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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행 버스 예고 없이 파업… 고양시 ‘8만명 혼란의 출근길’

    서울행 버스 예고 없이 파업… 고양시 ‘8만명 혼란의 출근길’

    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대화동 버스정류장에서 시민들이 영문도 모른 체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명성운수 노조가 임금협상 관련 조정 결렬로 이날 오전 예고 없이 파업에 돌입해 첫차부터 20개 노선 270여대가 운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경기도는 고양시와 함께 비상수송대책본부를 꾸려 대체 교통수단을 투입했으나, 평소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 약 8만 명이 불편을 겪었다. 이날 아침 출근길 경기지역엔 한파주의보가 내려져 올가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였다. 파업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여 고양시민들의 출근대란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연합뉴스
  • [포토] 고양∼서울 운행 버스 270여대 파업

    [포토] 고양∼서울 운행 버스 270여대 파업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대화동 명성운수 차고지에 버스들이 서 있다. 임금협상 관련 조정 결렬로 파업에 돌입한 명성운수 노조는 19일 아침 첫차부터 명성운수 20개 노선 270여대가 운행을 중단했다. 2019.11.19 연합뉴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시는 그림같이, 그림은 시같이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시는 그림같이, 그림은 시같이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ㆍ699~759)는 “그림은 소리 없는 시, 시는 소리 있는 그림”(畵卽無聲詩 詩卽有聲畵)이라 했다. 그는 당대 최고 문인 중 하나로 서정시를 형식적으로 완성했다는 평을 들었고, 후에 남종화의 시조로 받들어졌다. 북송의 소식(蘇軾ㆍ1036~1101)은 왕유의 그림을 보고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고 찬사를 보냈다. 문인화의 바탕이 된 이론이다. 문인화는 사물을 똑같이 그리는 사실주의적인 태도보다 자기 자신의 뜻을 드러내는 표현 수단으로서의 그림을 중시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보다 내면의 뜻이 우선이라고 할까?중국의 회화이론은 그림과 글씨의 근원이 같다는 ‘서화일치론’(書畵一致論)에서 출발했다. 이는 붓과 먹으로 이뤄지는 그림과 글씨의 붓놀림이 같다는 데서 나왔다. 서예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그림을 평가하고 그림의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인정하게 된 것도 여기서 시작했다. 이미 4세기부터 서예가 높이 평가되던 현실에서 점차 그림도 그 못지않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를 발달시켜 그림과 글씨의 근원이 같다는 ‘서화동원론’을 주장한 것이 조맹부다. 하지만 ‘시 속 그림, 그림 속 시’라는 말은 서예가 아니라 시를 겨냥한 것이다. 그림이 단지 붓놀림의 문제가 아니라 그림에서 시를 연상시킬 만큼 문학적 소양과 학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름지기 화가는 ‘소리 없는 시’를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지적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냉정하게 말해 이 이론은 시와 그림, 서예를 통해 여가를 즐기던 문인들의 선민의식이 배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맹부(趙孟?)의 ‘사유여구학도’(謝幼輿丘壑圖ㆍ1286?)에서는 시적 정취가 물씬 배어 나온다. 화면 한가득 옅은 녹색의 구릉이 펼쳐지고, 띄엄띄엄한 나무와 강, 강가 둔덕과 바위는 공중에 떠 있듯 비현실적이다. 가늘고 세밀한 붓질, 녹색과 갈색만을 쓴 화면은 평온하고 절제됐다. 당대 산수화처럼 바위나 산의 표면 질감을 나타내기 위한 붓놀림(준법)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하는 어떤 표현도 없다. 그저 고졸하고 몽환적인 구릉 사이에 탈속한 듯이 사유여가 느긋하게 앉아 있을 뿐. 이 그림은 4세기의 사대부 사유여, 즉 사곤(謝鯤ㆍ281~323ㆍ자 유여)의 일화를 묘사한 것이다. 사유여는 죽림칠현처럼 세속에 구애받지 않고 은둔한 인물이다. 당시 동진의 명제가 은거 중인 사유여에게 조정의 대신 유량과 유여 자신을 비교해 보라고 했다. 이에 사유여는 산중에서 낚시하는 즐거움을 아는 자신이 출사한 유량보다 한 수 위라고 답했다. 은일의 즐거움을 빗댄 답이었다. 같은 시대 화가 고개지는 언덕과 구릉[丘壑] 사이에 앉아 있는 사유여의 모습을 그렸다고 한다. 탈속과 세속의 선택을 고민하는 사대부들에게 유명한 일화였던 것이다. 몽골족의 원나라에서 여느 한족 사대부와 달리 출사를 택했던 조맹부 역시 사유여를 통해 은둔에 대한 자신의 동경을 담담하게 그렸다. 옛 그림의 화법을 되살려서 말이다. ‘사유여구학도’ 속에 펼쳐진 ‘시의 행간’은 넓기만 하다. 어느덧 한 해는 저물어 가고 내년 총선 준비로 분주하다. 사유여를 좇을 것인가, 조맹부를 따를 것인가로 번잡한 세밑을 맞는 이들이 적지 않을 듯싶다. 누구를 표방하든, 무엇을 좇고 따르든 탈속은 못 하더라도 시도 그림도 없는 삶만은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 조폐공사, 2020 경자년 맞아 기념메달·주화 공개

    조폐공사, 2020 경자년 맞아 기념메달·주화 공개

    풍산화동양행은 2020 경자년(庚子年) ‘쥐의 해’를 맞아 한국조폐공사의 기념메달과 세계 주요 조폐국들에서 엄선한 기념주화·메달의 예약접수를 오는 18일부터 선착순으로 받는다고 15일 밝혔다. 풍산화동양행 관계자는 “2020년은 지혜와 총명을 상징하는 쥐의 해로 그 중에서도 ‘흰쥐’에 속한다. 이번 한국조폐공사와 해외조폐국의 기념주화·메달은 신년 가내(家內)의 복(福)과 부(富)를 기원하는 의미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한국조폐공사 제조 기념메달은 부채꼴 금·은메달 세트(순도 99.9%, 금 18.7g, 은 10.2g, 300세트 한정), 부채꼴 은메달(순도 99.9%, 은 10.2g, 1000장 한정), 대형 은메달(순도 99.9%, 은 120g, 500장 한정), 팔각형 캘린더 메달(구리 65%, 아연 35%, 315g, 2000장 한정)로 구성했다. 부채꼴 금·은메달의 앞면에는 쥐의 12지신상과 ‘쥐’를 지칭하는 간지의 ‘자(子)’를 새겨 넣었고 뒷면에는 ‘2020’의 연도와 ‘庚子(경자)’의 갑자를 담았다. 대형 은메달에는 귀여운 새끼 쥐 두 마리를 새겨 넣었다. 팔각형 캘린더 메달에는 쥐의 12지신(앞면)과 복을 전하는 귀여운 새끼 쥐의 모습(뒷면)과 더불어 앞·뒷면에 걸쳐 2020년의 달력을 새겨 넣어 책상에 두면서 달력이나 문진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했다. 한국조폐공사 제조 십이간지 기념메달은 2012년 임진년(壬辰年) 용의 해부터 시작된 12년의 장기 프로젝트로 2012년 이후 아홉 번째 출시되는 십이간지 기념메달이다. 해외조폐국에서 발행한 기념주화는 영국왕립조폐국의 1kg금화(순도 99.99%, 1005g, 4장 한정), 156.295g금화(순도 99.99%, 156.295g, 18장 한정), 호주 퍼스조폐국의 7.777g금화(순도 99.99%, 7.777g, 200장 한정) 등으로 구성했다. 특히 스위스 ‘PAMP’에서 출시한 ‘복쥐(The Mouse of Fortune)’ 1g금메달(순도 99.99%, 1g, 전 세계 발행량 2020장)은 소비자들이 세뱃돈 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가격과 패키지를 고안했다. 예약접수는 오는 18일부터 29일까지 기업은행, 농협은행, 우체국, 풍산화동양행에서, 현대H몰, 더현대닷컴에서 받는다. 한국조폐공사는 한국조폐공사 제조 기념메달에 대해서만 접수를 받는다. 서울비즈 biz@seoul.co.kr
  • 장동건 ‘백투더북스’, 방송콘텐츠 대상 최우수상 ‘어떤 방송?’

    장동건 ‘백투더북스’, 방송콘텐츠 대상 최우수상 ‘어떤 방송?’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가 방송콘텐츠 대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JTBC 교양 프로그램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이하 ‘백 투 더 북스’)는 11월 13일 진행된 ‘2019 방송콘텐츠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앞서 ‘백 투 더 북스’는 2018년 KCA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우수상을 수상하며 정부 지원 제작지원작에 선정된 바 있다. 4부작 다큐멘터리로 방송되는 ‘백 투 더 북스’는 100여 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역사를 이어 온 중국-프랑스-일본-한국의 명문 서점들의 운영 비결과 그들이 사회 변화에 기여하고 있는 바를 조명한다. 배우 장동건이 내레이션에 참여하고 및 1,4부 프리젠터로 나서 큰 화제가 됐다. 장동건은 “서점 주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들이 한국의 많은 분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되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백 투 더 북스’와 오랜 시간 노력을 하신 분들에게도 이번 상은 힘 있는 도전이 되었다. 책에 대한 우리 가정과 사회, 주변의 많은 관심이 높아지길 바라며 앞으로 더 나은 문화적 교류도 이어지길 기대한다”라며 수상소감을 전했다. ‘백 투 더 북스’를 연출한 김태영 PD 역시 “인문학 콘텐트인 ‘장동건의 백 투 더 북스’가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하고,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등대 역할이 됐으면 좋겠다”라며 “‘백 투 더 북스’의 지향점인 4부 한국 편 역시 많은 시청을 부탁드린다”라고 당부를 전했다. 한편 11월 19일 방송되는 ‘백 투 더 북스’ 4부에서는 종이책 중심의 서점 문화를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한국의 동네 서점들을 찾아간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모여들며 시작된 보수동 헌책방 거리, 7080 청춘들과 함께 자리를 지켜 온 서울 혜화동 ‘동양서림’, 문학인들의 감성 놀이터가 됐던 속초 ‘동아서점’ 등 오랜 시간 사회와 호흡하며 지역 명소가 된 서점들을 찾아간다. 또한 대형서점의 거대 자본력 공세에 도전장을 내민 독립 서점들도 소개된다. 진주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에게 자부심이 되어 준 ‘진주서점’, 부산 청소년들의 인문학 성지와 같은 ‘인디고 서원’ 등 책의 놀라운 저력을 증명하고 있는 지역 서점을 찾아간다. 사진 = JTBC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속보] 北 “美국방 군사연습 조정 발언, 대화동력 살리는 노력”

    [속보] 北 “美국방 군사연습 조정 발언, 대화동력 살리는 노력”

    “남조선과는 사전 합의 안 했을 것…현명한 용단 내릴 인물 없기 때문”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14일 한미연합공중훈련 축소 가능성을 시사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조미(북미)대화의 동력을 살리려는 미국 측의 긍정적인 노력의 일환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나는 미 국방장관의 이번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앞서 에스퍼 장관은 한미안보협의회(SCM) 참석차 13일(현지시간) 한국행에 오르면서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외교적 필요성에 따라 훈련을 더 많거나 더 적게 조정할 것”이라면서 비핵화 협상 촉진을 위해 한미연합군사연습을 축소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에스퍼 장관의 발언에 대해 “나는 미국이 남조선과의 합동군사연습에서 빠지든가 아니면 연습 자체를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취지로 이해하고 싶다”고 기대했다. 그러면서도 “만일 이것이 우리의 천진한 해석으로 그치고 우리를 자극하는 적대적 도발이 끝끝내 강행된다면 우리는 부득불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응징으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에스퍼 장관의 발언이 한국과 조율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를 비하하며 미국의 단독 결정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나는 그가 이러한 결심을 남조선 당국과 사전에 합의하고 내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왜냐하면 남조선 정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런 현명한 용단을 내릴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서울 중구, 일상이 문화다!…‘신당 생활문화예술터 일상’ 개소

    서울 중구, 일상이 문화다!…‘신당 생활문화예술터 일상’ 개소

    서울 중구가 지난 7일 신당사거리공영주차장 1층에 ‘신당 생활문화예술터 일상’을 조성하고 문을 열었다고 8일 밝혔다. ‘신당 생활문화예술터 일상’은 ‘황학 생활문화예술터 일상’에 이은 중구의 두 번째 생활문화지원센터다. 신당사거리 공영주차장 1층 유휴공간 305㎡(92평)을 리모델링해 들어선 이 곳은 주민들이 일상 속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됐다. 공간은 4개의 소모임 공간과 동아리 간 친목, 교육, 소규모 발표회를 할 수 있는 다목적 공간, 지역주민들의 작품 전시공간으로 꾸며졌다. 주민들이 문화예술을 일상에서 자연스레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원데이클래스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크리스마스 리스, 책갈피, 호박브로치, 천연화장품 만들기 등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부터 한국무용, 포크댄스, 통기타 수업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다. 프로그램 참여는 모두 무료다. 구는 7일 주민, 생활문화동아리 회원, 생활예술인, 주민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신당 생활문화예술터 일상’의 개소식을 열어 아직 생활문화를 생소해 하는 주민들의 이해를 돕고 관심을 유도했다. 또한 7일부터 오는 9일까지 사흘 간 센터에서 생활문화동아리 박람회를 마련해 다양한 전시와 공연을 통해 각종 동아리를 홍보하는 기간을 갖는다. 3인 이상 모이면 탱고체험을 직접 할 수 있는 부스부터 캘리그래피, 수세미만들기, 민화그리기, 종이접기 등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부스를 준비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생활문화지원센터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참여해야 빛이 나는 시설”이라면서 “구민의 일상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많이 참여하고 호응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로동당출판까지 뒤졌다… ‘김원봉의 진실’ 담았다

    로동당출판까지 뒤졌다… ‘김원봉의 진실’ 담았다

    “2005년 당시 책을 낼 때에는 중국이나 북한 자료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오류도, 부족한 부분도 많았는데, 마침 지난해 서울신문과 현장 동행취재를 거쳐 사료를 보완해 책을 내게 됐습니다.” 6일 서울 중구 순화동천에서 기자들과 만난 소설가 이원규씨는 신간 ‘민족혁명가 김원봉’(한길사)을 소개하면서 자료 수집의 고충을 털어놨다. 약산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결성하고 1938년 조선의용대를 창설했다. 해방 후 북한으로 가 1948년 국가검열상, 1952년 노동상을 거친 뒤 1958년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한국전쟁 시기를 포함해 그가 북한의 고위직을 맡았던 행적이 문제가 되면서 그를 역사적으로 재조명하는 연구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미국과 소련, 일본은 물론 북한 로동당출판사가 발간한 김일성 저작집까지 조사했다”는 이 작가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다양하게 수집한 참고서적 80여권, 논문·잡지·신문 등이 130여편, 각종 문서 등이 30여편을 이 책에 녹여냈다. 저자가 수집하고 직접 촬영한 사진 116장도 담겼다. 김원봉 육촌동생 김태근이 50년간 숨겨뒀다 처음 내놓은 사진부터 가장 최근 발견한 북한에서의 김원봉의 모습도 들어 있다. 북한에 주재했던 푸자노프 소련대사 일지 등은 학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책은 김원봉에 대한 가장 많은 사료를 품은 셈이다. 저자는 책을 두고 “김원봉 일대기를 설명하면서 약간의 가공을 한 일종의 ‘팩션’(팩트+픽션)”이라면서 “사료가 충돌하거나 빠진 부분은 저자의 상상력으로 메우고, 관련해 300개의 주석을 붙여 혼란을 줄였다”고 했다. 이어 “이념 논란 때문에 학계 연구가 부족해 여전히 자료가 미흡하다. 팩트가 70%, 상상력이 30% 정도라고 봐 달라”고 덧붙였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샘터’ 휴간 안 한다

    휴간을 검토하던 국내 최장수 문화교양지 ‘샘터’가 우리은행의 지원으로 살아났다. 샘터사는 6일 휴간 검토가 보도된 뒤 각계 후원과 구독 신청이 이어져 계속 발행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임원은 최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샘터사를 방문해 5000만원을 지원하고 임직원들의 구독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도 120년 역사 동안 적지 않은 시련과 위기를 고객의 도움 등으로 극복해 왔다”면서 “작은 도움으로 내년 4월에 창간 50주년을 맞는 샘터가 이어나가길 바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샘터 12월호(통권 598호)는 이르면 다음주 전국 서점에서 볼 수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중구 교육혁신의 허브… 내 이름은 ○○○입니다

    중구 교육혁신의 허브… 내 이름은 ○○○입니다

    서울 중구가 내년 3월 완공 예정인 중구교육혁신센터(가칭) 이름을 공모한다고 5일 밝혔다. 중구교육혁신센터는 동화동 공영주차장 건립 부지 내 연면적 2769㎡(약 837평)에 지하 2층~지상 3층 규모로 조성되는 지역 내 아동·청소년을 위한 학교 밖 거점 교육센터다. 구는 지난해 8월 동화동 공영주차장 내 건립되는 복합시설 활용안을 두고 ‘주민 100인의 원탁토론회’를 실시해 교육 인프라 부족과 교육 관련 전문센터의 부재로 자녀 교육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반영하기로 했다. 그 결과 중구 교육혁신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게 될 중구교육혁신센터가 내년 3월 탄생하게 된다. 명칭 공모에는 주민과 지역 학교 학생·교사면 응모할 수 있다. 오는 20일까지 이메일(gosomi1223@junggu.seoul.kr)로 신청하거나 동주민센터에 방문 접수하면 된다. 당선작은 선호도 조사와 선정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다음달 발표된다. 최우수상 1명에게는 3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우수상 2명, 장려상 2명에게는 각각 10만원, 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을 준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교육혁신센터는 아이 키우기 좋은 중구를 만들기 위한 학부모들의 바람이자 구의 핵심 사업”이라면서 “학생 수는 적지만 가장 실속 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튼실한 교육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최초 사립 간송미술관 ‘서울 보화각’ 문화재 된다

    최초 사립 간송미술관 ‘서울 보화각’ 문화재 된다

    문화재청은 1938년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건물 ‘서울 보화각’을 문화재로 4일 등록 예고했다. 미암 유희춘의 서적 보관 시설인 ‘담양 모현관’, 윤동주 시인이 생활했던 ‘연세대 핀슨관’, 송기주씨가 개발한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도 문화재가 된다. 서울 보화각은 ‘문화재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우리 미술품 보존과 활용을 위해 건립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낸 곳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담양 모현관은 보물 제260호 ‘유희춘 미암일기 및 미암집 목판’을 비롯해 미암 유희춘(1513∼1577) 관련 서적을 보관한 수장시설이다. 미암 후손들이 한국전쟁 이후인 1957년 혼란한 분위기에서도 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건물을 세운 사실을 높이 평가했다. 연세대 핀슨관은 1922년에 준공했다. 윤동주 시인을 포함한 근현대 주요 인물들이 생활한 기숙사 건물이다. 20세기 초반 건축 형태·구조·생활환경을 보여 주는 드문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송기주씨가 개발해 1934년 공개한 송기주 네벌식 타자기는 현존하는 한글 타자기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한글 기계화의 초창기 역사를 보여 주는 자료다. 한편 문화재청은 경북 영덕군 성내리 일대 1만 7933㎡에 이르는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762호)을 이날 문화재로 등록했다. 한국인의 생활상을 보여 주는 장터거리로, 주민 3000여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곳이다. 1899년 군산항 개항, 1914년 동이리역 건립 등을 거쳐 번화했던 전북 익산시 주현동·인화동 일대 2만 1168㎡ 규모 ‘익산 솜리 근대역사문화공간’(763호)도 이날 문화재로 등록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한국 배우는 이방인, 한류 전하는 메신저

    한국 배우는 이방인, 한류 전하는 메신저

    ‘겨울연가’에서 ‘방탄소년단’까지 지난 20년간 한류(韓流)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하지만 ‘진출’ 개념의 일방적인 문화 전파로 일부 국가에서는 반한류 감정도 생겼다. 수출 일변도의 한류를 ‘쌍방향 문화교류’로 발전시키기 위한 정부의 사업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05년부터 시작한 ‘문화동반자사업’(Cultural Partnership Initiative·CPI)이다. ‘한류의 지속성 유지와 전파’를 위해 개발도상국의 문화, 예술, 문화산업 분야 전문가를 문화체육관광부 및 산하 기관에서 초청해 공동 창작활동을 진행하고 기관별 특성에 맞는 전문 연수를 시키는 프로그램이다. 올해 총 27개국에서 60명이 초청을 받아 활동 중이다.중부지방의 단풍이 절정의 자태를 뽐내던 10월 하순. 경기 수원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의 보존과학실에서는 문화동반자사업 연수생들의 현장실습이 한창이었다. 광주시 분원리 가마터에서 발굴한 토기의 파편을 조립하는 작업이다. 연수생들은 산산조각이 난 파편 100여개를 마치 퍼즐 맞추기를 하듯 하나씩 제자리에 끼워 넣는 김범준 연구관의 손놀림을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초청을 받아 연수 중인 레레는 미얀마 고고학국립박물관 보존과학 담당관이다. 그는 “보존과학은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아 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연수가 한국문화 속에 담긴 정서를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쳤다.2012년부터 문화동반자사업에 참여한 한국문화재재단은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택견수업과 공방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이크’, ‘에크’ 연수생들이 ‘택견’ 특유의 기합소리를 내며 사범의 지도에 맞춰 발짓을 따라 하고 있다. 택견 한복을 입은 모습도, 발음과 자세도 많이 어색하지만 표정만큼은 진지하다. 페루의 문화부 무형유산국 연구원인 아르테타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한국의 대표적인 무형유산의 전승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싶었다”며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을 수 있는 무예가 무척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갓’ 공방으로 자리를 옮겨 제작과정을 체험한 이방인들은 특히 대나무를 얇게 잘라내서 만드는 ‘양태(갓의 테) 기법’을 보고 “한국적인 전통을 활용한 최고의 명품”이라며 감탄을 했다. 한국문화재재단의 진옥섭 이사장은 “문화동반자사업이 개도국과의 문화교류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며 “현재 캄보디아, 미얀마 등에서 세계문화유산을 보존·복원하는 협력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케이팝으로 시작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점차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면서 ‘한국어’와 ‘한글’의 인기가 대단하다. 문화동반자사업에서도 한국어 연수는 모두에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베트남의 팜씨는 “베트남에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데다 한류 열풍도 있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이들이 많다”며 “오리지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전주세계소리축제조직위의 문화동반자 연수생들은 지난달 국립국악원 초청 공연에서 한국 연주자들과 함께 제작한 작품을 선보였다. 비슈구르, 마두금, 단니, 텔렘퐁 등 이름만 들어도 특이한 각국의 고유 악기를 통해 국가 간에 음악적 자산을 나눌 수 있도록 기획한 공연이다. 몽골의 비슈구르 연주자인 잉크첸은 “정서적으로 음악이 비슷한 한국과 몽골을 오가며 연주활동을 통해서 문화예술교류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우리 것을 가감 없이 자연스럽게 세계에 알리는 메신저들이다. 이들의 배움은 곧 세계와의 소통이다. 문화동반자사업을 통해 ‘한류’가 국제사회에 도움을 주는 ‘공헌사업’으로 다변화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군 전역 후 복학해 23세에 졸업…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 잊지 못해”

    “군 전역 후 복학해 23세에 졸업… 친구의 마지막 뒷모습 잊지 못해”

    일시 1997년 10월 22일 장소 인천학생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규원 치과 3층) 대담 이세영(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이경종(인천학생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원장 (이경종 큰아들) ■ 내가 겪은 6·25 전쟁우리 집은 화도 고개를 넘어 화수동 225번지였으며 우리 집 길 건너편에는 화동병원이 위치하고 있었다. 나는 송림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인천상업중학교에 진학하였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6·25전쟁이 일어났다. 인민군이 인천을 점령하고 얼마 있으려니까 중학생이나 청년들을 인민의용군으로 잡아가기 시작했는데, 모두 실종되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화수분대에 등록 1950년 9월 15일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성공으로 우리 인천은 공산군으로부터 해방이 됐다. 그러나 전시(戰時)라 학교는 휴교 상태였다. 이때 형과 나는 인천학도의용대 북구지대 화수분대에 등록하고 학도의용대원이 됐다. 1950년 12월 중순경 연락 오기를 인천학도의용대가 남쪽으로 내려가니까 며칠에 어디로 준비를 하고 모이라 하는 것이었다. 1950년 12월 18일 축현국민학교에 모여 그날 오후에 남쪽으로 출발하였다.부산 육군 제2훈련소 입소 20일간 걸어서 우리들은 마산에 도착하였고, 국민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로 들어갔다가 통영에서 며칠 지내고 난 후 통영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부산 부두에 상륙한 후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입소하였다. 1951년 1월 그믐께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를 마친 나는 부산육군통신학교로 가게 되었다. 당시 육군통신학교는 동대신동에 있었는데 그때 육군 제2훈련소에서 육군통신학교까지는 밤늦게 전차를 타고 갔다. 부산육군통신학교를 졸업하고, 통신병으로 배치받은 곳이 육군 5사단이었다. 강원도 5사단 27연대 1대대 통신병 그때 나는 강원도 중동부전선 5사단 최전방 27연대 1대대 통신병으로 갔다. 당시 무선통신병은 개인 개인마다 고유번호가 있었으며 서로 무선으로 통신할 때 고유번호만 대면 서로 누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1대대 무선통신병으로 대대장한테 신고를 마쳤을 때 대대장은 나이 어린 신병(新兵)이 무선통신반장으로 온 것을 우습게 여기다가 내가 가지고 있는 무선통신에 대한 기술이 만만치 않은 것을 얼마 뒤에 알고는 그 후로부터는 나를 신임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최전방 일선 전투지역의 보병 대대(Infantry Battalion) 무선통신병은 대대가 움직이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중추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1952년 4월경이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보상휴가를 얻어 군에 입대한 지 2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 인천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뵙게 됐다. 집 떠난 지 4년 4개월 만에 명예제대 처음 입대하여 후방부대에 배치받았을 때 전쟁이 뭔지 전방이 뭔지도 잘 모르고 전방을 지원했다가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 힘든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5사단 27연대 1대대 통신대 선임하사로 있다가 만기제대하였을 때가 1955년 5월 9일이다.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 재학 중 15세 때 군인이 되어 전쟁터에서만 지내다 제대했을 때의 내 나이는 20세의 청년이 되어 있었으며 군대생활은 만 4년 4개월을 하였다. 1955년 5월 9일 제대한 날 막 집에 도착하니까 아버지께서 공부는 한 시도 늦출 수가 없으니까 내일 학교를 찾아가서 복학 절차를 밟자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인천고등학교에 복학 그래서 아버지하고 같이 제대하고 이튿날인 1955년 5월 10일 인천고등학교 교무실에 들어가 복학 수속을 하였다. 그날 복학 수속은 무사히 마치었다. 이렇게 하여 이튿날부터 고등학교 1학년으로 학교에 가게 되었으며 이날이 제대한 날부터 3일 만이었다. 그때 1학년 학생들은 4월 달에 입학하여 수업에 들어간 지 1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또한 나와 동급생이 된 학생들은 625가 났을 때는 국민학교 6학년생들이었으며 나이로나 학년으로나 나보다 4년 후배들이었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져서는 안 되겠다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이러한 나의 성실함과 군(軍)경력이 인정된건지 2학년에 올라가서는 당시 고등학교마다 있었던 학도호국단 2학년 담당 중대장을 맡게 되었으며. 이후 다시 3학년에 올라가서는 인천고등학교 학도호국단 연대장이 되었다. 1957년도에 인천고등학교 57회로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이때가 내 나이 23세였다. 강원도 횡성에서 전사한 친구 김동기 송림동에 살았던 김동기는 인천상업중학교 1학년 3반 같은 반 친구였었다. 김동기도 나하고 함께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일 때 같이 남쪽으로 내려가 나와 같이 무선통신병이 되었다. 5사단 35연대에서 같이 군(軍) 복무 했었던 내 친구 김동기가 1951년 3월 봄날에 무전기를 고치고 다시 전선으로 가는 것을 본 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본 내 친구의 뒷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다른 통신병들로부터 “김동기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나라와 고향을 위해 전사한 6·25 참전 인천학생들 15살 어린 나이에 나라와 고향을 지키겠다고 떠난 길이었는데 나라와 고향을 지켰지만, 그 어린 친구들의 죽음은 이 나이가 되도록 내 가슴에 상처로 있고, 이제는 고향에서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처참한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우리들의 이야기를 지금까지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는데, 오랜 세월 파묻혔던 우리의 이야기를 이렇게 찾아주고 들어주어서 이경종규원 부자(父子)께 고마울 뿐이다. “동창생 경종아 고맙다!” 라고 말하면서 전사한 같은 반 친구 김동기를 떠올린 이세영은 눈물을 흘렸다.글 제공 :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관 ▶다음호에 29회 계속
  • 유용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장 “도시농업 활성화 위한 지원 확대 노력”

    유용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장 “도시농업 활성화 위한 지원 확대 노력”

    서울을 대표하는 경복궁쌀, 수라배 생산량이 전년대비 늘었다. 서울시가 유용 서울시의회 기획경제위원장에게 제출한 ‘서울농업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 숲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도 경지면적은 1,084ha(서울 전체면적의 1.79%), 농가호수는 3,410호, 농가인구는 9,374명에 이른다. 또한, 서울의 브랜드인 경복궁 쌀과 수라배, 늘 싱싱한 채소 등의 생산량도 전년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쌀은 ‘18년 117.5톤에서 ’19년 134.8톤으로 17.3톤(14.7%) 증가했고, 수라배(42.1톤 → 43.4톤), 늘 싱싱한 채소(122.0톤 → 135.4톤), 화훼(240,000본 → 266,019본) 등 각 작물의 생산량도 전년대비 늘어날 예정이다. 서울브랜드 생산량은 서울시가 지원한 포장재 등으로 추계했다. ‘경복궁쌀’은 2002년 서울시 쌀 통합 브랜드로 사용하다가 2016년 7월 특허청에 상표출원을 하였고, ‘수라배’는 임금에게 올리는 배로 조선 시대 6대 왕인 단종이 강원도 영월 지역으로 유배를 갈 때 호송을 담당한 왕방연이 관직을 그만두고 서울 중랑구 묵동 봉화산 아래에서 갈증이 났어도 목을 축이지 못한 단종을 위해 배를 재배한 데서 유래됐다. ‘경복궁쌀’은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된 강서구 오곡동, 개화동 일대 86만여평(285ha)에서 친환경 방제와 우렁이 농법을 통해 친환경인증을 받는 등 안전하고 품질이 우수하다. ‘수라배’는 서울 북부인 도봉, 노원, 중랑구 일대 20ha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콰실 크기가 크고 당도가 높으며 GAP(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받았다. 이러한 긍정적인 지표들과는 달리 박원순 시장의 도시농업 활성화 정책에 부정적인 도시농부들의 목소리가 서울시가 주최한 행사에서 제기됐다. 지난 28일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개최된 ‘제10회 서울 농업인 한마음 대회’에서 도시농부들은 “도심의 생태환경 개선과 지역공동체 회복 도모를 위해 생활 속 도시농업에 대한 서울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함에도 서울시의 도시농업 정책은 2012년 서울 도시농업 원년 선포에서 발전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행사에 참석한 유용 위원장은 “도시농업의 중요성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서울의 도시농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관련 정책과 예산 지원에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시아나항공, 정규·신규 노선 지속 발굴

    아시아나항공, 정규·신규 노선 지속 발굴

    아시아나항공이 어려운 대내외 영업 환경을 극복하고 수익성을 개선하고자 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노선을 강화해 최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영향으로 악화된 실적을 개선한다는 전략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중국 지역 영업망을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중국을 화북, 동북, 산동, 화동, 중남, 서부 등 6개 권역으로 나누어 이를 총괄하는 권역장을 임명했다. 중국 노선의 실적 개선세는 뚜렷하다. 지난달까지 올해 한중노선 탑승객 수는 약 300만명으로 한한령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인 2016년 대비 90% 수준까지 회복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 신규 취항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부정기편 운항 후 반응이 좋았던 노선의 경우 정기편으로 전환하는 식이다. 우선 그간 부정기편으로 운항했던 대만 가오슝, 베트남 푸꾸옥 노선을 정규 노선으로 전환했다. 이어 포르투갈 리스본을 비롯해 이집트 카이로, 호주 멜버른, 방글라데시 다카 노선 등 중장거리 부정기 노선도 지속 확대한다. 해당 노선들은 그간 경유해 가야만 했던 여행지였으나 이번 아시아나항공 부정기편 취항을 통해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게 됐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생활복지… 중구민 위한 ‘洞 정부’ 열린다

    걸어서 10분이면 닿는 생활복지… 중구민 위한 ‘洞 정부’ 열린다

    서울 중구의 면적은 9.96㎢로 서울시의 1.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 안에 온갖 매력이 다 있다. 수많은 역사자원과 문화예술시설, 대형 쇼핑가와 대기업 등 주요 문화와 산업이 몰려 있다. 38개에 달하는 전통시장과 노포(老鋪)도 있고, 최근에는 한때 야간 공동화로 고심했던 을지로 골목까지 젊은 사람으로 가득한 ‘핫플레이스’가 됐다. 반면 개발과 지원이 필요한 곳도 많다. 회현동 쪽방촌과 신당동 개미골목, 황학동 여인숙촌, 중림동 호박마을 등 군소 단위의 생활 쪽방지역이 여럿 있다. 서양호 중구청장은 “역대 구정이 겉으로 보이는 도시의 화려함에 치중했던 것과 달리 민선 7기는 ‘중구민을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노인복지와 젊은층을 위한 보육·교육 등 주민의 삶을 바꾸는 도시를 만들고 있다. 이를 위해 서 구청장은 올해 2월부터 트레이닝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매일 새벽 황학동 집을 나서 중앙시장, 신당동 아리랑고개 등 지역 곳곳을 걸으며 주민들의 소리를 들은 뒤 구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 21일 중구 직영 초등돌봄교실 2호점이 있는 중림동 봉래초등학교 뒷마당에서 그를 만나 180도 바뀐 중구의 구정 패러다임에 대해 들었다.-‘중구민을 위한 도시’를 구정 목표로 잡았는데. “신당동, 약수동, 황학동 등이 있는 중구 동부에 구 전체 인구의 70%가 산다. 그런데도 생활환경과 공공서비스 체계는 부실하다. 일례로 올해 1월 황학동 중앙시장 인근 다세대주택 밀집지로 이사했는데 동네에 공원과 공영주차장, 공공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생활폐기물 무단 투기, 불법 주차 등의 문제도 심각하다. 중구 문제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역대 구정은 이렇게 어두운 면보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도시에 따뜻함이 없었고 사회적 약자들은 소외됐다. 중구는 외형적 성장보다 사람에 대한 강력한 투자가 필요하다. 도시가 노후화되고 젊은이들이 떠나는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래서 노인들에게는 ‘어르신 공로수당’을 지원하고, 젊은층이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보육·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어르신 공로수당과 보육·교육(교육 4종 세트) 사업은 중구가 올해 각각 150억원과 200억원을 투입한 핵심 전략사업이다.”-교육 4종 세트 사업 가운데 가장 속도가 나는 분야를 꼽는다면. “교육 4종 세트란 초등돌봄교실, 국공립어린이집, 진학상담센터, 진로체험버스 직영이다. 그 가운데 전국 최초 ‘구 직영 초등돌봄교실’은 학부모들이 돌봄에서 원하는 부분을 잘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학교와 같은 안전한 곳에 내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충족했다. 지난 7월에는 행정안전부가 전국 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개최한 ‘지자체 저출산 우수시책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내년 상반기 중에는 ‘박정희 기념공원’의 의혹을 낳았던 동화동 공영주차장 사업지에 교육혁신센터가 완성된다. 지하 2층~지상 3층으로 구 직영 교육 4종 세트 등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구 교육정책 전반을 조율하게 된다.” -어르신 공로수당의 경우 현금복지 논란도 있었는데. “보건복지부의 고충을 이해하기 때문에 협의 중이다. 다만 중구는 65세 이상 비율이 17%로 서울 자치구 평균(14%)보다 높다. 85세 이상 어르신과 독거 어르신의 빈곤율도 서울시에서 가장 높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사회복지 지출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체 GDP에서 복지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나라에서 취약계층을 직접 돌볼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현금복지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다. 지금은 지방정부든 중앙정부든 복지정책을 확대해 나갈 때다. 복지 경쟁이 필요하다.” -어르신 공로수당과 교육·보육 외에 주민 삶 개선을 위한 ‘동 정부’ 구축 방안도 눈에 띄는데. “주민들 입장에서는 구보다는 동이 생활 거점이다. 지난 4월부터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동 정부 등 구가 하려는 중요 사업들을 설명했다. 몇 명이 모이든 상관없이 가서 설명하고 질문을 받았다. 7~9월 동안 103회에 걸쳐 5372명을 만났다. 동 정부는 공공서비스와 각종 생활복지시설 운영의 축을 동주민센터로 옮기는 것이다. ‘어디서든 걸어서 10분’ 내에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구청에 집중된 업무와 권한을 동주민센터로 분배하려고 한다.”-구도심인 을지로에는 기계·공구·정밀·조명·인쇄 등 산업이 밀집해 있는데 발전 청사진은. “중구의 전통 산업들은 지원·육성하면서 지역 개발도 해야 한다. 기계·공구·정밀업체가 몰려 있는 을지로 3구역은 서울시가 협의 중이다. 6구역에는 인쇄업체들이 몰려 있는데 산업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밀려나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구 주도로 서울메이커스파크(SMP)를 만들려고 한다. SMP는 도심 산업의 순환적 재생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다. 주거·산업·문화 복합시설을 만들어 인쇄업체들이 SMP에 저렴하게 입주해 기술 지원 등으로 경쟁력을 키워 정비가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중구 발전 방향이 역대 구정과 달라진 만큼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구정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이에 따라 구의회, 구청 직원, 구민들이 함께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주민을 대표하는 구의회와도 힘을 합쳐 중구를 발전시키려고 한다.” 진행 주현진 부장 jhj@seoul.co.kr정리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그가 걸어온 길 운동권 → 정치인 → 구청장…맨몸으로 달린 비주류의 길…시사평론가로도 종횡무진전태일 평전과 광주민주화운동 기록 등을 읽고 뜻을 세워 대학에서 학생운동에 전념했다. 1987년 숭실대에 입학했지만 그 탓에 복적과 제적을 거듭했고 2003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에 뛰어들었고 전국대학생연합에서 정책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운동권 선배들을 돕기 위해 1995년 지역위원회 자원봉사자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고 4년 뒤 김희선 국회의원 보좌관이 되면서 정치인으로서 길을 열었다. 그 길은 철저한 비주류의 길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 캠프에서 일했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김근태 전 국회의원과 이인제 전 국회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나왔고 그는 계파 없는 비주류인 ‘노무현’을 선택했다. 맨몸 하나 앞세워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노 전 대통령을 보며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는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서 구청장은 청와대 정무비서실 행정관으로 4년 동안 일했다. 그리고 2007년 홀연히 청와대를 나와 중앙당으로 옮겨 당대표 비서실, 전략기획위원장을 지냈다. 대선을 앞둔 시기였다. 보수는 이명박 후보를 통해 혁신을 시도하는데 진보는 기득권만 지키려 하는 모습을 비판하며 진보 진영의 외연 확대를 주장했다. 2011년에는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서 조직특보를 맡았고 2016년에는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종편과 라디오에서 시사평론가로 활약했다. 정치라는 종목에서 선수로만 뛰다가 해설가를 한 셈이다. 선거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일주일에 30개 프로그램까지 출연했다. 그 덕에 서울 중구청장이 된 지금도 어떤 주민은 그를 만나면 (구청장인지 모르고) 왜 요샌 TV에서 안 보이냐는 얘기를 한다. ▲경남 창녕 출생(1967) ▲서울 석관초, 서울 경희중, 서울 청량고, 숭실대 철학과 졸업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대위 청년특위 부위원장(1997) ▲김희선 국회의원 보좌관(2000) ▲노무현 대통령 후보 선대위 전략기획실 메시지전문위원(2002)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비서실 행정관(2003)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조직특보(2011)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2016)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2018) ▲민선 7기 서울 중구청장(2018~) ▲저서 ‘길 위에서 만난 중구’
  • ‘왕의 기운’ 서린 낙산서 넉넉한 품·뛰어난 풍광을 보다

    ‘왕의 기운’ 서린 낙산서 넉넉한 품·뛰어난 풍광을 보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6차 서울의 영화4’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편이 지난 19일 종로구 연건동과 명륜동, 이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집결, 서울대학교병원 안 옛 대한의원(의학박물관)을 향해 출발했다. 대한의원은 1907년에 준공된 서울대병원의 뿌리다. 새로 건립된 암병원 4층 옥상은 창경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조망 명소로 떠올랐다. 옛 창경원을 무대로 촬영된 영화를 되새김질하기에 좋은 곳이었다. 명륜동 한옥밀집거리를 지나 건축가 김수근의 붉은 벽돌건물 감상길에 올랐다. 김수근이 누이 김순자와 자형 박고석을 위해 설계한 명륜동4가 ‘고석공간’을 거쳐 샘터사옥~아르코 예술극장~아르코 미술관이 줄줄이 이어졌다. 박길룡이 설계한 옛 경성제국대학 본관(예술가의 집) 현관 앞 두 그루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매달린 감이 불타고 있었다. 내년 1월 중 수리가 끝난다는 이화장을 먼발치에서 바라본 뒤 1897년 탑골공원 대문기둥을 가져다 세운 옛 서울법대(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일정을 파했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무형유산인 영화 ‘수학여행’과 유형유산인 대한의원, 명륜동 한옥밀집거리, 샘터사옥, 마로니에공원, 아르코 예술극장, 아르코 미술관 등 모두 7개였다. 참석자들은 “영화를 꼭 보고 싶어졌다”, “50년 전 수학여행을 다녀온 기분”, “알뜰한 설명을 해준 해설사가 담임선생님으로 출연해도 좋을 듯…” 등등의 답사 후기를 남겼다. 해설을 맡은 전혜경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참석자들을 50년 전 꿈의 서울 수학여행으로 인도했다.서울의 좌청룡 낙산(해발 126m)은 비록 낮지만 품이 넉넉하고 풍광이 뛰어난 산이었다. 종로구 이화동·동숭동·창신동을 끼고 있고 동대문구 신설동과 성북구 보문동·삼선동 등 3개 자치구까지 길게 이어진다. 낙산은 풍수도참설의 피해자였다. 조선이 한양을 도읍으로 정할 때 장자(맏아들)와 친가를 뜻하는 좌청룡 낙산이 차자(작은아들)와 처가를 뜻하는 우백호 인왕산(338m)보다 낮아 장자와 친가가 차자와 처가에 기울어진다는 변고설이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정도전 등 신진 사대부들이 주장한 ‘백악 주산론’과 무학대사를 중심한 불교세력의 ‘인왕산 주산론’이 팽팽하게 맞선 까닭이다. 태종 때 하륜의 ‘무악 주산론’까지 등장해 치열한 삼파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백악산이 최후의 승리를 거둬 경복궁이 법궁이 되면서 조선은 장자 승계의 원칙이 어그러졌다. 조선 27명의 왕 중 장자는 5대 문종, 6대 단종, 10대 연산군, 12대 인종, 18대 현종, 19대 숙종, 20대 경종, 27대 순종 등 8명에 불과했다. 42년 동안 재위하면서 최악의 여난에 시달린 숙종을 제외하면 대부분 병약하거나 재위 기간이 짧거나 존재감이 없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재건하지 않고 296년 동안 창덕궁을 법궁으로 사용한 것도 기가 센 인왕산과 거리를 둔 결과다.낙산 기슭에는 제17대 효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봉림대군 시절에 살던 잠저 용흥궁과 손아래 동생 인평대군의 석양루가 사이좋게 마주 보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이 인평대군의 7대손이므로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은 인평대군의 직계후손이다. 공과를 떠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탄생시킨 이화장은 인평대군의 왕기가 서린 석양루를 품고 있다. 조선 한문 4대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문장가 장유는 “집터를 물색하며 거북이에 물어보니 저 낙산 언덕을 점지했다. 냇물이 반으로 나뉘어 두 갈래로 흐르는 이곳이야말로 평소 낙양(한양) 동촌의 승지(명승지)로 일컬어져 온 곳이다. 금원(창경궁)과 가까워 북극성(왕)의 존엄한 처소를 우러러볼 수 있어 더욱 좋다”라고 ‘인평대군의 새 저택에 대한 상량문’에서 석양루의 땅기운을 치켜세웠다. 냇물이 반으로 나뉘어 흐른다는 얘기는 성균관 위 옛 흥덕사에서 흘러내린 흥덕천의 흐름을 말한다. 성균관 또한 반궁이라 해 반수의 상류를 지칭하고 하류는 성균관 노비들이 사는 반촌이라고 일컬었다. 석양루는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옛 집터에 세워졌다. 신광한은 “나는 집 이름을 기재라고 했다. 우리 집은 동쪽 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산을 보려면 발꿈치를 들어 바라보면 되고. 우리 집 서쪽 길이 평평하고 곧은데 그 길을 가려면 발꿈치를 들고 가면 된다. 우리 집 앞에는 하천이 콸콸 흘러가는데 물이 흘러가서 쉬지 않는 것을 보면 발꿈치를 들어 감탄하게 된다. 우리 집 뒤쪽에는 소나무가 무성하게 서 있는데 겨울철에도 시들지 않는 것을 보면 발꿈치를 들어 바라보게 된다…”고 자택을 자화자찬했다. 사람들은 이 집이 있는 언덕을 신대라고 불렀다. 왕을 6명이나 섬겼고, 영의정을 2번 지내면서 국방과 외교에 공을 세웠던 신숙주의 음덕이었다. 조선 말 역사가 김택영이 지은 역사책 ‘한사경’에 따르면 “좌의정 신숙주가 노산군(단종)의 부인(정순왕후)을 노비로 삼고자 주청했으나 왕(세조)이 윤허하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온다. 또 “신숙주가 단종 부인을 노비로 삼겠다고 청한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악한 것”이라고 평했다. 한때 주군으로 모셨던 왕의 부인을 첩으로 삼고자 한 행위를 비판한 것이다. 조카를 죽인 비정한 세조였지만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누구도 조카며느리를 범하지 못하도록 낙산 동망봉 정업원에 비구니로 출가시켜 버렸다. 신대로 상징되는 신숙주 가문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종~문종~단종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고 세조의 편에 서면서 영화를 누렸으나 조선 후기 집권한 사림파가 사육신을 추앙하면서 변절자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다. 대신 ‘숙주나물’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서울을 중심으로 저술한 인문지리서 ‘동국여지비고’에 “인평대군 집을 석양루라고 불렀다. 기와와 벽 등에 그림이 새겨져 있고 규모가 크고 화려해서 서울 장안에서도 으뜸가는 집이었다. 지금은 장생전(궁중 장례식에 쓰일 관을 제작하던 관아)이 됐다”고 기록했다. 낙산 아래 신대와 용흥궁, 낙양루, 장생전의 옛 땅에서 조선의 효종, 고종, 순종 등 3명의 왕과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이 나왔다. 현재 이화장 뒤뜰은 신대요, 대문 앞 주차장은 저녁볕이 좋은 낙양루이며, 마주 보는 곳에 효종의 잠저인 용흥궁이 있었다. 또 이곳에는 조선 최고의 화가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도 기거했다. 18세기 문인화의 대가 표암이 낙양루 바위에 남긴 ‘紅泉翠壁’(홍천취벽)이라는 글씨가 이화장을 짓는 과정에서 사라졌다. 1960년대까지도 남아 있었지만 계곡에 집이 들어서면서 어딘가 묻혀 버렸다고 한다. 이화장은 1945년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이승만이 돈암장과 마포장을 전전하자 지지자 30여명이 모금운동을 펼쳐 구입해준 집이다. 마포장에서 백주테러의 위기를 넘긴 이승만에게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경비에 용이한 이 집이 적격이었다. 마당에는 이승만 동상이 서 있고, 이승만기념관이 있다. 산사의 칠성당을 연상시키는 숲속의 별채가 조각당이다. 1948년 제헌의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승만이 이곳으로 내각 후보자를 불러 면담한 뒤 국무총리와 12부 장관을 뽑은 정부 수립의 산실이다. 4·19 혁명으로 하야한 뒤 이곳에서 여생을 마치길 원했지만 미국 하와이로 쫓겨났다. 1965년 사후 국내로 운구된 시신이 잠시 봉안됐고, 미망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70년 귀국해서 1992년까지 살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7차 관악산 아랫마을 ■집결 장소 : 10월 26일(토) 오전 10시 사당역 6번 출구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기고] 건폐장 없는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기고] 건폐장 없는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

    지난 9월 3일 자유한국당 홍철호(경기 김포시을) 의원이 기자회견을 열어 지하철 5호선의 김포 연장을 위해 서울 방화동 건설폐기물처리장의 김포 이전을 공론화하자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2018년 방화차량 기지 이전과 5호선 연장용역에서 밝힌 사업성 확보를 위해 21만㎡ 규모 건폐장 이전 및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하지만 서울시 조사는 건폐장 이전에 따른 개발이익(8200억원)에 집중해 분석한 결과에 불과하다. 5호선 연장과 환경 위해시설 이전을 조건으로 함께 묶고, 그 자리를 개발해 막대한 수익을 챙기겠다는 것이다. 횡포에 가까운 서울시 용역안을 받아들이는 건 2021년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 계획에 편입해 빠른 성과를 내겠다는 초조감에서 비롯된 궁여지책에 불과하다. 건폐장을 받고 5호선을 연장한다면 김포의 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루 2500t 건설 폐기물을 처리하며 나오는 미세먼지와 소음은 김포 시민들의 건강과 환경권까지 위협할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서울시가 검토하는 5호선 연장안은 김포 시민의 교통편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먼저, 수요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한강신도시에 5호선 역이 하나밖에 없다. 노선도 검단을 한참 돌아 방화역을 지나 김포공항으로 이어진다. 오히려 최근 개통한 김포도시철도보다 김포공항에 늦게 도착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연장 안은 건폐장을 함께 이전을 전제로 BC 값이 0.81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BC 값 1.0이 나오지 않는 수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사업성 없음’으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5호선 연장을 위해서는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시민 건강을 해치는 건폐장이 아닌 ‘제2기 한강신도시를 전제로 한 5호선 연장’이 답이 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2월 수도권 광역교통망개선 방안의 하나로 사실상 5호선의 김포 연장을 뜻하는 ‘한강선’(가칭)을 발표했다.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대광위)를 설치하고 ‘선교통 후개발’ 원칙 아래 신속히 추진할 것도 공식화했다. 제2기 한강신도시는 ‘경제성을 충족하는’ 최적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최근 김현미 장관도 국감 도중 누산지구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한강신도시는 당초 2003년 1322만㎡로 발표됐으나 국방부 반대로 495만㎡가 줄어 현재처럼 기형적인 모습을 띠게 됐다. 하지만, 국방부가 지난해 누산리 일대 군사보호구역을 해제함으로써 제2기 한강신도시 조성 가능성이 열렸다. 정하영 김포시장 역시 제2기 한강신도시 개발을 역점 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현재 김포 한강신도시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인구유입률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도시 수준에 걸맞지 않게 ‘철도 교통망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제2기 한강신도시 개발은 김포시가 인천 검단지구와 더불어 경기 서북부 대도시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시민의 건강을 해치는 건폐장이 아닌 제2기 한강신도시가 5호선 연장 조건이 돼야 하는 이유다.
  • [미래유산 톡톡] 학림다방·동양서림엔 그 시절 그 청년들 흔적 켜켜이

    [미래유산 톡톡] 학림다방·동양서림엔 그 시절 그 청년들 흔적 켜켜이

    대학로는 종로5가 사거리에서 혜화동로터리에 이르는 젊음과 문화예술의 거리다. 대학로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66년 서울시에서 제정한 가로명에서 시작했다. 1920년대 조선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 경성제대를 성균관이 있는 숭교방 동쪽(동숭동)에 세웠다. 교수와 학생들이 대학 근처에 모여들어 살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촌이 형성됐다.이곳은 반촌의 일부였다. 반촌은 조선의 유일한 대학인 성균관을 뒷바라지하는 노비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들은 공자와 안향을 비롯한 성현들을 모시고 유학 교육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반촌은 특수지역으로 인정해 허가 없이 다른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고, 개경에서부터 이어져 온 그들만의 호탕한 문화도 있었다. 하지만 반촌 사람들 중에는 병자호란 중 양반들이 버리고 가버린 성균관 성현들의 위패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켜낸 노비들도 있었다. 성균관 유생과 몰래 천주교를 학습하다 죽음을 맞이한 김석태도 있었다. 그와 함께 불온한 학문을 공부했던 성균관 유생은 바로 정약용과 이승훈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한때 대학로에서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과 학림다방을 떠올리게 한다. 1956년에 생긴 이후 수많은 문인과 운동가들이 다녀갔다. 사람들은 추억을 찾아서, 또는 드라마에 등장했던 장소를 찾아서 끊임없이 찾고 있다.대학로에는 학림다방 외에도 60년 이상 영업을 계속 해오고 있는 곳들이 또 있다. 문화이용원의 지덕용 이발사는 1956년 배운 이발 기술 그대로 한 장소에서 지금까지 영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근처에는 ‘Since 1953’이라는 글자를 자랑스럽게 내건 동양서림이 있다. 이 오래된 이용원과 서점에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대학로의 학생들과 주민들이 다녀갔으며 얼마나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쌓였을까? 그리고 그전에 살았던 수많은 성균관 유생들과 반촌 노비들의 이야기들도 희미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임정화 성균관지킴이·‘표석을 따라 걷다’ 공저자
  • 엘리트 유생들의 성역 너머로…거리예술 꽃피운 ‘원조 대학촌’

    엘리트 유생들의 성역 너머로…거리예술 꽃피운 ‘원조 대학촌’

    서울신문이 서울특별시,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5차 성균관과 반촌’ 편이 지난 12일 종로구 연건동과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에서 집결, 학림다방을 거쳐 대명거리를 지나 성균관으로 향했다. 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균관대 입구 사거리까지 300m 이어지는 대명거리는 조선시대의 ‘원조 대학촌’이다. 당시 반촌이라고 불리던 유서 깊은 거리다. 종로구는 2010년 대명거리를 도로명 주소로 고지했다. 참가자들은 성균관 대성전 외삼문을 마주 보는 주택가에 홀로 서 있는 심산 김창숙 선생 집터 푯돌 앞에서 선생의 치열한 독립정신을 기린 뒤 성균관 대성전과 명륜당을 두루 탐방했다. 우암 송시열 집터~옛 한소제 가옥에 세워진 혜화동 주민센터~문화이용원~동양서림을 둘러보았다. 이날의 서울미래유산은 학림다방, 한소제 가옥, 문화이용원, 동양서림 등 4곳이었다. 성균관을 대표하는 중세의 송시열과 근대를 대표하는 김창숙 두 인물의 집터가 성균관 앞뒤를 지키고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서울미래유산투어에 데뷔한 임정화 해설사는 유생 복장으로 성균관의 어제와 오늘, 성균관의 안과 밖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 줬다.조선은 종교와 학문이 분리되지 않은 교학일치 국가였기에 유교와 유학이 한 몸이었다. 성균관은 조선왕조 국가 이데올로기의 상징 공간이었다. 공자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이 공부하는 명륜당은 동일체였다. 제사의 개념이 앞선 초기에는 묘학, 중기 이후 문묘라고 불렀으나 후기로 가면서 성균관이 통칭이 됐다. 성균관은 조선시대 엘리트 선비와 관료를 양성하는 최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유일한 국립대학이었다. 율곡 이이, 매월당 김시습 등 거의 모든 학자와 문신이 성균관 출신이었고, 퇴계 이황과 추사 김정희가 대사성(총장)을 지냈다. 선비의 일생은 과거로 시작해서 과거로 끝났다. 과거에 급제해서 관직에 오르는 것이 효이고, 이는 족보에 기록돼 남으며, 가문의 융성을 이룬다고 믿었다. 때문에 갈수록 문묘는 간판에 불과했고, 성균관 유생교육과 시험 위주로 돌아갔다. 과거제는 조선사회를 완벽하게 지배한 ‘갑 중의 갑’이었다. 성균관은 장차 관리가 될 유생 200명의 의식주를 책임졌다. 한양에서 대궐 다음으로 크고 번화하며 떵떵거리는 곳이었다. 조선은 과거공화국이었다. 각종 명목의 과거가 시도 때도 없이 치러지는 한양은 ‘과거시험의 도시’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정조의 일기인 일성록 등에 따르면 1800년(정조 24년) 3월 21일에 시행된 정시(庭試) 초시의 응시자수는 11만 1838명이었고, 이날 거둬들인 시권(답안지)은 3만 8614장이었다. 이튿날인 3월 22일 창덕궁 춘당대에서 열린 인일제(성균관 유생에 한해 응시자격을 주는 시험)의 응시자는 10만 3579명, 수거 답안지는 3만 2884장이었다. 이틀에 걸쳐 무려 21만 5417명이 한양에서 과거를 봤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만~30만명 사이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한양 인구에 육박하는 사람이 과거를 치르는 경천동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 개국한 1392년부터 과거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503년간 선발된 과거문과 급제자는 모두 1만 4615명으로, 1년 평균 29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성호 이익의 ‘성호사설’에 따르면 “과거 문과에 급제해도 벼슬자리는 500개에 불과해 합격자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엽관과 매관매직은 물론 당파에 줄을 서는 당쟁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과거제도는 조선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한 ‘요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성균관은 과거공화국의 중심이었다.반촌은 성균관 앞 동네를 이른다. 공자를 모신 문묘가 있는 성균관을 반궁이라고 했기에 생긴 동네 이름이다. 반궁의 반은 연못을 상징하고, 궁은 유생이 교육을 받는 학궁을 뜻한다. 엄격하게 말하자면 반촌이란 반궁에서 일하는 노비가 거주하는 동네다. ‘동국여지비고’에 “반궁에서 나오는 동(東)반수는 성균관 앞 식당교(진사식당)와 비각교(탕평비 앞 다리)를 경유하고 서(西)반수는 창경궁의 집춘문 앞 다리를 경유하여 대성전 외삼문 밖에서 합해져 남쪽으로 흘러…청계천 오간수문으로 들어간다”라고 기록돼 있다. 성균관 경내인 반수 건너편 마을이 반촌이다. 성균관에 딸린 노비를 반인이라고 했는데 개성 사투리를 쓰고 개성 풍속을 따랐다. 성리학을 처음으로 받아들인 고려의 안향이 기부한 노비 100명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개성 성균관에 소속돼 있다가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한양 성균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이들에게 소를 잡아서 팔 수 있는 특권을 부여했다. ‘동국여지비고’에 따르면 18세기 도성 안에는 모두 23곳의 현방(다림방, 푸줏간)이 설치돼 있었다. 현방이란 한양의 소 도살과 소고기 판매 독점권을 가진 시전의 하나다. 반인은 소고기를 팔고 남은 수입으로 성균관의 유지비를 댔다. 반인은 유생의 손발 노릇을 했다. 성균관에 딸린 노비는 많을 때 500여명에 이르렀다. 명륜당 소속 재직, 대성전 소속 수복, 식당의 찬모 등이다. 성균관 안에도 비복청이라고 하여 번듯한 거처가 있었지만 반촌에 사는 외거노비가 대부분이었다. 명종 16년(1561) 7월 25일 성균관 노비가 사람을 죽이고 성균관으로 도망치자 체포하러 들어간 형조의 관리를 유생들이 폭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왕은 “형조 관리의 잘못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전성기의 성균관은 성역이었다. 성균관 유생 출신 윤기(1741~1826)는 유생들의 생활상을 220수의 장편 시로 읊은 ‘반중잡영’을 남겼다. 윤기는 33살 때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 유생이 됐고, 52세 때 대과에 급제한 뒤 종6품 성균관 전적으로 근무한 사람이다. 반중잡영에는 성균관의 건물구조, 유생들의 방 배정, 식당 규칙과 음식, 학생회 구성과 운영, 행사와 동원, 반촌의 명승지 등 38개 항목의 시와 해석이 달려 있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성균관 실록이라고 할 만하다”라고 평가했다. 반촌은 성균관이 비좁아서 기숙사에서 들어와 살지 못하거나, 집안 형편으로 가끔씩 오는 유생들의 하숙촌이기도 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유흥을 즐기는 공간이 됐다. 성균관에 입교한 유생 대부분이 생원과 진사였는데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의 가장이었기에 유흥과 일탈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18세기 서울의 길거리문화를 소개한 강이천의 ‘남성관희자’는 남대문 밖 지금의 애오개 현방에서 본 가면극과 꼭두각시놀이를 묘사한 한시다. 강이천은 화가 강세황의 손자로 자신이 10살 때 본 장면을 기록했다. 앞부분에는 인형극이, 뒷부분에는 가면극이 담겼다. 세부적인 구성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이와는 다르고 현존하는 가면극의 바탕이 되는 산대놀이와 유사하다. 반인들이 소고기 장사에 종사하면서 가면극 공연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에서 편찬한 ‘태학지’에는 중국 사신이 오면 조정에서는 나례도감을 설치, 반인들로 하여금 반촌 안에 무대를 설치하고 놀이를 공연토록 했다고 전하고 있다. 영조실록에도 반인들은 중국 사신 환영행사 동원은 물론 시정의 꼭두각시놀이와 가면극을 벌였다고 적혀 있다. 성균관 소속 노비, 반인은 조선후기 이후 서울지역 공연문화의 주역이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6차 서울의 영화4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집결 장소 : 10월 19일(토) 오전 10시 혜화역 3번 출구 뒤 자전거대여소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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