지난해 싸이월드에 개설한 미니홈피가 소개되면서 화제가 됐었다. 당시 윤형씨는 재벌가의 딸답지 않는 소탈하고 귀여운 글을 많이 남겨 ‘삼성가’에 대한 세인들의 궁금증을 어느정도 풀어줬다. 지금은 활동이 중단됐지만 ‘다음’의 윤형씨 팬카페(이뿌니 윤형이네) 회원수가 1만 2000여명이 넘을 정도로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이씨가와 홍씨가 LG가 구씨-허씨의 ‘합작품’이라면 삼성은 이씨와 홍씨가 함께 이끌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홍진기 회장의 장남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최근 각을 세워왔던 노무현 정부의 주미대사로 내정됨에 따라 현 정권과 중앙일보, 삼성가로 이어지는 관계가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고 이병철 회장과 고 홍 회장의 인연은 4·19 직후 홍 회장이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옥고를 치르고 있을 때 이 회장이 면회를 가면서 시작됐다. 전 국무총리 신현확씨의 소개로 이뤄졌는데 신현확씨도 이후 삼성물산 회장까지 지내며 삼성과 돈독한 인연을 유지했다.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이건희 부회장을 2대 회장으로 추대한 회의도 신현확씨가 주재했다. 홍 회장은 65년 라디오서울(동양방송 전신) 개국 4개월 뒤 경영을 맡았는데 80년 신군부에 동양방송을 ‘강탈’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날의 중앙일보를 일궈냈다. 홍 회장이 삼성그룹에서 직접 경영한 것은 중앙일보(66∼67년,68∼86년)밖에 없지만 그가 삼성에 끼친 영향은 말로 다하기 어려울 정도다. 삼성의 언론사업에는 비화가 있다.‘호암자전’과 ‘삼성 60년사’에 따르면 이병철 회장은 60년대 초 정계 투신을 결심했었다. 기업가의 사회적 공헌이 전적으로 무시되고 오히려 ‘부정축재자’,‘정치적 희생양’이 되는 경우가 많은 현실(한비의 국가 헌납 등)에 환멸을 느낀 이 회장이 직접 정치를 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1년간의 고심 끝에 정치보다는 언론사업을 택했다. 이른바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하다.’는 세간의 ‘이치’를 일찌감치 간파한 셈이다. 홍 회장은 이병철 회장의 타계 직전인 86년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이 회장은 조사를 통해 “당신은 내 일생을 통해 제일 많은 시간을 접촉한 평생의 동지요, 삼성을 이끌어 온 같은 임원이요, 사업의 반려자였고, 가정적으로는 나의 사돈이었다.”며 진한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관·언·재의 홍씨 4형제 홍씨 가문은 네 아들을 뒀는데 하나같이 훤칠한 용모에 좋은 머리를 갖고 있다. 주미대사로 내정된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와 미 스탠퍼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의 엘리트로 30대(39세)에 세계은행(IBRD)의 이코노미스트를 지냈고 이후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 정부쪽 일도 수행했다. 홍 회장은 삼성코닝 상무·부사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뛰다 99년 중앙일보의 계열분리를 계기로 중앙일보 회장에 취임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세계신문협회(WAN) 회장에 올라 국제사회에도 그 이름을 알렸다. 홍 회장의 장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신직수씨다. 사시 18회인 둘째 홍석조 인천지검장은 경기고,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서울지검 남부지청장(현 남부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홍 지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홍 지검장의 부인은 양택식 전 서울시장의 동생 양기식씨의 딸이다. 서울대 사회학과 출신인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은 86년 미 노스웨스턴대 경영학 석사를 마친 뒤 삼성코닝 이사로 입사했다.95년 삼성전관(현 삼성SDI) 상무로 이동, 기획홍보팀장을 거쳐 2002년 부사장(경영기획팀장)으로 승진했다.‘로열 패밀리’임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꿰고 있을 정도로 자상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선친때부터 살아 온 서울 성북동 집을 지키고 있다. 4남인 홍석규 보광그룹 회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회장으로 승진, 오너 경영을 본격화했다. 경기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홍 회장은 79년 제13회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 의전과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했다. 홍 회장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했다.95년 외무부 기획조사과장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 홍 회장은 보광 상무이사로 경영활동에 뛰어들었다. 제8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 대한스키협회 부회장, 한국광고업협회 부회장, 서울대 기성회 회장 등 외부활동도 활발하다. 보광그룹은 아직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편의점인 보광훼미리마트, 자판기 유통업체인 휘닉스벤딩서비스, 보광창업투자, 휘닉스커뮤니케이션즈, 문화상품권 발행사인 한국문화진흥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PDP(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 부품업체인 휘닉스PDE, 반도체 관련 업체인 휘닉스디지탈테크, 반도체패키지 제조업체인 STS반도체통신 등 전자 계열사들은 사돈기업인 삼성전자, 삼성SDI 등과 거래가 활발하다. 특히 지난해 코스닥에 등록된 휘닉스PDE는 홍 회장이 13.89%, 홍석조 인천지검장, 홍석준 삼성SDI 부사장, 홍라영씨가 나란히 10.89%를 보유해 눈길을 끈다. 홍씨가의 주력은 중앙일보 그룹이지만 실제 ‘자금줄’은 보광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앞으로 보광이 주요그룹으로 성장한다면 정·관계, 언론계를 주름잡은 이 가문이 재계에서도 능력을 검증받게 된다. 막내인 홍라영씨는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둘째아들인 철수씨와 결혼했다. 노 전 총리의 장남 경수씨는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의 큰딸 숙영씨, 차녀 혜경씨는 ㈜풍산 류진 회장과 결혼했다. 이대 불문과, 미국 뉴욕대 예술경영학 석사 출신인 라영씨는 95년 삼성문화재단 기획실로 입사, 현재 삼성미술관 부관장직과 한국박물관협의회 부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ukelvin@seoul.co.kr ■ 이병철 회장의 경영어록 ●“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에는 가리지 말고 물어봐야 한다. 그렇게 해서 2∼3년이 지나면 물어보는 횟수가 차츰 줄어들 것이 아니겠는가. 나 역시 혼자 삼성 전체를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 전체가 과거 오랫동안의 경험을 살려서 움직여 나가는 것이다.”(1983년 6월 반도체회의) ●“인재제일, 인간본위는 내가 오랫동안 신조로 실천해온 삼성의 경영이념이자 경영의 지주이다. 기업가는 인재양성에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인재양성에 대한 기업가의 기대와 정성이 사원 한사람 한사람의 마음에 전달되어 있는 한 그 기업은 무한한 번영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1982년 10월 기고문) ●“사람을 관찰해 보면 세 부류가 있다. 첫째 어려운 일은 안 하고 쉬운 일만 하며 제 권위만 찾아 남만 부리는 사람, 둘째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셋째 알아듣긴 해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1982년 9월 사장단 오찬회의) ●“모든 설비투자계획에 있어서 5년 정도만 내다보고 세우지 말고 10년 이상 50년 정도의 장기 안목 위에서 세워야 한다.”(1977년 6월 삼성조선 건설현장) ●“미국에서는 사람의 후천적 교육에 치중하고 소질은 별로 평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천적 소질 내지는 능력에 60%를 두고 교육에 40%를 둔다. 사람은 노력 여하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나 노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따로 있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1976년 6월 ‘재계회고’) ●“일이 잘돼 나갈 때 오히려 다가올 불행을 각오해야 한다. 기업가도 뜻하지 않은 좌절을 겪어본 기업가가 좌절을 모르고 자라난 기업가보다 훨씬 더 강인한 기업경영 능력을 갖고 있다.”(1975년 9월 ‘최고 경영자와의 대화’) ■ 이건희회장의 경영담론 ●“그동안은 세계의 일류 기업들로부터 기술을 빌리고 경영을 배우면서 성장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어느 기업도 우리에게 기술을 빌려 주거나 가르쳐 주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기술 개발은 물론 경영 시스템 하나하나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경쟁을 해야 한다.”(2005년 1월3일 신년사) ●“반도체 사업 진출 당시 경영진들이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너무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지만 우리 기업이 살아남을 길은 머리를 쓰는 하이테크산업밖에 없다고 생각해 과감히 투자를 결정했었다.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반도체에서 시기를 놓치면 기회손실이 큰 만큼 선점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2004년 12월 반도체 30년 기념식) ●“4∼5위에서 2∼3위로 가는 것하고 2∼3위에서 1위로 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2003년 11월 휴대전화사업 격려 자리에서) ●“행정규제, 권위의식이 없어지지 않으면 21세기에 한국이 일류 국가로 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는 4류, 관료와 행정조직은 3류, 기업은 2류다.”(1995년 4월 중국 베이징 특파원 오찬간담회) ●“선친이 장사하는 것을 보며 세살 때부터 주판을 갖고 놀았다. 정치보다 장사를 잘 알고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키워졌다. 난 양복과 잠옷만 있고 중간 옷이 없다. 잠옷 입고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 잠옷을 입고 정치할 수는 없지 않으냐.”(94년 10월 마이클 헤슬타인 영국 상공부 장관과 만찬자리에서 정치 참여에 대해) ●“변하는 것이 일류로 가는 기초다. 앞으로 5년이면 회장 취임 10년인데 10년 해서 안 된다면 내가 그만두겠다. 자기부터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바꿔라.”(93년 6월 신경영 선포)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 홍익대 미술대학장

    새벽 5시. 붓을 든다. 눈을 지그시 감는다. 묵직한 고요가 찾아온다. 몇 갈래로 가슴을 후벼판다. 자진모리에서 휘모리로 돌아 이내 절정에 이른다. 붓이 춤춘다. 무아지경이다. 구경꾼은 없으나 세상이 지켜본다. 불끈 솟아오른다. 조용하지만 강렬했다. 한국의 색채다. 그건 원초적 본능이었다. 수십년째, 그렇게 토해낸다.3000점은 족히 된다. 개인전만 무려 46회를 열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중견 서양화가 이두식(58) 홍익대미술대학장.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 버릇이 있다. 매일 새벽 3시간 동안 붓과 내통한다. 찰나적인 테마를 떠올리기엔 새벽공기가 그만이다. 밤을 새운 적도 많다. 이런 까닭에 작업량이 가장 많다는 얘길 듣는다. 그는 1995년 이례적으로 40대에 미술협회 이사장직을 맡아 주목을 끌었다.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욕도 많이 먹었다. 현재도 여전히 욕(?)먹는 직함을 가지고 있다. 미술대학장 외에, 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미협고문, 서울예고총동창회 회장, 홍대 총동문회 수석 부회장 등. 이달 말에는 아주 색다른, 대학배구연맹 회장직이 추가된다. 바쁜 와중에 오는 5월 4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2년 전에는 부인과 사별한 아픔을 겪었다. 본인의 감회도 특별하겠지만 어떤 화풍을 새삼 선보일지 주목된다. 이래저래 2005년은 제2의 그림 인생을 출발하는 이정표인 셈. 그는 “올해를 계기로 지금까지 토해냈던 분량만큼 앞으로도 3000점은 더 그려야 하지 않겠느냐.”며 인터뷰의 첫 말문을 열었다. 장소는 홍대 미대학장실이었다. ●배구가 좋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직도 맡아 대학배구연맹 회장에 발탁된 연유부터 물었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이 도맡아왔던 스포츠 단체장직에 미술계 인사가 발탁됐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키가 181㎝이다. 고등학교 때나 ROTC(학군단)시절에도 최장신이었다.”며 웃는다. 자연스럽게 배구와 친해졌다.9인제 배구팀에서 주로 중앙세터나 오른쪽 공격수를 맡았다. 홍익대에서도 배구팀을 만드는 데 앞장섰다. 최근 홍대 배구팀이 대학배구 4강까지 오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은 서양과는 달리 손재주가 아주 좋아 배구를 잘 하는 민족”이라면서 “프로연맹 출범에 맞춰 프로와 아마추어간의 드래프트 등 교통정리를 잘 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그림 얘기로 넘어갔다. 그동안 개인전을 열지 않았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참으로 바빴고 고통도 많았다.”며 한숨을 내쉰다.2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을 떠올렸다. “(부인 고집으로)병원에도 잘 안 갔습니다. 우린 서로 화가생활을 하면서 부부 개인전을 한번도 못 열었지요. 올해에는 함께 열려고 했는데….” 부인은 이화여대 회화과를 나왔다. 이 학장과는 서울예고 동기동창.16살에 만나 26살에 결혼했다. 이 학장 자신이 특별한 직장이 없어 처가 쪽에서 결혼반대가 심했다. 부인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겨우 성사됐다. 장인은 4·19 당시 서울신문사장을 지낸 손도심씨였다. 부인은 결혼 후 아이를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느라 화가의 길을 일찌감치 접었다. 그런, 인생의 반쪽을 위해 병바라지하고 또 먼저 보낸 아픔을 겪어내느라 공백이 길어졌다. 부인은 평소 문인들과 친하게 지냈다. 특히 소설가 박완서씨와 좀더 지근거리에서 얼굴을 자주 보기 위해 박씨 자택 근처인 경기도 구리시로 집을 옮길 정도였다. 덕분에 이 학장 역시 문인들과 친분이 넓어졌다. “결혼초 먹고 살기 힘들 때 황석영씨의 소개로 현암사(출판사)에서 일감을 얻었지요. 한번은 황씨와 둘이 만리포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진 저를 황씨가 구해주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지요.” 소설가 조선작씨와는 1988년 서울신문에 연재소설의 삽화를 그리면서 인연을 맺었다. 소설가 김주영씨와도 친한 사이. 지난해 7월 화제를 모았던 ‘그림, 소설을 읽다’라는 주제로 열린 ‘소설화(小說畵)’ 전시 때 서로 짝을 지어 눈길을 끌었다. 최인호씨와도 각별하다. 가수 이장희·조영남·윤형주 등과도 가깝게 지내는 등 문화예술계에 폭넓은 친화력을 유지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에도 각계의 지인들로부터 새해 안부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부인과 死別… 아픔딛고 4년 만에 개인전 그림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원초적 본능이라는 직답이 돌아왔다. 잠자는 본능, 움직이는 본능, 울고 웃는 본능이 있듯, 그림의 본능 또한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는 것. 아울러 인류문명이 발전해오면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욕망, 사랑하는 사람을 오래 보고, 또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서 그림이 그려졌다고 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숨쉬는 공기처럼 온갖 일상사가 곧 그림이란다. 그렇다면 화가로서의 성공조건은 무엇일까. 고행의 길이란다. 춥고 배고픔 속에서도 감동을 주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 즉 어느 정도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 그림이 좋아져야 성공한 화가가 될 수 있단다. 자연스럽게 춥고 배고팠던 시절이 회고됐다. 놀랍게도 그는 ‘수출화’(이발소그림)를 무려 7년 동안이나 그렸다고 고백했다. 얼마나 많이 그렸는지 양쪽 시력이 다 나빠질 정도였다. 대가급 화가로서 쉽게 토로할 수 없는 대목이어서 더욱 궁금해졌다. 그의 부친은 경북 영주에서 사진관을 운영했다. 부친 역시 화가가 꿈이었다. 또 중학교 때 오세영 미술선생의 적극적 권유 등으로 쉽사리 서울예고쪽으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2년 때 가세가 기울어 등록금 마련이 어려워졌다. 이때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결혼 후에도 생활비가 쪼들리기는 마찬가지. 화가의 길을 걷기 위해 재료비는 더욱 필요했다. 결국 1973년 수출화를 그리는 회사인 ‘서울갤러리’에 들어갔다. 밀레의 ‘만종’과 같은 풍경화와 기타 인물화 등 모방과 창작, 닥치는 대로 그렸다. 하루에 6∼7점,1년에 200여점을 그릴 정도로 강노동의 연속이었다. 그가 그린 그림은 전량 일본으로 수출됐다. 영화사 쪽 일도 틈틈이 했다.70년대 후반 ‘별들의 고향’과 82년 박철수 감독의 ‘들개’에서 미술 소품을 담당했다. 운이 좋아서인지 ‘들개’로 백상예술대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러는 한편 1974년 ‘20세기 현대미술전’과 ‘제1회 서울비엔날레’ 등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길을 닦았다.79년 명동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이후 매년 1∼2회씩 개인전과 해외전시 등을 부지런히 열었다. 결국 젊은 나이에 명성을 얻었고 ‘대가’의 길로 들어섰다.47살에 미협회장을 맡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제 그림을 소장한 사람이 3000명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특히 미국 쪽에는 많고요.” 요즘 1호당(우편엽서 크기) 그림가격이 얼마인지 불쑥 물었다. 그는 “죽은 후에 (가격이)비싸질지 모르니 지금은 많은 사람이 소장할 수 있도록 저렴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웃는다. 그래서 몇년째 호당 20만∼30만원을 넘기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피카소는 위대한 작가이고, 애정 넘치는 샤갈과 모딜니아니도 존경하는 화가”라면서 5월 전시 때에는 사뭇 달라진, 절제된 색채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장남은 미국 유학 중이고 군입대를 앞둔 차남과 함께 산다.16년째 ‘장기근속’하는 가정부 할머니가 집안 일을 맡고 있다. ■ 그가 걸어온 길 ▲1947년 경북 영주 출생 ▲65년 서울예술고등학교 졸업 ▲69년 홍대 미대 회화과 졸업 ▲79년 동대학원 졸업 ▲95년 미술협회 이사장 ▲현, 홍대미대학장·동대학 회화과교수·외교통상부 미술자문위원 ▲73년∼현재까지 단체전 및 국제전 70여회 ▲79년∼현재까지 개인전 46회 ▲주요 수상=신상전 최고상(68년), 선미술상(88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95년), 서울국제아트페어대상(2001년) km@seoul.co.kr
  • [국제플러스] 中·타이완 50년만에 여객기 운항 합의

    |베이징 오일만특파원| 중국과 타이완이 음력 설인 춘제(春節ㆍ2월9일) 연휴기간에 전세기를 운항할 전망이 밝다고 중국 관영 신화사가 9일 보도했다. 또 양안은 분단 50년 만에 처음으로 쌍방 여객기의 동시 운항을 협의하고 있으며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타이베이(臺北)시 항공운수사업 러다신(樂大信) 회장은 8일 마카오에서 푸자오저우(浦照洲) 중국 국가민항총국 타이완판공실 주임과 회동, 양안 전세기 운항에 관한 기술적인 문제에 원칙적인 합의를 했다고 신화사가 보도했다. 양안 전세기는 상하이(上海), 샤먼(廈門) 등 중국의 여러 지방에서 타이완의 여러 도시로 직항하며 타이완 여객기와 중국 여객기가 쌍방 모두 운항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 경우 중국 여객기가 분단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타이완에 직항하게 된다.
  • 軍과거사규명 실미도·녹화사업 진상밝힌다

    군내 대표적인 의혹사건인 녹화사업과 실미도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진상규명 작업이 이뤄질 전망이다. 국방부 김홍식 기획조정관은 7일 군 과거사 진상 규명 사안으로 녹화사업과 실미도사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 기획조정관은 이어 “민간인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4월쯤 발족시켜 본격적으로 진상 규명에 나서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동안 꾸준히 민원이 제기돼 온 군내 사망사건과 6·25전쟁 전후 유격대,6·25전쟁 중 민간인 희생사건 등 3건의 경우 위원회가 구성되면 그 기능에 따라 대상에 포함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이르면 다음 주 중 별도의 회의를 열어 위원회에 참여할 민간인 전문가에 대한 자격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이달 말 군 과거사 진상규명과 관련한 최종 입장을 정리하고 2∼3월에 민간인 전문가를 선정,4월쯤 위원회를 정식 발족할 계획이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지하철 방화 목격자 추가 확보

    지하철 7호선 방화사건 발생 당시 화재객차에 있었다며 경찰에 신고한 육군 모 사단 소속 이모(22)병장은 화재당시의 상황에 대해 정확한 기억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6일 이 병장이 소속된 군부대가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정기휴가중이던 이 병장은 사건당일인 지난 3일 경기도 광명에 사는 형을 찾아가던 중 사고 객차에서 방화장면을 목격했다. 전동차 의자에 앉아 졸다 주위가 시끄러워 눈을 뜬 이 병장은 노약자석에 앉아 있던 용의자 남자가 불을 던지는 것을 보고 방화 용의자를 잡으려고 했으나 불길이 워낙 커 잡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승객들과 함께 다른 객차로 긴급히 대피했다. 이 병장은 군부대 조사에서 ‘당시 용의자의 옷에도 불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된다’고 말했으며 부대복귀 다음날인 5일 용의자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는 언론보도를 접한 뒤 진실을 밝혀야 겠다는 생각에 112로 직접 신고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병장이 목격한 남자 용의자가 사건당일 체포됐다 물증부족으로 지난 5일 석방된 윤모(48)씨와 동일인인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정확한 목격 당시 상황, 용의자 윤씨와의 동일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군부대에 형사들을 보냈으며 이 병장이 경찰서에 도착하는대로 윤씨와 대면시킬 방침이다. 광명 김병철기자 양구 조한종기자 kbchul@seoul.co.kr
  • [인사]

    ■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 尹厚相 崔星民 李英日 金榮徹 陳載學 ■ 국민일보 △심의팀 부장 이동재 ■ 서울경제신문 △광고국 마케팅부장 김창겸 ■ 행정자치부 ◇관리관 승진△전남 행정부지사 송광운△제주 〃 김한욱 ■ 정보통신부 (2급파견) △산업자원부 생활산업국장 申容燮 (4급 전보)△국제기구과장 金正原△장관비서관 崔永海△정보통신부 李容桓△전파연구소 전파자원연구과장 兪大善 ■ 환경부 ◇전보△산업자원부 자원정책심의관 파견 朱鳳賢 ■ 산업자원부 ◇국장급 전보 △정보통신부 파견 李起燮 △본부 崔俊濚 ■ 대한지적공사 ◇지사장 발령△서울 영등포구 정남기△인천 서구 신순만△경기 동두천시 김용만△〃 여주군 김구홍△강원 동해시 송원식△삼척시 사재중△충북 단양군 한상봉△충남 예산군 우정한△〃 태안군 백학영△경북 울릉군 장진비△〃 청송군 김종길△경남 창녕군 류춘현△〃 고성군 정해룡△〃 통영시 김상인△〃 사천시 강신관△제주 서귀포시 양세웅 ■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보△총무팀장 양해영△운영팀장 조희준△운영팀 차장 이진형△홍보팀장 정금조△홍보팀 과장 박정근◇과장 승진△운영팀 장덕선△총무팀 김유진△KBOP 최원준 ■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沈載雄 ■ TBWA코리아 ◇임원 승진△프로모션본부장(전무) 김완중△미디어본부장(상무보) 한성수△BMC본부장(수석국장) 박준형△광고7팀(〃) 이선엽△전파매체팀(〃) 이철 ■ 하나은행 (본부 부·실·팀장)△임원부속실 김석구△신탁부 김수철△사업자금융팀 김의철△사무지원부 민영도△중소기업지원팀 박종수△경영관리부 송종근△기업상품팀 옥기석△전산기획팀 유시완△가계영업기획부 이명현△리테일상품팀 이상훈△변화추진팀 이창희△PB영업추진팀 장경훈△인력개발실 황인산(지점장)△이촌동 강선필△오목교 강성일△송이 강영호△등촌2동 강희구△가락동 강희영△성남북 고태진△독산동 구상회△회현동 권규창△등촌동 권순민△무역센터 권준일△광화문 권태길△세류동 권태만△신당역 김광호△신천역 김낙평△내방역 김대하△대구 김득헌△서면 김명재△호수마을 김민태△연신내역 김상수△반포서래 김상윤△남산동 김선도△부천남 김성기△여의도 김영욱△강릉 김용회△장안동 김원규△지산동 김재근△평촌역 김종요△삼성남 김주석△마두역 김판섭△서청담 김현숙△양산 김형준△공덕동 나영일△성남중앙 노대석△울산 노도영△경주 노도용△대명동 문병준△압구정중앙 문호준△동수원 박말근△목동방송타운 박미종△울산남 박수동△수유역 박용규△노원역 박원철△포항중앙 박재만△남역삼 박헌서△성북동 백미경△울산기업금융센터 백승헌△한남1동 백준식△신마산 서광보△원당 서승옥△영등포중앙 서연종△분당시범단지 성재창△사당동 송용민△논현동 송학봉△성서 신승태△중앙 신완선△대구중앙 신정식△서광주 안홍태△무거동 양기호△면목동 양길철△온천동 양현종△학여울역 오춘근△중곡동 우준근△철산동 유광근△화곡역 유동근△망원2동 유명훈△합정역 윤종혁△수원중앙 윤철원△파크타운 이경희△신탄진 이계종△광진교 이규범△울산중앙 이기홍△본오동 이명구△구로상가 이무홍△양정동 이범승△동성로 이병구△자양동 이상건△부평중앙 이상면△연산동 이상열△서역삼 이석재△광주 이옥배△방배서래 이용환△보람 이은주△창원 이재점△창원중앙 이종진△상인동 이진형△중산 이희선△화양동 임영섭△우방타운 임준영△미금역 임현일△방배 장석만△부산기업금융센터 장성식△춘천 장태희△마포역 정성철△두산타워 정순호△시화 정영춘△부산 정원재△구미 정충묵△잠원동 정현주△초량 조광열△대구서 채수웅△여수 최수호△중앙기업센터 최순구△수원 최혁지△잠실 한용국△신촌역 한인섭△목동남 한재택△방배남 허필란△삼성동 홍석만△야탑 홍성민△강남기업센터 황선욱(RM(기업금융전담역))△대전기업금융센터지점 강대형△중기업금융2본부 강효창△대기업금융2본부 곽우석△대전기업금융본부 곽정오△트윈타워지점 구한모△강남지점 김권균△중부기업금융본부 김영호△대구지점 김현수△무역센터지점 나재훈△대기업금융1본부 박용권△울산기업금융센터지점 박홍철△경인중기업금융본부 신상국△중기업금융1본부 오용진△경인중기업금융본부 유연도△성서지점 유찬종△중앙중기업금융본부 윤태진△서초센터지점 이광우△부산기업금융센터지점 이금돈△대전기업금융본부 이무성△트윈타워지점 이정욱△동수원지점 전주용△중기업금융3본부 조규범△부산기업금융센터지점 허성△남역삼지점 홍명철(가계영업팀장)△철산동지점 김순선△성남지점 정윤심 ■ 하나로텔레콤 ◇임원 승진△법인사업부문장(전무) 吳甲錫△재무관리실장(상무) 張永保△경영지원실장(상무) 吉炯都 △홍보실장(상무) 杜瑗洙 △총무팀장(상무보) 姜基仙 ◇임원 전보△경영지원부문장 겸 두루넷인수추진단장 權純燁△전략부문장 겸 경영전략실장 吳貞澤△마케팅부문장 吳圭錫△영업부문장 尹京林△정책협력실장 朴鍾勳△영업관리실장 李基丞△영업지원실장 徐禎植△휴대인터넷사업추진단장 겸 사업개발실장 卞東植△초고속사업본부장 朴勝吉△두루넷인수추진단 宋亨峻△두루넷인수추진단 趙泳完△전화사업본부장 閔庚裕△법인사업본부장 權世宗△수도권북지사장 全炳勳△수도권남지사장 高錫萬△강북지사장 李元熙△호남지사장 吳相煥 ■ KT링커스 ◇전보 △마케팅본부장 조호현△영업단장 김용표△기획조정실장 박창근△경영지원본부 재무팀장 박수남△시설운용본부장 신태근△기획조정실 경영전략팀장 이재중△기획조정실 기획조정팀장 홍종욱△경영지원본부 총무팀장 조규만△마케팅본부 마케팅기획팀장 한수종△시설운용본부 고객관리팀장 이선호△시설운용본부 시설관리팀장 조성준△영업단 장세민△강북본부 한상인
  • 서울시 지원 16개분야 ‘인센티브사업비’ ‘못먹는 떡’

    서울시 지원 16개분야 ‘인센티브사업비’ ‘못먹는 떡’

    ‘상금인가 예산인가?’ 서울의 25개 자치구가 지난 한해 동안 정부와 서울시 등으로부터 받은 각종 상금을 집계한 결과 22억여원에서 1억여원에 이르기까지 상금총액이 큰 차이를 보였다. 관악구의 경우 반부패지수 평가 등 20여개의 각종 업무평가에서 지금까지 받은 상금총액은 22억여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광진구도 시세입 종합평가에서 최우수구로 선정돼 3억 5000만원의 상금을 받는 등 지난해초부터 지금까지 14억 2000여만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성동구는 행정자치부 주관 2004년도 지방재정조기집행평가에서 우수구로 선정돼 기관표창을 받았다. 또 최근 서울시 자치구 가운데 유일하게 ‘우수구’에 선정돼 기관표창과 교부세 5000만원을 상금으로 받았다. ●형식은 상금 실제로는 ‘추가 예산’ 그렇지만 이 상금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일종의 추가 예산처럼 관련 사업에 사용되어야 하는 돈이다. 다른 자치구들이 서울시나 중앙부처 등으로부터 받은 각종 상금도 사실은 업무평가에 대한 인센티브 성격의 추가 예산으로 보면 된다. 이 같은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사업은 ▲재래시장 활성화 사업 ▲자원봉사 활성화사업 ▲장애인편의시설 확충·정비 분야 등 서울시에서만 지난해 16개 분야에 상금이 226억원에 이른다. 분야별 상금액은 최우수 자치단체에 7억 3000여만원을 지원하는가 하면 장려 자치구에는 500만원 지원에 그치는 등 다양하다. 자치단체들은 이런 상금으로 관련 업무를 확대하거나 보완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상금이라기보다 예산을 지원하는 측면이 강한 셈이다. ●‘평가작업 매달려 행정력 낭비’ 지적도 문제는 이런 방식의 예산지원에 대해 대부분의 기초 자치단체들은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을 받기 위해 직원들이 본연의 업무보다 평가작업에 메달리는 행정력 낭비를 지적하고 있다. 또 평가가 잦다 보니 자치구마다 ‘○○최우수구,○○○우수구,○○모범구’라는 타이틀 5∼8개쯤은 기본으로 갖게 돼 자치단체에 대한 주민들의 올바른 평가를 방해하고 자치행정을 획일화시킨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문제점을 들어 일부 재정자립도가 높은 자치단체는 평가 참여 자체를 기피하고 있다. 한 자치구 예산담당과장은 “인센티브 사업비 지원을 상금으로 내놓는 평가는 재정이 취약한 기초 자치단체를 영향권에 두기 위한 수단으로 비쳐진다.”면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임금피크제 소득감소분 정부서 50%까지 보전

    임금피크제(일정한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은 보장하는 제도) 도입으로 급여가 줄어드는 근로자에게 소득 감소분의 일부를 국가가 보전해 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정년을 채운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들에 대한 정부의 자금지원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3년 가량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6일 재정경제부와 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고령화사회 가계부담 완화를 위한 ‘고령자 고용안정 방안’을 1·4분기 중 확정하고 내년부터 시행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으나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급여가 줄어드는 근로자들에게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가칭 ‘임금조정 지원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기준은 소득감소액으로 할지, 일정금액으로 할지 정해지지 않았지만 보전비율은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소득감소액의 50%를 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임금피크제 소득보전 지원기간은 3년 정도가 고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현재 정년 퇴직자를 계속 고용하는 기업에 고용인원 1명당 30만원씩 6개월간 주고 있는 장려금 지원기간을 3년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일반적으로 57세인 정년을 60세 가량으로 끌어 올린다는 정부의 정책적 목표와 임금피크제 소득보전제도의 기간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한 것”이라며 “그러나 정확한 기간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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