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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동(洞) 지역도 귀어·귀촌 국비 지원

    경기 안산시 대부동과 고양시 행주동 등 수도권 동(洞) 지역으로 귀어·귀촌 할 때도 국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경기도는 해양수산부가 귀어·귀촌 지원사업 대상지에 수도권의 동 지역도 포함하는 내용으로 최근 관련 지침을 개정했다고 21일 밝혔다. 그동안 수도권과 광역시 중 군·읍·면만 귀어 관련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해 안산시 풍도동과 대부동, 내수면 어업이 이뤄지고 있는 고양·파주·여주시 등 도시 인근 어촌으로 이주할 때는 지원을 받지 못했다. 앞서 경기도는 귀어·귀촌 관련 지원 대상에 동 지역을 규제 완화 차원에서 포함해 달라고 해수부에 건의했었다. 경기도에 따르면 기후변화 등 여러 요인으로 어업환경이 악화되면서 어업인들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매년 79가구 씩 어가가 줄고 있어 향후 20년 이내 어촌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해수부가 어촌인구 감소를 막기 위헤 2015년 부터 귀어·귀촌 활성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수도권에 위치한 동 지역 어촌은 귀어 귀촌 대상에서 제외 됐다. 경기도 추정결과 2013~2017년 사이 약 500여명이 수도권에서 경기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으로 귀어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도는 앞으로 귀어학교 개설, 청년 어촌정착지원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용의자에 체포영장 발부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방화 용의자에 체포영장 발부

    지난 18일 일본 교토에 위치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의 용의자에 대해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20일 용의자 아오바 신지(41)에 대해 방화 및 살인 혐의로 경찰에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용의자는 범행 직후 현장 인근에서 전신에 화상을 입고 붙잡혔다. 현재 오사카 인근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일본 경찰은 그가 어느 정도 회복되면 체포할 계획이다. 한편 경찰은 아오바가 7년 전 강도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일본 교토시 후시미구에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건물에서 발생한 방화로 34명이 숨졌다. 이 사고로 20대 15명, 30대 11명이, 40대 6명, 60대 이상 1명이 사망했다. 최근 병원에서 숨진 남성 1명은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배우 윤동환, 4대강 반대하는 발언 했다가..‘전날 촬영취소’

    배우 윤동환, 4대강 반대하는 발언 했다가..‘전날 촬영취소’

    배우 윤동환의 근황이 전해졌다. 최근 유튜브 ‘근황올림픽’은 서울대 출신 배우 윤동환의 근황을 전했다. ‘근황올림픽’에 따르면 윤동환은 과도한 스트레스 등에 의해 목소리가 변형된 뒤 태국의 사찰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돌며 자신을 다스리며 연화사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윤동환은 현재 목소리에 대해서는 “예전에는 더 안 좋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진 것이다”라면서 “심각한 원인은 스트레스다”라고 말했다. 윤동환은 ‘근황올림픽’과의 인터뷰에서 활동을 줄어든 이유에 대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면서 “뭔가 하려고 하면 자꾸 안 됐다”고 말했다. 윤동환은 “내일 촬영인데 갑자기 (전날에) 안 된다고 통보를 받기도 했다”면서 4대강을 반대하는 발언을 한 뒤 캐스팅됐다가 번복이 된 게 열 번 정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쇠고기 파동 때 데모 지지 발언을 한 게 아프리카TV로 나갔다. 또 한예종 사태 때 소신 발언을 해 기사로 나간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윤동환은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또 요가와 명상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고도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최수정, 화사 인생의 은인이 된 이유? “고시원에서..”

    최수정, 화사 인생의 은인이 된 이유? “고시원에서..”

    그룹 마마무 화사와 연습생 시절을 함께 보낸 최수정을 향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19일 방송된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면허 취득 후 생애 첫 구매 한 차를 끌고 자라섬으로 향하는 화사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화사는 최수정에 대해 “같이 연습생 시절을 보낸 언니다. 마마무가 될 수도 있었다”며 연습생 시절 마음의 큰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가평으로 가는 차 안에서 최수정은 화사의 연습생 시절을 떠올리며, 그의 노래에 대한 열정을 곁에서 고스란히 지켜봐 왔기 때문에 데뷔 무대를 모니터링 할 땐 눈물이 다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에 옆에서 듣고 있던 화사는 2달 만에 15kg가 빠질 만큼 다이어트도 혹독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화사는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연습생 시절을 떠올리며 “밥 먹을 돈도 없었다”고 전했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가 찾아와 편의점에서 생필품을 사줬다며, 자신이 지내고 있던 고시원이 물건들로 가득 찼다고 덧붙였다. 화사는 이어 “(언니)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면 먹을 걱정 없이 행복했다”며 두 사람의 우정이 얼마나 오래됐고, 서로에게 소중한 것인지를 들려줬다. 한편 최수정은 롯데걸스로 데뷔, 개인 사업을 하다 지난해 웹드라마를 통해 대중에 얼굴을 비춘 바 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볼보 XC40’ 화사 차, 1년 기다려야 한다고?

    ‘볼보 XC40’ 화사 차, 1년 기다려야 한다고?

    그룹 마마무 출신 화사가 볼보 XC40를 구매했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 화사의 첫번째 차가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스웨덴 브랜드 볼보자동차의 콤팩트SUV 볼보XC40이다. 지난해 6월 국내 자동차 시장에 공식 출시된 XC40은 최소 수개월을 기다려야 차량을 인도받을 수 있을 정도로 물량이 없어 못 파는 차다. 옵션은 총 3가지로 모멘텀, 인스크립션, R-디자인 등이 있다. 모멘텀은 좀더 도시적인 이미지를, 인스크립션은 럭셔리한 느낌을, R-디자인은 역동적인 성향을 갖는다. 하나의 차임에도 선택에 따라 특성이 180도 달라진다. 볼보 XC40은 싱글터보 가솔린엔진을 기반으로 최대출력 190마력에 최대토크 30.6㎏·m의 힘을 낸다. 복합연비는 10.3㎞/ℓ다. 판매가격은 4620~5080만원이다. 한편 방송에서 화사는 자신의 차를 ‘붕붕이’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쏟았다. 친한 언니 최수정을 태우고 함께 자라섬으로 떠나면서 정체 구간과 드라이브 구간을 오갔다. 최수정과 함께 어려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언니가 음식도 만들어주고 드라이브도 자주 시켜줬다”고 말했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마마무 될 뻔한 최수정, 화사에게 어떤 지인? ‘가족 같은 언니’

    마마무 될 뻔한 최수정, 화사에게 어떤 지인? ‘가족 같은 언니’

    최수정에게 네티즌 관심이 모아졌다. 19일 방송된 MBC ‘나혼자산다’에서는 화사가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하며 버팀목이 돼 주었던 절친 최수정과 함께 오붓한 피크닉을 떠나는 장면이 그려졌다. 방송 후 화사와 드라이브를 즐긴 최수정이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1988년생으로 올해 32세인 최수정은 지난 2010년 한중 합작 5인조 그룹 롯데걸스의 센터로 활동했다. 이후 여성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으며 지난해에는 웹드라마 ‘체크, 메이트’에 출연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19일 방송된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산다’에서는 최수정과 함께 생애 첫 장거리 운전에 도전한 화사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화사는 최수정에 관해 “연습생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다. 마마무가 될 수도 있었다”며 “옆에서 함께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사람이다. 지금까지도 소중한 인연”이라고 소개했다. 드라이브하던 두 사람은 데뷔 시절을 회상하며 돈독한 우정을 드러냈다. 화사 절친 최수정 방송을 본 네티즌은 “화사 절친 최수정..정말 예쁘다”, “두 사람 우정 영원하길”, “화사 너무 귀엽다”, “방송에서 최수정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등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나 혼자 산다’ 화사, 연습생 시절 절친과 피크닉 “자연인 패션”

    ‘나 혼자 산다’ 화사, 연습생 시절 절친과 피크닉 “자연인 패션”

    걸그룹 마마무 화사가 특별한 피크닉을 떠난다. 19일 방송되는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화사가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하며 버팀목이 돼 주었던 절친과 함께 오붓한 피크닉을 떠나 힐링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날 화사는 완벽한 피크닉을 위해 자신만의 소울이 담겨 있는 그릇을 제일 먼저 챙긴다. 그러나 막상 가져온 재료들에 대한 레시피는 모른 채 근거 없는 자신감만 준비한다고. 즉석에서 독창적으로 발명한 요리법으로 만든 음식은 어떤 맛으로 탄생할지 기대를 모은다. 또한 차를 새로 산 화사는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한 엉뚱 발랄 고사를 지낸다. 아침부터 눈 뜨자마자 준비한 남다른 준비물들과 독특한 방식으로 지내는 고사는 일반적인 방법보다 2프로 부족한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뿐만 아니라 화사는 18세 연습생 시절부터 알고 지낸 소중한 절친과 마음이 뭉클하는 대화로 훈훈 케미를 선보인다. 강렬했던 화사의 첫인상부터 배고프고 힘들었던 시절 절친에게 매우 고마웠던 에피소드까지 모두 쏟아내 웃음과 감동으로 안방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나 혼자 산다’는 19일 금요일 오후 11시 15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슬픔에 잠긴 일본 열도

    슬픔에 잠긴 일본 열도

    18일 일본 교토(京都)의 한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최소 33명이 숨지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진화가 완료된 후 건물 내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탈출구를 찾다가 미처 화염과 연기를 피하지 못한 모습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상자 가운데 17명이 중상으로 생명이 위험한 상태여서 희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이 발생한지 하루가 지난 현장에는 추모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방화사건은 교도통신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전 10시 35분경 교토시 후시미(伏見)구 모모야마(桃山) 주택가에 있는 ‘교토애니메이션’ 제1스튜디오에서 발생했다, NHK방송은 “스튜디오 1층에 침입한 41세 남성이 갑자기 ‘죽어라!’라고 소리를 지르면서 휘발유로 추정되는 액체를 사방에 뿌린 뒤 불을 질렀다”고 전했다.
  • 日 애니제작사 방화 참사… 33명 사망

    日 애니제작사 방화 참사… 33명 사망

    NHK “경찰이 이유 묻자 ‘표절’ 언급” 10명 중태… 연락 두절된 사람도 여럿2001년 신주쿠 이후 최악 화재 될 듯 아베, 트위터에 “처참함에 할 말 잃어”일본 교토에 있는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 건물에서 18일 방화로 인한 화재로 최소 33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불을 지른 40대 용의자는 현장에서 붙잡혔다. 일본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불은 이날 오전 10시 35분쯤 교토시 후시미구 모모야마정에 있는 ‘교토애니메이션’의 3층짜리 제1스튜디오 건물 1층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건물 안에 있던 남녀 33명의 사망이 확인됐다. 또 화재 직후 빠져나온 36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 중 10명은 중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여럿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화재 당시 건물에는 직원 등 73명이 있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지른 용의자 A(41)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자신도 2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건물 1층에서 액체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며 범행을 시인했다. A씨는 “죽어라”라고 외치며 건물 1층에 들어왔으며 불을 지른 뒤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전철역 근처로 달아났다가 뒤쫓아온 스튜디오 관계자들에 의해 붙잡혔다. A씨는 화재 발생 30여분 전 인근 주유소에서 40ℓ의 휘발유를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화재 현장에서 여러 개의 흉기를 발견하고 A씨와의 연관성을 조사 중이다. 그가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근무한 경력은 없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회사 또는 개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된 범행인지,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저지르는 ‘도리마(거리의 살인마) 살인’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현장 인근에 있던 한 여성에 따르면 A씨는 “왜 이런 짓을 했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화난 표정으로 “표절이나 하고”라고 말했다고 NHK 등은 전했다. 핫타 히데아키 교토애니메이션 사장은 “회사에 대한 항의가 일상적이지는 않았지만 살인(을 예고하는) 메일이 있었다”면서 “그때마다 변호사와 상담하는 등 진지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21일)를 앞두고 일어난 대형 방화사건에 아베 신조 총리도 트위터를 통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어 처참함에 말을 잃었다”면서 “부상당한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며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참사가 발생한 교토애니메이션은 TV애니메이션 ‘케이온!’,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울려라! 유포니엄’ 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전체 직원은 160명 정도다. 이번 화재의 정확한 사상자 수가 확인된 상황은 아니지만 44명이 사망한 2001년 9월 도쿄 신주쿠 상가 화재사건 이후 일본 내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나 혼자 산다’ 화사, 첫 장거리 드라이브에 “초집중→영혼 가출”

    ‘나 혼자 산다’ 화사, 첫 장거리 드라이브에 “초집중→영혼 가출”

    ‘나 혼자 산다’ 그룹 마마무 화사가 일생일대 첫 번째 장거리 드라이브를 시도한다. 오는 19일 방송되는 MBC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절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예측불허 왕초보의 첫 장거리 드라이브로 시청자들을 폭소케 할 예정이다. 이날 화사는 새로 산 차를 끌고 절친과 함께 가평으로 장거리 드라이브를 떠난다. 앞서 ‘불합격입니다’가 울려 퍼지던 운전면허시험의 악몽을 교훈 삼아 심기일전으로 운전을 도전하는 화사가 베스트 드라이버로서의 면모를 뽐낼 수 있을까. 또 초보운전자 화사는 교통이 매우 혼잡한 서울을 빠져나가며 네비게이션이 주는 폭풍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던 도중 예상치 못한 위기와 마주친다고 전해져 궁금증을 일으키고 있다. 처음 하는 장거리 운전에 초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영혼이 가출한 듯 보였고, 이에 옆 좌석에 앉은 절친은 안절부절못하며 겨터파크를 강제 개방한다고 해 웃음을 자아낼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운전 경력이 있는 절친은 조교처럼 노련한 가르침으로 화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족집게 훈련을 받은 화사가 긴장감을 없애고 청출어람 하게 될 것인지 본방사수 욕구를 자극한다. 한편 왕초보 화사의 스펙타클 베스트 드라이버 도전기는 내일(19일) 오후 11시 15분 MBC ‘나 혼자 산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경북대,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5종 선정

    경북대 교수가 집필한 도서 5종이 2019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에 최종 선정됐다. 이번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교수는 ▲고 김기현 명예교수의 ‘아리랑과 지역문화 : 아리랑을 말하다’(인문학 분야, 민속원) ▲강현석 교수(교육학과)의 ‘교육은 왜 실패하는가 : 인지혁명과 희망교육으로의 전환’(사회과학 분야, 양서원) ▲김형기 명예교수의 ‘새로운 한국 모델 : 박정희 모델을 넘어’(사회과학 분야, 한울아카데미) ▲박종화 교수(행정학부)의 ‘집합적 행동논리와 사회적 자본 담론’(사회과학 분야, 대영문화사) ▲손호상 교수(신소재공학부)의 ‘자원리사이클링공학’ (자연과학 분야, 경북대학교출판부) 등이다.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지원사업은 우수연구 성과를 공유?확산하고, 기초학문 분야 연구와 저술활동 활성화를 위해 매년 인문학, 사회과학, 한국학, 자연과학 등 4개 분야에서 심사를 통해 우수학술도서를 선정하고 있다. 2019년에는 인문학 65종, 사회과학 95종, 한국학 40종, 자연과학 86종 등 총 286종이 선정됐다. 선정된 도서는 올해 하반기에 국내 대학 도서관에 보급될 예정이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한화, 사회봉사단 주축 전 사업장 ‘릴레이 공헌’

    한화, 사회봉사단 주축 전 사업장 ‘릴레이 공헌’

    한화그룹이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007년 10월 55주년을 맞아 한화사회봉사단을 창단해 체계적이고 규모 있는 공헌활동을 진행 중이다. 특히 지난해 7월 대내외 소통 강화를 위해 한화커뮤니케이션위원회가 출범하면서 한화사회봉사단의 활동이 한화그룹의 가장 중요한 대외 소통 활동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한화그룹은 2007년부터 창립기념일(10월 9일)이 있는 10월 한 달 동안 매년 전국 60여개 사업장이 참여하는 릴레이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또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기여할 수 있는 과학영재의 경연장 ‘한화사이언스챌린지’를 8년째 주최해왔다. 한화그룹은 온라인 플랫폼 드림플러스, 드림플러스 63, 드림플러스 강남 등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청년 창업과 취업을 지원한다. 복지기관, 섬마을 등 에너지가 꼭 필요한 곳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기부하는 ‘한화 해피선샤인’ 캠페인도 한화만의 사회공헌 활동이다. 2011년 시작한 해피선샤인 캠페인을 통해 현재까지 전국 245개 사회복지시설과 마을 등에 총 1779㎾ 규모 설비를 무료 지원해 설치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획한 ‘사랑의 점자달력’도 19년째 이어졌다. 한화는 또 2000년부터 20년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하는 ‘교향악축제’를 단독 후원한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스럽지 않은’ 경계의 땅에 내려앉은 한옥… 항일 숨결 속으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12회 불광동과 은평한옥마을’ 편이 지난 13일 은평구 불광동과 진관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더위를 피해 불광역 구내에 집결한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불광대장간과 천주교 불광동성당을 찬찬히 둘러봤다. 참가자들이 독일제 쌍둥이 칼보다 한 수 위라는 ‘불광’ 부엌칼을 사려고 줄을 서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됐다. 김수근이 설계한 붉은 벽돌 성당은 “왜 굳이 유럽까지 성당 순례를 가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행은 701번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진관사와 은평한옥마을까지 한걸음에 내달렸다. 답사 축지법(縮地法)이다.북촌 한옥마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층짜리 한옥마을길을 요리조리 걷는 기분이 삼삼했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수려한 조선 성종의 후궁 숙용 심씨 묘표는 압권이었다. 대리석 비석의 자태가 눈을 홀렸다. 걸레스님이자 화가 중광과 ‘소풍’의 시인 천상병, 소설가 이외수 등 ‘도적놈 셋이서’라는 제목의 시집을 낸 3명의 기인이사(奇人異士)를 모은 ‘셋이서 문학관’이 흥미진진했다. 백초월 스님의 얼을 느끼게 하는 진관사 태극기 비석을 거쳐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옥상 전망대 정자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초복 바로 다음날의 폭염도 북한산 바람 숲 아래에선 기를 펴지 못했다. 맵시 있는 개량 한복 차림으로 참가자들을 이끈 베테랑 정순희 해설사는 은평구의 중심 불광동과 문화예술촌으로 거듭나는 진관동에 서린 역사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냈다. 은평구는 ‘서울스럽지 않은’ 옛 풍광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했던 서울의 서북쪽 가장자리 고을이다. 서울의 25개 자치구 중 가장 늦게 편입된 막내 자치구이기도 하다. 아파트의 물결로 뒤덮이기 전까지 5000기가 넘는 무덤이 산재한 땅이었다.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이 언급한 대사찰 청담사의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나오고 서울에서 처음 통일신라시대 기와 가마터가 발견된 곳이다. 무덤과 유물은 조선시대 장례문화와 매장 풍습을 밝혀 주는 귀중한 자료가 됐다. 해발고도 132m의 나지막한 진관동 이말산 기슭에는 역관과 내시, 궁녀의 무덤이 수두룩했다. 중국으로 가는 의주로(통일로)의 길목에 위치했기 때문이리라. 의주로는 서울 서대문에서 의주까지 1080리 길에 이르는 조선의 제1대로였다. 중국과의 조공무역에서는 역관의 역할이 컸다. 지금은 전문직인 동시통역사이지만 조선시대 역관은 중인 신분의 대물림 직업이었다. 인동 장씨, 연주 현씨, 남양 홍씨, 우봉 김씨가 역관가문으로 이름을 떨쳤다. 역관은 단순 통역관이 아니라 외교전문가였고, 무역상이었으며, 외국어 교육가였다. 때론 스파이 노릇도 마다치 않았다. 천주교와 실학이 이들의 손과 입을 통해 국내에 전파됐다. ‘실학파의 아버지’ 유대치, 오경석도 역관 출신이었다. 이말산은 역관을 93명이나 배출한 우봉 김씨의 선산이기도 했다. 조선 말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국제인’ 김득련의 묘가 남아 있다.내시와 궁녀의 무덤이 대거 발굴돼 이목을 끌었다. 진관내동 중골마을 백화사 옆에 이사문(李似文)을 시조로 모시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실재했다. 국내 최대의 내시묘역으로 ‘내시들의 정원’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광해군 13년(1621)에 세워진 정2품 자헌대부 김충영의 묘가 가장 오래됐다. 왕과 왕비의 명령을 전하는 최고의 요직 대전 승전색을 지냈다.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14기 중에는 종1품 숭록대부 2기, 종2품 상선의 묘 5기를 비롯해 정경부인에 오른 내시부부 합장묘도 7기가 있었다. 2003년 내시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뒤 4억 8000만원에 조경업자 손에 넘어가 파헤쳐졌다. 석물도 사라지고 상선 노윤천의 묘 등이 봉분도 없이 남았다. 현종의 유모였던 상궁 옥구 임씨, 임실 이씨의 묘도 마찬가지다. 사후 고향에 갈 수 없었던 내시와 궁녀가 묻히기에 딱 좋은 땅이었다. 이말산은 한양 사대문을 둘러싼 그린벨트지역인 사산금표(四山禁표)를 막 벗어난 지역이다. 궁에서 가까운 거리였다. 살아서 권력이 있던 자가 죽으면 묻힐 수 있는 공간이었다. 북한산 둘레길 내시묘역길에는 아쉽게도 내시묘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은평은 경계의 땅이다. 개성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경계이자 서울과 고양, 양주 세 지방이 만나는 접경이다. 옛 조선 한성부 북부의 상평방, 연은방, 연희방이 도성의 서북경계였는데 이 중 연은방(홍제원계, 양철리계, 불광산계, 신사동계 등)과 연희방(수색리계, 증산리계, 성산리계, 망원정계 등)의 일부가 오늘의 은평구에 속한다. 18세기작 ‘해동지도’나 19세기작 ‘광여도’ 등을 보면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은 서울의 서북 외곽인 은평구의 가장 끝에 북쪽을 향해 돌아앉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수봉에서 비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가다가 서오릉이 안겨 있는 효경봉에서 북으로 한 갈래가 갈라져 나가 창릉천을 맞는다. 이 줄기가 진관내동과 진관외동의 경계를 이룬다. 비봉에서 나지막한 산줄기 하나가 서북으로 길게 뻗어나가 한복판에 낮은 봉우리를 만들었는데 이게 이말산이다. 북쪽 창릉천의 낮은 지대가 진관내동이고 남쪽의 비봉에서 박석고개로 이어지는 큰 산자락 쪽이 진관외동이다. 1949년 고양군 일부가 서울시에 편입됐으나 고양군 신도면 구파발리, 진관내리, 진관외리는 1973년까지 이어졌다. 서대문구 은평출장소를 거쳐 1979년에야 은평구로 승격됐다. 신라의 청담사, 고려의 신혈사·삼천사와 조선의 진관사는 천년고찰이다. 진관사는 1011년 고려 현종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진관대사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혈사 터에 큰 절을 세우고 대사의 이름을 따 세웠다. 태조 이성계도 물과 육지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과 아귀에게 제사 지내는 수륙재(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를 진관사에서 봉행토록 했다. 진관사의 신미대사가 첫 한글서적 중 하나인 ‘석보상절’을 펴낸 점과 세종이 성삼문·신숙주·박팽년·이개 등 집현전 학사들이 머물면서 훈민정음을 연구토록 경내에 독서당을 세워줬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진관사가 한글창제 비밀 작업 공간이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민족대표 33인에 서명한 만해 한용운, 대각사의 백용성 스님과 함께 조선 불교계의 독립운동 선봉 백초월 스님의 본거지였다. 백초월 스님은 진관사와 진관사의 포교원인 마포 극락암을 상하이 임시정부의 국내 비밀조직인 연통부의 불교계 연락본부로 사용했다고 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와 인쇄물은 백초월 스님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태극기 보자기는 인쇄물을 싸고 있었는데 일장기 위에 먹물로 태극과 4괘를 그려 만든 것으로 파악됐다. 삼일운동 당시 사용된 태극기 대부분이 일장기에 덧칠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제정한 국기양식과 동일한 점 등이 인정돼 등록문화재 제458호로 지정됐다. 인쇄물은 삼일운동 직후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에서 발간된 상하이판 독립신문, 신대한,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6종 16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발간한 신대한 2호와 3호는 유일본이다. 학계에서는 진관사의 태극기와 자료는 백초월 스님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고 본다. 백초월이 일본에서 체포돼 압송된 1920년 3월 이전 급히 숨겼다는 것이다. 1944년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하기 전까지 24년 세월은 체포와 옥고로 점철됐다. 진관사 태극기가 90년 만에 빛을 본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진관사 진입로는 ‘백초월길’이라고 명명됐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제13회 부암동 능금나무길 ■일시 및 집결장소:7월 20일(토) 오전 10시 윤동주문학관 앞(창의문) ■신청(무료):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영등포구, 사회적 기업 육성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

    영등포구, 사회적 기업 육성 최우수 지자체로 선정

    서울 영등포구가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한 ‘2019년 사회적 기업 육성 우수 자치단체’ 평가에서 최우수 지방자치단체로 선정됐다고 17일 밝혔다. 구는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경제 성장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며, ▲장애인 서비스 및 사회적 경제 기업 연계 ▲지역 청년의 사회적 가치 실현 활동 유도 및 활성화 ▲사회적 경제 지역 특화사업 추진 ▲생활 속 사회적 경제 인식 확산 및 판로 개척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수상하게 됐다. 시상식은 이날 서울 양재동 양재aT센터에서 개최되는 ‘사회적 기업 육성 성과 공유대회’에서 열렸다. 평가 대상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다. 이 중 수상하는 지자체는 13곳으로, 평가의 질적 향상을 위해 지난해 29개 지자체에서 수상 대상을 대폭 축소했다. 주요 심사 기준은 ▲사회적 기업 발굴 ▲사회적 기업 육성 ▲사회적 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 등 4개 분야다. 심사지표는 지난해 기조를 유지하되, 기존 일자리 창출 부문의 일자리 증가율 지표와 함께 올해는 예산 집행률 평가를 추가해 재정 건전성을 평가 요소로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구는 지역의 사회적 가치를 확산하고자 연초에 사회적경제과를 신설해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민과 기업이 함께 하는 소통 릴레이, 명사특강, 공공구매 활성화 소통 상담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특히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벤처팀을 육성하고, 지역 내 사회적 경제 기업 사업개발비를 지원하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한 지난 5월 고용노동부 산하 ‘소셜 캠퍼스 온’ 유치가 확정돼 사회적 기업의 성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어 생활 속 사회적 경제 실현을 위한 공동주택 같이살림 프로젝트, 주민 기술학교, 지역 특화 브랜드 개발, 공정무역 지원 사업 등 서울시 공모사업 선정으로 5억 3000만원의 재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채현일 구청장은 “영등포구에는 44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하고 있다. 지역 내 사회적 기업들을 활성화하고, 신규 기업이 자생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것이 구의 역할”이라면서 “특색 있고 경쟁력을 갖춘 사회적 경제를 확산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前정부서 잘나간 죄?… 소리없이 밀려난 자전거·푸드트럭

    前정부서 잘나간 죄?… 소리없이 밀려난 자전거·푸드트럭

    우리나라 정책 집행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새 정부가 이전 정부의 주요 정책을 별다른 이유 없이 폐기해 버린다는 것이다. 마치 벌을 내리듯 옛 정부 정책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도 한다.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 판도가 요동치는 조변석개식 운영 방식은 정부 신뢰를 떨어뜨린다. 새 정부가 ‘빅배스’(후임자가 전임자의 성과를 백지화하는 것) 차원에서 과거 정책을 대폭 축소하거나 없애는 관행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MB정부 치적서 애물단지로 전락한 자전거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정부서울청사 별관 3층 사무실 벽에 자전거 한 대가 걸렸다. 범국가적 자전거 정책을 총괄한 행정안전부의 자전거정책과였다. 행자부 실·국장들 사이에서 ‘자전거 예찬론’이 쏟아졌다. “팔당댐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녀왔다”, “운동을 시작해 보려고 자전거를 샀다”는 등 경험담이 이어졌다. 자전거광으로 소문난 맹형규 당시 장관과 함께 달렸다는 공무원들의 자랑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4대강 자전거길 조성 사업의 영향이었다. 행안부에 따르면 정부는 1995년부터 자전거 정책 전담 부서를 설치해 자전거도로 조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지자체 차원의 소규모 사업에 그쳤다. 그러다가 이명박 정부에서 자전거도로 사업을 국가 단위로 격상시켜 추진했다. 덕분에 전국의 자전거길은 2009년 노선 4647개, 총연장 1만 1387㎞에서 2017년 1만 3337개, 2만 2315㎞로 각각 두 배 이상 늘었다. 이 전 대통령은 대선 핵심 공약으로 ‘4대강 대운하 사업’을 내걸었다. 그러나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커지자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이름과 내용을 바꿔 추진했다. 이때부터 4대강 경관을 활용하고자 자전거도로 조성 사업에 힘이 실렸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가 국가 자전거도로의 골격을 조성했고 행안부가 4대강 사이 내륙 분절 구간을 연결했다. 자전거도로 조성에 드는 비용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분담했다. 지자체장은 재임 중 국비를 끌어와 지역사회 개발 성과를 낼 수 있었기에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자전거도로 조성 붐이 일었다. ●자전거는 죄 없지만… 유지 탓 우선순위 밀려 하지만 자전거 활성화 분위기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가라앉기 시작했다. 졸속·부실 사업으로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로가 늘어 상당수 자전거길이 애물단지가 됐다. 교통안전공단이 작성한 ‘4대강 자전거길 도로 및 교통안전시설 점검 보고서’에 따르면 자전거길 대부분이 강 주변에 조성돼 여름 홍수에 취약하고 도로에 균열과 뒤틀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쟁적으로 자전거길 조성에 뛰어든 지자체는 도로 유지·보수를 놓고 중앙정부만 바라보고 있다. 자전거길 조성 이후 사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보수 공사를 진행해야 하지만 예산 마련이 녹록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자전거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다. 과다한 에너지 소비로 몸살을 앓는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교통수단이다. 최근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에 자전거 고속도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자전거는 중앙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그 많던 자전거 예찬론자가 어디로 갔을까 싶을 정도다. 자전거 정책을 총괄했던 자전거정책과는 2014년 세월호 사고 뒤 행안부가 행정자치부와 인사혁신처, 국민안전처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간판을 내렸다. 지금은 행안부 생활공간정책과에 편입돼 있다. 김진태 자전거문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2015년 자전거 교통수송분담률이 36%에 달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자전거 친화도시다. 그럼에도 ‘자전거 선도국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는 등 꾸준한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규제 혁파 상징서 소극행정에 발목 푸드트럭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3월 청와대에서 규제개혁 끝장토론이 열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취약계층 일자리 마련을 위해 푸드트럭 창업을 합법화해 달라고 건의하는 모습이 TV로 생중계됐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푸드트럭 영업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손톱 밑 가시’에 비유하며 규제 혁파를 주문했다. 푸드트럭은 청와대 끝장토론 뒤 5개월이 지난 그해 8월 합법화됐다. 전국 유원지 등에 푸드트럭을 허가하면 일자리 6000명, 부가가치 400억원이 생겨나고 트럭 개조 사업도 함께 커질 것으로 정부는 내다봤다. 미국 뉴욕의 한 푸드트럭에서 시작해 세계적 음식 브랜드가 된 ‘쉐이크쉑(쉑쉑) 버거’와 같은 길거리 음식 신화가 우리나라에서도 생겨날 것으로 기대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푸드트럭 시장은 희비가 엇갈린다. 푸드트럭 정책을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서 영업 신고한 푸드트럭은 모두 1915대다. 서울은 야시장 등을 조성해 영업 지역을 늘리는 등 전성기를 맞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들은 대부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에 등록된 푸드트럭은 780대로 전년(625대)보다 24.8% 늘었다. 서울밤도깨비야시장 등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아이템을 지속적으로 발굴한 덕분이다.●“기존 상권·노점과 마찰 탓 외진 곳만 지정” 하지만 서울과 인접한 경기 지역만 해도 푸드트럭은 사양길을 걷고 있다. 경기도에 등록된 푸드트럭은 2015년 385대에서 지난해 말 120대로 3년 만에 70% 가까이 줄었다. 아파트 단지 등 안정적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지역을 찾기 힘들어서다. 이 지역 푸드트럭 상당수는 평소에는 수익성 문제로 일을 하지 않다가 축제나 대규모 행사 때만 영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미국이나 유럽 등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걸어서 5분 이내면 편의점 등에 갈 수 있다. 기존 상권과 공존하며 장사가 될 만한 푸드트럭 입지를 찾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지자체에서 푸드트럭이 부진한 이유를 지방정부가 기존 상인이나 노점과의 마찰을 우려해 푸드트럭 사업에 미온적으로 대응하기 때문으로 본다. 지자체가 원하면 조례를 개정해 푸드트럭 영업장소를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지역 상권에서 이를 문제 삼다 보니 결국 인적이 드물거나 차량 진입이 잘 되지 않는 외진 곳을 푸드트럭 영업장소로 지정하는 소극행정이 이어진다. 박근혜 정부 당시 푸드트럭 사업을 지원하던 행안부도 지금은 손을 뗐다. 정부 관계자는 “2016년 7월 푸드트럭 이동영업 제한을 없애는 등 중앙정부 차원에서 풀 수 있는 규제는 거의 다 풀었다”면서도 “장사가 될 만한 ‘목 좋은 곳’마다 어김없이 불법 노점이 자리 잡고 있어 푸드트럭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푸드트럭 운영자는 “합법적 사업자임에도 제약이 너무 많다. 차라리 불법으로 노점을 하는 것이 낫다고 느낄 때가 많다”면서 “2030 젊은 세대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라도 정부와 지자체가 조금 더 나서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 화제의 책이 있다.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이다. 개봉 예정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이라 주장하기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혜각존자 신미스님이란다. 그는 나옹, 무학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의 불교 선맥을 잇는 함허의 제자이고 산스크리트어의 대가였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1등 공신이란다. 15년 세월, 연구와 집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세상에 출현한 박해진 작가. 저자는 “훈민정음은 철저하게 백성과 뜻을 함께하는 바른 소리이자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고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이란다. 작가와 신미와의 동행(同行)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대하드라마의 역사 현장에 우리는 함께한다. 편집자 주-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렇게 배웠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창제가 아니라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이 책을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신미가 나고, 출가하고, 정진했던 곳을 15년간 순례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 ‘조선왕조실록’ 속의 신미 관련 기록을 빠짐없이 확인했다. 집현전 학자들의 문집도 확인하며 숨은그림찾기를 거듭했다. 훈민정음은 신미가 쌓아 올린 9층 목탑이다.” -신미스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2001년 겨울, 덕수궁 중화전 해체 현장에서 함께 손과 발을 섞던 김덕문 박사(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이 아프다. 해체하기 전 옛 장인이 남긴 모습을 기록해 달라.”며 부탁했다. 며칠 뒤 법주사에 내려갔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글쟁이가 카메라를 들고 와? 부처님 집 잘 기록하게.”라며 요사채 한 칸을 내주었다. 대웅보전의 안팎을 드나들었다. 마지막 날, 법당의 노보살이 언 몸 녹이라고 차 한 잔 건네며 말했다.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스님이 복천암에 머물렀는데….” 천둥, 번개가 내 머리를 치고 들었다. 금시초문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마음 한 켠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숨겨두었던 꿈의 첫 장면이 등 뒤로 눈송이가 되어 파고들었다. 파릇파릇한 첫사랑, 첫눈이었다. 대웅보전의 대들보와 기둥, 마지막으로 남은 주춧돌을 찍으며 한순간도 노보살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복천암으로 올라갔다. 복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신미의 길을 떠올렸다. 길은 휘어지고, 이어졌다. ‘세종실록’을 따라갔다. ‘뭐야, 훈민정음과 신미는?’이라고 날마다 물었다. 답은 한길이었다. ‘찾아봐, 거듭. 자랑질하지 말고….”-신미스님은 누구인가. “신미(1403∼1480)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이다. 몰락한 유학자 집안의 자제로 불가에 입적하여 무학의 법맥을 이은 함허당(1376∼1433)의 제자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스님이다. 신미가 없었다면 한글도 없었다.” -신미 연구는 어떻게 했나. “시로 등단했지만, 서랍 한쪽에 소설을 쓰겠다는 바람을 쟁여 두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신미의 자료를 끝까지 찾아나선 끝에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썼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미가 만들고, 번역한 책을 남김없이 구해 읽었다. 신미는 내가 옆길로 빠질 때마다 미혹의 길을 끊었다. 전국의 헌 책방을 순례했다. 관련 책을 찾아내면 끝까지 읽었고, 읽고 나면 다음 책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왔다. 신미의 행장을 정리한 비문(碑文)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 영인본을 사서 일일이 신미 관련 기사의 원문을 입력하며 다시 번역하고, 거듭 읽었다. 15세기에 간행된 학자들의 개인문집을 남김없이 뒤졌다. 재인용은 없다. 신미가 머물렀던 절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정리된 초고는 15000매, 사진은 수만여 장이다. 1374개의 주를 달았다. 실증적 자료조사의 결과물이다. 흩어진 기록을 짜 맞추어 읽으며 신미는 분명 역사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미완성으로 두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행간을 메꿔 나가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간행했다.”-복천암, 해인사, 송광사, 현등사를 자주 찾았다고 들었다. “속리산 복천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가평 현등사는 훈민정음과 뗄 수 없는 절이다. 법주사에 머무는 5년 동안 새벽예불이 끝나면 복천암의 신미와 학조의 부도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현등사는 세종이 승하하고 난 뒤 문종이 ‘의금부 군사들은 신미가 주석하는 절에는 침범하지 말라’는 명을 내린 기사를 실록에서 읽고 찾아간 절이다. 그곳에서 함허당의 부도를 만났다. 신미가 출가 초기에 스승을 모시고 불사를 한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절을 10년 넘게 들고 나며 신미와 수양과 효령대군 등 왕실과의 관계를 찾아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미 평전과 소설을 쓰기 위해 연구와 병행해서 현지 답사를 이어갔다. 신미의 일대기를 검증할 연구는 단편적이었다. 자료를 거듭 읽고, 찾았지만 앞과 뒤를 이어가기에는 빈 곳이 많았다. 신미와 훈민정음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 전국의 고서점을 찾아다녔다. ‘조선왕조실록’ 영인본부터 함허당이 쓴 ‘금강경오가해설의’ 등 관련 책 2000권을 아낌없이 사서 읽었고, 관련 논문 1000편도 주제별로 분류해서 읽었다. 가난한 살림에 책값과 현장 답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원고를 들고 형난옥 대표를 찾았을 때는 그는 좀더 규모있는 출판사가 출판해야 할 원고라고 했다. 형대표는 원고를 심청이 젖동냥하듯 다른 출판사에 소개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출판에 응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벼랑 끝을 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형대표에게 무턱대고 책만 출간해주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 좌판을 펼치고 팔겠다며 깡을 부렸고, 형대표가 손수 전 과정을 편집하여 출간될 수 있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보람찬 일은. “신미의 전 생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고, 책의 출간은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집필하며 깨달은 것은. “통(通)이다. 간절하면, 사무치게, 알아 뚫린다. 소용돌이치더라도 꼭 할 일은 하고 가야 한다.” -훈민정음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훈민정음은 위와 아래가 없는 보편성,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었다. 백성의 알지 못하는 절대고독과 불통의 벽을 허문 혁명의 도구다. ‘무소유의 오래된 미래’다. 훈민정음은 ‘앎’이다. 알면 남에게 기대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뭘 하고자 했는가. “백성이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소통만이 나라의 평안을 이끄는 지름길이다. 조선의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은 기득권이 가진 묵살과 배신의 벽을 허무는 장도리이고, 얽매임 없이 함께 꿈꿀 수 있는 불꽃의 바다다. 편민(便民·백성을 편하게 함) 정신의 실천이다.” -저자에게 신미는 어떤 분인가. “동행(同行)이다. 텅 빈 길에는 위, 아래가 없다.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주인은 훔치지 않고 흉내 내지 않는다. 세종은 제국을 꿈꾼 조선의 유일한 왕이다. 신미는 제왕의 곁에 온 또 다른 부처였다. 조선을 화엄의 바다로 당겨가려는 강렬하고 간절한 서원(誓願)이 둘을 함께 하게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집중했고, 고통을 감내했다. 새로 만든 문자 훈민정음은 ‘제국의 선언’이다. 신미는 백성이 주인 되는 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훈민정음과 세종, 신미를 위한 향후 계획은. “집현전 학자와 기득권 세력들이 백성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쌍수를 들고 막는 바람에 만들지 못했던 책들을 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서 나녹과 출간해 갈 계획이다. ‘아롬’은 언제나 리더, ‘모롬’은 언제나 머슴이다.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을 해나갈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 출판사와 함께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원안으로 한다는 약속이 있어 자문에도 응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15년간 치열한 취재, 연구와 장인정신으로 출판한 크레딧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다. 당연한 요구다. 왜 그것을 가로채려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사에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 환멸을 느낀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대중성·예술성 꽃피운 문예영화… 그리고 그 시대 풍미한 이만희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1960년대, 대중성과 작가성을 두루 만족시키는 뛰어난 감독들이 등장해 한국영화 미학을 개척해 갔다. 1960년대 초 김기영, 유현목, 신상옥은 각각 ‘하녀’(1960), ‘오발탄’(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라는 대표작을 선보였고, 이후 각자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상업성과 예술성을 결합시키며 1960년대 내내 활약했다. 1960년대 중반에는 김수용, 이성구 그리고 이만희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역시 대중과의 호흡뿐만 아니라 미학적 완성도 역시 포기하지 않으며 한국영화의 품위를 높이는 데 성공한다. 1960년대 한국영화가 예술성을 꽃피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천은 바로 문학이었다. 원작 소설이나 희곡을 영화화한 ‘문예영화’ 제작이 제도적으로 안착하며 작가주의 감독들의 작업 기반이 됐다.●감독들,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돼 1960년대 초중반 영화산업의 외양이 급격히 넓어지면서 한국영화는 대량생산 체제로 들어선다. 문제는 이야기였다. 영화 제작편수는 100편을 넘어 150편 가까이 계속 늘고 있는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금 과장한다면 일본 영화잡지에 실린 일본영화 시나리오 중 누가 먼저 흥행될 만한 이야기를 찾아 번안할지 경쟁하던 시절이었다. 흡족한 시나리오를 만날 수 없었던 감독들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은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방식을 택한다.1960년대 초반 ‘오발탄’(이범선 원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주요섭 원작)를 비롯해 김수용 감독의 ‘김약국의 딸들’(박경리 원작, 1963), ‘혈맥’(김영수 희곡 원작, 1963) 등 문학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실 ‘문예영화’라는 말은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됐지만, 바로 이때부터 한국영화계의 특별한 경향으로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 문예영화는 곧 제작자들의 관심 ‘장르’가 됐다. 당시 정부는 제작업과 수입업을 일원화시켜 한국영화 제작자만 외국영화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제한했고, 수입 역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보부로부터 외화 쿼터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제작사 입장에서 수입 쿼터는 말 그대로 돈이었다. 개봉되는 외화가 한정됐기 때문에 한국영화 수익보다 더 확실한 자금원이 돼 준 것이다. 이처럼 제작사들이 외화 쿼터를 배정받을 수 있도록 평가하는 기준 중의 하나가 우수영화보상제도였고, 바로 문예영화는 반공영화, 계몽영화와 함께 ‘우수영화’의 항목에 포함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외화를 흥행시키기 위해 예술적으로 우수한 한국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인위적인 제도가 존재했던 것이다. 주목할 부분은 산업과 당국의 이해가 맞아 정착한 문예영화 덕분에 영화의 예술적 표현에 관심 있는 감독들이 상업적 흥행에만 몰두하지 않아도 됐던 점이다.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유현목, 김수용, 이만희, 이성구, 정진우 등의 감독들은 문예영화라는 장르를 활용해 특유의 영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고 어느 정도 창작의 자유도 누렸으며 국제영화제 진출 역시 노릴 수 있었다.특히 ‘갯마을’(오영수 원작, 1965), ‘유정’(이광수 원작, 1966) 등 문예영화의 대가였던 김수용 감독은 1967년 10편의 연출작을 선보이는 가운데 ‘만선’(천승세 희곡), ‘산불’(차범석 희곡), ‘안개’(김승옥 원작), ‘까치소리’(김동리 원작) 같은 걸작들을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의 뛰어난 연출 감각과 왕성한 창작력을 말해 주는 대목이지만, 그 기반이 된 것은 문예영화라는 장르 혹은 제도였음을 알 수 있다.한편 지금은 필름이 사라진 이만희의 걸작 ‘만추’(1966)가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외화 수입 쿼터를 받자 문예영화의 범주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영화는 소설을 각색한 것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김지헌의 오리지널 각본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제를 제기한 쪽은 우수영화 심사에서 아깝게 떨어진 제작사였는데, 바로 이만희의 ‘물레방아’(나도향 원작, 1966)를 제작한 세기상사였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원작으로부터 최소한의 모티브만 가져온 새로운 창작에 가까운 작품이었다. ●1969년 우수영화에서 문예영화 제외되며 쇠퇴 이를 계기로 문예영화는 ‘문학작품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는 애초의 의미에서 ‘예술성 있는 우수한 영화’로 정의가 확대됐다. 결국 1969년 우수영화 선정부터 문예영화가 제외되면서 충무로식 예술영화라 할 문예영화 현상은 급격히 쇠퇴한다. 1960년대 미학적 야심이 있는 감독들이 때로는 통속 멜로드라마, 코미디, 액션스릴러 등 흥행 장르를 벗어나 예술영화의 문법을 고민하고 한국영화의 미학을 찾는 데 열중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문예영화의 순기능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문예영화를 기반으로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충족시킨 감독 중 이만희는 꼭 언급해야 할 존재일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개발한 기존 장르를 활용하면서도 재해석했고, 대사로 설명하기보다는 영상과 분위기로 관객이 영화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멜로드라마도, 액션스릴러도 심지어 시대극도 그만의 스타일로 새롭게 태어났다. 무엇보다 그는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고전 할리우드 영화 스타일에 반하는) 화법까지 가장 독창적으로 수용한 감독이었다. 1931년 서울 왕십리에서 태어난 이만희는 제도권 교육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광무극장, 동화극장 등 동네 극장에서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렇게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보낸 그는 6·25전쟁 발발 후 암호병으로 근무하다 중사로 만기 제대했고, 1955년경 유치진이 운영하는 연기학원에 다니며 극단 생활을 시작한다. 1956년 안종화 감독의 연출부로 처음 영화에 입문했고, 조감독 생활을 하다 이화룡의 화성영화사가 제작한 ‘주마등’(1961)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화룡은 명동파 건달이었지만 1960년 이후 뛰어난 영화제작자로 이름을 날린 인물이다. ‘주마등’은 당시 화성영화사가 제작하고 강대진이 연출한 ‘박서방’(1960), ‘마부’(1961) 같은 ‘서민영화’ 경향의 작품이었다. 이만희는 1962년 액션스릴러 ‘다이알 112를 돌려라’로 충무로의 이목을 끈 후 1963년 전쟁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흥행 성공으로 일약 충무로의 스타 감독이 됐다. 이어 미스터리스릴러 ‘마의 계단’(1964), 액션누아르 ‘검은 머리’(1964) 등 이만희 특유의 장르영화들이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동시에 주목받았다. 1965년 연출한 ‘7인의 여포로’가 반공법 위반에 휘말리며 수감 생활을 했지만, 이듬해 ‘시장’, ‘물레방아’, ‘군번 없는 용사’, ‘만추’ 등 4편을 1966년 한국영화 ‘베스트 10’(부산영화평론가협회 선정)에 올리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특히 서구의 모더니즘 영화언어를 그만의 방식으로 소화한 ‘만추’ 그리고 ‘귀로’(1967)는 당시 그의 예술성이 만개했음을 증명했다. 1968년에는 다시 당국의 검열로 고초를 겪었다. 영화 ‘휴일’이 문제가 됐다. 1968년 3월쯤 촬영에 들어가 문화공보부의 개작 지시까지 반영해 작품을 완성했지만, 결국 영화는 개봉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당국의 요구에 지친 제작자와 감독이 개봉을 포기했던 것이다. 1970년대 한국영화의 침체기는 이만희 역시 피해 갈 수 없었다. 1974년 영화진흥공사가 제작한 국책전쟁영화 ‘들국화는 피었는데’를 연출했으나 의견 차이로 편집권을 포기하는 사건이 있었고, 1975년 4월 ‘삼포 가는 길’ 후반 작업 중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 지향의 장르영화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미학과 예술성을 개척한 특별한 감독이라는 점에서 이만희는 꼭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젊은 팬들도 “김기영에 이은 스타는 이만희” ‘휴일’이 처음 대중에게 상영된 것은 이 영화가 만들어진 지 37년이나 지난 2005년이다. 개봉도 못 한 영화라 주목받지 못한 채 한국영상자료원에 보존돼 있던 필름을 처음 공개한 것이다. 영화의 반향은 대단했다. 이만희 특유의 예술성이 정점이 달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영화평론가들은 기꺼이 그해 개봉작들과 함께 ‘휴일’을 베스트 10에 올렸고, 젊은 영화 팬들 역시 김기영에 이은 또 한 명의 주목할 감독으로 이만희를 인식하게 됐다. 또한 ‘휴일’은 ‘만추’의 필름이 사라져 아쉬운 지금, 영화의 만듦새와 분위기를 상상해 볼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큰 작품이다. 많은 평론가가 언급하고 있듯이 ‘휴일’은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이다. 말하자면 스토리의 전달보다는 인물이 처한 공간의 풍경과 영화적 분위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영화다. 인물들의 대사는 극히 희박하다. 카메라는 클로즈업 쇼트 사이즈로 인물과 밀착해 주인공 허욱(신성일)과 지연(전지연)의 미세한 표정과 감정을 포착하다가도, 익스트림 롱 쇼트로 물러난 황폐한 공간 속에 그저 둘을 던져 놓기도 한다. 가난한 연인은 그들의 내면 풍경이라 할 초겨울 바람이 몰아치는 남산 공원을 그저 말없이 걸을 뿐이다. 회화적인 구도의 흑백 화면은 무척 슬프지만 또한 아름답다. 특히 이 영화는 고 신성일의 외모와 연기가 가장 빛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스토리는 무척 간단하다. 허욱과 지연은 일요일마다 만나는 연인이다. 무일푼인 허욱은 사기를 쳐서 택시를 타고 담배를 살 정도이고 지연 역시 커피값이 없어 다방 앞에서만 그를 기다린다. 어렵게 말을 뗀 지연은 중절 수술을 받겠다고 말하고, 허욱은 지연을 공원 벤치에 남겨 두고 수술비를 구하러 친구들을 찾는다. 같은 처지의 룸펜 친구들에게 돈을 빌릴 수 없던 그는 결국 부자 친구의 집에서 돈을 훔쳐 나온다. 둘은 산부인과로 향하고 결국 그녀는 수술을 받는다. 그 사이 허욱은 카페에서 만난 여인과 술집을 전전하다 공사장에서 정사를 나누려 한다. 교회 종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병원으로 달려가지만, 지연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허욱은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절규한다. 영화의 마지막 그는 전차를 타고 종점에 내려 머리를 깎아야겠다고 읊조린다. 바로 문제의 엔딩 장면이다. 당시 검열관들은 허욱이 머리를 짧게 자르고 군대에 가는 설정으로 고치기를 원했고, 이만희는 이 정도 대사로 타협했던 것이다. 현재 우리는 영상자료원에 보존된 영화 ‘휴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심의 전 버전), 심의용 대본 그리고 당시 개봉되지 못했던 필름이라는 세 가지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어, 각 버전 간의 차이와 당국의 검열이 미친 영향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심의 대본과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해 보자. 허욱은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 보통 연인들처럼 만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했던 지연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질주하다, 이제 전차 철로가 끊긴 자리에 서 있다. “서울, 남산, 전차, 술집 주인아저씨, 하숙집 아주머니, 일요일 그리고 모든 것. 나는 다 사랑하고 있지. 내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어. 이제 일요일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 커피값이 없어도 돼. 안녕, 안녕”이라는 시나리오상의 내레이션이 영화 속 허욱의 목소리로 흐르지만, 최종 영화에서는 자살을 의미하는 “안녕, 안녕” 대신 “이제 곧 날이 밝겠지… 머리부터 깎아야지, 머리부터 깎아야지”라는 대사로 바뀌어 있다. 암울한 청춘들을 위한 위로와 공감의 묘사가 남자는 군대를 가야 인간이 된다는 권위주의적이고 폭력적인 계몽으로 대체된 것이다.1968년 212편, 1969년 229편이라는 제작편수는 1960년대 후반을 한국영화 중흥기의 정점으로 인식하게 만들지만, 사실 그 내면은 이미 1970년대의 쇠퇴기를 예비하고 있었다. 한국영화의 흥행 실적과 질적 수준이 급격히 하락하는 중이었고 그 배경에는 당국의 신경과민적인 영화정책과 검열이 자리하고 있었다. 때마침 텔레비전의 공세 역시 거세지고 있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색다른 등굣길…든든한 영등포

    색다른 등굣길…든든한 영등포

    “(통학로) 주변 분위기가 화사해진 것 같아서 아이들이 기분 좋게 안심하고 통학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지난달 27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여고 정문 앞. 영등포여고 3학년 임수연 학생의 학부모인 박가영(50)씨는 “처음에 유색포장길을 만든다고 했을 때는 우려스러운 느낌이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산뜻하게 꾸며졌다”며 활짝 웃었다. 이날 통학로 주변에서 만난 영등포본동 주민 신현이(59)씨도 “길이 정말 환해졌다. 깨끗하게 유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등포구는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12일까지 유색포장과 태양광 도로표지병을 활용한 청소년 안심통학로 조성을 완료했다. 영등포여고와 영원중학교 통학로(영등포로62길)를 따라 약 480m 길이로 청록색으로 포장된 보행로(폭 1.2m)를 새로 꾸몄다. 보행로 경계선에는 태양광 도로표지병(3m 간격)을 이달 말까지 120여개 설치할 예정이다. 보행로와 차도가 구분돼 있지 않은 이면도로에서 차량 혼잡으로 인한 위험 요소를 없애고 학생들이 안심하고 걸어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다. 홍정희 영등포여고 행정실장은 “유색포장도로는 인도라는 상징적인 개념으로 주차를 못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서 학생들의 통학지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이 사업 아이디어는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야심 차게 추진하는 학교방문사업인 ‘학교 공감 프로젝트’에서 나왔다. 지난 5월 14일 채 구청장이 영등포여고를 방문한 자리에서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은 “학교 앞 출근차량, 공영주차장 이용 차량, 학부모 차량 등으로 통학로가 혼잡해 위험하다”며 통학로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채 구청장은 보행로를 어떻게 개선할지 고민했다. 다행히 지난 1월 해외 선진사례 견학차 구 관계자들과 함께 방문한 대만에서 해답을 찾았다고 한다. 구 관계자는 “대만에는 시각적 효과를 위해 차도와 보행로를 도색으로 구분한 인행(人行)도가 있었는데,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해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전했다. 채 구청장은 이날 영등포여고 통학로에 설치된 유색포장 보행로를 직접 걸어보며 꼼꼼하게 살폈다. 특히 지나가는 차량이 보행로를 침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추가로 보완할 것을 지시했다. 채 구청장은 “불법주차 차량 등으로 인해 통학로가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결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이 사업이 다른 초중고교로도 확산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쓰겠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日왕실도서관에 있는 우리 最古 의서 보니 콧잔등이 시큰… 유네스코 등재로 반환 설득해야지요”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日왕실도서관에 있는 우리 最古 의서 보니 콧잔등이 시큰… 유네스코 등재로 반환 설득해야지요”

    일본서 향약구급방·의방유취 실물 본 박완수 교수“일본 왕실도서관에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과 의방유취(醫方類聚) 실물 원본을 처음 만났을 때 콧잔등이 시큰거리고 마음이 애잔하였습니다. 궁내청 서릉부(書陵部) 직원이 의방유취를 작은 나무 상자에 받쳐 들고 나왔는데, 한국에 있었다면 국보급 대우를 받았을 텐데 …, 돌봐 드리지 못한 조상을 오랜 만에 뵙는 느낌, 죄송한 마음이 울컥 들었습니다. 슬픈 마음, 안타까운 마음이 든 것은 제가 한국인이거나 한의사이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요.” 5월 열람신청에 6월 열람가능 회신, 7월 방문궁내청 서릉부서 2시간 열람… 실물 촬영금지 한일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닫던 지난 4일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을 보고 돌아온 박완수(50) 가천대 한의과대 교수가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소감을 털어놓았습니다. “질병과 아픔으로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치료해주겠다는 애민정신이 들어 있는 귀중한 우리 문화재입니다. 국방이나 안보, 자기애를 과시하는 그런 문화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사람의 고통을 해방시켜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런 마음이 녹아있는 의학서적이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실물 사진을 찍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박 교수는 “서릉부는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열람실에 입장할 때 카메라와 휴대폰은 두고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래서 사진이 없습니다.”고 답합니다. 이어 필사는 허용하고, 소정의 비용을 내고 복사와 마이크로필름 신청은 가능하다고 합니다. “의방유취 252책 가운데 1~4책, 향약구급방 1책을 2시간 동안 보았습니다. 시간이 되면 의방유취 전부를 읽어보면서 시중에 나온 책들과 비교하며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박 교수는 지난 5월에 서릉부에 열람신청을 인터넷으로 했더니 열람 가능하다는 회신은 6월 중순쯤에 왔다고 했습니다. 회신받고 방학이 되자마자 열람하러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의사이자 한의학 교수였기에 열람이 허용되지 않았나 하고 믿습니다. 서릉부가 이 책들이 비장(秘藏)하고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한의학계는 알려져 있었다고 합니다. “향약구급방·의방유취 국보급… 대우받지 못해1~2쪽엔 그동안의 소장처 빨간 도장 6개 찍혀백성의 질병과 고통 불쌍히 여긴 애민정신 발로600년 흘러 훼손 시작… 향약구급방 글자 번져”보관 상태를 물었더니 박 교수는 조금 뜸을 들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웠던 것은 1~2쪽에 빨간 도장이 6개쯤 찍혀 있었습니다. 제국대학교 등의 낙관 비슷한 소장처의 도장이었습니다.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 이력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서릉부에서 비바람과 화마를 피했지만,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고서의 하나로 취급할 뿐 귀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600년 세월의 무게에 훼손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의방유취보다 더 오래된 향약구급방은 더 낡고, 글자는 더 번지고 해서 상태가 안 좋아 보였습니다.” 향약구급방은 고려시대인 1236년(고종 23년) 팔만대장경을 만들던 대장도감에서 처음 간행 한의학 서적입니다. 현재 전해지는 것들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습니다만 원본은 안타깝게도 전하지 않습니다. 서릉부가 보관한 향약구급방은 조선시대인 1417년(태종 17년) 중간된 것이지만, 이를 기준으로 삼아도 현존하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학 서적입니다. 역사적 가치가 높다는 말이지요. 박 교수는 “이 책의 제목인 ‘향약’이라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의약을 우리 사정에 맞게 자주적으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학 자립정신이 녹아있습니다.”라고 설명합니다. “의방유취, 임진왜란때 왜장이 약탈금속활자… 강화도조약때 조선에 기증“향약구급방, 일본 전래 과정 불투명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우리’ 의학서”박 교수는 한의학 측면에서 의방유취를 더 높게 평가합니다. 세종대왕이 당시까지의 의학 지식을 집대성해 편찬한 책으로 264책에 이릅니다. 첫 발간은 1477년(성종 8년)에 30질을 했습니다. “의방유취가 밝힌 인용도서가 164종입니다. 그런데 현재 전하지 않는 40여종의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사라진 의학서적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의학지식 보존과 전수 차원에서 귀중하지요.” 향약구급방이 목간본이라면 의방유취는 을해자(乙亥字)로 유명한 금속활자본입니다. 실록에도 그 기록이 나온답니다. 문화사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박 교수는 설명합니다. “의방유취는 동의보감이 나오기 전까지 가장 훌륭한 의학 백과전서입니다. 임진왜란 때 서고를 약탈한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평양성에 머물다 철수하면서 가져간 것이 확실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담긴 역사의 아이러니가 가슴 아프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 1876년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정부가 조선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에서 만든 의방유취 목간본 2질을 조선정부에 기증하는 것이지요. 현재 서릉부는 252책을 보관하고 있지만 당시 조선에 기증한 목간본은 원본과 같은 264책입니다. 12책이 사라진 것입니다. 일본이 기증한 의방유취 한 질은 연세대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고, 다른 한 질은 북한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방유취 한글판을 북한이 먼저 번역해 냈거든요. 의방유취는 중국 상하이에서도 간자체로 옮겨 쓸 정도로 유용한 의서입니다.” 박 교수의 설명이 계속됩니다. “그런데 향약구급방은 어떻게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조선 조정이 선물한 것인지, 아니면 임진왜란 때나 일제강점기에 약탈한 것인지는 이를 소장한 일본 측이 그 경로를 밝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의 취득 경로는 그 소장자가 규명하는 것이 요즘 국제사회의 규약입니다.” “日, 韓과 기후·풍토 달라 한의학 처방 안맞아日한의학 맥 끊겨, 연구도 상태… 반환 바람직한의학계 ‘반환’ 정치 문제라며 나서기 꺼려해최악의 한일관계에 반환, 휘발유 뿌릴까 조심”“일본도 자기 나라 백성의 고통과 질병을 치유하고자 당시로써는 한의학 지식이 총망라된 이 책들을 가져갔을 겁니다. 그러나 한의학 전공자들은 다 아는 것인데, 일본과 한국의 기후와 풍토가 많이 달라서 약재의 성분도 다릅니다. 이들 책의 처방이나 효능이 일본 사람에겐 잘 맞지 않습니다. 또 현재 일본에선 한의학 맥이 끊어진 상태여서 당연히 의방유취의 연구도 거의 안 되는 거죠. 그래서 한의학 연구가 왕성한 한국으로 돌려주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요?” “한의학계가 일찍 반환문제에 나섰더라면 좋았겠지만, 그동안 한의학계는 연구만 하지 반환문제는 정치적인 문제여서 나서기를 꺼렸습니다. 백성을, 더 나아가 인류를 질병에서 구하고자 하는 애민정신이 담겨 있으니 지금이라도 반환받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를 추진하겠다고 설득하면 일본이 응하지 않을까요? 한의학은 중국에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데서 보듯 여전히 인류를 위해 유용합니다. 일본 정부가 2011년 조선왕실 의궤 등 조선왕실 도선 1205권을 반환하였습니다. 당시에 이 두 의학 서적이 빠져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박 교수는 한의학계가 힘을 모아 향약구급방·의방유취 반환문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싶어합니다. “최악인 요즘 한일관계에 오히려 휘발유를 뿌리는 격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반환되어야겠지요.”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chuli@seoul.co.kr
  • ‘타인은 지옥이다’ 지옥의 문을 연 임시완, 첫 티저 공개 “섬뜩”

    ‘타인은 지옥이다’ 지옥의 문을 연 임시완, 첫 티저 공개 “섬뜩”

    #1. OCN의 두 번째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 ‘드라마틱 시네마(Dramatic Cinema)’는 영화와 드라마의 포맷을 결합하고, 영화 제작진이 대거 의기투합해 영화의 날선 연출과 드라마의 밀도 높은 스토리를 웰메이드 장르물로 결합시키는 프로젝트다. 올 상반기 그 첫 주자로 시청자를 만난 ‘트랩’이 부천국제영화제에 초청받을 정도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에 성공적인 교두보를 다진 이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 무엇일지 기대를 모았다. OCN의 두 번째 드라마틱 시네마로 선정된 ‘타인은 지옥이다’(극본 정이도, 연출 이창희, 제작 영화사 우상, 공동제작 스튜디오N, 총10부작)는 상경한 청년이 서울의 낯선 고시원 생활 속에서 타인이 만들어낸 지옥을 경험하는 미스터리. 경이적인 조회수 기록을 가진 동명의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제10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영화 ‘소굴’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고, 지난해 개봉한 영화 ‘사라진 밤’으로 평단과 관객의 호평을 받은 이창희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 또한 ‘구해줘1’을 통해 웹툰 원작을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로 재탄생시켜 주목을 받았던 정이도 작가가 집필을 맡는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배우 라인업 역시 화려하다. 작가 지망생으로 서울 어귀에 위치한 허름한 고시원의 문을 두드리는 윤종우 역을 임시완이, 종우의 낯선 서울 생활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치과의사 서문조 역은 이동욱이 열연한다. 또한, 언뜻 보기엔 친절하고 푸근한 사람인 것 같지만 행동이 늘 어딘가 의뭉스러운 고시원 주인 엄복순 역을 맡은 ‘칸의 여인’ 이정은을 비롯해, 연기파 배우 이현욱, 박종환, 이중옥이 고벤져스(고시원 어벤져스)로 뭉쳐 막강 라인업을 완성시켰다. #2. 몰입도 최강! 대본 연습 공개 지난 4월, 상암동에서 진행된 ‘타인은 지옥이다’의 대본 연습 현장에는 이창희 감독과 정이도 작가를 비롯해 임시완, 이동욱, 이정은, 이현욱, 박종환, 이중옥, 현봉식, 안은지, 김지은, 이주원, 차래형, 김한종 등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명품 배우들이 대거 참석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반가운 인사에 이어 이창희 감독의 지휘 아래 시작된 대본 연습은 실제 촬영 현장을 방불케 하는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먼저 오랜만의 드라마로 컴백으로 기대감을 모은 임시완. 서울로 올라와 고시원 생활을 하게 되는 작가 지망생 윤종우 역을 맡아 마냥 평범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 “역시 임시완!”이라는 감탄을 자아냈다. 낯선 서울 생활을 하는 종우의 든든한 조력자, 치과의사 서문조 역의 이동욱은 남다른 존재감으로 현장을 압도했다. 등장하는 순간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매력을 십분 발휘하며 극의 집중도를 끌어올린 것. 그런가 하면 “캐릭터들 중에서 제가 제일 평범하다”는 말로 모두의 웃음을 터뜨리며 그 정체에 대한 호기심을 높인 이정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너스레를 떠는 살가운 인물임에도 어딘가 의뭉스러운 고시원 주인 엄복순으로 완벽 변신, 원작 웹툰의 가상 캐스팅 1위의 위엄을 증명했다. 고시원 302호에 사는 비밀스러운 남자 유기혁을 연기하는 이현욱은 단정하지만 서늘한 목소리를 이목을 끌었다. 고시원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임을 단박에 각인시킨 대목이었다. 고시원 307호에 사는 변득종 역의 박종환은 캐릭터 특유의 말을 더듬는 버릇과 과장된 웃음까지 디테일하게 재현했고, 이중옥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을 자극해 소름끼치는 313호 홍남복 역을 마치 웹툰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연기해 현장을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이처럼 대본 연습이 진행됐던 4월의 따뜻한 봄 날씨를 잊게 만드는 서늘하고 강렬한 배우들의 연기가 오는 8월 이들이 만들어갈 ‘지옥’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자극하는 바. 제작진은 “첫 대본 연습임에도 각자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한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현장이었다”라고 귀띔하며, “촘촘한 스토리와 날선 연출에 명품 배우들의 리얼한 연기가 더해져 완성도 높은 작품이 탄생할 것이라 생각한다. ‘타인은 지옥이다’에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3. 드디어 베일 벗었다! 임시완 첫 티저 전격 공개 오늘(12일) 공개된 ‘타인은 지옥이다’의 첫 티저 영상에선 윤종우(임시완)가 드디어 지옥이 기다리는 고시원의 문을 열면서 시작된다. ‘에덴 고시원’ 문의 손잡이를 돌리는 종우의 손. 녹이 슨 듯 귀에 꽂히는 ‘끼익’ 소리와 문 안쪽에 달린 풍경의 ‘딸랑’ 소리가 정적을 깨며 종우의 방문을 알린다. 안쪽으로 첫 발을 디딘 종우의 시선으로 담아낸 고시원의 첫인상은 아무도 없는, 낡고 좁은 긴 복도의 연속. 복도 여기저기 열려있는 문틈으로 쏟아지는 햇빛을 보아하니 한낮이 분명한데도, 어쩐지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가 물씬 느껴져 보는 이를 몸서리치게 한다. 곧이어 “이곳은 지옥이었다. 타인이 만들어낸 끔찍한 지옥”이라는 나직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오고, 종우가 고시원 복도를 천천히 걷기 시작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고시원의 곳곳에는 아무도 없건만, 왜인지 누군가 지켜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든다. 그 순간, 갑작스레 어둠에 휩싸인 복도에 섬뜩하고 괴기스러운 웃음을 짓는 홍남복(이중옥), 변득종(박종환), 엄복순(이정은)과 감정이 없는 듯한 서늘한 눈빛이 인상적인 유기혁(이현욱)의 실루엣이 등장해 기묘했던 고요함을 깨뜨린다. 자신도 모르게 현혹된 환상에서 깨어나듯 번쩍 눈을 뜬 종우. 다시 고요해진 고시원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어느새 303호 앞에 비스듬히 멈춰 선 종우의 얼굴에선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비치고, 이어 타인의 시선으로 훔쳐보듯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종우 위로 들려오는 기괴한 웃음소리가 소름을 유발한다. 낡고 허름한 고시원, 낯선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간 종우는 어떤 지옥을 대면하게 될까. 제작진은 “오늘(12일) 공개된 첫 티저 영상은 서울에 상경해 낯선 고시원의 문을 연 종우의 모습을 담았다. 평범하지만, 어딘가 기괴함이 물씬 느껴지는 ‘에덴 고시원’에서 보이지 않는 타인들의 시선 사이를 걷는 종우를 통해 아직 그 이유를 모르는 섬뜩한 지옥을 만들어냈다”라고 설명하며, “오는 8월 31일 첫 방송을 확정 지은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에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OCN 두 번째 드라마틱 시네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2019년 8월 31일 밤 10시 30분 첫 방송된다. 사진, 영상 제공 = OCN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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