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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매일 창간95]’문화게릴라’ 4인 특별대담/프로필

    ‘문화의 세기가 다가온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 당연하게 여겨지는 구호다.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이 화두를 보면서 휘황찬란한 ‘극장 간판’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이는 ‘과연 오기는 올까’‘온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하는 우려에서비롯된다.대책없는 치장,실속없는 입선전에 쓴 웃음만 지은 게 한 두 번이아니기에 그 알맹이를 보고 싶다. 하지만 한 세기의 문화현상을 내다보기란 쉽지 않다.본질을 꿰뚫지 못할때는 에두르는게 좋다. 현장에서 다양한 ‘문화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4명(김재인 성기완 이명석 장진)이 최근 만났다.이들은 한 분야에 머물지 않고 전방위로 활동하는 이른바 ‘문화 게릴라’들(프로필 참조). 장르 사이를 ‘폭주’하는 배경과 ‘꿈’을 털어 놓으며 다가오는 세기의 모습과 밑그림을 그려 봤다.예정된 시간을 넘기며 토론은 3시간 정도 이어졌다. 겉으로 볼 때 튀어보이기만 하는 이들.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속은 깊고 넓어,그들의 ‘삐딱한 대들기’에 담긴 정신을 읽을 수 있었다.그것은 ‘문화의 세기’라는거창한 구호가 아닌 ‘현장의 힘’이었다. 21세기 문화를 이끌 이들의 공통점은 ‘낙관’이다.하지만 신중하고 단호했다. ■김재인 우리 네명의 공통점이 있다.맨발에 슬리퍼 그리고 여러 분야를 오가는 움직임.이전에는 볼 수 없던 ‘크로스 오버’나 ‘문화 퓨전’에서 물꼬를 터보자.이 현상은 87년부터 나타났는데 왜 ‘여러 우물’을 파기 시작했을까. ■성기완 지식인·글 중심의 사회 시스템이 한계에 이른 것이다.지금은 과도기이지만 21세기엔 개별매체를 파괴할 필요가 없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것이다.일전에 프랑스 드 쿠플레 무용단의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 무용·연극·영상 등의 장르 통합이 너무 자연스러워 부러웠다. ■장진 앓고 있던 ‘시대의 고름’이 터진 것이다.연극·영화계는 아직 매체를 오락가락하는 사람에 대한 도마질이 심하다.이렇게 해선 좋은 작품 나오기 어렵다. ■이명석 개별 장르가 고여있기 때문에 한 곳을 벗어나려는 현상이나 모임이활발하다.홍대 앞 언더만화그룹이 펑크 그룹을 만든 것도 좋은 예다. ■김 크로스오버의 배경은 무엇일까. ■장 대중문화가 급변하고 다양해졌다.민주화와 더불어 ‘확실한 적’이 사라지면서 새로운 길을 찾은 결과다.또 기라성같은 비주류들이 당당하게 나섰다.이들이 21세기에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쿠데타로 주류에 편입하기 보다는 주류에게 한방 먹이고 빠지는 지구전이 늘어날거다.하지만 이 역시 불안하다.이들이 주류가 된 뒤 어떨지…■이 한 군데만 때려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기에 크로스 오버가 나온게 아닐까.아마추어이면서 ‘언더’로 위장하는 것도 문제다.‘언더’를 마치 상업적 브랜드로 이용하는 거품이 빠져야 한다.진정한 언더는 못해서가 아니라안하는 거다.음악쪽은 어떤가. ■성 비슷하다.80년대 움튼 반문화는 게릴라전이었다.네가 하니까 나는 안한다는 ‘태도’를 중시했다.이런 ‘자기 파괴’ 혹은 세련되지 못한 형식만으론 안된다.비주류 나름의 ‘미학과 방법’을 찾아야한다. ■김 우리가 ‘문화 오지랖’이 넓어진 이유는 뭘까. ■이 섞고 패러디하거나 ‘혼성모방’ 같은걸 좋아한다.이는 개별 장르에서이미 많은 것이만들어져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론 새로운 걸 엮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일종의 ‘실존적 도망’이다.기존 제도가 주는 숨막힘과 갇혀있는 느낌에서 탈출해보자는 거였다. ■성 ‘나는 세포’‘너는 원형질’ 식으로 일상적 실용세계가 갈수록 전문·세분화 되고 있다.이런게 답답했고 전문적이지 못한 나의 무능력(웃음)에대한 반감도 있었다.배운건 ‘글’밖에 없는데 좋아한 건 음악이었다.이 간격을 메우려는 작업이 정체성 찾기이자 장르 넘나들기였다.어쩌면 우리 모두가 ‘과도기적 인물’일지 모른다. ■장 연극과 영화 다 하고 싶어 하는거다.그리고 둘 다 내게는 보완적이다.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아이디어를 준다.재미없으면 하라고 해도 못한다. ■이 밥만 먹고 못사는 것과 같은 이치 아닐까. ■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장 연극·영화판에서 과제는 ‘사람에 대한 투자’(경제적 의미만이 아니라)이다.전천후 예술장르를 지향하는 문화창작집단 ‘수다’를 만들었다.개별 매체안의 안주를 부수는 작업을 시도할 것이다.쉽게 말해 한명이 이런 작품을 만들려고 할 때 필요한 모든 인력을 연계시켜주는 일이다.내년쯤 수면위로 오른다.‘한 방’치고 싶다. ■성 독립 레이블 회사 ‘강아지 문화·예술’를 5년 정도 ‘버텨’가고 싶다.이는 H.O.T감각으로 획일화되는 대중가요판에 대한 거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자리(이를테면 만화잡지 같은 것)를 만들고 싶다.주류의 삭막함도 안아 주고 비주류도 고립되지 않게 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만화는 돈 덜 들이고 인생을 즐기는데 유용하다. ■김 기성세대나 동시대 사람들보다는 다가올 세대에게 관심이 많다.그들이자유롭게 생각하고 느끼고 표현하는 판이 필요하다.굳이 대학내부일 필요가없다고 생각해 홈페이지를 만들었다.잘 가꿔서 누구나 ‘철학 혹은 문화의잔디밭’에서 뛰놀게 하고 싶다. ■김 자본 혹은 시장의 유혹은 어떻게 하나. ■성 80년대엔 시장 고민할 필요 없었다.운동권서적을 오토바이 타고 운동권서점에 뿌리면 되었다.그러나 이젠 움막치고 살 수 없는 시대다.어떻게 ‘인디 정신’을 유지하면서 시장 속에서 버틸까고민이다.‘공룡 틈에서 노는쥐’의 운명이랄까. ■이 쥐끼리 잡아먹는게 더 무섭지 않느냐. ■성 요즘은 덜 하다.궁지에 몰리니까 연합전선 펴고 있다. ■장 인디를 살리는 시장구조는 또 다른 ‘발명’이다.개인적으론 낙관한다. ■이 만화는 약간 다르다.기존의 만화시장을 앗아 먹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시장다툼이 아닌 확장도 가능하고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장치도 발견할수 있다. ■김 시장논리를 따르다 ‘인문학의 위기’를 부른게 아닌가.대학의 결과물이 돈이 되어야한다는 ‘신지식인’발상은 위험하다.스피노자는 렌즈를 깎으며 철학을 연구했다. ■김 마지막으로 미국의 영향력을 논의해보자.저기 장진이 ‘스크린 쿼터 땜에 삭발도 했지만 미국 위주의 흐름을 경계할 방법은 없을까. ■성 돈 된다고 할리우드의 스토리라인을 따르면 안된다.우리 것으로 우리스타일 만들자.인도 파키스탄이 ‘자기들만의 록’을 만든 지혜를 배우자.우리같은 젊은 세대의 무거운 짐이다. ■장 록이 없는 나라에서 로커의 고민을 찍은 영화 ‘정글스토리’는 깨질수밖에 없었다.‘스크린 쿼터’로 머리 깎았다.대놓고 박치기 못하고 이렇게싸우는게 창피스러웠지만 일단 힘을 갖자고 생각했다. ■김 문화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할리우드식 시선을 벗어나는 것은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장르가 안고 있는 문제다. ■김 얘기가 끝이 없는데 이 정도에서 맺자.엄숙주의가 아니고 벽을 허물고싶어하는 등 이전 세대와는 확실히 다른 고민임을 확인했다.앞으로도 이런모임을 자주 갖자. ■성·이·장 좋다. 정리 이종수기자 vielee@ - '삐딱이' 4인 프로필 ■김재인 69년생.88년 서울대 동물자원과 들어갔다 ‘알레르기’느껴 89년미학과 재입학.대학원은 철학과로 바꿈.문화 무크지 ‘이다’(문학과 지성사)편집동인이며 질 들뢰즈의 ‘베르그송주의’를 비롯 번역서 다수.홈페이지(http:///sh.hanarotel.co.kr/∼armdown)만들어 철학·문화론 대중화 ‘전쟁’에 몰입. ■성기완 67년 서울 변두리서 태어난 ‘변두리 정서’의 소유자.서울대서 불문학(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지만 본업이 뭔지 아리송.시집 ‘쇼핑갔다 오십니까?’(문학과 지성사)를 낸 시인,밴드 ‘99’멤버로 뛰는 뮤지션,대중음악평론가,케이블TV 비디오자키로도 맹활약.그의 말.“시는 내 뿌리,음악가는 끊임없이 되고 싶어하고 그래서 시도하고 있는 중,평론가는 배운게 글이어서 봉사한다는 기분으로 씀”. ■이명석 70년 출생.서울대 철학과 88학번.그의 키워드는 어릴때 미친 ‘만화’와 커서 만난 컴퓨터.지적 호기심 왕성해 출판사 문학담당 편집자,문화월간지 기자,만화 스토리작가,웹진 ‘스폰지’편집장을 거쳐 만화 문화사이트‘마나마나’운영중.그의 말.“만화를 안주삼아 사람들이 함께 뛰놀 마당을 만들어 주고 싶다”.‘그로테스크하고 아라베스크한 문화의 백과사전’(가지 않은 길)과 ‘이명석의 유쾌한 일본만화 편력기’(홍 디자인)를 펴냄. ■장진 71년 출생.서울예술대 졸업. 명함이 모자랄 경력.희곡·방송·시나리오 작가,연기자,TV프로그램 사회자,연극·영화 연출자.한마디로 공연문화를‘갖고 노는’ 능력있는 젊은이.고교때 대학로에 살다시피 하면서 연극 100편 ‘때린 바’있어무대 형상화는 식은 죽먹기.‘택시 드리벌’ 등 연극계의 ‘대박’몰고 다니는 문제적 연출가.최근 영화 ‘간첩 리철진’ 쓰고 감독.
  •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 안해도 처벌

    앞으로 농수산물의 원산지를 표시하지 않으면 허위로 표시하다 적발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벌된다. 또 법인인 부동산중개업자의 겸업금지제도도 폐지된다.정부는 23일 김홍대(金弘大)법제처장 주재로 법령정비위원회를 열어 현실에 맞지 않거나 불합리한 법령 963개를 정비키로 했다. 부동산중개업법 법인 및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인의 업무구역을 사무소가 있는 시·군·구로 제한했던 것을 폐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공익법인 등이 2년마다 받아야 하는 세무확인절차,방법에 관해 필요한 사항을 국세청장에게 위임하도록 돼 있으나 이를대통령 및 부령에서 명백히 규정하도록 개선. 부가가치세법시행령 일반과세자,과세특례자로 이원화돼 있던 과세유형이일반과세자,간이과세자,과세특례자로 삼원화됨에 따라 간이과세자에게 과세특례자보다 낮은 세율이 적용되는 사례가 개선되도록 관련규정 개정. 교통안전공단법 조세와 유사한 성격을 갖는 분담금의 분담방법,분담비율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한 것은 포괄적 위임입법으로 헌법에 위배되기때문에 법률에 분담비율 등을 규정. 공동주택관리령 주택관리사 자격 취소 및 정지 근거를 공동주택관리령에명확히 규정. 약사법시행령 무면허 약사가 의약품을 조제하는 경우보다 약사 면허소지자가 약국개설 등록을 하지 않고 약국영업을 한 경우의 처벌이 더 무겁기 때문에 행정처분기준을 개선.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을 일정기간 보장함으로써 자립기반을 구축하고 북한이탈주민후원회를 출연기관화. 이도운기자 dawn@
  • 클럽출신 스타밴드 마로니에 집합

    요즘 라이브클럽가를 주름잡는 인기 밴드가 궁금하다면 13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으로 가보자.오후 4시부터 9시까지 전국 각 클럽이 추천한 밴드 19개팀과 크라잉 너트,마루,블랙홀,황신혜밴드,어어부프로젝트사운드,99등 클럽출신 스타밴드 6팀의 공연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이달부터 라이브클럽이 합법화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 라이브클럽연대가 마련한 자축공연.90년대 중반 홍대앞 ‘드럭’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진라이브클럽은 새로운 음악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면서도그간 식품위생법 시행령 조항에 묶여 ‘불법영업’을 해왔다.(02)3474-7082
  • 라이브클럽서 인생을 즐기세요

    도심 한가운데서 생(生)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 클럽은 각박한 생활에 지친 도시인들에겐 사막의 오아시스같은 곳이다.그것이 흐느끼는 듯하면서도 부드러운 재즈의 선율이든,세상을 온통 뒤집어놓을 것같은 하드록의리듬이든.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문화적 쉼터로서,또 대중음악의 자양분 역할을 해오면서도 한켠으론 ‘식품위생법시행령’이라는 법조항에 묶여 물심양면으로 고생이 심했던 라이브클럽이 오는 6월 드디어 ‘불법’의 꼬리표를 뗀다.서양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정착된 ‘클럽 문화’가 이땅에도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울 수 있게끔 뒤늦게나마 토양이 마련된 점은 반가운 일이다. 라이브클럽 합법화를 계기로 서울지역의 가볼만한 클럽들을 소개한다. 재즈 클럽 76년부터 20년넘게 꾸준히 재즈팬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올댓재즈’를 비롯해 서울에만 10여곳의 클럽이 성황중이다. 지난해 4월1일 문을 연 ‘원스 인 어 블루문’은 이제 갓 1년밖에 안됐지만 재즈를 즐기지않는 사람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곳.천정이 3층까지 훤히 뚫려있고 음향과 영상,특수조명 시설이 골고루 갖춰져있어이상적인 연주 환경으로 꼽힌다.한쪽 벽을 가득 채운 대형스크린외에 2·3층에 비디오를 설치,어디에서나 생생한 라이브공연을 즐기도록 신경썼다. 대학로에 있는 ‘천년동안도’는 96년 8월 오픈했다.건물 전면이 모두 유리인데다 검은 색을 주조로 한 실내장식과 푸른 색 조명 등이 세련되고 현대적인 이미지를 풍긴다.대형 TV로는 외국 재즈뮤지션들의 공연실황을 감상할 수 있다. ‘야누스’는 국내 대표적인 재즈가수 박성연씨가 운영하고 있는 명소.신촌,대학로를 거쳐 97년 청담동으로 옮겨왔다.재즈 마니아들과 올드 팬이 많은것이 특징이다.96년 5월 이화여대 후문에 둥지를 튼 ‘버드랜드’는 이탈리아식 삼각지붕과 천장 곳곳에 박힌 수많은 백열등이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정통 스탠더드부터 팝까지 골고루 연주돼 재즈마니아가 아니어도 쉽게 즐길 수 있다. 지난 연말 압구정동에 문을 연 ‘빅애플’은 재즈가수 윤희정씨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곳.20대 젊은이들부터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처음부터 재즈라이브 공연을 전제로 공간을 개조했기 때문에 확실한 음향시설을 자랑한다. 국내 재즈클럽의 원조격인 ‘올댓재즈’는 지금도 초창기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다.이태원이라는 지역적인 특성상 출연하는 공연진의 상당수가 외국인이고 손님들도 외국인이 적지 않아 이국적인 분위기속에서 재즈에 흠뻑 취할 수 있다.이밖에 삼청동 ‘재즈 스토리’도 독특한 분위기로 관객을 유혹하고 있고,뉴욕의 ‘블루 노트’는 올해안에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 지하에 분점을 열 예정이다. 록 클럽 90년 들어 홍익대근처에 집중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록클럽은 파격과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인디밴드와 공생관계를 이루면서 대학로·강남 등지로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크라잉 너트,18크럭 등이 출연하는 ‘드럭’은 이미 펑크록의 명소가 된 지 오래.‘마스터플랜’은 록,테크노,힙합이 공존하는 클럽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고,강남의 ‘록커’는 블루스,모던 록,펑크 등 장르 구분없이모든 록커들이 공연하고 있다. 하드코어 펑크 등의 강한 음악만을 추구하는 밴드들의 아지트인 ‘하드코어’,모던 록,펑크 밴드들이 주로 등장하는 ‘스팽글’도 클럽가에서는 소문난 장소들이다.지난해 8월 압구정에 문을 연 ‘타임 투 락’은 한번에 500명을 수용하는 대형 클럽으로 일본의 클럽문화에 뒤지지 않는,우리 고유의 클럽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록밴드 공연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경연장인 ‘빵’,전문 블루스 음악 클럽 ‘플레이 더 블루스’와 ‘프리버드’‘롤링스톤즈’등도 주목받는 라이브클럽들이다. 각 클럽의 현재 공연 일정과 연락처는 별표 참조. 이순녀기자 coral@ 라이브클럽의 스타들 수십만장의 앨범이 팔리고,TV에 나와야만 스타는 아니다.대중적인 인기는아니더라도 자신의 음악을 최고로 여기고,또 이를 기꺼이 즐기는 관객이 있다면 그 역시 스타임에 틀림없다. 먼저 재즈클럽가의 스타들.‘원스 인 어 블루문’의 경우 최세진 쿼텟과 여성 보컬리스트 웅산이 가장 인기가 높다.평일에도 140석의 좌석이 거의 차는 편이지만 이들이 출연하는 날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미리 전화로 요일을 물어보고 오는 이들도 많다. 예순아홉이라는 나이가 믿기지않을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하는 최세진의 강렬한 드럼과 부드러운 색소폰 연주가 일품.정말로와 함께 차세대 재즈 보컬로 꼽히는 웅산은 재즈 경력이 3년에 불과하지만 중저음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서울을 찾는 외국인 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버드랜드’는 전자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이 무대에 오르는 화요일과 허스키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의 임희숙이 고정 출연하는 목요일이 가장 북적인다.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비좁은 보조의자에 앉거나,발길을 돌려야 할만큼 이들의 인기는 높다.유진박의 공연에는 자녀들과 함께 오는 가족단위 손님도꽤 많다. 최근 민요와 가요 10곡을 재즈로 재해석해 ‘화두’란 앨범을 낸 색소폰주자 이정식의 무대도 항상 관객들로 꽉 찬다.70년대부터 재즈 피아노연주자,작·편곡자로 정통재즈 보급에 앞장서온 신관웅의 빅밴드도 많은 고정팬을확보하고 있다.재즈계의 대모 박성연과 가스펠가수 출신의 재즈가수 윤희정은 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도 꽉 찬 느낌을 주는 거물급 스타에 속한다. 홍대앞 라이브클럽가에도 속칭 ‘뜬’ 밴드들이 있다.‘크라잉 너트’는 케이블은 물론 공중파 방송에까지 여러차례 나오면서 가장 유명세를 많이 탄밴드.대표곡 ‘말달리자’는 CF배경음악으로도 사용됐다.인디밴드의 음반판매량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마루’는 데뷔 앨범에 윤도현 밴드가 참여하고,윤도현 밴드의 전국투어 공연 오피닝에도 참가하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언니네 이발관’은 96년 ‘비둘기는 하늘의 쥐’로 데뷔한 뒤 최근 2집‘유리’를 발표하면서 독특한 밴드이름과 참신한 음악성으로 많은 음악마니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그로테스크한 음악적 성향을 지닌 ‘레이니 선’은 지난해 11월 데뷔앨범 ‘포르노 바이러스’를 발표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이들의 앨범은 PC통신 음악동호회가 뽑은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3인조 헤비 얼터너티브 밴드 ‘위퍼’는 평균 21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꽉 찬 사운드와 발군의 실력으로 언더그라운드 클럽가의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다. 이순녀기자
  • 노조원간 충돌-파업불참·조기복귀자에 폭행등 13건 접수

    서울 지하철공사의 각 사업장에서 파업 불참자 및 중간복귀자와 면직시한을 넘겨 복귀한 노조원간의 폭행 및 폭언 등 이른바 ‘왕따’사건이 잇따라 발생,서울시와 지하철공사가 사업장에 경찰상주를 요청하는 등 긴급 대책마련에 나섰다. 파업철회 후 경찰에 접수된 폭행·폭언 등 갈등사례만도 모두 13건으로 경찰은 9명을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검거하고 100여명은 조사중이다.고건서울시장은 이날 이무영(李茂永) 서울경찰청장과 함께 2호선신설동역 종로승무사무소와 4호선 당고개역 상계승무사무소를 직접 찾아 실태를 파악하기도 했다. 27일 오전 종로승무사무소에서는 이날 복귀한 40여명이 조기복귀자에게 “배신자,너 혼자 살려고 하는거냐”면서 침을 뱉고 집단폭행,피해자가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군자차량기지에서도 이날 복귀한 노조원 694명이 미리 복귀한 29명에게 폭언과 욕설을 해 업무중단 상태에까지 이르렀다가 경찰이 투입된 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한편 서울지하철공사는 지난 26일 오후 8시쯤 2호선 홍대입구역에서 근무중인 직원을 폭행하고 폭언한 손모씨 등 5명을 이날 직위해제했다. 조덕현 이상록기
  • ‘강의실로 바뀐 술집’ 홍익대 정문옆

    ‘술집을 강의실로’. 홍익대가 술집 등 유흥업소가 들어설 한 상가건물을 5년여에 걸친 노력끝에강의실로 바꿨다. 문제의 건물은 홍대 정문 옆에 있는 D빌딩.이 빌딩은 원래 5층짜리 일반 상가건물이었지만 건물주가 지난 95년 지상 9층,지하 2층의 새 건물을 짓기로하면서 소주방과 칵테일바 등 유흥업소를 입점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분양광고를 냈다. 주변에 유흥업소가 몰려 있어 교육환경이 열악한 것을 걱정해온 학교측은다급해졌다.교육부를 비롯,청와대와 감사원,관할 구청 등에 청원서를 내고주민들과 연대운동을 벌였다. 공청회를 열고 근처 초·중·고교 학생과 학부모,지역주민들과 함께 ‘교육환경 확보를 위한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펼치기도 했다.지난 97∼98년에는서울지방법원과 고등법원에 공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같은 노력은 98년 내려진 고등법원의 판결로 결실을 맺었다.법원은 “공사의 소음과 진동이 교육환경에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가 건축 및 기초공사 설계에 대한 감리를 끝내기 전까지 공사를 중지하라”는 판결을내렸다.판결이 내려지자 건물주는 신축을 포기했고 공사과정에서 진 빚 때문에 땅까지 내놔야 했다. 학교측은 다른 상가가 들어서지 못하게 하기 위해 지난달 실시된 부지 경매에 참가,354평의 땅을 52억원에 경락받았다.학교측은 이 땅에 연구소나 강의동을 지을 방침이다.
  • [화제의 책]’실사구시의 눈으로‘ 日학자의 조선실학 연구

    “조선의 실학자 홍대용은 서양 콤플렉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한,그리하여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는 철학·과학적인 우주무한론을 18세기에 전개하고 있었다”.일본의 동아시아 사상가인 오가와 하루히사 도쿄대 교수는홍대용을 근대 이전 아시아인의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한 학자로 평가한다.그는 “홍대용은 서양에도 통용될 수 있는 과학·논리적 사고의 철학자이자 천문학자”라고 말한다. 오가와 교수는 ‘홍대용의 발견’을 계기로 조선 실학을 연구한다.그의 연구 결과를 담은 책 ‘실사구시의 눈으로 시대를 밝힌다’가 황용성 옮김으로 나왔다.(강 9,000원).일본인의 눈으로 조선 실학을 탐구한 이 책은 오가와교수가 1986년 일본 NHK방송 한글강좌 교재 권말에 연재했던 원고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그는 조선시대 유명한 실학자인 박지원·홍대용·정약용·박제가 등의 인물론을 통해 실학을 설명한다.그리고 부록에서 실학을 전체적으로 조명한다.실학자 외에도 ‘아름답고 진실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며 윤동주·김구·이순신 등의 인물론도함께 싣고 있다. 오가와 교수는 천관우씨가 자유성·과학성·현실성 이라는 세가지 개념으로 18세기 실학의 특징을 설명한 것은 훌륭한 평가라고 말한다.자유성은 중국중심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과학성은 실증주의적 실사구시(實事求是) 태도로 고증학과 서양의 과학정신을 말하고 현실성은 이용후생(利用厚生)의 학문을 뜻한다. 그는 천관우씨가 처음에는 실학을 근대의식·근대정신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더 많은 연구를 통해 근대 지향 성격의 학문으로 정리했다고말한다.그는 특히 “조선 실학을 매개로 동아시아의 유교문화권이 낳은 실학이 유교의 범주를 뛰어넘고 시대를 초월하는 일반성을 갖게 됐다”고 평가한다. 그는 일본이 조선의 실학발전을 방해했다는 ‘참회의 주장’도 편다.“일본은 1910년 조선을 식민지화하여 조선에 근대 실학이 싹트는 것을 저지했다. 조선은 토지·자원·사람까지도 일본 근대 실학의 육성과 발전을 위하여 송두리째 빼앗겼다”.그의 일본 비판은 한국 문화·사상에 깊은 애정과 이해를 갖고 일본의 과오를비판해온 양심적 지식인의 참회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번역한 황용성 나고야 경제대학 촉탁교수는 독자후기에서 “현재한국의 실학 연구자 가운데 오가와 교수의 시각을 일본을 포함한 국제학계에서 피력한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의심스럽다”며 학국학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李昌淳
  • 연기군,대학촌 8개지구로 개발

    조치원이 대학촌으로 본격개발된다. 18일 충남 연기군(군수 洪淳珪)에 따르면 기본설계 용역 결과를 토대로 최근 주민공청회를 열어 조치원읍 대학촌 건설계획안을 확정했다.고려대와 홍익대 조치원캠퍼스를 중심으로 8개 지구로 나눠 개발한다. 고대가 있는 침산·서창리의 A,B지구에는 아파트단지와 극장,여관 등 문화·숙박시설이 들어선다.C지구인 지푸랑골에는 전원형 단독주택과 지역연구소 등이 건립되고 홍대가 있는 D지구에는 공동 주거단지 대형할인매장 중고교등이 세워진다. 고대와 홍대 중간의 E지구(서당골)에는 교직원·학생용 아파트단지 대학정보센터 소공원 등이 건립되고 고대 뒤 F지구(중뜸마을)에는 아파트와 여가·위락·사회복지시설 등이 들어선다. 외곽에 있는 봉산리 위말(G지구)과 방축골(H지구)에는 전원형 주택과 스포츠센터 청소년센터 대형할인매장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입주한다. 군은 A,B,D지구의 경우 올해 17억4,000만원을 들여 토지구획정리사업에 들어가 2002년쯤 완공할 계획이다.E,F지구는 2006년,나머지는 2011년까지 사업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군 관계자는 “사업 성숙단계인 2005년에는 학생수가 현재 9,800명에서 2만5,000명,주민은 3만명에서 5만2,000명으로 크게 늘어난다”며 “대학촌이조성되면 도시 면모를 갖추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 l 李天烈sky@
  • 출근길 지하철 90분 스톱/어제 강남역서 전기 고장

    ◎승객 1만여명 지각사태 7일 오전 8시2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구내로 진입하던 당산역발 홍대입구역행 2105호 전동차(기관사 金政鎭·50)가 전기장치 고장으로 멈춰서는 바람에 교대∼삼성역 구간 지하철 운행이 1시간30여분동안 전면 중단됐다.사고 열차를 뒤따르던 전동차 20여대도 잇따라 멈춰서 출근길 시민 1만여명이 무더기로 지각하는 등 큰 불편을 겪었다. 사고가 나자 서울시지하철공사는 홍대입구역행 열차는 교대역에서,당산역행 열차는 삼성역에서 회차시키는 방법으로 임시운행을 했으나 평소 3분이던 배차간격이 10분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전동차 운행이 계속 지체됐다.
  • 번역극작가 申定玉(이세기의 인물탐구:184)

    ◎英美 희곡 재창조 ‘번역의 셰익스피어’/40년 외길… 펴낸 작품 200편 넘어/탁월하고 충실한 언어구사력 ‘독보적 존재’/“번역이란 충실할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울수록 충실해야 한다” 타탄무늬의 주름진 스커트에 어깨엔 숄더백,손에는 또 다른 대형 가방을 든 申定玉은 하루 종일 학교로 도서관으로 바쁘게 뛰어다닌다.10년 전이나 그 이전에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변치 않은 모습이다.그의 학구적 자세는 그동안 200여편의 희곡을 번역했고 250여 극단이 1년 내내 돌아가면서 그가 번역한 희곡을 공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그래선지 그가 쉬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공부 외에 다른 재주가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공연장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그의 번역 희곡이 공연되고 있다는 증거다.문자 그대로 공부만이 취미이고 인생의 전부인 ‘공부벌레’다. 특히 셰익스피어 작품을 번역하면서 ‘드넓은 우주 속에서 한낱 미소한 존재인 인간의 성격을 예리한 면도칼로 베어내듯이 도려낸 작가의 명징성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셰익스피어가 이 땅의 연극발전에 크게 영향을 끼쳤음을 깨닫자 ‘셰익스피어 한국에 오다’를 집필하여 작가의 한국에서의 수용(受用)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이고 있다. 그는 하나의 연구에 파고들기 위해 우선 자료탐색에 심혈을 기울인다.지난 94년에 출판된 ‘한국신극(1930∼60년)과 서양연극’ 집필을 위해서 신문사의 조사자료실을 샅샅이 뒤졌고 잡지와 개인일기,논문과 관련저서를 인용하는등 20여년간의 착실한 준비기간을 거쳤다. 책의 서문에서는 ‘이 작업은 험난한 대장정(大長征)’이었다고 밝히고 ‘한강에서 조리를 들고 금조각을 캐내는 것’같은 뼈저린 고통의 시간이었음을 돌아본다. 그는 셰익스피어 외에도 유진 오닐,테네시 윌리엄스와 현대작가인 피터 셰퍼에 이르기까지 영·미희곡을 망라하는가 하면 지난 90년 체호프 탄생 130주년 기념으로 ‘체호프의 한국 수용에 관한 연구’와 러시아·독일연극의 한국수용과정을 완벽하게 마무리짓고 있다. 지난 85년 ‘한국연극’지가 100호 기념으로 수여하는 ‘최다집필상’ 수상은 그의 방대한 작업량을 단적으로 대변해주는 예이다. 오전 9시면 옥수동집을 나와 서초동에 있는 집필실에서 요즘은 ‘한국연극’의 60년대 이후를 집필중이다. 그가 셰익스피어에 눈뜨게 된 것은 경북대 3학년때 ‘맥베스’ 2막 2장중 환청 장면에서 셰익스피어만의 독창성과 천재성,절륜의 상상력에 매료되면서 부터다. 그러다가 57년 이대 대학원시절에 번역한 ‘한여름 밤의 꿈’이 이화여대 연극회를 통해 무대에 올려진 것을 계기로 30여년을 한결같이 셰익스피어라는 ‘신(神)’을 신봉해왔다. 89년까지 200자 원고지 1만7,000장 분량의 번역을 완성,전 40권의 이 완역본은 셰익스피어 전 생애에 걸쳐 펴낸 장막희곡 37편 외에 장편시,소네트 등으로 지금까지 23권이 전예원에서 출간됐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지난 64년 휘문출판사와 정음사가 발간한 적이 있으나 번역문이 딱딱한 산문투인데 비해 그의 번역은 셰익스피어 특유의 시적운율을 그대로 살려낸 것이 특징이다. 평론가 유민영씨에 의하면 ‘셰익스피어 대사에서의 감격조와 영탄조,번뜩이는 해학과 풍자의 묘미는 더 이상의각색이나 윤색없이 그대로 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다. 그는 비평가·언어학자·연출가·시인등 4개의 얼굴을 갖추면서 ‘신성(神聖)에 가까운 언어의 천재성’을 파헤쳤고 여기에다 작가 본연의 사상과 언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지속적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잘못 쓰여진 책은 실수이나 좋은 책의 오역은 죄악’이라는 것과,희곡번역은 ‘제2의 창조’라는 신념에서 셰익스피어가 언어의 연금술사이듯이 항상 ‘듣는 연극’‘무대에 맞는 번역’을 고집하며 공연중에도 ‘잘못된 번역’을 찾아내는가 하면,가장 근접한 표현을 위해 수많은 문학작품 섭렵을 마다하지 않는다. 폴 발레리는‘번역이란 원문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덜 아름답고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덜 충실하다’고 했지만 그는 ‘번역이란 원문에 충실할수록 아름답고 아름다울수록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연극계에서는 그런 그를 가리켜 ‘무상(無償)의 정열을 지닌 교수’로 지칭한다. 큰 공적에 비해 그가 적정한 보상을 바라지 않는 것은 번역작업이 그에게 있어 행복한 학문의 연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함남 정평 태생으로 부친 申雄浩씨와 林南秀씨의 1남4녀중 장녀.수도여의전과 한일병원장을 지낸 부친을 비롯,남동생과 여동생들이 모두 의사지만 그는 문학쪽에 더 관심을 갖고 숙명여고 졸업후 대구 피란지에서 경북대 영문과에 진학했다. 부군 李遠台씨는 주택공사 부사장을 거쳐 미륭건설사장을 역임,그의 공부하는 자세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공연 때문에 귀가가 늦으면 밖에 나와서 기다려준다. 자녀는 MIT 경영학박사인 장남 순철씨(홍대 교수)와 차남 윤철씨(株 미수원사장). 경결하면서도 무구한 성격탓에 번거로운 교분을 트기보다 극단 여인극장의 대표이자 연출가인 강유정씨를 믿고 만나는 정도다. 약삭빠른 사람은 학문을 경멸하고 단순한 사람은 그것을 숭배하며 현명한 사람은 그것을 이용한다면,그는 단순하면서도 원후(圓厚)하고 겸허하면서도 현명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공부가 취미이고 인생의 보람이며 만약 공부할 일이 없었다면 ‘신정옥 다운 인생은없었을 것’이라는 강유정씨의 말은 그를 두고 진리다. □그의 길 1932년 함남 정평 출신 1951년 숙명여고 졸업 1955년 경북대 영문과 졸업 1957년 이대 대학원 영문과 졸업 1964∼73년 이대 외국어대 강사 1973∼98년 명지대 영문과 교수 1976년부터 실험극장 ‘에쿠우스’를 필두로 희곡 200여편 번역 1979∼80년 국무총리실 정부시책 평가교수 1981년 국무총리정책자문위원 교수 1987년 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영문학 박사학위 1989∼현재 오닐학회 이사 1996년 명지대 외국어교육원 원장 현재:명지대 명예교수,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회장 저서:‘20세기의 미국연극‘(72년·문예출판사),‘현대영미희곡’ 전 10권(76­84년·예조각),‘셰익스피어 4대비극집’(93년·전예원),‘한국연극과 서양연극’(94년·새문사) 등 50여권 외 셰익스피어전집 전 40권 수상:실험극장 ‘에쿠우스’ 장기공연 공로상(76년),한국백상예술대상 특별상(80년),한국연극협회공로상·‘한국연극’ 100호기념 최다집필상(85년),91’연극영화의 해 사랑의 연극잔치 최우수 번역상,동랑연극상(96년)
  • 우이천변 쓰레기 8t 말끔히/한강지천 정화 현장캠페인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강지천 정화 현장캠페인’ 행사가 8일 오전 서울 강북구 우이천 일대에서 열렸다. 올 들어 여덟번째로 열린 행사에는 서울 장위중 강북중 번동중 홍대부중 창문여중 신일중 수유여중 영훈중,서라벌고 홍익사대부고 등 10개 중·고생 1,100여명과 지역 환경단체 회원,시민 등 모두 1,600여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강북구 수유3동 강북중학교 운동장에 모여 행사 선언식을 마친 뒤 3시간여 동안 우이1교에서 쌍문교까지 1㎞ 구간을 걸으며 둔치와 하천에 널린 빈병,휴지,비닐,플라스틱 용기 등 생활쓰레기 8t을 말끔히 치웠다. 행사에는 張正植 강북구청장,金英敏 강북구의회 의장,金天坤 서울신문사 사업부국장 등이 참석했다.
  • 홍대 김민제 교수 3부작 12년만에 완성

    ◎英·佛·러 혁명을 보는 대립적 시각 분석/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 열어 영국혁명과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영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고 러시아혁명은 무산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혁명은 불필요했으며 백해무익하고 국민들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양 근대 3대 혁명에 대한 대립적인 시각을 3부작으로 다룬 역사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역민사에서 3권의 책으로 나온 ‘영국혁명의 꿈과 현실’,‘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러시아혁명의 환상과 현실’이 그 것으로 서양사 전공인 홍익대 金民濟 교수가 12년가량 매달려 완성했다. 이 책은 서론,혁명의 긍정적 해석,부정적 해석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론에서는 혁명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뒤 이런 견해들이 나오게 된 학계와 사회적 배경을 설명한다. 혁명에 대한 긍정적 해석에서는 3대 혁명은 부패되고 비합리적인 체제를바꿀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인류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라는 입장을 소개한다. 영국혁명에 대한 휘그­마르크스주의적 해석,프랑스 혁명의 정통주의적 해석,러시아혁명의 소비에트­수정주의적 해석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 장인 혁명에 대한 부정적 해석은 혁명을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이들은 혁명의 목표가 아무리 바람직하고 이상적이었다 해도 혁명은 현실적으로 인류에게 불행만을 초래했다고 본다. 영국과 프랑스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러시아혁명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7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혁명에 대한 휘그­마르크스주의적 해석론자들은 부르조아들은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을 의회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왕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의원들이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또 혁명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하원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지키려 노력했고 이를 위해 절대군주에 대한 전쟁을 일으켜 국민의 호응을 받아 승리했다고 본다. 그러나 수정주의학자들은 영국혁명을 영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내전이라고 본다. 이들은 영국내전은 사회·경제적인 모순 때문이 아니라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계기가 돼 일어났으며 이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바로 찰스왕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내전은 결국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왕정복고로 마감될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인권옹호의 기원이 됐다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주의적 시각도 수정주의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수정주의자들은 당시의 상황은 혁명이 일어날 만큼 최악의 상태도 아니었으며 불필요한 혁명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은 왜곡됐으며 시민들만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은 유명한 혁명가에서 보수적인 시민들 또는 혁명 당시에 따돌림을 당한 반혁명인사들에게 주목하는 등 연구대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혁명에 대한 상반된 견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건은 시대를 지배하는 분위기 및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뭏튼 혁명에 대한 이러한 신조류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역사인식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 도예가 李秀鍾(이세기의 인물탐구:176)

    ◎無心의 경지 빚는 ‘큰 그릇’/容器의 기능 잃지않으며 흙에의 회귀 담아/전통적 형식보다 개성적 색감·형상 추구/물레질만이 낙… 農心처럼 꾸준한 조형 탐색 영국의 미술평론가 허버트 리드는 ‘한민족의 민족정신과 사회기풍은 흙이라는 표현매체를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한나라의 예술의 세련미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도기(陶器)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했다. 그릇의 조형탐색에 천착하는 도예가 李秀鍾은 ‘한국이 아무리 찬란한 도자기의 나라라고 할지라도 청자나 백자는 어디까지나 고려· 조선의 것이며 오늘날의 도자기는 용적(用的) 기능과 미적 가치를 동시에 수용하는 순수조형’임을 주장하고 있다. ○도예의 진수 아는 匠人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로서의 유용성이 파괴되지 않으면서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흙에대한 원초적 회귀’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흙과 불이 가지는 생명력과 가능성을 이해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삶이 근본적인 조화를 보일때 비로소 도예의 본질이 파악된다는 것이다. 미술평론가 이재언은 이수종의 이러한 작업내용은 ‘다채로운 흙의 경험에서 얻어진 흙의 예술가다운 결과이며 그는 도예의 진수를 알고 빚는 장인(匠人)’이라고 평한다. 즉흥적이거나 감각적인 흥취뿐만 아니라 흙자체가 지니는 언어적 인자와 조건들을 세밀하게 탐구한 숙고가 그것이다. 더구나 고금과 동서를 넘나드는 개방적 의식과 줄기찬 창작의지는 실용적인 기물과 순수조형 사이를 부드럽게 ‘자유’하면서 분청의 전통적 형식에 머물기보다 개성적인 색감과 형상의 생성으로 그가 추구하려는 작품에 접근해 나간다. 이수종의 작업실은 10여년전까지만 해도 홍대앞에 있는 빌딩 지하에 있었다. 그러나 건물에서 불을 다루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아 과천시 변두리에 야외 작업장을 마련하여 이사했다. 그때부터 아침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을 바라보면서 ‘그릇이야말로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조형물’이라는 다짐과 함께 ‘산처럼 듬직한 그릇’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돌아본다. 따라서 그의 그릇은 용기가 지닌 고유의 형태미와 표현상의 아름다움을 전제하면서도 담기는 내용에 따라 유(有)나 무(無)에 대한 구실도 달라지는 것이 눈에 띈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추상공간에다 눈으로 보되 마음속에 와닿는 내면의 든든한 기(器), 당장의 편리함보다는 두고두고 써도 물리지않는 장독대같은 ‘이수종만의 그릇’이 그것이다. 최근의 작품들은 회흑색의 태토(胎土)위에 백토를 분장한 다음 그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도각(陶刻)을 해서 구워낸 ‘거칠고 투박한 흙맛’이 제격이다. 휘돌아가는 물레의 속도감, 그 위에 반응하는 세련된 손맛, 귀얄이나 덤벙기법에 의한 화장의 멋등은 기계화된 현대사회에서 순후한 인간미와 노동의 신선함을 자연스럽게 표현하여 보는이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준다. 이수종은 요령을 부릴 줄 모르는 사람이다. 막가내하(莫可柰何)이며 자기 할일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그래선지 그의 작업은 곧잘 농부에 비유된다. 흙을 선택해서 물을 주고 습도를 유지시켜 형을 만들고 건조를 기다렸다가 적당한 시기에 가마에 넣고 오랜 시간 소성하는 과정은 농부가 씨를 뿌리고수확을 거두는 마음가짐이다. 그래서 자연에 순응하는 농부의 지혜와 순수성으로 흙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도예가의 정신이 투철하게 살아있다. 그러나 열정적인 창작열과 끊임없는 실험정신 이전에 그는 ‘그저 주물럭거려 본것뿐’이라는 것이며 외형에 서투르게 그려넣은 그림이 추상적 의외성을 산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전혀 의도적이 아님은 말할것도 없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타고난 예술적 재능’따윈 없다고 거부한다. ○“나는 그저 빚었을뿐” 이수종의 작품은 ‘한국의 미’를 논할때마다 흔히 등장하는 ‘무심(無心)의 경지라고 할수 있다. 더구나 무기교(無技巧)의 기교로써 형태에 대한 관심이 없는듯이 형태를 빚어내고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없이 그림을 그리면서 도자기의 내면에 잠재된 자연성 유희성 감수성을 끌어낸다. 간혹 평자들은 최근의 그의 작업과정은 흙이라는 물질에 대한 관념을 표명하는 시기, 흙과 불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시기, 백자기법인 전승을 바탕으로 조형작업을 시도하는 시기등 작업의 끝없는 모색으로 지적하기도 한다. 이른바 위대한 자연의 계곡에서 부유하는듯한 장인적 기량으로 작가의 대담한 사유(思惟)를 은연중에 보여준다. ○말없고 설명 싫어해 그의 작업은 농부에 비유되고 있으나 실은 순 서울토박이다. 청파동에서 장사를 하던 李範奭씨의 3남3녀중 막내. 지난 6월 성곡미술관이 주관한 ‘한국 전통도예 10걸’에 추대되리만치 우뚝한 명장(名匠)의 위치지만 그의 어린시절은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다른 예술가들처럼 장래 무엇이 되겠다는 포부도 없었고 부모의 특별한 기대도 받지 않았다. 부친이 일찍 타계한 탓에 누나와 형들에게 학비를 타쓰는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냈고 고3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미술학원에 다닌것이 도예와 관련된 유일한 근거다. 천성적으로 말 없는데다 설명하기를 싫어해서 여러 논쟁에 끼어들지 않았으나 월간 ‘공간’과 계간미술지등에 ‘현대 도자기의 의미’와 ‘전통도예 기법에 의한 현대도예’등 ‘미적탐구가 아닌, 용기로서의 의미’를 지속적으로 발표한것으로 알고 있다. 주변에서는 ‘재미없는 사람’‘멋없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고 잘 팔리는 작가가 아닌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편도 아니다. 홍대후배인 부인 崔惠子씨는 그런 남편을 이해하여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자녀는 남매. 물레질만이 취미이자 낙이며 온힘을 기울여 그릇을 빚는동안 반드시 좋은 그릇이 탄생하리라는 확신에 차있다. 흙의 따뜻한 체온으로 도자기를 성형하고 신비한 불의 마술을 경험한다는 것은 각박한 현대생활에서 아름다운 들꽃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소박한 기쁨일 것이다. 현대도예에서 가장 충실하게 조형탐색을 일관하는 예술가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수종이며 무기교로 일관하는 ‘이수종 그릇’은 그만이 지닌 투박미와 자연미로 한국 현대도예사에 한획을 긋는 비중있는 족적을 남길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길 ▲1948년 서울출생 ▲1971년 홍익대 공예과졸업 ▲1979년 홍대 산업미술대학원졸업 ▲1981년 첫개인전(서울관훈미술관) 1986-88년 개인전(토갤러리) ▲1990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예술의전당 미술관개관기념전, ‘흙놀이’(토탈미술관),한일교류전(교토) 1991년 도예와 조각의 만남(63갤러리),한국현대도예 유럽순회전 ▲1992년 서남미술관개관기념전, 현대분청 2인전(다도화랑), 독일 슈포트벡셀기획 ‘다른것들과의 만남’ ▲1993년 개인전(서울삼풍갤러리·성담아트갤러리),예술의 전당 개관기념전, 한국현대도예전(미국 샌디에이고) ▲1994년 핀란드및 타이베이 국제도예전, 현대도예30년전(국립현대미술관), 부산개인전(갤러리부산) ▲1995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우원화랑),한국현대도예전(한가람미술관), 20세기의 東京전(화랑사계) ▲1996년 서울공예대전, 진로도예 벨기에전, 한국현대도예가회 특별전(토탈미술관), 누드웨어전(신세계현대아트) ▲1997년 개인전(토아트 스페이스), 워커힐미술관초대 ‘흙의 정신전’ ▲1998년 성곡미술관초대 한국도예작가10인전 대만시립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뮤지엄 국제소형도자 트리엔날레 명예상(90년)
  • 서양화가 李大源(이세기의 인물탐구:175)

    ◎빛을 데생하는 화단의 신사/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작품에 그대로/화폭마다 생명력 약동 축제분위기 넘실/‘물방울처럼 영롱한 화경’… 독자 영역 이룩 만약 벚꽃이 만개한 눈부신 봄날에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꽃잎을 본 사람이라면 서양화단의 원로 李大源 화백의 그림을 아는 사람이다. 그의 쏘는듯한 붓길은 비로드에 싸인 보석더미와 그 보자기를 펼치는 순간의 차갑고도 투명한 광채(光彩)의 이미지다. 겨울에는 오색 찬란한 꽃망울이 예감되고 무더운 장마에는 무지개빛 서광이 번뜩인다. 눈송이도 빗방울도 온통 색채의 의장(意匠)이 장식되어 못위에 내리는 빗줄기가 송곳처럼 수면에 꽂히는가하면 색채의 향연이 옥구슬처럼 농원에서 굴러다닌다. 광활한 공간에 만약 그의 그림이 한점만 걸려 있어도 그곳에는 생명의 결실과 축제의 분위기가 넘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그림은 미술’ 임을 확고히 지켜나간다. 아무리봐도 지루하지 않고 아무리 봐도 행복감에 젖어 그림속에서 흘러나오는 탐미적 향기에 도취하지 않을수 없게 된다. 초기의 여거도(與居島)등 섬이나 산그림을 보면 웅걸(雄傑)한 호방함과 분방함이 도사리지만 그림의 내면은 오늘의 별빛 미래를 산뜻하게 예고했다고 할수 있다. 예를 들어 야트막한 산야와 그 아래 펼쳐진 과수원풍경,수목에서 솟아나는 활기와 생동감은 하루의 아침과 저녁이 다르듯이 ‘늘 같은 것을 보아도 화가의 눈에는 항상 다르게 보인다’는 말대로 가장 신선한 그림을 탄생시킨다. 그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려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겨놓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의 가능성과 미묘한 조율(調律)을 변주로 뿜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동감 變奏 그러기 위해서 그때마다 떠오르는 영감과 감상에 의존하기보다 다시한번 새롭게 사물을 관찰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용으로 작가의 내면까지 화면에 담아낸다. 이른바 살아있는 힘으로서의 자연을 포착하기 위해 스스로 나뭇잎에 스치는 바람, 연못에 이는 잔물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자연은 무의미하게 멀리 서있는 부동의 풍경화가 아니라 햇빛에 찰랑거리고 바람에 나부끼는 살아숨쉬는 소우주로서 재현되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그의 붓길은 속도감과 운동감으로 쉴새없이 움직이고 짧은 사선과 직선과 곡선이 그때마다 의외성을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평론가 박래경은‘상식적이지 않은 시선과 범상치않은 구도설정은 단순하면서도 참신한 맛을 추가하여 추상화된 그림세계에 연결되고 있다’고 예언한바 있다. 예를들어 지난 60년에 그린 ‘담쟁이’는 불꺼진 창과 밋밋한 벽으로 기어오르는 메마른 덩굴에 머물고 있으나 그로부터 2년후인 62년에는 같은 벽으로 기어오르는 덩굴이라도 빨강과 황금색등 색채의 축연을 조직하는 것이 남다르다. 이른바 12계절이라해도 좋을만큼 시절따라 시간따라 환상적인 보랏빛이 발휘되고 같은 유형의 색깔이 변조되어 맨 마지막 단계에서 오리지널리티의 완결성과 정신적 탐구를 성취해낸다. ○59년 첫 개인전 열어 이경(二耕) 이대원, 가장 흔히 회자되기는 그는 화단의 신사요 멋쟁이다. 그의 그림세계에는 예술가들이 자칫 가질수 있는 퇴폐적인 낭만이나 고뇌나 파토스 대신 아파테이아의 초연(超然)이 깃들여 있다. 그와 경복고 동문에다 절친했던 고고학자 김원룡박사에 따르면 ‘말쑥한 성품으로 태어나서 평탄한 청춘시절을 보내고 만년소녀로 소문난 아름다운 미인의 내조를 받으며 정상의 예술가로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의 총장을 거쳐 집에서는 딸들과 훌륭한 사위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과연 이대원은 팔자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여기에다 ‘항상 멋있는 옷을 입어 화단의 드레서로 소문나 있고 미식가애 주가에다 집과 학교와 파주농원에까지 화실이 세군데나 되어 화단의 귀족’ 같은 존재지만 그의 어느 일면에도 ‘속물취(俗物臭)’는 찾아볼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예술가적 면모는 어느장소에서나 시와 정취와 인간미를 잃지 않는다. 지성적 풍모에 단정한 매너로 인해 언뜻 보기엔 날카로운 인상이지만 그와 사귄 사람들은 ‘볼수록 때묻지 않고 따뜻한 성품’ 에 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평소에는 화단의 김흥수 권옥연과 잘 어울리고 최기원과 이만익, 삼성문화재단의 손기상 상무와도 각별한 사이다. 경기도 문산에서 농림회사에다니면서 그 일대 꽤큰 과수원을 가지고 있던 一耕 李鍾林씨와 金善伊씨 사이에서 삼남중 막내. 파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서울로 이사해서 청운공립보통학교에 다닐때부터 그림을 그렸다. 중학교 3학년때 선전에 연속 입선, 경복고를 졸업할때까지 미술공부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던 부친이 미술학교만은 강경하게 반대하여 지금의 서울대인 경성제국대 법과에 진학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림만을 그렸고 59년에 첫개인전, 한때는 우리나라 화랑의 효시로 기록되는 반도화랑을 운영한 적이 있다. 가족은 의사이던 부인 李鉉金 여사와의 사이에 딸 다섯, 63년간 살고 있는 유명한 혜화동집은 지난 89년 출간된 ‘혜화동 50년’의 바로 그 무대다. ○한때 반도화랑 운영 그의 미술역정은 파리의 저명한 미술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에 의하면 ‘출중하고도 예외적인 인물’로서 ‘이대원은 빛을 그린다기보다 빛을 데생하는 화가’란 말로 압축된다. ‘선과 점과 조직을 사용해서 그것으로부터 그의 붓은 그가 창출한 수많은 색채로 형태를그려내기’ 때문이다. 그의 엄청난 재능들은 레스타니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그림속에 있는 모든 것은 화사함과 고요함과 기쁨’에 틀림없다. 현대작가중에서 이러한 자연적인 교훈을 자신의 창작으로 성취한 사람은 별로 흔치않다. 물방울처럼 튀기는 영롱한 화경에서 그가 이룩한 이대원식 표현이란 바로 ‘이대원 자신의 화창한 인생의 음률’일 것이다. 거기에는 국경이 없으며 범우주적인 진솔한 정서와 삶의 즐거움만이 투영되어 날이 갈수록 싱싱하고 청청한 빛을 발한다. 사람을 반기는 그의 색채점묘화는 보는 이의 가슴에 루비나 사파이어같은 보석의 광채를 언제까지나 눈이 부시게 비춰주게 될것이다. ◎그의 길 ▲1921년 경기도 문산 출생 ▲1938­40년 선전 출품 ▲1945년 경성제대 법과졸업 ▲1959년 첫개인전(중앙공보관화랑) ▲1959­60년 국제자유미술전출품 ▲1962­68년 신상전·동인전출품 ▲1967­86년 홍대 미술대 교수·대학원장·학장·총장 ▲1971년 개인전(반도화랑) ▲1973년 한국근대미술 60년전·한국현역화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1975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위원 ▲1977년 개인전(현대·신세계) ▲1978년 중화민국 중화예술원 명예철학박사,영국국제하계미술전 출품 ▲1979년 뉴욕 한국화랑초대개인전 ▲1981년 회갑기념전, 성균관대 명예철학박사, 파리 살롱도톤느 출품 ▲1983·85년 현대화랑 개인전 ▲1986년부터 홍대 명예교수 ▲1987년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한국박물관회회장,개인전(강남현대) ▲1988년 부산개인전 ▲1988­91년 국제현대미술제 및 아시아국제미술전 출품 ▲1989년 개인전,대한민국예술원회원 1993년 대한민국 예술원회장 ▲1995년 ‘이대원 1990­95년’개인전(갤러리 현대) 국민훈장목련장(73년) 5·16민족상(88년) 대한민국예술원상(91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94년) 오지호미술상·대한민국금관문화훈장(95년) 역서 柳宗悅저 ‘한국과 그 예술’(74년)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96년) 화집 ‘이대원’(81년) ‘이대원,혜화동 50년’(89년)
  • 중랑천 쓰레기 20t 수거/환경캠페인 7,000명 참가

    서울신문사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한강지천 정화 현장캠페인’행사가 21일 상오 서울 성동구 사근동 한양대 뒤쪽 중랑천 일대에서 열렸다. 올들어 세번째인 이날 행사에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7,000여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참가해 성동교 근처에 널려있는 쓰레기와 잡초 20여t을 치우며 구슬땀을 흘렸다. 광남중 자양중 명성여중 전농중 무학여중 광장중 구의중 동마중 용곡중 중앙중 장평중 광양중 신양중 배화여중 광희중 청량중 광진중 대원중 홍대부중 한대부속여중 옥정중 한대부속여고 성동고 광양고 장충고 청량실업고 등 26개 학교 학생들이 참가했다. 이날 행사는 교육부 환경부 서울시교육청 한국방송공사가 후원했다.한국암웨이가 협찬하고 성동구청이 주관했다. 林載五 성동구 부구청장, 金蕙媛 성동교육청 장학사,邊雨亨 서울신문 사업국장 등도 참여했다. 중랑천은 도봉구 노원구 중랑구 등 서울 동·북부지역의 생활하수가 흘러드는데다 하천변 동부간선도로를 오고 가는 운전자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주변 환경이 크게 오염돼있다.
  • 알맹이와 찌꺼기의 하나됨/재독조각가 강진모씨 전시회

    ◎‘재료 파괴=창조’ 전통적 조각에 반기/‘남과 북’ 두 요소간 해체­통합 묘사/기술공학·조각 접목시도 최근작 소개 ‘전통적 조각의 조형요소와 공간으로부터의 일탈’‘해체와 조합’.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 성곡미술관이 기획한 ‘내일의 작가전’에 네번째로 초대된 재독 조각가 강진모씨의 작품세계에 대한 평단의 논평이다.전시기간 30일까지. 이번 작품전은 국내에서 열리는 그의 첫번째 개인전이다.그 때문에 전시에 대한 관심이 크다.그의 작업은 재료를 깎아냄으로써 물질속에 갇혀 있는 존재를 해방시키는 전통적 방식에 의존하지 않는다.물질에서 그가 의도하는 새로운 형태를 꺼낼 때 나오는 ‘폐석’을 창조된 형태와 동등하게 배치한다. 전통적 조각에서는 작품을 만들고 남은 파편들을 모두 폐기했다.그러나 그는 재료에서 꺼낸 형태는 물론 그 과정에서 나온 찌꺼기들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지도를 연상시키는 작품 ‘남과 북’을 예로 들면 기존의 조각에서는 지도나 토끼 모양의,재료속에서 캐낸 형태외에는 모두가폐기됐다.그러나 그는 기존 조각에서는 폐기처리될 부분을 그가 의도한 원래의 형태와 함께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배치함으로써 재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는 기존의 전통적 조각행위는 재료쪽의 처지에서 보면 ‘파괴행위’요,재료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해 ‘재료의 완결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형태는 양(陽)이요,알맹이를 뽑아내고 남은 재료는 음(陰)으로 보는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건 잘라내고 남은 음(원석)과 잘라낸양 사이의 긴장과 화해다.그의 이같은 방식은 해체와 재통합이라는 ‘합일의 세계’를 지향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돌’연작과 함께 ‘4차원 형태의 실험’ ‘자기찾기,외계인 찾기’ ‘심장’ ‘수평의 상대성’등 기술공학과 조각의접목을 시도한 신작들을 내놓았다. 강씨는 국내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 더 잘 알려진 작가다.87년 홍대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뮌헨 미술대학원에 유학한 뒤 지금까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다.파리 피악을 비롯,스위스 바젤아트페어,독일 쾰른화랑제,프랑크푸르트 아트페어,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트페어 등에 매년 초대되고 있다.개인전은 유럽에서만 13차례 가졌다.지난해 광주 비엔날레에 초대돼 ‘자기 찾기,외계인 찾기’란 제목의 설치작품을 보여준 바 있다.12년만의 귀국전이다.
  • 연극 ‘엄마,안녕‘의 두 주인공 손숙·정경순씨

    ◎갈수록 꼬이는 한 모녀의 애증/자살 결심한 딸이 엄마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자식사랑이 딸의 속만 긁고… “저 오늘 자살해요”하는 딸에게 소맷부리 부여잡는 것 말곤 아무 것도 해줄 게 없는 엄마.유교적 효(孝)관념이 승한 우리같은 사회에서 잘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다. 그런데 홍대앞 누추한 지하 거실에서 요즘 한 모녀가 저녁마다 이런 승강이를 벌인다.중견배우 손숙과 영화 ‘태백산맥’의 죽산댁 정경순.이들 둘이 모녀로 출연하는 산울림소극장(334­5915)의 연극 ‘엄마,안녕…’은 자살 결심을 완전히 굳힌 딸이 죽기 전 한시간 반가량 엄마와 나누는 마지막 대화를 담았다. “간질병에 걸려 남편에게 버림받지,사랑하는 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셨지,하나 있는 아들은 집나간 소매치기지….아무하고도 못 사귀는 비사교성으로 집안에 틀어박혀 말도 안 통하는 엄마 시중이나 드는 ‘제씨’는 살아오면서 하나하나씩 모든 것을 버린 여자예요.” 자신이 맡은 딸 역할을 이렇게 설명하는 정경순은 사실 너무도 탱탱하고 활기가 넘친다.소녀같이 주책맞은 구석이 필요한 엄마 역할의 손숙이 마른나뭇잎처럼 금새 부스러질듯 보일 지경.마샤 노먼의 83년 퓰리처상 수상작이 원작인 이 객석은 모처럼 주부 관객들로 만원이다.이들중 딸 가진 엄마가 얼마나 될지 통계 내볼 수는 없겠지만 다들 딸자식 처지인 것만은 확실해 극중 모녀관계를 상당히 공감하는 눈치들. 엄마는 딸이 준 마지막 90여분간,지난 삶의 맺혔던 순간들을 끄집어내 풀어보이며 어떻게든 딸의 마음을 돌리려 버둥댄다.하지만 잘해보려는 뜻과는 달리 한마디 할 때마다 딸의 속을 긁으며 어긋나기만 한다.지금껏 그런 식으로 밖엔 말할 줄 몰랐으니까.엄마의 비난도,자책도,위협도,달램도 이미 속이다 타버린 딸에겐 너무 늦었다. “이런 엄마 주위에 많잖아요.겁많고 의지박약에 뜨개질이나 TV보기 따위에 행복해 하며 살아가는… 딸의 가슴에 비수 꽂히는 것도 모르고 감정대로 말도 아무렇게나 퍼부어버리기 일쑤죠.딸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옳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거예요.” 자기 엄마도 비슷했다고,그래서 애증의 대상인 그런 엄마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노라고 덧붙이는 손숙.어쨌거나 엄마와의 안 풀리는 관계를 원인(遠因)으로 자살도 하고,그러면서도 그 마지막 자리에 초대할 사람이 또 엄마뿐인,이 지긋지긋한 모녀관계의 애증이란,아들은 결코 알 수 없는 진폭으로 대부분 모녀들의 가슴을 흔드는 화두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자연인 손숙,정경순이 극중 딸,엄마에게 당부 한마디씩. “딸아,그것도 다 나름의 자식사랑이란다.” “엄마,속상할수록,어려운 일 많을수록 더욱 터놓고 진실을 말해 줘야죠.”
  • 韓紙화가 咸燮(이세기의 인물탐구:171)

    ◎한지­천연물감 현란한 ‘한국의 美’/작품마다 한바탕 춤춘듯 신명과 신비의 여운/투박함 속에 치솟는 역동성 자연순응성 함께 홍익대와 극동방송국 앞을 지나 상수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한지작가인 咸燮의 작업실이 있다.어질러진 주변풍경 때문인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빌딩이지만 작업실에 들어서면 강한 유화냄새가 아닌,밀밭같기도 하고 들판에난 잡초같기도 한 기묘한 풀냄새가 온통 싱그럽다. 전업작가인 그는 직장에 다니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것처럼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 7시나 8시, 그림이 되는 날은 밤 10시까지 화실에 머무르면서 전날 그린 그림을 다듬잇돌로 눌러놓거나 말리는 갖가지 작업에 몰두한다.종이를 물에 불리고 개고 찢고 치면서 자신이 원하는 색깔을 내기위해 풀로 버무리고 붙이기도 한다. 종이는 바로 그의 매재이자 마티에르이며 톤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그림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질긴 생명감으로 인해 평론가 이일씨가 생전에 ‘알록달록한 색조가 엮어 내는 자유로운 리듬은 한바탕 굿판에서 굿장단에 맞춰 춤을 추고난듯한 신명을 준다’는 말을 실감시킨다. ‘시나위를 방불케하는 종횡무진의 선묘와 열정적인 육필의 파문(波紋),파격효과에 어울리는 원색의 난무는 그림전체에 스며있는 신비성과 함께 굿의 의식행사를 그대로 화면에 펼친 듯한 착각마저 던져준다. 이로인해 그의 한지작업은 곧잘 ‘앵포르멜 미술’로 논란되기도 하지만 루오나 드랑에서 보이는 대담하고 단순한 굵은 선, 뒤뷔페의 가공하지 않은 ‘원생미술(原生美術)’처럼 ‘성숙된 미완’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또 한지라는 재질을 최대한으로 살려 한지만의 가냘프면서도 순후한 성질, 소박하면서도 풋풋한 숨결과 온화 강인한 기질을 두루 석권하는 것도 그의 그림만의 한 특징일 수가 있다. 전에 국립박물관장이던 최순우씨는 이를 ‘허세를 모르는 초월의 세계’이며 ‘우리다운 그림’으로 크게 평가한바 있다. 그는 다른 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수많은 파란과 곡절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부와 명예와 허욕이 범람하는 혼돈속에서 그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불태우기 위해 한때는 앵포르멜운동에 심취한 적이 있고 60년대 중반에는 탈앵포르멜적 입장에서 기하학주의로 전환하는가 하면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의 대립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색감의 정감이 채가시지 않은 단순명쾌한 평면을 보임으로써 ‘유토피아적인 가공적 공간’을공략해 내었고 유동적인 문양과 직선적인 구획의 이중적 모티브를 한 작품속에서 균형있게 다루게 되었다. 그는 국화지에서 설화지 닥지 석회지 닥피지 장판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작업을 통해서만 가장 좋은 작품을 기대할수 있다’는 정신으로 한지의 성질을 다방면으로 끌어내는데 개척자적인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른바 한지가 온전한 형체를 갖추기까지 중노동을 방불케하는 힘겨운 과정을 단 한번도 거부한 적이 없다. 한지가 물속에 잠기는 과정에서 온 육체를 던져 담조미(淡調美)를 얻어내는가하면 세심의 극치로서 인위적인 완미(完美)를 성취해내기도 한다.색채는 옻물 치자물 엽초 진달래꽃물을 자연에서 직접 채취하여 그만의 가공법으로 유화와 수채화물감을 능가하는 풍부하고도 은은한 원초적 생명감을 되살려내고 있다. 그리고 두껍게 배접된 한지의 한부분을 뜯어내고 겹치고 붙이고 밀면서 비바람에 간신히 견디고 살아남은 노송의 헐벗은 표피를 형성해낸다.그것이 그림의 완성이다. 그의 그림은 수많은 감상자들이 공감하는 것처럼 ‘공관(空觀)과 가관(假觀)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절대적인 세계에 체달(體達)한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경지’이다. 물이 넘치거나 달이 차면 흐르거나 기울듯이 어느때는 비틀리고 어느때는 역행하면서 확실한 동세(動勢)를 지켜나간다. 그것은 인간의 내적 심경이 외계의 환경과 공존한다는 확대된 리얼리즘이며 앙드레부르통에 의한 초현실주의와 전후 추상주의로 특징지어 진다. 평론가 서성록의 ‘투박하지만 힘이 치솟고 완벽을 추구하면서도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도량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한다. 토탈미술관의 큐레이터 정준모도 ‘그의 작품에는 우리민족만의 자연스러움이 부드럽게 넘치고 있다’고 조언한다. 가족은 李惠京씨와의 사이에 남매. 그는 산천이 수려한 호반도시 춘천에서 한학자인 咸成南씨의 4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려왔고 단 한번도 화가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홍익대 진학후 강원도가 공모한 미전에서 유화인 ‘연못’으로 최고상인 특선, 다음해 국전에서 ‘실내좌상’ 입선후 각종 미술전에서 수상하면서 화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본명은 함종섭. 가운데 글자를 스스로 빼버렸다. 그가 한지에 눈뜨게 된것은 지난 70년초 초가지붕같은 푸근한 볏짚문화에 대한 향수 때문이며 78년에 볏짚을 붙인 것 같은 느낌의 마티에르로 서양화단의 원로이던 남관씨가 격려하면서부터다. ‘모든것이 비슷한 상황에서 함섭의 그림은 그 방법에서 이미 자신만의 특성을 이룩하고 있다’는 것이 남관씨의 평이었다. 여기에서 발전하여 캔버스에 볏짚을 붙여 볼륨을 살리고 창호와 문장지, 천연물감과의 결합과 혼합을 다각도로 시도하게 된 것이다. 그의 그림은 현재로선 가장 특이한 캐릭터를 가진 ‘한국적 화가’로서 국제화단에서 ‘경쟁력’있게 급부상하고 있다. 해외초대전에서의 그의 인기는 그와 절친한 박동욱씨(한국타악기회 회장)의 의하면 지난해 유럽전시에서 그의 그림앞에 관람객들이 ‘꿀단지에 붙은 벌떼처럼 모였다’고 할 정도다. 참을성과 성실성이 그의 성정이며 한번 사귄 사람을 잘 관리하는 것도 그만의 미점이다. 정이 많고 무엇보다 일 욕심이 대단하다. 그는 한국화단이 아닌 세계무대를 겨냥하여 지금부터 ‘가장 이긴 자’가 되기위해 욕망과 야심의 불길이 그 끝을 모를만큼 하늘에 치닫는 시기다. □그가 걸어온 길 ▲1942년 강원도 춘천출생 ▲1962년 춘천고 졸업, 서울비엔날레초대전(서울 현대미술관) ▲1966년 홍대미대 회화과 졸업 ▲1975­78년 아시아현대미술초대전(도쿄 우에노미술관) ▲1978년 서울미술회관 개인전 ▲1981년 한일 현대미술전(일본 후쿠오카미술관및 서울미술관) ▲1982년 동국대 교육대학원 졸업 ▲1983·85·86·87년 개인전 ▲1985년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참가 ▲1988년 88서울올림픽기념 닥종이작업전(백송화랑) ▲1989년 동숭아트센터개관기념 한국현대미술 80년대의 전황 ▲1990­92년 현대미술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91·92·93년 개인전(서울 인데코,단갤러리,강남화랑,토탈미술관,현대아트 갤러리) ▲1994년 독일 쾰른,서울 예맥화랑, 종로갤러리초대 개인전 및 뉴욕 아트인터내셔날 출품등 해외전 다수 ▲1996년 서울종로갤러리초대전 ▲1997년 독일쾰른개인전 ▲1998년 네덜란드 레이덴초대전 한국미협서양화분과위원장·한국한지작가협회장·오리진 회화협회회원 영국대영박물관 홍대현대미술관 서울미술관 독일 뮬러브로네트갤러리 부산방송국 토탈미술관 외
  • 록그룹의 대중성 확보 多面 지원/언더음악 전문잡지 ‘팬지공’

    ◎언더그룹 공연장소·특성·연락처 등 상세히 소개 “언더그라운드 문화는 우리의 사회를 투영하는 또 하나의 프리즘입니다.서구의 자유 정신에도 이들 ‘땅끝 문화’가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돼서는 안됩니다” 언더그라운드 음악 전문잡지 ‘팬진공’의 편집인 김종휘씨(32).독립음반사를 운영하랴,잡지의 편집을 맡으랴 눈코 뜰새 없지만 이 땅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지킨다는 자부심만은 누구보다 대단하다. ‘팬진공’을 창간한 것은 지난해 3월 우연히 록그룹 ‘허벅지’의 리더 안이영로씨(32)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이들은 언더그라운드 음악만을 소개하는 전문잡지를 만들자는데 의기가 투합했다.안이영로씨는 아버지 안씨와 어머니 이씨의 성을 동시에 딴 이색 인물. 김씨는 3개월의 노력 끝에 지난해 6월 3백여만원을 들여 ‘팬을 위한 매거진,공’이란 뜻의 ‘팬진공’을 냈다.‘공’은 아무것도 없는 새로 채울 그릇이라는 뜻(空)과 즉시 반응이 튕겨져 온다는 뜻의 공(球)의 뜻을 동시에 담았다.창간호의 명칭은 ‘폐간호’.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저항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간호가 신촌과 홍대 부근에서 배포되자 함께 제작해 보고 싶다는 제의가 쏟아져 들어와 2호부터는 음악평론가 사진작가 만화가 비디오작가 디자이너 등의 전문인력 30여명이 참여했다.지금까지 격월간으로 5권이 나왔다.정기독자도 현재 2천명을 넘어섰다.언더그라운드 무대에서 활동하는 록그룹과 이들의 공연장소와 특성 및 연락처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웹진공’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www.ch0.co.kr) 사이트도 열었다. 그는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해 사라져 가는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들을 보면서 남다른 소명의식을 느껴왔다”면서 “팬진공이 록그룹들의 대중성 확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 ‘총리서리’ 법정 공방 만반 채비

    ◎26일 첫 공개 변론… 2여 10인 대책위 구성 위헌시비를 빚고 있는 ‘김종필 총리서리 체제’가 오는 26일 법정에 선다.한나라당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청구’와 ‘국무총리서리 임명 효력정지 및 직무집행 가처분 신청’의 공개 변론이 열리는 것이다. 법정공방을 앞두고 총리실은 긴장감보다는 평온함이 느껴진다.이길 수 있다는 자심감 탓이다.한나라당이 제기한 소송은 주체 및 당사자가 모두 원인무효라고 총리실측은 설명한다. 권한쟁의의 당사자는 ‘국회·정부·법원·중앙선관위 등’으로 헌법재판소법(62조)은 규정하고 있다.법취지에 따르면 소송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거나 국회의장 명의로 제기할 수 있다.한나라당 의원들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청구는 원인무효라는 게 법조계 다수의 해석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처분 신청의 상대방도 마찬가지이다.한나라당은 ‘국무총리서리 김종필’이 아닌 ‘자연인 김종필’을 소송의 상대방으로 규정하고 있다.따라서 소송의 요건을 갖추지 못해 원인무효라는 것이 법무부와 법제처의의견이다.김홍대 법제처장은 최근 김총리서리에게 이같은 내용의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총리실은 상황이 낙관적이지만 법정공방에서 총력전을 펼칠 태세이다. 자민련의 이건개·함석재 의원과 국민회의 신기남·유선호 의원 등 율사 출신 전·현직 의원들로 ‘10인 법정대책위’를 구성했다. 여기에 변호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법제처의 노명선 파견검사를 가세해 법정대리인으로 내세운다는 계획이다. 총리실은 법정공방을 비껴가면 다음달쯤 ‘서리 딱지’를 뗄 수 있는 상황이 올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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