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홍수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장수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식품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 3·1운동
    2026-01-0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865
  •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점점 더 청순해지는 미모’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점점 더 청순해지는 미모’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한수아 돌발발언, “수중 촬영 중 바다에 몰래 소변봤어요”

    [포토] ‘연애의 기술’ 한수아 돌발발언, “수중 촬영 중 바다에 몰래 소변봤어요”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서지석, “낮에는 홍수아, 밤에는 한수아가 이상형”

    [포토] ‘연애의 기술’ 서지석, “낮에는 홍수아, 밤에는 한수아가 이상형”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한수아, “서지석, 순수하고 자상해”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한수아, “서지석, 순수하고 자상해”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홍수아-서지석-한수아, “‘연애의 기술’ 보러오세요∼”

    [포토] 홍수아-서지석-한수아, “‘연애의 기술’ 보러오세요∼”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이수성감독, “두 수아, 차기작 주인공에 이미 캐스팅∼”

    [포토] ‘연애의 기술’ 이수성감독, “두 수아, 차기작 주인공에 이미 캐스팅∼”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한수아, ‘몸매 드러낸 블랙 시스루’

    [포토] ‘연애의 기술’ 한수아, ‘몸매 드러낸 블랙 시스루’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외모는 안보는데 서지석같은 남자 좋아”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외모는 안보는데 서지석같은 남자 좋아”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서지석, “두 ‘수아’ 때문에 행복했다”

    [포토] ‘연애의 기술’ 서지석, “두 ‘수아’ 때문에 행복했다”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VS 한수아 몸매 대결’

    [포토] ‘연애의 기술’ ‘홍수아 VS 한수아 몸매 대결’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포토] 홍수아· VS 한수아, ‘연애의 기술은 이런 것∼’

    [포토] 홍수아· VS 한수아, ‘연애의 기술은 이런 것∼’

    영화 ‘연애의 기술’(이수성 감독)의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가 23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렸다. 이날 언론시사 및 기자간담회에는 ‘연애의 기술’을 연출한 이수성 감독과 배우 서지석, 홍수아, 한수아가 참석해 소감을 전했다. ’연애의 기술’은 멋진 훈남 태훈(서지석 분)에게 꽂힌 두 베프 수진(홍수아 분)과 지영(한수아 분)의 작업배틀을 그린 섹시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개봉은 오는 30일.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 ‘내 마을 관광지化’ 주민 열정 1년 끌던 투자자 마음 열었다

    ‘내 마을 관광지化’ 주민 열정 1년 끌던 투자자 마음 열었다

    농촌 주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마을을 관광지로 꾸미기 위해 거액의 민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선언한 ‘제2 새마을운동의 부활’과 일맥상통하는 전형적인 마을 공동체 사업으로 주목된다. 경북 군위 한밤마을운영위원회는 23일 “전통 마을인 부계면 대율1, 2리(속칭 한밤마을)를 전국 최고 수준의 사계절 체험형 마을로 개발하기 위해 민간자본 18억원을 유치해 각종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주민들이 잘 사는 마을 조성을 위해 민자 유치에 성공한 전국 첫 모범 사례다. 민간 투자자는 대구 달서구에서 어린이교육박물관(온박물관)을 운영하는 박태익(54·여)씨다. 박씨는 당초 7억여원 정도를 투자해 다문화박물관을 지을 후보지를 물색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한밤마을 주민들이 1년여에 걸쳐 박씨를 설득한 끝에 금액을 11억원이나 더 늘려 투자를 이끌어 냈다. 1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밤마을’은 팔공산 자락 북쪽 끝머리에 위치한 부림 홍씨 집성촌으로 220가구 주민 430여명이 오손도손 살고 있다. 주민의 90% 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이 마을 6.5㎞에 걸친 돌담길은 1930년 대홍수 때 주민들이 쌓은 것으로, 문화재청과 한국관광공사에 의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담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을에는 산수유 열매가 익어 마을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든다. 마을 앞 1㎞에 이르는 돌방천(높이 2m 안팎)도 결코 흔치 않은 풍경이다. 최근에는 TV 오락 프로그램 ‘1박 2일’을 촬영했으며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마을운영위와 박씨는 우선 마을의 흉물인 러브호텔을 매입해 객실 20개를 갖춘 관광객 체류형 숙박·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리모델링했다. 또 100~130년 전에 지어진 부림 홍씨 종택과 전통 가옥 10여채 등 방치되고 있던 가옥을 말끔히 수리해 전통문화, 국악, 종가 음식, 서당, 찜질, 고택 스테이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고대 및 근대 생활사 전시관도 짓고 있다. 10~30년 전에 전통 가옥을 부분적으로 개량한 일부 주민은 이 사업에 동참하기 위해 다시 전통 가옥으로 바꾸고 있다. 박씨는 지난 20여년간 중국, 일본, 인도, 태국, 네팔, 티베트 등지에서 수집한 의류·장신구·생활용품 등 1000여점을 전시하기 위한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 추가 투자도 계획하고 있다. 한밤마을운영위원들은 “마을의 목표를 주민 스스로 성취해 보자는 뜻에서 민간 투자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냈다”면서 “앞으로 관광객 증대 사업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전국 최고의 부자 마을, 명품 마을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자랑했다. 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낙동강 중류까지 녹조” “9兆 쓰고도 공업용수”… 난타당한 4대강

    [국감 하이라이트] “낙동강 중류까지 녹조” “9兆 쓰고도 공업용수”… 난타당한 4대강

    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지방유역환경청 국정감사에서는 4대강 유역의 수질 악화가 쟁점으로 부각됐다. 야당은 4대강 수질 악화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의 부작용 때문이라며 책임론을 제기했고, 여당은 주로 낙동강 유역의 수질 악화를 지적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명숙 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명박 정부와 단절하는 모습을 보일 것을 주장했다. 한 의원은 4대강 사업 이후 녹조가 증가한 데 대해 “낙동강은 4대강 사업 이전인 2008년에는 조류 조사를 안 했고 녹조가 없었지만, 2008년 이후 녹조가 심각해졌다”면서 “녹조라테, 가을 녹조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녹조 발생으로 인한 문제가 심각했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그러면서 지난 1월 발표된 감사원 감사 결과를 인용, “보 설치 유무에 따라 조류 농도가 낙동강 전 구간에서 1.3배에서 2.4배까지 증가했고, 특히 낙동강 중류인 칠곡보는 2.4배, 강정보는 1.5배, 달성보는 1.6배에 달했다”면서 “낙동강 중류로의 녹조 확산은 예견된 재앙”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의원은 이어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체류 시간의 증가가 녹조가 늘어난 이유라는 증거자료가 다 나와 있다”면서 “박근혜 정부는 이를 하루속히 인정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당 장하나 의원은 4대강 사업 이후 발생한 녹조 해소를 위한 의사 결정과정에서 일어난 정부 정책의 난맥상을 꼬집었다. 장 의원은 9월 11일 개최된 제7차 낙동강 수질관리협의회 회의에서 환경청은 방류 입장을, 국토교통부와 홍수통제소는 반대 입장을 보인 내용을 거론하며 “4대강 사업으로 수질이 악화되자 댐의 식수 방류를 결정한 것이나, 댐 방류를 요청받자 댐의 용수부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4대강 사업이 모순 덩어리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 새누리당도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수질 악화에 대해서는 야당과 한목소리를 냈다.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정부는 1999년부터 낙동강물관리종합대책에 9조 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지만 수질은 공업용수 수준”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환경부의 낙동강 주요 지점 수질자료를 인용, “지난해 낙동강 중·하류 지역 수질은 생화학적산소요구량(BOD) 2~3㎎/ℓ 수준이었고, 화학적산소요구량(COD)은 공업용수 수준인 7㎎/ℓ 이하에서 정체됐다”고 밝혔다. 같은 당 이종훈 의원은 “2008년 골프장 폐수로 물고기 3000마리가 폐사했다”면서 “골프장 농약 등으로 인한 ‘비점오염’(유동적인 오염원으로 인한 오염)이 수질오염의 67.5%를 차지하며 4대강 수질 악화의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이제부터라도 환경부가 4대강 주변 관리를 목숨 걸고 한다는 마음으로 지키지 않으면 진짜 4대강 오염이 심각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안철수 생존법은 ‘우생마사’

    안철수 생존법은 ‘우생마사’

    ‘우생마사’(牛生馬死·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 안철수(얼굴) 무소속 의원이 종종 거론하고 있는 사자성어다. 홍수가 나서 소와 말이 물에 빠지면 말은 물살을 거스르며 열심히 헤엄치다가 결국 죽게 되지만, 소는 물살에 몸을 맡겨 떠밀려 가는 듯하지만 강변 쪽으로 조금씩 헤엄쳐 마침내는 살아남게 된다는 뜻이다. 안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소개하며 “상황이나 민심의 흐름을 거스르려고 혼자 발버둥치면 빠져 죽는 것이고 민심의 강에 몸을 맡기고 뚜벅뚜벅 제 할일을 하면 언젠가는 저절로 (강물이) 저를 강변으로 데려다줄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우생마사는, 독자세력화를 선언한 이후 세 결집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에 개의치 않는다는 설명으로 들린다. 주변의 시선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겠다는 뜻이다. 안 의원은 오는 30일 재·보궐 선거에서 안 의원 측 사람들을 내세워 독자세력화를 위한 발판을 만들려고 했지만 재·보궐 선거가 경기 화성갑, 경북 포항 남·울릉 등 2곳으로 축소되면서 후보를 내지 못했다. 또 여야가 격돌하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무소속의 한계에 부딪혀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안 의원 측은 내년 6월 지방선거와 7월 재·보선 등을 목표로 세력화 작업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국감이 끝나는 11월부터는 지역 토론회 재개 등을 통해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계획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빛을 밝히자 문명이 빛났다

    빛을 밝히자 문명이 빛났다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제인 브록스 지음/박지훈 옮김/을유문화사/380쪽/1만 5000원 ‘인간이 만든 빛의 세계사’는 인간이 만들어낸 빛이 삶의 양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살핀 탐사기이자 역사서이다. 18세기까지 사람들이 경험한 빛은 고대 로마시대의 빛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까지 램프 제작 기술에 별 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램프의 밝기를 획기적으로 증진시킨 곳은 18세기 후반 유럽의 연구실이었다. 스위스 과학자 프랑수아 피에르 아미 아르강이 개발한 램프는 이전에 쓰던 램프의 오렌지색에 비해 불빛이 ‘하얗고, 생생하며, 눈부셨다’. 그의 램프는 일반 램프보다 10배나 더 밝아 등대의 항로 표지로 쓰였다.아르강 램프는 너무 밝아 눈이 감당하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여서 넓적한 운모, 장식용 유리 등으로 불꽃을 가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램프나 전등에 씌우는 갓의 시초였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에서 새로운 조명 수단으로 가스불이 등장했다. 독일 출신의 영국 이민자 프레데릭 앨버트 윈저가 중앙 거점에서 가스를 생산해 관을 통해 가로등, 상업시설, 웨스트민스터의 가정집 등에 가스를 공급했다. 사람들은 가스불을 이렇게 예찬했다. “한여름의 대낮처럼 밝으면서도 달빛처럼 부드러워 눈을 편안하게 했다.” 가스불은 첫선을 보이자마자 런던 전체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저녁 시간을 여가에 할애하고 돈도 더 썼다. 아이쇼핑이 취미로 자리잡으면서 저녁 시간은 소비자들의 시간으로 탈바꿈했다. 1870년대에 러시아의 발명가 파울 야블로치코프가 전기를 이용한 아크등을 개발했다. 아크등은 너무 밝아서 가로등을 45m 간격으로 배치해도 충분히 거리를 밝힐 수 있었다. 그러나 빛이 지나치게 강렬해 빛의 세기를 낮추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그렇다면 촛불 10~20개에 맞먹는 빛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802년 영국왕립협회에서 험프리 데이비가 발갛게 달군 백열 필라멘트를 선보이며 백열등 개발의 서막을 열었다. 그리고 77년이 흐른 1879년 12월 31일 밤 미국 워싱턴주 멘로 파크에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에디슨이 그의 연구실, 사무실, 집에 설치한 수십개의 백열등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딸깍’ 스위치를 올리는 소리와 함께 진공 유리구 속에 나타난 빛은 불꽃도 나타나지 않고 달래거나 어를 필요도 없었다. 빛은 더 이상 떨리지도 않고 기울지도 않았고 냄새가 나거나 촛농을 떨어뜨리지도 않았다. 산소를 소모하지도 않았고 공장에서 쓰는 걸레나 건초 더미에 불이 붙을 우려도 없었다. 아이 혼자 불 옆에 있어도 괜찮았다. 백열등의 등장은 사람들의 생활을 혁신적으로 바꿨다. 밤늦게 작업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고…. 혜택이 셀 수 없이 생겨났지만 부작용도 컸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먹고 마시는 ‘노는 문화’는 불면증, 비만 등 현대병을 유발했다. 오늘날은 백열등이 더 환하고 전기를 덜 쓰는 발광다이오드(LED)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하지만 이젠 빛의 홍수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인공조명이 넘쳐나 심신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지경이 됐기 때문이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중)

    ■한강 잔혹사 무동·백마도 10여개 섬, 택지 조성 위해 훼손 ‘양화진의 절경’ 선유봉, 깎이고 깎여 ‘섬’ 신세로 한강에는 10여개의 크고 작은 섬(하중도)들이 명멸(明滅)했다. 한강 2000년사 속에서 실재했던 뭇 섬들은 불과 50년 전에 뭍으로 변하거나 사라졌다. 큰 섬을 꼽으라면 팔당 하류부터 당정섬(미사리 섬), 석도(무학도), 잠실도(잠실섬), 뚝섬, 저자도, 율도(밤섬), 여의도, 난지도를 들 수 있다. 부리도, 무동도, 반포도(서래섬), 노들섬(중지도), 백마도도 당당했다. 이 중 석도, 무동도, 부리도, 저자도, 백마도는 한강변을 메워 택지를 조성하는 모래로 쓰이면서 파괴됐다. 밤섬과 당정섬도 같은 운명이었지만 20여년 만에 되살아나고 있다. 잠실도와 뚝섬, 서래섬, 여의도, 난지도는 이름만 섬(도)일 뿐 육지가 됐다. 밤섬과 함께 ‘강의 기적’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당정섬은 경기 하남시 산곡천과 한강이 만나는 팔당대교 하류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있다. 석도는 고덕천과, 잠실도와 부리도는 성내천과 탄천이 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각각 형성됐다. 잠실도와 부리도는 별개의 섬이었지만 합쳐져 육지가 되었다. 무동도는 탄천이 흘러나오는 지금의 청담동쯤에 있었다. 반포 서래섬은 이름이나마 남았지만 무동도는 무자비한 채취에 흔적도 없다. 저자도는 청계천과 중랑천, 여의도와 밤섬은 만초천(욱천)과 봉원천, 난지도는 한강 이남의 안양천과 한강 이북의 홍제천과 불광천이 맞닿는 곳에 있었다. 노들섬은 1917년 한강인도교(한강대교) 건설 당시 이름이 없던 모래 언덕에 둑을 쌓으면서 만들어졌다. 노들이란 ‘백로(鷺)가 노닐던 징검돌(梁)’이라는 뜻이며 강 건너편 노들나루(노량진)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오페라하우스를 건립키로 했으나 한강대교를 오가는 차량이 내는 소음과 예산문제로 백지화되고 나서 텃밭으로 쓰이고 있다. 난지도는 이집트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33배나 더 큰 거대한 쓰레기 산이 됐다. 난초와 지초 향기가 진동하던 섬이 쓰레기 침출수의 악취를 풍기는 인공산이 된 셈이니 비극이 따로 없다. 백마도는 김포대교 아래 모래섬이었지만 신곡수중보 공사로 가라앉았다. ‘한강 잔혹사’는 섬을 없애기도 했지만 새로운 섬을 생성시키기도 했다. 선유도와 세빛둥둥섬이 새롭게 태어난 인공 섬이다. 선유도는 본래 높이 40m의 선유봉이었다. 지금의 합정동 절두산(잠두봉)과 마주 보고 서 있었으며 18세기 겸재 정선의 실경산수화 ‘선유봉’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양화진의 절경이었다. 한강제방 축조와 여의도 윤중제 조성용 골재로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해 결국 섬 신세가 됐다. 1390억 원을 들여 반포한강공원에 지어진 3채의 세빛둥둥섬은 세계최대의 인공 섬이다. 강물에 휩싸여 떠내려가지 않도록 쇠사슬로 고정한 유리성(琉璃城)이다.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앤 자연섬에게 바치는 레퀴엠(진혼곡)인지도 모른다. 자연을 훼손한 대가가 얼마나 비싼지 생각게 한다. ■뚝섬 과거사 경상·충청·강원도 연결하는 도성 동남쪽 관문 다리 건너고 배로 한강 넘어야 닿아 섬으로 인식 한강 제방이 생기기 전 한강 강폭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었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완료된 1987년 이후 한강의 강폭은 최대 900m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강제방이 없었던 1960년대 이전의 한강은 서울~원산 간 경원선(지금의 중앙선 구간) 철길이 경계선을 이뤘다. 홍수 때면 여의도, 이촌, 신사, 잠원, 반포, 압구정, 뚝섬, 잠실 등 한강 양안이 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홍수기 한강의 넓이는 평균 1800~2000m였고, 잠실섬을 중심으로 현재의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석촌호수 남단까지를 측정했을 때 최대 3500m에 이르렀다. 갈수기에는 한강대교를 기준으로 노량진과 흑석동 쪽에 붙어 흐르는 50~100m의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백사장이었다. 옛사람들은 왜 뚝섬을 섬으로 여겼을까. 긴 다리를 건너고 배를 타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뚝섬은 한양인 듯하지만 한양이 아니었다. 도성 밖 성저십리(城底十里)의 경계지점이자 도성의 동남쪽 관문이었다. 1751년에 제작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門分界之圖)를 보면 뚝섬을 섬으로 그리지 않았다. 다만 살곶이다리를 건너 뚝섬, 광나루, 송파나루로 향하는 지점에다 ‘뚝섬’이라는 지명을 적어 놓았다. 중랑천을 건너서 다시 배를 타고 한강을 넘어 경상도, 충청도, 강원도로 연결되는 뚝섬을 섬으로 여긴 까닭이다. 당시 강원도 가는 길은 경기도 광주를 거쳐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충청도와 경상도를 가려면 남한강 줄기를 따라 내려갔다. 3도의 물산이 모이는 광나루와 송파나루가 흥청대기 마련이다. ‘광주 가는 나루’라고 해서 광나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양도성을 나서면 광희문~왕십리를 거쳐 개천(청계천)과 중랑천이 한강본류와 만나는 살곶이다리(箭串橋)를 건너야 뚝섬에 닿았다. 함흥에서 도읍으로 돌아오던 태조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에게 화살을 날렸던 바로 그 장소이며 조선에서 가장 긴 돌다리였다. 중랑천을 따라 도봉천과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동부간선도로를 생각해 보면 옛사람들이 뚝섬을 섬으로 여길 만했다. 뚝섬(纛島)이라는 지명은 태조 때 왕을 상징하는 깃발인 독기(纛旗)가 떠내려온 장소라고 하여 생겼다. 처음에는 독도라고 부르다가 이후 둑섬, 둑도, 뚝도를 거쳐 뚝섬으로 굳어졌다. 장안평이나 전관평(살곶이벌)처럼 넓은 벌을 형성하는 비옥한 땅이어서 한성부의 배후 농업지대 역할을 했다. 마장동(馬場洞)이나 면목동(面牧洞)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을 키우고 사냥을 하던 드넓은 목장이었다. 이곳에 경마장과 골프장이 생겼다가 없어지고 현재의 서울숲이 조성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뽕밭 변천사 홍수방지 제방쌓기서 택지·도로 조성으로 변질 잠실섬·부리도 육지화… 금싸라기 땅으로 개발 한강의 섬은 어떻게 없어졌으며 강변 백사장은 어디로 다 사라졌을까. 물난리에서 벗어나기 위한 제방을 쌓는 것이 1960년대 제1차 한강 개발의 주목적이었지만 차츰 택지조성과 제방 둑에 도로를 개설하는 사업으로 목적이 변질됐다. 이름하여 공유수면 매립공사로 불린 한강 제방쌓기가 이권사업으로 등장한 탓이다. 1960~1970년대 동부이촌동, 흑석동, 서빙고, 반포, 압구정동, 구의, 잠실 등이 주 대상지역이었다. 국유하천인 한강을 막아 제방을 쌓고 택지를 조성했다. 모래와 골재는 한강에 지천으로 널린 모래섬과 강변 암벽을 폭파해 메웠다. 그 결과 섬은 사라졌고, 한강제방에는 강변도로와 올림픽대로가 생겼고, 한강변은 아파트 단지가 됐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 공유수면 매립공사를 수주한 건설업체들은 재벌이 됐다. 잠실섬은 본래 광진구 자양동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가 ‘아득한 옛날’ 홍수 때 허리가 잘려나가 섬이 됐다고 한다. 이때 새로 흐르게 된 북쪽 물길이 신천(新川)이다. 또 잠실섬 서쪽에 부리도가 있었는데 갈수기에는 하나의 섬이었다가 강물이 불면 딴 섬이 되었다. 행정적으로 잠실섬은 고양군 뚝섬면, 부리도는 광주군 중대면으로 갈렸다. 잠실에는 16세기 무렵까지 뽕나무가 무성했지만 잦은 홍수로 피폐해졌다. 지금의 서초구 잠원동이 잠실의 역할을 대신했다. 1960년대 말까지 서울의 끝은 뚝섬과 광나루였다. 잠실섬의 존재를 거의 인식하지 못했다. 1969년 경기도 광주에 조성한 300만평 규모의 광주대단지(성남)에 집단이주한 주민 10만명의 교통불편 민원과 서울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강북의 기존 시가지와 광주대단지를 연결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잠실 공유수면 매립과 잠실섬의 육지화, 잠실대교의 개설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됐다. 1971년 4월 한강 남쪽 본류인 삼개나루(삼전도) 쪽 흐름을 차단하는 물막이공사가 완료됐다. 잠실섬이 뭍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북쪽 지류인 신천 쪽을 막지 않고 남쪽 본류인 삼전도 쪽을 막은 것은 택지를 더 많이 조성하기 위해서다. 서울에서 유일한 호수인 석촌호수는 이때 막은 강물이다. 롯데는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대비한다는 명목 아래 이 땅에 동서 390m, 남북 265m, 바닥면적 합계 56만㎡의 엄청난 건물을 지었다. 이렇게 탄생한 잠실 롯데월드는 여의도 63빌딩이나 삼성동 코엑스보다 4배 가까이 큰 덩치를 자랑한다. 석촌호수를 가로지르는 송파대로 좌우 동호(東湖)와 서호(西湖) 중 서호를 20년 장기 대여해 실외테마파크를 운영하고 있다. 동호 남쪽에 이곳이 옛 송파나루터였음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서호 옆에는 1639년 병자호란 때 세운 삼전도비(大淸皇帝恭德碑)가 있다. 상전벽해(桑田碧海)란 뽕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것을 이른다면 잠실의 변화는 ‘상전금지’(桑田地)란 신조어를 낳을만하다. 뽕밭이 금싸라기 땅(地)이 되었으니 말이다. 1972년 7월 잠실대교와 송파대로가 준공돼 서울과 성남시가 이어졌다. 1978년 잠실매립이 마무리되자 75만 평이 생겼다. 여기에 국유지와 시유지를 주축으로 대대적인 토지구획정리사업을 벌이자 무려 340만 평에 이르는 신생 도시 한 개가 생겼다. 이른바 잠실지구이며 올림픽유치의 꿈을 이룰 잠실 메인스타디움이 깃들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매립 당시 토사가 부족하자 개발업체 측이 ‘몽촌토성 언덕을 헐어 사용하면 어떻겠느냐’라는 제안을 했으나 서울시가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성백제의 역사를 한순간에 허물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joo@seoul.co.kr
  • 홍수아-한수아 19禁 영상

    홍수아-한수아 19禁 영상

    영화 ‘연애의 기술’이 19금 예고편을 공개했다. 17일 공개된 ‘연애의 기술’ 예고편은 본격 19금 섹시 로맨틱 코미디 느낌을 살려냈다. ‘훈남’ 서지석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는 홍수아와 한수아의 볼륨감 넘치는 비키니 자태부터 썬베드에 누워 오일을 바르거나 침대에 누운 남자를 유혹하는 도발적인 모습까지 담겨 관심을 끈다. ‘연애의 기술’은 절친 홍수아와 한수아가 환상의 섬 세부에서 만난 훈남 서지석을 쟁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섹시발랄 19금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30일 개봉.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與 “4대강 사업, 기후변화·수량확보 등에 필요” 野 “사실상 운하 준비사업… 정부 부작용 은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에 대한 국정감사 첫날인 15일 야당 의원들은 4대강 사업 당시 환경부의 무능했던 역할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여당 의원들은 4대강 관련 언급을 하지 않거나 ‘논쟁’보다는 향후 ‘관리’에 신경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3명(한명숙·이만의·윤성규)의 전·현직 환경부 장관들이 한자리에서 설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이만의 전 환경부 장관은 증인으로 나와 의원들의 질타에 기후변화와 수량확보, 홍수예방 등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었다고 소신 발언을 했다. 문제가 있는 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향후 추이를 지켜보면서 보완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한명숙 민주당 의원은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밝혀졌듯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운하 준비사업’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환경부가 사업의 부작용을 은폐하는 역할을 했다”고 전·현직 장관을 질타했다. 한 의원은 또 “2009년 6월 정부가 발표한 4대강 마스터플랜의 수질예측 결과는 허구”라며 “환경부는 실제로 들어가지 않은 3조 2000억원을 넣은 6조 6000억원의 수질개선 사업비를 바탕으로 수질예측 결과를 허구로 발표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윤성규 장관은 “환경부가 국민에게 4대강 사업이 환경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했는데, 지적한 대로 오해를 살 만한 내용이 곳곳에 보인다”면서 “보다 신중하게 대처했어야 했다”고 답했다. 이날 야당 의원들의 ‘4대강 공세’로 환경부의 무능을 질책하는 가운데 여당 의원들은 보 철거나 사업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평가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고 조언했다. 세종 유진상 기자 jsr@seoul.co.kr
  •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상)

    [노주석 선임기자의 서울택리지] 한강(상)

    >>한강 왜, 어떻게 달라졌나 옛 한강은 오늘의 한강과 어떻게 다르며, 무엇이 달라졌을까. 한강은 한성 백제가 위례(풍납·몽촌토성)에 터 잡은 이후 2000년 동안 한민족의 젖줄이었다. 조선의 500년 도읍지 한양(한성부)의 식수원이자 하수구였으며 명승지였다. 한성부를 도읍지로 정하게 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큰 축이었으며 어느 한 곳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는 풍광을 뽐냈다. 조선시대 한강의 이름은 경강(京江)이었다. 서울의 중심부인 삼전도(송파)에서 양화진(합정) 구간을 경강이라고 했다. 그중 남산 기슭을 흐르는 강을 한수(漢水)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한강이 됐다. 한(큰) 가람(강)이라는 우리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설득력 있다. 그런 한강이 불과 100년 만에 천지개벽을 했다. 근대기로 접어들면서 사람들의 인식과 쓰임새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물난리를 막아 보겠다는 치수(治水)에 대한 집착과 인구의 광적인 서울 집중에 따른 택지 제공, 교통로의 필요성이 개발을 불렀다. 게다가 휴전선이라는 인공 장애물이 한강의 서해 출구를 가로막으면서 안보적 측면도 겹쳤다. 아라뱃길을 새로 뚫은 까닭이다. 한강의 변화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섬(河中島)이 사라지면서 모래톱과 습지도 더불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강이 마치 활주로 같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의 중세도시를 흐르는 크고 작은 자연하천과 비교해 보면 대조적이다. 19세기 초만 해도 매년 1만 척을 헤아리는 황포 돛배가 사람과 물자를 싣고 광나루(광진), 삼밭나루(삼전도), 뚝섬나루, 한강나루, 동작나루, 마포나루, 노들나루(노량진), 양화나루를 오갔지만 흥청거리던 뱃노래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29개의 다리가 덩그러니 놓였고 나루는 다리 이름으로 남았다. 골재 채취용으로 폭파했으나 20년 만에 되살아난 밤섬(율도)을 제외하고 강폭이 최대 900m에 이르는 넓디넓은 강이 텅 비었다. 여울과 소(沼)마저 사라져 생명력과 자정력을 잃었다. 강변에 60㎞에 이르는 콘크리트 호안이 일사불란하게 펼쳐진 곳이 오늘의 한강이다. 한강에 대한 역사적 고찰은 한강이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하는 2000년 전 백제의 하남 위례성 시대와 삼국의 한강 유역 쟁탈 시기에서 출발한다. 또 1392년 조선 건국,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과 이후도 의미 있다. 서울 숭례문 입구까지 물에 잠기게 한 을축년 대홍수는 땅밑에 숨었던 암사동 신석기 유적지를 드러나게 했지만, 제방 구축용 골재로 쓰려고 선유봉(선유도)을 폭파하는 빌미가 됐다. 결정적인 변화는 1967년 제1차 한강개발과 1982년 제2차 한강종합개발이 몰고 왔다. 1차 한강개발은 여의도를 육속화하면서 서울의 경계를 사대문 안에서 남산 성곽을 넘어 한강변까지 확장했다. 여의도개발은 한강개발의 출발점이자 강남개발의 전초기지였다. 아파트공화국을 알리는 나팔소리였다. 여의도 제방을 쌓으려고 밤섬과 선유봉을 폭파한 원죄가 있지만 한강 상류에 팔당댐을 만들어 한강 수량을 조절했고, 한강 제방을 완성해 서울 시민들을 물난리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했다. 여의도, 동부이촌동과 반포지구에 대단위 아파트 택지를 제공했으며 서울은 이때부터 사대문 중심 일핵도시에서 다핵도시로 나아갔다. 한강 제방은 워커힐호텔~김포공항을 잇는 강변북로를 부산물로 남겼다. 동호대교 아래 저자도는 압구정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데 온몸을 바치고 사라졌다. 제2차 한강개발 이후 오늘의 모습이 갖춰졌다. 홍수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 맨살을 드러낸 채 가늘게 흐르던 한강이 365일 물로 가득 찬 사실상의 호수가 된 것이다. 두 개의 수중보가 한강을 수심 2.5m의 인공호수로 만들었다. 잠실대교 아래 잠실수중보와 김포대교 아래 신곡수중보가 물을 가두고 있다. 상전(桑田) 잠실섬을 강남 쪽으로 인위적으로 붙이면서 한강의 본류를 바꿔 놓았다. 이때 삼전도 나루 앞을 흐르던 한강 물길은 석촌호수가 됐다. 강남 쪽 한강 제방에는 올림픽대로가 개설됐다. 2007년 한강 복원을 외쳤지만 바뀐 물길과 사라진 섬, 습지와 백사장 그리고 파괴된 봉우리와 누정은 되찾을 수 없었다. >>한강의 옛 모습은 어땠나 옛 사람들은 한강을 강이 아니라 호수로 여겼다. 동호(東湖), 서호(西湖), 남호(南湖) 등 3개의 호수로 나눠 부르면서 풍류를 즐겼다. 강물이 하중도를 중심으로 잔잔하게 굽이치는 장면이 그들의 눈에는 호수처럼 보였으리라. 동호에는 저자도와 독서당, 입석포(선돌개), 두모포(두뭇개), 제천정과 천일정(한남동의 정자), 압구정 같은 명승지가 즐비했다. 동호대교라는 지명이 동호에서 유래했다. 서호는 용산으로부터 마포와 선유봉, 양화진 잠두봉(절두산)을 아우르는 지역을 일렀는데 서강(西江)이라는 지명도 널리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신도팔경도(新都八景圖)에 ‘서강조박’(西江漕泊)이 포함될 정도였다. 남호는 용산강의 다른 이름이다. 여의도와 밤섬을 품고 멀리 관악산과 청계산을 조망할 수 있는 동작진과 노량진 구간이다. 옛 한강은 산수화와 지도를 통해 상상할 도리밖에 없다. 그림이라고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 사진 뺨치게 정밀한 진경(眞景) 산수화여서다. 실경(實景) 산수화라고도 한다. 물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굽이치는 곳에 퇴적물이 쌓여 형성된 하중도에서 금빛으로 반짝이는 모래와 바람에 나부끼는 수양버들, 갈대가 지천인 그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또 개화기 이후 선교사들이 남긴 낡은 사진과 개발기의 각종 사진을 통해 20세기 이후 한강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강수욕을 즐기던 백사장, 나룻배와 나루터, 얼음 캐는 채빙(採?)과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이 같은 한강의 풍광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에 인파가 붐비겠는가. 중국이나 일본 사신들에게 한강 유람은 필수 코스였다. 대개 동호변 제천정에서 시작해 저자도 일대의 풍경을 감상하고 서호쪽 양화진으로 내려오면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제천정은 왕실 소유의 정자로 서울에서 경치 좋은 열 곳(京都十詠) 중 한 곳으로 꼽혔다. 달 구경의 으뜸 명소였다. 사신들은 다녀간 흔적을 글이나 그림으로 남겼다. 한강승경 그림을 요청해 선물로 받아 가기도 했다. 한강은 조선시대 시인 묵객들의 문화공간이자 교류의 장이었다. 18세기 진경 산수화의 대표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경교명승첩’과 ‘양천팔경첩’에 한강 풍광 수십 점을 남겼다. 저자도는 잃어버린 섬이다. 닥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 이름이 붙여졌으며 중랑천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삼각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경관을 파악할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이 전해지지 않는 것이 아쉽다. 저자도 서북단의 독서당을 그린 ‘독서당계회도’와 저자도 남단의 압구정을 그린 ‘압구정도’, 저자도 북단의 살곶이다리를 그린 ‘진헌마정색도’를 통해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다행스럽게도 1922년에 인쇄된 실측지도 ‘경성도’에 등고선과 초지 및 모래벌판이 표시돼 있다. 시인들은 저자도를 한강 유람의 백미로 여겼다. “저자도 작은 섬이 완연히 물 가운데 물굽이 언덕을 두르고 있으니 흰 모래 갈대 숲 그 경치가 매우 좋다”(15세기 정인지가 살곶이다리 인근 낙천정에서 내려다본 저자도의 풍경), “봄꽃이 만발하여 온 언덕과 산을 뒤엎었네”(15세기 강희맹의 저자도도(楮子島圖)의 발문), “봉은사는 저자도에서 서쪽으로 1리쯤에 있다”(16세기 심수경이 독서당에 머물던 중 봉은사를 다녀오면서 남긴 글)는 글들이 남아 있다. 조선 개국 초 저자도는 왕들의 휴식처였다. 태종이 상왕이자 형님인 정종과 낙천정에서 술잔을 나눴고, 세종이 대마도 정벌을 떠나는 이종무를 격려하고 환송한 장소였다. 고종 등 왕이 집전하는 기우제 장소 중 한 곳 이었다. 왕실 재산으로 조선의 마지막 부마(철종의 사위) 박영효 소유였다. 동서 2000m, 남북 885m 길이에 넓이가 118만㎡에 이르는 모래벌판이었다. ‘신선이 노닐던’ 선유도는 섬이 아니라 산이었다. 선유봉은 지금의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잠두봉)을 마주 보는 높이 40m의 작은 봉우리였다. 두 산은 나란히 서 있었다. 선유봉은 홍수가 나면 봉우리만 물 위에 떠 있었다. ‘예조낭관계획도’ 등 잠두봉을 그린 16세기 후반의 실경 산수화 10여 점이 빼어난 경관을 보여 준다. 정선은 ‘선유봉’ ‘양화환도’ ‘소악후월’ ‘금성평사’ 등 4점의 그림을 통해 선유봉을 묘사했다. T S 엘리엇은 “역사란 언제나 동떨어진 원인에서 기묘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설파했다. 옛 선비들은 한강을 호수로 미화해 풍류를 즐겼으나 어느덧 세월이 흘러 한강은 사실상 인공호수로 변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joo@seoul.co.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10) 필리핀 산업 기반 다지는 대림산업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2부] (10) 필리핀 산업 기반 다지는 대림산업

    건설업계에서는 미국발 국제 금융위기가 찾아온 2008년을 국내 건설산업의 장기 불황이 시작된 해로 꼽는다. 그 이후 지금까지 건설업과 관련한 언론 보도와 전망은 어두운 내용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그래서 국내 건설사들이 먹을거리를 찾아 눈을 돌리고 있는 곳이 국외 시장이다. 하지만 국외 시장 역시 이미 세계 정상급 실력을 보유한 한국 건설사들과 국외 건설사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레드오션’이 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홀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업이 대림산업이다. 국외 시장 중 특히 필리핀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대림산업의 필리핀 프로젝트 현장을 찾아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동남아 최대 규모 RMP2] 지난 1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국제공항. 상공에서 내려다본 마닐라 인근 지역 곳곳이 누런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지난여름 내내 반복된 폭우와 열악한 배수시설 탓에 발생한 국가적인 홍수 사태가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건설업은 날씨가 공사 기간과 예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필리핀 현지 건설 공사 난도가 어느 정도인지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마닐라에서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대림산업의 대형 프로젝트가 진행 중인 바탄주 라마이 지역. 평소 두 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지만 가는 길 곳곳이 불어난 물에 잠겨 이동이 어려웠다. 이렇듯 건설 프로젝트 수행이 어려운 곳이 필리핀이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8시 비행기로 출발해 현지시간(한국보다 한 시간 늦음) 오후 5시쯤 대림산업 필리핀 페트론 리파이너리(정제공장) 마스터플랜2(RMP2) 현장에 도착했다. 현장에 도착하기에 앞서 한글 간판의 부품·자재점과 ‘서울 함바식당’ 등 한식당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한국 기업이 필리핀 대형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이곳에 모여들었다. “저희 대림산업에도 큰 프로젝트지만 현지 지역경제 발전에 상당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에 처음 왔을 때에는 주변에 민가는커녕 수풀만 무성했는데 지금은 인구 8만명의 소도시 형태를 갖춰 가고 있습니다.” RMP2 프로젝트가 대림산업과 한국 협력사들의 일자리와 수익창출 외에 필리핀의 경제 기반을 다지는 데도 기여하고 있다는 게 한광수 대림산업 현장 부장의 설명이다. 리마이시는 대림산업이 현지에 낸 세금과 거주 주민과 상점 증가 등에 따른 세원 확대에 힘입어 턱없이 부족했던 학교와 병원 등을 확충하고 부분적인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현장을 둘러보니 대림 측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선 프로젝트 규모가 압도적이다. 현장 면적만 축구장 52개 넓이와 맞먹는 37만 2252㎡다. 2011년 필리핀 최대 정유사 페트론이 발주한 사업으로 기존의 낡은 정유공장을 2014년 4월까지 현대식 설비로 신·증설하는 대규모 공사다. 총사업비는 20억 달러(약 2조 2500억원)에 달한다. 이 공사가 끝나면 RMP2는 고부가가치 정유제품을 만들 수 있는 대규모 정유공장으로 거듭나게 된다. 발주처뿐만 아니라 필리핀 정부도 이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석유화학 복합단지를 조성해 국가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대림산업은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기본’과 ‘신뢰’를 꼽았다. 유재호 RMP2 현장 상무는 “발주처는 대규모 프로젝트임에도 공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대림을 선택했다”면서 “대림의 시공능력과 책임감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반 국내 건설업체 중에서는 선제적으로 필리핀에 진출한 이후 20년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모든 건설 과정에서 기본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이 페트론 등 현지 대기업들과 정부에 “대림이라면 믿고 사업을 맡길 수 있다”는 신뢰를 주게 됐다는 게 대림 측의 설명이다. 유 상무는 한국 경제·산업계의 화두인 ‘창조경제’에 대해서도 기본을 강조했다. 그는 “창조경제라는 개념이 모호해 전혀 없거나 거창한 것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모든 일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 창조경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는 대림산업의 슬로건인 ‘기본이 혁신이다’와도 맞닿아 있다. 프로젝트 수행 때 계약 조건을 충실히 따르고 공사 과정에서도 기본을 지키면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할 수 있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만 차기 프로젝트 수주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유 상무가 말하는 창조경제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인력은 모두 1만 3296명으로 이 가운데 대림산업의 한국 직원은 135명이다. 국외 프로젝트 현장 관리 수요로 국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구조다. 또 이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32개 협력사 중 19개가 한국 기업이다. 그만큼 국내 중소형 건설사의 일자리 및 수익 창출에도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RMP2 프로젝트 공사가 갖는 또 다른 의미는 대림산업이 이 프로젝트를 수주할 때 설계에서 구매, 시공까지 책임지는 일괄도급방식(EPC)뿐 아니라 라이선서들의 기술을 통합하는 작업인 ‘프로세스 통합서비스’와 기본설계 등 EPC 선행 작업(Soft Work)에도 참여한 점이다. 그동안 EPC 선행 단계에 해당하는 선행 작업은 높은 기술 진입장벽 때문에 세계적인 선진 EPC 업체들만 경쟁하는 고부가가치 사업 분야로 평가받아 왔다. 대림산업은 현지에서 20여년간 쌓은 신뢰와 높은 수준의 설계·시공 능력 등을 바탕으로 RMP2 프로젝트 이후 추가로 나올 프로젝트까지 지속적으로 수주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계획이다. [첫 에틸렌 공장 JG서밋NCC] 이튿날 도착한 곳은 필리핀 남부의 항구 도시 바탄가스. 이곳 역시 민가를 찾아보기 힘든 지역이지만 오전 7시가 넘어가자 전날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 차량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통근버스로 보이는 작은 버스가 줄지어 서더니 미리 나와 있던 현지 주민들이 차량에 올랐다. 이 차량 행렬이 향한 곳은 대림산업이 짓고 있는 필리핀의 첫 에틸렌 공장 ‘JG서밋 NCC’ 현장이다.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에 강점을 지닌 대림산업은 다음 달 말까지 이곳에 에틸렌 공장을 완공해 필리핀 석유화학 산업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현재는 공장 시험 운전만을 남겨둔 막바지 단계로 현장 인력은 3500명 수준으로 대폭 줄었다. 현장 노동자의 하루는 ‘국민체조’로 시작됐다. 초등학교 체육시간에 울려 퍼졌던 “국민체조~시작~!”이라는 구령에 현장 노동자 모두 일사불란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사는 마무리 단계지만 언제든지 안전사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건설 현장의 안전을 위해서다. 대림산업은 2008년 2월 이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전체 프로젝트 규모는 4860억원으로 필리핀 석유화학 업계 4위 기업인 JG서밋사가 발주했다. 대림은 이 프로젝트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JG서밋은 필리핀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에틸렌 공장을 짓는 만큼 사업 개시를 놓고 7~8년간 사업 타당성과 수익성을 따져 보는 등 장고를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규모 사업을 놓고 오랜 시간을 고민하는 동안에도 사업 파트너로는 대림산업을 최우선에 올렸다. 그만큼 대림산업이 지난 20여년간 필리핀에서 쌓은 명성과 신뢰가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김병곤 현장 소장은 “이 공장의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하면 원유를 정제할 때 발생하는 나프타 가스를 1200도 이상의 고열로 분해해 석유화학산업의 기초 재료가 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을 생산하는 것으로 이를 기반으로 플라스틱과 비닐 등을 만들게 된다”면서 “경제·산업 기반이 열악한 필리핀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시설물인데 발주처도 대림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이 사업에 착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협력사는 모두 9곳으로 이 가운데 4곳이 한국 업체다. 이들은 현지 세부 공정별로 관리·감독을 담당하면서 인력은 현지 노동자를 채용하고 있다. 프로젝트 참여에 따른 수익을 한국 기업들이 나눠 가지는 동시에 국민소득이 한국의 10분의1 수준인 필리핀 경제에도 기여하는 형태다. 대림산업은 이번 프로젝트 종료 이후도 내다보고 있다. 발주처가 본 공장 가동 이후에 대비해 추가 공장 증설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단의 핵심 공장을 대림산업이 지은 만큼 추가 발주 사업에서도 대림산업이 가장 가까이 다가선 상태다. 박희열 대림산업 JG서밋NCC 현장 상무는 “건설사에 있어 기본이란 계약 내용과 공기 준수, 안전관리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기본을 지키려 노력한 결과가 추가 사업 수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끊임없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원동력인 ‘기본’이 바로 창조경제의 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박 상무는 이어 “창조경제라는 단어에만 빠져 새로운 것만 찾다 보면 정작 중요한 흐름과 가치를 놓칠 수 있다”며 “기본, 신뢰, 소통을 모든 일에 핵심 가치로 둔다면 기업의 성장 기회는 언제든지 찾아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 사진 바탄·바탄가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