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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해, 2015년 결혼식때 부모님도 대행 알바”

    “이은해, 2015년 결혼식때 부모님도 대행 알바”

    “이은해, 2015년엔 다른 남성과 파혼”“결혼식 때 부모도 대행 알바”과거 글 재조명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인 이은해(31)씨와 조현수(30)씨의 주변 인물에 대한 재수사에 나선 가운데, 이씨가 사망한 남편 윤모(당시 39)씨와 사귀던 중 다른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다가 파혼했다는 글이 재조명됐다. 12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따르면 ‘2015년 이씨와 결혼식까지 올렸던 신랑 지인입니다’라는 제목의 과거 글이 재조명됐다. 해당 글은 지난 2020년 10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가평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 편이 전파를 탄 직후 한 남성 A씨가 쓴 글이다. A씨는 이씨와 파혼한 남성의 지인이라고 밝히면서 결혼식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A씨는 “제 친구인 신랑은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아해서 결혼을 원했지만, 저희 친구와 부모님께서 보기에는 결혼 전부터 너무 수상한 점이 많았다”라며 운을 뗐다. 그는 “결혼 전 친구의 부모님은 상견례를 원했지만 여자 측에서 자기 부모님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상견례도 하지 못한 채 식까지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참고로 친구 집안은 부모님이 다수의 건물주이고 건설사 임원급으로 계셨을 만큼 집안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이어 “과거 친구가 여자친구가 있고 결혼을 할 거라고 말만 했지 절친인 저희한테 결혼 전 실제로 소개해주지 않았다”며 “친구 성격상 같이 식사 자리나 술자리를 만드는 녀석인데도 그러지 않아 당시에는 저희끼리 서운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했다. 또 A씨는 “처음 결혼식장에서 이은해를 봤을 때 친구들 모두 느낌이 안 좋다고 했다”라며 “식이 진행 중일 때도 신부 측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적었고 신부 측 부모님은 뭔가 어색한 연기자 느낌마저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A씨는 “이은해의 하객은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에 예식장 격식에 맞지 않는 반팔이나 반바지를 입었고 문신까지 드러나게 온 사람도 있었다”라며 “이래저래 모든 지인들이 이상한 느낌을 갖고 있었지만, 그냥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 축하해주며 식은 마무리됐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나중에 파혼의 결정적인 이유가 너무 소름 돋았다”라며 “신부 측이 결혼 비용을 하나도 보태지 않아 신부 측에서 들어온 축의금을 받기로 했는데 결혼식 후 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축의금 요구를 수차례 했음에도 계속 거부를 했다”라고 전했다.그러면서 “이걸 좀 수상하게 여긴 신랑 측 부모님이랑 가족들이 그럼 축의금 장부라도 부탁했지만 거부해 신랑 측 부모님이 사설 탐정을 고용해서 알아보신 거 같다”며 “그 결과 이은해가 신부 측 부모님과 하객 대부분을 전부 알바로 고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신랑 측에서 파혼을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끝으로 “제 친구는 이 사건 후 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까지 생겨서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며 “직장까지 그만두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라고 적었다. A씨는 “다른 지인이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과 전화 인터뷰까지 했던 걸로 아는데 방송에는 안 나왔다”며 “아마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 관련 때문인 듯하다”고 했다. 이씨는 당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험사의 횡포를 고발해 달라며 제보했지만 제작진이 자신의 의문스러운 행적을 취재하자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씨가 살인 범죄를 범하였다거나 범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단서로 방송을 허가했다. 파혼 후 몇 개월 뒤 피해자 윤씨와 결혼 이씨는 윤씨와 사귀던 2015년 11월 다른 남성과 결혼식을 올렸다 파혼했고, 몇 개월 뒤 윤씨와 결혼을 발표한 것이다. 2016년 두 사람은 인천에 신혼집을 마련했으며 상견례나 특별한 예식 없이 2017년 3월 혼인신고했다. 윤씨 가족들은 “상견례를 하고자 했지만 이씨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아 혼인신고만 했다”고 말했다.한편, 이씨는 내연남인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 30일 오후 8시 24분쯤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윤모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A씨를 살해하려 한 혐의 등도 받지만, 지난해 12월 검찰 조사를 받다가 도주해 4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검찰은 이들이 윤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범행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경 합동 검거팀은 그간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두 사람의 주변 인물들을 파악한 후 검거망을 좁히는 전략을 세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와 조씨가 4개월 넘도록 장기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조력자가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며 “가끔씩 112 신고를 통해 제보도 들어와 사실 확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서희원 측 “구준엽과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서희원 측 “구준엽과 결혼식은 하지 않기로”

    구준엽과 혼인신고를 마친 서희원이 결혼식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만 현지 매체들은 서희원과 구준엽이 대만에서 결혼식을 올릴 가능성을 제기했다. 구준엽의 지인인 한 작가가 부부를 위한 선물을 대만으로 보낸다고 알린 뒤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서희원의 매니저는 12일 대만 현지 매체인 나우뉴스에 “그림은 서희원과 구준엽을 위해 직접 제작한 축하 선물이며, 부부가 매우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다”고 그림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결혼식 여부에 대해서는 “두 사람은 원래 결혼식을 올리지 않기로 했으며, 이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해, 결혼식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구준엽과 서희원은 지난 2월 8일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올렸으며, 3월말 대만에서 관련 수속을 마쳤다. 대만 타이베이 서희원 집에 머물고 있는 구준엽은 오는 5월 디제잉 공연을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 한국, 세계서 양육비 가장 많이 드는 나라 1위…2위는?

    한국, 세계서 양육비 가장 많이 드는 나라 1위…2위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양육비 부담이 가장 큰 나라로 꼽혔다. 9일(현지시간) 미 CNN방송은 미국 투자은행 제퍼리스금융그룹(JEF)을 인용, 출생 후 18세까지 아이를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은 한국이 1인당 GDP의 7.79배(2013년 기준)로 14개 분석 대상국 중 가장 높다고 보도했다. 2위는 중국이다. 중국에서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평균 48만5천 위안(약 9천410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기준 1인당 GDP의 약 6.9배에 해당한다. 일본과 미국은 GDP 대비 양육비 배수가 각각 4.26배(2010년 기준)와 4.11배(2015년 기준)로 나타났다. 중국은 평균 가처분소득(소득에서 세금, 이자부담 등을 제외한 실제 소비할 수 있는 금액)에서 양육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컸지만, 절대 금액만 놓고 보면 양육비가 가장 적게 드는 나라로 분류됐다. JEF는 한국과 중국의 양육비 부담이 큰 이유로 교육비와 보육비, 보육 활용 가능성을 요인으로 꼽았다. JEF는 중국의 경우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 데 약 7만 5000달러(9210만 원)가 든다고 소개했다. 대학까지 졸업시키려면 여기에 추가로 2만 2000달러가 더 든다. 대학 교육비는 학비가 비싸기로 유명한 미국에 비해 적지만, 미국 등 서방은 학자금 대출을 통해 부담이 학생에게 전가되는 반면 중국은 부모가 이를 떠안는다는 게 JEF의 분석이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높은 양육비 탓에 혼인과 출산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CNN은 “서양 국가 부부는 2, 3명의 자녀를 원하지만 동양 부부는 그 숫자가 더 적다”며 “지금도 중국인 부부는 높은 양육비 때문에 한 명 이상의 자녀를 갖기 꺼린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의 수)은 2020년 기준 0.84명으로 이미 전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 현대판 민며느리제?…홍콩 16세 입양 소녀, 혼인 강요 폭로 파문

    현대판 민며느리제?…홍콩 16세 입양 소녀, 혼인 강요 폭로 파문

    신중국 수립 후 중국 대륙과 대만 양쪽 모두에게 '분홍색 작가'라는 비판을 받은 인물이 있었다. 베이징대 교수 출신의 작가 선충원으로 그는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을 관철하거나 학설을 이야기 하는 대신 중국인과 자연에 대한 글을 썼는데, 대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소소’(萧萧)다. ‘후난에서 온 소녀’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제작됐던 이 작품의 배경은 1920년대 중국 향촌에서 성행했던 중국판 민며느리제도인 ‘통양시’(童养媳)의 야만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작품 속 주인공 소소는 12살에 3살 남편에게 시집온 민며느리였다. 소소는 시댁에서 고된 노동을 하며 남편의 보모처럼 성장한다. 성인이 된 소소는 스스로가 민며느리제의 희생자이면서도 자신이 낳은 아들이 3살이 되던 해 그와 똑같은 처지의 민며느리를 새로 들이는 것으로 작품은 끝을 맺는다. 실제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린 나이의 여성을 불법으로 매매해 성인이 될 때까지 노동력을 착취하고, 이후에는 친아들과 혼인을 강제했던 ‘민며느리’ 풍습은 1950년대 중국에서 현대식 혼인법이 제정되기 이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런데, 중국 신문학 시대의 작품에서나 등장할 법한 악명높은 민며느리 사건이 최근 홍콩에서 발생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홍콩 매체 더 스탠다드는 올해 16세의 미성년자인 A양이 최근 페이스북 익명의 제보 페이지에 ‘양부모 두 사람이 자신을 민며느리로 삼기 위해 입양했고, 청각 장애를 앓는 친오빠와의 결혼을 강제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고 9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홍콩에 거주 중인 A양은 그가 출생한 지 불과 4개월이었을 무렵 현재의 양부모에게 입양됐고, 입양 당시 이미 양부모에게는 생후 10개월의 친오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양은 자신이 장차 민며느리를 삼기 위해 데려와서 기른 여자 아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는 “얼마 전부터 엄마가 내게 어떤 남자와도 데이트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요했다”면서 “엄마는 매일 집 밖의 남자들은 모두 나를 해치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주장했고, 아빠는 한술 더 떠서 친오빠와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비상식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A양은 “아빠는 내게 친오빠를 볼 때 그가 남자로 느껴지는 지를 물었고, 또 그가 얼마나 매력적인 남자라고 생각하느냐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면서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이 집에 민며느리를 목적으로 입양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청각 장애가 있는 오빠의 혼인을 위한 목적으로 나를 입양했다”고 했다. 이 같은 A양의 사연을 접한 현지 누리꾼들은 A양의 양부모의 행동에 대해 ‘소름끼친다’, ‘누구도 A양에게 민며느리가 될 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A양의 결혼 상대자를 결정하는 것은 그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편, 푸젠성 부녀인권연합회 권익부 궈옌 부부장은 “민며느리 문제는 혼인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한 혼인법 위반 사건으로 인간성에 대한 훼손이 사건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또, 푸젠성 사회과학원 옌정 원장 역시 “민며느리 사건의 핵심은 낙후된 경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 지역의 균등한 경제 발전이 필수”라면서 “사회 전체가 이 특수한 집단인 민며느리들에게 집중해 그들이 조기에 친부모를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급선무”라고 했다. 반면, 정부 당국은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둥하이현 천칭수이 당서기는 “민며느리 사건은 역사적 유산이 남아 있는 탓에 발생한 것”이라면서 “자유로운 연애가 대부분인 현대 사회에서 문제가 될 만한 민며느리 사례는 가능성이 적다. 또, 양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갚기 위해 친오빠나 친남동생과 결혼하려는 여성의 자율적인 선택까지 정부가 직접 관여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 “결혼 4번 연쇄살인마 강호순, 총각 행세”

    “결혼 4번 연쇄살인마 강호순, 총각 행세”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비뚤어진 여성 편력이 공개됐다. 권일용 교수는 8일 채널A 범죄다큐스릴러 ‘블랙: 악마를 보았다’에 출연해 연이은 4번의 결혼생활과 끊임없는 여성 편력을 보인 연쇄살인마 강호순의 비뚤어진 자신감을 조명했다. 권일용 교수는 “검거 당시 무려 네 번의 결혼을 한 상태였다. 첫번째 부인과 일정한 거처 없이 폭행을 일삼다가 혼인신고 5년 만에 이혼했다”고 말했다. 장진 감독은 “두 번째 아내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 전에 만났다. 두 번째 아내와 두 번째 만난 날 드라이브 핑계로 차에 태워 강간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7개월 만에 이혼한다. 그 이유가 ‘두 번째 아내가 자식을 돌보지 않고 교회에서 열심히 나간다’는 것이었다”고 해 출연진을 충격에 빠뜨렸다. 권일용은 “2003년 34살이던 강호순은 12살 어린 22살의 아내와 세 번째 결혼을 했는데 두 달 만에 이혼했다. 같은 해 네 번째 아내와 만나 함께 살게 된다”고 했고 장진은 “결혼 생활 중에도 총각 행세를 하면서 다른 여자들을 만났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결혼을 약속한 맞선 상대를 강간하기도 했다. 권일용은 “강호순에게 여성은 자녀를 키우기 위한 삶의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보여진다. 강호순의 여성관이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다. 누구라도 10분 안에 유혹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오만했다. 살인을 저지르고 조사 받는 과정에서 성적 자신감을 과시하는 것 자체가 이미 (성적 쾌락에) 젖어있다는 거다”고 분석했다.
  • ‘대만 사위’ 구준엽 “죄송합니다” 돌연 사과

    ‘대만 사위’ 구준엽 “죄송합니다” 돌연 사과

    ‘대만 사위’ 클론 구준엽이 클럽 공연 연기로 사과의 뜻을 전했다. 구준엽은 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죄송합니다. 오늘 공연은 모든 고객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클럽 측의 의견으로 부득이하게 취소하고 다음주 4/15로 연기됐습니다 . 다음 주에도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주일 연기된 만큼 더 많은 준비를해서 가겠습니다!”라고 적고 연기된 포스터를 공개했다. 구준엽은 이날 대만 타이베이 110 타워 내 클럽에서 DJ 라이브 공연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이번 행사는 공연 당일 클럽 입장권이 매진되면서 구준엽의 중화권 인기를 입증했다. 구준엽이 DJ로 출격하는 이 클럽은 2018년 오픈, 세계 100대 클럽 순위에서 지난 2021년 48위에 오르는 등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다. 해당 건물 7층과 8층에 마련돼 실내 면적 200평을 확보했으며 세계적인 DJ들도 초청돼 라이브 공연을 이어간 핫한 플레이스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에서도 “서희원의 남편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라는 반응이 더해졌기에 아쉬움은 커졌다. 구준엽은 지난 3월 대만 톱 여배우 서희원과 재결합, 결혼을 발표하며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대만에서 혼인신고를 마치고 서희원에 집에 함께 머무르고 있다.
  • “아이돌과 혼인신고, 혼자 유부녀 됐다”

    “아이돌과 혼인신고, 혼자 유부녀 됐다”

    레이싱모델 출신 지연수가 그룹 ‘유키스’ 전 멤버 일라이와 이혼을 한 가운데 혼자 이혼녀로 남았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연수는 일라이와 2014년 혼인신고를 하며 법적 부부가 됐다.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들 민수가 태어난 뒤인 2017년이다. 그러나 결혼 7년 만인 2020년 11월 이혼 소식을 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지연수는 방송을 통해 일라이와의 이혼 과정을 밝혔다. 당시 그는 “한국에 일이 없어 다 같이 미국으로 갔다. 영주권 준비를 위해 혼자 한국으로 왔다가 다음날 이혼을 통보받았다”며 “처음에는 엄청 매달렸다. 내 아이가 미국에 있지 않냐”고 눈물을 쏟았다. 지연수는 “이중 국적자인 일라이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미국에서는 미혼 남성이 됐다. 나 혼자 한국에서 유부녀가 됐다”며 “아리를 보지 못했던 두 달 동안 너무 힘들어 20층에서 안 좋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일라이는 한국 국적이 없어 결혼했던 사실이 사라진 것이다.
  • ‘코로나 봉쇄’가 이어준 인연?...전 남편과 불편한 동거, 재혼으로 이어질까

    ‘코로나 봉쇄’가 이어준 인연?...전 남편과 불편한 동거, 재혼으로 이어질까

    6년 전 이혼한 전 남편 집을 아들과의 재회를 위해 찾았던 여성이 중국 당국의 강압적인 봉쇄 지침으로 불편한 동거를 3주째 이어가고 있는 사연이 공개됐다.   사연의 주인공은 6년 전 성격 차이를 이유로 이혼을 감행했던 30대 여성 리 모 씨,로 그는 지난달 남편과 동거 중인 초등생 아들과의 만남을 위해 상하이를 찾았다가 시 정부의 강압적인 봉쇄 방침 탓에 3주 동안 전 남편과의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혼인 기간 중 전 남편과 상하이에 거주했던 리 씨는 6년 전 이혼과 동시에 타 지역으로 이주해 지금껏 홀로 거주해왔다.  하지만 매달 한두 번씩 빼놓지 않고 전 남편의 집을 방문해 아들과 상봉해왔던 리 씨는 지난달 중순에도 상하이를 방문했다가 지금껏 그의 집 안에서 예상치 못한 봉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불편한 동거 생활은 리 씨의 전 남편인 A씨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방 안에서 창밖을 보며 운동 중인 리 씨의 뒷모습을 촬영해 공개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리 씨의 전 남편 A씨는 SNS에 리 씨가 창밖을 보며 운동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과 함께 “아이를 보러 왔지만 예기치 않게 고립돼 내 집에서 20일 이상 함께 생활하고 있는 여성이다”면서 “코로나19 사태가 모두 종료되면 아내와 재혼할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 스스로 전 처인 리 씨와의 동거 생활 중 재혼을 결심하게 된 것을 공개하며, 상하이 봉쇄 지침이 과거 두 사람 사이의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줬다는 불씨를 지폈던 셈이다. 또, 화제가 된 영상 속에는 리 씨의 여동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과의 통화 내용도 그대로 담겼는데, 전화 통화 속 이 여성은 리 씨에게 “전 남편의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어떠하냐, 그동안 심한 다툼이나 갈등은 없었느냐”고 묻는 장면도 그대로 촬영돼 공개됐다.  이에 대해 리 씨는 “매일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을 보며 생활하고 있는데, 특별히 다툴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면서도 그와의 재혼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나는)방 안에서 잠을 자고, 전 남편은 거실의 소파에서 따로 생활한다. 동침하지 않았다”며 우회적으로 답변했다. 그러자 여동생으로 보이는 이 여성은 재차 “언니의 전 남편은 사실 꽤 괜찮은 남자다. 그냥 재혼해라”고 요구했고, 이에 리 씨는 “그는 재혼을 원하는 것 같지만, (나는)깊이 고민할 생각이다”고 답변했다.  이 영상이 공개된 직후 현지 네티즌 사이에서는 상하이에 대한 당국의 강압적인 장기 봉쇄 지침이 예기치 못한 재혼 가정을 만들어 낼 것이라며 기대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리 씨가 전 남편과의 봉쇄 기간 중의 동거 생활이 재혼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내놓는 등 설왕설래를 이어갔다.  한 누리꾼은 두 사람의 재혼과 관련된 기대에 대해 “성공적인 재혼 생활을 본 적이 거의 없다”면서 “한 번 깨진 그릇을 다시 이어 붙인다고 해서 그 틈이 사라질리 없다. 이전에 한 번 이혼을 결심했던 똑같은 이유로 사는 동안 잦은 갈등이 이어지고, 결국에는 또 다시 이별할 가능성이 큰 재혼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일부 누리꾼들은 “사실 두 사람이 헤어진 지 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고, 이 시간 동안 두 사람 모두 다른 상대방을 찾아 재혼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면서 “아직 서로에게 기대하는 감정이 남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나 역시 전에 한 번 이별했던 애인과 재회해 결혼했다”면서 리 씨와 전 남편의 재혼에 힘을 실었다.
  • GH, 청년층 주거안정 위한 매입임대주택 66호 공급

    GH, 청년층 주거안정 위한 매입임대주택 66호 공급

    경기주택도시공사(이하 GH)는 청년층 주거안정을 위해 청년형 매입임대주택 66호를 공급한다고 밝혔다. 청년형 매입임대주택은 다세대, 다가구, 오피스텔 등 기존주택을 GH가 매입해 개보수 뒤 시중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무주택 서민에게 공급하는 주택이다. 이번에 공급되는 주택은 김포·남양주·안산·수원·화성·광명·평택·용인 등 8개시 66호 규모다. GH가 조성한 수원광교와 남양주다산신도시에 위치한 주택의 경우,청년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질 높은 주거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청자격은 미혼인 무주택 청년으로, 대학생, 취업준비생, 만 19세 이상 39세 이하 중 하나에 해당하며,본인의 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100%(385만4536원) 이하이면 신청 가능하다. 희망자는 오는 25일부터 29일까지 5일간 우편접수하면 된다. 6월 중 1순위 당첨자를 발표한다. 자세한 내용은 GH 홈페이지 분양(임대)공고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LH, 11일부터 수도권 1316가구 공공사전청약 접수

    한국토지공사(LH)는 오는 11일부터 제6차 공공사전청약 아파트를 접수한다고 8일 밝혔다. 청약 대상은 공공분양주택으로 인천영종(A24블록) 589호, 평택고덕 (A26블록) 727호 등 1316호이다. 평택고덕 지구에서 나오는 물량은 공공사전청약 최초로 전국 거주자에게 청약 기회를 준다. 추정분양가는 3억원 안팎이며 주변시세의 60~80% 수준에 결정됐다. 3.3㎡ 당 추정분양가는 인천영종이 1005만원, 평택고덕은 1410만원이다. 신청자격은 입주자모집 공고일(22년 3월 29일) 기준, 해당지역에 거주 중인 무주택세대구성원이며, 청약저축 가입자여야 한다. 일부 유형에서는 소득·자산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인천영종 아파트는 물량의 50%를 인천시 거주자에게 우선 공급하며, 나머지 50%는 경기, 서울시 거주자에게 공급한다. 평택고덕은 공공사전청약 최초의 전국구 청약단지이다. 물량의 30%를 평택시 1년 이상 거주자에게 우선 공급하고 20%는 경기에서 6개월 이상 거주자에게 공급한다. 나머지 50%는 전국 거주자에게 공급된다. 전체 물량의 15%는 일반공급 유형으로, 85%는 특별공급으로 공급된다. 유형에 따라 입주자저축 가입, 소득·자산요건, 무주택세대구성원 등 세부 청약자격이 다르므로 확인해야 한다. 일반공급은 공급지역이 청약과열지역이므로 1순위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입주자저축에 가입해 2년이 경과하고, 24회 이상 납입한 세대주로, 5년 이내 세대구성원 전체가 다른 주택 당첨 이력이 없으면 1순위이다. 특별공급은 신혼부부(30%), 생애최초(25%), 다자녀(10%), 노부모 부양(5%) 몫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혼인기간 7년 이내 신혼부부, 예비신혼부부, 6세 이하 자녀를 둔 한부모 가족에 돌아간다. 입주자저축 가입기간이 6개월을 경과하고 6회 이상 납입해야 하며, 소득과 자산보유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생애최초 주택은 19세 미만인 자녀를 3명 이상을 둔 경우 다자녀 특별공급으로, 65세 이상의 직계존속을 3년 이상 계속해 부양하고 있는 경우에는 노부모부양 특별공급으로 신청 할 수 있다. 청약접수는 사전청약 홈페이지(사전청약.kr) 또는 LH청약센터(apply.lh.or.kr)를 통해 인터넷으로 가능하다.
  • 이은해 옛 남친 2명 의문사 수사 인천경찰청이 맡아

    이은해 옛 남친 2명 의문사 수사 인천경찰청이 맡아

    가평 ‘용소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의 옛 남자친구들이 태국과 인천에서 각각 사고로 의문사한 사건과 관련해 인천경찰청이 수사에 나선다. 7일 인천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청은 최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검찰에 지명수배된 이은해의 옛 남자친구 2명의 의문사 의혹을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이은해를 둘러싼 의문사 의혹은 ‘태국 파타야 스노쿨링 사망’과 ‘인천 석바위 교통사고 사망’ 등 2건으로 알려졌다. ‘태국 파타야 스노쿨링 사망’ 의혹은 2014년 7월 이은해의 남자친구가 태국 파타야 인근 산호섬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숨졌다는 내용이다. 당시 현지에서는 단순 사고사로 처리했다. 경찰청은 최근 태국 경찰의 협조를 얻어 당시 숨진 남성의 2장 짜리 부검 기록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강력범죄수사1계 소속 전담팀 6명을 투입해 이은해의 또 다른 남자친구가 2010년 인천 미추홀구 석바위사거리 일대에서 사망한 교통사고 의혹도 살펴보고 있다. 당시 이은해도 차량에 함께 타고 있었지만 혼자 살아남아 보험금을 수령했다는 의혹이 의혹이 제기돼 왔다. 경찰 관계자는 “전담팀 6명이 교통사고와 파타야 스노쿨링 의혹을 함께 살펴볼 예정”이라며 “필요하면 인원을 더 보강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연남인 조현수(30)씨와 함께 2019년 6월 가평 용소계곡에서 남편 A(사망 당시 39세)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은해는 A씨와 혼인신고를 한 지 5개월만인 2017년 8월 남편을 피보험자로, 자신을 보험금 수령자로 하는 생명보험 4개에 가입한 뒤 매달 수십만원을 보험금으로 낸 것으로 알려졌다.
  • “매월 70만원 보험료 납입”…보험금 수령자는 이은해 ‘본인’

    “매월 70만원 보험료 납입”…보험금 수령자는 이은해 ‘본인’

    ‘가평 계곡 살인’ 이은해최소 6개이상 보험가입남편 생명보험료 월 70만원씩 납입 거액의 보험금 수령을 목적으로 가평 용수계곡에서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공개 수배된 이은해(31)가 공개수배 된 가운데, 그가 숨진 남편 A(사망 당시 39세)씨 명의로 8억원짜리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매월 최소 70만원의 보험료를 납입한 것으로 7일 알려졌다. 이씨는 A씨와 혼인신고를 한 지 5개월만인 2017년 8월 A씨를 피보험자로 해 보험회사 한 곳에 생명보험 상품 4개를 동시 가입했다. A씨를 피보험자로 올려 2개의 손해보험 상품도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소 6개 이상의 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이에 매월 최소 70만원 이상의 보험료를 납입했으며 보험금 수령자는 자신으로 지정했다.보험 가입한 이은해 남편, 여러 차례 목숨을 잃을 뻔 이씨와 내연 관계였던 공범 조현수(30)씨와 함께 복어 피가 섞인 음식을 A씨에게 먹이고, 그해 5월 A씨를 낚시터 물에 빠뜨려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를 받는다. 이후 2019년 6월 가평 용소계곡에서 수영할 줄 모르는 A씨에게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게 한 뒤 구조하지 않는 방식으로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가평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내사종결했다. 그러나 2019년 11월 이씨가 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사기를 의심한 보험사가 지급을 거부하고, A씨 지인의 제보로 일산서부경찰서가 재수사에 착수하면서 꼬리가 잡혔다. 조사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지난해 12월 도주해 현재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경찰 “12년 전 교통사고 때 혼자만 생존” 내사 이런 가운데 이씨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질렀는지 경찰이 확인에 나섰다. 앞서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010년 인천 석바위사거리 인근에서 당시 이씨의 남자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동승자였던 이씨가 보험금을 수령했다는 의혹에 대해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교통경찰 업무관리 시스템(TCS)상 2008~2012년 ‘이은해’로 조회되는 사고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추가로 보험금 수령이 있었는지 등을 보험사를 상대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의혹이 계속 제기돼 사실관계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수사라고 보기에는 어렵고 입건 전 조사(내사) 단계”라고 말했다. 또 지난 2014년, 태국에서 당시 이씨의 남자친구가 스노클링을 하다가 숨진 사건도 조사 중이다. 경찰은 숨진 남성의 부검기록을 확보해 분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청이 확보한 부검기록에는 사망 당시 A씨에게 외상은 없었으며, 사인은 익사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사건은 현지에서 사고사로 종결됐다.
  • 과천시, 최대 100만원 ‘신혼부부 주택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

    과천시, 최대 100만원 ‘신혼부부 주택 전세자금 대출이자‘ 지원

    경기 과천시가 신혼부부의 안정적인 주거환경 조성을 위해 ‘신혼부부 주택 전세자금 대출이자’ 사업을 진행한다고 7일 밝혔다. 시는 오는 11~29일 ‘신혼부부 주택 전세자금 대출이자’ 신청을 받는다. 주택전세자금 대출 잔액의 1% 내에서 연간 최대 100만원까지 최장 5년 간 지원해준다. 지원대상은 혼인신고일 기준, 7년 이내에 해당하는 지역 내 거주 신혼부부다. 2020년 기준, 부부합산 연소득 9700만원 이하의 무주택 신혼부부가 해당된다. 주택기준은 임차보증금 5억원 이하 단독, 아파트, 다가구주택, 오피스텔 등 건축법상 주거용도의 임차주택에 거주해야 하며 올해부터는 보증부월세의 경우도 지원대상에 포함된다. 버팀목 전세자금 등 주택도시기금 대출자나 공공기관에서 생활안정목적으로 전세자금 융자를 받은 경우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된다. 신청접수는 시 홈페이지에서 지원서를 내려받아 내용을 작성한 후,구비서류 등을 갖춰 거주지 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하면 된다.
  • 日 영화계 ‘미투’ 천재 영화감독의 추악한 민낯

    日 영화계 ‘미투’ 천재 영화감독의 추악한 민낯

    고레에다 히로카즈와 함께 2000년대 일본 영화계를 대표하며 ‘천재 감독’이라 불리는 소노 시온(61)이 여배우들에게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영화 ‘차가운 열대어’ ‘러브 앤 피스’ ‘고스트랜드’ ‘두더지’ ‘리얼 술래잡기’ ‘지옥이 뭐가 나빠’ ‘자살클럽’ 등을 만든 소노 시온의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들은 용기를 내 증언에 나섰다. 일본매체 ‘주간여성 프라임’에 따르면 여배우 카구라자카 메구미를 아내로 둔 소노 시온은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는 여배우 A를 불러내 성행위를 강요했고, 배우가 거절하자 다른 여배우를 불러 A 앞에서 성행위를 했다. 놀란 A를 조감독이 밖으로 데리고 나왔고, 러브호텔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소노 시온은 평소 “여배우들이 나와 일하길 바라기 때문에 내 방에 들른다”, “주연 여배우에게는 대부분 손을 댔다” 등의 발언을 했다. 여배우 B 역시 “여러 명이 있는 자리에서 (소노 시온이) ‘나는 많은 여배우에게 손을 댔다. 손을 댄 사람에게는 일을 주기에 다른 감독들과 다르다’고 말하더라”라고 밝혔다. 소노 시온과 관계를 맺었다는 B는 그가 비정상적 성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B는 “소노 시온이 ‘남자친구가 있으면 남자친구한테 전화하면서 하고 싶다. 없으면 나를 위해 남자친구를 만들어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다른 여배우는 소노 시온이 자신 앞에서 매니저와 성관계를 하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소노 시온은 이같은 보도와 관련 “모르겠다. 말도 안 된다”는 답변만 할 뿐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남성 감독·배우 성폭력 가해 폭로 사사키 히로히사 감독은 SNS를 통해 “소노 시온의 악행은 모두 알고 있었고 제작진들에게 알렸으나 방치하고 악행을 용인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에는 영화 감독 사카키 히데오(51)가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주간문춘은 사카키 히데오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여성들은 과거 사카키 히데오로부터 성폭력을 당했고, 그가 알몸 사진까지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기혼인 사카키 히데오는 4명의 여성 중 3명과의 성관계를 성폭력이 아닌 합의된 관계였다고 해명했다. 그는 “불륜행위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사과를 했고 용서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로 인해 새 영화 ‘밀월’의 3월 25일 개봉은 취소됐다. 남배우 키노시타 호우카가 여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라는 명목으로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호우카는 이 보도로 매니지먼트 계약을 해지하고 출연 중인 드라마에서 하차했다. 일본 영화계는 최근 계속되는 ‘미투’ 폭로와 관련 “불행히도 훨씬 이전부터 반복된 행위들”이라는 반응을 보내고 있다. 
  • 동거녀 사촌동생 성폭행한 40대 항소심, ‘준강간’ 징역 3년으로 감형

    동거녀 사촌동생 성폭행한 40대 항소심, ‘준강간’ 징역 3년으로 감형

    동거녀 사촌 동생을 성폭행해 1심에서 친족준강간’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40대에게 항소심 재판부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정반대 판결을 내렸다. 수원고법 형사2-1부(왕정옥 김관용 이상호 부장판사)는 5일 A(47) 씨의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혐의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40시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3년을 명령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동거녀 B씨가 법률상 부부 관계에 있던 D씨와 이 사건 이후 합의 이혼했으며, A씨가 사건 당시까지 B씨의 자녀를 만난 사실이 없다”며 “피해자가 A씨와 B씨의 동거 기간에 관해 B씨로부터 들은 이야기 외에 구체적 사실에 대해 알고 있지 않고, A씨와 B씨가 공동재산을 형성한 게 있는지 등에 대해 아는 게 없다고 진술한 점 등을 비추어보면 A씨와 B씨 간 혼인 생활의 실체가 존재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사건 당시 A씨와 B씨는 사실혼 관계라고 보기 어려워 1심 판결의 사실 및 법리 오인에 이유가 있어 원심을 파기한다”며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혐의가 아니라 준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사실관계에 있는 친족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피해자와 피고인이 평소 처제, 형부라고 호칭한 점,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점, 피고인이 전과가 없는 초범인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가 2017년부터 동거하면서 안방을 함께 사용한 점, A씨가 C씨를 ‘처제’, C씨가 A씨를 ‘형부’라고 호칭한 점 등을 고려해 A씨와 B씨의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고 친족준강간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형법상 준강간 혐의는 3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반면, 성폭력처벌법상 친족관계에 의한 준강간 혐의는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A씨는 2020년 9월 27일 경기 화성시 소재 집에서 동거녀 B씨의 사촌여동생 C씨를 성폭행했다. B씨의 식당 일을 돕기 위해 같은 달 초부터 한집에서 살아온 C씨는 사건 당일 지병 치료를 위한 약을 먹고 잠들었다가 술을 먹고 들어온 A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 조선의 퍼스트 레이디, 새 옷만 입었나 [클로저]

    조선의 퍼스트 레이디, 새 옷만 입었나 [클로저]

    조선 의복으로 보는 퍼스트 레이디의 의상상의원 장인 손에서 만든 옷들, 어디로 갔을까왕실의 퍼스트 레이디와 주변인들, 어떤 옷 입었나600여명의 장인, 궁 내 직원으로 일하며 새 옷 공급가체·노리개·비녀…장신구 적은 시대의 표현 수단패션은 취향을 드러내며 시대를 담습니다. 근래 퍼스트 레이디의 옷에 관심이 크죠. 과거 조선에서의 옷은 엄격하게 신분별로 나뉘었고 국가 행사 때마다 입도록 여겨지는 옷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대신 금박·자수·염색으로 왕실 지체 높은 이들의 옷은 화려했죠.  서민들은 이들의 스타일을 선망하며 혼인 등 특별한 날 입었습니다. 오늘날 유명인의 결혼식 드레스가 무엇인지, 퍼스트 레이디가 착용한 옷의 브랜드는 어디인지 꼼꼼하게 확인하고 싶어하는 모습과 닮아 있네요. 패션은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걸 조상들은 알고 있었나봅니다.● 600여명 근무하던 왕실 의복 제작 공간 “사신이 사가는 모물 외에 남아 있는 초 805장과 호피 635장과 이피 758장과 산달피 904장을 모두 상의원으로 수송하였사온데…” (세종실록, 세종 7년) 상의원은 어딜까요. 모피들을 상의원으로 옮겼다는 걸 보면요. 옷을 제작하던 곳이겠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의원은 착용하시는 의복 등을 두시는 곳인 만큼, 더욱 저 흉하고 더러운 물건들을 함께 둘 곳이 아니옵니다.” (세종실록, 세종 20년) “상의원(尙衣院) 관원이 연복(練服)을 바치면…(중략)…” (단종실록, 단종 1년) 상의원은 왕이 입는 옷을 뒀던 장소이기도 한데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며 고려시대 왕의 의복을 지었던 장복서를 모델로 만든 관아예요. 옷을 짓는 일 외에도 재물·보물 등 왕실 수요 귀중품, 일용품을 만들거나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했죠. 때론 왕의 명에 따라 신하의 옷을 짓거나 보물을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기록에는 왕이 필요시 상의원에 옷을 지어올릴 것을 명한 일이 다수 드러나 있죠. “상의원(尙衣院)의 공장(工匠) 정원수는 401명이온데 66명을 더하여 정원으로 하기를 청하옵니다.” (세종실록, 세종 21년) 세종대왕 시절 467명이던 상의원 장인 수는 이후 성종 대에 완성된 경국대전에 따르면 597명까지 늘어납니다. 이중 제직 담당 장인의 수는 220명으로 가장 많았죠. 복식 제작은 74명으로 두 번째로 많습니다. 세종 1년 “상의원에 쓸데없는 인원 충원을 금하라”는 기록이 있었으나 600명에 육박할 만큼 장인이 늘어난 걸 보면요. 궁궐 사람들의 옷 제작에 꼭 필요했던 인원이 많았던 걸로 보입니다.● 가체·의복…제약 피해 취향 내세울 수단 적어 조선 시대는 유교 사상이 지배적이었죠. 이 때문에 여성들이 국가 행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오직 가체, 노리개, 비녀를 통해서였죠. 남성에게 관모가 있다면 여성에겐 가체가 있었습니다. 그 화려함, 크기 등으로 신분을 알 수 있었죠. “부녀자들의 가체를 금하고 속칭 족두리로 대신하도록 하였다. 가체의 제도는 고려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곧 몽고의 제도이다…(중략)…부인이 한번 가체를 하는 데 몇백 금을 썼다. 그리고 갈수록 서로 자랑하여 높고 큰 것을 숭상하기에 힘썼으므로 임금이 금지시킨 것이다.” (영조실록, 영조 32년) 영조에 의해 가체가 금지된 후엔 첩지 등을 통해 신분을 구별하는 것에 그치는 등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은 적었습니다. 그러나 첩지도 화려하게 꾸며내 유교 규율 속에서도 멋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죠. ● 국가 행사, 명확히 신분 드러내야 내명부 수장 왕비는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공식 행사에는 적의를 입고 참여했으며 이 때 왕비만 이 옷을 입을 수 있었죠. 평소 왕실 여성들은 당의·저고리·치마를 입는데요. 왕비도 적의를 입을 일이 많지는 않았습니다.  평상복이지만 대홍색·홍색 원삼·자적색 치마를 입을 수 있는 건 대개 왕비만 가능한 구분이 있습니다. 후궁은 녹색·자적색 원삼을 입습니다. 궁녀들은 남치마를 입었죠. 이들이 입은 모두 상의원에서 지은 것이에요. “상의원(尙衣院)도 대궐 안에서 시종하는 신하이니…(중략)…” (성종실록, 성종 11년) 상의원에 쓰이는 물건 재료를 대는 장인들은 관아에 소속된 이들이므로 출근일수를 채우게 하거나 6개월씩 교대 근무를 시키는 등 관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상의원도 대궐 안에 있는 신하로 처우받았죠.● 왕실 행사 의복 규정까지 가체 금지령을 내렸던 영조는 낭비를 금한다며 상의원 업무에 드는 비용에 관해 규칙을 정해 ‘상방정례’를 펴내도록 했습니다. 왕실 행사 등에 필요한 의복을 정리한 책이에요. 이에 따르면 제철의복을 준비한 기록이 있는데요. 저고리, 치마를 기본으로 한다고 앞서 보았죠. 여기에 시기별로 다른 옷을 입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진상받은 재료로 옷을 지었죠. 담비털·왕비의 새 대홍색 옷·홑치마·겹치마·솜치마 등 다양한 옷을 진상한 것으로 보입니다. 정확한 기록으로 몇 벌이었는가를 확인하긴 어려우나 시기별로 진상한 옷감에 따라 새 옷을 지어 올렸다는 것은 추측할 수 있겠네요. 상의원에서 왕실 행사의 격에 맞는 옷을 지어 올리는 일도 중요했습니다. 지금의 디자인하우스들이 전체적인 시즌별 주제를 정해 논의, 결제해 제작하듯 상의원에서도 당자를 만들어 위에 올려 허락을 받으면 복식을 준비했죠. 행사에 따라 왕비는 적의에 패물을 갖추기도 하고 적의만 입기도 했습니다.● 내명부 1인자의 옷, 관심의 대상가체, 거듭 금지했지만…새 유행 생겨 왕비가 상의원으로부터 진상받아 입었던 옷들의 스타일은요. 궁을 오갈 수 있던 궁녀·기생을 통해 외부로도 번졌습니다. 서민들은 혼인 등 특별한 날엔 이런 옷을 입을 수 있었죠. 오늘날 패션의 트렌드를 유명인들이 이끌어가듯 조선 내명부 1인자의 옷이 관심 대상이었습니다. 적의는 입을 수 없으니 원삼의 형태를 따라 입었죠. 원삼도 큰 옷이니 형태가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의상 외 가체도 조선 여인의 주 패션이었다고 했죠. 영조가 금지했지만요. 영조 자신도 정순왕후와의 혼인 때 가체를 씌우는 제대로 금지할 순 없었습니다. 엄격하게 취향을 숨기라고 요구되던 시대, 가체만이 유일한 장신구처럼 역할했기 때문이죠. 정조는 이에 ‘가체신금사목’ 즉 가체금지령을 정해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가 “가체(加髢)를 금한 것은 또한 요즘에 어떠한가?” (정조실록, 정조 18년) 하고 묻자 좌의정 김이소는 “머리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미는 것은 비록 예전의 것을 답습하지 않으나, 뒷머리의 경우에는 점점 높고 커지고 있으니…(중략)…정해진 규격을 넘는 것을 금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고 제안합니다. 이에 정조는 “규중에 있는 부녀자의 뒷머리가 큰지 작은지 어떻게 알아내서 금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며 “굳이 계속해서 거듭 금할 것 없이 지금 여기…(중략)…신하들이 각자 자기 집에서 정해진 제도를 어기지 않게 다스리고…(중략)…본받게 될 것이다” 하고 원론적으로 답하는데 그쳤네요.
  • [씨줄날줄] 사망보험금 사기/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사망보험금 사기/전경하 논설위원

    사망보험금을 노린 살인이냐, 중대한 실수로 발생한 과실치사냐. 대법원에서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며 살인죄가 무죄로 확정되면 보험금 민사소송이 벌어진다. 보험사는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발생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주장한다. 보험금 지급은 계약 시점, 보장 내용 등에 따라 결과가 제각각이다. ‘캄보디아 출신 만삭 아내 사망 사건’이 그렇다. 50대 남성이 2014년 8월 새벽 경부고속도로에서 승합차를 운전하다가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조수석에 있던 임신 7개월의 24세 아내가 숨졌다. 아내측 유족과 접촉한 보험사 직원 제보로 조사해 보니 아내 명의로 90억원의 사망보험금이 가입돼 있었다. 2017년 대법원에서 살인죄는 무죄가 됐고 2020년 치사죄로 금고 2년이 선고됐다. 2008년 가입한 보험금은 지급되지 않았고, 2014년 든 보험금은 지급됐다. 아내의 한국어 실력이 늘어 보험 계약을 이해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8개 보험사와 소송 중이다. ‘금오도 선착장 사건’도 같은 상황이다. 2018년 마지막 날 혼인신고를 한 지 한 달도 안 된 재혼 중년 부부가 금오도에 해돋이를 보러 갔다가 아내가 죽었다. 후진하던 남편이 난간을 들이받고 차 상태를 확인한다며 기어를 중립에 놓고 내린 사이 차가 바다로 추락했다. 사고 직전 아내 명의로 보험금 17억원이 가입됐고 수익자가 아내에서 남편으로 바뀐 점 등으로 사기가 의심됐으나 대법원은 2020년 무죄로 판결했다. “의심스러운 사정”은 있지만 “피해자 사망이 피고인 범행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사정을 재판에서 증명하는 건 누구의 몫일까. 검사가 범죄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초동 수사가 부실하면 입증이 쉽지 않다. 검찰이 8억원의 사망보험금을 노린 ‘가평 계곡 살인 사건’ 용의자를 공개수배했다. 2019년 발생 당시 관할 경찰서는 단순 변사 사건으로 봤으나 다른 경찰서가 유족 제보로 재수사를 했단다. ‘무죄 추정’도 중요하지만 고액 사망보험금이 있다면 한 번쯤 더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무죄라면 보험사기 의혹을 해소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 선조 몽진 재촉 치명적 패배… ‘강물로 말 달린 비겁한 장수’ 탄금대 패장 평가는 혹독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선조 몽진 재촉 치명적 패배… ‘강물로 말 달린 비겁한 장수’ 탄금대 패장 평가는 혹독 [서동철 논설위원의 임진왜란 열전]

    1592년 4월 28일 충주 탄금대 패전은 조선에 결정적 상흔을 남겼다. 중앙군과 충청도 군사 대부분을 동원한 결전이었다. 전투를 지휘한 신립 장군에 대한 선조의 믿음이 두터웠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신립은 여진족이 북방을 공격한 이탕개의 난을 평정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용장(勇將)이다. 게다가 신립의 딸은 선조가 총애한 왕자 신성군과 혼인했으니 신립과 선조는 사돈이었다. 그럴수록 신립과 충주가 무너지자 선조는 서둘러 도성을 버릴 수밖에 없었고, 왜군은 거칠 것 없이 북상해 5월 3일 한양에 입성했다. ●선조의 사돈… 신망 두터워 신립의 이미지가 ‘지략은 없으면서 큰소리만 치는 무장’으로 굳어진 데는 ‘징비록’의 영향이 작지 않다. 임진년 봄, 조정은 이일과 신립을 각각 충청·전라도와 경기·황해도로 보내 군의 대비 태세를 점검토록 했다. 두 사람이 변방 순시를 마치고 돌아와 선조에게 보고한 것이 4월 1일이다. 그 무렵 류성룡은 집으로 찾아온 신립에게 “가까운 시일 안에 큰 변이 일어날 것 같다. 그대가 군사를 맡아야 할 터인데, 적을 막아 낼 자신이 있느냐”고 물었다. 신립은 “그까짓 것 걱정할 것 없다”고 했고 류성룡은 다시 “왜군은 조총을 가지고 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신립은 “아, 그 조총이란 게 쏠 때마다 맞는답디까” 하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징비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신립이 충청·경상·전라 하삼도(下三道)에서 왜군의 북상을 막는 도순변사에 임명되고 선조에게 보검을 받은 뒤 대신들에게 인사하고 대궐을 나서는 대목에도 ‘징비록’은 짙은 상징성을 담아 놓았다. ‘신립이 빈청을 나서 계단을 내려가려 할 즈음 그가 썼던 사모가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류성룡은 이 장면을 지켜보던 대신들이 하나같이 불길함을 느꼈음을 강조하고 있다. 신립이 당초에는 왜적을 얕잡아 봤을지 모르지만 대군(大軍)이 조선땅에 상륙한 다음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난중잡록’에는 ‘신립이 충주로 가는 길에 용인을 지나다가 왜적의 기세가 창궐한다는 소식을 듣고 밀계를 올려 “왜적의 기세가 무척 성해서 정말 막아내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사세가 답답하고 절박하기가 그지없습니다” 하니, 도성에서는 사민(士民)이 밤낮으로 도망쳐 흩어졌다’는 대목이 보인다. ‘신립이 비밀히 아뢰기를 “적의 기세가 매우 드세니 도성으로 후퇴하여 지키도록 하소서”라 했다’는 실록의 기록도 있다.신립은 누구나 인정하는 북방의 맹장(猛將)이었다. 조선은 세종 때 두만강 유역에 종성·온성·경원·경흥·회령·부령의 6진을 개척해 성을 쌓고 국경을 수비했다. 주변의 여진족을 회유하며 경제적 혜택도 주었는데, 이렇게 친(親)조선화된 여진부족을 번호(藩胡)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혜택은 만족스럽지 않은데 변방 지방관의 요구는 커지자 반발한 번호가 대규모 병력으로 변경에 침입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이탕개의 난이다. 1578년(선조 16) 한 해에만 최대 3만명의 병력을 동원한 번호의 북방 침입은 모두 21차례에 이르렀다. 이해 1~2월 여진 부족장 우을지는 1만명의 병력으로 경원진을 포위했는데, 이때 구원군으로 달려온 인물이 온성 부사 신립이었다. 선조수정실록은 ‘신립이 경병을 거느리고 성에 들어가니, 적이 세 겹으로 포위했다. 신립의 군사가 결사적으로 싸웠는데 적장 중에 백마를 탄 자가 의기양양하게 보루로 오르는 것을 신립이 한 개의 화살로 쏘아 죽이니 적이 마침내 물러갔다’고 했다. 3~4월에는 이탕개와 율보리가 다시 2만명의 병력으로 종성진, 동관진, 방원보를 포위 공격했는데, 이 역시 신립이 이끄는 부대의 구원을 받았다. 선조수정실록은 ‘태평세월을 오래도록 누린 군사들은 적이 육박전을 하며 성에 올라오기라도 하면 모두 겁에 질려 활을 제대로 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신립이 칼날을 무릅쓰고 육박전을 벌이며 공을 세우는 것을 보고 비로소 분발하여 적을 공격했으니, 6진을 보전한 것은 신립이 앞장서 용맹을 떨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6진 가운데 온성만 피해를 입지 않은 것도 신립이 평소 철기(鐵騎) 500명을 훈련시켜 전술을 익히고 돌격하는 연습을 시키는 모습을 구경하던 오랑캐들이 감히 도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대병력 지휘 경험 없어 신립에 대한 류성룡의 평가는 그다지 공정하지 않다는 역사학계의 시각도 있다. ‘징비록’에는 ‘조정에서는 신립이야말로 장수감이라고 판단하고 함경북도 병마절도사, 평안도 병마절도사로 승진시켰다. 그리고 신립은 품계가 (정이품) 자헌대부에까지 이르자 병조판서를 욕심낼 정도가 됐다. 한창 기운이 뻗친 그가 중국 조나라 조괄이 진나라를 업신여기던 것처럼 만용을 부리게 되자 알 만한 사람은 모두 염려했다’는 대목도 보인다. 조괄은 전국시대 진나라와의 장평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전사했다는 인물이다. 충주 패배는 험준한 조령 대신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친 결과라고들 비판한다. 그런데 선조수정실록을 보면 신립은 ‘처음에 군사를 단월역에 주둔시키고 몇 사람만 데리고 조령에 달려가서 형세를 살펴보았다’고 했다. 단월역은 조령으로 가는 초입이다. 신립도 당초에는 조령 방어의 가능성을 타진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상주 전투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순변사 이일이 단월역으로 달려와 왜군의 기세와 조총의 위력을 설명하자 생각을 바꾼 것이 아닌가 싶다. 종사관 김여물이 ‘이곳의 험준한 요새를 지키면서 방어하는 것이 좋겠다. 높은 언덕을 점거해 역습으로 공격하자’고 설득했지만 신립은 ‘조령에서는 기마병을 활용할 수 없으니 들판에서 한바탕 싸우는 것이 적합하다’며 듣지 않았다. 신립은 여진족을 상대로는 소수의 기병으로 용감무쌍한 돌격전을 벌여 연전연승한 명장이지만, 충주에서처럼 8000명 남짓한 대병력을 지휘한 경험은 없었다고 한다. 조령 방어가 유리하다는 것도 아군 보병이 근접전에 능할 경우에 해당한다. 하지만 조선군의 주력인 기병은 정예병이었던 반면 보병은 전투 경험이 없고 무기도 변변치 않은 농민군이었다. 그럼에도 조령 방어전에 나선다면 기병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신립은 주어진 여건에서 가장 자신 있는 전술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신립이 아니라 어떤 장수가 지휘했어도 충주에서 적군을 막아내기란 쉽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다. ●징비록엔 부정적 평가 선조수정실록이 전하는 충주 전투의 최후는 이렇다. ‘새벽에 적병이 길을 나누어 주력군은 곧바로 충주성으로 들어가고, 좌군은 달천변을 따라 내려오고, 우군은 산을 따라 동쪽으로 가서 상류를 따라 강을 건넜는데 병기가 햇빛에 번쩍이고 포성이 천지를 진동했다. 신립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곧장 말을 채찍질하여 충주성으로 나아가니 군사들은 대열을 이루지 못하여 흩어지고 숨어버렸다. 세 차례 호각 소리에 적이 일제히 공격하니 신립의 군사가 크게 패했다. 물에 빠져 흘러가는 시체가 강을 덮을 정도였다. 신립이 김여물과 함께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아 적 수십 명을 죽인 뒤에 모두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신립의 최후는 장렬했지만, 류성룡을 비롯한 이들은 ‘계책도 없는 데다 적진 대신 강물로 말을 달려 빠져 죽은 비겁한 장수’라는 투로 비판한다. 하지만 황중윤(1577~1648)이 지은 ‘달천몽유록’에서 신립은 이렇게 항변하고 있다. 물론 일종의 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남의 허물을 억지로 들추어내는 자들은 분분히 나를 깎아내리고자 신중성이나 묘책이 없다고 했고, 나를 헐뜯고자 스스로 도망쳤다고 했으며, 나아가 죽은 후에는 벼슬이나 포상은 하나도 내리지 않았네. 이것이 어찌 임금께서 나를 잊어서 그런 것이겠는가. 실은 벼슬아치들이 내가 배수진을 친 이유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이라네.’
  • 남쪽 에메랄드 해안에 띄운 편지… 소리 없는 노스탤지어의 아우성 [작가의 땅]

    남쪽 에메랄드 해안에 띄운 편지… 소리 없는 노스탤지어의 아우성 [작가의 땅]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 아아 누구던가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 안 그는. - 유치환 시, ‘깃발’ 전문그리운 대상이 있다는 것은 삶에 우물 하나를 두는 일이다. 시원(始原) 혹은 해원(海原)의 장소이자 대상은 어쩌면 오롯이 누군가가 그것을 그리워할 적에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하니까. 청마 유치환의 시다. 대부분의 사람이 국어영역(옛 언어영역)의 시험 지문이나 교과서에서 봤던 그 ‘노스탤지어 시’. 시간이 지나 다시 그의 시를 읽으니 예전에는 미처 볼 수 없던 마음의 우물 하나가 눈을 뜬다. 그네가 공중에 짚어 준 그 이정표대로 따라가다 보니 나의 시원과 고향이 한꺼번에 뒤섞인 우물의 문이 열린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그 우물은 땅에 없다. 공중에 떠 있다. 그 무엇도 아닌 ‘노스탤지어’인 까닭이다.유치환은 1908년 7월 경남 거제군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충무(지금의 통영)로 이주해 그곳에서 자랐다. 통영공립보통학교(통영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 일본 도요야마중학교로 유학을 갔다. 1926년 귀국을 한 뒤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했고, 연희전문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정지용의 시에 감동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31년 ‘문예 월간’에 첫 시 ‘정적’을 발표하며 등단을 했고 스물아홉이 되던 1937년에 통영으로 돌아왔다. 통영협성상업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계속해서 시를 썼고 동인지 ‘생리’(生理)를 창간했다. 1939년에는 첫 시집인 ‘청마시초’를 출간했다. 1940년에는 만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에 귀국했다. 충무와 부산, 경주 등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했으며 안의중학교의 교장이 됐다. 이후 경주고등학교, 경주여자고등학교, 경남여자고등학교, 대구여자고등학교, 부산남여자상업고등학교장을 지냈다.1946년에는 조선청년문학가협회 회장이 됐으며, 1957년에는 초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다. 6·25전쟁 중에도 끊임없이 시를 썼고 시집을 출간했다. ‘깃발’과 ‘생명의 서’, ‘행복’ 등이 이때 쓰였다. 대한민국 예술원의 회원이 됐다. 제1회 시인상과 서울시문화상, 예술원공로상과 부산시문화상 등을 수상했다. 서정주와 함께 생명파 시인으로도 불렸다. 1967년 2월 13일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버스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부산대학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에 사망했으며, 2월 17일 부산 사하구 하단동 승학산에 묻혔지만 경남 양산시 백운공원 묘지로 이장됐다. 현재는 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산록에 잠들어 있다. 거제에서 태어나 통영과 일본에서 공부를 하며 시를 썼고 끊임없이 후학 양성에 힘을 쏟다가 사후에 다시 거제로 돌아온 셈이다. 그는 그토록 그리던 노스탤지어에 도착한 것일까.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 한 망울 연련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전문청마에게는 서른 후반부터 시작된 사랑이 있었다. 물론 그 이전에 혼인을 해 일가를 꾸린 상태였다. 일제강점기 때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일제의 검속 대상에 올랐던 까닭에 만주에 사는 형의 집으로 피신했다. 해방이 돼 부인과 함께 통영으로 돌아와 부인은 유치원을 운영했고, 청마는 통영여중의 국어 교사로 부임하게 됐다. 그곳에서 가사과 교사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시인 이영도다. 그때 이영도는 폐결핵으로 남편을 잃고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아가던 처지였다.시조 시인 이호우의 여동생인 이영도 역시 시조로 등단해 주목을 받던 시인이었다. 1947년부터 그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이영도에게 연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시와 산문을 써서 우편으로 부치기 시작한 지 이십여 년. 그동안 주변에서는 이미 그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딱히 서로의 공간이나 사람을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다. 교통사고로 죽기 전까지도 수천 통이 넘는 편지를 썼던 청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사랑의 마음을 편지로 썼던 이십여 년의 시간에도 그들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어떤 마음이면 한 사람을 향해 강산이 두 번이 더 바뀌도록 편지만을 써 대는가. 훗날 이영도는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는 책으로 청마의 편지 200편을 남겨 뒀다.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의 인세는 사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그리움’ 전문청마를 회고하는 데 있어 빠짐없이 끼어드는 논쟁이 있다. 바로 친일 논쟁이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오르지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청마의 시 ‘수’(首)와 ‘전야’(前夜)의 내용들 때문이다. 또 1942년 2월 ‘만선일보’에 발표한 “대동아 전쟁과 문필가의 각오”라는 제목의 글 역시도 친일의 행각으로 보고 있다. 한때 통영에서 유치환이 수천 통의 편지를 써서 부친 통영 중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에 따른 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중앙우체국 앞에 ‘행복’의 시비가 세워졌으나 친일 행적이 밝혀지면서 개명이 유보되기도 했다. 문학적인 업적과 시인의 삶의 거리를 어디에서 어느 만큼까지 떼어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는 일화다. 그에 대한 해석의 여지는 앞으로도 분분할 테지만 우리가 익히 알아 온 시인이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그의 시와 삶을 읽는 후대의 몫이 될 것이다. 공중에 떠 있는 그네를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이 한쪽만이 아니듯이, 그리하여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그만큼 늘어나듯이 말이다. 그 해석과 영탄, 지탄의 몫마저도 시인의 이름이다.청마문학관은 2000년 2월 통영 망일봉 기슭에 세워졌다. 문학관은 청마의 생애, 청마의 작품 세계, 청마의 발자취 편으로 구성돼 있다. 유품 100여점과 각종 문헌자료 350여점이 전시돼 있다. 문학관에서 바로 올려다볼 수 있는 지척에 생가도 복원돼 있다. 생가는 원래 통영시 태평동에 있었으나 생가 부지의 복원이 어려워진 까닭에 문학관 위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전, 복원됐다. 생가와 아래채로 구성돼 있다. 본채는 4칸으로 이뤄져 있으며 맨 오른쪽이 안방이고, 왼쪽이 부엌, 가운데 방 두 개는 약방으로 돼 있다. 태평동에서 청마의 아버지가 약방을 운영했던 까닭이다. 방문 위에 ‘유약국’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청마의 생애와 후대의 해석은 어쩌면 극명하게, 또 다르게는 이렇게나 여여하게 흐른다. 남쪽의 봄에는 에메랄드빛 해안을 거니는 노스탤지어와 사랑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사람의 자리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까닭이다. 소설가 이은선
  • 尹, 이념 넘어 국민통합 첫 행보… ‘4·3 완전한 해결’ 실현 주목

    尹, 이념 넘어 국민통합 첫 행보… ‘4·3 완전한 해결’ 실현 주목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며 대선후보 시절 약속한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이 실현될지 주목된다. 윤 당선인의 4·3 추념식 참석은 보수정당 출신 수장으로서는 이례적 행보로 이념을 넘어선 국민통합을 위한 강력한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날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윤 당선인은 “4·3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의 온전한 명예 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무고한 희생자들을 국민과 함께 따뜻하게 보듬고 아픔을 나누는 일은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당연한 의무”라고 강조했다. 보수정당의 대통령이나 당선인이 4·3 희생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처음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 특별법)이 제정되며 4·3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추념식에 참석해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은 4·3 유족들의 요청에도 추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반면 윤 당선인은 경선 과정과 후보 시절 총 세 차례 제주를 찾았다. 지난 2월에도 평화공원을 찾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양민이 무고하게 희생된 점에 대해 그 넋을 기리고 추모해야 한다”고 했고, 20대 대선을 하루 앞둔 지난달 8일 제주 유세에서는 “(제주 4·3) 유가족과 도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윤석열 정부는 정말 다르구나’(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당선인이 이날 추념식에 참석하며 문재인 정부에서 애써 온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국정 과제 추진이 이념을 넘어 차기 정부로 이어질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가 제주 4·3 희생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4·3특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올해부터 5년 동안 4·3 희생자들에게 국가 폭력에 대한 보상금으로 1인당 최대 9000만원이 지급된다. 1차 연도 보상금 총 1810억원이 이미 올해 예산에 편성됐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희생자 보상은 물론 ‘가족관계 특례조항’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4·3 당시 혼인이나 출생, 사망 신고를 사실과 다르게 해 희생자 유족이지만 보상금을 받지 못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특별법 개정 추진 과정에서도 거론됐지만 법원행정처가 반대하며 제외된 바 있다. 이 밖에도 고령 유족 요양시설 입소 지원, 4·3유족회 복지센터 건립, 트라우마 치유사업 지원, 4·3추모제와 기념사업의 범국가적 문화제 승화 등도 윤 당선인의 공약에 포함됐다. 윤 당선인은 추념식에서 ‘화해’와 ‘상생’이란 키워드를 강조하며 국민통합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추념사에서 “4·3의 아픔을 치유하고 상흔을 돌보는 것은 4.3을 기억하는 바로 우리의 책임”이라며 “화해와 상생,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대한민국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 회장은 추념식 인사말에서 “윤 당선인이 추념식에 참석해 추모를 해 약속을 지켜 주셨다. 감사드린다”며 “인수위원회에서부터 제주 4·3을 국정과제로 채택해 주고 국민을 통합해 주시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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