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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향 독립법인화 ‘진통’

    서울시향 독립법인화 ‘진통’

    서울시향(서울시교향악단)의 홀로서기가 한동안 진통을 겪을 전망이다.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이 지휘봉을 잡아 지난 22일 화려한 취임식을 갖기까지는 순탄한 듯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지난 24일 서울시가 새롭게 재단법인화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단원들을 전원 오디션으로 뽑겠다는 공고를 내자 기존 단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선 것. 지난 25일 서울시향 단원 50여명을 포함한 세종문화회관 노조는 “서울시가 전 단원을 대상으로 오디션하겠다는 방침을 전격 선언한 것은 사실상의 정리해고”라며 “서울시향 법인화에는 공감하나, 단원 전면 오디션은 기존의 서울시향을 해체하고 그 이름만 도용하려는 것과 다름없다.”며 기존 단원의 고용승계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한때 파업을 결의했다. 그 때문에 이날 밤 예정돼 있던 공연(‘이탈리아 음악의 밤’)은 파행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비노조원들만 연주에 나서기로 파업방침을 정했다가 막판에 노조원들이 공연에 합류키로 했던 것. 하지만 남자 단원들은 항의표시로 재킷을 벗은 채 셔츠 차림으로 무대에 서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전국문화예술노동조합 세종문화회관 지부와 서울시향측은 “전국의 예술단체와 연대해 이 문제에 대처해나갈 계획”이라고 입장을 정한 상태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히 봉합되진 않을 듯하다. 서울시향의 파업결의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또한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서울시 문화과의 한 담당자는 “새 단원 전원을 오디션으로 다시 뽑는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심사위원단을 별도로 구성해 공정한 심사를 볼 것이고, 기존 단원들에게도 오디션 기회를 열어놓는 한 문제될 게 없다.”고 쐐기를 박았다. 서울시는 예정대로 4월말 오디션을 강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공연계는 양쪽 모두에게 석연찮은 시선을 보내는 분위기다. 사전예고없이 물밑 진행해온 내부계획을 전격적, 일방적으로 강행하는 서울시도 그렇거니와, 서울시향쪽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지적들이다. 한 공연 관계자는 “경쟁력있는 기량을 갖추지도 못했으면서 안정된 신분만 보장받으려는 연주자들의 자세에도 응원을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서울시향은 “서울시와 협상 등 단원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는지 여부에 따라 향후 공연여부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새달 1일 충무아트홀 개관기념 연주회, 새달 7∼10일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등이 예정돼 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삼성家 ②-한솔그룹

    한솔그룹은 삼성가(家)의 맏딸인 이인희(76) 고문이 일궈낸 기업이다. 아울러 ‘큰 소나무’란 뜻의 순 우리말 이름을 가진 국내 최초의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1년 삼성가로부터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를 받아 ‘홀로서기’에 나선지 15년. 이 ‘큰 소나무’는 한때 19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서열 11위(자산규모 9조 3970억원)까지 올라 ‘리틀 삼성’으로 불렸다. 계열분리 당시 매출액은 3400억원에 불과했지만 금융과 정보통신, 제지의 3개 부문을 축으로 삼아 급성장하며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 뽑히기도 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한솔도 생채기는 있었다.1998년 외환위기 파고에 휩싸이며 ‘곁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을 겪은 것. 매출액은 1999년 4조 5000억원을 정점으로 2003년 2조 5000억원으로 떨어지며 한동안 자존심에 작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거쳐 2002년 이후 3년 연속 흑자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온갖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것처럼, 한솔은 올해 불혹(창사 40돌)을 맞아 한솔제지를 중심으로 재도약을 다지고 있다. 구조조정에 나설 당시에 ‘어디까지나 내일의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일 뿐’이라는 이 고문의 약속이 마침내 결실을 맺고 있는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 “쟤가 아들이라면…” “이리 오세요.” 어두운 극장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나는 그녀가 이끄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인희 고문의 남편인 조운해(80) 전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 이사장이 회고록에서 밝힌 아내와의 첫 상견례 대목이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이 고문과 첫 만남에서 발생한 ‘작은’ 사건으로 인해 앞으로 ‘통 큰 여장부’와 ‘숫기 없는 남자’로 살아갈 운명을 예감했다고 한다. 조 전 이사장은 회고록에서 아내인 이 고문에 대해 “수완이 탁월할 뿐아니라 사업가적 재질이 뛰어난 전형적인 삼성가 출신”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꼬장꼬장한 자신과 달리 아내는 남자처럼 걸걸한 편이어서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뒤바뀐 부부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고문의 경영자적 자질을 가장 아꼈던 사람은 부친인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고 이 회장은 이 고문에 대해 “쟤가 아들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근심 걱정이겠노.”라고 수시로 말했다고 한다. 당시 고 이 회장은 삼성의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고 이 회장은 골프 라운딩을 할 때마다 맏딸인 이 고문을 데리고 다녔다. 이 고문에게 인사 교류의 폭을 넓혀주고, 경영에 관한 조언을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 고문도 부친을 기쁘게 하기 위해 남모르게 골프 연습을 많이 했다. 그는 골프도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골프에 관한 노트가 수십권이나 된다. 고 이 회장의 메모하는 습관을 그대로 닮았다. 이 고문은 “라운딩할 때마다 아버지한테서 회사를 경영하는 기법이나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 고문의 골프 스타일은 경영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주도면밀하게 연구한 뒤 한번 결정하면 그대로 밀어붙인다. 이런 경영 스타일은 정보를 중요하게 여겼던 고 이 회장의 경영관과 다르지 않다. 이 고문은 “골프는 연습한 만큼, 그리고 노력한 만큼 거두는 운동이며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고문은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된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적이 거의 없다. 대표이사를 할 때도 그의 직함은 ‘고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카리스마와 결단력은 고 이 회장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자식들의 무리한 공격 경영으로 한솔이 휘청거린 1998년, 그는 구조조정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회사를 정상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그리고 나서 3남인 조동길(50)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 고 이 회장이 경영능력이 뛰어난 3남 이건희 회장에게 삼성의 대권을 물려준 것과 같은 대목이다. 이 고문의 경영철학을 단적으로 드러낸 일화가 있다. 한솔은 1996년 종합레저산업에 진출하면서 오크밸리 건설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게 됐다. 이 고문이 참석한 가운데 콘도 분양을 위한 모델하우스 신축 문제를 놓고 임원회의가 열렸다. 한 임원이 모델하우스의 시공은 실제 콘도의 객실보다 조금 크게 시공해서 고객의 호감을 얻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당시는 모든 건설사가 그런 관행을 따르고 있던 때였다. 이 고문은 “정직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제와 하나도 다름없이 시공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고문은 벽지부터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2년 후에 개관될 콘도 자재를 긴급 구입해 실제 콘도 객실과 똑같은 모델하우스를 만들었다. 이 고문은 부친인 고 이 회장만큼이나 자존심이 강하다. 삼성가의 장녀로서 누구보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지녔다. 삼성에서 한솔이 분리될 무렵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은 “우리가 삼성에 들어왔지 전주제지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라는 직원들의 인식이었다. 이 고문은 이를 받아들여 직원들에게 국내 최고 수준의 복리후생을 제공했다. 특히 삼성가로부터 받은 삼성중공업의 일부 지분을 임직원에게 그냥 나눠준 것은 ‘한솔은 사람이다.’라는 경영 이념과 ‘통 큰 여장부’로서 기질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이 고문은 또 직원들에게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을 쏟았다. 공장을 방문하면 식당에 어떤 꽃을 갖다 놓으라든지, 직원 유니폼 선정 등을 일일이 챙길 정도다. 한번은 한 사원이 사옥 로비에서 인사를 드리자 이 고문은 사원 이름을 불러 감동을 주기도 했다. ●경북의 명문가 조씨 가문 조운해 전 이사장은 경상도 명문가인 한양조씨 일문인 조범석가(家)의 3남1녀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부친인 조범석씨는 일찍이 금융계에 투신, 대구금융조합연합회 회장을 역임했다. 당시 조씨 가문은 경북 영양에서 의사와 학자, 판·검사를 두루 배출한 경북 일대의 명문 집안으로 유명했다. 해방 이후 박사만 14명이나 배출했다. 시인 조지훈(본명 조동탁)도 이 집안 인물이다. 조 전 이사장의 초등학교 동창인 김집 전 체육부 장관은 어린 시절 조 전 이사장의 집안에 대해 부러움을 많이 느꼈다고 술회하곤 했다. 조 전 이사장은 1948년 11월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중매로 이 고문을 아내로 맞았다. 박 전 의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모친인 고 박두을 여사의 조카다. 박 여사는 맏딸인 이 고문의 배필을 박 전 의장에게 부탁했고, 박 전 의장은 경북중학교 1년 후배인 조 전 이사장을 추천한 것이다. 조 전 이사장은 경북대 의대(옛 대구의전)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원에서 소아과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영과 거리가 먼 서울대학교병원 근무를 시작으로 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고문은 이화여대 3학년 때 양가 집안의 합의로 결혼함으로써 이대 학칙상 학업을 끝내지 못했다. 그 후 이 고문은 이화여대를 위해 많은 공헌과 후원을 해왔으며, 특히 전문 여성 양성을 위한 두을장학회 초대 이사장을 맡아 우리나라 여성인력 육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정략 결혼은 ‘NO’ 한솔가의 2세(3남2녀)들은 정략 결혼과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 재벌가의 결혼이 ‘끼리 문화’가 지배적이었던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다. 3남인 조동길 한솔 회장 아내인 안영주(48)씨의 집안이 그나마 좀 알려진 편이다. 안씨의 부친은 안영모 전 동화은행장이다. 장남인 조동혁(55) 한솔 명예 회장은 이정남(54)씨와 신혼 살림을 차렸다. 조 명예 회장의 장녀인 연주(27)씨는 외국계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차녀인 희주(25)씨와 아들 현준(16)군은 학생이다. 차남인 조동만(52) 한솔아이글로브 회장은 대학시절 친구 소개로 부인 이미성(49)씨를 만났다. 장녀인 은정(25)씨와 차녀인 성진(19)양, 아들인 현승(15)군은 모두 학생이다. 3남인 조 회장은 부인 안씨를 만나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녀인 나영(23)씨는 현재 삼성전자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아들 성민(18)군은 학생이다. 며느리 세 명이 모두 이화여대 출신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솔가의 막내딸인 조자형(33)씨는 타이완계 미국인 빈센트 추(36)와 국제결혼했다. 이 고문은 당시 “너희 둘이 좋다는데 국제결혼이면 어떠냐.”면서 결혼을 승낙했다는 것이다. 결혼식은 타이완에서 열려 가족들만 조용히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빈센트 추는 현재 중국에서 정보기술(IT)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 양(6)과 경(3) 등 아들 둘을 두고 있다. 장녀인 조옥형(44)씨는 권대규(46) 한솔창업투자 부사장과 연애결혼했다. 권애영(17)양과 권이주(10)양 두 딸은 학생이다 ●‘3각 분권형’에서 조동길 회장 ‘단독 체제’ 한솔은 장남 조동혁 명예회장과 차남 조동만 한솔아이글로브 회장,3남 조동길 한솔 회장이 1997년부터 모두 부회장을 맡아 공동으로 그룹을 이끌었다. 장남은 금융을, 차남은 정보통신을,3남은 제지 부문을 맡았다.3형제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그룹 사업부문을 자연스럽게 떠안은 셈이었다. 이 고문은 경영 조언자로서 2선에서 자식들을 지원했다. 3형제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차남 조동만 회장이었다. 발이 넓은 조 회장은 1996년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따내며 물오른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룹이 PCS사업을 KT에 매각한 뒤 통신사업에서 손을 떼고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1994년 부친의 뒤를 이어 강북삼성병원을 경영하다가 1995년 한솔에 합류했다. 그는 한솔종금(당시 대아금고)과 한솔창투(동서창투) 등을 인수하며 한솔의 금융업 확대를 진두지휘했다. 그러나 한솔의 주력사업이 제지로 재편된 뒤인 2002년 그룹 명예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일선에서 한발 비껴섰다. 그는 선이 굵고, 글로벌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 명예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며 세계적인 재계 인사들과 교류를 넓히고 있다. 3남인 조 회장에게는 ‘실무를 아는 최고경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형제들 가운데 가장 먼저 한솔에 합류해 ‘제지통’으로 성장했다. 삼성물산의 자금업무와 JP모건을 거친 만큼 재무 감각도 남다르다. 형들이 신규 사업 확장에 나설 때 그는 조용히 한솔제지의 내실 성장을 이끌었다. 특히 외환위기 직후 신문용지 사업을 매각하고, 팬아시아페이퍼 합작법인을 주도해 모친인 이 고문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 NHK방송은 한국기업의 모범적인 구조조정 사례로 한솔을 소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솔은 금융·정보통신 사업을 정리하고 그룹의 주력사업을 제지로 전환함으로써 조 회장은 2002년 자연스럽게 한솔의 ‘대권’을 물려받게 됐다. ●한솔의 전문 경영인 선우영석(61) 한솔제지 부회장은 삼성출신 한솔의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조 회장과는 동서지간이다. 그의 아내 안인숙씨는 조 회장의 부인인 안영주씨의 언니다. 선우 부회장은 1998년 합작사(한솔·캐나다 아비티비 콘솔리데이티드·노르웨이 노르스케 스코그)인 팬아시아페이퍼 대표이사를 맡아 매년 매출액을 10%씩 성장시켰을 뿐 아니라 입장과 문화가 다른 세 회사를 조율하고 설득시키며 우량 회사로 발돋움시켰다. 이에 앞서 그는 한솔 상하이공장을 건립한 뒤, 공장을 가동하던 첫 해부터 흑자를 내는 사업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선우 부회장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국제적인 경영감각, 추진력 등 최고경영자(CEO)로서 지녀야 할 덕목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제일모직에 입사, 삼성과 인연을 맺었다.1993년 한솔로 옮기기 전까지 삼성의 해외 부문과 기획업무를 맡았다. 신현정(56) 경영기획실장은 한솔의 안살림을 맡고 있는 살림꾼이다. 신 실장은 삼성물산 총괄경영지원본부장과 제일모직 전략기획본부장을 역임했다. 문주호(58) 한솔제지 영업·생산 부문 대표이사는 타고난 영업맨으로 매년 영업 사원들에게 직접 새 신발을 신겨주는 행사인 ‘착화식’을 갖고 ‘발로 뛰는 영업’을 강조한다. 유명근(58) 한솔홈데코 대표는 영업·생산·기획 등을 두루 거치면서 해박한 지식을 자랑한다. 최근 기후변화협약이 시행됨에 따라 탄소배출권 확보가 한층 중요해진 가운데 그는 90년대 초 이미 해외조림 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인 식견있는 CEO다. 서울대 임학과를 나왔다. 지난해 취임한 권교택(57) 한솔케미칼 대표는 적자에 시달렸던 한솔케미칼을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킨 능력있는 CEO다. 침착한 성격에 세심한 경영 스타일이다. 김근무(60) 한솔개발 대표는 고객서비스를 최고의 경쟁력으로 강조한다. 오크밸리는 4년 연속 한국능률협회가 주관한 서비스품질 최고기업으로 평가받았다. 유재철(54) 한솔건설 대표는 삼성건설 총괄팀장과 공사지원팀장을 거친 정통 건설맨이다. 업계에서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서강호(56) 한솔CSN 대표의 경영철학은 ‘선택과 집중’. 그는 인천화물터미널과 한솔CS클럽을 매각하며 물류사업에 집중, 한솔CSN의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40분에 주파하는 마라톤 마니아다. 한솔LCD를 그룹의 주력 계열사로 키운 김치우(56) 대표는 현장 경영을 중시하는 CEO다. 정형근(55) 한솔EME 대표는 엔지니어링 전문가로 꼽힌다. 한솔텔레컴 유화석(53) 대표이사는 온라인게임과 인터넷 포털 등 적자사업을 정리해 경영안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조동길회장 ‘테니스 경영’ 조동길 한솔 회장은 대단한 테니스 예찬론자다. 마니아 수준을 넘어 테니스를 경영에 접목시킬 정도다. 현재 한국테니스협회 회장이다. 그는 테니스와 경영의 공통점으로 ▲강인한 기초 체력 ▲요행수가 통하지 않는 실력주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 등을 꼽는다. 조 회장의 남다른 점은 ‘테니스 경영이론’을 실제 비즈니스에도 적용한다는 것이다.9년째를 맞는 한솔-미국 앨라배마 펄프사간 친선 교류행사가 그 예이다. 이 행사는 테니스와 골프 두 종목으로 친선 경기가 이뤄지는데, 조 회장은 직접 테니스 선수로 뛴다. 또 매년 사내 테니스 대회를 열어 선수로 뛸 뿐 아니라 경기가 끝난 후에도 출전 선수와 격의없이 어울리곤 한다. 러시아의 ‘테니스 요정’인 마리아 샤라포바 초청 이벤트는 조 회장의 ‘테니스 경영’을 가장 잘 드러낸 대목이다. 한솔은 지난해 9월 개최한 제1회 ‘한솔 코리아오픈 테니스 대회’에 세계적인 스타 샤라포바를 초청, 이른바 ‘샤라포바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100억원이 넘는 홍보효과를 거뒀을 뿐 아니라 적자가 당연시되던 테니스 대회도 흑자가 가능하다는 값진 수확을 올렸다. 당시 조 회장의 ‘레이더’에 포착된 선수가 바로 샤라포바. 샤라포바는 그 때까지만 해도 기량보다 외모로 유명한 테니스 선수 중 하나였다. 그래서인지 조 회장측의 적극적인 설득에 어렵지 않게 구두 승낙을 얻어냈다. 특히 샤라포바가 세계 최고 메이저 대회인 윔블던 테니스 대회를 우승하면서 조 회장이 빼든 ‘샤라포바 카드’는 그야말로 대박이 예견됐다. 하지만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였다. 말 그대로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된’ 샤라포바는 ‘작은 대회’에는 출전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각종 스케줄이 밀려 있어 방한할 수 없다고 강짜를 부리기 시작한 것. 이 때부터 기업인 최초로 한국협상협회에서 협상 대상을 받은 조 회장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조 회장은 “비즈니스는 신의가 최우선이다. 구두 약속도 계약서에 서명만 안했을 뿐이지 사실상 약속이다. 스타가 약속을 저버리기 시작하면 팬들은 당연히 돌아설 수밖에 없다. 약속을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샤라포바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버지 유리 샤라포바를 집중 공략했다. 양측은 윔블던 우승 ‘프리미엄’을 약간 얹어주는 수준에서 최종 합의에 성공했다. ■ 이인희고문의 자식교육 이인희 한솔 고문도 자식 교육 만큼은 한국의 ‘보통 어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 재계의 대표적인 여성 CEO(최고경영자)로서 한솔을 키우느라 숨가쁘게 달려왔지만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 때로는 어머니로서의 냉정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 고문은 한솔이 삼성에서 분리된 이후 동혁, 동만, 동길 3형제와 한지붕 아래 같이 살면서 엄격하게 경영 수업을 시켰다. 3형제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어머니 대신 고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이다. 그만큼 어머니를 ‘경영 스승’으로서 깍듯하게 대한다는 방증이다. 심지어 며느리들도 한때 어머님 대신 고문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고문도 호칭에 대해 굳이 반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자식들 앞에서 경영자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것이 아니다. 한솔의 공동 경영자로서 강한 ‘경영 마인드’를 심어주자는 깊은 뜻에서다. 그러나 마냥 엄한 어머니만은 아니었다. 장남인 조동혁 명예 회장이 미국 유학시절 크게 다치자 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수주일 동안 직접 병수발을 들며 가슴 아파했을 만큼 자식 사랑이 끔찍했다. 다만 약한 어머니를 내보이지 않기 위해 이를 감췄을 뿐이었다. 이 고문은 자식들을 어릴 때부터 해외에 보내 외국어와 국제 감각을 익히도록 했다.3형제 모두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왔으며, 장남인 조 명예회장은 대학까지 미국에서 졸업했다. 또 이 고문 가족이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한 덕분에 3형제 모두 일어와 영어에 능통하다. 이 고문은 자식들의 영어 테스트를 위해 수시로 영어 대화 시간을 갖곤 했다. 일반적인 대화가 아니라 경제와 정치, 사회문제 등을 주로 다뤄 자식들이 고급 영어를 쓸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 고문도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독학으로 영어를 마스터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고문은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 머물고 있다. 매년 겨울이면 그곳에서 건강을 돌보다가 3월쯤 한국에 돌아온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성&남성] “결혼은 현실… 사랑타령 걷어치워라”

    [여성&남성] “결혼은 현실… 사랑타령 걷어치워라”

    선미씨는 3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가 있다. 남자친구는 늘 쪼들렸고 데이트 비용도 선미씨가 거의 댔다. 용돈을 모아 변변한 신발 하나 없는 남자친구에게 10만원짜리 구두를 사주면 자신은 2만원짜리를 신어도 흐뭇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취직하고 난 뒤 선미씨는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조그만 선물 하나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할 때도 친구·자유·일 가져야 천혜정 이화여대 소비자인간발달학과 교수는 “선미씨가 외로워지는 것은 사랑에 전부를 걸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사랑할 때도 친구, 자유 시간, 자신의 일,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의 것을 명확히 하고 ‘쿨’하게 사랑하는 것이 현실속에서 인간 관계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천 교수를 비롯한 11명의 386세대 여성 가족학자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청소년 취향의 시집에나 나오는 사랑타령은 당장 걷어치우라!”고 외치고 나섰다.21세기 대한민국은 때가 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 인생 공식의 시대를 벗어나 결혼과 출산을 따져 보고 결정하는 선택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니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결혼은 현실’이라며 사랑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릴 것을 주문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가 엮은 ‘여자가 다시 쓰는 결혼이야기’(고즈윈 펴냄)에 담겼다. ‘여자가‘의 앞부분에서는 ‘연애의 재구성’,‘결혼 전 라이프스타일’ 등의 주제로 남녀가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기까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들과 자신에게 적합한 배우자 찾기에 대해 조언한다. 후반부에는 ‘결혼 후 라이프 스타일’,‘결혼다반사’ 등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변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결혼생활에서 나타나는 선택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들은 “연애에 성공하려면 홀로서기를 잘해야 한다.”는 역설을 편다.‘자립형 연애’를 하는 사람은 외로움을 즐길 줄 알고, 혼자서도 행복하지만 의존형 연애를 하는 사람들은 혼자라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에게 비현실적인 기대와 요구를 해 서로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이별’ 결정했다면 신속·정확히 김양호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재미연구원은 나아가 ‘잘 헤어지는 법’을 일러준다. 배우자를 만나기까지 수많은 이별이 불가피하다면,‘멋진 이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남는 자에게 분명하게 만남의 끝을 전하는 것이 떠나는 자의 도리”라면서 “헤어지는 마당에 ‘널 사랑하기 때문에 보내는 거야.’라는 식으로 이유를 달지 말라.”고 충고한다. 또 이별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하고, 내 가슴에 오래 담아둘수록 상처는 아물지 않는 만큼 만남의 끝을 깨끗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선희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누구와 결혼할까를 고민하기에 앞서 ‘결혼의 문’과 ‘독신의 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행복한 삶이 될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독신 생활이 적합한 사람이 결혼하거나 결혼생활에 적합한 사람이 독신으로 살면 삶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신생활에는 준비가 필요하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기생 독신’은 독신의 본질을 흐려놓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말이 통하는 친구가 있어야 하며, 건강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가 있어야 한다. 독신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충 다 아는 내용이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결혼이라는 관문을 어렵게 통과한 부부에게는 또 수많은 ‘선택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김순기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들에게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계획과 설계를 사전에 해두는 것이 좋다.”면서 ‘가족생활 주기에 기초한 생활계획서’를 만들어 보라고 추천한다. 계획서는 출산·육아·교육·노년 등 가족생활을 주기별로 나눠 그 기간과 주제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조율한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출산 계획을 짜면서 남편은 ‘1년 정도는 신혼으로 아이 없이 살다가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반면 아내는 ‘아이를 낳으면 내 일이 어려워질 수 있으니 5년쯤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계획서를 냈다. 서로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 3∼4년 뒤 아이를 가지는 것으로 조율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말만이 아니라 직접 문서를 만들어 서로의 계획을 조율해 보면 구체적으로 결혼 생활의 계획을 짤 수 있다. ●경제적 능력 없다면 이혼 미루길 쿨하게 이혼하는 방법도 있을까. 박정희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살면서 사사건건 일치하지 않았더라도 마지막에는 한번 멋지게 합의를 보는 것도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혼에 이르기까지 분명 내 책임도 있는 만큼 잘못된 결혼생활에 내가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뒤돌아보는 시간은 가져야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적인 준비도 당당한 이혼에 꼭 필요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도 힘든 세상에 웬만한 부자가 아니고는 이혼 전 상태를 유지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혼 후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구상이 없다면 어렵더라고 이혼을 미루는 것이 낫다고 박 연구원은 조언한다. 이혼을 하고 싶은 것과 이혼을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새 음반]

    ●아이리시 손(Irish Son) 인기 정상의 보이그룹 웨스트라이프의 전 멤버 브라이언 맥파든이 홀로서기를 선언한 앨범. 매력적인 거친 음색이 돋보이는 첫 싱글 ‘Real To Me’가 영국 차트 1위에 올라 저력을 과시했다. 솔직한 가사로 화제가 되고 있는 ‘Irish Son’, 애절한 사랑 노래 ‘Almost Here’ 등 총 11곡이 수록돼 있다. ●그래미 노미니즈 2005(GRAMMY NOMINEES 2005) 13일 오후 8시(현지시간) 미국 LA 스테이플센터에서 열리는 제 47회 그래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른 최고 아티스트들의 대표곡을 담은 앨범.10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는 카니예 웨스트, 고(故) 레이 찰스와 8개 부문 후보에 오른 어셔, 알리시아 키스를 비롯해 블랙 아이드 피스, 마룬5, 조스 스톤, 노라 존스, 비스티 보이스 등이 부른 21곡이 담겨 있다.
  • [여의도 in] 홍준표의원 홈피에 글 논란

    [여의도 in] 홍준표의원 홈피에 글 논란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최근 정부의 잇따른 과거사 문건 공개를 박근혜 대표를 겨냥한 ‘정치적 공작’으로 해석하며 박 대표의 ‘홀로서기’를 주문하고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홍 의원은 23일 개인 홈페이지에 장문의 글을 올려 여권이 과거사 들추기를 본격화했다고 주장하면서 “박 대표와 당이 과거사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또 “박 대표 스스로 앞장서 당과 무관한 자신의 문제로 국한시켜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서야 한다.”는 요구도 곁들였다. 이어 “그래야만 박 대표가 이 땅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고 그들의 음습한 책동도 분쇄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제 한나라당은 과거와의 전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지난 대선에서 연거푸 실패한 경험을 예로 들면서 “한국 보수의 최고 인물인 이회창을 내세우고도 패배한 것은 아들의 병역 기피의혹과 호화 빌라 문제 등이 터졌는데 정작 본인은 뒤로 빠지고 당이 대리전을 벌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사명바꾼 ‘LS그룹’ 홀로서기 관심

    [재계 인사이드] 사명바꾼 ‘LS그룹’ 홀로서기 관심

    LG그룹에서 계열분리한 LG전선그룹이 ‘LS’로 이름을 바꾸고 새도약을 선언,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LG의 우산에서 벗어나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다. 구자홍 LS그룹(옛 LG전선그룹) 회장은 19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계열 분리 이후 새 이름으로 출발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솔루션 업계의 선두주자로 성장하겠다는 뜻(leading solution)인 LS로 그룹명을 바꾸고 새롭게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오는 3월 계열사별 주주총회에서 각각 개명 승인을 받으면 100억원을 투입,LS 이름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도 “LS그룹은 중장기 사업방향과 비전 수립에 주력하겠다.”면서 “예컨대 LG의 전통인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바탕으로 투명하고 밝은 LS만의 조직 문화를 제시하고,6개 주력 계열사들이 참여하는 기술협의회를 개최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역량을 모으겠다.”고 강조했다. 장기 목표와 관련,“LS그룹은 새로운 사업을 찾기보다 기존 사업중 고수익 분야를 찾는 게 우선순위”라고 지적했다. 우선 사옥을 마련, 한 곳에서 힘을 집중시킬 예정이라는 사실도 밝혔다. 또 LG그룹과의 협력관계에 대해서는 “LG와 GS 계열사와도 협조해 느슨한 컨소시엄 형태로 프로젝트 공동 수주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LS그룹내에서 또다시 계열분리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에 “공동 경영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어 오랫동안 함께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자홍 회장, 구자열 LG전선 부회장, 구자은 LG전선 상무는 각각 LG창업고문인 구태회·평회·두회씨의 아들들이다. 재계 서열 15위인 LS그룹의 자산 규모는 5조 1000억원으로, 전선·산전·니꼬동제련 등 6개 주요 계열사를 주축으로 17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박동섭&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새 상담칼럼에 앞서

    [박동섭&안귀옥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새 상담칼럼에 앞서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가 문을 엽니다. 지난해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킨 ‘이혼클리닉’을 확대, 개편한 릴레이 상담칼럼입니다. 가족해체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상담의 범위를 이혼뿐 아니라 부부·고부갈등, 자녀문제 등으로 넓혔으면 좋겠다는 독자들의 요청에 따른 것입니다. 박동섭·안귀옥 두 전문 변호사가 매주 수요일 번갈아 독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경험이 서로 다른 두 변호사가 다양한 관점에서 가족갈등의 해법을 제시할 것입니다. 칼럼 연재에 앞서 두 변호사로부터 집필에 임하는 각오와 포부를 들어봅니다. ■ 박동섭 변호사 인터뷰 “곤경에 처한 친구에게 도움을 주듯 상담하고자 합니다.” 서울신문의 새 릴레이 칼럼 ‘가족클리닉, 행복 만들기’의 바톤을 쥔 박동섭(62) 변호사는 다양한 경력을 지닌 노련한 법조인답지 않게 대학에 갓 들어온 새내기 같은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다. “변호사 사무실은 가족관계가 완전히 깨진 뒤 마지막에 찾아오는 곳입니다. 이혼·상속 등 가족간 소송이 그렇지요. 아무리 애써도 화해하기엔 너무나 늦은 때, 그들을 만나는 게 가슴 아팠습니다. 상처가 커지기 전에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늘 생각했어요.” 박 변호사가 1998년 10월부터 인터넷 개인홈페이지를 개설, 무료상담을 시작한 것도 소송 전에 화해할 기회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매일 1시간씩 10여건의 사연에 답변해 준다. 그러나 대부분 법률상담이라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서울신문의 새 칼럼이 더욱 반갑다.“어렵사리 고민을 털어놓은 이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방법을 찾고 있어요. 편지글로 써볼까, 시를 인용할까 생각이 많아요.” 박 변호사는 최근 우리나라 이혼율이 급증하는 이유를 ‘미숙아’의 준비없는 결혼 탓이라고 지적했다. 요즘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올리기에만 급급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결국 공부만 하던 아이들은 나이 스무살이 넘어도 부모의 품을 떠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부모의 손에 이끌려 식장에 들어가다 보니 6개월도 못되어 이혼법정에 선다고 했다. “양가 부모가 이혼법정까지 쫓아와 참견하는 일도 있습니다. 부모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을 늪에 밀어넣고 있는 셈이지요.” ‘홀로서기’를 강조하는 박 변호사는 10여년 전 고등학생이던 세 딸에게 각자 해외여행을 떠나라고 권했다는 얘길 꺼냈다. 오히려 머뭇거리는 딸들에게 “부모는 자녀만 남기고 떠나야 할 운명을 타고 났단다. 내겐 세상과 맞서 싸울 힘과 지혜를 너희들에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득했다. 세 딸은 각자 짐을 꾸려 유럽과 동남아시아로 50여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가 걸려온 후 열흘간 연락이 없더라고요. 걱정으로 잠도 못 잘 정도였죠. 그 순간 나도 홀로서기를 배우고 있다는 걸 깨달았죠.”그는 부모의 홀로서기를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가족갈등의 원인으로 ‘속마음과 다른 거짓말’을 꼽았다.“솔직·단순·명쾌한 대화법이 필요합니다. 우린 자존심, 허세 탓에 속마음과 다른 말로 상대방에게 자주 혼란을 줍니다.”혼수 필요 없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며느리를 구박하는 시어머니나, 잘못을 저질렀는데도 끝까지 우겨 이혼법정까지 가는 부부가 대표적이다.‘주도권 다툼’도 가족해체의 주범이라고 덧붙였다. 신혼부부들이 아내를, 남편을 길들인다는 생각으로 치열하게 싸우고, 아버지가 뜻을 따르지 않는 아들을 끝없이 혼내면서 가족은 서서히 깨져 나간가는 것이다. “할인매장에서 큰소리로 싸우는 젊은 부부를 봤습니다. 장을 보고 나서 아내가 짐을 들어달라고 하니까 남편이 ‘내가 네 종이야.’라며 소리를 질러요. 결국 아내는 무안해서 눈물을 흘리고…. 작은 상처가 모여 큰 아픔으로 남는데, 너무 안타깝더군요.” 그럼, 행복한 가족 만들기의 비법은 무엇일까. “아내를,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지배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아내는 남편의 ‘사랑의 종’이 되세요. 행복 없는 권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부모는 자녀를 신뢰해야 합니다.24시간 감시한다고 자녀가 올바르게 자라는 게 아니에요. 한발 떨어져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자녀를 현명하게 사랑하세요.” ■ 안귀옥 변호사 인터뷰 “고통을 참고 사는 것보다 헤어져 평안을 얻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화해든, 이혼이든 행복한 삶을 선택하도록 돕고 싶습니다.” 박동섭 변호사와 함께 칼럼을 이끌어 갈 안귀옥(47) 변호사는 “이혼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이혼하지 않고 위기를 잘 극복해 더욱 튼튼한 가족을 꾸리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고통이 너무 커서 더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면 냉정하게 이혼하도록 힘을 줘야 합니다.” 이런 단호함은 지난 8년간 이혼법정에서 여성을 변론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배었다.1997년 인천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처음부터 ‘이혼 전문’을 원한 게 아니었다. 박사 학위를 받은 보험법 관련 소송을 맡고 싶었다. 그러나 여성 변호사가 한 명도 없던 인천에서 개업한 터라 시퍼런 멍자국을 껴안은 한 많은 여성 의뢰인들이 몰려들었다. 숱한 상담을 통해 그는 고통없는 결혼의 비법을 깨달았다. 모든 문제를 첫단계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의 폭언·폭행·바람기는 반드시 처음에 잡아야 합니다. 여린 마음으로 때를 놓치면 영영 해결할 수가 없어요.” 남편이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손찌검을 하려 들면 국냄비를 집어던져서라도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이 폭력을 휘두른 뒤 눈물로 사과한다고 참고 살면 평생 그 버릇을 고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애매한 태도가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고 강조했다. 그는 ‘가족클리닉’에서도 때론 과감히 거부하고 싸우라고 조언할 생각이다. 평범하지 않은 이런 태도는 삶에서 비롯됐다. 안 변호사는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초등학교도 제때 마치지 못했다. 열일곱살 되던 해, 훌쩍 여행을 떠났다. 답답한 틀 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태백, 강릉에서 전남 완도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다녔다. 차비가 없으면 가정집에 들어가 아이들을 돌보며 여행비를 벌었다. 경북 경주에선 불국사 풍경소리에 취해 반년이나 머물렀다. 그리고 5년. 그는 해외여행을 가고파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검정고시로 마치고,1983년 인천대 법학과를 입학했다. 졸업한 지 7년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힘든 순간마다 저 자신을 운동장에 세워놓는 상상을 했어요. 건물 위에서 그런 저를 바라보는 타인을 설정해 놓고 생각했지요. 뭐가 문제이고, 해결방안이 무엇인지 얘기하고, 다독였습니다. 내 문제에는 허덕이면서도, 친구에겐 쉽게 조언할 수 있잖아요.”안 변호사는 똑같은 원리로 상담자들이 ‘가족클리닉’에 글을 올리면서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늦은 결혼과 출산이 안 변호사의 관심분야를 가족문제로 넓혔다. 지난해 3월 비영리사단법인 ‘한국가족상담소’를 만들어 행복한 가족 만들기 운동에도 뛰어들었다. 심리상담 전문가가 부부갈등·가족불화 등을 무료 상담, 분석해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지난해 그 자신도 인하대 교육대학원 치료상담학과에 입학했다.“시어머니를 모시고, 어린 자녀를 키우면서 보이지 않는 가족 내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전문가와 얘기하면 쉽게 해결될 문제도 쌓아두니까 병이 되고, 고통이 된다는 것도요.” 그는 지면의 한계로 ‘가족클리닉’에서 받지 못한 상담은 그의 한국가족상담소에서 다루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행복한 가족 만들기 비법은 무엇일까.“믿는 거예요. 의심하고, 감시하기 때문에 싸움이 생기거든요. 똑같은 잔소리를 친정 어머니에게 들을 때와 시어머니에게 들을 때 섭섭함이 다른 것도 같은 이유예요.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립성을 가져야 해요. 가족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거든요. 스스로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 잘 어울려 살 수 없어요.”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르노삼성 “6000억 신규투자…亞 생산 허브로”

    르노삼성차의 야심작 ‘SM7’이 30일 베일을 벗었다. 대주주인 프랑스 르노그룹은 같은 날 일본을 제치고 한국에 6000억원의 신규투자를 약속해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빈약한 차종과 수출 제약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힘겹게 시장을 공략해온 르노삼성차가 르노그룹의 설명대로 아시아 신차 개발 및 생산 중추기지(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날렵하고 싼 V자형 대형차…정체성 시비도 SM7은 서울 신라호텔에서 신차 발표회를 갖고 1일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간다. 예약 판매로만 5000대 가까이 나갔다. 새 차를 본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 경쟁력을 최대 강점으로 꼽았다.2300㏄ 기본모델이 2440만원,3500㏄가 3510만원이다. 경쟁 차종인 그랜저 3000㏄(3174만원)보다는 비싸고, 에쿠스(4768만원)·오피러스(4608만원) 3500㏄보다는 싸다. 앞모습은 대형차의 묵직함을 유지하면서도 뒷모습과 옆선은 날렵하게 떨어져 30∼40대 ‘부자 오너족’도 겨냥했다. 르노삼성이 공들여 내놓은 첫 V자형 디자인이다. 그러나 출시 전부터 야기된 정체성 논란은 더 가열되는 양상이다. 대형차 치고는 폭이 좁고 인테리어 재질도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어 “일본 티아나(SM7의 기본모델이 된 닛산의 중형차) 앞뒤에 범퍼를 붙여 길이만 늘였다.”는 시비를 불식시키지 못했다. 내년 상반기에 현대차의 그랜저XG 후속 모델이 출시되는 것도 넘어야 할 산이다. ●홀로서기 성공할까 르노그룹 루이 슈웨체르 회장은 이날 이헌재 경제부총리와 만나 르노그룹의 차세대 가솔린엔진 공장을 부산에 짓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르노삼성은 이 엔진공장을 놓고 일본 닛산차와 치열한 경합을 벌여왔었다. 슈웨체르 회장은 “엔진공장 증설(2000억원)과 새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코드명 H45) 개발 등에 앞으로 총 6000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산에서 생산되는 차세대 엔진은 르노삼성차는 물론 르노차와 닛산차에도 장착돼 세계 각국으로 수출된다.2007년 출시 예정인 르노삼성의 첫 SUV도 ‘르노’ 상표를 달고 유럽시장에 수출된다. 이는 수출길이 부분적이나마 열려 생존기반을 확보함과 동시에 닛산차 하청기지라는 오명을 벗게 됨을 의미한다. 그동안 르노삼성은 형제지간인 닛산차의 수출시장을 잠식해서는 안된다는 그룹의 내부방침에 따라 사실상 수출이 거의 막혀 있었다. 슈웨체르 회장은 “르노삼성차의 또다른 신차 출시도 검토 중”이라면서 “르노삼성차를 르노그룹의 아시아 허브로 키우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2010년까지는 르노삼성차의 미국시장 진출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 르노삼성의 홀로서기에 한계가 있을 것임을 드러냈다. 슈웨체르 회장은 르노삼성의 2대 주주인 삼성그룹(삼성카드) 이건희 회장과도 따로 만나 궁금증을 키웠다. 르노그룹이 야심적으로 키우고 있는 경기도 기흥의 자동차디자인센터에 공동투자해줄 것과 기존 지분의 증자를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양측은 “노 코멘트”라며 함구하고 있다. 삼성이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공연리뷰] 뮤지컬 ‘아이 러브 유’

    사랑에 관한 심리테스트.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 옴니버스 형식의 뮤지컬 ‘아이 러브 유(I LOVE YOU)’는 시종일관 허파를 자극했다.10여분 간격으로 짧게 이어지는 사랑에 관한 20개의 에피소드는 정곡을 찌르고, 잔잔한 감동도 일으킨다. 무대 위에는 오직 여 섯명뿐. 작지만 여느 대형 뮤지컬 못지않은 풍성한 재미를 갖췄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합주는 경쾌하고 배우들의 쉴새없는 변신에 지루할 틈이 없다. 재치있는 대사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웃음 소리는 커져만 간다. 1막은 해가 저물어 가는데도 시린 옆구리를 가진 이들을 위한 것. 어색한 분위기를 깨보고자 첫 만남에서 오래된 연인의 흉내를 내는 남녀. 군대 이야기 빼면 할 이야기가 없는 남자와 ‘내숭 9단’인 여자의 소개팅. 정말 괜찮은 사람 앞에서 소심해지는 예비 연인들. 기다리던 남자의 전화를 받은 노처녀는 아카데미 트로피가 부럽잖지만 37번째 부케를 받고 신세한탄이 늘어진다. 결혼 적령기를 넘겨버린 관객이라면 ‘어머, 저건 바로 내 얘기야.’라며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좋은 시절 끝났군.”콩깍지가 씌운 연인은 온갖 협박에도 꿋꿋하게 결혼이란 무덤에 들어가고 2막은 그 이후를 채우고 있다. 아이는 부부를 완전한 존재로 만들었지만 육아와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은 부부 사이의 성적 긴장감도 빼앗아갔다. 운전대를 잡아야만 기가 사는 남편, 이혼녀의 홀로서기, 결혼 30년차 부부의 모습 등은 반쪽을 찾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다시 새기고 미래를 그려 보게 한다. 배우들의 열연은 이 뮤지컬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 남경주, 이정화, 정성화, 오나라는 60개에 달하는 배역 속으로 완벽히 걸어들어 갔다. 호흡은 더할 나위 없다. 장면에 맞춰 최소한의 변화를 준 무대도 시각적 포만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무대 위에 매달린 모니터에 뜬 제목을 통해 다음 장면을 유추해 보는 것도 아기자기한 재미. 내년 1월30일까지. 연강홀(02)501-7888.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모던 록밴드 ‘넬’ 2집

    모던 록밴드 ‘넬’ 2집

    모던 록밴드 넬의 2집 ‘워크 쓰루 미(walk through me)’는 따뜻하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 듣기에는 딱이다. 원래 계획했던 8월보다 지금 앨범이 나온 건 차라리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듯 앨범 발매 첫날인 지난 18일에만 1만 5000여장이 팔렸다. 김종완(보컬·기타), 이재경(기타), 이정훈(베이스), 정재원(드럼) 등 80년생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여 만든 넬은 언더에서 활동하다 가수 서태지에 의해 발탁됐다. 서태지 때문에 주목을 받았던 이들이 이번 앨범을 통해 홀로서기에 나서고 있다.“서태지 후광의 부담을 더이상 의식하지 않는다.”는 이들의 음악은 그래서인지 편안해지고 포근해졌다. 1집 ‘렛 잇 레인(Let it rain)’에서 폭발적인 감성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참 많이 부드러워졌다. 김종완은 “한꺼번에 모아놨다가 뱉어내는 것보다 물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에 중점을 뒀다.”고 말했다. 간결하고 절제된 연주를 보여주려고 애썼으며 피아노를 많이 사용해 자연스러움과 서정성을 강조했다. 전곡을 만든 김종완은 “가운데 선 하나를 두고 노란색과 갈색이 반반씩 있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나를 뚫고 지나가다’라는 앨범 타이틀처럼 13곡 모두 넬 멤버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다. 떠나간 사랑, 소외, 잔인한 사회 현실, 순수에의 갈망 등을 담은 가사는 직설적이면서도 시처럼 아름답다.‘미아’‘unsaid’‘백색왜성’‘피터팬은 죽었다’ 등은 멤버들이 꼽는 필청곡. 녹음기간만 3개월. 완벽한 음악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곡마다 20번씩 재녹음을 할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 마음이 앞설 때마다 “급하게 하지 마라.”는 서태지의 충고가 신중을 기하게 해줬다고 한다. 1년5개월 만에 돌아온 이들은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이번 앨범을 어떠한 가미도 없이 싱싱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경영권 분리·승계 기업 총수들“내 색깔을 보여주마”

    경영권 분리·승계 기업 총수들“내 색깔을 보여주마”

    최근 몇년 사이 그룹에서 계열 분리됐거나 경영권을 이어받은 기업 총수들이 제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구조조정이나 경영수업 등 2∼3년동안의 준비과정이 끝나자 자신만의 경영스타일을 구사하거나 인사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사업다각화나 공격경영이 대표적 특징이다. 한진그룹에서 해운그룹으로 계열분리를 추진 중인 한진해운은 조수호 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이 완료된 상태다. 지난 9월 최원표 사장 자리에 박정원 사장을 중용한 것도 친정체제 구축의 일환이다. 같은 시기 총괄 부사장에 오른 김영민(49) 부사장은 조 회장의 최고 측근으로 분류된다. 그는 미국 유학시절 조 회장과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과 씨티그룹을 거쳤으며 2001년 9월∼2003년 미국 TTI(롱비치 터미널 운영 임원)에 근무하다 올 1월 전격적으로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1999년 현대그룹에서 분리, 홀로서기에 성공한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도 친정체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정세영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었던 김판곤 전 현대용산역사 사장을 퇴진시킨데 이어 이방주 사장이 단독으로 맡고 있던 현대산업개발의 영업부문을 김정중 사장에게 맡기는 등 투톱체제를 구축했다. 한국주택협회 회장을 맡은 이 사장의 일손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 회장의 제 색깔내기 차원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정 회장은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를 6300여억원에 팔아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난 뒤 올해 3·4분기 누적매출 1조 9000여억원, 순이익 1796억원을 올렸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이다. 건설관련 계열사도 12개로 늘어났다. 이를 발판으로 내년 상반기 서울 삼성동에 6성급 호텔을 개관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박정구 전 회장의 타계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 사령탑에 오른 박삼구 회장은 2002년 9월 취임 이후 2년 만에 그룹의 구조조정을 완결짓고 사업다각화를 활발히 추진했다. 2000년 이후 5조원대의 자산매각을 통해 계열사 신용등급을 모두 투자적격 등급으로 끌어올린 박 회장은 올해 3·4분기 현재 누계 매출액 6조 1356억원, 영업이익 4942억원, 순이익 4634억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거뒀다. 박 회장은 이를 발판으로 범양상선 인수에 나서기도 했으며 물류종합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택배사업 진출도 고려 중이다. 그룹성장 동력을 레저산업분야에서 찾기 위해 서남해안 일대에 레저관련 기업도시 건설 의사도 표명했다. 기회가 되면 다른 기업 인수에도 나설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계열분리 기업이나 경영권 승계 기업의 총수들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기 색깔을 찾았다.”며 “그러나 불과 몇년간의 경영실적만으로 이들의 능력을 평가할 수 없는 만큼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새 음반]

    ●로비 윌리엄스 그레이티스트 힛츠(Robbie Williams Greatest Hits) 아이돌 스타의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은 세계 어디서나 공통적인 현상.97년 영국 인기 보이그룹 ‘테이크 댓’을 박차고 나와 주변의 기우를 말끔히 걷어내고 영국의 국민가수 반열에 올라선 로비 윌리엄스. 그가 지난 8년간의 솔로 활동을 정리하는 베스트 음반을 발표했다. 두 곡의 신곡 ‘Radio’‘Misunderstood’를 포함,19곡이 빼곡이 수록돼 있다. 한 조사에서 영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꼽힌 최고의 히트 발라드 ‘Angel’과 브라스 연주가 흥겨운 ‘Let Me Entertain You’, 카일리 미노그와 듀엣을 이룬 ‘Kids’ 등이 앨범을 빛내준다. 하지만 프랭크 시나트라의 곡을 리메이크, 영화배우 니콜 키드먼과 입을 맞춘 ‘Somethin’ Stupid’가 빠져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EMI. ●요요마 플레이스 엔니오 모리코네(YO-YO MA plays ENNIO MORRICONE) 다양한 장르의 연주자들과 협연을 즐기는 정상급 첼리스트 요요마. 이번엔 엔니오 모리코네와 손을 잡았다.20세기 영화음악의 거장이 만든 주옥 같은 명곡들을 그윽한 첼로 선율에 실었다. 영화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미션, 시네마천국,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석양의 무법자, 말레나, 언터처블 등의 배경음악을 원곡 이상의 감동으로 풀어냈다. 모리코네는 음반 프로듀싱, 편곡, 지휘까지 직접 맡아 음반의 무게를 더했다. 보너스 트랙으로 ‘피아니스트의 전설’과 ‘미션’의 주제곡이 첼로와 피아노의 실내악 버전으로 실려있다. 총 21곡. 소니 뮤직.
  • [차이나 리포트 2004] (36)인재를 잡아라

    [차이나 리포트 2004] (36)인재를 잡아라

    ‘축소인봉(築巢引鳳·둥지를 만들어 봉황을 끌어들인다.)’ 중국의 해외 유학인력 유치 정책을 요약하는 키워드다.‘봉황’은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중국 유학생을,‘둥지’는 이들이 능력과 열정을 한껏 발산할 수 있는 최고의 기업환경을 가리키는 말이다.중국이 최근 몇년간 축소인봉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그동안 귀국에 걸림돌이 됐던 모든 제도가 이제는 유학생을 돌아오게 하는 순풍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6월24일 오후 베이징 중관춘 지역에 자리잡은 국제부화원 2층 베이징사지과기유한공사.정보보안분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이 회사는 지난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출,춘절을 제외한 올 상반기 넉달 동안 300만위안의 매출을 거뒀다.최근에는 하얼빈과 미국에 사무실을 추가로 열었다.26명의 직원을 둔 이 회사의 대표는 29살의 헨리 리우.대표적인 해외귀국파(해귀파海歸派)다.해귀파는 해외에서 공부를 마친 뒤 중국에 돌아온 전문인력을 가리키는 말이다.10년 전 가족을 따라 미국에 건너간 그는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뒤 MBA를 거쳐 2001년 12월 고국에 돌아와 창업했다.그를 돌아오게 한 것은 중국 정부의 창업 지원책이었다.10년만에 찾은 고국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그는 “전략적으로 창업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창업을 결정했다.”면서 “미국 국적을 마케팅에 최대한 활용하겠지만 중국 국적을 다시 가질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베이징 상디 지구 유학인원발전원.국제부화원이 해외 유학생 창업인들을 위한 인큐베이터라면,이곳은 이들이 ‘엄마 품’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는 곳이다.현재 이곳에는 40여개의 해귀파 기업이 입주해 있다.이곳에서 인터넷 전화 프로그램 및 셋톱박스 개발업체인 ‘차이나비즈원’을 경영하는 수이즈민(46)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기업에서 10여년 동안 정보기술(IT) 관련 기술을 개발하다가 2000년 귀국했다.창업우대정책이 마음에 들어서였다.3년간의 부화원 과정을 2년만에 마치고 지난해 3월 이곳에 입주한 뒤 직원 40명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그는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주문이 밀려오고 있는데다 발전 가능성도 높다.”면서 “첨단기술 기업들이 근방에 밀집돼 있어 이곳을 당분간 떠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귀파 창업자들은 대학 인력과도 직접 연계해 활동하기도 한다.위성항법장치 관련 교육 프로그램 개발업체인 베이징동방위성과기유한공사는 허베이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사장을 포함해 직원 3명의 작은 회사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아 대학원생 제자 겸 직원을 두고 있다.이 회사 사장인 장쥔린(48)은 ‘학생 직원’에게 첨단기술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대학원 성적까지 매긴다.대학원생 리우즈지앙(25)은 “사장님이 일도 가르쳐주고 논문지도까지 해준다.”면서 “국내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것들을 해귀파 선배에게 자세히 배울 수 있는 점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베이징 중관춘에서도 가장 큰 규모인 하이뎬위안구(區)에 속해 있다.올 상반기 이 지역에서 등록한 창업기업 수는 모두 1만 100개.5분마다 하나씩 기업이 생기는 셈이다.하이뎬위안 위쥔 부주임은 “이 가운데 해귀파 기업이 3000여개에 이른다.”면서 “이 지역에서만 지난해 7억 9500만달러어치의 외자를 유치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해귀파 유치정책은 전 국가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국가인사부 정책국 왕커리앙(41) 부국장은 “중국의 인력강국 전략의 핵심은 개혁과 개방,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면서 “투자이민법과 기술이민법을 포함,첨단기술과 금융,법률,국제무역,관리,기초연구 등 6개 분야에서 최고급 기술인력을 끌어오기 위한 ‘인재귀국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일화 하나.세계무역기구(WTO) 가입과 관련,미국 방문길에 올랐던 1999년 주 전 총리가 시간을 쪼개 MIT를 찾았다.그는 중국 유학생들에게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조국으로 돌아오라.”며 호소했다.현재까지 귀국한 해귀파는 18만여명.중국은 향후 20만명을 더 유치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외국에서 공부하고 창업했던 그들이 돌아오면 한 개인이 아닌,자본·첨단기술·인적 네트워크가 함께 들어온다는 판단이다.“인재 유치는 중국의 생존과 직결돼 있다.” 최근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가 인재공작회의에서 강조한 결론이다. 베이징 김재천특파원 홍성범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sbhong@stepi.re.kr ■ ‘해귀파’ 창업 원스톱서비스 |베이징 김재천특파원|중국 정부의 ‘해귀파’ 지원책은 모두 6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그린 패스’(Green Path·녹색통로)’는 해외 유학생들의 중국 정착을 돕기 위한 첫 유인책이다.베이징 거주민임을 증명하는 베이징 호구를 주고,자녀 입학 문제,차량과 주택 등 의식주를 해결하는 단계다.100㎡ 미만 규모의 집에 대해서는 집 값이 40만위안을 넘지 않으면 할부로 구입하도록 지원한다.자동차 세금은 전액 면제다. 창업자에게는 기업 세금을 면제해준다.특히 하이테크 기업으로 분류되면 3년 동안 기업세금을 전액 면제해주고 있다.이는 해외에서 학사 학위 이상을 받은 유학생 전원에게 적용된다.유학한 지역과 전공은 상관없다.기업 등록에는 단 3일이 걸린다.일반적인 기업들이 5∼6일 걸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기업을 설립하려는 유학생들은 전문기구가 법률,시설,등록 등 창업에 드는 번거로운 행정 사항을 원스톱으로 해결해준다.국적이 외국인으로 돼있다 하더라도 10만위안이면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둘째는 유학인원창업서비스총부에서 주관하는 서비스 체계다.미국 실리콘밸리와 메릴랜드대,캐나다 토론토,일본의 도쿄,영국의 런던 등 해외 5개 네트워크에서 유학생들의 귀국을 돕는다.인큐베이터 체계는 유학생들의 창업을 말 그대로 부화하는 단계다.중관춘 하이뎬위안 창업원과 왕징 창업원 등에서 총괄적으로 지원하고 생명과학원,소프트웨어원 등에서는 전문 분야별 지원을 맡는다. 대학 공유 체계는 중국 내 대학과 기업의 자원을 공유하는 산학협력 방안이다.대학 근처에 창업 관련 기관을 밀집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유도한다.프로그램 보급 체계는 매년 1월과 5월 투자상담회를 열어 창업을 희망하는 유학생과 투자자를 1대 1로 연결시켜주는 정책이다.베이징의 경우 베이징 지적재산권거래소에서 투·융자를 전담한다. 자금지원 체계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기업들에 무상보조금을 지급하는 정책이다.다양한 조건과 평가에 따라 최고 10만위안까지 아무런 조건 없이 지원한다.과학기술부의 중소기업 창업기금,인사부의 우수기업 창업기금 등 부처별 기금 외에 8·53기금,9·73기금 등 정부 프로젝트에 의한 기금은 별도로 신청할 수 있다.프로젝트별 기금 대상자로 확정되면 정부 지원액의 50%를 기업이 속한 부화원에서 추가 지원한다. patrick@seoul.co.kr ■ 해외 전문인력 영입에 총력 해귀파와 함께 중국의 인재 유인책의 또하나의 축은 해외 기술인력 유치전략이다.지난해 10월 중국 인사부와 상무부,국가공상총국 등은 ‘중외합자 인력중개기구관리 잠정 규정’을 발표했다.이는 일정 조건만 맞으면 외국인 인력 중개업체가 중국과 합자회사를 세울 수 있게 한 것으로,외국의 헤드헌트 기업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인 결정이었다. 광둥성은 지난해 말부터 외국인의 자녀교육과 사회보장을 위해 내국인과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이른바 ‘그린카드’를 발급하고 있다.베이징시(市)는 지난해부터 주요 외자기업 임원들에게 승용차 및 주택구입비를 보조하고 있다.헤이룽장성의 하이린시(市)도 관내에서 1년 이상 사업한 외국인 석·박사에게 연간 3만위안의 장려금을 준다. 중국 기업들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높은 실업률로 첨단 전자·기계전기 분야에서 수십만명씩 쏟아져 나오는 일본의 고급 인력에 침을 흘리고 있다.언어가 통하는 타이완·홍콩계 첨단 인력들도 주 선호 대상이다.타이완에 3∼5년 뒤지고 있는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및 유기발광다이오드(OLE D) 관련 기술인력을 모셔오는 것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중국의 대표적 정보통신 기업인 화웨이(華爲)는 앞으로 인도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1500명을 유치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전문인력을 수입하지 않고는 고속성장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국내 하이테크 인력의 해외 이직 규모는 2001년 3000명에서 2002년 4200명,지난해 5100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이 가운데 반도체와 LCD,플랜트,통신기기,자동차 설계 등의 전문 기술인력 비중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하이닉스의 경우 지난해와 올 들어 반도체 설계 부문 핵심 기술인력 20여명이 중국과 타이완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대부분 외환위기 당시 실직했던 인력과 최근의 경제상황에 따른 실직자들이 중국 기업들의 스카우트 목표가 되고 있다. 홍성범 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sbhong@stepi.re.kr
  • [삶과 경영이야기] (27)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삶과 경영이야기] (27)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사장

    국내 최고의 컴퓨터 보안솔루션 전문업체인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43) 사장.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버리고 벤처기업을 차린 뒤 10년이 지난 지금,그를 빼고는 한국의 벤처·정보기술(IT)업계를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거물’이 됐다.회사 직원이 3명에서 300명으로 늘어나고,보안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원을 돌파했다.안 사장이 이룬 눈부신 성공 스토리는 정도(正道)경영을 통해 100년 이상 존속할 수 있는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그의 굳건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의대생,바이러스와 만나다 -1988년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 때 컴퓨터 바이러스를 처음 접했다.기계와 컴퓨터를 좋아했고,컴퓨터는 대학원 전공에 도움이 돼 취미 이상으로 가까이했다.청계천 세운상가의 컴퓨터 상점에서 관련 소식지를 받아보고 있었는데,우연히 외국잡지를 번역한 글에 컴퓨터 바이러스가 소개됐다.컴퓨터 바이러스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룬 내용이었다.재미있겠다 싶어 갖고 있던 디스켓들을 뒤져봤다. 당시 파키스탄인이 세계 최초로 만들어 전세계로 퍼진 바이러스가 ‘브레인 바이러스’인데,놀랍게도 내 디스켓 2장도 감염돼 있었다.충격이 컸고 화도 났다.의대 내에서는 ‘컴도사’로 통했던 나도 모르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날밤을 새우면서 바이러스를 뜯어보니 보통 복사프로그램과 원리가 같아 분석이 쉬웠다. -어느날 과(科) 후배가 찾아와 “컴퓨터 바이러스가 심각해 디스켓이 많이 망가지는데 치료방법이 없다.”며 걱정했다.며칠 전 일이 생각나 후배에게 바이러스 작동원리가 간단해 치료도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후배는 치료전용 프로그램을 만들면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라며 프로그램 개발을 권했다.작심하고 치료프로그램을 만들어 ‘백신’이라고 이름 붙였다.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의 바이러스 백신 ‘V3’의 시초다.백신을 만들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 문제였다.당시 모뎀이나 메일이 보급되지 않아 컴퓨터 잡지사인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가 이 일을 대신했다.잡지사에 백신 프로그램 개발 소식이 전해지면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은 잡지사를 통해 나에게 알려줬다.본격적인 바이러스 치료는 이렇게 시작됐다.학창시절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환원할 기회를 찾고 있었던 나로서는 의료봉사를 할 때처럼 백신 프로그램 개발은 더없는 뿌듯함을 안겨줬다. ●의대교수 접고 회사 차려 -94년이 되면서 진짜 고민에 빠졌다.7년간 두 가지 일을 했는데 더 이상 지속하기는 역부족이었다.바이러스가 매년 2배씩 늘어나 76종이나 돼 밤잠을 미루고 3시간씩 일해도 부족했다.군의관을 마치고 학교(단국대 교수)로 복귀하면 본격 연구활동에 전념해야 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치료는 더 이상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민을 거듭했다.결국 선택 기준은 ‘과거를 잊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했다.20대에 박사·교수가 된 것은 그동안 열심히 해서였지만 앞으로의 일은 아니었다.어떤 선택을 하면 앞으로 더 재미있고 보람되고 내 자신도 발전하고,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까를 생각했다.의대에는 나 말고도 훌륭한 사람들이 많지만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는 나 혼자뿐이었다.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중소기업 사장의 길로 들어선 이유였다. -사업 초기에는 비영리적인 공익법인 형태를 추진했다.그동안 만든 바이러스 샘플과 백신 프로그램 등 모든 노하우를 기부하는 조건으로 정부기관을 비롯,대기업 등 이곳저곳에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돈을 벌기는커녕 까먹을 우려가 더 크고,의사 출신인 나를 성공할 수 있는 사업가로 믿지 않으려는 눈치였다.막막하던 차에 ‘한글과 컴퓨터’로부터 주식회사 형태로 만들자는 제안이 왔다.한컴이 마케팅·판매를 맡고 내가 운영·기술개발을 맡는 조건이었다.주식회사라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백신 개발의 맥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고민 끝에 제의를 수락했다.그렇게 탄생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는 95년 3월 서울 서초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직원 3명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위기가 오히려 전화위복돼 -회사가 한컴에 속했던 95∼97년 2년간 경영기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기술경영학 석사과정을 밟았다.미국에서 e메일로 업무를 처리하며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다행히 매출이 늘었다.그러나 경영학을 배우면서 내가 얼마나 경영에 소질이 없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그래서 무조건 보수적으로 경영했다.차입을 안 하고 돈이 부족하면 스스로 월급을 받지 않고 매출이 조금이라도 생겨야 직원을 뽑았다. 97년 초 뜻하지 않은 위기이자 기회가 찾아왔다.대주주인 한컴이 경영난으로 지분을 매각하면서 ‘홀로서기’를 하게 된 것.마케팅·영업부문을 가져와 완전한 회사로 출발한 뒤 얼마 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닥쳤다.하지만 긴축경영을 한 탓에 외환위기의 타격을 크게 받지 않았다.전화위복이 된 것이다.때마침 외환위기의 여파로 대기업 등에서 인력들이 대거 쏟아져 나오면서 ‘좋은 인재들’도 많이 뽑았다.임대료도 떨어져 고정비용이 줄어들었고,경쟁관계였던 외국 보안업체 한국지사들은 철수하기에 바빴다.외환위기 때 오히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경쟁력을 확보하는 시간을 벌었다. -그 와중에 미국의 한 보안업체가 1000만달러를 제시하며 회사를 사겠다고 했다.그러나 팔지 않고 버텼다.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니었다.고생하며 일궈온 토종 보안회사를 외국에 넘기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벤처거품 때도 원칙 최우선 -99년 4월 ‘CIH바이러스’가 퍼져 컴퓨터 30만대가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그 일로 컴퓨터 백신의 중요성이 커져 보안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기업·관공서 등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면서 그해 보안업계 최초로 매출 100억원 돌파를 달성했다.98년 내부를 정비하고 인재를 뽑고 연구개발에 주력했던 것이 빛을 본 것이다.그해 하반기부터 코스닥시장에서 IT기업들이 상한가를 치면서 ‘벤처거품’이 시작됐다.그러나 당시 투자(펀드 모집)도 전혀 받지 않았고 기업공개도 하지 않았다.내가 보유한 주식을 주당 100만원에 넘기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거절했다.회사를 차린 지 10년이 지났지만 한 주도 팔지 않았다.대주주가 아니라 월급쟁이 사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산을 증식하지 않았다.99년 결산을 해보니 순익을 70억원이나 냈다.벤처기업 중 순익이 나는 회사가 없어 그때 상장했으면 수천억원을 펀딩(투자)받았을 것이다.당장은 좋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실익이 없다고 생각했다.100년을 놓고 보면 돈이 있다고 성공하고 없다고 망하는 것은 아니다.기업의 성공은 펀딩이 아니라 영업이익이 좌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99년 말 한 인터뷰에서 “벤처기업 95%가 망해 코스닥이 무너지고 벤처기업가 중 금융사범이 생기고 투자자들의 손실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결과적으로 맞췄지만 씁쓸했다.당시 벤처기업은 성공의 보증수표라는 잘못된 생각이 팽배했다.그래서 투자위험이 높을수록 조심해서 투자해야 벤처산업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벤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조언한 것인데 오히려 욕만 먹고 ‘배신자’라는 오해까지 받았다.그해 말에는 컴퓨터가 2000년을 인식하지 못하는 ‘Y2K’사태도 있었다.2000년 1월1일 Y2K대란이 터진다며 다른 보안업체들이 신문광고까지 냈지만 확인결과 바이러스 감염이 안돼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가만히 있으면 우리도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옳지 않다고 생각해 ‘Y2K바이러스 피해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그러나 언론에서 다룬 곳은 거의 없었다.‘한 사람의 힘으로 막기 힘들구나.’하고 생각하니 좌절감이 컸다.2000년 1월1일 결국 우리가 옳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계 톱10 기업에 도전 -2000년에 접어드니 매출·이익도 늘어나고 벤처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등 대외환경도 좋았다.이럴 때일수록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현실에 안주해 기존 제품의 수명이 끝나면 회사 수명도 끝난다는 위기감이 생겼다.회사의 ‘4대 변화’로 내건 것이 종합보안회사,글로벌기업,큰 조직,등록기업으로의 변신이다.특히 작은 기업에서 큰 기업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던 중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전 직원이 공통된 가치관을 갖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100년 뒤 사람들이 바뀌어도 영속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주변 사람들이 가끔 억울하지 않으냐고 묻는다.88년부터 연구를 시작했으니 세계 1∼3위 업체보다 먼저 진출한 것인데 기업규모 등에서 차이가 나니 억울할 수도 있다.그러나 7년간 공익적으로 운영해 기업화가 늦은 것이니 후회는 없다.지금부터 따라잡으면 된다.2010년까지 세계 10위 안에 드는 보안전문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지난해 보안시장은 선진국의 경우 20∼30% 성장했는데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이다.보안에 투자하지 않으니 사고가 많이 나고 해커들이 늘어난다.그렇지만 이런 현실이 외환위기 때처럼 기회가 될 수 있다.제대로 정비하고 노력하면 벌어진 차이는 얼마든지 좁힐 수 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안철수 사장은 20대에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을 마치고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까지 지낸 그가 인간의 몸이 아닌 컴퓨터에 청진기를 대고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한 것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그러나 기자가 안 사장을 5년간 수차례 만나면서 느낀 점은,개인의 이익 추구보다 사회 공헌에 뜻을 둔 사람도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대학시절 매주 무의촌 등에서 무료진료를 했던 안 사장이 백신을 만들었을 때도 사회를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는 대목에서 그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다. ‘책벌레’인 그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지 15년째.다음달이면 9번째 책이 나온다.3년 전 펴내 베스트셀러가 된 ‘CEO 안철수,영혼이 있는 승부’는 대학교재로도 쓰인다.안 사장이 어려울 때마다 물질적·정신적으로 든든한 후원자였던 의사인 아내가 뒤늦게 미국 로스쿨에서 공부 중이라 ‘기러기 남편’으로 지내고 있다.
  • [열린세상] 저출산 문제 문화로 풀자/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인구증가가 급속히 둔화되고 있다.지난해 인구 1000명 당 자연증가율은 5.1로 10년전의 절반 수준이다.지금과 같은 저출산 추세가 지속될 경우 2020년경에는 현재의 인구규모 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2003년 15∼49세의 가임여성 한명이 낳는 평균출생아수(합계출산율)가 1.19명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다.합계출산율이 각각 1970년 4.53명,1980년 2.83명,1993년 1.67명인 것과 비교하면 불과 20,30년 사이에 출산율이 3분의1 아래로 급격히 떨어졌다.이와함께 가임여성 수도 격감하고 있다.20,30대 여성 숫자가 지난 한해에만 0.58%에 달하는 4만 8289명이 감소했다.15∼49세 가임여성 수가 2003년 1375만명에서 2010년 1296만명,2020년에 1143만명으로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개발연대 가족계획으로 불렸던 우리의 인구억제정책은 성공사례의 하나로 평가되었다.그러나 이제 저출산 문제가 미래 우리 경제사회의 큰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이러한 낮은 출산율의 지속은 생산연령인구를 급속하게 감소시킬 것이며,이와 함께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부양노인인구의 급증을 초래하여 향후 우리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크게 손상시킬 것이 확실하다. 인구정책은 그 효과가 장기적인 속성을 갖는다.그러므로 적정 인구규모의 유지를 위한 강력한 출산장려정책 추진이 시급하다.이러한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대통령 직속 고령화및미래사회위원회가 설치되어 여러가지 출산력제고정책이 논의되고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논의가 아동육아에 대한 금전적 지원에 초점이 모아지는 것 같다.이러한 비용지원정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출산력 문제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요인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의 핵심요인은 결혼연령이 늦춰지고 있으며,기혼여성은 교육비 등 양육비 부담으로 아기 낳기를 주저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저출산 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이러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다시 말해 출산문화 자체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된다.여기에는 교육과 양육방식,여가문화,가족문화,지역공동체의 역할변화가 함께 수반될 필요가 있다.순서매기기 중심의 획일적 교육방식,공교육의 부실에 의한 과다한 사교육비 부담 등의 현 교육체제와 관행이 크게 달라져야 출산불안감이 해소될 수 있다. 여성의 직장과 가사의 병행은 이제 불가피한 선택이다.이 둘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성역할분담 관행의 정립과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인프라의 구축이 필요하다.이와 더불어 자식에 대한 부모의 과보호 관행도 달라져야 한다.성인이 된 자식까지도 계속 끼고 보호해야 한다는 캥거루족 의식은 자식의 홀로서기를 방해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확산되고 있는 과다한 유흥업소와 향략산업의 존재도 출산력 저하의 요인이 되고 있다.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20,30대 여성의 유흥업 종사자수가 전체의 15%가 넘는 150만명에 육박한다는 조사도 있다.유흥업소 종사 유경험자의 출산율이 평균에 크게 미달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건전하지 못한 유흥업의 비중을 축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형태의 동호인 모임,학습모임 등이 활성화되는 새로운 여가문화,기업문화가 창출되어야 한다. 스포츠,취미생활 등을 포함하여 거의 모든 생활영역에 걸쳐 ‘쿠스’라는 동호인 활동이 활성화되고 있는 북구의 학습사회모형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이러한 활동을 보장하는 사회적 기제가 바로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이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공적 투자가 중요하다.지역사회가 학습사회로,기업은 학습조직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질 경우 건전하지 못한 유흥업과 향락산업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인에게 출산과 육아에 대한 금전적 보조도 필요하지만,생활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이 함께 수반될 수 있도록 하는 문화적 고려가 동시에 필요하다. 김장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원장
  • [김영희 이혼클리닉] 사업 벌일 때마다 시댁돈 날리는 남편

    결혼한 지 7년째 된 여자인데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합니다.36세인 남편은 하는 사업마다 실패를 하는데 실패하면 부모님을 졸라서 사업자금을 얻어내고,또 다시 실패를 거듭하고 있습니다.저는 아들을 낳은 뒤 독학으로 교대에 합격을 해서 과외선생을 해가며 번 돈으로 등록금과 학비를 마련하여 지난해 눈물겨운 졸업을 했습니다.하지만 남편은 결혼 전 제가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써버리고 시부모님께 다시 손을 벌리고 있습니다.둘이서 막노동을 해서라도 우리 힘으로 살자고 하면 고등학교만 나온 남편은 가방 끈이 길다고 가르치려드느냐고 윽박지릅니다.남편이 착한 사람이긴 하지만 저도 지쳐서 힘이 듭니다. -이설희- 설희씨,시댁이 경제력이 충분한데도 대학을 가지 못했던 남편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사업을 하고 있는데 하는 사업마다 망하고,망하고 나면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서 사업자금을 다시 얻어내고,또 다시 실패를 하고….그 나이에도 부모님만 의지하고 살고 있는 남편과는 달리,당신은 어려운 집안형편에도 열심히 공부를 하여 명문대에 입학을 했지만 생활고로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 강사를 하며 집안일을 돕고 있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고도 독학으로 교대에 합격을 했고,과외선생을 해서 등록금과 학비를 마련하여 지난해 4년 만에 졸업을 할 때 눈물겹도록 행복했다는 글을 읽고 저 역시 감동을 받았습니다.요즈음 세상에 설희씨 같은 건전한 사고와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훌륭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많은 며느리들은 시댁이 잘 살면 남편을 충동질하여 시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까지 더 받으려고 하는데 오히려 막노동을 해서라도 자립하자고 남편을 설득하고 있다니,자존과 자립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당신은 반드시 성공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내 조카 중에 설희씨 남편과 아주 흡사한 사람이 있습니다.그 역시 부모님의 과잉보호 속에서 자랐는데 본인이 공부를 싫어해서 고등학교만 겨우 졸업을 하고 직장도 없는 채 결혼을 했습니다.결혼 후엔 사업을 하겠다고 부모로부터 많은 돈을 가져갔지만 번번이 실패를 했지요.사업경험도 없이 일만 벌여 놓았으니 당연한 결과였지요.조카는 사업이 실패 할 때마다 부모를 찾아가 손을 내밀었고,부모들은 대학을 못 나온 아들이 안쓰럽다하여 장사 밑천을 계속 대줬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습니다.10여 년 넘게 돈만 없애더니 결국 부모님마저 형편이 어렵게 되자 아내는 보험회사에,남편은 가구점 배달원으로 일을 하더군요.조카는 막노동이 힘들어서인지 술을 먹고 친가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집안 식구들에게도 못 할 짓을 많이 하더니 50대 중반이 돼서야 새 사람이 되더군요.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스스로 길을 찾아 지금은 반듯한 사업을 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설희씨,부모님께 손을 내미는 남편의 태도는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부모님께 의지하지 말고 둘이서 자립하여 살자고 하면,가족의 정이라는 게 그런 거라며 당신을 매정한 사람으로 몰아치고 가방 끈이 길다고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고 윽박지른다니….하루아침에 남편의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편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부모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남편 몰래 시부모님을 만나서 아들의 장래를 위해서 매정하게 뿌리쳐야만 홀로서기를 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어떠한 도움도 주지 말라고 단호하게 부탁드리세요.시부모님의 잘못된 자식사랑이 아들을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습니다.진정한 자식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부모님들이 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설희씨,남편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트레이닝코스라 생각하고 동네 슈퍼마켓을 하던,붕어빵 장사를 하던 둘이서 해 보십시오.남편을 앞세우고 당신은 뒤에서 내조만 하세요.사람은 큰 시련을 통해서 인생을 배웁니다.최후로 남편에게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고 살 것 같으면 그만 헤어지자고 협박성 발언도 해 보시고요.남편이 지금 홀로서기를 못하면 앞날이 걱정됩니다.당신은 남편도 가정도 반듯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현명함이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서울가정법원 조정위원
  • [2002·2003 이혼통계] 동두천 1000명당 11명꼴 ‘전국 최고’

    [2002·2003 이혼통계] 동두천 1000명당 11명꼴 ‘전국 최고’

    경기 동두천시의 조이혼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농촌에 비해 도시가,도시 중에서는 ‘항구도시’와 미군부대를 끼고 있는 ‘군사 도시’ 등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이혼을 많이 했다.같은 도시 내에서도 중산층 이상이 모여 사는 지역의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이혼을 선택하는 비율이 낮은 것으로 확인됐다. 30일 통계청의 ‘2002·2003 인구동태통계연보(혼인·이혼편)’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같이 나타났다.2002∼2003년 자치단체 이혼리포트인 셈이다. ●전국서 하루 평균 458쌍 이혼 이에 따르면 지난 2002년 전국 평균 조이혼율은 3.0건이다. 지역별로는 동두천시의 조이혼율이 5.0건으로 가장 높았으며,▲성남 중원구 4.8건 ▲인천 중구 4.6건 ▲부천 오정구 4.4건 ▲인천 서구 4.3건 등의 순이었다.반면 경북 봉화군의 조이혼율은 1.0건에 불과해 가장 낮았으며 ▲경북 군위군 1.2건 ▲전북 장수군 1.3건 ▲경남 합천군·전북 무주군 1.4건 등으로 조사됐다. 또 지난해 평균 조이혼율은 3.5건으로 2002년보다 17% 증가했다.이혼 건수는 16만 7100건으로 하루 평균 458쌍이 ‘홀로서기’를 선택했다. 지역별로는 ▲동두천시 5.7건 ▲부천 오정구 5.4건 ▲인천 서·남구 4.9건 ▲인천 남동구 4.8건 등의 순으로 높았으며 ▲충남 청양군 1.4건 ▲전남 장수군 1.5건 ▲전남 신안군·경북 의성군·의령군 1.7건 등의 순으로 낮았다. 특히 동두천시는 2년 연속 전국 234개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높은 조이혼율을 보였다.전국 평균보다 2002년에는 67%,지난해에는 63% 각각 높았다.즉 전국적으로 1000명 중 6∼7명이 이혼을 선택했다면 동두천에서는 그 2배 가까운 10∼11명이 이혼한 셈이다. 또 지난 2년 평균 조이혼율은 동두천시에 이어 ▲부천 오정구(4.9건) ▲성남 중원구(4.8건) ▲인천 중·서구(4.6건) 등이 뒤를 이었다. 2002년이나 2003년은 물론 2년 평균 조이혼율 상위 5걸에 모두 수도권 지역이 포함된 것이 눈에 띈다.이들 지역은 도시로서 경제적으로 열악하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농촌지역 상대적으로 낮아 항구도시와 미군부대가 위치하고 있는 군사도시는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이혼 발생빈도를 보였다. 부산,인천,울산,마산,창원,포항,광양,목포,여수,군산,속초 등 항구도시 11곳의 조이혼율은 2002년 3.2건,지난해 3.8건 등으로 전국 평균보다 0.2∼0.3건 웃돌았다. 서울 용산구와 부산 동구·부산진구,대구 남구,인천 부평구,의정부,동두천,평택,하남,파주,화성,춘천,원주,군산,경북 칠곡군 등 군사도시 15곳의 조이혼율은 2002년 3.4건,지난해 3.9건 등으로 전국 평균보다 10% 안팎의 높은 수준을 보였다. 즉 도시에서도 경제적 수준 등에 따라 조이혼율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셈이다. 또 16개 광역자치단체별로는 인천이 가장 높은 조이혼율을 나타냈다. 이어 제주(2년 평균 3.75건)와 부산(2년 평균 3.5건) 등의 순으로 높은 조이혼율을 보였으며,경북은 2.6건(2002년 2.4건,2003년 2.8건)으로 16개 광역 시·도 가운데 가장 낮았다. 한편 농촌지역의 경우 이혼을 선택하는 주민이 도시에 비해 현저히 낮지만,이는 노령자 비율이 높은 연령별 인구 구성상의 특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도시와 농촌에 대한 구분은 통계분석의 용이성과 현실성을 감안,행정구역상 시 지역은 도시로,군 지역은 농촌으로 간주해 분석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는 “조이혼율이 도시보다 농촌에서 낮게 나타나는 이유는 전통적 가치관을 유지하는 고령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이 거주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민층보다 중산층 거주지역 조이혼율 낮아 서울의 경우 중산층 이상의 경제력을 지닌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강남구와 서초구 등의 2002∼2003년 2년 평균 조이혼율은 2.3건으로 서울시내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한강 이남 11개 자치구의 조이혼율은 2.9건으로 한강 이북 14개 자치구의 3.2건보다 낮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또 ▲경기 과천시 1.85건 ▲수원 영통구 2.3건 ▲안양 동안구 2.5건 ▲서울 노원구 2.7건 ▲대구 수성구 2.7건 등 최근 중산층이 선호하는 지역에서도 조이혼율이 낮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경기도의 경우 조이혼율은 동두천시가 5.35건인데 반해 과천시는 1.85건에 불과해 큰 편차를 보였다.또 성남시는 중산층 거주지로 알려진 분당구(1.9건)가 인근 수정구(4.6건)와 중원구(4.8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조이혼율을 보였다. 이밖에 광역시에 최고 및 최저 조이혼율을 기록한 지역을 살펴보면 부산은 중구(4.25건)와 금정구(3.1건),대구는 서구(4.0건)와 수성구(2.65건),인천은 중구(4.6건)와 강화군(2.25건),대전은 동구(4.1건)와 유성구(2.3건) 등으로 조사됐다. 또 도 단위 광역단체의 경우 농촌지역은 2건 미만의 조이혼율을 보였지만 도시지역은 4건이 넘는 곳도 있어 높은 편차를 나타냈다. 장세훈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 [시론]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양길현 제주대 교수· 본사 명예논설위원

    [시론] 박근혜와 아웅산 수치/양길현 제주대 교수· 본사 명예논설위원

    아웅산수치와 박근혜.아시아의 두 여성 정치지도자의 너무도 다른 정치상황과 인생경력 그리고 미래 비전을 비교하면서 박근혜의 어제와 내일을 조명하고 21세기 한국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해 보자. 아웅산수치는 일찍 부친을 여의었다.미얀마 독립투사이자 건국 대부인 아웅산이 정적에 의해 1948년에 피살되었기 때문이다.다만 아웅산의 유지를 받드는 우누와 네윈 정부에 의해 수치는 영국으로 유학하여 선진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박근혜는 1975년 모친 육영수의 피살 이후 영부인 역할을 대행하던 1979년에 부친을 여의었다.유신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 속에 박정희가 측근에 의해 피살되었기 때문이다.그 이후 박근혜는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같은 비정치적 삶에 만족하는 듯 20년을 보냈다. 아웅산수치는 군사독재에 저항하는 비폭력 민주투사로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1988년 이후 지금까지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 있다.1990년 총선에서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총칼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있어,수치는 버마 국민들에게 민주화의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박근혜는 1987년 민주화의 수혜자가 되었다.1997년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호남-민주당이 이회창-영남-한나라당을 이기는 것으로 나타나면서,박근혜는 일약 영남 지역의 대표 주자 가운데 하나로서 정계에 입문하여 최다 득표의 국회의원이 되었다.2002년의 보수-개혁 대결구도가 다시 노무현-민주당의 승리로 나타나면서 보수-영남-한나라당을 대표하는 박근혜의 위상은 더욱 높아져 유력한 대권 후보 가운데 한 사람이 되고 있다. 아웅산수치는 언제든 선거만 치르면 승리할 것이기에,미얀마 군부는 선뜻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지금도 시대에 뒤떨어진 군부통치를 지속하고 있다.수치의 인기는 아웅산의 휘광을 넘어서서 본인 스스로 한치 흔들림 없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민주화 투쟁을 전개한 지난 15년간의 성과와 깨끗한 이미지를 포함한 상징성에 탄탄히 기반을 두고 있다. 야당 대표로서 이제 막 대권 도전에 나선 박근혜의 수권 능력은 아직 미지수이다.노무현에 대항할 대안적 정치적 상징이 부재한 이회창 이후 한나라당에서 영남-보수를 모으는 상징으로 박근혜를 활용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문제는 이러한 야당표 결집은 이회창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권자의 30%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하다. 박근혜의 대권 가능성은 크게 두 가지에 기반한다.하나는,1960∼70년대 박정희-김일성 대결구도를 넘어서서 박근혜-김정일 간의 새로운 방식으로 대화와 관계정립을 꾸려 나가는 일이다.만일 박근혜가 김정일과 함께 선건설-후통일이라는 박정희의 정책 지표를 넘어서서 평화공영이라는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구현해 나간다면,이는 대권자격 갱신과 함께 지지기반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박정희의 딸로서가 아니라 박근혜 스스로의 홀로서기를 보여주는 것이다.이는 박정희 재평가에 보다 능동적으로 임하고 미래지향의 전향성을 받아들일 때 가능할 것이다.박근혜가 과거를 넘어서서 자기 스타일과 정체성을 갖고 21세기의 도전에 부응하기 위한 첫 발걸음은 바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수용하여 정면 돌파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박정희를 박근혜의 아버지로 바꿀 수 있어야 대권이 가능할 것이다. 양길현 제주대 교수· 본사 명예논설위원
  • 배보다 배꼽 ‘빈곤층 지원’

    가난한 사람들의 ‘홀로서기’를 돕기 위해 나라 돈으로 운영되는 자활후견기관 가운데 일부가 본래 목적의 사업비보다 직원 인건비나 사무실 운영비로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지난해 209개 자활후견기관의 예산집행 실적을 분석한 결과,17개 기관(8.1%)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나 차상위계층 등 빈곤층의 자활지원보다 인건비 등 기관운영에 더 많은 예산을 썼다고 27일 밝혔다. 2001∼2003년 3년 연속 사업비보다 운영비를 더 많이 쓴 기관도 6곳이나 됐다.10개 기관은 빈곤층의 창업이나 수익사업 지원을 위해 반드시 구성하게 돼 있는 자활공동체를 3년간 한 차례도 구성하지 않는 등 자활사업을 게을리했다. 자활후견기관은 중앙정부로부터 70%,지방자치단체에서 30% 등 100% 국고로 운영되는 민간기관이다. 서울 관악일터나눔의 경우,지난해 기관운영비로 1억 5000만원을 썼지만,자활근로사업에는 이보다 적은 1억 2000만원을 사용했다. 감사원은 이와 관련,“기관운영비가 목적 사업비를 3년간 계속 초과 집행한 기관과,3년간 자활공동체를 구성하지 않은 기관 등 15개 기관에 대해서는 자활기관 지정취소나 통·폐합토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활후견기관측은 재무감사만으로 기관의 존폐를 결정하는 것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반발하고 있다.한국자활후견기관협회 양봉석 사무처장은 “지적당한 대부분의 기관은 사업을 하기 위한 지자체의 예산이 적게 편성돼서 구조적으로 기관운영비에 비해 사업비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현재 연간 1억 5000만원으로 자활후견기관에 똑같이 지급하고 있는 기관운영비를 운영실적 평가와 기관의 규모를 따져서 차등지급하는 방안 등 개선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막오른 박근혜 2기] 우리당 반응

    “이제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박근혜의 이름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은 19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대표가 재신임되자 이렇게 일갈했다.그러나 박 대표가 야당 대표로 선출된 첫날부터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으로 비쳐질까 우려해 입조심을 했다.박 대표를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에 기대감도 피력했다. 특히 이날 오전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에서 신기남 의장은 “한나라당이 4개월간의 과도체제를 마감하고 뉴한나라당 건설을 기대한다.”며 박 대표의 복귀를 앞두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임종석 대변인은 “민생경제 안정과 정치개혁 분야에서 제1야당의 새로운 모습,새로운 지도력을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민병두 기획총괄팀장은 비판적인 목소리도 냈다.그는 “박 대표는 선출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당 내부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갖느냐가 문제”라며 “현재 민주적 또는 독재적 리더십 사이에서 새롭게 리더십을 형성해 나가기 때문에 과도기로서의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또한 박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강력히 부상한 것과 관련해 민 팀장은 “산업화에 기여한 아버지의 후광을 벗어던지고 ‘아버지의 이름으로’가 아닌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특히 대(對)북한관 등 민족주의와 민주화에 대한 철학적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근혜식 새로운 야당’에 대한 기대감도 적지 않다.김현미 대변인은 “박 대표는 여당대표 같은 야당대표”라며 “퍼스트레이디 수업을 통해 다져진 안정감 등이 여당의 정국운영에 긍정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의 대구·경북(TK)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지역주의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특히 지난 총선때 TK에서 전패한 열린우리당은 부산·경남지역까지 ‘한나라당 바람’이 확대될 가능성도 예측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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