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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군정의 공과(새로 쓰는 한국현대사:24)

    ◎자국입장 살리며 한국군정 수립에 큰 기여/기득권층 흡수… 일제잔재 청산의 걸림돌로 미군정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공식출범하는 것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1945년 9월9일 미군정이 시작된지 3년여만에 군정이 종식된 것이다.미군정은 이보다 앞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으로부터 경찰과 해안경비대,국경수비대의 지휘권을 포함한 주한미군사령관이 행사하고 있는 모든 직무에 대한 이양요청을 받았다.주한미군사령관은 8월11일 이에 동의하고 이양절차를 신속히 밟기 시작했다. ○좌우익대립 평정 공헌 그러나 미군의 완전철수는 다음해인 1949년 6월29일에 이루어졌다.5백명의 군사고문단을 남겼으나 한국은 미국의 태평양방위선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이렇듯 한국은 미국의 영향권으로부터 멀어졌지만 미군정 3년여는 이 땅에 많은 것을 남겨 놓았다.그렇다면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의 공과는 무엇일까.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한국현대사,이른바 해방정국사를 푸는 중요한 키 노트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그평가는 시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다만 자국의 입장을 최대한 살리는 범위에서 한국의 민주정부 수립을 추진한 미군정은 결국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단독정부를 수립시켰다는 잠정적 결론을 도출해내기에는 별 무리가 없다.이 대목은 매우 중요한 것인데 미군정은 이승만을 전면에 부상시킬 의도를 처음부터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그래서 5·10선거 직전까지도 김규식에 기대를 걸었다.그리고 실제 국회의원 선거(서울 동대문 갑구)에서 이승만을 낙선시키려는 공작도 했다. 어떻든 미군정은 이승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규식이 정계은퇴 의사를 분명히 하는 바람에 싫든 좋든 간에 이승만의 등장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이승만과 경선하기 위해 밀었던 전 미군정 경무국장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을 취소시켰다.이에따라 5·10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한 이승만은 확고한 정치적 발판을 굳히고 국회의 간접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다. 이승만이 등장한 마당에서 미국이 그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동서대립의 이데올로기 갈등 속에서 그만한 인물을 찾기도 실상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미군정이 좌우익 대립을 어느 정도 평정한 것은 군정의 공헌쪽에다 비중을 실을 수 있을 것이다.이렇듯 혼미한 해방공간에서 45년 12월 경찰이 창설된데 이어 46년 1월에는 국방경비대가 창군되었다.미군정의 병력과 경찰력의 확보는 정치세력,특히 좌익의 극단적 움직임과 연관성을 갖는다. ○한민당계 인사 큰 혜택 군에는 광복군 출신을 비롯,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들이 포진했다.이 가운데 일본군 출신들이 두각을 드러내 군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해버렸다.경찰의 경우도 조선총독부 시절의 인물들이 그대로 끼어들었다.이는 미군정이 일제치하의 경찰을 좌익색출에 적극 활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실제로 경찰은 1946년 9월 총파업과 10월폭동,3·1절 좌우충돌,3월 총파업,4·3사태를 진압하는데 공헌했다.또 일본군 출신을 주축으로 한 군 역시 46∼50년까지 발생한 반란사건 진압과 토벌의 주력이 되었다. 미군정은 정부수립까지 가는 험난한 길을 걷는데 일제시대 기득권층을 그대로 흡수한 측면이 없지 않다.이는 정부수립 후 일제잔재를 청산하는 과정에서 걸림돌로 작용했다.해방 원년 일본인 관리들이 물러난 자리에 7만5천여명의 한국인을 앉혔다.그 과정에 미군정의 인사정책이 그대로 반영되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과 일제하의 관료를 우대했는데,한민당계의 인사들이 큰 혜택을 입었다.미군정이 좌우합작을 지원할 무렵에는 안재홍과 같은 인물이 남조선과도정부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한민당계에 밀렸다는 것이다. 미군정은 일본이 침략정책을 강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악법을 19 45년 10월9일 법령11호에 따라 폐기해버렸다.여기에는 정치범처벌법,예방검속법,치안유지법,출판법,정치범보호관찰령,경찰의 사법권 등이 포함되었다.미군정은 이 악법들의 폐지 이유를 「한국인들에게 정의의 정치와 법률상의 균등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미군정은 소련의 한반도 적화정책의 징후가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자유를 안겨주었다.초기에는 공산주의 활동을 용인한 것은 물론 출판언론의 자유도 열어주었다. 패전국 일본이 남겨놓은 재산은 기업의 경우 전체의 90%,토지는 전 국토의 12·5%나 되었다.이 재산은 일제가 36년 동안 착취한 것이어서 국민들의 관심도 컸다.이른바 적산으로 분류한 이들 재산을 법령 제33호에 따라 우선 군정청 소유로 했다.적산을 한국인들에게 매각하지 않겠다는 조항도 명문화했는데,이는 뒷날 한국에 세워질 정부에 맡긴다는 방침이었다.특히 토지의 경우는 여론조사에 붙였다.그러나 대다수의 의견이 정부수립 이후의 처리를 희망했다. 토지(농지)문제는 특히 북한으로부터 공격적 선전자료가 되었다.북한은 소련의 조정에 의해 1946년 초 토지개혁을 단행한 터여서 미군정을 호되게 비판했다.하지만 미군정은 적산을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더불어 재정재산협정에 따라 한국에 넘겨주었다.미군정은 다만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지 소작인이 수확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규정하는 법령 제9호를 해방 원년에 제정했을 뿐이다.특히 미국의 입장은 재산처분에 관한 한 무리수는 두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미군정은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남조선과도정부를잠정적으로 만들었다.1946년 3월 법령 제64호를 적용하여 군정청기구의 국을 부로 바꾸고 군정체계를 확립했다.각 부처장으로 한국인을 채용하여 한미 양부처장제를 실시한 것도 이무렵이다.이해 9월 군정장관 A L 러치는 특별발표에서 행정권 이양의사를 밝혔다.이로 인해 미국인들은 고문자격으로 부결권만 행사하는 가운데 두 나라 국어를 사용한 종래의 모든 문서가 한국어로 단일화되었다. ○적산 한국정부에 이양 남조선과도정부가 한국의 정부수립을 대처한 미군정의 조치였다면 1946년 12월에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은 민주주의 예행이라 할 수 있다.입법의원은 김규식을 의장으로 한 관선 45명,민선 45명으로 구성되었다.민선의원의 경우 인구비례에 따라 각 도에 정원을 배정했다.이 민선의원들은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그래서 입법의원은 국민대표기구이자 입법기구로서 초보적이나마 현대적 의회였다. 이 과도입법의원은 미군정의 좌우합작운동을 수용한 측면이 있다.다시 말하면 미군정은 좌우합작운동을 초기부터 지원하는 대신 이를 과도입법의원과 연결시켰던 것이다.어떻든 입법의원은 입법기구로서 남조선과도정부 및 그로부터 분리 독립한 법원과 더불어 3권분립 관계를 이루어냈다.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기틀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웨드마이어중장 연설」 벽보/트루먼의 특사 “공가주의 투쟁 자제” 역설/“권리쟁탈의 욕망 제일 큰 문제” 지적/「조선의 인권·재산권 보장」 방침 천명 1947년8월 미군정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미 대통령(H S 트루먼)의 특사 A C 웨드마이어 중장(1897∼1990년)의 연설요지를 실은 벽보가 발견되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서울 중랑구 중화2동 김보영씨(67)로부터 제공받은 이 벽보는 한국에 대한 당시 미국 정책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벽보는 서두에 「현 세계의 여러가지 문제중에 권리쟁탈의 욕망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이는 아마도 동서냉전체제 아래서의 갈등을 비유한 것으로 풀이된다.그가 1947년 8월26일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10여일 한국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고려하면이 벽보는 9월쯤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그가 한국에 머물 무렵은 제2차 미소공동위가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선동하는 군중대회가 열을 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어 그는 「이러한 욕망을 없애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밝히면서 「이 욕망을 군사적이 아니고 화가나 문학가의 붓으로,또 바이올리니스트의 활로 없애면 얼마나 아름답겠느냐」고 아주 낭만적인 표현을 썼다.그리고 「욕망을 없애거나 줄이면 더 좋은 목적을 쉽게 실현할 수 있다」는 간접적인 말로 공산주의 투쟁의 자제를 당부했다. 이 벽보에는 「조선이 완전 자유독립국가를 만들도록 인권과 재산권 보장,자유기업을 장려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그의 재산권보장 발언은 미군정이 토지개혁을 장차 수립될 한국정부에 넘겨주겠다는 확고한 방침으로 나타났다.패전 일본으로부터 환수한 적산도 처분하지 않고 뒷날 한국정부에 이양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웨드마이어 장군의 조선여행중의 연설」요지를 전제로 한 이 벽보의 크기는 가로 28.5㎝,세로 50.5㎝.그는 한국을 방문한뒤 냉혹한 판단으로 일관한 「웨드마이어 보고서」를 썼다.오하마 태생의 육군중장이었던 그의 보고서는 미국 대한정책의 골격이 되었다.
  • 신용사회와 도장/김종수 출판인·도서출판 한울대표(굄돌)

    서구사회를 신용사회라고 한다.아마 외국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를 실감했을 것이다.신용을 통해 모든 관계나 거래가 이루어진다.그러나 신용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믿음을 주는 것은 아니다.계약서나 영수증을 주고 받는 것을 철칙같이 여기는 생활문화가 뒷받침하고 있다.또한 한번 신용을 저버리면 다시는 회복하기 힘든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에 비해 우리 사회는 아직 신용사회라고 하기에는 멀었다고 느껴진다.소위 「유도리」가 많다.경직된 인간관계가 아니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도 있으리라.그러나 대충 말로 때우는 것이 많고 분쟁이 생기면 안면이 두껍거나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결국 선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것이다. 책을 내면 저자가 자신의 도장이 찍힌 인지를 붙이는 경우가 있다.일제시대부터 정착된 관행이라고 한다.그래서인지 나이 든 사람들은 인지를 마치 책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 마냥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일본에서도 더이상 인지를 붙이지 않는다.인지를 붙이는 것은 저자가 자기 책이 팔리는 부수를자기 도장으로 감시하겠다는 것이다.한마디로 출판사를 못믿겠다는 것이다. 이제는 대부분의 서점이나 유통업체나 인쇄소나 제본소나 모두 자기의 전산처리된 자료를 갖고 있어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확인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지를 고집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불신이 모두 저자의 책임은 아니다.출판사가 믿음을 주지 못하기에 그럴 것이다. 출판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니 인세를 미리 챙겨둬야 한다.출판사가 미심쩍으면 한 개인에 불과한 저자는 속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상호간에 신용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다.본래 저자와 출판사는 미묘한 긴장관계에 놓여있기 마련이지만 우리의 경우 신용부재로 인해 낭비되는 자원이 많다.책 한권으로 일확천금을 벌려는 우리 출판문화의 풍토가 아마도 불신의 벽을 두텁게 만드는지도 모른다.어디서부터 이를 고쳐야 할지 모르겠으나 일단 서로 믿음을 주자고 말하고 싶다.
  • 북입장 최대 배려… 사실상 무상 제공/대북 쌀지원 방식과 과제

    ◎장기저리… 무연탄·철광석으로 상환/「민족내부거래」 국제 인정여부 관심 남북 당국간 북경 쌀회담 타결이 임박함에 따라 대북 쌀지원 제공의 방식과 이에 따른 문제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남북 양측은 북한에 쌀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일단 외형적인 「유상 제공」에 잠정합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하지만 그 상환방식은 장기저리로,그것도 무연탄이나 철광석등과 바꿔받는 구상무역 형식에 합의했다. 형식은 「유상」이지만 이는 내용면에서 사실상의 무상제공을 뜻한다.결국 우리측이 민족적 차원에서 북한의 체면을 최대한 감안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측은 지난 91년 북한에 쌀 5천t을 제공할 때 이미 유사한 선례를 남겼다.당시 우리측 민간기업인 천지무역이 북한으로부터 시멘트와 무연탄을 받기로 했으나 북측이 이를 아직까지 보내지 않음으로써 쌀값 12억7천2백만원을 정부측이 남북협력기금으로 천지무역측에 보전해준 전례가 있는 것이다. 국가간 식량의 대량거래는 무상으로 원조하거나 특혜조건으로 양도할 경우에는 잉여농산물 처리에관한 국제적 규약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다만 유상으로 제공할 경우는 국제식량농업기구(FAO)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물론 유상으로 수출할 경우는 일반적인 재화나 용역의 거래와 동일하게 세계무역기구(WTO)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즉 국제시장가격보다 현저하게 낮거나 수출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는 경우에는 부당한 거래로 제소당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 91년 우리측이 북한에 쌀 5천t을 보낼 때도 미국의 도정협회가 시비를 걸어온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측은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공동체내의 내부거래로서 정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이다.나아가 향후 남북간 직교역의 확대에 대비해 이번 쌀공여문제를 남북간 민족내부교역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한 명분축적용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수송방식에선 우리측은 「주해로 종육로」를 희망하지만 북측이 원하는 대로 전량 해로수송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체제우월성을 일관되게 선전해온 북한으로선 남한쌀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가능하면 북한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겠다는 자세이고,우리측은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 차원에서 대국적으로 이를 양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문점을 통한 육로수송은 남북관계 개선을 향한 상징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전면 양보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우리측이 경수로 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하는데도 북측이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굳이 부인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북 대남정책 어찌될까/경수로 이은 변화… 한국위상 안정기미/“미·일과 관계 개선용” 일부선 신중론 북한의 대남정책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북한 대외정책의 기본전략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그리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다.미국을 발판으로 국제사회 무대에 「책임있는 일원」으로 등장,일본의 자본으로 경제 성장을 이뤄보자는 것이다.그 과정에서 남한 정부와의 관계는 배제하려 애쓰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지난 13일 콸라룸푸르에서 끝난 미북 준고위급회담에서 한국형경수로를 수용했으며,『남한 기술자의 방북에 대해 관여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곧이어 북경에서도 우리정부 당국자와의 「쌀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자,정부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경수로 사업을 담당해온 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이 서울을 거치지 않고는 워싱턴이나 도쿄로 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아무리 남한을 배제하려 애써도,남한의 승인이 없이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도,경수로 사업도,일본과의 국교정상화도,일본 쌀의 반입도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 굴복한 것이라고 그는 평가했다.이 당국자는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이 남한정부의 실체를 인정하고,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은 그에 따른 갖가지 실리적 반대급부도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술적인 변화』라고 북한의 최근 움직임을 분석했다.이 당국자는 『당초 북한이 당국자간의 쌀대화에 나왔을 때,일본쌀을 받기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회의가 들었으나,예상외로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면서 『쌀 지원이 이뤄지면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할만한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좀더 신중한 입장을 가진 당국자들도 있다.『북한이 남한을 완전히 배제한다는 정책에 약간의 변화가 왔지만,이는 어디까지나 미·일과의 관계개선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형식적 변화일 뿐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은 아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 당국자의 주장이다.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에 대한 또다른 시각은 전력이나 식량 사정이 워낙 어렵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일관된 전략이나 전술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좀더 냉혹한 분석이다.한 당국자는 『일본에서 30만t의 쌀을 가져간다고 해도 북한의 식량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면서 『남한에서 주는 쌀이라고 마다할 형편이 못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한의 경제력 비교/GNP 기준 남한이 17.8배 앞서/북 식량난 극심… 수요량 38% 부족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북한의 94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1.7%로,한국은행이 지난 90년부터 북한의 국민총생산(GNP)추정통계를 작성한 이래 5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했다. 한국은행은 19일 지난 해 북한의 경상GNP는 2백12억달러,1인당 GNP는 9백23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남한의 경상GNP는 3천7백69억달러로 북한의 17.8배,1인당 GNP는 8천4백83달러로 북한의 9.2배이다. 북한은 지난 90∼93년에도 각각 3.7%,5.2%,7.6%,4.3%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90∼94년의 경상GNP는 연도별로 2백31억달러,2백29억달러,2백11억달러,2백5억달러,2백12억달러이다. 90∼94년 사이에 남·북한의 경제력은 경상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한이 북한의 10.9배에서 17.8배로,1인당 GNP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5.5배에서 9.2배로 격차가 벌어졌다. 북한의 지난 해 무역규모는 수출 8억4천만달러,수입 12억7천만달러,합계 21억1천만달러이다.남한은 수출 9백60억1천만달러,수입 1천23억5천만달러,합계 1천9백83억6천만달러로 각각 북한의 1백14.3배와 80.6배,94배에 이르렀다. 지난해 북한의 쌀 등 곡물 생산은 전년보다 다소 증가하긴 했으나 전체 수요에는 크게 미달해 우리와 일본에 대한 쌀지원을 요청하게 됐다. 작년 북한의 쌀생산량은 93년보다 18.5% 늘어난 1벡50만ⓣ에 이르고 쌀을 포함한 전체 곡물생산량은 전년보다 6.2% 증가한 4백12만5천t을 기록했다.그러나 전체 수요량 6백70만t에는 38.4%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이에 따라 북한은 현재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북경회담­이모저모/남북 대표단 숙소 오가며 극비리 진행/북,25만t이상 요구… 막바지 진통 겪어/농림수산부 북에 보낼 쌀 도정준비 분주 ○…남북한 대표단의 북경 쌀회담은 19일 양측 대표단이 묵고 있는 샹그릴라호텔과 북경호텔을 오가면서 극비리에 진행. 전날 양측 대표단은 이틀동안의 회의결과를 종합하고 각기 서울과 평양의 훈령을 기다리는등 19일 회담을 위해 밤늦도록 대비하는 모습이었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석채 재정경재원 차관과 전금철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등 수석대표등의 주도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도 양측 대표단은 구체적인 인도방법과 절차를 논의하느라고 마라톤회의를 벌였다고 회담주위 관계자가 전언. 특히 북한측은 쌀의 인도물량에 대해계속 불만을 표시했으며 『북한은 우리가 부담할수 있는 최대규모인 25만t을 훨씬 능가한 엄청난 규모의 쌀을 요구,협상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회담장 주변인사가 지적. ○…황병태 주중대사도 지난18일 하오,북경특파원들에게 결과를 설명해 주겠다고 했던 것은 이날 중으로 결과가 나올수 있을것이라는 예상때문이었다며 변명하면서 막판 협상이 적잖은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암시.주중대사관측은 지난18일 상오 북경특파원들에게 이날 하오 결과를 설명해줄테니 참석하라고 통지했으나 7시간가량 기다리게 한뒤 『아직 회의가 진행중이어서 해줄 말이 없다』며 결과설명을 유보하기도. ○…농림수산부는 19일 북경에서의 남북한 차관급 쌀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5만t(34만7천섬)의 쌀을 우선 제공하기로 함에 따라 북한에 보낼 쌀의 도정·포장·국내 수송 등의 준비작업으로 분주한 모습. 농림수산부는 이날 상오 이상길 식량관리과장의 주재로 포장재를 발주하는 조달청 관계자,포장재 생산업체들로 구성된 폴리프로필렌(PP)공업협동조합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쌀 공급에 따른 우선 해결 과제인 포장재의 제조능력·표시방법·가격 등 포장재의 조달 문제를 집중 논의.
  • 2천여 업체 참여

    서울지하철 노조 등 이른바 「민주노총」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일부 대형사업장 노조들이 다음주 일제히 쟁의행위에 돌입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 하면 어떤 사업장에서는 노사화합을 다짐하는 결의가 잇따르고 있다. 전북도 공단 근로자와 사용자 대표등 1천여명은 15일 전북 전주시 덕진종합회관에서 「노사 한마음 갖기 결의대회」를 가졌다. 지난 달 27일 경기도 안산과 반월공단에 이어 열린 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냉혹한 경제전쟁의 파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사협력이 최우선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해 노사화합을 이룩하자고 결의했다. 진념 노동부장관과 조남조 전북지사,한국노총 전북지역본부 김종순 의장,전북경영자협회 최상렬 회장등은 노사가 한데 뭉쳐 「신바람 나는 직장」 「함께 사는 평생 일터」 「산업평화」를 이룩해 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지난 5월부터 시작된 노사화합 결의대회에는 전국 2천여개 업체에서 30만명의 근로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노사협력을 선언했다.
  • 에볼라 바이러스 “재앙 엄습”/논픽션·픽션 큰 화제

    ◎프레스턴 저 「위험지대」·로빈 쿡 저 「바이러스」 번역 출간/위험지대­89년 워싱턴근교 발생 실화 재구성/바이러스­역사·증세 정확히 묘사한 스릴러물 지난 3월말 아프리카 자이르에서 발생해 그동안 1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전세계에 공포를 몰고온 에볼라 바이러스.잠복기간이 길어야 10여일,치사율이 90%에 가까워 에이즈보다 훨씬 치명적인 이 괴질이 미국 한복판에서 발생해 전 문명세계로 번져나간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까. 지난 89년 워싱턴 근교 레스턴에서 에볼라가 발생,미 방역당국이 초비상에 걸렸던 사태의 전모를 밝힌 책 「위험지대」(원제 The Hot Zone)가 최근 국내에서 번역,출간됐다(영림카디널 펴냄). 「위험지대」는 19 80년 아프리카 케냐에서 시작된다.중년의 프랑스 남자가 산에 놀러갔다 온 며칠 뒤 고열과 두통에 시달리다 병원 응급실에서 숨진다.그를 치료한 의사도 곧이어 같은 증세로 쓰러진다.이밖에 수단·자이르등 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출현,인명피해를 내고는 갑작스레 사라진다. 89년 가을 레스턴 원숭이검역소에서 원숭이들이 이름모를 병으로 죽어간다.조사 결과 원숭이들이 에볼라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지자 방역당국은 경악한다.이전에도 에볼라가 원숭이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됐기 때문.더욱이 에볼라는 혈액이나 체액이 상처를 통해 전염되는 것으로만 알려졌는데 이 경우는 감기처럼 공기를 통해 전파된 것으로 드러난다.독감이 며칠만에 전세계에 퍼지듯 만약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도 그처럼 손쉽게 퍼진다면 인류는 멸망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미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발표하지 않은채 세균전 특수부대를 투입해 검역소에 남아 있는 원숭이 4백50여 마리를 한꺼번에 「제거」하는 작전에 들어간다.작전은 무사히 끝나고 다행히 원숭이들과 접촉한 사람들도 감염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문명세계에 알려진 19 67년부터 93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다룬 이 실화는 에볼라에 관해 밝혀진 모든 것을 수록했으며 『소설보다 훨씬 무서운 이야기』라는 평을 들었다.지은이인 프리랜서 기자 리처드 프레스턴은 「에볼라 사태」를 냉혹한 필치로,현미경을 들여다 보듯 자세하게 보여줬다.그는 아직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에볼라는 『자연 생태계를 위협하는 인간사회의 확장에 대한 자연의 거부반응』이라고 지적하고 『그 바이러스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경고로 책을 끝맺는다. 이 책은 미국에서 지난해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 지금까지 8개월째 머물러 있으며 일본에서도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한편 에볼라 바이러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지난해 출간된 로빈 쿡의 소설 「바이러스」(열림원)도 새삼 인기를 끌고 있다.이 의학 스릴러소설은 지난해 6월 출간돼 그동안 20여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요즘도 5백여부씩 나간다는 것.의사인 지은이는 에볼라의 발생 역사와 증세,특성등을 소설속에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읽는 재미 못잖게 에볼라에 대한 지식을 전해준다.더욱이 소설이 처음 나온 87년에 로빈 쿡이 이미 에볼라의 무서움을 간파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는 평이다.
  •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이세기의 인물탐구:74)

    ◎독주회·협연 한해 15회꼴… 쉬지않는 연주자/9세때 이대실내악단 연주에 매료 입문/“남다른 정열·힘있는 음악” 평… 고정땐 많아/소중한 악기 「과다니니」 제자에게 흔쾌히 빌려주기도 사랑을 하게 되거나 혹은 참혹한 현실에 부딪칠때 사람은 울부짖거나 통곡하거나 희열과 유열에 몸부림치게 된다.니체는 이런 종류의 광기를 「디오니소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술가가 만약 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몰입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가.『디오니소스적 광기에 도취하여 자기라는 이성과 관습과 틀과 형식을 박차고 훨훨 창공을 날아오르는 이가 바로 김남윤』이다.이는 지휘자 김만복씨의 말이다.그는 과연 고뇌와 좌절의 여러 파란을 지나 참으로 조용히 예술의 정점을 응시하려는 예술가다.더 더욱 최근들어 영감에 가득찬 흐르는 듯한 연주는 「모든 음악에는 컬러가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시게티의 방식을 실천시킨다.특히 그가 들려주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은 절후의 명작다운 심오한 감정과 고고한 기품,바흐의 풍부한 환상을 유연한 선율로 이끌어낸다.경쾌한 쿠랑트(주)와 장중한 폴리포니(복음락),저음테마와 고음이 교차되는 5악장 샤콘은 마치 「꽃잎이 피어나는 넋의 개화」로 평받고 있다.그는 과연 음악을 캐내기 위해 까마득한 터널을 달려가는 고독한 자의 비애와 고뇌를 절창으로 성취해 낸 것이다. ○악보에 생명력 불어넣어 「그의 레퍼토리는 모든 작곡가를 두루 꿰고 있지만 악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음악을 살아 숨쉬게 하는 매력이 특징이다.특히 그의 모차르트는 이따금 너무나 격정적이며 비브라토의 처절성이 모차르트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해도 그의 백열하는 열정 때문에 청중은 온통 열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유신씨는 평한바 있다. 김남윤의 연주회에 가보면 당장 느낄수 있는 것이 그에겐 고정팬이 확보돼 있다는 점이다.그러니까 알만한 사람들이 인사치레로 온다든가 학교 인맥등으로 동원된 관객과는 전혀 그 유가 다르다.그의 미국 매니저인 테어 디스페커는 일반관객이 김남윤의 연주회 입장권을 구매하는 것을 여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다.예를 들어지난 85년 일본 도쿄의 사보회관과 무사시노 문화시민회관 독주회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자 도쿄 인터내셔널 뮤직코퍼레이션은 다음해 앙코르연주를 요청해왔고 이미 정해진 스케줄로 인해 2년후로 계약을 미룬 일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는 78년 미국서 귀국후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독주회를 여는가하면 실내악과 오케스트라 협연등 연평균 15회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연주가로 유명하다.그래서 국내의 비중있는 평론가인 유신 이상만 서우석 한상우들로부터 「그해의 음악인」으로거듭 선정되는등 음악과 관련된 모든 상을 혼자서 휩쓸다시피 했다. 그는 부친 김희룡씨와 음악을 좋아하는 정경선 여사 사이의 2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은행지점장이던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주 대전등지에서 유아기를 보냈고 처음은 피아노를 치다가 9살되던해 이대 실내악단의 순회연주를 보고 섬세한 선율에 이끌려 바이올린으로 악기를 바꿨다.바이올린을 시작한지 3년만에 이화·경향음악 콩쿠르 특상,이화여중 3학년때 동아음악콩쿠르 1등에 입상하면서 스승과 부모의 기대를 받으며 그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순탄한 음악의 길을 걸어왔다. 줄리아드 음악원시절에는 김영욱 정경화를 길러낸 저명한 이반 갈라미언교수를 사사,또하나의 스승인 펠릭스 갈리미어교수는 「남윤의 남다른 정열과 힘있는 음악」을 유독 편애하여 그가 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자 줄리아드 오케스트라의 솔리스트로 발탁했었다.이후 정상의 연주가,서울대 교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는 방학이면 미국의 지도교수들에게 자신의 음악의 진취를 확인하는데 게으르지 않았다. 따라서 그는 한시도 쉬지않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연주회에 가고 친구들을 만난다.실제로 연습이나 강의가 없을땐 그의 손에는 라디게나 랭보나 이문열이 들려있다.원만한 대인관계로 폭넓게 사람들을 사귀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종합예술학교 음악원장인 이경숙과의 그림자같은 우정은 음악계에서 널리 부러움을 사고 있다.일상생활에서는 학생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즐기고 아끼는 제자가 연주를 앞두고 악기 때문에 걱정하면 자신의 소중한 과다니니를 선뜻빌려주기도 한다. ○요즘도 새벽녘에 연습 요즘도 연주 교섭이 들어오면 아무리 스케줄이 빡빡해도 일단 「하겠다」고 승낙해 버린다.이를테면 자선음악회는 자선음악이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으며 지방연주는 지방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는 식이다.유학시절에는 1시간의 독주회를 위해 1년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의 연습을 지켰고 요즘은 새벽 1시이후 2∼3시간씩 바이올린을 잡는다. 그로선 빗발치는 박수갈채와 타인들의 시선속에서 어텐션을 받는 입장이다.사람들은 곧잘 그를 향해 「액티브하다」느니 또는 「슈퍼 우먼」으로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아마도 그의 음악성이 「강하고 적극적이며 곡전체를 장악하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간혹 엉뚱한 오해와 매도의 그물에 걸려 깊은 상처를 받는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의 언어의 자유와 판단에 맡길뿐 「시간의 해결」을 믿고 동요하지 않는다.강한 정신력과 책임감,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념이 강인한 음악인으로 자신을 완성시켰고 그래서 정상에 우뚝 선 자의 자랑스러움이나 오만이 한낱 부질없음을 터득한바 오래다.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소녀처럼 들뜬 모습이지만 그와 오래 사귄 사람은 그의 내면 깊숙이 감춰진 실낱같은 섬세함을 알고 있다.실제로 이런 면은 연주에서도 자주 노출되어 악보의 한소절에도 한치 소홀함이 없다.각 소절이 갖는 의미와 정감을 세밀하게 따져본 다음 자신이 느낀 것을 청중이 그대로 느낄수 있도록 농현(농현)의 현란을 멈출줄 모른다. 『세상물정 모르던 어린시절엔 어머니가 시켜서 음악을 공부했고 음악을 하다보니 걷잡을 수 없이 음악에 빠져들었으며 이제는 「운명」처럼 음악없인 한시도 살수 없을 것이다.음악은 나의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나 자신이 음악자체라해도 과언일 수 없다』고 말할수 있게 되었다. ○“세속의 희열 초월” 극찬 그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어릴때부터 끝없이 그의 음악을 뒷바라지해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딸의 연주회장에 모습을 나타내는 80노모와 외아들(윤주영·17·미국유학중)과 함께 음악 못지않게 사랑과 정성으로 가족을 지키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여전히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늦추지 않아 올 상반기에 벌써 「이야기와 영상음악」청소년소녀 교향악단등 3차례의 연주,오는 6월4일 예술의 전당 독주회를 비롯,8차례의 연주 스케줄을 잡아놓고 있다. 언젠가 뉴욕타임스가 평했듯이 「그의 음악은 일체의 세속의 희열을 초월하여 자신의 생애를 보석타래로 엮어내듯」 악절마다에서 향기로운 화현마저 흘러나온다.더이상 정열에 넘치거나 솟구치는 법없이 캄캄한 어둠을 뚫고 흐르는 지하수처럼 방울방울 맺힌 영롱한 리듬은 듣는 이의 가슴속에 진한 각성을 던진다. 그가 친애해 마지않는 모차르트는 더 더욱 눈부시고 베토벤 프랑크는 장엄미가 두드러지면서 「시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이듯이 그의 음악은 「음악자체로서 존재하는 언어」로서 날이 갈수록 성숙한 차원을 성립하고 있다.이제 그는 멀고 긴 아득한 터널을 지나 햇빛 찬란한 푸른 벌판에 나선듯 예술가로서의 최상의 절정기를 지금 맞고 있는 그 순간이다. □연보 ▲1949년 전주 출생 ▲59년 이화·경향콩쿠르 특상,백운창 김용윤 양해엽 사사 ▲64년 동아음악콩쿠르 1등 ▲67년 서울예고 졸업,미 줄리아드 음악원 입학 ▲69년 워싱컨 메리워더 포스트 컴피티션 입상 ▲70년 워싱턴 내쇼널심포니 오케스트라협연 데뷔 ▲71년 줄리아드 차이코프스키 콘체르토 컴피티션 우승,줄리아드 오케스트라 협연 ▲72년 LA 영뮤지션스 파운데이션 컴피티션 캐리어그란트상 ▲73년 허드슨밸리 영아티스트·스위스 티보바가 국제음악콩쿠르 1등 ▲77년 줄리아드음악원 졸업 ▲78년 귀국,제1회 독주회(서울시민회관)이후 해마다 독주회,경희대 음대조교수 ▲80년대 싱가포르 심포너 오케스트라,자그레브방송 교향악단 협연 ▲82년 서울대 음대교수 ▲83년 서울쳄버 오케스트라 창단 ▲85년 일본 독주회 ▲미국 시카고및 뉴욕 독주회,테어디스페커 매니지먼트사 소속계약,전주및 지방 6개도시 순회연주 ▲87년 미국 독주회(카네기홀) ▲90년 제1회 대만 국제콩쿠르및 싱가포르 롤렉스콩쿠르 심사위원 ▲92년 미국 보드윈 서머페스티벌 객원교수,도쿄 국제콩쿠르 심사위원,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 라카르도 사이)협연 ▲93년 상트 페테르부르크(구 레닌그라드)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알렉산더 드미트리예프)협연 ▲94년 상하이 필하모니 오케스트라 협연(서울·중국) 등 5백여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한국음악페클럽상 난파음악상 올해의 음악가상 월간음악상 채동선 음악상 한국음악평론가상 예음상
  • 스승의 날에 생각한다(사설)

    스승의 날이다.육신은 어버이에게서 받았지만 정신은 그분들에 의해 길러진 소중한 분들.참 스승 한분은 수백 수천의 제자를 사람되게 기른다.스승 한분을 잘 만나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그래서 스승은 성직에 비유된다. 우리는 본디부터 스승을 부모만큼 공경하는 것을 도리로 여겨왔다.정신적인 피폐가 깊어진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많이 잘못되고 있어서 한탄스럽다.그것은 제자들이나 사회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스승의 품격이 타락한 것과도 관계가 있다.존경받기 충분한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탓도 있는 것이다. 서로가 그렇게 되어버린 사회의 황량함이 한스럽다.그래서 잘못 자란 젊은이가 부모를 죽이는 천륜없는 세상,직업이 선생님인 사람이 패륜을 저지르는 세상,맡은 일을 대강대강 부실하게 해서 사회가 정신없이 구멍 뚫리게 만든 세상이 되었다.물론 스승들의 잘못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이제부터는 좀 더 잘 가르쳐서 그런 세상을 바르게 바꿔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스승들의 노여움을 우리는 안다.생계를 마음놓을수 있을만한 처우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번영하는 사회에서 소외될 만큼 격차가 벌어져 한사람의 시민으로 사는 최소한의 품위도 유지시켜 주지 못하는 세상이면서,번번이 책임을 추궁당하는 일을 부당해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사회가 스승에게 그렇게 가혹한 것은 사회가 스승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좌다.그렇게 소중한 스승들이므로 국력에 어울리는 수준만큼 처우하는 일을 계속 노력도 하고 있다.언젠가는 이룰 것이다. 한편 「이른바 성직」인 스승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이 보통의 시정인처럼 부와 세력에 연연하는 것은 곤란하다.세속의 기름짐에는 다소 못하더라도 어느 삶보다 값진 삶을 선택한 스승들에게 우리는 경의를 표한다.할일 많은 우리 앞날을 위해 사람농사의 성스런 일에 정성을 다해주기를 당부한다.
  • 대입 응시기회 늘리고 선발 자율권 강화/대학 「가을 입학제」 검토

    ◎「속진제 졸업생」 수용가능/교육부/“학년초 제한” 관계법령 개정 추진 교육부는 1∼2월에 시험을 치고 3월에 입학하는 현행 대학입학시험 제도를 고쳐 9월에도 신입생을 받는 가을입학제의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이는 입학시기를 다양화함으로써 신입생 선발에 있어 대학의 자율권을 보다 강화하고 수험생들의 응시기회를 늘려주기 위한 것이다. 교육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4일 『정부의 대학 자율화정책이 추진돼 학생선발권등 입시행정이 대학의 자율에 맡겨지게 되면 법령을 개정해 9월입시등 대학의 입학시기를 다양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도 『가을입학제도등의 실시와 관련된 법률의 검토작업을 이미 마쳤다』고 밝히고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을 고려하면 1∼2년 안에 당장 시행하기는 어렵겠지만 충분한 검토를 거쳐 중장기과제로 이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이에 따라 대학생의 입학시기를 학년초로 제한하고 있는 관계 법령을 개정,학년도중에도 입학이 가능하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교육법시행령 제72조는 대학의 입학시기에 대해 「학년초로부터 30일 이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을 고쳐 가을입학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수험생의 응시기회를 늘려주는 것은 물론 재수생의 부담을 그만큼 덜어주고 속진제의 시행으로 9월 직전에 졸업하는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교육부 관계자의 분석이다. 다만 가을입학제는 입학전형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수학능력시험을 1년에 2차례이상 치거나 대학에 입시 자율권을 주어 내신성적등 만으로 대학이 스스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른다. 김숙희 전교육부장관은 이와 관련,수학능력시험등 대학입학시험의 날짜가 혹한기로 정해져 수험생들의 불편이 크므로 시험시기를 3월이나 9월로 하는 방안과 수능시험을 1년에 2차례 이상 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었다.
  • 대구시민을 생각하며(송정숙 칼럼)

    대구참사는 우리로 하여금 만사를 포기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그동안 그토록 빈번했던 어처구니 없는 대형사고들이 우리를 이미 정신적 탈진상태로 만들었고 거기에 다시한번 일격을 더했으니 절망감이 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위로의 말도 수습의욕도 찾아지지 않는 그 무력감에서 그래도 우리를 소생시킨 것은 다름아닌 대구시민이었다.그들의 그 아름다운 인정이었다. 자기 위험을 돌보지않고 현장에 뛰어들어 한목숨이라도 더 구하려다가 실신도 하고,벌겋게 피를 뒤집어쓰며 정신없이 생명을 구하고도 힘이 못미쳐 잃어진 목숨들을 안타까워 하는 그들.날밤을 새우며 구조반을 거들고 그 뒷바라지로 24시간을 매달린 어머니들과 한방울의 피라도 나누어보겠다고 길고 긴 줄을 서 있는 어른과 아이들.맥이 빠져 세상이 싫어지는 우리에게 그들은 구원이었다. 그중에서도 참혹하게 제자들을 잃은 시인교사가 절규처럼 한 말은 우리의 정수리를 때린 망치였다.참사로 희생된 동료교사에게 함께 저승길을 가게될 「우리 아이들」을 맡기노라 당부하며『이런 말이라도 하지않고는 누군가를 저주하게 될 것같아 환장하겠다』던 한마디.그건 우리심장을 하비는 송곳이었다.그런 그는 영정을 만들기 위해 병광이와 민철이와 석술이의 사진을 교무수첩에서 찢어내면서 『너희들은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용서해주도록 하라』고도 당부했다.대구시민인 그 「선생님」의 이 말을 우리는 멍에 삼아 등에 짊어지게 되었다. 침이라도 탁 뱉듯이 『이눔으 세상 나사가 빠져버렸다』고 힐난하며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말이 우리에게는 너무 흔해졌는데,누군가에게 구정물처럼 핑계를 한바가지 안겨주고 목청껏 비난이나 하는 말만 너무 많아졌는데,용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사형을 시켜버려야 할 공직자의 책임을 허옇게 열거하는 일로 카타르시스를 하는 듯한 말도 넘치게 들었는데 『누군가를 저주라도 하게 될 것같아 환장할 것같은 마음』을 참아가며 죄지은 이들을 사랑으로 용서하도록 가르치는 대구「선생님」말은 그런 말이 아니다.우리는 평생동안 그 말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대구시민을 안다.속속들이 다알지는 못해도 역사의 길목길목에서 대구 사람들이 보여준 결의를 알고 정의감을 알고 울분을 알고 그 인정을 안다.의때문에 분노하지만 긍정적인 결론을 내릴줄도 아는 성숙한 아량을 우리는 믿는다.그런 대구의 희생자들이므로 돌아오지못할 저승길을 떠나며「선생님」의 당부대로 「저주」대신 「사랑의 용서」를 선택했으리라는 것을 또한 믿는다. 이 대구시민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길은,우리 사회가 더는 이렇게 흘게빠진 채로 살지 않는 것임도 우리는 절감한다.높은 목소리로 일회성의 가혹한 비난이나 외치고 마는 일의 반복이 얼마나 의미없는 일인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비난과 비웃음은 까딱하면 적개심과 불화만을 확대시킨다.지구촌에는 불화 때문에 피비린내나는 내전을 하느라고 민족을 기아와 질병으로 피골이 상접한채 지옥속에 빠져버리게 한 나라도 숱하다.민족간의 갈등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않아 피폐의 늪에 빠진 민족도 얼마든지 있다.불화와 적개심은 증오와 갈등의 근원이 된다. 불화와 갈등은 승화시키고 잘못에 대해서는 가혹하게 따지고 집요하게 추궁하여 누구도 책임에서 회피하지 못하고 모든 빚은 다 갚아야 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그러기 위해 바로 「내가」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톺아보는 일이 우리에게는 시급하다.지속적으로,꼼짝못하게 타당한 이유를 가지고 법을 지키며 꾀피우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는 시민에게는 공직자도 사회지도층도 겁을 먹는다. 이런 모든 교훈을 대구시민에게서 우리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그들이 스스로 비극을 딛고 일어나 늠름한 기상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대구는 여러번 그러했으니까.그것이 우리 모두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수범이 될 것이다.우리는 대구를 사랑한다.대구를 형제로 둔 우리 모두는 서로를 사랑할 것이다.
  • 해외취업/비 노동자/총 3백50만명… 연 26억달러 벌이

    ◎“최대 외화박스” 조국선 영웅대접/연 70만명 출국… 현지 마찰 빈번 필리핀에서 해외취업 노동자들은 영웅대접을 받는다. 고향에 남아있는 가족은 물론 국가경제에 혈액과 다름없는 귀중한 외화를 송금하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들은 장기간 해외체류로 가정붕괴와 함께 열악한 근로조건속에 학대를 당하는 이중고를 감내해야만 한다. 국내에 있어봐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수백만명의 필리핀인들은 전세계로 퍼져나간다.공식통계로는 건설노동자로 주로 취업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1백30만명이 진출한 것을 비롯,3백50만명의 필리핀인이 해외에 취업한 상태다.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이보다 약 1백만명이 많은 4백50만명 선으로 추산된다.이는 필리핀 인구 6천5백만명의 약 7%에 해당한다. 필리핀의 인력송출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정부의 작품이다.지난 74년 마르코스 정부는 파산지경에 이른 경제를 회생시켜 실업자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인력수출에 손을 댔다.그러나 20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오히려 외국으로 떠나는 필리핀인은 점차 늘어 84년 연간 35만명 수준이던 해외취업자는 10년만에 근 두배로 늘어나 70여만명을 넘어섰다.하지만 마닐라의 여성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14.30달러에 불과한 반면 월 5백달러를 버는 홍콩 가정부로 취업한 필리핀 여성과의 임금격차는 필리핀인의 해외진출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이주 노동자는 필리핀의 경제가 처한 딜레마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외화부족에 허덕이는 필리핀에 있어 해외 취업 노동자는 최대의 외화원천이다.은행등 공식적인 통로를 거친 외화송금은 지난해 26억달러를 조금 넘었다.1년전보다 29%나 늘어난 것이지만 민간금융기관등 다른 채널을 통해 유입된 돈을 합치면 60억달러는 쉽게 넘어설 것이라고 일부 경제학자들은 단언한다.요컨대 이주노동자들이 「쇠락한」 필리핀 경제를 떠받치는 주춧돌로 불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해외에 송출된 인력중에는 필리핀이 한국등 아시아의 호랑이 반열에 올라서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필리핀이 당면한 딜레마다.홍콩과 싱가포르에 가정부로 취업한 상당수가 대졸의 고학력자라는 사실은 필리핀이 처한 암울한 단면이다.이웃 동남아 국가에서 매니저로,아니면 미국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필리핀인들을 흡수하기엔 본국의 경제토양은 너무나도 척박하다. 93년도에 해외취업자중 전문직(2.7%),의료직(3.8%),매니저(0.1%)등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낮지만 이들은 필리핀에선 금싸라기처럼 귀중한 인력이다.하지만 이들은 살인적이고 부당한 근로조건에 시달리는 「현대판 노예」로 취급된다. 해외취업자의 60%를 흡수한 사우디아라비아에선 계약위반,근로시간 위반등 가혹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다 못해 도주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필리핀 여성들은 일부 지역에서 성폭행과 매춘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이같은 국민적 자긍심의 추락앞에도 필리핀 정부는 「영웅」들에겐 든든한 버팀대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가정부로 일하다 이중살인혐의로 기소된 콘템플라시온 여인을 싱가포르 정부가 교수형에 처하자 비로소 해외취업 정책에 손을 쓰기 시작했을 뿐이다. 하지만 수많은 필리핀인들에게 해외 취업은 여전히 「꿈」으로 남아있다.저임금이 무임금보다 좋다는 생각이 장차 감내해야할 희생과 상존하는 위험의 벽을 뛰어넘게 하는 것이다.가족의 재상봉을 위해서는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일자리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 음주운전 처벌(외언내언)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엘살바도르가 세계에서 가장 엄하다.적발되면 총살당한다.불가리아에서는 초범은 훈방하지만 재범은 교수형에 처한다.이들 두나라의 경우 지나치게 가혹해 보이지만 음주운전을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터키의 처벌은 좀 특이하다.음주운전자를 적발하면 순찰차에 싣고 집에서 30㎞떨어진 외딴곳에 내려놓은 뒤 집까지 걸어가게 한다.3시간 남짓 걸어가는 동안 경찰관이 뒤따르며 계속 잔소리와 훈계를 해댄다.그뒤 구속된다.이처럼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처벌이 「신체형」인데 비해 선진국에는 벌금을 무겁게 매기는 「금전형」이 훨씬 많은 편이다. 핀란드는 한달 월급을 몽땅 벌금으로 뺏어간다.스웨덴에선 연간 총수입의 10분의1을 바쳐야 한다.프랑스에서 단속에 걸리면 30만프랑(약2천8백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면허취소까지 당해 패가망신하게 된다.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처벌규정은 너무 관대하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한달동안 음주운전을 단속한 결과 지난해 같은기간의 1천7백57건보다 65.4%나 늘어난 2천9백6건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음주운전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것도 걱정이지만 적발된 음주운전자중 20∼30대의 청년층이 71%나 된다는 것,그리고 여성음주운전이 지난해보다 3배나 급증했다는 사실은 우리사회의 음주운전이 얼마나 위험한 수준에 놓여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는 음주운전에 대한 죄의식이 거의 없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술을 마시고 운전석에 앉는 것 자체가 사고여부에 관계없이 범죄행위이며 가혹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음주운전을 너그럽게 봐준다는 것은 「달리는 흉기」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 청소년 컴퓨터게임의 역기능/유병희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위원

    더 늦기전에 우리 청소년들의 손 끝에서 조작되는 컴퓨터 게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컴맹 부모를 제쳐놓고 아이들은 가정에서 마음껏 엄청난 폭력게임과 제한없는 선정적 영상물을 접하게 되고 거침없이 진한 대화도 나눌수 있게 됐다.폭력물만 해도 기존의 것과는 달리 이유없이 연속 살인을 할뿐만 아니라 그 잔인성은 상상을 초월한다.또한 영화나 비디오와 같이 일방향성이 아닌 쌍방향성(Interactive)인 대화형은 컴퓨터와 대화가 가능하며 그 내용은 학습일수도 있고 긴요한 정보교환일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서 조심스럽게 우려하는 것은 극히 폭력적이거나 음란한 내용물이다. 얼마전 심의에 상정되어 수정 요구되었던 대화형중에는 수십가지의 대화내용이 문제된바 있는데 예를 들면 『남녀간의 만남은 뭐라 생각하세요』라는 말에 많은 선택가능한 답변중 『당연히 섹스지,그것 빼고 뭐 할것 있어?』라든가,『당신은 어디에서 성적충동을 느끼세요?』에 대해서는 『러브호텔,오 예』또 『당신은 운동을 좋아하세요?』에 대한 답변중 『XX는 스포츠지,나랑같이 XX할거야』등 기술하기도 어려운 내용이 집요하게 나타나고 결국 대화 상대의 취향에 맞는 방향으로 유도해주는 게임이 된다. 그뿐 아니라 게임을 통해 여인의 옷을 벗기는 경우도 그렇다.비키니 수영복까지만을 최종점으로 보는 시기는 지났고 그이상을 푸는 열쇠가 어느날 갑자기 각종 통신망에 침입할수 있는 정체불명의 해독판 또는 별도로 거래 될수 있는 암호판에 의해 제공돼 나신의 동작까지도 진행시킬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유형의 게임도 역시 어른들의 눈에 얼마든지 띄지 않을수 있는 것이다.왜냐하면 키보드의 순간 조작으로 그 내용은 소멸되고 본인 이외에는 다시 불러낼수도 없기 때문이다.이래서 평소 어른들에게 잘 노출되는 비디오테이프와는 다른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PC의 태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여년전의 일.과학 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순기능은 잘 알면서도 레저문화에서의 역기능은 간과하기 쉬운 일이다.거기다 이분야의 발전과 그 변화는 이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나 전문가들까지도 당혹할 정도로 빠른 가속을 보이고 있으니 일반사람들이야 더욱 그 정도를 헤아릴 수가 없게 된다.새 영상물을 대표하는 CD­ROM,CD­I 그리고 ROM­PACK 등 다양한 매체들이 일본 미국 대만등에서 청소년을 겨냥,양산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대기업이나 중소업체에서 상당한 양이 생산되어 유통되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도 소개된 가상현실(VirtualReality)이라고 하는 방법을 이용하면 기계의 조작에 따라 가상속의 인물과의 접촉을 느낄 수 있으며 최근에 나오는 게임중에는 우리가 보는 영화를 게임으로 만들어 줄거리를 사용자의 의도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전개할 수도 있어 선정적인 방향으로나 폭력적인 방향 아니면 경우에 따라서는 염세적인 귀결로까지 유도할 수 있다고 볼때 그 내용에 따라서는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심리적 장애를 안겨줄 수도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청소년문화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중학 2년부터 고교 2년까지의 학생 9백12명중 55.2%가 컴퓨터를 소지하고 이중 52.7%가 음란디스켓을 소유했다고 답했고 또 같은 시기에 형사정책연구소의 조사를 보면 표본으로 추출된 중고생 1천3백34명중 53.0%가 음란컴퓨터 프로그램을 접했다고 하니 그 심각성은 크지 않을 수 없다.특히 폭력적이고 잔혹한 내용의 디스켓을 소지한 학생들은 그 자극적 흥미로 미루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러한 새영상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유럽 여러나라 그리고 일본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국제적 공동 노력도 이루어지고 있다.첨단정보매체의 변화와 발전에 맞추어 심의나 규제도 강화해나갈 추세인 것이다.지난해 3월 모나코에서 개최된 국제 94Arena에서 첨단영상물에 의한 폭력과 섹스의 심의와 규제문제가 심도있게 다루어진 사실로도 그 심각성을 입증해 준다. 공연윤리위원회에서는 지난해부터 새영상물 심의를 시작했다.뒤늦은 감은 있으나 다행한 일이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그저 음반 및 비디오 물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도록 되어있을 뿐이어서 새영상물에 관한 법적 근거를 조속히 마련해야 할것이다.새영상물의 심의도 그 매체의 특성으로 인해 어려움이 많다.즉 타이틀에 따라서는 한종류의 게임을 쉬지않고 풀어보기 위해서는 짧게는 2시간,길게는 2주이상 계속되는 것이 있어 공윤심의과정에서 해결되어야할 문제가 많으나 역시 선진국의 경우처럼 사회적 책임을 절감하고 제작업자나 수입업자들의 자율적인 냉철한 검토와 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모든 문화산업분야가 그렇듯 발전과 변화의 속도가 빠른 관계로 일반 가정에서나 그리고 학교에서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통해 무엇을 접하고 있는지 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지 거의 방임상태가 아닌가 우려된다.그저 아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학습이나 아니면 단순한 오락을 위한 것으로 알고 있기가 쉽기 때문이다.더 늦기전에 가정에서는 부모들이 컴퓨터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추어야 하며 하루속히 「컴맹」에서 탈출해야 한다.또한 학교에서도 첨단 매체문화를 선별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커리큘럼을 개설해야 할 때라고 생각된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세대를 책임질 우리청소년들의 인성발달과정에서 컴퓨터 게임이 끼칠 역기능도 사회교육적 차원에서 신중히 검토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많은 어린학생들이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컴퓨터와 함께 있는 편이 훨씬 좋다고 답했다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부모나 학교 그리고 사회가 해야할 적절한 대응책이 무엇인가를 알게될 것이다. 이제 청소년들이 가장 위험하고 해로운 문화를 제공받는 장소가 극장이나 길거리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으로 열을 올릴 수 있는 바로 우리들의 가정안이라는 것을 되풀이 강조하고 싶다.
  • 업체마다 “네탓”/박찬구 사회부기자(현장)

    ◎「대구참사」 책임불감증 재확인 『어쩌다 보니 재수없이 걸려 들었다.단시간의 가스누출로 그같은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을 리 없다』 1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도시가스 폭발사고와 관련,1일 새벽 표준개발대표등 5명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등 혐의로 전격 구속됐지만 여전히 스스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업체나 인물은 없다. 날이 갈수록 직접·간접으로 관련된 업체와 관계자들의 볼멘 목소리만 더욱 거세질 뿐이다. 『파손된 빗물관으로 가스가 흘러들었을 리가 없다.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다』『우린 아무 책임도 없다.지반작업을 담당한 건설회사가 잘못한 것이다』 현란한 변명만 난무하고 있다.한결같이 남의 잘못만 열거하는데 열을 올린다. 결백을 주장하는 업체의 일부 관계자 모습은 비정하다 못해 당당하다. 수사관계자들 조차 대구시민과 국민들 보기에 민망하다고 입을 모은다. 사건직후 『사건을 무조건 확대하지 않고 원인 제공에 따른 명확한 책임 추궁의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수사」를 강조했던 수사본부도당혹한 빛이 역력하다. 한 관계자는 『훼리호 침몰사고,성수대교 붕괴사고,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등 대형 인재때면 한치도 어긋나지 않는 「복사판」을 보는 듯하다』고 말했다.또 다른 한 수사관은 『전문가라고 큰소리치는 업체 관련자들의 「떵떵거리는 항변」 때문에 객관적이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밝히기가 힘들 정도』라고 고백했다. 『몇몇 사람이 구속되는 것으로 수사는 마무리되고 이제 선거 정국으로 돌아서겠지』­사건 결말의 종착점을 예견하는 대구 시민들의 자조섞인 목소리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됐죠』 한탄섞인 푸념도 여기 저기에서 들린다.한 시민은 『대형사고 때마다 국민 감정과 실정법 사이의 괴리를 목격하게 되지만 이럴 수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기자의 취재수첩마저 눈물로 물들게한 상황속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 책임 불감증은 이번 비극보다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다.
  • 르완다비극의 배경은 식민통치(해외사설)

    르완다도 지금처럼 비극적으로 살지 않았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후투족과 투치족은 지난 30년간 부족간의 반목과 외세의 인위적인 조종 결과로 추잡스런 난민 수용소등에서 서로 죽이는 「인종청소」의 대학살을 반복해 왔지만 그 전에는 목가적이진 않더라도 마을단위로 행복하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그것은 아마도 한세기 이전의 시대로 독일인들이 이곳에 상륙하기 이전의 일이다. 르완다와 부룬디는 1897년부터 1919년까지는 독일의 동부아프리카 식민지의 일부였고 1차대전이후는 벨기에에 이양됐으며 그후 국제연맹을 거쳐 국제연합의 신탁통치를 받아왔다.중요한 것은 금세기 초부터 어떤 세력이 이곳을 통치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문제는 유럽의 국가들이 이곳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인위적으로 귀족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이다.즉 소수 인종인 투치족을 두드러지게 선호한 반면 다수족인 후투족은 피지배계급으로 삼았던 것이다. 벨기에가 르완다에 준 것이라고는 소수 투치족을 특권지배계급으로 하고 다수 후투족은 못배우고 빈곤한 상태로 내버려둔인종차별의 가혹한 계급체계라는 카드뿐이었다.이같은 체계는 한쪽이 다른 쪽을 살해하는데 쓰인다.한세기가 넘는 동안 지속된 식민지 착취와 무관심은 오늘날 르완다가 겪는 참담한 상황을 낳은 원인이 됐다. 르완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못할 짓을 해왔다.후투족은 수백·수천명이 소수 투치족에게 칼을 휘두르고 총격을 가하고 돌을 던져왔다.한 후투인은 한번에 9백여명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또 수백명의 후투인들도 투치족이 휘두른 총·칼에 죽었다.이같은 유혈분쟁의 기저에는 외세가 오랜 동안 통치해온데서 기인한 두인종간의 경쟁심이 놓여있다. 지금 르완다는 아제르바이잔이나 보스니아·남부수단·터키와 쿠르드족등의 상태와 같이 돼가고 있다.서방세계는 이들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지켜보고 있으며 화해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을 놓고 양손을 부여잡고 해결책을 짜내고 있다.그러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비극이 벌어질 때 유엔은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 대형사고의 단절을 위해/그 누구도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사설)

    「잔인한 4월」은 또한번 슬프고 두렵고 절망스런 사고를 안겨주고 물러갔다.대구지하철공사장사고는 그 소중한 어린 생명들을 한꺼번에 앗아간 슬픔을,사람이 저지르는 하찮은 실수가 이렇게 커다란 위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의 두려움을,집요할 만큼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대형사고의 절망을 또 한번 경험시켰다. ○동일사고 되풀이의 절망감 예측할 수 없었던 천재지변도 아니고 특정한 세력의 계획된 범행도 아닌,사람이 저지른 실수라는 사실이 여전히 우리를 암담하게 하는 대형사고였다.이런 대형사고가 그때 마다 그 대응에서도 똑같은 일로 거듭된다는 사실이 우리를 더욱 절망시킨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계속되게 마련이다.특히 우리처럼 치열한 역사의 시련과 곤고한 현실의 어려움에 맞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성장의 현대사를 개척해온 사회에는 하고 많은 모순과 부조리들이 부산물로 잉태되게 마련이다.급성장하는 경제의 부작용으로 졸속과 부실의 체계가 생산현장에는 물론 정책현장에도 만연하게 마련이고 그에 반해 성급한사회적 기대와 상대적 박탈감에 의한 불화와 원한의 심정적인 채권자를 숱하게 낳아놓게 마련이다. ○흥분·분노·개탄만으론 안돼 그 모두가 사고를 예측시키는 요인인데도 그 대응에 우리는 효율적이지 못했다.흥분과 분노와 개탄으로 절절 끓기만 하다가 식어버리면 그만인 사고의 형태와 그에 유사한,비이성적이고 정밀성도 없는 대응만 해온 것이다.언제부턴가 우리는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재빨리 책임지울 상대부터 찾아내는 일에 이골이 나버렸다.특히 언론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모든 사고를 원한의 확대재생산에 활용하는 것에 크게 기능한 것도 그에 도움을 주었다.반성할 일이다. 그런 일은 사고를 줄여가는 일에 효율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책임을 질 사람들에게 도덕적 불감증을 키워줄 뿐이다.중학생이 시험지를 훔쳐내도,지존파가 살인공장을 차려도 사회를 탓할 핑계를 제공해 주고,가스누출 신고를 받고도 외면하는 직업인과 그것을 감시해야하는 공직자도 냉소적인 채 무책임할 수 있는 탓거리를 만들어준다.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모두가책임진다는 자세를 보여야지 선동적인 방법으로 희생양을 내세워 책임을 전가하고 말끔히 잊는다면 아무 도움도 안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대형사고가 아주 총체적인 실수와 실패의 집합체라는 사실이다.내탓 만도 아니고 네탓 만도 아니다.우리 사회는 이미 첨단기술이 지배하는 하이테크 사회가 되었다.그러므로 그 대응도 그에 준해야 한다.전문가·학자·심리학자·사회학자·수사책임자들이 참여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냉정한 대처를 해야 한다. ○특별조사·연구팀 구성해야 미·일 등 선진국의 경우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관련 기관·회사·개인들이 책임의 회피가 아니라 자기쪽에 원인이 있는것이 아닌가를 철저히 객관적으로 규명하는데 전력함으로써 다시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보인다.우리 모두가 배우고 실천해야 할 자세다.이번 사건을 하나의 시범케이스로 종합 분석하고 연구해 결과와 대책을 보고케 하는 특별 「케이스 스터디 팀」의 구성을 제의 한다. 우리는 지금 싫든 좋든 세계의 일원으로살아남아야 하는 문명의 대전환점에 와 있다.그것은 분홍빛 미래상이 아니라 준열한 당위이다.시민 한사람 한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있는 세계시민이 되지 않으면 따라갈 수없는 가혹한 현실이다.그러자면 무슨 핑계를 정부와 사회에 떠넘기고 법과 규칙을 외면하며 이기적인 삶을 사는 방식으로는 감내할 수없는 시대를 뜻한다.따뜻한 인정도 필요하지만 냉정한 이성을 가지고 무서운 눈으로 지켜보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국민일반 안전의식 고취도 가혹한 횡액에 의해 억울하게 스러진 넋을 위로하는 일도 그런 일로만 가능하다.지루하고 답답하더라도 같은 잘못이 거듭되지 않게 하는 노력만이 최선의 대응이다.교육 등을 통한 국민일반의 안전의식 고취도 중요하다.5월을 맞으며 우선 그것을 시작하자.
  • 이,동예루살렘 팔 영토 강제수용/유태인 정착촌 조성

    ◎중동분쟁 재연 우려 【예루살렘 로이터 AFP 연합】 이스라엘 정부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영토를 빼앗아 이 지역에 유태인 정착촌을 건설키로 결정했다고 이스라엘의 한 관리가 27일 밝혔다. 이스라엘 토지 관리청의 한 대변인은 이날 동예루살렘 지역 중 54㏊ 땅을 강제 수용,2개 지역으로 분할해 유태인 정착촌과 경찰본부 부지로 각각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이스라엘의 평화 구축 상대자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자극,그간 조성돼 왔던 평화 무드에 찬물을 끼얹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PLO는 예루살렘의 동부지역을 점령지로 간주,장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로 만든다는 입장이어서 양측간에 적잖은 마찰이 우려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유태인­아랍계 평등을 추구하는 한 단체의 관계자는 『토지 수용조치로 전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철저히 배척하는 가장 가혹한 조치』라면서 강력히 반발했다.
  • 「선린」 거부하는 「추한 일본인」/반영환 논설고문(시론)

    우리를 격분케했던 「추한 한국인」의 저자가 밝혀졌다.박태혁이란 가공의 저자를 내세워 한국인을 「구제불능의 열등민족」으로 모욕했던,악의에 찬 베스트셀러 저자의 가면이 벗겨진 것이다.짐작했던대로 숨겨진 저자는 한국인이 아닌 일본의 우익인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외교 평론가인 가세 히데아키(가뢰영명)등이 중심이 된 「추한 한국인」제작팀의 의도는 무엇일까.말할것도 없이 한국인의 열등성을 강조함으로써 그 이미지를 깎아내리려는데 있다.그 다음에 노리는 것은 『그러니까 일제의 식민지지배는 정당했다』는 견강부회이다. 『조선은 수천년동안 중국의 종속국이었고 자주성이 결여돼있다.그러므로 독립국이 될 자격이 없다』 일제가 이 땅을 강점한뒤 일인 사학자들이 꾸며낸 이른바 식민지사관이다.따라서 일본의 조선합병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합방전후의 주장과 종전 50년뒤인 오늘의 주장이 일치하는데 놀라움을 금할수 없다. 종전50년을 맞는 일본은 심상치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이 「아시아의 식민지국가를해방시킨 성전이었다」는 망언을 서슴없이 해대고 있다.태평양전쟁을 미화시키는 작업을 당당하게 추진한다.집권여당이 종전50돌에 선포하려던 「부전및 전쟁사죄 결의」는 다수의 의원과 우익단체·국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다.종전후 끊임없이 되풀이되었던 식민지통치에 대한 일본정치인들의 망언은 요즘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는 것이다.망언과 사죄를 교묘하게 짜집기 해온게 전후50년의 일본이 아닌가. 역사적으로 일본은 우리에게 언제나 선린이 아니었다.삼국시대부터 고려·조선초에 이르는 1천수백년동안 왜구(위구)는 한반도를 노략질했으며 7년에 걸친 임진왜란은 조선을 초토화시켰다.마침내 조선의 국권을 강탈한 일본의 한국지배는 그들이 사죄용으로 자주 쓰는 『아픔과 고통을 준』정도가 아니었다. 가혹한 경제적 수탈과 함께 우리 젊은이들을 징용으로,징병으로 사지에 끌고가지 않았는가. 그뿐 아니라 순진한 이땅의 처녀들을 강제로 끌어다 성의 노리개로 삼기까지 했다.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수 없는 「종군위안부」를 고안해내 아시아여성 14만명을 희생제물로 삼았다.이중 한국여성이 10만명을 넘는다.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지른 일본은 이 일은 민간차원에서 추진된 것이라며 이에 대한 보상을 외면해왔다.이것이 파렴치하고 가증스러운 일본인의 실상이다.똑같이 패전을 겪고 경제부흥을 이룩한 독일과 일본이 이웃나라에 대한 사죄는 판이하게 달랐다.일본인의 왜소함과 옹졸함을 그대로 보여준다.근래에는 경제대국을 등에 업고 국제사회의 발언권이 커지자 오만한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군국주의의 부활을 예고하는 것같은 느낌마저 들게한다. 일본의 「엔」은 아시아 여러나라에서 위세를 떨치며 경제를 석권하고 있다.그러나 스위스 언론인 프리드맨 바투는 「추악한 일본인」이란 저서에서 동남아에 진출한 일본경제의 탐욕성과 지배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을 가하고 있다.파트너십은 아예 없는 것이 일본의 경제정책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한국에서의 경우는 어떤가.『상당한 투자끝에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면 일본의 생산업체는 어김없이 몇분의1 값으로 덤핑을 하고 들어옵니다.결국 부품개발을 해놓고 판로가 없어 쓰러지고 맙니다』일본기업들의 야비한 수법을 개탄하는 한 중소기업인의 말이다.공조를 모르는 일본기업의 단면을 말해준다. 「추한 한국인」처럼 일본에서 반한감정을 확산시키고 있는 「얼굴없는 저자」는 몇사람의 극우 지식인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대다수 국민들이 이같은 극우적 부추김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란다.그러나 일본국민들이 편견과 오만에 가득찬 극우성향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일본은 결코 우리의 선린이 될수 없을 것이다.
  • 고베 지진충격 이후/한영성 원자력연 상임고문(굄돌)

    지난 17일로 대지진 발생 3개월째를 맞는 고베현장.상점들이 문을 열었고 길을 메운 차량등 외관상으로는 많이 복구된 것 같았다. 그러나 5천5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백조원이 넘는 재산피해,아직도 5만5천명에 달하는 이재민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다. 이처럼 이곳 주민들의 몸고생은 말할 것도 없고 잦은 여진 등으로 심한 마음고생까지 겪고 있다. 신의 집(신호)이라 이름한 도시,그중에서도 신이 노닐던거리(신락정)가 피해의 극을 보였다.어디 그뿐인가.잘사는 사람의 잘 지은집,새집보다는 못사는 사람의 덜 잘 지은집,낡은 집이 훨씬 더 많이 넘어지고 부서졌다.따라서 가진자보다 덜가진자가 몇배 더 가혹한 천형을 선고받은 셈이다.「부익생 빈익사,신은 죽었는가」 어느 문인의 목멘 절규가 복구굴착기 소리에 섞여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것만 같다. 고베의 재해현장을 둘러보면서 실내의 냉장고가 넘어지고 텔레비전이 나뒹구는데 그대로 서 있는 건물,여러층 중에서 유독 한층만 찌부러진 현상,의외로 고층아파트나 대형건물이 멀쩡해 보이는 것등이 선뜻 이해가 안갔다.이어 지진이라는 엄청난 천재를 보고서야 비활성지진대에 살고 있는 천혜를 떠올렸다. 한편으로 이번 지진에서 일본 국민이 보여준 무서운 침착성과 질서의식은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그들의 높은 저축률과 강한 단결심 또한 수없이 겪어온 천재와 무관하지 않은 몸에 밴 생존의 길이자 생활양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일본고옥 뜰의 꽃과 나무는 언제 재앙이 있었느냐는 듯 미풍따라 싱그럽다. 「일본혼이여 힘내라」 곳곳에 나붙은 현수막의 글귀가 고베를 떠나 귀국길에 든뒤에도 잔영처럼 남는다.
  • 신봉승씨,서울신문 연재 「찬란한 비석」 3권의 책으로 펴내

    ◎“널리 읽히는 「국민소설」 전형 제시”/치밀한 고증 바탕 근대화 여명기 조명/유홍기·이동인 등 선각자의 꿈·고뇌 그려 국내 최고의 사극작가로 꼽히는 신봉승(62)씨가 근대사의 격동기를 다룬 대하역사소설 「찬란한 여명」1,2,3권(갑인출판사)을 묶어냈다. 『역사를 잘못 읽으면 민족의 자긍심을 손상시키게 됩니다.우리의 근대사가 흥선대원군의 유아독존적인 아집 때문에 「실패의 역사」로 기록됐다든가 흥선대원군과 중전 민씨와의 끝없는 갈등과 대립이 정치부재의 현상을 빚어냈다는 등의 이야기는 「근거없는 미신」일 따름입니다』 지난 93년 5월부터 2년 가까이 서울신문에 「찬란한 비명」이란 제목으로 연재되고 있는 이 작품은 18 66년 7월 미국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에서 불타면서 비롯된 병인양요로부터 19 05년 한일신협약(을사보호조약)이 강제조인되기까지의 39년간을 시대배경으로 삼고있다.그런 만큼 이 소설공간엔 임오군란,명성황후 시해사건,갑신정변,아관파천,청일전쟁,노일전쟁 등 민족수난과 질곡의 파노라마가 숨돌릴 틈없이 펼쳐진다. 『우리 근대사는 유홍기 오경석 이동인 등 개화 1세대의 선각자적인 꿈과 고독,그리고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홍영식 등 개화 2세대의 불같은 결기와 참혹한 희생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고난의 역정이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이 엄연한 사실을 외면한 채 안이한 식민사관에만 의지하려는 무지를 오히려 자랑으로 삼는 경향이 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기 위해 51세에 대학원(경희대 국문과)에 진학할 정도로 역사에의 관심이 남다른 신씨가 이 지점에서 우리 개항사의 진실을 소설의 그릇에 담으려 했던 것은 차라리 당연한 일에 속한다.더욱이 올해가 명성황후 시해 1백주년이 되는 해임을 감안하면 치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근대화의 여명기를 비추고 있는 그의 이번 소설 출간은 한층 시의성을 얻고있다.유홍기(의원),오경석(역관),이동인(승려) 등 다양한 부류의 민족선각자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것도 역사소설의 실감을 더해준다.특히 작가는 당초 연재됐던 소설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생몰연대조차 모호했던 유홍기의 족보를 입수,그의 가족사를 보다 생생하게 그렸으며 개화승 이동인의 일본내 활약상도 크게 보강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청소년들에겐 내일에의 꿈을 심어주고 지식층엔 삶의 성찰을 자극하면서 역사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국민소설」의 전형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현재 「한국역사문학연구소」를 운영하며 사료 수집·정리에 몰두하고 있는 신씨는 『역사는 허구보다 더 아릅답다』는 말로 자신의 역사관을 압축한다.「찬란한 비명」은 오는 6월까지 모두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다.
  • 캄보디아/20여년 내전 서서히 종막

    ◎크메르루주 이탈 속출… 올9천명 투항/4천여명 잔존… 밀림에 숨어 최후저항/폴 포트 등 지도자들 망명여부가 완전평화 변수 내전의 상처로 얼룩진 캄보디아에 평화는 오는가. 지난 75년 크메르 루주군의 프놈펜 점령으로 시작된 캄보디아 내전이 20년간의 질긴 도전과 응전 끝에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밀림을 자욱히 덮었던 포연도,목청을 카랑카랑 높였던 총성도 지겨웠던 지난날에 비하면 거의 잦아들었다. 아직 간간이 계속되고 있는 전투는 캄보디아의 새 정부와 여기에 저항하는 크메르 루주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93년 5월 유엔의 중재하에 실시된 총선에 크메르 루주가 참여를 거부하면서 평화정착의 꿈은 흐려지고 내전은 재발했다.이에 따라 총선에서 승리한 노로돔 시아누크국왕의 푼신펙(민족연합전선)이 훈센의 캄보디아 인민당과 연합하여 구성한 현정부는 크메르 루주군 토벌에 나섰다. 중국의 무기공급 중단과 정부군의 압박으로 크메르 루주는 총선 직전 4만명에 이르렀던 병력과 국토의 20%에 이르렀던 점령지를 거의 다 잃었다.현재 크메르 루주군의 영토는 캄보디아 서북부의 바탐방지역과 태국과의 접경지에 있는 밀림 일부 등 전국토의 5%미만으로까지 줄어들었다. 지난해 7월 정부는 크메르루주를 불법화 하면서 동시에 이탈자들에게 사면령을 선포했다.불법화 법안이 통과된 뒤 이탈자가 속출해 크메르 루주군 병력은 와해상태로까지 위축됐다.올해 들어서만 9천명의 크메르루주군이 이탈해 정부에 투항했다. 정부의 공격강화와 불법화에 대항해 지난 해 10월 이후 크메르 루주의 저항도 꺼지기 직전의 불꽃처럼 강렬해졌다.위기에 몰린 쪽이 무리수를 두게 마련이어서 크메르 루주쪽은 계속되는 양민학살과 가혹한 병력통제로 이탈자를 더욱 크게 늘리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부군의 추정에 따르면 현재 크메르 루주가 거느리고 있는 병력은 4천명이 채 안된다.훈센 총리가 최근 르 피가로지에 밝힌 바에 따르면 크메르 루주의 전체병력은 2천명 아래로 떨어졌다.이 통계는 크메르 루주의 실질적인 군사적 영향력이 이 땅에서 사라질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집권기간동안 저지른 범죄행위는 여전히 국제적인 관심사이다.미국 국무부는 지난 1월 앞으로 2년동안 폴 포트 정권하에서 자행된 집단살인을 문서화하기위해 70만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이 문서화는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을 법의 심판대 위에 세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의 집권 4년동안 대략 1백만명이 처형과 질병·기아로 죽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 숫자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7분의1에 해당한다.시아누크국왕을 포함해 이 나라 거의 모든 가정에서 희생자가 났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 크메르 루주 지도자들은 모두 60대의 할아버지가 됐다.국가원수였던 키우 삼판,크메르 루주의 제1인자 폴 포트,제2인자 이엥 사리,크메르 루주군 부사령관 타 목­이들은 지금 남은 병력을 이끌고 밀림에 숨어들어가 칩거하고 있다.재판은 이들이 잡히지 않는 한 별 의미가 없는 행위다.시아누크국왕은 이들이 차라리 국외로 망명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완전한 평화상태에 이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간헐적인 총성뿐이다. 한 정부군 지도자의 말은 이 상황에서 꽤 시사적이다.『아무도 그들을 밀림밖으로 끌어낼 수는 없다.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자연적 수명이 다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들이 다 죽고 없어져야 총성이 완전히 멎으리라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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