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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책진단] 노인수발보장제

    [정책진단] 노인수발보장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다. 정부가 치매와 중풍 등 노인성질환자의 요양 및 간병 비용을 국가와 사회구성원이 함께 부담토록 하는 ‘노인수발보장법’을 제정, 오는 2007년 7월부터 시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핵가족화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예전처럼 치매·중풍 환자를 가정에서 돌보는 일이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면서 노인성질환자도 늘어나, 이들에 대한 보호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내년 초 관련 법안 통과 추진 보건복지부는 오는 15일 노인수발보장법 제정과 관련한 공청회를 갖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법안의 골자는 중풍·치매로 고생하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간병과 수발, 목욕 등 일상활동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공청회와 입법예고를 거쳐 연말쯤 국회에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법안통과는 내년 임시국회 때쯤으로 잡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노인수발보장제가 연기될 수 있다는 일부 보도와 달리 당초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면서 “시범사업에 따른 예산도 올해 19억원에서 내년 218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최중증 환자부터 적용 정부는 재정적인 여건을 감안, 노인수발보장 대상을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우선 2007년 7월부터 적용되는 대상은 하루종일 누워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할 수 없는 최중증(1∼2등급) 환자로,7만 2000명가량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2010년부터는 혼자서는 식사나 용변 등의 일상생활을 못하는 중증(3등급) 환자에게도 혜택이 주어진다.2010년의 최중증·중증 질환자는 15만명에 이를 전망이다.2013년 이후에 4등급 환자까지 확대할지 여부는 그때 재정상황에 따라 결정키로 했다. ●건보 가입자 月2000~3000원 추가부담 노인수발보장제에 따른 재정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는 전 국민들의 보험료와 국고 보조로 마련된다. 요양시설 이용, 방문간병, 방문목욕, 방문간호, 복지용구 대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 일부는 노인수발보장제가 부담하고 일부는 서비스 이용자가 내는 형식이다. 구체적으로 요양시설을 이용할 때 내는 비용에서 식대를 뺀 비용의 20%만 서비스 이용자가 내면 된다. 물론 노인성 질환 가족들이 이같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가입자들은 매월 2000∼3000원가량의 보험료를 추가 부담해야 한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부산국제교류재단 발족

    부산국제교류재단이 12일 발족했다. 부산시국제교류재단은 이날 오전 부산시청에서 허남식 시장과 발기인 등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총회를 가졌다. 총회에서는 안준태 부산시 정무부시장이 이사장으로 선임됐으며 안 부시장을 포함한 부산시 간부 4명과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강남주 집행위원장 등 민간 인사 10명 등 14명이 이사로 선임됐다. 비영리 재단법인인 부산국제교류재단은 부산시청 국제교류센터내에 사무실을 마련했으며 사무처 직원 채용과 법인 등기 등의 준비를 거쳐 10월 중에 정식출범한다. 부산시는 국제교류재단의 운영 및 사업을 위해 올해 10억원을 출연한 것을 비롯해 앞으로 매년 10억원씩 추가 출연하기로 했다. 부산국제교류재단은 외국도시와의 교류 및 국제협력사업을 수행하는 한편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환경조성, 국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기반조성 및 통상활동 지원사업 등을 맡게 된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도둑 50년 발씻은 땅개노인

      박태경(朴泰慶)(69)노인은 도로공사판에 인부로 나가고 있다. 일을 하는 데서 오래 산 보람을 느껴 보는 요즘 나날이다. 전과 16범, 일명「땅개노인」- 25년간, 그러니까 삶의 거의 3분의 2를 교도소에서 보낸 인생이 그 노경(老境)에 이르러 비로소 맛보는 평온이다. 주인꾸중 두려워 콩 사오다 도망쳤던 철부지 18세 초범이 그만 수년 전에『저 강은 알고 있다』라는 대중가요가 잠시 유행했었다. 이미자가 불렀다. - 비 오는 낙동강(洛東江)에 저녁놀 짙어지면 - 흘러 버린 내 청춘이 눈물 속에 애달프구나 - 한 많은 반평생에 눈보라를 안고서 - 모질게 살아가는 이 내 심정을… 노래에는 숨은 사연이 있었다. 아성(亞星)영화사가 유동일(柳東日)감독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제목이 바로『저 강은 알고 있다』(일명 땅개 박노인), 그 주제가다. 바로 이 영화의「모델」이 오늘의 박태경씨였다. 영화촬영 당시 박노인은 15회째의 징역살이로 대구교도소에서 푸른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친 것이 죄였다. 땅개 박노인의 기구한 운명이 세상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다. 약삭빠른 영화사가 노인을「모델」로 해서 그럴싸한「최루탄(催淚彈)영화」를 만들어 보자고 노릴 만도 했다. 박노인은 이 영화에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수의를 입은 채로. 1918년 10월 11일 - 지금부터 51년 전, 박노인이 18세 때 첫 번째 죄를 지었다. 일본주인 밑에서 자전거를 타고 두부 만들 콩을 사서 돌아오는 길에 논두렁에 넘어졌다. 콩이 쏟아졌다. 주인을 찾아 볼 낯이 없었다. 그만 콩 한 말을 10원에, 자전거를 10원에 팔아 버렸다. 전과 16범의「스타트」였다. 2번째, 이웃에 홀로 사는 오(吳)모 여인이 아기를 낳고도 굶주리고 있음을 보다 못해서 쌀 두 말과 미역 1단을 훔쳐다 주었다. 3번째, 1919년 6월 21일, 가택침입죄로 대구지방검사국 안동지청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4번째, 1921년 12월 23일, 역시 가택침입죄로 징역 2년. 5번째, 1923년 10월 16일, 징역 3년. 6번째, 1927년 11월 16일, 징역 4년. 7번째, 1931년 12월 26일, 징역 4년. 8번째, 1935년 12월 28일, 절도죄로 대구지방검사국에서 기소유예처분. 9번째, 1936년 3월 5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0번째, 1936년 4월 28일, 징역 3년. 11번째, 1940년 7월 16일, 경범으로 구류 10일. 12번째, 1940년 12월 23일, 징역 3년. 13번째, 1961년 7월 25일, 20년간을 고요히 지낸 것도 헛것이 되어 대구지법에서 야간주거침입, 절도죄로 징역 8개월. 14번째, 1963년 1월 29일, 또 절도죄로 징역 2년. 15번째, 막내 딸에게 주려고 고무신 한 켤레를 훔쳐서 징역 1년. 영화촬영은 이때였다. 16번째, 1967년 5월 5일, 절도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낯익은 안동교도소에서 복역, 1968년 초에 출감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때를 몽땅 교도소에서 보낸 계산이다. 도둑질서 발 씻기는 영화 주제가 때문, 그 노래 들으면 눈물 나와 그 동안의 특징을 보면 고향인 경북 안동을 떠나지 않았다는 점과 죄명이 모두 절도 아니면 주거침입이라는 점. 사람을 해친 일은 한 번도 없다. 고향 땅에 고목 같이 굵은 뿌리를 박고 다만 살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어쩌면 소심하고 선량한 농민의 아들인지도 모른다. 범죄회수가 늘어남에 따라 본명만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자기가 붙이기도 하고 남이 지어주기도 한 별명들을 쓰기 시작했다. 그 중 알려져 있는 것만 들어도(본인은 입을 다물고 열지 않는다) 상희(相熙), 상열(相烈), 춘근(春根), 태성(泰星), 봉근(鳳根), 송태성(宋太星), 임춘근(林春根), 땅개 박노인의 8가지. 본명과 또 다른 별명들을 합해 13가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앞으로는 굶어 죽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땅개 박노인」이라는 별명 때문이란다. 영화와 대중가요를 통해 행적이 알려지면서「땅개 박노인」의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뜨끔해진단다. 문제의 노랫가락을 혼자 외면 헛되이 보낸 삶에 눈물이 흐른다. 그래서 그는 한때 안동과 대구 등지를 방랑하면서 구걸을 했다. 『땅개 박노인 왔습니다. 도와주십시오』문간에서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두 말 않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구걸도 한정이 있었다. 그는 작년 10월부터 안동시가 실시하는 구호양곡 근로공사장에 그 늙은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하루에 밀가루 3되씩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아버지 소문이 부끄럽던 아이들도 발 씻자 모두 일터 찾아 도둑질과 인연을 끊기로 결심한 것은 후세들의 앞날을 위해서라고 박노인은 말한다. 그의 현주소는 안동시 상아동의 속칭「진모래」라는 곳. 안동 김씨의 재사 안의 1평 반짜리 단칸방에서 박노인 이하 부인 박숙해(가명·48) 장남(18) 장녀(16) 2녀(14) 3녀(10)의 5식구가 살고 있다. 도둑소리만 들어오던 아버지가 손을 씻자 아이들도 저마다 살 길을 찾아 힘차게 나섰다. 장남은 안동시 상아동 박모씨의 양계장에서 기술자로 일하면서 월수 5천원을 가지고 들어온다. 장녀와 2녀는「검」팔이로 하루 6백원 정도의 벌이를 하고 있다. 박노인 일가는 아침은 조밥을, 점심은 거르고 저녁에는 공사판에서 박노인이 가지고 온 밀가루로 국수를 쑤어 때운다. 비록 배는 고프지만 아이들의 얼굴에는 명랑한 웃음이 떠돈다. 이들에게는 또 새로운 꿈이 생겼다. 온 가족이 열심히 일해서 3년 후에는 50만원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자는 꿈이다. 아버지가 도둑질만 하고 다녔을 때는 가져보지 못한 단란한 꿈이다. <안동=문명준(文明俊) 기자> [ 선데이서울 69년 2/2 제2권 제5호 통권19호 ]
  • 亞경시외교 고수… 韓·中과 마찰 일듯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국민들은 11일 총선거에서 ‘안정’과 ‘개혁’을 택했다. 집권 자민당을 압도적으로 지지, 안정 속에 개혁 작업을 지속적으로 펴도록 밀어준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개혁 이미지’로 포장한 ‘우정민영화’ 기치 아래 당내 반란파 축출과 명망가 공천의 화려한 ‘극장형 선거전’을 통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집권 기반을 공고화, 안정적인 장기 집권의 가도에 진입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앞세워 지금까지 유지해 온 미국 중시, 아시아 경시 외교 노선을 유지, 강화할 것으로 보여 한국과 중국 등과의 외교마찰을 부를 수도 있다. ●오카다대표 “퇴진”… 1야당 민주당 사실상 몰락 2001년 4월 말 취임한 고이즈미 총리는 중의원을 장악할 수 있는 절대안정 의석을 확보하면서 참의원 내의 반대 분위기도 압승 기세로 제압할 것이 확실시 돼 1년여 남은 임기의 기반을 탄탄히 굳혔다는 평가이다. 임기연장이나 ‘킹 메이커’의 영향력 확보 가능성도 점쳐진다.‘포스트 고이즈미’ 논의로 초래될 수 있는 레임덕도 피하면서 정권의 명운을 걸었던 우정민영화법을 재추진, 성립시킬 수 있는 동력도 확보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선거 과정에서 중의원 우정 민영화법안 반대파 37명을 축출하고 명망가 위주의 신진을 대거 공천, 파벌과 이익집단이 당정의 의사결정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구태정치를 일소했다는 평이다. 다만 “비주류를 말살해 고이즈미 총리의 독주가 예상된다.”는 우려도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개혁의 결정판이라는 우정민영화는 국철 민영화, 도로공단 민영화, 전화사업 민영화 등에 이은 ‘작은 정부’를 구현, 구미 경제계에 일본 경제와 사회에 대한 믿음을 줘 향후 경제회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은 사실상 ‘몰락’, 당의 존재기반까지 흔들리는 최대 위기에 처했다. 오카다 가쓰야 대표는 퇴진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사회생을 위한 세대교체론이 급부상하면서 당은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민주당의 몰락은 “자민당 보다 더 일부 정책이나 의원은 보수적”이라는 색깔의 불명확성도 크게 작용했기 때문에 호헌세력인 공산당과 사민당을 포함한 야권의 대대적인 재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평이다. ●자위대 이라크주둔 재연장 전망 고이즈미 총리가 압승을 앞세워 주변국은 물론 유엔 개혁 외교정책에서 강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12월에 끝나는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기한을 재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보수·우경화 노선도 가속화, 창당 50주년인 오는 11월 자민당은 개헌초안을 내놓고 공론화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자민당의 개헌안 초안은 전력 보유와 교전 포기를 골자로 한 헌법 9조를 고치는 것이 뼈대이다. 군사대국화 망령도 본격 부활할 수 있다. 주일미군 재편도 연내에 마무리할 예정이며 이 때 압도적인 국민 지지를 앞세워 일본측의 부담을 경감하는 등 일본측에 유리한 협상안을 이끌어내려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측과 작은 충돌도 예상된다. 향후 일본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개혁정책이 가속화, 경제회복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이 나오는 반면 770여조엔에 이르는 국가 및 지방정부 채무 해결, 갈수록 악화되는 국민연금 재정 위기 등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고령자들의 의료·복지비 자기부담 확대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다. 재정위기의 확대로 인한 ‘사회 안전망’의 약화는 일본 국민들이 ‘우정민영화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냉정하게 고이즈미 정권을 평가하기 시작하면 안정이 다시 흔들릴 수도 있어 보인다. 특히 민주당의 몰락으로 견제세력이 없어진 자민당은 ‘브레이크 없이 폭주’할 수 있어 보인다. 따라서 다른 의미에서 고이즈미의 자민당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오만과 독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taein@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금호아시아나그룹 (2)지분·경영권 ‘교통정리’

    금호아시아나그룹은 ‘형제경영’의 모범을 보이고 있는 기업이다. 최근 두산그룹이 형제간 분쟁에 휩싸이는 등 재계 일각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친족간 지분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잡음없는 형제경영은 박인천 창업주 회장이 생전에 그룹경영 원칙을 세우고,2세들이 이를 충실히 따른데서 비롯됐다. 박 회장은 2세들의 지분 분배와 관련해 ▲여러 사람이 관여하면 분란이 생기기 쉬우므로 남자들에게만 상속하고 ▲4자(5남 가운데 4남 종구씨를 제외한 성용·정구·삼구·찬구씨)합의 경영 형태로 형제간 합의아래 회장을 선임하고 ▲주요 사안에 대해서도 4자 합의가 최우선이지만 합의가 안되면 다수결 원칙에 따르고 그래도 결정나지 않으면 가장 손윗사람이 결정권을 갖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동생에게 물려주겠다” 1984년 그룹 총수에 취임한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동생에게 자리를 물려주겠다.”며 형제경영 실천의지를 보였다. 박 명예회장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는 실제로 65세가 되던 1996년 그룹창사 50주년을 맞아 동생 정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다. 이후 정구 회장이 65세이던 2002년 폐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뜨자 3남인 삼구 현 회장이 회장직을 물려받았다. 결국 그룹의 두 형제는 65세에 동생에게 회장직을 물려주는 전통이 우연히 만들어진 셈이다. 올해 한국 나이로 61세인 삼구 회장이 65세가 되는 2009년에 회장직을 4남인 찬구(58)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에게 넘겨줄지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대부분의 그룹 관계자들은 박 회장이 동생 찬구 부회장에게 회장직을 이양하는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10대 기업으로 키워내 성용 명예회장은 박인천 창업회장의 49재를 지낸 1984년 8월3일 제2대 그룹 회장으로 조용히 취임했다. 선친이 타계한 지 얼마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성격대로 요란한 취임행사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경영전략 발표도 일절 갖지 않았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던 박 명예회장은 일찍부터 그룹 경영을 자문해 왔다. 그러다가 1973년 10월 부친의 ‘명령’에 따라 교단을 떠나 금호실업 사장으로 본격적인 경영참여를 시작했다. 이후 1979년 10월 그룹 부회장을 거쳐 10년만에 그룹 총수를 맡게 된 것이다. 성용 회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영이론에 밝은 ‘총수’였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로 일했다. 당시 3회 이상 논문 게재시 노벨상 수상도 가능하다던 세계적인 논문 권위지인 ‘인터내셔널 이코노믹 리뷰’에 두 차례에 걸쳐 논문이 실리는 등 미국에서 계량경제학자로 왕성한 연구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해외 고급두뇌 유치정책에 따라 1968년 귀국행 보따리를 쌌다. 성용 회장은 부친의 권유로 정부에 몸담게 된다. 창업주 회장이 버스조합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요금인상 문제로 당시 알고 지내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학렬 경제수석을 만나 성용 회장을 소개했고 그 자리에서 비서관으로 채용케 했다. 그는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별보좌관으로 재직하다 1971년 평소 원해 왔던 학계로 다시 옮겼다.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며 부총리를 지낸 남덕우 전 총리, 이승윤 전 부총리 등과 함께 경제학계의 탄탄한 학맥인 ‘서강학파’를 형성했다. 이 때 교단에서 만난 제자들을 회사에 입사시키기도 했다. 박상환 금호생명 부사장 등이 박 명예회장의 ‘애제자’들이다. 이러한 박 명예회장의 독특한 경력은 당시 재계의 2세 경영인 중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이 오히려 그룹을 경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 광범위한 인맥들을 형성했다. 그러나 박 명예회장이 취임한 1984년 그룹은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1980년 초 일어난 삼양타이어 분리파동과 때마침 불어닥친 경기불황의 여파 때문이었다. 그는 경제이론의 대가로서 현실 경영인으로서는 결심하기 힘든 단안을 내린다. 한보철강의 전신인 극동철강과 금호섬유를 매각하고, 삼양타이어와 금호실업을 통합해 상호를 ㈜금호로 바꿨다. 흑자기업인 광주고속은 금호건설을 합병했고, 금호화학과 한국합성고무를 합쳐 금호석유화학으로 재탄생시켰다. 취임 당시 9개사인 계열사를 4개로 줄이고, 비주력부문을 과감히 매각하는 등 경영내실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석유화학분야를 그룹 주력 업종으로 성장시켰다. 당시에는 ‘구조조정’이라는 말 대신 ‘합리화’라는 표현을 썼다. 박 명예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한국경제의 최대 화두였던 구조조정의 선구자인 셈이다. 박 명예회장은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었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대로 끌어올리는 등 금호아시아나를 국내 10대 그룹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 세발 먼저 앞서간 이상적인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현실에 치우치기보다는 이상적인 경영관을 실현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누구나 갖고 다니는 휴대전화가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예상을 했고, 집앞까지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의 성공을 예견했다. 장성지 금호아시아나그룹 상무는 “명예회장님이 1990년대 초반에 이미 인터넷을 능수능란하게 다뤄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지시사항을 보내놓고 답신 시간을 일일이 확인하셨다.”면서 “어떤 전자서류는 새벽 2,3시에도 결재하셨다.”고 회고했다. 박 명예회장의 이상적인 경영스타일은 음악, 미술 등 문화사업으로 이어졌다.1990년 금호 현악4중주단을 창단하고, 고가의 세계적인 명품 고악기를 사들여 한국을 빛낼 가능성이 높은 연주자에게 무상으로 대여해줬다. 비수익사업에 힘을 쏟는 박 명예회장의 경영스타일에 비판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우리 기업도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일본의 소니그룹처럼 사회문화사업에 뛰어들어야 한다.”며 “당장은 돈이 부담스럽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 이미지를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박 명예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뒤 1998년 예술의전당 이사장과 2002년 통영 국제음악제 이사장을 맡는 등 문화·예술 사업에 전념했다. 1997년 국민훈장 무궁화장,2002년에는 기업메세나 대상(대통령상)을 받았다. 박 명예회장의 예술사랑 덕분에 지난 5월 장례식에서는 예술인들이 그의 죽음을 누구보다 더 애통해 했다. 박 명예회장의 친구인 이승윤 전 부총리는 “박 회장은 단순히 선친으로부터 기업을 물려받은 2세 기업인이 아니라 전문지식을 지닌 뛰어난 전문경영인이었다.”고 회고했다. ●발로 뛰는 경영인 박 명예회장은 1993년부터 동생 고 박정구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명예회장은 “미국 CEO들은 환갑만 지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며 동생에게 총수직을 맡아줄 것을 수차례 요구했다. 형의 요구를 고사하던 정구 회장은 1996년 그룹 창사 50주년이 되는 해 박 명예회장이 “65세에 회장직을 물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거듭 밝히자 회장직에 올랐다. 순조로운 경영권 이양에 대한 보답 차원이었는지는 몰라도 정구 회장의 형에 대한 예우는 남달랐다. 성용 명예회장은 그룹의 자금사정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도 문화·예술 사업 등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곧잘 제기했다. 수요와 공급 원칙에 철저히 따르는 동생 정구 회장으로선 형의 제안이 별다른 실익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하시죠.”라며 무조건 따랐다. 그러나 정구 회장은 형과는 사뭇 다른 경영스타일을 보였다. 경제 이론을 중요시했던 형과 달리 본능적인 감각과 불도저식 추진력을 발휘하는 현장중심의 경영방식을 택했다. 이는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자마자 22세에 광주여객 영업과장으로 회사에 몸 담으며 철저히 경영수업을 받아온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정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아주생명을 인수, 금호생명으로 변경해 보험업에 진출했다. 강원 설악과 전남 화순, 경남 충무, 제주 남원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 미래의 유망분야인 관광·레저사업 부문을 확대했다. 정구 회장이 재임때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은 중국 진출이었다. 항공·타이어·고속버스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을 개척했다. 정구 회장의 불도저식 경영은 1997년 이후 IMF 위기에서도 발휘됐다. 계열사간 합병·지분매각·청산 등을 통해 한계사업과 비주력사업부문을 과감히 접었다.1997년 당시 32개였던 계열사를 2001년 15개로 축소했다. 자본유치, 부동산 및 유가증권 매각, 유상증자 등을 통해 97년 말 966%에 달했던 그룹 부채비율을 2001년 말 360%로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선시켰다. 대부분의 그룹 임직원들은 3대 정구 회장이 풍부한 경험과 의리를 앞세우며 선 굵은 경영을 펼쳤던 경영인으로 기억하고 있다. ‘폭탄주’를 즐기던 정구 회장은 특유의 뚝심으로 IMF 파고를 넘었지만 2002년 폐암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셋째아들 정구 회장에 이어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5남3녀중에서도 아버지 박인천 회장을 가장 닮은 아들로 꼽힌다. 수리에 밝고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나이에 비해 생각하는 것이 젊어 ‘영원한 39(삼구)세’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높은 결단력과 추진력을 겸비해 한번 결정하면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자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성격은 그룹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내는 업적을 이뤄냈다.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약관 22세의 나이에 한국합성고무를 차릴 정도로 경영인으로서의 ‘끼’를 발휘했다. 그룹 총수이면서도 재무·관리·세무회계 등에 정통해 그룹의 세세한 재무상태까지도 훤히 꿰고 있다. 서구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은 “회장님이 업무면에서는 섬세하고 치밀해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지만 형님들을 모시거나 동생들을 보살피는 데는 넓은 포용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형들을 생각하는 박 회장의 정성은 극진했다.2004년 박성용 명예회장이 세계문화예술 발전에 공헌한 공로로 독일의 몽블랑 문화재단으로부터 ‘몽블랑 예술후원자상’을 받자 밤 11시에 형에게 달려가 깜짝 축하파티를 열어주기도 했다. 웬만한 주요 행사에는 바로 아래 동생인 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을 반드시 동행토록 해 사소한 의사결정때도 동생의 의견을 듣는다. 삼구 회장은 잔정이 많다는 게 그룹 임직원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지난 1998년 당시 아시아나 사장이던 삼구 회장은 IMF를 맞아 전년도 입사자들이 1년간 무급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행사장에서 5분간 말을 잇지 못하고 계속 눈물만 흘린 사실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그룹 제2의 중흥기 맞아 2002년 9월2일에 4대 회장에 취임한 삼구 회장은 IMF 이후 2004년까지 4조 9961억원의 구조조정 실적을 이뤄내는 자구노력으로 기업을 회생시켰다. 이 구조조정 기간에 공적자금을 지원받지 않고, 직원 감축없이 그룹을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004년에는 사상 최대 실적인 매출액 8조 5447억원, 경상이익 8140억원을 달성했다. 박 회장은 앞으로도 항공·고속 등 운수분야와 타이어, 석유화학 계열, 관광·레저, 금융 등의 기존 사업분야는 경영합리화를 통해 수익성을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 물류·레저사업을 상호 연계,2010년까지 재계 5위에 올라서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뒤에서 묵묵히 보좌하는 4남 4남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부회장은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해 수치에 밝고 경제의 맥을 잘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혹시 형인 삼구 회장에게 누가될까봐 뒤에서 묵묵히 돕고 있다. 전공을 살려 회사내의 재무상황을 꼼꼼히 챙기고 재무구조 개선에 앞장서 왔다. 찬구 부회장은 지난 1992년부터 2003년까지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는 비전경영실의 사장을 겸직하며 그룹에서 추진되고 있는 구조조정 사안들을 일일이 챙겼다. 그는 유연한 조직체계 및 관리체계를 구축해 금호석유화학을 합성고무부문에서 국내시장 점유율 1위, 세계 4위의 생산능력을 보유하는 기업으로 키워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문 CEO 아시아나항공 박찬법(60) 사장은 2001년 1월 대표이사직에 취임해 대규모 흑자 전환, 세계 최대의 항공제휴망인 ‘스타얼라이언스’ 가입 등의 성과를 올렸다. 철저한 원칙주의자로 정평이 나있다. 금호타이어 오세철(58) 사장은 1974년 금호타이어 입사 후 연구·생산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엔지니어 출신이다.‘현장중시’의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금호산업 건설사업부 신훈(60) 사장은 지난 2002년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2004년 상장사 중 최고의 주가상승률을 이뤄냈다. 금호산업 고속사업부 이원태(60) 사장은 그룹내 손꼽히는 중국 전문가로 통한다.1993년부터 금호아시아나의 중국사업 전진기지인 북경대표처에서 근무하며 타이어, 항공, 고속 등 그룹의 중국 진출을 이끌었다. 금호석유화학 김흥기(59) 사장은 1973년 금호석유화학의 전신인 한국합성고무에 입사한 뒤 재무담당임원을 두루 거친 그룹내 재무전문가다. 금호피앤비화학 류명렬(59) 사장은 비상경영을 통한 획기적인 원가절감과 생산성 향상으로 연속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흑자로 전환시켰다. 금호폴리켐 기옥(56) 사장은 재무통으로 금호타이어 경리부에서 출발해 회장부속실 근무중 아시아나항공 설립과 함께 직원 1호로 발탁되기도 했다. 금호미쓰이화학 김성기(61) 사장은 오랜 기간 미국 법인과 금호 미국 현지법인에서 수출·마케팅 업무를 담당한 미국 전문가다. 금호렌터카 김성산(59) 사장은 1960년 광주고속에 입사하여 40년간 장기근속한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산증인이다. 금호페이퍼텍 이삼섭(55) 사장은 종합무역상사인 금호실업에 입사, 금호건설을 거친 후 비전경영실부사장을 지냈다. 타이어, 항공, 고속, 건설, 화학 등 그룹 전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아시아나IDT 박근식(59) 사장은 IT출신이 아니지만 2003년부터 그룹 IT전문회사인 아시아나IDT대표를 맡고 있다. 사이버대학 IT관련 학과에 다니는 노력 끝에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복합물류 김종호(57) 사장은 외국어에 능통해 해외영업을 총괄하는 등 타이어 해외수출의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인천공항에너지 류병률(59) 사장은 아시아나항공 서울지점장과 여객담당 임원 등 영업에서만 10년이상 근무한 영업통이다. 금호생명 박병욱(58) 사장은 한양대에서 ‘회사 시책이 보험설계사 마케팅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이론과 실무에 능한 수재형 CEO다. 금호종금 이기수(56) 사장은 30여년간 경리·자금분야에서 실무와 관리능력을 인정받았다. 아시아나CC 김창규(52) 대표이사 상무는 금호산업 레저사업부 대표도 겸직하고 있다. 그룹 전략경영본부 오남수(57) 사장은 현재 구조조정본부 역할을 하고 있는 그룹 전략경영본부의 실무 총괄 책임자다.1997년 시작한 그룹의 구조조정 작업에 줄곧 몸담아 왔다. 재계에서 손꼽히는 와인 애호가 및 전문가로 최근에는 ‘어너더 와인, 어너더 테이스트(Another Wine,Another Taste)’란 제목의 와인 가이드 포켓북을 발간하기도 했다 jrlee@seoul.co.kr ■ 재벌 혼맥의 허브… 삼성·LG등 사돈박인천 금호아시아나그룹 창업주와 2세인 5남3녀는 자식들의 혼사에 각별히 신경써 화려한 혼맥을 형성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가(家)는 2,3세들의 혼인을 통해 삼성,LG, 대우, 대상그룹과 사돈을 맺는 등 ‘재벌가 혼맥의 허브’로 부상했다. 박 창업주 회장의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아들 재영(35)씨를 구자훈 LG화재 회장 3녀인 문정(30)씨와 결혼시켰다. 재영씨의 장인인 구자훈(58)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손밑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3남이다. 박 명예회장과 구 회장이 자식들의 혼사로 인해 ‘사돈’ 관계를 맺게 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가의 장손인 재영씨의 처고모부인 박용훈(63)씨는 두산산업개발 부회장이어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두산그룹과도 혼맥으로 연결돼 재계 명문가의 위상을 이어갔다. 박 부회장은 박우병 전 두산산업 사장의 장남이다. 2남 정구 회장의 장녀 은형(35)씨도 김우중 전 회장의 차남 김선협(36·포천아도니스CC 사장)씨와 혼인해 일가를 이뤘다. 금호아시아나가의 혼맥은 뭐니뭐니해도 3녀 현주(52)씨를 통해 빛을 발한다. 현주씨는 임창욱(56) 대상그룹 명예회장에게 시집갔다. 또 큰 딸인 임세령(28)씨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37) 삼성전자 상무와 결혼시켰다. 세령씨와 이재용 상무간의 결혼은 호남 집안인 금호아시아나가와 대상그룹, 영남집안인 삼성가가 사돈을 맺었다는 점에서 재계의 화제가 됐다. 또한 ‘미원-미풍 전쟁’을 벌였던 삼성과 대상그룹이 혼맥으로 합쳐졌다는 점에서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세령씨는 시어머니인 홍라희(60) 여사가 보광그룹의 장녀여서 홍석현(52) 전 중앙일보 회장과 홍석규(49) 보광그룹 회장을 시외삼촌으로 모시고 있다. 특히 박현주씨는 금호아시아나가가 남자들에게만 지분을 상속한다는 대원칙을 고수해 친정에서는 경영참가가 원천 봉쇄됐었다. 하지만 결혼 이후 전문 경영인으로 변신하고 있다. 박씨는 대상그룹 계열인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대표로 활발한 경영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어 9월13일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등기임원에 선임될 예정이다. 옥중에 있는 남편 대신 시댁의 회사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여 이목이 쏠리고 있다. jrlee@seoul.co.kr ■ 3대째 이어지는 원칙금호아시아나그룹의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3대째 이어지고 있다. 장자승계 원칙이 일반적인 다른 그룹과 달리 창업 2세 가구별로 똑같은 지분을 확보, 경영권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 등 금호 경영에 참여한 4형제는 공교롭게도 아들을 1명씩 두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달 4일 고 박 명예회장이 보유해온 계열사 지분 전량을 장남인 재영(35)씨가 상속했다고 공시했다. 이에 따라 박성용-정구-삼구-찬구로 이어져온 금호아시아나그룹의 형제경영 체제가 3세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틀이 마련됐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분구조는 특이하다.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을 기준으로 창업 2∼3세들의 지분구조가 9.24%로 똑같다.2세 경영인 중 회사 경영과 무관한 5남 종구(국무총리실 경제조정관)씨를 빼고는 4명의 형제가 동일한 지분을 갖고 있다. 2세들이 작고하면 이 지분은 고스란히 3세 경영인들에게 상속돼 지분구조를 둘러싼 분란이 생길 틈이 없다. 재영씨는 그룹 지주회사인 금호석유화학의 보통주 136만 2512주와 우선주 8만 3251주, 금호산업의 보통주 35만 5000주, 금호종합금융의 보통주 3만 9070주, 금호페이퍼텍의 보통주 2585주와 우선주 4만 1087주를 받았다. 이로써 재영씨는 금호석유화학 지분 9.24%를 소유하게 됐다.2002년 작고한 정구 회장의 장남 철완(27)씨도 부친 지분 9.24%를 그대로 상속받았다. 이로써 사촌지간인 재영씨와 철완씨는 나란히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대주주로 떠올랐다.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의 최대 주주는 자사주 19.8%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고 재영, 철완씨는 2대 주주가 된 것이다. 이들은 금호산업과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똑같이 보유하고 있다. 금호산업 지분은 42.49%를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이 최대 주주로 있으며 재영, 철완씨가 1.87%씩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금호종합금융의 지분도 1%씩 보유했다. 이처럼 철저한 동등지분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창업 2세 형제들이 그룹 지분을 똑같이 나눠 갖고 형제경영을 하는 것처럼 3세도 이같은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뜻에서다. 금호아시아나가(家) 3세들의 경영참여 시점도 관심거리다. 재영씨는 미국 LA에서 경영과는 동떨어진 영화 공부를 하고 있고, 철완씨는 국내에 있는 보스턴 컨설팅 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그룹 관계자는 “재영씨와 철완씨가 지분 승계로 대주주가 됐지만 당분간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jrlee@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가을바람에 객을 보내며 마시는 고로차, 혓속 깊이 특이한 맛과 향이 남아 무한한 옛정을 느끼게 한다.” 고온(高溫)에서 불에 쬐고 말리는 홍배(烘焙)를 하는 고로차는 마치 옛정을 간직한 가을바람을 닮은 향과 맛이 풍긴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한잔의 찻속에 떨어뜨린다. 차는 근원적으로 ‘평상심(平常心)’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혼자가 되었던 둘이 되었던 차는 ‘평상심’을 나누기 위한 ‘고요함’(靜)과 ‘맑음’(淸)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차의 어머니는 물이다. 그 따뜻한 물속에 담겨서 찻잎이 맑은 색과 향을 뱉어내며 퍼지는 것을 한번 살펴보라. 마치 삶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찻잎은 기쁘게 ‘열반’에 들며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 버린다. 차 한잎에 한 인간의 일생이, 한 사회의 역사가,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차의 본향은 중국이다. 중국인들은 대략 5000년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그리고 저 산간오지까지 차가 없는 중국과 중국인은 상상할 수 없다. 중국의 다점(茶店)에 가면 차 한잔을 시켜놓고 한없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차는 일상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상류층선 차만 다루는 노비 두고 음용 중국의 음다풍속이 일상화된 것은 전한(前漢)시대로 본다.‘사기´에는 춘추전국시대 전한 선제때 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왕포는 어떤 과부로부터 양혜라는 편료(便了:차를 다루는 노비)를 1만 5000냥에 사들였다.‘동약’이라는 노비매매 문서에는 편료가 해야 할 일을 적고 있다. 먼저 무도(武都)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여 접대하는 일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편료의 존재는 전한시대에 이미 쓰촨 일대에서 차가 지배층들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비의 매매가가 1만 5000냥이란 거금이라면 차도 매우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인 ‘삼국지´는 그같은 사실을 잘 일깨운다. 위진시대 직전 유비 현덕은 누상촌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었다. 돗자리를 팔러간 현덕은 당시 명차였던 ‘옥로’를 사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옥로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효심이 지극했던 현덕은 어쩔 수 없이 집안대대로 물려내려오던 보검과 맞바꿨다. 그런 현덕에게 어머니는 “그 까짓 차가 뭔데 조상을 팔았는가.”하며 한탄했다 한다. 현덕이 가보인 보검과 맞바꿀 정도로 차는 귀하디귀한 품목이었음에 틀림없다. 쓰촨성을 중심으로 한 남쪽에서 주로 음용되던 차는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후 수나라가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중국의 원활한 통치와 물자교류를 위해 운하를 건설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당대에 보편화된 것은 차의 가공이다. 단병차뿐만 아니라 떡차, 조차, 산차, 말차 등 여러 제다법이 개발, 보급되기 시작했다. 중국 명차의 주인공은 사찰과 스님들이다. 중국의 차 문화는 대부분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용품으로서 차와 정신문화의 최고봉인 ‘선’이 만나 일궈낸 차문화는 이른바 ‘다선일미’라는 독특한 선차문화를 탄생시켰다. 중국에서는 “천하명산에 승려가 많고 높은 산에는 좋은 차가 난다.”고 했다. 그같은 선차문화를 통한 중국명 차와 차문화의 탄생은 마조 도일선사와 백장 회해선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농경시대 중요한 생산동력인 ‘농선결합’의 자급자족적인 생산공동체는 ‘백장청규’를 만들어 냈다. 백장청규의 정신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로 철저한 농선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찰의 ‘백장청규’는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음다풍속과 함께 차의 재배, 제다, 그리고 상품화까지 지속적인 차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큰 절에선 茶僧이 생산·관리 맡아 조동종의 조사중 한 분인 도응 선사가 주석했던 장시성 영수 운거산의 진여선사(眞如禪寺)에서는 1000년 동안 차를 재배해 왔다고 한다. 그 재배면적은 무려 100무(畝:1무는 300평)였고 그 차밭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찬림차는 1000근이나 됐다. 또 다른 기록도 전해온다. 푸젠성 무이사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 이야기다. ‘민산이록’이란 책에서는 “무이사의 승려들은 대부분 진강 출신으로 차밭을 삶터로 삼는다. 각 사찰마다 천주 사람을 차 스승으로 삼는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되기까지 장시 일대에서 차를 채취하는 사람은 1만여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남조(南朝)의 480개 사찰에서는 얼마나 많은 누각이 차를 찌는 연기에 휩싸여 있나.”라는 시구(詩句)가 있을 정도다. 차에 대해 상상을 초월할 만한 기록들이다. 차를 재배한 사찰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여된 인원, 차 생산량 등이 가공할 정도로 어마 어마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명차의 생산이 당연했다. 대규모 사찰에서는 다승(茶僧)을 두고 차의 생산과 관리책임을 전문화시켰다. 차나무의 재배부터 제다까지 풍부한 경험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그것은 명차를 만들 수 있는 기본조건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대표적인 명차의 산지들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웅이산 달마묘탑, 몽정산의 몽정차, 청성산의 태안사, 서안 차문화의 발상지인 종남산 정업사, 안후이성 구화산의 김지장선차, 천태산 만년사의 천태차, 천주산 마조암·장시성 석문사·보봉사·공공산 보화사·산동성 무염원지·항저우고려사지의 용봉차. 이밖에도 천목산 사자암지, 경산사, 하무산, 천호암 등 명차를 생산한 사찰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많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든 정신을 동반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차도 마찬가지다. 약용과 음용으로 출발한 차는 중국 선불교와 만나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다선일미’로 시작되는 중국 선차의 출발은 “스님들의 가풍을 이루는 석 잔의 차”로 통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사찰에서는 불법을 강론하고 대중들을 초대해 차를 음미하는 상설적인 차 공간인 ‘다당’(茶堂)을 설치했다. 또한 사찰 법당의 왼쪽 모퉁이에 ‘다고’(茶鼓)를 설치해 시간에 맞춰 다고를 울려 차를 마셨고 다두(茶頭)를 두어 찻물을 긷고 차를 우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시켰다. 한 명 내지 몇 명의 다두는 매일 이른 새벽에 찻물을 끓여 차를 준비한다. 그들은 아침, 점심 공양이 끝난 스님들에게 차를 공양했다. 또한 수행을 하던 선승들은 좌선을 하면서 매번 향 하나가 탈 때마다 차를 마시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차에 관한 의례도 발전했다. 새벽에 일어난 사찰의 주지 스님이 불전에 찻물을 봉양하는 ‘차탕’(茶湯), 부처님과 조사에게 올리는 ‘전차’(奠茶), 수계를 전후해 마시는 ‘계랍차’(戒臘茶), 공동으로 함께 마시는 ‘보차’(普茶) 등 차탕회를 할 때 정해진 점차(點茶)와 점탕(點湯)의식이 있었다. 중국 선사들과 사대부의 교류는 위진 시대 이래로 형성된 중요한 지적 교류의 전통이 이미 형성되었다. 이같은 전통은 선차와 문인사대부의 만남을 주선했고 민간에도 선차의 폭넓은 문화가 전파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손님 격에 따라 접대차 달라 저장성 여향의 천목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사의 ‘경산의 다연’은 그것을 잘 입증하고 있다. 유명한 차 산지였던 경산사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사찰에 귀한 손님을 초청해 다연을 열었다. 경산의 다연에는 헌다(獻茶), 문향(聞香), 관색(觀色), 상미(嘗味), 약차( 茶), 서의( 誼)로 이어지는 절차에 따라 차를 음미한다. 가장 먼저 주지 스님이 직접 차를 우려 경의를 표시한 다음 ‘다두’에게 명하여 다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음미하게 하는 ‘헌다’를 한다. 다연에 참석해 차를 받은 대중들은 먼저 다완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고, 다시 다완을 들어 올려 빛깔을 살핀 다음 맛을 세 번에 걸쳐 음미한다. 그런 후 차의 향기와 빛깔에 대해 품평하고 주지 스님의 품행을 칭송한 후 불경을 독송하며 다연을 끝냈다. 경산의 다연에 참석했던 명대의 명문장가였던 왕홍 왕기 왕주 왕기 등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높이 걸린 등불 아래 봄비 내리는 승방에서/차 이야기 나누노라니 마음은 한층 그윽하다/만길 용담에는 나는 듯 폭포수 쏟아지고/오봉의 학수에는 구름이 모였구나/빗돌에 새긴 황제의 글귀엔 푸른 이끼 가득한데/경산에 피어난 우담바라가 계절조차 잊게한다/능소화 마냥 아름다운 풍경에/긴 강은 동쪽 바다로 흐른다.” 당시 사찰에서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차 대접에도 차등이 있었다. 최상품은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최하품은 스님들이 마셨으며 보통 손님에게는 보통차를, 최상위 손님에게는 고급차를 접대했다. 송나라때 안탕산의 한 사찰에 낙향을 한 소동파가 방문했다. 다두를 맡은 스님은 소동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등받이도 없는 나무의자를 가리키며 “앉게.”라고 했다. 그리고 동자승에게 “차”라고 명령을 했다. 소동파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그 다두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알아차렸다. 다두를 맡은 그 스님은 소동파를 객사로 안내하고 “앉으시지요.”권하고 동자승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 스님은 그가 유명한 소동파임을 알게 됐다. 방장에게 소동파를 인도한 그 스님은 “위로 앉으십시오, 위로 앉으십시오.”라며 환대를 했다. 동자승에게는 “향차를 올리거라.”고 명령했다. 방장과 차담을 마친 소동파가 떠나려 하자 그 스님은 글귀를 소동파에게 청했다. 소동파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앉게! 앉으시지요! 위로 앉으십시오!/차! 차를 가져와라! 향차를 올리거라!”다두를 맡은 그 스님과 차 문화를 통절하게 비판하는 소동파의 기가 막힌 반전이 차인의 진정한 묘리가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 ‘분차’와 ‘나한공차’이야기 송나라 때는 투차(차의 맛과 향기 등을 품평하는 대회)의 풍속이 있었다. 투차는 본래 당나라 조정 관료들이 차의 품질을 품평하던 것이었으나 송나라 때 이르러 민간의 풍속으로까지 자리잡았다. 그런 점에서 투차는 매우 대중적인 행사였다. 이에 반해 차를 홀로 즐기는 분차(分茶)의 풍속도 있었다.‘분차’는 끓는 물에 차를 우린 다음 작은 대나무 조리로 저어 찻물의 표면에 사람, 금수, 화조, 산수, 글씨 등 묘한 형상의 무늬를 만드는 것으로 당시 차를 고급스럽게 마시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분차’의 진수는 ‘나한공차’의 전설 같은 이야기속에 담겨있다.11세기 무렵 천태산 나한당에서는 매일 500나한상에 헌다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올리던 동자승은 그 모든 찻잔에 여덟 잎의 연꽃무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찻잔속에 새겨진 여덟 잎의 연꽃 소식에 여러 문인들이 시를 지어 찬미했다. 결국 그 소식은 그 지역의 관리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정에서는 재상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재상이 나한당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그 찻잔에서는 ‘대사응공(大士應供)’이란 네 글자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한공차’의 이야기다. 분차는 또 차백희(茶百戱)라고도 불렀다. 도곡의 ‘천명록’에서는 “근세 이래로 일부 사람들은 차탕으로 날짐승 들짐승 곤충 물고기 화초 따위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 마치 그림처럼 섬세한데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를 차백희라고 부른다.”고 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천명록’에서 말하는 ‘차백희’는 바로 물속의 그림이란 뜻을 가진 ‘영단청’(永丹靑)으로 불리는 ‘분차’를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에 분차에 가장 뛰어났던 스님의 한 일화가 전한다. 복전이라는 스님은 ‘분차’를 통해 그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님은 또 순식간에 시 한 구절을 지어내는 특출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 날 분차의 신묘한 재주를 배울 것을 간청하자 그 스님은 이렇게 답을 했다. “찻잔에 수단청 만들어지니/묘한 솜씨는 배워서 됨이 아니라/지난날 육우마저도 비웃으며/차를 우려 좋은 명성 얻는다.” 남송시대의 시인인 육우도 ‘분차’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작은 종이에 비스듬히 초자 몇자 끌쩍이다/맑은 세유로 분차놀이를 즐긴다.” 분차놀이는 일상속에서, 의례속에서 차의 화려함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분차’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여러 가지 기록속에서 사실로 보여진다. 그러나 마치 ‘신의 손’ 같은 차 우려내는 기술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 열반한 법장스님 북한으로 이라크로…실천불교 앞장

    열반한 법장스님 북한으로 이라크로…실천불교 앞장

    “나에게 바랑이 하나 있는데(我有一鉢囊) 입도 없고 밑도 없다(無口亦無底) 담아도 담아도 넘치지 않고(受受而不濫) 주어도 주어도 비지 않는다(出出而不空)” 11일 입적하기 전 시자(侍者)인 진광 스님에게 이같은 열반송을 남긴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왕성한 대외활동과 함께 실천적 불교 보급 등을 통해 한국 불교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장 스님은 지난 5월 민간 지도층 인사로는 처음 이라크 아르빌의 자이툰 부대를 방문, 국군 장병들을 위로했다. 이어 평양에서 열린 6.15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참가, 조선불교도연맹 박태화 위원장 등과 만나 남북 불교 교류 증진 방안을 논의했다. 현직 총무원장으로서는 첫 방북이었다. 또 스리랑카에 조계종마을을 세우는 한편, 지난 5월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조지프 디트러니 대북협상 북핵대사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의견을 나누는 등 최근 2년간 10여개국을 순방하며 한국 불교 세계화와 남북 화해 증진을 위한 대외활동에 힘을 쏟았다. 고인은 ‘신행을 중심 삼아 실천적 불교로의 지향’을 화두 삼아 이를 몸소 실천해왔다.1986년부터 교도소 재소자에 대한 교화사업을 벌여왔으며,1994년에는 부처의 가르침인 동체대비사상을 바탕으로 장기기증운동을 펼치는 ‘생명나눔실천본부’를 세웠다.2003년 2월 제31대 조계종 총무원장으로 선출된 법장 스님은 1941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1960년 예산 수덕사에서 현재 수덕사 방장인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뒤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4선), 중앙종회 사무처장, 총무원 사회부장, 재무부장과 수덕사 주지 등을 거쳤다. 또 열반 직전까지 사단법인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중앙승가대 이사장,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등을 맡아왔다. 조계종 종정표창, 교정대상 자비상,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고통을 모으러 다니는 나그네’ ‘덕숭산 수덕사’ ‘수덕사 중수기’ 등이 있다. 11일 조계사 극락전에 마련된 빈소엔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방문, 노무현 대통령을 대신해 조의를 표했다. 멕시코 국빈방문 중 법장 스님의 입적 소식을 접한 노 대통령은 메시지를 통해 “법장 대종사께서는 북한을 방문하는 등 남북 화해와 협력에 크게 기여하셨다.”며 “부처님의 자비하심을 생활속에서 실천해오신 높은 공덕을 기린다.”고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날 빈소에는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용 환경부 장관, 이미경 국회 문광위원장, 황우석 서울대 석좌교수 등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문화 캘린더]

    ●경기 수원시 9일(금)∼11일(일)‘게임 올림피아드 수원 2005’가 수원체육관·보조체육관 등 수원시 일원에서 열린다.▲게임제작대회▲전국게임대회▲정보올림피아드▲IT전시회▲아케이드 전시 및 체험관▲가족 체험행사 등 6개 분야로 나뉘어 진행된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뮤직페스티벌·프로게이머 팬사인회 등 다채로운 부대행사도 열린다. 자세한 프로그램은 대회 홈페이지(www.gosuwon.com) 참조.(031)228-2078. ●서울 도봉구 창동문화체육센터 소공연장에서 9일(금)부터 3일동안 가족뮤지컬 ‘하얀마음 백구’ 공연이 열린다. 극단 예일에서 구성한 것으로 탭댄스와 재즈로 섬에서 일어난 한 소녀와 진돗개의 실제 이야기를 꾸몄다. 입장료 8000원.(02)901-5055. ●경기 부천 여성청소년 센터 9일(금) 오후 7시 센터 앞마당에서 센터개관기념 공연을 개최한다.14·21·23일에도 공연이 이어진다. 공연일정은 ▲9일 양강석의 ‘아름다운 선율속으로’▲14일 인형극 ‘사랑을 주는 나무’▲21일 어린이를 위한 음악회▲23일 부천 남성합창단 ‘가을저녁 노래이야기’ 등이다.(032)326-6923.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9일(목)까지 서울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기획전시실에서 ‘2005 천공의 솜씨를 찾아서 특별기획전’을 연다. 도자·나전·목·금속 등 공예 분야 장인 50여명이 상감기법으로 만든 작품 150여점을 선보인다.(02)566-5951. ●서울 서대문구 공원녹지 분야 우수사업을 사진액자로 제작,10일(토)까지 안산도시자연공원 순환도로변 연흥약수터 앞에서 전시회를 연다. 아파트철거지 공원 조성사업, 골목공원 조성, 학교 녹화사업, 마을마당 조성, 도시생태림 조성 등 푸른 도시를 가꾸는 데 기여한 18건을, 공사 전후를 대비해 전시한다.(02)330-1395. ●성남문화재단 13일(화)∼28일(수) 성남 남한산성 유원지와 SBS 아트리움에서 프랑스 사진작가 필립 플리송의 ‘세계바다사진전(THE SEA)’을 개최한다.(031)709-5075.
  • [새영화] 종려나무숲-가을 수채화같은 사랑이야기

    잔잔한 파동으로 감정의 골을 깊숙이 파줄 멜로영화가 기다려지는 계절.16일 선보이는 ‘종려나무숲’(제작 영화사 참, 휴먼픽처스)은 인공감미료를 걷어낸 넉넉한 시골밥상 같은 멜로드라마이다. 티켓파워를 보장해줄 톱스타 없이도, 화려하고 강렬한 양념장치 없이도, 얼마든 사려 깊은 사랑 이야기가 빚어질 수 있음을 증언하는 작품이다. 시끌벅적한 도심을 비켜난 스크린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박하면서 진지한 감상의 기대를 부추긴다. 영화는 대부분의 장면을 수려한 거제도 해안 풍광을 배경화면으로 깔고 찍었다. 전도유망한 젊은 변호사 김인서(김민종)는 특허권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거제도 조선소로 파견근무를 온다. 그리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마주친 현장의 트랜스포터 화연(김유미)에게 막연히 호감을 갖게 된다. 작업복에 가려진 때묻지 않은 화연의 순수함을 호기심으로 탐색하던 인서의 감정은 어느새 사랑으로 발전한다. 영화 속 사랑 이야기는 그러나 산뜻한 템포와는 거리가 멀다. 매사에 의욕없이 심드렁한 인서에게 화연은 조금씩 특별한 존재로 다가오지만, 그 감정은 드러내놓고 뜨겁거나 격정적이지는 않다. 영화의 숨은 매력은, 관객들에게 감정의 호흡을 고를 시간을 충분히 주는 드라마의 여유있는 보폭에 있다. 성정급한 관객이라면 잠깐씩 지루하다고 느낄 만큼 서사의 짜임새를 존존히 엮어가는 데 주력한다. 도입부에서부터 펼쳐지는 인서와 화연의 연애담은, 인서의 기억을 통해 소환된 2년 전의 추억. 맞선 본 다음날 구애공세를 펴오는 여자 최성주(이아현)에게 인서가, 그토록 사랑했던 거제도의 연인에게 2년째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연을 덤덤히 들려주는 식이다. 이야기 속에 다시 이야기가 들어있는 액자소설 같은 독특한 틀거리의 드라마가 모처럼 서사를 곱씹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맞선 본 여자에게 들려주는 인서의 사랑 이야기에 또 하나의 이야기가 맞물려 바퀴를 굴려간다. 바닷가 외딴집에서 종려나무 숲을 가꾸며 평생을 살아온 화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조은숙)의 기구한 사연도 그대로 한편의 드라마가 될 만큼 탄탄한 기승전결 구도로 직조된다. 현대 감각의 연애담과 한(恨)의 정서가 신통하게 균형을 잡았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의 캐릭터에 설명부족인 대목이 많아 아쉽다. 인서는 처음부터 왜 그토록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야만 했는지, 화연에 대한 그의 감정을 무엇이 갑작스레 사랑으로 바꿔놨는지 등이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황정민표’연기 완성… 운명같은 배역

    ‘황정민표’연기 완성… 운명같은 배역

    배우 전도연에게는 조금 섭섭한 소리로 들리겠지만,23일 개봉하는 박진표 감독의 영화 ‘너는 내 운명’(제작 영화사 봄)에서 스크린을 압도하는 것은 그의 열연이다. 전도연의 연기가 상대적으로 못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더할 나위없이 뛰어난 그녀의 최고 연기에 시선을 고정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영화 내내 묵직한 무게로 다가온다. “에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제 능력이 10이라 치면, 전도연씨의 에너지로 인해 제 능력치가 12,13으로 상승작용을 하는 것이라니까요.” 시사회를 함께한 뒤 “지금껏 필모그래피 중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평하자 손사래부터 치며 쑥스러워하는 이 남자. 요즘 충무로에서 최고로 바쁜, 이른바 ‘잘 팔리는’ 배우 가운데 한 명. 배우 황정민(35)을 만났다.‘황정민의 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올 한해 그의 활동은 도드라진다. 이미 ‘달콤한 인생’,‘여자, 정혜’,‘천군’ 세 편을 통해 관객들과 만났고,‘너는 내 운명’과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곧 ‘사생결단’의 촬영에도 들어간다. 이 가운데 ‘너는 내 운명’은 그에게 있어 보다 큰 의미로 다가갈 영화다. 연극과 뮤지컬에서 확보한 독보적인 위치 만큼 영화배우로서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지 모른다. 역대 최고의 역할 비중에, 언제나 믿음을 주는 배우 전도연과의 호흡이란 것이 진작부터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영화속 그의 실감 연기는 그런 추측에 확신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지금껏 저는 언제나 작품속 주연이었어요. 기존의 여타 작품들에서 역할의 경중에 상관없이 스스로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죠.” 이번 작품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시골 노총각 석중. 다방 여종업원 출신에다 에이즈까지 걸린 여자 은하(전도연)를 주위의 편견에 맞서며 변함없이 지켜주며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남자다.‘어떤 옷을 걸쳐도 잘 소화해내는’ 배우로 평가 받으며 다양한 질감의 캐릭터를 선보여 왔던 그가 다소 ‘밋밋한’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작품을 선택할 때 항상 두 가지를 생각해요. 캐릭터가 영화속에서 ‘해야 할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가?’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가?’라는 것이죠.” 이번에 석중 역할도 ‘진정성’이 느껴져 선택했단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영화에서도 영화속 인물로서 관객들에게 각인되고 싶다고 했다.“ ‘황정민´을 절대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송강호, 설경구 등 선배들과는 다른 저만의 작업 방식인데, 캐릭터가 저의 이미지에 조금이라도 흡수되지 않도록 염두에 두고 연기를 하죠.” 그는 “촬영 내내 현장을 떠나서도 영화속 석중이로 살았다.”고 말했다. 촬영 전 몸무게를 15㎏ 불렸고, 중간에 다시 그만큼의 몸무게를 빼는 노력을 보여준 것도 실연의 아픔을 겪는 석중을 실감나게 표현하기 위해서다. 촬영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고 묻자 이내 목소리 톤이 올라간다.“후반부에 몸무게를 엄청 뺐는데, 별로 티가 나지 않더라고요. 몸은 빠졌는데, 얼굴은 그대로인 거 있죠.(웃음)”하지만 무엇보다 후반부 석중이 떠나간 아내로 인해 고통받는 장면이 가장 힘들었다. 영화상에는 1시간일지 모르지만, 자신에게는 한달 반 동안이라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단다. 자타가 공인하는 ‘연기 9단’인 그에게 “본인의 연기적 단점이 뭐냐.”고 묻자 잠시 침묵한다.“감정적으로 ‘시니컬’하지 못한 게 불만이에요. 언제나 성에 차지 않죠. 제가 숀팬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것이지요. 그가 보여주는 시니컬함이 부러워요.” 영화하겠다고 연극판을 나와 충무로를 기웃거리며 이곳저곳 오디션을 보고, 모두 떨어져 좌절하던 서른살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다는 그. 지금의 자신을 만든 8할은 아내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인터뷰를 맺었다.“저는 1순위가 집사람이에요. 연기요? 일은 그 다음이라니까요.(웃음)” 글 사진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전도연·황정민 호연… 근래 보기 드문 수작 영화 ‘너는 내 운명’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지난 2002년 전남 여수에서 한 다방 여종업원이 농촌 총각과 결혼했다가 뒤늦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게 되면서 고통을 겪게 되는 실제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목장경영이 꿈인 36세의 순박한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이 다방 여종업원 은하(전도연)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지만, 은하가 에이즈 보균자란 사실이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달콤한 행복은 이내 불행으로 바뀐다. 하지만 석중은 주위의 모든 편견을 딛고 은하만 바라보며 사랑을 지켜낸다. 영화는 석중의 뚝심 있는 사랑 이야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시종일관 자극한다. 단조로운 스토리의 지극히 통속적인 신파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영화속으로 점점 빠져든다.‘죽어도 좋아’를 만든 박진표 감독의 대담한 연출력과 전도연·황정민 두 스타의 호연이 제대로 맞아 떨어진 수작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프랑스인들의 지극한 ‘문화유산 사랑’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의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남다르다. 선조들이 남겨놓은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노력도 대단하다.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풍부한 문화유산도 자부심을 더한다. 프랑스 정부는 이같은 국민들의 문화적 열정을 바탕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을 들여 전국에 산재한 문화유산의 정비 및 복원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그 위에 문화재 관련 공공·민간 단체들과 교육기관, 전문가 집단, 그리고 기업 메세나가 이를 뒷받침한다. 온 국민이 똘똘 뭉쳐 사라져갈 위기에 처한 문화재를 복원하는 데 열정을 쏟아붓는 것을 보면 ‘문화예술 대국’이란 명성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베르사유 복원은 거대 국가 프로젝트 파리 남서쪽 약 20㎞에 있는 국립박물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인들이 가장 아끼고 자랑하는 문화유산 가운데 하나다. 이곳의 역사적 의미도 깊거니와 찬란했던 프랑스의 영광을 대변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루이 14세가 1661년부터 건축가 루이 르보, 화가 르 브룅, 정원사 르 노트르 등으로 하여금 본격적으로 건설하게 한 이 궁전은 1682년 공식적인 프랑스의 왕궁이 됐으며 1789년 대혁명까지 107년간 프랑스의 정치와 문화, 예술의 중심지였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2003년 10월 베르사유 복원계획 ‘그랑 베르사유(le Grand Versailles)’를 수립했다. 오는 2020년까지 장장 17년동안 지속되는 거대 국가 프로젝트다. 베르사유궁 역사박물관 피에르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베르사유궁은 프랑스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며,17세기 최고 수준의 예술이 집적된 문화유산”이라며 “그러나 대혁명으로 많은 부분이 훼손됐고,4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수차례의 복원과 개조를 거치면서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은 “혁명이전의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의 전문가도 복원작업 참여 베르사유 복원 작업은 17세기 예술 전문가와 역사학자, 회화 복원 전문가, 조경전문가, 건축가 등으로 구성된 과학자문위와 역사유물 최고위원회, 베르사유궁 행정자문위 등의 의견을 취합해 진행된다.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에도 베르사유궁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양식으로 지어진 궁들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전문가들도 복원작업에 다수 참가하고 있다고 아리졸리-클레망텔 관장은 설명했다.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와 별도로 정원 뒤편의 숲에서는 지난 1999년 겨울 태풍으로 쓰러진 떡갈나무를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정없이 몰아친 강풍에 수령 수백년의 떡갈나무들이 1000그루 가까이 뿌리째 뽑혀 나가자 정부는 즉각 4000만프랑(615만유로)의 특별 지원기금을 조성,10년간 진행될 정원 복원공사를 시작하도록 했다. 정원사들과 수목학자들은 쓰러진 떡갈나무와 같은 품종을 찾아 나무를 키우고, 쓰러진 자리에 다시 심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일부가 내년에 공개될 예정이다. ‘그랑 베르사유’프로젝트는 총 3단계에 걸쳐 진행되며 현재 1단계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 중이다.1억 3500만유로(약 1729억 6300만원)가 투입되는 1단계(2003∼2009년) 사업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부분들의 보존 및 복원작업과 함께 쾌적한 관람환경을 만드는 작업이 중심이 된다. 2단계(2010∼2015년)는 북쪽 날개관과 그랑 트리아농, 프티 트리아농이라 불리는 별궁을 복원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건설 당시 북쪽 날개관 중앙에는 중앙계단이 있어 거대한 궁전의 동선과 안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1837년 역사박물관 구조변경 작업으로 철거됐다. 이 중앙 계단을 재건하고 내부 뜰을 복원하는 작업이 계획돼 있다. 3단계(2015∼2020년)에는 중앙 날개관을 복원하는 작업과 함께 왕실 마구간을 전시실로 개조하게 된다. 르 노트르의 역작인 정원의 중앙부와 북부, 넵튠 분수의 복원과 그랑카냘(대운하)의 정비작업도 포함됐다.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 후원 그랑 베르사유 프로젝트의 구심점은 국가이지만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충당해 주는 기업 메세나들의 역할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프랑스 기업인들의 뜨거운 문화사랑이 복원사업의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주차장 운영 및 건설업체인 뱅시(VINCI)는 프랑스 기업 메세나 사상 가장 큰 액수인 1200만유로를 들여 베르사유궁의 꽃으로 불리는 ‘거울의 방’ 복원작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리석, 도금, 청동, 거울 및 크리스털이 주요 장식재료로 사용돼 호화로움이 극치를 이룬 ‘거울의 방’은 특히 르 브룅이 루이 14세의 생애를 고대화풍으로 그린 천장화가 유명하다. 뱅시 메세나의 올가 지아코모니 학예관은 “복원작업은 벽 유리의 손상된 부분을 교체하고, 나무 바닥을 17세기의 나무 마루로 되돌리고, 장식의 먼지를 털어내며, 르 브룅의 천장화를 복원하는 작업들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BNP파리바은행이 귀족의 방 천장화 복원을 지원했으며 로레알은 루이 15세의 옛 목욕실과 화장실을 복원하는 데 50만유로를 쾌척했다. 일본 기업 닛케이는 루이 16세의 의상 보관실을 복원해 주기로 하는 등 국내외 기업 메세나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문화유적지 4만여곳에 국보만 13만종 르노 돈느듀 드 바브르 문화장관은 지난 6일 ‘문화유산의 날’ 행사 설명회장에서 “우리의 문화유산은 곧 프랑스의 이미지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며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가꾸는 것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임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2004·2005년도 회기에 총 4억 8500만유로를 문화유산의 복원과 정비에 투입했다. 내년도(2005·2006년)에는 이보다 1억유로 정도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돈느듀 드 바브르장관은 밝혔다. 문화부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 전국에는 4만 2059곳의 보호대상 문화유적지가 있다. 이 가운데 1만 4232곳이 역사적 중요성을 지닌 역사적 유적지로 지정됐고,2만 7827곳이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돼 있다. 또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만 13만종, 국가 문화유적지 대장에 등재된 문화재가 12만 8000종에 이른다. lotus@seoul.co.kr ■ ‘문화유산의 날’ 22돌 |파리 함혜리특파원|프랑스인들은 매년 9월 세번째 주말 전국적으로 ‘문화유산의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이날 대통령궁인 엘리제궁부터 상원 회의실 등 공공건물을 비롯해 수도원과 수녀원과 같은 종교 건물, 개인 소유 성(城) 등 전국의 유서깊은 건물과 명소들이 무료로 공개되고 프랑스 국민들은 보기 힘든 명소를 맘껏 둘러보게 된다.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지난 1984년 당시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행사 의도처럼 보다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감상하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엔 약 1200만명이 문화유산의 날 행사를 계기로 문화유적지와 평소 방문하기 힘든 명소들을 찾았을 정도로 매년 행사 참가자가 늘고 있다. 올해로 22번째인 문화유산의 날은 9월17·18일 이틀.‘우리의 문화유산을 사랑한다(J’aime mon Patrimoine)’라는 슬로건을 내건 올해 행사에는 전국의 역사적 건물 1만 5480곳이 공개된다. 지난해에 1만 4000곳이 공개된 것에 비해 1500곳 정도가 늘어났다는 점에서도 이 행사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엿볼 수 있다. 각종 문화재와 박물관, 공공 건물이 밀집한 파리 지역에서만 1329곳이 이날 시민들을 맞이한다. 올해 행사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곳은 파리 그랑팔레(Grand Palais).12년 간의 재정비 작업 끝에 문화유산의 날에 맞춰 다시 문을 연다.‘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라고 일컫는 19세기 말의 화려한 아르누보 스타일을 대변하는 그랑팔레는 1900년 만국 박람회 때 세워졌다. 그러나 곧바로 구조적인 취약점이 드러나고 1910년 센강 범람 때 피해를 입어 몇차례 보수를 받다가 1993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공사에 들어갔다. 총 1억 136만유로가 투입된 재정비 공사에서는 지하에 2000개에 가까운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 건물 전체를 지지하도록 했고 대형 유리 돔도 복원했으며 야간 조명시설과 음향시설도 새로 갖췄다. 뤽상부르 공원 북측에 있는 상원 건물은 엘리제궁과 함께 문화유산의 날에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장소 중의 한 곳이다. 워낙 볼거리가 많은데다 평소엔 입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원형의 대회의장, 들라크루아의 그림이 있는 도서관, 왕관 전시실 외에 경제부문 법안을 심의하는 클레망소 룸 등 18세기에 지어진 뤽상부르 궁의 구석구석이 공개된다. 상원의장 관저도 공개돼 1625년 마리 드 메디치 왕비를 위해 지어진 왕실 교회당과 겨울궁전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행사엔 3만여명이 이곳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문화유산의 날 행사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확대돼 9월 한달 내내 각종 행사와 함께 진행된다. 프랑스인들은 역사적 건물, 미술품, 도서 등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데뿐만 아니라 더 많은 국민들이 문화유산을 향유하도록 하는 제도와 이벤트를 마련하는 데서도 앞서나가고 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lotus@seoul.co.kr
  • 장수천 물 흐리는 낚시꾼들

    하천살리기 운동 등으로 생태계가 복원되고 있는 인천 장수천(남동구 장수동∼서창동)에 낚시꾼들이 몰려들어 환경 복원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 있다. 시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사업비 44억원을 들여 5.41㎞의 장수천을 생태하천으로 꾸미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1단계 사업기간에는 2.31㎞에 대해 하천정화사업을 펼쳤다. 지난해 말 1단계 사업을 마친 뒤 장수천은 올 봄부터 송사리가 살기 시작했다. 여름부터는 뱀장어와 버들치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요즘엔 참게도 보인다. 농약사용 등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어 도심에선 구경하기 어렵게 된 참게의 등장은 장수천이 완전히 옛모습을 회복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1급수에서만 산다는 버들치도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물좋은 자리’를 노리는 낚시꾼이 장수천으로 몰리자 장수천 복원에 온힘을 쏟고 있는 인천시하천살리기추진단은 긴장하고 있다. 남동구에서는 ‘낚시 금지’라는 플래카드를 장수천에 설치해 놓았지만 소용이 없다. 사람들이 낮 시간을 피해 야간에 낚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측은 하루에 수백명의 낚시꾼이 장수천을 찾는 것으로 추산했다. 따라서 시와 구는 장수천에서의 낚시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려 중이다. 시 관계자는 “썩은 물이 흐르던 장수천이 물고기가 살 정도로 깨끗해진 것을 낚시로 인해 도루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軍과거사 규명 4건 확정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5일 12·12와 5·17 비상계엄확대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1980년대 초 신군부의 집권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과 삼청교육대 사건, 강제징집 등 녹화사업,1960년대 후반 발생한 실미도 사건 등 4건을 1차 조사대상으로 최종 확정했다고 밝혔다. 군 과거사위는 또 10·27 법난(法難), 언론인 해직 및 언론통폐합 사건,5·6공의 민간인 사찰, 재일동포 및 일본 관련 간첩조작 의혹사건 등을 2차 조사대상으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1차 조사에서는 특히 신군부 집권과정에서 벌어진 12·12사건에 관여하고 5·18 민주화운동을 강제 진압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던 군 인사들의 포상 내역이 조사 대상에 포함돼 경우에 따라서는 훈·포장이 박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과거사위는 신군부가 원활한 권력 장악을 위해 5·17 확대 계엄을 실시하고, 계엄 확대 이유로 내세운 당시 북한의 특이 동향 여부도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5·18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명령체계 및 실종자 행방 등도 의혹을 낱낱이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1980년 5월17일 비상계엄이 발령된 직후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가 군 부대 내에 설치한 삼청교육대사건과 관련해서는 최초 계획 입안 및 추진 과정에서의 위법성, 검거 및 교육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 실태, 검거자와 입소자의 규모, 사망자 수 등을 집중 규명할 방침이다. 강제 징집 및 녹화사건의 경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와 대상자 수, 프락치 공작 실태 및 피해사례 등을 주로 규명하게 된다. 1971년 실미도사건은 공군 684부대(일명 실미도부대)의 창설 배경 및 주체, 훈련병 모집과 훈련 과정에서 자행된 불·탈법적 인권 침해 행위를 집중 규명하고 훈련병의 신원 및 유해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한편 민간위원 7명과 국방부측 인사 5명 등 모두 12명으로 구성된 과거사위는 지난달 1일부터 민·군 조사관 10명씩을 임명하는 등 본격적인 조사를 위한 기초 작업을 해왔으며, 이번 조사 과정에서 해당 사건의 피해 실태를 파악해 적절한 명예 회복 조치 등도 권고할 방침이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충무로는 지금 ‘동막골’ 학습중

    충무로는 지금 ‘동막골’ 학습중

    A영화제작사는 요즘 영화 ‘웰컴투 동막골’(제작 필름있수다·이하 ‘동막골´)의 흥행 포인트 및 제작시스템을 꼼꼼히 뜯어보고 있다. 내년 개봉 예정으로 준비 중인 차기작에 ‘동막골´의 성공 전략을 적극 벤치마킹하려는 것. 대표 김모씨는 “당초 계획했던 톱스타 캐스팅 전략을 잠시 보류키로 했다.”면서 “그 노력과 비용을 연기력 있는 배우들 섭외와 탄탄한 시나리오 개발에 투입할 것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신인 배우 중심의 저예산 영화를 주로 제작해온 B영화제작사는 ‘동막골´의 성공에 한껏 고무돼 있다. 대표 이모씨는 “‘동막골´의 성공 이후 ‘기획만 잘하면 스타 뒤꽁무니를 좇지 않고도 영화 자체 경쟁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건강한 분위기가 충무로에 형성되고 있으며, 향후 이같은 제작 시스템이 큰 줄기를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무로가 ‘동막골´을 기웃거리고 있다. 이번 주말로 관객 600만명 고지를 돌파할 것이 확실한 올해 최고의 흥행작 ‘웰컴 투 동막골’이 충무로의 새로운 ‘대박 교재’로 떠오르고 있는 것.‘동막골´이 보여준 참신한 흥행 전략이 스타 파워에 찌들어 허약체질로 추락한 현 충무로 제작 시스템의 대안적 모델로 트렌드화 할 분위기다. 일부 제작사들에서는 차기작 준비에 ‘동막골´의 흥행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발빠른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그러면 ‘포스트 동막골’이 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어떤 것일까. # 저비용 고효율 ‘떼거리 캐릭터’ ‘동막골´이 보여준 흥행 미덕 가운데 으뜸은 ‘떼거리 캐릭터’. 주인공이 따로 없다. 강혜정·신하균·정재영·임하룡 등 출연 배우 모두가 주연이자 감칠맛나는 조연이다. 톱스타를 동원한 ‘원톱’ 또는 ‘투톱’ 영화라야 투자가 이뤄지고 흥행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오랜 편견을 보란 듯이 깼다. 애초 투자하기로 한 투자사가 스타 캐스팅 등이 아니라는 이유로 투자를 포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오히려 실력파 배우들의 호연이 관객층을 확대시키는 전화위복의 결과를 낳았다. 특급 스타를 내세운 ‘남극일기’(송강호, 유지태),‘주먹이 운다’(최민식),‘달콤한 인생’(이병헌),‘그때 그 사람들’(한석규) 등 대작들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동막골´의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측은 “비싼 몸값의 톱스타 한 명에 올인하기보다는 연기가 되는 여러 배우들을 색깔있는 캐릭터로 적재적소에 배치해 내실을 꾀한 전략에 성공을 확신했다.”고 밝혔다. 앞서 ‘마파도’를 통해 효력을 검증받은 이 ‘떼거리 캐릭터’ 전략은 ‘가문의 위기’(김원희, 신현준, 김수미, 공형진, 탁재훈…)와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엄정화, 황정민, 김수로, 임창정, 윤진서, 주현, 오미희…) 등 곧 개봉을 앞둔 영화들 사이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 ‘얼굴 마담’감독은 가라! 연출을 맡은 박광현 감독은 ‘동막골´이 데뷔작이다. 총 제작비 88억원을 투입한 거대 프로젝트에 초짜 감독이 투입된 것은 처음엔 충무로의 오랜 관행 처럼 보였다. 제작·투자자들이 자신들의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생초짜 데뷔감독’을 얼굴마담 격으로 앉혀놓는 경우가 허다했고, 결국 작품성의 하락과 함께 관객의 외면을 받는 결과를 낳았다. ‘이중간첩’ 등 최근 몇년간 데뷔 감독들이 참여한 대작 영화들이 기대와 달리 잇따라 실패한 사례들이 이를 입증한다. 하지만 박 감독은 투자·제작사에 휘둘리지 않고 제작현장에서 제 목소리를 확실히 냈고, 이는 CF계에서 보여준 그의 톡톡 튀는 영상 감각을 스크린으로 고스란히 옮겨 작품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 검증된 콘텐츠 영화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은 역시 시나리오. 장진 감독 원작의 ‘동막골´ 시나리오는 이미 동명의 연극이라는 시험대를 거쳤다.‘동막골´은 연극 무대를 통해 검증받은 탄탄한 스토리 구조를 바탕으로, 영화만의 영상미와 극적인 재미를 최대한 살려내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를 높였다는 평을 듣는다. 한맥영화사 김형준 대표는 “‘동막골´ 사례에서 보듯 투자자로서뿐 아니라 관객으로서 ‘영화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최상의 안전장치는 바로 ‘시나리오에 대한 믿음’”이라고 강조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지금 그곳은] 삼청각

    [지금 그곳은] 삼청각

    지난달 29일 북악산 자락에 자리한 삼청각(三淸閣)을 찾았다. 위탁운영자가 바뀌어 다시 문을 연 지 꼭 일주일만이다. 광화문에서 셔틀버스를 타니 10분 만에 도착했다. 일화당(一和堂) 처마 밑 나즈막한 풍경소리가 방문객들을 반겼다. 셔틀에서 같이 내린 성미현(32)씨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도 이렇게 한적한 장소가 있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삼청각은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 대표단이 만찬을 열었던 장소로 박정희 정권 때 ‘요정정치’의 산실이기도 했다. 특히 천추당(千秋堂)은 박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디카족’들의 인기 촬영 장소로 꼽히고 있다. 삼청각은 서울시가 2001년 매입해 세종문화회관·한화개발이 공동 위탁운영했지만 매년 40억원 안팎에 이르는 적자를 감당치 못해 올초 위탁운영자로 ㈜파라다이스를 다시 선정했다. ㈜파라다이스는 50여일 동안 시설 개·보수와 프로그램 마련 등에 20억원을 들여 재개장 작업을 했지만 막상 겉보기에는 그리 달라진 것은 없었다. 삼청각 운영을 총괄하는 ㈜파라다이스 박병룡 전무이사는 “삼청각이 기존에 해왔던 문화사업은 유지하면서 전통·모던을 조화롭게 유지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겠다.”면서 “파리에는 리도쇼가 있고, 뉴욕에는 브로드웨이의 뮤지컬이 있듯 서울에는 삼청각의 풍류문화체험이 있다고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삼청각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힘쓰고 있다. 오는 10월부터 일본의 5대 대형여행사에 속하는 ㈜한큐교통사와 ㈜JTB가 삼청각 풍류문화체험 상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미 지난달 26일 일본 오사카에서 30∼40대 관광객 22명이 삼청각을 다녀갔다. 문화공연을 비롯해 수라상, 다례체험, 산보 등을 반나절 넘게 즐기고 돌아갔다. 이밖에 삼청각이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은 1년동안 장기공연할 한국무용 공연인 ‘바람의 도학’이다. 학춤·선녀춤·궁중춤을 선보이며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의 권력다툼을 통해 조선 선비의 풍류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전문성이 떨어졌던 기존 공연과는 달리 이번에는 멀리 내다보고 제대로 투자를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삼청각 운영에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수익창출일 수밖에 없다. 한식당인 ‘이궁’(異宮)은 기존에 비해 가격대를 약간 낮춘 게 특징이다.2만원 대의 점심세트부터 20만원대의 궁중 정식까지 가격대가 다양하다. 찻집인 ‘다소니’는 산을 마주하고 있어 봄에는 진달래꽃이, 가을에는 단풍이 가득하다. 파라다이스 삼청각사업본부 김성열 사업부장은 “한달동안 식당예약이 5000건 접수되는 등 예약 문의가 폭주해 정신이 없다.”면서 “가족들이 주말에 외식을 할 수 있도록 저가의 상품을 마련한데다 자연을 벗삼아 음식을 먹는 게 특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다만 규방공예, 궁중다례 등 일부 문화강좌의 수강료가 한달에 15만원 안팎에 달해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삼청각측은 “기존에 삼청각에서 운영하던 문화강좌와 가격대를 비슷하게 책정했다면서 강사가 오히려 비용을 올려달라고 하기 때문에 크게 남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삼청각은 대중교통편이 없어 자가용 또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셔틀버스는 무료이며 삼청각∼경복궁∼인사동 입구∼삼성화재(롯데호텔 건너편)∼교보문고 정문 앞 등에 정차하며 오전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오후 10시 30분까지 운행한다. 주차비는 차·식사 고객은 무료며 공연관람객은 3000원이다. 이외에는 최초 30분 3000원, 이후 10분당 1000원이다. 문의 (02)765-3700.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당일치기 가을 개성관광

    고려 500년 도읍지였던 개성은 그리 매력적인 여행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까탈스럽고 번거로운 CIQ(출입관리시설) 검문을 거쳐야 하고, 때로는 이미 짜여진 일정에 따라 북측의 통제를 받으며 여행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성만큼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여행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여정은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긴다. 분단 55년 만에 문을 연 개성 관광길. 금강산에 이어 두번째 북한 관광길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마치 꿈을 꾸는 듯 손내밀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개성 시민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다소 낡아 보이는 아파트 베란다는 화분으로 한껏 멋을 냈고, 그 사이로 시민들이 어디론가 발길을 재촉한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사람들, 교복 입은 아이들, 한복을 입고 유모차를 끌고가는 여인들…. 풍경 하나하나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사진촬영을 통제해 가슴에만 담아온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개성. 하루로는 진정 아쉬움이 컸던 개성 당일관광으로 안내한다. 개성 글 사진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이것은 조심하세요 개성 관광은 북측 지역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지켜야 할 주의사항들이 적지 않다. 어길 경우 위반금을 물어야 하며, 심할 경우 북측에 억류돼 조사를 받아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마찬가지로 버스로 이동할 때와 북측 CIQ 및 군사시설에 대한 사진촬영이 금지돼 있다. 북측의 정치, 경제, 사상 등 서로 자극할 수 있는 대화는 자제하고, 검문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소지물품을 간편하게 하는 것이 좋다. 신분확인을 위해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하고, 개성관광증은 남과 북이 합의한 개성출입 여권 및 비자와 같은 역할을 하므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해서는 안 된다. 휴대품에는 제한 규정이 있는데 ▲10배율 이상의 쌍안경 및 망원경 ▲초점거리가 160㎜ 이상인 카메라 렌즈나 이를 탑재한 카메라 ▲광학 24배줌 이상 캠코더 ▲휴대전화(PDA포함)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 관광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물품 등을 휴대해서는 안 된다. 휴대전화는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측 귀환시 반환받을 수 있다. 관광 중에 통용되는 화폐는 미국 달러이며, 기념품은 1인당 300달러까지만 면세가 적용된다. 북측 의약품과 뱀술, 영정술, 우황청심환과 북한 사상 관련 각종 출판물은 남측 반입이 되지 않는다. 북측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해서는 안 된다. 북한군들은 남한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손총질’이라 해서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관광지 내에서는 되도록 흡연을 삼가고, 관광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경계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 개성 37mile 당일치기 여행 벽은 무너지고… ‘개성 시내의 모습은 어떨까. 선죽교, 박연폭포의 경치가 아름답다던데’ 설렘 속에 시범관광단을 실은 버스가 서울 경복궁을 출발했다. 개성까지의 거리는 약 50㎞. 승용차로 달리면 1시간 남짓한 거리다. 개성은 38선 이남에 있는 북한 땅으로 한국전쟁 전까지 남한에 속했던 지역이다. 자유로를 따라 달리던 버스가 속도를 줄인 곳은 임진강을 가로지르는 통일대교. 민족의 통일 염원을 담은 다리지만 차량 통제를 위해 겹겹이 막아놓은 바리케이드가 먼저 분단 현실을 실감케 한다. ‘남북왕래차량외 진입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가로막힌 도라산역 남측 CIQ(출입관리시설). 버스에서 내려 CIQ에서 간단한 짐검사와 법무부 출입국 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출경수속을 마쳤다. 출경 수속은 일찍 끝났지만 정해진 시간에 군사분계선(MDL)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8시 정각에 버스가 다시 남측 CIQ를 출발했다. 군사분계선 주변은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어 평온해 보였지만 도로를 제외한 주변 모두가 지뢰밭이라고 한다.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를 따라 철길이 나란히 달린다. 오른쪽 창밖으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로 널리 알려진 낡은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느끼게 한다. 마침내 북한땅. 군사분계선 북측지역으로 넘어가자 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버스를 응시하는 북한 군인의 모습에 마른 침이 절로 넘어간다. 군복을 차려입은 인민군 장교가 버스에 올라 눈으로 인원체크를 하는 것으로 북측 CIQ 입경 수속이 시작됐다. 버스 앞에서 눈으로 인원을 세는 사이 버스에는 잠시 적막감이 흐른다. 그 시선은 마치 이곳부터는 ‘북한’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듯했다. 이어 인민군 장교가 ‘개성 관광증’에 찍힌 일련 번호에 따라 호명하는 순으로 버스에서 내린 뒤 몸검사와 짐검사가 시작됐다. 인민군과 세관, 개성총국에서 함께 관리하는 CIQ에서는 가방을 열어 일일이 모든 것을 체크한다.CIQ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기정동 마을이 한적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카메라는 몇 ㎜입네까?”라며 출입하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준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리 위압적이지는 않다. 오히려 여행의 재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CIQ 뒤편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평양 아리랑 총회사 소속 직원들이 술과 기념품을 판매한다. 판매원 김윤화(21)씨는 “시내에 들어가면 술 한병에 여기보다 다섯달라(5달러) 이상 비싸요.”라며 권한다. 실제 개성인삼주가 이곳에서는 8달러지만 박연폭포 앞에서는 14달러를 줘야 한다. 1시간이면 달려올 거리를 3시간 만에 버스가 개성 시내로 향한다. 버스에는 20대 후반의 문광철(관광총회사 소속)씨와 조성(개성시 소속)씨 등 2명의 안내원이 동승했다. 이동중에 시내나 북한 주민 등의 사진 촬영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일행 중 한명이 “시내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라고 묻자 문씨는 “그러면 아주 불쾌한 관광이 됩네다.”라며 농담으로 응수한다. 개성으로 가는 길은 정비가 끝나지 않아 덜컹거린다. 개성공업지구를 지나 드디어 개성 시내로 들어섰다. 시내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고, 중심가에는 20층은 족히 돼 보이는 아파트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건물은 낡았지만 베란다는 갖가지 화분들로 한껏 멋을 내고 있다.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제갈길을 재촉했다. 아파트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지만 멀리 아파트 창문으로는 빠꼼히 버스 행렬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려 시내를 걸어보고픈 충동이 밀려 왔다. 언젠가는 마음놓고 걸어볼 날이 오겠지…. 버스는 고려 박물관(고려 성균관)에 도착했다.992년 창설된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자감의 후신으로 1308년 성균관으로 개칭됐으며, 조선시대 설립된 성균관과 구분하기 위해 고려 성균관으로 불린다.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1610년 재건한 것으로 입구에 있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박물관은 4개의 전시관과 야외전시관이 있는데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등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유물과 현화사 7층탑, 현화사비 흥국사 석탑 등 북측의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입구에는 북측 화가들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고 있다. 전시관에 들어서자 안내원들의 맛깔스러운 설명이 이어진다.“고려 유물은 임진왜란 때 왜군이 많이 약탈했습네다. 이제 북·남이 힘을 합쳐 다시 찾아와야지요.” 송도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이옥한(40) 해설원은 유물 설명중 ‘개성 깍쟁이’의 유래에 대해 “‘깍쟁이’라는 말은 ‘가게 쟁이’에서 유래된 것으로 셈이 밝아서 그런 게 아니라 상업이 번창해 가게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고려 박물관에서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선죽교에 도착했다.919년 고려 태조가 개성내 하천축조의 일환으로 건립한 돌다리지만 고려 충신 정몽주가 피살당한 곳으로 더 유명하다. 다리의 길이는 6.67m, 너비는 2.54m. 원래는 난간이 없었으나 1780년 정몽주의 후손들이 난간을 둘러 보호하고 옆에다 돌다리도 하나 더 놓았다. 개천을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로 화려함은 없지만 정갈한 느낌이다. 안내원 한명이 다리 한편에 있는 옅은 붉은색 얼룩을 가리켰다. 그는 “이게 정몽주 선생의 피”라며 “그래서 선지교였던 이곳이 선죽교라 불리게 됐다.”는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 선죽교 옆에는 정몽주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여러개 서 있다. 당초 일정이 개성민속여관에서 정몽주 생가인 ‘숭양서원’으로 바뀌었다. 개성민속여관은 조선시대 전통가옥을 여관으로 꾸민 것으로 현재 외국인 관광객들이 묵고 있어 관람이 어렵다는 것.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고 한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7월11일 붉은기, 선죽동, 제2인민반’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북측 안내원에게 “학교 간판이냐.”고 묻자 “번지인데 이 집은 특별한 날을 기리기 위해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몽주 영정 등이 모셔져 있는 사원에서는 개성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무척이나 아름답다. 사원 앞에 있는 간이 상점에 들르자 북한 음료가 눈에 띈다. 코카콜라와 비슷한 검은색 음료는 ‘코코아 탄산단물’이며, 환타와 같은 음료는 ‘모란봉 레몬 탄산 단물’이란다. 가격은 1달러. 냉장고에서 꺼낸 코코아 탄산단물은 달착지근한 맛이 그런대로 갈증을 풀어준다. 숭양서원을 나와 개성백화점, 김일성 동상 등을 지나 개성 남대문 로터리를 돌아 다시 선죽교 인근에 있는 자남산 여관에 마련된 식당에 자리를 잡았다. 또다른 식사 장소로는 통일관과 영통식당, 민속여관내 식당 등이 있다.2층 식당에서는 한상 가득 개성식 식사가 차려져 나왔다. 반찬으로는 개성 약밥과 떡합석, 삼색나물, 닭고기 장과, 돼지고기 편찜, 오이소박이 등이 맛깔스럽게 차려졌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우메기’. 종업원 김영실씨는 “찹쌀 70%에 멥쌀 30%로 만들었는데 기름에 튀긴 뒤 떡 위에 우묵우묵 칼자국을 내서 ‘우메기’라 부른다.”고 설명했다. 김치는 왜 안 나오느냐고 묻자 “개성은 보쌈김치가 유명한데 그건 겨울에 오셔야 합네다.”라고 덧붙인다. 식사는 대부분의 식당들이 비슷하지만 11첩 반상기와 단고기(개고기) 정식 등이 나오기도 한다. 개성에서 북쪽으로 26㎞ 떨어진 박연폭포로 가는 길은 제주도 오름을 연상시킬 만큼 널찍한 초원이 반긴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주변은 나무가 많지 않은 구릉들로, 푸른 초원이 덮여 있어 절로 감탄을 쏟아내게 한다. 1992년 김일성 80회 생일에 완공된 이 고속도로는 북한 최초의 아스팔트 4차선 도로다. 평양까지는 160㎞로 승용차로 1시간30분 걸린다고 한다. 도로 주변에서는 옥수수 밭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농부들이 노란 옥수수를 수확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이 밀려왔지만 (감시원이 있어) 멋진 경치를 눈으로만 담아와야 했다. 200m 남짓한 숲길을 오르자 박연폭포가 거대한 물줄기를 쏟아 붓는다. 천마산과 성거산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이 북쪽 계곡을 따라 흐르다 못을 만들고 그 아래 37m 높이의 폭포를 이루고 있다. 폭포 위에는 박연이라는 연못이 있고, 폭포 아래 직경 40m의 고모담이란 바위 연못이 있다. 박연폭포는 화강암벽의 순수 자연폭포로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더불어 한반도의 ‘3대 폭포’로 꼽힌다. 웅장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수와 함께 인근 소나무, 화강암벽이 자연스레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다. 폭포수 아래 동쪽 언덕에는 법사정이라는 정자가, 서쪽에는 용바위라는 둥근 바위가 각각 절묘한 미색을 자랑한다. 자남산 여관 서점에서 산 ‘개성관광안내 책자’에 따르면 ‘옛날 퉁소를 잘부는 박진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곳 물가에서 퉁소를 부는 그에게 끌리어 물 밖에 나온 용왕의 딸이 박진사를 물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같이 살았다고 하여 ‘박연’이라고 한다. 그 아래 고모담은 박진사의 어미가 아들을 잃은 슬픔을 안고 통곡하다가 물에 떨어져 ‘어미담’ 또는 ‘고모담’이라고 불렀다.’고 적혀 있다. 박연폭포 위 대흥산성에 오르면 위에서 박연폭포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은 흙길이지만 진흙과 모래가 섞여 있는 마사토로 질지 않다. 1시간 남짓 박연폭포를 돌아본 뒤 짧은 개성 관광이 마무리됐다. 버스에 오르라는 안내원들의 재촉에 “여행이 수박 겉핥기 식이다. 너무 짧다.”며 곳곳에서는 아쉬움 섞인 푸념들이 들려 왔다. 박연폭포에서 내려가는 길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왔다. 반세기 만에 찾은 남측 손님들의 아쉬움을 아는지 하늘에서는 간간이 빗줄기가 쏟아졌다. ■ 꼭보자 베스트3 개성은 한민족 최초의 통일 국가인 고려의 500년 도읍지였던 만큼 고려 건국시조인 왕건왕릉과 고려 31대 공민왕릉, 고려민속박물관, 선죽교, 영통사 등 고려 유적지가 주류를 이룬다. - 왕건왕릉(북한 사적 제53호) 개성에서 북서쪽으로 6㎞ 떨어진 해선리의 만수산 자락에 있는 왕건왕릉과 신혜왕후 무덤은 왕건의 뜻에 따라 검소하게 만들어졌다. 왕릉은 1994년 새롭게 단장됐다. 3단 축조의 웅장한 무덤과 그 앞에 문무관의 석인상, 호랑이와 양을 비롯한 석조군상으로 위용을 자랑하며 능문과 제당도 갖춰져 있다. 무덤안을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돼 있으며, 능앞에 넓은 공원이 조성돼 있다. 최근 왕릉에서 청동의 왕건조각상이 출토돼 세간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등신대의 인물조각상으로 연구가치가 높다. - 공민왕릉(북한 국보급문화재 제39호) 개성에서 서쪽으로 9.8㎞ 떨어진 개풍군 해선리 봉명산 문선봉 아래에 있는 무덤은 쌍분으로 왼편이 고려 31대 공민왕의 현릉이고, 오른편이 부인 노국공주의 정릉이다. 이 무덤은 남한에서 주로 보는 왕릉과 달리 3개의 층단으로 구성돼 있는 점이 특이하다. 봉분의 높이는 6.5m. 각 봉분에는 12각의 병풍석을 돌리고 12지신상과 연꽃무늬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공민왕은 1365년 왕비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죽자 애통한 나머지 9년 동안 자신이 직접 주관, 방대한 조영사업을 벌였다. 이 왕릉에는 고려시대 수학, 천문, 지리, 건축, 예술 등 총체적인 역량이 집대성돼 있다. - 영통사(북한 보물급 문화재 35~38호) 1027년(현종 18년) 창건되었다. 고려 왕실과 깊은 관련이 있어 인종을 비롯한 여러 왕들이 자주 행차해 분향하였으며, 인연이 있는 왕들의 진영(眞影)을 모시는 진영각이 있었다. 대각국사 의천도 이곳에서 교관을 배웠으며, 입적한 후에는 그의 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 언제 폐사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문화재로는 북한의 보물급 문화재 제36호인 영통사대각국사비, 제37호인 영통사 당간지주, 제35호인 영통사동삼층석탑, 제38호인 영통사서삼층석탑, 국보급문화재 제37호인 영통사오층탑이 있고 보광원, 중각원 등이 있다. ■ 3가지 코스 중 고르세요 개성관광은 ‘고려반’‘박연반’‘왕릉반’ 등 3개의 코스로 구성돼 있으며, 이 가운데 1개 코스를 택하게 돼 있다. 고려반은 오전 개성시내관광(고려박물관, 선죽교, 개성민속여관), 오후 박연폭포를 참관하는 코스이며, 박연반은 오전 박연폭포, 오후 개성시내 관광을 하는 것. 왕릉반은 공민왕릉과 왕건릉을 참관한 뒤 오후에 개성시내관광을 하는 것이다. 관광은 대략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쯤 모두 끝나게 되며, 돌아오는 길에 개성공단 시범단지를 견학한다. 관광 중 세부적인 해설은 북측의 전문 해설원들이 맡게 되며, 점심식사는 개성시내에 있는 자남산호텔식당이나 영통식당, 통일관, 민속여관내 민속식당 등에서 하게 된다. 그러나 현대아산에 따르면 본 관광 시기와 요금은 아직까지 확정되지 않았다.3차례 실시된 시범관광의 경우 관광요금 17만 4000원과 식대 2만 1000원을 포함해 19만 5000원인데 본 관광 요금이 이보다는 높지 않을 것이라는 게 현대아산측의 설명이다. 개성관광에 대한 문의 및 예약은 현대아산 (02) 3669-3000.
  • “부처님 진신사리 보러오세요”

    “부처님 진신사리 보러오세요”

    경상북도 봉화군 축서사에서 석가모니의 유골인 진신사리 110여과가 한꺼번에 공개돼 불탑에 안치된다.100과가 넘는 대규모 진신사리가 한 사찰에 봉안되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불교조계종 축서사는 31일 “진신사리인 적(赤)사리와 불두(佛頭)사리 112과와 응혈사리 수백과를 공개하는 사리친견법회를 4∼5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축서사는 이틀간 축서사 대웅전에서 이들 사리를 유리사리함에 넣어 전시할 예정이다. 사리친견법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불자들이 사리함 앞에서 참배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국내에서 진신사리가 봉안된 곳은 통도사·봉정암·상원사·법흥사·정암사 등 5대 ‘적멸보궁’이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진신사리 100과를 가져와 5대 적멸보궁에 나눠 안치한 것. 따라서 이들 불사에는 각각 20과 정도 봉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화사·삼광사 등에서도 진신사리가 발견됐지만 불과 2∼10과 정도다. 그만큼 국내에서 진신사리는 희귀하다. 축서사도 지난 2002년 소장 중인 보물 제1379호 괘불탱화를 조사하던 중 적사리 2과를 발견했다. 이후 무여 주지스님이 2과를 추가로 입수,4과를 보관하게 됐다. 이를 봉안하기 위해 불탑 건립을 구상하던 중 지난 6월 이 절에 다니는 한 보살로부터 불두사리 108과와 응혈사리 등을 기증받았다. 축서사 총무 혜산 스님은 “신도가 미얀마 성지순례 중 현지 박물관장을 만나 진신사리를 선물로 받았다.” 고 말했다. 축서사는 지난 5월 대웅전 마당에 불탑 자리를 마련하고 불교조각가 김광열씨에게 불탑 제작을 의뢰했다. 황등석을 재료로 5층으로 만들어지며, 오는 11월쯤 완공될 예정이다. 불탑에는 진신사리와 함께 신도들의 기증품 등이 봉안되며 사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은판에 새겨 영구보관하게 된다. 그러나 대규모 진신사리가 국내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미얀마에서 들어온 만큼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축서사측은 “미얀마 박물관장의 진품 확인서가 있다.”며 석가모니의 열반 이후 대다수 진품사리가 미얀마 등 8개국으로 옮겨갔다고 덧붙였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SBS 드라마 ‘서동요’ 선화공주역 이보영

    SBS 드라마 ‘서동요’ 선화공주역 이보영

    “선화공주님은/남몰래 정을 통해놓고/서동을/밤에 몰래 안고 간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가장 오래된 향가로 등장하는, 능청맞기 이를 데 없는 사연을 가진 노래 서동요(薯童謠). 마음에 드는 신라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해 백제의 꾀돌이 소년이 지어 퍼트렸다는 노래다. 물론 이 꼬마는 나중에 백제왕이 된다. 이 드라마 같은 얘기가 1600여년의 세월을 넘어 진짜 드라마로 부활했다.SBS가 창사15주년기념 특집으로 마련한 50부작 대하드라마 서동요가 5일 선보인다. 맑고 깨끗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고 있는 탤런트 이보영(26)이 ‘선화공주’역을 맡았다. 참한 새색시 같은 이미지로 언제나 구슬프게 울었던 이보영이 이번에는 화사한 공주로 되돌아 온 것. 굽이쳐 흐르며 충북 부여를 관통하는 백마강 옆 야외세트장에서 이보영과 만났다.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는 이보영은 말 그대로 공주의 자태였다.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입 댈 정도다. 고급스럽게 화사한 밝은 톤에다 화려한 수가 놓여져 있다. 그런데 그나마도 공주의 평상복이라 한다. 좀 더워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호강하는구나 싶기도 했다. 이보영도 그런 듯했다. 전작 ‘어여쁜 당신’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극적 긴장이 정점에 다다르는 바람에 너무 울었기 때문.“사실 처음에는 조금 쉬고 싶었어요. 최근 7달 정도를 울고 또 울었거든요. 그런데 이번 역은 발랄하고 활달한 역이어서 마음에 들어요. 장난기도 많고 명랑하고 쾌활해요.”그래서인지 첫 사극이라 긴장될 법도 한데 외려 재미가 쏠쏠하다 한다.“사극이다 보니 대사의 톤이나 발성같은 게 어색하기도 하고 의상도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처음이니까 재미가 더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캐스팅된 이유를 묻자 아무래도 밝은 면인 것 때문이라고 한다.“이병훈PD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캐스팅한 이유가 ‘어여쁜 당신’을 초반부만 봤는데, 그 때 연애하고 그런 밝아보이는 모습이 좋아서라고요.”실제 성격을 묻자 “평소 성격도 그래요. 장난기도 있고 명랑하고. 물론 어느 정도 과하지는 않게요.”이보영 본인 욕심도 적지 않다.“좋은 감독님과 스태프 때문에 욕심이 너무 나더라고요.”‘어여쁜 당신’과 촬영 스케줄이 겹치는데도 출연을 강행했던 것도 이 때문. 서동요에서는 선화공주의 예쁜 연애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 PD는 ‘대장금’에서 의학과 요리를 선보였듯, 서동요에서는 ‘과학’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그러나 러브스토리를 줄이지는 않을 것이라 했다.“대장금에서 이영애와 지진희의 러브스토리를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게 아쉬웠습니다. 뭐라 그래도 왕의 여자였기에 드러나지 않아야 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양쪽이 왕자, 공주니까 자유롭게 한번 표현해볼 생각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NG까지 탐나요” 어여쁜 공주가 있으면 그 공주를 차지하려는 선 굵은 사내들이 있어야 또 제 맛이다. 어쩌면 그 인물들간 얽히고 설킨 선택이 드라마의 스토리이기도 하다. 선화공주 주변에는 두 남자, 서동과 사택기루가 있다. 서동을 맡은 조현재. 이 PD의 평가처럼 “왕족다운 준수함과 적당한 음영”이 얼굴에 짙게 깔려 있었다.“제 얼굴이 너무 진지해보인대요. 그런데 그게 이 역할과 잘 어울린다고 하시더라고요.”워낙 대작을 연출해온 이PD의 작품이라 부담은 되지 않을까.“아직 나이가 어리거든요. 그래서 뭐든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사택기루역의 류진은 “또 여자고 뭐고 다 뺏기는 역할”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배우라면 사택기루역이 더 탐날만도 하다. 진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선화공주를 사랑할 수 없는 인물, 그러기에 왕족이 되기 위해 최고의 비밀임무를 받아들여야 했던 인물, 그럼에도 선화공주의 행복을 위해 서동의 권력 장악을 도와야만 했던 인물, 그게 바로 사택기루다. 애정, 욕망, 음모 등 온갖 감정이 다 뒤엉킨 캐릭터인 셈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둘 다 사극은 처음이다. 이 PD와의 작업도 처음이다. 그런만큼 긴장이 많이 된다.“이 PD님이 수십번 NG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어떻게 적응해나갈지 고민이 많지만 어렵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경형칼럼] 내년에 내각제 공론화를

    [이경형칼럼] 내년에 내각제 공론화를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주 임기 후반에 들어가는 첫날 또 ‘바보 노무현’을 연출했다. 연정(聯政)이 뭐기에 권력을 통째로 주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하는 것일까. 낡은 지역주의에 의존한 정치 구조와 분열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인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실제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빙빙 둘러 연정이니 선거구제니 하는 것처럼 들린다. ‘권력을 통째로’ 발언 직전에 노 대통령은 “우리나라 정치제도가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서 재신임을 물을 수도 없다.”고 하는가 하면, 독일의 슈뢰더 총리,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부럽다고도 했다. 또 최근 일련의 언론인들과의 대화에서는 양원제의 필요성을 거론했고.“전반기는 요리를 하는 데 집중했다면, 후반기는 주방시설을 바꾸는 데 전념하겠다.”고도 했다. 현재의 선거구 및 선거제도, 권력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은 물론 한국정치의 뿌리 깊은 지역구도 정치 문화를 확 바꿔, 새로운 지식정보화사회로 진입하는 데 걸맞은 정치문화로 업그레이드시켜보자는 얘기 같다. 그런 의도라면 차제에 분명한 비전과 복안을 당당하게 내놓기를 권한다. 예를 들면, 금년 정기국회부터 각 정당과 의원들이 기존 선거제도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제로베이스에서 현행 소선거구제와 전국 비례대표제, 의원정수 등을 논의해보자, 그리고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중대선거구제 도입 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병행 채택 등도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자고 하는 편이 낫다. 이런 논의를 바탕으로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개헌문제를 공론화하여 내각제 전환을 위해 필요하면 2008년 5월까지인 현 국회의원의 임기를 2007년 12월 차기 대선 시기로 앞당기는 등의 문제까지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따져보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은 군부독재와 민주화 세력의 대결 구도였던 1987년 6·10항쟁의 산물이다. 당시로는 직선제와 단임제 구현이 최고의 선이었고, 국민적 요구였다. 그동안 문민정권이 들어섰고, 영남정권에서 처음으로 호남정권으로 바뀌기도 했으며, 참여정부 등장으로 기득권 세력이 권력에서 밀려나는 등 권력 역전현상도 일어나긴 했지만, 지역주의 정치구도는 지속되어온 게 사실이다. 6·10항쟁 이후 지난 20년간 한국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권력의 수직적 사회에서 권력 분산의 수평적 사회로 이행되어 왔고, 이념적 스펙트럼도 크게 넓어졌다. 또 다양한 집단간의 잦은 이해 충돌, 계층간 괴리 확대 등으로 인해 사회통합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한편, 정치 제세력간에 긴장이 고조되었을 때 재빨리 해소하는 권력메커니즘의 필요성이 점증되고 있다. 말하자면,5년 단임제 대통령제 권력구조를 본질적으로 재점검할 때가 된 것이다. 지역주의의 극복까지는 몰라도 그 폐해를 점진적으로 해소해 나가는 데는 대통령제보다는 국회 해산과 총선거가 용이한 내각제가 더 효과적일 것이다. 대통령 발언의 진정성을 인정한다면, 선거제도 개혁과 내각제 공론화가 지역주의 극복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이 된다고 본다. 다만 대통령이 임기 후반기에 ‘주방시설 개수’를 제1과제로 삼는 것은 국민은 배가 아픈데 등을 긁어주는 격이 된다. 대통령은 물꼬를 터줘 독려만 하고, 구체적인 논의는 정치권에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서울 하천변 푸르게 푸르게

    서울시는 오는 11월까지 시내 주요 하천 4곳의 둑 위나 둑 바깥쪽(도로나 주택가쪽) 비탈길 등 11만㎡(약 3만 3000평)에 나무와 꽃을 심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삼는 ‘하천변 녹화사업’을 벌인다고 28일 밝혔다. 사업 대상은 중랑구 중랑천, 영등포구 도림천, 영등포·양천구 안양천, 마포구 홍제천 등 4곳이다. 시는 이들 하천의 둑 위나 둑 바깥쪽 비탈길에 조팝나무와 갯버들 등 나무 17만그루를 심고 5000여평의 갈대밭과 꽃길 등 산책로를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중랑천의 경우 둑 윗부분에 덩굴 및 총생장미(한 가지에서 꽃이 여러 송이 피는 장미) 2000그루를 심고 장미터널을 만들어 시민들이 산책을 하면서 꽃을 감상할 수 있게 꾸밀 예정이다. 시는 2002∼2004년 9개 하천 28개 구역 51.7㎞ 하천변에 수목 23만그루, 담쟁이 등 덩굴성 식물 4만그루, 갈대와 꽃창포 등 우리꽃 40만송이를 심는 한편 정자 등 편익시설과 운동시설 139개를 설치해 하천변을 푸르게 가꿔왔다.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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