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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야구, 괴물 류현진·日 다르빗슈와 격돌할 듯

    ‘괴물’ 류현진(20·한화)이 일본 대표팀의 에이스 다르빗슈 유(21·니혼햄)와 맞대결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스포츠호치 등 일본 언론은 29일 호시노 센이치 일본 대표팀 감독이 다음달 2일 열리는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 한국과의 2차전 선발 투수로 정통파 우완 다르빗슈를 내정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1일 B조 1위 팀과의 첫 경기에는 우완 와쿠이 히데아키(21·세이부), 세 번째 경기인 타이완전엔 좌완 나루세 요시히사(22·지바 롯데)가 선발 등판할 예정이라는 것. 일부 언론에서 1차전만 다르게 예측했을 뿐 한국과 타이완전 선발은 똑같아 신뢰성은 높은 편이다. 김경문 대표팀 감독도 이날 현재 일본 선발을 공식 언급하지 않았지만 일본을 제압하기 위해선 류현진을 내세울 것으로 전문가들과 정통한 소식통이 전망했다. 양 감독은 한 장의 올림픽 티켓이 걸린 이번 대회 최고의 고비에서 에이스를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의 맞대결은 한 살 차에도 체격만큼이나 살아온 자취가 너무 달라 또 다른 흥미를 준다. 류현진(187㎝,98㎏)은 얼마 전 수시 2학기로 대전대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하는 등 ‘모범생’의 삶이다. 반면 이란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다르빗슈(196㎝,84㎏)는 파란만장했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지난 10월 이란 국적을 포기하고 일장기를 달았다. 중학교 졸업 후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도호쿠고 졸업 전 참가한 니혼햄 스프링캠프 도중 파친코에서 담배 피우는 모습이 발각돼 학교에선 정학을, 팀으로부터는 근신 처분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일본 여성지에 누드로 데뷔했고, 지난 11일엔 배우 사에코(20)와 혼인 신고를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성적만큼은 돋보인다. 정통파 투수로서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직구의 위력은 ‘명품’이다. 류현진은 지난해 데뷔 이후 2년 연속 17승 이상과 탈삼진 1위에 방어율 2점대를 이뤘다. 체인지업과 커브를 곁들여 상대 타선을 요리한다. 다르빗슈는 최고 시속 151㎞의 직구에 일본 투수 특유의 포크볼을 무장해 올 시즌 15승5패, 방어율 1.82를 올리며 투수 최고의 영예인 사와무라상을 받았다. 양국 에이스끼리 자존심 대결에서 누가 웃을지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김영중기자 jeunesse@seoul.co.kr
  • 낙태 한해 34만건

    낙태(인공임신중절 수술) 건수가 출생 건수의 72% 수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해중 고려대 교수는 30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리는 ‘인공임신중절 예방 및 대책마련을 위한 토론회’ 발표자료를 통해 지난 2005년 낙태 건수가 34만 2000건에 이른다고 29일 밝혔다. 이중 15∼19세 미혼여성의 낙태 건수는 1만 1700여건에 이른다. 같은 해 출산 인구는 47만 6000명이었다. 인공임신중절 수술 이유(다중응답)는 주로 가족계획이나 경제적 이유를 꼽았다. 더이상 자녀를 원치 않아 낙태하는 비율이 42%, 미성년자 또는 혼인상 문제가 된다는 사회경제적 이유가 40%를 차지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낙태한다는 대답도 11%나 됐다. 김 교수는 “인공임신중절의 주된 원인은 사회 경제적인 이유임에 비춰 볼 때 낙태를 엄격하게 금지하는 모자보건법은 현실과 많은 괴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김소윤 연세대 교수는 “윤리적, 사회경제적 사유로 산모 본인이 원할 경우 낙태를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주일미사 참여않는 천주교 냉담자 68% “가족 때문에…”

    주일미사 참여않는 천주교 냉담자 68% “가족 때문에…”

    천주교 교인 가운데 주일미사에 참여하지 않고 종교활동을 쉬는, 냉담자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세례를 받아 입교하는 과정에서도 가족의 영향이 가장 큰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실은 천주교 수원교구가 최근 교구내 쉬는 신자 310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28일 발표한 결과에 따른 것으로 천주교계의 가정사목이 큰 과제임을 드러냈다. ●냉담자 갈수록 늘어날 전망 조사에 따르면 냉담의 가장 큰 이유로 응답자의 67.8%가 배우자 또는 배우자 이외의 가족 때문임을 들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신자의 영향을 받았다는 냉담자는 겨우 21%뿐. 냉담의 이유로 배우자를 든 응답자 가운데 여성이 38.8%, 남성이 15.7%로 나타나 남성보다는 여성이 배우자로 인해 더 많이 냉담 상태에 빠지게 됨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냉담자의 72.1%가 견진성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나, 견진성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특히 냉담 원인 가운데 가족이 아닌 교회 안 요소를 묻는 항목에선 39.6%가 ‘고해성사가 불편해서’에 응답해 가장 많았다. 이밖에 ‘전례가 무의미하거나 복잡해서’(15.4%),‘본당 활동에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12.4%),‘경제적 문제 때문’(10.0%),‘성직자에 대한 실망과 상처 때문’(9.2%)순으로 많았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가 지난 27일 명동성당 별관에서 개최한 제7차 연구발표회에서도 신자 수가 꾸준히 증가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냉담자는 갈수록 늘어날 것이란 예측이 나와 냉담자 문제는 천주교의 큰 숙제임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날 천주교세 발표에 따르면 신자수는 2010년 522만 2043명(총인구의 10.7%),2015년 583만 3481명(11.8%),2020년 644만 4918명(13.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주일미사 참여율은 2010년 24.7%,2015년 22.8%,2020년 21.2%로 차츰 감소하는 등 냉담자 비율도 2014년 40.8%,2015년 41.2%로 증가해 천주교계의 내적 침체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점쳐졌다. ●67%가 가족 영향으로 입교 한편 수원교구 설문에 따르면 입교 동기를 묻는 질문에서도 가족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다. 본인 의지로 세례를 받은 응답자(58.6%) 가운데 ‘가족 일치를 위해 동일한 종교를 갖고 싶어서’(29.2%),‘가족이 함께 세례받기 위해’(23.6%),‘혼인미사를 위해’(13.7%) 등 총 66.5%가 가족 영향을 입교 이유로 들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나이는 숫자? 84세 노인, 21세 모델과 재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미국의 건축자재업체인 ‘84 럼버’의 조 하디(Joe Hardy)회장이 84세의 나이에 21세의 젊은 아가씨와 재혼할 것으로 알려져 화제다. 이번이 3번째 재혼인 그는 ‘84 럼버’ 이외에도 리조트 사업 등을 꾸려나가고 있는 미국의 억만장자이다. 지난 1월 그의 생일파티에 유명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Maria Aguilera)가 참석해 축하곡을 부른 것으로도 매우 유명하다. 억만장자의 새 신부로 알려진 다니엘 골든( Danielle Golden)은 올해 21세로 갓 대학을 졸업하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조 하디의 지인은 “처음 골든을 만났을 때는 매우 뚱뚱한 모습이었다.”며 “하디가 지방흡입수술을 하라며 큰 돈을 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까지 하디의 부인들은 모두 금발의 미녀였다.”며 “그러나 골든은 머리와 피부색 모두 검다. 도대체 어떻게 하디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한편 조 하디는 지난 5월 22살의 어린 신부 크리스틴 조지(Kristen Georgi)를 아내로 맞아 라스베가스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었다. 자신의 딸이 운영하던 스파 리조트 직원 조지를 만나 62년의 나이차를 뛰어넘어 결혼에 골인했지만 100일을 갓 넘기고는 파경을 맞았다. 현재 자신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 두 번째 부인 데비 하디(debbie hardy)와 재판 중에 있는 조 하디는 팔순에 나이에도 쉼 없이 이슈를 만들어 내는 ‘저력’을 발휘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파리지엔의 계약연애

    파리지엔의 계약연애

    ‘넌 도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니?’ 대한민국 미혼남녀라면 누구나 한번쯤 시달려 봤을 만한 이 질문. 특히 요즘 같은 늦가을, 주변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잡다한 생각에 마음까지 어지럽게 마련이다. 이런 현실은 프랑스의 향수 코디네이터 루이스(알랭 샤바)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홀어머니에 여섯 명의 누이들까지 가세해 오매불망 그의 결혼만을 바라고 있다면, 상황은 더욱 절망적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개봉된 자국 영화 중 흥행 1위를 차지한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은 남부럽지 않은 싱글로 살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남자와 결혼 보다는 입양에만 관심이 있는 여자의 좌충우돌 연애담을 그리고 있다. 무려 일곱 명이나 되는 집안 여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계약연애’라는 고육지책을 짜낸 루이스. 급기야 그는 직장동료의 여동생인 에마(샬롯 갱스부르)에게 거액을 주고 ‘가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을 세운다. 일단 가족들에게 애인을 소개시킨 뒤, 결혼식 당일날 신부가 도망가 버리게 만들면 어쩔 수 없이 결혼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란 것이 그의 계산. 하지만 모든 일이 그의 뜻대로만 순순히 돌아갈 리 없다. 결혼식 당일 신부가 사라졌지만, 가족들은 그것이 루이스의 외도 때문이라고 단정짓는다. 게다가 충격을 받아 쓰러진 루이스의 어머니는 에마만을 애타게 찾는다. 한편 고가구를 복원하는 앤티크 디자이너로 일하는 에마의 상황도 그다지 좋아보이진 않는다. 빵빵한 통장잔고나 혼인신고서도 없는 그녀는 브라질에서 남자아이를 입양하려는 계획에 번번이 차질을 빚는다. 결국 루이스와 에마는 또 다른 계약을 맺는다. 에마의 이번 미션은 완벽한 아내감에서 ‘쌩뚱’ 엽기녀로 변신할 것. 가족들에게 미운털이 박히게 해 자연스럽게 에마에게 든 정을 떼내겠다는 것이다. 미래의 시어머니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유언장은 작성했느냐.’라고 묻는 에마. 이제 이들의 계획은 거의 성공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싸우면서 정든다고 했던가. 어느덧 둘에겐 묘한 기류가 흐른다. 사실 계약연애는 ‘옥탑방 고양이’‘내 이름은 김삼순’‘마들렌’ 등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자주 소개된 익숙한 소재다. 이들의 티격태격 연애담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하지만 때로는 뻔한 결말과 억지스러운 전개가 보는 이들을 지치게 만든다. ‘결혼하고도 싱글로’는 적어도 그런 걱정은 덜었다. 인물캐릭터뿐 아니라, 가짜 결혼식 소동 뒤에 벌어지는 상황들도 작위적이지 않고 잔잔한 웃음을 준다. 다만 계약관계로만 존재하던 두 사람이 갑자기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에서는 설득력이 많이 떨어진다. 하지만 모처럼 만나는 이 친근하고 유쾌한 프랑스 영화는 결혼이라는 제도적 압박에서 벗어나고픈 미혼남녀들에겐 추천할 만하다. 새달 6일 개봉.15세 이상 관람가.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선택 2007 D-28] 신당·민주 ‘합당·후보단일화’ 위기

    [선택 2007 D-28] 신당·민주 ‘합당·후보단일화’ 위기

    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협상이 일단 결렬된 가운데 양당은 물리적인 합당 시한인 21일을 앞두고 막판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양당간 최소한의 신뢰 관계마저 깨진 상태여서 통합협상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주목된다. 대체로 세 가지 가능성이 점쳐진다. ●협상 결렬 가능성 대선일정과 정당법상 절차를 감안하면 양당은 늦어도 21일까지 통합합의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양당은 22∼23일 이틀간 후보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실시해 대선후보 등록 전인 24일까지 합당 신고서가 선관위에서 수리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관위도 행정적인 절차 등을 감안해 양당의 협상이 최소한 21일까지는 마무리돼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총선 공천지분 축소를 우려한 통합신당 내부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민주당 역시 통합신당측의 ‘합의 파기’에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성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이날 통합신당의 합의 파기를 ‘혼인빙자 간음’에 비유할 정도다. 통합신당내 ‘친노(親盧)’ 성향의 한 의원은 “현실적으로 보면 이제는 법률적 통합이 어려워진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협상이 사실상 결렬됐음을 강조했다. ●후보단일화만 합의 이런 측면에서 통합신당 내부에서는 합당이 일단 물 건너간 만큼 후보단일화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출신의 한 통합신당 의원은 “법적인 통합은 이미 어려워진 만큼 이제는 후보 단일화를 하고 통합은 그 다음으로 미루는 단계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은 ‘정치적 통합’ 상태로 치르고 실무적 통합은 대선 이후로 미뤄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민주당 이인제 후보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당 통합 없는 후보단일화는 없다.”며 독자출마를 선언해 단일화 가능성을 일축했다. ●합당과 후보단일화 막판 타결 통합신당 문희상 상임고문과 민주당 최인기 원내대표 등 양당의 협상단장들이 이날 협상 재개를 위한 접촉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막판 극적 타결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통합신당 정동영 후보도 이날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초청 토론회에서 민주당과의 통합협상이 파국위기를 맞고 있는 것과 관련,“협상이라는 게 막바지에 가면 밀고 당기기와 진통이 있다.”며 “(민주당과의 통합은)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이런 관측에 힘을 실어 줬다. 자신의 조속한 협상타결 주문에도 불구하고 당내 일부세력이 반기를 들며 ‘후보 흔들기’에 나선 것을 막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 후보측 핵심인사도 “민주당이 의결기구와 관련해 7대3을 못받겠다고 한 것은 협상을 깨자는 의미보다 고도의 협상전략으로 보인다.”며 “6대4 정도에서 의결기구 구성을 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피력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색,계’ 실제주인공 사진 전시회 中서 열려

    ‘색,계’ 실제주인공 사진 전시회 中서 열려

    영화 ‘색, 계’가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국 광둥(廣東)미술관에서 ‘색, 계’의 실제 주인공의 사진이 전시돼 영화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영화 ‘색, 계’는 중국 여류 작가 장아이링(張愛玲)이 1939년 상하이(上海)에서 일어난 실화를 소재로 쓴 소설 ‘색계’를 토대로 만든 작품이다. 1937년 일본의 상하이 점령 이후 각 정권간의 치열한 첩보전 속에 ‘사교계의 꽃’이라 불리는 정보원이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영화 속 여주인공 탕웨이(湯唯)가 연기한 ‘정핑루’(鄭蘋如)다. 국민당 소속 정보기관의 정보원이었던 정핑루는 19살 때인 1937년 ‘량유’(良友)라는 종합잡지의 표지모델로 등장하면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랑유’는 당시 기사에서 “정핑루는 눈동자가 매우 아름답고 얼굴빛이 복숭아 꽃과 같으며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보조개가 매우 인상적인 여인”이라고 묘사했다. 정보원이 된 후에는 영화와 마찬가지로 신분을 위장했어야 했기 때문에 20살의 정핑루는 ‘정 샤오제’(小姐·미혼인 여성을 부르는 호칭)가 아닌 ‘정 뉘스’(女士·기혼이거나 높은 지위의 여성을 부르는 호칭)로 불린 기사도 찾아볼 수 있다. 20살때부터 주로 일본인을 상대로 고급 정보를 수집해오던 정핑루는 영화 속 ‘이선생’의 실제 인물인 딩모춘(丁默邨·1901~1947)을 암살하려다 결국 신분이 발각돼 상하이 교외의 황량한 벌판에서 22살의 나이에 총살을 당했다. 빼어난 외모로 ‘징옌’(경염·驚艶·놀랍도록 아름답다)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는 정핑루는 그녀를 모티브로 한 영화의 흥행으로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으며 데뷔했던 잡지와 사진들로 이루어진 전시회에는 연일 중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진=xkb.com.cn(사진 왼쪽,가운데는 정핑루, 오른쪽은 정핑루를 연기한 탕웨이)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내가 아내 둘을 데리고 살게 된 ‘속사정’

    “요즘이 어떤 시댄데,첩까지 거느릴 수가 있죠.일부다처제 국가도 아닌데 말입니다.” 중국 대륙에 한 30대 남성이 정식 결혼한 아내 외에도 다른 젊은 여성과 딸을 낳고 한 집안에서 살고 있어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주변 남자들로부터 한껏 부러움을 사고 있는(?)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중남부 장시(江西)성 지안(吉安)시 완안(萬安)현 우펑(五豊)진 윈저우(雲洲)촌에 살고 있는 농민 셰(謝·37)모씨.그는 합법적으로 결혼한 아내 외에도 젊은 여자와 함께 살며 딸을 낳아 기르며 한 집안에서 생활하다가 중혼죄 혐의로 체포돼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고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이 최근 보도했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셰씨는 16살이던 지난 1991년 같은 동네에 사는 랴오(廖)모씨와 결혼식을 치르고 혼인 신고를 했다.그럭저럭 별 탈 없이 결혼생활을 해오던 그는 아무리 농사를 지어봐도 ‘셈평이 펴지기는 커녕 입에 풀칠 하기도 어렵다.’고 판단,아내와 상의해 대도시에 나가 뜬벌이 생활을 하더라도 돈을 모으기로 작정했다. 농삿일 밖에 모르던 셰씨가 지난해초 중국 남부 최대 도시중 하나인 선전으로 갔으나 맞춤한 일자리가 쉽게 나타날 리가 없었다.며칠을 헤매던 그는 천신만고 끝에 한 공장에 잡역부로 취업을 했다. 공장에서 생활하다보니 그 공장 안에는 너무나 젊고 예쁜 여성들이 너무 많았다.벌써 결혼한지도 15년이 넘어 아내와는 별다른 애틋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이던 그는 아무래도 주변의 젊은 여성들에게 눈이 돌아가는 것은 당연한 이치.그러던중 같은 공장에서 23살의 미혼 여성 루(盧)모씨를 알게 돼 눈이 맞았다. 14살이라는 많은 나이 차에도 아랑곳 없이 이들 남녀는 만나는 순간부터 필이 가슴에 꽂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격렬한 사랑에 빠진 이들 남녀는 급기야 동거에 들어갔고,루씨는 곧바로 임신했다. 셰씨는 임신한 루씨를 데리고 같이 ‘자랑스럽게’ 고향으로 돌아갔다.하지만 고향에서는 이들 남녀를 반기지 않았다.이 모습을 본 셰씨의 아버지는 조강지처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를 봤다며 그와 루씨가 집에 들어오는 것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이들 남녀는 다시 선전으로 되돌아와 동거생활을 계속했다.루씨의 출산일이 가까워진 지난 5월 다시 고향 완안현으로 되돌아가 집으로 들어갔다.셰씨의 아버지도 이번에는 곧 출산할 처지에 있는 루씨를 내쫓지 못하고 한 집에 살게 됐다.이러다 보니 셰씨는 결국 한지붕에서 아내와 첩과 함께 동거를 하게 됐고 딸까지 낳았다. 그러나 셰씨가 두 아내를 거느리는 시간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그가 아내와 첩을 거느리고 산다는 소문이 퍼지는 바람에 완만현 공안(검찰)당국에 중혼죄 혐의로 체포됐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올들어 출산율 8.5% 증가

    신생아 수 증가세가 1년6개월 동안 이어지면서 저출산 문제 해소에 청신호가 켜진 게 아니냐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주민등록전산망 자료를 바탕으로 올들어 3·4분기까지 집계한 신생아 수는 36만 5492명이라고 12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만 8721명(8.5%) 증가한 것이다. 신생아 수는 지난해 4월에 증가세로 돌아선 이후 18개월간 이어지고 있다. 혼인 건수도 2003년 30만 5000건에서 2004년 31만 1000건,2005년 31만 6000건,2006년 33만 3000건으로 늘어나 신생아 수 증가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복지부는 내다봤다. 신생아 수는 2000년 ‘밀레니엄 베이비붐’으로 반짝 상승한 뒤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쌍춘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결혼과 출산바람이 불어닥친 올 상반기 신생아 수 증가세는 이어졌다. 김서중 저출산대책팀장은 “출산에 대한 인식 개선,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 저출산 대책 추진 등이 어우러진 결과로 보인다.”고 말했다.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재테크 칼럼] 축의금·조의금도 세금 낼까

    지난 봄 장남을 출가시킨 A씨는 결혼식 때 축의금으로 친지·동료 등으로부터 1억 2000만원을 받았다. 장남에게 신혼집 전세금으로 보태주려고 한다. 특히 사업을 하는 형님으로부터 목돈을 받은 A씨는 축의금도 증여 과세대상이 되는지, 여러 경로의 다양한 하객들이 준 축의금을 누구의 소유로 봐야 하는지, 또한 축의금을 자녀의 전세보증금 명목으로 줄 때 과세문제는 없는지 등이 궁금해 상담창구를 찾았다. 이처럼 천고마비의 계절을 맞아 주변에서는 결혼식이 한창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 처리를 두고 고민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축의금을 둘러싼 쟁점은 크게 축의금으로 얼마까지 증여세를 내지 않고 주고받을 수 있느냐와 혼주가 받은 축의금을 결혼한 자녀에게 줄 경우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느냐에 맞춰져 있다. 경사 때의 축의금이나 애사 때의 조의금은 부조(扶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경제적 대가 없이 금전 등을 주고받을 때 부과되는 세금인 증여세의 과세대상이 될 수도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과세기준 금액을 얼마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남는다. 결론적으로 현행 상속·증여세법에서는 그 기준금액을 사회통념이란 기준을 내세우고 있어 얼마부터를 과세대상으로 보는지 명확하지 않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에 대한 증여세 비과세 기준은 1995년까지 지급자별로 20만원 미만이란 명문규정이 있었다. 그것도 96년 이후부터는 혼주나 상주와의 관계 등에 따라 금액이 달라질 수 있어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금품으로 변경됐다. 물론 현행 증여세법에선 일반증여 때의 면세점을 50만원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축의금 등 이와 유사한 금품으로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금액의 기준은 혼주 등의 소득·재산·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따라서 면세점을 넘는 일상적인 축의·부의금을 모두 증여세 과세대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증여세 비과세 여부는 축의금을 낸 사람별로 판단하지만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금품에 해당하는지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지급받은 금품의 총액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축의금을 둘러싼 두 번째 고민인 사용하고 남은 축의금을 자녀에게 증여할 때의 증여세는 축의금이 과연 혼주인 아버지 소유이냐, 아니면 결혼 당사자인 자녀 소유이냐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는 귀속에 따라 증여세 부과 문제가 달라진다. 과세당국의 일반적 해석에 따르면 혼인시 축의금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혼주인 부모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혼주가 받은 결혼축의금으로 자녀 명의의 재산취득 등을 목적으로 증여하는 경우에는 증여세 과세대상이 된다. 다만 결혼축의금 중 혼주가 아닌 혼인 당사자와의 관계에 따라 받은 것임을 입증하면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이신규 세무사 하나은행 가계영업본부 전문가팀장
  • [서울광장] 멀지만 가야 할 복수국적제/황성기 논설위원

    [서울광장] 멀지만 가야 할 복수국적제/황성기 논설위원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인 인요한(미국명 존 린튼) 박사는 귀화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러나 포기했다. 귀화 절차를 밟는 데 갖출 서류가 산더미처럼 많았다. 무려 38가지였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귀화에 미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 부인의 한국 국적 회복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 손 들었다. 선교사 후손으로 순천에서 태어나고 자라 ‘내 영혼은 한국인’이라는 그는 그렇게 귀화 희망을 접었다. 지금은 인 박사 부부 모두 영주권(F5)을 지녀 외국인이지만 큰 불편없이 살고 있긴 하다. 그런 그에게 법무부가 이중국적 허용을 추진한다는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일이었다. 그는 국적법이 개정되면 한국 국적을 취득하겠노라고 빙긋 미소를 던졌다. 국적 유지 여부가 애국심을 판단하는 기묘한 잣대가 된 것은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박정희 시대의 병영국가’에서이다. 이 시대의 잔재가 병역 기피와 맞물려 지금껏 국적 포기나 이중국적을 반국민적 행위로 인식토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 국적 포기자는 17만명에 이른다. 취득자는 5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저출산으로 2050년에는 인구의 10%를 외국인으로 채워야 할 판이다. 두뇌 확보에 고심해온 정부는 병역필자에 한해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외국인 인재도 우리 국적을 지닐 수 있도록 한 방안을 내놓았다. 9세기 신라에도 ‘이중 국적자’가 있었다. 김진이나 김자백 같은 재당(在唐) 신라인들이다. 이들은 당나라와 일본, 신라를 무대로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쳤다. 당은 외국인이 귀화하면 10년간 조세를 면제해주고 출입국과 교역, 재산과 노비는 물론 국내 여행과 혼인, 의복에 이르기까지 중국인과 같은 처우를 누리도록 했다. 산둥 반도를 중심으로 신라방에 거주했던 이들은 때로는 신라인, 때로는 당인으로 살았다. 지금으로 치면 재미·재일 교포처럼 재당 교포였던 셈이다. 역사학자 권덕영은 이민족을 받아들인 개방 정책이 당나라 번성의 한 이유라고 봤다. 정부는 이중 국적제가 외국인 인재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적을 복수로 갖도록 한다고 해서 선진국이든, 중·후진국 출신이든 두뇌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기대는 장밋빛에 가깝다. 고3 딸을 둔 인요한 박사는 다른 직원들은 다 받는 학자금 보조 혜택을 국제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못 받도록 한 병원 규정이 못마땅하다. 외국인이든 귀화인이든 한국인 학교에 보내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법률이나 세제만 고친다고 인재가 오는 게 아니다. 교육, 의료나 주거, 레저 면에서 삶의 질이 인재를 유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마니아가 아니더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사회 곳곳을 세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잠재적 이중국적 대상자인 700만 재외 동포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이중국적이라는 말만 들어도 반발하는 히스테릭한 심리가 우리 사회에는 존재한다. 표현을 가치중립적인 복수 국적으로 바꾸고, 의식을 변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중국적을 병역필에 한해 허용할 때 생기는 여성 역차별이나 단일 국적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 정부 등과의 협의도 난제다. 외국인 100만명 시대라지만 더 많은 사람을 받아들여야 생존할 수 있는 ‘문명사적 전환기’에 우리는 서 있다. 길은 멀어도 언젠가는 가야 할 여정에 복수국적제가 놓여 있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그녀가 남편에 ‘소송’ 제기한 기막힌 속사정

    “결혼한지 벌써 3년이 지났는 데도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중국 대륙에 한 젊은 여성이 매달 주는 생활비로만 생활하는 까닭에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도 알수 없자,남편을 상대로 월 수입내역을 요구하는 소송을 내는 사건이 발생,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중국 중부 후베이(호북)성 왕화산(王華衫·28)씨.그녀는 3년전 보험외판원인 덩화(鄧華)씨와 결혼한 뒤 그럭저럭 생활해오고 있다. 무한만보(武漢晩報)에 따르면 왕씨는 결혼한 이후 남편이 주는 생활비만으로 생활하다 보니 지금까지 한번도 남편 월급 명세서를 본 적이 없어 월급이 얼만지를 알고 싶어 남편에게 월 수입내역을 상세하게 밝히는 ‘지전권(知錢權)’ 소송을 냈다고. 왕씨의 사연은 이렇다.5년전 지금의 남편인 덩씨와 알게 된 그녀는 2년동안 연애기간을 거친 뒤 2004년 5월 그와 결혼했다.연애할 때 덩씨는 자신은 보험영업직원인 만큼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받기 때문에 월급이 얼만지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왕씨는 알았다며 그다음부터 그에게 월급에 대해 묻질 않았다.그 뒤 3년전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덩씨는 매달 2000위안(약 24만원)을 생활비로 쓰라고 그녀에게 건네줬다. 하지만 왕씨는 처음부터 월급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런데 그녀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덩씨의 수입이 분명 늘어나고 있는 데다 외출하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런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자 그 여자친구는 “아니,부부 사이에 어떻게 수입 내역을 전혀 모르고 살아갈 수 있느냐.”며 “지금 당장 남편에게 물어보라.부부면 물어볼 권리가 있다.”며 소송을 낼 것을 충고했다. 하지만 마음씨 착한 왕씨는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남편에게 월 수입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하지는 못했다.그렇지만 남편에 대한 의심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덩씨에게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다니느냐.”고 묻자 남편은 “집에서 죽치고 있느니 한 곳이라도 더 다녀야 더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 아니냐.”며 자신의 외출을 영업 활동의 하나로 돌렸다. 특히 그녀가 자신의 지갑과 옷가지 등을 뒤진 흔적을 발견한 남편 덩씨는 화를 버럭 내며 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버린 뒤에는 지금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다. 후베이 더웨이쥔상(德偉君尙) 법률사무서 왕하이완(王海漫) 변호사는 “현재 남편과 아내가 월 수입내역을 모두 알아야 한다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법률상으로는 규정돼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부부 사이에 혼인관계가 지속되는 기간에는 월급 등 모든 소득이 공동소유라는 것이 입법 원리”라고 설명했다.따라서 ‘지전권’이라고 명시돼 있지는 않지만,법률 소송에서는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단박인터뷰’의 김영선PD, 단박인터뷰 당하다!

    ‘즉시’ ‘솔직하게’라는 순 우리말을 가진 프로그램명처럼 뜨거운 화제의 인물을 찾아 현장으로 발빠르게 다가가는 KBS ‘단박인터뷰’. 지난 19일 KBS본관에서 예리한 질문과 생동감 넘치는 인터뷰로 시청자들의 가슴속 궁금증을 속시원히 해결해주는 ‘단박인터뷰’의 진행자 김영선PD(34)를 만나 프로그램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단박인터뷰’가 장안의 화제이다. 그래도 아직 ‘단박인터뷰’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단박인터뷰’는 KBS1TV에서 화·수·목 밤 10시 45분 에 방송되는 인터뷰 전문 프로그램이다. ‘단박’이라는 말은 순 한글로 ‘즉시’ ‘단숨에’ ‘솔직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매일 매일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인물을 인터뷰 대상으로 삼아 솔직한 질문을 던지고 솔직한 마음을 들어보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본인 소개도 짤막하게 해달라. 나는 ‘단박인터뷰’ 진행을 맡고 있는 김영선 PD이다. ‘추적 60분’ ‘뉴스 투데이’ 등 시사프로그램을 쭉 해오다가 이번에는 인터뷰 진행자로 나서게 되었다. 아직 서투른 점이 많지만 여러분들이 (단박인터뷰를) 많이 사랑해 주셨으면 좋겠다. ‘단박인터뷰’라는 타이틀이 프로그램 성격에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짓게 되었나? 내가 이 프로그램의 ‘얼굴’이지만 사실 많은 PD들이 연출을 하고 있다.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그램의 홍경수PD가 ‘단박인터뷰’의 첫 연출을 맡았는데 ‘단박’이라는 이름은 그의 아이디어였다. 국어사전을 통해 찾아냈다고 들었다. 또 인터뷰 끝에 출연자에게 노래를 시키는 것도 홍PD의 아이디어였다. 정치·문화·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출연자들이 나오는데 섭외기준은 무엇인가? 현장에 찾아가서 단숨에, 즉시에 한다는 프로그램명에 맞게 당연히 그 주(週)에, 그 날에 가장 이슈가 된 인물이 섭외기준이 된다. 어려운 일이지만 항상 그것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민감한 이슈와 관련된 출연자는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할텐데 어떻게 설득해 인터뷰를 성사시키나? 뉴스의 흐름을 보고 아이템이 정해지면 대부분의 섭외가 방송 전 날 저녁때쯤 이루어진다. 출연자 섭외가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아무리 바쁜 일정이라도 인터뷰에 응해준다. 섭외과정은 ‘전쟁’과 비슷하다. 출연해 달라고 매달리기도 하고 우겨보기도 하고 아무튼 뒤에서 보이지 않는 고초가 많다. 수많은 출연자들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가장 섭외하기 어려웠던 출연자는 누구인가? 가장 힘들게 섭외한 사람은 한나라당의 이명박 대선후보였다. ‘단박인터뷰’ 시작하고 한 달 뒤에 출연을 요청했는데 당시 한나라당 경선시점 이었다. 출연건으로 전화를 해도 계속 “다음에 합시다. 다음에 합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마음에 일단 이명박 후보의 대전 연설회 현장으로 찾아갔다. 이명박 후보에게 말 그대로 ‘들이댔는데’ 보좌관들 사이에서 “이런 법이 어딨냐”며 난리가 났었다. 그 때부터 온갖 아양으로 보좌관들을 설득해 이명박 후보를 쫓아다녀 그 다음날 15분 정도 인터뷰를 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그렇게 힘들게 섭외에 성공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인터뷰에 잘 응해 주었나? 그 당시 정치적으로 껄끄러운 질문들을 많이 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굉장히 통쾌하고 시원시원하게 대답을 잘해주었다. 오히려 그 옆의 보좌관들이 걱정을 했을 정도였다. 민감한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면 출연자들로부터 불만이나 거부반응도 많지 않나? 많았다. 사람인데 왜 없겠는가. 진중권씨 인터뷰도 사실 화면에는 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당시 그 질문들 자체를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심형래씨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심형래씨는 (인터뷰를)하다가 울기도 했고 중간에 안하겠다고 말한 적도 있고…. 그런데 불편해 한다고 안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출연자가 최대한 덜 기분 상하도록 웃으면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또 나는 ‘김영선’이라는 이름으로 간 것이 아니고 시청자를 대표해서 간 것이므로 아무리 언짢은 질문이라도 출연자들은 다 답변을 해준다. 그러나 인터뷰가 끝나면 방송에 빼달라거나 하는 어필도 많다. 반면에 거하게 대접을 해주거나 잘 해주는 출연자들이 있다면? 대부분 인터뷰 방송 후에 밥을 사겠다고 많이 말한다. 특히 정치인들은. 그렇지만 한번도 초대에 응한 적이 없다. 지금까지 김영선PD나 스태프들을 가장 난처하거나 곤혹스럽게 한 인터뷰는 무엇인가? 실명을 밝히지 않고 말을 하겠다. 모 작가 분께 정치적인 얘기를 계속 물어봤는데 불편했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정색을 하고 화를 냈다. 굉장히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경우가 그 전에도 한 두번 있었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달래고해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물론 정치쪽과 관련된 시원한 대답은 못들었지만 그래도 나중에 노래를 잘 불러주어서 감사한 그런 기억이 있다. ’단박인터뷰’에 꼭 빠지지 않는 장면이 출연자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 장면인데 에피소드가 있다면? 1회때 출연자였던 김홍업 민주당의원한테는 노래 부탁을 하지 못했다. 너무 부끄러워하며 도망가는 바람에…. 2회때는 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유시민 장관이 나왔는데 “좋아하는 노래 있으세요?”라고 물어봤더니 이분이 마침 기다렸다는 듯이 “저는 박상철의 ‘무조건’이라는 노래를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원래는 노래제목만 물어보고 방송에서 원곡을 틀어주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정말로 몰라 한 소절만 부탁했다. 그랬더니 이분이 너무나 귀여운 얼굴로 “무조건, 무조건이야~”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왜 그 노래를 좋아하게 됐는지 설명을 해주었지만 그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은 “이 노래는 노대통령에 대한 사랑의 노래구나.”라고 느꼈다고 한다. 또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때문에 윤승용 청와대 홍보수석과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모 일간지에서 “중요한 사안을 가지고 노래를 불렀다.”며 강하게 질책했다. 그 후로 청와대측에서 몹시 속상해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김영선PD에게 있어서 가장 의미 깊은 노래는 무엇인가? 평소 이소라 씨노래를 많이 좋아하는 편인데 그것은 노래방에서 점수가 잘 나오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이고…(웃음) ‘단박인터뷰’가 질문자에게 노래를 요청하는 의도로 생각해본다면 나에게 의미있는 노래는 김민기 씨의 ‘봉우리’일 것이다. 굉장히 오래된 노래인데 사실 노래라기보다 읊조리는 시이다. 힘들 때 굉장히 힘이 되는 노래이다. 그런데 아직 미혼인것 같은데 너무 바빠서 결혼을 생각 못했나? 하하하. 그렇다. 이제는 일 핑계를 대면 안된다. 이쯤되면 솔직해야한다. 어찌하다보니 이 나이가 되었다. (웃음) 김영선PD와 같이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예비 방송인들에게 한 마디를 해준다면? PD는 굉장히 매력적이고 평생을 재미있게 지낼 수 있는 몇 안되는 직업인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면서 항상 새로운 분위기에서 일하지만 역으로 언제나 새로운 것을 해야하는 굉장히 힘든 직업이기도 하다. 언제나 나에게 놓여진 백지에 그림을 그려가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지 않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성격인지 돌아보는게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박인터뷰를 사랑하는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예상외로 많은 사랑을 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있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고 시청자 여러분들의 발이되어서 열심히 찾아가 묻고 좋은 답변을 얻어오는 프로그램이 되겠다. 글 /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영상 / 손진호 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속박보다 자유”…중·노년층 이혼상담 급증

    “속박보다 자유”…중·노년층 이혼상담 급증

    중년층 인기 연예인들의 이혼이 잇따르면서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는 가운데 ‘이혼 신드롬’이 40대 이후의 중년층과 노년층으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80대 노년층의 경우 여성이 아닌 남성들이 전문기관에서 이혼 상담을 받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반면 20∼30대의 이혼 상담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법률구조법인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이하 상담원)은 23일 “이혼 상담 연령층이 30대에서 40대 이상으로 급격하게 옮겨가고 있으며,1999년 개원 이래 처음으로 80대 남성 4명이 방문, 이혼 상담을 받았다.”고 밝혔다. ●80대 할아버지도 이혼 상담 행렬에 상담원에 따르면 지난해 9월부터 올 8월까지 상담원에 접수된 가사·민사·형사 상담 1만 8553건 가운데 전화·온라인·출장상담 등을 제외한 면접 상담 863건 중 이혼·부부 상담 사례 331건을 분석한 결과,20∼30대의 이혼 상담은 줄어든 반면 40대 이상 이혼 상담은 크게 늘었다.20∼30대는 전년도 같은 기간(2005년 9월∼2006년 8월)과 비교해 49%에서 40.1%로 크게 줄어든 반면 40∼50대는 44.7%에서 46.8%로 증가했다.60대와 70대 상담자 비율도 각각 7.85%(26명)와 3.02%(10명)로 전년도 3.54%와 1.40%보다 늘었다.80대는 1.2%(4명)에 불과했지만 개원 이래 처음이다. 성별로는 남성의 경우 30대(20.9%),40대(19.7%),70대(17.4%)의 순이었고, 여성은 30대(27.5%),40대(26%),50대(18.4%)의 순이었다. ●‘부당한 대우’가 ‘부정한 행위’ 앞질러 이혼 상담 사유도 ‘배우자 등의 부당한 대우’가 ‘배우자의 부정행위’를 앞질렀다. 이혼 고려 사유(중복 응답)에 대해 남성 상담자의 16.7%가 ‘아내나 처가 식구들한테서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를 꼽아 ‘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55.3%)’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아내의 부당한 대우는 2005년 4.6%,2006년 10.1%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이다. 반면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는 2005년 13.9%,2006년 13.5%에 이어 올해 9.41%로 감소 추세다. 가정불화를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고만 하던 남성의 이혼 상담도 눈에 띄게 늘어 남성 상담자 비율은 25.08%(83명)로 2005년 12.6%,2006년 18.87% 등 해마다 6% 포인트씩 증가했다. ●전문가들 “속박보다는 자유, 달라진 사회상황 반영”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혼은 부부가 모두 직장과 육아 문제로 가장 바쁜 결혼 10년차 이후가 가장 위험한 시기다.”면서 “이는 여성들의 경제활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여성 위에 군림하려는 남성들의 태도를 여성이 참지 못해 파경에 이르게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가정법률복지상담원 양정자 원장은 “신드롬처럼 번지는 이혼을 막기 위해서는 남성은 아내를 대신해 가족을 위해 요리도 하고 아내가 아프면 하루 정도 회사를 쉬더라도 옆에서 지켜주는 새로운 남편 모델에 적응해야 하며, 여성도 가정의 어려움을 회피하지 말고 직접 책임지려 하는 새로운 아내 모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국진 류지영기자 betulo@seoul.co.kr
  • “복도 많네” 지방마다 남편있는 30대 여성!

    “세상에,정말 복도 많으셔라.어떤 사람은 한명도 못구해 야단법석인데,지방 곳곳에 정식 남편을 있다구요.” 중국 대륙에 한 30대 중반 여성이 지방 곳곳에 정식 결혼한 남편을 두고 있는 사실이 밝혀지는 바람에 시끌벅적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아줌마’로 불릴만한 사연의 주인공은 중국 중남부 구이저우(貴州)성 준이(遵義)시에 살고 있는 왕샤오리(王小麗·35)씨.갸름한 계란형의 해끔한 모습의 그녀는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과 안후이(安徽)성,상하이(上海)에 각각 남편을 두고 있는 ‘여장부’이다. 왕씨가 여려명의 남편을 ‘거느리게’ 된 사연은 이렇다.그녀가 처음 결혼한 것은 열여섯살 때로 저장성의 한 남성과였다.왕씨는 결혼한지 1년도 안돼 ‘이 남자와의 결혼 생활의 연장은 불행’이라고 생각,아무 말없이 가출*다. 몇년 동안 칩거를 해오던 왕씨는 지난 1995년 안후이성 화이난(淮南)시 농민과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두번째 남편과의 사이에 두딸을 낳으면서 비교적 평탄한 생활을 하는가 했다. 하지만 자기 버릇 개 못준다고 했던가.5년쯤 지나자 왕씨는 또 두번째 남편과도 헤어졌다.또다시 5년 동안 ‘잠수’해 조용히 지내던 그녀는 또다시 2004년 상하이에 있는 류(劉)모씨와 세번째 결혼했다. 세번째 남편인 류씨에 따르면 왕씨는 평소에는 아주 사랑스럽다.집안 일도 깔끔하게 해내고 잘 부니는 등 어느 곳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문제는 한번씩 말없이 사라져버린다는 점이다. 얼마 전에도 집을 나가면서 6000위안(약 72만원)을 챙겨 나갔다가 한달쯤 지나 다시 돌아왔다.류씨는 기분은 나빴지만 그대로 참기로 하고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그녀의 역마살은 좀체로 끝나지 않았다.해서 왕씨를 찾아나서기로 했다.이리저리 묻고 물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가보니 생각지도 못한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깜짝 놀랄일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결혼 혼인신고 때 사용한 신분증은 가짜인 것으로 판명났고 이미 두차례 결혼한 사실도 밝혀진 것이다. 이에 화가 머리 꼭뒤까지 치민 류씨는 공안(경찰)당국에 왕씨를 중혼(重婚)죄로 고소했다.쉬후이(徐匯)법원은 왕씨는 저장성과 안후이성의 사람과 정식 결혼하고도 완전한 이혼 수속도 밟지 않은 상태에서 상하이 사람과 또다시 결혼했기 때문에 중혼죄가 성립된다고 인정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길섶에서] ‘합창’ 그후/임태순 편집국부국장

    지난달 본면에 ‘합창’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합창단을 만들어 취미활동을 함께하고 있는 고교동창들이 자녀들의 결혼식에서 축가를 불러준다는 내용이었다. 얼마전 아버지들의 결혼식 축가를 실제 한번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와 흔쾌히 따라나섰다. 결혼식은 교회에서 목사님 주례로 진행됐다. 목사님은 자녀를 갖지 않는 사람들에겐 주례를 서지 않는다며 2명 이상 자녀를 가지라고 당부해 웃음이 일게 했다. 주례사에 이어 합창순서. 신랑 아버지도 합창단이 서 있는 곳으로 갔다.20명의 합창단은 혼인서약을 한 신랑·신부에게 복음성가를 들려주었다.‘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노래는 커졌다 작아졌다, 때로는 이중주로 울려퍼졌다. 그 속에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어 잘살라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대와 바람이 담겨 있었다. 합창이 끝나자 하객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뭔가 참된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에서 우러나오는 그런 박수였다. 합창단은 경복고 39회였다. 임태순 편집국부국장 stsl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병자호란 다시 읽기] (41) 정묘호란의 후유증

    인조는 1627년 4월12일, 서울로 돌아와 경덕궁(慶德宮)으로 들어갔다.1624년 이괄의 난을 맞아 서울을 버렸다가 되찾았던 경험을 3년 만에 되풀이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어렵사리 정권은 지킬 수 있었지만 그 후유증은 컸다. 청북에서는 의병들이 계속 저항하는 와중에 모병과 후금병 사이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명은 ‘조선이 오랑캐와 화친했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고 후금은 ‘속히 모문룡을 잡아 죽이라.’고 채근했다. 민생 문제가 시급한 와중에 조정 신료들은 후금과 화약을 맺은 것에 대해 시비와 논란을 멈추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막막한 상황이었다. ●모문룡, 후금과 화친 빌미 자신의 발호 정당화 화의가 체결되면서 후금군 대부분은 철수를 시작하여 압록강을 건넜다. 하지만 홍타이지는 의주를 조선에 반환하지 않았다. 후금군은 의주 부근에 주둔하면서 모문룡을 체포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몽골병을 포함하여 수천 명에 이르렀는데 아예 농사를 지으면서 장기간 주둔할 태세를 보이고 있었다. 조선은 사자를 보내 완전히 철수하라고 종용했지만 후금 측은 듣지 않았다.“조선이 모문룡을 제거해 주면 철수하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모병들은 그들대로 청북 주변의 섬과 육지를 오가며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었다. 간헐적으로 후금군을 습격하는가 하면 조선 관아와 백성들에 대한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조선 조정은 단속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모문룡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문룡은 ‘조선이 후금과 화친했다.’는 것을 빌미로 자신들의 발호를 정당화하려 했다.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정묘호란 이후 청북은 훨씬 더 위험한 ‘화약고’가 되어 버렸다. 모병과 후금군 사이의 충돌은 다반사가 되었고, 그 와중에 조선은 ‘샌드위치’의 처지로 몰렸다. 화약을 체결하면서 조선과 후금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사자의 왕래가 빈번해졌다. 문제는 사자들이 서울과 심양을 오가면서 모병들이 득실대는 청북 지역을 지나야 한다는 점이었다. 모문룡은 후금 사자를 체포하여 ‘한 건 올리려’ 덤볐고, 후금 사절들은 그들대로 모병들과의 충돌을 피하려 하지 않았다. 1627년 5월, 심양을 왕래했던 이홍망(李弘望)의 보고 내용은 ‘샌드위치’가 되어 버린 조선의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 준다.“후금 군인이 한인 네 명과 조선인 네 명을 붙잡아 제게 데려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한인이 조선 사람들을 살해하기에 잡아 왔으니 그대가 직접 한인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럴 수 없다는 뜻으로 말했더니 후금 군인이 말하기를 ‘조선은 한인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으니 도리상 그러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마침내 한인을 죽였습니다.” ●화친에 대한 비판이 격화되다 종묘사직을 지키려고 화의를 맺긴 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 ‘오랑캐’ 후금을 ‘형’으로 받드는 것은 도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와 함께 인조와 화의를 주도한 신료들을 특히 힘들게 했던 것은 명의 반응이었다. 이미 정묘호란이 일어난 직후 명 일각에서는 노골적으로 조선을 비판하는 목소리들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1627년 5월, 성절사(聖節使)로 명에 갔다가 귀국했던 김상헌(金尙憲)은 명에서 ‘조선이 누르하치에게 양곡을 원조했던 사실이 있다. 조선이 후금을 두려워하여 명과 후금 사이에서 관망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1627년 6월, 요동에서는 ‘조선이 오랑캐와 혼인을 맺었고, 오랑캐에게 땅을 내주고 거주하는 것을 허용했다.’는 풍문마저 돌았다. 인조와 조선 신료들은 명의 그 같은 태도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오랑캐와 화의를 맺은 것 때문에 인조반정 당시 내세웠던 명분이 크게 훼손되었다.’고 스스로 찜찜해 하던 차였다.‘광해군이 후금과 화친했기 때문에 타도해야 한다.’고 외쳤던 인조정권의 입장에서 명의 비난은 극심한 굴욕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이미 척화파 윤황(尹煌)의 발언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바 있다. 윤황은 강화도에 있을 때, 화의에 반대하면서 ‘오늘의 화친은 이름만 화친일 뿐 실제로는 항복입니다. 전하는 요행을 바라는 간신들에게 넘어가 더러운 오랑캐 사자를 접견하고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르십니다.’라고 직격탄을 날렸었다. ‘항복’이란 말에 격분한 인조는 ‘유식한 그대들은 오랑캐에게 항복한 임금을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라고 맞받았다. 그러면서 윤황을 잡아다가 국문하라고 지시했었다. 서울로 돌아온 뒤 논란은 재연되었다.7월1일, 생원 이흥발(李興渤) 등이 상소를 올렸다.‘명나라 장수가 우리 경내에서 피살되었음에도 전하는 오랑캐 사신을 객관에 머물게 하고 극진히 예우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적 사신의 목을 베어 명나라로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끝내 중국을 배신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었던 인조는 ‘그대들이 가상하다. 나도 후회하고 있다.’며 물러섰다. 화의에 대한 자괴감과 명에 대한 미안함은 신료들에게 엉뚱한 자격지심을 촉발시켰다. 후금군은 철수하면서 강홍립이 조선에 남도록 허용했다. 이어 강홍립이 후금에 억류되었을 때 거느리던 사람들도 조선으로 송환했다. 화의가 이루어진 데 대한 만족감의 표시였다. 송환된 사람 가운데는 강홍립이 후금에서 재취(再娶)했던 부인도 있었다. 그녀는 한족 출신 장군 동기공( 奇功)의 딸이었다. 신료들은 그녀가 강홍립에게 가겠다고 하자 아우성을 쳤다.‘오랑캐에게 항복하여 누르하치와 홍타이지를 섬긴 자에게 한족 여인을 다시 거느리게 해 주는 것은 참람하다.’는 것이 반대 명분이었다. 인조는 그녀를 강홍립에게 보내라고 했지만 신료들은 반대했다. 그들은 그녀를 명나라로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기공의 딸은 ‘조선에서 살 수 없으면 죽어 버리겠다.’고 호소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논란이 한창이던 7월27일 강홍립이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매국노’로 매도하는 분위기에서 비롯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의 죽음과 함께 논란은 종식되었다. ●이인거, 창의중흥대장 칭하며 병권 요구 화의를 둘러싼 논란이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던 1627년 9월, 모반 사건이 터졌다. 강원도 횡성(橫城)에 살던 유학(幼學) 이인거(李仁居)가 주도했던 사건이었다. 이인거는 9월26일, 원주목사 홍보와 강원감사 최현(崔晛)을 찾아가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계획을 털어 놓았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조정에서 오랑캐와 화친했으니 내가 의병을 일으켜 곧바로 서울로 올라 가겠다. 전하께 주화파 간신 한 사람의 목을 베도록 청한 다음 서쪽으로 달려가 오랑캐를 토벌하겠다.’ 최현 등이 미심쩍게 여겨 반신반의하고 있던 9월29일, 이인거는 군사를 일으켜 횡성현의 무기고를 탈취한 뒤 스스로를 ‘창의중흥대장(倡義中興大將)’이라 칭했다. 10월1일, 이인거의 상소가 조정에 도착했다. 이인거는 ‘전하는 호란을 맞아 몸소 갑옷을 입고 와신상담하는 자세로 적과 맞서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오랑캐 사신의 접대나 일삼고 눈치만 살폈으니 천지와 귀신이 공분(公憤)하고 나라가 견융(犬戎)의 땅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라고 일갈한 뒤, 자신에게 병권을 달라고 요구했다. 인조와 조정은 경악했다. 급히 선전관을 보내 강원감사 최현을 잡아들이게 하는 한편, 서울과 경기도의 병력 수천을 동원하여 전진시켰다. 비변사는 궁성의 호위를 강화하기 위해 호위대장이 군관들을 거느리고 대궐 밖에서 숙직하도록 하고, 동대문에서 횡성에 이르는 길의 요소 요소마다 정탐병을 배치했다. 이인거가 거느렸던 병력은 고작 70명 남짓이었다. 그는 9월30일, 횡성읍에서 벌어진 가벼운 교전 끝에 체포되었다. 싱거운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처벌은 참혹했다. 심문 과정에서 모두 20명이 죽고 14명이 유배되었다. 진압 이후 인조는 모든 책임을 윤황에게 돌렸다. 윤황이 ‘항복’ 운운하는 바람에 이인거 등이 민심의 불만을 틈타 일을 저질렀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인조와 화의를 주도한 신료들의 마음은 도무지 편치 않았다. 이인거의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후금과의 화의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묘호란 직후 조선의 분위기는 그렇게 어수선하고 착잡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오토바이 날치기 알고보니 검사님 아들

    오토바이 날치기 알고보니 검사님 아들

    「스피드」시대의 물결을 타고 등장한 신종 치기배-「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며 길가는 여인들의 「핸드백」만을 전문적으로 날치기 해오던 도깨비파 일당 4명 가운데 3명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서부경찰서는 지난 10일 김종호(金鍾浩·22·서울 영등포구 신림동 120의32) 김영룡(金泳龍·22·주거부정)을 상습특수절도혐의로 구속하고 육군모부대 김용일(金龍日)이병(22)을 군 수사기관에 넘겼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그동안 날치기한 「핸드백」은 줄잡아 1백여개. 훔친 「오토바이」 만도 10여대. 「오토바이」타기에 뛰어난 솜씨를 갖고있는 김용일, 한때 8군에서 「트럼피트」를 불던 악사출신의 김영룡, Y대학 토목과 3학년을 중퇴한 김종호, 모 지방고검차장검사의 둘째아들인 장(張)모(24·수배)등 중류이상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퍽」사업(「오토바이」날치기를 일컫는 그들의 은어)에 손을댄 것은 지난해 8월. 현재 군에 복무중인 김용일의 입대를 위로해 주려고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알게된 장과 친해지면서부터. 그 당시까지 혼자「오토바이」날치기를하고있던 장은 이들을 꾀어 함께 사업을 하자고 유혹했다. 그길로 해수욕장에서 곧장 서울로 올라온 이들은 장이 타고다니던 일제 「혼다」(3백cc)를 이용, 용일이 「오토바이」를 운전하고, 종호가 뒷좌석에 앉아 필동에서 퇴계로 쪽으로 걸어나오는 여인의 「핸드백」을 가로챘다. 연습삼아 처음 시작한 성과는 퍽 컸다. 첫 「백」속에서 현금 5만원이 나왔다. 재미를 본 이들을 그뒷날 후암동에서 병무청쪽으로 빠지는 길가에서 누군가가 세워둔 「오토바이」를 손톱깎이로 「키」를 대신해 훔쳤다. 이때부터 앞뒤 2명씩 타고 2조로 편성, 1대는 앞에서 길을 트고, 뒤 따르던 다른 1대는 「핸드백」을 날치기, 쏜살 같이 달아나는 수법을 썼다. 예상외로 수입도 좋았고 잡힐 염려가 없다고 안심한 이들은 하루에도 3,4회씩 번화가와 주택가를 무대로 닥치는 대로 날치기 했다. 더구나 용일의 「오토바이」모는 솜씨는 누구도 따를 수없을 만큼 뛰어났다. 「오사까」EXPO에서 「사이카」묘기를 떨쳤던 서울시경 「사이카」반의 안(安)모 경사도 용일의 기술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에피소드」 가 있을정도. 이 두사람은 경인고속도로 개통기념으로 지난해 인천~서울간 「레이스」를 벌였는데 용일이가 안모경사에게 이겼다는 것이다. 이들이 노리는 여인은 고급주택가의 골목길에서 걸어 나오는 악어「핸드백」을 든 중년부인. 이들 부인의 십중팔구는 기만원내지 10여만원을 「백」 에 넣고 다니기 일쑤였다는 것. 이와는 반대로 젊은 여자들이 들고 가는 「핸드백」은 노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열어보아야 「검」화장품부스러기 몇장의 나체사진에다 피임약 따위가 들어 있는 것이 고작. 여자들이 왜 여자의 나체사진을 넣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 「퍽」을 당하지 않으려면 길안쪽으로 「핸드백」을 들고다녀야 절대 안전하다고 일러주는 이들은 그 숱한 날치기 행각 가운데 다음 세가지 「케이스」는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사건이라고 귀띔. 지난해 9월중순쯤 종로 통의동 앞길에서 날치기한「핸드백」은 알고보니 모국을 처음 방문한 재일교포 여학생의 것. 든 돈은 빼고 그날로 여권에 적힌 주소대로 일본으로 우송했는데 그 뒷날 아침 「라디오」를 통해 「귀국이 어렵게 됐다」는 방송을 듣고 마음속이 찔금했다고. 날치기 생활중 김이 팍 샌날은 지난해 12월 24일 낮 2시. 돈암동 「로터리」에서 청수장으로 빠지는 아리랑 고개에서 낚아챈 30세 가량된 귀부인의 「핸드백」을 열었을때. 「오토바이」를 슬금슬금 몰고 가까이 다가들어 악어 「핸드백」을 낚아 채자 『도둑이야!』소리치며 1백m나 뒤따라왔다. 달아나면서도 「봉이로구나」생각하고, 후미진 곳에서 「핸드백」을 열어보았더니 그속에는 10원짜리 동전 3개와 지저분한 것이 묻은 손수건 1장이 얼굴을 내보이며 「놀랐지」-. 지난 1월 30일, 하오 7시쯤. 낙원동 「할리우드」극장 부근에서 인사동 골목으로 빠지는 길에서 왼손에 「비닐」바구니를, 오른손에 가죽 「핸드백」을 든 여인을 발견, 두개 다 낚아채 펴보니 낡은 가죽 「백」에는 1만원짜리 보증수표 3장이, 「비닐」바구니 속에서는 5백원짜리 다발 세뭉치가 나와 한꺼번에 18만원을 벌기도. 벌이가 워낙 좋아 지난 12월에는 전용승용차(「퍼블리카」서울자2-1399호)까지 구입한 이들은 여자들을 구슬러 애인을 만드는데도 명수. 20대 미혼인 이들은 각각 3,4명의 애인이 있을 정도. 전직 장관 N모씨의 딸 N양(22·모여대 3년)은 김영룡의 애인. 그가 「오토바이」날치기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찰에서 눈물을 흘렸다. 훔친 돈은 5몫으로 나눠 「오토바이」를 직접 운전한 자가 2몫을 차지, 그나머지는 3명이 1몫씩 나눠 가지기로 굳게 약속한 이들은 날치기한 「핸드백」은 버리는 것을 원칙, 그러나 가끔 값나가는 악어 「백」 이 손에 들어오면 여자꾀는 미끼로 이용하기도. 이처럼 신출귀몰하며 여인들의 마음을 뒤헝클어 놓은 「오토바이」날치기 일당을 잡은 것은 서울 서부경찰서 형사과 안영일(安榮一)형사(35)의 3개월동안의 노력의 결실. 안형사가 이들 일당이 「퍼블리카」를 타고다니며 「오토바이」와 「핸드백」을 날치기 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은 지난 1월말께. 퇴계로 모 「오토바이」 상가를 거점으로 1개월동안 탐문수사끝에 「도깨비」라는 별명을 가진 검사의 아들이 이짓을 하고다닌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끈덕진 추격끝에 「도깨비」는 지난해 12월 28일 육군에 입대한 장(張)이라는 사실을 캐내는데 성공했다. 공범 용일·영룡도 밝혀냈고 용일의 애인 박모양이 구로구 관수동 모요정 접대부로 일하는 사실과 밤 12시에 차를 몰고 찾아와 박양을 데려간다는 것등을 확인, 잠복 사흘만에 범인을 잡는데 성공했다. <안태석(安泰錫)기자> [선데이서울 71년 2월 21일호 제4권 7호 통권 제 124호]
  •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곰보 색시 보조개는 많기도 하지

    「한 여자에 두 남자」인 3각관계쯤 세상엔 흔한 일. 그런데 그 두남자가 형제사이이고 여자가 양귀비같은 미인이 아닌 곰보아가씨라면 얘기가 좀 재미있어진다. 사랑에 미치면 곰보자국도 보조개로 보인다는 말이 있기는 하다. 아뭏든 동생의 아이를 가졌던 아가씨가 형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는데-. 소꿉친구 자라서 「남(男)과 여(女)」 곰보면 어때, 동생이 먼저 유원지로 이름난 경춘(京春)가도를 달리다 마석에서 오른쪽으로 10리쯤 들어간 경기(京畿)도 양주(楊州)군의 한마을. 여기가 바로 「아더메치」한 형제지간 3각관계 치정극이 벌어진 곳. 20여호 남짓한 작은 마을에 문제의 세 남녀 집이 약 1백m 거리를 두고 마치 3각관계라도 상징하듯 3각형으로 떨어져 있다. 풍수지리로 보아도 숙명적으로 3각관계를 맺을 운명인가? 말썽난 신부 유덕자양(兪德子·26·가명)은 어려서 천연두를 앓았기 때문에 얼굴 전면에 지독한 마마자국이 있는 속칭 곰보 아가씨. 말짱한 정신으로 본다면 결코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아가씨다. 이 아가씨를 사이에 놓고 고종 사촌 간인 이(李)원서씨(25·가명)와 박(朴)종운씨(24·가명)가 치사찬란한 역사를 엮은 것. 먼저 관계를 맺은 것은 유양과 박씨. 그러니까 먼저 동생과 역사가 엮어진 셈인데 지금으로부터 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마을에 살고 있으니 서로 왔다 갔다 하며 지내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박씨의 어머니와 유양의 어머니는 자매를 맺은 사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제집처럼 자주 드나들었고 유양과는 소꿉친구이기 때문에 다정하게 지냈다. 그런데 나이가 20세쯤 되고 보면 남녀 사이란 결코 소꿉친구만일 수는 없는 모양. 이게 일이 벌어진 근원이다. 박씨와 유양은 어느덧 서로를 그리는 「남과여」가 되었고 부모들과 마을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밀회(密會)를 즐기는 사이가 되었다. 사랑의 씨앗·눈물의 씨앗 약혼준비중 이번엔 형이 2살연상의 여인이고 게다가 지독히 얽은 얼굴이지만 한번 정이 들고 보니 물불을 분간못하게 사랑에 빠졌다. 유양 방에서, 또는 박씨의 방에서, 마을 뒷산에서 사랑을 나누고 살을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사랑의 씨앗」이 잉태됐을 것은 당연한 순서. 유양의 배가 점점 불러갈 즈음에는 벌써 마을에 소문이 파다해졌다. 처녀의 몸으로 배가 불렀으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집안 망신이지만 딸의 못난 얼굴 때문에 항상 시집보낼 걱정을 해온 유양의 어머니는 차라리 잘된 일이려니 생각하고 두사람을 결혼시키기로 작정, 혼인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유양의 어머니에게는 그때 수양아들을 삼은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박씨의 고종사촌형인 이원서씨. 하나 있는 아들은 서울에 살림나서 살고 있고, 유양 위로 딸 둘은 출가, 오로지 유양 하나만 데리고 단촐하게 사는 처지가 외롭고 쓸쓸해서 이씨를 수양아들로 삼고 가까이 지낸 것. 이씨는 유양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잔심부름도 해주고 아들처럼 다정히 지내며 한살위인 유양을 「누나」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게 또 말썽일줄이야…. 수양아들을 삼아서 맺어진 누나 동생 관계라지만 처녀 총각이 만났으니 미묘한 움직임이 싹틀 수 있고 소문도 올바르게 날리가 만무하다. 이러쿵 짝짜쿵 소문이 나고보니 박씨의 마음이 고와질 턱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곰보 며느리를 얻는다는 것을 탐탁찮게 생각하던 박씨의 부모들에게는 더욱 못마땅한 일이었다. 그것도 남이 아닌 바로 친고종 사촌 사이에 벌어진 일이니 창피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기가 찰 밖에. 판정승 형이 동생 각서받고 화촉 켜는데… 하지만 유양은 임신 6개월의 몸. 이제 와선 이도저도 못할 딱한 처지에 이르렀다. 그래서 두 집안 어른들은 구수회의를 열고 이씨와 소문은 덮어두기로 결정, 그대로 박씨와 유양을 짝지어 주기로 했다. 그래 우선 약혼날을 받아 놓고 사주를 쓰고 혼인절차를 진행시켰다. 그런데 그때 뜻밖에도 신부 유양이 행방불명이 된 것. 하도 말도 많고 창피한 생각에서 유양의 어머니가 『왜 어미 속을 썩히느냐』면서 한대 쥐어박았더니 그길로 어디론지 사라져버린 것이다. 약혼날까지 받아놓았는데 신부가 증발을 해버렸으니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박씨는 유양과 고종형 이씨와의 관계를 더욱 의심했다. 『오냐! 너희 둘이 붙었구나』고 확신을 한 그는 유양과의 약혼을 취소하기로 결심했다. 사랑이 가셔버린 마음엔 증오심만 끓어 올랐다. 혼인이 취소되자 유양은 서울에서 낙태수술을 해버렸다. 여기서 일이 끝났다면 청춘남녀가 한때 철모르고 저지른 「잊고 싶은 사연」이라고 할 수가 있겠는데 그로부터 3년남짓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가을 이씨와 유양이 결혼을 했기 때문에 말썽은 또 꼬리를 문 것이다. 과거야 어떻든 간에 그동안 유양과 이씨가 누이-동생 사이를 넘어 연인이 된 것. 어차피 얼굴도 그런데다가 과거까지 가진 딸을 둔 유양의 어머니는 아예 이번에는 짝을 지어주기로 다짐하고 이씨의 부모와 만났다. 그때 이씨에게는 여러 곳에서 청혼이 들어오고 한군데 혼담은 꽤 구체적인 데까지 진전되고 있었는데, 본인들이 좋아한다니 모든 청혼을 물리치기로하고 둘을 맺어주는데 동의했다. 단 과거 박씨와의 석연치 않은 문제를 완전히 씻어버리기 위해 박씨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다. 그래서 유양의 집에서는 박씨의 집을 찾아가 딸과 이씨와의 결혼을 양해해달라고 사정,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형제간이라지만 박씨와 이씨는 성(姓)이 다르고 또 박씨는 유양을 깨끗이 잊었으니 두사람의 결혼에 이의가 없음을 밝히고 각서까지 써주었다. 곰곰 생각하니 울화터져 동생은 잔치집 쳐들어가 약혼을 하고 택일을 했다. 결혼날이 닥치자 신랑 신부 집에서는 잔치 준비를 하고 친척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아무리 잊어버린 사람이라지만 조금쯤 미련이 남는 것이 사랑의 피인가. 결혼식을 이틀 앞 둔 날 박씨가 유양을 찾아갔다. 막상 만나고 보니 오가는 말이 고울수만은 없었다. 『XX같은 놈』『XX새끼』욕설이 오갔다. 여기서 박씨의 울화통이 터졌다. 신랑 신부가 식을 올리기 위해 다음날 서울로 올라가기로 돼있었는데 새벽같이 박씨는 유양의 집을 습격, 잔치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손님들이 흩어져 도망가고 잔치는 엉망. 그러나 신랑과 신부는 무사히 박씨의 감시를 뚫고 서울에 가서 다음날 식을 올리고 유양은 머리를 얹을 수가 있었다. 3일 동안의 「허니문」을 즐긴 신혼부부가 마을로 돌아왔다. 신부는 이제까지 시댁에 들어가지 않고 친정에 살면서 시댁엘 왔다갔다 한다. 점장이의 점괘에 『돼지해가 되기전에(음력으로) 시집에 들어가면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나왔기 때문에 기다렸던 것. 날짜를 잡아서 지난 가을에 하다 만 잔치를 하고 들어갈 것이란다. <영(英)> [선데이서울 71년 2월 21일호 제4권 7호 통권 제 124호]
  • 변씨 ‘뇌물혐의 적용’ 논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이례적으로 적용됐던 ‘뇌물수수’ 혐의를 두고 말들이 많다. 변씨가 동국대 홍기삼 총장을 통해 신씨를 교수로 임용시켰고, 신씨가 월급을 받았기 때문에 검찰은 신씨의 월급을 변씨 뇌물로 규정했다. 그래서 변씨에게 뇌물 혐의가 적용됐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법조인 가운데 이같은 사례를 뇌물로 규정하는 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도 있고, 뇌물죄의 적용범위를 포괄적으로 확대해석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뇌물이 되는 이익은? 지금까지 대법원 판례를 보면 뇌물의 내용인 이익을 금전, 물품, 기타의 재산적 이익뿐만 아니라 사람의 수요,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한 일체의 유·무형 이익을 뇌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돈을 기한 없이 무이자로 빌린 경우 수뢰자가 받은 실질적 이익은 무이자 차용금의 금융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 금융이익이 뇌물이 된다는 것이다. 조합아파트 가입권에 붙은 소위 프리미엄도 뇌물에 해당하며 건축업자가 건축할 때 주택을 공사비 상당액으로 분양받기로 약속한 경우 매매시가 중 공사비를 넘는 액수만큼의 이익도 뇌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은 1996년 판결에서 “음식과 술의 대접 등 향응의 제공도 뇌물이 된다.”고 판시했다. ●이익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논란 본인에게 재산상 이익이 명백한 경우 뇌물이라는 점에 다른 견해가 없지만 가치를 판단하기 애매한 사례가 적지 않다. 성행위를 둘러싼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성행위가 성매매 행위가 아니라면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명예욕이나 허영심의 만족도 뇌물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도 엇갈린다. 법원은 대체로 가치를 객관화해야 한다는 요건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어 부정적인 견해가 더 많다. 반대로 혼인관계를 하는 대가나 회갑기념논집을 봉정하는 것은 뇌물이 될 수 없지만 송덕비를 세워 주는 것이나 개인을 미화하는 전기를 출판해 주는 것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변씨에게 적용된 뇌물죄는 신씨가 동국대 교수에 임용됨에 따라 변씨가 얻게 된 이익과 그 이익이 직무와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뇌물죄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이 주목된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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