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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IS Jeju, 입학설명회 실시…4월까지 매달 추가 개최

    KIS Jeju, 입학설명회 실시…4월까지 매달 추가 개최

    KIS(Korea International School) Jeju가 2019-2020 정시모집을 앞두고 올해 첫 입학설명회를 2월 23일 서울 ‘르 메르디앙(옛 리츠 칼튼) 호텔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KIS Jeju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입학설명회 사전 참가 신청을 받았으며, 학부모들의 뜨거운 신청 열기에 3월과 4월에도 연달아 입학설명회 개최를 확정 지었다. 이에 3월 31일 오후 1시 서울 강남의 ’인터콘티넨탈 코엑스‘, 4월 6일 오후 1시 부산 파크 하얏트에서 추가 설명회가 진행될 예정이며, 2월 입학설명회와 마찬가지로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참가 신청을 받고 있다. 3월과 4월에 진행되는 입학설명회에서는 학사총교장(Shawn Vento)과 고등학교 부교장(Colleen Boyett), 입학사정관 등이 참석하며, 이들은 KIS Jeju의 ▲초/중/고 교육과정 및 방과후 프로그램 ▲기숙사 생활 ▲진학과 생활지도 ▲각종 상담활동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또한 발표 후에는 학부모 대상 질의응답(Q&A) 시간이 주어져 학부모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예정이며, KIS Jeju의 2019-2020 입학시험은 3월과 4월에 제주 본교에서 실시된다. KIS Jeju는 2011년 개교 이후 WASC(Western Association of Schools & Colleges, 미국서부교육연합회)로부터 최고등급의 학교 인증을 받고 있으며, 미국식 명문기숙학교(American Boarding School)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초·중·고의 교육과정을 모두 운영하고 있으며, 내국인도 입학할 수 있고 졸업생은 한국과 미국의 학력을 동시에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5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KIS Jeju G12 학생들은 대입 합격 결과 발표가 모두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현재까지 미국의 명문인 존스홉킨스대와 뉴욕대, 미시건대, 남가주대, 영국의 캠브리지대, 에딘버러대, 킹스컬리지 런던대, 아시아의 경우 일본 와세다대, 홍콩대 등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KIS Jeju 관계자는 “외국 대학의 2020-21학년도 합격 결과 발표는 오는 4월 초까지 이어질 예정으로 KIS Jeju는 추가 합격자 배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임정, 中 국민당 도움받아 충칭 정착…中 공산당, 조선의용대 탈영 부추겨 팔로군 편입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출범해 1945년 해방 때까지 중국에서 활동했다. 1932년 윤봉길 의거 뒤 일본의 추격을 피해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옮겼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로 중국 국민당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각지를 떠돌았다. 임정이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서남부 쓰촨성의 작은 도시 충칭이었다. 임정은 1945년 11월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여기서 5년 넘게 독립을 준비했다. ●임정, 충칭서 5년 넘게 한국 독립 준비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취재의 최종 목적지 충칭. 1937년 11월 중국이 일본에 수도 난징을 빼앗기자 임시 수도로 정한 곳이다. 주민 수가 3100만명에 달해 중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이자 유비와 제갈량이 천하를 제패하기 위해 세력을 길렀던 촉(蜀)의 옛 땅이다. ‘안개 도시’라는 별명답게 한겨울에도 뿌연 안개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서울신문 취재에 동행한 김주용(53) 원광대 교수는 “예전에 이곳은 안개와 매연이 결합해 공기 질이 나빴다고 한다. 김구(1876~1949)의 맏아들 인(1917~1945)도 여기서 폐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고 말했다. 임정은 중일전쟁으로 난징이 함락되자 후난성 창사로 피신했다가 1838년 7월 광둥성 광저우로 내려갔다. 국민당 정부가 충징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동행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이곳은 인구 20만명 정도의 소도시였지만 국민당 정부가 오자 100만명이 넘는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주택과 학교, 도로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임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결국 중국의 도움으로 류저우(1938년 10월~1939년 3월)와 치장(1939년 3월~1940년 9월)을 거쳐 2년 뒤인 1940년 9월에야 입성할 수 있었다. 김 교수는 “임시정부에 있어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은 절대적이었다. 이 사실을 외면하고 독립운동 성과를 우리만의 노력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국뽕 사관’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임정의 리더십 회복과 좌우합작 성사 일본은 지상군 병력이 닿지 않는 이곳을 파괴하려고 5년여간 200여 차례에 걸쳐 공습을 감행했다. 영화로도 제작돼 잘 알려진 충칭 대폭격(1938~1943)이다. 독립운동가 양우조(1897~1964)·최선화(1911~2003) 부부의 임정 기록을 외손녀 김현주(47)씨가 정리한 ‘제시의 일기’(1999)를 보면 당시의 공포가 잘 묘사돼 있다. “(공습경보를 듣고 대피소인 동굴에 들어가자마자) 일본 비행기가 폭탄을 수없이 떨어뜨렸다. 석굴이 심히 흔들리며 당장 무너지는 듯했다. 동굴 안에서는 천둥·번개 치듯 불빛이 번쩍였고 천장이 내려앉는 듯 작은 돌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폭격이 끝나고) 굴 밖으로 나왔더니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있었던 집의 앞과 뒤, 오른쪽, 왼쪽이 불바다였다. 참혹한 시신도 많았다.”(1938년 12월 5일) 역설적이지만 임정은 공습에 시달리던 충칭 시기에 리더십을 회복했다. 중국이 모든 독립운동 세력을 임정 중심으로 합작해 나설 것을 촉구했고, 한인 내부에서도 일본의 패망이 머지않았다고 느껴 단결에 나섰기 때문이다. 임정은 처음으로 청사에 ‘대한민국 림시정부’ 간판도 내걸었다. 독립운동 중심체로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의미다. 1940년 5월 김구의 한국국민당과 조소앙(1887~1958), 홍면희(1877~1946)가 주도한 한국독립당, 이청천(1888~1957)이 이끈 조선혁명당은 충칭에서 우파 통합정당을 만들었다. 임 정 여당인 한국국민당의 지분이 가장 컸지만 당명은 ‘한국독립당’을 계승했다. 한독당은 해방 뒤 한국에서도 민족주의 정당으로 활동했다. 임정에 비판적이던 사회주의 계열도 태도를 바꿔 1941년부터 하나둘 합류했다. 임정이 설립 20여년 만에 제대로 된 위상과 권위를 갖추게 됐다. 승려 출신의 사회주의자로 1942년 임정 내무차장이 된 김성숙(1898~1969)의 증언이다. “우리나라 독립운동 단체 가운데 권위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임시정부만한 것이 없었거든. 임정이 계속해서 일본하고 대립하고 싸웠기 때문에 ‘(진정성을 인정해) 임정을 중심으로 모여야겠다’ 이렇게 생각했지.”●조선의용대, 팔로군 주둔 화베이 이동 1939년 말 중국 후베이성 라오허커우. 중국의 지원을 받아 사회주의 단체들이 조직한 조선의용대의 부대장 김학무(1912~1944)가 동료들에게 언성을 높였다. “우리 손으로 적(일본군)들을 쓰러뜨려야 하는데 지금 우리는 여기서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런 ‘가짜 항일’ 전선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너무도 수치스럽소이다.”조선의용대는 임정이 만든 한국광복군보다 2년 앞선 1938년 10월 결성됐다. 대원 상당수가 중국 군관학교나 일본의 유명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이들은 일본군과 직접 싸우기를 원했지만 중국은 인원이 많지 않은 의용대에 전투 대신 정보 수집과 선전 공작 등 보조 업무를 맡겼다. 이들은 후방에서 선전전이나 하는 현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결국 전체 대원 300여명 가운데 대다수가 1941년 3~5월 중국 공산당 팔로군이 있던 화베이 지역으로 떠났다.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이들이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 국내에 진격하려고 북상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충칭에서 만난 이선자(55) 전 충칭임시정부기념관 부관장은 “중국 공산당의 치밀한 계획이 숨어 있었다”고 전했다. 공산당이 조선의용대를 팔로군에 편입시키고자 의용대에 밀정을 심어 탈영 분위기를 부추겼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중국 공산당 출신 역사학자 쓰마로(100·미국 거주)가 홍콩에서 출간한 회고록(2004) 등에 수록돼 있다. 취재에 동행한 이원규(72) 작가는 “한국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내용”이라고 놀라워했다.조선의용대 주요 전력이 화베이로 올라가자 최고 책임자였던 김원봉(1898~1958)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를 따르는 대원이 100명도 남지 않았다. 이 관장은 쓰마로의 회고록을 토대로 “당시 김원봉도 남은 부대와 함께 화베이로 가려고 했지만 중국 공산당 저우언라이(1898~1976)가 이를 막았다. 화베이 부대의 새 리더로 김무정(1904~1951) 등을 세운 뒤여서 더는 김원봉이 필요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갈 곳을 잃은 그는 한국광복군 합류를 고심했다. 임정과 김원봉 간 통합 협상이 길어지자 중국군사위원회가 직접 나섰다. 1942년 5월 광복군에 부사령관 직제를 신설하고 그를 임명했다. 조선의용대는 광복군 제1지대에 편제됐다. 군사 분야에서도 좌우합작이 성사됐다. 늘 대원이 부족했던 광복군으로서는 이들이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였다. 임시정부 좌우통합 과정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이슈가 있다. 바로 김구의 ‘백색 테러’(우익에 의한 테러) 논란이다. 그가 일본군이나 친일파를 상대로 ‘의열 투쟁’을 벌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이념이나 성향이 다른 일부 독립운동가에게도 같은 방식의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 있다. 김구가 ‘대한민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어 언급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공론화가 이뤄져야 할 부분이다. 김구는 상하이 임정에서 초대 경무국장(경찰청장)을 맡아 반민족주의자에 대한 처형을 주도했다. 1922년 2월 사회주의자 김립(1880~1922) 살해 사건이 대표적이다. 백범 자신이 “김립이 (소련이 준) 임시정부 공금을 사사로이 사용해 처단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러시아 문서 등에 따르면 당시 소련은 임정이 아닌 한인 사회주의 진영에 자금을 제공했다. 김구가 주장하듯 김립이 이 돈을 사적으로 썼다는 증거도 없었다. 임경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김립 암살 사건은 임정이 잘못된 정보와 판단에 근거해 단행한 국가 폭력”이라며 “같은 독립운동가라도 정견과 조직이 다르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 해 독립운동계에 큰 해를 끼쳤다”고 비판했다. 해방 뒤인 1945년 12월 말 동아일보 주필이자 한국민주당 초대 당수 송진우(1890~1945)는 김구가 살던 경교장에서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벌였다. 그는 우파진영이 미국을 적으로 돌리면 공산당이 어부지리를 본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반탁을 고수하던 김구를 비판했다. 송진우는 밤샘 토론을 마치고 자택에 돌아가자마자 살해됐다. 브루스 커밍스(76)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사건의 배후를 김구로 본다. 김구는 안중근의 동생 안공근(1889~1939)과 안창호(1878~1938)의 후견인 옥관빈(1887~1933)의 암살에도 간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미 군정은 친일파 출신으로 한국민주당 정치부장이던 장덕수(1894~1947)가 살해되자 김구가 개입했다고 보고 재판정에 세웠다. 좀더 객관적인 연구가 필요한 대목이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덩치가 커졌다’고 오만불손하게 구는 중국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덩치가 커졌다’고 오만불손하게 구는 중국

    남의 나라 장관실에 무단 난입하고, 회의 도중 박차고 나가질 않나, 국제행사 진행을 가로막거나, 만찬장에서 술주정을 하질 않나, 그리고 토론회에서는 깽판을 치고…. 중국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글로벌 무대에서 잇따라 안하무인 행태를 보이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다. AFP통신,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지난 17일 오후 폐막을 앞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관 4명이 공동성명 초안에 불만을 품고 개최국 파푸아뉴기니의 림빈크 파토 외교장관실에 난입하는 APEC 사상 초유의 소동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중국 외교관들은 이날 파토 장관에게 2분만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며 막무가내로 진입을 시도하다가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면서 장관실에서 나오는 추태를 보였다. 파토 장관은 여러 차례 중국 대표단과의 만남을 거부했다며 “(의장국) 외교장관으로서 중국과 단독으로 협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중국 측 관리들도 이것을 안다”고 말했다. 파푸아뉴기니 외교관들은 “협박을 하고 있다”며 중국 외교관들의 행태에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중국 외교관들은 공동성명 초안의 ‘우리는 모든 불공정한 무역 관행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와 싸우는 데 동의했다’는 문장 중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라는 대목을 문제로 삼았다. 이 대목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사용한 용어라고 주장하며 공동성명 채택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을 뺀 20개국 정상들은 모두 찬성했다. 미·중 간 갈등 때문에 1993년 APEC 정상회의 창립 이후 처음으로 공동성명 채택이 무산됐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앞서 9월 남태평양 섬나라 나우루에서 열린 태평양도서국포럼(PIF) 정상회의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연설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스 주재 중국대사를 지낸 두치원(杜起文)은 회의 도중 기후변화와 관련해 연설하려고 나섰지만, 회의를 주재한 바론 와카 나우루 대통령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중국 대표단은 회의장을 떠나기 전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며 시끄럽게 회의장 주변을 성큼성큼 걷기도 했다. 분이 꼭두까지 난 와카 대통령은 중국 대표단이 “무례했다”며 힘으로 작은 섬나라를 위협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아마도 큰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우리를 협박하려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구 1만 3000여명, 면적이 서울시 성동구(16.8㎢)보다 조금 큰(21㎢) 소국 나우루는 중국 측의 갖은 회유에도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양국은 회의를 앞두고 비자 문제로 나우루와 중국 간에 이미 한 차례 신경전이 벌인 바 있다. 나우루 정부는 PIF 회의에 참석하는 중국 대표단에 외교관 자격으로 비자를 주는 대신 개인 자격 비자를 발급받으라고 해 중국 측을 분노케 했다. 중국 대표단은 지난해 5월 호주 퍼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인 ‘킴벌리 프로세스’(Kimberley Process) 개막식에서도 대만 대표단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한 데 불만을 품고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중국 대표단은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이 소개되고 원주민식 환영행사가 진행되려는 순간 자신들의 앞자리에 놓인 마이크를 이용해 회의 진행을 가로막았다. 중국대표단은 대만 대표단을 겨냥해 회의장에 공식 초대받지 않은 인사가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문제를 제기한 뒤 한동안 항의해 회의장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아프리카국가 대표들이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며 대만 대표단의 참석을 계속 문제삼자 회의는 차질을 빚었다. 현장에 있던 호주 참석자들은 중국 대표단이 행위에 대해 “정말 역겨웠고 놀라웠으며, 아주 부적절했으며 무례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호주 외교부 대변인은 호주가 회의의 의장국으로서 선례에 따라 대만 기업을 초청했다며 “중국과 다른 나라 대표단의 반대로 대만 측 초청을 철회해야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막 행사에서 계속된 혼란은 유감스러운 일로 호주 정부의 우려를 호주 주재 중국대사에게 전했다”라고 강조했다. 킴벌리 프로세스는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에서 채굴돼 불법거래되는 다이아몬드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업계 관계자가 참석하는 회의로 2003년 처음 열렸다. 중국 외교관 출신인 사쭈캉(沙祖康)은 2010년 9월 유엔 사무차장(경제·사회 담당) 재임시절 반기문 사무총장에게 술주정을 부리는 바람에 국제사회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휴양지 알프바흐에서 진행된 만찬행사장에서 참석자들이 건배를 하는 순간 술에 만취해 반 총장과 행사 관계자들에게 술에 만취해 막말을 내뱉어 물의를 빚었다. 이를 목격한 유엔 관계자들은 당시 사 사무차장은 “반 총장이 나를 제거하려 했으며, 또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 총장을 향해 “당신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뉴욕에 오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가, 다시 유엔을 사랑하게 됐으며 반 총장에 대해 몇 가지는 존경하게 됐다고 말하는 등 15분 가량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의 한 관계자는 당시 10여분이 마치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이때 반 총장은 어색하게 웃으며 그의 술주정을 받아주며 만찬을 계속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파르한 하크 유엔 대변인은 사 사무차장이 이와 관련해 반 총장에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며 그가 반 총장으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을 불공정하다고 여겨 바로잡으려고 하다가 실수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 전 사무차장은 2006년 BBC와 인터뷰에서 “미국은 입 닥치고 조용히 있는 게 훨씬 낫다”는 과격한 발언을 하는 등 외교관답지 않은 거친 화법으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중국 관영매체 기자도 나서서 막무가내식 행태를 보였다. 지난 9월말 영국 런던 버밍햄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영국 보수당 인권위원회와 영국 NGO 홍콩워치가 공동 주최한 ‘홍콩의 자유, 법치, 자치의 약화’라는 주제의 토론회는 기자가 깽판을 치는 바람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홍콩워치 공동 설립자인 베네딕트 로저스가 “중국은 홍콩반환 때 (중국과 홍콩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라고 했던 것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소란이 벌어진 것이다. 이 행사를 취재하러 온 중국 중앙방송(CCTV) 쿵린린(孔琳琳) 런던특파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당신은 거짓말쟁이, 반중(反中)분자다. 당신은 중국의 분열을 바란다”고 고함쳤다. 이어 행사에 참석한 리주밍(李柱銘) 홍콩 민주당 창당 주석, 우산혁명 주역 베니 타이(戴耀延) 홍콩대 교수 등 홍콩 인사들을 향해 “나머지도 모두 반역자이자 꼭두각시”, “가짜 중국인들”이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사회를 맡았던 피오나 브루스 보수당 의원이 쿵 특파원의 모욕적인 발언에 퇴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당신들은 (나를 퇴장시킬) 권리가 없고 영국엔 민주주의가 없다”, “나는 기자이고 항의할 권리가 있다”고 외치며 한사코 퇴장을 거부했다. 뭄싸움이 벌인 에녹 류는 트위터에 “그를 데리고 나가려 했더니 ‘자신을 침묵시키려 한다’고 소리를 지르며 내 뺨을 두 차례 때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쿵 특파원은 출동한 현지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돼 일반 폭행 혐의로 기소됐다. 영국 주재 중국대사관과 CCTV는 성명을 통해 “언론 자유를 자랑하는 나라에서 단지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는 이유로 중국 기자가 이런 봉변과 모욕을 당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보수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스마트폰 안 돌려주면 자살할 것” 교사 협박한 10대

    [여기는 중국] “스마트폰 안 돌려주면 자살할 것” 교사 협박한 10대

    한국과 마찬가지로 10대 청소년의 스마트폰 중독 현상이 심각한 중국에서 이를 증명할 충격적인 사례가 공개됐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17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지난 12일 중국 허난성(省)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10대 여학생은 최근 점심시간 동안 스마트폰 게임을 하던 중 교사에게 스마트폰을 압수당했다. 당일 오후 늦게 학생이 교무실로 가 스마트폰을 돌려달라고 말했지만,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이 교칙에 어긋난다며 이를 거절했다. 결국 이 학생은 교사에게 자필로 쓴 편지에 “(학교에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내 잘못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면서 “주로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내게 아빠가 사주신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만약 스마트폰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자살할 것”이라는 문구를 덧붙였다. 실제로 이 학생은 해당 편지를 전달한 뒤, 학교 7층 건물 창문으로 가 뛰어내리려 했지만, 다행히 교실에 있었던 다른 친구들에 의해 큰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은 뒤 교사는 학생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고, 일련의 과정을 학생의 부모에게 고지했다. 이 학교의 부교장은 해당 학생의 편지를 접한 뒤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위해 선생님을 위협하는 언어를 사용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느냐”는 내용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근 중국 당국은 특히 농촌 어린이들의 스마트폰 모바일게임 단속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농촌에는 도시로 일을 하러 떠난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이 많아 스마트폰 게임 중독에 더욱 노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중국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텐센트는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얼굴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테스트 운영중인 이 시스템은 중국 정부 데이터베이스와 연계된 실명기반 등록 데이터를 토대로 미성년자 이용자를 식별하고 게임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기능을 한다. 사진=자료사진, 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최은희 별세, 신상옥 감독 곁으로…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삶

    배우 최은희씨가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92세.최은희씨의 가족은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 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마음의 고향’(1949)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성춘향’(1961) 등으로 김지미, 엄앵란 등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오른 최은희씨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살았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거장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최은희씨는 1954년 결혼했다. 최은희·신상옥 부부는 이후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인은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이후 신상옥 감독과 이혼한 최은희씨는 1978년 1월 혼자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됐다. 그리고 신상옥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믿지 못할 재회를 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북한 당국의 전폭적인 후원 하에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 ‘사랑 사랑 내 사랑’(1984)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최은희씨는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 영화제 수상 기록이다.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신임을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다. 이 때 기회를 틈타 미국 대사관에 진입,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이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영구 귀국했다.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영면하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 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 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12호실 이전 예정)이며, 발인은 19일 오전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은희 별세, 향년 92세..신상옥 결혼부터 北납치까지 ‘영화같은 삶’

    최은희 별세, 향년 92세..신상옥 결혼부터 北납치까지 ‘영화같은 삶’

    배우 최은희(92)가 지병으로 별세했다.고인의 장남인 신정균 감독은 16일 “어머니가 오늘 오후 병원에 신장투석을 받으러 가셨다가 임종하셨다”고 밝혔다.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했다. 연극 무대를 누비던 그는 1947년 ‘새로운 맹서’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 등을 찍으며 스타로 떠올랐고, 김지미, 엄앵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로 떠올랐다. 1953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하면서 신상옥 감독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그는 1954년 결혼한 뒤 부부가 함께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고인은 신 감독과 찍은 ‘꿈’(1955), ‘지옥화’(1958), ‘춘희’(1959), ‘로맨스 빠빠’(1960) , ‘백사부인’(1960) ‘성춘향’(19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로맨스 그레이’(1963) 등 1976년까지 130여 편에 출연하며 은막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으로 대종상의 전신인 문교부 주최 제1회 국산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고인은 배우이자, 우리나라의 세 번째 여성 감독이기도 했다. ‘민며느리’(1965) ‘공주님의 짝사랑’(1967) ‘총각선생’(1972) 등을 연출했다. 감독 겸 배우로 출연한 ‘민며느리’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7년에는 안양영화예술학교의 교장을 맡아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신 감독과 이혼한 최씨는 1978년 1월 홀로 홍콩에 갔다가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다. 이후 신 감독도 그해 7월 납북돼 1983년 북한에서 재회한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 영화 촬영소 총장을 맡으며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년), ‘사랑 사랑 내 사랑’(1984년) 등 모두 17편의 영화를 찍었다. 고인은 북한에서 만든 영화 ‘소금’으로 1985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는 한국인 최초 해외영화제 수상으로 기록돼있다. 신 감독과 최씨는 김정일의 신뢰를 얻은 뒤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방문 중에 미국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에 성공한다. 이후 10년 넘는 망명 생활을 하다가 1999년 귀국했다. 고인은 2001년 극단 ‘신협’의 대표로 취임했고, 2002년 뮤지컬 ‘크레이즈 포 유’를 기획·제작했다. 2007년에는 자신의 영화 인생을 담은 자서전 ‘최은희의 고백’을 펴내기도 했다. 2006년 4월 11일 신 감독을 먼저 떠나보낸 뒤 고인은 허리 수술을 받는 등 건강이 악화됐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아왔다. 유족으로는 신정균(영화감독)·상균(미국거주)·명희·승리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이날 오후 6시 서울성모장례식장에 차려졌으며, 입관은 오는 18일 오후 3시 이뤄질 예정이다. 발인은 19일 이뤄지며, 장지는 안성천주교 공원묘지로 결정됐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나란히 앉거나 마주 앉거나… 中 ‘상석의 정치학’

    나란히 앉거나 마주 앉거나… 中 ‘상석의 정치학’

    베이징 인민대회당은 중국의 정치와 외교의 심장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처럼 국가의 근간을 세우는 정치 활동이 이뤄지며, 전 세계 각국과의 주요 회담이 이루어진다. 그런 만큼 인민대회당은 그 자체로 ‘권위와 의전’의 상징이기도 하다. 중국 지도자로서의 힘을 대내에 과시하며, 그 권위를 바탕으로 의전이 이뤄진다. 대지 면적 15만㎡, 건면적 17만㎡에 이르는 거대한 3층 규모로 내부에는 중국의 각 성(省)을 대표하는 33개의 큰 방이 있다. 각 방은 지방의 특징을 반영한 대형 그림과 장식 등으로 꾸며져 있다. 푸젠팅(福建廳)은 이 가운데 권위의 핵심이랄 수 있다. 정문이랄 수 있는 북문 왼편의 ‘작은 방’이지만, 국가주석이 머무는 곳이어서다. 최근 한·중 간의 두 차례 외교 결례 논란도 이곳에서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푸젠팅을 깊숙이 들여다봤다. 푸젠팅은 인민대회당의 수많은 방 가운데 사용 빈도가 가장 높다. 국가 정상 간 회담은 주로 둥다팅(東大廳)에서 열리고 이후 만찬이나 오찬은 맞은편 시다팅(西大廳)에서 이뤄진다. 푸젠팅에서도 정상회담은 이뤄지지만 기본 용도는 주석의 준비실이자 접견실이며 휴게실이다. 그래서 이 방은 기본적으로 이른바 ‘소파 세팅룸’이다. 외국 정상을 접견할 때 정중앙에 나란히 놓은 2개의 소파에 중국 국가주석과 외국 손님이 앉고, 배석자들은 양쪽으로 길게 늘어앉는다. 실무자들은 배석자 뒤편에 앉는다. 공식 회담을 할 때는 이곳에 테이블을 놓고, 양쪽 면에 마주 보고 앉아 왔다. 이처럼 중국이 ‘나란히 앉거나’, ‘마주 보고 앉는’ 관행을 깼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지난해 5월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로 이곳을 찾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몇 명의 일행 앞에 긴 테이블이 놓였고, 전에 없던 ‘상석’(上席)이 생겨났다.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푸젠팅에서 후진타오 당시 주석을 접견할 때나, 2013년 박 전 대통령의 특사로 인민대회당을 찾은 김무성 의원이 시진핑 주석을 만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만남이었다.2013년 5월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시 주석을 푸젠팅에서 만났을 때와도 다르다. 북핵 문제가 심각했던 만큼 시 주석은 ‘비핵화’란 단어를 연거푸 써 가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시 주석은 2015년 7월 독일 사민당 당수를 만날 때도, 그해 5월 대만의 국민당 주석을 만날 때도 마주 앉았다. 2014년 11월 량전잉(梁振英) 홍콩특별행정구 행정장관을 회견할 때도 나란히 앉았다. ‘상석’의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7월 브릭스(BRICS)가 파견한 대표들을 만날 때 시 주석은 상석에 앉았다. 이에 대해서는 브릭스 대표와의 만남에서 상석에 앉은 것은 이해찬 특사 홀대 논란 이후, ‘비슷한 사례를 만들어 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 아니냐’는 의혹 섞인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한 국가의 정상이 보낸 특사는 해당 국의 외교장관보다 격이 높다. 정상에 준해 예우를 하는 게 국제적 관행이다. 지난해 5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단을 마주 보고 앉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시 주석은 프랑스 외무부 장관, 미 합참의장을 만날 때도 관행을 깨지는 않았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월드피플+] 세계 울린 ‘눈송이 소년’ 그후…아빠도 만났다

    극심한 추위로 인해 머리가 눈송이처럼 변해버린 한 중국인 소년의 사연이 현지는 물론 전세계를 울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 등 중국언론들은 12일 윈난성 루뎬현의 가난한 시골마을에 사는 왕푸만(8·王福滿)과 학교에 온정의 손길이 쇄도했다고 보도했다. 왕군의 사연은 얼마 전 인터넷과 언론에 보도된 사진 한장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3학년인 왕군은 매일 아침 4.5km 거리에 있는 학교를 가기위해 1시간 이상 걷고 또 걷는다. 그러나 최근 아침 기온이 갑자기 영하 9도로 떨어지면서 학교에 도착했을 때 왕군의 머리카락과 눈썹은 고드름처럼 변해버렸다. 왕군의 학교 교장은 "왕군의 모습을 보고 같은 반 친구들이 킥킥 웃어도 전혀 곤혹스러워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우스운 표정을 지어 아이들을 웃게 만들었다. 그래서 귀여웠다”고 밝혔다. 특히나 왕군은 추위로 갈라진 손까지 보여주며 주위 사람들을 감동을 안겼다. 왕군은 “할머니 농장 일을 돕다보니 동상에 걸렸다”면서 “아빠를 몇 달 동안 보지 못해 무척이나 그립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왕군의 아버지는 다른 도시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로 어머니는 가족을 버리고 떠나 현재 누나, 할머니와 진흙 집에서 살고 있다. 소년의 사연이 알려지자 온정은 불어닥친 추위를 금방 녹였다. 왕군의 갈라진 손에는 장갑이, 그리고 따뜻한 옷과 모자가 기부됐다. 인민일보는 "10만 위안(약 16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이 학교에 도착했으며 144개의 옷과 난방기구가 기부됐다"면서 "왕군 뿐 만 아니라 학생 81명에게 500위안(약 8만원) 씩 주어졌다"고 보도했다. 사실 기부 만큼이나 왕군에게 더 기쁜 소식은 뒤늦게 알려졌다. 한 회사가 외지에 나가있는 왕군의 아빠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왕군은 뉴스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아빠가 용돈으로 손에 쥐어준 5위안(약 800원)을 받고 가장 기뻐했다. 왕군은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 도와준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행복하다"면서 "돈을 부지런히 저축해 아빠가 아플 때 치료비로 쓰고싶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베이징 서기 “총칼 들고 피 볼 각오로 빈민촌 철거”

    베이징 서기 “총칼 들고 피 볼 각오로 빈민촌 철거”

    겉으론 친서민…분노 여론 확산 상황 악화땐 軍 투입 가능성도중국 베이징시의 농민공(농촌에서 이주해 온 노동자) 집단 거주지 강제 철거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후폭풍이 커지자 어쩔 수 없이 친서민 행보를 보이던 차이치(蔡奇) 베이징시 서기가 정작 내부 회의에선 “피를 본다는 각오로 총칼로 다뤄야 한다”고 발언한 동영상이 공개돼 분노가 더욱 커지고 있다. 6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차이 서기가 주재하는 빈민촌 철거 대책회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출됐다. 회의에서 그는 “기층 민중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진짜 총칼을 들어 피를 볼 각오를 해야 한다. 강대강 대치를 감수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태도로 (철거)업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조만간 다시 사고(화재)가 발생할 것”이라면서 “각 구청의 최고 책임자가 직접 책임지고 집행하라”고 다그쳤다. 동영상을 누가 유출했는지는 전해지지 않았지만, 회의에 참석한 일선 관료가 무리한 철거에 불만을 품고 유출한 것으로 보인다. 동영상은 인터넷에서 사라졌다. 지난달 18일 농민공 밀집촌에서 화재가 발생해 19명이 숨진 이후 차이치의 지시대로 강제 철거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빈민촌뿐만 아니라 120개 재래시장도 속속 폐쇄되고 있다. 이 같은 작업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비(非)수도 기능 분산 정책에서 나왔다. 행정·금융 등 수도 기능 외에 도시를 복잡하게 만드는 재래시장과 하층민 집단거주지를 모두 베이징시 밖으로 이동시킨다는 계획이다. 베이징시 주둔 인민해방군까지 “시 당국의 총체적인 도시계획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밝혀, 상황이 악화하면 군대가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 차이 서기의 발언은 최근 보인 친서민 행보와 딴판이다. 그는 화재가 발생한 지역을 3번이나 방문해 “서민의 일상생활을 배려하는 ‘인문적인’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농민공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중국 북부 지역을 강타한 ‘가스 대란’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명보는 석탄 난로가 철거되는 바람에 교실을 나와 운동장에서 햇볕을 쬐며 공부하는 허베이성 초등학교 교실 풍경을 보도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햇살이 비치는 운동장이 그늘진 교실보다 따뜻하다”고 말했다. 2학년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동상에 걸려 발뒤꿈치가 모두 부르텄다”고 하소연했다. 중국 정부는 북부 지역의 주된 공기 오염원인 석탄 난방을 금지했다. 그러나 허베이·산시(陝西)·허난·산둥·산시(山西)·네이멍구 등 천연가스 공급체계가 갖춰지지 않은 농촌 지역의 석탄 보일러까지 모두 철거해 주민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교실이 추워 운동장서 햇빛 쬐며 공부하는 중국 초등학생들

    교실이 추워 운동장서 햇빛 쬐며 공부하는 중국 초등학생들

    난방 LNG 공급 수시로 중단 ‘가스 대란’에···동상환자 속출 가스 대란’을 겪는 중국에서 초등학교 교실이 너무 추워 학생들이 햇볕을 쬐고자 운동장에서 공부하는 사태까지 벌어진다는 보도가 나왔다.6일 홍콩 명보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북부 지역의 주된 오염원 중 하나인 석탄 난방을 가스나 전기 난방으로 바꾸는 정책을 추진 중이라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에 올해 베이징, 톈진, 허베이 성 지역 300만여 가구에 가스 난방시설 등을 설치하고, 석탄 난방기구의 판매나 사용을 금지했다. ‘스모그 지옥’으로 불리는 중국의 심각한 대기오염을 개선하기 위한 이 같은 급격한 조치는 심각한 액화천연가스(LNG) 부족 사태를 불러왔다. 허베이 성을 비롯해 산시, 허난, 산둥, 산시, 네이멍구 등 중국 북부 지역은 가정용 난방 LNG 공급이 수시로 중단돼 엄동설한에 추위에 떠는 가정이 속출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정부가 석탄 난방기구를 일방적으로 철거했지만, 가스나 전기 난방시설은 아직 설치하지 않아 아예 난방 수단 자체가 없는 실정이다. 허베이성 바오딩시 취양현의 여러 초등학교도 석탄 난로를 철거했지만,가스 난방시설을 아직 설치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추운 교실에서 나와 햇볕이 쬐는 운동장에 책상을 갖다놓고 공부하는 실정이다.일부 학생들은 달리기하면서 몸을 녹이고 있다. 한 학부모는 “가스 난방 공급을 시작한 지 20일 가까이 됐다고 하는데 여러 초등학교에 가스 난방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며 “그늘진 교실 안은 운동장보다 더 춥다”고 전했다. 한 초등학교 교장은 “운동장은 햇볕이 비치는 데다 학생들이 활동하면서 온기를 느낄 수 있어 대설(大雪) 절기가 다가오는 겨울이지만 운동장에서 수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이 지역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는 동상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난야워 촌에 사는 한 초등학교 2학년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동상에 걸려 발뒤꿈치가 모두 부르트고 갈라진 것을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홍콩독립 vs 류샤오보 사망 축하 ‘대자보 싸움’… 분열되는 홍콩

    홍콩독립 vs 류샤오보 사망 축하 ‘대자보 싸움’… 분열되는 홍콩

    홍콩 대학들이 최악의 대자보 논쟁에 휩싸였다. 반중파와 친중파가 벌이는 대자보 싸움이 패륜 논란을 거쳐 채용 거부 사태에 이르고 있다.●대학 내 반중파·친중파 감정싸움 사건은 개강일인 지난 4일에 시작됐다. 홍콩중문대 교정에 ‘홍콩독립’(왼쪽)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린 것이다. 현수막 옆에는 홍콩 정부를 비판하고 토론의 자유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었다. 대학 당국은 즉각 철거했다. 그러자 독립파 학생들은 이튿날 교정 내 다른 장소인 문화광장 중앙에 또다시 같은 현수막을 걸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는 ‘민주벽’ 주변은 “홍콩 독립을 위해 싸우자”라는 대자보로 도배됐다. 이는 최근 주권반환 20주년을 맞아 홍콩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독립 세력에 대해 엄중하게 경고한 것에 대한 공공연한 저항이었다. 홍콩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독립 주장은 국가 주권을 훼손하는 행위로 좌시할 수 없다”며 주동자를 처벌할 뜻을 내비쳤다. 중국 본토 출신 학생들이 주축인 친중파들은 홍콩 독립을 주장하는 현수막과 대자보를 떼어 냈다. 대자보 철거에 앞장선 본토 출신 여학생은 중국 인터넷에서 영웅이 됐다. 독립파 학생들이 몰려와 대자보를 철거하는 학생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양측의 감정싸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마침내 지난 7일 오후 홍콩교육대의 ‘민주벽’에는 아들을 잃은 홍콩 교육부 차관을 향해 “축하한다”고 비아냥대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크리스틴 추이 교육부 차관의 아들(25)이 우울증에 시달리다 투신자살을 하자 일부 극렬 독립파 학생들이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즉각 패륜 논란이 일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냉혈 인간들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독립파 대자보에 채용 거부 선언도 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이기 때문에 논란은 더 커졌다. 대학 측은 즉각 유족에게 사과하고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을 처벌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홍콩교육대 총학생회는 “표현의 자유를 행동에 옮긴 것”이라며 오히려 대자보를 쓴 학생들을 두둔했다. 그러자 홍콩 내 524개 초·중·고교 교장들이 교육대학 학생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이 중 10개 학교는 이 대학 출신 교생들을 돌려보냈다. 일부 학교는 “홍콩교육대 출신을 뽑지 않겠다”며 채용 거부 선언도 했다. 9일에는 친중파 학생들이 맞불을 놓았다. 홍콩교육대와 시티대에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죽음을 ‘축하’하는 대자보가 붙은 것이다. “류샤오보의 사망과 아내 류샤의 가택연금을 축하한다”(오른쪽)는 글이 각 대학 ‘민주벽’을 도배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인사로 최근 간암으로 옥중 사망했다. 대학과 정부 당국이 이 대자보에 대해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교육대 총학생회는 “학교와 정부가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봉합될 수 없는 갈등 표출” 우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0일 “친중과 반중으로 갈라져 더이상 봉합될 수 없는 홍콩의 갈등이 대자보 사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Made in China 안 쓴다” 뿔난 인도 불매운동 확산

    인도에서 중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무장병력이 히말라야 국경지대에서 한 달 넘게 첨예하게 대치하는 바람에 해마다 500억 달러(약 55조 7000억원) 규모의 대중 무역적자를 보고 있던 인도인들의 감정이 들끓게 된 것이다. 25일 인디아투데이와 홍콩 동방일보 등에 따르면 인도 구자라트주의 철강회사 루드라TMX는 최근 지역 내 휴대전화 대리점 400곳에 중국산 휴대전화 판매 중단을 조건으로 인도산 휴대전화 지급을 약속했다. 니킬 굽타 루드라TMX 상무는 “중국은 인도에 자주 도발하고 있다”며 “중국산 제품을 사지 않는 방법으로 그들의 경제를 정조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달 초 마하라슈트라주 뭄바이에서는 지역 교장연합회가 1900여개 학교에 중국산 문방구 사용 중단 지침을 내렸다. 델리주 뉴델리에서도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의 마노지 티와리 위원장이 지역 상인들에게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호소하기도 했다. 인도 오디샤주 상인연합회 BK 모한티 연합회장은 “국내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중국의 위협에 직면했다”며 “인도는 당장 중국과 모든 거래를 중단함으로써 중국의 흉계를 알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은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인도의 불매운동이 오히려 인도에 자충수가 될 공산이 큰 까닭이다. 실제로 인도의 대중 무역적자는 엄청난 규모지만 중국 전체 수출에서 인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특히 인도의 전력과 통신 등 기간산업에서 중국 의존도는 높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인도 전력 생산의 30%가량이 중국 시설에서 나왔고 인도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수입한 태양광 발전 설비의 87%가 중국산 제품이다. 중국은 자동차 분야의 외국인 직접투자 1위국이고 중국산 스마트폰 제품은 인도 시장의 51%를 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언론들은 ‘인도의 경제력은 중국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등의 분석 기사를 통해 “피해를 보는 것은 인도의 중산층”이라며 인도의 중국산 제품 불매운동을 평가절하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의 미친 교육열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중국의 미친 교육열

    중국의 교육열이 무섭다. 중국 학부모들이 유치원생의 해외 단기연수에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여는 등 엄청난 사교육 열풍에다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땡땡이’를 칠까봐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지켜보는 등 교육열이 거의 미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중국 상하이(上海)에 살고 있는 장페이위(張飛宇)는 겨우 다섯살짜리 어린이다. 그는 이달초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15시간의 비행 끝에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도착했다. 오는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되는 한 유치원의 여름방학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그의 어머니인 제이미 천(陳)은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보면 좋겠다. 영어로 말하는 환경에서 아이가 어떻게 놀지 궁금하지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나이가 들면 유학을 보낼 계획인데, 미리 외국 생활을 체험해 보게 하고 싶어서 이번 유치원 단기 연수에 참가하게 됐다”고 덧붙인다. 그녀가 오스틴을 택한 것은 동생이 오스틴에 살기 때문이다. 그녀는 아들이 유치원 캠프를 소화하는 동안 둘째인 딸과 함께 동생 집에 머물며 현지 관광을 하거나 골프로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중국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유치원생(3~6세)들을 위한 1~2개월짜리 단기 해외연수 캠프 비용은 2만~4만 위안(약 330만~660만원)이 보통이다. 하지만 실제로 캠프 비용은 목적지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1주일짜리 태국 치앙마이 캠프는 6000위안이고, 인도양에 있는 13일짜리 프랑스령 레이니옹 캠프는 3만 7800위안에 이른다. 해외 단기연수 캠프의 가장 인기가 있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의 순이며 방학 기간 단기 연수를 떠나는 학생 수는 10년간 50%나 증가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중국경제망 등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 학부모들은 자녀들의 해외 유학을 위해 10만 달러(약 1억 1200만원)가 넘는 돈을 기꺼이 투자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인민일보 인터넷판인 인민망이 HSBC 보고서를 인용해 전했다. 지난해 중국의 도시 근로자 1인당 연평균 소득인 6만 7569 위안인 점을 감안하면 10배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다. HSBC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학부모 중 55%는 자녀 교육을 위해 저축과 투자, 보험 등을 통해 자녀 교육비를 준비하고 있다. 그중 43%는 자녀 교육비 전용 재테크를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준으로 중국의 뜨거운 교육열을 그대로 반영한다. 특히 중국 학부모 30% 이상이 자신의 노후 준비보다 자녀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답했다. 인민망은 “중국 학부모 3분의 1은 자녀 교육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70%의 학부모가 자녀 교육을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해외유학을 떠나는 중국인 유학생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말 현재 54만 명에 이른다.  중국이 교육열은 대입 사교육 열풍에 고스란히 투사된다. 중국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대입시험 직전 두 달간 10만∼20만위안의 엄청난 규모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다. 사교육 형태는 1대 1 과외부터 종일반, 한국의 기숙학원과 비슷한 위탁반, 모의고사반 등 다양하다. 유명 입시학원의 모의고사 특강은 90분 수업 기준으로 강사에 따라 500위안부터 최고 1000위안까지 가격이 매겨진다. 실제 대입시험과 똑같이 진행되는 모의고사 특강은 비싼 가격에도 대입시험 사흘 전에도 개설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위탁반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과외, 복습 과정과 함께 숙식을 제공한다.  교육열에 비례해 ‘세계 최대의 대학 입시’로 불리는 중국판 대학수학능력시험 ‘가오카오(高考)’의 지원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올해 지원자수는 31개 성과 자치구, 직할시에서 940만 명을 넘어섰다. 가오카오는 1977년 첫 시행 때 570만명이 지원한 이후 2007년에는 1000만명을 돌파한 1010만명이 지원했다. 2008년 1050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여 2013년 912만명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2014년에 다시 939만명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15년 942만명, 2016년 940만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오카오를 앞두고 거액의 사교육비를 쏟아붓는 바람에 중국 경제가 들썩이면서 ‘가오카오 경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중국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가오카오 최종 대비 학원, 합격 기원 부적, 문구세트, 수험생에 좋은 각종 건강보조식품, 시험장 주변 호텔룸 예약 등에 아낌없이 투자한다. 1인당 가오카오 소비액이 1970년대 5마오(毛·0.5위안)에 불과했으나 1980년대 10위안, 1990년대 350위안에서 2000년대 5000위안, 2010년대 들어서는 4만위안까지 치솟았다. 가오카오 소비에는 가오카오를 앞둔 1대1일 쪽집게 과외와 심리상담, 영양식품, 시험장 인근 호텔객실, 해외여행 등의 각종 비용이 포함돼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교육열이 높다 보니 부작용도 많다. 감시카메라로 생중계해 주는 인터넷 방송 열풍이 불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 중국 신화통신 등이 전했다. NYT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실을 생중계하는 학교가 수천곳이 넘는다. 지난해 인터넷 방송 사용자가 3억 4000만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중부 허난(河南)성 위저우(禹州) 제1고등학교에선 오전 7시 1교시가 되면 교실 안에 설치된 웹캠(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캠코더)이 작동한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웹캠 렌즈가 교실 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 실시간으로 인터넷 방송을 통해 생중계된다. 이를 통해 교사나 학부모는 물론, 외부인들도 이 학교 학생들을 지켜볼 수 있다. 원밍젠(溫明建) 위저우 제1고등학교 교장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수업 태도를 좋게 하고 왕따를 없애기 위해 교실을 생중계해달라고 요구해 지난해 말 인터넷 생중계 시스템을 만들었다”며 “부모가 다른 지역에 나가 일하거나 자녀가 기숙학교에서 다니는 경우 생중계를 더 많이 요청한다”고 설명했다. NYT는 “중국의 일부 교사와 학부모는 학생들이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주목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교사나 학부모가 아니라 오락으로 학생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데 있다. 위저우 제1 고등학교 교실 생중계를 지켜본 사람은 지금까지 3만 4000명에 이른다. 이에 학생들은 “지나친 간섭이자 인권 침해”라며 교실 생중계를 반대했다. 위저우 제1고 학생들은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위저우 제1 감옥’”이라면서 “동물원에 갇힌 동물이 된 것 같다”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국의 근시 인구도 급증하고 있다. 근시 인구는 전체의 절반에 상당하는 6억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고생과 대학생의 근시율이 70%를 넘었다. 세계 1위인 중국 초등학생의 근시율은 40%에 근접해 미국 초등 학생의 10%에 비해 4배나 높다. 3~6세 아동 가운데 근시는 2.5%에 이르는 등 중국의 근시자 연령이 낮아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현상은 전자기기 화면과 조명 불량, 자세 불안정, 오랜 눈 사용시간, 눈과 물체 간 거리 근접 등에 더해 중국 가정의 극심한 교육열로 눈을 혹사하면서 근시자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윤병세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드 입장차 재확인”

    윤병세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사드 입장차 재확인”

    중국 환구망은 25일(현지시간) 전날 한·중·일 3국 외무장관 회의 이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일본 도쿄 관저를 예방한 윤병세(왼쪽)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장관)이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이번 만남에서 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재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달 말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연쇄 외교장관회의에서도 사드 문제로 얼굴을 붉힌 바 있다. RTHK홍콩방송의 뉴스포털은 25일 왕이 장관이 3국 외무장관 회의에서 “중·한·일 3개국 사이에는 이런 저런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탈북 영재 한국행, 외교 당국 총력 기울이라

    북한이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국면에서 북한의 18세 수학 영재를 비롯해 장성급 인사 등의 망명 요청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북한 주민의 탈북이 일반적으로 경제적 기회를 찾아 나선 ‘생계형’ 탈북이라면 최근 불거진 일련의 사건은 북한 중산층 이상의 엘리트 계급의 동요를 시사한다는 시각이 많다. 북한 수학 영재의 경우 홍콩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 대회에 참가했던 학생으로 알려졌다. 이 대회에 세 차례 출전한 리정열군과 두 차례 출전한 리명혁군 등 2명 중 한 명이라는 관측이 나도는 가운데 홍콩 명보(明報) 등 현지 언론들은 대회 폐막식 직후인 지난 16일 저녁 숙소에서 실종됐고 이후 한국 총영사관에 망명 신청을 했다고 보도했다. 과학기술강국을 목표로 내걸고 있는 북한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수학 영재가 탈북에 나선 것은 국제사회의 제재로 극도로 고립된 상황에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뒤에도 2047년까지는 영국 식민지 때의 정치, 입법, 사법 체제를 유지하는 특별행정구역이다. 일국양제(一國兩制) 원칙에 따라 홍콩기본법의 적용을 받지만 외교와 군사 문제는 중국 정부가 결정한다. 북·중 간은 강제송환 조약을 체결한 상황이고 탈북자의 난민 신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한·중 간 외교 갈등이 확대일로에 있다. 최근 폐막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보듯 중국은 ‘북한 껴안기’를 통해 불만을 한국 정부에 표출하고 있고 경제 보복 가능성도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과거에도 탈북자 문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중 관계가 불편하거나 북·중 관계가 개선되는 시점에서 탈북자들의 한국행이 좌절됐고 북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중국이 사드 갈등을 빌미로 인도주의적 접근을 포기하고 정치적 압박용으로 탈북자 문제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한국민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치졸한 외교에서 벗어나야 하고 우리 외교 당국은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18세 수학 영재 등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 아낌없이 주는 ‘할아버지 나무’

    아낌없이 주는 ‘할아버지 나무’

    손녀가 다니는 중학교에 수년간 수천만원의 나무를 기부한 멋쟁이 할아버지가 화제다. 주인공은 36년째 서울 중구에서 삼계탕 식당을 운영해온 남월진(68)씨. 중구 정동에 있는 창덕여중 정문을 들어서면 손바닥만 한 교정에 빼곡한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교생이 23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산책길과 정원이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여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긴다. 거의 남씨가 기부한 반송, 사과나무, 철쭉 등이다. 1980년 중구 서소문동에서 삼계탕집을 개업했다가 2001년 순화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남씨는 식당을 홍콩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류 식당으로 키워냈다. 그런 그가 작은 중학교 조경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12년 손녀가 창덕여중에 입학하면서다. 남씨는 학교 운동장 옆 언덕이 텅 빈 것을 보고 “왜 비어 있느냐”고 교장에게 물었다. “휴식공간과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는 “나무를 심자”고 건의했다. 고향 울산에 있는 조경 농장에 전화해 반송·사과나무 150그루, 철쭉 3100그루를 주문했다. 비싼 나무값 탓에 시교육청, 시청, 농협중앙회를 발로 뛰며 나무를 구해왔다. 문을 닫은 공원의 나무도 옮겨 심었다. 이 학교 조경은 남씨 손에서 거듭난 셈이다. 남씨는 “갓 싹을 틔운 나무들이 학생들과 함께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며 “손녀와 친구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게 할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주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로 산책로도 꾸며졌고, 분수 정원에 관상용 물고기도 들였다. 정원에는 음향시설과 운동기구도 설치됐다. 남씨의 남다른 노력과 학교 측의 관심에 힘입어 창덕여중은 2012년 서울시 최우수 조경학교로 선정됐다. 남씨는 “손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됐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손녀가 창덕여중을 들어갈 때쯤이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창덕여중에 5년째 나무심는 삼계탕집 남월진 사장

    창덕여중에 5년째 나무심는 삼계탕집 남월진 사장

    손녀가 다니는 중학교에 수 년간 수천만 원의 나무를 기부한 멋쟁이 할아버지가 화제다. 주인공은 36년째 서울 중구에서 삼계탕 식당을 운영해온 남월진(68)씨. 중구 정동에 있는 창덕여중 정문을 들어서면 손바닥만한 교정에 빼곡한 나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교생이 230여명에 불과한 작은 학교지만 산책길과 정원이 나무와 꽃으로 둘러쌓여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고즈넉함이 물씬 풍긴다. 거의 남씨가 기부한 반송, 사과나무, 철쭉 등이다. 1980년 중구 서소문동에 삼계탕집을 개업했다가 2001년 순화동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남씨는 식당을 홍콩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는 그래서 외국 관광객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한류 식당으로 키워냈다. 그런 그가 작은 중학교 조경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12년 손녀가 창덕여중에 입학하면서다. 남씨는 학교 운동장 옆 언덕이 텅 빈 것을 보고 “왜 비어 있느냐”고 교장에게 물었다. “휴식공간과 놀이 공간으로 조성하려 한다”는 대답을 듣고 그는 “나무를 심자”고 건의했다. 고향 울산에 있는 조경 농장에 전화해 반송·사과나무 150주, 철쭉 3100그루를 주문했다. 비싼 나무값 탓에 시교육청, 시청, 농협중앙회를 발로 뛰며 나무를 구해왔다. 문을 닫은 공원의 나무도 옮겨 심었다. 이 학교 조경은 안씨 손에서 거듭난 셈이다. 남씨는 “갓 싹을 틔운 나무들이 학생들과 함께 자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했다”며 “손녀와 친구들이 마음 편하게 학교에 다니고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게 할아버지의 마음”이라고 말했다. 학교에는 주변 공사장에서 가져온 벽돌로 산책로도 꾸며졌고, 분수 정원에 관상용 물고기도 들였다. 정원에는 음향시설과 운동기구도 설치됐다. 남씨의 남다른 노력과 학교 측의 관심에 힘입어 창덕여중은 2012년 서울시 최우수 조경학교로 선정됐다. 남씨는 “손녀는 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됐다”며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손녀가 창덕여중을 들어갈 때 쯤이면 사과나무에 사과가 열릴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부고]

    ●홍창기(전 경기과학고 교장)씨 별세 현규(전 동화은행 지점장)현준(정화폴리테크공업 대표이사)현익(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씨 부친상 이정구(정화폴리테크공업 회장)석기룡(전 현대엘리베이터 연구소장)씨 장인상 11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31)787-1510 ●박찬국(전 코닝코리아 대표이사)씨 별세 진우(연세대 신소재공학부 부교수)세정(전 랄프로렌 홍콩 디렉터)씨 부친상 이용진(맥킨지&컴퍼니 시니어 파트너)씨 장인상 10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2)2227-7572 ●김성훈(기업분쟁연구소 조정심의위원장·전 국회의원 보좌관)씨 모친상 11일 양산장례식장, 발인 13일 오전 7시 (055)366-4440 ●김광호(대구시조각가협회장)진호(동현산업개발 대표이사)철호(자영업)민호(스포티비뉴스 편집국 이사)씨 부친상 11일 대구 파티마병원, 발인 13일 오전 7시 (053)956-4448
  • [인사]

    ■대법원 ◇전보 <고등법원장>△대전고등법원장 지대운△광주고등법원장 유남석△특허법원장 이대경<지방법원장·가정법원장>△수원지방법원장 이종석△춘천지방법원장 김명수△대전지방법원장 안철상△청주지방법원장 신귀섭△대구지방법원장 황병하△부산가정법원장 문형배△울산지방법원장 이기광△광주지방법원장 김광태△전주지방법원장 장석조△제주지방법원장 이승영△대전가정법원장 이내주△광주가정법원장 장재윤△인천가정법원장 안영길<고등법원 부장판사>△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유해용△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 김현석△사법연수원 수석교수 강승준△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성낙송△서울고법 부장판사 강영호 성기문 조경란 조해현 최상열 김주현 박형남 김창보 홍승면(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권기훈 심준보(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 김승표 이원범 정선재 배형원 윤종구 천대엽 서경환 한규현 정준영 임성근 윤준 김흥준 이동원 김재호(춘천지법 소재지 근무)△대전고법 수석부장판사 허용석△대전고법 부장판사 백강진 이승훈 윤승은 이동근 이승한(청주지법 소재지 근무) 최인규△대구고법 부장판사 성수제 김문관△부산고법 수석부장판사 김형천△부산고법 부장판사 김주호 김찬돈(부산지법 부장판사) 박효관 김종호(창원지법 소재지 근무) 정창호 권순형(창원지법 소재지 근무) 최인석△광주고법 수석부장판사 이창한△광주고법 부장판사 노경필 박병칠 마용주(제주지법 소재지 근무·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 구회근△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김환수△특허법원 부장판사 김우수 박형준 오영준△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신광렬△서울중앙지법 파산수석부장판사 김정만△인천지법 수석부장판사 김대웅△수원지법 수석부장판사 배준현△대전지법 수석부장판사 차문호△부산지법 수석부장판사 박종훈△광주지법 수석부장판사 최수환<지방법원 부장판사>△수원지법 부장판사 손왕석△광주지법 부장판사 김재영◇겸임 및 직무대리△서울고법 부장판사 김기정(법원도서관장 겸임)△서울고법 부장판사 조병현(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겸임)△대구고법 부장판사 사공영진(대구지법 부장판사 겸임)△서울고법 부장판사 허부열(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리)△서울고법 부장판사 이진만(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 직무대리)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국장 김영관△방송기반국장 배중섭◇국장급 고용휴직△정보통신정책연구원 김재영 ■국방부 ◇일반직 고위공무원 승진 임용△국방대 교육파견 한현수 ■특허청 △특허심판원 심판장 서을수 ■금융감독원 ◇선임국장 직위부여△금융혁신국장 겸 선임국장 이준호△불법금융대응단장 겸 선임국장 정성웅◇국·실장 직위부여 <사무소장>△동경 고인묵<실장>△금융상황분석 이진석△인재개발원 이창욱△비서 이수한△워싱턴주재원 정신동△하노이주재원 김소연△IT검사 김윤진△자산운용감독 오용석△기업공시제도 이화선△회계제도 윤동인△분쟁조정 박성기△보험사기대응단 송영상<국장>△은행감독 구경모△특수은행 오승원△저축은행감독 윤창의△상호여전감독 김태경△상호금융검사 임철순△자본시장조사2 최윤곤<지원장>△부산 신기백△대구 이종욱△인천 황인하△전주 김진우△제주 남택준△춘천 장웅수△충주 유영인△강릉 신상균<부센터장>△금융중심지지원센터 임상규◇국실장 전보 <국장>△기획조정 오영석△총무 이병삼△국제협력 임세희△공보실 박석곤△거시감독 신원△제재심의 이효근△법무실 안세훈△생명보험 오홍주△손해보험 이현열△보험준법검사 이성재△일반은행 민병진△은행준법검사 하은수△외환감독 류태성△신용감독 장복섭△자본시장감독 장준경△금융투자 한윤규△자산운용 류국현△금융투자준법검사 김성범△기업공시 김도인△자본시장조사1 박은석△특별조사 강전△회계조사 김상원△금융소비자보호총괄 설인배△금융교육 이봉헌△은행·비은행소비자보호 임민택△보험소비자보호 김철영△금융민원센터 조철래△감사실 이문종△감찰실 김동건<사무소장>△북경 조운근<지원장>△광주 김재룡△대전 김현열△창원 송윤진<실장>△정보화전략 황성관△홍콩주재원 박연화△보험감리 김동성△연금금융 권오상△서민·중소기업지원 김수헌△여신전문검사 정영석△금융투자소비자보호 이갑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국제원자력안전학교장 이제항 ■서울미디어그룹 △대표이사 부사장 방두철◇미래전략실△기획마케팅부장 이종은△경영지원부장 김성하◇이뉴스투데이△편집국장 서동삼△마케팅국장 진영석△산업1부장 김봉연△경제부장 박재붕△산업2부장 김영삼△금융부장 김희일◇독서신문△편집부국장 엄정권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 이상찬 ■강릉원주대 △대외협력부총장 송성재△대학원장 남궁용△교무처장 최재식△학생처장 이형원△기획협력처장 박덕영△산학협력단장 양은익△산업대학원장 이창수△정보전산원장 문정호△도서관장 민남식△입학관리본부장 이경숙△취업지원본부장 조태동△기초교육원장 안필규△평생교육원장 김홍철△어학원장 류승구△해양생물연구교육센터장 이상민 ■연세대 △Y-IBS과학원장 천진우△신문방송편집인 김용호△글로벌인재학부장 서홍원 ■국민대 △기획부총장 임홍재△교학부총장 이채성△총무처장 이호선△기획처장 정승렬△국제교류처장 윤경우△입학처장 박태훈△사회과학대학장 조경호△법과대학장 김택주△조형대학장 하준수△자연과학대학장 조영석△경영대학장 이태희△전자정보통신대학장 김동명△건축대학장 이공희△자동차융합대학장 김정하△창업지원단장 이건상△공학교육혁신센터 소장 최석환 ■명지대 △부총장(교학담당) 이종명△부총장(행정담당·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겸임) 김도종△대학원장(학술연구진흥위원회 위원장 겸임) 박천오△법과대학장 홍명수△공과대학장(산업기술연구소장 겸임) 양진승△예술체육대학장 김정명△문화예술대학원장 김차규△교목실장 구제홍△기획조정실장 김성철△교육지원처장 임연수△입학처장 노승종△인문캠퍼스 학생경력개발처장(사회봉사단장 겸임) 김기영△사무지원처장 방선오△산학협력단장 서동선△명지미디어센터장 이무성△자연캠퍼스 생활관장 박종대△공학교육혁신센터장 이기세 ■NH선물 △부사장 지화철 ■대교CNS △대표이사 최대현
  • [부고]

    ●김익호(전 경기도 농정해양국장)씨 부친상 22일 대구 송현효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53)621-4949 ●최화경(브리지텍 경영본부장)씨 부친상 김광렬(홍익대 교수)소순영(생명보험협회 홍보부장)씨 장인상 22일 전북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63)250-2452 ●주균(전 한일리스 홍콩지사장)씨 별세 도영(키움증권 사원)영선(SK건설 대리)씨 부친상 이승윤(IBK기업은행 과장)씨 장인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410-6915 ●손명희(LIG시스템 과장)김재근(원광한의원 원장)김상권(이패스 대표이사)씨 모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52 ●이종현(대왕중 초대 교장)씨 별세 의한(강원대 사범대학장)씨 부친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3410-6912 ●김선(전 한양여대 영상디자인과 교수)씨 별세 오연(미국 거주작가)씨 부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5 ●윤준용(서울 영등포구의회 부의장)씨 장모상 22일 전남 순천 정원장례식장, 발인 24일 오전 7시 20분 (061)754-4444 ●박유규(서울 영등포구의회 의원)씨 장모상 22일 경남 거창장례식장, 발인 24일 (055)944-4444 ●강세훈(MBN 전주 주재기자)씨 장인상 22일 전주 효자장례타운, 발인 24일 오전 11시 (063)227-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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