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사람들/ 부국·광화문팀등 외곽 포진
지난 96년 12월28일.인사동 S음식점에서 신한국당 서상목 백남치 김영일 박성범 황우여 정형근 의원 등 6명이 이회창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당내 첫 모임을 갖는다.뒤에 정의원 대신 하순봉 변정일 의원이 가세,이들은 이른바 ‘7인방’으로 불리며 ‘이회창 사람들 1세대’를 이룬다.이후 ‘이회창 사람들’은 급속 확대·분화해 3세대에 이르고 있다.
초기에는 황낙주 양정규 황명수 목요상 의원 등 중진들이 합류해 중심을 잡고,이우재 김문수 홍준표 안상수 의원등 초선들은 대세론 확산에 기여한다.외부에서는 종로구이마빌딩에 있던 ‘이마팀’이 꾸려져 이흥주 삼성전자고문,황영하 전 총무처장관,유경현 전 평통사무총장,안동일·진영 변호사 등이 모임을 갖고 있었다.고흥길 전 중앙일보 편집국장을 비롯,구범회 윤창중 이병효씨 등 언론계 출신들도 여기에 속속 편입된다.
또한 조언그룹에는 오성환 전 대법원판사,배도 효성그룹고문,이강혁·안병만 전 외대총장,최상룡 고려대 교수,최평길 연세대 교수,친동생인 이회성 에너지경제연구원 고문 등이 포진했다.이 팀들은 뒤에 ‘부국팀’‘도화동팀’‘광화문팀’ 등으로 확대·통폐합되며 재편된다.
이들은 이회창 대세론이 형성돼 착근되기까지 ‘배역’을 바꿔가며 많은 공헌을 한다.그러나 상당수는 현재 ‘핵심’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위치에 서 있다.이는 업무·사안별로 일을 맡기고 ‘자리’ 위주로 사람을 쓰는 ‘이회창식 용인술’에 기인한다.그런 만큼 이회창 후보가 총재직에 오른 지난 98년부터 당직에 기용된 인사들은 모두 오늘의 이회창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경선캠프에서는 신경식 윤여준 김무성 정병국 이병석 의원,유승민 전 여의도연구소장,양휘부 이종구 이병기 박진특보 등이 활약해 왔다.이밖에 젊은 ‘공보팀’도 이 후보의 일거수일투족을 다듬는 실무를 뒷받침하고 있다.
멤버의 면면이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혁신위의 외부인사를 비롯,경기고·서울대법대 출신 인사들이 주축이라는 ‘100인 위원회’ 등 외곽조직의 존재설이 떠돌며 비공식 자문그룹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지운기자 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