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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 행정] 요즘 힘들죠, 힘 모아 함께 삽시다

    강북·노원·도봉·성북 등 서울 동북 4개구는 지하철 4호선이 관통하고 북한산·도봉산·수락산으로 이어진다는 점 말고도 매우 중요한 사회적 공통점이 있다. 서울에서 풀뿌리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한 곳. 동북4구는 자연스레 서울에서 가장 사회적 경제에 대한 논의와 실험이 왕성한 곳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24일 성북구청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린 ‘동북4구 발전협의회’는 이런 흐름을 더 발전시키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날의 토론회 주제도 역시 ‘마을만들기와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뒀다. 토론회에서는 사회적기업(우승주 성북구 사회적경제 특화사업단장), 마을기업(박학용 성북구 동네목수 대표), 협동조합(강봉심 노원구 함께걸음 의료생협 상임이사), 자활센터(송건 도봉지역자활센터 관장), 마을공동체(이상훈 강북구 삼각산 재미난마을 사무국장) 등 5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관계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고민을 나누고 대안을 함께 모색했다. 이어 사회연대은행이 진행을 맡은 2부, 사회적경제 아이디어 워크숍에서는 5개 분야의 분임토의와 테이블별로 도출된 아이디어를 발표하는 순으로 진행됐다. 동북4구 구청장들은 바쁜 일정속에서도 모두 참석해 구청 차원의 적극적인 반영 의지를 보였다. 발전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이 ‘강남 스타일’이라면 상생과 협력, 연대가 ‘동북4구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오늘 논의가 우리 사회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역설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이제 서울에서 참여와 공유라는 가치가 중심이 되는 주민자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은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경제는 꾸준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사회적 경제는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필수코스”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오랫동안 지역에서 일해온 풀뿌리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면서 “밑에서 위로, 지역에서 전체로 확산되는 도시 모델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도약하는 대학] 세계일류로 ‘무한도전’ 울산대

    [도약하는 대학] 세계일류로 ‘무한도전’ 울산대

    울산대가 글로벌 인재양성의 요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6년부터 시행한 ‘세계 일류화 프로젝트’가 든든한 배경이다. 조선·자동차·석유화학과 연계한 공학계열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올해 영국의 대학평가기관 QS의 아시아대학 평가에선 15개국 461개 대학 중 99위에 랭크됐다. 울산대는 재단의 모기업인 현대중공업그룹과 KCC그룹 등 글로벌 기업에서 지원하는 ‘학부 세계 일류화사업’과 등록금만으로 해외자매대학에서 수업받는 ‘해외현장학습’ 등이 큰 성과를 내고 있다. 세계 일류화사업은 2006년 조선해양공학부를 시작으로 화학공학부, 기계공학부, 전기공학부로 확대되고 있다. 이는 세계 최대의 조선·자동차·기계·석유화학 기업이 자리한 울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린 산·학 발전 전략이기도 하다. 조선해양공학부 졸업생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STX조선 등 세계 10대 조선업체와 일본·이탈리아·영국 등의 해외 선급협회 선급 검사관 입사, 대기업 연구원 취업 등의 성과를 내고 있다. 2월 졸업생 59명이 현대중공업·STX조선·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에 입사했다. 글로벌 정밀화학기업 ㈜KCC로부터 132억원을 지원받는 화학공학부도 최첨단 실험실 준공과 13종의 장학제도를 앞세워 우수한 신입생을 확보하고 있다. KCC 특별장학생들은 4년간 등록금 전액, 기숙사비·생활비·해외 어학연수비용 등을 지원받고 졸업 후 KCC 입사가 보장된다. 올해 신설된 ‘정상영 특별장학’ 제도는 매년 3~4명의 신입생에게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1인당 2억 8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다. 기계공학부와 전기공학부는 2015년까지 125억원과 150억원을 각각 지원받는다. 이렇게 되면 기계공학부와 전기공학부에는 ‘BK(두뇌한국) 21사업’ 등 기존 정부지원 사업비를 포함해 각각 300억원 이상이 투자된다. 이들 학과 재학생은 취업과 해외연수비용을 연계해 지원하는 ‘일류화 장학금’으로 해당 분야 엘리트로 육성된다. 의과대도 울산대학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 취업하게 된다. 국제학부는 영어·일본어·중국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5개 어문계열과 국제관계학, 글로벌 경영학 등 관련 학문을 통합해 글로벌 교육역량을 극대화하고 있다. 자유전공을 선택한 신입생은 2학년이 될 때 7개 전공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영어만 사용하는 글로벌 라운지, 멀티어학실, 토익 말하기·쓰기공인센터, 외국인 학생과 함께 하는 기숙사 등을 갖춘 첨단 국제관도 문을 열었다. 또 2학기에 690명이 생활할 수 있는 청운학사 기린관(지상 14층)을 신축함으로써 학생생활관 기숙인원이 1867명에서 2237명으로 늘었다. 370명을 선발하는 수시 2차 모집은 11월 12일부터 16일까지 실시한다. 울산 박정훈기자 jhp@seoul.co.kr
  • [Weekend inside-웹툰의 세계] 웹툰에 빠지다, 초딩부터 직딩까지 ‘드르륵’… “내 얘기랑 똑같네” 공감

    [Weekend inside-웹툰의 세계] 웹툰에 빠지다, 초딩부터 직딩까지 ‘드르륵’… “내 얘기랑 똑같네” 공감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마다 리트위트와 공유가 넘쳐난다.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장그래’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등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기원 연습생 출신으로 입단에 실패한 장그래는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종합상사에 낙하산으로 입사한다. 사회생활 경험도, 관련 공부도 해본 적이 없는 그의 회사생활이 결코 순탄할 리 없다. ‘이끼’로 이름을 날린 윤태호 작가는 장그래의 회사생활과 인생을 그가 가장 잘하는 바둑에 비유해 보여준다. 장그래는 회사생활을 하는 내부인이자, 회사를 바둑판처럼 내려다보는 외부인이기도 하다. 장그래가 억울한 일을 겪으면 독자들은 흥분하고, 멋지게 일을 해결하면 모두 환호한다. ‘곤마’ ‘복기’ 등 전문적인 바둑 용어들도 술술 읽힌다. 직장인 정명기(39)씨는 “처음엔 바둑에 인생을 비유하는 것이 현학적으로 느껴졌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내 스스로가 세상 살아가는 방식을 돌아보게 한다.”면서 “가끔은 소름이 끼치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몰입해 읽게 된다.”고 말했다. #김문학 과장은 가우스전자에 다니며 가우스아파트에 산다. 가우스모터스의 차를 타고, 가우스카드로 결제하며 가우스생명에 가입해 있다. 네이버 웹툰 ‘가우스전자’의 첫회는 ‘그렇다면 김 과장은 가우스의 직원인가 고객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국적 문어발 기업’의 기치를 내건 가우스전자 마케팅3부 직원들의 얘기를 담고 있다. 착하지만 능력이 달리는 주인공 이상식씨를 중심으로 존재감이 없는 나무명씨, 기러기 아빠인 위장병 부장, 능력은 있지만 지나친 성형으로 표정이 사라진 성형미 과장 등 주변인물이 끊임없는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가우스전자의 가장 큰 라이벌인 ‘와플’(애플의 패러디)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연재되는 가우스전자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은 ‘현실풍자’에 대한 곽백수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직장인 원은지(31·여)씨는 “다소 과장돼 있지만 등장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라며 “아침에 출근하면 곧바로 가우스전자부터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웹툰 전성시대다. 네이버 140편, 다음 60편 등 포털사이트에 정기적으로 연재되고 있는 웹툰은 현재 수백건에 이르고 웹툰으로 생활을 꾸리는 전문작가도 500명을 헤아린다. 웹툰은 정보기술(IT) 인프라와 만화의 결합으로 탄생해, 대표적인 한국산 콘텐츠로 꼽힌다. 특히 스마트폰의 등장은 언제 어디서나 웹툰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웹툰에 또 다른 도약의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웹툰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맹목적이다. 네이버의 경우, 영화 콘텐츠 중 관객평점 9점(10점 만점)을 넘는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지만 웹툰은 연재되는 대부분의 작품이 9점을 넘고 9.9점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한 회라도 연재를 거르거나 하면 곧바로 평점이 뚝 떨어진다. 그만큼 연재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수치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네이버 웹툰의 경우 매달 방문자 수가 700만~1000만명, 페이지뷰는 8억~10억건 수준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모바일 이용자를 포함하면 수치는 최소한 1.5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분석된다. 웹툰 인기의 가장 큰 비결은 특별한 타깃이 없다는 점이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창작과 교수는 “원래 만화계에는 순정잡지는 소녀팬, 성인잡지는 성인 남성 등으로 독자 중심의 타깃을 설정했다.”면서 “하지만 웹툰은 접하기만 하면 독자 누구나 자신에 맞는 작품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누구나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하루 최소 3~4시간은 접속하기 때문에 접근 장벽도 아예 없어졌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웹툰의 다양성은 결국 소재의 다양성을 의미한다. 직장인들이 미생과 가우스전자에 열광한다면 젊은 여성들은 정다정 작가의 ‘역전! 야매요리’를 기다린다. 특별한 조리법 없이 작가가 내키는 대로 만드는 요리가 가끔은 제대로 만들어지고, 때로는 ‘참사’에 가까운 결과물을 낳는 모습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아부쟁이’, ‘갓 오브 하이스쿨’ 등은 전형적인 중·고등학생용 작품이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는 폭넓은 독자층을 자랑한다. 이 밖에 야구만화인 ‘라이징 패스트 볼’, 판타지인 ‘신의 탑’과 ‘아스란 영웅전’ 등 웹툰 속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르가 어우러져 있다. 최근 몇 년 새 웹툰은 영화나 드라마 등 ‘스토리’의 보고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른바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적인 사례다. ‘움비처럼’과 ‘그린스마일’ 등을 그린 권혁주 작가는 “웹툰이 공짜였기 때문에 급성장하기 시작했지만, 콘텐츠로서 장점이 없었다면 10년이 넘도록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웹툰 영화화의 대표주자는 강풀이다. 현재까지 ‘이웃사람’ ‘그대를 사랑합니다’ ‘순정만화’ ‘바보’ ‘아파트’ 등이 개봉했고 현재 ‘26년’이 제작되고 있다. 윤태호 작가의 ‘이끼’도 큰 인기를 모았다.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저승편’, 하일권 작가의 ‘목욕의 신’, 훈 작가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 10여편은 현재 영화화가 진행되고 있다. 만화평론가 서찬휘씨는 “웹툰 영화화 초창기에는 서술형식인 웹툰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려고 해 관객들이 낯설어하면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제는 학습효과가 생기고, 웹툰의 주제들에 무게가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박인하 교수는 “특화된 작품들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고 그게 영화화되거나 출판만화로 나오면서 선순환 구조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작품은 해외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호랑 작가의 ‘봉천동 귀신’이 이미 지난해 미국 만화사이트에 번역 게재됐고, 상당수 작품이 해외 네티즌이 번역해 게재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만화계 입장에서는 웹툰의 인기를 무턱대고 좋아할 수 없다. 우선 ‘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양날의 칼이다. 웹에서는 아주 인기가 많아도 단행본으로 나오면 판매량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와 접근은 용이하지만 결국 2차적 활용은 성공하기 힘든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규모의 추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만화계 일각에서는 웹툰 시장 규모가 1000억원 수준으로 출판시장을 이미 뛰어넘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수백명이 넘는 웹툰 작가들의 원고료도 아주 낮다. 박 교수는 “현재는 극히 일부 잘나가는 작가들은 괜찮지만, 그 아래를 떠받치고 있는 신인들은 고료가 형편없는 피라미드 구조”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즐겁게 하지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 각각의 수많은 자아가 인간의 마음 움직인다

    ‘외계인 손 증후군’이라는 게 있다. 한쪽 손으로 단추를 채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단추를 푸는 것처럼, 자기가 제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순의 현상을 말한다. 인간의 행동은 철저하게 하나의 마음으로 통제되어 나타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외계인 손 증후군’처럼 대개 일관성이 없다. 밤참을 먹고 싶어 하면서 건강을 생각해 거부하거나, 개인의 자유를 지지한다면서 낙태에 결사반대하고 나서는 행위가 그런 것들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왜 모든 사람은 나만 빼고 위선자인가’(로버트 커즈번 지음, 한은경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는 바로 그 모순과 위선의 원인을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파고든 책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은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기능을 가진 수많은 자아로 이루어졌다.’는 모듈 이론이다. 이른바 ‘마음의 모듈성’이랄까. 이 이론은 뇌 속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부분이 있어 감정을 통제, 생각, 판단해 행동하게끔 지시한다는 보편적인 착각을 철저하게 깨부순다. 저자가 이해를 돕기 위해 든 예는 이렇다. 아이폰에 게임 앱, 검색 앱, 메신저 앱, 날씨 앱 등이 각각 특화된 기능을 수행하듯 인간 ‘마음 모듈’도 따로따로 기능을 담당한다. 문제는 각 모듈이 서로 소통하면서 정보를 처리하기도 하지만 독자적 판단을 내리고 움직여 모순적 행동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마음 모듈’을 알고 나면 획일적이고 통제된 자아(self)나, 나에 대한 뿌리 깊은 개념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고까지 말한다. 그러면 이렇게 분화되고 특화된 ‘마음의 모듈’은 어떻게 모순과 위선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일까. 저자는 그 실체를 ‘언론 담당관 모듈’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부 대변인이나 언론 담당관은 설사 나쁜 일이라 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좋게 각색해 말하는 습성을 갖는다. 인간의 마음에도 정부 대변인처럼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거짓말하는 모듈이 있다는 것이다. 겉모습만으로 다른 사람의 성격이며 지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어서 자신을 과대포장하거나 실제 모습보다 더 멋지고 좋은 사람으로 착각함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조작한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어떤 인상을 받을지에 영향을 미치는 언어와 행동을 야기하는 모듈은 우리의 속성과 능력을 가능한 한 긍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도덕성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섹스나 약물, 낙태, 장기 매매와 같은 불법 거래에서도 자신은 부도덕해 보이는 행동을 저지르고 싶고, 심지어 저지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할 수 있게 된다. 독특한 이론을 따라 고리를 이어가는 것 자체가 ‘읽는 재미’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저자는 결국 “마음의 모듈을 이해하고 나면 제 자신의 착각과 오만, 그리고 다른 사람의 위선과 모순이 전혀 특별하거나 수수께끼 같은 게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1만 6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사]

    ■지식경제부 ◇우정사업정보센터 △정보기반과장 서기석△우편정보〃 조현호 ■부산일보 △논설실장 박진수△문화사업국 기획위원 이상일△기획실 부실장 박인호 ■MBC △글로벌사업국 방송콘텐츠부장 고학진 ■한국경제TV △전무이사 뉴미디어본부장 송재조△상무이사 마케팅본부장 최완수△이사 경영기획본부장 임상희△보도본부장 방규식◇국장△뉴미디어본부 와우넷팀장 이승용◇부국장△보도본부 경제팀장 강기수△경영기획본부 전략기획팀장 한순상 ■건국대 △충주병원장 이경영 ■강릉원주대 △박물관장 김홍길
  • 채인석 화성시장 “평화·생태공원사업 조성사업비 용산처럼 국가가 전액 지원해야”

    채인석 화성시장 “평화·생태공원사업 조성사업비 용산처럼 국가가 전액 지원해야”

    “차이와 차별은 다르다. 차이는 줄이고 차별은 없애야 한다. 국가가 용산공원 조성에 사업비 전액을 지원하는 것처럼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사업도 동등하게 지원해야한다.” 채인석 화성시장은 지난달 24일부터 13일까지 21일 동안 전남 해남에서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522㎞의 국토대장정을 완주했다. 매향리 문제를 포함한 화성시 현안에 대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채 시장은 16일 “용산공원의 경우 정부가 앞장서 ‘용산공원 조성 특별법’을 제정해 1조 5000억원의 사업비 전액을 지원해 주고 있다.”며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조성 사업도 ‘국립민족공원조성특별법’ 같은 특별법을 만들어 국비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용산과 의정부, 동두천 등은 미군 기지로 인해 적지 않은 경제적 이득을 보았지만 매향리는 외진 곳에 있고 폭격장이라는 이유로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국가안보를 위해 수십년 동안 희생을 감내한 화성 시민에게 또다시 희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채 시장은 특히 사격장 주변에 수많은 포탄이 산재해 있는 것과 관련, “55년간 폭격 및 사격 연습장으로 사용한 곳이어서 포탄 잔해물 처리와 생태계 복원 등 상흔을 지우기 위해서는 55년보다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육상 사격장에 대한 환경정화사업은 마무리됐지만 해상 사격장의 경우 국방부가 해야 할지 국토해양부가 해야 할지 아직 사업 주체가 정해지지 않아 지연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채 시장은 “이 문제는 매향리 주민과 관광객들의 안전이 달려 있는 사안인 만큼 조속히 갯벌에 대한 환경정화사업에 착수해 줄 것을 국방부와 국토해양부에 강력히 건의할 것”이라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일방적인 지시와 실행이 아닌 성숙한 소통의 관계가 형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이슈 & 이슈] ‘매향리 사격장’ 폐쇄 이후 7년

    [이슈 & 이슈] ‘매향리 사격장’ 폐쇄 이후 7년

    매향리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미군이 설치한 화성 매향리, 옛 쿠니사격장은 반세기 동안 미 공군의 사격·포격 훈련장으로 사용됐다. 밤낮으로 포탄이 투하돼 주민들은 극심한 소음에 시달렸다. 마을로 날아드는 파편은 생명을 앗아 가기도 했다. 민간인 12명이 사망했고 15명이 다쳤다. 주민들의 투쟁으로 2005년 사격장이 폐쇄되고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갔지만 7년이 지난 현재 폭격훈련만 없을 뿐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 사격장 주변에 각종 폭발물과 탄알 잔해물이 널려 있어 어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상처 치유 명분으로 시작된 매향리 평화생태공원 사업도 예산 부족으로 지지부진하다. 매향리 주민들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탄식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3시 경기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옛 쿠니사격장 앞 농섬. 썰물로 물이 빠지자마자 공군 폭발물처리반 장병과 경찰관 등 10여명이 황급히 섬 인근으로 달려왔다. 이들은 사격훈련 표적으로 사용된 농섬과 곡섬 사이 갯벌에서 반쯤 묻혀 있는 불발탄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발굴 작업에 들어갔다. 폭발물 해체 전문가 3명이 신관(폭약을 점화시키는 장치) 제거 작업을 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10여분이 지나 신관 분리작업은 성공했고,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발견된 포탄은 미 공군에서 사용하던 250파운드(113㎏)짜리 항공용 포탄으로, 갯벌에 묻혀 있다가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군·경 관계자는 “포탄이 터졌다면 반경 3000피트(914m)까지 파편이 날아가 예상치 못한 큰 피해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탄을 맨 처음 발견한 백완기(72)씨는 “농섬 주변 갯벌 곳곳에 이런 포탄이 널려 있고, 화약이 들어 있는 포탄도 적지 않다.”며 “외부에서 충격을 가하면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958년부터 2002년까지 40여년간 미 공군 폭발물처리반에서 근무한 매향리 토박이로, 누구보다 현지 사정에 밝다. 백씨 주장에 따르면 농섬과 곡섬 사이는 미 공군이 지정한 폭탄응급처리구역으로 전투기에 장착한 포탄을 처리하지 못한 채 착륙하거나 비상시 포탄을 버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사용하다 남은 포탄 수천기가 버려져 있어 어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백씨는 “당국의 안전 불감증이 매향리에 큰 재앙을 몰고 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의 말대로 섬 주변에서는 폭발물 잔해물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A-10 폭격기가 발포한 것으로 보이는 30㎜ 발칸포 탄알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으며 간혹 5인치 로켓포도 눈에 띄었다. 얼마전 500파운드 포탄 서너 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 야말로 섬 주변 전체가 지뢰밭인 셈이다.주민들은 관계기관이 하루라도 빨리 대책 마련에 나서야 불행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주민의 기대와 달리 국방부 등 관련 부처는 손을 놓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까지 육상사격장에 대한 포탄 및 불발탄 정화작업을 완료했으나 해상 갯벌 지역은 국토해양부 소관”이라며 “이 문제 때문에 국토부와 수차례 협의를 가졌고 정화사업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당국의 태도에 매향리 주민들은 분개하고 있다. “ 매향리 생태·평화공원 조성 사업도 제자리걸음이다. 사업은 사격장 97만 3000㎡ 부지에 역사관과 기념관·생태공원 등을 설치해 평화공원으로 조성하는 것. 전체 사업비 2018억원 가운데 부지매입비 424억원은 정부가 부담하고 나머지 1594억원은 화성시가 충당해야 한다. 시 재정 형편상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이런 탓에 당초 2013년말까지 조성하려던 계획은 2017년으로 연기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화성시는 “용산미군기지는 특별법을 제정해 전액 국비로 지원하면서도 미군 사격장 매향리에는 턱없이 부족한 국비를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글 사진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선택! 역사를 갈랐다] (27) ‘지조’ 황현 vs ‘매국’ 이완용

    1910년 9월 8일 밤, 시문(詩文)으로 인근에 조금 알려진 한 시골 선비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그 평생의 마지막 시가 될 글을 써 내려갔다. “추등엄권회천고(秋燈掩卷懷千古)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 (가을밤 등잔 밑에서 책 덮고 옛일을 되돌아보니, 사람 세상에서 글 아는 이 노릇하기 어렵구나) 시 넉 수를 다 쓴 그는 다시 자식들에게 남기는 유서를 쓴 후 소주에 아편을 타 마시고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당시 그의 나이 56세,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열흘 뒤의 일이었다. ●지조 굽히라는 세상에 날 세운 ‘황현’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1855년 전라남도 광양의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는 총명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천품(天品)을 타고 났으나, 재주와 뜻을 펼치기에는 출생시대, 출생지, 가문 중 어느 하나도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러 대에 걸쳐 서울에서 벼슬을 한 ‘경화사족’(京華士族) 출신이 아니고서는 과거에 합격하기 어렵고, 설령 어렵사리 합격한다 해도 고위직에 오를 생각은 하지도 못하게 된 시대가 이미 10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어찌 입신출세(立身出世)의 꿈이 없었겠는가마는 세상은 그에게 꿈을 접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그런 현실을 확연히 깨달은 것은 나이 30이 넘어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였다. 1888년 성균관 생원이 되어 서울에 올라온 그는 말로만 듣던 과거(科擧) 부정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보고 느꼈다. 세도가 자제들이 글 써주는 사람과 글씨 써주는 사람을 다 따로 고용하여 대리시험을 치는 관행은 더 이상 비난거리도 아니었다. 돈과 연줄 없이 과거에 합격하여 벼슬하기를 바라는 것은 고목에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다. 그는 과거에 더 연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의 인생의 첫 번째 ‘선택’이었다. 이는 자식들도 자기와 같은 출발점에 세우겠다는 절망적인 선택이기도 했다. 그는 서울에서 강위, 김택영, 이건창 등 마음이 통하는 명사(名士)들을 사귀며 배울 수 있었다는 것만 위안으로 삼고 낙향했다. 서울에 올라오기 얼마 전에 구례로 집을 옮겼던 그는, 그곳에서 제자를 가르치고 시를 짓는 한편 자기가 보고 들은 당대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를 용납하지 않았던 세상, 선비에게 지조를 기르라고 당부하는 대신 지조를 굽히라고 요구하는 세상을 보는 그의 시선은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그가 보기에, 그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들은 모두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었다. 대원군도, 왕후와 그 친척들도, 왕조차도 예외가 아니었다. 부패하고 타락한 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혼탁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을 것이요, 더러우면 발을 씻을 것’이라는 옛 어부의 말대로 처신했다. 그의 귀에는 전기나 기차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에 관한 소식이 계속 들려왔지만, 그는 그것들이 세상을 맑게 바꿔주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생애 두 번째 ‘선택’을 했다. 그를 버렸던 나라이자 그가 경멸하고 증오했던 더러운 자들이 지배한 나라였지만, 그는 이 뒤에 그를 기다릴 세상은 더 더러운 세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자식들 앞으로 남긴 유서에 “나라가 망했으나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500년이나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에 죽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찌 원통치 않겠는가?”라고 썼다. 그는 나라의 녹을 먹지 않았으니 나라를 위해 죽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대로 나라의 녹을 먹은 자들이 나라를 팔아넘기는 데에 앞장서는 세상에서, 그런 자들이 계속 위세를 부릴 세상에서,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찾지 못했다.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시구는 “증무지하반연공(曾無支廈半椽功) 지시성인불시충(只是成仁不是忠)”(일찍이 나라를 위한 공이 없었으니, 내 죽음은 다만 인(仁)을 이루고자 함일 뿐 충(忠)은 아니로다)이었다. ●日·러·美 연줄 없던 이완용 처세로 부귀 누려 황현이 목숨을 끊던 바로 그 무렵, 일당(一堂) 이완용(李完用)은 일왕에게서 백작의 작위와 15만원의 은사금(恩賜金)을 받았다. 대한제국 황실과 친인척 관계가 없는 인물로서는 가장 높은 작위였다. 그는 며칠 전까지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었으나 어차피 허울뿐인 자리였다. 그에겐 남은 생애를 부귀 속에서 보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족했다. 이완용은 황현보다 3년 늦게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었으나 가문은 황현 집안보다 그리 나을 것이 없었다. 그 역시 어려서 남달리 총명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집에서 그대로 살았더라면 그의 일생도 황현과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11세 때, 그의 운명을 바꿀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집안 어른들의 ‘선택’에 의해 먼 친척 아저씨인 이호준의 양자가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새 삶의 기회를 준 양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셨으며, 서형(庶兄)인 이윤용(李允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82년, 당시 이조판서이던 양부 덕에 과거에 급제한 그는, 규장각 대교, 홍문관 수찬, 세자시강원 사서 등 출세가 보장된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거친 뒤 1886년 신설된 육영공원(育英公院)에 입학했다. ‘나라에서 영재를 기르는 곳’이라는 뜻의 육영공원은 미국인 교사가 영어와 신학문을 가르치는 신식 학교였다. 때는 갑신정변 2년 뒤였고, 조야(朝野)에 개화파에 대한 적개심이 넘치던 때였다. 그러나 그는 모험일 수도 있는 육영공원 입학을 ‘선택’했다. 양부가 비록 고관이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가문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면, 다른 것으로 만회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왕의 뜻이 있는 곳, 왕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그의 출세길을 활짝 열어주었다. 짧은 기간이나마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운 덕에, 그는 주미 한국공사관 참찬관과 주미 공사 대리로 두 차례나 미국에 다녀올 수 있었고, 국내 정치에서 계속 영향력을 키우던 미국인들과 교분을 쌓을 수 있었다. 1890년 귀국 후 관계에서 승승장구한 그는 1894년 모친상을 당했다. 일본군을 배경으로 수립된 개화파 내각은 그에게 입각(入閣)을 제의했으나, 그는 모친상을 핑계로 일단 거절했다. 이듬해 학부대신으로 내각에 들어갔지만 을미사변(명성황후 살해사건) 이후 실각했다. 친일 내각의 적으로 지목되어 미국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그는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숨을 건 정치적 도박에 가담했다. 왕을 미국공사관으로 옮기려던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으나, 러시아공사관으로 옮기려 한 두 번째 시도는 성공했다. 아관파천을 계기로 그는 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그는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서리 등을 지내면서 한때 독립협회 회장도 맡았다. 독립협회는 애초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세워 조선이 독립국임을 세계만방과 만백성에게 알릴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러나 독립협회 회원들이 ‘충군애국’(忠君愛國)을 넘어 내심으로 ‘군민동치’(君民同治)와 ‘입헌정체’까지 요구하기 시작하자, 그는 독립협회를 떠났다. 러시아와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 국왕은 일본을 견제하려고 러시아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고, 러시아는 이 기회에 한국을 자기 세력권 안에 넣으려 했다. 미국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교육, 군사, 경제 각 부문의 주도권이 러시아로 넘어갔다. 그는 러시아의 침탈에 반발했으며, 러시아 공사는 그를 증오했다. 고종은 그를 전라도관찰사로 좌천시켜 안전을 보장해 주었으나, 그 자리조차 오래 지킬 수 없었다. 1901년 양부 이호준이 죽자, 그를 핑계로 낙향하여 시묘살이를 했다. 1904년 초, 러일전쟁이 일어나자 고종은 그를 다시 궁내부 특진관으로 불러들였다. 이때 이완용은 또 한 차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일본도, 러시아도 그의 배경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 배경에 충실한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일본 편이었고, 이후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분명해 보였다. 그는 미국의 선택을 따랐다. 주지하듯이, 을사늑약 이후의 그는 ‘친일 매국노’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신임을 얻어 대한제국의 마지막 총리대신이 되었으며, 그 자격으로 한일병합 조약에 도장을 찍었다. 일제 강점기 공중변소들에는 흔히 ‘이박식당’(李朴食堂)이라는 낙서가 씌어 있었다고 한다. ‘이완용과 박제순이 밥 먹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들을 똥개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완용 자신은 자기가 시세의 흐름을 잘 살펴 처신한 덕에 계속 부귀를 누릴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역사의 주요 고비마다 그가 한 ‘선택’은 언제나 옳았다. 사실 그는 그 험악한 정변의 시대를 귀양살이 한 번 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는 이재명의 칼에 맞은 자리가 쑤시고 아플 때마다, 자신이 동포들의 저주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은 그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스펙·연줄·기회 강조 現사회, 제2이완용 키우나 대형서점 자기계발서 코너에서 아무 책이나 몇 권 집어들어 훑어 보았다. 스펙을 쌓아라, 인맥을 다져라, 시세의 흐름을 살펴라, 기회를 놓치지 마라 등. 다들 이완용처럼 살라고 가르친다. 지조를 지켜라, 기개를 길러라 따위를 가르치는 책은 없다. 누구나 이완용을 욕하면서도 다들 이완용을 본받으려 드는 시대다. 물론 10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그러나 이완용처럼 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나라가, 모두에게 계속 안전할 수 있을까? 전우용(역사학자)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럼 다이어리’…‘곤조 저널리스트’ 영혼까진 못 담아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럼 다이어리’…‘곤조 저널리스트’ 영혼까진 못 담아

    브루스 로빈슨은 고향 영국에서 단 두 편의 영화를 연출했을 뿐이다. 그중 비틀스의 조지 해리슨이 설립한 ‘핸드메이드필름’에서 제작한 ‘위드네일과 나’는 영국 영화사의 걸작으로 남았다. 이후 할리우드로 건너가 ‘제니퍼 연쇄살인 사건’을 내놓았는데 명성에 먹칠만 했다. 은퇴했던 그가 19년 만에 ‘럼 다이어리’로 부활을 선언했다. 미국 작가 헌터 S 톰프슨이 수십 년 전에 쓴 원작을 낯선 영국인이 연출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위드네일과 나’와 ‘럼 다이어리’는 여러모로 비슷한 작품이다. 1960년대에 변경으로 밀려난 중산층 남자가 낯선 문화와 환경에 당황하다 결국 자각에 이른다는 설정부터가 그러하다. 더불어 인물의 에너지원으로서 술과 마약이 차지하는 가치도 유사하다.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톰프슨은 양쪽에 걸친 자질을 살려 ‘곤조 저널리즘’이란 글쓰기를 탄생시킨 인물이다. 스스로 곤조 저널리즘의 실험이라 칭한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가 영화화된 것은 1998년이었다. 감독은 핸드메이드필름이 제작한 영화들로 유명세를 치른 테리 길리엄(그러니까 로빈슨과 길리엄은 여러 인연으로 연결된 셈이다). 2005년 권총 자살로 활화산 같은 삶을 마감한 톰프슨의 이름은 지난해 ‘럼 다이어리’가 영화화되면서 다시 불려 나왔다. 뒤늦게 출간된 원작의 영화화에 앞장선 사람은 배우 조니 뎁으로 알려졌다. 톰프슨의 절친한 친구였으며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에서도 주연을 맡았던 그다. 톰프슨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기란 쉽지 않다. 톰프슨의 글을 영화에 담는 것은 톰프슨의 자유롭고 거친 영혼을 병에 가두는 것과 같다.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발길을 뒤따르는 건 힘겨운 작업이며 시스템에 대한 반골 정신에 꼼꼼히 살을 입히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례로 영화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는 약에 취한 인물의 영혼 아래로 자기를 희생하고 말았다. 인물의 몽롱한 정신에 다가갔을지는 모르지만 원작의 다른 맥인 현실을 대하는 시선이 숨 쉴 틈을 마련해 주진 못했다. 이에 비해 ‘럼 다이어리’는 비교적 담담하게 흐름을 유지하는 편이다. 이야기와 주제의 전달에는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그만큼 톰프슨 작품 특유의 매력을 전달하기에는 버거워 보인다. 인물이 종종 술에 절고 약에 취해 흥청거리는 양 행동하지만 톰프슨은 진실을 찾는 예리한 태도를 절대 거두지 않았다. 그는 작가이기 이전에 저널리스트였다.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와 ‘럼 다이어리’는 공히 ‘아메리칸 드림’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전자가 추락 직전의 아메리칸 드림에 메스를 들이댔다면 후자는 타자의 땅까지 탐하는 미국의 제국주의를 조롱한다. ‘럼 다이어리’는 타락, 탐욕, 소비에 기반을 둔 아메리칸 드림이 기실 냉혹한 폭군의 변명임을 까발린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은, 아니 더 선명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톰프슨이 엿 같다고 욕한 세상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럼 다이어리’의 추악한 인물인 부패한 사업가를 흉내 내는 한국인 투기꾼이 세계 곳곳을 떠도는 현실을 보자. 톰프슨은 그런 인간을 ‘개자식’이라 불렀다. 문제는 그런 작자들이 정작 자신이 몹쓸 인간임을 모른다는 데 있다. 20일 개봉. 영화평론가
  • 장항제련소 중금속 정화사업 난항

    장항제련소 중금속 정화사업 난항

    중금속 오염 논란으로 정부의 직접 정화작업 대상이 된 충남 서천 옛 장항제련소 토지 매입 작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상 마을마다 매입에 대한 주민들의 입장이 제각기 달라 사업 추진에 적잖은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12일 충남도와 서천군에 따르면 다음 달 착수되는 협의매매를 앞두고 옛 장항제련소 주변 마을 주민들과 관련 기관이 이견을 보여 보상협의회가 중재에 나섰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보상협의회는 원활한 매입작업을 위해 지난달 27일 서천부군수, 주민대표, 사업시행청인 한국환경공단 관계자 등 12명으로 구성됐다. 서천군 장항읍 장암리 주민들은 “제련소 부지 안에 2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곳 주택도 보상대상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부지는 현재 LS니코동제련이 소유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 관계자는 “부지가 기업 소유여서 주택 보상이 이뤄지려면 해당 기업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제련소 인근 장항읍 화천리 일부 토지 소유 주민들도 “우리 마을을 토지 매입 대상에 포함시켜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장항읍 송림2리 주민들은 “매입 대상에서 빼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마을에는 13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이장 박기준(65)씨는 “우리 마을은 토지 오염이 덜 됐고, 대부분 노인인데 다른 곳에 이사 가 살기가 쉽지 않다.”면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건설 중이어서 주민들이 민박 건립 등 의욕을 보이는 마당에 어떻게 마을을 떠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곳 주민들은 최근 환경부에 매입 대상 제외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냈다. 1936년 건설된 장항제련소는 1989년 용광로가 폐쇄됐으나 인근 주민들이 질병에 시달리는 등 논란이 일자 정부에서 토양 정밀조사를 벌여 장항읍 장암리·송림리·화천리 731만 5000㎡가 중금속에 오염된 것을 확인하고 2009년 대책을 내놓았다. 2017년까지 제련소 굴뚝 반경 1.5㎞까지 토지 매입, 4㎞까지 정화한다는 것이다. 김종인 도 수질관리과장은 “내년에 토지 매입을 끝낸 뒤 정화작업에 착수해야 하는데 마을 및 주민마다 입장이 달라 어려움이 있다.”며 “협의 매입이 안 되면 토지수용 절차를 밟아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천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2년간 공무원 4명 성추행 물의 ‘청주, 성범죄 지자체’ 비난 봇물

    충북 청주시가 시청 직원들의 잇단 성추행 사건으로 ‘성범죄 지자체’란 오명을 쓰게 됐다. 11일 시에 따르면 민선5기 출범 이후 최근 2년간 시청 직원 4명이 각종 성추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다. A사무관은 부하 여직원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몸을 만지는 등 7년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사실이 최근 실시된 공직기강 감찰에서 드러나 행정안전부가 충북도에 중징계를 요구한 상태다. B사무관은 회식 자리에 합석한 민간인을 성추행해 지난해 12월 6급으로 한 계급 강등되기도 했다. 2010년 9월에는 술에 취한 7급 공무원 C씨가 길을 가던 여성을 성추행하고 폭행해 경찰에 입건됐고, 다른 하위직 공무원 D씨도 여성의 신체를 만지다 징계를 받았다. 시의회 역시 물의를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에는 한 시의원이 동료 여성 의원에게 욕설을 해 여성단체들이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공무원 성범죄가 잇따라 터지자 시민단체들은 여성친화적인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한범덕 시장의 시정방향이 구호에만 그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가 여성 공무원들의 자유로운 이용을 위해 현재 청내에 운영 중인 성희롱 상담소를 시청 외부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충북여성인권상담소 정선희 소장은 “여성친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 못지않게 의식 개선을 위한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한 시장이 합당한 징계를 내리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성희롱 등 공직사회 비리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를 키워왔다는 목소리도 높다.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 송재봉 사무처장은 “사건에 연루된 공무원은 파면 등의 중징계를 통해 퇴출하고, 상급자까지 연대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면서 “시가 처음부터 싹을 자르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시는 여성친화공원 조성, 여성안심브랜드 콜택시 운영 등 50여개의 여성친화사업을 벌이고 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정부, 독도예산 대폭 늘린다

    정부가 ‘독도 예산’을 증액키로 했다. 독도를 국제적으로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 정부의 전방위 공세가 진행됨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적극 방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정부 관계자는 9일 “독도 영유권 공고화 사업의 2013년도 예산을 대폭 늘릴 방침”이라며 “독도 관련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와 예산 당국이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내년도 독도 예산이 30억원이 넘는 것은 분명하지만 40억원이 넘을지는 더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예산안 규모는 한·일 갈등 이전인 지난 5~7월 독도 영유권 공고화 사업 예산으로 요구한 23억 2000만원보다 크게 늘어난 액수다. 독도 영유권 공고화사업은 독도 영유권 분쟁이 없다는 인식을 국내외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사업이다. 외교부는 이 예산으로 일본 도발에 대한 정부 차원의 종합 전략 마련, 고자료·지도 수집, 영유권 근거 강화를 위한 연구, 독도 홈페이지 운영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따라서 예산 증액분은 국제 홍보 활동에 집중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영토문제 대책비’로 당초 4억엔을 편성할 예정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독도문제 국제홍보비 6억엔을 더해 10억엔(약 140억원)으로 대폭 늘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김기덕 ‘황금사자’ 머리에 얹다

    김기덕 ‘황금사자’ 머리에 얹다

    김기덕(52) 감독의 영화 ‘피에타’가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며 한국영화사에 새로운 획을 그었다. 김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자비를 베푸소서’란 의미의 이탈리아어)는 9일 오전(한국시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제69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한국영화가 베니스·칸(프랑스)·베를린(독일) 등 세계 3대 영화제의 최고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 특별은곰상을 받은 뒤 51년 만이다.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내며 살아가는 악마 같은 남자(이정진), 30여년 만에 그 앞에 나타나 엄마라고 주장하는 여자(조민수)를 통해 용서와 복수, 속죄란 가능한 것인가를 되묻는 김기덕의 강렬한 이야기가 베니스를 홀렸다. 김 감독은 앞서 베니스영화제(‘빈집’)와 베를린영화제(‘사마리아’) 감독상,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해외의 호평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비주류 아웃사이더로 평가받던 김 감독이었기에 국내 영화계에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 김 감독은 이날 시상식에서 “모든 배우와 스태프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피에타’를 선택해 준 모든 이에게 이 영광을 돌리고 싶다.”고 짤막하게 말한 뒤 민요 ‘아리랑’으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김 감독은 아리랑을 부른 이유에 대해 “가장 한국적인 것을 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폐막식에 앞서 이탈리아 18~19세 관객이 뽑은 ‘젊은 비평가상’, 이탈리아 온라인 영화매체 기자들이 뽑은 ‘골든 마우스상’, 이탈리아 유명작가를 기리는 ‘나자레노 타데이상’도 받았다. ‘피에타’와 경합을 벌인 ‘더 마스터’의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이 은사자상(감독상)을, 호아킨 피닉스와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심사위원 특별상은 ‘파라다이스:믿음’의 울리히 사이들, 각본상은 ‘섬싱 인 디 에어’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에게 각각 돌아갔다. 한편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는 오리종티 부문에서 유민영 감독의 ‘초대’가 최우수 단편영화에 주는 오리종티 유튜브상을 받았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전규환 감독의 ‘무게’도 ‘퀴어 라이온’ 상을 받았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Weekend inside] 마포나루 어제 그리고 오늘

    [Weekend inside] 마포나루 어제 그리고 오늘

    200년 전 한양 변두리 경강(지금의 한강)의 마포나루, 먼저 여기서 활동한 어물전 상인 오세만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당시 마포나루는 삼남지방의 물자가 모여드는 한양의 문턱으로 대규모 도매시장이 서 있었다. 전국에서 뱃사공, 장사꾼들이 배를 타고 몰렸고, 경강 상인들은 배로 물자를 날라오거나 거간꾼 노릇을 하며 부를 축적했다. 여기서 ‘짠돌이 곰보 오 객주’라 불렸던 오세만은 처음으로 민간 상인 조직을 만든 인물이었다. 관에서 허가받은 상인인 시전상인들에게 어릴 적부터 멸시를 당했던 그는 직접 장삿길로 나선 뒤, 신분상의 특혜를 활용해 사상인(私商人)에게서 부당 이익을 취하는 시전상인들과 맞설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가 찾은 답은 ‘자본력’과 ‘로비’였다. 그는 주변 상인들을 규합해 조직화하고, 평소 알던 관리들에게도 자신들의 입장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력은 경강상인들이 수원 헌릉원을 행차하는 정조를 위해 배다리를 놓아주는 기회를 얻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로부터 2년, 마침내 정조는 육의전 이외의 시전의 특권을 폐지하고 사상인의 자유로운 상업을 인정하는 신해통공 정책을 발표한다. 오세만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동료들을 계속 모아 마포나루의 난전을 품목별로 정리하고 거리를 정비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상인 조직의 뜻을 모아 특정 물품의 유통 시기와 물량까지 조절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시전상인들은 오세만과 그 동료들을 ‘강상대고’(江商大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세만으로부터 시작된 강상대고들은 물자 유통 뿐 아니라 생산에까지 관여했고 나아가 마포나루 지역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역할까지 했다. 16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마포나루의 상권은 지금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용강동 일대로 이어지고 있다. 한때 물자의 집산지였던 마포나루는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육로 운송의 발달과 마포대교의 건설 등으로 조금씩 쇠퇴해 갔지만, 여전히 수많은 상인들은 이곳에서 삶을 꾸리며, 200년 전 이곳을 주름잡았던 오세만과 같은 강상대고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그 움직임의 중심에는 도화동상점가상인회와 용강동상가번영회가 있다. 7일 서울 마포구에 따르면 강상대고의 후예를 자처하는 도화·용강동 상인들은 2011년 서울에서 유일하게 중소기업청 주관 상권 활성화사업 시범구역 지정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이들은 이 사업을 위해 마포나루상권활성화법인을 조직하고, 최근에는 마포의 역사와 문화, 또 지금의 마포나루를 터전으로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묶어, 스토리북 ‘강상대고 활(活)’과 ‘마포나루 활(活)’을 펴내기도 했다. 이매숙 마포나루상권활성화법인 대표는 “마포나루가 조선시대 수상교통의 요충지였던 덕에 도화·용강동 상권도 발달할 수 있었다. 마포나루의 역사가 곧 우리 상인들의 문화 역사의 깊이”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상인들만의 자부심을 곧추세우는 일이 우선이다 싶었다.”고 활동 배경을 설명했다. 마포나루의 상인들은 이곳의 역사를 짠맛의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다. 전성기 마포나루에는 곡식, 목재, 어물 등 다양한 물자들이 전국에서 올라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했던 것이 바로 소금, 그리고 새우젓이었다. 마포나루에서 소금이 날 리도 없건만 조선시대 마포나루에서 거래되던 소금은 ‘마포염’이라고 따로 이름을 지어 부를 정도로 유명했다. 질 좋은 소금이 모이는 곳이다보니 더불어 젓갈의 명성도 높았다. 도화동 토박이인 임인식(74) 제일전파사 사장은 마포나루 일대에 새우젓 냄새가 진동하던 때를 이렇게 기억했다. “전차에서 내려 나루터까지 죽 다 새우젓 도가가 있었지. 서울 사람들이 새우젓 사러 여기로 왔잖아. 나루터에 나가보면 새우젓 항아리가 수백 개지 뭐. 보기는 장관인데, 냄새가 말도 못해. 공덕동 로터리에 철길 굴다리만 넘어오면 온 동네가 비릿한 바닷가 냄새로 가득했어.”(‘강상대고 활’ 152쪽) 마포나루 상인들은 새우젓이 짜지도 맵지도 않고 담백한 서울의 음식문화와 궁합이 맞아 오랫동안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새우젓은 짠맛을 내되 자극적이지 않으며 색깔 역시 깔끔하기 때문이다. 마포구는 이러한 새우젓의 역사를 2008년부터는 축제판으로 되살렸다. 지난해 4회를 맞은 한강마포나루새우젓 축제에는 4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다녀간 것으로 나타났다. 3일간 열린 축제 현장에서 거래된 새우젓만 해도 충남 강경, 인천 강화, 전남 신안 등 총 5대 산지 15개 업체에서 가져온 물량 7억여원어치가 거래됐다고 하니 왕년의 전성기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올해 제5회 새우젓축제는 새달 19~21일 열릴 예정이다. 강상대고의 후예들은 지금도 함께 소금을 구입하고 있다.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짠맛을 전통으로 이어가겠다는 생각에서다. 상인회에서 직접 전남 신안군 일대에서 사오는 소금은 새우젓 도가를 대신해 지금의 마포나루를 가득 채우고 있는 고깃집들이 사용한다. 갈비, 껍데기, 주물럭 등 마포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메뉴판을 채운 수십년된 고깃집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퇴근하는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축제 현장에서나 재현되는 새우젓 도가의 끄트머리는 본래 마포종점과 닿아있었다. 마포나루 상인들은 소금의 맛과 함께 마포종점의 감성도 가슴으로 기억하고 있다. 1899년 청량리에서 출발한 전차는 1968년 11월 마포에서 멈췄다. 그 즈음 마포나루 설렁탕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던 작사가 정두수와 작곡가 박춘석은, 유학을 갔다 유해로 돌아온 남편을 잊지 못해 비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전차역 종점에 나온다는 바걸(bar girl)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명곡 ‘마포종점’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사랑했던 마포의 밤과 애달픈 이야기는 상인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마포종점 가요제’로 이어지고 있다. 도화동 상가상인회는 지난해 10월 상인들이 마련한 기금과 재능 기부로 행사를 직접 기획, 이를 성공리에 치러냈다. 강상대고로 내려온 문화적 유전자가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마포종점 가요제를 기획한 김만식(60·도화동·부동산중개소 운영)씨는 “마포종점 가요제가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사이사이에 작은 공연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며 “그게 이 지역만의 문화가 되면 더 바랄 게 없다.”고도 말했다. 마포구는 새우젓축제 외에도 다양한 행정 지원을 통해 강상대고의 부활을 돕고 있다. 구는 경관 조명을 새로 설치해 밝고 활기찬 이미지의 마포나루 길을 조성하고 상징탑도 설치할 계획이다. 또 상인교육장, 커뮤니티 공간 등 상인들이 스스로 공동체를 구성하고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에도 힘쓰고 있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은 “이곳은 조선실학자 토정 이지함의 실사구시 정신이 깃든 곳으로 한강변 상인들을 하나로 묶고 인간 중심의 문화를 펼쳤던 강상대고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이라며 “미래의 마포나루는 전 세계에 한국의 문화와 전통의 맛이 살아있는 음식문화 상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포나루는 변하고 있다. 전국의 사람과 물자가 모여들던 강상대고의 무대였던 이곳은 이제 그 후예들의 노력으로 풍부한 역사와 문화, 또 수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으로 발전하고 있다. 마포나루에는 세대를 이어가는 음식점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고,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는 상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새로운 마포나루의 완성을 위해서는 거기에 끊이지 않은 사람들의 발길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오늘은 가족들과 함께 드럼통에 둘러앉아 마포나루의 고기 굽는 냄새와 짠맛의 역사를 맛보는 건 어떨까.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달리는 미술관으로 변신한 시내 버스

    달리는 미술관으로 변신한 시내 버스

    “버스 승객들이 매우 신기해합니다. 가끔 운전하면서 룸 미러를 통해 볼 때 주무시는 승객보다는 그림을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면서 구경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서울 우이동과 서대문역을 오가는 101번 시내 버스를 운전하는 조의준(46)씨의 말이다. 7일 오후 8시 케이블채널인 서울신문STV로 방영되는 ‘TV 쏙 서울신문’은 달리는 미술관으로 변신한 101번 버스를 소개한다. 언뜻 보기엔 다른 버스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 버스에는 특별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내부에 들어서자 일반 버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광고판 대신 미술작품이 가득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은 이리저리 둘러보고, 자리에 앉아서도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출근 길의 직장인 김용완(29)씨는 “기존의 상업적이고 딱딱했던 광고판보다는 더 밝고 화사해져서 좋다.” 고 말했다. 시내 버스 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월 서울 시내버스에 팝아트 작품을 전시해 인기를 끌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관내 한 운수업체와 다시 협력해 ‘시내버스 미술관’을 만들었다. 평소 미술과 사회 환원에 관심이 많던 동아운수 대표가 버스 광고판을 기부하고, 뜻있는 화가는 재능을 기부했다. 이렇게 모인 기부로 시내버스 213대에 이순구 화백의 ‘웃다’전을 열었다. 101번 버스 중 1대를 선택해 내부와 외부에 작품 20점을 전시했다. 151번 152번 등 9개 노선버스 내부에는 작품 한 점씩을 전시했다. 박경환 서울시 버스정책팀장은 “시민들이 바쁜 일상 때문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시간만이라도 문화생활을 즐기고, 행복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 추석 물량 배송을 시작한 지난 4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한 물류 센터를 찾아 추석 물량 배송 현황을 점검했다. 이곳에서는 하루 40만t의 배송 물량을 소화한다. 평소 처리 물량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터가 20만㎡나 되는 이마트 여주 물류센터는 시간당 4만 2000박스, 하루 최대 100만 박스의 물동량을 처리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통 물류센터다. 또 서울 중구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수용 감독의 전시회를 찾았다. 한국 문예영화의 대부로 불리는 김 감독의 작품세계를 감상할 수 있다. 지자체장 릴레이 인터뷰에서는 최근 성매매 행위 장소를 제공한 서울 강남의 특급호텔(라마다서울호텔)에 대해 3개월 영업정지를 내린 신연희 강남구청장을 만났다. ‘글로벌 세계도시 강남의 이미지에 맞는 도시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신 구청장의 이야기도 들어본다. 성민수PD globalsms@seoul.co.kr
  • 北, 물가 잡으려 상업은행법 부활하나

    북한이 경제개혁의 시동을 걸고 있는 가운데 최근 들어 금융개혁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북한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할 경우 물가와 원화 가치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없으며 결국 경제정책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박감이 묻어 있다. 북한에서는 그동안 임금 지급 등 자금 수요가 있을 때마다 화폐를 신규로 발행했고 통화량 증가는 다시 인플레이션을 불러와 배급을 받는 특권층과 일반 주민의 생활 격차는 더욱 커지는 양극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임수호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6일 “2002년 7·1조치 이후 최근까지 10년간 북한의 명목 시장물가는 무려 4700배나 올랐다.”고 밝혔다. 임 수석연구원은 “북한 당국이 결정하는 국정 가격은 고정되어 있는데 시장물가가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니 물자와 노동력, 자금이 모두 시장으로 빠져나가면서 공식경제는 계속 ‘속 빈 강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결국 북한의 경제개혁은 금융개혁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7·1조치 이후 개인과 기업의 현금사용을 허용하면서 화폐유통량은 급증했는데 이를 흡수할 금융장치가 마련되지 않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오는 25일 열리는 최고인민대회를 통해 2006년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잠시 실시됐던 상업은행법이 본격적으로 부활할 것인지가 관심이다. 당시 경제개혁을 이끌다가 실각된 박봉주 당시 총리가 최근 경제실세(경공업부장)로 부활하며 금융개혁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최근 북한 내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 지난달 1일부터 내각의 지시로 각 지방에서 중앙은행 등 재정회계부문 전문가들을 선발해 새로운 경제 검열조직의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금융개혁 움직임으로 미뤄 이번 개혁조치가 비교적 큰 폭으로 진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개혁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 효과는 경제 안정화, 양극화 해소, 외화사용 추세의 억제, 외자 유치 환경 조성 등으로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경제개혁 차원에서 내각 산하 발권은행인 조선중앙은행의 위상을 강화하고 군부나 노동당이 관리하던 은행의 힘을 약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일만기자 oilman@seoul.co.kr
  • [시론] 위안부 문서는 일본 정부가 제시해야/강정숙 이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시론] 위안부 문서는 일본 정부가 제시해야/강정숙 이대 이화사학연구소 연구원

    일본의 전·현직 총리까지 나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최악으로 치닫던 한·일 갈등이 다른 현안들에 가려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지만 상황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하시모토 도루 일본 오사카 시장은 지난달 21일 “위안부가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 우익이 자주 언급해 왔던 내용이고, 아베 신조 전 총리 발언의 연장선상의 표현이기에 대응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하시모토는 유력한 ‘차기 일본 총리감’으로 언급될 정도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기에 그의 발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일본군에게 폭행·협박을 당해서 끌려갔다는 증거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답한다면 ‘그렇다.’이다.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에서 이미 결론 난 부분이다. 한국의 피해자 증언에서 일본군 경관의 관여 등이 확인되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인과 네덜란드인 여성들을 군인이 폭력적으로 끌고 간 사실을 기록한 공문서가 있다. 이 발언의 문제 핵심은 징집과정에서 군의 폭행·협박에 끌려갔다는 증거를 요구함으로써 징집뿐만 아니라 이송, 배치과정에 있었던 강제성 전체를 부정하고 외면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위안부’를 징집하는 데 일본군의 직접 수행을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일상적으로는 일본군에 속하거나 명령 받은 ‘(준)군속’ 혹은 ‘군 종속자’에 해당하는 이들이 거의 전권을 가지고 다양한 강제적 방식으로 수행했다고 본다. 강제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 하는 것이다. 이 강제란 또한 군위안소 내 행위까지 적용되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제를 만든 것 자체가 범죄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일본정부는 미성년자 인신매매 금지를 위한 국제조약에 가입한 상태였다. 미성년 여성들의 국제적 성매매를 방지하기 위한 조약으로, 정부가 나서서 인신매매·유괴·협박 등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국외이송을 금지시킨다는 것을 약속한 것이다. 국내법 형법 제226조에서도 국외로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하거나, 유괴 혹은 매매된 자를 국외 이송하는 것에 대해서도 금지하고 어길 경우 2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쟁지에 있던 일본군이 조선총독부나 ‘조선군’에게 요청하여 다양한 불법적 방식으로 여성들을 동원하였음은 이미 당시 문서자료에서 확인되었다. 또 주목할 것은 1939년 전국적으로 광범위한 인신매매에 대한 신문보도가 있었으나 조선총독부가 이들을 처벌하였다는 내용은 없다. 반면 전쟁상황이나 ‘위안부’제와 연관되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육해군형법으로 엄하게 처벌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 있다. 일제의 주구가 되다시피 하였지만 폐간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도 1940년 이후에는 없었다. 이러한 엄혹한 사회 분위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이었던 일본군의 필요라면 심지어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도 중지시킬 수 있었다. 그 강력한 일본군의 요구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동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인 동원방식은 주범인 일본군의 명령과 요구에 의해 종범인 대리인이 강제적 방식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하는 것이었다. 피해자 증언이 자료가 되지 못한다면 문서자료는 일본 측이 제시해야 한다. 패전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체계적으로 자료를 소각정리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중요한 자료들은 복수로 만들어 일본으로 보내기도 했으므로 일본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에게 문서자료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법무성, 경찰청, 출입국 관련 자료, 군사우편국 등의 ‘위안부’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 공개하는 것이 순서이다. 앞으로 중요한 위치로 나아갈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러한 유사한 발언을 반복적으로 하지 말고 눈앞의 이익을 뛰어넘어 이젠 동아시아의 인권 수준을 높이는 생산적인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7) 충북 단양군 삼봉로

    유장한 물줄기는 길을 따라 둥그렇게 굽이쳤다. 물줄기 곁에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을 복주머니 모양으로 감싸고 돌았다. 사람들은 충주호에 잠긴 땅을 떠나 새로 만들어진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그들은 변함없이 남한강에 그물을 던져 쏘가리, 메기 등속을 잡았고, 오랫동안 그래왔듯 매년 가을마다 육쪽 마늘밭을 일궜다. 충북 단양군 이야기다. 조선 개국의 일등공신 정도전(1342~1398)이 단양에서 태어났다는 얘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와 최소한 이곳에서만큼은 사실(史實)로서 회자되고 있다. 또한 현대사 속 시대와 불화했던 비운의 시인이자 뛰어난 출판편집자인 신동문(1928~1993)이 문필을 꺾고 이곳으로 찾아들어 밭을 일구며 말년을 보냈다. 단양 사람들은 그의 시비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끼워 넣었다. 이 모든 것들은 삼봉로를 중심축 삼아 씨줄날줄로 얽혀 있다. 삼봉로에 기대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로명 주소는 꽤 친숙했다. 외지인이 흔히들 찾는 장다리식당(삼봉로 370)이며 돌집식당(중앙2로 11), 대교식당(중앙2로 9) 같은 제법 유명한 식당에 전화로 위치를 물어보니 “어디세요. 차 가지고 오시면 삼봉로 ×× 찍으시면 돼요.”라고 대뜸 도로명 주소를 얘기한다. 1985년 계획지구로 조성돼 길이 비교적 간명하게 만들어졌고 유서 깊은 옛이야기와 현대 문화사의 인물 등이 잘 버무려져 생활 속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덕분이다. 횡으로 늘어선 삼봉로에서 수변로, 중앙로, 도전로, 별곡로, 상진로가 종으로 삐져 나와 있다. 아무튼 삼봉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만나는 식당마다 순댓국도 마늘순댓국, 갈비탕도 마늘갈비탕, 밥도 마늘밥, 떡갈비도 마늘떡갈비 등 온통 마늘 음식 천지다. 여기에 대강양조장(대강로 60)에서 만든 소백산 막걸리를 곁들이면….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입가를 스윽 훔치며 즐겨 찾을 만한 길이다. 하지만 식도락만으로 만족하기에 삼봉로가 품고 있는 문화적, 역사적 함의는 너무도 크다. ●‘신동문 시비’ 소금정 공원에 위치 신동문이라는 이름은 어지간한 문학 딜레탕트에게도 그다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는 신동엽, 김수영 등과 같은 1960년대 현실 참여시인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1960년 4·19혁명을 태평로 길 위에서 직접 봤고, 사회 변혁에 대한 확신을 총칼에 맞서는 청년의 거친 숨결 속에서 품는다. 그리고 ‘아! 신화같이 다비데군(群)들’이라는 108행에 이르는 격정의 장시를 써내려갔다. 신동문은 시인이면서 또한 기획력 번뜩이는 편집자이자 문단의 마당발이기도 했다. 잡지 ‘새벽’의 편집주간이던 그는 문예지도 아닌 그 잡지에 최인훈의 중편소설 ‘광장’을 게재한다. 이후에도 신구문화사, 사상계, 창작과비평사 등 진보적 문학주간지의 토대를 닦고 당대 시인, 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자임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야 함은 남은 자의 당연한 몫. 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을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상진대교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삼봉로가 시작된다. 차로 5분 남짓만 가면 대명리조트(삼봉로 187-17), 청소년수련관(삼봉로 187-18) 바로 길 맞은편에 소금정 공원이 있다. 남한강 기슭과 삼봉로 사이에 좁고 길게 위치한 공원이다. 주거하는 건물이 아니기에 도로명 주소는 따로 없다. 이 공원 입구에 바로 신동문 시비가 있다. 화강암 너럭바위에 새겨 놓은 시편은 ‘내 노동으로’의 마지막 세 번째 연이다. 그가 마지막 남긴 시다. 굳이 전문을 읽지 않더라도 그의 절절했던 고뇌가 스며온다. 신동문은 문득 절필한 뒤 1975년 서울을 등지고 단양으로 낙향했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이 그를 낙담케 했음은 훗날 사람들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서 포도밭을 가꿨고, 침술을 배웠다. 마지막 떠날 때까지 18년 동안 약 10만명에게 무료로 시술해 줬고, 일대에서는 그를 ‘신바이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신경주 단양군 민원봉사과장은 “신동문 선생은 병원을 찾을 수도 없이 가난한 이들의 병을 침술로 치료해 준 뒤 치료비 걱정에 쭈뼛거리고 있으면 씩 웃으며 ‘노래나 한 자락 불러 봐라’하며 돌려보냈다고 들었다.”고 그에 대한 기억을 더듬었다. 하지만 그가 생전을 보낸 집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빈집으로만 남아 있다. 옛 중앙선 철길을 따라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가는 길 왼쪽에 있지만 아무런 표지도 없어 쉬 찾기 어렵다. ●정도전의 지략 서린 도담삼봉 물론 단양 하면 소년 정도전의 지략과 담대함이 서린 도담삼봉을 빼놓을 수 없다. 정도전은 조선 개국 과정의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한 사상가이자 지략가였다. 그에 앞서 낡은 체제를 바꾸고자 했던 혁명가였다. 비록 훗날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죽임을 당한 불운의 정도전이지만 단양땅에 와서는 민간설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의 호가 삼봉이라는 점, 아호가 종지라는 점 등을 가운데 놓고 얘기는 살을 붙이고 몸집을 키워 간다. 지현숙 단양군문화관광해설사협회장의 얘기인즉슨, 본래 강원도 정선에 있던 도담삼봉이 홍수로 떠내려 왔단다. 정선군에서 자꾸 도담삼봉에 대한 세금을 내라고 요구하자 그 지역 관아들이 쩔쩔 매고 있는데, 그때 소년 정도전이 나타나 “도담삼봉 때문에 오히려 물길이 막혀 홍수가 나니 도로 가져가라.”고 했단다. 모두 소년 정도전의 총명함에 고개를 주억거렸고…. 여기에 정도전의 아명인 종지(宗之)도 사실은 단양에서 가장 높은 양백산전망대인 종지봉에서 따왔다는 얘기가 덧붙여졌다. 종지를 엎어 놓은 모양이라고 해서 종지봉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선후관계는 알 수 없다.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단양 사람들의 정도전에 대한 자부심이다. 뭐래도 좋다. 도담삼봉에 가려면 삼봉로를 따라 뱀허리처럼 굽이치는 남한강을 오른쪽에 끼고 돌아 상류로 거슬러 가야 한다. 도담삼봉 터널을 지나자마자 떡하니 모습을 드러낸다. 바위로 이뤄진 세 개의 봉우리에 각각 처봉, 남편봉, 첩봉이란 이름이 붙어 있다. 자욱한 아침 물안개가 피어 있는 모습이나 남한강이 흘러 돌아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김홍도와 최북 등 조선 후기에 도담삼봉을 그림으로 그린 이들이나 당대의 문인들이 써내려간 한시(漢詩)가 100편이 넘는다 하니 도담삼봉 휴게소 건물(삼봉로 644-13)에 오르거나 10분 남짓의 발품을 팔아 석문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도담삼봉이 특히 멋지다. 글 사진 단양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18회는 광주 북구 민주로를 소개합니다.
  • [중국통신] 대학 원서 접수 후끈…학교서 ‘숙소’까지 해결

    9월 새학기를 앞두고 대학교 별로 신입생 모집이 한창인 가운데 중국 내 한 대학교에서는 원서 접수를 위해 대기하는 학부모를 위해 텐트 등을 제공, 학교 내에 텐트촌이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관영통신인 신화사(新華社) 등 30일 보도에 따르면 톈진(天津)대학교는 이 날부터 신입생 원서 접수를 시작하고 등록을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학부모들을 위해 강의실 등을 숙소로 제공했다. 학교 측은 특히 신설한 교내 체육관에 이른바 ‘사랑의 텐트’ 200개를 조립하고, 외지에서 와 숙소를 구하기 힘든 학부모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체육관은 이 밖에도 샤워시설과 식수, 에어콘 등 시설도 구비하고 있어 임시거처로 손색이 없다고 신문은 전했다. 학교 한 관계자는 “신입생 원서 접수철이 되면 교내 강의실 등을 개방해 학부모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등 5년 이상 편의를 제공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입생 원서 접수증을 소지한 학부모들은 학생이 지원한 부서에서 관련 증명서를 발급받으면 누구나 이 텐트를 이용할 수 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세상이 흉흉해서…” 다시 담장 치는 학교들

    “세상이 흉흉해서…” 다시 담장 치는 학교들

    서울 양천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54)씨는 저녁마다 부인과 함께 집앞 초등학교를 거니는 게 낙이다. 특히 몇 년 전에 이 학교가 담장과 대문을 없애고 예쁜 화단을 조성하면서 철마다 바뀌는 꽃을 보는 재미까지 보태졌다. 그런 이 학교에서 며칠 전부터 공사가 한창이다. 대문을 다시 세우고 철조망이 학교를 빙 둘러 감싸기 시작했다. 이씨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담장과 정문을 허물었다 세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니 행정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서 “예산 낭비 아니냐.”고 지적했다. ●서울 825곳 공원화… 각 2억 투입 학교를 공원화해 지역사회에 개방하겠다며 2000년에 서울시가 도입한 ‘학교공원화 사업’이 역주행하고 있다. 시내 초등학교 곳곳에서 애써 허문 담과 대문을 다시 설치하는 작업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학교 내 성폭력 등으로 흉흉해진 분위기가 원인이다. 27일 서울시와 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2010년까지 공원화사업을 완료한 시내 초등학교는 825개교에 이른다. 한 학교당 평균 1억 8000만원이 투입됐다. 담장을 허무는 것은 물론 교정에 나무를 심고 화단을 가꿔 근린공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성했다. 그러나 2010년 6월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여학생이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일명 ‘김수철 사건’이 발생한 후부터 사업이 중단됐다. 지역사회와 학부모들은 학교 개방이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서울시 한 관계자는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학교공원화 사업이 범죄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는 비판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시와 시교육청은 지난해부터 연간 5억원을 들여 복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20개교, 올해 23개교가 예정돼 있다. 경찰청과 협의해 보안 취약지역 초등학교를 우선 선정했다. 시와 교육청은 최대한 취지를 살리겠다는 입장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이미 만든 화단이나 지역사회 개방성을 확보하기 위해 기존의 막힌 담 대신 안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철조망을 설치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시·교육청 年 5억 들여 복원사업 하지만 학교접근성은 크게 나빠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정문 앞에 수위실을 설치해 일과시간 이외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다. 일부 학교만 선별적으로 시설을 복원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제기된다. 학교 담장 복원사업에 선정된 전체 43개 초등학교 가운데에는 노원 10곳, 도봉 5곳 등 주로 강북지역 학교가 많이 포함됐다.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데 적게는 1000만원, 많게는 5000만원이 든다.”면서 “학생 안전이 문제라면 모든 학생들의 안전이 중요한데 일부 학교만 지원하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이어 “학교공원화 사업을 시작할 때 이미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사업을 강행해 놓고 이제 와서 되돌리는 바람에 시설 확충 등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이 새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건형·윤샘이나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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