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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대학이 시름에 빠졌다/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문제의 중심에는 항상 변화가 있다. 현실은 상황 변화에 따른 빠른 대응을 요구한다. 반면에 우리에게는 변화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고, 더불어 대응을 어렵게 하는 현실적 제약도 있기 마련이다. 대학이 시름에 빠졌다. 우리 경제가 세계 10위권으로 발돋움하였고, 전자 자동차 철강 화공 등 여러 분야에서 초일류 회사를 갖게 된 지금, 이에 걸맞은 교육을 실시하라는 강한 사회적 압력이 대학에 가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생각하면 우리의 대학 교육은 과거, 나름대로 성과를 냈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초일류회사를 만든 주인공인 우수인재 양성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대학교육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그러한 역설을 받아들일 만큼 여유롭지 않다. 대학 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엄중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요즘 대학가의 화두는 전문대학원 체제의 도입 여부이다. 로스쿨, 경영전문대학원(MBA)뿐만 아니라 의학대학원과 공학대학원까지 전문대학원체제로 대폭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다. 대상 분야는 현 사회에서 직접적 활용성이 있고 부가가치가 큰 학문영역이다. 즉, 사회가 대학에 고도의 전문화, 고급화된 인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리 대학들의 수용 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걱정인 것이다. 전문대학원 체제의 고등교육은 기존 체제에 비해 고비용 구조를 가진다. 전문 고급인력을 위한 양질의 교육을 위해선 좋은 시설과 전문성을 지닌 많은 교수가 필요하다. 그리고 기존 교육연한에 2∼4년을 추가한 충분한 기간 동안, 소수의 인재를 상대로 교육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대학의 고민이 있다. 왜냐하면 전문대학원 체제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그 외의 다른 학문분야에 가용할 자원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재원과 공간, 시설은 현실적으로 즉각 새로운 창출을 하기 어려운 구조를 가져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립대학의 재원은 크게 등록금과 사회기부금, 그리고 정부지원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는 일천하고, 일회적이고 목적성인 정부지원금은 현실적으로 일부 국립대학을 제외하고는 그 답이 될 수 없다. 등록금이 사립대학에 있어서는 유일한 대안이다. 등록금 책정에도 전공별 특성이 고려되지 못하고 있고, 그 인상률은 매년 피교육대상자인 학생들과의 협의대상이다. 그리고 물가상승률과 같은 비경영적 사회요인과 연계되어 있는 등 많은 제한적 요소를 갖고 있다. 차입도 대안이 될 수 없다. 비영리 기관인 교육기관의 차입은 위험하며 정부로부터도 엄격히 제한받고 있다. 고민은 재정적인 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구조상 소크라테스의 논리부터 최첨단 반도체 공정까지 가르쳐야 하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가졌다. 상아탑으로서 고귀한 이상을 추구해야 하는 역할도 포기할 수 없다. 정부와 기업에서는 선택과 집중으로 수요자 중심으로 교육을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기초과학, 인문학의 경시를 걱정한다. 이 두 목소리가 밖에서뿐만 아니라 대학 내에서도 첨예하게 대립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는 물지게의 균형과 같은 혜안으로 학문의 구조조정을 통하여 재원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수와 같은 고도의 논객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 많은 시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대학 운영자는 이래저래 시름이 깊다. 조직의 목소리를 한데 모아 열심히 변화를 해도 힘든 시기에 대학은 지금 진퇴양난의 고민에 빠져 있다. 전문대학원체제로의 큰 이행을 앞두고 이상과 현실, 정부와 구성원 사이에서 말이다. 그러나 어렵다고 사회의 의미 있는 요구를 외면할 수 없다. 대학은 행동으로 대답하여야 한다. 김병식 동국대 부총장
  • [세계는 지금 철도전쟁중] (1) 유럽 교통판도 뒤바뀐다

    [세계는 지금 철도전쟁중] (1) 유럽 교통판도 뒤바뀐다

    우리나라는 경부고속철도 개통으로 세계 4번째 고속열차 보유국으로 발돋움했다.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의 연결도 추진하고 있다. 부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를 거쳐 파리에 닿는 것이 결코 허황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꿈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철도의 대륙’ 유럽에서는 속도와 서비스를 내 건 ‘소리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유럽의 철도 선진국을 찾아 우리 철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았다. |파리 박승기특파원|파리 동역은 런던을 오가는 ‘유로스타’나 네덜란드행 기차를 탈 수 있는 북역에서 그리 멀지 않다. 역이 동쪽이나 북쪽에 있다는 뜻이 아니라, 동쪽이나 북쪽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다는 뜻에서 이름이 붙여졌다. 동역에서는 지금 새로운 고속열차(TGV)가 시험운행을 하고 있다. 파리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뮌헨, 스위스 취리히, 룩셈부르크를 연결하는 국제 노선이다. 프랑스국유철도(SNCF)는 이 TGV-EST(동선·東線)을 내년 6월 정상운행한다는 계획이다. 기자는 파리 동역에서 지난달부터 시험운행에 들어간 TGV-EST에 올랐다. 새로운 노선이지만 투입된 열차는 새 것이 아니었다.1993년 만들어져 12년 동안 북부도시 릴을 오가던 TGV-R(북선)의 객차를 개량했다. 패션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라크르가 디자인한 실내는 미래지향적인 분위기가 물씬했다. 여기에 TGV를 들여온 경부고속철(KTX)에서도 불만스러웠던 의자 간격도 넓혀 쾌적함을 더했다. 바퀴식 고속열차의 최고 속도는 세계 철도의 화두.1988년 독일의 ICE가 406.9㎞를 돌파한 것을 시발로 1989년 프랑스의 TGV-A가 515.3㎞,2003년 일본이 581㎞로 신기록을 세웠다. 우리나라는 2009년 호남선에 투입될 한국형 고속열차 KTX∥가 2004년 시험주행에서 354.4㎞를 기록했다. 기존선로를 이용하여 시험운행을 하고 있는 TGV-EST는 160㎞에 불과해 속도감은 크게 떨어졌으나 승객들에게는 편안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TGV-EST는 기존 객차에 신형 동력차 POS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30년인 수명을 10년 이상 늘렸다고 한다. 동승한 권병구 한국철도공사 파리사무소장은 “전혀 새로운 TGV를 개발한 것처럼 보인다.”면서 “신호장치만 업그레이드시켜 차량 성능을 개선시킨 기술이 놀랍다.”고 평가했다. SNCF는 내년 TGV-EST가 정상운영될 시점까지 북동부도시 메츠까지 새로운 고속철도 선로의 건설을 끝마칠 계획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해외구간은 기존선로를 이용하게 된다. 영국에 2층버스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듀플렉스(Duplex)라는 2층 고속열차가 있다. 듀플렉스는 10량 1편성에 좌석은 545개로 기존 TGV의 2배에 이른다. 최고 영업속도는 일부구간에서 320㎞를 낸다. 파리 리옹역에서 마르세유행 듀플렉스에 올랐다. 승차권에 표시된 좌석은 1층이었으나 2층으로 올라갔다. 방음벽에 가려 답답했던 시야가 훤하게 트였다. 휴가를 떠난다는 가브리엘씨는 “듀플렉스 노선에서는 반드시 2층 좌석을 예약한다.”면서 “전혀 불안하지 않다.”고 만족해했다. 듀플렉스 차량은 우리나라 고속철에도 그대로 투입할 수 있다.KTX의 수요가 늘어난다면 듀플렉스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수송력을 2배로 높일 수 있는 셈이다. 차량가격은 듀플렉스의 10량 1편성이 350억원이다.KTXⅡ는 300억원이다. 수송력 증대량에 비하면 매우 경제적이다. 프랑스의 고속열차 산업은 단순히 빠르기나 승객의 편의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SNCF는 매달 1편성의 열차를 주문한다. 우리나라 처럼 몇년 동안 필요한 열차를 한꺼번에 입찰에 붙이는 방식이 아니다.SNCF가 차량 구입 방식을 바꾼 것만으로도 제조 및 부품 업체들로 하여금 지속적인 생산 및 연구개발의 동력을 제공한다. 유럽에서 국제열차는 일반화되어 있다. 파리와 런던, 런던과 브뤼셀을 오가는 유로스타와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오가는 탈리스는 TGV의 사촌 격이다. 유로스타는 TGV가 운영에 참여하고 있고, 탈리스는 TGV의 자회사가 참여하고 있다. 여기에 TGV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도 고속철도를 공급했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독일의 ICE는 후발주자이다. 내년에는 TGV의 심장부인 파리에 입성한다. 이미 ICE-3의 프랑스구간 시험운행이 마무리됐고 320㎞로 달릴 수 있도록 승인도 이뤄졌다. 경쟁상대인 두 고속철 강대국이 ‘상생을 통한 윈윈전략’을 선택한 것이 이채롭다.ICE는 스페인 고속철에도 진출한다. 철도는 지금 유럽의 교통판도를 바꿔놓고 있다.TGV는 최북단 칼레에서 최남단 마르세유까지 1000㎞가 넘는 거리를 3시간29분에 주파했다. 파리에서 브뤼셀을 오가던 항공편이 없어졌고, 파리에서 마르세유를 잇던 저가항공사 이지젯의 노선도 폐지됐다. 파리와 릴 사이 240㎞는 TGV와 A1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린다. 도로 곳곳에는 “TGV와 경주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낡은 교통수단이 아닌 미래의 교통수단으로 철도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문구로 읽혀졌다. skpark@seoul.co.kr
  • [女談餘談] 바캉스/주현진 산업부 기자

    바야흐로 바캉스의 계절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온 여름 휴가. 어디서 누구와 만나도 화두는 단연 휴가로 옮겨간다. 8월이면 시내가 텅빌 만큼 서구인들에게 여름 휴가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로 통한다. 휴가 기간이 무려 한달가량이나 되기 때문이다. 서유럽인들은 대부분 휴가기간 동안 고향집을 찾아 평소에 읽지 못한 책을 읽고, 아이들과 놀아주며, 건강을 위해 집중적으로 운동하는 등 경제적이고 한가롭게 보낸다고 한다. 부러운 일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국내 모 유통업체가 최근 2만여 고객을 상대로 실시한 여름휴가 설문조사 결과 가족(72.6%)과 함께 2박3일(45.3%) 동안 바다(48.9%)를 찾아 콘도(30.3%)나 펜션(30.2%)에 묵을 계획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온 가족이 인파가 북적이는 바닷가를 찾아 2박3일 동안 지내며 삼겹살을 구워먹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표준형 여름 휴가’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짧고 피곤해 보인다. 바캉스란 개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3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여름휴가 계획을 잡을 때면 직장에서 눈치 보이기가 일쑤다. 추석 설날 등 우리만의 최대 연중 행사가 별도로 있기는 하지만 여성들은 오히려 ‘명절 증후군’에 시달린다. 밤늦은 야근이나 술자리까지 고려하면 주말은 피로를 풀기에도 부족하다. 휴가를 포함한 육아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국가 차원의 문제로 여겨지는 저출산 현상은 젊은 여성들에게는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프랑스는 일찍이 ‘바캉스’를 국가 정책으로 독려했었다. 동료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직장인들의 생활을 감안할 때 우리도 이제 여름휴가에 대해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바캉스란 단어의 어원은 ‘텅 비우다.’란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됐고, 프랑스에서 ‘휴가’란 의미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바쁘고 스트레스의 연속인 일상에서 벗어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한가롭게 보내는 길고 긴 휴가. 기자도 그런 휴가를 떠나고 싶다. 주현진 산업부 기자 jhj@seoul.co.kr
  • 유명 건축가·디자이너 모셔라

    유명 건축가·디자이너 모셔라

    ‘디자인 경영’이 재계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주요 기업들이 유명 건축가·디자이너를 속속 영입하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에게 특정 제품의 디자인을 맡기는 수준을 넘어 아예 자기 식구로 만들어 디자인 ‘체질’을 바꾼다는 전략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TV프로그램 ‘러브하우스’로 유명해진 건축가 이창하씨가 대우조선해양 계열사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선박 및 건설 부문 인테리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이씨는 자신이 이끌던 장유건설이 지난 2월말 DSME건설(대우조선건설)로 합병된 뒤 DSME건설의 건축담당 사업본부장(전무급)으로 입성했다. 최근 등기임원으로 등재됐다. 이씨는 2002년 말 서울 대우조선 사옥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대우조선과 인연을 맺었다.10월 입주하는 청계천 신사옥의 리모델링도 지휘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아파트와 주상복합 등 건설 분야뿐 아니라 대우조선을 위해 상선의 선실 인테리어 고급화 작업에도 동참할 예정이다. 이씨는 “고급주택 시공, 초특급호텔 인테리어, 크루즈 선실 설계업무 등으로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의 아파트 및 주상복합 등을 건설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와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심중인 기아자동차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를 영입하면서 활로를 뚫고 있다. 아우디, 폴크스바겐 등에서 디자인 담당 총괄 책임자를 지낸 독일 출신의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CDO)으로 영입한 것.BMW의 크리스 뱅글,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슈라이어 부사장은 아우디 TT,A6 등의 혁신적인 디자인을 이끌었다. 독일연방디자인대상 4회 수상, 시카고 굿디자인상 2회 수상 등의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오는 9월말 파리모터쇼에서 기아차의 새로운 디자인 핵심전략을 발표할 계획인 슈라이어 부사장은 “앞으로 세계시장에 혁신적이고 독특한 기아차의 색깔을 지닌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아파트부문 디자인 강화를 위해 최근 세계적인 디자인 컨설팅회사인 영국 탠저린사의 이돈태 사장을 ‘1호 디자인 마스터’로 영입했다. 현대카드도 올초 미국 뉴욕 프라트(PRATT) 미술대학원 출신 디자이너 김봉찬씨를 디자인 파트장으로 영입하면서 새로운 디자인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구본무 회장이 직접 디자인 역량 강화를 주문한 LG그룹도 하반기부터 ‘슈퍼디자이너’ 영입 및 육성에 본격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열린세상] 법을 지켜야 할 이유/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독일 유학 중에 보았던 TV방송의 ‘몰래카메라’ 얘기다. 조그마한 글씨로 당부사항을 적은 쪽지를 슈퍼마켓 출입문 한 구석에 붙여 놓고 손님들의 반응을 엿보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고객 여러분께! 카트 사용 중에 충돌사고의 위험이 있으므로 방향을 전환하는 경우에는 자동차 깜빡이를 켜는 식으로 손을 흔들어서 수신호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인 백.” 카메라에 잡힌 장면은 필자의 예상과는 크게 다른 것이었다. 노인들을 포함해서 손님들 거의 대부분이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이 유심히 쪽지를 읽고, 카트를 밀고 가면서 곧이곧대로 손을 흔들어서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했다. 제작자는 대충 이런 결과를 예상하면서 가벼운 흥밋거리로 만든 것이었겠지만, 필자에게는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시사점이 적지 않은 화두로 남아 있다. 아마도 다른 나라가 아닌 독일의 방송프로였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성냥 한 개비를 쓸 때도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서 담뱃불을 붙인다는 ‘절약’의 범례와 함께,‘준법!’ 하면 연상될 정도로 자주 들었던 ‘도로에 보행자가 전혀 없는 한밤중에도 빨간 불이 들어오면 철저하게 정지한다’는 얘기의 무대가 독일이었다. 실제로 5년 남짓 살면서 가끔 목격한 바, 적막한 새벽녘의 외곽도로 교차로에서도 묵묵히 신호등에 따라 준법운행을 하는 모습은 전혀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또 한편, 나치 체제를 뒷받침하고, 결과적으로 유대인 학살의 만행과 ‘유색인종과 성교나 유사성교행위를 한 자’를 형사처벌하는 따위의 ‘총통명령’을 합법화하였던 이른바 ‘수권법’(授權法)의 현장도 대략 반세기 남짓 전의 독일땅이었다.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를 무서울 정도로 생생하게 재연한 ‘쉰들러 리스트’(스티븐 스필버그 감독,1993)를 본 관객들이 영화가 끝나고 불이 들어 온 다음에도 한참이나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눈물을 훔척대는 모습을 보았던 곳도 당시 독일 수도인 본이었다. 비판력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의 정신자산에 관한 한 둘째라면 서러워 할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야만과 폭력을 용인하였던 것인지, 필자 역시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하고 상념에 빠졌던 것도 기억난다. 2005년도 ‘사회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지 않는 이유’로 20.8%가 ‘손해 볼 것 같아서’,26.6%가 ‘다른 사람도 지키지 않아서’,‘기타’가 4.5%, 나머지 48.1%는 ‘귀찮아서’라고 답하였다. 최근에 적발된 목불인견의 법조비리작태들이 잘 보여주듯이, 그 이유들은 주로 법집행의 엄정성과 공평성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법문화의 후진성, 특히 냉소적이고 무비판적인 법의식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항목을 비슷하게 구성하여 설문을 반대로 바꿔서 ‘자기 자신이 법을 지키는 이유’를 물으면 답이 어떻게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민주법치국가에서 기대되는 준법의 제일의 이유는 시민 개개인의 건실한 비판력과 사회의 자정력에 의해서 확인되고 담보되는 법의 타당성에 대한 믿음과 수긍이다. 말하자면 ‘따를 준’(遵)자 그대로 존경할 만한 받침, 즉 법을 따르라고 요구할 수 있는 정당한 명분과 합리적인 실익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대신 의논하여 결정’하는 대의(代議)입법자에 대한 신뢰와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필수조건임은 물론이다.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 후에 폐기 또는 존치된 규정들을 선별하여 정리하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버린 ‘신문법’도 여야가 합의하여 통과시킨 법률이었다. 장중한 대법전 속에 ‘슈퍼마켓교통법’은 없는지, 물건 잔뜩 실은 카트 밀랴, 깜빡이 수신호 하랴,‘꼭두각시준법’에 여념이 없는 것은 아닌지 가끔 돌아 볼 일이다. 이덕연 연세대 헌법학 교수
  • [변호사 1만명시대] 전문성 특화 어떻게

    “백화점식보다는 나만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라.” 변호사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특성화’ ‘전문화’가 변호사 업계의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변호사들이 담당하지 않았던 ‘블루오션’을 찾아내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개인파산·면책 등의 전문가로 꼽히는 김관기 변호사, 까다로운 소송 중 하나로 불리는 의료소송에서 강점을 보이는 법무법인 한강, 교통사고 소송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문철 변호사, 엔터테인먼트 관련 분야에서 손꼽히는 법무법인 두우, 소비자 권익소송의 개척자로 불리는 백영엽·하종선·김연호 변호사 등이 특성화 사례로 꼽히고 있다. 변호사들의 특성화는 이제 업무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고 국경까지 넘나들고 있다. 중국, 인도, 구소련 지역 등 다양한 지역의 특성화도 이뤄지고 있다. 법무법인 한중과 세종 등이 선두주자로 꼽히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을 앞두고 국내 변호사들도 수동적으로 임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특성화가 변호사 업계의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개인파산 전문 변호사는 “파산 분야를 잘한다고 하니까 아예 다른 송무 분야는 한 건도 안 들어오고 있다. 한달에 30∼40건 정도 개인파산 관련 사건이 들어오는데 솔직히 사무실 운영도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특성화의 진입장벽이 높은 점도 문제다.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과 실무를 갖기 위한 상당한 투자가 필요한 데다 이 분야를 특성화했다는 것을 알리기까지 막대한 시간·경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정윤수의 오버헤드킥] ‘K-리그 청사진’ 기술축구에 있다

    지금 K-리그 각 구단은 하반기 리그를 준비 중이다. 부산 아이파크처럼 새 감독을 영입한 팀이 있는가 하면 취약한 포지션을 채우기 위해 유능한 선수를 이적시켜 전력 강화를 꾀하는 팀도 있다. 화제는 단연 수원 삼성의 이관우다. 그는 이전 소속팀인 대전 시티즌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2001년 대전에 입단,5년 동안 공격의 중추 역할을 했고 대표팀 엔트리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거스 히딩크와 본프레레, 아드보카트 등 역대 대표팀 감독들이 그의 기술에 혀를 내둘렀지만 결정적인 순간마다 뼈아픈 부상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는 못했다. 이 탓에 “체력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순식간에 경기의 흐름을 뒤집는 천재적인 테크니션이지만 90분 동안 전천후로 활약하기에는 무리라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대전을 지휘했던 감독들은 하나같이 이러한 평가를 일축한다.‘전천후 압박 축구’라는 대세 때문에 지능적으로 90분을 효과적으로 뛰는 이관우와 같은 테크니션이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 반론이다. 나는 이관우 선수에 대한 이러한 엇갈린 평가가 한국 축구의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이관우에 대한 심오한 의견들은 결국 “우리 축구 문화에서 기술축구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함축하고 있어서다. 몇 해 전만 해도 한국 축구는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사정만큼이나 처절하고 심각했다. 공은 놓쳐도 사람은 잡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백태클에 퇴장을 불사하는 축구가 오랫동안 그라운드를 지배했다. 그러다 두 차례의 월드컵을 치르고 몇몇 선수들이 해외에 진출해 선진축구의 흐름과 문화를 다양하게 흡수하면서 이제는 ‘기술축구가 관건’이라는 화두를 집어들게 된 것이다. 지금은 이관우를 정점으로 갑론을박하고 있지만 1998년 월드컵 직후에는 ‘잊혀진 천재 미드필더’ 김병수가 화제에 올랐고,2002년 이후에는 ‘패스의 달인’ 윤정환이 있었다. 이런 테크니션들에 대한 추억과 평가가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는 건 그만큼 우리 축구가 ‘투지와 근성’ 대신 섬세한 기술축구로 발전해야 하지 않느냐는 조심스러운 소망 때문이다. 이관우 개인이 다시 ‘그라운드의 디자이너’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강철같은 투지와 근성이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대접받는 K-리그에서 과연 그와 같은 테크니션이 어떻게 자신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 한국축구가 더욱 처절히 고민해야 할 숙제다.축구평론가 prague@naver.com
  • ‘민선4기 한달’ 광역단체장 빛과 그림자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민선4기 체제가 출범한 지 한달을 맞이했다. 대부분의 단체장들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화두로 삼아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일부 자치단체는 뜻도 펼쳐보기 전에 폭우로 지역이 큰 피해나 복구작업에 매달려야 하는 등 희비가 교차하기도 했다. ●허남식 부산시장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시책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허 시장은 30년 이상 모범적인 경영을 해온 46개 기업을 ‘향토기업’으로 선정했고, 동부산 테마마크 유치를 위해 지난 22일 미국 영화제작사인 MGM사를 다녀 오기도 했다. 그러나 주요 공약인 KTX부산역의 지하화와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이 난관에 봉착한 데다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도 높아 이를 어떻게 풀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범일 대구시장 ‘경제살리기’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구경제 회복 및 활성화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맡을 ‘희망경제 비상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대구경북경제통합추진위도 발족시켰다. 특히 경제국의 국·과장들을 모두 40대의 실력파들로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어 화제가 됐다. ●박광태 광주시장 과학기술교류센터·디지털융합 부품센터 기공식, 삼성화재 콜센터투자 유치협약, 광가입자망 서비스 개통식 등 지역경제 살리기에 매달렸다. 취임 보름여 만에 투자 유치를 위한 미주 출장도 다녀왔다. 그러나 지역국회의원들이나 민주당 중앙당과의 불협화음 등은 앞으로 시정을 펼치는 데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박성효 대전시장 선거 후유증과 조직을 추스르는데 힘을 쏟았다.5개 구와 엑스포과학공원 등 산하 사업소 순방을 마쳤다.5일간 세계과학도시연합(WTA)이 열린 호주를 방문,2008년 대전에서의 개최를 약속받았다. 중앙부처를 방문, 지하철 건설부채 국고지원 등을 요청하고 10월 대덕특구 외국인 투자지정을 약속받았다. 당초 우려했던 보복성 인사는 없었다. ●박맹우 울산시장 초선 단체장 못지않게 바쁘게 보냈다. 취임초부터 공장용지 조성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다 사업비 부담 때문에 벽에 부딪쳐 있던 1300억원 규모의 북구 모듈화단지 조성사업의 착공을 앞두고 있다. 민선 3기 때부터 경제분야 정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온 경제정책과 통상교류담당(계장), 농수산과 축산담당과 수산행정담당 등을 과장으로 승진시키고, 경제정책과장을 총무과장으로 영전시키는 등 인사를 통한 사기에도 신경을 썼다. ●김진선 강원도지사 전국에서 유일하게 3선 고지에 올랐지만 폭우로 1조 5000억원 이상의 수해가 나 부담을 안게 됐다. 주민 부담을 최소화하며 도정 목표를 추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2014 동계올림픽 유치 공식 후보도시인 평창지역이 폭우 피해를 입어 당장 내년 2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현지 실사도 부담이다.‘강원도 세상’을 구현하면서 강원경제를 활성화 하겠다는 약속이 시작부터 수해로 난관에 봉착했다. 중앙정부의 지원을 어떻게 이끌어 낼지 주목된다. ●김관용 경북지사 ‘새 경북 건설’을 위한 ▲부자 경북 ▲행복 경북 ▲새로운 차원의 지방외교 ▲일 중심의 도정 혁신 ▲경제 활성과 도청 이전 등 5대 성장엔진 가동을 위해 뛰었다. 이를 위해 조직과 인사, 재정 등 행정의 틀을 개편하고 혁신하는 작업을 착실히 진행 중이다. 폭우로 한 때 긴장했지만 비교적 잘 대처했다는 평가다. ●김태호 경남지사 지난 2년간 준비했던 비전을 구체화하기 위해 한달을 보냈다. 최대 역점시책인 남해안시대 특별법 제정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2008람사총회’ 개최 준비 및 공공기관 개별이전 작업에도 시동을 걸었다. 인사와 관련 일부 직원들의 불만에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 느슨한 공직분위기를 다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완구 충남지사 토론문화가 활성화됐다.17년째 표류 중인 장항국가산업단지 착수를 정부에 촉구하고 아산에 삼성전자와 일본 소니의 합작회사 S-LCD가 19억달러를 투자하는 협정서를 체결하는 등의 성과를 거뒀다. 선거법에 걸렸던 혐의도 허위사실 유포부분이 제외돼 처벌이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비확보에 전력하고 있다. ●정우택 충북지사 격식파괴가 돋보인다. 실·국장들에게 불필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자신의 대외행사 참석도 줄여 부지사나 실·국장들을 대신 참석토록 하고 실질적 업무추진에 힘을 쏟고 있다. 전 지사가 중용했던 인물을 핵심 참모로 써 조직의 안정을 다졌다. 경제통상국 기능을 키우고 노화욱 전 하이닉스반도체 상무를 정무부지사로 영입하는 등 경제살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단양 등의 폭우피해를 입어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완주 전북지사 지역경제를 활성화를 위해 바쁜 한달이었다. 취임식 현장에서 ‘대 중국 시장개척단’을 출범시켰고, 취임식이 끝나자 마자 전북의 해상 관문인 군산항으로 달려가 자동차 수출 선박에 승선, 군산항 살리기와 대 중국 시장 개척에 대한 강한 의지와 비전을 선포했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 전북의 새 성장동력으로 ‘첨단부품소재 산업단지’와 ‘식품산업 클러스터’를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대대적인 조직개편안도 마련했다. ●박준영 전남지사 전남 전지역을 1시간대 접근이 가능한 고속교통망 구축, 친환경생명산업 육성, 노인복지정책인 ‘9988행복프로젝트’,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기반 조성, 서남해안관관레저도시 등 4대 신도시건설, 섬 관광개발,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의 동북아 불류중심지 육성 등 7대 핵심사업 추스르기에 올인했다. 이들 사업을 위해 취임 초부터 중앙정부를 수차례 방문하고 조직개편을 추진 중이다. ●김태환 제주도지사 도민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 기초자치단체가 폐지로 도민 사회에 잠재돼 있는 갈등과 지방선거 후유증 해소에 주력했다. 제주컨벤션센터에서 가진 ‘국제자유도시를 향한 도민통합 대토론회’ 등 모두 3차례의 도민 토론회를 갖고 다양한 여론을 수렴했다. 내부적으로는 특별자치의 성패를 책임진 공무원의 역량강화를 강력히 주문했다.1박2일의 워크숍을 통해 도민 욕구에 부응하는 시책 발굴 등을 주문했다. 전국종합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씨줄날줄] 非와 反의 조합/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중국에 처음 간 것이 1994년 정월이었다. 베이징 고서점가에는 붉은 장정의 마오쩌둥(毛澤東) 어록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었다. 문화혁명 초기 홍위병들이 조반유리(造反有理:반대에는 이유가 있다)를 외치며 마오의 반대파를 몰아낼 때 흔들던 어록일 수도 있다는 호기심에 들추어 보았다. 마오와 린뱌오(林彪)가 나란히 등장하는 사진들이 실려 있다. 항일투쟁 때 백전백승의 명장이었던 린의 사진을 다시 보는 것이 꽤 반가웠다. 야만적 권력투쟁이었던 문화혁명중 영광과 파멸을 맛본 그는 1973년 ‘비림비공(批林批孔:린과 공자를 비판)’ 슬로건으로 저주를 받으면서 중국 공식기록에서 사라지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조반유리로 시작해 비림비공의 소동으로 끝난 문화혁명은 중국인에게 무엇이었던가. 도쿄 특파원 시절 문혁세대 중국 특파원들에게 물어 보았다. 문혁 때 당신은 무엇을 했는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대체로 ‘다시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7·26 재보선이 끝났다. 정계개편의 화두가 반노비한(反노무현,非한나라당), 비노반한, 반노반한으로 어지럽게 전개된다. 비노비한 조합만 등장하지 않았지 사자성어의 음률은 비림비공과 비슷하다. 일반인은 반(反)에 비(非)까지 얹어 쌍으로 등장한 반·비 조합에 눈이 뱅뱅 도는데, 정치인들은 조합에 따라 합종연횡의 대상과 폭이 달라진다며 그 미묘함을 짚기 바쁘다. 정계개편이 그들만의 권력게임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열린우리당 정치인들에게는 덕분에 의원 배지 달고 힘을 얻었던 ‘노무현’이라는 카드를 단물 빠진 껌 취급해도 양심에 찔리지 않는지 물어 보고 싶다. 한자는 다르지만 비림비공이나 반노비한 시리즈나 무엇인가를 배척하기는 매한가지. 반과 비의 조합자들은 조반유리라고 주장하겠지만 반대하고 배척하는 것만으로 발전을 이룬 역사는 없다. 몇차례 선거에서 국민이 목말라 한 것도 반과 비의 논리가 아니라 무엇인가 지향하고 이룩하겠다는 비전이었다. 똑같은 정계개편을 논해도 긍정과 포용의 개편을 주문하고 싶다.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하더라도.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책꽂이]

    ●아버지의 집(오인태 지음, 고요아침 펴냄)1991년 ‘녹두꽃’3집으로 창작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네번째 시집. 나이 마흔 넘어 깨닫게 된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노래한 표제작을 비롯해 존재의 내면과 소통하는 울림 깊은 시들을 묶었다. 시인은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으로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를 맡고 있다.7000원. ●어린 여행자 몽도(르 클레지오 지음, 진형준 옮김, 조화로운삶 펴냄)떠돌이 고아 소년 몽도, 바닷가에서 시간을 보내는 소녀 륄라비, 환상의 나라를 꿈꾸는 가스파르 등 사회규범이나 제도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주인공들을 통해 진정한 자유를 이야기한다. 프랑스 문단의 살아있는 신화라 불리는 르 클레지오의 대표 소설집.1만원. ●약혼(이응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사랑을 화두로 한 9편의 단편소설 묶음집. 말랑말랑한 로맨틱 스토리를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현대인이 직면한 존재론적인 문제를 특유의 서정적인 문체와 종교적인 성찰로 풀어내는 방식이 낯설지만 매력적이다.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저자의 네번째 작품집.9500원. ●달콤한 나의 도시(정이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정글 같은 도시의 한복판을 헤쳐가는 서른한살 미혼 여성의 일과 사랑, 친구와 가족, 은밀한 욕망 등에 관한 솔직담백한 고백서. 감각적이고 간결한 문체, 속도감 있는 전개, 신세대 라이프스타일을 시차없이 끌어들이는 순발력 등이 소설을 쉬 읽히게 한다.‘낭만적 사랑과 사회’ 등 도시적 감수성으로 근래 가장 주목받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1만원. ●희고 둥근 달(정찬 지음, 현대문학 펴냄)영원을 추구하기 위해 고대 로마황제 칼리굴라에 사로잡힌 연극배우(‘희고 둥근 달’), 상습가출자로 평생을 유랑하는 아버지(‘폐역을 지나, 부서진 다리를 지나’) 등 상처받은 영혼들이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 소설 9편 수록.1983년 등단한 저자는 동인문학상, 동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9000원.
  • [2집이 맛있대] 서울 신사동 일식 ‘아리마’

    [2집이 맛있대] 서울 신사동 일식 ‘아리마’

    서울 강남 신사동에 자리잡은 일식당 아리마에 가면 다른 데서 보기 힘든 일본의 정통 가정식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매실을 밥 위에 얹은 우메차 덮밥에 닭튀김, 소고기튀김 등을 반찬 삼아 먹다 보면 식당음식 같지 않고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상차림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이 집 음식이 소박하냐면 그건 아니다. 요즘 뜨고 있는 일본식 청국장 낫도를 이용한 애피타이저 ‘아보카도 낫도 무침’ ‘오징어 낫도 무침’은 보기에도 화려한 퓨전 요리. 낫도와 과일, 생선의 만남은 예상외로 잘 어울린다. 특히 향긋한 아보카도의 맛과 고소한 콩의 묘한 조화는 감탄을 자아낸다.‘낫도 영양솥밥’도 이 집만의 독특한 요리다. 보랏빛 가지가 예쁘게 변신한 ‘가지튀김’도 환상적인 맛을 자아낸다. 집에서 간장 양념에 쪄낸 가지와는 차원이 다르다. 살짝 기름에 튀겨 땅콩버터 소스 같은 것을 찍어 먹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요리의 창의성이라는 화두를 던져주는 만큼 주부라면 특히 한번 먹어 볼 것을 권한다. 100여 종류에 이르는 다양한 일식메뉴는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일식당을 운영하는 홍준성(32) 사장이 10여년간 일본에서 공부하면서 일본의 전통맛을 찾아 맛집 200여군데를 다니며 발품을 판 덕분이다. 이 집이 내건 슬로건은 ‘수제 갓포 요리 전문점’. 홍 사장은 “수제는 즉석에서 주문한다는 뜻이고, 갓포는 단품요리라는 뜻”이라면서 “이미 짜여진 코스 요리가 아니라 즉석에서 하나씩 주문해서 나만의 ‘DIY’ 코스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튀김, 초밥을 먹고 싶지 않다면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주인의 뜻대로가 아닌 ‘내뜻’대로 먹을 수 있어 좋다. 요즘 일본에서는 이처럼 수제 갓포 요릿집이 유행이란다. 홍 사장은 또 정통 일식을 고집하지 않고 한국식 요리도 가미했다. 도미 조림을 하더라도 일본식 간장에 조리기도 하지만 한국식으로 고춧가루를 넣고 조리기도 한다. 곳곳에 고객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다. 이 집에 들어서면 밝은 빛 나무 소재로 꾸며져 편안해서 좋다. 보통 일식당 하면 갖게 되는 다소 무거운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린, 산뜻한 가족 레스토랑 분위기다. 그렇다면 가격은? 이만한 위치에 인테리어를 감안하면 무지 비쌀 것이라고 생각할텐데 예상외로 ‘합리적’이다. 싼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다.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감안한다면 기꺼이 가족들과 한끼 먹을 만한 곳이다. 글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한국장관이 ‘美정책 성공아니다’ 말하면 안되나”

    “한국장관이 ‘美정책 성공아니다’ 말하면 안되나”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의 대북 제재 방침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특유의 ‘반어법’을 통해 내비쳤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무회의에 들어가면서 “싱거운 소리 한번 할까요.”라며 의원들의 비판적 질의에 소신껏 답변하는 장관의 자세를 화두로 꺼냈다.‘북한 미사일 문제에서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다.’는 이종석 통일부장관의 발언을 적극 엄호하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의 전방위적 대북 제재 기류에 제동을 걸려는 듯한 인상이 짙다. 노 대통령은 장관들의 소신있는 국회 답변의 사례로 “그럼 북한 목조르기라도 하자는 말이냐.”,“의원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북한의 목을 졸라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모범답안’을 제시했다. 또 “의원님께서는 미국은 일체의 오류도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미국의 오류에 대해서는 한국은 일체 말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반문도 곁들였다. 노 대통령은 “(일요일 아침에)TV를 봤다.”면서 “이종석 장관이 ‘대북정책에 있어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것은 한국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실패를 굳이 말한다면 미국이 제일 많이 실패했고 한국이 좀더 작은 실패를 했다고 봐야겠지요.’, 이런 취지로 말했다.”며 이 장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한국의 각료들은 국회에 가서 혼이 나야 되는 거냐.”고 되물었다. 특히 “객관적으로 실패든 아니든 한국의 장관이 ‘미국의 정책은 성공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하면 안 되느냐.”고 밝혀 미사일 사태 이후 미국보다 정부 쪽으로 쏟아지는 대북 정책 실패론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장관을)혼내는 자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것은 국회 스스로가 달라져야 되지만 정부 각료들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하지 말고 좀더 치열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외견상 이 장관 문제를 계기로 국회의 ‘원칙없는 비판’의 행태를 꼬집으면서 동시에 장관들에게 국회에 대해 정중하되 당당한 자세를 요구한 셈이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갖는 함의는 간단찮다. 무엇보다 북한에 대해 강경 일변도인 미국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결의문 채택 이후 강력하게 대북 제재를 밀어붙이는 가운데 우리 정부에 대해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의 전면적인 참여까지 요구하고 있다. 대화 해결의 원칙을 내세운 노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제재를 둘러싼 미국과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만만찮을 수밖에 없다. 노 대통령은 이런 복잡한 심사를 장관들의 소신 답변을 빗대 ‘에둘러’ 표출한 것이다. 한편 여야는 이날 노 대통령이 이 장관의 발언을 적극 두둔하고 나선 데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대체로 “할 말이 없다.”면서 곤혹스러워 했지만, 한나라당은 ‘특유의 오기 발언’,‘아마추어리즘의 극치’ 등의 격한 표현을 써가며 비난했다. 박홍기기자 hkpark@seoul.co.kr
  • ‘내집장만’ ‘금융투자’ 두 토끼 잡자

    ‘내집장만’ ‘금융투자’ 두 토끼 잡자

    안정된 중산층이라면 ‘내집 마련’과 ‘금융 투자’라는 두마리 토끼를 함께 잡고 싶어한다. 부동산은 안정적 기반을 주고 금융 투자는 더 많은 수익을 안겨준다.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해 재테크→집마련→재테크→더 큰 집마련 등 단계를 밟아가는 게 바람직하다. 중간에 창업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례별로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재테크 전략을 재설계했다. ●대출을 끼고 아파트 구입하면 A씨는 주택담보대출, 마이너스 대출, 예금담보대출 등을 총동원해 30평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이에 따라 매월 원리금과 이자 부담은 191만원이나 된다.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액 158만원과 함께 청약예금 담보대출, 장기주택마련대출, 마이너스 대출의 이자를 물고 있다. 높은 이자를 물면서 갈수록 불어나는 빚을 놔두고 다른 금융상품을 추가로 드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할 재테크의 기본 원칙. 따라서 이자율이 높은 마이너스 대출을 우선적으로 갚아야 한다. 당장 해지해도 큰 불이익이 없는 금융상품은 과감하게 깨야 한다. 소액투자를 한 거치식 펀드가 2종 이상이라면 한개만 놔두고 모두 해약한다. 구조가 비슷한 적립식펀드도 환매해서 통합관리를 하도록 한다. 다만 거치식과 달리 적립식은 월 지출부담이 적고, 연 수익률이 10∼1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굳이 해지할 필요는 없다. 교육보험과 여행적금도 깨서 마이너스 대출을 갚는다. 변액유니버설보험과 연금보험도 아무거나 한 보험만 유지하는 게 좋다. 장기주택마련저축은 3년 미만에 중도해약하면 세액이 추징되므로 이후에 해약할 것을 권한다. ●아파트 판 돈으로 재테크 B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와 별도로 시가 5억원에 이르는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권을 갖고 있다. 정부 부동산정책 등이 마음이 걸려 재건축 아파트를 포기하기로 했다. 아파트 양도에 따라 여유자금 3억원이 생겼다. 유망하다고 여겼던 아파트를 포기한 만큼 적극적으로 수익을 추구하기로 했다. 우선 국내 거치식·성장형 주식펀드에 7000만원을 투자한다. 연말이 다가오는 만큼 배당주 펀드에 5000만원을 몰아주었다. 분산투자를 위해 해외 뮤추얼펀드에 3000만원을 투자했다. 또 부동산펀드도 5000만원을 넣었다. 아울러 단기간에 쏠쏠한 수익을 내는 특판예금에 1억원을 나눠 투자했다. 기본적인 자산배분은 고위험, 중위험, 저위험에 따라 ‘50:30:20’ 비율을 맞췄다. 공격성이 강한 주식펀드에 집중을 했으나 지금은 주가 조정기인 만큼 남의 말만 믿고 몰아치기를 자제하고 분산투자를 했다. 급히 쓸 돈을 준비하기 위해 저축예금 2000만원 가운데 1000만원을 수시입출금이 가능한 머니마켓펀드(MMF)로 유지하기로 했다. 사망과 상해를 당하는 경우보다 몹쓸 병에 걸리는 경우가 더 흔한 만큼 치명적질병(CI) 보험을 새로 들면 좋다. ●창업과 집 마련 목표 분명히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젊은 세대라면 창업과 집 마련 가운데 먼저 이룰 목표를 분명히 잡아야 한다. 돈을 모으는 과정이 처음부터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2년후 창업자금 5000만원을 목표로 잡고 예금 2500만원을 갖고 있다면 거치식과 적립식 펀드를 통해 재테크를 할 수 있다.2500만원은 거치식에, 월 70만원씩은 적립식에 불입하되 연 수익률 11.23%를 달성하면 된다.2500만원을 분산한다면 중국펀드에 1000만원, 성장형 펀드에 500만원, 주가연계증권(ELS)에 500만원, 인덱스펀드에 500만원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올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금융시장 전체의 변동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럴 때에는 우선 가진 돈을 안전하게 지키는 가운데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범위에서 돈을 불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삼성생명 조재영 웰스매니저는 “하반기의 화두는 위험관리와 시장 양극화로 요약된다.”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심화되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수익성이 차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다시 고개드는 與계파정치

    열린우리당 내 계파정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단순히 각 계파들의 결속 도모나 외연 확대 수준을 넘어선 듯한 기류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의 복귀와 오픈 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제) 도입, 조기 대권론 등 각종 ‘대권 방정식’이 제기되는 것과 맞물려 계파간 분화와 경쟁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이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당내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정동영 전 의장과 함께 당내 최대 지분을 갖고 있는 김근태 의장 측은 오는 7·26 재보선 이후를 내다보고 있다. 당장은 차기 대권을 향한 직접적 의지를 내비치지 않고 있지만 급물살을 타고 있는 당내 정계개편 논의에 긴장감을 드러내고 있다. 한 측근 의원은 “권력 형태를 전면에 걸고 움직이기에 아직은 당의 기반이 취약하다. 정책적 이슈를 중심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9월 정기국회까지 한·미FTA(자유무역협정)와 미군기지 협상결과, 서민경제 회복 등 정책노선에 주목하고 있다.외연을 넓히려면 실용적 행보를 가미할 수밖에 없지만 주요 현안에 개혁 정체성을 갖지 않으면 핵심 지지층의 이탈을 막지 못한다는 이중고를 안고 있다. 한 측근은 “이 방정식을 잘 풀지 못하면 외부 요인에 의해 당이 좌지우지되고 정계개편의 요인이 된다.”고 내다봤다. 김근태계의 최대 지지세력인 민평련이 다음달 초순 계획하고 있는 정기수련회는 이 사안을 놓고 김 의장의 리더십을 전면 검토할 계획이다. 당으로 조기복귀한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은 신기남 전 의장이 주도하는 신진보연대와 함께 ‘조기 대권론’을 주장하고 있다. 복귀 슬로건은 ‘개혁’이다. 한 측근은 “천 전 장관이 최근 창당 초기 민주화에만 너무 주력해 당 정체성을 소홀히 한 부분이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고 전했다. 천 전 장관은 다음달 초 대권캠프나 마찬가지인 동북아전략연구원 이전식을 갖고 물밑 경선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조기 대권론은 당이 다음달 확정키로 한 국민참여경선제를 반대하는 주장이다. 당내에서 먼저 강력한 개혁 정체성과 리더십을 구축하는 것을 선결 과제로 내밀었다. 신 전 의장도 신진보리포트를 통해 이런 의사를 피력했다. 그러나 천 전 장관과 신 전 의장의 의기투합이 곧바로 천·신·정 트리오의 부활이나 독자 체제로 유지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형준 국민대학원 교수는 “여권 내 계파는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개혁이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누가 어떤 명분으로 주도할 수 것인지 결국 인물 싸움”이라고 말해 분화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제3후보들과 잠룡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영남 대표주자론을 내걸고 있는 김혁규 전 최고위원은 최근 부산·경남 지역 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가지며 출마 권유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시민·정세균 장관도 정계개편이 본격화되면 전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강금실 전 장관도 유력한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박원순 변호사 등도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범여권의 ‘제3후보군’으로 거론되는 분위기다.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기로에 선 국책은행] (2) ‘돌파구 찾기’ 변신 몸부림

    [기로에 선 국책은행] (2) ‘돌파구 찾기’ 변신 몸부림

    “공공기관인 국책은행이 민간시장을 놓고 시중은행과 경쟁을 벌이는 것 자체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는다.”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19일 국책은행과의 경쟁을 “손을 뒤로 묶고 싸우라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시중은행의 대출금리보다 낮은 정책금리를 앞세운 국책은행과의 싸움은 애초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책은행을 지금처럼 그대로 놔둬서는 안된다는 주장에 한층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특히 직원들은 국책은행 민영화 얘기가 나오면서 불안해하고 있다. 국책은행을 직장으로 택한 것이 봉급이 많은 요인도 있지만, 정년 때까지 안정적으로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컸는데 이젠 그것마저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은행의 한 관계자는 “기회가 된다면 다른 직장으로 옮길 생각을 하는 직원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은행에 들어온 젊은 층들의 동요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을 지주회사체제로 바꾸거나 완전민영화하는 방안 등 ‘개편 시나리오’도 갈수록 구체화하고 있다. 국책은행의 대규모 개편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은 나름대로 정체성을 고민하며 ‘존재의 이유’를 강변하고 있다. 완전민영화나 국책은행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외풍’이 아무리 거세도 고유한 역할은 남아 있는 만큼 섣부른 통·폐합 논의는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만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대명제에는 동의하는 만큼 강도 높은 내부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국책은행 개편안의 중심에 서 있는 곳은 산업은행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인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기관에 경영 진단을 맡겨 놓고 경영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전체 2200여명에 달하는 인력의 재배치가 핵심이다. 기존 업무 인력의 20%를 파생상품, 지식서비스 산업 등 신규사업 부문으로 돌리거나 중·장기 연수를 시키기로 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원만을 운용하고, 앞으로 산은이 국제 수준에 버금가는 투자은행(IB)으로 거듭나기 위해 전문가를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복안이다. 내부 경쟁도 촉진하고 있다. 직원들의 연봉제와 성과급 적용 대상 비율을 높이고, 공채 외에 직원 중도 채용을 늘려서 문호를 넓히고 경쟁시스템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폐쇄된 조직 속에서 혜택만 누리려 하는 것 아니냐.”는 외부의 비난을 다분히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은행의 한 임원은 “산은 개편안이 나와도 폐지하는 쪽의 극단적인 대안은 제시되지 않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령 국책은행이 없어질 경우 시중은행들이 기업자금 등을 제때 공급해 주지 않으면 그 역할을 누가 하느냐는 것이다. 기업은행은 자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민영화를 하든 안하든 관계없이 어차피 지금도 시중은행과 거의 구별없이 경쟁을 하고 있는 만큼 내부적인 역량을 갖춰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은행 관계자는 “대기업, 가계대출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시중은행은 오히려 우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중소기업시장을 넘볼 정도”라면서 “내년까지 총자산 120조원을 달성하기 위해 고객기반 확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이 해외진출을 선언하면서 영역 다툼이 불가피해진 수출입은행은 내심 산은과의 통·폐합을 걱정하면서 불쾌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산이나 인원 등 규모 면에서는 산은과 비교가 안되지만 해외발전시설이나 정유공장, 담수화설비 등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독자적인 업무가 있는 만큼 통·폐합 논의는 말도 안된다고 반박한다. 수출입은행의 한 관계자는 “국내 산업발전을 위한다는 취지의 산업은행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에 나가겠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면서 “이는 마치 재정경제부에서 외교통상부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국책은행끼리도 신경전이 치열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결국 국책은행의 완전민영화가 아니더라도 대규모 지각 변동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기업이라도 민간기업과 경쟁하는 부문은 민영화해야 한다는 논리가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건국대 고성수 교수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 등은 과감하게 민영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특히 산업은행은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은 제외하고 통일을 대비한 부문 등만 남긴 소규모 은행으로 개편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창간 102주년 기획]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

    [창간 102주년 기획]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19일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이미 정해진 룰대로 깨끗하게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것이 개혁이고 맑은 정신이지, 자기 편한대로 이리저리 바꾸면 안 된다.”고 밝혔다. 대선 후보 선출방식을 바꾸자고 한 일부 대권 주자측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도입할 ‘오픈 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참여경선제)’를 거론하며 국민여론 반영비율을 높이자는 주장에 대해선 “이미 국민 여론을 50%나 반영하는 혁신위안을 우리가 먼저 통과시켰는데 왜 또 뒷북을 치며 여당을 따라가려 하느냐.”고 비판했다. 그는 “지금 당장 룰을 바꾸고 경선관리위원회를 발족하자는 것은 경쟁을 과열시키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지적하며 “지금은 당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급선무이며, 대선 경선은 내년에 가서 생각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참정치 실천운동본부’를 발족할 계획도 내비쳤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당대회 과정에서 민정당·색깔론 공방있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다 끝난 일인데 이제 대응할 게 뭐 있나. 그러나 내가 책임이 있건 없건 관계없이 당 대표로서 앞으로는 그런 일 없도록 교훈으로 삼자고 얘기했다. 전당대회 때 있었던 일은 이제 상황 끝이다. ▶이재오 최고위원이 마치 대표처럼 행동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일부 언론이 (갈등을)부각시켰을 뿐이다. ▶전당대회 결과를 놓고 과거회귀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초선의원이 당 대표를 한다면 미래지향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당 대표는 3,4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럼 다 과거부터 정치해 온 사람인데, 그래서 과거회귀라고 하는가. 나는 왜 과거회귀인지 잘 모르겠다. ▶대선경선 방식을 바꾸자는 주장에 대해선. -경선 방식이 불공정이라고 하는데 그 경선 룰을 도대체 누가 만들었나. 또 그 안은 작년 1년 내내 치열하게 논의해서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전당대회 끝나자마자 바꾸자고 하면 그게 공정한가. 심판은 정해진 룰에 따라 심판을 봐야지 자기가 룰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정치권은 희한한 게 일단 A를 만들었는데 개혁한다고 B로 바꿨다가 다시 이해관계에 따라 A로 거꾸로 돌아가면서 그것을 개혁인 것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 ▶조기에 경선관리위원회를 구성하자는데…. -말이 안 된다. 지금부터 민생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싸우는 무대를 만들자는 것인가.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고, 관중들은 미처 모이지도 않았는데 선수들만 링 위에 올라가라는 말인가. 그런 주장하는 쪽도 그냥 한 번 해보는 소리일 것이다. 만일 내가 지금 (경선관리위를)만들자고 하면 다 반대할 것이다.(시기는)내년이 되어야 한다. ▶대선에서 연거푸 실패한 것은 시대정신을 못 읽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년의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다음 시대정신은 무조건 경제다. 대학을 졸업하면 직업을 가질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10년 뒤에는 집을 살 수 있다는 식으로 보여주는 정당과 후보가 시대정신에 맞는다. 그러나 이건 너무 당연한 것인데 지난 몇년간 정권이 엉뚱한 이벤트로 허송세월하는 바람에 당연한 것이 지금은 최대 이슈, 시대정신이 되어버렸다. ▶임채정 국회의장이 개헌론을 제기했다. -중립적인 국회의장이 제헌절에 헌법문제를 얘기한 것이라고 좋은 뜻으로 보고 싶다. 그러나 여권의 조직적인 음모에 따라 국회의장이 바람부터 잡은 것이라면 확실히 막겠다. 대연정, 소연정부터 시작해서 판을 흔들고 (대권)룰을 유리하게 만들어 정계개편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의도도 될 수 있다. ▶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를 도입할 방침이라는데…. -예전에 보면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한다면 개혁인가 싶어서 노상 따라갔다. 열린우리당이 뭘 하면 우리도 6개월 지나서 그게 개혁인 것처럼 따라다녔다. 그러다 보면 여당은 이미 별로라고 판단해 빠진 상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게 개혁인 것처럼 뒤늦게 따라가 맨날 뒷북만 쳤다. 우리가 이미 만들어놓은 경선룰이 오픈 프라이머리나 같다. 국민 의견을 50%나 받아들였는데 더 오픈할 게 있는가. ▶호남·충청권 공략할 방법은. -호남을 배려한 인사도 좋지만 결국은 예산지원 등 실질적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곧 우리 중앙당이 아주 파격적으로 호남에 가서 한나라당 소속은 아니지만 전남·북 지사, 광주시장과 중앙당 차원에서 당정협의를 하려고 한다. 예산문제라든가 관심사안에 대해서 할 것이다. 이벤트성으로 묘역에 가서 절하고 오고 이런 것으로 호남에 다가갔다고 할 수 없다. 가슴으로 다가가야 한다. ▶선암사에서 이재오 최고위원과 무슨 대화를 나눴나. -이 최고위원은 대리전 운운하는 것은 참아도 색깔론은 정말 유감이라고 했다. 이에 나도 내가 제기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당 대표로서 임무는 무엇인가. -내년 대선을 잘 준비하고 성공해서 국민에게 다가가는 당을 만드는 것이다. 기득권 옹호, 차떼기 이미지 같은 부정적인 인상을 바꾸고 당을 속도감 있게 만들 것이다. 물기가 촉촉하고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당으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다. ▶구체적인 복안은 뭔가. -당에 ‘참정치 실천운동본부’를 만들려고 한다. 이벤트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분칠하고 얼렁뚱땅 표만 얻으면 끝이라는 식의 정치를 지양하고 정말 진실된 정치를 하자는 것이다.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 도덕성을 회복하고, 국민에 대한 자기희생을 통해 봉사활동도 할 것이다. ▶박근혜·이명박·손학규 후보 등 ‘빅3´와 만날 계획이 있는가. -전화 통화는 서로 했다. 공개적으로든, 비공개적으로든 그 분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해서 만날 것이다. 그런데 만나는 순서 문제도 있고 복잡하다(웃음). 그렇지만 얼렁뚱땅, 잡음이 나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는 식으로는 안 하겠다. 독일 사람이 축구 심판을 하면 남미쪽 선수들은 아무래도 심판이 같은 유럽인 프랑스 편을 들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땐 그저 심판을 공정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대담 구본영 정치부장 정리 전광삼·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이재오 최고는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 전당대회 후유증 수습과 수해 대책 논의, 당직 인선 조율… 취임 1주일 내내 산적한 업무와 씨름한 탓일까.19일 서울 염창동 당사에서 만난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목이 쉬어 있었다. 아직도 잠복 중인 ‘전대 불협화음’과 관련, 그는 “일종의 후유증으로 얘기되는 것이지 심각하지 않다.”며 “어제(당직 개편)를 고비로 많은 부분이 정리됐다.”고 잘라 말했다. 갈등의 ‘진앙’인 이재오 최고위원에 대해서도 “투쟁할 때는 정의감 있게 날을 딱 세우는 분이지만 인간적으로 따뜻한 사람”이라고 호평하면서 화합의 몸짓을 보였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담이 되는 듯 “다른 최고위원에 대해서도 좀 물어보세요.”라고 화제를 돌렸다. 대표 임기 2년 동안 간직할 최대의 화두로는 ‘당의 변화와 대선 공정관리’를 꼽았다. 내년 정권 창출을 위한 필수조건이라는 논리다.“박근혜 전 대표가 탄핵 이후 위기에 빠진 당을 추슬러서 오늘에 이른 1단계는 성공했다.2단계는 당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변화시키고 대선 승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2단계 과정의 지휘자로서 ‘기득권 옹호’‘차떼기당’ 등 부정적 이미지를 털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생활을 줄이고 당의 변화를 위해 내 몸을 던지겠다.”며 “그를 위해 내 스타일이 좀 구겨지거나 넝마·쓰레기가 되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덧붙였다. 당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대선 후보 경선 방법 변경, 경선관리위원회 구성 등의 요구에 대해서는 ‘내년의 과제’라고 일축했다.“올해부터 대선 경선에 매달리면 과열되고 국민이 ‘저 사람들은 민생도 챙기지 않고 자리 싸움만 한다.’고 말할 게 뻔하지 않으냐.”고 꼬집었다. 여권의 개헌론·정계 개편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반대했다.“현 정권이 한번도 국민을 위해서 일한 적이 없는데 또 조직적으로 개헌이나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정계 개편을 시도하면 ‘정신차리라.’고 말하고 싶고 절대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역시 한때 대권 도전의 뜻을 품었다. 미련이 없을까? “여러 사람들이 ‘당 대선 주자는 넘치는데 당을 안정적으로 끌고가면서 공정하게 후보를 뽑을 만한 사람이 없다.’며 대표 출마를 많이 권유했다.”며 “정권 창출에 온몸을 던지겠고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이어 “정권을 창출하지 못하면 당도 해체되고 저도 정계 은퇴가 아니라 정계 축출이라는 각오로 온몸을 던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환상만 키운 공학… 목적 정당성 돌아봐야”

    [’서울신문 102년-갈등넘어 소통으로/대담] “환상만 키운 공학… 목적 정당성 돌아봐야”

    생명과학이 범람하는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좋든 싫든 생명과학은 향후 우리 생활의 여러 분야에 침투할 것이다. 그러나 숨가쁘게 앞서가는 생명과학의 진보에 맞춰 생명의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가 하면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연과학계와 인문학계 양 분야에서 생명의 담론을 주도해온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로부터 생명과학, 그리고 이것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윤리·종교·행복의 가치관을 놓고, 과연 이들 문제가 소통 가능한지를 짚어본다. ▶도정일 교수 지난해의 황우석 사태는 이성적으로 진중하게 따져보는 작업 없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쉽게 휘말려 들었기 때문에 나왔다. 지적인 천박함 또는 경솔함에 있어서 언론 매체가 나서서 문제점을 부각해줘야 하는데 매체가 먼저 미쳐서 사람들을 자극하고 있다. 한국이 보여주는 편식 경향이나 일시적인 열정의 과잉 분출 등이 계속되면 소통은 불가능해진다. ▶장회익 교수 황 교수의 작업이 생명과학이라고 못이 박혀 있는데 사실 그건 공학이다. 생명과학은 생명체 내부에 일어나는 현상과 생명체간 사이에 있어서 어떤 관계를 가져야 생존이 가능한가 등 생명 결정에 관한 이해의 틀이다. 예를 들어 유전자의 구조와 기능 등 기본 원리가 밝혀졌고, 이제는 거기에 손을 대서 환자를 치료하자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설정하면 과연 그 목적을 이뤄야 하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몰아붙이기 식으로 성과 경쟁을 했다는 것이 황 교수 사태가 주는 교훈이다. ●‘대한민국 제일주의´ 광기가 소통 방해 ▶도 교수 과학이나 공학이나 윤리와 소통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공학은 과학과 달리 기술적인 것으로 목적에 속박된다. 질병 치료나 장수 등이 사회 정책 정치 경제적으로 설정되면 공학은 목적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 없이 최선의 수단을 찾아 달려간다. 이 때 위기가 발생한다. 반면 과학은 미신이나 맹신에 대해 치열한 싸움을 전개해 왔다. 발음하기 좋아 과학 기술 시대지, 실제로는 기술 과학 시대다. 그만큼 과학이 뒤로 밀렸다. 어느 사회이든 무엇보다 합리적 판단과 이성적인 사유 능력이 존재해야 하고,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줄기 세포 연구에 있어서도 ‘대한민국 제일주의’라는 광기가 작동해 소통이 되지 않았다. ▶장 교수 프랑스 과학자 자크 모노는 현대 문명의 가장 큰 맹점이 현대 과학이 주는 메시지는 보지 않고, 과일만 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 생명과학을 통해 얻는 것은 지금까지의 정신 세계를 바꿔놓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윤리라는 것부터 다시 검토해서 정말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야 한다. 대표적인 예가 생명의 존엄성이다. 인간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는데 과학에서는 납득하기 어렵다. 어디부터 인간이냐는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이다. ▶도 교수 DNA의 과학적 발견과 함께 인간에게 제기된 가장 큰 화두는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동일 물질·동일 DNA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만이 독특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인간 중심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에 대변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20세기 후반 과학적인 발견은 인간-인간 관계나 인간-타생명체 관계에 대한 새 패러다임을 요구하고 있다.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다고 보면 인간을 위해 타 생명체를 수단화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여기서 인류는 고통스러워진다. ▶장 교수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상대화하기가 쉽지 않지만 과학은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과학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과학을 읽을 수 있는 눈을 키우는 것이다. 그 위에서 다 같이 생각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 하나 더 보태자면 생명을 ‘온 생명’ 형태로 봐야 한다. 개체 단위 말고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까지 한 덩어리로 봐야 한다. ▶도 교수 우리가 우습게 아는 미국에서도 생명윤리위원회를 대통령 자문기구로 둬 사회적인 토론을 유도했다. 황 교수 사태가 일어나며 우리에게도 그런 기구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성취주의의 표본이다. 공학적 유토피아의 그림만 그려놓고 있어 욕망만 엄청나게 커졌다. 인간은 생로병사의 한계가 있는데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환상을 만들었다. 윤리 문제에서 소통이 이뤄진다면 처음 시작해야 할 것이 그동안 한계 존재로서 인간이 윤리를 만들었는데 그 한계가 상당 부분 재고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윤리와 규범을 뛰어넘고도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지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비자연스러운 삶은 무의미한 생존 유지 ▶장 교수 전체적으로 보면 생명은 자연 상태로 두는 게 최선이다. 그러나 인간 본능은 생존에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의 욕구는 진화에서 허용한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비자연스럽게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의미한 생존 유지일 뿐이다. 정말 우리가 욕구를 따라야 하는지, 따라야 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선을 그어야 한다. ▶도 교수 언론 매체가 사회에 대고 ‘인간은 몇 살까지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을 어떨까. 예를 들면 인간을 무한히 개량해도 되는 것인가, 아기를 주문 생산해도 되는 것인가 등의 질문을 사회에 던져 많은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현재 공학 기술에 대한 기대는 급격한 이탈, 과격한 일탈을 바라고 있다. ▶장 교수 우리가 제일 신뢰해야 하는 것은 몇 십억년에 걸친 진화와 여기에서 얻는 지혜다. 진화 과정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있었거나 위험이 따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검증되고 걸러진 질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 교수 사실 과학과 종교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다. 진리를 얻는 방식에서 상반된다. 그렇다고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것에 있어서 종교가 배타적이지는 않다. 과학 시대가 와도 종교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부 생명 학자나 과학자가 종교를 비판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세계적인 갈등을 일으키는 유력한 기원이 종교라는 것이다. 과학의 입장은 신이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낫다는 것이다. 생명 기원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신이 한 역할이 없다. 아무 역할을 하지 않았던 존재에게 전능의 힘을 실어주고 싸움의 근거를 마련한다는 건 정말 우매한 짓이다. 그럼에도 종교가 없어질 순 없고 없어져도 안된다. 인간은 사멸하는 존재로 유한성과 화해해야 하는데 스스로 화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연약한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가 늘 필요하다. ▶장 교수 종교는 지적 유연성을 상실하기 쉽다. 이해의 틀, 가치관 등을 바꾸는 유연성 말이다. 이렇게 달리 보는 것도 진리일 수 있겠다는 유연성을 가진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많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달리 본다고 해서 신의 뜻에 어긋난다고 판단되지 않는다. ▶도 교수 과학과 믿음 영역을 분리할 줄 아는 능력이 양측 모두에게 생겼으면 좋겠다. 서로 배타적인 입장을 완화하는 방법이 장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지적 유연성이다. 유연성은 동양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연의 순리, 신의 질서라고 볼 수 있다. ▶장 교수 삶의 의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신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종교가 대화를 하면 종교는 종교대로 깊어지고 과학에도 도움되는 길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시도를 하지 않고 있는 게 문제다. 우리 사회가 다행인 것은 다(多)종교 사회라는 것이다. ▶도 교수 훌륭한 종교인 가운데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의 도그마에 휘둘리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간 독선을 부리는 것이 종교의 힘이었다면 독선을 버리는 것은 과학의 힘이었다. 두 가지가 만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장 교수 아인슈타인은 자연 질서가 오묘하고 질서정연하고 하나의 예외도 없다며 하느님이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과학 속에 숨겨진 놀라운 질서를 볼 때 예사롭게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과학은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과욕 통제하는 기술 필요하다 ▶도 교수 생명공학이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치가 있다. 그 총량을 100이라고 보면 10은 그럭저럭 용인할 수 있으나,90은 지나치고 황당한 것이다. 과욕 때문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해도 사람은 여전히 불행하다. 과욕을 통제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지금은 정치가 대중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욕구를 갖게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렇다.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생명과학 기술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 ▶장 교수 과학은 병을 고치는 것 말고도 어떻게 사는 것이 건강한 것인가를 알려줄 수 있다. 과학을 철저하게 파다 보면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우리가 어떤 세계에 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300만년 동안 인류가 살아 왔던 전형적인 여건에 가장 가까이 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고 본다. 사회 황성기 문화부장 정리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CEO칼럼] 월드컵 이후 소외계층에 관심갖자/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CEO칼럼] 월드컵 이후 소외계층에 관심갖자/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월드컵이 끝났다. 온통 붉은 물결로 뒤덮였던 6월이 끝났다. 결승전 지단의 퇴장에 대한 관심도, 이제는 어느 나라가 우승했다는 것도 시들해졌다. 아마 3개월 정도 후에는 어느 나라가 4강이었더라 하는 기억의 희미함도 생길 듯하다. 그러나 우리 태극전사들은 너무도 잘 싸워주었고 월드컵 공식 후원사로서, 또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스타 박지성 선수를 공식 후원하는 야후의 입장에서도 가슴뿌듯한 감격의 시간들이었다.16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수들의 투혼을 보았기에 우리모두 만족했고, 우리 모두가 보여준 세계적 응원문화에 자랑스럽고 또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스포츠라는 것 자체가 우리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에 가득 차지하게 되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들이 일반 대중의 관심 뒷전으로 밀려 조용히 넘어가고 심지어는 아예 수면위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다. 아마도 금년 6월은 스포츠 때문에 소외되었던 더욱 많은 계층, 문제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우리가 그간에 소홀했던 주위에 대해서 다시 챙겨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아직도 가난과 어려움, 그리고 차별에 버거워하는 소외계층과 장애인들이 많고,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선, 기부 행동이 우리 기업가들의 사회적 역할 및 책임에 대한 겸허한 반성을 하게 하는 계기도 됐다. 잘 해결되기를 기원하지만,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긴장을 야기하는 모습으로 걱정스럽게도 보인다. 지난 봄 방한했던 하인스 워드선수 영향으로부터 불었던 혼혈인들에 대한 차별 문제는 매우 적절한 이슈제기였고 한동안 매체에 빈번이 회자 되었지만 계절이 바뀐 지금 또다시 식어져 가는 느낌이다. 이렇듯 뉴스를 보면 정말 많은 문제와 관심사항들이 제기되고 회자되는데 또 쉽게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경향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가 좁은 땅덩어리에서 선진국들을 좇아가기 위해서 그간 치열하게 살아와서일까, 아니면 핵가족화로 인한 개인주의·가족 이기주의의 부작용일까. 여하튼 ‘한국 사회는 냄비적 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꼭 기억해야 한다. 국가, 사회, 가족의 소중함, 자유와 평등 등 정말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잊지 말아야 할 화두들이다. 이러한 정서들이 모여서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저 옳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에 용기있게 동의하고,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 양심을 따르는 노력을 보이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전해지고 우리가 서로의 중요한 문제들을 잊지 않고 챙겨가는 분위기가 될 듯싶다. 양심과 용기, 이는 아무리 낭비해도 한없이 솟아날 수 있는 우리사회의 진정한 에너지원이 아닌가. 신문, 방송 인터넷 등 매체들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지나친 상업주의에 집착하지 않고 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그러한 사회의 지팡이로서의 노력을 겸허하게 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 환경의 빠른 변화의 시점에서 각 영역내 매체들의 소명의식에 대한 자리 매김과 우리 보통 사람들의 용기와 양심이 키워질 수 있는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사회적으로 보다 풍성한 넉넉함 들을 우리 서로 거두고 나눌 수 있는 여유로운 추수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 환경단체들 ‘침체의 늪’ 탈출 몸부림

    환경단체들 ‘침체의 늪’ 탈출 몸부림

    아노미(anomie)인가, 진화를 향한 예정된 과정인가. 침체의 늪에 빠진 환경운동 단체들이 분분한 내부 논란과 함께 활로를 찾으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대중의 외면은 더해가는데 (환경운동의)미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운동의 방향성을 잘못 잡은 것 아니냐.’는 자성과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개발·성장 우선주의에 맥 못추고 끌려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여성·평화·농업·복지 등 다른 시민운동 진영과 범 진보연대를 모색하는가 하면,‘시민운동의 정치중립성’이란 금기를 깨고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활동가 200여명 집단 토론회 전국 환경단체들의 모임인 한국환경회의는 지난 13일부터 사흘 동안 경기도 용인시 숙명여자대학교 연수원에서 일선 활동가를 비롯한 내·외부 인사 2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집단 토론회를 벌였다.‘생태적 대안사회를 위한 환경운동의 재발견’이란 큰 주제에서 드러나듯 환경운동의 새로운 길을 탐색하는 자리였다. 달리 말하면,“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외침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1980년대 후반부터 본격 시작된 환경운동은 비약적 성장을 거쳐 1990년대 중반 무렵엔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이후 지속적인 쇠락 양상을 보여왔다. 최근엔 거의 모든 환경단체들이 연대해 저항해 온 새만금·천성산 사업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사실상 결정타를 맞은 형국이다. 무엇이 환경운동, 환경단체의 위기상황을 불렀을까. 다양한 진단이 쏟아졌다. 우선 환경단체의 획일화 경향과 몸집 불리기에 대한 자체 비판이 나왔다. 환경정의 오성규 사무처장은 “환경단체간 치열한 경쟁으로 회원은 늘어나지 않는 가운데서도 중앙단체의 규모가 과거보다 세 배 이상 커졌다. 그러면서도 환경담론이나 이론의 분화는 일어나지 않은 채 표준화돼 버렸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규호 연구교수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정 교수는 “지난 10여년간 환경단체들은 국가차원의 정책적 과제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고 중앙권력의 구조변화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면서 “환경단체의 사회적 위상과 역할을 높이기는 했지만 이것이 오늘날 부메랑처럼 시민운동 위기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경운동의 성과들이 시민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연결되지 못해 결과적으로 지지와 신뢰를 잃게 됐다는 것이다. 이보다 한층 직설적인 비판도 제기됐다. 노현기 민주노동당 인천시당 환경위원은 “환경단체들이 정부기관이나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주받아)진행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대규모 국책개발에 대해 어떻게 집요하게 싸울 수 있겠는가.”란 따가운 물음을 던졌다. 결국 환경운동의 실패 요인은 “스스로 위기요인을 축적시켜 온 환경단체 내부에 있다.”는 말이다. ●환경단체의 ‘연대’와 ‘정치세력화’ 이런 진단들이 위기상황을 모두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환경단체의 내적 문제가 아닌 정치적·사회적 분야의 ‘외적 상황’이 환경운동을 구석으로 몰고 어쩔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한 결정적 요인이라는 진단도 설득력있게 제시됐다. 이 가운데 참여정부에 이르러 ‘절차적으로 완성된 민주주의’가 개발주의, 제도주의, 전문가주의와 강하게 결합한 것이 환경운동의 정체성 혼란을 불렀다는 지적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정규호 연구교수는 “개발독재 시절의 개발주의와는 달리 현재의 신개발주의는 나름의 법적 절차와 제도적 합리성에 터잡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개발주의에 대한 환경단체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제도화의 장벽에 가로막혀 희석되거나, 투쟁을 통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의 부작용이 환경운동 진영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역설적 상황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환경운동의 새로운 길은 어디에서 열릴 수 있을까. 이번 토론회에서 화두로 던져진 키워드는 ‘연대’와 ‘정치세력화’였다. 우선 그 동안 대형 개발사업 등 특정 사안에 대해 환경단체간 ‘저항적 연대’가 이뤄지고 일정한 성과를 올리긴 했지만 이보다 연대의 폭과 깊이를 더욱 심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녹색연합 최승국 협동사무처장은 이와 관련,“생태주의, 녹색주의, 생명운동, 공동체운동 등 다양한 환경담론을 하나의 큰 개념으로 통일하고, 사회의 여러 진보진영과 연대해서 구체적인 공동의 미래전망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상지대 홍성태 교수도 “토건·개발주의 국가를 해체하고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선 거대한 사회적 연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환경단체를 비롯한 시민운동 진영이 본격적인 정치세력화에 나서야 한다는 논의도 활발하게 전개됐다. 상지대 정대화 교수는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 발제문을 통해 “현재 시민운동단체 가운데 대부분은 시민운동이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정당을 지향하겠지만 일단은 시민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별개의 시민정치조직의 결성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녹색당’ 결성 움직임도 이미 구체화한 상태다.2004년 환경·여성·풀뿌리자치운동을 비롯한 각 방면의 활동가들이 만든 초록정치연대는 지난 4일 녹색대안정당 설립을 기치로 내걸고 창당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녹색당 창당의 청사진과 조직기반 마련 작업을 거쳐 내년부터는 이를 실행에 옮긴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아직은 정당 결성이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지금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환경운동을 정비하고 운동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 우선”(환경정의 오성규 처장)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희망제작소 김광식 부소장도 “수 년전부터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아직도 정치세력화의 구체적 상이나 이념적 좌표 그리고 이를 추진할 주체적 역량도 없는 실정”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김 부소장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주류 환경단체들이 내용없는 경쟁과 분열, 갈등으로 인해 대중적 신뢰를 잃어버렸다.”면서 “지금은 정치세력화를 섣불리 주장할 게 아니라 리더십의 상실과 조직 이기주의 난무, 개별 단체의 이익 집착 같은 현상을 급진적으로 파괴해 신뢰를 구축하는 작업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은 분분하지만 향후 진로를 둘러싼 환경단체들의 ‘분화(分化)’와 ‘통합’이 바야흐로 본격화한 느낌이다. 박은호기자 unopark@seoul.co.kr
  • [오늘의 눈] 한나라당에 묻는다/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노무현 대통령의 화두는 도전적이다.“한 시대의 막내가 되고 싶다.”며 3김정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를 극복하려는 바람을 표현한 것도 한 사례가 될듯 싶다. 열린우리당도 5·31 지방선거에서 지역주의를 고민했다. 비세(非勢)를 뒤집기 위해 호남을 안고 가는 전략을 고려해야 한다는 구상은 유혹이었다. 하지만 당시 정동영 당의장 측근의 표현처럼 “지더라도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원칙은 노 대통령의 화두와 맥이 닿아 있다. 정치고비마다 재연되는 지역주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개혁의 ‘초심’으로 읽힐 만하다. 표심을 얻진 못했지만 “어떻게 만든 우리당인데…”라는 격정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려는 여권의 진정성을 굳이 폄하할 이유를 찾긴 어렵다. 정치권이 지방선거의 후유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 이율배반적인 팍스아메리카나의 질서를 강요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역풍은 비정부기구로부터 거세게 불붙고 있다. 여야의 뒤늦은 호들갑이나 도심 시위로 인한 퇴근길 시민의 불편한 표정이 FTA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노동시장과 정규노동, 재화와 공공서비스로부터 ‘배제’된 장기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빈곤층은 그나마 시위에 나설 여력도 없는 소외된 그늘이다. 사회복지의 사각지대에서 탈출구 없는 쳇바퀴를 맴돌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한·미 FTA의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나라당의 7·11전당대회에서는 동시대의 화두인 탈(脫)지역주의나 FTA의 고민을 읽을 수 없었다.‘박심’(朴心)은 있었지만, 민심은 실종됐다.‘미사일’과 ‘영남’은 위력을 발휘했지만, 민생 대안과 통합의 메시지는 찾기 어려웠다. 정치학자들은 박근혜의 서진(西進)과 고건의 동진(東進)을 차기 대선의 주요한 관전 포인트로 여긴다.FTA의 후폭풍이 97년 쇼크 못지않게 심각할 것이라는 각계의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묻고 싶다. 민심의 순풍을 타고 있다는 한나라당은 과연 시대와 역사를 제대로 고민하고 있는가. 박찬구 정치부 차장급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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