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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명보의 항저우, 10경기 연속 무승…구단 “매우 실망”

    홍명보의 항저우, 10경기 연속 무승…구단 “매우 실망”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뤼청이 구단 역사상 최다인 10경기 연속 무승 부진에 빠지자 구단 고위층이 실망감을 드러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중국 매체 항저우일보는 9월 월드컵 최종예선을 위해 15일로 앞당겨 열린 중국 슈퍼리그 21라운드 충칭 리판 원정전에서 항저우가 0-1로 패한 뒤 이러한 발언이 나왔다고 17일 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구단의 한 고위 인사가 패배에 대해 ”정말 매우 실망했다. 매우 실망이다“고 말했다. 항저우는 지난 4월 장외룡 감독이 이끄는 충칭과 첫 대결에서 1-0으로 앞서다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허용하며 비겼었다. 게다가 직전까지 충칭도 11경기 연속 승리를 기록하지 못했던 만큼 항저우로서는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가 높았다. 홍 감독은 경기 전 선수들에게 상대 특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고 구단주인 쑹웨이핑도 구단 고위층과 팀의 현 상황에 대해 협의하는 등 준비 과정은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 구단 고위층의 기대였다. 그러나 결과는 패배였다. 전반전에 항저우가 슈팅과 코너킥을 한 번도 차지 못하는 동안 충칭에는 슈팅을 7번이나 허용하는 등 내용도 좋지 않았다. 항저우 부구단주이자 쑹 구단주의 외조카인 우사오쿤은 경기 후 “우리의 공격 전술이 적고 마무리 능력이 있는 선수도 없다”면서도 “사실 지난 시즌에도 있던 문제다. 지난 시즌에도 27득점에 불과했는데 이번 시즌 팀 득점도 (7골로) 리그에서 가장 적다”고 우려했다. 항저우는 이날 패배로 리그 13경기에서 2승 3무 8패(승점 9)를 기록,강등권인 15위에 그쳤다.강등 경쟁 중인 이장수 감독의 창춘 야타이는 이날 상하이 상강과 1-1로 비기면서 승점 10 고지(14위)를 밟았다. 홍 감독은 이날 패배 후 선수들에게 ”의기소침하지 말고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독려했다. 항저우일보는 항저우에 위력적인 공격수가 없는 만큼 여름 이적시장에서 외국인 공격수를 영입하면 도움이 되겠지만 비교적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항저우로서는 영입 자금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커버 스토리] 닥치고 필승 한일전 축구 그 이상의 전쟁

    [커버 스토리] 닥치고 필승 한일전 축구 그 이상의 전쟁

    “무조건 이겨야 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전을 하루 앞둔 29일 한국과 일본 사령탑은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필승의 각오를 밝혔다. 한·일전은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인정한 대표적인 라이벌전으로 경기에 쏠린 관심만큼이나 숱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특히 ‘제기차기를 해도 한·일전은 이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로 인식되면서 선수들의 투혼이 더해졌고, 그 투혼은 감동적인 승리로 이어졌다. 숙명의 한·일전이 30일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결승 무대에서 또 한번 펼쳐진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 티켓을 확보했지만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인다. 한·일 국가대표팀 간 역대 전적은 77전 40승23무14패, 올림픽 대표팀 간 경기 역대 전적은 14전 6승4무4패로 한국이 모두 앞서 있다. U-23 챔피언십 결승전에서도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길 기대하며 역대 한·일전 명승부를 돌아봤다.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1998년 ‘도쿄대첩’ 축구 팬들의 머릿속에 가장 각인돼 있는 한·일전은 이른바 ‘도쿄대첩’으로 불리는 1998년 프랑스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3차전이다. 차범근 감독이 이끈 한국은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일본과 격돌했다. 이날 경기에서는 한국이 전반에 선제골을 허용하며 끌려갔지만 태극전사들은 투혼을 불사르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경기 종료 7분을 남긴 후반 38분 서정원이 헤딩 동점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데 이어 3분 뒤 이민성의 그림 같은 왼발 중거리슛으로 극적인 2대1 역전승을 이끌었다. 당시 경기장에 있던 5만여명의 홈 팬은 침묵에 빠졌고, 경기를 중계하던 중계진은 흥분된 목소리로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일본의 심장부에서 일본을 꺾은 이 경기는 이후 ‘도쿄대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 경기는 56.9%라는 경이로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박종우 ‘독도 세리머니’… 런던올림픽 동메달 2012년 8월 10일 열린 런던올림픽 축구 3, 4위전은 한국에 두 배의 기쁨을 선사한 대회였다. 광복절을 닷새 앞두고 열린 이 대회에서 한국은 일본에 2-0 완승을 거두며 올림픽 축구에서 첫 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하면서 한·일 감정이 악화된 상황 속에 치러진 이 경기에서 전반 37분 박주영, 후반 11분 구자철의 연속골은 국민들의 속을 시원하게 만들어 줬다. 경기 직후 박종우의 ‘독도 세리머니’로 논란을 빚기는 했다. 박종우는 독도 세리머니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동메달 수여가 보류됐다가 6개월 뒤에 메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당시 홍명보 감독은 국가대표팀 사령탑까지 올랐다. ●박지성 산책 세리머니… 남아공 월드컵 日 출정식 찬물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2010년 5월 24일 일본 사이타마스타디움에서 열린 한·일 친선 경기는 한국 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의 활약이 돋보인 경기였다. 당시 최고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일본은 남아공월드컵에서의 선전을 다짐하며 출정식 상대로 한국을 택했다. 박지성은 전반 6분 만에 단독 드리블에 이은 호쾌한 중거리 슈팅으로 일본의 골망을 가르며 일본 관중들을 침묵에 빠뜨렸다. 이어 박주영의 페널티킥(PK)골로 2-0으로 승리하며 월드컵 출정식을 가진 일본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을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 관중들을 응시하며 천천히 달린 박지성의 ‘산책 세리머니’가 화제가 됐다. ●일본은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바르셀로나 최종 예선 올림픽 예선에서 한국과 일본은 중요한 길목에서 만났다. 1992년 1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바르셀로나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한국은 일본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본선 진출의 희망을 만들었다. 당시 한국은 1승1무1패의 탈락 위기에서 일본을 만났는데 경기 종료 1분 전에 터진 김병수의 골로 일본에 1-0 승리를 거뒀다. 이어 최종전에서 중국을 3-1로 이기며 1988년에 이어 2회 연속 올림픽 진출을 이뤄냈다. 또 1996년 3월 27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애틀랜타올림픽 최종 예선 결승에서도 일본을 만났는데 1-1로 접전을 벌이던 후반 37분 최용수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승리를 따냈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놓고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어서 승리의 의미를 더했다. 한편 U-23 챔피언십 결승전을 앞두고 열린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태용 감독은 “일본이 우리팀에 대한 정보를 알면 안 된다. 일본에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각오를 밝혔다. 데구라모리 마코토 일본 감독도 “런던올림픽 3, 4위전에서 메달을 따느냐 못 따느냐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한국에 배웠다. 지금 일본 국민도 일본 축구팀의 올림픽 출전을 축하하는 분위기지만 결승전 결과에 따라 그런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골짜기 세대’라뇨? 최고 봉우리 오를 아이들!

    ‘골짜기 세대’라뇨? 최고 봉우리 오를 아이들!

    “역대 최약체라니요. 역대 최고 자리에도 오를 수 있는 아이들입니다.”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 진출이라는 대업을 완수한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골짜기 세대’로 불렸다. 빼어난 실력으로 황금기를 구가한 축구세대 사이에 상대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은 이른바 ‘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은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개막 전에 이 같은 질문을 받고 발끈했다. ‘역대 최약체’라는 저평가가 못마땅한 듯 그는 “골짜기는 무슨 골짜기, 최고 봉우리에도 오를 수 있는 게 지금 우리 아이들”이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올림픽대표팀이 가장 전력이 약하다는 지적은 이전 세대와 비교한 상대적 해석이었다. 바로 위의 형님들은 하나같이 빼어났다. 손흥민(토트넘)을 비롯해 이재성(전북), 황의조(성남) 등 이미 국내외에서 스타로 자리매김한 1992년생들에 견줘 1993년생 이후 선수들 중에선 스타를 찾아보기란 사실 쉽지 않다. 성인대표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권창훈(22·수원) 정도가 고작이었다. 실력과 이름값에서는 분명 한 수 아래였다. 그러나 이들은 27일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국 카타르를 3-1로 꺾고 세계 최초로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오는 30일 숙적 일본을 상대로 우승을 다툰다. 한국의 올림픽 본선 진출은 이번이 10번째. 최다 기록을 보유한 이탈리아(15회)보다는 못하지만 8차례 연속으로 출전한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골짜기 세대라는 말은 33년 전 ‘박종환 사단’에게 처음 붙여진 별명이다.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이 4강을 일궈낼 당시의 선수 구성도 특별할 게 없었다. 골키퍼 김풍주를 비롯해 김판근, 이기근, 김종부, 신연호 등이 낯익은 얼굴의 전부였다. 그나마 ‘4강’이 없었다면 그대로 잊혀질 이름들이었다. 이들과 비슷한 출생 성분을 가진 신태용호의 멤버들이 더 칭찬을 받아야 할 이유는 그다지 풍요롭지 못한 환경에서 대단한 성과를 낸 때문이다. 홈팀 카타르를 제친 건 리우행 티켓을 확보한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8강에 이어 2006년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한 카타르는 2022년 월드컵을 유치한 뒤 장기계획을 세웠다. 스페인 출신의 펠릭스 산체스 감독을 23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에 앉혀 6년 뒤 자국에서 열릴 월드컵에 맞춰 선수들을 육성하고 있는 중이다. 상당수는 유소년 시절 스페인에서 위탁 교육을 받았고 그 결과 23명의 대표팀 중 5명은 성인 대표팀에서도 뛰고 있다. 국가가 주도한 막대한 투자를 흠뻑 받은 카타르 올림픽대표팀을 누른 것은 ‘낀 세대’로 평가절하받았던 신태용호의 재능이 되레 아시아 톱클래스라는 점을 확인시킨다. 각국 감독들로부터도 최고의 선수로 주목을 받는 스트라이커 황희찬(잘츠부르크)을 비롯해 권창훈, 문창진(포항)과 류승우(레버쿠젠), 김승준(울산) 등도 이제는 수준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벌써부터 리우올림픽 본선에서의 성과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골짜기 세대라는 말을 박차고 일어선 신태용호의 도전은 박종환 사단의 그것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9차례의 올림픽 본선 가운데 일궈낸 최고 성적은 4년 전 홍명보호가 기록한 동메달이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이대은 “소연아, 사랑의 화살을 받아라”… 축제가 된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이대은 “소연아, 사랑의 화살을 받아라”… 축제가 된 홍명보 자선축구경기

    야구선수 이대은(오른쪽 두 번째·지바 롯데)이 27일 중국프로축구 황저우의 사령탑으로 확정된 홍명보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청년들에게 희망을, 소아암 환우들에게 사랑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펼친 자선축구경기(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 도중 희망팀이 득점하자 익살맞게 지소연에게 사랑의 화살을 쏘는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희망팀과 사랑팀으로 나눠 펼친 이날 경기에는 이승우와 구자철, 지동원, 김병지, 이천수, 정대세 등이 참가했다. 수익금은 청년 실업 해소와 소아암 환우 치료비로 쓰인다. 연합뉴스
  • [기업 사회공헌] 한국토요타자동차, 어린이·아시아 축구 성장 ‘가속도 올리기’

    [기업 사회공헌] 한국토요타자동차, 어린이·아시아 축구 성장 ‘가속도 올리기’

    토요타자동차의 축구사랑은 각별하다. 토요타자동차는 2005년부터 아시아 클럽 팀 1위를 결정하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에 대한 후원을 시작으로, 2014년 FIFA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을 후원했다. 2014년 11월부터 AFC의 공식 파트너로서 아시아 지역 축구 발전에 대한 지원의 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어린이들에 대한 다양한 유소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에스코트 키즈’와 ‘토요타 축구 코칭 클리닉’이 대표적이다. 지난 2월부터 지난달까지 진행된 ‘AFC 챔피언스 리그 에스코트 키즈 프로그램’에는 모두 45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해 선수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입장하는 즐거운 경험을 가졌다. 지난 5일에는 경기 수원 종합운동장 인조잔디 구장에서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 감독과 45명의 어린이들이 의기투합한 축구교실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서는 6~10세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축구를 테마로 한 다양한 활동을 즐겼다. 이 클리닉은 아시아 유소년 축구의 발전과 축구를 통한 지역사회공헌을 목표로 지난 3월 홍콩에서 시작해 한국에서 두 번째로 열렸다. 토요타 측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서 ‘축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건강한 심신을 갖춘 다음 세대의 리더를 양성, 사회 발전에 기여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 이대은이 축구한다고? 홍명보 자선축구 대회 참가 이유가...

    이대은이 축구한다고? 홍명보 자선축구 대회 참가 이유가...

    홍명보재단 자선축구 참가 명단이 공개된 가운데 야구선수 이대은(26.지바롯데)의 이름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오는 27일 열리는 홍명보장학재단의 자선축구 경기는 최진철(포항 스틸러스) 감독의 ‘사랑팀’과 전 국가대표팀 안정환이 감독을 맡는 ‘희망팀’으로 나눠 진행된다. 사랑팀은 김병지(전남)와 이종호·이근호(이상 전북), 염기훈(수원), 김창수(가시와레이솔), 김보경(마츠모토), 황의조(성남FC) 등으로 구성됐다.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이천수와 정대세(시미즈), 서현숙(이천대교), 송진형(제주), 이상민(현대고)도 포함됐고, 박주영(FC서울)도 이름을 올렸다. 희망팀에서는 구자철·지동원·김진수·박주호 등 분데스리가 4인방과 이승우, 장현수(광저우 푸리), 지메시 지소연(첼시레이디스)이 뛴다. 특히 지난 11월 ‘프리미어12’에 출전하며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투수 이대은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대은은 서울신문에 “야구는 물론 축구, 농구 등 운동을 다 좋아한다. 불러주셨는데 좋은 취지라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참여하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앞서 이대은은 몇몇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 꿈은 축구선수였다”고 밝힌 바 있다. 홍명보재단 자선축구 ‘셰어 더 드림 풋볼 매치 2015(SHARE THE DREAM FOOTBALL MATCH 2015)’는 27일 일요일 오후 3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다. 사진=덕아웃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하프타임]

    내년 KBO 사용구 ‘스카이라인’ 내년부터 프로야구 공식경기에 사용되는 공이 한 가지로 통일된다. KBO는 2016년부터 경기 사용구로 스카이라인 AAK100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22일 밝혔다. 스카이라인스포츠는 지난 8월 경기구 입찰에서 평가위원회로부터 응찰 업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아스널, 맨시티 꺾고 2위 수성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이 22일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17라운드 맨체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를 전반 33분 시오 월콧과 전반 추가시간 올리비에 지루의 득점을 엮어 후반 야야 투레에게 만회골을 내줘 2-1로 이겼다. 메수트 외칠이 두 골 모두 도와 도움 선두(15개)를 질주했다. 팀은 3위 맨시티와의 간격을 4로 벌렸고, 선두 레스터시티와의 간격을 2로 좁혀 연말 ‘복싱 데이’나 새해 언제든 선두를 추격할 발판을 만들었다. 홍명보재단 축구유망주에 장학금 홍명보장학재단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팔래스호텔에서 ‘제14회 홍명보장학재단 장학금 수여식’을 열어 전국 초·중·고등학교 축구 유망주 34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했다. 이들에게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150만원의 장학금과 축구용품이 후원된다.
  • 홍명보 中항저우행

    홍명보 中항저우행

    홍명보(46)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그린타운FC의 지휘봉을 잡는다. 홍명보장학재단은 17일 “홍 감독이 그동안 아시아의 여러 클럽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며 “항저우 구단의 축구에 대한 철학과 강한 영입 의지가 홍 감독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밝혔다. 계약기간은 새해 1월 1일부터 2017년 12월 31일까지 2년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의 창피한 성적으로 팬들의 비난에 떠밀려 지도자 생활을 잠시 쉬었던 홍 감독은 1년 5개월 만에 그라운드로 돌아온다. 프로 클럽 사령탑 경험은 처음이다. 통상 프로 클럽의 감독 계약에는 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되는데 홍 감독은 3주가 걸렸다. 코칭스태프 선임권을 일정 부분 확보하고 성적 달성 여부에 따라 임금을 삭감하는 조항 등을 꼼꼼히 따지느라 시간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홍 감독은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하게 되는 도전인 만큼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미래가 밝은 팀으로 만들고 싶다”며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겠지만 구단이 원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선수들의 성장에 기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2004년 현역에서 은퇴한 뒤 대표팀 코치를 거쳐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맡으며 감독으로 데뷔한 그는 2009년 U-20 월드컵 8강행을 이끌어 가능성을 보여 줬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에 처음으로 동메달을 안겨 주목받았다. 홍 감독이 항저우에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를 잡을지 주목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고려대 ‘나눔’에 함께한 골프·스포츠 스타들

    고려대 ‘나눔’에 함께한 골프·스포츠 스타들

    고려대학교 졸업생 및 재학생 골프스타와 스포츠스타들이 나눔을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고려대학교(총장 염재호)는 30일 오전 11시 경기 성남시 남서울 컨트리클럽에서 ‘2015년 KU PRIDE 나눔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나눔골프대회는 전인지, 김효주, 리디아고, 노승열 등 14명의 골프스타와 홍명보, 현주엽, 이규혁 등 각 분야 스포츠 스타들이 한 마음으로 모였다. 이번 나눔골프대회는 일반인 참가자들이 스포츠스타들과 함께 플레이를 할 수 있는 흔치 않는 자리로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대성황을 이뤘다. 나눔행사로 열리는 이번 대회의 참가비와 행사에 따른 모금액 전액은 형편이 어려운 고려대 학생들을 위해 사용된다. 골프대회가 끝난 후에는 참가 스포츠 스타들이 내놓은 애장품 판매도 이어졌다. 판매 수익금 전액은 자선행사에 맞게 사용된다. 리디아고 선수는 2015년 우승시즌에 사용한 퍼터를 애장품으로 내놓았다. 전인지 선수는 2015 LPGA투어 US 여자오픈 우승 당시 착용했던 유니폼 상의와 우승기념 금장퍼터를 애장품으로 내놓았다. 김효주, 김민선, 박채윤 선수는 각각 애장품으로 골프세트를 내놓았다. 노승열, 최운정 선수는 드라이버를 내놓았고 정재은 선수는 퍼터를 내놓았다.골프선수들 외에 스포츠 스타들도 나눔에 합류했다. 홍명보 전 국가대표 감독은 애장품 드라이버를 내놓았다. 올림픽 6회 출전이라는 기록의 전 국가대표 이규혁 서울시청 코치와 현주엽 선수는 퍼터를 내놓았다. 건강상 이유로 안타깝게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김경문 NC다이노스 감독은 드라이버를 보내왔다.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단순한 기부가 아닌 스포츠 선수들의 재능기부와 일반인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새로운 나눔이라는 측면에서 앞으로 기부문화의 새로운 변화가 기대된다. 이 날 행사에는 골프스타 김효주, 리디아고, 전인지, 노승열, 김세영, 이정민, 오지현, 정재은, 박채윤, 최운정, 지한솔, 김민선, 이소영, 박소혜, 이다연, 김주형과 스포츠스타 홍명보, 현주엽, 이규혁 등이 참가해 ‘나눔’에 동참했다. 이명선 전문기자 mslee@seoul.co.kr
  • 무한 진화 ‘진격의 슈’

    무한 진화 ‘진격의 슈’

    수비 위주로 지지 않는 데 치중한다는 지청구를 들어 온 슈틸리케호가 갈수록 매섭게 진화하고 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은 지난 8일 시돈 시립경기장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G조 조별리그 3차전을 전반 20분 장현수(광저우 푸리)의 선제골과 6분 뒤 상대 자책골, 후반 15분 권창훈(수원)의 두 경기 연속 골을 묶어 3-0 완승을 거뒀다. 쾌조의 3연승, 승점 9로 쿠웨이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골 득실에서 앞서 조 선두가 됐다. 10일 귀국하는 대표팀은 다음달 8일 쿠웨이트 원정 4차전을 준비하게 된다. 이례적으로 가을에 덮친 모래폭풍과 씨름하며 애국가 제창 때 야유를 퍼붓고 경기 도중 레이저 광선을 난사하는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상대 선수들의 거친 플레이를 일축하며 22년 만에 레바논 원정에서 따낸 소중한 승리였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쁜 것은 지휘봉을 잡은 초반 팬들의 기대에 못 미쳤던 슈틸리케호가 날로 진화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슈틸리케호는 올해 들어 이날까지 16경기를 치러 12승3무1패를 기록했다. 호주 아시안컵과 중국 우한 동아시안컵 등을 치르면서 단 1패만 기록하고 상대 자책골을 포함해 31골을 넣고 4골만 내줬다. 지난해 대표팀이 15경기를 치러 5승1무9패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확연히 달라졌다. 홍명보 전 감독이 지휘할 때 브라질월드컵 본선에서 강호들을 상대했고 친선경기도 중남미 국가들과 겨뤘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홍 전 감독이 물러난 뒤에는 3승3패였다. 대표팀이 가장 달라진 것은 수비였다. 브라질월드컵에서 좌절한 것도 그때문이었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수비가 안정돼 4경기에서 한 골만 내주고 있다. 두 골 이상 실점한 것은 16경기 중 단 한 차례, 아시안컵 결승에서 호주에 연장 접전 끝에 1-2로 진 것뿐이었다. 이제 슈틸리케호는 다양한 득점원으로 공격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이런 흐름은 더 분명해졌다. 이정협(상주)과 석현준(빅토리오), 권창훈 등 매번 다른 얼굴들이 득점에 가세하고 있다. 각급 대표팀은 물론, K리그 경기장들을 몸소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관찰해 발탁하고 이들의 포지션 경쟁을 촉발, 스스로 성장하도록 돕는 슈틸리케 감독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다. 1선과 2선 가릴 것 없이 그물을 출렁일 수 있고 기성용(스완지시티)과 정우영(빗셀 고베)과 장현수, 곽태휘(알힐랄)가 버티는 중원과 수비진의 촘촘함과 안정화도 뚜렷하다. 진화하는 슈틸리케호의 발끝에 월드컵 3차예선은 물론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이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임흥세 감독이 이끄는 남수단 축구 대표팀 데뷔 3년 만에 첫 승

    한국인 지도자들이 이끄는 남수단 축구대표팀이 국제 무대에 공식 데뷔한 지 3년 만에 감격의 첫 승을 일궈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98위인 남수단은 6일 남수단의 수도 주바에서 열린 2017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 C조 2차전에서 FIFA 랭킹 62위의 강호 적도기니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했다. 남수단은 1승1패를 기록하며 조 2위로 올라섰다. 남수단 대표팀은 지난해 1월부터 홍명보 전 축구 대표팀 감독의 은사인 임흥세 감독이 총감독을 맡고 있고 아프가니스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던 이성제 감독이 팀을 지도하고 있다.대표팀의 승리는 지난 20개월여 동안 내전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도 큰 힘을 불어넣었다. 임 감독은 “내전으로 고통받는 남수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승리였다. 온 국민이 기뻐하고 있다”며 “한국 축구의 기본인 ‘뛰는 축구’가 새로운 전략으로 아프리카에서 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당 책임졌던 사람들이 분열 조장” 김상곤 혁신위장, 安 비주류 경고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와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가 혁신안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혁신위의 최종 공천 룰 발표를 앞두고 안 의원이 “혁신은 실패했다”고 공격하자, 혁신위가 “성급하고 무례하다”고 맞받아치면서 내연해 있던 갈등이 격하게 분출되는 양상이다.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당을 책임졌던 사람들이 혁신의 반대편에서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며 “심지어 당의 이름으로 열매를 따 먹고 철새처럼 날아가려는 사람도 있다”고 맹비난했다. 당 공동대표를 지냈던 안 의원과 김한길 의원, 탈당을 시사한 박주선 의원 등을 겨냥한 것이다. 이들 모두 최근 혁신안에 대해 미흡하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안 의원을 향해 “혁신위를 폄하하는 것은 예의에 벗어난 것이며, 전 대표를 하신 분으로서 당 위기에 무책임한 면이 있다”고 신랄하게 비난했다. 문재인 대표도 전북도의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방향을 제시해야지, 흔들기만 한다면 혁신의 효과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혁신위에 힘을 실었다. 반면 안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혁신의 성공 여부는 혁신위가 아닌 국민들이 판단하는 것”이라고 반문했다. 자신의 책임론에 대해서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경기에서 졌는데 슈틸리케 현 감독이 아닌 홍명보 전 감독에게 책임을 묻는 꼴”이라고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 역시 라디오에서 “못한 혁신이 많다. 안 의원의 평가를 긍정적으로 판단한다”고 안 의원을 지원사격했다. 박영선 의원도 “핵심을 찌르는 혁신안을 발표하지 못했다”고 가세하는 등 비주류의 공격은 계속됐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새로운 50년을 열자] ‘정신력 승부’ 더 이상 안 통해… 日처럼 저변 확대만이 살길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1963년 9월 2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일본과의 제5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결승 2차전, 한국이 1-0으로 앞선 8회 초 국가대표 4번 타자 김응용(당시 한일은행)이 타석에 들어섰다. 김응용은 스트라이크존 한가운데 몰린 상대 투수의 2구를 힘차게 받아쳤다. 홈런인지 안타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는 정신없이 1루를 향해 뛰었다. 2만 5000여 관중의 함성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공은 담장을 향해 115m를 날아가고 있었다. 역사적인 투런포였다. 한국은 5-2로 승리한 1차전에 이어 숙적 일본을 또다시 3-0으로 누르고 국제대회 첫 우승을 차지했다. 1905년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 야구를 받아들인 지 58년 만이었다. 대회 우승의 주역 김응용(74) 전 삼성 라이온즈 사장은 “일본과의 경기 전날, 감독님이 찾아와 일본만큼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나가는데 선수단 분위기가 아주 엄숙했던 기억이 난다”며 “그때 우리 목표는 무조건 타도 일본이었다”고 돌아봤다. 훗날 국가대표 감독이 된 김응용은 “모든 팀에 다 이겨도 일본에 지면 전패고, 다른 나라에 다 져도 일본에 이기면 전승”이란 명언을 남겼다. ●한·일전, 스포츠 그 이상의 의미 일본과의 스포츠 대결은 한국인에게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인 유상철(44) 울산대 감독은 “선수 시절 한·일전을 여러 번 치렀지만 매번 다른 경기와는 차원이 다른 중압감을 느꼈다”며 “한·일전만큼은 감독이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선수들 스스로 각오와 의지를 다진다”고 말했다. 인기종목인 야구, 축구뿐만 아니라 다른 종목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맞붙으면 두 나라는 단순한 응원 열기 이상의 흥분에 빠져들곤 한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위안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같은 과거사 문제는 결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 여론 싸움인 반면 스포츠 경기에서는 승리 아니면 패배란 결과가 곧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깔려 있는 감정이 즉각적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면서 “한·일전을 지켜보는 우리에게는 식민지배를 통해 일방적으로 일본에 당한 민족적인 한과 복수심, 항일정신 같은 것이 투영돼 있다. 한·일전은 일종의 국민적인 감정의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70년간 한국인을 울리고 웃겼던 한·일전의 전설적인 순간을 되짚어봤다. ●극도의 긴장감 속 열린 첫 축구 한·일전 괴력이 빛을 발한 승부였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대한해협)에 몸을 던지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경기에 임했던 덕분일까. 한국 축구대표팀은 해방 이후 열린 첫 한·일전을 적진 일본에서 승리로 장식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본선 티켓을 놓고 한국은 일본과 대결하게 됐다. 원칙대로라면 두 나라가 한 차례씩 상대 국가를 방문해 경기를 치르는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승자를 가려야 했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아직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았다. 반일 감정도 극에 달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놈들이 한국 땅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일본에 간다 해도 패하면 나라 망신”이라며 경기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앞두고 이유형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 23명은 반드시 일본을 꺾고 돌아오겠다며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했다. 한국 대표팀은 도쿄 메이지 진구 구장에서 열린 1차전에서 5-1, 2차전에서 2-2로 1승1무를 기록해 사상 첫 한·일전 승리와 월드컵 본선 티켓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 ●야구 한·일전은 8회부터… 악몽을 안기다 적어도 한·일전에서 야구는 ‘8회’부터다. 허구연 MBC스포츠 해설위원은 역대 한·일전 중 최고의 명승부로 1982년 서울 잠실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을 꼽았다. 야구팬들에게도 이 경기는 전설로 기억된다. 7회까지 0-2로 뒤지던 한국은 8회 말 김재박이 상대 투수 니시무라를 상대로 개구리 번트(스퀴즈번트)를 성공시키면서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대화가 3점 홈런을 때려내 한국은 5-2 짜릿한 역전승으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 뒤 한국 대표팀은 일본만 만나면 8회부터 대역전극을 펼치는 진풍경을 연출해냈다. 양국 간 첫 ‘드림팀’ 대결로 주목받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3·4위전에서는 8회 2아웃 상황에 터진 이승엽의 투런포로 0-0 팽팽한 투수전이 깨지면서 사상 첫 단체 구기 종목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뤘다. 8회의 기적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이어졌다. 결승전에서 일본과 맞붙은 한국은 2-2 동점 상황에서 8회 이승엽이 투런 홈런을 터트리며 또 한번 역전에 성공했다. 한국은 사상 첫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경쟁의식, 양국의 스포츠를 발전시키다 해방 이후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서는 하계·동계 올림픽과 월드컵을 비롯한 주요 국제대회를 모두 개최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은 경기력뿐만 아니라 자국 리그의 생성과 흥행을 이끌면서 스포츠 인프라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국가대표팀끼리의 전적 40승 12무 22패로 한국이 일본을 압도하는 축구에서는 일본이 한국의 영향을 더 받았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는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일본 축구는 한국에 형편없이 당했다”며 “1983년 한국에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돼 1986년 멕시코월드컵 본선에 오르자 이를 의식한 일본이 1993년 J리그를 만들었다. 그 뒤 일본 축구가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고 분석했다. 이어 “한국을 이기기 위해 홍명보, 유상철, 황선홍 같은 특급 선수를 고액 연봉으로 데려가 자국리그 흥행과 수준 향상에 부단히 신경 쓴 결과”라고 말했다. 야구는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올림픽이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같은 국제대회에서 종종 승리를 거두었지만 일본의 야구 저변이 워낙 탄탄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응용 전 사장은 한국과 일본의 야구 수준에 대해 “한국이 단일팀으로는 승부를 노려볼 만하지만 고교야구팀만 5000개에 달하는 일본을 장기적으로 상대하기에는 무리”라고 진단했다. 한·일전 덕분에 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잡았다는 분석도 있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2006년 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프로야구 관중이 급증했다”며 “야구 관중 800만명을 바라보게 된 데 한·일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 만들어야” 반면 전반적인 스포츠 인프라를 다져 온 일본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엘리트 체육에만 매몰돼 있어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희준 교수는 “대한체육회에 등록된 선수가 10만여명인 데 비해 일본은 핸드볼 선수만 8만명이 등록돼 있을 정도로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돼 있다”며 “한국과 일본이 라이벌 관계를 통해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났다면 그건 일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스포츠 자체를 즐기는 문화와 환경을 구축해 온 일본이 무조건 이겨야 하고 금메달을 따야 인정해주는 한국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한국의 국가대표팀은 일본에 이길지 몰라도 스포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라이벌 일본에 완패했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열린세상] 메르스의 정치학/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열린세상] 메르스의 정치학/강미은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메르스에 대한 정부의 초기 대응은 아무리 무난하게 봐주려고 해도 총체적인 실패였다. 초기 대응 실패, 격리 실패, 출국금지 실패, 3차감염 예상 실패 등의 연속이었다. 전파력이 낮다더니 전파력이 높고, 3차감염 없다더니 4차감염까지 나왔다. 이런 정부의 뒷북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에 매달 관리비를 내면서 제대로 관리를 받는 것처럼 우리는 다 국가에 세금을 낸다. 그런데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도 이렇게 무능한 관리를 받아 온 걸 알게 되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수방관, 뒷북 대응, 책임전가, 복지부동하는 정부의 초기 대응을 보면서 국가의 자격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다. 경제도 침체되고, 전 세계적으로 메르스 민폐 국가가 될 처지에 놓였다. 초기 대응을 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 며칠을 놓친 대가는 이렇게 참혹하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은 세 단계로 나뉜다. 의료기술 대응, 보건 대응, 정치적 대응이다. 의료기술의 싸움은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니 차치하자. 확산을 막는 보건 대응에서 실패하다 보니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4차감염자까지 나왔다. 이제 차수는 무의미해졌다. 정치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미국에서 에볼라가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리는 어떤가. 유언비어부터 때려잡겠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움직이니까 마지못해 병원명을 공개했다. 병원명조차 틀린 부분이 나왔다. 정치적인 대응에서도 미비했다.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분노를 촉발하는 여러 가지 정치적 대응이 나왔다. 영화 ‘컨테이전’에 이런 장면이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과잉 대응을 하는 것 아니냐는 반발성 질문에 총책임자가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늑장 대응을 해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것보다는 과잉 대응을 하고 나서 나중에 비난받는 게 훨씬 낫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대사와 거의 비슷한 말을 서울시장이 했다. 영화를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WHO의 실제 지침은 이렇다. 0.1%의 가능성만 있는 경우라도, 과학적으로 명확하지 않더라도, 다소 인권 침해가 있을 수 있더라도 전염병에 대해서는 과잉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이러스에는 이데올로기가 없다. 좌우가 없다. 그런데 메르스에 대응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좌우로 갈리어 서로 때리기하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정부의 대응은 무능을 넘어 황당에 가까웠다. 낙타와 접촉하지 말라는 공문과 지침은 조롱을 받았다. 정부가 메르스 대응을 잘해서 길거리에 낙타가 한 마리도 없다는 둥, 낙타 고기 삼겹살 먹자골목 단속을 해야 된다는 둥 정부는 조롱의 대상으로까지 격하됐다. 정부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 됐다는 건 정말 뼈아프게 반성해야 될 부분이다. 예전에 월드컵에서 홍명보가 지고 돌아와서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했다. 그러자 대표 선수 출신인 이영표 해설위원은 이렇게 비판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다.” 당국의 대응을 보면서도 이 대화가 떠오른다. 당국은 공부하는 자리, 연습하는 자리가 아니다. 증명하는 자리다. 미국에서도 큰 연구 분야인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세 가지다. 신속성, 공개성, 일관성이다. 질병이 퍼졌을 때 신속하게 대응해야 하고, 질병 관련 정보나 병원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 대응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우리 대응은 이 세 가지를 다 비껴갔다. 늑장 대응했고, 비밀주의로 나가다가 별 논리도 대지 못한 채 병원 공개를 해서 일관성도 없었다. 우리는 슬프다. 위기 상황을 맞아 국가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민낯을 봐서 슬프다. 그리고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게 두렵다. 불필요한 불안은 불투명한 정보에서 온다. 초기의 불투명한 정보 속에서 우리는 ‘사악’해서가 아니라 ‘선량’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각자 여러 가지 정보를 추론해야만 했다. 아이가 아픈데 병원 가기가 두려운 현실, 힘들게 잡은 수술 예약을 취소해야 하나 망설이게 되는 현실, 이런 현실을 개선해 줄 의무는 나라에 있다. 부디 국민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 차두리,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차두리,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차두리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차두리,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4년간 한국 축구를 든든히 뒷받침해온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서울)가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벗었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대표 선수로서의 마지막 43분을 뛰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채워주고 포옹한 뒤 그라운드를 나섰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전광판에 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흐르자 차두리는 울먹였다. 아버지 차범근이 꽃다발을 건네자 끝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차두리는 “분명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면서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던 선수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은퇴 소감을 말했다. 지칠 줄 모르고 질주해온 14년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축구선수로서 이상적인 체격을 물려받은 차두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행운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고려대 학생 신분이던 차두리를 발탁했다. 2001년 11월 세네갈전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공격수였던 그는 12경기만인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골을 겨우 신고했다. 화려했던 시작에 비해 공격수로서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던 차두리는 2006년부터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바꾼다. 타고난 스피드에 탈아시아급 체격을 앞세운 측면 돌파로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았으나 아버지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에는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으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전 감독이 외면했다.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 경력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밝게 타올랐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는 슈틸리케호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며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27년만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질풍같은 오른쪽 돌파로 손흥민(레버쿠젠)의 쐐기골을 돕는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그는 이날까지 대표팀에서 4골 7도움을 올렸다. 공격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리 돋보이는 기록은 아니다. 이날은 그의 76번째 A매치였다. 100경기 이상을 뛰어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한국 축구인이 9명이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기록일 수 있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라는 큰 산을 끝내 넘지 못했고 유럽 무대에서 박지성만큼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였다.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시원한 웃음과 함께 ‘긍정의 힘’을 발산하는 그는 어느새 ‘보통 사람의 스타’가 돼 있었다. 태생부터 풀기 힘든 과제를 떠안아야 했던 그를 보며 많은 축구팬들이 함께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지난 아시안컵 때 그를 향한 박수소리는 더 컸을지 모른다. 차두리는 전날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마련한 ‘팬문선답(팬들이 묻고 선수가 답한다)’ 이벤트에서 ‘차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마지막 불꽃 “차두리 고마워” 4년간 한국 축구를 든든히 뒷받침해온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서울)가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벗었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대표 선수로서의 마지막 43분을 뛰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채워주고 포옹한 뒤 그라운드를 나섰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전광판에 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흐르자 차두리는 울먹였다. 아버지 차범근이 꽃다발을 건네자 끝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차두리는 “분명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면서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던 선수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은퇴 소감을 말했다. 지칠 줄 모르고 질주해온 14년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축구선수로서 이상적인 체격을 물려받은 차두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행운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고려대 학생 신분이던 차두리를 발탁했다. 2001년 11월 세네갈전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공격수였던 그는 12경기만인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골을 겨우 신고했다. 화려했던 시작에 비해 공격수로서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던 차두리는 2006년부터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바꾼다. 타고난 스피드에 탈아시아급 체격을 앞세운 측면 돌파로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았으나 아버지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에는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으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전 감독이 외면했다.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 경력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밝게 타올랐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는 슈틸리케호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며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27년만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질풍같은 오른쪽 돌파로 손흥민(레버쿠젠)의 쐐기골을 돕는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그는 이날까지 대표팀에서 4골 7도움을 올렸다. 공격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리 돋보이는 기록은 아니다. 이날은 그의 76번째 A매치였다. 100경기 이상을 뛰어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한국 축구인이 9명이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기록일 수 있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라는 큰 산을 끝내 넘지 못했고 유럽 무대에서 박지성만큼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였다.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시원한 웃음과 함께 ‘긍정의 힘’을 발산하는 그는 어느새 ‘보통 사람의 스타’가 돼 있었다. 태생부터 풀기 힘든 과제를 떠안아야 했던 그를 보며 많은 축구팬들이 함께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지난 아시안컵 때 그를 향한 박수소리는 더 컸을지 모른다. 차두리는 전날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마련한 ‘팬문선답(팬들이 묻고 선수가 답한다)’ 이벤트에서 ‘차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전 뒤 차범근 꽃다발 ‘뜨거운 눈물’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전 뒤 차범근 꽃다발 ‘뜨거운 눈물’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 평가전 차두리 은퇴, 한국 뉴질랜드전 뒤 차범근 꽃다발 ‘뜨거운 눈물’ 4년간 한국 축구를 든든히 뒷받침해온 ‘차미네이터’ 차두리(35·FC서울)가 대표팀의 붉은 유니폼을 벗었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의 평가전에서 대표 선수로서의 마지막 43분을 뛰었다. 그는 주장 완장을 기성용(스완지시티)에게 채워주고 포옹한 뒤 그라운드를 나섰다. 관중은 기립박수를 쳤다. 하프타임에 열린 은퇴식에서 전광판에 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이 흐르자 차두리는 울먹였다. 아버지 차범근이 꽃다발을 건네자 끝내 눈물이 터져 나왔다. 차두리는 “분명 한 것 이상으로 많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면서 “나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하려고 애썼던 선수다. 알아주셔서 감사하다”라고 은퇴 소감을 말했다. 지칠 줄 모르고 질주해온 14년의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에게서 축구선수로서 이상적인 체격을 물려받은 차두리는 어린 시절부터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행운보다는 불행에 가까웠다.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은 당시 고려대 학생 신분이던 차두리를 발탁했다. 2001년 11월 세네갈전에서 국가대표로 데뷔했다. 공격수였던 그는 12경기만인 코스타리카전에서 데뷔골을 겨우 신고했다. 화려했던 시작에 비해 공격수로서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이던 차두리는 2006년부터 측면 수비수로 보직을 바꾼다. 타고난 스피드에 탈아시아급 체격을 앞세운 측면 돌파로 호평을 받았다. 자신의 자리를 찾았으나 아버지처럼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에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대표팀 사령탑이었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공격과 수비 사이에서 방황하던 그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때에는 16강 진출에 큰 힘을 보탰으나 4년 뒤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홍명보 전 감독이 외면했다. 그렇게 끝나는 것 같았던 차두리의 대표 경력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만나면서 마지막으로 밝게 타올랐다. 어느덧 ‘베테랑’이 된 그는 슈틸리케호의 구심점으로 거듭나며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한국을 27년만의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8강전에서 질풍같은 오른쪽 돌파로 손흥민(레버쿠젠)의 쐐기골을 돕는 모습은 팬들의 뇌리에 영원히 남을 명장면이다. 그는 이날까지 대표팀에서 4골 7도움을 올렸다. 공격수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그리 돋보이는 기록은 아니다. 이날은 그의 76번째 A매치였다. 100경기 이상을 뛰어 센추리클럽에 가입한 한국 축구인이 9명이다.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은 기록일 수 있다. 차두리는 아버지 차범근이라는 큰 산을 끝내 넘지 못했고 유럽 무대에서 박지성만큼 성공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축구선수였다. 쉽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시원한 웃음과 함께 ‘긍정의 힘’을 발산하는 그는 어느새 ‘보통 사람의 스타’가 돼 있었다. 태생부터 풀기 힘든 과제를 떠안아야 했던 그를 보며 많은 축구팬들이 함께 가슴 아파했다. 그래서 지난 아시안컵 때 그를 향한 박수소리는 더 컸을지 모른다. 차두리는 전날 대한축구협회가 SNS를 통해 마련한 ‘팬문선답(팬들이 묻고 선수가 답한다)’ 이벤트에서 ‘차두리에게 아버지 차범근은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아버지이자 친구이자 인생의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시는 선생님입니다”라고 그는 대답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新 평판 사회] 체육계에 부는 신선한 바람

    ‘실력으로만 선수를 뽑겠다.’ 울리 슈틸리케(61) 축구대표팀 감독의 평범한 이 말 한마디가 한국 축구를 불신의 늪에서 건져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정협(상무)이라는 무명 선수를 발굴해 브라질월드컵 참패와 ‘의리 축구’에 분노하던 축구 팬들에게 27년 만의 아시안컵 결승 진출이라는 희망을 던져 줬다. 프로야구에서는 ‘대졸 간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올해 억대 연봉자 141명의 62.4%인 88명이 고졸이다. 인맥이나 학벌보다는 실력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스포츠에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다. ■‘실력 축구’ 만세 슈틸리케 감독 무명 깜짝 발탁 후 아시안컵 준우승… 제2의 한국축구 전성기 예고 감독이 선수들의 실력만 보고 팀을 짰을 때 한국 축구는 강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은 박지성, 이영표, 송종국(이상 은퇴), 김남일(교토상가), 차두리(FC서울) 등 젊은피를 대표팀에 대거 수혈했다. 이제 축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지만, 당시에는 무명에 가까웠다. 당시에는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선수를 뽑았다는 비난이 히딩크 감독을 향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는 능력으로 뽑는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선발한 선수들을 원동력으로 월드컵 4강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J리그 2부팀에서 뛰던 박지성 등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해외 리그에 진출, 한국 축구의 새 장을 열기도 했다. 반면 홍명보 전 2014 브라질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자신이 총애하던 박주영(무적)과 함께 침몰했다. 홍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무승(1무2패)의 참담한 성적으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홍 감독은 계약 기간을 6개월여 남겨 두고 떠밀리듯 물러났다. 팬들은 초라한 성적보다 ‘의리 축구’에 분노했다. 홍 감독은 2009년 이집트 국제축구연맹 청소년월드컵 8강,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동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이라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영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홍 감독은 최근 경기에서 활약을 보인 선수 대신 자신과 청소년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을 함께한 ‘홍명보의 아이들’을 중용했다. 23명의 월드컵 최종 명단의 15칸을 홍명보의 아이들이 채웠다. “소속팀에서 활약하지 못하는 선수는 뽑지 않겠다”던 발언을 그대로 뒤집었다. 원칙을 어겼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 중심에는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은 소속팀 아스널에서 출전 기회를 전혀 잡지 못했다. 경기 감각도, 컨디션도 정상이 아니었다. 월드컵 본선 2경기에 나서 슈팅 1개를 때리는 데 그쳤다. 홍 감독의 후임자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은 달랐다. 슈틸리케 감독은 2014년 9월 부임했다. 첫 시험 무대인 2015 호주 아시안컵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4개월뿐이었다. 빠듯한 일정을 쪼개 수차례 프로축구 K리그 경기를 지켜보면서 선수를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경험이 없고 소속팀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하지 못한 이정협(상주 상무)을 깜짝 발탁했다. 박주영은 제외됐다. 이정협은 아시안컵 6경기에 나서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슈틸리케 감독의 안목이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그리고 슈틸리케 감독은 27년 만에 아시안컵 준우승을 달성하며 한국 축구의 부활을 예고했다. 최근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슈틸리케 감독은 “제2의 이정협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면서 “그라운드에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선수 선발 기준을 분명하게 밝혔다. 인맥과 학연, 지연은 한국 축구의 오랜 병폐다. 국내에 연이 없는 외국인 감독은 여기서 비교적 자유롭다. 히딩크 감독이나 슈틸리케 감독처럼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2006 독일월드컵을 지휘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원희(서울 이랜드)를 오른쪽 수비수로, 2007 아시안컵을 이끈 핌 베어벡 감독은 조재진(은퇴)을 발굴해 중용한 바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고졸 야구’ 만세 2000년대 이후 대학 간판 대신 프로 진출이 대세… 억대 연봉자 10중 6명 고교 야구 대어 선수들은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프로보다는 대학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프로에 가면 당장 거액의 계약금을 손에 쥐고 체계적인 몸 관리를 받을 수 있지만, 학력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대졸 간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대학 시절 국가대표로 발탁돼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 졸업 후 몸값이 더 뛴다는 장점도 있었다. 당시에는 대학 야구도 인기가 좋았고, 대학 스카우트가 고교 선수들과 꾸준하게 접촉하며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선수들은 프로로 갔으나 박봉에 시달리고 실력 차를 극복하지 못해 낙오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고졸 연습생 출신 장종훈 롯데 타격코치가 1990~1992년 빙그레 유니폼을 입고 3년 연속 홈런왕에 등극, 신화를 일구면서 고교 스타들의 프로 진출이 점차 늘었다. 1996년에는 장종훈과 김상진(두산) SK 코치, 김상엽(삼성) NC 코치가 처음으로 고졸 ‘억대 연봉’ 시대를 열었다. 이듬해에는 경북고를 졸업한 이승엽(삼성)이 32홈런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고, 일본으로 진출하기 전인 2003년까지 매년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국민 타자’로 우뚝 섰다. 2000년대 이후부터 고졸이 대세가 됐다. 2000년 이후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선수 중 2005년 손민한(NC·당시 롯데)을 빼고는 모두 고졸이다. 1999년까지는 장종훈(1991~1992년)과 이승엽(1997, 1999년) 단 두 명만 고졸이었으나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신인왕도 마찬가지다. 2002년 조용준(현대·은퇴)과 2005년 오승환(당시 삼성·한신), 2011년 배영섭(삼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졸이 생애 한 번뿐인 영광을 거머쥐었다. 억대 연봉을 받는 고졸 선수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다. 8일 프로야구위원회(KBO)에 따르면 2000년에는 1억원 이상을 받은 31명 중 11명(35.5%)만이 고졸이었으나 2004년에는 40.2%(82명 중 33명)로 40%대를 넘었다. 2010년에는 51.8%(110명 중 57명)를 기록, 처음으로 고졸이 대졸을 앞질렀다. 올해는 억대 연봉 141명 중 88명이 고졸로 채워져 역대 최고인 62.4%로 집계됐다. 특히 상위 6명인 김태균(한화·15억원)과 윤석민(KIA·12억 5000만원), 최정(SK), 장원준(두산), 강민호(롯데·10억원), 이승엽(삼성·9억원) 등이 모두 고졸이다. 물론 고졸이 프로에서 바로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다. 입단 첫해 신인왕을 차지한 ‘순수 신인’은 2007년 임태훈(두산)을 마지막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2008년 최형우(삼성)부터 지난해 박민우(NC)는 모두 2군에서 1~2년 이상 경험을 쌓은 ‘중고 신인’이다. 그러나 대부분 고교 선수는 이제 몇 년 2군에 머무르더라도 대학보다는 프로행을 택한다. 대학 간판이 프로에서 성공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 들어 구단도 즉시 전력감인 대졸보다 키워서 쓸 수 있는 고졸을 더 선호한다. 지난해 8월 프로야구 신인 지명 2차 회의에서는 신생팀 kt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1라운드에서 고졸을 뽑았다. 2라운드에서도 KIA와 한화만 대졸을 선택했고, 나머지 구단은 모두 고졸을 지명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2002 월드컵 4강 주역들 지금은

    2002 월드컵 4강 주역들 지금은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의 주역인 차두리(35·FC서울)가 태극마크를 반납하면서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들이 모두 국가 대표팀을 떠났다. 2002년 당시 국가대표 선수 23명 가운데 6명이 선수생활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으며 12명이 축구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박지성(34)과 홍명보(46)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안정환(39), 이영표(38), 송종국(36)은 축구 해설자로 변신했다. 축구선수로서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차두리는 지난해 말 FC서울과 1년 재계약했다. 차두리는 “올해가 (축구선수로서) 마지막 시즌”이라며 국가대표에 이어 프로에서도 은퇴할 것임을 시사했다. 골키퍼 김병지(45)와 수비수 현영민(36)은 전남 드래곤즈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으며 공격수 설기현(36)과 공격수 이천수(34)는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 당시 대표팀에서 잠시 뛰었던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38)은 올 시즌을 앞두고 전북 현대에서 일본 2부 리그 교토상가FC로 이적했다. 4강 신화의 주역 중에는 감독과 코치 등 지도자가 가장 많은데 프로축구 감독에는 황선홍(46) 포항 스틸러스 감독, 최용수(42) FC서울 감독, 윤정환(42) 울산 현대 감독이 있다. 최진철(44)은 U-17(17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유상철(44)은 대전 시티즌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자리를 옮겨 울산대를 이끌고 있다. 코치는 이운재(42)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대표팀 코치, 최은성(44) 전북 현대 코치, 최성용(40) 수원 삼성 코치, 김태영(45) 전남 드래곤즈 코치, 이민성(42) 울산 현대 코치, 최태욱(34) 서울 이랜드 코치, 이을용(40) 청주대 코치가 있다. 박지성은 전 소속 클럽인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홍보대사이자 장학재단인 JS파운데이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홍명보는 브라질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가 성적 부진으로 사임한 뒤 홍명보장학재단의 이사장 업무에 전념하고 있다. 한편 거스 히딩크(69) 당시 대표팀 감독은 네덜란드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형님 리더십? 내년 리우 갈 때까진 없다”

    “형님 리더십? 내년 리우 갈 때까진 없다”

    스포츠에서 ‘스타 출신 감독은 실패한다’는 속설은 곧잘 들어맞는다. 대표적인 예로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들 수 있다. 야구와 농구에서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던 선동열 전 KIA 감독, 허재 전 KCC 감독도 한때의 성공을 뒤로 한 채 불명예스럽게 퇴진했다. 한국 핸드볼이 낳은 세계적인 스타 윤경신(42·두산) 신임 남자 국가대표 감독도 이런 속설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윤 감독은 11일 서울 신문로 흥국생명빌딩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갖고 “스타가 감독이 된 뒤 힘들어하는 걸 자주 봤다. 나도 분명히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부담도 있다. 하지만 깨고 싶다”며 출사표를 던졌다. 1986~2002년 아시안게임 5연패 금자탑을 이룬 남자 핸드볼은 자타 공인 아시아 최강이었지만 최근 사정은 다르다. 오일머니로 유럽과 아프리카 선수를 대거 귀화시킨 중동에 맹주 자리를 빼앗겼다. 지난해 2월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바레인에 덜미를 잡혀 조별리그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안방에서 열려 각오가 남달랐던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카타르에 금메달을 넘기고 은메달에 그쳤다. 2018년 자카르타아시안게임까지 지휘봉을 잡는 윤 감독의 가장 큰 목표는 내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본선 진출. 핸드볼 변방인 아시아에 배정된 본선행 티켓은 단 한 장뿐이다.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우승해야만 리우데자네이루에 갈 수 있다. 그러나 카타르의 전력이 만만치 않다. 카타르는 이달 초 수도 도하에서 끝난 세계선수권에서 아시아 최초로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윤 감독은 “힘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중동이 유럽 수준으로 올라왔다. 우리의 장점인 스피드와 체력을 보강해야 한다. 선수들은 프로 의식을 가져야 하고 코치진도 마음가짐을 새로 해야 한다”고 채찍질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올림픽에 5회 연속 출전한 윤 감독은 오성옥(핸드볼), 이은철(사격)과 함께 하계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을 갖고 있다. 감독으로서 여섯 번째 올림픽 무대에 도전하는 윤 감독은 김연빈(부천공고)과 박재용(대전 대성고) 등 고교생을 국가대표로 발탁하는 파격을 보였다. 김연빈과 함께 회견에 나온 윤 감독은 “핸드볼도 축구의 이정협 같은 선수를 발굴해야 한다. 고등학생이 지금 당장 대학이나 성인 선수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분명히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며 격려했다. ‘형님 리더십’으로 통하는 윤 감독이지만 “훈련장에서는 ‘형님’이 될 생각이 없다. 혹독하게 조련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두산에서 윤 감독의 지휘를 받고 있는 정의경은 “지금도 많이 힘들고 지치는데, 더한 훈련을 하겠다고 하니 벌써 겁난다. 그러나 중동을 꺾기 위해 이겨내겠다. 중동에 빼앗긴 아시아 최고 자리를 되찾는 그날까지 투혼을 발휘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203㎝의 탁월한 체격 조건을 갖춘 윤 감독은 1995년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3년간 개인 통산 최다득점(2905골), 한 시즌 최다 득점(324골) 등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을 남겼다. 2001년에는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아시아 지역예선은 오는 11월 9~20일 도하에서 열린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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