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네발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땜빵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막방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UAE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154
  • [최준식의 거듭나기] 북촌은 한옥 마을이 아니다-풍문여고 터 유감

    [최준식의 거듭나기] 북촌은 한옥 마을이 아니다-풍문여고 터 유감

    서울 북촌이 한옥 마을이 아니라는 위의 제목은 많이 이들에게 생경할 것이다. 북촌은 한옥이 1000채 이상 보존돼 있는 한국에서 가장 큰 한옥 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한옥 마을이 아니다’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한옥 1000채 이상 보존됐다’는 위의 설명은 북촌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아니다.북촌은 그냥 한옥 마을이 아니라 ‘개량’ 한옥 마을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북촌은 1930년대에 걸출한 건축업자였던 정세권 선생이 전통 한옥을 개량해 만든 근대식 작은 한옥들로 구성된 마을이라는 것이다. 당시 정세권은 북촌 쪽으로 북상하는 일본인들을 막고 한국인들에게 저렴하고 좋은 한옥을 제공하기 위해 이 지역에 개량 한옥을 대거 공급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현재처럼 그가 만든 작은 한옥들이 즐비하게 된다. 그런데 북촌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을 보면 이곳에는 조선의 고위 관리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면서 이 지역에 거대한 전통 한옥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준다. 그러나 놀랍게도 북촌에 있는 고관대작의 집은 윤보선 고택밖에 없다. 진짜 양반의 집은 1930년대에 사라졌다. 이 때문에 나는 항상 이 북촌에 제대로 된 사대부 한옥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있는 한옥들에서는 사대부들의 한옥이 갖고 있는 유려하고 규모 있는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사람들은 조선 후기 양반이 살던 한옥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른다. 제대로 된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의도는 이런 한옥들을 복원해 사람들에게 보여 주자는 것이다. 혹자는 남산 한옥 마을이 있다고 할는지 모르지만 그곳은 좋은 한옥들을 그저 모아 놓은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이 마을을 만들 때 전통 마을의 구성 원리를 적용하지 않아 여기에 있는 한옥들 사이에는 유기적인 관계가 없다, 그래서 집들이 정체돼 있는 느낌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국동에 있는 풍문여고를 지날 때마다 상상을 했다. 이 터가 비면 이곳에 조선 사대부들의 집을 복원해 제대로 된 조선 전통의 한옥 마을을 만들면 좋겠다고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전통 마을이 어떤 원리로 구성돼 있는지, 그곳에 집들이 어찌 배치돼 있는지 잘 모른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 마을은 구성 원리가 매우 훌륭하고 재현해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서울에는 제대로 된 한옥 마을이 없다. 조선을 진지하게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전통 마을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전부터 진정한 의미에서 조선의 마을을 복원하자고, 그것도 서울 시내에 복원하자고 주장해 왔다. 그렇게만 된다면 부대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우선 서울에 쏟아져 오는 외국인들에게 보고 즐길 거리를 제공할 수 있고 한국의 품격 있는 전통문화를 제대로 소개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진정한 전통문화를 보여 줄 수 있어 교육적으로도 좋다. 나는 그 최적 자리로 풍문여고 터를 생각해 오고 있었다. 이곳에 전통 마을이 들어선다면 외국인 밀집 지역에서 한국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에 공예박물관이 들어선단다. 서울시가 조언을 받아 그렇게 정한 모양인데 누가 어떤 권한으로 이렇게 정한 것인지 모르겠다. 게다가 조감도를 보니 전부 서양 건물로 돼 있다. 그런데 이곳은 원래 안동별궁이라는 규모 있는 궁이 있던 곳이 아니던가? 옛 사진을 보면 여고 교사 앞에 장대한 한옥이 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한옥들은 지금 다른 곳에 보존돼 있다. 이런 전통을 무시하고 왜 굳이 여기에 서양식 건물을 지으려고 하는지 그 변명을 듣고 싶은데 어디에 문의해야 할지 모르겠다.
  • 걸을 때 발가락 아프면 지간신경종 의심해야

    걸을 때 발가락 아프면 지간신경종 의심해야

    본격적인 여름철에 접어들면서 휴일 나들이나 휴가 여행이 늘고 있다. 걷기에 좋은 계절이지만 갑작스러운 발 통증으로 여행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일 서동현 부평힘찬병원 원장에게 발 통증 위치와 질병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Q. 발 앞쪽의 통증 원인은. A. 발 앞쪽에 생기는 통증은 볼이 좁고 굽이 높은 신발이나 잘 맞지 않는 신발을 신었을 때 많이 나타난다. 신발 문제로 발의 변형과 통증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질환은 ‘무지외반증’이다. 엄지발가락이 바깥쪽으로 휜 상태로, 주로 하이힐을 오래 신을 때 생긴다. 유전적인 영향도 있고 평발, 선천적으로 관절이 유연한 사람에게도 종종 나타난다. 심한 변형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데 주로 뼈가 튀어나온 부분이 신발과 닿아 통증이 생긴다. 엄지발가락이 휘면 미관상 보기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발가락에 더 큰 힘이 가해지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검진을 받고 빨리 치료해야 한다. Q. 걸을 때 발 앞쪽이 아프다면. A. 걸을 때 발 앞쪽에 타는 듯한 통증이 있다면 다소 생소한 ‘지간신경종’을 의심해 봐야 한다. 발가락에 분포하는 족저신경이 단단해져 생기는 것으로 주로 3~4번째 발가락 사이에서 생긴다. 발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뜨거운 이상 감각이 나타나고 심하면 발가락이 저리고 무감각해지는 신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신발을 벗으면 통증이 사라지고 증상을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방치하는 환자가 많다. 지간신경종 위험은 볼이 좁은 신발을 착용하는 기간과 비례하기 때문에 주로 30대 이후 발생하고 평소 힐을 착용하는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발가락뼈를 지지하거나 발가락 사이를 벌려 신경이 압박을 받지 않도록 하는 특수 깔창, 패드로 통증을 덜 수 있다. Q. 발 앞쪽 통증은 어떻게 예방하나. A. 무엇보다 볼이 넉넉하고 부드러우면서 굽이 낮은 신발을 신는 것이 좋다. 증상이 심해져 병원을 찾을 때는 자주 신는 신발을 갖고 가 전문의의 조언을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Q. 발등이 아프다면. A. 발등 중간 부분이 신발과 마찰되기 때문이다. 발등에 ‘결절종’이라는 혹이 생겨도 신발과 닿아 심한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발등 결절종은 발등의 작은 뼈와 뼈의 관절 부위에 물혹이 생긴 것이다. 평소 발등을 꽉 죄거나 딱딱한 신발을 장시간 신으면 생기기 때문에 발에 편안한 신발을 신는 게 중요하다. 반복적인 충격 때문에 ‘피로 골절’이 생길 수도 있다. 달리기와 같은 격한 운동을 하면 뼈를 둘러싼 근육이 한계에 도달하는데 이때 발을 디딜 때마다 체중이 실리면서 충격을 흡수하지 못해 골절이 일어난다. 휴식하면 통증이 사라질 수 있어 불편한 증상이 계속되면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Q. 발바닥 통증의 원인은. A. 발바닥 통증의 원인은 ‘족저근막염’이 대표적이다. 족저근막이라는 근육에 이상이 생겨 발바닥에 통증이 나타나는 병이다. 주로 발바닥 뒤쪽에서 통증을 느끼고 아침에 일어날 때, 앉았다가 일어날 때 가장 심하다. 처음 걸음을 옮길 때 발바닥 근막이 긴장돼 통증이 심하다가 계속 움직이면 통증이 줄어드는 특징이 있다. 운동량이 늘면 통증이 심해지고 체중도 영향을 준다. 발바닥 뒤쪽 통증을 줄이려면 충격을 흡수하는 신발을 신는 게 좋다. 쿠션이 좋고 발 뒤꿈치를 감싸는 부위가 단단해 비틀림이 적어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포스터 200장에 5만원… ‘쩐의 굴레’ 속 붙였다 떼는 일용직

    포스터 200장에 5만원… ‘쩐의 굴레’ 속 붙였다 떼는 일용직

    지난달 28일 오후 2시 40분 서울 동작구 노량진 학원가.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도로와 인도 사이 펜스에 학원 광고 포스터를 빠르게 붙였다. 철제 손수레에는 돌돌 말린 포스터가 수백장 보였다. 기존 포스터 위에 자기가 가져온 포스터를 붙이고 재빨리 자리를 떠났다.두 시간쯤 흐르자 그 여성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다른 학원의 포스터를 가져왔다. 새로 붙일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는지 두 시간 전에 자신이 붙인 포스터 위에 새로 가져온 포스터를 덧댔다. 그의 행동이 이해가 안 돼 물었더니 “무조건 많이 붙여야 먹고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출금 갚느라 허덕이는 아들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서 이 일을 하고 있다”면서 “종일 붙이면 월 60만~70만원은 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른쪽 손목 위의 불룩한 혹을 보여 줬다. 온종일 꾹꾹 눌러 포스터를 붙이느라 생긴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다시 30분 뒤 또 다른 여성이 손수레를 끌고 나타나더니 다른 학원의 포스터를 겹겹이 붙였다. 포스터의 생명은 길면 한 시간이었다.지극히 소모적인 ‘노동’이지만, 일용직 ‘전단 노동자’들 사이에선 포스터 붙이는 이들이 ‘팀장’으로 불렸다. 단순히 전단을 나눠주는 이들과 달리 자리 쟁탈전, 단속 공무원과의 숨바꼭질 등에서 살아남으려면 배포와 순발력이 필요했다. ‘팀장’들은 5명 안팎의 전단 배포 노동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10년 넘게 이 일을 했다는 한 팀장은 “200장을 다 붙이면 학원에서 5만원을 준다”면서 “전단지 돌리기보다 수당이 더 세다”고 말했다. 그는 “거리 펜스, 인도 위 가판대 옆면, 공중전화 부스, 교통 단속용 무인장비 등 가리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무분별한 포스터 붙이기는 ‘옥외광고물 등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법’ 위반이다. 버스정류장, 노선버스 안내 표지판 등에 붙이면 최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팀장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60대의 한 팀장은 “단속 공무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해 퇴근 준비를 하는 오후 4시 이후가 포스터 붙이기 ‘골든타임’”이라고 귀띔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 지난달 29일 새벽 5시. 노량진 거리는 비에 찢긴 포스터로 온통 어지럽혀졌다. 한 환경미화원은 “학원은 밤마다 붙이고 나는 아침마다 출근해서 떼는 게 일”이라면서 “대체 누굴 위한 일인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다른 환경미화원은 “포스터 없는 거리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소연했다.엄밀히 따지면 포스터 제거는 환경미화원의 업무가 아니다. 벽에 붙은 게시물은 구청의 ‘광고물팀’이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미화원들은 길바닥을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벽에 붙은 포스터를 놔두면 비난의 화살을 받기 일쑤다. 미화원들 사이에서 학원가 기피 현상이 생기자 동작구는 ‘순환 배치 근무제’를 운용하고 있다. 붙인 자가 떼기도 하는 기이한 현상도 벌어진다. 전날 붙인 포스터가 다음날 오전까지도 살아남았다가 구청에 적발되면 과태료를 물기 때문에 학원에서 미리 손을 쓰는 것이다. ‘팀장’들은 전날 자신이 부착한 포스터를 오전에 떼면 일당 2만원을 추가로 받는다.포스터를 둘러싼 소모적인 노동의 정점에는 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팀장’에게 일당을 주고 과태료를 내도 아직은 포스터 홍보 효과가 쏠쏠하기 때문에 학원들은 불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요즘에 누가 포스터를 보겠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학원 특강을 오프라인에서 홍보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포스터다. 길을 가다가 자신이 다니는 학원에서 들을 수 없는 특강 광고를 발견하고 찾아오는 수험들이 의외로 많다. 대형 공무원 학원 관계자는 “공부에 매진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 공시생들에겐 포스터가 가장 좋은 정보 창구”라고 말했다. 동작구는 ‘동작구 옥외광고물 관리 조례’에 따라 채증을 바탕으로 10장 이하는 장당 2만 5000원, 11~20장은 3만 5000원, 21장 이상부터는 4만 5000원을 과태료를 부과한다. 지난해에는 217건에 대해 약 3억 347만원의 과태료를 물렸다. 과태료는 ‘소모적인 노동’으로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와 학원을 이어 주는 질긴 끈이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지하철 9호선 4단계 강일동 후보노선 관련 간담회 개최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 지하철 9호선 4단계 강일동 후보노선 관련 간담회 개최

    지난 달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노선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가 통과됨에 따라 강동구 보훈병원에서 고덕샘터공원까지의 구간에 생태공원 사거리역, 한영고역, 고덕역, 샘터공원역 4개역이 새로 신설될 예정이다. 양준욱 서울시의회 의장은 6월 29일 화요일 오전, 서울시의회 의장접견실에서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 서울연구원장, 강동구9호선유치추진위원회 위원장 및 임원들과 함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하고,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노선의 조속한 착공과 강일동 후보노선의 확정노선 반영을 강력히 촉구했다. 양 의장은 이 자리에서 “강동 지역주민들의 숙원과제였던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추진을 위해 지역주민들 모두가 함께 힘을 모았기에 지난달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될 수 있었다”며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는 주민 모두의 힘으로 함께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고 우선 축하의 말을 전했다. 덧붙여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도 기본 계획수립 및 실시설계 등 차질 없는 후속절차 이행으로 조속한 착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지하철 9호선 연장을 총괄하는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당부했다. 또한 “강일동까지 후보노선의 확정노선 반영도 반드시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면서 “강동구9호선유치추진위원회와 지역주민들은 강일동 후보노선이 8월 발표 예정인 ‘제2차 서울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확정노선으로 고시되길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당해 용역을 수행하고 있는 서울연구원장 등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하남시 일대의 추가 개발계획 등을 재검토하여 공급수요를 높이고, 지하철 역사 출구 및 규모를 축소하여서라도 공사비를 대폭 절감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적극 주문했다. 혹시라도 공사비 절감 방안 등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8월 고시 발표 시에 확정반영이 여의치 않을 경우, 용역기간을 연장해서라도 확정반영 방법을 강구해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또한 강일동 구간이 경기도 하남시와 연계되는 광역철도망인 만큼, 우선은 ‘제2차 서울시 도시철도망 구축계획’에 확정반영하고 추후 경기도와 협의하여 사업비 절감을 모색하는 등 다각적인 해결방안을 염두에 둘 것을 당부했다. 양준욱 의장은 9호선 4단계 연장과 관련하여 그동안 사안 해결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왔다. 9호선 4단계 조속추진을 강동구의 가장 시급한 현안 사업으로 판단하여, 박원순 시장과 단독면담은 물론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고홍석 도시교통본부장 등을 여러 차례 직접 만나 빠른 민원 해결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그동안 강동구9호선유치추진위원회와 서울시 관련 부서 간 단 한 번의 면담조차 없었던 상황을 확인하고, 양측 간 만남을 주선하여 궁금한 사항을 직접 문의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도 했다. 또한 그간 예비타당성 조사 발표가 늦어진 것은 B/C(비용 대비 편익) 분석에서 과도한 사업비용이 계속 문제가 되었기 때문인데, 양 의장은 공사비를 줄여서라도 사업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판단 아래 공사비 절감방안 마련을 서울시에 여러 차례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 작년 11월 20일에 1차로 610억원 공사비 절감방안을 마련하고, 올해 3월 15일에 2차로 337억원 공사비 절감방안을 마련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재부가 조속한 시일 내에 예비타당성조사 검토를 매듭지을 수 있도록 서울시 관계자들과 함께 협의하여 촉구를 이어왔다. 양준욱 의장은 “5선의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깊이 공감하고 있다”며 “강동구 최대 현안인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사업이 앞으로도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신의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강일동까지의 후보노선도 금년 8월에 발표 예정인 서울시 도시철도망구축계획에 반드시 확정반영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지역주민의 기대에 부응하겠다”며 앞으로도 지역사회 발전과 지역주민 생활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와우! 과학] 로마 독재자 카이사르의 진짜 얼굴 3D로 복원해보니…

    [와우! 과학] 로마 독재자 카이사르의 진짜 얼굴 3D로 복원해보니…

    “그는 절대 황제가 된 적이 없지만, 그의 이름은 영원히 황제를 뜻하게 됐다” 이는 우리에게 줄리어스 시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정치인이자 장군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B.C.100-B.C.44)를 두고 하는 말이다. 로마제국 최고 지배자였던 아우구스투스부터 네로까지 카이사르의 성을 세습하면서 카이사르는 황제 중에서도 실권을 장악하고 마음껏 휘두르는 전제군주나 독재자에게 붙여졌다. 황제를 뜻하는 독일의 카이저와 러시아의 차르 역시 카이사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렇듯 세계사에 큰 영향을 준 독재자 카이사르는 생전 어떤 모습이었을까. 네덜란드 고고학자들이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진 두상을 3D 기술로 스캔해 복원한 얼굴 모형을 공개해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이 발표한 카이사르의 복원된 얼굴은 우리가 생각한 것만큼 강인한 영웅의 모습은 아니다. 이번 얼굴 모형은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카이사르의 두상과 투스쿨룸 흉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튜린 박물관이 소장한 두상 등의 3D 스캔 데이터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카이사르의 얼굴 복원을 주도한 네덜란드 고고학자 톰 뷔텐도르프는 네덜란드 일간 HLN과의 인터뷰에서 “카이사르의 머리에는 꽤 큰 혹이 있다. 이런 혹은 태어날 때 생길 수 있다고 한다”면서 “당시에는 현실적인 작품이 유행이었다”고 설명했다. 복원 작업은 얼굴 복원 전문가인 고고학자 겸 자연인류학자 마자 드홀로지가 주도했다. 드홀로지는 대부분 복원 작업에서 카이사르가 살아있을 때 만들어진 투스쿨룸 흉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사용했다. 왜냐하면 네덜란드 박물관이 소장한 두상은 코와 턱 모양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있기 때문이다. 한편 카이사르의 복원된 얼굴 모형은 오는 8월 말까지 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네덜란드 국립고대유물박물관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레스토랑서 쫓겨난 백악관 대변인…‘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 반발

    레스토랑서 쫓겨난 백악관 대변인…‘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 반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이 ‘아동 격리 수용’ 논란으로 거센 반발을 불러온 가운데 고위 관리들이 식당에서 쫓겨나는 등 잇따라 봉변을 당하고 있다. 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2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어젯밤 버지니아 렉싱턴의 레스토랑 ‘레드 헨’에서 주인으로부터 내가 미국 대통령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았다”면서 “나는 정중하게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샌더스 대변인은 “그녀의 행동은 나보다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면서 “나는 의견이 다른 이들을 포함해 사람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하고자 최선을 다해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제의 레스토랑 주인 스테파니 윌킨슨씨는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당시 집에 있었던 윌킨슨씨는 주방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샌더스 대변인이 식당에 손님으로 왔는데 직원들이 약간 걱정하고 있다며 어떡하면 좋겠냐는 것이었다. 당시 테이블은 샌더스 대변인 남편 이름으로 8석이 예약돼 있었다. 윌킨슨씨가 식당에 도착했을 무렵, 이들의 테이블엔 이미 치즈 플레이트가 놓여 있었고, 주방에서는 이미 메인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윌킨슨씨는 직원들에게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지 말해보라. 샌더스 대변인에게 나가달라고 할 수도 있다”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들은 “그렇게 해달라”고 답했다. 윌킨슨씨는 직원 중 일부는 동성애자라고 설명했다. 샌더스 대변인이 성전환자의 군 복무를 금지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침을 옹호했으며, 불법 이민자 부모와 아동을 격리하는 정책을 변호하며 질문을 피해가는 모습 또한 직원들이 알고 있다고 윌킨슨씨는 전했다. 윌킨슨씨는 샌더스 대변인 일행에게 다가가 자신을 소개하고 잠시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청했다. 그리고는 “우리 레스토랑은 정직, 연민, 협력과 같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 같은 것이 있다”고 밝히면서 나가달라고 요청했고, 샌더스 대변인은 곧바로 “좋다. 가겠다”고 말한 뒤 소지품을 챙겨 나갔다는 것이다. 다만 그들이 계산하려고 했지만, 윌킨슨씨는 돈을 받지 않았다고 전했다. 윌킨슨씨는 “샌더스 대변인은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정부에서 일하고 있다”면서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잔인한 정책들을 옹호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는 반대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업을 하고 있고, 잘 되길 바란다”면서도 “민주주의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불편한 행동이나 결정도 해야 하는 순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샌더스 대변인이 레스토랑에서 쫓겨난 일은 레스토랑 종업원의 페이스북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종업원은 “오늘 밤 백악관 대변인이 레스토랑에서 쫓겨났다”면서 “주인은 샌더스 대변인과 그 정당(공화당)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썼다. 이후 레스토랑 주인의 결정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는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식당 리뷰 사이트와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도 평가가 크게 엇갈리며 요동쳤다. 워싱턴DC에 있는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은 “버지니아의 ‘레드 헨’과 다른 곳이다”라는 공지를 올려야 했다. 당시 레스토랑에 함께 갔던 샌더스 대변인의 아버지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도 트위터에서 “레드 헨 레스토랑 메뉴에 ‘편협함’이 있다”면서 “혹 ‘증오의 요리’를 주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에피타이저는 ‘속 좁은 사람을 위한 작은 요리’”라고 비꼬았다. 이런 봉변을 당한 것은 샌더스 대변인이 처음이 아니다. 이민 정책의 주무 부처인 국토안보부의 커스텐 닐슨 장관 역시 백악관 근처 멕시코 식당에 들렀다가 고객들로부터 ‘수치스럽다’라는 항의를 받고 식당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의회전문지 더 힐은 “레스토랑 주인의 ‘무관용’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저항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찬성하는 의견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릴리, 첫 번째 디지털 싱글 ‘20’ 오늘(22일) 발매 ‘어떤 곡?’

    릴리, 첫 번째 디지털 싱글 ‘20’ 오늘(22일) 발매 ‘어떤 곡?’

    실력파 여성 아티스트 릴리(Lily)가 자신의 이름을 내 건 첫 음악으로 대중의 마음을 두드린다. 22일 정오 각종 온라인 음원사이트를 통해 릴리의 첫 번째 디지털 싱글 ‘20(Twenty)’가 발매된다. 이번 싱글은 지난 2월 2018 ‘연가(戀歌)’ 프로젝트 두 번째 싱글 ‘혼자하는 사랑’으로 가요계 신고식을 치른 릴리의 첫 정식 신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앞서 네이버 뮤지션리그에 어쿠스틱 버전으로 선공개되면서 화제를 모았던 ‘20(Twenty)’는 풋풋한 20대의 첫사랑에 대한 마음을 담은 곡으로, 트렌디하면서도 감미로운 사운드와 릴리의 청아한 보컬이 아름답게 하모니를 이루며 리스너들의 귓가를 사로잡을 전망이다. 실제 이번 노래에서 릴리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곡을 선보였을 뿐만 아니라 보컬부터 코러스까지 오직 자신의 목소리로 가득 채운 릴리만의 음악을 완성하며 뮤지션으로서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냈다. 릴리는 “가사가 없던 ‘20’는 부드러운 잔잔한 바람처럼 기분 좋은 음악이었다. 그 기분을 사랑일지도 모를 스무살의 마음으로 솔직하지만 가볍지 않게 표현하고 싶었다”며 “스무살, 또는 비슷한 시기의 사랑이란 다듬어지지 않고 감추지 못해 더 빛나는 것 같다. 그런 사랑을 했었던, 혹 지금 하고 계신 분들에게 이 노래를 선물하고 싶다”고 자신의 첫 싱글을 직접 소개했다. 다양한 가수들의 곡 피처링 및 드라마 OST 참여를 통해 차근차근 경력을 쌓아나가며 정식 데뷔의 꿈을 키운 릴리는 특히 걸그룹 모모랜드의 보컬 디렉터로도 활약한 이력이 화제를 모으며 더욱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한편, 릴리는 새 싱글 발표와 함께 최근 밀리언마켓 신예 아티스트 박도하, 임채언, 김민경, 최수정, 이성담 등과 한강 채빛섬버스킹 무대에서 2018 버스킹 프로젝트 ‘밀리언 프리마켓’을 열고 매주 토요일 저녁 수준급의 라이브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 사진제공=밀리언마켓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나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발육..남학생들이 놀려 창피했다”[화보]

    나다 “어릴적부터 남다른 발육..남학생들이 놀려 창피했다”[화보]

    최근 웹 예능 ‘네버 슬립(Never Sleep)’에서 케미를 드러내고 있는 래퍼 나다와 안무가 미나명이 bnt화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남양주 펜션121에서 진행된 나다X미나명의 특별한 콜라보 화보는 구카, FRJ jeans, 스타일난다, 네이버 해외직구 해외편집샵 프랑코 푸지(Franco Pugi) 등으로 구성된 세 가지 콘셉트로 진행됐다. 두 사람은 보헤미안 무드의 드레스를 착용한 채 이국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는가 하면 데님 걸크러시 매력, 바캉스를 연상시키는 청량한 의상과 함께한 수영장 콘셉트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촬영을 마친 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네버 슬립’ 프로그램에 대해 “신선한 케미를 보여드릴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며 운을 땠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콜라보 음원 ‘도져(Dozer)’를 발표하게 된 두 사람은 “마치 한 팀인 것처럼 잘 맞았다”며 남다른 호흡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번 음원 공약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정말 순수하게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기만 한다면 영광스러울 것 같다. 욕을 하셔도 달게 받겠다”며 솔직하게 답했다. 이어 미나명은 “사실 어릴 적 꿈이 가수였다. 이번 음원을 통해 내 노래를 처음으로 들려드리게 됐다”며 수줍게 소감을 덧붙였다. 나다 역시 음원에서 보여줄 퍼포먼스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는데, 데뷔 전 2년의 백업댄서 경력이 있다고 밝힌 그는 “손호영, 김건모, 현아, B1A4 등의 무대에 섰었다”라며 춤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센 언니들의 표본답게 털털하고 다소 직설적인 스타일의 나다와 미나명은 비슷한 성격 탓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더불어 이번 콜라보 음원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미나명은 나다에 대해 “음악에 관해서 만큼은 프로패셔널하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다 역시 미나명의 노래 실력에 대해 “목소리가 너무 예쁘고 청아해서 놀랐다. 이번 음원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음반 작업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어 래퍼 제시와도 작업한 적이 있는 미나명에게 나다와 제시 중 더욱 케미가 잘 맞았던 사람을 묻자 1초의 고민도 없이 “당연히 나다와의 케미가 훨씬 좋다”라고 밝혀 나다를 감동케 했다. 국내 최대 댄스 스튜디오인 원밀리언 소속 안무가 미나명의 활약은 상당하다. 원밀리언 공식 채널 안무 영상 누적 조회 수만 23억 뷰 이상. 그에게 소감을 묻자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안무 제작 경험만 셀 수 없이 많았던 그는 대표적으로 박재범, 제시, 수지의 음원 안무에 참여한 바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뮤지션을 묻자 박재범을 꼽은 미나명은 “춤에 그루브를 보면 정말 감탄만 나온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래퍼 나다는 1인 기획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공개하기도 했다. 전 소속사와의 분쟁으로 심적으로 괴로움이 컸다는 그는 “이 직업을 그만두려고 했었다”며 힘든 시간들을 회상했다. 임원으로서 1인 기획사를 직접 설립한 나다. 그는 투명한 회사 운영에 만족스러움을 표하며 새 출발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어 그룹 활동 당시가 그립진 않은지 묻는 질문에 나다는 “당시의 생각이 많이 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아쉬움도 미련도 없다”며 확고한 모습을 보였다. Mnet ‘언프리티 랩스타3’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은 바 있는 나다. 그에게 또 한 번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에 나갈 의향이 있는지 묻자 그는 “‘언프리티 랩스타’ 왕중왕전을 한다면 나갈 의향이 있다. 그 외엔 나가고 싶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 해외 투어를 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를 묻자 “브라질에서 인기가 정말 좋다. 당당한 걸크러시 모습을 해외 팬분들께서 좋아해주신다”며 감사한 마음을 표했다. 혹 악플 대처법이 있는지 묻는 질문엔 “댓글을 보면서 육성으로 같이 욕해준다”며 그의 성격답게 시원한 답변을 전했다. 탄력 넘치는 구릿빛 몸매의 소유자 나다와 미나명. 어릴 적부터 발육이 남달랐다는 나다는 “학창시절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하면 남학생들이 놀리기도 많이 놀려서 창피 했었다”는 남모를 사연을 공개했다. 또한 자신의 몸매를 좋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미나명은 “그래도 허리는 얇은 편이라 봐줄 만한 것 같다”며 겸손함을 보였다. 한편 나다는 선화 예술 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을 공개해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했는데, 자퇴한 이유를 묻자 “자퇴를 했던 이유는 음악을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그 노력이 아까워서 음악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며 솔직한 사연을 밝혔다. 나다와 미나명에게 출연하고 싶은 예능 프로그램에 있는지 묻자 두 사람은 SBS ‘런닝맨’을 꼽으며 “둘 다 활동적인 편이라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롤모델을 묻는 질문에 미나명은 “나 자신이다. 누군가를 따라 하기보단 나 자신에 집중하고 싶다”고 전했다. 끝으로 두 사람의 목표를 묻자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콜라보 활동을 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청하 “악플 보고 멘탈 흔들릴까봐 SNS 안 해”

    청하 “악플 보고 멘탈 흔들릴까봐 SNS 안 해”

    ‘프로듀스101’에서 아이오아이, ‘why don‘t you know’, ‘롤러코스터’까지 계단을 오르듯 차차 성장한 청하가 bnt와 화보 촬영을 진행했다. 스타일난다, FRJ Jeans, 네이버 해외직구 해외편집샵 프랑코 푸지(Franco Pugi) 등으로 구성된 네 가지 콘셉트로 진행된 이번 화보에서 청하는 여성스러운 원피스는 물론 스포티한 패션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매력을 뽐냈다. 화보 촬영을 굉장히 좋아한다는 그에게 이유를 묻자 “인생샷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게 웃으며 답했다. 이어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청하의 성장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머니께서 노래를 굉장히 잘하신다”며 “어머니와 함께 교회에서 성가대 활동을 하기도 했고 율동도 하다 보니 가수란 직업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고 가수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를 밝혔다. 또 대중에게 청하를 알리는 발판이 된 Mnet ‘프로듀스101’에서는 평소 경쟁을 매우 싫어하는 성격으로 인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었다고. 그는 “‘이거 아니면 안 돼’라는 간절한 마음보다는 나를 시험해보고 나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친구와 신사동을 걷고 있는데 우연히 알고 지내던 팀장님을 마주쳤다. 그분을 통해 지금 소속사의 이사님을 만났고 그게 어떻게 보면 ‘프로듀스101’에 출연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말을 이었다. 실제로 ‘프로듀스101’을 통해 청하와 돈독한 관계가 눈에 띄던 이사님에 관해 묻자 “이사님은 내 어머니까지 잘 챙겨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며 “언제나 내게 용기를 주셔서 정말 든든하다”고 답했다. 이어 “아직은 1인 소속사지만 새로운 아티스트가 들어와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어 청하에게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경험을 묻자 “아이오아이 이후에 정말 힘들었다”며 “소속사도 믿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솔로로 데뷔했을 때 대중들이 기대했던 모습이 아닐까 봐 걱정됐다. 끙끙 앓았다”고 답했다. 또 그는 걱정이 많아 별명이 ‘걱정 인형’일 정도라고. “예능 스케줄이 잡히면 그 순간부터 걱정하기 시작한다”며 “같은 이유로 악플이 달릴까 봐 개인 SNS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힘들었던 만큼 많이 성장한 그에게 데뷔 후 가장 크게 달라진 점에 관해 질문하자 “길거리에서 내 노래가 들리는 것 외에 달라진 점이 없다”며 인기가 크게 실감 나지는 않는다고 겸손한 답을 전하기도 했다. 혹시 컬래버레이션을 원하는 가수가 있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아이오아이. 지금도 매일 실시간으로 연락한다. 꼭 다시 한번 뭉치고 싶다”며 뭉클한 마음을 전했다. 이외에 발라드는 폴킴, 댄스곡은 화사와 함께 해보고 싶다고. 이어 “롤모델 이효리 선배님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과거에 CD를 드리며 인사한 적이 있는데 정말 멋있었다“고 대답했다.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21살의 청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묻자 “독한 청하는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서 심리학 공부를 했을 것 같다. 그리고 하루하루 춤추면서 재미있게 살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상형에 관한 질문에는 “정해져 있지 않다. 그나마 꼽아보자면 잘 웃고, 말이 잘 통하고 이해심이 많은 사람. 대화를 통해서, 눈빛을 통해서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고 답했다. 평소 뷰티에 관심이 많다던 그에게 피부 관리법에 관해 질문하자 “유치하지만 정말 물과 잠이 최고다”라며 웃었다. 더불어 “과거 내 사진을 보면 화장이 정말 진해 당황스럽다”며 굴욕샷을 남기지 않는 방법으로 최대한 내추럴한 화장을 추천했다. 또 뷰티유튜버 이사배에게 메이크업을 받고 정말 예뻐서 물개박수가 저절로 나왔다고. 이어 다이어트는 주변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 선 안에서 식단을 조절한다고 전했다. 이름 탓에 팬들 사이에서 별명이 ‘술’인 청하에게 술버릇이 있냐고 묻자 “조금 취했다 싶으면 바로 집에 간다”며 “술을 좋아하지 않아 친구들과 만나면 술집보다는 카페를 간다. 술집에 가도 안주를 많이 먹는 편”이라고 말을 이었다. 하지만 찍고 싶은 광고가 있냐는 질문에는 술-음료 광고라며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잘할 자신이 있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근 대학 축제 공연으로 바쁘다던 그는 “대학 축제 공연은 또래가 많아서 좋다”며 “노래도 같이 따라 불러주고, 응원도 정말 많이 해준다. 솔로 콘서트를 하는 기분이다”고 답하며 웃었다. 이어 청하는 올여름 새로운 노래로 팬들을 찾을 예정이라고. 그는 “누가 들어도 내 노래라고 느낄 것”이라며 기대감을 자아냈다. 지금까지 넘어온 언덕보다 앞으로 올라야 할 언덕이 더 높을 것 같다던 그의 미래를 응원하며 인터뷰를 마쳤다.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김현회의 러시아 워] 대표팀 향한 비난, 27일까지만 멈추자

    [김현회의 러시아 워] 대표팀 향한 비난, 27일까지만 멈추자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에게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친다. “넌 전쟁터에서 곧 죽을 거야. 적군 무지하게 센 거 알지? 살아서 못 돌아오겠네ㅋㅋㅋ”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2018 러시아월드컵을 준비 중인 대표팀을 향한 시선은 이와 전혀 다를 게 없다. 곧 세계의 높은 벽을 향해 몸을 부딪혀야 하는 이들에게 응원은커녕 조롱과 비난을 보내고 있다.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까. 전국민의 지지를 받아도 두려울 텐데 전쟁에서 곧 죽는다고 비아냥대는 이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다.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엄청난 응원 열기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힘이 빠지지 않도록 비난이나 조롱은 좀 자제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딱 20일만 참아주면 된다. 조별예선 3차전 독일과의 경기가 끝나는 오는 27일까지만이라도 비난은 좀 멈춰달라. 어차피 그 경기가 끝나면 마치 한국 축구가 이번 월드컵을 끝으로 망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넘쳐날 것이다. 까더라도 그때까지만 기다리고 까자. 벌써부터 대표팀에 저주를 퍼붓는 건 감독 인생을 걸고 쓰러져 가던 대표팀을 맡은 뒤 이 자리까지 올라온 신태용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과할 정도의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원래 4년에 한 번 이럴 때마다 대표팀 감독이 되는 전국의 수 많은 이들은 대표팀 경기가 끝나면 누구를 빼고 누구를 넣었어야 한다고 한다. 마치 대표팀이 선수를 잘못 선택해 16강에 갈 걸 못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왼쪽 측면에서 김민우가 부진하면 “거봐 홍철을 넣었어야지”라고 지적하고 홍철이 부진하면 “박주호는 왜 안 쓰냐”고 한다. 그리고 박주호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김민우가 거론된다. 이렇게 대표팀에서 돌려까기를 당하는 선수들을 보면 아예 대표팀에 승선하지 않은 선수들이 승자인 것 같다. 이름만 언급되고 정작 경기에는 나서지 않는 선수가 최종 승자다. 아마도 이번 대표팀에서 아쉽게 부상으로 낙마한 김진수가 최종 승자가 될 수도 있다. 공격진에서는 석현준이 그럴 것이다. 황희찬이나 김신욱이 부진하면 석현준을 뽑지 않은 걸 마치 신태용 감독의 대단한 실수인 것처럼 평가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이런 비판은 다 결과론적일 뿐인데 우리는 감독과 선수를 비난하기 위해 너무 결과론적인 이야기만 한다. 이들이 받는 고액 연봉에는 대중이 비난하는 걸 달게 받아야 하는 비용도 포함돼 있다고 하더라도 선수들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마음에 안 든다고 김영권도 빼라고 하고 장현수도 빼라고 하고 오반석도 빼라고 하면 수비진에는 누가 들어와야 할까. 그래도 이 선수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축구를 제일 잘한다고 뽑힌 이들이다. 누가 보면 K3리그에 엄청난 수비수가 있는데 신태용 감독이 이를 몰라보고 안 뽑은 줄 알겠다. 우리의 비판은 건전하지 않은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만약 한국이 월드컵에서 졸전을 거듭하고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준다면 이건 감독과 특정 선수의 문제가 아니다. 이게 한국 축구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축구를 잘해 뽑힌 선수들과 부상으로 주전이 대거 빠진 상황에서 이 선수들을 데리고 전략을 짠 감독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거다. 그래도 안 된다면 이건 한국 축구 수준 자체의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마음에 안 든다고 김영권도 빼고 장현수도 빼고 석현준을 넣고 김민우 자리에 홍철을 넣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퍼붓는 분위기는 대단히 실망스럽다. 과정이 잘못됐다면 충분히 비판할 수 있다. 나는 지난 2014 브라질월드컵 당시 홍명보 감독의 박주영 선발에 대해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소속팀에서 뛰며 경기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를 선발하겠다는 홍명보 감독 스스로의 원칙을 깼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16강에 갔다고 하더라고 과정이 공정하지 않았다면 비난받아 마땅했다. 그런데 이번 대표팀에 이런 문제는 전혀 없다. 주전급 선수들이 부상으로 줄줄이 대표팀에서 낙마했지만 그 안에서 최대한 공정하게 선수를 뽑았고 그 선수들을 활용하기 위해 고민 중이다. 과정 자체로는 전혀 비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대신 결과가 좋지 않다면 그 결과를 놓고 한국 축구의 현실과 미래를 고민하면 그뿐이다. 마치 이번 대표팀을 무슨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는 불편하다. 나 역시 대표팀 경기력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들을 응원해주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비판도 월드컵이 다 끝난 다음에 하면 어떨까. 그래 봤자 20여일 남짓 기다려주는 것 뿐인데 우리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나. 조롱 섞인 비난을 보내다가 한국이 혹 16강 진출 이상의 성적을 낸다면 그때 가서 대표팀 경기력에 찬사를 보내는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때가 되어야 ‘남의 팀’처럼 바라봤던 신태용호를 ‘우리 팀’으로 품을 텐가. 적어도 이런 냄비는 되지 말자. 당장 월드컵이 열리는 기간 동안에는 응원을 보내주는 게 최우선 아닐까. 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서 최악의 경기력에 머문다면 그땐 내가 가장 앞장서서 비판하겠다. 우리 그때까지만 조금 참고 기다리자. 공부를 지지리도 안 한 내가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 날 부모님은 그래도 아들 녀석 시험 잘 보라고 청심환도 챙겨 주시고 응원도 해주시더라. 아무리 공부를 안 한 학생에게도 수능시험을 보러 가는데 “너 답안지 밀려 쓸 거야”라는 저주를 퍼붓지는 않는다. 우리는 지금 대표팀을 향한 관심이라는 핑계를 삼아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집단적으로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최근 대표팀을 향한 조롱과 저주 섞인 말들을 보면서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대중의 집단 광기가 느껴진다. 아직 월드컵 첫 경기도 열리지 않았는데 대중은 벌써부터 저주를 퍼붓고 있다. 월드컵 16강에 가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선수들이 세계에서 16위 안에 들 정도로 높은 경기력을 선보이려면 팬들 역시 전세계에서 16번째 안에 드는 선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여전히 자국리그를 무시하고 한 경기 한 경기에 역적을 만들어 조롱하며 저주를 퍼붓고 있는 팬 문화를 순위로 매긴다면 우리는 월드컵 본선 진출도 불가능한 나라일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응원해 주길 바라지는 않으니 적어도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에는 기다려주는 게 어떨까. 한국이 이번 월드컵을 마감하는 날부터 비난을 쏟아내도 늦지 않는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비난을 멈추자. 선수들이 16강에 가려거든 팬 의식도 16강 수준은 되어야 한다. 우리 팬들의 수준은 지금 월드컵에서 16번째 안에 들어 있을까. 스포츠니어스 대표 / 김현회   
  • [메디컬 인사이드] 발견하면 ‘3기’…난소암 알아야 이긴다

    [메디컬 인사이드] 발견하면 ‘3기’…난소암 알아야 이긴다

    5년간 49% 증가…빠른 증가세 여성암 평균보다 생존율 낮아 늦은 출산·비만 등 악영향여성암 중에서 가장 위험한 암을 거론할 때 전문가들은 ‘난소암’을 1순위로 꼽습니다. 생존율이 다른 암에 비해 낮은 편이어서 그렇습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5년 기준 여성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78.4%입니다. 자궁경부암은 79.9%, 유방암은 92.3%에 이릅니다. 반면 난소암은 64.1%로 평균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환자 증가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28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6년 병원에서 진료받은 난소암 환자는 1만 8115명이었는데 지난해 2만 1679명으로 집계됐습니다. 1년 만에 환자가 19.7%나 늘었습니다. 2013년(1만 4534명)과 견줘 환자 수가 49.2% 증가한 것입니다. 해마다 새로 난소암으로 진단받는 환자는 전체 여성 암환자의 2.4%에 불과하지만 증가세는 가장 가파릅니다. ●임신 많고 초경 늦으면 위험 줄어 사실 난소암 원인을 딱 하나로 꼬집어 얘기하긴 어렵습니다. 유전 영향이 크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최근 추세로 보면 늦은 결혼과 저출산, 비만이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인호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 횟수가 많고 초경이 늦을수록 난소암 발병 위험은 줄어든다”고 설명했습니다. 최근엔 초등학교 4학년 이전에 초경을 하는 성조숙증 환자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성조숙증의 가장 큰 원인은 소아 비만인데 이것이 빠른 초경을 부르고 난소암으로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비만과 고지방식은 난소암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합니다. 또 난소암은 임신 경험이 적을 때 발병 위험이 높습니다. 늦은 사회 진출과 높은 주택가격, 과도한 노동시간, 부족한 아이 돌봄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늦추거나 아이를 늦게, 또 적게 낳는데 이것이 난소암 위험까지 높인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미나 유럽에 비해 출산율이 높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환자 발생률이 낮습니다.배재만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난소암은 배란 횟수가 많을수록 발병 위험이 높아지는데 임신이나 출산을 하면 배란을 멈추게 돼 발병 위험이 감소한다”며 “여기에 모유 수유를 하는 여성도 난소암 발병 위험이 낮다”고 설명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난소암을 초기에 발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난소는 몸속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장기여서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동통’(몸이 쑤시고 아픈 증상), 복부 팽창, 질 출혈 등이 나타나면 이미 상당 기간 진행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교수는 “난소암의 70%는 이미 다른 부위로 암세포가 전이된 3기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며 “그만큼 초기에 발견하기 어려워 사망률이 높은 치명적인 암”이라고 밝혔습니다. 난소암 1기는 암이 난소에만 있는 것, 2기는 자궁·나팔관을 벗어나지 않는 것, 3기는 암세포가 복강 내 다른 기관인 간, 대장, 소장, 림프절로 전이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암이 전이되면 수술이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난소암은 첫째 아이를 빨리 낳을수록 발병 위험이 낮아집니다. 하지만 현실 여건상 출산 시기를 앞당기는 것은 불가능할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부인과 진료를 통해 암을 발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이 교수는 “정기 검진을 통해 골반 내 진찰을 철저히 해야 하고 초음파 검사와 혈액 항원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다”고 추천했습니다. 검진 결과 난소에 작은 혹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당장 큰 문제가 없더라도 가급적 정기적인 추적 검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난소암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오면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촬영(MRI) 검사 등을 통해 종양의 크기와 전이 여부를 확인합니다. 난소암은 40~70세에 발생할 위험이 높은데 50대 환자가 가장 많습니다. 따라서 폐경 직후 부인과 검진과 건강에 가장 많이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 교수는 “특히 폐경이 지난 뒤에 발견하는 난소의 혹은 더욱 철저한 검사가 필요하다. 조금이라도 난소암이 의심되면 수술과 조직검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수술 땐 범위 넓고 항암 치료 많아 난소암을 확진하려면 복강경 수술 등을 통해 조직을 직접 떼어낸 뒤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어 환자들의 부담이 큽니다. 그리고 수술도 자궁과 양쪽 난소, 나팔관, 림프절 등을 모두 제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수술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환자도 많습니다. 하지만 다 이유가 있습니다. 배 교수는 “난소암의 치료 원칙은 수술로 제거할 수 있는 모든 종양을 제거하는 것”이라며 “절제술을 시행해 남아 있는 종양이 작으면 작을수록 수술 후 항암제가 잘 듣고 예후가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난소암 치료는 수술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이 교수는 “대부분 수술 후 항암제 치료나 방사선 치료, 면역 치료가 필수적”이라며 “첨단 장비가 많이 개발됐지만 아직 난소암은 의학적으로 완전히 풀지 못한 질병이어서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난소암의 항암치료는 6회 이상 진행되는 만큼 가족들의 정서적 지지와 응원이 매우 중요합니다. 배 교수는 “난소암은 수술 범위도 크고 항암 치료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재발도 쉬운 암이어서 가족들이 끝까지 보살펴 주는 것이 치료의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굿 안하면 일찍 죽는다고 속여 굿값으로 13억원 챙긴 무속인 구속

    경남 양산경찰서는 22일 굿을 해야 건강이 좋아진다고 속여 굿값 등으로 13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무속인 A(47·여)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2009년 1월 감기 몸살 증세가 잘 낫지 않아 찾아온 B(42·여)씨에게 “몸안에 혹이 있는데 악화돼 죽을 수 있다. 굿을 해야 낫는다”면서 돈을 받고 부산시 기장군 모 굿터에서 굿을 해 주는 등 2016년 3월까지 86차례에 걸쳐 굿값·기도비 명목으로 12억 5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가 또 다른 한 피해자에게서도 굿값과 기도비 명목으로 5차례에 걸쳐 6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결과 B씨는 무속인 A씨의 말에 깊이 빠져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부모 집까지 은행에 담보로 맡겨 굿값을 마련했으며 주변 지인들로 부터도 수백만~수천만원씩 빌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통상적으로 굿 한차례 비용은 300만원~500만원인데 비해 A씨는 터무니 없이 많은 굿값은 받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A씨가 경찰조사에서 “B씨 등이 굿을 하겠다고 스스로 동의한 것이지 강요하지 않았으며 9차례 굿을 하고 1억여원을 받았고 나머지는 빌려주었던 돈을 받은 것이다”며 혐의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양산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등·배·목 지방종 악성 변화 1% 미만… 통증 땐 수술로 제거

    등·배·목 지방종 악성 변화 1% 미만… 통증 땐 수술로 제거

    등이나 배, 목에 갑자기 큰 혹이 생겨 당황하는 이들이 많다. 갑자기 몸에 암이 생긴 것으로 여겨 크게 걱정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양성종양인 ‘지방종’으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치명적이진 않다. 최근 배우 한예슬씨가 지방종 제거 수술을 받다 의료사고를 당해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그래서 21일 윤상철 순천향대 서울병원 외과 교수를 통해 지방종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다.Q. 지방종이란 무엇인가. A. 지방종은 지방조직으로 구성된 양성 종양이다. 만지면 부드럽고 움직일 수 있으며 통증은 없다. 보통 피부 바로 아래에서 생기지만 때로는 더 깊은 부위에 생기기도 한다. 대부분 크기는 5㎝ 미만이지만 드물게 10~20㎝, 4~5㎏의 거대 지방종으로 수년 동안 자랄 수도 있다. 주로 등, 어깨, 복부에 많이 생긴다. 목에 생기거나 여러 개가 한꺼번에 생기는 다발성 지방종도 있다. Q. 원인은. A.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위험요인으로 가족력, 비만, 운동 부족이 학계에 보고돼 있다. 특히 가족성 다발성 지방종은 유전적 경향이 있다. 학계에 ‘외상 후 지방종’ 사례가 보고됐지만 외상과 지방종 사이의 연관성이 뚜렷하게 입증되진 않았다. Q. 특히 잘 생기는 연령대나 성별이 있는지. A. 전 국민의 2% 정도가 지방종을 경험한다. 지방종은 주로 40~60대 성인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성보다 남성이 더 많이 경험한다. 다발성 지방종은 특히 남성에게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Q. 위험한 병은 아닌가. A. 지방종은 일반적으로 암 발생 위험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피하 지방종은 심각한 상태가 아니고 거의 대부분 생명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 크거나 내부 장기에서 자라는 지방종은 위험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위장관의 지방종은 출혈, 궤양,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럴 경우 조직학적으로는 양성이지만 위치에 따라 악성으로 분류한다. 지방종이 악성으로 변하는 ‘지방육종’ 발생률은 매우 낮다. 지방종의 1%에서 발견되고 하반신, 어깨, 복막에서 많이 나타난다. 뿌리가 깊은 지방종은 수술로 완전히 제거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재발할 위험이 더 크다. Q. 어떻게 치료하나. A. 주로 경과를 관찰한 뒤 보기 싫거나 통증이 있을 때 수술로 제거한다. 재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만약 다시 생겨도 재수술로 치료할 수 있다. 비수술적 치료로는 스테로이드 주사와 지방 흡입이 있다. 지방흡입은 큰 흉터가 생기는 것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지방종을 완전히 없애기 어렵고 쉽게 재발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Q. 진단 방법은. A. 지방종은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증상을 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정확한 크기를 확인하고 악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초음파 검사, 조직검사와 같은 정밀검사를 하기도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공포스러운’ 어미 거미의 모성애

    ‘공포스러운’ 어미 거미의 모성애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모성애’. 하지만 지금 소개하는 영상 속 모성애를 보신다면 다소 소름 끼치는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모성애의 주인공은 거미이며 사랑받는 대상은 거미 등 위에서 기어다니는 수 백 마리 새끼 거미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외신 케이터스 클립스는 어미 거미 등 위의 수 백 마리의 새끼 거미 모습을 보도했다. 거미가 수 백마리란 뜻은 수 천 개 이상의 다리가 동시에 움직인다는 것을 뜻한다. 거미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영상을 보는 것 자체가 힘들 수 있다. 지난 5일(현지시각) 인도 서부 지역 로나바라(Lonavala) 마찬(Machan) 지역에서 다비드 히긴스(David Higgins·48)라는 남성이 흙을 파고 있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 거미를 자세히 본 그는 큰 공포감이 밀려왔다. 등이 불룩하게 튀어나와 커다란 혹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제로는 수 백 마리의 새끼 거미 무리였던 것이다. 맘을 다잡고 그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영상 속 새끼 거미들은 어미 거미의 몸 통뿐 아니라 다리까지 기어 다니며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모습이다. 모든 생명체의 본능 중 감동적이고 눈물 나는 모습을 여러 외신 등을 통해 접하는 우리지만, 사람으로 태어나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성애를 흠뻑 받으며 사는 것이 ‘최고’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사진 영상=Caters Clips/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아내의 신장을 도둑 맞았습니다”…억장 무너진 의료사고

    “아내의 신장을 도둑 맞았습니다”…억장 무너진 의료사고

    인천의 대형종합병원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의 멀쩡한 신장(콩팥)을 난소 물혹으로 오인해 잘못 떼내놓고도 사과나 보상은커녕 “신장 1개로도 건강히 잘 사는 사람이 많으니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고 핀잔을 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A씨는 아내가 당한 억울한 의료사고을 고발하는 글을 지난 4일 등록했다. 다음달 3일 마감되는 이 청원에는 2500명 이상이 동참했다. A씨는 지난 3월 동네 산부인과에서 아내가 난소 물혹 의심 진단을 받아 인천의 한 대형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런데 3시간의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의사는 충격적인 사실을 전했다. 복강경으로 난소를 확인했지만 혹이 보이지 않아 개복하여 혹을 찾아 절제했는데 신장으로 판명됐다는 것이었다. A씨는 “의사는 환자와 딸의 항의에도 의료 절차상 문제가 없었다며 아무 설명과 해명을 하지 않았고, 환자에게 ‘1개의 건강한 신장으로도 잘 사는 사람이 많이 있다. 운동이나 열심히 하라’는 핀잔 아닌 핀잔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수술을 집도한 산부인과 교수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던 신장에 혹이 같이 있어 절제를 했다”고 변명하고 자기 행위를 정당화했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병원 법무팀장에게 의료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수술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 들어야 했다. 심지어 법무팀장은 도의상 병원 입원비는 보조해주겠다고 제안하면서 의료소송으로 갈 경우 과실을 환자 측이 입증해야 해 병원이 더 수월하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내용의 국민 청원이 세상에 알려지자 사과조차 없던 병원의 태도가 돌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일보에 따르면 병원 관계자는 “있어서는 안 되는 끔찍한 사고임을 인정한다”면서 “성실히 보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데스크 시각] 이란 핵협정 파기, 북ㆍ미 접촉 언제부터였을까/이지운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이란 핵협정 파기, 북ㆍ미 접촉 언제부터였을까/이지운 국제부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협정(JCPOA) 파기를 고려한 것은 아마 ‘처음부터’였을지 모른다. 협정 파기의 원인(遠因)을 일부 미국 언론들은 이란에 대한 트럼프의 ‘증오’에서 찾기도 한다. 이 증오가 본질적으로 트럼프 자신의 것인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유대계 인사들의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아무튼 유럽의 친구들이 찾아와 말리고, 세계가 반대해도 지난 8일 기어이 협정을 파기했다. 그래서인지 사흘쯤 뒤인 10일 이스라엘과 이란이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내 이란 혁명 수비대 측 무기고와 병참기지, 정보 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공습했다 하고, 이란은 골란고원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이스라엘로서는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이후 최대 외부 공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을 준비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1994년 미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보인 ‘세상의 핵’에 대한 그의 특별한 사명감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처음부터였을 수 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의 주요 임무 중 하나로, 핵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북한과 미국이 핵 합의를 위해 ‘접촉’을 시작한 게 트럼프 행정부 공식 출범 이전부터라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인 듯하다. 워싱턴에서 ‘대북 보상비용’ 얘기가 흘러나온 게 지난해 하반기인 걸 보면 접촉 시점은 훨씬 이전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일단 그 출발점은 앤드루 김 미국중앙정보국(CIA) 한국임무센터(KMC)장으로 알려진다. CIA 한국지부장과 아시아ㆍ태평양지역 담당자를 역임하다 퇴임한 뒤 KMC 초대 팀장을 맡았다. KMC는 지난해 5월 북한 전담조직으로 신설된 조직이다. 그런데 왜 5월이었을까. 혹 북ㆍ미 접촉 시점과는 연관이 없을까. 지난해 5월 미국은 이미 북한과의 접촉량과 범위가 늘어나 조직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었을 수 있다. 관련 작업의 출발점이었던 앤드루 김의 활동 공간을 공식화해 주는 측면도 고려했을 수 있다. 아무래도 지난해 이맘때 전쟁을 불사할 듯 보였던 북한과 미국의 대결 분위기는 당시 세상이 생각했던 그런 상황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이어지는 지난해 하반기는 주지하듯 미국이 중국을 비틀어 북한을 쥐어짜는 기간이었다. 행동과 보상 사이를 고심하는 북한에 압박을 병행한 것은 미국으로서는 필수 코스였다. 이 무렵 보상 얘기가 구체화되면서 ‘비용’ 얘기가 흘러나온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과 직거래하는 일정 기간 중국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아마 국면 전환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한국이었을 수 있다. ‘통 큰 결단’을 남한을 통해 극대화한 김정은의 선택은 영리한 것이었다. 2018년 새해 벽두부터 평창올림픽에, 김여정의 방남과 판문점 회담까지 김정은은 보도의 중심이었다. 사실관계는 아직 드러난 것이 없다. 그래도 트럼프 정부 출범부터 북·미 정상회담 확정 발표까지 한국과 중국이 소외된 구간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두 나라 당국은 지금 이 소외된 구간을 복기해 재구성하고 있을 것인데, 한국은 누구보다 자세하고 치밀하게 해야 한다. 무엇보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거론되고 있는 요즘이다. 예컨대 김정은 정권은 최대한 ‘북한 내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자본과 계획을 원할 것이고, 북·미가 이 문제를 어디까지 논의했는지 친절하게 알려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중국이 알려 왔다’, ‘백악관이 사전 고지했다’ 정도로는 설명하기도 어려운 문제다. jj@seoul.co.kr
  • 사람이 그립다

    살아오면서 이 말이 이렇게 절실하게 다가 온 적은 없었다. 공무원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25년째다 그동안 즐거웠던 일, 어려웠던 일, 뿌듯했던 일,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몇가지 일도 있었다. 예전에 사회복지과에 있을때 사회공동모금회업무를 본적이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빨간열매를 생각하면 쉽다. 겨울이 다가오면 구청마다 각 동에 성금모금을 한다. 십시일반으로 그렇게 모은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다. 지금은 맞춤형 복지라고 그런대로 분야 분야마다 선정을 해서 주택이면 주택, 의료면 의료 , 생활이면 생활 등으로 나눠서 어려운 분들을 선정해서 도와준다. 그런데 그때는 한 가지 기준으로 선정을 하다보니 정말 딱한분들이 많았다. 동에서 어려운분들을 선정해서 올라오면 그것을 모아서 공동모금회에 보낸다. 담당자 의견도 붙이고 서류도 붙여서 보내면 공동모금회에서 심사해서 등급별로 도와줬다. 그러나 그런 도움이 어떤 분에게는 전혀 혜택이 되지 않은 사각지대에 계신분들도 있었다. 자기동생이라면서 다른구에 사는데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도와주는데 의료비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좀 도와줄수 없느냐 고 담당자가 한 번 더 공동모금회에 도움을 요청해달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딱해서 그럼 우리가 행정을 하는데 법을 벗어날수도 없지만 그러나 또 정말 어려운 분들이 있다면 도움을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내가 공동모금회 담당자에게 한번 도와달라고 이야기해보겠다고 했다. 그분은 너무 고맙다면서 설령 안되더라도 괜찮다고 오히려 나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그래서 내가 그분을 위해서 담당자가 본 그분의 입장과 처지 그리고 형제들이 힘을 합해 동생을 도우려는 우애(友愛)를 나름 담담하게 글을 써서 담당자의 의견으로 글을 하나 썼다. 그 서류를 보고 공동모금회에서 전화가 왔다. 우리가 서류만 보고 가부(可否)를 정할 수 없다. 윗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여기에 적힌 담당자의 의견도 같이 첨부해서 도와 줄 수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고마운 말을 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고맙다고 되는 방향으로 도와달라고 이야기했다. 지금은 그 분야에서 규정이 많이 완화되었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결과가 내려왔는데 그분이 선정이 되어서 의료비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게 아닌가? 나도 너무 기뻐서 담당자에게 고맙다고 그리고 그 형제분에게도 정말 축하한다고 진심의 말을 전했다. 그분은 나중에 와서 고맙다고 인사를 몇 번이나 했고 내가 다른과에 갔는데도 그분이 와서 인사를 했다. 공무원생활을 하면서 내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그런 진한 감동을 느꼈다. 그리고 일을 함에 있어 작은일이라도 한 번 더 챙겨보는, 민원인들이나 주민들 입장에서 무엇이든 잘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했던 기억이 있다.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내가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색다른 이야기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공무원생활을 그 정도 했으면 산전수전을 겪었다고 하지만 사실은 사회생활은 초년병이다. 이제 갓 개인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 아니면 장사를 시작했으면 수습사원이다. 일찍 명예퇴직이나 조기퇴직을 한것이 아니라 수습사원 보조다. 왜냐하면 돈은 내가 융통을 하였으니 총괄책임 사원이나 마찬가지다. 남편과 나의 수습사원 이야기이다. 남편은 회사를 조기퇴직하고 조그만 가게를 차렸다. 쉽게 말해서 통닭가게, 피자가게, 분식가게 사장이지만 남편은 소주와 맥주 그리고 간단한 안주를 파는 술집사장이다. 말이 사장이지 주방을 겸해서 일인다역이다. 가게는 다행히 우리집이었다. 그것만 믿고 하다가 지금은 계속 고전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글도 월급쟁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부족한 글이라도 한번 써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나는 여성이고 그래도 연금이 있어서 나중에 아껴서 놀자주의이지만 남자들은 또 그렇지 않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하지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지 않는가. 더 할 수 있으면 간부직에 있었던 분들은 나름대로 욕심이 있을것이고 하위직에 있더라도 경비원으로 용돈이라도 벌고, 연금이 있지만 또 돈은 벌수록 좋지 않는가? 능력껏, 그냥 놀고 있다는것이 부담이라고 생각하는 월급쟁이들도 실제로 많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들 한다. 내가 알기로 지금도 공인중개사나 주택관리사 등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따신분들도 많다. 그리고 공인중개사 가게를 하고 계신 실장도 있다. 잘하시는지는 모르겠다. 전에 한번 오셨길래 “잘 되십니까 ?” 하고 물으니 “ 가게가 있어서 심심하지 않다”면서 웃기만 하셨다. 그래도 기본은 하실것이다. 그분은 직장에 계실때도 아주 일을 잘하셨다. 그만큼만 하신다면 노후는 든든하게 챙길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괜히 기분이 좋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을 모셨고 그때 그분이 공인중개사 공부를 할 때가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흐뭇했다. 지금 술집가게를 9월에 시작했으니 4월에 접어들고 12월이다. 찬바람이 쌩쌩부는 엄동설한 , 장사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우리과에 직원들이 모두 와서 기뻐해줬다. 나름 술도 많이 팔아주고 내가 그동안 알았던 직원들, 아이들 아빠도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알았던 분들이 와서 술을 좀 팔아주었다. 축하한다면서 처음은 정말 잘되었다. 고맙다면서 이정도만 되면 내가 본업을 때려치워도 안되겠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 시간이 2주가 채 가질 않았다. 그렇게 인사차 오신분들도 그 다음부터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예전에 장사를 시작할 때 절대로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가 새사람을 잡아야된다고 새로운 단골을 만들어야 된다고 그럴려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 3년, 5년 그렇게 지나야 단골이 생기고 그 단골에서 씨앗이 나서 꽃이 피고 열매맺고 그래야 그 장사가 번창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먼 남의 일로만 생각했는데 막상 나의 일로 다가오니 정말 힘이 들었다. 나는 낮에 직장을 다니고 저녁에는 걱정이 되어서 가게에 들리면 사실은 1인 3역을 해야 하는데 아무리 대충한다고 해도 직장일도 만만찮고 집안일도 힘들고 그래서 가게일은 그냥 가서 옆에만 있는다. 저녁 9시까지만 옆에 있는데도 힘이 들었다. 그것도 나한테는 벅찼다. 사실은 5월쯤 몸이 하도 피곤해서 종합병원에 진단을 하니 “갑상선항진증”이라고 내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 42kg 꿈의 몸무게인데 그게 두려웠다.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3주 동안 쉬었다. 그동안 마당쇠같이 일만하다보니 쉬는것도 부담스러웠다. 직원들에게 미안하고 더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3주라도 쉬었으니 다행이다. 옆에 직원이 내일을 대신 한다고 고생을 많이 해서 맛있는것 사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못 사줬다. 덕분에 잘 쉬었는데 하면서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직장일은 아주 중요하다 어쩌면 집안일보다 더 중요하다는게 기본생각이다. 일을 하면 끝장을 보는것도 내 성격인데 하나하나 챙기자니 내게는 너무 벅찼다. 그런데다가 장사까지 시작해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저절로 신경이 쓰이는게 사람이 아닌가! 내 몸이 자꾸 처지고 힘이 들어서 몇일을 쉬면서 병원에 갔다. 그런데 의사선생이 몸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이런식으로 가면 월급쟁이생활 끝까지 못한다면서 선택을 하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이들도 아직 대학생이고 고등학생이면 학비도 많이 들어갈텐데 정년까지는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자꾸 쉬기를 채근 하는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렇게 채근해줘서 고맙다. 그래서 나 자신과 미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보다 일을 끝까지 하고 노후도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쉴려면 지금이 적기다. 몸을 챙기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몸은 회복 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며칠동안 그 말을 생각하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는 행정 6급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사무장이 되어서 동에 내려가서 중간관리자로서 이일저일, 하긴 요즘 동에 사무장도 일이 만만찮다고 이야기는 해도 잡일은 안하니까 조금은 낫지만 나는 아직도 막일을 2년 넘게 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동에 내려가서 조금 그런일에서 벗어나고 싶은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좀 더 버티고 싶었는데 또 가만 생각해보니 일단 몸을 만들어야 한다. 아픈 몸을 가지고 동에 내려가면 동단체원들 , 주민들, 직원들에게 민폐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리고 한번 아픈 몸은 때를 놓치면 다시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생각들이 나를 휴직을 생각하게 했다. 과장과 잘 아는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니 조금만 더 참으면 안되겠느냐고 하면서 나를 위로하였다. 그러나 몸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면서 어쨌던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서 다시보자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미안하다면서 그 말도 했다. 내가 없음으로 누군가는 더 힘들어할것이다. 물론 충원은 되겠지만 또 시간은 그만큼 걸릴것이다. 이 색다른 경험은 나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 일단 직장을 쉬니까 낮에는 쉬고 밤에는 잠깐이라도 가게에 나가서 옆에라도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저씨 입장은 더 낳겠지 있어주니까 월급은 좀 적어도 덕분에 가게가 잘되면 더 좋지 않겠는가? 나름 나도 거창한 ? 생각을 가지고 저녁에는 가게 할 때 옆에 있어주었다. 가게가 변두리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게 큰 흠이었다. 그것을 우리가게라는 메리트라로 대체를 했는데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가 않았다. 그리고 처음에 이 가게를 할 때 술집은 부업이고 본업은 기타였다. 남편은 기타를 참 좋아한다. 사람들마다 좋아하는게 다르지 않는가? 옆에서 보면 기타를 치면 밥먹는것도 잊어버리고 칠때도 있다. 동아리모임이 여러개 있어 그 사람들과 만날때는 화색이 돈다. 그것을 볼때 작은 사무실이라도 하나 마련해줘야 되겠다고 늘 생각을 했었다. 나이 들어서 자기가 좋아하는것 하는게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roman)이 아닌가?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를 치고 나는 글쓰는것을 좋아하니 잘된셈이다 그 꿈을 이루기위해서 밤잠을 설치면서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사이에 괴리가 얼마나 큰 지 가게를 열어 한달 가까이 오면서 절실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나를 알아서 뒤늦게 소식을 듣고 와주신분들도 있었다. 고마웠다. 사람이 그립다는게 이처럼 뼛속같이 다가 온 적은 없었다. 단골이 생기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려야 하는데 그동안 가게를 꾸리는것이 정말 말처럼 쉬운게 아니었다. 요즘은 사람도 별로 오지 않는다. 손님이 한명도 오지 않을때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있었다. 그럴때는 정말 힘이 쭉 빠진다. 남편은 좋아하는 기타도 치기 싫고 가게도 하기 싫다고 말하곤 했다. 한번은 손님이 없어서 그럼 내가 마수걸이를 할까 하면서 오뎅탕을 시켰다. 제일 잘하는 음식이고 싸다. 만원을 내고 오늘 마수다 나에게 맛있는 오뎅탕을 해줘요. 오뎅탕을 했는데 맛이 일품이다 이 맛있는 오뎅탕을 안 먹어 본 사람은 정말 손해라고 먹으면서 나중에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먼훗날 이것도 웃으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문득 고등학교책에 나오는 김소운의 글『가난한 날의 행복』이 생각났다. “왕후(王候)의 밥, 걸인(乞人)의 찬···.” 쌀이 떨어져서 아침을 굶고 출근한 아내를 위해 남편이 마련한 점심 밥상에 놓인 글. 간신히 쌀은 구했지만 반찬까지는 마련하지 못해 따뜻한 밥에 간장 한 종지만 곁들인 밥상을 과장하여 표현했다. 자칫 슬프거나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배우자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재치 있는 웃음으로 이겨나가는 부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래도 우리는 그만큼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번듯한 가게이고 지금은 단지 처음이라 손님이 없을뿐이다. 내일이라도 손님이 많이 올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장사를 해보니까 사람이 그립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내가 가게를 직접은 아니지만 이렇게 근거리에서 해보니 가게에 와서 싼 것 하나라도 팔아 주는것도 참 고마웠다. 내가 아는 직원들도 많지만 그 직원들이 물론 다 오지도 않았다. 10분의 1도 오지 않았다. 그 많은 기간 동안에 웃고 웃어도 정작 내가 가게를 하니 와주는 사람은 너무 적었다. 나도 나름대로 직원들에게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겠지 바쁘거나 아니면 더 중요한 일도 있겠지만 내가 밥을 안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물론 술을 안 먹는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것은 핑계일뿐이다. 『생각이 없으면 행동이 없고, 생각이 있다해도 그만큼 행동이 어렵다』. 사실은 남 욕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나도 그랬으니까 입장이 나도 마찬가지다. 주변에 경조사나 아니면 개업을 했다고 해도 바쁘다는 핑계로 가지도 않고 그랬으니까 누굴 탓할 필요는 없다. 그분들이 참 섭섭했겠다는 생각을 하니 나도 이제는 좀 더 주변을 살피게 되었다. 새롭게 가게를 하는 사람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려운 살림에 이리저리 돈을 융통을 했을것이고 장사를 해서 아이들 공부라도 제대로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들 할것이다. 우리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새로 생긴 가게가 주변에 있으면 먹을 일이 있으면 일부로 한 번 더 가본다. 처음이라 얼마나 긴장 되겠는가 또 얼마나 잘할려고 하겠는가? 새로 생긴 분식가게에 가서 아니면 체인점이라도 “잘 먹었다고”, “열심히 하시라고 ” 속담에 말한디에 천냥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말 한디에 얼마나 힘을 받을까 내가 그래도 이렇게나마 해보니 뒤늦게 철이 든다고 할까 나는 어떻게 보면 우리 직원들 보다 좀 일찍 시작한것이다. 사업선배다. 이 분야의 선배다. 내가 잘되어야 우리후배들이 잘 따라온다는 생각을 늘 한다. 내가 잘 아는 선배계장이 얼마 전에 가게에 놀러왔다. 놀러와줘서 고맙다면서. 그래도 “내가 선배라고 내가 잘되어야 후배님이 잘 따라오지요..맞지 않습니까 후배님” 하고 웃으니 맞다면서 “우리 선배님이 잘되어야 우리가 잘 따라가지요”...하고 크게 박장대소를 하였다. 혹시나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선배공무원이나 월급쟁이들이 있다면 또 이런 가게를 생각한다면 이 글이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우리 후배님들도 좀 봤으면 좋겠다. 서로가 도와주는것 그것이 같이 사는길이라고 “도와주는것이 무엇이냐 한번 찾아주는것, 자주 찾아주면 더좋고 ”...꼭 그 말을 해주고 싶다. 그래도 장사가 돈을 제일 잘 번다. 자영업자가 월급쟁이의 무덤, 사업하지 말라는 열사람 중에 대부분의 사람이 실패한다는 인터넷뉴스가 도배를 하지만 그래도 돈은 장사를 해서 버는것이다. 얼마나 멋진 인생인가? 매일 매상을 걱정하지만 오늘도 희망을 건다. 새로 장사를 할려고 생각하는 월급쟁이와 모든 정년퇴직 준비중인 공무원들에게 내일은 더 많은 손님들이 올 것이다. 파이팅^^
  • ‘삼성바이오 사태’ 이달 23일쯤 최종 결론

    금융위, 17일 첫 심의인 감리위 금감원 발표 열흘 전인 4월 20일 공매도 6배 늘어… 사전유출 의혹 금융위원회가 회계처리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첫 심의 단계인 감리위원회를 오는 17일 열고, 이르면 이달 23일 최종 결론을 내릴 전망이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시가총액이 8조원 넘게 증발하는 등 시장 충격이 큰 상황을 감안해 신속히 결론을 내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감원 발표 열흘 전인 지난 4월 20일에는 공매도 거래량이 올해 평균보다 6배가 늘어 발표 정보가 미리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 상태다. 감리위원회는 분식회계 여부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는 증권선물위원회와 제재 수위를 확정하는 금융위원회의 사전 단계로, 법원의 ‘1심’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6일 금융위에 따르면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겸 증선위원장은 이날 금감원으로부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특별감리 결과를 보고받은 후 “감리위를 17일 개최하고, 가능한 한 조속한 시일 내에 증선위에 상정해 달라”고 김학수 감리위원장에게 요청했다. 금융위는 예정된 정례 감리위원회 날짜인 31일 감리위가 열릴 경우 최종 결론이 6월 말로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17일 임시회 일정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통상 감리위는 3주에 한 번씩 목요일에 열리는데 사안이 무거울 경우 임시회에서 안건을 논의하기도 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심의·의결 기간이 길어질수록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다”면서 “금감원의 1차 결론에 대한 증선위 판단이 어떤 방향으로든 빨리 나오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을 금융위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르면 다음 증선위 정례회의가 열리는 이달 23일이나 다음달 7일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문제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최종 판단이 나올 전망이다. 다만 감리위 논의가 길어지거나 증선위가 한두 차례 회의를 더 가지게 되면 일정은 지연될 수 있다. 한편 김 부위원장은 이날 “(이번 건이) 이해관계자가 많고 기업회계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안인 만큼 회의를 공정하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금융위는 2월 ‘자본시장 제재 절차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심의위원들이 조사기관의 설명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제재 대상자의 의견진술권 확대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따라 대심제로 운영되는 17일 감리위에서부터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조선에 주자학 시대 열다…세계의 퇴계학으로 발전하다

    12월 8일, 아침에 분매(盆梅)에 물을 주라고 하셨다. 유시(오후 5~7시)에 푸른 하늘에 갑자기 흰 구름이 몰려와 지붕 위에 모이더니 눈이 한 치 남짓 쌓였다. 잠시 뒤에 선생이 자리를 정돈하고 부축해 일으키게 하시고 일어나 앉아서 서거하시니, 곧바로 구름이 흩어지고 눈이 그쳤다.1570년 음력 12월 8일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李滉·1501∼1570년)이 세상을 떠나는 광경을 제자 이덕홍이 보고 기록한 것이다. 참으로 성자의 장엄한 낙조라 아니할 수 없다. ‘고칠현삼’(古七現三)이란 말이 있다. 현대에 나온 책을 세 권 읽으면 고전은 일곱 권 읽어야 한다는 말이다. 고전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이 읽은 책이라 이미 검증돼 믿을 수 있다고 보증된 책이다. 우리나라 고전 중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널리 영향을 끼친 책은 무엇일까. 신라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는 중국 화엄종에서도 채택돼 ‘해동소’(海東疏)로 불리고, ‘십문화쟁론’은 당나라 때 이미 인도에서 번역됐다. 그러나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읽히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이 읽힌 고전은 아마 이황의 저술인 ‘퇴계집’이 아닐까 싶다. 퇴계집이야말로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저술로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우리 고전 중 고전이라 평가할 수 있다. 이황의 저술은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건너가 일찍부터 간행됐다. 일본에서는 이황을 ‘주자 이후 일인자’로 칭송했다. 그중에서 1811년 무라지 교쿠스이가 편집한 ‘이퇴계서초’(李退溪書抄·전10권)는 이황의 편지를 가려 뽑은 책이다. 중국에서는 1945년 이전에 북경 상덕여자대학 재단에서 이황의 ‘성학십도’를 인쇄해 판매한 일도 있었으니, 유학의 본고장에서도 이황은 크게 존숭받은 셈이다. 현대에 와서는 대만 국립사범대학에 퇴계학연구회가 부설됐고, 미국과 독일에도 퇴계학연구회가 생겼다. 또한 국제퇴계학회가 창설돼 1976년 이래로 거의 해마다 한국·일본·대만·미국·독일·홍콩 등지에서 국제학술회의가 열린다.#주자학 시대 연 대학자 조선은 주자학의 나라라 하지만 이황 이전에는 주자학의 정밀한 이론이 학자들 사이에 수용되지 못했다. 고려 때 크게 유행한 불교의 영향도 남아 있었다. 이황 이전에도 ‘심경’, ‘근사록’, ‘성리대전’ 등 성리학 저술이 있었지만, 조선에서 ‘주자대전’을 최초로 완독하고 연구한 학자는 이황이다. 주자대전 완질은 중종 18년(1523년) 교서관에서 처음 간행됐으나, 20년 후인 1543년 43세의 이황이 처음 그 책을 입수했다. 이황은 주자대전을 읽고 연구한 지 13년 만인 56세 때 편저인 ‘주자서절요’를 완성했다. 주자대전의 편지 중에서 정수를 추려 모은 것으로, 비록 편저이지만 이황의 주자학 연구의 깊이를 유감없이 보여 준 명저다. 학자들이 방대한 주자대전을 다 읽지 않아도 주자학의 정수를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이 간행되자 학계 신진 학자들이 크게 호응해 이 책을 통해 주자학에 입문했으니, 조선에 본격적인 주자학 시대를 연 것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자서절요는 조선에서만 도합 8차례 활자와 목판으로 간행됐고, 일본에서도 4차례 목판본으로 간행됐다. 실로 ‘사서삼경’에 버금가는 권위와 영광을 누린 것이다. 한편 이황은 호남 선비들과의 우정이 특히 각별했다. 33세 때 성균관에서 하서 김인후와 만나 의기투합한 이후 환로에서 면앙정 송순, 석천 임억령, 금호당 임형수, 칠계 김언거 등과 사귀었다. 성균관 대사성으로 재직하던 58세 때에는 고봉 기대승을 만났다. 이황과 기대승이 주고받은 편지는 100여통이 넘지만, 기대승은 불과 세 차례 서울에서 이황을 만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황은 문하에 출입한 제자 중에서 도산서당의 강석에서 직접 배운 영남의 많은 학자를 제치고 기대승을 가장 높이 인정했다. 그래서 이황이 벼슬을 그만두고 조정을 떠날 때 선조가 조정 신료 중 누가 학문이 뛰어난 사람인지 묻자 “기대승은 글을 많이 보았고 성리학에도 조예가 깊어 통유(通儒)라 할 만합니다”며 기대승을 추천했으니, 그가 기대승을 내심 가장 뛰어난 제자로 인정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황과 기대승은 유명한 ‘사칠논변’(四七論辯)을 펼쳤다. 이황은 기대승과 토론을 거쳐 “사단은 리가 발해 기가 이를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해 리가 이를 탄다”(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고 하는, 소위 ‘리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주장했다. 하나이면서 둘이요, 둘이면서 하나인 사단과 칠정의 관계와 개념을 더욱 분명히 분석하고 정의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주자학을 한층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한편, 향후 학계에 오랜 세월 토론할 큰 쟁점을 던졌다. 실로 주자학 역사에 대서특필할 큰 학문적 성과라 아니할 수 없다.#도산서원에서의 만년 꽃은 바위 벼랑에 피고 봄 고요한데 새는 시냇가 나무에 울고 물은 잔잔해라 우연히 산 뒤로부터 제자들을 데리고서 한가로이 산 앞에 이르러 서당을 보노라. 계상의 집에서 산을 넘으며 도산서당에 이르러 읊은 시로, 이황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회갑 해인 1561년에 지은 시로 학문이 원숙한 경지에 이른 노학자의 정신세계가 담담한 필치로 잘 그려져 있다. 이 시는 눈에 보이는 경치를 읊었을 뿐이라 일견 단조로워 보인다. 그렇지만 오히려 자신의 상념을 개입하지 않고 자연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그대로 그려낸 데에서 시의 울림은 오히려 크다. 우연히 본 경치를 그대로 읊어 놓은 작품인 데도 오래 두고 욀수록 작자의 깊은 정신세계가 느껴지면서 더욱더 좋다. 신유년(1561) 4월 15일에 선생이 조카와 손자 안도(安道) 및 덕홍(德弘)과 더불어 달밤에 탁영담(濯纓潭)에 배를 띄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반타석(盤陀石)에 배를 정박했다가 역탄(灘)에 이르러 닻줄을 풀고 배에서 내렸다. 세 순배 술을 마신 다음 선생이 옷깃을 바루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한참 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전적벽부’(前赤壁賦)를 읊으셨다. 제자인 이덕홍이 기록한 글이다. 이 무렵이 이황으로서는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가장 안온하고 행복한 삶을 누렸던 시절이었다. 이후로 임금의 부름을 받아 출사와 사직, 상경과 귀향을 반복해야 했던 이황은 노병을 이유로 누차 간곡히 사임한 끝에 1569년 3월에야 69세 나이로 우찬성을 벗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 해 뒤에 세상을 떠났으니 나이 70세, 1570년 12월 8일이었다. 1569년 3월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이듬해 12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꿈에도 그리던 도산서원에서 안돈한 지 2년이 채 못 되었다. 이황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을 듣자 선조는 3일간 정무를 보지 않음으로써 애도했다. 사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문순의 시호를 받아 문묘에 배향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최고의 추앙을 받고 있다.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교수 ■ 퇴계집 해제 총 63권…편지에 학문·인간적 면모 잘 나타나퇴계집은 도합 63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중에서 이황의 학문과 인간적 면모를 잘 보여 주는 것은 편지들이니, 어떤 것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 되고 어떤 것은 깊은 철학 논문이 된다. 이 중에서도 기대승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특히 중요함은 말할 나위 없다. 이 밖에 68세 때 어린 선조 임금에게 올린 ‘무진육조소’와 ‘성학십도’는 이황의 대표적 저술이다. ‘천명도설서’, ‘심경후론’, ‘전습록변’ 등도 이황의 저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도연명과 두보, 주희의 시를 배웠다고 하는 이황의 시도 매우 격조와 문학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이황의 인품은 대개 근엄하고 신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편지들을 보면 매우 자상하고 진솔하며 인정이 많고, 의외로 활달한 면도 보인다. 현재 퇴계학연구원에서 이황의 저술들을 샅샅이 모아 정리하는 정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 정본에는 ‘퇴계집’을 간행할 때 빠진 글들을 다 수록하는데, 학문적인 가치는 그다지 크지 않을지 몰라도 이황의 일상과 인품을 읽을 수 있는 글이 많다. 오늘날 우리가 읽기에는 오히려 더 수월하고 재밌다. 끝으로 그중에서 이황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짧은 편지 한 부분을 소개한다. 손자 안도가 과거에 급제한 것을 두고 겸사로 한 농담이다. “안도 녀석이 과거에 급제했고 게다가 혹 높은 등수를 차지할 수도 있다고 하니, 쑥대 그물에 범이 잡혔고 장님이 문지기를 선 셈이로군. 마음이 기쁘면서도 괴이쩍다.”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 서산 해미읍성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 서산 해미읍성

    ‘주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나이다.’ 혹자(或者)는 천 명이라 하고, 또 다른 혹자(或者)는 삼천 명을 말한다. 천주교를 믿는 그들은 해미읍성 옥사(獄舍) 앞 호야나무에 목을 매어 달려 죽었고, 작두에 목이 잘려 죽었으며, 어린 군관이 휘두른 홍두깨 방망이에 맞아 죽었고, 물 묻은 창호지를 얼굴에 붙어 죽었고, 볏단을 두 손으로 잡고 바닥으로 내리치듯 머리가 자리개 돌에 터져 죽었으며, 아녀자들은 결박당한 채로 개울 둠벙에 빠져 죽었다. 그리고 남은 이들은 돌무더기에 산 채로 묻혀 죽었다. 죽어가면서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는 그들의 소리가 읍성 밖 여염집 사람들 귀에는 흡사 ‘여수 머리’라고 들리어 지금도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밖에는 여숫골이라는 지명이 있다. 조선 유일의 생매장 순교가 행해진 시간이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으로 가 보자. 해미읍성(海美邑城)은 현재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에 있는 도심 읍성으로, 1963년 1월 21일에 일찌감치 대한민국 사적 제11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성곽이다. 원래 이곳은 1417년(태종 17년)에 성을 짓기 시작하여 1421년(세종 3년)에 축성이 완료된 곳으로 왜구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의 성채였다. 그러다 1651년(효종 2년)에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옮겨가면서 이때부터 해미읍성은 호서 지방 및 내포 지방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읍성이 폐지되었다가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의 모습을 다시 찾게 되었다. 조선 시대 도심 내에 축조된 읍성으로는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히는 해미읍성은 총 길이가 1,800m이며 성벽의 높이는 5m에 이른다. 또한 성 바깥에는 외부인의 출입을 막는 깊이 2m의 해자도 축조한 타원형의 안정된 성곽으로 지금도 많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박해에 관한 핏빛 가득한 역사가 깊이 새겨져 있다. 1801년에 행해진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유박해 이전부터 1839년의 기해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시기까지 이 곳 해미읍성을 거쳐 간 천주교 순교자는 무려 3000여명에 이른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이후 내포 지방에서 잡혀온 여염집 신자들의 경우 제대로 된 판결도 없이 생매장을 하였는데 그 숫자가 어림잡아도 1000명을 훌쩍 넘는다고 전해진다. 당시 군관들은 그들로부터 뺏은 십자가와 묵주를 읍성 서문 난간 문턱에 올려놓고 이를 밟으면 살려 준다는 조롱 섞인 배교(背敎)를 강요했지만, 끝끝내 수천 명에 이르는 신자들은 죽음을 택했다는 이야기가 아직도 이곳에는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2014년 8월 17일 교황 프란체스코가 해미 순교터를 방문한 이후 해미읍성 주변지역은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뿐만 아니라 진정한 삶과 죽음의 의미, 종교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뜻깊은 공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해미읍성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한국 로마 카톨릭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교터 중의 하나다.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의미를 전해주는 공간.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 나들이, 천주교 신자라면 더더욱 3. 가는 방법은? - 충남 서산시 부춘공원2로 11(읍내동) 4. 감탄하는 점은? -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성곽의 돌무더기, 아직도 남아 있는 그 시절의 회화나무.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순교의 흔적이 남은 회화나무, 옥사, 진남문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산수파김치장어’, ‘원조장어마을’, 백반집 ‘진국집’,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haemifest.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추사고택, 한용운 생가터, 장영실 과학관, 수덕사 10. 총평 및 당부사항 - 한국 유일의 생매장 순교터로 의미가 깊은 곳이다. 1800년대 조선 후기 선조들의 고뇌와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곳이다. 갈 곳 잃은 조선의 운명에서 살고자 몸부림쳤던 조상들의 피울음이 울려 퍼지는 곳.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